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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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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눈 감고 간다 댓글:  조회:2762  추천:0  2018-07-26
일러스트 정하 눈 감고 간다 / 윤동주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은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왓작 떠라.           1941.5.31. 어두운 세상인데 눈을 감으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태양과 별을 사랑하는 순수한 아이들이 세상의 악, 어둠에 물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시 마지막에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요. 눈을 감고 가다 시련이 올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그럴 때는 정신을 차리게 눈을 떠야 한다는 민족 저항 정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눈감고 간다                                   윤동주        태양太陽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1941.5.31.              눈 감고 보면 더 선명해진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화자인 ‘바다’는 서구 신문물에 대한 비유로 보편적으로 읽히고 있다. 그러나 시인의 무의식에는 열강에 대한 압박감이나 저항감이 더 크게 자리했을 것이므로, 바다는 격동의 시대에도 자기의식을 잃지 않으려는 지식인의 초자아적 형상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최남 선은 바다의 목소리를 빌려 ‘육상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할 것이라고 외쳤다.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 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담 크고 순진한 소년배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라며 자신을 닮은 소년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결국 스스로 바다임을 포기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라는 육지의 한 구석에서 작은 돌 멩이가 되었다.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채 근대의 언어로 덧칠된 안경을 자신의 맨눈으로 여기기로 한 것 이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에서 졸업을 앞둔 ‘소년배’는 선배가 잊어버린 바다의 음성을 어렴풋하게 기억 해냈다. 소년과 바다 사이를 가로막은 것은 신식 건물과 기관차와 순사들, 세련된 양복과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문명’을 겁내던 사람도, 매혹당한 사람도, 혹은 그것을 편리한 도구로 생각한 사람 도 자신 앞의 풍경들을 일본어로 말하고 일본어로 듣고 일본어로 기억했다. 그러나 소년의 무의식에서 바다의 목소리는 여전히 맑고 경쾌하게 울리고 있었고, 그의 진정한 아버지는 소년이 자신의 사도가 되 어 주기를 바랐다. 윤동주가 그해 11월에 「십자가」 「태초의 아침」 「새벽이 올 때까지」등의 작품 과 함께 자필 자선시집에 수록한 「눈 감고 간다」는 바다를 향한 소년의 ‘담 크고 순진한’ 응답이었다.    바다는 ‘태양’과 ‘별’빛으로 소년을 부른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랑하는 아들 예수를 부르는 하느 님의 음성처럼 바다의 목소리는 소년의 꿈속에서 온화하게 떠오른다. 일제가 가져온 문명은 거짓 태양 이기에, 소년에게는 그 한낮이 밤이나 다름없었다. 탯줄처럼 자신에게 연결된 태양과 별의 목소리를 더 듬어 가며 소년은 자신의 유일한 자산인 씨앗들을 길에 뿌려 놓는다. 그것은 식민지 근대의 풍경을 바 라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으나 아직 태양과 별의 목소리는 듣지 못한 소년들을 위한 것이다. 후배에 게 조용했지만 항상 미소 짓던 선배, 누군가의 앞에 설 때 매번 새것처럼 깨끗하고 반듯한 복장을 했던 윤동주는 자신의 뒤를 따라올 소년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가장 큰 ‘달란트’인 시어(詩語)들을 곱게 깔아 두었다. 그리고 변절한 이들의 문장들이 돌로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바짝 뜨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전체주의는 문명의 가면을 쓰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탯줄을 잘라 놓는다. 충만한 에너지를 지닌 야생 적 사고와 동물적 항상성을 야만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법칙으로 그들을 길들이고 교화하려 한다. 역사 이래 그들은 끊임없이 나타났지만 인간의 마음은 혁명, 신적폭력, 사회역사적 상상력 등 다양한 이름으 로 문명의 폭주를 막아섰다. 2016년 광화문 광장을 수놓았던 작고 촘촘한 불빛들도 아마 이 야생적 사 고의 계보를 이어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년 윤동주가 일제 식민지의 캄캄한 밤길에 깔아 놓은 빛나는 시어들과도 잘 이어져 있을 것이다.       /양진호  한양대학교 박사과정.       ========================/// 이 시에서 아이들은 우리 민족입니다. 우리 민족은 태양의 민족이고 하늘의 자손이지요. 단군신화를 비롯하여 우리의 고대역사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과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은 모두 우리 민족을 나타내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그 태양의 민족 앞에 어두운 밤이 왔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일본제국주의의 강점기를 의미합니다. 민족의 주권이 빼앗겨서 식민지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그런 어둠을 말하는 것이지요. 식민지의 우리나라를 어둠 속에 묻힌 것이라 보고, 그런 어둠을 걸어갈 때는 눈을 감고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희망을 버려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ㅣ. 그래서 씨앗을 뿌리면서 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비록 어둠 속에 있지만 그것을 꿋꿋히 헤쳐나감과 동시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면서 가야합니다. 그것이 우리 민족이 처한 당시의 상황입니다. 그대로 주저앉으면 계속해서 식민지생활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두운 길을 갈지라도 씨앗을 뿌리면서 가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족의 정기를 잃지 말고 그것을 굳건히 지키면서 가면 새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돌부리 같은 일본놈의 탄압이 있으면 눈을 번쩍떠서 그것을 똑바로 보고 처리하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는 돌부리 같은 일제의 탄압을 물리쳐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   사후 남긴 단 한권의 시집   양심ㆍ자유ㆍ저항 등 실존적 고뇌   일제 강점기 후반 야만의 시대   더없이 드높았던 이상을 추구   윤동주는 양심의 수난자   강한 자기희생ㆍ굳은 결의 무장   사유와 실천, 삶과 예술이 일치   시 못지않게 깊은 감동 남긴 삶   닫힌 텍스트가 아닌 열린 세계   ‘밤이 어두워도 씨앗 뿌려라’처럼   망각해선 안될 기억을 소환하고   미래 준비하는 ‘삶의 용기’ 전달 일본 교토 우지강에서 열린 윤동주(앞줄 왼쪽 두 번째) 송별회 사진. 윤동주의 마지막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별 헤는 밤 윤동주, 종두 지석영, 33인 손병희, 만세만세 유관순, 도산 안창호, 어린이날 방정환 (...) 날자꾸나 이상, 황소 그림 중섭. 역사는 흐른다.” 딸아이가 어렸을 때 부르곤 했던 동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마지막 구절이다. 20세기 전반의 결코 잊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오늘 다루려는 이는 맨 앞에 나오는 시인 윤동주다. 지난 100년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광복,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로 이어졌다. 일제 강점기의 역사는 일본 제국주의 지배와 이에 맞선 민족해방 투쟁의 역사다. 이 역사를 배우는 방식의 하나는 그 한가운데를 걸어갔던 인물들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다. 일제의 식민 지배가 더욱 악랄해진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 전반은 시대의 어둠이 가장 깊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던 사람이 바로 윤동주였다(‘쉽게 씌어진 시’). 어떤 이는 윤동주의 시가 뛰어난 게 사실이더라도 우리 100년의 지성사에서 크게 다룰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윤동주가 남긴 것은 그가 죽은 지 3년 후인 1948년에 출간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뿐이었다. 이러한 반문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성은 지식을 넘어선다. 지성에 중요한 것은 정신이다. 정신의 다른 이름은 마음의 태도다. 우리가 율곡과 다산을 지성으로 기리는 까닭은 조선 중쇠기와 쇠퇴기라는 시대에 맞서 개혁의 방법과 마음의 태도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윤동주는 야만의 시대에 맞서 민족적 양심과 실존적 고뇌라는 마음의 등불을 밝혔다. 더없이 드높았던 이상을 추구한 그의 마음이 존재해 있었기에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 전반 우리 지성사는 황량하지 않았다.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   2008년 한국방송공사(KBS)는 한국 현대시 탄생 100주년 기념 특집 프로그램 ‘시인 만세’에서 국민 애송시를 조사한 바 있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는 ‘서시’와 ‘별 헤는 밤’을 쓴 윤동주가 꼽혔다. ‘진달래꽃’과 ‘초혼’의 시인 김소월은 2위를 차지했다. 국문학자 김응교는 전문가보다 시민들이 윤동주를 더 좋아한다고 분석했다. 1941년 윤동주가 자필로 써서 만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표지. 가운데를 접어서 오른쪽 절반이 앞표지, 왼쪽 절반이 뒷표지가 되도록 했다. 앞표지에 '病院(병원)’이라 썼다 지운 흔적이 있다. 원래 시집 제목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또 작가 이름을 童舟(동주)라 쓴 게 눈에 띈다. 정병욱에게 전해진 이 원고 뭉치가 해방 뒤 빛을 보면서 ‘시인 윤동주’는 부활했다.   우리 국민들이 윤동주 시를 특별히 사랑하는 까닭은 뭘까.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교과서의 힘이다. 우리가 시를 처음 접하는 것은 주로 교과서를 통해서다. 김소월, 한용운, 정지용, 이육사와 함께 윤동주는 지난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소개돼 있다. 윤동주의 시는 우리 현대시 정전(正傳)의 반열에 올라 있는 셈이다. 둘째, 작품의 탁월성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필사본을 간직해 윤동주 시를 만날 수 있게 한 연희전문학교 후배 국문학자 정병욱은 말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하던 동주의 시혼은 (...) 조국과 자유를 밤새워 지키는 ‘별’을 노래하였다. (...)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기를 각오한 그는,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날에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를 남기고 ‘진정한 고향’을 찾아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고 했다.” 윤동주 시의 해석은 열려 있다. 민족적 양심과 저항, 실존적 고뇌와 성찰, 자연의 아름다움과 고향에의 그리움은 그가 다뤘던 주제들이다. 예를 들어,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와 / 별 하나에 어머니 (...)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 내 이름자를 써보고, /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라는 구절(‘별 헤는 밤’)을 읽었을 때 느끼는 그리움과 공감의 자리는 우리 한국인이 갖고 있는 정서와 마음의 고향일 것이다. 셋째, 삶의 고결성이다. 윤동주의 삶에 대해 작가 송우혜는 ‘윤동주 평전’을 발표한 바 있다. KBS 박진범ㆍ박병길 PD는 다큐멘터리 ‘불멸의 청년 윤동주’를, 이준익 감독은 영화 ‘동주’를 만들었다. 1917년 북간도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평양으로, 서울로, 그리고 도쿄와 교토로 공부하러 갔다. 1943년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1944년 독립운동 죄목으로 수감됐다. 광복을 앞둔 6개월 전인 1945년 2월 16일, 오랜 벗 송몽규와 함께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안타깝게도 절명했다. 1941년 18편의 시를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을 만들면서 윤동주가 그 앞에다 새로 써서 붙인 시. 원래는 제목이 없지만, 지금은 '서시'라는 작품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원고 끝에 시집을 묶은 뒤 새 시를 써 붙인 '1941년 11월 20일'이란 날짜가 선명하다.   이러한 윤동주의 삶은 그의 시 못지않은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영문학자 김우창이 지적했듯, 윤동주는 ‘양심의 수난자’다. 그가 남긴 시에서 읽을 수 있는 민족적·종교적·실존적 양심은 그의 삶을 이끌어간 힘이자 가치였다. 그의 삶은 시대를 증거했고 그 시대를 넘어서려 했다. 사유와 실천, 삶과 예술이 정확히 일치했던 이가 바로 윤동주였다.   열린 텍스트로서의 윤동주 시   윤동주의 시를 최초로 평가한 이는 시인 정지용이다.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해 본 적도 없이! (...)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초판 서문(1948)에서 정지용이 한 말이다. “윤동주는 이육사와 함께 식민지 후기의 저항시를 대표한다.” 국문학자 김윤식과 문학평론가 김현이 ‘한국문학사’(1973)에서 평가한 구절이다. 이들에 따르면, 윤동주의 강한 자기희생과 굳은 결의의 배경에는 선한 것이 결국 이긴다는 기독교적 확신이 놓여 있었다. 이러한 윤동주의 시 세계를 김윤식과 김현은 ‘순결한 젊음’이라 불렀다. 해방 뒤인 1948년 정음사에서 정식으로 출간된 윤동주의 시집. 한국일보 자료사진 윤동주의 인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초판본 디자인을 고스란히 살려서 곧 발간될 예정인 윤동주 시집. 2016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 포스터. 윤동주는 여전히 매력적인 시인이다.   윤동주의 정체성은 저항 시인이자 민족 시인, 그리고 기독교 시인이다. 동시에 양심의 시인이자 자유의 시인, 그리고 성찰의 시인이다. 더불어 그는 우리 모국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하는 시인이자, 우리 민족의 삶의 영토가 멀리 북간도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새삼 돌아보게 하는 시인이다. 윤동주의 시는 닫힌 텍스트가 아니라 열린 세계다. 앞서 나는 지성에 내재된 마음의 태도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무시무시한 고독에 맞선 시인이라는 운명의 자각, 순결한 젊음, 양심의 수난 등은 윤동주가 가졌던 마음의 태도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면서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서시’)는 독백과 결의는 윤동주가 품었던 마음의 태도를 생생히 웅변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억의 미래   이 기획의 이름은 ‘100년에서 100년으로’다. 지나간 100년이 과거의 역사라면, 다가올 100년은 미래의 역사다. 우리가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까닭은 과거에 대한 탐구가 미래 전망의 출발점을 제공하기 때문일 터다. 릿교 대학 시절 윤동주(뒷줄 오른쪽). 송몽규(앞줄 가운데)도 보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렇다면 역사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억일 것이다. 기억이란 의식 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경험과 사유다. 기억은 실존적 기억과 집합적 기억으로 나눠진다. 실존적 기억은 개인의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사랑과 미움의 기억, 성공과 좌절의 기억, 고독과 연대의 기억은 현재의 삶을 성찰하게 하고 미래의 삶에 용기를 준다. 집합적 기억은 민족 또는 국민이라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기억이다. 역사학자 육영수는 역사란 기억과 망각 사이의 투쟁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망각해선 안될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승하는 것은 지식인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다. 실존적 기억처럼, 집합적 기억은 우리라는 공동체를 더 나은 삶의 미래로 고양시킨다. 기억의 미래가 중요한 까닭이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왓작 떠라.”(‘눈 감고 간다’ 전문) 딸아이가 어렸을 적 읽어준 윤동주 시다. 윤동주라는 이름과 밤이 어두워도 씨앗을 뿌리라는 그의 맑고 굳은 정신을 딸아이가 오랫동안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말처럼 역사가 삶의 스승이라면, 기억은 지나간 삶의 증거다. 그리고 다가올 삶의 용기다. 딸아이가 자신의 아이에게, 그 아이가 다시 자신의 아이에게 윤동주 삶과 시의 기억을 전달하길, 그리하여 삶의 용기를 갖게 되길 바라는 작은 소망을 여기에 적어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이 시는 어두운 밤에 미래의 준비를 하며 가다가 희망이 보이면 눈을 뜨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밝은 새상과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워 아무 것도 안보이는데 차라리 눈감고 가거라. 가면서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여 눈에 별이 반짝이거든(희망이 보이거든) 감았던 눈을 활짝 떠라.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는 착상이 어린 아이와 같으면서 기발한 시이다. 이 시는 역사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해석해야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시의 역사적인 배경은 일제강점기로 암울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시의 시간적인 배경을 암울한 상황을 의미하는 밤으로 설정한 것이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에서 ‘태양’은 암울한 상황이 사라진 때를 의미한다. ‘별’은 암울한 상황 속에서 희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암울한 상황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희망이 실현되는 때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아이들아’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요로 보인다.   ‘밤이 어두웠는데 / 눈감고 가거라.’는 어두우면 눈을 뜨고 잘 보면서 가야하는데 오히려 눈을 감고 가라는 것은 ‘밤이 어두’운 상태가 눈을 뜨나 감으나 똑같이 어둡기 때문이다. 별도 보이지 않는 아주 암울한, 절망적인 상황인 것이다. 그러므로 눈을 감고 가면 깜깜한 것이 눈을 감아서 깜깜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눈을 뜨기만 하면 어둡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를 속이면서 임시방편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가진 바 씨앗을 / 뿌리면서 가거라.’는 화자가 하고 싶은 말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앞이 안 보여도 그냥 헤매지 말고 ‘가진 바’의 ‘씨앗을 / 뿌리면서 가’라는 것은 절망 속에서도 미래를 생각하는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태양’이 떴을 때에 가꾸고 꽃 피워야할 ‘가진 바 씨앗을 / 뿌리면서’ 절망을 이기고 가라는 것이다. 이는 서시에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와 맥락이 통하는 구절이다.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는 희망이 보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서 그 희망을 보라는 것이다. 동시(童詩)적인 발상으로 ‘발부리에 돌이 채이’면 신경의 작용으로 눈에서 불빛이 번쩍한다. 무언가에 세게 부딪치면서 생기는 생리적인 현상이다. 이 번쩍하는 불빛을 만화에서는 별로 표현한다. 실제로 별과 비슷한 빛이 보이는 것이다. 그때에 ‘감았던 눈을 와짝 떠’ 절망적이었던 상황을 보라는 것이다. 진짜 희망을 나타내는 별은 아니지만 별 같은 것이 보이면 가짜 희망이라도 그것에 의지하여 상황을 살펴보라는 것이다. 눈을 떴어도 여전히 어둠이면 다시 눈을 감고 자신들이 ‘가진 바 씨앗을 / 뿌리면서 가’며 부정적인 현실의 상황을 임시방편으로 눈을 감아서 그렇다고 위로하고 눈을 뜨면 긍정적인 현실이 보일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가짜든 진짜든 희망이 보이면 눈을 힘껏 크게 빨리 뜨고 현실의 상황을 보라는 것이다.///전한성  
2    [동네방네] - 백살... 댓글:  조회:3002  추천:0  2018-07-26
세계 최고령 113세 日 남성… 장수비결은 "온천욕과 단 것 즐겨"  2018/07/26      만 113세로 세계 최고령 남성으로 인증된 노나카 마사조 옹.[기네스협회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경욱 기자 = '온천욕을 자주 하고 단 것을 즐기면 과연 오래 살까.' 일본인 노나카 마사조(野中正造)는 1905년생으로 올해 만 113세다.   세계 기네스 협회에 따르면 그는 세계 최고령 남성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그가 태어난 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고 시어도어 루스벨트 26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베르타 폰 주트너가 여성 최초로 그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노나카는 지난 25일 113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는 세계 최고령 남성 타이틀을 쥐고 있던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누녜스 올리베라가 지난 1월 113세를 일기로 숨진 이후 지난 4월 기네스로부터 세계 최고령 남성 인정을 받았다. 기네스에 따르면 북쪽 홋카이도 아쇼로(足寄町)에서 6명의 형제와 1명의 누이 사이에서 자라난 그는 1931년 결혼해 자녀 5명을 뒀다. 그는 아쇼로 온천지역에서 여관을 운영하면서 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노나카의 장수비결은 미네랄이 풍부한 온천에서 자주 목욕을 하고 단 것(sweet)을 즐겨 먹는 데 있다고 한다. 그의 딸은 기네스 협회에 아버지가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살고 있기에 장수를 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 후 아침을 먹고 신문을 읽거나 사무라이 쇼나 스모 시청을 즐기고 고양이를 돌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노나카가 세계 최고령 남성 인정을 받기는 했지만 논란이 없는 것은 전혀 아니다. 세계 최고령 남성으로 알려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디 블롬은 지난 5월 114번째 생일을 맞았다. 이에 대해 기네스는 그가 세계 최고령 남성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만일 세계 최고령 남성 인정 신청을 하면 노인학자 등 전문가들을 동원해 인정 작업에 나설 것이라고 기네스 측은 말했다. 장수 국가로 알려진 일본의 경우 지난해 현재 100세 이상 노인이 무려 6만7천824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88%는 여성이다. 지난 4월 117세를 일기로 숨진 일본의 다지마 나비(田島ナビ) 할머니는 세계 최고령자로 기록됐었다. 일본 최고령 남성 타이틀을 쥐고 있던 기무라 지로에몬 할아버지는 2013년 116세의 나이로 숨졌다.
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폭염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4435  추천:0  2018-07-26
폭염에 새들도 식수대란 공정식 기자  2018.07.26.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경산=뉴스1) 공정식 기자 = 폭염이 절정에 이른 26일 경북 경산시 하양읍의 낮 기온이 40.5도를 기록했다. 이날 오후 영남대 경산캠퍼스 천연잔디구장에 폭염으로부터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가동된 스프링클러가 멈추자 주변에 있던 까치가 몰려들어 주변에 남은 물을 마시고 있다. 2018.7.26/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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