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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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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내전 중에 희생된 "철뚜기와 신비한 베일"에 싸인 시인 댓글:  조회:3862  추천:0  2017-11-14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가르시아 로르카 상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 1899년~1936년)는 스페인의 시인·극작가이다. 유럽 여러 나라의 연극의 영향 밑에 놓여 있었던 스페인 연극을 혁신하고, 더욱이 외국의 극단에도 영향을 끼친 대작가 로르카는 가장 애도해야 할 스페인 내전 중의 희생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라나다 근처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총살된 이 시인은 미국을 여행한 후, 1931년에 극단 '바락카'를 조직하고 스페인 고전연극의 부흥에 분투, 이어 3대 비극 (1933), (1913), (1934)을 완성했고, 시와 극이 융합하는 경지를 민족적인 소재 중에서 실현했다. 이것은 오늘날 세계 연극의 중요한 상연 종목이 되어 있다. 스페인의 전통적 서정을 현대적으로 표현했으며 향토인 안달루시아의 마을을 초현실주의 수법으로 드라마틱하게 노래했다. 최초의 (1927)에 이어 (1927)에서 그의 시는 성숙해졌다. 작품도 실험적인 시도를 구사했으며 항상 민중을 떠나지 않았다. 시는 주제나 그 형식과 수법이 잡다하고 음악적·연극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데 용어에 있어서는 어느 때는 철없이 보이고 어느 때는 신비한 베일에 싸여 있다. =====================================   출생 1898. 6. 5, 스페인 푸엔테바케로스 사망 1936. 8. 19/20, 그라나다 국적 스페인 요약 스페인의 시인·극작가. 목차 개요 생애 평가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 개요 죽음을 주제로 한 시와 3부작 희곡인 〈피의 결혼식 Bodas de sangre〉(1933)·〈예르마 Yerma〉(1934)·〈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La casa de Bernarda Alba〉(1936)으로 유명하다. 스페인 내란이 발생한 직후 민족주의자들에게 암살당했다. 생애 농부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어머니는 직접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가족이 그라나다 시로 이사한 뒤 그곳에 있는 예수회 학교에 다녔다. 아버지의 강요에 못이겨 그라나다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곧 그만두고 문학·회화·음악에 몰두했다. 조숙한 작곡가이자 뛰어난 연주가로서, 친구들 사이에서 '음악가'로 통했다. 1918년 카스티야 여행에서 영감을 얻어 〈인상과 풍경 Impresiones y paisajes〉이라는 산문집을 펴냄으로써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이 책은 '작가'로서의 가르시아 로르카를 예고해주었다. 1919년 스페인 수도의 문화적 중심이던 마드리드대학의 기숙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화가 살바도르 달리, 영화제작자 루이스 부뉴엘, 시인 라파엘 알베르티를 비롯한 그와 같은 세대의 예술가 및 작가들과 사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인 후안 라몬 히메네스를 비롯한 기성세대 저명인사들과도 만났다. 대학 기숙사에서 보낸 첫 2년 동안 스페인 문단 전체에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가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출판한 시는 거의 없었는데, 그것은 "시는 입으로 읊어야 한다. 책 속의 시는 죽은 것이다"라는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따라서 대학 기숙사와 마드리드의 여러 지역에서 중세 음유시인처럼 자신이 쓴 시와 희곡을 낭송했다. 그리하여 작가생활 내내 그의 작품은 출판되기 훨씬 전부터 입으로 창작되어 전파되었다. 이당시 그는 뒷날 〈시집 Libro de poemas〉(1921)·〈첫번째 노래 Primeras canciones〉(1936)·〈노래 Canciones〉(1927)로 엮어져 나오게 될 실험시들을 쓰는 한편 첫 희곡 〈나비의 장난 El maleficio de la mariposa〉을 쓰고 있었다. 이 희곡은 1920년 마드리드의 에슬라바 극장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졌으나 첫날 공연 뒤 막을 내리고 말았다. 가르시아 로르카는 1922년 그라나다에서 열린 민속음악축제(Fiesta de Cante Jondo)에서 저명한 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와 공동으로 작업한 것이 계기가 되어, 자신이 지닌 천재성을 깨닫게 되었다. 민속음악과 집시음악의 전통 속에서 자신의 음악적·시적·영적 충동의 해답을 발견한 듯했다. 〈칸테 혼도의 시 Poema del cante jondo〉(1922 집필, 1931 출판)와 〈집시 노래집 Romancero gitano〉(1924~27 집필, 1928 출판)은 이러한 해답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집시 노래집〉에 실린 18편의 시에는 전통 시형식인 스페인 발라드(romance)가 지닌 전통적인 매력과 새롭고 놀라운 이미지가 결합되어 있다. 그 예로 〈스페인 민병대의 발라드 The Ballad of the Spanish Civil Guard〉에서 민병대가 집시 마을을 향해 불길하게 진군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검은 말들/검은 편자/검은 망토 위에 번들거리는/잉크와 밀랍 얼룩/두개골이 납으로 되어/그들은 울지 않네/칠피 가죽으로 된 영혼을 달고/그들은 길을 따라 내려가네" 〈집시 노래집〉을 쓰면서 그는 희곡도 썼다. 1927년 살바도르 달리가 무대를 꾸며 시적이고 낭만적인 운문극 〈마리아나 피네다 Mariana Pineda〉를 바르셀로나에서 공연함으로써 극 부문에서 처음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같은 해 역시 같은 도시에서 대중을 상대로 한 그림전시회도 열었다. 1928년에 펴낸 〈집시 노래집〉은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으나 행복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단순한 집시 기질을 과장된 신화로 만든다고 불쾌하게 여겼으며, 그 스스로 "내 평생 가장 고통스러웠던 상태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 정서적 위기에 시달린 끝에 위안과 새로운 영감의 샘을 찾아 1929~30년을 미국과 쿠바에서 보냈다. 이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1940년 그의 사후에 발간된 〈뉴욕의 시인 Poeta en Nueva York〉이다. 이 작품에서는 기계화된 문명에서 느끼는 생명의 말살을 잔인하고 뒤틀린 이미지들의 부조화스러운 결합을 통해 표현한다. "숟가락으로/그는 악어의 눈을 파냈다/그리고 원숭이의 엉덩이를 때렸다/숟가락으로" 1931년 그는 스페인으로 돌아와 나중에 〈타마리트 시집 Diván del Tamarit〉(1936)으로 펴내게 된 시들을 쓰기 시작했으며, 다시 희곡을 썼다. 어렸을 때부터 지녀온 꼭두각시에 대한 열정을 표출하여 〈빌리클럽 꼭두각시 Los títeres de cachiporra〉와 〈돈 크리스토발의 인형극 Retabillo de Don Cristóbal〉이라는 2편의 인형극을 썼다. 이 인형 소극(笑劇)까지도 우울한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 스페인 공화국의 출범으로 가르시아는 연극 부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게 되었다. 문교부는 교육받지 못한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고전희곡 가운데 명작들을 접할 수 있게 해준 학생극단 '바라카'(La Baraca)에 보조금을 지급했다(1932~35). 가르시아는 바라카의 설립자·지도자·연출자·음악가로서 로페 데 베가, 칼데론 데 라 바르카, 세르반테스의 작품을 무대에 올려 폭넓은 연극경험을 쌓았다. 이러한 결실이 민속극 3부작 가운데 제1편인 〈피의 결혼식〉(1933)이다. 이 작품은 결혼식날 신부가 몰래 사랑해온 남자와 달아나는데 결국 두 경쟁자는 싸우다가 서로 상대방의 손에 죽었다는 뉴스 기사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가르시아의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운의 인물들로, 원초적인 열정과 문명사회의 단호한 명예규범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가 결국은 죽고 만다. 1934년 자신의 친구였던 한 투우사가 쇠뿔에 받혀 죽은 사건을 바탕으로 〈이그나시오 산체스 메히아스를 애도하며 Llanto por Ignacio Sánchez Mejías〉(1935 출판)를 썼다. 이 시는 그의 가장 뛰어난 시이며 현대 스페인 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에서도 가장 뛰어난 애가로 손꼽힌다. 여기에서 "오후 다섯 시에"(A las cinco de la tarde)라는 공허하고 슬픈 후렴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오후 다섯 시에/정각 오후 다섯 시에/한 소년이 참회자의 흰옷을 샀네/오후 다섯 시에/한 바구니의 석회는 이미 준비되었다네/오후 다섯 시에/나머지는 죽음 그리고 죽음뿐이네/오후 다섯 시에" 1934년말 발표한 〈예르마〉는 3부작 가운데 제2편이며, 〈피의 결혼식〉과 더불어 20세기에 성공을 거둔 몇 안되는 시비극(詩悲劇) 중 하나이다. '비극적 시'인 이 희곡은 아이가 없는 것에 절망해 불임 남편을 죽이는 한 여자의 고통을 다루고 있다. 가르시아는 1936년 6월의 어느날 밤 친구들의 집에서 3부작 가운데 마지막 작품인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발표했다. 거의 모두 산문으로 쓴 이 희곡은 독재적인 어머니에 의해 상가(喪家)에 갇혀 지내는 4자매가 분노와 욕망으로 몸부림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1936년 7월 내전이 터지자 불안을 느끼고 마드리드를 떠나 그라나다로 갔다. 그러나 작품에 계속 등장하는 참혹한 죽음의 전조는 운명으로 다가왔다. 그라나다에서 지내던 어느날 밤 그는 재판도 받지 않은 채 민족주의자들에게 총살당했다. 평가 작품의 소재는 지역적이지만 작품에 계속 나타나는 주제는 보편적인 것으로서 사랑, 욕망, 죽음, 모성애,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에 대한 형제애를 비롯해 무엇보다도 원초적인 욕정이 인습 때문에 좌절되었을 때 그 결과로 생겨나는 잔혹함, 폭력, 죽음 등을 다루었다. 그의 시에서는 근원적인 욕망이 대개 구체적이고 관능적이며 격앙되고 전율을 느끼게끔 표현되었는데 때로는 초자연적으로 병렬된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 표현되기도 한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     강의 백일몽 (헤닐 강)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포플러 나무들은 시들지만   그 영상들을 남긴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포플러 나무들은 시들지만   우리한테 바람을 남겨 놓는다.     태양 아래 모든 것에   바람은 수의를 입힌다.         (얼마나 슬프고 짧은       시간인가!)     허나 그건 우리한테 그 메아리를 남긴다.   강 위에 떠도는 그걸.     반딧불들의 세계가   내 생각에 엄습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그리고 축소 심장이   내 손가락들에 꽃핀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뉴욕에서 달아나다: 문명을 향한 두 개의 왈츠 - 작은 빈 왈츠」    빈에는 열 명의 소녀와 하나의 어깨가 있다. 그 어깨 위에서 박제된 비둘기 숲과 죽음이 흐느끼지. 성에 낀 박물관에는 아침 잔영이 남아 있지. 천 개의 창이 있는 살롱이 있지.   아이, 아이, 아이, 아이! 쉬잇, 이 왈츠를 받아 줘.   이 왈츠, 이 왈츠, 이 왈츠, 바다에 꼬리를 적시는 코냑과 죽음과 “좋아요!”의 왈츠.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우중충한 복도 언저리, 안락의자와 죽은 책까지; 여기는 백합의 어두운 다락방, 달이 있는 우리의 침대에서 거북이가 꿈꾸는 춤 속에서, 사랑해.   아이, 아이, 아이, 아이! 부서진 허리의 이 왈츠를 받아 줘.   빈에는 너의 입과 메아리들이 노는 네 개의 거울이 있지. 소년들을 푸른색으로 그리는 피아노를 위한 하나의 죽음이 있지. 지붕 위로는 거지들이 있지. 통곡의 신선한 화관들이 있지.   아이, 아이, 아이, 아이! 내 품 속에서 죽어가는 이 왈츠를 받아 줘.   왜냐하면 널 사랑하니까, 널 사랑하니까, 내 사랑아, 아이들이 노는 다락방에서. 아이들은 따스한 오후의 소란한 소리들을 듣고 헝가리의 오래된 빛들을 꿈꾸고, 네 이마의 어두운 고요를 느끼고 눈빛 백합들과 양떼들을 본단다.   아이, 아이, 아이, 아이! “영원히 널 사랑해”하는 이 왈츠를 받아 줘.   빈에서 나는 너와 춤을 추리라, 강의 머리를 그린 가면을 쓰고. 히아신스 꽃이 가득한 나의 강변들 좀 봐! 내 입을 너의 두 다리 사이에 두고, 내 영혼을 사진들과 수선화들 사이에 두리라. 그리고 네 발등의 어두운 물결에는 내 사랑아, 나의 사랑아, 바이올린과 무덤, 왈츠의 테이프를 선사하리라. (번역: 민용태)                                         ● 시_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 1898년  스페인 그라나다 근처 마을 푸엔테 바케로스에서 출생. 시집 『시 모음』『노래집』 『집시 이야기 민요집』『이그나시오 산체스 메히아스의 죽음』 등. 희곡  「피의 결혼」「예르마」「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등. 1936년 8월 19일 생을 마감함 (스페인 내전 초기, 공화주의자였던 로르카는 파시스트 반란군에 체포돼 사흘 뒤 총살당함).      ● 낭송_ 한동규 - 배우. 연극 , 등에 출연.   ● 출전_ 『로르카 시 선집』(을유문화사)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김태형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뉴욕에서 달아나다: 문명을 향한 두 개의 왈츠 - 작은 빈 왈츠」를 배달하며   로르카 시를 제대로 만난 건 민용태 선생님이 번역해서 《현대시학》에  게재한 ‘로르카 특집’(아마도)에서였다.   “파랗게 사랑해 파랗게./파란 바람, 파란 잎가지./ 바다에는 배/산에는 말./  허리에 어둠을 두르고/ 베란다에서 꿈꾸는 여인,”(「악몽의 로맨스」 부분)   시들을 홀린 듯 읽으며 비수로 가슴께를 슥 베이는 듯했는데 그 시린 통증의  절반 남짓은 질투심이 유발한 것이었다. 내가 지적 근기 없는 인간이 아니었더라면  스토커처럼 그의 시들을 캐고 다녔으련만. 더 이상 알지도 못하면서 “로르카 최고!”  “내 로르카!”만 남발하고 다녔나보다. 그로부터 일 년쯤 뒤,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쯤 전,  그라나다에 들른 친구로부터 달랑 한 문장 적힌 엽서를 받았다. “로르카가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 곳, 나는 전율한다!”   그즈음 한 술집에서 레너드 코헨 노래를 들었다. 그 애절한 노래에 달콤하게 휘감겨  발끝을 까딱거릴 때 소설가 이인성 선배가 “저 가사 로르카 시야.”라고,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일러줬다. 아!?   앨범을 구해 몇 날 며칠 그 노래만 듣다가 열 개의 카세트테이프를 그 노래로 채우고  열 장의 종이에 가사를 옮겨 적었다. 열 명의 친구들에게 선사하고 싶어서.   어휘 하나하나가 어둡고 향기롭다. 로르카 시가 대개 그렇듯 죽음이 있고, 숨 막힐 듯한   꽃향기가 있고, “아이, 아이, 아이, 아이!” 통곡소리가 있고. 문학집배원 황인숙 / 출처 :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       
14    [쉼터] - 모형기차의 달인 외길인생 빛난다... 댓글:  조회:4502  추천:0  2017-11-14
인천대공원 동물원 인근 '기차왕국박물관 Cafe'에 가면 40여년간 모형 기차를 만들어 온 장인을 만날 수 있다. 기차 왕국을 꿈꾸며 황동 조각으로 모형 기차를 만들어 온 이현만(61)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황동 조각으로 정교한 기차 모형을 만드는 이현만씨가 13일 오후 인천 남동구 장자로에 있는 '기차왕국박물관 Cafe'에서 직접 제작한 '빅보이' 기관차를 바라보고 있다. 기차 모형 제작의 외길 인생을 살아온 이 씨는 몸이 허락하는 70세까지는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 평생을 걸어온 기차 모형 제작의 시작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뛰어나 만들기를 좋아하던 이 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기차 부품 제작 회사에 취업했다. 실제 기차의 부품을 만드는 줄 알고 들어간 회사는 알고 보니 모형 기차를 제작하는 회사였다. 기대와 달라 실망이 컸지만, 이후 10년간 모형 기차를 제작했고, 공장에서 찍어내는 장난감이 아닌 진짜 기차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10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나와 부천에 작은 공장을 마련한다. 이때부터 현재까지 그는 모형 기차 제작 외길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은 30년을 훌쩍 넘겼고, 현재는 해외의 기차 모형 마니아 사이에서는 이 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모형 기차 제작 분야의 유명인이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시작한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살아온 그의 손은 세월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이 씨는 "갖가지 공구를 사용하다 생긴 상처들로 손가락에 밴드를 감지 않은 날이 없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박물관 겸 카페로 오는 25일(2017년 11월) 재개장을 앞둔 ’기차왕국박물관 Cafe’에는 이러한 이 씨가 평생 만들어 온 기차 모형들이 가득하다. 영국의 목탄 증기 기관차부터 1950년대의 미국의 우편물 수송용 기차, 일본 국유 철도 EF 66형 전기 기관차에 현재 운행 중인 기차까지 총 260여종에 이르는 세계 각국의 기차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정교하게 제작된 외부 모형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부의 테이블, 칸막이, 석탄을 넣는 보일러실, 문에 달린 경첩까지 실재 기차와 동일하게 만들어졌다. 모형 제작에 평생을 쏟아온 세월의 무게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1831년 9월 15일 미국 뉴저지에서 처음 운행된 영국 목탄 증기기관차 'JOHN BULL'.1981년 기차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스미스 소니언 협회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작동 가능한 증기 기관차로 선정한 바 있다. [사진 기차왕국박물관]     이현만 씨가 제작한 'JOHN BULL' 목탄 증기 기관차 모형. 우상조 기자     이현만 씨가 제작한 'JOHN BULL' 목탄 증기 기관차 모형. 워싱턴 DC 역사 박물관에 전시된 기관차처럼 울타리까지 재현했다. 우상조 기자     이현만 씨가 참고하여 제작한 미국의 우편물 수송용 기차인 'POST OFFICER CAR'. [사진 기차왕국박물관]     이현만 씨가 제작한 'POST OFFICE CAR'. 문을 여닫는 것은 물론 철로 위로 움직인다. 우상조 기자     기차 문을 열면 내부의 빗살 창문과 경첩같은 작은 부분도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상조 기자     'CASTLE TRIAN' [사진 기차왕국박물관]     이 씨가 제작한 'CASTLE TRIAN'. 우상조 기자     이 씨가 제작한 'CASTLE TRIAN'. 우상조 기자     'CASTLE TRIAN'의 FIRE DOOR. [사진 기차왕국박물관]     이 씨가 제작한 'CASTLE TRAIN'의 FIRE DOOR. 파이프의 배치나 발판의 이음새등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제작되어 있다. 우상조 기자   또한 모든 기차는 내부에 설치된 모터를 전기로 작동시켜 움직일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기차가 아니다"는 이현만 씨만의 철학에 맞게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기차 모형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박물관 중앙에 설치된 '철도 마을'과 외벽의 ‘순환 철로’에는 증기 기관차 특유의 굉음과 함께 기관차들의 일주가 이어진다. 그는 "기차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박물관을 찾으면 자리를 떠나기 쉽지 않을 겁니다"고 웃으며 말했다.   기차왕국박물관 메인 홀에 설치된 '철도 마을'. 기차는 물론이고, 마을 전체가 이 씨의 작품이다. 우상조 기자     철제 교량과 터널 등 아기자기 하게 꾸며진 '철도마을'과 철로 위를 달리는 원색의 기차는 박물관을 찾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그만이다. 우상조 기자     이 씨가 만든 '철도마을'은 그가 원하는 모형을 조금씩 더 하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사진의 위쪽 건설 공간에 나사(NASA)의 우주공항 발사대를 제작해 마을을 완성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우상조 기자     박물관 외벽을 둘러싼 전시공간을 가득 메운 기차 모형들. 우상조 기자     기차 외에도 바이크, 크레인, 불도저 등 박물관에는 다양한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우상조 기자   ━ 전 세계에서 제작 의뢰를 받는 기차 모형 장인 국내보다 해외 마니아들 사이에서 더 인정받고 있는 그의 작품은 국외의 기차 모형 회사가 기차 모델을 선정하고 공동 구매자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판매된다. 수출국은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영국, 일본 등 다양하다. 보통 한 번에 100여대 이상 주문 의뢰를 받고, 작업에 착수하게 되면 설계 도면과 함께 실물 기차 사진을 건네받아 초기 모델을 제작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아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간다.   의뢰업체에서 보내온 'JUPITER' 기관차의 외관사진. [사진 기차왕국박물관]     의뢰한 회사에서 보내온 'JUPITER' 기관차의 설계 도면. 도면을 참고하여 제작에 적합하게 다시 설계하여 제작한다. [사진 기차왕국박물관]     완성된 'JUPITER' 기관차 모형. 박물관 내에서 음료를 서빙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기차의 부품은 황동을 주재료로 삼아, 외관과 내관에 사용되는 부품 원형을 모두 직접 제작한다. 보통 기차 한 대를 제작 하는 데에 1500~3000개가량의 부품이 필요하다. 금형 작업과 납땜 작업을 거쳐 기차의 내부부터 조립해서 완성해 나가는데, 완성까지는 종류에 따른 편차가 있지만 대략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소요된다. 이때 발생하는 제작 여건과 완성품에 퀄리티에 따라 판매 가격이 조정된다. 이후, 박물관에 보관을 위해 수량을 한 둘 정도만 더 추가로 제작한다.   작업실에서 제작한 브레이크 실린더 모형. 한번에 100여개 가량 제작한다. 우상조 기자     제작한 기차 부품들은 금형 작업을 거쳐 납땜으로 이어진다. 우상조 기자     설계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그의 작업실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은 그를 포함해 4명정도다. 이 씨의 작업실에서 한 직원이 기차 모형의 외관 납땜 작업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금속 부품이 한가득인 책상 위에서 세밀한 작업을 이어가는 이 씨의 손에는 상처가 가득하다. 우상조 기자     40여년간 오롯이 한 길만을 달려온 이현만씨. 청춘의 시간이 지나가고, 그의 머리에도 흰머리가 자리했다. 우상조 기자     그가 제작한 기차 바퀴 부분에는 의뢰를 준 회사의 로고를 부착하여 판매한다. 우상조 기자   이렇게 만들어진 기차 모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이 씨는 미국의 초대형 기관차 '빅보이'를 꼽았다. 실제 크기의 1/16의 사이즈로 제작된 이 기관차는 초기에 4대의 제작 요청이 있었으나, 시간과 인력의 부족으로 제작 요청을 거부했고, 보관을 위해 한 대만 제작되었다. 무려 5년에 걸쳐 제작된 '빅보이' 기관차는 무게가 200kg이고, 길이는 225cm에 달한다. 기차의 완성 후 독일의 'BILD' 지는 이 씨를 '빅보이'의 제작자로 소개했고, 미국 철도회사인 유니언 퍼시픽에서는 박물관 전시를 위해 2억여 원에 구매를 문의하기도 하였지만 팔지 않았다. 그의 기차 모형에 대한 남다른 애착 때문이었다.   이현만씨가 5년에 걸쳐 제작한 '빅 보이'(Big Boy) 증기 기관차 모형. 1941년~ 1944년 사이에 제조되었고, 유니언 퍼시픽 철도(Union Pacific Railroad)에서 1959년까지 운행한 미국의 석탄 발연 증기 기관차다. 우상조 기자     기차 내부 'FIRE DOOR'의 볼트 문양 하나까지 세밀하게 제작되었다. 우상조 기자     기차의 완성 후 독일의 'BILD'에서 이 씨를 소개한 기사.빅보이 모형 중 1/16의 사이즈로 제작된 유일한 가차 모형이라 기사화가 되었다. 우상조 기자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한평생 기차 모형을 만들어 온 이유를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무뚝뚝한 말투로 "제작이 까다롭고 시한이 오래 걸리는 기차를 만들 때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넘어서서 작품을 완성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죠. 그 성취감이 제가 40여년간 기차 모형을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목표로 기차 모형을 넘어 콜럼버스 우주 발사대를 제작할 것이며, 이미 착수 단계를 거쳤다 이야기했다. 몸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모형을 제작하겠다는 이현만 씨는 "언젠가는 같이 일해온 동료 직원들에게 일을 물려주고 싶다"고 마지막 소회를 밝혔다.   기차 왕국을 꿈꾸며 40여년간 황동 조각으로 미니어처 기차를 만들어 온 이현만씨가 인천 남동구 기차 왕국 박물관을 바라보고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부품 제작부터 조립 후 완성까지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한 그의 작품 26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우상조 기자   /// / 글·사진=우상조 기자
13    [쉼터] - 모델 의상으로 나라를 상징 표현하다... 댓글:  조회:2610  추천:0  2017-11-14
'2017 미스 인터내셔널 미인대회' 참가자들이 의상으로 나라를 표현하고 있다.     제57회 미스인터내셔널 미인대회가 14일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참가자들 자기 나라를 상징하는 의상을 입고 무대를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7 Miss International’을 차지한 미스 인도네시아 케빈 일리아나(Kevin Lilliana)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열린 대회에서 ‘2017 Miss International’은 미스 인도네시아 케빈 일리아나(Kevin Lilliana, 가운데)가 차지했다. 1위는 미스 쿠라 사우 출신의 차내래위 헬 미나 마리아(ChanelleWilhelmina Maria, 왼쪽 둘째), 2위는 미스 베네수엘라 다이애나 마카레나 그로세 가르시아(Diana Macarena Croce Garcia,오른쪽 둘째), 3위는 미스 오스트레일리아 엠버 듀(Amber Dew,왼쪽), 4위는 미스 재팬 나수기 투수이(Natsuki Tsutsui,오른쪽)가 차지했다. ///[AFP=연합뉴스]  /임현동 기자
12    [그것이 알고싶다] -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은 누구?... 댓글:  조회:1280  추천:0  2017-11-14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의 비밀이 풀릴까?  이탈리아 연구팀은 지난 18일(현지시간2011년 5월) 실제 모델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견했으며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에 있는 성 우르술라 수도원 묘지에서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로 추정되는 여성 리자 게라르디니의 유해를 찾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DNA를 분석해 실제 신원과 두개골을 토대로 얼굴을 재현할 계획이다. 모나리자의 유골로 추정되는 게라디니는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부인으로 알려졌다. 1479년에 태어나 63세인 1542년 6월에 사망해 이 수도원에 안장된 기록이 있어 연구진은 이곳 묘지를 중심으로 발굴 작업을 펼쳐왔다.  모나리자로 추정되는 이 여인은 키 153cm인 여성의 두개골과 늑골, 척추 등이다.  그동안 '모나리자'를 둘러싸고 여러설이 제기돼 왔다. '수년에 여러 인물에 영향을 받은 가상의 여인이라는 설'과 '다빈치의 자화상이라는 추측' 더 나아가 올초 이탈리아 문화계에서는 다빈치의 남성 제자인 '살라이'(지안 지아코모 카프로티)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연구팀은 정황상 이번 유해으로 발견된 리자 게라르디나가 '모나리자'의 실제 주인공일 가능성이 높다며 '모나리자'의 '모나'가 결혼한 여성을 가르키는 말이고 '리자'가 그녀의 이름과 같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중·영·일 4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11    [미술써클선생님께] - 그림 그릴 때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라... 댓글:  조회:1659  추천:0  2017-11-14
  서울대,한예종반 학생들의 재밌는 그림을 올립니다 ^^     그림이 늘 이렇게 재밌었으면 ,,,,,,, ^^       나무,고목,꽃,상추,체리,목화,버섯 등등을 이용해서 재밌게 조합한 그림,,,,,      ^^ 좀 깔끔 매끈하죠?     ​   브로콜리,마늘,당근,밤,시금치,레몬, 등등     회화적인 맛은 좀 부족한듯 ㅋㅋㅋ   ​   오렌지,당근,완두콩,석류,망고,레몬,방울토마토,보리,바구니 등등     다양한 과일,채소를 이용해서 사람의 얼굴을 표현해 보았지요 ^^       ^^ 열정이 가득한 학생들~~~~~~~~~~~~~~~ 화이링 ^^
10    [미술써클선생님들께] - 그림 그리기에서 상상력을 키우라... 댓글:  조회:3177  추천:0  2017-11-14
                그림이 있는 일상   주세페 아르침볼도(1527-1593)   2017. 11. 10. 17:27 URL 복사 http://blog.naver.com/damue21/221137073621       기교함 익숙함 낯선 친숙함 이 그림 첨 보았을땐  어우~~~~~   근데 거꾸로 보면 기냥 과일바구니 모든 그림이 그런건 아니지만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게 아니고 여러번 지우고 수정한 흔적이 있다네요 ㅎㅎ 초현실주의 화가 쯤으로 생각했는데 우잉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화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라는 웅 막시밀리안 2세는 이렇게 꾸미고 나타나야 받아주는 가장무도회를 즐겼다고 거의 우리나라 연산군 삘의 루돌프 2세의 총애는 그럴 수도  있다했는데 무려 25년 동안 궁정화가 였다니 연금술사가 판치던 세상이라 사물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달랐던데에서 이런 그림이 시작됐다는 추측이 음~~~ 어떤 철학에서 시작되었던 독특한건 분명합니다 ^^   연속성이 없어서 잊혀진 화가지만 우리에 살바도르 달리님이 극찬하시면서 지금은 초현실주의자들의 시조새쯤이 되셨습니다 미술사에서 제일 기묘하다고 생각한 아르누보, 아르침볼도, 다다이즘 다다이즘 포스팅만 남았네요 알면 이해되고 좋아하게 된다는 생각은 변함없지요...  하하하하하 [출처] 주세페 아르침볼도(1527-1593)|작성자 이니 /////////////////////////////////////////////////// 이번 글의 주제는 조금 재미있는 작품을 가져 왔는데요!  유명한 화가 이면서도 신기하면서 재미 있는  미술 작품들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남김 미술작가 "아르침볼도"작가의 작품을 함께 볼까요? 볼도의 작품들은 일반 화가들과는 다르게 신기한그림을 확인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에요! 사람을 그렸지만 채소 들이 가득 있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는데요!! 사람을 보습을 하고 있지만 채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들이 재미있는 요소를 만들어 주고 있는데요. 언젠가 티비에서  한 번 본적이 있었는데 이 작가의 작품이였군요~! 여름 - 주세페 아르침볼도 출처 :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밀라노 출신의 볼도 화가는 궁정 화가로서 일을 했던 사람이였는데요. 일반  화가들과는 달이 그 계절에 맞는 원소 그리고 직업과 관련 되어 있는  물건들을 조합하고 또 조합해서 재미있는 초상화를 그렸던 화가 인데요. 신기한그림 때문읹지 16세기 후반 인기 있었던 화가 였다고 하네요. 여러가지 특징들을  잘 잡아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 한데요. 봄 - 주세페 아르침볼도 출처 :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궁정 화가들 이라고 하면 운장한 그림과 우아한 초상화들을 상상할 수 있지만  볼도의 작품들은 우아하기 보다는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는 작품들이  정말 많은거 같네요. 어떻게 하면 저렇게 많은 채소들을 조합해서  사람의 얼굴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말이에요! 저렇게 섬세하게  그리면서 얼굴 윤곽을 나타 낸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정말 신기한그림 이에욧! 겨울 - 주세페 아르침볼도 출처 :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금 보여 드리는 채소들을 조합하는 인물과 말고도 그 사람의 직업에 알맞은  물건들을 조합 해서 그림을 그리는 일들도 있었는데요. 지금 까지 볼도의 작품들은  대부분이 이렇게 다양한 물건들과 채소 과일들을 조합해서 만들어 진  초상화 라고 하는데요. 이런 신기한그림들은 그렇게 어렵게 보지 않아도  하나 하나 살펴보는 재미가 있는거 같아요. 채소 기르는 사람 - 주세페 아르침볼도 출처 : The Bridgeman Art Library 개별적인 소품들이지만 이렇게 함쳐서 만들어진 모습을보니 어떤 얼굴도  연출이 가능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우스꽝 스럽기도 하면서 기괴한  작품들이지만 이 작품을 받는 사람들은 그렇게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유머러스 하게 생각하면서 정말 좋아 했다고 하네요. 저도 이런 신기한그림으로 초상화를 받는다면 뭔가 간직할만한 작품인거 같은데요?! 별난 초상 - 주세페 아르침볼도 출처 : The Bridgeman Art Library 신기한그림들이 정말 많은 볼도의 작품들!! 정말 멋지지 않나요? 채소들로 이렇게 사람의 얼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니 말이에요~  예전에 본 기억이 있었는데 그냥 재미있다 ~ 하고 지나 갔지만 이렇게  작가를 알고 나니까 더 재미있는거 같아요! ㅎㅎ 오늘 잇님들에게 더욱  즐거운 포스팅 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ㅎㅎ [출처] 신기한그림 "아르침볼도" 작품을 볼까요?|작성자 아트아뜰리에
9    [타산지석]-점점 늘어나는 대를 잇어가는 가게들... "돼지부자" 댓글:  조회:3269  추천:0  2017-11-14
‘2마리가 6천마리로 늘었다?!’… ‘행복한’ 돼지를 키우는 父子 2017-11-14                (흑룡강신문=하얼빈)량성철 특약기자, 렴청화 특파원= 계기는 단순했다. 지인으로부터 씨암퇘지 두마리를 전해받았던게 시작이다. 왕청현 배초구진 서산골에 자리한 포산동북돼지발전유한회사(이하 ‘포산동북돼지’)의 김송섭 대표는 양돈인생 10년만에 사육량을 6천마리로 늘렸다.   소비자에게 ‘좋은 돼지고기’란 어떤걸 의미할가? ①육색이 발가스레하고 지방·근육조직이 잘 결착되여 탄력이 훌륭한것 ②병원성 미생물에 오염되지 않고 성장촉진제가 투약되지 않은것 ③입에 넣었을때 쫄깃함과 같은 좋은 식감이느껴지는것 ④넓은 대자연에서 과학적으로 사육된것 등 여러가지로 어림잡을 수 있다.   김대표가 주안점을 둔건 4번이다. “지방맛이 다르고 육질도 쫀득쫀득하니 소비자들이 알아봐줍니다. 천천히 키우는 돼지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때문이에요.”     ▲넓은 곳에서 행복하게 자라는 돼지   사육장은 2만2천평방미터, 표준형 돈사는 5천평방미터로, 이곳에는 동북돼지 6천마리가 사육되고있다. 마을과는 다소 떨어져있다.   돼지들의 활동공간은 477헥타르. 비탈이 완만하고 배수도 잘된 이곳은 바람을 등지고있다. 산길을 걷다보면 옥수수짚을 질근질근 씹거나, 수도꼭지에 바싹 붙은채 물을 꿀꺽이는 돼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뒤뚱대며 산책(?)하는가 싶더니 웅뎅이에 푹 파묻히기도 했다. 확성기로 새여나오는 유유한 음악에 취했는지 그대로 잠들어있는 돼지들이 제일 많았다.   “돼지들은 밀짚, 쌀겨로 만들어진 균체단백사료를 먹고 자랍니다. 그외 산속을 누비면서 더덕, 당삼, 밤, 호두 등을 마음껏 파먹습니다.” 김대표의 소개였다.       사육공간이 커서일가, 제한된 공간에서 빠르게 살쪄가는 일반 사육장의 돼지와는 달리 ‘포산동북돼지’는 몸집이 단단한데다 움직임도 날렵해보였다.   이렇게 키우는 돼지는 한마리에 3000원씩 해마다 4000마리 정도 출하된다. 사육기간은 최소 1년이다. 몇개월 폭풍성장시킨 뒤 후딱 판매하는 ‘속도전’은 줄곧 지양해왔다.   광활한 삼림에서 느리게 자라는 ‘포산동북돼지’는 △환기/공기청정시스템 △단열 △질병 △분뇨 등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따내면서‘국제복리 5성급금돼지상’, ‘연변양돈공헌상’을 수여받았다.   또한 자원보호, 번식, 판매 환절을 립각점으로 내세워 생태화 사육, 브랜드화 경영이라는 표준화 생산을 실시함으로써 부가가치가 높은 양돈산업사슬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포산동북돼지’는 돼지분뇨, 농작 폐기물 등을 리용해 상당한 규모의 메탄가스탱크를 구축했다. 이는 삼림생태자원을 보호하고 농가에 땔감, 생활용 가스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며 보다 많은 유기비료를 생산하기 위함이다. 3-5마리 돼지 분뇨로는 한개 농가의 생활용 가스가 생성된다. 다시말해 현재 규모로서는 몇백호 농가 가스를 만족시키는 셈이다.   ‘회사+농가’ 산업화 모식도 계획하고 있다. ①양돈업을 발전시키고 ②농민들이 잘 살도록 하는것이 그 목적이다. 농가에 아기돼지와 사료를 나눠주어 사육하게 한 뒤 무게가 출하기준에 이르면 ‘포산동북돼지’에서 회수하는 방식이다. 이런 과정에서 농민들에게 높은 리윤이 차려짐으로써 빈곤해탈을 이끌수있다.     ▲스물아홉, ‘2세’ 양돈인도 합류했다   2세 양돈인의 합류로 근년래 사육장에는 활기가 더해졌다.   대학졸업 후 타지에서 무역업에 종사하던 아들 김웅씨는 “양돈의 ‘대’를 잇는게 어떻겠냐”는 부친의 제안에 응답해 지난 2015년 고향에 돌아왔다. 2대가 함께하는 양돈도 올해로 2년째다.김웅씨는 “로심초사해 키운 돼지가 팔리지 않을 때가 제일 힘들어요. 사료공급도 문제거니와 류동자금에도 빨간불이 켜지니까요”라고 토로했다. “그럴 경우 양돈업이 얼마나 휘청거릴수 있는지를 보고 자랐으니 새삼스럽지는 않습니다”라며 웃었다.   최근에는 판로 확대의 일환으로 오프라인매장인‘송선흑돼지통구이(확인바람!)’를 오픈했다.남방지역의 유명한 구이법을 기반으로 오래동안 연구한 끝에 자신만의 맛을 지닌‘흑돼지통구이’를 탄생시킨것이다. 연길로서는 첫 사례인 이 맛집은 지난 6일부터 소비자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270ºC쯤 되는 오븐온도에서 3시간을 천천히 익히는데 중간중간 330ºC로 온도를 올려 센불에서 바짝 구워주면 겉은 파삭하고 안은 부드러운 통구이가 완성된다.   그외 육질좋은 돼지고기도 구입할수 있다. 한근당 삼겹살은26원, 앞·뒷다리살은 24원이다.   “양돈은 참 쉽지 않아요. 부친의 사육모식을 기틀로, 신 시장 개척이나 판로 확대에 관련해 더 많이 연구할 계획입니다.” 김웅씨의 야심찬 포부였다.   부친의 10년 양돈인생에 젊은 피를 수혈하려는 아들. 2대가 어떤 콤비를 이루게 될지 눈여겨볼만하다.  
8    [이런저런] - 50년동안 땅속불길로 물 끓이고 밥 짓다... 댓글:  조회:2676  추천:0  2017-11-14
중경: 50년동안 불길이 땅속에서 솟아오른다면 혹~ [ 2017년 11월 14일 08시 03분   조회:367 ]     11월 13일, 중경시 장수구(长寿区)  동문촌의 한 공지에서 50동안 작은 불길이 피여올랐다. 린근 촌민들은 늘 이곳에서 물을 끓이고 밥을 짓기도 했다. 공지 면적은 약 4평방메터, 이곳에는 크기가 부동한 10개의 구덩이가 있는데 구덩이마다 작은 불꽃이 피여오르고 있었다. 지난세기 50년대 석유채굴팀이 이곳에서 천연가스를 채굴하기로 했는데 매장된 천연가스량이 극히 적어 채굴을 포기한 상태, 다시 구덩이를 메워놓았는데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불꽃이 피여오르고 있다고 촌민들은 전했다.  ///봉황넷
7    [이런저런] - 두 얼굴 가진 "야옹이"... 댓글:  조회:4110  추천:0  2017-11-14
두 얼굴 가진 초희귀 '키메라 고양이'   작성자 홍조 17-11-14      같은 고양이라고 믿기 힘든 두 얼굴의 고양이 '퀴메라'를 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이 소개했다고 파이낸셜뉴스가 전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주인과 함께 살고있는 고양이 퀴메라는 태어날 때부터 얼굴의 절반은 주황색, 나머지 절반은 검은색이었다.      양 쪽 눈동자 색깔도 다르다. 한 쪽은 헤이즐, 다른 쪽은 푸른색이다. 그야말로 신비로운 외모를 자랑한다.    몸통은 대개 주황빛이지만 군데군데 얼룩이 자리잡았다.      '유전 키메라'라는 희귀한 현상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지만 DNA 검사를 받지 않아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키메라는 개체에 유전자가 다른 세포가 혼재하고 있거나, 한 유전자에 두 종류 이상의 유전자에서 유래한 DNA단편이 결합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머리는 사자, 몸은 양, 꼬리는 뱀을 닮은 전설의 괴수에서 유래했다.   ============================= 덤으로 더... SNS서 유행하는 '고양이 모자' (ZOGLO) 2017년11월15일  고양이로 만든 모자 인증사진. 출처=데일리메일 고양이를 모자처럼 머리에 얹고 찍는 사진이 유행하고 있다. 영국매체 데일리메일은 지난 13일(현지시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반려묘를 모자처럼 쓴 기묘한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다고 전했다. 고양이로 만든 모자 인증사진. 출처=데일리메일 고양이로 만든 모자 인증사진. 출처=데일리메일 사진을 보면 주인들은 고양이를 머리위로 들어 올리고 있다. 고양이 팔이 축 늘어져 겨울철 털모자를 쓴 것처럼 보인다. 일부는 여기서 더 나아간 사진을 연출하기도 한다. 고양이로 자신의 눈을 가려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고양이 눈이 사람의 눈을 덮어 영화 속 배트맨 같은 가면을 쓴 모습이 된다. 고양이로 만든 모자 인증사진. 출처=데일리메일 매체는 “반려묘 주인 사이에서 이런 인증사진이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다”며 “이상한 유행”이라고 전했다. 이들 사진에는 catsashats(고양이로 만든 모자)라는 해시태그가 달려 올라오고 있다. ///세계일보 ===============================덤으로 더 더...     인민넷 조문판: 11월 14일 말레이시아 세팡에서 근무원들이 특제상자에 안치된 “난난”을 공항으로 이송하고있다.   말레이시아에서 태여난 참대곰 “난난”은 14일 저녁 말레이사아항공 화물회사에서 배치한 비행기에 탑승해 말레이시아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와 사천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난난”은 2015년 8월 18일에 태여났고 그의 부모는 중국에서 말레이시아에 임대해준 참대곰 “흥흥”과 “정정”이다.
6    [이런저런] - 이색적인 혼례 촬영/절벽 꼭대기 외딴 마을... 댓글:  조회:3842  추천:0  2017-11-14
절벽에서 웨딩촬영               최근 하남성 유명한 관광명소인 "차야산"에서 한쌍의 신혼남녀가 절벽에서 웨딩촬영을 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고대 명작 의 주요 촬영지점인 차야산은 당승 일객들도 와서 신혼부부를 축복해주었다.///작성자 홍조  17-11-13     [촬영/ 신화사 기자 량커촨(梁克川)]          11일, 광시(廣西) 류저우(柳州) 싼장(三江) 동족(侗族) 자치현 둬예(多耶) 광장에서 동족 주민들이 ‘둬예’ 경기에 참가하고 있다. 이날 광시 싼장 동족 자치현에서 동족 ‘둬예’ 경기가 열렸다. 현지 경기에 참가한 22개 대표팀이 같은 무대에서 경기를 하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동족의 전통 춤인 ‘둬예’는 동족어로 ‘발로 땅을 구르며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원문 출처: 신화사 ============================= '2178m 절벽 꼭대기’ 세계에서 가장 외딴 마을 (ZOGLO) 2017년11월15일  해발 2178m의 위험한 절벽 꼭대기에 건설된 한적한 중국 마을의 믿을 수 없는 영상이 공개됐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중국 유튜브인 페어 비디오는 구이저우성(贵州省) 해발 2178m의 절벽 꼭대기에 있는 전통마을 묘족(苗族)의 풍광을 무인항공기로 포착했다고 전했다.   관광객들은 산길을 따라 이 신비한 지역사회에 접근할 수 있는데 마을에 도착하기 위해 자연보호구를 통해 산을 올라야 한다. 페어 비디오에 따르면 묘족 마을은 구이저우성 레이궁(雷公)산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37에이커에 달하는 땅에 묘족의 전통 주택이 조밀하게 지어져 있다. 마을은 절벽 쪽 500m 길이와 300m 바위를 따라 지어졌으며 대략 140가구가 살고 있다. 이 산 정상 마을의 건축물은 안개가 자욱한 언덕의 암석 토양과 습기찬 날씨에 적응하도록 만들어졌다. 이 지역은 집중 호우로 인해 토대가 무너지기 쉽고, 벽돌집은 질척거려 살아가기엔 척박한 곳이다. 묘족의 주택은 아시아 고원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고대 형식대로 집을 기둥으로 지탱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다. 한편 묘족은 중국에서 노래와 춤으로 유명한 55개 소수 민족 중의 하나이다. ///뉴스웍스  
5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우리 고운 말 알고 쓰기... 댓글:  조회:3613  추천:0  2017-11-14
(알고 써야할 우리 말) 움츠리다와 옴츠리다                 비와 눈때문에 이제 막 피려던 봄꽃이 움츠릴 것 같습니다. 움츠리다... 움추리다... 뭐가 맞을까요? "몸을 오그려 작아지게 하거나, 내밀었던 몸을 오그려 들여보내다."는 뜻의 낱말은 '움추리다'가 아니라 '움츠리다'입니다. 움에 있는 ㅜ 때문에 츠도 ㅜ를 써서 추로 말하기 쉬우나, 움추리다가 아니라 움츠리다입니다. 움츠리다의 작은말이 옴츠리다입니다. 움츠리다의 준말은 움치다이고, 옴츠리다의 준말은 옴치다입니다. 저는 가끔, 아주 가끔 곡차를 마시고 들어갈 때면 침실에 못 들어가고 거실에서 옴츠리고 혼자서 잡니다. 아침에 부스스 눈을 뜨자마자 아내와 눈이 마주치면 바짝 움치게 되죠. 이렇게 옴춘 제 모습, 너무 불쌍해 보이지 않나요? ^^*   저는 정말 술 마시기 싫은데...... 자꾸 마시라고 강요해서...... 어쩔 수 없이...... 오늘도 금요일인데...... 또 거실에서 혼자 움츠리고 자야하나...... . 우리말123       {우리 말 편지}=     [이때, 그때 띄어쓰기]   오늘도 띄어쓰기 원칙을 먼저 짚고 넘어가죠.   우리말은 낱말별로 띄어 씁니다. 품사(동사, 명사, 형용사 따위)도 낱말로 보고 띄어 쓰되, 조사만 붙여 씁니다. 한 낱말인지 아닌지는 사전에 올라 있으면 낱말이고 그렇지 않으면 한 낱말이 아니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때'입니다. 이때, 그때를 어떻게 쓸까요? '이 때, 그 때'가 맞는지, '이때, 그때'가 맞는지...   일단, '때'는, '시간의 어떤 순간이나 부분'을 뜻하는 명사이기 때문에 다른 말과 띄어 써야 합니다. 아무 때나 오너라, 내가 웃고 있을 때처럼 띄어 씁니다. 그러나 '때'가 일부 낱말과 결합하여 의미가 굳어지면 한 낱말로 봐서 붙여 씁니다. 국립국어원에서 한 낱말로 받아들여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린 '이때, 그때'는 일부 낱말과 결합하여 의미가 굳어진 상태이기에 붙여 씁니다.          
4    [쉼터] - 그림은 뛰고 또 뛴다... 댓글:  조회:2435  추천:0  2017-11-14
  다빈치 작 '세계의 구세주' . 위작으로 알려져 7만7000원에 팔렸던 다빈치 작품이 진품 판명…2,051억원 사상 최고가!            【서울=뉴시스】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자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지난 1959년 불과 45파운드에 경매됐던 '살바토르 문디'(세계의 구세주)가 다빈치가 직접 그린 진품으로 판명되면서 최소 1억2000만 파운드(약 2051억8440만원)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전문가들로부터 감정받았다. 사진은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 (사진 출처 : 英 데일리 메일 웹사이트)        【서울=뉴시스】유세진 기자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자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지난 1958년 소더비 경매에서 단돈 45파운드(약 7만7000원)에 팔린 '살바토르 문디'(세계의 구세주) 작품이 전문가들에 의해 다빈치의 제자가 아니라 다빈치 자신이 직접 그린 진품으로 판정되면서 최소 1억2000만 파운드(약 2051억8440만원)의 가치를 지녔다는 감정을 받았다고 영국 데일리 메일이 보도했다. 1억2000만 파운드의 그림값은 한 작품으로는 사상 최고 기록이다.가로 47㎝ 세로 66㎝의 이 그림은 목판 위에 그린 유화로 예수가 왼손에 지구를 들고 오른손을 들어올려 축복을 내리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오는 11월 런던 국립미술관에서 개막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전'에 전시될 예정인데 최종 전시 조건에 대해서는 아직 협상이마무리되지 못했다. 이 그림은 다빈치가 1506년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지시를 받아 7년에 걸친 작업끝에 완성했다. 런던 전시를 앞두고 이탈리아의 다빈치 전문가 피에트로 마라니와 테레사 피오리,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마틴 켐프 교수 등 전문가 4명은 이 작품이 다빈치의 제자가 아닌 다빈치 자신이 직접 그린 것으로 결론내렸다. 마라니는 "이번 다빈치 작품의 발견은 매우 중요하고 놀라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작품에 사용된 푸른색과 붉은색은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사용된 것과 매우 비슷하며 그림물감은 그의 '버진 온 더 락스(암굴의 성모)'와 매우 흡사하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영국의 찰스 1세가 오랫동안 소장하다 그의 처형 후 찰스 2세에게 넘겨졌으며 영국이 약 400년 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1958년 소더비 경매에서 다빈치의 제자 조반니 볼트라피오의 작품으로 알려져 불과 45파운드에 경매됐었다. 현재는 뉴욕의 로버트 사이먼 파인 아츠 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   (제네바=연합뉴스) 문정식 특파원 =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실제 얼굴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를지 모른다. 오늘날 그가 남긴 자화상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작품 속의 인물이 다른 사람을 묘사한 것이라는 주장이 전문가에 의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다빈치의 자화상은 굳게 다문 입술에 약간 찌푸린 표정, 백발과 수염이 성성한 노인을 묘사한 드로잉. 수많은 미술 전문 서적에서는 작품 속의 인물을 다빈치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러나 저명한 다빈치 전문가인 피에트로 마라니 교수는 누런 종이에 붉은 목탄으로 제작한 자화상의 제작 연대는 1490년이며 당시 그의 나이는 48세였다는 점을 들어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 마라니 교수는 밀라노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면서 그가 남긴 걸작 '최후의 만찬'을 복원하는 작업을 15년간 감독했던 전문가다. 이탈리아 ANSA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마라니 교수는 다빈치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잘 생기고 정력적이라고 말한 점을 들어 48세의 다빈치가 결코 자화상의 인물 처럼 노쇠한 모습일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 마라니 교수는 문제의 그림이 다빈치의 작품이라는 점에 의문을 달지는 않지만 결코 그림 속의 인물이 다빈치 본인은 아니라는 점을 확신한다는 입장. 그는 작품 속의 인물은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12사도의 1명을 그리기 위한 습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최후의 만찬'을 잘 살펴보면 사도 시몬이 자화상 속의 인물과 흡사하다는 것. 자화상의 뒷면에 적힌 글자들도 의문점. 실제 다빈치가 활동하던 시대보다 1세기 뒤에 적힌 것인데다 '레오나르도'라는 글자 외의 나머지는 잘 알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마라니 교수의 지적이다. 물론 자화상 속의 인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명한 다빈치 전문가인 카를로 페드레티가 이미 고개를 갸우뚱거린 바 있다. 전설적인 미술사가인 에릭 곰브리치도 다빈치가 남긴 작품들에 이와 유사한 모습의 인물들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점에 주목한 바 있다. 자화상 속의 인물은 다빈치가 선호하는 얼굴의 형상화일수도 있다는 것이 곰브리치의 추측이다. 마라니 교수도 문제의 그림이 다빈치의 자화상이리는 믿음은 그림이 19세기초에 일반에 공개된 직후부터 형성된 것이라며 자연과 과학에 대한 비상한 지식, 마술사처럼 기이한 능력을 가진 천재라는 신화가 그 배경에 깔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자화상에서 묘사하는 것 처럼 백발과 수염이 성성한 노인의 얼굴은 이런 통념에 걸맞는다는 것. 후대에 나온 많은 저술은 물론이거니와, 최근의 베스트셀러인 '다빈치 코드'조차도 신비의 후광을 더해주고 있는 셈이다. =============================   2000억 원 가치…올겨울 첫 공개 다빈치의 새로운 작품 발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잃어버린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미스터리한 인물(다빈치)만큼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관심을 끄는 예술가는 없다(영국 일간 가디언).”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잃어버린 작품이 다시 발견돼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된다. 추정가 2000억 원을 훌쩍 넘는 작품이 나오면서 르네상스 시기 천재 화가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1956년에 단돈 48파운드(8만 원)에 팔렸던 그림 한 점이 1억200만 파운드(2170억 원) 상당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유화 작품으로 판명돼 올겨울 일반에 전시된다”고 보도했다.  ‘살바토르 문디(세계의 구세주)’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오른손을 들어 축복을 내리고 왼손에는 세계와 우주를 상징하는 투명한 보주를 잡고 있는 예수의 상반신을 담고 있다. 가디언은 “작품의 예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과학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다빈치의 특성이 잘 나타난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국립미술관)는 11월 9일부터 시작되는 다빈치 기획 전시에 이 작품을 전시할 계획이다.  붓질 등 다빈치 작품 확실   다빈치의 작품으로 판명된 ‘살바토르 문디(세계의 구세주)’. 2170억 원 상당의 감정가로, 다시 한 번 다빈치 열풍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된다.   당초 이 작품은 다빈치의 제자인 조반니, 안토니오, 볼트라피오 등이 그린 작품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500년쯤에 제작된 이 그림의 붓질과 염료, 그림의 질 등을 정밀 감정한 결과 다빈치의 진품으로 최근 감정 받았다.  작품의 진위 감정에 참여했던 마틴 캠프 옥스퍼드대 미술사 명예교수는 “다빈치의 제자나 추종자 중 이런 수준으로 그림을 그린 사람이 없는 만큼 새로 발견된 다빈치의 그림일 확률이 무척 높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다빈치 전문가인 피에트로 마라니 교수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다빈치의 작품이란 것을 확인했다”며 “작품 속 머리 부분과 눈썹 등이 일부 훼손됐지만 전체적으로 무척 양호한 상태”라고 거들었다. 색감이나 붓 터치 등이 환상적인 수준이어서 다빈치 작품이 분명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중 작품 이름만 전해지고 현재 ‘사라진’ 작품들의 수는 현존하는 작품 수에 맞먹는다. 대표적인 것으로,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을 다룬 ‘레다와 백조로 변한 제우스’라는 작품은 과감한 누드화로 명성을 날렸지만 금욕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한 광신적인 프랑스 왕족에 의해 작품이 소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앙기아리의 전투’라는 작품은 메디치 가문에 의해 숨겨진 뒤 아직까지 소재가 불분명하다. 이와 함께 ‘누드 모나리자’라는 작품도 ‘잃어버린 걸작’의 하나로 다빈치의 소실 작품만을 찾는 ‘다빈치 탐정’들의 주요 추적 대상이다. 이번에 발견된 ‘구세주’라는 작품도 17세기 작품 목록에만 등장했다가 이후 실물이 발견되지 않아 사라진 것으로 추정됐다. 이 작품은 1649년 영국 왕 찰스 1세의 소장 목록에 등장했다가 1763년 버킹엄 공작의 아들이 경매로 넘긴 기록만 남아 있었다.  이후 심한 덧칠로 손상된 상태로 누구의 작품인지도 확인되지 않은 채 1900년 영국의 그림 수집가인 프레드릭 쿡 경이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쿡의 후손들은 이 그림을 1958년 경매에서 불과 45파운드(7만7000원)에 팔았으며 2005년 미국 수집가 손에 넘어갔다. 현재 이 작품은 미국 뉴욕 미술품 거래상인 로버트 사이먼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소유하고 있다. 한편 가디언은 “위대한 화가의 잃어버린 작품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언제나 대중을 흥분하게 한다”며 “몇 년 전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로 다빈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거액의 작품이 대중에게 전시된다면 또다시 대단한 다빈치 열풍이 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동욱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살바토르 문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잃어버렸던 걸작     크기 66x45cm 제작시기 1506~1513년 원제 Salvator Mundi 작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이탈리아, 1452-1519년 소장/전승 개인 소장 기법 유화, 월넛 목판에 유채 수백년 만에 는 레오나르도의 진품으로 밝혀지게 된다. 조악하게 덧칠된 물감덩어리들과 먼지더미를 한겹씩 걷어낼 때마다 레오나르도 특유의 천재적인 붓터치가 눈앞에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Salvator Mundi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는 레오나르도의 제자 지오반니 안토니오 볼트라피오(Giovanni Antonio Boltraffio, 1467-1516)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2011년 가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개최된 전시 전을 통해 60여점의 다른 레오나르도의 대표작들과 함께 전시된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가 직접 그린 진품으로 천명되었다. 1958년 경매에 등장해 고작 45파운드에 거래되었던 이 작품은 진품으로 판명된 이후 2013년 5월 어느 익명의 수집가에 의해 대략 8천만달러에 소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이 작품의 진가가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은 2005년 미국의 한 화상 컨소시엄에서 이 작품을 사들인 후 많은 화상들과 학자들이 수년간 대대적으로 복원하고 연구하는 데에 공을 들인 덕분이었다. 이 작품은 무명으로 견뎌온 세월만큼이나 심각한 손상들과 조악한 덧칠들로 뒤덮혀 있었기에 이를 모두 걷어내고 레오나르도의 오리지널 붓터치를 드러내기 위한 복원작업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이 작품의 역사적 자료들에 대한 조사 및 연구도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윈저 로얄 도서관에 소장된 의 밑그림인 오리지날 습작 드로잉 2점과 레오나르도의 다른 대표작들의 성분들과의 비교 분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는 ‘세상의 구세주’라는 의미를 갖는다. ‘살바토르’는 ‘세상을 구원하는 자’ 즉, 예수 그리스도를 칭하며, ‘문디’는 라틴어 ‘mundus’의 소유격으로서 ‘세상의’라는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그림 속에서 예수의 오른손 두 손가락은 축복을 내리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으며, 왼손에는 세상과 우주를 상징하는 투명한 구슬을 쥐고 있다. 본디 ‘살바토르 문디’라는 주제 자체는 알브레히트 뒤러, 얀반아이크나 한스 멤링 등 16세기 네덜란드의 유명 화가들도 즐겨 그린 인기 주제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이를 주제로 작품에 착수한 것은 1506-1513년경 프랑스의 루이 12세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후 그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다른 화가들까지 레오나르도의 양식을 모사하여 이 작품의 복제본을 워낙 많이 그려냈고, 진품에 대한 기록은 한동안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속의 영롱한 구슬의 투명도를 묘사하는 방식이나 청색의상의 극도의 부드러운 질감을 표현하는 기법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레오나르도 특유의 스타일을 간직하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기록이 다시 등장한 것은 1649년 영국의 찰스 1세의 소장품 목록에서였다. 하지만 그가 폐위되면서 잠시 팔렸다가 찰스 2세가 재위하면서 1960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이후 1736년 버킹엄 공작의 손에 들어갔는데, 그의 아들이 이 작품을 경매로 넘겨버린 기록을 끝으로 이 작품은 백년이 넘도록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영국의 수집가 프레데릭 쿡이 1912년 이 작품을 사들였는데, 그 당시에는 이 작품이 레오나르도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하여 1940년대에 그가 소장한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 때에도, 이 작품은 16세기의 ‘밀라노화파’의 한명이자 레오나르도의 수제자인 볼트라피오의 작품으로 소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쿡이 사망한 후, 1958년 경매에서 45파운드에 팔렸던 이 그림은 2011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품으로 판명되며 오늘날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 ===========================           19세기 프랑스의 화가이자 빈센트 반 고흐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장프랑스아 밀레, 그리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만종' 국내에서도 가장 유명세를 떨치는 그림 중 하나인 만종은 멀리 교회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맞추어 기도를 올리는 부부, 그리고 그들 가운데로 보이는 바구니 속 감자들로 하여 수확의 기쁨을 참으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허나, 밀레의 만종을 바라보는 스페인의 천재 화가이자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의 견해는 이와 달랐다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부터 강하게 매료되었던 달리는 늘 의구심을 품었는데 특히 부부의 가운데에 놓여져 있는 감자가 든 바구니를 보며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만종에 매료된 달리는 1935년에 자신의 저서 '밀레 만종의 비극적 신화'를 통해 놀라운 주장을 펼치기에 이른다   "부부 사이의 감자가 든 바구니는 사실 아기의 시신이 든 관이다"  "밀레는 한 부모가 죽은 아기를 담은 관 앞에서 기도하는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가 이를 감자 바구니로 수정했다"  밀레의 만종이 수확의 기쁨을 그린 서정적인 작품이 아닌, 굶주림에 죽고만 아기의 시신을 묻기 전 추모를 하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달리의 주장은 그의 평판만큼이나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수십 년 후, 만종이 보관되어 있던 루브르 박물관 측의 관계자가 해당 그림을 X선 투시로 감정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밀레의 만종은 유화로 X선 투시를 통해 유화의  특징인 '덧칠' 전의 본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만종을 X선 투시한 결과 감자가 들어있는  바구니가 원래는 작은 나무상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결과에 힘을 얻기 시작하는 주장들 "밀레는 본래 굶주림으로 죽은 자신들의 아이를 추모하는 부부를 그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심화되었던 계급 갈등으로 인해 오해를 통한 신변의 위협을 걱정했던  친구의 만류로 밀레는 아기가 든 관을 다시 덧칠해 감자를 담은 바구니로 바꾼 것" "밀레는 자신의 또 다른 대표작 중 하나인 '이삭 줍는 여인들'을 통해서도 그림 전면에 곤궁에 처한  민중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면서도 멀리 배경으로 말을 탄 채 일꾼들을 부리는 지배층의 모습을  그리며 당시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던 밀레가 마음먹고 만종을 통해 일종의 '고발'을 한 것"      "밀레가 진정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수확의 기쁨이 아닌 당시 사회를 살던 부모의 슬픔"     그리고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론들   "밀레는 나무상자로 된 관을 그렸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구도를 위해 감자가 든 바구니의 밑그림을 그렸을 뿐" "그림에 표현된 장소와 도구들도 장례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 "밀레는 만종을 회고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레빌아그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종소리에 맞추어 행하던 천사의 기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했다" "태어나서부터 농부들의 삶을 관찰하며 자랐던 밀레를 농민들 편에 선 '서구 최초의  민중예술가'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밀레는 이데올로기에 큰 관심이 없었다"     과연 밀레는 부부 사이에 무엇을 그려넣고자 했던 것일까   한편, 밀레의 만종을 보유하고 있던 루브르 박물관 측이 X선 투시를 한 이유 1932년 만종을 관람하던 한 정신이상자가 갑작스레 칼로 해당 그림을 찢는 일이 생겨 복원작업을 위해 만종의 훼손 전 상태를 파악하고자 그리고 어린 시절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종을 처음 보고는 비명을 지르며 발작하다시피 한 '만종 아기관설'을 주장했던 화가 살바도르 달리   그렇게 만종에 그려져 있는 감자가 든 바구니를 볼 때마다 불안감을 느꼈던 천재 화가라 불린 달리를 향한 또 다른 평가     "그는 미치광이였다"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대부분의 이들이 나폴레옹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주황색 망토를 휘감고 앞발을 치켜든 백마에 올라탄 위엄있는 모습'일 것이다 바로 나폴레옹 시대에 예술과 정치적으로 미술계 최대의 권력자 중 하나였던 궁정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그린 그림 속 모습처럼 말이다  1800년, 나폴레옹이 북이탈리아로 쳐들어가 마랭고에서 승리를 하기 전 알프스를 넘는 모습을 그린 이 그림에는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며 궁정 화가로써 비호를 받던 다비드는 황제에게 명을 받게 된다  "자크 루이, 내가 알프스를 넘는 초상화를 하나 그려주게  내 모습은 스페인 카를로스 4세 국왕의 초상화처럼 그리고  앞발을 든 말 위에 평온하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주게나"  "황제 폐하, 그렇다면 그림을 위해 직접 모델을 서주시겠습니까?"  "아니, 그럴 필요 없이 자네의 '천재적 상상'에 맡기겠네"  그리하여 멋지게 미화된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그림은 가장 유명한 나폴레옹 초상화가 되기에 이른다     허나, 나폴레옹이 백마를 타고 알프스를 넘는 모습은 역사적 사실에 맞지 않는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알프스의 험한 산길을 넘기 위해서 나폴레옹의 프랑스 병사들은 해당 지형에 강한 당나귀를 타고 있었으며 나폴레옹은 병사들이 알프스를 먼저 넘어간 후에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당나귀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던 것이다 결국, 다비드의 그림 속 나폴레옹의 모습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1850년에 동시대의 화가인 폴 들라로슈에 의해 그려진 '알프스를 넘는 보나파르트(Bonaparte Crossing the Alps)' 속 나폴레옹의 모습이 실제와 비슷했을 것이다           "초상화와 내가 닮고 안 닮고는 의미가 없다  위대한 화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으면 된다" - 나폴레옹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천재의 걸작이었던 이 그림은 21세기 들어 가장 '핫'한 소설 속 '장치'로 등장하며 예수의 비밀스러운 코드를 지니고 있는 작품으로 다시금 알려져 유명세를 얻고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상한 옴니버스' 시리즈 '성배는 예수와 마리아 막달레나의 핏줄인가?' 편을 참조)  그리고 이 세계 유산으로써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수 그리스도 작품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사실이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12사도 들과의 마지막 저녁 식사에서 다음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 과연 그들은 그날 마지막 저녁 식사로 무엇을 먹었을까?  본래 레오나르도의 작품 최후의 만찬은 그 훼손 정도가 심각해 만찬에 오른 음식이 무엇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다만, 최후의 만찬 당일이 유월절이라는 유대인들의 기념일이었기 때문에 예수와 12사도들이 마지막 저녁 식사로 양고기를 먹었을 것이므로 레오나르도의 작품 속에도 다른 많은 최후의 만찬을 소재로 한 작품들 럼 식탁에 양고기가 올려져 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었다     허나, 1999년 이루어진 복원 작업으로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 속 테이블에 어떠한 음식이 올려졌는지가 밝혀졌는데 놀랍게도 양고기가 아닌 바로 생선이었다   레오나르도는 어째서 유월절 이루어졌던 최후의 만찬에 양고기가 아닌 생선을 그려넣었던 것일까? 그 이유를 들어보면 무릎을 치며 '역시 수수께끼와 암호가 가장 어울리는 화가인 레오나르도'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예수(Iesus), 그리스도(Christos), 하나님의 아들(Theon Uios), 구세주(Soter)의 각 단어 앞글자를 연결한 ICHTHUS가 그리스어로 물고기라는 뜻을 지닌다는 것에 주목했으며  (Ιησους Χριστος Θεου Υιος Σωτηρ: 하느님의 아들이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마치 예수가 빵과 포도주를 자신의 살과 피로 비유하여 사도들에게 나누어주었던 것처럼 예수가 자신을 희생양으로 신에게 바치기로 결심했다면 최후의 만찬에 가장 어울리는 요리야말로 바로 예수를 상징하는 생선만큼 어울릴 수 있는 음식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밀라노 칙령' 이전 기독교가 박해를 받을 당시 물고기는 예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비밀기호였다)      결국, 레오나르도는 유월절 만찬의 상징인 새끼 양 대신 생선 요리를 그려넣음으로써 예수의 희생과 기독교 박해 당시 사용되던 상징물로 최후의 만찬 당시 예수 그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여담으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상태였던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은 1977년 시작되어 1999년까지 이어졌던 복원작업으로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지만, 복원을 두고 비판도 적지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복원팀이 원본에 없는 색을 덧칠했으며 레오나르도의 것인지 확실하지도 않은 드로잉을 참조해 예수의 얼굴에서 수염을 제거하는 등 원작의 20%만이 살아남은 실패한 복원이라는 비판이 바로 그것  실제로 2011년 7월, 본래 레오나르도의 제자가 그린 것으로 알려졌던 예수의 초상화 '살바토르 문디'가 레오나르도의 작품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며 그 가치가 8만원에서 2,050억으로 뛰어올라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일이 있었는데 작품 속 예수에게는 비교적 덥수룩한 수염이 존재한다            한편, 화가뿐만 아니라 건축, 물리학, 기계 발명, 해부학, 화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 능통했던 이 위대한 천재는 화가의 길로 들어서기 전 요리사로 생계를 꾸렸으며 요리솜씨 또한 탁월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자전거 스케치   다양한 분야에서 상상도 못할 만큼의 천재성을 발휘했던 위대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런 그가 생전에 자신의 방대한 연구 기록을 기록했던 수첩에서 놀라운 스케치가 발견되는데 바로 체인과 페달까지 상세하게 스케치 되어 있는 현대식 자전거가 그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자전거가 최초로 발상 되었던 1831년보다 300년 이상 먼저 현대식 자전거를 도안했던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위대한 천재 그 이상이었던 것일까?         허나, 이후의 조사에서 이 자전거 도안이 실은 1960년대 이루어졌던 필사본 복원 과정 중 다른 이의 고의적인 덧칠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1961년까지만 해도 본래 두 개의 원이 그려져 있던 것에 불과했던 스케치에 한 수도사가 페달을 그려넣었고 이후 또 다른 누군가가 페달과 바퀴살 등을 추가로 그려넣어 완전한 현대식 자전거로 둔갑시켜버린 것이었다        즉, 실제로는 레오나르도의 동성 연인이자 조수였다고 주장되어지는 지안 지아코모 카프로티가 스케치 한 것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원에 1564년 발견되어 연필심의 원료로 사용되는 흑연에 의해 덧칠되었던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1519년에 사망, 지안 지아코모 카프로티는 1524년에 사망)          그러나 이러한 고의적인 사기가 드러났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위대한 천재가 당연히 최초의 자전거를 발명했을 것이라고 믿는가 하면 그를 주제로 한 박물관에 해당 자전거 도안을 복각한 전시물이 버젓이 전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이 외에도 위대한 천재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이들로 인해 레오나르도는 현대의 문명이 낳은 많은 발명품들과 지식들을 최초로 '직접적인 구상'을 했던 불가사의한 인물로 그려지기도 한다  +++++++++++++++++++++++++++++++++++++++++++++++++++++++++++++++++++*+++++++++++++++++++++++++++++++++++++++++++++++++++++++ * 참조문헌: 세계사 오류 사전                위키백과                세계명화의 수수께끼                달리, 나는 세상의 배꼽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                영웅 만들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나를 매혹시킨 화가들                세상을 바꾼 최초들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  [이상한 옴니버스] 번외단편 - Mystery of Gallery 끝. [출처] [이상한 옴니버스] 번외단편 - Mystery of Gallery|작성자 메데아           다빈치 그림 '5천억원' 낙찰… 세계 미술품 경매역사 새로 썼다 2017년11월16일  [AFP=연합뉴스] 500년 전 희귀작 '구세주'…수백년 떠돌다 2005년에야 진품 확인 기존 최고가인 피카소 '알제의 여인들' 2천억원의 두배 이상 가격  [EPA=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세계 미술품 경매 역사를 다시 썼다.  500여년 전 다빈치가 그린 예수 초상화 '살바토르 문디'(구세주)가 15일(현지시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5천30만달러(약 4천978억9천만원)에 낙찰됐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긴급 보도했다.  '21세기 최대의 재발견 예술품'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러시아의 억만장자이자 미술품 수집가 드미트리 리볼로블레프가 소장하다 1억 달러(약 1천135억원)에 내놨으나 거의 4배 이상 가격에 팔린 것이다.  이는 전세계 미술품 경매 역사상 최고 가격이자, 기존 최고가의 두배를 훨씬 뛰어넘는 액수다.  기존 최고가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로, 2015년 5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7천940만달러(약 1천982억원)에 낙찰됐다. 이를 포함해 역대 1억 달러 이상의 낙찰가를 기록한 작품은 10개뿐이다. 공개 경매가 아닌 개인 거래 기록으로는 2015년 9월 네덜란드 태생의 추상표현주의 미국 화가 윌렘 데 쿠닝의 '인터체인지'가 세운 3억 달러가 최고가였다.  다빈치가 그린 희귀 예수그림 '살바토르 문디' [EPA=연합뉴스] 다빈치가 1500년쯤 제작한 '살바토르 문디'는 오른손을 들어 축복을 내리고, 왼손으로는 크리스털 보주를 잡고 있는 예수의 상반신을 담았다.  20점도 채 남아있지 않은 다빈치의 그림 중 유일하게 개인이 소장하던 작품이다. 대표작 '모나리자'를 비롯한 다빈치의 나머지 작품들은 현재 프랑스 루브르 등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지금은 최고의 몸값을 받는 자리에 있지만, 그간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유럽 귀족들의 손을 거치며 심한 덧칠 등으로 손상됐고, 누구의 작품인지조차 확인되지 않은 채 수백 년을 떠돌았다.  1900년께 영국의 그림 수집가 프레더릭 쿡 경(卿)이 사들인 이 작품은 1958년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단돈 45파운드(약 7만 원)에 팔렸다. 당시 이 작품은 다빈치가 아닌 다빈치의 제자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난 2005년 그림의 붓질과 염료 등을 정밀 감정한 결과 이것이 다빈치의 진품이라고 확인했다. 이후 2011년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처음 전시됐으며 2013년에는 리볼로블레프의 손에 들어갔다. 당시 그가 이 작품을 스위스의 미술품 딜러인 이브 부비에르에게 지불한 돈은 1억2천750만달러(약 1천400억원)이었다.  이 작품은 경매 전 홍콩, 샌프란시스코, 런던, 뉴욕에서 전시를 마쳤으며 관람객이 끊이지 않는 등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크리스티 측은 "일부 비평가들이 의문을 제기해왔지만, 대부분의 학자가 다빈치의 작품이라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엄청난 가격의 이 작품을 사들인 사람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매수자가 전화로 경매에 참여했으며, 약 20분만에 경매가 종료됐다고 전했다.  기존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피카소 '알제의 여인들'[EPA=연합뉴스]
3    [그것이 알고싶다] - "모나리자"는 녀성일가 남성일가?... 댓글:  조회:2707  추천:0  2017-11-14
모나리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남성 연인일까? 모나리자의 미스테리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는 여러 세대에 걸쳐 보는 사람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가장 유명한 이 작품이 누구를 그린 것인지는 수 세기 동안 예술사가들이 밝혀내지 못한 수수께끼였죠.  이탈리아의 한 연구자가 내놓은 이론에 의하면 이 그림의 주 모델은  레오나르도의 도제였으며 연인이었을지도 모를 젊은 남성이었다고 하는데요. 문화 유산 국립 위원회의 실바노 빈체티는  ‘모나리자’가 ‘살라이’라고 알려진 지안 지오코모 카프로티와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또한 ‘모나리자’의 적외선 스캔을 관찰하고,  살라이가 모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습니다. “모나리자의 코, 이마, 미소가 특히 비슷하다.” 빈체티는 텔레그래프에 말했습니다.  외신 연합 기자회견에서 그는 다빈치가 살라이를 모델로 해서 그린  ‘세례자 요한’과 발기한 젊은 청년을 그린 에로틱한 그림  ‘인간의 모습을 한 천사’를 예로 들었습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천사 살라이는 1490년에 약 10세의 나이로 다빈치의 도제가 되었습니다.  말썽꾼이었던 걸로 알려져 있는 그의 별명은 ‘작은 악마’라는 뜻입니다.  그는 20년 동안 다빈치와 함께 작업했고, 둘은 연인 사이였던 것으로 널리 추정됩니다. 모나리자’에 대해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이론은  모델이 이탈리아 실크 상인의 아내 리자 제라르디니였다는 것이었는데요.  토스카나에 있는 이 부부의 저택은 이번 달에 1130만 달러에 매물로 나왔습니다.  다른 설로는 ‘모나리자’가 사실은 자화상이었다,  다빈치의 어머니였다, 중국인 노예였다는 이론 등이 있었습니다. 살라이가 ‘모나리자’의 모델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 학자가  빈체티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보편적인 인정을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예술사가이자 다빈치 전문가 피에트로 마라니는 AFP에 이 이론은 ‘근거가 없다’고 말한 반면,  옥스포드 트리니티 대학의 예술 역사 명예 교수 마틴 켐프는 이 의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텔레그래프에 빈체티의 주장은  ‘알려진 사실들, 반쯤 알려진 사실들, 완전한 판타지를 뒤섞은 것’ 빈체티는 모델은 살라이 혼자만이 아니었을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모나리자는 양성적이다. 반은 남성, 반은 여성이다.” 빈체티는 여성적 영향은 제라르디니일 수도 있고,  밀라노의 루도비코 스포르자 공작의 아내 베아트리체 데스테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다빈치는 15세기 말에 스포르자 공작의 궁궐에서 일했습니다.  역사가들 대부분은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1503년에 그리기 시작했다고 믿고 있지만,  빈체티는 1490년대에 밀라노에 살면서 시작했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출처] '모나리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남성 연인일까? 모나리자의 미스테리|작성자 abb2957   ==============================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는 여러 세대에 걸쳐 보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가장 유명한 이 작품이 누구를 그린 것인지는 수 세기 동안 예술사가들이 밝혀내지 못한 수수께끼였다. 이탈리아의 한 연구자가 내놓은 이론에 의하면 이 그림의 주 모델은 레오나르도의 도제였으며 연인이었을지도 모를 젊은 남성이었다고 한다. 문화 유산 국립 위원회의 실바노 빈체티는 ‘모나리자’가 ‘살라이’라고 알려진 지안 지오코모 카프로티와 무척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또한 ‘모나리자’의 적외선 스캔을 관찰하고, 살라이가 모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다.   “모나리자의 코, 이마, 미소가 특히 비슷하다.” 빈체티는 텔레그래프에 말했다. 외신 연합 기자회견에서 그는 다빈치가 살라이를 모델로 해서 그린 ‘세례자 요한’과 발기한 젊은 청년을 그린 에로틱한 그림 ‘인간의 모습을 한 천사’를 예로 들었다.   살라이는 1490년에 약 10세의 나이로 다빈치의 도제가 되었다. 말썽꾼이었던 걸로 알려져 있다. 살라이라는 별명은 ‘작은 악마’라는 뜻이다. 그는 20년 동안 다빈치와 함께 작업했고, 둘은 연인 사이였던 것으로 널리 추정된다. ‘모나리자’에 대해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이론은 모델이 이탈리아 실크 상인의 아내 리자 제라르디니였다는 것이다. 토스카나에 있는 이 부부의 저택은 이번 달에 1130만 달러에 매물로 나왔다. 다른 설로는 ‘모나리자’가 사실은 자화상이었다, 다빈치의 어머니였다, 중국인 노예였다는 이론 등이 있다.   살라이가 ‘모나리자’의 모델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 학자가 빈체티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보편적인 인정을 받은 적은 없었다. 예술사가이자 다빈치 전문가 피에트로 마라니는 AFP에이 이론은 ‘근거가 없다’고 말한 반면, 옥스포드 트리니티 대학의 예술 역사 명예 교수 마틴 켐프는 텔레그래프에 빈체티의 주장은 ‘알려진 사실들, 반쯤 알려진 사실들, 완전한 판타지를 뒤섞은 것’이라고 말했다. 빈체티는 모델은 살라이 혼자만이 아니었을 수 있다고 추정한다. “모나리자는 양성적이다. 반은 남성, 반은 여성이다.” 빈체티는 여성적 영향은 제라르디니일 수도 있고, 밀라노의 루도비코 스포르자 공작의 아내 베아트리체 데스테일 수도 있다고 했다. 다빈치는 15세기 말에 스포르자 공작의 궁궐에서 일했다. 역사가들 대부분은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1503년에 그리기 시작했다고 믿고 있지만, 빈체티는 1490년대에 밀라노에 살면서 시작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의 모델을 양성(兩性)으로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 ​ ​ ​ ​ ​   "모나리자 안에 여자와 남자 얼굴 있다(?)"   모나리자 하다하다 이젠 양성설.."남자 애인 모델로" 레오나드로 다 빈치의 작품에는 양성적 작품들이 많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가 남성과 여성 모델을 동시에 써서 양성(兩性)적인 매력을 노린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뉴욕포스트 등에 따르면 실바노 빈세티 이탈리아 역사문화유산 홍보위원회 위원장은 다빈치의 작품을 분석한 결과 모나리자는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을 모델로 그려졌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역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피렌체의 비단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아내인 리자 게라르디니가 모나리자의 모델인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빈세티는 적외선 기술을 이용해 찾아낸 모나리자의 밑그림을 근거로 '제2의 모델'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밑그림의 모나리자는 미소짓는 얼굴이 아니라 우울하고 슬퍼하는 얼굴이었다"며 "이는 두번째 모델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리자 게라르디니에 이어 모나리자의 두번째 모델로 보고 있는 것은 지안 지아코모 카프로티, 흔히 '살라이'라 불렸던 다빈치의 제자다.   살라이는 다빈치 최후의 작품으로 알려진 '세례자 성 요한'을 비롯한 여러 작품의 모델로 알려져 있으며 동시에 다빈치와 '연인' 관계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빈세티는 컴퓨터를 이용해 살라이가 모델이었다고 알려진 다빈치의 모든 그림과 모나리자를 비교한 결과 세부적인 형태가 완벽히 일치하는 부분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통해 다빈치가 남성과 여성, 두 모델을 써서 모나리자를 그렸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다빈치의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것은 바로 이 양성성(兩性性) 때문"이라며 "다빈치에게 있어 완벽한 인간이란 남성과 여성이 합쳐진 형태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가디언은 이탈리아의 미술전문가이자 자칭 '미술 수사관'인 실바노 빈체티 역사문화유산증진위원회 위원장이 '모나리자' 얼굴에 다빈치의 제자인 살라이의 얼굴이 함께 그려져 있다는 주장을 또다시 내놓았다고 보도했다.     ​ ​ ​ ​         한마디로, '모나리자'는 한 여성의 실물 초상화라기 보다는 여성과 남성의 이상적인 얼굴을 혼합해 그린 것이란 이야기이다.  빈체티는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 '모나리자'를 분석한 결과 맨 아래에 그려져 있는 밑그림에서 몇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밑그림을 보면 초상화의 여성이 웃거나 즐거워하는 표정이 없고 대신 우수에 젖어 슬픈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빈치가 여성의 얼굴에 남성의 얼굴, 즉 자신의 조사인 지안 자코모 카프로티(일명 살라이)의 얼굴을 혼합해 '모나리자'를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살라이는 다빈치가 '세례 요한' 등 자신의 여러 작품에 모델로 이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빈체티는 "다빈치가 살라이를 모델로 해서 그린 모든 그림과 모나리자를 비교분석한 결과 일부 세부묘사가 완벽하게 맞아들었다"며 "따라서 다빈치가 두 명을 모델로 하고 자신의 상상력에서 나온 창조적 세부 묘사를 덧붙여 모나리자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시말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있어 완벽한 인간은 남성과 여성의 혼합체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모나리자와 '세례 요한'등에 나타난 살라이의 코, 이마, 그리고 미소짓는 표정이 매우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빈체티는 자신의 주장은 16세기 이탈리아의 저명한 미술사가 조르지오 바자리의 주장과도 일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바자리에 따르면 '모나리자'는 이탈리아의 비단상인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도가 아내 리자 게라르디니를 위해 다빈치에 의뢰해 그린 그림이다.     ​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에는 동성애적 경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이 그림 속의 바쿠스가 미소년의 특징, 즉 무성 혹은 양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이 그림은 이었다. 원작자가 죽은지 176년 지난 후에 강제로 가 된 것이다. 반동종교개혁의 보수적 분위기 속에서 졸지에 세례 요한이 바쿠스로 둔갑해야 했던 것이다. 교회의 예리한 검열의 눈이 이 작품 안에 흐르는 동성애적 경향을 놓칠리 없었다. 예수에게 세례를 준 성자가 동성애자 였을리 없고, 동성애자가 또한 성자에게 모습을 빌려 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이 작품 속의 동성애가 용서받는 유일한 길은 성서의 인물이 아니라 이교의 신이 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어릿광대를 고용했을 정도로 리자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전혀 웃지 않았다. 그러자 다빈치가 살라이를 모델로 써서 웃는 표정을 가미했다는 것이다.  빈체티는 모나리자에 반영된 여성 모습이 리자 게라르디니일수도 있고 또다른 여성일 수도 있다면서, 예를 들어 다빈치가 초상화 작업을 한 적이 있는 밀라노의 루도비코 스포르자 대공의 부인 베아트리체 데스테의 모습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한 명의 여성과 한 명의 남성 모습을 합친게 아니라, 여러 명을 혼합해 이미지를 만들어 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대다수 학자들이 모나리자의 제작연도를 1503년으로 보고 있지만, 다빈치가 밀라노에 살고 있던 1490년대말부터 '모나리자' 작업을 시작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빈체티는 지난 2011년에도 모나리자의 모델이 리자 게라르디니가 아니라 다빈치의 조수이자 동성 연인이었을 수 있는 살라이라는 주장은 내놓은 적이 있다.     그러나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해 모나리자와 살라이가 모델이 된 그림들을 상세히 비교분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며, 한 명 이상의 여성 얼굴이 모나리자에 반영됐을 수도 있다고 주장도 이번에 새로 내놓았다. ​ =============================    
2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시조문학교과서 4 5 6... 댓글:  조회:2879  추천:0  2017-11-14
民 調 詩 論 ​ - 서 재 석(한국문인협회 민조시분과위원장) - ▣민조시(民調詩) 작법요령을 중심으로 ​ 민조시 작법에 따른 주요요소라면 언어의 직조,  함축 ,간결 ,조화 ,가락 ,장단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일상어에 접목시켜 얼마만큼 뭉클하게 마음을 울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특정인이 주로 쓰는 제한적인 언어의 편중도 아니요, 일부 지식인이 쓰는 언어 또한 아니다. 「민조(民調)」의 단어 첫 글자인 국민 민자(民)에서 풍기는 예측대로 우리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활용하고 있는 보통사람의 평범한 언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시작법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언어의 「음가수」구조를 이해하는 일이다.   「언어란」심중에 담고 있는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전해줄 언어의 직조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민조시」를 쉽게 접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쓰는 언어의 마디가 「3 ,4 , 5 , 6조」로 이루어져 있음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좋을 성 싶다. 즉, 언어의 음절과 가락 , 장단이 「3 ,4 , 5 ,6」글자 수에 접목 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수리학에 있어서 선천적인 수 「1 , 2 , 3 ,4 , 5 ,6 ,7 ,8 , 9」와 후천적인 수 「2 , 3 , 4 , 5 , 6 , 7 , 8 , 9 , 10」에서 선천적인 숫자의 중심축은 다섯 (5)이다. 반면, 후천적 숫자의 중심축은 여섯 (6)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향가 ,농요 ,가요 ,무가 , 민요 ,시조 등 분야 또한 다양하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민족의 뿌리인 「한사상」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사상이란」우리 민족이 생활 속에 담고 있는 우주본체사상인 자연사상을 말한다. 좀 더 이야기를 부연한다면 사물의 이치를 거슬리지 않고 자연의 이치와 진리를 조화롭게 다스리고, 이동하고, 포용하는 정신과 힘이 곧 한민족의 우수한 민족정신인 「한사상」인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가위/바위/보」문화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놀이의 활용 면을 들여다봐도 용이하기 그지없다. 개인적인 일이나 단체모임 등에서 일어나는 일들 즉, 물건 나르기, 편 가르기, 심부름, 기회부여, 물건의 선택 등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는 우리의 순수한 놀이 문화로서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놀이요, 강하고 약한, 높고 낮음이 없는 놀이요, 좋고 나쁨, 손해와 이익 등을 3가지 본체를 통해 포용하고 수용하는 놀이임에 틀림없다. 즉, 「가위」는 「보」를 이기지만 「바위」를 못 이기고, 「바위」는 「가위」를 이기지만 「보」를 못 이기며, 「보」는 「바위」를 이기   지만「가위」를 못 이기는 것을 보더라도 일의 진행과 기회를 아우르는가 하면 전체를 포용하는 이 놀이야말로 우리 민족만이 가질 수 있는 혼 뿌리요, 정신사상이다. 그 밖에도 삼세번 / 원방각(○ ․ □ ․ △)사상 / 품앗이 / 두레 / 3 , 5 , 7 ,9 … 21 … 49제/ 9층탑 / 삼신사상 / 5행사상등 생활습관에 묻혀있는 가짓수 또한 다양하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언어 또한 이러한 사상에서 잉태된 의사 전달의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보다시피 우리의 언어는 가락 ,장단이 3/4또는 4/4박자인 트로트풍을 지니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한 사상의 기본 수치인「3」을 들 수 있다. 이「3」이야말로 한사상에서 연유된 중심 숫자이다. 반복 강조되는 말이지만 3세번 / 성과 이름의 석자 / 하늘 , 사람 , 땅의 삼신 사상이 그 좋은 예라 하겠다. 이는 민족정신이 녹아있는 숫자로 마음의 넉넉함과 너그러움 , 기원 ,기회부여 등을 두루 내포하고 있는 숫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민족 혼 뿌리인 바람에서 기인된 「3 , 4 ,5 ,6」의 언어수치를 가지고 주도면밀하게 그리고 아름답고 맵시 있게 직조된 것이 「민조시(民調詩)」인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민조시」를 깔끔하게 그리고 마음에 들게끔 쓸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민조시인이라면 한 번쯤 고심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민조시」공부를 하는 사람의 공통적 심리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민조시」하면 글자 수를「3 , 4 ,5 , 6」자 틀 속에 둔다는 점에서 우선 위축감 , 구속감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심적 제한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감과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언어의 직조 ,간결 , 함축 , 조화 ,가락, 장단 , 언어의 선택 ,창출 등 제한요소에서 많은 연구와 숙달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점들을 해소하며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측면에서 몇 가지  핵심적 요소를 제시하고자 한다.   • 첫째 : 「시어(詩語)가 풍부해야 한다.」 시어가 풍부하지 못하면 자   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글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설사 표현   한다 해도 글이 느슨하거나 글자 수에 어긋나는 현상 등 이런 저런    일로 고심이 많다. • 둘째 : 아름다운 언어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언어 또는 시어의 생상기법이 필요하다고 본다.」어떻게 보면 거창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조금만 연구하고 고심하면 쉽게 자기 생각에 맞는 언어를 창출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 셋째 : 「시어는 남이 쓰지 않은 신선함이 배어 있어야 한다.」   아무리 글을 잘 쓰고 언어의 직조 그리고 가락 , 장단이 조화 된다고   해도 이는 한계가 있고 자신이 추구하고자하는 뜻을 부각시키지 못    하는 문제점을 낳는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는 방법을 구체적으    로 알아보기로 한다.   1.「합성어(合成語)」를 창출해야 한다. 합성어란 어근과 어근이 합쳐진 단어를 말한다. 예를 들면“물걸레”/“가죽신”등이다. 여기서「물+걸레」/「가죽+신」으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하는데 특히 다른 한쪽의 어근을 수식하는 합성어들은 언어의 맛을 더해주는 느낌이 크다. 뿐만 아니라 몇 가지 장점을 들면 다음과 같다.         • 언어의 의미와 폭을 확산시켜 준다.         • 언어의 뜻을 명확하게 해준다.         • 언어의 깊이 ,느낌을 확산시켜 준다.         • 언어의 선택 및 활용 폭을 넓혀준다.        • 가락 ,장단을 증폭시킨다.     2.「관용어(慣用語)」를 창출해야 한다. 관용어란 보통일반인들이 관습적으로 쓰는 말로서 문법이나 어법으로 규정할 수 없는 말이지만 어근들이 완전하게 융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바늘방석” / “바가지 쓰다” / “시치미 떼다”등이다. 즉, 「바늘+방석」/「바가지+쓰다」/「시치미+떼다」로 합성된어 다른 언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면이 있다. 즉, 언어의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합성어의 특징이다. 따라서 「관용어」는 단어와 의미부여에 많은 공헌을 할 수 있는 오묘한 맛을 지니고 있는 분야로 은유 ․ 비유법에 기여도가 크며 언어의 표현 기법을 확산시키는데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파생어(派生語)」를 창출해야 한다. 파생어란 「접속어와 어근」으로 이루어진 단어로 단어의 색다른 맛과 향기를 풍기는 단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시어(詩語)사용에 있어 시어의 맛과 향기 , 깊이 ,공간의 폭을 잘 조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풋사과” / “풋고추” / “검붉다”등이다. 즉 「풋+사과」/「풋+고추」로 이루어진 단어들이다. 특히 「파생어」는 언어의 색감 , 질감 , 감각을 돋보이게 하며 언어의 맛과 생동감을 확산 시키는데 적절한 단어들이다.   4. 명쾌한 이미지 부여가 필요하다. 「이미지」란 어떠한 사물의 이름을 듣거나 봤을 때 그 사람 머리에 떠오르는 모습 , 영상 ,심상 등을 말한다. 즉, 감각을 재현하는 감각적 표현을 뜻한다. 이러한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법은 각자가 지닌 오감(五感 : 시각 ,미각 ,청각 , 후각 , 촉각)이다. 예를 들면 「푸른 바닷가(시각) /뱃고동 소리 뚜우 (청각) / 비릿한 바닷냄새(후각) / 입맛 당기는 생선회 (미각) / 만져보니 미끈(촉각)」. 제시된 예문에서 보다시피 「이미지」표현은 보다 구체적이고 생동감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단일 감각적」인 표현보다는 「공감각(共感覺)적」인 표현이 시(詩)를 쓰는데 필요한 요소라고 하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문 (1) ,(2)를 들기로 한다.   • 예문(1) : 「나는 화가 났다.」를「성난 호랑이처럼 으르렁 포효하며」로 표현한 문장을 비교해보면 단일감각적인 시각적 표현에서 청각적 ,생동감을 추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예문(2) : 「종소리」를 「푸른 종소리」로 표현 했다고 하자. 본래의 종소리는 청각적이고 푸른 종소리는 시각적요소를 추가하고 있다. 즉, 「청각을 시각화」하는 것을 전이(轉移)라고 하는데 이러한 기법을 「공감각(共感覺)기법」이라 한다.   따라서 명쾌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데는 수식어 선택은 물론 깔끔한 문장을 전개할 수 있는 문장기술 또한 중요한 요소요, 관건이라 하겠다. 이렇게 제시한 “예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민조시」를 쓸려면 「글자수 제한이 있어 못 쓰겠다.」「시어(詩語)가 궁색해서 못 쓰겠다.」하는 것은 하나의 핑계이고 궁색한 답변 밖에 될 수 없다. 앞에서 제시한 「합성어 , 파생어 , 관용어 , 명쾌한 이미지 부여 , 문장전개」등의 요소를 깊이 연구하고 활용한다면 남이 쓰지 않은 새로운 시어창출은 물론 시의 맛과 향기 그리고 차원 높은 시 구상을 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형식과 요소는 일찍 한자(漢字)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변문(騈文)」이다. 이 변문을 다른 말로 변려문(騈儷文) /사륙문(四六文)/사륙변려문 (四六騈儷文)이라고도 하는데 이 변려문은 후한(後漢)때부터 일어나 육조대(六朝代)에 와서 절정에 달했으며 송대 (宋代)초까지 이러졌다. 이 「변문」은 글을 쓰는데 있어 가급적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하는데 그 의미를 두고 있다. 민조시에 있어서 글자 수를 「3 , 4 ,5 , 6조」에 제한을 두듯이 “한자”에 있어서도 통상 이러한 글자의 제한을 두고 있다. 즉 「4 ,6자」의 기본 틀인 것이다. 그리고 한 구(句)에는 4자 또는 6자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면 「4-4-6-6」,「4-6-4-6」의 기본형식을 뜻한다. 하지만 4자와 6자만으로는 단조롭고 또한 아름다운 글과 명확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해 「1글자」또는 「2글자」를 추가하는 일, 그리고 6자를 「3 ,3」으로 나누어 표현하는 기법을 말한다. 그리고 「변문」전체는 대구(對句)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면 「4-4-6-6」의 형태에서 「4와4」「6과6」이 “대구” 이다. 또한 「4-6-4-6」에서도 1구씩 건너뛰어 대구를 형성한다. 따라서 변려(騈儷)의 뜻은 「짝」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정형시 만엽(와까/하이꾸)이 「5-7조/7-5조」로 구성되어 있고, 한자는 「변문」에서 보다시피 「4 ,6조」, 민조시는 「3-4-5-6조」로 구성되어 있는 현상을 발견한다. 어쩌면 한자의 「변문(文)」에서 「만엽」이 발전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낳게 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지금가지 「민조시」를 보다 쉽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합성어 , 관용어 , 파생어 , 명쾌한 이미지부여」의 내용에서 주요 요점 및 장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구  분 내    용 장    점 합성어 • 어근과 어근이 합쳐진 단어 -물걸레/가죽신(물+걸레/  가죽+신) •언어의 의미를 증폭시켜 준다. •언어의 뜻을 명확하게, 그리고 구체화 시킨다. •언어의 깊이 ․ 느낌 ․ 공간을 확산시켜준다. •언어의 선택 및 활용폭을 넓혀준다. •언어의 리듬 , 가락을 완충시킨다. 관용어 •어근이 완전하게 하나로 융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바늘방석/ 바가지 쓰다/ 시치미 떼다.(바늘+방석/바가지+쓰다/시치미+떼다) •가락 , 장단을 더욱 매끄럽게 해준다. •은유 ,비유법 활용에 기여도가 높다. •언어의 표현기법을 확산시켜준다. •의미부여가 깊어진다. 파생어 •접사어와 어근으로 이루어진 단어 -풋사과/풋고추 (풋+사과/풋+고추) •언어의 색감 , 감각을 돋보이게 한다. •언어의 맛과 생동감을 증폭시킨다. •의성어 ,의태어 활용에 기여한다. 이미지 부여 •오감(五感)활용 •공감각(共感覺)적 표현 •오감의 조화 및 공감각적 표현을 통한 언어의 색감 ‧ 질감 ‧ 감각 ‧생동감등을 확산시키고 언어의 깊이 ‧ 느낌 등을 살릴 수 있다.   다음은 「민조시 작법 요령」 및 장 ‧ 단점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민조시」를 크게 나누어 보면 「단민조시/연민조시/장민조시」로 나눌수 있다. 이들에 대한 장 ‧ 단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단민조시 : 단민조시란 음수 즉, 글자 수가 「3 ,4 ,5 ,6조」로 종료되는 시, 다시 말해 기본자수가 18자로 마감되는 짧은 정형시를 말한다. 따라서 단민조시를 쓰려면 매「행」이나 「연」에 의미부여가 명확한 시어가 필요하고 글자의 함축미와 조율의 기교가 선행되어야 하며 시에서 풍기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는 간결성과 명확성이 뒷받침 돼야하는 부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간결함에 부담이 없다는 느낌이 지배적이고, 조율되고 함축된 언어의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의미부여를 통한 느낌 ‧ 감동이 강하게 와 닿는 점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라 하겠다. 반면 단점이라면 사전에 함축된 시어준비 그리고 간결 ‧ 명확한 의미부여가 준비되어 있을 때, 시의 느슨함을 방지할 수 있고 시의 단조로움으로 인해 역사시나 과정전개시 같은 「장시」에는 자신이 담고 있는 뜻을 완벽하게 표출 시킬 수 없는 제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단점이라 하겠다.   2. 연민조시 : 연민조시란 단민조시가 2회 이상 4회 미만 연속되는 시를 의미한다. 즉, 18자로 종료되는 단민조시를 「1수」로 봤을 때 3수(18+18+18)이상 진행되는 민조시를 뜻한다. 이 연민조시는 단민조시에 비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과 의미가 자유로운 면이 있어서 「3, 4, 5 ,6조」의 시어(말마디)를 중첩 사용할 수 있어“의미부여의 강조”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부여와 결론”을 여유 있게 내릴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 하겠다. 반면 단점으로는 여유로움으로 인해 참신한 시어대입과 행과 연의 직조 , 함축미가 느슨해 질 수 있는 단점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민조시」를 처음 접하는 자는 오히려 단민조시보다는 연민조시를 기본으로 삼아 숙달,연마, 연구하여 단민조시를 숙달시키는 것이 부담을 적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3. 장민조시 : 장민조시란 단민조시 (18자)한수가 4회(18+18+18 +18)이상 연속되는 시를 말한다. 따라서 장민조시는 작가의 작법숙달이나 쓰고자 하는 주제 ,제목 , 과정 ,의미부여 등의 요소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주로 역사적인 시 또는 긴 과정을 전개하는 詩 또는 여러 사건을 전개할 시에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장민조시는 단민조시와 연민조시에서 표현 못하는 내용을 충족시킬 수 있는 여건을 부여하고 행 ,연의 중복을 촌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세세히 표출할 수 있으며 어떤 사물을 대상으로 한 느낌 , 감정 , 깊이에 대해 공간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 하겠다. 반면 단점이라면 언어의 조율 ,선택 , 함축성 등의 요소가 느슨해져서 자칫하면 산문식의 말장난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점이 있다. 지금까지 「단민조시 / 연민조시 / 장민조시」에 대해 개략적으로 장 , 단점을 알아봤는데 이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구  분 내             용 단 민 조 시 장점 •「3, 4, 5 ,6조」종결에 따른 간결함이 덧보인다. • 시어의 단단함이 있다. • 행, 연의 신축성과 함축미가 있다. • 시의 의미부여가 강하다 단점 • 시어선택 , 함축성, 탄력성 , 조율에 대한 부담이 있다. • 은은하고 잔잔한 맛이 적다.       구  분 내             용 연 민 조 시 장점 • 단민조시에서 표현 못하는 내용을 충족시킬 수 있다. • 행, 연 중복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조할 수 있다. • 사물의 느낌 , 감정 ,깊이 ,공간의 폭 등을 넓힐 수 있다. • 은은하고 잔잔한 맛이 있다. 단점 • 자칫 시의 간결함, 시어의 단단함 , 함축미 ,조율등을 상실할 수 있다. 장 민 조 시 장점 • 계속적 전개를 요하는 역사시 또는 이야기가 긴 단계별 과정 전개시가 적절하다. • 단 , 연민조시에서 부여 못한 내용을 전개할 수 있다. 단점 • 장황한 이야기로 인한 언어의 조율 , 율조 , 직조 ,함축미가 상실될 수 있다. 민 조 시 공 통 점 장점 • 가락 , 장단 ,리듬의 맛이 있다. • 간결함에서 풍기는 신선한 맛이 있다. • 시어의 조율 ,함축성 ,깊이 ,공간미 등이 덧보인다. • 글이 짧다는 점에서 심적 부담이 적다. 단점 • 민조시작법(조율 ,언어선택 ,의미부여 등) 미숙시 시가 길어진다. 더불어 연과 연의 경중(輕重)이 심하다. • 언어직조, 조율 미숙에 따른 간결함 , 단단함 , 함축미등이 느슨해질 수 있다.     다음은「민조시」작법요령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민조시는 먼저 쓰고자 하는 글자 수에 따라 단민조시 / 연민조시 / 장민조시로 구분 짓고 또한 시의 선택에 따라서 시어 , 직조 , 조율 , 간결성 , 함축미 , 가락 ,장단 등 제반요소를 적절히 고려하여 전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튼, 민조시 작법의 기본 틀은「3 , 4 , 5 ,6조」이다. 작법 요령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문」을 들어 설명하기로 한다. 제시하는 「예문」은 2007년 「문학저널」4월호에 실은 본인의 민조시 2편으로 예문 “1”「눈꽃」과 예문 “2”「春芽」이다.   예문“1” 예문“2”         눈 꽃         雪花木         가짓살         白花滿開         一枝春*이다.         허울레,         겉치레         벌없는 바람 꽃. *一枝春 : 매화         春 芽         몸부림         産苦 끝에         몽울 몽울         봄을 낳는다         빨강         노랑         하양         봄꽃물 눈물빛       • 예문 : “1”은「눈꽃」이다.   이 시(詩)는 보는 바와 같이 2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 1연은 4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제1행 : 3 / 제2행 : 3 / 제3행 : 4 / 제4행 : 5의 글자 수로 종결         짓고 있다.         •제2연은 3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행 :3 / 제2행 : 3으로 여섯         글자(3+3)를 이루고 있으며 제 3행에서 6글자로 종결짓고 있다. •예문 : “2” 는 「春芽」이다.  이 시(詩) 또한 보는 바와 같이 2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 1연은 4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제1행 : 3 / 제2행 : 4 / 제3행 : 4 / 제4행 : 5의 글자로 종결 짓         고 있다.         • 제2연은 12글자로 4행을 이루고 있다. 즉, 제1행: 2 / 제2행 : 2         / 제3행 : 2글자로 1 , 2 ,3행(2+2+2)을 모두 합친 글자 수가 곧         6이 되는 것이다. 제4행 : 여섯 글자(6)로 종결짓고 있다. 예문 「“1”         ,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섯(6)글자로 종결짓지 않고 다시 한번         6(여섯 글자)을 거듭 쳐준 것이 두 예문 시(詩)의 특징이라 하겠다.   「예문 “1”과 “2”」의 두 작품에서 보는바와 같이 시의 문장 첫머리가3(세 글자)으로 시작하여 6(여섯 글자)으로 종결짓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전체적인 시(詩)의 틀을 보면 행의 자수율이「3 ․ 4 ․ 5 ․ 6조」의 글자 수로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행갈이 / 연갈이」는 작자의 작법, 익숙도 또는 작가의 특성 등에 따라서 그 형태 또한 다양하게 변화될 수 있으나 보편적으로 시의 함축성, 조율된 시어와 의미부여 등의 연건에 따라 행과 연을 가르는 것이 무난하다고 본다. 의무부여 또는 강조를 위하여 반복적인 용어나 시어를 쓸 경우 행이 길어지고 늘어나서 결국 「연갈이」에 있어 연의 편중과 불균형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시의 무게 ․ 깊이 ․ 폭 ․ 공간 등의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사전에 시의 제목, 시의 선택 (단민조시/ 연민조시/ 장민조시), 조율, 함축성, 행과 연의 숫자 구성 등을 잘 간파하여 균형 있고 짜임새 있는 글을 전개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더욱이 글을 많이 써보지 않은 사람이나 작법에 익숙치 못한 사람은 연갈이 또는 행갈이를 하는데 있어 많은 고심을 하게 된다. 아무튼, 행과 연갈이는 일정한 형식이나 법칙 ․ 규정을 제한 할 수는 없다. 따라서 강조하고 싶은 말은 글을 구성하고 있는 행 ․ 연의 독립적 요소를 갖추고 있거나 의미부여가 충족되었을 경우에 하는 것이 좋다. 시에 있어서 어떻게 행과 연을 가르느냐에 따라서 시의 균형과 신선함을 더해주는 요소이므로 신경을 써야할 부분이다. 특히 연갈이에 있어서는 전체시 구성에 있어서 연과 연의 균형과 무게 ․ 공간미가 치우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밖에 시(詩)를 보다 깔끔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 준수해야 할 숫자 ․ 부호 사용 시 올바른 표기법, 시작법시 염두 사항을  두어야 한다...     [출처] 民 調 詩 論|작성자 하이디
1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시문학교과서 1 2 3... 댓글:  조회:2605  추천:0  2017-11-14
시 쓰기의 귀납적 방법과 표현 ​       김 기 덕     시인들은 많지만 표현의 방법을 제대로 알고 시를 쓰는 시인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관념을 전달하기 위해 주제의 통일이나 의미의 나열에 치중하여 시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는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시의 개념을 생각한다면 언어를 통해 그림을 그리듯이 시를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림 속에는 화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성이나 메시지가 있겠지만, 그림 자체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에 따라 그림 속에 담긴 관념을 금을 캐듯 채취하는 것이다.하나의 시 속엔 철학의 광맥이, 관념의 광맥이 필요하다. 그 관념성은 지상에서 볼 수 없는 광맥처럼 숨겨진 존재이다. 잘 표현된 시 속엔 철학과 사상, 이념의 고차원적인 광맥이 숨겨져 있어야 하되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 시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표현 속에 관념을 감추고 심오한 생각의 깊이를 보여주기 위해선 표현의 방법을 알아야 한다. 시의 표현은 하나의 단어로도 가능하지만 대부분 문장에서 시작된다. 그 문장은 이미지로 결합된 문장이며, 설명이나 관념의 기름기가 빠진 순수 사물적이거나 감각적이어야 한다.     1. 시 쓰기의 귀납적 방법의 필요성   지금까지 우리의 시 쓰기는 대부분 연역적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연역적 방법은 간접추리와 직접추리와 같은 연역적 추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간접추리는 일반적으로 둘 이상의 명제로부터 새로운 명제를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예) “모든 유대류는 척추동물이다.” “모든 캥거루는 유대류이다.” 그러므로 “모든 캥거루는 척추동물이다.”   직접추리는 하나의 명제에서부터 새로운 한 명제를 이끌어 내는 방식이다. 예) “모든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다.” 그러므로 “어느 비이성적 동물도 사람이 아니다.” 예) “어느 자유주의자도 전체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전체주이자도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시는 증명이 아니기 때문에 논리학의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을 수 있으나 시 쓰기의 방법적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연역적 방법은 일반적인 원리를 가지고 구체적이고 특수한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예) 모든 동물은 죽는다. -대전제(일반적 원리) 사람은 동물이다. -소전제(구체적 사실) 그러므로 사람은 죽는다. -추론(구체적 원리)   연역적 방법의 시 쓰기는 하나의 주제의식, 즉 결론적 의미를 이끌어내기 위해 자연이나 사물, 정황의 의미, 철학성, 교훈성, 유희성 등등의 대전제를 세우고 감성적 정서나 이야기 등의 소전제를 덧붙여 시인의 시적 의도를 나타내는 방식이다. 연역적 방법의 시는 연역법적 증명의 형식을 갖는 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발상에서부터 완성에 이르는 과정에 있어서 전체적인 흐름을 의미한다. 대전제는 시에 대한 발상을 얻고 어떤 주제로 써나갈 것인가에 대한 구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소전제는 이 주제에 대한 많은 이미지와 이야기 등의 표현을 빌려와 주제성을 뒷받침하는 것을 의미한다. 추론은 결론적 감성의 증명, 새로운 차원의 제시, 상승된 시심의 도출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는 정확한 논리적 증명을 위한 글은 아니지만, 그 방법적인 면에서 볼 때 대부분 연역적 방법을 취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시는 비논리의 논리이다. 오류에 빠질 수 있는 비논리와 상상력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논리적 사고로 이해하려 한다면 시의 접근성이 차단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연역적 방식의 시들은 시간성, 인과성, 예상가능성의 원리들을 통해 생각을 펼치며 개인적 정서의 증명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첫 문장을 보면 시의 가능성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첫 문장이 표현되었느냐의 문제도 있지만, 앞으로 생각이 뻗어갈 수 있는 씨알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 씨알은 주제의식을 나타내며 시적 정서를 증명하기 위한 대전제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들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 내용을 거의 다 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의 표현방법을 말하면서 접근법을 끌어들인 것은 표현을 위한 근본적인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의도에서 시 쓰기를 시작한다면 시에 대한 표현보다는 관념성에 갇히게 된다. 물론 숨겨진 관념을 나타내기 위해 잘 표현된 시들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시인들에겐 시 쓰기의 근본적인 접근 방법을 바꾸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 쓰기 방법은 하나의 사물이나 풍경, 이야기 등을 통해 착상이 이루어지면 연못에 던져진 돌의 파장처럼 이미지를 확장해 가거나 굴착기 같은 생각의 압력을 통해 사고의 지반을 꿰뚫으려 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시작점은 착상의 중심이고, 시의 전개는 이 중심의 확장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고 보니 정방향의 일방적 시 쓰기가 되어 예상이 쉽고 의미가 드러나 식상한 맛을 주었다. 시는 어려워야 하나? 라는 질문을 받는다. 시는 어려워야 할 필요가 없다. 단지 깊이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반복하여 써온 시의 정서들이 이제는 식상한 공식이 되었다. 첫줄을 읽고 다 알아버린 시의 맛은 맹물 같은 것이다. 대하소설을 읽는데 그 내용이 예상된다면 누가 시간을 들여 읽으려하겠는가. 초보적 시 쓰기에서 벗어난 고수들의 바람은 신선한 접근과 파격적 전개는 아니라 해도 우려먹어서 맛이 다 빠진 녹차 잎 같은 시는 아닐 것이다. 시를 어렵게 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한 편의 시 속에 많은 이미지와 생각의 씨알을 담는다면 당연 시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편하게 읽혀서 감동을 주는 시도 있지만 그 속에 안주해서 감동도 없고 신선함도 없는 시들이 너무 많다. 새로운 실험을 통해 과감히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기존의 방식을 버려야 할 것이다.     2. 시 쓰기의 귀납적 방법   이러한 기존의 연역적 시 쓰기 방식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에 하나가 귀납적 방법이다. 시 쓰기의 귀납적 방법은 연역적 방식과 접근법에서 상반적인 방향성을 갖는다. 연역의 추리는 그 전제가 참이면 결론도 필연적으로 참이지만, 귀납적 추리는 전제와 결론 사이에 필연성이 없다. 귀납적 추리는 그 전제에서 결론을 이끌어 낼 때 개연성(꼭 단정할 수는 없으나 대개 그러리라고 생각되는 성질.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의한 귀납적 비약이 반드시 따른다. 이러한 논리학의 논리가 시에 도입되어 활용될 때는 연역적 전개의 반대적 방향성을 갖는다. 귀납법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사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을 통해 일반적인 원리를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예) 사람은 죽는다. -구체적 사실 소도 죽는다. 돼지도 죽는다. 개도 죽는다. 사람, 소, 돼지, 개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동물은 죽는다. -추론(일반적 원리)   다시 말하면 연역법은 일반적 원리를 근거로 구체적, 개별적 문제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귀납법은 구체적, 개별적 사실들을 논거로 하여 일반적인 원리를 이끌어 내는 방법이다. 귀납적 시 쓰기의 방식은 연역법의 대전제와 같은 의미, 철학성, 교훈성, 유희성 등을 세우기 이전에 관찰적 근거들을 모으듯 이미지를 뽑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먼지라는 소재를 통해 시를 쓴다면, 연역적 방법은 ‘먼지를 통해 인간은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는 주제성을 통해 접근한다든지, ‘먼지로 인한 폐해’와 같은 문제성으로 출발할 것이다. 하지만 귀납적 방법은 먼지라는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관찰적 근거가 되는 주변 이미지를 뽑으라는 것이다. 먼저 유사한 이미지들로 모래, 재, 진드기, 꽃가루 등을 찾았다면, 인접성의 이미지 침대, 방, 진공청소기, 걸레 등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상징적 이미지인 사람, 별, 나뭇잎, 구름 등을 찾아 순서를 정한다.귀납적 시 쓰기의 방식은 확장된 이미지, 팽창된 의식에서 집중된 이미지, 집약된 의식으로 가는 수축의 과정이다. 먼지와 연결된 이미지가 세상엔 무수히 많다. 이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을 취사선택하여 집약된 정서적 논증을 이루어야 한다.     ⑴ ‘먼지’를 소재로 한 구체적 시 쓰기 방법   먼지라는 소재를 대상으로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먼저 먼지에 대한 책을 한 권 정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먼지에 대한 기본 지식이 갖추어진 다음에 이미지를 뽑게 되면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이미지들을 뽑을 수 있다. 인간은 아는 만큼 생각하고 아는 만큼 말할 수 있다. 하나의 시를 쓰면서 논문이나 책을 통해 그에 연관된 방대한 양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또한 한 편의 시 속에 책 한 권 분량의 지식과 상징을 압축할 수 있다면 대단한 시가 될 것이다. 한 줄 문장 속에 책 한 권을 압축하기 위해선 상징적 이미지의 활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상징적 이미지 속엔 천년 은행나무의 씨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최대한 많이 뽑을수록 좋다. 그것을 다 활용하지 않아도 연관된 사고의 확장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② 뽑은 이미지에 대한 문장 만들기 뽑은 이미지를 가지고 문장을 만들 때는 벌이 꽃에서 단물을 빨아 몸에서 침과 함께 숙성시켜 꿀을 생산해 내듯 그 이미지를 자신의 경험과 정서적 지식을 통해 숙성시켜 시적표현으로 토해내야 한다. 그래서 똑같은 이미지라도 시인마다 다르게 표현되며, 다른 맛과 색깔을 나타낼 수 있다. 그렇다면 먼지에 대해 유사성, 인접성, 상징성으로 뽑은 이미지를 가지고 나의 정서적 사고의 숙성을 통한 문장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꽃가루: 꽃 입술에서 나온 꽃가루들이 거울 같은 세상을 지운다.   화산재: 성층권까지 치솟는 분노의 화산재.   모래: 변심한 애인의 모래바람.   중금속 입자: 중금속으로 살던 입자들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며 나를 깨운다.   석면가루: 석면가루의 말들이 진폐증을 일으킨다.   진드기: 진드기나 박테리아들과 한 이불 덮으며 살아도   침대: 침대 밑 쥐며느리나 개미들처럼 껴안지 못하고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책상: 책상 위에 쌓인 중금속들이 비둘기로 날아간다.   창문: 유리창에 달라붙은 꽃가루들이 자동차가 되어 달린다.   나: 나는 몇 억만 년 전에 피어난 소금방울이고 화산재였나.   벽: 벽을 통과해 내 몸 속에 둥지 틀고 먼지들이 기침을 한다.   구름: 구름방울, 빗방울로 살다가 지상 위에 날개를 접는다.   별: 반짝이는 먼지들로 가득한 은하계에 바람이 인다.   화장터 연기: 아지랑이처럼 흩어지는 내 안의 미립자들.   지구: 먼지별에 가득 찬 먼지들 서로 껴안고 몰려다닌다.   노을: 굴절과 산란을 만들며 노을처럼 흩어진다.   빛: 나뭇잎마다 수북이 쌓이는 빛     ⑵ ‘먼지’를 소재로 한 시 쓰기의 완성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문장들을 적절히 배합하고 배치하여 한 편의 시로 만들면 되는데, 하나하나의 문장이 거의 독립적이기 때문에 배치순서가 달라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이 있거나. 사고의 대소, 현실과 이상 등의 차이에 의해 다르게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나서 부족한 부분들은 좀 더 보충하여 매끄럽게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음의 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 나름대로 완성한 시이다.   먼지 보고서   먼지별에 가득 찬 먼지들 서로 껴안고 몰려다닌다. 바람의 미세 혼령들 한통속으로 몸을 드나들며 구름을 일으킨다. 성층권까지 치솟는 분노의 화산재 변심한 애인의 모래바람 꽃 입술에서 나온 꽃가루들이 거울 같은 세상을 지운다. 불을 피우고, 물을 뒤집어쓰며 풀풀 먼지만 피우다가 연기로 사라지는 미세먼지들 벽을 통과해 내 몸속에 둥지 틀고 기침을 한다. 어젯밤 꿈으로 분해된 초미세먼지의 빙의 아 무서워, 현실의 악몽들은 중금속으로 살던 입자들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며 나를 깨운다. 분해결합하며 공간 이동한 에어로졸들은 또 거미가 되고 세균이 되겠지. 진드기나 박테리아들과 한 이불 덮으며 구름방울, 빗방울로 살다가 아지랑이처럼 흩어질 내 안의 미립자들 쥐며느리나 개미들처럼 껴안지 못하고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책상 위에 쌓인 중금속들이 비둘기로 날아간다. 유리창에 달라붙은 꽃가루들이 자동차가 되어 달린다. 나는 몇 억만 년 전에 피어난 소금방울이고 화산재였나. 석면가루의 말들이 진폐증을 일으킨다. 메트로놈의 파장이 엔진을 돌린다. 먼지로 왔다가 먼지로 돌아가는 날개들의 소리 없는 퍼덕임 굴절과 산란을 만들며 노을처럼 흩어진다. 반짝이는 먼지들로 가득한 은하계에 바람이 인다. 나뭇잎마다 수북이 쌓이는 빛. (먼지보고서 전문/ 김기덕)   3. 귀납적 시 쓰기 방법에 있어서의 표현 문장 만들기 귀납적 방법의 관찰적 근거들로 찾은 이미지들은 완성된 시의 정서적 증명을 위한 핵심요소들이다. 이 핵심적 근거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시의 정서적 증명을 위한 표현의 방식이 달라진다. 하나의 문장 속엔 이미지의 뼈를 세우고 생동하는 활력의 살을 붙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이미지가 있는 명사를 선택해야 한다. 관념적 명사를 제외시키고 이미지적 명사를 주어로 해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말씀보다는 성경을, 권력보다는 총과 칼을, 사랑이라는 관념보다는 하트나 눈물 같은 이미지를 문장의 주어로 써야한다. 이러한 사물적 단어를 주어로 끌어오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사물 속에 이미 담겨 있는 관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점은 사물 속에 담긴 죽은 관념을 봐서는 안 된다. 그 관념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어야 하며 자기만의 깨달음, 의미 부여가 되어야 한다. 빨간 신호등은 정지를 나타낸다. 이 정지의 관념은 누구나 다 아는 관념이기 때문에 이 관념을 염두에 둔 빨간 신호등을 끌어온다면 이미 죽은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빨간 신호등은 신선한 시의 이미지를 쓰기 위해선 새로운 관념의 옷을 입혀야 한다. 내 앞에 켜진 빨간 신호등은 나의 관점에서는 정지이지만 다른 방향에 있는 차들의 관점에서는 소통이 될 수 있다. 이렇듯 하나의 사물을 끌어와 문장의 주어로 쓸 때는 새로운 관념의 차원을 생각해야 한다. 시에서의 핵심적 문장은 주어+동사의 문장이다. 이미지로 선택된 사물의 주어에 어떤 동사를 배치해야 살아있는 표현이 될까? 시는 결국 언어로 그린 사물적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인간 정서를 표현하는데 있다. 그렇다면 사물적 그림을 그리되 그 그림 속에서 인간적 정서를 느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동사의 쓰임이 더욱 중요하다. 만약에 먼지라는 이미지의 사물을 선택했다면 먼지를 주어로 해서 동사를 배치할 때 인간적 정서가 있는 동사냐 아니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먼지들이 떠다닌다.’라는 문장과 ‘먼지들이 어깨동무하고 몰려다닌다.’라는 문장은 차원이 다르다. ‘먼지들이 떠다닌다.’라는 문장은 1차원의 문장이라면 ‘먼지들이 어깨동무하고 몰려다닌다.’라고 하면 2차원, 3차원의 의미를 갖는 문장이 된다. 그래서 동사의 정서적 배치는 시의 상징적 관계를 만들며 다양한 해석을 갖게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인들이 인간적 정서의 연결고리가 있는 동사를 사용하지 못하고 1차원적인 주어에 대한 서술만을 하기 때문에 표현의 문장 만들기에 실패하곤 한다. 몇 가지 인간적 정서의 연결고리가 있는 동사의 사용에 대한 예를 든다면 ‘달이 밝다’는 ‘달이 웃는다’로, ‘낙엽이 진다’는‘낙엽이 투신한다’로, ‘별이 반짝인다’는 ‘별이 윙크한다’와 같은 표현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표현 방법은 이미 활유법이라는 방법으로 사용되어 온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의 문장을 씀에 있어서는, 즉 사물적 언어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단순한 활유보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적 동사를 사용할 수만 있다면 증명하고자 하는 정서적 결론을 쉽게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서적 문장 표현에는 동사의 활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깨동무한 먼지’, ‘웃음 짓는 달’, ‘투신하는 낙엽’ 등과 같이 직접 주어를 꾸며줄 수도 있지만, 이것 역시 큰 틀에서 동사의 활용방법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미지의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이러한 표현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사람에 대한 표현은 사물로 바꾸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사람과 사물은 공존하고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하나의 그림 속에 넣을 수 있지만, 심층적 조화와 고도의 상징적 표현을 위해선 사람을 사물로 변환시켜서 표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물로 변형된 인간이 아닌 존재로 시에서의 등장은 사물과 인간의 경계를 긋고, 의미가 드러난 관념 쪽으로 이끌 수가 있다. 예를 든다면 ‘여자가 서있다’라는 문장에서 여자를 사물로 바꾸어 준다면 ‘느티나무 같은 여자가 서있다’와 같이 바꾸어줄 필요가 있다. 여자를 사물로 바꾸어주는 과정에서 직유든, 은유든, 상징이든 상관없다. 단지 감쪽같은 접합을 위한 언어적 풀질의 테크닉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느티나무 같은 여자’든, ‘느티나무 여자’든, ‘느티나무’든 그것은 시인의 역량에 따라서, 또는 표현하고자 하는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내가 근골의 팔을 내보인다’라는 문장도 표현의 문장으로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플라타너스 같은 사내가(플라타너스 사내가/ 플라타너스가) 근골의 팔을 내보인다’로 사내를 사물로 바꾸어준다면 자연스런 언어적 표현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근골의 팔을 내보인다’라는 표현에서도 이미 사내는 나무로 변환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근골’이란 단어 자체가 뿌리와 뼈를 접합시키는 이미지이며, ‘근골의 팔’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자연적 사물을 인간적 정서와 연결시킨 표현이기 때문이다.   4. 귀납적 시 쓰기의 결론 귀납적 시 쓰기의 방식은 기존의 수목적 사고의 방식에서 탈피하여 유목적 사고의 방식을 추구하는 구체적 방법 중에 하나이다. 사고는 흐름과 방향성을 갖는다. 그 흐름과 방향성은 그냥 놔두면 관습적인 쪽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나무에 매달린 사과는 항상 땅으로만 떨어진다. 시에서의 사과는 땅이 아닌 하늘로 떨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은 관습적 사고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뿌리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잎으로 뻗어 온 우리의 사고, 시적 전개의 방식을 과감히 탈피하여 잎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뿌리로 접근하는 방식의 추구가 바로 귀납적 시 쓰기의 방식이다. 내가 무엇에 대해 시를 쓸 것인가 하는 대전제를 세우고, 많은 이미지와 스토리를 끌어와 작자의 의도대로 정서적 결론을 이끌며 도출하던 시의 방식에서 이제는 탈피해야 한다. 이미지든 사건이든 시적 대상을 잡았다면 먼저 이미지를 뽑고, 이미지적 문장을 통해 언어의 그림을 그려줌으로써 독자들이 생각하고 유추해 갈 수 있는 시를 써야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표현적 문장을 자유롭게 배치하고 조합하는데 묘미가 있다. 하나의 화폭에서 풍경화나 정물화를 그린다고 가정할 때는 나름대로 그리는 순서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그림들이 분해되어 재구성 될 때는 순서가 필요 없다. 여러 가지 관찰적 근거들이 모여 하나의 사실을 증명하듯 나름대로 주제성을 느끼며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주제적 큰 틀을 표현하고 정서적 증명을 위해 연관된 많은 사실적 근거의 이미지를 찾고, 이미지들을 인간적 감성의 연결고리가 있는 동사들로 표현의 문장을 만들어 뒤섞인 퍼즐적 조합을 통해 시를 썼을 때 독자들은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은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귀납법적인 방법에 의한 표현적 시 쓰기는 식상해진 관념적 시의 탈피를 위해 도전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의 생명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인쇄 블로그 카페 북마크 메모 폴라 보내기  댓글 쓰기                   [스크랩] `하이퍼 시`의 시사적 위상과 그 미학/오양호  시창작론숲  2017. 11. 3. 17:48 http://blog.naver.com/shunzi75/221131924811 전용뷰어 보기   하이퍼 시’의 시사적 위상과 그 미학                                                                        오 양호(문학평론가. 인천대 명예교수)    ‘하이퍼 시’는 월간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현대시 혁신 신시운동이다. 현재 한국문단에는 근 3백여 종류에 이르는 문예지가 발행되고 있지만 ‘하이퍼 시’라는 이름의 시 갈래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시문학』의 이런 신시운동은 이 잡지가 내걸고 있는 ‘현대시의 길 닦기, 길 잡기, 길트기’와 호응한다.  문학은 종적인 지속성과 횡적인 변화 속에 존재한다. 앞 시대의 문학적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한 시대의 변화를 수용한다. 그러니까 문학은 과거의 것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것이다. 한국 현대시사에서『시문학』이란 이름의 시 전문지는 3개다. 첫 번째는 1930년 박용철이편집 겸 발행인으로 창간한 동인지『시문학』이고, 두 번째는 1965년 4월에 문덕수가 주재 편집하고, 정태진이 발행한(청운출판사)『시문학』이며, 세 번째는 1971년『현대문학』(현대문학사)의 자매지로 조연현 주간으로 발행된『시문학』이다.  첫 번째 『시문학』은 박용철, 정지용, 김영랑, 정인보, 이하윤 등이 중심 멤버였고, 두 번째는 순수심리주의 경향, 또는 현실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반영하는 시적 미학으로 내면세계를 개척하고 있던 교수시인 문덕수가 신진의 적극적 육성, 시단의 전위적 역할을 내세우며 발행했던 문예지다. 1966년 12월 통권 20호로 종간된 이 시 잡지를 통해 시단에 나온 시인으로 양왕용, 홍신선, 오순탁, 민윤기 등이 있다.  세 번째 『시문학』은 통권 제 24호부터 현대문학사서 독립하여, 발행인 김규화, 주간 문덕수에 의해 시문학사에서 발행해 오고 있는 문예지다. 2012년 10월 현재 통권 495호를 발행했다. 이 문예지를 통해 시단에 나온 문인을 열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대 한국시단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시인을 거의 다 열거해야 하는 까닭이다.  세『시문학』을 관통하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그 첫째는 순수시의 지향이고, 두 번째는 전위 시의 지향이다. 한국시문학사에서 ‘시문학파’로 지칭되는『시문학』은 우리가 잘 알듯이 카프의 목적성, 도식성, 획일성에 반대하여 순수문학을 옹호한 모태가 된 동인지다. 정지용으로 대표되듯이 이 잡지는 한국시사에서 시를 언어의 예술로 자각하고, 그것을 심화시키는 창작 활동과 함께 모더니즘을 수용하여 한국시를 변화 발전시키는 기수 역할을 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시문학』은 실재로 문덕수의 시 쓰기로 대표된다. 두『시문학』을 관리한 문덕수의 도저한 순수지향의 글쓰기를 여기서 논하는 것은 췌사贅辭이다. 한국문단이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덕수가 앞서고『시문학』출신 시인 일단이 그와 동행하고 있는 현재의 ‘하이퍼시 클럽’의 시 쓰기는 사정이 다르다. 1930년대 이래『시문학』이란 이름을 단 세 종류의 잡지가 모두 그 나름의 전위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하고 있지만 ‘하이퍼 시’만큼 한 시대의 시에 전위성이 강한 창작 활동을 집단적으로 벌린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또 이 일단의 시인들이 생산하고 있는 새로운 형식의 시를 상당수의 사람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까닭이다.  1930년대 박용철의 『시문학』이 목적문학의 대척점에 있었듯이 문덕수의『시문학』은 참여문학과 맞서면서 한국 시문학의 한 축을 떠받쳐 왔다. 이런 점에서 1930년대의『시문학』이 남긴 문학사적 위상을 현재의『시문학』이 계승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연유로 나는 현재 시문학 출신 시인 일단이 전개하고 있는 이 ‘하이퍼 시 클럽’을 편의상 ‘신시문학파’로 명명한다. 1930년대의 시문학이 모더니즘 실현으로 시단의 전위 역할을 하였듯이 현재의 시문학도 하이퍼 시로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렇게 선언적 진술을 한다. 그러나 문제가 간단한 것은 아니다. 30년대『시문학』의 모더니즘은 한국현대시사에서 아주 뚜렷한 의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지만, 현재『시문학』의 신시운동은 범 문단의 공인 속에 그런 양식의 시 쓰기가 아직 확대, 심화되는 조짐을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신시문학파의 엔솔로지『하이퍼 시』(시문학사, 2011)를 중심 텍스트로 그 시사적 위상과 미학을 간단히 검토해 보겠다.  1, 하이퍼 시의 정체성   하이퍼 시는 공간적으로 서정시와 동일 상한象限에 놓여있고, 시간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병치되어 있다. 그리고 창작 방법으로는 사물시를 모태로 한다. 그렇다면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이 사물시事物詩·physical poetry다.  ‘사물시’란 무엇인가. 모두 주지하고 있겠지만 논리 전개상 이 용어에 대해 간단하게라도 언급해야겠다. 사물시는 랜섬J,C Ransom이 형이상시metaphysical poetry에 반대되는 시를 사물시physical poetry와 관념시platonic poetry로 구분하면서부터 규정지어진 용어다.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로 이루어지는, 곧 언어에 의한 조형의 시가 사물시다. 사물시의 대표적인 예가 이미지즘 시이고, 이 이미지즘 시의 기법은 흄T.E.Hulme, 파운드E.L.Pound의 이론으로 대표되듯이 이 시는 관념보다 시어의 시각적 이미지를 강조한다. 시에서 주관적 주체인 시적 자아는 뒤로 물러나고, 사물들이 객관적인 진술을 통해 엄격히 묘사되는 이런 시의 기법은 릴케R.M.Rilke의『신시집』(1907)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경우 김춘수의 초기 시가 그러하고, 문덕수의 시가 이런 시학에서 출발하였고, 지금은 21C의 시의 키워드로 사실, 생명, 현장을 제시하면서 시인의 사상, 관념을 배제하고 ‘사물’에서 새로운 시의 원점을 찾는 진중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1)  사정이 이러하다면 ‘하이퍼 시’는 현대시의 적통嫡統의 자리에 서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동일 상한에 서 있는 공간성이다.  포스트모던이 무엇인가. 그건 바로 이 시대 예술전반을 통어하는 전위성이 아닌가. 그렇다면 하이퍼 시는 언어예술로 나타나는 전위시 운동의 한 현상이라 하겠다. 전위성이 아직 익숙하지 못한 것이고, 그래서 관습에서 멀고, 이해가 어려운 것이라면, 하이퍼 시의 정체는 이런 신기성新奇性·novelty, 곧 ‘전위성’과 관련된다. 하이퍼 시의 한 수용자가 이 시를 비판한다며 글의 표제를 ‘아방가르드 시의 몰락’이라했다는 사실이 하이퍼 시의 이런 성격을 반영한다.  한국이 IT 강국이 되어 PC가 널리 보급되던 1990년대 중반부터 몇몇 앞서가는 문인들에 의해 ‘신기성’의 하이퍼텍스트 문학, 특히 하이퍼텍스트 시가 제기되었다. 이것은 말의 컴퓨터 입력과 동시에 hyper text makeup language(HTML)라는 컴퓨터 언어로 변하는 시다. 이런 시는 하이퍼링크, 곧 연결기능이 들어있어 그것이 텍스트 화면의 뒤에 숨어 있다가 독자의 선택에 의해 기계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글쓰기를 그 때 몇 몇 문인들이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글쓰기는 시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단순히 언어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의 언어는 컴퓨터 부호로의 변신을 독촉 받고 있는 언어다. 중심 매체가 붕괴된 문화적 장르에 대하여, 단순히 언어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문학이라고 이름 할 수 있을까?2)  사정이 이러하지만 오남구, 심상운, 최진연, 이솔, 안광태, 송시월을 중심으로 한 신시문학파, 특히 하이퍼 시의 미학을 줄기차게 탐색하고 있는 심상운은 하이퍼텍스트 시의 이런 폐기선언에 새로운 시학으로 맞서며 ‘종이 하이퍼 시’를 들고 나왔다. 그는 언어구조 속에서 구현될 수 있는. 디지털의 감각과 이미지의 결합, 하이퍼텍스트의 문학적 기능을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이다...(  )...하이퍼+시는 현실을 바탕으로하는 허구, 즉 기존의 시적 공간을 허물어버림으로써 작품의 주제나 목적성을 지워버린다. 다만 작품의 내면에 숨어 흐르는 시인의 의식이 시적 생명력의 바탕이 된다.3)  심상운의 이 말을 요약하면 그가 주장하는 하이퍼 시는 ‘극사물시’ 또는 ‘극하이브리드 시’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극사물시’를 ‘완전한 탈 관념 지향 시’로 ‘극하이브리드 시’를 ‘이질적 이미지의 폭력적 결합’ 또는 ‘이질적 이미지의 과감한 결합에 의한 시의 무의미화 기법’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시의 기법은 아직 ‘신기성’으로 기호분해가 되지 않는 상태에 놓여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물시’가 랜섬, 흄, 파운드, 릴케와 관련되어 있고, 우리의 경우 이런 하이브리드hybrid문제는 시문학파의 이미지즘으로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고, 그것이 조향, 김춘수, 문덕수로 수용, 변화, 지속되면서 그 적통성이 이어졌다고 할 수있지만 오늘의 하이퍼 시는 경우가 좀 다르다. 극하이브리드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신시문학파의 시학은 ‘이방가르드’성의 긍정만이 아니라, 그 변화와 굴절이 너무 강하여 독자와 시가 이반될 부정적 요소도 함께 가지고 있다.  3. 하이퍼 시의 몇 가지 문제점   1) ‘하이퍼 시’ 란 용어  하이퍼 시는 컴퓨터에서 구현되는 전자 하이퍼텍스트 시와 종이(책) 위에서 구현되는 종이 라이퍼텍스트 시로 구분된다.4) 그런데 전자 하이퍼텍스트 시는 바로 위에서 보았듯이 ‘언어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문학이라’하기는 어렵다며 이미 폐기된 글쓰기 형식이다. 그러나 심상운으로 대표되는 신시문학파는 종이 하이퍼텍스트 시를 ‘하이퍼 시’로 발전시키면서 이 포스트모더니즘적 신시창작 기류를 ‘현대시 혁신의 뜨거운 대열’ 이고, ‘하이퍼적 몸짓은 한 마디로 경이롭다’5)며 자평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지만 이 현대시 혁신의 대열에 참가하고 있는 시인은 신시문학파 외에는 별로 눈에 뜨이지 않고, 연구자들도 하이퍼텍스트 시 연구를 하면서 전자하이퍼텍스트 시만 대상으로 삼고 있다.6) 이런 현상은 하이퍼 시의 시미학과 관련되는 문제겠지만, 그것보다 종래의 한국 서정시와의 심한 편차성 문제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사실 오늘의 많은 독자는 아직도 관습적 시 읽기, 가령 서술시적 시에 익숙해져 있다.  80년대, 저 시에도 ‘역시 문제는 리얼리즘이다’라고 외치던 현실주의 문학의 그늘이 아직 우리문단에 짙게 깔려있고, 실재로 거의 일 만 명에 육박할 시인들이 그런 분위기 속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신시운동을 전향적 반성 위에 공격적으로 논리개발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2) 하이퍼 시의 상이한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에 의한 다선구조로 초래되는 무의미성; 하이퍼 시의 내력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김춘수의 무의미 시, 문덕수의 이미지의 상호충돌의 전위성과 관련된다.  김춘수의 경우 시의 언어는 기호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그림과 같이 어떤 실재로서 만들어진 사물로서 그냥 거기에 존재시켜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싸르뜨르가 ‘시의 언어는 사물이다’는 산문의 언어와 다른 조립된 언어가 시의 언어이며, 이 언어들은 무엇을 의미하기 위하여 성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된 구성물로서 단지 거기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란 그런 논리에 따르고 있다. 이렇게 자존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시는 의미론적으로 어디에도 연관되어 있지 않고 자유롭게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언어를 균형과 불균형의 결합으로 시를 조립했다7). 와 같은 작품이 전형적인 예다.   물또래야 물또래야   하늘로 가라   하늘에는   주라紀의 네 별똥 흐르고 있다.   물또래야 물또래야   금송아지 등에 업혀   하늘로 가라.                 천 구백 팔십 일년 봄                              大餘 金 春 洙8)   ‘물또래’와 ‘주라기의 별똥’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것은 ‘금송아지 등에 업혀 하늘로 가라’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렇게 관계가 없는 이미지들을 ‘ 하늘로 가라.’고 되풀이함으로써 무의미의 리듬을 형성시킨다. 모순된 이미지가 겹쳐져서 사물자체가 그냥 거기에 존재하고 있듯이 설명할 수 없는 시인의 내면 풍경이 존재하고 있다. 어떤 의미가 전제되어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몇 개의 이미지들이 병치되어 있을 뿐 그것들의 통일된 의미는 없다. 시간적 원리에 입각한 언어의 통사적 기능을 배제하고, 이미지들을 하나의 동시성의 공간 속에 둠으로써 그것들의 자유로운 움직임, 곧 무의미 뒤에 음향적인 잔상만 남아있는 형태다. 의미의 인식보다는 주술적 율동이 더 강함으로써 독자들은 ‘별똥, 주라기, 금송아지’ 등의 이미지를 통해 자기 나름의 의미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문덕수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벌써 20대부터 ‘맑은 허무’ 또는 ‘이름 붙이기’ 등으로 불리는 시를 썼고, 자신은 그런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미지가 내포하는 철학적· 인생론적 관념을 찾으려 한다는 것은 오히려 이미지를 불순케 하는 심리적 과욕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는 이미지 그 자체가 하나의 실재이다9).  이미지를 하나의 실재로 보는 점은 김춘수와 같고, 이런 작품을 허무의 응시, 가치중립, 불명의 존재로 보는 점도 김춘수와 다르지 않다. 이런 점을 한 연구자는 이렇게 평한다.   서로 이질적인 이미지를 병치시키며 그 이미지의 상호충돌에 의해 돌발적인 의미의 충격을 주는 수법을 구사하는 것이 그의 시법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이러한 시 작법은 당연히도 시인의 주제의식이라든가 세계관을 작품에 선행시키지 않는다. 어느 정도, 무의미 내지 탈의미의 시가 시도되는 것이다.10)   사정이 이렇지만 김춘수가 말년에 ‘나의 무의미 시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또 의미의 세계로 발을 되돌릴 수밖에 없게된11) 그런 변용이 문덕수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정제되어 가는 상태다.  그래서 마침내 문덕수는 한국시는 이제 ‘사물자체가 아니라 사물이 거느린 관념을 보는 경향이 우리문화나 시창작의 대세가 되어 있습니다. 이 폐단은 개혁되어야 합니다’12)라는 탈관념의 단계에 다다라 있다. 그는 이런 시쓰기 기법을 장시「우체부」에 적용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2012년 시월 바로 현재 이 하이퍼시 운동을 ‘현대시 혁신의 뜨거운 대열’로 평가하면서 하이퍼시클럽이 벌리는 ‘본의의 세계에서 유의의 세계로 초월transcendence하고, 다시 두 세계를 통합하는 본의의 세계로 돌아오는 하이퍼적 몸짓은 한 마디로 경이롭다’고 극찬한다.  3) ‘탈관념은 시가 아니다’는 반응에 대한 반론의 시학. 곧 보편성적 시론 형성 문제  하이퍼 시 쓰기와 이론을 병행하는 심상운은 이 창작 기법을 ‘의식의 흐름이 들어있는 옴니버스omnibus 기법’으로 명명한다. 그는 30대의 문덕수가 쓴 문제적 평론 이 키워드로 내건 ‘대상에서의 해방’을 내면세계의 무의식의 표출이라면서 이것을 하이퍼 시 운동의 원천으로 삼는다. 그의 시작 노트를 참고 해 보자.   하이퍼 시는 현실적인 공간과 시간의 질서를 뛰어넘는해방된 상상과 공상의 세계를 시에 담아보려는언어작업의 산물이 된다. 그 작업은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난 관념의 제로지대로부터 출발한다. 여기에서 현실이 배제된 순수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기호의 세게가 초현실의 새로운 이미지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존재의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에서 너무 동떨어져서 객관적 공감을 얻지 못할 때, 언어의 박제剝製가 되어 허무 속으로 빠져버릴 수 있는 위험성을 노출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공상의 세계, 객관적 공감, 언어의 박제’ 이다. 가령 해리포터 시리즈가 공상소설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권선징악이란 주제가 깔려있다. 시에서의 객관적 공감 역시 리어리즘의 논리가 완전히 배제되면 이해불가능이 된다. 언어의 박제도 의미의 소통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다. 시가 이렇게 나타날 때 아무리 무목적의 목적이 목적이라 하더라도 그런 시는 결국 독자로부터 멀어진다. 심상운은 이런 문제점을 이미 간파하고 있다. ‘언어의 박제’현상을 피해야 한다고 스스로 경고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상 이런 3가지 점을 전제하면서 하이퍼 시 몇 편을 통해 현재의 실상을 검토해 보겠다.   4. 하이퍼 시의 현장.    이 글의 중심 텍스트가 된 하이퍼시 클럽의 엔솔로지『하이퍼시』(시문학사. 2011)에는  시인 20인의 작품 100수가 수록되어있다.『시문학』은 그간 하이퍼 시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해 왔다. 2008년 5월부터 2009년 7월까지의 , 2009년 11월부터 2010년 2월까지 기획 특집으로 발표한 가 그렇다. 그러나 이 그룹의 합동시집이 간행된 바는 없다. 이런 점에서 이 엔솔로지는 시사적 자리가 유별나다. 우선 시의 기법이 종래의 그것과 아주 다른 변화refraction에 기인하는 참신성 때문이다.   나의 가방은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지   내 몸의 태엽을 풀어 놓고   나는 권태로운 생일을 관리한다.   지하철 입구 젖은 양동이에 담겨   나이 수대로 계산되는 꽃송이처럼   나는 국수를 세며 먹는다.   혼자 듣는 뻐꾸기 소리는 저녁과 함께 사라졌다.   등을 보이지 않는 소리의 끝을 따라   나는 거울 속을 통과하고 있다.                                위상진 7~10연 이 작품은 현대 대도시인의 소외(‘나는 국수를 세며 먹는다’), 가방 속에 들어간 탁상시계 같은권태(‘내몸의 태엽을 풀어 놓고’) 를 문제로 삼으면서 그런 사회의 문명을 비판하고 있다.  감성보다 이성이 강하여(‘등을 보이지 않는 소리’), 주지적이고, 진술에 의하지만 시적 긴장이 늘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주제의식이 다선구조로 교차됨으로써 시적 상상을 여러 갈래로 풀어 재미를 준다. 도시의 삶을 문제 삼는 종래의 시가 감성에 너무 기대는 것과 많이 달라 감정의 추락을 막는다. 그래서 주지적이다. 이 엄혹한 현대를 감성으로 산다면 살아남을 자 얼마나 될까.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이 시대의 앞자리에 서 있다.  신시문학파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다고 할 수 있는 심상운의 경우는 어떤가.   한 청년이 공원 풀밭에서 통조린 캔을 툭하고 딴다. 그 속에 꽁치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유통기  한이 찍힌 주검이 눈부신 5월의 햇살 속에서 검푸른 살을 드러낸다. 눈감고 있던 맨살이 꿈틀 거린다.      물에 젖은 살에서 하얀 거품을 일으키는 비누의 살을 만진다. 비누는 아무에게나 포동포동한 맨살의향기를 풍기며 몸뚱일 비틀다가도 가끔 미끄러져 나와 세면대 바닥에서 통통거린다.      누가 바다를 유리병 속에 넣고 어항이라고 했을까? 열대어 두 마리 맨살 번득이며 유유히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는 오전 11시 20분 한 쌍의 남녀가 산호초 화려한 바다 속을 보며 어께를 감싸고 있다.     (                                                                                     )                                                           전문 이 작품은 네 연으로 되어있다. 제1연의 중심 이미지는 ‘주검이 눈부신 5월의 햇살’이고, 제2연은 ‘맨살의 향기’며, 제3연은 ‘산호초 화려한 바다 속’이다. 그러나 제 4연은 (  )로 비어있다. (  )로 구성된 부분은 독자가 링크할 연이다. 그래서 작자는 작품 끝에 ‘* ( ) 안은 당신의 상상이 들어가는 공간입니다. 링크해서 펼쳐 보세요. 그러면 당신의 마음이 반짝이며 나타날 것입니다.’ 라는 주를 달아 놓았다. 이 작품은 하이퍼 시의 작법과 감상법의 기법의 한 제시로 보인다. 하이퍼 시의 시성詩性poeticity 담론을 충실히 수행하는 시 쓰기, 곧 상이한 이미지의 충돌에 의한 다선 구조, 독자와의 소통, 공간이동, 연결고리link로 주관적 의미와 정서로부터 탈출을 모색하면서 시적 상상력 확산에 의해 가독성可讀性 촉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작에 오면 이런 현상이 심화, 확대된다.     기원전 7세기 그리스 신전神殿의 원형을 복원한 화려한 채색 조각상 그래픽이 TV모니터 속에서 가볍게 빙빙 돌고 있는 오전 10시 30분   횡단보도를 건너온 30대 여인의 손에 들려있는 구겨진 풍경화風景畵에서 청계산 숲속 산새 몇 마리 나와 삐삐삐 쪼로롱 삐삐삐 쪼로롱 허공에 반짝이는 초록물방울 뿌리며 빌딩사이를 지나 푸른 하늘로 날아간다   K화백이 지난 밤 하얀 화선지 위에 내려놓은 검은 묵향墨香의 산 속에서는 걸망을 맨 한 사내가 나와 사방을 둘러보다 징검다리를 건너 빨간 노을이 물든 여진女眞의 마을 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나는 이른 봄 햇살의 눈부신 바늘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저수지 수초 속에서 발가숭이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나오는 그림을 그리다가 채소장수의 확성기 소리에 창밖을 본다                                                         전문 이 시는 의식의 흐름이 중심이 된 옴니버스omnibus 기법이라 하겠다. 현실적 공간과 시간의 질서를 뛰어넘는 상상과 공상, 현실성이 배제된 이미지가 형성하는 초현실적 세계, 관념의 제로지대를 무의식의 표출에 의해 형상화하고 있다. 마치 한 사발의 물을 증류수로 만드는 작업과 같다. 도덕, 관념, 일상의 잡다한 현실이 사상捨象된 속에 한 이미지의 순수성이 다른 이미지와 병행되면서 그걸 뛰어 넘는 또 다른 유의의 세계 형성을 지향하고 있다, 이런 점은 대상에서 해방되고, 현실의 통제에서 벗어난 자율적인 순수이미지를 시적 가치로 삼고 있다는 점, 특히 하이브리드hybrid를 통한 단선구조의 탈출이라는 면에서 문학적 성취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증류수는 미네랄이 없는 죽은 물이라 우리 몸에 무해무득하다.  이 시는 대체적으로 외래적 체취에 휩싸여 있다. 시제詩題에서부터 ‘그리스 신전’, ‘빌딩’, ‘여진 마을과 같은 어휘들이 그러하다. 그리고 시 전체를 지배하는 어조語調·tone 역시 외래(서구)적 성향을 띄고 있다. 얼른 조향의 의 시적 취의趣意·sense가 감지된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다분히 문화에서의 변화refraction의 축이 그 중심부에 가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굳이 프레이저Frazer의 논리13)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문학은 과거의 것이면서 오늘의 것이다. 지속과 변화, 이 원리는 시인이나 작품이 갖추어야할 역사성 그 자체다. 이런 점에서 심상운의 시 기법은 앞 시대의 조향의 어떤 면을 연상시킨다. 이런 성격은 그 나름의 지속성이라 해도 좋겠다. 그러나 조향의 시는 한국의 전통시 미학으로 보면 여러 가지 한계점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심상운의 시 역시 그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는 이런 모더니즘의 전형前型에서 벗어나 가상현실을 현실과 같은 차원에서 인식하면서 언어구조 속에서 구현될 수 있는 디지털의 감각과 이미지를 결합하는 과정을 벌써 통과했고, 이제는 하이퍼 시라는 새로운 기법을 단단히 구축해 가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도전적 전위성을 띄고 있다. 그러나 그의 하이브리드적 시 쓰기는 그가 우려하는 것처럼 ‘언어의 박제’ 위험 앞에 놓여 있다.  이 문제를 문덕수의 경우를 통해 검토해 보자. 우리가 잘 알듯이 문덕수의『우체부』의 기본 기법은 하이퍼 시의 그것이라 하겠다. 이 시의 캐릭터 우체부가 현실(현상)의 실상을 ‘불연속적인 공의 변화’라는 랜즈를 통해 응시하고 있다는14) 심상운의 지적에 우리는 동의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지만 문덕수의 최신 시집『아라의 목걸이』(시문학사,2012)는 경우가 다르다. 이 시집에는 하이퍼 시의 기법에 기대고 있는 시가 많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시도 많다.   칼칼하면 몽고정 물 한 모금으로 족하고   땀 밴 옷 홀랑 벗어 애들처럼 다 내어놓고   합포만에 알몸 던지리   저만치 돌섬을 헤엄쳐 네댓번 안아보고   중앙부두 쯤에선 그날의 의거의 발자국을 따라   우체부 가방 덜렁거리며   남성동 비탈길이 다 닳아 내려앉도록 오르내리리   내 꿈의 무지개 마산서   우체부로 떠돌고 싶다                                에서  나는『아라의 목걸이』에서 를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다. 우선 쉽고 재미있다. 누가 그건 당신의 시 감상수준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 문제는 시인과도 관계가 있다. ‘감상수준’ 이란 말을 한 속내에 은근한 부정적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 까닭이다. 한 시집이 명편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리고 명편은 독자가 만든다. 평론가도 독자고, 일반 독자도 독자다. 독자가 많으면 명편에 가까워진다. 내가 왜 이 시에 강하게 끌렸을까. 아마 그건 내 무의의식 속에 잠재된 한국시의 지속적 요소, 어떤 의미의 발견 때문일 것이다. 아니 그 보다 이 시의 캐릭터 우체부가 내뿜는 무상의 행위, 다르게 말해 도덕 이전의 세계, 불가사의한 삶의 원리에 끌리는 언어 이전의 정서가 내 속의 낭만적 기질bohemian temper을 자극한  때문인지 모른다. 낭만적 기질은 인간의 본성, 본질적 의미가 아니던가.  한 시대 문화가 외래적인 변화만 중시되고, 종적인 지속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전통의 단절이 된다. 상이한 이미지의 상호 충돌에 의한 다선구조가 아닌 무엇, 쉽게 잡히는 주제가 독자를 끌어안았다고 한다면 그건 뒤진 정서 때문이라기보다 이 시가 내포하고 있는 보편적  인간 감성, 불변의 가치 때문일 것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이런 성격은 이 시집에 많은 시조가 수록된 사실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시조가 가장 한국적인 시형식이라고 할 때 그 기법이 비록 하이퍼 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비한국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 한국시의 미학을 대표하는 기본형식을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이다. 문덕수는 이와 같이 지속과 변화를 은밀히 아우르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시는 우리의 주목에 값한다.  이 시집『아라의 목걸이』의 서문은 단 세 문장인데 그 두 문장은 ‘수록 시가 모두 하이퍼라고는 할 수 없지만 관련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자연발생적인 부분도 있으나 시는 “가치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이다. ‘가치 있는 기록’이란 무엇인가. 이런 점을 말년의 김춘수가 ‘나의 무의미 시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또 의미의 세계로 발을 되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그런 진술과 같은 의미로 본다면 비약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문덕수가 하이퍼적 시 쓰기만 하지 않기에, 나 같은 뒤처진 독자도 자신의 팔로워follower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시는 일차적으로 향수享受되어야 한다. 극 하이브리드 시가 독자와 거리를 둔다면 그건 언어의 박제와 유관한 현상일 것이다.  이 솔의 하이퍼 시는 하이브리드로 인한 이런 우려는 없어 보인다.   부드러운 막에 싸인 까만 눈으로 날 보고있다   도우넛 모양의 알다발 속에서 까만 눈을 굴리며   소주에 취해 이선생 몸보신으로 넘어간다   이선생은 촉촉한 그 까만 눈을 보지 못한다   인도 델리역 깡마른 짐꾼은 짐을 이고 뛰듯 간다   붉은 상의 터번 아래 검고 깊은 눈동자   맨발의 어린 소녀는 “기브 미 원달러”를   인도의 검은 눈동자는 모두 축축하게 번져 있다   검은색이 흙빛을 만나면 살아난다   알다발 속에서 까만 눈으로 마주하는   터질 듯 미끈거리는   인도의 그 생명으로   검은 껍질을 트고 꽃이 된 너 그리고 나                                에서 이 시를 이루는 중심 이미지인 눈은 3개다. 첫째는 소주와 함께 이선생 몸보신으로 넘어가는 눈이고, 둘째는 인도인의 검은 눈이고, 셋째는 검은 껍질을 트고 꽃이 된 눈이다. 첫째 눈은 죽음의 눈이고, 둘째 눈은 비애에 젖은 눈이고, 셋째의 눈은 소통하는 상생의 눈, 생명의 눈이다.  하이퍼 시의 특성을 ‘일상적으로 세계를 넘어선, 또는 초월의 등의 의미’, ‘틈이 있는 두 세계(일상적 의식에서는 결합될 수 없는 두 세계)가 연속 연결되는 형식’이라고 할 때15) 이 시는 이런 하이퍼성이 다소 약화된 상태다. 하이퍼 시의 극순수성, 언어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탈관념, 증류수와 같은 절대무의미성의 상황이 아니다. 세 개의 눈은 결국 생명의 눈, 죽음의 검은 빛을 트고 나와 꽃이 되었다. 단 한 순간일 뿐인 순수의 상태 자체에 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고귀함을 누리기는 하지만 그 정도가 극 탈관념에 이르지 않고, 가치 있는 기록, 곧 이 시는 생명의 고귀함을 테마로 삼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 숨을 돌려 하이퍼 시 일변도의 논리를 뒤 돌아 보자. 신규호는 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문제는 하이퍼 시도 시인만큼 시다워야 한다는 명제에 관한 나의 견해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하이퍼 시’가 표현해야 하는 IT시대의 시적 진실이 무엇이냐 하는 점을 먼저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다음에 이전 시대와 달라진 영상시대의 정서적 특질을 찾아서 그것을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16) 위의 인용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하이퍼 시도 시인만큼 시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 시도 시인만큼 시다워야 ··’는 말이 순한 논리의 모순에 빠져 있긴 하지만, ‘시다워야 한다’는 말의 밑바닥에 깔린 시의 의미가 하이퍼 시가 지향하는 탈관념시, 무의미시를 지칭하지는 않는 것은 분명하다. 다음 두 문장의 핵심어가 ‘표현’, ‘정서’이고, 시의 창작 ‘방법’이고, 이글의 결론이 ‘어디까지나 실험은 실험에 불과하다는 것과, 그러면서도 문화적 격변기에 구태를 벗고 새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시를 창작하고자 실험한다는 것은 시사적으로 뜻있는 일’이라며 시대와의 호응하려는 시도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하이퍼 시를 어디까지나 실험적 시 쓰기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솔의 작품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는 무의미 세계의 탈출, 가치 있는 기록을 선언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문덕수처럼 지속과 변화를 아우르는 상한象限에 그의 시가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다.  이상 논의한 작품들 외에도 논의할 대상이 많다. 특히 하이퍼 시가 주로 산문시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점인데 이 문제는 하이퍼 시가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소설적인 서사를 활용하고,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시의 영역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아주 문제적이다.   5. 마무리  지금까지 신시문학파가 중심이 되어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고, 그들이 간행한 문제적 합동시집『하이퍼 시』를 중심으로 그 문학적 위상을 내 나름대로 고찰해 보았다. ‘내 나름’이란 말이 문제일 수도 있지만 논의된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하이퍼 시의 전위성·실험성, 새로운 기법의 모색은 30년대 시문학파가 순수문학을 옹호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일이 문학이 일차적 과제로 삼아야한다는 그 전위적 성격과 동일함이 발견되었다. 이런 점은 한국 시에 변화refraction을 주면서 한국시의 세계성, 곧 보편성을 추구하는 도저한 창작행위라는 점에서 시사적 의미가 크다.  둘째, 하이퍼 시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화현상에 호응하는 시의 반응이라는 점, 그리고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폐기처분한 글쓰기 기법을 종이 하이퍼 텍스트 문학으로 변용 수용함으로써 한국의 시문학의 외연을 확장하고, 그것을 의식의 흐름과 링크하여 인간의 심층감정을 소설적 서사를 활용하여 묘사하는 점은 다른 시가 시도하기 어려운 시적 기법이다. 이런 점에서 그 전위성을 평가할만하다.  셋째, 하이퍼 시적 기법을 활용하면서 극순수·극탈관념과 다소의 거리를 두는 시 쓰기가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효과가 있음이 드러났다. 이런 점은 극하이브리드적 시가 언어의 박제가 될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한 하이퍼 시의 다른 변화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조심스러우나 꼭 지적해야할 문제는 문학의 큰 패러다임을 지속과 변화의 틀로 이해할 때, 하이퍼 시는 변화의 축이 너무 비대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전통성이 약화된 작품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이것은 30년대의 시문학파가 당시의 모더니즘을 수용하면서도  한국적 감성과 정서를 더 강하게 지속시켰다. 우리는 정지용의 시에서 시적 성취를 이룬 그 모범적 사례를 본다. 신시문학파의 경우도 시문학파와 같은 경우의 시인과 작품이 없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한계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 더 많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1) 문덕수, 『오늘의 시인총서-문덕수 시 99선』(2004) 후기 참조   2) 정과리,『컴퓨터와 문학-문학의 새로운 이해』(문학과 지성사,1996) 참조   3) 심상운,『의미의 세계에서 하이퍼의 세계로』(푸른사상. 2010). 110쪽 참조   4) 심상운, 위의 책,109쪽   5) 문덕수, 한국 하이퍼시클럽,『하이퍼 시』(시문학사,2011). . 209쪽   6) 이성우,『한국 현대시의 위상학』(역락,2007). 류현주,『하이퍼텍스트 문학』(김영사,2000).    김종국 ,(대구대 교육대학원. 2009) 등이 모두 그런 예이다   7) 권기호, 『김춘수 연구』(학문사, 1982) 참조.   8) 대여가 붓으로 쓴 이 시는 오양호가 액자로 보관하고 있다. 1981년 陶南 趙潤濟선생 문학상 기금 마련을 위해 제출된 두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시인 이기철이 구입했는데 그 작품은 글자 하나가 잘못되어 X 표를 하고 다시 옆에 그 글자를 썼기에 ‘물또래’를 구입했다. 그런데 이기철의 것은 보관을 잘못해서 상당히 망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오양호의 것이 대여가 남긴 유일한 액자이다. ‘물또래’는 ‘사전을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작은 곤충의 이름’이라고 말함.   9) 문덕수, 『사상계』. 1966년 3월호   10) 이숭원, 『문덕수 문학연구』(시문학사,2004). 107쪽   11)『김춘수 시 전집』」(현대문학사,2004). ‘서문’   12) 문덕수, ,한국하이퍼시 클럽,『하이퍼시』(시문학사,2011). 200쪽.   13) 프레이저Frazer, sir James George,『황금가지 The golden bough,1890』가 핵심논리로 하는 지속conventional과 변화refraction의 이론. 13권의 이 방대한 문화인류학의 연구 결과는 20세기 모든 학문, 특히 정신분석, 철학, 역사,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고, 문학비평의 경우 원형비평, 신화비평의 근간을 이룬다. 그러니까 문학작품을 분석심리학의 원형무의식 이론으로 원형을 찾아내었고는데 그 원형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간직하고 있어 그것이 시대마다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난다는 논리다. 같은 시기에 T·S 엘리어트의 『황무지』J·조이스의『율리시즈』가 간행되었는데 이 저서들이 프레이저의「황금가지」에 큰 영향을 받았거나, 그 저서에 나오는 중요테마들을 모티프로 삼았다.   14) 오세영 외,『우체부 평설』(시문학사, 2009). 58쪽   15) 문덕수, 앞의 글. 194쪽   16) 신규호, 『한국현대시』(한국현대시인협회,2012·상반기호). 248쪽    인쇄 블로그 카페 북마크 메모 폴라 보내기  댓글 쓰기                   詩論/하이브리드/오남구  시창작론숲  2017. 11. 3. 17:42 http://blog.naver.com/shunzi75/221131920015 전용뷰어 보기                하이브리드     오남구     1. 잡종강세    하이퍼텍스트는 구조적으로  여러 기능을 갖는  하이브리드이다. 세간에서 “너나 잘하세요.” 이렇게 기존의 화법을 깨뜨리고 ‘하대하는 말과 높임말’을 뒤섞어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포스트모던 한 사회현상으로 기존의 순수한 언어가 뒤섞인 일종의 하이브리드라고 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는 생물학적인 용어로서, 식물이나 동물을 육종하는 사람들은 원하는 특정의 형질들을 가진 순종(純種) 2종류를 교잡하여 잡종강세를 개발한다. 이때에 부모에 비해 자손의 크기나 성장속도 등이 강하게 되는데 잡종 생장력(hybrid vigour)이라고도 한다. ‘너나 잘 하세요’는 이런 ‘잡종 생장력’의 현상이 일어나듯이 원래의 말보다 메시지의 기능이 크게 증폭되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크게 무안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기존의 텍스트와는 다른 새로운 언어의 기능을 확인하게 되는데 그 문장 구조를 살펴보면 하이퍼텍스트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말에는 다음과 같은 ①과 ②의 2종류의 언어가 있다. ①은 하대하는 말이고 ②는 높임말이다.   ① 너나(A) 잘 해(B) ② 당신이나(C)  잘 하세요(D)    말들을 구성하고 있는 마디를 ① A, B  ② C. D로 나누어 마디를 서로 뒤섞어 놓는다. 그러면 A, B와 C, D의 마디가  다음과 같은 말이 된다.   ③ 너나(A) 잘 하세요(D) ④ 당신이나(C) 잘 해(B)    여기서 ①과 ②의 문장을 순수한 것이라 할 수 있고, ③과 ④의 문장을 순수함이 깨뜨려져 있는, ‘높임말’과 ‘하대하는 말’이 뒤섞여 있어 잡종 즉 하이브리드의 문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습은 말의 마디가 서로 비꼬여서 ‘비틀기’가 되어 있고 파편화된 말의 마디가 (A)에서 (D)로 뛰어(hyper) 하이퍼텍스트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장을 달리 보면 ‘해체된 말마디가 다시 통합된 문장’으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교잡에 의한 통합으로서 새로운 텍스트이다.     2. 하이퍼시의 하이브리드     새로운 텍스트는 현실이다. 문덕수시인의 ‘종이하이퍼텍스트와 전자하이퍼텍스트(월간『시문학』4월호, 2008년)’는 하이퍼시('하이퍼텍스트+시'-하이퍼시로 명명-시향29호)의 논리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요즘 담론이 되고 있는 이상옥 시인의 ‘디카시’ 는 디카로 순간 포착한 사진과 기호(언어)가 섞인 시를 발표한다. 디카시는 하이브리드적인 종이하이퍼텍스트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텍스트와 사진이 하이퍼성(하이퍼텍스트의 특성-탈 중심, 탈 경계, 탈 관념 등)을 갖지 못하고 기존의 텍스트와 같다면 결과적으로 기존의 포토포엠과 구별되지 않는다. 하이브리드는 이미 기존의 시속에 들어와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 컴퓨터의 발달로 하이퍼미디어 시대가 열리고 소리, 영상, 기호의 소통이 가능하게 되면서 이러한 인터넷의 텍스트를 철학자 넬슨이 ‘하이퍼텍스트’라고 명명하였다. 그래서 하이퍼텍스트라고 하게 되면 통상적으로 인터넷 상의 텍스트를 말하게 되는데, 문덕수 시인은 이것을 전자하이퍼텍스트라고 말하고 제2의 하이퍼텍스트라 한다. 제1의 하이퍼텍스트는 종이하이퍼텍스트라고 하는데 종이책을 매체로 하는 기호(언어)는 실재와는 관계가 없는 가상현실(버추얼)로서 하이퍼텍스트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하이퍼시론의 논리적 기반이 되고 있다. 여기서 기호만의 텍스트를 순수로 보면 영상(사진, 그림이미지) 등이 섞인 텍스트는 하이브리드(잡종) 적이다. 미래의 신개념의 종이(필름)에 소리가 함께 섞어 나오는 텍스트나, 제2의 하이퍼텍스트는 당연히 하이브리드로 분류될 것이다. 그런데  앞의 잠종강세의 예문에서 보듯이  기호만의 텍스트에서도  ‘높임말’과 ‘하대하는 말’이 뒤섞여서 하이브리드 적인 하이퍼텍스트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하이브리드 현상은 원래 생명의 존재방식이기도 한 것이다. 산이나 들에 집합되어 있는 나무와 풀이 한군데 뒤섞이어 존재한다. 여러 기능의 중심이 없는 탈 중심 그리고 탈 경계가 자연스럽다. 일찍이 자크 데리다가 자연의 사물을 텍스트로 보았는데 나에게는 자연의 이미지가 하이퍼텍스트로 다가온다.      (1) 탈 경계, 탈 중심의 이미지/ 신발   다음의 「신발」은 삶의 현장에서 찾은 하이브리드의 탈 경계, 탈 중심의 이미지가 있다.     1    시장 정육점 갈고리에 생고기와 나란히 걸린 가죽, 가족?   *       2    냉장고 쇼 케이스 안의 내 신발은 260미리입니다 아내의 신발은 235미리입니다 아들은 나와 똑같은 260미리입니다       *sbs 동영상 갭쳐  — 「신발」 전문    위의 그림이미지는 실재 TV에서 방영한 동영상에서 캡쳐한 것이다. 정육점에 신발과 생고기가 갈고리에 걸려 있다. 정육점도 아니고 신발가게도 아닌 하이브리드의 ‘신발정육점’이다. 이처럼 생활공간에서 경계가 무너지는 하이브리드의 현상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컴퓨터, 전자제품, 자동차 등은 말할 것도 없으며 생활 언어 속에도 나타나고 있다. 인용한 「신발」의 그림은 설명이 필요 없이 독자가 바로 알 수 있는 하이브리드의 이미지이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기호(언어)와 섞여 있다. '하이브리드의 하이퍼시' 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생고기와 신발을 본 작가의 직관이 ‘가죽’이라는 본질의 링크를 발견하게 되고,  ‘가죽’이 ‘가족’으로 기표가 흘러가고, 정서가 경로를 따라 흘러가 시의 맥락을 이룬다. 쇼 케이스 안에 든 신발 가족은 곧 시인의 가족이 되며 알 수없는 아련한 삶의 모습이 배어난다.    (2)마당놀이의 해학과 조소 / 피켓   문화의 공간으로서 마당은 무대의 원형일 것이다. 판소리의 마당은 광대와 청중이 창을 하고 추임을 하면서 한자리에 어울려 공연이 완성된다. 이렇게 관객이 공연에 동참함으로써 ‘관객과 연기자’라는 경계가 없다. 이러한 소리 ‘판’은 남녀노소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원시 ‘하이브리드 판’이라고 보아진다. 판을 만들어 가는 것은 ‘놀이’다. 놀이의 바탕에는 유희와 해학과 조소 등이 있고, 유희성이 없는 놀이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근래는 시위도 하이브리드 한 놀이 문화로 바뀌어 축제를 벌이고 있다. 촛불 문화축제는 그 예로서 손자와 아들과 며느리와 할머니가 한자리에 모여 촛불로 하트 모양을 만들거나, 광장에 수십 킬로나 되는 불길을 만들어 놓고 즐긴다. 이때 피켓은 소통의 도구로서 공간에 있는 하나의 미디어이다. 다음의 텍스트는 이런 피켓을 들고 있는 광장의 이미지(사진)와 기호가 나열된다. 순수 기호의 시에  대한 상대적인 것으로서 하이브리드이다.                2MB = 2 Mega Byte (약 3.5원) 2MB = 2 Micro Byte (가격산출 불가능) 2MB = 2 Mad Bull(미친 소) MB = My Bush(나의 부시) 2MB = 2 M(멍청하고) B(부지런한) 놈 2MB = 2(이) M(뭐) B(병) -> 이거 뭐 병신도 아니고... MB = Moues Baby  — 「피켓」 전문      놀이마당에 들고 나온 피켓. 이니셜 2mb를 하이퍼텍스트로 읽어본다.  2와 M과 B는 각기 마디가 되고, 마디와 마디 사이 숨겨진 링크을 걸면 많은 언어를 상상하여 읽어낼 수 있다. 그래서 위에 나타난 7가지 외에도  무수히 많은 의미의 경로가 나타나게 되는데, 독자는 읽고 싶은 대로 여러 방법으로 읽어가면서 유희하고 카타르시스 한다.      3,순수와 하이브리드     유전공학으로 만들어낸 하이브리드의 철쭉이 종로의 거리에 나와 있다. 명품이라고 내놓는 것을 보니 가지에 티 없이 깨끗한 바탕의 흰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 있고 같은 가지 속에서 진분홍의 꽃 몇 개가 피어 있다. 그런데 진분홍 또한 티 없이 맑은 바탕을 하고 있어서 순수/(순종,true)하기 이를 데 없다. 언뜻 보기에 한그루 철쭉 조화 같다. 여기에 다른 화려한 작품들을 비교하니 호화로우나 곧 싫증이 나고 산만하다. 결국 티 없이 순수한 격조 높은 두 가지의 특성이 명품의 하이브리드로서 탄생하고 있었고 절제된 심플한 구성이 예술성을 높이고 있다. ‘하이퍼시’에서 절제된 심플한 하이브리드의 구성이 요구되는 것이 이렇듯 자연한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순수/(순종,true)는 하이브리드의 바탕이 된다. 격조가 높고 개성이 뚜렷해야 한다. 하이퍼텍스트가 여러 가지 특성을 싣는 수레라고 볼 때에 열린 개념의 또는 탈 관념의 대승적 기능을 하고 있다. 곧 하이브리드의 프레임은 하이퍼텍스트이다. 그래서 종이하이퍼텍스트의 언어(기호) 예술은 격조 높은 하이퍼시를 만드는 바탕이다. 다음의 「사과」는 언어의 순수한 하이퍼텍스트이다.   배들녘은 풋벼의 바다, 아침 고요로운 지평선에 풍! 떠올랐다가 풍선처럼 서서히 내려오고 있는 붉은 사과, 동진강 하구에서 쌀을 실으러 거룻배가 들어왔었다는 ‘배들이’ 들판! 손에 든 들판은 피켓! 손해난 '배 들이'어서 빚으로 들들 볶일 판 피켓 들고 전봉준이 들이칠 판, 숨을 멈추고 있는 풋벼의 바다 황혼에 내가 주먹 속에 받아 쥔 해 사과를 굴린다, 굴러가며 가르마 같은 선을 긋는다 선을 따라 불이 화~ 화~ 일어난다    —「사과」전문   배들녘은 동진강 상류가 흐르는 들녘. 여기에 만석보가 있다. 조병갑이 보를 쌓고 물세를 받다가 농민들이 저항하여 동학란이 일어났다. 손에 든 들판, ‘피켓’은 시위 현장의 미디어이다. 이 하이퍼텍스트는 ‘시위 현장’과 ‘동학란’이란 배경의미가 시인의 의식 밑바닥에 깔려 있어서 언어와 언어의 마디를 링크시킨다. 그래서 기표가 자유자재로 ‘판’이 들의 ‘들판’으로, 손에 들고 있는 ‘들판’이 ‘피켓’으로, 그리고 붉은 사과(과일) → 해(日) → 사과(謝過)로 흘러가면서 상상의 무한한 이미지 공간이 확보된다. 그래서 붉은 사과가 굴러가면 선을 만들고 선에서 붉은 불이 일어난다. 감각적인 이미지 드림(imige-dream)이다.   하이브리드의 잡종강세 같은 새로운 기능을 확인한다. 순수는 바탕이 되고 격조가 높고 개성이 뚜렷했을 때에 명품의 하이브리드가 탄생한다. 절제된 심플한 구성이 예술성을 높일 것 같다.             *오남구(1946.11.20 ~)  시인, 문학평론가. 본명 오진현. 에 1975년 추천 완료. 시집  외5권. 시론집 , .. 제26회 시문학상 수상(2001), 현재 계간 시향발행인        인쇄 블로그 카페 북마크 메모 폴라 보내기  댓글 쓰기                   탈관념의 꿈꾸기/오남구  시창작론숲  2017. 11. 3. 17:36 http://blog.naver.com/shunzi75/221131915579 전용뷰어 보기   [하이퍼텍스트 시론 1]   탈관념의 꿈꾸기(Image-dream) ― 시집 「실험실의 미인」을 중심으로     吳南球 (시인, 평론가)     ❙ 들어가며 ❙현대시가 ‘해체에서 통합’으로 가고 있다. 해체된 언어(조각, 유니트)가  다시 통합되는 원리는 무엇인가?,'탈-관념의 꿈꾸기(Image-dream)'는  일종의 초현실로서 저절로 통합되어 자동기술 되는 ‘탈-관념'의 시 쓰기이다.     1976년, '시인의집' 모임에서 현대시의 ‘수학적 존재 증명’을 얘기하곤 했다. 모임이 활기를 띠기 시작할 무렵 한성례씨가 찾아왔다. 분위기가 갑자기 환하게 느껴지는 용모였다. 가까운 문우들에게 필자가 이 모임을 탈관념의 ‘실험실’이라고 말했는데, 그의 시를 살펴보니 ① 탈관념의 선언에 영향을 받은 존재론적인 것과 ② 탈관념의 언어여행, 또는 감각여행의 감성훈련 과정에서 비롯된 것과 ③ 탈관념 그 습작과정에서 쓰여진 것과 ④ 수학여행이라는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시고(詩稿)들을 읽어보니 모던이스트 중에서도 모던이스트로 그 문명비평적인 쎈스의 풍자와 기지들은 많이 지나칠 정도여서 내게 씨(氏)가 시골사람이라는 걸 아조 잊어버리게까지 하고 있다.”   미당(서정주)이 한성례씨의 시집에 붙인 서문의 글이다. 이 말이 아니라 해도 시를 읽어보면 독자는 깨뜨려진 어떤 낮선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그의 시는 표백제로 얼룩진 물감을 탈색해서 이제 막 내어놓는 옥양목 같다고나 할까, 고정관념이 깨뜨려지고 있는 시어들은 낯설고 싱싱하다.     한 가름, 탈관념 선언에 영향을 받은 시   당시 탈관념의 실험을 시작하면서 모임에 내세울 새로운 이슈를 선언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미당을 찾아가서 자문도 구하고 노장사상(老莊思想)도 읽었다. 동경대전(東經大全)도 다시 읽었다. 숙고한 끝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평소의 소신대로 한국적인 사상에 기초한 선언문을 작성한다. 그 해가 1980년 1월 무렵이었다. 후에 그 일부가 경구(警句)처럼  동인지 표지에 한동안 게재된다. 그 표지에 써 놓은 글은 이러하다.   “신은 시인 앞에 오면 한 낱의 낱말이다. 시인은 낱말을 죽이고 또 창조한다.”   이 같은 문구는 동인들 중 크리스천들에게는 충격적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는 시를 쓰는 ‘주체’에 대해서 ‘신이 아니라 사람, 즉 시인’이라는 등, 시의 본질이 되는 요인들을 하나하나 담론해 갔는데, 물론 그 선언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내용이었다. 그것이 바로 다음 항에서 말하는 탈관념의 논리를 구축해 가는 ‘쓰레기통 문답’ 또는 ‘함수f(x) 시론’인데, 지적이고 논리적이던 한성례씨는 이러한 시론을 좋아했다. 이 무렵 그는 갈등하며 시적인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당시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관념적 허구’로서 절대자를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허무감’을 느꼈고, ‘막막한 신천지에 서듯’ 외로움을 타고, 불안・초조 등의 실존주의적 경향이 나타났다. 다음의 시를 보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그가 드디어 동양적인 사고로 ‘직립’하여 바로 서는 자존적인 자의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서구화된 우리 현실을 바로 직시하고 절망과 고뇌를 반복한다.     1.「무풍대에서」에 나타난 자아, 그 직립   「무풍대에서」그가 자아의 눈을 뜨고 바라본 진실은 무엇인가? 시를 보자.   종소리 속에서 느릿느릿  뚝 뚝 떨어져 내리는 관성만 남은 일상 더듬이가 필요한 날에는 볕이 드는 쪽과 음지를 혼동한다.   낯선 바람 원점 향해 위치 변동 꽉 채우고 있는 물먹은 공기 빠져나갈 출구가 없다. ─「무풍대에서」중에서    첫째, 사고가 신의 세계에 갇혀 “종소리 속에서 / 느릿느릿 / 뚝 뚝 떨어져 내리는” 그런 관성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정작 옳고 그름의 이성적인 ‘더듬이’의 가치 판단이 필요할 때마다 그 관성으로 인하여 그 판단이 혼동된다. 둘째, ‘낯선 바람’조차 불지 않는 곳이라고 파악되는 ‘무풍대’이지만 ‘낯선 바람’이 태동한다. ‘낯선 바람’이란 시인이 의식한 ‘새로운 것’ 즉 서구적이 아닌 동양적인 의식의 ‘새 바람’이다. 그런데 우리 삶의 현실이란 서구 정신문화가 포화된 상태로서, “꽉 채우고 있는 / 물 먹은 공기”로서, ‘새바람’의 출구도 없는 무풍지대로 인식된다.   구겨져 쓰레기통 속에 곤두박질하는 멍한 하늘 그 언저리는 꼭  지평에 맞닿아 숨죽이고 있다.   직립한 바람은 직립한 바람끼리 손잡고 있는 무풍대에서    껌딱지로 도배된 기지촌의 포도처럼 사인 코사인의 귀를 맞추며 덕지덕지 하품으로 이어 놓는다. ─「무풍대에서」중에서    셋째, 그는 이 현실을 직시하면서 절망을 느낀다. “구겨져 쓰레기통 속에 / 곤두박질하는 멍한” 하늘을 본다. 또 죄지은 듯이 “꼭 / 지평에 맞닿아 숨죽이고” 있고, ‘기죽은 초라한 자아’ 그 실존의 위기를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시인으로서 ‘직립’ 하여 ‘바로 서는’ 자의식의 입지(立志)를 한다. 물론 ‘기지촌’, ‘껌딱지’의 서구적 극한 상황에서도 의연한 의지로 견디어야 하는 숙명이다. 이제 그는 무풍대에서 직립한 바람의 존재로서 홀로 서 있다.     2. 「벼랑 끝에서」의 춤   신을 ‘관념적 허구’로 파악하고 ‘절대자’를 부정했으나, 그는 아직 확고하지는 못하다. 그래서 실로 한성례씨는 두려움 속에 있다. 신천지에 서듯 막막함과 불안・초조의 벼랑에 서게 된다. 이때 ‘춤’을 추게 되는데, 불안・초조로부터의 극복과 탈출을 위한 몸짓이다. 이 절대 고독상황에서 손잡아 주는 것은 새로운 의식의 ‘어설픈 바람’ 뿐이며, 그 절실한 모습에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낭떠러지에 서서 춤을 춘다. 동작보다 언제나 한 템포 느린 음악   아래로부터 걷어 올라온 바람이 어설프게 손잡아 준다.   언제부터였을까  엄청난 배반의 현실에도 때때로 풋풋한 여명을 맛보곤 한다.   내 가슴 속에 출렁이는 배 한 척 무거운 방황은 젊은 날의 피를 낭비하는 것이라 해도 음울한 예정론에 기대를 걸고 출항을 서둘렀다.   이제 나이 드는 것이 타락의 나이테라면 차라리 돌아가지 말아야지   벼랑 끝에서 느릿느릿 춤을 춘다. ─「벼랑 끝에서」전문     3.「불완전 명사의 저녁」에 나타난 존재   눈을 뜬 자아, 그래서 막 태어난 '불완전 명사'로 나타난 존재! 그 직립에 의한 행보는 방황과 갈등이다. 벼랑에서 새로운 출항을 하게 되지만 이는 불안한 항해로서 익숙지 못한 실존주의자의 삶이다. 좌절과 불안과 머뭇거림의 연속이다. 그의 사상은 불투명한 상태로 “시침을 살피며 얼룩진 돛”을 내리는 “머무는 일이 불투명해서” 늘 갈등 한다.   터널로 빠져 드는 녹슨 연기 시침을 살피며 얼룩진 돛을 내린다. 철분의 붉은색 앙금으로 가라앉히고 머무는 일이 불투명해서 늘 자맥질처럼 움직인다.   퇴색된 석양 언저리에서 태우며,  가늘게 남은 내 생의 나머지 끈을 푸는 저녁   줄자로 잴 수 없는 문화의 어정거리는 습성  그 물결을 거스르지 못한다.   터널로 빠져드는 녹슨 연기 아우성으로 떠는 흐느낌이다. ─「불완전 명사의 저녁」 중에서   그러면서, “가늘게 남은 내 생의 / 나머지 끈을 푸는 저녁”으로 그의 존재(存在)를 확인하며, “줄자로 잴 수 없는 / 문화의 어정거리는 / 습성”을 꼬집어 “물결을 거스르지 못한다”고 스스로 질타한다. 존재자의 갈등! 바로 진실과 연민을 느끼게 하는 시인, 그 인간다움이다. 이러한 그는 「도편수의 노래」에서 스스로의 배-새로운 출항을 위한 도편수가 되기도 하고, 줄타기 하는 삶의 곡예사로서 ‘땅에 발 디디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      두 가름, 언어여행 또는 감각여행의 감성훈련에서 비롯된 시   이렇듯 그가 사물에 대한 일상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을 했는데, 그것은 ‘최면을 통한’ 자동기술(自動記述) 훈련이었다. 그 한 가지 내용을 보면,   “자, 자세를 가다듬고 눈을 감는다. 편안히 호흡을 고른다. 깊이 숨을 들이 마신 후에 아랫배에 지긋이 힘을 모은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숨을 쉰다. 1초, 2초, 3초……. 이제 감각여행을 떠난다. 태양! 태양을 마음에 그린다. 태양을 향해서 몸이 둥둥 떠간다. 경비행기 속도로 간다. 빛의 속도로 간다고 생각한다. 1초, 2초, 3초…. 태양! 태양이다! 느껴본다. …뜨겁다. …탄다!…… 눈을 뜬다.”   대강 이런 식으로 실험을 했는데 그 성취는 괄목할 만 했다. 눈을 떴을 때는 대체로 들뜬 상태가 아니면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공통점은 한결같이 마음이 가벼워졌고 바라보는 사물들이 움직인다고 했다. 여기서 ‘움직인다’는 것은 느낌을 말한다. 몇 분 전만 해도 무심히 무감각하게 보아 넘겼던 커피잔, 스푼, 화분, 의자 등이 새로운 정서로서 움직인다. 그 성취 정도는 사람들마다 각기 달랐다. 불교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비교적 강렬하고 빠른 반면에, 서구적인 종교와 철학, 지식의 깊이가 강한 사람은 그 성취가 느렸다. 그의 시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는 그 즈음 겪은 갈등과 실험을 꾸밈없이 쓰고 있는데, 드디어 관념이 깨어지는 그의 꿈꾸기(Image-Dream)는 ‘황홀한’ 첫 시적 경험을 한다.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 태양으로 떠난다 해서 따라나섰다.    ─ 타버린다 ─ 는 감각은 없어지고 경비행기로 출발한 우주여행은 그저 행위로만 남았다   기착지는 태양 뜨거움보다는  황홀한 색채에 질식당했다.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 전문   당시 그는 자동기술의 감성훈련에 적응이 늦었던 것 같다. 개성이 강할 뿐만 아니라 지적인 서구적인 합리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자신의 곤혹스런 입장을 “태양으로 떠난다 해서 따라나섰다”로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턴가 늘 도로(徒勞)의 작업이던 ‘꿈꾸기’가 첫 느낌을 얻게 된다. 자연스러운 “기착지는 태양”으로서, 첫 시적(詩的) 체험인 “황홀한 색채에 질식” 당하는 희열을 맛본다. 이후 그는 초현실적인 감각의 시 쓰기가 익숙해진다.「구의역에서」,「변주곡에 대한 상상 연습」 등의 다양한 시각을 갖게 되고, 또한「방」,「장마」에서는 빗줄기의 기하학적인 선(線)이 꿈처럼 펼쳐지며 새로운 시세계를 열고 있다.     1.「구의역에서」의 우주적인 시점   이러한 ‘탈관념의 꿈꾸기’를 체험한 사람들은 우주적 감각인 둥둥 떠가는 ‘느낌’이 자유로워진다고 한다. 「구의역에서」는 시점의 ‘일상성 벗기’라는 ‘감성훈련’으로 빚은 큰 성과다. 그가 바라보는 사물(역, 길, 사람 등)이 둥둥 떠다니며 지구의 자전에 따라 시각이 바뀐다. 낮에 바로 서 있던 물건이 밤이면 거꾸로 처박히는 모습이 된다. 이 시는 바로 우주적인 시각에서 본 움직임인데, 탈관념의 꿈 중 하나이다. 한성례씨에게는 그녀 인생의 무대, 그 지구가 자전함에 따라 바로 서기도 하고 거꾸로 서기도 한다.   둥둥 떠가는 구의역 내 앞에 누워 있는 길. 뱉어낸 사람들 물살로 흘러 흘러서 무시로 흩어져 간다.   질주하던 길이 문득 산 밑에 가서 머문다. 시선 끝으로 길 한 줄기 붙잡으면 녹음이 앞서 무질러 오고 밀려드는 차 물결   쏟아질 듯 곤두박힐 듯 가로수 함께 일렁이다가 몇 개로 틀어지고 조각난 풍경 판토마임의 내가 거꾸로 서서 자막 속을 걸어간다. ─「구의역에서」중에서    그는 우주적인 감각이 자유로워졌고, 그에 따라 무한하게 시의 세계가 확장된다. ‘가로수와 함께 일렁이기도’ 하는 판토마임 속의 자신을 확인하면서 눈을 뜬 현실로 되돌아 와서 다음과 같이 ‘구의역’을 직시한다.     잠시 눈 뜬 플랫폼, 흘러 흘러서     투사되듯 입력(入力)되는 곳 구의역.  ─「구의역에서」 중에서     2.「변주곡에 대한 상상 연습」의 전전반측   전전반측(輾轉反側)하는 시인의 정(情)은 무엇일가? 그는 밤을 지새우고 있다. 그러면서 갈증 같은 향수를 느끼고, 그때 “기지개 켜는” 의식이 꿈꾸기를 한다.     산과 들, 강물 걸어 넘는다.   그 끝은 평행선 한 가닥 분실된 몇 낱 낯선 어둠에 섞여 보이지 않고 ─「변주곡에 대한 상상 연습」 중에서   몽롱한 의식 상태의 그의 ‘꿈꾸기’는 비몽사몽간 눈앞에 고향산천을 그려보지만 원근 속에 하나의 점이 되어 소멸돼가서 끝이 보이지 않고, 다만, “멍든 석양의 조각들이 / 도시 꼭대기에 차양처럼” 매달린 메커니즘의 현대문명 속의 삭막함만이 남는다. 현대인의 짙은 외로움이 드리워져 있다.      3.「장마」에서의 기하학적인 선   1980년대의 답답한 현실은 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현실을 탈출하려는 꿈꾸기가 이루어지는데, 이때에 기하학적인 선으로 나타나는 빗줄기는 대단히 시원하고 자유분방하다.     빗줄기 속에서 뻗어 내린 흰 꼬리 화살 화살은 내게 일제히 달려든다.  몸짓으로 털고 몸짓으로 도망하고 또는 몸짓 거부로 넘어지는 행위   시대의 재채기 최루탄의 화살이 쏟아져 내린다. ─「장마」중에서    그의 시는「장마」에서 안정(安定)되고 한 단계 더 세련되었다. 빗줄기로 시작한 ‘꿈꾸기’가 “시대의 재채기 / 최루탄의 화살이 쏟아져 내린다”로서, 현실과 이어져 있다.     세 가름, 탈관념의 자동기술된 시   1. 수학적 시론의 전개   탈관념의 ‘꿈꾸기(Image-dream)’는 일상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리는데 있어 새로운 질서의 공감각과 방향이 있어야만 망상이 되지 않는다. 필자는 그 질서는 ‘자연’에서, 그 방법은 ‘직관’이라고 설명했는데, 이것은 실험에 의한 체험적 소신이었다. 고정관념의 ‘깨뜨림’은 습작을 위한 중요한 과정으로서 상당기간 대화법으로 실험을 도왔다. 그때 집약된 내용이 ‘쓰레기통 문답’ 또는 ‘함수f(x) 시론’이었다. ‘쓰레기통 문답’은 이러했다.   ‘꽃 한 송이를 들고 신인들에게 보인다. “이게 뭡니까?”라고 묻는다. “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때 필자는 쓰레기통에 꽃을 던진다. 그리고 “쓰레기입니다”라고 말한다. 누군가 그 얘기를 듣고 와서 “쓰레기입니다”라고 대답하면 “이게 왜 쓰레기통입니까? 꽃이죠!”라고 무안을 주었다.’   이 쓰레기통 문답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첫째, 사물에 대한 일상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려서 신선한 충격을 경험하게 하고 둘째, ‘꽃’이라는 이름이 쓰레기통(박스) 속에 들어가면 순간 ‘쓰레기’가 됨으로써 허무하게 관념(의미)이 바뀌는 것을 보여 준다. 셋째, 청각이나 시각 등 오감으로 느낀 사물에 대한 정서와 감정이 시시각각 변하며 각기 다른 언어로 표출된다는 것을 쉽게 이해시킨다. 그럼으로써 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체가 각기 다른 ‘의식의 함수 f(x)다’ 라는 가설로 유도시킨다. 당시 한성례씨는 이러한 수학적 시론의 전개를 신선한 충격으로 공감하고 받아들였다. 필자는 보다 체계적으로 시론을 정립해 가며, 그 가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설명했다.   “시인의 삶이 f(x)면 시는 그 도함수(기울기)이다. x는 ‘만남(사물)’의 변수, y는 의식 공간이다.”             2. 의식의 단면   어느 날 좌표평면 상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순간변화(의식의 단면)를 발견했다. 수학적 시론의 가설을 구체화시켜 x축과 y축으로 하는 평면좌표를 그렸는데, x축은 시간의 만남(시간적인 흐름 속에서의 만남)이고, y축은 그때그때의 ‘의식 공간’으로 구성했다. 다음은 한 ‘시인(한성례씨)’과 남산’의 ‘만남을 함수관계’로서 그 의식(체험)을 나타내 보았다.   [예] 만남의 요소-남산   ① 20대의 한 시인이 1974년 1월 처음 남산을 보았다. 이후 계속 보게 된다. 그 높이를 300m쯤으로 직감한다. 이를 y축 3에 표시한다. ② 그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동진강변의 평야지대에 살았다. 그가 산을 보아온 일상적인 의식체험은 100m 쯤의 야산들이었다. 이를 y축 1에 표시한다.             위의 ‘가나다라’ 선은 시인이 사물을 만나서 느낀 의식의 그래프이다. 이것은 의식(체험)의 한 단면이고, 여기에서 수평을 이루고 있는 선분 ‘가나’와 ‘다라’는 늘 바라보았던 일상적인 것인데, ‘반복된 사건의 일상성’이다. 그런데 상경하여 남산을 접한 어느 순간, 그 일상성이 깨뜨려지는 수직의 선분 ‘나다’가 나타난다. 이 순간의 의식(느낌)은 긴장이나 시적 충동으로 설명될 수 있다. 나는 이를 ‘일상성의 깨뜨림’이라 했고, 수평의 선분 ‘가나’ ‘다라’를 반복된 사건의 고정관념을 나타내는 ‘일상성의 직선’ 이라고 했다. 이로써 좌표평면 상에 시의 존재(기울기)가 나타나는데, 바로 선분 ‘나다’로서 긴장의 정도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 ‘나다’의 선분은 앞의 가설인 함수 f(x)의 ‘시간 x축’과 ‘의식 공간 y축’으로 하는 좌표 상에 나타난 ‘순간변화’이다. 그래서 이것을 의식의 ‘순간변화’ 또는 ‘순간변화율’이라고 이름 붙였고, ‘느낌의 기울기’라고 했다.  이렇듯 '만남의 자극과 반응’으로 나타난 ‘순간변화율’로서 그 존재를 확인하고, ‘만남이라는 사건’에 착안하여 집합과 조합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시공에서 사물과의 만남은 무수히 진행되고 의식은 집합적으로 결합된다.’ 이처럼 시공의 개념에서 접근하여 수학적인 방법으로 좌표 위에 '나'의 존재(의식)를 나타내고, x축을 시간의 흐름, y축을 의식공간으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x축과 y축 사이에 무수히 진행되는 ’만남의 사건‘을 변수 x로 가정하였다. 그래서 자동기술의 시는 무수히 사물과 만나면서 이뤄진 체험이 잠재했다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는 것을 알았고, 이것은 초현실주의 작품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초현실 시 쓰기인 탈관념의 ‘꿈꾸기’를 하면서 시의 ‘질서는 자연에서, 방법은 직관’이라는 방법론을 제시하게도 되었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란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다. ‘자연스러움’은 곧 시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     3. 그 습작과정에서 쓴 시,「서울의 큐비즘」   그는 그때까지 ‘매끈한 시’, ‘잘 다듬어진 시’가 좋은 시라는 소박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문예부장으로 활동하며 고교생 대상의 여러 시문학상도 수상하고 나름대로 시에 식견이 있다고 여겼던 그에게 탈관념은 커다란 충격과 혼란이었다. ‘깨뜨림’을 당한 멍한 상태라고 할까, 아무튼 이로 인하여 시적방황이 시작되었는데, 그 와중에서 처음으로 자동기술 되어 나온 작품이 ‘서울의 큐비즘’인 것으로 기억된다. 이어서 ‘지하도 풍경’도 발표했는데, 두 작품이 각각 문학지 ‘신인문학상’과 ‘대학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에게는 기념비적인 작품들이다.     핏빛 바람 갈대숲 안고 달아나는 소나무 하늘은 꽃씨 눕힌다. 누이의 속치마 능선을 타고 호랑나비 하늘을 앓는다. 소나무 허리 껴안은 거문고 울음과   한강변 세 살 난 잠실동 아이의 맏연습  아파트 아파트 우리 집은 아파트 충무로 1가에서 떠돌던 바람 소리 내어 돌아가고   호랑나비 푸득 푸드득 날개 짓 하는 하오는  종합전시장 앞 14차선 도로 악을 쓰며 누워 있다. 맨드라미 노을 넘실거리고   서울의 꿈은 유리알 맑은 모래처럼 내 온몸을 휘감는다. 남산 중턱에 해가 허리를 반쯤 걸치고 앉아 있다. ─「서울의 큐비즘」 전문   우선 시에 나타난 어휘들을 집합(集合)해 보면, "달아나는", "앓는다", "울음", "맏연습", "떠돌던", "악을 쓰며", "허리를 반쯤 걸치고" 등의 말들이 모이는데, 이것들은 모두 그 즈음의 그의 갈등에서 생성된 것으로서 인위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표출, 순열(順列)된 것이다. 시 자체는 좀 생경스러우나 일대 혁신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 미화되거나 인위적으로 포장됨이 없이 시인의 솔직한 진실(감정)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감이나 확신이 없다. 긍정 반 부정 반의 자세로서 엉거주춤한데, 시에 잘 나타나 있다. “남산 중턱에 해가 허리를 반쯤 / 걸치고 앉아 있다”의 표출이 그것이다. 그의 신경세포가 ‘반쯤’의 어중간한 상태를 자의식하고 있는 가운데, 해의 한 시점인 반쯤 앉은 상태가 강한 이미지로 입력되었다가 자동기술(순열)된 것으로 이해된다.     네 가름, 삶 언어의 집합・조합・순열의 묘    1. 언어의 표현   시인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물과 만나며 느끼는 자극(느낌→의식)을 y 라고 하고, 사물과 만나는 시간 x를 변수로 하는 의식의 함수 y= f(x)를 가정할 때, 어느 시점의 자극(만남)과 반응(의식)을 나타내는 순간변화율(기울기)이 있다. 즉 사물과 만나는 '의식(느낌)의 변화율'이 있다. 이것을 필자는 '의식의 기울기'라 하고, '긴장' 또는 '흥분' 등의 파동을 나타내는 '시의 순간 변화율'이라고 했다. 곧 시를 어떤 순간 변화율인 '생명의 파동'으로 보았다. 그래서 언어로 표현 기술되었을 때, 이 기울기(시라는 순간변화율)는 생명적이므로 의식 또는 잠재의식 속의 언어(하이퍼텍스트)는 어떤 생명의 존재질서 위에 있으며 이것은 자연스럽게 집합, 조합, 순열된다. 그래서 벤다이어그램으로 이를 도표화해서 보면 ‘언어A, 언어B, 언어C’의 표현을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그림]언어의 집합   도표를 살펴보면, 언어의 합집합인 최대공배수 ①A∪B∪C와 공통집합인 최대공약수 ②A∩B∩C 등의 모양이 나타난다. 합집합은 세 단어가 나타낼 수 있는 의미 내용의  최대로서 표현의 L.C.M이고, 세 단어가 의미 내용을 공통으로 가지는 빗금 친 부분의 공통집합은 표현의 G.C.M이다. 이 G.C.M으로써 보편적인 언어의 의미가 구성된다. 그러나 이 의미는 독자(평론가)에게 수용되고 물론 그의 체험에 의해 재구성된다.   2. 시 해설은 적분   이상의 수학적 시론의 전개는 동인들에게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고, 이것을 바탕으로 실험습작을 했다. 그에 따른 시의 성취나 그 가치는 별도로 하고, 당시 탈관념의 ‘꿈꾸기’에 몰두했던 한성례씨의「지하도 풍경」의 한 예문을 분석해서 정리해보겠다.   범람하는 성욕의 용설란들 남아프리카 지도가 피를 흘린다. ─「지하도 풍경」 중에서   위의 예문에 “범람/ 성욕 / 용설란 / 남아프리카지도 / 피” 다섯 개의 단어가 있다. 이것은 시인이 사물과 만남(사건)으로써 생긴 단어들인데 긴장과 흥분 등 느낌의 기울기(미분)를 갖는다. 이것은 삶의 한 시점이 미분된 것이고 의식 또는 잠재의식 속의 언어(하이퍼텍스트)이다. 이 단어들이 독자(평가)에게 수용되고 해설될 때 시적체험이 되고 시인의 삶이 된다. 그러므로 해설은 곧 ‘적분’이다. 표현되는 내용은 집합, 조합, 순열된다. 여기서 표출되는 내용을 도표화해 보면,                         예문의 ‘집합① 범람하는 성욕의 용설란들, 집합② 남아프리카 지도가 피를 흘린다.'를 보자. 그림 ①처럼, ‘범람∪성욕∪용설란’의 집합과 그림 ②처럼, ‘남아프리카 지도∪피’ 의 합집합은 단어들이 갖는 상징과 이미지 등 표현의 모든 범위를 갖는다. 그리고 단어들의 내용이 겹치는 부분인 공통집합(빗금)은 특별한 의미를 만들고 공감을 얻는다. 그런데 집합 ③에서 한 행 한 행의 내용 표현이 문장을 이루고, 다시 조합, 순열로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해 간다. 이와 같이 언어, 즉 의식 또는 체험으로 연결된 잠재의식 속의 단어(하이퍼텍스트)는 시인을 통해서 다시 집합, 조합, 순열해서 통합된 하나의 질서를 이룬다. 그림과 같이 ‘범람∩성욕∩용설란’으로 공통집합 되면 시인 개체 안에서 자동으로 이미지나 의미가 결합되어 생명의 질서(정서)를 갖고서 표출된다.    3. 언어의 징검다리 건너기   이렇듯 해체에서 통합으로 가는 원리는 미래 시의 새로운 항해에서 나침판이 되어줄 수도 있다. 구문론을 과감하게 파괴(탈-관념)하는 시가 길을 잘못들 경우 난해한 미로에 빠져들 위험이 있다. 그래서 해체된 언어들은 어떤 질서로 통합되어야 한다. 그의 시 ‘옵니버스 율’은 시인(생명)의 어떤 질서를 내포한 무의식의 흐름이고, 그 흐름의 경로(항해 -‘탈-관념의 꿈꾸기’)가 나열됨으로써 정서(질서)가 표출되었다.   햇살 빠른 음률이 피어 회부럭담 아이들 어깨 너머로 프리즘에 갈리는 하얀 겨울 햇살은 나비의 눈물같이 산 빛 초록초록 꽃밭동 머슴애의 논갈이 뒤꿈치에 펼치어 흔들리는 들판 새까만 기적의 음률이 간다   ─「들판」 전문   ‘산 빛 초록촉록 꽃밭동’ 에는 조사가 없다. 다른 행에서도 주어, 술어 등의 구문론이 다수 파괴되어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시에서 보이는 선형성(線形性)이 없다. 비선형적이다. 또한 앞뒤의 문장이 원인과 결과, 논리가 없고 순차적이지 않다. 이 텍스트는 전통적인 텍스트에서 벗어난 하이퍼텍스트 적이라 할 수 있다. 끊어져 있는 마디가 무작위로 배열되어 있다. 그래서 독자가 이 시를 읽을 때는 징검다리를 건너가듯 언어의 마디와 마디를 뛰어 읽어가야 한다. 이때 독자는 단절된 마디와 마디 사이의 틈을 뛰는 스릴을 맛볼 수 있고, 그 공간에서 자신만의 상상을 펼칠 수도 있다. 또한 시의 행갈이 순서도 자유로워서 역순 뿐 아니라 얼마든지 행을 뒤섞어 읽어도 이미지가 선명하다.   새까만 기적의 음률이 간다 펼치어 흔들리는 들판 머슴애의 논갈이 뒤꿈치에 산 빛 초록초록 꽃밭동 햇살은 나비의 눈물 같이 프리즘에 갈리는 하얀 겨울 회부럭담 아이들 어깨 너머로 햇살 빠른 음률이 피어   그는 이러한 시들의 묶음을 ‘옴니버스 율’이라고 했는데, 행이나 구문에 이미지나 표현이 묶이지 않고 한 행 한행 독립적으로 배열된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옴니버스이므로 한 줄 한 줄 독립된 이미지의 마디를 다시 독자가 재배열해서 읽어도 된다. 그런데 위와 같이 역순으로 배열된 텍스트가 더욱 선명한 이미지를 보이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원본 텍스트보다 역순 텍스트인 메타텍스트가 더 하이퍼텍스트 적이고, 특히 선형성과 순차적인 배열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가 행한 이 실험은 모더니즘 시의 한 가닥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 나가며   탈-관념의 꿈꾸기는 우주적(하이퍼) 공간이다. 그의 시「구의역에서」에서 보이는 부유하고 있는 모습이 그러하고,「태양을 향해 날아갔다」에서도 현실감각이 사라진 공간이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시적 꿈꾸기는 사이버세계의 ‘경로’로 이해할 수 있다. 별과별을 잇는 상상의 ‘링크’가 있고, 그 링크를 계속 따라가는 궤적과 같은 그런 경로다. 은하계의 ‘북두칠성’을 보자. 하나하나는 멀리 떨어진 별이다. 우리의 상상은 일곱 개의 별을 이어 놓고 이 별자리에 ‘북두칠성’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의 시를 이처럼 우주 공간의 ‘경로’로 이해해도 되고, 봄날에 꽃과 꽃을 옮겨다나며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나비의 ‘경로’에 비유해도 된다. 이러한 시 쓰기는 인간의 뇌 속에 잠재해 있는 기억의 소자(원소)들 사이를 흐르는 의식의 흐름과 흡사하다. 시를 ‘의식이 흐른 하나의 경로’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흥미롭다. 현대시가 ‘언어를 해체한다’고 해도, 해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시인의 의식을 표출하는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 그 중에서 특히 경로를 통해 표출된 정서나 음률은 시의 바탕을 이룬다. 한성례씨의 탈-관념된 시가 정서와 음률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시대를 뛰어 넘어 언제든 수준 높은 독자와 만나게 될 것이다.(完)        인쇄 블로그 카페 북마크 메모 폴라 보내기  댓글 쓰기                   탈관념시학 [스크랩]  시창작론숲  2017. 11. 3. 17:06 http://blog.naver.com/shunzi75/221131891267 전용뷰어 보기   탈관념의 시학                     유니트 [제001]     직관의 시학은 이웃과 창을 열고 정해본 제목이다. 지금 밤 3시 일어나 앉아 조용한 명상의 시간을 갖고 있다. 시인으로 살아가는 길이 있다. 물론 많은 길이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의 길인 내가 가는 길은 아마 마음을 다스리는 길이라고 하면 좀 추상적이지만 직관을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마음은 시의 바탕이 되고 이 공부는 심안을 갖게 한다. 아니, 공부라는 표현을 시를 수련한다는 말로 강조한다. 시인으로 살아가는 길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학은 수사학(비평,지식)의 공부와는 아주 별개의 것!) 이것은 나를 찾는 것이며 나의 시 나의 색깔을 갖기 위한 그 첫발이다. 오늘 명상 속에 나를 바라보고 사물을 바라보고 조용히 마음가는대로 시상을 떠오르게 하라 ​ ​ 탈과념의 시학                    유니트 [제002]   나를 바라보고 사물을 바라보고 조용히 마음가는대로 시상을 떠오르게 하려면 직관력을 키워야 하고 그래서 직관상(直觀象)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직관과 직관상은 "탈-관념의 이해"(심상운 논문)를 참고하기 바란다. 먼저 그 글을 간략히 요약해서 노트하고 충분히 이해해 둘 필요가 있다. 이것은 시인이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되는 중요한 것.) 직관(탈-관념)의 시쓰기인 '염사(念寫)'도 직관상을 묘사하여 서술하므로, 마임을 보듯이 독자의 마음속에서 이미지나 표상을 떠오르게 한다(수용미학 참조). 나는 염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무아지경으로 명상하고 있다가 떠오르는 무의식의 세계를 체험했다. 어떤 문제를 가지고 집중하면 깊이 잠재했던 세계가 스크린에 나타나듯 선명하게 떠오른다. 심지어는 거울에 보이듯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도 한다. 이 때 나타나는 영상은 임의대로 수정되거나 생각이 끼어들지 않는다. 이런 내면세계‘염사’를 혹자는 초현실주의니 자동기술이니 하는데, 자동기술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자동기술은 말 그대로 임의로 시를 쓸 수 없고, 질서도 없고 통제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자연 발생적이다. 반면에‘염사’는 자연발생이 아니다. 자기 최면 또는 선(禪)에 들면, 임의로 on/off가 가능하고, 컴퓨터를 켠 듯 무아지경의 맑은 의식 상태에서 본다. 그러나 컴퓨터와도 또 다르다. 나만의 폐쇄회로이며, 영상이 일회성으로 거품처럼 곧 사라진다.                탈관념의 시학                      유니트 [제003]   직관력을 어떻게 키우는가? 요즘 말하는 사람이 없다. 후배에게 직관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고, 그래서인지 잘 나간다는 신인들의 시에 직관이 보이질 않고 말, 말 뿐이다. 소위 산문화된 담론적인 말자랑, 지식의 나열로 넘친다. 그 이유는 체험, 즉 경륜 있는 선생이 없이 나 홀로 정보와 지식만 있기 때문.  실제로 직관력을 어떻게 키우는가? 시인 나름의 체험이 있다. 그 선험적 체험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면 많은 시간을 절약하고 시를 발전시켜갈 수 있다. 그래서 선배나 스승이 필요하다. 비유를 들어 보자.   나는 등산을 즐긴다. 한번은 홀로 북한산 향로봉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가는 것을 멀리서 많이 보아 왔으므로 별 생각 없이 기어갔다. 그런데 얼마를 신이 나서 가다보니 눈 아래가 천 길처럼 아슬히 내려다보여 점점 다리가  떨리더니 겨우 일 미터의 간격을 건너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등산에 관한 지식을 많이 숙지하고 있었는데도 아무런 도움이 안됐다. 그때 앞에 어떤 산악인이 손을 잡아주어 건너갔다. 그런데 다른 산사람들은 평지를 가듯이 갔다. 이와 같이 시는 살아있는 현장이며 발발 떨고 있던 느낌!, 그래서 체득하여 자유로워져야 하는 것. 실제 많이 습작하지 않고 시론이나 수사학을 강의만 하는 분들이 시를 잘 쓰지 못한다. 내가 벼랑 앞에서 얼어붙듯이, 탈관념의 시학                     유니트 [제004]     직관(直觀)은 분별을 넘어선 세계다. 인간의 이성을 넘어선, 이성이 완전히 잊혀진 곳에서 흘러나오는 그 무엇이다. 이성으로는 직관을 수신할 수 없다.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저 너머’의 세계에 거처한다. 진리를 원하면 들어가라! 밖에서 머뭇거리지 마라!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면 이를 본능이라고 하고 영혼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면 이를 직관이라고 한다. 이 둘 사이에는‘마음의 전문가’인 이성이 자리한다. 본능과 직관의 세계를 이어 주는 다리이자 통로다. 현대인들은 이 다리 위에 앉아서 자신이‘존재의 집’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존재의 집은 다리 건너편에 있다!  ‘오쇼의 편지’에 있는 이러한 말들은 직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물론 다음의 철학적인 일반 개념도 중요하다.     *참고자료* [直觀 intuition ]   철학에서 추리나 관찰, 이성이나 경험으로는 얻지 못하는 인식을 얻을 수 있는 힘을 뜻하는 용어. 직관은 다른 원천에 의해 얻지 못하는 인식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근원적이고 독자적인 인식 원천으로 여겨진다. 필연적 진리와 도덕원리들의 인식은 종종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된다. 몇몇 필연적 진리, 예컨대 논리학이나 수학의 진술은 다른 진리로부터 추론되거나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진술이 모두 그런 식으로 도출될 수는 없으며 공리(公理)처럼 다른 명제로부터 도출되지 않는 진술도 있다. 뿐만 아니라 공리로부터 다른 진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체계의 상호연관성은 이미 여러 추론규칙을 전제하고 있다. 공리들의 진리성과 기본 추론규칙들의 타당성 자체는 추론이나 관찰로 확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추론에는 이미 이 공리와 규칙이 전제되어 있고 관찰은 필연적 진리를 확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공리와 규칙은 직관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공리는 누가 봐도 뻔한 진리명제이므로 자명성을 직관의 특징으로 보는 데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다. 한 진술이 다른 진술로부터 도출되거나 어떤 특정 추론이 타당하다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러한 종류의 모든 추론의 타당성을 '직관적으로 귀납'할 수 있다. 이밖에 가령'어떤 사물도 전 표면이 동시에 빨간색이면서 푸른색일 수는 없다'와 같은 비형식적 필연적 진리도 직관적 귀납명제로 볼 수 있다. 누구든 특수한 사례를 통해 그 명제의 보편적·필연적 연관을 확인할 수 있다. 조지프 버틀러에서 G. E. 무어까지 많은 도덕 철학자들은 도덕적 언명이 무언가 특별한 종류의 인식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행위의 옳음(무어의 견해로는 어떤 사태의 선함)을 인식하는 것은 관찰능력이나 논리적 원리를 직관하는 능력에 비길 만한 특별한 도덕적 능력이다. 논리적 원리들이 직관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론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도덕적 주장이 지니고 있는 자명하고도 의심할 수 없는 성질이다. 이러한 두 이론에 대한 비판은 똑같은 하나의 논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논리와 도덕의 공리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특별한 인식 원천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공리들은 사실의 발견에 관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공리가 담고 있는 내용은 세계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사실이 아니라, 담론이나 행위를 할 때 취하는 결단·관습·태도에 관한 것이다. 이밖에도 직관이라는 용어에는2가지 전문용법이 있다. 하나는 이마누엘 칸트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비록 관찰의 도움은 받지만 관찰에 근거하지는 않는 모든 사실인식의 원천을 가리킨다. 다른 하나는 스피노자와 앙리 베르그송이 사용한 의미로서, 과학이나 일상적 관찰에 의해 얻어진 단편적인 '추상적' 인식과 달리 상호연관 되어 있는 세계 전체에 대한 구체적 인식을 가리킨다. 탈관념의 시학                     유니트 [제005]     직관은 생각을 하지 않고 “바로 본다.”는 뜻이다. 즉 판단 추리 경험 따위의 간접 수단에 따르지 않고 대상을 직접 파악하는 일 또는 그 작용이다. 이를 직각(直覺)이라고도 한다. 나는 이렇게 비유를 들어서 말한다. “흙탕물은 그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흙탕처럼 생각은 본질을 가리게 된다. 흙탕이 가라않으면 맑은 물의 바닥이 보인다.”  시인에게 이렇듯 직관력을 키우는 일은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선이나 기도는 직관력을 증진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적 수련으로서 시인의 일상적 생활에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방법론으로서 많은 시작법이 탄생한다. 나의 “접사와 염사”는 그런 방법의 하나다. 기능적으로 생각을 제거하고 사물을 바로 보는 방법으로서, 원근법이나 방위감각에 끼어든 오염된 관념을 제거하여 외부세계의 사물을 직관하고 생생하게 한다. 지금 앞에 유리컵에 바짝 눈을 대어보면(접사의 기법) 일상적인 컵의 모습은 갑자기 사라지고 유리만 보인다. 새로운 질감과 함께 긴장감을 느낀다.  바로 일상적인 시각의 고정관념(생각)을 깨뜨리고 직관하는 것이 된다. ​     탈관념의 시학                     유니트 [제006]   시는 알고 이해하고 체득해야 한다. 안다는 것은 좋은 시를 보아 알고 그 시(시론 등)를 이해하고 그 시를 습작을 통해서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다시 줄이면 시를 느끼고 쓴다고 하고, 단 한마디로 ‘터득한다’ 한다. 그렇다. 머리로 이해만 하면 시가 써지는 것이 아니다.   시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쓰는가, 또 어떻게 보고 느끼고 쓰는가, 즉 '무엇를' '어떻게'로 좁혀지게 된다. 내용과 표현 문제로 남게 된다. 표현은 수사학이고 내용은 의미이다(무의미도 의미). 그래서 신인들에게 사물(나뭇잎 등)을 주고 그 사물을 하루 이틀..., 계속 집중하여 보라고 한다. 나는 이것을 “사물과 눈 맞추기” 라고 하는데, 오직 어떤 사물에 집중하여 오래 동안 눈 맞추고 있는 것은 마치 무념무상의 명상에 든 것과 같은 효과를 본다. 계속 집중하고 있다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들이 다 사라질 때 어느 순간부터 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영감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사물과 교감이 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직관의 세계로 가는 한 방법.   유니트 [제007]     내가 시를 가르치는 일이란 사물 하나를 주고 나서 다음에 만나면 보았느냐?, 느꼈느냐?, 그러면  깨달았느냐?묻는 일이다. 그리고 어떻게 쓰고 있는가 일기처럼 쓴 묘사를 확인하는 것이다.   수사학은 스스로 체득하는 길밖에 없고 느끼는 것 또한 체험할 수밖에 없다. 수사학 공부는 좋은 시들을 찾아 읽고 다른 제목을 가지고 모사해 보는 것도 지름길이다. 이렇듯 여러 가지 시쓰기 방법들이 있으므로 수사학은 나름대로 혼자 할 수 있다.   그러나 느끼는 공부, 즉 내용 공부는 혼자서 어렵다. 이것은 감성을 키우는 일로서 사물을 만나고 직관을 하고 느끼고 깨닫는 일.특히 일상적인 시각에서 보고 듣는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일은 쉽지 않다. 졸저 ‘꽃의 문답법’은 사물과 눈 맞추기를 하고 그 문답을 정리한 것.      인쇄 블로그 카페 북마크 메모 폴라 보내기  댓글 쓰기                   [스크랩] 주역과 시 / 김기덕  시창작론숲  2017. 10. 28. 16:42 http://blog.naver.com/shunzi75/221127325553 전용뷰어 보기   주역과 시 /김기덕   8. ䷇ 수지비(水地比)   수지비는 위에 水(☵:坎)가 있고, 아래에 地(☷:坤)가 있는 모양으로 물과 땅이 친하여 서로 돕는 관계를 이룬다. 比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있는 형상으로 서로 의지하며 돕는다는 뜻이 있다. 比는 하괘가 坤(땅)이니 순하고 어질며, 상괘는 坎(물)이라서 아래로 흐르니, 땅 위에 물이 있는 것 같이 서로 밀접하게 친한 것을 말한다. 덕망 높은 군주를 위해 어진 신하들이 보필하며 친함으로 서로 협력하는 상이다. 64괘는 배치의 관계를 알아보는 방법이다. 시의 소재나 주제의식을 잡고 시를 쓰고자 할 때 무턱대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소재나 주제의식에 대한 유사적, 인접적, 상징적인 사물을 찾은 뒤 적절한 배치관계를 찾고, 정해진 배치관계에 따라 표현하고자 하는 방법이 바로 64가지인 64괘인 것이다. 이 64가지를 다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기존에 쓰던 주제의 통일적인 중천건괘의 방법이나, 중지곤괘의 방법 등을 비롯하여 몇 가지만 익혀서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역을 통한 시쓰기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과 방법을 활용하여 쓰는 것이기 때문에 64가지를 다 익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본 책을 교재로 삼아서 시를 쓰면 굳이 외울 필요도 없다. 또한 주역적 시쓰기가 공식처럼 경직되어 창작의 자유가 제한되지 않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괘나 호괘,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 등의 다양한 변화를 추구할 수 있으니, 이러한 변화는 시인의 의지에 따라 무한한 창작의 자유를 추구하고 누릴 수 있는 부분이다. 효로 풀면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주제와 정서의 음적 통일을 이루고 있다. 다섯 번째 배치에서 변화를 꾀한 뒤 여섯 번째 배치에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승전결식의 방법이다. 다섯 번째는 轉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고의 확장과 변환을 이루었다가 다시 주제의식으로 모아지는 통일된 내용의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노음)는 약하고 부드러운 존재이나 슬픔, 아픔 등을 끌어와, 人(⚏:노음)에서 음의 감정을 더욱 발전시켜 가다가 天(⚍:소음)에 와서 내적 아픔이나 설움, 절망 등의 음의 감정을 절제하여 표현하는 방법이다. 팔괘로 표현하면 첫 문장의 배치는 坤(☷)괘로서 땅을 상징한다. 유순하고 후덕하여 모든 것을 품는 어머니와 같은 정서이다. 둘째 문장의 배치는 이러한 여성적인 감정에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마음을 보듬어주고 모아주는, 따뜻함과 갈등의 승화가 있는 정서의 시쓰기 방법이다.    比는 人자가 두 개 나란히 서있는 모양으로 사람들이 서로 모여 정답게 협조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수지비(水地比)는 땅 위에 물이 있는 형상이다. 대지는 물을 안아주고 물은 땅을 적시며 친애하고 협력하여 생성하고 화육하며 아름다운 자연을 형성하듯 여성적이고 모성적인 감정으로 아름다운 정서를 노래하는 긍정적 표현이다. 수지비의 호괘는 ䷖ 산지박(山地剝)으로 땅 위에 높은 산이 있는 상이다. 배합괘는 ䷍ 화천대유(火天大有)로 인군자리에 올라 천하를 얻는 상이며, 도전괘, 착종괘는 ䷆ 지수사(地水師)로 무리를 모아야 함을 상징한다. [출처] 8.수지비|작성자 김기덕   9. ䷈ 풍천소축(風天小畜)   풍천소축은 天(☰:乾)이 아래에 있고, 위에 風(☴:巽)이 있는 괘상으로 하늘 위에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유약한 음이 위에 있어 아래의 강건한 양을 그치게 하여 쌓으니 소축이다. 소축은 작게 쌓아 올라간다는 뜻으로 畜은 밭에 물건을 높이 쌓아 까마득하다는 뜻이다. 양실한 물건을 쌓아올림에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데 바람으로 인해 위가 약간씩 흔들리니 많이 쌓을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소축은 안으로는 강건한 乾이 있고 밖으로는 부드러운 巽이 있어서 외유내강의 덕을 갖추고 있다. 강함을 상징하는 모든 양효 가운데 오직 하나인 음효가 상승하는 양의 기운을 막아 모두를 축적하지 못하고 일부만 축적하는 상이다. 효를 가지고 시를 만들면 첫 번째에서 세 번째 배치까지 양효로 구성되어 가볍고 메마른 감정 위주로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음의 배치를 해주는 방법이다. 가운데에 음의 감정을 배치함으로써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 뭉클한 감동이 느껴질 수 있도록 어둡고 탁한 분위기를 설정하는 방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노양)는 한 여름이나 오후와 같이 생기가 있고 기쁨이 있다. 人(⚍:소음)은 봄의 정취와 같다. 또한 해가 뜨는 아침과 같이 상승하는 양의 기운을 퍼지게 하여 天(⚌:노양)에서 한낮과 같은 양의 문장으로 끝맺는 방식이다. 시가 전체적으로 밝으나 무게감을 두어 내면의 아름다운 상처를 한가운데 보석처럼 드러나게 하는 기법이다. 팔괘로 살펴보면 처음의 배치는 天(☰)괘로서 밝고 명랑하고 강건함으로 자칫 공허감을 줄 수 있는 남성적 감정 다음에 巽(☴)을 배치하여 부드럽고, 섬세하여 귀여운 여동생과 같은 감정을 배치함으로 잔잔한 여운이 남도록 쓰는 방법이다. 주역적 시쓰기의 특징은 색깔의 배치이다. 소재에 따라, 또는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 따라 색깔을 배치함으로 정서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시 창작이다. 양의 색은 밝고 화려하며 따뜻하다. 음의 색깔은 어둡고 탁하며 차갑다. 언어로 그리는 그림에도 이런 다양한 색깔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감정의 깊이 및 의도의 정확성을 분명하게 나타내 줄 수 있을 것이다. 전체를 밝게 칠한다면 중천건(䷀)이 될 것이고, 전체를 어둡게 칠한다면 중지곤(䷁)이 될 것이다. 그 외에 어떤 부분을 어떻게 칠하느냐에 따라 각각 64괘의 모양을 이루게 될 것이다. 전체가 밝은 시만 좋은 시는 아닐 것이다. 전체가 어두운 시가 치열한 시는 아닐 것이다. 다양한 색깔, 다양한 배치가 더욱 낯설고 개성적인 시의 영토를 확장해 나갈 것이다. 풍천소축의 호괘는 대칭적, 대조적 기법의 ䷥ 화택규(火澤睽)이며, 도전괘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마주보기적 배치인 ䷉ 천택리(天澤履), 배합괘는 하나의 통일된 시각의 표현인 ䷏ 뇌지예(雷地豫), 착종괘는 여성적 시각의 밝은 표현인 ䷫ 천풍구(天風姤)이다. [출처] 9. 풍천소축|작성자 김기덕   10. ䷉ 천택리(天澤履)   천택리는 위로 天(☰:乾)이 있고, 아래로는 澤(☱:兌)이 있는 모양으로 하늘이 연못에 비치듯 하늘의 이치를 밟아 행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履는 회복함(復)을 주장하는(尸) 뜻이 있으니 인간의 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뜻을 따라 예를 회복해야 함을 의미한다. 履는 하괘가 兌(연못)이므로 안으로 함께 기뻐하고, 상괘가 乾(하늘)이므로 밖으로 굳건히 실천하는 모양이니, 기뻐하고 화합함으로 행하는 중정의 도가 있다. 또한 위에 하늘이 있고 밑에 못이 있으니 상하의 나뉨과 귀하고 천함의 구별이 있어 예로 회복을 실행하는 괘상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 번째와 두 번째 배치를 양의 문장으로 한 다음, 세 번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배치하였다가, 그 이후 문장을 양의 문장으로 표현해주는 방법이다. 하늘의 구름과 달과 별들이 음의 물속에서 반사되듯이 표현된 방법이다. 데칼코마니적인 방법이기도한 이 기법은 하늘의 차원과 물속의 차원이 다르며, 정신적 세계와 현실적 세계가 다르듯이 상하의 복합적 배치, 또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배치와 같은 마주보기적인 거울 기법이다. 사상으로 접근하면 地(⚌:노양)는 호수에 비친 풍경처럼 맑고 깨끗하며 명랑하다. 人(⚎:소양)은 겉은 기쁘고 생기에 차있지만 속은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하고 병들어 있다. 天(⚌:노양)은 청명하며 움직임이 있고 크다. 하늘은 맑고 땅은 생기에 가득 차있어서 양의 색깔로 채워지지만, 인간은 내면의 슬픔을 어쩌지 못한다. 팔괘로 풀면 기쁨이 가득한 兌(☱)괘가 밑에 있고, 강하고 밝은 덕이 위에 있어 서로 비추며 마주보는 유사성이 있다. 처음엔 하늘의 단락이 있고, 다음에 하늘을 비추는 연못의 단락이 있어서 유사성의 이중구조를 이루고 있는 시쓰기 방법이다. 천택리는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으며 태양은 하늘에 있고 물은 낮은 데로 흐른다는 원리의 질서를 나타내고 있다. 밤이 새면 낮이 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처럼 혼란이 없고 뒤바뀜이 없다. 시쓰기에서 두 개의 유사성이 결합하여 호수의 하늘과 같이 서로를 조명해 줄 때 하늘엔 하늘의 원리가, 호수에 호수의 원리가 질서를 유지하며 독단적인 내용을 갖고 공존해야 한다. 그래서 두 개의 단락으로 나뉘어 유사하지만 다른 내용을 형성하고, 다른 이야기지만 같은 의미를 갖고 있어야 한다. 천택리의 응용을 위해 천택리의 성격이나 재질의 구분은 호괘인 ䷤ 풍화가인(風火家人)으로, 반대편에서 본 입장인 도전괘는 ䷈ 풍천소축(風天小畜), 반대상황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배합괘인 ䷎ 지산겸(地山謙), 상‧하의 입장변경을 표현하는 착종괘는 ䷪ 택천쾌(澤天夬)이다. [출처] 10. 천택리|작성자 김기덕   11. ䷊ 지천태(地天泰)   지천태는 위에 땅(☷:坤)이 있고 아래에 하늘(☰:乾)이 있는 모양으로 천지가 사귀어 만물이 열려 나오는 상이다. 하늘의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고 땅의 기운은 위로 올라 교합하여 태평한 세상이 된다. 泰는 父, 母, 子의 세 사람을 뜻하며, 부정과 모혈로부터 어린 생명이 탄생함을 의미한다. 안으로는 乾의 굳세고 건장한 덕이 있고 밖으로는 坤의 순한 덕이 있으니 외유내강의 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늘의 기운은 올라가고 땅의 기운은 내려가서 서로 통하니 형통하는 상으로 정월괘이며 새봄이 되는 때를 이른다. 음효와 양효가 각기 셋으로 음양의 이치가 고르게 배치되고 있어 안정된 모습이다. 효로 살펴보면 양의 문장이 첫째, 둘째, 셋째로 나오고 다음에 음의 문장이 넷, 다섯, 여섯 번째 나오는 형식으로 음과 양이 대조를 이루는 방식이다. 만약에 얼굴을 표현한다면 돌출된 이마나 코, 광대뼈와 같은 곳을 양적으로 밝고 강하게 표현한 후 입이나 귓구멍, 콧구멍 같은 곳을 음적으로 어둡고 연약하게 표현하여 서로 대조를 이루게 하면서도 통합된 의미를 모을 수 있도록 나타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물에는 음과 양이 공존한다. 이러한 음과 양의 대조를 통해 대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노양)는 여름이나 한낮의 표현과 같이 강렬하며 극적인 표현을 의미하며, 人(⚍:소음)은 강하고 극적이던 표현이 약하고 부드러워지면서 겉과 속이 표리를 이루는 표현을, 天(⚏:노음)은 겨울이나 한밤중 같은 부정적이며 차가운 대조의 표현을 이루는 방법이다. 팔괘로 풀면 강하고 굳세며 정신적인 의미의 乾(☰)이 밑에 있고, 나약하고 부드러우며 육체적인 의미의 坤(☷)이 위에 있는 형상으로 형이상적이면서도 형이하적인 면이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시쓰기이다. 천택리는 유사성을 통해 서로 마주보는 데칼코마니적인 기법이라면 지천태는 대조적인 것이 서로 마주보면서 있는 형상이기도 하며, 인간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지천태의 표현은 땅의 기운이 하강하고 하늘의 기운이 상승하는 형상으로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만물을 기르는 것이며, 상하가 서로 화합하여 하나로 모이는 이치와 같다. 속의 강한 뜻을 부드럽게 표현하는 기법이기도 하며 핵심에는 군자를 변두리에는 소인을 배치한 것과 같은 대조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또한 동시에 정신과 육체, 이상과 현실, 사물과 그 안의 상징성 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를 인과관계로 끌고 가고자 한다면 지괘를 선택해야 한다. 지괘는 뽑은 괘중에서 노양은 음으로, 노음은 양으로 변하기 때문에 노양과 노음이 변한 괘가 바로 지괘이다. 노양과 노음이 나오지 않았다면 지괘는 없는 것이며 당분간 본괘가 지속될 것임을 나타낸다. 지천태의 호괘는 이질적인 관계의 연결을 만드는 ䷵ 뇌택귀매(雷澤歸妹)이며,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는 조화와 상생의 ䷋ 천지비(天地否)이다. [출처] 11. 지천태|작성자 김기덕 12. ䷋ 천지비(天地否)   천지비는 위에 天(☰:乾)이 있고 아래에 地(☷:坤)가 있어 상하로 막혀 머물러 있을 뿐 소통이 되지 않는 상이다. 하늘은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을 띠고 땅은 아래로 내려가려는 성질을 띠기 때문에 둘 사이는 멀어질 뿐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否를 보면 만물은 호흡과 생명활동을 구멍으로 하는데, 그 구멍(口)이 막혀(不) 곤궁한 모습이다. 위의 乾(☰)은 실하나 아래에 坤(☷)이 허하니 서로 교합하지 못하고 만물이 닫혀 있는 상이다. 하늘과 땅이 통하지 않고 아비와 자식이 갈등하며, 임금과 백성의 뜻이 통하지 않으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반목, 질시하는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지천태와 매우 유사하지만 지천태는 조화와 상생의 관계를 말하지만 천지비는 갈등과 반목, 부조화를 내면에 깔고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 둘째, 셋째의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치밀하고 꼼꼼하며, 어둡고 탁하며, 비천하고 낮은 의미를 갖지만, 넷째, 다섯째, 여섯째의 내용들은 엉성하고 명랑하며, 움직임이 있고, 밝고 맑으며, 높고 귀한 의미를 가짐으로 내면과의 갈등을 표출하고 상하의 부조화를 나타내는 방법이다. 시는 두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지지만 반대적인 입장에서의 접근이나 시각차를 나타내는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지극한 슬픔에 빠져 있지만 하늘은 기쁨으로 충만한 상이다. 人은 그 가운데에서 강한 척 하지만 불안과 좌절을 격고 있는 모양이다. 계시가 없는 신앙인과 같으며, 꿈이 없는 사람과 같으며, 주인이 없는 애완동물과 같은 형상이다. 시적인 형식에 있어서도 상하의 상관관계를 갖지 못하고 배반관계, 또는 대치관계를 갖는다. 팔괘로 보면 신적 질서인 天이 인간세상인 땅에 관여하지 않고 동물적 질서인 땅은 인간 영혼의 교감이 있는 하늘에 구하지 않음으로 답답한 정서적 고립을 이루고 있다. 마주 의지하여 일어서는 人자의 형상처럼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사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否卦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 거부된 상태이다. 하늘과 땅이 막히고 사람과 사람 사이가 막혀버린 관계이다. 천지비는 내괘가 음이고 외괘가 양인데, 이것은 내심은 유약하면서 외면은 강한 것처럼 꾸미는 것으로 기만과 속임수가 있다.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 간에 의미의 연결을 이루지 못하고 정반대의 파국으로 치닫는 부정적 배치관계를 갖고 있다. 주제의 통일을 중시하는 시쓰기에서 단락 간에 의미가 상충한다면 통일성은 깨어질 것이다. 마인드맵에서 서로 반대되는 가지의 방향으로 뻗어감으로 의식이 확장되듯 천지비의 시쓰기는 가지에서 둥치 쪽 방향으로 주제의식이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확장되고 퍼짐으로 난해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천지비의 호괘는 점점 의식의 확장을 이루는 ䷴ 풍산점(風山漸)이며,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는 음양의 이치가 고르게 균형을 이룬 ䷊ 지천태(地天泰)이다. [출처] 12. 천지비|작성자 김기덕   13. ䷌ 천화동인(天火同人)   천화동인은 위에 天(☰:乾)이 있고 아래에는 火(☲:離)가 있는 모양으로 하늘에 해가 떠올라 만물이 생동하며 서로 모이는 형상이다. 同人의 의미는 사람들이 뜻을 하나로 하여 함께하는 것을 말하는데, 유일한 음인 六二(효의 두 번째 음효)를 중심으로 양들이 모이게 된다. 내면은 밝고 외면은 강건한 덕이 있으니 밝은 지혜로써 힘차게 도를 행하는 괘이다. 남과 내가 하나가 되는 형국이며, 세상의 모든 사물과 내가 하나를 이루어 교감을 갖는 관계에 놓여 있다. 두 번째에 놓인 음의 효는 나를 상징하며 나를 중심으로 모든 양들이 집중하고 있는 모양으로 시에서는 서정적 시쓰기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서정적 시쓰기의 특징은 나라는 존재의 주관적 감정을 통해 세상의 모든 사물을 자신의 의도대로 끌어오고 요리하며, 서정적인 주제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천화동인의 괘는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쓰기 형식이다. 효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六二의 나는 여성적이며 부드러운 감성의 소유자이다. 이런 풍부한 감정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시의 분위기를 밝고 아름답게 쓰고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긍정적인 양의 시각이 담겨 있다. 시인의 존재는 약간 우수에 잠길 수 있어도 그의 메시지는 세상을 끌어안고 사랑을 나누는 행복한 세상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따뜻한 세상을 담고 있다. 그 문장들이 나를 향해, 곧 글 쓰는 시인을 향해 주제의 통일을 이루고 있다. 사상으로 보면 地(⚍:소음)는 땅에서 새싹이 움트는 형상이다. 밝게 확장되어가고 성장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人(⚌:노양)은 긍정적이며 행복한 상황을 의미하며, 天(⚌:노양)도 역시 맑고 투명하며 소망으로 가득 차있다. 마인드맵 천 ‧ 인 ‧ 지의 줄기에서 가지를 뻗어갈 때 긍정적이며 건강한 의식으로 확장해야 한다. 팔괘로 살펴보면 하늘에 해가 떠있는 상이다. 그래서 색깔이 밝고 환하다. 천지는 광명으로 가득 차있고 만물은 생기가 넘친다. 시인의 순수한 내면을 통해 밝고 아름답게 세상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항상 높은 곳에 있는 하늘과 높은 곳을 지향하는 불은 서로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다. 同人은 남과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뜻이 같은 것들, 즉 유사한 것들을 모아 하나의 주제를 지향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곧 주제의 통일을 의미하며 사물의 유사성과 인접성을 통해 접속하는 방법이다. 천화동인의 호괘는 음의 대상을 양적인 표현으로 이끄는 ䷫ 천풍구(天風姤)이고, 배합괘는 남성적 시각의 슬픔이나 고통과 같은 음의 배치인 ䷆ 지수사(地水師)이며, 도전괘, 착종괘는 태양처럼 밝고 환한 ䷍ 화천대유(火天大有)이다. [출처] 13. 천화동인|작성자 김기덕   14. ䷍ 화천대유(火天大有)   화천대유는 위에 火(☲:離)가 있고 아래에 天(☰:乾)이 있는 괘상으로 해가 중천에 뜬 모양으로 크게 소유함을 이른다. 안으로는 강건하고 밖으로는 밝은 상으로 모든 만물을 밝히는 상이다. 六五(효의 다섯 번째 음효)의 음이 왕위에 올라 상하의 여러 양들과 응하니 크게 형통하는 괘상이다. 태양이 하늘 높이 솟아있는 상으로 대유는 크게 있다는 뜻이다. 하늘 높이 솟은 태양처럼 세상만물을 비추며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는 모양으로 태양이 없이는 세상에 생명이 하나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태양만큼 고마운 것이 없으며 태양만큼 필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화천대유는 태양처럼 크게 이 세상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효로 풀이하면 왕, 대통령, 사장, 아버지의 위치인 五爻가 음이고 모두 양으로 되어 있는 괘이다. 임금인 五爻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고 밝고 아름답게 쓰는 시로 경축시나 칭송시로 비쳐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왕 같은 사물, 왕 같은 대상이 음으로 가득 차 있어서 긍정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 문장에서 네 번째 문장까지 밝은 분위기로 진행되다가 다섯 번째 여성적이며 우울한 심정을 나타낸 후, 그리고 여섯 번째 문장에서 밝게 끝내는 시쓰기의 기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삼재인 地는 初爻인 양과 二爻인 양이 만나 노양(⚌)이 되었다. 初爻인 地는 흙, 땅, 지구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형이하적인 사물이나 물체를 끌어오는 것이 필요하다. 二爻인 地도 지옥이나 어둠과 같은 세계일지라도 양적인 형이상적 실체의 접근이 필요하다. 人은 三爻인 양과 四爻인 양으로 이루어진 노양으로 형이하적인 동물적, 육체적인 접근과 영혼, 정신적인 형이상적 접근을 긍정적이고 밝게 함으로써 양적인 힘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天은 五爻의 음적인 문장이 오고 六爻엔 양적인 문장이 옴으로써 어둡고 구름이 가득한 하늘이지만 그 속에서 영혼의 세계인 천국과 극락을 바라보는 이상적인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팔괘로 보면 상괘인 외괘는 火(☲:離)이고 하괘인 내괘는 天(☰:乾)으로 이루어져 하늘 위에 해가 떠있는 형상이다. 외괘는 오후, 외적인 것, 쇠퇴, 해체, 성장, 얼굴, 객체, 대상을 상징하는데, 이러한 외괘가 태양과 같으므로 밝고 긍정적이며 행복한 접근이 필요하다. 내괘는 오전, 내적인 것, 도래, 창조, 탄생, 몸, 주체, 나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내괘는 강건하고 광명하며 건조한 의미인 天이므로 적극적이며 지배적인 힘을 띠어야 한다. 화천대유의 시쓰기는 부드럽고 자애로운 왕과 같은 사물이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접근, 칭송이나 찬양과 같은 형식으로 밝고 아름답게 쓰는 방식이다. 지상 최대의 태양과 같은 존재인 시적 대상을 향해 신을 모시듯 격조를 높여 표현하는 기법이다. 화천대유의 변화를 살펴보면 호괘는 양적 묘사에서 마지막 음의 묘사로 뒤집는 ䷪ 택천쾌(澤天快)이며, 배합괘는 정답고 조화로운 표현인 ䷇ 수지비(水地比), 도전괘, 착종괘는 서정적 주제의 통일을 이루는 ䷌ 천화동인(天火同人)이다. [출처] 14. 화천대유|작성자 김기덕   15. ䷎ 지산겸(地山謙)   지산겸은 地(☷:坤)가 위에 있고 山(☶:艮)이 아래에 있는 괘상으로 높은 산이 땅보다 아래에 있으므로 겸손함을 상징한다. 겸은 산같이 높은 덕을 내면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보다 못한 땅 같은 자의 아래에 있으니,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지 말고 남을 존중함이 필요하다. 겸손은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상태이므로 시쓰기에서도 자신의 의도대로 쓰지 않고 독자의 의도에 맞추어 쓰는 방법이다. 독자의 의도에 맞추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고, 모든 시가 그렇지만 특히 독자가 상상하며 유추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 말아야 한다. 효로 풀이하면 九三만 양이고 모두 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괘이므로 첫 번째, 두 번째 문장은 음의 문장을 쓰고, 세 번째 문장은 양의 문장을 쓴 후 나머지는 모두 음의 문장으로 써야 한다. 겸괘에서의 핵심은 九三이다. 九三이 다른 존재에게 겸손해야하지만 다른 존재들도 역시 九三에게 겸손해야 한다. 그것은 곧 시에서 시의 핵심을 세 번째 문장에 오게 하는 것이다. 이 핵심은 음 중에서 양이며, 슬픔 중에서 기쁨이며, 어둠 중에서 빛이며, 절망 중에서 희망인 것이다. 그러나 산은 땅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양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내면적으로 존재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상으로 풀면 天(⚏), 地(⚏)는 음으로 가득 차있다. 그렇게 어둡고 절망적인 상태이지만 시인만은 내면의 강함(⚍:소음)으로 새싹처럼 고개 내밀고 있다. 고개 숙인 새싹들처럼 겸손한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게 내면을 감춘 모습엔 희망이 담겨져 있다. 또한 부드럽고 순한 여성적인 정서 속에 남성적 강함이 숨겨져 있는 모습이다. 시인 자신의 의도나 감정도 숨겨져서 객관성을 갖게 해야 한다. 팔괘로 보면 어머니를 의미하며, 유순함과 서남방과 소, 신체 중의 배를 상징하는 땅(곤괘)이 위에 있고, 산을 의미하며, 소남(小男), 정지, 동북쪽, 신체 중의 손, 개를 상징하는 산이 아래에 위치해 있다. 아래는 산으로 이루어진 단락을 의미하며, 위는 땅으로 이루어진 단락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첫째 단락은 막힘과 단절, 심리적 답답함을 표현해야 하며, 둘째 단락은 유순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여성적인 정서로 이러한 단절과 막힘, 삶의 아픔과 절망을 포용하며 순응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고난 속에서 참고 인내하는 어머니와 같은 자세의 시쓰기이다.    보름달은 기울고 초승달은 커가는 것이 세상이치이고, 높은 곳의 흙은 깎이어 낮은 곳으로 퇴적되며, 물은 평면을 유지하려고 아래로 흐르는 것이 세상 원리이듯이 위대한 시인은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고 겸허한 마음으로 사물을 표현해야 한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았다고 감탄하며 들뜰 것이 아니라 벌레 같은 마음으로 시를 쓸 때 그 시는 산을 품은 땅과 같은 큰 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낮은 자세로 절망하며 흐느끼는 세상을 바라보라. 그리고 그들의 아픔에 대해 내 입장을 숨기고 그들의 입장에서 쓰는 것이 지산겸의 시쓰기이다. ䷎ 지산겸(地山謙)의 호괘는 자연스런 감정표출을 의미하는 ䷧ 뇌수해(雷水解)이며, 도전괘는 다른 하나의 시각으로 전체를 표현하는 ䷏ 뇌지예(雷地豫), 배합괘는 데칼코마니적 기법인 ䷉ 천택리(天澤履), 착종괘는 절해고도의 시인 ䷖ 산지박(山地剝)이다. [출처] 15. 지산겸|작성자 김기덕   * 단락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   단락의 변화에서 다룬 것이 본괘, 호괘,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 지괘이다. 여기에서의 단락 변화는 내용의 새로운 흐름 전개를 말하며, 바라보는 시각의 또 다른 방향이나 새로운 차원을 말한다. 본괘는 쓰고자 하는 시의 본질적 대상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선풍기에 대해 시를 쓴다면, 선풍기의 모양이나 성격, 기능, 작동법, 디자인, 바람의 세기, 가격 등과 같은 선풍기의 기본적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 묘사하는 방법이다. 호괘는 시적 대상에 대한 내면성이나 내면적인 재질 ‧ 부품이 갖는 정신적인 상징성에 대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선풍기에 대해 예를 들면 더위를 식혀주는 성질이나 시간에 맞게 돌아가고 꺼지는 자기조절, 내부적인 모터의 회전에 대한 상징성 등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호괘는 단순히 내부에 있는 부품이라고 해서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성을 말하는 것으로, 시적 대상이 의미하는 형이상적인 것, 또는 상징적인 것을 말한다. 도전괘는 반대편에서 본 입장을 말하는 것으로 사물의 감춰진 모습이나 다른 입장에서 바라본 모습, 또는 상대적인 측면에서 본 시각에서 시적 대상을 묘사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선풍기의 감춰진 뒷모습이나 선풍기와 상관없는 책의 입장이나 에어컨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을 가지고 쓰는 방법이다. 배합괘는 반대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시적 대상이 처한 상황과 반대되는 상황에서 바라보고 접근하여 표현하는 기법이다. 예를 들어 선풍기를 시적 대상으로 잡았다면 히터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든지, 겨울의 상황에서 선풍기를 묘사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착종괘는 상하의 입장을 바꾸는 방법으로 거꾸로 보기의 일종이다. 선풍기에 대해서 본다면 거꾸로 놓고 선풍기의 모양이나 쓰임새를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 역전된 시각, 내려다보기나 올려다보기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괘는 흐름의 종료, 결과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의 사물이나 사건의 존재 결과나 진행 방향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한 결과를 말한다. 인과관계라고도 할 수 있고, 결론적인 도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의 시적 대상을 이러한 여러 각도로 접근하면서 단락을 바꾸고 묘사, 표현한다면 글쓰기의 정해진 룰과 같은 하나하나의 괘들이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64괘의 방법이 다섯 가지의 변괘를 만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글쓰기가 가능해질 것이다. [출처] 단락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작성자 김기덕     16. ䷏ 뇌지예(雷地豫)   뇌지예는 위에 雷(☳:震)가 있고 아래에 地(☷:坤)가 있는 괘상으로 땅을 뚫고 초목이 밖으로 움터서 즐거워하는 모양이다. 豫는 안으로 유순하고 밖으로 움직여 나아가는 모양이니 순히 움직여 나아가는 것이다. 豫는 오직 한 개인 양효가 모든 음효와 호응하는 형태여서 도리에 순응하여 움직이면 형통하는 괘이다. 하늘과 땅도 자연의 도리에 따라 순응하고 움직이듯 나라도 도리에 순응하면 크게 발전함을 의미한다. 시에서는 하나의 시각으로 사물을 표현함을 의미한다. 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듯, 강의 시각으로 세월을 보듯, 바람의 시각에서 낙엽과 인생을 보듯 하나의 주체적인 사물을 통해 활유적, 상징적으로 접근하는 표현 방법이다. 효의 시각에서 살펴보면 뇌지예(雷地豫)는 九四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음효로 이루어져 있다. 九四는 재상, 대신, 간부급 및 교생, 몸통, 몸의 앞부분, 형, 40대의 위치를 의미한다. 또한 九四는 사물의 중심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물의 관점을 중심으로 쓰되 나머지 효가 모두 음이므로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시가 되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부연한다면 음의 문장은 右, 地, 母, 女, 柔, 靜, 下, 偶, 重, 濁, 暗, 後, 末, 逆, 小, 卑, 枝, 老, 哀, 惡, 慾, 病, 死, 緻密, 消極的, 陰凶 등을 나타낼 수 있는 문장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보면 하늘(⚏:노음)과 땅(⚏:노음)이 모두 노음인데, 사람만 소양(⚎)이다. 이는 천지만물이 음으로 둘러싸여 있고 세상을 보는 사람 또한 음의 상태지만, 내면의 음을 감추고 양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 양적인 시각이 자신을 내세우지 못하고 사물의 시각을 빌려 음의 세상을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위에 온 震은 二陰 속에 一陽이 처하여 문이 열려있는 모양으로 一陽이 밖으로 강건히 움직여 변화를 이루는 상이다. 우레가 진동하는 형상이며, 땅 속의 초목이 움트는 상이다. 오행상 양목에 속하며, 물상으로 발(足), 용, 큰길 등을 상징한다. 아래에 온 地는 모두 음으로 이루어져 지극히 유순하고 광활하며 습하다. 안이 비어 물건을 담을 수 있는 모양으로 만물을 생육, 번성시키는 땅을 의미한다. 어머니, 오장육부를 담은 배, 유순한 소 등이 여기에 속하며, 평탄한 대지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땅 위에 울리는 우레와 같은 모양으로 겨울 동안 움츠렸던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지각을 뚫고 힘차게 땅 위로 오르는 기상을 갖고 있다. 현실의 미성숙을 내면의 강함으로 극복하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힘을 느끼게 해야 한다. 뇌지예(雷地豫)의 변괘에서 인과관계로 가자면 지괘를 살펴보아야 하고, 내면의 변화는 호괘인 ䷦ 수산건(水山蹇)으로, 반대 입장은 도전괘인 ䷎ 지산겸(地山謙)괘로, 반대상황은 배합괘인 ䷈ 풍천소축(風天小畜)괘로, 상하의 입장변경인 착종괘는 ䷗ 지뢰복(地雷復)괘로 확장하여 쓸 수 있을 것이다. [출처] 16. 뇌지예|작성자 김기덕   17. ䷐ 택뢰수(澤雷隨)   택뢰수는 위에 澤(☱:兌)이 있고 아래에 雷(☳:震)가 있는 형상으로 아래에서 震이 움직임에 따라 위에서 연못물이 즐겁게 일렁이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隨는 때를 따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해가 동에서 떠서 남을 거쳐 서에서 지듯이 해의 운행에 따라 만물이 좇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내면에는 움직이는 성질이 있고 밖으로는 기뻐하는 덕이 있으니 실천에 옮겨서 기쁜 결실이 있게 되는 괘이다. 효의 위치를 보면 음과 양이 반반으로 섞여 있는데, 첫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시작하여 두 번째, 세 번째는 음의 문장으로 표현된 후, 네 번째, 다섯 번째는 양의 문장으로 표현하여 음양의 조화를 이룬 다음, 음의 문장으로 마무리를 하는 형식이다. 시의 정서를 통일시키는 데 있어서 슬픔과 기쁨의 감정을 어떻게 한꺼번에 표현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음과 양의 관계는 배치의 관계로 양지와 음지를 동시에 그리는 그림과 같다고 생각해야 한다. 즉 양의 문장과 음의 문장의 관계는 음영을 표현한 미술의 빛과 어둠의 기법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빛이 살기 위해서는 어둠이 있어야 하고, 어둠이 돋보이기 위해서는 빛이 존재해야 하듯 배치관계에서의 음양의 조화를 통해 언어적 그림의 선명한 감정전달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천 ‧ 인 ‧ 지가 모두 음과 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地(⚍:소음)는 내면은 강하고 외면은 부드러운 모습으로 형이상적인 땅의 모습보다는 현실적인 땅의 모습에 치중되어 있는데, 天(⚍:소음)도 마찬가지로 상징적인 하늘보다는 현실적인 하늘이 강조되어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人(⚎:소양)은 현실적인 면보다는 이상적인 면이 강하고, 종교나 제의에 치우쳐 있다. 이는 현실을 표현하면서 정신적인 고뇌와 신적인 아타락시아를 추구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풀이해 보면 밑에는 우레가 진동하며 초목이 움터 나오는 형상인데, 위에는 연못이 출렁이며 기쁨을 누리는 형상이다. 팔괘의 두 단락으로 보면 첫째 단락은 생동하며 초목이 움트는 것 같은 활동성을 표현하고, 둘째 단락은 연못의 물이 춤추며 기뻐하는 것 같은 이미지의 표현이다. 택뢰수는 강한 자가 유순한 자를 따르는 형태인데, 유순한 자는 이를 기쁘게 받아들임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화합하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우레가 못 속에 잠겨 있는 상으로 이는 평화와 안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요함은 애수와 석양의 따사로움을 연상케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물결이 일며 생성과 발전의 분위기가 5월의 풀향기처럼 감도는 싱싱하고 젊음이 가득한 고요함이다. 차분하고 잔잔하지만 희망이 넘치는 시쓰기의 방법이다. 택뢰수의 호괘는 점점 커지는 확장적, 상승적 묘사인 ䷴ 풍산점(風山漸)이며, 도전괘, 배합괘는 순탄한 논리의 배반적 기법인 ䷑ 산풍고(山風蠱), 착종괘는 이질적인 문장이나 단락을 연결하는 ䷵ 뇌택귀매(雷澤歸妹)이다. [출처] 17. 택뢰수|작성자 김기덕   18. ䷑ 산풍고(山風蠱)   산풍고는 山(☶:艮)이 위에 있고 風(☴:巽)이 아래에 위치해 있는 상으로 산 아래 바람이 불어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형상이다. 蠱는 그릇(血) 위에 세 마리 벌레가 있는 모양으로 그릇을 좀먹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巽은 한 음이 생하는 모양이고 艮은 두 음이 자라는 모양이니 음이 성하는 가을의 때와 같다. 안으로는 순하고 밖으로는 그침의 덕이 있으니 산과 같은 덕으로 백성들을 교화하는 형상이다. 효로 살펴보면 백성이나 신입사원, 신입생, 10대와 같은 初爻가 음으로 시작하고, 재상, 간부, 몸통, 40대와 같은 四爻, 왕, 대통령, 사장, 아버지, 50대와 같은 五爻가 음으로 이루어진 산풍고는 병들기 쉬운 인생의 고비를 상징하고 있다. 10대의 사춘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따라 인생의 미래는 달라진다. 또한 40대, 50대는 인생에 대한 회의와 허무로 인해 병들기 시작하는 때이다. 병적 허무와 정신적 공황기의 절망적 감정을 시의 내부에 심음으로써 벌레 먹은 듯 감정적 천공을 만드는 시쓰기이다. 즉 양의 바탕 위에 음의 요소를 구멍 뚫듯 배치하는 것이다. 사상으로 보면 하늘(⚎)과 땅(⚎)은 같은 소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만 소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은 형이상적인 천국, 영혼의 세계를 그리고 있고, 땅 또한 지하의 형이상적인 세계인 지옥, 어둠의 세계를 그리고 있으나 人의 세계만 물질적, 육체적인 지향성을 갖고 있다. 이는 건전한 정신세계의 병들음이며, 푸른 잎의 구멍과 같다. 하나의 동질적 바탕 위에 이질적 요소의 구멍 뚫기와 같은 시쓰기이다. 팔괘로 풀이하면 산(☶:艮)인 一陽二陰이 위에 있어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그치는 상인데, 小男, 집지키는 개, 작은 길, 작은 돌 등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아래에는 一陰이 二陽 아래 엎드려 숨어 있는 모양으로 공손 ‧ 겸양하여 자신을 낮추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長女, 노끈, 닭 등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산 아래 바람이 부니 낙엽이 떨어지는 형상이다. 첫째 단락은 나무나 풀과 같이 부드럽고 순탄하며, 땅에 뿌리내리기와 같은 시쓰기이다. 하지만 두 번째 단락은 이러한 순탄함이 막히면서 절망과 좌절의 아픔이 짓누르는 듯한 형상을 가지고 있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이 들 수도 있으나 순탄한 논리의 배반이 군데군데 역설적으로 도입됨으로써 아름다운 단풍잎이 아니라 벌레 먹어 구멍이 뚫려 감정을 더욱 자극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젊은 시기를 보내고 노년의 후회와 허무, 삭막함을 표현하는 시쓰기도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산풍고의 변괘 중 호괘는 ‧䷵ 뇌택귀매(雷澤歸妹)이며, 도전괘‧배합괘는 ䷐ 택뢰수(澤雷隨), 착종괘는 ䷴ 풍산점(風山漸)이다. [출처] 18. 산풍고|작성자 김기덕   19. ䷒ 지택림(地澤臨)   지택림은 위에 地(☷:坤)가 있고 아래에 澤(☱:兌)이 있는 모양으로 땅에 못물이 고여 모든 만물을 기르는 상이다. 臨은 모체 속에서 양이 자라, 나올 때가 임박한 상으로 어머니가 아버지의 기운을 받아 수태한 후 품성을 갖추어 만물이 나오는 상이다. 안의 兌는 기쁨의 상이고, 밖의 坤은 순한 모양이니 기뻐하면서 순하게 나아가는 형상이다. 절기로는 한겨울인 12월이며, 새로운 한 해가 임박하는 때이다. 復괘는 양이 처음 나오는 괘로서 하늘의 문이 열리는 때라면, 양이 하나 더 자라 땅의 문이 열리는 때이고 곧이어 만물이 생겨나는 형상이다. 귀한 양으로 復(䷗)에서 더 발전하여 백성에게 임하니 크게 형통하고 이로운 것이다. 효로 이 상을 풀이하면 初爻와 二爻는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고 나머지 효들은 모두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지는 구성이다. 이 모양은 여러 개의 음이 꽃받침처럼 받쳐주고 그 속에서 양의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두 개의 양의 문장은 꽃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양의 모양을 띠어야 하고 나머지 음의 문장들은 이 두 문장을 뒷받침하는 꽃받침과 같이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양의 문장은 꿈이나 이상과 같은 것이며, 음의 문장은 이 꿈과 이상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현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양의 문장은 형이상적이요, 음의 문장은 형이하적이어서 두 개의 양의 문장에 초점을 두고 나머지 문장은 배경적인 구성을 하는 시쓰기 기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노양(⚌)이고, 人은 노음(⚏)이며, 天도 노음(⚏)이다. 땅에 속한 나무나 짐승, 곤충들은 생기로 가득 차 있지만, 하늘은 아직 흐리고 기온이 풀리지 않았으며, 사람들도 생기를 찾지 못하고 절망과 좌절 속에 있다. 하늘과 인간은 침체되어 있지만 땅만은 새로운 봄을 준비하며 부지런히 얼음 속으로 물이 흐르는 모양이다. 땅의 위대함을 통해 사람과 하늘이 회복되어 가는 희망적 시쓰기 기법이다. 팔괘로 보면 땅(☷) 속에 못(☱)이 있는 모양으로 깊은 연못을 상징한다. 깊은 연못은 인간에게 여러 가지 영감과 교훈을 준다. 깊고 푸른 연못의 맑은 물을 보면 청춘이 즐겁고 인생에 희망이 샘솟는다. 아직 땅은 어둡고 축축하며 무거운 감정이다. 하지만 그 땅 속에서 숨 쉬는 연못은 희망을 비춰준다. 깊고 심오한 영감으로 현실의 어둠을 극복하고 맑고 고요한 심성의 깨달음으로 희망을 찾는 모양이다. 첫 단락은 삶의 기쁨과 깨달음의 고요가 거울 같은 수면처럼 차분하게 나타나야 하고, 둘째 단락은 이러한 깨달음의 세계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암울한 현실과 미완의 세계를 그려야 한다. ䷒ 지택림(地澤臨)은 바닥에 생명처럼 솟아나는 원천이 있다. 고요히 정지하여 있지만 물은 항상 새롭다. 그래서 부패하지도 않고, 시끄럽지도 않고, 격돌하지도 않고, 순조롭고 자연스러우면서 묵은 것과 새것을 교체하면서 변하지 않는다. 음의 문장 속에서 양의 문장이 새로운 꿈과 희망을 제시하며 기쁨을 갖게 하는 시쓰기이다. 지택림의 변괘 중 호괘는 근본을 회복하여 새롭게 나아가는 ䷗ 지뢰복(地雷復)이며, 배합괘는 형이상적인 시를 의미하는 ䷠ 천산둔(天山遯), 도전괘는 군자의 교화가 세상을 감화시키는 ䷓ 풍지관(風地觀), 착종괘는 산문시적인 ䷬ 택지취(澤地萃)이다.   20. ䷓ 풍지관(風地觀)   風地觀은 風(☴:巽)이 위에 있고 地(☷:坤)가 아래에 있는 상으로 땅 위에 바람이 불어 만물이 이를 따라 흔들리는 형상이다. 觀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두루 살피는 모양이니 시적 대상에 대한 관조적인 접근으로 마치 황새가 창공을 날면서 먹이를 찾는 것과 같다. 안으로 지극히 유순하고 밖으로는 부드러운 덕이 있는 모양이니 군자가 마음을 비우고 극한 경지로 들어가 관찰하고 연구하는 괘이다. 또한 땅 위에 바람이 불어 모든 초목이 흔들리는 모양이니 군자의 교화가 세상에 감화를 일으키는 형상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 문장에서 네 번째 문장까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다섯 번째 문장과 여섯 번째 문장이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는 형태이다. 觀의 살핀다는 의미처럼 음의 시각으로 시적 대상을 자세히 관찰, 세밀하게 묘사하다가 결말 부분에서 양의 문장으로 마무리를 짓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슬픔이나 절망, 고통과 같은 음의 성격으로 진행되다가 희망이나 꿈을 불어 넣는 식의 양의 결말로 끝부분을 마무리하는 시의 형태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삼재 중 地는 ⚏(노음)으로 겨울이나 한밤중과 같은 상황을 의미한다. 어두운 현실이나 암담한 미래와 같은, 현실적인 사실이나 사물의 위치, 상태 등이 지극히 쇠퇴해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또한 人도 마찬가지로 ⚏(노음)으로 상황뿐만 아니라 시인이나 시의 주체적 인물이 음의 극적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슬픔이나 절망, 고독의 감정을 가지며 지극히 음의 세계에 빠져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天에서 ⚌(노양)으로 급반전함으로써 세상의 변화와 심리적, 정신적인 변화의 새로운 이상을 꿈꾸는 형식의 시쓰기이다. 팔괘로 보면 땅 위에 바람이 부는 형상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의미를 가진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쓰기의 형태로 관조적인 시쓰기이다. 몰입이 되어서 사물의 내면과 일치하는 치열함보다는 조금 떨어져서 관찰하고 지켜봄으로써 어둡고 답답한 현실의 음적 상황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꿈을 나누는 관조적 묘사를 의미한다. 풍지관의 바람은 얼핏 폭풍이나 태풍과 같은, 나무를 부러뜨리고 지붕을 날려버리는 사나운 바람을 연상하거나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 매섭게 나무 끝을 불어가는 삭풍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풍지관은 그러한 사납고 어지러운 바람이 아니라 풀잎도 꽃봉오리도 즐겁게 어루만져 주는 봄바람이거나 햇살에 눈부시게 쏟아지는 신록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둡고 차가운 현실을 밝고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희망적 꿈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풍지관의 변괘 중 호괘는 ䷖ 산지박(山地剝)이며, 도전괘는 ䷒ 지택림(地澤臨), 배합괘는 ䷡ 뇌천대장(雷天大壯), 착종괘는 ䷭ 지풍승(地風升)이다.   21. ䷔ 화뢰서합(火雷噬嗑)   火雷噬嗑은 火(☲:離)가 위에 있고 雷(☳:震)가 아래에 있는 모양으로 雷電이 합하여 빛나고 두 물건이 서로 함께하여 합하니 火雷噬嗑이다. 噬는 씹는 것이요, 嗑은 다물어 합하는 것이니 입 속의 물건을 씹어 합하는 의미가 있고, 위턱과 아래턱 사이에 물건이 들어 있는 괘의 모양을 하고 있다. 상괘의 離는 번개이고 하괘의 震은 우레로서 번개치고 우레가 따름으로써 서로 모여 합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아침이 지나 한낮이 되는 때이며, 봄철이 지나 여름이 되는 시기이니 만물이 통하는 이치가 있다. 효로 풀이하면 첫 번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되어 있고, 두 번째, 세 번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네 번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빨 사이에 끼어있는 음식과 같이 핵심적 요소(시적주체)가 오고 다섯 번째는 음의 문장, 여섯 번째는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문장이라고 명명된 부분은 꼭 하나의 문장만을 의미하지 않고 여러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내용적인 의미의 통일체를 말한다. 즉 하나의 시적 대상을 음과 양의 시각으로 씹듯이 밀도 있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소음(⚍)으로 이루어져 내면은 강하지만 외면은 부드럽고 약한 모양을 갖고 있다. 人과 天은 소양(⚎)으로 이루어져 속은 부드럽고 약하지만 외면은 강하고 밝은 모습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시인의 의식은 외향적인 하늘과 내향적인 땅의 가운데에서 합하여져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이다. 번개가 치고 그 뒤를 천둥이 따르듯이 시인의 의식 속에 하늘과 땅이 합하여 통합된 주제의식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조화이며, 정신과 물질의 조화, 음과 양의 조화가 있는 시쓰기이다. 팔괘로 풀이하면 번개가 친 다음에 우레가 있는 모양을 이루기도 하고, 하늘에서 번개가 치자 땅에서 우레가 울리는 형상이다. 하지만 시쓰기에서 첫째 단락이 우레의 의미를, 둘째 단락이 번개의 의미가 있는 의미의 배치를 갖기 때문에 이는 역인과적 관계를 의미하며 결과 후 과정을 쓰는 것과 같은 기법이다. 하지만 이들의 섞임은 음식물을 씹었을 때처럼 잘 섞여야 한다. 윗니 아랫니가 음식을 끊고 씹으며 서로 맞닿아 조화를 이루듯이 剛强을 상징하는 양괘인 震과 유화를 상징하는 음괘인 離가 합력하는 긍정적인 시쓰기이라고 할 수 있다. 火雷噬嗑의 호괘는 슬픔과 우울에 침잠된 ䷦ 수산건(水山蹇)이며, 도전괘는 의식의 절제를 의미하는 ䷕ 산화비(山火賁), 배합괘는 정서와 사상의 우물파기인 ䷯ 수풍정(水風井), 착종괘는 다양한 묘사와 풍성한 의식의 ䷶ 뇌화풍(雷火風)이다. [출처] 21. 화뢰서합|작성자 김기덕   22. ䷕ 산화비(山火賁)   산화비는 山(☶:艮)이 위에 있고 火(☲:離)가 아래에 놓여 산속에 불이 있는 모양이다. 생장의 과정을 마치고 아름답게 결실을 맺는 의미를 갖고 있어서 山火賁이다. 賁는 종자가 다 여물어 열매 맺는다는 뜻으로 열매(貝)가 많이 매달린(卉) 모양으로 ‘빛나다, 꾸미다, 열매 맺다’라는 뜻이 있다. 안으로 밝고 화려함에도 밖으로 그치는 덕이 있으니 꾸밈의 소박한 절도를 지켜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순리에 따르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 셋째는 양의 문장, 넷째와 다섯째는 음의 문장, 여섯째는 양의 문장으로 배치되어 있다. 산화비의 여섯 효를 압축하면 ☲(火)의 형태를 갖는데, 이는 내면의 아픔을 감추고 밖으로 아름답게 승화된 시쓰기이다. 그래서 첫 문장과 끝 문장을 양의 문장으로 배치하고 중간에 음의 감정을 내비침으로 전체적으로 내면의 고통은 안으로 숨기고 밖으로는 이러한 진실을 꾸밈으로 더욱 아픔을 절제하는 모습을 갖고 있다. 내면적인 절제의 정한적 요소와 형식적인 절제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지만, 이는 배치를 통한 절제된 내면을 나타내고자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는 소음(⚍)으로 강한 내면을 감추고, 유약하고 부드러운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독자에게 감정적 호소가 되어야 한다. 이 감정적 호소는 낭만주의적인 쏟아놓음이 아니라 절제 속의 호소여야 한다. 이의 구체적인 방법은 땅의 사물적 효는 양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지만 땅의 정신적 효는 음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양적 사물 속에서 음의 감정 및 정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법이 人의 소음(⚍)에서도 계속되다가 마지막 단계인 天의 배치에서 음적인 감정을 뒤엎고 양의 감정으로 승화시켜 희망적인 색채를 띠게 하는 방법이다. 팔괘로 풀이하면 산이 불을 가두고 있는 형국이다. 불은 밝히 드러내고자 하는 감정이며, 여러 가지를 표현하고자 하는 과잉적 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을 산이 막고 있다. 산은 그친다는 뜻과 가로막는 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산화비(山火賁)의 모양을 통해 풀이해 보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가로막고 있는 상이다. 그래서 의식이 절제되어야 하고 슬픔이나 절망의 음적 감정이 수면에 잠긴 채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와 같은 모습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내면의 아름다움, 절제된 감정의 열매 맺음을 통해 함축적인 표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산화비의 변효 중 호괘는 감정표출의 시인 ䷧ 뇌수해(雷水解)이며, 도전괘는 음양의 조화를 이룬 ䷔ 화뢰서합(火雷噬嗑), 배합괘는 절망적 현실을 표현한 ䷬ 택수곤(澤水坤), 착종괘는 하이퍼적 기법인 ䷷ 화산여(火山旅)이다. [출처] 22. 산화비|작성자 김기덕   23. ䷖ 산지박(山地剝)   산지박은 산(☶:艮)이 위에 있고 地(☷:坤)가 아래에 놓여 땅 위에 높이 솟은 산이 아래가 깎여 무너지는 모양이어서 山地剝이라고 한다. 剝은 근본 종자를 의미하는 彔(근본 록)을 刂(선칼 도: 칼, 낫 등)로 베어 열매를 거둠을 이른다. 剝은 안으로 유순히 행하고 밖으로 두터이 드러내지 않으니, 음에 의해 박락(剝落) 되는 때를 알아 밖으로 나아가지 않고 때를 기다려 머무는 덕이 있다. 박괘는 늦가을로서 음이 극성해지는 상강 절기에 해당하니, 낙엽이 지고 열매가 떨어지는 때이며, 대지가 비바람에 침식되어 높이 솟아 깎이는 모습이다. 시에서는 높은 산에 홀로 선 듯한 고독과 절개, 세속에 물들지 않은 고고함의 시이다. 또한 외로움이나 사회적 왕따, 궁지에 몰린 자와 같은 절해고도의 시라고 할 수 있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에서부터 다섯 번째 문장까지 음의 문장으로 구성되다가 마지막 여섯 번째 문장에서 양의 문장으로 끝맺는 방법이다. 전체 분위기에서 양의 문장은 중심이 되는 의식이지만 사라져야 할 의식, 아쉬움의 표현인 의식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음의 감정은 살고 마지막 남은 양의 감정은 떨어져 나가는 낙엽처럼 아름답지만 허무한 것이다. 이 양의 감정은 아쉬움이며, 허무이며, 또한 다음해를 기약하는 결실이며 씨앗이기도 하다. 지속되는 음의 감정이 종국적인 양의 감정을 밀어내고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는 노음(⚏)으로 시기로 보면 한겨울이고, 때로 보면 한밤중이며, 정신으로 보면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음의 기운이 人(⚏:노음)에서도 지속되다가 天(⚎:소양)에서 언뜻 양의 기운이 나타나지만 한밤의 유성과 같이 사라져버릴 것을 예감함으로 극적인 긴장감을 갖게 하는 시쓰기이다. 이는 강물 위에 살얼음과 같으며 튕겨져 나가기 직전의 샴페인 병마개와 같은 상태이다. 그 속에서 극적 긴장감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일몰 직전의 잔광을 그리는 것과 같거나, 엄동설한 직전의 가냘픈 햇살과 같은 시쓰기이다. 팔괘로 보면 땅 위에 솟아 있는 산의 형상을 갖고 있는데, 柔가 剛을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 소인의 세력이 강대해져 바른 정치를 하려 해도 되지 않는 상황과 같이 음적 정서가 팽배해져 양적인 정서가 사라지고 마지막 남은 양마저 변질시켜버릴 듯한 기세다. 짝수, 땅, 어머니, 여자, 부드러움, 고요함, 아래쪽, 우측, 무거움, 탁함, 어두움, 끊어짐, 들어감, 나중, 끝, 반대, 작음, 천함, 가지 등과 같은 음의 배치를 이룬 후 마지막 연에서 양의 문장을 배치하여 극적인 상황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산지박의 변괘인 호괘는 여성적 감정의 표현인 ䷁ 중지곤(重地坤)이며, 도전괘는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 지뢰복(地雷復), 배합괘는 양적 시각의 막판 뒤집기인 ䷪ 택천쾌(澤天夬), 착종괘는 독자의 의도에 맞추는 ䷎ 지산겸(地山謙)이다. [출처] 23. 산지박|작성자 김기덕   24. ䷗ 지뢰복(地雷復)   지뢰복은 地(☷:坤)가 위에 놓이고 雷(☳:震)가 아래에 놓인 괘상으로 땅 속에서 양이 생기기 시작하여 회복하는 모양을 이루니 地雷復이다. 復은 종자인 한 양(日)이 깊은 땅 속에서 서서히 움터 나오는(⼻, 行, 也) 뜻을 가지고 있다. 내면에는 움직임이 있고 외면으로는 유순함의 모습을 갖추었으니 움직여 나아감이 순조로운 모양을 이루고 있다. 復卦는 동짓달(음11월)괘로서 음이 극성한 때이다. 땅 속에서 초목이 발아하는 모습인데, 근본을 회복하여 새롭게 출발하는 의미를 가지며, 서두르지 않고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 사람의 본성을 회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효로 풀이하면 初爻만 양이고 모두 음효로 이루어진 모양으로 첫 문장만 양의 문장으로 배치하고 나머지는 모두 음의 문장으로 배치하는 방법이다. 음으로 가득한 세상에 작은 양의 새싹이 움트는 형국으로 절망 중에 희망을 묘사하는 시이며, 혼탁함 속에서 근본을 찾고자 하는 시이다. 얼어붙은 강물 속에서 소생하는 봄의 물줄기가 흐르고 있는 정신, 현실, 의지를 표현하는 시쓰기로 새로운 시작의 모양을 뜻하고 있다. 사상으로 표현하면 땅에 속한 물질적인 존재의 미미한 변화만 감지될 뿐, 땅의 형이상적인 형태나 人의 형이상적인 면이나 형이하적인 면들은 모두 음의 상황이다. 또한 하늘도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하늘이나 추상적인 하늘이 모두 음의 상황으로 채워져 있다. 그림으로 그린다면 하늘도, 사람도, 땅도 다 어두운데 땅 속에서만 미미한 생명의 움직임이 감지되는 등불을 그리는 것과 같다.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실질적이든 형식적이든 세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며, 시의 제목이나 주제의식에 맞는 하늘적인 요소(눈에 보이는 sky든 정신적인 이상세계든)와 사람과 연관된 삶이나 관념, 또한 땅에 속한 모든 사물과의 차원적인 관계에서 땅의 사물적 요소만이 양으로 표현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양의 사물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양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소금과 같은 존재의 사물이다. 팔괘로 보면 우레의 에너지가 땅 속에 살아있는 것이 復의 괘상이다. 겹겹이 쌓인 여러 음효 밑에 다만 한 개의 양효가 있는데, 중첩된 음의 기운 속에 양의 기운이 살아나고 있는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일몰 직전의 잔광과 같은 산지박의 시쓰기의 정반대로 극한의 벽을 뚫고 빛이 보이는 새벽과 같은 새로운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한 줄기의 어린 광선이지만 그것은 장차 천지를 지배하며 음기와 암흑을 정복하여 퍼져가는 광명이다. 첫째 단락은 변화하고 생동하는 우레의 형상을 그리고, 두 번째 단락에서는 암흑과 얼음으로 둘러싸인 땅의 형상을 그림으로써 잠에서 깨어나는 천지만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지뢰복의 변괘 중 호괘는 여성적 정한의 감정인 ䷁ 중지곤(重地坤)이며, 도전괘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고고함의 ䷖ 산지박(山地剝), 배합괘는 음적 대상도 아름답게 표현한 ䷫ 천풍구(天風姤), 착종괘는 환유적 표현인 ䷏ 뇌지예(雷地豫)이다. [출처] 24.지뢰복 |작성자 김기덕   * 문장 및 단락 구성에 대한 다양한 시각   효의 입장에서 시의 형식을 보면 여섯 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듯이 보이지만, 하나의 효가 꼭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효가 두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으며 세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것은 내용적 연결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여섯 개의 효가 압축되어 세 개의 효로 구성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重天乾(䷀)은 乾(☰)으로, 重地坤(䷁)은 坤(☷)으로, 山澤節(䷨)은 離(☲)로, 雷風恒(䷟)은 坎☵과 같이 압축될 수 있기 때문에 세 개의 문장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또한 이 세 개의 문장도 乾(☰)은 양(⚊)으로, 坤(☷)은 음(⚋)으로, 離(☲)는 음(⚋)으로, 坎(☵)은 음(⚋)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배치의 형태를 참고하여 자유로운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하나의 시 전체를 천 ‧ 인 ‧ 지의 시각으로 접근한 것이다. 이는 차원의 구분이며, 인간을 중심으로 한 우주만물의 차별적 시각이다. 이 천 ‧ 인 ‧ 지 속에 우리가 쓰고자 하는 모든 시적 대상들이 다 들어 있다. 그 대상을 차원에 따라 구분하여 시의 배치에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구분과 재배치의 효율성은 논리마인드맵 기법을 통해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마인드맵 기법은 둥치에서 줄기, 줄기에서 가지, 가지에서 잎이나 열매로 분화되듯이 주역적 시쓰기에서는 태극에서 양의, 양의에서 사상, 사상에서 팔괘, 팔괘에서 육십사괘로 분화되는 과정을 공부했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태극이 양의, 사상, 팔괘, 육십사괘가 되듯이 하나의 문장이 두 문장, 두 문장이 네 문장, 네 문장이 여덟 문장, 여덟 문장이 육십사 개의 문장으로 변화될 수 있으며, 반대로 육십사 개의 문장이 한 문장이 될 수도 있고 두 문장이 될 수도 있으며, 여덟 개의 문장이 두 개의 문장, 네 개의 문장으로 변화될 수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밀한 법칙이 존재하고 그 법칙에 의해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상은 기본적으로 세 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진다. 사상의 기본적 요소는 태양(⚌), 소음(⚍), 소양(⚎), 태음(⚏)이지만 이 네 가지의 상이 육십사괘에서는 천 ‧ 인 ‧ 지의 여섯 개의 효 구조로 배치되기 때문에 세 개의 단락을 형성한다. 이 단락은 표면적인 단락과 이면적인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기 ‧ 서 ‧ 결이나 서론 ‧ 본론 ‧ 결론의 구조를 가질 수도 있다. 팔괘의 시각으로 살펴보면 육십사괘는 乾 ‧ 兌 ‧ 離 ‧ 震 ‧ 巽 ‧ 坎 ‧ 艮 ‧ 坤의 팔괘가 중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두 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팔괘는 세 개의 효로 이루어져 세 개의 문장으로 만들 수도 있고, 이 세 개의 문장을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육십사괘는 다시 팔괘가 될 수 있고, 팔괘는 사상이 될 수 있고, 사상은 하나의 태극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자유로운 확장과 분화, 팽창이 가능하고, 또한 수축과 압축, 절단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육십사괘의 설명과정에서 문장이나 단락으로 표현된 것들은 정확무오한 문법적 해석을 통한 명칭이 아니라 보다 확산되고 재조명된 유연한 명칭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출처] 문장 및 단락 구성에 대한 다양한 시각|작성자 김기덕   25. ䷘ 천뢰무망(天雷无妄)   천뢰무망은 위에 天(☰:乾)이 있고 아래에는 雷(☳:震)가 와서 하늘 아래 우레가 울리는 모양으로, 뇌성벽력이 울리면 누구나 하늘을 두려워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듯이 천도를 따라 바르게 행하므로 无妄이다. 无妄은 하늘의 마음을 갖고 여색을 멀리하며 본성 그대로 행한다는 뜻이 있다. 본성을 회복하면 망령됨이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위에 있는 하늘은 강건하고 아래에 있는 우레는 진동하니 강건하게 나아가는 덕을 갖춘 상으로, 하늘과 같이 공정무사하고 강건한 도로써 본연의 마음을 지켜 하늘에 순응하는 상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배치한 후 나머지 네 번째에서 여섯 번째까지 문장은 모두 양으로 배치하는 형식이다. 망령됨이 없이 하늘의 뜻을 따라 쓰는 방법으로 시인의 감정을 최대한 줄이고 하늘의 큰 진리를 쓰고자 하는 방법이다. 자칫 관념적으로 치우치기 쉬우나 절대적으로 시는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소음)와 人(⚎:소양)이 대립적인 관계를 갖고 있어서 서로의 생각이나 표현이 통일을 이루기가 어려우나 天(⚌:노양)이 밝고 강건하므로 하늘의 뜻을 따라 행하면 다툼이나 거침이 없고 통일된 주제 의식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시의 전개가 형이상적이고 관념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사물을 끌어와 배치관계를 이미지적으로 만들어 주도록 해야 한다. 사물의 속성이나 시인의 생각에 치우치지 말고 보다 넓은 보편적 진리나 원리를 생각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팔괘로 살펴보면 첫째 단락은 우레를 의미하는 것으로 변화가 많고 흔들림이 많은 것이지만 생기가 가득한 단락이다. 두 번째 단락은 지적이고 강건하며, 하늘의 큰 이치가 담긴 단락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레는 땅을 의미하고, 안을 의미하며, 물질적인 형이하를 의미하지만 乾은 하늘을 의미하고, 밖을 의미하며, 형이상을 의미한다. 형이상적인 단락과 형이하적인 단락이 대치를 이루나 형이상적인 단락이 시의 주제성을 이끌고 중심역할을 함으로써 하늘의 뜻을 따르는 시쓰기이다. 천뢰무망은 하늘을 의미하는 건괘가 위에 있고 우레를 의미하는 진괘가 아래에 있어 우레가 하늘에서 크게 진동하고 있는 모양을 상징한다. 이는 하늘의 엄한 뜻이며 세상을 호령하는 하늘의 명령인 것이다. 하늘의 시각에서 세상과 인간을 향해 우레 같은 의미의 시를 표현으로 나타내 주어야 하는 시이다. 天雷无妄의 변괘 중 호괘는 점점 의식의 확장을 꾀하는 ䷴ 풍산점(風山漸)이며, 도전괘는 스케일이 크고 웅장한 시 ䷙ 산천대축(山天大畜), 배합괘는 대지를 뚫고 나오는 나무의 기상을 간직한 ䷭ 지풍승(地風升), 착종괘는 강렬한 남성적 정서에 대한 여성적 정서의 조화를 이룬 ䷡ 뇌천대장(雷天大壯)이다. [출처] 25. 천뢰무망|작성자 김기덕   26. ䷙ 산천대축(山天大畜)   산천대축은 山(☶:艮)이 위에 있고 天(☰:乾)이 아래에 있어 물건이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높이 쌓이는 모양이다. 대축은 크게 쌓는다는 뜻으로 아래의 하늘은 大 ‧ 玄, 위의 산은 田의 모양이다. 안으로는 강건하고 밖으로는 그침이 있으니 산에 하늘의 도가 밀려와 크게 쌓이는 이치가 있다. 흙이 크게 쌓여야 큰 산을 이루고 사람도 학문과 경험이 쌓여야 큰일을 행할 수 있듯이 글을 씀에도 크게 쌓은 사람과 쌓은 것이 없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같을 수가 없다. 효를 분석해보면 첫째, 둘째, 셋째 효는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강하고 튼튼한 받침대를 형성하듯이 안정적이어야 한다. 감정과 정서, 의지의 표현이 긍정적이고 강해야 한다. 넷째, 다섯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유약한 음이 합하여 모이는 형식이다. 하늘의 양기가 아래로 내려 모이는 것이 대축이다. 또한 밑의 세 양은 흐르는 강물과 같지만 위에 있는 두 개의 음이 가로막음으로 흐르지 못하고 고이게 된다. 마지막 상구는 막혔던 것이 넘침으로 한 순간 세상을 범람하게 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산천대축의 효를 통한 시쓰기는 初九, 九二, 九三의 격앙된 감정이 六四, 六五에서 절제되고 응축되어 고인 내적 감정이 마지막 문장에서 승화되어 흘러넘치는 시의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는 노양(⚌)으로 강하고 건실한 힘이 넘친다. 人은 소음(⚍)으로 내면은 강하지만 외적인 표현은 부드럽고 연약하다. 그래서 유약한 감정이 넘치려 하지만 天이 이러한 감정을 억제하고 누르면서 강하고 희망적인 승화의 과정을 나타낸다. 大畜은 장애요소가 클수록 큰 감정을 싹틔우고 큰 감정이 승화되어 보다 더 큰 감동을 만들어 내는 시쓰기이다. 팔괘로 살펴보면 산 속에 들어 있는 하늘이다. 산 같은 사람의 마음에 들어 있는 하늘의 큰 뜻이다. 이러한 큰 뜻은 인생의 풍상을 견디고 산같이 살아온 사람일수록 많이 쌓여 있다. 깊은 내공을 쌓고 그 내공을 풀어내는 시쓰기이다. 산이 그 속에 하늘의 큰 에너지를 받아 축적하고 있는 상태이다. 산은 현실이나 사물적인 것이지만 하늘은 이것들 속에 존재하는 정신적이며, 형이상적인 상징성을 의미한다. 산 속에 감추어진 하늘의 뜻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시적 표현이 요구되는 방법이다. 비행기를 타고 밀림지대를 날아보면 나무의 바다, 풀의 바다가 펼쳐진다. 대해의 물굽이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는 풀과 나무들을 키우는 산의 힘은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 산이 기르는 힘, 축적된 에너지의 강한 시심을 풀어내는 상징적인 접근 방법이다. 山天大畜의 變卦 중 호괘는 이질적인 문장이나 단락을 이어주는 ䷵ 뇌택귀매(雷澤歸妹)이며, 도전괘는 하늘에 순응하는 시쓰기인 ䷘ 천뢰무망(天雷无妄), 배합괘는 산문형식의 시인 ䷬ 택지취(澤地萃), 착종괘는 철학적, 종교적 시각인 ䷠ 천산돈(天山遯)이다. [출처] 26. 산천대축|작성자 김기덕   27. ䷚ 산뢰이(山雷頤)   산뢰이는 山(☶:艮)이 위에 있고 雷(☳:震)가 아래에 있는 모양으로 산 아래 초목이 길러지며, 인체로는 턱의 형상으로 위턱은 그쳐있고 아래턱은 움직임으로써 물건을 씹어 몸을 기르는 상이 山雷頤이다. 頤의 의미를 풀이하면 臣(신하신)은 六二부터 六五까지의 음효를 의미하며, 頁(머리혈)은 上九 양효가 머리가 되어 뭇 효를 기른다는 뜻이다. 上九 양효가 위턱이 되고 初九 양효가 아래턱이 되며, 중간의 음효들이 이빨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頤는 음식을 씹어서 몸을 기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수양하여 자신을 기르고 남을 기르는 修己治人의 의미를 가진다. 효로 풀이하면 아래턱과 위턱을 의미하는 처음 문장과 마지막 문장만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빨을 상징하는 두 번째에서 다섯 번째까지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형식이다. 이는 언어를 삼가고 음식을 절도 있게 먹듯 艮으로 그치고 아래의 震으로 동하며, 가운데는 비어있는 입의 모양이다. 마음을 비우고 언어를 절제함으로 시를 써야 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산뢰이는 대나무와 같은 모양을 이루고 있다. 강하고 단단함이 표면을 감싸고 있지만 내부는 텅 비어서 가볍고 휘어질 수 있는 덕이 있다. 강직함과 절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욕심을 비우고 푸른 정신으로 꼿꼿한 선비정신과 같은 기질의 시쓰기이다. 또한 속이 빈 피리의 소리와 같이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인내와 의지가 담긴 양의 문장이지만 두 번째에서 다섯 번째까지의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서 피리는 강하지만 그 소리는 구슬프고 가냘프듯 시의 형식도 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 산뢰이는 ☲의 상으로 땅과 하늘은 양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람만 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형이상적인 정신세계와 형이하적인 물질세계가 양적요소로 생기가 가득하지만 시인 자신만 음의 감정에 충일해 있음을 의미한다. 이 음의 감정은 슬픔과 절망에 찬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죽임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空의 세계와 같은 것이다. 비어 있음으로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듯, 물질과 정신 속에서의 새로운 깨달음을 통해 내면 비우기와 같은 시이다. 팔괘로 보면 산뢰이는 턱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 맨 아래와 맨 위의 양효는 잇몸과 같고 그 안에 있는 네 개의 음효는 이빨처럼 보인다. ☶(산)은 위턱, ☳(우레)는 아래턱과 같은데, 산은 그친다는 뜻으로 움직이지 않는 위턱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우레는 움직인다는 뜻으로 씹을 때 움직이는 아래턱과 같은 이치를 담고 있다. 이렇게 씹음으로써 생명이 유지되고 성장이 가능할 수 있다. 기른다는 의미의 산뢰이는 물고기를 기르는 바다와 같고, 나무를 기르는 숲과 같으며 새를 기르는 하늘과 같은 것이다. 기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우고 남에게 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이렇게 기르는 마음으로 마음을 비워 쓰는 시가 山雷頤의 방법이다. 산뢰이의 호괘는 ䷁ 중지곤(重地坤)이며, 배합괘는 처음의 의도가 새롭게 변함으로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 택풍대과(澤風大過), 착종괘는 음적 요소들이 주변을 이루고 있지만 정작 시인은 양에 가득찬 시쓰기의 ䷽ 뇌산소과(雷山小過)이다. [출처] 27. 산뢰이|작성자 김기덕   28. ䷛ 택풍대과(澤風大過)   택풍대과는 澤(☱:兌)이 위에 있고 風(☴:巽)이 아래에 있는 상으로 兌(西方金)에 의해 아래의 巽(東方木)이 金克木을 당하여 멸실되며, 本과 末이 虛하여 전도되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大過의 大는 큰 하늘을 의미하며, 過는 지나감을 뜻하니 天道가 변하는 중천과도기를 의미한다. 대과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지는데, 하나는 큰 허물이 있음을, 다른 하나는 지나간다는 뜻이다. 대과에는 하늘의 도가 크게 변함을 의미하는 뜻이 담겨 있어서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가는 때로 정신문명에서 물질문명으로 본말이 전도되는 오늘날과 같은 시기를 말하기도 한다. 대과는 강한 양이 중간에 끼어 있어서 견실함이 있으나 아래와 위가 허한 음으로 이루어져 본말이 전도되는 상으로, 過는 나아가는 과정(辵:쉬엄쉬엄 쉬어갈 착)이 지나쳐 입이 삐뚤어짐(咼:입이 삐뚤어질 괘)을 의미하여 변하는 속도가 빠름을 말한다. 시에서는 처음의 의도가 끝에서 새롭게 변화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조금은 엉뚱하고 의외성이 있는 작품을 말한다. 효로 살펴보면 처음과 끝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졌는데, 두 번째에서 다섯 번째까지는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음의 문장에 비해 양의 문장이 많음으로 인해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이다. 진리의 비진리, 참에 대한 거짓, 논리에 대한 비논리, 의미에 대한 무의미의 추구와 같은 형식으로 의외성이 있거나 비틀기가 있는 작품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소양(⚎)으로 흙, 땅, 지구 등의 형이하적인 요소 중 음의 요소를 취하되 地의 형이상적인 지옥, 어둠의 세계와 같은 것들은 양적인 요소를 취함으로 개인적인 해석에 치중되어 있다. 또한 人은 노양(⚌)으로 동물적, 육체적인 형이하뿐만 아니라 정신이나 영혼의 형이상적인 면까지 양적인 문장, 해석으로 접근되어 있다. 거기에 天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天의 세계를 제외한 우주적인 형이하의 세계를 양의 세계로 표현하고 다가감으로 지나친 개인적 해석과 주관적 감정에 의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는 의미를 갖고 있다. 大過卦는 양이 지나쳐서 균형이 맞지 않는 상태이니 시인의 감정과 상상력을 극대화하여 주관적으로 치우친 시쓰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용적 무리가 따를 수 있으며 균형적 배치에 부합하지 못하는 불균형의 형식을 가질 수 있다. 팔괘로 접근하면 바람(☴:巽) 위에 놓인 연못(☱:兌)과 같은 모양으로 물 위에 거센 바람이 불어 어지러운 풍파를 일으켜 놓은 듯한 혼란과 불안의 상태이다. 또한 형상이 네 개인 양효와 위아래로 갈라져 있는 두 개의 음효로 되어 있어서 음양의 조화를 잃고 있다. 예를 들면 남녀관계에서 첫효는 사효와 상응하는 관계이므로 늙은 여자가 어린 여자를 사랑하는 격이요, 육효는 삼효와 상응하는 관계이므로 늙은 여자가 젊은 남자를 사랑하는 격이니 음양의 조화가 맞지 않듯 시에서도 균형과 조화보다는 불균형과 부조화, 그리고 지나친 자기감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택풍대과의 변괘 중 호괘는 ䷀ 중천건(重天乾)이며, 배합괘는 ䷚ 산뢰이(山雷頤), 착종괘는 주변 사물로 인해 힘을 얻는 ䷼ 풍택중부(風澤中孚)이다. [출처] 28. 택풍대과|작성자 김기덕   29. ䷜ 중수감(重水坎)   중수감은 위와 아래에 모두 물(☵:坎)이 중첩한 상으로 거듭 험난한 데 빠져 있는 모양이다. 坎은 흙이 파여 구덩이를 이룬 모양으로 어렵다는 뜻과 물이 흐름으로써 흙이 쓸려 파이게 되는, 흐르는 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감은 안팎으로 어려운 상태이나 위와 아래의 중에 양이 거하여 중심을 잡아줌으로 양의 강건함이 물 흐르듯 하여 주제의 통일을 이루어 주는 형상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과 셋째 문장은 음의 문장이지만 두 번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중심을 잡아 주고 있다. 또한 넷째, 여섯째 문장도 다섯째 문장이 중간에서 양의 문장으로 기둥 역할을 함으로써 주제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붙잡아 주고 있다. 즉 음의 문장으로 사고의 확장과 변형을 꾀하더라도 중심 문장인 양의 문장에서 시인의 생각과 의식을 잡아 주고, 사고를 한 점으로 모아 줌으로써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집중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人은 노음(⚏)으로 자신의 지나친 감정에 빠져 있는 상태이지만, 天(⚍:소음)과 地(⚎:소양)가 중심을 잡아 줌으로써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人(⚏:노음)의 음적 상상력이 天과 地의 양에 의해 제한되어서 주제의식이나 시적 의도에 갇힘으로써 정서적 안정, 내용적 균형을 이루어 주고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위에도 물(☵:坎)이요, 아래도 물이므로 두 가지 물이 하나로 잘 섞이는 상태이다. 그래서 첫째 단락과 두 번째 단락이 의미상 크게 달라지지 않고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 ☵의 모양을 살펴보면 단락 속에 하나의 핵이 들어 있는 모양이다. 이 핵은 주제적 묘사일 수도 있고, 으뜸 되는 철학일 수도 있고, 가장 강렬한 표현일 수도 있다. 이러한 핵을 가진 단락의 중첩을 통해 의미를 강조하고 이미지를 집약할 수 있다. 중수감의 변괘 중 호괘는 ䷚ 산뢰이(山雷頤)이며, 배합괘는 음이 중심을 잡아주는 ䷝ 중화리(重火離), 도전괘와 착종괘는 부도전괘인 ䷜ 중수감(重水坎)이다.     30. ䷝ 중화리(重火離)   중화리는 상과 하에 불(☲:離)이 거듭된 모양으로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려 있는 형상이다. 離는 짐승의 발자국이 흩어져 있는 모양으로 새(隹)와 산짐승(离) 등이 그물에 걸림을 뜻하며,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려 돌아감과 같이 ‘떠나다’, ‘환하다’, ‘흩어지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안팎으로 밝고 환한 세상을 이뤄 만물을 기르는 모양이다. 시간적으로는 밝은 한낮의 때이며 중천을 의미한다. 괘의 모양을 보면 중수감과 반대의 상황이며, 음과 양의 역전을 이루고 있다. 이를 중수감의 해석과 연관하여 생각해 본다면 중수감은 왕성한 음의 감정을 모아 양의 문장이 기준을 잡고 문장 및 내용의 통일을 이루었다. 반면 重火離는 강한 양의 감정을 음의 문장이 중심을 잡고 음의 감정으로 문장 및 내용의 통일을 이루는 방법이다. 양의 감정은 자칫 들뜨기 쉽고 긍정적이며 순응적이어서 평범할 수 있으나 음의 비판적이고 자기성찰적인 요소가 주제의식이나 철학성을 세워 비범하게 해 주는 시쓰기이다. 효의 시각에서 보면 양의 문장들 가운데 음의 문장을 놓아 차분한 감정의 전개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확장하고 퍼져가고자 하는 양의 성질을 응집시켜 집중시키는 역할을 음이 해 줌으로써 주제의식이나 철학성에 따른 통일성 있는 시쓰기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사상의 시각으로 보아도 人(⚌)의 노양이 天과 地의 음에 막혀 절제되고 함축되는 의미를 갖는다. 팔괘로 보면 離는 불탄다는 뜻으로 해와 달은 하늘에 걸려 있고 온갖 곡식과 초목은 땅에 정착하여 자라고 있다. 그럼으로 천지는 생명과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광명의 세계가 된다. 날마다 새로운 빛, 한결 같은 정열, 젊음과 생명이 약동하는 밝은 세계를 그리되 그 안에서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어둠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불이 타는 불 속에는 재가 생기고 구멍이 생기듯이 눈부시게 빛나기만 하면 가까이 할 수 없다. 밝고 아름답기만 한 사물 속에서 어찌 깊은 철학을 느낄 수 있겠는가? 진정한 생명의 글은 밝은 빛 속의 그늘이나, 어둠 속의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이다. 중수감이나 중화리의 글쓰기는 주제의 통일이나 핵이 되는 묘사를 통해 시적 감정을 통일시키는 기법이다. 중화리의 변괘 중 호괘는 ䷛ 택풍대과(澤風大過)이며, 배합괘는 ䷜ 중수감(重水坎), 착종괘, 도전괘는 부도전괘인 ䷝ 중화리(重火離)이다. [출처] 30. 중화리|작성자 김기덕   31. ䷞ 택산함(澤山咸)   택산함은 산(☶:艮) 위에 못(☱:兌)이 있는 모양으로 산의 양기는 아래로 향하고 못의 음 기운은 증발하여 위로 올라가 서로 통하는 형상이다. 산과 연못의 기운이 상통하고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상이니, 咸은 서로 느껴 함께하는 뜻이다. 咸은 서로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로 합하는 ‘다 함’의 뜻을 갖고 있다. 感이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면 咸은 보다 포괄적인 뜻으로 모든 음양의 기운이 서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자연적으로는 하늘의 양기는 산을 거쳐 땅으로 내리고 땅의 음기는 못을 통하여 하늘로 올라가 교통함을 의미한다. 인간적으로는 소남과 소녀가 느끼는 것으로 교합을 의미하며, 수도로는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도통하는 것이 咸이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셋째에서 다섯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졌다가 다시 마지막에 음의 문장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는 음과 양이 교합하여 감정을 주고받듯 서로 상통하는 감상적인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노음(⚏), 人은 노양(⚌)으로 이루어지고 天은 소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地는 음적이어서 받아들이고, 人은 양적이어서 발산하고, 天은 강함을 순하고 부드러움으로 조화시켜 서로의 감정을 하나로 만들고 있다. 팔괘로 풀이해 보면 하늘의 성기인 산이 아래에 있고 땅의 성기인 못이 위에 있는 상으로 서로 기운이 통하는 상태이다. 시쓰기에서도 사람과 세상 모든 만물이 통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내용적으로는 감상적이며, 서정적인 것을 의미하며, 기법적으로는 활유적인 기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독자와의 소통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과 세계가 통할 수 있는 시쓰기로 지적인 배치가 아니라 정서적인 배치를 이루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시쓰기가 되어야 한다. 咸은 感과 같다. 즉 느낀다는 의미로 음과 양의 두 에너지가 감응하고 협력하여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택산함의 변괘 중 호괘는 음의 대상에 대한 양적표현을 이룬 ䷫ 천풍구(天風姤)이며, 도전괘는 항구한 이치를 발견하고 쓰는 시인 ䷟ 뇌풍항(雷風恒), 배합괘, 착종괘는 헌시나 찬양시인 ䷨ 산택손(山澤巽)이다. [출처] 31. 택산함|작성자 김기덕    뇌풍항(雷風恒)   뇌풍항은 雷(☳:震)가 위에 있고 유순한 風(☴:巽)이 아래에 있어서 함께 순응하여 움직인다. 천지의 법칙은 항구하여 그치는 일이 없다. 하나가 마치면 하나가 시작된다. 해와 달은 하늘의 항구불변의 원칙을 얻었고, 춘하추동의 사계절은 항상 변화하며 있기 때문에 영원한 순환을 계속할 수 있다. 성현도 그 도를 지켜 항구해야 비로소 천지교화가 가능할 것이다. 항구한 것을 깊이 관찰함으로 천지만물의 실상을 볼 수 있듯, 천지만물의 이치를 발견하고 그 진리에 맞는 시쓰기가 바로 뇌풍항이다. 恒은 천지간(二)의 日, 月(日)이 서로 짝하되 끝없이 왕래 순환함으로써 영구히 주야를 밝히듯, 서로의 마음을 합하여 부부로서 항구한 도를 갖춤을 의미한다. 안으로 음목이 뿌리박고 밖으로 양목이 뿌리를 뻗어 장구히 생장하는 모양이며, 인사적으로는 장남이 위엄을 보이고 장녀가 공손히 집안일을 주장하는 상으로 부부의 도를 이루고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처음에 음의 문장이 오고 양의 문장이 두 번째에서 네 번째 문장까지 온 후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음의 문장이 와서 음과 양의 조화와 균형을 통한 항구적 성장을 표현하고 있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뿌리를 박고, 人(⚌)은 성장하고, 天(⚏)은 씨앗을 맺음으로 항구적인 법칙을 말하고 있다. 항구한 법칙의 원리를 통해 변함없는 진리의 표현을 의미한다. 팔괘로 살펴보면 우레와 바람은 만물을 흔들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잠시도 머무르는 일이 없다. 모든 것은 움직임으로, 곧 살아 있음으로 그 상태를 지속할 수 있고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정지되고 고정된 것이 계속되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살아 있는 시, 마음을 움직이는 시가 영원할 수 있다. 그것은 사고의 정지와 고정이 아닌 변화와 새로움이며 형식의 낯설게 하기이다. 뇌풍항의 호괘는 ䷪ 택천쾌(澤天夬)이며, 도전괘는 ䷞ 택산함(澤山咸), 배합괘, 착종괘는 위에 것을 덜어서 아래에 보태주는 ䷩ 풍뇌익(風雷益)이다. [출처] 32. 뇌풍항|작성자 김기덕   33. ䷠ 천산돈(天山遯)   천산돈은 위에 天(☰:乾)이 있고 아래에 山(☶:艮)이 있는 모양으로 세상을 피해 은둔하며 하늘이 부여한 명을 지키는 상이다. 遯은 돼지(豚: 돼지 돈)와 같이 어리석은 체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도를 닦는(辵-쉬엄쉬엄 쉬어갈 착: 점차 움직여 나아감) 의미가 있다. 괘상에서도 아래의 두 음(소인)이 자라 점차 네 개의 양(군자)을 핍박하는 형상이다. 遯은 안으로 산과 같이 굳건한 절개와 자제를 행하고 밖으로는 하늘과 같이 강건한 도로써 소인을 교화하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시에서 보자면 천산돈은 소인배적인 생각, 즉 형이하적인 감정을 억제하고 형이상적인 생각으로 뻗어감을 의미하는 형이상시라고 볼 수 있다. 형이상시는 신이나 절대자의 존재인식과 철학적인 것과 관련이 있는 시로 철학적, 종교적 경향을 지니게 된다. 형이상시의 중요한 특징은 기상(奇想-conceit)을 중심으로 한 구조인데, 기상은 두 가지 사물이나 개념을 교묘하고 대담하게 연결하여 뜻밖의 유사성을 발견하려는 시 수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효로 풀이해 보면 첫 문장이나 둘째 문장은 형이하적인 사물을 끌어오지만 셋째에서부터 여섯 번째까지는 끌어온 사물과 연결되는 추상적 이미지를 배치시키는 방법이다. 밑에 두 개의 음효는 형이하적인 것이며 사물적인 요소이지만 이 요소들이 억눌리면서 형이상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들로 대체되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음(⚏)으로 현실적인 생각, 범속한 것이나 비천한 것을 의미하는데 人과 天은 노양(⚌)으로 성에 속한 것이나 정신적인 것, 고귀하고 고차원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이는 곧 사물의 평범성을 땅에서 취하여 시인의 고결한 정신을 통해 새로운 정신세계를 창출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물질적이고 비천한 것은 억제되고 정신적이고 고결한 것은 상승하는 시쓰기이다. 팔괘로 보면 산인 첫째 단락과 하늘인 둘째 단락의 배치를 통해 유사성을 발견하려는 방법이다. 천산돈은 선비적 은둔사상의 발로가 되었다. 은둔 속에 세상을 피해 자신만의 도를 닦기 위한 뜻이 담겨 있다. 이는 곧 물질이나 사물 그 자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철학, 새로운 추상적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의도의 시쓰기 방법이다. 천산돈의 변괘 중 호괘는 음의 대상에 대한 양의 표현을 이룬 ䷫ 천풍구(天風姤)이며, 도전괘는 강한 남성적 출발에 여성적 마침을 가짐으로 음양의 균형을 꾀하는 ䷡ 뇌천대장(雷天大壯), 배합괘는 생수처럼 솟는 원천의 시인 ䷒ 지택림(地澤臨), 착종괘는 웅장한 스케일의 ䷙ 산천대축(山天大畜)이다. [출처] 33. 천산돈|작성자 김기덕   34. ䷡ 뇌천대장(雷天大壯)   뇌천대장은 아래에 天(☰:乾)이 있고 위에 雷(☳:震)가 울리는 모양으로, 안으로는 강건하고 밖으로는 크게 움직여 씩씩한 상을 나타내고 있다. 大壯의 大는 하나(一)가 둘(人)로 늘어나 커지는 것이며, 壯은 문무를 겸비한 장부(士)가 방패(爿: 널빤지, 방패)를 들고 전진함을 뜻한다. 하늘 위에 뇌성이 울리는 괘상으로 양기가 크게 성장하는 모습이다. 시기적으로는 2월(음)로서 양기가 성장하여 초목이 움터 나오려는 때이고 방위로는 동방인 묘에 해당하니 출문하는 의미가 있다. 시에서는 너무 강렬한 의식의 일방적 진행은 시적 정서를 떨어뜨리고 양적 요소에 치우침으로 구호적 성격이 되기 쉽다. 이러한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끝에서 여성적인 정서를 끌어와 남성적 이미지의 상쇄를 꾀하는 방법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 문장에서 네 번째 문장까지는 양의 문장으로 배치하고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엔 음효를 배치함으로써 상승된 격정적 감정을 눌러주고 차분한 이미지로 마무리하고 있다. 또한 긍정적이고 밝은 이미지에서 마무리를 어둡고 부정적인 색깔로 처리함으로써 밝은 모습으로만 뻗어가려는 흐름을 끊고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와 人은 노양(⚌)으로 물질이나 심리상태가 모두 양이다. 이런 양적 요소에 노음(⚏)인 天을 배치하여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감정으로 끝을 맺었다. 이는 상반된 감정을 끌어와 불타듯 왕성한 의지적 이미지를 억누름으로 보다 더 양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팔괘로 접근하면 하늘 위에서 우레가 울고 있다. 크게 뻗어가는 상이며 번창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뻗다보면 교만해지고 또 가벼워질 수 있는 상태에서 음적 요소로 끝맺음으로 무게와 깊이를 더해 주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뇌천대장의 변괘 중 호괘는 양의 일관된 진행에 대한 마지막 뒤집기의 ䷪ 택천쾌(澤天夬)이며, 배합괘는 군자의 교화와 같은 ䷓ 풍지관(風地觀), 착종괘는 하늘에 순응하는 시쓰기의 ䷘천뢰무망(天雷无妄)이다. [출처] 34. 뇌천대장|작성자 김기덕   35. ䷢ 화지진(火地晉)   화지진은 땅(☷:坤) 위로 불(☲:離)이 나온 모양으로 태양이 지평선 위로 떠올라 나아가는 일출과 같다. 晉은 밝은 기운(日)이 地間(二)에 나타나 환히 밝힘을 가리키니 ‘나아가다’, ‘눈동자’의 뜻이 있다. 晉은 안으로 유순하고 밖으로는 밝은 덕이 있으므로 해가 땅 위에 떠올라 세상을 두루 비추는 일출의 모양이니, 본래의 성품을 밝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효로 풀이하면 地의 첫째, 둘째, 셋째 문장은 모두 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地의 세 음은 어두운 땅과 같은 현실을 의미한다. 이 어두운 땅, 이슬 젖은 눈물의 땅을 태양이 떠올라 밝게 비추듯이 地의 세 문장은 음의 문장을 이룬다. 이 음의 문장이 있은 다음 네 번째로 양의 문장이 와서 어둠을 가시게 하고 젖은 눈물을 말려 주게 된다. 다섯째 문장에서는 아직 덜 마른 땅처럼 음이 남아 있고, 여섯 번째 양의 문장으로 마무리를 밝고 희망적으로 배치함으로 힘을 내 정진하는 형식의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노음(⚏)으로 어둠과 눈물의 땅이지만 人에서 소양(⚎)은 내적 어둠을 묻고 밝은 빛으로 나타남으로 희망적으로 전진하게 되며, 天도 마찬가지로 소양(⚎)으로 차츰 어둠을 걷고 밝아지는 느낌의 방식이다. 팔괘로 살펴보면 晉은 進과 같다. 밝은 태양이 지평선 위에 나타나 순차적으로 하늘에 올라 大明의 세상을 이뤄가는 기상이다. 하늘로 오르는 태양은 아침의 태양이다. 어둠을 밝히는 세상만물을 따뜻하게 감싸는 꿈과 희망의 시가 바로 火地晉이다. 화지진의 변괘 중 호괘는 꿈과 희망을 밝히는 화지진의 내면은 슬픔과 고통의 극복임을 의미하는 ䷦ 수산건(水山蹇)이며, 배합괘는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염원의 ䷄ 수천수(水天需)이고, 도전괘 및 착종괘는 절명시나 비탄시의 ䷣ 지화명이(地火明夷)이다. [출처] 35. 화지진|작성자 김기덕   36. ䷣ 지화명이(地火明夷)   지화명이는 위에 땅(☷:坤)이 있고 아래에 불(☲:離)이 있는 상으로 해가 져서 땅 속으로 들어간 모양으로 밝음이 어두움에 묻힌 상태이다. 明夷의 明은 日과 月의 會意字로서 해와 달이 주야로 밝힘을 의미하며, 夷는 大+弓 으로 큰 활로 인해 상처를 입음을 의미한다. 明夷는 안으로는 밝으면서도 밖으로는 유순함으로 행하는 상이다. 시에서는 밝은 감정을 숨기고 우수와 고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와 셋째 문장만 양의 문장으로 배치하고 나머지 문장은 모두 음으로 배치하여 해와 달이 사라진 암흑과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절명시나 비탄적 감정의 시로 꿈과 희망이 없는 세계를 표현하는 기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와 人은 소음(⚍)으로 안으로는 밝은 모습을 가지고 있으나 밖으로 밝게 표현하지 않고 어둡고 음침하게 표현함으로 음적인 감정표현이 된다. 또한 天은 노음(⚏)으로 음적인 감정이 발전 심화됨으로 어둠은 더욱 어둡게, 슬픔은 더욱 슬프게 표현되어 절망적인 비탄의 감정이 지배하게 된다. 팔괘로 풀이하면 첫째 단락은 해나 달 같은 밝음이 오지만 두 번째 단락에서 지하에 갇히게 됨으로 기쁨이나 행복은 사라지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감정만 남아서 어둠을 표현하고 있다. 밝은 감정도 어둡게 몰아가는 방법으로 감정의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고난을 참고 견디는 모양으로 인내하고 견디는 고난극복의 상이다. 明夷는 태양이 땅 속에 들어간 상태, 고난에 처한 상태이며, 밝은 것이 패하는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므로 밝고 아름다운 세상보다는 어둡고 험한 세상을 표현하고, 그 속성에 맞는 사물의 배치를 이루어 절망적으로 나아가는 시쓰기이다. 지화명이의 변괘 중 호괘를 살펴보면 ䷧ 뇌수해(雷水解)이며, 배합괘는 ䷅ 천수송(天水訟), 도전괘, 착종괘는 ䷢ 화지진(火地晉)이다. 변괘에 대해 너무 어렵게 생각할 수 있으나 변괘는 본괘에 대한 다른 방향의 시각이라고 생각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본괘라는 하나의 사물이 있다면 옆에서 보고, 위에서 보고, 밑에서 보고, 속에 들어가서 봄으로 그 사물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시의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다. [출처] 36. 지화명이|작성자 김기덕   37. ䷤ 풍화가인(風火家人)   풍화가인은 안으로 불(☲:離)이 있고 밖으로 바람(☴:巽)이 불어 바람을 타고 불이 성하는 모양이며, 밖에서 들어와 안을 밝히는 의미가 있다. 아래의 離(☲)는 밝은 생명력을 뜻하는 人이요, 위의 巽(☴)은 안을 가지런히 정돈함을 의미하니 齊家의 家에 해당한다. 또한 장녀(巽)가 위에서 가사를 이끌고 중녀(離)는 아래에서 밝게 응하니 가인이다. 가인은 집안을 바르게 하는 괘이다. 집안을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제 몸을 먼저 닦아야 하듯 한 편의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마음의 수양과 깨달음이 필요하다. 가인의 시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이며, 내면의 깨달음과 자성의 시이다. 효로 살펴보면 긍정과 부정, 희망과 절망의 반복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발견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첫 문장의 배치는 양의 문장, 둘째는 음의 문장, 셋째는 양의 문장, 넷째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지다가 다섯째, 여섯째에서 양의 문장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와 人(⚍)은 양과 음이 섞여서 갈등과 고민, 번뇌의 모양을 이루다가 天(⚌)에서 긍정과 화합과 깨달음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이는 속과 성이 섞인 세상의 삶에서 성을 깨닫고 성적인 삶을 추구하는, 종교는 아니지만 종교적인 성향의 자기성찰적인 시쓰기이다. 팔괘로 보면 家人은 집안사람이란 뜻으로 가족을 의미한다. 바람과 불을 가정의 심볼로 표현했는데, 불이 타면 바람이 생기고 바람은 다시 그 불을 부채질하여 확대 발전된다. 이는 가정이 잘 다스려지면 바른 길이 시작되고 국가와 사회로 뻗어가 큰 발전을 이룸과 같다. 시에서는 가정의 바른 도는 수신에서 시작되듯이 자신을 돌아보고 깨달음으로써 시의 큰 발전은 시작되는 것이다. 바로 풍화가인의 시쓰기는 내면으로 돌아가 근본을 살펴봄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풍화가인의 변효 중 호괘는 비정석적, 비상식적인 부조화의 배치인 ䷿ 화수미제(火水未濟)이며, 도전괘는 어긋남에 의해 강조되는 시인 ䷥ 화택규(火澤睽), 배합괘는 강한 감정표출의 ䷧ 뇌수해(雷水解), 착종괘는 불을 때듯 하는 간절한 시의 ䷱ 화풍정(火風鼎)이다. [출처] 37. 풍화가인|작성자 김기덕   38. ䷥ 화택규(火澤睽)   화택규는 연못(☱:兌)이 아래에 있고 불(☲:離)이 위에 있는 모양으로 밖의 불은 위로 타오르고 안의 연못물은 아래로 고여서 서로 어긋나게 나아가는 상이다. 괘상으로 볼 때 離는 日行을 뜻하고 兌는 月行을 가리키는데, 일행도수에 비해 월행도수가 어긋나는 것이 규이다. 나무를 구부리고 깎아 활과 화살을 만들어 세상에 보임은 睽卦에서 取하였다고 한다. 활을 쏠 때 활줄은 뒤로 당기고 활대는 앞으로 밀면서 생기는 힘이 화살을 격발하게 하니 비록 처음은 어긋나나 그 어긋남에 의해 힘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시에서 어긋남에 의해 시가 강조되고 강렬해져 깊은 감동을 주는 경우를 의미한다. 대칭적, 또는 대조적인 표현 기법을 통해 감동을 더해 주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효로 풀이하면 도입부인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문장만 양의 문장이 오고 셋째는 음의 문장, 넷째는 양의 문장, 다섯째는 음의 문장, 여섯째는 양의 문장이 와서 양의 문장과 음의 문장이 교차하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서로 어긋나는 반대 방향의 시각, 표현을 통해 도입부에 제시한 표현을 강조하고 의미를 확장시키는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양(⚌)으로 확실한 주제적인 표현을 내걸고 그 표현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표현을 人(⚎)이나 天(⚎)에서 대조적, 대칭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의미의 확장을 꾀하고 표현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처음의 주제적 표현을 강조해 주는 시쓰기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불(☲)과 연못(☱)은 불과 물의 관계처럼 서로 상극이라고 할 수 있다. 연못은 아래로 흐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불은 위로 솟아오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의 향하는 방향이 반대 방향이다. 이는 강한 반발심을 의미하며 반항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 睽라는 한자의 뜻이 ‘사팔눈’, ‘노려보다’, ‘등지다’의 의미이듯 삐딱한 시각, 거꾸로 보기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창작자의 의도가 ‘삐딱하게 보기’이며, ‘거꾸로 보기’라고도 할 수 있다. 많은 시인들이 ‘삐딱하게 보기’나 ‘거꾸로 보기’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음과 양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끌어오거나, 오행의 상극의 관계를 알고 사물을 끌어온다면 ‘삐딱하게 보기’나 ‘거꾸로 보기’, 또는 ‘반대적인 접근’, ‘대칭적인 관계’ 설정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시의 정서나 의미를 강조하여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화택규의 변괘 중 호괘는 윤리적이며 정석적인 ䷾ 수화기제(水火旣濟)이며, 도전괘는 내면의 깨달음과 자성의 시인 ䷤ 풍화가인(風火家人), 배합괘는 슬픔과 우울에 침잠된 정서의 ䷦ 수산건(水山蹇), 착종괘는 대결구도적 배치의 ䷰ 택화혁(澤火革)이다. [출처] 38. 화택규|작성자 김기덕   39. ䷦ 수산건(水山蹇)   水山蹇은 水(☵:坎)가 위에 있고 山(☶:艮)이 아래에 처한 모양인데, 험한 것을 보고 안에서 그쳐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만일 이를 어기고 전진한다면 큰 난관에 빠지므로 경계하여 蹇이라 하였다. 蹇의 의미를 살펴보면 외괘인 坎은 北方水로서 추운 겨울철에 해당하여 寒이고, 내괘인 간은 그치는 것이므로 발(足)이 얼어붙어 나아가기 힘든 상태를 말한다. 시에서 蹇의 상황은 큰 난관에 부딪혀 절망에 빠져있는 감정을 의미하며 슬픔과 우울함에 침잠된 감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와 둘째 문장엔 음의 문장이 오고, 셋째는 양의 문장, 넷째는 음의 문장, 그리고 다섯째는 양의 문장이 온 후 여섯째는 음의 문장이 오는 형식이다. ‘첫째 문장’이나 ‘둘째 문장’과 같이 표현하고 있는 문장의 개념은 표면상의 한 문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상, 내용상의 문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첫 번째’라고 표현했더라도 두 개, 또는 세 개의 문장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 蹇의 여섯 효는 山戰水戰의 험난한 역경을 겪은 괘상이며, 산 위에서 비를 만나는 상황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삼효와 오효가 양효로 이루어져 있는데, 삼효는 산의 꼭대기, 곧 높은 이상과 같은 것이고, 오효는 자아를 상징하므로 높은 이상의 자아를 가지고 있으나 현실은 절망적이기 때문에 그 절망감은 더욱 큰 느낌을 가지게 된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는 노음(⚏)으로 한겨울과 같으며, 人과 天은 소음(⚍)으로 새싹을 기다리는 봄과 같다. 이는 한겨울의 땅 속에 뿌리를 박고 봄을 열망하지만 현실은 아직 얼어붙은 동토의 극심한 어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시에서도 새벽이 오기 전에 가장 어둠이 짙듯이 봄을 기다리는 한겨울의 삭막한 감정이 더욱 절박한 것과 같은 절망적 표현을 의미한다. 팔괘로 보면 산과 물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험난한 형국으로 첫째 단락은 山(☶:艮)으로 막힘이 있는 정서의 답답함을, 둘째 단락은 水(☵:坎)로 구덩이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것과 같은 심정을 표현하는 절망적 표현기법이다. 수산건의 변괘 중 호괘는 ䷿ 화수미제(火水未濟)이며, 도전괘는 ䷧ 뇌수해(雷水解), 배합괘는 ䷥ 화택규(火澤睽), 착종괘는 ䷃ 산수몽(山水蒙)이다. [출처] 39. 수산건|작성자 김기덕   40. ䷧ 뇌수해(雷水解)   뇌수해는 위로 움직임이 있는 우레(☳:震)가 動하고, 아래에는 험한 물(☵:坎)이 있어 움직임으로써 험난함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외괘인 震은 밖으로 움직여 나오는 것이니 童牛의 뿔(角) 형상이다. 내호괘인 離는 伐兵의 상으로 刀가 나오며, 中虛하여 심성이 유순한 牛로 나타나기도 한다. 解는 험한 내적 과정을 지난 후 밖으로 순순히 풀려나오는 것을 상징하는 괘인데, 시에서는 가슴에 맺혔던 감정을 밖으로 술술 풀어내는 감정표출의 시를 의미한다. 일부는 측상의 시, 배설의 시라고도 하지만, 여기에는 감정의 절제와 언어의 조탁이 기본적으로 밑바탕이 되어야 하며, 자신의 감정표현에 대한 적절한 묘사가 필요하다. 효로 풀이해 보면 첫째는 음의 문장, 둘째는 양의 문장, 셋째는 음의 문장, 넷째는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며 다섯째와 여섯째는 음의 문장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뇌수해의 모양을 보면 이효와 사효의 양이 열린 입과 같고, 삼효는 입안의 여자 혀와 같은 형상으로 쏟아내는 감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보면 地와 人은 소양(⚎)으로 이루어져 안에 맺힌 것들이 풀려 나오는 형상이지만, 아직 天은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는 天(마음)에 맺힌 감정들이 人(언어)과 地(행동)로 표출되고 있는 과정을 나타내 주고 있다. 팔괘롤 풀이하면 뇌수해의 우레는 움직이는 것이고 물은 험난한 것이므로 험난함에서 벗어남을 상징한다. 봄 우레에 봄비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우레가 울고 봄비가 내리면 얼었던 세상이 풀리며 온 세상에 초목이 피어나듯이 해는 풀리는 감정을 의미한다. 첫째 단락은 坎으로 고난이나 심적 갈등에 대한 표현을 의미하며, 두 번째 단락에서는 변화에 대한 도약적 감정의 표현을 통한 감정표출의 시이다. 뇌수해의 변괘 중 호괘는 정서적 안정을 이룬 높은 성취도의 ䷾ 수화기제(水火旣濟)이며, 도전괘는 큰 난관의 ䷦ 수산건(水山蹇), 배합괘는 내면의 깨달음과 자성의 시 ䷤ 풍화가인(風火家人), 착종괘는 험한 가운데 새로움이 움트는 ䷂ 수뢰둔(水雷屯)이다. [출처] 40. 뇌수해|작성자 김기덕   41. ䷨ 산택손(山澤損)   산택손은 산(☶:艮) 아래 연못(☱:兌)이 놓인 상황으로 아래에 있는 연못의 기운이 발하여 산에 덜어주는 상이다. 윤택한 못의 기운이 산속의 풀과 나무와 짐승들에게 생기를 공급하고 활력을 주듯 안을 덜어서 밖에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損은 물건의 수효(員:수효원)를 손으로 헤아려 덜어주는 뜻과, 어린 생명(具)이 모태(口) 밖으로 나오는 것을 손(手)으로 받아내는 뜻이 있다. 시에서는 힘과 용기를 주거나 위로를 줄 수 있는 찬양시, 헌시, 칭송시 등과 같은 것을 말한다. 損은 아래 백성의 것을 덜어 위(政府)를 더해 주어 백성의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는 것과 같다. 이는 위를 의미하는 부모나 선배, 선생님이나 상사, 떠받드는 애인 등으로 덜어 주는 정신적 감정의 표현이 바로 산택손의 시쓰기이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와 둘째 문장엔 양효가 오고 셋째, 넷째, 다섯째 문장엔 음효가 왔다가 마지막 여섯째 문장엔 양의 문장 배치로 끝맺는 형식이다. 첫째, 둘째 문장에서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며 의지적인 장점이나 강점을 배치하고, 삼, 사, 오효에서 열악한 현실이나 부정적 현실을 끌어와 대치시킨 후 마지막에서 찬양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 기쁨과 힘을 줄 수 있는 시쓰기의 방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노양(⚌)인데, 이는 넉넉함이고 풍요함을 의미한다. 한낮의 태양과 같은 뜨거운 열기이며, 한여름과 같은 왕성함이다. 地의 이 왕성함이 노음(⚏)인 人이나 소양(⚎)인 天에게 덜어 줌으로써 삶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損의 형상은 澤(☱:兌)의 삼효가 음효로서 그 모습이 마치 아래에서 삼효를 떼어내어 위의 山(☶:艮)에 있는 사효, 오효의 음에 보태어 주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이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봉사하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산택손의 반대인 풍뢰익(䷩)은 위의 것을 덜어서 아래에 보태 주는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 단락은 기쁨과 풍요함이며, 둘째 단락은 막힘과 부족함이 있어 채워지는 느낌의 시쓰기 방법이다. 산택손의 변괘 중 호괘는 중첩된 음의 기운 속에 양의 기운이 살아나는 ䷗ 지뢰복(地雷復)이며, 도전괘는 꿈과 희망의 시인 ䷩ 풍뢰익(風雷益), 배합괘, 착종괘는 감상적이며 정서적인 교통을 이루는 ䷞ 택산함(澤山咸)이다. [출처] 41. 산택손|작성자 김기덕   42. ䷩ 풍뢰익(風雷益)   풍뢰익은 바람(☴:巽) 아래 우레(☳:震)가 일어나는 모양으로 바람은 아래로 내려오고 우레는 위로 올라가 서로 부딪히며 만물이 크게 동요, 진작하여 유익함이 생기는 상이다. 益은 초목을 고무 진작시켜 가지가 무성히 성장하는 상인데, 震은 양목으로 뿌리부터 줄기를 뻗어나가는 것이요, 巽은 음목으로 가지에 꽃과 열매가 열리는 모양이다. 益은 위의 것을 덜어서 아래에 보태는 것을 상징한다. 또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위하여 성의와 노력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태양이 땅 위의 모든 생명들이 원하는 열과 빛을 보내어 생성 발전시키듯이 고난에 처한 사람이나 아랫사람, 아니면 서민이나 죄인, 불우한 현실의 사람들을 위해 희망이나 빛이 될 수 있는 시를 풍뢰익의 시라고 할 수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은 양의 문장이지만 둘째, 셋째, 넷째 문장이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아래쪽이 부족함을 상징하지만, 다섯째, 여섯째 문장에서 양의 문장이 옴으로 넉넉함을 덜어주며 희망적인 결말을 가져오고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는 소음(⚍)으로 쇠퇴해 가고 있는 상황이며, 人은 노음(⚏)으로 지극히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맞고 있다. 여기에 天이 노양(⚌)으로 강하고 왕성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 아래쪽에 힘을 더해 줌으로 유익함이 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팔괘로 보면 위의 바람은 동남방을 의미하며 순조로움을 상징한다. 동남방에서 불어온 봄바람은 만물을 싹틔우며 이롭게 하는 것이다. 아래에 있는 우레는 움직임이고 변화여서 쉽게 받아들이고 유익해짐을 상징한다. 첫 단락은 震괘로 아랫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의미하며, 즐겁게 하고 감동받게 할 수 있는 표현이나 메시지라면, 둘째 단락의 風은 그들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부드러운 바람으로 결실을 이루게 하는 손길이며 유익과 행복을 줄 수 있는 표현이 되어야 한다. 풍뢰익의 변괘 중 호괘는 세속에 물들지 않는 시인 ䷖ 산지박(山地剝)이며, 도전괘는 아래를 덜어 위를 보태주는 헌시나 찬양시인 ䷨ 산택손(山澤損), 배합괘와 착종괘는 천지만물의 이치를 발견한 ䷟ 뇌풍항(雷風恒)의 시쓰기이다. [출처] 42. 풍뢰익|작성자 김기덕   43. ䷪ 택천쾌(澤天夬)   택천쾌는 연못(☱:兌)의 기운이 증발하여 하늘(☰:乾) 위에 있는 모양으로 여섯 번째 효인 음이 아래 다섯 양에 의해 처단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夬는 아래로 하늘의 강건한 덕이 있고 위로는 연못의 기쁨이 있어서 마지막 남은 문제를 척결함으로써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시적으로 하나의 소재나 주제의식에 대한 양적인 일관된 묘사를 하다가 끝에서 뒤집어 버림으로 강렬한 마무리를 갖는 시쓰기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에서 다섯 번째 문장까지는 한 시각의 일방적인 묘사나 철학적 접근이 마지막 문장에서 뒤집어지거나 새로운 결론, 또는 생경한 표현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와 人은 모두 노양(⚌)으로 강한 이미지의 표현, 또한 긍정적 접근이 이루어지지만 天에서 소음(⚍)이 옴으로 지속되던 긍정적 감정을 감추고 부정적이거나 아니면 낯설게 하기, 또는 전체를 아우르는 확실한 강조의 표현으로 마무리함을 의미한다. 팔괘로 보면 澤天夬(䷪)는 모든 양효 위에 한 개의 음효가 위치하고 있어 모든 선을 누르면서 악의 세력이 높은 지위에 군림하고 있는 상태이다. 夬는 ‘결단한다’, ‘결행한다’는 뜻인데, 악의 발효를 배려하기 위해 궐기하고 준비하는 상태와 같다. 이는 하괘인 天(☰)과 상괘인 못(☱)으로 나뉘어 두 개의 단락으로 구분되는 것 같지만, 실은 다섯 개의 양과 한 개의 음으로 나뉘어 형식적, 또는 실질적 두 단락으로 구분되는 형식의 시쓰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첫째 단락은 긍정적 진행의 묘사가 이루어지고 두 번째 단락에서 이를 뒤집는 간략한 문장, 또는 한 문장의 핵심을 찌르는 반어적 결론의 시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택천쾌의 변괘 중 호괘는 힘 있고 밝은 시인 ䷀ 중천건(重天乾)이며, 도전괘는 음적인 대상을 밝고 강한 남성적으로 표현한 ䷫ 천풍구(天風姤), 배합괘는 고고함의 경지인 ䷖ 산지박(山地剝), 착종괘는 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도리를 따르는 ䷉ 천택리(天澤履)이다. [출처] 43. 택천쾌|작성자 김기덕   44. ䷫ 천풍구(天風姤)   천풍구는 하늘(☰:乾) 아래 바람(☴:巽)이 부는 모양으로, 가장 아래에 처한 一陰이 다섯 양을 쫓고 있는 형태이고, 또한 음이 처음 상태로 음을 거느리는 后가 되는 상을 의미한다. 姤는 안으로는 유순한 가운데 밖으로 강건함이 있으니 위의 강건한 乾父의 명을 좇아 아래에 巽長女가 그 도를 따르는 괘로서 하늘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만물에 두루 파고드는 상태이다. 절기로 보면 夏至인 한여름으로 음력 5월경이며, 하루는 가장 환한 정오 무렵이라고 할 수 있다. 시에서는 여성적인 음의 시작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효가 음인 여성적 시작을 의미하는데, 둘째 효부터 여섯째 효까지 양의 효로 이루어졌으므로 여성적인 음의 시작이지만 절망이나 고통, 분노와 같은 것이 아닌 밝고 희망적이며, 아름다운 시각의 모성적 따뜻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즉 음의 대상을 양적으로 표현하는 시쓰기이다. 그렇다면 음의 문장과 양의 문장은 어떻게 만들고 구분할 수 있을까? 첫째는 음적인 사물들의 결합이며, 둘째는 음적인 상태나 감정, 분위기의 형성이다. 사람의 얼굴에서 보면 이마, 콧날, 치아, 광대뼈와 같은 것들은 양적인 요소이지만, 콧구멍, 귓구멍, 입과 같은 부분은 음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적 ‧ 음적 요소와의 결합을 통한 양의 문장, 음의 문장이 있다. 또한 여기에 양적 ‧ 음적 감정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문장도 양의 문장, 음의 문장으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이’는 양적 요소이지만 어떤 감정이나 상태와 결합하느냐에 따라 음이 될 수 도 있고 양이 될 수도 있다. “이가 반짝였다.”라는 문장은 양적 요소에 양적 상태가 결합되어 양의 문장을 만들어 주지만, “이가 부러졌다.”라는 표현은 양적 요소와 결합했지만 상태가 음적 요소이므로 음의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물에는 음과 양이 공존하기 때문에 양적인 요소라 해도 그 안에는 음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장의 음과 양의 구분은 사물적 요소보다는 상태나 감정적 요소에 의해 좌우됨을 알 수 있다. 사상에서 天, 人, 地는 세 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형식적 의미의 단락일 수도 있으나 天(성) - 人(성과 속의 공존) - 地(속)의 차원이나, 천(형이상) - 인(공존) - 지(형이하)의 구분과 같은 내용적인 단락이 될 수도 있다. 姤의 地는 소양(⚎)으로 밝음을 지향하고 있으며, 人과 天은 모두 태양(⚌)으로 한낮과 같은 밝은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 하늘에서 부는 바람은 음산하고 무서운 바람이 아니라 밝고 환하며, 초목을 생장시키는 유익한 바람이다. 그러므로 천풍구의 시는 밝고 아름다운 감정의 유익하고 정감 있는 접속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보면 姤는 만난다는 뜻이다. 한 柔가 다섯의 剛을 만난 형태로 많은 남자들 사이에 한 여자가 있어서 조종하는 형상이다. 그러므로 여자의 주도하에 매사가 진행되며, 남성 못지않게 강한 여자의 입김에 세상이 휘둘리게 되는 상이다. 이는 시에서 여성적인 시각의 주도적 진행을 의미하며 남성적인 강하고 밝은 분위기의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천풍구의 변효를 살펴보면 호괘는 밝고 강한 ䷀ 중천건(重天乾)이며, 도전괘는 양의 진행을 뒤집어 의외의 음적 결말을 맺는 ䷪ 택천쾌(澤天夬), 배합괘는 본성을 회복하고, 근본을 회복하는 ䷗ 지뢰복(地雷復), 착종괘는 양 가운데에 음을 배치하여 부드러움을 더해주는 ䷈ 풍천소축(風天小畜)이다. [출처] 44. 천풍구|작성자 김기덕   45. ䷬ 택지취(澤地萃)   택지취는 땅(☷:坤 ) 위에 물이 고여 연못(☱:兌)이 된 모양으로 사방의 물이 두루 합하여 모이는 것을 말한다. 萃의 뜻을 보면 병졸들이 모이듯 초목(艹)이 무성하게 우거져 어우러진 의미가 있고, 읽을 때에는 췌가 아닌 취로 발음한다. 萃는 안으로 지극히 유순하고 밖으로는 기쁨의 덕이 있어 물이 대지를 흐르며 합쳐져 마침내는 큰 바다를 이루어 출렁이는 모양을 나타낸다. 이는 시쓰기에서 대하를 이루는 듯한 흐름의 산문시를 의미하며, 형식이나 틀이 없이 이미지의 숲을 이루는 방법이다. 물은 물끼리 모여 흘러가듯 주제의 통일을 이루어야 하며, 정서의 동질적인 결합이 필요하다. 이야기의 서사적 구성도 택지취의 시라고 할 수 있다. 택지취의 효를 살펴보면 초효에서 삼효까지는 음의 문장으로 구성되고, 실질적인 리더인 사효와 오효가 양으로 구성되어 강력한 힘의 구심점을 이루어 나아가는 상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핵심은 사효, 오효이며, 강한 주제의식으로 집중된 시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노음(⚏)으로 다양한 사물적 요소일 수도 있고, 흩어진 생각의 단편들일 수도 있다. 人(⚎)에서 모아져 표출되었다가 天(⚍)에서 강하게 마무리 짓지 않고 여운을 남기듯 끝맺음을 하였다. 천 ‧ 인 ‧ 지의 의미는 넓게 보면 세상만물을 상징한다. 하늘과 인간과 세상의 관계를 모두 아우른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물도 다 끌어올 수 있고 결합, 배치가 가능하다. 또한 작게 보면 사람의 얼굴과 같은 것이다. 눈썹 위로부터 이마는 天이요, 눈썹부터 코끝까지는 人이요, 인중부터 턱까지는 地로 구분하여 초년, 중년, 말년으로 관상을 보듯 그 응용의 세계는 무한하다. 팔괘로 풀이하면 취는 모이는 것의 상징이다. 아래에선 유순하고 위에서는 즐거워한다. 강건한 군주와 유순한 신하가 도리를 지키고 서로 호응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모든 인재가 모이고 복된 것이 모여온다. 시에서도 다양한 사물과 다양한 사고들이 하나의 핵심 주제로 모여 장구한 흐름을 만드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긍정적 사고의 흐름을 이루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시이다. 모이는 데는 특별한 형식이 없다. 자석에 쇳가루가 모이듯 시인의 강한 정서의 힘에 이끌린 사물과 의식들의 일관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택지취의 변괘를 보면 호괘는 점차적으로 사고의 확장과 차원의 상승을 추구하는 ䷴ 풍산점(風山漸)이며, 도전괘는 땅 속에서 싹이 움트는 형상인 ䷭ 지풍승(地風升), 배합괘는 축적된 에너지의 강한 시심을 풀어내는 ䷙ 산천대축(山天大畜), 착종괘는 기뻐하며 순하게 나아가는 모양인 ䷒ 지택림(地澤臨)이다. [출처] 45. 택지취|작성자 김기덕   46. ䷭ 지풍승(地風升)   지풍승은 땅(☷:坤) 속에 초목(☴:巽)이 뿌리를 박고 움터오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升은 안으로 순하고 밖으로는 유순함이 있어 음도가 성숙해가는 과정이며, 음물이 점차 쌓여 오르는 상이다. 아래의 巽은 나무를 의미하는데, 바람이 안으로 파고들 듯 땅 속에 뿌리를 내리는 모양이다. 위의 곤은 초목을 생육시키는 땅이니 땅 속에서 싹이 움터서 나오는 형상이다. 시에서의 기법은 희망적 감정이나 현실의 꿈을 상징하는 씨앗을 내면에 싹틔우고 암담한 현실, 또는 절망적 상황의 대지를 뚫고 나오는 기상이 있는 배치의 시쓰기이다. 첫 문장은 음의 문장인데, 둘째, 셋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땅 속에 묻혀 있는 씨앗과 같은 존재이다. 이 씨앗들이 땅(☷)에 숨겨져 아직은 밖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고 살짝 모습만 비추고 있는 형상이다. 핵심적인 의식이 모여 있는 문장으로 화분(음의 문장들) 속에서 살짝 고개 내밀기 시작한 새싹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다. 地(☷)는 화분의 흙과 같은 존재로 덮어주고 감추어주는 역할을 하며, 핵심 내용을 드러내기 위한 토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화분은 크게 보면 전 지구적인 땅이며, 소우주적인 몸이며, 영원한 세계로 향한 우리의 정신적 토대를 의미한다. 地風升의 시적 분위기는 땅 속에 나무가 있어 싹이 트고 마침내는 큰 재목이 되는 상으로 구이, 구삼의 두 효가 바르고 깊은 뜻을 담고 있어 전체적인 시의 성장을 이루게 하는 형식이다. 사상의 시각으로 보면 地는 소양(⚎)으로 땅 위로 솟아오르는 강한 힘이고, 人의 소음(⚍)은 솟아오르고자하는 힘을 억누르고 있는 상이다. 天은 노음(⚏)으로 이러한 의식이나 상황을 덮고 있는 존재로 아직은 뚜렷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있다. 웅비하는 시의식의 감춰짐이나 내면의 배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팔괘로 살펴보면 升은 땅을 의미하는 坤卦가 위에 있고 바람(나무)을 의미하는 巽卦가 놓여서 크게 발전하는 것을 상징한다. 부드러운 새싹이 때를 맞춰 성장하는 상태로 종순한 태도로 순리에 따르는 상이다. 아직은 어리고 약한 새싹이라서 사나운 비바람을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새싹은 무럭무럭 자라 머잖아 의젓한 나무가 될 것이다. 이러한 발전적인 감정을 담고 있는 시가 바로 지풍승의 시이다. 지풍승이 변화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모양을 살펴보면 호괘는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을 추구하는 ䷵ 뇌택귀매(雷澤歸妹)이며, 도전괘는 대하를 이루듯 흐르는 산문시인 ䷬ 택지취(澤地萃), 배합괘는 강건한 도로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 천뢰무망(天雷无妄), 착종괘는 어두운 현실을 따뜻하게 녹여줄 수 있는 시쓰기의 ䷓ 풍지관(風地觀)이다. [출처] 46. 지풍승|작성자 김기덕   47. ䷮ 택수곤(澤水坤)   택수곤은 위에 연못(☱:兌)이 있고 아래에 물(☵:坎)이 놓여 연못의 물이 마른 모양으로 곤궁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困卦는 剛爻가 柔爻에 의해 가려져 험난함을 나타내는데, 못에 물이 없어 곤궁한 상황으로 고난을 상징하고 있다. 시에서도 곤궁한 상황, 절망적 현실 묘사의 방법으로 희망적인 것을 과거나 미실현의 단계에 놓고 절망적인 요소를 현재나 현실 진행단계로 놓아 음적인 요소가 양적인 요소를 지배, 또는 덮어버림으로써 현실의 절망을 강조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채송화, 맨드라미 웃음 짓던 토담은 허물어지고, 꿈에 부풀던 항아리들은 깨어져”와 같은 구절에서 양의 요소들이 음의 요소에 의해 허물어지고 깨어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음효와 양효의 대조적인 상황에서 음이 양을 덮어버림으로 음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시쓰기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은 음의 문장이고 둘째는 양의 문장, 셋째는 음의 문장, 넷째, 다섯째는 양의 문장, 여섯 번째는 음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양의 문장을 포위, 덮어버림으로 음적인 상황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첫째 단락인 地는 소양(⚎)으로 음을 기반으로 해서 양이 뻗어 나오고 있는 상이다. 둘째 단락인 人 또한 소양(⚎)으로 음의 토양에서 양이 자라고 있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단락인 天에서 소음(⚍)이 되어 지금까지 기반이 되었던 양적인 요소들이 부정되고 음적인 요소로 변함으로써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감정이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감정으로 변화되게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보면 곤괘는 연못 아래에 있는 물로 물이 마른 연못을 상징한다. 困은 곤란, 곤궁, 곤고한 상태이니 口(상자) 속에 木(나무)이 들어 있는 상이다. 나무는 두텁고 넓은 땅에 뿌리 내리고, 높고 시원스런 공간으로 줄기를 펴고 가지를 뻗으면서 막힘도 거리낌도 없이 자라는 것인데, 형틀에 갇힌 형상을 이루어 곤고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시적 감정을 통해 물이 마른 연못의 곤고함 같은 마음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택수곤의 變卦들을 살펴보면 호괘는 마음의 수양과 깨달음이 있는 ䷤ 풍화가인(風火家人), 도전괘는 음양이 교차한 맑은 샘물 같은 시의 ䷯ 수풍정(水風井), 배합괘는 내면의 아름다움, 절제된 감정의 열매 맺음을 의미하는 ䷕ 산화비(山火賁), 착종괘는 절제된 시어, 함축적 운율의 시쓰기인 ䷻ 수택절(水澤節)이다. [출처] 47. 택수곤|작성자 김기덕   48. ䷯ 수풍정(水風井)   수풍정은 나무(☴:巽) 위에 물(☵:坎)이 있는 모양으로 아래로 井자의 나무를 놓아 샘물이 위로 솟아오르는 우물의 형상이다. 井은 안으로 겸손하고 밖으로 과감히 행하는 덕이 있으며, 땅 속의 물을 끌어올려 두루 우물물의 혜택을 베푸는 괘이다. 땅을 깊이 파야 맑은 샘물이 나오듯 마음을 가라앉히고 맑게 하여 정신과 육신이 청정함으로 만사를 통하니, 시에서도 마음을 맑게 하여 깊은 샘을 파듯 심오한 정신의 깨달음을 표현하는 우물과 같은 시쓰기이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 문장은 음의 문장, 둘째, 셋째는 양의 문장, 넷째는 음의 문장이며, 다섯째는 양의 문장, 여섯째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형식이다. 이 형식은 첫째 음의 문장, 둘째 양의 문장, 셋째 음의 문장인 ☵의 형태로 압축될 수도 있다. 시는 정서와 사상의 우물파기이다. 음과 양이 교차한 감정의 직조를 통해 맑은 샘물 같은 시를 쓰고자 하는 방식이 바로 수풍정의 시쓰기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소양(⚎), 人과 天은 소음(⚍)으로 음과 양이 하나씩 교차하고 있다. 이는 섞어 짜기와 같은 직조의 모양이다. 나무로 우물 정자의 침목을 만들 듯 음과 양의 문장이 교차를 이루어 샘물과 같은 진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생 ‧ 로 ‧ 병 ‧ 사 ‧ 애 ‧ 오 ‧ 욕, 이 모두가 기쁨과 슬픔으로 섞어 짠 삶이듯 세 개의 단락이 감정의 교차, 표현의 교차, 욕망의 교차를 이루며 심오한 인생의 철학이 있는 시를 쓰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살펴보면 井은 우물이다. 한 고을은 옮길지라도 우물은 옮길 수가 없다. 줄기차게 샘솟는 근원이 땅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우물은 항상 맑은 물을 담고 줄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갈증을 해소하게 하고 생명을 키워 준다. 이러한 우물처럼 시는 누구나 읽고 깨달음을 얻으며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우물의 생명력처럼 시 속엔 영혼을 살리는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 수풍정의 시쓰기는 영혼의 우물파기이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두레박을 통해 맑은 물을 퍼 올리듯, 또한 나무(☴)들이 땅에 뿌리를 박고 줄기를 통해 물을 끌어올려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듯 결실하는 시이다. 수풍정의 특색은 진리의 샘물과 같은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음과 양의 섞어 짜기가 있어야 한다. 또한 꽃이나 열매와 같은 긍정적 향기나 삶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 줄 수 있는 후련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수풍정의 변괘 중 호괘는 어긋남의 대칭적, 대조적 기법인 ䷥ 화택규(火澤睽)이며, 도전괘는 음의 요소가 양을 지배하는 절망적 상황의 ䷮ 택수곤(澤水困), 배합괘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조화, 신 ‧ 구의 조화, 남녀의 조화와 같은 상반된 관계의 조화를 의미하는 ䷔ 화뢰서합(火雷噬嗑), 착종괘는 흩어놓기 기법인 ䷺ 풍수환(風水渙)이다. [출처] 48. 수풍정|작성자 김기덕   49. ䷰ 택화혁(澤火革)   택화혁은 연못(☱:兌)이 위에 있고 불(☲:離)이 아래에 놓여 연못 속에 불이 들어있는 상이다. 위의 물은 아래로 흐르고 아래의 불은 위로 타올라 水 ‧ 火가 서로 대결하는 상태이다. 물은 불을 끄려하고 불은 물을 말리려 하는 가운데 상대를 고쳐 변하게 하니 革이다. 革은 안으로 밝고 밖으로 기쁨이 있으며, 여름(☲)을 지나 가을(☱)에 이른 괘로 곡식이 익어 결실하는 때를 의미한다. 시에서는 대결구도적인 배치를 통해 새로운 변화와 상승을 꾀하는 방법으로 더 넓은 사고의 확장과 이미지의 다양성 추구를 위한 것이다. 하늘을 선명하게 그리기 위해 어두운 땅을 배치한다든지,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기 위해 야수를 배치하는 기법과 같은 것인데,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시의 전체적인 조화와 새로움을 위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택화혁을 효로 접근해 보면 첫 문장은 강한 양의 문장으로 위로 올라가 革하려는 강한 이미지이나 뒤에 음의 문장이 옴으로 상비관계를 이룬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문장에서 양의 문장이 와서 革하려는 시적의식이나 이미지의 창출에 강한 힘을 보탠다. 마지막 여섯 번째 문장에서 배치되는 음의 국면을 전개시킴으로 강렬한 시심을 표출하고자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革은 기존의 보편적인 이미지나 정서, 보편적 의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와 天은 소음(⚍)으로 내적인 양이 밖으로 표출되지 않고 숨어 있는 象이다. 地와 天은 시적 대상이 되는 세상만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적 소용돌이가 밖으로 표출되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모양은 바로 보편적인 사물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地와 天에 비해 세 번째, 네 번째 효인 人은 강한 양이 두 개인 노양(⚌)이다. 여기에서의 노양은 강한 변화의 욕구이며 새로운 시각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시적 대상에 대한 보편적 인식에 새로운 변화의 강한 양적 의식을 부여하는 상이 택화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평범한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끌어와 혁명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방식이다. 모든 시쓰기가 혁명적인 인식의 변화를 추구하지만, 대조적인 기법을 통한 혁명적 배치라고 할 수 있다. [출처] 49. 택화혁|작성자 김기덕   50. ䷱ 화풍정(火風鼎)   화풍정은 아래에 나무와 바람(☴:巽)이 놓여 위로 불(☲:離)을 피우는 모양이다. 괘체로 보면 巽下絶(첫째 효의 끊어진 음효)은 아래의 갈라진 솥발과 같고, 離虛中(다섯 번째 효의 음효)은 빈 솥의 형상이니 화풍정이다. 火風鼎은 안으로는 순순히 따르며 받아들이는 덕을 이루고 밖으로는 환히 밝히니, 스스로를 가다듬어 밖을 밝히며 솥 안에 음식물을 넣고 삶는 형상이다. 시에서는 음적인 소재를 선택하더라도 그 소재를 푹푹 삶고 고아서 맑고, 영양가 있게 우려내는 솥과 같은 시쓰기이다. 화풍정은 치열한 시의 불때기를 의미하며, 사골을 고듯이 깊은 뜻을 우려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불로 귀하게 삶은 음식은 제일 먼저 신께 드렸듯이 그 안엔 기도와 같은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어려운 현실이나 부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으나 두 번째 문장에서부터 네 번째 문장까지 양의 문장을 놓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감사의 마음으로 재해석해 초월적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다섯 번째 문장에서 다시 한 번 음의 문장을 통해 현실을 재인식하지만, 여섯 번째 문장을 통해 음의 세계를 극복하고 양의 세계를 구축함으로 강렬한 희망적 메시지를 남기는 방법이다. 화풍정의 문장 하나하나에는 펄펄 끓는 절규와 간절함이 필요하다. 그 절규와 간절함이 관념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무의미의 이미지 나열 또한 피해야할 부분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天과 地가 모두 소양(⚎)으로 이루어져서 내면의 소극적인 의미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하여, 人(노양:⚌)의 강렬함이 삶아지고 드러날 수 있도록 솥과 같은 배치를 이루어야 한다. 天과 地의 초점은 人에게 맞추어져 있다. 그 초점은 태풍의 눈과 같은 것이며 블랙홀과 같은 흡입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모양은 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물들이 시인의 긍정적 의식에 집중되어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鼎은 솥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나무로 불을 때서 삶고 익힌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단락인 巽(☴)은 바람과 나무를 상징한다. 불을 때기 위한 준비단계이며, 본격적인 주제의식을 삶기 위한 도입적 요소이고, 중심에 대한 진입과정이다. 두 번째 단락은 첫 번째 단락에서 진일보한 내용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본격적인 불때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 불때기는 고기를 삶는 것이며, 쇠를 녹이는 것이며, 감정을 들볶는 것이다. 이렇듯 두 개의 단락이 계층을 이루어야 하고, 감정의 진일보가 있어야 한다. 즉 두 개의 단락이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인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불과 나무와 바람은 서로 호흡이 맞는 팀 멤버와 같아서 서로가 필요한 관계요 상보적인 존재들로 하나의 시적 감정을 나타내기 위한 팀워크가 필요한 협력체이다. 화풍정의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일관된 묘사를 하다가 끝에서 뒤집어버리는 ䷪ 택천쾌(澤天夬)이며, 도전괘는 대결구도적인 배치를 통해 새로운 변화와 상승을 꾀하는 방법인 ䷰ 택화혁(澤火革), 배합괘는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의미처럼 험한 가운데 새로움이 움트는 ䷂ 수뢰둔(水雷屯), 착종괘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이며, 내면의 깨달음과 자성의 시인 ䷤ 풍화가인(風火家人)이다. [출처] 50. 화풍정|작성자 김기덕   51. ䷲ 중뢰진(重雷震)   중뢰진은 아래 위가 모두 우레(☳:震)로 이어진 괘로 우레가 거듭 쳐서 만물을 크게 요동시키며 발전시키는 象으로 땅 속에 숨어 있던 초목의 싹이 밖으로 움터 나오는 모양이다. 진은 해 뜨는 동방을 의미하며 동방의 기운으로 만물이 움터 나옴을 의미하는 괘이다. 시에서는 새싹이 나듯 중첩된 우레의 모양(☳ ☳)은 양의 중심 이미지에 음의 부분적인 이미지들이 움터 나오듯 배치되는 방법이다. 또한 중심 사물이나 개체가 제시되고 그 아래 의성어나 의태어, 세부적인 표현이 전개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개구리가 개굴개굴”에서 ‘개구리’는 시의 중심 이미지인 첫 효인 양이고, ‘개굴개굴’은 두 번째, 세 번째 효인 음과 같다. 하나 더 예를 든다면 “거인 나무가 쓰러져 잠들어 있다. 코를 골 때마다 귀를 닮은 잎들만 들썩거릴 뿐, 바람이 가지를 흔들어 깨워도 꿈쩍하지 않는다.”와 같은 표현이 있다면 중심사물인 ‘거인나무’는 첫 효인 양과 같으며, 중심사물인 거인을 세부적으로 묘사해 나가는 귀를 닮은 ‘잎’이나, 바람이 흔들어 깨우는 ‘가지’의 묘사는 六二, 六三 효인 음과 같은 것이다. 효로 분석해 보면 첫 효는 새싹이 움트는 나무의 몸체일 수도 있고 새싹이 나오는 땅일 수도 있다. 둘째, 셋째 음의 효는 새싹과 같은 것으로 몸체에서 파생되는 세부적 이미지나 중심 사상에서 파생된 보조적인 의미나 개념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레(☳:震)는 움직임이고 변화이고 잘게 쪼개짐이다. 중심 이미지나 중심 사상에 대한 변화, 새로운 뻗어감이나 분화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소음(⚍)으로 양의 기운이 땅 속으로 뻗어가는 뿌리의 모양을 이루고 있다. 人은 소양(⚎)으로 내면의 의식이 양의 기운을 따라 밖으로 표출되고 있는 象이다. 天은 물방울과 같은 개체들이 가득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는 중심 이미지의 분화, 확산을 의미하며, 중심사물이나 개체에 대한 구체적 표현이나 지엽적인 접근을 의미한다고 말 할 수 있다. 팔괘로 보면 우레가 거듭거듭 겹쳐오는 것이 중뢰진의 괘상이다. 두 개의 단락이 반복적일 수도 있고, 별개의 묘사일 수도 있지만,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새싹들처럼 주된 대지의 이미지에 종된 새싹들이 피어나는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천둥은 고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현대전쟁의 어마어마한 포탄소리를 듣지 못한 그들에게는 천둥이야말로 최고의 공포였을 것이다. 우레는 오늘날의 포탄과 같은 것이다. 수류탄이 터지듯 하나의 양의 효에서 분화되는 음의 파편들을 연상케 한다. 이는 하나의 상징적 사물에서 분화, 확산되는 상징성이기도 하다. 상징성으로 폭탄이 터지듯 확산하는 의미나 이미지를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중뢰진과 관련된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슬픔과 우울함에 침잠된 감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 수산건(水山蹇)이며, 도전괘는 重雷震의 반대적인 글쓰기로 지엽적인 문장이나 표현을 앞에 두고 뒤에 전체적이고 결론적인 내용이나 핵심 표현을 놓는 방법인 ䷳ 중산간(重山艮), 배합괘는 여성적 어조의 글쓰기인 ䷸ 중풍손(重風巽), 착종괘는 ䷲ 중뢰진(重雷震)이다. [출처] 51. 중뢰진|작성자 김기덕   52. ䷳ 중산간(重山艮)   중산간은 아래 위가 모두 山(☶:艮)인 괘로 산이 거듭 중첩된 상이다. 艮은 안팎으로 거듭 그치는 덕이 있어 첩첩산중과 같이 어려운 모양을 이른다. 그러나 제 위치에서 본분을 지키고 때를 알아 처사하면 허물이 없다. 艮은 동북 방향에 속하니 아침 해가 솟는 뿌리에 해당하므로 만물의 종시가 艮方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시에서 重山艮은 重雷震의 반대적인 글쓰기로 지엽적인 문장이나 표현을 앞에 두고 뒤에 전체적이고 결론적인 내용이나 핵심 표현을 놓는 방법이다. 논술과 같은 비문학에서는 결론이 뒤에 있는 미괄식 글쓰기와 같고, 시에서는 핵심표현이나 주제의식이 담긴 문장, 또는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 표현을 뒤에 쓰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과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셋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형성되어 뒤쪽으로 갈수록 의미나 표현이 강하고 확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음의 문장과 여섯 번째 양의 문장으로 반복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논증적인 관계로 본다면 귀납법적인 형식의 전개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음(⚏)으로 음적인 요소로만 이루어져 있다. 이 음적인 요소는 감정이나 사물의 관계뿐만 아니라 궤의 모양으로 볼 때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여러 예시와 같으며 뒷받침 문장과 같다. 人의 소음(⚍)은 강한 핵심이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졌다가 天의 소양(⚎)에 와서 내적인 것들이 밖으로 드러나며 강한 핵심을 표현해 주고 있다. 팔괘로 본다면 산이 겹쳐져서 서로 교통하지 못하고 그치는 상을 이루고 있다. 두 개의 단락을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으로 나타낼 수도 있으며, 작은 봉우리와 같은 중간 점검 후 더 큰 봉우리 같은 최종 결론적인 형식을 취할 수도 있다. 그침이라는 것은 결론이며, 핵심이며, 최종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그침이 여러 겹을 이룰 수도 있고, 여러 계단처럼 계층을 이룰 수도 있다. 중산간의 변괘 중 내부적 정황이나 성격, 심리, 사건의 내막을 말해주는 내부적 시각의 호괘는 ䷧ 뇌수해(雷水解)이며, 본괘의 단락에 대해 정반대적인 내용이나 묘사를 의미하는 도전괘는 ䷲ 중뢰진(重雷震), 아이러니나 역설적인 표현을 의미하는 배합괘는 ䷹ 중택태(重澤兌), 잘라서 새로운 조합을 통해 바라보는 착종괘적 표현은 ䷳ 중산간(重山艮)이다. [출처] 52. 중산간|작성자 김기덕   53. ䷴ 풍산점(風山漸)   풍산점은 바람(☴:巽)이 위에 있고 산(☶:艮)이 아래에 놓여 산 위에 나무가 점점 자라는 象이다. 漸은 산 위에 바람이 불어 초목과 금수가 미동하며 점진하는 괘상이며, 人事로는 여자가 집안(☶:친정)에서 부덕을 쌓은 후 혼기(☴)가 이르러 시집가는 모습이다. 또한 입춘 절기로부터 입하 절기로 나아가는 봄의 과정이니 만물이 땅 속으로부터 나와 점차 자라는 때를 이른다. 漸은 시에서 정신에 뿌리박은 하나의 시상이 점점 자라는 과정을 거쳐 의식이 확장되거나, 사고가 깊어지거나, 이미지의 농도가 짙어지거나, 형이상적 차원이 상승하여 점점 표현의 무게와 밀도, 깊이, 높이가 커지는 방향적 진행의 묘사를 의미한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셋째 문장은 양의 문장이 와서 하나의 계단을 이루고, 다시 음의 문장이 와서 수평을 유지했다가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양의 문장이 와서 비약적 상승을 꾀하고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더욱 정확한 발전형태를 볼 수 있는데, 地의 노음(⚏)에서 人의 소음(⚍), 天의 태양(⚌)으로 그 기운이 상승하면서 점차적으로 강해지고 있다. 단계별로 상승하는 점층적인 표현과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점차 소멸해가는 점강적인 기법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방황’을 “나무들의 가지가 흔들린다./ 사람들이 어깨가 떨린다./ 하늘의 구름이 소용돌이친다.”라고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표현은 단계별로 차원과 강도가 달라지고 있다. 이렇듯 漸은 점점 더 발전하고 강해지는 시적 표현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살펴보면 풍산점(䷴)은 산 위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 산에 심겨진 나무는 눈, 비, 바람을 맞으며 서서히 자라게 된다. 급하게 자란 나무는 태풍에 쓰러질 수밖에 없다. 급격한 비약, 과장적인 건너뛰기를 지양하고 한 단계, 한 단계 철학적 시상을 키우거나 표현의 밀도감을 더해 가는 언어의 드로잉이다. 풍산점의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정석적이지 못하고 비상식적이며, 비정서적, 부조화의 관계적 배치를 의미하는 ䷿ 화수미제(火水未濟)이고, 도전괘, 배합괘는 이질적인 문장이나 이질적인 단락 간의 연결 관계를 만들어 주는 형식의 ䷵ 뇌택귀매(雷澤歸妹), 착종괘는 산과 같은 덕으로 백성들을 교화하는 형상인 ䷑ 산풍고(山風蠱)이다. [출처] 53. 풍산점|작성자 김기덕     54. ䷵ 뇌택귀매(雷澤歸妹)   뇌택귀매는 위에 우레(☳:震)가 있고 아래에 연못(☱:兌)이 놓인 상으로 兌의 少女가 위 震의 장남을 좇아 시집오는 궤이다. 귀매는 안으로 기뻐하며 밖으로 움직임이 있는 모양으로 어린 소녀가 위의 장남을 좇아 시집오는 형상으로 서방에 속한 兌가 동방에 속한 震에게 시집오는 과정이다. 시간상으로는 저녁을 지나 아침에 이르는 과정을 의미한다. 결혼은 이질적인 가정의 풍속이나 가문 간의 문화적, 혈연적인 연결 관계를 맺어주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시에서는 이질적인 문장이나 이질적인 단락 간의 연결 관계를 만들어 주는 형식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효의 관계를 통해 살펴보면 첫째와 둘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섯째와 여섯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이질적인 관계에서 셋째와 넷째 문장이 서로 자석처럼 끌어당김으로 이질적인 전체의 관계를 연결시켜 주고 있다. 세 번째 효와 네 번째 효는 이질적인 관계를 묶어 주는 끈이나, 붙여 주는 접착제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성분이나 다른 차원의 사물을 이어 주기 위해서는 접촉점을 찾아야 한다. 암수의 코드와 같은 연결점을 통해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나 이미지를 창출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양(⚌)이고 天은 노음(⚏)이라서 상대적으로 대립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나 人이 소양(⚎) 이어서 地의 노양은 인의 음이 끌어당기고, 天의 노음은 人의 양이 끌어당김으로 서로를 완충시키고 새로운 의식과 이미지를 창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유사관계 간의 접속이 아닌 상이한 관계 간의 접속이며 반대적, 대립적인 관계 간의 연결, 그리고 아주 먼 유사성의 사물이나 사건들 간의 연결을 꾀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이한 것들 간의 연결을 꾀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미세한 연결고리를 찾아야 하며, 연결의 끈을 찾아야 한다. 팔괘로 본다면 아래의 연못과 위의 우레는 서로의 유사관계를 찾아볼 수 없지만 연못의 셋째 효인 소녀와 우레의 첫째 효인 장남이 만나 관계를 이루고 결혼을 하는 상이다. 하나의 단락과 또 하나의 단락이 크게 유사한 내용이 없지만 그 단락 속의 한두 줄의 문장을 통해 서로 연결하고 이어질 수 있도록 접속, 긴밀한 관계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뇌택귀매의 관계는 병치의 관계와는 다르다. 병치는 유사한 사물이나 상황의 단어나 문장을 병치시킴으로 건너뛰기를 하는 방법이지만, 뇌택귀매의 방법은 이질적이고 비전도적인 관계의 사물이나 상황을 풀칠하여 붙이듯 접속시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풀 역할을 하는 것은 주제나 제목, 또는 이미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뇌택귀매의 변괘 중 호괘는 정석적이지 못하고 비상식적이며, 비정서적, 부조화의 관계적 배치를 의미하는 ䷾ 수화미제(水火未濟)이며, 도전괘, 배합괘는 의식이 확장되거나, 사고가 깊어지거나, 이미지의 농도가 짙어지거나, 형이상적 차원이 상승하여 점점 표현의 무게와 밀도, 깊이, 높이가 커지는 방향적 진행의 묘사를 의미하는 ䷴ 풍산점(風山漸), 착종괘는 차분하고 잔잔하지만 희망이 넘치는 ䷐ 택뢰수(澤雷隨)이다. [출처] 54. 뇌택귀매|작성자 김기덕   55. ䷶ 뇌화풍(雷火豊) 뇌화풍은 아래에 火(☲:離)가 있고 위에 雷(☳:震)가 있어 번개가 친 후 우레가 울리는 상으로 밝음으로써 움직여 나아가 행하는 까닭에 風大하여진다. 괘상으로는 번개(☲)가 친 후 뇌성(☳)이 상응하는 상으로 同聲相應의 이치를 이른다. 이는 마치 수탉이 홰를 치면 모든 닭들이 따라서 함께 우는 이치니 서로 응하여 합하다 보면 풍성해지는 법이다. 시에서 뇌화풍은 하나의 주제나 제목을 향한 다양한 시각의 묘사적 접근을 통해 풍성한 의식이나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 있다. 다양하지만 통일성이 있어야 하고, 통일성이 있지만 하늘과 땅, 인간 사이의 여러 이야기나 묘사들이 접목되어 풍요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와, 셋째, 넷째는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둘째와 다섯째, 여섯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서로 상응하는 관계를 만들고 있다. 첫째의 양과 둘째의 음이 상응하고, 셋째, 넷째의 양이 다섯째, 여섯째의 음과 상응관계를 이루어 다양한 관계를 만들고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하늘과 사람, 땅이 모두 제각각으로 다양하지만 하나의 통일성을 이루어 풍요함을 나타내 주어야 한다. 地는 소음(⚍), 人은 노양(⚌), 天은 노음(⚏)으로 천 ‧ 인 ‧ 지가 제각각의 소리를 내고 있다. 이러한 다양함이 하나로 묶여 풍요함을 나타낼 수 있는 글쓰기이다. 자칫 여러 종류의 나열만 나타낼 수도 있지만 부챗살처럼 여러 조각이 하나의 주제나 큰 틀의 이미지로 모아져 다양성을 갖게 해야 한다. 팔괘로 보면 아래에 번개가 먼저 있은 후 위에 우레가 놓여 나중에 천둥이 뒤쫓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 하늘에 번개만 친다면 그 무서움은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번개 후에 우렁찬 천둥이 울릴 때 그 무서움은 배가되듯이, 번개 같은 하나의 단락에서 상응하는 천둥 같은 두 번째의 단락을 통해 풍대함을 갖게 해 주는 방식이다. 그 풍대함의 표현이 빛과 소리로 나타나고 있다. 빛만 밝은들 이 둘의 조합보다는 그 풍대함은 적을 것이다. 뇌화풍의 글은 바로 이런 상승효과를 노린 다양함의 조합이며 효율적인 표현의 협공이라고 할 수 있다. 뇌화풍과 관련된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시에서는 처음의 의도가 끝에서 새롭게 변화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조금은 엉뚱하고 의외성이 있는 ䷛ 택풍대과(澤風大過)이며, 도전괘는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리저리 떠돌 듯 연결되는 건너뛰기가 있는 하이퍼적인 글쓰기의 ䷦ 화산여(火山旅), 배합괘는 주제의 통일이나 의미의 연결, 이미지의 조합에 신경 쓰지 않고 따로따로 흩어놓는 기법인 ䷺ 풍수환(風水渙), 착종괘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조화이며, 정신과 물질의 조화, 음과 양의 조화가 있는 시쓰기인 ䷔ 화뢰서합(火雷噬嗑)이다. [출처] 55. 뇌화풍|작성자 김기덕   56. ䷷ 화산여(火山旅) 화산여는 山(☶:艮)이 아래에 놓이고 火(☲:離)가 위에 위치하여 산 위에 불이 붙은 象으로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와 같이 산등성이의 불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旅는 안으로 그치는 절제가 있으며 밖으로는 밝은 덕이 있으니, 해와 달이 일정하게 주야왕래하며 사시를 운행하는 현상이다. 시에서 旅는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리저리 떠돌 듯 연결되는 건너뛰기가 있는 하이퍼적인 글쓰기이다. 태양의 뜨고 짐은 일정하지만 굿은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듯이 일정한 원칙이 있지만 그 원칙 속에서의 많은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시쓰기이다. 산 위에 부는 바람에 따라 산에서 산으로 건너뛰듯이 정서적, 상징적 표현의 이동을 꾀할 수 있다. 만물의 도나 인생의 삶 역시 정처 없는 나그네의 길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떠날 수 없는 불역의 방도가 있듯 변화무쌍하지만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있는 형식이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이고 셋째와 넷째는 양의 문장, 다섯째는 음의 문장, 여섯째는 양의 문장으로 음, 음, 양, 양, 음, 양으로 원칙이 있지만 음양의 변화를 이루고 있는 형태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의 노음(⚏)과 人의 노양(⚌)이 큰 변화를 이루는데, 여기에 天의 소양(⚎)이 둘에 상응한 원칙을 가지고 중심을 잡고 있는 象이다. 人은 인간적이며 정서적이지만 地는 사물적인 것을 의미한다. 사물에 따른 인간적인 정서의 큰 변화를 天의 원리, 즉 형이상적인 원리가 지주가 되어 人과 地를 포괄하고 있는 모양이다. 天의 형이상적인 원칙 아래 인간의 정서나 육체, 삶은 地의 사물적인 것과의 많은 거리, 상이성 등을 좁혀 人에서 地로, 地에서 人으로의 변화와 건너 뜀, 오고감의 관계를 이루어 쓰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旅는 산(☶:艮) 위의 밝은 불(☲:離)을 의미한다. 불도 밝게 널리 비추는 것인데 산 위에만 있지 않고 확산되고 옮기는 것이기 때문이 旅다. 첫째 단락은 그침이 있는 산이다. 그침은 원칙이며, 대전제이며, 결론적인 마침이다. 둘째 단락은 확산적인 불이다. 이 불은 사방으로 퍼져가는 욕망이고, 열정이고, 진리이다. 불의 변화된 몸짓은 이리저리 옮겨 붙는 상징적 접속이고 배치이다. 하나의 원칙을 세운 보리 줄기에서 많은 뿌리들의 표현과 이미지가 뻗어나가듯이 旅의 글쓰기는 옮겨 붙는 불의 배치적 시쓰기라고 할 수 있다. 화산여의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처음의 의도가 끝에서 새롭게 변화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조금은 엉뚱하고 의외성이 있는 ䷛ 택풍대과(澤風大過)이며, 도전괘는 하나의 주제나 제목을 향한 다양한 시각의 묘사적 접근을 통해 풍성한 의식이나 이미지를 창출하는 ䷶ 뇌화풍(雷火豊), 배합괘는 연못에 담겨진 물처럼 물은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갖추고 절제를 하듯 시쓰기에서도 절제된 언어의 선택, 정해진 운율, 함축적 표현이 있는 형식을 의미하는 ䷻ 수택절(水澤節), 착종괘는 내면의 아름다움, 절제된 감정의 열매 맺음을 통해 함축적인 표현을 이루고자하는 ䷕ 산화비(山火賁)이다. [출처] 56. 화산여|작성자 김기덕   57. ䷸ 중풍손(重風巽)   중풍손은 상하로 거듭 바람(☴:巽)이 부는 象으로 바람이 서로를 따라 합하듯 공손한 덕으로 한 몸을 이루는 모양이다. 巽은 안팎으로 순하고 부드러운 겸손의 마음이 바람과 같이 안으로 파고드는 형상으로 시에서는 여성적 어조의 글쓰기이다. 바람(☴)은 장녀를 뜻하는데, 장녀가 겹쳐짐으로 강조된 여성성을 상징하고 있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은 음의 문장이고 둘째, 셋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졌으며 넷째 문장은 음의 문장, 다섯째, 여섯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의 문장은 두 양의 문장을 리드하는 여성적 감성이며, 시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지침이 되고 있다. 두 양의 문장 또한 음의 문장을 따르며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극히 부드럽고 순화된 언어의 문장을 이루어야 한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소양(⚎)으로 사물의 밝은 부분을 선택하여 人을 소음(⚍)의 마음으로 여성화함으로써 하늘의 밝은 뜻을 드러내는 형상을 갖게 하고 있다. 天은 양의 강한 추상성, 또는 형이상의 차원을 이루고 人과 地는 서로 받아들임으로 순화되고 하나 되어 己+己+共의 뜻을 이룬다. 팔괘로 풀이하면 바람(☴)이 겹쳐있다. 巽은 장녀를 의미하며, 나무나 풀을 상징하고 들어감을 뜻한다. 장녀는 여성성을 의미하며, 나무나 풀은 바람에 흔들리는 여심과 같으며, 들어감은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외적인 사회성보다는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규방적인 정서를 의미한다. 첫째 단락과 둘째 단락이 똑같은 여성적 정서를 통해 이루어지며 서로의 관계가 하나의 시적 대상에 대한 유사적 접근을 형성하고 있다. 중풍손에 대한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활을 쏠 때 활줄은 뒤로 당기고 활대는 앞으로 밀면서 생기는 힘이 화살을 격발하게 하니 비록 처음은 어긋나나 그 어긋남에 의해 힘을 얻는 것을 의미하는 ䷥ 화택규(火澤睽)이며, 도전괘는 기쁨이 충만한 시를 의미하기도 하고, ☱☱가 물결이 치는 큰 바다 같은 상을 이루고 있어 음률이 있는 시도 여기에 속하며, 물 흐르듯 청산유수격의 시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 중택태(重澤兌), 배합괘는 새싹이 나듯 ☳☳가 양의 중심 이미지에 음의 부분적인 이미지들이 움터 나오듯 배치되는 ䷲ 중뢰진(重雷震), 착종괘는 ䷸ 중풍손(重風巽)이다. [출처] 57. 중풍손|작성자 김기덕   58. ䷹ 중택태(重澤兌)   중택태는 위와 아래가 거듭 연못(☱:兌)을 이루어 큰 연못을 이룬 괘로서, 물이 고여 일렁이듯 밖으로 기쁨을 표출하는 象이다. 兌는 방위상으로 서방이고 계절상으로는 결실기인 가을철을 의미하니 풍요와 기쁨이 가득한 것을 상징한다. 상하로 기쁨이 가득하니 안팎으로 기쁨을 함께 누리는 모양으로 아직 시집가지 않은 어린 소녀를 의미하여 동심의 세계에서 즐거이 노니는 때를 상징한다. 또한 ☱는 구멍이 열린 象으로 口舌, 무당 등을 뜻하기도 한다. 시에서는 기쁨이 충만한 시를 의미하기도 하고, ☱☱가 물결이 치는 큰 바다 같은 상을 이루고 있어 음률이 있는 시도 여기에 속하며, 물 흐르듯 청산유수격의 시도 바로 중택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와 둘째의 양(⚌)은 충만한 물의 형상이며, 셋 번째 효인 음(⚋)은 물결이 출렁이는 파도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 이 음은 음의 문장으로 해석되기보다는 춤추는 파도와 같은 문장으로 풀이되어야 할 것이다. 흥을 돋우는 추임새나 후렴구, 또는 문장과 같은 것으로 덩실덩실 춤추는 동작의 글쓰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양(⚌)으로 이루어졌고, 人은 소양(⚎), 天은 소음(⚍)으로 구성되어 물속에 가라앉은 물체의 모양을 이루고 있다. 가장 강한 것은 맨 아래에 놓이고 그 다음 강한 것이 그 위에 오르고, 더 가벼운 것이 맨 위로 올라와 물속에 가라앉은 물체의 비중을 보는 것 같다. 마음의 연못 속에도 앙금은 가라앉고 기쁨은 밖으로 표출되듯, 삶의 앙금은 가라앉히고 기쁜 감정, 즐거운 시상을 밖으로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살펴보면 첫째 단락도 기쁨이며, 둘째 단락도 기쁨이 가득한 글쓰기이다. 그렇다고 기쁨의 감정이라고 해서 배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설명적 언어의 나열을 이룬 기쁨과 환희의 들뜬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닌 장구하면서도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 같은 내적 희열의 몸짓을 표현해야 할 것이다. 중택태의 변효를 살펴보면 호괘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이며, 내면의 깨달음과 자성의 시인 ䷤ 풍화가인(風火家人)이며, 도전괘는 여성적 어조의 글쓰기인 ䷸ 중풍손(重風巽), 배합괘는 지엽적인 문장이나 표현을 앞에 두고 뒤에 전체적이고 결론적인 내용이나 핵심 표현을 놓는 방법인 ䷳ 중산간(重山艮), 착종괘는 ䷹ 중택태(重澤兌)이다. [출처] 58. 중택태|작성자 김기덕   59. ䷺ 풍수환(風水渙)   풍수환은 위에 바람(☴:巽)이 오고 아래에 물(☵:坎)이 놓여 물 위에 바람이 부는 상으로 잔잔한 수면에 파문이 흩어지는 괘이다. 손순한 덕으로 안의 중심을 지키면서 밖으로 그릇된 것을 흩어내는 이치가 있고, 배를 띄움에 있어 조류와 바람의 이치를 이용하는 의미도 있으나 詩에서는 각각을 주제의 통일이나 의미의 연결, 이미지의 조합에 신경 쓰지 않고 따로따로 흩어놓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은 음의 문장, 둘째는 양의 문장, 셋째, 넷째는 음의 문장, 다섯째, 여섯째는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셋째, 넷째에서 음이 겹치고, 다섯째, 여섯째에서 양이 겹치고 있으나 배치만 음적이고 양적인 요소의 중복일 뿐 반드시 내용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용에 상관없이 이미지를 배치하여 이미지의 확산, 사고의 확장, 통일된 주제의식 등을 흩어놓고 분산시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접근해 보면 地는 소양(⚎)이고, 人은 노음(⚏), 天은 노양(⚌)으로 천 ․ 인 ․ 지가 각각 다른 모양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天과 人과 地가 각각 다른 이미지, 다른 사고, 다른 표현의 기법을 사용할 수 있다. 반드시 주제를 일치시킬 필요가 없지만, 제목에 따라 확장의 폭을 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 개의 단락으로 형성된 표현이 각각 다를 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내용을 갖게 됨으로 아주 낯설고 어리둥절한 표현을 만드는 방법이다. 팔괘로 살펴보면 물 위에 부는 바람의 상으로 바람이 물결을 흩어놓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로 모아지고 뭉쳐지게 하는 주제의식이나 통일된 이미지에 대한 의도적인 분해, 흩어놓음, 산만하게 하기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 연관관계가 없는 것들을 배치시킨다면 시로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가 있다. 하지만 이는 분열된 현대인의 의식구조에 대한 반영이며, 자칫 광인의 중얼거림이나 몸짓 같은 것을 의미하여 비정상의 정상화를 꾀하는 시쓰기라고 할 수 있다. 풍수환의 변괘 중 호괘는 ䷚ 산뢰이(山雷頤)인데, 頤는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재물이나 덕을 두루 베풀어 흩어야 하니 이것이 기르는 道라고 할 수 있다. 도전괘는 ䷻ 수택절(水澤節)이다 渙은 흩어지는 것이니 흩어지다 보면 어딘가에 걸려 멈추기 때문에 節이 되는 것이다. 배합괘는 渙의 반대인 ䷶ 뇌화풍(雷火豊)이고, 착종괘는 ䷯ 수풍정(水風井)으로, 渙은 흩어지는 것이지만 井은 두레박으로 샘물을 끌어올리는 象이라서 시의 다양한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출처] 59. 풍수환|작성자 김기덕   60. ䷻ 수택절(水澤節)   수택절은 물(☵:坎)이 위에 있고 연못(☱:兌)이 아래에 놓인 象으로 차면 넘쳐흐르게 하고 비면 고여 모이게 하는 것과 같다. 또한 연못에 담겨진 물처럼 물은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갖추고 절제를 하듯 시쓰기에서도 절제된 언어의 선택, 정해진 운율, 함축적 표현이 있는 형식을 의미한다. 節은 서방을 거쳐 북방에 이르는 괘상으로 저녁을 지나 밤이 오고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는 때라서 일을 마치는 마디를 의미한다. 신체의 관절, 초목의 마디, 24절기 등이 모두 節의 이치이며, 절도, 절제 등을 뜻한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 둘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셋째, 넷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다섯째는 양의 문장, 여섯째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양, 양, 음, 음, 양, 음으로 통일된 절제를 가지고 있다. 내호괘 震(☳)은 대나무가 뻗는 象이요, 외호괘 艮(☶)은 마디를 맺는 象이다. 시의 전체적 형식에 절도가 있고 대나무의 마디와 같은 함축적 끊음이 있어야 한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양(⚌)이고 人은 노음(⚏) 며, 天은 소음(⚍)인데, 天 ․ 人 ․ 地가 각각 다른 모습을 이루어 확연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대나무가 마디를 이루어 뻗어가듯 한 단락마다 함축적 절도를 이루고 있어서 압축된 표현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팔괘로 보면 연못에 가두어진 물을 의미하는데, 흐르는 성질의 물을 가두어 하나의 형태를 만들듯 유려한 언어의 흐름을 막고 꼭 필요한 형태의 이미지를 절도 있게 그리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연못의 형태는 여러 가지이다. 네모질 수도 있고, 동그랄 수도 있고, 길쭉한 타원형일 수도 있다. 이러한 연못의 모양이 시인이 그리고자 하는 이미지이다. 연못의 물은 언어다. 언어를 통해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연못을 그리는 방법이다. 언어의 절제와 함축적 표현이 필요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수택절의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 산뢰이(山雷頤)인데, 시작하고 마치는 주기를 뜻하니 이로 말미암아 節의 度數가 있게 된다. 도전괘는 분열된 현대인의 의식구조에 대한 반영이며, 자칫 광인의 중얼거림이나 몸짓 같은 것을 의미하여 비정상의 정상화를 꾀하는 시쓰기라고 할 수도 있는 ䷺ 풍수환(風水渙)이며, 배합괘는 건너뛰기가 있는 하이퍼적인 글쓰기인 ䷷ 화산여(火山旅), 착종괘는 ䷮ 택수곤(澤水困)으로 못 속의 물이 아래로 스미어 땅이 마르니 곤궁한 象이다. [출처] 60. 수택절|작성자 김기덕   61. ䷼ 풍택중부(風澤中孚) 풍택중부는 위에 바람(☴:巽)이 놓이고 아래에 연못(☱:兌)이 있는 象으로서 안으로 기뻐하고 밖으로 부드럽게 행하니 중심이 미더운 모습이다. 孚는 마치 어미닭이 알 속에 들어있는 어린 새끼(子)를 부화시키기 위해 발톱(爪)으로 이리저리 굴리며 품고 있는 뜻이 들어 있는데, 中孚의 象은 강한 양에 의해 유약한 음이 안으로 길러지는 모양으로 부모의 품에서 어린 생명이 자라나는 현상을 상징한다. 시에서 풍택중부는 자연이나 주변 사물, 또는 상황에 의해 시인 자신이나 인간의 유약한 마음에 대한 에너지 공급과 같은 시쓰기이다. 그런 만큼 자연이나 주변 사물은 강하게 그려지고 시인 자신이나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표현된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과 둘째 문장, 다섯째와 여섯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고 중간에 있는 셋째, 넷째 문장만 음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외부적인 자연이나 사물은 강하고 크지만 시인이나 다른 인간의 존재는 나약하고 작은 존재로 표현되어 자연이나 외부적 사물에 의해 힘을 얻고, 꿈과 희망이 키워지는 형태의 시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접근하면 地는 노양(⚌)이고 天도 노양(⚌)인데, 人만 노음(⚏)으로 人은 절망과 어둠에 처한 상황이지만 주변의 地와 天은 광명한 태양과 같아서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또한 풍택중부는 가운데가 빈 배와 같은데, 가운데가 비었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고 강을 건널 수 있다. 이는 마음을 비운 사람과 같아서 세상의 바다를 건너는 데, 어려움이 없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음을 비운 시쓰기도 중부에 속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보면 연못 위에 부는 바람이다. 기쁨이 가득한 연못 위에 부는 부드러운 바람은 기쁨을 배가시키며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에 충분하다. 주변 환경이나 사물에 의해 힘을 얻는 배치가 중부이며, 힘과 위로를 얻는 시쓰기이다. 풍택중부의 변괘를 보면 호괘는 ䷚ 산뢰이(山雷頤)인데, 기르는 양육의 공이 있는 상이다. 頤는 上下의 두 양이 안의 음들을 기르는 것이요, 중부는 안의 두 음이 허한 상태로 양들을 미덥게 좇는 것이다. 배합괘는 ䷽ 뇌산소과(雷山小過)로 소과는 산 위에 나무가 자라는 象으로 일단 그쳤다가 조금씩 밖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착종괘는 ䷛ 택풍대과(澤風大過)로 本未가 허약해 엎어지는 象을 이루고 있다. [출처] 61. 풍택중부|작성자 김기덕   62. ䷽ 뇌산소과(雷山小過)   뇌산소과는 위에 雷(☳:震)가 있고 아래에 山(☶:艮)이 놓여 있는 상이다. 안으로 그치고 밖으로 움직이는 힘이 있으므로 일단 멈추었다가 나아가게 되니 소과이며, 二陽四陰의 괘로서 陰(小)이 과도하니 小過가 된다. 小過의 互卦가 大過임을 미루어 볼 때 모든 것이 소과하는 가운데 대과를 이루니 하루가 30번 거듭하여 한 달이 되고(小過), 한 달이 12회 거듭하여 한 해를 이룸(大過)과 같다. 소과는 작은 일은 가능하고 큰일은 가능하지 못하여 나는 새가 소리를 남김에 올라가는 것은 마땅하지 않고 내려오는 것은 마땅한 듯하면 좋은 상황이다. 시에서는 시인 주변에 음의 배치가 많지만, 주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정작 시인은 희망이 가득한 상태의 글쓰기이다. 절망적 상황,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어머니와 같은, 슬픔과 고통의 현실을 덮는 눈의 부드러운 빛깔이 색칠하는 것 같은 표현을 의미한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와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이며, 셋째와 넷째는 양의 문장, 다섯째와 여섯째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음적 요소가 강한 배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소과는 六二와 六五의 柔가 중을 얻고, 강은 中正을 얻지 못했으니, 큰일은 할 수 없고 작은 일은 가능하듯 시의 흐름이 부드럽고 여성적이며 작고 소심한 감정의 전개를 이룸이 특징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와 天은 노음(⚏)이며, 人만 노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지만물은 음으로 가득 차 있지만 사람만 양으로 이루어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는 네 음이 두 양보다 많은데다 음이 중을 얻고 양은 중을 잃었으니 음이 형통하는 상황이다. 사람이 양을 추구하려 하나 세상과 하늘의 이치는 음 쪽으로 기울어 있어서 큰 뜻을 이루기가 어렵고 막힘이 있는 모양이다. 첫째와 셋째 단락은 음의 단락을 이루고, 둘째 단락만 양의 단락을 이루어 전체적으로 음적 배치의 강세를 이루고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뇌산소과는 상괘와 하괘가 서로 등을 지고 있는 모습이다. 서로 지향하는 것이 다르고 서로의 마음이 괴리하고 있다. 훌륭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는 지위를 얻지 못하고 소인배들만 기를 펴고 있어서 악이 선을 압도하는 상황이다. 과잉의욕을 버려야 하고 확대 전진을 시도하지 말아야 하므로 소극적, 여성적 내용의 시쓰기이다. 또한 이 괘는 나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양효인 삼, 사효는 새의 몸을 의미하며, 나머지 음효는 각각의 좌우 날개를 상징한다. 여기에서 나는 새는 위로 오를 수 없다. 그것은 대기의 압력을 거슬러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오는 것은 순조로워서 땅의 인력에 편승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에 역리하여 거스르지 말고 순순히 세상을 받아들이는 자세의 글쓰기이다. 뇌산소과의 호괘는 ䷛ 택풍대과(澤風大過)인데, 대과는 크게 나아가는 뜻이 있는 양의 지나침이요, 일월의 운행을 의미하기도 한다. 배합괘는 ䷼ 풍택중부이며, 착종괘는 ䷚ 산뢰이(山雷頤)이다. 산뢰이는 一陽이 始發하여 一陽이 終止하기까지의 과정으로 산 아래 초목이 길러지는 상이다 [출처] 62. 뇌산소과|작성자 김기덕   63. ䷾ 수화기제(水火旣濟)   수화기제는 물(☵:坎)이 위에 있고 불(☲:離)이 아래에 놓여 있는 象으로 물은 달을 상징하며 불은 해를 상징하여 日月이 서로 만나 밝게 비추는 水昇火降을 이루고 있다. 또한 卦體의 모든 효들이 제 위치에 바르게 처하고 서로 응하니 旣濟이다. 효의 正位를 따진다면 초효는 양, 이효는 음, 삼효는 양, 사효는 음, 오효는 양, 상효는 음으로 이루어지는데, 수화기제는 모든 효들이 제 位를 바르게 얻어 음양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에서는 감정과 지성의 조화, 격정과 인내의 조화, 어둠과 밝음의 조화, 남과 여의 조화와 같은 윤리적이며 정석적인 시쓰기를 의미한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은 양의 문장, 둘째는 음의 문장, 셋째는 양의 문장, 넷째는 음의 문장, 다섯째는 양의 문장, 여섯째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형식으로 정 위치에서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 위치라 함은 상식적이며, 윤리적이며, 원칙적인 관계를 말하며, 합리적인 배치 및 조화로운 색채의 조합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마음의 정서적 안정과 편안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형식으로 완성도가 높은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와 人과 天이 똑같은 소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음은 內剛外柔의 성질로 시에서는 강한 감정의 절제적 표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단락, 둘째 단락, 셋째 단락의 흐름에 차이가 없으며, 안정적이고 심도 있는 감정의 표현을 이룰 수 있다. 팔괘로 보면 수화기제는 물을 의미하는 坎卦가 상괘로 놓이고, 불을 의미하는 離卦가 하괘로 되어 있다. 물은 아래로 흐르는 성질이 있고 불은 위로 타오르는 성질이 있다. 물은 위에 있으므로 그 마음은 아래로 향해 있고 불이 밑에 있으므로 그 마음은 위로 향하고 있어서 서로 만나 교합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솥에 물을 붓고 불을 때면 물과 불의 기운이 합쳐져 물건을 삶고 익히듯이 기제는 각기 정당한 위치를 얻고 서로 협력하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시쓰기에서도 정석적인 배치를 통해 타당한 관계를 만들고 정서적, 지적 관계를 충실히 엮어 감동을 배가시키는 시쓰기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수화기제의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 등 모든 괘가 ䷿ 화수미제(火水未濟)를 이루고 있다. 기제는 모든 효가 제 位를 바르게 얻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나, 내괘는 불이고 외괘는 물로 이루어져 먼저는 밝으나 나중은 험난한 일이 생김을 의미하듯 수화기제의 변괘는 모두 서로 화합치 못하는 화수미제로 이루어져 있다. 정석적 시쓰기에서 변형된 것은 다 변칙적인 시가 됨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출처] 63. 수화기제|작성자 김기덕   64. ䷿ 화수미제(火水未濟)   화수미제는 위에 불(☲:離)이 놓이고 아래에 물(☵:坎)이 놓인 象으로 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아래로 흘러 서로 사귀지 못하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또한 모든 효가 정상적인 제 위치를 얻지 못하고 부정한 상태에 있으므로 未濟(일이 아직 끝나지 않음)이다. 효의 정 위치는 초양, 이음, 삼양, 사음, 오양, 상음의 관계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초음, 이양, 삼음, 사양, 오음, 상양의 관계를 이루어 완전히 상반된 모양을 갖고 있다. 이는 시에서 정석적이지 못하고 비상식적이며, 비정서적, 부조화의 관계적 배치를 의미한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은 음의 문장, 둘째는 양의 문장, 셋째는 음의 문장, 넷째는 양의 문장, 다섯째는 음의 문장, 여섯째는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三陰三陽이 모두 바른 위에 처하지 못하고 있다. 내괘가 坎水이므로 험난한 데 빠져 건너지 못하는 형국이며, 외호괘도 坎水이므로 橫流하는 상이다. 불은 불대로 물은 물대로 향하는 성질로 상극을 이루고 있지만 물이 불을 끄고 불이 물을 하늘로 오르게 하듯 그 속에 또 다른 상생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시쓰기에서도 반역적인 관계, 뒤집는 관계, 도전적, 역전의 배치를 통해 의미를 강화시키고 표현을 도발적, 충격적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보면 天과 人과 地가 모두 소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양은 內柔外剛, 內貧外富적인 모양으로 심리와 표현의 격차, 의지와 도전의 격차를 만들며, 배치의 관계가 상이하고 비범하며 생경한 상태를 말한다. 첫째 단락과 둘째 단락, 셋째 단락이 같은 형태를 이루며, 의식적인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무언가 새로운 조합과 새로운 정비 및 시작이 필요한 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팔괘로 살펴보면 불이 물 위에 있는 상태로 위치가 적당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이 괘의 형태는 주역의 논리에 한 개도 적당한 위치에 있지 않다. 천지와 일월에 이르기까지 제 위치를 얻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다. 뒤죽박죽된 관계를 의미하며 아직 미완성을 상징한다. 주역의 법칙은 영원히 미완성이며 인생도 영원히 미완성이다. 또한 시도 영원한 미완성이며, 영원한 미스테리인 것이다. 시의 정석은 없다. 사고의 원칙은 없다. 완벽한 시를 쓴 것 같지만 실은 거기서부터 시는 걸음마 단계의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진다. 사물의 배치에 정석은 없다. 불완전한 배치, 비뚤어진 배치가 곧 시의 시작이며 사고의 중심인 것이다. 화수미제의 변괘는 호괘,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 모두 수화기제이다. 기제는 미제를 낳고 미제는 기제를 낳아 끝없이 운행한다. 주역 上經의 머릿괘인 乾 ․〮 坤은 도전괘, 호괘, 착종괘가 모두 불변이고 다만 서로 배합관계만 이루므로 乾坤이 부동의 본체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기제, 미제는 상호 끝없이 변동하여 오가니 건곤은 不易의 몸이요, 기제 ․ 미제는 交易의 本이라 할 수 있다. [출처] 64. 화수미제|작성자 김기덕     * 주역적 시쓰기에 대한 기대   이상으로 64괘의 시쓰기 방법을 제시했다. 64가지의 시쓰기 방법에서 변효의 방법까지 더하면 실상 시쓰기의 방법은 320가지의 방법으로 나뉠 수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좋은 시를 쓰는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 가지의 방법으로라도 제대로 시를 쓸 수 있다면 그 또한 훌륭한 시인일 것이다. 현 시대의 시인들은 저마다 자신에 맞는 방법으로 시를 쓰면서 형식보다는 내용에 치중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여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둔 시에서는 다양한 방법들이 무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일방적인 설득의 시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일방적이던 TV나 라디오 등의 매체들이 이제는 쌍방의 소통을 중시하고 있다. 시도 일방적인 자기감정의 전달에서 벗어나 쌍방소통을 이루기 위해선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일방적인 전달의 시는 주제의 통일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독자가 먼저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시는 주제성보다는 회화성이 중요하다. 언어로 그린 그림을 보고 독자들은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그림은 색의 배치이며, 사물의 구도인 것이다. 이러한 구도를 만들고 색을 다양하게 배치하기 위해선 다양한 시쓰기의 방법이 필요하고, 배치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열거한 주역적 방법은 배치의 변화이다. 주역적 시쓰기는 배치의 다양한 변화를 통해 새로운 구도를 잡고 천변만화의 그림을 그리기 위한 것이다. 기의 흐름에 따라 천지만물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이치를 밝힌 주역을 해석하고 괘의 모양에 따라 언어를 배치함으로써 시인이 의도하는 무궁무진한 세계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방법에 대해 예가 될 수 있는 시를 제시할 수 있었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기존의 시에선 이 방법들을 뒷받침할 만한 적합한 시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일일이 예시를 쓰면서 이론을 정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증명되지 않은 시창작법처럼 치부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론을 먼저 정리하기로 하였다. 앞으로 남은 나의 시간들은 이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시를 쓰는데 채워질 것이다. 또한 이 이론에 공감하는 많은 시인들이 나타나서 더 많은 연구를 하고 미비한 점들을 채워나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출처] 주역적 시쓰기에 대한 기대|작성자 김기덕    인쇄 블로그 카페 북마크 메모 폴라 보내기  댓글 쓰기                   [스크랩 ] 배치의 이론과 마인드맵의 시쓰기 /김기덕  시창작론숲  2017. 10. 27. 22:13 http://blog.naver.com/shunzi75/221126893131 전용뷰어 보기   [스크랩 ] 배치의 이론과 마인드맵의 시쓰기               김기덕(시인)     한 시학도에게 주는 공개편지 문덕수 함께 시를 쓰는 입장에서 시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러한 공개 서한도 주고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론이나 시학에 관한 것도 물론입니다. 나는 우선 김기덕 형에게 많이 독서하고 많은 고전(古典)을 읽으며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음에 대하여 사랑과 경의를 표합니다. 소박한 감정을 즉흥적으로 노래하던 옛날과는 달리 현대의 시는 많이 독서하고 많이 공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시는 구한말 이후 지금까지 관념일변도(觀念一辺倒)로 흘러왔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사의 기술이나 비평도 관념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역사를 자본과 노동, 권력과 소외라는 2분법으로 보거나 헤겔이라는 철학자가 말한 주인과 노예의 대립구조의 연장 선상에 있는 관념주의로 보아 온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장하는 하이퍼시 운동은 시 자체가 관념화에 너무 깊이 빠지는 사태에 쐐기를 박고, 역사를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하나의 관념으로 도색(塗色)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는 데서 출발한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역사 안과 역사 너머에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이퍼시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시라고 보지 않으며 하이퍼시의 이론만 유일무이의 시학이라고 우기는 것도 아닙니다. 배재학당에서 한 달에 한 번 열고 있는 금요시론포럼도 이제는 꽤 오래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법 그 형식과 전통도 갖게 되었습니다. 하이퍼시의 이론이 계기가 되어서 또 다른 이론도 파생할 수 있습니다. 나는 김기덕 형의 『이미지의 공식』을 다 읽어 보았습니다. 이 글의 제목인 ‘공식’에 대해서 정말 공식이라는 것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시를 위한 이미지를 창조하는 공식이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말입니다. 김형의 글에서 김형의 광범위한 독서량을 생각하면서 일종의 사랑의 생각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형께서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저서를 읽은 것을 먼저 거론하고 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들뢰즈와 가타리는 수목상(樹木狀)에서 장구한 서양 철학사에서 철학적 사유의 모델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수목상에서 일자중심(一者中心)에서 2항 대립형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보이고 있고, 이러한 발전형태에서 벗어나야 하며, 그러한 이론을 위하여 리좀(rhizome)을 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리좀에 대한 김기덕 형의 이해도 대체로 이와 같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눈앞에 있는 한 그루 나무를 봅시다. 나무를 보면 하나의 큰 줄기가 있고, 줄기에서 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그 가지에는 또 작은 가지가 갈라져 나 있습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본 것은 이러한 수목상의 조직이 철학을 비롯해 인간의 사유라든지 사회조직의 모델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화도식에서 말하는 계통수(系統樹)라고 말합니다만 이 나무에서 초월적인 일자(一者)인 이 줄기를 중심으로 이항대립(二項對立)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변증법이나 분석적 사유는 트리(tree) 조직의 원리와 같다고 본 것입니다. 리좀은 근경(根莖), 지하경을 의미한다고 사전에 적혀 있습니다. 칸나나 고구마 덩어리처럼 어떤 중심이 없이 이질적인 선이 교차하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 망상조직(網狀組織)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의 신경조직도 리좀이라고 합니다. 스크럼, 럭비,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 1923~ )의 악보(미케네 a) 등도 리좀적이라고 합니다. 조금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전통적으로 사유나 글쓰기에는 하나의 중심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관념들을 표현한다. 예컨대 언어에는 기본적인 구조나 문법이 존재하고, 그것이 프랑스어, 독일어, 인도어와 같이 상이한 방식으로 표현된다고 본다. 이런 사유와 글쓰기의 스타일은 판명한 질서와 방향을 생산하기 때문에 수목(나무 같은)인 것이다. 대조적으로 리좀학(이 책의 저자는Rhizome과 Rhizomatics을 구별해서 쓰고 있다. 인용자)은 임의적이고 탈중심화 되며, 증식하는 접속들을 만들어낸다. 언어의 경우 우리는 근원적인 구조나 문법이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단지 상이한 발화 체계들과 스타일들이 있다는 것, 이런 모든 차이들에 대한 ‘나무’ 혹은 ‘뿌리’를 찾는 시도가 사후적 발명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리좀적 방법은 근거와 결론, 원인과 결과, 주체와 표현 사이의 구별이나 위계에서 출발하지 않는다”(클레어 콜브락 지음, 한정헌 옮김 『들뢰즈 이해하기』 크린비, 2007, 32쪽). 다시 말하거니와 김기덕 형도 리좀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와 같이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또 하나 ‘배치’ 문제가 있습니다. 김 형께서는 “시는 적절한 배치에 의해 그 차원을 달리 한다. 배치는 계열과 달리 어떤 개개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연결된 전체를 포괄하려는 개념이다”라고 말하고 그 다음엔 “진달래꽃 하면 김소월이 생각날 것이다.…… 진달래꽃이 김소월의 시에서처럼 길과 접속한다면 이별이나 영접을 상징할 수 있다. 만약 진달래꽃이 여자의 머리와 접속한다면 장신구가 되거나 정신이상이 될 것이다. 진달래꽃이 병이나 도자기와 접속하면 진달래주가 될 것이고, 쌀가루나 밀가루와 접속하면 화전이나 꽃밥으로 전환될 것이다.”라는 대목으로 연속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에 대해서 한 마디로 ‘배치’ (agencement)에 관한 책이라고 합니다만, 굳이 이 말을 인용하는 것은 김기덕 형의 독서 범위가 넓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들뢰즈와 가타리에게선 이 배치를 계열화(mise en séries)라는 개념과 함께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종의 훌륭한 철학서인 『노마디즘』 (이진경, 자유, 2002)에서는 여러 가지 축구공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축구공 이야기는 김 형의 여러 가지 배치 이야기와 유사합니다.(동서, 58쪽) 사람, 물건, 동물, 글자 등의 어떤 것과도 연결되어 어떤 의미를 만드는 계열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김 형은 “배치 안에서 각 항은 접속하여 새로운 이미지나 상징을 만든다”라고 말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너무 얘기가 길어짐을 염려하면서 「주역」 (周易) 쪽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김 형께서 어째서 「주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하이퍼시의 이론 정립을 위해 하이퍼시의 구조 중에 주역의 기본 이론과 하이퍼시가 관련이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또 주역의 괘(卦)의 도형과 기호(sign)는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주역」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주역에 관한 김기덕 형의 글을 잘 모르겠으나 다만 시의 구조와 「주역」 원론의 접점 같은 것이 더욱 밀도 있게 연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 형께서는 더욱 건강하고 조신(操身)하면서 치열하게 연구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나는 건강이 안 좋아서 손도 떨리고 글도 조리 있게 쓰지 못합니다. 이 글을 발행하고자 하는 책 머리에 서문 대신에 편지 형식으로 놓아도 무방합니다. 내내. [출처] 한 시학도에게 주는 공개편지|작성자 김기덕 수목적 시쓰기 수목적 시쓰기는 순차적, 인과적, 논리적인 글쓰기로 선형적 전개를 이룬다. 나무의 뿌리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잎으로 확장하든지, 그 반대로 축소되는 형식을 갖는다. 수목적 시의 특징은 주제의 통일이다. 하나의 시엔 하나의 주제가 필요하고, 주제에 어긋나는 내용은 제거된다. 예를 들면 정원사가 기린 모양의 나무를 만든다면 기린의 모양을 벗어난 가지는 잘라내어야 한다. 시어들은 주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유사성이나 인접성에 의해 동원되며, 그 접속관계는 대부분 1:1의 관계를 이룬다. 이1:1의 관계는 진달래꽃이 배치에 따라 여러 각도의 이미지로 사용될 수 있지만, 김소월의 시에서처럼 길과 배치되어 이별의 관계로만 접속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또한 1:1의 관계로 접속되었다 하더라도 완전히 독립적인 개체가 아닌 유사성이나 인접성에 의한 요소들의 집합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수목형의 대표적인 시는 서정시이다. 서정시의 장르적 특징은 외적으로 리듬과 장단을 갖추고, 내적으로는 구조나 사상 및 정서 등의 요소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내용적 특징으로는 음악성, 서정성, 주관성을 가지며, 주제도 한 가지이고 사상, 감정도 한 가지로 이루어진다. 서정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화된 주관적 서정이며, 내적 체험의 표현이다. 객관적 현실을 주관적 체험으로 전환시켜 표현함으로써 세계와 자아가 대립하거나, 융합하거나, 세계를 자아의 내면으로 몰입하게 하는 것이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바람은 머리 풀고 울었습니다. - 중략- 탄환을 쫓는 비명 소리가 절벽에 메아리로 박힌 뒤 터진 틈새로 포연이 솟아올라도 수의처럼 상처를 가리는 안개 군화 발굽에 실신한 백사장은 하류를 따라 허연 나신(裸身)을 드러내고 뭉개진 젖가슴 위로 술 취한 시대가 비틀거리며 지나갑니다. 굽이굽이 한 서린 강물 속으로 백골은 뜨물같이 풀어져 긴 그림자를 끌며 자지러지는 포말 -김기덕의 「한탄강」 일부 필자의 시 「한탄강」은 한탄강을 주관적인 감정으로 재해석하여 쓴 것이다. 「한탄강」처럼 수목적인 시는 시인의 생각이 선명히 드러나야 하고 기, 승, 전, 결이든 기, 서, 결이든 정해진 방식을 통해 주제의 통일을 추구한다. 다양하게 외적, 내적으로 변형된 형식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근본형식을 토대로 한다. 그래서 시인의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이해하기 쉬워서 머리로 생각하기보다는 가슴으로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의 중심에서 줄기로, 가지로, 잎사귀로 뻗어간 사고의 단순성이 이제는 식상한 시대가 되었고 진화된 현실세계를 표현하고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출처] 수목적 시쓰기|작성자 김기덕   유목적 시쓰기 배치를 통한 시쓰기는 정주적 사고에서 벗어나 이질적인 모든 것에 대한 새로운 접속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리좀적 글쓰기이다. 유목적이란 단순히 정주성에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사고의 확장과 무한한 연결 가능성을 통해 다양체를 추구함을 의미한다. 서정시에서의 유추나 상상력을 통한 사고의 확장은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한계 내에서 직유적, 은유적, 상징적 기법들을 통해 구현되어 왔다. 이러한 의식의 확장을 위해 유사성이나 인접성의 원리가 적용되었고, 아이러니나 패러독스 같은 방법이 동원되었다. 직유나 은유는 본의가 비유의 대상인 유의와 거의 1:1의 관계를 이루고 본의와 유의가 드러난 상태지만, 상징은 1:1의 관계를 형성하며 유의만 남고 본의는 숨어 있는 것이다. 표면에 드러난 유의 속에 숨겨진 본의는 명백하거나 확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신 되거나 암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은 다양체가 내적으로 숨겨져 있는 것이며 관념성을 통해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다양체를 만드는 토대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유목적 글쓰기에서의 다양체는 첫째, 차이가 차이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동일자의 운동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 차이가 어떤 하나의 중심, 일자로 포섭되거나 동일화되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 이러한 원리로 볼 때 다양체는 서정시의 비유나 상징적 기법에서 쓰이던 인접성과 유사성의 끌어오기 기법에서 더욱 멀어진 의미의 관계망을 요구하고 있다. 서정시는 예를 들면 화폐의 척도나 획일적인 발견을 통해 이질적인 것이 나타났을 때 다양체 확장 계기보다 사고의 다양성을 묶는 단순화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원리로 환원되지 않는 이질적 집합을 이루고 하나의 추가가 전체의 의미망을 크게 다르게 할 수 있는, 접속되는 항들에 따라 그 성질과 차원 수가 달라질 수 있는 글쓰기를 유목적(리좀적) 글쓰기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유목적 시쓰기|작성자 김기덕 1)     리좀이론 rhizome은 뿌리줄기라는 말로 하나의 중심뿌리에서 중간뿌리로, 중간뿌리에서 잔뿌리로 연결되는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줄기에서 옥수수나 보리의 수염뿌리처럼 중심뿌리가 없이 분기되고 접속되는 관계를 말한다. 둥치에서 큰 가지가 뻗어나가고 큰 가지에서 잔가지가 뻗어서 잎이 나오는 구조가 아니라 단번에 근원에 닿아 있는 구조로서 모양이 다를 뿐 모든 것이 똑같은 실체인 것이다. 고전적 글의 구성방식은 뿌리(결론)로 귀착되는 나뭇가지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리좀적 글쓰기는 하나의 결론으로만 끌고 가지 않는 모호한 집합의 다양체이며 언표행위의 집합적 배치이다. 질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에서 언급하고 있는 리좀적 특징을 본다면 나무의 뿌리와 달리 리좀은 어떤 지점에서든 다른 지점과 연결 접속한다. 반드시 자신과 동일 본성을 가진 특질과 연결되지 않으며, 하나로도 여럿으로도 환원될 수 없다. 리좀은 단위로 이루어지지 않고 차원들 또는 방향들로 이루어져 있다. 리좀은 시작도 끝도 갖지 않고 중간을 가지며 중간을 통해 자라고 넘쳐난다. 고른 판 위에서 펼쳐질 수 있는 선형적 다양체를 구성하며, 자신의 차원을 바꿀 때 본성이 변하고 변신한다. 리좀은 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대일의 대응관계의 집합에 의해 정의된다. 분할선들 성층작용의 선들이 여러 차원을 이루고 도주선 탈주선을 따라 본성이 변하며 변신한다. 리좀은 변이, 팽창, 정복, 포획, 꺾꽂이 등을 통해 나아간다. 항상 분해될 수 있고 연결 접속, 역전, 수정될 수 있는 지도와 관련되며 나무형태와는 완전히 다른 모든 관계이다. 말하자면 모든 종류의 생성(되기)이다. 논리를 세우고, 존재론을 뒤집고, 기록을 부숴버리고, 시작도 끝도 무화시키는 방법으로 사물들 사이에서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가거나 반대로 가는 위치를 정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출발점도 끝도 없는 시냇물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출처] 리좀이론|작성자 김기덕   리좀적 글쓰기의 활용 리좀적 이론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글쓰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무한히 분할 증식해 가는 중간줄기와 같은 글쓰기는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한 개체들의 나열과 같아서 의미나 형태의 수직적 관계를 이루기보다는 수평적 관계를 만든다. 하나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 하나가 되는 관계가 아닌 1:1의 접속관계를 만드는 관계는 나열적 수평관계를 만든다. 대등한 관계는 상하관계가 될 수 없으며 속하기도 하고 포괄하기도 하는 크고 작은 관계가 없다면 밋밋한 바닥, 의식의 층이 상실된 평평한 판에 불과할 것이다. 무한히 증식하고 번식해 나간 잔디밭과 같은 것으로 의식의 확장, 다양체의 생성은 가능하나 깊이와 높이를 따지고, 하나의 개체에 속한 크고 작은 기관들, 그 기관을 구성하는 미세적 요소와 같은 의식의 수직적 관계망을 엮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보리나 옥수수와 같은 식물이 수염뿌리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이 수염뿌리 전체를 하나나 둘로 잡아주고 묶어줄 수 있을 때 수염뿌리의 증식은 의미가 있다. 다양체의 존재는 이 다양체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철학이나 메시지,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보다 큰 이미지나 배치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다양체의 존재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로 아무런 연관 없이 연결된 이미지들을 보고 우린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다양체를 묶어줄 수 있는 줄기는 눈에 보이지 않되 존재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하나로 통일된 주제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력이 강한 다육식물, 그리고 꺾꽂이나 휘묻이 할 수 있는 식물은 결국 뿌리를 만들고 줄기를 만들고 잎을 만들어 통일성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온전한 리좀적 글쓰기만을 구현하기는 쉽지 않으며, 구현한다 해도 산만하기 쉽고 그 깊이를 보여주기는 어려운 일이다. 리좀적 요소를 하나로 묶어주고 큰 틀을 형성해 줄 수 있는 숨겨진 철학적 요소, 아니면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대표적 요소(주제나 이미지)가 필요하다 [출처] 리좀적 글쓰기의 활용|작성자 김기덕   3) 하이퍼시 현재 일고 있는 하이퍼시의 핵심은 리좀적 글쓰기를 통한 다양체의 추구와 탈관념의 실현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본다면 단선구조의 틀을 다선구조의 틀로 만들며, 시인의 독백적 서술을 객관적 이미지로 표현하며, 정적 이미지를 동적이미지로, 시인을 시의 주체에서 이미지의 편집자로, 고정된 관념에서 다양하게 확산되는 상상으로, 읽고 생각하는 시에서 보고 감각하고 사유하는 시로 바꾸어보려는 현대시의 개혁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시는 대부분 하이퍼성을 띄고 있다. 은유나 상징적 기법들도 하이퍼적인 요소로 사고의 건너뛰기, 확산과 다양성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이퍼시와 은유나 상징시와의 차이는 무엇일까? 은유나 상징은 표현으로 되어 있으나 그 속에 많은 관념을 포함하고 있다.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시구에서 내 마음은 호수로 환치, 건너뛰기를 했으나 그 안에는 넓고, 푸르고, 맑고, 깊은 등등의 관념을 담고 있다. 하지만 하이퍼시의 확장은 이미지만 남고 관념은 사라지는 탈관념의 시이다. 그러나 모든 이미지 자체에는 관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한 탈관념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최대한의 관념배제를 통해 시를 읽고 생각하게 하기보다는 그냥 느끼고 감각하게 하려 한다. 그래서 하이퍼시를 읽고 나면 크게 마음에 남는 느낌이 없는 듯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이미지를 끌어와 복잡하게 만들었는데 그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생각은 단순하고, 단선적이라는 것이다. 형식의 다양체는 이루었으나 내면의 다양체는 만들지 못한 시들이 하이퍼운동의 시들 속에서 엿보인다. 읽기만 복잡하지 생각할 것은 없다는 지적도 많다. 진정한 하이퍼시는 내적, 외적 건너뛰기이며, 탈관념, 즉 관념이 숨어서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관념이 매몰된 이미지의 추구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은유시나 상징시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거기엔 결합의 관계, 결합의 방법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관계는 배치의 관계이며, 배치의 합성을 통한 새로운 이미지의 해석을 만드는 것이다. 배치는 방사형으로 퍼져 있으며, 형이상과 형이하, 힉스에서 우주로 연결되어 무한한 사고의 확장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직선적 배치는 서정시의 주류이며, 상징시나 초현실주의적인 시들도 몇몇의 선들로 배치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하이퍼시는 보다 복잡한 배치선들로 구성되며, 평면적인 배치에서 벗어나 무수한 수직선들의 결합인 방사형(상징성의 집합) 배치의 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하이퍼시|작성자 김기덕   진화된 시쓰기의 목표 진화된 시쓰기는 기존의 수목적 시쓰기의 틀에서 벗어나 유목적 시쓰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유목적 시쓰기는 배치를 통해 다양성을 추구하며, 리좀적 이론을 활용하되 증식하고 확장하는 수염뿌리를 묶어줄 수 있는 줄기와 같은 철학이나 주제성을 추구한다. 이러한 주제나 철학은 보이지 않게 묻혀 있는 매몰된 관념이 되어야 하며 커피 속의 크림처럼 녹아 있어야 한다. 다양체의 선정과 확장의 방법은 유사성, 인접성의 연결과 상징, 욕망의 선 및 탈주선의 활용, story의 변화, 주역적 접속점 찾기 등을 통해 그 방법을 모색한다. 상이한 접속점들의 연결방법은 콜라주 기법이나 파워포인트 기법, 데칼코마니 기법, 마블링 기법, 시퀀스 기법, 주역점의 기법 등을 통해 짜깁기 형식을 취함으로써 단순한 사진찍기에서 벗어나 양탄자를 직조하듯 언어의 직조와 사고의 직조를 꾀한다. 이러한 언어의 구체적 직조방법은 마인드맵을 통해 지도화(地圖化) 한다. 표현의 방법은 설명이나 관념을 없애고 이미지만을 추출하여 이미지의 결합을 이루어야 한다. 그 이미지를 결합하기 위해 이미지에 속하는 단어만 시어라인을 통해 구별하고, 언어의 상징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표면적 이미지의 결합뿐만 아니라 이면적 상징, 의미의 결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빙산이론’인데, 수면 위에 보이는 것은 이미지이지만 수면 속에 잠긴 부분은 이미지에 담긴 상징성이나 관념을 의미한다. 시를 쓰는 것은 수면 위의 빙산을 보여주는 것이고, 수면 속에 잠긴 빙산은 숨겨져서 지식과 경험의 척도에 따라 독자가 파악하고 느껴야 할 부분이다. 시의 내용이 시인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고 독자가 리드하고 주역이 되는 객관적 시가 되어야 한다. 구체적 표현을 위해 문장구성을 위한 선명한 이미지의 명사를 선택하고 동사의 많은 대등항 속에서 살아 있는 생선처럼 펄펄 뛰는 언어의 선택이 필요하다. 또한 설명의 문장을 표현의 문장으로 바꾸는 작업을 통해 표현의 내용적 연결을 추구할 수 있다. 진화적 시쓰기의 중점은 얼마나 많은 접속점을 찾아 자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연결하고 표현하느냐이다. 어린아이들의 블록놀이처럼 연결점이 많을수록 자신이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듯이 언어에서도 많은 연결점을 찾아 다양하고 자유로운 이미지의 창출과 시적 의미의 확장을 꾀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런 다양한 접속점의 발견을 위해 기존의 신화·역사적인 시각, 철학적, 종교적, 과학적, 예술적 시각 등등의 시각에서 한국의 꿈풀이 및 주역적 시각을 추가하여 무한한 접속점의 발견으로 다양체의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다양체의 생산은 수평적 시쓰기의 형태에 머물지 않고 수직적, 횡단적 시쓰기가 되어야 하며, 클릭으로 원하는 이미지를 맘껏 끌어올 수 있는 컴퓨터적 가상공간의 시쓰기가 되어야 한다 [출처] 진화된 시쓰기의 목표|작성자 김기덕  배치 시는 적절한 배치에 의해 그 차원을 달리 한다. 배치는 사건이나 계열화와는 달리 어떤 개개의 의미를 포착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연결된 전체를 포괄하려는 개념이다. 배치 안에서 각 항은 접속하여 새로운 이미지와 상징을 만든다. 여러 접속으로 만들어진 배치가 다른 것들과 관련하여 하나의 커다란 상징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접속항이 달라지면 절단, 채취의 흐름이 변화하면서 다양체를 형성하게 된다. 하나의 시 속에 많은 다양체가 형성된다면 그 시는 입체성을 띄게 된다. 평면적 시쓰기는 복잡한 현실세계를 보다 예술적인 차원으로 접근, 표현하는 데 미흡하지 않을 수 없다. 한눈에 들어오는 수채화적인 글쓰기보다 피카소적인 글쓰기가 필요하다. 예술의 차원은 복잡도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차원은 소재나 제목을 통해 얼마나 많은 다양체를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다양체는 다양한 종류의 나열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소재나 제목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미지나 상징의 단면을 보여줄 수 있느냐이다. 평면적인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은 단순하지만, 입체적인 대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은 다양하다. 밑면을 보고, 윗면을 보고, 안과 밖을 보듯 느낌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입체적 글쓰기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치를 통해 많은 상징과 이미지를 표현해야 한다. ‘진달래꽃’하면 김소월이 생각날 것이다. “영변에 약산” ,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등으로 표현되는 진달래꽃을 무엇과 배치시킬 수 있을까? 진달래꽃이 김소월의 시에서처럼 길과 접속한다면 이별이나 영접을 상징할 수 있다. 만약 진달래꽃이 여자의 머리와 접속한다면 장신구가 되거나 정신이상이 될 것이다. 진달래꽃이 병이나 도자기와 접속한다면 진달래주가 될 것이고, 쌀가루나 밀가루와 접속한다면 화전이나 꽃밥으로 전환될 것이다. 총이나 군화와 배치한다면 전쟁으로 인한 죽음이나 피를 상징할 것이다. 또한 바람과 배치하면 낙화와 같은 허무를, 강물과의 배치는 자살과 같은 이미지나 상징을 만들게 될 것이다. 질 들뢰즈는 접속항이 달라지면 절단, 채취로 흐름의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이를 기계로 표현한다. 입은 먹는 기계이고, 말하는 기계이고, 섹스의 기계이고, 토하는 항문의 기계가 되기도 한다. 하나의 붉은 깃발이 배치되는 바에 따라 구조신호가 될 수 있고, 혁명군이 될 수 있고, 위험신호가 될 수 있듯이 배치에 따라 새로운 상징과 이미지가 탄생한다. 시의 첫줄을 읽고 마지막 줄을 읽어 그 의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라면 평면적인 글이요, 아메바적인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진화된 시쓰기는 변화이고, 새로운 의식의 물고를 트는 것이며, 다이아몬드의 다양한 각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출처] 이미지의 공식- 배치|작성자 김기덕 마인드맵을 이용한 시쓰기 1. 논리 마인드맵의 필요성 인간의 두뇌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들은 복잡한 신경세포로 연결되어 정신활동을 지배하고 있다. 좌뇌는 언어학(말하기, 읽기, 계산, 작문), 논리적, 계열적 과제에 우세한 반면 우뇌는 비언어적, 공간적, 창의적 능력 및 음악, 얼굴 익히기, 자유로운 연구 등에 우세하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러한 능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한 편의 시 속에 옷감을 직조하듯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상상력, 음악적, 미술적 요소 및 모든 능력을 총 집결하여 하나의 주제나 사물을 개인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동안 시는 개인적 감정의 흐름대로 써온 것이 주류였다. 시는 개인적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기에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쓴 시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시각, 객관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에 치우친 시는 한 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쳐 시의 객관성과 균형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지나친 의욕으로 가분수가 될 수도 있고, 시심을 뒷받침 해주지 못해 미성숙의 시나 절름발이 시가 될 수도 있다. 또한 구상을 통한 구성을 제대로 하지 않고 시를 쓰게 되면 첫째로 흘러가는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고, 둘째는 중간에 막히게 되면 그 막힌 것을 뚫고 나가기가 쉽지 않게 된다. 셋째로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적절한 조화와 배치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논리 마인드맵 기법은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고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시를 쓰기 전에 충분히 자료를 모으고, 방향을 설정하고, 다양한 시각의 변화와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기 위한 것이다. 집을 짓는데 필요한 재료를 미리 준비해서 정리를 해 놓고 집을 짓는 것과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구해서 짓는 것은 차이가 크다. 또한 재료가 준비되어 있다고 해도 정리가 되지 않고 여기저기 널려 있다면 집을 짓기 위한 시간보다 재료를 찾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다양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쓰기 전에 다양한 시각적 사고가 있어야 하며 그 분야에 대한 자료 찾기가 필요하다. 써나가는 과정은 직선적인 과정이다. 그래서 전후좌우를 돌아보며 취사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쓰기 전에 얼마나 많은 다양성의 재료와 변화 있는 설계가 있느냐에 따라 평면적 시쓰기가 아닌 심층적 시쓰기가 이루어질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시각으로만 사물을 보면 자신의 감정과 지식, 경험에 의해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시각을 버리고 정해놓은 여러 개의 구멍으로 사물을 바라본다면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게 된다. 철학적 시각의 구멍으로 사물을 보라. 그 사물은 인생의 의미를 던질 것이다. 음악적 시각의 구멍으로 들여다보라. 언어의 운율과 사고의 리듬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미술적 시각으로 바라보라. 구조와 대칭, 색조의 아름다움을 보게 할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접근을 통한 통합된 감정 및 이미지, 의미의 재료들을 총동원하여 한 편의 시를 건축한다면 그 시는 짓다 만 듯한 집이나, 엉성한 집이 아니라 그 방향, 그 분야에 최고의 예술성을 간직한, 균형과 조화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논리마인드 맵의 필요성|작성자 김기덕   2. 마인드맵의 정의와 시에서의 접목 마인드맵은 두뇌의 기능을 파악한 후 그 기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학습에 이용하고자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활용해 공부하게 되면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쓰기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책 한 권의 분량을 A4용지 한 장에 정리하여 담을 수 있기 때문에 내용을 압축할 수 있다. 둘째는 마인드맵을 그릴 때는 이미지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기억이 잘 되고 설명적인 것을 이미지화시키는 습관을 갖게 된다. 시쓰기는 이미지화 작업이다. 시는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볼 때 마인드맵은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끌어오고 조합하여 그림의 설계도를 그려준다. 설계도가 잘 그려져야 훌륭한 집을 지을 수 있다. 하나의 소재나 주제를 선택하고 창조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미지를 끌어와 그물망처럼 엮다 보면 전체적인 밑그림이 그려진다. 세밀한 부분까지 꼼꼼히 설계도를 그렸을 때 시를 쓰는 시간은 단축될 수 있다. 그리고 시를 쓰다가 막혀서 중단하는 일이 없게 된다. 어쩌면 시를 쓰는 시간보다 마인드맵을 통해 자료를 모으고 분류하여 전체적인 방향과 밑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훨씬 중요하고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작품에 대한 욕심과 급한 마음으로 마인드맵을 소홀이 하고 성급히 시작(詩作)에 임하면 더 많은 시간적인 낭비와 완성의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마인드맵의 과정을 통해 선명한 소재나 주제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고 자신의 경험과 다양한 시각을 동원하여 뒤집어보고 파헤쳤을 때 심도 있는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 자신의 감정에 끌려 안일하게 시작한 한 방향적인 시쓰기가 아닌 다양한 절도와 천의 시각에서 한 편의 시 속에 엑스레이처럼 뼈 속까지 표현해 내는 다양체의 글쓰기가 필요하다 [출처] 마인드 맵의 정의와 시에서의 접목|작성자 김기덕   3. 마인드맵의 구조 마인드맵의 구조는 나무의 형태를 취한다. 첫째 쓰고자 하는 핵심 소재나 주제를 항상 중심 이미지로 놓고 시작한다. 곧 나무의 둥치가 되어 이 둥치로부터 많은 생각이 뻗어가게 해야 한다. 시를 쓰기 위한 중심을 잡을 때는 가급적 이미지가 있는 소재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주제를 먼저 잡으면 생각이 경직되고 주제의 한계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소재를 선택하고 이미지를 선택할 때 그와 연관된 이미지를 뽑을 수 있고, 이미지를 만들며 생각의 줄기를 뻗어갈 수 있다. 둘째는 중심 이미지에 관련된 주요 이미지는 둥치에서 뻗은 줄기처럼 연결하여 표현한다. 둥치에서 나온 줄기는 가지와는 다르게 개략적인 것으로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줄기가 튼튼하고 균형을 잘 잡아주어야 하듯 풍성한 이미지를 뽑고 다각도의 시각으로 조명해 주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에만 몰입된 시쓰기는 한쪽으로 치우친 나무처럼 쓰러지게 된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감정을 가진 사람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보다 객관적이고 심도 있는 다양체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셋째, 가지들의 연결은 핵심 이미지와 핵심 단어를 통해 확산된다.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무수한 가지들은 다양한 이미지들의 집합이다. 줄기와 연관된 모든 이미지나 단어들이 여기에 속한다. 유사한 것들과 연관된 것들, 그리고 속한 모든 것들을 이미지로 뽑아야 한다. 관념으로 뽑으면 나중에 그림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많이 뽑은 것 같지만 정작 시를 쓸 때는 하나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무성한 가지를 만들어 놓아야 많은 사고의 집을 지을 수 있다. 넷째는 계속 이어지는 이미지들은 나뭇가지의 마디마디가 서로 연결되지 않는 듯한 구조를 취한다. 표면적 이미지의 크기나 생각하는 내용물의 대소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세밀하고 깊이 있게 접근하느냐의 분류에 따라 가지들은 더 미세하게 뻗어가고 분기된다. 세밀한 가지까지 그려준 나무형태의 마인드맵을 그릴 때, 시는 풍부해지고 다양해진다. 막상 시를 쓸 때 찾은 재료를 다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쓰는 시와 모르고 쓰는 시에는 차이가 있다. 이상의 네 가지 형태를 설명했는데, 나무의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수목형 시쓰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마인드맵으로 찾은 내용을 순서대로 쓴다면 물론 수목형 시쓰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재료들을 찢어 붙이는 콜라주기법처럼 맘대로, 다양하게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뿌리와 뿌리들이 서로 분기·접속하는 리좀적 시쓰기가 가능하게 된다 [출처] 마인드 맵의 구조|작성자 김기덕   4. 마인드맵을 그리는 방법 마인드맵을 그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국부잔센터에서 지은 『반갑다, 마인드맵』의 내용을 참조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백지를 준비한다. A4용지나 그보다 더 큰 용지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줄이 쳐진 종이는 다양한 생각을 펼치는데 제한을 주기 때문에 대뇌피질의 표현 능력을 종이 위에360도 돌아가게 표현해 주는 데 도움을 주는 백지가 필요하다. 2. 백지 표면의 공간은 풍경화를 그릴 때처럼 자유롭게 사용한다. 단어나 이미지를 측면으로 시계방향에 따라 이동하여 이용하므로 공간이 충분하다. 그래서 책 한 권의 분량도 압축하여 넣을 수 있다. 3. 종이를 가로로 펴놓고 지면의 중심에서부터 시작한다. 중심은 가장 시의 핵심이며 정신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심에서 발원하여 시의 강이 흐르게 된다. 중심은 시작이고 또한 본체인 것이다. 4. 쓰고, 생각하려는 내용에 대해 이미지를 정해야 한다. 이미지 안에는 이미 관념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만약 슬픔을 표현하려 한다면 눈물이나 비, 손수건 등의 이미지를 정해 그림으로 나타내야 한다. 그림은 몇 천 개의 관념어보다 값어치가 있다. 이것은 결합의 시초로써 무수한 접속점을 갖고 있으며, 생각의 초점을 맞추어주고 머릿속에 잘 기억되도록 단순화시킨다. 5. 핵심 이미지에 대해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의 색상을 사용한다. 색상은 두뇌의 상상력을 유발시키고 주의력을 끌게 한다. 6. 이미지를 열어둔다. 틀을 미리 만들고 생각하게 되면 단조로움을 주고 생각을 막을 가능성이 있다. 7. 선은 단어의 길이와 같게 한다. 단어보다 긴 선은 생각의 연결을 단절시키지만 단어 길이와 같은 선은 연결을 강하게 해준다. 8. 핵심이미지에 연결된 쪽의 선은 그 보다 세부적인 내용을 담을 가지의 선보다 두껍고, 선의 형태는 유선적이며 유기적이어야 한다.  [출처] 마인드 맵을 그리는 방법|작성자 김기덕  마인드맵의 구성요소 1) 둥치 둥치는 첫 번째 잡은 시상이다. 이 시상을 가장 중심에 놓고 이 시상으로부터 뻗어가는 생각을 그리게 된다. 시상은 시가 될 만한 씨앗이어야 한다. 관념을 선택한다면 씨앗을 싹틔우고 줄기와 가지를 뻗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관념은 죽은 씨앗이다. 파종하기 위해 실한 씨앗을 보관하듯 싹이 틀만한 이미지를 잡아야 한다. 또한 마인드맵은 한 알의 은행이 싹이 터서 천년 묵은 열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되듯, 하나의 생각 덩어리를 중심에 놓고 생각의 줄기를 뻗고 가지를 내고 잎을 피워 열매를 따는 과정을 하나의 백지 속에서 이루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둥치를 결정하는 하나의 씨앗에서 천년의 은행나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심미안의 눈으로 소재를 보고 마인드맵의 둥치를 정했을 때 산 같은 시, 바다 같은 시를 쓸 수 있다. 시의 성패는 둥치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둥치는 많은 생각의 줄기와 가지를 뻗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관념을 둥치로 선택했을 때 많은 이미지를 만들기는 쉽지 않지만, 바다라는 이미지를 끌어온다면 바다에 대한 많은 이미지를 끌어와서 줄기와 가지를 쉽게 그려갈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마인드 맵의 구성요소|작성자 김기덕 줄기   줄기는 둥치로 정한 하나의 씨알을 싹틔워 사방으로 뻗어가게 하는 방향설정이고 분야를 쪼개는 다양한 시각이다. 하나의 사물을 상, 하, 동, 서, 남, 북의 시각으로 나누어 묘사한다든지 하나의 대상을 철학적, 예술적, 역사적, 과학적, 종교적, 음악적, 미술적 또는 천·인·지 등등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구분을 말한다. 시상으로 잡힌 하나의 이미지나 대상을 이렇게 나누어 본다면 책 한 권을 쓸 정도로 많은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다. 나누어 보지 않고 전체를 본다면 깊이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생각은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쪼개고 나누어 생각할 때 새로운 줄기, 새로운 가지와 무수한 잎을 피울 수 있다. 줄기는 다양한 분야를 제시하고 내용에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평면적이고 확산적일 수 있지만, 심층을 만드는 계단이기도 하다. 모양은 시계 속의 숫자와 같으며 진행 방향도 같다. 시계 속의 숫자는 하루가 도면처럼 펼쳐진 것이지만, 시간 속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사건은 취하지 않는다. 다양한 생각의 줄기를 만들어야 한다. 판타지든, 리얼리티든, 형이상이든, 형이하든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 과감히 줄기를 만들고 자료를 채취해야 한다. 이미지가 없는 자료, 관념과 지식적인 자료는 시에서 대부분 쓸모없거나 방해자가 된다. 풍경이 그려지는 자료, 오감을 자극하는 자료를 꺾어야 한다. 유사한 이미지를 찾고 인접한 것들을 모아야 한다. 별처럼, 불가사리처럼, 십자가처럼 뻗어있는 뿔은 전 세계, 전 우주로 향한 무한대의 상징인 것처럼 줄기는 사고의 무한대로 향하는 화살표이며 풍향계이다 [출처] 줄기|작성자 김기덕 가지    가지는 줄기에서 나누어지는 세부적인 사항으로 보편적이지만 특수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상식적인 내용이나 지식적인 구체성을 띄어야 하지만 그 안에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과 연결고리를 걸고 있어야 한다. 그 연결고리는 접속점으로써 크게 표면적 접속과 이면적 접속으로 나눌 수 있다. 표면적 접속은 유사성이나 인접성으로 나타나며, 이면적 접속은 상징성이나 욕망의 선, story 등으로 나타난다. 가지는 자세하고 세밀해야 하며, 확산적이면서 심도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가지를 만드는 데는 통찰이 필요하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보고 그려야 한다. 나뭇가지 끝들은 미세해져서 하늘과 연결되듯이 마인드맵의 가지들은 하늘처럼 배경이 되는 철학이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주제의식이나 철학의 관념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 배경 속에 녹아서 보이지 않지만 설탕물처럼 맛보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가지는 그러한 배경과 연결되지만, 이미지로 얽혀야 한다. 이 가지 저 가지가 얽혀서 부채 모양을 만들고 기린 모양을 만들고 우산 모양을 만들 듯 무질서한 것 같지만, 큰 틀의 질서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큰 틀의 질서를 위해 생각의 가지는 자르지 말아야 한다. 마인드맵의 과정은 큰 틀을 초월해 있는 것이지만, 시를 쓸 때는 큰 틀 안에서의 취사선택이다. 큰 틀은 결과이지 사전에 정해 놓은 경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큰 틀은 처음 보는 모양이 될 수 있고, 존재하지 않는 모양일 수도 있다. 가지를 뻗을 때 어떤 모양을 생각하고 뻗는 나무는 없다. 맘껏 뻗다보니 자연스러운 각각의 모양이 되었다. 시도 이런 자유분방함 속에서 높은 예술성이 탄생한다. 남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차원을 만들 수 있다. 가지는 지상의 리좀이며 생각의 그물망이다. 맘껏 접속하고 분기하여 촘촘한 이미지의 그물망을 짜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 숭어 떼 같은 상징들이 가득해야 한다. [출처] 가지|작성자 김기덕 잎 많은 가지들을 찾은 후에는 잎을 만들어야 한다. 잎은 가지 위에 있는 이미지를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미지를 주어로 하여 목적어, 동사를 찾아 문장을 완성시켜야 한다. 이 때 문장은 표현이 되어야 하는데, 표현을 위한 언어, 곧 시어로써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시어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으나 반드시 이미지어와 관념어를 구분해서 써야 한다. 표현은 명사와 동사에서 결정된다. 명사는 관념어 대신,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물이나 상황이 되어야 한다. 동사는 구체적이며 살아 있는 언어이어야 한다. 또한 여러 대등항 중에서 가장 적합한 동사를 선택해야 하는데, 적합성의 기준은 살아 있는 이미지를 표현해 주되 둥치와 연관시키기 위한 표면적, 이면적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의 문장은 둥치를 연상시키거나, 둥치를 보조해주거나, 둥치를 풀어주거나, 묘사해주거나, 표현해 줄 수 있는 문장이어야 한다. 아무리 철학적인 문장, 아무리 금언의 문장이라고 해도 둥치와의 연간성이 전혀 없다면 그것은 이미 낙엽이며, 시의 나무와는 상관없는 존재일 뿐이다. 표면적인 연결이든, 상징적인 연결이든 아주 미세하더라도 둥치로부터 영양분을 받고 또 광합성한 영양분을 둥치로 보내 의식의 저장, 철학과 주제성을 몸통에 비축하는 하나하나의 잎들이 전체적인 시의 나무를 장식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장에서 부사와 형용사는 최대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불필요한 수식은 무조건 빼야 한다. 군더더기는 건강한 문장을 갉아먹는 벌레와 같다. 싱싱한 잎, 건강한 잎을 가지마다 달아야 한다. 이런 건강한 잎들이 연결 문장을 만들고, 연결 문장이 모여 하나의 단락을 이루고, 단락들이 모아져 한 편의 짜임새 있는 시가 된다 [출처] 잎|작성자 김기덕 시 쓰기   시쓰기는 가지마다 매달린 많은 문장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연결시키는 것이다. 마인드맵은 시의 씨알인 둥치에서 줄기가 나고, 줄기에서 가지들이 분화하여 영양분을 둥치를 통해 잎으로 전달하는 확산운동이다. 하지만 시쓰기는 그 반대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잎의 문장들을 모아 가지로 이어진 문장을 만들고, 여러 가지의 문장이 만나 줄기의 단락을 만들어 하나의 시가 완성된 둥치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곧 잎에서 광합성을 통해 양분을 만들고, 그 양분을 모아 가지와 줄기를 통해 둥치에 모아져 거목이 되듯, 주제의식, 철학의 양분이 결집되어 완성된 시의 나무를 보여주어야 한다. 시쓰기에서는 분기하고 확산하던 사고들이 모아져야 하고, 구심점을 향해 결집되어야 한다. 태극이 양의가 되고, 양의가 사상이 되고, 사상이 분화하여 팔괘가 되고, 육십사괘로 나뉘어 세상만물로 분화된 것이 다시 모아져 태극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바로 시쓰기이다. 완성된 시는 하나의 개체가 되고, 사물이 되고, 인격이 되어 만물 속의 일부로 다시 돌아간다. 하나의 시 속엔 우주만물의 비밀이 담겨 있고, 시가 완성되는 과정은 곧 우주만물의 변화 주기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출처] 시 쓰기|작성자 김기덕 사고의 분화   마인드맵을 통해 사고의 분화과정을 살펴보았다. 둥치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가지로 쪼개지는 과정에는 분화의 법칙이 존재한다. 일정한 법칙이 없이 아무렇게나 뻗어갈 수 있는 사고는 공상과 같은 것으로 허황될 뿐, 통일된 의식을 보여주지 못한다. 공상은 에너지가 없다. 새로운 창조를 만드는 동력이 되지 못한다. 유추와 연상을 통해 만들어지는 창조적 상상력엔 끈 이론이 존재한다. 양성자, 중성자를 묶어주는 핵력과 강력이 있다. 세포가 분화하여 나누어지지만, 그 안에는 같은 유전자가 존재한다. 언어의 분화, 이미지의 확산에도 유전자가 필요하다. 그 유전자는 유사성이며, 인접성이며, 상징이며, 욕망의 선이며, story이며, 주역적 변화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시어가 분화하여 새로운 시어를 만드는 과정엔 이러한 유전자를 토대로 하여 사고의 확장을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원리를 가지고 확장되었을 때 다시 하나로 모으는 시쓰기의 과정에서 접속점을 찾을 수 있다. 접속점이 많을수록 블록을 연결하듯 원하는 모양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사고의 분화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원칙을 가지고 해야 한다. 그래야만 독자들이 해석의 길을 추적해 갈 수 있고, 창작자가 의도하는 바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사고의 분화|작성자 김기덕 1. 유사성   유사성을 통하여 사고의 확장과 이미지의 변화를 이룰 수 있으며, 또한 선택을 통해 새로운 결합을 이룰 수가 있다. 하지만 교사, 스승, 교원, 교수 같은 유사성은 시의 이미지 확장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명칭의 유사성이나 의미의 유사성과 같이 유사하지만 확연히 드러난 것들은 시적 사고의 확장 및 선택, 결합의 예술적 조건에 적합하지 않다. 유사성은 은유적 표현의 원리인 만큼, 보다 예술성이 있는 은유성을 만드는 데는 감추어진 유사성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꽃과 여자는 유사하지만 ‘꽃 같은 여자’는 너무 드러난 유사성 때문에 식상한 비유관계를 만들게 된다. 보다 참신하고 심도 있는 예술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유사성의 새로운 발견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써본 적 없는 유사 이미지를 동원하여 시를 쓴다면 그 시는 참신하고 매혹적일 것이다. 하지만 남들이 다 쓴 유사 이미지는 시든 꽃이며, 생명 없는 나무와 같은 것이다. 또한 유사성의 거리가 멀수록 그 관계는 더욱 긴장되며 팽팽해질 것이다. 시에서의 유사성은 본의와 유의와의 관계를 만들어 은유적 표현을 만들기도 하지만, 배치에서의 유사성은 병치적 관계를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병치는 은유적 관계보다는 좀 더 건너뛰기한 것으로서 참신성과 함께 사고의 확장을 이루어 준다. 또한 병치는 구절 간의 관계에서 이루어지지만, 리좀적 시쓰기의 관계에서는 뿌리 하나하나가 큰 줄기에 연결되어 있듯이 주제성이나 철학성의 줄기에 잔뿌리처럼 연결되는 상징관계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유사성을 통한 건너뛰기는 과거와 현제와 미래의 시간적 건너뛰기 및 지역적, 사상적, 종교적 결합을 만들어 구심점을 만드는 역할을 가능하게 한다. [출처] 유사성|작성자 김기덕 2. 인접성   인접성은 공간적인 관계를 만들어준다고 할 수 있다. 산과 인접한 것에 속하는 것을 본다면 나무, 돌, 계곡, 폭포, 꽃, 새, 마을 등의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요소들은 공간화를 갖게 해주는 요소들이다. 시에서의 인접성은 공간적 이미지를 만들고 그림과 같은 시각성을 보여준다. 주제를 잘 드러낼 만한 개체들만 취사선택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정물화를 그리는 것 같은 기법이며, 절제된 원리가 필요하다. 인접성은 유사성처럼 대등한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단지 입체적인 공간을 구성하기 위한 배치적 요소다. 인접한 요소들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그림의 구도는 달라진다. 시 속에서의 인접한 요소들의 배치는 환유적 표현의 원리가 되기도 한다. 원인과 결과, 용기와 내용물, 소유물과 소유주, 산지와 산물, 출신지와 그 사람, 기호와 실체, 건물주와 건물명 등의 관계를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부분이 전체를, 전체가 부분을 표현하는 제유도 인접성에 의한 표현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인접한 것들의 관계는 유사성의 건너뛰기보다는 한 구성체의 주변적 요소를 끌어오는 것이므로 그 폭이 좁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요소에 대한 단순화가 가능하며, 단순화를 통한 상징적 요소를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종이비행기’라는 소재를 가지고 시를 쓴다면, 무엇과 종이비행기를 인접한 관계로 연결시켜주느냐에 따라 시의 공간성은 달라진다. 종이비행기를 장애아, 아파트, 창문, 아스팔트와 인접시켜준다면, 무한한 자유를 꿈꾸는 영혼을 상징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학생, 교실옥상, 푸른 하늘 등과 인접시킨다면, 푸른 미래를 꿈꾸는 젊음을 상징하게 될 것이다. 인접성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주고, 그 공간 속에서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 준다. [출처] 인접성|작성자 김기덕 3. 상징 상징은 건너뛰기이다. 한 방향이 아닌 여러 방향으로 한꺼번에 건너뛸 수 있는 기술이다. 상징의 깊이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더 복잡한 관계의 접속을 만들 수 있지만, 그 깊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단순한 건너뛰기가 될 수도 있다. 유사성은 수평적 건너뛰기를 만들고, 인접성은 주변의 공간성을 만들어주지만, 상징은 방사형으로 확장될 수 있는 시의 폭탄적 기법이다. 그래서 단 하나의 상징어가 많은 사람들을 감동으로 무릎 꿇게 할 수 있다. 상징은 유사성이나 인접성의 건너뛰기와는 그 폭과 차원이 다르다. 유사성이나 인접성은 수족관의 물고기와 같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관계를 만든다면 상징은 천길 물속의 깊고 다양한 관계 만들기이다. 상징으로 접속된 시는 그 깊이를 파악하기가 힘들지만, 그 만큼 많은 다양체를 건져 올릴 수 있다. 무수히 많은 다양체들의 접속점을 찾아 이미지를 연결한다면 한 편의 시 속에 천 개의 고원이 펼쳐질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의 상징기법은 기존의 서정적 상징과는 구별이 필요하다. 서정시의 상징은 관념성이 내포되어 있어서 상징을 이용한 시쓰기를 하면 관념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상징에 대한 해석도 상징물 자체에 한정된 해석을 하지만, 배치를 통한 상징은 배치되는 배치물과의 관계에 따라 함께 짝을 이뤄 해석되며, 배치물을 끌어오기 때문에 이미지 간의 관계 만들기가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관념성은 숨고 사물 간의 관계를 통한 상징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렇게 사물과의 접속점을 통해 상징이 확장되기 때문에 방사형의 사고 확장을 이룰 수 있으며 관념화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시쓰기가 가능하게 된다. [출처] 상징|작성자 김기덕 4. 욕망의 선   욕망의 관계에 의하여 사물을 맘대로 끌어오고 결속하는 관계를 말한다. 사물 하나하나에 감정을 부여하여 욕망을 불어넣고, 욕망의 관계를 통해 결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감사와 찬양으로 바뀐다. 감사와 찬양의 욕망 안에서 신의 피조물인 만물은 포함될 수 있으며, 그 어떤사물도 결합이 가능하게 된다. 예를 들면 ‘갈대들은 춤추고, 바위들은 기도하고 있다’와 같이 구체적 관련이 없어도 서로 묶을 수 있다. 아무리 관련 없는 사물일지라도 자신의 감정과 욕망 안에서 새롭게 변형시킨다면 충분한 연관관계를 형성할 수있고, 새로운 감정 선을 이을 수 있다. 이별 뒤에 세상이 다 슬프게 보인다든지, 기쁨에 가득 차 바라보는 풍경들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을 때 그 어떤사물을 끌어와도 한 무리, 한 성격의 집합으로 묶을 수 있다. 사물들은 저마다의 욕망을 가지고 있다. 바늘은 찌르고자 하는 욕망을, 풀은 붙이고자 하는 욕망을, 악기는 소리를 내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 이 욕망을 통해전혀 유사하지 않아도 접속이 가능하다. 욕망의 선을 찾기 위해선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 사물의 성격이며 성질을 잘 살펴봄으로써 그 내면의 욕망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또한 욕망은 시인의 마음속에서 창출되는 것이다. 바늘이 찌르기 위한 것인지, 상처를 꿰매기 위한 것인지, 가시를 빼기 위한 것인지, 문신을 새기기 위한 것인지, 바느질을 하기 위한 것인지 어떤 곳으로 욕망의 선이 뻗느냐에 따라 다음 접속관계는 달라질 것이다. 이러한 욕망은 모양이나 기능, 성분 등에 의해 자유자재로변화할 수 있으며, 보는 시각에 따라 그 차원도 달리 할 수 있다. 이 욕망의 선은 둥치 안의 주제성이나 철학성과 연관이 많다. 한 곳으로 시선을 모으고 정신을 집중하게 하는 화살표와 같다. 흔해빠진 욕망의 선으로 끌고 가지는 말아야 한다. 새로운 욕망의 선을 만들고 과감하게 탈주선을 그려야 한다. 평평한 대지에 습곡을 만들고 산맥을 형성해야 한다. 밋밋한 의식에 칼날 같은 감각을 세우고 새로운 욕망의 그물 안에 가두어진 세상만물을 맘껏 요리해야 한다 [출처] 욕망의 선|작성자 김기덕 5. 스토리(story)   스토리(story)는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접속이 가능한 형태를 말한다. 시에서는 날아다니는 의식의 확장, 이미지의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접속에 따라 새로운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여기에서의 접속은 곧 분기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분기는 또한 접속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춘향이와 이도령이 만나는 장면에서 견우와 직녀가 등장할 수 있고, 갑자기 도적 떼가 나타나 죽일 수도 있고, 호랑이와 곰이 쑥과 마늘을 먹으며 기도할 수도 있다. 이야기의 진행 방향이 어떻게 전환하고 꺾이느냐에 따라 새로운 신화와 역사, 에피소드나 허구적 환타지가 연결될 수 있다. 이 결합에서 이야기의 유사성이나 상황의 비슷함에서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사건의 끼어들기가 가능하다. 이것은 수목형 시쓰기가 아닌 유목형 시쓰기, 배치를 통한 언어의 직조에 의한 시쓰기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기법이다. 토막 난 우화들의 연결이나, 지역적 신화의 바꿔치기 및 동시대의 역사적 사건의 섞어짜기, 현대적 사건과 과거적 사건과의 겹치기 기법은 바로 이 story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건이나 이미지를 겹쳐 놓거나 섞어 놓을 때 우리의 사고는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를 오가며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를 만든다. 이러한 story 간의 분기와 접속을 통해 다양체를 만들기도 하고, 하나가 되기도 하는 기법을 story 기법이라고 한다. [출처] 스토리|작성자 김기덕 리좀적 표현의 방법   1. 빙산이론   수면 위에 떠있는 빙산은 드러난 부분보다 감춰진 부분이 더 많다. 드러난 부분만 보고 가까이 다가가면 배는 충돌하여 난파될 것이다. 하지만 오랜 경험을 가진 유능한 선장은 수면 위에 뜬 빙산만 보고도 수면 속의 빙산을 눈치 챈다. 배에 탄 여행객들은 수면에 뜬 빙산만 볼 뿐 감춰진 부분을 보기는 어렵다. 시쓰기는 빙산의 보이는 부분을 그리는 것이다. 고급 독자는 빙산의 보이는 부분만 보고도 유능한 선장처럼 수면 속에 잠긴 부분을 읽을 줄 안다. 시는 수면 위에 뜬 빙산의 일부를 그리는 것이지만 그 밑에는 어마어마한 상징의 얼음이 잠겨 있어야 한다. 잠긴 부분까지 다 보여주려 하지 말아야 한다. 잠긴 부분은 유능한 선장인 독자들이 각자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수면이라는 수평선상의 위로 드러난 부분은 이미지가 있는 시어이지만 가라앉은 것은 관념이다. 그래서 이미지가 있는 시어로 그림을 그려주면 그 언어 속의 관념들이 가라앉아 수면 속에 많은 의미를 감추게 된다. 이미지어와 관념어의 구분선은 빙산이 떠있는 수평선이다. 수평선에 의해 이미지와 관념이 나누어지듯 우리의 마음속에도 엄격한 수평선을 긋고 시를 써야 한다. 아무리 욕심이 날지라도 관념어는 쓰지 말아야 한다. 관념어는 땅이 다 파헤쳐진 밭에 드러난 고구마와 같은 것이니 더 이상 상상의 여지가 없다. 고구마 밭의 줄기와 잎의 표현을 빌려야 한다. 그 줄기와 잎을 보고 농부는 튼실한 고구마를 상상한다. 물에 잠긴 부분까지 다 드러내려고 하게 되면 그 빙산은 녹아서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차갑고 투명하면서 돌처럼 굳어진 시의 결정들은 풀어져 맹물 같은 시가 될 것이다. 이미지의 결합으로 고농도의 압축된 시는 얼음덩어리 같지만, 관념으로 풀어진 시는 맹물같이 무덤덤하고 싱거운 것이다. 독자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설명해야 이해할 것 같은 인식은 이미 자신이 풀어져 물같이 된 것이다. 작은 빙산을 수면에 띄우고 수면 속에 산 같은 덩치를 키워야 한다. 작은 빙산을 보고 섣불리 다가왔던 배들이 파손될 수 있도록 엄청난 무게와 파워를 키워야 한다. 그 무게와 파워는 상상의 크기와 깊이에서 결정될 것이다. 수면 속에 감추면 감출수록, 해저로 가라앉으면 가라앉을수록 빙산은 더 무서워진다. 무서운 빙산처럼 다가오는 시, 수면 위에 작은 단면을 보고 감이 상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시를 써야 한다. [출처] 빙산이론|작성자 김기덕   2. 시어라인   시어라인은 하나의 제목이나 소재를 놓고 마인드맵을 통해 관련 언어를 찾았을 때 이미지가 있는 단어는 시어가 되지만, 관념으로 이루어진 단어는 시어가 될 수 없다는 구분을 갖게 하는 구획선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레드 와인’을 가지고 마인드맵을 통해 관련 언어를 찾아본다면, 레드와인은 마인드맵의 둥치가 될 것이다. 이 둥치에서 각자 나름대로 줄기를 뽑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과거, 현재, 미래, 유사성 등의 줄기를 설정하고 가지를 뽑아보자. 과거의 줄기엔 포도밭, 햇빛, 바람, 거름, 포도, 장화, 오크통 등의 관련 이미지들이 나왔다면 이 이미지들만을 시를 쓰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도밭, 햇빛, 바람, 거름 등은 밑바탕이라든지, 본능, 원초성을, 장화는 밟히고 으깨어짐을, 오크통은 어둠이나 감옥, 절망 등을 내포하고 있다. 시를 쓸 때는 이미지 속에 들어 있는 관념어를 쓰지 말고 관념어 대신 관념어를 담고 있는 이미지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줄기에서 이미지를 뽑아본다면 포도주, 코르크, 입술, 글라스 등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어가 시어가 되고, 이 이미지 속에 들어 있는 포도주의 정신인 열정이나 자유, 코르크의 억압이나 질식, 입술의 사랑이나 열정, 글라스의 투명함이나 맑음과 같은 관념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줄기에서 이미지를 뽑는다면 찢어진 라벨, 빈병, 쏟아진 피와 같은 것을 찾을 수 있다. 짖어진 라벨은 처녀성의 상실이나 파괴를, 빈병은 죽음이나 허무를, 쏟아진 피는 전쟁이나 상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유사성의 시각에서 본다면 입술이나 피, 볼, 낙엽, 노을 등을 찾을 수 있다. 입술은 사랑이나 정열을, 피는 죽음이나 생명을, 볼은 수줍음이나 취기를, 낙엽이나 노을은 사라짐과 같은 관념을 포함하고 있다. 이상의 열거는 개략적인 것이다. 더 복잡한 관념을 끌어낼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최소한에 머물렀다. 시를 쓸 때는 관념을 쓰지 말고 관념을 포함하고 있는 이미지를 써야 한다. 그래서 이미지 속에 들어 있는 관념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사물 속의 관념을 읽고 관념 대신 사물로 자신의 관념을 대신 나타내는 것이 시적 표현의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을 자유자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징성을 알아야 한다. 상징이 빠진 시는 상상할 수 없다. 생명이 빠져나간 시체요, 마른 나무에 불과하다. ​ 상징성을 품고 있는 이미지와 상징성이 드러난 관념과의 구별이 곧 시어라인이다. 마인드맵을 통해 줄기에서 가지로 분화될 때 이미지로만 그리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관념의 가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가지는 반드시 이미지의 가지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마인드맵을 만든다면 자연스럽게 시어라인은 형성될 것이다. 또한 동사의 사용이 중요하다. 추상적인 동사들은 좋은 시를 쓰는데 적합하지 않다. 구체적인 동사를 끌어와서 명사와 짝을 이루게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먹다’라는 단어는 추상적인 동사이다. “그녀는 밥을 먹는다.”라는 문장의 ‘먹는다’라는 동사는 시쓰기에 적합한 언어가 아니다. ‘먹는다’를 구체적으로 표현해 주어야 한다. “맷돌을 갈듯 밥을 자근자근 씹는다.”라든지, “볼때기가 터지도록 밥을 퍼 담는다.”와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가 동반될 수 있는 동사의 사용이 중요하다. 이미지적인 명사에 구체적 묘사의 동사가 결합될 때 문장은 표현의 문장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장을 만들기 위한 명사와 동사의 채취 ‧ 절단이 가능한 구역의 경계가 바로 시어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시어라인|작성자 김기덕   3. 시의 상징성   상징은 존재와 의미의 2가성, 다의성 또한 모호성이나 밝혀짐의 기대를 갖는 것을 본질로 한다고 김기붕은 『프랑스 상징주의와 시인들』중에서 언급하고 있다. 상징은 하나의 기호이며 동시에 의미를 갖는 것으로 현상은 곧 무언가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기호의 의미의 우호적인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유추관계가 긴밀히 작용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유사성이 아니라 막연한 암시에 의해 다른 것을 뜻하거나 표현하는 것이다. 낭만주의는 감성체계에 바탕을 둔 서정적 산물로서 우주의 중심을 주관적, 개인적 관념에 두고 있다면, 상징주의는 감성체계와 이성체계에 근거를 둔 이념적 정화를 중심으로 하고 인간까지 포괄하는 우주 자신을 중심에 두고 감각과 이념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모든 현상은 자족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여기에 인간의 인식이 첨가되면 경이로운 의미와 가치가 부여된다. 그래서 하나의 사물은 존재하지 않고 그 안에 여러 가지 의미와 속뜻을 갖게 된다. 시는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볼 때 의미나 관념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현상이나 사물을 그리기 위해서는 이미지어가 필요한데, 그 표현된 언어의 그림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속뜻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읽으려고 하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이미지어가 갖는 자체의 상징성, 또한 같은 이미지라 해도 여러 사람의 감정이나 시각차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는 시의 모호성을 극대화 시키는 요소이다. 모호성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다양체적 요소이며, 나와 세상 모든 현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시의 필연적 요소가 아닐 수 없다. 현상 속에 담긴 의미를 보여주기 위해 의도된 현상을 만들고, 의도된 사물의 조합을 이루어 다양한 형식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 작품 세계는 다층적이고 다면적이어서 보다 많은 현상을 유추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의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상징주의자들은 “가시세계는 불가시 세계의 껍데기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감각적 대상 속에 정신적 현상의 상징적 요소가 공존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언어로써 생각하게 하는, 또는 자신의 생각을 전하려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감각적 언어들 속의 상징들을 꿰뚫고 있지 않으면 자유자재로 감각적 언어를 요리할 수 없을 것이다. [출처] 시의 상징성|작성자 김기덕   4. 상징과 리좀적 관계   하나의 이미지는 여러 상징적 관계를 만들어 분화되고 확장되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십자가라는 상징물은 구원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사형의 형틀이 되기도 한다. 또한 플러스의 의미도 되며, 우주나 영원한 세상을 상징하고 부처님 가슴에 있는 길상을 의미하는 卍으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나의 십자가가 네 개의 상징물로 분화되었다면, 이 네 개의 분화점은 곧 접속점이 될 수 있고, 이 네 개의 접속점은 다양한 배치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구원의 상징으로 배치한다면 교회, 미사, 성경책, 천국, 천사, 베드로 등등으로 분화되고 여기에서 또 다시 수없는 분화가 가능할 것이다. 형틀의 의미로 배치한다면 로마, 죄수, 사형장, 못, 창 등으로 분화될 수 있을 것이고, 플러스의 의미로 배치된다면, 드라이버, 계산기, 수학책, 양지, 저축 등으로 확장될 것이다. 또한 卍 으로 배치된다면 절이나 나치, 우주 등과 같은 새로운 접속점을 만들 것이다. 이렇듯 십자가라는 하나의 이미지는 무수히 많은 접속점을 만들고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며 다양체를 만든다. 이것이 몇 번 더 확장되면서 분화된다면 세상의 모든 사물과 맞닿게 될 것이고, 연관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사물은 상징적인 관계를 통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고, 리좀의 뿌리처럼 뒤얽혀 있다. 하나의 사물이 하나의 의미로만 사용되는 1:1의 관계는 없다. 하나의 사물 속에는 미처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많은 연결고리와 접속점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이것을 발견하고 찾아서 서로 분기 ‧ 접속시킴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다양체를 만들어서 그 안에 새로운 의미나 진리, 주제의식들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 나를 비롯한 하나하나의 사물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물망 같은 상징으로 촘촘히 엮어져 있다. 이 많은 분기 ‧ 접속점들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분기 ‧ 접속점을 원하는 대로 찾을 수 있을 때 우리의 시쓰기는 막힘이 없고 그 차원을 달리할 것이다. [출처] 상징과 리좀적 관계|작성자 김기덕   5. 기호학파적 접근과 상징의 적용   소쉬르가 처음으로 체계화한 기호들은 문학작품의 언어적 의미를 보이지 않는 언어의 관계성을 강조하며, 이것은 공시적인 관계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했다. 언어를 사고의 표현에서 언어를 기호의 체계로 이해하면서 기표인 시니피앙과 기의인 시니피에 사이의 관계를 이끌어 왔다. 기호는 세 가지로 기표와 기의 그리고 기표와 기의가 결합하여 만든 새로운 요소인 기호이다. 기표와 기의의 결합은 의미화 작용이라 하고, 외부세계가 공급하는 기표, 마음이라고 하는 내부세계가 공급하는 기의가 결합되어 표상의 세계에 편입하는 기호가 탄생된다. 문학적 기호는 다중의미체이다. 다중의미성은 기표에 기의가 자의로 연결되는 경험에 따라 여러 가지 뜻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기호의 다중매체가 바로 상징적 요소이며, 다양체의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바르트는 신화체계 속에서 메타언어를 찾고 있다. 바르트는 1차질서, 그리고 2차질서로 구분하면서, 1차질서는 의미작용에서 현실의 수준, 자연의 수준이라 하고, 2차질서는 문화의 수준이라고 했다. 1차질서는 기호의 모호함이 없는 객관적, 직접적 자연의 의미를 가지며, 현실의 외연적 의미만을 생산한다고 했다. 2차질서는 두 가지로 하나는 함축이고, 다른 하나는 질서로 구분한다. 함축은 기표가 기의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의 문화적 배경과 체험에 따라 천차만별의 함축의미를 일으킨다. 예를 들면 달에서 얼굴을 생각한다든지, 배를 상상한다든지, 백동전을 연상하는 것이다. 신화란 함축적 기의들로 엮인 고리의 체계를 말한다. 신화는 함축의 의미체계로 끊임없이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언어들의 조합을 통해 로만 야콥슨은 언어의 시적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야콥슨은 은유/환유의 의미론적 양분법을 바탕으로 그의 시각을 전개하는데, 양극성과 등가성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양극성이라는 개념은 언어 운용의 연합적 축과 통합적 축을 말한다. 전자는 선택의 영역이며, 후자는 결합의 영역이다. 이때 “선택의 근간은 등가성, 유사성, 상이성, 동의어와 반의어 따위가 있고, 결합 곧 배열의 순서를 이루는 밑바탕은 인접성”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상징적 요소들의 결합에도 적용될 수 있다. 야콥슨의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에서 수직적 차원은 언어저장고에서 한 단어만을 선택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때는 은유에 의해서 일어난다. 또한 수평적 차원에서는 환유에 의해서 결합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즉 하나의 문장을 만드는데 있어서 주어+동사의 문장이라면, 주어의 위치에 놓일 여러 대등한 단어들 중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하고, 동사는 대등한 환유적 요소들 중에서 선택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배치의 리좀적 시에 있어서는 은유적 요소가 또 다른 상징적 요소로 전환되어 문장과 문장으로 접속될 수 있다. 예를 들면(도랑물이, 개여울이, 강물이, 시냇물이) 중 하나와 (소리 지르다, 노래하다, 달려간다, 흐른다) 중 하나가 선택되어 만약에 ‘강물이 흐른다’가 되었다면, 강물에 대한 상징(세월-달력, 정화-목욕탕, 식수-수도꼭지, 발전-전구) 등의 여러 상징물 중에서 선택하여 새로운 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배치는 또 다른 문장이어야 하고, 그 거리감이 너무 멀거나 이어짐에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단락을 띄워 결합할 수 있다. 야콥슨의 선택 ‧ 결합의 방법을 활용하여 시의 문장을 만드는 능력을 갖추고, 이에 대하여 상상적 요소들의 활용능력을 키운다면 의식의 확장과 이질적인 이미지들의 결합을 이룬 새롭고 참신한 시를 쓰게 될 것이다. [출처] 기호학파적 접근과 상징의 적용|작성자 김기덕   6. 상징에 대한 케빈 베이컨의 6단계 이론 접목   케빈 베이컨의 6단계 이론은 한 사람이 평생 살면서 알고 지내는 사람의 숫자가 적게 잡아 100명이라고 가정한다면 다시 그 100명이 또 다른 100명, 그러면 10,000명이 다시 100명해서 여섯 단계만 거슬러 가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상징관계에서도 이렇게 단계를 거듭해 나가면 모든 사물이 다 통할 수 있다는 가정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상징을 통한 이미지의 접속은 어떤 사물이든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그 과정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뿐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의식을 확장해서 사물을 연결, 접속시킬 수만 있다면 시의 구성은 한결 쉬워질 것이다. 또한 사고의 분기, 분화도 더 다양하고 세밀하게 만들어 감으로 의식의 무한한 확장이 가능해질 것이다. 1단계에서 2단계로 분화한 상징은 눈에 보이도록 그 관계가 확연히 드러나 있지만, 3단계, 4단계로 더 확장해서 이미지가 분화한다면 복잡해지고 쉽게 눈치채기 어려운 깊은 단계의 상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징단계를 활용해 시를 쓴다면 바다 같은 시, 우주 같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상징에 대한 케빈 베이컨의 6단계 이론 접목|작성자 김기덕   7. 상징 연구의 필요성   시쓰기에서 상징을 꿰뚫고 있다는 것은 큰 재산이다. 하나의 이미지를 통해 다양한 상징성을 발견할 때 여러 다양체의 접속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물 속에는 이미 많은 상징들이 들어 있다. 공중적이든, 원형적이든 삶 속에서 습득되고 인지된 의식에 의해 우리는 사물 속의 상징들을 감지하고 있다. 이 상징의 종류를 많이 알고 있다면 여러 접속점이 있는 장난감 블록으로 원하는 형태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시쓰기에 매우 유리하다. 만약 십자가를 구원의 상징으로만 본다면 십자가를 통해 시를 전개 할 때 그 만큼 단순한 전개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칼 구스타프 융의 개인적 상징, 공중적 상징, 원형적 상징을 공부해 왔고,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을 통해 여러 상징적 요소들을 접해 왔다. 우리의 인식 속에는 이미 이러한 상징들이 고정관념처럼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이미지를 보면 그 속에서 여러 상징적 요소들을 유추하게 된다. 예를 들면 뱀이라는 사물을 보면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한 것과 저주 받아 배로 기어 다니는 것을 연상하게 된다. 또한 갈라진 혀로 인해 두 마음을 가진 자 및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람을 상상한다. 하지만 불교적 시각으로 보면 우리와 똑같은 중생으로 전생에 죄가 많아 뱀으로 환생한 것일 뿐이다.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으로 보면 남자의 성으로 상징되기도 하지만, 한국의 꿈에서는 조상이나 지혜로운 자녀의 태몽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뱀이라는 이미지를 시 속에 끌어 오기까지는 이러한 상징성을 다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서정주의 ‘화사’에서 “스며라, 배암!”은 순이를 대상으로 한 성적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질 들레즈가 깃발을 통해 말한 배치 관계를 보면, 붉은 깃발이 배와 배치되면 구호신호를, 데모하는 군중과 배치되면 혁명을 상징한다고 했다. 여기에서의 붉은색은 무질서, 위험, 열정, 희생, 피를 원형적 상징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배치가 달라짐으로써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배치관계에서 상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상징성은 신화나 종교, 역사, 이야기 등을 통해 생성 발전되었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상징성의 연구가 필요하다. 나는 우리나라의 방대한 꿈풀이 사전을 통해 한국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원형적 상징을 연구해 왔다. 방대한 양의 꿈해석을 다 거론할 수는 없지만, 다른 장에서 꿈에 대한 해석을 통해 시를 위한 상징성을 확장하고자 한다. [출처] 상징연구의 필요성|작성자 김기덕   시쓰기의 기법   1. 문장 구성을 위한 언어의 선택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선 언어의 선택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첫째는 얼마나 좋은 이미지어를 쓰느냐에 따라 시의 생명력은 달라진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이지만, 시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쓰면 그 시는 미적 가치를 상실한다. 그 이유는 표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추상적인 사랑을 읊조리던 시대가 있기도 했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시를 쓰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관념어는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사랑을 쓰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이라는 관념어를 대신할 수 있는 이미지어를 찾아야 한다. 하트라든지, 보석이라든지, 꿀물이라든지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사물을 찾아서 표현해 주어야 한다. 하나의 사물로 표현이 안 된다면 정황을 만들어서 그 정황을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 서정주 시인의 ‘동천’을 보면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문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라고 표현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지만, 그 안에는 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담겨 있다. 둘째는 대등항의 언어를 최대한 동원한 후 그 중에서 최적의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너의 눈 속에서 하늘을 보았다.”라는 문장이 있다면 여기에서 핵심은 생략된 주어 ‘나’가 아니라 너의 눈 속에서 본 ‘하늘’이다. 이 하늘에 대한 대등항을 최대한 찾아 적합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하늘을 대체할 수 있는 단어에는 무엇이 있을까? 야콥슨은 유사성으로만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나는 상징어의 대체가 가능하다고 본다. 하늘은 천국, 남자, 남편, 아버지, 서북쪽, 대평원, 늦가을, 머리, 말, 이상세계, 하늘색, 꿈, 무지개, 구름, 비행기 등등의 상징어를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언어 중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 맞는 최적의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최적의 문장을 만들었을 때 한 문장 한 문장 살아있는 시를 쓸 수 있다. 시의 치열함은 내용에서도 오지만, 대부분 문장의 함축과 적절한 표현에서 오는 것이다. 셋째는 동사의 환유적 선택에 의해 생동감 있는 표현을 할 수 있다. “너의 눈 속에서 하늘을 보았다.”에서 ‘보았다’에 대한 환유적 대등항을 찾으면 “너의 눈 속에서 하늘이 (녹아 내렸다, 웃었다, 흘러갔다, 불탔다) 등의 여러 가지 경우가 가능할 것이다. 동사는 말 그대로 움직임씨다. 동사의 활용에 따라 그 문장의 활용성이 달라진다.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 가장 적합한 동선을 이 동사가 그려준다. 적절한 동사의 환유를 통해 감정이입과 더불어 시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완성된 하나의 문장은 살아 있는 문장이 될 것이며, 시의 표현 의도를 적절히 반영해 줄 수 있는 보석 같은 문장이 될 것이다. [출처] 시쓰기의 기법-문장 구성을 위한 언어의 선택|작성자 김기덕    2. 설명의 문장을 표현의 문장으로 고치기       의외로 설명과 표현을 구분하지 못하는 시인들이 많다. 또한 표현하려고 했지만 설명적인 시를 쓰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설명과 표현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적절한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의 꽃이 있다고 치자. 이 꽃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아름다움이라든지, 향기로움, 순수함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사물과 사물 속의 관념으로 나누어 볼 때 사물 속의 상징적인 뜻을 드러내서 쓴 시는 설명적이고, 사물 속의 상징적인 뜻을 숨기고 사물만 가지고 쓴 시는 표현된 시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물 속에 내포된 상징적인 뜻은 관념이다. 예를 들면 별이라는 이미지 속에는 영원성이라든지, 밝음, 빛남 등의 관념성을 포함하고 있다. 시에서 영원성이나 밝음, 빛남의 언어가 필요할 때 영원성이나 밝음, 빛남을 그대로 쓰지 않고 별이라는 사물을 끌어와 대신 쓰는 것이 시의 표현 방법이다. 그래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관념을 대신하는 사물 찾기가 필요하고, 의도한 관념에 적합한 이미지를 찾아서 대체했을 때 그 시는 표현된 시가 된다. 또한 의도된 관념의 폭은 좁았지만 그것을 이미지로 대체하고 나면 그 이미지의 상징성 때문에 관념의 폭은 확장된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별이 영원함과 밝음 및 빛남의 상징물이라고 해서 아무 때나 끌어올 수는 없다. 시는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기 때문에 본인이 그리고자 하는 그림에 어울릴 때는 별을 끌어올 수 있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을 만든다면 다른 대체 이미지를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의도된 그림, 의도된 어리둥절함의 그림이라면 이런 논리는 부질없는 것이다. 오히려 비논리적이고 언밸런스적인 이미지를 찾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리.”라는 의도의 문장을 쓰고자 한다면, 이 문장은 설명적 문장이기 때문에 시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표현된 문장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리.”에서 ‘나는’이나 ‘당신을’도 비유적인 사물로 바꿀 수 있지만, 일단 이것은 놔두고 ‘영원히’와 ‘사랑하리’를 바꾸어 표현해 보자.‘영원히’의 관념을 대신할 이미지(별, 돌, 보석, 태양 등등)들 중 하나를 선택하여 그 이미지에 맞도록 ‘사랑하리’를 고쳐주어야 한다. 만약 ‘별’을 선택했다면 “나는 별이 되어 그대 창가에 뜨리.”나, “나는 별이 되어 밤마다 그대 모습 비추리.”와 같이 바꾸어야 한다. 관념에 대한 이미지를 찾기 위해서는 사물의 상징성을 보아야 하고, 상징적 의미를 통해 사물을 취사선택해서 시 속으로 끌어와야 표현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념에서 표현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그리고자 하는 밑그림과 조화시켜 만든다면 한 구절 한 구절 설명적 요소를 없애고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설명의 문장을 표현의 문장으로 고치기|작성자 김기덕   4. 데칼코마니 기법   데칼코마니는 화면을 접어 밀착시킴으로써 물감의 흐름으로 생기는 우연한 얼룩이나 어긋남의 효과를 이용한 기법이다. 즉 종이 위에 그림물감을 두껍게 칠하고 반으로 접거나 다른 종이를 덮어 찍어서 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회화 기법이다. 시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나 사건을 끌어와서 충실히 묘사한 후 단락을 바꾸어 대칭적인 이미지와 사건을 만들어주는 기법이다. 이 대칭의 관계는 사건 대 사건일 수도 있고, 현실 대 비현실일 수도 있으며, 사실 대 추상일 수도 있다. 물감을 짜듯 단순한 묘사나 간단한 이야기 전개로도 충분하지만, 대칭적 관계가 만드는 사고의 폭이 이승과 저승의 관계처럼 넓어질 수 있다. 호숫가에 비친 산그림자의 관계처럼 단순하지만 현실과 비현실의 관계를 대칭적으로 보여주듯 의도하는 바에 따라 그 차원을 달리할 수 있다. 원면과 접혀진 면이 따로 구분되기도 하지만 하나의 형태로 보여지듯, 이야기나 사건이 서로 다르더라도 전체적인 象, 즉 하나의 주제의식이나 철학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녀의 골반」이라는 석류화의 시를 보면 1 나비 꿈을 꾸고 엄마는 날 낳았다 흰 꿈, 엄마는 치마폭에 날 쓸어 담았다 커다란 모시나비, 손끝에 잡혔다가 분가루 묻어나갔다 –중략- 나비 날개엔 먼지가 끼지 않았다 한 꿈, 계단 입구에서 두 날개 맞접고 오래 기도하고 있었다 환한 꿈, 나는 오래전 그녀의 골반을 통과한 나비였다.2  초음파상 골반뼈는 하얀 나비 같았죠 그녀의 골반뼈에 종양이 생겼을 때 보았던 그 나비, 그러니까 그녀의 꺼먼 엉덩이살 안에 나비 날개가 굳어 있었던 거죠 나는 잘 벌어지지 않는 날개 사이로 미끄러져 나왔던 거죠 –중략- 이 지상 마지막까지 날고 있을 나비, 그러니까 내 속을 빠져나간 어린 나비는 지금 내 앞에서 폴짝폴짝 날아오르고 있는데요   나비가 엄마의 골반과 일치하고 있다. 이렇게 두 개의 사물이나 상황을 대칭적으로 배치하여 묘사하는 기법을 데칼코마니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데칼코마니 기법|작성자 김기덕   5. 마블링 기법   마블링은 종이 따위에 대리암 무늬를 만드는 기법으로 물 위에 유성물감을 떨어뜨려 저은 다음 종이를 물 위에 덮어 묻어나게 하는 방법으로 시에서는 여러 개의 관점으로 한 대상을 휘젓듯이 묘사하거나, 여러 대상을 뒤섞어서 묘사하는 방법을 말한다. 대리암의 무늬처럼 불규칙적인 형식의 연결로 내용이 난해하고 어리둥절할 수 있지만, 이미지들 간의 상징적 연결로 사고의 확장을 꾀할 수 있다. 추상적이며 모호한 리좀적 뿌리들의 연결로 처음도 끝도 없는 고원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대리암의 물결무늬를 통해 혹자는 새를 읽을 테고, 혹자는 구름을 읽을 테고, 혹자는 바람과 세월을 읽을 것이다. 그 만큼 보는 각도에 따라 상징의 깊이가 깊다고 할 수 있으며, 아무나 읽거나 쓸 수 없는 고난도의 기법이다. 건너뛰기의 상징적 폭은 그 만큼 넓을 수밖에 없다. 새의 날개인 줄 알았는데 구름이었고, 구름인 줄 알았는데 손바닥이었고, 손바닥인 줄 알았는데 강물이었고, 강물인 줄 알았는데 화살이었던 것처럼, 물결 같은 하나의 공통점으로 만든 무수한 무늬들의 집합과 같은 이미지들의 배치 및 결합을 만드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마블링 기법|작성자 김기덕   6. 꼴라쥬 기법   꼴라쥬는 주변에 보이는 일반적인 사물을 화폭에 붙여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납작한 곡물이나 씨앗, 모래, 합판, 종이, 천, 나무껍질, 장판지, 스티로폼, 노끈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크기에 맞게 자르거나 모자이크처럼 부숴서 붙이는 방법이다. 시에서 꼴라쥬 기법은 여러 이미지들을 끌어와서 큰 틀의 그림(주제의식이나 철학성)을 위해 조각조각 붙이는 작업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무관한 것 같지만 연관이 있어야 하고, 무질서한 것 같지만 질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징적 연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밑그림은 붙이는 사물에 지워지듯이 주제의식이나 철학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야 하고, 전체를 통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 기법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유사성이나 인접성의 사물을 끌어오는 것을 피하고 상징성이 통하는 사물을 끌어와야 한다. 전혀 다른 재료들을 붙이기 함으로써 재료 간의 경계를 만들 듯 상징물 간의 격차로 인한 거리감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조각조각 희망을 끼워 넣으며 가족들은 제 몸에 맞는 무늬를 고르지만 목소리 큰 아내 곁에서 무능한 남편은 늘 모자이크 처리된다. 땅엔 크고 작은 나라들이 세력을 맞추고 하늘엔 완성된 은하의 별들이 총총히 채워지는데 빈 구석이 많아 나는 평생 성경 속의 구절들을 꿰맞춰왔다. 예수와 붓다와 공자와 소크라테스, 하지만 미완인 나의 퍼즐엔 아버지가 없다. 김기덕, 「퍼즐놀이」의 일부   이 시는 서로 연관관계가 없는 생소한 사물들인 돌고래, 태권V, 재건축단지, 가족들, 별, 성경, 성인들, 불경 등이 모아졌지만, 전체적인 주제의식이 통일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서로 사물들 간에 유사성이나 인접성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상징적인 요소들의 연결로 인해 자연스럽게 전체적인 그림을 통일성 있게 그려주려 했다. [출처] 꼴라쥬 기법|작성자 김기덕   7. 시퀜스 기법   시퀜스 기법은 여러 개의 화면을 겹쳐서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 화면 겹치기 방법은 유사한 것일 수도 있고,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 하나의 통일된 의식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 통일된 의식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버리면 어리둥절해질 것이고, 너무 가까이 두면 식상해질 것이다. 예를 들면 4.19 학생의거 사건의 화면에 통합민주당 사진과 SNS 휴대폰 사진을 겹쳐서 놓는다면 유사성은 없지만, 통일된 상징성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화면들을 순차적으로 짜는 겹치기 방식이다. 4.19 학생의거 사건에 대한 내용을 첫째 단락으로 쓰고, 둘째는 통합민주당 사진, 셋째는 SNS 휴대폰 사진의 순으로 단락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4.19 학생의거 사진과 통합민주당 사진, SNS 휴대폰 사진을 섞어서 직물을 직조하듯 짜는 방식이다. 이러한 경우는 세 화면을 넘나들면서 단락에 상관없이 쓰는 방식이다. 좀 더 복잡하고 난해할 수 있지만, 시의 상징성이 강화될 수 있다. 하지만 첫 번째 방식은 이해하기 쉽고, 한 눈에 들어오는 장점이 있지만, 나열하듯 화면을 이어붙인 느낌이 들어서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다. 이 기법은 단락 간의 내용이나 이야기가 이어지지 말아야 하고, 전 단락의 어떤 묘사에 대한 확장이나 축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유사한 것들의 집합보다는 생소하고 거리감이 멀수록 시퀜스 기법은 효과가 있다. 아주 동떨어진 것 같지만 상징적 연결고리로 묶여지고 소통해야 한다. 교집합이나 공집합적인 관계보다는 독자적이고 개별적이지만 손을 맞잡은 연인과 같이 한 방향을 바라보아야 한다. [출처] 시퀜스 기법|작성자 김기덕   8. 퍼즐 맞추기 기법   퍼즐 맞추기 기법은 하나의 제목이나 주제와 관련된 모든 이미지를 끌어온 뒤 그 이미지들을 전체의 큰 그림(주제성)에 맞게 하나하나 끼워 맞추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빛이라는 제목의 시를 쓴다면 빛과 연관된 이미지 성냥, 연탄, 장작, 유성, 별, 반딧불, 달, 태양, 얼굴, 베드로, 예수, 유리, 피, 눈빛, 하루살이, 화살, 총탄, 질주의 무리, 자동차, 광야의 외치는 소리 등등의 많은 관련이미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하나의 커다란 주제의식에 맞도록 문장을 꾸며주는 것이다. 빛은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진리’라는 주제의식을 밑그림으로 그리고 싶다면 위에 열거된 이미지들을 주제의식에 맞는 모양으로 변화시켜 끼워 넣는 방식이다. 만약 ‘번지점프’라는 제목으로 시를 쓴다면 관련 이미지 날개, 곤돌라, 하늘, 강, 끈, 아프리카 부족, 땅, 물, 나무, 꽃, 낙엽, 열매, 아파트, 다이빙, 안전장치, 부도 등을 찾은 후 ‘인생의 부침’과 같은 큰 그림을 표현하고 싶다면 그 그림에 맞는 부분만 오려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나의 이미지에는 여러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각도를 나타내고 있지만, 여기서는 자신이 나타내고자 하는 밑그림에 맞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이다. 기법은 좀 다르지만 서정적 특징인 주제의 통일을 이루는데 적합하며 주관적 몰입이 가능한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퍼즐 기법은 꼴라쥬 기법과 아주 흡사하지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꼴라쥬는 찢어서 붙이듯 끌어온 이미지가 상징적이고 낮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양이 일정하지 않고 임의적이기 때문에 약간은 억지스러운 면도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퍼즐 기법은 다 재단된 이미지를 끼워 넣는 것이다. 그래서 상징성보다는 유사성이나 인접성의 이미지들이 동원되고 자연스러운 연결 관계를 만들어 준다고 할 수 있다. 미묘한 차이이기 때문에 개념은 구분하지만, 실재 쓰임에 있어서는 혼용해서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한 시쓰기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시들은 이러한 방법을 이용해 시늉한 저자의 작품들이다. 고도의 집중력을 가진 여러분들은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출처] 퍼즐 맞추기 기법|작성자 김기덕   판판한 판과 골진 판에 대하여   우리에게는 고정관념이 있다. 고정관념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려는 생각이다. 산에 비가 내려 물이 흐르게 되면 계곡으로만 흐른다. 산등성이를 타고 물줄기들이 거슬러 흐르는 경우는 없다. 오랜 지각변동으로 융기, 침강하면서 생긴 계곡으로 수천 년 이 물줄기는 흘러왔다. 오랜 경험과 누적된 지식으로 우리의 뇌 속엔 수많은 계곡들이 패여 있다. 그것은 손금 같기도 하고 주름살 같기도 하다. 평평한 판은 물이 어디로 흐를지 알 수 없는 판이다. 고정된 의식세계가 없이 개방되고 자유로운 사고의 방목이다. 우유가 한 방울 떨어질 때 생긴 왕관현상처럼 사방으로 뻗고자 하는 말미잘 같은 촉수들이 살아 있다. 옥수수나 보리처럼 한 사고의 줄기에서 확장하여 무수히 뻗는 수염뿌리의 리좀이다. 사고의 바닥을 평평하게 가지라. 세월 속에서 나도 모르게 빗물에 깎이고, 도랑물에 패여 주름처럼 사고의 골이 늘어나고 깊어진다. 골이 좀 더 깊어지지 않도록 새로운 지식으로 메우라. 오그라들면 주름지고, 펴지면 팽팽해지듯이 움츠러들지 말고 사고를 확장하라. 그리고 사고의 스피드를 늘려라. 빨리 달리는 자의 앞길은 대평원이고, 벌판이고, 고속도로다. 생각의 속력을 늦추면 늦출수록 언덕과 절벽이 가로막는다. 과감히 대륙과 대륙을 횡단하라. 자신의 사고 영역에서 탈출하여 하늘로, 지하로, 지평으로 뻗어서 수직적, 수평적 광활한 공간을 확보하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너의 작품은 자유를 얻으리라. [출처] 판판한 판과 골진 판에 대하여|작성자 김기덕   횡단적 문학의 이해   문학은 다른 종류의 삶을 창안하는 것이다. 새로운 삶을 만드는 생산기계이다. 변용, 촉발로 포획되는 삶의 방식을 막스, 스피노자, 니체, 들뢰즈, 가타리가 살아왔다. 그들의 말은 섞이고, 우리의 말도 삶 속에서 섞인다. 들뢰즈는 이미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것을 섞어 제3의 사유를 만들었다. 리얼리즘의 덫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자 했다. 욕망은 힘의 작용에 방향을 부여하는 의지적 성분이다. 능력은 힘을 수반하고 있는 잠재적 상태이다. 삶은 욕망의 내재적 장이며, 문학은 능력이 글의 형태로 표현된 것의 집합이다. 배치는 요소들이 계열화에 의해 표시되는 사물의 상태이며, 기계는 특정한 효과를 반복하여 생산하는 것의 집합이다. 문학을 한다는 것은 다른 삶을 창안하는 것이고,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평범한 삶에서 특이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며, 평균적 삶에서 극한적 삶을 사는 것이며, 주어진 삶을 넘어선 삶을 사는 것이다. 욕망과 권력은 항상 배치로 존재한다. 욕망은 삶의 특정한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욕망의 배치가 권력의 배치이다. 욕망은 다른 욕망과 조우, 부딪히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전진한다. 새로운 요소와 접속하여 새로운 계열을 형성한다. 철학, 문학, 예술은 형식 없는 내용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는 순간 내용은 전개하는 특정한 형식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내용 없는 순수형식은 수학자, 논리학자의 공상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표현은 내용으로 환원되지 않는 층위를 이룬다. 내용과 표현은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지만(상관성), 서로 자율적이고 환원불가능하다. 소수자들은 현재 상태에 삶의 흐름을 고정하려는 권력에 반하는 성분의 집합이다. 다수성은 그 반대로 현재의 권력에 부합하는 성분의 집합이다. 다수자는 주류적, 지배적이며, 소수자는 거기에서 벗어난 억압, 무시세력이다. 치열한 작품을 쓰는 자들은 소수자들이다. 작품은 삶의 과정에 들어가는 특정한 배치 안에서 작동하는 기계다. 작품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삶을 사는 것이며, 어떤 삶을 살려는 욕망, 능력의 표현이다. 그것은 생산한 욕망과 능력이 작용하는 기계이며, 그런 욕망에 의해 방향 지워지는 삶의 반복, 출현하는 장소, 외부요소들, 독자와 환경, 다른 책과의 접속 항들에 따라 다른 효과를 생산한다. 작품은 삶의 다른 과정에 들어가는 특정한 배치 안에서 작동하는 기계다. 이러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작가인데, 작가는 다른 삶의 구성에 결부된 모든 것을 향해 열린 사람이며, 잠재적으로 그것과 결합하고 있는 기계이다. 작가는 독신자 기계로서 어떤 것과 결합할 수 있는 기계로 잠재적인 결합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작가가 만드는 다른 종류의 삶은 기존의 삶에 대한 변화와 갱신의 욕망에 의해 추동된다. 불평과 불만, 고통, 불편을 수반하는 현재의 삶에 대한 변환을 추구한다. 니체는 기존의 지배적 삶의 질병을 진단, 치유하여 새로운 삶을 만들고자 했다. 이들이 만든 작품의 의미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어떤 기계가 규정되며, 기계의 의미는 기계의 용법에 의해 규정된다. 또한 문학은 언표행위의 집합적 배치이다. 아무리 조그만 소리로 말해도 어떤 삶에 대한 언표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이 다른 종류의 삶이라 할 수 있는 것은 특정한 집합적 배치 안에 있으며, 집합적인 언표행위이다. 문학은 이러한 삶을 제안하는 것이며, 집합적 욕망의 표현이다. 문학은 삶과 결부된 집합적 욕망의 배치의 표현이며 그것의 언표행위이다. 문학은 비인칭적 특이성으로 펼쳐지는 형식을 갖는다. 나로 진행되든, 너로 진행되든 상관없는 삶에 관한 언표들의 집합이다. 방향과 강도에 의해 삶의 흐름을 방사하거나 끌어들이는 비인칭적 특이성이다. 문학에 있어서 적극적 의미의 문학, 혁명적 문학은 횡단적이다. 힘과 욕망의 흐름을 기존의 삶의 틀 안에 가두고, 통합하는 경계를 넘어서고, 가로지른다. 경계는 흐름의 가변성을 제한하고, 고정하는 조건을 말하며, 경계를 따라 삶의 홈이 파인다. 여기서의 횡단은 수직적, 수평적으로 삶의 표면을 구획하고, 경계를 가로지르고, 넘어서는 것이다. 혁명적이라 함은 혁명에 대해 수없이 많은 말을 하는 문학보다 기존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더 중요하다. 횡단은 경계가 지어진 하나의 영토에서 다른 영토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영토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토를 만드는 것이다. 횡단적 문학은 기존의 것과 다른 삶의 방식, 부재하는 삶의 방식을 만드는 것이다. 횡단적 문학은 기존의 삶과 부재하는 삶의 사이에 있다. 곧 상이한 삶 사이에 있는 문학이다. 횡단적 문학에서 횡단성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문학성은 커진다. 횡단성의 크기는 그것이 넘어설 수 없는 이질성의 폭과 비례한다. 여기에서의 경계는 내부를 고정하고 통합하며, 동질화시킨다. 또한 외부와의 차별성을 갖게 하고 이질성을 극대화 시킨다. 하나의 경계 안은 이질성의 폭이 협소하다. 횡단계수는 경계의 수에 비례하고 수용 가능한 이질성의 폭에 비례한다. 문학성은 문학기계의 능력이다. 문학의 미적 성질은 아름다움에 대한 고전적인 내적 범주에 의한 구분으로서 보들레르는 추함 자체가 문학의 대상이었고, 표현주의는 신체의 표면에 새겨진 추함을 통해 삶을 가시화했다. 기존의 미학주의적 잔재를 걷어내야 한다. 문학성 내지 예술성에 대한 반미학주의적 개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문학기계의 능력은 무엇인가? 문학기계의 능력은 다른 종류의 삶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스스로 다른 종류의 삶의 일부로서 표현하며, 그것을 통해 다른 삶으로 촉발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다른 삶을 생성하는 능력이다. 생성 능력의 강렬도에 따라 단순한 문장이지만 강렬한 힘의 글이 있고, 잘 다듬어졌지만 추동의 힘이 미약한 글이 있다. 이러한 문학은 접속에 의해 이루어진다. 문학기계 능력은 접속하여 작동할 수 있는 기계들의 폭에 의해 외적으로 정의된다. 접속은 접속하는 이웃 항에 따라 다른 기계가 되고 변환 능력을 갖는다. 예를 들면 위는 식도에 접속하여 영양소의 흐름을 절단, 채취한다. 입은 성대를 통해 소리의 흐름을 절단, 채취하며, 생식기와 접속하여 섹스기계가 되고, 토하여 항문기계가 된다. 위와 입을 비교하면 위보다 입의 탈영토화 계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변환 능력은 탈영토적 능력인데, 탈영토화 잠재력은 다른 기계에 접속하여 다른 배치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다. 탈영토화 하는 횡단적 문학은 모델화하거나 전형화하기 보다는 거기서 벗어나는 탈영토화의 성분을 통해 펼쳐진다. 새로운 삶의 방식이며, 새로운 영토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는 평범성, 평균성을 벗어날 때 효과적으로 성취가 가능하다. 이들의 문학을 소수적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소수성과 다수성은 숫자적 구별이 아니다. 하나의 척도는 기준이고 잣대인데, 이미 작용하고 있는 권력을 내장하고 있다. 척도는 언제나 주류를 형성하고, 지배적 위치를 점하며, 다수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것에서 다른 것이 되는 것이 소수화 되는 것이다. 소수성은 주변성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주변성은 동일한 척도를 전제한 가운데 중심과 척도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상태이며, 다수성의 대칭적 짝이다. 이에 비해 소수성은 척도를 공유하지 않으며, 척도로 표시되는 지배적 상태에서 벗어나 있다. 소수문학은 다수적 언어의 소수화를 수반한다. 다수자들의 언어 안에서 변형시키는 방식이지 소수자들이 사용하는 자신만의 언어가 아니다. 이는 자기만의 언어 세계에 숨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무기 삼아 다수 안에 들어가 휘젓고 다니며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것이다. 자신만의 순수한 언어로 주변의 삶을 묘사하라. 다수적 언어의 내부에서 그것을 변형시켜 새로운 언어 창조,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라. 횡단적 문학은 소수적 문학이다. 이상 『들레즈와 문학-기계』 중 이진경 교수의 「문학-기계와 횡단적 문학」의 압축을 통해 새로운 사고의 탈영토화를 생각해 보았다. 이미지의 횡단, 사고의 횡단을 추구하는 시쓰기가 필요하다. 오진현 시인의 『첫 나비의 아름다운 「의미의 비행」』에서 언급한 탈관념의 실현도 새로운 시쓰기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출처] 횡단적 문학의 이해|작성자 김기덕   시쓰기의 미래   우리의 삶은 컴퓨터나 TV, 휴대폰 등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현실세계의 삶이 점차 가상공간이라는 비현실과 상상의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클릭 한 번으로 우리는 산을 끌어오고, 바다를 끌어오고, 무한한 우주 속을 유영하기도 한다. 이러한 전지전능함을 바탕으로 우리의 사고는 변화무쌍하며 무한한 사고의 팽창과 수축이 가능하게 되었다. 현대는 가상과 현실의 모호함뿐만 아니라 계절의 구분, 지리적인 경계, 시간의 흐름, 남과 여의 역할 등을 나누던 구획선들이 사라졌다. 그 만큼 현대인의 정신도 복잡해졌고, 빠른 변화의 물결 속에서 확신하고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고나면 새로운 제품들이 쏟아지고 새로운 용어들이 생겨난다. 날마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적응할 수 없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과 생각은 반응속도가 빨라지며 복잡해져간다. 머릿속에 존재하던 단순 이미지들은 깨어지고, 서정성의 자연은 파괴되어 인공적인 도시공간을 만들어간다. 시는 자연성의 파괴와 기계화되어가는 감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시는 향수를 불러왔고, 애수에 젖어 변하는 세상을 한탄하며 농경적인 삶을 그리게 했다. 자동차의 부품과 같은 복잡함보다는 간결하고 단순한 풍경의 이미지를 추구했다. 그러다 보니 아날로그적인 세대들에게는 설득력을 얻었지만, 디지털 세대들에겐 공감을 얻지 못했다. 물론 형식의 복잡함으로 독자를 멀어지게 한 이유도 있지만, 그 후로 시는 일부 세대의 전유물처럼 전락했고 고립되기 시작했다. 시는 문학을 선도하고 세상을 앞질러가야 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만이 시는 살 수 있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시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아니다. 생동하고 성장하는 무한 상상의 세포분열이어야 한다. 그 분열은 지극히 미시적이며, 거시적이어야 한다. 힉스입자의 반응에서부터 무한 우주로 뻗어가는 상상력이어야 한다. 그러한 시를 쓰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마인드가 바뀌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현대인들, 특히 고급독자들의 감각은 대단이 발달되어 있다. 많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 구석구석을 꿰뚫어 보고, 복잡한 공식들을 풀어간다. 원하는 대로 로봇이 되고 슈퍼맨이 된다. 하나의 사물에 대한 많은 이미지를 검색하며 자신의 용도에 맞는 모델을 고른다. 단순성의 반복, 정해진 룰의 식상한 게임은 아웃될 수밖에 없고, 정복된 후 버려질 수밖에 없다. 변화에 적응된 사고들은 새로운 세계를 원한다. 시도 이제는 아날로그적인 수목형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유자재로 클릭하며 맘껏 산을 끌어오고, 바다를 끌어와야 한다. 여러 개의 창을 열어 놓고 한꺼번에 작업할 수 있는 다중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 복잡한 과정들을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저만치 독자들을 앞서가야 한다. 이제 시는 이발소적인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다. 비슷한 그림, 비슷한 색칠이 독자를 못 견디게 만든다. 자연만을 고집하지 말고 과감히 컴퓨터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가상과 현실을 연결하여 제2, 제3의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여러 개의 창을 열어놓고 한꺼번에 세상을 내려다보며 클릭 한 번으로 시공을 초월해야 한다. 변화무쌍한 현실공간을 날아다니는 무소부재의 하나님이 바로 미래의 시쓰기가 되어야 한다. [출처] 시쓰기의 미래|작성자 김기덕      인쇄 블로그 카페 북마크 메모 폴라 보내기  댓글 쓰기                   하이퍼시의 현주소 - 김규화  시창작론숲  2017. 10. 18. 22:12 http://blog.naver.com/shunzi75/221120090156 전용뷰어 보기   하이퍼시의 현주소 - 김규화     우리는 컴퓨터, 핸드폰, TV 등의 IT기기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생활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3차원의 현실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3차원의 현실 공간을 초월한(hyper) 고차원의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이를 ‘제2의 현실’이라고까지 말하였다.   시는 당대를 반영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시대를 사는 우리 시인의 오늘의 시가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어 2008년 봄, 타계한 오남구, 그리고 심상운, 내가 함께 전자 디지털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방법의 시를 쓰자고 합의하였다. 새로운 시의 명칭을 ‘하이퍼텍스트시’라고 하려다가 텍스트와 시는 같은 의미로서 중복이 되고, 또 사이버공간 안에서의 ‘하이퍼텍스트시’와도 같은 명칭이어서 우리는 그것들과 구분하기 위해 <하이퍼시>로 이름을 정했다. 따라서 우리는 전자 하이퍼텍스트의 특성을 살리되 전자를 떠난 오직 종이 위에서 쓰는, 하이퍼텍스트성(性)이 있는 시를 쓰기로 한 것이다.   하이퍼텍스트란 말은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hyper(건너편의, 초월․과도한)와 text를 합성하여 만든 컴퓨터 및 인터넷 관련 용어로서 1965년 컴퓨터 개척자 넬슨이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미국 브라운대 교수 P.란도도 그의 저서 에서 ‘하이퍼포엠’이라는 말을 썼다.   하이퍼텍스트는 컴퓨터 화면에 보이는 텍스트에 그림이나 밑줄 친 부분을 마우스로 누르면 다른 텍스트가 연결되어 화면에 나오는데(그래서 하이퍼텍스트를 파상텍스트라고도 한다) 이렇게 다른 텍스트로 연결해주는 것을 하이퍼링크라 하고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쌍방향성 복수의 텍스트 전체가 하이퍼텍스트다. 일반 텍스트는 이용자의 필요나 사고의 흐름에는 상관없이 계속 일정한 정보를 순차적으로 쓰는 반면에 하이퍼텍스트는 이용자가 연상하는 순서에 따라 비순차적으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 전자 상의 하이퍼텍스트의 특성을 종이 하이퍼시에 어떻게 살려야 할까. 종이 위의 하이퍼시는, 컴퓨터 화면에서가 아니면 입력할 수 없는 그림, 소리, 동영상, 그래픽, 음악 등을 쓸 수 없는 대신 이들 요소를 언어로써만 표현해야 하는데, 물론 전자 하이퍼텍스트시에서 보이는 순차적 질서나 위계적 구조를 안 지킨, 혼란스럽기까지 한 비선형성-어쩌면 인간의 사고 과정이나 의식의 흐름을 닮은-과 그리고 수목(樹木)과 같은 논리적 체계가 아니라 감자 뿌리 같은 근경(根莖)처럼 사방으로 마구 이동하여 중심이 없는 그물 상태를 만들어내는 리좀(rhizome)성과, 그로 인한 일방향성이 아니라 쌍방향적인 네트워크를 종이 하이퍼시에 도입하여야 한다. 하이퍼시를 이루는 마디(node;단어, 행, 연)들은 동시적으로 나열하여 존재하게 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무화하거나 초월(hyper)하여 무한한 상상․공상의 세계를 펼쳐 보여야 한다. 심상운 시인은 하이퍼시의 창작 방법을 다음의 9가지 항목으로 요약하였다.   1.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하이브리드의 구현)을 기본으로 한다. 2. 시어의 링크 또는 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리좀)를 형성한다. 3. 다시점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캐릭터(또는 사물)를 등장시킨다. 4. 가상현실의 보여주기는 소설적인 서사를 활용한다. 5. 현실을 바탕으로 현실을 초월한 공상의 세계로 시의 영역을 확장한다. 6. 정지된 이미지를 동영상의 이미지로 변환시킨다. 7. 시인의 의식이 어떤 관념에도 묶이지 않게 한다. 8.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의 이중구조가 들어가게 한다. 9. 시인은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를 제작한다.   종이 하이퍼텍스트시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발달된 컴퓨터기술의 특성을 종이 위의 문자면에서 살려 인간의 상상력을 무한히 확대해 나갈 수 있는 시 형태이다. “이런 기능의 확대는 의미(관념)에서 해방된 언어의 자유스러운 쓰임과 가상공간의 무한한 허용이라는 상상의 확산에 의해서 시적인 언어공간으로 구현된다. 따라서 종이 하이퍼텍스트시는 현실을 바탕으로 허구, 즉 기존의 시적 공간을 허물어버림으로써 작품의 주제나 목적성을 지워버린다. 다만 작품의 내면에 숨어서 흐르는 시인의 의식이 시적 생명력의 바탕이 된다”고 심상운은 말하고 있다. 상상 혹은 공상의 확대로 인해 언어는, 기의가 아닌 기표로 흐르게 되고 기표는 소쉬르가 말한 시니피앙으로서 자연히 기존의 주제나 관념은 지워지게 된다. 아니 관념의 제로지대에서 시작한 하이퍼적 상상력에 의해 새로운 관념, 보다 신선한 사물과 정신이 태어나게 된다. 이것이 하이퍼시의 주제라면 주제다.   2008년 봄부터 쓰기 시작한 하이퍼시는 기존의 3명의 동인으로 구성되었지만 그 중 한명은 병고에 시달렸고 사실상 2명의 시인으로는 동인 구성을 할 수 없어서 동인(회)의 울타리를 제치고 뜻이 있는 많은 시인들의 동참을 촉구했다. 그리하여 <하이퍼시 특집>, <확산 하이퍼시 1,2,3>, <새로운 시운동⁄하이퍼시>라 이름하여, 20명의 시인들이 도합 82편의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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