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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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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쉼터] - 무언가에 온전히 미친 사람은 아름답다... 댓글:  조회:3176  추천:0  2018-06-25
벽치(癖痴) 예찬 2018년 06월 19일 작성자: 김춘식     '벽(癖)'이란 병이다. 어떤 물건이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좋아함이 지나치면 '즐긴다'고 한다. 즐기는 사람이 즐김이 지나치면 이를 '벽'이라고 한다. 즉 벽은 버릇이요, 기호요, 취미요. 습성을 가리키나 원래는 좋지 않은 기호요 나쁜 버릇을 가리킨다.   '벽'과 비슷한 뜻으로 바보라는 뜻의 '치(痴)'도 많이 보인다. 모두 무엇에 대한 기호가 지나쳐 억제할 수 없는 병적인 상태가 된 것을 뜻한다. '치'는 상식으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벽'에 대한 일반의 반응을 반영한다.   '벽'이니 '치'니 '자(疵)'니 하는 것은 모두 무엇에 대한 기호가 지나쳐서 억제할 수 없는 병적인 상태가 된 것을 뜻한다.   예로부터 '벽'이나 '치'로 불리기를 좋아하고 '벽'이나 '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며 허다한 문인들이 '벽치'를 찬미하고 있었다. 그래서 청나라 초기의 소장가 장조(涨潮)는 이렇게 반문했다.   "치(痴), 우(愚), 졸(拙),광(狂), 이 네 단어는 모두 글자의 의미가 좋은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마다 여기에 속하기를 즐긴다. 과연 멍청하고 어리석고 졸박하고 미친 듯이 사는 인생이 뭐가 좋아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싶어할까?   명나라 때 오종선(吳從善)은 그의 "소창자기(小窓自紀"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생을 팔았어도 이 멍청함[痴]은 다 못 팔았고, 평생을 고쳤어도 이 고질[癖]은 못 고쳤다. 탕태사(湯太史)도 '사람은 벽이 없을 수 없다고 했고, 원석공(袁石公)은 '사람은 치가 없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럴진대 멍청함은 팔 필요가 없고, 고질은 고칠 필요가 없다."   명말 문장가 장대(張岱)도 "오이인전 서문(五異人傳序)"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 벽'이 없으면 더불어 사귈 수가 없다. 깊은 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흠'이 없으면 더불어 사귈 것이 없다. 참된 기운이 없는 까닭이다."   무언가에 병적으로 미친 사람만이 깊은 정과 참된 기운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청나라 초기의 소장가 장조(張潮)는 "유몽영(幽夢影)"에서 또 이렇게 말한다.   "꽃에 나비가 없을 수 없고, 산에 샘이 없어서는 안 된다. 돌에는 이끼가 있어야 제격이고, 물에는 물풀이 없을 수 없다. 교목엔 덩굴이 없어서는 안 되고, 사람은 '벽'이 없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득실을 떠나 맹목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겠다.   원굉도(袁宏道)는 "병사(瓶史)"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상을 살펴보니, 그 말이 맛이 없고 생김새가 가증스런 사람은 모두 벽(癖)이 없는 사람이었다"   무언가에 온전히 미친 사람만이 아름답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청(清)조 시기의 시인 노존심(盧存心)의 "납담蜡谈"에 이런 말이 있다.   "아름다운 옥일수록 흠집(瑕)이 많고, 뛰어난 사람일수록 병통(癖)이 많다. 흠집이 없으면 아름답지가 않고, 그저 옥처럼 생긴 돌덩이가 된다. 병통이 없고는 기이함도 없게 되어 끝내 호걸이 되지 못한다."   그 벽이야말로 그 사람의 기특함을 더 돋보이게 해준다는 뜻일 것이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벽과 치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   동중서(董仲舒)나 두예(杜預)는 학문에 벽이 있던 사람이고, 왕발(王勃)과 이하(李賀)는 시에 벽이 있던 사람이다. 사령운은 유람에 벽이 있었고, 미불은 돌에 벽이 있었으며, 왕휘지(王徽之)는 대나무에 벽이 있었던 사람이다.   '문벽(文癖)'에는 일생을 글짓기로 살아온 노신이 있고 '서벽(書癖)'에는 책을 제 목숨보다 중히 여긴 천일각(天一閣)의 주인 범흠(范欽)이 있으며 '사벽(史癖)'에는 궁형에도 뜻을 버리지 않고 "사기"를 편찬한 사마천이 있는가 하면 귀까지 멀어가며 역사연구에 깊이 빠진 곽말약이 있다. '문벽'이든 '서벽'이든 '사벽' 오직 '벽성(癖性)'을 버리지 않을 때에라야 글을 써낼 수 있고 책을 모을 수 있으며 역사를 연구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벽'이 있음으로 하여 그들은 시를 읊고 글을 쓰고 책을 모으는 문인생활에서 적극적이고 낙관적이며 적막과 고독을 즐기면서 책 속에 빠지고 책에 미치는 한 몸으로 학업을 연구하는 고아한 정서를 보여주었다.   어찌 중국뿐이랴. 우리 민족의 선조들 가운데도 빼어난 '벽'이나 '치'를 가진 이들이 수두룩하다.   조선 후기 화가 남계우(1811-1888)는 한마디로 벽치(癖痴)다. 그의 나비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예쁜 나비를 보면 갓 쓰고 도포 입은 채 십 리 길도 마다 않고 쫓아가 잡아서 책갈피에 끼워놓고 그리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나비에 미쳐 평생 나비만 그렸고 마침내 나비 그림의 달인이 됐다. 그래서 '남나비'란 별칭까지 얻었다.   수만 권을 독파하고 눈병에 걸려서까지 실눈으로 책을 읽어 간서치(看書痴: 책만 읽은 바보)라 불린 이덕무(李德懋), 장서가 이명오는 빌려 본 책을 주인에게 돌려보내며 정인을 이별하는 것이상의 아픔을 절절히 노래하는 등 '서치'의 행태를 보였다.   이들은 모두 예술에 득실을 잊고, 영욕을 잊고, 사생을 잊었던 사람들이다. 이것을 해서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될지, 출세에 보탬이 될지 따지지 않았다. 그냥 무조건 좋아서,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했다 남이 뭐라 하든 말든, 출세에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자신을 사로잡은 일에 전심을 다해 몰두한 사람들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는 "벽이 있는 자만이 독창적인 정신을 갖춘 전문가"라는 예찬론을 폈다. 그는 꽃에 미친 규장각 서리 출신 김덕형의 꽃 그림책 "백화보" 서문에 이렇게 썼다.   "'벽'이 없는 사람은 버림 받은 자이다. 홀로 걸어가는 정신을 갖추고 전문 기예를 익히는 건 '벽'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벽치가 되라. 자신 안에 잠자던 거인이 깨어나리라." 누군가의 참진리의 말씀이다. 오늘도 벽치로 될수 있는 자야말로 자신이 하는 일에 미칠수 있다. /흑룡강신문 2018.6.19 =========================   과연 나는 술 마실 자격이 있던가? 2017년 09월 26일 작성자: 김춘식     이 사회는 갈수록 술이 무서워지고 있다. 요즈음 한국의 언론 매체를 보면, 지나친 음주 때문에 야기되는 사건 사고 소식으로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다. 지나친 음주 때문에 야기되는 각 개인의 건강문제에서부터, 청소년의 음주, 가정주부의 알코올 중독, 가정 폭력,성추행, 음주 운전 등 각종 사회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는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을 뜻하는 '주폭(酒暴)'이라는 말까지 새로 생겨나, '주폭과의 전쟁'이 선포되기까지 하였다.   지난 1일에는 서울에서 한 남성이 술에 취한 채 부인과 다투다 결국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고, 경북 구미에서는 지난 4월 50대 남성이 함께 술을 마시던 지인을 말다툼 끝에 살해하는 등 '주취(酒醉)범죄'는 비일비재하다.한국 경찰청이 최근 발간한 '2016 범죄통계'를 보면, 지난 한 해 검거된 살인범죄자 995명 가운데 범행 당시 정신상태가 '주취'였던 이가 390명(39.2%)으로 '정상' 상태였던 397명(39.9%)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언론 보도를 접할 때마다 그야말로 잘못된 술 문화가 만연된 '술 사회'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이젠 정말 우리 잘못된 음주 문화를 고쳐야 할 때이다.   술은 한민족과 오랫동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우리 민족만큼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민족도 드물다고 한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술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다. 우리 민족이 즐기는 술, 이런 술에 대해서는 '백약(百藥)의 어른'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백독(百毒)의 으뜸'이라는 완전히 상반된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술은 적절히 마신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마셔 자제력과 판단력을 상실하게 되었을 경우, 만악(萬惡)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요즘은 세상살이에 경쟁이 심하고 살기가 힘들다 보니, 불안한 마음을 술로 달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술이 오히려 액운을 만났다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술을 지배해야 되는데, 술이 사람을 지배하니 너무나 안타깝다. 술만큼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음식이 또 있을까. 사람으로서 차마 못할 범죄가 술의 힘을 빌려 자행하고 있다 그래서 급기야 주폭(酒暴)이란 신조어까지 생기고 말았다   우리 민족의 잘못된 음주습관에 대해서 연암 박지원은 일찍 『열하일기』에서 "술을 마시면 반드시 취하고, 술에 취하면 반드시 술주정하고, 술주정하면 반드시 서로 싸움질을 하여, 술집의 항아리와 사발들을 남김없이 깨뜨려 버린다."라고 아주 심하게 비판하였다. 박지원의 이 말은 그야말로 우리 민족의 고질적인 음주습관을 고스란히 설파한 것이다.   술을 마시는 처음에는 대부분 술의 긍정적 요인을 기대하고 술을 마신다.어떤 기쁜 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자신의 울적한 기분을 풀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의 친분을 다지기 위해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한 잔 두 잔 거듭되다 보면, 마침내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 끝내는 자신을 망치고 주위 사람들에게 폐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사람은 단연코 술을 끊어야 한다. 한마디로 술 마실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 민족의 문호인 송강 정철은 술을 즐기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이다. 한민족의 대표적인 권주가(勸酒歌)인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세그려!'로 시작되는 “장진주사(將進酒辭)”를 지은 인물이다. 그런 송강이 46세 때 그 좋아하던 술을 끊었다.술이 백해무익이라는 것을 ,자신의 심신건강을 날로 해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는 술을 자주, 많이 마셨다. 보통, 필름이 끊긴다는 표현을 하는데 그런 경험이 많이도 있었다. 물론 많은 실수를 하였고 남에게 많은 피해를 끼쳤고 그 뒷날에는 후회만이 남아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건강 생각도 하게 되고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자 하고 또 그 뒷날을 고스란히 낭비를 하는 것 같아서 절제 하려고 노력을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모든 일에 있어서 지나치면 반드시 폐해가 발생하는 법이다.이 '과유불급'이라는 말은 잘못된 음주 문화에 물들어 있는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말이다.우리 스스로 술 마실 때마다 이 말을 염두에 두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술주정뱅이'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술꾼'이 되어야겠다.  /흑룡강신문 2017-9-26 ========================덤으로 더... 사르트르 명언들= ○지옥은 곧 타인이다 (다른 사람에게 구속되는 것이 지옥이다). Hell is other people. ○노를 젓지 않는 사람만이 평지풍파를 일으킬 수 있다. Only the guy who isn't rowing has time to rock the boat. ○삶은 절망의 다른 면에서 시작한다. Life begins on the other side of despair. ○부자들이 서로 전쟁을 벌일 때, 죽는 이는 가난한 사람들. When rich people fight wars with one another, poor people are the ones to die. ○약속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Commitment is an act, not a word. ○혼자 있을 때 외롭다면, 친구를 잘 못 사귄 것. If you are lonely when you're alone, you are in bad company.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Life is C between B and D(=Life is Choice between Birth and Death). ○자유란 당신에게 주어진 것을 갖고 당신이 실행하는 무엇이다. Freedom is what you do with what's been done to you. ○인간은 현재 가진 것의 합계가 아니라 아직 갖지 않았지만 가질 수 있는 것의 총합이다. Man is not the sum of what he has already, but rather the sum of what he does not yet have, of what he could have. ○언어는 장전된 권총과도 같다. Words are loaded pistols.   
9    [출간소식] - 중국 조선족 문단 "허씨네 3형제" 동화 그림책 댓글:  조회:2951  추천:0  2018-06-25
허씨 3형제 동화 그림책으로 출간 (ZOGLO) 2018년6월25일  민족문자출판물 특별보조프로젝트로 출간되는 중국조선족작가 창작그림책 시리즈의 동화편으로 허충남, 허봉남, 허두남 3형제의 동화가 선정되여 연변인민출판사의 출판으로 일전에 독자들과 대면했다. 허충남의 《우주인의 만능옷》과 허봉남의 《칠동이의 변신술》은 화가 신순칠이, 허두남의 《뽐내던 날치》는 화가 김휘가 배합그림을 그렸는데 《우주인의 만능옷》에는 , , , 등 4편의 동화가, 《칠동이의 변신술》에는 , , 등 3편의 동화가, 《뽐내던 날치》에는 , , , 등 16편의 동화가 수록되였다. 1940~1950년대에 화룡시 로과에서 출생한 허씨네 3형제는 수십년간 아동소설, 동화, 우화, 수필, 희곡, 동시 등 다양한 쟝르의 문학창작을 하였는데 중국조선족아동문학사에서 중요한 한페지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 문야, 글 김태국 
8    [고향문단소식] - 베이징에서 울러 퍼진 고향 작가들의 목소리 댓글:  조회:2804  추천:0  2018-06-25
방황과 견지속에서 거목이 되다-- "60년대생 중국조선족 작가 작품 연구토론회”북경서 열려 (ZOGLO) 2018년6월25일     중앙민족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와 연변작가협회가 주최한 “60년대생 조선족 작가 작품 연구토론회”가 2018년 6월 23일 북경에 자리한 현대문학관에서 개최되였다.   1960년대에 태여난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60년대 작가의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진행된 이번 연구토론회는 중국작가협회 지디마자 부주석, 중앙민족대학 당위원회 상무위원이며 부교장인 석아주, “민족문학”잡지 석일녕 주필,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 조안표 비서장, 문예보 소수민족문화판 명강 부주임,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원회 선전부 형계파 상무부부장,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원회 선전부 문화처 서춘매 처장, 연변작가협회 최국철 주석, 연변작가협회 정봉숙 부주석,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 리정해 당지부서기 등 관계자들과 작가, 평론가, 언론매체인, 학생들이 참가했다.       연변작가협회 정봉숙 부주석은 개막사에서 자리를 빛내준 모든 지도자와 래빈, 또 조선족 문학의 발전을 위해 여직껏 지지를 아끼지 않은 중국작가협회, 중앙민족대학, 연변조선족자치주 등 기관, 단체, 작가, 평론가들에게 연변작가협회를 대표해 진심으로 되는 사의를 표했다.   중국작가협회 지디마자 부주석은 특수한 의의를 가진 '60년 이후 세대 조선족 작가 작품 연구토론회'가 성황리에 개최된데 대해 축하를 표하고 이번 연구토론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진력한 각측에 사의를 표했다. 지디마자 부주석은 전국적으로 습근평 새 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학습하고, 19차 당대회 정신을 관철하는 대배경하에 진행된 이번 연구토론회는 습근평 동지의 지도사상을 문학 창작과 실천에 결부시키고, 적극 관철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디마자 부주석은 조선족을 포함한 소수민족문단이나 전국적인 범위에서 볼때 60년대에 출생한 작가들은 현재 문단의 중견으로 성장했고 사회를 반영하고 민족의 력사를 기록한 이들의 작품을 연구하는 것은 조선족 문학, 나아가 중국소수민족 문학의 번영과 발전에 큰 의의를 가지게 될 것이라며 연구토론회의 개최에 큰 환영을 표했다.    이날 중국사회과학원 장춘식 연구원은 “60년대생 조선족 작가군의 부침과 견지(朝鲜族60后作家群的沉浮与坚守)”라는 제목으로 조선족 문학의 발전 로정과 60년대 주요 작가, 작품들을 소개했고 ‘방황’과 ‘견지’ 속에서 이루어진 성장과 발전을 조명했으며 차세대 작가 양성에 관해 큰 관심과 우려를 보였다.   조선족 원로급 평론가인 김룡운 선생은 “최국철소설의 언어에 대한 미학적 고찰”이란 평론을 발표하여 최국철 작가의 ‘간도전설’이란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소설언어의 미학적 특징에 대해 분석했다.   중앙민족대학 김현철 교수는 ‘최국철의 장편《광복의 후예들》에 대한 약간의 고찰’이란 론문을 발표해 작품에서 나타난 일부 특징적 서사들에 대해 분석하고 “문학적, 문화적, 언어적 측면을 포함한 여러 시각으로 충분히 연구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연변대학 리광일 교수는 “김혁 소설세계의 통시적 연구”라는 론문을 통해 김혁 작가의 문학창작 궤적을 살펴보고 “조선족의 영욕의 력사를 거대한 스케일로 보여주는 대하소설같은 큰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앙민족대학 최학송 교수는 “김혁 소설집《피안교》 연구”라는 론문을 통해 김혁 작가는 조선족들이 개혁개방 이후 도시화, 산업화 진척과 더불어 “토지로부터 리탈된 삶을 살기 시작”하며 새로운 삶에 적응하지 못해 산생된 일련의 문제들을 《피안교》라는 작품에서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또 나름대로 대안을 찾기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며 높이 평가했다.   북경제2외국어대학 김영옥 교수는 “김영건의 문학세계”라는 제목으로 시인 김영건의 문학창작에 대해 분석했고 중국인민대학 김해응 교수는 조광명의 시집 ‘좌선, 어느 30대의 아침’을 중심으로 조광명의 시적 자아의 내면 세계에 대해 분석했다.   연변대학 우상렬 교수는 “80, 90년대 찍고 박고 새 천년으로 - 박장길의 시세계”라는 개성적인 론문을 통해 ‘60후 문학’은 무엇인가? 어떤 의의를 가지는가? 등 의문을 가지고 박장길 시인의 시세계에 대한 분석을 통해 ‘60후 문학’에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성을 론술했다.   연구토론회에 이어 최국철, 김혁, 박장길, 조광명 등 작가들의 창작담과 참가자들의 열띤 토론도 진행되였다. 문학 창작과 평론, 리론연구의 탈리, 문학창착에 대한 집착과 사명감, 산재지역과 집거구의 문학창작, 조선족 문학과 중국 주류문학사이의 련계 등 문제를 둘러싸고 치렬한 토론도 진행되였다.   중앙민족대학 오상순 교수는 페회사에서 조명이 가장 필요한 60년대생 작가를 위한 이번 연구토론회는 아주 의의가 깊다며 이번 행사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모든 분들, 그리고 우리민족문학을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모든 분들, 무엇보다도 우리민족문학을 빛내주신 모든 작가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의 조직자인 중앙민족대학 최학송 교수는 우리민족문단에서 중견으로 작용했지만 조명이 부족한 60년대생 작가들을 위한 학술회를 조직할 필요성을 느끼고 이번 행사를 조직하게 되였다며 향후 더욱 많은 우리민족문학인들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했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모든 문학인들의 소망처럼 더욱 많은 우리민족 문학인들이 나타나 중국, 나아가 전세계를 향해 빛을 뿌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중국조선어방송넷 
7    시속에서 우주의 목소리가 펼쳐진다... 댓글:  조회:2108  추천:0  2018-06-25
A 와 B 의 구조로 환상적 이미지 생성 --박문희시인의 하이퍼 산문시 을 읽고서 □ 강시나 하이퍼시는 “탈 관념의 사물과 상상의 이미지를 연결한 시로써 탈 관념의 사물을 한 단위로 보고 상상의 이미지를 한 단위로 본다면 모든 하이퍼시는 A단위와 B단위의 두 단위의 구조를 이룬다. 하이퍼시 구조는 탈 관념의 사물과 상상의 이미지 두 단위의 초월 관계를 연결하여 완성한다.” (문덕수《현실과 초월》165페이지) 관념이란 한자의 뜻으로 풀이해보면 ‘관’(观)은 ‘눈을 크게 뜨고 사물을 자세하고 똑똑하게 본다’이고 ‘념’(念)은 ‘생각하여 마음속에 굳게 간직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로보아 ‘관념을 벗는다’고 하면 그것은 낡은 관념의 옷을 벗어 던진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탈 관념의 시 쓰기는 기존의 관념을 배제하고 사물 또는 물체를 중시한다로 받아주면 되겠습니다. 또한 상상이란 사물들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관계와 사물의 조응과 유사함을, 직관으로 먼저 감지하는 능력을 바로 상상력이라 하고 직관이란 추리, 사고, 경험에 의거하지 않고 보는 순간 사물을 파악하는 것을 가르켜 직관이라 하며, 초월한다는 것은 현실을 넘어선다는 뜻이고, ‘초 현실’은 현실을 부정하고 그 부정을 매개로 하여 새로운 현실을 발견하고 새로운 사물관계를 발견하는 내재적 원리이며, 새로움을 발견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를 열어 보인다는 뜻으로 됩니다. 하이퍼시 구조원리가 이렇다보니 표현기법에 있어서는 관념설명보다는 암시적 묘사를 더 중요시합니다. 이렇게 하이퍼시는 보이는 사물 그대로의 벌거숭이가 아니라 작가의 상상이미지로 그려진 한 폭의 수수께끼이며 변형된 지도로서 작가의 내재적 심상으로 엮어져 의미가 이미지 속에 숨겨져 있는 초 현실 그림입니다. 즉 한 사물로 하이퍼시 탈 관념의 A 를 만들어 내고, 그 다음 작자의 상상세계의 이미지로 B단위를 만들고 두 단위 틈새에서 초월로 건너뛰기를 반복합니다. 2017년 윤동주 문학상 수상작인 박문희 시인의 시 이 바로 A와 B구조로 사물의 생성을 촉구한 하이퍼시라 생각합니다. 그럼 시 원문을 보기로 합시다. 상오 열한시가 넘었는데도 기어이 활시위를 당기는 것은 피후의 정곡을 향해 돌진하는 화살 자체가 공중 분해된 바람의 뿌리를 스치는 순간 어지럼증을 느낀 까닭이다. 화살과 시위는 헤어지기 위해 만나는 빛의 뒷문이요, 복제된 개기월식이다. 시위 떠난 화살이 되돌아 올 수 없다고들 하지만 이미 길에 오른 화살에 대한 설득반송, 혹은 강제반송은 근자에 언론에도 꾸준히 회자되는 사건이다. 유령의 마구간에서 신기루와 혈투를 벌린 도리깨의 귀와 발과 어깻죽지는 호수위에 둥둥 떠도는 달의 그림자, 아울러 달의 그림자가 낳은 부드러운 능선은 다정다감하면서도 능갈친 우주의 방언이다 바람개비의 뒤통수를 쥐어 당기는 안장형의 긴 하품은 잔디밭에 피어난 평면형의 짧은 잠꼬대와 더불어 운명의 동일선상에서 안으로 혹은 밖으로 열심히 튀는 방언속의 돌꽃이다. 염소를 몰고 블랙홀을 방문하는 방울새의 발에는 장수의 뼈와 살을 만드는 식수가 시계추로 매달렸다. 홀의 문턱과 한 정거장 거리에서 시동을 멈추고 배꼽에 눈이 달린 블랙홀 두령의 환영연에 초대된 방울새 일행의 귀환 보고서에 따르면 생명폭포의 질주 속도는 제백석이 낳은 만추의 낙엽과 궤를 같이 한다. 불타는 단풍은 귀뚜라미를 베개 삼아 영원히 투명한 허공에 평화롭게 누워있다. 아래에 을 나름대로 풀어보려 합니다. 먼저 제목 부터 보겠습니다. 이는 우주에 여러 가지 소리 즉 여러 가지 방언이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시속의 언어는 언어이자 사물이고 사물이자 언어입니다. 여러 가지 언어가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사물이 있다는 말로 되겠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 별과 구름도 다 언어가 되겠고 지구에 있는 각종의 사물도 모두 언어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시문학 창작에선 사물 세계가 언어와 단어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이미지로 된 언어와 단어들이 새로운 사물세계를 창조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박문희 시인은 우주는 여러 가지 방언 즉 여러 가지 사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말들을 해석한다면-- 1연: ‘열한시가 넘었는데도 기어이 활시위를 당기는 것은 (A)/ 피후의 정곡을 향해 돌진하는 화살 자체가 공중 분해된 바람의 뿌리를 스치는 순간 어지럼증을 느낀 까닭이다’(B)/는 사물인 화살로부터 태양이라는 새 사물을 생성시키면서 공기와 바람으로 인해 뭉치고 흩어지는 구름들의 조화를 암시적으로 끌어냈으며 기온이 고도로 상승된 12시 정각이지만 여전히 빛을 강하게 발사하는 태양의 본능을 덧붙여 사물의 자기 운동속도와 운동상태를 유지하려는 뉴턴의 제1운동법칙-관성법칙을 도입시킨 것 같습니다. ‘화살과 시위는 헤어지기 위해 만나는 빛의 뒷문이요(A)/ 복제된 개기월식이다’(B)/ 이 행에서 작가는 탈관념 이미지와 상상이미지를 연결하여 해가 뜨고 지는 자연맥락을 이어 놓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유사성을 비친 것 같고 ‘시위 떠난 화살이 되돌아 올수 없다고들 하지만(A)/이미 길에 오른 화살에 대한 설득반송, 혹은 강제반송은 근자에 언론에도 꾸준히 회자되는 사건이다’(B) 여기에선 쏜살같이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후회와 한탄, 그리고 이미 발설한 말들도 다시 걷어 들이기 힘들다는 것을 태양의 빛과 시위 떠난 화살의 유사성으로 비유한 것 같습니다. 2연: “유령의 마구간에서 신기루와 혈투를 벌린 도리깨의 귀와 발과 어깻죽지는(B)/ 호수위에 둥둥 떠도는 달의 그림자”(A)/ 여기서 상상 이지미지 B는 비약적인 시대발전에 무작정 뛰어드는 인간들의 무지를 새로운 사물로 생성시키기 위한 상상이미지이며 ‘달의 그림자가 낳은 부드러운 능선은(A) /다정다감하면서도 능갈친 우주의 방언이다’(B)/ 이 행은 모든 신생사물은 막을 수 없는 시대조류라는 뜻이고 “바람개비의 뒤통수를 쥐어 당기는 안장형의 긴 하품은 잔디밭에 피어난 평면형의 짧은 잠꼬대와 더불어(A)/ 운명의 동일선상에서 안으로 혹은 밖으로 열심히 튀는 방언속의 돌꽃이다”(B)/ 이는 아직도 낡아 빠진 묵은 관념들이 뒤꽁무니를 붙잡고 늘어져있는 경향을 잠꼬대에 비유하면서 전진과 발전은 자연의 필연적 법칙이라는 점을 암시적으로 대체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연: ‘염소를 몰고 블랙홀을 방문하는 방울새의 발에는(A)/ 장수의 뼈와 살을 만드는 식수가 시계추로 매달렸다’(B)/ 여기선 계절을 몰고 온 봄의 햇빛이 만물을 생성시킴을 말하고 봄 에너지를 가리켜 뼈와 살 만드는 식수(食水)라 변형시키고 또 태양의 빛을 다시 식수(食水)의 시계추로 거듭 탈영토화 시키면서 상상이미지로 또 다른 계절을 끌어내기 위한 이질적 연결이고. “홀의 문턱과 한 정거장 거리에서 시동을 멈추고(A)/ 배꼽에 눈이 달린 블랙홀 두령의 낳은 만추의 낙엽과 궤를 같이 한다”(B)/는 계절과 계절 잇기를 ‘블랙홀’ 과 ‘정거장’으로 변형시키면서 바뀌는 역마다 초대된 방울새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환기를 재치 있게 그려 냅니다. ‘불타는 단풍은 귀뚜라미를 베개 삼아(A)/ 영원히 투명한 허공에 평화롭게 누워있다’(B)/ 끝으로 시인은 가을날의 풍요로움으로부터 겨울의 백색풍경을 새롭게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시인은 우주에서 생존하고 있는 모든 사물들의 말소리를 인간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 즉 지방사투리로 비유했습니다.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이 물질과 어울려 화살로 되었다가, 안장형의 긴 하품 되였다가, 안으로 혹은 밖으로 열심히 튀는 방언속의 돌꽃이 되었다가, 배꼽에 눈이 달린 블랙홀의 두령이 되기도 하는 등 하늘아래로부터 우주의 무한한 공간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무수한 오아시스를 펼쳐놓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전반 시 흐름을 보면 주제를 부각시키려는 작가의 목적성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그 어떤 고전 ‘관념’이란 찾아 볼 수 없으며 사물 자체를 상상적으로 관찰하여 의식하였으며 이질적인 이미지로 우주의 자연생태를 음양학으로 잘 풀어 나간 것 같은 양상을 보입니다. 그 골격들을 종합해 본다면-- 1연은 태양의 절주를, 2연은 달빛의 교묘함을, 3연에선 사계절변화를 그려내면서 화살이라는 사물의 유사점, 직유와 인접성을 틀어쥐고 자연사물로부터 밤/낮, 강함/약함, 빛/어둠, 높고/낮음, 유/무, 현실/상상을 대조시키면서 자연이 인류에 주는 혜택을 하나의 ‘방언’으로 친절하게 다가오게 했으며 인간과 자연의 생태변화를 초월적인 심상으로 지혜롭게 이어 놓았고 각 연과의 틈새- 초월의 공간에서 작자는 단절과 분열, 뛰기와 통합으로 우주 목소리를 한수의 시 속에 묶어 넣고 시간과 속도의 장단을 복합적 네트워크로 잘 연결해 놓았다고 봅니다. 한편으로 이 시는 단락과 편폭이 좀 늘여져 있는 것 같고 시어가 조금 더 소박하게 안겨 왔으면 더 친근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게 됩니다. 2018년 4월 29일 /《송화강》잡지 2018년 제3기 =========================                
6    시속에서 무한한 세상이 펼쳐진다... 댓글:  조회:2193  추천:0  2018-06-25
리좀의 원리가 잘 녹아내린 시 --박문희 시 를 읽고서 □ 방순애 하이퍼시 쓰기는 전통적 사고에서 벗어나 이질적인 모든 것에 대한 새로운 접속 가능성을 열어젖히며 다양성을 추구하는 리좀적 사유의 글쓰기입니다. 이른 바의 리좀(Rhizome)은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저 《천 개의 고원》에 등장하는 은유적 용어 혹은 철학 용어로서 원래의 리좀은 지하경을 의미합니다. 철학용어로서의 리좀은 이항 대립적이고 위계적인 현실 관계 구조의 이면을 이루는, 자유롭고 유동적인 접속이 가능한 잠재성의 차원으로, 관계 맺기의 한 유형입니다. 질 들뢰즈에 따르면 리좀은 시작도 끝도 갖지 않고 언제나 중간을 가지며 중간을 통해 자라고 넘쳐나면서 어떤 지점이건 다른 어떤 지점과도 연결 접속될 수 있고 또 연결 접속되어야만 합니다. 언제나 많은 입구를 가지고 있으면서 탈영토화의 운동들과 재영토화의 과정들이 끝없이 가지를 쳐 나가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끌어내고 교대하며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갈 수 있게 합니다. 이런 리좀의 원리를 적용하여 아래 박문희 시인의 시 을 분석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다사한 허공에 말뚝을 박고 처마 밑에 숨어든 달빛 소나타 문틈으로 샌 부나비 작은 불빛 잔등에 걸터앉아 부항 든 가슴의 낭만을 앵금으로 떨어낸다 바람과 다툰 노을 기와의 귀에 아픔을 호소하고 음달 안고 자던 꿈에서 깨며 풀벌레 넋은 밤 노래 열창한다 뽕잎 포식한 밤 누에 하현달 흘린 미음 베고 잠들고 세월에 비틀린 고목 달빛 잔해로 허기 달랜다 -- 전문 이 시는 3연으로 되었는데 각각 다른 상상력의 조합입니다. 어떻게 보면 상상력 공간의 이동이라 할 수 있고 지하경(뿌리줄기)에서 횡적으로 열매달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럼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1연: 다사한 허공에 말뚝을 박고 처마 밑에 숨어든 달빛 소나타 문틈으로 샌 부나비 작은 불빛 잔등에 걸터앉아 부항 든 가슴의 낭만을 앵금으로 떨어낸다 1연 6행입니다. 1행에서 ‘다사한 허공’을 등장시킵니다. 시인은 상상의 공간에 ‘말뚝을 박’는다는 현재 시점을 끌어들입니다. 시가 동적으로 되여 있기에 한 장면의 영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2행, ‘처마 밑에 숨어든 소나타’ --1행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다른 이미지입니다. 끝도 시작도 없이 중간으로 시작된 이미지를 시각화시켰습니다. 3~4행 ‘문틈으로 샌 부나비/작은 불빛 잔등에 걸터앉아’가 한 이미지이고 5~6행 ‘부항 든 가슴의 낭만을/앵금으로 떨어낸다’가 또 다른 이미지입니다. 부나비가 두개의 이미지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탈영토화에서 영토화하고 재령토화에서 다시 탈영토화를 시도합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초월적인 변형에서 무의식 속에 은폐되어있는 환영을 만들어 냅니다. 1련의 정적 단어는 ‘말뚝-소나타-부나비-불빛-가슴의 랑만’이고 동적 단어는 ‘박고-숨어든다-걸터앉아-떨어낸다’입니다. 이 두 가지 단어들이 한데 어울려 시어를 만들어 냄으로써 영상화로 움직임을 나타냅니다. 뿌리줄기에 횡적으로 달린 환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낙화생이 뿌리줄기에 달린 것처럼. 2련: 바람과 다툰 노을 기와의 귀에 아픔을 호소하고 음달 안고 자던 꿈에서 깨며 풀벌레 넋은 밤 노래 열창한다 2련은 두개의 이미지입니다. ‘노을’이 ‘아픔을 호소’하고 ‘자던 꿈에서 깨며’가 한 이미지이고 ‘풀벌레 넋’이 ‘밤 노래 열창한다’가 다른 하나의 이미지입니다. ‘노을’과 ‘풀벌레 넋’은 정적 언어이고 ‘호소’, ‘깬다’, ‘열창한다’가 동적 언어입니다. 이런 동적 언어로 하여 그림 같은 시각성을 보여줍니다. 탈영토화의 선에 의해 한 가지 다양체가 다른 다양체와 연결접속을 하였습니다. 납득이 잘 안 되는 것 같지만 지면을 따라 모든 방향으로 갈라지는 확장에서 구근과 덩이줄기 갈래 길에서 응고에 이르는 리좀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3연: 뽕잎 포식한 밤 누에 하현달 흘린 미음 베고 잠들고 세월에 비틀린 고목 달빛 잔해로 허기 달랜다 3련은 4행입니다. 한연에 두 가지 이미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뽕잎 폭식한 밤 누에/하현달 흘린 미음 베고 잠들고’인데 여기서 ‘하현달 흘린 미음’은 환유적 표현을 하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세월에 비틀린 고목/달빛 잔해로 허기 달랜다’입니다. 한 줄기에 두개의 열매가 접속되어 달려있습니다. ‘밤 누에’, ‘비틀린 고목’ 이 성질이 다른 언어를 한 개 연에 구사하여 수평적 건너뛰기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징은 방사형으로 확장할 수 있는 횡적 연접의 기법이 아닌가 필자는 생각합니다. 총적으로 박문희 시 는 3개 연에 7개의 이미지들이 횡적으로 연결접속을 하여 자기들만의 그림들을 영상화에로 이끌어갔습니다. 사물들의 공감대라는 것은 차원이 다른 사물들의 연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시를 통하여 시속의 사물들이 서로 공감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려 하였습니다. 이 사물들은 이 시의 자연을 대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감대’란 매개물을 통하여 자연물의 조화를 노래한 것 같습니다. 이들 이미지들은 어느 것도 시의 중심이 되지 않습니다. 무중심 이미지들이 중간에서 연결접속 되었습니다. 중심 이미지가 없는 시, 나름대로 나타내는 이미지로 된 하이퍼시라 하겠습니다. 박문희 시인님의 시 는 리좀의 원리가 잘 녹아내린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이퍼시는 새로운 이미지의 생성을 강조하고 현실과 초월의 선에서 넘나들며 새로운 탐색을 요구합니다. 또한 사고의 확장과 무한한 연결 가능성을 통해 다양체를 추구하고 탈관념을 실현합니다. 구체적으로 단선구조의 틀을 깨고 다선구조의 틀을 새로 구축함으로써 시인의 상상을 객관적 이미지로 표현하고 정적 이미지를 동적 이미지로 변환시켰습니다. 이처럼 문장을 구성할 때 가급적 추상적인 것을 극복하고 명사구와 동사구를 잘 응용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단 하나의 상징이 많은 사람을 감동시킬 때도 있는데 한수의 시 안에 여러 가지 참신한 이미지들이 접속되어 있다면 경우에 따라 그 아름다움은 몇 곱절 커질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런 형식으로 무수히 많은 다양체들이 접속점을 찾아 이미지로 연결된다면 시 속에 무한한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2018.4.29 /《송화강》잡지 2018년 제3기
5    시속에서 사랑의 노래가 펼쳐진다... 댓글:  조회:2117  추천:0  2018-06-25
랑송동시에 대한 소견 ㅡ최문섭 랑송동시와 한국 랑송동시 비교로부터 본 “랑송시”   김철호    1.랑송시에 대하여   사전(조선의 6권 ”조선말 사전”, 한국 “새 우리말 큰 사전”, “엣센스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는데 “랑송”은 있었지만 “랑송시”라는 단어는 없었다.    6권사전에서는 “랑송”에 대해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1. (시를)음률적으로 류창하게 감정을 표현하면서 소리 내여 읽거나 외거나 함. 2.글을 류창하게 소리내여 욈. “새 우리말 큰 사전”에서도 대체적으로 해석이 같았다. 반면 “엣센스 국어사전”에서는 “랑송”을 “소리 내여 글을 읽음” 하나로 해석하고 있다.    “랑송시”는 “서정시”같은 시처럼 제이름을 가지고 명사화되여 사전에 오른 시가 아니였다.   그렇다면 “랑송시”가 없는가? 아니다. “랑송시”는 있다. 모든 시는 다 랑송 가능하며 랑송할 수 있는 시는 다 “랑송시”다. 난해한 시, 몽롱한 시는 랑송할 수 없는가? 얼마든지 랑송할 수 있다. 난해한 음악, 난해한 미술 작품(요즘엔 난해한 무용까지 나타나고 있다)에 대한 리해가 어려운 것처럼 청취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열 오른 눈초리, 하잔한 입 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년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쁜히 앉는다 이윽고 총 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몰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내다 보았다   ㅡ아이! 어쩜 바다가 이렇게 똥그랗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 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릴 처박곤 하얗게 화석이 되여 갔다 (“에피소드/조향)   이 시는 초현실주의적인 시인데 작품의 특징은 돌발적인 이미지의 결합에 있다고 “한국명시”라는 책에서 해석하고 있다. 주제는 “잠재의식 속에 느끼는 아름다운 에피소드”라고 한다. 랑송은 가능하다. 시에 대한 해득은 각자 소양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이 시를 이미 읽었거나 잘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랑송을 통해 미적인 향수까지 느낄 수 있을 거고 처음 접촉하면서 시에 대한 깊은 훈련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생뚱맞은 소리로 지어 미친 소리로 들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호화가 많이 된 같은 시는 랑송불가하지 않을가 생각한다.   례컨대 나의 동시 “메아리”가 그렇다.   이쪽에서 파도가 밀려가면   (((((((   저쪽에서 파도가 밀려오고   )))))))   때론  중도에서 만나기도 하고   ((((( )))))   또 서로 등지기도 하고   ))))) (((((   왔다갔다 만났다 헤여졌다 변덕도 많구나 (“메아리” 전문. 동시집 “하얀 심장”)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류의 초기단계에 먼저 나타난 것이 음악이였다고 한다. 소리로만 초기 예술적감정을 표현했다는 말이다. 그 다음 그 소리에 말을 삽입하여 소리의 뜻을 더 명확하고 감명 깊게 나타내게 하였는데 그 말이 초기의 시(사)이다. 시가 소리(음악)와 떨어져나와 독립적인 장르로 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그때의 시는 무조건 랑송을 위한 글이였다. 즉 시 자체가 바로 랑송을 위해 지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시면 랑송하는 글이고 랑송하는 것은 바로 시라는 것이다. 따로 “랑송시”라고 구별화되여 있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태여 구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뉘여지는 걸로 배웠다. 그 하나는 서정시이고 다른 하나는 서사시이다. 두 형태를 합한 시가 서정서사시이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를 문학공부를 좀 한 사람이면 다 알것이다. 유럽문학의 최대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이다. 소설같은 신화이야기를 시화한 것이다.    조기천의 유명한 “백두산”은 장편서정서사시이다.    삼천만이여! 오늘은 나도 말하련다! “백호”의 소리 없는 웃으에도 격파 솟아 구름을 삼킨다는 천지의 푸른 물줄기로 이 땅을 파몰아치던 살풍에 마르고 탄 한가슴을 추기고 천년 이끼 오른 바위를 벼루돌삼아 곰팡이 어렸던 이 붓끝을 육박의 창끝인 듯 고루며 이 땅의 이름없는 시인도 해방의 오늘 말하련다! ("백두산" 첫부분)   그외의 시는 대개 거의 다 서정시에 속한다.   시가 랑송을 위해 태여났다는 가장 유력한 증거는 시를 “운문(韻文)”이라고 한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운문이란 일정한 규율과 압축, 음악성이 있게 지어진 글을 말한다. 즉, 시는 화성과 률동의 본능에서 발생한 사물이다. 그럼 시는 왜 이렇게 지어지는가? 바로 랑송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시는 랑송을 목적으로 이 세상에 태여났으며 그 대부분 시는 영원히 랑송을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물론 랑송 외의 목적도 있지만 그것은 본고의 주제를 위해 생략하겠다.)   세계에는 수백 만, 수천 만 수의 시가 있고 매일 같이 수천, 수만의 시가 새롭게 창작되고 있지만 그 시에다 “랑송시”라고 따로 규명해 내놓은 시는 별로 없다. 시는 원래부터 랑송을 위해 태여난 글이기에 하필이면 “랑송시”라고 규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2.우리가 말하는 “랑송시”란 어떤 시인가?   이렇게 랑송시란 따로 없고 모든 시는 다 랑송 가능하며 랑송 가능하면 랑송시인데 우리는 왜 “랑송시”를 따로 말하려 하며 우리가 말하는 랑송시란 과연 무엇인가?   이 문제를 풀려면 나의 체험으로부터 “랑송시”에 대한 인식을 피력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무산계급문화대혁명”을 겪어본 사람라면 랑송시를 가장 많이 체험했을 것이라고 본다. 저 유명한 대형 혁명서사극 “동방홍”의 해설은 시로 엮어지였고 많은 사람들의 신금을 울려주었다. 물론 더 거슬러 올라가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 대약진, 인민공사, 반우파투쟁… 많은 력사적인 사변 속에서 “랑송시”라는 형식의 시가 그때의 형세를 위해 역활을 하였다. 그때는 문학예술이 독립성적(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혁명이라는 큰 기계의 하나의 부속품 내지 라사못이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이데올로기와 체제선전을 위한 하나의 도구였던 문학이 그러한 역활을 담당함은 자명한 일이였다.   새가 군살을 많이 달면 높이 날지 못한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문학이라는 원형의 살 외의 살은 덜어내야 문학으로서의 나래를 활짝 펼수 있고 높이 날수 있다. 이러한 여건이 개혁개방과 함께 우리 앞에 나타났다. 중국에서의 문학예술은 차츰 제 궤도에 들어서게 되였으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독립적인 봉오리를 찾게 되였다. 그러나 “좌”적 사상의 여독은 문학의 피속에 섞여 지금까지 문학의 몸에서 흐르고 있는데 우리는 때론 그것을 잊고 그것에 수긍한다. “랑송시”가 바로 그렇다.   3.최문섭의 랑송시로부터 본 현상     최문섭선생은 중국조선족동시단에서 성과작이 수두룩할뿐만 아니라 인격적 품위 또한  높은 동시인이다. 동시집 “물노래 돌노래”(연변인민출판사 2011년)는 그의 생전의 마지막 작품집일 것이다. 최문섭선생이 여러가지 형식의 동시탐구에 힘을 기울려 성과를 따냈다는 것이 이 동시집에서 표현되고 있다. 이 동시집은 “동시편”, 동요편”, “동시조편”, “랑송동시편”으로 묶어졌는데 우수한 동시가 아주 많다.   최문섭선생 작고 1주년 세미나에서 나는 이 동시집을 평한 “어린이의 본능적 특징으로부터 본 최문섭 동시ㅡ최문섭동시집 《물노래 돌노래》심독(心讀)”이라는 제하의 글을 발표했다. 그 평론이 그후 최문섭기념동시선집 “콩나물”에 실렸는데 무슨 원인에서인지 랑송시를 평한 부문이 삭제되여 있었다. 그 부문의 일부를 복원해 본다.   최문섭동시집《물노래 돌노래》에는 동요편, 랑송시편, 동시조편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비해 이런 형식의 시는 그 표현력이 강력하지 못하고 낯설지가 않다. 특히 동요들은 형식의 새로운 추구거나 내용의 파격적인 돌파가 없었다. 눈에 확 띄이지 않았고 너무 평범하고 수수해 보였다.(중략)  우에서 살펴본 최문섭시인의 동시들로부터 우리들은 최시인이 퍽 자유로운 사유를 바탕으로 동시를 다루었다는것을 느꼈다. 그러나 랑송시에 와서는 그 자유로움이 스톱되는 느낌이다. 어딘가 얽매인 매듭을 풀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이 엿보였다.   “소년아동창간 60돐에 드림”이라고 소제목을 달고 쓴 랑송시 “꽃대궐”, “북경올림픽길상물을 노래하여”라고 소제목을 달고 쓴 “다섯 복동이”, “고 김례삼선생님 령전에 드림”이라고 소제목을 달고 쓴 “고개길 넘어가신 할아버지”, “중국조선족소년보창간 60돐을 맞으며”라고 소제목을 달고 쓴 “하얀 축복 드린다” 이러한 랑송시에서 동시인은 자유분방한 개성을 꺾으면서 정해진 주제를 위해 필을 날릴수 밖에 없었기에 시적인 표현이 예술화되지 못하고 “위하다”에 목매일 수밖에 없었다.(중략)    이 평론에서 나는 최문섭 랑송시의 편폭에 대해 파악하기도 했다.   편폭: “봄맞이가자” 54행, “꽃대궐” 32행, “다섯 복동이” 46행, “꽃명절” 40행, “10월의 하늘 아래” 37행, “고개길 넘어가신 할아버지” 42행, “하얀 축복 드린다” 55행   그 편폭이 일반 동시에 비해 다 길다. 그 중 가장 짧은 랑송시 “꽃대궐”도  32행이나된다. 그럼 “꽃대궐”을 보자.   꽃대궐 ㅡ”소년아동”창간 60돐에 드림   봄바람 살랑살랑 세월의 언덕 넘어 불어오고 뾰족뾰족 연푸른 싹 새봄 맞아 이슬비에 돋아난다 울긋불긋 칠색으로 단장한 꽃대궐ㅡ “소년아동”잡지 창간 60돐 프랑카드 명절의 춤사위에 받들려 눈부시다   오너라, 아이들아 꽃다발 흔들며 채색풍선 날리며 노래하자! “소년아동”이 걸어온 발자취를 경축하자! 우리들의 즐거운 생일을 중국조선족 첫 어린이잡지 영원한 아이로 거듭나는 “거인” 지금 활개치며 힘차게 걸오온다   “소년아동”은 우리네 꽃동산 일년 열두달 꿀샘 솟는 여기에 지식의 바다가 출렁이고 과학의 궁전이 눈비시다   “소년아동”은 우리네 길동무 이곳엔 흰옷의 전설이 숨쉬고 미래의 훌륭한 꿈이 어려있다   아이들아, 오너라! 깔끔한 새옷 입은 “소년아동”이 우리를 손짓한다 신기루같은 찬란한 래일을 창창한 하늘가에 걸어놓고 우리를 꼬드긴다 새 희망 안고 훨훨 우주의 한끝까지 날아가라고!    보는바와 같이 이 랑송시는 그 어떤 예술을 위한 추구가 아니라 하나의 아동잡지를 위한 가송이다. 모든 가송이 다 그러하듯 이 가송도 부풀리고 춰주는 것으로 일관되여 있다. 이런 랑송시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위한 시상(詩想)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송가이다. 동시라는 순수한 장르를 빌어서 어른의 욕구를 발설하는 행위인 것이다.    개혁개방 이전,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선전을 위해 시가 많이 전락되여 문학적인 색갈을 잃고 말았는데 랑송시라는 것이 둔갑하면서 그 갑질이 더 심했다. 그런데 최문섭선생은 개혁개방이 많이 진행되였고 문학이 본연에로 많이 복귀하고 있었던 상태에서 이같은 랑송시를 창작한 것이다. 정치가 문학에 준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반증이다. 이런 시를 랑송하라고 하면 자각적으로 랑송할 어린이가 한명이라도 있을가?    주지하다 싶이 랑송시는 ‘랑송시”라는 초유의 이름을 갖고 등장해서 선전선동의 도구로 전락되였고 지어 무대에까지 올라서 한 시대를 풍미하기도 했다. 그 영향력이 아주 강해서 오늘날 어떤 사람들에 의해  “랑송시”라는 하나의 독립적인 풍격의 시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였다.     4.한국의 랑송시     과연 랑송시라는 독특한 형식의 시가 있어야 하는가? 랑송시가 과연 우리가 념두에 두고 있는 그런 형태의 시인가?    연변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성인시의 경우 랑송시를 따로 말하는사람이 거의 없다. 랑송시가 고갈되였다거나 랑송할 시가 없다고 대성질호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한국에 가서 여러번 전국시랑송대회를 관람한 적이 있다. 그런 시랑송대회에서 랑송시를 따로 지어서 시를 랑송하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본적 없었다. 대개는 기성시인들이 창작한 우수한 시였다. 가장 많이 랑송된 시는 윤동주의 “별 혜는 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유치환의 “행복”, 서정주의 “국화 앞에서”, 한룡운의 “님의 침묵”, 마종기의 “우화의 강”… 그 외에도 노천명, 신동엽, 황금찬, 박제천, 정호승, 이외수, 김광섭… 지어는 소설가 박경리의 시까지 랑송되였다. 이들 시는 이른바 “랑송시”라는 얼굴로 창작된 시들이 아니라 읽히고 사랑받는 가운데서 무대에 오른 시들이였다.   연변에서도 지금 시랑송대회 같은 것이 보급되여 많은 시들이 랑송되고 있는데 내가 알기에 랑송시라고 따로 창작한 시들이 한 수도 없다. 다 랑송자가 자신이 랑송하기에 합당한 그냥 시를 골라서 랑송하는 것이다.   시가 랑송자를 통하여 청중과 만날 때 완벽한 커무리키이션(즉 출연자의 동작, 음성기호)이 이루어져 소통되여야 하는데 극 소부분 시를 제외한 대부분 시들이 이런 임무를 감당할 수 있다. 표현자의 연기가 줄충하기만 하면 지어 어려운 시도 청중에 가 닿을 수 있다.     5.한국의 랑송동시     그럼 동시에서는 꼭 랑송동시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가? 랑송동시가 없어서 애들이 랑송동시 가뭄에 들어 허덕이는가? 랑송동시를 두고 나는 여러 해를 고민하였다. 여러 사람과 토론도 해보았다. 한국에 갈 때마다 서점을 돌면서 혹시 랑송동시집 같은 것이 없을가 찾아 보기도 했다. 금년 1월, 아들집 가까이의 이름 없는 서점에서 우연찮게 랑송동시집을 발견하게 되였다. 물론 보배가 따로 없었다. 랑송동시집을 사갖고 집에 온 나는 단숨에 시집을 다 읽었다.    이 “랑송동시집”(전 3권, 1, 2학년 편, 2, 3학년 편, 5, 6학년 편)에는 전래동요 1수 외에 92명 동시인이 지은 동시 157수가 올라있었는데 놀랍게도 많이 류전되고 사랑받던 한국의 동시들이 거의 다 올라있었다. 한국의 저명한 동시인 김종상의 동시가 도합 6수가 올라있고 두번째로 문삼석동시인의 동시가 5수, 제해만 동시인의 동시가 4수 올라있었다. 엄기원, 손동연, 유경환, 이준관, 하청호, 손세광, 최계락, 오순택, 권영상, 박두순… 등 많은 동시인의 작품들이 두 세수 씩 올라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내가 “동시야 놀자”문학췬에다 한국의 동시 600수를 골라 올렸는데 이번에 구입한 한국 “랑송동시집”에 그 시들이 거의 다 있었다. 우리의 눈으로, 더 정확히 말하면 “랑송시”라는 초유의 시를 발명한 사람들의 눈으로는 도무지 통하지 않는 그런 동시들이 다 랑송동시였다.   랑송동시집의 첫페지를 장식한 동시는 문삼석동시인의 “이른 봄 들에서”였다.   사르륵 사르륵   “여보세요, 계세요?”   속삭이는 봄비.   소로록 소로록   “누구세요? 나가요.”   내다보는  새싹. (“이른 봄 들에서” 전문)   이 랑송동시집에 실린 문삼석동시인의 다른 한 동시를 보자.   누가 뿌렸나? 그 많은 씨앗.   하늘 밭 가득 촘촘한 씨앗. (문삼석 “별” 전문)   도합 20자밖에 안되는 이미지 단시이다. 이 “랑송동시집”에 실린 많은 동시가 “이른 봄 들에서”와 같은 이미지동시였다.    꽃/이봉춘   꽃은 손이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꽃은  발도 없다   그러나  산을 넘어 먼곳까지 잘도 간다   돌다리/하청호   깡충 깡충 별들이 건너뛰다가   퐁당 퐁당 물 속에 빠져 버렸다   반짝 반짝 냇물 속에 빠진 수, 수만의 별 별들   꽃씨/최계락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가니 꽃도 피어 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 떼도 숨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지시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나는 시에 새로운 이미지가 없고 새로운 시적 발견이 없다면 훌륭한 시가 될수 없다고 본다. 엄격히 말하면 새로운 이미지는 훌륭한 시를 싹트게 하는 종자라고 할수도 있다.    이미지를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미지란 시에서 표현되는 원관념의 다른 한 형상이다. 어떤 시를 읽을 때 우리는 그 시 밖의 그림이 떠오른다. 그 그림이 바로 이미지이다. 시를 읽는데 머리 속에 그림이 생기는 것이다. 그 그림이 이미지이다.    랑송동시집에 이런 동시가 있다.   산 위에서 보면 학교가 나뭇가지에 달렸어요   새장처럼 얽어 놓은 창문에 참새 같은 아이들이 쏙 쏙 얼굴을 내밀지요   장난감 같은 교문으로 재조잘 재조잘 떠밀며 날아 나오지요 (김종상 “산 위에서 보면” 전문)    이 시를 보고 머리 속에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는 학교가 하나의 새장으로 떠오르고 그 새장 속의 아이들이 새가 되여 날으는 장면. 나뭇가지 사이로 본 학교가 하나의 새장이라는 시적 발견은 아이들을 새라는 이미지로 둔갑시켜 아름다운 화폭을 안겨준다. 독자의 머리속에는 동화같은 커다란 그림이 그려지기 마련이다. 그 그림이 바로 이미지이다.    어떤 사람들은 시는 이미지 만들기이며 이미지가 없으면 시가 될 수 없다고까지 말하는데 과한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시의 발전사를 살펴보면 초기에는 직설적인 표현, 현실주의적 표현이였다. 현대시에 접어들면서 이미지창조가 필수로 되였다. 시에서 이미지창조는 지금까지는 최고의 표현수법이다. 하이퍼시에서는 그 이미지 창조를 한 시에서 여러번 나타내고 있다.    주제를 떠난 이야기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의 많은 동시가 이미지동시이고 이런 동시를 랑송하는 것이 실제적인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감이 옳다고 본다.   이처럼 한국의 “랑송동시집”에는 우리가 평소에 말하던 그런 보통 동시로 일색되여 있었다. 1, 2학년, 3, 4학년, 5,6학년 별로 묶어졌고 심도가 차츰 깊고 편폭이 길어지는 것 빼고는 다 보통시였다. 특별히 랑송을 위해 창작한 그런 시들이 아니였다는 말이다.   편폭이 좀 긴 5, 6학년편에 실린 동시 한편을 살펴보자.   꽃길   유경환   순한 짐승들 지나다닌 길목에   사슴 발자국대로 사슴꽃 피고 노루 발자국대로 노루꽃 피고 토끼 발자국대로 토끼꽃 피고   이름 없는 짐승이면 이름없는 꽃 피고   재주 한번 넘어 사슴 되고 재주 한번 넘어 노루 되고 재주 한번 넘어 토끼 되고   심심할 땐 혼자서 이름 없는 짐승   꽃길 속에 그 누구 들어올 때까지 나는 재주 잘 넘는 왕자이고 싶다   사슴꽃이 어떤 꽃인가를 노루꽃이 어떤 꽃인가를 토끼꽃이 어떤 꽃인가를   심심할 땐 혼자서 그리며 생각한다 (“낭송동시집” 5, 6학년 편 86페지)   산짐승이 지나간 발자국이 꽃이 된다는 아름다운 이미지의 동시이다. 사슴 발자국은 사슴꽃, 토끼 발자국은 또끼꽃이라는 발상은 동화적이다. 이 동시에 대한 랑송법을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랑송법   1연은 자연스럽게 읽고, 2연은 한 행씩 또박또박 읽어 갑니다. 그래서 3연에 이르러 더우 또렷하게 낭송해 줍니다. 4연도 2연처럼 읽습니다. 그리고 5연도 3연처럼 또렷이 읽어 의미를 강조해 줍니다. 6연은 동화 구연하듯, 상상의 세계로 안내해 줍니다. 7연에서는 설명하듯 한 행씩 분명한 어조로 낭송하는 것이 좋습니다. 끝 연은 조용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천천히 읽습니다. 시 낭송의 끝은 항상 끝나는 느김이 충분히 나도록 읽어 주어야 됩니다.    동시는 문학이며, 최고의 문학이다. 우리는 문화대혁명같은 시절에 문학으로 정치를 하던 그런 작법을 답보해서는 안된다. 누군가 정치는 협치 내지 타협이지만 문학은 협치가 되거나 타협의 상대로 되여서는 안된다고 했다. 문학은 극히 개인적인 작업이며 예술적인 창조다. 랑송시라고 해서 “아, 오…”를 련달아 외치거나 없는 감정을 토해내면서 그 무엇에 아첨하는 따위 짓거리를 이젠 영영 버려야 한다.     6.어린이가 읊기 좋아하는 시가 바로 랑송동시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최문섭선생이 쓴 그런 동시는 어른의 강요가 아니면 어린이들은 절대 랑송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몇년전 도문에 가서 어린이들의 시랑송경연을 본적 있다. 어린이들이 랑송하는 동시는 거의 다가 연변 동시인들의 동시였다. 소개에 따르면 어린이들의 자각적인 선택과 선생님의 추천으로 시가 배분되였다. 그런데 한 동시를 두 아이가 랑송했다. 그 동시가 바로 나의 동시였다. 대표작도 아니고 스스로 잘 썼다고 생각하는 동시도 아니였다. 곁에 있는 허송절선생에게 저 동시는 왜 두 아이가 랑송하게 되였는가고 물었다.  두 아이가 다 저 동시를 선택해서 한 아이에게는 다른 동시를 랑송시키려고 했는데 두 아이가 다 기어이 저 동시를 랑송하겠다고 해서 이렇게 되였다고 했다. 두 아이가  자각적으로 선택했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였다. 그 동시를 보자.    꽃은 왜 웃나/김철호   꽃이 왜 웃냐 하면 꽃이 왜 웃냐 하면   바람이 살랑살랑 간지럽혀서 해죽해죽   꽃이 왜 웃냐 하면 꽃이 왜 웃냐 하면   해살이 살랑살랑 간지럽혀서 해죽해죽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이 읽고 싶어 하는 동시가 있다. 강요는 금물이다. 우리가 랑송시랍시고 아무리 멋지게 지어서 준다고 해도 그것이 아이들에게 통하지 않으면 어른의 넉두리를 아이의 입으로 하는 꼴 이상이 될수 없다.    아이들에게 좋은 시를 읽게 하고 랑송하게 하는 것은 아이들이 그 시와 접하면서 상상력을 꽃피우고 아름답고 멋진 시상 속에서 건강하게 크라는 것이 목적이 되여야 하지 어른의 그 어떤 선전이거나 선동, 속풀이가 목적이 되여서는 절대 안된다고  본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우리의 동시인들이 창작한 거의 모든 동시가 다 랑송 가능하며  랑송할 동시가 없어 아이들이 목말라하는 것이 아니라 차고 넘치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다.    문학이 아닌 그늘에서 습관화된 그런 의식을 버리고 문학의 본연에서 창작을 정진하게 하는 것이 오늘 날의 우리의 자세가 되여야 한다고 본다.    이른바 “랑송시”는 없다. 시가 있을 뿐이다. 모든 시는 거의 다 랑송 가능하며 시는 처음부터 랑송을 목적으로 창작되였다. 이이들의 가슴에 가 닿는 아름답고 멋진 시를  창작하여 많이 읽히고 랑송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일뿐이다. 아이들에겐 있지도 않는 어른의 서정을 갑자르면서 어린이화하여 내 쏜들 그것을 아이들이 받아줄리가 없다. 동심에 잘 기대여 우리가 창작한 동시가 바로 “랑송동시”이다.   7.글을 마무리하면서   “랑송동시집” 서문의 한 단락으로 이 글을 마무리 지을가 한다.   시는 우리가 본디부터 타고 난 귀한 사랑의 마음을 제일 고운 언어로 다듬어 낸 가장 자랑스러운 사랑의 노래입니다. 옛날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가 “시란 정을 뿌리로 하고 말을 싹으로 하며, 소리를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한다”라고 한 것도 이 점을 지적한 말입니다.   ㅡ미안해 넘어뜨리려고 그런게 아니야   새싹은  봄이면 돋아 나지만 내가 요만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기까지엔 봄날이 수없이 지나가야만 했어   파란 하늘을 본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누구든 붙잡고 이야기 하고 싶었어 달라진 세상, 궁금한 게 너무 많았지  그렇지만 기쁨은 잠깐, 사람들은 날 피해 다녔어 난 쓸쓸했지   그 때, 네가 가까이 온 거야 너무 반가워 덥석  네 발을 잡았지   너와  친구하고 싶었어 (“돌부리” 이혜영)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나뒹굴어져 발목을 삐거나 팔꿈치가 벗겨질 수도 있고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습니다. 아찔한 순간입니다. 그런데도 돌부리를  미워하거나 원만하지 않습니다. 내 발을 걸어 넘어뜨린 돌부리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봅니다.   돌 한 덩이가 길바닥을 뚫고 숫아나 돌부리로 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걸립니다. 그래서 깜깜한 땅 속에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밝은 햇볕 아래서 푸른 하늘을 보는 순간은  너무나 큰 감격입니다. 누구든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친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발을 잡은 것이지 넘어뜨리려고 그런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돌부리의 마음이 눈물겹습니다.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는 미움보다 뜨거운 정을 느끼게 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노래인 시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시를 많이 외우고 감상하면 가슴 속에서 저절로 사랑이 자라나고 마음과 말씨도 고와집니다. 마음과 말씨가 고와지면 행동이 착해지고 행동이 착하면 생활이 건강해져서 사회가 정의롭고 아름다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시는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랑의 노래인 것입니다. ///2018년 아동문학세미나에서 발표  
4    [쉼터] - 시월컬컬 막걸리 한잔 하시쥬... 댓글:  조회:2550  추천:0  2018-06-25
전통찹쌀막걸리, 우리 술이라 더욱 정감이 가는… 작성자: 恩你小木屋米酒店 달착지근하고 시원해서 저도 모르게 자꾸 따라서 마시게 되는 막걸리, 우리의 전통술이라 더욱 애착이 간다. 퇴근 후 술 한잔 걸치려고 들린 술집, 막걸리가 없다고 하면 녀성애주가들은 왠지 서운해진다. “요즘 젊은이들은 민속음식을 만들줄은 잘 몰라도 선호도는 높은편입니다. 저는 막걸리를 좋아하던 데로부터 막걸리 전문음식점을 차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두막막걸리를 시작하게 되였습니다.” 막걸리를 주요 아이템으로 내세워 5년 사이 전국 가맹점 103개라는 창업신화를 일궈낸 ‘오두막막걸리’ 박은희 사장의 막걸리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각별하다. “막걸리는 요즘 웰빙주라고도 불립니다. 특히 녀성들한테 인기가 높지요. 식이섬유와 단백질, 미네랄이 함유된 영양의 보고이기 때문이죠. 막걸리의 식이섬유는 혈관을 청소해 심혈관질환 예방에 좋고 빚는 과정에 누룩이 들어가기 때문에 소화를 돕습니다. 소화가 잘 안되는 사람이라면 식후의 막걸리 한잔은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막걸리에는 필수아미노산 10여종이 들어있고 단백질이 맥주의 약 4~5배 들어있다. 또 유산균은 생막걸리 100리터에 약 1억~100억마리가량 들어있어 그야말로 건강한 음료이다.   ‘오두막막걸리’에 가면 막걸리의 진화를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찹쌀막걸리와 옥수수막걸리외에도 블루베리막걸리, 오미자막걸리 등 색갈도 고운 생과일 막걸리들이 구전하다. 전통주이지만 요즘 주당들의 취향을 반영해 확실한 개성을 갖췄기 때문에 다양한 년령층 가운데 인기가 높다. 안주도 더 이상 선조들이 즐겼던 김치와 떡이 아니다. 불닭발, 오두막불고기 등을 비롯해 요즘 애주가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안주들을 ‘오두막막걸리’에서 거의 다 찾아볼 수 있다. 박은희 사장은 줄곧 막걸리, 맥주 등 다양한 술종류에 어울리는 메뉴를 연구, 개발하는 데 공을 들이면서 ‘오두막막걸리’는 기존의 맥주집과는 다른, 새로운 트랜드의 술집으로 자리잡았다. “우리의 전통주 막걸리라고 하면 옛날 오두막주점에 걸터앉아 시원한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켜고 다시 길을 재촉했을 법한 길손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런 정경을 상상하며 음식점의 인테리어를 오두막 컨셉으로 잡았습니다.” 내부는 원목으로 조선족 주거공간의 요소들을 살려서 인테리어를 했고 각족 민속기물을 소품으로 두어 민족특색을 선명하게 살렸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오두막막걸리’는 과연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특히 막걸리는 녀성고객들의 필수 주문메뉴가 됐다. 특히 외지에서 찾아온 손님과의 술자리라면 ‘오두막막걸리’와 ‘농부가’를 추천한다. 연변지역의 술문화를 함께 즐기고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를 소개하기에 제격이다.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정서와 추억이 담겨있는 하나의 문화지요. 가맹점이 전국 각지에 있기는 하지만 아직 막걸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막걸리를 브랜드화하여 우리 민속음식을 널리 알리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연변일보 리련화 기자
3    [고향스포츠소식] - "축구의 고향"에서 새싹들이 자란다... 댓글:  조회:2395  추천:0  2018-06-25
전국청소년교정축구련맹경기 고중남자조 결승경기 룡정해란강축구타운에서 2018년 06월 25일  작성자: 해란강축구타운 전국청소년교정축구련맹경기 고중남자조 결승경기 룡정해란강축구타운에서 2017-2018전국청소년교정축구련맹경기 고중남자조 결승경기가 6월 22일 룡정해란강축구타운에서 개막되였다. 이번 경기는 전국청소년교정축구지도소조에서 주최하고 중국중학생체육협회에서 집행했으며 룡정시인민정부에서 맡아서 중국중학생체육협회 축구분회와 룡정해란강축구문화타운에서 협조했다. 전국 4개 경기구에서 선발된 16개 대표팀의 320명 청소년 축구선수들이 룡정해란강축구타운에 모여 우승보좌를 향해 48차의 격렬한 각축전을 벌이게 된다. 개막식에서 룡정시 소학생들이 알심들여 준비한 단체무용과 가야금단체연주를 선물하여 이채를 돋구어주었다. 룡정시정부 부시장 류현화가 개막식을 사회했다. 룡정시정부 시장 권대걸이 대회에 축사를 드렸다.  선수대표가 선서를 했다. 중국대학생체육협회 부주석 왕강이 대회 개막을 선포했다. 중국대학생체육협회 부주석 왕강, 주정부 부주장 조어금, 룡정시정부 시장 권대걸, 룡정해란강축구문화투자유한회사 리사장 장문길이 킥오프를 했다. 연변1중 대표팀이 홈팀으로서 우룸치3중 대표팀과 제막경기를 펼쳤다. 경기는 29일까지 지속된다. 이번 경기는 우리 주 력사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한차례의 전국성 축구모임이다. 이번 경기가 우리주에서 펼쳐짐으로 하여 우리 주 교정축구보급을 추동하고 청소년 축구인재양성, 청소년 전면 성장 더나아가서 ‘축구의 고향’ 미명을 발양하고 우리주 축구문화산업발전, 축구문화특색진건설에 적극적인 의의가 있을것으로 전망된다.   
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참대곰은 놀음감이 아니다... 댓글:  조회:2980  추천:0  2018-06-25
판다와 함께하는 월드컵!... 6가지 종목 참가 [ 2018년 06월 15일 ]     쓰촨(四川, 사천) 아바(阿壩)주 워룽(臥龍) 선수핑(神樹坪) 판다 보호기지에서 중국 자이언트판다 보호연구센터와 영상 매체 ‘ipanda’가 함께 개최한 제21회 러시아 월드컵 기념 ‘판다와 함께하는 월드컵’ 행사가 열렸다. 2017년 태어난 8마리의 새끼 판다들은 6월 14일부터 7월 15일까지 ‘판다 축구 대회’, ‘판다 월드컵 만찬’, ‘판다 퀴즈 대결’ 등 6가지 종목의 월드컵 관련 이색 행사에 참가한다. 중국 자이언트판다 보호연구센터는 활동적이면서 이색적인 본 행사를 통해 월드컵 응원 및 판다 문화의 글로벌 전파를 실현할 계획이다.  ///중신넷/인민망                                    
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세상은 변하고 있다... 댓글:  조회:3550  추천:0  2018-06-25
사우디, 24일부터 여성에게 운전 허용 2018.06.25.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사우디아라비아의 코바르에서 한 사우디 여성이 차를 운전 중에 엄지를 치켜 세우고 있다. / 2018년 6월 24일, 사우디아라비아 코바르 ======================== facebooknavernaver   ▲ 경기장을 찾은 한 이란 여성이 열광적으로 자국 대표 팀을 응원하고 있다. 이란이 아닌 러시아이기에 볼 수 있는 모습니다. ▲ 이란-모로코 경기가 펼쳐진 러시아 상트페테부르크 스타디움. 관중석에 이란 여성들의 경기장 출입을 허락해 달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이란의 1-0 극적인 승리로 끝난 16일(한국 시간) B조 조별 리그 첫 번째 경기. 어느 한 관중석에 보인 “이란 여성의 경기장 출입을 허락해 달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블리처리포트’는 16일 “이란-모로코전은 축구 이상의 전쟁이었다. 그것은 자유를 위한 싸움이었다”며 “이란 여성들이 월드컵을 직접 경험했고 승리의 기쁨까지 누렸다. 그들은 이란 내에서도 이러한 감정을 느끼길 바란다”고 보도했다. 현재 이란은 경기장에 여성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란 여성은 TV나 라디오를 통해 간접적으로 축구 경기를 보고 듣기만 할 뿐 직접 경기장에 가서 관람할 순 없다. 만약 경기장 내 여성이 포착될 경우 곧바로 경찰들이 와 체포한다. 때문에 러시아 월드컵에서 축구 경기를 직접 지켜 본 이란 여성들은 하루빨리 자국에서도 경기장 관람이 허용되길 바라고 있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70세 이란 여성 로샤나크 빔은 “경기장에 입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큰 경기장에서 대표 팀이 어떻게 경기하는지 늘 궁금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란 여성은 “축구장에 온 게 처음이다. 정말 흥분된다”며 “우린 자유를 원한다. 자유롭게 옷을 입으며 경기장에서 마음껏 응원하고 싶다”고 강력히 호소했다. ‘블리처리포트’에 따르면 이란 내 많은 여성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이란 대표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 자국의 경기장 여성 출입 금지도 풀릴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월드컵 성적과 별개로 이란이 여성들의 경기장 출입을 실제로 허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내부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는 “점점 더 많은 이란 사람들이 경기장에 여성 출입을 허용하려는 움직임에 찬성표를 던진다. 하지만 정부 사람들까지 설득하긴 힘들어 보인다”고 밝혔다./맹봉주 기자     네덜란드, 공공장소서 부르카·니캅 착용 금지.. 히잡은 허용 유세진 2018.06.26.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코펜하겐=AP/뉴시스】 덴마크 의회가 니캅과 부르카 등 이슬람 베일 착용을 금지하기로 결정한 31일 당일 니캅을 쓴 두 여성이 의사당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18. 5. 31. 【헤이그(네덜란드)=AP/뉴시스】유세진 기자 = 네덜란드가 부르카와 니캅과 같이 얼굴을 가리는 이슬람 베일을 공공장소에서 착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네덜란드 상원은 이날 표결을 통해 이를 최종 확정했다. 그러나 머리카락만을 가리는 히잡은 금지 대상에서 제외됐다. 네덜란드의 극우 지도자 헤이르트 빌더르스는 10년 넘게 이의 금지를 주장해 왔다. 네덜란드 법은 네덜란드를 종교 중립적이라고 규정하고 있어 히잡까지 금지하고 있는 프랑스나 벨기에와 같은 이웃국가들에 비해 네덜란드의 금지 대상은 좀더 제한적이다. 부르카와 니캅 착용이 금지되는 공공장소는 대중교통과 교육기관, 병원 등 의료기관과 정부 건물 등이다. 네덜란드에서 얼굴을 가리는 니캅이나 부르카를 착용하는 여성은 수백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   {지구촌 오늘}- 점점 닫히는 국경.. 한국일보 2018.06.26.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슬로베니아와의 접경지역에 있는 오스트리아 슈필펠트에서 26일(현지시간) 국경 방어 훈련 중인 오스트리아 경찰들이 철조망 뒤에 서 있다. 차기 EU 의장국인 오스트리아는 강경한 반난민 정책을 펼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중해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유럽행을 시도하다가 구조된 난민들이 25일(현지시간) 스페인 남부 모트릴 항에 도착한 가운데 한 난민이 땅바닥에 무릎을 끓고 구조되어 땅을 밟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유럽연합 16개국 정상들은 오는 28일~29일 열릴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긴급 비공식 회동을 했으나, 구체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못하고 서로의 입장차만을 확인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독일 베를린의 베를린 전승기념탑에서 26일 (현지시간)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대체 에너지에 대한 인식을 고양시키기 위해 도로에 노안색 페인트칠을 하며 석탄화력발전 퇴출을 요구하는 시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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