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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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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특보] - "야생멧돼지"들과 "자원봉사 영웅" 댓글:  조회:4225  추천:0  2018-07-15
"고마워요" 태국 동굴소년, 구조중 숨진 네이비실 前대원 추모 2018.07.15.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구조중 숨진 사만 쿠난 추모하는 동굴소년들[태국 보건부 제공=연합뉴스]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태국 치앙라이 탐루엉 동굴에서 구조된 13명의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과 코치가 자신들을 구조하던 도중 숨진 전 태국 해군 네이비실 대원 사만 쿠난을 추모했다고 태국 보건부가 15일 밝혔다. 젯사다 촉담렁쑥 태국 보건부 사무차관은 "아이들이 구조대원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 건강해졌다고 판단해 어젯밤 소식을 전했다"며 "13명이 모두 눈물을 흘렸고 추모의 메시지와 그림을 바쳤다. 그리고 1분간 묵념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아이들은 사만에 진심 어린 감사의 뜻을 표했고 사만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도 했다"고 덧붙였다. 구조도중 숨진 전 네이비실 대원 추모하는 동굴소년들[태국 보건부 제공=연합뉴스] 전역한 뒤 태국공항공사(AOT) 보안요원으로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일하던 사만은 동굴소년 실종사건 소식을 접한 뒤 수색 및 구조 현장 봉사를 자청했다. 그러나 지난 6일 동굴 내 산소통 설치작업을 하고 밖으로 나오다가 산소 부족으로 의식을 잃었으며 병원으로 이송된 뒤 숨졌다. 이번 동굴소년 구조 중 발생한 유일한 희생자다. 태국 해군은 사만을 예비역 병장에서 해군 대위로 특별 진급시켰다. 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은 그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를 수 있도록 후원하는 한편, 칙령을 통해 그를 소령으로 특진시키고 왕실 최고훈장도 추서했다. 동굴구조 도중 숨진 사만 쿠난[태국 네이비실 페이스북 캡처=연합뉴스] 14일 다비식을 거쳐 이날 열린 영결식에서 사만의 부인인 발리뽄 쿠난은 "사만은 이제 하늘에서 모든 사람을 돌보고 있을 것이다. 나도 이곳에서 남편의 발자취를 따를 것"이라며 "우리는 함께 있으며 서로의 마음속에 영원히 있을 것"이라며 통곡했다. 사만의 유해는 메콩 강에 뿌려질 예정이다. 태국 국왕 후원으로 열린 사만의 다비식[태국 네이비실 페이스북 캡처=연합뉴스] 예술가들도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했다고 일간 방콕포스트가 전했다. 찰럼파이 꼬싯피빳 등 300여 명의 지역 예술가들은 대형 캔버스에 사만을 비롯해 구조작업에 동참했던 사람들을 묘사한 '영웅들'이라는 그림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이 그림을 동굴 내 공간에 전시할 예정이다. 태국 예술가들이 공동으로 작업중인 회화 '영웅들'[AP=연합뉴스] 또 예술가들은 6개월 이내에 사만의 동상도 제작해 동굴 입구가 마주 보이는 곳에 세울 예정이다.
5    "리별은 인생의 보석이다"... 댓글:  조회:2156  추천:0  2018-07-15
  + 아름다운 이별           우리는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오래 빛날 수 있다.  저 높은 곳의 별처럼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써  더욱 확실할 수 있다.  누가 이별을 눈물이라 했는가  아픔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빛날 수도 없다  아픔이 크면 클수록 더욱 빛나는  이별은 인생의 보석이다.  헤어짐을 서러워하지 말라  이별은 초라하고 가난한 인생에  소중하고 눈부신 보석을 붙이는 일  두고두고 빛날 수 있는  사랑의 명패를 다는 일  (윤수천·시인, 1942-)  + 사랑법 2  누군가 말했지  헤어져 있을 때 더 많은 축복이 있다고  함께 있을 때 내 님 오직 하나더니  헤어진 지금 온 세상 님으로 가득  (작자 미상)  + 이별  마음 비우는 일처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그리움 깊어갈수록  당신 괴롭혔던 날들의 추억  사금파리로 가슴 긁어댑니다  온전히, 사랑의 샘물  길어오지 못해온 내가  이웃의 눈물  함부로 닦아준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요  가슴 무덤에 생뗏장 입히시고  가신 당신은  어느 곳에 환한 꽃으로 피어  누구의 눈길 묶어두시나요  마음 비우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당신은 내 곁에 없었습니다  아픈 교훈만  내 가슴 무덤풀로 자랐습니다  (이재무·시인, 1958-)  + 이별(離別)에게  지우심으로  지우심으로  그 얼굴 아로새겨 놓으실 줄이야  흩으심으로  꽃잎처럼 우리 흩으심으로  열매 맺게 하실 줄이야  비우심으로  비우심으로  비인 도가니 나의 마음을 울리실 줄이야  사라져  오오,  永遠을 세우실 줄이야  어둠 속에  어둠 속에  寶石들의 光彩를 길이 담아 두시는  밤과 같은 당신은, 오오, 누구이오니까!  (김현승·시인, 1913-1975)  + 마음에게  신록이여,  죽은 마음에 움트는 강철의 새 잎이여  나는 이제 어떤 이별도 껴안을 수 있다  저렇게 많은 사랑들이, 저렇게 많은 아픔들이  자기와의 투쟁을 통과하여 이제 막 연록 햇빛 속으로 걸어나온 사람들이라니  (이시영·시인, 1949-)  +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시인, 1933-2005)  + 그대는 들으소서  하루에도 몇 번씩  눈감는 소리  그 깊은 속눈썹의 떨림을  그대는 들으소서  어둠 속에 눈물 한 방울  툭, 떨어지는 소리  그대 들으소서  그대를 생각할 때면  혼자 흔들리던 그네처럼  내 마음, 허공 속에  흔들립니다  나의 태양, 나의 태양이여  이제는 돌아서야만 할 시간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은  그대 잠시 돌아보던  노을 속에 적었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점점 밝아지던 눈빛  그대만의 별을 찾아 헤매던  내 눈빛의 서러움  그대는 들으소서  이 세상 어느 곳에 있든지  그대는 들으소서... 들으소서...  (최옥·시인)  + 나도 그랬듯이  머지 않아 그 날이 오려니  먼저 한마디 하는 말이  세상만사 그저 가는 바람이려니,  그렇게 생각해 다오  내가 그랬듯이  실로 머지 않아 너와 내가 그렇게  작별을 할 것이려니  너도 나도 그저 한세상 바람에 불려가는  뜬구름이려니, 그렇게 생각을 해다오  내가 그랬듯이  순간만이라도 얼마나 고마웠던가  그 많은 아름답고 슬펐던 말들을 어찌 잊으리  그 많은 뜨겁고도 쓸쓸하던 가슴들을 어찌 잊으리  아, 그 많은 행복하면서도 외로웠던 날들을 어찌 잊으리  허나, 머지 않아 이별을 할 그날이 오려니  그저 세상만사 들꽃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생각을 해 다오  행복하고도 쓸쓸하던 이 세상을  내가 그렇게 했듯이  (조병화·시인, 1921-2003)  + 꽃샘추위  이별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 것  겨울 끝자락의  꽃샘추위를 보라  봄기운에 떠밀려  총총히 떠나가면서도  겨울은 아련히  여운을 남긴다  어디 겨울뿐이랴  지금 너의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 보라  바람 같은 세월에  수많은 계절이 흘렀어도  언젠가  네 곁을 떠난  옛 사랑의 추억이  숨결처럼 맴돌고 있으리  (정연복)  * 엮은이: 정연복
4    "강은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말끔히 씻어낸다"... 댓글:  조회:2142  추천:0  2018-07-15
  + 세월의 강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마라  다친 달팽이를 보거든 도우려 들지 말아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으로 그를 화나게 하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장 슬로우)  + 강물  강물은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다.  누가 길을 막으면  돌아서 가고  그러면서도  앞서지 않고  차례로 간다.  강물은 강물끼리  서로 손잡고 간다.  (노원호·아동문학가)  + 강물처럼  왜 강물인 줄 아니?  흐르기 때문이래  고여 있고만 싶다면  강물이 될 수 없는 거래  흐르고 흘러서  내게도 오고  네게도 가고  바다까지 가는 거래  거기엔 고래가 산다잖아  강에선 볼 수 없는  글쎄, 집채만 하대  너도 흘러 본 적 있니?  음…  음…  함께 웃고  도와 주고  나눠 주고  이런 게 흐르는 거라면  (현경미·아동문학가)  + 강물이 흐르며  먼저 가려고 다투지도 않고  처져 온다고 화도 안 낸다.  앞서 간다고 뽐내지도 않고  뒤에 간다고 애탈 것도 없다.  탈없이 먼길을 가자면  서둘면 안 되는 걸 안다.  낯선 물이 끼여들면  싫다 않고 받아 준다.  패랭이꽃도 만나고  밤꽃 향기도 만난다.  새들의 노래가 꾀어도  한눈 팔지 않고 간다.   (최춘해·아동문학가)  + 강물은  바다로 나가기 싫어서  일부러 구불구불 산을 돌아서 들을 돌아서  천천히 천천히 흐른다.  댐을 만나면  다이빙도 해보고  나룻배를 만나면  찰싹찰싹 나룻배 꽁무니도 밀어 주고  강물은  학교 가기 싫은  내 동생하고 똑같다.  (전영관·아동문학가)  + 강  강은 언제나  앞과 뒤  그리고  옆을 둘러보며  천천히  흘러간다.  천천히 가다가  산이 좋고  물이 좋은  곳을 만나면  집과 집이  서로 정답게 껴안은  마을을  옹기종기  매달아 놓고  들이 시원하고  바람이 시원한  곳을 만나면  곡식과 채소가  다투어 자라는  논밭을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만들어 놓고  심심한 아이들이  뒹굴고 놀  넓은 모래밭을  펼쳐 놓고  염소와 송아지가  풀을 뜯고 쉴  풀밭도  펼쳐 놓고  강은  어두운 밤이 되더라도  달이나 별이 찾아와  목욕할 수 있도록  언제나  다니는 그 길로  꼬박꼬박  그리고 천천히  흘러간다.  (오규원·시인. 1941-2007)  +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강은 가르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을 가르지 않고  마을과 마을을 가르지 않는다.  제 몸 위에 작은 나무토막이며  쪽배를 띄워 서로 뒤섞이게 하고,  도움을 주고 시련을 주면서  다른 마음 다른 말을 가지고도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친다.  건너 마을을 남의 나라  남의 땅이라고 생각하게  버려 두지 않는다.  한 물을 마시고 한 물 속에 뒹굴며  이웃으로 살게 한다.  강은 막지 않는다.  건너서 이웃 땅으로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을 막지 않는다.  짐짓 몸을 낮추어 쉽게 건너게도 하고,  몸 위로 높이 철길이며 다리를 놓아,  꿈 많은 사람의 앞길을 기려도 준다.  그래서 제가 사는 땅이 좁다는 사람은  기차를 타고 멀리 가서 꿈을 이루고,  척박한 땅 밖에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강 건너에 농막을 짓고 오가며  농사를 짓다가, 아예  농막을 초가로 바꾸고  다시 기와집으로 바꾸어,  새 터전으로 눌러 앉기도 한다.  강은 뿌리치지 않는다.  전쟁과 분단으로  오랫동안 흩어져 있던 제 고장 사람들이  뒤늦게 찾아와 바라보는  아픔과 회한의 눈물 젖은 눈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제 조상들이 쌓은 성이며 저자를  폐허로 버려 둔 채  탕아처럼 떠돌다 돌아온  메마른 그 손길을 따듯이 잡아 준다.  조상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하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수없이 건너가고 건너온  이 강을 잊지 말란다.  강은 열어 준다, 대륙으로  세계로 가는 길을,  분단과 전쟁이 만든 상처를  제 몸으로 말끔히 씻어 내면서.  강은 보여준다,  평화롭게 사는 것의 아름다움을,  어두웠던 지난날들을  제 몸 속에 깊이 묻으면서.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신경림·시인, 1936-)  * 엮은이: 정연복 /  
3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방음벽문제와 죽어가는 새들"... 댓글:  조회:4797  추천:0  2018-07-15
높이 낮춰도 스티커 붙여도.. 투명 방음벽에 죽어가는 새들 이용식 기자  2018.07.15.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투명한 도로 방음벽에 새들이 부딪혀서 죽는 일이 많다고 자주 보도해 드렸습니다. 이런 투명 방음벽의 높이를 낮춰도 '새 충돌'을 막을 순 없다고 합니다. 다른 대책은 없는지 이용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충남 세종시의 한 지방도로입니다. 높이가 낮은 1단 방음벽 아래에 죽은 지 얼마 안 된 듯한 멧비둘기와 직박구리, 참새가 있습니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2급인 새매도 죽어 있습니다. 충남 서천에서 군산으로 향하는 국도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여름 철새인 물총새와 뱁새로 불리는 붉은머리오목눈이 등 새 10여 마리가 방음벽을 따라 죽어 있습니다. 새가 충돌했던 투명방음벽입니다. 새의 깃털이 이렇게 붙어 있는 등 충돌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국도와 지방도여서 방음벽이 대부분 낮게 설치돼 있지만 새 충돌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강종현/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 : 산에서 나는 게 아니라 논에서 이렇게 날다 보니까 좀 낮게 나는 그래서 부딪치는 것 같습니다.] 맹금류 스티커가 붙어 있어도 소용없습니다. 새는 눈이 머리 옆에 있어서 전방 인식이 느립니다. 때문에 스티커를 장애물로 보이게 하려면 아주 촘촘하게 붙여야 합니다. [이배근/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 : 가로 10cm, 세로 5cm 간격으로 촘촘하게 붙여줘야지 새들이 인식을 하고 충돌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은 야생조류의 투명 방음벽 충돌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처음으로 피해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김민철)   /이용식 기자
2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양지쪽 댓글:  조회:4008  추천:0  2018-07-15
  양지쪽               윤동주   저쪽으로 황토 실은 이 땅 봄바람이 호임의 물레바퀴처럼 돌아 지나고     아롱진 사월 태양의 손길이 벽을 등진 섧은 가슴마다 올올이 만진다.     지도째기 놀음에 뉘 땅인 줄 모르는 애 둘이 한 뼘 손가락이 짧음을 한함이여     아서라! 가뜩이나 엷은 평화가 깨어질까 근심스럽다.                                         1936. 6. 26.       =====================     이 시는 사월의 봄에 누구 땅인지 모르고 애들을 보고 한스러워 하면서도 지금의 작은 평화가 깨질까봐 근심이 생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롱진 사월의 태양의 햇빛이 비추는 양지쪽에서 벽에 기대어 서서 저쪽에서 황토먼지를 실은 봄바람이 회오리를 치며 돌아서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 따스한 사월의 태양빛이 벽을 등지고 서 있는 화자의 서러운 마음을 하나하나 만지며 편안하게 한다. 양지쪽에서 서로 땅을 따먹는 지도째기 놀음을 하면서도 지금 이 땅이 누구의 땅인 줄 모르는 아이들이 땅따먹기를 하면서 한뼘 손가락이 짧아서 땅을 많이 먹지 못한다고 한(恨)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화자가 이 아이들에게 이 땅이 누구의 땅인지 알려주려고 하다가 잘못되면 일제감시에 걸려서 이 양지쪽에서 사월의 태양빛을 받으며 서러운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가뜩이나 엷은 평화마저 깨어지고 사라질까 근심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은 화자와 노는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상징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햇볕이 있는 장소로 희망이 아직 있는 곳 또는 절망적인 마음을 달래주는 곳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쪽으로 황토 실은 이 봄바람이 / 호인(胡人)의 물레바퀴처럼 돌아 지내고 // 아롱진 사월 태양의 손길이 / 벽을 등진 설운 가슴마다 올올이 만진다.’는 화자가 양지쪽에 벽을 등지고 서서 멀리 봄바람이 황토를 빨아올리며 회오리바람처럼 돌면서 지나가는 것을 보는데 사월의 햇빛이 서러운 마음들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어루만지며 달래준다는 내용이다. ‘저쪽으로 황토 실은 이 봄바람이 / 호인(胡人)의 물레바퀴처럼 돌아 지내고’는 화자가 있는 곳에서 거리가 제법 있는 곳에서 흙먼지를 빨아올린 봄바람이 호인이 사용하는 물레바퀴가 돌 아가듯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화자가 있는 양지쪽을 피해서 돌아서 지나갔다는 말이다. 화자가 지금 있는 ‘양지쪽’은 먼지를 담고 있는 바람도 비켜가는 안온한 평화로운 장소인 것이다. ‘아롱진 사월 태양의 손길이 / 벽을 등진 설운 가슴마다 올올이 만진다.’는 계절이 봄이고 사월이며, ‘아롱진’은 아지랑이를 일으킬 정도의 따뜻한 햇볕을 말하는 것 같다. 양지쪽에서 따뜻한 햇볕이 벽을 등지고 햇볕을 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서러움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달래준다는 말이다. 의인화된 표현이다. 따뜻한 햇볕을 쬐면 몸이 따뜻해져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를 말하면서 한편으로 ‘태양’으로 상징되는 희망이 양지쪽에 있는 ‘설운 가슴마다’ 생겼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지도째기 놀음에 뉘 땅인 줄 모르는 애들이 / 한뼘 손가락이 짧음을 한(恨)함이여 // 아서라! 가뜩이나 엷은 평화가 / 깨어질까 근심스럽다.’는 양지쪽에서 화자처럼 햇볕을 쬐는 사람들 말고 아이들은 지도째기 놀음을 하며 땅따먹기를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본 화자는 아이들이 이 땅이 누구의 땅인 줄도 모르고 손가락이 길면 더 많은 땅을 차지할 수 있는데 한 뼘을 재는 손가락이 짧다고 한탄하는 모습을 보고 이 땅이 누구의 땅인가를 알려주려다가 지금은 남의 땅이 된 우리 땅의 사연을 말하다가 잘못되면 겨우 봄날 햇볕을 벽을 등지며 쬘 수 있는 가뜩이나 엷은 평화가 깨어질까 걱정이 되어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도째기 놀음’은 정확하게 어떤 놀이인지 알 수 없으나 아이들이 손을 이용해서 하는 땅따먹기 놀이로 보인다. ‘뉘 땅인 줄 모르는 애들이’는 아이들은 이 땅이 어떤 상태라는 것을 모르고 땅따먹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 ‘지도째기 놀음’을 보면서 이 땅이 우리 땅이었으나 일제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그러나 ‘아서라!’는 이 땅이 누구의 땅인가를 알려주고 싶은 욕구를 자제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가뜩이나 엷은 평화가 / 깨어질까 근심스럽다.’이다. ‘가뜩이나 엷은 평화’는 ‘양지쪽’에 모여 벽을 등지고 사월의 ‘아롱진’ 햇볕을 쬐며 ‘설운 가슴’을 어루만지는 평화인 것이다. 이 땅을 빼앗아 가진 일제가 이 사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알게 되면 이 작은 평화마저 빼앗기고 일제의 탄압을 받으며 괴로운 삶을 살아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가뜩이나 엷은 평화’를 잃지 않기 위하여 이 땅이 ‘뉘 땅인 줄 모르는 애들’에게 아무 말을 못하는 것이다. 누가 주인이었는지 어떻게 빼앗겼는지 알려주지 못하는 것이다./전한성   ==================    이 시는 이상화 씨의 와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쉬울 거야.            아마 윤동주 씨는 따뜻한 봄볕을 만끽하며 잠시나마 얼었던 마음을 녹이고 있는 것 같애. 시간적 배경이 낮이라는 점이 드문 일이지.    1연에서는 토속적인 것들과 이국적인 것들이 섞여서 나타나고 있어. 그만큼 윤동주 씨가 살고 있는 그 시대의 정체성이 불분명해. 그건 윤동주 씨 자신도 마찬가지고.    2연에서 따뜻한 햇살이 그의 서러움을 조금씩 녹여주고 있는데,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가 봐.  이렇게 햇살에 의해 현실에서 공상으로 이동하던 윤동주 씨의 시선은 3연에서 아이들을 발견하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 와.    이 아이들은 놀이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 윤동주 씨의 모습과 비슷해. 즉 그들은 윤동주 씨의 과거야. 그렇다면 이 시에서 그는 에 비해 정신적으로 성숙했다고 볼 수 있겠지.    이 아이들은 일종의 '땅 따먹기' 놀이를 하고 있나 봐. 놀이가 끝났을 때 가장 많은 땅을 차지한 아이가 이기는 거지. 아이들은 손바닥이 찢어지도록 벌려서 자기 땅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다투는데, 이걸 바라보는 윤동주 씨는 아이들의 다툼과 상관없이 이미 조선 땅 전부가 일본의 식민지라는 사실을 떠올려. 그래서 슬퍼져.    이렇게 이 시에서 윤동주 씨는 이제 어느 정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어.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르쳐 주고 싶었나 봐. 그런데 그 안의 또 다른 목소리가 말려. 그러지 말라고. 마치 지금 자신이 짧은 햇살에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있듯이 잠시나마 저 아이들이 평화를 즐기도록 놔 두라고. 왜냐하면 저 아이들도 머지않아 누구의 땅인지 알게 될테니까.    '가뜩이나 엷은 평화'는 식민지 조선에서 평화란 것이 얼마나 얻기 힘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지. 그래서 마지막에는 생각을 고쳐서 다시 한 발 물러서고 있어. 그럼으로써 아이들도 윤동주 씨도 다시 처음의 평화로 돌아가게 되지.      이 시에서 윤동주 씨는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그런 점에서 한결 어른스러워졌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    
1    윤동주와 동시인 강소천 댓글:  조회:3027  추천:0  2018-07-15
강소천 용률(龍律)姜小泉     시대 현대 출생 1915년 사망 1963년 유형 인물 직업 아동문학가 대표작 호박꽃초롱, 조그만 사진첩, , 꿈을 찍는 사진관, 꽃들의 합창, 봄이 너를 부른다 성별 남 분야 문학/현대문학 요약 1915∼1963. 아동문학가. 목차 접기 생애 활동사항 강소천 / 강용률 1915~1963. 아동문학가. 생애 본명은 용률(龍律). 함경남도 고원(高原) 출신. 1930년 고원보통학교, 1937년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5년 고원중학교, 1946년 청진여자고급중학교, 1948년 청진제일고급중학교 등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1950년 월남하였다. 1951년 문교부 편수관을 거쳐 1959∼1963년 한국보육대학·이화여자대학교·연세대학교 등의 강사로서 아동문학을 강의했다. 활동사항 1952년 어린이 잡지인 『새벗』과 『어린이다이제스트』의 주간, 1953∼1955년 한국문학가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 1960년 아동문학연구회 회장, 1962년 한국문인협회 이사, 『아동문학』의 편집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31년『아이생활』·『신소년』에 동요 「버드나무 열매」 등을 발표하였고, 같은 해 동요 「민들레와 울아기」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1931년에 「길가에 얼음판」·「얼굴 모르는 동무에게」·「호박꽃과 반딧불」·「봄비」, 1933년에 「닭」 등 우수한 동요·동시를 다수 발표했다. 1937년 이후에는 동화 및 소년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동아일보』에 「돌멩이」와 「토끼 삼형제」, 『매일신보』에 「전등불이야기」, 『조선일보』에 「마늘먹기」, 『소년』에 「딱다구리」 등의 단편과 『아이생활』에 「희성이의 두 아들」 등 장편을 발표하였다. 그는 윤석중(尹石重)이 시도한 시적 동요를 계승하여 동시의 출현에 결정적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의 동요·동시는 낭만적 기조 위에 자연에 대한 예리한 관찰로 이미지 형성에 주력하였다. 그의 동시집 『호박꽃초롱』(1941)에 나타난 경향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글이 아닌 의도적인 창작에 노력한 흔적이 뚜렷하다. 「닭」·「달밤」·「조그만 하늘」 등이 이에 속한다. 그는 초기의 낭만적이고 예술적 향기가 짙은 율문 시대를 거친 다음 현실에 대한 긍정적 태도 위에 강한 교훈성을 부여한 후기의 산문시대를 맞이한다. 이러한 경향의 대표작이 「꿈을 찍는 사진관」(1954)인데, 이 작품은 교화성 문제로 많은 논란을 겪기는 하였으나, 많은 아동독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열렬한 아동애호가로, 마해송(馬海松) 등과 함께 「어린이헌장」을 기초, 반포하는 데도 힘썼다. 또한 아동들의 독서와 글짓기 지도에 열성을 기울여 아동문예 육성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63년 아동소설 「어머니의 초상화」로 제2회 5월문예상 본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그가 49세를 일기로 타계한 뒤, 그의 공로를 기념하기 위하여 1965년 배영사(培英社)에서 ‘소천아동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주요저서로는 동요동시집 『호박꽃초롱』과 동화집 『조그만 사진첩』·『진달래와 철쭉』·『꽃신』·『꿈을 찍는 사진관』·『종소리』·『무지개』·『인형의 꿈』·『꾸러기와 몽당연필』·『대답 없는 메아리』, 그리고 소년소설집에 『해바라기 피는 마을』·『꽃들의 합창』·『봄이 너를 부른다』 등이 있다. 전집으로는 『강소천아동문학전집』(전6권)·『강소천아동문학독본』 등이 있다. ===================     출생 함남 고원, 1915. 3. 16 사망 1963. 5. 6, 서울 국적 한국 요약 강소천은 어린이의 바탕으로 한 많은 아동 문학들을 써냈으며, 시적 동요를 계승하여 동시의 출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요 〈민들레와 울아기〉로 등단했다.   어린이의 밝고 건강한 정서를 바탕으로 시적 언어로 동화를 썼다. 본명은 용률(龍律). 고원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37년 함흥 영생고보를 마쳤으며 고원중학교·청진여자고급중학교·청진제일고급중학교 등에서 교사로 있었다. 6·25전쟁 때 혼자 월남하여 1951년 문교부 편수관으로 있었고 1952년 〈새벗〉·〈어린이 다이제스트〉의 주간으로 있었으며 한국문학가협회 아동문학분과 위원장, 아동문학연구회장, 〈아동문학〉 편집위원을 지냈다. 1930년 〈아이생활〉·〈신소년〉에 동요 〈버드나무 열매〉 등을 발표하고,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민들레와 울아기〉가 뽑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닭〉·〈보슬비의 속삭임〉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 글들을 묶어 동시집 〈호박꽃초롱〉(1941)을 펴냈는데 1939년 무렵부터 동시보다 동화를 더 열심히 써서, 해방 전까지 〈돌멩이〉·〈토끼 삼형제〉 등을 발표했다. 마해송 등과 함께 '어린이 헌장'을 기초하여 널리 알렸으며 어린이 독서와 글짓기를 가르쳐 문학교육에도 이바지했다. 1963년 〈어머니의 초상화〉로 제2회 5월문예상을 받았다. 그의 동시는 현실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밝고 건강한 생활을 담아 표현했으며, 동화는 시적인 문장과 감각적인 표현과 운율로 사회악과는 무관한 동심을 그렸다. 그러나 그의 동화는 사회현실의 좋은 면만 돋보이게 하여 도덕교과서 같은 느낌을 주고, 소년소설은 어른들이 옛 일을 회고하는 것에 그쳐 아동문학 발전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동화집은 〈꿈을 찍는 사진관〉(1954)·〈무지개〉(1957)·〈어머니의 초상화〉(1960) 등, 장편에는 〈달 돋는 나라〉(1955)·〈꽃들의 합창〉(1957) 등이 있다. 죽은 뒤 〈강소천문학전집〉 전6권을 배영사에서 펴냈으며 '소천문학상'이 제정되었다.   강소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검색하러 가기 강소천 姜小泉 본명 강용률  姜龍律 출생 1915년 9월 16일  일제 강점기 함경남도 고원 사망 1963년 5월 6일 (47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필명 호(號)는 소천(小泉)  아명(兒名)은 강용진(姜龍津) 직업 아동문학가  시인  소설가  대학 교수 국적  대한민국 소속 前 한국아동문학연구회 회장  前 연세대학교 강사  前 서라벌예술초급대학 전임교수 학력 함경남도 고원보통학교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 활동기간 1930년 ~ 1963년 장르 아동문학, 시문학, 소설 대표작 《꿈을 찍는 사진관》 《바둑이와 편지》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 《시집 속의 소녀》 종교 유교(성리학) → 개신교(예장통합)[1] 강소천(姜小泉, 1915년 9월 16일 ∼ 1963년 5월 6일)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 시인, 소설가이다.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목차  [숨기기]  1생애 2인간 관계 3각주 4 5 6 생애[편집] 본명은 강용률(姜龍律)이고, 아명(兒名)은 강용진(姜龍津)이다. 소천(小泉)은 아호이며 함경남도 고원(高原) 출생이다.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청진여자고급중학·청진제일고급중학 등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월남하였다. 1930년 《아이생활》, 《신소년》 등에 동요 〈버드나무 열매〉 등을 발표하고, 《조선일보》 현상문예에 동요 〈민들레와 울아기〉가 당선되었으며, 그 뒤 〈닭〉을 비롯한 동요·동시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였다. 1939년을 전후하여 동화와 아동소설도 쓰기 시작하여 《동아일보》에 〈돌멩이〉(1940), 〈토끼 삼형제〉, 〈매일신보》에 〈전등불 이야기〉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월남 후 피난지 경상남도 부산에서 독서 지도와 글짓기지도 등 아동문학의 보급을 위하여 힘쓰는 한편, 《새벗》·《어린이 다이제스트》 주간(1952년), 《아동문학》 편집위원(1962년), 한국보육대학, 이화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강사(1959년 ∼ 1963년), 한국아동문학연구회 회장(1960), 한국문인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63년 문예상을 수상한 후 간경화로 사망하였다. 사후 1965년에 '소천문학상'이 제정되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아름답고 무한한 동심의 세계와 착하고 고운 소년 소녀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대표작으로 〈꿈을 찍는 사진관〉(《소년세계》 1954.3)[2], 《호박꽃 초롱》(1941, 박문서관), 《꽃신》[3] 등이 있다. 금성출판사가 펴낸 창작동화전집에 실렸던 강소천 선생의 글중에는 사이가 나쁘던 두 나라가 삶으면 꿀이 되는 꿀꽃, 꽃잎이 무지개무늬인 무지개꽃 같은 신기한 꽃씨를 주고받으면서 갈등을 풀어간 이야기도 있다. 평화라는 기독교 사상을 담아낸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인간 관계[편집] 1950년대 중반부터 사망할 때까지 소설가 황순원(黃順元)· 시인 박목월(朴木月) 등과 문우(文友) 관계를 맺었다. 각주[편집] 이동↑  강소천 선생 가시다, 동아일보 이동↑ 사람들의 아름다운 기억을 사진으로 찍는 사진관 이야기. 이동↑ 구두를 만드는 노동자가 아기를 위해 예쁜 꽃신을 짓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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