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6월 2018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검색날짜 : 2018/06/11

전체 [ 4 ]

4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래일은 없다 댓글:  조회:3069  추천:0  2018-06-11
래(내)일은 없다                ㅡ 어린 마음이 물은                              윤동주 / 시인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아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동무여! 내일은 없나니 ······ 오늘은 윤동주 시인의 시 한편을  읽어 봅니다. 1934년 윤동주 시인이 18세 되던 해에 3편의 시를 썼는데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였다고 합니다. 이는 오늘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시인의  최초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의 대표적인 시  `자화상'이나  `서시' `별 헤는 밤' 등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다소 생소합니다만  시의 내용이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아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정말 기가 막히고 가슴에 와닫는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어제의 내일이었던 날은  바로 오늘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무리여! 동무여! 내일은 없나니' 이 시를 통해서 새삼 오늘의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삼천포대교에서 바라본 노을   레우코노에여 묻지 마시오, 신들이 당신과 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 두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오  바빌론의 점쟁이에게 미혹되지도 마시오, 무엇이 오든 견디는 것이 더 좋은 법이오 튀레눔 바다 절벽 위를 덮고 있는 그 겨울이 주피터 신이 당신에게 주신 또 하나의 겨울이든, 아니면 우리의 마지막 겨울이든간에 말이오 현명하시오, 와인도 드시오, 멀고 먼 희망은 떨쳐 버리시오, 생명은 짧다오 우리가 말하는 동안에도 아까운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오  오늘을 잡으시오, 내일에 대한 믿음은 할 수만 있다면 접으시오.  ///-퀸투스 호라티우스 플라쿠스 =======================
3    [고향소식] - 어곡전 아리랑 닐리리... 댓글:  조회:3121  추천:0  2018-06-11
어곡전에 피여난 문화의 향연 (ZOGLO) 2018년6월10일  어곡전비(碑),어곡전시비(诗碑) 락성의식 및 오정묵시집 “겨울의 소리”출간기념회 룡정시 광소촌에서 6월10일, 푸른 벼가 초여름의 산들바람에 하느작 거리며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룡정시 개산툰진 광소촌 하천평마을 어곡전, 바로 이곳에서 어곡전비(碑)와 어곡전 시비(碑)락성의식 및 오정묵의 시집 “겨울의 소리”출간기념회가 열리며 어곡전에 문화의 향연을 피워 올렸다. 연변민간문예가협회, 연변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 룡정시문화방송신문출판국, 룡정시개산툰진정부, 연변시인협회에서 주최하고 룡정시광소촌 촌민위원회, 룡정시어곡전협회에서 주관한 이날 행사는 어곡전 마을에 또 한번 경사를 안겨주었다. 오정묵씨의 후원으로 새롭게 세워진 어곡전비(碑),어곡전 시비(诗碑) 이날 어곡전비 락성 테이프 커팅식(剪彩仪式)과 함께 어곡전 시비 제막식이 있었다. 어곡전비와 어곡전 시비는 룡정시 강덕중의진료소 오정묵씨의 후원으로 어곡전에 새롭게 세워졌다. 개산툰 어곡전의 유공자들 가운데는 1941년에 “어족전”과 “어곡미”를 산출한 산모인 최학철농민, 1982년 “어곡전기념비”를 세울 것을 제안한 연변농업과학연구소 벼재배연구실 서규철주임, 1995년 구두로만 전해오던 개산툰의 전설을 정리하여 처음으로 “어곡전” 문자화 전설을 내 놓고 1999년에 개인 돈으로 어곡전 기념비를 세운 농민작가 고 심정호씨가 있으며 송정현, 정두길, 심정호의 뒤를 이어 2013년에 어곡전의 발자취를 수집, 정리하여 “못 말리는 어곡전”을 출간, 중국 조선족의 농경문화브랜드를 창출한 한화석씨가 있다. 2001년부터 오정묵씨가 어곡전의 새로운 유공자 일원으로 되였다. 오정묵씨는 2006년 8월 15일에 8만원을 투자해 “어곡전”돌비석을 세우고 계속하여 어곡전의 부흥, 어곡미의 상품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600여 만원을 투자하면서 해당부문이며 유지인사들과 손 잡고 어곡전 농경문화를 창출, 발전시켜 조선족 농부절, 풍수제를 내오고 2009년에 어곡전 “농부절”을 성급문화재로 등재시켰다. 어곡전비와 어곡전시비는 전부 청회색 화강암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어곡전비는 높이 7메터, 너비 1.60메터, 두께 60센치메터로서 농경문화를 상징하고 기념하는 비석으로서는 연변에서 유일하다. 어곡전찬가는 작자가 리성비로서 그는 개혁개방후 40여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부단히 시혼을 불태우며 수많은 저작을 창출해낸 중국조선족시단의 저명한 시인이다. 문학평론가 최삼룡선생은 “어곡전찬가”에 대한 평론에서 어곡전을 노래한 “어곡전찬가”는 사상내용이 풍부한바 현실적인 삶을 표현하면서 력사적인 내포를 갖고 있으며 낡은 형식에 새로운 내용을 담은 수작이라고 말했다. 아울러“어곡전찬가”는 어곡전의 개척자들을 비롯한 우리의 광대한 농민들의 빛나는 업적을 기린다는 의미로 통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민족공동체의 높은 뜻을 표현하고 있어서 그 문학적 성과로 하여, 력사가 유구한 개산툰 하천평 어곡전에 시비로 세워지기에 당당하며 향후 이곳을 찾는 국내외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어곡전비와 함께 문화의 향연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될것이라고 했다. 오정묵시집 “겨울의 소리”출간기념회 어곡전비와 어곡전시비 락성의식에 이어 어곡전에서 오정묵시집 “겨울의 소리”출간기념회가 있었다. 오정묵씨가 펴낸 “겨울의 소리”는 지난 2006년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간한 첫 시집 “가을의 소리”에 이은 두번째 시집이다.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출간한 오정묵씨의 “겨울의 소리”시집에는 289수의 시가 수록되였다. 여기 담긴 시들에서 소박한 언어, 마음에 와 닿는 시어, 생활속에서 시적 발전을 추구해온 시인의 인생철학을 엿볼수 있다. 연변민간문예가협회 우상렬주석은 오정묵씨의 “겨울의 소리”시집에 대한 평론에서 “오정묵씨의 시세계는 실로 다양하고 모든 것이 시로 되며 풍부한 감수성과 상상력이 뛰여나다”고 하면서 “그에게 있어 무한한 시의 세계는 령혼에 머물러 반짝이며 인생에 즐거움을 안겨주는 정다운 존재이다”고 말했다. 오정묵씨의 “겨울의 소리”시집을 읽어보노라면 자연, 인생, 사랑의 노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시로 풍부하고도 미묘한 멜로디가 흐로고 있다. 자연과 인간을 사랑하고 생활을 열애하기에 시인은 의사로서 병마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건강을 찾아주고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물심량면으로 도와나설수 있는 넓은 흉금을 가질수 있었다. “겨울의 소리”작자 오정묵씨 출간기념식에서 오정묵씨는 “시는 나에게 있어 령혼을 다듬고 육신의 욕망을 다스리는 취미이고 고행의 길이다”면서 “무한한 시적 세계는 가끔씩 나의 령혼에 반짝이는 빛의 즐거움을 안겨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저는 시공부를 체계적으로 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나의 느낌을 그대로 적었을 뿐이다”며 “시창작에 있어서 초학자이고 앞으로도 초학자로서 시다운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며 살겠다”고 허심탄회하게 밝히기도 하였다.< 길림신문 김성걸,강동춘 기자/font>
2    "우리는 '바다'에 관한 시를 쓸줄 모르외다"... 댓글:  조회:2161  추천:0  2018-06-11
  + 한 송이 바다  한 송이 바다  바다 한 송이를  애기동백들은  감당하지 못한다.  붉고 붉고  수없이 붉어도  이상하리만큼 무력하다  한 송이 바다 앞에서는.  (정현종·시인, 1939-)  + 바다에 오는 이유  누군가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다  모두 버리러 왔다  몇 점의 가구와  한쪽으로 기울어진 인장과  내 나이와 이름을 버리고  나도  물처럼  떠 있고 싶어서 왔다     바다는 부자  하늘도 가지고  배도 가지고  갈매기도 가지고  그래도 무엇이 부족한지  날마다 칭얼거리니  (이생진·시인, 1929-)  + 멸치가 먼저다  삶은 멸치 말리는데  빗방울이 후드득.  마루에서 젖 먹이던 엄마  아기 떼어 내려놓고  허리 아파 보건소 가던 할머니  되돌아 줄달음치고  멸치 다 걷고 나서야  엄마는 젖 다시 물리고  할머니는 보건소 길 다시 간다.  바닷가에서는  사람보다  멸치가 먼저다.  (최종득·시인, 1973-)  + 동해바다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신경림·시인, 1936-)  + 바닷가에 대하여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의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 게 좋다   (정호승·시인, 1950-)  + 언덕 위의 집  이 집 주인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문을 낮게 낸 것일까  무심코 열고 들어서다  이마받이하고 눈물이 핑 돌다  낮게 더 낮게  키를 낮춰 변기에 앉으니  수평선이 눈썹에 와 걸린다  한때 김명수 시인이 내려와 산 적이 있다는  포항 바닷가 해돋이 마을  물이 들면 언제고 떠나갈  한 척의 배 같은  하얀 집  내가 처음 이 바다 앞에 섰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눈썹에 걸린 수평선이  출렁거릴 따름이었다  이 집 주인은 무슨 생각으로  여기다 창을 낸 것일까  머물다 기약 없이 가야 할 자들이  엉덩이 까고 몸 낮춰 앉아  진득이 세상을 내다보게 함일까  (정희성·시인, 1945-)  +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멀어져서 아득하고 아름다운 너는  흰 셔츠처럼 펄럭이지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내 눈 속의 새들이 아우성친다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  분홍빛 부드러운 네 손이 다가와  돌려가는 추억의 영사기  이토록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구나  사라진 시간 사라진 사람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해를 보면 해를 닮고  너를 보면 쓸쓸한 바다를 닮는다  (신현림·시인, 1961-)   
1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삶과 죽음 댓글:  조회:7557  추천:1  2018-06-11
  삶과 죽음               /윤동주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 끝나랴   세상 사람은 -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에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하늘 복판에 알새기 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 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아 죽음에 승리자 위인(偉人)들!     이 시는 죽음에 승리한 위인들은 삶이 뼈를 녹여내는 듯한 죽음의 서곡임을 알고 이상을 추구하면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 사람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삶과 죽음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 끝날 것인가? 세상 사람은 뼈를 녹여내는 듯하게 힘든 삶의 노래에 죽음을 느끼지 못하고 춤을 춘다. 그리고 해가 넘어가기 전에는 죽음의 서곡 끝에 존재하는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이 살고 있었다. 하늘 복판에 죽음의 서곡을 아로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와 같이 이 노래를 딱 그친 자가 누구인가? 그들은 죽고 뼈만 남아 죽음에 승리자 위인(偉人)들이다.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에 대한 화자의 인식을 담은 시이다. 일반적으로 ‘삶과 죽음’은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화자는 삶이 죽음의 서곡이라고 한다. 삶과 죽음이 같은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래서 화자는 삶을 살아가면서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 이 노래가 언제 끝나랴’는 오늘도 삶을 살면서 삶이 죽음을 향해가는 것을 인식하였고 삶이 언제 끝날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았다는 말이다. 죽음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삶은 죽음을 향하여 한 발 한 발 가까이 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죽음이 다가올 날은 멀었지만 죽음을 행하여 가고 있으므로 ‘죽음의 서곡’을 노래한 것이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세상 사람은 - /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 춤을 춘다 // 사람은 해가 넘어가기 전 / 이 노래 끝에 공포를 /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는 위인들과 달리 세상 사람들은 삶에서 죽음을 보지 못하고 삶이 뼈를 녹여내는 듯한 것임을 생각하지 않고 즐겁다고 춤을 추는데 그 이유는 삶의 끝에 있는 죽음의 공포를 생각하지 못해서란 말이다.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 춤을 춘다’는 세상 사람들은 삶이 죽음의 서곡인 줄 모르고 즐거워서 춤을 주는데 화자는 삶이 죽음의 서곡이고 이 노래 끝에 있는 공포를 생각하면 뼈를 녹여내는 듯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자의 삶에 대한 관념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막상 죽음이 닥쳤을 때에 공포에 빠져 두려움에 떨며 죽지만 화자와 ‘죽음에 승리자 위인들’(6연)은 죽음을 맞이했을 때에 삶속에서 미리 준비를 했기에 죽음을 이기는 위인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해가 넘어가기 전’에서 ‘해가 넘어가기 전’은 살아있을 때를 말한다. ‘이 노래 끝에 공포를 /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는 세상 사람들은 삶을 즐겁게만 생각하기에 죽음의 공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늘 복판에 알새기 듯이 / 이 노래를 부른 자 누구뇨 //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 같이도 /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 죽고 뼈만 남아 / 죽음에 승리자 위인(偉人)들!’에서 ‘하늘’은 ‘이상, 꿈, 희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늘 복판에 알새기 듯이’는 이상을 추구하면서 이상 속에서 뚜렷하게 ‘삶이 죽음의 서곡’이라는 인식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을 말한다. ‘소낙비 그친 뒤 같이도’는 직유로 소나기가 한 순간에 그치는 것처럼 확실하게 그친 것을 말한다. ‘죽음에 승리자 위인(偉人)들!’은 이미 ‘죽고 뼈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이들은 ‘삶’이 ‘죽음’의 노래임을 알고 ‘뼈를 녹여내는 듯’하다는 것을 알고 ‘죽음’의 ‘공포’를 분명하게 알면서도 ‘이상’을 추구한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공포’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 사람들로 ‘위인(偉人)’이라 할 만한 사람인 것이다. ===================== 삶과 죽음                            윤동주 / 시인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ㅡ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하늘 복판에 알 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자(勝利者) 위인(偉人)들! 오늘은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되어 있는 『삶과 죽음』이라는 시를 읽어  봅니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민족시인 윤동주님의 순결한 영혼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요.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다 해방을 6개월 앞두고 옥사한 윤동주님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민족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요. 그것은 님이 남긴 시들이 온겨레가  아끼고 사랑하는 아주 귀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윤동주님은 평소에 써 온 시 작품을  차곡차곡 모아두었을 뿐 생전에  자신의 시를 세상에 알리거나 시집을  펴내지 못했지요. 『삶과 죽음』이라는 시는 윤동주님의  최초의 작품으로 그가 열일곱 살 때 쓴  시라고 합니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