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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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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산문) 놀이 / 이낙봉 댓글:  조회:1317  추천:0  2018-12-28
놀이   이낙봉   세계의 안쪽이 있다면 세계의 바깥쪽도 있을 것이다. 세계의 안쪽에 내가 살고 있다면 세계의 바깥쪽에 당신이 살고 있을 것이다. 세계의 안쪽이 나를 닦고 조이고 기름칠한다면 세계의 바깥은 날 그냥 방목할 것이다. 맑은 유리창은 세계의 안쪽과 바깥쪽의 경계에 있다.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한 유리창이 나와 당신의 소통을 방해하고 있다. 내가 왼손을 들면 당신도 따라서 왼손을 들 것이다. 내가 밥을 먹으면 당신도 밥을 것을 것이고 내가 울거나 웃으면 당신도 울거나 웃을 것이다. 내가 잠을 자면 당신도 잠을 잘 것이고 꿈을 꾸면 당신도 꿈을 꿀 것이다. 그러나 교감이 문제다. 유리창이 나와 당신의 호흡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당신과 내가 놀이를 즐기려면 당신이 유리창을 열거나 내가 유리창을 깨해야 한다. 과연 누가 할 것인가?   영화 인셉션(Inception-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을 본다. 논리적 판단이나 이성적 판단은 필요 없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타인의 꿈속에 침투하여 생각을 훔칠 수도 있고 타인의 꿈속에서 그의 무의식을 이용하여 생각을 바꾸게 할 수도 있다. 꿈속의 꿈. 또 그 꿈속의 꿈. 다시 그 꿈속의 꿈으로 자꾸만 들어간다. 그리고 놀랍게도 꿈을 공유한다. 그럼 이것이 꿈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결국 나는 영화 끝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놀이에 인셉션 당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사실 영화를 분석하고 따질 필요는 없다. 그냥 보고 즐기면 된다. 붉은 악마가 꿈은 이루어진다고 외쳤고, 가수 인순이가 놀라운 가창력으로 ‘거위의 꿈’을 노래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김연아도 환상의 꿈을 이루었다. 그런데… 그런데… 꿈은 결국 깨는 것 아닌가? 강호순의 꿈은? 빙어의 꿈은? 꿈은 스스로 꿈을 꾸는 자가 완성하는가? 놀이는 스스로 노는 자가 완성하는가?   여자는 국선변호인 남자는 교통사고 피의자, 둘은 언젠가 스치듯 술잔을 나눈 사이, 남자는 개를 안고 운전 하는데 그놈이 오줌을 싸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고 여자에게 말한다, 흐흐,   여자의 꿈 속에서 보양음식점 주차장을 찾는데 자동차가 갑자기 자전거로 바뀐다, 자전거 주위로 골목의 개들이 미친 듯이 쫓아온다, 얼굴은 토끼를 닮았고 아가리는 뱀처럼 쩍 벌어진 개가 발목을 문다, 막대기를 집어 아가리에 넣었더니 와작와작 깨물어 먹는다, 내 다리를 문 놈, 죽을 때까지 매일매일 소주 한 병씩 먹이겠다고 다짐한다, 흐흐흐,   내 꿈 속의 꿈 속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다, 어떤 남자가 곁에 오더니 형님은 4번 타자라고 말한다, 바닥은 토사물이 홍건하다, 엉덩이 큰 여자가 대걸레 대신 치마로 토사물을 닦아낸다, 남자가 사실 형님은 4번 타자가 아니라고 소리치며 도망간다, 흐흐흐흐, -졸시 ‘꿈’ 전문   네 번째 시집 ‘미안해 서정아’ 수록 시 모두에 원제목 대신 주민등록번호 앞 번호를 제목으로 바꾼다. 시의 탄생일인 초고를 축하한다. 주된 의도는 처음부터 독자가 제목으로부터 시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게 하기 위함이다. 뻔한 시에 뻔한 제목. 식상한 일이지만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으나 놀기로 한다. 3년 전 일이다. 그때도 시원했는데 지금도 시원하다.   시란 무엇인가? 골치 아프게 시가 무엇인지 시의 형식과 내용을 어떻게 할지.생각하지 말고 시쓰기를 하자? 전통적인 시를 쓰는 시인들은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기승전결을 바탕으로 하고 내용에 충실해 공감을 얻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뒤샹은 화단의 기존 형식에 염증을 느껴 사물로 말하기를 시도한다. 예술이란 우리 삶의 여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흔적(레디메이드)이라고 주장한다. 일상생활에서 많이 보는 물건들에 작가의 고민에 의해 새로운 제목과 관점을 부여하면 그것 또한 작품이라고 새로운 형태의 미술세계를 창조한다. 그의 전위적인 생각은 앤디워홀과 백남준이 그 뒤를 이어간다. 그들 뿐 만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미술 외 다른 예술분야와 일상생활에 널리 퍼져 계속 확대 재생산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시는?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자. 마음가는대로 거리낌 없이 놀자.   신작시 4편 근작시 6편 합이 10편. 발표를 한 시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신작시와 근작시를 구분하는 것 같은데 나는 아무렇게나 그냥 10편을 고른다. 조금 부담스러운 분량이지만 골라서 대충 분류한다. 나는 신작시가 근작시고 근작시가 신작시이므로 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발표한 시 중에서 근작시 6편을 고르려고 했으나 포기했다. 발표한 시를 또 발표하는 것 같아 싫었다.) 시 10편의 사족으로 산문을 마무리 하자. 요즈음 시와 내가 놀고 있는 종목은 아방가르드 작가들이다. 대중가요 가사다. 그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즐겁다. 어차피 내가 하는 게임은 전통적인 방식의 게임이 아니므로 내가 룰을 만들고 내가 즐기면 된다. 그러다 재미없으면 또 새로운 룰을 만들어 즐기면 되는 것이다. 계속 룰을 만든는 것도 썩 괜찮은 놀이다.                 개   이낙봉   g는 양갈보(주한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자)와 똥갈보(내국인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자)가 한 동네에서 공존하는 소도시의 변두리에서 어린시절을 보낸다. 같이 노는 친구들은 니나놋집 자식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는 모두 그렇고 그렇듯이 철모르고 건강하고 즐겁게 커간다. 발정기가 시작될 즈음엔 양갈보가 모여 사는 골목으로 이사를 간다. 양갈보의 방에는 포르노 잡지가 있고 미군 병사들은 술을 마시거나 대마초를 피운다. 양갈보는 g가 발정기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름이면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뒷물을 한다. 낄낄대며 양갈보의 알몸을 엿볼 때 첫 욕망의 대상이 뻔질나게 집으로 놀러온다. g는 모르는 건지 어리석은 건지 발정기가 시작되었음에도 암내를 따라가지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비의 암내에 이끌려 무작정 시를 쓴다. 비의 암내에 이끌려 무작정 쓰는 시는 건방지고 허황되고 환각을 요구한다. 그런 환각을 위하여 아티반(신경안정제)을 복용하고 술을 마신다. 환각 속에서 깨어나면 세상이 도니까 나도 같이 돌아야 돌지 않는다는 자기 합리화 속에서, 착각을 하고 착각은 또 다른 착각의 욕망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악순환 속에 빠져 익사 직전까지 갔을 때 만난 환상의 새. 환상의 새는 불타는 욕망에 기름을 붓고 잡힐 듯 말 듯 주위를 맴돌다가 날아나고 맴돌다가 날아난다. 그렇게 활활 타오는 욕망의 끝은?   이런 글쓰기는 사건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엮어나가야 흥미로운데 난 이런 글쓰기가 지겹고, 아무튼 g는 잡종이다. 잡종은 잡종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다. 잡종은 잡종을 선택하고 또 선택하여 조금씩 조금씩 진화한다. 진화하면서 자칭 순수혈통이라고 자랑하는(사실 순수혈통인 척하는) 무리 속에 섞여 별종으로 살아간다. 간혹 순수혈통 중에는 뛰어난 시각과 후각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먹이를 단숨에 끝장내는 우두머리가 있다(사실 가짜 우두머리가 대부분이다). 가짜건 진짜건 우두머리 주변에는 수많은 무리들이 무언가 얻어먹겠다고 독한 암내를 풍기며 덤벼든다. 그러나 사기의 자질을 가진 무리들은 교미가 끝나고 얼마간 허기가 채워지면 미련 없이 떠나거나 곁에서 뻔한 사기를 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잡종은 다르다. 잡종은 잡종이기에 잡종끼리 끊임없이 교접하여 돌연변이를 만든다. 돌연변이는 눈에 잘 보이기 종속이어서 자짓하면 말라죽어버린다. 말라죽더라도 잡종을 선택하는 것은 또 다른 돌연변이의 탄생을 위해서다. 돌연변이가 돌연변이를 낳고 낳아 돌연변이는 명맥을 이어간다. 태생적으로 g는 잡종을 선택한다. 돌연변이를 선택한다.   등 낮추고 꼬리 내린/ 개, 침 흘리는/ 개, 막다른 골목의/ 개, 쓰레기통 옆에서 비 맞는/ 개, 발정한 성기 덜렁대는/ 개, // 황홀하게 부서지는 아카시아/ 꽃잎 따먹던 시절의 개,/ 배고파도 굶고/ 졸려도 자지 못하는 개, // 버석버석 말라가는/ 개, 사랑하고 싶은/ 개, 새끼 낳고 싶은/ 개, 이빨 감추고 사는/ 개, 비루먹으며 끝까지 살아남을/ 개, -졸시 전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가 장마철 습기처럼 눅눅하다. 이런 글쓰기는 변죽을 울리는 짓이지만 변죽이면 어떻고 팥죽이면 어떤가. 어차피 언어는 본질을 모르고 변죽을 울리는 화려한 북채인 것을. 욕망은 초조하고 불안하고 허망한 것. 욕망은 계속 부패하는 거대한 똥덩어리. 거대한 똥덩어리는 작은 똥막대기 하나로는 깨끗이 치울 수 없는 일. 잡종 g는 환상의 새에 이끌려 활활 타오르는 욕망의 끝 천길 낭떠러지에 다다른다. 돌아설 수도 없고 한발 내딛으면 허공. 10년을 쪼그리고 앉아 망설이고 망설이다 죽어도 좋다 뛰어내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허공에서 배설을 만난다. 배설할 대상은 많고 배설은 욕망보다 똥덩어리가 작다. g는 배설을 위하여 끝까지 간 욕망을 이용한다. 긴장 풀어진 첫 욕망의 배설(s), 건방지고 건조한 욕망의 배설(k), 바람의 축축한 욕망의 배설(m), 지금까지 계속 괴롭히는 끈끈한 욕망의 배설(j)을 철저히 기만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단 한번의 술의 배설(c)까지 시도한다.(괄호 속 알파벳은 개인적인 암호) 그러나 어느 배설이건 배설 후 죽음의 냄새가 스며들고, 스며든 죽음의 냄새는 곰팡이처럼 번식한다. 욕망의 찌꺼기까지 말끔히 태워 버려야 죽음의 냄새를 지울 수 있다. 그렇게 태워 버리면 배설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욕망의 재속에 숨어있는 불씨까지 말끔히 죽인 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재속에 숨어 있는 불씨.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불씨.   너는 아는가? 일회용배설, 똥막대기가 개의 좋은 장난감인 것을.   낡은 의자 위에 늙은 개가 앉아있다, 출입문 유리창이 조금 깨져있다, 끼어든 사람과 푹 빠진 사람이 격렬하게 섹스를 한다, 의자 위의 늙은 개가 출입문 쪽으로 뛰어내린다, 라고 생각나는 갈겨쓴다, //목욕탕에서 본 노인, 배와 엉덩이와 허벅지가 쭈글쭈글한 노인, 정욕에 좋다는 약탕에 누워있는 노인, 젊은 사내보다 길어 보이는 중심을 담금질 하는 노인이 부럽다, 라고 싱겁게 생각나는 대로 쓴다, //첫 연을 낡은 의자 위의 늙은 개, 끼어든 사람과 푹 빠진 사람의 격렬한 섹스, 낡은 의자와 늙은 개와 끼어든 사람과 푹 빠진 사람의 새벽이라고 또 생각나는 대로 지금 막 고쳐 써본다, -졸시 전문       * 198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집 ‘내 아랫도리를 환히 밝히는 달. 돌속의 바다. 다시 하얀 방. 미안해 서정아.  
5    [스크랩] 박남희- 이제는/ 2015년 가온문학 여름호 발표/ 이선 평론 댓글:  조회:1559  추천:0  2018-12-28
2015년 가온문학 여름호 발표       이제는​          박남희            석양을 팔아야겠습니다   기우는 것은 빨리 파는 것이 남는 것이지요   술잔을 생각하면   저녁하늘이 붉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누가 술에 조금씩 어둠을 섞어 하늘에 버렸을까요   이제는 별을 팔아야겠습니다   벌을 받아야겠습니다   술 취한 별이 모여서 막걸리처럼 흐르는 것을 사이에 두고   영영 벌 받기 위해   견우와 직녀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하늘을 팔아야겠습니다      죽어서 말이 없는 자와   살아서 눈물 흘리는 자가 흘려보낸 시간 속   자꾸만 기울어지던 중심을   바다 깊숙이 가라앉힌 채 인양할 줄 모르는   저 석양을 팔아야겠습니다                     ‘판다’의 이미지에 부재와 이별을 담은 트라이앵글 구조     위의 시는 ‘판다’라는 이미지에 부재와 이별을 담은 트라이앵글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트라이앵글 구조는 대등하고 독립적인 시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위의 시를 의미구조와 형태구조로 분석하여 살펴보자.    1. 의미 구조      위의 시「이제는」은 많은 시간의 경과를 겪어낸 ‘현재 시점’의 제목이다. 현재 시점에서 화자는 지금까지 생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집착하며 소유한 것들, 이를 테면 에 대하여 이별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놓아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예견한다.     그런데 시인은 이제까지 집착하며 소유하고 있던 을 팔고 싶다고 말한다. 버리겠다고 말하지 않고 ‘팔고 싶’어하는 표현에 주목하여야 한다. 시적 반전 매력을 갖는 대목이다. 버리지 못할 정도로 간절하고, 집착하며, 소중한 것이라는 역설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팔다’는 ‘석양’의 이미지로 대변된다. ‘석양은 존재하다가 생명을 다하고 사라지는 생물체의 쓸쓸한 뒷모습’ 이미지를 담고 있다. ‘잡다’와 ‘놓다’라는 단어는 반대적 개념을 가지고 있다. 존재와 부재, 소유와 상실, 집착과 회피를 의미한다. ‘석양’의 이미지는 ‘놓음’의 이미지다.   ‘별’과 ‘하늘’이라는 단어를 의 적 상징성으로 해석하여 보자. ‘별과 하늘’은 실제하는 사물이지만, 등의 현대적 상징성을 가진 단어로 해석된다.   ‘석양, 별, 하늘’은 이미 많은 시인들이 상용한 단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단어들은 늘 새로운 의미와 표현으로 재탄생되는 신비로운 명약과 같은 이미지를 재창조한다. 굳어버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단어도 표현과 구조의 새로움을 갖는다면 독창적인 시로 탄생할 수 있다.         2. 형태 구조      다음은 위의 시의 형태 구조를 살펴보자.     첫째, 독립적 병렬구조   제목과 1, 2연의 연결 형태를 살펴보자.   제목 ‘이제는’은 독립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제목을 1연과 2연 맨 앞에 배치하여 보자. 모두 의미가 통한다. 또한 ‘1, 2, 3, 6, 7, 8, 12, 15행’의 앞에 어떤 곳에 두어도 어색하지 않다. ‘지금은’이라는 제목은 전체를 아우르는 수식어 작용을 한다. 물론 1연 1행과만 연결하여도 된다. 위의 시는 병렬적이며 독립적이다.        둘째, 트라이앵글 구조    이라는 단어를 중심어로 하는 트라이앵글 구조를 가지고 있다. 3개 단어의 구조와 형태는 대등한 등가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각 연과 행들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며 유기적이다.     셋째, 파생적 구조   구조에서 파생어와 파생의미 구조를 갖는다.   1행 ‘석양’에서 파생된 이미지가 2행 ‘기우는 것’이다.   3, 4행도 ‘석양’에서 파생된 이미지의 구조를 갖고 있다.   3행 ‘술잔’과 4행 ‘붉어지는’은 5행의 ‘술에 어둠을 섞은 하늘’의 이미지로 파생된다. 5행의 ‘술’과 6행의 ‘별’은 8행의 ‘술 취한 별이 막걸리처럼 흐르는 것’으로 연결된다. 8행의 ‘흐르는 것’들의 별의 이미지를 끌고 와서 10행의 ‘견우와 직녀’로 연결된다.     2행 ‘기우는 것’은 14행 ‘기울어지던 중심’으로 연결된다. 또한 15행과 16행의 ‘바다 깊숙이 가라앉는 석양’의 이미지와 같다.     1행 ‘팔다’의 이미지는 6행, 11행, 16행에서 반복적 파생을 한다.        넷째, 아이러니 기법   위의 시는 김소월의 「진달래」에서 보여주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와 같은 아이러니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반복되는 ‘팔겠습니다’라는 단어는 역설적이다. 쉽고 짧지만 강렬한 연시다.  
4    [스크랩] 가온문학 이선 평론- 이낙봉 2016년 여름호 댓글:  조회:1634  추천:0  2018-12-28
시답잖은/시답지 않은 – 묘비명      이낙봉     1. 우리 지역과 관계있는 낱말들에 ○표 해 봅시다. 여기에 없는 다른 낱말들을 더 적어 넣어도 됩니다. 따뜻한 시끄러운 조용한 아름다운 지루한 안전한 더운 재미있는 지저분한 작은 무뚝뚝한 위험한 추운 높은 평화로운 어두운 활기찬 오염된 다정한 큰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4학년 2학기, 두산동아(주), 94쪽에서 인용   2. 나와 관계있는 낱말들에 ×표 해 봅시다. 여기에 없는 다른 낱말들을 더 적어 넣어도 됩니다   외로운, 심심한, 즐기는, 노래하는, 사랑하는, 짜증나는, 찌질한, 불안한, 슬픈, 한심한, 흐릿한, 우는, 떨리는, 짜릿한, 메마른, 우울한, 취한, 비틀거리는, 두려운, 울부짖는, 몽롱한, 초조한, 빠는, 핥는, 조급한, 미친, 침침한, 휘청거리는, 꿈틀거리는, 어두운, 비릿한, 바람인, 바위인, …………걸,   3. Epitaph , 8분 38초 동안 숨 막히는, 그럼에도 사는,   , , , 걸,                   학습지 구조와 형식의 하이퍼시     이 선         1. 서론   이낙봉은 작고한 오남구 시인이 주장한 디지털시론의 ‘탈관념’론 시를 창작하며 그와 뜻을 같이 한 시인이다. 현대의 하이퍼시 기초를 닦는데 한 역할을 하였다. ‘시답잖은/ 시답지 않은’ 시리즈도 하이퍼시의 여러 구성요소를 함의하고 있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이낙봉의 시를 하이퍼시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위의 시는 연을 1. 2, 3의 장의 구조로 병렬적이며, 개별적, 독립적인 하이퍼시 구조로 구성하였다. 학습지 구조와 형식의 새로운 구성방법은 지금까지 본 일반 단어로만 된 시들과 차별화된다. 각 연들이 나타내고 있는 하이퍼시의 구조와 기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장에서 필자는 편의상 1연, 2연, 3연으로 구분한 점 양해 바란다.     2. 1연- 학습지 구조와 형식의 하이퍼시 기법   1연은 학습지 구조와 형식을 가진 도표를 영입한 새로운 하이퍼시 형태의 시다. 1연에서 ‘우리 지역과 관계있는 낱말들에 ○표 해 봅시다.’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0표한 부분은 독자의 의식구조를 대표한다. 또한 ‘여기에 없는 다른 낱말들을 더 적어 넣어도 됩니다.’ 부분도 주목하여 보자. 하이퍼시의 제한적이거나 한정적이지 않은 부분에 해당된다. 시의 구조가 독자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시인의 감정이나 시적화자의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히 독자중심이다.   반대어로 구성된 제시어는 사회화된 인간의 안전과 행복지수를 점검하게 한다. ‘따뜻한- 추운, 시끄러운- 조용한, 아름다운-지저분한, 지루한- 활기찬, 안전한- 위험한, 더운- 추운, 작은- 큰, 평화로운- 어두운, 안전한- 오염된, 다정한- 무뚝뚝한’ 등 ‘지역’과 ‘사회’라는 집단구조에 대한 의식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현대인의 문명사회를 향한 안전과 행복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 주제의식을 배제한 도표를 통하여 가장 강한 주제의식을 전문처럼 주장하고 있다. 역설과 아이러니 기법을 교묘히 숨기고 있다.     3. 2연- 제한적이거나 한정적이지 않음, 독자참여   2연은 세 개의 중요한 하이퍼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첫째, ‘나와 관계있는 낱말들에 ×표 해 봅시다.’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1연은 긍정어로 ’0표‘를 하라고 하였는데, 2연은 부정어로 ’x표‘를 하라고 한다. 1연과 구분하는 기교적 표현이다. 또한 ’나‘라는 개인의 행복지수가 낮다는 부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긍정어 3개에 부정어 30개다. 긍정어는 ‘즐기는, 노래하는, 사랑하는’ 단 3개 단어인 반면에 부정어는 ‘외로운, 심심한, 짜증나는, 찌질한, 불안한, 슬픈, 한심한, 흐릿한, 우는, 떨리는, 짜릿한, 메마른, 우울한, 취한, 비틀거리는, 두려운, 울부짖는, 몽롱한, 초조한, 빠는, 핥는, 조급한, 미친, 침침한, 휘청거리는, 꿈틀거리는, 어두운, 비릿한, 바람인, 바위인’ 등 30개다. 현대인의 소외와 회피, 불안하고 우울한 심리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둘째, ‘여기에 없는 다른 낱말들을 더 적어 넣어도 됩니다’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제한적이거나 한정적이지 않은 하이퍼시의 구성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1연과 같은 구조로 독자에게 참여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셋째, ‘…………걸, ’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이 부분은 ‘이상 시인’의 시와 소설에서처럼 나른한 권태가 느껴진다. ‘심심함, 나른함, 시시함, 시답잖은, 게으른’ 감정들이 주는 회피적 심리가 잘 드러나고 있다. 현대인의 무관심과 소외의 심리가 잘 드러난다. ‘......걸’이 주는 메시지는 따라서 여러 방향으로 해석된다. 하이퍼시의 ‘제한적이거나 한정적이지 않은’ 기법이다.   4. 3연- 개별적, 독립적, 자립적, 병렬구조의 하이퍼시   2연은 첫째, ‘Epitaph , 8분 38초 동안 숨 막히는,’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Epitaph 음악세계는 하이퍼시의 구조와 같은 심리상태를 지니고 있다. 열정과 광기의 음악으로 ’헤비메탈,고전, 낭만파, 팝송 등‘ 다양한 음악 갈래를 병렬적 구조로 조합한 음악이며 열정과 소외, 우울과 집착 등 여러 복합적 현대인의 ’숨막히는‘ 불안한 정신구조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분열과 소외 중에서도 열정과 광기의 예술세계가 주는 희열과 집중은 관객을 열광시켰다. 하이퍼시도 병렬적 구조로 각 연들은 개별적이며 독립적이다. 사물시의 특징인 객관화된 문장은 과학적이다. 미술의 초현실주의 작품과 비슷하다. 둘째, ‘그럼에도 사는, ’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Epitaph 음악은 개인의 소통부재, 인터넷과 미디어와 소통하며 사는 소외된 현대인의 정신분열과 우울을 잘 대표하는 음악이다. 하이퍼시도 모든 연들은 독립적이며 자립적이다. 행과 단어도 서로 충돌하며 자립적이다. 병렬적이고 대등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살’고 있는 개인의 우울한 모습이 현대적이다. 셋째, ‘ , , , 걸,’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한정적이지 않은 하이퍼시적인 문장이다. ‘, , , 걸’은 현대적 문장이다. 짐짓 아닌 척하는 시적 기교다. 이런 표현은 전체와 부분을 모두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있다. 시니컬하며, 방관적이며, 회피적 문장이다. 한정적이거나 제한적이지 않은 하이퍼시의 구조를 단 한 단어인 ‘, , , 걸’이라는 낱말은 니힐리즘의 대표어다.     5. 결론   이낙봉 시의 특징은 제한적이거나 한정적이지 않은 하이퍼시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1연, 2연, 3연에서 보여주는 각각의 독립된 하이퍼시는 무의미 문장과 무의미 단어들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시답잖은/ 시답지 않은’ 제목부터 주장적이지 않고, 제한적이지 않으며, 착한 문장이다. 겸손한 문장이다. 주제를 주장하지 않지만, 그 내용은 날카롭게 현대문명과 현대인의 소외와 불안, 갈등을 첨예하게 논문처럼 주장하고 있다-행간 뒤에, 문장과 단어, 도표 뒤에 숨겨 두고 있다. 시인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소외와 단절, 회피의 고독한 시대에도 하이퍼 시인들은 그 작품으로 문예사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외국어로 번역되어도 손상받지 않는 것도 하이퍼시의 특징이다. 객관화된 문장으로, 질 높은 하이퍼시 작품을 생산하여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기를 기대한다.    
3    [스크랩] 잃어버린 시인을 찾아서- 박항식 시인편/ 이선 / 가온문학 2016년 겨울호연재 댓글:  조회:1560  추천:0  2018-12-28
8月       박항식         봉선화 고 빨강 꽃 속에 8月이 들어 있다.   콩콩 찧어 물들이면 빨강 8月이 손톱에 옮아 온다.   눈동자 푸른 바닷가에서 빨강 모자를 쓰고 웃는 少女―   ―손톱이 자라면 차츰 8月이 밀려 가겠지만   나직한 歲月을 등에 지고 기대어 생각노라면   해가 갈수록 짙어지는 기억 속으로 손톱을 물들이며 빨강 8月이 온다.                   한국시단의 모더니즘 운동의 선구적 이미지스트 ― 박항식의 재조명     이 선(시인)     1. 서론   한국 시단의 모더니즘 운동의 대표적인 유미주의적 이미지스트는 정지용과 김광균이다. 그런데 한국시단에 알려지지 않은 이미지스트 시인으로 동시대를 살다 간, 남원 출신의 박항식 시인이 있다.   「8월」은 박항식의 대표적 이미지 시로서, 김광균의 「추일서정」이나 정지용의 「유리창」과 대비될 작품이다. 박항식의 시를 중앙문단에 소개하면서, 박항식의 이미지 시의 특징을 김광균, 정지용 시와 대조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2. 김광균의 이미지 시의 구조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은 도회적 감각과 서구적 세련미가 있다. 「설야(雪夜)」, 「와사등(瓦斯燈)」, 「외인촌(外人村)」, 「데생」 등의 작품에서도 선명한 이미지 시로서의 고른 작품성을 보여준다. 1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2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3 도룬 시의 가을을 생각게 한다. 4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5 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6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7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8 포플라나무의 근골 사이로 9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10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11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12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13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14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15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16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 「추일서정」 전문   「추일서정」은 ‘낙엽’을 중심으로 한, ‘추락 이미지’와 ‘소멸 이미지’, ‘하강 이미지’를 각 시행 전체에서 골고루 보여준다. ‘낙엽이 떨어진다’라는 단순한 명제에서 시는 출발한다. 각 행들은 낙엽의 ‘하강 이미지’ ‘소멸 이미지’ ‘추락 이미지’의 동사와 형용사를 사용하고 있다. 는 표현을 눈여겨보자. 모두 낙엽의 ‘사라진다’는 ‘소멸 이미지’와 ‘추락 이미지’ ‘하강 이미지’를 가진 용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 각 시행의 명사나 주어들은 어떤 이미지 역할을 할까?  는 표현을 눈여겨 보자. 모두 낙엽의 ‘소멸 이미지’를 가진 단어와 표현이다. ‘떨어진다’는 낙엽의 이미지에서 파생된 이미지를 담고 있다. 각 행마다 철저히 계산된 낙엽과 치환되는 단어, ‘소멸 이미지’와 ‘하강 이미지’의 사물을 다양하고 적절하게 배치하였다. 각각의 사물들은 포물선을 그리며 사라진다. 낙엽의 ‘날아간다’와 ‘떨어진다’와 ‘사라진다’는 이미지를 차용한 이러한 표현은 정지된 시에 운동감을 준다. 시를 흔들어 주며 정서를 환기시킨다. 낙엽의 ‘소멸 이미지’와 ‘하강 이미지’를 표현하는 문장들은 어떤 표현이 있을까?  부분을 눈여겨 보자.각 문장들은 다른 사물을 차용하였지만, ‘사라진다’ ‘풀어진다’ ‘나부낀다’ ‘기울어진다’ ‘잠긴다’는 ‘소멸 이미지’ ‘하강 이미지’의 동사를 내포하고 있다. ‘낙엽’의 ‘떨어진다’는 이미지를 붙잡고 여러 형태의 공감각적 이미지의 합일을 보여준다. 6, 9, 11행  부분은 현대문명에 대한 반항과 부정, ‘소멸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닉하게도 ‘연기, 지붕, 구름’의 연상 이미지는 ‘둥둥 뜬다’라는 ‘상승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시에 ‘운동감’을 주며 시를 처지지 않게 받쳐준다. 그러나 12-14행 에서는 다시 부정적 추락과 쇠락의 ’하강 이미지‘로 변환하고 있다. 5, 7, 11, 16행  부분에서도 ‘하강 이미지’가 있다. 무거운 주제를 감각적으로 가볍게 그림을 그리듯 가볍게 터치하고 있다. 다양한 은유는 내용과 주제의식, 시대 상황까지 유의미한 진정성을 심어준다. 시는 역사와 사람을 대변한다. 욕구불만시대의 지성은 나라를 잃고 좌절하였다. 해방을 맞았지만, 남북분단과 강대국의 지배라는 혼란에 휩싸인다. 시인의 박제된 지성과 역사의식, 문명에 대한 불안감이 잘 표출된 작품이다.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 라는 표현은 절박하고 급박한 실존적 반항과 행동주의가 투영되어 있다. 김광균은 「추일서정」 에서 교과서적 표현주의 이미지 문학의 외형적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지는 가볍다, ‘단어 합성’의 기술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시다, 위의 시는 현란한 기교주의, 표현주의 시의 감각적 미의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3. 정지용의 이미지 시의 구조   정지용의 「유리창」은 또 다른 독특한 이미지와 심상을 보여준다.   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2 열 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3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4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5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6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7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8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9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10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 정지용, 「유리창」 전문   정지용의 대표시 「유리창」은 김광균의 「추일서정」이나, 박항식의 「8月」과는 다른 이미지의 시다. 1행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객관적 상관물을 차용한 화자의 심상이 압축된 객관화가 완성된 표현이다. ‘유리’라는 사물에 화자의 마음을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라고 담아놓았다. 3행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나, 5~6행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부분의 선명한 이미지를 주목하여 보자. 「유리창」은 고요한 서정이 내밀하게 압축되어 있다. 7-8행  부분의 내면적 고요의 관조적 심상에 집중하여 보자. 승화된 슬픔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정지용의 「유리창」은 기교가 찬란한 이미지 시가 아니다. 모든 이미지와 수사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시의 기조는 조용하고 단정하다. 아니, 억압이 느껴질 정도로 정숙하다. 냉철한 이성이 폭발적 슬픔을 억압한다. 절제의 미학이다. 그래서 더욱 절절하다. 이 시는 사물인 ‘유리창’과 사물의 마음인 화자가 ‘산새가 되어 날아간, 너’에게 내밀하게 ‘말 걸기’를 한다. ‘너’에게 속삭이는 심상의 편지다. 화자의 독백적 고백록이다. 이미지 시지만, 언어유희라고 느껴지는 구절이 없다. 각각의 시행은 ‘슬프다’ ‘외롭다’ 라는 단어를 관통한다. 시와 시인이 먼저 감상에 빠지면 안 된다. 감정의 절제를 보여주어야 한다. 「유리창」은 심상의 진정성이, 독자를 압도하여 공감을 이끌어낸다. 정지용은 찬란한 슬픔을 완성하는 마력의 이미지스트다. 4. 박항식의 이미지 시의 구조   (1) 박항식 소개   박항식 시인은 1917~1989년까지 생존한 남원 출신 시인으로 한국적 정한을 이미지로 선명하게 표현한 시인이다. 1949년 한성일보 신춘문예 시 『눈』 당선,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文藏臺』 당선. 1946년 시집 『白沙場』(1946, 삼덕문화사), 1959년 시집 『流域』(삼덕문화사), 1976년 시조집 『老姑壇』, 1981년 시집 『方壺山 구룸』을 발간하였으며, 원광대에서 시인을 양성한 교육자다. 박항식의 대표시 「8월」은 김광균과 정지용의 이미지 시와 어떻게 다를까? 어떤 구조적 차이와 내용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을까?   「8월」은 전통적 이미지 시의 전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의 효과는 위에 소개한 김광균, 정지용의 시와 전혀 다르다. 그 이유는 첫째, 민족적 정한의 상징인 ‘봉선화’를 제재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표현주의는 관념을 배제하며 유미주의를 지향한다. 이미지 시의 문제점은 화려한 기교주의로 인한 내용과 주제의 결핍인데 그 문제점을 박항식 시는 거뜬히 해결하였다. ‘봉선화’는 가장 한국적 정한의 ‘집단무의식’을 대표한다. 한국적 집단무의식은 참고 견디는 인고다. 봉선화는 일제 강점기에 애국가처럼 불렸다. 무언의 항변이며 데모였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구슬프게 부를수록 효과적이다. 시골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보는 봉선화, 화려하고 아름다운 봉선화, 낙화가 더 아름다운 봉선화, 손톱에 꽃물을 들여 겨울까지 견디는 봉선화. 봉선화는 민족의 눈물이요, 카타르시스다. 봉선화는 한국인의 정서적, 정신적 지주였다. 시골마을의 상징이면서― 서울로 시집간 순이, 서울로 돈 벌러 공장에 간 순이, 서울 술집에 팔려간 순이를 상징한다. 또한 아직도 그리운 고향, 어머니, 장독대의 상징이다. 둘째, 위의 시의 완성도는 제목 때문이다. 「8월」은 시간 이미지를 내포한 현대적 감각의 초현실주의적 제목이다. 아마도 시창작 초보자라면 위 시의 제목을 「봉선화」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시가 제한적이며 한계성을 갖게 된다. 「8월」이라는 제목은 시원하다. 여유와 유연함이 있는 확장된 제목이다. (2) 「8월」의 이미지 구조   그러면 「8월」 시가 갖는 구조적 매력은 무엇일까? 아래 세 가지 측면으로 분류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가) ‘색채 이미지- 빨강’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8월은 선명한 ‘빨강색 이미지’다. 빨강 모자를 쓴 소녀는 곧 봉선화다. 선명한 ‘빨강 이미지’다. 위의 시는 봉선화를 소재로 빨강이라는 ‘색채 이미지’로 「8월」을 구조화하고 있다. 1   나) 「8월」이 상징하는, ‘시간 이미지’ 위의 시에서 모든 연들은 제목 「8월」에 연결되어 있다. 시간이라는 관점으로 각 연이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연― 봉선화 고 빨강 꽃 속에/ 8月이 들어 있다.(시간) 2연― 8月이 손톱에 옮아 온다.(시간) 3연― 눈동자 푸른 바닷가에서(장소인 동시에, 시간― 계절을 명시함) 빨강 모자를 쓰고 웃는 少女(봉선화 이미지) 4연― 손톱이 자라면 차츰/ 8月이 밀려 가겠지만(시간) 5연― 세월을 등에 지고 기대어/ 생각노라면(시간의 경과) 6연― 해가 갈수록 짙어지는 기억 속으로/ 손톱을 물들이며 빨강 8月이 온다. (과거의 현재화, 지난 기억을 현재의 시간으로 소환.)   다) 봉선화- 사물의 관점과 시점에서 본 시의 이미지 구조   「8월」은 사물시로서, 사물의 관점과 시점에서 씌어졌다. 1연: 봉선화― 빨강꽃― 8월(사물의 관점, 사물적 시점) 2연: 봉선화 물들임― 빨강― 8월― 손톱(봉선화 물들이기, 손톱도 사물임. 사실적 사물의 관점과 시점) 3연: 바닷가(시간, 계절)― 빨강모자(봉선화 치환은유)― 소녀(봉선화 이미지)(봉선화의 사물의 관점) 4연: 손톱― 8월(시간의 경과, 사실적 사물의 관점) 5연: 세월(인간의 관점과 시점) 6연: 1행 기억(화자, 또는 시인의 시간적 시점, 인간의 관점) 2행 손톱물― 빨강― 8월(제목과 연결시킴, 봉선화의 사물적 관점과 시점) 위의 시는 사물시로서 사물의 관점에서 씌어졌다. 그러나 2연, 4연, 5연에서 보여주는 ‘세월’ ‘기억’ 등의 단어들은 숨은 인간 화자의 목소리가 엿보인다.   (3) 박항식이 중앙문단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런데 왜 「8月」과 같은 우수한 이미지 시를 쓴 박항식 시인은 중앙문단에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필자는 아래와 같이 몇 가지 관점에서 유추해 보았다. 첫째, 지방시인의 한계성. 중앙문단 진출이 막힘. 학연, 지연, 거리, 발표지면 등. 둘째, 장르적 분산. 교육자, 저자, 시인, 시조시인, 동시작가 등 지필활동이 분산됨. 셋째, 홍보 부족. 서울에서 시집을 출판하지 않고 활동하지 않아서 중앙문단이 모름. 넷째, 평론가와 제자들이 부각시키지 않음. 다섯째, 노년기, 시인 후반기에 시집을 내지 않음.   (4) 박항식의 기타 이미지 시   박항식의 아래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위의 모든 조건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음을 밝혀 둔다. 아래의 이미지즘 시들은 박항식 시의 경계가 다양함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시가 쉽게 독자와 친교할 수 있는 시 세계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둔다. 靑山을 사랑에 눈 뜨게 한 도라지꽃 피었네 청산을 半만 취하게 한 한들한들 도라지꽃 피었네   淸明한 가을날 풀 푸른 내 故鄕 뒷山에 이쁜 固執으로 도라지꽃 피었네 ― 박항식, 「도라지꽃」 전문 * 청산을 반만 취하게 한 → 의인화 * 이쁜 고집으로 도라지꽃 피었네 → 의인화 「도라지꽃」은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단 7행의 짧은 시가 갖는 매력은 김소월의 「산유화」에 비교할 수 있다. 정답고 친절하며 사유적이다. 특히 밑줄 친 부분은 압권이다.  인간과 산, 도라지가 한 공간에서 포옹하고 호흡하는 시다. 「동그라미」처럼 노래로 만들어 불러도 좋은 이쁜 시다.     마음이 서러우면 쏟아지는 눈물 알알이 이슬져 영롱하구나   하늘은 언제나 쪽빛이어도 푸른 잎 푸른 恨을 연상 지녀서…   무성한 구름이 지나가는 날에는 길 잃은 새들이 여기 모여서 가지각색 이야기를 조잘대었다. ― 박항식, 「앵두」 전문 * 쏟아지는 눈물/ 알알이 이슬져 영롱하구나 → 앵두의 시각 이미지 * 무성한 구름이 지나가는 날에는 → 시각적 이미지 「앵두」처럼 그의 시는 달콤하다. 인간과 자연을 품어주는 따뜻함이 묻어난다. 동시를 쓰는 시인의 맑고 순수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바다는 사과처럼 둥그러운 껍데기에 싸여 있습니다 (중략) 사과를 먹은 사람은 그 향기에 볼이 붉어지고 바다를 가는 사람은 그 물감에 눈이 파알해집니다   바다! 바다는 사철 사과처럼 행그럽습니다 ― 박항식, 「바다」에서 * 향기에 볼이 붉어지고 → 후각 이미지를 시각 이미지화 * 물감에 눈이 파알해집니다 → 시각 이미지, 색채 이미지 「바다」는 권태응의 동시 「감자꽃」과 비교되는 시다. 같은 발상에서 시작한 시지만, 내용의 질량이 다르다. 박항식의 「바다」는 동그라미에서 이끌어낸 사유와 철학이 있다. 시의 향기가 시간을 넘어 코끝에 맡아진다. 세상을 위로하는 착한 시다.   해는 西으로 기울어 琉璃窓마다 칸칸이 곱게 크레용을 발라 놓고 ― 박항식, 「송학초등학교 일요일 오후」에서 * 크레용을 발라놓고 → 색채 이미지 곱디 고운 초등학교 교실의 어린이들 모습이 상상되는 색채 이미지 시다.     초록 치마를 입고 섰는 少女 덧없이 흐르는 歲月이지만 빠알간 리본 하나로 푸른 하늘을 온통 꾸미고 섰다. ― 박항식, 「코스모스」에서 * 빠알간 리본 → 색채 이미지 * 하늘을 꾸미고 섰다 → 역발상 역발상 시의 진수다. ‘소녀가 하늘을 꾸미고 섰다’는 새로운 표현은, 거시적 색채 이미지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발랑 발랑 발랑 발랑…… 조랑 조랑 조랑 조랑…… ― 박항식, 「포플라·Ⅰ」 * 발랑 발랑 발랑 발랑/ 조랑 조랑 조랑 조랑 → 시각 이미지/ 운동감 양면이 다른 미루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팔랑이는 모습을, 이토록 귀엽고 명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발랑 발랑, 조랑 조랑 귀여운 의태어가 압권이다.   베짜는 소리 한창 들려 오는 날   나무는 고깔을 쓰고 합창을 했다. ― 박항식, 「살구꽃」 * 합창 → ‘살구꽃’의 청각 이미지 살구꽃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그 진한 향기와 팝콘처럼 닥지닥지 붙은 하얀꽃을. 꽃들이 합창을 한다면, 온 동네에 향기가 진동할 것이다.     항상 끄트머리로부터 처음이 온다는 號外의 방울소리 ― 「아침」 * 방울소리 → ‘아침’의 청각 이미지 사유가 있는 한 문장의 짧은 시로 처음부터 창작하였으면 한다. 이 한 문장으로 완성된 시다. 아침의 청각 이미지가 청량하다.   5. 결론   「8月」과 함께 한국의 중앙문단에 알려지지 않은 박항식의 이미지 시 몇 편을 소개하였다. 또한 과거의 작품을 통한 현재적 관점에서, 박항식 시인의 위치와 문학적 가치를 평가하여 보았다. 박항식 시의 한국적 서정이 잘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김광균, 정지용과 함께 박항식을 새로운 이미지스트 시인으로 인정하는, 문학적 재평가의 장이 열리기를 바란다.          
2    [스크랩] 김백겸 <기호의 고고학> 시집 서평- 이선 댓글:  조회:1203  추천:0  2018-12-28
신화적 서사, 강렬한 엑스터시의 예언서  ― 김백겸의 시세계 ―                                                                                        이 선(시인)       1. 3박자, 트라이앵글 시 구조      시는 ‘언어로 그린 그림’이다.   ‘상징’과 ‘직관’의 숲속을 산책하다가, 젖가슴과 배꼽을 드러낸 원색의 아름다운 아프리카 여인을 만났다. 그 눈은 하늘로부터‘예언서’를 받아 읽는 수도승처럼 경건한 깨달음을 담고 있다.   김백겸의 시집 『기호의 고고학』은, 고갱의 그림「세 명의 타히티인」속에 나오는 세 사람의 남자와 여자처럼 원색의 그림을 그린다. 직선적이고 원시적 생명성을 느끼게 하는 ‘그녀’는 대담하게 옷을 벗어던졌다. 시도 옷을 벗었다. 고갱의 그림에 김백겸의 시를 대입해 보자. 뒤돌아보는 왼쪽과 오른쪽, 두 여인 사이에서, 남자는 벌거벗은 등을 보이며 무심하게 앞쪽을 바라보고 있다.(어깨를 조금 웅크린 채 걸어가는 현대문명.)   왼쪽 여인은 한쪽 어깨를 드러낸 빨간 드레스를 입고, 황홀한 눈빛으로 뒤를 돌아본다. 갸름한 얼굴과 입술이 섹시하고 관능적이다.(오, 김백겸이 반한 아름다운 고대 잉카문명과 아즈테문명, 그리스문화.)   오른쪽 여자는 하얀색 라바라바 치마만 걸친 채, 수줍게 젖꼭지를 드러내고 있다. 젖가슴을 감싼, 경건한 두 손은 꽃다발을 들고 있다. 강렬한 검은 눈은, 남자와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려 아래쪽으로 시선을 응시한다. 강한 턱선이 의지적이다.(종교의식- 그리스신화와 중세 기독교, 샤머니즘.)                                      고갱       3부로 된 김백겸의 시의 구조를 살펴보자.   고갱의 그림 속 세 사람은 배경까지 세 명의 인물이 균등하게 클로즈업되어 있다. 김백겸의 시도 고갱의 그림처럼 원근법을 무시한 채 과감하고 삭제된 선은‘고대문명’과‘종교’와‘현대문명’을 한 직선으로 트라이앵글 구조로 연결한다.   그의 시집에서 3부로 나눈 배치를 주목하여 보자.‘3’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3은 분류되지 않는 ‘트라이앵글’구조다. 한국의 노래처럼 3박자는 균형이다. 산만하지 않고 통합적이다. ‘고대, 중세, 현대’가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클로업되고 문명비평 되었다. 사람(문명)과 자연(원시)과 신, 감성과 상상력과 재해석, 이, 강렬하고 원색적으로 자기주장을 한다. 신화와 시인 개인의 서정까지 삽입하여 ‘인물’과‘배경’과 ‘정서’3 구조로 3등분하여 배합하고 있다.     2. 신화적 서사, 강렬한 엑스터시의 예언서      미술의 구성요법처럼 그리스신화와 성경, 불경, 샤머니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용어와 경전에 기록된 사건들이 시의 행간을 구성하고 있다. 김백겸의 시는 거대 신화적 구조와 패턴을 가지고 있다. 또한 현대문명에서 직관적으로 문명신화를 만들어서 대담하게 철학적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시인의 시는 신화적 서사와 강렬한 예언적 엑스터시를 담고 있다.‘신화적 구조’와 ‘시적 상상력’, ‘철학적 직관’이 박학다식한 시인의 지식을 증언한다.       유전자정보의 집합인 게놈은 뱀 두 마리가 서로 몸 을 꼬아서 올라간 쌍두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고대 수메르’의 印章에는 교접하는 쌍두사의 형 상인 뱀신‘닝기쉬즈다’가 있습니다   헤르메스가 사용한 쌍두사의 ‘카두케우스’ 지팡이 와 모세의 권능을 수행한 청동 뱀의 지팡이도 있군요   아즈텍의 깃털달린 뱀 신‘케찰코아틀’은 위대한 쌍둥이로도 불렸고 죽음을 통해 부활하는 힘의 기원 이었습니다   생명나무가 있던 에덴동산에는 고대의 뱀이 있어서 이브에게 선악의 지혜를 가르쳤습니다.   아마존의 샤먼들은 지금도 엑스타시에 젖은 채 환 상 속의 뱀으로부터 식물과 약초의 지혜를 전수받는 다고 합니다     딴뜨라 행자인 요기들은 호흡으로 미저골 아래 잠 자는 뱀의 기운 ‘쿤달리니’를 일깨워 머리를 들게 합 니다   불의 요가와 꿈의 요가와 빛의 요가가 이‘생명의 나무’인 척추를 거꾸로 올라가는 기술입니다   태양과 달의 기운으로 일곱 개의 차크라를 각성시 킨 쿤달리니는 요기의 정수리에서‘천 개의 꽃잎으로 피어난 연꽃’을 각성시켜 요기의 영혼을 불사에 이르 게 합니다   (중략)  그들은 환각식물이나 엑스타시의 힘으로 유전자에 숨어있는 생명의 프로그램을 엿본 해커였을까요                 ―「생명나무와 뱀」부분     위의 시는 강렬한 엑스터시를 보여주며 신성시되거나 금기시되는‘뱀’을 조명하고 있다. 「생명나무와 뱀」은 뱀을 거대 문명집단으로 나눠서 연대기를 세워 시대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로 이어지는 ‘뱀 문화사’를 읽는 것 같다. 뱀이 주는 흥미와 무서움이 관능을 자극한다. 김백겸 시의 한 특징은 라는 시 구조를 지닌다. 영웅서사시처럼, 거대 역사를 한 줄로 짧게 해석적 시각으로 요약한다. 문명숭배의 ‘대상’인‘뱀’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관심을 받는 영적 존재이다.   3. 기호의 고고학-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신약전서 요한복음 1장 1절에는‘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말씀이 하나님이라면, 말씀은 창조자요, 알파와 오메가다. 기존에 존재하던‘식물’에 자기 이름을 붙이고 인간은 창조자 행세를 한다. 기존에 존재하는 말을 찾아서 정렬하고 시인은‘시’창작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다’는 문장처럼 말씀과 사물이 한 몸이었던 행복한 시대의 말이 있었 다   에덴으로부터 지상으로 내던져진 말들은 흙으로 돌 아가야 하는 아담의 몸처럼 썩고 부서지는 낙엽의 운 명이 되었다   말들이 인간의 의식에서 태어났으나 대양으로 흐르 는 시간의 강에 뜬 물살의 거품이었다   말들은 심연으로부터 솟구친 바위 같은 세계 풍경 에 걸리며 인간의식에 굴곡과 무늬를 만들어 냈다     아라베스크 문양의 회교사원처럼   사각형과 원이 중첩된 티벳만다라처럼   말과 말이 결승문자처럼 얽힌 만화경이 문명이었다   말의 역사 속에서 상징의 피라미드, 은유의 크레타 미궁, 이미지의 알렉산드리아가 세워졌다가 무너졌다     인간의 생각들이 말의 요람에서 태어나 말들의 무 덤에서 죽었다   제도와 법률과 화폐와 인간이 프로그램한 모든 도 구들이 부장품처럼 묻혔다   인류의 의식은 흙의 잠속에서 도서관의 책들과 박 물관의 미아라 같은 말의 꿈을 꾼다   죽은 생각들이 진시황의 병마총처럼 묻혀 드라큐라 의 수혈 같은 재생의 시간을 갈구한다   나는 독자들을 비경秘境으로 안내하는 헤르메스처럼 지도와 랜턴을 준비해서 캄캄한 흙의 시간으로 내려가 문명의 모든 기억을 들여다 본다      ―「기호의 고고학」전문     김백겸은 도식을 세우고, 태초부터 존재한 ‘말’에 집중한다.       말의 역사 속에서 상징의 피라미드, 은유의 크레타미    궁,     이미지의 알렉산드리아가 세워졌다가 무너졌다(2연 4-5행)       인류의 의식은 흙의 잠속에서 도서관의 책들과 박    물관의 미이라 같은 말의 꿈을 꾼다     죽은 생각들이 진시황의 병마총처럼 묻혀 드라큐라    의 수혈 같은 재생의 시간을 갈구한다(3연 5-8행)     문명의 역사는‘말’로부터 시작하고,‘시’의 역사는‘문자’로부터 시작하였다. 시인은 ‘박물관의 미이라’인 죽은 지식에 ‘수혈’을 하여 생명을‘재생’시킨다. 고고학자와 사학자가 가치없다고 판단하여 버려지고, 잊혀진‘문명의 모든 기억을 들여다 본다’( 본 시의 끝행). 헌 ‘사물’에 ‘상징, 은유, 이미지’의 옷을 입혀 새 생명을 낳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침묵은 ‘금’이라고 정의한 시대에도 ‘말’을 늘어놓는‘시의 향연’을 자축하며 축배를 든다. 또한 시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4. 우주와 자연숭배의 불교적 자기 구원관     아래 시를 읽으면 니이체의 가 연상된다. 누군가는 ‘호메로스’나 분노하는‘하나님’을 연상할 수도 있겠다. 영웅의 대 나 를 읽는 것 같은 힘을 느낄 것이다. 스스로 침묵의 언어인‘문자’로 외치는 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화살이 신호로 날아가면 비구들은 모두 화살을 쏘 아라   전생을 향해 화살이 날아가면 전생이 죽어야하고 후생을 향해 화살이 날아가면 후생이 죽어야 하고 부처 를 향해 화살이 날아가면 부처가 죽어야 하느니   향전響箭이 날아가는데도 머뭇거리고 발심發心을 못 하는 자는 그 손목을 자르리라   용맹 정진한 비구가 드디어 갑옷 입고 칼을 찬 아라 한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내 마음의 힘에 대하여 경전들이 말했네   육도의 윤회가 내 마음을 진흙탕으로 밀어 넣을 수 도 없고   삼세의 열반이 내 마음을 연꽃처럼 피어나게 할 수 도 없다고   들꽃처럼 피었다가 뱀허물처럼 몸을 바꾸는 세계의 변신이 불멸하는 내 마음이라고   마음은 침묵의 노래를 부르고 초끈 에너지들은 춤 추네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는 비로자나불이 패션모 델처럼 걸어가네     나는 벤치에 앉아 별빛이 바위처럼 굳어가는 침묵 의 소리를 듣네   내 심장의 눈이 메두사처럼 빛나고 사물들은 이집 트 무덤의 벽화처럼 영원 속의 순간에 갇혀있네   9월의 저녁, 내 머리칼이 실뱀처럼 울부짖는 기운 을 느끼면서 나는 어두운 힘의 한가운데 밤의 수행자 처럼 앉아 있네     하늘에는 천억 개의 은하성단이 그린 도솔천의 세 상이 떠 있고 지상에는 가로등이 밝힌 인간의 문명이 꽃밭처럼 펼쳐있네     ―「선禪의 궁수는 화살을 쏘지 않는다」전문     김백겸 시집은 3부로 나누어 각각의 시를 편집하였다. 그러나 라는 이름을 붙인‘장시’라고 새로이 분류하고자 한다. 로 우렁차게 외치는, 시인이 말하고 싶은 인생의 근원적 본질적인 질문은 무엇일까? 질문하며 곧 자신이 대답하고 있다.   그 근원에는‘내 마음의 힘에 대하여 경전들이 말했네’(2연 1행)라고 시인이 고백하듯이, 경전에 철학적 기초를 두고 있다. 기독교와 불교, 그리스신화, 잉카력까지 동원하여 얻은 결론은 위의 시‘2연’에 압축되어 있다. 니이체의‘초인주의’의 영웅이 되어 얻은 결론은‘세계의 변신이 불멸하는 내 마음’이라고 노래하며, 자아의 세계화를 구원관으로 제시하고 있다.‘육도의 윤회’도‘영웅’을 더럽게 패배로 이끌 수 없고,‘삼세의 열반’도 구원을 보장하지 못한다.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는 비로자나불’은 이 영웅의 ‘중심’이며 ‘진리’다. ‘내 머리칼이 실뱀처럼 울부짖는 기운을 느끼’는 삼손의 마력의 힘을 지닌 영웅은‘하늘에는 천억 개의 은하성단’과 ‘지상에는 가로등이 밝힌 인간의 문명이 꽃밭처럼 펼쳐졌네’라고 노래하며 꿈과 현실을 이성으로 직관한다. ‘구운몽’의 일장춘몽처럼 고대에서 현대까지,    ‘오십억년의 긴  잠을 잤습니다’    ‘심십 억년의 긴 꿈을 꾸었습니다’(「검은 에너지의 열두 폭 병풍」중에서)     고정관념은 화살을 쏘아 모두 죽여 버리고, 다시 태어난 인‘초인’의 방대한 예언서를 구도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5. 감각적 미의식과 서정성     「고양이 눈 속의 고양이」일부를 살펴보자.     ‘너와 나는 그렇게 작별했지/ 이상한 연인의 비상한 감정으로 헤어졌지/ 저녁이 오자 캄캄해진 숲/ 길들이 모두 어둠에 지워져 함정이 된 숲’   ‘검은 구름 사이로 저녁 흰 달이 고양이 눈처럼 나를/ 바라보자 나는 알아차렸네/ 고양이 눈 속에서 나는 고양이였음을/ 고양이는 내가 죽으면 다음 세상으로 안내할 영혼/의 친구였음을’     강한 근육과 힘을 자랑하는‘권력자’의 모습, 그러나 그 내면에는 모든 인간의 구원을 책임지고 보호하는 자의‘배려’와‘약함’이라는‘서정성’이 숨어 있다. 김백겸의 시는 솔직하고 강하며 세밀하다. 원시적 영감과 예언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영웅’이 숨어 있다. 독자의 구원의 조건으로‘얼마나 김백겸의 시를 읽어내는가?’를 과제로 제시한다.     6, 김백겸 시의 과제     김백겸의 신작시집『기호의 고고학』은, 3부로 나누어진 각각 다른 시지만, 장시처럼 한 연결고리로 읽힌다. 과 라는 코드로 거꾸로 읽는 영웅 대 서사시다.  시인의 시에는 와 가 공존한다. 고정관념이 옷을 벗는다. 재해석된 철학은 대담하고 가식이 없다.  김백겸의 시는 외국어로 번역되었을 때 한국의 어느 시인의 시보다도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객관화된 언어표현과 역사를 관통하는 직관의 눈, 철학적 재해석이 있는 사유는, 의성어와 의태어라는 신비의 언어의 숲에 가려졌던 서정시의 그림자를 벗겨내었다.     고대 캄브리아기와 창세기.   잉카문명과 아즈텍문명,   그리스신화의 여신 가이아와 무령왕.   노아의 홍수와 여미지 식물원.   UFO, 에로스, 파라다이스, 현대문명.    무령왕릉, 여미지식물원, 고인돌.   김백겸 시의 확장된 지식공간은‘역사서, 인류고고학, 문명종교학, 비교종교학’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방대한 지식의 양과 명쾌한 직관과 철학적 해석은, 독자의 오래된 질문에 시원한 해답을 제시할 것이다.    김백겸의 시는 칼릴 지브란의 철학시처럼 신화적 확장된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문장은 냉정하고 이성적이며, 객관화되었다. 고대문명과 현대문명에 대한 철학적 해석으로 유일성을 획득하고 있다. 상상력과 감성적 서정성을 가지고 있다. 그 문장은 일기장을 훔쳐본 것처럼 솔직하고 고백적이다. 박학다식한 주의주장은 프로이드가 주장한 방어기제를 충분히 예술로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시의 조건은 아래와 같다.   첫째, 외국어로 번역하였을 때 객관화되어야 한다.   둘째, 상상력의 수평이동과 수직이동이 있으며, 감성적 서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셋째, 새로운 철학이 있어야 한다.   넷째, 새로운 표현과 디자인, 시창작 방법론을 주장하며‘자기 이름을 붙인 상표’로 재탄생해야 한다.   다섯째, 신화적 스케일과 재해석된 현대문명 해석이 필요하다.   여섯째, 예술의 3대 요소인 유일성, 창의성, 철학성이 있어야 한다.   일곱째, 번역으로 반감된 ‘언어의 감각적 미의식’을 배제하더라도 작품성이 빼어나야 한다.   전 세계인이 모두 한국어를 사랑하고 모국어처럼 말하는 그날까지, 한국 시인의‘세계화’를 향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시는 그 나라의 정신이며 생명이다. 문화는 경쟁력을 가진 국력이다. 한국어의 아름다운 운율을 살린 의성어, 의태어, 음보율은 외국어로 번역할 때 그 효과를 살릴 수 없다. 그렇다면 디자인, 내용, 철학으로 노벨상에 도전해야 한다. 김백겸의 시에서 노벨상을 향한 스케일과 내용, 철학, 표현과 시원한 자유를 발견하였다. *  
1    2017년 가온문학 여름호/ 정성수- 사기꾼 이야기/ 평론 이선 댓글:  조회:1486  추천:0  2018-12-28
사기꾼 이야기       정 성 수                  한평생 나는 사기를 쳤네             언제나 추운 앞마당 내다보며             보아라, 눈부신 봄날이 저어기 오고 있지 않느냐고             눈이 큰 아내에게 딸에게 아들에게             슬픈 표정도 없이 사기를 쳤네               식구들은 늘 처음인 것처럼             깨끗한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고             먼지 낀 형광등 아래 잠을 청했지               다음날 나는 다시 속삭였네             내일 아침엔 정말로 봄이 오고야 말 거라고             저 아득히 눈보라치는 언덕을 넘어서             흩어진 머리 위에 향기로운 화관을 쓰고             푸른 채찍 휘날리며 달려올 거라고             귓바퀴 속으로 이미             봄의 말발굽 소리가 울려오지 않느냐고               앞마당에선 여전히 바람 불고             눈이 내렸다               허공에 흰 머리카락 반짝이며 아내는 늙어가고             까르르 까르르 웃던 아이들은           아무 소문도 없이 어른이 되고               종착역 알리는 저녁 열차의 신호음을 들으며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한다, 나는 오늘도             일그러진 담장 밑에 백일홍 꽃씨를 심고             대문 밖 가리키며                          보아라, 저어기 따뜻한 봄날이             오고 있지 않느냐고             바람난 처녀보다 날렵한 몸짓으로 달려오지 않느냐고             갈라진 목소리로 사기를 친다             내 생애 마지막 예언처럼.      「사기꾼 이야기」 의 시적 아이러니와 역설   이 선         정성수의 「사기꾼 이야기」는 각각의 연들이 보여주는 시적 아이러니와 역설의 문장들이 감동적인 가난한 사기꾼(?) 아버지의 이야기다. 사기의 내용은 ‘봄이 온다고 가족들에게 사기를 쳤다’이다. 제목과 연관시켜보면, 이 시의 중심어는 ‘봄이 온다’이다. 그러므로 위의 시의 1-7연의 각 연들은 사기의 구체적인 내용이 될 것이 분명하다. ‘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처럼 ‘시인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처럼 시인이 꿈꾸는 비현실적인 세계의 이상주의와 몽환적 환상주의를 나긋나긋, 비애적인 목소리로 ‘보여주기’하고 있다. 그런데 시를 읽다보면 ‘사기꾼’이 맞기는 한데, 아이러니하고 역설적이게도 진정성 있는 한국의‘아버지상’과 직면하게 된다. 시인이 미리 장치한 ‘아이러니와 역설’의 시적 기교 장치 때문이다.   시인은 꿈꾸는 이상주의자다. 플라톤 시대부터 ‘시인 추방론’이 있었던 것을 보면 시인은 ‘비현실적 사회부적응’ 인간형이 분명하다. 시인은 현존하는 자신의 주변의 실제적인 ‘현실 밀착형 인간’보다, ‘먼 거리’에 존재하고 있는 자연과 더 긴밀하게 소통한다. ―꽃과 나무, 구름과 바다, 돌과 별 등 자신에게 말로 직접적 비난이나 거부를 보이지 않는 자연과 더 긴밀히 소통하며 친애적인 경향이 강하다. 「사기꾼 이야기」는 식물이 태양을 향해 나뭇가지를 뻗듯, 식물성 유전자를 가진 가난한 아버지의 거부당한 꿈을 이야기한다. 시인의 뇌와 감각들은 예민하고 촉수가 가늘고 길다. 태양의 후예라기보다는, 달과 별과 구름의 DNA를 유전적으로 상속받은 혼외자식처럼. 그러므로 위의 시의 화자인 ‘아버지’도 인간과 생활,의식주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가난은 시인의 필연성일 터. 투쟁적이며, 경제관념이 투철한 태양의 후예들과는 달리, 시인의 감각에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시의 자질이 형성되어 있다. 시는 ‘자유’와의 숨바꼭질이다.   위의 시 1-7연에서는 ‘아이러니와 역설’기법이 병렬적이며 반복적으로 보여주기 하고 있다. 위의 시에서 정성수가 제시하고 있는 ‘아버지상’은 슬픈 소외자의 음성을 지녔지만, 실은 역설적으로 현실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인내하는 한국의 아버지상이다. 시적 화자인 ‘아버지’는 ‘사기꾼’이라고 자신을 지목하여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 어조는 비애적이지만, 그 목소리는 당당하다. 1연을 살펴보자. 1연 1행은 ‘한평생 나는 사기를 쳤네’라고 자신을 시니컬하게 고발한다. 시적 긴장감이 고조되며 궁금증을 유발한다.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화두를 던지며 야심차게 시에 접근한다. ‘사기꾼’이라는 자기고발은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그런데 사기의 내용을 보니 죄로 인정하고 감옥에 넣기는 애매하다. 긴장감이 풀어지며 ‘어디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자, 흠’ 내심 작품 속으로 빠져든다. 그 대답은 ‘보아라, 눈부신 봄날이 저어기 오고 있지 않느냐고’(1연 3행)라며 사기의 진상을 밝힌다. 죄의 지목은 현장성과 피해정도가 객관적으로 측정될 때 부가되는 것인데, 정성수의 사기죄는 성립이 애매모호하다. 오히려 사기꾼이라고 비난받기보다는, 가난 중에도 ‘꿈과 이상, 희망’을 잃지 않는 칭찬받아야 할 덕목으로 보인다. 아이러니 기법의 진수를 보여주는 날렵한 표현이다. 1연 4행― ‘눈이 큰 아내에게 딸에게 아들에게’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눈이 큰 사람은 겁이 많으며 마음이 약할 것 같다. 생활비를 벌어다 주지 않아도 바가지를 긁거나 원망의 말을 하지 않을 것 같다. 또 시인은 그런 아내와 딸, 아들의 약점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식구들이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슬픈 표정도 없이 사기를 쳤네’(1연 5행) 부분에서도 ‘아이러니와 역설’ 기법이 실현되어 있다. 사실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는데 슬프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사기꾼은 늘 말로 상대의 마음을 바꾸는 말기술자다. 굳이‘슬픈 표정도 없이 사기를 쳤네’라고 자기성토를 할 필요는 없다. 굳이 그 말을 하는 이유가 바로 아이러니 기법의 표현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보여주는 반어적인 표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와 같은 ‘반어적 표현’이 아이러니의 기본 조건이다. 위의 시의 어조는 반성적이며, 고백적이며, 애조적이다. 그 부분들이 이 시를 해석할 때 반어적으로 작용하게 한다. ‘식구들은 늘 처음인 것처럼/ 깨끗한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고/ 먼지 낀 형광등 아래 잠을 청했지/(2연 1-3행)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가난한 60-70년대 풍경이 그려진다. 아내는 가난한 밥상을 물리고, 아이들은 후줄근한 이불을 차내며 곤히 잠을 자고 있다. 배부르게 먹지 못한 아내와 아이들의 볼은 창백할 터. 2연을 읽으면 독자는 아버지를 사기꾼이라고 질타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수용을 하게 된다. 가난이 부끄럽지 않은 시절의 기억을 한국인은 누구나 배경처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키며. 가난한 아버지를 향한 불만을 표출하거나 고발하지 않는, 그때 그 시절 아내와 아이들은 착했다. 3연에서는 ‘다음날 나는 다시 속삭였네/ 저 아득히 눈보라치는 언덕을 넘어서/ 흩어진 머리 위에 향기로운 화관을 쓰고/ 푸른 채찍 휘날리며 달려올 거라고’(3연 1-4행) ‘향기로운 화관’과 ‘푸른 채찍’의 이미지는 백마 타고 오는 왕자의 이미지다. 봄날의 희망을 왕자의 이미지로 바꾸며 3연에서는 다시 아이러니 기법을 쓰고 있다. 슬픈 이야기인데, 울고 싶은 이야기인데 지고지순 아름답다. ‘봄이 온다고’ 약속하는 가장의 거짓말 사기극은, 가난을 부끄러움 없이 숭상하던 계절의 인생관이며 순애보다. 그 시절의 아버지들의 아름다운 약속이며 꿈이다. ‘귓바퀴 속으로 이미/ 봄의 말발굽소리가 울려오지 않느냐고’(3연 4-5행)는 다시 아름다운 사기 약속으로 이어진다. 눈물 나게 그리운 아름다운 계절의 가난한 아버지의 약속이다. 가족을 보호하고 안락하게 숨겨주는 존재는 아니지만, 사기꾼 아버지가 분명하지만- 아직 봄은 오지 아니하고 약속은 어긋났지만- 용서하고 안아주고 싶은 약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3연에서도 아이러니와 역설기법의 모순적인 문장과 기교가 돋보인다. 4연 ‘앞마당에선 여전히 바람 불고/ 눈이 내렸다’(4연 1-2행) 부분을 살펴보자. 생활과 삶의 아이덴티티 앞에서 아버지의 고뇌는 춥다. 4연쯤 되면 독자는 연민과 동조, 사랑을 느끼게 된다. 점층적이며 반복적인 ‘아이러니와 역설 기법’으로 시인은 독자를 압도적으로 사기꾼 아버지에게 끌어들인다. 어느새 시인의 삶 속으로 동화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독자는 곧 시인의 마음이 된다.   ‘허공에 흰 머리카락 반짝이며 아내는 늙어가고/ 까르르 까르르 웃던 아이들은/ 아무 소문도 없이 어른이 되고’(5연 1-3행) 늙은 아내와 말이 없어진 사춘기 아이들의 대비는, 또 ‘아버지’라는 이름의 비애의 조건이 된다. ‘아이러니 비가’라는 제목을 붙여 따로 분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각 연들이 갖는 호소력 때문이다. ‘종착역 알리는 저녁 열차의 신호음을 들으며/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한다, 나는 오늘도 일그러진 담장 밑에 백일홍 꽃씨를 심고/ 대문 밖 가리키며’(6연 1-4행) 아버지의 사기 행각은 6연에서 절정이다.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한다, ’ 부분이압권이다. ‘미친 듯이 내일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이 시의 아이러니와 역설 기법의 시적 장치다.   ‘보아라, 저어기 따뜻한 봄날이/ 오고 있지 않느냐고/ 바람난 처녀보다 날렵한 몸짓으로 달려오지 않느냐고/갈라진 목소리로 사기를 친다/ 내 생애 마지막 예언처럼.’(7연 11-5행) 7연에서도 1행과 2행, 3행에서 아이러니 기법을 보이고 있다. ‘바람난 처녀보다 날렵한 몸짓으로 달려오지 않느냐고’(7연 3행) 부분이다. 아직 겨울인데 봄을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억지스러움이 이 시의 ‘아이러니’다. 그런데 그 아이러니는 애매하여 경계를 짓기 어렵다. 참인듯한데 거짓이고, 거짓인듯한데 참이다.   아이러니 기법은 시의 기본 구도이다. 넌지시 짐짓 말을 던져놓고, 반응에 반응하지 않는 언어유희다. 말 던지기를 하며, 은근히 역설적으로 반응한다. 「사기꾼 이야기」 는 진정성과 ‘아이러니와 역설’ 이라는 시적 기교, 시대상, 시인의 조건과 시인의 천형까지 드러내어 보여주기 하고 있다. 이 세대에도, 이전 세대에도, 다음 세대에도, 아버지들의 애환은 계속될 것이므로. 정성수의 「사기꾼 이야기」는 독자의 수용과 공감이 증폭될 가장의 비애로 남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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