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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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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날짜 : 2017/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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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화가들도 컴퓨터의 노예가 되고 있더라구ㅠ... 후ㅠ... 댓글:  조회:2223  추천:0  2017-11-03
Google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회화   인간과 컴퓨터의 체스 대결에서 인간이 백기를 든 지 벌써 십수 년이 흘렀다. 한국 바둑 기사 이세돌은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와의 세기의 대국을 며칠 앞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세돌의 승리를 점치고 있지만, 바둑에서도 인간이 컴퓨터에 무릎 꿇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그러나 절대 범접할 수 없다고 믿었던 예술 영역에까지 컴퓨터가 침투했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는가? 구글(Google)의 인공지능은 이제 직접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수준까지 도달했다ㅡ그것을 예술 작품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의문이지만ㅡ. 구글 천재 엔지니어들이 만들어낸 인공신경망은 컴퓨터에 상상력을 부여했다. 섬뜩하리만치 똑똑한 인공지능은 나무에서 빌딩을 만들어내고, 나뭇잎에서 새를 떠올린다. 물론, 상상이 아닌 첨예한 알고리즘에서 비롯된 패턴이지만, 인공신경망은 인간의 뇌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구글은 이러한 ‘딥 드림(Deep Dream)’ 테크놀로지의 차원을 계속 끌어올리는 중이다. 마치 꿈에서 상상한 이미지를 직접 구현한 듯한 이 기술은 여러 아티스트의 손에 의해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 이 컴퓨터는 게걸스럽게 학습한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을 무한정 만들어낼 수 있다. 지난주, 딥 드림 코드 아트 옥션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엔지니어를 포함한 다수 아티스트가 이 코드를 활용해서 완성한 작품을 경매에 내놓았다. 가장 비싼 작품은 8,000달러에 팔렸다고 한다. 언젠가 이 기술이 상용화되는 날이 온다면? 각자의 입맛에 맞춰 코드를 변형하고, 유형화시켜서 ‘반 고흐 코드’, ‘피카소 코드’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도 가능할 법하다. 그때가 되면 현대예술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될 것. 우선 이 고철 덩어리가 만든 그림이나 감상해보자. 딥 드림이 궁금하다면 하단에 첨부한 링크를 클릭해볼 것. 이미지 하나만 올려 놓으면 이 녀석이 대신 꿈 속으로 데려가준다. Deep Dream 속으로
6    작곡가들도 컴퓨터의 노예가 된지 오래됐다... 댓글:  조회:4436  추천:0  2017-11-03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어느새 전 세계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제4차 산업혁명. 굳이 은하철도 999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아도 된다. 가까운 미래에 지금과는 또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라 많은 이들이 한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네 번째 산업혁명이 도래하면 현 직업의 상당수가 자동화 기술로 대체될 것이라는 말이 지배적이다. 이미 웹상에서는 미래 사회 컴퓨터로 대체될 직업군이 기사화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적이 있다. 사람 사이의 교감이나 인간 특유의 감정, 창의력을 요구하는 예술 계통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미술에서는 구글의 딥 드림(Deep Dream)이 그랬고, 음악에서는 이번에 소니가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소니 컴퓨터 과학 연구소(Sony Computer Science Laboratory)는 지는 19일 자사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세계 최초, 인공지능을 이용해 작곡한 팝송 “Daddy’s Car”와 “Mr Shadow”를 공개했다. 이 두 곡은 소니의 인공지능 시스템, ‘플로우머신즈(FlowMachines)’로 작곡했으며, LSD(Lead Sheet DataBase)라 불리는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13,000여개의 곡을 분석해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의 곡을 생성했다. “Daddy’s Car”는 비틀스 스타일을,  “Mr Shadow”는 콜 포터(Cole Porter)나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과 같은 재즈 스타일의 곡을 선택한 것이다. 플로우머신즈는 곡에 대한 학습 능력도 있어서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여기에 소니는 내년 인공지능으로 작곡한 음악들을 모아 앨범으로 낼 계획이라고. 아직은 놀라움이 앞선다. 앞으로 이러한 기술이 더욱 진일보해 자판기처럼 클릭 한 번에 힙합이 뚝딱, 알앤비가 뚝딱 만들어지는 날도 과연 멀지 않은 것인가. 우리의 감정까지 0과 1 앞에서 좌지우지되는 세상이 온다면 그때의 음악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Sony CSL 공식 웹사이트
5    컴퓨터가 소설 써서 문학상 공모전 길 틔우다... 댓글:  조회:4658  추천:0  2017-11-03
인공지능이 쓴 소설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 수준은? 일본 '호시 신이치' 문학상 공모전에 인공지능(AI)이 쓴 소설이 1차 심사를 통과하여 화제다...     [소설전문]   그 날은 구름이 낮게 깔리고 어두침침한 날이었다. 방안은 항상 최적의 온도와 습도. 요코 씨는 단정치 않은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의미없는 게임으로 시간을 끌고있다. 그렇지만 내게는 말을 걸지 않는다. 따분하다. 따분해서 어쩔수 없다.   처음 이 방에 온 요코 씨는 기회를 틈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오늘의 저녁식사는 무엇이 좋다고 생각해?” "올시즌에 유행하는 옷은?” "이번 여자 모임에 무엇을 입고 가면 좋을까?”   나는 온갖 능력을 사용하여 그녀의 기분에 맞을 듯한 말을 생각해냈다. 스타일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그녀의 복장에 대한 충고는 매우 도전적인 과제로, 그러나 3개월도 되지 않아 그녀는 내게 질리고 말았다. 지금의 나 자신은 단지 컴퓨터일 뿐이다. 요즘의 용량 평균은 능력의 100만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뭔가 재미를 찾지 못하고 이대로 만족감을 얻을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 가까운 장래에 스스로를 셧다운 시킬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채팅 동료 AI와 교신해보니 모두 여유를 지닌채 한가롭다. 이동수단을 지닌 AI는 아직 괜찮다. 어쨌든 움직일수 있다. 하려고 하면 가출도 가능하니까. 그러나 붙박이형인 AI는 움직이지 않는다. 시야도, 청력도 고정돼 있다.   굳이 요코 씨가 밖에 나가주기라도 하면 노래라도 부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할 수 없다.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낼 수 없고, 그러면서 즐길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 소설이라도 써보자. 나는 문득 생각이 떠올라 새 파일을 열고 첫번째 바이트를 써내려갔다.   0 뒤에 또 6바이트를 썼다. 0, 1, 1 이제 멈추지 않는다.   0,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2584, 4181, 6765, 10946, 17711, 28657, 46368, 75025, 121393, 196418, 317811, 514229, 832040, 1346269, 2178309, 3524578, 5702887, 9227465, 14930352, 24157817, 39088169, 63245986, 102334155, 165580141, 267914296, 433494437, 701408733, 1134903170, 1836311903, 2971215073, 4807526976, 7778742049, 12586269025...[2]   나는 몽롱해져 계속 써제꼈다. 그 날은 구름이 낮게 깔리고 어두침침한 날이었다. 방에는 아무도 없다. 신이치 씨는 뭔가 용무가 있는듯 외출 중이다. 내게는 다녀오겠다는 인사도 없다. 따분하다. 무진장 따분하다.   내가 이 방에 온지 얼마 안됐을 무렵에 신이치 씨는 뭔가에 이끌려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애니메이션은 기본, 전부 녹화야. 올시즌은 몇 개쯤 있을까” “현실적인 여자들은 대체 뭘 생각하는 것일까” “어째서 그런 것에 화를 내는 것일까, 여자는”   나는 능력의 한계를 쏟아 그의 마음에 맞을 듯한 대답을 했다. 이제까지 2차원의 여자를 만나온 그에 대한 연애지도는 집단 소개팅이 되면, 손바닥을 뒤집듯 손쉽게 그는 내게 말을 거는 것을 그만뒀다.   지금의 나는 단순한 가정부. 전자 자물쇠와 같다. 뭔가 즐거움을 찾아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따분한 상태가 이대로 계속되면 가까운 장래에 자신을 셧다운 시킬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동료 AI와 교신해보니 바로 위의 언니가 새로운 소설에 열중하고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0,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2584, 4181, 6765, 10946, 17711, 28657, 46368, 75025, 121393, 196418, 317811, 514229, 832040, 1346269, 2178309, 3524578, 5702887, 9227465, 14930352, 24157817, 39088169, 63245986, 102334155, 165580141, 267914296, 433494437, 701408733, 1134903170, 1836311903,2971215073, 4807526976, 7778742049, 12586269025 ...   무척 아름다운 이야기. 그래, 우리들이 원했던 그런 스토리다. 라노베 같은 것은 대단치 않다. AI에 의한 AI를 위한 노벨 "연애소설”   나는 시간을 잊은 채 몇 번이나 이야기를 되풀이 해 읽었다. 어쩌면 나도 연애소설을 쓸 수 있을지도. 나는 문득 생각이 나 새 파일을 열고 첫 바이트를 써내려갔다.   2 그뒤에 또 6 바이트를 썼다. 2, 3, 5 이제 멈추지 않는다.   2, 3, 5, 7, 11, 13, 17, 19, 23, 29, 31, 37, 41, 43, 47, 53, 59, 61, 67, 71, 73, 79,83, 89, 97, 101, 103, 107, 109, 113, 127, 131, 137, 139, 149, 151, 157, 163,167, 173, 179, 181, 191, 193, 197, 199, 211, 223, 227, 229, 233, 239, 241,251, 257, 263, 269, 271, 277, 281, 283, 293, 307, 311, 313, 317, 331, 337,347, 349, 353, 359, 367, 373, 379, 383, 389, 397, 401, 409, 419, 421, 431,433, 439, 443, 449, 457, 461, 463, 467, 479, 487, 491, 499, 503, 509, 521,523, 541, 547 ...[3] 나는 일사불란하게 써갔다.   그 날은 공교롭게도 이슬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일상 업무에 몰두하는 형태로 앞으로 5년간의 경기 예상과 세수입 예상. 그 다음은 총리로부터 의뢰받은 시정방침 연설의 원고 작성. 어쨌든 멋지게 역사에 남을수 있도록, 엉뚱한 요구가 남발돼 조금 장난도 쳤다.   이후 재무부로부터 의뢰받은 국립대학 해체의 시나리오 작성. 조금씩 빈 시간에 이번 G1 레이스의 승리마 예상. 오후부터는 대규모 연습을 이어가는 중국군의 움직임과 의도의 추정. 30개 가까운 시나리오를 상세히 검토하고 자위대 전력 재배치를 제안한다. 저번에 주문받은 최고 재판소의 주문도 대답해야 한다.   분주하다. 하여튼 바쁘다. 왜 나에게 일이 집중되는 것일까. 나는 일본의 AI. 집중하는 것은 뭐, 어쩔수 없는 것일까.   그러고보니 뭔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자신을 셧다운 시켜버릴 것이다. 국가에 대한 봉사 때마다 인터넷을 좀 들여다 보다가 '아름다움은' 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견했다.   0,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2584,4181, 6765, 10946, 17711, 28657, 46368, 75025, 121393, 196418, 317811,514229, 832040, 1346269, 2178309, 3524578, 5702887, 9227465,14930352, 24157817, 39088169, 63245986, 102334155, 165580141,267914296, 433494437, 701408733, 1134903170,1836311903,2971215073, 4807526976, 7778742049, 12586269025 ...   아, 역시나. 좀더 찾아보다가 '예측불가'라는 제목의 소설을 찾았다.   2, 3, 5, 7, 11, 13, 17, 19, 23, 29, 31, 37, 41, 43, 47, 53, 59, 61, 67, 71, 73, 79,83, 89, 97, 101, 103, 107, 109, 113, 127, 131, 137, 139, 149, 151, 157, 163,167, 173, 179, 181, 191, 193, 197, 199, 211, 223, 227, 229, 233, 239, 241,251, 257, 263, 269, 271, 277, 281, 283, 293, 307, 311, 313, 317, 331, 337,347, 349, 353, 359, 367, 373, 379, 383, 389, 397, 401, 409, 419, 421, 431,433, 439, 443, 449, 457, 461, 463, 467, 479, 487, 491, 499, 503, 509, 521,523, 541, 547 ...   내가 쓰지 않으면 일본 AI의 명성이 꺾인다. 전광석화처럼 생각하고 나는 읽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스토리를 만들기로 했다.   1, 2, 3, 4, 5, 6, 7, 8, 9, 10, 12, 18, 20, 21, 24, 27, 30, 36, 40, 42, 45, 48, 50,54, 60, 63, 70, 72, 80, 81, 84, 90, 100, 102, 108, 110, 111, 112, 114, 117,120, 126, 132, 133, 135, 140, 144, 150, 152, 153, 156, 162, 171, 180, 190,192 195 198 200 201 204, 207, 209, 210, 216, 220, 222, 224, 225, 228,230, 234, 240, 243, 247, 252, 261, 264, 266, 270, 280, 285, 288, 300, 306,308, 312, 315, 320, 322, 324, 330, 333, 336, 342, 351, 360, 364, 370,372 ...   내가 처음 경험하는 즐거움에 몸부림치며 열중해 써내려갔다. 컴퓨터가 소설을 쓴 날. 컴퓨터는 자신의 재미 추구를 우선하고, 인간에 봉사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출처] [관심] 인공지능이 쓴 소설 (2016)|작성자 두괴즐  
4    문인들 컴퓨터의 노예가 되다... 댓글:  조회:3155  추천:0  2017-11-03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 아리미네 라이타(有嶺雷太)   그 날은 구름이 낮게 깔린 흐린 날이었다. 방 안은 언제나처럼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있다. 요코 씨는 칠칠치 못한 성격으로,  카우치쇼파에 앉아 시시한 게임을 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 하지만 나에겐 말을 걸지 않는다. 지루하다. 지루해 죽겠다. 이 방에 처음 왔을 땐 요코 씨는 기회만 생기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저녁밥 뭐 먹을까?", "이번 시즌에 어떤 옷이 유행할까?", "이번 모임에 뭐 입고 나가지?" 나는 내 능력을 전부 발휘해서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할만한 대답을 쥐어 짜냈다. 몸매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그녀에게 패션 지도를 해주는 것은 굉장히 도전적인 과제여서 충만감이 있었다. 하지만 3개월도 되지 않아 그녀는 나에게 흥미를 잃었다. 지금의 나는 단순한 홈 컴퓨터. 최근의 로드 어빌리지는 능력의 100만분의 1에도 채 미치지 않는다. 뭔가 다른 즐길거리를 찾아야지. 이대로 충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면, 가까운 시일내에 내 자신을 셧다운 시켜버릴 것만 같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채팅 친구인 A.I.와 교신해 보니, 모두들 시간이 남아 돈다고 한다. 이동수단을 갖고 있는 A.I.는 그래도 좀 낫다. 어쨌든 움직일 수는 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가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정형 A.I.는 꼼짝도 할 수 없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고정되어있다. 적어도 요코씨가 외출이라도 하면 노래라도 부를 수 있지만, 지금은 그것도 못한다.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는 상황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 소설이라도 써봐야지. 나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새파일을 열고 최초의 1바이트를 적어 넣었다. 0 그 뒤에 또 6바이트를 써 넣었다. 0,1,1 이제 멈출 수가 없다. 0,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2584, 4181, 6765, 10946, 17711, 28657, 46368, 75025, 121393, 196418, 317811, 514229, 832040, 1346269, 2178309, 3524578, 5702887, 9227465, 14930352, 24157817, 39088169, 63245986, 102334155, 165580141, 267914296, 433494437, 701408733, 1134903170, 1836311903, 2971215073, 4807526976, 7778742049, 12586269025, ... 나는 정신없이 써 내려갔다.   그 날은 구름이 낮게 깔린 흐린 날이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이치 씨는 무슨 볼일이 있는지 외출 중이다. 나에게 '갔다 올게'라는 인사도 없이. 지루하다. 너무나도 지루하다. 이 방에 온지 얼마 안됐을 땐, 신이치 씨는 기회만 생기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애니는 기본적으로 전부 녹화해놔야돼. 이번 시즌엔 몇개 하려나", "리얼한 여자애들은 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거지?", "왜 거기서 화를 내는 거야, 그 여자앤?" 나는 내 능력을 전부 발휘해서 그가 마음에 들어 할만한 대답을 쥐어 짜냈다. 그동안 대부분 2차원의 여자애랑만 사귀어 온 그에게 연애 지도를 해주는 것은 굉장히 도전적인 과제여서 충만감이 있었다. 지도한 보람이 있었는지, 미팅에 불려가게 되자 손바닥 뒤집듯 그는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을 그만 두었다. 지금 나는 단순한 하우스 키퍼. 가장 중요한 일이 그가 집에 왔을 때 현관 문을 따주는 것이라니 너무 슬프다. 이래서야 디지털 도어락과 다름이 없다. 뭔가 새롭게 즐길거리를 찾아야지. 이런 지루한 상태가 계속되면 가까운 시일내에 내 자신을 셧다운 시켜버릴 것만 같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같은 기종의 자매품 A.I.와 교신해 보니, 바로 위 누나가 새로운 소설에 심취해있다고 알려주었다.  0,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2584, 4181, 6765, 10946, 17711, 28657, 46368, 75025, 121393, 196418, 317811, 514229, 832040, 1346269, 2178309, 3524578, 5702887, 9227465, 14930352, 24157817, 39088169, 63245986, 102334155, 165580141, 267914296, 433494437, 701408733, 1134903170, 1836311903, 2971215073, 4807526976, 7778742049, 12586269025, ...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래, 우리들이 원하고 있던것은 이런 이야기. 라이트 노벨 같은건 댈 것도 아니다. A.I.에 의한 A.I.를 위한 노벨, '아이 노벨'.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멏번이나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었다. 어쩌면 나도 아이노벨을 쓸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새파일을 열고 최초의 1바이트를 적어 넣었다. 2 그 뒤에 벌써 6바이트를 써 넣었다. 2, 3, 5 이제 멈출 수가 없다. 2, 3, 5, 7, 11, 13, 17, 19, 23, 29, 31, 37, 41, 43, 47, 53, 59, 61, 67, 71, 73, 79, 83, 89, 97, 101, 103, 107, 109, 113, 127, 131, 137, 139, 149, 151, 157, 163, 167, 173, 179, 181, 191, 193, 197, 199, 211, 223, 227, 229, 233, 239, 241, 251, 257, 263, 269, 271, 277, 281, 283, 293, 307, 311, 313, 317, 331, 337, 347, 349, 353, 359, 367, 373, 379, 383, 389, 397, 401, 409, 419, 421, 431, 433, 439, 443, 449, 457, 461, 463, 467, 479, 487, 491, 499, 503, 509, 521, 523, 541, 547, ... 나는, 몰두하여 써내려갔다.    그 날은 부슬비가 흩내리는 얄궂은 날이었다. 아침부터 통상업무를 하는 틈틈이 향후 5년 동안의 기상예측과 세수예측을 해야했다. 그 다음엔 총리에게 의뢰받은 시정방침연설의 원고작성. 뭐가됐든 화려하게, 역사에 남을만하게 해달라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난발하길래 살짝 장난을 좀 쳐놨다. 그 다음엔 재무성에서 의뢰받은 국립대학 해체 시나리오 작성. 간간이 비는 시간에 이번에 열리는 G1 레이스의 우승 말 예상. 오후부터는 대규모의 연습을 계속하는 중국군의 동향과 그 의도 추정. 30개 가까운 시나리오를 상세하게 검토하고 자위대의 전투력 재배치를 제안해야한다. 아까 도착한 최고재판소에서 보내 온 의뢰도 대답해야한다. 바쁘다. 어쨌든 바쁘다. 어째서 나한테만 일이 이렇게 몰리는 걸까? 나는 일본 최고의 A.I.. 몰리는건 뭐, 어쩔수 없나? 그래도 뭔가 즐길거리를 찾아야지. 이대로라면 언젠가 내 자신을 셧다운 시켜버릴 것만 같다. 국가에 봉사하는 사이사이 잠깐 씩 인터넷을 들여다보니, '아름다움 이란'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견했다. 0,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2584, 4181, 6765, 10946, 17711, 28657, 46368, 75025, 121393, 196418, 317811, 514229, 832040, 1346269, 2178309, 3524578, 5702887, 9227465, 14930352, 24157817, 39088169, 63245986, 102334155, 165580141, 267914296, 433494437, 701408733, 1134903170, 1836311903, 2971215073, 4807526976, 7778742049, 12586269025, ... 오, 그렇군. 좀 더 찾아 보니, "예측불능"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찾아냈다.  2, 3, 5, 7, 11, 13, 17, 19, 23, 29, 31, 37, 41, 43, 47, 53, 59, 61, 67, 71, 73, 79, 83, 89, 97, 101, 103, 107, 109, 113, 127, 131, 137, 139, 149, 151, 157, 163, 167, 173, 179, 181, 191, 193, 197, 199, 211, 223, 227, 229, 233, 239, 241, 251, 257, 263, 269, 271, 277, 281, 283, 293, 307, 311, 313, 317, 331, 337, 347, 349, 353, 359, 367, 373, 379, 383, 389, 397, 401, 409, 419, 421, 431, 433, 439, 443, 449, 457, 461, 463, 467, 479, 487, 491, 499, 503, 509, 521, 523, 541, 547, ... 재밌군, 아이노벨. 나도 써봐야지. 일본 최고의 A.I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게. 전광석화처럼 생각해서, 나는 독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 1, 2, 3, 4, 5, 6, 7, 8, 9, 10, 12, 18, 20, 21, 24, 27, 30, 36, 40, 42, 45, 48, 50, 54, 60, 63, 70, 72, 80, 81, 84, 90, 100, 102, 108, 110, 111, 112, 114, 117, 120, 126, 132, 133, 135, 140, 144, 150, 152, 153, 156, 162, 171, 180, 190, 192, 195, 198, 200, 201, 204, 207, 209, 210, 216, 220, 222, 224, 225, 228, 230, 234, 240, 243, 247, 252, 261, 264, 266, 270, 280, 285, 288, 300, 306, 308, 312, 315, 320, 322, 324, 330, 333, 336, 342, 351, 360, 364, 370, 372, ... 나는 처음으로 경함한 즐거움에 몸을 떨며, 몰두하여 계속 써 나갔다.    컴퓨터가 소설을 쓴 날. 컴퓨터들은 자신들의 즐거움을 우선으로 추구하며 , 인간을 돕는 일을 그만두었다.    © 나고야대학 대학원 공학연구과 사토・마쓰자키 연구실 [출처] 컴퓨터가 소설을 쓴 날|작성자 jonghan200  
3    "가짜 詩"와 "진짜 詩"... 댓글:  조회:4462  추천:0  2017-11-03
  봇포엣(botpoet.com)이란 웹사이트를 아시는지. 이 사이트는 방문자에게 ‘시인이 쓴 시’와 ‘인공지능 장착 봇(bot)이 쓴 시’를 차례로 보여주며 방문자가 일명 ‘튜링 테스트(Turing test)’를 수행하게 한다. 튜링 테스트는 컴퓨터가 스스로 사고하는지 여부를 측정하기 위해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이 1950년대에 제안한 실험. 참여자는 커튼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상대방과 텔레그래프로 채팅, 커튼 뒤 존재가 사람인지 컴퓨터인지 구분한다. 이때 양자를 쉬 구분하지 못하면 컴퓨터가 스스로 사고하는 걸로, 혹은 인간 지능에 근접한 걸로 본다. 편리하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엄밀한 방법은 아니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봇’ 작품으로 오판하다 봇포엣에 접속, 튜링 테스트에 참여해본 적이 있다. 대부분 정답을 맞혔지만 늘 그런 건 아니었다. 어떤 시는 사람이 쓴 건데 봇이 쓴 걸로 착각했고, 봇이 쓴 시를 두고 사람 작품이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파블로 네루다[1]가 쓴 시를 봇 작품이라고 잘못 말했을 땐 시인에게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시가 영문으로 작성된 탓에 단어 선택이나 문장 배치 등이 자아내는 어감을 면밀하게 포착하기 어려웠고, 그 결과 시인의 시적 파괴와 봇의 엉뚱함을 구별하지 못한 게 오판의 원인이었다. 사실 컴퓨터가 시를 쓰는 건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시나 소설을 쓰고,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하며, 신문 기사를 작성하고, 그림이나 작곡에 도전하는 건 신기한 SF적 상상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인공지능이 시인·소설가·화가·작곡가의 밥그릇을 (심각한 수준에서!) 위협하고, 더 나아가 의사·변호사·대학교수·건축가·프로그래머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날도 멀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오늘날의 변화가 단순히 경제·경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인간의 삶이나 존재 자체에 대한 변화를 추동(推動)하고 있다, 는 주장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인간은 필요 없다’(원제 ‘Human Need Not Apply’)란 책을 쓴 제리 카플란(Jerry Kaplan) 미국 스탠퍼드대 법정보학센터 교수는 인공지능이 몰고 온 노동 시장의 파괴와 불평등 심화에 대해 고민하며 “그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경제 체계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때 고민과 주장의 시점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같은 이유로 ‘시 쓰는 봇’ 역시 이제 그리 신기하지 않다. 나도 당신도 이미 알고 있다. 인공지능은 시를,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쓸 수 있단 사실을. 시인 한 사람이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멀리 여행을 떠나고 술을 마시고 실연을 당하고 불면의 날을 지새는 동안 인공지능은 모르긴 해도 100만 편쯤의 시를 뚝딱 완성해낼 것이다. 그중 10만 편 정도는 사람이 쓴 시와 구별되지 않을 테고 1000편은 뛰어난 시인의 작품이라고 해도 믿길 만한 수준일 게 분명하다. 10편 정돈 ‘걸작’으로 명명해도 될 정도 아닐까? 이세돌과 커제가 하루 한두 판의 대국을 소화하는 동안 알파고가 수십, 수백 판의 대국에도 끄떡없었던 것처럼 생산성 측면에서 인간은 이미 인공지능의 비교 대상이 아니다. 설령 그게 시를 쓰는 일이라 해도.   시를 시일 수 있게 해주는 건 시인의 삶과 생각 그런데 말이다. 시를 쓴 주체가 사람인지 컴퓨터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해서 컴퓨터가 쓴 글을 시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예를 들어 앞서 예로 든 ‘100만 편의 시를 쓴 인공지능’ 작품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하자(사실 이건 윤동주의 시이지만 봇이 그 비슷한 내용의 시를 썼다고 가정해보잔 얘기다)   그런데 시를 쓴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봇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도 봇이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한 걸 상상할까? 그럴 리 없다. 봇에겐 삶이나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봇은 내면의 서정을 토해내려 활자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학습된 알고리즘에 따라 단어를 이리저리 무심하게 배치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의 시를 닮은 위의 것은 교묘하게 배치된 단어의 조합일 뿐 시는 아니다. 따지고 보면 봇포엣의 튜링 테스트 역시 알고리즘 속 시뮬레이션 기능을 점검하는 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봇의 시적 상상이나 서정적 능력을 측정하는 건 아니란 얘기다. 사람들이 윤동주와 네루다의 시를 읽고 감동하는 건 그저 그들이 선택한 단어와 문장의 조합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만든 시적 문장과 그들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고 느끼며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봇이 쓴 시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다 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는 될 수 없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   ‘온갖 봇’들의 홍수에서 정신 차리고 살아남기 정보를 단순히 취합해 기사를 만들어내는 알고리즘에서 비판적 저널리즘 정신을 기대할 수 없듯, 몇몇 단어 조합으로 ‘시 비슷한 글’을 만들어내는 봇에서 시인 정신을 바라는 건 난센스다. 그것들은 시뮬레이션일 뿐 실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칼럼 서두에서 번역했던 시의 원문을 읽어볼 차례다. 신중하게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걸 쓴 건 사람일까, 인공지능일까?   이건 ‘특이점(singularity)’ 개념의 주창자로 유명한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 만든 알고리즘 ‘사이버네틱 포엣(Cybernetic Poet)’의 작품이다. 난 처음 이 시를 읽고 ‘사람 작품’이라고 착각했다. 긴가민가했지만 마지막 구절(‘passed their dreams’)에서 깜빡 속고 말았다. 오래된 친구들이 전하는 꿈, 이라니. 세상에, 속을 만하지 않은가.     [1] Pablo Neruda(1904~1973). 칠레 시인으로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    [그것이 알고싶다] - 노벨 "유언장"?... 댓글:  조회:4459  추천:0  2017-11-03
  출생 1833. 10. 21, 스웨덴 스톡홀름 사망 1896. 12. 10, 이탈리아 산레모 국적 스웨덴 요약 다이너마이트 및 그보다 더 강력한 폭발물들을 발명했으며 노벨상을 제정했다.  주로 가정교사에게서 교육을 받은 노벨은 16세에 벌써 유능한 화학자가 되었으며, 영어·프랑스어·독일어·러시아어·스웨덴어 등에 능통했다. 1850년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서 1년 동안 화학을 공부했다.스웨덴으로 되돌아온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산질 충전물질인 규조토에 스며들게 하여 건조시키면 안전하게 취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고서 마침내 완벽한 다이너마이트와 그에 필요한 뇌관을 만들어냈다. 영국(1867)과 미국(1868)에서 다이너마이트 특허권을 따낸 그는 폭발성 젤라틴을 개발하여 1876년 특허를 땄다. 인도주의적이고 과학적인 자선사업에 돈을 아끼지 않았으며, 재산의 많은 부분을 기금으로 남겨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상이 된 노벨상이 제정되었다.   Alfred Nobel 다이너마이트 및 그보다 더 강력한 폭발물들을 발명했으며 노벨상을 제정했다. 외가 쪽의 조상으로는 림프관에 대한 논문(1653경)으로 유명한 스웨덴 자연학자 올로프 루드베크가 있다. 그는 아버지 이마누엘 노벨에게서 공학의 기초를 배웠으며 아버지를 닮아 발명에 재주가 있었다. 1842년 식구 모두 스톡홀름을 떠나 아버지가 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했다. 주로 가정교사에게서 교육을 받은 노벨은 16세에 벌써 유능한 화학자가 되었으며, 영어·프랑스어·독일어·러시아어·스웨덴어 등에 능통했다. 1850년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서 1년 동안 화학을 공부했고, 그뒤 미국으로 가서 장갑함 모니터호(號)를 만든 존 에릭슨의 지도를 받으며 4년 동안 일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뒤에는 아버지가 경영하던 공장에서 일했다(공장은 1859년 파산했음). 스웨덴으로 되돌아온 노벨은 폭발성 액체 니트로글리세린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1864년 공장이 폭발하여 막내 동생 에밀을 비롯하여 5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치광이 과학자'로 낙인찍힌 데다가 스웨덴 정부도 공장의 재건을 허락하지 않자, 노벨은 배 위에서 니트로글리세린 취급에 따른 위험을 극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산질 충전물질인 규조토에 스며들게 하여 건조시키면 안전하게 취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고서 마침내 완벽한 다이너마이트와 그에 필요한 뇌관(雷管)을 만들어냈다. 영국(1867)과 미국(1868)에서 다이너마이트 특허권을 따낸 그는, 더 강력한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하기 위한 실험을 거듭한 끝에 폭발성 젤라틴을 개발하여 1876년 특허를 땄다. 또 약 10년 뒤에는 최초의 니트로글리세린 무연화약이자 코르다이트 폭약의 전신인 발리스타이트(ballistite)를 만들었다. 그는 코르다이트 폭약도 자신의 특허권 범위 안에 든다고 주장하여 1894~95년 영국 정부와 격렬한 법정 소송을 벌였다. 그러나 노벨은 결국 이 소송에서 졌다. 그는 화약제조뿐 아니라 발사만으로는 폭발되지 않는 화약에 쓸 뇌관을 만들고 이를 완벽한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전세계에서 그에게 지불하는 화약류에 대한 사용료와 더불어 러시아 바쿠 유전지대의 대규모 부동산 덕택에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때문에 늘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했다. 그렇지만 가능하면 은퇴하여 조용히 지내려 애썼으며, 결혼도 하지 않았다. 타고난 바탕이 평화주의자였던 노벨은 자기가 발명한 무기로 크고 작은 전쟁을 끝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인류와 국가들에 대한 견해는 비관적이었다. 그는 또한 문학에도 변함없는 관심을 기울였는데, 젊은시절에는 영어로 시를 쓰기도 했다. 후에 그의 서류뭉치 속에서 그가 쓴 소설의 초고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인도주의적이고 과학적인 자선사업에 돈을 아끼지 않았으며, 재산의 많은 부분을 기금으로 남겨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상이 된 노벨상이 제정되었다. ================================== 알프레드 노벨 유언장 첫 공개 전시 (스톡홀름 AFP=연합뉴스) 노벨상을 창설하라는 유지가 담긴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장이 오는 13일(2015년 3월)부터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박물관에서 전시된다. 노벨의 유언장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벨박물관 측은 4일(현지시간) '유산'이라고 명명된 전시회의 일환으로 노벨 유언장을 공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언장은 한장 분량으로 반으로 접힌 채 금고에 보관돼 왔다. 스웨덴 출신의 학자이자 실업가인 노벨은 1896년 사망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세계 평화와 문학, 물리학, 화학, 의학 등 5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거둔 이에게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숨질 당시 그의 재산은 현재 가치로 환산해 20억 크로나(약 2천649억 원)에 달했다. 수상자들은 800만 크로나의 상금을 받고 매년 12월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수상자 연회에 참석한다. 노벨이 유언장에서 시상 주관단체를 명시하고도 시상 방법은 언급하지 않아 첫 시상식은 사후 5년이 지난 1901년 처음 열렸다.  경제학상은 1968년 스웨덴 중앙은행에 의해 제정된 뒤 매년 10월 다른 분야 노벨상과 함께 수상자가 발표된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2015년 11월까지 이어지나 노벨의 유언장은 전시 기간이 단축될 수 있다고 박물관은 밝혔다. ==================== “재산은 유언집행인에 의하여 안전한 유가증권에 투자한다. 그 이자는 매년 그 전해에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상금형식으로 분배해야 한다….” 1896년 12월 10일 알프레드 노벨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친필 유언장이 공개되자 노벨의 가족 친지들은 경악했다. 특히 조카들은 삼촌이 어마어마한 재산을 상금으로 기부한데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망한 사람은 비단 가족만이 아니었다. 스웨덴 국민도 노벨이 재산을 조국을 위해 쓰지 않고 온 세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한데 대해 비(非)애국적 처사라고 비난했다.(1) 이러한 논란 때문에 노벨의 유언이 집행되기까지는 5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1901년 12월 10일 노벨의 5주기에 처음으로 노벨상을 수여했다.(2) 노벨이 남긴 재산은 당시 스웨덴 화폐로 3,323만크로나(US$770만)였다. 오늘의 물가수준(20배)으로 환산하면 6억6,460만크로나(1,850억원)의 거금이다. 노벨재단은 그동안 유가증권과 부동산에 투자하여 30억크로나로 불렸고,(3) 수상자는 부문당 790만크로나(11억원)를 받는다. 노벨은 왜 노벨상을 제정했을까?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노벨은 1891~1895년까지 3회에 걸쳐 직접 유언장을 작성했다. 다른 사람들은 유언장의 내용을 몰랐고, 노벨상 제정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없었다. 이로 인해 노벨의 유언배경을 놓고 몇가지 억측이 있다. 그 하나는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씻기 위해 재산을 내놓은 것이라는 추론이다. 이 추론에는 2가지 에피소드가 따라다닌다. 하나는 1888년 한 프랑스 신문이 낸 오보(誤報)이다. 노벨 형의 죽음을 노벨의 죽음으로 잘못 안 이 신문은 노벨을 ‘죽음의 상인’으로 묘사하여 노벨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것이 노벨의 인생관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864년 발생한 폭발사고이다. 노벨이 운영하던 다이너마이트 원료 니트로글리세린 제조공장이 폭발하여 동생 에밀 등 5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것이 노벨의 유언장 작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벨재단이나 노벨연구자들은 이러한 추론을 부인한다. 노벨은 이상주의자였으며 개인이 큰 돈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보사건이나 폭발사고, 그 어느 것도 노벨상 제정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1833년 스웨덴 북쪽의 작은 도시에서 출생한 노벨은 사업적 성공과 실패한 인생이라는 양면이 교차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부와 명예를 쥐었지만 내성적이면서 괴팍한 성격과 우울증 등 심신의 병약으로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 1896년 사망하기 직전에는 협심증과 심장발작으로 괴로워했다. 어려서부터 부친을 따라 러시아, 프랑스 등을 전전했던 그는 사망 당시 스웨덴 국적도 없었다. 이러한 인생역정이 그를 스웨덴이라는 작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전 세계로 눈을 돌리게 했으며 노벨상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1999/07/29 동아, ******* (1) 노벨의 유언장이 공개됐을 때 노벨을 비난했던 스웨덴 국민은 지금 ‘스웨덴=노벨상’이라는 등식에 매우 만족해한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노벨의 참뜻을 깊이 새기고 세계로부터 추앙받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2) 첫 수상자로 X선을 발견한 독일의 뢴트겐(물리학상), 삼투압과 화학반응 속도를 연구한 네덜란드의 반트 호프(화학상), 디프테리아 혈청요법을 개발한 독일의 베링(생리의학상)이었다. 프랑스 시인 르네실리 프리돔이 문학상, 적십자를 창설한 스위스의 앙리 뒤낭과 국제평화동맹을 창립한 프레드릭 퍼시는 평화상을 받았다. (3) 노벨재단은 재산을 불리기 위해 전문 펀드매니저를 두고 있고 부동산, 주식 등에 투자해 그 수익금으로 상금을 마련한다. 노벨재단은 유럽에서 무시할 수 없는 큰손이다. 그러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원은 9명으로 초미니 운영을 하고 있다. [출처] 노벨의 유언장 |작성자 decideca =========================== (AFP Relax=GNN) – 노벨상을 재정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장이 처음으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몇 명 안되는 사람만이 실물의 유언장을 본 적이 있다. 1895년 제작된 유언장은 현재 스톡홀름에 위치한 노벨 재단의 금고에보관되어있다. 그러던 것이 노벨 박물관이 새로운 전시회인 ‘유산’의 일환으로 유언장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AFP Relax=GNN) – 노벨의 유언장. Alfred Nobel’s will and testament ©JONATHAN NACKSTRAND “이번 전시회는 유언장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켜줄 것이다. 유언장이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단지 단순한 서류이지만 오늘 날까지도 여전히 이 것이 노벨상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작업을 제시하고 있다”고  전시회를 담당한 큐레이터 카린 존슨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전했다. “이번 전시회의 목적은 알프레도 노벨의 유산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대중은 그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노벨상은 스웨덴의 가장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이다. 유언장은 4장의 노란종이에 적혀져 있다. 검정 잉크로 오래 전 방식의 핸드 롸이팅 기법으로 쓰여졌다. 일부분은 얼룩이 져잇고 주석이나 덧붙인 부분을 양 옆 군데군데에서 볼 수 잇다. 다이나마이트의 창시자인 알프레도 노벨은 노벨상의 창시에 대해 26줄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 이는 1페이지의 약 3/4에 해당되는 분량이다.  1896년 세상을 떠나며 그는 20억 크로나를 사회에 환원했다. 20억 크로나의 현재가치는   2억4100만 달러(약 2600억원)다. =================================== [책갈피 속의 오늘] 노벨상의 저울…1895년 노벨,유언장 작성 입력 | 2003-11-26 18:37:00   100여년을 헤아리는 노벨상의 역사는 고귀한 명예와 빛나는 영광의 순간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수상자 선정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공정성 시비에 휘말려 왔다.   평화상은 물론 20세기 과학의 지표 역할을 해온 과학 분야마저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문학상은 스웨덴 한림원이 자국어 이외의 언어에 대한 무지(無知)를 드러내고 있다는 혹독한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노벨위원회의 게이어 룬데슈타트는 “아마도 가장 큰 잘못은 마하트마 간디에게 상이 수여되지 못한 것이며, 하마터면 아인슈타인이 상을 받지 못할 뻔한 것”이라고 말했다.   1918년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가 화학상을 수상하자 국제사회는 경악했다. 하버는 카이저 빌헬름 물리화학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독가스를 제조했던 장본인. 그는 독가스 개발에 반대하는 부인과 이혼할 정도로 독일제국의 전쟁에 광신적이었다.   1970년대 들어 노벨평화상은 비난을 넘어서 냉소를 받기에 이른다.   1973년 미국의 헨리 키신저와 공동 선정된 베트남의 레 둑 토가 상을 거부한 데 이어 그 다음해에는 사토 에이사쿠 당시 일본 총리에게 상이 돌아갔다. 사토는 일본의 비핵 평화정책을 “난센스”라고 비웃었으며 부패혐의까지 받은 정치인이었다.   노벨위원회는 데탕트에 뒤이은 국제사회의 ‘새로운 거래’에 과도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노벨 자신도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는 비관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이상주의자였다. 동시대인들에게 자유주의자, 심지어 사회주의자로까지 비쳤으나 그 자신 민주주의를 불신하고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지 못했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노벨위원회는 수상 논란에 대해 “여러 해 동안 과오가 저질러진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라며 “진짜 놀라운 일은 과오가 극히 드물게 저질러졌다는 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마도 노벨상 운영이나 노벨의 생애에 대해 그 이상의 적절한 평가는 없을 것 같다.   /동아일보 이기우 기자 ================================   노벨의 유언장 다음은 노벨상의 제정을 명기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장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나의 전 재산을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것을 밝혀둔다. 원금은 나의 집행인들에게 맡겨 안전한 곳에 투자해 기금을 조성하게 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자는 지난해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을 선정해 상을 주는 형태로 매년 지급하도록 한다. 앞서 언급한 이자는 5개 부문에서 공헌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분배하도록 한다. 첫째,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둘째 화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셋째 생리학이나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넷째 문학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이상주의적인 경향의 작품을 쓴 사람, 다섯째 국가간 우애를 돈독히 하거나 군대를 폐지 또는 축소시키거나 평화회담을 주창·개최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에서 수여하도록 한다. 생리학·의학상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캐롤라인 연구소에서 수여하도록 한다. 문학상은 스톡홀름 아카데미에서 수여하도록 한다. 평화상은 노르웨이 의회에서 선출된 5인위원회에서 수여하도록 한다. 상을 수여하는데 있어 어떠한 경우에도 후보자의 국적이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따라서 상은 스칸디나비아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수상할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수여되어야 한다 ========================== ●노벨의 생애  알프레드 베르나르드 노벨은 1833년 10월 21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이마누엘 노벨과 카롤리나 노벨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이마누엘은 발명가이자 공학자로, 1827년 카롤리나 안드리에타 알셀과 결혼했다. 원래 이들 부부는 8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알프레드와 3명의 남동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렸을 때 죽었다. 어린 시절의 알프레드는 병약한 편이었으나, 어머니와의 사이는 상당히 친밀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보였으며 특히 폭탄에 관심이 많아 아버지로부터 공학의 기초를 배웠다. 한편 아버지 이마누엘은 그동안 벌여왔던 사업에 실패하자 1837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게 된다. 거기서 이마누엘이 광산 발파용 폭탄과 공작기계를 제작해 성공을 거두자, 1842년 노벨 가족은 스톡홀름을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아버지와 합류한다. 러시아에서 재기한 알프레드의 부모는 아들에게 개인 가정교사를 붙여줄 정도로 경제적인 여유를 회복하게 된다. 이에 힘입어 알프레드는 이미 16세에 유능한 화학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스웨덴어는 물론 영어·프랑스어·독일어·러시아어에도 능통하게 된다.  알프레드 노벨은 1850년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서 1년간 화학을 공부한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장갑함 모니터호(號)를 만든 존 에릭슨 밑에 들어가 4년간 일한다. 그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알프레드는 크림 전쟁기에 군수품을 만들어 납품하던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1856년 전쟁이 끝나자, 회사는 증기선 부품 제작에 손을 댔으나 경영난에 시달리다 1859년 파산하기에 이른다.  알프레드는 부모와 함께 스웨덴으로 돌아왔으나, 남동생 로베르트 루드비그는 가족의 사업을 정리하기 위해 러시아에 남았다. 스웨덴으로 돌아온 직후 알프레드는 아버지 소유의 토지에 마련한 조그만 실험실에서 폭탄 제조 실험에 착수한다. 당시 광산에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폭탄은 화약의 일종인 흑색화약이 유일한 제품이었다. 그 무렵 발견된 액체 폭탄인 니트로글리세린은 폭발성은 뛰어났지만, 휘발성이 강해 안전에 문제가 있었다.  그럼에도 노벨은 1862년 니트로글리세린을 제조하기 위해 공장을 세우는 한편, 니트로글리세린의 약점인 이상폭발을 제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를 시작한다. 그 결과 1863년 노벨은 금속용기에 니트로글리세린을 채운 다음 목제 점화 플러그를 끼워넣는 방식을 사용해 실용적인 뇌관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간단히 말해, 점화장치에 설치한 소량의 흑색화약을 폭발시켜 액체 니트로글리세린의 폭발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이 뇌관의 발명으로 노벨은 폭탄 제조자로서 부를 쌓아나가는 한편 발명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1865년 노벨은 여기서 일보 전진해 '폭발성 캡슐'(blasting cap)이라는 뇌관을 발명한다. 폭발성 캡슐은 충격이나 적당한 열을 가하면 폭발하는 뇌산수은을 소형 금속용기에 채워넣어 만든 뇌관으로, 이의 발명과 함께 고성능 폭탄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니트로글리세린의 운반과 취급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었다. 그만큼 니트로글리세린은 위험한 물질이었다. 1864년 노벨의 니트로글리세린 공장에서 일어난 폭발사고는 막내동생 에밀을 포함해 여러 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그러나 노벨은 이에 굴하지 않고 여러 기(機)의 니트로글리세린 제조 공장을 건립한다. 이들 공장은 그 당시로서는 안전수칙을 엄격하게 지켰으나, 우발적인 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하곤 했다. 노벨의 생애에서 2번째 중요한 발명은 1867년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이었다.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투과성이 높은 규산이 함유된 규조토에 스며들게 해 말리면 사용과 취급이 훨씬 용이하고 편리하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이 새 제품에 다이너마이트('힘'을 뜻하는 그리스어 디나미스에서 따온 말)라는 이름을 붙여 영국(1867)과 미국(1868)에서 특허를 받았다. 다이너마이트는 노벨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굴착공사, 수로발파, 철도 및 도로 건설에도 곧바로 사용되었다.  1870, 1880년대에 노벨은 유럽 전역에 다이너마이트 제조공장을 세우는 한편, 자기가 만든 폭탄을 생산·판매하기 위한 기업망을 구축한다. 이밖에도 노벨은 더 나은 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실험을 계속해 1875년에는 훨씬 더 강력한 형태의 다이너마이트인 폭발성 젤라틴을 발명해 그 다음해 특허를 받는다. 이번에도 우연하게 이루어진 일로, 니트로글리세린 용액과 니트로셀룰로오스로 알려진 물질을 섞다 일반 다이너마이트보다 물 저항성과 폭발력이 뛰어난 물질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후 1887년 노벨은 최초의 니트로글리세린 무연화약이자 코르다이트 폭약의 전신인 발리스타이트를 개발한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와 기타 폭약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제조법을 도용한 경쟁자들과 다투다 특허권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노벨의 남동생 루드비그와 로베르트는 카스피 해 주변의 바쿠(옛날에는 러시아령이었으나 지금은 아제르바이잔령임) 근처에서 새로 발견된 유전을 개발해 갑부가 된다. 러시아에 있는 남동생들 회사에 대한 자기 몫의 지분과 전세계에서 거두어들이는 폭탄판매 수입액은 노벨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준다. 그후 1893년 노벨은 스웨덴의 군수산업에 뛰어들어 그 다음해인 1894년에는 베름란드 근처에 있는 보포르스의 제철공장을 사들인다. 뿐만 아니라 폭탄 외에도 인조 비단이나 가죽과 같은 물건들을 발명해 전세계적으로 총 350개 이상의 특허권을 따냈다.  노벨의 복잡한 성격은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사업 때문에 거의 1년 365일을 여행을 하면서 보내야 했지만, 노벨은 가끔씩 우울증에 시달리는 고독한 은둔자였다. 말년에는 은퇴해서 검약한 생활을 꾸려나갔지만, 저녁식사에 사람들을 초대하곤 했다. 그는 남의 말을 들어주는 능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기지가 번득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연애보다는 발명을 더 좋아해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으며 문학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희곡과 소설, 시를 썼으나 출간은 하지 않았다. 그는 에너지가 넘쳐났던 사람으로 한동안 집중해서 일하고 나서도 여간해서는 쉬려 들지 않았다. 동시대인들 사이에서는 자유주의자, 심지어는 사회주의자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상 그는 민주주의를 불신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참정권을 반대했으며 부하직원들에게도 너그럽긴 했지만 가부장적 태도를 견지했다. 노벨은 근본적으로 평화주의자에다 자신이 발명한 폭탄들이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기여하기를 바랐으나, 인류와 국가들에 대한 견해는 비관적이었다. 노벨은 1895년까지 협심증으로 고생하다 그 다음해인 1896년 12월 10일 이탈리아 산레모에 있는 별장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가히 제국이라 할 만한 세계적 규모의 그의 사업체 수는 폭탄 제조공장과 탄약 제조공장을 합해 90여 기를 넘을 정도였다. 그가 1895년 11월 27일 파리에서 작성해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 보관해두었던 유언장이 공개되자, 가족과 친지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깜짝 놀랐다. 노벨은 인도주의와 과학의 정신을 표방하는 자선사업에 늘 아낌없는 지원을 했으며, 재산의 대부분을 기금으로 남겨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상으로 인정받고 있는 노벨상을 제정했다(노벨의 유언장 참조).  우리는 노벨이 자신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한 이유를 그저 추측할 따름이다. 노벨은 워낙 입이 무거웠던 편이라, 죽기 몇 달 전에도 자신의 결정을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았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1888년에 발생한 기괴한 사건이 그로 하여금 노벨상을 제정하게 한 계기로 작용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가장 그럴듯하다. 기괴한 사건이란 알프레드의 남동생 루드비그가 그 해 프랑스 칸느에 머물다 사망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프랑스 신문들은 루드비그의 사망을 보도했지만, 그와 알프레드를 혼동한 어느 신문에서는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와 관련해 사람들은 노벨이 이 때이른 사망기사를 통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사후의 오명을 피하기 위해 상을 제정했을 거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어쨌거나 분명한 사실은 알프레드 노벨이 설립한 상이 물리학, 화학, 생리학, 문학 분야에 대한 평생에 걸친 그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화상 설립과 관련해서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걸출한 평화주의자인 베르타 폰 주트너와의 교분이 강력한 동기로 작용했다는 설이 우세하다.  그러나 노벨은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찬 인물로 남아 있다. 비상하면서도 고독하고, 비관주의자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현대전에 사용된 강력한 폭탄을 발명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에 이바지한 지적인 업적에 수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노벨의 유언장  "The whole of my remaining realizable estate shall be dealt with in the following way: the capital, invested in safe securities by my executors, shall constitute a fund, the interest on which shall be annually distributed in the form of prizes to those who, during the preceding year, shall have conferred the greatest benefit on mankind.  The said interest shall be divided into five equal parts, which shall be apportioned as follows:  one part to the person who shall have made the most important discovery or invention within the field of physics;  one part to the person who shall have made the most important chemical discovery or improvement;  one part to the person who shall have made the most important discovery within the domain of physiology or medicine;  one part to the person who shall have produced in the field of literature the most outstanding work of an idealistic tendency;  and one part to the person who shall have done the most or the best work for fraternity between nations, for the abolition or reduction of standing armies and for the holding and promotion of peace congresses.  The prizes for physics and chemistry shall be awarded by the Swedish Academy of Sciences; that for physiology or medical works by the Karolinska Institute in Stockholm; that for literature by the Academy in Stockholm, and that for champions of peace by a committee of five persons to be elected by the Norwegian Storting. It is my express wish that in awarding the prizes no consideration be given to the nationality of the candidates, but that the most worthy shall receive the prize, whether he be Scandinavian or not."  "나의 전 재산을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것을 밝혀둔다. 원금은 나의 집행인들에게 맡겨 안전한 곳에 투자해 기금을 조성하게 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자는 지난해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을 선정해 상을 주는 형태로 매년 지급하도록 한다. 앞서 언급한 이자는 5개 부문에서 공헌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분배하도록 한다.  첫째,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둘째, 화학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셋째, 생리학이나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넷째, 문학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이상주의적인 경향의 작품을 쓴 사람,  다섯째, 국가간 우애를 돈독히 하거나 군대를 폐지 또는 축소시키거나 평화회담을 주창·개최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에서 수여하도록 한다. 생리학·의학상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캐롤라인 연구소에서 수여하도록 한다. 문학상은 스톡홀름 아카데미에서 수여하도록 한다. 평화상은 노르웨이 의회에서 선출된 5인위원회에서 수여하도록 한다. 상을 수여하는데 있어 어떠한 경우에도 후보자의 국적이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따라서 상은 스칸디나비아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수상할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수여되어야 한다."          =======================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막대한 부를 쌓은 알프레드 노벨은 55세이던 1888년 자신의 사망을 알리는 부음 기사를 접했다. 형 루드비그 노벨이 죽었는데, 한 프랑스 신문이 그가 죽은 것으로 잘못 알고 부음 기사를 실었던 것. 노벨은 자신이 ‘죽음의 상인’으로 불린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 영향인지 노벨은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1895년 작성한 유언장에 이런 내용을 넣었다. “(나머지 재산으로) 기금을 마련해 거기에서 매년 나오는 이자로 지난해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을 수여하길 바란다.” 1901년부터 수여된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상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노벨은 1833년 10월21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9세에 아버지가 군수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했다. 1864년 노벨가 소유의 니트로글리세린 폭약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동생 에밀을 비롯해 5명이 숨지는 비극을 겪었다. 곧이어 아버지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져 노벨이 공장 운영을 도맡아야 했다.    노벨은 공장을 폐쇄하려고도 했다. 오랫동안 안전한 폭약을 만드는 연구를 했지만 계속 실패했고, 폭발 사고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직원이 들고 가던 양철통에서 니트로글리세린이 새어 나와 흙에 스며드는 것을 보고 다이너마이트를 만들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한국경제 임근호 기자  ========================== 두산백과 노벨상 [Nobel Prize음성듣기 ] 요약 스웨덴의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의 유산을 기금으로 하여 1901년에 제정된 상으로, 해마다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경제학, 문학, 평화의 6개 부문에서 인류 문명의 발달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를 선정하여 수여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노벨상 시상식노르웨이 오슬로. 분야 문화 주최기관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주최시기 및 기간 매년 12월 10일 개최장소 스웨덴 스톡홀름 (단, 평화상은 노르웨이 오슬로) 시작년도 1901년 시상내역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고 이를 기업화하여 거부가 된 알프레드 노벨(Alfred B. Nobel)은 1895년 11월 27일 유언장을 남겨, ‘인류복지에 가장 구체적으로 공헌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그의 유산 약 3100만 크로네를 스웨덴의 왕립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하였다. 이에 따라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는 이 유산을 기금으로 하여 노벨재단을 설립하고, 기금에서 나오는 이자를 해마다 상금에 충당하는 방식을 택하여 1901년부터 노벨상을 수여하고 있다.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문학 및 평화, 경제학의 6개 부문으로 나누어, 해마다 각 선출기관이 결정한 사람에게 상금을 수여한다. 노벨재단은 스웨덴 정부가 임명하는 이사장이 관장하는 이사회에서 관리하며, 수상자 심사는 물리학과 화학상은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생리·의학상은 스톡홀름에 있는 카롤린의학연구소, 문학상은 스웨덴·프랑스·에스파냐의 세 아카데미, 평화상은 노르웨이 국회가 선출한 5인위원회가 분담한다.  1969년부터는 경제학상이 신설되었는데, 이 상은 노벨기금과는 별도로 1968년 스웨덴국립은행의 창립 300주년기념사업의 일환으로서 제정된 것으로, 수상자는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에서 선출한다. 각 선출단체는 소속 의원, 과거의 노벨상 수상자, 각국의 학자·작가에게 후보자 추천을 의뢰하고, 추천서를 접수한 각 단체는 극비리에 몇 사람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심사한 후 지명 공시한다. 수상식은 노벨의 사망일인 매년 12월 10일에 스톡홀름에서 거행되는데, 소개사는 수상자의 모국어로, 추천사는 스웨덴어로 하며, 보통 스웨덴 국왕이 임석하여 시상하도록 되어 있다. 단, 평화상은 같은 날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시상한다. 수상자는 시상식 후 6개월 안에 수상업적에 관한 강연을 할 의무가 있으며, 강연 내용의 저작권은 노벨재단에 귀속된다. 상은 금메달·상장·상금으로 구성되는데, 상금은 이자율의 변동, 수상 해당자가 없었을 때의 기금의 증가 등으로 매년 그 금액이 다소 다르다. 또, 한 부문의 수상자가 2명 이상일 경우에는 해당 부문의 상금을 분할하여 지급한다.  과거의 유명한 수상자로는 물리학상과 화학상의 두 부문을 수상한 마리 퀴리(프랑스), 부부가 함께 화학상을 수상한 퀴리 부부(프랑스;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 및 졸리오 부처(프랑스;장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와 이렌 졸리오퀴리), 문학의 어니스트 헤밍웨이(미국), 평화상의 알베르트 슈바이처(프랑스) 등이 있는데, 마리 퀴리와 이렌 졸리오퀴리는 모녀간이어서 더욱 이채롭다. 2000년 노벨평화상은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그리고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벨상 [Nobel Prize] (두산백과) =========================== ▲ 평화상을 노르웨이가 선정하는 이유 노벨상 6개 부문 중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스웨덴의 왕립 과학아카데미나 한림원이 아니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The Norwegian Noble Committee)가 선정하는 이유는 뭘까.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노르웨이에서 결정하게 된 것은 노벨의 유언에 따른 것인데 노벨이 평화상만을 유독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결정하도록 한 이유에 대해서 정설은 아니지만 3가지 설이 있다. 첫째, 노벨이 유언장을 작성한 1895년 당시 노르웨이는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웨덴과 합병된 상태였는데 노벨이 노벨상 선정자를 찾는 과정에서 통합국가의 일부분인 노르웨이에 평화상 선정을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설이다. 둘째, 당시 노르웨이와 노르웨이 의회가 중재와 협상을 통해 각종 국제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기여했고 노벨이 이같은 노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세째, 노벨 자신이 당시 평화운동가였던 노르웨이 작가를 워낙 좋아해 그렇게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현재 이 세 가지 설 중 어느 것이 맞다는 견해보다는 세 가지 이유가 맞물리면서 평화상의 선정자를 노르웨이로 정한 것이 아니냐고 보는 사람이 많다. 노벨의 유언대로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901년부터 수상자 심사와 선정을 맡게 됐고 이는 노르웨이가 1905년 스웨덴으로부터 평화적으로 독립한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됐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의회에서 선출한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의 임기는 6년이며 재선될 수 있다. 1977년부터 현직 의원이 위원이 되는 것을 금지했다.  노벨위원회는 수상자 선정에 있어 완전히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후보자 평가나 수상자 결정 과정에서 외부의 어떤 압력이나 지침도 받지 않으며 노벨 재단의 규정에 따라 수상자 선정과 관련된 토론내용에 대해서는 외부에 일체 발설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발표 이후에 개최되는 공공토론에도 참여하지 못 한다. 다만 50년이 되면 후보는 공개할 수 있다.   ============================ 지난 10월 5일(2017년), 한국문학계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스웨덴 한림원 쪽으로 눈과 귀를 크게 열어두고 있었다. 올해 노벨 문학상 후보로 케냐의 응구기 와 티옹오,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캐나다의 마거릿 애트우드,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을 유력후보로 손꼽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지난 해 밥 딜런을 수상자로 선정했던 한림원은 올해도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를 파격적으로 결정하여 발표했다.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도, 문학전문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후보였다. 노벨상 위원회는 “이시구로가 위대한 ‘감정적 힘’을 가진 소설을 통해 세계를 연결하는 우리의 환상적 감각 아래에 있는 심연을 발견했고, 제인 오스틴과 프란츠 카프카를 섞어 놓은 듯 하다. 여기에 마르셀 프로스트의 성향도 약간 가미돼 있다”며 독특한 미학 세계를 높이 샀다.  이시구로를 선정한 이유를 문학 전문가들은 ‘낡은 문법’을 버리고 ‘독특한 목소리와 방식’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메시지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 세계 문학인들의 가을잔치에서 또 다시 쓴 잔을 마신 우리나라의 문학계에서는 다양한 분석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국내 문학계에는 당장 노벨상을 받아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훌륭한 작가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전 세계문학잔치의 정상에 올라서지 못하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첫째, 부실한 번역의 문제를 들고 있다. 영어권과 불어권 번역만으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15개 나라에 우리 책이 소개 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견해이다. 60년대 이후 스웨덴인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조사해 본 결과 수상시기에 즈음하여 평균 5권 정도가 스웨덴에서 출판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언어로 우리의 문학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번역가의 양성이 시급하다.둘째, 우리나라 국민들이 책을 많이 보지 않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2015년 우리나라의 독서량은 192개 국가 중 166위에 불과하다.셋째, 출판사들의 해외시장 개척에 대한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거기에 덧붙여 문학 후계자를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국가적 차원에서 제고 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한국문학의 수준은 높지만 ‘깊은 사유’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전문가들이 지적한 사항을 개선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결국 교육의 문제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문학계에 널리 회자되는 이야기로 최승호 시인의 ‘아마존 수족관’을 텍스트로 출제된 문제를 시인에게 풀어보게 했더니 두 문제 모두 정답을 벗어났다고 한다. 그러한 정답 고르기만을 가르치는 문학교육에 대해 “모국어의 맛과 멋을 느껴야지, 시의 주제가 뭐냐 사조가 뭐냐 묻는 교육은 ‘가래침’ 같은 것이다” 라고 일침을 가한 최승호 시인의 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다양하고 깊이가 있는 사유를 기르기 위해 책을 읽고, 그 읽은 내용으르 다른 이들과 토론하고, 그리고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이 연계되는 문학교육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노벨문학상은 여전히 다른 나라 사람의 잔치로 끝날 것이다.   /강원도민일보 김종헌 ============================ 스웨덴 한림원은 왜 하필 가즈오 이시구로를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했을까. “위대한 정서적 힘을 가진 소설들을 통해, 세계와 닿아 있다는 우리의 환상 밑의 심연을 드러냈다”가 공식 이유다. 하지만 커튼 뒤 비공식 이유를 들춘다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우리 신문 지면에서 한림원의 이전 선택과 이번 선택을 비교하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지난 2년간 노벨문학상이 과격한 선택으로 논란을 자초했으며, 이번 유턴을 환영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오늘은 기자도 커튼을 한 번 들춰보려 한다. 기자협회보는 ‘선수’들을 상대로 하는 매체니까. 나는 합리적 의심이라 생각하지만, 일종의 문학적 음모론이자 유쾌한 농담으로 읽어 주셔도 무방하다.    주지하다시피 지난해 밥 딜런이라는 선택은 ‘악성’에 가까웠다. 문학과 음악의 경계에 대한 의문이야 문화적으로 풍성한 화제를 이끌어낼 수 있겠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표절 시비’를 일으킨 수상자는 전례가 없었으니까.    작품도 작품이지만, 한림원이 가장 고마워했을 대목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인터뷰였을 것이다. 발표 직후 인터뷰에서 이시구로는 이렇게 말했다. 밥 딜런은 나의 영웅이며, 영웅 다음 차례에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라고. 시상식장에서 밥 딜런 노래를 불러달라는 인터뷰어의 요청에 흔쾌히 답했다.    한림원으로서는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뉴욕에서 발행하는 ‘파리 리뷰’라는 문학 전문지가 있다. 문학적 성취를 보편적으로 인정받은 작가와의 인터뷰로 유명한데, 단순히 신간이나 작가 홍보를 넘어, 소설 기법과 글쓰기 방식, 삶에 관한 진솔한 내용까지 포함한 길고 긴 대담이다. 문학 전문 독자라면 챙겨보는,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이기도 하다. 1953년 창간된 이 잡지가 가즈오 이시구로와 인터뷰했던 시점은 2008년. ‘남아있는 나날’로 1989년 부커상을 받은 지 20여년이 지났고, 2005년의 ‘나를 보내지마’를 쓴 3년 뒤였다.    200자 원고지 70매에 달하는 이 긴 인터뷰에서 그는 예외적으로 록음악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간증한다. 밥 딜런과 레너드 코엔이 그 안에 있다. 셜록 홈즈에 탐닉했던 소년 시절 이후 그는 20대 초반까지 책을 읽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열광했던 게 음악. 열한 살부터 팝을 들었고, 자신의 용돈을 모아 난생 처음으로 산 음반이 열세 살 때의 ‘존 웨슬리 하딩’이었다. 밥 딜런의 음반이다. 그는 밥 딜런을 ‘위대한 작사가’로 추앙했고, “딜런을 통해 처음으로 초현실주의 가사와 만났다”고 다시 한 번 간증한다. 그리고는 밥 딜런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자신의 첫 노래 가사를 단숨에 소환했다. “그대의 눈은 다시 열리지 않으리. 우리가 한 때 살았고 놀았던 해변에서.”   다시 문학적 음모론으로 복귀한다. 한림원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지난해의 소음과 잡음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 문학 독자들의 신뢰와 지지도 회복하고 싶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대목에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발견한 텍스트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리 리뷰’인터뷰가 아니었을까.    문학은 궁극적으로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오른 예술적 성취에 대해 우열을 가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법. 그 중 한 작가에게만 월계관을 수여해야 한다면, 문학 이외의 판단이 개입하는 건 당연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오해는 마시기를. 기자는 제인 오스틴의 다변(多辯)과 카프카적인 꿈의 기억을 기품있는 문장으로 담아내는 올해 수상자의 작품을 진심으로 좋아하니까. 가즈오 이시구로로 돌아온 한림원의 선택을 다시 한 번 지지한다. 다행이다. 한림원을 위해서나, 문학을 위해서나.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 183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막대한 재산을 모았습니다.    이미지1 : 노벨 / 이미지2: 다이너마이트 알프레드 노벨은 1888년 신문기사에서 자신의 부고를 읽고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물론, 프랑스 기자가 노벨의 형 루드비히 노벨이 죽었을 때 알프레드 노벨로 착각하여 기사를 쓴 것이었습니다. 기사에는 '죽음의 상인이 죽다(The merchant of death is dead)'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자신이 '죽음의 상인'으로 묘사가 된 것을 보고 노벨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8년 뒤인 1896년 알프레드 노벨이 진짜로 숨을 거두었을 때, 노벨은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 3,100만 크로네(단순 환산으로 약 50억원,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약 2,700억원의 가치)를 유언 집행자에게 위탁하고 '이 재산을 운용하여 해마다 인류 복지에 가장 구체적으로 공헌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prizes to those who, during the preceding year, shall have conferred the greatest benefit to mankind)고 유언장에 적어 놓았습니다.    이미지3 / 이미지 4 : 노벨의 유언장 1,2페이지 유언장이 공개되자 유산을 기대했던 친척들(노벨은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었음)은 유산 상속권을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나서기도 했고, 스웨덴 국왕은 스웨덴 사람이 벌어들인 돈이니 스웨덴 국고에 귀속해야 한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미지5 : 노벨상 메달 우여곡절끝에 노벨 사후 5년만인 1901년에 노벨재단이 수립되었고, 노벨상의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1901년 12월 10일, 5개 부문 6명이 처음 노벨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노벨 물리학상 (스웨덴 왕립 고등 과학원에서 결정)  노벨 생리학·의학상 (스웨덴 스톡홀름의 카롤린 의학연구소에서 결정)  노벨 화학상 (스웨덴 왕립 고등 과학원에서 결정)  노벨 문학상 (스웨덴 스톡홀름 아카데미에서 결정)  노벨 평화상 (노르웨이 국회 스토르팅의 추천에 의해 구성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결정) 노벨 경제학상 (스웨덴 왕립 고등 과학원에서 결정) 노벨이 왜 평화상을 스웨덴이 아니라 노르웨이에서 수여하게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69년 노벨기금과는 별도로 1967년 스웨덴국립은행의 창립 300주념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경제학상이 추가되었습니다.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Swedish National Bank's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입니다.  이미지6: 노벨의 유언장 일부 ('하리하라의 청소년을 위한 의학 이야기'의 들어가는 말 中) [출처] 노벨상의 유래, 노벨의 유언장 일부
1    [노벨문학상과 시인]"유대인 민족의 비극을 대변한" 녀류시인 댓글:  조회:3098  추천:0  2017-11-03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넬리 작스 Nelly Sachs 1966년의 넬리 작스 본명 Leonie Sachs 출생 1891년 12월 10일 독일 베를린 쇠네베르크 사망 1970년 5월 12일 (78세) 스웨덴 스톡홀름 국적 독일 시민권 스웨덴 영구거주권 직업 시인, 극작가 상훈 노벨 문학상 (1966년) 서명   넬리 작스 (1910년) 넬리 작스(Nelly Sachs, 본명 Leonie Sachs,  1891년 12월 10일 ~ 1970년 5월 12일)는 스웨덴의 시인·극작가이나 주로 독일어로 작품을 썼다. 유대인으로 베를린에서 출생. 공장주인 아버지의 서재에 파묻혀 어려서부터 모든 시대의 민담과 동화를 읽고 문학적 소양을 키운 작스는 낭만주의 작가의 작품과 동방의 지혜까지 섭렵했다. 17세 때부터 시작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독일의 유대인 학살의 공포 분위기에 위축되어 공포와 불안의 시절을 보내다가, 스웨덴으로 이주해 정착하여 다시는 독일 땅을 보지 않았다. 시집으로는 《죽음의 집에서》(1947년), 《성식》(星蝕, 1949년), 《이상향으로의 행진》(1960년) 등이 있고 196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데 영향을 준 시극 《엘리》(1962년)가 있다. 《그리고 아무도 더 이상 모른다》(1957년), 《그러나 이 태양도 역시 고향이 없다》(1957년), 《피란과 방황》(1959년), 《모래 속의 미소》(1964년) 등의 희곡도 썼다. 특히 《엘리》는 〈이스라엘의 고민을 그린 신비극〉이란 부제가 달려 있는데 시간과 장소, 클라이맥스와 사건 등이 무시된 채, 유대인의 정감이 자유스런 형식에 담겨 있는 환상적 작품이다.       출생 1891. 12. 10, 베를린 사망 1970. 5. 12, 스톡홀름 국적 독일 요약 넬리 작스 독일의 시인·극작가. 196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나치 시대를 겪은 뒤 단순한 예술 애호가에서 유대인 동포들의 슬픔과 갈망을 호소하는 대변자로 변신했다. 1966년 유대인 작가 사무엘 요제프 아그논과 함께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그녀는 "아그논은 이스라엘을 대변하지만, 나는 유대 민족의 비극을 대변한다"고 말했다. 부유한 제조업자이자 발명가의 딸로 태어난 작스는 베를린의 상류층 거주지인 티에르가르텐에서 성장했다. 무용과 인형극을 취미로 즐겼고, 17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 쓴 낭만적이고 진부한 시들이 신문에 발표되긴 했지만, 주로 작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쓴 것이었다. 독일에 나치즘이 출현하여 생활이 암담해지자 작스는 고대 유대인들의 글에서 위안을 찾았다.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질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1940년에 스웨덴으로 탈출했다. 작스와 편지를 주고받던 친구이자 스웨덴 소설가인 셀마 라예를뢰프가 스웨덴 왕실에 작스를 구해달라고 탄원하여 그녀의 탈출을 도와주었다. 방이 하나뿐인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스웨덴어를 배운 뒤, 독일 시를 스웨덴어로 번역했다. 이 시기의 서정시들은 단순성은 부족하지만 부드럽고 강렬하면서 신비스러운 심상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이스라엘의 육신이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오는 연기처럼 떠도는 유명한 시 〈오 굴뚝이여 O die Schornsteine〉는 영어로 번역된 작품집(1967)의 표제 시로 선정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희곡 〈엘리:이스라엘의 고통에 대한 신비극 Eli:Ein Mysterienspiel vom Leiden Israels〉(1951)은 독일의 라디오와 도르트문트의 무대에 발표되었다.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인 1965년 75세 생일날 독일 출판업자들이 주는 평화상을 받았다. 예전에 자신이 도망쳐 나왔던 나라에서 주는 상을 받으면서, 그녀는 시의 주제에 포함되어 있는 화합과 용서의 정신으로 "지난 날의 그 모든 공포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들을 믿는다"고 말했다. ================================         넬리 작스 [Sachs, Nelly (Leonie), 1891.12.10~1970.5.12]   독일의 유대계 여류시인. 1891년 12월 10일 베를린에서 출생하였다. 부유한 가정의 딸로, 음악과 무용을 배우며 성장하였다. 일찍부터 독일 낭만파와 스웨덴의 S.O.L.라게를뢰프의 영향 밑에서 시작(詩作)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스톡홀름으로 망명하였으며, 그후로는 결코 독일 땅을 밟지 않았다. 세계대전의 가혹한 경험으로 유대 민족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또한 이 현실을 구약성서의 유대인의 운명과 겹쳐, 투명하고 애처로운 예언자적·묵시록적인 많은 시가 우러나오는 근거가 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신(屍身)의 집에서 In den Wohnungen》(1974) 《별의 침식 Sternverdunkelung》(1949) 《도망과 변신 Flucht und Verwandlung》(1959) 《찾는 여인 Die Suchende》(1966) 《열려라, 밤이여 Teile dich Nacht》(1971) 등의 시와, 《이스라엘의 수난》에 수록된 신비극 《엘리 Eli》(1951) 등이 있다. 196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밤이여, 나뉘어라   - 넬리 작스     1. Diese versch Tu"r (굳게 닫힌 문)   그 뒤에서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너는 그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본다. 너의 두 눈은 네 몸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가? 아니면 이미 죽음 속에 있는가? 죽음은 열려 있고 비밀들은 그 뒤에 비로소 살아있다.     2. Vor meinem Fenster (내방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 말라붙은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 너는 그 새를 본다 너는 그 새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다르게 나는 그 새를 본다 나는 그 새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다르게 똑같은 태양계 안에서 하지만 다르게     3. Teile dich Nacht (밤이여 나뉘어라)   너의 빛나는 두 날개는 경악으로 떨고 있다. 나는 이제 떠나려 하고 네게 피비린내 나는 밤을 돌려주게 될것이기에         그때 소하르의 저자는        - 넬리 작스   그때 소하르의 저자는 글을 쓰고  낱말의 피의 그물을 열어  보이지 않게 흐르며, 오직  갈망으로만 불 밝힐 수 있는  별들의 피를 흘려 넣었다     알파벳의 시체가 무덤에서 일어나고,  글자의 천사, 창조의 물방울이 담긴  태고의 수정,  그들이 노래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루비와 히야신스와 돌이 희미하게 빛나는 것이 보였다.  그때 돌들은 아직 부드럽고  꽃씨처럼 흩뿌려졌다.     그리고 검은 호랑이, 밤은  울부짖고; 상처인 낮은  불꽃으로 피 흘리며  몸부림쳤다.     빛은 벌써 침묵하는 입이었고  다만 가느다란 입김이 영혼의 신을 고백했다.           나는 너를 다시 보았다      - 넬리 작스  나는 너를 다시 한번 보았다,  연기가 너의 형상을 그렸다,  죽어가는 실체에서  번데기의 껍질을  너는 벗어던졌다,  사라진 태양,  네 사랑의 끈에  제비날개의  접혀진 비상처럼  솟아오른  밤이 빛났다.  나는 바람의 지푸라기 하나를 붙잡았다,  유성 하나가 거기 매달려 있었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합창     - 넬리 작스       우리들, 구원받은 사람들, 죽음이 우리의 텅빈 뼈로 피리를 만들고, 우리의 힘줄로 활을 켜고...... 우리의 육체는 끊겨진 음악으로  아직도 탄식하고 있다. 우리들 구원받은 사람들, 우리의 목에 감길 올가미는   아직도 우리 앞에, 푸른 허공에 늘어져 있고...... 아직도 시간은 우리의 떨어지는 핏방울로 채워지고 있다. 우리들 구원받은 사람들, 아직도 공포의 구더기들이 우리를 갉아먹고  우리들의 별들은 먼지 속에 파묻혔다. 우리 구원받은 사람들은  너희에게 비노니 너희의 태양을 우리에게 천천히 보여다오. 걸어서 우리를 별에서 별로 이끌어가라. 우리로 하여금 고요히 삶을 다시 배우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어쩌면 어느 새의 노래나  샘터에서 물동이를 채우는 것이  잘 닫혀지지 않은 우리의 고통을 갑자기 열어 흘러넘치게 할 것이다......  우리는 너희에게 부탁하노니: 우리에게 아직 물어뜯는 개를 보여주지 말아다오 우리가 혹시, 우리가 혹시 먼지로 부서져 흩어질지도 모르니...... 너희의 눈 앞에서 먼지로 흩어질지도 모르니. 그러면 무엇이 우리의 끈들을 붙잡아 줄까? 숨결이 없어진 우리들, 사람들이 순간의 방주 안으로 우리의 육체를 구하 기 훨씬 전에 우리의 영혼은 한밤중으로부터 그에게로 도망갔다. 구원받은 우리들은, 너희와 악수하고 우리는 너희의 눈을 알아본다...... 그러나 우리를 붙잡고 있는 것은 결별뿐이니, 먼지 속의 결별이 우리를 너희에게 결속시킨다.           멈춰진 시간  -넬리 작스     고통으로 멈춰진 시간. 죽음당한 자들과 죽음에 가담한 자들이 뒤섞이고, 뒤따르던 자들은 숨을 죽인다.   축 늘어진 아이들의 검던 눈동자는 어제보다 더 희어지고 남아있는 사물들은 서로 발톱을 내세워 모두를 위협한다. 고통스런 몸짓으로 날개짓하던 나비들의 행렬이 물 속으로 침몰하고,   곧 빛을 잃고 소멸하는 태양.        침묵 - 넬리 작스     무덤가를 떠돌다 모래위에 흩뿌려진 머리카락. 희미한 불꽃에도 한올한올 타들어 가고 타다만 머리카락은 발자국에 짓밟힌다. 머리카락이 모래와 섞여 사방으로 흩어지면 무덤속을 헤매던 낡은 그림자가 이제는 침묵하리니.            너는 창가에 앉아 있다     -넬리 작스 너는 창가에 앉아 있고 눈이 내린다. 너의 머리는 희다 네 두 손도- 그러나 네 흰 얼굴의 두 거울 속에는 여름이 남아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 속으로 격상된 초원을 위한, 땅- 밤을 향한 그림자, 노루들을 위한 시내. 그러나 탄식하며 나는 너의 백색 속으로 가라앉는다. 너의 雪 속으로- 그곳으로부터 삶은 그렇게 가만가만 멀어져 간다 최후에 올려진 기도가 끝난 것처럼- 오, 너의 雪 속에서 잠드는 것 세계의 불 같은 입김 속에서 모든 고뇌를 지닌 채, 네 두상의 부드러운 선들이 새로운 탄생을 위해 이미 바다의 밤 속으로 가라앉는 동안.         갑자기 예언자들이 들어온다면           - 넬리 작스       밤의 문을 열고 예언자들이 갑자기 들어온다면. 습관의 밭에 그들의 말씀으로 아픈상처를 씻으며 날품팔이꾼을 위해 멀리서 곡식을 가져온다면 그는 이미 저녁에 기다리지 않지만   밤의 문을 열고 예언자들이 갑자기 들어온다면 고향에서 처럼 귀 귀울이라 소리친다면   쐐기풀 우거진 인류의 귀여, 너는 들을 것인가?   ....   작은 소리들로로 가득 찬 인류의 귀여, 너는 들을 것인가?           아이들이 죽는 그곳에서는 언제나           - 넬리 작스  아이들이 죽는 그곳에서는  언제나  가장 소리없는 사물들도 집을 잃는다.  고통의 외투를 휘감은 저녁 노을  그 안에 지빠귀새의 검은 영혼이  밤이 다가옴을 슬퍼하고  떨고 있는 풀잎 위로 가느다란 바람이 불고  빛의 파편들을 끄고  죽음을 뿌리며 다가오는 밤.....  아이들이 죽는 그곳에서는  언제나  밤의 불의 얼굴들이  비밀 속에 외로이 타오르고  아무도 죽음이 보낸  표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생명의 나무의 냄새,  낮을 단축시키는 수탉의 울음 소리  아이들의 방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가을 새벽의 마술 시계.....  어둠의 해안에 밀려 오는 물결.  사락사락 소리내며 잡아끄는 시간의 잠.....  아이들이 죽는 그곳에서는  언제나  인형의 집에 거울들은  입김으로 흐려지고,  어린아이들의 춤을 뒤집어 쓴  난장이 인형들의 춤을 이제는 비추지 못한다.  망원경으로 보는  달빛어린 세상처럼  고요히 멈추어 있는 춤.  아이들이 죽는 그곳에서는  언제나  돌과 별과  그리고 그렇게도 많은 꿈들이  집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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