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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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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재밋는 자연동물세계... 댓글:  조회:4583  추천:0  2018-01-09
흰꼬리수리 부부, 흰죽지 괴롭혀 사냥에 성공했는데.. 2018.01.09.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애니멀피플]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잠수 전문 흰죽지, 날면 살고 잠수하면 '밥' 돼 물속서 기진맥진한 흰죽지 끌어내는 데 성공 [한겨레]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흰꼬리수리의 늠름한 모습. 해마다 경기도 팔당호를 찾아오는 터줏대감 흰꼬리수리 부부가 있다. 이들은 팔당의 환경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사람보다 정확하게 자연현상을 이해한다. 날카로운 발톱만이 삶의 방편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흰꼬리수리가 팔당에 모습을 드러낸다.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내려간 팔당의 아침이다. 흰꼬리수리는 잠수성 오리인 흰죽지, 흰비오리, 흰뺨오리, 댕기흰죽지와 수면성 오리인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알락오리 등을 사냥하고 물 위에 뜬 물고기를 건져가는 모습도 종종 관찰할 수 있다. 미사대교와 팔당댐 사이 10㎞ 구간에 걸쳐 사냥하기 때문에 어디 있는지 예측하기가 곤란하다. 사냥하는 모습을 관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흰꼬리수리는 암컷(오른쪽)이 수컷보다 크다. 부부가 이른 아침 사냥감을 물색하고 있다. 맹추위에 부리에서 입김이 피어오른다. 흰꼬리수리 수컷이 먼저 사냥에 나선다. 사냥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해도 팔당은 역광, 아지랑이, 물로 인한 빛 산란, 물안개가 잦으며 거리가 멀고 유난히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곳이기도 해 촬영하기에 최악의 환경이다. 매서운 추위도 한몫을 했다. 이 모든 조건을 고려해 흰꼬리수리의 생태를 세밀하게 관찰하며 촬영에 임했다. 지난 12월 26일 흰꼬리수리 부부가 잠수성 오리인 흰죽지를 사냥하는 모습을 마침내 관찰할 수 있었다. 사진을 얻는 데 4년이란 시간이 걸렸기에 만족스럽진 않지만 다행이었다. 물 위에 모여있는 잠수성 오리인 흰죽지, 흰꼬리수리의 사냥감으로 많이 희생된다. 사냥에 나서는 흰꼬리수리 부부. 흰꼬리수리는 사냥 전 오리들이 무방비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곤 무리에 갑작스럽게 달려든다. 오리들은 몹시 놀라 겁에 질려 사방으로 흩어져 정신없이 날아간다. 잠수성 오리들 가운데는 다급한 마음에 본능적으로 물속으로 잠수해 몸을 숨기려는 개체가 있다. 바로 이 순간이 죽느냐 사느냐를 갈라놓는다. 잠수한 오리는 흰꼬리수리의 표적이 된다. 흰꼬리수리를 피해 물속으로 잠수했던 흰죽지가 고개를 내민다. 흰꼬리수리 부부의 협력 사냥에 흰죽지가 재빠르게 물속으로 잠수한다. 흰꼬리수리는 암수가 서로 힘을 합쳐 사냥한다. 오리가 물속에서 나와 도망갈 길을 앞서 차단하거나 사냥감 위에서 정지비행을 해 물속에서 나올 수조차 없게 한다. 오리가 얼굴을 내밀면 흰꼬리수리가 즉시 급하강해 놀란 오리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도록 반복한다. 사냥감은 흰꼬리수리 부부의 치밀한 전략 앞에 오도가도 못하고,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떨어진다. 흰꼬리수리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냥감을 움켜쥔다. 흰죽지는 흰꼬리수리 부부의 추적에 지쳐 결국 고개를 내민다. 순간적으로 사냥 동작 자세를 한 흰꼬리수리가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 흰죽지를 향해 쏜살같이 급강하하는 흰꼬리수리. 흰꼬리수리의 몸 전체가 세차게 물속으로 파고든다. 쫓고 쫓기는 가혹한 살육 현장이지만 삶을 위한 투쟁이요 자연의 질서이니 어쩌랴. 흰꼬리수리는 오리류를 사냥할 때 채가기보다는 건져낸다. 사냥감이 흰꼬리수리에게 굴복하지 않고 죽기 살기로 저항하기 때문에 바로 채가기가 힘들다. 물속에서 죽을 힘을 다해 몸부림치는 사냥감을 건져내는 일은 쉽지 않다. 사냥감이 완강히 버틸 때는 흰꼬리수리도 물속으로 끌려들어가 몸이 물에 거의 잠기기도 한다. 흰죽지가 버티다 힘이 빠졌다. 그때를 기다리던 흰꼬리수리가 잽싸게 낚아채 올라온다. 흰꼬리수리는 흰죽지의 목을 정확히 움켜쥐었다. 흰꼬리수리는 물속에서 사냥감을 바짝 조여 쥐고서 수면 위로 날개를 펼쳐 물에 몸을 맡긴다. 부력에 의해 흰꼬리수리는 물 위에 뜨게 되고, 숨을 고른 다음 힘들이지 않고 물가로 헤엄을 쳐 끌어내거나 사냥감의 저항을 이용해 솟구쳐 날아올라 물 밖으로 끌어낸다. 사냥감의 목을 바로 움켜쥐었을 땐 쉽게 건져내는 경우도 있다. 흰꼬리수리가 흰죽지를 바라보며 사냥에 성공해 만족한 얼굴이다. 사냥한 흰죽지를 다듬어 먹기 위해 바위로 옮기는 흰꼬리수리. 흰꼬리수리는 사냥감을 손질하고 먹기 위해 적당한 장소나 가까운 바위에 안정적인 자리를 마련한다. 사냥감을 잡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와중에 사냥감은 죽음의 문턱에서 공포에 질려 발버둥치며 오로지 살길만을 생각한다. 흰꼬리수리도 사냥이 끝났다고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단숨에 죽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틈만 있으면 사냥감이 탈출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흰죽지는 목숨이 붙어있는 한 흰꼬리수리의 발톱에서 빠져나갈 생각만 하고 있다. 바위는 사냥감을 손질하기에 제격이다. 흰꼬리수리 부부는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변을 경계해야 한다. 치밀한 사냥이라도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먹이를 강탈하기 위해 노리고 있던 주변의 참수리나 흰꼬리수리들이 쏜살같이 나타날 수 있다. 방어자세를 취할 때 사냥감이 탈출하거나 잡은 사냥감을 강탈 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발버둥치는 흰죽지. 주변을 경계하는 흰꼬리수리. 사냥감을 노리는 적들이 많아 언제나 불안하다. 흰꼬리수리 부부가 협공할 때는 10분 이내에 사냥이 끝나지만 혼자 사냥할 때는 15분 이상이 걸려 힘을 모두 소진할 정도로 쉽지 않다. 맹렬한 공격보다는 지속적으로 사냥감을 몰아 물속에서 지치게 하여 기회를 포착하기 때문이다. 맹금류는 암컷보다 수컷이 다소 작고 날렵해 빠르고 날쌔다. 수컷이 주로 사냥을 마무리한다. 흰꼬리수리는 적절한 바위 터를 고르는 데도 신경을 쓴다. 쥐었던 목을 놓고 사냥감 흰죽지를 먹기 위해 준비하는 흰꼬리수리. 흰죽지의 등을 움켜잡았다. 흰꼬리수리가 수평으로 수면 위를 낮고 빠른 속도로 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잠수를 했던 잠수성 오리가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순간 쉽게 사냥을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흰꼬리수리는 비행속도와 거리, 높낮이를 조절해 적당히 오가며 자연스럽게 오리들을 한쪽으로 몰아넣는다. 오리들이 살기를 느끼지 않도록 조심스레 움직여 가까운 거리에서 기다리다 오리들의 경계심이 풀릴 때 기습해 사냥하는 교묘한 사냥법도 사용한다. ?■ 죽음의 문턱까지 간 비오리 흰죽지의 등을 움켜잡고 깃털을 뽑기 위해 부리를 가까이 들이댄다. 부리를 벌려 가슴 깃털을 뜯어내려는 순간이다. 흰죽지에게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앗! 죽음의 문턱에 있던 흰죽지가 도망친다. 흰꼬리수리가 화들짝 놀란다. 갑자기 나타난 참수리는 흰꼬리수리가 사냥한 흰죽지를 강탈하러 맹렬히 날아들고 있었다. 흰꼬리수리가 흰죽지를 다시 잡아와도 참수리의 몫이 될 것이다.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 흰꼬리수리가 사냥감을 놓아준 것은 방어 행위였다. 이토록 냉혹한 사냥 장면을 지켜보면서 이런 자연현상이 어쩌면 야생의 생명력을 유지해 주는 근원이 아닐까 생각했다. 특히 죽음을 코앞에 둔 흰죽지가 정신을 잃지 않고 탈출에 성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16    [쉼터] - 인간들의 벗 = 동물들 댓글:  조회:3265  추천:0  2018-01-09
  안녕하세요! 에이비펫입니다 :)   오늘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동물들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돌고래 중국의 한 아쿠아리움에서 다이버가 장비를 갖추지 않은 채 다이빙을 하는 대회에 참가했다가 몸이 갑자기 경직되어 물속으로 다이버가 점점 가라앉게 됐습니다. 그 모습을 본 흰돌고래가 다이버를 끌고 수면으로 올라와서 그 다이버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이미지출처[CEN] 병코 돌고래 몬터레이 해안에서 서핑을 즐기던 한 남성이 백상아리 한 마리에 의해 다리에 큰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 근처에 있던 병코 돌고래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그 남성 주위를 빙빙 돌며 상어의 공격을 방해했습니다. 돌고래 덕분에 그 남성은 해안까지 가까스로 헤엄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이미지출처[worldculturepictorial] 고양이 모스크바에 한 고양이가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겨울의 깊은 추위로부터 버려진 아기를 보호하였고, 그 건물 거주민 중 한 명이 고양이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아기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이미지출처[pixabay] 고릴라 일리노이의 동물원에서 고릴라를 구경하던 아이가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떨어진 아이 주위를 몇몇 고릴라들이 위협하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고릴라가 갑자기 뛰어들어와 아이를 구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출처 : 이미지출처[pixabay] 경찰견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경찰견들이 무너진 건물 속에 갇힌 사람들을 찾아내 구출하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경찰견들도 사람들처럼 외상 후유증을 겪어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출처 : 이미지출처[Mario Tama] 사자 2005년에 한 12살 아이가 강제 결혼을 시려는 7명의 남자들에 의해서 폭행과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뒤 세 마리의 사자들이 보디가드처럼 그 아이 주변을 둘러 쌓여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경찰관이 아이를 구출하기 위해 다가갔을때 사자들은 숲으로 유유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출처 : 이미지출처[pixabay] 거북이 1991년에 화물선 승선한 임강룡씨는 청소작업을 하다가 발을 헛디어 바다로 빠지려는 순간 거북의 등을 타고 살아났습니다.  살아난 임강룡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헤엄을 치면서 두리번거리는데 배부분에 딱딱한 감촉이 느껴져 손으로 더듬어 확인했더니 거북이가 떠받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출처 : 이미지출처[Wonderopolis] 고양이 미국의 한 여성은 기르던 고양이가 갑자기 자신의 가슴으로 올라가 계속해서 점프를 하는 걸 보고 이를 이상하게 생각해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병원에 찾아간 여은 악성 종양이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출처 : 이미지출처[Flickr] 곰 캘리포니아에서 등산을 하던 남성이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퓨마에 의해서 팔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곰들이 나타나서 퓨마와 맞싸웠고 그 남자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이미지출처[Flickr]   자신의 몸이 다치면서 까지 사람의 목숨을 구해준 동물들의 감동스러운 스토리!   역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동물들이죠?!  
15    [그것이 알고싶다] - 남극에서 배설물 처리는?... 댓글:  조회:4500  추천:0  2018-01-09
[서소문사진관] 남극에서 배설물 처리는 어떻게 할까? 김상선 입력 2018.01.08.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영하 50도를 오르내리는 남극에서 각 나라 극지연구원들은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할까? 이에 대한 답을 중국 시나왕( sina.com.cn)이 방송사 여기자의 남극 현지 리포트를 통해 알려준다. 중국 남극탐험대 문구가 적힌 붉은 색 컨테이너 앞에서 한 여기자가 하얀색 마대에 든 재를 보여준다.   재가 된 연구원들이 배설물.   그런 다음 마대 안에 든 재가 어디서 나왔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답안을 보여주겠다고 말한 뒤 수세식 변기가 있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여기자는 어린아이들이 사용하는 기저귀 형태의 하얀 종이를 펼쳐 변기 속에 넣고 그 위에 용변을 본 다음 변기 왼쪽에 설치된 페달을 밟으면 내용물이 변기 아래로 떨어진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여기자는 물을 내리는 대신 스위치를 눌러 수 천도의 열기로 용변을 순식간에 태워 재로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재로 나온 용변은 배에 실려 본국(중국)으로 운송된 다음 처리된다고 덧붙인다. 실제로 극지방에서는 연구원들이 생활하면서 나온 오물 등 각종 생활 쓰레기를 남극에 버릴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이처럼 최소단위의 고체로 만들어 남극 밖으로 운반해 처리한다. 낮은 기온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남극의 청정 환경을 보호하자는 국제적인 협약이 이와 같은 처리 과정을 지키게 한다. 사진:시나왕, 글=김상선 기자   중국남극탐험대 컨테이너 박스.     남극중산기지의 용변 배설물 처리 과정을 보여주는 여기자.     남극에 설치된 화장실 변기의 모양은 엇비슷하지만, 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전기로 태운다.     용변을 받기 위한 종이.     발로 폐달을 밟아 배설물 용기를 꺼낸다.     재가된 배설물.      
14    [그것이 알고싶다] - 늑대개야, 나와 놀쟈... 댓글:  조회:4373  추천:0  2018-01-09
[그것을 알려 줄개]  늑대개는 개일까, 늑대일까 오가희 기자  2018.01.03.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황금개의 해, 개와 비슷한 동물들 늑대개라는 개가 있습니다. 늑대와 개를 교잡해 만든 종입니다. 개 유전자에 늑대 유전자가 섞이면 늑대개라고 하는데,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늑대와 개가 교잡하면 됩니다. 참 쉽죠? 늑대개 - Mariomassone(W) 제공 ● 이종 교잡, 그렇게 어렵다는데 개는 쉽다 서로 다른 종이 짝짓기를 해 자손을 남기는 행위를 이종 교잡이라고 합니다. 생물 분류학상 종이 다르면 새끼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정세포와 난세포가 잘 결합하지도 않거니와 결합한다고 해도 염색체 수가 달라 제대로 상동 염색체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주 간혹, 종이 달라도 같은 과나 속에 있는 동물끼리는 수정란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나귀와 말의 교잡으로 태어나는 노새가 대표적이지요. 대부분은 더 이상 자손을 만들지 못하고 한 세대에서 끝납니다. 그런데 개는 좀 특이합니다. 늑대나 코요테, 자칼은 서로 교잡이 가능합니다. 개과(Canidae) 개속(Canis)에 속하는 동물끼리 가능합니다. 교잡해 나온 자손이 다른 개속 동물과 교잡하는 것도 가능하지요. 특히 개과 개속 회색늑대(Canis lupus) 종 안에 있는 늑대 (Canis lupus chanco), 딩고 (Canis lupus dingo), 개 (Canis lupus familiaris), 인도늑대 (Canis lupus pallipes), 히말라야늑대 (Canis lupus himalayaensis)는 거의 같은 동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유사하고, 교배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일부 독특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늑대개’라는 개를 키울 수 있는 거지요. 자라면서 늑대처럼 덩치가 커지고 (늑대는 몸무게가 45㎏이 넘습니다) 야생성이 남아있어 키우는 것을 금지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여러 주가 모여있는 미국에서는 주별로 야생동물로만 인정하거나, 늑대 비율에 따라 키우도록 허용하기도 합니다.  ● 개와 닮은 동물은 많고도 많다! 개와 늑대의 조상은 인간에게 길들여져 가축이 됐는데, 반대로 가축이 된 개가 다시 야생동물이 되기도 합니다. 호주의 ‘딩고’입니다. 3000~4000년 전 동남아시아를 거쳐 호주로 건너간 개가 야생화된 동물입니다. 언뜻보면 개와 매우 닮았습니다. 크기도 성체가 20㎏ 정도로 중대형견과 비슷하지요. 호주 원주민들 중에는 딩고를 새끼 때 데려다 개처럼 키운다고도 합니다. 이쯤되면 개…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딩고 - Henry Whitehead(W) 제공 개와 공통조상을 갖고 있다는 늑대는 개와 가장 가까이 있는 동물입니다. 늑대는 아시아의 북동쪽에 사는 동물로 회색늑대의 아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야생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분류돼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1967년에 마지막으로 포획된 것을 끝으로 야생 개체는 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늑대 - Albinfo(W) 제공 늑대와 헷갈리는 동물 중에는 ‘이리’가 있습니다. 이리는 회색늑대를 일컫는 말입니다. 말승냥이라고도 부르지요. 북아메리카, 유라시아, 북아프리카 등에 서식하는데, 사실 ‘늑대’라고 칭하는 동물 대부분은 회색 늑대를 말합니다. 개의 선조를 연구하거나 유전체를 비교할 때 회색 늑대를 이용해 조상을 추측하고 있습니다. 회색늑대 회색늑대를 말승냥이라고도 부른다고 했으니 승냥이(Cuon alpinus 또는 Canis alpinus)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네요. 승냥이 역시 개과 동물 중 하나입니다. 다만 늑대나 회색늑대, 개가 개속에 포함돼 있는 것과 달리 승냥이는 승냥이속에 단독으로 포함돼 있는 종입니다. 만주, 시베리아, 몽골, 중국, 한국 등 동북아시아에서 서식하는 종으로 늑대와 여우를 섞어 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크기도 늑대보다 작아요. 몸무게가 10~21㎏ 정도로 중형견과 비슷하지요. 승냥이 - Ber'Zophus(W) 제공 전혀 다른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우도 개과 동물입니다. 다만 개나 늑대, 딩고 승냥이가 개족(Canini)에 들어있는 것과 달리 여우는 여우족(Vulpini)으로 별도 분류합니다. 귀와 얼굴이 뾰족한, 바로 그 여우 맞습니다. 우리나라는 붉은 여우(Vulpes vulpes)가 토종 여우입니다. 몸무게는 6~9㎏ 정도로 중소형 견과 비슷하지요. 북아메리카와 유럽과 아시아 북부 전역에 서식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멸종 위기 1급 종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Peter Trimming(W) 제공 ///오가희 기자 
13    [그것이 알고싶다] - 고양이가 엉덩이를 왜 실룩거리나?... 댓글:  조회:4613  추천:0  2018-01-09
사냥감을 덮치기 전 고양이는  그 귀여운 엉덩이를 몹시 실룩거립니다. 오늘 이 시간은 그 이유를 알아봅니다.  첫 번째는 ‘준비운동’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래 고양이는 조용히 때를 기다린 뒤 한 순간에 달려들어 사냥감을 잡는데요.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덮치면 몸이 굳기 때문입니다. 공격하기 바로 전에 엉덩이를 흔드는 것은 일종의 준비운동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는 타이밍 조절을 위해서입니다.  인간이 하는 카운트다운처럼 먹이에 달려들 타이밍을 계산하고 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엉덩이를 점점 세게 흔들다가 멈추는 동작을 반복하는데 이는 먹이의 움직임을 보면서 언제 달려들지 타이밍을 계산하는 것입니다. 또한 고양이가 엉덩이를 실룩거릴 때 꼬리도 조금씩 움직이는데요. 이 바디랭귀지는 고양이의 긴장된 심리상태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빨리 먹이를 잡고 싶다’라는 흥분과 그렇지만 ‘침착해야 해’라는 냉정함이 뒤섞여 고양이는 몹시 긴장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아울러 엉덩이를 흔들고 있을 때 뒷발톱도 넣었다 뺐다 하며 발톱을 지면에 박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닥에 뾰족한 못이나 징을 박은 스파이크 슈즈처럼 미끄러지지 않고 순간적으로 빨리 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랍니다. 고양이가 사냥감을 습격하기 전  엉덩이를 흔드는 동작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수많은 냥덕을 배출할 만큼  귀여운 외모를 갖고 있지만  고양이는 진정 타고난 사냥꾼입니다. edited by 서하나   Tags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페이스북 공유하기 공유하기 더보기  
12    [록색문학평화주의者]-동물들에게서 배우며 도우며 살고지고 댓글:  조회:4523  추천:0  2018-01-09
서로 도우며 살아갑니다 원미연 2018.01.08.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서로 도우며 살아갑니다 이기심과 개인주의가 난무하는 현대사회. 남에 대한 배려와 포용이 절실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데요. 종족을 초월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동물들의 모습이 따끔한 일침과 함께 따뜻한 울림을 전합니다. ///원미연 콘텐츠에디터 ◆ 개를 등에 업고 강을 건너는 말 [사진=facebook] ◆ “올라 가량~” [사진=thiswaycome] ◆ 진흙탕에 빠진 거북을 구하는 하마 [사진=thiswaycome] ◆ 협동해서 탈출 中? [사진=familysurvival] ◆ “아가야, 뿔로 건져줄게~” [사진=explosion] ◆ “내가 대신 핥아줄게~” [사진=mirror] ◆ 발목이 잡혀도 “우리 친구 아이가?” [사진=awwthings] ◆ “추워? 내가 안아 줄게~” [사진=redbubble] ◆ “소시지는 아직인가?” [사진=funnyanimalsa2z] (제주=뉴스1) 이석형 기자 =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해안도로에서 한 남성이 당나귀에 강아지를 태워 산책을 하고 있다.2018.1.9/뉴스1   ◆ “사뿐히 즈려밟고 따 드시옵소서~”     ///갓 구워낸 바삭바삭한 뉴스 ⓒ 쿠키뉴스  
11    [그것이 알고싶다] - 사냥개야, 나와 놀쟈... 댓글:  조회:4071  추천:0  2018-01-09
[강석기의 과학카페] 9000년 전 사냥개의 활약상 생생하게 묘사된 암각화 감상법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18.01.09.  SNS 공유하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개의 가축화와 초기 쓸모(가축화 이유)라는 주제는 고고학연구에서 길고도 복잡한 역사가 있다.  - 마리아 구아그닌 등, 지난해 11월 16일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 사이트의에 공개된 한 논문에서   지난주 금요일 ‘동아일보’ 과학면에 실린 ‘올해 무술년은 황금개의 해가 아닌 황금늑대의 해일수도...’라는 기사를 보며 좀 의아했다. 최근 수년 사이 고고학 및 고게놈학 연구 성과로 개의 기원이 기존 1만2000년에서 3만 여 년 전으로 한참 올라간 게 이제는 확고한 정설이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사 말미에는 “7000~9000년 전 개부터 진짜 ‘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는 스페인 레이후안카를로스대 애비 드레이크 연구원의 코멘트가 인용됐기 때문이다. 개가 늑대에서 진화한 게 확실함에도(여전히 같은 종(학명 Canis lupus)으로 분류되고 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정반대이기 때문에 형태나 게놈보다는 행동이 ‘진짜 개’의 요건이란 뜻일까. 그렇다면 형태와 게놈의 증거인 3만 년 전과 드레이크 연구원이 추정하는 9000년 전(그나마 최대치) 사이 2만 여 년 동안은 어정쩡한 ‘늑대개’ 상태로 보냈다는 말인가.         네안데르탈인 멸종의 한 축?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인류학과 팻 시프먼 명예교수는 2015년 ‘The Invaders’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는데(최근 ‘침입종 인간’이란 제목으로 번역서가 나왔다), 흥미롭게도 ‘늑대개(wolf-dog)’란 용어를 만들어 썼다. 다만 그 맥락은 앞서 필자의 늑대개와 다르다. 즉 오늘날 벨기에 지역에서 발굴된 3만6000여 년 전 개과(科) 동물의 두개골 형태를 분석한 결과 늑대보다는 개에 가깝게 보이지만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는 오늘날 늑대와 개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따라서 이 계열은 멸종했을 가능성이 크다) 잠정적으로 늑대개라고 부른 것이다.   개와의 협력이 현생인류의 성공에 중요했다는 가설을 담고 있는 ‘침입종 인간’이 최근 번역출간됐다. 2015년 출간된 원서의 표지로 개가 늑대처럼 생긴 것으로 묘사돼 있다. - 아마존(amazone.com) 제공   대신 행동의 관점에서는 개로 보고 있는데, 이 책의 부제가 ‘인간(호모사피엔스)과 그들의 개가 어떻게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으로 몰아갔나(How humans and their dogs drove Neanderthals to extinction)’인데서도 알 수 있다(번역서에는 부제가 ‘인류의 번성과 미래에 대한 근원적 탐구’라는 다소 거창한 문구로 바뀌어 있다).   즉 시프먼 교수에 따르면 유럽에 진출한 호모사피엔스(그래서 침입종이다)가 먼저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을 몰아내고 주인이 되는 과정에서 늑대개가 큰 역할을 했는데, 인간과 협력해 사냥을 하면서 경쟁력에서 네안데르탈인을 압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뒤 사냥 동맹인 인류와 개의 삶에 가장 방해가 된 경쟁자가 늑대였고 따라서 그 뒤 늑대의 개체수도 급감했다.   ‘진짜 개’라고 말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사람의 관심을 갈구하며 재롱을 떠는 반려동물이라면 사냥을 하는 개의 모습이 낯설 수도 있지만 사람과 한 편이 돼서 같은 종인 늑대에 맞서 먹잇감을 두고 경쟁해온 개의 모습 역시 ‘진짜 개’가 아닐까. 즉 시프먼 교수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3만 여 년 전 이미 개가 있었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뼈와 게놈 정보만 있을 뿐 3만 여 년 전 늑대개가 정말 호모사피엔스와 협력해 사냥을 했다는 물증은 없다. 그리고 행동은 발굴할 수 없다는 게 고고학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물론 뼈나 도구를 통해 행동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지만, 3만 여 년 전 인간과 개의 협력 사냥의 경우는 이마저도 빈약하다.   다양한 사냥 전략 구사   지난해 11월 16일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 사이트에는 이와 관련해 꽤 흥미로운 논문이 공개됐다. 8000~9000년 전 사람과 개가 함께 사냥하는 모습을 담은 암각화를 분석한 연구결과로 당시 정황이 워낙 생동감있게 묘사돼 있어서 사냥 장면을 직접 보는 듯하다. 논문을 읽으며 당시 개와 사람이 이 정도 수준으로 협력할 수 있었다면 공동 사냥의 역사는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프먼 교수의 주장이 꽤 설득력이 있다는 말이다.   고고학에서 바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암각화나 벽화는 당시 인류나 동물의 모습과 행동을 엿볼 수 있는 자료다. 특히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인 선사시대에는 그림의 가치가 더욱 소중하다.    지금은 황량한 사막지대인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의 슈와이미스(Shuwaymis)와 주바(Jubbah)에는 거의 1만 년 전부터 수천 년에 걸쳐 제작된 1400점이 넘는 암각화가 발견됐다. 이곳은 수만 년 동안 혹독한 가뭄으로 사람이 살지 않았지만 기후가 좋아지면서 대략 1만 여 전 다시 사람이 유입됐다. 이들은 수렵채취인으로 수천 년을 보냈고 어느 순간부터 가축을 기르며 유목민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암각화 1400여 점에는 그 과정이 그려져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의뢰로 암각화를 정리하는 작업을 해온 독일 막스플랑크 인간역사과학연구소의 고고학자 마리아 구아그닌 박사는 7000~8000년 전 유목민으로 바뀌기 이전의 암각화에서 유난히 개가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슈와이미스의 암각화 39점에 등장하는 개는 156마리고 주바의 암각화 108점에는 193마리다. 반면 유목시대로 바뀐 이후에는 개의 출연빈도가 뚝 떨어졌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궁금해진 구아그닌 박사는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동물고고학자 안젤라 페리 박사를 방문했다.   고대 개의 뼈를 연구하는 페리 박사는 암각화를 보고 경악했는데, 사람과 함께 사냥에 나선 개의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히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페리 박사는 암각화를 분석해 개의 품종은 물론 사냥감의 종류, 상황에 맞는 사냥 전략 등 뼈와 게놈 정보만으로는 어림없는 엄청난 정보들을 얻었다.   이제부터 8000~9000년 전 개와 사람이 한 팀을 이뤄 사냥하는 장면을 담은 슈와이미스의 암각화를 하나씩 살펴보자. 실수를 피하기 위해 그림 번호는 논문을 따른다. [그림3  케이넌 도그를 쏙 빼닮은 외모]   지중해 동부 레반트 지역의 토종견인 케이넌 도그(위)와 사우디아라비아 서북부의 9000년 전 암각화에 새겨진 개(아래)가 꽤 닮았다. -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Journal of Anthropological Archaeology) 제공   암각화에 그려진 개의 모습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봐도 한 눈에 개임을 알 수 있다. 뾰족한 귀와 말린 꼬리, 짧은 주둥이가 늑대나 코요테 같은 다른 개속(Canis) 동물과는 뚜렷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암각화에 등장하는 개 다수는 어깨나 가슴 쪽 돌을 깎지 않은 상태다. 이는 이 부분의 털 색깔이 다르다는 걸 부각시키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림 아래 사진 두 장은 암각화에 등장한 개다. 그림을 잘 보이게 하기 위해 깎은 부분은 밝은 색으로 처리했다.   연구자들은 암각화의 그려진 개의 모습이 지중해 동쪽 레반트 지역의 토종개인 케이넌 도그(Canaan dog)와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림 위의 사진 두 장이 케이넌 도그로 아래 암각화에 등장한 개와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케이넌 도그는 몸무게가 16~25㎏인 중형견으로 레반트 지역에서 예로부터 양치기개로 길렀다.   흥미롭게도 게놈 분석 결과 케이넌 도그는 오래 전에 확립된 품종으로 나왔다. 연구자들은 암각화에 나오는 개가 케이넌 도그의 조상일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즉 수렵채취인이 유목민이 되면서 사냥개도 양치기개로 ‘직업’을 바꾼 것이라는 말이다. [그림4_사냥꾼 두 명과 사냥개 21마리]   개들이 아이벡스를 공격하는 장면이다. -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 제공   한 장면에 가장 많은 개가 등장하는 암각화다. 왼쪽에 암말(말은 수년 천 뒤에야 가축이 된다)과 새끼가 보이고 바로 앞에 사냥꾼이 활로 암말을 겨누고 있고 주변을 개들이 둘러싸고 있다. 오른쪽에 또 다른 사냥꾼이 역시 활로 암말을 겨누고 있고 개 십여 마리가 사냥감을 향해 포진해 있다. 암말과 새끼의 입장에서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이 그림에서 주목할 장면은 개 세 마리가 목줄로 사냥꾼과 연결돼 있는 모습이다. 즉 사냥꾼은 목줄을 허리에 묶은 채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데 이 개들은 다른 개들과 뭐가 다른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들은 몇 가지 추측을 하고 있다. 먼저 역할 분담론으로 이 개들은 후각이 특히 발달해 사냥감을 추적하는 게 일이기 때문에 괜히 사냥감에 덤벼들었다가 다치면 안 되므로 목줄로 묶어둔 것이라는 해석이다. 다음으로 사냥꾼을 사냥감이나 다른 포식자의 공격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보디가드론이다. 끝으로 나이가 들었거나 너무 어려 직접 사냥에 뛰어들기에는 무리인 개들을 챙긴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한편 꽤 덩치가 큰 어미와 새끼를 목표로 하는 사냥 행태는 개와 사람의 협력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말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사람 혼자 사냥하기는 힘들고 덩치가 꽤 커서 개가 어미를 공격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개가, 새끼를 동반한 암말을 추격해 에워싸게 되면 어미는 새끼를 지키기 위해 도망치지 않기 때문에 사냥꾼의 손쉬운 표적이 된다. 그리고 개는 기회를 봐서 새끼를 물어 죽인다.  [논문 찾아보기 : 그림7_아이벡스 목을 물어]   개들이 아이벡스를 공격하는 장면이다. -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 제공   염소의 근연종인 아이벡스(ibex) 두 마리(왼쪽과 가운데)가 개 여덟 마리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장면이다. 아이벡스의 커다란 뿔이 잘 묘사돼 있다. 개들은 아이벡스의 목을 물어뜯고 있고 뿔의 방향으로 봤을 때 고개가 이미 돌아간 상태라 죽음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왼쪽 아이벡스의 경우 배도 공격을 받고 있다. 오른쪽 세 번째 아이벡스는 나중에 추가로 그린 것이다. [그림8_재빠른 동물 사냥 전담]   그림8_개들이 가젤을 공격하는 장면이다. -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 제공   이번엔 가젤(영양)이 역시 개에게 둘러싸여 목을 물어뜯기는 장면으로 그림7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처럼 덩치가 크지 않고 민첩한 동물들은 개가 혼자 사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를 쫓아가기에 바쁜 사냥꾼은 개가 목을 물고 있는 사냥감에 다가가 명줄을 끊는 ‘마무리’를 하는 게 고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림10_정말 사자도 사냥했을까?]   사냥꾼과 개 두 마리가 커다란 수사자와 맞서고 있다. -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 제공   이번 사냥감은 덩치가 커다란 사자다. 왼편 사냥꾼 한 명과 수캐 두 마리가 가운데 수사자와 마주하고 있다(생식기가 잘 묘사돼 있어 성별을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림에는 나오지 않지만 사자 뒤에도 개 다섯 마리가 더 있다. 이건 정말 사자 사냥 장면일까.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실제 장면을 묘사한 것일 수도 있고 사냥꾼의 용맹함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인 장면일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개를 동반한 사자 사냥을 언급한 문헌이 드물지 않다고 덧붙였다.    시프먼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호모사피엔스는 이종동물(개)과 연합해 동족인 네안데르탈인을 몰아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이번엔 개가 이종동물(사람)과 연합해 동족인 늑대를 거의 절멸시켰다. 이처럼 각자 서로를 이용해 동족을 배반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사람과 개가 이처럼 서로를 예외적인 존재로 여기며(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들도 대다수는 개고기를 안 먹는다!)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10    [쉼터] = 중국 조선족 어학계의 별 - 리득춘 댓글:  조회:3052  추천:0  2018-01-09
중국조선족 어학계의 별 리득춘교수님을 그리며 (ZOGLO) 2018년1월9일    연변대학 원로교수이며 조선어학계 저명한 학자인 리득춘교수 5년전인 2013년 1월 16일, 연변대학의 원로교수이시며 우리 조선어학계의 거두이시고 중국민족어 학계의 저명한 학자이신 리득춘교수님이 후학들에 대한 자애로움과 제자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남긴 채 74세를 일기로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리득춘 교수님께서 쌓으신 학문적 업적은 연변대학에서의 조선어교육과 연구의 기틀을 마련해 놓았고 중국에서의 조선언어학계의 학술연구 방향을 제시하고 그 연구범위를 넓혀주었다. 교수님은 중국민족어학계에서의 조선민족 언어연구의 학문적 위치를 높였고 중조언어문자비교 연구방면에서 중국의 조선-한국학연구와 발전 및 중국조선족한국학 고등교육사업발전에 일조하였으며 세계적으로도 우리 민족의 언어연구에 마멸할수 없는 공헌을 하였다. 후대양성에 필생의 정력을 리득춘교수님은 1938년 10월 19일 훈춘현에서 아버지 리종모씨와 어머니 조두일씨의 둘째 아들로 태여났다. 가난에 쪼들렸던 형편에도 밝고 씩씩했던 교수님은 훈춘현 제2소학교 때 벌써 “나무”등 동시를 쓰기 시작하였고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과외로 연극을 창작하고 연기에도 열중했던 열혈문학청년으로 성장하였다. 썩 후에 동요작곡가 김종화선생이 곡을 붙인 동요 “나무”가 전국동요축제에서 2등상을 받았으며 소학교 음악교과서에 오래동안 기재되였다. 훈춘고중을 졸업한 교수님은 1958년 8월 연변대학교 어문학부 조문전업에 입학하였고 졸업후 연변대학통신학부 조선어교연실 조교로 남게 되면서부터 언어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되였다. 심한 생활고와 지식인에 대한 각박한 시대를 겪은 리득춘교수님에게 교수사업과 학술연구는 유일한 돌파구였고 삶의 신조이였다. 70년대의 ‘공농병대학(工农兵大学)’시절, 전국 각지에서 뽑혀온 조선어계의 한족학생들을 이끌고 농촌 각지를 다니면서 ‘밖으로 나가 공부하기(开门办学)’의 쓰고 단맛을 보았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에게는 가족보다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몸이 불편한 안해와 어린 남매를 집에 두고 일년 동안의 절반 이상을 학생들과 함께 산간벽촌에 내려가 생활하였다. 어쩌다 집에 있는 주말이면 늘 객지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불러 들이군 했다. 10여명의 학생들이 늘 줄지여 선생님 댁을 찾았고 따뜻한 밥상에 둘러 앉아 학생들과 함께 보내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 교수님과 사모님이셨다. 훗날 국내외 여러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로 추천받은 그때의 학생들은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이 주말마다 찾아 갔던 리득춘 교수님댁이였고 환대해 주시던 사모님과 귀여운 코흘리개 어린 두 자녀 경일이와 홍매였다고 추억했다. 중년에 이르러 주로 석사, 박사생 양성에 힘을 기울인 교수님이셨다. 특히 1988년에 박사연구생 지도소조 조장직을 맡고 정판룡교수와 협조하여 중국조선족 제1 기 언어학 박사생 양성에 열정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수천명의 조선어 고급전문인재를 양성해낸 교수님, 현재 중국조선어학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강보유, 렴광호, 김기석, 최건, 김영수 등 교수들을 포함한 국내 조선어연구의 중견으로 될수있는 조선어학박사 14명을 친히 양성하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학부생, 석사생제자들은 현재 국내 여러 대학 조선어학과의 인솔자로, 더 나아가 관련연구부문의 저명한 학자들로 명망을 떨치고 있다. 석사, 박사생 모집수가 한명, 두명 정도일 때에는 단독 교실도 없이 교수님댁 밥상에서 수업할 때가 많았다. 안도로 가는 기차표값조차 아껴야 했던 석사연구생시절에 교수님은 나에게 부모님과 같은 존재였다. 댁에서의 오전 수업이 끝나면 부근의 두부방에 가서 친히 두부를 사다가 감자를 넣고 끓여 주시군 하였는데 그 된장국과 배추김치맛을 나는 영원히 잊을수 없다. 기관지천식때문에 환절기 때면 늘 기침을 심하게 하신 교수님, 기침을 심하게 하시고 나서 온 몸에 땀을 흘리시면서도 석, 박사생들의 학위론문에 빨갛게 줄을 그어주시고 한 구절, 한 단락을 바로 잡아 주시군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교수님의 손에서 커가게 되였다. 제자들에 대한 극진한 책임감과 깊은 사랑으로 지병때문에 고생하면서도 2010년에 마지막 박사생 제자들인 지동은, 김수동, 강미화, 마영미 등을 무사히 졸업시켰다. 교육생애 마지막 박사생제자들인 지동은(왼쪽),강미화와 함께 교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아바이”라고 다정하게 부르면 허물없이 응해주시군 하였다. 때론 친구처럼 제자들과 노래방에서 “백명의 위인”을 힘차게 부르시면서 학술연구 방면 뿐만 아니라 생활면의 고민도 무랍없이 들어 주셨다. 한편 학술에 있어서 더 없이 철저했던 교수님은 제자들 칭찬에 린색했다. 석사, 박사 연구생들 중에는 나이가 든 학생들도 많았다. 인생이야기로 꽃을 피울 때에는 너무나 친절한 선배님이시다가도 일단 론문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면 더없이 엄격했던 교수님은 “겉보다도 내실을 갖추어야 학술계에서 살아갈 수 있다.” “학술사업을 위해서는 그 어떤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들과도 따뜻하게 손을 잡아야 한다.”고 늘 제자들을 타이르셨다. 성과앞에서 겸허했던 그 자세와 학술에 대해 지키신 신조는 우리 제자들의 영원한 본보기이며 목표이다. 교수님이 타계하신 후 령전을 우러르며 제자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석, 박사 공부를 하면서 욕을 안먹어 본 사람이 있었나요? 그렇게 교수님은 우리를 자식처럼 편달해주셨어요. 교수님의 그 욕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없었을 겁니다. 부모님 같았던 교수님의 그 욕이 너무 그립습니다.” 상해외국어대학 김기석교수는 “내가 어려운 중국음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 중국어학계학자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리득춘교수님의 편달과 갈라놓을 수 없다. 또 교수님이 아니셨다면 중-조음운대비 연구분야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나 역시 그러하다. 한개 시골 중학교 조선어문교원이였던 내가 리득춘교수님의 사랑과 편달이 아니였더라면 대학교 박사지도교수를 꿈꾸지도 못했을 일이다. 1993년 7월을 계기로 해마다 한국에 다녀오신 교수님께서는 돌아올 때마다 책을 한 트렁크씩 무겁게 지고 와서는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군 하셨다. 또 늘 국내외 학술회의에 제자들을 이끌고 가서 여러 유명한 학자들에게 자신있게 소개해주셨다. 하기에 나를 포함한 교수님의 여러 제자들은 지금도 조선의 김일성종합대학, 사회과학원언어연구소, 한국의 서울대학, 고려대학, 연세대학, 이화여자대학, 국립국어연구소 등 유명한 국어학 교수들과 스스럼없는 교류를 하고 있다. 2011년 12월에 지나친 병독으로 쓰러지신 교수님, 급환자 응급실에서 10여 일간의 구급치료 끝에 눈을 뜨시고 하신 첫마디 말씀이 “영수선생, 내 가방을 찾아주오…”였다. 강의안이 들어 있는 가방을 찾으셨던 것이다. 사실 정신을 잃으신 동안 교수님은 강의하러 들어간 환각으로 사셨던 것이다. 그때 우리 제자들은 뭉클하는 가슴을 어쩔 수 없었다. 퇴원하신 후, 교수님은 심한 후유증 때문에 몸을 일으킬 수도 없으면서도 박사학위 심사론문을 세심히 보아 주셨고 그 동안 중단한 론문 집필을 빨리 끝마쳐야 한다고 하시면서 누워서 열심히 원고를 보시군 했다. 실로 교수님의 일생은 교육자의 일생으로서 《강의》와 《학술》 이라는 네 글자를 떼여 놓을 수 없었다. 우리 연변대학은 물론, 전국의 유명한 대학교들의 한국어 강당에는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수없이 많다. 학술연구의 경지 론문발표, 학술회의 등 활동이 중단되여 있었던 험한 세월에도 꾸준히 밀도 있는 조사와 연구를 이어왔던 리득춘교수님이셨다. 오늘날 세상에 내놓은 수많은 연구업적은 바로 젊은 그 시절부터의 세심하고 지속적인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1985년에 부교수로, 1992년에 교수로 승진한 교수님은 정년이라는 개념도 없이 연구를 중단하지 않았다. 다년간의 연구과정에서 교수님은 자신의 연구방향을 명확히 하고 시대적인 특징을 갖춘 다학과 교차적인 연구령역을 개척함으로써 교수연구와 조선어전문연구 및 그 성과가 하나의 계통성을 띄게 하였다. 선후로 , , 등 백 오십 여 편의 학술 론문을 국내외 학술간행물에 발표한 교수님은 “중-조 언어문자관계 비교연구”와 “중국조선어연구”의 새로운 령역을 개척한 한 분이시며 중국조선어 문법체계를 확립함으로써 국내외 학술계의 높은 평가를 받으셨다. 리득춘(왼쪽)교수님과 필자 리득춘 교수님은 《명청시기 조선어번역서에 반영된 근대 한자음운 체계(明清时期朝鲜朝翻译韵书中所反映的近代汉语音韵体系)》,《중국문자 음운과 한국 언어문자 생활(中国文字音韵和韩国语言文字生活)》, 《조선 한조 번역사와 조선어 관련연구(朝鲜汉朝翻译史与朝鲜语关系研究)》, 《조선언어역사 연구(朝鲜语语言历史研究)》, 《연변조선족 이중언어문제 연구(延边朝鲜族双语问题研究)》등 묵직한 항목으로 여러 차례 중국 국가인문사회과학 중점항목, 중국 국가교육부 중점항목, 중국 길림성 사회과학기금항목 등에 관한 연구를 원만하게 완수하였다.《조선운서와 명청음계(朝鲜韵书与明清音系)》가 발표된 후 한어 언어관계 연구 령역에서 독특한 학술지위를 부여 받게 된 교수님은 학계로부터 “이 항목의 연구성과는 중요한 학술가치와 실용가치를 갖고 있으며 중국언어학사업의 발전에 적극적인 공헌을 하였다.”라는 평가를 받았고 또한 중국의 저명한 음운학가인 녕계복(宁继福)선생으로부터 “근대한어에 대한 전면적인 정리와 계통적인 비교는 리득춘선생의 이 항목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교수님은 늘 학생교양이나 학술연구는 국제 간의 교류를 떠나서는 “우물 안의 개구리”신세 밖에 될 수 없다고 하면서 “서울대학교”, “김일성종합대학”은 물론 미국, 대만, 인도 등 국외 여러 조선어연구부문, 대학과의 교류를 중히 여겨왔다. 1988년을 계기로 국내의 여러 대학에서 펼쳐지는 학술대회는 물론 일본의 “고려학국제학술토론회”, 한국의 “국제한국어교육학회”(외 90차), 러시아의 “러시아 원동대학 국제교학교류회”, 조선의 “김일성종합대학 국제학술교류회”, 대만의 “환태평양한국학국제학술대회” 등 98차에 달하는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여 대담히 자신의 학술연구성과를 발표함과 동시에 선진적인 연구성과를 받아들였으며 국제, 국내에서의 연변대학의 지명도를 높이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불멸의 성과 1991년부터 여러 차례 국가인사부와 국가교육위원회에서 발급한 「우수교사」의 영예를 받아 안은 교수님은 1993년에 《국무원정부특수수당수혜자(国务院政府特殊津贴授予者)》로 지정 받으셨다. 이외 연변대학으로부터 《연변대학과학연구1등상》, 《건교50주년 특수공헌상》 등 10여차의 영예와 길림성 정부와 길림성 교육위원회에서 발급하는 《길림성사회과학연구 40년 이상 특수학술성과상(吉林省社会科学研究40年以上特殊学术成果奖)》, 《동북3성 조선어문특수공헌상(东北三省朝鲜语文特殊贡献奖)》등 15차 이상의 수상을 하셨다.일찍 1998년에 한국으로부터 《한글발전유공자》로 포상 받고 훈장 및 국무총리상장을 받았으며2007년에는 한국고등교육재단과 연변대학에서 공동으로 설립한 중국 국내한국학의 최고의 상인《와룡상》을 수여 받았고 2009년에는 《대한민국동숭학술상》을 수상했다. 2011년 정년퇴직을 맞이하기까지 선후하여 연변대학 조문학부 학위평정위원회 위원, 연변대학학술위원회 부주석,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학술위원회 학과평의조 성원, 중국교육부중점연구기지-중・조・한・일 문화비교연구중심 주임,연변대학동방문화연구원 원장 등 중직을 맡았던 교수님은 북경대학, 산동대학, 길림대학, 락양해방군외국어대학, 천진사범대학의 겸직교수로 계셨으며 「연변대학학보」, 「동강학간(东疆学刊)」, 「민족어문한국학과중국학(民族语文韩国学和中国学)」, 「중국민족고문자문헌연구총서(中国民族古文字文献研究丛书)」 등 중문잡지와 「조선학연구」, 「중국조선어문」 등 조선어잡지의 편집위원을 맡으셨고 중국조선어학회상무리사, 중국민족언어학회 상무리사, 중국 알타이어학분회 부주석 등 직무를 력임하면서 중국에서의 한국어교육과 연구 뿐만 아니라 전반 외국언어문학의 학과건설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1963년 졸업해서부터 2011년 상반 년까지 연변대학교라는 하나의 우물만을 파신 리득춘 교수님은 장기적으로《기초조선어》, 《조선어고문헌선독》, 《조선어발달사》, 《조선어수사학》, 《조선어사》 등 교수 임무를 담당하면서 중국조선어 고등교육 과정체계를 건립하고 완성화하였다. 피땀으로 하나하나 펼쳐낸 저서와 교과서들로는 《고대조선어》,《중세조선어개요》,《조선어기초교정》 등 40여권이나 된다. 그 중 《초급조선어》는 1996년 길림성 우수교재 1등상을, 《한조어문문자관계사》는 1995년 전국 대학교인문사회과학 연구성과 국가급 2등상을, 《조선어발달사》는 2007년 동북3성 조선문 우수도서 1등상을 받았다. 2007년 국제학술회의에서 박사,석사생 제자들과 함께 평생의 정력을 교육사업과 연구사업에 몰부으신 리득춘 교수님은 연변대학조문학부의 언어학 인재양성의 수요로 70여세 고희의 년세에도 박사생수업을 맡아 하신, 연변대학에서 제일 오래동안 재직에 계신 분으로 남았다. 병마 때문에 부득이 퇴직을 해야만 했던 그날, 멀리 바라보이는 모아산을 바라보시면서 후-하고 한숨을 쉬시는 교수님의 뒤모습을 바라 보면서 인생의 전부였던 연변대학을 떠나시는 교수님의 외로움과 아쉬움, 그리고 제자들에 대한 걱정을 곁에서 느낄수 있었다. 우리 곁에 계실 때 학술에서 가져야 할 자세, 학문연구의 방법을 더 많이 전수받아야 했는데…… 학문에 막혔을때 아무때나 문을 열어 주셨던 교수님이 몇년만 더 계셨더면 내가 지금 후배들에게 더욱 떳떳한 도사로 나설수 있을텐데… 다시는 교수님을 모실 수 없게 된 후에야 얻은 깨달음에 후회가 막급하다. 오늘도 제자들을 굽어 보실 우리 선생님! 선생님, 이제 제자들 걱정 그만 하시고 편히 쉬세요. 선생님의 그 제자사랑을 우리는 영원히 잊을수 없습니다. ///길림신문/연변대학 조선-한국학 학원 교수, 박사생지도교수 김광수
9    "모든 죽어가는것" 中 하나가 "조선어"였던것 같다... 댓글:  조회:1840  추천:0  2018-01-09
서울·교토·연변 하나로 이어준 윤동주 ‘서시’의 매력 2018년1월7일  작성자: 아야 2017년은 윤동주시인 탄생 100주년의 해였다. 그의 생일인 12월30일에 맞춰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있는 명동촌을 방문했다. 이곳은 시인의 고향이자 생가와 묘소가 있는 곳이다.     중국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어를 전혀 못하는 나는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을 때 불안해졌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어서였다. 연변까지 버스를 타고 5시간을 가는 동안 ‘조금이라도 중국어 공부를 하고 올걸 그랬다’며 후회했다. 그런데 연변의 중심인 연길 시내에 들어서면서부터 한글표기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언어가 심리적으로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실감했다.     윤 시인은 한국 시인 중에서도 일본에 가장 많이 알려진 시인이다. 팬도 많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인데 그에 대해 깊이 알게 된 것은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에 있는 시비(詩碑)를 알고부터다. 윤 시인은 도시샤대 재학 중이던 1943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지 50년이 되던 해인 1995년 도시샤대 재일코리안 졸업생들이 중심이 돼 시비를 설립했다고 들었다. 몇년 전 이 시비를 찾아오는 한국 여행객들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가봤더니 실제로 10대나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행객들이 잇따라 찾아와 꽃이나 편지를 바치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교토의 숨겨진 명소를 소개하는 기획 기사를 담당했던 나는 2015년 2월 시인의 70주기에 맞춰 그 시비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 취재를 하면서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윤동주 시인의 열정적인 팬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도시샤대는 물론, 그 전에 시인이 다녔던 도쿄 릿교대학이나 옥사한 후쿠오카에서도 매년 기일에 가까운 2월 중순이면 추모 행사가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또 탄생 100주년인 지난해 10월에는 윤 시인이 도시샤대 친구들과 같이 소풍을 갔던 우지천(川) 가까이에도 새로 시비가 세워졌다. 남겨진 그의 마지막 사진이 촬영된 그 곳에 시비를 세우기 위해 일본 팬들이 모금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일본인들이 윤 시인에게 마음이 가는 첫번째 이유는 작품의 매력이지만 그의 비극적인 인생도 큰 이유가 됐으리라. 일본에서 윤 시인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유명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라 자신의 에세이에 윤 시인의 작품과 그의 인생에 대해 쓰면서다. 그 에세이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면서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도시샤대의 시비와 마찬가지로 그 에세이에 등장하는 시도 윤 시인의 대표작 ‘서시’다.     ...     물론 일본어로 번역돼 있는데 둘 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부분이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뜻으로 쓰여 있다. 번역자는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번역한 것이라고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잘못된 번역이라는 지적이 많다. 나는 시비를 다루는 기사를 쓰면서 이 번역을 그대로 게재하면 안 될 것 같아 원어의 뜻을 같이 전달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모든 죽어가는 것’ 중 하나가 ‘조선어’였던 것 같다.     조선인이지만 조선어를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시대. 윤 시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끝까지 조선어로 시를 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젊은 나이에 죽게 된 이유가 되기도 했기에 일본 독자들도 정확한 뜻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말을 빼앗긴 적 없는 일본 사람들은 그 아픔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을 나는 윤 시인에게서 배웠고, 보다 많은 사람이랑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관련 이야기를 여러 번 글로 쓴 바 있다. 시인의 탄생 100주년은 지났지만, 그의 묘소 앞에서 약속했다. 앞으로도 시인의 정신을 잘 기억하고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고 말이다.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동국대 대학원 재학 중)  [중앙일보] 입력 2018.01.06 01:00  
8    [쉼터] = 50여년 사진기와 씨름한 사진작가 - 신승우 댓글:  조회:1147  추천:0  2018-01-09
“북국빙설 강성무송” 신승우촬영작품집 출간 [ 2018년 01월 08일 ]     신승우 프로필: 필명 신화(新华) 1946년 길림성교하출생 원 길림신문사 고급기자 중국촬영가협회, 중국예술촬영협회, 세계민간예술가협회, 중국서화예술가협회, 중국예술협회, 중국문예협회 회원 북경인민화원 종신원사, 중국조선족사학회리사, 중국서화명가연구회 부리사장, 중국당대예술가협회 부주석 40여년간 국내외100여개 신문잡지에 촬영, 판화, 전각, 시가 등 작품 1000여편 발표,, 선후로 “중국우수촬영가 중국문예 금작상”, “제1회 세계민간예술가 최고상 금비웅상” 등 다수 수상 “2008년 중국예술 올한해의 인물”에 선정 “중국당대전각가 500인”, “중국촬영가전집, 세계중국인문학예술명인록”, “중국당대촬영가작품감상집”, “감동중국 시대의 걸출신문인물풍채 작품집”에 입선 선후로“신승우사진미술전각작품집”, “신승우사진판화작품집”, “중국사진작가가 보는 세계-신승우사진작품집”, “북국빙설 강성무송” 등 12권의 작품집 발표 이번에 출간된 “북국빙성 강성무송”(중국시서화출판사 출판)신승우촬영작품집에는 신승우선생이 70년대부터 지금까지 40여년간 고향 길림시의 빙설과 무송을 배경으로 창작한 지방특색이 농후한 촬영작품 141점이 수록되였다. 길림시는 무송으로 세계에 유명하다. 겨울철 송화강량안의 기묘한 자연경관 및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카메라에 담은 사진들, 그속에는 신승우선생이 촬영예술을 향한 무한한 추구와 자연애, 인간애, 고향정이 다분히 녹아있다. 신승우선생은 길림신문사에서 은퇴한후 자신의 취미와 애호인 사진, 전각, 미술, 시가 작품의 정리에 모든 정력을 몰부어왔는데 “북구빙성 강성무송”신승우촬영작품집의 출간은2006년부터 시작된 “신승우사진미술전각작품집”, “신승우사진판화작품집”, “중국사진작가가 보는 세계-신승우사진작품집” 등 11권 신승우작품집에 이은 12번째 작품집이다. 신승우선생은 총 1000권 인쇄된 “북국빙성 강성무송”신승우촬영작품집을 올겨울 길림시무송빙성제개막식에 150권 증정했으며 기타는 여러 대학과 지인들에게 기증할 타산을 밝혔다. 신승우선생이 지금까지 출간한 12권의 개인작품집 모두 사비(약 20여만원)를 들여서 출판되였는데 판매는 단 한권도 하지 않고 국가도서관, 길림시도서관, 연변대학, 북화대학, 동북전력대학, 길림농업과학기술학원 등과 지인들에게 기증을 했다. “이번 작품집은 아마 내 생에 마지막작품집일거여.. 나의 작품세계를 유감없이 세상에 다 털어놓고 가는 기분이지. 후세들에게 남겨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후련해.” “내가 태여나고 평생 살아온 고향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고 말하는 신승우선생, 사진기를 만진지 50년이 넘는 로장 사진작가의 페부에서 우러나온 말에 가슴이 뭉클해온다 . ///길림신문 차영국 기자            
7    [이런저런] - "바지 벗고 지하철 타는 날"... 댓글:  조회:4264  추천:0  2018-01-09
바지 벗고 지하철 타는 날! [ 2018년 01월 08일  ]     사진 크게보기 7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에서 '바지 없이 지하철 타기'를 하고 있는 여성 승객이 지하철에서 하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의를 입지 않고 속옷만 입은 남녀들이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지하철에 등장에 화제다.     일명 '노 팬츠 데이(No Pants Day)'라고 불리는 이 날 행사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자 2002년 뉴욕에서 시작되어 임프루브 에브리웨어(Improv Everywhere)라는 플래시몹 단체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   '노 팬츠 데이'의 규칙은 간단하다. 참가자들은 하의를 제외한 코트와 장갑, 목도리를 모두 착용할 수 있으며 정해진 날짜에 지하철을 타서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된다. 이에 참가자들은 추운 겨울 날씨 속에서도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바지를 벗고 속옷 차림으로 지하철을 기다리거나 책을 보는 등 일상적인 모습을 연출해 일반 승객들의 웃음을 선사했다.  사진 크게보기 독일 뮌헨에서 7일(현지시간) '바지 없이 지하철 타기'를 하고 있는 시민들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7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에서 '바지 없이 지하철 타기'에 참여한 시민들이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각선미를 뽐내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체코 프라하에서 7일(현지시간) '바지 없이 지하철 타기'에 참여한 남성 승객이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계단을 내려가 시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체코 프라하에서 7일(현지시간) 두쌍의 커플들이 바지를 입지 않은 채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독일 뮌헨에서 7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바지를 입지 않은 채 태연히 신문을 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7일 독일 베를린에서 승객들이 바지를 벗고 속옷차림으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7일 영국 런던의 지하철역에서 한 여성이 바지를 벗고 지하철 타기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7일 영국 런던의 지하철역에서 바지를 벗고 속옥만 입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기위해 서 있다. [EPA=연합뉴스] 영국 센트럴라인 지하철역에서 바지벗고 지하철 타기 행사에 참여한 한 여성이 다리를 올려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뉴욕 "No Pants Subway Ride"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뉴욕의 지하철에서 한 남성(왼쪽)이 '바지 벗고 지하철 타기' 행사에 동참하기 위해 바지를 벗고 있다. 오른쪽은 행사에 참여한 승객.[AFP=연합뉴스] 7일 미국 뉴욕에서 한 커플이 "No Pants Subway Ride" 행사에 동참한 후 경찰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키스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앙일보
6    [이런저런] - "절벽 미술관" 댓글:  조회:2530  추천:0  2018-01-09
귀주에 등장한 아찔한 절벽 미술관 [ 2018년 01월 09일 08시 35분 ]     최근 구이저우(貴州, 귀주)성 안룽(安龍)현 국가 산악지역 야외 스포츠 시범공원에 룽옌(溶岩, 용암)미술관이 등장했다. 미술관의 건축면적은 1,350㎡에 달하고 내부 건축면적은 800㎡에 달한다. 총 2개 층으로 건설되었으며 1층에는 회의 공간, 2층에는 전시관이 설치되어 있다. 미술관은 절벽 위에 건설되어 있어 아찔하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잘 담고 있다. 또한 절벽 꼭대기의 함몰된 부분에 지어져 지형적으로 평평한 모습을 하고 있다. 미술관의 모습은 초승달을 닮았다. 해당 미술관은 가볍고 얇으며 투명한 소재로 원래의 절벽 부분을 구성했고 건축물 자체가 절벽 바깥쪽을 향하고 있어 옥상과 창문에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인민망             :302 ]              
5    [이런저런] - 수자를 아는 머리카락... 댓글:  조회:1019  추천:0  2018-01-09
녀배우 8년동안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새해 맞이 [ 2018년 01월 09일 09시 34분 ]     외국의 한 여배우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그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년도를 그려 주변에 웃음을 선사한 이슈인물이다. ///봉황넷                                                  
4    <해빛> 시모음 댓글:  조회:1896  추천:0  2018-01-09
   + 허락된 과식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햇빛이 가득한 건  근래 보기 드문 일  오랜 허기를 채우려고  맨발 몇이  봄날 오후 산자락에 누워 있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햇빛을  연초록 잎들이 그렇게 하듯이  핥아먹고 빨아먹고 꼭꼭 씹어도 먹고  허천난 듯 먹고 마셔댔지만  그래도 남아도는 열두 광주리의 햇빛!  (나희덕·시인, 1966-)  + 햇빛이 말을 걸다  길을 걷는데  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  봄이야  그 말을 하나 하려고  수백 광년을 달려온 빛 하나가  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 것이다  나무 한 잎 피우려고  잠든 꽃잎의 눈꺼풀 깨우려고  지상에 내려오는 햇빛들  나에게 사명을 다하며 떨어진 햇빛을 보다가  문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강물에게 나뭇잎에게 세상의 모든 플랑크톤들에게  말을 걸며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며 날아가는 물방울들  초록으로 빨강으로 답하는 풀잎들 꽃들  눈부심으로 가득 차 서로 통하고 있었다  봄이야  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햇빛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의 소리를 듣고 푸른 귀 하나가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권대웅·시인, 1962-)  + 햇살에게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종일  찬란하게 비춰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호승·시인, 1950-)  + 햇빛 바람  손가락에 침 발라  쏘옥 쏙 쏙  장에 가는 엄마 내다보려  문풍지를  쏘옥 쏙 쏙  아침에 햇빛이 반짝  손가락에 침 발라  쏘옥 쏙 쏙  장에 가신 엄마 돌아오나  문풍지를  쏘옥 쏙 쏙  저녁에 바람이 솔솔.  (윤동주·시인, 1917-1945)  + 햇살의 분별력  감나무 잎에 내리는 햇살은 감나무 잎사귀만하고요  조릿대 잎에 내리는 햇살은 조릿대 잎사귀만하고요  장닭 벼슬을 만지는 햇살은 장닭 벼슬만큼 붉고요  염소 수염을 만지는 햇살은 염소 수염만큼 희고요  여치 날개에 닿으면 햇살은 차르륵 소리를 내고요  잉어 꼬리에 닿으면 햇살은 첨버덩 소리를 내고요  거름더미에 뒹구는 햇살은 거름 냄새가 나고요  오줌통에 빠진 햇살은 오줌 냄새가 나고요  겨울에 햇살은 건들건들 놀다 가고요  여름에 햇살은 쌔빠지게 일하다 가고요  (안도현·시인, 1961-)  + 햇살은 어디로 모이나  눈도 녹지 않았는데  어찌 그리 양달을 잘 아시는가  나물을 뜯으려고 바구니를 내려놓은 자리  거기다, 그곳이 햇살의 곳간이다  갈퀴 손으로 새순을 어루만지자  오물거리던 햇살이 재게 할머니의 등에 오른다  무거워라 포대기를 추스리자  손자 녀석의 터진 볼에 햇살이 고인다  엄마 잃은 생떼의 입술이 햇살의 젖꼭지를 빤다  햇살의 맞은편, 그러므로 응달은  할머니의 숯검댕이 가슴 쪽에 서려 있다  늘그막에 핏발 서는 빈 젖꼭지에 있다  항아리 숫돌에 녹물을 지운 나물 칼  응달은 자신의 남은 빛을 그 칼날에다 부려놓고  방금 새순을 바친 풀뿌리로 스며든다  우글거리던 햇살의 도가니, 그 밑자리로  응달은 겨울잠 자러 가는 실뱀처럼 꼬리를 감춘다  양달은 지금 어디에다 아랫목을 들였나  아기가 갑자기 제 트림에 놀라 운다  아기의 뱃속 어딘가에서  빙벽 하나 무너져내렸는가  (이정록·시인, 1964-)  + 몇 줌 시린 햇볕에도  지난밤 바람이 몹시 불더니, 하느님이 다녀가셨는가?  옆집에 마실 오듯 슬쩍 다녀가셨는가?  이파리들 다 떨구고  차마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떠꺼머리총각처럼 서 있는 저 감나무  몇 줌 시린 햇볕에도  한없이 떨며 깊어지는  극빈의 그늘 속에  새소리, 새소리들  발목 붉은 새 울음소리들  이 세상을 다 가진 듯 맑고 높게  반짝이고 있으니  이런 날 내 공부는  경전이고 나발이고 읽던 책 탁 덮고  밖으로 나가  빨랫줄에 빨래를 널거나 마당을 쓸거나 아니면 빈둥빈둥 구름을 쳐다보며  눈 밑 점이 이쁜  한 사람을 생각하거나!  (전동균·시인, 1962-)  + 햇빛에 대하여   먼 길 걸어온 햇빛 반기는 것인지  넘치고 넘쳐나는 햇빛이 아까웠는지  생의 아래쪽으로 움츠려 있던 나무들이 활짝,  살림살이 그릇 죄다 꺼내어 펼쳐놓는다  저 많은 그릇에 넘쳐나는 햇빛의 둥근 기억들  달고 시고 쓰고 맵고 짜고 비린 기억의 햇빛들  햇빛은 그 맛의 기억을 찾아서 내린다  햇빛의 그릇들을 높이 걸어놓는  저기 저것 좀 봐  햇빛 어루만져 매달아놓은 과실들  햇빛 읽어 반짝반짝 소금이 자라는 바닷물  둥글게 햇빛을 깎아놓은 높다란 방에서  아늑하게 삶이 데워지기도 한다  햇빛이 닿으면 닿기 무섭게  꽃들이 향기를 타고 올라 생의 널 뛰고  곡식들이 절로 고개 숙인다  햇빛은 그 밝기만으로도 얼마나 겸손한 것인가  열매처럼 매달린 내 머리도 끄덕인다  어느 늦은 저녁  햇빛의 시장기가 몰려오는 것인지  나는 어질머리 흔들며 집으로 돌아간다  제 생의 햇빛을 다 담아냈던  그릇들이 달그락 달그락 소리내는  사과밭 지나 배밭 지나  (최창균·시인, 1960-)  +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 가는 이삿짐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도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칠라치면  세상이 죄다 언짢아 보인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에서 읽어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다   (이문재·시인, 1959-)  + 이분법에 대한 일상의 소견  햇볕에 빨래를 내다 건다  햇살에 걸린 빨래들,  너무 오만하게 지쳐 섰던 영혼이  햇살에 오징어처럼  타 없어질 때까지  일광욕중이다  몸과는 사이가 나쁜 영혼에게  영혼이라는 말에 갇혀 영영 우울한 영혼에게  가을 하늘, 햇살에 걸린 빨래들에 섞이어  제 순수를 잃어버릴까,  잔뜩 겁먹은 영혼에게  개살궂은 사내처럼  간지럼 태우다  깔깔,  영혼도 웃다가 배를 움켜쥐고 자지러진다  웃다가 오줌도 새는 줄 모르고  눈물이 쏙 빠지고  혼이 달아난다  영혼에 영혼의 얼룩이 빠지고  영혼은 비로소 다른 것들과 구별되지 않고  평범해졌다, 깨끗해졌다  햇살 참 좋다,  (조하혜·시인)  + 담북장 햇살  한겨울 할머니 묘소엘 가면  겨울 햇살에서 담북장 냄새가 난다  고드름 굵게 쳐진 처마 아래  김장철부터 시름시름 말려놓은 무청 시래기  듬뿍 넣고 끓인 담북장에선  할머니 곰삭은 팔십 평생 속울음 냄새가 난다  대청마루 밑에 넣어둔 보랏빛 씨감자  부엌 한 편에서 싹을 틔운 푸른 대파  끓어 넘치는 뚝배기에서 송송 끓으면  겨울 햇살도 입맛 다시며  한 술 뜨는 숟가락에 서둘러 내리꽂힌다  둥근 상 빽빽이 둘러앉아 수다 피지 말라고  눈치 주던 어머니 앞에서 분주한 형제들 입질  일 년 내 거둬들인 쌀가마랑 잡곡 가마랑  새봄 서울로 공부 떠나는 아이들  꽁무니에 붙여 딸려 보내고 나면  꼭두새벽부터 소여물 끓이는  할머니 이마에 식은 땀 쉴새 없지만  한 뼘씩 커진 손자들 쑥대머리 너머로  창창한 뭉게구름이 달리기를 한다  굼뜬 겨울 햇살 끼어 든 침침한 아랫목에  눈감으신 허리 굽은 할머니  팔십 평생이 저토록 곰삭았을까  (김금용·시인)  + 할머니의 봄날  볕 아깝다  아이고야 고마운 이 볕 아깝다 하시던  말씀 이제사 조금은 알겠네  그 귀영탱이나마 조금은 엿보겠네  없는 가을 고추도 내다 널고 싶어하시고  오줌 장군 이고 가  밭 가생이 호박 몇 구덩이 묻으시고  고릿재 이고 가  정구지 밭에 뿌리시고  그예는  마당에 노는 닭들 몰아 가두시고  문이란 문은 다 열고  먹감나무 장롱도  오동나무 반닫이도 다 열어 젖히시고  옷이란 옷은 마루에  나무널에 뽕나무 가지에 즐비하게 내다 너시고  묵은 빨래 일손으로 처덕처덕 치대  빨랫줄에 너시고  그예는  가마솥에 물 절절 끓여  코흘리개 손주놈들 쥐어박으며 끌어다가  까마귀가 아재, 아재! 하고 덤빈다고  시커먼 손등 탁탁 때려가며  비트는 등짝 퍽퍽 쳐대며  겨드랑이 민둥머리 사타구니 옆구리 쇠때 다 벗기시고  저물녘 쇠죽솥에 불 넣으시던 당신  당신의 봄볕이  여기 절 마당에 내렸네  당신 산소에서 내려다보이는 기슭에는  가을에 흘린 비닐 쪼가리들 지줏대들 태우는 연기 길게 오르고  이따금 괭잇날에 돌멩이 부딪는 소리 들리겠네  당신의 아까운 봄볕이  여기 절 마당에 내려 저 혼자 마르고 있네  (장철문·시인, 1966-)  +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을 아시는가 이것은 나락도 거두어 갈무리하고 고추도 말려서 장에 내고 참깨도 털고 겨우 한가해지기 시작하던 늦가을 어느 날 농사꾼 아우가 한 말이다 어디 버릴 것이 있겠는가 열매 살려내는 햇볕, 그걸 버린다는 말씀이 당키나 한가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은 끊임없이 무언갈 자꾸 살려내고 싶다는 말이다 모든 게 다 쓸모가 있다 버릴 것이 없다 아 그러나 나는 버린다는 말씀을 비워낸다는 말씀을 겁도 없이 지껄이면서 여기까지 왔다 욕심 버려야 보이지 않던 것 비로소 보인다고 안개 걷힌다고 지껄이면서 여기까지 왔다 아니다, 욕심도 쓸모가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마음으로 보면 쓸모가 있다 세상엔 지금 햇볕이 지천으로 놀고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뜻을 아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다 사람아 사람아 젖어있는 사람들아 그대들을 햇볕에 내어 말려 쓰거라 끊임없이 살려내거라 놀고 있는 햇볕이 스스로 제가 아깝다 아깝다 한다  (정진규·시인, 1939-)  + 햇살  하늘에는  태양의 햇살  내 마음에는  님의 햇살  광활한 대지는  태양의 햇살에 잠을 깨고  내 작은 영혼은  님의 햇살에 잠을 깨어요  하늘에는  따스한 태양의 햇살  내 마음에는  따스한 님의 햇살  대지는  태양의 햇살에 따스하고  내 마음은  님의 햇살에 따스합니다  (정연복, 1957-)    인도 뭄바이의 아라비아해 해변에서 한 남자가 갈매기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다. / 2018년 1월 9일, /인도 뭄바이
3    <별> 시모음 댓글:  조회:1644  추천:0  2018-01-09
   + 별의 여인숙  친구하고 저녁에  술 한 잔 하고 그냥  집에 돌아가기는 싫어라.  다른 녀석네 대문을 박차거나  낯선 여자 지저분한 분내에 안겨  아무렇게나 하룻밤 잠들고 싶네.  그래도 그러지 못하고  바보처럼  허청허청 돌아오는 길.  내 지붕 위에 나지막이 내려걸린  하늘의 북두칠성  아 저기로나 기어올라가서 하룻밤  잠들어볼까.  일곱 별 중 아래쪽으로 기울어진 네 별  그 오목한 구석  하느님이 들고 계시는  잠자리채 같은 저 속에 들어가  쪼그리고 잠을 잘까.  새벽에 깨어나  별들과 우주로 잠적해버리거나  땅바닥에 떨어져 깨질지라도.  (이성선·시인, 1941-2001)  + 별  밤의 입천장에 박힌 잔이빨들, 뾰족하다  저 아귀에 물리면 모든 罪가 아름답겠다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별의 갈퀴  하얀 독으로 스미는 罪가 나를 씻어주겠다  (신용목·시인, 1974-)  + 어떤 마을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음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 담던 접동새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짓는 냄새 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도종환·시인)  + 眞光不輝!  참된 빛은 번쩍거리지 않는다  어둠 속의 별빛은 부드럽고  슬프고 은은하고 따뜻하다  지금 너무 눈부시고  너무 찬란한 별들을  경계하라  (박노해·시인, 1958-)  + 별에게 물어봐야지  내게  별빛 한 줄기 달려오는 데  140억 년이나 걸렸대  오직 내게로만 오는데.  오늘 밤,  별에게 물어봐야지  학교 갔다오는 나처럼  놀다오지는 않았는지,  개울에 들러 가재를 잡았다던가  장난감 가게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구경 조금,  하지는 않았는지,  거미줄에 맺힌 빗방울이랑  풀잎이 달고 있는 아침이슬,  보랏빛 작은 제비꽃을 보고도  정말, 그냥 지나쳤는지.  그래서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아니냐구  오늘 밤 별에게  꼭, 물어봐야지.  그래, 그것도 물어봐야겠다  나도 별처럼 빛이 되려면  얼마나 걸리는 지  그것도 꼭,  물어봐야겠다.  (허명희·아동문학가)  + 슬픈 어느 날  울음을 참으려고  애를 썼지만  별님이   먼저 알고  눈물이 글썽.  슬픔을 잊으려고  애를 썼지만  달님이   먼저 알고  수심이 가득.  (박지현·아동문학가)  + 사랑을 위한 서시  나는 행복하다.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외롭고 먼 이름 하나 있어  어두운 저녁마다  나를 지키는 별이 된다.  우리의 운명은  애초부터 멀리 떨어져 있도록 예정되어 있는가  수천 광년을 달려가도 만나지 못하는 거리  외롭고 쓸쓸한 이름 하나 있어  고독한 저녁마다  나를 지키는 별이 된다.  네가 이 세상에  그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나  (윤수천·시인, 1942-)  + 뜨지 않는 별  별이라 해서 다 뜨는 것은 아니리  뜨는 것이 다 별이 아니듯  오히려  어둠 저 편에서  제 궤도를 지키며  안개꽃처럼 배경으로만 글썽이고 있는  뭇 별들이 있어  어둠이 잠시 별 몇 개 띄워 제 외로움을 반짝이게 할 뿐  가장 아름다운 별은  높고  쓸쓸하게  죄짓듯 앓는 가슴에 있어  그 가슴 씻어내는  드맑은 눈물 속에 있어  오늘밤도  뜨지 않은 별은 있으리  (복효근·시인, 1962-)  + 별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정진규·시인, 1939-)  + 그대 그리운 별  그대 사랑할 때  별이 되고 싶어라  하늘에서 이슬 머금은 별  유난히 반짝이지 않는 그리움의 별  사랑 하나로 별이 되고  그리움 하나로 별이 되고  바람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대는 아시려나  그대 사랑하면 외로움으로  허공 중에 표류한다는 걸  그대 사랑할 때  외로운 별이 되고  바람이 되어도  온몸에  눈물 머금어 이슬 되어도  맺힐 수 없고  반짝일 수 없다는 걸  그리운 그대는 아시려나  차마 바람이 되고  별이 될 수 없다는 걸  그대는 아시려나  (박장락·시인)  + 그대가 별이라면  그대가 별이라면  저는 그대 옆에 뜨는 작은 별이고 싶습니다  그대가 노을이라면  저는 그대 뒷모습을 비추어주는  저녁 하늘이 되고 싶습니다  그대가 나무라면  저는 그대의 발등에 덮인  흙이고자 합니다  오, 그대가  이른 봄 숲에서 우는 은빛 새라면  저는 그대가 앉아 쉬는  한창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이고 싶습니다  (이동순·시인, 1950-)  + 별빛, 저 환한 눈물 한 점  별이 밤마다 반짝이는 것은  아득한 세월 우주를 떠돌던 외로움 때문이다  그대에게 닿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 한 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신공양 제 몸에 불질러  한사코 빛 뿌리고 있는 것이다  별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것은  제 몸 다 사르고 남은 외로움이  둥글고 환한 사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데굴데굴 굴러가 그대에게 가 닿고 싶은 마음이  세월 속에서 단단하게 뭉쳤기 때문이다  별빛 저 환한 눈물 한 점,  별은 제 외로움 끝나는 날까지  제 몸 사르는 일 그만 둘 수가 없다  지금도 어둠 속에서 별이 반짝이는 것은  수수천년,  무릎걸음으로 다가가야 할 그대와의 거리가  아직도 까마득하기 때문이다   (주용일·시인, 1964-)  + 지상의 봄  별이 아름다운 건  걸어야 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들 위에  다시 집을 짓는  이 지상에서  보도블록 깨어진 틈새로  어린 쑥잎이 돋아나고  언덕배기에 토끼풀은 바람보다 푸르다.  허물어진 집터에  밤이 내리면  집 없이 떠도는 자의 슬픔이  이슬로 빛나는 거기  고층 건물의 음흉한 꿈을 안고  거대한 굴삭기 한 대  짐승처럼 잠들어 있어도  별이 아름다운 건  아직 피어야 할 꽃이 있기 때문이다.  (강인한·시인, 1944-)  + 별들은 따뜻하다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정호승·시인, 1950-)  + 북극성  숲속에 홀로 누운 밤이면  나의 온몸은 나침반  그대 향해 파르르 떠는 바늘  밤새 외눈의 그대 깜빡일 때마다  나의 몸은 팽그르르 돌아  정신이 없다  극과 극의 사랑이여  단 하룻밤만이라도  두꺼비집을 내리고 싶다  (이원규·시인, 1962-)  + 바람과 햇살과 별빛  꽃잎에 맴돌다 가는 바람에  어디 흔적이 있으랴  그래도 보이지 않는 바람에  꽃잎의 몸은 흔들렸으리  꽃잎에 머물다 가는 햇살에  어디 흔적이 있으랴  그래도 보이지 않는 햇살에  꽃잎의 마음은 따스했으리  꽃잎에 입맞춤하는 별빛에  어디 흔적이 있으랴  그래도 보이지 않는 별빛에  꽃잎의 영혼은 행복했으리  오!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이여  (정연복, 1957-)    ㅡ철새들은 너나없이 오가것만...
2    <콩나물> 시모음 댓글:  조회:1687  추천:0  2018-01-09
   + 콩나물은 서서 키가 큰다  콩나물이 그렇다.  대개 머리가 위로 올라가면서  키 크는 것과 달리  발이 뻗으며  키가 큰다.  하늘을 넘보지 않고도  할 일을 다 하는 셈이다.  단순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법을 깨친  수도승처럼  담담하고 단호하게  발을 뻗는다.  콩나물은 서서 키가 큰다.  (김성옥·시인)  + 숨쉬는 일에 대한 단상  항아리 속 검은 보자기 아래  노란 꽃술들,  살짝살짝 보자기를 들어올리며  고르게 숨을 쉰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끼얹을 때면  하루가 다르게 살 차 오르는  둥글 달을 보는 것 같은데  물관부를 따라 물길어 나르는  노랫소리에 맞춰  4분 음표들, 방안을 뛰어 다닐 것 같은데           숨쉬는 일이란  틈새를 비집고 촘촘한 영토를 다스리는 일,  고개를 떨군 채  生을 수직상승 시키는 일이다  (이가희·시인, 1964-)  + 콩나물에 묻다  무엇에 놀란 삶이기에  저토록 노랗게 질린 얼굴일까  얼마나 생각이 많은 삶이기에  저토록 무거운 머리를 이고 있을까  온몸이 뿌리가 되어버리고도  어떤 무게를 견딜 수 없어 저토록 힘든 모습일까  얼마나 지독한 사랑을 앓았기에  저토록 허연 뱃속까지 드러나 있는 것일까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토록 일생을 고개를 떨구고 들지 못하는 것일까.  (이용채·시인)  + 콩나물 시루   추, 추, 추, 요강에 오줌을 누며  할머니가 치를 떨었다  잠든 콩나물시루에 몇 바가지 물을 내리고  할머니는 다시 누웠다  콩나물 무수한 대가리들이  노란 부리를 벌려 물을 받아먹었다  콩나물의 몸을 빽빽하게 빠져나온 물이  밑 빠진 독의 구멍을 타고 흘렀다  방안은 깊은 동굴이 되었다  똑, 똑, 똑,.....  콩나물 시루의 물방울소리  식구들의 잠을 뚫고  억만 년 동안 떨어졌다  천장에서 무수한 石柱들이 내려왔다  (정병근·시인, 1962-)  + 다시 나에게 쓰는 편지  콩나물은  허공에 기둥 하나 밀어 올리다가  쇠기 전에 머리통을 버린다  참 좋다  쓰라린 새벽  꽃도 열매도 없는 기둥들이  제 몸을 우려내어  맑은 국물이 된다는 것  좋다 참  좋은 끝장이다  (이정록·시인, 1964-)  + 콩나물국, 끓이기  사내는 뚝배기 속으로  지휘봉을 가져간다  도에서 끓기 시작한 뚝배기 속의 음표들을  사내는 지휘하듯 휘휘 내젓는다  음계는 금세 높은음자리로 음역을 높인다  이 음악은 너무 뜨거워 맛보기가 힘들다  사내는 입술을 오므려 솔,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이 뚝배기 속으로 뛰어든다  음악소리가 완전히 익기까지는  시간을 조금 더 끓여야한다  사내는 잠시 식욕을 닫고  기다리는 동안 창 밖을 바라본다  창 밖 나뭇가지가 세상을 휘젓는다  공중 부양하는 수많은 손바닥들  손대기에도 너무 뜨거운 세상 때문이다  땅의 뚝배기 속에 떨어지기도 전에  나뭇잎이 몸을 굴린다  사내가 삶의 안쪽으로 몸을 돌린다  뚝배기가 심장처럼 펄펄 끓어오른다  뚝배기를 식탁 쪽으로 옮긴다  사내는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에 숟가락을 끼운다  뜨겁게 김이 오르는 음표들을 입으로 분다  음표들이 낮은 음계에 도달한다  뒷모습이 콩나물인 사내가  음악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다  한 소절의 생이 고스란히 입안에서 씹힌다  창 밖 저녁노을이,  얼큰하다  (이동호·시인)  ------------------------------------------------------  + 콩나물에 대한 예의   콩나물을 다듬는답시고 아무래도 나는 뿌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무슨 알량한 휴머니즘이냐고 누가 핀잔한대도 콩나물도 근본은 있어야지 않느냐 그 위를 향한 발돋움의 흔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하지는 못하겠다 아무래도 나는 콩나물 대가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죄 없는 콩알들을 어둠 속에 가두고 물 먹인 죄도 죄려니와 너와 나 감당 못할 결핍과 슬픔과 욕망으로 부풀은 대가리 쥐뜯으며 캄캄하게 울어본 날들이 있잖느냐 무슨 넝마 같은 낭만이냐 하겠지만 넝마에게도 예의는 차리겠다 그래, 나는 콩나물에게 해탈을 돕는 마음으로 겨우 콩나물의 모자나 벗겨주는 것이다  (복효근·시인, 1962-)  + 콩씨네 자녀 교육  광야로  내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고.  (정채봉·아동문학가, 1946-2001)  + 콩나물 가족  아빠는 회사에서 물먹었고요  엄마는 홈쇼핑에서 물먹었데요  누나는 시험에서 물먹었다나요  하나같이 기분이 엉망이라면서요  말시키지 말고 숙제나 하래요  근데요 저는요  맨날맨날 물먹어도요  씩씩하고 용감하게 쑥쑥 잘 커요  (박성우·시인, 1971-)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내 연못에서... /천연기념물 제327호 원앙. ///[연합뉴스]
1    [이런저런] - 화장실 변기에서 "스르륵"... 댓글:  조회:4272  추천:0  2018-01-09
국제 더보기 집 안 화장실 변기에서 뱀이 ‘스르륵’… 모르고 앉았다면?! 김은향 동아닷컴 기자 2018-01-09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0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더보기 사진=벤 테드릭 씨 유튜브 영상   미국의 한 주택 실내 화장실 변기에서 뱀이 나와 충격을 안겼다. 뱀이 변기 구멍을 통해 기어 나오는 모습을 목격한 집주인은 스스로 뱀을 잡아 자연으로 돌려 보냈다.  최근 미국 매체 ‘댈러스 뉴스(DALLAS NEWS)’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 브라조스 카운티에 위치한 한 목장의 주인인 벤 테드릭(Ben Tedrick) 씨는 지난달 30일 목장 내 집에서 경악스러운 일을 경험했다. 그는 집 화장실 변기 구멍에서 살아있는 뱀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매체에 따르면, 벤 씨는 목장에 있는 집을 몇 년 동안 비워뒀다가 당시 그 집을 청소하고 있었다. 청소를 하던 벤 씨는 직원으로부터 “화장실 변기에서 뱀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로 간 벤 씨는 실제로 변기 안쪽 구멍에서 뱀을 봤다. 벤 씨가 촬영한 영상을 보면, 이 뱀은 혀를 날름거리면서 천천히 변기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다가 뱀은 이내 모습을 감췄다.   벤 씨는 뱀을 꺼내기 위해 물걸레 손잡이와 끈 등으로 올가미를 만들었다. 이후 뱀은 다시 변기 구멍으로 나왔지만, 벤 씨가 올가미를 들이대자마자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그러나 벤 씨는 뱀 포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다시 뱀이 나왔을 때 벤 씨는 올가미를 이용해 뱀을 생포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대해 벤 씨는 “당시 상황은 최악의 악몽이었다. 나는 정말 놀랐다. 그 뱀은 힘이 매우 세서 잡는데 고생했다”며 “뱀을 잡았을 땐 감동했다. 내가 뱀을 잡았을 때, 처음에는 뱀 몸통의 약 90cm를 끄집어냈다. 그 다음 뱀을 완전히 변기 구멍에서 빼냈다. 완전히 내게 패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벤 씨는 뱀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는 뱀을 넣은 자루를 차에 싣고 숲으로 들어가 그 곳에 뱀을 방생했다.     벤 씨는 “이 곳은 뱀이 살기 좋은 장소일 것”이라며 “여기서 뱀은 겨울잠을 잘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파충류 전문가 피츠제럴드 씨(Lee A. Fitzgerald)는 추운 날씨 때문에 뱀이 하수구를 통해 따뜻한 집 화장실 변기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뱀이 하수구 시스템을 통해 나오는 사례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 “사람들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만약 변기에서 뱀을 발견한다면 침착하게 화장실 문을 닫고 구조를 요청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김은향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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