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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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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인류의 가장 위대한 노래 - 아리랑 댓글:  조회:3330  추천:0  2018-01-10
  인류 최초의 찬송가인 아리랑 노랫말 속에 숨겨진 비밀 온 인류의 가장 위대한 아리랑 찬송가를 찬양하고 승화발전     처음 창조된 남자에게 하나님이 팔을 펼쳐 손가락 끝을 대며 생명의 기를 불어넣는 ‘아담의 창조’    온 인류는 은혜를 기리어 찬양한다. 이러한 찬양(讚揚)의 의미는 본래 특정 대상을 칭찬하거나 기리어 드러낸다는 뜻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그들이 믿는 종교에서 추앙하는 어떤 신이나 절대자를 한없이 높이는 존경의 의미를 담아 낼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여기에 경건한 신앙심의 기도를 담아내는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우리들을 이를 일러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라 부른다. 그런데 우리들은 여기에서 하나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도대체 그 궁금증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류최초의 찬송가가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불리어 졌느냐하는 문제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부른 찬송가의 내용은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또한 어떤 소리음으로 노래를 불렀을까? 하는 문제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내기 위해서 하나의 가설을 세울 수 있다.   만약 수만 년 전에 고대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를 불렀다면, 그들은 바로 어떤 지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하나의 가정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지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인류를 들어 고고학적으로 현생인류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현생인류를 현시대의 학명(學名)으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라고 부른다.     ▲ 인류최초의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생활모습   우리들은 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현생인류가 6만 8천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확산된 것으로 본다. 이들은 아프리카를 떠나 아라비아 반도를 걸쳐 약 3만 년 전에 유럽으로 들어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다. 그리고 아라비아반도에 진출한 현생인류 가운데 또 하나의 집단은 해안가를 따라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남부, 만주, 시베리아, 한반도, 일본, 오세아니아 등지로 폭넓게 퍼져 나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또한 이들 중 일부는 역시 베링 해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역시 추정한다. 더욱이 4만 내지 5만 년 전에 중앙아시아에 이들 현생인류가 도착한다. 그리고 이들은 바이칼호수 근처와 레나 강 유역 등지에서 신석기문화를 형성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1만 년 전 이러한 신석기문화를 가지고 유라시아를 거쳐 동아시아로 진출하여 만주 지역에서 요하문명을 일으킨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은 한반도를 들어와 한반도에 본래 있었던 선주민(先住民)들과 혼혈을 이루며, 우리의 위대한 한민족의 원형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우리들은 인류의 이러한 전 이동과정에서 반드시 고찰해보아야만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6만 8천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동아시아의 만주벌판에서 요하문명을 만들어내기까지, 아니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기나긴 세월동안 절대 잊지 않고 이들은 지켜준 간절한 정신적인 힘이 무엇이었느냐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렇게 간절한 소망의 노래를 그들은 어떻게 불렀느냐는 문제이다. 우리들은 올바른 인류문명의 시원을 제대로 찾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과연 인류가 최초로 부른 간절한 소망의 노래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누가 뭐래도 바로 찬송가가 될 것이다.     ▲ 인류의 이동과정   우리들이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찬송가는 온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며 부르는 노래이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며 부른 인류최초의 찬송가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아리랑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우리들은 이제부터 왜 아리랑이 인류최초의 찬송가에 되는지를 다른 학문이 아닌 언어학으로 고찰해보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언어학으로 인류최초의 찬송가인 아리랑을 검증하는 절차는,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언어학으로 인류최초의 찬송가인 이 아리랑을 검증하는 절차는 몇 가지 단계를 걸쳐야만 한다. 그것은 우선 아리랑에 대한 순수 한글정음문자로 아리랑의 의미를 풀어보고, 그리고 한국어의 고대문자라 할 수 있는 르완다어와 산스크리어로 풀어보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들의 종합적인 뜻을 풀어 하나의 결집된 언어로 결론을 내는 것일 것이다. 이제 아리랑에 대한 노랫말을 풀어보기로 하자.   ■ 아리랑 찬송가의 노랫말       (현) 아리랑의 노랫말   아리랑 정음문자의 노랫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알이랑 알이랑 알알리요. 알이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알이알이랑 쓸이쓸이랑 알알이가 났네. 알이랑 고개로 나 얼 넘겨주소.        우선 아리랑에 대한 정음문자를 풀어보기 위해서는 아리랑을 정음문자의 순수발음으로 전환한 다음, 이를 다시 정음어휘문자로 파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제 아리랑 정음문자의 노랫말을 파자해보기로 하자. 우선 아리랑을 파자해보기 전에 우리말의 발음에는 “연음법칙” 이라는 음절의 연결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성이 있다. 연음법칙은 자음으로 끝나는 음절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음절이 이어질 때 앞 음절의 끝소리가 뒤 음절 첫소리가 되는 음운 규칙을 말한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예, “깊이→기피” “옷을→오슬” “책이→채기” “낮에→나제” “벗이랑→버시랑” “가물어”→“가무러” “하늘이→하느리”   따라서 “알이랑”이 “아리랑” 이 되며, “알알이요”는 “아라리요”로 연음법칙의 발음으로 전환될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       한글 정음문자로 풀어낸 아리랑노랫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알이랑 알이랑 알아리요   ■ “알이랑” 의 정음문자해석   알(알)이랑의 “알”자는 이응(ㅇ), 아(ㅏ), 리을(ㄹ)자의 합자이다. 이때 이응(ㅇ)자는 둘레∙ 울타리∙ 집단∙ 순환을 나타내고, 아(ㅏ)자는 이응(ㅇ)자의 확장성을 나타내는 문자로, 이는 인간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 중에서 가장 입을 크게 벌리고 내는 소리로 양(陽)적인 성격이 들어나는 소리음이 될 것이다. 또한 리을(ㄹ)자는 음과 양을 함께 가르며 회전하는 활동성을 나타낼 것이다. 따라서 “알이랑”의 “알”자는 대우주의 양적인 회전성을 나타내는 문자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알이랑”의 이(ㅣ)자는 상하의 연결이 막히는 종결적인 의미로 지시어의 발음을 나타낸다. 즉 이(ㅣ)자는 이것, 이분, 이놈과 같은 지시어의 발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알이랑”의 “알이”는 대우주의 회전력을 가진 활동성이 종결되고 새로운 우주가 탄생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알이랑”의 “랑”자는 이(ㅣ)자와 합쳐 “~와 함께” 라는 문자가 될 것이다. 즉 “이랑”은 “~와 함께”라는 토씨로서(언어학자들은 ‘토씨’는 6천년 이상 간다고 한다) 서로 다정한 소리를 나타내는 문자라는 것이다. 즉 “이랑”은 너랑, 나랑 서로 함께 사랑을 나누자는 이야기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알이랑”은 천지창조를 이룩한 ‘하느님과 함께(With God)’모든 일을 한다는 기쁨마음을 표현한 문자라고 볼 수 있다.   ■ “알아리요” 정음문자의 뜻   “ 알아리요” 는 “알이랑”의 대우주가 탄생되었음을 깨닫고 서로 함께 큰 기쁨을 나누며 열창하는 소리이다. 이때 “알아리요”에서 큰 기쁨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리을(ㄹ)자에서 나온다. 우리들이 대부분의 리을(ㄹ)자를 살펴보면, 리을(ㄹ)자가 들어가는 모든 종결음은 대부분이 큰 기쁨을 나타낸다. 즉 리을(ㄹ)자의 “락, 노래, 즐겁다, 오락, 쾌락, 놀다” 에서와 같이 기쁨을 잘 나타내는 글자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알이랑 알이랑 알아리요”는 “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이제 완전한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라고 기쁨 마음으로 외치는 소리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알이랑 고개로 넘어간다.   ■ “ 알이랑 고개로 넘어간다.” 의 정음문자 해석   “ 알이랑 고개로 넘어간다.” 는 뜻은 “알이랑 알이랑 알아리요”의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이제는 완전한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라는 문장의 확장성을 받아넘기는 문장이다. 즉 천지창조의 새로운 우주가 전 우주로 펼쳐지는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알이랑 고개로 넘어간다.” 는 의미는 완전한 천지창조의 힘이 힘든 고갯길을 넘어 끝없이 펼쳐지고 펼쳐진다는 의미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나얼 버리고 가시는 임은   ■ “나” 자의 정음문자해석   “나얼”에서 “나” 자는 니은(ㄴ)자와 아(ㅏ)자의 합자이다. 이때 니은(ㄴ)자는 하늘의 기운이 내려와서 온 누리의 지상세계에 펼쳐짐을 나타내는 소리이다. 이와 같은 말은 “누리, 나눔, 나라, 눈(雪), 눈(目), 내(川), 누에(蠶)”와 같은 니은(ㄴ)자의 유사발음에서 금방 알 수 있다. 이때 우리는 “나”자를 “라”자와 연상해서 살펴볼 수 있다. 이집트에서는 태양을 [라]로, 중국에서는 태양을 [리]라 부른다. 그리고 신라에서도 역시 태양을 [라]라고 부른다. 즉 “나”자는 천지창조의 힘이 태양빛처럼 온 누리에 펼쳐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 나얼 버리고 가시는 임” 이라는 문장은 이러한 천지창조의 이치를 모르고 살아가시는 임이라는 뜻이다. 즉 대우주의 천지창조가 이루어지고 진화하는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시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위 문장을 맞추어 연결하면,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이제는 완전한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그리고 그 완전한 천지창조가 끝없이 펼져지네. 그러나 이러한 천지창조의 바른 이치를 깨닫지 못한 가련한 사람들이여. 라는 문장으로 서로 연결 지어 해석할 수 있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 “십리”의 정음문자 해석   “십리”의 “십”자에서 시읏(ㅅ)자는 근원으로부터 갈라져 나오는 모든 만물을 의미하고, 이(ㅣ)자는 그 만물의 주관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비읍(ㅂ)자는 모든 생명활동이 사방으로 표출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십(10)자는 근원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모든 만물의 주관자가 느끼는 마지막 희열의 기쁨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십리”의 “리” 자는 리을(ㄹ)자와 이(l)자의 합자로서, 역시 모든 움직임의 종결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그대로 숫자 십(10)에 나타났듯이, 숫자 십(10)은 일(1)과 제로(0)의 합자라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즉 숫자 십(10)자는 유(1)와 무(0)의 완성에 대한 종결적인 기쁨을 표현하는 숫자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위에서의 전 문장을 서로 연결하면,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완전한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이 완전한 천지창조가 끝없이 펼쳐지네. 그러나 이 완전한 천지창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가련한 사람들이여. 그대들이 이 완벽한 천지창조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모두 발병이 날 것이네. 라고 문장은 이어져 나간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알이알이랑 쓸이쓸이랑   ■ “쓸이랑” 정음문자해석   우리들이 이미 검토해 보았듯이 “ 알이” 는 대우주의 회전력을 가진 모든 움직임이 종결되고 최초의 우주가 탄생되었음을 나타내는 문자이다. 그런데 “쓸이랑”은 무슨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일까? “쓸이랑”은 ㅆ(솟다), ㅡ(땅), 그리고 리랑(~함께)의 합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때 “쓸이랑”은 새로운 경계선(ㅡ)에서 무엇인가가 새롭게 모두 솟아오른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물론 “쓰”자는 인간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음 중에서 가장 입을 작게 벌리고 내는 소리음[陰]이 될 것이다. 따라서 “쓸이랑”은 재탄생을 의미하는 소리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알이알이랑 쓸이쓸이랑””이라는 문장을 다시 분석해보아야만 한다. 즉 “알이알이랑 쓸이쓸이랑”의 문장구조를 보면, 소리음이 연속적인 반복구조를 가지고 만들어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반복구조라는 것은 끝없는 창조행위가 지속적으로 일어남을 의미할 것이다. 즉 “알이알이랑”은 수많은 태초과거의 창조행위가 함께 일어났음을 말하고, “ 쓸이쓸이랑”은 역시 수많은 창조행위가 과거가 아닌, 현재 다시 재 반복하여 지속적으로 발생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전 문장을 다시 연결하면,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완전한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완전한 천지창조가 끝없이 펼쳐지네. 그러나 이 완전한 천지창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가련한 사람들이여. 그대들이 이 완벽한 천지창조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모두 발병이 날 것이네. 그러니 내 이제 그대들의 병든 몸을 위하여 태초의 수많은 천지창조에서, 이제 다시 새로운 천지창조를 이루려고 하네. 라는 문장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라리가 났네 알알이가 났네   ■ “ 알알이”의 정음문자해석   “ 알알이” 란 문자를 보면 “알”이란 문자가 역시 반복됨을 알 수 있다. 이는 양적인 대우주가 거듭 재탄생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병든 우주에서 새로운 부활을 의미하는 우주가 끈임 없이 재탄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 문장을 다시 한 번 연결하면,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완전한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완전한 천지창조가 끝없이 펼쳐지네. 그러나 이 완전한 천지창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가련한 사람들이여. 그대들이 이 완벽한 천지창조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모두 발병이 날 것이네. 이제 그대들의 병든 몸을 위하여 태초과거의 수많은 천지창조에서 새로운 천지창조의 다시 이루려고 하네. 끈임 없이 새로운 우주창조가 이루어지네. 라고 문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알이랑 고개로 나얼 넘겨주소.   ■ “ 나얼” 정음문자해석   “ 나얼”자에서 “나” 자는 천지창조의 힘이 온 누리에 펼쳐짐을 의미하며, 또한 이때 “얼”자는 그 펼쳐진 천지창조의 모든 힘이 내 몸 속으로 모두 흘러들어와 넘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얼” 자는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온 하나님의 영혼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 알이랑 고개로 나얼 넘겨주소.” 란 새로운 삶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혼을 나에게 넘겨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아리랑의 노랫말을 해석하면, 아래와 같은 정음문자 해석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 하나님께서 창조한 우주와 인류가 살아나가는 지구         아리랑 정음문자 노랫말   아리랑 정음문자 해석문장   알이랑 알이랑 알알리요. 알이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알이알이랑 쓸이쓸이랑   알알이가 났네.   알이랑 고개로 나 얼 넘겨주소.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완전한 천지창조가 이뤄지고 끝없이 펼쳐졌네. 그러나 이 완전한 천지창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가련한 이들이여 그대들이 이 완벽한 천지창조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모두 발병이 날 것이네. 이제 네 그대들의 병든 세상을 위하여, 다시 새로운 천지창조를 이루려고 하네. 끈임 없이 새로운 천지창조의 길이 열리고 또한 열리네. 그러니 이 새로운 길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혼이 우리와 함께 하시길       르완다어로 풀어낸 아리랑노랫말   우리들은 지금까지 한글로 된 아리랑 정음문자를 파자한 결과 아리랑은 바로 천지창조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소망가로 부른 노래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소망의 대상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하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제 다시 고대 한글의 모국어라 할 수 있는 르완다어로 아리랑의 노랫말을 해석해보기로 하자.   ■ 아리랑(ari ranga), 아리리요(arariye)의 어원 해석   르완다어로 아리(ari)는 처녀, 정혼녀 (virgin, fiancée)를 의미하고, 랑(ranga)은 명사로는 중매장이 (matchmaker), 동사로는 선포하다 (to announce publicly)는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아리랑은 중매로 맺어진 약혼녀가 되었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아리랑은 결혼식의 축가라는 것이다. 또한 “아라리요”는 르완다어 로 해석하면, 말 그대로 고개를 넘어간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Ariranga ariranga arariye)는 결혼한 여인이 삶의 힘든 고갯길을 넘어가며 살아간다는 의미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아리랑의 노랫말을 아래와 같이 전체적인 노랫말로 해석하여 쓸 수도 있을 것이다.     ▲ 아리랑의 사랑에 빠진 아담과 이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사랑하는 연인아, 사랑하는 연인아, 서로 함께 힘든 삶의 길을 극복하세 사랑하는 연인아, 우리 모두 그 힘든 삶의 고갯길을 넘어가세 나를 버리고 가시는 사랑하는 연인이여 그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의 가슴이 아리고, 쓰릴지라도 되돌아오세요. 사랑하는 연인들의 힘이 절로 절로 솟아나네. 사랑하는 연인들의 힘든 고갯길을 넘을 수 있는 힘을 우리 모두에게 주소서   르완다는 현생인류인 발생지이다. 이 현생인류가 6만 8천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동아시아의 끝단에 놓인 이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6만 8천 년이라는 그 기나긴 세월동안 한시도 잊지 않고 온 인류가 다 함께 부른 노래가 바로 우리의 아리랑인 것이다. 지금 아리랑의 이 위대한 노랫말이 고스란히 우리의 한반도에 남아있다. 우리민족은 6만 8천 년 동안 인류의 가장 오래된 아리랑이라는 이 노랫말을 이처럼 지켜낸 것이다. 그리고 그 지켜냄은 종족보존이라는 결혼문화로 남아 지금까지 이렇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선조라 할 수 있는 고대 호모 사피엔스라는 현생인류는 종족보존을 위하여 사랑하는 연인을 만들며, 또한 그 사랑하는 연인들과 함께 힘든 삶의 여정을 극복해가며, 지금의 한반도에 이렇게 삶의 동아리를 뜬 것이다. 아리랑은 이별가가 아닌 천지창조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깊은 소망가인 동시에, 종족보존이라는 기도가 들어가 있는 간절한 결혼축가였던 것이다.   싯담어인 산스크리어로 풀어낸 아리랑노랫말   산스크리어는 6만 8천 년 전 현생인류의 시조라 할 수 있는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아라비아 반도의 오만을 거쳐 지구촌의 남부해안가를 따라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남부, 한반도, 일본, 오세아니아 등지로 폭넓게 퍼져 나가며 만들어진 언어이다. 이 산스크리어의 상당수 발음의 그대로 우리의 전라도와 경상도의 토속사투리로 남아 있다. 이제 이 싯담어로 아리랑의 노랫말을 풀어보자.     ■ “ 아리랑” 의 싯담어 어원문자해석   산스크리어로 아리랑을 분석해보기로 하자. 산스크리어로 아리랑(ariang or arilangh)의 “아리(ari)” 는 임금, 연인, 애인, 성실한, 신실한, 존경, 숭앙, 현성. 연인. 님 등을 나타낸다. 영어로는 the beloved sweet heart, respectable, faithful, and honest man/lady 등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리랑의 “랑(langh)” 은 서둘러 떠나다. 이별하다 등의 뜻이 될 것이다. 또한 영어로는 hasten to move quickly, leave, set off, depart, run away, get across, farewell, say good by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랑(langh)”에 대한 원음은 그대로 우리의 전라도 토속 사투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한국의 전라도 토속 사투리에는 “먹으랑게, 그래랑게, 오시랑게”와 같은 토속사투리가 수도 없이 많이 남아 있다. 이때 이들 사투리의 “~랑게” 는 바로 아리랑의 랑(langh)과 같은 의미로, 모두 서둘러 이별하든지, 빨리 떠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또한 “아리리요”의 “아라”는 속이 아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쓰리랑의 “쓰리”는 “슬슬 녹는다, 가슴이 쓰리다, 가슴이 무너지다“의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아리랑(ari-langh)은 본뜻은 사랑하는 사람이 서둘러 떠났다는 이별의 뜻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뜻을 풀어 아리랑 노랫말을 싯담어로 풀어내면, 아래와 같은 아름다운 노랫말이 만들어진다.     ▲ 아포리아의 혼돈으로 상처받은 인간의 몸은 아리랑으로 회복되어야만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존경하는 님이 시여 어디로 떠나시려 하시나이까? 사모하는 님이 시여 어디로 떠나시려 하시나이까? 그토록 빨리 떠나가시려 하니 님께서 벌써 고갯길을 넘어 멀리 가시는 구려! 우리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리. 우리네 마음은 불꽃을 뿌리듯 지글 지글 쓰리나이다. 눈물을 머금고 가시는 님의 그 길 위에 찬란한 빛을 뿌리 오리다.   싯담어로 아리랑을 분석하여 살펴보면 절절이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하고자 함이 잘 들어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사랑하는 님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임을 알 수 있다. 즉 아리랑은 가장 아름다운 찬송가의 노랫말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한글정음, 르완다어, 싯담어로 풀어낸 아리랑 노랫말을 하나로 뭉쳐 재해석해 보기로 하자.       한글정음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네, 완전한 천지창조가 이뤄지고 끝없이 펼쳐졌네. 그러나 이 완전한 천지창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가련한 이들이여 그대들이 이 완벽한 천지창조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모두 발병이 날 것이네. 이제 네 그대들의 병든 세상을 위하여, 다시 새로운 천지창조를 이루려고 하네. 끈임 없이 새로운 천지창조의 길이 열리고 또한 열리네. 그러니 이 새로운 길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혼이 우리와 함께 하시길   르완다어   사랑하는 연인아, 사랑하는 연인아, 서로 함께 힘든 삶의 길을 극복하세 사랑하는 연인아, 우리 모두 그 힘든 삶의 고갯길을 넘어가세 나를 버리고 가시는 사랑하는 연인이여 그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의 가슴이 아리고, 쓰릴지라도 되돌아오세요. 사랑하는 연인들의 힘이 절로 절로 솟아나네. 사랑하는 연인들의 힘든 고갯길을 넘을 수 있는 힘을 우리 모두에게 주소서   싯 담 어   존경하는 님이 시여 어디로 떠나시려 하시나이까? 사모하는 님이 시여 어디로 떠나시려 하시나이까? 그토록 빨리 떠나가시려 하니, 님께서 벌써 고갯길을 넘어 멀리 가시는 구려! 우리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나리. 우리네 마음은 불꽃을 뿌리듯 지글 지글 쓰리나이다. 눈물을 머금고 가시는 님의 그 길 위에 찬란한 빛을 뿌리 오리다.   찬 송 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간다. 나의 하나님을 버리고 가시는 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곁으로 되돌아오세요. 하나님 하나님이랑 함께, 가슴 속 깊이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하나님의 영혼이 절로 솟네 하나님과 함께 넘어갈 삶의 참된 영혼을 나에게 주소서      우리들은 지금까지 아리랑을 놓고 한글정음, 르완다어, 싯담어로 풀어 보았었다. 분석결과 한글정음에서는 그대로 아리랑이 하나님의 위대한 천지창조를 나타내며, 르완다어와 싯담어에서는 사랑하는 하나님과의 슬픈 이별과 만남을 사람들에 비유하여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이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아리랑” 의 “아리” 는 “밝음” 또는 “광명”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6만 8천 년 전 현생인류의 시조라 할 수 있는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향한 곳은, 바로 밝은 광명의 땅 동아시아였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동사시아의 끝단에 한반도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 중앙아시아의 중심에 자리잡은 아랄 해   우리들이 모두 잘 알고 있듯이 Asia(아시아)라는 말은, 바로 “와서 쉬야, 와 쉬시오” 준말로 안식의 땅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 편안한 안식의 땅에서 쉬기 위해 중간 기착점인 중앙아시아의 아랄해(Aral Sea)부근에서 수메르문명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 아랄 해 일대를 뜻하는 ‘알(Ar)’ 은 ‘생명의 기원’ 을 의미하는 “알(卵)”로 시작, 첫째, 위대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또한 이때 “알(卵)”은 “엘(El)”로 불리 우며, 하나님의 상징성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바로 “알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알이랑“의 ”알“은 바로 이 ”알님“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 크고 위대하다는 ”한“을 붙여 ”한알님“ 이 만들어진다. ”한알님“은 바로 하나님으로 ”알이랑“의 ”알님“이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어원의 역사를 아브라함의 역사를 통해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 중 이스마엘 족속들은 하나님을 ‘알’ 또는 ‘알라(‘알아’로 하나님을 부르는 소리)’ 라고 불렀고, 아라랏은 ‘알아랏’ 으로 ‘하나님의 산’ 이며, 또한 ‘알타이’ 는 ‘하나님의 산’ 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메아리’ 는 ‘뫼알이’ 로 산에 있는 하나님을 가리키며, ‘하늘’ 은 ‘한 알’ 로 ‘큰 신’ 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바로 아리랑은 고대 인류가 만들어냈었던 가장 위대한 찬송가였던 것이다. 이 찬송가의 노랫말을 아래와 같이 풀어쓸 수 있다.   알이랑 알이랑 알알리요. 알이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알이알이랑 쓸이쓸이랑 알알이가 났네. 알이랑 고개로 나 얼 넘겨주소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간다. 나의 하나님을 버리고 가시는 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곁으로 되돌아오세요. 하나님 하나님이랑 함께, 가슴 속 깊이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하나님의 영혼이 절로 솟네 하나님과 함께 넘어갈 삶의 참된 영혼을 나에게 주소서   위의 노랫말은 곧 우리의 한민족이 하나님과 함께 한반도로 이동하면서 부른 가장 위대한 찬양의 노래라는 사실이 그대로 들어난다. 이는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참 신앙을 버리지 않도록 주신 가장 위대한 노래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선대 조상들이 아리랑을 죽음으로 지켜냈듯이, 이제 죽음으로 아리랑을 지켜내야만 한다. 그러면 아리랑의 노랫말은 아래와 같이 만들어질 것이다   죽음의 이치를 깨닫고 무덤 속에 들어가지 마세요 죽음의 이치를 깨닫고 무덤 속에 들어가지 마세요 죽음 그물의 이치를 깨달으세요. 죽음의 이치를 깨닫고 무덤 속에 들어가지 말고 잘 살아가세요. 나를 버리고 저승가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나네.   우리들은 온 인류의 가장 위대한 찬송가를 지켜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지켜냄에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는 사실을 아리랑을 통해서 배워야만 하고, 이를 인류문명사의 가장 위대한 찬송가로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출처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 德光人 [출처] 인류최초의 찬송가인 아리랑노랫말 속에 숨겨진 비밀|작성자 좀지나가자 ===============================  
15    노래 "아리랑"속에 말못할 "비밀"이 없다?... 있다!... 댓글:  조회:1994  추천:0  2018-01-10
    아리랑의 비밀화원, 아리랑의 비밀이 풀리다.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  정보통신(IT)과 암호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저자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복원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로 노랫말 속에 특수한 문장으로 된 또 다른 아리랑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노랫말을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지만, 아리랑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우선, 아리랑과 아라리요는 뜻 모르는 후렴구이므로 첫 행 전체가 의미가 없다. 둘째 행, 아리랑 고개는 땅 위에 없는 허구의 장소인데, 그곳을 넘어가므로 또한 의미가 없다. 셋째 행, 나를 버리고 ‘가시는’으로 말을 올리면서 동시에 2행에서는 넘어간다, 4행에서는 발병난다 등으로 말을 내리고 있어 가시는 님에 대한 존칭이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발병이 나는 것은 개인의 신체적 특성과 관련된 것이지, 십 리라는 거리와는 큰 상관이 없다. 꼭, 발병이 나야 한다면, 한 발자국도 못 가서 발병난다 정도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더구나, 나를 버리고 간다고 해서 반드시 발병이 나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십 리도’라는 표현을 보면 문제는 상당히 심각해진다. 동양문학이나 한국인의 관념상 ‘십 리(4km)’라는 거리는 명사십리 해당화 등과 같이 거리가 상당히 멀다는 어감을 갖고 있는데, 아리랑에서는 짧거나 모자라는 경우에만 사용되는 조사 ‘도’와 같이 쓰이고 있어서, ‘십 리도’라는 표현 자체가 틀린 용법이 된다. 이렇게 되면, 아리랑이라는 겨우 네 줄밖에 안 되는 노래는 어느 한 곳도 제대로 된 곳이 없는 온통 의미 없는 후렴구 상태에 빠지게 된다.    노랫말에 이러한 문제점들이 생기게 된 이유는 미래를 예언하는 노래인 '참요 아리랑'이 금지곡이 되었고, 민간에서 구전되며 민요화되는 과정 속에서 영화 속의 유행가로 편집되었고, 이때, 가사의 일부분이 당시의 상황에 맞게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참요나 고려가요 등에 나오는 문장 형태로 된 뜻을 모르는 후렴구들은 특수한 문장으로, 현재의 암호문에 해당한다.      암호문을 여는 비밀의 열쇠는 아리랑 쓰리랑(啊女郞 是女郞)으로 아리랑은 신비한 ‘아가씨(女郞)’라는 뜻이다. 이것을 노랫말에 대입하여 600년 전의 언어로 바꾸면 한문과 고려어로 된 두 개의 아리랑이 만들어진다. 한문 아리랑은 충신은 한 임금만을 섬긴다는 불사이군을 나타내고, 고려 아리랑은 젊은 아가씨가 스님에게 대화를 하는 장면이 된다. 아리랑은 비교 문학상 원곡(元曲)으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연극으로 상연하였던 것이다. 남녀간 대화의 내용을 변형하면 연극 속의 주제가가 되며, 바로, 우리가 부르는 '아리랑의 원형'인 고려어로 된 아리랑이 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곡애를 나마간다  나아랄 바리고 가시니문  시니이 마까서 발화병난다      아리랑은 1392년 7월 28일,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성립되던 왕조 교체기에 개경의 만수산 두문동에서 만들어졌다. 아리랑의 원형을 통해, 노래가 만들어진 당시에는 ‘넘어간다’를 ‘나마간다’, ‘가시는 님’은 ‘가시 님’, 아리랑 고개는 ‘아리이랑 곡애(谷涯)’의 발음기호로 ‘푸른 물결’을 뜻하며, 땅 위가 아니라 물 위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아리랑 고개는 땅 위에 존재할 수 없었다. 아리랑에는 ‘푸른 물결’을 뜻하는 ‘아리 이랑’과 신비한 ‘아가씨’를 뜻하는 ‘아아 리랑’이라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 것이다. 아리랑 노래를 불러보면 ‘아아리랑 아아리랑 아아라리요’로 발음되는데 이것은 ‘아아 리랑’이며, 아리랑 보다 더 오래된 구(舊)아리랑을 주의 깊게 잘 들어보면 ‘아리이랑 아리이랑 아라리로구료오’로 발음되는데 이것은 ‘아리 이랑’이다. 또한, ‘십 리도 못 가서’가 아니라 ‘신이 막가서’ 발병나는 것이며, 이것을 참요의 내용으로 풀이하면, ‘신이(臣李) 막가서’ 즉, 역적 신(臣)하 이(李)가 막가서 고려가 망할 것이라는 뜻으로 새로운 왕조를 부정하고, 고려를 부활시키자는 내용이 된다. 고려유신들은 참요 아리랑을 만들어 전국에 있는 동지들과 2년여에 걸쳐 비밀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개경 만수산 두문동에서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전국적으로 온갖 형태의 참요들이 이에 화답하여 창화(唱和)하며 자신들만이 이해하는 암호문 통신 체계로 비밀스러운 대화를 시작하였다.      강강수월래과(나를 따라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剛剛隨我來過), 늴리리야(넌 어느 편이야?), 애루하(어떤가? 唉, 如何?), 지화자(계획하자), 어기여차(내가 돌아간다), 어강됴리(금방 도착한다. 我剛要到了), 애 야노 야노 야(노를 저어라), 마득사리(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니사득마? 你舍得嗎?), 쾌지나칭칭나네(감빵 갔다 나왔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아니 아니랑께 역적 이는 임금이 아니고 신하랑께),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밤이 되니 더욱더 쓸쓸해진다,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린다), 두어렁셩(냉정한 이 세상이여! 對我冷淸!)      그러나 1394년 11월 17일, 노랫말에 숨겨진 내용의 일부가 조선군 암호해독부대에 의해 풀이되어 두문동은 불태워져 말살되고 노래는 금지곡이 된다.      금지곡 상태에서 구전되던 아리랑은 한양 천도로 인해 개경에서 한양으로 지역이 바뀌고, 시대의 흐름에 따른 언어적인 변화도 일어나게 된다. 물결을 뜻하던 ‘곡애를’은 땅 위에 있는 ‘고개를’로 오해되기 시작하고, ‘나마간다’는 ‘넘어간다’, ‘바리고’는 ‘버리고’, ‘가시 님’은 ‘가시는 님’, ‘발화병난다’는 ‘발병난다’로 바뀌게 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아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시니이 마까서 발병난다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서 민간에서만 조심스럽게 불리던 고려의 아리랑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궁궐에서도 아리랑을 공연하게 됨으로써 조선의 노래로 공인되었고, 이를 통해 민족의 노래로 성장하게 된다.      1926년 10월 1일, 민간에서 불리던 아리랑이 영화 속의 유행가로 편집되면서 노랫말에 변형이 일어난다. ‘고개를’은 ‘고개로’, ‘나아를’은 ‘나를’로 바뀐다. 영화 가사를 편집한 사람들이 원래의 가사를 가능한 한 조금이라도 바꾸려고 노력한 것이다. 또한, 영화가 나오기 5개월 전에 나온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의 영향으로 평등의 개념이 확산되면서 ‘가시는 님’은 ‘가는 님’, 짚신 대신에 고무신이 보급되면서 신이 막가서 발병나는 일이 없어졌으므로 ‘시니이 마까서’는 ‘십 리도 못 가서’, 구어체 가사가 보편화되면서 ‘발병난다’는 ‘발병이 나네’로 바뀌게 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네      이렇게 되면 ‘십 리’라는 거리는 명사십리 해당화 등과 같이 먼 거리를 뜻하게 되고, 이것과 결합되는 조사는 짧거나 모자라는 경우에만 쓰이는 ‘도’가 되어 ‘십 리도’ 자체가 잘못된 표현이 된다. 그렇지만 노랫말을 편집한 사람들도 이런 생각까지는 못했고, 노래를 부르는 우리 자신도 지금까지 몰랐다.      영화 가사로 편집되면서 가사의 일부분이 바뀌기는 하였지만, 노래라는 것은 일정 부분 원형으로 돌아가는 성질이 있다. 즉, 가시는 님, 발병난다 등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시니이 막가서’ 라는 부분만은 시대적 상황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 가사에서 바뀐 대로 ‘십 리도 못 가서’라는 형태로 대중들의 뇌리에 깊이 박히게 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나 유행가가 아니라 망해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던 충신들의 삶과 죽음의 대서사시인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아리랑은 한민족의 혼이고 민요의 정수가 되었다.      이제 아리랑의 비밀은 풀이되었다. 앞으로 남은 일은 아리랑을 풀이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600년 전 환상의 세계를 한민족을 대표하는 다양한 형태의 '문화콘텐츠(CT)'로 만들어 우리들 자신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다.      영화 제작, 월트 디즈니에서 제작한 뮬란(Mulan, 花木蘭)과 같은 애니메이션, 유아용 그림동화, 어린이 동화, 만화, 연극, 드라마, 시나리오, 게임, 캐릭터, 음반, 모바일, 인형극, 뮤직 비디오, 팬시용품, 테마 공원, 대하소설, 문화관광상품, 방송영상, 인터넷, 오페라, 후렴구의 뜻을 알고 부르면 더욱 재미있는 민요와 고려가요, 아리랑 속의 고려어 이야기, 아리랑 세계화 학술서, 전자책 등 다양한 형태의 제작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이 아리랑이 갖고 있는 또 다른 위대함이다.     지금부터의 아리랑은 뜻을 모르는 후렴구의 노래가 아니다. 아리랑에 숨겨져 있던 애국애족의 정신과 조상의 위대한 정신문화 유산을 전 세계에 알려 나가야 한다. 세계 속의 아리랑으로 부활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족혼을 세계인과 공유하며, 더불어 조화롭게 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끝] ///아리랑의 비밀話원 ============================덤으로 더...   당신이 아리랑을 알리오 우리민족의 애국심을 연구하는 아리랑학   [1032호] 2011년 03월 21일 (월) 안두희 기자        처음으로 보는 외국인이 내 앞에서 우리나라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것도 한류 열풍을 탄 대중가요가 아닌 우리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흥얼거리고 있다. 상상만 해도 신기하고 흥미로운 광경이다. 그런데 그 외국인이 노래를 마친 후 나에게 아리랑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온다. 나는 과연 대답을 쉽게 해 줄 수 있을까?    아리랑학이란 우리민족의 고유의 노래인 아리랑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아리랑학의 확립을 위한 학술대회도 열렸을 정도로 학계의 관심이 뜨겁다. 이제 아리랑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어온 외국인에게 당당해 지고 싶다면 아리랑학의 문을 두드려 보자.   아리랑의 본질을 찾아서    일제 강점기에는 아리랑이 일본에 의해 조선인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제공하는 자료로 변형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광수가 “아리랑은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는 민요이기 때문에 후렴에는 뜻이 남아 있을 것이나 알 수는 없는 것”이란 논의 제기로 ‘아리랑’이나 ‘아라리요’ 등과 같은 뜻 모르는 어구의 의미를 밝히려는 연구가 시작돼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연구는 아리랑 뜻이 무엇인가를 찾는 단계, 아리랑을 아리랑 고개와 연결하여 관련성에 대해 고찰하는 단계, 후렴구에서 아리랑과 쓰리랑이 두 개의 분리된 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문장이라는 개념을 풀이하는 시도를 보여준 단계를 거친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심도 깊지 않고 연구 방법 또한 잘못됐다는 지적이 있다.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조용호 아리랑 연구 기획위원장은 “초기의 아리랑 연구는 그것의 성격과 기록을 심층적으로 고찰하지 않았다.”라며 “대부분의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기록을 무시한 채 연구자의 기호에 따라 왜곡된 연구를 도출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아리랑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80년간 다양한 연구와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자들은 비과학적인 연구방법으로 아리랑을 다뤄 왔기 때문에 그것이 한민족을 상징하는 노래라 하더라도 아직 우리는 그 뜻은 물론 노래가 의미하는 내용도 정확히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조규익 소장은 “아리랑은 길게는 수백 년 넘게 지속돼온 노래로 간단한 노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간 연구자들은 각지에 흩어져 불리고 있는 아리랑의 곡조나 노랫말들을 수집·정리·비교·분석하는 일에만 몰두해 왔다.”라며 “물론 이런 작업들도 의미있는 일이지만 아리랑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리랑은 사실 암호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나 영화에서 처음 만들어진 유행가가 아니다.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 문장이다. 조용호 연구원장은 “아리랑은 원래 암호문이고 그것의 원형을 찾아가 보면 정치적 징후를 암시하는 참요의 성격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리랑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성립되던 여말선초의 왕조 교체기에 개경의 두문동 사리골에서 만들어졌다. 아리랑이 만들어진 시기와 관련하여 노랫말을 풀이하면 “이씨 성을 가진 자가 새로운 왕조를 성립하는 것을 부정하고 고려를 이어나가자”는 비밀결사의 노래로 해석된다.   아리랑에는 두 가지 형태의 뜻이 존재한다. 원래의 아리랑은 아리 이랑으로 ‘푸른 물결’을 뜻하는데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신성한 아가씨’를 뜻하는 아아 리랑으로 암호화했다. 고려인들은 참요의 노랫말을 그대로 사용하면 암호문이 해독될 수 있다고 생각해 숨겨진 뜻을 알 수 없도록 원래 형태인 아리 이랑을 아리랑으로 변형한 것이다. 고려 개경 사람들은 암호문 형태로 만든 아리랑을 노래로 불러 당시의 한 맺힌 상황을 표현함으로써 광범위하게 전파하고자 하였다.   조용호 연구원장은 “아리랑 연구를 통해 암호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던 시절에 고도의 암호를 만들어 사용했던 고려인들의 위대성을 발견한다.”며 “그들이 암호를 사용한 이유가 조국을 위한 충성이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다함께 아리랑 사랑    아리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나타난 시대정신의 총화합체이다. 따라서 당대의 역사, 문화, 언어, 사회 등은 물론 인접했던 국가들의 언어까지 모두 알아야만 진정으로 아리랑을 이해할 수 있다. 조용호 연구원장은 “지금까지 적지 않은 연구를 해 왔으나 아리랑의 세계에 들어갈수록 거대한 세계로 빠지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라며 “연구를 함으로써 우리 조상의 위대함과 나라사랑의 정신을 밝히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조규익 소장은 “제대로 된 아리랑을 세계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북한이 아리랑 축전을 열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들의 체제를 선전하기 위한 변질된 아리랑이다.”라며 “우리는 아리랑을 철저히 연구하여 진정한 민족의 아리랑을 세계화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안두희 기자  =========================덤으로 더 더... [한민족비결]  아리랑에 숨겨진 비밀(秘密)     아리랑은 현재 약 50여종 300여수가 확인되고 있다. 흔히 아리랑이라고 하면, 다음의 (경기)아리랑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므로 이 경기아리랑을 대표적으로 하여 아리랑에 담긴 비의秘意를 풀어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10자)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10자)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10자)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10자)      우리 민족이라면 아리랑을 못 부르는 사람은 없건만 그 뜻을 물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의 전파성이 강한 이유는 노랫말에 어떤 깊은 뜻이 숨겨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 어떤 경로로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면서 우리의 애국가처럼 불리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남북한과 전세계에 아리랑이 메아리치는 것을 보면, 이제 아리랑 노래에 숨겨진 참뜻이 무엇인지 제대로 평가받을 때가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① 아리랑 : '아리'는 원래 크거나 신성한 것을 가리키는 말로서(몽골말로는 깨끗하다, 성스럽다는 뜻), 고대 하천을 이르는 말이며(아리라는 낱말은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고사에서 흔히 볼 수가 있다) ‘한’과도 같은 뜻이다. 한강의 원래 이름은 아리수이다(아리수 한강이 漢江으로 표기된 것은 삼국시대 후반에 중국문화가 한반도에 본격 도입된 이후의 일이다). 한편, ‘한’은 한국, 한민족, 한반도, 한글, 한복, 한식, 한옥 등 한국과 한국민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 한(韓)은 환(桓)에서 왔다. ‘한’이라는 말은 우리 문명의 출발(환국)에서부터 우리와 운명을 같이해 온 9천년 이상된 단어다. 이러한 ‘한’이 가지고 있는 뜻은 크게 1)하늘(天:밝음=빛), 2)하나(一), 3)크다(大)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한’은 ‘하늘’의 준말이며, 하늘이 가장 본래의 뜻이다. 실제로 한민족의 9천년 역사는 하느님을 찾아 나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이동의 역사였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상제님(하느님,미륵부처님)의 뜻을 찾아서 이루기 위한 역사였다.    한편, ‘랑(郞)’은 환웅천황께서 동방문명 개척을 위해 태백산으로 오실 때 거느리고 온 핵랑군(核郞軍)을 의미하거나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관창랑(官昌郞), 원술랑(元述郞), 거진랑(擧眞郞), 일래랑(一來郞) 등과 같은 낭도(郎徒) 또는 낭군(郎軍)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아리랑의 ‘랑(郞)’은 9천년이상 내려온 우리민족 고유의 풍류신도인 낭가(郎家) 사상을 이어받은 일꾼을 뜻하므로, 아리랑은 ‘하느님의 핵랑군’ 즉 도군(道軍) 또는 육임군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아리랑을 한문으로 쓰면 亞里郞이니, ‘하느님의 마을에 있는 군대’가 된다. 격암유록에서는 ‘아리’(亞里)를 다른 말로 십승촌(十勝村) 또는 弓乙村(궁을촌)으로 표현했다. 아리(亞里)에서 아(亞) 자(字)는 弓자(字)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이것은 동국참서에서 궁을가, 격암유록 ,태전가사,춘산채지가 등에서 도인과 철인들이 전했던 궁궁(弓弓)의 도(道)를 펴는것을 말하고 지구촌문명이  동서로 뻗어 오래된 사원 박물관 성당 사찰 등에는 고대로부터 전승해 내려오는 아(亞) 자(字)문양은 인류공통의 도형문화였다.     또한 글자 ‘아(亞)’ 가운데에서는 십(十)자가 나온다. 십(十)의 세계는 완성  결실의 개벽세계다. 10이라는 숫자는 분열의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통일의 첫 시발점이 된다. 십(十)은 새 생명이 열린다는 뜻에서 ‘열’이라고 하며, 완전수로서 10무극 하느님을 뜻한다. 열매는 가을에 맺는다. 여름에 열리고 가을에 맺는 열매는 열려서 맺는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완전히 열리는 자리가 10(十)무극이고 성숙되어 맺는 자리, 알캥이가 1(一)태극이다. 11성도로 통일하는 우주의 정신이 담겨있다. 그것을 궁궁(弓弓)이라고 한다. 건(乾) 감(坎)이다. 이 자리은 하느님(상제님)과 하느님의 대행자(대두목)자리이다.   10수의 참 뜻은 무엇인가?  우주의 여름철에서 가을철로 넘어갈 때는 10미토(未土) 기운을 가진 우주절대자가 지상에 강세하는 것이다. 아리랑의 네 구절이 모두 10자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극이 없는 십(十)의 세계를 불교에서는 극락용화세계, 기독교에서는 지상천국, 유교에서는 대동세계, 도교에서는 무극이라는 용어로 불러왔다.    그리고 아(亞)자는 궁(弓)자 두 개가 누워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양산(兩山) 모양을 하고 있으니, 인류사의 새 문명을 여는 새 통치자 두 분이 출현한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어린아이에게  어릴때 깍꿍(覺弓: 궁의 이치를 깨달으라)!하는 것도 궁의 이치를 알아라는 뜻이다.     ② 아라리요 : 크게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는 ‘아라리요’를 순수 한글로 보아 위에서 해석한 아리랑 즉 하느님의 마을에 있는 군대를 ‘알라’는 뜻으로 볼 수 있고, 두번째는 ‘아라리요’를 한문 아라리(亞羅里)로 보아 십(亞)즉 상제님(하느님)의 진리가  전세계에 펼쳐질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③ 아리랑 고개 : 한문으로 아리령(亞里嶺)으로 푼다. 이별의 고개, 설움의 고개로 인식되어 온 이 아리랑 고개가 어디에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르고 사실 지도상에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 아리랑 고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옛부터 그렇게 고대하던 후천 10天세계(지상천국,용화세계,대동세계)로 넘어가기 위해 넘어야만 하는 고개(위험한 고비) 하추교역기(夏秋交易其)를 의미한다.    ④ 나 : 여기서 ‘나’는 위의 내용과 앞으로 해석할 아리랑의 문맥으로 살펴볼 때 ‘상제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최수운 대신사(大神師)가 새로운 세상구원의 대도(大道)를 찾아 10년 이상의 구도생활 후 천상문답에서 듣게 되는 한울님의 소리와 같다(동경대전).  상제님께서 최제우 대신사에게 신교를 내리고 동학을 펴게했다. 아리랑은 하늘에서 가을개벽의 때를 대비해서 우리 한민족에게 준 생명의 노래이며 진리의 노래이다.    나의 마음이 곧 너의 마음이다. 사람이 어찌 알리오. 천지는 알고 귀신은 모르니 귀신이라는 것도 나다. (논학문)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上帝)라고부르는데, 너는 어찌 상제(上帝)를 모르느냐! (포덕문)   최수운 대신사 이후 8년뒤 이 땅에 오신 증산상제님은 "천하가 병이 들어있느니라."  증산도 도전 道典(2:259)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선경(仙境)을 건설하려 하노라." 증산도 도전道典(2:16)   이라고 전하신다. ⑤ 십리(十里) : 후천 10무극 세계를 의미한다.   ⑥ 발병(發病)난다 : 10무극 상제님(하느님, 미륵부처님,옥황상제님)을 모르고  진리의 길을 만나지 못하면 결국 후천세상에 못 가고 약이 없는 괴질병(병겁)에 걸려 죽는다는 얘기다. 왜 못만나는가?  병들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어떤 측면에선 물질적으로 가장 살기 좋은 세상이나 도덕 윤리적으로 인륜의 도리(道理)로 부터 탈선하고 정의(正義)가 실종되어버린지 오래된 세상이다. 하늘과 땅이 병들었다. 천하가 병들었다.    가시는 님이 발병난다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구절과 관련하여 아리랑을 한국의 한(恨)이나 사랑의 이별가 쯤으로 생각해왔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보다 본질적인 뜻은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인생의 의미를 모르고 살다가 생명의 근원과 진리의 뿌리를 모른채 살고 있는 지구촌의 철부지 인생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어있다. 다시 말해  우주의 가을철이 오는것을 모르고 살다가는 억조의 인생의 운명을 말한다 조상을  부정하고 진리의 뿌리를  배반하고 역사의 뿌리를 부정해서 병든 인생들의 운명을 말한다.   이와같이 아리랑 노래에는 한민족이 지나온 역사혼속에서 지금까지 전해진 이면에는  도적道的 차원에서 우리 선조들이 다가오는 후천 대개벽기에 대비하여 오늘날의 후손들을 깨우쳐주기 위한 깊은 비의秘意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승철 홀로아리랑 ///[증산도와 한민족의 사명] ============================덤으로 더... ♣아리랑의 의미를 아시나요?♣ "아라랑"은 한민족의 상징적 대표적인 민요로서 아득한 엣날부터 한국 민족의 사랑을 받으며 널리 불려진 노래일 뿐 아니라, 오늘날 처럼 남북이 분단 되어 올림픽 단일팀이 하나의 국가를 부르기 어려울 때에는 "아리랑"을 국가처럼 합창하여 한민족임을 확인한다.   그러면서도 우리국민 거의다가 "아리랑"이 무슨 뜻인가? 를 모르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경기도 아리랑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또는 사투리로 서리서리랑) 아라리가 났네/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 소" ;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 정선 아리랑 등에서 나오는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 "아리랑고개"의 뜻을 알아본다.   첫째 "아리랑"의 뜻 "아리"가 고대 한국에서의 "고운", "곱다"로 쓰인 흔적을 현대 한국어("아리다운"=아리+다운)에서 찾아 볼 수 있고, 몽골에서 "아리"는 아직도 "고운" "곱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첫째 "아리"의 뜻은 "고운"을 뜻한다.   둘째 "아리"의 뜻 현대 한국에서 "아리다"(마음이)의 동사는 사랑에 빠져 상사병에 걸렸을 때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의 표현이다. 이것이 형용사가 되면 "아리"는 "사무치게 그리움"을 표현하는 뜻이 되어 이때의 "아리"는  "(사무치게)그리운"의 뜻이 된다.   "랑"의 뜻 "랑"은 한자로 삼국시대에는 "랑(郞)"자를 써서 젊은 남녀를 모두 표현 했다. 통일 신라시대 이후 조선시 대에는 남녀를 구분하여 남자는 주로 "郞"자, 여자는 ! "--"자로 표시했다. 발음은 모두 "랑" 이며, 뜻은 "임"이다. 이는 신라향가(鄕歌)의 죽지랑(竹旨郞), 기파랑 (耆婆郞), 등이 좋은 예이다.    "아라리"의 뜻 "아라리"는 근 현대에 뜻을 몰라 잃어버린 말인데, 이는 '상사병'의 고대 한국어 라고 판단된다. 현대 한국에서는 상사병을 나타내는 '가슴아리' (가슴앓이)에서 그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쓰리다'를 강조할 때 '쓰라리다' 라고 강조사를 넣는 것처럼 '가슴아리'는 '가슴아라리' '아라리'와 같다.  '삼국유사' 등에는 상사병에 걸린 사랑 이야기가 몇 개 나오는데, 상사병에 해당하는 순수 고대 한국어를 한자가 수입된 뒤 언젠가 그만 잃어버린 것이다. 민요 '아리랑'에 들어있는 '아라리'가 바로 '상사병'의 순수 한국어 인 것이다.   "쓰리랑'의 뜻 "쓰리랑"은 "아리랑' 둘째의 뜻과 동의어 또는 유사어 이다. 마음이 "쓰리다"는 마음이 "아리다"와 유사어 이다. 즉 "쓰리랑"은 마음이 아리고 "쓰리도록 그리운 임" 을 뜻한다.   "아리랑"의 가사를 현대 한국어로 리듬을 접어두고 번역하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곱고 그리운 임/ 사무치게 그리워 상사병이 났네! 의 뜻이된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아리랑(이) 고개를 넘어간다'라는 표현을 운율에 맞추고자 "아리랑" 다음의 토씨 '이'를 생략한 것으로서, 번역하면 '곱고 그리운 임이 고개를 넘어간다'는 뜻이다.   한국 전통사회에서 마을 공동체의 활동범위를 차단 하는 것은 "고개" 였다. 고개를 넘어가는 것은 다시 만나기 어려운 공간으로서 '이별"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이 고개를 넘어간다"는 "곱고 그리운 임과 이별"을 뜻하는 것이다.   위에서의 의미를 유추해 볼때 "아리랑"의 뜻도 모른 채(알았더라도) 일천수백 년을 내려온 것은 이 고대어 속에 현대어로는 치환할 수 없는 절묘한 뜻과 멋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신용하 교수의 '새로쓰는 한국문화'에서-
14    보르헤스 시학 / 한편의 시가 여려편의 번역 시 비교 댓글:  조회:2289  추천:0  2018-01-10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시학」감상 / 이원 시학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시간과 물결의 강을 주시하며 시간이 또 다른 강임을 상기하는 것, 우리들도 강처럼 스러지리라는 것과 얼굴들이 물결처럼 스쳐감을 깨닫는 것. 불면은 꿈꾸지 않기를 꿈꾸는 또다른 꿈임을 우리네 육신이 저어하는 죽음은 꿈이라 칭하는 매일 밤의 죽음임을 체득하는 것. 중생의 나날과 세월의 표상을 모년 혹은 모일에서 통찰해 내는 것, 세월의 전횡을 음악, 속삭임, 상징으로 바꾸는 것. 죽음에서 꿈을 보는 것, 낙조에서 서글픈 황금을 보는 것, 가련한 불멸의 시는 그러한 것, 시는 회귀하느니, 여명과 일몰처럼. 이따금 오후에 한 얼굴이 거울 깊숙이 우리를 응시하네. 예술은 우리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하네. 경이에 지친 율리시즈는 멀리 겸허한 초록의 이타케가 보였을 때 애정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 예술은 경이가 아니라 초록의 영원인 그 이타케. 예술은 또한, 나고 드는 끊임없는 강물과도 같은 것. 끊임없는 강물처럼, 본인이자 타인인 유전(流轉)하는 헤라클라이토스 자신의 거울과도 같은 것. ................................................................................................................................................................................................................................ 드라마를 보고 있었어요. 사랑의 간절함이 939살 불멸을 중지하게 한다는 판타지는 익숙한 것이지만, “나도 사랑한다 그것까지 이미 하였다”, “비로 올게 첫눈으로 올게”, 이 말을 하는 얼굴은 응시하게 되지요. 모든 생을 기억하는 눈에는 심연의 슬픔과 당장의 햇빛이 동시에 담기지요. 그래서 비스듬히 보고 있다가도 시적인 순간을 경험하게 되지요. 남미 문학의 거장 보르헤스는 소설로 더 많이 회자되지만 시로 출발하였어요. “우주(다른 사람들은 ‘도서관’이라고 부르는)는 부정수 혹은 무한수로 된 육각형 진열실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그의 문장. 수수께끼를 내는 자라고 불렸다는, 그리스의 시적인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 거울과 강물. 회귀와 유전(流轉). 흐르는 물은 늘 다르지요. 동시에 같은 물이기도 하지요. 어디에 찍느냐, 문제는 방점이지요. 응시하는 얼굴은 비추는 얼굴이에요. 여명과 일몰은 대립적 시간이며 대립적 시간이 아니지요. 경이와 초록 중 시는 초록에 방점이 있지요. 전면적 포용이거나 초월이 된다면 거울은 텅 비게 되지요. 꿈과 죽음의 대면이 매일매일이 키우는, 초록이지요. 이원 (시인)   ==========================2 시학 보르헤스 / 현중문 옮김     보르헤스 후기 시에서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보편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이 시에서도 물, 세월, 강물, 거울 같은 평범한 이미지를 중첩하여 헤라클레이토스의 유리((琉璃))라는  미학적 응결물을 창출해내고 있다. 원제는 Arte poetica       물과 시간으로 이루어진 강을 보고 시간이란 또 다른 강임을 기억하라. 우리들은 강처럼 사라지고 우리 얼굴은 물처럼 흘러감을 알라. 깨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꿈, 꿈을 꾸고 있지 않다는 꿈이며 우리 육신이 두려워하는 죽음이란 밤마다 찾아오는 죽음, 꿈이라 생각하라. 나날의 일상에서 인간이 살아온 유구한 세월의 상징을 보고, 세월의 전횡을 음악과 속삭임과 상징으로 바꾸어라. 죽음에서 찾아낸 꿈, 석양에서 찾아낸 서글픈 황금, 이것이 시일지니, 가난하고도 불멸하는 시일지니, 여명과 석양처럼 번갈아드는 시일지니. 오후가 되면 종종 거울 깊은 곳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얼굴 하나 있으니 예술은 그 같은 거울이 되어 우리 얼굴을 보여주어야 한다. 불가사의한 일에 신물이 난 율리시즈는 눈물이 났단다, 먼발치로 보이는 이타카 푸르고 소박한 고향, 예술은 그런 이타카 영원히 푸르지만 불가사의는 없는 이타카. 예술은 또한 흐르면서도 제자리에 머무르는 끝임없는 강물이며, 그 끝임없는 강물처럼 자신이면서 다른 사람으로 유전하는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유리(琉璃)이다.     『제작자』(1960)중에서   ======================3 시학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세월과 물로 된 강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시간은 또다른 강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는 강물처럼 사라져갈 것을 알며  얼굴들 또한 강물처럼 떠내려가는 것을 보며  눈을 뜨고 본다는 것도 또 하나의 꿈임을 느끼며  꿈을 꾸고 있지 않다고 꿈꾸는 꿈, 그래서 우리의  육체가 두려워하는 죽음 또한 밤마다 꿈이라고 부르는  그런 죽음밖에 아무것도 아님을 알며  하루의 한 해 속에 사람의 나이와 세월들의  상징을 읽으며, 세월이 앗아간 인생의 아픔을  음악으로, 소음으로, 상징으로 바꾸어가는 일.  죽음 속에 꿈을 보고, 석양에 하나의  슬픈 황금을 보는 일. 이것이 시  영원한 가난의 되풀이: 시는 여명처럼  석양처럼 늘 되돌아온다.  이따금 하오가 되면 거울 한가운데서  한 얼굴이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예술은 바로 그런 거울 같은 거,  우리 스스로의 얼굴을 밝혀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율리시스는 그 위대한 업적에도  지치고 지쳐, 고향 이타카에 돌아와 마을을 바라보며  너무 사랑스러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초라하고 파란  마을을 보며...... 예술은 위대하지 않다: 이타카 마을, 그 파란 영원.  또한 그것은 끝없는 강물 같다  흘러가고 남고...... 만물은 흘러간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수정거울; 모든 것은 다 똑같다  그리고 다르다, 끝없는 강물처럼.      ======================4   시학 / 보르헤스 시간과 물로 이루어진 강을 보며 시간은 또 하나의 강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 우리 또한 강처럼 흘러간다는 것과 얼굴들도 물처럼 흐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 깨어 있음은 꿈꾸지 않음을 꿈꾸는 또 하나의 꿈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 우리들의 삶이 두려워하는 죽음은, 꿈이라고 부르는, 매일 밤 찾아오는 그 죽음임을 느끼는 것. 하루와 일 년에서 인간의 나날과 해들의 상징을 보며 그 해들의 모욕을 음악 한 소절, 작은 중얼거림, 혹은 하나의 상징으로 바꾸는 것. 죽음 속에 꿈을 보는 것, 황혼 속에서 슬픈 황금을 보는 것, 그것이 가련하지만불멸하는 詩. 시는 여명과 황혼처럼 돌아온다. 때때로 오후에는 어느 얼굴 하나가 거울 저쪽에서 우리를 보고 있다. 예술응 진짜 자기 얼굴이 비춰지는 그 거울 같은 것. 경이에 지친 오디세우스는 멀리서 푸르고 소박한 고향 아티카를 보고 울었다고 한다. 예술은 영원의 푸른 이타카이지, 경이의 이타카가 아니다. 또한 예술은 끝없는 강물 같은 것. 흐르고, 머물고, 무상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수정이 된다. 끝없는 강물, 그처럼 동일자이며 타자이다. ============================   시간과 물로 이루어진 강을 보며 시간은 또 하나의 강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 우리 또한 강처럼 흘러간다는 것과 얼굴들도 물처럼 흐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   깨어 있음은 꿈꾸지 않음을 꿈꾸는  또 하나의 꿈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 우리들의 삶이 두려워하는 죽음은, 꿈이라고 부르는, 매일 밤 찾아오는 그 죽음임을 느끼는 것.     하루와 일 년에서 인간의 나날과 해(年)들의 상징을 보며 그 해들의 모욕을 음악 한 소절, 작은 중얼거림, 혹은 하나의 상징으로 바꾸는 것.   죽음 속에 꿈을 보는 것, 황혼 속에서 슬픈 황금을 보는 것, 그것이 가련하지만 불멸하는 시詩. 시는 여명과 황혼처럼 돌아온다.   때때로 오후에는 어느 얼굴 하나가 거울 저쪽에서 우리를 보고 있다. 예술은 진짜 자기 얼굴이 비춰지는 그 거울 같은 것.   경이驚異에 지친 오디세우스는 멀리서 푸르고 소박한 고향 아티카를 보고 울었다고 한다. 예술은 영원의 푸른 이타카이지, 경이의 이타카가 아니다.   또한 예술은 끝없는 강물 같은 것. 흐르고, 머물고, 무상無常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수정水晶이 된다. 끝없는 강물, 그처럼 동일자同一者이며 타자他者이다.   @@=보르헤스가 눈 먼 후에 산문에서 운문으로, 그것도 '구술'에 의해서 씌어진 시이다.  
13    남미주 아르헨티나 시인 - 보르헤스 댓글:  조회:4045  추천:0  2018-01-10
  출생 1899. 8. 24,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망 1986. 6. 14, 스위스 제네바 국적 아르헨티나 요약 남아메리카에서 극단주의적 모더니즘 운동을 일으킨 작가로 평가된다. 1961년 사뮈엘 베케트와 함께 권위있는 포멘토상을 받은 후, 그의 소설과 시는 점차 20세기 세계문학의 고전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전까지 보르헤스는 자신의 고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다른 작가들은 그를 단지 기교와 재주를 지닌 장인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가 '창조해낸' 악몽의 세계는 프란츠 카프카의 세계에 필적할 만한 것이라는 평을 받았고 일반적인 언어를 가장 지속성 있는 형태로 응축시킨 작가로 높이 평가되었다. 보르헤스의 작품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은 학문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전세계의 일반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목차 개요 생애 평가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시인, 평론가이다. 개요 남아메리카에서 극단주의(Ultraísmo)적 모더니즘 운동을 일으킨 작가로 평가된다(라틴아메리카 문학). 생애 보르헤스는 당시 빈민구였던 팔레르모에서 자랐으며, 이곳은 뒤에 그의 몇몇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역사상 주목할 만한 그의 집안에는 영국계 혈통이 흘러서 그는 스페인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웠다. 한 영국 학교의 교사였으며 박식했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그가 처음으로 읽은 책들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H. G. 웰스의 소설들, 〈천일야화 The Thousand and One Nights〉, 〈돈 키호테 Don Quixote〉 등 모두 영어책들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꾸준한 자극과 모범에 힘입어 어린시절부터 문학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가족을 따라 스위스의 제네바로 갔고, 그곳에서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웠으며 제네바대학에서 문학학위를 받았다. 1919년에 그곳을 떠난 보르헤스가(家)는 마요르카와 스페인에서 1년씩을 보냈다. 스페인에서는 98세대(Generation of '98:기성작가들의 타락에 반발하여 일어난 극단주의 운동의 젊은 작가군)에 가담했다. 1921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돌아와 자신이 성장했던 도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과거와 현재를 형상화한 시들을 통해 고향 팔레르모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으로 출판한 책은 시집 〈시(詩),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정 Fervor de Buenos Aires, poemas〉(1923)이다. 그는 또한 뒤에 관계를 끊기는 했으나, 남아메리카에서 극단주의 운동을 일으킨 사람으로 평가된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여러 권의 수필집·시집 등을 펴냈고 3개의 문학지를 창간했으며 전기(傳記) 〈에바리스토 카리에고 Evaristo Carriego〉(1930)를 완성했다. 그후 그는 순수주의 소설 창작을 대담하게 시도했다. 처음에는 〈불명예의 세계사 Historia universal de la infamia〉(1935)에 실린 단편에서처럼 다소 불명예스러운 사람들의 일생을 재구성하기를 즐겼다. 한편 생계를 위해 1938년 그의 조상 이름을 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도서관에서 중책을 맡아 9년간 그곳에서 일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1938년에 머리를 심하게 다쳐 그로 인한 패혈증으로 거의 죽을 뻔했는데 후유증으로 그후 말을 못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정신이 온전한지를 걱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이 그에게 내재해 있던 가장 강렬한 창작력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그뒤 8년 동안 가장 훌륭한 작품들을 창작했는데, 이 작품들은 뒤에 연작집 〈소설 Ficciones〉·〈알레프 외(外) The Aleph and Other Stories, 1933~69〉라는 영역판에 실렸다. 이 시기에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라는 작가와 함께 조상의 이름을 서로 결합해 만든 H. 부스토스 도메크라는 필명으로 탐정소설을 썼는데, 이 작품은 〈돈 이시드로 파로디의 6가지 문제 Seis problemas para don Isidro Parodi〉(1942)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실제 세계에 대한 반어적·역설적 설명이라 할 수 있는 그의 고유한 꿈의 세계를 독특한 언어와 서술 기법을 사용해 처음으로 보여주고 있다. 1946년 독재자 후안 페론이 권력을 쥐게 되자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측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도서관에서 쫓겨났다. 그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강연·편집·저술활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는 수필집 〈다른 종교재판들 Otras inquisiciones, 1937~1952〉(1952)에서 냉철한 판단력과 분석력을 보여주었다. 1955년 페론이 물러나자 명예직인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이 되었고,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에서 영미문학 교수직도 맡게 되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앞을 전혀 못 보게 되었는데 이 병은 그의 아버지도 겪었던 유전질환으로, 1920년부터 점차 시력이 약해졌었다. 이로 인해 그는 손으로 직접 글 쓰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고 어머니나 비서, 또는 친구들이 받아써주어야만 했다. 후기 작품에 속하는 〈창조가 El hacedor〉(1960)·〈가상의 존재들에 대한 책 El libro de los seres imaginarios〉(1967) 등은 산문과 운문 사이의 장르 구별을 거의 없앤 작품들이다. 후기 소설집으로는 복수·살인·공포를 다룬 〈브로디에의 보고서 El informe de Brodie〉(1970)·〈모래의 책 El libro de arena〉(1955) 등이 있는데, 두 작품 모두가 민담 이야기꾼의 소박함과 자기 내면의 미로를 파헤쳐 그 핵심에 도달하려는 한 인간의 복잡한 시각을 결합시킨 우화들이다. 평가 1961년 사뮈엘 베케트와 함께 권위있는 포멘토상을 받은 후, 그의 소설과 시는 점차 20세기 세계문학의 고전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전까지 보르헤스는 자신의 고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다른 작가들은 그를 단지 기교와 재주를 지닌 장인(匠人)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가 '창조해낸' 악몽의 세계는 프란츠 카프카의 세계에 필적할 만한 것이라는 평을 받았고 일반적인 언어를 가장 지속성 있는 형태로 응축시킨 작가로 높이 평가되었다. 보르헤스의 작품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은 학문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전세계의 일반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덤으로 더...   시학 보르헤스 / 현중문 옮김     보르헤스 후기 시에서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보편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이 시에서도 물, 세월, 강물, 거울 같은 평범한 이미지를 중첩하여 헤라클레이토스의 유리((琉璃))라는  미학적 응결물을 창출해내고 있다. 원제는 Arte poetica       물과 시간으로 이루어진 강을 보고 시간이란 또 다른 강임을 기억하라. 우리들은 강처럼 사라지고 우리 얼굴은 물처럼 흘러감을 알라. 깨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꿈, 꿈을 꾸고 있지 않다는 꿈이며 우리 육신이 두려워하는 죽음이란 밤마다 찾아오는 죽음, 꿈이라 생각하라. 나날의 일상에서 인간이 살아온 유구한 세월의 상징을 보고, 세월의 전횡을 음악과 속삭임과 상징으로 바꾸어라. 죽음에서 찾아낸 꿈, 석양에서 찾아낸 서글픈 황금, 이것이 시일지니, 가난하고도 불멸하는 시일지니, 여명과 석양처럼 번갈아드는 시일지니. 오후가 되면 종종 거울 깊은 곳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얼굴 하나 있으니 예술은 그 같은 거울이 되어 우리 얼굴을 보여주어야 한다. 불가사의한 일에 신물이 난 율리시즈는 눈물이 났단다, 먼발치로 보이는 이타카 푸르고 소박한 고향, 예술은 그런 이타카 영원히 푸르지만 불가사의는 없는 이타카. 예술은 또한 흐르면서도 제자리에 머무르는 끝임없는 강물이며, 그 끝임없는 강물처럼 자신이면서 다른 사람으로 유전하는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유리(琉璃)이다.   『제작자』(1960)중에서    
1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범아, 범아, 맘껏 뛰여놀아라... 댓글:  조회:4193  추천:0  2018-01-10
                                                                                             [인민망 한국어판 1월 9일] 1월 5일, 대설 후 장쑤(江蘇, 강소)성 양저우(揚州, 양주) 동물원이 눈으로 하얗게 뒤덮였다. 둥베이호원(東北虎園)에 사는 둥베이 호랑이(東北虎: 시베리아호랑이)들이 눈밭에서 뛰놀며 겨울을 즐기고 있다. (번역: 이세현)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11    [이런저런] - 그림 그리는 "진도개" 댓글:  조회:3744  추천:0  2018-01-10
[굿모닝 내셔널] 견공계의 피카소.. 그림 그리는 '진도개' 김호 입력 2018.01.09.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전남 진도 사는 황구 '진명'이, 주인과 붓으로 그림 그려 단순히 종이 위에 점 찍는 것 넘어 선 그리는 등 붓질 진도개 좋아하던 남동생 잃은 아주머니와 특별한 인연 진도개공연단 통해 일당 10만원 벌어 진도개 가족 '가장'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가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황금 개의 해인 2018년 무술년(戊戌年)을 맞아 한국 토종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진도개와 삽살개, 동경이 등이다. 이 가운데 진도개는 익히 알려진, 주인에 대한 남다른 충성심과 영특함으로 사랑을 받는 토종개다. ‘진도개의 고향’ 전남 진도에는 독특한 재능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진도개가 있다.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그림 그리는 개 ‘진명’이다.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 그림 그리기를 마친 쥐 주인 김신덕씨와 원반 던지기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해가 바뀌면서 올해로 6살이 된 진명이는 수컷 진도개 황구다. 사람으로 치면 40대 정도의 나이다. 엄마처럼 따르는 주인 김신덕(62ㆍ여)씨와 호흡을 맞춰 함께 그림을 그린 지는 4년 정도 됐다. 진명이가 사는 곳은 진도군 의신면 운림예술촌이다. 천연기념물 제107호인 첨찰산 상록수림이 있어서 공기가 맑고, ‘남종화의 대가’로 불리는 조선시대 화가 소치 허련(1808~1893)이 그림을 그리며 살았던 운림산방이 있는 곳이다.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 프리랜서 장정필   “물어!” 지난 4일 오전, 색색의 물감을 푼 팔레트를 한 손에 든 주인 김씨가 짧고 굵게 말하자 진명이가 김씨의 다른 손에 들린 붓을 입으로 받았다. “그려!” 신이 난 듯 꼬리를 흔들던 진명이는 계속된 김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망설임 없이 이젤로 다가갔다. 이어 물감이 묻은 붓끝을 화선지에 가져가 고개를 흔들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얼핏 보면 물감이 묻은 붓을 그저 화선지에 가져다 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선을 그렸다. 단순히 종이 위에 점을 찍는 것과는 달랐다. 수차례 반복된 붓질 끝에 ‘작품’이 완성됐다. 물론 전문 화가의 작품과 비교할 순 없었지만, 어린이가 그린, 화려한 추상화 같기도 했다. 주인 김씨는 진명이가 몇 차례 붓질할 때마다 삶은 고기를 줬다.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 프리랜서 장정필   진명이에게 그림 그리는 재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원반 물어오기부터 링 통과하기, 사람과 함께 줄넘기 등 다재다능하다. 간단한 말도 알아듣는다. 핸드폰, 꽃, 안경 등 필요한 물건을 말하면 입으로 물어 가져온다. 컨디션이 좋으면 ‘하나’부터 최대 ‘열다섯’까지 구령에 맞춰 같은 횟수로 ‘멍멍’ 짖기도 한다. 주인 김씨는 “진도개들이 워낙 영특한데, 진명이는 어렸을 때부터 남다르게 민첩하고 호기심이 많은 강아지였다”고 말했다. 가령 먹을 것을 던져보면 바닥에 떨어진 뒤 주워 먹는 다른 강아지들과 달리 진명이는 힘껏 점프해 받아먹거나 떨어지는 나뭇잎이나 나비를 쫓아가 물려고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원반 물어오기를 시작으로 훈련을 한 결과 지금의 실력을 갖추게 됐다. 그림을 그리는 데까지는 6개월 이상 걸렸다.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가 쓰는 붓. 입으로 물 수 있게 한쪽 끝을 T자 모양으로 제작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진명이와 주인 김씨는 특별하게 인연을 맺었다. 원래 진도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결혼 후 타지 생활을 하다가 한국을 떠나 필리핀에서 지냈다. 남편의 직장과 세 자녀의 교육 문제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김씨가 진도로 돌아온 것은 2009년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척추를 다친 세 살 아래 남동생이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잠깐 한국에 들어왔다. 김씨는 “남편도 필리핀에서 하늘나라로 떠난 상황이었다. 아이들과 호주로 떠날 계획을 세운 뒤 동생을 보고갈 생각에 잠시 귀국해 진도에 왔다”고 했다. 58년생 개띠로 유난히 진도개를 좋아해 15마리 이상 키우던 김씨의 남동생은 2011년 결국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개들의 운명은 김씨에게 달려있었다. 모든 진도개들을 주변에 분양하고 진도 생활을 정리한 뒤 계획대로 호주로 떠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김씨의 결정은 진도에 남아 진도개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진도개와의 인생 2막이 시작됐다.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와 주인 김신덕씨. 프리랜서 장정필   어릴 땐 진도개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 김씨에게 진도개들은 새 가족이 됐다. 진명이를 낳은 어미 진도개를 비롯해 20마리 가까운 진도개에게 매일 밥을 주고 변을 치우는 등 식구처럼 돌봤다. 그러다 태어난 진명이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김씨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됐다. 진명이는 최근까지 5차례 짝짓기를 통해 20여 마리의 새끼도 선물했다. 모두 아빠 진명이를 닮아 똑똑하다. 제2의 진명이를 꿈꿀 정도다.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 주인 김신덕씨와 줄넘기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진명이는 자신을 포함해 30여 마리나 되는 진도개 가족의 가장 역할도 한다. 3월부터 12월까지 진도에서 열리는 진도개공연단 공연을 통해서다. 15마리의 공연단 진도개 중 한 마리인 진명이는 토ㆍ일요일 30분씩 공연을 해주고 1회당 10만원을 받는다. 사람보다 훨씬 센 시급이다. 이 돈은 김씨가 키우는 진도개 가족의 먹이를 사는 데 쓰인다. 김씨는 “내 자녀를 키우듯 반려견을 키운다면, 정말 주인과 소통하는 반려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진도=김호 기자 
1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멸종위기종",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4173  추천:0  2018-01-10
[뉴스+] 이 나비는 이제 볼 수 없습니다... 윤지로 2018.01.10.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다신 볼 수 없는 '큰수리팔랑나비' 멸종위기종 해제 / 환경부, 개체수 완전히 사라져 / 절멸로 목록 제외 두 번째 사례 / 고리도롱뇽 등 25종 신규 지정 / 총 267종 확정.. 20년새 32%↑ 수수해 보이는 황갈색 날개 아래로 녹색 금속성 광택을 뽐내는 ‘큰수리팔랑나비’가 멸종위기 야생생물 목록에서 해제됐다. 개체수가 늘어서가 아니라 완전히 사라져 더는 멸종 ‘위기’가 아니라고 판단해서다. 절멸해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큰수리팔랑나비 환경부는 개정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멸종위기 야생생물 267종을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정부는 전국 분포조사와 유관기관 연구 결과, 시민 제보 등을 토대로 5년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목록을 개정하는데, 기존에는 246종이 지정돼 있었다. 이번에 새로 멸종위기종(Ⅱ급)이 된 야생생물은 고리도롱뇽, 물거미, 붉은어깨도요 등 25종이다. 고리도롱뇽은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부산 기장군 일대에만 분포한다. 물거미는 우리나라 거미 가운데 유일하게 수중생활을 한다.   고리도롱뇽 물거미 기존 멸종위기 Ⅱ급이었던 좀수수치와 먹황새, 금자란(식물) 등 10종은 Ⅰ급으로 상향 조정됐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은 현재 멸종위기에 처한 경우, Ⅱ급은 가까운 장래에 멸종위기에 처할 우려가 있는 것을 말한다. 미선나무 등 3종은 개체수가 풍부해 멸종위기종에서 빠졌다. 반대로 큰수리팔랑나비는 절멸로 추정돼 목록에서 해제됐다. 2012년 바다사자에 이어 두 번째로 ‘멸종됨으로써 멸종위기를 벗어난’ 경우다. 여기서 멸종이란 야생에서는 물론 동·식물원에서도 유전자원을 확보할 수 없어 복원마저 어려워진 상태를 말한다. 호랑이는 야생 상태에서는 멸종한 것으로 보이지만, 동물원에 유전자가 일치하는 시베리아 호랑이가 있어 멸종위기 Ⅰ급을 유지하고 있다. 각종 개발과 생태계 파괴로 야생생물 서식지가 열악해지면서 멸종위기종은 1996년 203종에서 약 10년 새 32%나 늘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에 지정된 종은 환경부 장관의 허가를 받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포획·방사·가공·반입·반출 등의 행위가 금지된다. 이번에 신규 지정된 25종을 보관하고 있는 경우 1년 이내에 지방 환경청에 신고하면 계속 갖고 있을 수 있다. 환경부는 새로 확정된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널리 알리기 위해 대형 포스터를 제작해 학교, 관공서, 환경단체 등에 무료로 배포한다. ///윤지로 기자
9    하이퍼시의 뿌리는 중국시전통에 있으며 대간을 이루고있다... 댓글:  조회:2805  추천:0  2018-01-10
부록 중국력대하이퍼시 명시들.[련재 끝] 작성자: 최룡관   아래의 시들은 한국의 중국문학박사인 허세욱교수님이 편찬한 과 (1,2)을 중심으로 골라낸 중국력대하이퍼시 명시들이다. 이 명시집을 보면 하이퍼시는  중국의 시전통이라는것이 환히 알린다.  조금 손색이 가는 점이라면 어떤 시들은 감정절제가 잘 안된것 같다. 하지만 하이퍼시가 중국시문학에서 대간을 이루고있다는것을 감안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것 같다.     중국력대하이퍼시 명시선   1.     중국고대하이퍼시 명시선    전당강서 밤을 새우며(외1수)            맹호연(689ㅡ740)   연기 좌욱한 나룻가에 배를 묶고 어스름 저녁, 나그네가 고개 숙인다   아득한 들끝, 하늘이 나무에 내려앉고 맑은 강물, 달님이 사람곁에 다가선다     광릉 친구에게 부치노라     산그늘 넘어지자, 잔나비 우는데, 강물은 밤을 타고 더욱 급하다.   바람은 두골짜기 풀잎을 울리고, 달빛은 한잎새, 조각배를 비춘다.   건덕땅은 낯설지만, 광릉땅은 향긋 그리워   두줄기 눈물을 고이고이 싸서 서녁땅 친구에게 보내고파라.     가을밤 왕유(701ㅡ781)   빈 산에 가을비, 쓸쓸하고 썰렁하네.   소나무새로 달님이 비치고, 바위위로 샘물이 맑아,   빨래하는 녀인 오느라, 대숲이 바슥바슥, 고깃배 돌아가느라, 연잎이 흔들흔들.   봄풀은 어이 없이 스러지는데, 왕손은 여기서 서성인다.   오야제(烏夜题)(외1수) 리백(701ㅡ762)   황운성 변두리에 보금자리 찾는 까마귀 까악! 까악! 날아와 우네   베틀에 비단 짜던 진천의 아낙네 자욱이 파란 사창 저 안에서 무언지 중얼대다가   북을 멈춘채 멍하니 하늘 보며 먼먼 임을 그리는 외로운 방 주룩주룩 눈물 흐르네     촉도난   아이구! 저리도 높고 험할진저 촉나라 가는 길이 하늘 오르기보다 어려운가?   잠총이나 어부같은 선조들, 나라를 세울 때 얼마나 망연했을까?   그때로부터 사만팔천년전 바로 이웃나라인 진나라와도 벽을 치고 살았다.   서쪽으로 태백산이 막혔고, 거기엔 새 길이 났기로 그 길은 아미산꼭지를 가로 질렀다.   땅이 무너지고 산이 깎이느라 장사들이 죽은 뒤라서 저기 하늘끝에 사다리가 서고 돌띁에 다리가 매였거늘.   위로는 해를 끄는 륙룡마저도 넘지 못하는 봉우리 아래로는 넘실거리는 물결마저 거꾸로 돌아서는 골짜기   황학은 너무 높아 나래를 접고 잔나비고 너무 험해 손을 움추린다 ………………   나그네의 밤(외1수) 두보(712ㅡ770)   가는 풀 산들바람 강기슭에, 높은 돛대 혼자서 지새우는 밤.   별들이 들에 내려 별밭을 일구고, 달님이 따라 내려 강물에 출렁인다.   글 지어 얻은 명성 얼마나 가랴! 늙고 병들어 벼슬조차 던지련다.   훨훨 나부끼는 나무는 무엇일가? 모래사장 지평에 날으는 외기러기.     산에 올라   하늬바람 높은 가을하늘 잔나비 울음소리 슬프네 백사장 맑은 물에 오락가락 새 한마리   끝없이 나무잎은 우수수 쏟아지고 끝없는 장강물은 유유히 흘러간다   만리밖 나그네는 가을이 슬퍼 가도가도 병 든 몸 누대를 오른다   귀밑머리 센채로 한을 삼키고 꼬부랑 늙은 터에 술조차 끊었구나   영스님 거문고 소리를 듣고 한유(768ㅡ824)   속삭이는 련인들이 귀속말인가 사랑사랑 정이 넘쳐 애틋도 하다. 한번 긋자 바람소리 우렁차더니 장사가 적진에 돌진하는듯 흩날리는 버들꽃 떠도는 구름이라 드넓은 우주에서 자유로이 날아라. 백천마리 뭇새들이 지저귀는가 갑자기 들려오는 봉황새소리 더는더는 가락이 높아질수 없을 때 구천에서 떨어져 지심에 잦아드네. …………   오의항(乌衣港)(외1수) 류우석(772ㅡ842)   주작교다리아래 들풀꽃 만발하고 오의항어구로 석양이 내비치네   옛날 왕사집에 넘나들던 제비들 지금은 이름 모를 민가에 날아드네.     석두성에서   산이 옛땅을 에워싸듯 둘렀기로 썰물은 옛성을 두들기다 저 홀로 돌아간다.   회수 동쪽에 돋던 옛달은 이 밤도 저 낮은 담을 너머 가까이 다가온다.     강에는 눈만 내리고 유종원(773ㅡ819)   천산엔 새 끊기고 만경엔 사람 그림자 하나 없네   조각배우에 우장 삿갓 쓴 노인 혼자서 차디찬 강설을 낚네.     고기잡이 노인   고기잡이 노인 서쪽바위에서 밤을 새고, 새벽녘 상강물로 초죽을 태운다.   일출에 안개는 사라지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고 노젖는 소리에 강산만이 푸르다.   무심히 고개 들어 보니 하늘에서 물이 흐르고 바위위로 하염없는 구름이 오락가락.   가을밤(외1수) 리하(790ㅡ816)   가을바람소리 소슬히 불제 장부의 괴로운 심사, 깜박이는 등불에 여치마저 슬피우네   그 누구가 있어 올올이 엮어진 이 책을 비단벌레에게서 오래도록 지켜주리?   오늘밤 이 시름에 애타는 이 심정, 빗속에서 나를 찾는 여인의 넋이여!   가을 무덤가에는 어느 넋이 있어 포조의 시를 읊거늘 천년의 한이 흙에 묻혀 푸르리     장안을 떠나며     눈속에 계수나무 지고 까마귀, 총에 맞아 울고 간다.   관수엔 노새 그림자 진나라 바람결에 모자끈이 날린다.   고향 찾아 만리를 갔건만 벼슬을 얻지 못해 슬픔만이.   아내는 차마 묻지 못한채 거울에 비치는 두줄기 눈물.     산행 두목(803ㅡ852)   멀리 가을산의 돌길을 오르면, 흰구름 깊은 곳에 인가가 보이네.   이월의 꽃보다 붉은 단풍이 있어, 수레 멈추고 해지는줄 모르네.   상아여(외2수) 리상은(812ㅡ858)   운모(云母)는 병풍안 촛불 혼자서 떨고, 은하는 내려앉아 샛별도 희미하네.   지금쯤 상아는 선약 훔친것을 뉘우치며, 밤마다 푸른 하늘을 보고 가슴 치고있겠지.   낙화   높은 다락의 손님들 흩어질 때 뒤란의 꽃잎들 자욱이 흩날린다.   꼬부랑 논두렁을 오르락내리락 멀리 석양을 전송한다.   애타는 마음으로 낙화를 쓸수 없어 뚫어지게 보노라면 봄은 다시 돌아올듯   내 사랑 봄따라 가버리고 남은것은 눈물 젖은 옷자락뿐     거문고   거문고는 어이타 쉰줄인가? 줄마다 기러기발마다. 젊은 날이 묻히였네.   장자는 나비되여 새벽꿈속을 헤매고 망제는 두견되여 춘삼월을 슬퍼하네.   달 밝은 바다가에서 진주는 눈물을 훔치고, 남전(蓝田)의 따스한 날 옥구술이 연기를 뿜네.   먼 훗날에 이 모든 일들이 추억이 되련만 지금은 다만 망망한 마음, 어찌할바 모르네.   숙직 왕안석(1021ㅡ1086)   금로에 향불 사그라들고 누종소리 아득할 때, 솔솔 봄바람에 쌀쌀한 추위.   봄빛이 괴로워 잠 못 이룰 때, 달빛은 꽃 그림자를 마루에 드리우네.   봄밤 소식(1037ㅡ1101)   봄밤 한허리를 천금엔들 사겠는가? 꽃에는 맑은 향기 달에는 달무리.   누각의 풍악소리 굽이마다 슬픈데, 그네 걸린 뜨락엔 밤이 깊어만 가네.   쾌각에 올라 황정견(1045ㅡ1105)   소관이 공무를 마치고 나면, 쾌각의 노을은 끝없이 맑아라.   우수수 쏟아지는 락엽에 하늘은 멀고, 환하게 맑은 강물엔 달이 또렷해라.   붉은 거문고줄은 그대 위해 끊었고, 파란 눈빛은 술때문에 가로 보이네.   멀리 돌아가는 배에 처량한 피리소리 이제 내 마음은 갈매기를 벗하네.   검문에서 비를 맞으며 육유(1125ㅡ1210)   옷자락엔 먼지 술 흘린 자국 또한 겹쳤지만, 두루 떠돌아보니 곳곳마다 그리워 넋을 뺀다.   이내 몸도 시인일수 있을가? 가랑비 내리는 날 노새 타고 검문을 들어가네.   화제(花题) 탕얜(1470-1523)   삼만경 호수물은 물인지 하늘인지? 천그루 나무끝은 깊어가는 저녁놀.   아이를 불러 작은 배로 호수를 건너며, 누워 노을에 타는 뫼부리를 본다.   중국현대하이퍼시 명시선   눈물의 자취 刘大白(1880ㅡ1932)   그리움따라 아련히 잠들 때 그대를 교살하여 구유 저 깊은 곳에 묻는다. 봄소식 되살아나는 밤이면 그대는 또 한번 홍두(红豆)가지끝에 되살아난다   비늘구름 누가 저 먼 하늘에다 그렸을가   사람은 꽃속에 사람은 바람속에 바람은 우리들 마음속에   지구에서 달빛이 사라질 때도 어쩌면 이토록 쓸쓸하겠지 ㅡ 혼자 동그마니 앉은 나처럼   삼현(三铉) 선인머(1882ㅡ1964)   정오! 불같은 폭염이 아스팔트에 쏟아지는데 거리엔 인적도 끊긴채 바람만 가도의 버들을 쓰다듬는다   뉘집 부서진 대문틈새로 파란 잔디가 보이고 반짝이는 금빛으로 마당이 질펀한데 그 가장자리로 낮은 흙담이 빙 둘러 삼현을 튕기는 그 사람을 에워쌌건만 삼현의 질펀한 소리는 담을 넘는다   문밖에 해진 옷자락에 주검처럼 앉은 로인 있어 머리를 부둥켜 안은채 숨소리를 죽이고있다.   날더러 어찌 잊으란 말인가? 刘復(1891ㅡ1934)   하늘엔 송이구름 나부끼고 땅엔 산들바람 불어오는데 여보게 산들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데 날더러 어찌 잊으란 말인가?   달빛은 저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 또한 저 달빛을 사랑하는데 여보게 벌꿀처럼 달디단 저 은하의 밤에 나더러 어찌 잊으란 말인가?   강물위에 락화가 둥둥 흐르고 물속엔 물고기 사쁜히 노니는데 여보게 제비는 무어라 지껄이는데 날더러 어찌 잊으란 말인가?   앙상한 가지는 바람에 흔들리고 야화는 놀속에 붉게 타는데 여보게 날더러 어찌 잊으란 말인가?    천상의 거리 꿔머뤄(1892ㅡ1978)   가물가물 가로등이 켜있다 무수한 별들이 깜박이듯 하늘에 별이 빛난다 무수한 가로등을 켜듯   저 아물아물한 공중엔 정녕 아름다운 거리가 있겠지 거리에 진열한 상품들은 인간세상에서 볼수 없는 진품이겠지   보아요 저 나직한 은하는 정녕 널다란게 아니겠지 은하건너의 저들 견우 직녀는 필시 소를 타고 오락가락하겠지   저들은 지금 정녕 하늘의 거리를 산책하겠지 믿어지지 않으면 저 류성을 보아요 저들은 초롱을 들고 걸어요   굿바이 케임브리지 서지마(1896ㅡ1931)   아무도 몰래 왔듯이 아무도 몰래 떠나네 하얀 손 흔들며 서녁하늘 떠가는 구름   강가의 금빛 버들은 석양에 시집가는 새아씨 물결에 밀려밀려 고운 그림자 가슴에 철렁철렁 물결을 이네   향그런 여울위에 파란 풀잎이 비단결 물속에서 그림 그리면 케임브리지 부드러운 파상을 따라 마음은 일렁이는 한가닥 물풀   느릅나무 그늘아래 작은 호수는 샘이 아니라 하늘의 무지개 마름풀 사이로 느릅이 부서지면 무지개 고운 꿈이 그리로 가라앉네   꿈을 쫓아간 쑥대를 짚고 푸른 풀 푸른 물을 거슬러 오르면 가득히 한배에 별빛을 싣고 별빛 비단속에 노래하며 돌아가네   그러나 나는 노래할수 없어라 어디선가 피리소리 가만히 새여오네 벌레도 목이 메여 노래 삼킬 때 오늘밤 케이브리지는 침묵에 잠겨   아무도 몰래 왔듯이 아무도 몰래 떠나네 나그네 옷소매를 훨훨 털면서 행여나 묻혀질가 서녘 땅 구름   케임브리지; 영국 동부 도시이름    어쩌면 문일다(1899ㅡ1946)   어쩌면 당신은 너무 울었나봐요 어쩌면 어쩌면 당신은 잠을 청해보세요 부엉이더런 기침을 삼가하고 개구리더런 울지 말고 박쥐더런 날지 말라고   해빛이여! 당신의 눈까풀을 건드리지 말게 바람이여! 당신의 눈섭을 쓸지 말게 아무도 당신을 깨울수 없나니 솔그늘로 양산 삼아 당신의 잠을 보호하게나   어쩌면 당신은 지금 진흙을 뚫고 가는 지렁이 소릴 듣는게지 어쩌면 당신은 지금 작은 풀뿌리의 물 빨아올리는 소릴 듣는게지 어쩌면 이토록 미세한 음악을 아귀다툼하는 인간의 육성보다 곱게 듣는게지   그래, 당신은 먼저 눈까풀을 내리게나 고이 자게! 고이 자게 내 노란 고물흙을 사뿐사뿐 덮어줄게 그리고 얇은 지전을 훨훨 태워줄게   새벽 리진발(1900ㅡ1976)   새벽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게. 미소는 치아들의 틈새에 끼워두고, 조심스런 손길로는 벨을 누르고, 치마끈으로는 융단모양의 국화의 이승을 헤치면서 오게나! 숨결은 어떨까? 나는 도무지 알수 없네 금빛 눈부신 새벽이여! 성큼성큼 다가오게! 구슬소리 달랑달랑 흔들며 오게나! 자네 신비로운 발자국을 가만히 셈세. 자네 팔뚝을 내게로 활짝 벌리고, 저들은 나처럼 잠꾸러기, 깊이 잠들어있네. 들어와 내곁에 앉게. 젖은 신일랑 벗어던지고. 무슨 꽃송이를 땄나? 이리도 자네 가슴에 흥건한 꽃내음. 아니, 그런데 보이지 않더냐? 그것들(꽃송이)이 함께 놀던 작은 양떼들을 떠난지라 얼마나 슬퍼하는지를. 자네처럼 절반쯤은 엄숙한 얼굴로 오거든, 내 화필을 놓겠네. 자네처럼 눈망울을 휘둥그렇게 하면서. 밤까마귀는 까맣게 내눈을 칠하더니만 그냥 날아갔고, 장미는 자네 입술에 붉은 연지를 칠하더니만 바람결에 지고 말더군. 우린 오솔길에 숨어서 여윈 풀들이 솔뿌리에서 통곡함을 보고있었네. 자넨 바람속에서 호흡하고, 난 멀리서 바라보고, 그들은 어둠 밤을 향해 광분했네. 더운 밤은 이제야 비로소 문턱을 넘어갔네. 얼마나 웨치다 가 분노와 오열속에 갔을까? 정말 자기가 오지 않았더라면 난 꿈속에서 자네를 내 품에 안았을걸세. 그렇지 어둠은 분명 문턱을 넘어갔네.      실비(외1수) 穆木天(1900ㅡ)   올올이 마음 가느다란 실비줄기마다 파고들어 아련한 빗소리를 파고들어 시나브로 흔들리는 실안개를 파고든다   아득히 먼 수풀 그 가지끝으로 스며든다 어둡도록 막막하게, 그리고 조금씩 들쑥날쑥한 지붕룡머리로 스며든다. 전선 한줄한줄에 스며든다 살살 불어와서 어디론지 아련히 사라지는 음악에도 스며든다   안개가 자욱한 연못에 스며든다 잠자는 련꽃위로 여기저기 엉기어 고요히 나붓기는 안개의 그물에 스며든다 끝없는 꿈속을 헤매는 공상에 스며든다 옛이야기에도 스며들어 어디론지 자욱하다   멀리 보이지 않는 산꼭대기에 스며든다 바람소리 빗소리로 오락가락한 숲속에 스며든다 영원한 순환으로 멀리멀리 휘감기는 강만에 스며든다 구름인지 물인지 , 비었는지 차있는지 모르는 영원한 하늘가로 스며든다  옛날의 도시, 농촌, 영원한 안개, 영원한 연기에 스며든다 영원한 몽롱, 몽롱뿐인 ㅡ마음에 스며든다 끝없는 담박, 끝없는 황혼, 영원한 점선, 영원한 나부낌, 영원한 그림자, 여원한 실체, 영원한 공허,   끝없는 비줄기 끝없는 마음의 실오라기 몽롱 몽롱 몽롱 몽롱 몽롱 가늘게 무한히 몽롱사이를 스며든다    올올이 마음 가늘게 한줄기한줄기 빗줄기 사이로 스며든다.    리발소 癈名(1901ㅡ)   리발사의 비누거품은 우주와 상관이 없다 마치 물고기가 강호을 잊듯 리발사 손에 쥔 면도기는 인류라는게 많은 자국을 그어야 된다는걸 상기시킨다 벽에는 사구려 라디오가 울린다 그것은 령혼의 침.   무덤 하나 朱湘(1903ㅡ1933)   무덤 하나 동그마니 무덤앞에 들풀이 무성하고 무덤 하나 동그마니 뱀이 기어가듯 바람이 풀을 스친다   반딧불 하나 어둠이 사방을 에워싸고 반딧불 하나 콩만한 빛을 낸다   해괴한 새 한마리 스산한 나무그림자에 숨어 해괴한 새 한마리 인간과는 달리 울음을 터뜨린다   누런 달 한갈쿠리 구름속에서 빼꼼히 내밀고 누런 달 한갈쿠리 문득 산기슭으로 진다    14행 대망서(1905ㅡ1950)   보슬비가 당신의 헝클어진 빈모자에 나붓기고있다 작은 구슬방울이 파란 미역덤불에 부서지듯 죽은 물고기가 하얀 파도위에 뒹굴듯 그 신비롭고 슬픈 빛을 번득이고있다   내 푸른 령혼을 데리고 사랑과 죽음이 깃든 꿈의 왕국에서 잠을 청한다 거기엔 황금색공기와 자색 태양이 있고 거기 불쌍한 생물들이 기쁨의 눈물을 가슴에 적신다 한마리 까맣게 야윈 고양이처럼 나는 그 어둠속에서 초췌하게 기지개를 켜며 내 모든 위선과 진실한 교만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고양이를 따라 몽롱한 뽀얀 안개속을 비틀거리며 연분홍 술거품이 호박종에 흩날리듯 나는 뜨거운 눈망울을 거기 어두운 기억속에 감추어둔다    편지 卞之林(1910ㅡ)   우체부가 평상처럼 벨을 누른다 바로 대문의 한가운데를 누른다 황해를 헤염쳐온 물고기인가? 시베리아를 날아온 기러기인가? 지도를 펴고 찾아라고 멀리 간 사람이 말했다 그는 자기가 사는 곳은 그 점신이 끝나는 작은 흑점이라고 표시했다 그것이 끔빛 빛나는 점이고 내 의자는 태산의 꼭지라면 휘영청 밝은 달밤 당신이 머문 곳은 틀림없이 외로운 정거장이겠다 하지만 나는 헌 력사책을 펼치고있거늘 서쪽으로 저녁노을의 함양 옛길을 내다보며 나는 한필의 준마가 달려오는 찰그랑찰그랑 말굽소리를 기다린다.   함양; 진나라서울    구름 하기방(1927ㅡ1977)   ‘’나는 저 구름을 사랑해, 저 나부끼는 구름을…’’ 그것은 어쩌면 보들레르 산문시구절 그 목을 한쪽으로 빼고 근심에 차 하늘을 바라보는 멀리서 온 사람   시골을 가면 농부는 성실해서 제 땅을 잃었다 그들의 집은 줄지어 농구로 변신되고 낮이면 논밭에 나가 먹이를 찾고 밤이면 메마른 돌다리에서 잠을 청했다   나는 해변의 도시로 갔다 겨울의 아스팔트위엔 별장들이 줄을 서는데 어쩌면 거리에 서있는 창녀같았다 그들도 여름의 환락과 부옹의 탐락,무치를 기다린다   지금부터 나는 북받치는 울분속에 맹서하리라 내게 차라리 작은 띠집 한채를 원할지언정 구름을 사랑하지 않으리 달과 별도 사랑하지 않으리    항해 辛笛(1912ㅡ)   돛을 달았다 돛은 노을이 있는 곳으로 맑고 이끼 낀 곳으로 돛대는 까만 물을 입맞춤한다 까만 나비와 흰 나비처럼   밝은 달은 머리를 비춘다 파란 뱀이 은빛 구슬을 희롱하며 돛대에서 도란거리는 소리 바람이 불자 뱃사람들은 비와 별들을 묻는다   낮에서 밤까지 밤에서 낮까지 우리는 이 동그라미를 벗어나지 못한다 위에도 원 앞에도 원 영원하면서도 끝이 없는 동그라미   목숨이 망망함은 망망한 연기빛 물을 벗어난다   배 纪弦(1913ㅡ)대만   저 배 바다를 산보하고 난 여기 파도 흉용한 육지를 항해한다 내 파이프 자욱히 연기를 뿜으면 나직한 뱃고동 저음의 목청   배는 화물과 여객을 싣고 나의 적재단위는 ‘’인생’’이란 중량.     어렸을 때(외1수) 绿原(1922ㅡ)   어렸을 때 나는 글자를 모르고 엄마는 도서관   나는 엄마를 읽는다   어느날 이 세상이 태평해서 사람이 날고… 보리가 눈더미에서 돋고… 돈이 쓸데가 없고…   금괴는 집 짓는데 벽돌로 쓰고 지페는 발라서 연을 만들고 은전은 던져서 물에 무늬를 일으키고,,,   나는 떠돌이 소년이 되련다 금을 칠한 사과 하나와    은발의 초 한자루 그리고    이집트에서 날아온 홍학 한마리를 들고.    우울   태양이 부채꼴의 방사선을 공급하더니 몰락하고 예수는 노새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길손은 초롱불 하나를 사서 건너마을 주막집을 찾는다   성인은 황혼의 연기빛 물가에서 고뇌한다 (우렁은 그의 껍질로 돌아갔다.) 비가 내리는 성곽의 다락엔 (저녁종은 십자가 그림자를 그리며 울린다.) 언제나 투명한 소리 있어 너의 이름을 부른다 그래, 마땅히 꿈꾸는 나그네를 깨워야지   이것은 동화   밤이 깊었다 내게 성냥 한개비를 주소서.    겁회(劫灰) 羊令野(1923ㅡ)         ㅡ 다만 잡목사이로 보일뿐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다. 천둥이 치고 불이 붙고 잿더미에서 나비가 날고   모든것은 무성하지 못한채 맨 손으로 하늘을 더듬는다 북두성은 하늘을 마르도록 퍼내면서 아직껏 단 술 한잔을 따르지 못한다 다만 눈, 비의 꽃송이들 당신의 과실 하나 맺지 못할 이마에 풍성하게 열렸다   뻐꾹새 온 3월을 울었건만 한알의 쌀도 남기지 않은채 봄과 함께 훌쩍 떠나고 당신의 나이테엔 해마다 거듭되는 녹음이 남았건만 모두가 지난 해의 낡은 가락들 당신의 마음에 맴도는 한마리 잠을 잃은 사자 밤마다 풍성한 장미를 맡는다 모든 꽃다움을 후호에 뱉으면서 손바닥에 길렀던 빨간 봉황을 깨워 불붙는 태양으로 날려보낸다   누구의 도끼로 당신의 우주를 철썩 쪼개놓고 우르 꽝꽝 천둥이 울린뒤 바람결에 재더미는 훨훨 남가몽의 나비.    민가 위꽝중(1928ㅡ)   듣건대 북방에 민가 한편 있거늘 다만 황하의 페활량이라야 노래할수 있다네 청해로부터 황하까지 바람도 듣고 모래도 듣고   황하가 얼어 빙하가 된다면 아직도 양자강의 가장 오랜 비음 있거늘 고원으로부터 평원까지 물고기도 듣고 룡도 듣는   양자강이 얼어 빙하가 된다면 또 내가 있지 나의 홍해가 남아 울부짖거늘 새벽 밀물부터 저녁 밀물까지 깨여도 들리고 꿈에도 들리는   어느날 나의 피마저 얼게 될 때 아직도 당신의 피와 저이의 피가 남아 합창하거늘 A형에서 B형까지 울어도 들리고 웃어도 들리고    스트리킹(裸奔) 뤄푸(1928ㅡ)   ……… 2 모자는 벗어 아버지께 옷은 벗어 어머니께 신은 벗어 자식들에게 넥타이는 풀어 친구에게 우산은 주어 이웃에게 건네준다   (그리고 하픔을 한다)   침대는 개미더러 책들은 바퀴더러 사진은 벽더러 편지는 화로더러 시고(诗稿)는 비바람더러 술주전자는 달더러 가져가라하고   (그 혼자서 가만이 쭈그려앉는다)   손발은 삼림에게 골격은 진흙에게 모발은 풀잎에게 지방은 화염에게 혈류는 강하에게 눈은 하늘에게 돌려주고   (그는 갑자기 머리를 세운다)   참새에게 환희를 주먹에겐 분노를 생채기에겐 슬픔을 거울에겐 분함을 폭탄에겐 원한을 력사에겐 망연함을 돌려주고   (돌격준비!)   그는 지금 막 거리로 용입한다 그는 지금 막 먼지로 치닫는다 그는 지금 막 눈보라로 뛰여든다 그는 지금 막 나무들새로 걸어간다 그는 지금 막 강철들과 합류한다 그는 지금 막 꽃내음에 말려든다   드디어 길기도 짧기도 세기도 부드럽기도 구름일수도 안개일수도 숨었다가도 나오며 있다가도 없고 비였다가도 가득한 알몸으로 승화한다   산의 소나무처럼 벌거숭이로 물의 붕어처럼 벌거숭이로 바람의 연기처럼 알몸 그대로 별의 밤처럼 알몸 그대로 안개의 선녀처럼 가리지 않고 얼굴의 눈물처럼 알몸 그대로              3   그는 지금 넘실거리는 종소리를 향해 달린다 달려간다….      2대2 뤄먼(1928ㅡ)   1   창밖은 문 문밖은 잠기고 산밖엔 물 물밖엔 망망한 하늘과 땅   2   사람은 옷을 입고 호주머니엔 려권을 모시고 새는 하늘을 입어도 하늘 그 주머니엔 아무것도 없다   3   새는 산과 물로 날아들고 닭은 푸성귀시장으로 옹기종기   4 바람과 구름과 새의 현주소를 알고자 하늘과 평원의 끝까지 웨쳐도 저들의 다리는 그 골목 그 거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5   엘리베이터로 엠파이어를 올라도 엘리베이터는 지붕아래에서 머물고 하늘이 구름을 타면 우리들의 시력이 얼마의 높이를 갖고 얼마의 깊이를 갖는지 누가 알랴!   6   낚시줄을 깊은산 시냇물에 띄우면 온 하늘은 거기서 조용히 앉았고 다시 그녀의 허리로 눈길을 옮기면 눈자위마다 번지는 죽은 이의 재즈가락 (16까지 있으나 길어서 삭제함)    말굽소리 바이화(1930ㅡ)   밤 댐,강물,차밭에 달빛이 살짝 깔릴 때 타이족꼬마가 엄마의 무릎에서 자고 꼬마의 꿈속엔 참새들이 줄을 지어 노래한다 꽃들은 풀더미속에 동글동글 미소하고 야자와 망고들이 산턱에 모여 아우성한다   순찰병의 말굽소리 철그럭철그럭 멀리서 가까이 다가온다… 어머니가 은근히 미소하는 순간 말굽소리는 또 멀리 사라진다   여명 풀밭, 텐트, 소, 염소들이 찬란한 서광을 이마받이할 때 이족아가씨가 님의 가슴앞에서 나직이 노래한다 그녀는 맑은 호반의 짙푸른 목장을 노래한다       소와 염소 떼속 준마를 탄 소념 그리고 와글와글 소리치는 젖소새끼들   순찰병이 말굽소리 찰그럭찰그럭 멀리서 가까이 다가온다… 아가씨가 수줍어 돌아보는 순간 말굽소리는 또 멀리 사라진다   석양 설산, 빙하, 파란 보리싹들에 지는 노을이 머물 때 장족의 손주가 할아버지어깨에서 피리를 분다 그가 스스로 그리는 먼먼 곳을 분다 먼 곳에 붉은 보석의 서울이 있고 그 붉은 보석이 성에 영원히 대지를 비추는 태양이 반짝이고있다   순찰병의 말굽소리 찰그럭찰그럭 멀리서 가까이 다가온다… 할아버지가 눈 깜박이는 순간 말굽ㅈ소리는 또 멀리 사라진다.   고도 호구에서 예웨이렌(1936ㅡ 대만)   줄이 끊긴 비파가 공중에 가로 놓여 바람의 손가락더러 치라한다 바람의 손가락더러 배속을 때리라 한다   그 다락에 앉은 여자가 머리를 빗는다 광서황제의 얼굴에 닿도록 빗질한다 머리가 너무 길어서 우리는 아무리 쫓아도 따라갈수 없다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우러르며 줄이 끊긴 연 한닢을 볼수밖에 없다    종달새 레이수얜(1940ㅡ)   날아라! 종달새! 오월의 고요한 새벽을 날개쳐라!   너는 오만한 벼락 너는 즐거운 유성 너는  장려한 일출을 보았고 네 가슴에 일렁이는 행복 너의 사랑 전부로 이 광명을 노래하렴   날아라! 종달새! 오월의 고요한 새벽을 날개쳐라!   보리 푸탠린(1946ㅡ)   보리, 내 사무치게 사랑하는 보리, 내 그대를 위해 시를 쓰노라   청순한 오월엔 일년에 한차례의 수확을 기다린다 봅리수염의 휘날림은 해볕의 자상한 은총 낫을 놓고 절구통과 술을 두들긴다 묶어진 보리짚단은 허리에 수건을 졸라맨 사내   내게는 보리 말고 이 세상 무엇을 갖겠나?   나는 당신이 총애하는 계절인가? 나는 당신의 원야로서 혼례를 파종하는 밀월인가? 불어나는 열매는 갈수록 풍만해지는 내허리 아침 안개를 걸친 자세는 어느 천자의 긴 두루마기   아! 이른 아침, 어느 농부가 나를 공중으로 들어올린뒤   달밤은 버드나무 한줄과 살구나무 한줄로 경계를 쌓고 어쩌다가 메뚜기 한마리가 외밭으로부터 슬금슬금 도망나온다 뼈 없이 한들한들한 싹은 감수와 항쟁의 깃발 보리! 내 사무치게 사랑하는 보리 내 그대를 위해 시를 쓴노라   태양성편지 뻬이따오(1949ㅡ)     목숨   태양은 위로 오른다   사랑   고요, 기러기떼가 날아간다 황페한 처녀지로 고독이 쿵 넘어진다 하늘엔 짜고 떫은 비가 나부끼고   자유   찢어진 휴지가 나부낀다   아가씨   떨리는 무지개가 나는 새의 꽃털을 채집한다   청춘   붉은 물결이 고독한 노로 스며든다   예술   억만개 휘황한 태양이 부서진 거울에서 현신(现身)한다   인민   달빛에 찢겨 반짝이는 보리알이 성실한 하늘과 땅에 뿌려진다     로동   손, 지구를 에워싼다   운명   아이들은 아무렇게나 난간을 치고 난간은 아무렇게나 밤을 때린다   신앙   양떼가  파란 늪에 넘실거리고 목동은 외마디 퉁소를 분다   평화   식품은 쇼윈도를 빙빙 돌고 말 없는 초콜렛 대포   조국   그는 청동의 방패위에 주조되여 박물관 까만 판자울타리에 기대고있다   생활   그물     기왕 쉬징야 (1950ㅡ)   기왕 앞으론 망망대해 뒤로는 아득한 륙지일바에야 기왕 발아래론 파란 만장을 밟고 또 숙명대로 저 파도를 그릴바에야 기왕 기대고 참을만한 초석조차 해저로 가라앉은바에야 기왕 저륙지는 멀고 바다와 하늘에 가로막혔을바에댜 차라리 내 일생을 바다에 주자꾸나 저 앞에 아무런 안전표지도 없는 바다에 주자꾸나   시월의 헌시(외2수) 망커(1951ㅡ)   수확   가을이 살며시 내 얼굴에 오더니 내가 익었다   로동   나는 장차 모든 마차와 함께 태양을 보리밭으로 유인할것이다   과실   얼마나 귀여운 자식 얼마나 귀여운 눈빛 태양은 빨간 사과 그아래로 무수한 아이들 기묘한 환상   과실   얼마나 귀여운 자식 얼마나 귀여운 눈빛 태양은 빨간 사과 그아래로 무수한 아이들 기묘한 환상   가을숲   당신의 눈빛도 당신의 목소리도 없이 땅에는 붉은 스카프가 내리고…   만남   그것은 구름송이처럼 나플거리는 여인의 그림자   오솔길   그것은 줄곧 흔들리는 백양나무 그것은 백양나무에 기대선 아가씨 그 길은 아가씨가 절망한 굽이굽이 오솔길   구름   나는 당신이 당신이 하얀 잠옷 입을 때를 사랑한다   개척자   나는 강물 나는 젖줄 내게 물을 주오 젖을 주오 나는 쇠쟁기 나는 낫 내게 경작과 수확의 기회를 주오 ……………….   가을   1 과일이 익었습니다 이 붉은 피 나의 과수원엔 하늘처럼 붉게 물든 밤 2 가을은 정욕이 이글거리는 계절 당신의 눈엔 왜 나를 드러내고있나요 3 꽃피는 계절 아이들은 논밭으로 나가 손님이 된다 그들의 재잘거림은 밭갈이하는 사람과 더불어 수확의 계절로 들어간다 아, 가을 틀림없이 당신은 꽃피는 계절 4 당신의 눈망울속 구름은 하염없이 나부끼고 가을이여! 태양은 어이하여 당신을이토록 말리나이까? 5 당신의 품에 안은것은 무엇이뇨? 당신이 휘둥그래 찾는것은 무엇이뇨? 그 눈부신 해살아래 우울한 사람들 사내, 여인, 아이, 빵 그것은 가정의 필요 그것은 요람을 가득 채운 빵 6 아이들에게 더 많은 눈물을 주지 마오 그들에겐 죄가 없나이다 7 해볕속에 찬란한 이 장미 한송이를 사랑에게 드리나이다 8 아! 가을! 당신은 몇가지 빛갈을 지녔나요? 황혼은 목욕을 마친 아가씨의 수건 물결은 아가씨를 희롱하는 부끄러움 밤은 미쳐서 녀인들과 얽혀있거늘 가을 가을임에 틀림없습니다. 9 가을 나의 생일이 지났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소 나마저 남기지 않은채 과일이 익었습니다 이 붉은 피 10 아! 문앞에 쭈그리고 있는 다신 어둔 밤 나의 적막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게는 땅 한조각이  있습니다   내게는 땅 한조각이 있습니다 내게는 까맣게 그을린 등뼈가 있습니다 내게는 태양도 감쌀 가슴이 있습니다 내게는 뜨겁게 달아오른 심장이 있습니다   내게는 땅 한조각이 있습니다 내게는 누군가에게 경작된 두개골이 있습니다 내게는 하늘도 들락거리는 머리가 있습니다 내게는 아득히 깊은 사랑이 있습니다   내게는 땅 한조각이 있습니다 내게는 누군가에게 갈고 닦인 손바닥이 있습니다 나는 별을 씨처럼 뿌리는 힘을 가졌습니다 나는 일꾼의 생각을 가졌습니다   내게는 땅 한조각이 있습니다 나는 피가 출렁출렁 흐르는 몸을 가졌습니다 나는 인류를 길러낼 젖을 가졌습니다 나는 미래에 부치는 희망을 지녔습니다   조국이여! 사랑하는 조국이여! 쑤팅(1952ㅡ)   나는 당신의 강가의 털털이 물레방아 여러백년 피곤한 노래로 물레질하는 방아 나는 당신의 이마에 까맣게 그을린 작업등 당신이 력사의 터널을 달팽이처럼 기여가로록 비추는 작업등 나는  말라빠진 벼이삭 망가진 길바닥 나는 좌초된 난파서 당시의 어께에 동아줄을 묶었나니 당겨주소서! ㅡㅡ조국이여!   나는 빈곤 나는 슬픔 나는 당신이 대대손손 아프디 아픈 희망이거늘 천사의 소매에서 천백년을 날다 아직도 땅에 떨어지지 않은 꽃송이  ㅡ조국이여   나는 방금 신화의 거미줄을 탈출한 당신의 참신한 리상 나는 당신의 눈더미속에 자란 고련의 싹 나는 당신의 눈물적신 보조개 나는 방금 석회를 뿌린 하얀 출발선 나는 지금 막 솟구치는          붉은 려명;     ㅡ조국이여!   나는 당신의 십억분의 일 당신 구백륙십만평방의 총화 당신은 갈기갈기 찢기운 가슴으로 헤매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끓는 나를 키웠다 그것은 나의 피와 나의 살더미위에서 당신의 풍요 당신의 영광 당신의 자유를 얻었나니 ㅡ 조국이여! 사랑하는 나의 조국이여!   증명(외2수) 얜리(1954ㅡ)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햇살이 내게 손짓하고 있을 때 새똥이 내 손가락끝에 떨어진다 소가락 마디는 내 몸에서 빼낸 시름 한토막 하지만 얼른 봄을 확인코저 나는 일벌 한마릴 꼭 쥐어본다 여기서 봄의 강림은 한차례의 아픔에서 시작됨을 확인하거늘 생채기를 벌리고 보아라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빈차   스무조각으로 좌우를 바느질한다 발빛아래서 노동한다 낯익은 바람 그대는 낡은 하늘을 꿰맨다      나는 눈(雪)이다   나는 일기를 쓴다 온 대지에 가득히   나는 눈이다 나부낌은 다만 도중의 일   나는 눈이다 시체를 덮는 하얀 베   혹시 내가 틀렸을지라도 내 어찌 노란 잎새를 이해하랴   나는 눈이다       눈을 깜박인다             ㅡ이 착란의 시대에 나는 이러한 착각을 생산한다. 꾸청(1956ㅡ)   나는 죽어서도 눈을 뜰것을 믿는다   무지개가 분수속을 노닐며 부드러이 길손들을 둘러보다가 내가 눈을 깜박이는 동안 어느새 뱀의 그림자로 둔갑한다   시계가 교회에 살면서 조용히 시간을 재지만 내가 눈을 깜박이는 동안 어느새 깊은 우물이 된다   붉은 꽃이 은막에 펼쳐지며 활활 봄바람을 맞건만 내가 눈을 깜박이는 동안 어느새 비릿내 나는 핏덩이가 된다   확신을 얻기위해 나는 두눈을 부릅뜨고있다    물가 양무(1940ㅡ)   나 여기서 벌써 나흘을 앉았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곳에서 ㅡ 아무런 발소리 하나 울리지 않는 곳에서   (적막뿐)   풀고사리는 내 바지밑에 돋더니 어느새 내 어깨를 가리였네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버릴수 없는 기억의 흐름 기억도 차라리 동동 구름에 적어둘걸   지금 눈을 돌리면 마냥 헤프게 웃는 개나리 그리고 민들레는 꽃가루를 날려날려 시나브로 내 삿갓에 내려앉네 가난한 내 삿갓더러 무엇을 주란 말인가 드러누운 내 그림자더러 또 무얼 주란말인가   오후마다 나흘째의 물소리는 오후마다 나흘째의 발소리런가 그것들이 모두 발을 굴리는 소녀들의 끊임없는 열렬한 고집이라면 ㅡ 아무도 올수 없어 아무도 올수 없네 나는 그저 낮잠이나 청하는수밖에.   심원춘            눈(1936작)        모택동   북국의 풍광 천리에 얼음 덮이고 만리에 눈 날리네 바라보니 장성안팎은 망망한 은세계여라 도도히 흐르던 황하도 홀연 그 기세 잃었구나 산은 춤추는 은배암이런가 고원은 줄달음치는 흰 코끼리런가 저마다 하늘과 높이를 겨루려네 날이 개이면 붉은 단장 소복차림 유난히 아릿다우리   강산이 이렇듯 아름다워라 수많은 영웅들 다투어 허리 굽혔더라 가석하게도 진시황 한무제는 문채 좀 모자랐고 당태조 송태조는 시재 좀 무디였느리라 천제의 총아라던 칭키스칸도 독수리 쏘는 한재주밖에 없었더라 모두 지나간 일이거니 영웅 호걸 찾으려거든 오늘을 보아야 하리                   2016년 4월초   참고문헌   물과 꿈 /가스통 바슐라르/ 문예출판사 몽상의 시학/가스통 바슐라르/동문선 구조주의 력사/프랑수아 도스 /신야사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 라캉쉽게 읽기/우치다 타츠루 /갈라파고스 구조주의와 기호학/ 테렌스 호옥스 /동문사 글쓰기 0도 /롤랑 바르트 /동문사 해체/ 자크 데리다/ 예술출판사 데리다의 유령들/니콜러스 로인/앨피 천개의 고원/질 들뢰즈 , 필릭스 가타리/새물결 하이퍼텍스트 3.0 /조지 P 란도/ 코무니케이션빅스 욕망 이론/자크라캉/문예출판사 현실과 초월/문덕수/ 시문학사 문덕수문학연구2/시문학사 심상운시론/ 컴에서 문심조룡/류협/연변인민출판사 《周易生活》/徐坤编著/气象出版社。 人间词话/王国维/吉林文艺出版社。 《秋思》/马致远/元代散曲集《东篱乐府》。 唐4柱大典/ 李仙岩,金虎日 共著/弘新文化社。 주역/장성문 금역, 김성우 한역/연변인민출판사 노자평전/쉬캉썽/미다스북스출판사 언어의 토대/ 로만야콥슨. 모리스할레/ 문학과 지성사 소쉬르/ 조너선 컬러/시공로고스총서 03 시의 리해/정현종, 김주연, 유평근편/민음사 시학/아리스토 텔레스/문예출판사 주석성경/기독지혜사(주) 기억이 나를 본다/시집. 토마스 트란스 트뢰메르/들녁사 하이퍼시 /종합시집/시문학사 하이퍼시2/종합시집/시문학사. 중국고대명시선/허세욱역주/혜원출판사 중국현대명시선.1/허세욱역주/혜원출판사 중국현대명시선.2/허세욱역주/혜원출판사 중국고전문학작품선(제2집)/허룡구편역/료녕인민출판사 남이다 하고난 질문/신세훈/도서출판 천산 최룡관 시선집/ 연변인민출판사 련꽃에 달의 집을 짓다/방산옥/연변대학출판사. 자유문학/계간지/96권/도서출판천산 도라지잡지/격월간/2015/제2기. 도라지잡지/격월간/2015/제4기 비비(1)/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편집/ 내부간물 비비(2)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편집/내부간물 비비(3)/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편집/내부간물      뒤풀이   을 출간하게 되니 심정이 사뭇 경건해 집니다. 이 책은 저의 문학생애에서 두번째 기념비를 세운것 같 습니다. 첫번째 기념비는 이였습니다. 두 개이 문학에서의 저의 자화상이라고 할수있을것 같습니 다. 문학은 새로운것에 대한 탐구입니다. 50살을 맞으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문학의 본체에 대하여 사색하면서 홀로걷기를 한것 같습니다. 눈보라도 맞아야 했고, 소나기도 맞아야 했습니다. 눈보라와 소나기를 보내준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들은 저를 견강하게 하였고 분발하게 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사명감을 느끼면서 분투하는 큰 힘을 얻었습니다. 나름대로 탐구한 저의 문학의 길은 말그대로 가시밭길이였던 같습니다. 너무도 외로운 길이였고, 너무도 어려운 길이였던것 같습니다. 그래도 거기에 보람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이 책을 내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홍현기화백은 저한테 새로운 서적들을 많이 보내주셨고, 연변일보 전임사장 강룡운선생님은 제1독자로서 많은 조언을 주시였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립니다. 또 이 책의 출판을 맡아나선  연변대학출판사 김미숙주임과 임직원들의 로고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 책이 저로서는 마지막 리론 탐구작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만큼한 졸작을 쓰는데는 꼭 10년이란 공부와 연구 그리고 집필시간이 수요되였습니다. 저한테 주어진 시간은 이 책으로 시리론연구를 마무리 해야 한다는 생각을 털어버릴수가 없습니다. 조금은 섭섭한 생각이 듭니다만 저는 나름대로 문학의 본연을 탐구해 본것에 자부감을 느낍니다. 저와 함께 하이퍼시를 탐구하는 연변동북아문예술연구회 회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문학의 부흥을 빕니다.  
8    {쟁명} - 하이퍼시는 은유와 환유의 잔치, 설명과 해석은 금물. 댓글:  조회:1913  추천:0  2018-01-10
10.하이퍼시는 설명과 해석이 아니라 은유와 환유를 촉구 작성자: 최룡관 하이퍼시에서도 중점적이고 활약적인 수법은 은유와 환유라고 할수 있다. 은유는 돌발적으로 나타나며 시인의 대담한 상상의 표현이라고 할수 있다. 은유는 한 사물에서 다른 사물의 이름을 불러오기이며, 한사물에서 다른 사물로의 건너뛰기이며, 한사물이 다른 사물을 대체하기이다. 는 은유인데 물과 불타는 물체는 워낙 어떤 련관성을 갖고있는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반대성을 지니고있다. 은유는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격식을 갖고있는 자유로운 상상의 표현이며, 한 사물이 그와 다른 사물로 생성되기이다. 은유는 수직이며 분리이며 반대물과의 짝짓기이다. 환유는 한명칭을 다른명칭으로 대체하기이다. 명칭을 대체하면서 새로움을 발휘하는 문체이다. 는 환유인데 여기서 칼은 료리사를 대체한 언어이다. 에서 북경은 북경시위서기나 시장을 대체한 언어로서 환유에 속한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폴포르에게는 이런 시구가 있다.   아침의 조용한 물소리 장미처럼, 일몰의 사자는 거슬러 오리라. 은빛종소리는 헤염치리라, 얼마나 상냥한 바다인가… 아! 내방의 갈대는 얼마나 울부짖고 있는것일가(165쪽)   우의 시는 참말로 정채로운 이미지라렬이다. 물소리는 은유에 의하여  장미라는 새로운 사물이 되여  나타나고, 일몰은 은유에 의하여  사자라는 새로운 사물이 되여 나타나고, 은빛종 소리, 바다, 갈대들은 환유에 의하여 언어의 코드가 바뀌면서 사물이 새롭게 태여나고 있다겠다. 기이한 감이 드는 이러한 사물운동이 독자들을 놀라게 하며  떨리게도 한다. 은유와 환유에 대하여 여러가지 방법으로 분석해본학자는 로만 야콥슨과 모리스할레라고 할수 있다. 그들은 은유는 어떤 유사점, 상합적, 공시적, 수직적, 직유. 초현실주의, 능기생성, 시전경화, 해석불가의 성격을 띤다고 하였고, 환유는 유사성대신 인접성, 상합적대신 련합적, 수직성대신 수평적, 직유대신 제유,  능기생성대신 능기결합, 공시적대신 통시적. 시전경화대신 산문전경화. 초현실주의대신 입체파, 해석불가대신 해석거부라고 하였다.  은유는 한 사물이 다른 사물로 변하기이며, 환유는 한 사실이 다른 사실로 변하기인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를 특별하게 중시하면서 은유를 (.134쪽. 아리스토텔레스)이라고 하였다.  은유는 어떤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는것이 정설이다. 이 유사성은 감각에 의거하기가 일수이다. 일 때 색갈에 의한 은유요, 일 때는 청각에 의한 은유요, 일 때는 촉각에 의한 은유요, 일 때는 미각에 의한 은유요, 일 때는 모양에 의한 은유다. 일 때는 성질이나 사물의 의미에 의하여 만들어진 은유이기에 경우가 다르다. 이런 등가성은 물은 불이다처럼 등가성이 먼곳에 있다고 할수 있다. 먼곳은 성질이다. 백두산이 술이라고 할 때는  취한다는 의미가 있기때문에 성립되는것이고, 물은 불이라고 할 때 물은 액체이고 액체는 불이 붙는것이 많기도 하거니와 노을속에서 물은 붉은 색갈이 번지기도 한다. 그래서 물도 바다도 호수도 다 불로 전환될수 있는것이다. 기어코 어떤 유사성이 있어야만 은유가 성립되는것은 아니다. 시인은 시를 쓸 때 이것이 은유인가 환유인가를 근본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우연히 은유적으로나 환유적으로 시구가 나오게 되는것이다. 어떤 상상은 몽환과 같은것이여서 은유나 환유가 맞느냐 틀리느냐는 비평가들이나 론할 일이지 시인들이 론할 일은 아니다. 시인은 령혼에 떠오르는 물질생성과 물질운동 즉 이미지를 따라가며 적어놓는 작업을 할뿐이다. 은유든 환유든 다 기발한것일수록 값이 비싼것이다. 소위 기발하다는것은 일상적인 상상의 지평을 넘어서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는는것이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은유나 환유,  누구의 상상이나 다 뛰여넘은 그 시인만의 은유나 환유, 누구도 깜짝 놀라게 하는 은유나 환유, 누구도 쉽게 리해하기 어려운 은유나 환유,  그것은 천금과도 바꿀수 없는 창조성과 예술성이 융합된것으로서 시인의 위상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그 시인만의 일회용 은유나 환유야말로 최상이것이리라. 최상의것은 코와 코구멍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 망치로 뚜드려도 부서지지 않고, 세월이 흘러가도 부식되지 않고, 색갈이 변하지 않는 은유나 환유를 창조한다는것은 예술의 정상에 오르는 표징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필자의 소견에는 환유보다 은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은유는 상징에 도달하는 지름길로서 일상적인 사유에서 신비하고 기이한 사유에로 전환하기 가장 좋은 문학수법인것이다. 은유와 환유에 대하여 많이 론한 석학중의 한사람은 자크 데리다라고 할수 있을것 같다. 그는 라는 글에서 무려 150쪽에 달하는 지면을 할애하여 은유와 환유를 피력하였다. 데리다는 은유는  텍스트의 체계속을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동상. 249쪽) 또 은유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고 하면서 (자크 데리다  180쪽) 고 하였다. 찬찬히 읽어보면 알수 있기에 뱀에게 사족을 붙이지 않기로 한다. 태양은 아침에 아세아에서 떠서 아세아의 저녁이 되면 구라파로 가는것이 태양의 궤적 이다. 아침과 저녁은 지구의 자전에 의하여 명명된것으로서 중국은 구라파보다 아침을 먼저 맞게 된다. 태양의 빛은 많은 은유를 생산하는데 동방에서부터 서양으로 가면서 하게 된다. 한국 주역가 김승호의 말씀대로 하면 중국의 문명은 서양보다 적어도3500년을 앞섰다고 할수 있고, 중국 장승호주역가에 의하면 1500여년을 앞섰다고 할수있다. 이것은 주역과 성서의 년한의 차이로 립증할수 있는것이다. 태양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것은 영구불변의 도이며 진리이다. 그래서 데리다는  (동상. 245)면서 태양의 수사를 이라고 하였다. (동상) 고 감개무량해 하였다.  중국고대4대 발명인 제지, 인쇄, 화약, 지남침은 인류에게 지대한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고, 철학에서는 으로부터 시작되여 도가, 유가 법가…문학에서는 로부터시작하여 를 거쳐 , , , , …등은 인류문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할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예일대교수 폴 케네디는  (.17쪽)고 하였으리라. 손오공이 72변술을 부려도 여래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수 없었듯이 서양의 근대, 현대, 당대의 시가가 중국의 고전에 그 뿌리가 있다는것은 벗어날수 없는것이다.  우리는 자호해야 한다. 중국 고전의 전통을 살리면서,  서양의 우수한 문학기교를 받아 들이면서, 우리의 전통인 을  모름지기 윤기나게 갈고 닦으면서, 하이퍼시를 찬란하게 꽃피워야 할것이다.               마무리   이 글은  구조주의의 무의식과 하이퍼시에 대한 감상품이며 습작품이라고 할수 있겠다. 많은 필묵을 들여서 말했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즉 하이퍼시는 사물의 생성을 말하는 시이고, 그 구성은 횡적구성으로서  생성은 하나를 말하는것이 아니라 여럿을 말하는것이다. 현대시에도 이런 시들이 있다. 그때는 파편문체라고 하였다. 21세기에 와서 하이퍼시의  개념을 정립하였고, 본격적으로 21세기 문학을 장식하고 있다고 하겠다. 하이퍼란 강대하다는 말이다. 하이퍼시라는 언어는 영어에서 나왔다. 우린 서양사람들의 하이퍼시를 연구하면서 중국의 시전통과 비해보면 명명의 새로운 감을 느끼고 수법의 신선함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시궤도와 국제적인 시궤도를 련결하게 되며, 우리시의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게 된다.  우리의 전통에 하이퍼시가 한줄기 산맥을 이루고있다는것을 피부로 알고 하이퍼시를 해야 한다는것이다. 지식의 결핍과 연구의 제한으로 많은 오류가 존재할수도 있으므로 독자들의 량해를 바란다.              
7    [쉼터] - 눈사람아, 나와 놀쟈... 댓글:  조회:2689  추천:0  2018-01-10
특이한 만남, 싸우지마 우리는 접선중이야 [ 2018년 01월 10일 ]     마침내, 눈이 오지 않던 빈설(貧雪)과 작별했다! 대량의 온난하고 습한 기류와 남하하는 차가운 공기가 만남에 따라, 중국 동부 지역은 최대 범위와 최고 강도의 진눈깨비가 내렸다. 1월 3~4일은 눈이 가장 강하게 내렸고, 장쑤(江蘇, 강소)와 안후이(安徽, 안휘) 지역에는 첫눈으로 폭설이 내렸다. 눈사람을 만들어봤다! 여러분들에게 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눈사람의 새로운 포즈를 알아보자! 중국천기망/인민망
6    <서시> 시모음 댓글:  조회:2029  추천:0  2018-01-10
    +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시인, 1917-1945)  + 序時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나희덕·시인, 1966-)  + 서시  어서 오라 그리운 얼굴  산 넘고 물 건너 발 디디러 간 사람아  댓잎만 살랑여도 너 기다리는 얼굴들  봉창 열고 슬픈 눈동자를 태우는데  이 밤이 새기 전에 땅을 울리며 오라  어서 어머님의 긴 이야기를 듣자  (이시영·시인, 1949-)  + 서시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더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것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가 없습니다.  요행히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 부디 먼저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가 됩시다.  사랑하던 이를 미워하게 되는 일은  몹시 슬프고 부끄럽습니다.  설혹 잊을 수 없는 모멸의 추억을  가졌다 해도 한때 무척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  아무쪼록 미움을 품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김남조·시인, 1927-)  + 서시  세월이 가면  길가에 피어나는 꽃 따라  나도 피어나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릴라요  세월이 가면  길가에 지는 꽃 따라  나도 질라요  강물은 흐르고  물처럼 가버린  그 흔한 세월  내 지나 온 자리  뒤돌아다보면  고운 바람결에  꽃 피고 지는  아름다운 강 길에서  많이도 살았다 많이도 살았어  바람에 흔들리며  강물이 모르게 가만히  강물에 떨어져  나는 갈라요  (김용택·시인, 1948-)  + 서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바삐 살다 보니 어느덧 쉰 고개  한 고개 넘을 적마다 흥분으로 들뜨기도 하고  푸념으로 넋두리하며  고개, 고개 넘어 예까지 왔는데  뒤돌아보니 살아온 날이 너무 멀어  돌아갈 길보다 앞으로 갈 길이 가깝구나  고통을 이고 지고 갈 적  웃을 일도 많았으련만 왜 삶이 고단하다 하는가  눈물을 뿌린 것보다 웃음을 날린 것이 더 많은 날  나는 한 세상 잘 살아가노라 말하리라  고통이 말하거든 웃음으로 버무려버리고  죽음 앞에서 의연하게 미소 지으며  아니라 부정하는 손사래는 치지 않으리라.  (나선주·시인)  + 서시  누가 나에게  옷 한 벌을 빌려주었는데  나는 그 옷을  평생동안 잘 입었다  때로는 비를 맞고  햇빛에 색이 바래고  바람에 어깨가 남루해졌다  때로는 눈물에 소매가 얼룩지고  웃음에 흰 옷깃이 나부끼고  즐거운 놀이를 하느라  단추가 떨어지기도 했다  나는 그 옷을 잘 입고  이제 주인에게 돌려준다  (류시화·시인, 1958-)  + 서시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이성복·시인, 1952-)  + 사랑의 종말을 위한 서시  누구나 사랑할 자격은 있으나  누구나 이별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그것은 자유이지만  이별하는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그것은 혼자서도 할 수 있으나  이별하는 그것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할 때는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으나  이별할 때는 용서할 수 있는 것만 용서됩니다.  사랑할 때는 겨울도 봄 같지마는  이별할 때는 봄도 겨울 같이 느껴집니다.  사랑할 때는 울어도 행복하지만  이별할 때는 웃어도 눈물이 흐릅니다.  부디 사랑을 위해 사랑을 하였거든  이별 역시 사랑을 위해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이별이 사랑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여 주옵소서.  (조병화·시인, 1921-2003)  + 윤동주의 서시  너의 어깨에 기대고 싶을 때  너의 어깨에 기대어 마음놓고 울어보고 싶을 때  너와 약속한 장소에 내가 먼저 도착해 창가에 앉았을 때  그 창가에 문득 햇살이 눈부실 때  윤동주의 서시를 읽는다  뒤늦게 너의 편지에 번져 있는 눈물을 보았을 때  눈물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어이 서울을 떠났을 때  새들이 톡톡 안개를 걷어내고 바다를 보여줄 때  장항에서 기차를 타고  가난한 윤동주의 서시를 읽는다  갈참나무 한 그루가 기차처럼 흔들린다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인가  사랑한다는 것은 산다는 것인가  (정호승·시인, 1950-)  + 사랑 서시  사랑이 고통이라 하여도  사랑을 피하지는 않으리라  내가 누군가의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듯이  이 세상 어느 외진 곳에서  따스한 사랑의 손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외롭고 추운 영혼을 위해  사랑을 피하지는 않으리라  사랑을 위해 번뇌하지 않고  사람을 위해 번뇌하리라  머리 속으로만 번뇌하지 않고  몸으로 사랑을 행하리라  먼 훗날의 큰사랑을 꿈꾸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사랑에 성실하리라  입술로 사랑을 뽐내지 않고  묵묵히 몸으로 사랑하리라  작아도 깊고 견고한 사랑을 하리라  (정연복, 1957-)           
5    록색스포츠평화주의의 물꼬가 확 트이여 통일평화 오기만을... 댓글:  조회:4183  추천:0  2018-01-10
...스포츠를 통해 남북 간 교류의 길이 트이고 통일평화가 깃들기만을...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남북단일팀의 리분희와 현정화 출처 : 한겨레 스포츠 분야에서의 교류는 이전에도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한 몫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남북은 지난 1991년, 남북 단일 탁구팀을 구성해 8연승의 중국을 제지하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탁구로 통일을 이룬 날'이었습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셀카'를 찍는 여자기계체조의 북한 홍은정, 대한민국 이은주 선수 출처 : 머니투데이 남과 북은 철저히 단절돼 있지만 스포츠 선수 간에는 교류가 왕왕 있었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치기 때문입니다.   2년 전 리우올림픽 땐 '셀카 찍는 남북 체조 선수들'의 모습에 외신들이 더 열광했습니다.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은 이 사진을 가리켜 "위대한 몸짓"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보여줬다면서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공동 입장하는 남북대표선수단 출처 : 연합뉴스 세계인들은 남북 선수들이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고 교류하는 모습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영상 재생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출처 : 비디오머그 특히 사격의 북한 김성국 선수는 기자회견에서   "1등이 남조선, 2등이 베트남, 3등이 북조선인데… (잠시 머뭇) 우리 하나가 돼서 메달을 따면 더욱 큰 메달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해 화제가 됐습니다. 출처 : 게티 이미지 코리아, 스포TV 뉴스 금메달을 딴 진종오 선수는 김성국 선수의 발언에 "앞으로 형 보면 친한 척 해라"라는 농담을 던지며 화답했다 하죠. 2008 베이징올림픽 10m 공기권총에서 은메달을 딴 대한민국 진종오 선수와 동메달을 딴 북한의 김정수 선수 출처 : 일간스포츠 진종오 선수는 북한의 김정수 선수와는 아예 '호형호제'하는 사이입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만난 둘은 베이징올림픽 때 나란히 은메달, 동메달을 땄습니다.   당시 진종오 선수가 10m 공기권총 경기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자 김정수 선수가 "너는 10m를 왜 이리 못 쐈네?"라며 농담을 건넸고 진종오 선수도 "형도 못 쐈잖아?"라며 받아쳤습니다. 이에 김정수 선수가 "나는 나이가 많잖아"라고 응수하자 진종오 선수는 "형만 나이 먹었나요. 나랑 두 살 밖에 차이 안나요"라고 답했습니다. 친밀한 다툼입니다. 한국 사격대표팀의 황성은(왼쪽)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슈팅센터에서 훈련을 하던 도중 북한의 조영숙에게 빵을 건네고 있다. 출처 : 동아일보 리우 올림픽땐 여자 사격의 한국 황성은 선수가 북한 조영숙 선수에게 "이거 좀 드시라"며 수줍게 빵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이에 조영숙 선수는 주변을 살핀 뒤 테이블에 놓아달라 했습니다.   보는 눈이 많은 탓 때문이겠죠.    당시 사격 대표팀 관계자는 "남북 선수가 딱히 친하게 지낸다고 하긴 그렇지만 서로 호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리우올림픽 양궁 경기장에서 '셀카'를 함께 찍은 남북한 양궁팀 출처 : 한승훈 코치 양궁의 북한 강은주 선수도 한국 양궁팀의 '셀카' 제안에 "저는 못 봅니다"라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옆 모습으로 보이는 얼굴은 웃고 있었습니다.   사진 가운데의 북한 감독은 처음에는 "(사진을) 못 찍습니다"라며 거절했지만 서 있어만 달라고 요청하자 카메라를 보고 환히 웃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역도 여제' 장미란 전 국가대표 선수는 북한 선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있을 땐 안부를 물어도 ‘일 없시요∼’라며 찬바람이 불 정도로 쌀쌀하다. 그런데 라커룸 등에서 따로 만나면 ‘언니, 아직도 결혼 안 했어요’라며 살갑게 대한다.”   빵을 받은 조영숙 선수, 뒷모습으로 셀카를 찍은 강은주 선수 모두 표현된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2014년 아시안게임 여자 축구 결승전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남북한 선수들. 뒤로 "우리는 하나다"가 적힌 플래카드가 보인다. 출처 : 오마이뉴스 이하나 2014년 아시안게임 여자 축구 결승전 때는 남북이 사이좋게 금메달, 동메달을 딴 후 출처 : 오마이뉴스 이하나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국기를 접고 출처 : 오마이뉴스 이하나 서로를 껴안았습니다. "잘 가이소"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방문한 북한응원단을 환송하는 부산 시민들 출처 : 오마이뉴스 윤성효 선수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북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부산 시민들은 방문했던 북한응원단을 보내며 "언제 다시 올거냐"고 물었고,   북측 사람들은 "통일 되면 다시 만나자"고 답했습니다. 남한 사람, 북한 사람 할 것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리명원 북측 응원단장은 "동포애로 따뜻하게 맞아주신 부산시민들에게 사의를 표한다"고 말하며 떠났습니다.  상봉 후 다시 헤어지는 이산가족 출처 : 뉴포커스 '동포'라는 말이 생소하신가요?   남과 북은 한민족으로 5천 여년을 살았습니다. 분단된 지는 70여 년이 됐을 뿐입니다.   70년의 시간이 5천년 동안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역사를 공유한 한반도를 갈라놓을 수 있을까요. 리우올림픽서 양궁대표 한국 장혜진이 북한 강은주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출처 : 노컷뉴스 남북 선수 모두 좋은 결과가 있기를, 무엇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남북 간 대화의 물꼬가 트여 한반도에 평화가 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제작/김서진  
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당연히+개누리+개유리"+제주 도민 댓글:  조회:3965  추천:0  2018-01-10
당나귀 등에 탄 반려견과 제주 해안 걷는 조상민씨 안서연 기자  2018.01.09.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사고 후 반려동물과 재활.."사람‧동물 어울리는 공간 조성 꿈" 9일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해안도로에서 조상민씨(44)가 당나귀에 강아지를 태워 산책을 하고 있다.2018.1.9/뉴스1 © News1 이석형 기자 (제주=뉴스1) 안서연 기자 = “어머, 저기 좀 봐.” 9일 오전 11시쯤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해안도로에 한 남성이 등장하자 지나가던 관광객들의 눈이 한 곳으로 쏠렸다. 남성의 옆으로는 두 귀를 쫑긋 세운 당나귀가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고, 당나귀 등 위에는 라이더 자켓을 입은 강아지 2마리가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항상 이 풍경을 지켜본다는 카페 ‘그초록’ 직원에 따르면 이들이 해안도로를 걷기 시작한 건 2017년 가을 무렵부터다.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곤 네 식구가 빠짐없이 해안도로를 나왔고 하루 많게는 4시간 가량 행원리부터 시작해 월정리, 다시 세화리까지 산책을 했다. 당나귀가 마실 물을 카페 마당에 떠다준 뒤 강아지 2마리와 함께 카페에 들어선 조상민씨(44·제주시 구좌읍)는 겸연쩍은 얼굴로 식구들의 이름과 나이를 소개했다. 당나귀의 이름은 ‘당연히’(암컷), 나이는 8살이다. 연히는 지난해 6월 주변 지인이 잡아 먹으려던 것을 조씨가 극구 반대해 데려다 키우게 됐다. 태어난 지 120일 가량 된 강아지들의 이름은 개누리(숫컷)와 개유리(암컷)다. 조씨가 데려다 키우던 유기견이 낳은 새끼들로, 이들의 부모는 출산의 기쁨을 느낀 지 얼마 되지 않아 차에 치여 숨졌다. 조씨의 품에서 함께 자란 연히와 누리, 유리는 서로가 다른 종이라는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서로 딱 붙어서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어미젖을 제대로 먹지 못한 새끼들을 위해 분유까지 타먹였다는 조씨는 “이제는 이 녀석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면서 함께 산책을 나서게 된 이유를 털어놓았다. 지난해 여름 오토바이를 타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친 조씨는 손해사정사 일을 그만둬야 했고, 이후 재활을 위해 걷기 시작했다. 9일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해안도로에서 조상민씨(44)가 당나귀에 강아지를 태워 산책을 하고 있다.2018.1.9/뉴스1 © News1 이석형 기자 뚜벅뚜벅 걷기 시작한 지도 벌써 5개월째. 신기한 광경에 발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이들도 많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알아봐주는 이들도 제법 늘어났다. “참 보기 좋아요”라는 관심을 보내줄 때마다 삶의 활력이 생긴다는 조씨. 그는 동물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도민과 관광객들이 동물에게 보다 따듯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유리와 누리의 부모뿐 아니라 이전에 키우던 16살 난 개도, 애완 앵무새도 모두 차에 치여 숨을 거뒀기에 조씨의 마음은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내도 아니고 시골마을인데 차들이 서행하지 않고 쌩쌩 달리는 바람에 동물들이 죽었다. 나까지 교통사고를 당한 상황에서 이제는 트라우마까지 생겼다”며 “제주도가 동물들과 함께 살기 좋은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그러면서 유기견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꼬집으며 “사람이 생명을 버린다는 게 말이 안된다. 본인이 개로 태어나봐야 버려지는 심정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생명의 가치에는 경중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강을 되찾을 때까지 꾸준히 산책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조씨는 “앞으로 동물게스트하우스를 차려서 사람과 동물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꿈을 밝혔다.
3    [시단소사전] - "글쓰기 충전구멍가게"... 댓글:  조회:2614  추천:0  2018-01-10
글 잘 쓰고 싶다면, 이 공식만 기억하세요 조성일 2018.01.10.  SNS 공유하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조성일의 글쓰기 충전소] 글 구성하기  [오마이뉴스 글:조성일, 편집:이주영] 연말연시를 보내며 바쁘다는 이유로 게으름을 피웠다. 별다른 언질 없이 2회나 중단됐던 연재를 다시 이어나간다.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글을 일단 쓰고 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가 중간에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러 내용이 얽히고설켜 뒤죽박죽이 되어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당연히 수정을 해야 하는데, 그 수정이라는 게 다시 쓰는 것보다 더 어렵다. 난감하다. 그렇다면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있다(이 말에 혹 무슨 만병통치의 효과라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길 바란다.) 바로 글을 쓰기 전에 이정표 역할을 하는 '구성'을 짜는 것이다. '구성'이란 낱말은 흔히 '플롯'(plot)이란 용어로도 사용되곤 한다. 그런데 이 구성은 소설이나 영화, 연극 같은 서사에서 흔히 사용하는 것으로, 우리가 쓰려고 하는 일반적인 실용문과는 관련성이 적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소설과 같은 문학뿐만 아니라 실용문 등 어떤 글이라도 기본적인 구성은 있게 마련이다. 설령, 글쓴이가 사전에 구성 같은 건 전혀 고민하지 않고 일필휘지로 내갈겨 썼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글을 분석해보면 대략적인 구성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문학작품을 분석적으로 접근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어떤 작품이라도 분석 앞에서는 두부모 자르듯 명쾌하게 구분되었던 사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구분을 바탕으로 작가의 애초 의도를 파악하곤 했었던 경험. 그런데 과연 작가가 우리가 정답으로 꼽았던 의도를 애초부터 갖고 있었을까. 아마도 우리들의 견강부회가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작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모든 글에는 구성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문학이 아닌 실용문 범주의 글을 쓸 때 어떻게 쓰면 효율적일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구성'의 문제를 다룬다. 노련한 작가의 일필휘지가 아닌 '초보 작가의 글 시작 전 필수과정'처럼 다룬다. ▲  글은 생각이나 사실 등 갖가지 콘텐츠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콘텐츠들을 이용하여 글쓴이의 메시지(의도)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작업이다. ⓒ unsplash 자, 그럼 구성이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구성'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서너 가지의 풀이가 나온다. 그중 이 글에 부합하는 것을 골라보면, "문학 작품에서 형상화를 위한 여러 요소를 유기적으로 배열하거나 서술하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글은 생각이나 사실 등 갖가지 콘텐츠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콘텐츠들을 이용하여 글쓴이의 메시지(의도)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독자가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쓴 글이 좋은 글이라는 사실은 앞선 글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글쓴이에게 다가오는 부담은 이런 생각이나 사실과 같은 콘텐츠의 조각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엮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노련한 작가라면 머릿속으로 전체 그림을 그린 후 나름 논리적인 주제별로 써내려간다 해도 중간에 길을 잃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초보자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그래서 구성을 짜라고 권하는 것이다. 구성의 종류에는 글의 종류만큼이나 많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글마다 다 제각각의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여기서는 몇 가지 대표적인 방식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구성 하면 으레 떠오르는 연관검색어가 있다. 서론-본론-결론이나, 기-승-전-결 같은 고전적이면서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형적인 방법론이다. 서론-본론-결론의 체제는 논리적이고 간단해서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논문이나 주장글에 가장 많이 활용된다. 서론은 "말이나 글 따위에서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 위한 실마리가 되는 부분"이고, 본론은 "말이나 글에서 주장이 있는 부분", 결론은 "말이나 글의 끝을 맺는 부분, 또는 최종적으로 판단을 내림, 또는 그 판단"이다. 사전적 풀이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그래서 글을 서론-본론-결론의 형태로 구성한다면, 이 글을 쓰는 이유와 앞으로 어떤 내용의 글을 쓸 것인지를 밝히고 난 다음 앞(서론)에서 예고한 대로의 내용과 주장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이 내용과 주장(본문)을 종합하여 자신의 판단(결론)을 쓰면 된다. 예를 들어보자.    "술 마시는 풍경이 새로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엔 으레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이 함께 모여야만 술을 마셨는데, 요즘엔 혼자서도 잘 마신다."    이런 시작글이 있다면 이 두 문장은 앞으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대략의 방향을 제시한다. '술 마시는 풍경'이라는 주제로 글 쓰겠다는 것. 이를테면 서론이다. 그렇다면 다음엔 왜 술은 둘 이상이 마시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해왔는지, 그런데 요즘은 왜 혼자서도 술을 즐기는 문화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앞에서 제시한 주제를 설명하는 이야기들을 쓴다. 즉 본론이다. 그런 다음, 과거엔 여럿이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이 당연시되었지만 지금은 나홀로족이 늘면서 혼자서도 술을 마시는 문화가 유행처럼 번진다며 술은 꼭 여럿이 함께 마셔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도 얼마든지 의미 있게 즐길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쓴다. 결론이다. 물론 여기서 두괄식(결론을 앞에 놓는 방법)이냐 미괄식(결론을 맨 뒤에 놓는 방법)이냐 쌍괄식(결론을 앞과 끝 모두에 놓은 방법)이냐에 따라 구성 순서가 바뀔 수 있다. 결론-서론-본론, 결론-서론-본론-결론… 이런 방식도 가능한 것이다. 또한 기승전결(起承轉結) 방식은 어떤가.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기승전혼술(혼자 마시는 술)'과 같은 어법이 있다. 지금 여기서 얘기하는 기승전결 구성법에 기댄 표현이다. 사전의 풀이에 의존해 기승전결이 무슨 의미인지부터 보자.    ? 기(起): 문제를 제기하는 것 ? 승(承): 문제를 전개하는 것 ? 전(轉): 결정적으로 방향을 한 번 전환하는 것. ? 결(結): 끝맺는 것 '기승전혼술'이라는 말로 설명해보자. '술 마시는 풍경'이란 주제로 여러 사람이 모여 방담을 나누자고 해서(기) 참석자들이 각자 갖고 있던 다양한 음주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승), 그런데 그 중 혼자 사는 한 사람이 예전에 혼자 술 마시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요즘에 자주 혼자 술을 마시다보니 혼술도 나름 재미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화제를 혼술로 바꾼다(전), 그러자 모두 혼술했던 경험과 장단점 등에 대해 얘기하다, 요즘은 혼술이 대세라고 의견을 모은다(결). 어떤가. 이해가 되는가. 구성이라는 것은 글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를 미리 계획하는 것을 말한다. 친구들에게 어떤 힘센 아이와 싸웠던 이야기를 한다고 해보자. 이럴 때 화자는 어떻게 하면 이 이야기를 재미있고, 그리고 자신의 용기를 부각하는 무용담을 만들까 고민하게 된다. 이럴 때 상대방 코피 터진 얘기를 먼저 할까, 아니면 시비를 걸어오자 대담하게 결투를 받아들이는 것부터 얘기하는 게 효율적일까. 바로 글 쓸 때 구성을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치다. 쓰고자 하는 글을 어떻게 배치하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자연스럽게 또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과정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 구성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길을 잃지 않을 확률이 높다. 아울러 글의 전개가 훨씬 자연스럽고 효과적이게 한다.
2    [동네방네] - 이색적인 축제 = 필리핀 편 댓글:  조회:4577  추천:0  2018-01-10
    필리핀 마닐라에서 가톨릭의 ‘검은 나사렛 사람’ 행사. 신자들이 ‘십자가를 멘 예수’를 힘들게 옮기고 있다.   해마다 열리는 이 행사는 최근 들어 필리핀의 인기있는 관광코스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 수도권의 리살 공원에서 열린 '검은 나사렛' 연례 행렬 도중 신자들이 손을 들어올려 검은 나사렛 상을 환영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검은 나사렛'으로 알려진 이 검은 예수상에 닿은 수건만 만져도 병이 낫고 축복을 받는다는 믿음이 있어서 해마다 많은 가톨릭 신도들이 이 행렬에 참가한다. / 2018년 1월 9일, /필리핀 마닐라 수도권     (마닐라 AP=연합뉴스) 9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검은 목조 예수상과 십자가를 따라 거리 행진을 하는 '블랙 나자렌' 축제가 열리고 있다. 국민의 8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에서는 '블랙 나자렌'으로 불리는 검은 예수상의 신비로운 힘이 건강과 부를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행사 참가자들은 이 예수상을 간접적으로라도 만지기 위해 예수상 운반자들에게 수건을 던져 문지르게 한 뒤 되돌려받는다. 스페인 가톨릭 선교사들이 1606년 멕시코에서 들여온 목조 예수상이 당시 운반 선박에 화재가 발생했는데도 검게 그을리기만 하고 온전한 모습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지자 필리핀인들은 이를 기적의 상징으로 여기고 매년 이 축제를 열고 있다. =========================== HOME 국제 아시아/대양주 포토 필리핀 종교축제, 2명 사망 수 백명 부상 AFPBBNews=KNS뉴스통신 작성 2016.01.11 16:11 댓글 0 글씨키우기 글씨줄이기 메일보내기 인쇄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 필리핀의 블랙 나자렌 축제 © AFPBBNews [크레디트 ⒸAFPBBNews=KNS뉴스통신] (마닐라=AFP) 필리핀에서 열린 종교행사에서... 토요일 열린 '블랙 나자렌'축제에는 백 만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이는 세계 최대의 종교행사 중 하나로, 마닐라 시내를 도는 검은 예수상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모인다. 맨 발의 남녀는 '비바'를 외치며 예수상을 만지기 위해 목숨을 무릎쓰고 다가간다. 약 7킬로미터의 퍼레이드 행렬에 참가한 사람은 약 150만명이다. 사람들은 검은 예수상에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블랙 나자렌 축제(Feast of the Black Nazarene)   마닐라시에 있는 뀌아포 지구에서는 해마다 1월 9일이면 성대한 축제가 열립니다.   마닐라시에서는 가장 큰 축제일로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맨발의 시민들이 참회의 맹서를 하는 날로 블랙 나자렌이라는 큰 십자가를 2륜 달구지에 싣고 달구지에다 2개의 굵은 줄을 달아 이것을 끌고 뀌아포의 좁은 길을 돌아서 마지막에 뀌아포 성당에서 미사를 올리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검은 십자가를 옮길 때 많은 시민들이 블랙 나자렌에 자기의 수건이나 손수건 같은 천을 갖다 대기 위해서 서로 밀치고 해서 난장판을 이루곤 합니다.   이는 무슨 천이든지 이 십자가에댄 것으로 미사 후 마지막에 몸을 닦는 의식때 그걸로 온몸을 문지르면 모든 죄의 사함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병도 고치는 신통력도 갖게 된다는 믿음을 마닐라 시민들은 갖고 있다고 합니다... =========================   9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검은 나자렛인’ 축제에 참가한 가톨릭 신자들이 나무로 만든 검은 피부의 예수 그리스도상 주변에 모여 있다.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있는 예수상은 1606년 멕시코 선교사들이 가져온 것으로 신자들은 이 예수상을 만지면 질병이 낫는다고 믿고 있다. 테러 공격 위협에도 필리핀 전국에서 약 300만 명의 신자가 모여 맨발로 행진했다. ========================== 스페인 식민지 멕시코서 옮겨져 면죄·기적의 상징으로 침략자 요새 정문에 ‘스페인 기병에 깔린 예수’ 조각물   검은 예수다. 피부가 칠흑처럼 검다. 기존의 한국 성당에서 보는 예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검은 피부의 예수는 무거운 십자가를 어깨에 지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의 키아포 성당은 지난 21일 금요일 오후 수천명의 카톨릭 신자들이 강론을 듣기 위해 성당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성당에 못 들어간 신도들은 야외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서 중계되는 신부의 강론을 빽빽히 서서 듣고 있었다. 영상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이지만 누구도 짜증스런 표정이 아니다.   '금요 특별 미사'다. 성당의 제단 중앙에는 검은 예수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예수는 한쪽 무릎을 반쯤 꿇고 있다. 인자한 표정이 아니라 고통에 일그러져 있다. 그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호소하며 신도들에게 무거운 짐을 같이 지자고 호소하는 듯 하다.   블랙 나자렛의 성지인 마닐라 카이포 성당의 미사 모습   검은 예수는 이렇게 호소한다. "너의 주님, 너의 하느님인 나를 보아라. 내가 채찍질을 당하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며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를 보라. 내가 이런 고통을 견디는 것은 나의 탓이 아님을 기억하라. 너를 위해, 너를 하늘나라로 데려가기 위해서이다. 네가 참된 신앙인이 되고자 한다면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너의 어려움, 너의 필요와 문제를 나에게 말해다오. 나는 늘 너를 위해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화재·지진·포화 속에서도 손상 안돼 ‘신비의 힘’   이 검은 예수상은 성당 한편 외부의 천막에도 자리 잡고 있다. 수많은 신도들이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수건이나 깨끗한 손으로 예수의 손을 잡고, 닦아준다. 검은 손에 노랗고, 하얀 손이 겹쳐진다.     해마다 1월9일 카이포에서는 블랙 나자렛 축제가 열린다. 17세기부터 내려오는 전통으로 필리핀 가톨릭 신도들은 블랙 나자렛에 대한 경외심은 거의 광적이다. 이 예수는 ‘블랙 나자렛상’으로 불린다. 예수께서 나자렛 사람이기에 ‘나자렛으로 부른다.   필리핀 신도들의 이 블랙 나자렛에 대한 경외심은 거의 광적이다. 해마다 1월9일 카이포에서는 블랙 나자렛 축제가 열린다. 17세기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남자들이 이 조각상을 들것에 싣고 줄을 연결한 채 거리를 행진한다. 길거리 사람들은 상에 연결된 줄을 끌어당기는 것만으로도 죄를 용서받고 소원이 이뤄지며,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필리핀의 가톨릭은 스페인에서 전래됐다. 스페인에는 검은 예수상이 옛날부터 있었을까? 아니면 필리핀에서 검은 피부를 지닌 성자가 있었나?   블랙 나사렛에게 소원을 비는 참배객들 궁금했다. 이 블랙 나자렛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멕시코에서 왔다.   1606년 스페인 정복자와 함께 범선을 탄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사제가 이 성상을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가 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부 색깔은 제작 당시 짙은 갈색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 갈색 예수 상이 항해 도중 배에 화재가 발생했으나 전혀 타지 않고, 피부색이 더 검게 그을렸다고 한다. 이후 필리핀에 자리 잡은 이 성상은 수차례의 성당 화재와 지진,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며 이 검은 피부의 예수는 신비의 힘을 지닌 조각물로 믿게 되며 성지 역할을 했다.   침략자의 손에 만들어졌고, 침략자의 손에 운반됐고, 침략자의 손으로 자리 잡은 블랙 나자렛에 대해 필리핀 가톨릭 신도들은 반감을 갖지 않았을까?   독립운동가가 등 돌려 총살당한 이유   이런 의문은 필리핀의 독립운동가 호세 리잘(1861~1896)이 수감됐다가 처형된 마닐라 시내의 산티아고 요새 정문에서도 강하게 일었다.   이 요새 감옥에 투옥됐다가 1896년 12월30일 공개처형된 호세 리잘을 기념하는 기념관에 들어가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대형 벽화가 있다. 공개 처형된 순간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호세 리잘은 사형 집행관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등지고 있다가 등에 총을 맞고 숨졌다. 벽화는 사형을 집행하는 집행관들의 총구에서 나온 총탄이 그의 몸을 관통하는 순간이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 호세 리잘 기념관 벽화에 있는 총살 당시 모습 두 손을 뒤로 묶힌 채 호세 리잘은 몸이 앞으로 쓰러지려 하고 있다. 조국의 땅을 굳게 딛고 있던 두 발은 총탄이 등에 박히며 뒷꿈치가 들렸다. 가슴이 먹먹한 이유는 호세 리잘이 사형당한 이유보다는 그의 생애 마지막 소원 때문이다.   그는 사형관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다. “제발 등지고 사형당하게 해달라.” 그의 마지막 소원은 받아들여졌다. 결코 그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총탄을 무서워했기 때문이 아니다. 죽은 순간에도 스페인 군인들을 향해 무릎을 끓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필리핀 독립영웅인 호세 리잘이 투옥됐던 마닐라 산티아고 요새 정문에 새겨진 조각물   필리핀은 그가 사형당한 12월30일을 국경절로 지정해 기념한다. 그런데 이 요새의 정문에 높게 새겨진 조각물이 눈에 띈다. 늠름한 스페인의 기마병에 한 남자가 고통스럽게 깔려있다.   누굴까 유심히 보니 바로 예수이다. 16세기에 스페인인 손에 의해 지어진 이 요새는 ‘성 야고보’의 이름에서 따왔다. 요새 한 켠의 강가에는 위에 쇠 창살을 한 비교적 큰 시멘트 구덩이가 있다. 바닷물이 몰려와 강물의 수면이 높아지고, 이 구덩이에 물이 차면 처절하게 익사를 당했다. 이번에는 스페인이 아니리 일본의 잔악한 손길 때문이었다. 약소민족의 아픔이 진하게 전달된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만든 요새 뜰에 길게 새겨진, 호세 리잘이 감옥를 걸어 나와 처형장까지 가던 발자국.   스페인 정복자들이 만든 이 요새의 뜰에는 길게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호세 리잘 감옥를 걸어 나와 처형장까지 가던 발자국을 납으로 발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촘촘한 발자국이다. 호세 리잘의 키는 150㎝ 정도로 크지 않다. 작은 키에, 형장으로 가는 발자국이 성큼성큼했을까?   김대건 신부가 머물던 흔적, 동상과 망고나무   다시 이 요새의 정문 조각물 이야기를 하자.   예수가 가장 밑에 깔린 이 조각상이 필리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아마도, 자신들의 아픔을 예수가 대신한다고 믿었기 때문 아닐까. 비록 침략자들이 전해준 가톨릭이지만, 필리핀은 인구 약 1억명 가운데 83%가 가톨릭 신도이고, 개신교 9%, 이슬람교도는 5%뿐인 동양 최대 가톨릭 국가가 됐다.   필리핀 세부에서는 24일부터 일주일간 전세 계 71개국에서 온 1만5천여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모여 성체대회를 연다.   블랙 나사렛의 손을 만지며 기도하는 장봉훈 청주교구장   한국에서도 장봉훈 청주 교구장을 대표로 41명의 대표단이 참가해 서로의 믿음과 희망, 사랑의 체험을 나눈다. 특히 세부는 마젤란이 1521년 성직자들과 함께 필리핀에 처음 발을 내디딘 곳이다. 필리핀에 최초로 가톨릭을 전파한 마젤란은 가톨릭을 거부하는 원주민들과 전투에서 세부 도착 20일만에 전사 했다.   롤롬보이의 김대건 성당에 있는 김대건 신부의 조형물과 망고 나무로 만든 예수상. 필리핀은 한국의 최초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15살의 어린 나이에 마카오로 천주교 유학을 왔다가 마카오 내란 을 피해 공부하던 곳이기도 하다. 김대건 신부가 공부하던 롤롬보이의 김대건(안드레아)신부 성당 성지 순례는 인상적이었다. 어린 나이의 김대건 신부가 그 앞에서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 편지를 읽으며 울던 망고 나무가 있다. 성당 제단의 십자가도 망고나무 가지를 다듬어 만들었다.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하다.   세부(필리핀)/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
1    [이런저런] - 주인 묘지 찾은 강아지... 댓글:  조회:4308  추천:0  2018-01-10
주인 묘지 찾은 강아지, 발걸음 떼지 못해 ... 박세원 기자 2018.01.07.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테레사 모리니는 지난해 9월 9일 어머니를 잃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키우던 강아지 디테를 가족으로 맞이했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2개월이 지난 11월 15일, 테레사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디테와 함께 어머니의 묘지를 찾았다. 테레사와 남편은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디테는 이들을 따라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묘지 옆에 앉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테레사가 “돌아가자”며 디테의 이름을 여러 번 불렀지만 꼼짝 않았다. 조금 따라오다가도 발걸음을 멈추더니 이내 묘지로 다시 돌아갔다. 테레사는 묘지로 걸어가는 디테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는 “눈물 날 것 같아”하고 말했다. 테레사와 남편은 이런 디테를 보며 가슴 아파했고, 결국 디테를 들어 올려 자동차에 태워야만 했다. 영상을 공개한 테레사는 “디테는 어머니와 함께 5년을 살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내가 맡아 기르고 있었다”라며 “86세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늘 집에 계셨다. 이들은 동반자였다”고 전했다. 또 “디테는 변함없이 우리 가족의 동반자”라며 “디테와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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