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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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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개야 개야, 나와 놀쟈... 댓글:  조회:4944  추천:0  2017-11-04
인류사를 바꾼 '파블로프의 개'    2017-11-3 1   [조수와 함께 개를 리용한 동물실험중인 파블로프 박사의 모습(사진=미국 애팔래치안 주립대학교)]  오늘날 개는 숱한 동물보호단체의 비난속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실험동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사람과 1만 4000년 이상 같이 지내는 동안, 거의 한 식구처럼 분류돼왔고 그런 인류의 '친구'를 실험용으로 쓰는 것에 대한 반감은 과거나 지금이나 매우 크다.  이런 개를 동물실험용으로 끌고 온 사람은 보통 '조건반사'란 용어로 유명한 파블로프 박사였다. 이반 페트로비치 파블로프 박사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생리학박사로서 그가 발견한 조건반사와 무조건반사는 흔히 '파블로프의 개'로 알려져있다. 먹이를 주기 전부터 개가 침을 흘리는것을 보고 실험에 나섰다고만 알려져있지만 그 실험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는 잘 알려져있지 않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은 개의 턱에 구멍을 내서 살아있는 개의 타액이 밖으로 나오도록 한 뒤에 이 량을 측정하는 방식이였다. 당연히 실험이 끝난 개는 정상적으로 살수 있을리가 없었다. 파블로프 박사는 이 실험 외에도 소화작용, 신경계, 인슐린, 내분비계 등을 발견하기 위해 수많은 개를 죽이고 해부했다. 파블로프의 개는 한마리가 희생된것이 아니라 700마리가 희생됐다. 파블로프 박사는 로년에 "내 실험에 희생된 700마리의 강아지 이름을 모두 기억한다"면서 자신이 느낀 죄책감에 대해 토로한 바도 있다. [사진: 동물실험용으로 희생되는 비글.] 하지만 이후 개는 동물실험에서의 유용성이 확인되면서 각종 동물실험에 엄청난 수자가 쓰였다. 미국과 구쏘련간 랭전시기에는 유인우주선 연구에 활발히 활용됐다. 세계 최초로 우주에 올라갔던 개, 라이카가 보통 알려져있지만 우주개발에 희생된 구쏘련의 강아지는 라이카를 포함해 5마리에 이른다. 령리하고 사람을 잘 따르고, 훈련을 착실히 받는다는 장점으로 인해 수많은 개들이 실험용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런 실험동물로서 개의 희생은 비단 과거의 일만이 아니다. 특히 사람을 잘 따르고 고통을 잘 참는것으로 알려진 비글종(种)은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각종 연구에 흔히 쓰인다.  ///연변일보넷/외신종합
7    [쉼터] - 두 가정과 두 아들... 댓글:  조회:2892  추천:0  2017-11-04
바뀐 아들과 30년 살아온 두 부부   2017-11-3    병원의 실수로 바뀐 남의 아들을 키워온 두 부부가 수년만에 이같은 사실을 알고도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더 크다고 판단해 서로 자녀를 바꾸지 않은 좀처럼 믿기 힘든 사연이 공개됐다. 그렇게 큰 두 아들은 각자 가정을 이루고 최근에는 아빠가 됐다. 지난 1일 시나넷(新浪网)에 따르면 절강성 수창(遂昌)현에 사는 계국화(季国花)와 라소혜(罗素慧)는 1983년 9월, 현지의 한 병원에서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병원의 실수로 계씨와 라씨의 아들이 바뀌였다. 물론 그런 일을 상상조차 못했던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채 각자의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사진: 계씨의 아들. 하지만 그는 병원의 실수로 라씨 부부의 집에서 살게 된다.] 몇년 뒤, 계씨의 시누이가 자신이 일하는 유치원에서 오빠 정성비(程成飞)와 매우 닮은 4살 남자아이를 발견하면서 이들 가족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혈액형검사 결과 모두 A형인 계씨 부부와 달리 아들은 B형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계씨 부부는 친아들을 찾으려는 라씨 부부를 알게 됐다. 기록대조와 병원의 실수 인정으로 아들이 바뀐 사실을 밝혀낸 이들 부부는 의료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의 판결에 따라 각각 1000원을 받게 됐다. 정신적 충격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액수이다. [사진: 라씨의 아들. 하지만 그는 병원의 실수로 계씨 부부의 집에서 살게 된다.] 두 부부에게는 서로 아들을 다시 바꿀것이냐는 선택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낳은 정도 중요하지만 기른 정이 더 크다고 판단, 서로의 아들을 대신 키우기로 했다. 갑자기 가족이 바뀐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잘 커온 아이들의 충격이 클것이라고 판단해서이다.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는것을 알게 된 부부는 자주 왕래했고 아이들도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계속 만날수 있게 됐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일이 이들 가족의 뉴대감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었다. 올해 34살이 된 두 아들은 각자 결혼해 가정을 이뤘고 최근 딸과 아들을 출산했다. 어렸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성장과정에서 알았지만 부모를 탓한적 없다. 정씨는 “과거는 과거로 지나가게 둬야 한다”면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조심하면 된다”고 말했다. [사진: 라씨의 아들과 그를 키운 계씨 부부. 계씨의 아들과 그를 키운 라씨 부부(왼쪽부터).] ///연변일보넷 편집부 편집
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중국 장춘에도 참대곰 없다?... 있다!... 댓글:  조회:3905  추천:0  2017-11-04
장춘 첫눈 맞이, 참대곰들 눈판에서 즐겁게 뛰놀아 인민넷 조문판: 11월 2일, 장춘시는 가을 첫눈을 맞았다. 길림성 동북호랑이원내의 참대곰 몽몽은 흥분해서 눈이 내린 땅에서 마음껏 뛰놀고 있었다.
5    [쉼터] - 신화사에 미녀 조선족 시사평론원 없다?... 있다!... 댓글:  조회:4404  추천:0  2017-11-04
 (흑룡강신문=하얼빈)정명자 기자= 현재 신화사 고급편집으로 사업하고 있는 오학란(녀, 45. 조선족)씨는 중국 굴지의 미녀 시사평론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중앙텔레비전방송국, 중앙인민라지오방송국, 봉황채널위성, 북경텔레비전방송국, 동남위성, 호북위성 등 매체의 특약 시사평론원으로 전전하며 다양한 지식, 원활한 진행으로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그는 중국대륙에서의 첫 녀성 텔레비전 시사평론원이다. 현재 하남위성'v관점' 시사평론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다.   1972년 2월 29일 내몽골자치구 훅호트시에서 태여난 오학란씨는 1993년 8월 무한대학 외국어학원 러시아전공을 졸업한 후 그해 신화사 '참고소식' 편집부(현재 참고소식신문사)에 입사해 지금까지 몸담고 있다.       그는 특히 '참고소식'신문사 시정신문부 주임으로 사업하면서 일상적인 '참고소식' 톱기사의 기획과 제작사업을 맡으며 탄탄한 시사지식을 쌓았고 자체 위상을 한층 굳혔다. 한편 신화사 세계정세연구센터 러시아문제 연구원으로 발탁되였다.   오학란씨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북경인민라지오방송국 문예프로그램의 초빙 사회자로 활약하면서 취재, 편집, 방송 등 세가지를 일원화하는 방식으로 '만사정통', '이브의 이야기', '안녕, 북경' 등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대중의 인기' 사회자의 일원으로 발돋움하였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신화사 모스크바 주재 분사의 기자로 재임 당시 시사류 월간 '환구' 잡지에 '붉은 광장 위기' 칼럼을 설치하여 독자들에게 '가장 진실한 러시아'를 알려주어 일약 명기자 명단에 올랐다.             이를 바탕으로 '참고소식’ '특별란’, '국제선구도보', '반월담', '해외요약' 등 간행물에 대량의 기사를 쓰며 '미녀 시사평론원'으로 자리매김 했다. ---------------- ================ 낭떠러지우에서 선보인 조선족 장고춤 인민넷 조문판: 11월 2일, 호남 상서 길수고문화절에서 길림 연변조선족 장고춤팀 연기자들이 덕항 풍경구 천문대에서 조선족 장고춤을 선보이고있다. 당일, 길수고문화절이 호남 상서 투쟈족묘족자치주 길수시 덕항풍경명승구 천문대에서 개막했다.
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곰들아, 마음껏 뛰여 놀거라... 댓글:  조회:2903  추천:0  2017-11-04
10년 동안 술집 철창 안에서 학대당한 곰 두 마리 (ZOGLO) 2017년11월2일 한 술집에 있는 철창 안에 갇혀 10년 동안 손님들의 구경거리가 됐던 곰 두 마리가 극적으로 구조됐다.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의 한 강변의 바에서 10년 동안 학대당한 곰 미샤(Misha)와 다샤(Dasha)의 사연을 전했다. 미샤와 다샤는 평생 이 가게 안에 설치된 좁은 철창에 갇혀 지내왔다. 시간이 흘러 철창은 이미 빨갛게 녹이 슨 상태였다. 손님들은 식사하는 동안 곰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주인은 곰들에게 따로 먹이를 주지 않았다. 그저 손님들이 먹다 남은 음식이 곰들의 끼니가 됐다. 비좁은 철창 안이 답답했던 곰들은 몸을 철창에 부딪히고, 철창을 타고 오르며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10년간 이런 환경에서 학대당하며 살아온 미샤와 다샤의 존재는 얼마 전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두 마리 모두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였고, 약간의 외상도 있었다. 과거 소련에서 곰을 포획해 기르는 전통이 이렇게 변질된 것이었다. 결국 영국 동물 보호단체 IAR(International Animal Rescue)은 아르메니아 현지 구조대원들과 미샤와 다샤를 구출하는 작업을 벌였다. 구조대 요청에 이 바의 주인도 구조 작업을 도왔다. 구조대는 조심스럽게 곰들이 갇혀 있던 철창을 절단했다. 이후 두 마리 곰이 흥분하지 않도록 진정시킨 구조대원들은 미샤와 다샤를 운송 컨테이너로 옮긴 뒤 산에 있는 보호구역으로 안전하게 이송했다. 처음으로 자유를 되찾은 미샤와 다샤는 남은 생을 보호구역에서 지낼 예정이다. //YTN PLUS ==================== 덤으로 더... 자연을 앞세운 명소 끓는다 작성자: 최장춘 지난 국경절, 추석 황금련휴를 맞아 연변의 관광지역마다 호황기를 누렸다. 그중 모아산 일대는 농부축제, 사과배축제 등 흥미롭고 다채로운 문화행사로 후끈 달아올랐다. 헌데 이상하리 만치 유독 모아산기슭에 자라잡은 해란강민속원만은 엄청난 부지면적에 어울리지 않게 잠자코 조용했다. 벌써 준공된 지 6년째, 찾는 이 물어보는 이 없다 보니 수십채 고색 짙은 전통 상가, 가옥이 즐비하게 일어섰건만 등골이 싸늘한 바람이 불어칠 뿐이다. 한때 시민들의 관심을 모았던 민속원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가? 연길시내 복판에서 바라보면 부르하통하 너머 멀리 남쪽방향에 위치한 모아산은 사철 푸른 소나무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여름에는 불볕을 식혀주고 겨울에는 삭풍을 막아 훈훈한 기운이 감도는 시민들의 좋은 쉼터다. 그런 산자락을 무턱대고 파헤쳐 생뚱같이 민속원이란 걸 앉혔으니 어쩌면 퍼덕이는 봉황의 날개를 찢은 형국이라 여직 민속원을 기대했던 민심이 아이러니 등을 돌려버렸을지도 모른다. 향항이나 오문 같은 도시는 평지가 부족해 산비탈을 깎아 집을 지었지만 연길시는 도처에 낡은 집터가 널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산자락을 파헤친 까닭이 무엇인지 참으로 답답한 일이라 하겠다. 자연 앞에서 독선을 내세운 억지공사는 일시 산을 옮기고 바다를 막는 성취감이 도도해질지 몰라도 조만간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여있는 것이 인과응보의 섭리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의 주인이 되여 살고 싶어 한다. 그런 연고로 수천년 내려오며 사람들은 인간의 체취보다 자연의 정기를 우선시하면서 집주변에 잔디와 갖가지 화초를 심어놓고 애지중지 가꾼다. 연길시 동쪽 교외 소화룡촌을 보시라. 천년 묵은 나무를 에워싸고 빙 둘러앉은 마을의 풍치, 파아란 잔디가 물마루 이루는 골프장, 그리고 풀어진 바줄처럼 굽이굽이 흐르는 강녘에 꽃양산을 받쳐든 정자들, 자연의 들숨날숨 그대로 이뤄진 마을이여서 길손들의 발목을 잡아 매일 명절 분위기로 흥성흥성하다. 관광객이 명소를 찾는 리유가 멋들어진 경관을 흔상하려는 면도 있겠지만 황홀한 절경과 인간의 존재가 어떤 통합을 이뤄가느냐를 마음속으로 체득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인간애를 론할 자격이 없다. 주변의 생태환경을 살점처럼 아끼는 주인공적인 자세와 노력에 경주하라. 자연을 정복하려는 맹목적인 열성을 버리고 삼라만상의 순리를 터득하고 자연과 더불어 조화로운 극치를 꾸며가는 슬기로움을 보여줄 때 우리 연길시의 관광코스가 한층 더 높은 차원에서의 매력으로 활기 띨 것이다. ///길림신문 2017.11.1
3    [쉼터] - 개팔자 상팔자 개세상 좋을씨구라구라... 댓글:  조회:4605  추천:0  2017-11-04
대형견 바론, 집에선 아기랍니다 (ZOGLO) 2017년11월4일      대형견과 같이 사는 건 조금 다른 의지가 필요하다. 작은 강아지처럼 무릎 위에 올려 장난을 칠 수도 없고, 하루 이틀쯤은 산책 대신 집에서 뛰놀게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만큼, 대형견은 특별한 행복을 선사한다. 여기 초대형견 바론을 키우는 마크와 도로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바론은 해도 해도 너무 크다. 잉글리시 마스티프 종인 바론은 가뜩이나 큰 종인데 유별나게 발육 상태가 좋다. 키는 6.5비트(약 2m)로 뒷다리만을 이용해 직립한다면 전 농구 선수 서장훈과 고개를 꺾지 않은 채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다.   더 놀라운 건 바론이 이제 겨우 두 살이라는 거다. 그의 성장은 앞으로 1,2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발육의 비밀은 음식에 있는 듯 하다. 바론은 엄청난 육식 애호가로 하루에 스테이크 2개는 먹어 치워야 보채지 않는다. 마크와 도로시는 바론의 한 주 사료비로 200달러(약 22만 원)씩 지출하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필자가 대형견의 삶을 부러워하게 될 줄이야.         자, 다시 바론의 육중하고 거대한 체구에 대해 얘기해 보자. 바론은 트윈 매트리스 침대 전체를 쓴다. 물론 처음엔 전형적인 강아지 침대를 썼겠지만 글쎄. 바론이 걸음마를 뗄 때쯤 중고나라에 올라가지 않았을까.   그러나 바론은 여전히 '아기아기'하다. 반려인 마크는 외신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바론은 제가 집밖으로 나가면 울어요. 매일 아침 우리가 1층으로 내려가면 우리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인사를 하죠. 덩치가 산만한데 여전히 아기예요."하면서 껄껄 웃었다.            최근 바론은 밥값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집 안에서 건강하게만 자라줘도 훌륭하게 밥값을 해주는 것이지만, 바론은 특유의 부드러운 성격으로 얼마 전부터 치료견(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개)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반려인들은 바론을 호주에서 가장 큰 개로 인증하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혹시 바론보다 큰 개를 본 적 있는가? 이변이 없다면 머잖아 기록과 역사에 남을 개이니 바론을 미리 눈여겨 보자.    바론의 이야기는 허핑턴포스트, 데일리메일 등 외신을 통해 소개됐다. ///에디터
2    가장 서민적인것, 가장 거룩한 세계, 가장 현대적인것... 댓글:  조회:1517  추천:0  2017-11-04
  ** 박수근 (1914 - 1965)의 작품세계 / 1950년대 **  [ 마을 / 1950 후반 ] [ 마을 풍경 / 1955 ] [ 모란 / 1950년대 ]  [ 복숭아 / 1957년 ]  [ 빨래터 / 1954년 ]  [ 빨래터 / 1950 후반 ]  [ 빨래터 / 1950 후반 ]  [ 산 / 1950년대 ]  [ 석류 / 1954년 ]  [ 시장 / 1950년대 ]  [ 시장 / 1950년대 ]  [ 시장 / 1950년대 ]  [ 시장의 사람들 ]  [ 아기보는 소녀 / 1953년 ]  [ 아기업은 소녀 / 1950년대 ]  [ 아기업은 소녀 / 1950년대 ]  [ 아기보는 아이들 / 1950년대 ]  [ 앉아있는 여인 / 1958년 ]  [ 여인들 / 1950년후반 ]  [ 우물가(집) / 1953년 ]     화가 박수근의 삶과 예술은 [서민의 화가]라고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는 곤궁한 시절에 힘겹게 살아갔던 서민화가 그 자체였다. 1914년 강원도 양구 산골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밖에 다닐 수 없었지만, 밀레의 "만종"이란 그림에 큰 감동을 받아 그와 같은 화가가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꾸준히 하였다. 1932년 "조선 미술 전람회"에 수채화 '봄이 오다'가 입선되면서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빛 그리고, I Love You...대전 엑스포 공원에서.....2006.12.29 6.25동란 중 월남한 그는 부두노동자,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 그려주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박완서 소설 "나목"의 등장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힘들고 고단한 삶속에서도 그는 삶의 힘겨움을 탓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의 무던한 마음을 그렸다. 절구질하는 여인,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 길가의 행상들, 아기를 업은 소녀,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김장철 마른 가지의 고목들... 5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박수근 화백은 우리 민족의 애환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생전에 그의 작품은 한국에서 보다 미국인 애호가에 의해 외국에서 더 인정을 받았다.그로 인해 궁핍한 삶이지만 근근히 작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한다. 그는 예술에 대하여 거의 언급한 일이 없고 또 그럴 처지도 아니었지만, 그의 부인 김복순 여사가 쓴 [아내의 일기]를 보면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을 그려야 한다는 극히 평범한 예술관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화가의 이러한 마음은 곧 그의 예술의지가 되어 서민의 모습을 단순히 인상적으로 담아 내는 것이 아니라 전문용어로 말해서 철저한 마티에르를 살린 평면화작업을 추구하게 되었다. 주관적 감정으로 파악한 대상으로서의 서민 모습이 아니라 모든 개인의 감정에서 독립된 완전한 객체로서의 서민이다. 거기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론적 사실주의]를 지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박수근의 그림은 부동의 기념비적 형식이 되었으며 유럽 중세의 기독교 이론과 비슷한 성서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화강암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처럼 움직일 수 없는 뜻과 따뜻한 정이 동시에 느껴진다.그리하여 박수근은 가장 서민적이면서 가장 거룩한 세계를 보여준 화가가 되었고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현대적인 화가로 평가 받고 있다.
1    [그것이 알고싶다] - "훈민정음"과 "훈맹정음"... 댓글:  조회:4543  추천:0  2017-11-04
6개의 점, 훈맹정음을 아시나요? 2017.11.04.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훈맹정음'을 아시나요? 오늘(4일)은 '점자(點字)의 날'입니다. 달력에 표시돼 있지는 않지만,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이 만들어진 1926년 11월 4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입니다. 오늘 리포트+에서는 91번째 '점자의 날'을 맞아 점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훈맹정음을 창안한 사람은 누구인지 알아봤습니다. ■ 6개의 점으로 된 문자, '점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점자(點字)는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문자입니다. 손가락으로 읽을 수 있도록 고안된 문자인데 세로 3점 X 가로 2점으로 총 6개의 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6개의 점 각각에는 고유번호가 붙어 있습니다. 직사각형 모양의 점 칸에 점의 수와 위치에 따라 63개의 형태가 만들어지는데요. 각 형태에 글자를 배정해 문자 체계를 이루게 됩니다. 점자는 1824년 파리맹학교에 재학 중이던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전쟁터에서 어두운 밤에 군사용 작전 명령문을 읽을 수 있는 야간문자를 변형해 창안했는데 처음에는 문자로서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사용이 금지됐습니다. 하지만, 점차 유용성이 입증됐고 파리맹학교는 30년 만에 점자를 시각장애인의 문자로 공인했습니다. 이후 각 나라에서도 자국의 언어를 활용한 점자를 만들어 사용하게 됐습니다. ■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 훈맹정음 만든 송암 박두성 선생 우리나라에서 점자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98년부터입니다. 당시 미국인 선교사였던 로제타 홀(R. S. Hall)이 뉴욕 점자를 활용한 4점 한글 점자를 가르쳤지만 영어와 한국어의 문자 조합 방식이 달라 국내에 정착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사용되는 6점 한글 점자는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훈맹정음(訓盲正音)으로 불리는 지금의 한글 점자를 창안한 사람은 송암(松庵) 박두성 선생입니다. 사범대학교를 졸업해 교사가 된 박 선생은 독립운동가인 이동휘 선생으로부터 암자의 소나무처럼 절개를 굽히지 말라는 의미의 '송암'이라는 아호를 받았습니다. 그 뒤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모인 학교인 조선총독부 제생원 내 맹아부에 발령된 박 선생은 청각 교육에 한정된 우리나라 맹교육의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당시 학생들은 일본 점자로 왜곡된 역사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져 조선어 과목을 없애려 하자 박 선생은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 "눈이 어둡다고 마음까지 우울해선 안 된다"…점자에 한평생 바친 그 일본은 박 선생의 항의를 무시했지만 그는 한글 점자를 만들기 위해 1920년 '조선어 점자연구위원회'라는 비밀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제자인 이종덕, 전태환 등 8명으로 구성된 점자연구위원회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밤낮으로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아이들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불을 끄고 수백 차례 종이를 만져가며 점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26년 11월 4일 7년간의 연구 끝에 한글 창제 원리를 바탕으로 한 훈맹정음이 발표됐습니다. 훈맹정음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박 선생은 다양한 책을 점자로 번역해 점자책을 만들어 전국의 시각장애인들에게 나눠줬습니다. 학교를 벗어나 점자 교육에도 직접 나섰습니다. 박 선생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도 점자 번역을 멈추지 않았고 1963년 8월 25일 숨을 거두기 전까지 훈맹정음 보급에 힘썼습니다. ■ "점자의 의미요? 일상에 의미가 따로 있나요?" 점자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의사소통 방법이자 일상이지만 점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아직 부족한 상황입니다. 공공시설에 점자가 잘못 표기된 경우도 있고 의약품이나 생활필수품 대부분의 점자 표기는 의무사항이 아닌 권장사항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시각장애인 최정금 씨는 지하철을 이용하던 중 출구의 점자 표기가 잘못돼 고생했던 경험을 털어놨습니다. 최 씨는 "영화관 같은 곳에는 점자 안내가 전혀 없다"며 "영화가 끝나면 계단을 이용해 나올 때가 있는데 층 표기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6개의 점. 누군가에겐 그저 몇 개의 점에 지나지 않지만, 누군가에겐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창입니다. (기획·구성: 윤영현,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   ///윤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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