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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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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문학과 작가들과 문학애호가들과의 뉴대는 계속 되여야... 댓글:  조회:2615  추천:0  2018-07-10
[연변] 청소년 ‘문학과 글짓기 캠프’ 열려 (ZOGLO) 2018년7월10일  주당위 선전부에서 주최하고 연변작가협회와 주교육국에서 주관한 ‘문학과 글짓기 캠프’가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2박3일간 주내에서 진행됐다.   ‘문학과 글짓기 캠프’는 전 주 민족문화사업회의 정신을 전면적으로 관철하고 중국조선족문학 후비력량의 단층문제를 해결하며 중국조선족문학발전인재양성 ‘신인프로젝트’ 및 ‘묘목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조직됐다. 조선족문단의 저명한 작가들이 청소년문학애호자들과 함께 광범위하게 교류했다.   훈춘시 제1실험소학교와 제4소학교, 연변1중, 연변대학 사범분원 등 주내 여러 학교의 학생 40여명과 작가, 문학보도원 56명이 캠프에 참여한 가운데 룡정곰락원, 한락연전시관, 일본간도 총령사관 옛터, 윤동주생가, 대성중학교 옛터, 화룡시 서성진 진달래민속촌, 안도현 이도백하진 소나무조각공원, 영경향 동청촌 대관동문화원, 만보진 홍기촌 조선족민속촌 등 곳을 탐방했다.   학생들은 허련순, 김혁 등 저명 작가의 문학강좌를 통해 시야를 넓히고 문학 창작 기교를 터득하였으며 교육 일선에서 사업하는 우수한 청년교원, 여러 문화매체 사업일군들과 교류하는 가운데서 문학에 대해 새롭게 인식했다.캠프에 이어 8월까지 ‘중소학생 문학캠프’ 글짓기 공모활동을 펼치게 되는데 우수한 작품들은 《중국조선족소년보》와 《중국조선족중학생보》에 발표된다.   ///연변일보 /박진화 기자
6    [특별기고] - "조선족은 우리의 미래일수 있다"... 댓글:  조회:2647  추천:0  2018-07-10
한국 교수 파격 발언... "조선족은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 (ZOGLO) 2018년7월10일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의 저자 신혜란교수 인터뷰       ▲사진= 한국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신혜란 교수.      “조선족은 우리의 미래일 수도 있다” 조선족 관련 연구를 발표하고 나서 이런 파격적인 발언을 했다는 서울대 신혜란교수가 쓴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라는 책은 제목부터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동안 조선족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응은 폭력, 인신매매, 장기적출 등 비뚤어진 시각 뿐이었고 조선족의 집단 이주에 대한 언론들의 초점도 불법 이주나 가족 해체, 3D업종 종사 등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해는 거의 백지화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혜란교수는 세계화, 변화하는 중국에서 조선족이 살아가려는 전략과 그 변화의 진화 과정에 눈길을 돌렸다고 했다. 조선족에 대한 입체적, 역사적, 다각적인 각도의 조명이 필요한 시기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혜란교수에게 조선족이란?   지난 6월 25일 오후 필자는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신혜란교수의 연구실 문을 노크했다. 이주자 연구와 도시 정치를 연구하는 신교수가 조선족에게 관심의 눈길을 돌리게 된 계기는 런던에서 아들을 낳고 나서 아들을 돌봐줄 도우미가 필요했는데 주위사람들의 소개로 조선족 도우미를 찾게 되면서부터다. 그때 처음으로 조선족을 접하게 되었는데 한국에서 몇 년간 가사도우미를 했던 경험이 있는 그 조선족아주머니는 애를 돌보는 일과 가사일도 맘에 들게 척척 잘했을 뿐만 아니라 성격이 화끈하여 조선족들의 이야기도 틈만 나면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조선족에 눈을 뜨고 나서 2012년에 지인의 요청으로 “객지에 사는 사람들이 공감할 글”을 쓰기로 하면서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을 쓰기까지 신혜란교수는 런던에서 3년, 한국에서 3년, 중국 청도에서 1년 동안 수많은 조선족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사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처음 인터뷰할 때 너무 힘들어서 6번을 하고 몇 달을 쉬었어요.”         ▲사진= 한국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신혜란 교수.       연구자의 입장에서 가능한 담담한 태도로 들었지만 자신이 전혀 모르는 브로커를 통한 입국이며 불법체류자로 살아가는 조선족의 이주의 삶 이야기가 신교수에겐 너무나 생소하고 가슴 아프고 힘들게 다가왔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이미 조선족의 이야기가 그녀 안에 가득 쌓이고 있었다.   런던의 뉴몰든, 중국의 청도, 한국의 대림에서 만난 조선족들은 모두 달랐다. “청도의 조선족들은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해줬지만 한국이나 뉴몰든의 조선족들은 달랐어요. 쿨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리 아는 사람을 통해서 소개를 받아도 딱 잘라서 거절을 하더라고요. 특히 한국에 나온 조선족들은 아마도 한국인들에게 당한 서러움이 많아서 그런지 제가 한국인이라고 하면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해요.”   이렇게 인터뷰에 브레이크가 걸리자 한동안 그녀는 조선족이 많이 가는 사우나에 일부러 자주 다녔다. 가서 무작정 조선족들에게 말 걸기를 시도했으나 조선족들은 단마디로 응대만 할 뿐이었다. 이렇게 무시로 다가가고 여러 번 거절당하고 사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조선족을 “괴롭혔다”. 이 책은 이렇게 만나고 들은 조선족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떠남’을 선택한 사람들   조선족의 ‘떠남’에 대해 신혜란교수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조선족은 20세기 초에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가서 소수 민족으로 살았다. 조상에게서 떠나온 이들의 삶을 배운 후손들은 세계화, 중국의 성장, 한-중 관계 개선 속에서 떠나는 삶의 진화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중국에서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던 조선족들은 지난 20년 동안 세계 곳곳에 진출했다. 조선족의 이주는 빠르고 넓다. 1992년 전에는 190만 명 정도이던 조선족 중 60만여 명이 90개국 넘는 나라로 이주했다.               이동성, 떠나기, 셀 수 없이 많은 ‘아마도’라는 미래 계획 등으로 흔들리는 개인의 삶은 세계화의 완성이다. 이런 이동에는 이민을 뜻하는 장거리의 영속적 이주뿐 아니라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동, 출장, 짧은 휴가 여행, 이사, 답사, 어학연수, 인턴십 프로그램 대비 단기 이주도 들어간다. 조선족은 그런 이동을 조금 일찍 시작했다. 사람들의 존재가 점점 더 불안해지는 경향이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면, 조선족은 일찌감치 불안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혹시 우리는 모두 조선족일까? 아직 아니어도 그렇게 나아가고 있는 걸까?   조선족들은 이런 새로운 떠남에 적응해 살고 있다. 시대를 앞서가는 경험을 하는 셈이니 훗날 혁신의 선두 주자로 평가받을지도 모른다.   조선족은 외국으로 갈 뿐 아니라 중국 안에서도 멀리 뿔뿔이 흩어져 산다. (중략) 그 결정의 토대가 ‘지정학적 눈치’다. 지정학적 지식을 깔고 전문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조선족들 사이에는 ‘어디는 요즘 어떻다’고 하는 전세계적 ‘카더라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일단 이민자들은 내가 결행한 떠나기가 맞는 판단인지 불안하기 때문에 두 나라의 형편을 늘 비교하게 된다. 조선족은 두 나라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가능성을 열어두는 만큼 범위가 훨씬 넓어진다. 거기에서 도는 얘기는 다름 아니라 조선족이 가서 할만한 일들이 지닌 전망이다. 국가별 발전 현황과 전망에 기대어 가늠한다.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   신혜란교수는 몇 년에 걸쳐 조선족이야기를 쓰면서 내내 이주자로 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했다. 인천에서 태어난 그녀는 서울을 거쳐 부산으로 갔다가 다시 서울로 왔고 그 후 로스앤젤레스, 런던을 거쳐 서울로 왔다. 서울에 와 학부, 석사, 박사, 교수 단계마다 학교가 계속 바뀌고, 전공이 바뀌고, 결혼을 한 일도 연거푸 새로운 환경에 놓인 이주자가 되는 과정이었다.   제목을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라고 정한 것도 요즘은 이주자의 마인드로 살아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든 다른 사회든 예전에 비해 지금 다니는 직장에 충성을 다하지 않고 늘 구인 사이트를 기웃거리는 사람이 늘어난 현실은 조선족들에게 일어난 변화랑 다를 바 없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신혜란교수는 또 요즘 인터뷰를 통해 만난 조선족들의 소개로 대림 PC 방을 전전하는 조선족 4세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도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비쳤다.     다문화시대에 조선족을 잘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고들 생각하지만 신혜란교수가 이 책을 쓴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조선족”,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몸부림을 이해하면 자기와 타인의 모습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주의 역사 속에 내가, 조선족이, 내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 자본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또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듯이 내 삶도 지리적 이동을 한다. 궁극적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   “이주자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주자는 좀 더 낳은 삶을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신혜란교수는 말했다. 요즘은 이주자의 양상도 다양해졌다. 전에는 잘 사는 나라로 이주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나라로 이주한다. 이주했다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나라로 가거나 두 나라 사이를 왔다 갔다 반복 이주하는 것처럼 다양해졌다. 전에는 잘 사는 나라로 대거 이주해서 그 나라에 뿌리박고 살려고 했다면 지금은 소규모 이동이 다양해졌다. 또한 난민과 이주자 구별도 잘 되지 않고 결혼이주-노동이주 구별도 힘들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영화 '차이나 블루'와 '황해'를 보는 시선   신혜란교수는 이 두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은 면은 조선족의 진화라고 말한다.   “사회주의 중국의 농촌에서 지내다가 자본주의 한국의 도시에 와 고생도 많이 하고 더 큰 불평등에 빠지기도 했지만 학습 효과는 컸고 성공한 조선족도 늘어나고 있다. 조선족의 유목민적 특징은 21세기에 큰 장점일 수 있다. 중국이 부상하고 한국과 조선이 통일된 후에 조선족이 할 수 있는 일도 더 많다. 서울 가리봉과 구로 지역은 어떻게 변할지, 2020년이나 2030년쯤에 이곳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는다면 무엇을 볼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했다.        ▲사진= 가리봉동. /자료사진      “조선족은 우리의 미래일 수도 있다”   조선족 관련 연구를 발표한 뒤 토론에서 신혜란교수가 이 말을 하자 대부분 말도 안된다는 반응을 내비쳤다고 한다. 그것은 미래라는 말은 보통 더 발전한 사회를 뜻하고, 앞서간 사회가 지니는 장점과 단점을 어떻게 취하고 버릴 지를 말할 때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족이 미래라니 과연 무슨 의미인가?   자본이 국경을 더 자유롭게 넘나들게 된 변화가 기본적 세계화라면 사람의 이동, 생각의 이동, 정책의 이동은 본격적 세계화다. 요즘처럼 많은 나라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 때, 자기 나라나 도시에서만 직업을 찾지 않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에서 기회를 찾으려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지리적으로 활동 무대가 넓어진데다 노동시장도 유연해졌기 때문이다.   또 단일민족의 신화 속에서 다른 인종에게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던 한국사회에 이주자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한국 사회도 어쩔 수 없이 서서히 변화에 적응할 수 밖에 없다. 2015년 신혜란교수가 맡은 한 대학원 세미나 수업은 6개국 출신의 학생들이 들어올 만큼 다국적으로 변했다. 그런 변화가 개인의 삶에도 들어온다.   경쟁에 내몰린 개인들의 삶은 늘 불안하다. 불안해서 살기가 힘들고 비정규직이 싫다고 하지만 정규직 일자리에 들어가서도 좀더 나은 조건을 찾아 늘 기웃거린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찾아서, 정말 더 좋다는 보장이 없는데도 그 미래를 좇아 가족을 두고 떠난다. 궁극적으로 세계는 지금 이주의 시대다.   부유하는 사람들이 어디든 정착해서 살고 싶어하는 듯하지만, 그 갈망만큼이나 떠도는 삶에 익숙해져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필연적으로’ 떠나게 된다고나 할까.   이런 면에서 볼 때 “조선족은 우리의 미래”라고 할 수 있다는것이다.   ///흑룡강신문/특별기고 곽미란
5    [쉼터] - 련못가에 인련꽃 피다... 댓글:  조회:2784  추천:0  2018-07-10
복건에서 펼쳐진 련못가의 요가 쇼 [ 2018년 07월 10일 ]     7월 8일, 요가 애호가들이 련꽃이 핀 푸졘(福建 복건)성 싼밍(三明)시 졘닝(建寧)현 쥔커우(均口)진 슈주(修竹)촌의 천묘에 달하는 련못가에서 요가 실연을 하고 있다. 당일, 제3회 중국 졘롄(建蓮)문화관광축제 및 세계요가대회가 푸졘성 싼밍시 졘닝현에서 거행되었다. 근 1,000명에 달하는 요가 애호가들이 련꽃이 활짝핀 련못가에서 아릿다운 자태를 뽐냈다. ///신화망         
4    [이런저런] - 갈매기들도 "술주정뱅이" 댓글:  조회:4444  추천:0  2018-07-10
[영상pick] '휘청휘청'.. 관광객이 해변에 버린 술 먹고 취한 갈매기 조도혜 작가, 김도균 기자 2018.07.09.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만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갈매기 영상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6일, 영국 가디언 등 외신들은 영국 동물보호협회(RSPCA)가 공개한 영상을 소개했습니다. 영상 속 초점을 잃고 흐리멍덩하게 눈을 뜬 갈매기 한 마리가 있습니다. 갈매기는 비틀거리며 걷고 중심을 잡지 못해 휘청거립니다.  어지러운지 고개를 흔드며 정신을 차려보려고 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모습입니다. RSPCA 관계자는 "최근 몇 주간 해변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갈매기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며 "처음에는 식중독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술에 취한 것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갈매기들은 만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의식을 잃기도 했지만, 다행히 토하고 나면 상태가 회복되었다"며 "구조된 갈매기들이 하나같이 술 냄새를 풍겨서 구조 차 안이 마치 선술집이 된 것 같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RSPCA는 그 중 한 마리의 영상을 공개하며 당부의 말을 전했습니다. 협회는 "해변을 찾는 관광객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이 맥주나 다른 술들을 남기고 가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지적하며 "먹이를 찾는 야생 동물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술을 그대로 버리고 말아 달라"고 주장했습니다. '영상 픽' 입니다.  /유튜브 Guardian News  /조도혜 작가, 김도균 기자 ===================
3    [기적신화] - "야생 멧돼지"들은 무사히 돌아왔다... 댓글:  조회:3751  추천:0  2018-07-10
마지막 생환자는 '코치'.. "끝까지 아이들 지켜냈다" 이진연  2018.07.10.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동굴 탐험에 나섰다가 실종되면서 비관적 전망까지 나돌았던 태국 소년 12명과 코치 모두 구조됐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실종자 전원이 극적으로 구조되면서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아이들은 모두 건강해요. 최선을 다해 보살피겠다고 약속해요" 코치 편지 구조대가 마지막으로 동굴에서 구출한 사람은 축구단 코치 25살 '에까뽄 찬따웡세'다.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굴로 들어간 죄책감 때문에 내내 괴로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에까뽄 코치는 아이들의 작은 메모지에 미안한 마음을 담아 부모들에게 이 같은 편지를 전달했다. "아이들은 모두 건강해요. 제가 최선을 다해 보살피겠다고 약속해요." 앞서 일부 현지 매체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양보한 코치가 건강이 악화돼 지난 8일 구조됐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오보였다. 그는 동굴에서 끝까지 아이들을 돌봤다. 결국, 에까뽄 코치는 부모들과 약속을 지키고 마지막 생환자로 돌아왔다. 실종자 전원 구조...."코치의 리더십과 지혜 빛나" 동굴 속 코치 태국 치앙라이의 '무 빠'(야생 멧돼지) 축구 클럽에 소속된 소년들과 코치가 동굴에 갇힌 건 17일 전이다. 이들은 지난달 23일 오후 훈련을 마치고 관광 목적으로 이 동굴에 들어갔다가 갑작스럽게 내린 비로 동굴 내 수로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고립됐다. 이후 9일간 지속한 수색 끝에 영국 동굴탐사 전문가 2명에 의해 동굴 입구에서부터 3.2㎞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지난 2일 밤 발견됐다. 구조대원이 처음 발견했을 때 소년들은 유니폼을 입고 맨발인 상태로 캄캄한 동굴 속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오랫동안 먹지 못해 다소 여윈 모습이었다. 이들의 발밑에선 뿌연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열흘 가까이 굶주려 건강이 악화했을 것이라는 애초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이 소년들은 동굴에 갇혀 있는 동안 과연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함께 있었던 축구단 코치 에까뽄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 많다. 우선 에까뽄 코치는 소년들의 체력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 소리를 지르거나 불필요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했다. 소년들이 집에서 가져온 과자를 조그맣게 나눠서 먹게 했다. 흙탕물은 복통을 일으킬 수 있어 천장의 종유석이나 천장에 맺힌 물을 마시게 했다. 덕분에 소년들은 구조대에 의해 발견될 당시 다소 야위었으나 건강을 잃지는 않았다. 대신 코치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고, 자신의 거의 공복 상태로 버틴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는 동굴에 갇힌 순간부터 아이들에게 극한의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도록 정신적 지주 역할도 했다. '우리는 한 팀'이라는 의식을 계속 심어 주며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이끌었다. 아이들은 축구 게임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가 되어 코치가 시키는 대로 동작을 하고, 구호를 외치고 뛰는 시늉도 했다. 코치는 때로는 명상을 하면서 침착하게 시간을 보내게 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줬다. 특히 아이들에게 살아나 갈 것이라는 확신과 의지를 심어줬다. 발견 당시 구조대원들은 "아이들은 음식 없이 지내 다소 지쳐 보였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강인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매우 사랑하고, 아이들도 그를 잘 따른다" 소년들의 부모는 원망보다는 동굴 안에서 아이들을 잘 보살펴준 코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한 소년의 어머니는 "코치가 함께하지 않았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른다. 우리는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애초 우기가 시작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동굴로 들어간 것에 비난 여론도 많았으나 그의 헌신적인 활약상이 알려지면서 비난은 잦아들었다. 또 엑까뽄 코치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보육원에서 자랐고, 12살부터 사찰에 들어가 10년간 수도승 생활을 했다는 사연도 전해졌다. 그는 3년 전 병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수도승 생활을 접고 무빠 축구팀 보조 코치로 일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인들을 뭉클하게 했다. 그는 자신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평상시에도 소년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본 것으로 알려졌다. 코치의 이모는 CNN방송에 "엑까뽄은 아이들을 매우 사랑하고, 아이들도 그를 잘 따른다"고 말했다. 태국 동굴 소년들의 구조 소식은 전 세계인들이 숨을 죽이며 실시간 지켜봤다. 전원 구조라는 기적 같은 일에 모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보살핀 '에까뽄 찬따웡세' 코치의 리더십과 활약상은 앞으로도 태국인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진연기자  =============== "12일 밤낮을 뜬눈으로 물 퍼냈다" 태국 동굴 기적의 숨은 영웅  2018.07.11. 19:52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논밭에 물대는 사업용 펌프로 혼신의 배수 자원봉사자.."아이들 도와 그저 기쁠 뿐" 태국 동굴기적의 숨은 영웅 타왓차이씨[카오솟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아이들을 도울 수 있어서 자랑스러워요. 잠을 못자서 집에 가서 푹 자야겠어요" 치앙라이 매사이 탐루엉 동굴에 갇혔던 13명의 유소년축구팀 선수와 코치의 구조 소식으로 태국 전역이 흥분과 환호에 차 있던 11일(이하 현지시각) 오전. 주황색 우비를 입고 트럭에 배수용 펌프와 18m 길이의 파이프를 실어 구조현장을 조용히 빠져나간 사람이 있다. 소년들이 갇혀있던 탐루엉 동굴에 파이프를 연결하고 물을 퍼내온 자원봉사자 타왓차이 추엉까촌(42)씨다. 방콕 인근 나콘빠톰 주(州)에서 펌프로 농장 등에 물을 대주는 사업을 하는 그는 소년들이 동굴에 갇혀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생업을 접은 채 이번 구조작업에서 '그레이트 나가 워터 펌프 팀'으로 불린 20명의 직원을 이끌고 치앙라이 동굴로 달려왔다. 차로 꼬박 12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그는 자신이 가져온 펌프와 파이프로 지난 12일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동굴안에 가득 찬 물을 퍼냈다. 덕분에 구조대의 활동이 훨씬 자유로워졌고 13명의 소년과 코치를 구하는 일도 수월해졌다. 배수용 파이프를 트럭에 싣고 구조현장을 빠져나가는 타왓차이씨의 트럭 그는 논과 밭에 물을 대주고 시간당 1천바트(약 3만4천원)를 받는다. 자원봉사에 나선 지난 12일간 벌 수 있었던 돈이 적지 않지만, 그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물을 빼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처럼 동굴소년 구조에 엄청난 기여를 했지만, 그에게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비추지 않았고 '영웅 칭호'를 붙여주는 이도 없었다. 타왓차이씨는 현지 인터넷매체 카오솟 기자에게 "마음이 끌려서 이곳에 왔고, 아이들을 도와서 기쁠 뿐"이라며 "그동안 제대로 잠을 못자 졸리다. 집에 가서 푹 자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구조작업에서 얻은 교훈을 묻자 "모두가 저마다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내가 얻은 교훈은 우정"이라며 웃었다. 18m길이의 육중한 배수 파이프를 실은 타왓차이씨의 트럭 4대가 한꺼번에 혼잡한 구조 현장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그를 알아본 경찰이 구조현장을 빠져나가는 그의 트럭을 배웅했다. '13명 전원생존'이라는 동굴의 기적을 만든 숨은 영웅 타왓차이씨의 임무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잠수하는 의사·끝까지 버틴 코치.. 태국 '동굴기적' 만든 영웅들 입력 2018.07.10.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영국인 잠수사, 생존자 발견·구조계획 토대 세워 태국 전 네이비실 대원 사만의 희생에 안타까움 더해 (하노이=연합뉴스) 민영규 특파원 = 태국 동굴에 최장 17일간 갇혔던 유소년 축구팀 선수와 코치 등 13명이 전원 무사히 구조되는 기적 뒤에는 눈부신 활약을 펼친 영웅들이 있었다. 우선 실종 열흘 만인 지난 2일 동굴 입구로부터 무려 5㎞가량 떨어진 경사지에서 소년들과 코치가 모두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한 영국인 전문 잠수사들이 있었다. 태국 동굴 소년들 찾아낸 영국 잠수사들 [AP=연합뉴스 자료 사진] 소방관 출신인 리처드 스탠턴과 영국 브리스틀에서 컴퓨터 기술자로 일하는 존 볼랜던이었다. 전문가 자격으로 현장에 급파된 이들은 동굴 속 바닥을 기고 급류 속을 헤엄쳐 생존자들을 발견하고 향후 구조계획의 토대를 세웠다. 특히 2004년 멕시코에서 홍수로 지하에 9일간 갇힌 영국 병사 6명에게 잠수를 가르쳐 9시간 만에 모두 탈출시킨 스탠턴의 경험은 이번 구조에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과 함께 깜깜한 동굴 안에서 거센 물살을 헤치며 구조활동에 동참한 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 소속 구조대원과 태국 해군 네이비실 대원 등 다이버 90여 명이 있었다. 이 가운데 사만 푸난(37) 전 태국 네이비실 대원은 지난 6일 동굴 내부 작업을 하다 산소 부족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는 바람에 병원으로 이송된 뒤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해군에서 전역한 뒤 태국공항공사(AOT) 보안직원으로 근무하던 사만은 소년들이 동굴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구조작업에 참여했다가 변을 당했다. 이번 구조작업 과정에서 나온 유일한 희생자다. 지난 2일 소년들이 발견된 직후부터 10일 모두 구조될 때까지 곁을 지키며 건강을 돌본 호주인 의사 리처드 해리스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잠수하는 의사 리처드 해리스 [호주 오즈텍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마취과 의사로 일하는 그는 동굴 잠수 분야에서 30년의 경험을 가진 베테랑이다. 덕분에 소년들이 있는 곳까지 큰 어려움 없이 진입할 수 있었다. 그는 생존자 13명의 건강상태를 확인해 구조 순위를 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구조 당국은 해리스의 조언을 토대로 본격 구조 첫날인 8일과 9일에 각각 4명씩 우선 구조했고 10일에는 나머지 5명을 한꺼번에 동굴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소년들과 함께 동굴에 들어갔다가 고립됐던 코치 엑까뽄 찬따윙(25)도 숨은 영웅으로 꼽힌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동굴 안 수위가 급상승하자 소년들을 경사지 위로 올라가게 해 생존 공간을 확보한 뒤 천장과 종유석에 맺힌 물방울을 마시게 하는 등 기지를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칠흑같이 캄캄한 동굴 안에서 두려움에 떠는 소년들을 추스르며 소년들을 모두 내보낸 뒤 마지막으로 동굴을 빠져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엑까뽄 코치는 동굴에 갇혀 있는 도중 소년들의 부모님께 보낸 손편지에서 사죄의 뜻을 밝히고 아이들을 돌보겠다는 약속을 했다. =====================   '13명 전원 구조' 신화 쓴 '나롱싹' 전 주지사.. 돋보이는 리더십 최성원  2018.07.11. 00:17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위기는 기회이다!' 살다 보면 누군가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17일간의 드라마,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태국에서 벌어진 '동굴 소년' 기적의 생환 스토리이다. 우리 시간으로 10일 저녁 8시 48분, 마지막으로 동굴 안에 남아 있던 12번째 소년이 구조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3분 후인 8시 51분 드디어 축구단 코치 25살 '에까뽄 찬따웡세'씨가 구조대의 도움으로 동굴 밖으로 빠져나왔다. 태국 네이비실은 같은 시각 페이스북에 "12명의 소년과 코치가 모두 안전하게 동굴 밖으로 나왔다"는 임무 완료 메시지를 남겼다. 이들의 구조를 숨죽이며 지켜보던 태국 국민들은 그야말로 모두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전원구조라는 기적을 이룬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 그 자체였다. 치앙라이의 '무 빠(야생 멧돼지)' 축구 아카데미 소속 선수 12명과 코치 1명 등 13명은 6월 23일 오후 훈련을 마치고 동굴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내린 비로 동굴 내 수로 수위가 높아지면서 고립됐다. 이후 이들의 실종 소식이 접수됐고, 영국 동굴탐사 전문가 2명에 의해 실종 열흘째인 지난 2일 밤 동굴 입구로부터 5km가량 떨어진 곳에서 극적으로 발견됐다. 나롱싹 오솟따나꼰 전 치앙라이 주지사 이후 구조작업이 시작됐고, 기적의 생환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구조를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하는 한 사람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차분하고 정직한 현장 상황설명,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백 명의 취재진과 구조대, 고립자 가족 등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 혼잡한 사고 현장에서 묵묵하게 구조 현장을 지휘한 사람이 있다. 나롱싹 오솟타나꼰 前 치앙라이 주지사다. 사실, 소년과 코치 등 13명이 처음 동굴에 갇혔다는 소식은 나롱싹 주지사에게는 임기 말에 떨어진 날벼락과 같았다. 나롱싹 전 주지사는 이미 지난 4월에, 7월 초 파야오 지방의 주지사로 전보 발령이 결정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책에 前 주지사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닌 것이다. 나롱싹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생을 살아온 것일까? 그는 지질학과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말 그대로 '전문가'다. 깊은 동굴 안에서 벌어진 고립 사고, 동굴 내부 수로의 거센 물살과 폭우 등으로 동굴 내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는 위험한 상황에서 13명의 고립자들이 생존했는지 여부 자체가 너무나 불확실한 상황에서 수색 작업이 시작됐다. 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 소속 구조대원과 영국 동굴탐사 전문가 등 다국적 구조팀이 꾸려진 상황, 누군가는 확실한 지휘를 해야 했고, 모두가 바라고 있었다. 그동안 내린 폭우로 아이들이 있는 공간 주변을 막고 있는 동굴 안 물웅덩이의 수위는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다국적 구조팀은 우선적으로 가용한 모든 장비를 동원해 배수 작업을 진행했다. 태국 동굴 고립 사고 구조 현장 이 과정에서 현장 지휘를 책임진 나롱싹의 결정은 신중하고 정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그의 능력이 돋보인 것은 미디어와의 기자 회견장이었다. 태국 국내 언론은 물론 해외 언론에 현장 상황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한 건 물론, 구조 작업과 구조 방법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혹시 있을지 모를 오해와 오보를 막는 데 주력했다. 현지 언론은 나롱싹 전 주지사가 6월 29일을 기해 공식적으로 파야오 주의 주지사로 발령받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태국 정부는 나롱싹을 애초 다른 주의 주지사로 발령낸 뒤에도 사고 현장에 대한 구조 지휘권을 계속 부여했다. 태국 내무부 장관인 아누퐁 파오찐다는 탐루앙 동굴에 있는 아이들이 전원 구조될 때까지 나롱싹 전 치앙라이 주지사가 계속 현장을 지휘할 것을 명했다. 현지언론들은, 이것이 탁월한 결정이었다고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탐루엉 동굴 구조 작업으로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나롱싹 전 주지사를 차기 총리로 추대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총리 여부를 떠나 17일 만에 13명 전원 구조라는 신화를 쓴 나롱싹의 탁월한 리더십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최성원기자 =======================       동굴에 갇힌 지 17일.. 소년들을 살린 건 '희망'이었다 최민지 기자 2018.07.10. 21:59 SNS 공유하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경향신문] ㆍ구조 사흘 만에 전원 생환 ㆍ날씨·산소부족 등 고비에도 태국 당국 과감·신중한 작전…소년들 수영 등 빠르게 적응 ㆍ생환자들 동굴병 우려 격리…유리창 밖 가족과 만나기도 다급한 이송 현장 태국 치앙라이주 탐 루앙 동굴 부근에서 10일 헬리콥터 한 대가 동굴에서 구조된 유소년 축구팀원을 태우고 80㎞가량 떨어져 있는 병원으로 가기 위해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매사이 | AP연합뉴스 “12 야생 멧돼지와 코치가 동굴에서 나왔다. 모두 안전하다.” 태국 네이비실이 10일 오후 6시48분(현지시간)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북부 치앙라이주 탐 루앙 동굴에 갇힌 유소년 축구팀 13명 전원의 생환을 알렸다. ‘야생 멧돼지’는 축구팀 명칭이다. 구조작업 사흘째인 이날 선수 4명과 코치 1명 등 5명이 동굴 밖으로 나왔다. 지난달 23일 동굴에 고립된 축구팀 13명이 17일 만에 전원 구조된 것이다. 태국 네이비실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이날 첫 구조자이자 9번째 생환자는 오후 4시6분에 나왔다. 오전 10시8분 구조작업이 개시된 지 5시간58분 만이다. 코치 에카폰 찬타웡(25)은 마지막으로 구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구조된 5명은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네이비실이 ‘개구리’라고 부른 의사와 태국 해군 잠수사 3명 등 4명도 동굴 밖으로 나왔다. 이들은 동굴 안에서 선수들과 코치 곁을 지켜왔다. 구조작업을 지휘하는 나롱삭 오솟타나콘 전 치앙라이 주지사는 이날 낮 12시쯤 기자회견에서 “오늘 남은 5명 모두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구조 사흘째인 이날에는 구조대원 19명이 투입됐다. 지난 8~9일 이틀간 진행된 구조작업에서 4명씩 모두 8명이 동굴 밖으로 나왔다. 생환자 8명은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젯사다 촉담렁쑥 공중보건부 사무차관은 “8명 모두 건강하다. 정신적으로도 안정돼 있다”고 밝혔다. 폐질환 등 감염 우려로 격리돼 왔던 이들 4명은 생환 이틀째인 9일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가족을 만났다. 2주 넘게 암흑 속에 있었던 아이들은 시력 보호를 위해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며, 정신 건강을 위해 TV 시청은 금지된 상태라고 당국은 밝혔다. 당국은 이들이 동굴병 등에 감염됐을 우려가 있어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병원에 격리할 계획이다. 아이들의 생환까지 구조당국은 수많은 고비를 넘겼다. 날씨, 동굴 내 수위, 부족한 산소 등 악조건의 연속이었다. 6월 말 시작된 폭우는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구조당국의 마음을 애태웠다. 동굴 안에 물이 차오르는 만큼 산소는 희박해져갔다. 실제 지난 6일 전직 해군 출신 잠수사 사만 쿠난(38)이 동굴 내 산소 탱크 설치 작업을 마치고 귀환하다 산소 부족으로 사망했다. 구조당국은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작전을 폈다. 아이들의 생존이 확인된 지난 2일부터 의료진을 보내 이들의 상태를 살피고 영양을 보충해 체력을 끌어올리는 한편 잠수를 가르쳤다. 당국은 이후 구조대원이 아이를 인도해 잠수 및 도보로 동굴을 나오는 구조 방식을 택했다. ‘가장 빠르지만 가장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작전이었다. 특히 10~11일 큰비가 예고되면서 작업 연기에 대한 우려도 나왔지만 당국이 쉬지 않고 물을 빼고 산소를 공급해온 덕에 구조 환경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소년들도 빠르게 적응했다. 잠수를 배운 지 일주일도 안돼 1.7㎞ 구간을 잠수해 나오는 데 성공했다. 구조 작업에 참여한 덴마크 출신 잠수사 이반 카라지치는 “소년들은 오직 작은 손전등 하나에 의존해야 하는 극도로 위험한 환경에서 잠수를 했다. 놀랍도록 강하다”고 BBC에 말했다. 축구팀 13명의 생환에 가족들과 태국, 전 세계가 환호했다. 전원 구조 소식을 알린 네이비실의 게시물은 5분 만에 2만3000차례 이상 공유됐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축하의 트윗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미국을 대표해 성공적 구출을 축하한다”고 썼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도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영국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축구팀과 구조팀을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리는 경기에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최민지 기자    태국 동굴소년·코치 13명, 17일만에 '기적의 생환'(종합2보) 2018.07.10.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6월23일 이후 열흘간 고립..2일 극적으로 발견된지 7일만에 전원 구조돼 25세 코치 끝까지 아이들 지키다 마지막에 동굴서 나와 구조현장을 빠져나가는 구급차 행렬[AFP=연합뉴스]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태국 치앙라이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과 코치가 17일간의 '동굴 드라마'를 기적 같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했다. 태국 네이비실은 10일(이하 현지시간) 저녁 페이스북을 통해 동굴 안에 갇혀있던 12명의 소년과 코치의 구조 소식을 전했다. 당국은 이날 오전 10시께 19명의 다국적 구조팀을 투입해 사흘째 구조작전을 벌였고, 동굴에 남아 있던 5명의 마지막 생존자를 무사히 구출해냈다. 첫 구조 소식은 오후 4시 12분께 전해졌다. 9번째 생환자였다. 이후 20여 분 뒤인 4시 33분 10번째 생환자가 동굴을 빠져나왔고, 5시 13분께 11번째, 6시 51분께 12번, 13번째 마지막 생환자 소식이 전해졌다. 아이들을 데리고 동굴에 들어갔던 엑까뽄 찬따웡(25) 축구팀 코치는 끝까지 동굴 안에 남아 있다가 마지막에 구조된 것으로 전해졌다. 태국 네이비실도 같은 시각 페이스북에 "12명의 소년과 코치가 모두 안전하게 동굴 밖으로 나왔다. 이게 기적인지 과학인지 얼떨떨하다"는 임무 완료와 감격의 메시지를 남겼다. 이로써 지난달 23일 오후 훈련을 마친 뒤 동굴에 들어갔다가 폭우로 물이 불어나면서 고립된 13명은 17일 만에 전원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이날 추가로 구조된 소년들과 코치의 건강상태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당국은 이들을 구급차와 헬기에 태워 치앙라이 시내 쁘라차눅로 병원으로 이송했다. 생환자 이송하는 태국 경찰 헬기[태국 경찰 페이스북 캡처=연합뉴스] 이들은 치앙라이의 '무 빠'(야생 멧돼지) 축구 아카데미 소속으로, 지난달 23일 오후 훈련을 마치고 동굴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내린 비로 동굴 내 수로 수위가 높아지면서 고립됐다. 이들은 태국 네이비실 잠수대원들과 함께 동굴 내부를 수색하던 영국 동굴탐사 전문가 2명에 의해 실종 열흘째인 지난 2일 밤 동굴 입구로부터 5㎞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됐다. 이후 태국 네이비실 잠수대원과 의사 등이 동굴 내부로 들어가 음식 등을 제공하고 다친 아이들을 치료했다. 또 당국은 동굴 안에 가득 찼던 물을 빼내 수위를 낮추는 한편 아이들이 침수구간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수영과 잠수장비 사용법을 가르쳤다. 이어 8일 본격적인 구조작업에 나서 당일 4명을 구조했고 이어 9일 추가로 4명을 구출해냈다.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동굴구조를 주도한 것은 영국과 미국, 호주 등 전 세계에서 온 50여 명의 동굴구조 전문가였다. 이들은 40여 명의 태국 네이비실 잠수대원들과 함께 사흘간 차오르는 물과 사투를 벌이며 13명을 동굴 밖으로 구출했다. 자원봉사자로 구조에 동참했던 전직 태국 네이비실 대원 1명이 지난 6일 산소 부족으로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   '동굴소년' 구조중 숨진 네이비실대원 아내의 망부가 '애틋'  2018.07.11.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이제 눈뜨면 누가 키스해주죠?"..인스타그램에 사무치는 마음 글·사진으로 올려 (하노이=연합뉴스) 민영규 특파원 = 태국 동굴에 17일간 갇혔던 유소년 축구팀 선수와 코치 등 13명이 모두 생환하는 기적을 만드는 구조작업에 참여했다가 숨진 사만 푸난(37) 태국 해군 네이비실 대원의 아내가 남편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표현했다. 11일 일간 카오솟에 따르면 사만의 아내 발리뽀안 쿠난은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남편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과 함께 사랑을 듬뿍 담은 글을 올렸다. 태국 동굴기적 의사자가 생전 아내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 [카오솟 캡처=연합뉴스] 발리뽀안은 "당신이 그리워요. 너무 사랑해요. 당신이 마치 내 심장인 것처럼 사랑해요"라고 말을 꺼냈다. 그는 또 "당신을 왜 그렇게 사랑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내가 잠에서 깼을 때 누가 나에게 키스해주지요?"라고 사무치는 그리움을 표현했다. 이어 "시간을 되돌려 그것을 영원히 멈출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로 졸지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비통함을 나타냈다. 발리뽀안은 사만이 숨진 다음 날인 지난 7일에도 소셜미디어에 "당신은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거예요. (이 세상에) 당신 같은 사람은 없어요"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또 "당신이 나와 함께 있지 않으면 숨 쉬고 싶지도 않아요. 우리 함께 살겠다고 약속했었으니까요"라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사만은 지난 6일 오전 1시께 동굴 내 3번째 공간에 산소 탱크를 전달하고 돌아오던 도중 산소부족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된 뒤 숨졌다. 이틀 뒤인 8일부터 3일간 본격 진행된 구조작업으로 소년 12명과 코치 1명은 전원 무사히 구조됐다. 해군에서 전역한 뒤 태국공항공사(AOT) 보안요원으로 취직해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일하던 그는 소년들이 동굴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구조대원으로 자원했다. 이 같은 소식을 들은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은 사만에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고 명예로운 장례식을 치러주기로 했다. 와치랄롱꼰 국왕은 또 숨진 사만의 가족을 특별히 보살필 것을 지시했고, 쁘라윳 짠 오차 태국 총리도 깊은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첼타 자이피움 태국 해군 대변인은 국왕의 뜻에 따라 사만에 대해 특별 진급을 추진할 예정이며, 유가족도 지원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만이 근무하던 수완나품 공항 측도 최소 100만 바트(약 3천3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사만의 빈소가 마련된 태국 북동부 로이엣 주의 한 관광버스 회사는 오는 14일로 예정된 다비식 때까지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기로 하는 등 각계에서 온정이 답지하고 있다. 사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다비식장은 9개의 상스러운 뾰족탑이 있는 15㎡ 규모로, 제작비용만 30만 바트(약 1천만원)로 알려졌다. 구조 준비 도중 사망한 전직 네이비실 대원[태국 네이비실 페이스북 캡처] ==============   "동굴속 소년들 30분 잠수 참아.. 생존의지 강해"..구조과정 공개  2018.07.11. 22:53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부력보정기·후드형 잠수복·특수 마스크 등 활용..좁은 공간 통과 여러 차례 실패 구간에 따라 1∼4명의 구조인력이 동행..에어포켓 구간에서는 공중에 띄워 이동 구조 과정 설명하는 미 공군 앤더슨 상사[AP=연합뉴스]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하니스 안에 있던 소년들은 시계(視界)가 제로인 상태에서 최장 30분간 잠수를 견뎠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코치가 똘똘 뭉쳐 강한 생존 의지를 보였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주목했던 태국 치앙라이 탐루엉 동굴의 유소년 축구팀원 구조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됐을까. 태국 구조 당국이 지난 8일 구조 개시와 함께 인근을 통제한 탓에 사흘간 기적의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동굴 안은 물론 입구의 상황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이 파견한 구조단을 이끈 미 공군 구조전문가 데렉 앤더슨(32) 상사는 11일 AP통신과 인터뷰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구조 당시 동굴 안의 상황을 일부 공개했다. 그가 이끄는 미군 인도 태평양사령부 소속 구조전문가 30명은 지난달 28일 태국의 요청으로 동굴로 달려왔다. 당시만 해도 13명의 소년과 코치의 생존 여부와 위치가 파악되지 않았다. 동굴 소년 구조 장면[태국 네이비실 영상 캡처=연합뉴스] 이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고 말랐던 동굴 입구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앤더스 상사는 "우리가 동굴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바닥이 말라 있었지만 불과 1시간∼1시간 30분 만에 동굴 안쪽에 물이 가득 고여 밖으로 나와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태국 당국이 제3의 출입구를 찾거나 바위를 굴착하는 방법 대신, 몸도 허약하고 수영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잠수법을 가르쳐 동굴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선택을 한 배경도 풀어놨다. 앤더슨 상사는 "동굴 안의 산소 농도는 떨어지고 아이들이 아플 위험도 있었다. 비가 더 내리면 소년들이 장기간 동굴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더 희박해지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잠수장비 사용법 교육은 최대 난코스로 불리는 좁은 통로를 통과하는데 맞춰졌다. 앤더스 상사는 "아이들이 있던 동굴 안쪽의 수심이 잠수부가 훈련하는 수영장의 깊이와 비슷했다"며 "잠수훈련의 목표는 아이들이 전문 잠수사를 따라 성인 한 명이 겨우 나갈 수 있는 좁고 긴 통로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탐루엉 동굴의 영웅들[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실제 탈출 과정에서는 전면마스크 등 이미 알려진 것 이외에도 다양한 장비가 쓰였다고 한다. 물속에서 몸이 떠오르지도 가라앉지도 않도록 유지해주는 '부력 보정기', 머리까지 감싸는 후드형 잠수복, 번지 코드(신축성 있는 고무끈), 특수 마스크 등이 사용됐다. 앤더슨 상사는 "특히 ( 대기압력보다 높은 압력의 공기를 방출하는) 양압 호흡기가 달린 마스크가 결정적이었다"며 "이 마스크를 쓰면 아이들이 좁은 통로에서 패닉 상태에 빠져 마스크 안에 물이 들어와도 압력때문에 자동으로 배출된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런 장비를 갖췄음에도 좁은 통로에 저체온증을 유발하는 빠른 물줄기가 흘러 초기 여러 차례 돌파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고, 동굴 통로를 따라 안전 로프를 설치해 상황이 다소 개선됐음에도 여전히 위험이 컸다. 앤더슨 상사는 "이런 지형에서 잠수할 때 설치되는 로프는 생명줄"이라며 "로프가 설치된 아주 조금 진전이 있었지만, 불과 40∼50m를 나아가는데 5∼6시간을 허비해야 했다"고 말했다. 당국은 생존자 1명당 잠수 전문가 2명이 붙어 아이들을 빼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 동원된 인력은 훨씬 더 많고 구간에 따라 보조 인력의 수도 달라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생환자 싣고 이동하는 구급차[AFP=연합뉴스] 구급차로 옮겨지는 생존자[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앤더슨 상사는 "동굴 안에는 100명에 가까운 구조인력이 있었다. 총 9개의 공간(chamber)을 통과하는 위험천만한 과정에 생존자 1명당 10여 명이 붙었다"고 말했다. 일부 구간에서는 2명, 좁은 구간에서는 1명의 잠수사가 이들과 동행했고, 에어포켓이 있는 공간은 아이를 공중에 띄워 통과시켰다. 일부 구간은 물이 없었지만, 바위투성이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동굴 중간중간에 설치된 생존자 공기통 보충용 실린더에는 일반 공기가 아닌 산소 농도 80%의 공기를 채웠다. 그래야만 생존자들의 산소포화도를 높여 온전한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구조작전은 나도 이전에 해본 적이 없는, 일생에 한 번 경험할까 말까 한 것"이라며 "우리는 지극히 운이 좋았기 때문에 원했던 결과를 얻었다. 많은 퍼즐 조각을 맞춘 결과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원구조 환호하는 동굴소년 친구들[로이터=연합뉴스] 앤더슨 상사는 "정말 중요한 것은 코치와 소년들이 뭉쳐서 강해지자는 이야기를 나누고 생존 의지를 보였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동굴에서 아이들을 들것에 태워 옮기는 임무를 수행했던 전직 네이비실 대원은 AFP 통신에 "동굴에서 나온 아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잠든 상태였다. 어떤 아이들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숨은 쉬고 있었다"고 전했다. 앞서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는 소년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려고 불안 완화제를 제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   동굴소년 끝까지 지킨 코치는 무국적 난민.. 맨유 구장 못가 2018.07.12. 00:11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미얀마에서 태국으로 이주해 국적없어.."국적 보유 절차 시작" 태국 동굴소년들을 끝까지 지킨 엑까뽄 코치(왼쪽)[연합뉴스 자료사진]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태국 치앙마이 탐루엉 동굴에 17일간 갇혀있다가 구조된 유소년 축구팀 코치와 일부 선수가 무국적 상태라고 현지 언론이 11일 보도했다. 이들이 소속된 축구클럽 '무 빠'(야생 멧돼지)의 창립자 놉빠랏 칸타봉은 엑까뽄 찬따웡(25) 코치가 현재 무국적 상태의 난민이라고 밝혔다. 또 영국 구조전문가가 이들의 생존을 처음 확인했을 당시에 촬영된 영상에서 영어 통역을 했던 아둔 삼온과 마크, 티로 불리는 소년 3명 역시 무국적자다. 동굴 속에서 먹을 것을 양보하는 등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엑까뽄 코치는 미얀마의 고향 마을에 감염병이 돌면서 어린 시절 고아가 됐고, 10살 때부터 사원에 들어가 승려 생활을 했다. 그러나 병든 조모를 부양하기 위해 사원에서 나온 뒤 태국 치앙마이의 매사이로 넘어와 축구팀 코치 일을 시작했다. 멧돼지 축구클럽의 영어 통역으로 더 유명해진 아둔은 미얀마 북동부 와주(州)에서 태국으로 들어왔다. 마약과 인신매매 등 범죄와 소수민족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아들을 키우고 싶지 않다는 부모의 결정에 따라 국경을 넘은 것이다. 미얀마, 캄보디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치앙라이 등 태국 북부 지역에는 이들처럼 소수민족 탄압이나 내전을 피해 국경을 건너 사는 난민이 적지 않다. 유엔 난민기구에 따르면 태국 내 난민 수는 48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유엔에 정식으로 난민 지위를 신청하거나 태국 국적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15일 열리는 2018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 초대장을 보내고, 잉글랜드 축구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홈구장인 올드 트래 포드로 이들을 초대했지만, 정식 여권이 없는 이들이 원칙적으로 해외여행을 할 수는 없다. 놉빠랏은 "국적을 갖는 것이 (무국적) 소년들의 가장 큰 희망이다. 과거에는 치앙라이 밖으로 원정경기를 하러 가는 것도 어려웠다"며 "국적이 없는 그들은 프로축구 선수가 될 수도 없다. 이들이 국적을 갖도록 하는 절차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2    윤동주 시 리해돕기와 모란봉 댓글:  조회:3070  추천:0  2018-07-10
  성격 봉우리 유형 지명 높이 96m 소재지 평양시 기림리 분야 지리/자연지리 요약 모란봉, 평양시 기림리금수산(錦繡山)에 있는 봉우리. 목차 개설 명칭 유래 자연환경 형성 및 변천 현황 개설 모란봉의 높이는 96m이다. 절벽을 이루고 있는 모란봉 아래 대동강 물 위에는 유명한 능라도(綾羅島)라는 하중도(河中島)가 있어 좋은 대조를 이룬다. 명칭 유래 원래 금수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최승대(最勝臺)의 생김새가 마치 피어나는 모란꽃 같다 하여 함박뫼, 모란봉이라 하던 것이 점차 산 전체의 이름으로 되었다. 자연환경 모란봉에는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삼엽송, 향나무 등 20여종의 침엽수들과 피나무, 참나무, 자귀나무, 살구나무 등 70여종의 활엽수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특히 그 가운데에는 수령이 200년인 기이한 형태의 청류회화나무가 자라고 있다. 모란봉에는 철따라 70여종의 새들이 날아든다. 꾀꼬리, 밀화부리, 개구마리 등과 추운 북쪽에서 살다 가을이면 찾아와 겨울을 나는 콩새, 양지니 등이 관찰된다. 형성 및 변천 모란봉의 청류벽 부근에는 모란봉나무화석(규화목)(천연기념물 제465호)이 있는데, 이것은 약 1억8,000만∼1억4,000만년전 이 일대의 호숫가에서 자라던 나무가 지각운동에 의해 땅속에 묻힘으로써 지하수 속에 있던 규소성분과 흙이 나무세포의 공간에 들어가 굳어져서 형성된 것이다. 주변에 나무화석그루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 지대에 키 큰 나무들이 수림을 이루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란봉나무화석은 지층의 지질시대와 지구의 기후변동을 비롯한 고지리적 환경과 고생물연구에서 의의가 크므로, 1989년 6월에 천연기념물 제 465호로 지정되어 보호·관리되고 있다. 현황 예로부터 천하제일강산으로 이름이 높아 ‘평양팔경’, ‘평양형승’의 거의 절반이 모란봉에 집중되어 있었다. 고구려시기 이래의 성문, 누정 등 고적들이 있다. 모란봉 중턱에 있는 을밀대(乙密臺)는 북한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사허정(四虛亭)이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을밀대와 대조되는 언덕으로 모란대(牡丹臺)가 있으며, 이 언덕 위에는 최승대(最勝臺)라고 하는 봉화대가 있다. 모란봉 밑 절벽에는 가장 오래된 누각으로 알려진 부벽루(浮碧樓)가 있다. 그리고 을밀대 서쪽 언덕 위에는 기자릉(箕子陵)이 있고, 모란대 밑에는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건립하였다는 영명사(永明寺)가 있다. 이밖에도 가장 전망이 좋은 경승지인 청류정(淸流亭)과 칠성문(七星門)·현무문(玄武門)·전금문(轉錦門) 등의 명승고적이 있다. 이 모란봉은 평양을 장식하는 공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반만년역사의 애화가 담긴 유서깊은 명소이기도 하다. 모란봉 기슭에 위치한 ‘김일성경기장’은 평양공설운동장을 1969년에 개축하면서 모란봉경기장으로 부르다가 1982년 4월 11일에 또다시 증축, 개장하면서 김일성 출생 70돌을 기념하여, 김일성경기장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규모는 연건축면적 4만 6,000㎡, 경기장바닥면적 2만 300㎡, 인공잔디면적 9,375㎡, 관람석 면적 1만 2,133㎡, 관람석 계단수 43계단, 수용인원 10만명 정도이다. 30m 폭의 차양이 설치된 관람석과 각종 체육시설을 비롯하여 TV송신시설, 동시통역시설, 야간조명 등의 설비를 갖추고 있다. 축구, 육상경기와 집단체조 뿐만 아니라 각종 군중대회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   모란봉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검색하러 가기 좌표: 북위 39° 02′ 35.2″ 동경 125° 45′ 43.9″ 모란봉(牡丹峰) 을밀대에서 본 모란봉과 대동강 전경 높이 95 m 위치 위치 평양직할시 모란봉(牡丹峰, Moranbong)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의 중심지 북쪽 모란봉구역에 있는 작은 언덕이며, 정상에는 최승대가 있다. 전체의 모습이 모란꽃과 같다고 하여 모란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주변 지역을 합쳐서 금수산이라고 부른다. 동쪽으로 대동강과 접하고, 남.북.서쪽에는 골짜기가 있다. 평양에서도 경관이 훌륭하고, 조선팔경이나 평양팔경의 하나로 불린다. 고구려 시대 이래 평양성의 최북단을 지키는 요새였는데, 지금도 성벽이나 누각이 남아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군에 의해 누각과 절이 파괴됐다. 청일 전쟁 때는 청나라군이 지켰던 모란대 요새이며, 1894년 9월 15일부터 일본군과의 사이에서 격전지가 되었고, 여기가 함락되자 이어서 평양성이 함락되었다. 구릉지나 주위 일대는 현재 공원이 조성되었고, 유원지가 정비되고 있다. 금수산태양궁전, 을밀대 등이 있다. 또, 공원 주위는 문화 시설이지만 개선문, 김일성경기장등 기념물도 많이 있다. 목차  [숨기기]  1성곽.누각 등 2갤러리 3공원.문화.체육시설 3.1기념물 4모란봉의 이름을 딴 것 5같이 보기 성곽.누각 등[편집] ");"> 을밀대 최승대 부벽루 청류정 칠성문 현무문 전금문 영명사 갤러리[편집] "); zoom: 1;"> 1949년의 모란봉 일대. 정상에 최승대가 있고, 그 아래에 영명사, 부벽루와 벽라교가 보인다. 공원.문화.체육시설[편집] ");"> 개선청년공원 모란봉극장 조선혁명박물관 김일성경기장 기념물[편집] ");"> 천리마동상 개선문  
1    영원하다... 영원할... 영원하리... 댓글:  조회:3236  추천:0  2018-07-10
[카드뉴스] 영원한 청년 윤동주를 추억하다...                                                     [중앙일보] [카드뉴스] 영화 '동주' ...영원한 청년 윤동주를 추억하다     서 시 윤 동 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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