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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상징주의의 시인들 / 김경란 댓글:  조회:2050  추천:0  2018-03-25
상징주의의 시인들 / 김경란       1 보들레르와 교감            샤를르 보들레르(1821-1867)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재혼한 어머니와 독재적인 양아버지 사이에서 힘든 유년기를 보낸다. 문필가라는 직업에 대한 희망을 단념시키기 위해 가족은 19세의 그를 강제로 상선에 태워, 그는 모리스섬과 레위니옹섬을 유랑하게 된다. 파리로 돌아와 그는 댄디즘의 이상을 추구,호화판 탐미생활에 빠져들고, 물려받은 재산을 탕진하며 비참한 보헤미안 생활을 한다. 이때 흑백 혼혈의 무명 여배우 잔느 뒤발과 악연을 맺었으며 이는 그가 관능적인 시를 쓰는 계기가 된다.    그는 1841년서부터 1857년에 발간될 의 시편을 쓰기 시작한다. 1848년 혁명으로 신문에서 정치적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다시 그는 문학 비평과 예술 비평을 쓰기 시작하고, 1860년에는  이라는 산문시를 발행한다.    그러나 그의 은 발간되자마자 소송에 걸렸고 6편의 시는 종교와 풍속을 해친다는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으며 삭제명령과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그는 반신마비와 실어증 상태에서 46세로 사망한다.      은 시인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다룬다. 거대한 건축물처럼 일관된 의도로 구성된 이 시집은 원죄의식에 의한 고뇌, 순수미의 추구와 하강과 타락의 취미, 죽음에 대한 의식 등의 심리가 순수하고 에로틱한 사랑과 복잡하게 섞여있다    내밀한 정신성으로 일관된 은 근대시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며 현대를 열어주었다. 초판은 서시 외에 100편의 시를 수록하고 77편, 12편, 3편, 5편, 3편의 5부로 되어있다.    제목 자체가 악과 꽃을 결합시키며 모순어법을 택하고 있는 이 시집은 지옥과 천국 사이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이상과 심연 사이에서, 쾌락과 추락의 유혹, 그리고 퇴폐와 증오와 고뇌 사이에서 보들레르의 내면이 겪는 모순의 아픔들을 그리고 있다. 삶이라는 커다란 악속에서 자아는 모순되게도 삶의 황홀과 '지고의 아름다움'을 찾아 줄타기를 한다.    간단히 말해 이 시집 전체는 삶의 의지와 죽음의 의지, 그리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분열된 자아의 이원성의 드라마이다. 보들레는는 이렇게 서구시에서 거의 최초로 심연, 즉 심층적 자아 속으로의 탐사를 시화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은 "보들레르의 삶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도 불구하고 탄생한 것이다"라고(Maynial, 1973;317). 그러나 처절한 분열과 갈등과 모순에 찬 그의 삶과 시는 사실 서로 분리될 수 없었다.    보들레르는 에드가 포우의 훌륭한 번역가로서, 그에게서 언어를 구조화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낭판파, 고답파의 전통에서 벗어나게 되며, 그의 시는 베르렌, 랭보, 말라르메 등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의 무의식의 심층은 언제나 자신의 섬세한 분석의 대상이 되었으며 언어와 현실에 대한 그의 비판적 태도와 추종 불가한 감각과 통찰력과 상상력과 미의식은 추상성과 관능성과 음악성을 통하여 혁명적으로 시의 지평을 열었다.         자연은 사원, 거기 살아있는 기둥들은       가끔씩 혼동된 말들을 쏟아낸다.       사람은 거기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가고       숲은 그를 친숙한 눈길로 물끄러미 보네.       멀리서 섞여 어울리는 긴 메아리처럼       밤처럼 빛처럼 광막하게,       칠흑 속에 깊게 하나 되어,       향기와 색깔과 소리는 어울려 퍼지네.           어린아이 살갗처럼 풋풋하고,       오보에처럼 부드럽고 초원처럼 푸른 향기가 있고       또 썩고 짙고 강렬한 향기도 있어,         용현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사물들로 퍼져나가,       정신과 감각의 환희를 노래하네.                                             상징주의 문학이론을 대표할 만한 것으로, '교감(交感 correspondance)'라는 개념이 있다. 조응 또는 만물조응(萬物照應)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사실 만물 간의 조응에에서 출발한다기보다는, 사물을 인식하는 주체인 인간이 여러 감각 간의 내밀한 경계를 허묾으로써 시작한다. 위의 시에서 "향기는 색깔과 소리는 어울려 퍼진다"는 것은 서로 다른 감각들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된 그 무엇이 확산된다는 말이다.    감각들 사이의 의도적인 혼동은 이어서 언어의 관습 허물기, 마침내 인식 대상이나 사물들 사이의 벽 허물기로 이어진다. 이 3단계는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다.    이제 셋째 연에서 향기는 촉감과 소리와 색깔을 지니게 되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공감각 작용을 통한  통합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통합은 틀에 박힌 사물인식법과 감각을 바꿈으로서 가능하다. 기존의 이미지나 인식이나 감각의 형식은 이 시에는 이미 허물어져있다.    이러한 교감에는 어떤 가정이 존재한다. 그것은 보이는 현실은 내면에 존재하는 생각이나 감정이나 이상에 비하여 '거짓된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상징시는 이 가상을 허물고, 외면을 이루었던 원소들을 재조합하여 또 다른 차원이나 공간을 제시하고자 한다. 위의 시에 나타난 외적 지지대, 즉 숲, 사원, 기둥 등은 이미 현실의 기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구조물들이다. 사물들은 이미 눈에 보이는 사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표면 뒤에 자리하는 이상적 형태들의 상징들로서, 거대한 '상징의 숲'을 이루어 낸다.    위의 시에 나타난 감각을 다루는 보들레르의 새로운 방식은 사물에 대한 다른 상상체계를 열어주었다. 사물 인식에 있어서 '감정의 자연스런 유로'라는 낭만주의의 생각을 기본적으로 따르는 것 같으면서도, 그는 사실은 감각들을 분석하고 통합하고 변형하는 작업을 밀고나간 것이다. 시각, 청각, 후각의 뒤섞임 등, 감각들의 통합과 융해와 감각 차원의 다양화는 대상들의 세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세계와도 동시에 감응하여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시인은 '우주적 유추관계'를 파악하기에 이른다. 시인은 관계들의 수수께끼를 읽어내는 '해독자'가 된다.    향기,색채, 음향 등 여러 가지 감각 내용들이 등가관계를 이루도록 '수평적 교감'이 즉 공감각이 이루어질 때, 시인에게는 다른 공간이 열린다. 세계의 광대한 열림이란 다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개안(開眼)이 되는 것이다.  열린 감각의 새 차원에서 얻은 통찰력으로 시인은 예언가처럼 사상(事象) 뒷면을 읽어내고 우주를 해석해낸다.    삶은 이제 더욱 가까이 그 본질을 드러낸다. '혼동된 말'들은 울림과 깊이로 다가오며 그것을 이해하는 자는 '상징의 숲'을 자연스러이 가로질러 지나간다. 이 새롭게 형성된 공간은 존재감이 극대화될 수 있는 감각 능력에 도달했다는 말이며, 상징의 새로운 공간에 '사람'이 익숙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감각 훈련을 통해 얻은 통찰력과 이해력이다. 시선의 힘에 의해서 공간은 확장되고 축소된다. 무한한 확산도 가능하다. 현상적 외관 저 너머 기호와 상징으로 변한 초자연적 세계- 감각을 지녔다는 것은 이미 그 통로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소통의 열쇠는 은유와 '아날로지(유추類推)' 속에 있다.    이제 사람은 우주와 "칠흑 속에 깊게 하나 되어"있다. '칠흑 속에 하나'라는 것은 무의식 심층까지도 통하는 통일이다. 시인은 하나의 작은 징조로 우주를 알아보게 된다. 이파리 하나로 우주만상을 알고 자연의 비밀스러운 흔적들을 이해할 수 있다.           삶으 내려다보며, 힘들이지 않고       말 없는 꽃들과 사물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자여.                                                                                               (상승)        여러 감각들 간의 교감이라는 보들레르 시학의 독창적 양상이 두드러지는 시 에서, 시인은 색채와 후각을 음악과 언어와 결합시키는 정교한 모험을 시도한다.           이제 다가오네 줄기 위에 떨며       꽃송이마다 향로처럼 향기 내뿜는 시간이       소리와 향기들은 저녁 공기 속을 떠도나니       우울한 왈츠여 나른한 현기증이여!         꽃송이마다 향로처럼 향기 내뿜고       바이올린은 상심한 가슴인냥 전율하네       우울한 왈츠여 나른한 현기증이여!       하늘은 커다란 제단 같이 슬프고 아름답네.         바이올린은 상심한 가슴인양 전율하네       넓고 검은 허무를 증오하는 다정한 마음이여!       하늘은 커다란 제단 같아 슬프고 아름답네.       해는 얼어붙은 제 피 속에 빠져죽었으니..           넓고 검은 허무를 증오하는 다정한 마음은       빛나던 과거의 잔해를 모두 거둬들이네!       해는 얼어붙은 제 피 속에 빠져 죽었으니,,       내 속에 그대 추억의 성체합처럼 빛나네!                                                                                                      (저녁의 조화)        시인에게 오랜 도안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정신적 여인 사바티에Sabatier 부인에게서 영감을 받아 쓴 이 시에서, 그는 내면 차원보다 현실 차원에서 만물조응이라는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여기서 '조화(調和)'란 '소리와 향기들'이 섞여 떠돌면서 영상시키는 색채와 움직임과형태들('제단' '성체합')의 마술이 사랑에 대한 회한을 주문처럼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소리와 얗기들이 떠돈다'는 것은 소리와 향기가 형태들과 색채로 연결되면서 빚어내는 환기술같은 것으로, 이 환기술은 사랑에 대한 회한과 연결된다.    '팡툼(pantonm)'은 보루네오 지방이나 말라카 반도의 토착적 양식으로 낭만주의자들이 이국적 색채와 지방색을 표현하기 위해 차용해서 쓰던 4행의 시구로 이뤄진 시형을 말한다. 시에서 각 연의 2, 4행은 다음연의 1, 3행에서 반복되고, 다시 마지막 행은 시의 첫 행을 반복하며 시를 종결시키는 형식이다. 그러나 이 시는 팡툼을 엄격하게 따르지 않아 첫 행이 마지막 행에 나타나지 않으며, 그 변형이라 하겠다.    겉으로 보면 이 시는 소박한 정경 묘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석양, 꽃향기, 바이올린 소리 등의 몇 개 이미지가 있을 뿐이다. 사실 '빛나던 과거의 잔해' 마지막의 "내 속에 그대 추억으니 성체합(聖體盒)처럼 빛나네!"라는 말이 없었더라면 시 시는 시의 의미와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리듬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독자는 시인의 내적 춤에 동참하게 된다. 이 시에서 반복적 기법은 여타의 움직임에는 무관한듯 시인이 자신의 태도를 견지하고 자족적인 움직임을 되풀이하게 하여, 생각의 원무(圓舞)를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현기증이 의식을 독점한다. 계속되는 반복으로 의식은 비틀거리지만 쉬지 못한다. 소용돌이치며 도는 양식 때문에 주의력은 이리저리 교차하는 여러 움직임들에 이끌리고 어지러워져서 어디에 정착할지 헤맨다.    시의 마지막 행은, 계속 확장되며 피할 수 없는 어지러운 윤무를 벗어날 수 있도록, 전체의 중심을 잡아준다. '그대 추억'이라는 말로써 위의 모든 말들을 확인하고 정리하여 중심을 만든 후에, 같은 생각과 말들을 시 전체로 되풀이하며 확산시키는 효과다. 시적 자아는 잠시 스스로의 생각을 확인함으로써 쓰러지지 않고 원무를 다시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행들의 음악적 배치는 시의 본질적 테마를 시행 전체로 확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잃어버린 과거의 행복에 대한 인상을 후각, 청각, 시각을 복합하여 호소함은 자아는 이 세상에 잡혀있다는 상황을 스스로에게나 독자에게 다시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절망의 현기증 나는 되풀이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로잡힌 자의 날개'라는 생각은 시인 속에 항상 자의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으로       거대한 바다새 알바트로스를 잡는다.       여행의 무심한 도행으로, 쓰디쓴 심연 위로       미끄러져가는 배를 따라가는 이 새를.                (-----)           '시인'도 이 구름의 왕자와 같아       폭풍우를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는다.       야유로 찬 땅 위에 그리하여 유배되나니,       거인의 두 날개는 걷지도 못하게 한다.                              (알바트로스)        현실에서 이상세계는 실현될 수 없고 시인은 '쓰디쓴 심연 위'를 줄타기한다. 조롱과 경멸 속에 세상과 유리되는 현실적이고 관념적인 분열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는 '인공낙원'을 통하여 위안 받고자 한다.    그의 시는 에서 볼 수 있듯이 감각의 심층을 내보여주기도 하고, 에서 처럼 정신의 불분명한 영역을 열어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에서는 현실의 불운을 시로 그린다. 시인은 또 현실과 자신에 대한 절망과 그 속에서의 희망을 피력하기도 한다.           내 청춘은 칠흑의 폭풍우,       여기 저기 빛나는 햇살 스쳐갔으나       천둥과 바람이 어찌나 휩쓸었는지       뜨락에는 몇 개 주홍빛 열매밖에 남지 않았네. (---)                                                           (적)        그러나 그에게는 개인적 상징주의보다 초월적 상징주의가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 많은 그의 시들은 초월적 국면을 강조하고 현실을 넘어서 이상세계를 통찰하려 시도한다. 에서 그는 과거의 사랑에 대한 추억 뿐 아니라 잃어버린 천국을 비통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향수는 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있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집착은 찬란한 꿈이 되어 빛을 발하기도 한다. 그곳의 고요함과 화려함, 그곳의 맑은 하늘과 질서는 자주의 그의 시에서 언급된다. 이상세계는 마치 살아있는 나라인 듯 그려진다.    시인은 이렇게 현실 너머 공간을 들여다보고 그것에 대해 전달하는 존재가 된다. 시인은 '모어'를. 즉 "말없는 꽃들과 사물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잇는 능력을 부여받았으나, 이 지상에서 추방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언어는 이 지상과 어울리지 않는 거추장스럽고 필요 없는 알바트로스의 날개처럼, 현실에서 무용하며 무상의 것이다. 그의 시집의 많은 부분은 이처럼 이상세계를 본 자의 희망과 절망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현실은 우울한 지옥과 푸른빛을 동시에 심연처럼 숨기고 있다.   상징주의의 시인들 / 김경란       2 베를렌, 회한의 선율          상징주의는 언어의 내용보다 '언어가 낳는 효과'를 중시하는 문학경향으로, 말을 의미있게 연결시키기보다는 말이 빚어낼 수 잇는 뉘앙스를 드러내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폴 베를렌(1844-1896)은 이라는 시에서 언어의 결, 죽 뉘앙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말의 사용에 음악의 특징을 도입하려 한다. 음악의 섬세한 환기술과 유연성을 시에 도입하여 시어의 해방을 노림으로써, 그는 상징주의 언어를 풍요롭고 새롭게 한다. 관념 속에 머무는 언어가 아니라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살을 지닌 언어로 빚어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음악을,       그러기 위해서는 '홀수각'을 택하라.       더욱 모호하게 노래 속에 잘 녹아들며       짓누르거나 멈칫거리지 않는 홀수각을.         또 그대는 오해를 할 수 없도록       말을 선택하려하지 말 것,       '미묘함'이 '선명함'에 뒤섞이는       회색 노래보다 더 귀한 것 없으니.                 (----)          왜냐면 우린는 '뉘앙스'를 아직도 원하기 때문이다.       '색깔'이 아니라 오직 '뉘앙스'를!        오! 뉘앙스만이 오직 결합시킨다네,        꿈과 꿈을, 플릇과 뿔피리를! (---)        음악의 리듬과 환기력과 조화의 힘은 언어와 결합하여 사물과 영혼의 서정적이고 섬세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낸다. '영혼의 상태'를 조성하고 표현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홀수각의 언어와 '회색 노래'는 모호한 미결정의 영역을 열어준다. 그리하여 시는 정형의 풍경이 아니라 풍경의 확산이 된다. 시인은 묘사와 인식의 기존 틀을 지움을써, 풍경을 극복하는 힘을 지니고자 하는 것이다    베를렌은 더불어 상징주의자들은 시구의 해방을 위한 여려 실험들을 하게 된다. 홀수각의 시에 이어 시구의 다양한 '걸치기', 자유시, 구두점 없애기, 페이지 개념 바꾸기, 산문시 등, 그 시도는 다양하다. 그러나 베를렌은 '자유화시'에 대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운문의 틀을 깬 것은 아니어서, 전통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시는 대개 상징주의 작품처럼 난해하지도 않았고 일반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문학적 야망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이상'을 그려내는 능력에 뛰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현재의 삶에 밀착되어 있었다. 밀착이라기보다 자신이 감정 속에 매몰되어 근본적으로 감정적인 시를 썼다 하겠다. 베를렌의 삶은 랭보와의 일화를 포함하여 저주와 비참함으로 점철되어있다.    베를렌의 알콜중독은 독주 압생트를 즐기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마틸드와의 만남을 계기로 의 시편들을 쓰면서 안정을 찾은 듯하였다. 그러나 1870년, 17세의 마틸드와 결혼하였지만, 당시 17세였던 랭보가 여덟 편의 시를 베를렌에게 보내왔고 베를렌은 곧 그의 시에 매료된다. 그는 랭보를 파리로 부르고, 둘의 관계는 모두의 의심을 받게 된다. 그들은 벨기에와 런던에 일지 정착하기도 하였으나. 다른 까닭으로 시를 찾던 두 사람은 방랑 끝에 충돌하기에 이른다. 랭보는 베를렌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베를렌은 랭보에게 총으로 쏘고 체포된다. 그들의 만남은 18개월만에 불화와 상처로 끝나고 베를렌은 벨기에의 몽스 감옥에 있게 된다.       라는 시가 씌어진 시기는 시인이 아내와 랭보 사이에서 이혼문제와 화해의 시도 등으로 흔들리고 있던 기간이다. 이 시는 처음에는 '무언가'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나, 라는 동명 시집 속에서는 '잊혀진 아리에타'라는 제목의 9편으로 된 연작시 중 첫 번째 시로 실려 있으며, 무제이다.                                                                                        들판에 부는 바람이                                                                                                      숨을 멎는다                                                                                                            파바르 Favart              그것은 나른한 도취.         그것은 사랑 뒤의 피로,         그것은 미풍의 애무에 일어나는         숲의 온 전율,         그것은 회색 가지들 쪽으로 퍼져가는,         작은 목소리들의 합창.           오 가녀리고 무후한 살랑거림 소리!         그것은 속삭이며 소곤거린다.         그것은 물결치는 풀밭이         내뿜은 작은 외침소리 같아...         마치 굽음 물길 아래.         조약돌이 소리죽여 구르는 소리 같아.           탄식소리 숨긴 채         비탄에 젖은 이 영혼,         그건 바로 우리의 넋이지 않니?         나의 넋, 그래, 너의 넋이지 않니?          거기서 온화한 저녁 아주 나지막이         초라한 송가가 새어나오지 않니?        랭보의 의도적 착란과 광기, 환각에 사로잡힌 방랑과 일탈과는 달리, 베를렌은 내부의 멜로디를 향해 간다. 랭보의 공격적 주제 선택과는 달리, 그는 석양, 안개, 달, 비, 추억, 노래, 회한 등 소박한 것을 즐겨 소재로 택한다.이 시는 대부분의 베를렌의 시처럼 여성적인 섬세함이 두드러지며, 시인이 말하는 "'미결정(미묘함)'이 '결정(선명함)'과 뒤섞이는 회색 노래"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시간과 공간이 불투명한 풍경으로 펼쳐지지만 그것은 별개의 시공간이 아니라 자아가 행복해하거나 아파하는, 자아의 서정이 투영된 극히 주관적인 풍경이다. 결코 풍경은 자아를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영혼의 상태'를 대신 그려낸다. 미세한 소리들은 모두 숨죽여 영혼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들판이라는 공간 풍경 속에는 바람조차 숨 죽이고, 넋은 귀 기울여 존재에 대한 해답을, 즉 자신에게 남아있는 길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이다.    풍경에서 아무 것도 사실은 완전히 죽은 것도 완전히 살아있는 것도 아니다. 소리와 움직임은 하나가 되어, 완전한 침묵이 아니라 가녀리고 초라하게 떨고 있다. 소리에 대한 묘사가 특징인 이 시는 거의 침묵을 강요당한 영혼에 대해 소리 죽여 외치고 있는 것이다. 소리나 노래의 가능성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있다.    베를렌의 시의 특징은 이렇게 회색 풍경 속에도 있고 회색의 노래 속에도 있다. 그의 시는 전체적으로 음악에 대해 생각하게 할뿐 아리나. 각각의 시어 또한 소리와 음악에 연결되어 있다. 시인이 영혼의 상처는 그대로, 소리의 풍경으로 전이된다. 영혼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바로 옮겨간다. 이렇게 그의 시의 기본 요소는 소리라 하겠다. 마치 랭보에게 색깔이, 보들레르에게 향기가 그러하듯이.    그가 '색깔이 아니라 오직 뉘앙스를'이라고 외쳤을 때의 뉘앙스란 새깔보다 소리의 뉘앙스이다. 랭보의 색깔과 그의 소리 사이에서 두 시인의 기질의 차이를 읽을 수 있겠다. 랭보와의 관계가 비극으로 끝난 뒤 베를렌은 과거를 지우기 위해 의 시편들을 쓴다.           하늘은, 지붕은 위로,       너무 푸르고, 너무 고요해!       나무는, 지붕 위로,       종려잎을 흔드네.          (----)         아니 , 이런, 삶이란 저런 것,       단순하고 평온한 것을.       평화로운 웅성거림       도시에서 들려 오네.         - 오 거기 있는 너, 넌 무얼 하였지.       한 없이 울어대며,       말해 봐, 거기 잇는 너, 넌 무얼 하였지,       너의 젊음을 가지고?                             몽스에서 출감한 시인은 신앙을 엿보기도 하지만 결국 여전히 폐인상태로 비참한 삶을 마감한다. 많은 사람들은 위의 시에서 종교적 신앙의 자취를 찾아내지만, 우리는 종교적 회한보다 오히려 가슴 치는 통한과 마주하게 된다.    시의 전반 3연들을 모두 마지막 4연에 대비시킴으로써 회한은 거의 오열이 된다. 1연의 나뭇가지의 고요한 흔들림. 여기에는 생략된 2연의 종소리, 3연의 웅성거림 소리는 모두 4연의 울음소리와 대비된다. 시인의 모든 신경은 이 시에서도 소리에 집중되어있다. 1,2,3연의 억제된 리듬은 마지막 연의 파격으로, 강렬한 아픔으로 돌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파격도 랭보이 것과 비교하면 대단하지 않다. 나약하다 할 정도로 그의 시는 결 고운 비단과 같다. 랭보가 자신의 열로 인하여 스스로 불타고 연소하는 형이라면, "베를렌의 것은 더 밀도 있고 관대하며 역광의 아름다움 같은 휘귀하고 미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랭세,1984;158)    그는 랭보처러럼 강한 자아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시어 하나 하나에서 '영혼의 상태'가 실려있지 않는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시어들이 결합되어 빚어내는 풍경은 언제나 마음의 풍경이어서, 좀체 자연과 인간은 분리되지 못한다. 랭보처럼 풍경을 이끌거나, 보들레르처럼 풍경 속을 드나듦이 아니라. 풍경을 아파하는 것이다.         힘 잃은 여명은       들판으로 쏟아붓는다       지는 해의       우울을.       우울은       달콤한 노래로       내 마음을 흔들어       석양에 나를 잃다.       모래톱 위로 저물어가는       태양빛처럼       이상한 꿈들,       진홍빛 유령들이       펼쳐진다, 쉬임 없이 (----)                                          그의 공간이란 두 시인들처럼 거리두기가 가능한 공간이 아니고, 장식있는 배경도 아니며, 자신을 고요히 쏟아붓는 공간인 것이다. 소리, 색, 미세한 떨림이나 움직임, 빛의 변화 - 이 모두가 오직 하나만을 향하고 있다. 풍경 속에 자아는 반복되어 투사된다. 시각에 따라 변하는 태양빛에 따라 자아도 변한다. 페이르는 이런 베를렌을 '인상주의 시인'이라 하였으며 마르셀 레몽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베를렌은 그 자체가 송두리째 하나의 자연이다. 매우 섬세하고 복합적인 자연, 여러가지 영향들을 이용할 줄 알지만 즉각적으로 주어진 자연, 근원적이며 삶 그 자체에서 직접 자양을 섭취하는 독창성의 자연이다. (Raymond, 1983;31)       따라서 베를렌의 시는 상징주의의 다른 거성들의 작품들과는 다리 난해성을 거의 띠지 않는다. 소박하고 꾸밈없으며 친밀하고 서정적인 특성들은 그의 구어체 어조에서 가장 빛난다. 그는 많은 상징주의자들처험 초월을 노래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초월적 상징주의가 결여되있다는 점은 그의 시의 결함으로 볼 수 있다. 보들레르에게서 볼 스 있는 천국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결여는 그에게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사실 그의 개인적 상징주의의 특성이자 장점이라 할 것이다.    그의 명성은 시형의 완벽성이 아니라 가사 없는 노래의 더듬거리는 시들로 더해졌다. 독자에게 호소력 있었던 것은 리듬의 근저에 있는 끝없이 상처 입은 영혼, 그것의 리듬 있는 넋두리였던 것이다. 모험이란 그에게 숭고한 차원의 것이 아니라 소박한 것이었으며, 문학은 사실은 그의 계획 밖의 것, "소위 문학이라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의 파격시와 그의 음악은 언어의 논리보다 내적 표현을 따르는 형식이었다. 그것은 어떤 유파의 논리에 머물지 않았다. 내면을 따라간 후에야 그의 이론이 있었다.           여전히 그리고 언제고 음악을!                      (----)       그대의 시는 운 좋은 모험이기를,       박하와 백리향을 꽃피워가며       아침 찬 바람 속에 퍼져가는 모험...       소의 문학이라는 것은 나머지 것이다.                                             베를렌이 "짓누르거나 멈칫거리지 않는 홀수각"을 택하라고 하는 것은 운문을 형식의 제약들에서 해방시키라는 말이다. 언어의 무용한 중량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홀수각을 택하는 것이고, 종래의 문학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베를렌의 거부는 이론이라기보다는 어떤 몸짓이었다. 그것이 그 나름대로 상징주의에 기여한 공헌이며 프랑스 시를 자연스럽게 전통에서 해방시키는 길이었다. 그는 각운을 완전히 폐기하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상징주의의 시인들 / 김경란       3. 랭보와 '견자'의 길        아르튀르 랭보(1854-1891)는 1871년 베를렌의 초청을 받고 파리에 갔지만, 그들의 관계는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 랭보는 결국 1873년 브뤼셀에서 만취한 베를렌의 총에 맞게 된다. 어머니의 농장이 있는 로슈로 돌아온 랭보는 지금까지의 생활을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산문시 을 쓴다. 그러나 베를렌과의 작별에 이어, 1875년경부터는 문학과 작별하며 네덜란드, 자바, 북유럽, 독일, 이탈리아, 키프로스 등을 유랑한다. 상아밀매, 무기상, 모피상을 했으며, 이미 문학과는 절연한 것이었다. 1880년에는 일자리를 찾아 홍해의 모든 항구들을 찾아다녔으며, 그 후에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에서 교역에 종사한다. 1891년 관절염으로 프랑스로 돌아오며 아무도 알아볼 수 없도록 변한 채 마르세유에서 37세로 사망한다.           나는 떠나갔네, 터진 주머니에 두 주먹 지르고       외투는 다 해져 거의 보이지 않았어.       나는 하늘 아래를 갔지, 시의 여신이여! 나는 그대의 신도였다네.       오 랄라! 찬란한 사랑을 얼마나 꿈꾸었던지!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어.       - 꿈꾸는 엄지동자처럼 나는 길목마다 시를       뿌려두었지. 숙소는 큰곰자리에 두었고       - 내 별들은 하늘에서 부드럽게 사르락거렸어.         그래 나는 길 가에 앉아 별들이 소리에 귀 기울렸지,       구월 그 아름다운 저녁에, 그때 이마에는       생명수 같은 이슬 방울들이 떨어졌어.         그 저녁, 나는 환상 같은 그림자에 싸여 운을 맞추며       터진 신발 끈을 잡아당겼네       칠현금인양, 가슴 가까이 한쪽 발을 대고서!                                              발을 칠현금에 비유하고 있다. 걸어가며 엄지동자처럼, 에서 처럼, 시를 길 어귀에 쏟아둔다. 칠현금 같은 발의 걸음마다가 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자주 회자되는 랭보의 시 중 하나로서, 이미 랭보의 분방한, 인습을 뛰어넘는 자유로움과 공격적 성향이 보인다. 베를렌 같은 조심스러움이나 약함은 찾아볼 수 없다. 베를렌이 그를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라고 하였듯이 거침없는 그의 행보와 꿈의 뒤를, 시는 자연스레 뒤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풍경 속에 각인된 슬픔이라든가 풍경과의 갈등의 조짐은 없다. 이 방랑기는 1870년 말에 씌어졌는데, 랭보의 글쓰기는 16세가 되기 전인 1870년에 시작되어 1875년에 끝난다.    최초의 시를 발표하고 6개월도 되지 않은 1871년 5월에 랭보는 유명한 를 썼는데, 거기서 그는 프랑스 시를 '운을 지닌 산문'에 불과하다고 비난한다. 그의 시는 이처럼 반항으로 시작한다. 그는 모든 것에 대한 반항을 꿈꾼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옛날,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포도주들이 흘러내렸던 축제였다. 어느 저녁 나는 무릎 위에 '아름다움'을 앉혔다. - 그리고 그것은 쓰디쓰다는 것을 알았다. - 그래서 그것을 모욕해주었다.       나는 정의에 대항했다.       나는 도망쳤다. 오 마녀들이여, 오 비참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은 바로 너희들에게 맡겨졌다.                                                                                                       ( 지옥의 계절)       계속되어 이어지는 반어적 문장들의 속도는 시인의 저항과 파괴의 강도를 예측하게 한다. 그는 기존의 가치와 원칙들의 거부에서 출발하며 온갖 신성모독과 잔혹과 거짓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반항은 맹목의 것은 아니었으며, 랭보는 부정의 끝에 하나의 해결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나는 타자다. Je est un autre'라는 유명한 선언으로 제시된 해법이다. '이다'라는 불어 동사는 1인칭 'suis'가 아니라 3인칭 'est'라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시인은 스스로를 객관화하여 뜷어볼 수 있는 '견자見者'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파괴를 통해 객관에 도달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파괴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시인은 모든 감각들이 오래고도 광범위하여 논리있는 착란에 의하여 스스로 견자가 된다. 사랑과 고통과 광기의 모든 형태들, 그는 스스로를 탐색하고, 자신 속에서 모든 독들을 다 소진시켜, 그 진수만을 간직한다. 이는 모든 신념과 모든 초인적 힘을 필요로 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형벌이다. (---) 왜냐면 그는 미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1871.5.15)        그는 '미지'의 세계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미지未知'란 보들레느나 말라르메도 추구하던 공통의 목적지로서, 정신과 언어의 새로운 지평을 엶으로써 도달 가능하다. 미지에 도달하는 것은 시인은 '자신의 영혼을 경작하여' '이미 풍요롭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그는 영혼의 단련과 스스로에게 의도적인 형벌을 가함으로써, 즉 모든 감각들의 미리 계획되 의도적인 착란에 의하여, 이미 이곳에 도달하였다는 것이다.    감각과 내적 훈련을 통한 정신의 해방은 먼저 스스로 '불량소년(voyou)'이 됨으로써, 즉 종교나 기존 사유체계 등,정신과 감각을 속박하는 모든 것에 대한 주저 없는 파괴와 항거로써 가능하다. 질서와 그것의 구속, 기성의 행복과 사랑, 윤리, 종교, 요컨대 인간 정신의 그 어떤 산물이라도 내적 혁명의 대상이었다.              나에게. 나의 광기들에 가운데 하나에 대한 이야기.       나는 오래 전서부터 가능한 모든 풍경들을 소유할 수 있다고 자부하였고, 그림과 현대시의 명성은 하찮은 것이라고 여겼다.                                                        반항과 거부에 의하여 공간은 변모될 수 있는 것이다. 베를렌처럼 그 속으로 파묻히거나 사라지는 풍경이 아니다. 자아는 풍경을소유하거나 버리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    파괴에는 이를 명령하는 논리가 우선된다. 견자가 되는 것은 의도적 광기와 감각과 정신의 훈련을 통하여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중성적이고 몰아적인 상태에 도달한다. '나는 타자다'라는 말은 주관과 객관적 진실이 서로 모순되지 않을 수 있도록 통일된 경지이며, 인식의 장애물들이 정신의 힘으로 극복된 상태를 말한다. 나와 타자 사이에 아무 구별이 없다.    그래서 랭보는 데카르트Descartes의 코기토(cogito)에 맞서는 코기토를 제안한다. 그것은 '나는 생각한다'가 아니라, 'on me pense'(1871년 5월, )다. '사람들은 나를 생각한다'이거나 '나는 생각되어진다'이다. 이처럼 나는 타자다.    타자인 나는 나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고 그 전개를 성찰한다. 이 몰아적 정신과 감각의 상태에서 , 시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아가게 하라는 것이다. 미래의 초현실주의자들은 랭보에게서 이 부분을 읽어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견자가 된다는 것은 시인이 되기 위한 단계지 견자가 시인은 아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고통 끝에 마치 무병을 앓은 후처럼 견자, 즉 '최고의 현인'이 되지만  그것으로 시인은 아니다.시인은 모음의 탄생을 체득한 자여야 한다. 랭보가 "나는 모음의 색깔들을 만들어내었다"라고 하며 "검은 A, 하얀 E, 붉은 I, 푸른 O, 초록 U"라고 하였을 때 랭보가 꿈꾸는 것은 언어를 감각적으로 재현하겠다는 단순한 꿈이 아니다. 그는 창안한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빚어질 정신과 언어의 우주, 즉 새로운 창조에 대해 갈망하는 것이다.    시인은 따라서 '잠재된 탄생'을 연금술로써 약속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언어는 '모든 감각에 적용될 수 있는 시어'이다. 이 '보편적 언어'를 찾아내는 일이야말고 연금술사의 소명이다.    랭보는 그러니까 자아의 문제에서 결코 헤어날 수 없었던 베를렌의 개인적 상징주의와는 달리, 그 너머의 상징주의, 초월적 상징주의를 꿈꾸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베를렌을 만나러 가기 직전에 쓴 그의 비교적 초기의 작품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개인적 모험으로 시작하는 여행담이나 환상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을 배로 의인화시킨 표류의 이야기나 꿈의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지만, 시인이 그리는 천국에 대한 인상이기도 한 것이다. 랭보의 천국은 모험과 광기 후으 움직이는 공간이지, 보들레르식의 '평온과 호화 그리고 관능'의 도피적 공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랭보는 모든 것을 알아버린 듯, 심연을 동시에 암시하기도 한다. 모험은 지속되지 못하고 단념 속에 다시 바다의 이면으로, 현실 속의 어두운 물로 돌아온다.           나는 항성 같은 군도를 보았네! 또 착란하는       하늘을 표류자에게 열어주는 섬들을 보았네.       - 네가 잠들고 유배되는 곳은 바닥 없는 그 밤들 속인가.       수많은 금빛 새들이여, 오 미래의 '기운'이여?         그러나 사실 나는 너무 울었다! '새벽들'은 가슴 에인다.       모든 달은 잔인하고 모든 해는 가혹하다.       쓰라린 사랑은 내게 취할 듯한 무기력을 불어넣었다.       오 나의 용골이여 깨어져라! 바다로 가야겠다!         내가 유럽의 물을 원한다면 그것은       향기로운 저녁 무렵 웅크린 채       슬픔에 찬 아이가 오월 나비처럼 덧없는       배를 띄우는 검고 차가운 물웅덩이다.                                                      ()        랭보는 당시 바다를 본 적이 없었고 보들레르처럼 인생 경험에 대한 기억도 많지 않았다. 상상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의 환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이었다. 시인은 감각의 훈련으로 절망의 심연을 뜷어보는 능력에도 도달한다. 견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 착란으로 스스로를 견자로 만든 것이다. '모든 형태의 사랑, 고통, 광기들'을 경험하여 흔히 감지되지 않는 '사물들의 언어'를 포착하는 초감각에 거의 도달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모음들의 색깔을 만들어내었다! - 검은 A, 하얀 E, 붉은 I, 푸른 O, 초록 U.                                                      (---)         그것은 처음에는 하나의 연구였다. 나는 침묵을, 밤들을 썼으며,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기록하였다. 나는 현기증들을 고정시켰다.                                                       (---)            나는 단순한 환각에 익숙해졌다. 나는 공장 대신에 회교사원을 아주 분명하게 보았다. (---)                                                                                         ()        모음들의 색깔을 만들어내었다는 것은 어떤 신비로운 탄생, 즉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재현될 세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세계란 침묵 뒤의 공간까지 아우르는 세계, 우주적 본질들의 현현(顯現)으로서의 세계이다. 이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언어는 모든 감각에다 적용될 수 있다. 새 언어에 의해서 착란은 질서로 안착된다.    그가 "나는 단순한 환각에 익숙해졌다. 나는 공장 대신에 회교 사원을 보았다."라고 했을 때, 환각 만들기라는 행위는 거부하고 파괴하였던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부활시키는 능력이다.        시란 이제 부정이 아니라 초월을 위한 방법이다. 개인의 한계를 넘어 신비로운 도취 속에서 우주의 원초 속으로 환원되게 하는 말 - 이를 위하여 자아는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모험을 자청하였었다. 이 모두가 관념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그것을 위한 교란의 정도는 가히 파괴적이었고, 모험을 가능하게 한 힘은 놀라운 것이었다. 부정되었던 현실이 현실을 되찾는다. 현실이 '미지'가 된다. 랭보는 이 모든 실험을 불과 몇 년 사이에 해치웠으니, 그의 반항의 강도는 엄청난 것이었다.    시인은 '불을 훔쳐온 자'라는 것은 '모든 감각에 적용되는 언어'를 가진 자라는 뜻이다. 이 '보편적 언어' 또는 '우주적 언어'는 향기, 소리, 색채 등 모든 것을 융합하며, '영혼에서 영혼으로' 전달된다. 영혼을 끄는 영혼의 언어를 갖고서 '보편적 영혼'으로 다시 태어난다. 시적 감각은 예언적 감각이 되고, 신비로운 발견의 수단이 되며, 무의식까지 탐사하는 정신의 섬세한 도구로 변한다.    비록 짧은 시간에 행해진 이 모든 실험들은 말라르메도 지적하였듯이 인내심의 결여를 보이는 듯하기도 하지만. 그의 모험의 크기는 사실 알 수 없는 또 다른 인내를 요구하였을 것이다. 그의 일화까지 포함하여 그의 치열함과 그의 감각과 언어 조합력과 추진력은 아직도 신화다.   상징주의의 시인들  / 김경란       4. 말라르메와 구도의 여정          말라르메(1842 - 1898)는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열 살에 아버지의 재혼, 이어 여동생 마리아의 죽음 등 가정적으로 이미 어려서 불행을 체험한 바 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과 메리 로랑과의 관계를 제외하면 이후의 삶은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하여, 시인 스스로가 에서 '일화가 없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포우를 더  잘 읽기 위해' 런던에 머문 적도 있지만, 평생을 지방에서 나중에는 파리에서 영어 교사로 지냈다. 그 외에는 오직 시작에만 전념하였다. 죽기 2년 전 '시인들의 왕'으로 뽑힌 것, 그리고 파리의 아파트에서 문학모임 를 가졌다는 외에는, 가난에 시달리기도 하였지만 정말 랭보식의 일화나 사회적 야망은 거의 없이 평온한 삶을 살다가, 퐁텐느블로 인근 발뱅의 시골집에서 삶을 조용히 마감한다.    그는 보들레르를 읽고 지에 시를 발표함으로써 문학적 삶의 결정적 계기를 맞는다. 고답파에서 언어 형태의 완벽성을 배웠고 에서는 자신의 내적 갈등과 비극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의 '창천(蒼天)', 즉 이상에 대한 꿈은 보들레르의 이상과 일치되지는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도덕적이라기보다 형이상학적인 것이고, 그의 시학은 본질적이며 관념적인 어떤 실체를 찾기를 향하여 열려있다.    "보들레르. 랭보, 베를렌의 시적 경험은 대개 모험이 주는 영감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나 말라르메는 시란 우연스런 '영감들의 모음집'이 아니다. 삶의 우연과는 무관한 언어행위라고 말한다.    비록 '일화는 없었다.' 하더라도, 시인의 삶은 여러 문학적 시도들로 가득 찼다. 말년의 라는 작품은 그의 모든 언어 실험들의 종합편이자 정수들을 모아놓은 걸작으로,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시언어의 혁명을 촉발시켰다. 사망할 때까지 시인은 절대의 '책(Livre)'을 향하여 매진하였다.    그러나 "1868년과 1898년 사이에 쓴 몇 편의 시는 대단치 않은 것들이며 시인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라는 것이 오랜 동안 말라르메를 보는 시각이었다.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시언어의 체계를 정립시킨 자로 추앙받고 있다.    사실 말라르메는 보들레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말라르메의 절대적 상징주의는 본래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유래되어 나왔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말라르메의 절대 언어에 대한 탐구는 그의 문학을 '절대적 상징주의'라고 불리게 하였지만, 그 출발은 자아와 서로 분리된 이원성의 인식에서부터다. 아래에 실은 은 보들레르의 영향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꼽히는 시이다. " 이 세상 밖이라면 어느 곳이라도(any where out of the world!)"를 외쳤던 보들레르처럼, 그도 또한 도망치라고 외친다. 현실이 아닌 이국의 자연이 보들레르에게뿐 아니라 그에게도 계속 '여행 초대'를 하고 있었다.            오! 육체는 슬픈 것,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읽어버렸다.        달아나자! 저기로 달아나자! 새들은 알 수 없는 물거품과 하늘 사이        있음에 취해있음을 나는 느낀다!        아무 것도, 눈에 비치는 낯익은 정원도        바닷물에 젖어가는 이 마음을 붙들지 못하리        오 밤들이여! 백색이 지켜주는 빈 종이 위에        쏟아지는 램프의 고적한 빛도        아이에 젖 먹이는 젊은 아내도.        나는 떠나겠다!        기선이여 돛을 흔들며        이국의 자연을 향해 닻을 올려라!        잔인한 희망들에 낙담하고도 '권태'는        손수건 흔드는 최후의 작별을 아직도 믿네! (---)        여기까지 보들레르의 시선과 그의 시선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권태'는 보들레르의'우울(spleen)'과 색깔이 다르다. 이미 백지에 대한 고뇌가 언급되고 있으며, 생략한 시 뒷 부분에 나오는 파선(破船)의 이미지는 말년의 에 중요한 장치로 다시 등장한다.    1864년 그는 이상세계에 대한 꿈 속으로 단순히 도피할 수만은 없음을 깨닫는다. 현실을 대체할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논리를 갖는 것이야 하겠다. 그리하여 1864년과 1865년 사이에 그는  를 포함하는, 절대시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미 그때 시인은 '정신의 도구인 언어'를 생각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말라르메는 보들레르와 구분되는데, 와 다음의 를 비교해보면 두 시인이 얼마나 다르게 각자의 세계를 펼쳐갔는지 알게 된다.            순수하고 경쾌하며 아름다운 오늘은        이루지 못한 비상의 투명한 빙하가        서릿발 아래 서성이는 잊혀진 이 굳은 호수를        취한 날개짓으로 우리에게 찢어줄까!          옛날의 백조는 기억한다        불모의 겨울 권태가 번쩍였을 때        살 수 있는 땅을 찾아 노래하지 못한 까닭에 모습은        찬란하나 벗어나려 하여도 희망 없는 자가 바로 자신임을.          새는 온 목을 빼고 떨쳐버릴 것이다.        공간을 부정하나 공간이 안겨주는 이 하얀 번민을.        그러나 깃털이 묶여있는 땅에 대한 혐오는 떨치지 못한다.          자신의 순수 광휘가 이곳에 부여하는 유령이란 모습,        무용한 유형 중에 자신을 감싸는        모멸어린 차가운 꿈 속에서 굳어져간다. '백조'는.          이 시는 말라르메의 시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의 하나이며, 프랑스 시에서 가장 많이 암송되는 시로 조사된 바 있다. 앞의 시에서 '백색이 방어'해주던 원고지는 이 시에서는 '하얀 번민'으로 나타난다. 하얀 번민이란 원고지를 마주하였을 때 시인이 느끼는 창조의 고뇌이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한 번뇌가 아니라. 자아의 위기. 글쓰기의 부정 등으로 이어지는 존재론적 번뇌다. 시인은 글쓰기의 문제를 시의 주제로 꾸준히 내세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번뇌를 시화(詩化)하겠다는 생각은 잃어버린 창조의 의미를 되찾겠다는 욕구에서 나온다. 이 꿈은 낡거나 늙지 않도록 빙하 속에 고스란히 간직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 꿈에는 절망적 모멸이 어려있다. 그것은 대중의 모멸이며 동시에 불모인 자신에 대한 모멸이다. 또한 현실 공간에 대한 모멸이며 글쓰기에 대한 모멸이다.    에서는 시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조롱의 대상이 되는 현실, 다시 말해 시인의 현실에서의 무능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에서는 '이곳(celieu)'이라는 공간에 과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과 망설임이 지배한다. 공간의 무의미 때문에 번뇌가 이어진다. 공간은 삶의 공간이자 죽음의 공간이며 여기에 글쓰기의 공간이 겹쳐 있다.    그러나 이 시는 긍정적인 반전을 숨기고 있다. 백조는 죽을 때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한다고 한다. 백조의 몸은 호수의 물과 마침내 함께 얼어붙어, 하나의 커다란 거울이 빚어지게 된다. 목숨은 이렇게 아름다운 빙하로만 남아야 한다. 완전한 거울이란 개인이 사라져야 생성되는 것이다. 그때 진정한 언어가 탄생한다. 그리하여 최후의 노래는 최고의 노래가 된다.    시는 백조를 뜻하는 대문자의 'cygne'라는 단어로 끝난다. 백조은 '기호'를 뜻하는 불어 'signe'와 같이, 발음이 모두 /싸인/이다. 이는 의도적인 것으로, 시인 자신이 언어의 존재론에 집착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인간의 기호에 대한 이러한 집착은 아래의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로잡힌 날개짓'이다. 그러나 백조의 모습으로 재현된 기호는 상징이자 노래이다. 시인 자신이자 인간의 언어다.            오, 꿈꾸는 여인이여, 다할 길 없는 순수한        환희 속에 내가 빠져들 수 있도록,        나의 날개를 정묘한 거짓으로        그대 손 안에 간직하고 있어주오.          황혼의 서늘함이        부채질할 때마다 그대에게 밀려오고        그 사로잡힌 날개짓은        지평선을 살짝 밀어낸다.          현기증! 이제 공간은        큰 입맞춤처럼 전율한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면서 태어나려 몸부림치나.        공간은 분출하지도 진정되지도 않는다.          당신은 느끼는가 야생의 낙원이        또한 묻혀버린 웃음이        당신 입가에서 나와 전면적인        주름 밑바닥으로 스며들어버리는 것을!                           (말라르메양의 다른 부채)        시의 외적 동기는 부채질하는 단순한 움직임을 뿐이다. 이 시에는 신비나 애매한 장치 같은 것은 거의 없다. 부채질이 공간의 전율을 일으킨다는 것은 시인의 관찰이다. 부채질에 따라 지평선이 물러나거나 다가오며 공간이 전율하는 듯하지만, 이는 바람으로 사라질 뿐인 공간, 태어나지 못하고 분출하지도 솟아오르지도 못하는 공간이다. 현상과 내면에 대한 극사실적 형용이다.    부채질이라는 흔한 움직임 속에 지평선을 꿈꾸지만 그것은 곧 매몰되어 없어질 무의한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도 공간을 소유한 것이 아니며, 사실 공간이 전율하는 것이 아니다. 공간에 대한 헛된 소망이 전율을 일으켰을 뿐이다. 이 모두 '사로잡힌 날개짓'이며 관념의 생성과 소멸의 되풀이다.    2연에서는 지평선을 상상하였다가 3연에서는 이는 현실화될 수 없는 공간임을 확인하다. 그리하여 4연에서는 낙원에 대한 가정을 거두어들였는데. 생략된 5연에서는 비상의 의지는 '하얀 도약'이었으며, 그것은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고 말한다.    움직임은 바람과 숨결의 미세한 움직임이며, 욕망이나 시선의 이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어떤 희망이, 입술 가장자리로 스미듯 사라지는 웃음처럼 사라질지라도 순수한 낙원에 대한 가정은 정당하였다는 것이다. 가정임을 알고 있음으로 처음부터 '정묘한 거짓'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5연에서 다시 부채는 팔찌 옆에 접혀져 놓인다.    집요한 것은 공간 구성에 대한 의지다. 거짓된 희망에서 지평선으로, 빈 공간으로, 다시 일상으로 이어지는 공간 양상 - 여기에 상징의 모두가 들어있다. 공간 자신은 태어나지 못하고 전율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시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치는 상징의 미학을 묘하게 숨긴다. 숨김으 미학은 상징의 맛이 두드러지게 한다.        말라르메는 이렇게 생각 전부를 드러내지 않고 '언어의 효과'를 통해 그것에 대해 환기시키고자 한다. 언어 외적인 것은 시에서 모두 배제시켜 전적으로 '말들에게 주도권을 양도'하는 것이다. 비인칭 상태 즉 자아를 지워 텅 빈 상태를 미리 마련해놓고 암시의 기법을 그 위에 사용함으로써, 언어 스스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인칭화 혹은 탈인성화란 고전주의에서의 그것이 아니라 글 쓰는 주체의 지우기다. 이것을 그는 "시인의 화술적 사라짐"이라 한다. 앞에서 본 백조의 죽음은 시인의 죽음을 뜻한다. 이러한 죽음, 즉 인성의 사라짐에 의해 언어의 기능이 진정 생성되는 것이다.    탈인성화는 또 한편 내면의 '공(空)'을 만들어내면서, 백지상태 위에 정신 스스로가 펼쳐지게 한다.            나는 끔직한 한 해를 보낸 참이다. 나의 '생각'은 생각 스스로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순수개념'에 도달하였다. 그 결과 이 오랜 번민 중에 나의 존재가 겪었던 모든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지만, 다행이도 나는 완전히 죽었다.(---)        다시 말해 네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이 비인칭이 되었다는 것, 나는 네가 알던 스테판느가 더 이상 아니며 나였던 것을 통하여 스스로를 보고 스스로 발전해가는, 정신의 '우주'가 지니는 하나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 1867.5. 14; Barbier,1977,341)        이상이라는 문제를 마주하였을 때 시인은 먼저 세계 저편에는 "무(無)'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상은 존재하는 것이라는 믿음은 결코 버릴 수 없었으므로 그는 다음의 결론에 이른다. 즉 이상세계는 '허무' 뒤에 있다. '무'안에 무한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긍정적 전환은 불교와 헤겔의 도움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먼저 현실의 모든 '거짓된 외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대상과 자신을, 다시 말해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을 자발적으로 비운다. 그 텅 빈 '무' 위에 새로운 긍정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시인은 나는 완전히 죽어, 몰아상태라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는 고답파의 엄정한 중립주의에 도움을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고답파의 객관성과도 다른 것이다. 몰아의 '공' 상태에서 정신과 우주는 자연스럽게 다시 펼쳐진다. 나는 그 전개를 바라보는 하나의 보는 '능력' 즉 시선이다. 시선은 매개체일 뿐, 인칭이 없다.    시인이 이 편지를 쓰고 몇 년 후인 1871년, 랭보는 '나는 타자이다'라고 말한다. 두 시인은 모두 주체의 위기에 대해 설파한다. 그런데 이 위기는 '미리 계획된' 것이다. 위기를 전개시키는 방법은 달랐을지라도 상징주의의 이상은 이처럼 의도적 위기와 자아의 정화 후에야만 진정 구축될 수 있는 것이다. 완전한 상징과 상징체계란 모든 것을 자석처럼 끌어당길 수 있고 끌어안아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스스로를 비우는절차는 필수적인 것이다. 자아의 부정은 이처럼 새로운 세계의 구축을 겨냥한다.    그리하여 거미줄처럼 사물들의 관계 요소들이 섬세하게 그물망을 이루도록 관계의 구조물을 구축하는 것, 혹은 레이스처럼 논리의 실이 면면히 이어지는 것 - 이처럼 탄탄한 체계들만이 무한한 확산력을 지닐 수 있다.    보를레르의 은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사물들로 퍼져나가는"확산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확산을 위하여 랭보에게는 광기와 착란이 필요하였다. 말라르메는 확산을 위하여 감각을 우선 안으로 응축시킨다. 사물에 대한 말들은 겉으로는 모두 지워진다.    아래의 시에서도 주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죽었거나 몰아상태일 것이다. 이 시는 1868년에 '자신에 대한 우화적 소네트'라는 제목으로 쓴 것이다. 그러나 계속 수정하다가 20년이 지난 1887년에야 무제로 출판한다. 완전히 상징들로만 이루어졌으며, 상징주의의 난해성을 대표하는 시로서, 가장 다양하고 많은 주석이 가해졌던 시이다.            그의 맑은 손톱들은 자신의 줄마노를 아주 높이 바치고,        이 자정에 고뇌가 횃대를 떠받치고 있다        골호(骨壺)가 받아들이지 않는        '불사조'에 타버린 저녁의 꿈 몇을          빈 방, 제기단 위에는 아무 소라도 없다        소리 울리는 공허의 폐기된 장식품은,        ('허무'가 자랑하는 유일한 이 물건을 갖고서 '주인'은        '삼도천'에 눈물 길으러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텅 빈 북쪽 유리창 가까이        물의 요정과 싸우며 불을 내던지는        아마 일각수 장식을 따라. 금빛이 죽어가고 있다        요정은 벗겨진 채, 죽은 자로 거울 속에 있다        거울 테두리가 감싸고 있는 망각 속에        섬광의 북두칠성이 그렇게 빨리 고정되고 있지만.                           ()        이 시에서도 여전히 공간 창조의 고뇌가 문제되고 있다. 여기서는 빈 방과 선반 하나, 그리고 열린 창문의 덧창밖에 없는, 그야말로 텅 빔의 미학적 풍경 자체다. 주인은 삼도천(三途川)에 눈물 길으러 갔으므로, 실제로 그가 죽었는지 확실치 않다. 거울 테두리에는 금빛이 죽어가고 잇다. 그러니까 빛도 모두 스러져가고 있다. '불사조에 타버린 꿈 몇'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시인이 작품 모두를 불태웠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소라'를 가리키는 "소리 울리는공허의 폐기된 장식품"이란. 악기이자 글 쓰는 도구이다. 삼도천에 이 악기를 가지고 갔다는 부분에서 오르페우스가 그려진다.    서양의 시에서 이처럼 비어있음만을 주제로 삼고 그것으로써 메시지를 전달하려한 작품은 많지 않다. 극도의 텅 빔이 시 전체를 지배하지만,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열린 북쪽의 덧창을 통해 보일 북두칠성에 대한 언급을 통하여 어떤 희망을 시사한다. 그것은 어떤 조화로운 탄생일 것이다. 이 해석하기 어려운 상징시는 말라르메식의 오르페우스를 제시하고 있다.            나는 옛날 사람들이 '대작'을 만드는 용광로에 불을 때기 위해 자기 집 가재도구와 지붕의 서까래를 불태웠듯이, 모든 허욕과 모든 만족감을 던져버릴 용의를 가지고 연금술사와도 같은 인내심으로, 언제나 다른 것을 꿈꾸고 시도했습니다. 어떠한 대작일지? 말하기 어렵군요, 간단히 말해 여러 권으로 된 하나의 책, 아무리 경탄스러울지라도 우연히 부딪치는 영감들의 모음집이 아니라, 건축적 구성이며 미리 계획된, 책이랄 수 있는 책 말입니다. 나아가 나는 (대문자로) '책(Livre)'라고 하겠습니다.        (---) '대지'에 대한 오르페우스의 설명, 이야말로 시인의 단 하나의 의무이자 더할 나위 없는 문학 작업입니다. 왜냐면 페이지를 매기는 방법까지도 비인칭적인 동시에 생생할 '책'의 리듬 자체는 이 꿈의 방정식, 혹은 '오드'와 병행하기 때문입니다.                                  (, 베를렌에게, 1885년 ; 말라르메, 1974, 662-663)          오르페우스는 말라르메의 꿈이었다. 오르페우스의 업은 노래하는 것이다. 꿈의 방정식은 오드라고 한다. "대지에 대한 오르페우스의 설명'이 꿈의 방정식의 해(解)인 것이다. 대문자 '책(Livre)'이다. '오드'를 통하여 '책'에 도달한다.    그는 "결국 세상은 아름다운 한 권의 책에 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Huret, 1984;80) 말한다. 시인의 꿈은 이토록 소박한 것이었지만 정말 소박한 것은 아니었다. 대지에 대해 설명하겠다는 꿈은 절대의 책을 완성하겠다는 크나큰 야심이다. '책'은 그에게 언어와 정신과 삶이 어우러져 용해된, 인식론적이고 존재적인 어떤 총체, 어떤 '하나'였다. 시인에게 세상의 의미는 그런 것이었다.    보들레르가 교감이라는 사물 인식법으로 새로운 문학을 열어 낭만주의와 고답파를 버리게 하였다면, 말라르메는 그를 계승하면서 언어형식의 또 다른 혁명을 낳는다. 그 결과의 하나가 라는 시다. 시인은 절대의 책을 가정하며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페이지라는 형식을 버린다. 대신에 펼쳐지는 책의 (우좌가 아니라) 좌우 페이지를 합쳐서 한 '장'이라고 한다. 이 하얀 화폭 위에는 오직 하늘과 바다물밖에 그려져 있지 않다. 보들레르가 초대받고 싶어하였던 여행을 그는 거의 마지막 시도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실현시키고 있다. 그것에는 미학과 철학과 음악과 문자가 하나가 되어 있다.    베르나르는 를 '시와 산문의 종합'으로 보고 있다.(Bernard, 1988;311).            (---) 는 산문시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시와 산문을 나누는 칸막이를 깨고 '통합' 예술의 시도에 상응하는 총합의 양식을 발견하기 위해 당시 시인들이 시도하였던 언어 탐구들에 대한 의미있는 증언이다.(Bernard, 1988;328).        에서, "페이지를 매기는 방법까지도 비인칭인 동시에 생생한 '책'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가 어쩌면 실험에 그칠지 몰라도, 우선은 절대의 책으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의 사고의 질서이자 우주의 질서이며 언어의 질서이다. 인간은 말을 통하여 우주적 신비에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자 속의 신비'를 구현하려는 이 다중의 언어 프로젝트를 통하여, 시인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두텁게 싸여진 상징체계를 생의 마지막으로 완성한다.    언어를 완성하려는 그의 의지는 언어에 모든 것을 바치고 '일화가 없는' 삶을 선택하게 하였다. 시인의 단 하나 의무란 이 땅에 대한 오르페우스식의 설명일 뿐으로, 삶의 '일화'는 모두 그 속으로 묻히면 되었던 것이다. 발뱅의 시골집에서 후두경련으로 사망하는 시간에까지 그는 아름다움 '책'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았다. 언어에 몸을 맡긴 그의 이 모든 여정은 사제의 삶에 근접하였다. 여기서 '시라는 종교', 그리고 '언어의 사제'라는 말이 나왔다.    그는 "19세기 후반세기의 위대한 시인들 중 가장 진정한 상징주의자"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Peyre,1976;37), 과작의 실패한 시인이라는 평이 1950년대까지도 주류였다. 과작은 그가 나태하거나 황폐하여서가 아니라, 상징의 완전한 체계를 만들기 위한 당연한 한계였다. 얼핏 보아도 동양적 성찰에 많이 닿아있는 말라르메의 공간학은 발레리의 것과 색채와 향기가 유사해 보이지만, 그들의 여정과 가닿는 길은 달랐다.   상징주의의 시인들 / 김경란         5. 발레리와 지중해의 명증          폴 발레리(1871-1945)는 지중해에서 태어나고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1890년대 초부터 시를 발표한다. 이 시기의 시는 후에 으로 발행된다. 그러나 발레리는1892년, '제노바의 밤'이라고 불리는 지적이고 감정적인 위기를 겪고 시를 포기한다. 그는 1894년부터 말라르메의 화요회에 참석하며, 시는 쓰지 않고 철학과 수학, 과학 등에 매혹되면서, 과학적 정신과 예술적 정신의 결합의 상징이었던 다 빈치에 대한 글(,1895년)과, 을 발표한다. 1896년, 오래 글쓰기를 중단하게 할 두 번째의 위기를 겪은 후에 발레리는 시로 돌아온다. 기나긴 침묵은 를 발표함으로써 깨어진다. 그는 1912년 앙드레 지드와 갈리마르사의 강력한 권유에 의하여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하였고, 5년 뒤인 1917년 발표된 는 시인에게 확실한 영광을 가져다 주었다. 사이의 침묵의 20년은 개인 비서로 일하면서 삶을 이어갔다.    20세기 초반 초현실주의자들이 '자동기술법'에 몰두할 때 그는 시인은 건축가가 사원을 짓듯이 시작업으로 시를 건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시는 영감이 아니라 '구성(cmposition)''의 산물이라는 생각은 포우의 훌륭한 번역자 보들레르와 말라르메를 따른 것이다. 20세기 시에 고전적 원칙을 복원시켰다는 평을 듣는 그는 수학적 정밀함과 우연을 배제하는 명확성과 객관성과 순수함을 갖춘 시를 쓰고자 하였다. 그의 지적이고 심미적인 시는 건축의 견고성과 음악성과 순수한 시적 이미지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는 또 뛰어난 성찰력으로 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추앙된다.    발레리는 1945년 사망하여 고향 세트의 해변의 묘지에 묻힌다. 그가 1917년과 1922년 사이에 쓴 시집  속에 발표된 가 가장 사랑받은 작품으로 꼽힌다.      발레리는 제노바의 체류 중 번개 치는 어느 '하얀 밤'에 여럿으로 분열된 자아를 체험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 속에서 감수성과 이성, 육체와 영혼, 무의식과 명철성 사이로 갈라진 심연을 보게 된다. 이 위기 이후 발레리는 지적이고 엄격한 사유를 막는다고 하여 예술활동을 중단한다. 영감이나 정념 등을 버리고 지적 활동과 내적 성찰 속에 침잠하였던 오랜 내성기간을 지낸 후에야 발레리는 심연에서 돌아온다. 그는 조금씩 시를 쓰는 즐거움과 감각적인 현실세계가 주는 새로운 충격을 받아들인다.    발레리는 인간은 감각과 현실세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의 지적 자아는 감각적 자아를 밖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안의 모든 시는 감각 세계와 지적 세계 사이에서 시적 세계를 전개시키는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 자아를 보여준다.            알갱이들의 과잉을 못 이겨        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이여,        나는 자신의 발견들로 파열한        지고의 이마들을 보는 듯하다!              너희가 견뎌온 햇볕들이 비록,        오  반쯤 벌어진 석류들아,        자존으로 다져진 너희로 하여금        루비의 간막이들을 부수게 하였더라도,          또 껍질의 메마른 금빛이 비록        어떤 힘의 요구를 따라        과즙의 빨간 보석들을 터트린다 하더라도,          이 빛나는 파열은        옛날의 내 영혼에게        자신의 은밀한 구조를 그리워하게 한다.                                            ()          말라르메의 부채 연작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상징주의 시는 공허한 이상세계에 대한 그림이 아니다. 시어는 막연한 암시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질긴 관찰이 있은 뒤, 바로 그것에 의해서야 그 위에 상징체계를 축조할 수 있다. 그 탄탄한 구조를 읽어내려면 독자들은 축조과정을 따라가야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상징의 묘(妙)는 여기에 있으며 해독의 어려움도 여기에 있다. 위의 시도 사물에 대한 자세한 관찰로부터 출발한다. 구체성 없는 것은 시가 아니라는 듯이 석류 알갱이의 벌어짐을 천천히 묘사한다.    그러나 시의 1연에서는 '지고의 이마들'이 언급되고 마지막 연은 '은밀한 구조'라는 단어로 끝남으로써 시인의 의도가 드러난다. 금빛  껍질의  루비빛 파열 등은 객관적 묘사일 뿐 아니라, 그의 성찰의 결과이기도 하다.    발레리는 에서 다양한 지식들의 관계와 우주체계를 과학적으로, 즉 최상의 정신력으로 파악한 다 빈치를 모범으로 그리며, 우연으로 찬 외적 세계의 논리를 거부한다. 또한 내면 의식을 탐구하여 인간 정신의 법칙을 발견하고자한 테스트씨라는 가상의 인물처럼, 스스로 의식을 주도할 수 있는 강력한 저력을 갖고자 하였다. 테스트씨는 감각적 인식을 부인하고 자의식과 지적 인식만을 인정하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는데, 이러한 측면은 발레리의 사상과 작품 속에서 이원적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로 남아있게 된다. 다 빈치와 테스트씨가 '자기 사유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지적 훈련의 표상들이라면, 와 에서는 이 극단성은 화해를 향한다.      는 발레리의 와 함께 시인의 내면 성찰을 시화한 작품이다. 어느 섬에서 여명에 눈을 뜬 파르크는 방금 꾼 악몽을 계기로 자신의 내면과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순수와 관능 사이의 갈등을 회상하며 살아보려 하지만 또 다시 광란에 빠져들게 된 파르크는 죽으려 하나 죽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하며, 영혼의 각성에 전율하게 된다.    많은 이미지들과 풍부한 상징의 망, 음악성 관능의 제시와 그 극복 등은 이 시를 최고의 상징시의 하나로 불리게 하며 독자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여기서의 파르크는 운명의 세 여신 중 막내로 탄생의 신 클로토Clotho를 가리키는데, 생명의 실을 짜는 것이 임무다.    다음은 이 시의 시작으로, 젊은 파르크가 한밤에 깨어 자신을 들여다보는 장면이다. "한밤에 일어나니 모든 삶이 다시 살아나서 자아에게 말을 하고"있다.            저기 누가 울고 있는가. 단지 바람이 아니라면, 이 시간에        혼자서, 지고의 금강석들과 함께?... 아니 누가 울고 있는가        이토록 나의 가까이서 내가 울려는 순간에?          여기서 화자나 화자가 들여다보는 대상 모두 나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나는 두 개의 자아로 분리되어있다. 울고있는 것은 바람과 금강석들, 그리고 나이다. 관찰자인 나는 막 울려고 하는 순간이지만 울지 않고, 울고 있는 자연과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의식은 깨어나 이렇게 자아와 주변을 분석하려 한다.    관찰자인 자아의 눈뜸은 뱀에게 물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아의식과 욕정의 상징인 뱀에게 물림으로 인하여 파르크의 관능적 자아와 성찰적 자아는 동시에 인식된다. 나는 '명철한 정신'으로서, 이들에 대한 관찰자이다.            물 굽이치듯 나는 나를 보는 나를 보고 있었고, 시선에서        시선으로 내 깊은 숲들을 금빛으로 칠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나를 막 문 뱀을 쫓아가고 있었다.          욕망들의 이 무슨 꿈틀거림인가. 뱀의 기는 모습이란?... 내 탐욕에서        빠져나오는 보석들의 이 무슨 혼란,        또한 명철에 대한 이 무슨 어두운 갈증!                                                     ( )        관능적 아에 가까운,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자아'와 성찰적 자아, 이를 지켜보는 자아 사이에서 자아의 갈등과 분열은 극에 달한다. 그리하여 화자인 나는 "나는 나를 보는 나를 보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말라르메의 앞서 본 편지에서 "나의 '생각'은 생각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라는 부분을 상기시킨다. 발레리는 그 자아를 더욱 분석한다.    말라르메가 금욕적 자세로 '공(空)'에 이르는 과정에서 자아의 분열을 체험하였다면, 발레리의 분열은 관능적 자아의 문제가 전면화되어 더욱 미묘하다. '의식하는 의식'은 자아를 점점 의식의 심연으로 밀어넣고, 그리하여 나는 "오 위험하게도 그의 시선의 포로가 될 뻔하였다!"라고 외친다. 의식이 깨어남과 분열의 고통은 마침내 죽음을 선택하게 한다.             그러나 나는 사라진 나의 시선이 보고 있는 바를 안다.       검은 내 한쪽 눈은 지옥의 거소로 난 문턱이니!       나는 생각한다, 시간들은 산들바람에 내맡기고       영혼은 쓰디쓴 관목 숲에서 돌아오지 않은 채 (---)        죽음은 그러나 실제 죽음이 아니라 허구적인 죽음으로, 파르크가 새벽에 어렴풋이 잠에서 깨었을 때, 모든 것은 존재론적 고뇌였음이 밝은 빛 속에서 밝혀진다.           (---) 내가 옷 벗은 채, 두려움 없이       이 바닷가에 와서, 치솟는 거품 들어마시고,       드넓고 웃음 띤 쓰라림을 눈으로 마신다면,       바다의 부름을 얼굴로 맞아들이며,       가장 생생한 대기 속에, 존재는 바람을 마주한다면(---)                                         ()        자아가 죽음에 대한 의식에서 벗어나 바닷바람을 맞으며 삶의 의지를 되찾는 이 풍경은 에서 "바람이 인다!... 살아보아야 한다!"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풍경이다. 삶을 초월한 논리적 결론이, 비록 우연을 포함한다 하더라도 삶의 의지를 이기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시인의 부인할 수 없는 결론이었다. 파르크의 유혹과 망설임은 시인의 자아 부정과 자아를 되찾는 과정의 번뇌를 표현한 것이다. 자아는 이제 지적 탐구의 고뇌를 극복하고, 변화로운 감각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각성을 따르고자 한다.    다양하고 시간적인 현상과 안정적이고 비시간적인 상태 사이에서 흔들림도 시인의 사고의 두 축에 기인한다. '타고난 시인' (레몽, 1984;200)이었으므로 '지적 유혹과 감성적 자질'사이에서 줄타기할 수밖에 없었던 발레리에게는, 이처럼 이원적 문제를 화해시키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의 화두로 제시되었다.    발레리의 시간의 이원성에 대한 생각은 무한에 대한 관조의 세계로 다시 재현된다. 1920년 발표된 는 그의 고향 세트의 바다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시인은 일생 중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끌어다 쓴 최초의 시"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인은 자신이 경험하였던 맑고 고요한 감각을 명상 속에서 회상한다.            비둘기들이 걷고 있는 이 고요한 지붕은        펄럭인다 소나무 사이에서 무덤 사이에서,        엄정한 자, 정오는 거기 불로써 빚어낸다        바다를, 언제고 새로 시작해있는 바다를!        오 생각 하나에 따른 보상이여,        신들의 평온을 오래 관조하는 시선이여!        여기서 비둘기는 바다에 떠있는 삼각돛을 말한다. 그러니까 지붕은 평화로운 바다를 지칭한다. 이 시에서 내적 리듬은 에서 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전체적으로 더 자연스럽고 구속을 버렸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시인의 사유의 발전 때문이리라.    그러나 시인은 변하지 않는 절대적 '순수 자아'의 힘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그것에 의한 영구불변의 창조를 기다린다. 공허 속에서 본질과 영원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다.           오 나만을 위하여, 나 자신에게 감, 나 자신 속에서,       마음 곁에서, 시의 원천에서,       공허와 순수 사건 사이에서,       나는 나의 내면의 위대함이 메아리치기를 기다린다.       항상 앞날에 다가오는 공동(空洞)이 영혼 속에 울리게 하는,       쓰라리고 어둡고 소리 울리는 저수조여!        그럼에도 바다 앞에서,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진실 앞에서, 시인은 거부할 수 없이 변화를 인정한다. 인식의 변화를 수용할 수 없었던 시인은 고향의 해변 묘지를 배경으로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리듬이 살아남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시는 시인의 인성이 가장 많이 드러난 시라는 평을 받았다.            아름다운 하늘이여, 진실된 하늘이여, 변화하는 나를 보라!        그토록 대단한 자존 끝에, 이상하나 힘에 찬,        그토록 대한한 무의의 끝에,        나는 이 빛나는 공간에 나를 맡긴다 (---)        가 변화와 불변 사이, 추상과 구상 사이로 찢겨진 자아의 이원성의 드라마라면, 이 시는 드라마의 완결편이라 할 정도로 상대성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파르크도 구체적 현실을 수용하고 삶의 의지를 인정하려 하였지만, 자아는 쉽게 변화를 수용하는 양상은 아니었다. 유사한 장면이지만 수용이 더 자연스럽고 자유롭다.            아니다, 아니다! .......일어서라! 계속되는 시대 속에!        부숴라, 육체여, 생각에 잠긴 이 틀을!        마셔라, 가슴이여, 바람의 탄생을!        바다에서 뿜어나오는 서늘함이        내게 나의 혼을 돌려준다... 오 짜디짠 힘이여!        파도로 달려가, 거기서 생생하게 솟아오르자!                            (---)          바람이 인다!.... 살아보아야 한다!        광막한 대기는 나의 책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파도는 가루로 부서져 바위 위에 용솟음치려 하네!        눈부시게 하얘진 책장들이여 날아가라!        부숴라 파도여! 기쁨을 되찾은 물로써 부숴버려라        비둘기들이 모이 쪼던 그 고요한 지붕을!                                                   ()        앞에서 글쓰기는 불변의 진리만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변화와 현실을 수용하는 글쓰기를 인정한다. 여기 책은 열렸다가 다시 닫힌다. 책장들은 날아간다. 현실을 버리는 글쓰기는 없는 것이다. 무한은 현실을 포용하고 펼쳐질 것이다.    생각의 변화는 시의 첫 연에 등장하였던 비둘기에 대한 묘사로도 드러난다. 비둘기는 이제 명상의 평화를 깨는 속된 호기심을 가리킨다고 한다. 비둘기든 돛이든 사실 무의미하며, 생각을 흔들 수 없다. 시가 비둘기에서 시작하여 비둘기로 끝난다는 사실은 닫힘을 말하는 것 같지만, 폐쇄를 넘어선 자존감을 마침내는 보여주는 것이다. 바다의 불안한 고요가 아니라 이제 파도와 마주할 힘을 자아는 되찾는다.    간단히 말해 파르크는 바다 앞에서 격리냐 해방이냐를 가슴 에이도록 번뇌하는 것이고, 여기서는 묘지와 바다를 앞에 두고 해방의 여지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다. 젊은 파르크는 인생의 매혹을 알게 되어 거기에 굴복하는 과정을 고통스러워하는 것이고, 는 영구불변에 매혹되었다가 이에 저항을 느끼는 과정을 기록한다. 결국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순수와 절대에 대하여 시인이 오랜 시간 쌓아왔던 물음이 에서 어느 정도 답에 도달하는 것이다.    와  모두 바다를 배경으로 택하면서, 시인은 바다의 정화력과 포용력, 재생력을 미리 마련해놓았던 것이다. 격리된 상태 속에 도피하고자 하는 파르크의 자의식적 태도는 말라르메의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격리보다 중요한 것은 돌아와 자신의 동질성을 되찾는 일이며,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서두에 시인이 다음 같은 핀다로스의 일 절을 소개하는 까닭이다. "오 나의 영혼이여, 영혼불멸을 꿈 꾸지 말고, 다만 가능성의 영역을 다 소진시켜라."        "말라르메와 같은 곳에서 출발하였지만 두 사람은 이처럼 다른 곳에 도달한다. 발레리의 시가 발레리의 사상의 마지막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들 시를 비교해보면 확실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말라르메가 사물과 관념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추상화 단계에 거의 도달하였다면, 그리하여 고유한 상징체계를 축조하는 변함없는 장인의 인내를 보였다면, 발레리는 다소 다른 양상이라는 것이다. 발레리는 사물에 가까이 있고 싶어한 시인이었다. 그는 사물의 매혹을, 그 구체적인 힘을 이길 수 없었고 이기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말라르메가 더 관념적인 시인이라 하겠다. 상징주의의 완성에 그가 더 가까이 있는 이유이다. 발레리는 새로운 시의 형식을 연 개척자는 아니었다." (레몽, 1984;216)     (끝)  [출처] 상징주의의 시인들 / 김경란|작성자 옥토끼    
6    상징주의와 예술의 다른 장르 / 김경란 댓글:  조회:1865  추천:0  2018-03-25
상징주의와 예술의 다른 장르 / 김경란     1. 상징주의와 음악       클로드 드뷔시        이론적 성향이 강한 말라르메는 미술보다 연극과 음악에 대한 의견을 더 많이 내놓았다. 말라르메가 주재한 화요회에는 그에 열광한 젊은 문학가, 화가, 음악가들이 몰려들었다. 거기에서 그는 언어 탐구에만 집착하지 않았으며 20년 연하인 드뷔시(1862-1918)와도 깊은 교우를 맺었고, 그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때부터 드뷔시도 시를 쓰기 시작하고 그 시에 곡을 붙이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그가 노래의 가사와 '서정적 산문들'을 썼다는 일화는 언어의 리듬과 음악의 리듬과의 관계, 시와 산문, 음악과 문학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 글쓰기의 목적은 상징주의의 순환적인 글쓰기에 모든 형식적인 절차에서 해방된 인상주의를 대립시키고자한 것이었다. 그는시의 리듬과 음악의 리듬간의 피할 수 없는 갈등에서 멜로디를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가사를 쓰면, 즉 더 유연성이 있는 산문을 쓰면, 노래의 멜로디를 음악화했을 때 소절의 유연성과 갑작스런 비약, 그리고 느릿한 주문 효과들은 이미 드뷔시 특유의 것이었으나. 가사들은 여전히 상징주의에 대한 과도한 경도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순환구조, 데카당적인 매력, 신조어, 다소 인위적인 표현의 우회 등이었다.    말라르메는 화요회에서 자신의 극시  속에 잠재해있는 유머와 풍자와 감각적인 생명력에 대해서 드뷔시에게 피력한다. 이 시에 곡을 붙인 으로 드뷔시는 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다. 세련된 울림과 몽환적 분위기, 아름다운 화음 등이 일찍이 이처럼 완벽한 관현악 작품의 기본 제재로 사용된 적은 없었다. 희미한 현악 반주 속에 프루트와 오보에가 연주하는 변덕스럽고 난해한 멜로디는 성숙한 드뷔시 작품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통하여 브뷔시는 음악에서의 '무언가를 바꾸었고,' 새로운 운율과 새로운 미를 창조한다. 이러한 일은 바그너의  이래로 없었던 일이다. 상징주의자들과 교유하고 있을 초기 무렵에 드뷔시는 바그너적 취향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바그너가 물려준 소리의 유산을 확대하면서 뛰어 넘은 것이다. 리듬의 섬세함, 멜로디의 움직임, 장단조 특성의 폐지, 화음의 자유로운 확산과 연속, 분위기를 빚어내는 재능 등은 미적 감각을 새롭게하고 감수성과 섬세함을 증대시킨 것이었다.    드뷔시는 말라르메의 그 외의 시 몇 편, 베를렌과 그외 시인들의 시 등, 많은 상징주의 작품에 곡을 붙였다. 보들레르와 릴라당에서 영감을 받아 와 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상징주의 문학과 미술을 자신 속에서 융해시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려는 그의 특이한 시도는 말년에까지 계속된다. 그 결과 그의 2집으로 된 는 피아노의 문학을 완성하였다는 평을 얻게 된다. 음악으로 맺은 암시의 시학의 결실을 이제 역으로 드뷔시가 수용하는 것이다.    드뷔시가 에서 애용했던 침묵기법 또한 암시의 미학을 음악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바그너풍의 음악을 원하던 드뷔시는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상징주의 극 를 보고 감명 받아 오페라로 작곡한 것이다.(1902) 이 사장주의 극은 "포레, 쉔베르그, 시벨리우스, 등 다양한 음악가에게 영향을"(Marchal, 1993;59)을 주었다.    과 외에도 드뷔시의 ,, 1,2집, 피에르루이스의 시를 작곡한 가곡집 등은 상징주의의 영향을 보여준다.    드뷔시의 음악은 모호하게 암시하는 효과를 위하여 다채롭고 난해한 표현으로 가득 차있다. "나의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스며드는 것과 어떤 풍경이나 대상과 동일시되는 것, 이 두 가지 목적만을 갖는다"(타임,1993;69)라고 드뷔시는 말한다. 그에게 영감을 제공한 것은 '비 내리는 정원', '안개', '달빛' 등, 그의 작품 제목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었다.    물 흐르는듯한 아라베스크 무늬와 영혼의 상태을 재현하는 베를렌풍의 풍경들, 해석을 요구하는 난해한 이미지들의 이어짐, 또한 이미지들 속을 집요하게 파고들다가 다시 다른 이미지들로 넘나들기 - 이러한 드뷔시의 요소들은 상징주의를 음악의 차원에 도입한 것이었다. 음악에서는 드뷔시의 작품들을 상징주의라고 흔히 칭하지는 않지만, 문학에서는 이러한 상징주의를 '애매한 상징주의' 또는 '제3의 상징주의'(Marchal, 1993;6)등으로 수식한다.    일반적으로 음악의 '인상주의'는 1900년경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상주의 음악은 풍부하고 섬세한 음색, 자유로운 형식적 구성, 분명치 않아 보이는 선율과 리듬의 윤곽, 세분화되고 연상적으로 연결된 선율, 그리고 전통적 조성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인다. 회화의 인상주의적 특징과 유사하게, 선율이나 화성의 흐름이 유동적인 형식인 드뷔시의 음악은 인상주의라고 불린다.    그러나 드뷔시는 자신의 음악이 '인상주의'라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가벼운 피상성과 일상성을 싫어하기도 하였거니와, 자신이 회화의 인상주의를 음악에 모방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또한 음악은 항상 외적 인상을 내적인 표현으로 변환시킨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가는 "낮이나 밤, 하늘과 땅의 매혹을 알아보고, 그 분위기를 깨울 수 있는 선택된 사람"이고, 이 모두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음악이라고 보았다. 인상주의 미학의 한계점인 피상성의 재현을 피하려함으로써 그의 음악은 상징주의의 모험에까지 근접한 것이다.    보들레르는 문학을 매춘이라고 하였고 랭보는 사기라고 하였다. 드뷔시가 "음악은 거짓 중 가장 아름다운 거짓"이라고 하였을 때, 우리는 '문학은 영광스러운 거짓'이라는 말라르메의 유명한 화두를 읽게 된다.    상징주의와 예술의 다른 장르 / 김경란         2.상징주의와 미술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빛과 색채의 변화를 포착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던 인상주의가 약 10년밖에 존속하지 못했던 이유는 빛과 색채가 변하는 방식에 대한 사고의 차이 때문이었다. 빛과 색채에 대한 자신들의 태도가 나타내고자 하는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상주의자들도 깨닫는다. 르네상스 이래 이어졌던 사실주의의 추구는 더 이상 필요가 없음이 확고해졌던 그 즈음에, 영적인 상상력을 통하여 상징으로 예술을 전달하려는 욕구와 꿈과 환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갔다. 그리고 꿈과 상징과 성의 중요성에 대한 프로이드Sigmund Freud와 앙크탱Louis Anquetin이라는 두 화가는 "사상이 회화 기법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인상주의를 포기한다"(타임,1993;83)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1880년대 후반의 반예술 운동을 위한 상당히 중요한 결정이었다. 그들은 시각을 통한 분석보다는 감정의 경험에 근거한 예술을 추구했으며, 그림의 주제을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에서 찾았다.(타임, 1993;83).          그리하여 고갱과 고호등은 상징주의를 예술의 아방가르드로 부상시킨다. 이러한 1880년대 후반의 반反예술운동은 정신적, 종교적 가치에 대한 상실감과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와의 구조적 충돌 속에서, 두 세계의 갈등을 해소하고자한 것이다. 상징주의 화가들은 부르주와의 물신주의와 대중주의에 혐오를 느끼고 그들의 관습이 예술을 파괴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과학에 대한 맹신에서 시작된 기계적 삶에서 해방되고자 하여, 감정과 욕망과 꿈과 신화를 표현하였다. 인상주의의 한계인 일상성과 피상적 재현을 버리고, 정신세계와 감정을 시각화하였다.    보들레르에게 향기, 소리, 색채는 영혼의 상태까지 전달하는 것이다. 상상력으로 재현되는 환기력 있는 시각 예술은 그에게 내재적 관념과 본질적 실재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따라 상징주의 화가들은 자연에 대한 모방주의에서 해방되어 색채, 선, 형태로써 내적인 아름다움을 고양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이집트, 원시미술, 중세 근동, 민족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다양성과 직관과 감각을 추구하였다. 원시미술에는 본능, 무의식, 꿈이 자유롭게 표현되어 있었다. 미술은 이렇게 비물질적 세계와 개인의 내면을  중시하며 도덕성의 차원을 넘어섰고, 탐미적으로 흐르거나 '데카당'하게 되었다.    한편 상징주의 문학운동은 스스로를 정당화시켜줄 화가들을 찾게 되었는데, 위스망스는 모로와 르동을 발견하여 이들을 1884년에 발표한 자신의 소설 에 몇 페이지씩 언급한다. 모로는 상징주의를 풍요하게 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하여 상징주의 문학의 확립에 기여한다.르동은 상징주의 이론을 미술에 실현시켜 상징주의 미술의 전형을 만들었고, 그의 작품은 다시 상징주의 문학에 전파되어 문학에서 많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상징주의와 예술의 다른 장르 / 김경란       2. 상징주의와 미술(2)     귀스타브 모로       모로(1826-1898)는 1856년부터 4년간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원시 화가들과 고대의 예술, 모자이크와 비잔틴의 에나멜화에 매력을 느낀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그림은 괴이함과 환상성 등으로 명성을 얻게 된다. 1880년경 유행한 신비로운 동양문화에 대한 동경의 결과, 사람들은 불화(佛畵)와 이탈리아 미술이 결합된 것 같은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띠는 그의 그림에 열광한다.   그는 그림의 기초를 문학, 철학, 고고학, 신지학 등에 두어 신화와 소설에서 주제를 얻었다. 데카당스 문인들은 그의 정교한 그림에서 전설, 신화, 복잡한 상징 팽창적인 배경과 색조 등을 읽어내고 경탄해 마지 않는다. "인도신전의 이미지에서 잔혹하고 엄숙하며 남녀양성으로 보일 만큼 모호하게 그려진 여성들과 지나치게 화려한 실내장식들은 세기말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쟝티,2002;59) 문예화가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분개하며, 미술과 본질과 의미에 대해 다음처럼 한다.             물질의 외피와 피상적인 육체미 밑을 흐르는 영혼의, 정신의, 마음의, 그리고 상상의 움직임을 반영하고, 시간을 초월하여 인류가 느끼는 이들 신성한 욕구에 응답하는 저 미술은 얼마나 감탄할 만한 것인가! 이것은 신의 언어이다. (---) 나는 선과, 당초무늬(아라베스크) 등 조형예술에 허용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사상을 환기시키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이것이 나의 목적이었다.(루시-스미드, 1990;68-71)          모로는 여러 가지 조형수단을 통하여 상징과 암시의 예술을 지향한 것이다. 그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의 본질을 그림을 통하여 느끼게 하고자 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것,느끼는 것을 믿고 그것으로 특유의 내면 풍경을 창조하였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풍경이 환기시키는 꿈과 환상이었다. 그의 인물들이 환기시키는 생각들은 개인의 내적인 섬광들을 촉발시키는 것이다. 그의 환상은 단순한 환상의 재현이 아니라 치밀한 생각과 계획의 결과였다는 점에서도 상징주의적이었다. 르동은 "모로는 생각들의 비약에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신의 형식을 다듬어내는 작가와 같았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의 나아감을 놀라운 이성으로써 인도한다(르동,1961;65)"라고 말하고 있다.    모로는 말라르메로부터 높이 평가받아 상징주의 시운동과 관련되며 상징주의 운동에 중요한 몫을 하였다. 그는"위대한 신비는 그 스스로를 완성시키고 자연 전체는 이상과 신성함으로 채워져 모든 것이 변형된다"(루시-스미드,1990;71)라고 하며, 보다 높은 세계를 향한 고양(高揚)을 꿈꾸었고, 그 실현을 위하여 상징주의자들처럼 정교한 계획을 따라 작품을 완성하였다.    사물을 변형시키는 힘과 상상을 촉발시키는 그의 놀라운 능력은 문학을 또 다른 길로 안내하는 지침이 되기도 하였다. 후에 그가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 초현실 주의자들은 그를 망각에서 불러낸다.등에서 그가 형상화내었던 무의식의 세계에 초현실주의자 브르통은 크게 매료된다. 그는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였으며 20세기 회화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그는 오리엔탈리즘과 기독교와 유대주의와 비교주의를 교묘히 융합하고, 몽상의 동물들과 모세, 프로메테우스, 양성의 존재 등으로 다양한 꿈들을 전한다. 인간의 내적 감각에 대한 절대적 감수성과 문학적 소양으로 상상력을 촉발시켰던 모로는 다수의 시인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졸라는 모로의 상징주의에 대해 다음처럼 요약한다.        모로는 사실주의에 대한 증오로 독창성을 찾고자 하는 예술가가 빠질 수 있는 최고도의 기상천외함을 가장 놀랍게 드러낸다. (---) 현대의 자연주의는, 자연을 연구하려는 예술의 노력은 분명 반작용을 초래할 터이었고 이상주의적 예술가들을 산출하게 되어있었다. 상상력 영역에서의 이 역행적인 움직임은 귀스타브 모로에게서 아주 흥미로운 특질을 지니게 된다. 그는 낭만적 정열과 안이한 배색을 경멸하였고 그림자와 빛의 대비로 화폭을 뒤덮기 위해 영감이 떠오르길 기다려 눈을 현혹시키는 붓의 뒤엉킴 따위를 경멸하였다. 그게 아니었다. 귀스타브 모로는 상징주의에 헌신한 것이다. 그는 수수께기 놀이들로 이루어진 조각그림들을 그렸고 태초의 원초적인 형태들을 다시 찾아내었으며 (---)그의 꿈들은 더 기교적이고 복잡하며 수수께끼 같다 (---)().        모로의 상징주의에 대한 헌신은 자연주의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자연주의자 졸라 자신도 그 반작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로는 사실주의와 낭만주의와 인상주의와 자연주의에 반대하면서 상징주의를 풍부하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세기말의 예술과 데카당스의 한 지침이 되었고, 초현실주의를 촉발하는데 한 몫을 하였다. 이처럼 모로는 많은 사조들의 중심되는 경계선 위에 서서, 다양한 예술 사조의 프리즘 역활을 하였다. 상징주의와 예술의 다른 장르 / 김경란     2. 상징주의와 미술     오딜롱 르동         르동(1840-1916)은 1879년 석판화집  연작으로 화단에 데뷔하는데, 위스망스는 자기 소설에서 주인공이 숭배하는 예술가로 르동을 그린다. 르동은 1885년 위스망스의 소개로 말라르메와 말게 되어 급속히 친해졌으며, 시인의 사망 때까지 오랜 기간 교유한다. 말라르메는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시가 주는 기쁨의 4부의 3을 제거하는 것이다", "대상을 '암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의 꿈이다.(말라르메, 1974;869)라고 한 바 있다. 르동은 인상주의를 강하게 부정하였으며, 그의 목판화와 석판화는 암시적 기법을 충실히 실현하게 된다.    그는 "나의 데생들은 '영감을 불러이르키는' 것이지 정의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아무 것도 결정짓지 않는다. 그것들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미결정의 모호한 세계 속에 있게 한다" (르동,1961;27-28)라고 말한다.    말라르메는 르동에게, 화가는 시인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지는 않으나 화가의 상상력과 시인의 환상은 결국 같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음악 애호가였던 르동은 상징주의자들이 문학에서 음악을 사용하였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미술에 음악을 사용하여 상상적인 것들에 논리를 부여하였다.    그의 미학은 그리하여 "시각의 미학이라기보다는 상상력의 미학에"(장티, 2002;53)에 가까워지게 된다. 그는 말한다.              암시적 예술은 음악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속에 더 자유롭게, 빛나게, 전적으로 존재한다(르동, 1961;26).  암시적인 기법은 음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는 미리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예술은 현실이 아니라 신비이기를, 혼의 상태와 생각을 자유로이 반영하는 것이기를 희망하였다. 그리하여 르동은 자신의 판화들을 유례없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의 판화들은 다양한 장면들이 덧입혀져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표현되어 있다. 이미지 안에 이미지가 내포됨으로, 신비와 모호함으로 가득하다. 따라서 감상자의 의식과 무의식의 움직임을 촉발한다. 그것은 암시의 미학을 따르는 예술작품은 적극적인 감상을 요구한다. 르동의 감사에 있어서는 감상자의 해석이. 따라서 그의 내면의식이 아주 중요하다. 감상자들은 찬탄하거나 보는 것만으로 그칠 수가 없는 것이다. 화가는 말한다.              (---) 감상자의 정신 속에 파생될 효과는 그를 허구세계로 이끌어준다. 이 허구세계의 의미는 감상자의 감수성과 모든 것을 확대시키거나 축소시키는 그의 상상 능력에 따라, 커지거나 작아진다(르동,1961;27)          이러한 예술의 수용 문제를 문학에서 다루고자  하였던 말라르메의 시도를 떠올린다. 말라르메는 또한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 사물을 '보는 법'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강조하였고, 이 점에 있어서도 그들은 서로 통하였을 것이다. 르동은 "본다는 것은 사물들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파악하는 것이다"(르동,1961;48,62)라고 하였다.    그의 그림들이 감상자들에게 자아내는 신비로운 분위기는 그가 지니고 있던 신비에 대한 감각에 의한 것이었고, 그것은 상징주의 문학에서와 유사한 차원을 가리키고 있었다. 르동이 화가가 되지 않았더라면 상징주의 문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 평자도 있을 정도였다. 모리스 드니도 지적했듯이, 르동이 영혼의 상태나 감정의 깊이, 내면적인 비전을 일러주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함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의 상징주의 문학에서 신비를 표현하는 방식을 더욱 상상력 쪽으로 밀고 나아간다. 그는 사물에 대한 표현에 그치지 않고 다른 차원의 신비까지를 감상자에게 촉발하고자 하여, 모호성을 극대화시킨다. 그에게 신비란 관찰자의 '마음상태'에 따라 형성될 어떤 형식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의 상상력은 조형적 실현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다. "나의 독자성은 보이는 것의 논리를 보이지 않는 것에 가능한 한 적용시켜, 있음직한 것이 법칙을 따라 있음직하지 않은 존재들을 인간처럼 살아있게 만드는 데 있다"(르동,1961;28) 라는 그의 우명한 주장은, 그를 초현실주의이 시작으로 보는 시각에 수긍하게 한다.    르동의 조형적 실현은 무의식이 심연에까지 가닿는 특징이 있다. 이 점에서도 그는 초현실성과 잘 연결된다. 그러나 그의 환상과 몽환의 세계는 뿌리 없는 것이 아니며 그 뿌리는 면밀히 관찰된 현실에 있다. 자연의 대상을 섬세히 포착한 후에 상상적인 것의 재현이 스스로 펼쳐지도록 하는 것이다. 자연은 그의 예술의 원천이었다.그러므로 그는 말한다,              나는 나 자신을 따라서 예술을 하였다. 나는 가시적 세계의 경이를 향하여 눈을 뜨고 예술에 임하였으며, 또 그것은 누가 무어라 하였건, 자연적인 것과 삶의 법칙에 순응하겠다는 지속적인 관심에 의한 것이었다.(르동, 1961;9)          자연과 삶의 법칙에 순응하며 예술을 통하여 우주적 상징으로 나아가는 것은 르동의 자연스런 여정이었다. 그는 "'부호(Code)'는 그것이 우주적 의식의 진지한 표현이 될 때 복음서를 대신할 수 있을 것"(르동, 1961;26)이라고까지 생각하였다. 상징주의 문인들의 궁극적 지향을 대변하고 있는 듯한 부분이다..    신비와 불안과 환상적 분위기를 담고 있는 그의 그림들은 자주 문학화 되었다. 또한 르동은 '에드가 포우에게'라는 제목으로, 이 시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6점으로 된 판화집을 발행하고(1882년), 바그너를 다룬 판화를 여러 점 제작하기도 한다. 말라르메에게는 석판화집을 헌정하고, 의 판화를 제작한다. 상징주의와 예술의 다른 장르 / 김경란     3. 상징주의 극        상징주의 소설에 비교했을 때, 상징주의 극은 상징주의의 면모를 상대적으로 더욱 화려하게 구현하였다. 상징주의 극은 바그너와 말라르메 없이는 생각할 수 없도록 그들의 기여가 크다. 말라르메는 연극의 모든 장치를 배제하고 순수한 이상주의 연극을 제안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글쓰기를 단순히 무대 위로 옮겨놓은 것이다. 이러한, '극 자체에 대한 부정' 혹은 '문학적 반연극(反演劇)'은 1890년 이후의 연극에 대단히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1890년에는 릴라당의 유작 이 공연된다. 이 극은 상징주의, 낭만주의, 이상주의, 바그너 등 모든 기법을 동원한다. 나아가 일부 상징주의 극은 공감각을 무대에서 시험하기도 한다.  "라는 극에서는 공연장에 향수가 뿌려지기도 한다."(Marchal,1993;127).    말라르메의 이상주의 연극 미학은 이러한 과도한 시도를 거부하였다. 무대장치는 순수 허구를 그려내려는 목적만을 지녔다. 즉 색깔과 선들에 의한 유추적 효과만을 노려, 무대는 배경과 몇 개의 유동적인 휘장들로 되어 있었을 뿐이다.    메테롤링크의 는 정신적 연극과 시적 연극을 보여주었다. 여기서는 가스를 나오게하거나 조명의 기술 등을 도입함으로써 물질적 배경들을 부정하였다. 배경은 없거나 있어도 암시적인 것이었다. 극단적인 절제로써 진실주의나 자연주의에 반대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무대는 거의 부호들로 이뤄내고자 하였다. 즉 책의 형태를 닮아가려한 것이다.    폴 클로델의 연극은 상징주의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으나. 정통적 상징주의는 아니었다. 그는 시를 해방시켜서 시적 연극을 펼쳐내고자 하였다. 거기서 그는 내적 탐색을 보여주거나 종교적 신비를 드러내려 하였다.     통합예술        바그너는통합 예술작품의 시대가 장차 도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통합적 작품이란 그리스 연극을 모델로 연극과 음악을 결합시켜 하나로 통일된 작품이다.            각각의 예술은 자신의 힘이 한계에 도달하자마자 인접한 예술의 도음을 청하게 된다. (---) 각 예술 속에 깃들어있는 이러한 특이한 성향 (---) 그것을 나는 음악과 시의 관계 속에서 가장 놀라운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여겼다. (---) 이렇게 개별적인 모든 예술들을 포용하며, 그들은 또 각자 개별적으로 완성되게 하면서 그 예술들이 저체를 결합하는 예술작품을 나는 나 스스로에게 제시하려 애썼다.(1860:Marchal,1993;159).           예술의 통합을 계획한다는 것은 연극과 음악이 분리되지 않았던 원시 시절의 예술형식을 되찾겠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후에 의 공저자가 되는 에두아르 쉬레는 미래의 예술에 대해 예측한다.(1875년) '책. 박카스, 리라'라는 제하의 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태초의 세 자매인 시, 춤, 음악은 함께 태어났지만 오늘 날에는 분열되었다. 새로은 결합이 이룩된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확실한 기호가 될 것이고, 그 속에서는 육체, 영혼, 생각이 조화되며 스스로를 되찾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마지막 통합의 수단이자 목표로, "책은 우리 시대의 주된목표이자 변별 기호가 되지 않았는가? 그것이야말로 이제 모든 것을 표상하고 흡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바그너는 쉬레의 글에서 나타나는 통합예술의 모습은 말라르메의 예술론 이해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의 통합예술론은 의도적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다. 극시 과 를 쓸 때. 그는 극에 대한 야심은 덮어두고 몇몇 장면들에 대한 초안으로 만족하려 하였다. 그러나 극은 그 본질적 특성상 결국 미학적 차원을 넘어서 거의 종교에 닿아있는 현상으로 시인에게 다가오고, 시인은 극시의 완성에 전념하게 된다.     말라르메의 연극 미학은 신화에 기초하며, 또 그는 고전주의의 근원에서  자신의 꿈을 되찾고자 한다, 그 꿈은 쉬레의 글에서 나타난 생각과 많은 부분 유사하다. 고전주의는 넓은 의미의 고전주의였으며, 따라서 그는 바그너에 만족하지 않았다. 바그너의 통합예술은 태초의 근원의 언어에 가닿지 못하는 것으로 시인의 눈에는 보였던 것이다. 그는 바그너가 그리스 신화가 아니라 게르만 신화의 영웅들, 즉 죽은 인물들에서 동기를 찾는 점이 불만이었다.     비인칭 극         말라르메의 극에 대한 개념은 고전주의나 사실주의를 넘어선다. 소품과 장치들로 가득 찬 사실적, 전통적 무대를 그는 거부한다. 무대는 장치들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무대가 '중성적 공간'이 되어야 관객의 정신이 자유롭게 투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중성적 공간에서 추상적 인물의 전형을 그려내고자 한다. 따라서 영웅주의적인 바그너극과 통속극을 거부한다. 그것들의 일상적 틀은 환기적이고 암시적인 효과를 죽이는 것이었다.     요컨대 그는 '비인칭 극'을 지향한 것이다. 무대 장식을 없앤 중성적 공간에는 본질만이 재현된다. 그는 을 모델로 삼는다. 거기서는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는냐'하는 본질적 문제만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연출과 모든 조역들과 단역들이 사라지고 주인공의 환영들만 등장하는 극으로 을 읽는다. 이 모노드라마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정신의 극이다. 그러므로 을 제외하고는 어떤 연극도 시인의 생각에 맞지 않았다.     일부 상징주의자들은 말라르메의 생각을 따라 연출의 힘보다는 텍스트에 무게를 두고자 하여, "읽혀지는 희곡이 상연되는 연극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배우들의 역할은 "종종 내레이터 정도로 축소되었고 꼭두각시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장티,2002;96-97)". 이상주의 극에 대한 이러한 경도는 결국은 극에 대한 거부, 즉 반연극이었다.     극의 물질성을 확실하게 덜어주는 장르는 발레였다. 발레는 모든 장치를 버린 것으로, 말라르메는 그것을 '육체의 글쓰기'라고 하였다. 발레는 백지와 같이 중성인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간결한 글쓰기'였다.     연극을 정화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무언극'이었다. 무언극은 순수 허구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중성의 공간고 무명의 배우를 결합시킨 '최초의 연극'이었다. 4. '책'과 문자예술         문자예술                        [그것이]                          수라면               별에서 나온                                                                                           그것이 존재한다면                                                                                                         빈사의 산란스러운 환시와는 다르게                                                         그것이 시작한다면 멈춘다면                                                                                        부정되었을 때 솟아나오며 나타났을 때 폐쇠되나                                                                   마침내                                                               희귀하게 퍼트려진 어떤 과잉에 의해                                                                               그것이 밝혀진다면                                                                                하나일지라도 합이 자명함을                                                                         그것이 비춰준다면                                     [그것은]                                                            우연           말라르메는 24페이지로 된 『주사위던지기』라는 시에서 여러 실험을 행하는데, 그 중 하나는 페이지의 개념을 깨고 있다는 점이다. 페이지를 '장(feuillet)'의 개념으로 대치시키면서,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이어지는 글쓰기를 한다. 여기에 여덟 가지 다른 활자를 배치한다. 백지는 가장 큰 캔버스가 된다. 위의 시는 아무 부분이나 옮겨본 것이다(좌우 페이지 상단 부분).     이 시, 혹은 극시는 파선의 풍경만을 보여준다. 난파선의 선장은 절망의 상황에서 주사위를 던질 것인가 말 것인가를 햄릿처럼 망설인다는 이야기며, 그밖에 아무런 행동도 이뤄지지 않는다. '시와 산문의 종합'(Bernard, 1988:311)이라고도 하는 이 시에서, 활자들은 감각과 생각의 변화에 따라, 명상의 깊이에 따라, 음악의 강약이 표기되듯 크기와 배치가 달라진다. 시행들도 생각과 함께 움직이며, 때로 이탤릭체로 때로 로만체로 변한다.     잔잔한 물결이 흐르듯 작은 글자들로 어느 정도 규칙성을 띠던 시행들은 홀연 사라지고 백지 위에 커다란 단어 하나만 남기도 한다. 단어의 주변은 커다란 침묵이다. 크고 작은 글자들은 문자의 심포니를 만들어내지만 난파 뒤에 계속되는 정적과 침묵 또한 말을 한다. 한 페이지가 완전한 공백이 되기도 한다.     모든 장마다 시구 주변으로 여백이 둘러싼다. 행간에도 다양하게 여백들이 배치되어, 클로델의 말대로 '여백에 의한 생각의 분리법'(Bernard, 1988:319)을 보여준다. 침몰이라는 절망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하여 활자들은 페이지 밑바닥에 파선 조각처럼 침전된 모습으로 배치되기도 한다.     치밀한 계산 하에 사용된 여백의 기법과 다양한 행간두기 등은 시집 전체가 가장 정교하고 창조적인 건축물, 혹은 하나의 미술작품이나 악보집으로 빚어지게 한다. 아폴리네르의 『칼리그람 Calligrammes』은 이러한 방식을 차용한다. 누보로망에서의 여백두기도 이 방식을 따른 것이다. 해석은 아직 많은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서구 문학사상 가장 혁명적이며 난해한 문헌이다.     "한번의 주사위 던지기는 결코 우연을 폐지하지 못하리라" 라는 시의 대명제는 가장 굵은 글씨로 시집의 처음과 끝 장 모두를 관통하여 지나간다. 그 주변으로 부속 문장들이 나무의 잔가지처럼, 물결무늬처럼, 거미줄이나 레이스처럼, 악보의 음표처럼 종속된다. 대명제 주변으로 산재한 각각의 문장들은 연계되어 통합적 역동성을 보여주고, 때로 침묵을 때로 폭풍을 그린다.     이 시의 중요함은 시가 닫힌 채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도 있다. 시집의 123장은 펼쳤다 닫았다 할 수 있는 부채를 상기시키는 구조이다. 대명제가 시집 전체를 가장 큰 문자들로써 관통한 후, 시의 마지막에는 작은 문자로 "모든 생각은 주사위 던지기를 발한다"라는 문장이 이전의 시행 전부를 요약한다.     시집 전체는 이렇게 단 두 개 문장으로 이뤄지며, 시집은 닫힌다. 그러나 마치 보들레르가 「저녁의 조화」에서 마지막 행을 통하여 순환구조를 만들어내었듯이, 마지막 문장을 통하여 시는 순환구조를 이뤄낸다. 주사위 던지기는 결코 끝날 수가 없는 것이다. 책도 결코 닫힐 수가 없다. 생각은 다시 계속되는 것이며, 따라서 시에서 구두점은 사라진다. 언어는 확산이 될 수 잇는 가능성을 이렇게 지니게 된다. 닫아도 그 속에 바람의 가능성을 언제나 지니고 있는 쥘부채와 같이.      '책'과 극       시인은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한 권의 '책'에 도달하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랭보가 자청한 모험은 태초의 모어가 지닌 환기력을 확보하기 위한 가파른 재난이었다면,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여정을 생각하게 된다. 말라르메의 언어는 마지막에야 '책'과 극에 도달한다. 우연이 아닌 언어의 순수역학을 따르는 책, 대문자의 책(Livre)이다.     시인은 이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책'을 꿈 꾸었다. '책'이라는 의미의 불어는 대문자로 쓰이면 성서를 뜻하기도 한다. 시인은 '책'이라는 '대작(大作)'을 구워내는 가마에 불을 때기 위하여 '연금술사처럼 인내하며', 모든 삶의 노력을 경주하였다고 베를렌에게 고백한다. '책'은 관념상의 책이 아니었다. 성서도 존재하는 책이듯이.     '대작'이라는 꿈은 완전한 언어에 대한 꿈으로서, 언어 연금술을 전제한다. 불어로 '대작'이라는 말은 비천한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사의 화금석(化金石)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사위던지기』는 많은 점에서 화금석에 닿아있다. 화금석의 탄생에 의하여 진정한 모어가 우주에 확산될 수 있기를 시인은 꿈 꾸었던 것이다.     '책'의 계획은 '책'의 읽기 계획까지 포함한다. 시인은 시 낭독회에 대하여서도 대단히 특이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책'은 고정되게 제본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낱장의 페이지들로 되어있다. 낭독자는 책을 낱장별로 따로 읽으며, 낭독한 후에 묶거나 정리함에 넣으면 또 다른 책이 된다. 낱장들은 여러 방식으로 결합된다. 책장들의 무한한 조합을 가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은 이렇게 쓰기와 인쇄에 그치지 않고 읽기까지 포함하는 커다란 계획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글은 쓰는 자의 차원을 넘어선다. 쓰기는 더 이상 닫힌 공간에서 자족하지 않는다. 읽기의 확대이자 독자의 공간의 확대- 이제 수용의 문제가 주요 이슈로 대두된 것이다.     나아가 시인은 극의 요소를 '책'에 도입하고자 한다. 시, 음악, 미술, 춤 등 여러 예술 범주들을 융합해낼 수 잇는 극처럼, 진정한 시언어는 여러 범주들이 교감과 통합을 이뤄내며 원시예술처럼 무대 위에 펼쳐져야 한다. 시의 낭독회는 이러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오랜 세월 분업화로 고착된 분열의 예술이 아니라 통합을 시도한 것이다. 분열된 바벨의 언어가 아니라, 제례(祭禮)와 예술의 통합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읽기는 이제 정신을 무대에 올리고 연출해내는 작업이 된다. 시적 공간이 재창조되는 작업인 읽기- 읽기는 내면화된 극이다. 쓰기에서 읽기로 나아가는 것은, 내면의 시를 극적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일이다. 읽기는 하나의 의식(儀式)이 된다. '책'은 그리하여 '정신의 도구'이자 '정신적 연극의 장소'로 완성된다. 여기에 시인이 말하는 '문자 속의 신비'가 빚어지는 것이다.     언어는 더 이상 자족적이지 않게 된다. 독자에 대한 의식이 전환되고 그 몫은 무한 확대된다. 독자는 이제 「알바트로스」나 낭만주의에서처럼 야유하는 자가 아니다. 독자는 참여자가 된다. 무한한 교감이 약속된다. 시인은 저주당하거나 추방당한 자가 아니다. 진정 시인은 사회적 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프랑스 상징주의 운동의 핵심과 주변을 탐사하고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 꽃과 열매는 어떠하였는지, 개화와 결실 후의 역풍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시들어갔는지, 열매 맺음이 문학과 예술이라는 드넓은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거름으로 어떻게 작용하였는지, 시든 후에도 열매에 열매를 이어주고 있는지, 간략하게나마 상징주의의 큰 길과 소로들을 따라 가보았다.     우리는 상징주의 시의 계보에서 출발하여, 다른 사조로의 전이 양상, 즉 데카당스에서 초현실주의, 현대시 등으로 이어지게 되는 상징주의의 맥락을 살펴보았는데, 상징주의 문학의 구체적 양상은 무엇보다 시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상징주의 시에서는 우선 자유화시, 자유시, 새로운 활자배치법, 구두점의 제거, 페이지 개념의 변모 등, 다양한 시 형식의 실험에 주목하게 된다. 그 실험은 시와 산문의 통합이랄 수도 있는 산문시, 장르 간의 경계 넘기, 통합예술 등 여러 형식의 발명들로도 이어졌다. 이처럼 시를 기존의 기능과 형식에서 최대한 해방시키고자 하여, 오늘날의 시의 모습이 있게 한 것은 상징주의의 가장 현대적인 기여의 하나이다. 상징주의는 언어의 해방과 동의어였다.     상징주의는 다양한 예술 방법의 도입과 철학의 영향으로 자신의 영역을 이토록 풍부하게 확충시켜갔지만, 상징주의에 고유한 언어의 완성은 무엇보다 교감, 암시, 상징 등의 방법을 통한 감각과 시선의 해방에서 출발한다.     우선 보들레르의 교감 이론은 상징주의 시학을 주도하면서, 향후 시인들의 사물 읽기에 획기적인 전기를 제공하였다. 랭보의 자유로운 상상과 감각과 환상의 힘은 현대시를 향한 우상파괴적 시선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의 지옥으로의 하강은 초현실주의의 세계를 선구적으로 보여주었으며, 그의 심연은 또 다른 오르페우스를 그려내었다. 그의 화려하고 고통에 찬 하강의 그늘에는, 저주와 자학 속에 완성되는 베를렌의 겸손한 선율이 있었으며, 감각과 음악과 언어의 융해와 교감이 있었다. 말라르메는 언어와 사물과 상징과 신비 등의 관계를 파악하고 그 결과를 섬세히 시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감각과 언어의 재정립을 통한 이러한 길찾기들에 비하여 발레리의 길은 조금 달랐다. 그는 말라르메의 언어철학을 토대로 순수시를 더 밀고 나아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로 빚어진 관념시를 제시한다. 상징 시인들의 구도의 여정들을 발레리는 지중해적 명증의 시학으로 다시 빚어냄으로써 서구 상징주의의 골격은 완성된다. 랭보의 우상파괴, 발레리의 순수시 등으로 현대시의 세계는 더욱 열리게 된 것이다.     상징주의 시인들은 이처럼 자신의 방법 자체를 끝 없이 넘어서려 하였다. 그리하여 음악은 상징주의의 형성에 도움을 주었으며 미술은 그 확산에 기여하였고, 상징주의는 다시 음악과 미술로 구현된다. 또한 상징주의자들은 특정 예술 장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였다.     이러한 상징주의의 추구는 그러나 무엇보다 언어에 대한 추구였다. 말라르메는 언어의 완성을 절대의 '책'에서 보여주려 하였다. 거기서는 문자와 그림과 음악과 철학이 절묘하게 만난다. 그것은 통합언어를 향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문자예술은 그림문자를 지향하였고 활자법의 혁명을 보여주었다. 전통적 외양의 순수시로 자족하지 않고 일탈과 변모를 통하여 형식의 새로운 열림을 꿈 꾸는 것이다.     언어는 이렇게 통합예술이고자 하였다. 단순한 통합이 아니라 창조이면서 동시에 예술 스스로의 초월이고자 하였다. 랭보의 파괴가 재창조를 빠르게 그려내려 하였다면, 말라르메는 거기서 인내심의 부족을 읽어내었다. 그가 이끈 시형식의 혁명은 현대의 시와 산문들 속에서 다시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 의미와 색채가 어떠하든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하나의 언어의 풍경이다. 사람은 '상징의 숲'을 걸어가고 숲은 친숙한 눈길로 그것을 지켜본다. 인간은 언제나 상징을 필요로 하고 빚어내며, 상징은 또 해독되기를 기다린다. 상징주의는 그러므로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 늦게는 중반까지 성행하였던 일시적 조류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     상징주의는 역사적으로 폐기되었음에도 부정할 수 없도록 존재하는 문학의 태도로서 언제나 의미 있다. 상징은 비록 여러 겹으로 두터워져도, 엘리스의 이상한 나라처럼 들어가는 문을 발견하기만 하면 많은 것에 가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징주의는 여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효용적 의미에서의 상징주의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적어도 표현의 한 기술이라는 측면에서도 상징주의는 살아있다.     상징주의에 대한 부정론은 상징주의의 발생 속에 배태되어있던 것이다. 현실과 관념 사이에서 관념을 현실화한다는 문제는 시작부터 수용할 수 없는, 하나의 수수께끼 놀이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더구나 관념의 외적 형식에 무의미하게 집착할 때, 마침내는 무용한 언어 놀이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정적이든 긍정적 의미이든, 상징주의는 내용상 그리고 형식상 이미 대중과 유리라는 전제조건 하에 출발한 것이었다.     상징주의 선언을 기점으로 전개되었던 협의의 상징주의는 시작한지 불과 몇 년 만에 끝나버린 운동이다. 상징주의는 언어에 대한 위선적 조작에 이를 수 있는 허구적 행위로 보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 언어 혁명의 맥을 놓치지 않고 따라 가보면, 상징주의는 끝없이 스스로를 부정, 수정, 완성시켜가려한 언어 행위였고, 상징주의가 보여주었던 형식의 실험은 오늘날의 문학 행위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 되어있음을 알게 된다.     현실과 이상, 현실과 초현실 간의 대립 속에 오히려 안주하려 하였던 행위로 상징주의를 읽는다면 그것은 상징주의를 다 읽은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안주가 지속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통합의 언어로 나아가고자 하면서도 상징주의는 그 의도 자체로 인하여 오히려 시인과 대중과의 유리라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는 이미 상징주의의 본질적인 한계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타기(打棄)한 것은 허위로 끝난 상징주의였다하겠다. 진정한 상징주의는 언어의 혁명 혹은 점진적 수정행위와 더불어 언제나 진행형일 것이다. 발레리의 말대로 상징주의는 어떤 한 '유파'가 아닌 것이다.     상징주의는 또 모레아스의 「선언」에서와 같은 소문자의 상징주의와 넓은 의미의 상징주의, 전기 상징주의, 후기 상징주의 등, 여러 분류가 가능하다. 그러나 진정한 상징주의는 이러한 분류를 넘어서 독자적으로 또는 다른 예술 분야와 통합되기도 하면서 확대될 수 있었고, 있어야 하였다. 모든 상징주의는 빨리 오건 늦게 오건 다시 대해에서 합류하는 것이다       상징주의가 퇴조하였음에도 그것에 대한 믿음이 부정할 수 없이 존재해온 것은 언어통합의 욕구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 분업의 양상이었던 언어의 장르들을 넘어설 언어가 요구되어왔던 것이다. 상징주의가 대통합을 궁극에 그리는 것은 분화된 바벨의 언어를 극복하려는 의지에서였다. 우리는 대문자의 '책'에서 언어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읽을 수 있었다. 상징주의가 남긴 긍정적 몫의 하나이다.     상징주의는 그 진행과정에 필연적으로 반동적 움직임들, 그리고 감각과 언어의 유희 속에 스스로를 한정시키는 내재적 오류들과 부딪히기도 하였다. 의미 없는 신비 추구, 현실에서의 변화와 변혁의 욕구를 거의 도외시한 비현실적인 세계 속의 침잠(沈潛), 지적인 메시지들에 대한 지나친 경도 등은 상징주의 스스로를 이미 새로운 글쓰기를 막는 낡은 굴레로 전환시켜 놓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새로운 형식주의를 버리고, 순수성이나 모호성이 아니라, 이상과 관념이 아니라, 생황의 본연과 실상으로 돌아오고자 한 문인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나 상징주의의 원래 추구하였던 목표는 허구적 조작에 의한 상징의 창조가 아니었다. 베르렌도 말라르메도 발레리도 모로도 르동도 모두 대상에 대한, 그리고 대상들 사이의 관계들에 대한 면밀한 관찰에서 출발함을 우리는 보았다. 그들 스스로 이 점을 여러 번 강조하였으며, 관찰 과정은 작품들 속에 섬세히 구현되었다.     더불어 기억할 것은 신비나 통합예술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더라도 상징주의는 궁극적으로 언어의 탐구라는 사실이다. 춤과 노래와 제례의식이 분리되지 않았던 태고(太古)의 하늘, 그 언어를 지표로 한다. 바로 그런 까닭에 상징주의는 문학에서의 어떤 변형의 기술로 만족하려 하지 않았다. 말라르메가 "아름다움이 꽃 피는 이전의 하늘"을 그리며, 문제는 "변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 것"(Mallarme, 1974:880)이라고 말하였듯이, 상징주의에서의 언어탐구는 언어의 변형이 아니라 언어의 창안이고자 하였다.     그 탐구는 한 마디로 모성언어로 회귀하려는 언어의 지향성이다. 언어와 음악이, 제례와 축제가 하나이며, 기표와 기의의 분리를 원하지 않았던, 상징이 꽃 피던 시간, 그것에 대한 믿음과 향수- 이들이 상징주의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주술적 언어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언어 주변을 떠돌고 있으므로 시 언어는 상징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주의는 불어로 전개되었으나 코스모폴리탄적인 운동"(Richard, 1978:395)인 것이다.     큰 의미의 상징주의는 사조를 넘어선다. 잊지 말 것은 상징주의의 언어 화해와 대통합의 작업은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시대에 따라, 사람 마음에 따라, 겉과 속의 모습을 달리하며 상징주의는 언제고 전개될 것이며, 인간의 상징 또한 영속할 것이다. 이간의 상징은 과거나 미래의 현상이나 희망이나 절망과는 거리를 둔 채, 빠르게 느리게, 섬세하게 때로 거칠게,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거대한 페르소나를 바꾸고 또 굴러갈 것이다. [출처] 상징주의와 예술의 다른 장르 / 김경란|작성자 옥토끼    
5    상징주의의 방법 / 김경란 댓글:  조회:2893  추천:0  2018-03-25
상징주의의 방법 / 김경란 (1)        1 상징주의의 정신        이상주의, 정신주의          1891년 말라르메는 상징의 신비란 "영혼의 어떤 상태를 보여주기 위하여 조금씩 조금씩 어떤 대상을 환기시키거나, 아니면 반대로 한 대상을 선택하여 일련의 해석 과정을 거쳐서 영혼의 어떤 상태를 이끌어내는 데에"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글자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영혼의 상태"를 빚어내는 데에 몰두한다 함은 정신주의적이며 이상주의적인 지향을 요약하는 말이다. 상징주의는 근본적으로 물질주의에 대한 항의인 것이다. 물질주의는 졸라의 자연주의나 고답파적 사실주의로 드러나고 있었다. 상징주의는 이에 반대하며 반물질주의와 반자연주의로, 즉 관념과 이상이라는 정신 우선주의로 기울었다.   자연이라는 개념도 상징주의에서는 정신적 조화의 문제와 상관되는 것이었다. 조화를 언어의 세계 속에 구현하는 것, 즉 시 속에 내적이고 우주적인 질서를 다시 빚어냄으로써, 언어와 자아와 우주가 하나로 포용되는 상태, 그것이 상징주의의이상이었다. 고답파의 무관심에 가까운 "무심"자체는상징주의에서는 무용한 것이었다. 내적 상태에 몰두하였지만 그것은  개인의 차원 너머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것이었다. 초월을 위하여 "탈인성화" 가 요구되었으므로 낭만주의와도 구별된다.                낭만주의는 우주의 중심을 주관적, 개인적 자아에 두고서 그 자아의 본질을 감성과 심정을 통해 파악하고자 하고 상징주의는 우주의 중심을 인간까지를 포괄하는 우주 자신에게로 환원시키고 그 우주의 본질을 감각과 이념을 통해 파악하고자 한다. (김기봉, 2000; 113)          이상이라는 것은 막연한 동경이 아니었으며, 감각이나 감정 속의 안주가 아니라 스스로를 우주적 질서 속에 합일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상징주의는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와는 달랐다. 더구나 자연주의에서의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었다.    상징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 자연주의 담론이 제시하는 생경하고 거친 현실로 축소될 수 없다는"( Marchal,1993;8)) 저항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상징은 현실의 것을 기계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거칠고 절망적인 현실(ici-bas) '저 너머(au-dela)의 현실을 환기하는 것이 상징의 중요한 존재의미였다.                 이제 현실의 것은 적이 되고, 철학적인 것이든 종교적인 것이든 저 너머 세상은 모두 기꺼이 수용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들이기 때문이다.(Marchal,1993;8).          상징주의는 따라서 자연스럽게 철학을 동반하고 필요로 하게 된다. 쇼펜하우어와 헤겔과 니체의 철학은 상징주의의 바탕이 되어주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철학 외에도, 기존의 진리에 의문을 표시하고 새로운 가치의 기준을 만들려 하였다는 태도 자체에서도 상징주의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와 아울러 신비와 신비주의는 상징주의 미학의 이성적 모습이자 '가장 세련된 형태'로서 '유행 현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제 문학은 영혼, 정신, 이데아, 본질이란 개념에 집착한다. 또한 자연주의 소설에 드러나는 것과 같은 생경하고 과장된 현실보다는 신화와 전설에서 가능성을 찾아 나선다.  상징주의의 방법 / 김경란 (2)        1 상징주의의 정신          문학의 자율성          자연주의에서 처럼 문학과 과학이 접목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주의는 언어 외적인 모든 범주들을 떨쳐내고자 한다. 이는 고답파의 예술지상주의를 계승한  측면이다. 언어는 스스로 자율성을 확보하기에 주력한다. 문학과 언어 자체를 되찾고자 한다. 샤를르 모리스는 1891년 상징주의의 차별성을 다음처럼 강조한다.          그러나 심리학은 문학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생리학이나 지리학이나 역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되면 문학에 어떤 특이한 혼동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도구가 가져다주는 혼동이다(중략) 사람들은 도덕이 도덕론자를 유인했던 논리적 결론을 시인들에게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란 '아름다움'외에 다른 본질적이고 자연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Huret, 1984;94)       도구와 목적의 혼동이 자연주의의 부정적인 면의 원인이 되었거나 그것을 증대시켰던 것이다. 문학이란 문학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언어의 자율성과 미적 독립을 위하여 문학 외적인 목표는 모두 문학에서 배제해야 한다. 문학은 언어 자체만으로써 내적인 긴밀한 구성을, 즉 건축물처럼 '미리 계획된' 구성의 완성을 지향한다. 이러한 지향은 원래 에드가 포우를 계승한 보들레르의 지향이었다. 이러한 지향은 말라르메로, 발레리로, 다시 이어진다.     문학은 문학 자체로 존재의 근거를 지닌다. 아름다움은 진실되거나 선한 것과 구별된다. 이러한 신념은 고답파에 이어 상징주의가 문학에 가져다준 가장 큰 공헌 중의 하나다. 이미 도래한 문학의 상업주의 시대에, 문학의 시장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는 문학이 이제 모순되게도 절대적으로 긍정되고 있는 것이다. 시집은 자비로 출판되었고, 스스로에게 비상업적인 가치를 부여하였다. 말라르메는 말한다.         어쩌면 팔리면 안 될 것을 거래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더구나 그것이 팔리지 않을 때에는.       ( :Mallarme; 1974;378 )        팔리지 않는 문학이란 다시 말해 정신의 목적에 봉사하기를 희망하는 문학이었다. 어떤 목적이나 종속을 거부하였던 문학, 다시 말해 대중과의 유리遊離라는 위험까지 자청하였던 문학은 1857년 세기말까지 "이상과 절대에 목마른, 대부분은 신을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거의 신앙을 대신"(Marchal, 1993;10)해주고자 하였다. '문학의 사제''문학이라는 종교'라는 수식어들은 이러한 현상에서 나온 말이다. (계속)     상징주의의 방법 / 김경란 (3)        1 상징주의의 정신              비교주의, 난해성           사실주의 시대에 소설은 대량 인쇄권을 얻어 거대한 대중이라는 문학시장을 형성하게 된다. 상징주의자들은 이에 대한 반동으로 내밀한 시 속에서 "정신의 마지막 피난처를 찾았으며, 입문자들만 다가갈 수 있는 비교주의(秘敎主義)의 성역을 찾고자" 하였다.(Marchal, 1993;10) 비교주의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지 않은 종교의 태도를 말하므로, 상징주의는 일종의 정신적 귀족주의에 닿아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다수의 문인들이 신비주의 결사에 가입했다는 연구와 자료들이 있다. 상징주의 주변에 탄생한 데카당스도 반(反)대중주의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상징주의자들은 일종의 '선민의식'(Marchal, 1983;10)을 지니고 비교주의에 탐닉하며 새로운 시 언어에 대한 탐색에 나선다. 그들은 고대어를 차용하거나 신조어를 만들기도 하며, 신문이나 연재소설의 일상어와 구별되는 순수한 언어의 탐구에 전념한다. 기존의 구문 구성법을 해체하거나 그것에 대한 새로운 시도 등으로도 이어지는 이러한 자세는 상징주의 문학에 필연적으로 난해성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들은 논리적 근거 하에 시작하여,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난해함은 그들에게는 극복 가능한 것이었다. 난해성은 "독자의 준비 부족이나, 시인의 준비 부족에서 온다."(Mallarme, 1974;869)고 상징주의자들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구문 구성법과 단어 선택 등의 난해함, 거기에 더해지는 상징 자체의 난해함, 반대중주의, 비교주의, 이 모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새로운 상아탑이었고, 결국 비난와 오해를 동반하며 상징주의 쇠퇴의 중요 요인이 되기까지 이른다.     이러한 언어추구의 양상 외에도 우리는 보들레르의 댄디즘과 에서 상징주의가 일반 대중과 유리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댄디즘(dandysme)'은 19세기 영국에서 발생한 일종의 문학적 태도로서, 타협하지 않는 예외적 삶의 양식을 통해 사회적 권위를 얻으려는 태도를 말한다고 되어 있다.     보들레르는 댄디즘과 나르시즘을 연관지어 보았다. 그에게 댄디즘은 "정신주의와 극기주의에 닿아있는" 것으로, 영혼의 초월적이고 순수한 체험을 위한 것이었다. 알코올과 아시슈(hasghisch 인도 삼에서 뽑은 마약')라는 인위적 방법으로 실현된 창조의 상태인 '인공낙원'을 그가 그리는 것도 이러한 체험과 상통한다. 그것은 시적 창조의 원동력인 상상력과 인공 공간을 벼리는 일이어서, 시인은 어쩔 수 없이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어갔다.         이러한 자세는 귀족주의보다는 고립주의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언어탐색과 난해성, 비교주의 등은 예술과 정신의 독자성 추구에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물질주의와 이성론과 엄정한 객관적 묘사나 무감동에 맞서서 정신의 '불확실한 영역' '미지의 영역' '불확정성'을 찾는다는 것은, 굳어버린 토대를 지우고 정신의 자율성과 자유를 추구하는 일이었다.     상징세계는 그리하여 냉엄한 질서에 맞서서 유동성과 환상이 빚어낼 새로운 조화의 세계를 가리키고 있었다. 기존 예술에 대한 부정은 그러므로 생성과 삶을 위한 움직임이었으며, 환상은 환상을 위한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상징주의의 이상은 일탈이나 격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 현실, 현상, 사실의 세계를 끊임없이 초월하여 '영혼의 상태'와 이상, 관념, 절대의 세계를 추구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징주의가 설혹 현실과 사실의 세계를 떠나고 벗어날지는 모르되, 현상의 세계 자체까지 버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징주의는(----) 반드시 현상을 통해서 관념과 본질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고, 또 포착된 관념과 본질이 현상 그것에 여일하게 실려서 현상 및 존재와 관념 및 본질이 조화롭고 아름다운 결함 내지 통일을 이루기를 꿈꾼다.(김기봉, 2000;110-111)              상징주의가 필연적으로 추구하는 내재성과 독자성은 이렇듯 고립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상과 본질의 조화를 위한 것이었고, 궁극적 통합을 향해있었다. 통합이란 현상에서 출발하여, 현상과 이상의 모순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초월이란 허황한 구름잡기도, 세상 모두를 버리는 일도 아니었다.(계속)  상징주의의 방법 / 김경란 (3)        2 상징주의의 미학              상징주의는 그러므로 도피 자체를 위한 이상 추구가 아니었다.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현실의 대안으로 이상과 절대적 관념과 형이상학을 미학의 세계로 전환시키는 것, '지고의 미(beaute superieure)'를 표현하고 창조하는 것이 상징주의의 진정한 목표였다.     그 결과 "모든 인식 대상은 하나의 상징 현상이요 상징적 존재"(김기봉, 2002-32)이게 된다. 즉 현상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상징체계로서, 그것이 감추고 있는 본질적 실체에 다가서는 것이 상징주의 철학의 요체였다.     말라르메에 의하면 대상들의 현재의 외양 자체는 현실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본질을 숨기고 있는 것이며 , 우리에게 그것을 전달하고자 한다. 현상은 관념을 표현하고 있거나 함축하고서 그것을 끝없이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보들레르에게 이 세계는 상징들의 거대한 덩어리, 상징의 숲으로서, 인간은 그것을 바라보고 읽고 그것을 체험한다. 현상은 끊임 없는 해독을 요구하는 본질의 전언자(傳言者)인 것이다. '이 세상(ici-bas)'이 아니라 '저 세상(la-bas)'을 현상에 대한 관념 속에 불러일으킨다. 시인에게는 상징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관념'이 예술로 형상화하지 못한다면, 철학이나 사상에 머물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상징주의는 언어 자체의 미학이었다. 일반 언어가 아니라 환기력 있는 언어의 추구였다. 문학은 사실적 산문을 넘어서서 상징적, 함축적, 암시적일 수 있는 힘, 순수한 환기력을 빚어내고 간직하지 않으면 존재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언어의 이러한 힘을 위하여 상징주의는 언어에서 굳어버린 관습을 지우고자 한다. 굳어진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이러한 언어탐구의 과정을 시인들은 연금술(hermetisme)에 비유하였다. 그것은 언어의 금과 은을 만드는 방법이었으며, 하나의 의식(儀式)이었다. 현자의 돌이나 지모(地母)나 절대의 언어는 동일한 신성성(神聖性)을 목표로 하였다.     상징의 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감각의 정화작업과 동시에 언어의 정화가 요구되었다. 본질적 관념의 세계를 그리기 위해서는 언어의 새로운 사용법이, 그 세계의 자연스런 유로(流露)를 위해서는 암시의 기법이, 암시를 위해서는 음악의 기법이 필요하였다.           교감       새로운 질서의 공간을 빚어내고 읽어내기 위해서는 감각의 정비가 필요하다. 감수성을 신선한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낡은 감각들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부정, 즉 어떤 논리적 필요와 근거 하에 기존의 감각체계를 뒤흔들고 지우는 행위를 랭보는 " 모든 감각들의 오래고도 광범위하며 논리 있는 착란(폴 드므니에게 보낸 편지)"이라고 설파한다.     이는 감각의 틀을 단순히 새 것으로 바꾸자는 차원이 아니었다. 랭보는 스승이었던 이장바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인은 착란에 의하여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시인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세계를 촉지하고, 그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낡은 시선으로는 볼 수 없고 예언자의 통찰력을 가져야한다고 하였다.     이 '보는 힘', 즉 정신의 참되고 아름다운 새 질서를 완성하는 능력의 소유자를 랭보는 견자(見者voyant)라 하였다. 그것을 위하여 감각의 오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착란을 통하여 견자가 되는 것, - 이는 마치 무병(巫病)을 앓고 난 뒤에 신통력을 얻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견자-시인은 스스로 자신의 제어력을 벗어나고 자신을 버린 상태에 도달한다. 이때 그는 "나는 타자다"라고  말한다.나는 죽은 것이다. 말을 하는 자는 나의 넋이 아니라 다른 자의 넋이다.      이토록 무의식의 바닥으로까지 내려가 만나고자 하였던 감각과 인식의 또 다른 차원을 보들레르는 일찍이 랭보보다 앞서, 이라는 시에서 열어주었다. 랭보가 말하는 '모든 감각들의 착란'이란 보들레르에게서는 감각과 감각의 경계선이 없어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를 들어 청각과 시각이 통합되는 것, 즉 색깔이 있는 청각(audition coloree)'등으로, 감각들이 섞이며 새로운 감각으로 변하여 또 다른 '영혼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감각과 정신이 해방되어 맞는 낯선 상태 즉 '미지(未知)'에 대한 추구를 말해준다. 그곳의 "가장 새로운, 보장된 높은 자유(mallarme 1974;363)을 위하여 무구(無垢)한 감각과 시선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제 감수성과 시선이 없으면 언어는 세계를 창조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까지 불러일으키는 증상." 다시 말해 '공감각(共感覺)'은 여컨대 질서를 다시 빚어내고자 하는 욕구의 결과이다. 이 교감(交感)은 감각과 감각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교감의 세계에서는 주관과 객관이 섞인다. 그리하여 자아조차 버린다. 나는 나를 벗어나 나를 바라본다. 자아가 아니라 타자-자아인 상태에서 " 자신의 생각이 발현하는 것에 동참"한다고 랭보는 말한다(드므니에게 보낸 편지). 자아의 바깥에서 자아의 발현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 행복한 격리에 대해 말라르메 또한 말한다. "나는 비인칭(impersonnel)이 되었다." "내가 알던 스테판느가 더 이상 아니며", 우주적 합일을 향하여 가는 나의 능력(une aptitude)일 뿐이다"라고 (카잘리스에게 보낸 편지), 논리와 언어의 우주적 합일을 위하여 그는 개인의 감성을 버리고자 한다. 그것을 시인은 '탈인성화(脫人性化)라고 한다. 일체의 감성적 여건으로부터 비인칭화 됨으로써 거짓된 감성의 한계를 초월하고, 상상의 모순을 극복할 논리를 수용한다.     말라르메와 랭보는 결국 같은 곳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탈인성화나 자아의 의도적 의기를 통하여 그들은 정신과 언어의 격을 바꾸고자 하였다. (계속)  상징주의의 방법 / 김경란 (5)        2 상징주의의 미학              암시와 모호성              '암시(suggestion)'의 기법은 문학, 음악, 미술, 춤, 연극 등, 상징주의의 모든 작품에서 필요로 하는 기법이다. 상징주의자들은 대상을 묘사할 때 객관적인 언어로 윤곽있게 선명하게 그리는 일을 대상을 죽이는 일이라고 보았다. 말라르메는 "오직 암시만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어떤 대상을 명시하는 것은 시가 주는 기쁨의 4분의 3을 제거하는 일이다. 시의 기쁨이란 조금씩 점쳐보는 데 있다. 대상을 암시하는 것, 바로 이것이 시의 꿈이다.(Mallarme, 1974;869)           조금씩 점쳐본다는, 상징이 주는 기쁨의 여지는 지시적 언어로써는 바랄 수 없는 것이다. 꿈이나 수수께끼를 풀어가듯이 대상에 대한 관념을 예감하며 대상의 양상들을 따라가는 것이 언어가 주는 기쁨이다. 대상을 '통째로 취한다'는 것은 마치 사진을 찍는 것처럼 기존 언어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모든 생성을 전적으로 막는 일이다.              고답파 시인들은 사물들을 통째로 취여서 그것을 제시한다. 따라서 신비감이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시가 주는 기쁨의 4분의 3을 제거하는 것이다. 기쁨이란 조금씩 풀어 나가는데 있는 것이다. 대상을 '암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의 꿈이다.(Mallarme, 1974;869)           "신비야말로 상징을 이루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신비가 없으면 생성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신비야말로 생성의 영역이다. 사물을 명명하는 것은 상징의 목적에 반하는 일, 즉 신비로운 상상작용이나 유추작용, 환기작용을 막는 일이다. 그것은 언어에 대한 꿈과 언어가 주는 기쁨을 가로막는다.     배를렌이 음악이 그려내는 모호한 영역에 집착하는 것은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음악에서의 '뉘앙스'를 시에 이식시키고자 한다. 베를렌의 모호함에 대한 추구는 랭보의 '감각들의 논리 있는 착란'이 겨낭하는 바와도 통한다. 모두 다 대상에 대한 굳어있는 의식 지우기에서 출발하여, 열린 감각과 질서를 향하겠다는 의지를 따른다. '회색 노래'란 서정적 노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지향이었다.              또 그대는 오해를 할 수 없도록        말을 선택하려하지 말 것.        '미묘함'이 '선명함'에 뒤섞이는        회색 노래보다 더 귀한 것이 없으니.              그것은 너울 뒤의 아름다운 두 눈,        정오의 이글거리는 태양빛,        미지근한 가을 하늘에        밝은 별들의 푸른 뒤엉킴이어라!              왜냐면 우리는 '뉘앙스'를 아직도 원하기 때문(---)                                                                       암시기법은 그 특성상 미술에 손쉽게 직접적으로 적용되었다. 미술에서 암시는 신비와 거의 동의어였다. 암시의 기법은 신비의 해석이라는 작업에 함께 참여하도록 감상자를 더 쉽게 청할 수 있었다. 자유로운 상상과 무의식이 개입되는 감상 - 이로써 감상자는 적극적인 해석자가 된다.              르동은 암시적인 기법이란 사유를 자극하면서, 그것이 조명하고 예찬하려는 꿈들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숭고한 조형 요소들을 결합시켜 빛을 발산시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모호한 형식을 통해 '감상자'에게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유도했다(장티, 2002;92~93)              암시는 그러므로 단순한 하나의 기법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표현기법에, 그리고 사실주의 허상에 맞서는 일이다. 말라르메에 의하면 '완전히 허구적인 공간'을 빚어내는 일, 즉 기존 공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것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태양광선 아래 사물을 새롭게 보았던 방식과도 어쩌면 상통한다. 빛이 인상주의자들에게 해주었던 역할을 상징주의자들은 암시의 기법에 기대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감각과 언어의 쇄신과 병행하는 것, 새로운 사물읽기와 같이 가는 것이었다. 암시법은 다르게 보는 것을 요구하였다. 이제부터 상징주의는 한 마디로 다르게 보는 법이었다.              (----) 새로운 시 의식을 갖게 된 것은 상징주의자들의 덕분이다. 인상주의가 회화를 재현의 틀에서 분리시킴으로써 현대회화를 고안해내었듯이. 언어의 상징기능에 우위를 두면서 동시에, 말을 부호만이 아닌 또 다른 무엇, 완전한 권리를 가졌으며 향후로 확고부동해질 어떤 예술, 즉 시의 - 화가에게 색채 같고 음악가에게 소리같은 - 특수 재료로 만들면서, 우리에게 다르게 읽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은 바로 상징주의이다.(Marchal, 1993;30)           인상주의 회화에서 빛의 발견과 같은 의미를지닐 정도로, 상징주의에서 중요한 발견은 서술이나 묘사나 설명이 아니라, 암시와 상징을 통해 제시하는 방법이었다. 단지 정확하거나 사실적인 기술 또는 함축적이거나 웅변적이기만한 기능에 머물러서는 이제 시의 언어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지시어와 지시대상과의 자의적인 한계를 넘어서서 본질을 향하고 다른 우주를 창조해내야 한다. 창조가 이루어지는 때에야말로 '문자 속의 신비'가 존재하는 것이다. 진정 순수한 '허구'가 실현되며, 글쓰기의 의미를 되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기본적으로는 세계라고 하는 상징 현상을 해독해내는 '번역자'이면서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특이한 상징적 기능을 지닌 언어를 빚어내는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어야 한다." (김기봉, 2000;40) 시인의 소명이란 상징을 읽어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징들을 통해 본질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계속)  상징주의의 방법 / 김경란 (6)        2 상징주의의 미학           음악           베를렌이 이라는 시에서도 강조하였듯이 음악은 상징주의 시의 바탕을 만드는데 언어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말라르메는 "음악에서 우리의 자산을 되찾아오는 것"이 문학이라는 예술이라고 하였다.     그에게 음악은 현악기나 목관악기의 소리 등, 음악의 기초 재료로서의 음악이 아니라. "모든 것 속에 존재하는 관계들의 총체"로서 마치 기악편성이나 교향악과 같은 것이다.     이 밖에도 음악은 상징주의 언어에서 여러 의미를 지닌다. 음악은 암시의 기법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의 신비를 빚어내는 일에 조력자 역활을 한다. 또한 음악은 시에 우연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역동적 움직임을 주도하기도 한다.     음악은 나아가 마치 글쓰기의 직접적 도구나 재료인 것처럼 사용된다. 말라르메의 작품 에는 문자들이 악보의 음표들인 듯 배열되어 있다. 소리의 강약처럼 문자들이 크게 작게, 여러 다른 활자들로써 배치된다. 음악에서 휴지나 중지가 있듯이 백지와 텍스트 전체를 주도하기도 한다. 그가 를 악보처럼 생각하고 썼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새롭게 창조될 상징들의 조화로운 세계. 즉 언어가 빚어낼 '새로운 환경'을 위해 이처럼 음악의 도입은 필수적이었다. 상징주의 시에서 처럼 철저하게 음악을 사용한 문학은 없다. 음악에 문학을 근접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상징주의자들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보들레르는 음악을 이라는 시에 이미 차용하고 있다. 그의 라는 시는 언어와 음악과 춤의 구체적이고 정교한 융해를 보여준다. 이들은 단지 언어의 기교 차원만이 아니라 시의 원론에 음악을 사용하였고, 음악의 구체적인 사용법들을 보여준다. 음악의 모방 차원을 이미 넘어, 말라르메는 '시는 더할 나위 없는 음악'이라고까지 하였다.      음악을 더욱 현실적으로 언어에 적용한 예는 베를렌에서 찾을 수 있다. 베를렌은 "여전히 그리고 언제고 음악을!"이라고 에서 외쳤다. 그는 음악을 시 속에 실현시키는데 있어서 거창한 야망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 사용은 소박하지만 능란하다. 리듬의 도입은 그의 시에서 아주 자연스러워서 음악과 시의 리듬은 구별할 수 없도록 거의 하나가 되어있다. 이것이 그의 서정시를 완성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그의 시에서는 언어와 감정과 음악이 완전히는 분리되지 않는다.  상징주의의 방법 / 김경란 (끝)        3 상징주의의 언어           말라르메가 "시를 만드는 것은 생각들이 아니다. 그것은 말들로써 이뤄지는 것이다"라고 르동에게 설명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은 평범하게 들릴지 모르나. 여기서 시인은 문학은 문학 외적인 것을 분리하고, 상징주의는 결국 언어탐구라는 점을 분명히하고 있다. 언어는 마침내 그것 자체로 '살아 있는 존재'여야 한다고 하였다. 언어가 살아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언어은 죽은 언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문학어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말라르메는 언어를 두 개의 층위로 구분한다.              우리 시대의 떨쳐버릴 수 없는 욕구 중 하나는 한편으로는 날 것 혹은 직접적인 상태와, 다른 한편으로는 본질적인 상태로, 마치 서로 다른 기능을 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말의 이중적 상태를 분리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4    보들레르와 영원한 예술미 / 칼 하인츠 보러 최문규 댓글:  조회:1721  추천:0  2018-03-25
보들레르와 영원한 예술미 칼 하인츠 보러   최문규   I. 현대성과 심미성 (……) 보들레르가 현대성을 어떻게 이해하였는가에 대해서는 하버마스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으며, 우리는 다음과 같은 보들레르의 글에서 그 점을 읽을 수 있다. “현대성은 지나가는 것, 일시적인 것, 우연적인 것으로서 이것이 예술의 절반이며, 또다른 예술의 절반은 바로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이다. 과거의 모든 예술가에게는 현대성이 있었으며, 이전 시대에도 유지되었던 아름다운 그림의 대부분을 보면 거기에 서술된 것은 바로 그 시대적 의상을 입고 있다.”(보들레르) 현대성에 대한 보들레르의 정의는 무엇을 꾀하는 것일까? 분명한 점은 바로 ‘일시적인 것’이라는 특성을 취하는 매시대의 현대 예술에서 소위 전통적인 본질인 영원성을 구원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보들레르는 현대적인 현재의 조건하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의 에피파니’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위에서 인용된 문장의 의도는 분명 그 글의 서두에 나오는 문장을 통해 부연 설명되고 있는데, 거기서는 현대성이라고 명명될 수 있는 ‘어떤 것’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그에게 중요한 점은 지나가는 것에서도 유행이 예술적인 것을 취하게 되는 것, 그것을 유행으로부터 획득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을 끌어들이는 것이다.”(보들레르) ‘영원한 것’이 기능하기 위해서 ‘일시적인 것’이 포기될 수 없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일시적인 것’은 단지 기능으로 남을 뿐이다. 이러한 ‘일시적인 것’의 순수한 기능 특성은 보들레르의 텍스트에서 두 차례나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다. 그 하나는 『현대적 삶의 화가』의 첫번째 장이며, 거기서 ‘시대’ ‘유행’ ‘도덕’ ‘열정’의 의미를 지닌 ‘상대적인 요소’로서 일시적인 것은 미의 ‘불변하는 요소’, 즉 ‘영원한 것’을 향유하도록 만든다고 언급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제4장이며, 거기서 미의 ‘영원한 것’은 ‘일시적인 것’ 없이는 ‘아무 쓸모도 없는 추상적인 미의 공허함’에 빠진다고 언급되고 있다. 보들레르의 에세이에서 강조되고 있는 점은 따라서 ‘아름다운 것’에 대한 열정이며, 그 아름다움은 고대의 전형적인 모범에서 연역적으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현재 시간에서 생산된다. 이것은(하버마스 혹은 야우스가 생각하는 것처럼―옮긴이) 현대 혹은 묵시적인 미래에 대한 이론적 명제가 보들레르의 텍스트에 담겨 있다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오히려 바로 고대의 고유한 ‘비밀스런 미’에 도달하는 일이 현대에서도 중요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보들레르는 일시성과 영원성이라는 두 가지 양극적인 요소의 이중성 속에서 그 비밀을 발견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즉 기능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치는 예술적 요소―이 두 가지 간과될 수 없는 패러다임이 ‘영원한 것’으로 남게 되는데―의 법칙에서 말이다. 이러한 객관적인 실상을 야우스는 정반대로 해석하고 있으며, 하버마스는 그러한 야우스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왜냐하면 오랜 전통 속에서 고대 혹은 고전적인 것이 지니고 있던 그 위치를 바로 영원한 것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상적으로 아름다운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적인 것의 정반대인 영원한 것이 보들레르에게서는 지나간 과거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야우스, 『도전으로서의 문학사』) 역사철학적인 관심사에서 보들레르를 읽고 있는 야우스는 ‘미에 대한 이성적이고도 역사적인 이론’이라는 보들레르의 개념과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이론을 서로 대립시키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잘못 유도된 해석이다. 따라서 야우스는 프리드리히 슐레겔을 역사철학적으로 잘못 해석한 것처럼 여기서도 보들레르의 순수미학적인 이론, 즉 현대의 일시성과 우발성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움’의 이론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즉 그는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움’의 보들레르의 이론을 현재를 열정적으로 경험하는 역사적인 이론이라고 뒤집어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하버마스 또한 보들레르의 ‘미학적 프로젝트’를 약화시키고 있는 야우스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 목적은 소위 지배적인 ‘현재의 이론’을 구성하는 데 있다. 이것은 고대의 패러다임과 궁극적으로 결별하려 했던 보들레르의 ‘자기 정립’이라는 타탕성 있는 관점을 헤겔 식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즉 하버마스는 미에 대한 보들레르의 이념을 오로지 ‘시대 성찰’이라는 범주에서만 유도해내고 있을 뿐 그 본래의 정반대적인 근본 특징, 즉 ‘비밀로 가득 찬 것’ ‘극도로 어렵게 규정될 수 있는 것’을 간직하려 했던 보들레르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현대에 대한 보들레르의 이해는 다음과 같은 것을 꾀하고 있다. 즉 일시적인 순간은 미래적인 현재의 진정한 과거로서 확인될 것이라는 점이다”.(하버마스) 그러나 보들레르는 현대로부터 그 본래의 비밀스런 미를 끌어내려는 심미적인 충동에 주된 관심사를 갖고 있었다. 즉 보들레르의 텍스트는 ‘시대’의 모티브를 갖고 있지만 그것은 매우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심미적인 충동에 일방적으로 ‘역사이론적인’ 의미를 부여하려는 하버마스의 시각은 조심스럽게 파악되어야 한다. 미의 두 가지 특성에 대해서 보들레르는 미란 “언제나 어쩔 수 없이 두 가지 모습을 지닌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는 ‘현대성’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각각의 현재’에 해당된다는 것을 뜻한다. “과거의 모든 화가에게 현대는 이미 주어져 있었다. 이전 시대에도 유지되었던 아름다운 그림의 대부분을 보면 거기에 서술된 것은 바로 그 시대적 의상을 입고 있다.”(보들레르) 이제 분명한 점은 시대성과 영원성의 활성화에 대한 보들레르의 변증법적 형상은 결코 ‘현재’의 이론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술의 이론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보들레르는 일시적인 것 혹은 현재의 모습 속에서 예술의 영원성을 구출하고자 했다. 특히 현재의 모습이 예술의 영원성을 가능케 할 경우 그것은 더욱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와 관련된 일시성의 주장은 아름다운 것에 명상적으로 집중하는 일을 위해 단지 기능적으로만 주어지고 있을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인간학적인 차원에 근거하고 있을 뿐이다. “예술의 이중성은 인간의 분열에서 나온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따라서 우리는 영원히 정지되어 있는 부분을 예술의 영혼으로서, 변화하는 요소를 예술의 육체로서 파악하게 된다.”(보들레르) 아름다움을 ‘행복의 약속’이라고 목적론적으로 정의하였던 스탕달을 보들레르가 비판하였다는 점도 이러한 맥락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특히 미의 ‘귀족주의적인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보들레르는 ‘행복의 변화하는 이상’을 기준으로 삼았던 사유를 비판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심미적 현대의 개념을 내세운 보들레르가 무엇을 목표로 삼았는지를 더이상 간과할 수 없다. 즉 보들레르에게 있어서 현재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준 유일한 토대는 역사적으로 파악된 ‘현재’라는 지시적인 의미가 아니라 다름아닌 ‘미’였던 것이다. 그리고 보들레르의 미학에서 아름다움은 ‘무한성’이라는 개념과 ‘전율’이라는 범주와 밀접한 의미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역사철학적인 매개는 진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롱기노스의 『장엄함에 관하여』를 끌어들였던 쿠르티우스(Curtius)에 대한 야우스의 비판 또한 잘못된 것이다. 의심할 나위 없이 현대성은 바로 롱기노스의 글에서 이론적으로 최초로 주어졌던 장엄함의 상상력을 통해서 조명되며, 현대적인 미에 대한 보들레르의 생각이 바로 그 점을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버마스와 야우스는 이러한 점을 오인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은 바로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역사철학적인 진보 도식에서 나온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야우스는 한편으로 비초월적인 시대성을 지닌 스탕달 및 청년 독일파의 낭만주의 성향과 다른 한편으로 시대적인 것을 수수께끼처럼 경험했던 보들레르 사이에 놓여 있는 미묘한 차이점을 매끈하게 무화시키고 있으며, 그 결과 아무런 차이점을 제시하지 못한 채 단지 하나의 역사적인 단계, 즉 그 자체 이미 동일한 모양의 역사적인 단계만을 형성해내고 있다. 이러한 분석 시각이 바로 게르비누스(Gervinus) 이후의 문학사에서 엿볼 수 있는 전형적인 특징, 즉 심미성의 결핍인 것이다. 여기서 발전된 심미적 이론의 전망에 대해 하버마스가 못마땅해할 것이라는 점은 시간을 지양시킨 바 있던 셸링의 동일성 철학을 비판하였던 그의 초기 글에서 이미 읽어낼 수 있다. 반역사적인 셸링을 명백하게 비판하며 실러, 헤겔, 마르크스, 청년 독일파에 의존하여 역사적인 주장을 제시하는 하버마스는 보들레르에 의해 상상화된 미와 관련하여 그 미를 은밀히 목적론적으로 파악하려는 필연적인 결단 상태에 빠지고 만다. 즉 하버마스는 예술을 유물론적이고도 역사적으로 정립할 수 있는 증인으로서 보들레르를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낙관주의를 전복시킬 수 있는 아름다움을 내세운 니체 이후의 ‘심미적 이론’을 마침내 비판할 수 있는 토대로서 하버마스는 보들레르의 이론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하버마스는 니체의 눈으로 보들레르를 읽지 못하고 오히려 헤겔에 의해 변질된 눈으로 보들레르를 읽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버마스가 니체의 시각으로 보들레르를 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니체를 현대성의 프로젝트가 본궤도에서 이탈하도록 만든 본래의 죄인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니체를 역사철학과 예술의 보편주의적 철학을 심미적 이론으로 대체시키려 했던 죄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II. 시간의 지양:미학적 범주의 형상화로서의 「마주친 여자에게」 마주친 여자에게 귀 따가운 길거리가 내 둘레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상복 차림의 날씬하고 호리호리한 여자 하나가, 장중한 비통의 얼굴로 지나갔다, 화사로운 한 손으로 꽃무늬 장식의 옷단을 치켜들고 흔들어대면서; 조각상과도 같은 종아리로 날쌔고도 고상하게. 실성한 사람처럼 움찔해진 나는 마시고 있었다, 회오리바람이 싹트는 납빛 하늘 같은 그녀 눈에서 사람 호리는 상냥함과 사람 말려 죽이는 즐거움을. 한 가닥 번개…… 그러고는 밤!―그 눈매로 나를 별안간 되살려놓고는 도망치는 미녀여, 이젠 저승에서밖엔 너를 다시는 못 보겠지? 머나먼 딴 곳에서! 너무 늦어! 어쩌면 영영! 네가 가는 곳 내가 모르고, 내가 가는 곳 네가 모르니, 오, 내가 사랑했을 너, 오, 그걸 알고 있던 너! 이 시에서는 미와 존재라는 범주와 관계하여 잃어버린 시대를 강조하는 독특한 감정이 표출되고 있다고 발터 벤야민은 밝힌 바 있으며, 그것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읽어낼 수 있다. “이 시에서 영원한 이별은 도취의 순간과 일치하고 있다.” 벤야민은 그 순간을 ‘충격의 이미지’ ‘파국의 이미지’라고 명명하고 있다. 벤야민 특유의 ‘충격’ 개념이 지닌 문제점과 그러한 논의에 깔려 있는 사회심리학적인 근거를 재차 상술할 필요 없이 우리는 그 순간이라는 시간의 동인이 어떻게 전이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서 충격이란 무엇일까? 『악의 꽃들』에 실려 있는 「우울과 이상」이라는 연작시에서 엿볼 수 있는 화자의 상황과 비교해볼 때 우선 지각하는 자의 상황이 확인될 수 있다. 끊임없는 움직임―이것은 이미 시간적인 요소를 지시하는 것인데―에 의해 사로잡힌 이는 예기치 않게 그 어떤 것을 지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여타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것과는 이중적인 방식으로 구분되는 지각이다. 즉 그 지각 자체가 속해 있는 범속한 장면 내에서 그녀는 범속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엄하다. 또한 설혹 스쳐 지나가는 여인으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느 만남과는 다르게 움직이는데, 즉 조각상처럼 나타난다. 그럼으로써 그녀는―간접 증거로 작용하는 여타 다른 의미들을 제외하고 오로지 시간 자체의 메타포에 집중한다면―사라지는 것의 정반대, 즉 영원성을 대변한다. 슬픔에 젖어 있는 여성 모습의 상징화 내지는 알레고리화는 다각적이며 또한 심리분석적이고도 정치학적인 차원에서는 다양한 의미를 띨 수 있다. 예컨대 그 여인의 모습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이마고가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견해나 혹은 공화국에 대한 영웅적인 이념 내지는 자유 이념이 알레고리로 표현되어 있다는 등의 견해가 있지만, 그것은 사실 시간 양식에 관한 질문과 관계해서 결코 중요하지 않다. 결정적인 점은 시간의 지각에 엄격하게 제한된 추론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령 이데올로기적이며 정치적인 고통으로서의 시간에 대한 슬픔이 제2제정 시대에서 잃어버린 자유를 뜻한다고 해석될 경우, 공화국에 대한 상은 그러한 해석을 포함하게 되며 결국은 믿을 만한 해석이 되지 못한다. 그럴 경우, 그것은 이전 시대에 대한 체념적인 시각이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정치적이고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의도가 무엇을 내세울지라도 그러한 해석과 상이하게 대치되는 점이 나타나게 되는데, 즉 보들레르 텍스트에서는 역사적인 시대가 아니라 시간 단계로서 파악되는 시간의 느낌에 대한 성찰 양식이 우선적인 위상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은 『악의 꽃들』 전체의 구조 요소인 시간의 의미론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난다. 슬픔에 젖어 있는 여인과 재빨리 사라진 여인이라는 두 가지 확인될 수 있는 범주를 디테일하게 기술하는 보들레르의 수법을 염두에 두면, 이 시와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2) 간의 연관성이 형성된다. 그중 산문시 「군중Les Foules」에는 소네트 「마주친 여자에게」의 상황에서도 읽어낼 수 있는 고독한 산책자로서의 시인 장면이 언급되고 있다. 그 산책자는 ‘군중 속에서의 남자’와 동일하지 않으며 또한 ‘다수’에 대한 그의 일면적인 사회적 경험과도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그는 군중 개념의 정반대인 고립(solitude)을 경험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군중 속에서 ‘혼자’인 셈이다. 이와 같은 혼자 있는 존재 상태로 인해 시인은 다른 이들과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기이한 도취’를 경험한다. 군중 내에서의 고독은 ‘방황하는’ 영혼에 대한 매력을 결코 상실하지 않으며, 그러한 고독은 비밀(mysterie)과도 같다. 여기서 고독의 발견자는 아닐지라도 고독을 이론화하였던 루소와의 구분이 불가피하며, 항상 보들레르는 고독에 대한 루소의 확신에 대해 의심을 품은 바 있다. 그 차이점은 처음부터 다음과 같은 측면, 즉 보들레르는 ‘자연’이라는 매개물로 정의된 루소의 고독을 단호하게 배제하였다는 사실에서 읽어낼 수 있다. 스위스 숲을 거닐던 고독한 산책자인 루소는 파리에 있는 메닐몽탕 언덕에서의 과거 체험을 상기한다. 여기서 고독한 루소의 명상이 나타나는데, 그러한 내향화된 고독 속에서 명상하는 루소는 곧 자신을 모든 사물의 주인으로 해석한다. “고독 속에서의 명상, 자연 탐구, 세계 관찰을 통해 고독한 사람은 자신을 부단하게 사물의 주인으로 만들게 되며 달콤한 불안감으로 모든 사물의 목적과 자신의 모든 느낌의 원천을 탐지하게 된다.”(루소, 「세번째 산책」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이와는 반대로 보들레르의 ‘고독’ 개념은 도시적인 삶 그리고 자아가 대면하게 되는 사물의 지각과 연관되어 있다. 물론 그는 루소의 자연관 및 고독에 대해서 늘 성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의 우울』의 또다른 산문시 「고독La Solitude」에서 보들레르는 루소보다는 오히려 라 브뤼예르(La Bruy뢳e)와 파스칼(Pascal)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낭만주의 이전 시기의 자기 도취(루소)와―17세기의 두 사상가가 언급했던―‘혼자서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차가운 에토스를 서로 대비시키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보들레르가 라 브뤼예르나 파스칼 같은 현대 이전의 보수적인 모랄리스트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보들레르는 ‘고독’에 대한 사유를 성찰적이고도 주관적인 차원에서 혁신시켰던 루소를 어느 정도 받아들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가능한 한 루소의 사유를 넘어서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보들레르의 루소 극복은 다름아닌 ‘고독’을 상상력의 생산지로 파악하는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파리의 화려한 거리라는 외적인 세계와 다수의 군중은 단순히 다채로운 사회적인 현상 자체로 지각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풍속극의 무대, 즉 희극(Kom쉊ie)으로 향유되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군중」에서 볼 수 있듯이 ‘미지의 것’으로서 파악된 ‘무한성’의 차원이 열리고 있으며, 이것이 보들레르 미학의 핵심 개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을 배회자로 파악하는 이론적인 구상은 하나의 정신 상태를 함축하고 있다. 그 정신 상태는 수동적으로 현상과 마주치는 상태가 아니라 현상을 스스로 생산해내는 상태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학적인 지각 범주는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 물론 개인적인 문제 해결 차원에서 1860년 처음으로 출간된 「마주친 여자에게」가 반드시 ‘미지의 것(사람)’이라는 범주에 완전한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텍스트로서 읽혀질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내용적인 측면에서 그 점이 입증되고 있다. 더욱이 「군중」에서 언급된 다음과 같은 정신 상태는 「마주친 여자에게」와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인간들이 사랑이라고 가리키는 것은 매우 무의미하고, 제한적이며 미약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그 형용할 수 없는 향연, 그 신성한 영혼의 매음은 다르다. 시적이며 또한 연민의 정을 내보이는 이 영혼의 매음은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것, 지나가는 미지의 것에 자신을 바친다.” 미지의 지나가는 여인과 마주친 사람의 시선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시각은 수정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향연’이 다름아닌 ‘예기치 않은 미지의 것’을 시적으로 창작하는 이의 ‘향연’(시인의 글쓰기 상태―옮긴이)으로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충격 개념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하는 방식도 문제의 핵심, 즉 보들레르 텍스트는 미지의 것을 능동적이고도 미학적으로 구성해내는 텍스트라는 점을 놓치게 된다. 「마주친 여자에게」서 화자의 반응을 묘사하는 구절(“실성한 사람처럼 움찔해진 나는 마시고 있었다,/회오리바람이 싹트는 납빛 하늘 같은 그녀 눈에서/사람 호리는 상냥함과 사람 말려 죽이는 즐거움을”)도 개념적인 차원에서는 바로 「군중」에서 아이러니컬하게 묘사된 시인의 도취된 정신 상태와 부합하고 있다. 따라서 지나간 미지의 여인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범주인 것이다. 그렇다면 향연에 젖은 시인은 무엇을 감지하고 있는 것일까? 어두운 슬픔의 고통에 잠긴 고상한 여인은 일종의 정신적 자극으로서 멜랑콜리한 기호의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고독한 배회자로서의 시인이 갖고 있는 비밀을 유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보들레르 미학의 핵심 개념인 ‘무한성’의 두 가지 요소가 주어지며, 그것들은 ‘애매함’의 범주와 부합된다. 경우에 따라서 그 수수께끼와 같은 여인은 슬픈 모습으로 인해 어느 미망인과 동일시된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은 다음과 같은 조건하에서만 의미가 있다. 즉 그것이 보들레르 미학의 상징적인 문맥에서 읽혀질 때, 다시 말하면 묘사된 파리의 사회적 현상을 사회학적이고도 사회심리학적인 차원에서 당시 1850년대에 대한 지각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현실을 멜랑콜리하게 구조화하는 기호의 창살로 읽을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결국 여인이라는 기호를 중심으로 지나간 미지의 여인, 『파리의 우울』에 실려 있는 「미망인들Les Veuves」의 여인, 그리고 슬픔에 젖어 있는 안드로마케(『악의 꽃들』 중 대표적인 시 「백조」에 나오는 신화적 미망인―옮긴이)는 서로 결합되어 있다. 특히 「미망인들」에서는 귀족다운 기품을 통해 자신의 주변 환경의 저속성과 대조를 이루는 어느 미망인이 다음과 같이 언급되고 있다. “그녀는 키가 크고 장엄하게 보이는 여인이었다. 지난날의 귀족 미인들의 초상화 콜렉션에서도 그녀와 비교될 정도의 여인을 본 기억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자태는 너무나 고상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미망인의 모습에는 무엇보다도 배회자로서의 시인이 스스로에게 가하고 있는 특성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즉 그녀는 완전히 혼자(absolute solitude)이고 거만한 듯한 냉엄한 스토이즘적 자세(une fierte de sto뷵ienne)를 보이며 또한 고통스런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설혹 시선을 주고받는 테마가 결코 연출되지 않았을지라도, 또한 에로틱한 함축 의미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을지라도, 어쨌든 미지의 미망인과 미지의 지나간 여인 간의 친화성은 이 시에서 결코 간과될 수 없는 점이다. 즉 두 여인은 다름아닌 미학적이고도 정신적인 색의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 두 여인의 모습에는 다가가기 어려운 현상의 품위가 강조되고 있으며, 특히 중요한 점은 미망인은 멜랑콜리에 젖어 있는 시인의 내적인 상태를 장식해주는 중심 기호라는 것이다. 그녀는 희망을 포기한 이들, 그럼에도 “그들 내부에서는 아직도 천둥의 마지막 탄식 소리가 노호하고 근심 없이 한가롭게 지내는 사람들의 파렴치한 시선으로부터 멀리 물러나 있는” 패배자들을 대변해준다.(「미망인들」) 이미 지나간 감정의 순간이 아직도 시간적으로 여전히 현존해 있다는 것은 바로 ‘노호하는’ 상태로 표시되어 있다. 「미망인들」에서 사용된 ‘천둥(orage)’이라는 단어가 「마주친 여자에게」에서 사용된 ‘회오리바람이 싹트는(ouragan)’이라는 단어와 서로 교감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마침내 우연처럼 두 여인간의 은밀한 관계가 성립하게 된다. 「미망인들」에는 시선 교환이 주제를 이루고 있으며 결국 시인의 의도적인 시선 포착에 관한 언급으로 변화되고 있다. 또한 「미망인들」에서는 미망인이 그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그녀를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 「마주친 여자에게」와는 달리 그 산문시에서는 수수께끼가 풀려지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러나 여전히 현상의 구조를 완성시키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수수께끼’이다. 특히 멜랑콜리에 젖어 있는 시인을 표현하는 핵심 코드 기호인 ‘고독한 번뇌(Douleurs solitaires)’에서 그러한 수수께끼가 발견될 때 더욱 그렇다. 이러한 특징은 ‘미망인’이라는 형상에 바로 슬픔에 대한 보들레르의 이마고가 서술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며, 다시 말하면 그것은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시인의 상태를 나타내는 기호인 셈이다. 이처럼 시인의 특성은 관찰된 대상에 함축되어 있다. 슬픔에 젖어 있는 고독한 여인은 결국 사회학적인 범주가 아니라 보들레르 미학의 범주인 것이다. 산문시에 나타나는 미지의 것이라는 범주와 슬픔이라는 범주는 결국 소네트 「마주친 여자에게」에서의 여성 모습을 구성하고 있으며, 그녀를 지각하는 시인도 마찬가지로 심미적인 지각 단위로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주친 여자에게」의 장면에서 그려진 것은 단순히 즉흥시에서 엿볼 수 있는 어떤 개인들간의 조우가 아니라 보들레르 미학을 세련되게 구성하고 있는 두 범주간의 조우인 것이다.[출처] 보들레르와 영원한 예술미|작성자 최진연 [출처] 보들레르와 영원한 예술미|작성자 옥토끼
3    시, 어떻게 쓸까 -문학강의 [ 퍼온 글 임] 댓글:  조회:1543  추천:0  2018-03-25
누가 쓰셨는지  지금 작자를 모르겠네요.                                           1. 글쓰기는 말걸기이다(듣기가 읽기인 것처럼)   누구에겐가 말을 건다는 것은 첫 마디를 던진다는 것이다. 처음 몇 마디가 뒤엉켜 버리면 끝장이다. 내 후배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이 말을 꺼내는 친구가 있다. ■저어, 있잖아요, 제가, 며칠 전부터 생각한 것인데요, 선배에게도 전에 한 번 말씀을 드린 사항인데■■■ 그래서 그 후배가 다가오면 나는 이렇게 쐐기부터 박는다. ■너, 결론부터 말해.■ 글도 마찬가지다. 모든 글쓰기는 첫 문장 쓰기이다. 나는 후배 기자들에게, 기사의 첫 문장은 ■호객 행위■라고 말한다. 단편소설은 물론이고,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 필름도 도입부를 매우 중시한다. 리모콘이 등장한 이후, 텔레비전 프로그램, CF 제작자들은 강박증이 생겼다. 첫 장면에 승부를 걸어라. 처음 몇 초 안에, 시청자를 붙잡지 못하면, 채널을 바꾸기 때문이다. 모든 글은 첫 문장이다! 이 지면을 통해, 글 잘 쓰는 비결을 하나 공개한다. 내가 잘 아는(이름 석 자 가운데 한 자만 대도 독자들 대부분이 알 수 있는) 시인은 시를 한 편 완성하고 나면, 첫 문장을 백 번 이상 소리내어 읽는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다시 읽어 본다. 첫 문장이 흡족해야 시를 발표하는 것이다. 거듭 반복한다. 첫 문장에 목숨을 어떨지 몰라도 ■나■는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쓰기)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의 시(쓰기)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절실한 것이며, 절실하기 때문에 생명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문창과 학생들,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도 시(쓰기)가 자신에게 왜 필요한 것인지 명쾌하게 정돈하지 못하고 있었다. 열에 일고여덟은 ■나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서■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가까운 이들과 좋은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시를 쓰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 학생은 거의 없었다. 상대적으로 글쓰기와는 무관한 젊은이들에게 두 번째 질문(꿈이 있다면, 그걸 한 문장으로 말해 보라)을 던졌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출판사에 다니는 젊은 편집자들과 술을 마시다가 꿈을 물어 보았더니, 몇몇은 당혹스러워했고, 몇몇은 ■있는데 말할 수 없다■고 했으며, 한둘은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했다고 여기는 기색이었다. 한 문장으로 만들 수 없는 꿈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내 지론을 강요했다간 싸움이 날 판이었다. 나는 ■우리는 꿈꾼 것만을 이룰 수 있다■는 무하마드 유누스(〈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의 저자. 방글라데시의 대안 운동가)의 잠언을 들려 주고 싶었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시는 왜 필요한가? 나는 ■마지막 개인■으로서의 나를 확인하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시(쓰기)가 필요하다. 시(쓰기)를 벗어나는 순간, 나는 단독자가 아니다. 완전한 포로다. 나는 이 거대 도시가 요구하는 온갖 제도와 가치로부터 이탈해 자립, 자존, 자족할 수 없다. 나는 이 반인간적인 문명과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시 말해 늘 깨어 있기 위해 시(쓰기)를 필요로 한다. 시를 쓰는 순간, 시를 읽고 시를 생각하는 시간만큼, 나는 이 우주 안에서 자립, 자존, 자족할 수 있는 것이다. 악기이기를 지향하면서도 나의 시는 아직, 수시로 무기이다(이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지만 지면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내가 바라마지 않는, 한 문장의 꿈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쁘게 가난을 선택할 수 있게 하소서■이다. 산업 문명으로부터 완벽하게 이탈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도시에서 스스로 아무 것도 생산할 수 없는 ■기생의 존재■가 도시를 떠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생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쌀 한 톨을 일궈내는 데도 삼라만상이 참여해야 한다). 야생조차도 인간 문명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과학적 보고서가 있는 터에, 함부로 도시의 바깥을 상정하는 것도 유아적으로 보인다. 시를 통해 자기 삶과 존재를 확인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동시에, 도시적 삶의 그늘로부터 한 뼘씩이나마 벗어나고 싶은 독자가 ■아직도■ 있다면, 감히 한 권의 책을 권한다. 나탈리 골드버그가 쓴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권진욱 옮김, 한문화). 이 책을 한 번 읽어 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면, 당신은 이미 이전의 당신이 아니다. 미국의 글쓰기 지도 전문가인 나탈리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권하고 있다. ■여러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꿈에 대해서 5분 동안 써 보십시오■.   2. 문제는 감각이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축구 경기를 보다 보면, 간혹 ■감각적인 플레이■라는 멘트가 나온다.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선수■라는 표현도 자주 접한다. 최상의 기량이라는 찬사다. 지난 해 6월, 월드컵 축구대회 대 폴란드 전에서 황선홍 선수가 이을용 선수의 패스를 받아 성공시킨 골 같은 경우 말이다. 황선홍은 골대를 보지 않고 슛을 날렸다. 스포츠에서는 ■감각적■이라는 수사가 극찬이지만, 시에서는 그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시에서 감각적이라는 평가 앞에는 대개 ■지나치게■라는 부사가 붙는다. 감각이 승한 시는 깊이가 없다는 전통적인 잣대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같은 ■비평■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나치면 그르치는 것이 어디 감각뿐이랴. 상상력에서부터 이미지, 리듬, 관념어, 주제의식 등 시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 가운데 지나침이 허용되는 것은 없다. 나는 감각적인 시를 옹호하는 편이다. 감각없는 축구 선수가 드리블이 좋지 않듯이, 감각적 형상화가 서툰 시는 생생하지 않다. 감각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가벼운 감각이 가벼울 따름이다. 감각에는 깊이가 없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감각은 몸과 마음의 경계이다. 감각은 자아와 타자 사이에 있는 가교이다. 시인은 감각을 통해 (자아를 포함한) 세계와 만나고, 독자는 감각을 통해 시와 교감한다. 실존은 감각의 실존이다. 감각의 실존 가운데 가장 앞서 가 있거나 높이 있는 것, 그러니까 감각의 극단이 시이다(■잠수함 속의 토끼■라는 비유가 있다). 감각의 제국 안에서 제왕은 단연 시각이다. 인간이 외부 세계를 인지할 때 사용하는 감각은 시각이 대부분이다(80퍼센트). 그런데 시인은 여기서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간다(혹은 비켜선다). 보통의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쓰기는 단순한 보기(見)가 아니라 꿰뚫어보기(觀)이다. ■북쪽은 고향/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다시 풀릴 때/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마음은 눈 감을 줄 모른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시인 이용악(1914-1971)의 초기 시 〈북쪽〉 전문이다. 시 속에서 국경 근처 고향을 그리워하는, 국경 너머 팔려간 여인을 염려하는 시인의 눈은 마음의 눈이다. 그 마음의 눈은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는 지경까지 꿰뚫어보는 놀라운 시력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육체의 눈이 아니라 이처럼 언제나 깨어 있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존재다. 그러나 시각이 감각의 전부는 아니다. 시각은 오히려 흘러넘치고 있다. 이용악 시대의 시각과 21세기 후기 산업 시대의 시각은 크게 달라져 있다. 시각은 대량 소비 시대, 대중 문화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혹사당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광고와 매체를 통해 인간의 눈을 포섭해, 인간을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있다. ■시각 패권주의■ 시대이다. 시는 시각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이제 시는 저 왜곡돼 있는 시각과 맞서 싸워야 한다. 소비자의 눈을 인간의 눈으로 돌려 놓아야 한다. 주로 시각에 의한, 시각을 위한 인지와 소통은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배제하거나 왜곡한다. 시각 과잉은 인간을 인간 자신과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정현종의 시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던, 그리하여 그 섬에 가고 싶어하던 시대는 행복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인터넷과 휴대 전화가 있는 이 시대에 인간을 시각 과잉으로부터 ■구원■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가, 시각 패권주의에 희생당하고 있는 나머지 다른 감각을 복원하는 것이다.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들은 시각이 활동하지 않을 때에라야 활발해진다. 깊은 어둠 속에 누워 있어 보라, 얼마나 많은 소리가 들리는가. 제대로 맛을 낸 음식을 음미하는 미식가의 얼굴을 보라, 미식가는 눈을 감고 ■음~■하는 탄성을 내지른다. 손가락도 촉감에 충실하고자 할 때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최근 젊은 시인들이 발표하는 시들에는 소리와 향기가 자주 등장한다. 나는 이 같은 변화를 시각 패권주의에 대한 시의 저항이라고 이해하고자 한다. 차창룡 시인이 최근에 펴낸 시집 〈나무 물고기〉에는 ■똥은 꽃처럼 향기로워■(〈트리베니 가트에서 누는 똥〉)라는 놀라운 대목이 나온다. 이 시는 꽃을 똥의 차원으로 추락시킨다. (아름다운) 꽃이 상승이라면 (추한) 똥은 하강의 이미지인데, 이 상승과 하강을 똥의 형상(하강하면서도 결국은 상승을 의미하는 생김새)으로 일치시켰다가, 급기야 똥의 냄새를 꽃의 향기로 격상시킨다. 아, 얼마나 통쾌한가. 시각 패권주의의 대표적인 아이콘인 꽃에서 똥의 향기를 ■맡는■ 시인의 감각이라니. 황선홍의 월드컵 첫 골에 못지 않은 ■감각적인 시■이다.     3 . 짧은 글을 읽어라   봄이여 눈을 감아라/ 꽃보다/ 우울한 것은 없다 병상일지 전문 5> 전문 여기저기서 보내오는 시집이 많다. 내가 가만히 앉아서 시집을 받아 볼 높은 위치에 있다는 소리가 아니다. 시사주간지에서 오랫동안 문학 담당 기자를 했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보도 자료■로 보내오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다 동료, 선후배 시인들이 ■부채의식■ 때문에 보내는 시집들도 제법 있다. 시인들은 시집 받는 것을 ■빚■으로 여긴다. 그래서 새 시집을 펴낸 시인들은 그동안 시집을 보내온 시인들의 명단을 놓고 한 나절 넘게 주소를 쓴다. 그동안 밀린 ■시집 빚■을 갚는 것이다.   보름달은 어둠을 깨울 수 있지만 초승달은 어둠의 벗이 되어 줍니다. 전문 우편으로 시집을 많이 받다 보니, 몇 가지 요령이 생겼다. 출판사와 시집 장정을 보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시집 맨 처음에 실린 시를 먼저 보게 된다. 그러고 나서 시집 맨 뒤에 자리잡고 있는 시를 본다. 그 다음에 눈여겨보는 시가 짧은 시들이다. 시집 맨 처음과 맨 나중에 위치하는 시에 신경을 쓰지 않는 시인은 거의 없다. 첫번째 실린 시는 시집 전체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고(서시 분위기가 많이 난다), 마지막 시는 이른바 ■앞으로의 계획■쯤에 해당한다. 이렇게 두 편의 시를 읽고 나서, 짧은 시들을 골라 읽는다. 그러니까 서너 편 정도 일별하면 시집의 높낮이를 웬만큼 측정할 수 있다. 왜 짧은 시인가? 짧은 시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짧은 시에는 시인의 시력과 시야가 압축되어 있다. 사물과 사태, 삶과 세계의 핵심을 치고 들어가는 직관력은 물론이고 직관한 내용을 최소한의 어휘로 형상화하는 솜씨. 장악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파스칼이었던가? ■시간이 없어서 짧게 쓰지 못했다■라고 말한 이가. 흔히 장시를 쓰는 데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줄 알고 있는데, 모든 장시가 그런 것은 아니다. 서너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를 쓰는 데 평생이 걸리기도 한다(일본의 전통적인 정형시 하이쿠를 쓰는 시인들은 수도승 못지 않은 삶을 살았다. 두 행짜리 하이쿠를 쓰기 위해 엄격한 규율을 지켰다. 4행짜리 게송을 읊은 선승들은 또 어떻고). ■봄이여 눈을 감아라/꽃보다/우울한 것은 없다.■() ■보름달은/어둠을 깨울 수 있지만/초승달은 어둠의 벗이 되어 줍니다.■() 두 편 다 3행으로 이루어진 지극히 짧은 시이다. 앞의 것은 김초혜 시인이 계간 2002년 겨울호에 발표한 작품이고, 뒤의 것은 최종수 시인의 첫시집 에 실린 시이다. 짧은 시는 비수라기보다는 번개에 가깝다. 하지만 사람들은 번개와 천둥이라고 하지 않고, 천둥과 번개라고 말한다. 번개와 천둥은 사실 동시에 발생하는데, 빛보다는 소리를 더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짧은 시는 번개다. 번갯불에 벼락을 맞기도 하지만, 한참 뒤에야 세상을 뒤흔드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를 보자. 봄은 꽃의 계절인데, 봄으로 하여금 꽃을 보지 말라고 한다. 생명의 한 절정인 꽃에서 ■우울■을 보았기 때문이다. 절정인 꽃은 곧 시들게 마련. 만개한 꽃 속에서 꽃의 죽음을 본 것이다. 짧은 시는 이처럼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온갖 고정관념(선입견)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의식을 뒤흔드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것(꽃, 기쁨)에서 죽음(우울)을 발견하는 눈! 시의 위력은 그 눈에서 나온다. 은 또 어떤가. 달을 빛의 양(동그란 정도)으로만 규정하고, 어둠을 빛으로 물리쳐야 할 악으로만 이해해 오던 우리에게 시인은 아주 새로운 견해를 제출한다. 어둠을 깨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어둠과 함께 하는 벗 또한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 순간 어둠은 빛의 반대 진영에 있는 악이 아니라, 빛과 더불어 존재하는 동반자로 거듭난다. 어둠의 입장이 되어 보자. 자신에게 위압적인 큰 빛(보름달)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작은 빛(초승달)이 훨씬 더 애틋하지 않을까. 보름달이 혁명이라면 초승달은 연민(공감)의, 혹은 연대의 은유이리라. 짧은 시를 많이 읽자. 짧은 시는 서너 번 읽으면 외어진다. 그렇게 외운 시는 삶의 여러 국면, 구체적인 삶의 문제와 접점을 가지면, 시의 의미가 부풀어오른다. 이룰 수 없는 사랑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친구가 있다면 ■꽃보다 우울한 것은 없다■라고 말해 보라. 큰 것, 힘센 것만을 추구하는 선배가 있다면 어둠과 벗이 되어 주는 초승달 이야기를 꺼내 보라. 좋은 시는 짧은 시이고, 짧은 시는 우리들 구체적인 삶의 안쪽에 들어와 있다.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 이메일을 띄울 때, 외우고 있는 짧은 시를 전송해 보자. 보내는 이나 받는 이의 일상 속에서 아름다운 스파크가 일어날 것이다.                    4. 은유, 그 아슬아슬한 거리   지중해가 맑은 이유가 그 청년 때문인 것 같았다. 몇 년 전,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고 나왔을 때, 주인공 마리오에 대한 기억이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말라터진 바게뜨 빵을 연상시켰던 마리오는 너무 섬약하고 또 너무 순수했다. 그가 지중해의 청정함을 지키는 정수기처럼 보였다. 마리오가, 잠시 섬에 체류하게 된 세계적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전속 우체부■가 되면서 시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네루다를 영웅화했다면, 네루다가 떠난 이후,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보낸 별이 반짝이는 소리까지 담은 ■녹음 편지■는 전통적인 시(활자)의 시대를 마감하는 징후로 보였다. 시위 현장에서 마리오가 스러져가는 장면은, 네루다 혹은 시의 시대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래 전에 본 영화여서 몇몇 장면만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시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네루다가 거두절미하고 ■메타포■라고 답하는 대목이다. 메타포, 은유. 그렇다. 은유가 시의 전부는 아니지만, 은유를 빼 놓고서는 시를 쓸 수도, 읽어내기도 쉽지가 않다. 은유는 시와 시쓰기, 시읽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동력(전달 장치)이다. 직유를 거쳐 은유를 웬만큼 구사/해독할 수 있다면, 그는 괜찮은 시인/독자이다. 직유는 주종 관계이다. ■그는 바람처럼 달렸다■라고 쓸 때(결코 좋은 비유라고는 할 수 없지만), 바람은 그가 달리는 상태를 구체화하는 보조 역할에 머문다. 하지만 ■비가 쇠못처럼 내렸다■라는 표현에서는 약간 달라진다. ■그■와 ■바람■ 사이도 그렇게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비■와 ■쇠못■ 사이처럼 스파크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비와 쇠못 사이는 매우 먼 거리다. 일상적 차원에서 비와 쇠못은 거의 무관한 관계이다. ■비둘기는 평화다■와 같은 상징은 아예 주종 관계에서 종이 사라진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으로 쓰이는 순간, 비둘기 고유의 정체성은 지워져 버린다. 상징은 상징에 동원되는 수단을 지워 버리는, 매우 폭력적인 비유법이다.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으로 내세울 때, 비둘기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상징이 종교와 신화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징은 권력의 도구이다. 직유에서 주종 관계가 희박해질 때, 나는 그것이 바로 은유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직유가 술어(동사)를 거부할 때, 예컨대 ■비가 쇠못처럼 달렸다■가 아니고, ■비는 쇠못이다■로 변화할 때, 직유는 은유로 한 차원 승격한다. 그래서 나는 비유법을 자주 은유법이라고 이해한다. ■그대는 꽃이다■라고 쓸 때, 그대는 꽃을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 그대가 꽃을, 또는 꽃이 그대를 없애려고 하지도 않는다. 은유의 차원에서 그대와 꽃은 그대도 아니고, 꽃도 아닌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이것이 은유의 위력이다. 내가 지지하는 은유는 다원주의에 바탕한 은유이다. 즉 하나의 절대적 중심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모든 존재와 의미가 각자 하나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은유이다. 직유가 수직의 상상력이라면, 은유는 수평의 상상력이다. 직유(혹은 상징)가 과거의 세계관이라면, 은유는 미래의 세계관이다. 공존, 상생의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직유도 그렇지만 은유의 생명력은 비유되는 두 이미지 사이의 거리에서 나온다. 앞에서 예로 든 문장을 다시 불러와 보자. ■그는 바람처럼 달렸다■ 혹은 ■그는 바람이다■라고 했을 때, ■그■의 이미지가 선명해지지 않는 것은 바람이 갖고 있는 모호성 때문이다. 여기서 바람은 주어를 도와 주지도 못하고 동사에 기여하지도 못한다. 참신하거나 구체적이지 않은 직유는 구사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다. 상투성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비가 쇠못처럼 내렸다■ 혹은 ■비는 쇠못이었다■라는 표현이 위의 경우보다 조금 산뜻한 까닭은 쇠못이 갖고 있는 구체성 덕분이다. 은유를 ■A는 B이다■라고 흔히 말하는데, A와 B의 사이가 너무 가까울 때 상투성으로 전락하고, A와 B 사이가 너무 멀면 난해함으로 빠진다. 네루다와 마리오 사이의 대화를 흉내낸다면, 시란 저 A와 B 사이의 아슬아슬한 긴장이다. 그리고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저 A와 B를 결합시키는 비결은 (전에도 말했지만) 평소의 관찰력과 상상력에서 나온다. A와 B를 난데없이 연결시켜 강한 스파크를 일으키는 직관력은 갑자기 나오지 않는다. 관찰과 상상의 누적이 없다면 은유의 직관은 불가능하다. 사족 같은데, 한 마디만 덧붙여야겠다(은유를 말하고 있으니까). 팽팽하게 부풀어 있는 풍선에 바늘을 찔러야, 풍선은 강렬하게 터진다. 팽팽하게 부풀어 있는 풍선, 그것이 관찰과 상상의 상태이다. 그것이 깨어 있는 정신이다. 그렇게 깨어 있다면, 바늘(직관)은 얼마든지 있다. 불지 않은 풍선은 풍선이 아니다. 탄생 이전이거나 죽음 이후다 [출처] 시, 어떻게 쓸까 -문학강의 |작성자 최진연    
2    타이슨 <비평이론의 모든 것> 요약 [퍼온 글임] 댓글:  조회:4186  추천:0  2018-03-25
제1장 비평이론 요약   - 각 비평이론이 Text에서 분석해내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정신분석비평: 텍스트가 등장인물 또는 저자의 무의식, 즉 억압된 심리적 상처와 두려움, 죄의식이 따르는 욕망, 해소되지 않은 갈등을 어떻게 구체화하는가?   마르크스주의비평: 사회경제체제가 어떻게 인간경험의 궁극적인 근원이 되는가를 밝히려고 한다. 특히, Text가 사회경제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가? 아니면 약화시키는가? 텍스트가 자본주의와 그에 따른 계급차별을 어떻게 구체화하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여성주의비평: 텍스트가 가부장적 규범과 가치들을 어떻게 구체화하는가? 가부장적 규범과 가치들의 기반을 강화하는가? 아니면 약화시키는가?   신비평: 해당 텍스트가 위대한 문학작품인가? 말하자면 텍스트 안에는 보편적인 의의를 갖는 주제와유기적인 통일성이 모두 존재하는가?   독자반응비평: 독자의 읽기 경험이 텍스트를 창조해나가는 과정을 밝히려고 한다. 즉, 독자들은 텍스트를 읽으면서 어떻게 의미를 만들어 내는가? 그리고 독자들이 만들어 내는 의미와 텍스트 사이의 관련성은 무엇인가?   구조주의비평: 우리가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사용하는 기본적인 구조체계(예를 들어 원형, 양식, 서사 등에 관한 구조)는 무엇인가? 구조주의 비평가들은 이러한 텍스트의 문법을,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행동이 갖는 기능을 보여주는 일종의 공식처럼 나타내기도 한다.   해체비평: 텍스트의 자기모순을, 어떤 주제아래, 해소하지 않고 분해하면, 텍스트 안에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들과 관련하여 무엇을 알게 되는가?   신역사주의비평: 텍스트가 어떤 방식으로 역사해석에 관여하는가? 특히 해당 텍스트를 낳은 문화안에서 유력하게 작용하는 담론(특정한 이데올로기들과 결부된 언어사용방식)들의 순환과정에서 텍스트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문화비평: 특별히 ‘노동계급’의 문화적 생산물(대중소설이나 영화같은 것)에 주목하고, 그것과 ‘고급’문화생산물(이를테면 정전이 된 문학작품)을 비교한다. 이때 텍스트가 수행하는 문화적 작업은 무엇인가? 즉, 텍스트가 어떻게 사회경제적 권력구조를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 이데올로기들을 전달하고 변형시키는가?   레즈비언, 게이, 퀴어 비평: 텍스트가 어떻게 레즈비언, 게이, 퀴어 섹슈얼리티를 재현하는가? 그러한 재현이 이성애주의를 강화하는가? 아니면 약화시키는가? 특히 퀴어 이론의 경우 섹슈얼리티(성적지향성)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갖는 부당성을 텍스트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보여주는가? cf: 젠더: 여성성, 남성성(여자답다, 남자답다). 섹슈얼리티(성적지향성)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학비평: 텍스트가 어떻게 인종 및 인종적 차이를 재현하는가? 그러한 재현이 인종차별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가? 아니면 약화시키는가?   탈식민주의비평: 텍스트가 문화적 차이(인종, 계급, 성과 젠더, 성적지향, 종교, 문화적 신념, 관습 등이 결합하여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들)를 어떻게 재현하는가? 그러한 재현이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가 아니면 약화시키는가?   비평이론은 문학작품을 해석한다는 자체 목적만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지만,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인간 경험 일반을 이해하는 지평까지도 확장시킨다.   오늘날 대부분의 비평이론가들은 어떤 비평이론이든 역사적 현실 속에서 생산되며, 따라서 정치적 함의를 갖기 마련이라는 것을 잘 알 고 있다. 특정 비평작업이 정치적 현실에 눈 감다고 해서 정치와 무관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작동하고 있는 권력구조를 보호하게 될 뿐이다.   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독법은 개인이나 가족에 혼란을 가져오는 파행적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비정치적’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재현되는 파행적 사랑을, 현대 미국문화의 산물(자본주의, 가부장제, 기타 이데올로기들이 한데 맞물려 작용한 데 따른 산물)로 고찰했다면, 이는 명백히 ‘정치적’인 정신분석학적 독법이다.   해체론을 구사하여 텍스트의 의미가 결정불가능하다는 점, 다시 말해 의미가 하나로 고정될 수 없다는 점을 밝히는 작업은 ‘비정치적’이다. 그러나 해체비평은 의 텍스트 내부에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상의 모순, 곧 숨겨진 정치성을 들추어내는데 유용하기 때문에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비평가는 하나의 이론만으로 문학작품을 해석할 수도 있고, 단일 작품을 두세개 혹은 그 이상의 이론들을 활용하여 분석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해당 이론과 관련된 다른 이론들에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 제2장 정신분석비평     -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형식은 저자, 독자, 또는 사회전체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적 동력의 산물이다. 따라서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영화, 음악 등 모든 예술을 정신분석학적 도구들로 해석할 수 있다.   -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문학작품을 읽고자할 때, 어떤 정신분석학 개념이 텍스트안에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작품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1) 텍스트 안에서 주요 등장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무의식적 동기는 무엇인가? 이로써 밝혀지는 핵심문제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2) 문학작품속에서 오이디푸스적 역학관계 또는 가족 역학관계가 존재하는가? 등장인물(성인)의 행동양식을 그 사람이 어렸을 때 가족안에서 겪은 경험(작품안에서 언급된 경험)과 연관시킬 수 있는가? (3) 인간존재와 죽음 혹은 성욕 사이의 심리적 관계에 대해 작품이 무엇을 말해 줄 수 있는가. (4) 꿈의 상징들을 통해, 화자는 무의식, 즉 죄의식이 따르는 욕망, 억압된 상처와 두려움, 해소되지 않은 갈등 등을, 작품 속 등장인물, 배경, 사건 등에 어떻게 투사하는가? (5) 문학작품은 저자의 심리에 관해 무엇을 시사하는가?   1. 무의식의 기원   (1) 정신분석학적 사유의 중심개념은 무의식이다. 무의식은 억압을 통해 아주 어릴 때 생겨나는데, 우리가 상처와 두려움, 욕망, 갈등 등, 알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억압하여 보관하는 창고가 무의식이다. 그러나 수동적으로 담기만하는 저장소가 아니라 존재의 가장 깊은 수준에서 우리와 함께 하는 역동적인 실체이다.   (2) 정신분석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들여다보면, 인간은 어린시절 집안에서의 경험들로 시작되는 심리학적 이력(즉, 오이디푸스적 역학관계, 가족역학관계 등)의 직접적인 결과로 형성된 행동양식을 지니고 있다.   (가족역학관계 사례) 우리는 상처와 두려움, 욕망, 갈등의 진짜 원인들을 이해하고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방법을 찾게 되기까지, 고통스러운 경험과 감정들에 매달린다. 예를 들면, 오래전에 죽은 알콜중독자 아버지에게서 받아보지 못한 사랑에 아직도 목말라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면, 냉담한 알콜중독자를 배우자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고, 그 배우자를 대상으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재연할 수도 있으며, ‘이번만큼은’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내가 그 배우자로부터 원하는 관심을 얻는데 성공한다면, 둘 중 하나의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하나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로, 그 사람은 자기가 정말 날 사랑한다는 사실을 내게 결코 납득시킬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이 자기의 사랑을 내게 납득시켰을 때, 그 사람에 대한 흥미를 잃는 경우다. 나를 배려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겪은 고통을 다시 체험하려는 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사실 아버지가 살아있고 자식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 만큼 심리적으로 거듭난다고 하더라도, 나는 아버지로 말미암아 어린 시절 내내 받은 정신적 상처들을 계속 치유해 나가야 한다. 아버지의 사랑이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그 뒤의 일이다.   (오이디푸적 역학관계 사례) 아버지의 사랑을 얻으려고 어머니와 아직도 (무의식 안에서) 경쟁중인 여성은, 이미 여자친구가 많거나 아내가 있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다른 여성에 대한 그 남성의 애착을 바탕으로 본인의 어머니와 경쟁하여 ‘이번만큼은’ 이기겠다는 다짐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에도 남자를 차지하지 못할 수 있으며, 설령 차지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넘어온 남성에게 흥미를 잃는 것이 보통이다. 그 남성의 매력은 그가 다른 누군가에 매달린다는데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물리치고 아버지의 애정을 얻는데 성공했다고 느끼는 여성 또한 이미 아내가 있거나 여자친구가 많은 남성에게 끌릴 수 있다. 왜냐면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은’ 죄로 처벌받아야 한다는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은데 대해 자신을 벌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스스로를 그 남성에게 성적 매력을 발휘할 수 없는 여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 오이디푸스적 애착이 해소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일반적인 양상은,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이른바 ‘착한여자/나쁜여자’라는 구분이 수반되는 것이다. 내가 어머니의 사랑을 얻으려고 아버지와 아직도 (무의식) 경쟁중이라면, 나는 여성들을 어머니같은 여자(착한여자) 아니면 어머니같지 않은 여자(나쁜여자)로 분류하고 후자와만 성관계를 즐김으로써 죄의식을 달래려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쁜여자란 그 자체로 간악하고 추잡하기에 어머니를 연상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나쁜여자를 유혹했다면 그녀를 버려야만 한다. 결혼할 만한 자격이 없는 여성, 즉 어머니와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없는 여성에게 자신이 끝없이 매달리는 것을 용납할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착한여자를 유혹한 뒤에는 두가지 일이 일어난다. 먼저 나의 영원한 맹세를 받을 자격이 없는 다른 나쁜여자들처럼 그녀 또한 나쁜여자로 치부하고, 그 다음에는 내가 그녀를 더럽힌데(어머니를 더럽힌 것처럼)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나머지 이를 피하고자 그녀를 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 방어, 불안, 핵심문제들   - 방어란 억압된 것들을 억압된 채로 유지시킴으로써, 우리가 알게 되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을 알지 못하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방어기제는 선택적 지각, 선택적 기억, 부인, 회피, 전치, 투사, 퇴행 등이 있다.   선택적 지각: 감당할 수 있을 법한 것만 보고 듣게 한다. 선택적 기억: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완전히 망각토록 한다. 부인: 문제가 사라졌거나 불쾌한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게끔 만든다. 회피: 억압된 경험 또는 감정을 일깨움으로써 불안감을 가져올 법한 인물 또는 상황을 떨어져 있도록 한다. 전치: 상처, 분노 등의 원인이 되었던 사람보다는 덜 위협적인 인물 또는 대상에 그런 감정들을 풀어버리도록 한다. 퇴행: 일시적으로 이전의 심리상태로 귀환하는 것이다. 퇴행은 억압된 경험과 감 정들을 인정하고 대처할 능동적 역전의 기회를 동반하기 때문에 유용한 치 료수단이 될 수 있다. - 방어기재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이때가 바로 ‘불안’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불안은 다음과 같은 우리의 핵심문제들을 드러낸다. 즉,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 버림받는데 대한 두려움, 낮은 자부심, 오이디푸스적 고착(오이디푸스적 콤플렉스) 등이다. 예를 들면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은 각별한 사람들에게 스스로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막음으로써, 친밀한 관계가 상기시키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한다.’ (3) 죽음충동과 성욕충동   - 프로이트는 죽음을 ‘생물학적 충동’으로 보았으며, 이를 죽음충동 또는 타나토스라고 명명했다. 프로이드는 인간존재에게는 죽음의 충동이 있으며, 버림받는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자스스로 삶에서 격리되려는 욕망(자살)은 죽음작업이 갖는 가장 일반적인 형식이다. 우리가 폭력영화, 자연재해, 각종 살인 및 사고 등 죽음과 죽음작업을 재현하는 매체에 매혹되는 것은 자신과 무관한 인물이나 사건에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투사시키는 것이다.   - 성욕도 ‘생물학적 충동’이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충동을 에로스라 명명했고 이를 죽음충동인 타나토스와 대립시켰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성욕이 우리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며, 어린이조차 구강기, 항문기, 성기기의 단계를 거치는 성적존재로 이를 통해 우리 정체성이 확립되어 가는 것이다. - 성적행동은 문화의 산물이다. 성욕에 대한 사회적 원칙은 초자아의 상당부분을 구성한다. 초자아는 우리 본능과 성적에너지인 리비도를 비축해두는 이드와 정면으로 대립한다. 이드는 주로 사회적 관습에 따라 금지되는 욕망들로 이루어진다. 자아는 외부세계를 경험하는 의식상의 자기로서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심판 역할을 담당한다.   (4) 꿈의 상징   - 꿈은 억압된 상처와 두려움, 죄의식이 따르는 욕망, 해소되지 못한 갈등 등을 안전하게 내보내는 출구가 된다. 꿈은 위장된 형태로 주어지는데, 이는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까지만 꿈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꿈에서 표현되는 무의식의 메시지, 즉 꿈의 근원적인 의미나 잠재내용은, 우리가 쉽게 알아보지 못하도록 전치와 압축의 과정을 거쳐 왜곡된다.   6. 라캉의 정신분석학   - 라캉에 의하면, 유아는 생후 몇 달 동안 자신과 주변 환경을 모두 일정한 형체가 없는 파편화된 덩어리로 받아들인다. - 생후 6개월에서 8개월 사이에서 거울단계가 찾아온다. 이 단계에서 거울이나 자신의 움직임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을 통해, 형체없는 파편화된 덩어리가 아닌 온전한 전체로서 자기 자신을 알아보는 감각을 발달시킨다. 이 거울단계에서 상상계(imaginary order)가 시작된다.   - 상상계는 유아가 말대신 이미지를 통해 경험하는 세계이다. 자신의 주변세계에 대한 완벽한 제어는 아이에게 대단한 만족감과 힘을 가져다준다. 어머니는 내가 원하는 전부이며, 나는 어머니가 원하는 전부이다. 유아에게는 ‘자신을 향한 어머니의 욕망’인 동시에, ‘어머니를 향한 자신의 욕망’이 중요한 시기로, 아이가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가장 중요한 경험이다.   - 아이의 언어습득은 상징계(symbolic order)로의 진입을 뜻한다. 상징계로의 진입은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는 경험을 수반하며, 가장 중대한 분리는 그동안 상상계 안에서 친밀한 결합을 유지해왔던 어머니와의 분리다.   - 어머니와의 분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상실의 경험으로 일생동안 우리를 따라다닌다. 우리는 더 이상 불가능한 어머니와의 결합을 대신할 만한 크고 작은 것들(배우자, 돈, 종교, 권력, 명예 등)을 찾아 나서는 작업을 무의식적으로 계속하며, 이같은 삶을 보내게 될 영역이 상징계이다. 이런 것들을 얻게 되더라도 완벽한 충족감은 지속시킬 수 없다. 어머니와의 결합 같은 완전함과 풍요로움은 우리가 상징계에 진입하는 순간, 다시말해 언어를 습득하는 순간, 의식적 경험의 세계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잃어버린 욕망의 대상을 라캉은 소문자 타자(대상a)라고 부른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에서 화자는 어린 시절 이후 먹어 본적이 없던 마들렌이라는 과자를 우연히 다시 맛보고는 유년기로 되돌아가는 듯 한 즐거움을 경험한다. 이때 화자에게 마들렌은 대상a라고 할 수 있다.   에서 개츠비에게는 데이지가 사는 곳의 부두 끝자락에서 반짝이는 초록색 불빛이 대상a일 것이다. 개츠비에게 초록색 불빛은 데이지를 향 한 희망뿐만 아니라 순수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지속시켜 준 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잃어버린 욕망의 대상, 즉 대상a가 어머니와의 결합이라는 언어 이전 단계에 대한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우리에게 무의식적으로 결합의 환상을 상기시키는 사건 또는 시기는 유년기 이후에도 찾아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상실과 결여의 경험과 더불어 도래한 상징계는 우리의 정신이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열되었음을 알리는 표시이다. 무의식의 욕망은 언제나 잃어버린 욕망의 대상, 즉 언어를 갖기 전에 경험한 어머니에 대한 환상을 추구한다.   라캉에 의하면, 무의식의 작동양상은 일종의 상실 또는 결여를 암시하는 두 가 지 언어작용과 닮아 있다. 바로 은유(metaphor: ‘내 사랑’은 붉은 ‘장미’다.)와 환유(metonymy: ‘왕관’을 썼다면 당연히 올바르게 처신해야 할 것이다.)이다. 은유와 환유는 일종의 상실 또는 결여를 함의한다. 즉, 은유와 환유는 모두 실제 로 말하고자 하는 대상(내사랑, 왕)을 제쳐두고 그 자리에 대체물(장미, 왕관)을 가져온다.   은유는 서로 비슷하지 않은 대상들을 한데 묶는다는 점에서 무의식적 작용인 압축과 흡사하다. 내가 굶주린 사자에게 쫓기는 꿈을 꾸었다면 그 사자는 현실에 서 나를 못살게 구는 인물들(직장상사 혹은 내가 빚을 지고 있는 사람 등)이 하 나로 합쳐져 나타난 대상일 것이다. 환유는 인물/사물을 서로 연관되어 있는 다른 인물/사물로 대체한다는 점에서 전치와 흡사하다. 내가 직장 상사에게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라면 나는 애꿎게 내 자식들에게 화풀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은유와 환유에서 공통적으로 어떤 대상이 다른 대상을 뒤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선다. 우리가 언어들 습득하는 순간, 즉 상징계로 진입하는 순간, 어머 니에 대한 환상처럼, 우리가 추구하는 잃어버린 대상은 결코 다시 찾을 수 없다. 더 이상 자기 충족 및 제어의 환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징계에서는 지켜야할 규칙과 따라야할 규제만이 존재할 뿐이다.   - 라캉은 상징계가 어머니의 욕망/어머니에 대한 욕망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교체되는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상징계의 어머니(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성을 갖는 어머니, 즉 대문자 어머니)는 아버지(보편성을 갖는 아버지 즉 대문자 아버지)의 소유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사회규칙과 금지사항을 인식하고 이로서 사회적으로 길들여지는데, 규칙과 금지사항을 만들어 내고 유지시키는 존재가 대문자 아버지, 즉 권력자로서의 남성이기 때문이다.   - 언어를 갖지 않았던 어린시절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억압된다 해서, 이로서 무의식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자기충족 및 제어의 환상과 더불어 어머니가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는 믿음이 존재했던 세계, 즉 상상계가 억압되는 것은 아니다. 상징계가 의식의 전면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상상계는 의식의 배후에 계속 존재한다.   - 라캉에 의하면, 상징계와 상상계 모두 실재(the Real)를 제어하려하거나 회피하려고 한다. 실재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의미형성체계를 초월하는 것으로, 실재는 존재의 어떤 해석 불가능한 차원이다. 이데올로기가 세계를 통째로 윤색하는 일종의 커튼과도 같다면 실재는 바로 그 커튼 뒤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커튼 뒤를 볼 수 없다. 그곳에 실재가 있다는 생각에 때때로 밀려드는 불안감을 제외하면 우리는 실재와 관련하여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라캉은 이러한 경험을 실재의 외상(truama of the Real)이라고 부른다. 실재의 외상은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줄 뿐이다. 즉, 사회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 아래 숨겨진 현실이란 우리의 능력으로 이해할수도 설명할수도 제어할수도 없는 종류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7. 고전적 정신분석학과 문학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형식은 저자나 독자안에서 또는 사회전체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의 산물이다.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문학작품을 읽고자 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은 어떤 정신분석학 개념이 텍스트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작품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아서 밀러의 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읽으면, 윌리 노먼의 과거 회상 장면에서 퇴행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원인은 윌리 자신과 그의 아들이 업계에서 성공하지 못한데 따른 정신적 외상에 있다. 윌리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형에게서 버림받은 이후로 계속 자신을 괴롭혀 온 엄청난 불안감을 달래려고 성공을 바랐던 것이기 때문이다. 윌리는 否認과 회피로써 심리적 불안감을 억압하고 그로 말미암아 생겨난 사회 부적응과 직장에서의 실패를 견디는데 자신의 삶을 모두 소진시켰다. 또한 은 가족 내 심리적 역학 관계를 탐구한 작품으로 읽을 수도 있다. 가족안에서 해소되지 않은 갈등이 어떻게 일터에서 발산되고 또한 자녀들에게 대물림되는지를 탐구하기 때문이다.   (줄거리) 늙고, 피로에 지친 주인공의 뇌리에 쉴새없이 떠오르는 과거의 장면을 현실과 교착시켜 무대에 표현하는 극작술은 독창적이다. 주인공 윌리 로만은 원래 전원생활과 노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고생하지 않고 성공하겠다는 심산으로 세일즈맨이 되었다. 30년간 오직 세일즈맨으로 살아오면서 자기 직업을 자랑으로 삼고 성실하게 일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두 아들 비프와 해피에게도 그의 신조를 불어넣으며 그들의 성공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두 아들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고 타락해 버렸고 그 자신도 오랜 세월 근무한 회사에서 몰인정하게 해고당한다. 궁지에 몰린 그는 장남에게(비프) 보험금을 남겨 줌으로써 자신의 위대함을 보여 주려고 매일 다투어 온 비프와 화해하던 날 밤에 자동차를 과속으로 달려 자살한다. 윌리 로먼의 장례식날 아내 린다는 집의 할부금 불입도 끝나고 모든 것이 해결된 지금, 이 집에는 아무도 살 사람이 없다고 그의 무덤을 향해 울부짖으며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난다.   8.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독법   에서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이 서사를 전개시키는 큰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읽으면, 여주인공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위대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파행적 사랑을 다룬 한편의 심리극이다.   톰과 데이지의 결혼생활은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을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다. 톰의 상습적인 외도는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톰은 데이지를 비롯한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정서적 친밀감보다는 자기만족의 욕구를 더 강하게 드러낸다. 톰에게 데이지는 사회적 우월감을 드러내는 존재이며, 톰은 육감적이고 생기넘치는 머틀 윌슨을 소유함으로써 자신만의 사내다움을 강화시키려한다. 데이지는 톰과 결혼할 무렵에는 톰을 사랑하지 않았으나,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외도하고 있는 톰을 미워하기보다 오히려 톰에게 잔뜩 매달리게 된다. 친밀감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에 시달리는 남성과 사랑에 빠진 여성은 본인도 친밀감을 두려워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친밀감을 두려워하는 여성에게는,친밀감에 대한 욕망이 없는 남성처럼 안도감을 주는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톰과 데이지가 공통적으로 겪는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은 낮은 자부심과 관련되어 있다.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부의 크기만큼이나 톰이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면, 돈과 권력으로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데 그토록 열중하지 않을 것이다. 데이지도 외도하는 남성에게 푹 빠졌다는 사실은 데이지가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더 나은 대접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암시한다.게다가 데이지는 모임이 있을 때마다 가식적인 행동을 보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자아를 강화하려는 욕구를 나타내고 있다. 개츠비와 데이지의 관계에서도 데이지는 톰에게 그렇듯이 개츠비에게도 친밀감을 바라지 않는다. 데이지가 필요로 하는 것은 톰 덕분에 누리고 있는 지금과 같은 사회적 위치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뉴욕의 호텔 방에서 톰이 개츠비의 사회적 출신과 배경을 폭로하자 데이지는 개츠비를 향한 마음을 즉각 거두어들인다. 개츠비가 데이지에 대한 친밀감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개츠비의 궁극적인 목표는 데이지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능하고 별 볼일 없는 농사꾼인 부모와 함께 가난하게 살아야 했던 개츠비에게, 데이지는 목표 그 자체라기보다, 부와 사회적 지위 획득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실마리에 불과하다. “그녀는 그가 난생처음으로 알게된 우아한 여자였다.”“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그녀가 은처럼 안전하고 자랑스럽게 빛을 발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완벽한 여성으로 이상화하는 것은 개츠비가 친밀감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 준다.현실에서는 이상형과는 친밀감을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 정신분석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개츠비와 데이지의 낭만적 사랑은 해소되지 않은 모든 심리적 갈등이 극적 형식으로 가장되어 연출되고 또 반복되는 무대가 된다.   ----------------------------------------------------------- 제3장 마르크스주의 비평   -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들의 목표는 예술, 교육, 법 등 ‘문화적 생산물’에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를 확인하고, 그러한 문화적 생산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체제를 그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지지하거나 약화시키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문학은 시간을 초월한 어떤 미학적인 영역에 존재하는 수동적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이 쓰인 시공간의 사회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조건이 낳은 생산물이다. - 정신분석 비평가가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는 가족갈등과 정신적 상처를 들여다보고자 한다면,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들은 가족내 문제가 어떤 면에서 사회경제체제 및 그것이 조장하는 이데올로기들의 생산물인지를 보여 주려는 것이다.   1.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전제들   - 경제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은 모든 유무형의 사회적 정치적 활동 이면에 작용하는 동기이다.따라서 경제는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현실이라는 상부구조를 조건짓는 토대가 된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경제권력의 분배와 역학관계’라는 측면에서 모든 인간활동을 설명한다.   -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사회경제적 계급의 차이는 종교, 인종, 민족, 젠더의 차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양상으로 사람들을 갈라놓는다. 부르주아지(가진자들)가 모든 자원을 지배하는 반면, 세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프롤레타리아트(못가진자들)는 육체노동에 종사하여 부자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면서 열악한 조건에 살아가면서도 이러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난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억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데올로기이다.   2. 이데올로기의 역할   -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신념체계이며, 모든 신념체계는 문화적 조건화(Cultural conditioning)의 산물이다. 우리는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지기 마련인데, 가장 성공적인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로서 여겨지지 않으며, 그것에 동조하는 사람들에 의해 자연스러운 세계인식으로 생각된다.   3. 인간의 가치와 상품의 가치   - 마르크스주의의 관심은 자본주의가 인간가치에 끼치는 악영향에 관한 것으로 사람과 상품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다. 자본주의에서 상품의 가치는 인간적인 것과는 무관하며 오직 그 상품과 시장에서의 관계로만 결정된다. 상품의 가치는 사용가치에 달린 것이 아니라, 교환가치 또는 사회적가치(교환가치기호: sign exchange value)에 달렸다. 자기만의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인간관계를 이용하는 경우, 인간존재를 상품화하는 것이다. ‘상품화’는 사람이나 물건을 교환가치 또는 교환가치기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연애상대를 고를 때, 상대방이 자기에게 얼마나 돈을 쓸 것인가 즉, 상대의 교환가치를 따진다거나, 혹은 상대방이 친구들에게 얼마나 근사한 사람으로 비칠 것인지 즉, 상대의 교환가치기호를 생각하고 고른다면, 이는 연애상대를 상품화하는 것이다. -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보면 시장경제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자본주의가 생존해 나가려면 소비지상주의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교환가치기호 획득을 우리가 주변 세상과 관계하는 주요방식이라도 되는 양 부추긴다. 자본주의 최대관심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소비재를 구매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상품을 팔 시장과 상품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공급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제국주의를 확산시킨다. 제국주의는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다른 국가를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   제국주의 정부는 피지배민중들의 의식을 식민화하여 민중들로 하여금 제국주의 세력이 원하는 방식대로 상황을 인식하게끔 만들려고 한다. 피지배 민중들은 점령자들보다 정신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점령자들과 같은 새로운 지도자들의 인도와 보호 아래 있어야만 자신들의 모든 것이 개선될 수 있다고 그들 스스로 믿게끔 만드는 것이다.   -------------------------------------------------------- 제4장 여성주의 비평   여성주의 비평은 문학이 어떻게 여성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억압을 강화하거나 반대로 약화시키는지 점검하는 방법론이다. 중요한 것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어떤 양상으로 텍스트 곳곳에 만연해 있으며, 우리의 인지나 동의없이 어떻게 우리를 길들이는지를 인식하는데 있다.   - 여성주의 전제들   (1) 여성들은 가부장제에 의해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으로 억압받는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그러한 억압을 지속시키는 주요 수단이다. (2)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어느 영역에서나 여성은 타자이다. 여성은 물건으로 취급 되고 하잖은 존재가 되어 주변으로 밀려난다. (3) 모든 서구문명에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전래동화를 포함한 위대한 서구 문학 정전의 형성조차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산물이었다. (4) 생물학이 성(남성 또는 여성)을 결정한다면, 문화는 젠더(남성적 또는 여성적)를 결정한다. 남성적인 행동이나 여성적인 행동에서 연상되는 모든 특징은 타고나 는 것이 아니라 학습된 것이다.   - 여성주의 이론을 활용하여 문학작품에 접근하는 방법   (1) 문학작품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가 아니면 약화시키는가? 강화하는 경우 텍스트가 가부장적 의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약화하는 경우 테스트가 여성주의적 의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동시에 약화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텍스트의 경우 이데올로기들의 대립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문학작품이 어떻게 여성성과 남성성을 규정하는 것으로 보이는가? 등장인물의 행동이 젠더에 관한 전통적 시각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가? 아니면 그러한 관점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아얘 관점 자체를 거부하는 것 같은가?   전통적 성역할 = 가부장적 성역할   가부장적이란 전통적 성역할을 조장함으로써 남성에게 특권을 부여하려는 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전통적 성역할에 따르면 남성은 합리적, 강인하고, 무언가 보호하고 결정하는 존재이지만, 여성은 비합리적, 감정적, 연약하여 보호가 필요한 순종적인 존재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남성이 독점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유지하는데 활용되어 왔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오래도록 여성의 몫이었던 열등한 위치는 생물학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생산된 것이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가부장적 성역할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신데렐라 역할은 여성으로 하여금 가정학대를 견디고, 자신을 구해줄 남성을 묵 묵히 기다리며, 결혼이야말로 올바른 행실에 뒤따르는 가장 바람직한 보상이라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여성성을 순종성과 같은 것으로 보게끔 한다. 남성의 경우 자신의 여성이 행복한 상황을 책임지고 만들어야 할 구원자로서 남성에게 요구되는 근사한 왕자님 역할 역시 남성에게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남성은 지칠 줄 모르는 특급 부양자여야 한다는 믿음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 제5장 신비평   1. 내재적·객관적 비평으로서의 신비평   - 신비평이론가들은 꼼꼼한 읽기가 텍스트의 가치를 결정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입장이다. 신비평에서 중요한 것은 텍스트 자체에서 찾아낸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례를 바탕으로 자신의 해석을 입증하는 작업이다. 신비평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문학작품은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자율적인(자기충족적인) 예술작품이다.   - 텍스트 안에서 만들어진 맥락과 텍스트가 제공하는 언어만이 해석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비평행위를 내재적 비평이라고 했다. 신비평을 제외한 모든 비평은 외재적 비평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문학 텍스트 해석에 필요한 도구들을 텍스트 밖에서 찾는다는 의미이다.   - 신비평가가 문학 텍스트에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 텍스트의 유기적 통일성을 가장 잘 규명할 수 있는 단일한 최고의 해석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텍스트의 형식요소들과 그 요소들이 생산하는 의미는 어떻게 작동하면서 텍스트의 주제 또는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뒷받침하게 되는가?   2. 문학적언어와 유기적 통일성   - 작품이 지닌 유기적 통일성(organic unity)은 신비평이론가들이 문학작품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하나의 작품이 유기적 통일성을 갖는다는 것은 그 안의 모든 형식요소들이 함께 작동함으로써 텍스트의 주제를 확립시킨다는 말이다. - 유기적 통일성을 갖춘 텍스트는, 삶의 복잡성을 재현하려는 문학작품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복잡성’과 인간존재가 추구하는 ‘질서’를 동시에 갖추게 된다. 텍스트의 복잡성은 다양하면서도 종종 상충되는 의미들로 만들어진다. 이런 의미들은 역설, 아이러니,애매성, 긴장 등의 네 가지 언어적 장치들을 통해 생겨난다. 이렇게 생산된 의미의 다양성과 상충성은 해당 텍스트의 주제에 이바지해야 한다. 주제의 확인이 신비평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꼼꼼히 읽기(close reading)는 텍스트의 구성요소들과주제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면밀히 검증하는 독법으로서, 텍스트의 유기적통일성이 어떻게 구축되는지 살피는 것이다.   (1) 역설(paradox): 자기모순적인 내용처럼 보이지만 사물이 존재하는 실제방식을 나타내는 진술. 예) ‘참으로 살기 위해서는 참으로 죽어야 한다.’ (2) 아이러니(irony): 어떤 진술이나 사건이 그것이 발생하는 맥락 속에서 오히려 존재근거를 상실하는 경우. 예를 들면, 등장인물이 이혼을 비난하지만, 그 비난은 이혼을 통해 더 많은 부를 획득하지 못하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경우. (3) 애매성(ambiguity): 하나의 낱말이나 이미지 또는 사건이 둘 이상의 의미를 발생시키는 경우. 예를 들면, 어떤 작품에서 나무가 고통, 인내, 재생 등을 암시할 수 있다. (4) 긴장(tension): 텍스트안에서 서로 대립되는 성향들. 역설, 아이러니, 애매성 사이에서 역동적인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 역설, 아이러니, 애매성, 긴장같은 언어적 장치들에 덧붙여 자주 쓰이는 비유적언어(figurative language)인 이미지, 상징, 은유, 직유는 다음과 같다. 비유적언어란 순전히 글자 그대로의 의미와 다른 의미 또는 그 이상의 여러 의미를 갖는 언어를 말한다. (0) 이미지(image):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는 동시에, 어떤 정서적인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면, 구름은 흐린 날씨를 가리키지만 동시에 비애감을 환기시키는데 사용할 수도 있다. (1) 상징(symbol): 글자 그대로의 의미와 비유적인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이미지이다. 예를 들면, 봄은 재생 또는 젊음의 상징이다. (2) 은유(metaphor): 상징은 단어의 의미와 비유적 의미를 포괄하는데 반해, 은유는 비유 한가지 의미만을 갖는다. 예를 들면, 내 남동생은 보석이다. (3) 직유(simile): 은유만큼 직접적이거나 단호하지 않는 비유다. 예를 들면, 내 남동생은 보석같다. 내 남동생은 보석처럼 고귀하다. ---------------------------------------- 제6장 독자반응비평   - 독자반응비평이론가들의 공통된 믿음 (1) 문학작품이해에 독자의 역할을 빠뜨려서는 안된다. (2) 독자는 문학텍스트안에서 능동적으로 의미를 찾아내고 만들어 낸다. 따라서 같은 텍스트라고 하더라도 독자들에 따라 상이한 독법이 나올 수 있고, 같은 독자가 같은 텍스트를 여러번 읽는 경우에도 각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 독자반응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반응과정에서 텍스트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따라, 상호거래적 독자반응이론, 영향(감정)문체론, 주관적 독자반응이론, 심리적 독자반응이론, 사회적 독자반응이론으로 구분.   1. 상호거래적 독자반응이론: 텍스트와 독자사이의 거래를 분석하는 방법론.   - 로젠블랫에 의하면, 텍스트가 의미를 생산하려면 “텍스트와 독자 양쪽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텍스트는 읽는 내내 그리고 읽기가 완료된 후에도, 독자가 발전된 해석이나 완결된 해석을 위해 앞으로 되돌아가 텍스트의 일부 혹은 전체를 다시 읽게 되는 경우 청사진으로 작용한다.   볼프강 이저에 의하면, 모든 텍스트는 확정적의미와 불확정적의미를 전달한다. 확정적 의미란 활자화된 말들로 확실히 명시되어 있는 사실들을 가리킨다. 불확정적 의미는 독자에게 자기만의 해석을 창조하도록 허락하거나 유도하는 일종의 텍스트 내부의 틈새를 말한다. 작품 속 어느 시점에서 확정적 의미인줄로만 알았던 부분이 뒤에 가서 보니 불확정적으로 보이게 되는 일이 자주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읽기행위를 통해 독자가 의미를 구성해나가는 과정은 텍스트에 의해 미리 구조화되어 있다. 바꾸어말하면, 텍스트 해석에 수반되는 여러 과정들을 거치면서 텍스트 자체가 직접 독자를 이끌어 간다.   2. 영향(감정) 문체론(affective stylistics)   - 영향문체론은 행, 구, 낱말 단위로 텍스트를 꼼꼼히 점검함으로써, 텍스트가 읽기 과정에서 어떻게 독자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고자 했다. - 텍스트의 의미는, 텍스트가 말하는 것에서 독자가 최종 결론을 이끌어 냄으로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텍스트가 행하는 것을, 독자가 읽기 과정에서 경험함으로써 구성된다는 것이다. 텍스트는 독자가 하나하나의 낱말과 구절을 읽어나가는 내내 영향을 끼친다.   3. 주관적 독자반응이론   주관적 독자반응이론은 “독자들의 반응이 곧 텍스트”라고 주장함으로써, 텍스트 상의 단서를 필요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호거래적독자반응이론이나 영향문체론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블라이히(David Bleich)에 의하면, 독자들의 해석이 만들어낸 의미를 초월한 문학 텍스트란 없으며, 비평가의 분석대상이 되는 텍스트는 문학작품이 아니라 독자들에 의해 기록된 반응이다. 문학텍스트는 실제대상과 상징적 대상으로 구분된다. 실제대상은 인쇄된 지면이다. 이렇게 인쇄된 지면 또는 언어 그 자체를 누군가 읽을 때 독자의 마음안에서 일어나는 경험은 상징적대상이다. 유일한 텍스트란 상징적 대상, 즉 독자마음속에 존재하는 텍스트이며, 이같은 텍스트만이 주관적 독자반응이론 비평가들의 분석대상이 된다. 4. 심리적 독자반응이론   노먼 홀랜드(Norman Holland): 정신분석학 개념을 사용하여 독자들의 심리적 반응을 분석. 문학텍스트를 접할 때 나타내는 심리적 반응은 일상생활 속 사건들에 대한 심리적 반응과 동일하다. 방어기제는 텍스트를 싫어하거나 오독하도록, 아예 읽는 것 자체를 그만두도록 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에 대응하는 과정이 해석이다. 텍스트가 우리의 심리적 평정을 위협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우리는 평정의 상태를 회복할 수 있도록 어떤 식으로든 그 텍스트를 해석해야만 한다. 홀랜드의 해석에 대한 정의는 우리가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일어나고 되풀이되는 세가지 단계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과정이다.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방어단계, 방어기제를 안정시킨 뒤, 심리적 평정을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보호받으려고 해석하는 환상단계, 방어와 환상으로부터 심리적 만족을 얻을 수 있도록 앞의 두 단계를 마무리 해석하는 변형단계를 거치게 되는 세가지 해석의 단계가 우리가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일어나게 된다. 홀랜드에 의하면 독자들의 해석의 목적은 저자와의 감정융합을 이끌어내는데 있다. 5. 사회적 독자반응 이론   사회적 독자반응이론에서는 개별독자의 순수한 주관적 반응이란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문학에 대한 개별적인 주관적 반응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우리가 속한 해석공동체의 산물이다. 우리가 텍스트를 읽을 때 적용하는 해석전략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것들이다. 해석공동체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해 나간다. 독자들은 의식적 무의식으로 동시에 하나 이상의 해석공동체에 소속될 수 있으며, 살아가는 동안 다른 해석공동체로 여러차례 옮길 수도 있다. 모든 독자는 텍스트를 대할 때마다 자신이 속하는 해석공동체에서 작동하는 특정 해석전략들에 따라 해석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피시의 주장이다. 우리의 모든 문학적 해석은 텍스트를 읽을 때 우리가 가져오는 해석전략들의 결과물이다.       ----------------------------------------------- 제7장 구조주의 비평   1. 구조언어학과 구조주의 문학   - 구조주의에서 쓰이는 용어는 대부분 구조언어학에서 나온 것이다. 쇠쉬르는 언어를 제각각 변화해 온 역사를 지닌 개별 낱말들의 집합으로서가 아니라, 주어진 어떤 시점에서 사용되는 낱말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진 하나의 구조체계로 파악한다.   - 언어를 지배하는 구조와, 그 구조의 표면현상들인 무수한 개별 발화들을 구별하 고자, 소쉬르는 언어의 구조를 랑그(langue), 말할 때 생겨나는 개별 발화들을 파롤(parole)이라고 명명했다. 구조주의자들에게는 랑그가 연구대상이다. 구조주의 비평가들은 개별 문학작품들을 구조화하는 랑그, 그리고 전체적인 문학체계를 구조화하는 랑그를 탐색한다.   - 구조주의는 개별텍스트의 의미를 해석하거나 주어진 텍스트가 좋은 문학작품인지 아닌지를 가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표면현상의 영역이자 파롤의 영역이다. 구조주의는 문학텍스트를 랑그, 즉 텍스트들로 하여금 ‘의미를 갖게끔 만드는 구조’를 탐색한다. 그 구조는 ‘문법’이라고 명명되기도 한다.   구조주의 문학연구는 구체적으로 세가지 분야에 주목한다. (1) 문학장르 구조 (2) 서사작동양상 구조 (3)문학 해석 구조가 그것이다.   2. 구조주의문학의 세가지 분야   (1) 문학장르의 구조 :   - 노스럽 프라이(Northrop Frye)의 신화이론(원형비평): 신화를 구조화하는 네가지 서사양식(희극/로맨스/비극/아이러니와 풍자)은 뮈토스(mythos: 신화체계)를 통해 구조원리가 드러난다. - 프라이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두가지 방식(이상세계/현실세계)에 따라 자신의 서사적 상상력을 담아낸다. 이상세계는 풍요로움과 충족감으로 이루어진 세계로 ‘여름 뮈토스’라고 명명하고 ‘로맨스’장르와 결합시킨다. 로맨스는 용감하고 고결한 영웅과 아름다운 처녀가 악당의 위협을 이겨내고 그들의 목적을 달성한다. 현실세계는 불확실성과 실패로 이루어진 세계로 ‘겨울 뮈토스’라고 명명하고 ‘아이러니와 풍자’라는 이중장르와 결합시킨다. 아이러니는 비극의 눈으로 바라본 현실세계이자, 주인공이 수수께끼와도 같은 삶의 복잡한 양상들로 말미암아 패배를 경험하는 세계이다. 풍자는 희극의 눈으로 바라본 현실세계이자, 인간의 어리석음, 과도함, 부조화 등으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비극은 이상세계에서 현실세계로 이행을 수반하는 ‘가을 뮈토스’이다. 즉 여름뮈토스에서 겨울뮈토스로 이행하는 과정이 비극이다. 비극에서 영웅은 로맨스에 등장하는 영웅처럼 우월한 존재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나 현실세계로 추락해 상실과 패배를 경험한다. 희극은 현실세계에서 이상세계로 이행을 수반하는 ‘봄의 뮈토스’이다. 즉 겨울뮈토스에서 여름뮈토스로 이행하는 과정이 희극이다. 희극의 결말은 주인공이 냉혹하고 골치 아픈 현실세계를 떠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고 인정넘치는 공간으로 이행해 가면서 마무리된다.   - 원형이란 반복되는 어떤 이미지나 인물유형, 플롯공식, 행동양식 등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하나의 원형은 신화, 문학, 종교 등의 역사속에서 다양한 판본으로 나타난다. 다양한 판본이란 동일한 구조를 갖는 수없이 다양한 표면현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원형비평의 목적은 서구문학전통의 근간이 되는구조원리(원형)를 탐색하는 것이 된다.   (2) 서사의 작동 양상 구조: 서사(학)의 구조   - 구조주의적 서사분석은 문학텍스트들의 내적 ‘작동’을 아주 상세한 부분까지 검토함으로써, 텍스트의 서사작용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구조를 발견하려는 작업이다. - 그레마스, 토도로프, 주네트는 서사를 구조화하는 어떤 공식을 발견한 뒤, 그 공식을 활용하여 문학의 의미, 그리고 그것과 인간 삶 사이의 관계에 관한 광범위한 질문들을 던지고자 했다. - 서사를 구조화하는 공식을 발견하게 된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공식은 어떤 점에서 서사 일반에 관한 하나의 양식을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양식은 인간의 경험 또는 인간의식 구조와 관련하여 무엇을 시사하는가?   (3) 문학해석의 구조   - 조너선 컬러(Jonathan Culler)에 의하면 문학텍스트의 창작과 해석을 모두 지배하는 구조체계는 규칙(rule)과 약호(code)의 체계이다. 이 체계는 우리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내면화한 것으로서, 대학에서 가르치는 서구문학전통의 일부를 구성하며, 개인의 ‘문학능력(literary competence)’은 그 체계를 얼마나 내면화했는지에 따라 정해진다. - 그 체계의 주요 구성요소는 거리두기(distance), 몰개성의 관습(impersonality), 자연화(naturalization), 의미화의 규칙(signification), 은유의 일관성에 관한 규칙, 주제의 통일성에 관한 규칙 등이다. 거리두기와 몰개성의 관습: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이 편지나 신문이 아닌 시나 소설의 일부임을 알게 되는 순간, 허구의 세계에 진입했음을 알고 있으며, 그러한 인식이 자기자신과 허구사이의 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거리는 개인의 실제경험에 관한 사실을 읽는 중임을 인지하고 있을 때는 나타나지 않는 일종의 몰개성을 동반한다. 자연화: 일상적인 글에서는 보기 힘든 문학적 형식이 주는 낯섦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텍스트를 변형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예를 들면, “우리 자기는 잘 익을 과일이야”라는 문장을 읽을 때, 우리는 화자가 과일 한 조각과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화자의 말이 은유적으로 쓰였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미화 규칙: 문학작품에는 어떤 중요한 문제에 관한 의미있는 태도가 표명되어 있을 거라고 추측하고 문학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주목하게 된다. 은유의 일관성에 관한 규칙: 은유의 두가지 요소(원관념: tenor와 보조관념: vehicle)가 작품 맥락안에서 일관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원칙. 예를 들면 늙고 가난한 미국 원주민 떠돌이에 관한 이야기에서 창백한 겨울 해질녘 모습은 죽음에 대한 은유가 될 수 있을 것이나, 새로운 희망찬 삶을 알리는 편안한 잠에 대한 은유로는 적절치 못하다. 주제의 통일성에 관한 규칙: 문학작품이 통일되고 일관된 주제 또는 내용을 갖고 있으라고 우리는 기대한다.   3. 구조주의 비평가가 던질 만한 질문들   - 어떤 문학 텍스트가 위대한 문학작품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구조주의자들의 관심사가 아니며,문학적 의미를 생산하는 토대인 구조체계에 초점을 맞춘다. 1) 특정한 구조주의적 이론체계(프라이 이론 등)를 활용하여 텍스트를 장르에 따라 분류할 수 있는가? 2) 특정한 구조주의적 이론체계(그레마스 이론 등)를 활용하여 텍스트의 서사가 작동하는 양상을 분석해 보자. 해당 텍스트의 문법과 다른 유사한 텍스트의 문법 사이의 관련성을 추측해 볼 수 있는가? 해당 텍스트의 문법과 그 텍스트가 생산된 문화 사이의 관련성을 추측해 볼 수 있는가? 3) 컬러의 ‘문학능력’이론에 따라 텍스트를 분석할 때,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내면화해야 할 해석의 규칙이나 약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 제8장 해체 비평   - 1960년대 후반 자크 데리다에 의해 촉발된 해체론(deconstruction)은 1970년대 후반 문학연구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해체론을 통해, 언어 안에 내재해 있어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들이, 어떻게 우리의 경험을 규정하는지를 수월하게 알 수 있다.   1. 언어를 해체하기   - 해체론의 입장에서 보면, 언어는 모호하고 안정되지 않았으며, 신뢰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 해체론에서 바라보는 언어는 기표들과 기의들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언어는 오직 기표들의 사슬로 구성된다. 해체론에 따르면 내가 발화하는 기표는 내 머릿속 기표들의 사슬이며, 그 기표는 내 발화를 접한 사람의 머릿속 기표들의 사슬을 환기시킨다. - 우리가 알 수 있는 의미는 기표들의 놀이가 남기고 간 흔적(trace)뿐이다. 이 흔적은 우리가 낱말을 정의하는 바탕이기도 한 차이(differene)로 이루어진다. 붉은색이라는 낱말은 붉은 색이 아닌 모든 색의 기표의 흔적을 동반한다. 왜내면 우리는 다른 기표들과의 대조 속에서 그 낱말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의 색깔이 같다고 생각하면 붉은색이라는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또한, 기표들로 이루어지는 언어의 놀이는 의미를 끊임없이 연기하거나(deferral) 지연시킨다. - 데리다는 언어가 겉으로는 안정된 의미를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안정된 의미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어떻게 하든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언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해체론은 언어를 전적으로 이데올로기적(또는 신념 및 가치체계)인 것으로 본다. 구조주의에서는 우리가 양 극단 곧 이항대립을 설정하여 경험을 개념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선이라는 낱말을 이해하고자 할 때 이를 악이라는 낱말과 대립시킨다. 데리다는 이러한 이항대립들이 어떤 위계질서로 구축되었다고 한다. 대립 쌍 가운데 어느 한쪽은 언제나 특권을 가지거나 다른 한쪽에 대해 우위를 갖도록 상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적 생산물(소설,영화, 수업, 재판 등) 안에서 작동하는 이항대립을 찾아내고 그 대립 쌍 가운데 어느 쪽에 특권이 부여되는지 확인하면, 그러한 문화적 생산물들로 조장되는 이데올로기와 관련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   2. 세계를 해체하기   - 문화의 이데올로기들이 전달되는 경로가 언어라고 한다면, 우리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경로 역시 언어이다. 해체론에 따르면 언어는 우리의 ‘존재근거’가 된다. 우리 존재를 살피고 고찰하는데 나름의 언어를 갖는데 그 나름의 언어를 해체론에서 담론(discourse)이라고 한다. ‘불변의 중심개념’은 언어의 불안정성 때문에 존재하지 않고 무한의 담론만이 존재한다. 세계관이 언어로 구성된다는 이론은 서구철학을 탈중심화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3. 인간성을 해체하기   - 언어는 이데올로기들이 경쟁하는 불안정하고 불분명한 각축장이므로, 우리 자신도 이데올로기들이 힘을 겨루는 장이 된다. 사람들은 하나의 안정된 정체성에 대한 자아상을 갖는데, 이는 문화와 공모하여 만들어낸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 또한 스스로를 안정되고 일관된 것으로 인식하려들지만, 실제로는 매우 불안정하고 파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이란 말은 우리가 하나의 단일한 자아로 이루어진다는 뜻을 담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의 정체성만을 갖지 않는다. 우리는 매순간 수없이 갈등하는 믿음, 욕망, 두려움, 불안, 의도 등으로 구성되는 복합적이고 파편화된 존재다.   4. 문학을 해체하기   - 해체론을 요약하면 1) 해체론에서 언어는 표현 가능한 의미를 끊임없이 흩뿌린다는 점에서 모호하고 불안정한 동시에 역동적이다. 2) 해체론에서 인간존재는 중심도, 안정적인 의미도, 고정된 태도도 갖지 않는다. 우리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경로가 언어인데, 언어는 모호하고 불안정하고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해체론에서 인간의 정체성이란 자기 자신이 발명하고 스스로 자기 것이라고 믿는 어떤 것에 지나지 않는다. 4) 문학의 구성요소가 언어인 이상, 문학도 언어와 마찬가지로 모호하고 불안정한 동시에 역동적인 무엇이다. 어떠한 해석도 최종 해석이 될 수 없다. 저자가 텍스트를 구성할 때 자신을 둘러싼 문화적 환경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독자 역시 각자의 읽기 경험을 구성할 때 자신을 둘러싼 문화적 환경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문학텍스트와 비평텍스트 모두 해체가 가능하다.   - 문학텍스트 해체의 목표는 1) 텍스트의 결정불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이고 2) 텍스트를 구성하는 이데올로기들의 복잡한 작동 양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 텍스트의 결정불가능성은 텍스트의 의미가 확정되지 않고, 복수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의미들의 상호 모순으로까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 해체비평가는 핵심주제와 관련하여 텍스트 안에서 모순관계를 이루는 의미를 탐색하며, 특히 텍스트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자기모순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이를 통해 텍스트 내부의 이데올로기적 체계를 찾아내고 그 한계를 이해하려 한다.   5. 해체비평가가 던질만한 질문들   언어의 불안정성과 의미의 결정불가능성을 보여 주고자 할 때, 텍스트가 생산하는 갖가지 모순된 해석들, 그리고 어떤 문제들에 대해 텍스트가 답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막상 답을 내놓지 않는 다양한 양상들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텍스트가 부추기는 것으로 보이는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 그리고 텍스트에 나타나는 모순의 증거는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한계를 어떤 식으로 증명하는가?     ---------------------------------------- 제9장 신역사주의와 문화비평   1. 신역사주의와 문학   19세기와 20세기 초반까지 지배적인 문학 연구 방법론이었던 전통적 역사주의 비평은, 그 대상을 저자의 삶에 관한 연구 또는 작품이 집필된 역사상의 시기에 대한 연구로 한정시킴으로써, 저자가 작품을 집필하게 된 의도를 찾아내거나, 작품이 구현하고 있는 시대정신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신비평은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역사와 관련된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신비평의 입장이었다. 위대한 문학작품이란 시간을 초월한 역사 바깥의 영역에 존재하는 자율적(자기 충족적) 예술작품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한 신역사주의는, 문학 텍스트를 주변화하는 전통적 역사주의와, 시간을 초월한 역사 바깥의 영역에 문학텍스트를 위치시키고 신성시하는 신비평을 거부했다.   - 신역사주의 비평가들은 문학텍스트를 일종의 문화적 가공물로 본다. 문학텍스트 는 그것이 생산된 문화내부를 순환하던 담론들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동시에 그 담론들을 형성해 온 것이다. - 담론은 특정 시공간에서 특정 문화적 조건에 따라 형성되는 사회적 언어로서 인 간경험에 대한 특정한 이해방식을 표현한다. 신역사주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권력이 갖는 복잡한 문화적 역동성을 단독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담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 신역사주의의 핵심요소   1) 역사를 기술하는 것은 해석의 문제이지, 사실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역사 서술은 서사이며, 그렇기 때문에 문학비평가들이 서사를 분석할 때 활용하는 도구를 사용하여 역사서술을 분석할 수 있다. 2) 역사는 선형적이지 않고(역사는 원인 ‘가’에서 결과 ‘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진보적이지도 않다.(인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3) 모든 권력은 물질적 재화의 교환, 인간존재의 교환, 문화가 생산하는 다양한 담론들이 낳은 개념들의 교환을 통해 그 문화 안에서 순환한다. 4) 단일한 시대정신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역사를 총체적으로(전체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역사에 대한 분석이란 역사의 전체상 가운데 일부만을 설명하는데 그치므로 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5) 개인의 정체성은 역사적 사건, 텍스트, 문화적 가공물 등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낳은 문화에 의해 형성되는 동시에 그 문화를 형성한다. 6) 모든 역사분석에는 주관성이 개입된다. 역사가는 역사 해석에 관한 나름의 입장이 바로 자기 자신의 문화적 경험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 문학텍스트를 해석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첫째 어떠한 역사적 사건이나 문화적 가공물, 이데올로기도 그것을 둘러싼 다른 무수한 역사적 사건과 문화적 가공물, 이데올리기와 관련짓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 우리의 문화적 경험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끼치므로 우리 분석에는 진정한 객관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분석은 항상 불완전하고 부분적이며 우리의 관점은 언제나주관적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해야한다.   신역사주의와 문화비평에 따르면, 문학텍스트는 그 문학텍스트를 탄생시킨 문화와 그 텍스트를 해석하는 문화에 의해 형성되고, 또 그러한 문화들을 형성시키는 온갖 담론들의 순환에 의해 형성된다. 따라서, 신역사주의와 문화비평은 해당 문학텍스트가 그 담론들의 형성에 어떻게 개입되는지, 어째서 담론들의 순환은 곧 정치적 사회적 지적 경제적 권력의 순환인지, 우리가 점하는 문화적 위치는 문학/비문학텍스트 해석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3. 문화비평   - 문화비평이론가들은 문화란 특정한 생산물이 아닌 하나의 과정이며, 고정된 정의 가 아닌 살아 있는 경험이라고 주장한다. 하나의 문화란 저마다 변화하고 발달하 며 상호작용하는 개별문화들의 집합체라는 것이다. 문화의 생산과정을 분석해보면, 그것이 어떻게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고 변형시킴 으로써 어떻게 문화적 작업을 수행하는지 찾아낼 수 있다.   - 문화비평은 다음과 같은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신역사주의와 이론적 전제들을 공 유한다. 1) 문화비평은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는 편이며 억압받는 집단을 지지한다. 2) 그렇기 때문에 문화비평은 마르크스주의와 여성주의를 비롯한 정치성이 강한 이론들을 활용하여 분석작업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3) 좁은 의미의 문화비평은 특히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는다.   4. 문화비평과 문학   문화비평을 어떻게 문학작품에 적용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문화비평은 정전화된 문학작품들이 대중적 형식으로 각색된 사례들을 분석함으로 써, 대중적 판본들이 원작의 이데올로기적 내용들을 어떻게 변형시키는지 확인하 고자 한다. 이를테면 어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다고 할 때, 그 영화가 원작 소설보 다 인간의 본질을 더욱 비극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원작 소설이 전해 주지 못하는 인간 조건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영화가 제시하는가? 영화가 원작소설의 서사에 나타나는 모호함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문화비평이 염두에 두는 또 다른 부분은, 어떤 매체의 생산물이든지간에 연예산 업에서 의도한 대로, 시청자나 관객이 그 결과물을 수용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문화비평 이론가들의 작업은 검토 대상이 대중문화이든 고급문화이든 특정한 문화적 생산물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수용되는 과정 에서 어떤 변화를 겪는지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 제10장 레즈비언, 게이, 퀴어 비평   1. 레즈비언 비평   레즈비언 비평가들은 여성주의 비평과 마찬가지로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억압들을 다루되, 가부장적 남성의 특권이 조장한 억압뿐만 아니라, 이성애자의 특권이 조장한 억압까지 다룬다. 레즈비언의 정체성은 자신의 감정을 건강히 유지시켜주고, 심리적으로도 안정되도록 도와주는 주요 원동력을 다른 여성에게서 찾음으로 구성된다. 즉 레지비언은 여성정체화한 여성(woman-identified woman)인 것이다. 레즈비언 비평가들이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은, 레즈비언 문학전통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한 전통과 연결시킬 수 있는 작가와 작품은 무엇인지, 레즈비언 특유의 글쓰기 방식이란 무엇인지, 레즈비언 작가들의 성적/감정적 지향이 그들의 문학적 표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레즈비언이 쓴 문학작품 또는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문학작품에서, 레즈비언이나 ‘남성같은’ 여성이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특정 텍스트에 나타나는 성정치(sexual politics)를 분석한다.   2. 게이 비평   게이 비평가들이 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게이 감수성(gay sensibility)이다. 게이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타자,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예술과 음악에 반응하고 또 이를 창조하는 방식, 문학을 해석하고 창조하는 방식, 감정을 체험하고 바라보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게이비평가와 레즈비언비평가는 문학 텍스트를 접근하는 방식이 상당히 유사하다. 게이 시학의 구성요소 또는 게이 특유의 글쓰기 방식을 규정하고, 게이의 문학전통을 규명하고, 그러한 전통에 어떤 작가와 작품이 속하는지 결정하려한다. 또한 게이 비평가는 게이 감수성이 어떻게 문학적 표현에 영향을 미치는지 검토하고, 이성애적 텍스트가 어떤 식으로 동성성애적 차원을 담아낼 수 있는지 연구한다. 게이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과소평가되거나 왜곡되고 숨겨졌던 작품을 재발견하려 한다. 더 나아가 게이 비평가는 특정 텍스트 안에서 작동하는 성정치를 밝히려 한다.   3. 퀴어 비평   퀴어라는 말은 비이성애자들이 모두 속할 수 있는 집단적 정체성을 제시할 포괄적 용어로서 채택되었다. 퀴어 이론에 따르면 섹슈얼리티(성적 지향성)의 범주는 동성애/이성애와 같은 단순한 대립으로 정의될 수 없다. 특정행동이나 감각, 또는 신체유형 등에 대한 선호여부로 개인의 섹슈얼리티를 정의할 수 있다. 섹슈얼리티는 살아가는 동안 여러차례 달라질 수 있다. 퀴어이론은 섹슈얼리티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본다. 넓은 의미의 퀴어비평은 비이성애자의 관점에서 텍스트를 해석하는 모든 문학비평을 가리킨다. 좁은 의미의 퀴어비평은 텍스트가 성적범주 등을 재현하는 방식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드러내는 비평이다. 즉, 텍스트안에서 동성애와 이성애라는 범주가 무너지고 겹쳐짐에 따라 인간 섹슈얼리티의 역학관계를 적절히 재현하는 데 실패하는 다양한 양상들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라고 할 수 있다.   4. 레즈비언, 게이, 퀴어 비평이 공유하는 몇가지 특징   레즈비언, 게이, 퀴어 비평이 활용하는 텍스트상의 증거들도 비슷한 것이 많다. 동성성애적 이미지 양식이나 같은 성별을 지닌 등장인물들 사이의 성애적 만남처럼 텍스트 안에서 드러나는 명백한 단서들 말고도, 동성성애적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 미묘한 단서들이 텍스트 안에 여럿 존재할 수 있다. 미묘한 단서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다음과 같다. (1) 동성사회적 유대(homosocial bonding): 같은 성별을 지닌 등장인물들 사이의 강한 정서적 유대를 묘사함으로써, 미묘하면서도 명백히 동성성애적일 수 있 는 어떤 동성사회의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2) 게이 또는 레즈비언 기호: 두가지 형식이 있는데 첫 번째 형식은 이성애중심 문화에서 게이나 레즈비언에 대해 떠올리는 정형화된 특징들, 곧 고정관념들 로 구성된다. 두 번째 형식은 게이 또는 레즈비언 하위문화에서 자체적으로 생산된 암호화된 기호들로 구성된다. 우리의 목표는 그러한 기호들이 텍스트 안에서 어떤 식으로 작동하여 퀴어적 해석을 가능케 하는 잠재력을 창출해 내는지 분석하는데 있다. (3) 같은 성별을 지닌 분신들(Same Sex ‘doubles’): 서로 외모가 닮았거나 행동 방식이 비슷하거나 아주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는 같은 성별의 등장인물들로 구성된다. 게이 레즈비언 섹슈얼리티가 특히 중시하는 부분이 성적 유사성이 라는 점에서, 서로에게 일종의 거울이미지로 기능하는 같은 성별의 인물들도 게이 레즈비언 기호로서 작동될 수 있다. (4) 관습을 거스르는(위반적) 섹슈얼리티(Transgressive sexuality): 위반적 섹슈 얼리티에 주목함으로써 전통적 이성애 규범들에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온 갖 종류의 위반적 섹슈얼리티를 상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 위반적 섹슈얼리티: 게이가 여자와 외도, 레즈비언이 남자와 외도, 이성애 주의자가 동성과 외도.   5. 레즈비언, 게이, 퀴어 비평가가 던질 만한 질문들   (1) 특정한 게이, 레즈비언, 퀴어 문학작품이 갖는 이데올로기적 의제는 무엇인가? 어떻게 작품의 주제나 등장인물 묘사같은 것으로 드러나는가? (2) 특정한 게이, 레즈비언, 퀴어 문학작품이 지니는 시학(문학적 장치 및 전략)은 무엇인가? (3) 작품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동성애혐오를 담고 있는가? 작품이 이성애중심적 가치를 비판하는가? 아니면 찬양하거나 맹목적으로 수용하는가? (4) 문학텍스트가 동성애와 이성애라는 별개의 범주로 딱 잘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한 섹슈얼리티의 양상들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보여주는가? 이 질문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해체론적 관점을 전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유일하게 퀴어 비평에 대한 좁은 의미의 이론적 정의에 대한 질문이다.   ------------------------------ 제11장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학비평     1.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학비평가들은 미국 흑인들을 정치적으로 억압하고 경제적으로 빈곤하게 만드는 인종차별적 이데올로기들이 어떻게 문학텍스트로 약화되거나 반대로 강화되는지를 분석.   2. 비판적 인종이론의 기본원리: 비판적 인종이론은 인종문제를 비롯한 인간관계전 반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제공해준다.   (1) 일상적 인종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라는 말이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인 종차별에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정서를 극도 로 피폐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온갖 종류의 인종차별이 유색인들 에게 날마다 가해진다. 특히 인종적 소수자들의 능력을 항상 과소평가할 때 이다. (2) 이해일치: 인종차별주의는 백인에게 상당한 이득이 된다. 같은 일을 하는 백 인노동자보다 임금을 낮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흑인노동자를 착취하는 백인상 류층의 재정적 이해관계속에 인종차별주의가 가동되고 있다. (3)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인종: 초창기만 하더라도 이탈리아인과 유대인, 아일랜 드인은 백인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어떤 개인을 흑인으로 규정하는 데는 몇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든지 간에 조상 가운에 흑인 한사람만 있으면 된다. (4) 차별적 인종화: 지배사회가 변화하는 요구에 발맞춰 그때그때 다른 방식으로 각기 다른 소수인종 집단들을 인종적 특성이란 것에 따라 정의한다. 일자리 를 놓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백인들의 경쟁상대가 될 것 같으면 그때마다 그들에게 폭력적이며 게으른 성향이 있다는 고정관념이 덧씌워졌다. (5) 상호교차성: 한 개인의 복잡한 정체성은 인종, 계급, 성, 성적 지향, 정치적 지향, 개인사 등이 상호교차하는 가운데 형성된다. 억압을 당하는 요인이 하 나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경우에 차별과 마주하게 되는지 인식하는데 종종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6) 유색인의 목소리: 소수인종에 속한 작가나 사상가들이 백인작가나 사상가들 보다는 인종 및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집필하고 발언할 때 좀 더 유리한 위치 를 점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소수 인종에 속한 작가나 사상가들 이 인종차별주의의 피해 당사자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입장을 ‘유색인의 목소리’라고 부른다. 그런데 ‘유색인의 목소리’는 생물 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습득되는 것이며, 인종적 억압의 경험이 인종 및 인종차별주의에 관하여 말하고 글을 쓰는 능력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인종 이상주의: 교육, 인종차별적 발언을 예방하는 규정, 소수자 집단에 대한 매체의 긍정적 재현 등의 수단으로 사람들의 인종차별적 태도를 변화시킴으로 인종 평등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 인종 현실주의: 미국에서는 인종평등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인종평등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하며, 모든 형식의 인종차별주의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하는 것만이 필요하다는 입장.   3.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학비평과 작품   시학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문학적 전통은 다른 무엇보다도 두드러지는 두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구술성이고, 둘째는 민속모티브이다. 구술성: 언어의 발화와 관련된 특성은 독자들에게 실제 인간의 육성을 듣는듯한 느낌을 선사함으로 문학작품에 직접성과 현장감을 불어넣는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학에서 구술성을 구현하는 방법은 주로 흑인 토착영어를 사용하거나 흑인들의 발화에 깃든 리듬을 모방하는 것이다. 민속모티프를 활용하면 광범위한 인물 유형과 민속활동을 작품에 등장시킬 수 있으며, 이는 이들의 과거가 현재와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4. 아프리카계 미국인 비평가가 던질 만한 질문들   (1) 아프리카인의 유산,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화와 경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 등에 담긴 특징들에 대해 문학작품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는가 (2)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학작품 특유의 인종정치(인종억압 또는 해방과 연관된 이데올로기적 의제)는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해당 작품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잘못된 역사적 재현을 바로잡는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화와 경험, 성취를 예찬하는가? 인종차별주의의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영향을 다루는가? 아니면 백인 작가들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인종차별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가? (3)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학작품 특유의 시학(문학적 장치 및 전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4) 해당 작품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학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5) 문학작품이 이해일치,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인종, 백인의 특권 등과 같은 비판적 인종이론의 개념들을 어떻게 구체적인 실례로서 보여 주는가? (6) 백인작가들이 작품 속에서 백인등장인물에 대한 긍정적인 상을 구축하려할 때, 아프리카적 존재 즉 흑인 등장인물, 흑인에 관한 이야기, 흑인의 어법 묘사, 아프리카나 흑인성을 연상시키는 이미지 등을 어떻게 동원하는가?                 ------------------------------------------------------------ 제12장 탈식민주의 비평   1. 탈식민 (postcolonial)이란, 일반적으로 한 국가에 대한 다른 국가의 식민지 지배가 종식되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문화적 생산물을 분석할 때, 분석대상을 신민지배가 종식된 뒤에 나온 텍스트로만 한정하지 않으며, 식민통치의 억압과 처음 맞닥뜨리게 된 시기 이후에 쓰인 작품이라면, 발표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관심을 갖는다. 탈식민주의 비평 이론체계는, 식민주의 및 반식민주의 이데올로기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다루되, 이데올로기가 ① 피식민지인들로 하여금 식민통치 세력의 가치들을 내면화하도록 압박해 온 양상과 ② 압제자들에 맞선 피식민지인들의 저항을 어떻게 촉진시켜왔는지를 분석한다.   2. 탈식민주의 관련 논쟁들   (1) 백인정착식민지(캐나다와 호주같은 제2세계)의 문학이 탈식민주의 문학의 범주에 들어가야 하는가? 유색인토착민을 진압하고 땅과 천연자원을 빼앗아간 백인정착민들은 영국을 모국으로 여겼으며, 유색토착민들과 다른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포함될 수 없다는 주장과, 백인식민주체(백인정착민)들도 침략식민지의 유색인 식민주체들과 마찬가지로 이중의식(식민주체는 식민주의자들의 문화와, 자신이 속한 토착문화라는 상호적대적인 두 문화 사이에서 분열되는 느낌)을 경험했기 때문에,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 (2) 오늘날의 식민화는 다국적기업들의 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약소국을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복속시킨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수단이 달라진 것이다. (3) 경제적 지배의 직접적 결과로 나타나는 문화제국주의 문제로, 문화제국주의는 한쪽의 문화를 다른 한쪽의 문화가 ‘접수’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4) 탈식민주의 주요 관심대상은 열등한 지위에 놓여 있는 가난한 사람들, 즉 하위주체(하층민)인데, 정작 이를 다루는 탈식민주의 비평가들은 대부분 유럽식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知的 엘리트로 학계의 지배계급에 속하고 있다. (5) 문학교육과 문학비평을 장악하고 있는 문화적 유럽중심주의가 탈식민주의 문학을, 유럽의 기준과 규범에 맞추어 해석하는, 즉 ‘식민화’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   2. 탈식민주의 비평과 문학의 공통적인 주제   (1) 토착민과 식민지 지배자들의 첫 대면과 토착문화의 붕괴 (2) 현지안내인을 동반하고 낯선 미개척지를 관통해 가는 외부 유럽인들의 여정 (3) 식민지지배자들이 토착민들을 열등한 존재로 대하는 타자화와 억압적 식민통치의 모든 것 (4) 식민지지배자들의 생활/문화를 모방함으로써 인정받으려는 피식민지인들의 시도 (5) 망명(피식민지인들이 고향에서 이방인이 되거나 영국에서 방황하는 외국인이 되는 경험). (6) 독립이후의 활력과 뒤이은 환멸 (7) 개인과 집단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투쟁과 소외, 고향이 아닌듯한 낯섦(문화적 고향 또는 소속감이 없어진 것 같은 느낌), 이중의식, 혼종성(둘 이상의 문화가 뒤섞인 잡종임을 체험하는 것)등과 관련된 주제들 (8) 식민지 지배이전의 과거와 연속성 확보 및 정치적 미래   3. 탈식민주의 비평가가 던질 만한 질문들: 탈식민주의이론을 활용하여 문학작품에 접근하는 방법들.   (1) 문학텍스트가 식민지지배의 여러 양상(정치적, 문화적 억압 등)들을 어떻게 재현하는가? (2) 텍스트가 탈식민주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들, 즉 개인의 정체성과 문화적 정체성 사이의 관계나 이중의식 및 혼종성에 관한 쟁점들과 관련하여 무엇을 드러내는가? (3) 텍스트가 반식민주의 저항을 북돋우거나 억누르는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동력과 관련하여 무엇을 드러내는가? (4) 텍스트가 정전화된 식민주의적 작품의 인물, 주제, 假定 등에 어떻게 대응하고 또 어떤 견해를 보이는가? 정전화된 텍스트(유럽의 역사적, 허구적 기록)에 대한 기존 해석을, 탈식민주의적 텍스트가 어떻게 재구성, 폭로, 전복시키는가? (5)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여러 국가들에서 나온 다양한 문학작품들 사이에 유의미한 유사성이 존재하는가? (6) 서구 정전에 속하는 문학텍스트는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재현함으로써 혹은 식민통치를 받는 토착민들을 어떻게 부당하게 침묵시킴으로써,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의 기반을 약화 혹은 강화시키는가?   - 한마디로, 탈식민주의 이론의 궁극적인 목표 가운데 하나는 식민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식민지 지배자와 피지배자 모두의 정체성(심리상태)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함으로써,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와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출처] 타이슨 <비평이론의 모든 것> 요약|작성자 옥토끼  
1    시론(詩論) / 플라톤 / 천병희 옮김 댓글:  조회:1186  추천:0  2018-03-25
시론(詩論) / 플라톤(1) / 천병희 옮김     옮긴이 서문         서양의 철학사는 플라톤에 대한 각주(脚註)의 역사라고 한다, 서양의 시학과 예술론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르네상스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플라톤의 영향을 직접 간접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시와 예술에 관해 따로 책을 쓴 적이 없고 주로 과 와 에서 자신의 예술관을 피력하고 있다. 시와 예술에 대한 그의 태도는 복잡하다. 먼저 나온 두 대화편에서 그는 시인들을 칭찬하고 있으나 에서는 매우 위험한 자들이라며 가차없이 자신의 '이상국가'에서 추방하고 있다. 시인들에 대한 그의 칭찬은 모호하고 유보적인 반면 비판은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니체는 플라톤을 '유럽이 낳은 예술의 가장 강력한 적'이라고 불렀다.  플라톤이 후세에 준 영향은 영감(靈感)과 모방(模倣)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영감을 받아 작시(作詩)했다고 자랑스레 말하곤 했는데, 그것은 신들이 내린 영감이 곧 남다른 지식과 신적인 권위를 가져다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에서 영감과 techne(흔히 '기술' 또는 '예술'이라고 번역됨)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비록 시인들의 작품이 가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들 자신은 영감을 받아 작시하는 만큼 자신의 행위에 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모방의 문제는 특히 제10권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거기서 플라톤은 모방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예컨대 침대 또는 침대 그 자체가 있고, 둘째로 이것을 모방하여 목수가 만든 개개의 침대가 있고, 셋째로 화가 또는 시인이 목수가 만든 침대를 모방하여 그린 침대, 즉 이데아 또는 진리로부터 세 단계나 떨어져 있는 가상의 모상(模像)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 또는 예술은 모방술(模倣術)이며 '모방술은 그 자신 열등한 것으로서 열등한 것과 결합하여 열등한 것을 낳는 만큼' 시인들은 당연히 이상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서 시 또는 예술은 유희(遊戱)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와 예술이 유희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것에 의해 대치될 수 없는 그것만의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도 그에 못지 않게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플라톤 자신도 가끔 호메로스에 대한 존경심과 시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을 내비친다. 그리고 그의 대화편들이 고대 그리스를 넘어 성양 산문문학의 최고 걸잘으로 평가받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시공을 초월한 숭고한 주제들뿐만 아니라 신화(新話)와 비유 같은 것들을 사용하여 그것을 풀어나가는 표현 방법, 즉 시적 요소글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여기 옮긴 글은 플라톤의 제10권 앞부분이다.   시론(詩論) / 플라톤(2) / 천병희 옮김      1     "확실히"라고 나는 말했다. "우리가 건설한 국가는 여러 가지 다른 점에서도 훌륭하다고 생각되지만 시에 관해서 생각할 때면 더욱 그렇다고 주장하고 싶네."  "시에 관한 무엇 말씀이죠?"라고 그는 말했다.   "시 중에서도 모방적인 것은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 말일쎄. 혼의 여러 부분이 따로따로 구분된 지금에 와서는 모방적인 시를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더욱 분명히 밝혀졌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네."  "무슨 말씀이시죠?"  "우리들끼리 하는 말이네만 - 왜냐하면 자네들은 나를 비극 시인들이나 그 밖애 다른 모방 시인들에게 고발하지 않을 테니까 말일세 - 모방적인 시는 어떤 것이든 청중들의 분별력을 손상시킨다고 생각하네. 청중들이 그에 대한 해독제로서 그것의 본성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면 말일세."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라고 그는 말했다.  "이야기하겠네"라고 나는 말했다. "비록 어릴 때부터 호메로스에 대하여 품어온 애정과 존경심이 이야기하는 것을 방해하지만 말일세. 호메로스야말로 이들 훌륭안 비극 시인들 전부의 최초의 스승이자 지도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하지만 어떤 인간도 진리보다 더 존중되어서는 안 되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네."  "그야 물론 그렇게 해야죠"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들어주게나, 아니, 그보다도 대답해주게나."  "그럼 물어주십시오."  "자네는 대체 모방이 무엇인지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겠나? 실은 나 자신도 모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네."  "그렇다면"이라고 그는 말했다. "저는 알고 있을 것이란 말씀이신가요?"  "그렇다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아무것도 없네, 날카로운 눈을 가진 자들보다 눈이 무딘 자들이 먼저 보는 경우도 허다하니까 말일세."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선생님 앞에선 무엇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게 무엇이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선생님 자신이 보아주십시오."  "그렇다면 늘 하던 방법대로 여기서부터 우리의 고찰을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즉 우리는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개개의 사물 집단에 대하여 각각 하나의 이데아를 설정해오지 않았던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여러 가지 집단 중에서 아무것이나 자네가 좋아하는 것을 예로 들어보세, 자네가 좋다면, 예컨데 침대나 책상은 많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  "물론이죠."  "그러나 이데아는 그 같은 가구들에 대하여 두 개밖에 없네, 하나는 침대의 이데아고 다른 하나는 책상의 이데아일세."  "네 그래요."  "그리고 우리는 보통 개개의 가구를 만드는 제작공(製作工)은 이데아를 따라서 어떤 자는 침대를, 어떤 자는 우리가 사용하는 책상을 만들며, 다른 것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만든다고 말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제작공 가운데 이데아 자체를 만드는 자는 아무도 없으니까 말일세, 하긴 어떻게 만들 수 있겠나?"  "절대로 만들 수 없어요."  "그렇다면 자네는 다음과 같은 제작공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지 생각해보게나."  "어떤 제작공 말씀이죠?"  "개개의 제작공들이 만들고 있는 것을 전부 다 만드는 제작공 말이네."  "그는 정말 솜씨가 뒤어난 놀랄 만한 인물이군요."  "조금만 기다리게, 그러면 곧 자네는 다욱 놀랍다고 말하게 될 것이네. 왜냐하면 이 제작공은 모든 가구를 만들 뿐 아니라 땅에서 자라나는 모든 것과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을 만들어내고, 게다가 땅과 하늘과 신들과 하늘에 있는 모든 것과 하데스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어내니까 말일세."  "그는"하고 그는 말했다. "정말 놀랄 만한 소피스트로군요."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군" 하고 나는 말했다. "말해보게나, 자네에겐 그와 같은 제작공이 전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되나 아니면 어떤 의미에선 그와 같은 모든 것의 제작자가 있을 수 있지만 다른 의미에선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나? 자네는 어떤 방법만 사용하면 자네 자신도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나?"  "그것이 어떤 방법이죠?"라고 그는 말했다.  "어려운 방법이 아니네. 여러 가지 손쉬운 방법이 있네만 자네가 거울을 손에 쥐고 그것을 사방으로 돌린다면 그것에 가장 빠른 방법이네. 그러면 자네는 곧 태양과 하늘에 있는 것들을 만들어낼 것이고, 곧 대지를 만들어낼 것이며 곧 자네 자신과 다른 동물들과 가구들과 식물들과 방금 이야기한 모든 것을 만들어낼 것이네." "허나 그것은"하고 그는 말했다. "가상(假像)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좋은 말이야. 바로 맞추었네. 그런데 나는 화가도 역시 이와 같은 제작공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네. 그렇지 않은가?"  "물론 그렇지요."  "그러나 자네는 아마 그가 만드는 것이 진실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네. 그헣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화가도 역시 침대를 만드는 셈이나. 그렇지 않은가?"  "네 그도 역시 만듭니다. 그러나 그가 만드는 것은 가상에 불과하지요"라고 그는 말했다.   시론(詩論) / 플라톤(3) / 천병희 옮김     2        "그런데 침대 제작공은 어떤가? 방금 자네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는 우리가 침대 자체라고 부르고 있는 이데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침대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일세."  "네 그렇게 말했지요."  "따라서 그가 만드는 것이 침대 자체가 아니라면 그는 진실로 존재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과 유사하지만 진실로 존재하지는 않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어떤 사람이 목수나 다른 제작공의 제작물을 완전한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아마도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지?"  "네 아닙니다. 적어도 이와 같은 이야기에 친숙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생각되겠지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의 제작물이 진리에 비하여 분명하지 못하다하더라도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네."  "네,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고 나는 말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것을 본보기로 하여 이 모방자가 대체 어떤 자인지 탐구해도 좋지 않을까?"  "선생님께서만 좋으시다면"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러니까 침대는 세 가지 종류가 있네. 그 중 하나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우리는 그것을 만든 자가 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네. 아니면 어떤 다른 자가 만들었을까?"  "아닙니다. 다른 누구도 아닙니다."  "하나는 목수가 만든 것이네."  "네 그렇습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화가가 만든 것이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고 생각해야겠지요."  "그러니까 화가가 목수와 신, 이 셋이서 세 가지 종류의 침대를 관장(管掌)하고 있네."  "네 셋이서 그렇게 하고 있지요."  "그런데 신은 자연 속에 하나 이상의 침대를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하나 이상을 만들어서는 안 될 어떤 필연성이 있었는지, 아무튼 침대 자체 하나만을 만들었네. 그리고 그와 같은 침대가 두 개 또는 여러 개씩 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네."  "그건 어째서 그렇지요?" 라고 그는 말했다.  "그 까닭은" 하고 나는 말했다. "신이 두 개를 만들었다하더라도 이 두 침대의 이데아인 단 하나의 침대가 또다시 나타나 두 침대 대신 침대 자체가 되기 때문이네."  "옳은 말씀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므로 신은 이런 사실을 알고서 어떤 특정한 침대의 어떤 특정한 침대공이 되는 대신 진실로 존재하는 침대의 제작공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본연의 침대 하나만을 만들었다고 생각되네."  "그런 것 같군요."  "따라서 우리는 신을 침대의 본연으 창조자라고 하든지 또는 그와 비슷하게 불러도 좋겠지?"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겠군요." 하고 그는 말했다. "왜냐하면 신은 절대뿐 아니라 다른 것도 모두 본성에 따라 만들었으니까 말입니다."  "목수는 무어라고 할까? 침대 제작공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네 그렇게 부를 수 있겠군요."  "그렇다면 화가도 역시 침대 제작공이나 제작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화가를 침대의 무엇이라고 부를 작정인가?"  "제 생각으로는" 하고 그는 말했다. "앞서 말한 제작자들이 만든 것을 모방하는 모방자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 같습니다.."  "좋았네" 라고 나는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본성으로부터 3단계 떨어져 있는 제작물의 제작자를 모방자라고 부르는 셈이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이 점은 비극 작가에게도 해당될 것이네. 그도 모방자인 이상 왕(王)1)과 진리로부터 3단계 떨어져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모방자들도 모두 마찬가지네."  "그런 것 같군요."  "그렇다면 우리는 모방자에 관하여 의견이 일치된 셈이네. 그러나 화가에 관하여 이 점을 말해주게나. 화가가 모방하려 하는 것은 자연 속에 있는 것 자체인가 아니면 제작공의 제작물인가? 자네는 어느 것이라고 생각하나?"  "제작공의 제작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 제작물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나 아니면 보이든 대로 모방하나? 자네는 이 점도 밝혀야 하네."  "무슨 말씀이신가요?"라고 그는 말했다.  "이런 말이네. 침대는 자네가 옆에서 보든 정면에서 보든 그 밖의 다른 방향에서 보든 그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겠지? 그 자체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겉으로만 달라 보이겠지? 그리고 다른 것들도 이 점에 있어선 마찬가지겠지?"  "네, 그렇습니다. 겉으로만 달라보일 뿐 그 자체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아요." 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 그 점도 고찰해보게나. 회화술(繪畵術)은 개개의 대상에 관하여 다음 두 가지 가운데 어는 것을 지향하는 것인가? 즉 존재자를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것인가? 아니면 가상을 나타내는 대로 모방하는 것인가? 다시 말해서 가상의 모방인가 진실의 모방인가?"  "가상의 모방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모방술은 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셈이네. 그리고 모방술이 무엇이나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마 그것이 각 대상의 조그마한 부분을 다루는데다 그 부분마저 영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네. 예컨대 화가는 우리들에게 제화공(製靴工)이나 목수나 달른 제작공들을 그려 보이겠지만 그와 같은 기술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네. 그러나 만일 그가 훌륭한 화가라먼 목수를 그려 적당한 거리에서 내보임으로써 어린애들이나 어리석은 자들을 속여 그것이 진짜 목수인 것처럼 믿게 할 수는 있을 것이네."  "물론입니다."  "그런데 여보게, 우리는 이런 종류의 모든 인간들에 대하여 이 점을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네.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온갖 제작공의 기술을 다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개별적으로 알고 있는 모든 것에 관해서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되네. "당신은 사람이 너무 좋아서 어떤 사기꾼이나 모방자를 만나 그 자의 속임수에 넘어가 그 자가 전지(全知)한 인간이라고 믿게 된 것이오. 그것이 당신이 지식과 무지와 모방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오" 라고 말일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1) 여기서 '왕'이란 말은 비유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데아의 창조자인 신과 관련해서 생각하는 것이 무난할 것으로 생각된다. 니다. 그러나 그가 만드는 것은 가상에 불과하지요"라고 그는 말했다.   시론(詩論) / 플라톤(4) / 천병희 옮김     3       "그러면" 하고 나는 말했다. "다음에는 비극과 비극의 지도자인 호메로스에 관하여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네. 왜냐하면 우리는 몇몇 사람들로부터 호메로스야말로 온갖 기술은 물론이고 덕과 악덕에 관계되는 인간의 모든 일과 신들의 일까지도 알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기 때문이네.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인즉, 훌륭한 시인은 훌륭한 시를 짓기 위하여 자기가 작시(作詩)하고 있는 일에 관하여 잘 안 연후에 작시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시를 지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네. 따라서 우리는 이들이 시인이라는 모방자들을 만나 속임을 당한 것인지, 그들의 작품을 보고도 그것이 진실로부터 3단계나 떨어져 있으며 진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 왜냐하면 그들이 만드는 것은 존재자가 아니라 가상에 불과하니까 말일쎄 - 아니면 과연 이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서 훌륭한 시인들은 대중이 보기에 훌륭하게 말했다고 생각되는 일에 관하여 진실로 알고 있는 것인지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네."  "물론 고찰해야죠" 라고 그는 말했다.  "어떤 사람이 실물과 영상을 두 가지 다 만들 수 있다고 한다면 그가 영상 제작에 몰두하여 그것을 자기의 가장 좋은 소유물로서 자기 생활의 맨 앞쪽에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내 생각 같아서는, 그가 모방하는 사물에 관하여 진실로 알고 있다면 그는 모방보다는 그 실물에 열중하게 될 것 같네. 그리고 많은 훌륭한 것들을 자신에 대한 기념물로서 후세에 남기려 할 것이며, 칭찬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칭찬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할 것 같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왜냐하면 명예란 점에서나 이익이란 점에서나 그 편이 훨씬 유리하니까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점에 관해서는 호메로스나 다른 시인에게 해명을 요구하지 않기로 하세. 이를테면 우리는 그들에게 '시인들 중에서 어떤 자가 단지 의술(醫術)에 관한 말의 모방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의술에 관하여 알고 있다고 한다면, 고금의 시인들 중에서 아스클레피오스2)처럼 사람의 병을 고쳤다고 전해지는 자가 있는가, 또는 아스클레피오스가 후예들을 남겼듯이 의술에 있어서 제자들을 남긴 자가 있는가?" 라고 묻지 않기로 하세. 그리고 다른 기술에 관해서도 묻지 않고 내버려두기로 하세. 그러나 우리는 호메로스가 이야기하려 했던 것 가운데 가장 중대하고 가장 훌륭한 것, 즉 전쟁이나 원정(遠征)이나 국가의 통치나 인간의 교육에 관해서는 물어서 알 권리를 갖고 있네. '친애하는 호메로스여, 그대가 덕에 관해 한 발언에 있어 진리로부터 3단계 떨어져 있는 사람, 즉 우리가 그렇다고 규정한 바 있는 모방자나 영상의 제작자가 아니라 진리로부터 2단계 떨어져 있는 사람이라면, 따라서 어떤 생활 태도가 사적 및 공적 생활에서 인간을 보다 선량하게, 또는 보다 사악하게 만드는지 알고 있다면, 우리에게 말해주시오. 리쿠르고스3) 덕택으로 스파르테가 훌륭한 제도를 갖게 되었고 그 밖에도 많은 다른 사람들 덕택으로 크고 작은 많은 나라들이 훌륭한 제도를 갖게 된 것처럼 그대 덕택으로 훌륭한 제도를 갖게 된 나라는 어느 나라지요? 어느 나라가 그대를 훌륭한 입법자로, 자신들의 은인으로 부르고 있지요? 이탈리아와 시켈리아는 크사른다스4)를 그렇게 부르고 있고 우리는 솔론5)을 그렇게 부르고 있지요. 그런데 그대를 그런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는 나라는 어느 나라이지요? 이렇게 묻는다면 호메로스는 어느 나라의 이름을 댈 수 있을까?"  "아마도 댈 수 없을 것입니다. 호메로스의 찬미자들조차도 그런 일은 이야기하지 않고 있으니까 말입니다."라고 글라우콘이 말했다.  "그러면 호메로스 시대에 있었던 어떤 전쟁이 그의 지휘와 조언으로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는 기록은 있는가?"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실무가의 일에 속하는 분이라면, 그가 밀레토스의 탈레스6)나 스퀴티스의 아나카르시스7)처럼 기술이나 다른 실무에서 많은 유용한 발명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가?"  "그런 것도 전혀 전해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공적으로 이렇다 할 업적이 없다 하더라도, 사적으로는 호메로스가 생존시에 어떤 사람들을 가르치고 지도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그리하여 사제 간의 교분을 통하여 그를 존경하게 된 자들이 호메로스적 생활 태도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생활 태도를 후세 사람들에게 전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마치 퓌타고라스가 이 때문에 크게 존경받고 있고, 그의 후계자들이 자기들의 생활 태도를 퓌타고라스적 생활 태도라고 부름으로써 오늘날도 남달리 훌륭한 명성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말일세."  "그런 이야기는 전혀 전해지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소크라테스 님, 호메로스에 관하여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호메로스의 친구인 크레오퓔소스8)는 교양이란 점에서 육(肉)의 종족이란 자신의 이름보다 거 가소로운 존재였을 테니까요. 호메로스는 생존시에 그로부터 많은 푸대접을 받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2)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 신의 아들로 의술의 신이다. 3) 리쿠르고스는 전설적인 스파르테의 입법자이다. 헤로도토스와 플루타프코스 등이 그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4) 크시른다스는 기원전 6세기에 활동한 사람으로 그가 태어난 시켈리아 섬의 카타네 시의 입법자이다. 그 밖에도 그는 칼키스 인들이 시켈리아에 건설한 여러 식민시(市), 특히 헤기온의 입법자로 알려져 있다. 5) 솔론은 기원전 640~558년경에 활동한 아테나이의 시인이자 입법자이다. 그는 재무와 저당을 무효화하여 채무 때문에 노예로 팔렸거나 추방된 자들과 농부들을 해방시켜주고, 인신 저당을 금지함으로써 앗키케 지방에 농노제를 폐지했다. 그는 또 화폐와 저울과 척도를 개혁했다. 그 밖에도 그는 여러 가지 제도상의 개혁을 단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죽기도 전에 그의 헌법은 전복되고 페이시스트라토스에 의한 참주제가 성립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1~13장 및 풀루타코스의 참조. 6) 탈레스는 그리스 자연철학의 원조로 이른바 7현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기하학과 천문학을 발전시켰다고 하며 언젠가는 일식을 예언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했다. 7) 아나카르시는 그리스화 한 스키티스의 현인이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그는 여러 나라를 찾아다니며 그 나라의 풍속을 연구한 다음 이를 스키티스에 소개하려 했으나 스키티스 왕에 의하여 처형되었다고 한다. 그는 기원전 4세기 이후부터는 7현인의 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여러 가지 발명을 했다고 하는데, 특히 도공의 녹로(轆轤)와 가지 난 닻의 발명자로 알려져 있다. 8) 크레오퀼로스는 일설에 따르면 호메로스의 사위였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그리스 어로 '육의 종족'이란 뜻이다.   시론(詩論) / 플라톤(5) / 천병희 옮김     4      "그래, 정말 그런 이야기들을 하더군"이라고 나는 말했다. "그런데 클라우콘, 자네 생각은 어떤가? 호메로스가 모방만 하는게 아니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실제로 인간을 교율하고 보다 선량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면 많은 제자들을 얻었을 것이고 그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을 것이 아닌가? 압데라의 프로타고라9)와 케오스의 프로디코스10)와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이 사적 교분을 통해서 동시대인들에게 자기들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면 집도 국가도 다스릴 수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불어넣어주었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지혜 덕택으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되어 그들의 제자들은 그들을 어깨에 떠메고 다닐 지경이었네. 하거늘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가 덕을 향하여 인간을 이끌어줄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들의 동시대인들이 그들을 음유 시인으로 떠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두었을까? 오히려 황금보다도 그들에게 더 매달려 억지로라도 자신들의 집에 머물게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런 청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에는 충분히 가르침을 받을 때까지 어디든지 그들이 가는 데로 따라다니지 않았을까?  "선생님 말씀은 지당하십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호메로스를 비롯한 모든 시인들은 덕에 있어서나 그 밖에 그들이 작시하고 있는 일에 있어서나 그 영상의 모방자에 불과할 뿐 진리와는 아무런 접촉도 가지지 못한다고 규정해도 좋지 않을까? 방금 우리가 말했듯이, 화가는 제화술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단지 색채와 형태로만 판단하는 자들을 위하여 제화공처럼 보이는 것을 만들어낼 것이네."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인도 자신이 모방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어구(語句)를 통하여 개개의 기술에 어떤 색채를 입힌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네. 따라서 그의 말에 의하여 판단하는 자들에게는 제화술에 관해서든 전술에 관해서든 또는 다른 사물에 관해서든 운율과 율동과 화성만 붙여서 이야기하면 그것만으로 매우 훌륭하게 이야기한 것 같이 생각되는 것이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본래가 아주 매력적인 것이니까. 자네는 시인의 작품이 음악적 색채를 벗어버리고 단순한 산문으로 이야기된다면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고 있을 것이네. 그런 예를 본 적이 있을 테니까 말이네."  "네, 본 적이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것은 청춘의 꽃이 시들었을 때의 성숙하긴 하나 아름답지는 못한 젊은이들의 얼굴과 비슷하지 않던가?"  "매우 닮았더군요."  "자 그럼 이 점을 생각해보게나. 영상의 제작자인 모방자는 우리의 주장에 따르면 존재자에 대해선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가상에 관해서만 알고 있네. 그렇지 않은가?"  "네, 그럴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하여 아직 반(半)밖에 이야기하지 않은 셈이니 그대로 두지 말고 충분히 고찰해보기로 하세."  "말씀을 계속하십시오."라고 그는 말했다.  "화가는 이를테면 고삐나 재갈을 그릴 수 있겠지?"  "네"  "그런데 제화공이나 놋갓장이는 그것을 만들 수 있겠지?"  "물론이죠"  "그런데 고삐와 재갈이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화가는 알고 있을까? 아니 제작지인 놋갓장이오 제혁공조차도 알지 못하고 오직 그것을 사용할 줄 아는 자, 즉 기수(騎手)만이 알고 있지 않을까?"  "과연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하여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째서 그럴까요?"  "어떤 것에 관해서는 이 세 가지 기술, 즉 사용하는 기술과 만드는 기술과 모방하는 기술이 있겠지."  "네"  "그런데 가구든 동물이든 행동이든 그 개별적인 우수성이나 아름다움이나 정당성은 오로지 사용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것들은 사용을 위하여 인간 또는 자연에 의하여 만들어졌으니까 말일세."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어떤 물건이든 그 사용자가 가장 경험이 많은 사람이므로 사용자는 제작자에게 자기가 사용하는 물건이 어떤 점에서 사용하기 좋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점에서 나쁘게 만들어졌는지보고하게 될 것이네. 예컨대 피리 취주자는 피리 제작자에게 피리를 취주할 때 자기를 도와주는 하인이나 다름없는 자기 피리에 관하여 보고하면서 어떤 피리를 만들어야 하는지 지시하게 될 것이고, 피리 제작자는 그의 지시에 따라 봉사를 하게 될 것이네."  "당연한 일이지요."  "따라서 한 사람은 지식을 갖고 좋은 피리와 나쁜 피리에 관하여 보고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은 그의 보고를 믿고 피리를 제작하게 되겠지?"  "네 그렇습니다."  "따라서 바로 이 도구의 제작자는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과 접촉하고 그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도구의 좋은 점과 나쁜 점에 관하여 올바른 소신을 갖게 될 것이네. 그러나 사용자는 지식을 갖고 있네."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모방자는 자기가 그리는 것이 아름답고 올바른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에 관하여 사용을 통하여 지식을 얻게 될 것인가 아니면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과 접촉하도록 강요되어 그로부터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지시를 받음으로써 올바른 소신을 갖게 될 것인가?"  "그 어느 쪽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모방자는 자기가 모방하고 있는 것의 좋은 점과 나쁜 점에 관해서 지식도 올바른 소신도 갖지 못할 것이네."  "아마 그렇겠지요."  "그렇다면 시에 의한 모방자는 자기가 작시하고 있는 것에 관하여 놀랄 만한 지혜를 갖고 있는 것이겠지?"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하지만 그는 개개의 사물이 어떤 점에서 좋고 나쁜지 알지도 못하면서 모방을 계속할 것이네. 그는 아마도 무지한 대중에게 아름답게 보일 만한 그런 것을 모방하게 되겠지."  "그 밖에 또 무엇을 모방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점들에 관하여 우리의 의견이 꽤 일치된 셈이네. 즉 모방자는 자기가 모방하고 있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 모방은 일종의 유희이며 진지한 것이 못 된다는 점. 그리고 비극 시인들은 단장격 운율로 작시하든 서사시 운율로 작시하든 간에 가장 진정한 의미의 모방자들이라는 점에 관해서 말일세."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9) 프로타고라스는 기원전 5세기의 직업적 소피스트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아테나이에 와서 페리클레스의 친구가 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후일 무신론자라는 이유로 추방되었다. '만물의 척도는 인간이다' 라는 그의 말은 유명하다. 그는 플라톤의 에서 소크라테스의 가장 중요한 대화자로 등장하고 있다. 10) 프로디코스도 소크라테스 당시의 직업적 소피스트이다.    시론(詩論) / 플라톤(6) / 천병희 옮김   5       "제우스 신에 맹세코" 하고 나는 말했다. "모방이란 진리로부터 3단계 떨어져 있는 사물에 관계되는 것이네. 그렇지 않은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모방은 인간의 어느 부분에 대하여 그 효력을 발휘하는 것일까?"  "무슨 말씀이신가요?"  "이런 말이네. 같은 크기라도 가까이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 서로 다르게 보이네."  "네, 다르게 보이지요."  "또한 같은 물건이라도 물 속에 있느냐 물 밖에 있느냐에 따라 보는 사람에게는 굽어 보이기도 하고, 곧아 보이기도 하네. 또한 색에 관한 시각의 착각으로 인하여 같은 것이라도 오목하게 보이기도 하고 볼록하게 보이기도 하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은 모두 분명히 우리의 혼 속에 내재하고 있네. 사실 그림자 그림은 우리 본성의 이런 약점을 노리고 갖은 마술을 다 부리는 것이네. 이 점에 있어서는 요술과 그 밖에 그와 유사한 많은 손재주도 마찬가지네."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잰다든가 센다든가 저울에 단다든가 하는 일이 그와 같은 착각에 대한 가장 훌륭한 구제책으로서 발명된 것이 아니겠는가? 얼핏 보기에 더 큰 것이나, 더 작은 것이나, 더 많은 것이나, 더 무거운 것 대신에 계산한 것이나, 잰 것이나, 저울에 단 것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도록 말일세."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측정해보고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크다든가 더 작다든가 또는 같다는가 하는 것을 명시해주지만 이 부분에게도 때로는 같은 사물이 동시에 상반되게 보이는 때가 있네."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앞서 혼의 동일한 부분이 같은 사물에 관하여 상반된 견해들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네. 그렇게 주장했지요. 그리고 그건 옳은 주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측정된 것에 반대되는 의견을 갖는 혼의 부분은 측정된 것과 일치하는 의견을 갖는 혼의 부분과 동일한 부분일 수는 없네."  "물론이지요."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립되는 부분은 우리 안에 있는 보다 열등한 부분의 하나일 것이네."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나는 바로 이 점에 관하여 동의를 구하고 싶었던 것이네. 그래서 나는 회화술(繪畵術)을 포함한 모든 모방술은 진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건전하지도 진실하지도 않은 일을 위하여 우리 안의 이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부분괴 교제하고 교우 관계를 맺는다고 말했던 것이네."  "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니까 모방술은 그 자신이 열등한 것으로서 열등한 것과 결합하여 열등한 것을 낳는 것이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각에 관계되는 모방술만 그런가, 아니면 우리가 시라고 부르고 있는 청각에 관계되는 모방술도 역시 마찬가지인가?" 라고 나는 말했다.  "시도 아마 마찬가지겠지요." 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회화에서 유추하여 얻은 개연성만을 믿을 것이 아니라 시의 모방술이 접촉하는 마음의 부분에 직접 접근하여 그것이 열등한 부분인지 고상한 부분인지 살펴보기로 하세."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그러면 문제를 이렇게 설정해보세. 말하자면 모방술은 강요된 것이든 자발벅인 것이든 인간의 행위를 모방하고, 행위의 결과라고 믿어지는 행복와 불행을 모방하며, 이 모든 것 가운데서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모습을 모방하네. 그 외에 다른 것은 없겠지?"  "그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모든 경우에 인간은 자기 자신과 일치하고 있는가? 아니면 시각의 경우에 분열되어 같은 사물에 대하여 상반되는 견해를 동시에 자신 속에 가졌던 것처럼 행위에 있어서도 분열되어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가? 생각건대, 여기에 관해서 새삼스럽게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 왜냐하면 우리는 앞서 있었던 이야기들에서 우리의 혼이 그와 같이 동시에 일어나는 무수한 대립으로 충만해 있다는 사실에 관하여 충분한 합의를 보았으니 말일세."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합의는 옳은 것이었습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확실히 옳았네" 라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 빠뜨렸던 것을 지금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네"  "그것이 어떤 것인데요?"  "그때 우리는 이렇게 말했네" 라고 나는 말했다. "즉 훌륭한 남자는 아들이나 그 밖에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던 것을 잃는 불행을 당하더라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잘 견뎌낼 것이라고 말일세."  "확실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이런 점을 고찰해보세. 그는 조금도 괴로움을 느끼지 않을 것인지 아니면 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지만 슬픔 속에서도 절도를 지키게 될 것인지 말일세."  "후자의 경우가 사실이겠지요" 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 이번에는 그에 관해서 이 점을 말해주게나. 자네는 그가 어느 경우에 더 완강하게 슬픔에 대항하여 싸우고 저항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즉 자기와 같은 자들이 보고 있을 때 훨씬 더 잘 견뎌낼 것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혼자 있게 되면, 생각건대 그는 누가 듣게 되면 부끄러워하게 될 여러 가지 말들을 거리낌없이 내뱉을 것이고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짓을 많이 행하게 될 것이네."  "예. 그렇습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시론(詩論) / 플라톤(7) / 천병희 옮김     6       "그런 그에게 저항하도록 명령하는 것은 이성과 법률이 아닐까? 그리고 슬픔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닐까?"   "옳은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같은 것에 대하여 동시에 상반된 방향으로 이끌리는 셈이니 우리는 그 사람 안에 필연적으로 두 개의 부분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   "네,확실히 그렇습니다."   " 그 한 부분은 법률이 인도하는 대로 기꺼이 따라가지 않을까?"   "어째서 그렇지요?"   "법률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네. '불행을 당했을 땐 되도록이면 침착하고 화를 내지 않은 것이 가장 좋은 일이야.' 라고 말일세. 왜냐하면 그런 일에 있어서는 선악이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화를 내보았자 무슨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말일네. 그리고 인간사(人間事)에는 크게 중시할 만한 가치를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며, 또한 슬퍼하는 것은 그런 경우에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네."   "무엇에 방해가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일어난 일에 대하여 심사숙고하는 일과 주사위를 던질 때처럼 던져진 것에 따라 이성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택하는 대로 우리의 행동을 정리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는 말일세. 우리는 넘어졌다고 해서 어린애처럼 다친 데를 움켜 잡고 울고불고하는 데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네. 오히려 우리는 넘어져서 아픈 데를 되도록 빨리 치료하고 회복함으로써 의술에 의하여 탄식의 노래를 그치게 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항상 혼을 단련시키지 않으면 안 되네."   "확히 불행에 대해선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옳을 것입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의 주장에 따르면 가장 훌륭한 부분은 이와 같은 이성의 지시에 기꺼이 따를 것이네."   "네, 분명히 그렇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고통에 대한 회상과 탄식으로 이끌리게 되어 아무리 회상하고 탄식해도 만족할 줄 모르는 부분은 비이성적이고 게으르고 비겁하다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네, 그렇게 불러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 화를 잘 내는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모방이 가능하지만, 현명하고 침착한 성격은 항상 자기 자신과 일치하므로 모방하기가 쉽지도 않거니와 모방된다고 하더라도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네. 특히 축제에 모인 군중이나 극장에 모인 잡다한 사람들에게는 말일세.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에게는 낯선 상태의 모방이니까 말일세."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따라서 모방적 시인이 원하는 것이 분명히 대중으로부터의 명성이라면, 그는 본래부터 혼의 가장 훌륭한 부분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그의 지혜도 이 부분을 즐겁게 해주도록 돼 있는 것이 아니네. 오히려 그는 화를 잘 내며 변덕스런 성격을 위하여 만들어졌네. 왜냐하면 이런 성격은 모방하기가 쉽기 때문이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를 붙들어다가 화가의 한짝으로써 그와 나란히 세워도 좋을 것이네. 왜냐하면 그는 진리에 비해 열등한 것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나 혼의 열등한 부분과 교제하고 가장 훌륭한 부분과 교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화가를 닮았기 때문이네. 따라서 훌륭한 제도를 가져야 할 국가 안으로 우리가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고 우리의 행동은 정당하네. 그것은 그가 혼의 열등한 부분을 일깨워서 가꾸어주고 강하게 만들어줌으로써 이성적인 부분을 손상하기 때문이네. 그것은 마치  어떤 국가에서 어떤 사람이 악당들을 권력자로 만들어 그들에게 국가를 맡기고 보다 선량한 자들은 파멸케 하는 것과도 같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방적 시인도 사물을 구별하지 못하고 같은 것을 어떤 때는 크다고 생각하고 어떤 때는 작다고 생각하는 혼의 비이성적 부분에 영합하여 진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영상을 만들어냄으로써 개개인의 영혼 안에 나쁜 국가 제도를 만들어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네." "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시론(詩論) / 플라톤(8) / 천병희 옮김     7        "그러나 우리는 시에 대하여 가장 중대한 고발은 아직 제기하지 않은 셈이네. 왜냐하면 시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선량한 사람들까지도 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네."  "시가 만일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면 내 말을 듣고 잘 생각해보게나. 자네도 알다시피, 어떤 영웅이 비탄에 빠져 장탄식을 늘어놓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괴로워서 가슴을 치는 장면을 호메로스나 다른 비극 시인이 모방할 때면 우리 가운데 가장 훌륭한 사람들조차도 이에 쾌감을 느끼게 되어 자신을 잊고 공감하면서 이끄는 대로 따라가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기분을 가장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시인일수록 훌륭한 시인이라고 진지한 태도로 칭찬하네."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에게 걱정거리가 생기게 되면, 자네도 알다시피, 그와는 반대로 침착하게 잘 견뎌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네. 그것이 남자다운 행동이고 우리가 방금 칭찬했던 것은 여자다은 행동이라는 생각에서 말일세."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런 칭찬은 과연 옳은 것인가?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끄러워하게 될 그런 인간을 보고 혐오감을 느끼는 대신 기뻐서 칭찬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제우스 신에 맹세코, 그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그렇네, 자네가 문제를 이렇게 고찰한다면 말일세"라고 나는 말했다.  "어떻게 말씀이지요?"  "자네가 이런 점을 생각해본다면 말일세. 본래는 식컨 울고불고 탄식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 자신이 불행을 당했을 때에는 억압되어 이런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었던 부분, 바로 이 부분이 시인들로부터 만족과 쾌감을 얻는 부분이네. 한편 우리 안에 있는 본성적으로 가장 훌륭한 부분은 이성과 습관에 의하여 충분히 교욱되어 있지 못하므로 눈물이 많은 부분에 대한 감시를 늦춰버리네. 왜냐하면 그거시 바라보고 있는 것은 만의 고통이고, 또 선량한 인간으로 자처하는 어떤 사람이 어울리지 않게 슬퍼할 때 그 자를 칭찬하거나 동정하는 것은 그에게는 조금도 수치스런 일이 아니기 때문이네. 오히려 그는 거기서 얻는 쾌감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네. 왜냐하면 남의 것을 즐기면 그 중 일부는 필연적으로 자기 것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니까 말일세. 하나 연민의 정을 느끼는 부분을 남의 불행 속에서 가끄어주고 강하게 만들어준다면 자신이 불행을 당했을 때 그것을 억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네."  "과연 옳은 말씀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우스꽈읏러운 것에 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자네가 스스로 행한다면 부끄러워하게 될 익살을 희극 공연이나 사적인 모임에서 듣고는 대단한 쾌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을 나쁜 것이라고 증오하지 않는다면 자네의 행동은 연민의 정을 줄러일으켰던 장면에서 취한 행동과 똑같은 것이 될 것이네. 말하자면 이때에도 자네는 광대라는 평판이 두려워서 이성에 따라 자네의 마음 속 깊이 억제하고 있던 부분, 즉 익살을 부려보고 싶은 부분을 늧추어주었던 것이네. 그리고 자네가 거긱서 이 부분을 교만하게 만들어준다면 자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생활 속에서 희극 배우가 되는 데까지 이뜰려가게 될 것이네."  "그야 물론이지요."라고 그는 말했다.  "또한 애욕과 분노에 관해서도, 그리고 우리의 모든 행동에 수반되는 욕망과 고통에 쾌락에 관해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시의 모방은 이런 것들에 관해서도 우리에게 똑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시들어 없어져야 하는데도 시는 이런 것들에게 물을주어 가꾸고 있으며, 사악하고 비참하게 되는 대신 선량하고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런 것들을 지배해야 하는데도 시는 오히려 이런 것들을 우리들의 지배자로 만들고 있으니까 말일세."  "저로서는 선생님의 말씀에 이의(異議)를 제기할 수 없군요." 하고 그는 말했다.  "따라서 클라우콘, 자네가 호메로스야말로 헬라스이 교육자이므로 모든 인간사를 정돈하고 계발하는 데 있어 이 시인의 말을 들춰 배워야 하며 자신의 생활을 이 시인을 따라 정리하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호메로스의 찬미자들을 만난다면 그들도 나름대로 가장 선량한 자들이므로 사랑해주고 공손히 대해주지 않으면 안 되네. 그리고 호메로스가 가장 시인다운 시인이며 비극 작가으 제1인자라는 사실도 시인하지 않으면 안 되네. 그러나 시 가운데 국가 안으로 받아들여져도 좋은 것은 신에 대한 찬가와 훌륭한 사람들에 대한 찬사 뿐이라는 사실도 또한 알고 있어야만 하네, 자네가 서정시를 통해서든 서사시를 통해서든 쾌락적인 무사 여신을 받아들인다면 그 국가에는 언제나 최선의 것으로 모든 사람들에 의하여 인정되어온 법룰과 원칙 대신 쾌락과 고통이 군림하게 될 것이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시론(詩論) / 플라톤(끝) / 천병희 옮김     8       "우리는 시에 관하여, 시가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는 이상 우리가 그때 시를 국가에서 추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돌이켜 생각해보았네.  이상으로 시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변명된 것으로 해두세. 이성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네. 그러나 우리는 시로부터 완고하고 세련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하여 철학과 시는 옛날부터 사이가 나빴다는 사실을 시에게 말해주기로 하세. 왜냐하면 '주인을 향하여 깽깽 짖어대는 개'11)라든가, '바보들의 쓸데없는 잡담 속에서나 위대한 자'라든가, '지나치게 영리한 머리의 오합지졸'이라든가, '어떻게 하다가 결국 거지가 되고 말았는지에 관하여 세심하게 사색하는 자들'이라든가 그 밖에 다른 많은 험담들이 철학과 시 사이의 오래된 불화를 입중해주고 있으니까 말일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말해두기로 하세. '쾌락을 목적으로 하는 시나 모방이 훌륭하게 통치되고 있는 국가에 필요불가결하다는 증거만 제시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것들의 귀국을 환영할 것이다. 우리 자신도 시의 매력에 이끌리는 것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배반하는 것은 불경한 짓이 될 것이다'라고 말일세. 그런데 여보게, 자네도 역시 시의 매력을 느끼지 않나? 특히 호메로스를 통해서 시를 볼 때 말일세."  "네, 대단한 매력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시도 서정시나 그 밖에 다른 운율로 자신에 대한 변명을 한 다음 귀국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겠나?"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은 시인이 아니지만 시인의 친구들인 시의 애호가들에게도 시를 위하여 운율이 없는 보통말로 시는 쾌락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인간 생활에도 유익하다는 것을 입증할 기회를 주기로 하세. 그리고 우리는 호의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리고 하세. 시가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유익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이익이 됱 테니까 말일세."  "어찌 이익이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여보게, 그 사실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에는 마치 누군가를 사랑하던 사람이 그 사랑이 무익하다고 생각될 때에는 아무리 괴롭더라도 단념하고 말 듯이 우리도 괴롭더라도 시를 단념하고 말 것이네. 이와 같은 훌륭한 국가에서 교육받은 덕택에 우리도 이와 같은 시에 대하여 애정을 품게 되었으니 시가 가장 훌륭하고 가장 진실한 것으로 밝혀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될 것이네. 그러나 시가 자신에 대하여 변명할 수 없는 한 우리는 두 번 다시 시와 유치한 사랑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시를 들을 때마다 우리 자신을 향하여 지금 이 이야기를 주문(呪文)으로 외워야 할 것이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시를 진리와 접촉하는 진지한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되고, 시를 듣는 자는 누구나 자신의 내부에 있는 국가를 염려하여 시를 경계해야 하며, 시에 관한 우리의 이야기를 믿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신을갖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네."  "저는 선생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친애하는 글라우콘이여"하고 나는 말했다. "인간이 선량하게 되느냐 아니면 사악하게 되느냐 하는 싸움은 중대하다네. 흔히들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하지. 그러므로 우리는 명예나 돈이나 권력이나 특히 시에 자극되어 정의나 그 밖에 다른 덕을 소홀히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네."  "지금까지 우리가 이야기한 것에 따라"라고 그는 말했다.  "저는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누구나 동의하리라고 믿습니다."   11) 출전은 확실하지 않다. 서정시의 1절로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개'란 철학을 가리키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주인'이라는 말이 시를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플라톤 / 천병희 옮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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