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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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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런저런] - 월드컵과 "동물들 경기 결과 맞추기" 댓글:  조회:3314  추천:0  2018-07-05
"맞추면 나한테는 뭐 주나요?" 2018.07.05.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의 로예프 루체이 동물원에서 열린 월드컵 행사 도중 암컷 북극곰 오로라가 2018 크로아티아와 러시아의 경기 결과 맞추기 행사에서 나이지리아 국기를 선택하고 있다. / 2018년 6월 26일, / 2018년 7월 5일,
6    윤동주 시 리해돕기와 시 "간"과 "토끼전" 댓글:  조회:3244  추천:0  2018-07-05
  시대 조선 저작자 미상 성격 고전소설 유형 작품 분야 문학/고전산문 요약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목차 접기 구성 및 형식 내용 의의와 평가 별주부전 구성 및 형식 조선 후기의 판소리계 작품으로 동물을 의인화한 우화소설이다. 대략 100여 종의 이본이 전하는데, 이들을 서지적 측면에서 나누어 볼 때, 한글 및 국한문 혼용으로 된 필사본 78종, 한문 필사본 4종, 목판본 2종, 활자본 6종, 그리고 창자를 알 수 있는 판소리 개작 및 전사본 12종이 있다. 이본은 판소리계 이본과 소설계 이본으로 양분되며 그 이본의 명칭 또한 다양하다. 명칭은 ‘토끼전’ 외에 별주부전(鼈主簿傳)·토별가(兎鼈歌)·수궁가(水宮歌)·토공전(兎公傳)·토별산수록(兎鼈山水錄)·토생전(兎生傳)·수궁전·퇴별전·토처사전(兎處士傳)·토공사(兎公辭)·별토전(鱉兎傳)·토(兎)의 간(肝)·불로초(不老草)·수궁록(水宮錄)·별토가(鼈兎歌)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이들 중 국한문 혼용의 필사본은 「별주부전」·「별토가」·「수궁가」 등, 한글 필사본은 「토끼전」·「토생전」·「토처사전」 등, 한문 필사본은 「토공사」·「별토전」 등이며, 목판본은 경판본 「토젼」과 완판본 「퇴별가」가 있다. 활자본은 「별주부전」·「불로초」·「토의 간」 등인데, 이 중 1913년에 간행한 신구서림본 「별주부전」은 이해조(李海朝)가 명창 곽창기(郭昌基)와 심정순(沈正淳)의 구술을 받아 정리한 것이다. 판소리 창본은 신재효(申在孝) 교정의 「퇴별가」와 이선유(李善有)의 「수궁가」, 김연수(金演洙)의 「수궁가」 등 10명의 창본이 있는데, 신재효의 「퇴별가」가 완판본 「퇴별가」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본은 대체로 소설본과 판소리본으로 대별되며, ‘전(傳)’ 또는 ‘록(錄)’으로 된 것이 소설본, ‘가(歌)’로 된 것이 판소리본인 경우가 많다. 내용 「토끼전」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용왕이 병이 나자 도사가 나타나 육지에 있는 토끼의 간을 먹으면 낫는다고 한다. 용왕은 수궁의 대신을 모아놓고 육지에 나갈 사자를 고르는데 서로 다투기만 할 뿐 결정을 하지 못한다. 이 때 별주부 자라가 나타나 자원하여 허락을 받는다. 토기화상을 가지고 육지에 이른 자라는 동물들의 모임에서 토끼를 만나 수궁에 가면 높은 벼슬을 준다고 유혹하면서 지상의 어려움을 말한다. 이에 속은 토끼는 자라를 따라 용궁에 이른다. 간을 내라는 용왕 앞에서 속은 것을 안 토끼는 꾀를 내어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한다. 이에 용왕은 크게 토끼를 환대하면서 다시 육지에 가서 간을 가져오라고 한다. 자라와 함께 육지에 이른 토끼는 어떻게 간을 내놓고 다니느냐고 자라에게 욕을 하면서 숲 속으로 도망가 버린다. 어이없는 자라는 육지에서 죽거나 빈손으로 수궁으로 돌아간다. 의의와 평가 「토끼전」은 인도설화에 뿌리를 둔 불전설화(佛典說話)를 근원설화로 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설화화와 소설화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근원설화에서 소설에 이르기까지는 대략 4단계를 거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단계는 인도의 본생담(本生譚, Jataka)으로 자타카 57 「원왕본생(猿王本生)」, 자타카 208「악본생(鰐本生)」, 자타카 342「원본생(猿本生)」의 세 가지가 있는데, 모두 『남전장경(南傳藏經)』 속에 들어 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인도의 설화문학서인 『판차탄트라(Panchatantra)』와 『가타사리트사가라(Gathasaritsagara)』, 불교 문헌인 『마하바스투(Mahavastu)』에도 나타나고 있다. 『판차탄트라』는 서기전 200∼300년 경에 성립된 것이고, 『가타사리트사가라』와 『마하바스투』는 대략 그 이후에 성립된 문헌으로 추정되고 있다. 둘째 단계는 이들 인도의 설화가 불경에 흡수되어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에 들어와, 한자로 번역되어 한역경전으로 나타난 단계이다. 「토끼전」의 근원설화를 수록하고 있는 불경은 3종으로 『육도집경(六度集經)』, 『생경(生經)』의 제1권 『불설별미후경(佛說鼈獼猴經)』, 그리고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이다. 이들이 중국에서 번역된 것은 대략 3세기에서 5세기에 이르는 기간으로, 이것이 다시 중국의 불교 문헌에 재편입되었다. 수록 문헌은 『경률이상(經律異相)』·『법원주림(法苑珠林)』 등이다. 셋째 단계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문헌설화로 정착되거나 구비설화로 구전되는 단계인데, 『삼국사기』 김유신열전(金庾信列傳)에 나타나는 구토설화(龜兎說話)가 문헌설화의 예이고, 구전설화는 불전설화의 민간유출로 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넷째 단계는 오랫동안 구전되던 설화가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판소리화하여 그 대본으로 정립되거나, 또는 설화에서 곧바로 소설화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단계이다. 그 기간은 대체로 17, 18세기경으로 추측될 뿐 정확한 연대나 경위를 확증하기는 어렵다. 「토끼전」은 판소리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기에 그 성립의 시기나 계기에 대한 추론은 판소리 자체의 역사, 특히 「수궁가」의 형성과 전개에서 찾아야 한다. 이처럼 4단계를 거쳐 성립되는 동안 이야기의 내용도 많은 변화를 거치게 되나 원형으로서의 설화의 골격은 변함이 없다. 첫째 단계에서는 대체로 단순히 교훈적인 인도의 우화적 설화로 존재한다. 그러다가 불경에 삽입되면서 종교적 의미를 띠게 된다. 이 단계에서 등장하는 동물은 원숭이와 악어로 되어 있고, 수중의 악어 아내가 원숭이의 간을 먹고 싶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둘째 단계인 한역경전에서 동물은 자라와 원숭이, 또는 용과 원숭이로 변한다. 그러나 악어는 악인 제바달다(提婆達多)로서, 악어가 원숭이 간을 탐내는 것처럼 악인인 제바달다가 석가를 해치려 한다는 의미로 되어 있다. 셋째 단계에서 구토설화는 다분히 한국화되어 풍자소설로 이루어진다. 「토끼전」에는 작자군(作者群)의 서민의식을 바탕으로 날카로운 풍자와 익살스러운 해학이 잘 나타나 있고, 이것이 주제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풍자성은 작자군인 서민계층이 당시 피지배층의 지배층에 대한 저항의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형성시기로 추정되는 17, 18세기는 지배관료계층의 부패와 무능으로 서민들의 사회적 불만이 커가던 때였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은 지적 능력의 결여와 사회적 신분의 제약으로 표출할 방도가 없었고, 다만 민란(民亂)이라는 폭력적 수단과 민속극·판소리·민요 등 서민예술을 통한 간접적 배설의 길만이 있었다. 우화적 이야기로서의 「토끼전」은 그러한 사회적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세계는 용왕을 정점으로 한 자라 및 수궁대신들의 용궁세계와, 토끼를 중심으로 한 여러 짐승들의 육지세계로 나뉜다. 전자는 정치 지배 관료층의 세계를, 후자는 서민 피지배 농민층의 세계를 각각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주색에 빠져 병이 들고 어리석게도 토끼에게 속아 넘어가는 용왕과 어전에서 싸움만 하고 있는 수궁대신들은 당시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사회의 인물들을 투영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토끼는 서민의 입장을 취한다. 수궁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과 높은 벼슬을 할 수 있다는 자라의 말에 속아 죽을 지경에 이르지만, 끝내 용왕을 속이고 수궁의 충신 자라를 우롱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얻는 작품의 귀결은 토끼가 작자군을 대변하는 존재임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이 작품의 주제가 서민의식에 바탕을 둔 발랄한 사회풍자에 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한편, 곳곳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서민적 해학도 주제적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이본에 따라 자라의 충성을 주제적 측면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있지만, 충성이 이 작품의 본래적이고 일반적인 주제는 아니다. 외래의 짤막한 동물우화를 장편의 의인체 풍자소설로 발전시킨 데서 조선 후기 서민들의 예술적 창작력이 높이 평가된다. 아울러 단순한 동물소설이 아니라 당시의 비판적 서민의식을 우화적 수법을 통하여 드러냈다는 점에서 고소설사상(古小說史上)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 작품은 소설·판소리·전래동화 등으로 전해지고, 지금도 마당극이나 창무극(唱舞劇)으로 계속 공연되고 있는 우리 민족의 살아있는 고전이다.
5    윤동주 시 리해돕기와 시 "간"과 "코카사쓰", "프로메테우스" 댓글:  조회:3750  추천:0  2018-07-05
  코카사쓰(캅카스) 지역의 1994년 지도.  코카사쓰, 캅카스(러시아어: Кавка́з, 문화어: 깝까즈) 또는 카프카스 또는 코카서스(영어: Caucasus) 또는 카우카스 또는 코카시아(아디게어:Къэфкъас, 아르메니아어: Կովկաս, 아제르바이잔어: Qafqaz, 조지아어: კავკასია , 오세트어: Кавказ, 체첸어: Кавказ, 터키어: Kafkasya)는 유럽의 동쪽, 아시아의 서북쪽의 지리학적 지역이다. 유럽의 가장 높은 산(엘브루스 산)을 포함하는 캅카스 산맥의 발상지이다. 신화[편집] 그리스 신화에서 캅카스 또는 코카서스는 세계를 떠받치는 기둥 중에 한개이다. 현생 인류가 불을 선물로 받은 이후로,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 의해 사슬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기 되었다. 로마의 시인 오비드는 스키타이에 캅카스를 두고, 굶주린 이들이 사는 곳으로 상징된 춥고 거친 산으로 묘사했다. 그리스의 영웅 이아손은 황금양모를 쫓아 캅카스의 서쪽 연안으로 출범했고, 그곳에서 명성높은 메데이아를 만나게 된다.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그의 지적인 면은 '미리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에서 강조된다.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최고의 장인이 되었고, 이러한 인연으로 불 및 인간의 창조와도 관계를 맺었다.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는 프로메테우스와 관련된 2가지 주요전설을 이야기했다.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속아서 고기 대신 뼈와 기름을 제물로 받은 주신 제우스가 인간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불을 감추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 다시 지상에 돌려주었다. 불을 훔친 대가와 인간에 대한 벌로 제우스는 판도라라는 여자를 만들어 에피메테우스('때늦은 지혜'라는 뜻)에게 내려보냈고 에피메테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판도라와 결혼했다. 판도라가 자신이 가져온 단지의 커다란 뚜껑을 열었을 때 악과 고된 일과 병이 나와서 인간들 사이에 떠돌아다녔다. 그리고 희망만이 그 안에 남아 있게 되었다. 헤시오도스의 또다른 이야기에서는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복수로 제우스가 그를 카프카스의 바위에 사슬로 묶고 독수리를 보내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간을 쪼아 먹게 하는데 그 간은 끊임없이 다시 회복되곤 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아이스킬로스의 〈묶인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Bound〉에서 구체화되는데, 아이스킬로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인간에게 불과 문명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생존 수단 이외의 모든 예술과 과학을 줌으로써 불과 문명을 보호하는 존재로 표현했다. ===========================   요약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예언을 하는 노인이며 바다 짐승떼(예를 들면 바다표범)를 지키는 사람.   프로테우스(Proteus) 그는 포세이돈의 신하이며 나일 강 하구 근처 파로스 섬이나, 크레타와 로도스 사이에 있는 카르파토스 섬에 살았다. 그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것을 알지만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기 싫어했다. 그에게 의논을 청하려는 사람은 그가 낮잠 자고 있는 동안 갑자기 들이닥쳐 그를 묶어야만 했다. 그는 일단 잡혔다 해도 온갖 모양으로 변해서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쳤다. 그러나 이 신을 잡은 사람이 그를 꽉 붙들면 결국은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와 얻고자 하는 대답을 해주고 바닷 속으로 들어갔다. 프로테우스는 되고자 하는 어떤 모습으로든 변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해 세상 만물이 창조되어 나왔던 원형질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   프로메테우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검색하러 가기 프로메테우스 Προμηθεΰς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1762, 루브르 프랑스 조각가 니콜라 세바스체 아돔이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작품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를 형상화한 조각으로, 독수리가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먹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먼저 생각하는 자 인간을 창조한 신 인간의 옹호자 또는 대변자 소속 그룹 남신 티탄 중 이아페티오니데스 배우자 헤시오네(또는 아시아) 부모 이아페토스와  클리메네(또는 아시아) 형제자매 아틀라스 · 에피메테우스 · 메노이티오스  자녀 데우칼리온[1] 로마 동등신 프로메테우스   찰흙을 빚어 인간을 창조하고 있는 프로메테우스와 이것을 보고 있는 아테나 (로마시대 부조, 3세기) 프로메테우스(그리스어: Προμηθεΰς)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포스의 신들보다 한 세대 앞서는 티탄족에 속하는 신이다. '먼저 생각하는 사람, 선지자(先知者)'라는 뜻이다. 티탄 족인 이아페토스의 아들이며, 아틀라스, 에피메테우스, 메노이티오스, 헤스페로스와 형제였다. 헤시오도스 《신통기》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는 제 1세대 티탄족인 이아페토스와 바다의 요정인 클리메네(혹은 아시아) 사이 탄생하였다. 그는 본디 티탄 신들의 심부름꾼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흥미를 끈 사건이 그와 제우스 사이 벌어진 권력 다툼이다. 이 사건이 인간의 운명과 간접적으로 얽힘으로써 프로메테우스의 존재는 인류 문명사에서 신화적 해석을 하는 데 종종 언급한다. 게다가 아래에서 볼 권력 다툼은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철학에서 즐겨 다룬 소재로 손꼽히기도 한다. 대양신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딸인 님프 클리메네 혹은 아시아가 그의 어머니라 하며, 아내는 그의 이모이자 사촌인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딸 헤시오네이다. 일설에는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다른 딸인 아시아가 그의 아내라고도 한다. 아들은 데우칼리온이다.[1] 목차  [숨기기]  1프로메테우스의 신화 2문명사적 해석 3 4 5 프로메테우스의 신화[편집] 헤시오도스 《신통기》에 따르면, 인간이 신에게 바칠 제물을 두고서 신과 협정 맺을 때, 소의 뼈를 가지런히 정렬하여 이를 윤기가 흐르는 비계로 감싸고, 살코기와 내장을 가죽으로 감싸 제우스 신에게 무엇을 가져갈 것인지 선택하게 하였다. 프로메테우스 계락을 간파한 제우스는 분노하여 인류에게서 불을 빼앗는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속이고 꺼지지 않는 불을 회양목 안에 넣어 인간에게 몰래 주었다. 분노한 제우스는 인간을 벌하기 위해 최초의 여자인 판도라를 만들어 그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행동한 뒤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에게 보내고, 프로메테우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피메테우스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 사건이 발생하여 인류에게 재앙이 찾아오게 된다. 또 그는 예언 할 능력 갖추었는데, 제우스가 자신의 미래를 묻자 거부하였고, 이 때문에 제우스의 분노를 사 코카서스 산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게 되었다. 후일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죽이고 그를 구해 주었다. 헤라클레스가 12과업을 할 때 아틀라스의 꾐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 게 프로메테우스라고도 한다. 문명사적 해석[편집] 프로메테우스가 신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주었다는 이야기로부터 신의 불을 '광명'으로 보아 인간이 신의 지식을 얻어 각성하게 되었다는 상징으로 유추되기도 한다. 같은 관점에서 구약의 율법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고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 대한 지식(복음)을 전해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와도 비교해볼 수 있다.     명작에 얽힌 일화  ​                           정 일 남  시인​   별 헤는 밤​                    윤 동 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짬, 라이나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슴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렸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윤동주 시인을 택한 것은 그의 일화도 일화거니와 일제시대를 살아온 많은 문인들이 일제에 가담한 글을 써 비난의 대상이 된 오늘의 시점에서 윤동주 시인을 되짚어보는 것이 뜻이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일제 식민지시대에 항일 저항 시인으로서 불행하게도 이국의 차디찬 감옥에서 옥사한 시인을 든다면 이육사 시인과 윤동주 시인을 떠올리게 된다. 이육사 시인은 북경 감옥에서 옥사했고 윤동주 시인은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했다. 이라 부르는 윤동주 시인은 우리 문학사에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다. 위의 시 은 윤동주가 1941년 11월 5일 에 쓴 시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먼 북간도에 계시는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시라 하겠다. 이 시에 나오는 은 지금의 서촌 인왕산 언덕을 말하는 것이리라. 인왕산 언덕에는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 규모는 작지만 아담하게 지었다. 영상실이 있고 별보는 곳도 있다. 그러나 전시된 자료는 빈약하다. 후손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도 있다. 이 언덕에 윤동주가 자주 올라 가을 전경도 감상하고 밤이면 별을 헤어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 별에서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를 생각하고 멀리 북간도에 계시는 어머니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 사무쳐 언덕에 자신의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지워버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상(理想)을 꿈꾸며 봄을 기다렸고 무덤 위에 돋는 파란 잔디를 생각했다. 파란 잔디야말로 자신의 꿈이며 미래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 문학관을 찾아 언젠가 가서 을 혼자 거닌 적이 있다. 윤동주가 이름자를 썼다가 지운 곳이 어딘가 상상하며 1941년에 윤동주가 거닐며 고독과 현실을 괴로워하며 별을 헤던 일을 생각했다. 숲속에서 시인의 인기척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 적도 있었다. 풀숲에서 우는 벌레소리를 윤동주도 옛날엔 듣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하며 발길을 돌렸다.   윤동주는 3남 1녀 중 장남이다. 윤동주의 할아버지 윤하현(尹夏鉉)이 함경북도 종성군에서 북간도 명동촌으로 이주해 자수성가했다. 넓은 과수원과 벼농사로 남부럽지 않은 기반을 잡고 살게 되었다. 아버지 윤영석(尹永錫)은 기독교 계동의 모교인 명동학교 교사였다. 할아버지는 명동교회 장로로 지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윤동주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자라게 된다. 윤동주가 명동중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의 길에 오른다.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를 다닐 때 처음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정병욱의 말에 의하면 1940년 동주를 만났는데, 그는 오뚝하게 솟은 콧날, 부리부리한 눈망울, 일자로 굳게 다문 입, 그는 한마디로 미남이었다. 투명한 살결과 날씬한 몸매와 단정한 옷매무새 이렇듯 그는 멋쟁이였다, 고 증언했다.   연희전문에 다닐 때 처음엔 정병욱과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윤동주는 달이 밝으면 정병욱의 방문을 두드려 정병욱을 끌어내어 연희전문의 숲길을 거닐고 서강의 뜰을 거닐며 두어 시간의 산책을 즐기고 기숙사로 돌아오곤 했다 한다. 그 시간동안 윤동주는 입을 여는 일이 없었다. 때문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다만 정도였다. 윤동주는 의 첫 원고를 정병욱에게 보여주었다 한다. 정병욱이 읽고 어쩐지 끝이 좀 허하다 했는데, 윤동주가 그 말을 듣고 이 넉 줄은 정병욱의 충고에 의해서 쓴 것이라 전한다.   학교 기숙 생활에서 대동아전쟁이 치열해 지자 학교 급식이 부실해 졌다. 윤동주는 하숙집을 구하려고 2년 후배인 정병욱과 인왕산 아래 누상동에서 옥인동으로 내려가는 길목 전신주에서 우연히 하숙광고 쪽지를 보게 된다. 거기가 바로 누상동 9번지인 소설가 김송(金松)의 집이다. 김송은 함경도 함주가 고향이고 서울신문사 문화부장을 지냈다. 또 극장도 창설했다 한다. 거기에 하숙을 정한 윤동주는 같은 방에서 정병욱(후에 서울대 교수가 됨)과 생활하게 된다. 윤동주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인왕산 중턱까지 산책을 했다. 산골짝 물로 세수를 했다. 그리고 산을 내려와 아침을 먹고 등교했다가 수업을 마치면 충무로의 신간서점과 고서점을 방문했다. 그리고 음악다방을 들리거나 영화도 보고 청계천 헌책방을 순례 후 하숙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윤동주와 정병욱은 하숙집에서 마음이 편치를 못 했다. 일본 고등계 형사들이 수시로 하숙집을 찾아와 가택수색을 했다. 주인 김송 소설가가 요시찰 인물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었다. 경찰들은 윤동주의 하숙방에도 들어와 책꽂이의 책을 뒤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안을 느낀 윤동주와 정병욱은 1941년 5월에서 9월까지 김송의 집에서 하숙을 하고 다른 곳으로 하숙을 옮겼다 한다.   윤동주는 연희전문을 졸업한 기념으로 시집을 내려고 했다. 시집의 제목을 이라 정하겠다고 정병욱이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잘은 모르지만 세상이 온통 환자들로 들끓으니 그런 제목을 생각한 것은 아닌지 그렇게 정병욱은 생각했다 한다. 그러나 여건이 허락지 않아 시집을 내는 것을 포기하고 19편의 시 노트를 자신이 하나 갖고, 이양하(후에 서울대 교수가 됨)에게 하나 주고 정병욱에게 하나 주고 일본으로 떠났다고 한다. 윤동주는 일본유학의 첫째 조건인 일본 이름으로 개명해야 하기 때문에 하라누마 도슈(平沼東柱)란 이름으로 일본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정병욱은 시 19편의 노트를 고향 광양으로 가지고 가서 어머니께 건넸다.   “어머니, 이거 중요한 것이니 잘 보관해 주세요.” “그래 뭔지 모르겠다만 잘 보관하마.” 정병욱의 어머니는 시 원고 노트를 비단 수건에 싸서 옷장 안에 잘 보관했다고 한다. 윤동주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1942년) 윤동주의 아버지는 의과대학에 입학해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 아버지의 생각은 문과를 나와야 기껏 신문기자가 되는 것이다. 서촌의 문인 변영로 염상섭 모두 신문기자였던 것을 생각하면 아버지의 권유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윤동주는 아버지의 의사를 무시하고 동경입교대학(東京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한다. 그리고 그해 고향 북간도 용정(龍井)에 마지막으로 다녀간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가 가을에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편입학하게 된다. 그런데 1943년 7월에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오려고 짐을 여객선에 싣고 배에 타려는 중에 사상범으로 일경에 체포된다. 1944년 6월, 재판에서 2년 형을 선고 받아 이듬해 규슈(九州)에 있는 후쿠오카 감옥에 수감된다. 이때 경도대학(京都大學)에 재학 중이던 고종(姑從) 사촌 송몽규도 같이 피검된다. 윤동주의 죄목이 독립운동이라고 하나 구체적인 죄과는 애매모호하다. 한인 학생모임에서 아리랑을 자주 불렀다는 죄목도 모호하다. 윤동주의 에 나오는 은 다담이가 여섯 장 깔린 일본식 방을 말한다. 자신을 구속하는 극한상황이며 어둠과 절망의 등가물일 것이다.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일본인 의사(醫師) 다케다 마사카스 씨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윤동주가 강제로 맞았던 주사는 생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관동군 산하 731부대가 혈장대용 생리식염수 일 것이다.”라고 하면서 윤동주뿐만 아니라 후쿠오카 감옥에 수감된 한국 독립 운동가들이 모두 실험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일제들은 윤동주에게 그 주사가 몸이 허약해 영양제 주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윤동주가 조국 해방의 기쁨을 보지 못하고 1945년 2월 16일 차디찬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해방을 겨우 6개월 남겨두고 간 것이다. 한편 정병욱은 학도병으로 끌려가 전선에서 부상을 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윤동주가 옥사한 것을 알게 된다. 정병욱과 동료문인들이 유고집을 내게 된다. 정병욱이 고향 광양으로 내려가 어머니께 여쭙는다.   “어머니, 전에 저가 보관하라고 한 것은 어찌 되었지요.” “그거 내가 잘 보관하고 있지” 정병욱의 어머니는 옷장에서 비단 보자기에 싼 윤동주의 시 노트를 아들에게 건네주었다. 이 시 노트의 19편의 시와 여기저기서 수집한 11편의 시를 합해 30편의 시를 묶어 란 시집이 1948년 1월 정음사(正音社)에서 출간된다. 윤동주 시인이 문학사에 으로 남은 것은 정병욱 교수가 아니었다면 세상에서 그 이름이 지워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소월 시인이 스승 김억(金億)이 없었다면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을지 모르듯이 윤동주도 좋은 시를 썼지만 운을 잘 타고 났다고 생각된다. 2007년 정부는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소재의 정병욱 생가를 이란 이름으로 국가가 관리하기로 했다. 지금 그 생가엔 정병욱의 외 조카 박춘식 씨가 살고 있다.   윤동주는 이상(李箱))처럼 일본어로 쓴 시는 한 편도 보이지 않는다. 윤동주가 일본에서 쓴 시 등이 윤동주가 살아있을 때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로 보내졌다 한다. 이 시들이 윤동주의 마지막 시다. 윤동주가 후쿠오카 감옥에 수감될 때 갖고 있었던 상당수의 작품이 있었다고 하나 그 작품이 밝혀지지 않는 것이 아쉽다. 는 1947년 2월 13일자 경향신문에 발표된 유작이다. 이 작품은 당시 편집국장이었던 정지용 시인의 소개 글과 함께 실렸다.   윤동주의 누이동생 윤혜원이 생전에 언젠가 어느 언론의 인터뷰에서 한 증언을 일부만 여기 옮겨본다. 윤혜원은 호주 시드니에서 2011년 12월 13일에 87 세로 돌아갔다. 윤동주의 마지막 혈육은 이렇게 끊어지고 말았다. 부군 오형범과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었다. 윤혜원은 생전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언론 인터뷰 일부.   -‘쉽게 쓰여 진 시‘가 마지막 작품으로 보시나요.?   ‘오빠의 마지막 작품이라기보다는 현재까지 전해지는 마지막 작품이라는 말이 더 정확합니다. 오빠는 그 시를 쓴 후에 바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할 때까지 2년 동안 감옥에 있었습니다. 비록 감옥이지만, 오빠가 2년 동안 시를 쓰지 않았을 리 만무합니다.’   -오빠가 가끔 미워진다고 말씀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해준 것도 없이 나를 평생 귀찮게 하니까 그렇지-(웃음) 어쩔 수 없었지만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것도 미워요. 눈치껏 일본경찰을 피해서 좀 더 일찍 고향으로 돌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지금까지 얼마나 좋은 시를 썼겠습니까.?’   -오빠의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걸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오빠도 자신의 시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고마워하고 있을 겁니다. 고단한 삶을 위로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오빠의 동시를 많이 사랑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랐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로워했으며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던 윤동주, 희망과 용기로 현실의 괴로움을 돌파하려 했던 강한 정신이 그의 시에 내재해 있다고 여겨본다. 고독과의 투쟁, 현실을 초월하려했던 의지, 밤별을 헤면서 삶의 지향점을 별에서 잦으려고 했던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어머니가 기다리던 북간도를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고 영혼만으로 돌아간 윤동주의 무덤엔 봄이 되면 파란 잔디가 자랑처럼 무성할 것이다. 윤동주의 그 어느 시에도 제국 일본을 타도하고 무찔러야 한다는 강변의 시구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윤동주의 강한 무기다. 윤동주의 시는 비폭력 무저항주의의 전범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 정병욱이 윤동주를 그리워하며 쓴 글의 일부를 올린다.   “동주(東柱)형이 악착스런 원수의 형벌에 못 견디어, 차디찬 돌마루 바닥에서 차마 감기우지 않는 눈을 감고 마지막 숨을 거둔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이 10년 동안 우리의 뼈를 저리게 하는 그의 시는 조국의 문학사를 고치게 하였고, 조국의 문학을 세계적인 물줄기 속으로 이끌어 넣는 데 자랑스러운 힘이 되었다. 독재와 억압의 도가니 속에서 가냘픈 육신에 의지한 항거의 정신, 아니 인간으로서의 처음이자 마지막의 권리이며 재산인 자유를 지키고자 죽음을 걸고 싸운 레지스탕스의 문학이 어찌 유럽의 지성인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일 수 있었으랴.(중략) 슬프오이다. 동주(東柱)형. 형의 노래 마디마디 즐겨 외던 은 형(兄)이 그 쑥스러운 세상을 등지고 떠난 지 반년 뒤에 찾아왔고, 형의 에 봄은 열 번이나 바뀌어 졌건만, 슬픈 조국의 현실은 형의 나게 하였을 뿐 새로운 아침 우리 다시 정답게 손목을 잡자던 친구들을 뿔뿔이 흩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형의 하였고, 형의 노래는 이 겨레의 많은 어린이 젊은이 들이 입을 모아 읊는바 되었습니다. 조국과 자유를 죽음으로 지키신 형의 숭고한 정신은 겨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뼈에 깊이 사무쳤고, 조국의 자유와 문학의 이름으로 더불어 당신의 이름은 영원히 빛나리니 바라옵기는 동주 형, 길이 명복하소서. 분향(焚香).” 2016년 ‘시인정신’ 여름호.        
4    [고향사람] - 억겁의 세월속 한 세계를 찾아 땀동이를 쏟다... 댓글:  조회:2481  추천:0  2018-07-05
연변룡산공룡화석군유적지와 김창주, 그는 억겁의 세월속 한세계를 찾아 머무는 사람 (ZOGLO) 2018년7월5일       연길공룡화석유적지, CCTV 등 세인의 주목 받아   (흑룡강신문=하얼빈)류설화 연변특파원= 2014년 9월, 연길 조양천진 구수하에서의 첫 공룡화석 발견에 이어 2016년 5월, 연길룡산지역에서 공룡화석이 대량으로 발견되였다는 소식은 이 룡흥지지를 국내외가 주목하게끔 했다. 길림성당위서기 바인촐로를 비롯해 해내외전문가들이 분분히 현장을 찾아 공룡족적을 탐방하고 고생물의 비밀을 탐색해왔다.       중국과학원고척추동물과고인류연구소 김창주교수(1950년생, 조선족)를 중심으로 연구와 탐색은 진행돼왔는데 그는 초보적으로 8000만년~9000만년전의 초기백악기의 말기와 말기백악기의 초기에 생존한 아구아노돈(禽龙), 메틸 드래곤(甲龙), 디노사우루스(角龙)의 다종다양한 화석을 발견함과 동시에 연길공룡화석군발굴의 서막을 열어놓았다. 그중에는 길림성에서 가장 유일한 공룡화석이 발굴되였는가 하면 우리나라 동부지역에서 가장 이르게 발굴된 백악기 공룡동물군화석도 발견되였고 세계적으로도 편벽한 오지가 아닌 시내에서 발견된 첫 공룡화석이 있는가 하면 전국적으로 첫번째로 머리부분부터 꼬리부분까지 완벽하게 보존된 백악기 악어화석이 발굴되기도 하였단다. 공룡연구분포에 따르면 백악기공룡의 진화는 연변지역, 조선반도와 원동지구를 넘어서고 있으며 고대 지리, 고대 환경 방면의 연구에도 상당히 높은 고고학적가치, 과학적가치와 과학보급적가치, 문화적가치가 있다.   2016년 10월, 고생물화석보호연구 및 발굴공작에 취지로 둔 고생물화석연구보호중심이 정식 설립됐고 이듬해 중국과학원고척추동물과고인류연구소와 련합하여 공룡화석 심층발굴에 나섰는데 CCTV프로그램 는 연속 5일간 13번의 총 260분에 달하는 생방송을 진행하며 억만관중들에게 연길공룡화석군유적지 발굴진척과 새로운 발견들을 알렸다. 고생물의 이빨, 상박골, 늑골, 하악골의 발견으로 그들은 이를 대형공룡(20미터 상당) 골격으로 판단했으며 선후로 육식류공룡, 석각류공룡, 아구아노돈, 디노사우르스와 백악기시기 악어류 및 거북자라류, 규화목 등 동식물화석들을 발굴했다. 김교수에 따르면 현재까지 8종류의 공룡류화석, 2종류의 악어류화석, 2종류의 거북자라류 화석들의 감정을 마쳤다.       땅밑을 찾아, 동굴을 찾아, 생명기원을 찾아 한평생   “백악기시기의 이렇듯 현란하고 다채로운 지층퇴적물에서 고대 지리와 기후, 상전벽해의 변천사, 자연에 잠재된 어떤 신기루까지 엿볼수 있죠…”   200만년전의 인류생존의 흔적을 발견하고 또 세계 고고학계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되고있는 11만년전의 호모 사피엔스(早期智人) 하악골 화석을 발견해 학계를 화끈하게 뒤집어놓은 김창주교수, 그에게는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책을 접고 왕청현 복흥공사 탄창대대 하향지식청년으로 내려가게 되였던 시절도 있었단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아주 잘했으며 반도체에 빠져 줄곧 무선전 학자의 꿈을 꿔왔지만 고고학자라는 천직으로 한평생을 살게 될 숙명이였던지 그후 1973년 장춘지질학원 지질학부에 입학하여 지구와 지구의 력사, 인류와 인류의 력사 등 학문에 깊이 매료되였단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우리 나라에서 력사가 가장 오래고 세계에서 고척추동물을 연구하는 유일한 연구소인 중국과학원고척추동물과고인류연구소에 배치받아 한평생을 화석과 함께 울고 웃었다. 그리고 1996년에는 일본 오사카사립대학 리학부대학원 지구과학환경지질학부에서 국비장학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묵직한 배낭을 메고 땅밑을 찾아, 동굴을 찾아, 생명의 기원을 찾아 평생을 멈출수 없는 족적을 찍어온 김교수는 그렇게 고달픈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가장 행복할 때가 바로 새로운 표본을 발견하고 그것이 어떤 과학적가치가 있는가를 알게 됐을 때라고 그는 감개무량하게 말한다.   1998년, 우리나라 중부지역에 인류기원의 고대화석이 있을수 있다는 선색으로 김교수는 안휘성 번창현을 찾아 사람 인자 모양을 닮은 인자동에서 수백점의 선사시대 고대인류가 쓰던 석기와 검치호(剑齿虎), 중화마스토돈 (中华乳齿象),하이에나(鬣狗) 등 동물을 비롯한 약 80여종의 원시적인 포유동물화석들을 발견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일찍 발견된 석기의 년대가 240만년전인데 인자동의 것들도 240~200만년전의 것임이 측정됐다. 이는 200만년전에 중국 장강류역에서도 고대원시인들이 살았다는 확실한 고고학증거를 제공했고 유라시아대륙에서 가장 이른 선사고대인류유적지로 인류발전의 시초점을 찾은 것이였다. 현재까지 김교수가 채집한 수천수만점의 화석표본가운데 적지 않은 것들은 세계에서도 유일한 귀중한 표본들이다. 인자동에서 멸종된 원시적인 중화마스토돈의 완정한 골격체와 240만년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참대곰 두개골도 모두 세계에서 유일한 표본이라 한다.   2008년, 김교수는 고고학발굴팀을 인솔하여 광서숭좌 지인동에서 약 11만년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모 사피엔스 하악골을 발견했는데 이 세기의 중대한 발견은 2010년 우주비행, 나미 등 분야와 더불어 중국기초과학계 10대 중요성과로 선정되였다. 이 벅찬 순간이 있기까지 김교수는 7~8미터높이의 벼랑에 매달려 화석을 채집하다가 떨어져 정신을 잃은적도 있었고 두팔을 상해 병원치료를 했어야만 했던적도 있었으며 흙먼지를 통채로 삼키면서 미지의 세계와 산비탈을 누비는 일은 그야말로 비일비재였었다.       “화석채집중 동물 하악골을 쥐고 땅에 떨어졌던 기억이 있어요. 눈 뜨자마자 그 화석이 손에 쥐여있는가부터 살폈던 일이 지금도 생각나요. 신체부위 하나쯤 잘못되는 것이야 큰일 아니죠. 이 중대한 발견 앞에서는…”   김교수는 중국조선족과학공작자협회 부리사장, 련합국황막화퇴치공약전문가, 국제 제4기연구련합회아태지역지층위원회 주석 등 직무를 지녔으며 국무원특수보조대상이기도 하다. 또한 국내외 학술간행물에 총 160여편 론문을 발표했으며 전문저작 2권을 출판하였다.   세월이 빚은 억겁의 황홀경을 탐색하는 한 고고학자는 억척스런 노력으로 생명에 대한 기원과 찬가를 온 몸으로 쓰고 있다. 가난한 선비였던 유학시절 박사학위를 꼭 받아오라던, 그후에도 여행 한번 함께 못다녀도 남편의 일을 끝까지 지지한다던 안해에게 김교수는 늘 고맙고 고고학답사로 대학입시때에도 옆을 못지켰던 아들딸에게 늘 미안하단다. 김교수에게 고고학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요 발견이고 탐구의 연속이다. 그것은 어쩌면 아득히 먼 옛날, 그 한 세계를 살던 생명들을 찾아 만나는 일이기도 하겠다. 그리고 그 일은 정년퇴직한지 수년 되는 지금에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연변공룡문화경제개발연구회와 공룡문화컨텐츠의 미래전망   김창주교수를 명예회장으로 하는 연변공룡문화경제개발연구회가 올해 5월 8일 정식 비준되면서 6월 30일 제2차 상무리사회를 가졌다. 회장 손장호는 연구회는 향후 민속촌, 민속거리, 민속광장을 모두 A급민속문화관광지역으로 만들고 연길에서의 발굴경험을 바탕으로 룡정과 화룡을 중심으로 발굴작업을 지원하며 또 왕청현에서 고척추동물화석의 발굴을 진행해 공룡문화의 전면적 확대에 공헌할 것이라 밝혔다.   한편 김창주교수는 지난달 30일 있은 특강에서 타지역의 공룡화석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공룡박물관, 공룡화원, 공룡건축 등 항목으로 관광을 극대화시켜 년평균 입장권 수입만 8억원을 달성한 강소성 상주시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우리 지역의 엄청난 우세를 짚었다. 그속에는 113개 주급, 82개 성급, 17개 국가급 무형문화재가 있는가 하면 근년래 발굴된 공룡화석과 고척추동물화석들도 있다면서 무형문화재의 우세와 지역특색이 민족문화경제를 추진시키는 새로운 모식으로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리고 이웃 성의 흑룡강가음공룡국가지질공원과 내몽골이련호특공룡국가지질공원과 달리 연길룡산공룡군유적지는 바로 시내에 있어 도로설치 등 관광항목 원가가 적게 든다는 점도 강조하며 9월부터 다시 발굴작업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공룡화석박물관 건설이 계획중인 가운데 이를 경제 및 문화적으로 뒷받침할 취지로 본 연구회가 설립된 것이다.       억년전 지구의 명실상부한 패자, 백악기시대 연변의 거대한 ‘주민’인 공룡에 대한 스토리텔링과 문화컨텐츠사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공룡의 이야기로 원고생명으로서의 살아있는 공룡을 만들어 학생들과 어린이들에게 농후한 흥취를 불러일으키고 공룡과학을 의논하고 탐색하게 하고 당시 공룡은 무엇을 먹고 생활환경은 어떠하였는가, 공룡은 어떻게 멸종되였는가 등 참관자들에게 생명과학에 대한 탐색을 전개하고 인류와 자연간의 계발로 생태문명을 이끌어나가게끔 해야 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아주 희소하였는데 이번 연길에서 새롭게 발견한 백악기 초식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초식공룡의 진화를 연구하는데 매우 유리한바 이같은 사례들도 남김없이 알려져야 하며 연길룡산공룡발굴이 백악기 중기의 공백을 메울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어쨌던 그러한 전면발굴과 심층연구를 통해 각 종류의 연길룡산공룡을 생명이 있는 공룡으로 부활시키는 한편 공룡과학의 저변과 이면을 진일보 확대하며 도시의 공룡과학보급과 관광, 문화발전을 추동해야 한다는 것이 김교수의 생각이다.   편벽한 오지와 등진 세상을 찾아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억척스런 끈기와 노력으로 억겁속에 묻힌 황홀경을 발굴하는 김창주교수는 오늘도 대련시의 한 발굴현장에서 흙먼지를 먹으며 땀동이를 쏟는다…
3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환경위생의식",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285  추천:0  2018-07-05
고기 굽던 불판 계곡물에 '풍덩'.. 피서지 시민의식 어디로 2018.07.05.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구명조끼 착용 지시도 '나 몰라라'..피서철 앞두고 지자체 골머리 양심 슬쩍 버린 피서객 (춘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5일 강원 춘천시 집다리골 계곡 주위로 피서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놓여 있다. 2018.7.5 yangdoo@yna.co.kr (춘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계곡물이 맑고 경치가 아름다워 여름철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강원 춘천시 사북면의 집다리골. 최근 내린 장맛비로 맑은 물이 힘차게 흐르는 계곡은 보는 이에게 청량함을 더한다. 하지만 강원도가 관리하는 상류 쪽 자연휴양림을 벗어나 밑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곳곳이 쓰레기장으로 변한 모습이다. 5일 오전 계곡과 하천을 살펴보니 구석구석에 피서객들이 버려두고 간 양심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먹다 남은 음식물에는 파리가 들끓고, 돌 위에 불을 피운 흔적이 검게 남았다. 고기를 굽던 불판은 맑은 계곡물에 빠져있고, 은박 돗자리는 물살을 따라 이리저리 떠다녔다. 손이 닿기 힘든 물속, 돌 틈새까지 쓰레기가 숨겨져 있다. 주민 최모(64)씨는 "장마가 지나고 피서철이 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쓰레기가 동네에 넘쳐난다"며 "음식물 썩는 냄새가 구석구석 진동할 때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계곡에 버린 양심 (춘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5일 강원 춘천시 집다리골 계곡 위로 피서객이 버리고 간 석쇠와 돗자리가 떠다니고 있다. 2018.7.5 yangdoo@yna.co.kr 춘천시가 인력을 동원해 수거하고 있지만 많은 양에 분리수거까지 안 돼 처리에 애를 먹고 있다. 홍천군 홍천읍 서면 모곡유원지에서는 피서객들의 실종된 안전의식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홍천강을 따라 작은 자갈이 섞인 모래밭이 1㎞ 가까이 펼쳐져 오토캠핑장과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사랑받는 이곳은 장마와 호우로 물이 불고 물살이 거세졌다. 이에 지역 주민으로 이뤄진 안전요원들이 무료로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안내는 '나 몰라라' 하며 강으로 향하는 피서객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허리춤이 넘는 물살 속에 견지낚시를 즐기거나, 강으로 향하는 피서객 중 구명조끼를 입거나 소지한 사람을 하나도 없었다. 모곡유원지 (홍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5일 강원 홍천군 모곡유원지에서 피서객들이 오토캠핑을 즐기고 있다. 2018.7.5 yangdoo@yna.co.kr 안전요원으로 활동하는 주민 김모(68)씨는 "한여름에는 차량이 수백 대씩 몰리는 피서지지만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안내에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이 때문에 피서객과 말다툼도 종종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홍천강은 급류로 해마다 익사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2016년 물살에 휘말린 체육관 관원과 이를 구하던 관장이 함께 숨지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홍천군은 안전을 위해 홍천강 곳곳에 구명조끼 무료 대여소와 구명동, 안전요원을 배치하고 있지만 몰려드는 피서객을 모두 살피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먹고 버릴 줄만 아는 얌체 피서객과 안전에 둔감한 물놀이객 때문에 본격 피서철을 앞둔 피서지 지자체는 올해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2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간(肝) 댓글:  조회:3735  추천:0  2018-07-05
                                            간(肝)   - 윤동주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양심과 자기 존엄성 회복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肝)을 지키자.                               ▶환상에서 현실로 귀환                                            → 그것을 지키려는 다짐 내 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육체적 자아           정신적 자아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야위어야지, 그러나                                                  ▶자아의 갈등과 자포자기                                       육체를 희생하더라도 정신을 살찌우겠다는 의지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현실적 유혹의 거부                                     양심을 지키겠다는 의지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속죄양이 될 수밖에 없는 자신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현실적 고난의 인고         ▶성격-상징적, 저항적, 우의적 ▶심상-설화에서 취재한 원형적 이미지 ▶어조-현실을 극복하려는 남성적 어조 ▶특징   ①두 자아의 대비적 표현               ②'토끼전'과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차용함.   ③의지적이고 결연한 어조로 노래함. ▶시상전개-화자의 이동에 따른 전개 ▶제재-구토 설화와 프로메테우스 신화 ▶주제-현실적 고난 극복의 의지.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정신 자세  ▶출전-(1948) *간-현실적 부조리와 모순에 저항하는 시적 화자의 존재 인식(→실존적 본질, 인간적 고통의 핵심) *여윈 독수리-식민지 지식인의 정신 자세. 연약해진 자아 의식         이 시가 갖는 특이성은 동 서양의 두 고전-'토끼전'과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혼합하여 썼다는 데에 있다. 두 고전을 차용한 이유는 '토끼전'에서는 지배 층에 대한 피 지배 층의 항거를 나타내기 위함이고,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속 죄양 의식을 나타내기 위함으로 간주된다.   토끼는 현실에 대해 회의하고,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를 절실히 갈망한다. 그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 자라이다. 자라에 의한 용궁의 제시는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용궁에 가서 그는 비로소 도피처로 택한 용궁이 결코 바람직한 장소가 되지 못하며 자기가 살던 곳이 지상낙원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발전적 인물'이 된 것이다. 그 '발전적 인물'이 되 토끼가 육지로 돌아와 우선적으로 행한 것이 습한 간을 펴서 바닷가 바위 위에 말리는 것이었다. 이 행위는 빼앗길 뻔하였던 간의 소중함에 대한 재인식과 간이 있어야만 힘을 지녀 그가 사는 곳을 지키며 그들과 대처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1연은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2연에 이르러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끼여든다. '토끼전'과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교차될 수 있는 것은 '간' 때문이다. 두 고전에서 '간'은 곧 힘을 의미한다.   3연에는 '나'라는 시적 자아가 등장한다. 그는 스스로 기른 독수리에게 자기의 간을 뜯어먹도록 요구한다. 여기서 독수리는 스스로에게 아픔을 주는 예리한 의식이다.    4연에는 '너'와 '나'가 등장한다. 여기서 '너'는 정신적 자아이고 '나'는 육체적 자아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의 육체를 희생하더라도 자신의 의식은 예리하게 지키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에 대한 전적인 포기는 아니다. 끝머리에 '그러나'가 이를 대변해 준다. '그러나'는 여위어 힘은 없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겠다는 의지, 뜯어 먹히더라도 간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결의를 표명한 것이다.    5연에서 시적 화자는 실존의 문제를 제기한다.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고 한 것은 존재의 본질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존재의 방법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이 시인은 자기 희생을 존재의 방법으로 삼았다. 그의 속죄양 의식은 이로부터 나온다.    6연에는 바로 속죄양 의식이 드러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류가 비참해질 뻔한 것을 구해 주고 자신은 그 죄로 바위에 묶여 매일같이 간이 쪼아 먹히는 고통을 당하는 인물이다. 그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지는 예수와도 같다. '목에 맷돌을 달고 / 끝없이 침전'한다는 것은 자기 희생 정신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시인은 자기 동일성으로 프로메테우스를 택한 것이다. 이 시는 윤동주의 작품으로 두 개의 이질적인 설화 - 프로메테우스, 구토 설화 (龜兎說話) - 가 형상화되어 있다. 이 둘은 공통 요소를 중심으로 결합하는데, 시 전체에 의미 깊은 상황을 설정하는 서사적 골격은 토끼 설화에 의해 마련된다. 두루 알려진 바와 같이 토끼 설화는 자라의 유혹에 넘어가 죽을 뻔한 토끼가 기지로 목숨을 건지는 이야기다.  인간적인 의미의 차원에서 볼 때, 토끼는 현실의 고난 때문에 환상에 잠기는 인간의 전형이다. 그는 자기가 처한 현실의 억압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서 가상하던 이상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 용궁을 찾아갔으나 오히려 삶의 포기를 요구받는다. 결국 그의 꿈은 한낱 환상이었음을 깨닫고, 토끼는 자신의 설 곳이 갈등의 현실뿐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토끼는 허약한 존재에서 삶의 현실을 깨달은 보다 강한 자신으로 발전하는 발전적 인물이다.  '간' 에 설정된 극적 상황은 토끼가 지상에 돌아온 장면이다. 1연에 보이는 바 토끼 설화의 맥락에 프로메테우스 이야기가 접속된다. 이에 따라 '간'은 의미 심장한 상징이 된다. 코카서스에서의 간은 매일 쪼아 먹히면서도 끊임없이 새로 돋아나는 '인간적 고통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간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아니다. 여기서부터 윤동주의 뛰어난 시적 변용력은 설화적 맥락을 넘어선다. 화자(토끼로 형상화된 자신)는 '독수리'를 스스로 길렀으며, 자기 간을 뜯어먹도록 요구한다. 이 때 '독수리'는 화자의 밖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의 생명(肝)을 쪼아 내며 스스로에게 아픔을 주는 자아의 예리한 의식이다. 자신의 삶을 쪼아 내는 자아의 의식 활동이 치열한 아픔을 주지만, 그는 안식이 아니라 고통을 선택한다. 오히려 고통을 주는 반성적 의식이 살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토끼 설화의 맥락이 의미 깊게 되살아난다. '용궁'이라는 환상적 세계의 평화를 거부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는 어떤 초월적 희망도 인간을 구제할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함을 깨닫고 '지금 - 여기'에서의 고통스런 자기 응시와 긴장을 선택한다. 이러한 의지는 고유한 의미에 있어서 비극적인 의지이며 마지막 연에서 우리는 이를 확인하게 된다.     =================== ◈핵심정리  * 성격: 상징적, 저항적, 우의적  * 심상: 설화에서 취재한 원형적 이미지  * 어조: 현실을 극복하려는 남성적 어조  * 주제: 현실적 고난 극복의 의지  지향하는 세계와 현실 인식과의 갈등  * 출전: 시집 1948  ◈ 감상포인트  ▶ 시상 전개 : 화자의 이동에 따른 전개  ▶ 특징 : ① 두 자아의 대비적 표현 ② 설화와 신화의 결합  ▶ 구토지설 :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의 항거의식  프로메테우스 신화 : 속죄양 의식 →'간'은 상대와 맞설 수 있는 힘이며 토끼  와 프로메테우스를 동일시함.  ◈ 해설  이 시는 '간(肝)'을 매개로 하여 두 개의 설화를 결합하고 있다. 한때 '용궁의 유혹'에 빠져 간을 잃을 뻔했던 토끼가 기지를 발휘하여 목숨을 건진다는 구토지설(龜兎之說)과 인간을 위해 제우스를 속이고 불을 훔친 죄로 코카서스의 큰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묵묵히 감내한다는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그것이다. 궁지에 몰려서도 슬기롭게 자기의 '간'을 지킨 토끼와 죄 아닌 죄를 짓고서 속죄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프로메테우스의 처지는 식민지 시대를 살면서 생명과도 같은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을 지켜야 하는 윤동주의 시심을 자극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하겠다. 바로 여기에 '토끼'와 '프로메테우스'를 자기와 동일시하는 근거가 있다. 그러나 윤동주는 설화의 문면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제1,2연에서 화자는 한때 유혹에 빠져, '습한 간'을 말림으로써 양심과 자기 존엄성을 회복하는 한편 그것을 지키자고 자신에게 다짐한다. 제3,4연에 오면 화자는 스스로 기른 독수리에게 자신의 간을 뜯어먹게 한다. '너'로 지칭된 독수리가 정신적 자아라면 '나'는 육  체적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인데, 자신의 육체를 희생하더라도 정신을 살찌우겠다는 의지가 표현된 것이다. 제5연에서 화자는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고 자기 의지를 확인한다. '용궁의 유혹'에 빠진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양심을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일 터이다. 제6연에 이르면 불쌍하기는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처럼 자신도 인간을 위한 속죄양이 될 수밖에 없음을 토로하게 된다.  ◈참고 - 부끄러움의 미학  실상 윤동주의 시에는 많은 부끄러움의 증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의 이러한 부끄러움은 대부분 '욕됨/미움/괴로움'등의 정감과 공유적 정서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부끄러움의 결벽증은 스스로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과 반성, 그리고 그에 따르는 자기 혐오와 연민의 순수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로 시작되는 "자화상"에서 보여 주는 '미움/가엾음/그리움'의 변증법적 자기 인식과 사랑은 윤동주의 순결벽이 빚어낸, 청순한 젊음의 고뇌와 생래적 부끄러움의 변용적 실체인 것이다. 이처럼 윤동주의 시는 실향 의식과 상실감에서 모티브가 비롯되며, 존재론적 자기 인식과 정서에서의 변증법적 고뇌가 순결벽과 충돌하는 데서 부끄러움이라는 시적 정서의 실체를 획득하게 된다.        =========================   간(肝)                           윤동주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우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사쓰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든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작품 별 헤는 밤 이 시는 부정적 현실 속에서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화자가 자기반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통해 현재의 삶을 극복하고자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시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1~3연)은 별이 총총한 가을밤을 배경으로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더듬는 한 젊은이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두 번째 부분(4~7연)은 별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아름다운 어린 시절에 대한 화자의 애틋한 그리움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4연과 5연은 어조와 리듬의 변화를 통해 이들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인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세 번째 부분(8~9연)은 화자의 자기 성찰의 모습을 보여 준다. 자신의 이름을 ‘별’이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는 시적 화자의 행위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현재의 시대 상황 속에 서 있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에 대한 반성을 나타낸다. 네 번째 부분(10연)은 지금까지 시대적 아픔과 갈등의 어두운 세계 속에서 고뇌를 거듭했던 화자가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다짐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수록교과서 : (문학) 미래엔, 상문 서시 이 시는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두에 붙여진 작품으로, ‘서시(序詩)’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집 전체의 내용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한다. 2연 9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시간의 이동(과거 - 미래 - 현재)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1~4행)은 순결한 도덕적 삶을 살고자 했던 화자의 의지와 고뇌를 과거의 시점에서 말하고 있다. 화자는 지금까지 윤리적 판단의 절대적 기준이 되는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죽는 날까지’ 세속적 삶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어떤 ‘부끄럼’도 없는 삶을 살기를 기원했다. 그래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아주 작은 흔들림에도 괴로워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결백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두 번째 부분(5 ~ 8행)에서는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사랑을 나타내면서 미래의 삶에 대한 화자의 결의를 다짐하고 있다. 화자는 밤하늘에 빛나는 맑고 밝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삶의 고통에 부대끼는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길’, 즉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향해 꿋꿋하게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9행)은 어두운 밤하늘과 별, 그리고 바람 간의 관계를 통해서 화자가 처한 상황을 보여 주면서 도덕적 순결성에 대한 화자의 의지를 시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현실의 어둠과 괴로움 속에서 자기의 양심을 외롭게 지키며 맑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 했던 한 젊은 지식인의 모습을 간결한 언어와 상징어들을 통해 보여 준 작품이다. *수록교과서 : (문학) 지학/(고전) 천재 쉽게 씌어진 시 이 시는 윤동주가 일본에 유학 중이던 1942년에 쓴 작품으로, 어두운 시대 현실에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기반성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1, 2연은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어둔 밤하늘의 별조차 볼 수 없으며, 이국땅에서 다다미 여섯 장의 넓이에 갇혀 있는 화자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3~7연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무의미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의 현재 삶을 우울하고 회의적인 시선으로 인식하는 자기 성찰의 기록이다. 마지막 8~10연은 현실에 대한 재인식과 반성을 통해 이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즉, 어두운 시대를 살아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절망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며 자신의 손을 잡는다. 이때 두 사람의 ‘나’는 현실에서 우울한 삶을 살아가는 현실적 자아와 그것을 반성적으로 응시하는 내면적 자아라고 할 수 있다. 두 자아가 ‘악수’를 함으로써 내적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를 하여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수록교과서 : (문학) 천재(김윤식), 신사고/(국어) 비상(한철우) 자화상 이 시는 화자가 우물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모든 문장을 ‘ㅡㅂ니다’로 끝내는 평이한 구어체를 사용하여 산문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우물은 화자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데, 이 우물에는 화자의 모습만이 아니라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있’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도 담겨 있다. 우물에 비친 ‘사나이’는 우물에 비친 화자 자신이라고 볼 수 있는데, 화자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우물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화자의 이러한 부끄러움은 암담했던 시대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로 볼 수 있다. 화자는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미워져 돌아가고, 돌아가다 보니 가여움이 생겨 다시 들여다보고, 또 미워져 돌아가고, 다시 그리워지는 심리적 갈등을 보인다. 이는 우물에 비친 자신의 현재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는 2연의 장면을 되풀이하면서 시적 안정감과 균형감을 얻고 있으며, 평화로운 자연의 모습과 함께 순수했던 자신의 과거 모습을 추억하면서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내적 갈등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수록교과서 : (문학) 천재(정재찬), 창비 아우의 인상화 이 시는 아우의 얼굴에 대한 묘사와 아우와의 대화를 통해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야 하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아우의 얼굴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구체적 설명 없이 제시하고 있다. ‘싸늘한’ 달과 ‘슬픈’ 그림이라는 표현을 통해 화자가 아우의 얼굴에서 슬픔을 읽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연에는 아우와의 대화가 삽입되어 있다. 자라서 사람이 될 거라는 아우의 철없는 대답이 화자에게 진정 철없는 것으로 들린다. 사람이 되는 것, 사람답게 양심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3연에서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아우의 미래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 때문이다. 4연에서 화자는 1연의 진술을 반복, 변주하고 있다. 앞부분에서 아우의 얼굴에서 화자가 슬픔을 느끼는 이유가 제시되었기 때문에 4연은 1연과는 달리 구체적 맥락 속에서 이해된다. *수록교과서 : (문학) 해냄 참회록 이 시에는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시인의 삶에 대한 자세가 잘 드러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이 시의 1∼3연은 화자가 ‘과거(1연) → 현재(2연) → 미래(3연)’로 이어지는 자신의 삶을 차례로 참회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1연에서는 망국민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과거 역사 속의 삶을 ‘욕되다’고 느끼고, 2연에서는 현재 시점에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망국민으로서 아무런 기쁨도 없이 무기력하고 괴롭게 살아온 자신의 삶 전체를 참회하고 있다. 3연에서는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참회를 다시 참회한다. 미래의 ‘즐거운 날’을 생각해 볼 때, 화자는 치욕스러운 역사적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소극적 참회에만 그쳤던 현재의 참회를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어 4연에서는 화자가 앞서 행한 참회의 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치열한 자기 성찰의 의지를 보여 준다. 5연에서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자세로 잘못된 현실과 맞서는 삶을 선택한 사람이 필연적으로 맞게 될 미래의 비극적 모습을 전망하고 있다. 화자가 보여 주는 자기 성찰의 자세가 치열하지만 잘못된 현실에 맞서기에 개인은 너무나 작고 힘없는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결코 비관적 체념이 아닌, 시대적 양심의 실천을 바탕으로 한 보다 철저한 자기 성찰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록교과서 : (문학) 두산, 비상(우한용), 비상(한철우), 지학 길 1941년, 모든 것이 황폐화된 식민지 조선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던 젊은 지식인의 고뇌와 아픔, 상실과 모색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민족의식을 지닌 지식인으로서 작가는 자신이 찾아야 할 가치와 삶을 찾기 위해 ‘길’로 나섰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돌담’으로 표현된 황폐하고 삭막한 현실이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지속되는 진지한 물음을 통해 참된 자아의 회복을 염원하고 있다. 시인의 다른 작품들처럼 현실에서 오는 고통이나 좌절을 회피하지 않고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하며 진리를 찾아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결의나 다짐의 태도를 이 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화자가 찾으려 하는 것은 6연에 제시되어 있는 ‘담 저쪽에 남아 있는 나’인데, 시적 화자는 돌담으로 인해 돌담 너머의 세계를 볼 수가 없고, 돌담이 길과 평행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 세계에 도달할 수도 없다. 담 너머의 세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쇠문’은 굳게 닫혀 있어 절망적 상황을 느끼게 하고, ‘길 위에 긴 그림자’는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자아 성찰을 통해 자아 회복의 의지를 다지게 된다. 5연의 ‘하늘’은 비본질적 자아를 일깨워 주는 존재로서 시적 화자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풀 한 포기 없는’ 불모의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있는 자신, 즉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 위함이고, 이 어둡고 슬픈 현실 상황 속에서 ‘내가 사는 것은’ 오직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독백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고향 이 시는 따뜻한 인간미가 살아 있던 마음의 고향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암울한 식민지 현실에서 이상적 세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시적 자아의 고뇌가 표현된 작품이다. 이러한 시적 자아의 성찰 의지가 ‘나’, ‘백골’, ‘아름다운 혼’으로 분열 · 대립하다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드러나 있다. 1연에서 그리던 고향에 돌아온 화자는 유년의 평화로움이나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어둠으로 가득 찬 고향에서 이미 죽어 백골과 같은 존재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2연에서는 닫힌 세계(어둔 방)에 있는 나에게 열린 세계(우주)로 부르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를 새로운 세계로 향하게 한다. 3연은 고향에 돌아와 자아가 분열되어 갈등을 일으키는 현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현실적 자아(백골)와 이상을 추구하려는 이상적 자아(아름다운 혼)가 갈등을 일으킨다. ‘백골’은 식민지 현실 속에서 생명력이 이미 다한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4연에서 ‘어둠을 짖는 개’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무력한 생활을 하는 나를 일깨우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5연에서는 나의 안일한 자세를 일깨우는 소리가 나의 양심을 압박해 오며, 6연에서는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부끄러운 자아를 때어 놓고 새로운 이상의 세계로 가자는 화자의 의지가 드러난다. ‘또 다른 고향에 가자.’는 말은 시대적 상황으로 정신적 고뇌를 겪고 있는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미래의 이상향)를 지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십자가 이 시는 암울한 시대 상황 속의 시적 화자가 겪는 방황과 고뇌를 자기 희생의 숭고한 의지로 극복하고자 하는 자기 추구의 과정이 과장됨 없이 나타나 있다. 1연에서 시적 화자는 자기가 추구하던 삶이 한계 상황에 부딪혔음을 고백하고 있다. 2연에서는 시적 화자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와 현실과의 거리감을 나타내고 있다. 설의법을 통해 시적 화자가 인식한 현실 상황에 대한 독자의 동의를 구함으로써 시적 화자와 독자와의 공감의 폭을 넓히고 있다. 3연에서는 절망적 현실 상황 속에서 화자가 겪고 있는 방황과 고뇌를 자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4연에서 시적 화자는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숭고한 자기 희생처럼 자기도 그런 삶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게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리는 예수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이 구절은, 역설적 표현을 통해 괴로움과 행복을 동시에 지닌 예수와 자신을 대비시켜 암울한 시대를 넘어서는 초월적 삶의 의지를 보여준다. 5연은 주제연으로, 시적 화자는 어두운 현실을 자기 희생을 통해 구원하고자 하는, 치열한 자기 추구의 자세를 ‘꽃’으로 형상화 함으로써, 또 다른 경지의 ‘비극적 황홀’을 우리에게 경험하게 한다.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는 표현에는 자신이 처한 비극적 상황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러나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이 잘못된 현실과 맞서 자기가 추구하는 진정한 삶을 지켜 내려는 시적 화자의 내면적 의지가 진솔하게 나타나 있다. 이 시의 바탕에는 기독교적 수난 의식(受難意識)과 속죄양 의식(贖罪羊意識)이 깔려 있다. 그러나 잘못된 현실에 맞선 시인 자신의 시대적 양심이 그보다 앞서는 근본적인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길 이 시에서 '길'은 인생을 상징한다. 말하는 이는 같은 길을 가고 있지만 언제나 가야 할 길을 '새로운 길'이라고 말하며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미래 지향적인 의지를 보여 준다. 말하는 이는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존재를 통해 삶에 대한 희망을 느끼며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평화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수록교과서 : 천재(노미숙) 간 이 시에는 프로메테우스 신화와 토끼의 간 설화가 함께 등장하여 간을 연결 고리로 결합하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을 위해 죄를 짓고 평생 간을 파먹히는 존재로, 어두운 시대 상황에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있는 시적 화자와 동일시된다. 토끼 역시 자신의 간을 용왕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화자와 흡사한 면을 가지고 있다. 3연에 등장하는 독수리는 화자의 정신적 자아로서, 화자는 독수리에게 간을 뜯어먹게 하여 육체적 자아에게 고통의 인내를 부여하는 동시에 정신적 자아를 살찌게 한다. 자신이 희생양이 되더라도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거부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며 고통을 인내하겠다는 화자의 강인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   간(肝) - 윤동주 감상의 길잡이    윤동주의 시 '간'은 간(肝)이라는 소재를 매개로하여 서양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 이야기와 우리나라의 설화인 구토지설(토끼와 거북의 설화)을 결합하고 있다. 인간을 위해 제우스의 별을 훔 치고 그 벌로 독수리에게 간을 뜯어 먹히게 된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기 희생이라는 모티프를 가져오고 용궁의 부귀영화를 약속하는 거북의 유혹에 빠져 지상을 떠났다가 죽을 뻔한 토끼의 이야기에서 거짓된 삶의 유혹이라는 모티프를 가져온 것이다.   이 시에서 '간(肝)'은 토끼의 아야기에서와 같이 편안한 삶의 유혹에 빠지면 잃게 되는 지켜내야할 소중한 것 즉 양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화자는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에서와 같이 자신이 육체적 고통과 절망의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데 이는 인류를 위한 프로메테우스의 희생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배의 고통에 신음하는 우리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윤동주의 '간'은 정의롭지 못한 현실(일제치하)에 순응 타협하고 싶은 유혹을 단호히 떨쳐내고 양심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는 반성의 자세를 다짐하고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불의한 현실 속에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나타나있는 작품이다.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의지적 참여적 상징적 우의적  표현 : 신화와 민담에서 모티브를 따온 우의적 표현  어조 : 대화의 어조  특징 :  - 그리스 신화와 우리나라의 설화를 결합시켜 모티프를 구함  - 두 개의 자아를 대비하여 표현함  - 화자와 동일시하고  있는 소재를 통해 의식을 표현함  주제 : 자아성찰과 희생적 삶에 대한 결연한 의지  출전 : (1948)    시의 구성   1연 - 순결한 삶을 회복하기 위한 다짐  2연 - 양심을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자아성찰  3연 - 양심을  지키기 위한 시련과 고통  4연 - 유혹에 굴하지 않는 의지  5연 - 희생적 삶에 대한 결의     시 본문 읽기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 간 : 프로메테우스 신화와 토끼 설화 연결 , 자아의 양심및 자기 존엄성   습한 간 : 잠시 유혹에 빠졌던 자신의 양심 상징  코커서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 간 : 양심  /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는 화자의 지속적 자아성찰의 태도 형상화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여윈 독수리 - 양심에 충실한 긍정적 반성적 자아 상징  와서 뜯어먹어라. 시름없이   - 양심과 순결성을 위한 내적 고통 을 감수하겠다는 의지  너는 살찌고  -정신적 자아의 성장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 나 : 육체적 자아  거북이야!     시련과 고통이 있더라도 현실에 타협하거나 안주하지 않겠다는 저항적 의지 표현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 용궁 : 자아가 경계해야 할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 화자와 동일시한 대상 , 희생양이 된 존재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 속죄양 의식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 민족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의지가 표현됨                                                                               윤동주 [출처] 간(肝) - 윤동주|작성자 국어지기 =======================   외솔정신을 시로 꽃피운 윤동주의 「간」     설 성 경     1. 윤동주의 「간」   윤동주는 4년간 연희전문을 다니면서 여러 선교사들과 민족학자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성숙시킨 시정신으로 복음의 길, 애국의 길을 주옥같은 시로서 표현하였다. 그는 연희전문을 졸업하기 직전인 1941년 11월에 「별헤는 밤」, 「서시」와 「간」을 연속적으로 지었다. 이들 세 편 중에서 「서시」를 쓴 직후에 창작한 「간」은 다수의 비평 연구가들이 난해시로 규정하였다. 그 이유는 이 시의 마지막 연에 등장하는‘푸로메드어쓰’라고 표기된 이색적인 시어가 가진 상징성 때문이었다. 이 시어의 해석은 둘로 나누어지는데, 그 하나는 윤동주의 시적 자아를 비유 내지 상징한다는 지금까지의 비평가들이 주장해온 통설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의 일제를 비유 상징하는 시어라는 필자가 제기한 새로운 해석이다. 필자는 개성이 특출한 시 「간」은 윤동주가 가장 존경하던 연희전문 문과의 스승 외솔 최현배 등의 가르침을 시에 투영시킨 졸업기념 작품에 해당하는 명작으로, 최고의 스승과 최상의 제자의 정신이 아름답게 어울려서 만들어낸 결실로서, 일제강점기에 창작된 저항시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일제에 맞선 공격적이고 심판적이고 지성적 저항시임을 등의 저서를 통하여 논증해왔다.   2.「서시」와 「간」으로 애국심을 형상한 민족시인 윤동주   윤동주가 연희전문 학교에 입학할 당시의 시국은 이미 일제 통치의 말기적인 징후를 노출하고 있었다. 그가 문과에 입학하기 직전인 1938년 2월에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조선육군지원병령」이 공포되었고, 한편으로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다수의 민족주의자들이 투옥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입학 직후인 5월에는「국가총동원법」을 조선에도 적용하면서 본격적인 전시체제로 들어가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는 1941년 11월, 연희전문에 재학하면서 창작한 시편들을 모아서 시집을 간행할 작정으로 이들 시집의 머릿시에 해당하는「서시」를 지었다. 이 시의 대표 시어 중의 하나인‘하늘’을 첫 시어로 내세우면서, 기독교적인 창조주인 하나님과 유가적 민속적 차원에서의 하느님을 포괄하는‘하늘’을 우러러 그 앞에 자신의 시적 자아를 통하여 자신은‘한 점 부끄럼 없이 살기’를 염원한다는 양심적인 선언을 토로하였다. 국권을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리, 제나라 말과 글을 대신하여 일본의 말과 글을 쓰기를 강요하던 상황 속에서도 끝내 조선어와 한글로서 시를 짓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였다. 그는 언어민족 운동의 길을 실천하면서 을 짓고 가르치던 외솔선생의 조선어 평가에서 100점을 받아서 광복 운동에 남다른 소명의식을 느끼고 있었기에, 남들은 일제에 굴종하거나 타협하며 살아갈지언정 자신은 외솔선생의 젊은 제자답게 민족시로서 광복 운동의 길로 나아감을 포기할 수 없다는 선언을 저항시로 표현하였다. 성인이 아닌 이상, 태평한 시대에도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텐데, 암흑의 식민지의 상황 아래서 그것은 더 더욱 어려운 삶의 길이었다. 그는 이런 현실적 삶을 날카로운 성찰의 자세로 표현하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부끄러움’은 일상인들이 의식하는 차원의 자책감에서 나온‘부끄러움’의 차원을 넘어선 복음의 길, 애국의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부끄러움’이었다고 판단된다. 이런 청결한 삶과, 그 삶에서 무르녹은 시정신에서 피어오르는 시의 품격과 경지를 그는‘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하면서, 이 짧은 시를 마무리 하는 담담하면서도 의연한 결의와 태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이 마지막 한 행은 「별헤는 밤」에서 표현반 바 있는‘별’의 상징성을 통하여 어둠과 바람 속에서도 결코 꺼지거나 흐려질 수 없는 외로운 양심의 결백함에 닿아있기에, 이 「서시」는 광복된 나라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최고의 애송시로 수용되면서, 우리의 양심을 되돌아보는 종교적 윤리적 거울로 삼게 한다.   3.‘변부사’를 상징하여 창조한 시어‘푸로메드어쓰’   천재시인 윤동주는 「서시」를 지은 단 1주일 후에 창작한 후속 작품인 「간」에서는 「서시」와는 전혀 상반된 빛깔과 향기를 풍기면서 일반 독자는 물론, 비평가나 연구자들에게도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낯설음으로 저항시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우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사쓰 산중에서 도맹해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려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푸로메디어쓰 불쌍한 푸로메디어쓰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沈澱하는 푸로메드어쓰   이러한 시 「간」의 두드러진 특징은 동서양의 고전 소재로 복합시켜 시로 형상화한 점에 있다. 즉, 하나의 제재는 거북이의 꾐에 빠져 간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토끼가 특유의 기지를 발휘하여 목숨을 건지는 내용의 삼국시대의‘귀토지설’이나 소설 「토끼전」 및 판소리 「수궁가」에서 가져온‘토끼’소재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을 위해 제우스 신을 속이고 천상의 불을 훔쳐서 지상의 인류에게 제공한 죄로 코카서스 산에 쇠사슬로 묶인 채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고통을 당하는 신화에서 가져온‘프로메테우스’소재이다. 이 두 고전 소재를 복합 소재로 차용하면서 융합적 이미지로 형상해낸‘푸로메드어스’는 이 낯선 시 「간」의 주제를 탐색하는 핵심시어에 해당한다. 「토끼전」 등에서는 육지의 이야기와 수궁의 거북 이야기로 전개되던 낯익은 우화에서 일제라는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로서의 조선인의 항거의식으로 전환시키고, 낯선 서양의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는 천상의 신격이면서도 인류를 위해 희생하다가 제우스를 속인 죄로 벌을 받는‘프로메테우스’의 영웅적 행동처럼 속이면서 조선인을 식민지 백성을 압제하고, 조선의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는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뿌리조차 없애려는 창씨개명 정책을 펼치는 일제의 잔혹사를 고발하기 위하여 창안해낸 악인의 전형을 윤동주는 고심 끝에, 그 지극한 고통도 견뎌내는 의로운 영웅‘프로메테우스’와는 전혀 상반을 존재를 형상하는 고유명사로 된‘푸로메드어쓰’이미지를 창조하여‘불도적’으로 비유 내지 상징화시켰다. 이런 윤동주의 고도의 표현 기술은 다른 선배 시인이나 동시대 시인들이 구사하지 못한 주체적이고 혁신적인 윤동주식의 기술로서, 당시 유행하던 모더니즘 기법의 주체적인 개발에 성공한 사례에 해당한다. 이런 독창적인 동서양 서사적 소재의 융합 제재화의 결과로 얻어낸‘푸로메드어쓰’의 이미지는 윤동주가 끌어올린 공격적 심판시의 모범적인 작품이기에, 이 작품의 마지막 시행인‘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푸로메드어쓰’는 곧 멸망하는 일제, 멸망할 수밖에 없는, 1941년 11월 기준의 일제의 미래에 대한 예언시 내지 심판시로서의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 근거하여 판단해 보면, 지금까지 「서시」의 명성에 가려져 있었던 「간」은 윤동주가 그 이전에 창작한 작품들의 여성적이고 희생적이고 서정적이던 작품의 성향과는 달리, 광복을 향한 소망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푸로메드어쓰’의 영원한 침전을 통한 일제의 패망을 시적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일제암흑기에 창작된 저항시의 절정이요 꽃이라 할 수 있다. 「춘향전」 연구를 평생의 과제로 삼고 고전문학을 해온 필자로서는, 연희전문 교정에 윤동주 시인보다 24년 뒤에 입학하여 민족의식이 투철한 큰 스승들로부터 인문학을 배우고, 그 애국심이 충만한 지식을 연세대학 교수로서 수십 년에 걸쳐서 후배들에게 가르친 학자로서, 윤동주 시인 탄생 100돌을 맞아 그가 창출한‘푸로메드어쓰’는 민족고전 「춘향전」의‘변부사’의 시적 변용으로 형상된 시어요, 가을밤 하늘의 금강석같이 반짝이는 별같은 세계 유일의‘시어’로 탄생한 것이‘불도적 푸로메드어쓰’라는 소박한 평가를 주목해주기를 바랄뿐이다.     ================= ■ 핵심정리  ․ 성격 : 상징적, 저항적, 우의적  ․ 심상 : 설화에서 취재한 원형적 이미지  ․ 어조 : 현실을 극복하려는 남성적 어조  ․ 특징 : ① 두 자아의 대비적 표현   ② 설화와 신화의 결합  ․ 시상 전개 : 화자의 이동에 따른 전개  ․ 구성 : ① 환상에서 현실로 귀환(제1,2연)          ② 자아의 갈등과 자포자기(제3,4연)          ③ 현실적 유혹의 거부(제5연)          ④ 현실적 고난의 인고(忍苦)(제6연)  ․ 제재 : 구토설화와 프로메테우스 신화  ․ 주제 : 현실적 고난 극복의 의지   ■ 학습문제 1. 두 개의 설화가 한 편의 시에서 결합되도록, 매개체 역할을 하는 소재를 찾아 쓰라. ▶간(肝) 2. ㉠이라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 구토설화와 관련하여 50자 이내로 쓰라.   ▶거북의 꾐으로 부귀영화를 누려 보겠다는 환상에 빠졌던 더러운 양심(본질)을 바로잡기 위해. 3. 이 시에서 (1)시인이 자기와 동일시하고 있는 소재를 둘 찾아 쓰고, (2)각각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의식을 쓰라.   ▶ (1) 토끼와 프로메테우스       (2) 토끼 : 항거 의식  프로메테우스 : 속죄양 의식   4. ‘간’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 자아의 양심 및 자기 존엄성, 시적 화자의 지조 및 신념   5. 프로메테우스와 시적 화자를 동일시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 대의를 위한 희생의 감수   6. 등장하는 동물을 구분하면 어떻게 나누어지는가?  ▶ 토끼(화자) / 거북이.독수리 (억압세력)   ■ 심화문제 *김영랑의 시 ‘독을 차고’를 읽고, 화자의 결의를 비교해 보자.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어도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김영랑, 독을 차고)   ▲ 이리, 승냥이 → 내 마음, 혼    거북이 → 간    습한 간을 말리우자 →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 이해와 감상 1941년 11월 29일 연희 전문학교 졸업반 때 쓴 작품으로 알려진 이 시가 갖는 특수성은 각기 다른 동·서양의 두 고전을 형상화한 점에 있다. 즉, 거북이의 꾐에 빠져 간(肝)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토끼가 특유의 기지(機智)를 발휘하여 목숨을 건지는 내용의 '귀토지설(龜兎之說)'과 인간을 위해 제우스를 속이고 불을 훔친 죄로 코카서스 산에 쇠사슬로 묶여,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다가 밤에는 그 간이 되살아나 영원히 고통을 겪는다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교묘히 결합하여 현실적 고난을 극복하는 의지를 밝힌 작품이다. 이 두 고전을 차용한 까닭은 '귀토지설'에서는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의 항거 의식을,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는 속죄양 의식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윤동주는 벼랑 끝에 몰린 위기에서도 슬기롭게 자기의 '간'을 지킨 토끼와, 죄 아닌 죄를 짓고 속죄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프로메테우스를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을 지키며 식민지 시대를 살아야 했던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두 고전의 문면(文面)을 글자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적절히 변용하여 작품 속에 투영시키고 있다. 먼저 1연에서는 거북의 유혹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 했던 토끼, 즉 화자가 지상 낙원이 용궁이 아니라 제가 살고 있는 산중임을 깨달은 후, 그 곳으로 돌아와 '간'을 꺼내 바위 위에 말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토끼의 행동은 바로 간의 소중함에 대한 재인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간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보다도 간이야말로 거북에게 맞설 수 있는 가장 크고 효율적인 무기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간'이 '습한' 것은 한때 유혹에 빠졌기 때문이며, 그것을 햇빛에 말리는 것은 다시는 유혹에 빠져들지 않겠다는, 욕망의 절제를 통한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2연에서는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귀토지설' 속에 끼어들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두 고전에 공통적으로 '간'이 등장하기 때문이며, 또한 이 '간'은 모두 상대와 맞설 수 있는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3연에서는 화자가 자신이 기른 독수리에게 자기의 간을 뜯어 먹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 독수리는 4연에서 '너'로 지칭되고 있는데, '나'가 육체적 자아라면 '너'는 정신적 자아라 할 수 있다. 결국 '너'라는 독수리는 화자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자아의 예리한 의식이 된다. 그러므로 '너는 살찌고 / 나는 여위어야지'라는 구절은 자신의 육체는 희생되더라도 정신만은 지키겠다는 의미이다. 한편, 끝머리의 '그러나'는 여위어 대항할 힘은 없어도, 정신만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으로, 뜯어 먹히더라도 간은 결코 내놓을 수 없다는 결의를 표명한 것이다. 5연에서 화자는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며 자신의 의지를 확인하고 있다. '용궁의 유혹'에 떨어진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양심을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6연에서는 불쌍하기는 하나, 프로메테우스처럼 화자도 인간을 위한 속죄양이 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목에 맷돌을 달고 / 끝없이 침전하'는 것은 그 같은 거룩한 자기 희생 정신의 표현이다.  
1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별 헤는 밤 댓글:  조회:3650  추천:0  2018-07-05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 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 듯 이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맑고 푸른 하늘에는 가을이 가득 차 있고, 나는 아무런 걱정없이 밤 하늘의 별들을 다 헤일 듯이 바라다 본다. 하지만, 그러나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다 헤아려 보지는 못하는데, 첫 번째는 쉬이 아침이 오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내일의 아침이 남아 있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아직 나의 청춘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밤 하늘의 별들을 다 헤아리기에는 너무나도 밤이 짧지만, 그러나 수많은 밤들과 아직 나에게는 젊디 젊은 청춘이 있기 때문에 그 아쉬움을 달랠 수가 있는 것이다. 젊다는 것은 재산 중의 재산이며, 이 부의 건강함으로“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라는 시구에서처럼, 시인의 가장 소중한 삶의 세목들을 대입시켜 보게 된다. 별 하나에는 나의 추억이 담겨 있고, 별 하나에는 나의 사랑이 담겨 있다. 별 하나에는 나의 쓸쓸함이 담겨 있고, 별 하나에는 나의 동경이 담겨 있다. 별 하나에는 나의 시가 담겨 있고, 별 하나에는 나의 어머니가 살고 있다. 밤 하늘은 윤동주 시인의 보물창고이며, 수많은 별들은 그 보물들의 서랍장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시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인간이며, 이 세상의 행복의 전도사라고 할 수가 있다. 시인은 인간 찬양과 인간 위로의 대가이며, 그 어떠한 슬픔과 고통마저도 그의 발목을 붙잡지는 못한다. “어머님,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라는 시구가 바로 그 증거이며, 이 말들의 향연처럼 밤 하늘의 별들이 그 등불을 켜고 있는 것이다. 어머님이라는 말도 반짝이고, 패, 경, 옥이라는 이국 소녀들의 이름도 반짝인다.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도 반짝이고,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등의 이름도 반짝인다. 프랑시스 잠의 이름도 반짝이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이름도 반짝인다. 말은 밤 하늘의 별들이 되고, 밤하늘의 별들은 가족공동체와 시민공동체와 국가공동체, 아니, 우주적인 공동체로서 그리움의 감정으로 그 불빛들을 반짝이게 한다. 그리움은 사랑이 되고, 사랑은 저마다의 자유와 평화로 행복의 씨앗이 된다.   하지만, 그러나 아스라이 멀 듯이 너무나도 멀리 있는 별들, 멀리 북간도에 계시는 어머님---, 나는 당신들이 너무나도 그리워“이 많은 별 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린다. 언제, 어느 때나, 늘, 당신들 곁에서 당신들과 함께 살고 싶지만, 그러나 시인의 현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나의 이름은 부끄러운 이름이며, 어느 덧 나는 [별을 헤는 밤]에 밤을 새워 슬피 우는 벌레가 된다.“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 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것이다. 나도 별이 되고, 너도 별이 되고, 우리들은 모두가 다같이 별이 된다. 나의 부끄러움도 풀이 되고, 그 풀섶에는 수많은 당신들처럼 풀벌레가 슬피운다.   밤 하늘의 별을 헤는 자는 티없이 맑고 깨끗한 시인이다. 부끄러움으로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씻고,수많은 당신들인 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늘도 슬피운다.   미래의 희망인 슬픔, 낙천주의자의 기쁨인 슬픔, 모든 인간들의 사랑인 슬픔이 너와 나의 마음을 씻어주며, 더욱더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그 모든 것을 사랑하게 만든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은 최고급의 행복의 표상이며, 우주적인 멋진 숨쉬기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시대 현대 저작자 윤동주 창작/발표시기 1941년 11월 5일/1948년 성격 시 유형 작품 분야 문학/현대문학 요약 윤동주(尹東柱)가 지은 시. 목차 개설 내용 의의와 평가 개설 10연 30행의 자유시이다. 1941년 11월 5일 지은 유작으로 친구 정병욱과 아우 윤일주가 1948년 정리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초간본 31편 중 앞부분에 실렸으며, 1955년정음사에서 나온 증보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정리되어 실렸다. 내용 담화체 형식으로 어머니에게 이야기하듯 애틋한 서정을 담고 있다. 특히 ‘∼ㅂ니다’의 종결어미가 정겨운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전체적으로 회상과 기억, 그리움의 정조를 따라 전개되는데 1∼3연은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의 현재를 드러내고 있다. 타향에서 시인은 현재 가을로 이미지화된 침잠된 분위기에 싸여 있으며 청춘을 제대로 구가하지 못하는 소회가 깊게 묻어있다. 고독한 현재와 대비되는 시간은 과거로 설정된다. 그 시절을 상기시키는 매개체는 ‘별’이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동시에 존재하는 별의 상징성과 구원의 이미지를 통해 시인은 과거를 구체화한다.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어머니 등은 고향을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밀착된 모티브이다. 이 중 가장 실감 있게 고향을 환기시키는 시적 상관물은 ‘어머니’이다. 5연과 7연에서 ‘어머니’를 호명하며 전개되는 시적 정황은 떠도는 자로서 고독과 그리움의 극한을 보여준다. 시인은 타향에 있고 어머니는 고향 북간도에 있다. 이 거리감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은 별빛이다. 시인이 있는 타향에도 고향 어머니에게도 동시에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현재 자신의 존재성을 상실했다. 8연에서 ‘덮어 버린 자신의 이름’에서 잘 드러난다. 그의 슬픔의 근원이며 망국의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는 지점이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의 면모가 드러난다. 그는 시인이면서도 별을 통해 운명을 읽는 점성술사처럼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의 언술은 갑자기 정겨운 말투에서 ‘∼외다’ 식으로 변하여 복화술을 쓰는 듯하다. 시인은 예언자로서 엄중히 말한다. 지금은 가을이고, 곧 겨울이 올 것이며, 다시 봄이 오리라 굳게 믿으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운 존재로 높이 확인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시는 유랑하듯 떠도는 일제하 한국인의 회한을 잘 대변하고 있다. 타향에서 겪는 극한 고독과 자기모멸을 순열한 시심으로 견뎌내며 새날을 기약하는 시인의 면모가 빛난다. ===================== 윤동주와 백석이 동시에 사랑한시인 폰트확대| 폰트축소| 공유하기|   인쇄 미리보기| 오류 수정 문의   릴케(Rainer Maria Rilke) 오스트리아의 시인이자 작가이다.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시집은 무엇일까요? 지난 2012년 한 문학잡지에서 시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1위는 백석의 시집 《사슴》이었습니다. 백석은 스물다섯 살이던 1936년 1월에 시집 《사슴》을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했습니다. 워낙 적은 부수라 당시에도 희귀본이었는데, 신경림 시인은 대학시절 청계천의 고서점에서 백석의 이 시집을 발견했을 때 느낀 환희를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사슴》을 처음 읽던 흥분을 잊지 못하고 있다. 실린 시는 40편이 못되었지만 그 감동은 열 권의 장편소설을 읽은 것보다도 더 컸다는 느낌이다. 나는 읽고 또 읽었다. 저녁밥도 반 사발밖에 먹지 못했으며 밤도 꼬박 새웠다. 그 뒤 《사슴》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꺼내 읽고는 했으니, 실상 그것은 내가 시를 공부하는 데 교과서가 되었던 셈이다.” 그런가 하면 끝내 백석의 시집을 구하지 못해 손수 필사본을 만들어 밑줄까지 그어가며 탐독했고 ‘그림 같다’, ‘걸작이다’ 등의 메모를 남긴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바로 윤동주입니다. 백석과 윤동주, 이름만으로도 벅찬,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들이지요.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요. 백석과 윤동주의 시에는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짬, 라이넬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 윤동주, 〈별 헤는 밤〉 중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1982년도 출판본입니다. 그리고 1,800원이었네요.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될 일이지만 굳이 이 옛날 옛적의 시집을 찾아 꺼내든 까닭은 인터넷에 나오는 앞서의 구절이 어쩐지 원본과 다른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달랐습니다. 어느 부분이냐 하면, ‘프랑시스 짬’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입니다. 이 부분을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로 바꾸었더군요. 누군가는 그냥 ‘이름’일 뿐이잖아, 할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획 하나도 손대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그것이 오타라고 할지라도 말이지요. 백석과 윤동주가 불렀던 이름 그대로 불러보고 싶고, 백석과 윤동주가 썼던 대로 읽고 싶어서입니다. 흥미롭게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경우에는 두 시인 모두 ‘라이넬 마리아 릴케’라고 불렀으나 프랑시스 잠에 대해서는 각각 다르게 불렀습니다. 백석은 ‘쨈’으로, 윤동주는 ‘잼’으로 말이지요. 백석과 윤동주는 일본어로 번역된 릴케와 쨈, 혹은 잼의 시집을 곶감 빼먹듯 두고두고 아껴 읽으며 시를 향한 꿈과 사랑을 키웠을 것입니다. 백석과 윤동주에게 서울은 타향이었습니다. 백석은 평안북도 정주, 윤동주는 만주 간도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지요. 먼 북쪽에 고향을 둔 둘은 1930년대에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기도 했지만 교류를 나눴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윤동주보다 다섯 살 위인 백석은 이미 유명한 시인이었고, 윤동주는 백석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석이 1940년에 만주로 떠나면서 인연이 이어질 기회는 영영 사라졌습니다. 그 후 두 사람의 운명이 일제의 식민통치와 남북분단의 비극 속에서 어떻게 희생됐는지는 잘 알려진 대로입니다. 이 시대에 남은 독자로서 두 시인의 시에 프랑시스 잠과 마리아 라이너 릴케가 똑같이 등장하는 구절을 읽으며 이처럼 닮은 취향을 가진 둘이 만났더라면 서로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무릎을 맞대고 마주 앉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꽃과 당나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텐데, 하는 슬픔을 느낄 뿐입니다. 백석이 프랑시스 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북한의 시인’으로 억류됐던 영향이 크겠지요. 대신 윤동주가 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북간도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회고 덕분입니다. 문익환 목사는 윤동주가 연희전문대학 시절에 잠의 시집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읽었노라 하면서 시집의 이름까지 정확하게 기억해냈는데 바로, 《밤의 노래》입니다. 이 시집은 나중에 《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까지》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됐는데 서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장난꾸러기들의 조롱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는, 무거운 짐을 진 당나귀처럼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나는 가겠나이다. 삼종(三鐘)의 종소리가 웁니다. - 프랑시스 잠, 《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까지》서문 중에서 백석이 나타샤와 함께 그토록 사랑한 ‘흰 당나귀’가 어떤 당나귀인지 투명하게 그려지지요. 프랑시스 잠의 삶이 그런 당나귀와 같았습니다. 그는 19세기 말에서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이어진 ‘벨 에포크(belle époque)’의 시인입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웠고 일상은 화려했으며 미술과 음악, 문학이 활짝 피어나 훗날의 사람들은 그 시절을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불렀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공허하고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잠은 이 모든 것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파리의 풍요로움과 화려함으로부터는 물론, 공허와 불안으로부터도 등을 돌려 평생 피레네 산맥 근처에 은거하며 단순하고 현실적인 삶, 자연과 종교에 뿌리를 둔 시를 썼습니다. 그 덕에 잠의 시는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며 다정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서양의 시를 읽을 때면 쉬이 느끼는 난해함 없이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일상으로부터 소재를 끌어온 덕입니다. 특히 〈식당〉이라는 시는 그냥 우리 시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친숙해서 윤동주가 왜 ‘짬’의 시는 구수해서 좋다고 했는지 알 수 있는데요. 어느 늦은 오후, 석양이 비쳐드는 방 안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고즈넉하게 앉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세월의 태엽을 뒤로 돌려봅니다. 새삼 오랜 세월 내 곁에 말없이 있어준 사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 집 식당에는 윤이 날 듯 말 듯한 장롱이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 대고모들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은 것이다 그들의 추억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는 장롱 그게 암 말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그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거기엔 또 나무로 된 뻐꾸기시계도 하나 있는데, 왜 그런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난 그것에 그 까닭을 물으려 하지 않는다 아마 부서져버린 거겠지 태엽 속의 그 소리도 그냥 우리 돌아가신 어르신네들의 목소리처럼 또 거기엔 밀랍 냄새와 잼 냄새, 고기 냄새와 빵 냄새 그리고 다 익은 배 냄새가 나는 오래된 찬장도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한테 아무것도 훔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충직한 하인이다 우리 집에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이 왔지만, 아무도 이 조그만 영혼들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나는 빙그레 웃는 것이다 방문객이 우리 집에 들어오며, 거기에 살고 있는 것이 나 혼자인 듯 이렇게 말할 때에는 — 안녕하신지요, 잠 씨? - 프랑시스 잠, 〈식당〉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떠오른 것은 어머니 방에 있는 30여 년 된 장롱처럼 오래된 사물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어느 날 잃어버린,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잃어버린 물건과 기억이었습니다. 가졌을 때는 이렇게 쉽게 잃어버릴 줄, 잊어버릴 줄 몰랐던 것들 말입니다. 그와 같은 사물, 그와 같은 기억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을까요. 잠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런 프랑시스 잠을, 백석과 윤동주가 좋아한 또 다른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좋아했습니다. 릴케의 유일한 장편 소설 《말테의 수기》에는 덴마크 귀족 출신의 젊은 무명 시인 말테가 파리의 국립도서관에서 한 행복한 시인의 생활을 접하고 그 시인처럼 글을 써봐야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행복한 시인이 프랑시스 잠이었습니다. 그러나 말테의 생활은 파리라는 화려한 도시에서 불안과 소외로 비참하기만 했지요. 이런 말테를, 아니, 릴케를 일으켜 세운 또 한 명의 예술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오귀스트 로댕입니다. 둘의 인연은 1902년, 릴케가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로댕의 평전을 쓰면서 시작됐습니다. 1905년부터 이듬해까지는 로댕의 비서로 일했지요. 로댕은 릴케에게 사물과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데 있어 ‘바라보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줬는데, 그것은 시각적인 관찰뿐 아니라 미학적 성찰까지 아우른 것이었습니다. 릴케가 《말테의 수기》에 쓴 구절이 있습니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意味)와 감미(甘味)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라 경험이기 때문이다. - 릴케, 《말테의 수기》 중에서 릴케의 문학론이자 예술가의 기본 자세라고 할 수 있을 이런 깨우침은 로댕으로부터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보다 전에 로댕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돈의 필요에 쫓겨 하찮은 일이라도 해야 했던 시절에도 로댕은 자신을 잃은 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체험한 일이 언제까지나 계획만으로 머무는 적은 없었으며, 낮에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그날 밤 안에 곧장 실행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모든 것은 끊임없이 실현되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까지나 꿈만 꾸거나 계획과 기분에 젖어 멈추어 있지 말고 항상 모든 것을 무리하게라도 ‘물(物)’로 이입하는 일이다. 로댕이 그렇게 했듯이.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로댕론》 중에서 로댕과 릴케가 천재이기 전에 얼마나 대단한 노력가였는지 깨닫게 해주는 글이지요. 로댕은 릴케가 예술가로서 힘든 순간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냐고 조언을 구했을 때도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철인 로댕이라 해도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삶이 힘들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로댕이 릴케를 만났을 때가 60대, 릴케에게 매일 해준 말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힘내라고!”였습니다. ‘힘내라고!’ 밤에 헤어질 때, 아주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에도 아무 관련 없이, 로댕은 곧잘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겁니다. 젊었을 때, 얼마나 이 말이 매일처럼 필요한 것인가를. 두 사람의 그 장면을 상상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젊은 시절에 로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러나 곁에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아서입니다. 그래서 젊은 날의 자신에게 필요했던 것을 젊은 시인 릴케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힘내라고!”는 격려의 말이지요. 그리고 그 기운이 릴케에게로, 또 릴케에서 백석과 윤동주에게로 전해졌을 것입니다. 로댕의 묵직하고 따뜻한 두 손이 어깨를 쓰다듬는 것 같은 이 말을 당신에게도 전합니다. “힘내라고!” ==================   핵심 정리 [이 작품은] 밤하늘의 별을 통해 아름다웠던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이상에 대한 동경과 자기 성찰을 보여 주는 화자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회상적, 성찰적, 의지적, 사색적 *제재 : 별 *주제 : 아름다운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자기 성찰 *특징 ① ‘현재 - 과거 - 현재 - 미래’의 시간적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함. ② 산문적 리듬을 가진 연을 삽입하여 운율의 변화를 줌. *출전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시어 풀이 *프랑시스 잠 : 프랑스의 시인. 자연의 풍물을 종교적 감정에 찬 애정으로 순박하게 노래함. *라이너 마리아 릴케 : 보헤미아 태생의 독일 시인. 인간 존재에 대하여 끝없이 탐구하며 독일 현대시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음. 작품의 구성 [1연] 계절적 배경 제시 [2연] 별을 바라보는 화자 [3연] 별을 다 세지 못하는 이유 [4연] 별을 보며 떠올리는 것들 [5연] 아름다운 과거에 대한 그리움 [6연] 너무나 멀리 있는 추억 속의 존재들 [7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8 ~ 9연] 부끄러운 삶에 대한 반성 [10연] 미래에 대한 희망과 확신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부정적 현실 속에서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화자가 자기반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통해 현재의 삶을 극복하고자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시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1~3연)은 별이 총총한 가을밤을 배경으로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더듬는 한 젊은이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두 번째 부분(4~7연)은 별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아름다운 어린 시절에 대한 화자의 애틋한 그리움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4연과 5연은 어조와 리듬의 변화를 통해 이들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인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세 번째 부분(8~9연)은 화자의 자기 성찰의 모습을 보여 준다. 자신의 이름을 ‘별’이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는 시적 화자의 행위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현재의 시대 상황 속에 서 있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에 대한 반성을 나타낸다. 네 번째 부분(10연)은 지금까지 시대적 아픔과 갈등의 어두운 세계 속에서 고뇌를 거듭했던 화자가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다짐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작품 연구실 ‘별’의 기능과 의미는? 이 시에서 ‘별’은 화자에게 있어 과거 회상의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지닌다. 또한 ‘별’은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등 화자가 지향하는 내적 세계를 나타내는 동시에, 화자가 그리워하는 세계에 속한 ‘아름다운 이름들’을 비유하고 있다. 화자가 그리워하는 세계에 속한 것들은 아름답지만, 공간적으로 멀리 있으며(‘북간도’, ‘외국 시인’), 시간적으로도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있다. 이런 점에서 화자가 그리워하는 세계에 속한 것들의 실상은 ‘별’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진다. ‘별’은 ‘어둠 속에 아름답게 반짝이는, 그러나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어의 상징적 의미 *별 : 과거 회상의 매개체, 화자가 지향하는 내적 세계, 그리움의 대상 *밤, 겨울 : 고난과 시련, 어두운 현실, 암담한 현실(일제 강점기) *봄 : 희망, 재생과 부활, 조국의 광복 *파란 잔디, 풀 : 부활과 재생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상 전개 이 시는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이 전개된다.   작가 소개 - 윤동주(尹東柱, 1917 ~ 1945) 시인. 북간도 출생.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이듬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1941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 시집(自選詩集)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사후에 햇빛을 보게 되어, 1948년에 유고 30편이 실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었다. 주로 1938~1941년에 쓰인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작품으로 ‘자화상’(1939), ‘또 다른 고향’(1948) 등이 있다. 함께 읽어보기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발상과 표현의 유사성 ‘흰 바람벽이 있어’는 고향을 떠나 있는 화자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한 편의 영상물처럼 그려 낸 작품이다. ‘별 헤는 밤’과 ‘흰 바람벽이 있어’의 화자는 어떤 매개물을 통해 ‘어머니’를 비롯한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으며,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발상과 표현 방법이 유사한 시이다. [교과 연계] (문학) 미래엔, 상문 관련문제 01.이 시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 계절의 특징을 활용하여 현실 상황의 변화를 표현하고 있다. 2. 시상의 극적 전환을 통해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3. 낭송을 할 경우, 내면을 나지막하고 차분하게 고백하는 어조가 어울린다. 4. 화자의 내면과 갈등 관계에 있는 현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5. 화자의 정서가 시간의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나타나 시상 전개의 축을 이루고 있다. 02.이 시의 '별'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 시적 화자의 불행한 운명을 예언하고 있다. 2.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내적 세계를 나타낸다. 3. 시적 화자의 기원을 받아 주는 초월적 존재이다. 4. 시적 화자와 외부 세계를 단절시키는 기능을 한다. 5. 시적 화자가 지니고 있는 현실적 욕망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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