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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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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날짜 : 2018/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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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가슴속에 어머니라는 산(山) 하나 들고 있다"... 댓글:  조회:1857  추천:0  2018-07-12
  + 어머니의 땅  대지진이었다  지반이 쩌억 금이 가고  세상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 순간  하느님은 사람 중에  가장 힘 센 한 사람을  저 지하 층층 아래에서  땅을 받쳐들게 하였다  어머니였다  수억 천 년  어머니의 아들과 딸이  그 땅을 밟고 살고 있다  (신달자·시인, 1943-)  + 어머니 1  어머니  지금은 피골만이신  당신의 젖가슴  그러나 내가 물고 자란 젖꼭지만은  지금도 생명의 샘꼭지처럼  소담하고 눈부십니다.  어머니  내 한 뼘 손바닥 안에도 모자라는  당신의 앞가슴  그러나 나의 손자들의 가슴 모두 합쳐도  넓고 깊으신 당신의 가슴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어머니  새다리같이 뼈만이신  당신의 두 다리  그러나 팔십 년 긴 역정(歷程)  강철의 다리로 걸어오시고  아직도 우리집 기둥으로 튼튼히 서 계십니다.  어머니!  (정한모·시인, 1923-1991)  + 어머니, 나의 어머니  내가 내 자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때  나직이 불러본다 어머니  짓무른 외로움 돌아누우며  새벽에 불러본다 어머니  더운 피 서늘하게 거르시는 어머니  달빛보다 무심한 어머니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  북쪽 창문 열고 불러본다 어머니  동트는 아침마다 불러본다 어머니  아카시아 꽃잎 같은 어머니  이승의 마지막 깃발인 어머니  종말처럼 개벽처럼 손잡는 어머니  천지에 가득 달빛 흔들릴 때  황토 벌판 향해 불러본다 어머니  이 세계의 불행을 덮치시는 어머니  만고 만건곤 강물인 어머니  오 하느님을 낳으신 어머니  (고정희·시인, 1948-1991)   + 해빙  아기를 낳은 후에 젖몸살을 앓았다  40도를 오르내리는 열과  수시로 찾아드는 오한 속에서  밤새 뜨거운 찜질로 젖망울을 풀어주시며  굳었던 내 가슴을 쓸어주시며  기도하시던 어머니  어머니의 땀이 나의 가슴을 흔들어 깨웠다   가장 깊은 속 완고했던 응어리들이 풀릴 때마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맺혔던 젖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러나 가슴위로 흘러내리는 것은  눈물이 아니었다 젖이 아니었다  잊혀져 가던 옛사랑이었다  어둠에서 나를 이끌어 낸 것은  주님이 아니라 어머니 속의 어머니  새벽이 되자 열이 내리고 젖이 풀리면서  나는 이제야 어머니가 된 것이다  (나희덕·시인, 1966-)  + 어머니 연잎  못 가득 퍼져간 연잎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그것이 못 가득 꽃을 피우려는  연잎의 욕심인줄 알았습니다  제 자태를 뽐내기 위해  하늘 가득 내리는 햇살 혼자 받아먹고 있는  연잎의 욕심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연잎은 위로 밖으로 향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래로 안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직 덜 자라 위태위태해 보이는 올챙이 물방게 같은 것들  가만가만 덮어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위로 밖으로 비집고 나오려고 서툰 대가리 내미는 것들  아래로 안으로 꾹꾹 눌러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동란 때 그러하셨듯  산에서 내려온 아들놈 마루바닥 아래 숨겨두고  그 위에 눌러앉아 방망이질하시던 앙다물던  모진 입술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그것들의 머리맡에서  꼬박 밤을 밝히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최영철·시인, 1956-)  + 어머니의 편지  딸아, 나에게 세상은 바다였었다.  그 어떤 슬픔도  남 모르는 그리움도  세상의 바다에 씻기우고 나면  매끄럽고 단단한 돌이 되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 돌로 반지를 만들어 끼었다.  외로울 때마다 이마를 짚으며  까아만 반지를 반짝이며 살았다.  알았느냐, 딸아  이제 나 멀리 가 있으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딸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뜨겁게 살다 오너라.  생명은 참으로 눈부신 것.  너를 잉태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했던가를 잘 알리라.  마음에 타는 불, 몸에 타는 불  모두 태우거라  무엇을 주저하고 아까워하리  딸아, 네 목숨은 네 것이로다.  행여, 땅속의 나를 위해서라도  잠시라도 목젖을 떨며 울지 말아라  다만, 언 땅에서 푸른 잎 돋거든  거기 내 사랑이 푸르게 살아 있는 신호로 알아라  딸아, 하늘 아래 오직 하나뿐인  귀한 내 딸아  (문정희·시인, 1947-)  + 어머니  새벽기도 나서시는,  칠순 노모(老母)의  굽어진 등 뒤로  지나온 세월이 힘겹다.  그곳에 담겨진  내 몫을 헤아리니  콧날이 시큰하고,  이다음에, 이다음에  어머니 세상 떠나는 날  어찌 바라볼까  가슴에  산(山) 하나 들고 있다.  (김윤도·시인, 1960-)  * 엮은이: 정연복  
8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큰 못이다"... 댓글:  조회:1839  추천:0  2018-07-12
  + 어머니의 못  교회에 다니는 작은 이모는  예수가 사람의 죄를 대신해  못 박혀 죽었다는 그 대목에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흐느낀다  어머니에게 전도하러 왔다가  언니는 사람들을 위해  못 박혀 죽을 수 있나, 며  함께 교회에 나가 회개하자, 며  어머니의 못 박힌 손을 잡는다  어머니가 못 박혀 살고 있는지  작은 이모는 아직 모른다  시를 쓴다며 벌써 여러 해  직장도 없이 놀고 있는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작은 못이며  툭하면 머리가 아파 자리에 눕는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큰 못이다  그렇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나는 삐뚤어진 마루판 한 짝이어서  그 마루판 반듯하게 만들려고  삐걱 소리나지 않게 하려고  어머니는 스스로 못을 치셨다  그 못들 어머니에게 박혀 있으니  칠순 가까운 나이에도 식당일 하시는  어머니의 손에도 그 못 박혀 있고  시장 바닥으로 하루 종일 종종걸음치는  어머니의 발바닥에도 그 못 박혀 있다  못 박혀 골고다 언덕 오르는 예수처럼  어머니 못 박혀 살고 있다  평생을 자식이라는 못에 박혀  우리 어머니 피 흘리며 살고 있다  (정일근·시인, 1958-)  + 두 개의 무덤  1  어머니의 젖무덤은  오래된 무덤이다  봉분이 다 가라앉아  평지와 구별되지 않는다  결혼 생활 오십여 년에  희망이나 바람 따위  모두 그 무덤에 묻혔다  2  이 땅의 여자들  두 개의  무덤을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사랑을 잠재우기 위해  다른 하나는 자신을  묻기 위해)  (이대흠·시인, 1968-)  + 히말라야의 노새  히말라야에서  짐 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  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박범신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아아  저게 바로 토종이구나  (박경리·소설가, 1926-2008)  + 멜로드라마  멜로드라마는 눈물을 쥐어짠다  멜로드라마는 손수건을 적신다  비웃지 마라  멜로드라마가 슬프다면  그건 우리 삶이 슬프기 때문이다  멜로드라마가 통속적이라면  그건 우리 삶이 통속적이기 때문이다  보라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만이  멜로드라마를 보면서 울고 있지 않느냐  적어도 그들만큼은 겪어봐야 안다  삶을 연습하고 싶다면  우리는 멜로드라마에 기댈 수밖에 없다  거룩한 멜로드라마  위대한 멜로드라마  (강연호·시인, 1962-)  + 손등에 떨어진 눈물  늙으신 어머니를 씻겨드리다  손등에 눈물을 떨구었네  퉁퉁 핏줄 불거진 손등을 매만지다가  내 마음 주저앉아 버렸네  뼈마디 앙상한 손등을 쓰다듬다가  와르르 무너져 참회하였네  울고싶어도 눈물 참아온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위해  아픔조차 아픔인지 모르고 살아온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위해  섭섭함도 먼 시선에 묻어 살아온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위해  여자이기 전에 어머니였던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위해  오늘 나는 무릎을 꿇고  눈물로 야윈 손을 씻겨드렸네  향기로운 외로움을 씻겨드렸네  (홍수희·시인)  +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홀로 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가 보고싶다 외할머니가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시인, 강원도 평창 출생)  +  어머니  어머니  열일곱에 시집오셔  일곱 자식 뿌리시고  서른일곱에  남편 손수 흙에 묻으신 뒤,  스무 해 동안을  보따리 머리에 이시고  이남 땅 온 고을을  당신 손금인 양 뚝심으로 누비시고  휜히 익히시더니,  육십 고개 넘기시고도  일곱 자식 어찌 사나  옛 솜씨 아슬아슬 밝히시며  흩어진 자식 찾아  방방곡곡을 누비시는 분.  에미도 모르는 소리 끄적여서  어디다 쓰느냐 돈 나온다더냐  시 쓰는 것 겨우 겨우 꾸짖으시고,  돌아앉아 침침한 눈 비비시며  주름진 맨손바닥으로  손주놈의 코를 행행 훔쳐주시는 분.  (조태일·시인, 1941-1999)  +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沈淳大)  초등학교 마당도 못 밟아서 글 모르지만  열여섯에 시집와서 자식 일곱 낳고  한 자식 잃었지만 육남매 거뜬하게 키운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다  내 나이 열두 살이 되도록 시집살이에 매여  남동생 둘 잃고도 친정 한 번 못 가보고  주정뱅이 외삼촌 술 취해 올 때면  소나무장작으로 두들겨 패 쫓고는  불 아궁이 앞에서 눈물짓던 어머니  행여 누가 볼 때면 덜 마른 장작 탓이라며  두들겨 팬 동생보다 가슴에 멍이 더 든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  장날 그 흔한 자장면 한 그릇 못 사드시고  녹두콩 열무다발 푼푼이 내다 팔고  벼농사 고추농사 찌들려서  끝물 고추대궁처럼 바삭 마른 어머니  이제는 관절염으로 두 무릎 쇠붙이 박아  걸음조차 못 내딛는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  병원 약국 앞에서  심순대씨! 심순대씨! 하고 부를 때  사람들 그 이름 우습다고 키득대지만  '여기 갑니다. 심순대씨 갑니다'  나는 소리치며 약봉지 받아든다  이제 좀 편히 사시라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 지어드렸더니  새 집에 흙 묻는다고 현관부터 맨발로 들어서는 어머니  무릎 수술자국이 눈에 아려 왜 맨발로 들어가느냐고 소리치면  그냥 말없이 웃는, 이제는 너무 작아 어린아이 같은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202번지  마당 넓고 잘 지은 그 집 문패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하나가 걸려있다  어머니가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한문으로 쓴 이름 沈淳大  내 어머니는 거기서부터 맨발로 들어가시며  매일매일 바라보신다  (김시탁·시인, 1963-)  * 엮은이: 정연복    
7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탄소배출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902  추천:0  2018-07-12
'기후의 조정자' 극지가 기후변화 가속하는 화약고가 되고 있다 윤신영 기자 2018.07.12.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알래스카 영구동토지역(툰드라)의 경계선까지 가문비나무가 진출해 있다. 지구온난화가 빨라지면서 가문비나무가 북상하고 있다. 2년 이상 영하의 온도로 얼어붙어 있는 극지의 땅(영구동토층)은 인류가 방출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기후변화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최근 기후변화가 진행되면서 동토층이 녹고 있고, 이에 따라 대기중에 방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늘면서 극지가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지구의 화약고’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11일자에 따르면,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와 미국항공우주국(NASA), 스위스 취리히대 등 공동연구팀은 미국 알래스카 지역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 데이터 42년치를 수집했다. 그 뒤 토양 및 식물에서 흡수하거나 내뿜는 탄소량을 계산해 장기적인 변화 패턴을 알아냈다. 연구 결과 동토층의 탄소저장시간(탄소가 동토와 지상의 식물에 흡수된 채 머무르는 시간)이 42년 사이에 13.4%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위부터 월별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량 비교(빨간색이2006년 이후), 이산화탄소 농도의 변동폭(해가 갈수록 월별 변동폭이 커짐), 그리고 연간 농도 변화(해가 갈수록 많아짐). -사진 제공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정 교수팀은 이런 결과가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밝혔다. 인류가 화석연료를 사용해 일어난 온난화는 특히 북위 60도 이상의 고위도 지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뜻해진 기후가 동토를 녹이고 식물이 번성하게 한다. 이런 변화는 기후에 두 가지 정반대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동토가 녹으면서 탄소를 배출하는데, 그 양은 기온이 올라감에 따라 급격히 늘어난다. 하지만 식생은 그렇게 빠르게 탄소 흡수량을 늘리지 못한다. 정 교수팀은 이런 차이가 결과적으로 이 지역의 대기중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늘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경향이 계속된다면 극지의 지표면 탄소 배출량이 결국 식물의 흡수량을 앞지를 수 있다. 연구팀은 “인간의 활동에 의한 탄소배출뿐만 아니라 생태계가 배출하는 자연적 탄소배출량이 늘어나, 미래에 우리가 예측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기후변화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신영 기자
6    윤동주 시작품에서 나오는 "레그혼" 댓글:  조회:2626  추천:0  2018-07-12
레그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검색하러 가기  레그혼은 리보르노의 영어 이름이기도 하다.   레그혼 종 레그혼(Leghorn)은 이탈리아 원산의 산란용 닭 품종이다. 이탈리아 서해안의 항구도시 리보르노 원산이며, 레그혼은 리보르노를 과거에 영어로 부르던 명칭이다. 리보르노 원산으로 그 곳 항구를 통해 수출되어 영국과 미국에서 개량하여 전 세계로 보급하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퍼진 닭 품종의 하나가 되었다. 성장 속도가 빨라 어릴 때부터 알을 낳을 수 있으며, 암컷 한 마리가 연 평균 220개 이상의 많은 달걀을 생산한다. 몸집이 하얗고, 하얀 색깔의 달걀을 낳는다. 대한민국에서도 최근까지 가장 널리 기르던 닭 품종이었으나, 하얀 달걀보다 갈색 달걀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그 비중이 다소 줄어들었다.
5    [그것이 알고싶다] - "골패놀이"?... 댓글:  조회:5073  추천:0  2018-07-12
  성격 민속놀이, 세시풍속 유형 골패(骨牌)놀이 분야 생활/민속·인류 요약 둘 또는 네명이 골패를 가지고 하는 노름.   기산풍속도첩 / 골패 기산풍속도에 보이는 전통 놀음인 골패. 내용 노름기구인 골패는 가로 1.2∼1.5㎝, 세로 1.8∼2.1㎝의 납작하고 네모진 검은 나무 바탕에 상아나 짐승뼈를 붙이고 여러 가지 수효를 나타내는 크고 작은 구멍을 새긴 것으로 모두 32쪽이다. 골패라는 이름은 그 재료로 뼈를 사용하는 데서 왔으나 뼈로만 만든 것은 민패라 하고, 뒤에 대나무 쪽을 붙인 것은 사모패(紗帽牌)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상아로 만든 까닭에 초기에는 아패(牙牌)로 불렸다. 골패는 중국 송나라 때 생겨났다고 하므로 우리 나라에는 고려시대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으나 청나라 때 유입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우리 나라의 골패에 소골(小骨)·미골(尾骨)의 이름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에서 투전과 골패를 합하여 ‘마조강패(馬弔江牌)’라는 연구(連句)를 들고 있다. 골패 32쪽의 이름과 쪽수는 다음과 같다. 오륙(五六, 2쪽)·퉁소(通踈, 2쪽]·쥐코[鼻, 1쪽]·진아(眞兒, 2쪽)·백사(白四, 1쪽)·백오(白五, 2쪽)·백륙(白六, 2쪽)·직흥(直興, 2쪽)·사오(四五, 1쪽)·사륙(四六, 2쪽)·주륙(主六, 2쪽)·소삼(小三, 2쪽)이다. 또,아삼(兒三, 1쪽)·장삼(長三, 2쪽)·삼사(三四, 1쪽)·삼오(三五, 1쪽)·삼륙(三六, 1쪽)·준오(準五, 2쪽)·어사(御四, 2쪽)·관이(冠二, 1쪽)·아륙(兒六, 1쪽)이다. 골패놀이는 앞의 32쪽으로 모두 227점을 만드는 놀이로, 둘이도 하지만 넷이서 노는 일이 더 많다. 놀이방법에는 꼬리붙이기·포(飽)·여시·골여시·쩍쩍이 따위가 있다. (1) 꼬리붙이기 두 사람이 노는 방법으로, 앞사람이 낸 숫자에 맞추어 패를 내어야 하므로 ‘꼬리붙이기’라고 불린다. 이 방법은 먼저 패를 12쪽씩 나누어 가진다. 저쪽에서 한 패를 내면 그 패 아래쪽 수에 맞는 것을 이쪽에서 내어야 한다. 저쪽은 이쪽이 낸 패 아래쪽 수에 맞는 것을 다시 내며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림 1]처럼 계속한다. 상대편 숫자에 맞는 것을 내지 못한 쪽이 진다. 또, 자기가 가진 총수를 셈하여 불리할 때는 버리는데, 버린 수가 많은 쪽이 지는 것으로 치기도 한다. (2) 포(飽) 네 사람이 한패를 이루어 둘러앉는다. 처음 패를 떼어 물주(物主)를 정한 다음, 패를 모두 방바닥에 엎어놓고 섞는다. 각기 5쪽씩 떼어서 앞에 놓으며 물주는 다시 2쪽을 떼어내고 그 가운데 1쪽을 보인다(역·좌·순·월 따위는 이때만 쓴다.). ‘역’이 나오면 물주는 왼쪽에 앉은 사람 ‘나’에게, ‘월’이 나오면 맞은 쪽의 ‘가’에게, ‘순’이 나오면 오른쪽의 ‘다’에게 물주의 지위를 양도한다. 이때 물주의 골패는 ‘나’에게, ‘나’의 것은 ‘가’에게, ‘가’의 것은 ‘라’에게, ‘라’의 것은 ‘다’에게 넘겨서 서로 바꾼다. 그러나 ‘좌’가 나오면 바꾸지 않고 놀이를 시작한다. 패는 물주만 6쪽을 가지며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5쪽씩 돌린다. 사람들은 자기 패가 남에게 보이지 않도록 손에 쥔다. 물주는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1쪽을 버리며(이것은 앞이 보이도록 젖혀놓아 다시 쓰지 않도록 한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엎어놓은 패 가운데 1쪽씩 가져간다. 이들 가운데 다음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이 이긴다. 1, 2포는 자기가 가진 5쪽과 바닥에서 집은 1쪽이 각각 2쪽씩 같은 모양에, 같은 수로 이루어진 세 쌍이고, 3포는 앞의 6쪽이 형태는 다르나 2쪽씩 같은 숫자로 이루어진 세 쌍이다. 4포는 손에 쥔 5쪽의 형태가 같거나, 형태가 다르더라도 같은 수의 두 쌍과 남은 1쪽과 바닥에서 떼어낸 1쪽의 형태와 숫자가 같은 것이며, 5포는 4포에 바닥에서 뗀 것과 형태는 다르나 숫자가 같은 것이다. 그리고 6포는 형태와 숫자가 같은 4쪽을 손에 쥔 경우인데, 6포가 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운이 매우 좋은 것을 ‘6포 잡았다’고 이른다. 골패는 투전과 더불어 대표적인 노름기구로 손꼽혀왔으나, 값이 비싸고 놀이방법이 복잡하여 투전처럼 대중화되지는 못하였다. ========================   한자 骨牌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경기도 광명시 집필자 간호윤 [상세정보] [정의]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구멍의 숫자와 모양에 따라 패를 맞추는 놀이. [개설] 골패란 뼈로 만들었다는 뜻이며 쌍륙, 투전 등과 함께 조선시대의 3대 도박에 속하였던 놀이이다. 각 패에는 1에서 6까지의 점수를 섞바꾸어 위 아래로 새겼으며, 모두 32짝이 한 벌로서 점수는 127점을 만점으로 한다. 여시, 골여시, 짝짜기, 꼬리붙이기, 포(飽)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있으며, 마작의 원시적인 형태로 볼 수 있다. [연원]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 ‘강패(江牌)’라고 밝혀 도박하는 놀이로 나와 있다. 골패 놀이 방법을 기록한 조선시대 『골보(骨譜)』 혹은 『골부(骨簿)』라는 작은 크기의 수진본도 있는 것으로 미루어 꽤 오랜 연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고전소설 「이춘풍전」에 “장기, 골패, 쌍륙 투전, 육자배기…….” 등의 명칭과 함께 이 골패가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적어도 조선 후기에는 광명 지역에서도 이 놀이가 꽤 성행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놀이도구 및 장소] 골패는 실내에서 즐기는 놀이로서 골패와 놀이 공간만 있으면 된다. 골패는 가로 1.2~1.5㎝, 세로 1.8~2.1㎝의 납작하고 네모진 검은 나무 바탕에 상아나 짐승 뼈를 붙이고 여러 가지 수를 나타내는 크고 작은 구멍을 새긴 것으로 모두 32짝이다. [놀이방법] 손가락 한 마디만한 나무나 뼈에 같은 크기의 흰 뼈를 붙이고, 그곳에 하나부터 여러 개의 구멍을 뚫는다. 모두 서른두 짝이 한 목인데 구멍의 수에 따라 백이[쥐코]·아사·어사·관이·이륙·삼사·삼오·삼륙·사오 등이 각 한 짝이고, 통소·소삼·백오·백륙·진이·장삼·적홍·중오·사륙·오륙·준륙 등이 각각 두 짝이다. 두 사람부터 다섯 사람까지 둘러앉아서 한 짝을 대고, 한 짝을 맞추는 놀이이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골패는 민간놀이의 하나이지만 그 노는 방법이 복잡하여 널리 보급되지는 못한 놀이이다. [현황] 광명 지역에서는 일부 노인들에 의해 1970년까지 골패 놀이가 행해졌으나 급속한 도시화로 인하여 현재는 자취를 감추었다. 골패는 노는 방법이 복잡하여 널리 보급되지는 못하였으나 경상도에는 「골패 타령」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지역에 따라 어른들의 놀이로 꽤 이용된 듯하다. ================================== 정의, 유래 [정의] 구멍의 숫자와 모양에 따라 패를 맞추는 전통적인 놀이 및 도박 도구. 강패(江牌)·아패(牙牌)·호패(號牌)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래] 골패의 역사적 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백낙천(白樂天)이 하늘에 떠있는 27개의 별을 본 따서 만들었다는 설, 송(宋)의 사마광(司馬光)이 만들었다는 설 등이 있다. 『정자통(正字通)』에서는 1120년(宋 宣和 2) 송의 어느 신하가 아패(牙牌)와 계점(計點)을 만들어 별자리의 배열을 살펴볼 것을 청한 사실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골패의 유입에 대해서도 임진왜란 때 명(明)의 군사들에 의해서 전해졌다는 설과 이후 청(淸)에 의해 전해졌다는 다양한 설이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최남선(崔南善)은 『조선상식(朝鮮常識)』 풍속 편(風俗篇)에서 “골패가 한 번 성립되어 그 수리적(數理的) 변화성으로 인하여 이용이 복잡하여 오락·도박의 양 방면으로 무수한 법식을 유발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비록 중국에서 골패가 유입되었다고 하지만 골패의 놀이양식과 방법이 한국의 상황에 따라서 많이 변화하였음을 말해준다. 종류, 놀이방법 [종류] 골패는 제조양식에 따라서 뼈로만 만든 것을 민패, 흰 뼈와 검은 대나무를 붙여서 만든 것을 사모패(紗帽牌)라고 한다. 패는 소·사슴 등 동물의 뼈를 나무에 덧붙여서 손가락의 마디 크기로 만든다. 그리고 대·중·소 원모양의 구멍을 판 뒤에 붉은색, 검은색(혹은 푸른색)을 칠하여 완성한다. 골패는 총 32개의 패가 있으며, 구멍수는 모두 227개이다. 구멍수에 따라 각기 별칭이 붙어 있다. 같은 패가 2개(짝패)인 것과 1개의 패(홀패)로 된 것이 있다. 32개의 패 중에서 우두머리는 ‘관이’이다. 관이는 패중지왕이라 하여 제일 어른 대접을 받는다. 각각 별칭과 구멍수를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소소(1·1, 짝패), 쥐코(1·2, 홀패), 소삼(1·3, 짝패),  백사(1·4, 홀패), 백오(1·5, 짝패), 백륙(1·6, 짝패), 진아(2·2, 짝패), 아삼(2·3, 홀패), 어사(2·4, 홀패),  관이(2·5, 홀패), 아륙(2·6, 홀패), 장삼(3·3, 짝패),  삼사(3·4, 홀패), 삼오(3·5, 홀패), 삼륙(3·6, 홀패),  직흥(4·4, 짝패), 사오(4·5, 홀패), 사륙(4·6, 짝패),  준오(5·5, 짝패), 오륙(5·6, 짝패), 주륙(6·6, 짝패).  가야금 병창으로 불렀던 골패타령에서는 이러한 별칭들이 잘 녹아들어 있다. “얼싸 오늘 하 심심하니 골패 짝패 하여 보자. 쌍준륙에 삼륙을 지르고 쌍준오에 삼오를 지르니 삼십삼천 이십팔수 북두칠성이 앵돌아졌구나. …… 청부동(靑不同) 백부동(白不同) 매화가되고 소삼관이 사륙하고 소삼어사 오륙하니 옥당쌍수가 뒤집어 지누다.” [놀이방법] 골패의 놀이방법은 지역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며 거의 80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일례로 충북 지역에서는 톡·밑달기(미골)·그대기·오관떼기·쑤시기 등의 많은 놀이방식이 있다. 톡은 가장 널리 즐기는 놀이로서 ‘톡을 모르면 양반이 못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톡은 카드방식과 비슷한데 처음에는 주로 5명이 하면서 6개의 골패를 나누어 갖는다. 그리고 타인이 내놓은 패를 집어가고 자신의 패를 내놓으면서 패를 맞추어 간다. 그러다가 제일 먼저 손을 털거나 남은 구멍의 숫자가 제일 적은 사람이 장원이 된다. 짝맞추기와 꼬리맞추기도 널리 즐기는 골패놀이 중의 하나이다. 짝맞추기는 다음과 같이 한다. 먼저 선이 들고 온 패 중에서 짝이 맞는 패를 내려놓는다. 짝패가 없을 경우는 아무것이나 하나 내려놓는다. 다음 사람은 선이 내려놓은 패 중에서 맞는 패가 있으면 가져간다. 맞지 않을 경우에는 나머지 골패 중에서 하나를 가지고 와서 짝을 맞추어 본다. 이 또한 없을 경우에는 패 하나를 내려놓는다. 이렇게 놀이를 진행하다가 먼저 짝을 세 번 맞추어 내려놓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꼬리맞추기는 상대방이 내려놓은 패의 아래쪽 숫자에 맞는 패를 짝지으면서 하는 놀이이다. 짝지을 패가 없으면 자신의 패 중 하나를 뒤집어 놓는다. 손에 든 패를 다 내려놓을 때까지 계속 진행한다. 뒤집어 있는 패의 숫자를 합하여 높은 사람이 지는 것이다. 내용 골패는 투전(鬪牋)·쌍륙(雙六)과 함께 도박성이 강한 놀이였다.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여러 가지 내기놀이 중에서도 심보가 나빠지고 재산을 탕진하며 가문과 친족들의 근심이 되게 하는 것은 투전이 첫째가 되고, 쌍륙·골패가 그 다음이다.”고 하였다. 골패는 주로 양반·기생 등이 즐겼던 놀이였다. 기산풍속도(箕山風俗圖)에서는 당시의 골패놀이 풍속을 잘 보여준다. 이것은 손님들이 기생집에서 모여 술상을 시켜놓고 기생과 골패를 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그린 것이다. 옛 신문을 살펴보면 양반들 혹은 부유층과 관련한 골패놀이 기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예컨대, 대한매일신보 1908년 8월 9일자를 보면 “양반들이 골패짝잡기를 밥숟가락 붙잡기보다 좋아하여”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정의 인물 가운데 골패에 빠져든 이도 적지 않았다.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는 주일공사 조민희(趙民熙)를 도박 중에서도 골패를 생명처럼 여긴 인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주야로 저고리의 중단(中單)을 만지면서 골패를 하다가 중단이 떨어지는 바람에 주위에서 그를 ‘골귀(骨鬼)’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골패는 때로는 점술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골패를 일렬로 쭉 늘여놓고 패들을 뒤집어 본다. 패들을 맞추어 본 다음 패의 점수를 더해서 점괘를 보는 것이다. 패를 가지고 신수점을 보는 풍속은 중국에서도 널리 행해졌다. 중국에서도 골패는 매우 인기 있는 놀이였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골패는 32개의 패가 한 세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골패에 뚫려 있는 구멍과 짝짓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패는 보통 흑단(黑檀)으로 만들어지며,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칠한 점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패의 상단에는 빨간 점이 새겨져 있다. 골패는 놀이방법이 많을 뿐더러 복잡하고 까다롭다. 복잡한 골패의 놀이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골보(骨譜)』라는 책자가 전해지기도 한다. 놀이방식이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투전만큼 백성에게 쉽게 파고들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골패에 한번 빠져들면 며칠씩을 골패판에서 지새울 정도로 도박성이 강하다고 한다. 골패는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화투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   조선시대 골패(骨牌)놀이         가. 놀이의 개관                               상아(象牙)나 짐승의 뼈,뿔 등으로 만든 놀이도구, 또는 그것을 가지고 노는 놀이.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검은 나무 바탕에 흰뼈를 붙여 여러 가지 수효의 구멍을 판 것이다. 모두 32쪽이 한 벌이다. 뼈를 깎아 만들었다고 해서 골패(骨牌)라고 불리게 되었지만, 뼈로만 만든 것을 '민패'라고 하고, 뒤에 대나무 쪽을 붙인 것을 '사모패'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상아로 만든 까닭에 '아패(牙牌)'라고 불렀다. 우리 나라에서는 주로 도박(賭博)에 이용되어 부정적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도박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놀이를 할 수 있다. 특히 놀이방법이 간단하고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놀이이다. 그리고 부피가 작아 휴대하기가 간편하기 때문에 오늘날에 활용하기에 좋은 놀이이다.   나. 놀이의 유래 기산풍속도첩중-골패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우리 나라의 골패에 소골(小骨), 미골(尾骨)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도 골패에 관한 언급이 있다. 이 놀이는 중국 송(宋)나라 때 생긴 놀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 나라에는 고려시대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으나, 청나라 때 유입되었다는 설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 오래 전부터 널리 행해지던 이 놀이가 제대로 전승되지 못한 까닭은, 놀이가 비교적 간단한 탓에 사행적 요소인 내기가 강조되면서 도박으로만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 놀이는 놀이도구는 간단하지만 다양한 놀이방법이 있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이를 활용하여 일상 놀이로 발전시켰다.  골패는 점복(占卜) 도구로도 쓰였는데, 천패이선(天牌二扇) 24점은 24기(氣)를, 지패이선(地牌二扇) 4점은 사방을, 인패이선(人牌二扇) 16점은 사단(四端)을, 화패이선(和牌二扇) 8점은 대화원기유행팔절지간(大和元氣流行八節之間)을 상징한 것으로 성수의 배열을 비유한 것이다.       다. 놀이의 방법 1) 놀이도구 모두 32쪽인데 서양에서는 28쪽을 사용한다. 크기는 가로 1.2~1.4cm, 세로 1.8~2cm, 두께 0.4~0.5cm 정도로 작다. 모양은 납작하고 네모진 검은 나무 바탕에 상아나 짐승 뼈를 붙이고, 여러 가지 수효를 나타내는 크고 작은 구멍을 새겼다. 1을 새긴 구멍은 가장 크고 1과 4는 붉은색을 넣었으며, 나머지는 모두 검정색으로 칠했다. 32개 가운데 짝패가 22개이고, 홀패가 10개이다. 짝패(같은 모양의 패)로 되어 있는 것은 1-1, 2-2, 3-3, 4-4, 5-5, 6-6, 1-3, 1-5, 1-6, 4-6, 5-6이고, 홀패로 되어 있는 것은 1-2, 1-4, 2-3, 2-4, 2-5, 2-6, 3-4, 3-5, 3-6, 4-5이다(그림에서 네모의 가장자리가 진하게 칠해진 부분). 각각의 패에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고, 쌍륙에서 쓰는 명칭에서 따온 부분도 있고 독자적으로 생성된 부분도 있다.     백 : 빨강색으로 된 가장 큰 구멍 아 : 검정색으로 표시된 2개의 구멍(백 다음으로 구멍 이 큼) 삼 : 검정색 작은 구멍 3개가 사선방향으로 표시된 것 흥 : 빨강색 작은 구멍 4개가 표시된 것 오 : 검정색 작은 구멍 5개가 표시된 것 육 : 검정색 작은 구멍 6개가 표시된 것     1-1(2):통소, 코백  2-2(2):만아, 진아  3-3(2):장삼  4-4(2):직흥  5-5(2):전오, 준오  6-6(2):주룩, 줄육  1-3(2):백삼, 소삼  1-5(2):백오/ 오  1-6(2):백륙/ 육  4-6(2):사륙, 흥륙  5-6(2):오륙/ 육오 1-2(1):백아, 쥐코/ 아백  1-4(1):백흥, 백사/ 흥백 2-3(1):아삼/ 삼아 2-4(1):아흥, 어사/ 흥아 2-5(1):아오, 관이/ 오아 2-6(1):아륙/육아 3-4(1):흥삼, 삼사/ 삼흥 3-5(1):삼오/ 오삼 3-6(1):삼륙/ 육삼 4-5(1):흥오, 사오/ 오흥        2) 놀이방법  놀이방법은 79가지이다. 그 중에서 꼬리 붙이기, 포, 여시, 골여시, 쩍쩍이, 톡 등이 주로 사용되는 놀이이고, 탑 쌓기나 거북패, 오관 등은 혼자 운수를 점치는 방법인데 놀이방법이 잘 전해지지 않고 있다.      1) 톡     이 놀이에는 놀이를 진행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를 '물주'라고 한다.  ① 5명이 놀이를 하는데 1인당 6개의 골패를 나누어주고 나머지 2개는 물주가 가지고 있는다. 이 놀이에는 마지막 장 또는 마지막 개수라는 개념이 없다. 왜냐하면 처음 골패를 나누어 받을 때 놀이가 바로 끝날 수도 있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 놀이가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② 물주는 처음 시작할 때 남은 2개 가운데 골패 한 개를 '갑'이라는 사람에게 주고, 갑으로부터 골패 한 개를 가져온다.  ③ '을'도 마찬가지로 골패 한 개를 내놓으면 물주는 갑이 내놓은 골패가 아닌 다른 골패를 을에게 건네준다.  ④ 이런 식으로 계속 골패를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한 사람이 6개가 모두 짝이 맞으면 "이겼다."고 외친다. 과연 3쌍이 되었는가를 확인한 후 놀이가 끝난다.  ⑤ 다시 새로운 골패를 받아서 놀이를 계속 진행한다.  2) 꼬리 붙이기 두 사람이 노는 방법으로, 앞사람이 낸 숫자에 맞추어 패를 내야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① 먼저 선을 정하는데 정하는 방법은, 자기 골패 가운데 2-5(이오·아오)가 있거나, 만약 둘 다 없으면 6-6(줄륙)이 있는 사람이 선이 된다. ② 선이 임의로 패 한 쪽을 내려놓으면, 다음 사람은 그 끗수에 맞는 것을 이어서 내야 한다.  ③ 다음은 다시 선이 앞사람의 끗수에 맞는 것을 이어서 낸다. ④ 상대편 숫자에 해당하는 것을 잇지 못하면 지게 된다.   3) 짝맞추기     ① 2~4명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골패를 뒤집어 놓고 하나씩 들어 제일 높은 수를 든 사람이 선이 된다. 선은 6쪽, 나머지 사람은 5쪽의 골패를 갖고 시작하며 남는 골패는 모아둔다. ② 선은 먼저 자신의 골패 중 짝패가 있으면 둘 다 내려놓고, 또 다른 패 하나를 더 내려놓을 수 있다. 짝패가 없으면 그냥 하나의 패만 내려놓는다.  ③ 다음 사람은 선이 내려놓은 하나의 패와 짝을 이루는 패를 가지고 있으면, 그 패를 집어와 짝이 있으면 2쪽을 내려놓는다. 짝이 맞는 패가 없으면 모아둔 골패 중 하나를 집어와 짝이 있으면 내려놓고 없으면 아무 패나 하나를 내린다.  ④ 다음 사람도 계속 같은 방법으로 진행하다가 짝맞추기를 세 번 먼저 해서 내려놓으면 이기게 된다. 4) 골패     ① 보통 5~7명이 하지만 놀이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은 4명까지 제한된다. 따라서 나머지 사람은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한 사람이 빠지면 대신 들어가 놀이를 한다.  ② 4명이 각기 8장씩의 골패를 나누어 가지는데, 2-5(아오)를 잡은 사람이 선이 된다. 그러나 3명이 할 경우 10장씩 갖고 2장을 빼고 2명이 할 때는 16장씩 갖고 한다. ③ 먼저 선이 자기의 패 중에서 하나의 골패를 내려놓으면, 반 시계 방향으로 2·3·4등은 차례로 1등에 맞는 골패를 내려놓아 이어가야 한다. 꼬리 붙이기처럼 아래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만약 선이 3-3(장삼)을 내놓았으면 다음 사람은 3이 들어간 골패, 즉 1-3, 2-3, 4-3, 3-6 중 하나를 내놓아야 한다. 만일 자기 차례가 왔을 때 3이 들어간 골패가 없어 내려놓지 못하면 자기가 가진 골패 중 한 개를 빼서 상대방이 무엇인지 모르도록 엎어서 내려놓는다. 이것을 '꿇어놓는다'고 한다. ④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한 뒤에, 앞사람의 골패를 이어가지 못해 꿇어놓은 골패의 구멍수로 승부를 가린다. 즉 4명 중 구멍수가 가장 적은 사람이 장원이 되고, 가장 많은 사람이 꼴찌가 된다. 5) 거북패     ① 먼저 20짝을 가로로 다섯 짝, 세로로 네 짝씩 붙여 네모지게 거북의 몸을 만들고, 다음 두 짝으로 머리, 두 짝으로 꼬리를 각각 붙이고, 끝으로 몸의 네 귀퉁이에 각각 두 짝씩 엇비슷하게 네 발을 붙인다.  ② 머리, 꼬리, 네 발 등 바깥 짝들과 맨 앞줄의 둘째 짝, 넷째 짝과 맨 뒷줄의 둘째 짝, 넷째 짝을 젖혀 맞는 짝끼리 떼어낸다.  ③ 다음 짝들을 같은 방법으로 되풀이하여 끝까지 다 떨어지면 재수가 좋다고 한다.   6) 골패의 용어 ① 조사:내려놓은 골패의 구멍수가 가장 많은 사람, 즉 꼴찌를 말한다. ② 삼시 : 등위와 관계없이 꿇어놓은 골패의 총 구멍수가 30이 넘는 사람을 말한다. ③ 통:여덟 장을 모두 이어가서 한 개도 꿇어놓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데, 네 명 중에서 한 사람이 있으면 나머지 사람은 벌칙을 받거나 돈내기의 경우 돈을 내야 한다.   7) 골패의 세부규칙. ① 첫판을 제외하고는 꼴찌를 한 사람이 선이 된다. ② 장원이 셋이고 조사가 한 명이면 돈을 내지 않는다. ③ 돈을 낸 사람, 즉 조사가 둘일 경우 가운데 사람이 선을 잡는다. ④ 구멍수가 가장 적은 사람이 동수인 경우 함께 돈을 나누어 갖는다. ⑤ 한 명이 통을 해서 세 명 모두 돈을 물으면 일등이 다시 선이 된다. ⑥ 5~6명이 할 때는 장원인 사람이 쉬고, 대기 중인 사람이 들어온다. ⑦ 패를 나눌 때는 잘 섞어서 보이지 않도록 뒤집어 놓은 다음, 선이 2장을 먼저 가져가면 그곳에서부터 반 시계방향으로 2장씩 가져간다.   라. 교과서 속의 놀이                               '톡'과 같은 놀이는 골패의 안쪽에 구멍이 패여 있어서 시각장애인도 할 수 있는 놀이로 손의 감각을 익힐 수 있는 놀이이다. '짝맞추기'나 '꼬리 붙이기'와 같은 놀이는 두뇌를 최대한 활용해야 이길 수 있고 또한 정확한 수 읽기 내지 판단력이 있어야 능숙하게 놀이할 수 있다. 또한 '골패'의 경우 전체상황을 파악해야 하며, 심지어 바닥에 내려놓은 패를 잘 읽고 기억해야 놀이에서 이길 수 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하여 총체적인 지능발달을 꾀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놀이를 통한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 하겠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이에 몰입할 때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를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적 효과이다.    마. 기타                               돈을 내고 하면 도박이지만 친목도모 및 여가를 활용하는 차원에서 하면 여러 가지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서양의 포카는 우리의 경우에는 도박에 이용되지만 서양에서는 가정에서 가장 쉽게 하는 건전한 놀이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은 좋은 예이다.      
4    [고향자랑] -"축구의 고향"-그 축구문화의 향기 만방에 떨쳐라 댓글:  조회:2586  추천:0  2018-07-12
축구문화의 향 짙어간다 2018년 07월 11일 작성자: 해란강축구타운 룡정해란강축구문화타운-축구문화의 향 짙어간다.       여름이 짙어가면서 룡정시 공업집중구에 위치한 룡정해란강축구문화타운도 계절과 더불어 자신의 의미지에 색상을 짙게 그려가고 있다. 지난 6월 29일 올들어 가장 큰 축구행사인 전국고중축구리그 총결승경기를 성공적으로 총화한 뒤를 이어 축구를 담체로 한 각종 경기 축제가 이어가면서 ‘축구의 고향’ 이 땅에 축구문화의 향을 짙게 뿌려주고 있다.      축구의 미래가 기대되는 연변축구협회 청소년 축구 정기훈련 꼬마 축구선수들이 푸른잔디에 동심을 심어가고있다     7월 3일부터 6일까지 제1회 연변 '헤브론'로년축구문화축제가 펼쳐졌다. 연변백운축구팀을 비롯한 3개의 60세이상 로년축구팀과 한국로년축구팀이 해란강축구문화타운에서 승부를 걸었다.  제일 나이많은 선수는 80세도 넘는다. 70세이상 선수도 여러명, 허나 축구장에서 이들은 나이를 잊었고 푸른잔디를 주름잡아 뛰는 모습에서 나이를 판단키 어렵다.        연변 '헤브론'로년축구문화축제와 동시에 조선압록강축구대표단 남녀축구팀이 훈련 및 친선경기일정으로 룡정해란강축구타운에 입주했다. 7월 6일 조선압록강FC축구팀은 역시 룡정에 찾아온 흑룡강FC축구팀과  '캔미컵'국제친선경기를 치렀다.       축구장에서 조선압록강축구대표단을 만나게 된 한국로년축구팀은 조선축구팀측에 선물을 전달하고 잠간이나마 민족의 그리움과 만남의 정을 나누는 소중한 자리를 가졌다.     연변'부덕컵'경기초청으로 각현시 업여축구학교 6개 업여축구팀이 이틀간 해란강축구문화타운에서 뜻깊은 경기를 치렀다. 그외에도 전국 청소년 축구슈퍼리그, 국가축구코치 자격강습을 비롯한 축구관련 강습 경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7월 10일 조선압록강축구대표단의 중조친선경기 원만한 결속 및 승리적 귀국 축제모임이 룡정해란강축구타운에서성황리에 펼쳐졌다. ,, 직업가수와 사업일군의 열창,조선남녀축구팀선수들의 열광적인 동참으로 축제분위기는 고조에 고조를 거듭하는 과정에 아쉬움으로 막을 내렸다.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남녀로소, 국제국내 만남의 장이고 짙어가는 축구문화의 장이며 산업과 문화의 융합으로 구축되여가는 교류와 화합의 장이다. 룡정시해란강축구문화투자유한회사가 추진하고있는 룡정해란강축구문화타운은 현재 제1기 공사가 곧 마무리되고 오는 8월 8일에 제3기 연변축구축제와 더불어 1기공사 준공식을 갖게된다.   2기공사까지 마무리하면 체육, 건신,관광, 레저,양성시설이 구전하고 체육관련 산업이 흥성하며 뚜렷한 민족특색과 국제영향력을 갖춘 축구문화타운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3    [얼쑤절쑤] - 춤에는 반드시 스스로의 령혼이 숨배여야... 댓글:  조회:2741  추천:0  2018-07-12
“우리 전통무용…나를 가슴 뛰게 하는 것” (ZOGLO) 2018년7월11일    우리 민족 전통무용은 우아하면서도 매혹적이다. 무용수들의 현란한 춤사위는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기도 한다. 그런 마력을 지닌 우리 춤으로 무대우에서 빼여나게  연기를 펼치고 있는 이가 있다, 그가 바로 대형무극 ‘아리랑꽃’에서 주인공 역할을 거뜬히 소화해내며 우리 겨레의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를 만방에 알린 무용수 방려미(29세)씨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지난 6월 27일, 연변가무단을 찾았다.   방려미씨의 공연모습.   2년전, 대형무극 ‘아리랑꽃’이 제5회 전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전국적으로 큰 이슈를 몰고 왔다. 1시간 30분 가량의 창작무극은 많은 이들에게 긴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무용수 방려미씨한테도 ‘아리랑꽃’은 특별했다. 그는 자신의 춤을 두고 타고난 것 보다는 반복된 련습과 노력의 산물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그녀가 일곱살 나던해, 학교 무용반에 뽑히면서 처음으로 우리 민족 전통춤을 접하게 되였다. 춤을 이토록 좋아하게 된 건 웃학년 언니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넋을 놓고 지켜본 그 때부터였다. 무용은 누구나 다 끝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란걸 알면서도 그는 자신의 선택을 줄곧 믿어왔다. 열세살 때 훈춘동아무용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무용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녀였다. 4년간 무용기교를 부지런히 다지는 한편 국내외 각종 경연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2007년,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부에 입학했다. 그녀의 대학시절 경력 역시 화려했다. 2008년에는 북경올림픽개막식 무대에 올라 현란한 춤사위를 한껏 뽐내여 우리 민족 전통춤을 세계인들에게 선보이는 영예를, 2011년에는 CCTV 드라마‘장백산 아래 우리 집’에서 조선족 출연자로 캐스팅되여 안방극장에도 데뷔했다. 이렇듯 재기 넘치는 수준급에 대도시로 진출할 여러번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방려미씨는 “조선족 무용수로서 뿌리인 연변을 떠날 수 없었다”며 여기저기서 온 러브콜을 마다하고 대학교 졸업 후 결연히 연변가무단을 선택했다. 그로부터 얼마 안되여 그녀는 2012년 제4회 전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에서 독무 출연 외에도 무용 , , 등 에서 주인공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 금상 수상과 동시에 난생처음 신인상을 수상하는 영광까지 받아안았다. 련습실에서의 방려미씨.   허리부상, 발목부상 등 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힘든 나날속에서도 그는 한마디 원망 없이 련습실 바닥을 땀으로 흠뻑 적셨다. 그리고 그녀에게 주어진‘주인공 무용수’의 무게를 감내 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춤에 몰입하는 동안에는 잠시 스스로를 내려놓게 돼요, 무릎이 까지고 군데군데 멍들어도 아픈 줄도 모르고 련습에만 매진하게 되더라구요.” 2014년 중국조선족무용대회에서 으로 우수상, 2016년 제5회 전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 금상, 2017년 제11회 중국무용 ‘련꽃상’민족민간무용콩클 1등상, 2017년 제3회 동북3성 무용대회에서 독무 로 우수상 등 크고작은 대회에서 묵직한 영예를 받아안으면서 그녀의 끈기는 결국 빛을 발했다. 그녀는“춤을 잘 추려면 춤선도 고와야 하고 기교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춤을 통해 전달하려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무용의 진수가 아닐가 싶어요. 그 도리를 깨우치고 하나하나 난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성장하기도 하죠.”라고 하면서“자신의 삶과 정신을 반영하지 않은 춤은 령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모든 춤에는 반드시 스스로가 있어야 해요.”라고 자신에 일침을 가했다. “언제까지 주인공 역할을 맡을지는 모르죠. 그러나 춤은 계속 이어갈 겁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춤을 추고 싶어요. 앞으로도 수준 높은 공연과 작품을 선보이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 민족 전통무용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사업에도 힘 다할 거예요.” 인터뷰를 마치며 그녀는 민족 전통무용에 대한 애뜻한 사랑을 솔직히 터놓았다. 우리 민족 전통춤을 출 때마다 가슴이 설레인다는 방려미씨, 그가 오래도록 무대를 빛내야 할 리유다. ///연변일보 글·사진 최미경 기자
2    [동네방네] - "동굴소년(야생멧돼지)"들..." V "... 댓글:  조회:4268  추천:0  2018-07-12
태국 동굴소년 병실 영상 첫 공개.. 카메라 향해 'V' 2018.07.11. 23:40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하노이=연합뉴스) 민영규 특파원 = 최장 17일간 동굴에 갇혔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태국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이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11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카메라 향해 'V' 사인 보내는 태국 동굴소년 [브라이트TV 영상캡처] 태국 당국이 격리실 창밖에서 촬영해 공개한 짤막한 영상에는 환자복을 입고 마스크를 낀 소년 7명이 보였다. 링거를 맞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다소 지친 듯해 보였지만, 병원 측이 사전에 설명한 것처럼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병상에 앉은 소년 2명은 촬영 카메라가 보이자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는 태국 전통예절로 인사하더니 곧바로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만들어 흔들어 보였다. 태국 동굴소년 구조후 첫 영상 공개 [브라이트TV 영상 캡처] 다른 소년들도 대부분 카메라를 향해 V 사인을 보내는 등 깜깜한 동굴에 오랜 기간 갇혔다가 가까스로 구조됐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심리적 안정을 찾은 듯했다.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와 고글, 장갑을 착용하고 머리에 비닐 캡까지 쓴 의료진 2명이 소년들과 뭔가 얘기하는 모습도 영상에 잡혔다. ===================== 태국 달려온 전세계 구조 영웅들, 암흑의 동굴서 기적 밝혔다 (ZOGLO) 2018년7월11일  호주 의사 다이버, 영국 IT기술자, 태국 네이비실… 코치·소년 13명 전원 구조   영국 IT 기술자 존 볼런튼은 노트북 대신 잠수 장비를 챙겨 9000㎞를 날아왔다. 호주 마취과 전문의 리처드 해리스(53)도 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중국·일본·스웨덴의 동굴 전문가도 태국 북부 미얀마와의 접경 산골로 급히 달려왔다. 오래전 군을 떠났던 태국 예비역 특전사 대원 사만 구난(37)은 10여 년 만에 잠수복을 꺼내 들었다. 세계 각국에서 동굴 탐사 전문가이거나 수중 잠수 전문가로 자처한 사람들이 13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수천㎞를 달려왔다. 이들 다국적 구조팀은 지난 8일부터 사흘간 구조 작업 끝에 동굴 속 암흑에서 16~18일간 고립돼 있던 소년과 코치 13명을 모두 동굴 밖 빛의 세상으로 데리고 나왔다.   이미지 크게보기병원 가는 '기적의 소년들' - 10일(현지 시각) 태국 북부 치앙라이주(州) 탐루앙 동굴에 고립됐다가 18일 만에 구조된 소년이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폭우로 불어난 물에 고립된 태국 유소년 축구팀 13명은 이날 전원 구조됐다. /데일리메일 '야생 멧돼지 12명과 코치가 동굴에서 나왔습니다. 모두 안전합니다.' 다 살아 돌아왔다. 10일 오후 6시 48분(현지 시각) 태국 네이비실 페이스북에 전원 구조 첫 소식이 떴다. 지난달 23일 동굴을 탐험하기 위해 들어갔다 폭우로 고립됐던 태국 치앙라이주(州) 유소년 축구팀 '무 빠'(야생 멧돼지) 단원 13명이 전원 구조됐다. 고립된 지 18일, 생사가 확인된 지 8일 만이다. 작전 첫날 4명, 둘째 날 4명이 구조된 데 이어 사흘째인 10일 나머지를 모두 구조한 것이다. 구조 작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소년들은 동굴 입구에서 4.5㎞ 떨어진 곳에 머물고 있었다. 깜깜한 동굴 속에서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소년들이 견디는 동안 동굴 밖에선 전 세계에서 달려온 탐험·잠수·구조 전문가들이 힘을 합쳤다. 모든 사람이 기적을 이뤄냈다.   이미지 크게보기태국 동굴소년들 전원 생환… 그들을 구한 영웅들 - 전 세계인의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을까. 지난 달 23일 태국 북부 치앙라이주(州)의 탐루앙 동굴에 탐험하러 들어갔다 폭우로 고립됐던 유소년 축구팀‘무 빠’(야생 멧돼지) 단원 13명이 10일 전원 구조돼 돌아왔다. 동굴 입구에서 4.5㎞ 떨어진 곳에 고립된 지 18일, 생사가 확인된 지 8일 만이다. 태국 네이비실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소년들을 구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 지난 8일부터 사흘간 전원 구조에 성공했다. 사진은 이날 구조작전에 참여한 태국 네이비실 대원들이 동굴을 빠져나온 뒤 엄지손가락을 치켜 든 모습. /태국 네이비실 소년들의 구조 작업이 물 흐르듯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밑그림'을 그린 사람은 호주의 마취과 의사 겸 잠수 전문가인 리처드 해리스다. 해리스는 동굴 잠수 경력 30년의 베테랑으로 소년들의 생존이 확인된 직후 직접 동굴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구조 순서를 정했다. 그는 소년들과 코치 등 13명이 동굴을 안전하게 빠져나간 뒤 맨 끝에서 이들을 따랐다. 지난 2일 아이들의 생존 사실을 처음 확인한 사람은 영국의 잠수 전문가인 전직 소방관 리처드 스탠턴과 IT 기술자인 존 볼런튼이다. 전 세계 동굴 조난 사고 때마다 출동 요청을 받았던 이들은 이번에도 직접 입수해 수㎞의 동굴 바닥을 기어들어가 소년들의 생존 사실을 확인했다. 다국적 전문가들과 힘을 합쳐 구조 작전을 실행한 주역은 태국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이다. 희생도 있었다. 구조팀 일원인 사만 구난 예비역 원사가 지난 6일 산소탱크 동굴 내부 주입 작업 중 산소 부족으로 의식 불명에 빠져 끝내 숨졌다. 네이비실 전역 뒤 2006년부터 방콕 수완나폼공항 경비대에서 근무해온 그는 구조팀에 자원했다. 치앙라이로 떠나기 전 직접 동영상을 찍고 "아이들을 모두 구해오겠다"고 다짐했다. 아르파꼰 유꽁테 태국 네이비실 사령관은 "귀중한 동료를 잃었지만 언제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했다.   멧돼지는 축구 단원, 개구리는 잠수 전문가, 아이언맨은 머스크 - 13마리의 멧돼지가 동굴 속을 헤엄치고 있다. 동굴에 고립됐다 18일 만에 구조된 태국 유소년 축구팀‘무 빠(야생 멧돼지)’팀원 13명을 상징한다. 아이들을 둘러싼 물범은 태국 네이비실을, 개구리는 전 세계 잠수 전문가들이다. 동굴 곳곳엔 각국 구조대를 상징하는 사자(영국), 캥거루(호주), 판다(중국), 두루미(일본)가 멧돼지들을 지켜보고 있다. 동굴 오른쪽 위 편에는 기술자를 보내 도움을 준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를 상징하는‘아이언맨’도 있다. 태국 한 만화가가 이번 사건을 인류애를 구현한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로 표현한 걸 10일 태국 네이비실이 페이스북에 올렸다. /태국 네이비실 페이스북 소년들 곁에는 축구팀 인솔 코치 에카폴 찬타웡(25)이 있었다. 그는 13명 중 유독 건강 상태가 나빴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기 몫의 음식까지 소년들에게 먹였기 때문이다. 그는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다독이고 될 수 있으면 몸을 덜 움직이도록 했다. 바닥에 흐르는 흙탕물은 절대 못 마시게 했다. 실종 초기 축구팀을 인솔해 동굴 탐험을 떠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지만 결국 아이들을 지킨 것은 그였다. 찬타웡은 열 살에 부모를 잃고 한때 스님 생활을 했다가 환속 후 축구팀 보조코치로 일해왔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태국 네이비실은 이틀째 구조 작업이 끝난 뒤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에 동화 같은 카툰 한 컷을 올렸다. 새끼 멧돼지(소년들)와 형 멧돼지(코치)가 개구리(전 세계에서 온 잠수 전문가)와 물범(네이비실)의 호위를 받으며 구불구불한 동굴을 헤쳐나가는 그림이다. 영화 캐릭터 아이언맨의 얼굴도 보인다. 사고 초기부터 에어 튜브와 소형 잠수정 등 최첨단 장비로 구조 제안을 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표현한 것이다. 그는 터널 굴착 업체 보어링 컴퍼니 소속 기술자 9명과 장비를 파견해 배수 작업 등을 도왔고 자신도 직접 현장을 찾았다. ///조선일보 ==================== 영어 통역 소년도, 코치도 '난민'.. 태국 국적 받는다 이지은 2018.07.12. 21:39 SNS 공유하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앵커] 동굴에 갇혀있던 소년들 중 1명은 그들을 처음 발견한 영국 잠수사에게 영어로 '감사하다', '우리는 모두 13명이다' 이렇게 또박또박 말을 했습니다. 이 소년은 태국 국적이 없는 난민이었습니다. 끝까지 소년들을 지킨 코치도 국적이 없었습니다. 이지은 기자입니다. [기자] 구조팀이 다가가자 어둠 속에서 울먹이는 영어 한 마디가 들립니다. [태국 소년 : 고맙습니다!] 영국 대원이 동굴 안에 몇 명이 있냐고 묻자, 소년은 영어로 곧잘 대답합니다. [태국 소년 : 13명이요! 우리를 구하러 왔대.] 영어를 잘 모르는 친구에게 태국 말로 옮겨주던 14살 아둔 삼온은 국적이 없습니다. 아둔은 미얀마 북동부에서 태어났지만, 분쟁 지역에서 아들을 키우고 싶지 않다는 부모를 따라 태국으로 넘어왔습니다. 마크와 티로 불리는 다른 10대 2명도 난민입니다. 코치 엑까뽄 찬따웡도 같은 처지입니다. 미얀마에서 감염병으로 가족을 잃은 뒤 유일한 피붙이인 할머니를 돌보려고 태국에 와 코치가 됐습니다. 축구팀에서 함께 꿈을 키웠지만 난민이라 기회랄 게 없었습니다. 소속 축구팀은 이 4명에게 태국 국적을 주려는 절차가 시작됐다고 했습니다. 태국에는 미얀마와 캄보디아와 맞닿은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난민 48만 명이 국적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상디자인 : 강아람) (화면제공 : 태국 네이비실)        
1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닭 1 댓글:  조회:1823  추천:0  2018-07-12
닭 1  윤동주  한칸 계사(鷄舍) 그 너머 창공이 깃들어  자유의 향토(鄕土)를 잊은 닭들이  시들은 생활을 주잘대고  생산의 고로(苦勞)를 부르짖었다.  음산한 계사에서 쏠려나온  외래종 레그혼,  학원에서 새무리가 밀려나오는  3월의 맑은 오후도 있다.  닭들은 녹아드는 두엄을 파기에  아담한 두 다리가 분주하고  굶주렸던 주두리가 바지런하다.  두 눈이 붉게 여물도록 ──.                 1936. 봄   위 시의 배경은 시골의 집 풍경이다. 아마 요즘 세대는 잘 모르리라. 아마 이 시는 일제의 억압에 대하여 자신의 심경을 닭장을 보면서 읊은 시일 것이다. =============   닭2  윤동주  ── 달은 나래가 커도  왜, 날잖나요  ── 아마 두엄 파기에  홀, 잊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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