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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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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윤동주 수업 늘이자"... 댓글:  조회:2861  추천:0  2018-07-17
“윤동주 수업 늘리자”      팔 걷은 日교사 장원재 특파원2018-05-08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도쿄 기치조여고 하기와라 부교장  “고인 삶 통해 日 어두운 면 교육”… 2년전 교내 심화수업 기획 수업경험 소논문 써서 연구지 게재 “윤동주의 시와 생애를 통해 일본 역사의 어두운 부분과 차별은 좋지 않다는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2일(5월), 일본 도쿄(東京) 기치조(吉祥)여고 접견실에서 만난 하기와라 시게루(萩原茂·62·사진) 부교장은 “식민지 시대에 살면서 순수하고 청아한 언어로 시를 썼던 한 청년의 죽음이 (일본) 고교생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학교는 2015년부터 윤동주(1917∼1945)의 작품이 실린 현대문학 교과서를 채택하고 매년 고교 2학년에게 윤동주의 시와 이를 소개한 시인 이바라키 노리코(茨木のり子)의 수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가르치고 있다.  평소 이바라키 노리코를 좋아하던 하기와라 부교장은 윤동주의 시를 읽고 “한 젊은이를 이토록 몰아붙인 일본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제대로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2년 전 직접 심화수업을 기획했다. 시대 배경과 시인의 생애를 담은 자료를 배포한 후 학생들에게 “내일부터 일본어를 쓰지 못하고 일본어 이름도 바꿔야 한다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다섯 번의 수업이 끝난 후엔 교과서에 소개된 윤동주의 작품 ‘서시’ ‘쉽게 쓰여진 시’ ‘아우의 인상화’ 중 하나를 골라 감상문을 쓰게 했고 이를 묶어 감상문집을 제작해 함께 읽었다.   문집을 보면 한 학생은 “서시에서 아름다움과 청량함, 강한 의지를 느끼는 동시에 일본인으로서 차마 견딜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고 썼고, 다른 학생은 “분노와 슬픔의 대상이 예전의 우리나라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고 적었다. 수업이 끝난 후 윤동주 시비(詩碑)를 보기 위해 시인이 유학했던 교토(京都) 도시샤((同志社)대까지 다녀온 학생도 있었다.    하기와라 부교장은 수업 경험을 소논문으로 써서 학교 연구지에 실었다. 또 지난해와 올해 소논문 200부씩을 자비로 인쇄해 다른 학교의 교사 등에게 나눠주며 ‘윤동주 수업’ 확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제 학술대회에서도 경험을 발표했고 이달 말에는 윤동주가 유학했던 릿쿄(立敎)대에서 특강이 예정돼 있다.  정년을 3년 남긴 하기와라 부교장은 “몇 년 전 한국어를 배우다 중단했는데 은퇴하면 역시 한국에 관심이 많은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단기유학을 가고 싶다”며 “윤동주에 대해서도 힘이 닿는 데까지 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2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아우의 인상화 댓글:  조회:3971  추천:0  2018-07-17
  윤동주 아우의 인상화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이 시는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일제강점기를 인식하여 생긴 슬픔을 아우의 인상을 통하여 표현하였다.   이 시는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이 지닌 의미를 바탕으로 해석을 해야 의미를 알 수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밤이다. 싸늘한 달이 뜬 밤이다. 아우와 달빛을 받으며 길을 가고 있다. 아우의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이 슬픈 그림으로 보인다. 발걸음을 멈추고 살그머니 아우의 앳된 손을 잡으며 물어본다.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하니까 아우는 ‘사람이 되지’ 라고 대답한다. 아우의 대답은 현실을 모르는 설은 대답이다. 나는 슬며시 잡았던 아우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있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고 하는 아우의 대답을 듣고 화자는 슬픔을 느낀다.     이 시를 구절별로 살피면 다음과 같다.   제목인 ‘아우의 인상화’에서 ‘인상’을 ‘인상(印象)’으로 보면 ‘인상주의적인 화풍의 그림’이되고 인상(人相)으로 보면 아우의 얼굴 생김새를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러한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화자가 아우의 얼굴을 거듭 보는 것을 보면 인상(人相)의 의미일 가능성이 높다.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는 화자가 아우의 얼굴을 보고 느낀 느낌을 말하였다.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면 ‘슬픈’ 것이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시의 의미를 알 수 없다. 이 구절을 이해하려면 시에서 시간적 배경이 갖는 의미의 중요함을 알아야한다. 이 구절에서 ‘싸늘한 달’을 보면 시간적 배경이 밤이고 가을이거나 겨울인 것으로 추측된다. 시에서 ‘밤’은 절망적이거나 암울한 상황을 상징합니다. ‘별’이나 ‘달’은 이러한 상황에서 갖는 ‘꿈, 이상, 희망’을 의미하는데 문제는 ‘싸늘한’입니다. 부정적인 수식이 붙음으로서 희망이 점점 사라지거나 거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공간적 배경은 ‘길’이다. 화자와 아우는 함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길’은 삶의 여정을 관습적으로 상징하다. 그러므로 화자와 아우는 암울하고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삶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슬픈’이란 수식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에서 ‘붉은 이마’는 화자와 아우가 길을 가는 중이었으므로 몸에 열기가 올라서 불게 된 것일 수도 있고 ‘싸늘한’에서 알 수 있듯이 기온이 싸늘해서 붉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었다는 것으로 볼 때 ‘서리어’는 ‘어떤 기운이 스미거나 가득 차다’이므로 싸늘한 기온으로 인해 붉게 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붉은 이마’보다는 ‘붉은 얼굴’이 되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붉은 이마’라 한 것은 ‘이마’가 아우의 생각 또는 신념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싸늘한 달이 서리’었다는 것은 아우의 신념이 외부에서 가해지는 시련 중에 있고 ‘붉은 이마’는 이러한 시련에 저항하는 상황임을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앳된 아우가 형인 화자와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외부의 시련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고 그 결과를 생각할 때 화자는 아우가 앞으로도 힘들게 계속 살 것을 생각하며 형으로서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라고 한 것이다. ‘그림’은 아름답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므로 아우의 얼굴을 ‘그림’으로 비유한 것은 아우의 얼굴이 형이 보기에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이기에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   ‘발걸음을 멈추어 /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에서 화자는 길을 가다가 ‘발걸음을 멈추어 /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는 것은 아우가 현실 상황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형과 함께 길을 걷는 모습을 보며 발을 멈추고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는 것은 형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에서 아우에게 애정을 표하는 것이다. 그리고 화자는 아우가 자라서 무엇이 되려고 하는지 묻는다. 그런데 아우는 ‘사람이 되지’라 한다. 일반적으로는 ‘어른이 되지’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아우는 ‘사람이 되지’라고 한다. 형의 생각보다 성숙한 대답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 되지’에서 ‘사람’은 생물학적 종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의 ‘사람’이란 사람다운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면 주위 환경에 상관없이 사람으로서 해야할 일을 해야 한다. ‘붉은 이마’에 가지고 있는 아우의 신념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다운 사람은 시세의 흐름에 영합하지 않는다. 나라를 빼앗겼으면 나라를 되찾아야하고 절개를 지키며 공적인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한다. 그러려면 수많은 소인들로부터, 침략자로에게 고난을 당해야한다. 암울한 상황에서 사람노릇을 하려면 수많은 시련과 고통과 고민이 수반된다. 그런데 아우는 ‘사람이 되지’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이 일제강점의 현실에서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화자는 아우의 대답이 현실을 모르는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라고 생각한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는 아우의 대답을 들은 후에 다시 아우의 인상을 보는 것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는 아우에 대한 실망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화자가 아우의 대답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하는 행동이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는 다시 본 아우의 인상에서 1연에서 본 ‘서리어’ 있는 ‘싸늘한 달이’ ‘젖어’로 심화되어 있음을 본다. ‘서리어’는 아직 깊이 침투한 상태가 아니다. 그러나 ‘젖어’는 깊이 침투한 상태이다. 아우가 자신의 신념인 ‘사람이 되지’를 지키며 겪는 시련이 더 심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아우의 모습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모습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제강점기에서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아우는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제에 저항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그러므로 형의 입장에서 볼 때에 아우에 대해 안쓰러운 슬픈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 아우의 인상화(印象畵)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애띤 손을 잡고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걸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 감상의 길잡이 1  이 시는 연희 전문학교에 입학하던 1938년에 쓴 작품으로 어느 날 밤, 형인 화자가 아우와 나누었던 대화를 소재로 하여 삶의 우수(憂愁)를 노래하고 있다. 언뜻 보면 뛰어난 문학적 기교도 없고 인생에 대한 깊은 철학도 담겨 있지 않은 평범한 작품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이 시는 윤동주가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가늠케 해 주는 열쇠 구실과 함께, 일제 치하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 앞에서 어떤 시를 쓰게 될지 알게 해 주는 나침판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2․3․4연에서 형제가 주고받는 몇 마디 대화와 동작뿐이며, 나머지 1․5연은 아우의 얼굴에서 느낀 화자의 슬픔을 변주하여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즉,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라는 화자의 질문에 아우는 ‘사람이 되지’라고 짤막하게 대답한다. 이러한 아우의 말에 대해 화자는 ‘진정코 설은 대답’이라고 여기며, 아우의 순진성을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그에게서 슬픔을 느낀다. 이것이 이 작품의 전부이다. 그러므로 이 시를 온전하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형제가 나누는 대화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화자가 아우에게서 ‘슬픈 그림’ 같은 모습을 발견했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십일 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삶을 살아온 화자이지만, 그가 삶에 대해 갖는 태도는 다분히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자식으로, 그것도 한 많은 만주 유이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민족의 아픔을 맛보면서 남다른 민족 의식과 각별한 신앙심을 키우며 성장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바로 이런 점에서 자신의 이상과 암울한 현실 사이에서 빚어지는 온갖 갈등을 겪으며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이 배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신의 행복을 위해 양심을 버리는 부끄러운 삶을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직한 인간으로서 양심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몸소 체험으로 터득하게 된 화자로서는, ‘자라서 무엇이 되려니’라는 물음에 ‘사람이 되지’라고 쉽게 말해 버리는 어린 아우의 대답이 여간 불만스러운 게 아니었을 것이다.  사랑스런 아우가 어른이 되기까지 겪어야 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알고 있는 화자는 그 순진 무구한 아우의 대답을 듣고, 다시금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그 때, 아우의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어리어’ 있음을 발견한 화자는 그의 얼굴에서 ‘슬픈 그림’을 떠올린다. 다시 말해, 달빛에 젖은 아우의 얼굴이 화자의 눈에는 마치 ‘슬픈 그림’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서 실제로 슬픈 것은 아우가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이다. 아무런 걱정거리 없이 행복하게 생활하는 아우에게서 잃어버린 자신의 유년을 찾곤 하던 화자로서는 아우가 자라면서 상실할 수밖에 없는 그 행복과 순진 무구함이 더할 수 없이 슬프게 느껴지게 된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이 시는 암울한 식민지 치하에서 온갖 고통을 극복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시인이 어린 아우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순진 무구함과 행복스런 모습을 발견하지만, 자신이 소망하는 성실한 인간으로 성장하며 겪어야 할 아우의 고통을 생각하며 괴로움에 빠지는 진지함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이 다소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전개되는 시인의 비극적 자기 인식이야말로 투철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며, 올곧은 삶을 살고자 했던 참 신앙인으로서의 철학적 산물임에 틀림없다. 이 같은 삶의 자세가 바로 그로 하여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완벽한 삶을 살게 해 준 버팀목이 되었음은 물론, 그러한 삶이 표출된 훌륭한 시를 다수 창작해 내게 함으로써 우리 시문학사에 ‘위대한 시인’이라는 수식어로 그의 이름을 빛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 핵심 정리 [이 작품은] 화자가 아우의 얼굴을 보면서 느낀 인상과 생각을 노래한 작품으로, 아우의 얼굴을 슬픈 그림에 비유하여 일제 강점기 청년들의 슬픈 자화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애상적, 상징적 *제재 : 어린 아우 *주제 : 암울한 현실에서 살아가야 하는 아우에 대한 안타까움 *특징 ① 수미 상관을 통한 주제 의식 강조 ② 화자(형)와 시적 대상(아우)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구성됨. *출전 : ‘조선일보’(1939) 시어 풀이 *앳된 : 애티가 있어 어려 보이는. *늬 : ‘너’의 방언. *설은 : 빈틈이 있고 서투른. 작품의 구성 [1연] 암울한 현실에 놓인 아우의 모습 [2연] 아우와의 대화 [3연] 아우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 [4연] 암울한 현실에 놓인 아우의 모습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아우의 얼굴에 대한 묘사와 아우와의 대화를 통해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야 하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아우의 얼굴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구체적 설명 없이 제시하고 있다. ‘싸늘한’ 달과 ‘슬픈’ 그림이라는 표현을 통해 화자가 아우의 얼굴에서 슬픔을 읽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연에는 아우와의 대화가 삽입되어 있다. 자라서 사람이 될 거라는 아우의 철없는 대답이 화자에게 진정 철없는 것으로 들린다. 사람이 되는 것, 사람답게 양심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3연에서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아우의 미래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 때문이다. 4연에서 화자는 1연의 진술을 반복, 변주하고 있다. 앞부분에서 아우의 얼굴에서 화자가 슬픔을 느끼는 이유가 제시되었기 때문에 4연은 1연과는 달리 구체적 맥락 속에서 이해된다.   작품 연구실 아우의 얼굴을 슬픈 그림이라고 한 이유는?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을 투영하여 아우가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점과 앞으로 살아갈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우의 얼굴을 슬픈 그림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시어의 의미 *슬픈 그림 : 아우의 얼굴을 보며 느끼는 화자의 슬픔 *앳된 손 : 아우가 아직 어리다는 것을 나타냄. *싸늘한 달 :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현실을 감각적으로 표현함. 시상 전개의 특징과 효과   표현상의 특징 이 시는 화자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절제하고, 감각적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달’의 이미지 ‘싸늘한 달’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에서는 달을 ‘밝음’과 ‘희망’이 아니라 ‘싸늘함’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연결 짓고 있다. 달을 이러한 이미지로 그리고 있는 이유는 시적 대상인 ‘아우’와의 관련성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달은 아우의 얼굴에 비친 상태로 화자에게 인식된다. 즉, 달은 암울한 현실에 놓인 아우의 얼굴을 묘사하기 위한 배경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띠게 된 것이다. 형과 아우의 대화   화자(형)는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현실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우의 대답을 듣고 ‘진정코 설은 대답’이라고 하면서 아우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슬픔을 느끼고 있다. 작가 소개 - 윤동주(尹東柱, 1917 ~ 1945) 시인. 북간도 출생.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이듬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1941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 시집(自選詩集)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사후에 햇빛을 보게 되어, 1948년에 유고 30편이 실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었다. 주로 1938~1941년에 쓰인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작품으로 ‘자화상’(1939), ‘또 다른 고향’(1948) 등이 있다. 함께 읽어보기 ‘참회록’, 윤동주/암울한 시대 현실 인식 ‘참회록’은 구리거울을 통해 어두운 시대에 무기력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성찰한 작품이다. ‘아우의 인상화’와 ‘참회록’은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 현실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는데 각 시의 ‘아우의 얼굴’과 ‘구리거울’은 시대적 슬픔을 감지하는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아우의 인상화’가 암울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아우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데 그친 반면, ‘참회록’은 자기 성찰을 통해 시련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화자의 의지를 나타낸다.  
1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새로운 길 댓글:  조회:8491  추천:0  2018-07-17
    새로운 길 /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목차 핵심 정리 이해와 감상 작품 연구실 ┗ 시의 구성 한눈에 보기 ┗ 말하는 이의 상황과 태도 ┗ 시에 쓰인 상징과 그 의미 ┗ 시의 표현상의 특징 작가 소개 - 윤동주(尹東柱, 1917 ~ 1945)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상징적, 의지적 *주제 : 언제나 새로운 길(인생)을 가고자 하는 의지 *특징 ① 인생을 상징하는 '길'을 중심으로 시상이 전개됨. ② 3연을 중심으로 앞뒤 부분이 의미상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음. 이해와 감상 이 시에서 '길'은 인생을 상징한다. 말하는 이는 같은 길을 가고 있지만 언제나 가야 할 길을 '새로운 길'이라고 말하며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미래 지향적인 의지를 보여 준다. 말하는 이는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존재를 통해 삶에 대한 희망을 느끼며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평화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작품 연구실 시의 구성 한눈에 보기   말하는 이의 상황과 태도   시에 쓰인 상징과 그 의미   시의 표현상의 특징 ① 상징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말하는 이의 삶에 대한 자세를 표현함. ② 3연을 중심으로 1연과 5연, 2연과 4연이 의미상 대칭을 이룸. ③ 수미 상관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음. ④ 같은 위치에서 일정한 음을 규칙적으로 반복하여 운율을 형성함. ⑤ 대조적인 의미의 시어를 통해 의미를 강조함. [내 , 고개 ↔ 숲, 마을] 작가 소개 - 윤동주(尹東柱, 1917 ~ 1945) 북간도에서 태어나 연희 전문학교를 거쳐 일본에 유학한 후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규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어두운 현실과 역사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자아를 성찰하는 내용의 시를 많이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는 '서시', '쉽게 씌어진 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이 있다. ==================/// 윤동주님이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해 5월에 쓴 시로써 연희전문학교 교지에 기재되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이 녹아 있는 새로운 길 단지, 전원 풍경에의 몰입만이 아닌, 보다 넓고 활달한 의식 세계의 전개를 그려본 시로써 이해할수 있어요. =====================/// 새로운 길 /해석 이시의 화자는 항상 어디론가 향하여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새로운 길이 화자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아주 친숙하고 익숙한 길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시는 새로움(낯설음)과 익숙함(낯익음)이 함께 느껴지는 길을 쉽없이,끊임없이 걸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민예원)     ===================///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새로운 길’ 전문   지난 2017년 10월 28일, 일본의 교토 우지시(宇治市) 시츠카와(志津川)의 우지강(宇治川) 강변에서는 감동적인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바로 윤동주(1917-1945) 시인의 시비 제막식에서 ‘새로운 길’이 낭송되고 있었던 것이다. 시는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것으로 1938년 작품이다. 가을비는 시비에 새겨진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詩人 尹東柱 記憶と和解の碑)‘ 라는 글자를 또렷하게 읽고 있었다.   감개무량할 뿐이다. 일본 땅에서 그의 시가 허공에서 빗줄기를 헤치며 울려 퍼졌을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특히나 시비가 세워진 우지천 근처는 그가 생전에 ‘아리랑’을 불렀던 곳이라고 하니, 그때의 노래와 그의 작품 ‘새로운 길’이 서로 부둥켜안는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은 나만의 감흥만은 아닐 것이다.   교토는 윤동주 시인이 유학생활을 했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사진을 통해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날은 시인의 영혼이 살아 움직였으리라. 하염없이 내린 비는 그가 흘린 감격의 눈물이었을까. 슬픔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양자의 의미가 혼재된 것이었을까. 시비에 새겨진 시가 그의 마지막 숨결처럼 가슴으로 흘러들어와 파문을 일으킨다. 그날의 이 감동적인 낭송과 기념비 제막은 모든 이에게 뜻깊은 울림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윤동주 시인의 시비 제막식과 관련한 여러 기사를 접하면서 특히, 나는 다음의 점에서 한국의 독자뿐만 아니라 그의 시를 좋아하는 모든 세계인들과 함께 하고 싶다. 무엇보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순수하게 그의 시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의 뜻과 정성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1945년 2월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한지 72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단지 시비 건립에 소요된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제작에 참여한 그들의 숭고한 뜻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시비는 선뜻 그것을 세울 공간을 허락하지 않은 지자체를 설득하여, 무려 12년이란 시간의 공을 들인 노력의 땀방울이고 인고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이 시비는 단순히 윤동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그 이상의 값어치에 더하여, 시비에 새겨진 문구대로 ‘기억과 화해’의 정신이 담겨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그리하여 기존에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던 교토의 대학 교내가 아닌 곳에 세워졌다는 점에서도 그의 시와 그의 정신이 일본인들에게 더 깊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시비가 품고 있는 정신이 세계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민족과 국경을 넘어 중요한 메시지로 확산될 모티브로 작용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이 시비에 흐르는 고귀한 뜻이 평행선처럼 느껴지는 작금의 한일관계에 밑거름으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시 ‘새로운 길’ 의 지향점도 평화로운 세상과 아름다운 사람을 꿈꾸는 바로 그런 길과 이어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한국인보다는 시를 즐겨 읽지 않는다. 그런 일본인들이 우리의 시인 윤동주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의 시가 갖는 높은 가독성과 그의 시를 관통하는 맑은 영혼 때문일 것이다. 이미 일본의 어느 국어 교과서에는 그의 작품이 세 편이나 수록되어 있는 등, 일본에서는 윤동주 읽기가 계속될 것이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시 ‘자화상’일부) 라고 노래했던 윤동주 시인. 그가 만일 교토에서 날아든 자신의 시비 제막식 소식을 들었다면, 과연 오랫동안 품어왔던 자신의 고독이나 슬픔이 조금이나마 풀렸을까 하는 궁금증이 글을 쓰는 내내 깊어가는 계절만큼이나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교수    ====================///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새로운 길 작품 정리 -갈래: 자유시, 서정시 -성격: 상징적, 의지적 -주제: 언제나 새로운 길(인생)을 가고자 하는 의지 -특징: - 인생을 상징하는 ‘길’을 중심으로 시상이 전개됨. -3연을 중심으로 앞뒤 부분이 의미상 대칭 구조를 이룸. ☆상징과 의미 -길: 삶, 인생 -내, 고개:시련, 고난, 어려움 -숲, 마을: 희망, 평화 -민들레, 까치, 아가씨, 바람:살아가면서 만나는 다양한 존재,  -삶에 대한 희망을 주는 존재 ☆표현상 특징 - 상징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말하는 이의 삶에 대한 자세를 표현함. - 3연을 중심으로 1연과 5연, 2연과 4연이 의미상 대칭을 이룸. - 대조적인 의미의 시어를 통해 의미를 강조함. - 수미 상관의 구성과 같은 위치에 일정한 음을 규칙적으로    반복하여 운율을 형성함. ☆작품 해석 이 시는 인생을 상징하는 ‘길’이라는 시어를 바탕으로 인생을 대하는 말하는 이의 태도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언제나 가야 할 길을 ‘새로운 길’이라고 말하며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미래 지향적인 의지를 보여 준다.  말하는 이는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존재를 통해 삶에 대한 희망을 느끼며,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이겨 내고 평화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구성 -1연: 어려움을 이겨 내고 평화로운 곳으로 나아감. 공간적 배경 (아름다운 변화가 가득찬 길) -2연:언제나 걸어가는 길을 새롭게 바라봄. 시간적 배경(영원히 변치 않을 새 길) -3연:길에서 만나는 존재들  -4연: 앞으로도 새로운 마음으로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함. -5연:어려움을 이겨 내고 평화로운 곳으로 나아감.     =================///     서울 은평구(구청장 김우영)는 일곱 번째 공공도서관인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을 오는 21일 신사동에 개관한다.     도서관은 신사동 산80-66 대지 1200㎡에 지하1층, 지상2층(연면적 1982여㎡) 규모에 170개 좌석,1만 380여권의 책을 갖췄다. 종합자료실, 어린이자료실, 디지털자료실과 윤동주 시인의 작품 등을 포함한 시문학자료실 등의 공간으로 구성됐다. 위탁 운영은 (사)더불어배움이 맡는다.     신사동 지역은 독서문화시설이 부족해 도서관 건립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요청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곳이다. 주민들은 지난 2015년 8월 1만 2800여명이 참여한 공공도서관 건립 요구 동의서를 구에 전달했다.     구는 이를 받아들여 설계공모를 통해 공원시설과 어우러진 설계안을 당선작으로 선정해 사업을 추진했다. 도서관 이름 ‘내를 건너서 숲으로’는 주민 및 구 직원 대상 공모를 통해 선정했다.      도서관 이름인 ‘내를 건너서 숲으로’는 은평구 주민 및 구 직원대상 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는 시인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학우와 백련산 불광동 연희동을 산책하면서 떠오른 시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윤동주가 지향하는 정신세계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구는 개관 기념 프로그램으로 오는 23일부터 내달 20일까지 4주간 유아․어린이 대상 동화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인 ‘사서가 읽어주는 동화책’ 과 북바인딩 프로그램 ‘나만의 윤동주 시집만들기’, 원작과 영화 비교하기 프로그램 ‘책이 있는 영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임형찬기자 ======================///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는 1938년 4월 9일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다. 이 시 '새로운 길'은 그가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그 해 5월 10일에 쓴 것이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피워(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가정형편과, 의대에 가라는 아버지의 명을 어기고 문과를 지망한 점 등 때문에 윤동주의 연희전문 유학은 어렵게 성사되었다.) 백두산을 넘고 두만강을 건너고, 함경도 평안도를 다 지나 이곳 서울까지 유학을 왔으니, 새봄에 새 상급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22세 젊은 청년 윤동주의 가슴속은 시의 내용처럼 너무나도 화창하고 맑았으리라. 겨우 5년이 지나 27세가 되면 극악한 일제에 의해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비명횡사할 줄이야 부모는 물론 그 본인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그는 노래하였으리.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오늘도...... 내일도......'   간도 용정의 윤동주 생가에 가보았다. 이제야 가보았다. 명동교회 건물은 아직도 건재했지만 그의 집은 가까스로 복원한 상태였다. 명동촌('동쪽에 있는 우리나라를 밝히리라'는 의미에서 당시 이주민들은 마을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최초의 교회였던 명동교회 내부는 명동역사기념관이 되어 그 안에 김약연 목사를 비롯한 '운동'가들의 유적을 기리고 있었다. 조선인 안내원 한 명이 상주하면서 관광객이 오면 해설도 하고 기념품 판매도 하였다. 명동역사기념관에서 윤동주 관련 책 한 권과 열쇠고리를 샀다. 돌아오는 길에 그의 평전을 다 읽었는데 언젠가는 윤동주를 실존모델로 한 장편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간도 지방을 최소한 한 달은 여행하여야 하리라. 가능하다면 일본에도 가보아야겠지. 통일 되기 이전에 쓴다면 북한에는 못 갈 것이고, 통일 이후라면 윤동주가 걷고, 기차를 타고 하면서 간도 용정에서 서울까지 온 길을 답사할 수도 있으리라.   22세의 윤동주가 이미 잘 말해준 것처럼, 살아가는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이다. 열심히 살아가자.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새로운 길’ 전문   지난 2017년 10월 28일, 일본의 교토 우지시(宇治市) 시츠카와(志津川)의 우지강(宇治川) 강변에서는 감동적인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바로 윤동주(1917-1945) 시인의 시비 제막식에서 ‘새로운 길’이 낭송되고 있었던 것이다. 시는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것으로 1938년 작품이다. 가을비는 시비에 새겨진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詩人 尹東柱 記憶と和解の碑)‘ 라는 글자를 또렷하게 읽고 있었다.   감개무량할 뿐이다. 일본 땅에서 그의 시가 허공에서 빗줄기를 헤치며 울려 퍼졌을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특히나 시비가 세워진 우지천 근처는 그가 생전에 ‘아리랑’을 불렀던 곳이라고 하니, 그때의 노래와 그의 작품 ‘새로운 길’이 서로 부둥켜안는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은 나만의 감흥만은 아닐 것이다.   교토는 윤동주 시인이 유학생활을 했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사진을 통해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날은 시인의 영혼이 살아 움직였으리라. 하염없이 내린 비는 그가 흘린 감격의 눈물이었을까. 슬픔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양자의 의미가 혼재된 것이었을까. 시비에 새겨진 시가 그의 마지막 숨결처럼 가슴으로 흘러들어와 파문을 일으킨다. 그날의 이 감동적인 낭송과 기념비 제막은 모든 이에게 뜻깊은 울림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윤동주 시인의 시비 제막식과 관련한 여러 기사를 접하면서 특히, 나는 다음의 점에서 한국의 독자뿐만 아니라 그의 시를 좋아하는 모든 세계인들과 함께 하고 싶다. 무엇보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순수하게 그의 시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의 뜻과 정성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1945년 2월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한지 72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단지 시비 건립에 소요된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제작에 참여한 그들의 숭고한 뜻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시비는 선뜻 그것을 세울 공간을 허락하지 않은 지자체를 설득하여, 무려 12년이란 시간의 공을 들인 노력의 땀방울이고 인고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이 시비는 단순히 윤동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그 이상의 값어치에 더하여, 시비에 새겨진 문구대로 ‘기억과 화해’의 정신이 담겨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그리하여 기존에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던 교토의 대학 교내가 아닌 곳에 세워졌다는 점에서도 그의 시와 그의 정신이 일본인들에게 더 깊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시비가 품고 있는 정신이 세계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민족과 국경을 넘어 중요한 메시지로 확산될 모티브로 작용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이 시비에 흐르는 고귀한 뜻이 평행선처럼 느껴지는 작금의 한일관계에 밑거름으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시 ‘새로운 길’ 의 지향점도 평화로운 세상과 아름다운 사람을 꿈꾸는 바로 그런 길과 이어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한국인보다는 시를 즐겨 읽지 않는다. 그런 일본인들이 우리의 시인 윤동주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의 시가 갖는 높은 가독성과 그의 시를 관통하는 맑은 영혼 때문일 것이다. 이미 일본의 어느 국어 교과서에는 그의 작품이 세 편이나 수록되어 있는 등, 일본에서는 윤동주 읽기가 계속될 것이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시 ‘자화상’일부) 라고 노래했던 윤동주 시인. 그가 만일 교토에서 날아든 자신의 시비 제막식 소식을 들었다면, 과연 오랫동안 품어왔던 자신의 고독이나 슬픔이 조금이나마 풀렸을까 하는 궁금증이 글을 쓰는 내내 깊어가는 계절만큼이나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교수                                               (감상)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이 작품은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고 쓴 시라고 한다. 즉, 이 시에서 '길'은 일차적으로 시인의 등굣길이다.   그런데 내를 건너서 숲으로, 또 고개까지 넘어야 할 정도라면 꽤 먼 거리인데 시에서는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왤까? 윤동주 시인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그에게 연희전문학교가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1/ 명동촌, 시, 연희전문   그가 태어나고 자란 북간도 명동촌은 시인의 증조부 때부터 정착한 계획 이주촌이다. 증조부는 원래 함경북도의 양반이었는데 구한말 극심한 가뭄과 일본의 국권침탈로 희망을 찾아 마을의 다섯 가문이 두만강 너머 간도로 집단 이주했다고 한다. 그들은 조국을 밝힌다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명동촌'이라 짓고 당시의 시대적 과제였던 문명개화, 자주독립을 위해 교육에 정성을 들였다. 교육열은 실로 대단했는데, 신교육을 위해 마을 어른들이 상투를 자르고 기독교로 개종하여 교회와 근대식 학교를 운영할 정도였다. 명동촌은 광복의 등불 역할을 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시를 소명으로 여겼는데, 이때문에 문과 진학을 반대했던 아버지와 심각한 충돌을 겪었다고 한다. 문과에 진학해봤자 할 수 있는 건 신문기자 정도니, 이왕이면 취직이 보장되는 의대나 법대를 희망했던 것이다. (채만식의 을 보면 그당시 문과생의 취업난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문송하다..) 그러나 윤동주 시인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풍문에 따르면 집에서 밥그릇이 날아다닐 정도로 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문과 진학을 말렸던 할아버지조차도 사태가 너무 심각해지니 윤동주 시인의 편을 들었다고..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도 1938년엔 민족말살정책으로 한글을 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고로 시란 모국어로 노래해야 그 감정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 신라 사람들이 향찰로 향가를 기록하고 조선의 양반들이 우리말로 시조를 썼던 것도 한시로는 채울 수 없는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연희전문은 민족의식을 기반으로 서양의 새로운 학문을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학풍이 자리잡고 있었고, 특히 문과는 당대 민족 의식 교육의 산실이었다고 한다. 윤동주 시인에겐 꿈에 그리던 곳이었던 셈인 것이다.   2/ 새로운 길, 새로운 삶   민족의식을 기반으로 서양의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 한글로 시를 마음껏 쓸 수 있는 곳, 연희전문은 윤동주 시인에게 희망 그 자체였을 것이다. 새로운 배움으로 향하는 길,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있고, 까치가 울고, 거리엔 아가씨가 지나가고, 기분 좋은 봄바람이 이는 길, 이만큼 평화롭고 설렘 가득한 길이 또 있을까?   시인에게 연희전문으로 향하는 길은 새로운 삶을 향한 길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며 마음껏 시를 쓰는 삶,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삶 말이다. 4연의 '오늘도... 내일도...'에 있는 말줄임표에서는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한 기대감이 묻어난다. 내를 건너고 숲을 건너 고개를 넘는 같은 코스지만, 그곳을 지나는 마음은 하루하루 다를 것이다. 아마 새로운 배움에 대한 열망, 나날이 자라는 꿈으로 새로워지는 길이겠지..   3/ 꽃길은 만들어 가는 것   이처럼 은 문학청년의 설렘 가득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다. 새출발, 희망, 봄이 떠올라서인지 개인적으로는 대학 새내기 시절이 생각나서 그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그런데 윤동주 시인이 다른 곳에 가서도 이런 시를 지을 수 있었을까? 연희전문이 아니었더라면, 문과가 아니라 의대나 법대에 갔더라면 이런 시를 지을 수 있었을까? 그는 강과 산, 고개를 넘기 전에 아버지를 넘어야 했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야 했다. 소명을 찾고, 지키고, 쟁취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내가 걸어갈 길이 설레기 위해서는 그 길이 내가 원하는 길이어야 한다. 흔히들 꽃길만 걷자고 하는데, 꽃길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야기가 꿈이나 노력 이야기로 끝나서 나도 마음이 무겁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나를 낳은 건 부모님이지만, 나를 만들어 가는 건 내 몫이다. 한번 뿐인 삶이니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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