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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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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누구나 시인이 될수 없다?... 있다!... 댓글:  조회:2369  추천:0  2017-11-18
시창작 강의 / 박진환 시 창작 강의를 듣기 위해 찾아온 분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해서 이 강의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물으면 세 가지 유형의 대답을 한다. 첫째는 시를 좋아해서 둘째는 시를 써 보고 싶어서 셋째는 시를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대답을 거꾸로 바꿔보면 이런 질문이 성립된다.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이해 할 수 있는가, 어떻게 써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럴 때 당혹스러운 것은 마치 시란 무엇인가를 물어왔을 때 어떻게 대답해 줘야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것인가 하고 고심하는 것과 같은 답변의 궁색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어느 질문에도 한 마디로 속 시원하게 대답해 줄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대답 해 줄 수 없다는 것은 수강자 입장에서 보면 답답한 일이겠으나 정작 답답한 쪽은 한 마디로 궁금증을 풀어줄 수 없는 쪽이다. 부득이 역설적으로 대답해 줄 수밖에 없는데 이럴 때 흔히 다음 네 가지로 대답해 주곤 한다. 첫째, 시에 미쳐라. 둘째, 시를 많이 읽어라. 셋째, 시 이론을 이해하라. 넷째, 시 쓰는 이론을 지속적으로 하라. 이 네 가지는 단순한 해답이 아니라 시를 알고자 하고 시를 쓰고자 하는 분에게, 특히 시를  잘 쓰고자 하는 분에게는 시를 쓰기 이전에 거처야 할 필 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필수 과정을 거친 다음 그래도 시를 쓸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시 창작이라는 싸움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 말은 시에 대한 관심이 막연한 낭만이나 취향, 멋, 사치로서가 아니라, 절실하고도 필수적인 자기표현 욕구의 충족을 위한 문화적 행위임을 자각하고 필생의 작업으로 받아들여 전 생애를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 부분의 경우, 시집 몇 권울 읽고 또 몇 편의 습작 체험을 통해 시란 시시한 것이 구나 한다든지, 이와는 반대로 자신은 시적 자질이나 재능이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 헌신짝 버리듯 시를 외면하는 분들이 상당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가 예술인 아상 시적 자질이나 재능이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특수한 시적 재능의 소유자만이 시인이 될 수 있다고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시인은 특별한 재능이나 자질을 타고난 것이 아니다. 즉, 시적 천성을 타고난 사람은 달리 없다는 뜻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시를 쓸 수 있고 또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다. ㅡ 계속 ...   일찍이 C. D. 루이스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인이었다고 피력한 바 있고, R∙M 릴케는 시인 아닌 사람은 없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 말은 누구나 시적 자질이나 재능을 천부적으로 타고 났다는 뜻이 되고, 이는 젊은 사람은 시적 감성, 시적 정서, 시적 상상력이 그 어느 때 보다도 풍부하다는 뜻이 된다. 시인이 될 재능이나 재질은 타고난 것이 아니며, 더구나 특별한 시적 재능이란 있을 수 없다. 과거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는 시를 천성(天性)의 미학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남달리 시적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시적 재능의 소유자라고 보았던 것이다. 누구나 꽃을 보면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기쁜 일이 있으면 기뻐하고 슬픈 일을 당하면 슬퍼한다. 이것은 조물주가 인간에게 천부적인 감성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희로애락의 정서 반응을 하고 또 정서에 의탁하여 감정을 표현하게 마련이다. 시인이라 해서 달리 특별한 감성을 가지고 태어나고, 남보다 다른 정서 반응을 환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다만 시적 감성이 깊다보면 정서 반응을 남과 달리 하게 되어 특수한 정서를 표출 할 수 있게 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더구나 요즘 시는 정서 반응이나 정서의 환기가 아니라 이를 이미지로 대체하는 의도적 제작을 요구한다. 의도적 제작이란 언어를 조형하고 정서를 형상화하는 일종의 기술적 제작을 뜻한다. 기술은 연마하고 ,수련하기에 따라 개발되며 세련되고 특수한 기법으로 발전한다. 이 말은 시도 수련하고 연마하면 얼마든지 기술적으로 좋은 시를 풀 수 있다는 해석과 통한다. 기술은 부단한 노력과 집념 그리고 하면 된다는 신념에 의하여 얼마든지 획득되고 실현될 수 있다. 여기서 재능이니, 자질이니, 천부적 천성이니 하는 따위의 시인에 대한 특수성 논급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대신 시에 집착하고 도전하며 무단히 습작하는 노력만이 시인을 탄생시키는 조건이라는 것을 염두 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이 조건을 충족하고 실천함으로써 시인이 되고자 하는 뜻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기러기 위한 첫째 조건인 ‘시에 미쳐라“다. ㅡ 계속 ... 시에 미쳐라.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넉넉잡고 한 10년쯤 미쳐라. 그도 아니라면 한 3년쯤 그렇게 된다면 시인은 안 될지라도 적어도 시란 무엇인가, 시를 어떻게 스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스스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보너스로 어떻게 하면 서로 보다 더 잘 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자기 진단까지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시에 미친다는 것은 한마디로 시적 광기가 아니라 시만이 유일한 벗이요, 희망이요, 보람이요, 삶이며 생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믿음이다. 이 믿음은 진실에 대한 시적 약속이고 또 시에 대한 약속의 이행으로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견고한 시 정신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비평가 R. M. 알베레스는 시인은 믿어야 한다.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 하면서 시인은 일종의 신앙 앞에 서 있어야 한다고 피력한 바 있다. 이 말은 시인이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인데, 이때의 신앙은 내세를 믿고 천당이나 극락의 세계를 믿듯이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믿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새로운 세계란 지상 밖의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시인이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낸 창조적 세계를 의미한다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런 믿음 없이 시인이 존재한다면 항용의 존재 이상일 수 없게 된다. 항용의 존재는 주어진 삶을, 주어진 세계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적 삶이란 이 항용의 삶을 보다 새로운 삶으로 전이시키거나 치환, 변용함으로서 기존의 삶을 극복하고 지향하며 승화, 초월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삶은 상상력을 빌어 창출한 세계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믿음은 앞서 지적한 미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을 갖게 된다. 시적 세계에 대한 탐구나 투구가 광기와 같은 맥락의 해석을 성립시키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 굳이 새로운 세계를 추구할 필요가 없고, 또 추구하고 실현한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면 한낱 가공의 세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미쳐라. 미쳐도 최소한 한3년쯤 미쳐라. 그러다 보면 시가 무엇이고, 시인의 길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쓰고, 어떻게 써야 보다 잘 쓸 수 있는가의 실제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 체험이야말로 신앙에 값하는 거시이며 더구나 체험 적 신념이란 점에서 단순한 의지 지향과는 다른 차원의 신념이 된다. 그러나 미쳐도 곱게 미쳐야 되는데 무작정 시 만이 최고, 시는 내 인생, 시 이외의 것은 의미가 없다는 식의 맹목적 광기는 인간으로서 의 삶이 불가능한 상황을 불러온다. 시에 미친다는 것은 오직 시에만 경도되는 절대 집념을 의미한다. 시 외적인 것은 외면하고 오직 시에만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삶을 시적으로, 미적 세계를 빌어 보다 고상한 세계로 이끌어 올린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시적 관심이나 시적 생활이 없이는 시에 접근할 수 없으며, 시에 경도 되었을 때에만 시에 접근하게 되고, 시를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미칠만한 접근방식 없이 시를 이해하기란 힘들다. 더구나 시인이 된다 해도 별 볼일 없는 시인 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 보다 철저히 미치기 위한 노력만이 보다 빨리 시의 길에 들어서는 첩경이 된다.  음악에 심취하려면 음악 외의 소리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음악의 가장 깊은 곳에 투신하고 익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철저히 음악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시에 미치기 위해서는 시를 쓰는 일에 미쳐야 하고, 시라는 영혼의 깊은 늪에 빠져들어야 한다. ㅡ 계속 ...   시를 많이 읽어라. 시를 많이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권의 시집을 독파할 수 있는 독해력을 갖추고 있어야만 시를 많이 읽는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요구하는 시집 읽기는 단순한 독서로서가 아니라 올바른 시에 접근하는 좋은 시와의 만남을 위한 독서이다. 그 때문에 단순히 읽고 끝나는 항용의 독서와는 다르다. 그렇다면 시와 만나기 위한 시집 읽기는 어떤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대신해서 다음과 같이 권하고 싶다. 첫째. 시집을 정독하라.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을 위한 것. 심심풀이를 위한 것 등 여러 가지 목적을 갖는다. 시집을 읽는 것도 멋으로 심심 하니까, 우연히 손에 잡혔으니까, 하는 식의 진정 독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건성으로 읽기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시는 의미의 전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속에 함축된 암시나 상징 그리고 늬미의 변용이나 치환을 통한 정서적이고도 감각적인 미적 감동을 전달하는 일종의 변용, 치환, 전이의 미학이다. 그래서 시집을 읽는 것은 시인의 미적이고 감동적인 체험을 빌어 시인이 체험했던 감동을 간접 체험을 통해 획득하는 행위이다. 시는 내포적(內包的) 언어미학에 의존한다.  다시 말하면 시는 사물의 해석이나 사실을 밖으로 드러내 설명하는 과학적 진술과는 달리 사실이나 진실을 안으로 감추어 암시나 상징으로 드러내는 의사진실이다.  그 때문에 시는 의미로 해석 되는 것을 거부하고 논리로서 증명되는 것을 초월한다.  그것은 시가 메타언어를 동원하고 있기 때문인데, 메타언어는 어떤 사물을 지시하고자 했을 때 밖으로 드러나는 의미를 버리고 그 뒤에 감추어진 뜻, 즉 숨은 비의(非意)를 빌어 나타내는 언어다. 그뿐만이 아니라 약속된 의미망을 벗어나 초월적 의미를 동원하거나 차용한다. 그래서 시는 좀처럼 감춘 뜻을 드러내지 않고 함축된 암시나 상징으로 드러낸다. 산문이 사실을 보다 사실적으로 명중하기위해 설명하고 또 설명해서 논리를 성립시키고자 한다면 시는 논리를 버리거나 초월한다. 그 때문에 시를 읽고 밖으로 드러난 의미에만 접근하려 한다면 십중팔구는 실패한다.  여기서 정독이 요구된다. ㅡ 계속 ...   시를 이해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속에 감춰진 함축적 의미를 발견하여 짐짓 시인이 드러내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발견해 보라.  그것은 시의 이해가 아니라 시가 주는 충격적 감명을 체험하게 해 줄 것이다.  한 편의 시가 의미로 드러나지 않고 사물로 진열되어 변용의 미학을 보여 주었을 때, 이를 발견 해 느끼는 감동은 충격적인 것이다. 이러한 충격적 감동은 시를 읽고 또 읽으며 음미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터득되는 것으로서 정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두 번째, 감동을 준 부분을 다시 읽고 재해석 해 보라. 시집을 읽다보면 그 몇 편에 유독 친근감이 가고 또 감동을 받는 시가 있다.  왜 이 시가 내게 감동을 주고 마치 내가 쓴 것 같은 친근감을 주는 것인가 하고 사람들은 생각하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 그럴만한 이유가 발견되게 마련이다. 그것은 분명 그 시적 체험을 스스로 체험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에 연계된다. 달리 말하면 그 시를 쓴 시인의 체험과 읽는 이의 체험이 유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독자는 곰곰이 생각 할 것이다. “그래 이와 유사한 체험을 나도 한 적이 있었지. 그 때문에 친숙한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거야.” 하는 말을 자기도 모르게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체험의 유사성을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시인이 이 체험을 시로 승화시켰는가 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 관심으로 한 편의 시를 akc; 스스로가 쓴 듯이 뜯어보고 분석해 보며 다시 재조립해 보아야 한다. 이때 “아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왜 이런 상상력을 동원하지 못 했을까, 왜 이런 사물을 동원하지 못했을까, 왜 이런 의미로 전환하고 이동시켜 보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이 생길 것이다. 이 아쉬움은 곧 깨닫게 하여 자신감을 상실하게 자기의 무능력함을 깨닫게 하여 자신감을 상실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면 “나는 자질이 없어, 글렀어.” 하고 괴로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자신의 무능력함을 깨달았다는 것은 그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미처 개발하지 못했다는 뜻인데, 이는 자신의 잠재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잠재력을 개발하지 못했던 것은 재능이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이를 자기화 하는 능력부족, 훈련의 부족이었던 것이다. 이 부족한 훈련을 남의 시를 통해 체험함으로써 이미 독자는 훈련의 한 과정을 겪은 것이 된다. 이것이 시를 재해석하는 데서 얻는 창작 체험이다. 셋째로는, 좋은 부분, 즉 마음에 드는 행위나 연이 있으면 그냥 좋다고 하지 말고 노트에 옮겨 써 보는 일이다. 홂겨 쓰는 과정에서 문득 새로운 시어를 동원하여 가필 한다든지, 몇 단어를 생략 해 본다든지, 혹은 새로운 이미지를 첨가 해 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자기 나름의 창작 연습을 해 보는 것도 매우 유익하다. 혹은 좋다고 여겨지는 부분에 유사한 체험을 동원해서 나름대로 재구성해 보면 필시 ‘아, 이렇게도 형상화가 가능 하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이 자신감을 살려 내친걸음에 시 한편을 써 보라. 그러면 그것이 오작이었건 창작 이었건 간에 시를 쓰는 행위가 되고, 이 시는 시를 창작하는 경험으로 이어질 것이다. ㅡ 계속 ...   넷째로는 시집을 읽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시와 만나면 그냥 던져 버리거나 넘어갈 것이 아니라 어느 한 부분이라도 관심을 갖고 곰곰이 생각하고 이해하고자 노력 해 보라.  그러면 어떤 현태의 해석이든 자신의 접근 방식이 나타날 것이다. 이 해석은 다른 모호한 부분을 해석하는 단서가 되어 영 흥미 없던 시가 흥미의 대상으로 전환될 것이다.  이러한 꾸준한 노력과 인내는 시를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시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개발 시키고 동시에 좋고 나쁘다는 분석의 안목을 길러 자신의 시의 적용시키는 간접적 효과로 시 창작을 도울 것이다. 한 권의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이와 같이 여러 시적 간접체험을 갖게 한다. 어떤 시집을 막론하고 그 중에는 가작에 속하는 좋은 시가 있게 마련이다. 이 가작만을 대상으로 이 시는 어떤 체험을 어떻게 어떤 기법으로 형상화 했는가를 익혀 든다면 시를 이해하고 쓰는 데 절대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시 이론을 이해하라 시의 이론을 이해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이론을 통해 알 수 있음은 물론이고 시가 어떤 경로를 통해 오늘 날에 이르렀는가를 조감 해 볼 수 있는 안 목을 길러 주기 때문이다. 이론에는 시의 본질론, 방법론을 비롯해서 시 해석론, 감상론, 비평론 등 실로 다양하다.  특히 시 창작 론을 빠뜨릴 수가 없는데, 이는 이 글이 시를 쓰고자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하기 있기 때문이다. 시 창작 론은 각 장을 거듭하면서 하나하나 밝히겠지만, 이 중에서도 중요할 부분은 시가 어떤 경로를 통해 이르렀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사(詩史)를 통해 오늘의 시가 어떻게 발전. 전개 되어 왔는가를 조감 할 수 있어야만 현대시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고, 또 어떻게 표현되기를 희망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부분은 시 창작에 매우 유익한 이론을 제시해 줄 것이다. 흔히 오늘에 살면서 19세기적 낭만주의시를 쓰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솔직히 말한다면 시를 쓰기를 희망하는 분들의 대 부분은 낭만주의 발상에서 시를 출발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말은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 대 부분이 시적 발상으로 정서를 빌어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오늘의 시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수긍이 가고 납득이 가게 된다. 납득하고 수긍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구시대적 발상을 고집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현 시대가 무엇이며 어떻게 표현되기를 희망하는가 하는 현시의 요구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시의 전개 과정을 조감 해 보는 시사의 이해는 시 창작에 매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 ㅡ 계속 ...   시의 본질이 변한 적은 없다. 그러나 주어진 시대마다 표현의 방법을 각기 달리 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각 시대마다 인생관, 세계관이 달랐듯이 시에 대한 요구도 시대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사랑을 예시 해 보자. 우리 조선 시대의 사랑은 사랑의 감정을 안으로 감추어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알았다. 그래서 사랑하는 임을 만나도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소를 흘리는 것으로 입가에 사랑을 표현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랑 표현은 어떠한가. 만나자 마자 주변에 누가 있건 없건 껴안고 뽀뽀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는 사랑의 본질이 변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름을 말해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도 시대를 거듭 하면서 시 자체가 변한 것이 아니라 시법에 따라 표현하는 방법을 달리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시가 어떤 경로를 어떻게 각기 달리 표현되어 왔는가 하는 점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오늘의 시가 이렇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필성을 깨닫게 되고, 또 이 깨달음을 통해 오늘의 시 작법에 신뢰를 갖게 될 것이다. 간략히 시사를 정리해 보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시사를 정리 한다는 것은 엄청난 작업이기 때문에 그 방대함을 수용한다는 것은 본 장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 시대마다 무엇을 주체로 무엇을 어떻게 해석하고 진술 하고자 했는가 하는 발췌, 진열함으로써 시 흐름의 역사 적 경로를 밝히는 것으로 대신 하고자 한다. 시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시는 한마디로 미, 질서, 지혜의 미학 이었다. 이 시대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은 인간의 운명을 신탁에 의해 결정하는 운명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산과 같은 밝은 지혜를 갈망하고 현세적 삶을 중시하는 정치와 연애와 술을 즐겨 주제화 했다. 또 미를 사랑하고 질서를 존중하는 삶을 중시했다. 그래서 그리스 문학은 미. 질서. 지혜를 발상 근저로 했다고 할 수 있다. 또 그들은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으로 인간의 힘이나 지혜로써는 도저히 극복 할 수 없는 또 다른 힘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것이 곧 신의 존재였다.  그 신은 제우스로 대표되는 다산주의로서 신은 제각기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운명에의 의탁은 필연적으로 현세적 삶을 즐기려는 정치, 연애, 술과 같은 쾌락 원리로 작용했다.  이 시대를 표현한 시도 예외 없이 이런 삶들을 주체화함으로써 이성의 통제보다는 열정적 표출을 필연 화할 수밖에 없었다. ㅡ 계속 ...   중세에 오면 상황은 변한다. 그리스 로마의 다산주의가 유일신으로 대체되고 신과 공존하던 그리스 로마 시대의 생활 방식이 신과 인간을 종속 관계로 주종 화함으로써 신의 절대 권력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찬양이나 사제의 행적을 중시하는 그리스 로마의 개인적 정서에서 종교적 교권주의의 틀에 얽매이게 된다.  모든 삶의 가치는 신을 위해서, 신에 의해서 부여받게 되고 인간의 지혜나 감정의 허용이 통제된다. 필연적으로 교권 사상이 시의 발상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신과 인간의 이러한 종속 관계는 다시 유마니즘에 의해 종속관계의 철회를 통한 인간의 평등한 행복을 추구 하는 인간정신주의로 전환된다. 인간과 인간의 본성에 눈 뜨고 인간을 존중하며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발전에 기여 하고자 하는 인간의 해방을 구하기기에 이른다. 이른바 르네상스이다. 르네상스는 신 만능의 중세를 거부하고 인간의 자유, 인간의 해방, 인간의 군위를 주장하는 운동으로서 비로소 인간에 의한 인간의 구가라는 주제를 설정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자유 만능의 사상, 인간의 자유분방한 해방은 이를 질서화 하기 위한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기에 이르는데, 그것이 고전주의 체제이다. 고전주의는 일종의 이성 우월주의로서 의해 통제의 질서가 요구된 시대 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자유와 해방의 방종을 질서화 하기 위한 통제의 원리를 이성으로 보았던 데서 제기된 질서의 원리라 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와 같은 질서의 원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그들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은 이성적 해석에 의존하게 된다. 역시 문학도 이성의 원리가 발상 차원으로 작용된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 인간에 의해 해석되는 해석의 기준이 이성에 의탁 된 셈이다. 이로써 고전주의는 이성이 지배하고 이성에 의해 세계를 해석하는 이성 중시의 문학이 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이성주의는 다음 시대인 낭만주의에 거부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인간은 이성과 함께 감성을 천성으로 부여 받고 있다. 달리 말하면 이성과 감성의 공존 적 관계, 이의 조화로운 화해의 원리에 의해 해석되기를 희망한다는 뜻이다. 이성중심의 경향이 감성주의로 전환되면서 인간의 자연성 회복을 부르짖는 낭만주의 시대를 열기에 이른다. 낭만주의는 이성에 의해 억압 된 감정의 해방을 통해 인생을 해석 하고자 하는 19세기를 지배한 문학의 원리이다. ㅡ 계속 ...   이 원리는 이성의 통제를 벗어만 자유분방한 감정이 이상향으로 설정된 동경의 미학에 바탕하고 있다. 동경은 영원한 이상향인 미래치인 통시적 동경과 이국 취향의 국제주의가 주축이 죈 수평적 동경으로 교직되고 여기에 내적 동경인 사랑이 대별된다. 이러한 동경은 일종의 고정을 거부한 유동의 미학으로서 낭만적 아이러니를 본질로 한다. 낭만적 아이러니는 성취한 꿈의 세계를 파괴하고 보다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이율 성을 발상 차원으로 하면서 동시에 양극화 현상을 부단히 하나로 합일하고자 하는 극성(極性)의 미학을 근간으로 한다. 이러한 유동이 수반하는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고정화가 요구 되는데, 그것이 20세기 시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시학의 요체이다. 견고한 이미지를 빌어 모호한 관념을 구상화 하고자 하는 회화적 이미지즘 시이다. 모더니즘은 정신적 광원(光源)을 지성에서 찾으면서 기계문명에 마멸되고 황폐화해가는 인간의 정신의 어둠, 즉 삶 속의 죽음을 밝혀 줌으로써 정신적 사양화(斜陽化)를 극복하고자 하는 일종의 광원의 시학이다. 이러한 정신 본질과 함께 모더니즘이 추구한 시는 관념과 정서의 회화화라는 시각 미학을 추구했고, 이는 강렬하고도 투명하여 견고한 이미지를 중시하는 이미지즘을 표현 본질로 하고 있다. 일종의 정서의 감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정서의 감각화는 체험시론으로 연계된다. 체험시론은 감각 기능을 동원한 실념주의를 바탕으로 한 존대의 탐구나 발견이고자 한다. 즉, 체험시론은 일종의 물화(物化)를 근간으로 한다. 물화는 존재의 확인이며, 존재의 변용이며, 존재의 탐색을 통한 새로운 재현이다. 감각에 의해 체험한 사상(事象)은 우리의 뇌리에 인화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인화는 언제이고 재생이 가능한 이미지를 성립 시킨다. 이미지가 그림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해석은 이미지의 발원이 체험에 잇대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시를 이미지로 규정 하고자 하는 것은 곧 현대시를 체험시론으로 해석하게 하는 근거를 제공하게 준다.  체험은 관념에 대한 실념이고, 가공에 대한 실제이며, 즉자적 해석이 아닌 대자적 시각에 의존하는 생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 때문에 체험은 시를 견고한 이미지로 결구시키는 역할을 하며 투명한 사물화로 구상화 하는 존재에서의 해석을 용이하게 해 준다. 따라서 시란 정서는 물론 사상이나 감정, 심지어는 의식까지도 사물로 대체하는 철저한 즉물 적 표현 이라는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여기에서 현대시는 두 경로의 또 다른 방법론을 요구 하는데, 그 하나는 메타화이고 다른 하나는 메타피지컬 포위트리다. ㅡ 계속 ...   흔히 현대시를 메타언어라고 규정하는데, 메타란 두 의미론적 해석을 요구한다. 하나는 언어의 초월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뒤에 감추어진 비의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의 초월적 기능은 의미의 확장이자 의미의 고정화를 거부하는 일종의 암시나 상징적 기능에 의탁한다. 그리고 비의는 드러나지 않는 것을 포착 해 내는 일종의 새로운 의미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속성을 우리는 병치적 메타라고 하고, 후자적 속성을 치환적 메타로 규정한다.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이질성 속의 동질성을 찾아 결합한다. 동질성 속의 이질성으로 이동한다든지 하는 일종의 변증법적 결합이다. 이러한 결합은 의미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대신 의미의 초월이나 의미의 암시에 의존 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의미의 물화나 의미의 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메타피지컬 포위트리는 시적 변증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관념이나 사상을 중시하면서도 표현은 메타화에 의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이상 시는 리얼리즘의 현상학적 권태로움을 초월성이나 신비로 대체하고 여기에서 고도화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동시에 상상력은 기발한 착상의 컨시트를 창출해 낼 수 있게 한다. 컨시트는 상대성을 초월하여 초자연적인 대자적 시각을 극복함으로써 형이상적 속성을 지니게 된다. 또 이러한 상상력은 기존의 물화를 빚어 형상화한 이미지의 단조로움을 극복, 아이러니, 풍자, 패러독스, 도착적 표현 등으로 종합적 효과를 획득하는 기법상의 진보도 가져다주었다. 또한 현대시를 아이러니 생각하는 엘리엇의 견해를 진일보시킨 풍자에까지 이르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형이상 시는 단순한 기법상의 문제가 아니고 현대의 복잡다기한 분열상, 정치와 과학의 분화, 복잡한 문화 현상 등을 반영하기 위한 복합적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의 개관에서 볼 수 있듯이 시는 그 본질의 변화가 아닌 시대가 요구하는 것에 따라 그 표현 방법을 달리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살면서 19세기적 낭만주의 시를 쓰고자 한다거나 이미지즘을 신봉하는 외고집을 부리고자 한다는 것은 참으로 넌 센스다. 우리에게 당면으로 주어진 시학은 시의 메타화이거나 컨시트와 아이러니, 풍자와 같은 형이상적 시에의 접근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오늘에 살고 있는 이상 오늘의 시가 요구하는 시법에 충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각 있는 독자라면 이러한 당면을 외면 할 수 없을 것이고 현대시에 동참할 것으로 믿는다. 이상의 여러 조건들은 시를 쓰고자 하는 이들이 시를 쓰기 전에 갖추거나 터득해야 할 기초적 정석이란 점을 강조해 두고 싶다. ㅡ계속  
8    현대시 = 비유 댓글:  조회:2442  추천:0  2017-11-18
현대시와 비유 /박진환 1. 비유란 무엇인가? 어떤 의미에서 비유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상적인 언어생활이나 문장에서 많이 쓰이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비유가 모든 언어 속에 편재하고 있는 수사의 한 원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 창작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것이어서 시 자체라고까지 확대 해석할 수 있는 본질적 기능이자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언어는 그 소리 값과 의미와 대상을 드러내고 표현하며 지시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언어는 한정되어 있는데 반해 나타내고 표현하며 지시하고자 하는 대상 사물은 무한하므로 그 대상 사물을 다 표현할 수가 없게 된다.  다행히도 언어는 사물과 떨어져 독립하고 있으면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데, 이를 언어의 가동성(可動性)이라 한다. 이 가동성은 언어의 유한적 한계성을 극복, 표현의 무한한 가능성을 다 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 된다. 비유나 상징 등이 발생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고 동시에 시가 창조되는 발상 차원도 여기에 근거한다. 이러한 배경을 전제로 비유에 대한 해석을 보다 구체적으로 곁들여 보자. 비유는 일단 넓은 의미의 비유와 좁은 의미의 비유로 양분해서 설명될 수 있다. 넓은 의미로는 문체, 수사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는바, 즉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끌고 문장에 변화와 정체를 더하기 위한 수사 형식 일반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좁은 의미의 비유는 구상적∙회화적 비유 표현 특히 메타포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다시 풀어보면 어떤 사물이나 의미를 다른 사물이나 의미에 유추하여 표현하는 직유∙은유∙의인∙제유∙환유∙풍유∙중의법 등을 포괄하게 된다.  이쯤에서 여러 정의들을 중심으로 다시 해석 해 보기로 하자. 몰튼은 비유를 회화적인 비교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부모의 은혜를 태산이나 바다에 비교하는 것이나 사랑하는 연인을 나의 태양과 나의 마돈나 하는 것이나 사랑의 맛을 꿀 맛 같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비록 사 비유이기는 하나 다 회화적 비교에서 비롯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특히 로버트바르는 사랑과 장미를 비교하여 좋은 시적 비유를 획득 하고 있다. 어떻든 그것이 회화적 비교이건, 의미적 비교이건 그 성립 조건이나 원리가 비교에 있다는 것은 비유가 두 가지 다른 사물이나 의미의 비교에서 성립된다는 것을 말한다. ㅡ계속 ...   시인이 무엇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본래의 것을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히 표현하기위해서 또 하나의 사물이나 의미, 즉, 관념을 끌어 들였을 때만 가능해 진다. 이것을 두고 흔히 비유의 성립조건에서는 본래의 것을 원관념, 동원된 것을 보조관념이라 하는데 리처즈는 원관념을 본의(本意)라고 하고 보조관념을 유의(有意)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유를 성립시키는 원리를 중심으로 비유에 접근해 보자. 첫째, 비유에는 두 가지 사물과 두 가지 의미의 비교가 있어야 한다. 흔히 있는 비유지만 ‘무지개는 사닥다리처럼 하늘에 걸려 있고’ 한다든지 ‘구름 땀은 포도송이처럼 가을로 영글고’ 했을 때 무지개와 사닥다리, 땀방울과 포도송이라는 두 사물이 동원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무지개와 땀방울은 원관념 인 본의에 해당되고, 사닥다리와 포도송이는 보조관념인 유의에 해당된다. 곧 비유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물이나 의미, 즉 원관념과 보조 관념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둘째로, 비유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본의와 유의가 이질적인 것이어야 한다. 앞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무지개와 사닥다리, 땀방울과 포도송이는 서로가 다른 이질적인 사물이다. 그 때문에 무지개는 사닥다리가 아니다. 땀방울은 포도송이가 아니라는 부정이 있어야 성립 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장미 같은 여자’ 했을 때, 장미는 여자가 아니라는 부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본의와 유의가 서로 같았을 때는 그것이 비록 어법상 비유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설득력을 상실한 약한 비유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나 ‘바위같이 강한 남자’ 했을 때는 종류의 차이를 달리 함으로써 이질적인 점에서 설득력이 강한 비유로 적용한다. 엘리엇에 의하면 폭력적 결합이요, 콜리지에 의하면 통합적∙마술적 상상력에 의한 비유다. 셋째는 이와 같이 서로 이질적인 두 사물은 어딘가에 어떤 유사성과 관련성이 있어야 성립된다. 달리 말하면 이질 속의 유사∙관련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면 ‘달은 청상의 세운 눈썹이다가/시린 칼날의 은장도로 빛난다.’ 했을 때 달과 눈썹의 관련성은 여성 이미지이면서 시린 칼날의 은장도는 여성의 청결을 지키는 호신용이기 때문에 이미지의 관련성을 갖게 된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있어야 하고 이때 원관념과 보조관념은 서로 이질적이어야 하며, 이질성 속의 동질성이라는 유사성이 있어야 성립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비유의 원리가 ➀본의 ➁유의 ➂이질성 ④유사성의 네 가지 조건에 의해서 성립된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 이쯤에서 비유를 종류별로 구체화해 보자. ㅡ계속 ...   2. 직유의 방법 직유를 흔히 명유라고도 하는데, 이는 하나의 사물, 즉 하나의 관념을 다른 사물, 즉 다른 관념과 직접 비교하는 비유법이다. 그래서 ‘~처럼, ~같이, ~듯이 ~인 양, ~하듯’과 같은 조사를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끼워 넣어 성립 시키는 비유의 형식을 위한다. 예를 들면 ‘꽃처럼 붉은 울음’한다든지, ‘왕방울 같은 눈을 굴리는 황소’ 한다든지, ‘구름에 달 가듯이’ 또는 ‘다정도 병인 양’ 했을 때에서 볼 수 있듯이 연결어를 사이에 끼고 성립되기 때문에 비유의 성격은 분명하고 직접적이나 그 밀도는 빈약하게 마련이다. 이때 직유는 사상을 선명하게 기술하는 목적으로 하는 기술적 직유가 있고, 사상을 선명하게 기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강의 적 직유가 있다. 기술적 직유는 다시 단일 직유와 확충 직유로 나눠지는데, 단일 직유는 간결한 비교를 서술하는 형식을 취한다. 예를 들면 ‘코스모스같이 가는 허리의 소녀’와 같이 단일하고도 간결한 성격을 띠고 있고, 확충적 직유는 직유의 부분, 즉 도입된 보조관념 부분이 길게 확장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에서 볼 수 있듯이 ‘내 누님 같이’의 원관념을 그 이전의 보조관념이 길게 확장되어 있는 비유의 형식이다.  그리고 강의 적 직유는 두 가지 사상을 기술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직유다. 특히 이때 속담 적 성격을 띤 말이 많이 동원 되는데, 예를 들면 ‘스크루지 같은 수전노’, ‘백 길처럼 가난한’ 한다든지, ‘개처럼 벌어서’ 등이 그 예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직유는 원관념을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해서 두 사물이나 관념 사이에 ‘~처럼’, ‘~같이’와 같은 조사를 끼워 넣어 직접 비교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때 두 사물의 상사성과 유사성을 근거로 하여 보다 본의를 구체화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쯤에서 직유의 방식을 시로 실제화해 보자. ㅡ계속 ...   [실제] - 배경설정 비유는 가능한 한 직유를 피하고 은유로 쓰고자 한다. 그것은 직유로는 도저히 드러낼 수 없는 이질성 속의 동질성을 찾아 폭력적으로 결합하고자 하는 기법들을 터득하고 있고, 이때의 결구력이 직유보다 확실히 강한 설득력으로 작용하는 체험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초심자의 경우 은유보다는 직유를 즐겨 동원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 직유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날 낙엽 길을 걷다 나란히 걸터앉은 벤치에서 사랑을 고백 했다고 치자.  그때 노오란 은행잎 하나를 주워 그의 책갈피에 끼워주면서 사랑의 증표로 삼자고 했을 때 그녀의 눈에 완연한 서운함이 감돌았다고 치자.  주머니를 뒤져도 마땅한 증표가 될 만한 것이 없다. 그렇다고 쓰다 만 볼펜을 건 낼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사랑의 약속으로 걸었다고 치자.  종종 있는 일이고 더러 사랑의 체험으로 간직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날 이후 새끼손가락의 의미는 사뭇 달라진다. 그것은 사랑의 의미나 중량 그리고 약속의 고리를 다이아몬드처럼 끼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다 성숙하면 이 사랑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고 추억으로 남게 됐다고 치자. 그래서  어느 날 그 낙엽 길 벤치에 앉아 옛날을 회상했다고 치자. 무엇인가 가슴에 시려오는 사랑과 추억, 그리움 같은 것과 만났으리라.  이런 배경을 시로 써 봤다고 치자. 지그시 걸었던 보석처럼 빛나는 약속을 새끼손가락은 끼고 있다. 그리운 날엔  가슴에 품어 체온을 불어 넣기도 하고 서러운 날엔 한 잎 낙엽처럼 뽑아 던져도 보았지만 그대 더운 숨결로 건네주던 새끼손가락의 추억은 오늘도 진주처럼 반짝인다. 대충 이렇게 썼다고 치자. 이 시는 예외 없이 ‘처럼’, ‘같이’를 동원한 직유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ㅡ계속 ...   이 시는 일상적 어법의 비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단조로운 비교의 형식 이상을 획득해 내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같이’나 ‘처럼’이 본인이 유의를 이어주는 조사 적 한계의 연결 고리 이상을 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거기다 직유 이상으로 작용하지 못함으로써 사 비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비유가 시적 비유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적 직감과 내적 체험이 언어 속에 형상화 될 수 있도록 조사 아닌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데, 이 시에서는 단순한 사물로 사물을 잇는 이음새 역할밖에는 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사성만 동원됐을 뿐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른 한 편의 시를 대비 했을 때 이해를 도울 것으로 본다. 추억보다 슬픈 사랑을 끼고 있다. 온 몸과 마음으로 매어달린 무게를 새끼손가락은 끼고 있다. 악수론 건넬 수 없는 지극한 사랑을 약속으로 걸고 어미손가락보다 당당한 맨 끝의 짧고 가는 손가락 세끼손가락의 추억과 새끼손가락의 사랑과 새끼손가락의 약속은 아름답다. 보이지 않는 고리 하나를 끼고 늘 보석처럼 빛나는 새끼손가락 사랑과 추억과 약속의 마디가 흰 새끼손가락은 체중보다 무거운 사랑을 가누고 있다. 「새끼손가락」이라는 졸 시의 전문이다. 이 시에서도 ‘추억보다’, ‘어미손가락보다’, ‘체중보다‘에서 볼 수 있듯이 직유를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앞의 시에 비해 단순 비교가 아닌 시적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새끼손가락으로 걸었던 사랑의 의미를 계량하는 중량감으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종연에서는 약속을 보이지 않는 고리로 보석의 의미를 부여하고, 새끼손가락을 단 순한 손가락이 아닌 사랑과 추억으로 마디가 굵은 손가락으로 구상화하고, 여기에 체중보다 무거운 사랑의 중량감을 매달아 줌으로써 단순 비유가 아닌 치환과 병치적 은유의 효과를 얻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시는 앞의 시가 극복해 주지 못한 단조로움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는 앞서 지적한 시적 직감과 내적 체험을 결구시킨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기 때문인데 직유이건 은유이건 비유를 통해 획득한 이미지는 상상력에 의해 결구된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두고 싶다. 결국 비유가 이미지를 성립시키는 원리이지만 역시 상상력에 의해 보다 구체적 이미지를 창출한다는 점에 관심했으면 한다. 다음은 비유의 대표적 양식인 은유를 제기해 보자. ㅡ계속 3. 은유의 방법 은유는 암유라고도 한다. 또한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조사를 끼워 넣지 암ㅎ고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비유로서 ‘메타퍼’라고 명명한다. 메타 퍼의 mete는 초월 및 벗어남의 뜻이고, phor는 이동한다는 뜻이다. 이로써 보면 메타퍼는 어떤 사물관념, 의미나 감정이 다른 사물이나 의미로 옮겨진다. 전자의 것이 후자의 것으로 유사성이 없더라도 결합될 수 있는 폭력적 결합이 가능하게 되고, 폭력적 결합에 의해 창조적 관련을 창출하게 된다. 이를 보다 극명히 하기 위해 몇몇 은유에 대한 견해를 제시해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란 어떤 사물에 다른 사물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으로 그 전이는 속(屬)에서 종(種)으로, 종에서 속으로 혹은 종으로 또는 유추를 토대로 하여 이루어진다고 그의「시학」에서 말하고 있다. 또 G. 휠라이트의 지론에 의하면 은유는 어떤 한 가지 세상과 심상 또는 상징이 이와 다른 심상, 상징 등을 함축 내포함으로써 그 의미를 명료화하는 복합 확장을 꾀하는 응축된 언어 관계로 제시하고 있다. 이때 원관념은 생략되고 보조관념만을 내세우게 되는데, 이 때문에 은유는 더러 상징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최창호(崔昌鎬)는 메타 퍼와 직유의 차이를 비유의 효과적인 차이로 보면서 시밀 리가 축약된 것이 메타 퍼이고, 그와 반대로 메타 퍼가 부연된 것이 시밀리라고 말 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시밀리가 두 사물을 직접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비해, 메타 퍼는 두 사물 중 하나를 다른 것과 순간적으로 동일시하거나 한 사물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결국 최창호의 지론은 은유가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비유의 형식임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직유가 ‘놋날 같은 비’라고 했을 때, 은유는 ‘놋날의 비’로, 또 직유가 ‘파도 같은 군중’ 했을 때, 은유는 ‘군중의 파도’로 원관념과 보조 관념 사이에 끼워 넣었던 ‘같은’이란 조사를 생략한다.  따라서 은유는 직유가 생략된 형태, 즉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동일시하는 비유의 형식이다.  이때 은유는 조사가 생략됨으로써 언어는 축약되고 의미는 강조되는 의미의 함축 및 확충이란 시적 효과를 배가 시킨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메타퍼는 현시대를 대표하는 표현 양식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광범위한 언어 현상으로서 원래는 구상적 사물을 가리키는 언어가 추상적∙사유적으로 사용 되었을 때 메타퍼가 되는데 이 때문에 전이적 언어는 모두 메타퍼라 할 수 있다. ㅡ계속 ...   오늘 날 시를 흔히 메타언어라고 하는바, 이 때의 메타언어는 시적 은유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특히 기교를 사용한 메타퍼를 말한다. 이러한 견해는 뉴크리티시즘에서 시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은유를 보는 데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나 메타퍼는 교묘하게 사용하면 묘사를 살리고 감명을 깊게 하지만 자칫 남용하게 되면 일종의 컨시트가 되어 거꾸로 묘사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도 관심해야 한다. 메타퍼의 종류는 주로 리처즈가 주지와 매체로 보는 이분법을 적용하나 브룩스와 같은 신비평가들이 매체가 주지를 단순한 형식으로 나타내는 설명적 메타퍼는 가치가 없는 것으로, 양자의 유기적 결함에서 생기는 기능적 메타퍼를 가치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어떻든 메타퍼를 현대시를 성립시키는 가장 생명력 있는 언어의 원리를 보는 것도 이 때문인데, 달리 말하면 시는 본질 적으로 은유적 속성을 지녔다는 뜻이 된다. 이를 시에 실제화 했을 때 메타퍼에 대한 이해는 보다 쉬워지리라 본다. [실제] - 배경설정 두 여인이 퇴근길의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치자.  불행히도 남자 족에서 먼저와 기다려 주기를 기대 했으나, 몇 분 늦게 도착한 여성 쪽에서 약속한 30분이 지나도록 상대가 와 주지 않았다고 치자.  몇 번이나 서성이며 시계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보다 그만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고 치자. ‘오기만 해 봐라. 용서하지 않을 테다.’하고 몇 번이나 다짐하면서 기다렸으나 1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내심 겁이 덜컥 날 것이다.  ‘행여 변심한 게 아닐까?’ ‘아냐, 교통사고라도 난 개 아닐까?’, ‘설마 회사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약속한 시간에서 1시간이 훨씬 넘어섰다.  그만 포기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눈물이 글썽한 눈에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 있는 초승달이 들어온다.  부글부글 끓던 심시가 갑자기 외로움으로 뒤 바뀌면서 쓸쓸히 돌아설 수밖에 없다고 치자.  차를 타고 갈 기분이 나지 않는다.  톡톡 하이힐 소리를 내며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뒤를 돌아보니 초승달이 따라오다 멈춰 선다. 이런 체험은 한 번쯤 해 봤던 것들로써 이런 배경을 일기로 쓰듯 시로 썼다고 치자. ㅡ계속 ...   기다림은  곱게 내려 간 上弦의 눈썹 기다리다 지친 분노는 치켜 뜬 下弦의 눈썹 사랑은 만월이었으나 은장도로 베어다 창에 건 초승달과 그믐 달. 이렇게 썼다고 치자. 이 시에서 1연의 기다림은 곱게 내려 깐 초승 달 같은 눈썹으로 전이되고, 2연에서는 기다리다 지친 분노로 감정이 전이 되면서 눈썹을 치켜 뜬 그믐달로 이동된다. 3연에서는 다시 그리움이 사랑으로 이동되면서 감정의 전이에 다라 만월이 되는데, 삭이지 못한 화가 그만 은장도를 꺼낸다.  그리고 끝내는 은장도로 만월을 베어다 창에 건 초승달과 그믐달로 옮겨지는데 이는 사랑의 감정을 눈썹으로 전이시켜 비유를 성립시킨 것으로 보아진다. 즉 관념을 사 물로 대체시킨 병치 은유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원관념과 그리움과 사랑이 전이에 따라 곱게 내려 깐 다소곳한 표상의 눈썹으로, 분노의 감정으로 치켜 뜬 하현의 세운 눈썹으로 자리바꿈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순종과 분노의 대립 감정이라는 사랑의 속성을 초승달과 그믐달의 이미지로 전이시키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결국 이 시는 잘 되고 못 된 것을 차지하고 사랑과 사랑에 따른 애증을 눈썹이란 별개의 사물로 이동시킴으로써 은유를 성립시켜 주고 있다는 데 습작의 의미가 있다. 이 시 보다 철저한 메타퍼로 재구성했을 때 실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길 들이다  잘 못 세운 눈썹 짝 잃은 외로움으로 건  귀걸이 돌아선 등 가려주는 목걸이 시린 칼 날로 가슴에 품은 은장도 졸시 「초승달」의 전문이다. 이 시는 사랑이나 그리움의 감정까지도 배제한 채 여성의 속성을 달에 비유, 철저히 객관적 상관물만을 동원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의미나 감정의 개입을 통제하고 다만 이미지로 대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달에 눈썹. 귀걸이. 목걸이. 여성의 원형상징이고 보면, 이 시는 거꾸로 여성의 속성을 달에 비유, 메타화 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메타퍼는 랭거의 지적처럼 시의 원리이자 가장 생명력 있는 언어의 원리가 된다는 점에 동의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현대시의 드러냄을 대표하는 양식으로 비유를 꼽고 있는데, 비유 중에서도 은유는 시를 광채 있게 하는 표현 양식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ㅡ계속 ...   4. 치환 은유와 병치 은유 은유의 현대적 구조는 치환 은유(置換隱喩)와 병치 은유(竝置隱喩)로 대표되고 있다. 치환의 뜻은 바꾸어 자리바꿈을 의미하고 병치는 나란히 놓는다는 병렬적 진열을 의미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해석하면 치환은 원래의 의미를 다른 사물의 의미로 바꾸는 일종의 자리바꿈의 은유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병치은유는 사물이나 의미네 관련 없이 서로 별개의 독립성을 지닌 사물이나 존재를 동원, 대립과 갈등으로 팽팽한 김장을 유지하면서 나란히 자리하게 한 비유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치환 은유가 의미의 이동을 성립 조건으로 한다면 병치은유는 관련이나 연관을 배제한 대립 갈등의 이질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사물이나 존재의 진열 형식을 취한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충격적이고도 폭력적 결합에 의해 성립된 비유의 형식인데 비유를 형성하는 두 관념은 그 뜻이 이질적이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치환 은유는 이런 원리를 성립의 원리로 동원하고 있고, 병치은유는 서로 상관성이 배제된 비동일성의 사물이나 존재로 병치시킴으로써 상호 거부, 대립, 갈등을 유발, 폭력적 결합이 아니고는 비유를 성립시킬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두 사랑하는 남녀가 한 번 만나서 사랑에 골인했다면 이 때의 사랑은 싱겁기 그지없다. 그러나 한쪽이 끌면 한쪽이 달아나거나 반대로 한쪽이 달아나면 한쪽이 끌어당기는, 끌고 당기는 팽팽한 긴장이 유지될 때의 사랑은 사랑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성취욕 또한 강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한 번에 골인한 사랑은 쉬이 권태나 대립. 갈등을 초래할 위험이 있으나 후자의 경우는 일단 골인하게 되면 견고한 고리가 걸어져 풀어지지 않는다. 이 비유를 다시 시에 대입하면 전자 적 의미는 직유에 가깝고 후자적 경우는 은유의 양식에 가깝게 된다. 맥스 블랙머가 비유를 상호 작용으로 풀이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김장과 대립의 병치성과 원래의 의미를 다른 사물의 의미로 이동. 전이시키는 치환 은유의 특성을 지적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정리 했을 때 치환은유와 병치은유의 본태는 드러날 것으로 본다. 치환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상호간에 어떤 유사성을 토대로 하여 그 의미를 전환시키는 것으로써 일종의 잘 알려진 것과 덜 알려진 것의 종합을 통한 의미의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외형상의 것만이 아니라 내적이고도 전신적이며 정서적 전이를 통한 동일성을 결합의 원리로 한다는 점을 추가해야 한다. ㅡ계속 ...   병치 은유는 치환은유가 한 사물이 다른 사물로 이동하는 자리바꿈이 아니라 두 사물을 그냥 대조적으로 진열. 배치해 놓는 형식이다. 유사성이나 동일성이 아닌 비유사적이고 비동일성인 각기 다른 독자적 존재나 사물의 폭력적 배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종의 이질적인 것의 폭력적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치환 은유와 병치 은유는 다른 사물과 사물간의 동질성을 획득하려는 측면과 오히려 상호 이질성의 충돌을 폭력적으로 결구시키는 충격적 결합을 시의 미학으로 수용하려는 상반된 방식을 원리로 하고 있다. 이쯤에서 시를 제시했을 때 치환 은유와 병치 은유에 대한 보다 극명한 이해에 접근할 것으로 본다. [실제] ▶ 치환 은유 은행나무는 지가 무슨 은행이라고  황금 주머닐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가 거지같은 바람이  손만 내 밀어도 황금 지폐를  한 묶음씩 쥐어준다. 졸시「은행잎∙1」의 전문이다. 은행(銀杏)과 은행(銀行)은 동음의 이다. 그래서 편에 해당된다. 그러나 은행잎이 황금 빛깔을 하고 있다고 하는 점에서 보면 황금의 본적지인 뱅크로서의 은행과는 산호 맥락 적 관계를 갖게 된다. 낙엽을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로 보는 것이나, 낙엽을 ‘액면 없는 수표’로 보는 것은 다 그런 맥락에서 발상한 것이다. 또 낙엽의 황금 빛깔을 빌어 빛깔의 동질성인 황금으로 보면서‘ 중량 없는 황금’으로 해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것이다. 이런 맥락성에서 보면 황금 이파리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은행잎은 마치 황금 주머니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 황금 주머니는 바람에 나부껴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를 ‘거지같은 바람이/ 손만 내밀어도/ 황금 지폐를/ 한 묶음씩 지어준다.’ 고 상상력을 개입시킨 것이다. 그 때문에 본의는 은행잎을 그리려 한 것인데 그 결과는 엉뚱하게도 은행으로 둔갑하고 또 은행잎이 황금주머니로 둔갑하는 의미의 이동을 감행했던 것이다. 곧 치환 은유에 대한 원관념이 전혀 새로운 관념으로 이동되는 비유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 ㅡ 계속 ...   ▶병치 은유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에 갈앉은 놋쇠항아리다. 이 시는 김춘수(金春洙)님의 시「나의 하나님」의 일부다. 이 시에서는 원관념인 비애가 ‘커다란 살점’과 ‘놋쇠 항아리’로 제시되고 있다. 관념으로도 사물로도 또는 존재로도 동일성에 잇댈 근거를 제공 해 주지 않고 있다. 도대체가 하나님의 비애와 살점, 놋쇠 항아리는 철저한 비 동일성의 것으로서 유사성이나 연관성을 찾아볼 수 가 없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여기서 매우 충격적인 당혹감을 느길 것이고, 이 당돌한 병치에 대한 심한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도대체가 “무슨 놈의 소린지 일 수 없다”며 불평이나 푸념을 하게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병치형식의 폭력적 결합 뒤에는 우리를 놀라게 할 만한 결합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굳이 풀어본다면 ‘하나님의 늙은 비애’란 것은 슬픔의 극대화를 위한 묘한 착상이다. 달리 말하면 슬픔을 극대화 해 놓고 그 슬픔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제공했을 때 확산 될 효과를 미리 계산 했다는 뜻이다. 어떻든 비애가 늙어 쪼그라들 만큼의 슬픔이었다면 그 원인을 해명해야 이 시는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살점이나 놋쇠 항아리는 이를 풀어 주는 데 도운이 되는 사물들이 아니다. 되레 엉뚱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풀어보자. 하나님의 슬픔이 살점 때문이라는데, 어째서 살점이 비애의 원인인가? 현대를 물신 시대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모든 가치 척도가 물질로 척도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물질이 정신에 대응된다는 점에서 정신적 가치 기준이 상실되고, 그와 대응되는 육체 중심의 관능주위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비유적 진술이 된다. 육체는 힘을 비유하고 관능은 쾌락을 비유한다. 이렇게 보면 현대는 힘에 의한 폭력, 쾌락에 의한 관능주의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이치가 성립된다. 또 육체는 기실 정신에 대응시키면 살덩어리나 비곗덩어리에 불과하다. 이로 인한 육체 ∙관능주의는 슬픔이 아닐 수 없게 된다. 일종의 정신이 소멸된 데 따른 슬픔이다. 이 육욕주의를 푸줏간에 걸린 살점으로 메타화, 비애와 병치시켰던 것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의 비애의 1차적 원인은 규명된다. ㅡ계속 ...   두 번째 비애는 ‘놋쇠항아리’ 때문인데 어째서 놋쇠항아리가 비애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 놋쇠는 청동으로 금(金)의 원형이다. 금 이전에는 청동이 최고의 값어치를 지녔던 귀금속이었던 것이었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청동, 즉 놋쇠항아리는 금에 대유된 비유의 사물이다. 현대를 물신 시대라 하는 것은 그 가치 척도가 금으로 측정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금, 곧 황금이 모든 물질의 가치 척도가 된다는 뜻이다. 이는 놋쇠와 황금이 본질적으로는 다르나 원형인 놋쇠가 청동기 시대의 최고치라는 점에서 또 황금이 현대의 최고치라는 점에서 등가물이 된다. 이러한 이치는 배금주의∙황금만능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어 정신적 진단으로는 분명 비극이 아닐 수 없고, 이 비극은 곧 비애의 원인 제공이 되거나 간접적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할 때는 물욕이나 육욕보다는 정신 지상주의를 계산했던 게 분명한데 세상 돌아가는 꼴은 이와 반대로 정신을 버리고 물욕∙육욕이 난무하니 이것이 비애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과학적 진술을 김춘수는 하나님과 살점, 놋쇠항아리를 병치시킴으로써 철저히 은폐했던 것이다. 앞서 비유를 은폐적 형식이라고 말했던 점에 동감할 것으로 본다. 이쯤에서 치환 은유와 병치 은유에 대한 이해에 접근했을 것으로 본다. 다음은 비유의 또 다른 형식인 의인법을 제시해 보자. ㅡ 계속 5. 의인법 의인법은 직유∙∙은유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비유법의 하나로서 활유(活喩)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 이외의 사물이나 추상 개념에 인격적 요소를 부여해서 표현하는 수사법으로써 은유의 특별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조명해 보면 먼저 인간 이상인 신 또는 영적(靈的) 존재를 인격화 하는 것에서 발생, 그 다음으로는 비인간적인 존재, 무생물∙추상 개념을 인격화 하는 것으로 발달 해 왔다. 전자는 의인관(擬人觀)에 해당하며 종교적 의식의 소산이고, 후자는 비의식의 소산이다. 분류별로는 첫째, 불완전 의인법 둘째, 완전 의인법  셋째, 추상개념의 의인화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첫 번째의 불완전 의인법은 의인화 방법이 철저하지 못한 것으로 그 인격성은 단지 연상에 의해 시사된 정도이며, 인격적 이미지가 전체로써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둘째, 완전 의인법은 대상의 인격이 전체적으로 선명하게 나타나 있으며 특히 신화적 배경을 갖고 표현된 해∙달∙별∙바람 등의 의인화가 그것이다. ‘산이 병풍을 치고 날 가두 네’ 라든지, ‘아침 태양이 강물에 얼굴을 씻고 있다’ 등은 그 예로써 완전 의인법이다. 셋째, 추상개념의 의인법은 진리∙사랑∙희망∙이상 등이 의인화된 것으로써 ‘희망의 손짓’, ‘역사의 눈’ 등이 그 예인데 특수한 은유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분류는 웰렉과 워렌에 의하면 이분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의인법은 대체로 신비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상상력을 요구하는데, 이 태도는 외계의 생명 없는 인간의 감정을 투영하기도 하고, 자연을 정령화(精靈化)하거나 자연에 인간과 같은 생명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생명이 있는 것을 비정령화 (非精靈化)하고 혹은 비인간화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모든 비유적 표현은 주관적 극치와 객관적 극치라는 두 극단 사이에 모두 망라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피력한 것이 된다. 또 의인법을 감정적 오류(感情的 誤謬)라고도 하고 감정이입(感情移入)이라고 일컫기도 하는데, 감정적 오류는 감정이 없는 무생물을 마치 감정이 있는 것처럼 인식하는데서 오는 오류라고 보아 그렇게 말하고 감정이입은 한 예술작품을 대할 때 그것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을 뜻한다. 즉 감정 없는 예술 작품이나 자연의 대상 때문에 결과적으로 의인화의 경향을 띨 수밖에 없게 된다. ㅡ 계속 ...   이와 같이 의인법은 여러 유형으로 분류할 수도 있는데, 어쨌건 사물이나 사람이 아닌 생물에 사람과 같은 성질을 부여해서 표현하는 일종의 은유로 본다면 틀림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 이상인 존재, 즉 신이나 절대 존재에 적용했을 때는 종교적 의미를 갖게 되고, 인간이하의 대상 사물에 적용 했을 때는 예술적 표현이 된다. 이러한 의인법은 오늘날의 현대시에서도 예외 없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표현기교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시로 실제화해 보자. [실제] ▶배경 설정 여름이 지날 무렵, 가을 산을 올랐다가 잠시 산허리에 앉아 시는데 마침 멀리 호반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고 치자. 들락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자. 그런가 하면 산자락은 마치 호반에 허리가 잠긴 것처럼 보이고 또 호면에 얼비쳐 얼굴을 드리운 것처럼 보였다고 하면 이미 의인화가 성립되는 것이다.  여기에 상상력이 동원 되면서 마치 남녀의 교접 성으로 보였다고 치자. 이때 시상이 떠올랐고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썼다고 치자. 산은 두 가랑이를 벌리고  거인처럼 누워있다. 허연 허벅지를 드러낸 호반이 두 팔로 허리를 휘감고 있었다. 한 때의 교접으로 드러낸 등을 숲은 가려주지 못했다. 체위가 바뀐 채 하체를 드러낸 산의 발기를 얼굴을 비춰보던 하늘이 난처해하며 외면하고 있었다.  발상의 배경을 정리해 이런 시를 썼다고 치자. 산과 호수가 남녀로 비교적 분명하게 의인화되어 있다. 일종의 완전 의인법을 동원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ㅡ계속 ...   1연에서 산은 두 가랑이를 버린 거인으로,  2연에서 호반은 허벅지를 드러낸 여인으로 의인화되어 있고,  3연에서는 남녀의 교접으로 구체화 되고 있다. 그리고 종연에서는 이를 지켜보던 하늘까지 의인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비교적 대상의 인격이 전체적으로 선명히 드러나고 있는데 적절히 의인법을 구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유사한 배경, 유사한 발상으로 의인법에 의탁한 다른 한 편의 시를 대조해 보자. 산은 몇 조각 구름을 베고 누워 두 가랑이를 벌리고 있었다. 물 묻은 치맛자락을 끌며 무시로 호반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운우의 장대비가 그친 뒤 허옇게 드러낸 등을 숲은 가려주지 못했다. 그 밑에 허리 째 잠긴 하체가 체위가 바뀐 채 깔려 있었다. 젖혀진 치마폭 사이로 잉태한 하늘이 언뜻언뜻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이 시는 「호반」의 전문이다. 앞의 시와 별로 차이가 없으나 다소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앞의 시가 그냥 거인으로 의인화된 것에 비해 뒤의 시는 구름을 베고 누운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앞의 2연이 허연 허벅지를 드러낸 여인으로 의인화 되었다면, 뒤의 시는 치맛자락을 끈 여인으로 여인의 이미지를 더 구체화하고 있다. 또 앞의 시가 7연에서 남녀의 교접으로 산과 호반을 의인화한 것에 비해 뒤의 시는 운우로 교접을 간접화하고 있고, 종연에서는 앞의 시가 교접의 현장을 하늘에 들키는 의인화로 현장성을 강조한 것에 비해 뒤의 시는 운우를 교접으로 얼비친 하늘을 잉태의 형식으로 의인화하고 있다. 어떻든 두 시가 다 같이 의인법을 즐겨 차용하고 있는 점에서 같은 맥락을 갖고 있으나 다만 표현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ㅡ계속 ...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생명이 없는 사물을 사람이 아닌 생물에 사람과 같은 성질을 부여함으로써 성립되는 의인화는 달리 생명을 생명이 없는 사물로 만들어 표현하는 은유가 있는데, 그 때문에 의인법과는 반대의 성격을 갖는다. 이를 결정법(結晶法)이라고도 하는데 시를 통해 이해에 접근 해 보자. 무슨 말을 하여 피를 돌게 하랴 돌의 생애를 살아 있게 하랴 말만이 아니라 혼까지 들어가 돌 속의 침묵 금이 되리라. 이렇게 썼다고 치자. 이때의 은유는 외계의 생명 없는 사물에 인간의 감정을 투영하기도 하고, 자연을 정령화 하거나 자연에 생면을 부여하는 것과는 달리 생명이 있는 것을 비 정령화 및 비인간화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달리 말하면 사물 자체로 환원되는 존재의 즉자화(卽自火)라고 할 수 있다. 실존을 초월, 사물 자체의 존재로 환원되는 비인간화, 비 생명화가 그것이다. 이상으로 현대시와 비유에 대하여 대략 설명이 됐을 것으로 본다.   현대시와 상징 1. 상징이란 무엇인가? 비유가 현대시를 성립시키는 구성의 원리라면 상징은 비유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현대시의 대표적 표현 기교라 할 수 있다. 사전적 해석을 빌면 어떤 감각적 대상이 다른 대상을 표시하거나 본래의 고유한 의미 외에 비 본래의 의미를 표현하는 수사법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를 줄여 말하면 ‘다른 의미로 표현하는 그 무엇’이 되겠는데, 구체화하면 본래 표현하고자 한 본의를 다른 무엇을 빌어다 표현하고자 한 유의다. 이때 유의는 일종의 사인, 즉 표적이나 징표가 된다. ㅡ 계속 ...   1. 상징이란 무엇인가? 브룩스와 워렌은 공저 「시의 이해」에서 상징을 표적으로 재기하고 있는데, 그 지론에 의하면 상징은 원관념이 생략된 은유다. ‘소녀들의 장미 동산에 있는 여왕 장미’하면 은유지만, 시인이 단순히 그가 취급하는 사랑의 성질을 암시하기 위해 장미를 기리 킬 뿐 비유적인 틀을 지시하지 않는다면, 그는 장미를 상징으로 바꾼 것이다. 우리는 비유적인 전화(轉化)를 강조할 때 은유라는 말을 쓴다. 예컨대 ‘소는 장미다’라고 하면 장미의 특질은 소녀에게 전환된다. 그러나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는 것으로서의 대상이나 행동을 생각할 때 우리는 상징이란 말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은 의미를 지적하는 사인인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상징을 사인으로 본 것은 언어적 해석에서도 가능하다. 상징은 그리스어인 ‘심발레인(symballein)'에서 온 것인데 동사는 ;함께 던지다. 비교하다’라는 뜻이고, 명사는 ‘표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표시는 표적, 즉 사인의 다른 표현이 된다. 좀 더 알기 쉽게 이야기 식으로 풀면 이러하다. 중국 육조 때 진후주는 정사를 외면하고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기 때문에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국운은 날로 기울어 갔다. 반면에 수나라 양견을 세력을 확장, 중국 전역을 통일 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런 처지를 잘 알고 있던 진후주의 딸 낙창공주의 남편 서덕언은 국운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음을 알고 대책을 세우고자 아내에게 “만약 서로 헤어지게 되면 ‘서로 정표를 지니고 있다가 정월 보름날에 시장에 나가 팔도록 합시다.’ 그러면 그것을 사 가는 편에 소식을 전할 수 있지 않겠소.” 하며 거울을 반으로 쪼개 그 반쪽을 아내 낙창공주에게 건넸다. 이 이야기는 거울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사인이 되는데, 이 때 거울은 반쪽으로서는 의미가 없고 반드시 두 쪽이 결합됨으로써 약속은 이행되고 성취된다.  이와같은 상징이란 어떤 진술이나 이미지가 한쪽으로는 의미가 없고 다른 한쪽, 즉 보조관념으로 대체해 버린 나타나지 않는 원관념과의 결합에 의해 성립됨을 고사를 통해 알 수 있게 한다. 이 이야기는 상징을 성립시키는 조건으로 본의와 유의가 있어야 함을 말해 주는데, 은유와 다른 점은 비유를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 즉 본의 ∙유의 ∙유사성∙이질성 중 오직 유의만이 밖으로 드러나고 다른 세 요소는 모두 안으로 숨어버리는데 있다. 여기에서 상징과 상징되어지는 것과의 관계는 어떠한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되는데, 이때 언어의 상징적 속성이 제시된다. ㅡ 계속 ...   리처즈는 언어를 무엇인가의 다른 것으로 대신하여 자기 이외의 사물을 가리키는 기호로서 의도적이며 체계적인 상징으로 보고 있다. 그런가하면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언어 자체를 관례적 상징이라고 말하고, 웰렉과 워렌도 은유가 여러 차례 되풀이되어 관례화하면 원관념이 쓰여 지지 않고 상징이 된다는 요지를 피력하고 있다. 여기에서 언어 자체를 상징으로 보는 것은 언어가 자신 아닌 다른 어떤 관념을 암시하는 경우를 일컫는 것이다. 그 때문에 단지 유사성이나 이질성 속의 동질성을 드러내는 은유적 한계를 벗어나 신비∙초월∙추상성을 띠게 된다. 이 신비∙초월∙추상은 다 같이 형이상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상징(象徵)에서의 상자는 지상적이고도 가시적인 표상이 아니라 재천성상(在天成象), 즉 하늘에서 이루어진 상으로 초월적 세계 표상이란 의미로 「주역」에서는 해석한다. 이는 곧 지상적인 것이 아닌 천상적인 것으로서 초월적 표상으로 해석된다. 이 때문에 상징은 가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내면적인 것. 물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것으로 드러내는 표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보면 상징은 단순한 물체를 다른 물체의 대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사상과 가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영상(영상)을 사용하는 것이 된다. 일찍이 말라르메가 상징주의를 정의 하면서 하나의 사물로 하여금 점차적으로 어떤 기분을 드러내도록 하는 예술 이와는 반대로 어떤 사물을 선정해서 그것으로부터 ‘영혼의 상태’를 끌어내는 예술로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왜냐하면 앞의 추상적 사상이나 감정이나 영혼의 상태는 다름 아닌 초월적∙비가시적 세계로 본의에 해당되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구체적 영상을 사용한다는 영상은 유의에 해당된다. 상징주의를 초월적 상징주의로 명명하는 것은 바로 이 초월적 상징주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물론 초월적 상징주의는 불완전한 현실세계에 대응되는 이상향에의 심벌로 사용된 것이지만 이상 세계가 초월의 세계이고 보면 역시 상징에 해당됨도 사실이다. ㅡ계속 ...   시인들을 흔히 예언자∙선견자∙계시자 등으로 부르는 것도 따지고 보면 현실계의 물체∙들의 배우나 그것들 너머에 존대하는 이상계에 숨겨져 있는 중요한 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고 있다는 뜻에서 명명된 것들이다. W.M 울반에 의하면 상징을 성립시키는 네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중심으로 상징은 해석될 수 있다. 첫째. 모든 상징은 무엇인가를 지시한다. 둘째. 모든 상징은 2중의 지시를 갖는다. 셋째. 모든 상징은 진실과 허구를 포함한다. 넷째. 모든 상징은 2중의 적절성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첫째는 상징이 비록 본의를 감추고 있으나 무엇인가를 드러내 보인다는 것으로서 일종의 암시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고, 둘째는 이 암시적 드러냄이 하나는 감춘 지체로서의 본의에 의해, 다른 하나는 감춤을 드러내기 위해 동원한 유의에 의해 드러내냄으로써 2중의 지시가 될 수 있다. 셋째, 진실과 허구는 짐짓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본의로서 이는 진실이 허구가 되는 셈이다. 고로 상징은 이 둘을 다 포함하는 것이 된다. 끝으로 넷째, 2중의 적절성은 본의와 유의가 비록 진실과 허구로 제시되기는 하나 상징이 이를 둘 다 포함한다는 점에서 보면 안과 밖, 즉 본의와 유의가 꼭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조건으로서 추상 사상이나 감정의 영상화가 조화롭게 결구되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이 된다. 조금만 사려 깊게 읽어 본 독자라면 이쯤에서 상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을 파악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 설정은 상징주의에 대한 조명에서 보면 극히 측면적이고도 원칙적인 것의 일부에 불과하게 된다. 우선 기초적 이해를 돕기 위해 은유와 상징을 시의 실제를 통해 비교해 보기로 하자. ㅡ 계속 ...   2. 상징과 비유의 차이 은유의 속성과 상징은 분명히 그 본질을 달리하면서도 또 동질적 속성을 많이 지니고 있는 점에서 본다면 유사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가끔 이 둘을 구별하기 힘들다고 실토하기도 한다. 또 앞서 은유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어떤 한 가지 사상∙심상 또는 상징이 이와 다른 심상∙상징 등을 함축 내포함으로써 그 의미의 명료, 복합 확장을 꾀하는 응축된 언어로 은유를 해석한 것에서 메타퍼는 마치 상징과 같다는 뜻을 지니게 된다. 또 메타퍼나 심벌이 다 같이 본의나 유의를 성립의 기본조건으로 하고 있고, 여기서 유사성, 비유사성을 동원하여 기본요소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은유와 상징을 역시 그 한계나 개념 설정을 모호하게 한다.  그러나 시를 제시, 실제를 빌어 조명했을 때 훨씬 쉽게 이해 될 것으로 본다. 그의 머리는 최상의 순금이며 그의 머리는 텁수룩하고 까마귀처럼 검구나. 이 시는 밀턴의 「실락원」에서 노래된 구약 중 「아가(雅歌)」로서 비유와 상징을 비교하기 위해 즐겨 동원되는 시다. 이 시에서 ‘머리는 순금’이라 했을 때는 은유를 성립시키고 있고, 그런가 하면 다음 행인 ‘머리는 까마귀처럼’에서는 직유를 사용하고 있다. 1행은 왕관을 쓴 머리이고, 2행은 왕관을 쓰지 않은 더부룩한 머리의 형상 그대로를 진술하고 있다, 2행은 비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1행은 머리를 순금으로 표현하여 왕관을 쓴 왕의 머리를 암시하고 있다. 이 점에서 상징적 요소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상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독자는 당황하게 된다. 자세히 보면 왕관은 순금으로 되어있고, 또 이를 머리에 쓰고 있기 때문에 왕의 머리를 유사 사물인 순금으로 비유한 그 이상의 뜻은 없게 된다. 적어도 상징이 성립 되려면 순금이 왕관 이상의 그 무엇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 순금은 이런 징표가 되어주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은 순금의 머리가 다만, 왕관을 진술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왕관과 본질적으로 관련이 있는 유사 사물인 순금은 본의와 유의를 결합 시키고 있는 것 외엔 다른 뜻이 있지 않기 때문에 상징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이 시는 은유와 직유를 동원한 비유가 된다. 그러나 다음 시에 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ㅡ계속
7    현대시 = 이미지 댓글:  조회:2041  추천:0  2017-11-18
        현대시와 이미지 /박진환 1. 이미지의 개념 설정 현대시를 한마디로 집약하라고 한다면 서슴없이 이미지라 할 것이다. 그만큼 현대시는 이미지를 표현 본질로 하고 있고 또 이미지의 결 구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이미지스트였던 파운드는 수많은 시를 쓴 것보다 일생 동안 단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좋다고 할 정도로 이미지를 중시했다. 이미지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로 제세 되고 있다. 흔한 말로 이미지를 심상이라고 한다. 이는 어떤 인상이 마음에 새겨져 있다는 뜻인데, 흔히 사물로 그린 그림이라고도 하고 말로 만들어진 그림 혹은 언어의 회화라고도 한다.  이런 단편적인 정의를 제시 했다고 해서 이미지의 개념이 설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풀이했을 때 이미지에 대한 이해를 도울 것으로 본다. 이미지는 일단 광의의 개념과 협의의 개념으로 육체적 지각작용에서 이룩된 감각적 현상이 마음속에 재생된 것으로서 이를테면 장미 한 송이를 보았을 때 마음속에 그 장미꽃이 사상(寫像)된다. 그것은 인간이 경험하는 주관적 감각이 그 장미꽃을 표면적 복사 내지 모사(模寫), 인화시키기 때문이다. 시란 바로 이러한 이미지를 언어로 형상화한 것인데, 이때 감각적 이미지와 동등한 지각적 이미지가 상호 연관되어 연결 통합되게 마련이다. 이를 이미지와 총체적 결합인 이미저리라고 한다. 이때 필연적으로 언어는 이미지를 제작해 내는 이미지 제조기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러한 광의의 개념은 다시 협의적 세분화에 의해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데, 이때 세 측면을 제시할 수 있다. 하나는 훈련 심상이라고 하는 정신적 이미저리이고, 두 번째는 비유적 이미저리, 세 번째는 상징적 이미저리이다. 이를 구체화 했을 때 이미지에 대한 개념 및 정의는 설정 될 것이다. ㅡ 계속 ... 첫째, 정신적 이미저리부터 설정해 보자. 정신적 이미저리는 독자가 시를 읽었을 때 일으키는 공감각적 효용을 중심으로 성립되는 이미지의 해석이다. 독자가 시를 읽었을 때 그 시 속에서 내용에 따른 정서의 전이나 체험의 복합성에 딸린 메인 이미지는 무엇이며, 이 메인 이미지를 뒷밭침하고 있는 이미지들은 무엇이며, 이것들이 어떻게 결합되어 이미저리를 형성하는가를 계산해 볼 수 있는 것이 시각적 이미지다. 두 번째의 비유적 이미저리는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드러내고자 할 때 이를 보다 더 잘 나타내기 위해서 그와 유사한 사물의 본질, 양태, 속성들을 연합, 결합, 통합함으로써 비유를 비어 본래의 것을 이미저리로 창조해 내는 것을 말한다. 셋째로 상징적 이미저리는 첫 번째 이미저리처럼 감각적 체험을 통해 정신 안에 인화된 상을 시 속에 문자로 재생, 나열 하거나 두 번째의 경우처럼 어떤 주제를 사물을 빌어 비유하거나 아니면 이 두 경우를 복합적으로 사용, 심리적 연상의 힘을 빌어 여러 2차적 상징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시인은 정신적, 감각적 이미지를 문자화하는 능력 뿐 아니라 자신의 관심, 취향, 기질, 여러 가지 기준, 환상 등을 이미저리로 나타나게 해 주며 동시에 시 속의 이미지들을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해 준다.  따라서 이미지의 패턴들이 시의 어조를 만들기 위하여도 발생되고 또 문맥의 구조나 상징의 방법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저리는 서로 독립된 별개의 것이 아니고 엇갈려 있으면서도 연관되고, 연관되면서도 분화되는 변증법 적인 과정을 거쳐 총체적으로 결합된다. 이는 시의 전체적 이미저리를 성립시킨다고 보아야 온당하다. 이상의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지 이미지에 대한에 대한 이런 구체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에 대한 선명한 이해를 획득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지에 대해 더 구체적 설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쉽게 풀이하면 이미지란 사물로 그려지는 대상 사물이어야 한다. 그것이 나무이건, 강이건, 사람이건 간에 1차적 경험함으로써 이 경험을 고리로 엮어내는 기능인 상상력을 동원, 언어로 재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미지는 체험의 산물이고, 체험을 성립시키는 대상 존재나 대상 사물에 의해 떠 올리는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관념으로 드러내는 것을 체험으로 드러낸다는 뜻이다. 체험이 주로 감각에 의존되고 보면 이 뜻은 관념을 사물로 드러낸다는 뜻이 된다. 일종의 관념의 물화이고, 관념의 대상화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이미지는 관념을 극복하기 위한 즉 19세기적 미학을 새로운 실념의 미학으로 대체 하고자 하는 시대적 요청이 있다고 할 수 있다. ㅡ 계속 ...   이상의 선언을 종합했을 때 몇 가지 핵심적 주장에 접근할 수가 있다. 첫째, 언어의 축약 적이고도 함축적인 경영. 둘째, 과학적 논거나 칠학적 사유 그리고 관념어의 배제, 감각적 이미지의 동원을 통한 체험적 진술이다. 이 지적에서 언어의 축약 적이고 함축적 경영은 간결한 표현을 의미하기 보다는 의미의 함축성, 즉, 암시나 상징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의미로 전달하는 것은 대신 사물로 제시, 이미지를 성립시키게 하는 도 다른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과학적 논거나 철학적 사유 그리고 관념어의 배제는 바꾸어 보면 추상이나 관념, 사유나 사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체험의 중시는 견고하고 투명한 이미지의 시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 해 볼 수 있다. 이쯤에서 이해력이 빠른 독자는 이미지가 사물로 그린 언어의 회화라는 점에 쉽게 동의 할 것으로 본다. 이를 시로 실제화 해 보자. (실제) - 배경 설정 이미지를 중시하는 모더니즘 시를 흔히 의도적 제작이니, 기획된 제작이니, 심하면 현대적 기획이라고까지 한다. 이 말은 의도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이를 결합시켜 한 편의 시를 성립시킨다는 뜻과도 통한다. 이런 사전 전제는 시의 실제, 즉, 이미지를 시의 표현 본질로 하고자 했을 때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것은 흔히 시를 쓰고자 하는 분들이 시상이나 관념의 표출을 중시하고자 하거나 정서적 환기를 시로 표출하고자 하는 기존의 미학적 발상에서 시를 출발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때 시를 쓰고자 하는 분은 스스로가 품은 생각이나 느낌에 만족 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를 의도적 제작으로 사물화 하고자 하거나 이미지화 하고자 했을 때는 경우가 사뭇 달라진다.  그것은 생각이나 느낌을 형태. 빛깔. 향기. 맛. 소리 등으로 나타내야 하는 곧 관념이나 의식 그리고 의미를 모습을 갖춘 사물로 형상화 하고자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움을 겪고 그 때문에 몹시 난감 해 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생각을 형태로 바꿔야 한다는 초보단계에서 당혹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더구나 이런 기법에 길들여지지 못한 습작기에는 아예 재주가 없는 것으로 낙담하기도 한다. 이를 시로 실제화 해 보자. ㅡ 계속 ...   우선, 지난여름 바다에 다녀온 기억이 되살아나 한 편의 시로 쓰고 싶어졌다고 치자. 이때 떠오르는 바다의 이미지는 파도, 갈매기, 통통배, 짠 소금기, 모래사잔 등 실로 시각적이고도 청각적이며 미각적인 이미지들이 금방 동원 될 것이다. 그래서 이런 감각적 체험을 동원, 이미지화하고 싶은 욕심은 앞서나 뜻대로 이미지가 만들어지지 않아 고심 끝에 이렇게 썼다고 치자. 『파도는 성낸 고래같이 흰 이빨을 드러낸 채  달려들고 놀란 갈매기는  끼르륵 끼르륵 겁에 질린 울음을 토해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통통배는 포구로 돌아왔다 떠나고 백사장은  고래 밥이 된 채 굽은 등을 오므렸다 폈다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잘된 시는 아니지만 형상화 한 노력은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1연에서 파도를 성낸 고래 등과 성난 고래 이빨로 사물화하고 있고, 2연에서는 무심코 운 갈매기 울음을 마치 밀고 들어오는 고래의 위협에 놀라 토해내는 울음으로 1연에 연계, 구체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3 연에서는 통통배 한척을 동원, 바다의 현장성을 가시화하고, 종연에서는 굽은 해안선을 마치 등을 구부린 허리로 의인화, 고래가 잡아먹는 것으로 변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접에서 이 시는 아마추어 수준에서 노리는 이미지화에 다소 접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1연의 파도의 이미지를 고래에 접근시킨 점은 이미 다른 시인에 의해 시도 되었고,  2연은 청각적 이미지라기보다는 사실을 다소 다른 해석으로 치환해 내는데 그친 이미지의 미숙함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3연에서는 현장성을 구체화하는 가시력을 돕고는 있으나 파도의 이미지에 연계되는 구상성에서 이탈하고 있고, 종연에서는 다소 신선한 이미지로 해석할 수 있으나 이 또한 다른 시인에 의해 바다의 이미지로 사용한 적이 있어 설득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는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 즉 새로운 체험이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체험에만 의존 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ㅡ 계속 ... 2. 시각적 이미지 시에 있어서 관념시는 의미나 정서의 전달을 중시하는데 반해 이미지는 일종의 보여주는 시, 즉 관념이나 정서를 사물로 바꿔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시각적 이미지는 이미지를 성립 시키고 제시 하는데 있어 그 대표적인 것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시를 마음으로 그린 그림. 사물로 그린 그림 혹은 언어의 회화라고 하는 것도 다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하는데서 붙여진 해석들이다. 의미의 전달을 통한 감동에 대해 이 감동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그림으로 그려 달라는 주문이 이미지 시학이다.  회화가 선과 색의 조화라면 이때 시는 언어가 매체이고, 그 때문에 언어로 구상하고 채색하며 조화를 창출하는 언어의 회화가 된다. 문제는 언어로 그린 그림을 성립시키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언어 이전의 매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로 그린 그림이란 이 매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역할 이상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매체가 무엇인가, 그것이 곧 이미지다. 우리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보았다고 하자, 1차적으로 일으키는 것이 정서의 환기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 아름답다는 생각과 느낌은 서서히 소멸해 버리고 아름답다는 느낌 대신 아름다운 꽃의 느낌만 떠오르게 된다. 이는 아름다운 꽃의 형상이 시각적 체험을 통해 우리의 뇌리나 의식 속에 지워지지 않고 형상으로 인화 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시각적 체험이라 하는데, 이때 지워지지 않는 꽃의 모습이 곧 이미지다.  그래서 잊혀 지지 않는 꽃에 대한 감동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지만, 이 지워지지 않는 이미지를 재생함으로써 꽃의 모습은 물론 그때의 감동까지도 환기시켜 볼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이미지는 단순한 기억의 재현이 아니라 그때의 감동까지를 재생시켜 준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억의 재현과는 다르게 된다. 현대에 있어서 시인이 자기의 주요한 목적 그리고 시의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 새로이 기도하고 있는 것을 새롭게 솟아나온 이미지라고 생각했던 콜리지의 견해도 바로 시의 회화나 사물로 그린 그림을 강조했던 것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ㅡ 계속 ...   이와 같이 현대시는 전달이 아닌 구체적 드러냄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무엇인가를 들어내기 위해서는 체험을 통한 새겨진 상으로 드러내야 하는데, 그 상을 보존 유지 하는 것이 이미지다.  더구나 우리들의 지각활동 중 가장 많은 부분이 시각에 의존되고 있고 보면 시각적 이미지는 그 무엇인가를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기능을 맡고 있는 것이 된다. 그 때문에 시각적 이미지는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유리하고도 대표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현대시가 사물만이 아니라 의식이나 감정, 나아가서는 심리적 작용 까지도 모습으로 드러내기를 희망하고 있고 보면 시각적 이미지는 대표적 이미지의 자리에 놓이게 된다. 이쯤에서 시각적 이미지를 시의 실제에 적용해 보자. [실제] - 배경설정 농사철 무렵 시골에 볼일이 있어 하행 열차를 탔다고 치자. 차 창 밖으로 들녘의 하늘이 가득히 펼쳐질 것이다.  소를 몰아 쓰레질을 하는 광경, 일렬로 허리 굽혀 모를 심는 모습,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뒤뚱 거리며 논둑을 바삐 가고 있는 아낙의 모습이 들어올 것이고,  그 배경으로 펼쳐진 도열한 포플러가 마을로 접어들수록 난쟁이 키를 하고 있는 원경도,  삐삐 꽃이 하얗게 핀 둑에 방목돼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황소와 염소의 모습이 눈에 뛸 것이다. 달리는 기차에서 순간적으로 포착된 이러한 풍경은 산허리를 돌면서 뒤에 남겨지게 되고, 한가롭고 느긋한 평온 감 같은 느낌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눈으로 체험했던 정경들만 선하게 떠오를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남아있게 되고, 이를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이때 초보자들은 들녘에서 느낀 감동이나, 눈에 비친 정경을 시의 대상으로 설정, 형상화하고자 할 것이 뻔하다. 달리 말하면 보고 느낀 대로 쓰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할 것이란 뜻이다. ㅡ계속 ... 차창 넘어  굽은 신작로를 돌아 포플러는 마을로 들어서고 하얗게 삐삐 꽃이 핀  둑길에는 늙은 황소 한 마리와 턱수염이 긴 검은 염소 몇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엉덩이를 흔들며 광주리를 인 여인네가 논두렁을 뒤뚱이며 걸어가고 들녘엔  일제히 구부린 허리들이 모를 심고 있었다. 이렇게 썼다고 치자. 물론 아마추어 솜씨지만 한가한 농촌의 풍경이 비교적 장 담겨 있고 또 시각적으로 포착한 정경들이 서경적으로 잘 펼쳐져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시는 본 그대로 드러내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으나 새로운 해석을 곁들여 드러내주고 있는 점은 전혀 없다. 그래서 시각으로 체험한 들녘을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해석한 것 이상을 보여 주지는 못 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언어로 그려진 그림 이상은 아니란 뜻이다. 시가 언어로 그려진 그림이란 점에서 보면 물론 이 시도 그림으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시일 수 있다.  그러나 새롭게 솟아나온 이미지, 참신하고 풍부한 이미지가 동원되지 못 했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서경으로서의 그림을 대비했을 때 독자들은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이해를 극명히 할 것으로 본다. ㅡ계속 ... 둑길엔  하얗게 삐삐꽃이  피어 있었다. 꽃밭엔  주인 없는 자전거가 한 대  서 있었다. 왕방울 눈을 굴리며 암소 한 마리가 주인대신 자전거를 지키고 있었다. 제 또래의 검정 염소들이 삐삐꽃이 흰머리를 흔들 때마다 늙고 검은 턱 수염을 흔들었다. 들녘엔 한결같이 구부러진 허리들이 가을을 심고 졸시 「이앙기」의 전문이다. 이 시는 앞의 시와 배경이 같고 또 발상 기저도 동일하다. 다만, 같은 대상이나 배경을 두고 그 표현이 다를 뿐이다. 앞의 시에서는 시의 구도가 원경과 군경으로 포착 되면서 차창에 비친 들 전체를 대상으로 했다면 뒤의 시는 근경만을 포착,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앞의 시가 주로 시각에 비친 서경적 구성이었다면, 뒤의 시는 시각에 비친 들녘을 직관적 언어의정수를 가미, 새롭게 해석 하고자 한 상상력을 동원, 이미지로 결구시키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특히 뒤의 시에서는 둑길에 핀 삐삐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놓고 거기에 배치한 암소와 자전거라는 전혀 무관한 상관물을 병치시키고 있다.  이 무관한 관계를 유기적 관계로 전환시키기 위해암소의 특징인 왕 부리 눈을 강조하고 주인 없는 자전거를 지키게 하는 상관관계로 이동시킴으로써 치환을 성립 시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4연에서는 하얀 삐삐꽃과 검은 턱 수염의 염소를 배치시켜 의미 아닌 사물의 대비로 병치 시키고, 종연에서는 구부러진 허리들이 모를 심는 것이 아니라 일제히 가을을 심고 있다고 도착시킴으로써 당혹감을 갖게 하는 아이러니를 구사하고 있다. 이 점에서 앞의 시는 감각적 체험의 재구성을 통한 치환과 병치의 은유적 기법을 가미함으로 써 상상력에 호소하는 그림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루이스가 시적 이미지를 문맥 속에서 인간의 정서를 저류로 가진, 어느 정도 은유적인 언어를 사용한 다소의 감각적인 회화라고 한 이미지에 대한 피력을 음미해 볼 만하다. 다시 “감각적인 이미지”로 나아가 보자. ㅡ계속 ...   3. 감각적 이미지 감각적 이미지를 복합적 감각으로 드러내는 것이 감각적 이미지다. 감각적 이미지란 청각적 이미지는 물론 미각적 이미지, 후각적 이미지, 근육 감각적 이미지, 역학적 이미지 그리고 색채 적 이미지와 같은 여러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연계되고 하나로 섞여져 동시적 효과를 드러내는 이미지다. C.D. 루이스가 시를 공감적 체험의 재생이라고 말한 것이나 최창호가 시의 전체적인 내용과 정서는 각개의 이미지들의 유기적인 결합에 의해서 형성되는 전체적인 이미지를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것으로 피력한 것은 각기 표현은 다르지만 공감각적 이미지를 두고 하는 말일 듯싶다. 시를 단순한 회화라 하지 않고 감각적인 회화라 하는 것이나, 감각체험의 재현이라고 하는 것은 현대시가 이미지에 의존하면서도 특히 공감각적 이미지에 의해 창출, 형성된다는 뜻으로 해석하게 하는 지적들이다. 르네 웰렉과 워렌이 그들의 공저인 「문학의 이론」에서 지적인 이미지라고 하는 말은 반드시 시각적일 필요는 없고 과거 감각상의, 혹은 지각상의 체험을 지적으로 재생한 것이다. 즉 기억을 뜻한다고 피력한 것은 감각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싶다. 그것은 반드시 시각적일 필요는 없다는 부분에서 잘 말해 주고 있다. 또 브룩스와 워렌은 시에 있어서 어떤 감각 체험의 재현을 이미저리라고 부른다. 이미저리는 단순한 마음의 그림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감각의 어떤 것에 호소한다는 지적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지는 단순한 그림이 아닌 감각적 체험을 통한 감각적 호소에 연계시키고 있다. 이 말도 감각적인 이미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단순 이미지에 대응시킨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시각적 이미지 쪽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따지고 보면 시각적 이미지도 감각적 이미지의 범주에 편입시킬 수 있다. 어떻든 감각적 이미지의 개념은 설정됐다고 보고 감각적 이미지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내려 보기로 한다. ㅡ계속 ...   감각적 이미지는 우리 신체 구조상 외부의 사물에 대한 체험을 통해 일으키는 직감적 반응. 즉 시각, 청각, 촉각, 후각감각, 미각, 근육 감각, 기관과 같은 감각 기관을 통하여 지각될 수 있는 사물이거나 사물을 통해 상상적으로 끌어들여 드러낼 수 있는 사물의 상을 말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시각적 이미지는 사물의 형태, 빛깔, 대소, 동태와 정태 등을, 언어를 빌어 회화화한 것이다. 청각적 이미지는 사물의 냄새를. 촉각적 이미지는 사물이 피부에 와 닿는 때의 감각적 느낌을.  기관 감각 이미지는 우리의 운동, 생식, 호흡, 소화, 영양기관 등에서 나타나는 호흡, 맥박, 고동, 소화 등의 감각을. 그리고 근육감각 이미지는 근육의 수축이나 긴장 등에 따르는 변화 등이 내적 자극에 생기는 감각을 언어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감각적 이미지는 모든 감각 기능으로 체험한 사물의 상을 언어를 빌어 나타내는 것으로서 이 때문에 이미지는 언어로 그린 그림이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 감각적 이미지를 시로 구체화해 보자. [실재] - 배경설정 봄낭 울타리에 노랗게 핀 개나리가 도열해 있고, 밭이랑에서는 비비 베베 종달새가 울고 있었다고 치자. 나무마다 파릇파릇 싹이 돋아 눈앞에 보이던 까치집이 멀리 보이고 이름 모를 새들이 한 나절을 비비비 울고 있었다고 치자. 그리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실개천이 녹아 흐르면서 또르륵 또르륵 간헐적인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고 치자. 이러한 배경은 봄날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고 또 우리는 이런 풍경 앞에서 본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더구나 한나절이 기울면서 이런 분위기는 한가로움을 더해주고 이 한가로움을 벗 하면서 봄의 흥취에 자극된 우리의 정서들은 다투어 반응하게 마련이다. 이때 문득 시흥이나 시의 착상이 떠올랐다고 치자. 그래서 다음과 같은 한 편의 시를 썼다고 하자. ㅡ계속 ...   노란 개나리꽃으로 울타리를 친 봄이 동네를 다시 포위하고 있었다. 종다리는 하늘높이 매달려 비비 꼬르르 아지랑이를 비비 꼬아 올리고 있었다 갓 나온 나무 잎새들이 까치집 입구를 막아 시야에서 지워 버렸다 비비새 몇 마리가 한나절을 울음으로 굴리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실개천이 도란도란 속삭이며 흐르고 있었다. 초보자의 시 치고는 제법 맑은 시각을 동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울타리 가에 개나리가 피어있는 것을 봄이 울타리를 치고 마을을 포위한 것으로 변용한 것이나, 종달새의 울음소리를 빌어 비비 아지랑이를 꼬아 올린다고 본 시각적 해석.  그리고 새 잎이 돋아나 까치집을 가리고 있는 것을 까치집 입구를 막았다고 본 시각이나,  비비새 울음을 빌어 한나절을 굴리고 있다고 청각을 시각으로 이동시킨 솜씨가 제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끝 연의 시냇물 소리를 도란도란 속삭이는 것으로 청각적 언어로 포착한 것도 예외는 아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화자는 봄의 시각적 이미지와 정경을 주로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로 동원, 구체화 하고 있다. 청각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변용하는 솜씨가 돋보이는 시다. 그래서 시각과 청각의 동원은 감각적 이미지를 빌어 시를 썼다는 점에서 감각적 이미지의 시로 해석할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시각과 청각, 근육감각, 기관 감각을 동원한 공감각적 이미지의 시를 비교시켰을 때 독자들은 감각적 이미지의 실제에 접근 할 것으로 본다. ㅡ계속 ...   봄을 타종하던 노란 종소리가 개나리 울타리를 흔들고 있다 비비 꼬아 올린 아지랑이 끝에 종다리는 목을 매달고 있다 까치집도 날개가 돋아났는지 한사코 시계 밖으로 물러섰다 노곤한 한나절이 비비새 울음을 베고 누워 곤히 잠들고 겨우내 체했던 낮은 개울이 연거푸 토악질을 해댔다 졸시 「봄」의 전문이다. 이 시는 앞의 시가 시각과 청각적 이미지에 의존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시각, 청각, 근육, 감각, 기관감각과 같은 보다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를 동원하고 있다. 첫 연에서 봄을 타종한 노란 종소리는 기실 개나리꽃의 형상이 마치 종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고 또 봄의 첫 소식을 알리는 것이 개나리꽃이기 때문에 꽃의 형상을 빌어 시각적 이미지를 청각적 이미지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 된다. 2연에서는 종다리가 높이 떠 우짖는 것을 마치 아지랑이가 꼬아 올린 새끼줄이나 노끈에 목을 매달고 있는 것으로 환기시키고,  3연에서는 새파란 나뭇잎이 돋아나 까치집을 가려버린 것을 마치 까치집에 날개가 돋아 멀리 날아간 것으로 근육 감각 화 하고, 4연에서는 봄볕이 노곤히 풀린 한낮의 봄을 비비새 울음을 베고 누운 것으로 엮시 근육 감각으로 병치 시키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종연에서는 꽁꽁 얼어붙었던 개울이 봄이 되자 풀리면서 도랑도랑 흐르고 있는 것을 겨우내 체했다 토해내는 토악질로 기관 감각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뒤의 시는 여러 감각적 이미지를 동원, 공감각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그 때문에 앞의 시 보다 구상화된 것은 물론 앞의 시에서 느낀 단조로움을 극복해 줄 수 있는 결 구력까지 읽을 수 있게 한다.  곧 감각 상호간의 호소력을 획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감각적 이미지가 무엇이고 어떻게 시에 실제화 하는가를 익혔을 것으로 본다.  다음은 절대 심상으로 넘어가 보자 ㅡ계속 ... 4. 절대 심상 시각적 이미지나 감각적 이미지가 객관적 삼ㄹ애서 체험함 감각 체험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새로운 정서를 환기사키고 동시에 주관적 해석까지도 객관화 시킴으로써 시를 회화하는데 이바지하고 있음을 보나왔다. 동시에 내면적 의식이나 심리까지도 사물화 함으로써 구체적 이미지로 제시하는 그림과도 만나보았다. 이와는 반대로 그것이 시작이든 공감적이든 관념이나 의식의 형상화라는 이미지를 깡그리 거부하고 이미지 자체를 무의미한 기호로 제시하거나 이것을 서로 대립적으로 병치시켜 휴희화 하며 그 분위기를 읽게 하는 사물시의 경향도 있다. 김춘수의 지적에 따르면 사물을 감각적으로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원시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관념(의미)이전의 관념이 장차 거기서 태어날 관념의 제로 지대이기도 하다. 이 지대에서 이야기되는 사건들은 질서가 엇ㅂ는 듯하지만, 그것은 관념의 쩍에서 바라볼 때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고 「존재 감각과 의미의 시」에서 말하고 있다. 이 말은 관념, 즉 의미가 배제된 순수한 사물의 이미지인 관념의 제로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원래 관념이란 의미론적 해석이다. 그리고 이 관념을 드러내는 언어는 그래서 의미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언어에서 의미를 배제해버린 사물 자체만 남게 되는 일종의 환원주의가 성립 된다. 우리가 한 사물을 해석 하고자 했을 때 저 나무는 어느 과에 속하고 어떤 용도로 쓰이며 어떤 꽃과 열매를 맺고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는 가 등의 의미로 해석 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의미에 의해 해석 된 고정화된 관념을 적용 시킨다. 그러나 한 그루 나무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해방시켰을 때 비로소 자유로운 나무의 본래의 것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고 이때 관념의 제로지대에 서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관념 이전의 사물 세계 혹은 사물 자체로 환원 시켰을 때 비로소 순수에 이르게 되고, 이 순수의 이미지를 동원했을 때 절대 심상에 이르게 된다. 다시 김춘수의 이론을 빌어보자. 집이면 집, 나무면 나무를 대상으로 좌우의 배경을 취사선택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상의 어느 부분을 버리고 다른 어느 부분은 과장한다. 대상과 배경과의 위치를 실지와는 다르게 배치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실지의 풍경과는 다르게 배치한다는 뜻이다. 논리와 자유 연상이 더욱 날카롭게 개입하게 되면 대상의 행태는 부서져 마침내 대상마저 소멸된다.  무의미의 시가 이렇게 탄생한다고 김춘수는 의미에서 무의미까지에서 피력하고 있다. 그래서 무의미시는 절대 심상을 동원한 일종의 언어유희가 되고, 그 때문에 언어의 의미성이나 감각성을 모두 배제한 언어의 기호화나 사물화와 같은 전위적 실험 성까지 수반하게 된다. 이상의 설명을 통해 절재 심상이 무엇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은 설정됐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이를 시로 실제화 해 보자. ㅡ계속 ...   [실 제] - 배경설정 한 여름, 한 점 바람도 까딱 않는다. 축축이 젖는 등골 사이로 연신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대체로 짜증을 내게 마련이다. ‘어휴 덥다. 이 놈의 바람들은 다 어디로 갔담.’ 하면서 부채질을 하거나 옷섶을 흔들어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바람이 마주한 산에 숨어 있는지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는 기미가 보인다.  그런가 하면 뻐꾸기도 지쳐 늘어졌는지 울음소리의 꼬리가 사뭇 더 길어진다. ‘뻐꾹’이 아니라 ‘삐어어꾹’이다. 이럴 때 우리는 이놈의 바람이 어디로 숨어 버렸나 한다든지.  오다가 뒈져 버렸나 하면서 공연한 짜증을 토해내게 마련이다.  하는 수 없이 멱을 감는다든지 한 바탕 세수로 더위를 몰아낸 뒤 정신을 차려본다. 이때 산들 바람이 스쳐 지나면서 물기를 식혀주고 멀리서 뻐어꾹 하고 뻐꾸기 울음이 따라온다. 제법 여름의 풋내 나는 흥취가 있고, 늘어진 한가로움이 있고, 닦아낼 수 없는 고적감이 있다. 이럴 때 파한으로 잡은 것이 펜이고, 이 펜을 움직여 여름 한때를 소묘하는 한 편의 시를 썼다고 치자. 바람이 길을 잃었나 하긴 꼬불꼬불한 시골 길을 제대로 찾아올 리 없지. 아냐 저 칼날 세운 억새풀이 막고 선 언덕길을 넘다 목이 자려 나갔을 거야. 살아남은 놈들은  숲으로 삼십육계 도망을 쳐버린 게야. 모르는 소리 알몸으로 지나가기가 부끄러워 어둠을 기다릴 거야 너무 대낮은 밝아 뻐꾸기가 뻐어꾹 바람의 꼬리를 물고 놓아주지 않을 거야. ㅡ계속 ...   이렇게 써 놓고 보면 불어오지 않는 바람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다.  1연에서 시골 고부란 길을 찾지 못해 길을 잃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고, 2연에서는 무성한 잎으로 도열해 선 칼날 같은 억새풀 숲을 빠져나오다 목이 잘려버렸기 때문에 올 수 없는 것으로, 3연에서는 살아남은 바람마저 숲 속으로 도망쳐 버렸기 때문에 불어오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고, 4연에서는 걸친 것 없는 알몸을 드러내기 부끄러워 몸을 숨긴 것을 대 낮이 너무 밝기 때문으로 해석 하는가 하면, 종연에서는 바람의 꼬리를 뻐꾸기가 물고 늘어지면서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바람이 올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하여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이유를 여러 경로로 설정하고 있다. 아마추어 솜씨치고는 제법 근사하고 퍽 풍풍한 상상력을 동원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기실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것은 자연 현상으로서 여름에는 바람의 기류가 형성되지 않고 또 형성된다 해도 빈약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평범한 사실을 여러 이유나 원인을 제시한 상상력으로 동원, 제법 원인이나 이유의 의미를 성립 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때 성립된 이유나 원인이 시실을 근거로 한 실증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전부의미가 비 사실 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유희적이다. 그것은 바람이 관념이나 시실, 논리로 해석하고자 한 의미로부터 일탈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미로부터 도피이거나 의미의 배제란 뜻이다. 부득이 의미론적 해석을 버렸을 때 언어는 회화한 사물 유희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바람의 의미나 바람의 해석은 관념이나 논리에서 해방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바람 자체를 획득하는 것이다. ㅡ계속 ... 여기에 다른 한 편의 시를 동원 했을 때 이 점 훨씬 극명해 질 것으로 본다. 억새풀에 목이 잘린 채 나자빠져 있었다. 풍선처럼 부풀었던 복부가 터진 채 엎어져 있었다. 요행히 목숨을 불어넣은 무리들은 산발로 비틀 거리며 숲을 헤매고 있었다. 포복으로 들녘을 빠져 나가기엔 대낮은 너무 환했다. 패주 뒤의 정적 소람거리는 나무들이 기습을 예비하는 바람의 음모를 수화 신호로 보내오고 있었다. 말갈기를 세워 질주하던 기마 전술의 게릴라들은 지금은 은신 중이다. 일진의 내습을 기다리는 동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뻐꾸기만 울고 있었다. 이 시는 졸작 「바람」이란 시의 전문이다. 앞의 시와 발상∙분위기∙배경이 흡사하고 소재 자체도 거의 동일하다. 다만, 뒤의 시가 바람을 게릴라로 보아 지금은 은신 중이기 때문에 몰려오지 않는 것으로 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앞의 시와 뒤의 시는 사뭇 바람에 대한 해석과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원인이나 이유에 대한 진술을 각기 달리하고 있다. ㅡ계속 ...   앞의 시 1연이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이유를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찾아오다 길을 잃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는 것에 비해 뒤의 시 1연에서는 숲을 헤켜 나오다 억새풀에 목이 잘렸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또 앞의 시2연에서는 역시 뒤의 시 1연의 이유를 거의 같은 발상으로 하고 있다. 뒤의 시 2연은 풍선처럼 부푼 바람이 복부가 터진 채 엎어져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앞의 시 3연은 요행히 목숨을 부지한 바람이 숲 속으로 줄행랑을 쳤기 때문으로 보고 있고, 뒤의 시 3연은 이를 다소 구체화, 살아 돌아간 바람을 머리를 풀고 비틀거리며 숲을 헤매는 상처 입은 바람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앞의 시 4연이 바람이 알몸을 하고 있어 하도 낮이 밝아 지나갈 수 없는 것으로 본 것에 비해 뒤의 시는 숨어서 지나가기에는 한낮이 너무 밝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끝으로 앞의 시 종연이 마치 뻐꾸기가 바람의 꼬리를 물고 필사적으로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불어오지 못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반해 뒤의 시 5연은 바람을 패잔병으로 보고, 이 패잔병이 다시 기습의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을 알려주는 나무 수화신호로 보고 있고, 이어 6연에서는 기습을 예비하는 게릴라로 보고 있다. 앞의 시에서 뻐꾸기가 바람의 꼬리를 물고 있는 것과는 달리, 뒤의 시 종연은 게릴라의 내습이라는 긴박한 상황에 아랑곳없이 그저 무심히 뻐꾸기가 울고 있는 것으로 각기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이러한 두 시의 해석상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두 시가 드러내고 있는 바람의 이미지가 예외 엇ㅂ이 상상력에 의탁되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달리 말하면 바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림으로써 바람의 해석을 넘어선, 순수 사물만이 유희 화 되고 있다는 점에 관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관념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비로소 사물 자체로 환원되고, 환원된 시물의 이미지를 동원했을 때 기존의 해석을 넘어서는 절대 심상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6    시문학공부는 끝이 없다... 댓글:  조회:2487  추천:0  2017-11-18
최룡관 편저       서언       현대시어록은 유명한 현대시 시인이나 학자들을 핵심으로 일생을 분투하면서 새겨올린 영원한 야광주이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시인들이나 평론가들의 자대이며, 지남침이다.   시의 뿌리를 알게 하기위하여 고대서양의 아리스토 텔레스, 플라톤, 롱기누스의 명언들과 고대동향의 류협의 명언들을 현대시어록에 삽입하였다. 현대시는 하늘에서 떨어진것도 땅에서 솟아난것도 아니다. 현대시는 문학발전의 필연적 결과로서 한 단계이며 력사이다.   현대시어록은 오늘에는 물론 먼 장래에도 시를 학습하는 교과서가 되리라 믿는다.   시에 대한 필자의 천박성으로 하여, 자료의 부족으로 하여, 풍부한 내용의 일부를 다루었으리라 생각되여 부끄럽기도 하지만 이 일부라도 한마디 한마디가 죄다 금싸락이거나 다이야몬드이리라.       시인에 대하여     [시인이란 아는자, 즉 초월하는자, 그리고 그가 아는것을 증명하는자이다]... [절대적인 창조가 없다면 시가 없는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몽상의 시학]선언 [시의 리해] 293-294페지   [시인은 비균일적인것들의 상호 충돌에 의해 운동하게 되는 말들에 그 주도권을 양도한다]...[무한히 리듬이란 마치 말피아노건반들을 손가락으로 탐문하듯 연주는것과 같이, 적합한 심지어는 일상적인 말을 사용하는데서 생겨난다] 주지하다시피 말라르메는 그의 시들중 다수를 언어충동에 따라 썼거나 혹은 언어충동이 지시하는대로 갈겨쓴 초고를 다시 개작하였던것이다. ([]안에 말은 말라르메 말)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179페지   시인은 공포나 사랑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들을 보여준다. 옥타비오 빠스 [시와 력사] 동상 113페지   관습이나 , 복종이나, 법률의 평평한 바닥에서 썩는것이 무엇이든 그는 결코 썩지 않게 한다. 복종이 그를 지배하지 않고 그가 복종을 지배한다. 월트 휘트먼 [풀잎]서문 동상 120페지   가장 위대한 시인은 하찮음을 좀처럼 알지 못한다. 전에는 조그맣다고 생각되던였던것이 그가 입김을 불어넣어주면 그것은 우주의 웅장함과 활력을 가지고 팽창한다. 그는 예언자요 개인이요 완전자다. 동상동명 121페지   가장 위대한 시인은 미래의것의 일관성을 과거의것과 현재의것으로 형성한다. 그는 죽은자들을 관에서 끌어내여 다시 세워놓는다. 그는 과거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를 표현할수 있도록 일어서서 걸어가라. 그는 교훈을 배운다. 미래가 현재가 되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가장 위대한 시인은 인격과 장면들과 정열에 눈부시게 빛을 던질뿐만 아니라 마침내 올라가 모든것을 끝마친다. 아무도 그것이 무엇을 위한것인지 그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말할수도 없는 철탑들을 보여준다. 제일 끝에서 잠시 빛을 발한다... 가장 위대한 시인은 도덕의 의의를 덧붙이거나 도의를 직용하지 않는다. 그는 령혼을 알고있다. 령혼은 그자체의 교훈이외에는 어떤 교훈도 인정하지 않는데에 있는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있다. 동명동상 124페지   작가, 학자, 음악가, 발명가, 미술가들의 특성중에서 새로운 자유형식으로부터 발전해 나오는 말 없는 도전보다 더 멋진것은 없다. 동명동상 125페지   시인들은 자유의 목소리이며 해설자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그들은 웅대한 생각을 가질만 하다. 도명동상 127페지   위대한 작가, 특히 위대한 시인을 내고있지 않는한 그들의 언어는 퇴화할것이며 그들의 문화도 퇴화하고, 그리고 보다 강대한 문화에 흡수당하는 일도 있을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있는것이다. 토마스 스턴즈 엘이어트 [시의 사회적기능] [시의 리해] 150페지     가장 위대한 시인들은 즉시는 빛을 발하지 않는 경향을 가지고있다. 수세기뒤의 시인들에게 직접 영향을 끼침으로써 그들은 계속해서 산언어에 영향을 끼치고있는것이다... 그자신이 처해있던 시기에 있어서 그 언어를 새롭게 만든 시인들을 잘 연구하여야 할것이다. 동상동명 151페지   곧 모든 시인은 그자신의 독자계층을 갖고있는 법이다... 시인은 독자의 수요를 최대한 제한하려고도 한다. (가령 몇몇 상징주의자들 같이) 얀 무카로브스키 [시인이란 무엇인가] [현대시리론] 39페지   시인은 매우 정당하게 추측의 매혹적인 미로에 자신의 사고를 방황하게 한다. 샤를르 보들레르 [빅토르 위고] [시의 리해] 221페지   있는것을 그대로 묘사하는 시인은 스스로를 타락하여 교사의 수준으로 내려간다. 동상동명 223페지   한편의 좋은 쏘네트를 완성하고 난후 작가는 10년의 휴식을 취할 권리가 있다. 폴 발레리 [시에 대한 담화록] [시의 리해] 245페지   시인에게는 특별한 자질, 일종의 고유한 개인적에너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무한한 가치의 순간에 그에게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순간에 불과할뿐, 이 상위의 (다시 말해서 인간, 인간의 다른 모든 에너지를 합해도 그것을 구성할수 없고 대체할수도 없을 정도의) 에너지는 짧고 우발적인 발현에 의해서만 존재하거나 작용할수도 있습니다.   그것(에너지)이 우리의 령혼의 눈에 조명시켜주는 보물들, 그것이 우리 내부에서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개념이나 형태들을 외부적시선에 대해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을 덧붙혀야 하겠습니다.   무한한 가치를 지니는 이 순간들, 자신이 만들어내는 관계들과 직관에 보편적품위를 부여해주는 이 순간들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거나 전달할수 없는 가치를 역시 풍부하게 지니고있습니다. 우리에게만 가치가 있는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이것이 문학의 법칙입니다. 최고의 상태들은 진짜 부재상태들로서 , 그런 상태에서만 존재하는 자연 그대로의 경의들이 그안에서 서로 해후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의들은 여전히 순수하지 못한것들입니다. 천박하거나 쓸데 없는것들, 무의미하거나 외부의 빛에 저항할 힘이 없는것들, 열광의 섬광속에서 번쩍이는것이 모두 금은 아닙니다.   결국, 어떤 순간들은 우리가 최상의 상태로 존재하는 심원함으로서가 아니라 형상 없는 질료와 뒤죽박죽이 된 파편들, 이상하고 조야한 단편적인 형상으로 우리앞에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쓰레기더미에서 귀금속 성분을 분리해내고 , 그것들을 함께 용해시켜 어떤 보석을 만들어내는데 신경을 써야 합니다. 폴 발레리 [시에 대한 담론] [시의 리해] 246-247페지       우리 시대의 어떤 위대한 서정시인도 6편에서 8편이상의 완성된 시작품을 남긴 사람은 없습니다... 이 여섯편의 시를 위해서 30년내지 50년을 고행과 고통, 싸움을 벌이는것입니다. 고트프리트 벤 [서정시의 제문제] [시의 리해] 334페지   시인은 미지의것에 도달한다. 비록 자기자신의 환영들을 끝내 리해하지 못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시인은 그것들을 직관하였다. 시인은 전대미문의 그리고 이름을 붙일수 없는 사물들을 통한 거대한 비약의 과정에서 파멸해도 좋다. 왜냐하면 다른 무시무시한 일군들이 나타나서 그자신이 좌초해 버린 저 지평선에서 다시 시작하기때문이다. -랭보 후고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87-88페지   전언되는바에 의하면 랭보는 ‘나의 우월성은 어떠한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라고 말한다. 랑만주의시의 느끼는 감정들은 그에게 역겨움을 준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96페지   현대시인의 탈 형상화의지는 추를 무연관의 세계로 내려보낸다. 동상108 페지   만질수 없는것을 포착할줄 모르는 사람은 시인이 아니라고 그(애드거 앨런포)는 단언하곤 했다. 자기 또한 기억의 주인이며 언어의 지배자인 사람만이, 그리고 언제나 훑어볼수 있는 자신의 감정들이 기록된 등록대장을 가진 사람만이 시인이라고 단언하곤 했다. 보들레를 [꿈꾸는 알바트로스] 98페지   하찮은것으로 치장할줄 아는 이 경의로운 특권을, 파리와 스페인의 녀인에게 주어진 이 특권을, 시인은 누구보다도 많이 갖고있다. 동상 99페지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겠지만, 참된 시인이란 기이하게 치장을 한 진실이며 겉보기에는 모순되게 보이는 존재이다... 석양의 불꽃놀이가 끝날무렵에는 아주 먼 동방의 나라로 달려가는 자이다. 동상 100페지   시인이 도덕목적을 추구했다면, 그는 자기의 시적력량을 감소시켰다고 나는 단언한다. 그의 작품이 형편 없을것이라고 내기를 걸어도 경솔한 짓이 아니다. 동상 102페지   비규범적인 언어로써 진술하기 위해 미지를 추구하는 시인은, 그러나 비웃음을 사거나 아니면 배척을 받아 고독속에 떨어지게 된다. 후고프리드리히 [현대시 구조] 196페지   모든 작가는 그 이름에 값하는자라면, 여태까지 씌여졌던 모든것을 대항해서 써야 한다.   -F.R. 퐁주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 구조] 220페지     시인이란, 뚜렷하게 심미지향적인 발화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얀 무카로브스키 [시인이란 무엇인가] [현대시리론] 21페지   만일 시인이 감동효과의 범위를 거부한다면 배타적인 시(상징주의 시와 같은) 시를 초래하게 된다. 시인의 영속성을 거부한다면 , 의도적으로 시사성이 강한 작품 (예컨대 정치적인 시)을 낳게 된다. 동상동명 29페지   우리가 개괄해온 시인에 대한 개념은 ,,, 모든 방면에서 압력을 가하면서 서로 대립되여가는 힘들의 변화가능한 교차점으로 다루고있는것이다. 따라서 문학적 주도권은 이들 수많은 대립들을 독자적인 배렬(이는 조화롭다는것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로 조직한다는 사실에 있다. 얀 무카로브스키 [시인이란 무엇인가] [현대시 시론] 40페지   시인은 의미상으로 분명하게 경계를 정하는 단어들을 피하고 이미지면에서 정서적으로 련상작용이 풍부한 표현을 택한다. 동상도명 55페지   시인은 불가시물의 설교자이다. w. 스티븐즈 [후기 작품집] [세계명언대사전] 752페지   시인의 과제는 참으로 막중하고 위대하다! 모든것을 파괴로부터 구해내며, 죽어야만 하는 인생들에게 영생을 부여한다. 루카누스 [시민전쟁] [세계명언대사전] 753페지   위대한 시인들의 작품은 이제까지 읽혀지지 아니하였다. 위대한 시인들만 그것들을 읽을수 있기 때문이다. H.D 도로우 [국가론] [세계명언 대사전] 753페지   시인들은 자신도 리해하지 못하는 위대하고 현명한것들을 지껄인다. 플라톤 [국가론] [세계명언대사전] 753페지   시인들은 모든 감각을 막대히, 오래, 신중하게 대폭교란시킴으로써 자신을 환상가로 만든다. A. 랭보 [P. 데메니에게 보낸 편지] [세계명언대사전] 754페지   아무도, 정신에 어떤 이상이 없으면 시인이 될수도 , 시를 즐길수도 없을것이다. T.B 머콜리 [수필집] [세계명언대사전] 754페지   그(시인)가 한번 붓을 대면 그가 하는 말은 움직인다. 자기가 데리고 가는 사람을 꽉 붙잡고 전에 가보지 못한 생생한 지역으로 데리고 간다. 거기서부터 휴식이 없다. 옛지점과 빛을 죽은 진공상태로 변화시키는 공간과 말로 표현할수 없는 광채가 보인다. 그와 동행하는 자는 별들의 탄생과 전진을 바라보고 하나의 의미를 배운다. 월트 휘트먼 [풀잎서언] [시의 리해] 131페지   시인의 의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 즉 개연성 또는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가능한 일을 이야기하는데 있다는 사실이다. 아리스토 텔레스 [시학] 62페지   시인은 모방하기 때문에 시인이요 동상 65페지   현대적감각에 맞는 단어를 만들어내는것은 예나 지금이나 시인의 권리입니다. 계절이 바뀌면 나뭇잎도 바뀌여 옛것은 떨어지고 새것이 돋아나듯 단어도 낡은것은 시들고 새로운것이 나타나 마치 새로 태여난 사람들처럼 생(生)을 구하게 마련입니다. 호라티우스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177페지   진짜 시인은 한편의 훌륭한 시를 창작해 내기위해서는 가난도 , 절망도, 세상의 랭담한 대우도 아부도 일체 상관하지 않고 말없이 참아가야 합니다. 이것으로 만족한다는 때는 없고 어디까지나 조금씩 더 좋은 시를 쓰려고 하는것입니다. 세실데이 루이스 현대인 교양전서 30권 261페지   시인이라는것은 원래가 천성적으로 신비스런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며 죽음은 더욱 큰 하나의 신비입니다. 동상동명 331페지       시에 대하여     모든 시는 잔치이며 순수한 시간의 응결이다. 옥타비오 빠스 [시와 력사] [시의 리해] 112페지   시는 또 하나의 이미지이며, 또는 분활할수 없는 이미지의 성좌이다. 동명동상 114페지   시는 모르는 곳으로 뛰여들며,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시가 만약 잔치라면 그것은 시기에 맞지 않는 때에,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곳에서 행해진 잔치 - 지하축제이다. 동명동상 115   아름다움의 결실은 우연히 되는것이 아니다. 생명처럼 필연적인것이다. 중력처럼 정확하고 똑 바르다. 시각에서 또 하나의 시각이 생기고 청각에서 또 하나의 청각이 생기며 목소리에서 사물과 인간의 조화를 영원히 알고싶어하는 또 하나의 목소리가 태여난다... 시의 즐거움이 멋진 운률과 직유와 소리를 지니고있는 시들에 있는것은 아니다. 월트 휘트먼 [풀잎서문] [시의 리해] 123페지   위대한 시는 아주 오래동안 공동의것이고, 모든 계급과 얼굴색을, 모든 부문과 종파를, 남자만큼이나 여자를, 여자만큼이나 남자를 위한것이다. 동상동명 131페지   모든 시작품속에는 혼돈의 미광이 가득해야 한다. -노발리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45페지     시적창조는 해득할수 없는 신비지요. 사람이 태여나는 신비와 마찬가지입니다. 말하자면 어디서 오는지 모를 소리를 듣습니다. 그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숙고하는건 쓸데 없는 일이지요. 내가 태여난것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듯이, 죽는것에 대하여서도 근심하지 않아요. 옥타비오빠스 [바가리아와의 대화] [시의 리해]108-109 페지   시는 어둠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인간의 심장을 만나야 하고, 여자의 눈, 거리의 나그네들, 황혼녘이나 별이 빛나는 한밤에 적어도 한수의 시의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이렇게 예기치 않는 사람들을 방문하는 일은 가본일이 있는 먼곳, 잃은 모든것, 배운 모든것 전부에 값한다. 파블로 네루다 [시에서] 동상111페지   시는 이 주요목적 -즉, 해방-에 있어서 다른 예술들과 같다. 에즈라 파운드 [시의 지혜] [시의 리해] 133페지   교훈시는 점차 도덕적인 훈계시, 그렇지 않으면 독자에게 어떠한것에 대해 시인의 견해에 설복시키기 위한 시로 국한되여 버렸다. 토마스 스턴즈 엘리어트 [시의 사회적기능] [시의 리해] 145페지   그것은 맑게 개인 하늘을 날고있는 새나 비행기의 모습을 따라가면서 바라보는것과 같은것이다. 만일 그것이 아주 가까이에 나타났을 때 보기 시작해서 그것이 점점 멀리 가는대로 계속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본다면, 우리들은 굉장히 멀리 갈 때까지 그것을 볼수가 있는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우리가 그 위치를 가르쳐 주려고 해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는것이다. 동명동상 152페지   시는 다만 한 언어로써만 표현할수 있고 다른 언어로는 번역할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언제나 상기시키는것이다. 동명동상 153페지   참다운 시는 개개 예술가의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자체이고 우주는 영원히 완성을 지향하는 하나의 예술이다 월리스 스티븐스 [가치로서의 상상력] [시의 리해] 156페지   시는 신앙을 그 내용으로 하지 않는다. 동상동명 163페지   시는 그러나 그러한 문맥속에서의 느낌과 태도에 특히 초점을 모으는것이지 있는 그대로의 행동이나 관념에 초점을 모으지 않는다. 그리고 이 구별은 매우 중요하다. 클리언스 부르크스 [말하는 한 방법으로서의 시] [시의 리해] 177페지     시는 다양화될 때에야만 통합된다. 가스통 바슐라르 [몽상의 시학] 선언 [시의 리해] 312페지   시란 실존의 모습뒤에 숨겨진 신비한 뜻을 자신의 본질된 음률을 되찾은 언어로써 표현한것이다. 시는 그래서 현세의 우리 머뭄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하나뿐인 령적업무의 근본을 이룬다. 스테판 말라르메 [서한] [시의 리해] 223페지   시는 자신의 형식속에서의 재생을 지향한다. 시는 우리의 령혼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재구성하라고 부추긴다. 폴 발레리 [시에 대한 담화론] [시의 리해] 243페지   시가 금전의 종말을 포고하고, 혼자서 하늘의 빵을 이 지상을 위하여 쪼개여 나누어주는 때가 오리라.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 제1선언] [시의 리해] 253페지   화가는 의미를 그리는것이 아니다. 작곡가는 음악에 의미를 붙혀주는것도 아니다... [의미]를 가지는 기호가 지배적인 힘을 누리는 령역-그것이 산문이다. 그러나 시는 차라리 회화나 조각이나 음악편이다. 장 폴 싸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시의 리해] 266페지   시라는것은 인간의 [신화]를 창조한다. 그런데 산문은 인간의 초상을 그린다. [시의 리해] 272페지 주해에서   시란 하나의 형태를 락서하는 령혼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시적이미지의 현상학] [시의 리해] 284페지   시는 끊임없이 그의 원천을 넘어서며 기쁨과 슬픔속에서 더 멀리 나아가 작품들을 빚어냄으로써 더 자유롭게 되는것이다... 시는 자유롭게 있는 법이다. 그의 운명을 우리는 결코 우리자신의 운명속에 가두어두지 못할것이다... 자기의 창조적인 령감이 자기의 욕망보다 더 멀리 자기를 이끌고 가리라. 피에르 장 주브 [대지와 시] [시의 리해] 293페지   시는 몽상가와 그의 세계를 동시에 구축한다. 가스통 바슐라르 [몽상의 시학] 서문 [시의 리해] 303페지   한편의 시는 시를 꾸며진 대상과 시를 쓰고있는 자아와의 맞섬이며, 말하자면 외면의 풍경과 내면의 련관성인것입니다.   시의 모호함이 독자를 혼란시킴만큼이나 매혹시키며, 갈피를 못잡긴 하지만 그 말의 마법과 신비스러움에 강제적으로 끌려든다. 그러므로 엘리엇이 한 평론에서 [시는 리해되지 않고도 전달될수 있다] 라고 말한것은 그와 같은 의미에서이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28페지   시의 본질이 리해시키는데 있다면 그 누구도 시를 쓸수 없으니라. 동상   현대시는 그것들을 익숙하지 않는곳으로 데리고 가서 낯설게 만들며 변형시켜버린다... 시창작의 세가지 방식- 느낌, 관찰, 변형-중에서 현대에는 마지막것이 지배적이며, 그것은 객관세계에서뿐 아니라 언어와의 련관에서도 그러하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 구조] 29페지   현대시는 종래의 의미를 인간성, 체험감상, 그리고 심지어 개인적자아마저도 도외시해 버린다 동상 30페지   사물적인 소재 정신적인 소재 할것 없이 시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혼합시키며, 변의의 인광을 발하도록 한다. 동상 43페지     시는 일상적 삶에 대한 방벽이며, 그 상상력은 모든 현상을 뒤섞어놓는 자유를 누린다. 시는 예감과 마술을 본질로 하는 시적인간들이 견디기 어려운 관습의 세계에 맞서는 노래하는 저항이다. 공허한 리상속에 토대를 둔 시는 불가사이한 신비성을 창조함으로써 현실로부터 리탈하게 되며, 그런만큼 언어마술에 의해 보상될수 있다. 동상 73-74   문제는 력사속에서 지닐수 있는 시적인것을 빼내는 일이다. 즉 일시적인것에서 영원한것을 끌어내는 일이다. 보들레를 [꿈꾸는 알바트로스] 49페지   모든 건강한 인간은 이틀동안 먹지 않고 지낼수 있지만 시 없이는 결코 지낼수 없다. 동상 97페지   시는 가장 큰 수확을 가져다주는 예술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시는 나중에야 리익금을 만지는 그런 종류의 투자다. 하지만 그 리익금은 두두룩하다. 동상 동쪽   서정시는 도약한다. 하지만 늘 탄력적인 움직임으로, 물결의 너울과 같은 움직임으로 도약한다. 동상 102페지   시는 사장(死葬)되거나 몰락하는 한이 있더라도 과학이나 도덕과 하나가 될수 없다. 시의 대상은 진리가 아니다. 시는 자기자신밖에 가지지 않는다. 보들레를 [꿈꾸는 알바트로스] 101페지   시의 순수성의 전제조건은 그러므로 탈 사물화이다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180페지     현대시의 근본특성의 하나는 그것이 자연적인 삶과 점점 더 분리된다는데 있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 구조] 147페지   시는 은자의 예술이다. -코트 프리트 벤 후고 프리드리히[현대시구조] 195페지   파편문체는 현대시의 특징이 되었다. 동상 259페지   참된 시란 그 세계가 독창적이고 생동할수록, 은밀한 류사관계가 이루어지고있는 대립이 더욱더 상반적으로 된다. -체코의 랑만주의자 마챠 [현대시리론] 5페지   시 전체는 하나의 큰 거짓말이여서, 처음부터 넉살좋게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시인은 가치가 없다. 로만 야콥슨 [현대시 리론] 8페지   어떻게 시성이 시를 표현하는가? 시성은 언어가 언어로 느껴지고 이름 불리여진 대상이나 분출되는 정서의 단순한 표현이 아닌 경우에 존재하게 되며, 또한 언어들과 그 구성법, 언어의 의미, 언어의 외적형식과 내적형식등이 무심하게 현실을 가리키는 대신에 그것들 나름의 무게와 가치를 획득할 경우에는 존재한다. 로만 야콥슨 [시란 무엇인가] [현대시 리론] 18페지   세계의 수많은 시에서 가장 뛰여난것은 대부분 자유률로 창조된것이다. 현대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련의 운동은 엄격한 률격 없이는 최악의것이였거나 최상의것이였다. 벤야민 흐루쇼브스키 [현대시의 자유률] [현대시 리론 ] 117페지   화려한 행위는 고도의 황홀경을 불어넣고, 모든 정복자는 시신을 창조한다. E.월터 [나의 보호자에게 보내는 송시] [세계명언 대사전] 743페지   시는 인류의 모국어이다. J.G.하만[투케이 아네스테티카] [세계명언사전] 746페지   시는 인간이 자기자신의 경의를 탐구하는 언어이다. C. 프라이 [타임]지에서 [세계명언대사전 ] 746페지   시는 그 주제가 진실이 아니라 진실과 같은 사물들의 시 G.채프맨 [부쉬당부와의 복수] [세계명언대사전] 746페지     시는 정서의 느슨한 변환이 아니라, 정서로부터의 도피이며,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이다. T.S. 엘리어트 [전통과 개인의 재능] [세계명언 대사전 ] 747페지   시는 인정받지 못한 세계의 립법자이다. M.W. 셀리 [시의 번호] 동상 [세계명언대사전] 747페지   시는 단순히 사물을 말하는 가장 아름답고 인상 깊고, 광범한 효력을 가진 양국이요, 여기 그 중요성이 있다. M. 아롤드 [비평론] [세계명언대사전] 747페지   소네트(14행시)란 무엇인가? 그것은 소곤거리는 먼 바다를 말해주는 진주조개요, 신비롭고 갈고 닦은 보석이며, 또한 잘 그린 예쁜 그림이다. R.W.길더 [소네트] [세계명언대사전] 747페지   참된 시는 리해하기전에 통할수 있다. T.S. 엘리어트[단테론] [세계명언사전] 750페지   시는 의미해서도 안되며, 있어야 한다. A. 머쿨리시 [달나라의 거리] [세계명언 대사전] 751페지   왜 이 모든것이 필요한가? 왜 기호가 대상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특별한 관심을 두는것이 필요한가? 왜냐하면 기호와 대상의 일치(A는 A1이라는)를 직접적으로 인식하는것말고도, 그러한 일체의 부적절성(A는 A1이 아니다)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기때문이다. 로만 야콥슨 [시란 무엇인가] [현대시리론] 18페지   시는 력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것을 말하는 경향이 더 강하고, 력사는 개별적인것을 말하기때문이다. 아리스토 텔레스 [시학] 62페지   그대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꼼꼼히 손질하면서 잘 깎은 손톱으로 열번씩 음미해보지 않은 시일랑 물리치시라. -호라티우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195페지   시는 그림과도 같습니다. 어떤것은 가까이서 볼 때 더 감동적이고 어떤것은 멀리서 볼 때 그렇습니다. 동상 199페지   훌륭한 시라는것은 어느것이나 모두 실제로 평범한 일상생활의 기슭에서 저쪽 미지의 세계의 기슭으로 걸쳐놓은 교량같은것입니다. 세실데이 루이스 현대인 교양전서 30권 354페지     상상력에 대하여     파스칼은 상상력은 세계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월리스 스티븐스 [가치로서의 상상력] [시의 리해] 156페지   상상력은 사물의 가능성에 대한 마음의 힘이다 동명 동상 158페지   형의상학자로서의 상상력은 우리를 어느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예술로서의 상상력은 또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동명동상 158페지   상상력은 위대한 인간의 능력의 하나이다. 랑만주의는 이것을 왜소한것이 되게 한다. 상상력은 마음의 자유이다. 랑만적인것은 자유의 활용에 실패한 경우를 지칭한다. 동명동상 159페지   상상력만이 최고의 천재이다. 그것은 대담하고 열렬하여 , 그 최고의 업적은 추상에 있다. 동명동상 160페지   상상과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토의는 삶의 목적을 위하기보다는 예술과 문학의 목적을 위한것이다... 삶에 중대한것은 실재 그대로 보여주는 진리인데 대하여, 예술과 문학에 있어서의 중요한것은 우리가 보는바의 진리이다. ... 예술과 문학에 있어서의 상상의 가치는 심미이다. 동명동상 165페지   시적가치는 ... 지식의 가치도 아니고, 믿음의 가치도 아니다. 그것은 상상의 가치이다... 시적가치는 직관적인 가치이며, 직관적가치는 정당화될수 없기 때문이다. 동명동상 166페지   상상력은 현실속에 비현실을 도입하는 기능이며 그 가치는 신의 리념을 인간의 리념에 투사하는 사고의 방책이 갖는 가치이다. 그것은 원본과 따로 있는 영상들을 만들어낸다...다양성은 상상력의 특성이다. 동명동상 167페지   상상력은 누를 도리가 없는 혁명가이다... 비정상속에서 정상을, 혼란속에서 혼란의 반대를 알아볼수 있게 하는 힘이 상상력이란 점이다. 동명동상 168페지   상상력은 론리의 기적이며, 그 미묘한 예감은 , 리성의 결론내의 계산이듯이, 분석을 넘어서는 계산이라고 할수 있다. 동명동상 169페지   문학의 입구 즉 상상의 입구를 정상적인 사랑, 정상적인 아름다움의 장면으로 볼수 있다는것자체가 대단한 상상력의 발휘이다. 동상동명 170페지   상상력에 의한 시는 물질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날카롭게 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상황과 행위의 정서적, 지적, 도덕적 함축에 대한 감각을 깊게 한다. 동명동상 181페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것이면 진실되지 않는것이란 없다고 나는 믿는다 마르셀 레이몽 [보들레르에서 초현실주의까지] [시의 리해] 203페지   나는 소박한 환각에 길들었다. 앙르 튀르 랭보 [언어의 연금술] [시의 리해] 226페지   만약 그가 (철학자) 시적상상력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연구하려 한다면, 지금까지의 그의 지식을 잊어버려야 하고, 그의 모든 철학적연구의 습관들을 버려야 한다. 가스통 바슐라르 [이적이미지의 현상학] [시의 리해] 279페지   시의 철학이 있다면 ... 이미지의 새로움에서 오는 법열 그자체가운데, 태여나고 다시 태여나야 하는것이다. 동명동상 동페지   이미지를 재현하는게 아니라 현출(現出)하는 창조적상상력은 오직 한번 언급되여있을뿐이다. 동명동상 296페지   상상력은 그의 생동하는 활동력에 있어서 우리를 과거와 현실에서 동시에 떼여낸다... 비현실의 기능쪽이 완전치 못하면, 창조적인 정신활동은 얽매이게 된다. 상상함이 없이 어찌 예견할수 있겠는가?... 순수한 승화의 이 정상에서 바라본다면, 재현하는 상상력은 더 이상 대단한것이 아님을 알수 있다. 요한파울리히터는 이렇게 쓰고있지 않았던가?- 재현하는 상상력은 현출하는 상상력의 산문인것이다. 동명동상 297페지   상상력과 기억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한다면 창조적상상력의 심리학을 세우지 못하리라고 우리는 자주 말했다. 가스통 바슐라르 [몽상의 시학]서문 [시의 리해] 307페지   상상되는 세계는 몽상의 깊은 일치를 야기시킨다. 동명동상 310페지   상상력의 산물을 객관적이고 론리적인 합당성의 척도로 잰다든지 혹은 단순한 공상과 애써 거리를 유지하여야 할 필요성은 없다. 상상력은 절대적인것이기 때문이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39페지   상상력은 공간의 질서를 전도시킨다, 례를 들면 다음과 같은것들이 있다. 마차들은 하늘위에서 달린다, 호수의 바닥에 살롱이 있고, 드높은 산정에서 태양이 출렁거린다. 철도레일이 호텔을 통해서 호텔위로 달린다.   그러나 상상력은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도 전도시킨다. 법무관이 그의 시계줄에 걸려있다.   상상력은 가장 련관이 먼것, 구체적인것과 상상적인것을 강제로 결합시킨다. 아침 우유의 중얼거림, 지난 세기밤의 중얼거림 때문에 죽도록 슬픔에 잠기다.   상상력은 실제 사실에 부합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더욱 낯설계 만드는 비실재적인 색채들을 창안하는데 이는 보들레르의 의도에 부합되는것이다. 푸른 화란냉이, 푸른 암말, 록색옷의 피아니스트, 록색웃음, 록색의 하늘빛, 검은 달들.   아득한 령역으로 돌진하는 상상력은 오직 단수로만 존재하는 사물들을 복수화시킨다. 애트나 화산들, 프로리다들, 말강들, 이런것들은 복수화 됨으로써 더욱 감각적이 되지만 그와 동시에 현실로부터 멀어진다...[모든 달과 모든 도살 모든 눈(雪)], 복수화 및 이러한 총칭화는 현실을 마음껏 헤집고 배척함으로써 새로운 초현실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강력한 수단이다. ... 상상력의 깊은 심층에서 마술적인 아름다움은 무와 하나가 된다 동상 111페지   어휘상의 날카로운 불협화 즉 이질적인 사실들이나 가치들을 극도로 좁은 언어공간에 몰아넣는 단어군들로 나타내기도 한다. 타르를 마시는 태양, 겨울에도 재맛이 나는 7월의 아침, 구리종려들, 비둘기 똥과 같은 꿈들, 아늑하고 안락한 느낌은 대개 시의 종결부에서 갑작스런 일격, 혹은 야수적이거나 비천한 말의 돌발적인 출현에 의해 저지된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 구조] 112페지   인간에게 색과 윤곽 소리와 향기의 정신적의미를 가르치는것은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태초의 유추와 은유를 창조한다. 상상력은 모든 창조물을 해체하고 령혼의 가장 깊은곳에서만 그 기원을 찾을수 있는 법칙에 따라 축적되고 배렬된 자료들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며, 새것에 대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보들레를 [꿈꾸는 알바트로스] 74페지   상상력은 사물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관계를 , 그리고 사물의 조응과 류사함을, 철학 방법들을 떠나서 무엇보다도 먼저 감지하는 신과 같은 능력이다 동상 76페지   작품은 다 써놓고 보면 흔히 처음에 자기가 생각햇던것을 절반밖에 표현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왜 이런가? 그것은 문학적구상은 흔히 상상에 의존하기에 아주 쉽게 기발한 생각들을 하게 되지만 언어는 비교적실재적이여서 교묘하게 구성하기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류협 [문심조룡] 397페지   상상력, 그것은 사실상 절대력의 변명에 불과하며, 명석한 통찰력이요, 마음의 너그러움이며, 승화될 상태에 있는 리성이다. w. 워즈워드 [서곡] [세계명언 대사전] 743페지   [가상을 만드는것에 불과하지 진실로 존재하는것을 만드는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좋은 말이야. 바로 맞추었네] 플라톤 [시론] 아리스토 텔레스 [시학] 219페지   그렇다면 모방술은 진실에서 멀리 떨어져있네. 동상동명 224페지   젊은이여, 말에 위엄과 장대함과 긴장감을 가장 많이 부여하는것은 상상이오. 롱기누스 [숭고에 관하여] 아리스토 텔레스 [시학] 313페지       변형에 대하여     알송달송한 의미의 가능성이 결국 아무 의미도 없는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순수한 언어의 효과가 뚜렷하게 두드러지게 된다. 올리언스 부르크스 [말하는 한 방법으로서의 시] [시의 리해] 171페지   소네트의 은유와 리듬은 그 진실이 우리에게 [산 진실]로 오도록 한다. 동상동명 182페지   직선의 규률에 복종해야 한다면 시란 존재할수 없으리란점을 지적해 둡시다. 사람들은 여러분들에게 가르쳐줍니다. 비가 온다고 말하고싶으면 , 비가 온다고 말하십시오! 라고. 그러나 시인의 목적이 비가 내린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것은 결코 아니며 또한 그럴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시가 언어의 기능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함축하고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들지 않습니다. 폴 발레리 [시에 대한 담화론] [시의 리해] 242페지   무의식적 회상에 정주한채 , 직관의 대상주위에 떼지어 몰려드는 표상들을 대상의 분위기라고 한다. 발터 벤야민 [보들레르에 있어서의 몇 개의 모티브에 관하여] [시의 리해] 364페지   만일 그들이 그것을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현실성의 세계, 즉 개인의 고유한 감수성의 세계에 관련시킨다면 이런 환상은 진실이 될수 있는것이다 동명동상 367페지   모든 구조주의적활동의 목적은 , 그것이 사유적이든 시적이든 간에, 하나의 대상을 재형성하여 그 재형성가운데서 그 대상의 작용태규칙들(기능들)이 나타낼수 있게끔 하는것이다. 따라서 구조는 기실 대상의 모사simulacre인 셈인데, 그러나 어느 방향으로 관심이 지향되고 표명된 모사이다. 왜냐하면 모사로 이루어진 대상은 자연속에 보이지 않는것, 또는 차라리 불가능한것으로 머물러있던 어떤것을 나타내기때문이다. 구조적인 인간은 현실을 취해서 분해하고 재구성한다... 롤랑 바르트 [구조주의적 활동] [현대문학 비평론] 165페지   창조 또는 사유는 세계에 대한 독특한 ‘인상’이 아니라 정녕 그것과 닮은 한세계를 제작하는것이고, 그것은 전자의 세계를 복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리해가능한것으로 하기 위해서이다... 동명 동상 165페지   구조주의는 ... 구조의 유사성에 토대(사실주의라고 하는 예술에서처럼) 아니라 기능의 유사성(레비스트로스가 상동성이라 부르는)에 토대를 둔 그런 모사에 속하는것이다. 동상   예술을 정의하는것은 복사대상의 성격이 아니라 (그러나 그것은 모든 사실주의 끈질긴 편견인데) 인간이 그것을 재형성하면서 거기에 덧붙이는것인것이다. 기술이야 말로 모든 창조의 존재자체이다. 동상 166페지   대상을 재구성하는것은 기능들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며, 말하자면 방법이 작품을 만들어내는것이다. 구조주의적 작품이라기보다는 활동이란 말을 해야 하는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 [구조주의적 활동] [현대문학비평론] 166페지   단순병형의 경우에는 설명어가 하나밖에 없고 따라서 단 하나만의 주어가 있는데 반해, 복합변형의 경우에는 설명어 둘이 있어서 이것이 주어를 하나 또는 둘이 있게 하는것이다. 츠베탕 도토로브 [서술변형] [현대문학 비평론] 258페지   작품들이 그 섬세한 오묘함을 드러내고 우리를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움직이려면 상상적인 직관속에서 나타나기만 하면 족하다. 로만 인가르든 [현상학적미학, 그법위 설정을 위한 시도] [현대문학비평론] 291페지   독창적인 직관과 고된 작업의 로고는 병행되여야 하며 이들의 조화가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기법상으로 실패한 실체를 얻게 된다... 근본적인 직관이 상실되면, 아무리 기법이 뛰여나다 하여도 완성된 작품에는 그 직관이 불러일으킨 미적으로 가치있는 특성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동상동명 292페지   하나의 변형결과로 인해 아무것도 의미가 없던 단계로부터 모든것이 의미를 가지는 단계에로의 이행이 이루어진다. 자끄 데리다 [인간과학중심의 담론에 있어서의 구조와 기호놀이] [현대문학 비평론] 519페지   탈형상화된 현실소재의 모든 구성성분은 보통 감각특성을 가지는 단어군들로써 표현된다. 하지만 이러한 단어군들은 객관적으로는 결합불가능한것들을 비정상적으로 결합시키기때문에 감각적특성들로부터 비실재적인 형상체가 생겨난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108페지   별들의 숲에서 떠오르는 육고기꽃들, [목제 신발을 신은 목동의 시들이 정원에서 으르렁거린다] [옆방에서 램프가 선회할 때, 마치 거울처럼 붉고 검은 도시들의 불결한 진창] 이 모두는 감각적현실의 요소들이긴 하나 추측, 생략, 위치변경과 새로운 결합에 의해 초현실성을 획득한다... 그 현실성은 오직 언어속에서만 존재하는 세계안에 있는것이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109페지   무는 전적으로 리상주의적인 기원에서 나온 존재론적 개념이다. 말라르메가 주목한것은 모든 현실적존재의 불충분성이다. 리상주의적 사고만이 현실로 주어진 모든것을 불충분한것으로 경험할수 있다. 동상 166페지   1948년 르베르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인에게는 아무런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자신속으로 파고 든다. 시작품은 자신의 불연속성 그리고 결합 불가능한것을 서로 련결시키는 조작방식의 근거를 아무도 모르게 함으로써 더욱더 가치있게 된다]. 스페인 시인 살리나스는 순수의 조건은 시가 가능한 한 사물과 테마로부터 벗어나는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때서야 비로서 언어의 창조적운동이 자유로움을 가지기 때문이다. 대상은 시의 수단일뿐이다. 동상 199페지   중요한것은 탈인간화이다. 그것은 자연적인 감정상태들을 배제시키고 , 인간을 그이상 낮은 단계로 밀려나게 하며, 종래까지는 타당했던 사물과 인간사이의 단계질서를 역전시키고, 인간을 가능한 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시각에서 인간을 기술하게 한다. 현대예술가의 미적향유는 인간적인것에 대한 바로 그러한 제압(승리)에서 생겨난것이다. 동상 223페지   시정신을 자기 자유를 충분히 누리기 위해 자기자신의 자연성을 소멸시키고 , 세계로부터 추방되며, 또한 세계를 추방시킨다. 이것이 탈인간화의 기묘한 역설이다. 동상 227페지   문학적 사색을 잉태함에 있어서 그요체는 허심함과 조용함에 있으며 마음속의 선입관을 깨끗이 쓸어버리는데 있다. 바로 이렇게 해야만 정신이 순수하고 깨끗해지게 할수 있다. 또한 학식을 쌓음으로써 진귀한 보물을 저장하고 사리를 분명히 가리는것으로 재능과 학식을 풍부히 하고 경력을 연구하는것으로 철저한 관찰을 진행하고 문학적사색을 따라 아름다운 문학언어를 끌어내야 한다. 그런 다음에라야 신묘한 도와 깊게 통한 심령으로 하여금 성률에 맞춰 문학언어를 안배할수 있는데, 이는 마치도 식견이 있는 장인바치가 심상에 의존하여 창작을 진행하는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문학적사색을 구사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며 작품의 구성에서의 중요한 발단이다. 류협 [문심조룡] 377페지   비란 비부(比附)이고 기흥이다. 비부 즉 사물의 리치를 련결한다는것은 비유를 사용하여 사물을 련결한다는 의미이다. 기흥은 즉 사물에 의탁해서 어떤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는것은 어떤 의미를 아주 은근하게 내포하고있는 사물에 맡긴다는 뜻이다...비란 격분의 감정을 품은채로 잘못을 지적하는것이고, 흥이란 완곡한 비유를 사용하여 그것에다 숨겨진 의도를 의탁하는것이다. 일반적으로 시간의 추이에 따라 감정과 생각은 변하기마련이니 , 시인들이 지향하는 표현수법에는 항상 그 두가지가 포함돼있었다. 동상 501페지   비라고 부르는것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사물을 묘사하여 비유하는것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명백하고도 정확하게 설명하는것이다. 그러므로 금과 석으로 아름다움을 비유하였고, 나나니벌이 명령을 양육하는것을 례로 자식을 깨우치는것을 비유했고 , 매미의 울음소리를 례로 시끄러운 웨침에 비유했고, 때묻은 옷을 마음의 근심에 비유했고... 동상 503페지   그것 (자연풍경)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연, 창조된 바로 그것이며, 인간에게 있어서는 미지의 섬의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밀림과 흡사한 감추어진 령역인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95페지   변형이란 일부분은 그대로 남아있고 일부분은 시인이 조작한 말이다. 아리스토 텔레스 [시학] 127페지   오직 한사람 당신만이 보거나 느끼는것이며 타인에게는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것을 비전이라고 합니다. 직관은 진실도 거짓도 아니며 오직 현존할뿐입니다. SK.랭거 예술이란 무엇인가 [현대인 교양전서] 제29권 281페지       언어에 대하여     사실 시인은 대뜸 [도구로서의 언어]와는 인연을 끊을것이다. 그는 단연히 말을 기호로서가 아니라 [사물]로 간주하는 시적태도를 선택할것이다... 전자에 있어서는 말은 이미 길들여져있다. 후자에 있어서 말은 야성 그대로다. 전자에 있어서는 그것은 유용한 약속이고, 차츰 소모되여 마침내 쓸모 없이 되어버렸을 때는 버리고 마는 연장이다. 후자에 있어서는 말은 초목과 같이 지상에 자연적으로 자라나는 자연물들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언어는 외부세계의 한 구조물이다. 장폴 싸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시의 리해] 267페지   시어는 그자체가 하나의 소우주인것이다... 말이라는 이상한 거울속에는 하늘과 땅과 작가자신의 생명이 비치고있었다. 마침내는 말이 [사물들] 자체로 된것이다. 동상동명 269페지   언어는 우리의 껍질이며 촉각인것이다. 언어는 남에게 대하여 우리를 보호해주고, 남에게 관한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것은 우리이 감각령역이다. 우리들은 신체속에 있듯이 언어속에 있다. 동상동명 275페지   -그렇다. 정말, 말들이 꿈꾼다. 가스통 바슐라르 [몽상의 시학]서문 [시의 리해] 305페지   말은 꿈꾸는걸 방해하는 아주 무거운 짐인양 의미를 던져버린다. 말들은 그때 자기들에게 그걸 짊어질 권리가 있다는듯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말은 어휘라는 숲속으로 새로운 무리 나쁜 무리를 찾아간다. 동상동명 304페지   시적이미지는 언어의 떠오름이며, 언제나 의미하는 언어보다 약간위에 있는것이다... 실용적인 언어의 통상적인 선을 빠져나오는 그 언어의 도약들은 축소판생의 도약들인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시적이미지의 현상학] [시의 리해] 289페지   시적언어는 지배자의 이름을 전승시키기 위하여 그 언어를 리용하려고 하는 모든자를 거부하는것이다. 이러한 거부의 근거는 시의 밖에 있는것이 아니라 시 그자체안에 있다. 이로서 결정적인 론점에 이른것이다. 한스 마구누스 엔? 스버르거 [시와 정치] [시의 리해] 385페지   시의 작업은 시어의 일반적인 노력이 언어를 자연화하고 사물화하려고 하는만큼, 지적인 동기를 지워버림으로써 더 물리적인 따라서, 상상력에 대해서 더 직접적으로 매혹적인 련상을 가능케 하는데 있게 된다. 제라르 쥬네트 [낯. 밤] [현대문학비평론] 213페지   시행이란 [여러 말들을 가지고 , 언어에는 낯선 새롭고 전체적인 그리고 주술같은 한마디 말을 재창조하는]것이다. 동상동명 216페지   언어는 치료의 기구이기도 하다... 무질서가 정리되며 무의미가 의미를 갖게 되고 꿈은 현실적인 원천에까지 거슬러올라가게 된다. 이봉 발레리 [정신분석학과 문학비평]의 서문 [현대문학비평론] 368페지   시인은 말을 마치 건반인것처럼 사용한다. 후고 프리드리히[현대시구조] 44페지   신언어는 어떤 모습이여야 하는가? 아플리네르의 대답은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난폭하고 불협화적인 언어, 그리고 다시 신성화된 언어를 암시하고있다. 모음이 없는 자음들, 무딘 폭팔음을 내는 자음들, 신언어는 돌발적이며 전율하는 신神이다. 동상 200페지   마술적작용, 주술적비법으로서의 언어와 글쓰기에 대하여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102페지   말라르메의 시어는 현대의 조급한 읽기에 저항하면서 말이 그 원천과 항성속으로 되돌아가는 령역을 창조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것의 문장을 파편들로 파괴함으로써 가능해진다는것은 특기할 사실이다. 결합이 아닌 불연속성, 련결대신에 병렬, 이것들의 내적불련속성, 불가능의 경계상에 있는 진술의 문체적특성이다. 파편은 이룩되여가는 완전성의 상징이라는 지위를 획득한다. 파편들은 리념들의 결혼표징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대미학의 근본표징이기도 하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157페지   시속에서 언어자체가 무를 광범위하게 현재화시키는데 그것은 현실적소멸을 통한 무의 생성에 비례한다. 동상 67페지   경험의 외피를 벗어버린 현상들은 절대시선에 의해 좌우된다. 자신을 담아줄 그릇을 향하고있는 이 절대시선은 현상들을 상징으로만 사용하며, 이에 의해 자신의 운동을 자유롭게 조직하는것이다. 동상 182페지   언어는 시인의 재료이므로 예술적재구성의 대상이 된다 얀 무카로브스키 [시란 무엇인가] [현대시 리론] 29페지   시적언어는 감정이 표현을 드러내는 언어인 정서적언어와도 다르다... 표현의 정감에서 리탈한것이 문학에서 계획된 요구사항이 되는 시대조차 있었다. 동상동명 44페지   시적언어는 구상성에 언제나 이끌린다기보다는 구상성과 비구상성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고가는것이다. 이것과 련관해서 비유적본질도 무조건 시적언어의 특징이라고 말할수 없다는 점을 지적해야만 하겠다. 동상   시적언어는 기능에 의해서만 영속적으로 규정될수 있다. 그러나 기능이란 속성이 아니라, 어떤 주어진 현상의 속성들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동상 46페지   학자들은 시어를 표준적인 문어가 변형된것들중의 하나로, 즉 상부구조의 일반적규칙에 좌우되는 한 변형으로 론의함으로써 이 련관관계를 설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확히 언어장치들이 단 한가지 령역에 대한 제창은 문학에 어울리지 않는것이다. 동상 49페지   시에서 가장 놀랄만한 언어창조인 신조어가 표준문어에 뿌리내린다는것은 거이 어렵다. 얀 무카로브스키 [시적언어란 무엇인가] [현대시리론] 51페지   문학의 언어란 무엇인가? 조각의 금속이나 돌과 같은 ,또 미술에서 도료와 화판재질같은 재료다... 예술작품에서 언어 또한 다듬어지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것이다. 동상동명동쪽   시적언어의 갱신은... 언어에 대한 일종의 왜곡으로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적언어의 변형적성격에 대해 언급하게 된다. 동상 54페지   시적인 신조어는 이러한 필요(소통가능한)에서 출현하는것이 아니고 ,오히려 거꾸로 신어의 창조라는 바로 그 사실에 주의를 끌 목적에서 이미 알려져있는 사물의 일반적명칭을 대치하는 경우가 흔하다. 동상 81페지   표현(과장-편자주)들이 마음속의 깊고도 신비한것들을 펼쳐보이면 울적한 마음을 날려보낼수 있으니 , 안맹한 소경으로 하여금 눈을 뜰수 있게 하는 빛남을 갖고있고, 귀머거리로 하여금 소스라쳐 놀라게 할 소리를 갖고있다고 하겠다. 류협 [문심조룡] 517페지   작품의 언어적표현속에 어떤 광채를 숨기게 되면 안광이 평범한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할것이고, 어떤 예리함이 언어적표현속에 드러나게 되면 식견이 높은 사람들은 크게 놀라게 될것이다. 동상 557페지   앞서 말한 여러가지 시어체와 복합어와 방언을 적절하게 사용하는것도 주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것은 은유에 능한것이다. 이것만은 남에게서 배울수 없는것이며 천재의 표징이다. 왜냐하면 은유에 능하다는것은 서로 다른 사물들의 유사성을 재빨리 간파할수 있다는것을 뜻하기때문이다. 아리스토 텔레스 [시학] 134페지   상투적문구나 기술에 있어서는 잇단 은유만큼 표현력이 풍부한것은 아무것도 없소. 롱기누스[숭고에 관하여] 아리스토 텔레스 [시학] 356페지   말의 울림은 번쩍번쩍 빛난다 세실데이 루이스 [현대인 교양전서] 제 30권 264페지   언어의 끊임 없는 재창조라는것이 그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가 동명동상 265페지   단어는 시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입니다. 시인이 단어를 망치로 다듬어 이것을 견고하고 아름다운 무늬로 단련시키는데 사용하는 방법을 [시적기술]이라 부릅니다 동명동상 279페지       기능에 관하여     시인이 그 시기의 한 대중적인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고 해서 나쁜 시가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수도 있는것이다. 그러나 참다운 시는 대중적인 생각이 변화할뿐만 아리라 그 시인이 열정적으로 관여했던 문제에 대한 흥미가 완전히 사라진뒤에도 잔존하게 되는것이다. 호마스 스턴즈 엘리어트 [시의 사회적기능] [시의 리해] 146페지   첫째 우리들이 확언할수 있는것은 시는 즐거움을 주는것이여야 한다는것이다. 동상동명 147페지   우리는 시를 대중적인 시에만 국한해서는 안될것이다... 시인의 직접적인 임무는 그의 국어에 대한것이다. 즉 첫째로는 그의 국어를 보존하고 , 둘째로는 그것을 확대, 향상시키는 일이다. 동상동명 149페지   시인이 매우 급속히 많은 독자를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의심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들에게 그 시인이 진정으로 새로운 일을 하고있지 않고, 또 대중들이 벌써 알고있는것, 따라서 그들이 벌써 전시대의 시인들에게서 받은것을 다만 주고있는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드는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올바른 소수의 독자를 가져야 한다는것은 중요한 일이다. 동상동명 151페지   문학은 철학이나 신학이나 종교의 애용물이 아니다. 문학은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가진다. 그러나 이 임무는 사변적인것이 아니고 감정적인것이기 때문에 문학은 사변적으로 결정될수는 없다. 엘리어트 [1927년 한 론문에서] [시의 리해] 376페지   독자에게 낯설은 사상이라고 생각되는 이상한 주제는 저자의 잠재적존재를 가리켜준다. 볼프강 이제르 [독서과정: 현상학적접근] [현대문학비평론] 247페지   문학의 기능의 하나는 바로 그 과학적언어를 정복시키는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이 공격하는 바로 그 언어의 도움으로 문학을 완전히 읽어낼수 있다고 주장하는것은 지극히 모험스러운 일이다. 그런 주장을 한다는것은 문학의 실패를 전제하는것과도 같다. 츠베탕 토도로브 [어떻게 읽을것인가] [현대문학 비평론] 247페지   작품제작에 재주 없는것을 , 이목을 끌게 마련인 정치적암시로 벌충하는것이 특히 열등한 문인들의 버릇으로 점점 굳어졌다. 시, 소설, 평론, 희곡, 모든 문학생산품이 이른바 [경향]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엥겔스 1851년 10월 MEL.P.119)   ...재주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확신을 드러내려 극단적으로 경향성 쓰레기를 보여주는 하찮은 친구가 있는데 사실은 독자를 얻기위해 그러는것이다. (엥겔스 1881년 8월 MEL 123) 레이몬드 월리엄즈 [제휴와 참여] [현대문학 비평론] 569페지   경향문학은 ... 정치적제휴로서의 참여였다. 인간을 위해서로부터 인민을 위해서로, 다시 혁명을 위해서로, 당을 위해서, 그리고 (변화하는) 당로선을 위해서로 협소해져간것이다. 동상동명 571페지   참여는 이데올로기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것이다. 동상 573페지   공고라는 시가 외부세계와 내부세계의 정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그 가치가 증대한다고 확신한다. 그는 전달가능한 감정들이 배제될 때 비로소 나타나는 순수한 무용의 미를 사랑하였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197페지     시의 리해는 소수의 대가에게만 속하는 령역이다... 시는 아름다운 소리만 내며, 어떤 의미도 련관도 갖지 않는다. 기껏해야 각양각색의 사물들의 순전한 파편들인양 몇구절 정도 리해나 될뿐이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44페지   보들레르는 [악의 꽃]을 저항에의 열정적인 욕구, 그리고 증오의 산물로 칭하면서 시가 [신경쇼크]를 유발시키도록 권장하고 독자를 자극시켜 더 이상 리해하지 못한것을 자랑한다. 한때 기쁨의 무한한 샘이였던 시적인 의식은 이제 무진장한 고문도구들의 병기창이 되었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 구조] 64페지   [일루미네이션]은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시이다. 이 시는 리해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환각적인 자기방출의 뢰우이며, 기껏해야 위험에 대한 사랑의 전원적인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일깨운것으로 만족한다... 어느 문장이 말하듯 [다른 모든 선구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업적을 남긴 창시자]임을 확인시켜준다. 이 시는 절대화한 현대적상상력의 최초의 위대한 기념비이다. 동상 113페지   나는 언제나 문학과 예술은 도덕과는 무관한 목표를 추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자신은 상상과 문체가 아름다운것으로 충분합니다.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51페지   그리고 끝으로 몽상을 예술품으로 만드는 작업을 전혀 리해하지 못하는 이 무능력을 나는 결코 참아낼수 없었습니다. 동상 58페지 (1857년)   많은 사람들이 시의 목적은 어떤 교육적인것에 있고, 시는 때로는 의식을 강화시켜야 하고, 때로는 풍습을 향상시켜야 하고, 또 때로는 어떤 유용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는 자기자신 밖에는 다른 어떤 목적도 가지지 않는다. 시는 다른 목적을 가질수가 없다. 단지 한편의 시를 쓰는 즐거움을 위해 씌여진 시보다 더 위대하고 고귀하며 진실로 시라는 이름에 값하는 시는 없을것이다 동상 102페지   언어행위의 시성(詩性)은 의사소통이 제일 중요한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하기때문에 여기 ‘검열’은 느슨해지고 부드러워질수 있다. 로만 야콥슨 [시란 무엇인가?] [현대시리론] 13페지   시적표현의 목적은 미적효과에 있다. 그러나 시적언어를 지배하고 있는 (다른 기능언어에서는 부수적현상에 불과할뿐) 미적기능은 언어기호자체에 주의를 집중시킨다. 따라서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라는 목표를 지향하는 실제의 방향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게 된다. 얀 무카로부스키 [시적언어란 무엇인가?] [현대시리론] 46페지   한작가의 작품이 갖는 진정한 가치를 정확하게 리해하는 지음을 만날수 있다는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음은 확실하게 리해하기 어렵고 또 그런 지음을 만나기는 더욱 어려운것이다. 작품에 대한 진정한 리해력을 갖춘 사람인 지음을 만난다는것은 천년에 한번 있을가말가한 일이다. 류협 [문심조룡] 685페지   지나치게 심오하다고 탓을 하랴! 문제는 식견과 감별력이 차한데 있다... 마음의 눈으로 작품의 사상과 감정을 관찰하는 일은 육안으로 사물의 형체를 관찰하는것에 비유될수 있다. 아주 밝은 눈으로 보면 분간할수 없는 사물이 존재하지 않을것이다... 오직 심원한 인식능력과 감별능력을 지닌 사람만이 작품의 심오함을 포착해 낼수 있고 그로인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희열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동상 695페지   만일 작품전체에 함축적의미가 결여돼 있다면 그것은 마치 로유(老儒)에게 학문이 없는것과 같아서 경우에 따라서는 단 한번의 질문에 밑바닥이 드러나게 되고, 숱한 구절들이 경구가 없다면 그것은 마치도 고대광실에 진귀한 보물이 없는것과 같아서 몇번 묻게 될 경우에는 얼굴색이 질리게 된다. 류협 [문심조룡] 557페지   그가 사용했던 유사한 테마 주제들이 빅토르유고가 아닌 다른 시인의 손에 들어가면 너무 쉽게 교육적인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이는 진정한 시의 가장 큰 적이다. 샤를르 보들레르 [빅토르 위고] [시의 리해] 222페지   사람들은 공리 뻔한 사실의 방아를 찧고 또 찧는다. 그속에 들어갔던것밖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발생적사상을 위해 그 전통을 벗어나는 순간, 시, 지혜, 희망, 미덕, 학식, 일화 그 모든것이 몰려와서 도와준다. R.W.에머슨 [문학적윤리학] [세계명인 대사전] 743페지     시는 의미하지 않고 오직 존재해야 한다. 시의 매체는 말이기 때문에 시는 그의 의미를 통해서만 존재할수 있다... 시는 실용메세지와 다르다. W.K.윔사트 몬로 C.비어즐리 [현대문학비평론] 29페지   아름다운것은 성공적인 직관의 표현이고 추악한것은 그 표현이 성공하지 못한 례라는것이다. 동상동명 32페지   의미의 애매함은 ... 시의 필연적인 구결점인것이다. 우리는 엠프슨과 더불어, 의미의 애매함의 조작은 시의 뿌리의 자체에 있다는것을 되풀이해 말하고자 한다. 제라르 쥬네트 [구조주의와 문학비평] [현대문학비평론] 187페지   문학의 가장 높은 효률성은 독자들의 기대와 , [세계의 모든 기대를 릉가하는] 기대리탈의 놀라움, 독자들 바라고 예견한 [진실임직한것]과 창조의 예측불가능한것, 둘사이의 미묘한 작용에 놓여있다. 하지만 예측불가능자체가, 위대한 작품들의 무한한 충격자체가 그 온 힘으로 진실함의 음밀한 심층에서 반향하는게 아닌가?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한바 있다. [위대한 시인은 창조하는자이기보다는 발견하는자이다.] 제라르 쥬네트 [구조주의와 문학비평] [현대문학비평론] 191페지   한 요소는 기능을 바꾸면서 유지될수도 있고 또한 반대로 제 기능을 다른 요소에 넘겨주고 사라져버릴수도 있다. 동상동명 194페지   문학작품을 이루는 참된 삶은 계속적인 기능의 변화가운데서 나타나는것이다... 유산은 통상아저씨에게서 조카로 전달되며, 발전은 하위갈래를 정통으로 해놓는다. 동상 195페지   한편의 시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물어보는것은 한송의 수선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질문하는것과 마찬가지로 불필요한것입니다. 세실데이 루이스 [시를 읽는 젊은이들을 위하여] [현대인 교양전서] 제 30권 340페지       예술에 대하여       작품의 예술성여부는, 훨씬 높은 차원의 진동도에 기인하는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107페지   예술의 기능은 지각의 능력을 만족시켜 그것을, 례컨대, 고정된 분위기라든가 고정된 사상, 인습과 같은 방해물로부터, 그리고 자연의 필연적법칙때문이 아니라 경험자의 우둔성때문에 유도된, 흔하지만 불필요한 경험들의 결과들로부터 해방시키는것이다. 에드라 파운드 [시의 지혜] [시의 리해] 135페지   불가사의란 언제나 아름답고, 그어떤 불가사의도 아름다운것이며, 불가사의가운데는 아름다운것만이 있을따름이다. 앙드레 부르통 [초현실주의의 제1선언] [시의 리해] 249페지   우주적몽상은 우리를 기획의 몽상에서 떼여놓는다. 그것은 우리를 세계속에 자리잡게 하지, 사회속에 자리잡게 하지 않는다. 가스통 바슐라르 [몽상의 시학 서문] [시의 리해] 302페지   몽상이 우리에게 한 넋의 세계를 보여준다는것, 시적이미지가 자기세계, 자기가 살고자하는 세계, 자기가 살만한 세계를 발견해 낸 한 넋을 증언한다는것을 입증하는것이다. 동상동명 303페지   우주에 대한 몽상가는 책임감이 필요 없는 몽상, 즉 증거를 요구하지 않는 몽상을 알게 된다. 끝으로 우주를 상상한다는것은 몽상의 가장 자연스러운 운명이다. 동상동명 311페지   개인이 학교에서 익힌 모든 습관들을 꿰뚫고 모든 느낌을 초월하여 자기소리의 저 깊숙한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에야 비로소 그는 예술과 가까운 진정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즉 예술가가 되는것이지요. 이것이 유일한 척도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현대시] [시의 리해] 316페지   예술이란 하나의 방법이며, 목적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예술이 외계의 모방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이러한 불행한 생각은 언제나 사라지지 않을것입니다. 사실, 그러한 상황이리면, 예술가들이란 , 남자들이 무장을 하러나가는 동안에 프럼프패로 집을 짓거나 알록달록한 유리공의 광채에다 멍청한 미소를 비춰보는 어린애들이거나 백치들과 같을테지요. 동상동명 316-317페지   예술은 부지중에 서둘러 삶과의 밀접하고 필연적인 관련성을 보이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시대의 가장 눈에 띄는 현상들에 불안스러이 집착하고서, 전쟁을 찬양하고 , 왕을 찬양하여, 심지어는 사소한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당의 리해관계에 봉사하기까지 합니다. 즉 예술이 경향성을 띄게 되는것이지요. 그런데 예술이 바로 이렇게 하여 정당성을 부여받고-터놓고 이야기한다면- 유용성을 부여받기 시작한다면 가장 덜 예술적으로 되어버립니다. 왜냐하면 분노나 갈채의 몸짓으로 시대의 일시적인 의미없는 사건들을 따르는 예술이란 - 그것이 아무리 애국적이라 할지라도- 운을 맞추거나 색을 칠한 저널이즘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교육적이고 문화적인 가치를 덜부여할수 없지만- 그러나 예술은 아닌것입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독일에서, 바로 서정시가 이런 교육적이고 문화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현대시] [시의 리해] 317페지   예술이 미를 추구하고 , 단순하게일지라도 그 미를 재현하는것인 점에서, 예술은 미를 (파우스트가 헬레나를 불렀던것처럼) 시간의 심연으로부터 불러낸다. 그러한것은 기술적인 복제속에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복제 내에서는 미의 자리란 없다) 발터 벤야민 [보들레르에 있어서의 몇개의 모 티브에 관하여] [시의 리해] 366페지     미학에 있어서 체계의 강요만큼 해로운것은 없다. 신중한 현상학적방법이 가장 진척이 빠르다. 한스 애곤 홀투젠 [시문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진실] [시의 리해] 378페지   예술가는 현실의 어느 한 요소도 자신이 발견한 그대로는 사용할수 없다. 쉴러 [현대문학비평론] 99페지   현실과의 불일치는 가상의 모습을 띠고있지만, 그러한 가상은 예술의 본질에 속하는 필수가결한 가상이다. 게오르기 루카치 [예술과 객관적 진리] [현대문학비평론] 104페지   예술작품의 완결성이란 운동과 역동성 상관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과정의 반영이다. 동상동명 105페지   사진복사적인 삶의 디테일의 예술적진리는 순전히 우연적이고, 자의적이며 주관적인것이다... 그것은 객관적필요성이라는 심오한 문제를 지나치거나 객관적필연성의 존재마저 부인하는것이 된다. 가오르그 루카치 [예술과 객관적 진리] [현대문학비평론] 111페지   천재는 번쩍거리는 오류들을 주위에 흩뿌린다. 자신의 리념의 독수리 날개짓에 압도되여 천재는 어떠한 리성도 진입할수 없는 성곽들을 건설하며, 그의 창작품들은 시와 마찬가지로 그가 사랑하는 자유로운 결합으로써 나온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41페지   예술적충동은 일그러진 낯선 세계의 얼굴을 남긴다. 그것은 강제적행위이고 , 랭보의 말을 빌리면 잔인한 행위이다. 동상 48페지   끔직한것이 예술적으로 표현되여 아름다움이 되고, 고뇌가 박자와 운률을 얻어 정신을 고요한 기쁨으로 가득 채우는것은 예술이 가진 엄청난 특권가운데 하나이다. 동상 52페지   예술은 아름다움에 대한 일종의 자동기억법이다. 그런데 정확한 모사는 기억력을 손상시킨다. 동상 72페지   근대적개념에 따른 순수한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주체와 객체를, 그리고 예술가의 외적세계와 예술가자신을 동시에 내포하는 암시적인 마술을 창조하는것이다.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123페지   철학적으로 명료해지기를 원할수록, 예술은 더욱 질이 떨어지고 유유한 상형문자로 거슬러 올라갈것이다. 반대로 한층 교육계로부터 멀어질수록, 예술은 한층 순수하고 초연한 아름다움을 향하여 상승할것이다. 동상 129페지   예술가는 자기자신에게만 귀속되여 있다... 예술가는 자식이 없다. 동상   작품을 제작할 때 선명성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꿈의 언어를 아주 명료하게 표현하기 위함이다. 동상   의혹 또는 신념과 소박함의 결핍은 이 시대의 독특한 결함이다... 소박함이란 기법에 있어서 기질이 집행한다는것으로, 거이 모든 이들이 상실한 신의 특혜인것이다. 동상 130페지   나는 무를 발견한후에야 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말라르메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154페지   우리 예술가는 모두가 나름대로의 표현형식을 취한다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사명을 띠고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젊은 시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112페지   자유시는 자유를 웨치는 함성이지만 예술가는 자유가 없습니다... 이는 예술가의 언어재료를 조직하는데서 예술가의 내면적책임을 강조하고 있는것인데, 언어재료를 구성하는것은 - 많은 증거에 의하면- 률격적인 기본틀의 뒷받침이 없다면 상당히 힘든 법이다. 벤야민 흐루쇼브스키 [현대시의 자유률] [현대시의 리래] 115페지   항상 사색의 칼날을 방금 갈아놓은것처럼 유지해야 한다. 류협 [문심조룡] 595페지   예술은 세계를 뒤바꾸는 격렬한 반전(反轉)이며, 영원한것에 귀환하는것에 지나지 않는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97페지   예술속에 몰입하면 할수록 , 보다 촉박한것, 불가사이한것을 성취할 책임을 느끼게 된다는것이 예술의 무서운 점입니다. 동상 102페지   예술은 대상을 초월한 미묘한 전진이며 자연속의 모든것이 나타내고있는 [존재]라고 하는 기대의 차분하고 , 보다 고차원의 실현인것입니다. 동상 110페지   예술가는 모델보다 더 나은것을 그리지 않으면 안된다. 아리스토 텔레스 [시학] 156페지   예술의 특정한 발전기는 결코 사회일반적인 발전과는 직접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 -맑스 [현대문학비평론] 124페지   예술은 예술작품이 현실로서 인정될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레닌 [현대문학비평론] 109페지   예술작품들이 보다 높은 차원의 질서를 갖게 되는것은, 예술이 현실세계와 분리되였기 때문이고 또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자신의 필요성에 따라 다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아도르노 [예술과 사회의 관계] [현대문학비평론] 145페지   예술작품이란 생생히 살아있는 그자체의 고유한 삶을 가지고있다는 점에 류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삶의 특성이란, 그것이 인간이나 자연이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말을 한다는 점에 있다. 동상동명 145페지   예술작품이 외부세계와 소통한다는것은 실제로는 의사소통을 하지 않기때문에 가능하다고 할수 있는데, 왜냐하면 예술은 행복해서 그렇듯 아니면 불행해서 그렇듯 간에 외부세계로부터 자신을 차단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예술작품이란 현실과 차단되고 현실로부터 굴절된것이라고 할수 있다. 동상동명 146페지   예술적처리방식의 발전은 사회적발전과 맞아떨어진다는 주장은 나름의 론리가 없는것이다. 동명동상 147페지   모든 예술작품은 하나의 순간이다. 동명동상 149페지   일반체험과는 다른 예술의 측면을 함께 느껴야만이, 우리는 재료의 굴레에서 벗어날수 있고, 또 무차별적으로 현실세계에 빠져드는 경향으로부터 예술 그자체의 존재를 구제할수가 있는것이다. 동명동상 149페지   예술에서의 비현실적인 모멘트나 비존재적인 모멘트는 존재와 무관한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대로 설정된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유롭게 창안된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존재의 여러요소의 상호배합에 의해서 생겨난 일종 구조주의이다. 그리고 존재의 여러 요소사이의 이러한 배합은 스스로 현실적존재의 불완전성과 곤궁함, 현실적존재의 모순과 잠재 가능성을 지니고있다. 동상동명 151페지     심미적기법은 감정의 의식적객관화이며, 그중의 한 본질적부분에 비평적계기라고 말한다. 예술가는 객관화가 적절하지 못할 때 그것을 수정한다. W.K.윔사트 몬로 C. 비어즐리 [의도론의 오류] [현대문학비평론] 35페지   예술적인것이란 작가에 의하여 창작된 텍스트를 말하며, 미적인것이란 독자에 의해 이루어진 구체적실현을 일컫는다. 볼프강 이제르[독서과정: 현상학적접근] [현대문학비평론] 454페지   예술은 주관적 경험을 객관화하고 자연계의 외부적 경험을 주관화한다 S.K. 랭거 [예술이란 무엇인가] [현대인 교양전서] 제 29권 288페지           이미지에 대하여   시는 항상 사물과 사물을 비교하고있습니다. 세실데이 루이스 [시를 읽는 젊은이들을 위하여] [현대인 교양전서] 제 30권 279페지   이미지라는것은 독자의 상상력에 호소하는 것으로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묘사된 언어의 그림을 말하는것입니다. 세실데이 루이스 [시를 읽는 젊은이들을 위하여] [현대인 교양전서] 제30권 285페지     시적이미지의 고유한 기능은 우리에게 갈등하는것으로 보이고 바꿀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이얼리티를 하나의 통일체로 변용시키는것이다. 옥타비오 빠스 [시와 력사]에서 [시의 리해] 113페지   [이미지]는 일순간에 지적이고 정서적인 복합체를 나타내는것이다... 그러한 복합체는 순간적으로 드러냄은 갑작스런 해방의 의식, 시간적한계와 공간적한계로부터의 해방의식, 그리고 우리가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앞에서 경험하는 갑작스런 성장의식을 고취시킨다. 많은 양식의 작품을 내놓는것보다 일생에 거쳐 하나의 이미지를 제시하는것이 낫다. 에즈라 파운드 [이미지즘] [시의 리해] 138페지   피에르 르베르디가 이런 말을 쓰고있다. 이미지란 순수한 정신적창조물이다.   이미지는 어떤 비유에 의해서 태여나는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멀리 떨어져있는 두가지 현실을 접근시키는데서 태여난다.   접근된 두가지 현실의 상호관계가 멀면서도 적절한것일수록 , 이미지는 더욱 강력한것이 될수 있고, 보다 더 강력한 감동력과 시적인 현실성을 얻게 될것이다... 문외한들에게는 수수께끼같아 보이겠지만 이 말은 대단히 강력한 시사성을 지니고있어 , 나는 이 말을 오래동안 숙고해 보았다. 앙드레 부르통 [초현실주의 제1선언] [시의 리해] 253페지   우리는 새로운 시적이미지와, 무의식밑바닥에서 잠자고있는 원형사이와의 관계에 언급할 때에라도, 우리는 그 관계가 엄밀히 말해 인과관계가 아니라는것을 리해시키도록 해야 하게 될것이다. 시적이미지는 충동적인 힘에 예속되여있는게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메아리가 아닌것이다. 사정은 차라리 그 역이다. 이미지의 번쩍임에 의해 먼 과거가 메이리로 울리고있는것이며, 그리고 그 메아리들이 얼마만큼의 길이에까지 반향하며 사라지게 되는지 우리는 거이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의 새로움과 그의 약동속에서 시적이미지는 그 자체의 존재와 그 자체의 힘을 가진다. 그것은 직접적인 존재론에 속하는것이며, 우리가 지금 연구의 노력을 기울이려 하는것은 바로 그 존재론에 대해서이다... 이미지가 인과관계를 벗어난다고 말하는것은 아마도 그나름의 중대성을 가지는 선언일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시적이미지의 현상학] [시의 리해] 280페지   시적이미지란 사실 본질적으로 변용적인것이다. 그것은 개념처럼 구성적인것이 아니다... 이미지는 그의 단순성가운데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미지란 사상에 앞서는것이란것을 정확히 밝히기위해서는 , 시란 정신의 현상학이 아니라 차라리 령혼의 현상학이라 말해야 할것이다. 동상동명 282페지   현상학적인 두 자매어 방향과 울림의 차이는 뚜렷해야 한다... 울림은 말하자면 존재의 전환을 이룩한다... 한 시작품의 표면적인 풍요로움과 내면적인 깊이는 언제나 자매적인 방향과 울림의 현상이다... 그의 새로움으로써 시적이미지는 전 언어활동을 흔들어 시작되게 한다... 그것은 우리자신의 언어의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고, 우리를 그것이 표현하는것으로 만듬으로써 우리자신을 표현하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표현의 생성인 동시에 우리 존재의 생성이기도 하다. 이 경우 표현이 바로 존재를 창조하는것이다. 동상동명 285-286페지   위대한 시행은 그것이 속하는 언어의 령혼에 큰 영향을 줄수있는것이다. 그것은 잊혀진 이미지들을 다시 일깨워놓는다. 그리고 동시에 말의 예측불가능을 認可한다. 말을 예측불가능한것으로 한다는것, 그것은 바로 자유를 닦는게 아니겠는가! 시적상상력은 표현에 대한 검열을 무시해 버리는데 얼마나 큰 매력을 느끼는가! 동상동명 290페지   시행은 언제나 움직임을 가지며, 이미지는 시행의 선속에 살며시 끼여들어 상상력을 끌고 간다. 동상   언어위에, 통상적인 언어위로, 떠올라나타나는 이미지가 시의 의식을 남김없이 삼켜버리기 때문에, 시적이미지와 더불어 시적의식이 너무나 새로운 언어를 말하기 때문에, 인젠 과거와 현재의 상관관계를 살펴본다는것이 유용할수 없는것이다. 동상동명 292페지   시에 있어서 비지식은 하나의 근본적인 조건이다. (비지식이란 무지가 아니라 초월이라는 어려운 행위)... 이미지의 삶은 전적으로 그의 번개같은 치솟음속에, 이미지가 감수성의 모든 여건의 초월이라는 그 사실속에 있는것이다. 동상동명 295페지   이미지의 효능속에서 살아나는 추억들은 우리의 삶을 어느 순간에는, 특히 나이들었을 때는, 복잡한 몽상의 원천이며 자료이다. 기억은 꿈을 꾸며 몽상은 추억한다. 가스통 바슐라를 ([몽상의 미학]서문) [시의 리해] 307페지   이미지계기의 네단계는 다음과 같다.   1. 그것은 근본적현실의 반영이다. 2. 그것은 근본적현실을 감추고 도착한다. 3. 그것은 근본적현실의 부재를 감춘다. 4. 그것은 어떠한 현실에도 관계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자체의 모형이다.   첫번째경우, 이미지는 좋은 나타남이다. 표상은 성사(聖事)의 성격을 갖는다. 둘째번경우, 이미지는 나쁜 나타남이고 악사(惡事)의 성격을 갖는다. 세번째경우, 그것은 나타남의 놀이를 한다. 그리하여 요술의 성격을 갖는다. 네번째, 그것은 나타남의 세계에 속하지 않게 되고 시물레이션(흉내내기)의 령역에 속한다. 무엇을 거짓 감추는 기호로부터,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거짓 감추는 기호에로의 변화는 결정적인 전환점을 이룬다. 장 보드리야르 [모양과 모양 만들기] [현대문학비평론] 546-547페지   모양의 흉내는 진리를 감추지 아니한다. 진리가 없다는것을 감추는것은 진리이다. 흉내낸 모양이 곧 진리이다. 동상 541페지   너의 노래로부터 현실을 추방하라. 그것은 비천한것이다... 시작품은 존재하지 않는 사물에 대한 말을 만들어내는것이다. -말라르메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164페지   가능하지만 믿어지지 않는것보다는 불가능하지만 있음직한것을 택하는 편이 좋다. 아리스토 텔레스 [시학] 144페지   이미지는 일종 의식이다. 싸르트르 [상상심리학] 22페지   걸상의 이미지가 걸상이 아니고 걸상일수도 없는것이다. 동상 24페지   지각에서의 인식은 서서히 형성되지만 이미지에서의 인식은 순간적이다. 동상 28페지   이미지의 대상이 최초에는 사물들의 세계속에서 형성된다고 가설되지만 이 과정이 지나가면 이미지는 이 세계를 떠난다. 동상 33페지   이미지는 일종 신앙이라고도 할수 있고, 가정적활동이라고도 할수 있다. 이 활동은 네가지 형식만 있을뿐 다른것은 있을수 없다. 그것은 대상이 존재하지 않거나 현장에 있다고 할수 없다. 그것은 자기속에 있는것으로서 대상이 존재한다고도 가정할수 없다. 싸르트르 [상상심리학] 33페지   그러나 직관은 인과성의 인식에 의하여 매개된다는 리유로서, 객관과 주관의 사이에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있다고 하는 엄청난 오해를 하여서는 안된다. 쇼펜하우 훗살 [세계사상대사전] 제 17권 84페지   직관은 오성에 의해서만이 또 오성에 의해서만이 존재한다. 동상 95페지   은유는 일종 지름길입니다. 세실데이 루이스 [시를 읽는 젊은이들을 위하여] [현대인 교양전서] 제 30권 282페지         기교에 대하여     시의 기술은 사고에 본질적인것, 이 역동적인 분자들, 또는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이 라듐을 낱말들의 멜로디(듣는 이의 정서를 낱말들의 의미와 가장 일치하게끔 해주는)와 결합시키는데, 그것들을 형식(지(知)를 가장 즐겁게 해주는)과 결합시키는것이다. 내가 말하는 멜로디란 강세의 변형을 포함한 음질의 변형을 의미한다. 에즈라 파운드 [시의 지혜] [시의 리해] 136페지   무엇을 드러내지 않는 , 불필요한 낱말이나 형용사를 쓰지 말것, [어렴풋한 평화의 땅]과 같은 표현은 쓰지 말아라. 그런것은 이미지를 둔화시킨다. ... 아무런 장식도 쓰지 말거나 아니면 훌륭한 장식만 쓸것. 에즈라 파운드 [이미지즘] [시의 리해] 139페지   묘사적이 되려고 하지 말라... 쉐익스피어가 [가랑잎빛갈의 오후를 걸친 새벽]이라고 말할 땐, 그는 화가가 제시하지 못한것을 나타내려는것이다. 그의 이행에는 묘사라고 부를수 있는것은 없다-그는 나타내려한다. 동상동명 140페지   기억은 재생산의 힘을 필요로 하고, 앞을 내다보는 일은 창조의 힘, 즉 예상의 힘을 필요로 한다. 동상동명 163페지   인간은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형식들을 창조한다. 심지어 지각행위조차도 아주 복잡한 경로를 통한 형식의 창조이다. 클리언스 부르스크 [말하는 방법으로서의 시] [시의 리해] 171페지   의미와 시 사이의 가장 확실한것은 은유이다. 동명동상 174페지   은어와 은유를 통해서 하나의 언어는 끊임 없이 그자체를 젊게 한다. 동상동명 175페지   시의 목소리는 필경 하나의 창조이지 자연적이고 자발적인 분출이 아니다. 쿨리언스 부르스크 [말하는 한방법으로서의 시] [시의 리해] 187페지   형식은 내용의 확장에 다름 아니다. 찰스올슨 [추진적임][진동적임][전망적임] [시의 리해] 190페지   어느 시에서건 언제나, 언제나 한지각은 [보다 다른 지각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한다 한다! 동상 동명 191페지   자신이 만들어낸 사물이 자연히 다른 사물들과 나란히 자리잡도록 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진지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이는 쉽지 않다. 동상동명 197페지   나로서는 오래동안 무속에 깊숙이 내려가 본 경험이 있어 단언하지만 [그 밑에는] 오직 아름다움이 있을뿐이요. -그리고 아름다움의 완벽한 표현은 하나밖에 없소, 시뿐이요. 스테판 말라르메 [서한] [시의 리해] 235페지   몇개의 발성으로, 마치 주문(呪文)과도 같이 세속언어와는 별개의 새롭고 온전한 어휘를 재창조하는 싯귀는 말의 완전한 독립을 이룩한다. 스테판 말라르메 [언어론 서문] [시의 리해] 237페지   겉으로 모순되는 꿈과 현실이라는 두가지 상태가 언젠가는 일종의 절대현실, 말하자면 초현실로 해결될것임을 나는 믿는다. 내가 나가는것은 바로 이와 같은 초현실의 정복을 위해서이다. 앙드레 부르통 [초현실주의 제1선언] [시의 리해] 252페지   형식을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는것이, 기이하고 낯선 느낌을 주는 형식들을 만들어내게 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현대시] [시의 리해] 324페지   새로운 형식이란 단지 발견될수 있을뿐이지 모색될수 있는것은 아니다. 동상동명 325페지   [나는 작품자체보다 작품의 형상화나 완성에 훨씬 큰 흥미를 갖고있음을 고백합니다] 라고. 이것이 하나의 현대적특징이라는 점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트프리트 벤 [서정시의 제문제] [시의 리해] 328페지   형식이 바로 시입니다... 형식은 존재이며, 예술가의 실존적 당부이며 그 목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슈타이거의 [형식은 최고의 내용]이란 말은 제대로 파악할수 있겠습니다. 동상동명 336페지   내면적방랑이란 시를 창출해낼수 있는 예술이 곧 현실적방랑과 변화이며 그효과는 수세대에 의해 계속되면서 이미 리해된것, 정지된것에서 보다, 자극하는것, 매혹하는것에서 훨씬 더 바람직스러운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됩니다. 동상동명 337페지   시인은 우연히 침입, 가능한 방해요소들에 맞서서 자신의 시를 밀페시켜야 합니다. 동상동명 339페지   매혹을 불러일으키는 형식속에는 정열, 자연, 그리고 비극적체험의 본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있습니다. 고트프리트 벤 [서정시의 제문제] [시의 리해] 340페지     우리 질서는 정신이며, 그 법칙은 표현, 각인, 문체라는것입니다. 다른것은 몰락입니다. 추상적인지, 조률이 없는지, 초현실적인지, 그것은 형식의 법칙이며 우리를 초월하는 표현창조의 필요성입니다. 동상동명 340페지   시문은 철학적 혹은 학문적판단속에서나 종교적인 신앙원칙들속에서 표현될수 있는것이 아니고 [아름다운 운률적창조]속에서만이 표현될수 있는 독특한 성향의 인식능력으로 리해되고있다. 한스에곤 홀투젠 [시문에 나타나는 아름다움과 진실] [시의 리해] 371페지   어떤 특정의 개념에 따라 운률적 음성적 배렬, 즉 [의미]가 불확실하면 불확실할수록 그 체험가치가 더욱더 확실한 감각과 직관의 억양이 시속에 환기되여야 한다. 동명동상 373페지   기법은 작가가 자기 주제를 발견, 탐색하여 발전시키고, 그 의미를 전달하며, 최종적으로 그것을 평가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따라서 어떤 기법은 다른 기법보다 더 예리한 도구로서 더 많은 주제를 발견할수 있고, 자기 주제를 기법상으로 엄격히 살필수 있는 작가가 가장 만족스러운 내용을 가진 작품, 가장 알차고 울림이 큰 작품, 반향을 일으킬수 있는 작품, 최대의 의미를 지닌 작품을 창작할수 있다는 확실한 결론이 나온다. 마크 쇼러 [기법으로서의 발견] [현대문학비평론] 49페지   기법만이 예술의 소재를 객관화한다. 따라서 기법만이 소재들을 평가할수 있다. 이것은 자명한 공리이다. 동상동명 56페지   내용이란 형식이 내용으로 전화된것에 다름 아니고, 형식 또한 내용의 형식으로 전화된것에 다름 아니다. -헤겔 [현대문학비평론] 113페지     형식이란 내용을 가장 집중적으로 응부하는 방식이고 내용의 최고도의 추상이며, 또 내용의 제규정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것이다. 형식이란 또한 개별적 제 규정사이에 적절한 비률을 만들어내는것이자, 예술작품이 반영하고있는 삶의 개별적모순들 사이의 중요도를 자리매김하는것이다. 게오르그 루카치 [예술과 객관적 진리] [현대문학비평론] 118페지   상징의 원천은 무의식속에 존재한다. 이봉 벨라발[정신분석학과 문학비평]서문 [현대문학비평론] 369페지   새롭다는것은 미적범주만이 아니다. 새로운것은 혁신, 놀라움, 릉가, 재편성, 혹은 소리와 같은 형식주의리론이 전적으로 그 의미를 부여했던 그러한 요소들을 통해 등장하는것이다. 새로운것은 또한 력사적범주가 되기도 한다. 한스 로버트 야우스 [문학리론에 대한 도전으로서의 문학사] [현대문학비평론] 433페지   만일 환상의 형성이 없다면, 친숙하지 못한 텍스트의 세계는 낯선채로 남게 된다. 환상을 통해서 텍스트에 의해 제공된 경험은 우리가 가까이 하기 쉬우니, 그 까닭은 그것이 다만 환상이기 때문이다. 볼프강 이제르 [독서과정; 현상학적 접근] [현대문학 비평론] 467페지   형식주의는 모든것을 흡수하는 전제적시신(詩神)으로 보인다. 폴드만 [기호학과 수사학] [현대문학비평론] 523페지   현대리론가들의 기본개념인 기습, 낯설게 함이 보조를 마춘다. 기습적으로 경악시키려는 자는 무엇보다도 비정상적인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31페지   문학의 핵심적인 두자질은 초자연주의와 반어법이다.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103페지   령감이 나날의 노력과 자매지간임은 분명한 일이다. 동상   언제나 시인이 되라 산문을 쓸 때 조차도 동상   명사는 실제의 위엄성을 띠고, 형용사는 맑고 연한 덧칠처럼 명사를 덮고 단장하는 투명한 의상이 있고, 률동의 천사인 동사는 문장에 자극을 준다. 동상 121페지   주도적기법중의 하나는 한 단어의 의미에다가 그 가까이에 있는 단어의 의미를 섞어넣는것이다. 그가(말라르메) 강력적으로 선언한바에 의하면 단어들은 그 상호교체적인 투영에 의해서 빛을 발한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156페지   시작품과 그 영향의 알맹이는 그 기법에 있다. 에너지들은 거이 전적으로 문체에 집중된다. 문체는 언어를 통한 실행으로써 현실과 규범에 대한 거대한 변형을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동상 198페지   은유는 인간이 소유한 가장 위대한 힘이다. 그것은 마술에 접근한것이며, 신이 그 피조물속에 잊어버리고 내버려둔 창조의 도구같은것이다. 마치 산만한 외과 의사가 수술환자의 몸속에 내버려둔 기구와 마찬가지로. 동상 270페지   문학행위에서 도식주의가 차지할 자리란 없다. 얀 무카로브스키 [시란 무엇인가] [현대시리론] 25페지   작가가 기교를 장악하여 작품을 다루는것은 바둑명수가 바둑두는 기술을 정통하고있는것에 비유할수 있다. 기교를 포기하고 주관적인 생각에만 따르는것은 마치 도박군이 놀음에서 요행수만 바라는것과도 같다고 할수 있다. 만약 도박군처럼 창작에 림한다면 우연적인 요행수에 의존하여 앞에서 한두번은 성공할수 있겠지만 그 성공을 뒤에서도 계속 지속시킬수는 없는것이다. 류협 [문심조룡] 617페지   문학의 사상에는 정해진 규범이 있을지 모르나 창작원리는 언제나 변함이 없는것이라네. 동상 621페지   비유의 수법에 있어서 비유의 대상이 언제나 일정하지 않다. 비유된 두 사물이 비록 북방의 호인이나 남방의 월인만큼이나 서로 관련이 없더라도 그것들 일단 합쳐지면 간과 슬개처럼 가깝게 된다네... 기흥은 외부의 형상을 묘사하여 그 뜻을 뽑아오므로 말의 사용은 반드시 과감하게 해야 한다... 다양한 종류의 비와 흥의 사물들을 노래속에 모아놓으니 문학적언어는 강물의 흐름처럼 생동하도다. 동상 509페지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에 무늬가 없다면 그것은 개나 고양이의 가죽과 다르지 않을것이며, 코뿔소의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려면 거기에 붉은색을 올려야만 한다. 이는 내용이란 형식을 필요로 한다는것을 보여준다. 동상 437페지   정리는 문학작품의 날실이며, 언어적표현은 씨실이다. 날실이 올바르게 배렬되여야 비로소 씨실이 제대로 오가면서 천을 짤수 있듯이, 정리가 확정된 다음에라야 비로소 문장이 류통해질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작품구성이 기본이 되는것이다. 동상 443페지   문학작품들 가운데 정화라 곱힐만한 명작들에는 은隱 과 秀가 있기마련이다. 은이란 글밖에 함축된 말밖의 뜻을 가리키며, 수란 작품안에서 가장 두드러진 말을 가리킨다. 은은 문면에 드러나지 않는 의미의 복잡함과 미묘함을 통해 그 섬세함을 획득하고, 수는 한 작품안에서 여타 다른 부분들과 비교되는 특출함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동상 551페지   은의 특징은 글밖에 뜻을 갖고있다는것이다. 그것은 마치 은밀한 음향이 옆에서 들려오는것과 같고, 숨겨진 문채가 어둠속에서 반짝이는것과 같은데 이는 효상의 변화가 호체안에 포함돼 있는것에 비유될수 있고, 흐르는 강물속에 주옥이 숨겨져있는것에 비유될수 있다. 즉 호체안에서 호상의 변화가 사상 (四象은 사물의 음, 양, 강, 유를 표시)을 이루고, 주옥은 강물속에 깊이 감추어져있기에 물결이 여러가지 변화를 일으키는것과 같다. 동상 553페지   작품속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물결을 수라고 한다. 그것은 민첩하고 교묘한 손이 아름다운 악곡을 연주하며 표일한 자태가 밖으로 드러나고, 또 먼산에 구름과 노을이 피여오르고, 미녀들이 예쁜 용모를 드러내는것에 비유될수 있다. 동상 555페지   자기자신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갈것, 그리고 제마음의 한가운데 던져진 과제를 순간에 완성할것, 오직 이것뿐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시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106페지   표현은 사상의 의복이며, 잘 어울리면 더욱 고상하게 보인다. 포우 [비판론] [세계명언대사전] 743페지   첫번째이자 가장 중요한것은 ... 위대한 구상능력이요, 두 번째는 강력하고도 열광적인 감정이요. 롱기누스 [숭고에 관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285페지     오직 한가지 주의점만 명심해 두어야 한다. 시인의 목표는 창작행위순간에, 즉 시의 기법자체에 의해서 판단되여야 한다. W.K.윔사트 C.비어즐리 [현대문학비평론] 29페지     기이성, 이것은 모든 아름다움의 필수불가결한 조미료이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기이하다..의도성이 없는 순진하고 무의식적인 약간의 기이성을 품고있고, 바로 그 기이성이 그것을 유난히도 아름답게 한다는것이다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50-51페지     시적 엄밀성이란 다름 아닌 새로운 언어관용, 새로운 낱말들, 비정상적인 은유들을 추구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몽롱하게 되는것이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 구조] 235페지     비평에 대하여     그들자신이 주목할만한 작품을 쓰지 못하는 이들의 비평엔 귀를 기울이지 말아라. 에즈라 파운드 [이미지즘] [시의 리해] 139페지   문학비평가들이란 모두 이 시적이미지의 예측불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명확한 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데, 바로 이 예측불가능이야 말로 통상적인 심리적설명안을 뒤엎어버리는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시적이미지의 현상학] [시의 리해] 293페지   문학사회학으로서의 문학비평은 그 대상에 눈이 멀어져서 오직 그것의 외적인 면만을 인지할뿐이요, 다루는 작품의 질에 대해서는 다루는 일이 행해지기도 전에 이미 그 범주들의 선택으로써 그 질의 판단을 포기해 버리는것이다. 한스 마그누스 엔 스버르거 [시와 정치] [시의 리해] 385페지   (브레히트 시 [바퀴갈기]를 례로들면서) 시는 정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 시는 정치가 그것을 마음대로 할수 없다는것을 모범적으로 말해주고있나니, 그것이 이 시의 정치적내용이다. (바퀴갈기 /브레히트 나는 길가의 비탈에 앉아있다/ 운전사가 바퀴를 갈아끼운다/나는 내가 떠나온 곳이 싫다/나는 내가 가고있는 곳이 싫다/어찌하여 나는 바퀴를 갈고있는것을/초조하게 보고있는가 ) 동상동명 390페지   시와 정치는 사물령역이 아니라 력사적과정인것이다. 하나는 언어를 매개물로 한 과정이요, 다른 하나는 권력을 매개물로 한 과정이다. 동상동명 391페지   상황에 따라서 어떤 텍스트도 그것이 (차라리) 관상물로 받아들여지는가 또는 (차라리) 전언으로 받아들여지는가에 따라 문학일수도 있고 문학이 아닐수도 있게 된다. 제라르 쥬네트 [구조주의와 문학비평] [현대문학비평론] 176페지   비평이 그의 구조주의적인 소명을 뚜렷이 드러내여 구조적인 방법을 확립하도록 요청되여있지 않는가하는것이다. 동상동명 129페지   비평이 전적인 독자성을 가질 때 그것은 존재리유를 잃어버린것이고, 그와 똑같이, 그것이 일상적언어에 예속될 때에 그것은 어떤 불모상태에 떨어질것이다. 츠베탕 토도로브 [어떻게 읽을것인가] [현대문학비평론] 247페지   우리 세기는 시학의 연구가 러시아형식주의 , 독일의 형태학파, 잉글로잭슨의 신비성, 프랑스의 구조적연구(나타난 순서로) 등등 몇몇 비평의 류파에 결부되여 새롭게 나타남을 보았다. 위의 비평의 류파들은 (그들사이의 차이가 어떠할지라도) 그것들의 텍스트의 의미를 규명하려는게 아니라 그 구성요소들을 묘사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일체의 다른 비평의 경향이 위치하고있는 차원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에 놓여있다. 츠베탕 토도로브 [어떻게 읽을것인가]   만약 문학연구가 과학이 되려고 한다면 방식을 그 유일한 주역인물로 인정해야 할것이다. 즉 문학적언술의 작용태를 묘사하는 개념들로써 이루어질것이다. -야콥슨 [현대문학비평론] 236페지   시학의 대상은 개별적인 작품들로서 보다는 훨씬 더 문학의 방식들, 새로운 텍스트는 그것을 산출한 조합률 자체를 변모시키며, 규칙들의 적용순서만을 변화시킬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성격마저 변화시키는것이다... 이에 대한 유일한 례외는 [대중문학]이라고 부르는것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그앞서 이미 발현되였던 그대로의 그들 장르에서 출발하여 전적으로 연역될수 있는것이다. 작품이 그것을 산출시키는 체계를 어떻게 변형시키는지를 묘사한 수단을 가지지 못함으로써 , 묘사는 모든 문학이 [대중문학]에 속한다고 암암리에 주장하는 셈이다... 실제에 있어서 한 시작품의 묘사는 텍스트의 체계를 공간적인 조직의 형태로써 나타내보이는 도해로 귀결되게 된다. 츠베탕 토도로브[어떻게 읽을것인가] [현대문학비평론] 240-241페지   상황을 변화시키는 모티브는 역동적모티브라 불리고, 변화시키지 않는 모티브들은 정태적모키브라 불린다. -토마체프스키 [현대문학비평론] 252페지   계몽주의 기본적인 선입견은 계몽주의 선입견자체에 반대하는 선입견인것이다. 이는 계몽주의가 지닌 힘으로부터 전통을 빼앗는것이다. 한스 게오르그 가다미 [진리와 방법] [현대문학비평론] 307페지   해석의 본질은 하나의 기호체계(줄여서 말하면 텍스트)로부터 눈에 보이는것 이상의것을 읽어내는것이다. E.D.허쉬 [해석학의 세차원] [현대문학비평론] 328페지   해석의 기준은 리론에서 나오는것이 아니며, 리론은 우리가 이미 선호하는 해석의 기준을 사후에 체계화시키는것이라고 본다. 동상동명 329페지   십삼년전 (1934년) 지난번의 대회에서 나는 거울의 단계라는 개념을 제기했다. 자끄라깡 [[나][Je]의 기능형체로서의 거울의 단계] [현대문학비평론] 349페지   어떤 천재의 출현은 늘 지배적인 규범을 깨뜨리고, 그때까지 종속되여있는 과정이나 진행에 힘을 부여하는 문학적혁명과도 같다. [현대문학비평론]주해 446페지   문학사회학에 관한 흥미가 정당화될수 있는 중요한 방식에는 두가지가 있다. 정당화의 첫번째 형태는 (이 말의 형식론적의미에서) 이얼리스트의 그것이다... 둘째 형태는 실용주의자의 그것이다... 사회적인 요인을 강조하는것은 특수한 정치립장에서는 유용하며 소망스러운것이다... 사회산물이라는것은 너무나 태평스럽게 광범위한 범주로 보인다. ‘경제산물’이란것이 꼼짝 못하게 협착한 범주이듯이 말이다. 테리 이글턴 [문학사회학: 두접근] [현대문학비평론] 596페지   ‘사회학적’비평가는 력사와 문학 량쪽 모두에 대해서 실용주의자가 될수 있고, 력사에 대해서는 리얼리스트이지만 문학에 관해서는 실용주의자가 될수 있고, 량쪽 모두에 대해서는 리얼리스트가 될수 있다. 동상동명 597페지   정치를 위해 인식론을 포기한다는것은 소망스럽지 못한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 정치적관심자의 진술은 언제나 은밀한 현실리론이다. 동상동명 598페지   20세기 유럽시로 통하는 안락한 길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수수께끼와 모호함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생산적이다. 후기 릴케와 크라클에서 코트프리트 벤에 이르는 독일시인들 , 아폴리네르에서 생종페르스에 이르는 프랑스시인들, 가르시아 로르까에서 기엔에 이르는 스페인 시인들, 팔라체스키에서 운가레티에 이르는 이딸리아의 시인들, 예이츠에서 엘리엇까지 이르는 영국시인들, 이들의 작품의 중요성은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27페지   19세기전환기에 이르기까지, 부분적으로 그후에 이르기까지 문학은 사회의 공명상자였으며, 일정한 소재나 상황에 대한 리념적인 형성, 그리고 악마적인것을 표현함으로써 얻게 되는 효과적인 안으로서 기대되였다. 동상 33페지   시는 여타 문학과 반대립장을 취하면서 준엄한 상상력, 무의식으로 확대된 내면성 그리고 공허한 초월성과의 유희가 부여해주었던 모든것을 무제한으로 가차없이 말하는 자유를 자기것으로 하였다. 동상 34페지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에서 간행된 현대시에 관한 글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핵심어들을 추려볼수 있다... 방향성상실, 익숙함의 해체, 상실된 질서, 불일치, 파편주의, 전도가능성, 라렬문체, 탈시화 (脫詩化)된 시, 파괴의 섬광, 단절적인 형상, 야수적인 돌발성, 탈구, 나시적관점, 낯설기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스페인시인(다마소알롱소)의 명제인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예술을 부정적인 개념들로써 명명하는것외에는 달리 다른 보조적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1932년에 씌여진것인데 1955년에도 변함없이 적합한 견해로서 반복될수 있었다. 동상 36페지     그로데스크는 미술용어중의 하나였으며... 이제는 모든 령역에 걸쳐 기괴한것, 익살스러운것, 뒤틀린것, 그리고 비범한것을 포괄하게 되었다. 동상 49페지   불협화의 미, 심정을 시의 주제로부터 배제시킴, 비규범적의식상태, 공허한 리상성, 탈사물화, 언어의 마술적인 힘과 절대적인 상상력에서 생겨나서 수확의 추상성과 음악의 곡선에 접근하고있는 비밀성, 이것들에 의해서 보들레르는 미래의 시에서 실현될 가능성을 예비하였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79페지   좀 기형이 아닌것은 잘 감지되지 않는것 같다. 이로 인하여 파격성, 다시말해 예상밖의 현상이 주는 놀라움은 아름다움의 특징이자 본질적인 부분이 되는것이다.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51페지   천재성이란 표현을 위해서 남성적인 강력한 기관을 갖춘, 확실하게 형성된 어린시절에 지나지 않는다. 동상 70페지   인간은 신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자 곧 불가항력적인 도덕률에 의해서, 그는 현재의 자기본성보다는 낮은 곳으로 추락했다. 동상 80페지   모든 인간에게는 신에 대한 기원과 악마에 대한 기원이 동시에 존재하고있다. 신에 대한 기원(또는 정신성)은 상승하려는 욕망이고, 악마에 대한 기원(또는 동물성)은 하강하는 즐거움이다. 여자에 대한 사랑과 개와 고양이같은 짐승과의 은밀한 대화는 바로 이 악마에 대한 기원에 귀속시켜야 한다. 동상 82페지   삶은 모든 환자들이 침대를 바꾸고싶은 욕망에 사로잡혀있는 병원이다. 동상 87페지   초현실주의자들의 직접적선구자는 아폴리네르이다. 초현실주의자라는것도 그에서 유래한것이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251페지   다양한 시대의 절충주의는 항상 자기가 옛날의 학설들보다 훌륭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런 공평한 태도는 절충주의자의 무능력을 입증한다. 그렇게 광범위한 사고의 시간을 갖는 사람들은 온전한 인간들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열정이 결여되여있다. 인간의 주의력은 편협할수록 그리고 관찰의 령역을 스스로 한정시킬수록 더 강렬하다는것을 절충주의자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131페지   존재하는것을 재현하는것은 쓸모 없고 지겨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실적인 천박함보다는 내 환상의 괴물들을 더 좋아한다. 동상 146페지   비평가가 시인이 된다는것은 엄청난 일이겠지만, 한 시인이 자기안에 어떤 비평가를 갖지 않는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동상 151페지     짧게 요약하면 유머는 비개연성을 고안하고 분리된 시간과 사물들을 강제로 결합시키고 모든 생존하는것을 낯설게 함으로써 현실을 파괴한다. 유머는 하늘을 찢고 공허의 바다를 보여준다. 유머는 인간과 세계사이의 불일치며 비존재자(존재하지 않는것들)의 왕이다. 우리는 그것이 현대시의 한 변이체에 다름아님을 보게 된다.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구조] 256페지   진실이니 본질이니 하는 미명으로 시인을 비난하는 평가를 믿지 말아야 한다. 실상 그가 행하는바는 모두 하나의 시파를 거부하려는것이다. 로만 야콥슨 [시란 무엇인가] [현대시리론] 8페지   우리가 표방하려는것은 (실생활 또는 사회와) 예술의 분리론이 아니라 미적기능의 자율성이다. 동상동명 17페지   진실성의 문제는 미적기능이 우세한 시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동상동명 48페지   문장의 사상과 감정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여섯가지 사항에 대해 검토해 보아야만 한다. 그 여섯가지란 첫째 작품의 전체의 안배를 볼것, 둘째 문장이나 말의 배치를 볼것, 셋째는 작품에서 전통과 계승과 새로운 변화의 추구를 볼것, 넷째는 표현상의 정아함과 기이함을 살필것, 다섯째는 사류의 응용에 대해 살필것, 여섯째는 성률을 살필것. 류협 [문심조룡] 693페지   문학에는 황소밖에 없다. 가장 큰 황소가 천재들이다. -즉 지치지 않고 하루에 18시간을 애쓰는 자들이다. J. 르나르 [일기] [세계명언 대사전] 743페지   그의 질서는 무질서가 되고 그의 무질서는 어떤 질선가를 갖게 될것이요. 롱기누스 [숭고에 관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331페지   위대한 재능들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위대성 때문에 늘 위험에 처해있는것이요... 위대한 탁월성이야 말로 설사 그것들이 작품전체에 걸쳐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제나 상을 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동상동명 361페지   시대의 소동 한 가운데서 자기존재의 저 깊은곳에 있는 고독속으로까지 귀를 기울이려는 최초의 노력이후로, 현대시가 존재하고 있는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현대시] [시의 리해] 316페지   사물들의 신비는 그의 내부에서 그자신의 심오한 감각들과 융해되여, 마치 그자신이 동경이나 한것처럼, 그에게 알려집니다. 이런 내밀한 고백의 풍성한 언어는 아름다움입니다. 동상동명 318페지   사실주의가 자연주의에서 퇴조하고 나자... 사람들은 슬며시 사물에 대하여 말하는 대신에 사물들을 가지고 말하기 즉 [주관적]으로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간은 이전에 회적인 환경을 관찰할수 있었던것처럼 이제는 자신의 령혼을 관찰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고트 프리트 벤 [서정시의 제문제] [시의 리해] 320페지   기본적인 원칙으로서 [처럼]이 항상 지니고있는 소설적인 요소, 신문의 문예란적 요소가 서정시로 끼여든다는 사실, 언어의 긴장감이 이완되고 창조적인 변형이 약하다는 사실에 주목할수 있습니다. 동상동명 333페지   정결한 톤이란 어떤 세속적인 극복도 아닌 , 오히려 세속적인 앞에서의 도주입니다. 동상동명 334페지   [... 그리하여 옹색한 시대에, 시인의 사명은 무엇인가?] 여기서 시대라함은 우리자신이 아직도 매여있는 시대, 바꿔말하면 세계라는 때를 말한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나타났다가 희생이 되어 죽음으로써 신들이 지배하던 시대는 막을 내린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것이다. [삼위일체]를 이루고있던 헤라클레스, 디오니소스, 그리스도가 세계를 떠난뒤부터 세계라는 때는 땅거미가 짙어 밤으로 기울고있다. 세계의 밤은 어둠이 짙어간다... 신의 부재 신의 결여라고 이름 지을수 있다. 마틴 하이데거 [시인의 사명은 무엇인가?] [시의 리해] 341페지   세계의 밤이라는 옹색한 시대는 오래 걸린다. 동상동명 343페지   만일 신이나 다름 없는 이 한가닥 숨결이 우리 몸에 와닿지 않았던들, 아니 신비한 가락모양 우리 입술에 닿지 않았던들, 우리는 누구라고 가릴것 없이, 이제는 숲속에서 헤매고있는 짐승과 무엇이 다를바가 있겠는가 동상동명 351페지   선각자란 미래로 앞질러 들어가는 자가 아니다. 미래에서 찾아드는것이다. 그리하여 선각자의 말이 미래에서 찾아들 때라야만 진정 미래라는 시대는 제대로 현재에서 살게 된다... 선각자는 후세사람들이 따라 잡을수 없는 노릇이다. 마찬가지로 선각자는 불만의 존재이다. 동상동명 354페지   상상적차원에서 관념적차원으로의 이행은 항상 일종의 비약으로 이룩된다. 싸르트르 세계사상대전집(50) 302페지   상(象)은 언제나 하나의 사물이다. 싸르트르 세계사상 대전집(50) 305페지.     참고서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외. 한국문예출판사 현대시구조; 후고 프리드리히. (주)도서출판사 한길사 현대문학비평론; 김용권, 유종호, 이상옥 외 공역. 한신문화사 시의 리해; 정현종, 김주연, 유평근 편저. 민음사 현대시의 리론; 로만야콥슨 외. 지식산업사. 꿈꾸는 알바트로스; 보들레르 잠언집. 동아출판사. 상상심리학; 싸르트르. 중국 광명일보출판사 쇼펜하우어 훗살; 세계사상대전집(17). 대양서적 세계사상 대전집 (50) 대양서적 현대인 교양전서 (30) 금성출판사 현대인 교양전서 (29) 금성출판사 세계명언대사전;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비닐쓰레기로 지구는 체증에 걸리다... 댓글:  조회:2982  추천:0  2017-11-18
환경 오염의 주범 '플라스틱' 먹어치우는 생명체가 발견됐다 (ZOGLO) 2017년11월17일  gettyimagesKorea   지구가 병들어 가고 있다.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을 먹어치우며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해줄 생명체가 발견돼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5일(현지 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Mariana Trench)에서 발견된 플라스틱을 먹는 심해 생물에 대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영국 뉴캐슬 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마리아나 해구 근처의 수심 7마일(약 11km) 지점에서 학계에 보고된 적 없는 특이 생명체를 발견했다.   (좌) Alan Jamieson, (우) gettyimagesBank   해당 생물은 새우, 게 등과 유사한 갑각류의 일종으로 배 속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연구에 따르면 이 생물은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을 주식으로 먹는데 나일론, 폴리에틸렌, 폴리 비닐, 심지어 PVC 성분까지 섭취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뉴캐슬 대학 알란 자미에슨(Alan Jamieson)은 "플라스틱을 먹는 생물은 처음 발견됐다"라며 "실험 결과 플라스틱의 주성분을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심해에 서식하는 탓에 먹이가 부족한 환경에 맞게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Martin Harvey   연구진은 해당 생물을 환경오염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로 보고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더해 쿤밍생물학연구소와 세계농임업센터는 공동 연구를 통해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곰팡이균 '아스퍼길루스 투빈젠시스(Aspergillus tubingensis)'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렇듯 플라스틱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편, 최근 미국에서 시중 판매되는 소금 제품에서 미세 플라스틱 성분이 검출돼 논란이 일 만큼 환경 오염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인사이트
4    [고향의 력사] - "연집"이냐... "연길"이냐... 댓글:  조회:2818  추천:0  2017-11-18
연집강과 연길(허성운) 2017년 11월 16일 작성자: netizin-1 지금까지 연길지명을 두고 많은 국내외 학자들은 나름대로 의미를 풀어내고 그 안에 담긴 뒷이야기를 적어왔었다. 하지만 연길지명에는 사람을 경악케 하는 섬뜩한 이미지가 음밀하게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본어로 연길을 음역하면 엔기쯔로 발음되나 훈독하면 노부요시로 발음된다. 여기서 말하는 노부요시라는 단어는 옛날에 보검을 만드는 일본장인 이름으로서 그가 만든 류몬노부요시라는 보검은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노부요시라는 언어에는 무사가 기를 칼끝에 응집시켜 그 기가 검을 타고 밖으로 뻗어 나오게 되여 예리한 칼날이라는 숨은 뜻이 배여 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광복 전에 룡정에 별명이 노부요시라는 한 일본 경찰서 서장이 있었는데 늘 자신의 군도가 노부요시 보검처럼 단단하고 예리하여 대적할 적수가 없다고 자랑하며 다녔기에 그 별명이 붙여졌다. 1945년 가을 쏘련군에게 잡혔다가 구치소에서 남모래 뛰쳐나온 경찰서장은 집으로 돌아와 어린 딸을 총으로 쏴 죽인 후 주택에다가 불을 지른 후 군도로 할복하여 자살하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그가 놓은 불은 이튼 날에 가서야 겨우 진화되었다.   그럼 이런 일본 검의 섬뜩한 그림자는 어떻게 되여 연길지명에 비껴졌을까. 역사를 거슬러 연길지명을 꼼꼼히 캐고 보면 1900년 로씨아가 만주에 침입하여 중국동북지구를 짓밟고 1901년 일본을 비롯한 열강 세력이 청 정부를 압박하여 신축조약을 체결한 뒤 이듬해 10월 26일 청 정부가 연집강(煙集崗)에 연길청(延吉廳)을 세우면서 연길이란 지명이 등장한다. 연집(煙集)이라는 한자음의 소리를 바탕으로 연길(延吉)이라는 문자로 고치여 표기한 것이다. 그리고 연길이라는 지명이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09년 연길청을 연길부로 고치고 1912년 연길현으로 개명한 후에 여러 력사 기록에 대량으로 나타난다. 연자(延字)가 ,길자(吉字)가 ,연희(延喜)정, 연평(延平)교 등 연길의 주요 거리 다리 건축물 이름도 일본인들의 속셈에 따라 연길지명에 초점을 맞추어 표기되어 있다.   사실 연길의 최초의 지명을 따지고 보면 개척초기에 화전민들이 화전 밭을 일구면서 연기와 안개가 자오록이 덮여 있었다는 의미로 연집강(煙集崗)이란 땅 이름이 기원되어 있는데 그 후 사용한 연길지명과 뒤섞이면서 화전민의 력사는 운무 속에 가리어 오늘날까지도 이렇다 할 력사기록 한줄 남기지 못한 채로 세월의 비바람 속에 씻기여 사라지어 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예로부터 연집강 구역은 뒤로 깃대봉을 사이에 두고 두 평풍(병풍의 방언)산이 둘레를 감싸고 바람을 막아주는데다가 그 안에 경사도가 완만한 구릉지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그야말로 천혜의 화전적지로 손꼽힌다. 완만한 경사지를 따라 개척초기에는 땅막집들이 감자처럼 여기저기에 박혀있고 그 사이로 석인골 태암 등지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이 남계마을 부근에서 연집강을 이루며 굽이굽이 휘돌아 남으로 부르하퉁하에 흘러든다. 경사진 화전 밭은 한쪽 발을 아래로 펴 딛고 한쪽 발은 구부려 허리를 펴고 일하는 모양이 되어 일 하는데 덜 피로 할뿐만 아니라 땅의 경사도에 따라 화전 불길이 세어지거나 약하게 조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말 뾰죽산아래 안방마을이라는 옛 동네에는 불붙이고래 라고 부르는 지명이 있었는데 최씨 성을 가진 사람이 화전을 하다가 산불을 내여 그 불이 평풍산을 타고 타올라 몇 십리까지 불길이 번진 적이 있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마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화전을 할 때 습기가 있는 눅눅한 날 밤을 골라 불꾸러미를 만들어 불을 지른다. 밤바람이 산 정상에서 아래로 불기 때문에 그리고 날이 어두워야 날아오르는 불티가 보이여 불길을 공제하기가 쉽다고 한다. 불을 생솔가지로 두드려서 막는데 밭 절반 넘어 불이 내려가면 밑에서 위로 맞불을 놓아 불이 잘 타오르게 하고 두 불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저절로 불이 꺼지게 하였다.   연집강 구역은 화전민의 삶의 문화가 무르녹아 흐르던 곳이다. 이 지역의 숫둘고래 부싯돌밭 삼밭고래와 같은 명칭들은 지난세기까지 해도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널리 알리어졌던 땅 이름들이다.   그 옛날 화전민은 떠돌이 삶을 살면서 약초도 캐고 짐승도 잡았다. 이 지역 황초고래 방초고래 같은 지명은 오래전부터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생겨난 명칭들이다. 연집강 구역은 두만강 강변과는 달리 생산된 작물을 회령 종성 온성으로 옮기는데 시간과 비용 그리고 위험이 따르기에 아예 산 여불때기(함경도 방언 비탈진 산기슭)밭 가장자리에 감자 움 같은 굴을 깊이 파서 저장하였고 겨울철에는 잡은 곰 가족을 벗겨 옷을 해 입고 곰처럼 구새 먹은 통나무 속에 들어가 잠을 자기도 하였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연무가 자오록이 뒤덮여 있는 연집강 지명에는 혹독한 세상과 맞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옛 선인들의 꺼지지 않는 삶의 불씨가 깜빡이고 빨갛게 연분홍 천지꽃이 물드는 산언저리에 안녕을 기원하던 화전민의 그 순박한 눈동자가 어리여 있다.   만일 석인골에 묻혀있던 돌사람이 입이 달려서 엉키고 설키여 있는 연길지명을 묻는다면 과연 어떤 답이 나올까. 하지만 석인골 있던 그 돌사람도 반세기 전에 어디론가 가뭇없이 사라지어 행적조차 묘연하니 연길지명 속에 감추어진 그 정체는 언제가야 사람들 앞에 드러날까.   화전민들의 파란만장한 력사가 아로새겨진 연집지명이 일제 침략자의 칼자루에 휘둘리어 연길지명으로 뜯어 고쳐지는 과정은 서글픈 우리 과거사가 숨겨져 있는것이다. ///연변일보 2017.11.8
3    [고향의 자랑] - 중국 "연변 브랜드" = 중국조선족농악무 댓글:  조회:2955  추천:0  2017-11-18
연변식 광장무가 주는 계시(박영일) 2017년 11월 16일 작성자: netizin-1 얼마 전 연길시 TV에서 연룡도광장무 경연을 보게 되었다. 통일된 복장과 경쾌한 음악, 잘 정리되여 있는 프로그램, 어느 하나 나무랄 때 없는 완벽한 예술경연을 보는 느낌이였다. 특히 정부 주도로 그 규모 또한 작지 않아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각 나라와 도시는 각각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중국도 마찬가지로 특색적인 사회주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색적인 춤의 향연을 거리와 광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광장무라고 불리는 단체춤 문화가 그 중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아줌마들이 중심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단체로 춤을 추는데 일종의 체육활동과 유사하다는 특징을 지녔다. 이 광장무는 광장건강댄스 또는 광장류행무용이라고도 하는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쉽게 따라서 출 수 있는 것에 그 묘미가 있다. 동반하는 음악 또한 재미있으면서도 누구나 따라서 부르기 쉽고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경쾌하고 빠른 리듬을 지닌 류행가요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체적으로 강한 전파력과 흥취를 유발하는 중독성을 지녔다는 특성이 있다. 거기에 중국국가체육총국이 주도로 12가지 건강체조댄스를 전국적으로 보급하고 있다는 점도 광장무 보급에 큰 작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남사범대학의 황용군(黄勇軍) 교수는 이러한 광장무에 대한 현상을 문화대혁명 시절 홍위병과 같이 집단행동을 중시하던 사회풍토 속에서 살아온 세대들이 광장무를 추면서 집단 속에서의 안정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존재감을 다시금 발견하면서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에 류행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충분히 타당성이 있는 분석으로 이해된다. 물론 또 다른 분석으로 이른 시기 북쪽의 앙가무용, 남쪽의 태극권과 같은 무술과 기공을 기초로 한 광장문화의 한 변형으로 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도 광장무의 특징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집단 춤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함께 담아낸다는 특색이 있다. 또한 광장이라는 개방된 공간을 통해서 사람들이 한데 모이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연길 TV에서의 광장무 경연에서 보이는 특징은 중국 다른 지역에서 보아왔던 광장무와 엄연한 차이점들이 눈에 띈다. TV나 길가에서 보던 중국식 광장무는 가장 간단하고 익숙된 음악에 아마추어적인 에오로빅 정서의 무용동작과 군중건강체조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런데 이번 광장무는 정갈하고 딱맞는 옷을 걸친 것처럼 짜임새가 있었다. 그럴수록 기존의 광장무처럼 대중들한테  인간미 넘치고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는 자연스러움이 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성적위주, 순위위주의 각 단위별 경쟁을 유도하다보니 광장무에 전문적인 예술성과 테크닉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러한 상황들은 광장무의 보급과 전파 및 유행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광장무의 원조는 군중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집체무용의 한 형태였다. 또한 류행적인 요소와 민족적인 특색이 있는 다원화적인 무용형식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자발성으로 진행되는 모습이 광장무의  정체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고 광장무가 전문화되고 고급예술로 발전하는 모습에 대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기도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  이러한 난제를 타개하기 위해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고 보다 전문적인 광장무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정부주도의 광장무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어떨가 제안한다. 즉 아마추어 전략과 프로화 전략을 이분화하여 서로 공존하는 광장무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지금의 순위위주로 참여하는 방식은 자제하되 광장무 전문가는  육성할 필요가 있다.  연길시는 2004년부터 가두를 단위로 한 광장무콩클을 실시하고 있다.  단지 군중예술관과 가두 등 기관 중심으로 한정한 광장무 보급에는 한계가 있다.   연변의 광장무는 일부 지역사회의 광장무가 아닌 연변전체의 광장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자발적인 흥(兴)을 가지고 참가하는 동네 아줌마들, 우리네 아줌마들의 광장무가 되어야 한다. 기관주도의 광장무 보급을 지속하는 동시에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자발성을 잃게 되면 광장무의 특성을 잃게 된다. 자발성을 지키고 프로화를 통해서 고급화를 이루는 전략을 짜야한다. 아마추어 대회와 프로 대회를 따로 개최하고 평가기준도 서로 다르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연변의 특수성이 결합한 광장무의 프로화가 필요하다. 연변은 여러 소수민족과 한족이 융합되여 사는 조선족 자치주이다.  게다가 조선족 문화에 대한 배려와 존중하는 문화가 잘 발달한 곳이다.기존의 광장무에 조선족풍미가 첨가된다면 보다 다원화적인 광장무가 될 것이고, 무용전문가들에 의해 잘 다듬어져 대중들에게 보급된다면 문화적으로 더욱 융성하는 연변의 거리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연변 각 거리에 울려퍼지는 광장무 효과는  ‘연변 브랜드’를 더욱 가치있게 만들게 될것이다. 정부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콩클 등 다양한 수단으로 광장무의 보급과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따라서 각 기관 단체들은 광장무 전문가들의 양성과 아울러 우리만의 대중화된 광장무의 창작과 보급을 위한 전문팀을 꾸리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기존의 자발적인 광장무의 색채를 잃지 않도록 아마추어 광장무군체를 함께 양성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연변일보 2017.11.14
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사자들아, 나와 놀쟈... 댓글:  조회:3672  추천:0  2017-11-18
새끼한테 잔등 뜯기우면서도 야성 키우는 사자엄마 [ 2017년 11월 17일 ]     2017년 외신 보도에 따르면 케냐 마사이마라국립공원에 있는 새끼사자들은 어미를 미친뜻 물어뜯지만 어미는 야성을 키우려는 욕심에 아픔을 간신히 참아내야만 했다. 이런 일이 매일 발생하지만 어미사자는 자신의 육체로 새끼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모성애가 아닐 수 없었다. ///봉황넷                      
1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애먼"?... 댓글:  조회:3338  추천:0  2017-11-18
"애먼" ㅡ "일의 결과가 다른 데로 돌아가 억울하거나 엉뚱하게 느껴지는"이라는 뜻의 관형사가  '애먼'입니다. 애먼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다, 애먼 짓 하지 마라, 해야 할 일은 제쳐 놓고 애먼 일을 붙들고 있다처럼 씁니다. 흔히 '엄한 데 와서 왜 그래?', '어만 사람 잡지 마.'라고 쓰는 경우가 많은데 '애먼 데 와서 왜 그래?', '애먼 사람 잡지 마.'라고 쓰는 것이 바른 표현입니다. 비슷한 낱말로 애매하다가 있습니다.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아 억울하다."는 뜻의 그림씨(형용사)입니다. 괜스레 엉뚱한 사람 꾀서 애매하게 만들지 마라처럼 씁니다. 애매하다의 준말이 앰하다입니다. FTA가 미국이 애먼 더 와서, 애먼 사람 붙들고, 애먼 짓을 하다, 애먼 사람 잡는 앰한 짓이 아니기만 빌고 빕니다. 우리말123         ['봄볕이'는 [봄뼈치]로 발음]   어제 날씨가 참 좋았죠? 오늘도 좋을 것이고... 어제는 대전에 가서 코에 바람을 좀 넣고 왔습니다. 저절로 봄기운이 느껴지더군요. 봄볕이 참 포근하죠?   위에 나온, '봄볕이'를 어떻게 발음할까요? [봄벼시], [봄벼치], [봄벼티]... [봄뼈시], [봄뼈치], [봄뼈티]...   표준 발음법 17항에 보면, 받침 'ㄷ, ㅌ(ㄾ)'이 조사나 접미사의 모음 'ㅣ'와 결합하는 경우에는, [ㅈ, ㅊ]으로 바뀌어서 뒤 음절 첫소리로 옮겨 발음한다. 곧이듣다[고지듣따] 굳이[구지] 미닫이[미다지] 땀받이[땀바지] 밭이[바치] 벼훑이[벼훌치] 라고 나와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자음 'ㅌ'이 'ㅊ'으로 소리가 나는 경우는, 'ㅌ'뒤에 'ㅣ'모음이 올 때입니다. 'ㅣ' 이외의 자음이나 모음이 오면 있는 그대로 발음하거나 연음합니다.   따라서,   '봄볕이'는 [봄뼈치]로 발음하고,('ㅌ'뒤에 'ㅣ'모음이 올 때만 'ㅊ'으로 발음) '봄볕은'은 [봄뼈튼]으로, '봄볕을'은 [봄뼈틀]로 발음합니다.   참고로, '봄볕'은 [봄뼏]으로 발음하고, '봄볕만'은 [봄뼌만]으로 발음합니다.       =========================== 맞추다는 "서로 떨어져 있는 부분을 제자리에 맞게 대어 붙이다."는 뜻이고, 맞히다는 "문제에 대한 답이 틀리지 아니하다"는 '맞다'의 사동사입니다. 이렇게 쉽게 가를 수 있는데도 가끔은 헷갈립니다. 더 쉽게는, '맞추다'는 "대상끼리 서로 비교한다"는 뜻이 있고, '맞히다'는 "문제의 답을 정확하게 고르다"를 뜻입니다. 그래서 조각을 맞추고, 시험이 끝난 뒤 친구와 답을 맞추고, 장부와 맞추고, 보조를 맞추고, 시간을 맞추고, 노래에 맞춰 가야금을 타고, 비위를 맞추고, 입을 맞추는 겁니다. 당연히, 정답을 맞히고, 수수께끼를 맞히고, 사진에 보이는 나무의 종류를 맞히는 겁니다.   우리말123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편지입니다.     [등, 겸, 따위 띄어쓰기]   날씨가 건조해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산불이 많이 났네요. 산불로 잃어버리기는 쉬워도, 가꾸기는 힘든 게 바로 우리 산이고 숲입니다. 산불로 식물이 타는 것을 보면 제 마음도 새까맣게 타들어갑니다.   오늘은 푸른 산을 생각하며 바탕색을 초록으로 만들어봤습니다.   오늘도 띄어쓰기 원칙을 먼저 짚고 넘어가죠.   우리말은 낱말별로 띄어 씁니다. 품사(동사, 명사, 형용사 따위)도 낱말로 보고 띄어쓰되, 조사만 붙여 씁니다. 한 낱말인지 아닌지는 사전에 올라 있으면 낱말이고 그렇지 않으면 한 낱말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글 맞춤법 제45항에 보면, '두 말을 이어 주거나 열거할 적에 쓰이는 말들은 띄어 쓴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장 겸 과장, 청군 대 백군, 이사장 및 이사들, 사과·배·귤 등'처럼 씁니다. 곧, '겸, 대, 및, 등, 따위'와 같이 열거할 때 쓰는 말은 앞말과 띄어 씁니다.   이 내용을 앞에서 말씀드린 품사도 낱말로 보고 띄어쓴다는 원칙에 맞춰서 기억하셔도 됩니다. '및'은 부사고, '겸, 등' 따위는 의존명사입니다. 당연히 띄어써야죠.   흔히 하는 실수로, '사과, 배등이 많이 있다.'처럼 '등'을 앞말과 붙여 쓰면, 배 형태를 닮은 등(燈)이라는 말이 됩니다. '사과, 배 등이 많이 있다.'처럼 '등'을 앞말과 띄어 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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