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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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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료} - 산문시와 이야기시 댓글:  조회:3517  추천:0  2018-08-22
산문시·이야기시란 무엇인가    /김영철 1. 산문시와 이야기시의 장르적 배경  1)장르사회학적 배경  산문시와 이야기시는 시의 하위장르이긴 하나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산문시는 정형시, 자유시와 함께 시형식과 관련된 장르개념임에 비해 이야기시는 서경시, 서정시와 함께 시내용에 관련된 장르개념이다. 시에서 이야기를 담는 형식은 정형시일 수도 있고 산문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양자는 장르의 혼합현상 또는 탈장르 현상이라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산문시는 산문과 시의 혼합장르이다. 시를 운문의 개념으로 확장해 볼 때 산문(prose)과 운문(verse)이라는 서로 상반된 양식이 결합된 것이다. 또한 이야기시(narrative poem)도 내러티브가 중심이 되는 서사양식과 시양식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장르의 혼합 및 탈장르 현상은 현대에 들어와서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원시종합예술에서 미분화 상태로 남아 있던 장르의 혼거현상이 다시 재현되고 있음이 흥미롭다. 이러한 장르의 혼거 및 상호침투현상은 분명 그 배경이 있을 터인데 그것은 현대의 사회변화 및 장르의 인식변화와 밀접히 관련된다. 주지하다시피 현대는 다양화, 다원화의 시대이다. 사회구조나 체제도 복잡해졌고 그 속에서의 삶의 방식과 사고 영역도 다양성을 띠고 있다. 특히 현대를 산문의 시대라고 하는데 그것은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 구조변화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토의와 분석의 기능을 산문이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에서 산문요소와 이야기 요소의 개입은 역기능과 순기능의 이원적 결과를 낳는다. 시를 언어의 경제학으로 일컫는 바 언어의 긴축과 조직의 긴밀함에 의해 정서의 응결과 인상의 집약적 표출을 얻는 것이 시의 본질이다. 그러나 이야기 요소의 개입과 산문화는 풀어짐과 흩어짐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시의 긴장미학에 역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좁은 의미에서 시의 참장르를 서정시로 본다면 이 역기능은 더욱 뚜렷해진다. 서정시는 본질적으로 주관적 경험이나 내적 세계를 드러내는 자기표현의 장르이고 순간의 서정과 인상을 표출함에 그 특징이 있다. 또한 길이에 있어서 짧은 短詩(short poem)를 지향한다. 이에 비해 이야기시와 산문시는 화소의 개입과 산문화에 의해 장형화되기 일쑤이고 이야기시의 주장르인 서사시의 경우 과거의 객관적 체험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표현함에 그 특징이 있다. 결국 시에서 話素의 개입과 산문화는 시의 서정적 본질을 해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가 예술이라는 성역에 머무를 수 없는 것이고 사회변화에 일정한 대응관계를 갖는 것이라면 시에서의 화소의 개입과 산문화 경향은 현대사회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복잡다단하게 전개되는 현대 사회변화를 내적 체험의 주관적 표출이나 언어의 긴축과 구조의 긴밀함만으로 수용해 내기가 힘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토의적 기능이나 분석적 기능이 요구될수록 시의 산문화나 서술화는 필연적인 결과일 수밖에 없다. 현대시에서 산문시와 이야기시가 증폭되는 현상은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돼야 한다.  한편 장르의 인식변화도 중요한 원인으로 보여지는데 많은 장르론자들이 지적하듯이 현대는 탈장르 및 초장르의 시대로 특징지워진다. 르네 웰렉은 현대에 와서 많은 장르상의 轉移가 일어나고, 따라서 장르 역사가 중단된 것처럼 느낄지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자층의 급격한 확대와 다양화로 장르 역시 증가일로에 있으며 문학의 신속한 보급 체계로 장르도 수명이 짧아졌거나 훨씬 신속하게 변형되고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10년마다 새로운 문학세대가 생겨나고 장르의 교체도 그에 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1) 헤르나디는 이러한 장르의 교체 및 변동양상을 집약하는 개념으로 超장르(beyond genre)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2) 결국 산문시와 이야기시는 현대에 들어 심화되는 이러한 장르의 교체 및 상호작용 현상의 결과로 볼 수 있다..  2)장르類와 장르鍾  이야기시(narrative poem)는 서사시(epic), 담시(ballad),단편서사시 등의 하위종을 갖고 있고, 산문시는 자유시(free verse) 및 시적 산문(poetic prose)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야기시와 산문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하위장르와 인접장르에 대한 인식이 필수적이다. 또한 우리의 산문시와 이야기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르의 기본형(gattung)과 변형(art)의 개념, 그리고 역사적 장르(historical genre)개념이 전제돼야 한다. 슈타이거나 플레밍은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장르원형을 기본형이라 했고, 개별언어권의 문화, 종족, 언어의 편차에 의해 파생되는 개별적 장르를 변형이라고 했다.3) 가령 우리의 향가나 시조, 가사나 판소리는 우리문학에만 존재했던 고유장르이고 변형장르이다. 또한 토도로프는 역사적 장르개념을 도입한 바 있는데 이는 그것이 주종을 이루었거나 이후 단절되었다 하더라도 당대에 엄연히 실존했던 장르를 지칭한다.4) 역사주의 입장에서 당대에 존재했던 장르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인 것이다. 이러한 변형장르와 역사적 장르개념의 수용은 우리문학의 장르형성과 변동 그리고 장르적 특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가령 서사시의 경우 이러한 장르개념의 도입은 한국 서사시의 이해에 좀더 유연한 시각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2. 산문시의 장르적 특성  1)산문시의 장르 개념  산문시(prose poem)는 형식적 제약은 물론 운율의 배려없이 산문형식으로 제작된 시이다. 따라서 행연의 구분도 없고 운율적 요소도 없다. 파운드는 이를 “산문형식으로 표현된 시적 내용”이라고 정의 내렸다.5) 즉 형식은 산문이지만 표현된 내용은 시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산문시가 산문과 시의 복합어인 만큼 양자의 성격을 함께 가져야 할 것이므로 파운드는 이를 산문형식과 시적 내용의 결합으로 규정했던 것이다. 아무튼 산문시도 시인만큼 당연히 시로서의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즉 시가 지닌 언어의 내적 특징인 은유, 상징, 이미저리 등의 표현기법이나 시적 언어(poetic diction)가 선택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언어 진술의 외적 특징이 불규칙적인 리듬과 산문적 형태로 되어 있는 시이다.  아으 밤이 오면 밤마다 별을 모두 불러 내려, 하나씩의 인간마다 하나씩의 별을, 하나의 짐승, 하나씩의 꽃, 하나씩의 벌레에도 하나씩의 별을 짝지워 서로 닮아 하나의 넋 오래이게, 슬픔도 쇠잔함도 죽음도 그만이게, 억울함도 분노도, 피흘림도 그만이게, 산이여 너 오래 지켜 마음 앓는 사람, 온 한 밤새워 잠못 이룬다.  ─ 박두진,   이 시는 산문적 형태와 불규칙적인 리듬으로 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상징과 은유, 그리고 시적 언어가 선택되어 있다. 이 시에서 별은 화해의 상징적 의미로 쓰이고 있고, 산을 의인화시켜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산문시는 시로서의 기본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2)산문시와 자유시  산문시가 자유시와 구분되는 점은 주로 형태의 운율적 내지 시각적인 밀도에 있다. 산문시는 자유시에 비해 운율성이 희박하고 시각적인 면에서도 정연성이 배제된다. 다시 말해 자유시는 시각적으로 행연의 구별이 분명하게 드러남에 비해서 산문시는 문장의 연결방식이 행연이 아닌 단락(paragraph)에 의존하고 있어 산만한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이 자유시와 산문시는 양자가 다 시적 성격을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단지 문장연결 방식이 행과 연에 있느냐, 아니면 단락에 있느냐에 의해서 구별되는 것이다. 따라서 산문시는 넓은 의미의 자유시에 포함된다.  특히 자유시에서 시행과 연의 변형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이는 음수율, 음보율에서의 해방은 가져왔지만 행연상에서는 일정한 제약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칸에 의하면 시행이란 ‘사상과 형식의 동시적 정지’ 즉 “목소리의 정지와 의미의 정지로 나타날 때의 가장 짧은 조각”으로 정의되고 있다. 이것은 한 시행 안에서의 律格休止가 어떠한 상호관계에 의존하는가 하는 문제로서 오늘날 자유시의 핵심적인 과제이기도 하다.6) 자유시에서는 율격휴지와 통사휴지가 일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시의 경우 그 양자의 일탈이 자유시의 특징으로 나타나 行間걸림(enjambment) 현상이 두드러진다. 행간걸림은 말들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면서 동시에, 통사론적으로 연관되는 뒤의 말과 유리되는 현상을 의미한다.7) 어찌했든 자유시에서는 이와 같은 시행처리상의 제약이 있다. 그러나 산문시는 이러한 제약에서 벗어난다. 의미전개가 시행이 아니라 단락에 의존함으로써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3)산문시와 시적 산문  플레밍거는 산문시 개념이 성경에서부터 포크너의 소설에 이르기까지 무책임하게 사용되어 왔지만, 그것은 고도로 의식적인 어떤 형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산문시가 타장르와 구별되는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길이가 비교적 짧고 요약적이라는 점에서 시적 산문과 다르다.  행구분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자유시와 다르다.  내재율(inner rhyme, metrical runs)과 이미지를 지닌다는 점에서 산문(prose passage)과 다르다.8)  이와 같이 그는 산문시를 시적 산문, 자유시, 산문과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여기서 시적 산문(poetic prose)은 시적 내용을 담고는 있어도 산문에 속하는 글의 형태를 지칭한다. 따라서 시의 본질적 요소인 상징이나 이미지가 배제된다. 이효석의 이 이에 해당되는데, 특히 발단 부분의 메밀꽃밭의 밤풍경 묘사는 시적 정서와 분위기가 주조음을 이룬다. 그러나 은 어디까지나 소설 즉 산문인 것이다. 플레밍거는 산문시의 특성으로서 시행구분을 초월한 단락성, 상징과 이미지 등의 표현성을 강조하고 있다.9)  그런데 이러한 산문시 장르에 대해 회의적 견해를 가진 사람도 있다. 엘리어트가 그 대표적인 경우인데 그는 산문시라는 용어 자체를 배척하고 있다. 그 이유는 시와 산문 사이의 구별은 뚜렷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시적 내용이란 통상적으로 운문으로 표현되는 종류의 것이니까 마땅히 운문으로 표현해야 할 종류의 것이거나 그 어느 쪽일 것이다. 만약 후자라면 산문시는 배척된다. 또 전자라면 어떤 것은 산문으로도 운문으로도 표현할 수 있거나 또는 무엇이든지 산문으로나 운문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말에 불과하다.10)  이와 같이 그는 시적 내용은 운문에 담으면 되는 것이지 구태여 산문에 담는 특별한 이유와 효용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나 효용도 없고 시와 산문과의 구별도 모호하므로 산문시의 존재는 무의미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분석적이고 토의적 기능이 강조되는 현대정신, 곧 산문정신이 시에 반영됨으로써 산문시는 오히려 그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4)산문시의 전개  시에서 산문체 양식의 도입은 낭만주의 시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낭만주의는 인습, 도덕, 규율에 대한 도전이었고 법칙, 규범, 통일, 조화를 중시하는 고전주의를 반대하였다. 그대신 인간의 본능과 개성, 다양성을 긍정적인 가치로 받아 들였다. 이렇게 해서 자발적 흐름이 강조되었고 서정이나 감정을 산문체를 통해서 자유분방하게 흘러 넘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산문시가 하나의 시장르로 인식된 것은 프랑스 상징주의에서였다. 그 첫 성과가 보들레르의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1869)이다. 보들레르는 포우의 영향을 받아 이 시집을 상재했고, 여기서 산문시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말라르메, 랭보, 끌로델 등의 프랑스 상징파 시인과 러시아의 투르게네프 등에 의해서 활발하게 창작되었다. 동양에서는 소동파의 , 歐陽永叔의 , 도연명의 , 한무제의 , 굴원의 가 대표적인 것이다.  우리의 산문시는 1910년대 러시아 산문시와 프랑스 상징주의가 수용되면서 정착되었다. 산문시가 우리 문단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10년 8월 《소년》지에 실린 네모에프스키의 (홍명희 역)이었고, 그 후에 콜로렝코의 (《학지광》, 1914년 12월), 투르게네프의 (《학지광》, 1915년 2월) 등이 소개되었다. ‘산문시’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투르게네프의 에서였다. 창작시로는 김억의 (《학지광》, 1915년 2월)이 효시가 되었고 《학지광》 5월호 (1915년 5월)에 발표된 김억의 는 비교적 수준높은 산문시였다. 이러한 초기의 작업을 통해 1919년 주요한의 , 같은 산문시가 창작되었고 이후 산문시 창작은 꾸준히 지속되어 한용운의 , 이상의 , 정지용의 이 나왔고 1950년대에도 김구용 등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창작되었다.  3. 이야기시의 장르적 특성  1)이야기시의 장르 개념  이야기시(narrative poem)는 ‘이야기를 말하는 시’로서11) 敍述詩, 說話詩 등으로 부르기도 하고 그 하위 種으로서 敍事詩(epic)와 譚詩(ballad) 등을 포괄한다. 야콥슨이나 바흐친과 같은 구조언어학자나 기호론자들은 시를 근본적으로 談論구조로 보고 있다. 그들은 시적 화자를 통한 청자와의 말건냄이라는 담론구조 속에서 메시지의 전달과 의미의 형성, 창출과정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물론 내용에 해당되는 이야기와 전달방식으로서의 대화형식은 구분되는 것이지만 내면의 주관적 표출이라는 독백형식을 취하는 서정시의 본질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이야기시는 어떤 구체적 사건이나 사실을 독자라고 하는 청중에게 전달하는 형식을 취하는 점에서 독백형식에서 벗어난다. 아울러 전달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는 담론구조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이야기시는 화자 ─ 메시지 ─ 청자라는 담론구조의 틀을 튼튼하게 구축하고 있다. 파울러는 《현대비평용어 사전》에서 ‘서사체’(narrative)를 일련의 사실이나 사건을 차례로 열거하는 것과, 이러한 사실이나 사건들 사이에 모종의 관계를 설정하는 양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다시 이 서사체를 내용의 문제와 수사의 문제로 나누어 전자를 소재의 적절한 결합 및 암시된 연관관계의 박진성과 연결시키고, 후자를 그 서사체가 어떠한 방식으로 청중(독자)에게 제시되는가라는 문제와 관련짓고 있다.12) 다시 말해 서사체는 사건의 열거와 사건들 사이의 관계설정, 그리고 이들의 제시방법을 중시하는 양식이다. 이야기시는 바로 이 서사체 양식을 취하는 장르이다. 따라서 이야기시는 전달내용으로서의 이야기와 아울러 전달방법이나 태도로서의 이야기 방식도 함께 아우르는 장르 개념이다.  말리네는 이야기시를 스토리를 가진 시로 규정하고 그 중에서도 긴 내용의 이야기를 가진 시를 서사시라 하고, 짧고 간결한 내용의 이야기를 가진 시를 담시(ballad)라고 하였다. 결국 말리네는 길이의 길고 짧음에 의해 이야기시를 서사시와 담시로 나누고 있으나 서사시와 담시의 구분은 전달방식이나 태도 등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단징거는 담시를 서사시가 아니라 서정시의 하위 장르로 규정하고 있는데13) 서사시와 담시는 다같이 이야기시이긴 하지만 서사와 서정의 상이한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시는 서사체 양식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서사시의 범주에 넣지만 사실 서정시도 이야기시에 포함될 수 있다. 오세영은 이야기시와 서사시의 장르개념에서 양자가 등가적 개념이 아니라 집합적 개념으로 구분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야기가 서사시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고 하고 서사시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을 따로 설정하고 있다.14) 따라서 모든 서사시는 이야기시지만 모든 이야기시는 서사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야기시에 서사시와 서정시를 포함시키고 다시 서정시 속에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서 담시와 송가(ode) 등을 들고 있다.15) 그러니까 결국 담시와 송가는 서정서술시가 되는 것이다.  2)장시와 단시의 장르 개념  이야기시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리드가 구분한 바 장시 (long poem)와 단시(short poem)의 개념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 리드는 시를 장시와 단시로 나누고, 장시가 여러 개 혹은 다수의 정서를 기교에 의해 결합한, 복잡한 이야기를 포함하는 일련의 긴 시로 규정하였다. 또 단시는 단일하고 단순한 정서적 태도를 구현한 시로서 연속적인 영감이나 기분을 직접 표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이를 요약하여 장시는 개념이 형태를 통어하는 시이며, 단시는 거꾸로 형태가 개념을 통어하는 시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장시계열에 이야기시, 서사시, 담시, 송가, 철학시 등을 포함시키고 있다.16)  이야기시에서 장시개념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야기 요소의 개입으로 인해 이야기시가 장형화된다는 점에 있다. 리드도 장시의 핵심요소로서 이야기와 관념을 들고 있다. 서정시는 서정적 순간의 감정이나 파편적 체험을 표현한다. 한 순간의 재현이기에 서정시는 내적 경험의 순간적 통일성에 의존한다. 따라서 서정시에는 서사적 시간이나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시는 시인의 확고한 주관과 가치관을 드러내기 위해 역사, 사회적 사건이 개입된다. 이로 인해 시의 길이가 구속 없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튼 이야기시는 장시라는 점에서 단형을 지향하는 순수서정시와는 일정한 거리를 갖는다. 결국 시의 산문화(산문시) 특히 서술화(이야기시)는 필연적으로 시의 장형화를 지향하게 된다.  그런데 장시는 그것이 단지 형식에서만 긴 것이 그 특징이 아니라 완결된 형식을 통해서 역사현실에 대한 시인의 의식을 드러낸다는 데 중요성이 있다. 리드는 장시를 논하면서 그것이 그 시대의 어떤 열망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장시화 현상은 문학이 현실의 전체성에 상응하는 통일성을 획득한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17) 따라서 이야기시는 역사, 사회적 사건을 개입시키고 그것을 시인의 의도된 통일성 아래 재구성함으로써 현실의 전체성에 상응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다. 1930년대 시에서의 리얼리즘의 확보를 위해 시도된 단편 서사시 장르의 선택도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돼야 할 것이다.  3)서사시의 장르 개념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사시의 양식적 특징을 성격과 행위를 모방한다는 점에 두고 있다. 성격과 행위의 모방은 서사시로 하여금 이야기시로서의 성격을 갖도록 조건지워진다. 성격과 행위는 의당 인물을 전제하는 것이고 그 인물이 펼치는 사건과 행동양식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사시는 이야기시로서 주제와 플롯이 있고 이 플롯은 인물의 성격, 그리고 사건전개와 배경을 갖는 구성양식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서사시는 이야기시로되 원래 영웅시(heroic epic)라고 불릴 정도로 장중한 운문으로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는 긴 이야기시(long narrative poem)였다. 본래의 서사시는 호머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에서 보듯이 국가와 민족,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는 위대한 인물의 행위를 중심으로 하여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장시였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신화적인 영웅호걸이나 집단적 운명의 성쇠를 그리지 않아도 객관적인 사건을 서술한 장시면 다 서사시라 부르게 되었다. 서사시는 원래의 기능을 근대에 들어 소설에 이양함으로써 그 영역이 크게 축소되었지만 원래의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카이저가 서사시와 소설을 구별하여 서사시가 장중한 톤으로 개인적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본 것도 서사시의 고유기능이 현대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개성과 개인의 세계가 중시되는 추이에 따라 집단성의 가치관이 약화되고 이에 따라 서사시의 변화도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서사시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갖는다. 첫째 강한 설화성 (narrativeness)이다. 역사와 신화, 그리고 영웅적 인물의 행적을 서술하는 만큼 설화성은 필연적인 것이다. 서정시의 특질이 표현성 (expressiveness)에 있다면 서사시는 설화성에 있는 것이다. 어원적으로 볼 때도 서사시는 ‘말’이라는 의미를 갖는 희랍어 epos에서 온 것이었다. 서사시는 하나의 이야기, 즉 전체적으로 완성된 하나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 둘째 서술대상의 방대성과 초월성이다. 서사시의 주인공은 민족적 또는 인류적으로 위대한 인물이거나 신이다. 또한 배경 역시 세계적이고 때로는 초현실적이다. 세째, 집단성과 역사성이다. 서사시는 개인의 목소리가 아닌 한 민족이나 국가의 운명과 관련된 대표적 영웅의 목소리이다. 따라서 그것은 개인이 아니라 민족이나 민중을 향한 외침이다. 역사성은 서사시가 다루는 주된 대상이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나온다. 네째, 장엄한 문체와 숭고미의 지향이다. 서사시의 문체는 儀式的이면서 장엄하고 화려한 문체적 특징을 갖는다. 일상적인 말과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유지하고 영웅적 주제와 서사시적 구조의 장대함과 형식성에 비례하는 의식적인 문체로 서술된다. 다섯째, 뚜렷하고 견고한 원근법을 드러낸다. 이는 서사시가 역사와 인물에 대한 객관적 해석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18)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 관점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허드슨은 서사시를 객관시(objective poem)라고 부른 바 있다. 여섯째, 서정시의 시구가 독립될 수 없음에 비해 서사시의 시구는 독립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서사시는 많은 에피소드를 동원한 삽화적 구성(episodic plot)을 갖고 있다. 쉴러도 부분의 독립성은 서사시의 주된 특질이라고 했다. 부분적 작품이 모여 전체를 이루지만 그 부분이 독립될 수 있는 것이 서사시인 것이다. 그밖에 서사시의 장르적 특성으로서 장형성, 과거성, 그리고 내면적 자아보다 외부현실의 서술에 초점을 두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4)담시의 장르 개념  발라드는 음악적 측면과 문학적 측면으로 나누어 구분되는데 보통 전자는 민요로, 후자는 譚詩로 번역된다. 먼저 음악적 발라드는 이야기를 담아 구전되는 노래이다. 다시 말해 민요에서 서사적인 민요를 지칭하는 것이다. 플레밍거는 민요를 서술민요(narrative folk song)와 비서술민요(non-narrative folk song)로 나누고 전자에 서사민요(oral epic)와 발라드를 포함시키고, 후자에는 서정민요(lyric folk song), 노동요, 유희요, 동요 등을 포함시키고 있다.19) 이러한 민요가 설화체 시의 한 특수한 형식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15세기경 영국에서 음유시인들이 등장하여 4행으로 간단하게 구성된 연 안에 고도로 잘 구성된 이야기를 담아 널리 퍼뜨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민간 발라드(folk ballad)에서 문학적 발라드(literay ballad)가 파생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학적 발라드는 대체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거나 이야기를 다룬다. 또한 세태와 관련된 삽화로 시작해서 동작과 대화를 통하여 이야기를 발설하는데 자신의 개인적 태도나 감정은 배제함이 원칙이다. 또한 심리적 묘사가 거의 없으며 의미는 직접적으로 묘사된 행위를 통해, 또는 사건의 맥락에 대한 언급을 통해 파악된다.20) 이와 같이 담시는 전설, 구비 등을 민중적 가락으로 노래해온 전승배경을 갖고 있는 짧은 형식의 이야기시이다. 그런데 앞에서 논의한대로 단징거는 담시를 서정시 장르에 포함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담시는 서정서술시라는 것이다. 리치는 담시의 특징을 쩖 내용이나 문체가 민중의 감수성에 알맞음 쩗 단순한 사건에 촛점을 맞춤 쩘 대화와 행위로 사건이 진술되고 묘사는 생략됨 쩙 객관적 서술 쩚 비극적 사랑과 비교훈적 내용 쩛 극적 장면 및 극적 구성 쩞 강한 충격과 경탄의 표출 등을 들고 있다21). 이 중에서 쩚쩛쩞은 서정시적 요소로 간주된다. 이와 같이 담시는 서정성이 강한 서술시인 것이다. 따라서 담시는 단형의 서정서술시로 규정할 수 있다.  5)단편 서사시  단편 서사시는 1930년대를 전후하여 프로문학 진영에서 시도한 실험적 장르이다. 임화가 창작에 처음 시도하고 김팔봉이 이론적으로 개념화한 것이다. 단편 서사시는 한국시단에 자생한 일종의 역사적 장르로 볼 수 있다. 물론 일본의 NAPF에서도 논의된 바 있어 결코 독창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어도 임화를 비롯하여 박세영, 백철, 김해강, 박아지 등 일련의 프로시인들에 의해 본격화되었고 이후에 백석, 이용악 및 김상훈 등에 의해서 계승되었다.  김팔봉은 단편서사를 소설과 시양식의 혼합양식으로 보았다. 사건적 소재의 취재에서 소설 양식을 그리고 그것의 압축적, 인상적 표현에서 시양식을 끌어들인 것이다. 결국 시에 이야기를 끌어들이되 시적인 표현방식으로 나타내는 것이 단편서사시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단편서사시를 전체성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지향의 소설과, 개성을 바탕으로 한 서정시를 연결하는 중간 단계적 장르로 규정한 견해는 시사적이다.22) 특히 임화의 단편 서사시는 등장인물을 설정하여 청자에게 말을 건네는 담론구조를 구축하고 있음이 특징적이다. 그러나 그 구성은 소설에서와 같은 플롯에 의존하기보다 전체적으로 고무와 찬양, 권고, 애원 등이 주조를 이루는 주관주의적 표현방식을 택함으로써 시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허구적 인물의 고백적 진술 역시 서정시의 특성에 부합된다.  단편서사시는 엄격히 말해서 서사시로 보기가 어렵다. 앞에서 논의한 바 서사시 조건에 부합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태여 서사시로 본다면 프라이가 제시한 소서사시(epyllion)에 가깝다. 프라이는 서정시가 주제의 관심밀도가 높아져 소형의 서사시로 확대된 것을 소서사시라고 하였다.23) 그러나 단편서사시는 일종의 서술시로서 서정성이 강한 서정서술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단편서사시는 1930년대 한국시단에 풍미한 실험적 역사적 장르로서 시에서의 리얼리즘의 확보와 소설에로의 양식적 확산이라는 문학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1) Rene Wellek 《Theory of Literature》 (Penguin Books, 1968) pp.232``~235.  2) Paul Hernadi 《Beyond Genre》 (Cornell Univ. Press, 1972) p.8.  3) E.Staiger 《Grundbegriffe der Poetik》 (Zurich, 1963) W.Flemming 《Das Pwblem Von Dichtungsgattung und Art》 (Studium Generale XⅡ, 1959) pp38~60.  4) T. Todorov, 《Fantasic》 (Cornell Univ. Press, 1975) pp.13~15.5) T.S Eliot 《Literary Essays of Ezra Pound》 p.12.  6) J.Huret 《Enquete sur L'evolution Litteraire》 (Charpentier, 1891) pp.394~396.  7) 한계전, 《한국현대시론 연구》 pp.26~27.8) A.Preminger 《Encyclopedia of poetry and poetics》 pp.664~665.  9) A.Preminger, 앞의 책 p.665.  10) T.S Eliot 《selected Essays 》 p.84.11) L.Maline, 《Prose & Poetry of English》 p.86.  12) R. Fowler, 《A Dictionary of Modern Critical Terms》(1973), 김윤식 역(일지사), p. 136.13) M.K Danzinger, 《An Introduction to Literary Criticism》(Boston, 1968) p.71  14) 오세영, 《문학연구방법론》(시와 시학사, 1993) p. 102. 그가 제시한 충분조건은 서사적 탐색, 민족적 율격, 영웅의 등장, 민족적 신화나 역사, 삽화적 구성, 공포와 연민의 정서, 세계의 객관적 대면 등이다.  15) 오세영, 같은 책, pp. 100~103.16) H.Read,《Collected Essays on Criticism》 (London, 1952) pp.57~60.  17) 장부일, 《근대 장시연구》(서울대 박사논문, 1992. 2) p.2.18) Emil Staiger, 《Grundbegriffe der Poetik》 p.110.  19) A.Preminger, 《Encyclopedia of Poetry and Poetics》 p. 283.20) R. Fowler, 《A Dictionary of Modern Critical Terms》 김윤식 역, p.136.  21) Maria Leach, 《Standard Dictionary of Folklore, Mythology and Legend》 vol 2(New York, 1950) p.97. 22) 정재찬, 《1920~30년대 한국 경향시의 서사지향성 연구》 (서울대 석사논문, 1987) p.108.  23) N. Frye, 《Anatomy of Criticism》, 임철규 역 (한길사, 1988) p.461.    ========================/// 산문시와 쉬운시 / 김현  해방 직후의 시의 혼란은 내용과 형식을 별개의 것으로 이해하는 시인들 자신에 의해 초래된 혼란이다. 시에서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인들은 시의 형식에 대해서 운위하는 것을 사치스러운 문학 취향으로 치부해버리고, 시에서 형식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시인들은 시의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용은 무정부주의적 허무주의에 빠져버린다. 그때 남는 것은 정치적 구호나 저항의 제스처, 그리고 순수하다고 알려져 온 토속어들뿐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서 내용 편중이라고 할 때의 내용이나. 형식 위주라고 할 때의 형식은 내용과 형식이 아니라, 소재와 말에 지나지 않는다. 시는 소재와 말을 결합하였을 때 생겨나는 조직체이다. 결국 내용 위주의 시와 형식 위주의 시는 시를 버리고 소재와 말만 찾아낸 셈이며, 그것은 한국시의 혼란을 크게 자극한다.  그 혼란이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제 창작면에서 극복되기 시작한 것은 김춘수와 김수영의 시적 탐구에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다. 그 두 시인의 대립된 탐구를 통해 시는 내용이나 형식의 어느 한편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내용이 형식을 위해 봉사하고 형식이 그 내용을 위해 사용되는 그런 조직체라는 것이 밝혀진다. 내용은 소재 이상의 것이며 형식은 말 이상의 것이다. 그 때 중요시될 것은 시인이 소재나 말을 대하는 태도이다. 시를 내용과 형식이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시인과 사물 - 대상과의 거리 관계에서 찾게 된 것은 그 두 시인의 큰 공헌이다.  김수영은 대상을 자신과 가능하면 가깝게 느끼도록 애를 씀으로써 시인을 시속에 크게 자리잡게 만들며 감춘수는 대상을 가능하면 자신에게서 떼어냄으로써 대상을 전면에 내세우려 한다.  여하튼 그 두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시인과 대상과의 긴장 관계이다. 긴장은 대립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그 대립은 그러나 절대적인 개념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대립의 양태가 그 시초에서 올바르게 들리지는 않다는 진술이다. 그 대립은 정직한 세계 인식이거나 허위적인 제스처다. 그것이 정직할 때 긴장은 고조되며 그것이 언어로 조직될 때 한 편의 뛰어난 시가 얻어진다. 그것이 허위일 때 시는 재치나 저항의 제스처에 지나지 않게 된다.  70년대 들어서면서 갑작스럽게 유행되기 시작한 산문시는 그 대립을 정직하게 조립하려는 젊은 시인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대립을 정직하게 드러내려 할 때 상투적인 틀과 어휘들이 그대로 쓰일 수는 없다. 아주 짧은 시를 시도하는 젊은 시인들의 노력과 어떤 의미에서는 같은 방향에서 이해되어야 할 산문시 시도는 상투적인 어휘 거부, 다시말해서 대립을 대립답게 드러내려는 노력의 정직성이라는 면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산문시는 산문이 아니라 시이다. 산문시가 시이어야 한다는 진술은 그것이 풀어 쓴 시가 아니라 산문으로 쓴 시라는 뜻이다. 산문시가 풀어 쓴 시가 되는 순간에 산문시는 그 나름의 존재 이유를 잃는다. 동시에 그것은 투르게네프의 것이 그러하듯 반드시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시적 향취를 풍기는(!) 콩트를 산문시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산문시는 시의 해체를 통해 역설적으로 시를 구제하는 시이다. 갑작스럽게 유행되기 시작하면서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산문시들 중에는 시의 운율 구조에 대한 탐구를 포기한 연후에 아무렇게나 씌어진 것들이 많다. 그러나 다시 한번 되풀이하는 것이지만 산문시는 시를 해체하므로써 오히려 시를 구제한다. 운율 구조에 대한 정밀한 탐구 끝에 씌어지는 산문시와 애당초의 감상적인 줄거리로 콩트를 쓰겠다는 태도 밑에 제작되는 산문시와는 완전히 다르다.  산문시의 시도가 확실한 의미를 띨 수 있으려면, 시인과 대상과의 대립을 정직하게 그리고 팽팽하게 유지하면서 , 또 시의 운율 조직에 대한 탐구를 방기하지 않은 채 씌어지는 산문시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산문시는 시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씌어지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쉽게 대상을 파악하려는 태도를 견제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산문시에서처럼 시인의 세계에 대한 태도의 안이성과 시와의 싸움의치열성 여부가 쉽게 드러나는 것은 없다. 쉽게 쓴다는 것이 시의 목적이 된다면, 시는 어쩔 수 없이 가장 쉽고 이해가 빠른 이데올로기의 도구가 되어버릴 것이다. 다시 말해 시를 배반할 것이다.       
4    [詩소사전] - "산문시"란?... 댓글:  조회:2188  추천:0  2018-08-22
산문시의 뜻;= -산문시는 영어로 'prose poem', 프랑스어로 'Poeme en prose', 독일어로 'Gedicht in Prosa'로 산문체 형식을 지닌 서정시입니다.  -정형시와 같이 명확한 운율형식은 없고 자유시와 같은 뚜렷한 리듬이 없다. 리듬은 없어도 시의 형태상 압축과 응결에 의한 시정신을 필요 조건으로 해야 한다. 형식상으로는 산문의 요소를 지녔지만 내용은 시적 제반 요소를 갖추고 리듬의 단위를 시의 행에 두기 보다 문장의 한 문단에 둔다. 자유시는 행을 나누어 구분하지만 산문시는 행을 바꾸지 않아도 시 전체의 음절과 문장에 의해 통일적으로 구성한다. 자유시나 정형시는 행에 의한 구분으로 인하여 시를 읽기 위해서는 다소 호흡의 율동이 늦게 간격을 두고 나타나기도 하지만, 산문시는 그 속도와 간격이 이어지기 때문에 거침없이 진행되어 호흡이 빠르거나 가빠질 수도 있다. -라풍텐(Jean de La Fontaine), 루소(Jean-Jacques Rousseau), 베르트랑(Louis Bertrand)은 근대 산문시의 선구자이며,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가 시집 『파리의 우울(La Spleen de Paris)』을 발표한 이래 산문시란 명칭을 썼다. 시집 서문에서 이라고 특질을 말하고 있다. 출처(산문시:문학비평용어사전) ================///   - 시의 한 종류. 산문체의 서정시로 운(韻)이나 리듬 등을 갖지 않는다. 정형시처럼 외재율을 갖거나 혹은 자유시처럼 내재율을 현저히 형성하고 있지 않지만, 형식상으로는 거의 산문이고 내용으로는 시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자유시와의 구분은 불확실하지만, 산문시는 대략 행과 연(聯)의 구분 없이 줄글로 씌어진 데 그 형태상의 특성이 있다. 은유 · 상징을 중심으로 한 시적 조사법(poetic diction)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경우는 한용운(韓龍雲)의 작품에 이와 같은 예가 보이며 해외의 것으로는 보오들레에르(P. C. Baudelaire) · 투르게니에프(I. S. Turgenyev) · 타고르(R. Tagore) 등의 산문시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출처 : 지식백과 ===================///   산문시는 영어로 'prose poem', 프랑스어로 'Poeme en prose', 독일어로 'Gedicht in Prosa'로 산문체 형식을 지닌 서정시를 의미합니다   ㅡ정형시와 같이 명확한 운율형식은 없고 자유시와 같은 뚜렷한 리듬이 없으며 리듬은 없어도 시의 형태상 압축과 응결에 의한 시정신을 필요 조건으로 해야 한다.   형식상으로는 산문의 요소를 지녔지만 내용은 시적 제반 요소를 갖추고 리듬의 단위를 시의 행에 두기 보다 문장의 한 문단에 둔다.   ㅡ자유시는 행을 나누어 구분하지만 산문시는 행을 바꾸지 않아도 시 전체의 음절과 문장에 의해 통일적으로 구성한다. 자유시나 정형시는 행에 의한 구분으로 인하여 시를 읽기 위해서는 다소 호흡의 율동이 늦게 간격을 두고 나타나기도 하지만, 산문시는 그 속도와 간격이 이어지기 때문에 거침없이 진행되어 호흡이 빠르거나 가빠질 수도 있다.   ㅡ라풍텐(Jean de La Fontaine), 루소(Jean-Jacques Rousseau), 베르트랑(Louis Bertrand)은 근대 산문시의 선구자이며,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가 시집 『파리의 우울(La Spleen de Paris)』을 발표한 이래 산문시란 명칭을 썼다.   ㅡ시집 서문에서 이라고 특질을 말하고 있다.   ㅡ이후 자코브(Max Jacob), 르베르디(Pierre Reverdy), 앙드레 지드(Andre Gide), 투르게네프(Ivan Turgenev), 휘트먼(Walt Whitman)은 산문시인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김억이 번역한 투르게네프의 작품 「비렁뱅이」를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에 게재한 것이 산문시로 처음이며, 이후에 한용운(韓龍雲)의 「임의 침묵」, 정지용의 「백록담(白鹿潭)」, 주요한(朱耀翰)의 「불놀이」등이 있다.(조병무)   [네이버 지식백과] 산문시 [散文詩, Prose poetry] (문학비평용어사전, 국학자료원)    
3    러시아 작가, 시인 - 투르게네프 산문시 7수 댓글:  조회:2170  추천:0  2018-08-22
러시아 작가, 소설가, 시인 ㅡ 투르게네프 산문시 7수 “나는 그 길을 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먼 길을 걷다 드디어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곳이므로,  그리고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여느 노인과 달리 어린 여자아이처럼 무덤 이외에 백합과 장미꽃을 보았다는 점이다.”     제목 : 바위   당신들은 화창한 봄날의 만조 때에 해변에서 오랜 세월 부대껴 온 잿빛 바위에 거친 풍랑이 사방팔방에서 들이치고 – 들이치고,  희롱하고, 어루만지고 - 이끼 낀 바위 정수리 위에 잘디잔 진주를 흩뿌려놓듯이,  빛나는 거품을 흩뿌리고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바위는 언제나 변함없는 바위지만 -- 그 잿빛의 표면에는 선명한 색채가 나타난다. 그 색채는 녹아있던 화강암이 겨우 굳어지기 시작하여 빨간 불꽃으로 타고 있던 저 먼 태고(太古)를 이야기 한다. 이처럼 나는 요즘의 늙은 마음에도 젊은 여심(女心)의 물결이 부근에서 밀려와 그 부드러운 애무의 손에 나의 마음은 이미 오래동안 퇴색해 있던 색채, 옛날의 불의 추억을 떠올리고 붉어져 오는 것이었다. 파도는 멀어졌다. ……하지만, 그 색채는 아직 퇴색하지 않았다--지독하게 뼈를 에이는 것같은 바람이 설사 말라 있더라도.     제목 : 거지 나는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늙은 거지가 나를 불러 세웠다. 두 눈에 핏발이 서고, 눈물을 머금은 눈, 새파랗게 질린 입술, 지독한 누더기, 더러운 상처…… 아! 이 불행한 인간을, 빈궁은 어찌 이리도 추하게 먹어치웠단 말인가. 그는 빨갛게, 짓무른, 더러운 손을 내게 내밀었다. 그는 신음하듯이, 울부짖듯이,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옷의 주머니를 남김없이 뒤지기 시작했다. …지갑도 없다. 시계도 없다. 손수건 조차 없다.  …무엇 하나 가지고 나온 것이 없다. 하지만, 거지는 아직 기다리고 있다. …뻗은 손은 아주 약하게 떨며, 전율하고 있었다. 그만 곤경에 빠져 초조해진 나는 그 더러운, 떨리는 손을 꽉 잡았다…. "이보시오 노인장! 용서하시오. 나는 아무것도 지닌 게 없구려!" 거지는 나에게 핏발이 선 시선을 보내며 시퍼런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그쪽에서도 꽉 하니 내 차디찬 손을 잡아 주었다. "원, 천만의 말씀입니다." 거지는 나에게 속삭였다. "이렇게 손을 잡아주시다니, 이 또한 적선이십니다." 나도 또 이 형제로부터 베풀음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제목 : 대화   -융풀라우도 핀스테럴혼도 지금 아직도 인적(人跡)이 머문 적이 없다- 알프스의 높은 봉우리. ……그저 이어지는 아아(峨峨)한 험준한 낭떠러지……. 산맥의 한 가운데. 산과 산의 위로 펼쳐진 연녹색의, 밝고, 말할 수 없는 하늘. 몸에 스며드는 매서운 추위. 찬란한 눈덩어리.  눈을 비집고 치솟은, 얼음에 갇힌, 바람이 휘몰아치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 지평선 양쪽 옆에 치솟은 두 개의 산 덩이. 두 사람의 거인, 융풀라우와 핀스테럴혼. 융풀라우는 옆사람에게 말한다. "뭔가 새로운 일이라도 있나요? 당신은 나보다는 잘 보이겠지요? 저 기슭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수천년이 지나가는 눈 깜짝할 순간에. 그러자 대답하는 핀스테럴혼의 굉음. "구름이 땅을 뒤덮고 있다……. 잠시 기다려라!" 또 수천년이 지나간다, 한순간에. "자, 이번에는?" 융풀라우가 묻는다. "이번에는 보인다. 아래 쪽은 아직, 본래 그대로다, 드문드문, 자잘하게. 물은 푸르고 숲은 거무틱틱하고,  수도 없이 많은 암석은 잿빛이다. 그들 주위에는 지금도 아직 무당벌레가 꿈틀대고 있다.  봐라, 저 아직, 너나 나를 더럽힐 수 없었던 이족(二足) 동물이." "그건 인간 말인가요?" "그래, 인간이다." 몇천년인가가 지나간다. 단숨에. "자, 이번에는?" 융풀라우가 묻는다. "무당벌레는 전보다는 조금밖에 안보이는 것같다." 핀스테럴혼은 큰소리로 울린다. "아래쪽은 확실해졌다. 물은 마르고, 숲은 드문드문해 졌다." 다시 또 수천년인가 지나간다. 삽시간에. "당신, 뭐가 보이나요?" 융풀라우가 말한다. "우리 주변은 깨끗해진 것같다." 핀스테럴혼이 대답한다. "하지만, 저 멀리에 있는 골짜기에는 역시 반점(斑點)이 있다. 그리고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다." "자, 이번에는?"라고, 또 수천년이 단숨에 지나가자, 융풀라우가 묻는다. "이번에는 좋은데." 핀스테럴혼이 대답한다. "여기건 저기건, 상쾌해졌다. 어디를 보아도 하얗다……. 여기도 저기도 눈이다, 하나가득. 게다가 이 얼음이다…… 모조리 얼어붙었다. 지금은 좋다, 조용해서." "좋군요." 융풀라우가 말을 꺼냈다. "그런데 아저씨, 당신과 꽤 잡담을 했군요. 한 잠 잘 시간이네요." "그렇군." 큰 산들은 잠자고 있다. 녹색의, 맑게 개인 하늘도, 영원히 입을 다문 채 대지 위에 잠자고 있다. ======================     개     방안에는 우리 둘, 개와 나.   밖에는 사나운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개는 내 바로 앞에 쪼그려 앉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나도 개의 얼굴을 바라본다.   개는 무엇인가 나에게 말하고 싶은 눈치다. 그는 벙어리같다. 말이 없다. 개는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   이 순간 그의 맘속에나 내 맘속엔 꼭 같은 감정이 흐르고 있다는 것, 우리 둘 사이엔 아무런  격의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우린 서로 꼭 같다. 우리 둘 모두의 가슴속엔 전율할 불길이 타오르고 불똥이 튀고 있다. 이윽고 죽음이 다가와 차갑고도 커다란 날개를 훨훨 치면서 그 불길과 불똥을 휩쓸어 버리리라.     그려면 끝장이다.   그러면 우리 둘 저마다의 가슴속에 불길이 타오르고 불똥이 튀던 모습을 그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결코 짐승과 사람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닌, 서로 함께 눈빛을 주고 받던 사이다.   둘의 똑 같은 눈들, 그 눈들은 서로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짐승과 인간, 이들의 눈에는, 서로 같은 생명이 공포 속에 서로 다가앉아서 의지하며 있다.    (1878년 2월)     멩이 생각 : 참 감동적인 글이다. 집에서 개나 고양이를 길러본 사람들은 이런 느낌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사람과 동물은 생명의 불꽃이 타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하지만 우리 이성은 이런 사실을 쉽게 망각한다. 이 글에서처럼 존재의 신비한 공감 내지 우정을 느끼는 순간 내 삶도 변하리라 생각한다.     ==================== 노인  -투르게네프  어둡고 괴로운 날들이 다가왔다......  자기 자신의 병, 사랑하는 사람들의 질환, 노년의  추위와 어둠...... 그대가 사랑한 것, 그대가 기약 없이  내맡긴 모든 것은 시들어 부셔져갔다. 길은 이미 내리막길.  어떻게 할 것인가? 비통해할 것인가? 서러워할 것인가?  그렇다고 그대는 자기도 남도 구하지는 못하리라.  구부러지고 말라빠진 노목의 나뭇잎은 점점 작아지고  성기어간다-그러나 그 푸르름에는 변함이 없다.  그대도 몸을 오므리고 자기 자신 속으로 자기의 회상  속으로 기어드는 것이 좋다-그러면 저기, 깊이 깊이  가다듬은 마음속 맨 밑바닥에 그대의 옛 생활이, 그대만이  이해할 수 있는 생활이 아직도 생생한 푸르름과 애무와  봄의 힘을 가지고 그대 앞을 비춰주리라.  그러나 조심하시오...... 가련한 노인이여, 희망을 가지지는 마십시오!      ======================== 서정적 마을에서 세상 엿보기  - 연구 /이대의 1. 들어가는 말  투르게네프의 산문시를 읽다보면, 이것을 산문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산문시로 보아야할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이것이 산문시라 하면 산문과 산문시의 경계는 과연 어디까지인지 궁금하게 한다.  그의 산문시에는 우리가 통상 시적 장치라고 하는 상징, 이미지, 아이러니 등은 물론 응축된 서술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산문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 문장들을 살펴  보면 마치 한 편의 수필과도 같은 혹은 꽁트와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글을 어떤 기법 혹은 어떤 의미로 해서 산문시로 보아야 하는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산문과 산문시의 뜻을 살펴보고 산문시로 판단해야할 근거는 어떤 것인지 파악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산문의 반대개념은 시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산문시도 있고, 시적인 산문도 있으니 잘못된 생각이다.  산문의 반대는 운문, 즉 정형의 율격을 판독할 수 있도록 조직된 글이다. 비시적, 비문학적인 글을 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의 산문은 문학적, 시적 성질을 전혀 띠지 않은 산문을 말한다.  산문시는 서정시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또는 모든 특징을 다 가지고 있되 산문의 형태로 인쇄된 시라고 보면 좋다. 산문시가 리듬의 단위를 행에 두지 않고 한 문장, 나아가서는 한 문단에다 두고 있  음을 말한다. 자유시나 정형시는 행 단위의 리듬 구성으로 말미암아 읽기가 다소 늦어지나 산문시에서는 읽기가 거침없이 진행되어 다소 호흡이 가빠진다.  이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을 미루어, 그의 작품을 산문시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리듬의 단위가 행이나 전체 문단에다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특별한 독법 없이 거침없이 읽혀지고  '다소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낀다. 또한 작품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응축된 주제나 상징이 떠오르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그의 문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산문적 관념에 머물지 않으면서 그의 삶 속에 내재해 있는 지적인 사상이나 철학을 시적인 감동으로 전해주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산문시 작품을 중심으로 작품세계를 논의해 보겠다. 투르게네프의 산문시에는 그의 인생관, 조국애, 인도주의, 철학적인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3)고 평가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그의  산문시 작품세계를 분석해 보기로 하겠다.  2. 서정적 마을에서 풍경 그리기  시에 있어서 풍경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한 폭의 산수화를 그리듯 아주 평범한 경치를 묘사하여 독자로 하여금 풍경을 감상하게끔 하는 역할을 하는가 하면, 그 작품의 전반적인 배경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거나 작품의 분위기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전달하고자 하는 기쁨이나 슬픔 그리고 아픔 등을 대신 나타내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풍경은 작품 속에서 적절하게 포착하여 그려  넣어서 작품을 한결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많이 사용한다.  투르게네프의 산문시에는 그림을 그리는 듯한 풍경이 서정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마치 산수화 같은 풍경이다. 집들은 잘 보이지 않고 설령 집들이 있다해도 전원풍의 작은 집들을 그렸다. 거기에는  작품의 주제 의식을 의식해서 그리는 경우가 아니고 단순히 작품 배경이 되는 풍경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합일되어 살아가는 작품들이 많다.  유월의 마지막 날, 천리 사방은 러시아 -- 그리운 고향.  온통 파랗게 물든 하늘, 그 위에 외로이 떠 있는 구름 한 점, 흐르지도 않고 녹아내리지도 않는다. 바람 한 점 없는 따사로움 …… 대기는 갓 짜낸 우유만 같다!  종다리는 지저귀고 비둘기는 가슴을 불룩이며 구구 울고, 제비는 소리도 없이 유유히 날고, 말은 콧바람을 불며 풀을 씹고, 개는 서서 정답게 꼬리만 흔들 뿐 짖지도않는다.  - 중에서  유월의 마지막, 고향 마을풍경이 너무도 서정적이다. 파란 하늘과 구름 한 점 그리고 바람 이 모든것들이 '갓 짜낸 우유만 같다'. 종다리, 비둘기가 울고 제비가 날아다니고 말은 풀을 씹고, 개는 짖지도  않고 꼬리를 흔드는 평화롭고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주변 풍경을 시청각적으로 보여준다.  골짜기를 따라 한쪽에는 아담한 곳간과 문이 굳게 잠긴 조그만 헛간들이 늘어서고, 다른 한쪽에는 판자 지붕을 얹은 소나무 통나무집이 대여섯 채. 지붕마다 찌르레기의 새장이 달린 높다란 장대가 보이고 집집마다 문간 위에는 양철을 오려 만든 갈기를 곤두세운 작은 말이 서 있다. 면이 고르지 않은 유리창은 무지갯빛 반사를 던  지고 덧문에는 꽃다발이 담긴 화병이 그려져 있다.  - 중에서  마치 영화의 장면처럼 카메라 앵글을 멀리에서 가까이 잡은 마을풍경이 묘사되어 있다. 골짜기 한쪽에 집들이 대여섯 채 있고 집집마다의 유리창에 햇빛이 비치는 풍경이 너무도 맑고 투명하다.  그 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평화로우며 맑고 깨끗하다.  둥근 얼굴의 젊은 여인이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고는 젊은이들의 말 때문도 아니고건초 더미 속 애들의 장난 때문도 아닌 영문 모를 웃음을 짓고 있다.  또 다른 젊은 여인은 굳센 두 팔로 물에 젖은 커다란 두레박을 우물에서 끌어올리고 있다……두레박은 밧줄 끝에서 후들후들 떨리고 흔들리며 햇빛에 반짝이는 길다란 물방울을 떨어뜨린다.  내 앞에는 바둑 무늬 새 스커트에 새 가죽신을 신은 노파가 서있다.  - 중에서  젊은이들이 말을 풀어놓고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젊은 여인은 창문에 서서 그 젊은이들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다. 우물가에는 또 다른 젊은 여인들이 물을 긷고 있다. 노파의 모습도  정 많은 이웃집 노인 같은 평온함이 배어 있다.  노파는 아직도 따스한 큰 빵 조각 하나를 왼손 손바닥 위에 얹어놓고 나에게 권한다. 「자, 어서 드시오, 길가는 손님, 몸을 위해서!」  별안간 수탉이 꼬꼬댁 울어대며 부산스럽게 날개를 퍼득이기 시작한다. 거기에 답하여 외양간의 송아지가 하고 길게 목청을 뺀다.  「야아, 정말 멋진 귀리군!」나의 마부 소리가 들린다.  오오, 자유로운 러시아 마을의 만족과 평온과 풍요함이여! 오오, 그 정적, 그 은총이여!  - 중에서  우리 유년의 마을을 연상케 하는 정경이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랬듯 노파가 손님에게 빵한 조각을 건네고, 거기에 수탉이 부산스럽게 퍼득이고 거기에 답하여 송아지가 운다. '자유로운 러시  아 마을의 만족과 평온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마을의 풍경을 산수화 같이 그려주면서 인간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러한 자연의 풍경은 작품 곳곳에 나타나 있다.  알프스의 정상…… 기암절벽의 연봉(連峰)……첩첩 산중의 한복판.  태산 준령 위엔 맑게 갠 연록색의 말없는 하늘. 살을 에는 듯한 추위. 눈부시게 반짝이는 응고된 눈. 그 눈을 뚫고 우뚝 솟은 얼음에 덮이고 비바람에 그을은 준엄한 암괴(巖塊).지평선 양쪽에 우뚝 마주 솟은 두 거봉, 두 거인 - 융프라우와 힌스테라아르호른.  - 중에서  영원 무궁한 알프스의 기암절벽과 두 거봉의 정경이 그대로 와 닿는다. 너무도 커서 인간은 감히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느낌이 든다. '거대한 산들은 잠든다. 맑게 갠 푸른 하늘도 영원히 입을 다문 대지 위에 잠든다.'라고 하여 인간의 존재가 자연에 비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인식시키며 자연의 거대함을 나타내주고 있는가하면  당신은 바닷가에서 늙은 잿빛 바위를 본 적이 있는가? 화창한 봄 날 만조 때, 세찬 파도가 사방에서 밀려들며 그 바위를 때리는 것을 - 밀려와선 때리고 희롱하며, 반짝이는 포말을 진주알처럼 흩뿌리며 이끼 낀 바위를 씻어내리는 것을.  바위는 언제 보나 예전 그 바위 그대로 남아 있다 -  - 중에서  파도가 아무리 밀치고 때려도 바위는 변하지 않는다.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바위는 끄떡없다. 이러한 바위의 모습 혹은 풍경을 통해 흔들림 없는 삶을 나타내 주고 상대적으로 인간의 삶은 보잘 것 없  음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투르게네프의 시속에는 자연의 서정적 풍경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하나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가 하면 자연의 거대함을 통해 인간의 존재가 보잘 것 없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3. 격동기 시대의 세상 엿보기  그의 유년기는 알렉산드르 1세 시대 말기에 해당하고, 그의 청년기는 러시아에서 가장 혹독한 탄압의 시기였던 니콜라이 1세 시대였으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던 장년기는 개혁의 희망과 혁명의 불  안감이 공존하던 알렉산드르 2세대, 그리고 그의 말년은 강력한 반동 정책이 추진되던 알렉산드르 3세 시대에 해당한다. 결국 투르게네프는 유럽과 러시아의 격동기를 몸으로 겪으며 살았다. 그러한 삶  의 배경 때문인지 몰라도 그의 작품을 보면 시대적인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이 배어 있다.  개가 서서히 다가갔다. 그러자 별안간 가까운 나무에서 가슴 털이 검은 참새 한 마리가 개의 바로 콧등 앞에 돌멩이처럼 날아내렸다. 그러고는 온 몸의 털을 험악하게 곤두세우고 필사적이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울어대면서, 허옇게 이빨을 드러내고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개의 입을 향해 두어 번 가량 깡충깡충 뛰어갔다.  어미새는 새끼를 구하기 위해 돌진하는 것이다……그러나 그 조그만 몸뚱이는 온통 공포에 떨고 있었고, 그 가냘픈 목소리는 거칠다 못해 쉬어버렸다. 드디어 어미새는 실신하고 말았다. 자기 몸을 희생한 것이다!  - 중에서  사냥하고 돌아와 길을 걷다가 목격한 장면을 쓴 글이다. 참새가 자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개에게필사적으로 대항하다 실신해버린다. 그 가냘픈 몸뚱이로 거대하게 보이는 개에게 덤벼서 개가 뒷걸음질치게 만들어 새끼를 지켜내는 것을 통해 작가는 '사랑은 공포보다도 더 강하고, 바로 그 사랑에 의해서만 삶은 유지되고 영위되어 나가는 것이다.'고 정의해 버린다. 마지막에 결론을 내리듯 정의해 버려 시의 맛이 사라지긴 하지만 이 글 속에는 강한 모성애를 느낄 수 있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절대권력에 항거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이윽고 새는 날개를 가다듬고, 매한테 쫓기는 비둘기처럼, 먼 곳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간다. 어디 푸르고 아늑한 은신처는 없을까? 잠시 동안이라도 좋으니, 어디 둥지를 틀 만한 곳은 없을까?  - 중에서  은신처가 없는 새는 은신처를 찾아 끝없이 날아간다. 사막을 넘어 바다를 넘어가다 기력이 떨어져 결국 죽고 마는 새를 이야기하며 작가는 자신도 '나도 바다에 떨어질 때가 온 것 아닐까?' 두려워한다.  여기서 매는 권력자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자유를 그리워하는 민중들은 그 권력을 피해 둥지를 찾다  가 결국 죽음에 다다르는 시대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시골 농사꾼의 늙은 과부 집에서, 마을에서도 첫째가는 일꾼인 스무 살 난 외아들이 죽었다.  그 마을의 여지주인 마나님은 노파의 슬픈 소식을 듣고 장례식 날에 과부의 집을 방문했다.  노파는 집에 있었다.  노파는 집 한복판 탁자 앞에 서서 오른손을 규칙적으로 천천히 움직이며(왼손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연기에 그슬린 항아리 바닥으로부터 건더기 없는 양배춧국을 떠서는 한 술 두 술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노파의 얼굴은 핼쑥하게 여위고 까맣게 죽어 있었다. 빨갛게 충혈된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으나……몸만은 교회에 간 것처럼 꼿꼿한 자세로 단정히 서 있었다.  「어쩌면!」하고 마나님은 생각했다.  「이 판국에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다니…… 저 사람들의 감정은 어쩌면 저렇게도 무딜까!」  - 중에서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는 과부가 '건더기도 없는 양배춧국을' 먹고 있는 모습이 가슴 저리게한다. 그 아픔이 '생매장을 당한 거'나 마찬가지인 슬픔 속에서도 양배춧국을 먹는 것은 '그녀에게는 소금처럼 싼 것이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끝 부분에 설명을 빼고 상황만 전달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지만 이를 통해 당시의 경제적인 상황을 나타내주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서민들의 힘겨운 삶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 매 맞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무법적인 사형을 허용해선 안 돼. 자, 도와주러 나가세」  「그러나 살인자를 때리고 있는 건 아니야」  「살인자가 아니라고? 그럼 도둑인가? 어쨌든 마찬가지야, 가서 말리도록 해야지」  「아니, 도둑도 아냐」  「도둑도 아니라고? 그럼 회계산가? 철도 종업원? 군납업자? 러시아의 문예 보호자? 변호사? 온건주의 편집자? 사회 봉사가 나으리?……어쨌든 가서 도와주도록 하세!」  「아니 그렇잖아…… 신문기자가 맞고 있군 그래」  「신문기자? 그럼 우선 차나 마시고 보지」  - 중에서  두 친구가 차를 마시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일방적으로 매를 맞고 있고 있는 상황에서 '매 맞는사람이 누구든 간에' 그를 말려야 한다고 나가려 한다. 그가 도둑이건 살인자이건 혹은 회계사, 철도종  업원, 군납업자, 러시아의 문예보호자, 변호사, 온건주의 편집자, 사회봉사가 나으리 등 누구든 도와주러 나가려다가 신문기자라고 하자 '그럼 우선 차나 마시고 보지' 하고 나가지 않는다. 이는 당시의 저널리즘에 대한 불만을 신문기자를 통해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너의 말도 역시 말이 안 되는 수수께끼란 말인가?  그렇다면 너의 오이디푸스는 어디 있느냐?  아아! 전 러시아의 스핑크스여! 농군 모자를 쓴다고 러시아의 오이디푸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 중에서  '농민을 이해한답시고 곧잘 농민 복장을 하고 다닌 그 당시의 슬라브주의자들을 날카롭게 풍자한'작품이다. 이와 같이 위장된 관료나 혹은 지배자들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러시아의 조국애를  나타내준 작품도 있다.  의혹의 날에도, 조국의 운명을 생각하며 번민하던 날에도 - 그대 혼자만이 나의 지팡이요, 기둥이었노라. 오오, 위대하고도 힘차고 성실하고도 자유로운 러시아어여!  만일 그대가 없었다면, 지금 조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보고 어찌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러나 이러한 말이 위대한 국민에게 주어지지 않았다고 믿을 수는 없지 않을까!  - 전문  러시아어를 짧은 시로 잘 나타낸 작품이다. '그대 혼자만이 나의 지팡이요, 기둥이었노라'고 러시아어가 있어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힘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또한 조국의 절망 속에서도 러시아어가 있  어 조국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와 같이 격동기 시대를 풍자하거나 그 시대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해주는 작품을 살펴보았다.  물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시대적 상황이나 나름대로의 시대적 정의를 작가가 끼어 들어 부연 설명해주는 것이 있어 시의 맛을 덜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또한 시대를 바라보는 것이 냉소적인 요소가  있어 다소 걸리기는 하지만 서사적인 구조를 통해 한 시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4. 휴머니즘의 마을에서 사람과 함께 하기  투르게네프의 작품 (서정적이든 시대적 상황을 풍자하든) 속에 하나로 흐르는 것은 휴머니즘이다.  그는 사람을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단편집에 실린 에 보면 '신기한 산이나, 바위, 폭포 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자연이 사람을 놓아주지 않았거나 방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얼굴, 산 사람의 얼굴, 사람들의 이야기, 움직임, 웃음, 바로 이런 것들이 내겐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 끼어 있노라면, 나는 유달리 홀가분하면서도 즐거운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라고 토로하고 있다. 작가의 간접적인 독백에서 알 수 있듯 자연보다도 사람을 더 좋아했던 그는 작품 속에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많고 또한 그에 따른 고독이 많이 나타난다.  「사랑하고 말고요. 나리. 벌써 아홉 달째가 되지만……도저히 잊혀지지가 않는군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정말이에요! 제 처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요? 젊고 건강했는데!……콜레라가 하루만에 데려가고 만 겁니다」  「말씀 마세요. 나리!」불쌍한 젊은이는 괴롭게 한숨을 내쉬었다.  - 중에서  마부들과 이야기를 나누길 좋아하는 화자는 수심에 차 있는 젊은 마부의 썰매를 타고 가다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부는 사랑하는 색시 마샤가 콜레라에 걸려 하루만에 죽어 슬픔에 잠겨 있었다. 이를 측은하게 여긴 화자는 썰매에서 내릴 때 15코페이카를 덤으로 더 주고 내린다. '그러고는 추운 정월의 잿빛 안개에 쌓인 텅 빈 눈길 위를 어슬렁어슬렁 말을 몰고 갔다.'는 장면을 보면 그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보인다.  노파는 아직도 따스한 큰 빵 조각 하나를 왼손 손바닥 위에 얹어놓고 나에게 권한다. 「자, 어서 드시오, 가는 손님, 몸을 위해서!」  - 중에서  전원적인 마을에서 지나가는 손님을 위해 빵 한 조각을 건내는 노파의 마음이 있는가 하면그 시골 부부는 시고무친의 고아가 된 조카딸을 황폐한 자기 오막살이에 떠맡기로 했다.  「카치카를 떠맡게 되면」하고 농사꾼 마누라가 말했다. 「마지막 한 푼까지 모조리 그 애에게 들어가, 야채 수프에 넣을 소금도 살 수 없을 텐데요……」  「그럼…… 소금 없는 수프를 먹으면 돼잖아」하고 그녀의 남편은 대답했다.  로스차일드도 이 시골 농부를 따르려면 까마득한 것이다!  - 중에서  부자인 로스차일드가 많은 수입금 중 복지 사업에 희사하는 것에 감동을 하지만, 그보다는 가난한 시골 부부가 더 인도주의적임을 나타내주기도 한다. 아이를 맡아 기르면 수프에 소금 넣을 돈도 없으면서 '소금 없는 수프를 먹으면' 된다고 하는 부부의 인정을 통해 복지 사업은 어떠한 정신으로 해야하는 지 간접적으로 말해주기도 한다.  방안에는 우리 둘 - 개와 나, 밖에는 사방 폭풍이 무섭게 울부짖고 있다.  개는 내 앞에 앉아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개를 바라보고 있다.  개는 무슨 말인가를 나에게 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개는 벙어리라 말을 모른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개의 심정을 이해한다.  나는 알고 있다 - 지금 이 순간, 개도 나도 똑같은 감정에 젖어 있다는 것을, 우리 둘 사이에는 어떠한 간격도 없다는 것을. 우리 둘은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  - 중에서  개와 방안에 둘이 앉아 인간과 동물이 하나가 되어 감정을 나누는 혹은 그만큼의 고독을 나타내 주는가 하면  인사를 하는 건지, 비난을 하는 건지 그것조차도 분명치가 않다. 그저 앙상한 앞가슴이 간신히 들먹이고 충혈된 두 눈이 오므라진 동자 위로 온몸을 다해 짜내는 고통스러운 눈물 두 방울이 흘러나왔을 뿐이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친구 옆 의자에 앉아서 - 너무나도 무섭고 처참한 그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내리깔며 역시 그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나는 내 손을 잡은 것이 친구의 손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 중에서  옛 친구인 러시아의 민중시인 네크라소프와 작품을 가지고 논쟁을 하다가 결별하고 지내다 그가 죽음에 임박해 만나 화해하는 내용이다. 그동안 불편했던 앙금도 죽음이 화해를 시켰다는 것으로 끝맺  음을 하는 것으로 인간관계를 하나의 교훈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거지는 기다리고 있다……나에게 내민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리고 있다.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을 몰라, 나는 힘없이 떨고 있는 그 더러운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용서하시오, 형제, 아무것도 가진 게 없구려」  거지는 충혈된 두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  란 미소가 스쳤다 - 그리고 그는 자기대로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다.  「괜찮습니다. 형제여」하고 그는 속삭였다.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깨달았다. - 나도 이 형제에게서 적선을 받았다는 것을.  - 중에서  거리를 걷고 있다가 늙고 초라한 거지가 동냥을 청하여 도와 주려고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그 거지의 더러운 손을 덥석 움켜잡는다. 거지는 자기 나름대로 손을 잡고 그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이 불쌍한 거지와의 관계를 통해 본인도 적선을 받았다는 따스한 작품이다.  이와 같이 빈부격차나 계급과 관계없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마음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일으키게 한다.  5. 맺음말  지금까지 투르게네프 산문시를 살펴보았다. 그의 산문시는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정밀묘사를 함으로써 시의 의미전달에 장애가 되는 요소가 있고, 또한 산문적인 요소가배어 있으며 말하고자 하는 사상이나 철학 그리고 상황들을 지나치게 정의해줌으로써 시의 맛이 덜하  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서정적 풍경을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그 당시의 시대적인 삶보다는 평화롭고 고요한 아름다움만 그려주어 작품의 무게가 덜해 보이는 듯 하다.  그러나 그의 예술적 향기와 섬세한 감각 그리고 예리한 관찰력은 매우 뛰어나다.  시적 표현이 일반적 서술과 다른 점은 진실성의 문제와도 깊숙히 관련되어 있다고 볼 때 그의 작품은 진실성이 돋보인다. 물론 당시의 삶을 풍자하고 시대적 상황을 묘사해 주는데는 냉소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그의 진실성은 살아 있다고 본다.  그의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는 휴머니즘은 당시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도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인도주의적 혹은 도덕적인 정신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따스한 마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일으키게 요소도 있다. 그러나 그 휴머니즘 조차도 시대의 복판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약간은 비켜간 서정의 마을에서 세상을 엿보고 있  는 듯한 인상이 든다.  그러한 작품의 배경 속에 있음에도 그의 산문시에는 말년의 그의 인생관이 담겨져 있고 격동기 시대를 비판하면서도 조국애가 담겨 있으며 어렵고 고된 삶 속에서도 그의 인도주의적 철학사상이 담겨  있다.  ======================   Корреспондент -Иван Сергеевич Тургенев 신문기자 -이반 세르게이비치 투르게네프   двое друзей сидят за столом и пьют чай. 두 친구가 책상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внезапный шум поднялся на улице. Слышны жалобные стоны, ярые ругательства, взрывы злорадного смеха. 그 때, 갑자기 거리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애처로운 신음소리, 심한 욕설, 그리고 악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Кого-то бьют, - заметил один из друзей, выглянув из окна. "누가 매를 맞고 있군" 한 친구가 창문을 내다보고 이렇게 말했다.   -Преступника? убийцу? - спросил другой. -Слушай, кто бы он ни был, нельзя допустить бессудную расправу. Пойдем заступимся  за него. "죄인이야? 아니면 살인자인가?" 다른 친구가 말했다. "저 사람이 누구든 정당한 재판도 없이 저렇게 사람을 맞게 둘 수는 없어. 도와주러 가자."   -Да это бьют не убийцу. "살인자를 때리고 있는 건 아니야."   -Не убийцу? так вора? Все равно, пойдем отнимем его у толпы. "살인자가 아니라고? 그럼 도둑이야? 아니, 어쨋든 저 무리에서 저 사람을 빼내주자."   -И не вора. "도둑도 아니야."   -Не вора? Так кассира, железнодорожника, военного поставщика, российского мецената, адвоката, благонамеренного редактора, общественного жертвователя?... Все-таки пойдем поможем ему! "도둑이 아니라구? 그럼 계산원이야? 철도청 직원? 군납업자? 러시아 문예 보호자? 변호사? 온건주의 편집자? 사회봉사자? 누구라도 좋으니 나가서 도와주자!"   -Нет... Это бьют корреспондента. "아니... 맞고 있는 사람은 신문기자야."   -Корреспондента? Ну, знаешь что : допьем сперва стакан чаю. "신문기자라구? 그러면.. 우선 차부터 다 마시고 생각하는게 좋겠어."   (Июль, 1878) (1878년 7월)     ㆍвнеза́пный : 갑작스러운, 돌연의 ㆍжа́лобный : 애처로운, 괴로워하는 ㆍстон : 신음 ㆍя́рый : 강렬한, 맹렬한, 타오르는 듯한 ㆍзлора́дный : 사악하게 즐거워하는 ㆍпресту́пник : 죄인 ㆍуби́йца : 살인자 ㆍдопуска́ть - допусти́ть : кого-что 허락하다, 허가하다 ㆍбессу́дный : 재판에 의하지 않은 ㆍзаступа́ться - заступи́ться : 편들다, 두둔하다 ㆍотнима́ть - отня́ть : 빼앗다, 가로채다 ㆍвор : 도둑 ㆍреда́ктор : 편집자 ㆍсперва́ : 우선, 먼저 ========================///     Два богача -Иван Сергеевич Тургенев 두 부자 -이반 세르게이비치 투르게네프   Когда при мне превозносят богача Ротшильда, который их громадных своих доходов уделяет целые тысячи на воспитание детей, на лечение больных, на призрение старых - я хвалю и умиляюсь. 부호 로스차일드가 그의 막대한 재산을 아이들의 양육, 병자들의 치료, 늙은이들의 보살핌에 썼다고 칭찬한다면 나도 그에 감동받고 칭찬하게 된다.   но, и хваля и умиляясь, не могу я не вспомнить об одном убогом крестьянском семействе, принявшем сироту племянницу в свой разорённый домишко. 하지만 감명받고 칭찬하면서도 나는 고아가 된 조카딸을 자신의 집에서 키우기로 한 가난한 부부 농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Возьмём мы Катьку, - говорила баба, - последние наши гроши на неё пойду, - не на что будет соли добыть, похлёбку посолить... 카치카를 키우게 되면, 우리의 얼마 남지 않은 돈이 모두 그 애에게 들어갈 것이고 수프에 소금을 치지도 못하게 될 거에요 - 아내가 말했다   - А мы её... и не солёную, - ответил мужик, её муж.   Далеко Ротшильду до этого мужика! (Июль, 1878) 그럼 싱거운 수프를 먹으면 되겠지 - 그녀의 남편이 말했다. 이 가난한 농부에 비하면 로스차일드는 한참 멀었다! (1878년 6월)     ㆍбога́ч : 부자 ㆍпревозноси́ть - превознести́  : 높이 평가하다, 칭찬하다 ㆍгрома́дный : 거대한, 막대한 ㆍдохо́д : 수입, 이득  (чистый доход : 순이익) ㆍлече́ние : 치료 ㆍпризре́ние : 보살핌, 돌봄   (презрение는 냉소, 경멸, 하대의 느낌이지만 발음이 비슷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ㆍхвали́ть - похвали́ть : 칭찬하다 ㆍумиля́ться -  умили́ться : 감동하다, 감명받다 ㆍубо́гий : 가난한, 불쌍한 (бедный) ㆍсирота́ : 고아 ㆍразорённый : 멸망한, 폭삭 망한 ㆍбаба : 시골여성, 부인 ㆍгрош : 반코페이카, 1/100루블 ㆍпохлёбка - 수프, 죽 ㆍсоли́ть - посоли́ть : 소금을 치다, 간을 하다 ==========================/// 투르게네프의 사랑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중에서                            Иван Тургенев — Когда меня не будет                             언젠가 내가 없을 때,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한줌의 재로 변해 부서져 내릴 적에, 나의 당신이여, 나의 유일한 친구여, 내가 그렇게 깊게 그렇게 곱게 사랑하였던 당신이여 당신은 아마도 나보다 더 오래 살겠죠. 그렇지만 내 무덤에 오진 마시오. 당신한테는 거기서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어요.   나를 잊지는 마오...그렇지만 일상의 일, 만족, 걱정 속에서 나를 떠올리지도 마오. 나는 당신의 삶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요. 편안한 삶의 흐름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소. 하지만, 외로운 순간이 혹여 찾아오거든, 부끄럽고 이유 없는 슬픔이 당신을 찾아오거든,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흔히 그럴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사랑했던 책을 한 권 빼들고서, 그 페이지들을 찾아요. 그 구절, 그 단어들, 기억나나요? 우리 둘이 약속이나 한 듯 달고 말없는 눈물을 흘리던 그 구절들...   그 대목을 읽어요, 눈을 감고서... 그리고 내게 손을 뻗어요. 그 자리에 없는 친구에게 당신의 손을 뻗어요.   나는 내 손으로 당신을 쥘 수는 없을 겁니다. 내 손은 땅 밑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놓여 있겠지요. 그러나 당신이 혹시 당신의 손에 가벼운 건드림을 느낄지 모른다는 생각만 해도, 나는 기쁩니다.   그리고, 내 모습이 당신 앞에 서겠지요. 그러면, 당신의 감은 쌍꺼풀 밑으로 눈물이 흐르겠죠. 아름다움에 취한 우리들이 언젠가 둘이서 흘렸던 그 눈물이... ​ 오, 당신, 나의 유일한 친구여!  내가 그렇게 깊게 그렇게 곱게 사랑하였던 당신!       Когда меня не будет, когда всё, что было мною, рассыплется прахом, — о ты, мой единственный друг, о ты, которую я любил так глубоко и так нежно, ты, которая наверно переживешь меня, — не ходи на мою могилу… Тебе там делать нечего.   Не забывай меня… но и не вспоминай обо мне среди ежедневных забот, удовольствий и нужд… Я не хочу мешать твоей жизни, не хочу затруднять ее спокойное течение.   Но в часы уединения, когда найдет на тебя та застенчивая и беспричинная грусть, столь знакомая добрым сердцам, возьми одну из наших любимых книг и отыщи в ней те страницы, те строки, те слова, от которых, бывало, — помнишь? — у нас обоих разом выступали сладкие и безмолвные слезы.   Прочти, закрой глаза и протяни мне руку… Отсутствующему другу протяни руку твою.   Я не буду в состоянии пожать ее моей рукой — она будет лежать неподвижно под землею… но мне теперь отрадно думать, что, быть может, ты на твоей руке почувствуешь легкое прикосновение.   И образ мой предстанет тебе — и из-под закрытых век твоих глаз польются слезы, подобные тем слезам, которые мы, умиленные Красотою, проливали некогда с тобою вдвоем, о ты, мой единственный друг, о ты, которую я любил так глубоко и так нежно! ​ ​ ​ ​ 이반 투르게네프는 1874년 파리 근교의 부지발에 러시아식의 작은 저택을 하나 샀다. 평생의 유일한 연인 빨리나 비아르도가 사는 빌라 맞은 편이었다. 임종의 고통 속에서 투르게네프는 발코니가 딸린 이 집의 이층 방에서 1883년 9월 3일 숨을 거두었다. 이 작은 집은 그의 유명한 여러 산문시를 탄생시킨 장소이다. ​ ​    
2    [록색평화주의者] - "리산가족상봉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3660  추천:0  2018-08-22
이산가족 5만 명.. '100명씩 상봉'에 언제 다? 고은희  2018.08.22.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앵커] 다시 만날 기약이 없기에, 오늘(22일)의 이별은 어쩌면 70여년 전 헤어지던 그 날보다 더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생사조차 모른 채 상봉의 날만 기다리고 있는 이산가족이 수만명인데, 한 번에 100명씩 만나는 이런 방식으로는 이 비극을 멈출 수 없습니다. 고은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울지 말자던 오누이의 약속은 부질 없어져 버리고, [김순옥/81/남측 오빠 상봉 : "세월이야 가보라지~"] 칠순을 넘긴 딸들은 백세를 앞둔 엄마에게 다시 만나자 합니다. [김경영/71/남측 어머니 상봉 : "우리 또 만나자요, 어머니. 오래 사십시오 어머니. 아프지 마십시오."] ["다시 꼭 만납시다."] 내 아들 상철이, 이금섬 할머니가 이렇게 아들을 다시 부를 수 있을까요? [이금섬/92/북측 아들 상봉 : "(아들이) 백살 살래! 백살 살면 한 번 만난대. 어떻게 백살을 살아."] 1년에 한 두번 100명씩 만나는 현 방식대로라면, 오늘 이 가족들이 앞으로 백년을 더 살아도 다시 만나는 건 불가능합니다. 현재 상봉 신청자 가운데 생존자만 5만 6천여명. 죽기 전 한번 만이라도 만나서, 이처럼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이산가족들은 더 필사적입니다. 이번 상봉기간 CNN과 르몽드 등 주요 외신들은 이 기가막힌 한반도의 비극을 톱뉴스로 다뤘습니다. [파울라 핸콕스/CNN 기자 : "북한에서 아주 가슴 찡한 장면들을 보셨을 겁니다."] 벌써 21차례 이산상봉, 모레(24일)부터는 2차 상봉단이 금강산을 찾게 되지만, 만남의 기쁨과 동시에, 오늘(22일)처럼 이별의 아픔 역시 찾아올 것입니다. KBS 뉴스 고은희입니다. ==================== “상철이야, 상철이 맞아, 상철이 맞니?” “어머니!”   4살 아들은 70대 노인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피난길에 놓쳐버린 아들과 67년만에 상봉한 이금섬(92·여)씨. 그는 테이블에 앉아있는 아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온몸으로 끌어안았습니다.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뜻일까요. 두 사람은 맞잡은 서로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제21차 남북이산가족상봉행사는 오는 26일까지 열립니다. 남측 방문단은 총 89명입니다. 이씨처럼 부모와 자식 간 상봉은 7가족에 불과합니다. 사촌이나 조카 등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친척을 만나는 이산 가족들이 대다수죠. 3촌 이상 가족을 만나는 이들이 42명(45.2%)으로 가장 많습니다.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산가족 생존자 중 연간 4000명 정도가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에서 90세 이상이 37.1%(33명)이고, 80~89세는 49.4%(44명) 등으로 80세 이상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70~79세는 13.5%(12명)입니다. 현재 대면 상봉 규모는 한 회에 불과 100명. 지난 2017년 기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2603명 가운데 생존자는 5만7059명입니다. 연간 100명씩 대면 상봉을 한다면 57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마저도 북한이 이산가족 자료 미비, 추적의 어려움을 들어 상봉 규모 확대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또 상봉 행사가 정치적 상황에 민감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지난 2015년 10월 20차 남북 이산가족상봉이 열렸으나 이듬해 1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상봉 행사가 2년 10개월 동안 끊겼습니다. 이산가족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을 계속해야 했죠.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 확인이라도 하고 편지를 주고받고 싶은 마음. 이산가족들의 바람은 크지 않습니다. 상봉 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북측 가족의 소식을 듣는 이는 많지 않죠.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대다수는 애만 태우고 있습니다. 암암리에 중국과 일본 등 브로커들을 통해 서신교환을 하는 방법을 찾아도 문제입니다. 수수료가 들어가는 데다 헤어진 가족이 맞는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꼭 만날 날이 오겠지. 정말 꿈같다. 잘 있거라” 장사인(78)씨가 지난 2008년 중국을 거쳐 형에게서 받은 편지입니다. 장씨 형은 6.25 전쟁 당시 국군포로로 납북됐습니다. 수백번 곱씹어 봤을 편지. 죽은 줄만 알았던 형의 육필(肉筆)에 장씨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형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기도 했죠. 그러나 두 사람은 끝내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난 2013년 장씨는 형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 걸까요. 이산가족 상봉 행사 정례화 또는 화상상봉, 서신교환을 늘리는 등 방법은 여러가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남과 북의 담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정진용 기자 ================   "내 핏줄 아니다" 상봉 자리 박차고 일어난 할아버지 YTN  2018.08.22.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납북자 가족 중에 하나인 85살 이재일 할아버지 가족의 사연입니다. 이재일 할아버지는 동생인 76살 이재환 할아버지와 함께 금강산에 왔습니다. 첫 단체 상봉에서 1997년에 이미 숨진 북측의 형 대신 조카인 53살 리경숙 씨와 50살 리성호 씨를 처음으로 만났는데요. 상봉이 이뤄진 지 10분쯤 지났을 때 이재환 할아버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조카들이 아버지의 나이와 사망 시점도 모르고 있었다며 가족이 아닌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결국 북측 보장성원들이 호적까지 찾아와서 확인을 시켜줬고, 이후 상봉 행사에서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이 할아버지는 끝내 의심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반면, 형 재일 씨는 조카들이 혈육이 맞다고 수긍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해집니다. 대한 적십자사 관계자는 촌수가 먼 가족들이 생전에 처음 만나다 보면 핏줄이 맞는지 반신반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습니다. =====================///   [이산가족상봉] 차창에 손맞댄 눈물의 이별.. "건강하세요" 입력 2018.08.22.  자동요약   SNS 공유하기   음성 기사 듣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글씨크기 조절하기   차창 두드리며 마지막 인사..손바닥에 "장수하세요" 글씨 이산가족 상봉단, 2박3일 일정 마치고 南으로 귀환 헤어짐에 눈물 흘리는 모녀 (금강산=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 날인 22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을 마친 남측의 한신자(99) 할머니가 북측의 딸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  (금강산·서울=연합뉴스) 공동취재단 이정진 기자 =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또다시 긴 이별을 감내해야 할 이산가족들은 언제 다시 볼지 모를 가족들과 눈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2박 3일간의 상봉행사가 모두 끝난 뒤 22일 오후 1시께 남측 이산가족들이 귀환 버스에 올라타자 북측 가족들은 마지막이 될지 모를 가족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자 버스 창문에 줄지어 섰다. 한신자(99) 할머니의 북측 딸 김경영(71) 씨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자 "(버스) 몇 번, 몇 번이에요"라고 외치며 한복 치마를 발목 위까지 걷어 올리고 다급히 뛰어나왔다. 한신자 할머니도 딸들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창문을 두드리며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마침내 딸이 도착하자 모녀는 서로 창문을 격하게 두드리며 "아이고. 아이고" 울음을 터트렸다. 김경영 씨는 결국 "어머니, 어머니, 건강하시라요"라며 오열했다. 김경영 씨의 언니 김경실(72) 씨도 곧 도착해 버스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어머니. 어머니"라고 통곡했다. 한신자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선 채로 창문을 두드리며 "울지 마라"고 다독였지만, 자신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창문이 열리지 않아 입 모양으로 대화할 수밖에 없어 아픔을 더했다. 북측 딸들의 키보다 버스 창문이 높자 남북 양측의 관계자들이 할머니들을 안아 올려 모녀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손바닥을 마주할 수 있었다. 북측 딸들은 출발하는 버스를 계속 따라가려다 북측 관계자들의 제지를 받고서야 걸음을 멈췄지만, 오열은 계속됐다. 슬픔 속 이별 (금강산=연합뉴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날인 22일 오후 작별상봉 및 공동중식을 마친 후 북측 이산가족상봉단이 버스에 오른 남측 가족들을 향해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2018.8.22 [뉴스통신취재단]  최동규(84) 할아버지의 북측 조카 박춘화(58) 씨도 버스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이렇게 헤어져야 하나. 이렇게 기막힌 게 어딨니. 통일되면 이런 거 안 하잖아. 이게 뭐야 이게!"라며 울부짖었다. 고호준(77) 할아버지는 북측 가족과 차창에 손을 맞대며 오열하다 차문이 잠시 열리자 잠시 내려 북측 조카를 부둥켜안았다. 고호준 할아버지가 "어이구 자슥아. 어떻게 떠나니. 떼어놓고 가려니 발이 안떨어진다"고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북측 조카는 "삼촌. 울면 안 됩니다. 통일이 되면 건강하게 다시 만납시다"라며 울면서 위로했다. 권석(93) 할머니의 북측 손자 리철(61) 씨는 손가락으로 버스 창문에 '조국통일'이라고 쓴 뒤 손을 흔들었고, 차 안에 있던 남측 가족들은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려 보였다. 김병오(88) 할아버지도 버스 밖 북측 여동생 김순옥(81)을 향해 하트를 그렸고 여동생도 하트로 화답했다. 이관주(93) 할아버지의 조카 리광필(61) 씨는 창문에 막혀 소리가 들리지 않자 손바닥에 볼펜으로 "장수하세요"라고 써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관주 할아버지는 울다 끝내 선글라스로 눈을 감췄다. 남측 이산가족을 태운 버스는 오후 1시28분께 금강산을 출발, 오후 3시15분께 동해선 육로를 통해 귀환했다. 멈추지 않는 눈물 (금강산=연합뉴스)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인 22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 및 공동중식을 마친 후 버스에 오른 남측 가족들이 북측 가족들과 인사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통신취재단]   
1    윤동주 시 리해돕기와 투르게네프 댓글:  조회:3470  추천:0  2018-08-22
  출생 1818. 11. 9(구력 10. 28), 러시아 오룔 사망 1883. 9. 3(구력 8. 22), 파리 근처 부지발 국적 러시아 요약 투르게네프는 당시 유럽적 시각과 정서를 가진 유일한 러시아 작가였다. 대표작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을 남겼다. 에서는 완전히 다른 정치적·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구세대와 신세대간의 갈등을 다루었고, 사랑 이야기와 인물에 대한 예리한 심리묘사를 통해 보편적인 호소력을 부여했다. 목차 개요 초기생애와 작품 전원생활 스케치 초기소설 고립과 명성 평가 투르게네프(Ivan Sergeyevich Turgenev) 1874년 투르게네프의 초상화 ⓒ Ilya Repin/위키피디아 | Public Domain 개요 대표작으로 〈사냥꾼의 수기 Zapiski okhotnika〉(1852)·〈루딘 Rudin〉(1856)·〈귀족의 보금자리 Home of the Gentry〉(1859)·〈전야 Nakanune〉(1860)·〈아버지와 아들 Otsi i deti〉(1862) 등을 남겼다. 1856년부터는 주로 독일과 프랑스에 살았다. 초기생애와 작품 투르게네프는 퇴역 기병장교인 아버지 세르게이 투르게네프와 스파스코예루토비노보에 방대한 영지를 소유한 어머니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1834년에 죽어 어머니만큼 그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러나 훗날 그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애틋하게 되새기기도 했는데, 그의 유명한 단편소설 〈첫사랑 Pervaya lyubor〉(1860)에 나오는 아버지의 초상에서 가장 힘있게 구현되어 있다. 그의 소년기와 청년기를 지배했던 위압적인 어머니의 모습은 그의 주요소설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여주인공의 원형은 아니지만 하나의 보기를 제시했다. 전제적 기질을 지닌 어머니는 아들의 삶과 스파스코예 영지를 똑같이 마음내키는 대로 지배했다. 스파스코예는 어린 투르게네프에게 러시아의 시골 한가운데 떠 있는 젠트리 계층의 문명의 섬이자 노예나 다름 없는 농민들의 상황에 내재하는 불의의 상징이라는 2가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또 스파스코예는 전원성의 원천으로서 훗날 그의 주요작품의 맥락을 이루었으며 문명이란 인간의 정신과 같이 근본적으로 고립되어 있으면서 외부의 암흑으로부터 영원히 위협받는 어떤 것이라는 그의 문명관의 틀을 이루었다. 그는 사회제도에 대해 끊임 없는 적의를 품었는데, 이것이 그의 자유주의의 원천이었으며 민중성원으로서 인텔리겐치아가 조국의 사회적·정치적 개선을 위해 헌신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투르게네프는 스스로 인정했다시피 유럽적 시각과 정서를 가진 유일한 러시아 작가로 성장했다. 비록 그는 가정과 모스크바의 학교들, 그리고 모스크바대학교와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스스로 자신의 교육은 1838~41년 베를린대학교에 다니며 '독일의 바다'에 빠져 있던 시기에 주로 이루어졌다고 여겼다. 또한 베를린에서 반(反)마르크스주의 혁명가 미하일 바쿠닌을 비롯한 동시대의 지도적 인물을 만났다. 이들을 통해 혁명 사상의 발판인 G. W. F. 헤겔의 철학에 관심이 싹텄으며, 그 역시 러시아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삶과 재능을 바치리라는 이상에 불타게 되었다. 그는 서유럽의 우월성을 굳게 믿고 러시아는 서구화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하며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영국의 시인 바이런의 문체를 본뜬 시극(詩劇) 〈스테노 Steno〉(1834)와 파생적 운문을 썼으나 처음으로 비평가들의 관심을 끈 작품은 1843년 출판된 장시 〈파라샤 Parasha〉였다. 투르게네프의 작품에서 사랑 이야기가 가장 흔하게 등장하고, 1843년 처음 만난 유명한 여가수 폴린 비아르도를 향한 사랑이 그의 전생애를 지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단한 열정을 지닌 사람은 아니었다. 비아르도 부인과의 관계는 유럽에 대한 그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대개는 정신적 사랑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몇몇 그의 편지는 종종 그의 여느 작품 못지않은 뛰어난 관찰력과 교묘한 표현으로 그 이상의 친밀함이 있었을 것이라고 시사한다. 그럼에도 이 편지들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투르게네프는 상냥하고 헌신적인 숭배자였으며 이 역할에 만족했음을 보여준다. 그에게는 스파스코예 영지의 한 농부 아낙네와의 사이에서 1842년에 태어난 딸이 있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나중에 비아르도 부인에게 이 아이의 양육을 맡겼다. 1840년대에 투르게네프는 〈대화 Razgover〉·〈안드레이 Andrey〉·〈지주 Pomeshchik〉 등 좀더 긴 시와 몇 편의 비평을 썼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에 교수 자리를 얻는 데 실패하고 관직도 포기한 뒤 짤막한 산문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들이 그 세대의 전형인 '의지가 박약한 지식인'에 관한 연구이며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잉여인간의 수기 The Diary of a Superfluous Man〉(1850)이다. 여기에서 그는 러시아 문학 전반과 또 그의 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 의지가 약한 지식인 주인공들에게 '잉여인간'이라는 통칭을 붙여주었다. 동시에 그는 희곡 집필도 시작했는데 러시아의 대가인 니콜라이 고골리를 모방한 것이 분명한 〈가난한 신사 Bedny Dzhentlmen〉(1848) 등의 작품을 썼다. 이 가운데 〈독신 남자 Kholostoy〉(1849)만 당시에 상연된 단 1편의 작품이며 다른 작품은 당국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은 실을 훌륭히 뽑아낼 수 있다 One May Spin a Thread Too Finely〉(1848) 같은 작품에서는 더욱 가까이에서 등장인물을 통찰하는 재능을 보여주었으며 결국 걸작 드라마 〈시골에서의 1개월 Mesyats v derevne〉(1855)에서 섬세한 심리적 통찰력을 과시했다. 이 작품은 1872년에 직업배우들에 의해 공연되었다. 1898년 안톤 체호프의 희곡이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이후 러시아 극단에서는 전례 없이, 비평가와 관객들이 투르게네프의 이 작품이 더 큰 성공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 작품은 1909년에 위대한 연출자 콘스탄틴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지휘로 바로 이 극장에서 공연됨으로써 러시아 희곡의 대표작 중 하나임이 증명되었다. 전원생활 스케치 투르게네프는 1847년 외국 여행길에 오르기 전에 문학잡지 〈소브레멘니크 Sovremennik〉 편집실에 단편 습작 〈호르와 칼리니치 Khor i Kalinych〉 원고를 두고 떠났다. 오룔 지방에 사냥여행을 떠났다가 만난 두 농부의 이야기를 다룬 이 글은 〈사냥꾼의 수기 중에서〉라는 부제를 달고 출판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사냥꾼의 수기〉 연작이 탄생했고 1852년 출판되었다. 작품의 대부분은 작가의 체험을 기반으로 시골 영지 생활의 단편들, 농노를 소유한 러시아 젠트리 계층이 펼치는 일화와 다양한 지주의 초상을 묘사한다. 〈소브레멘니크〉에 여러 가지 제목으로 따로 발표되었던 작품들이 〈사냥꾼의 수기〉로 한데 묶여 처음 출판되자 투르게네프는 체포당했고 1개월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억류되어 있다가 스파스코예로 강제 이송되어 18개월간 칩거했다. 이러한 조처의 명목상 이유는 그가 검열 규정을 어기고 고골리의 사망기사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냥꾼의 수기〉에 나타난 농노제에 관한 그의 비판적 견해, 그것도 어떤 도덕적 규범에 의해 어조가 약화되어 단지 농민들에 대한 지주의 잔혹함을 다룰 때만 드러낸 견해만으로도 그의 예술이 이와 같이 일시적으로 고난받을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초기소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억류당한 기간동안 농노제의 잔인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무무 Mumu〉 등의 작품을 썼으나 점차로 〈야코프 파신코프 Yakov Pasynkov〉(1855)처럼 집중적으로 등장인물을 분석하고 〈파우스트 Faust〉나 〈편지 A Correspondence〉(1856) 등에서처럼 비뚤어진 사랑을 섬세하게 또는 염세적으로 고찰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시대적·민족적인 문제가 그를 짓눌렀다. 크림 전쟁(1854~56)에서 러시아가 패하자 투르게네프의 세대, 즉 '40년대 사람들'은 이미 과거에 속한 사람들이 되었다. 1850년대에 발표한 2편의 장편소설 〈루딘〉과 〈귀족의 보금자리〉는 이 10년 전 세대의 특징인 나약함과 무력함에 대한 아이러니컬한 향수에 젖어 있다.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를 다룬 연대기 작가로서 그의 객관성은 이 초기 소설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그는 크림 전쟁 후 대두한 급진적인 젊은 세대 사상의 일부 경향에 동조하지 않았을지라도 이들 신세대 남녀의 긍정적인 열망을 신중하고 솔직하게 묘사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젊은 세대를 이끈 급진적 비평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와 니콜라이 도브롤류보프 등은 그에 대해 대체로 냉담한 태도를 보였으며 때로는 매우 적대적이었다. 어느 정도 방종한 기질을 지닌 그는 이 젊은 동시대인들의 강력한 도전을 받았다. 그는 체르니셰프스키가 공격했던 유형의 주인공들의 잘못을 강조하는 대신 단편소설 〈아샤 Asya〉(1858)를 출발점으로 삼아 그들의 젊은 혈기와 윤리의식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들 속성은 투르게네프가 공감할 수 없는 혁명성을 내포하고 있었는데, 그의 자유주의는 점진적 변화를 수용할 수 있었으나 그보다 급진적인 어떤 것도 반대했으며 특히 농민봉기 사상을 거부했다. 장편소설 〈전야〉는 크림 전쟁 전야에 젊은 인텔리겐치아가 당면한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1861년 농노해방이 선포되기 이전 러시아에 닥칠 변화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그의 염세주의가 뚜렷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비아르도 부인과 그 남편과의 비정상적인 관계에서 비롯된 듯하나 그의 자신감의 결여로 더욱 심해진 것이 확실하다. 1859년 체르니셰프스키가 런던을 방문해 자유주의적 지도자이며 투르게네프의 친구인 알렉산드르 게르첸을 만난 것을 계기로 러시아 인텔리겐치아 구세대와 신세대의 대립은 노골화되었다. 투르게네프 세대의 자유주의와 젊은 인텔리겐치아들의 혁명적 열망 사이에 진정한 화해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투르게네프는 이러한 불화에 자신도 개인적으로 연루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러한 연루 의식에서 나온 소설이 탁월한 균형감각과 깊이를 가지고 두 세대를 분열시킨 쟁점들을 성공적으로 묘사한 그의 최대 걸작 〈아버지와 아들〉이다. 주인공 바자로프는 투르게네프가 창조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연과학의 법칙을 제외한 모든 법칙을 부정하고 투박하면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견해를 말하는 허무주의자이지만 사랑에 쉽게 흔들리고 이때문에 불행해진다. 사회적·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주인공은 평민 출신의 혁명적 인텔리겐치아가 투르게네프가 속한 젠트리 계층 인텔리겐치아에 대해 거두게 될 승리를 상징한다. 예술적 관점에서 바자로프는 객관적 인물묘사의 성공적인 보기인 동시에 강렬한 죽음을 통해 비극적 인물상에 접근했다. 전체적으로 이 소설의 기적은 투르게네프가 개인적으로 바자로프의 반(反)유미주의를 혐오했음에도 매우 능숙하게 주제를 다루었으며, 모든 등장인물에게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부여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처음 발표되자 급진적인 젊은 세대는 자신들에 대한 중상이라며 신랄하게 공격했고 보수적인 세대들은 허무주의를 폭로하는 데 관대하다고 비난했다. 고립과 명성 자신의 문학적 명성에 대해 민감했던 투르게네프는 거의 한 목소리로 터져나오는 비판의 소리에 상심하고 러시아를 떠났다. 그는 은퇴한 비아르도 부인이 휴양중인 남부 독일의 바덴바덴에 정착했다. 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와의 언쟁과 러시아 문단과의 전면적인 결별로 그는 망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을 거부한 러시아에 대한 심정은 〈망령 Prizraki〉(1864)·〈이제 그만 Dovolno〉(1865) 같은 단편소설에서 엿볼 수 있다. 바덴바덴을 배경으로 이 시기에 쓴 유일한 장편소설 〈연기 Dym〉(1867)는 적의를 띤 어조로 좌익과 우익 인텔리겐치아들을 풍자적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1870~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발발하자 비아르도 부부는 바덴바덴을 떠나야 했고 투르게네프도 그들을 따라 런던을 거쳐 파리로 갔다. 이와 함께 그의 관점에도 새로운 방향전환이 일어났다. 한때 열렬한 독일 예찬자였던 그가 한층 냉정해지고 비탄에 잠긴 것이다. 이제 그는 1870년대 파리에서 러시아의 명예 외교사절 몫을 하게 되었다. 조르주 상드, 귀스타브 플로베르, 공쿠르 형제, 그리고 젊은 에밀 졸라, 헨리 제임스 등 많은 문인들과 편지를 나누고 친목을 도모했다. 그는 1878년 파리 국제문인대회에서 부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879년에는 옥스퍼드대학교 명예학위를 받았다. 러시아에서도 연례 방문중에 환대를 받았다. 과거에 대한 향수를 모은 이 마지막 시기의 작품들 중 〈광야의 리어 왕 Stepnoy Korol Lir〉(1870)·〈봄의 급류 Veshnie Vody〉(1872)·〈푸닌과 바부린 Punin i Baburin〉(1874) 등의 아름다운 단편에는 이 향수가 잘 나타나 있으며, 그뒤에 발표한 〈승리한 사랑의 노래 Pesn torzhestbuyroshchey lyubvi〉(1881)·〈클라라 밀리치 Klara Milich〉(1883)는 환상에 가까운 등장인물을 내세운 단편이다. 마지막 장편소설 〈처녀지 Nov〉(1877)는 자신의 문학적 명성을 되찾기 위해 젊은 세대의 관점에서 쓴 작품이다. 이 소설은 러시아 농민이라는 처녀지에 혁명의 씨앗을 뿌리기를 바라는 희생적인 젊은 나로드니키의 헌신을 그리고자 한 것으로, 전쟁의 시사성을 다루려고 노력한 사실주의적 작품이지만 그의 장편소설 중 가장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최후의 주요작품 〈산문시 Poems in Prose〉는 명상적 감성과 러시아어에 대한 유명한 송가가 주목할 만하다. 평가 투르게네프의 작품은 정밀하게 계산된 과장의 억제, 균형, 예술적 가치에 대한 고려 등으로 동시대 가장 유명한 대가들의 작품과 뚜렷이 구분된다. 그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모두 시사적이며 의식이 있는 작품으로서 고상한 사랑 이야기와 등장인물의 예리한 심리묘사 등으로 보편적 호소력을 지닌다. 그 자신 역시 아주 매력적이고 재치있으며 정직한 문인이었다. 그의 명성은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에 가려 덜 빛났을지는 모르지만 명석하고 도시적 세련미가 넘치는 인품, 그리고 삶 속의 아름다움을 매우 소중히 다루는 의식은 그의 작품에 변함 없는 호소력을 지닌 마력을 부여한다. ==========================   이반 투르게네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검색하러 가기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이반 투르게네프의 초상화 (1874년 제작) 출생 1818년 10월 28일  러시아 제국 오룔 사망 1883년 9월 3일 (64세) 프랑스 파리 직업 소설가 장르 사실주의 대표작 《아버지와 아들》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Ivan Sergeyevich Turgenev, 러시아어: Ива́н Серге́евич Турге́нев, 문화어: 이완 쎄르게예비치 뚜르게네브, 1818년 11월 9일(율리우스력: 10월 28일) ~ 1883년 9월 3일(율리우스력: 8월 22일))는 러시아 소설가, 시인이다. 그는 러시아 중부 오룔 시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1818년 10월 28일에 태어났다. 아버지가 육군 대령으로 퇴직하고 스파스코예 마을로 이주함에 따라서 투르게네프는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이 시골 마을에서 보냈다. 그 후 모스크바 대학 문학부와 페테르부르크 대학 철학부, 그리고 독일의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러시아 고전 작가들 가운데 가장 서구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인생의 많은 세월을 서유럽에서 보냈고 서구인들과의 교류도 활발했으며, 사상적 기반도 서구주의적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는 러시아의 대자연과 시골 풍경이 섬세하고 수려한 필치로 묘사되고 있으며, 동시에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과 휴머니즘이 조화롭게 반영되어 있다. 그는 1852년에 25편의 중단편 모음집으로 출간된 《사냥꾼의 수기》로 주목받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 후 당시의 시대상과 인간상을 섬세한 서정적 필치로 심층 묘사하여 그에게 ‘러시아 인텔리겐차의 연대기 작가’라는 별칭을 얻게 해준 장편소설들 《루딘》(1856년), 《귀족의 둥지》(1859년), 《아버지와 아들》(1862년), 《연기》(1869년), 《처녀지》(1877년) 등이 출판되었다. 그는 1883년 8월 22일 러시아가 아닌 프랑스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유해는 러시아로 옮겨져 그 해 9월 27일에 페테르부르크에 안장되었다. 일생[편집] 방탕과 도박으로 타락한 아버지와 수많은 농노를 거느린 전제 군주적 성격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836년 페테르부르크 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838년 베를린 대학에 유학하여 스탄케비치·바쿠닌 등 진보적 러시아 지식인과 사귀며, 헤겔 철학·역사·고전어를 연구하였다. 1841년 서유럽 자유 사상의 동경자가 되어 귀국하였다. 그 후 '서구파'에 출입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하고, 벨린스키·게르첸 등을 사귀었다. 1843년 내무성에 근무하면서 처녀작인 서사시 〈파라샤〉를 발표하였다. 계속하여 희곡과 중편 소설을 썼으며, 1847년 잡지 《동시대인》에 단편 스케치 〈호리와 카리누치〉를 발표하여 독자적인 지위를 획득하였다. 1852년 당시의 가장 큰 사회 문제인 농노 제도를 공격한 소설 《사냥꾼의 일기》를 발표하여 정부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사냥꾼의 일기에서는 농노제를 지적한 소설 '비류크'도 담겨 있다. 그 후 고골리에 대한 추도문이 말썽을 일으켜 당국으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고 감금당하였으나, 그것으로 인하여 그의 위치는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그는 계속하여 《루딘》, 《귀족의 집》, 《전날 밤》, 《첫사랑》을 발표하여 환영을 받았으나, 1862년 발표한 《아버지와 아들》은 구·신세대 모두에게 비난을 받았다. 그 후 장편 소설 《연기》와 1876년 대표작 《처녀지》를 발표하였으며, 《사랑의 개가》, 《산문시》, 《죽음 뒤에 오는 것》 등을 계속 발표하여, 러시아뿐만 아니라 서유럽까지 열렬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는데, 프랑스에 있을 때에는 플로베르·졸라·모파상 등 프랑스 작가들과 친교를 맺었다. 그는 러시아에서 가장 서구적 색채가 짙은 작가로서, 1840-1870년대의 모든 사회 문제를 주제로 삼고 있다. 특히, 서정미에 넘친 아름답고 맑은 문체, 아름다운 자연 묘사, 정확한 작품 구성, 줄거리와 인물 배치상의 균형, 높은 양식과 교양은 널리 알려져 있다. 만년에는 명상적인 사색을 계속하다가, 1883년 파리 교외에서 일생을 마쳤다. =====================///   거지   길거리를 걷고 있었지요. 늙은 거지 한 사람이 나의 발 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눈물어린 붉은 눈, 파리한 입술, 다 헤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 아아, 가난이란 어쩌면 이다지도 잔인하게 이 불쌍한 사람을 갉아먹는 것일까요! 그는 빨갛게 부풀은 더러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듯 동냥을 청했습니다. 나는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를 모조리 뒤져 보았습니다... ... 지갑도 없고 시계도 없고 손수건 마저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외출을 했던 것입니다. `이 일을 어쩌나... ...` 그러나 거지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고 있었습니다.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 나는 힘없이 떨고있는 거지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습니다. "미안합니다, 형제, 내 급하게 나오느라 아무것도 가진게 없구려". 거지는 붉게 충혈된 두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쳐 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대로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그 때 깨달았습니다. 거꾸로 이 형제에게서 내가 적선을 받았다는 사실을... ...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1818. 11.9 ~1883. 9. 3)       러시아의 중부 오률시의 부유한 대지주의 가정에서 아버지는 기병장교, 어머니는 6살연상의 대지주의 딸사이에 태어나 모스크바대학에서 문학을 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는 철학을 공부했다.       64세에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 중요작품으로는   등이 있다.   이반 투르게네프(Ivan Sergeyevich Turgenev) 러시아의 소설가, 극작가 ⓒ Tucker Collection / wikipedia |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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