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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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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향의 이미지 우리가 스스로 지켜야"... 댓글:  조회:4313  추천:0  2018-01-20
우리 고장의 이미지 우리 스스로 지켜야 2018년 01월 19일 작성자: 채영춘 그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지역과 민족사회는 국가충성도와 정치신앙에서 무형의 검증 “문턱”을 거치기 마련이다. 특히 변강소수민족 지구일 경우 더구나 그렇지 않을가 생각한다.   우리 나라에는 연변을 포함하여 25개의 민족자치주가 변경 선에 포진되여 있으며 조선족을 망라하여 56개 민족이 중화대 가정을 이루고있다. 그렇다면 25개 민족자치주 가운데서 연변의 국가충성도 서렬을 몇번째로 매길수 있을가? 조선족은 56개 민족 가운데서 정치신앙급수가 얼마나 높을가? 그 답을 류추해 낼 시스템은 긍정적으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민족력사와의 접근법으로 풀이해보는건 무리가 없으리라는 느낌이다.   요즘 와서 필자는 은근히 이 점에 생각이 많이 미치는 것을 어쩔수 없다. 아마도 반도의 랭전기류와 연변의 지정학적 좌표 에서 오는 관심에서 기인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조선족 구성 원 모두가 심각하게 대해야 할 화제가 아닐가 생각한다.   지난 100여년의 파란만장한 세월속에 우리 선대들에 의해 구축되고 후대들에 의해 전승돼 온 연변과 조선족의 형상은 더없이 찬란하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영광스런 혁명투쟁력사를 자랑하는 로혁명근거지”,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 등 표현은 연변의 국가충성도를 단적 으로 시사하는 가장 적중한 신분부호로서 25개 민족자치주 가운데서 단연 돋보이는 지역이 아닐가 생각한다.   조선족의 정치신앙은 더구나 화려하다고 할수 있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해방전쟁기간에 연변지구에서 참군한 인수가 5만1천여명, 그 가운데 조선족이 85%를 차지하며 항일 전쟁 과 해방전쟁에서 희생된 연변지구의 렬사가 1만4천7백 여 명, 그 가운데 조선족이 97% 이상을 차지한다. 모택동주석이 공화 국의 오성붉은기에는 조선족들의 선혈이 스며있다고 한 절찬을 유력하게 받쳐주는 증거가 아닐수 없다. 조선족의 정치신앙 급수를 이보다 더 설득력있게 립증하는 사례가 또 있을가? 필자는 30여년전 로일대 조선족지도자가 “연변 로혁명근거 지 혁명유산은 선대들이 후대들에게 남겨준 가장 값진 호신부” 라고 하던 말을 기억하고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 말의 깊은 의미가 가슴속 깊이 안겨온다.   우리 민족 력사에 자호감을 가지고 이 땅에서 당당하게 살아 가라는 선대들의 부탁에는 선대들이 이룩해놓은 조선족이미지를 잘 지켜나가라는 깊은 뜻도 내포되여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족은 천입민족이다. 천입민족이라는 조선족의 좌표에서 우리가 리념적으로 갖춰야 할 자세가 바로 재중교포의식이 아닌 중국조선족의식의 확고한 정립이다. 남의 땅에 와 산다는 틀린 시각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이 땅을 개척하고 우리 민족이 기타 민족과 더불어 이 땅을 지켜내고 건설하여 나라의 인정을 받은 중국소수민족 일원으로서의 립지를 확실히 다지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민족 대류동이 가시화되고있는 때 이같은 의식이 함몰된 다면 조선족은 전도가 암울할 것이다.   천입민족은 토착민족과 구별되는 호칭으로서 이 말에는 가변 적인 요인이 함유되여 있다. 학계는 조선족에 대해 이렇게 평가 하고있다 – 이주(迁移)는 조선족의 특징으로서 영원히 높은 데로 류동하려한다. 나름대로 이 해석에는 조선족의 쉼없는 추구와 향상정신이 내포되여 있으나 다른 일면 한곳에 영원히 정착하려않는 가변성을 띄고있어 조선족의 긍정적 이미지를 흐리우는 역효과로 인식되고 있다.   오늘날 해외로무송출로 특징지어지는 조선족대이동이 조선족 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글로벌화에 부응하는 조선족들의 관념 변화를 이끌어내며 자치주 외향성경제의 중요한 엔진으로 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할 바이다. 따라서 조선족의 대류동이 “조선족 이미지를 지킨다”는 소박한 자세에서 “조선족 이미지를 쇄신 한다”는 현대적 리념에로의 전환을 부추키는 위대한 변혁의 긍정적 에너지로 된다는 점 또한 고무적이라 본다.   하지만 해외로무송출로 초래된 수십만 조선족인구의 “탈연변” 영구화 현실은 간과할 수만 없는 상황이다. 연변의 조선족 호적 인구는 79만이라지만 현재 한국으로 나간 로무자가 30만으로 집계되여있고 거기에다 국내외 기타지역에 나가있는 조선족까지 합치면 거의 절반 인구가 연변을 빠져나가있다는 말 이 된다. 조선족 산재지역과 달리 연변은 조선족자치주이다. 이같은 인구류동추세가 한계를 벗어날 때 자치주성채는 위기를 맞을 것이고 그 존재의미가 소실될 것이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만 된다면 “영광스런 혁명투쟁력사를 자랑하는 로혁명근거지”,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 연변상징아이 콘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며 조선족의 국가충성도, 정치신앙급수도 모두 백지화되면서 조선족의 “호신부”는 아리숭 한 옛말로 돼버릴 것이다. 무릇 조선족이라면 이같은 상황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풀어나가는 우환의식이 있어야 한다.   “이 땅의 주인으로서의 의식과 자세를 갖지 못하면 우리는 하루아침에 천시당하는 천덕꾸러기로 정착하게 될 것입니다.”   일제가 패망하고 새중국이 탄생되기 전야 조국관과 민족정체 성으로 갈등하며 반도이동을 서둘르는 조선족동포들을 향해 터쳐낸 초대 자치주 주장 주덕해의 이 절절한 호소가 당시 광범한 조선족민중을 이 땅에 결집시킨 안정제로 되였다면 오늘날 조선족 구성원들 모두에게는 연변 이미지를 지키라는 절박한 경고메세지로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난날 준엄한 시련을 이겨내며 구축한 연변의 국가충성도와 조선족의 굳센 정치신앙이 새로운 력사시기에도 끄떡없도록 지켜주는 호신부로 되리라 믿는다. 연변일보 2018.1.17
3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다람쥐야, 맘껏 놀아라... 댓글:  조회:3054  추천:0  2018-01-20
'무서워! 하지만 너무 짜릿해'... 수상 스키 타는 다람쥐 [ 2018년 01월 16일 ]     1월 14일, 다람쥐 트위기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한 2018년 국제보트쇼에서 수상 스키를 타고 있다. 1월 12-21일, 글로벌 550여개 업체와 다양한 타입의 보트 1,200대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한 2018년 국제보트쇼에 참가했다. ///신화망                            
2    [대련문단] - 중국 조선족 시문단 故 김파시인 기리다... 댓글:  조회:3177  추천:0  2018-01-20
대련시조선족문학회, 고 김파시인 기리는 행사 (ZOGLO) 2018년1월11일  2018년1월6일, 대련시 조선족문학회에서는 중국 조선족 문단의 큰 별이며 대련 조선족문학회의 정초자인 故 김파 시인(1942.12. 06-2017. 12.28)님을 기리는 기념식을 가졌다. 이번 행사에는 대련조선족문학회 남춘애 회장을 비롯한 10명의 회원들이 참석했다. 계영자 전임회장이 먼저 고 김파시인의 생평을 소개했다. 김파시인은 1989 첫 시집 을 시작으로 , , 등 서정서사시집 11부를 출간함으로서 중국 조선족 시문단의 큰별로 자리매김했다. 이어서 최은화, 김명옥, 정은화, 최은복, 남춘애 등 5명 회원이 고 김파시인 유작들인〈소생〉,〈풀빛비명〉,〈달떡〉,〈코스모스〉,〈풀빛 계절에〉,〈농사군의밤〉,〈맹세〉,〈태양의 종소리〉,〈유물〉, 〈동경 〉 등 시들을 낭송했다. 이어 김파 시인의 대련지역 활동을 중심으로 김파 시인과의 만남, 시에 담긴 정서, 시에 대한 평가 등을 아우르는 자유 발언이 이어졌다. 대련시 안중근연구회 박룡근 회장은 김파 시인이 안중근 의거에 통역으로 나섰던 유동하의 외조카로 그가 안중근 연구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다고 하였다. 칼럼니스트 김인섭선생은 김파시인이 남겨놓은 문화적 유산을 정리함으로써 중국조선족 문화유산을 보존하는데 이바지 해야 한다고 했다. 김파시인이 대련지역에서의 문학활동 중 시 풍격의 전향을 가져오는 과정이 생겼다는 것, 따라서 시들에서 하이퍼시, 립체시 경향을 보였다. 한편 시인으로서 단편소설 발표에 이어 2017년 1월에는 ,, 등 3부작으로 된 대하소설 《흑색태 양》을 펴내어 시인으로서 장편소설을 쓴 장거에 대해서도 담론했다. 문학회에서는 김파 시인이 남긴 작품과 아직 채 발표되지 못한 작품들을 빠른 시일내에 정리하여 시인의 문학적 유산을 빛낼 것에 공감하면서 김파 시인의 갑작스런 타계로 중국 조선족 문단의 큰 별이 졌다며 아쉬움 마음을 금치 못했다. 남춘애 회장은 이번 "고 김파시인을 기리는 기념식은 조선족 문학의 맥을 이어가는데 있어 규모는 작아도 의미는 큰 행사였다"고 총화했다. ///최은복 정은화/길림신문  
1    [이런저런] - 100년전 반고흐 그림 해빛 보다... 댓글:  조회:1191  추천:0  2018-01-20
반고흐의 진귀한 스케치 작품 100년만에 공개 (ZOGLO) 2018년1월17일 반 고흐의 스케치 작품 '몽마르트르 언덕의 채석장' [AP=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 빈센트 반 고흐의 진귀한 스케치 작품이 100년 만에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17일 영국 가디언과 AFP통신에 따르면 네덜란드 출신의 '불멸의 화가' 반 고흐와 17세기 유명 화가 호페르트 플링크의 '잊혀 있던 작품' 4점이 100년 만에 대중에 선보인다. 이들 작품 중에는 개인 소장품으로 여태껏 공개되지 않았던 반 고흐의 단색 스케치 그림 '몽마르트르 언덕의 채석장'도 포함됐다.  이 그림은 반 고흐가 벨기에 앤트워프와 프랑스 파리에서 살던 1886년 때 그렸던 작품이다. 당시 반 고흐는 프랑스의 저명한 화가 페르낭 코르몽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채석장'은 개인이 소장한 탓에 대중에 알려지지 않다가 2013년 진본인지 가리기 위해 반 고흐 박물관에서 확인 작업을 거쳤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박물관의 선임 연구원 테이오 메이덴도르프는 "이 작품이 이쪽에 오고 나서 우리는 진짜 반 고흐의 것인지 확인을 했다"며 "우리는 그 출처에 대한 의문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2013년 진본임을 입증했지만, 소장가가 작품의 공개를 원하지 않아 몇 년간 랩으로 싼 채 보관해 왔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러한 발견은 항상 위대하다"며 "이러한 일은 정말로 예외적으로 종종 일어나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애초 이 작품은 반 고흐 남동생 테오의 부인이 소유했다가 1917년 개인 소장가에게 팔렸다. 반 고흐의 또 다른 스케치 작품 '몽마르트르 언덕'은 16일 네덜란드 중부 '싱어 라렌' 박물관의 전시실에서 공개됐다. 이 작품 역시 반고흐 박물관이 진본임을 입증했다. 싱어 라렌 박물관은 성명을 통해 "두 스케치 작품에 사용된 문구류 종류는 같다"며 "그(반 고흐)가 1886년 겨울과 봄 자신만의 스타일을 여전히 찾고 있음을 멋지게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렘브란트의 제자였던 플링크(1615~1660)의 미공개 작품 2점은 16일 암스테르담 박물관에서 1895년께 사라진 뒤 처음으로 일반 대중에 공개됐다. 반 고흐의 스케치 작품 '몽마르트르 언덕'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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