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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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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것이 알고싶다] - "12간지(띠)" 유래?... 댓글:  조회:4583  추천:0  2018-08-23
ㆍ 쥐(자-子)  상징 - 쥐의 상징성은 양쪽 방향. 곧 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긍정적인 인식에 따라 선과 악의 존재로 나타난다. 쥐의 생태에 희한 상징은 은밀성과 왜소성, 다산선, 근면성, 저장성, 예감성 등에 따라 이루어진다. 문학적 상징에 있어서도 쥐는 선 과 악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존재로 나타난다. 긍정적인 쪽에서는 효성ㆍ우애ㆍ보 은 그리고 부정적인 쪽에서는 도적ㆍ탐욕ㆍ허영적인 존재로 상징된다.    ㆍ성격 - 쥐띠의 사람은 지혜롭고 영리하다. 작은 일엔 잘 놀라나 큰 일엔 오히려 대범하게 대처한다. 쉽게 만족하지 못하며 인색한 사람이 많다. 가정적이지 못하나 사회에 선 실력을 인정받는다. 자식사랑이 남달리 유난히 깊다. 가정적이기 보다는 바깥 생활이 많거나 바깥생활을 좋아한다. 실속없이 잘 나다닌다. 사교성이 있고 애교 도 있고 눈치도 빠르며 성품이 깔끔하여 상업적 소질이 있다. 심장이 약하고 식성 이 까다로운 편이다. 어지간한 병은 깡으로 버텨 이겨낸다. 얼굴이 야윈 자가 많 으며 살집이 붙으면 고질병이 생겨 고생하게 된다.    ● 소(축-丑)    ㆍ상징 - 민속문학에 형상화된 소의 상징은 어리석음, 충직함, 의로움, 성실함, 용맹함 등 으로 나타나며 가족경제에서는 최고의 자산적 가치를 지닌 존재, 식생활에서는 최 상의 음식재료로 나타난다. ㆍ성격 - 우직하고 성실한 모습이며 진실되다. 심성이 여유롭다. 명예옥이 강하고 낭만적인 성향을 가졌다. 이성에게 인기가 좋다. 사람을 잘 믿으며 배신을 당하면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한다. 성적인 능력이 선천적으로 탁월하므로 절제된 성생활이 중요하다. 근면하고 검소 하나 의타심이 있다. 순박하지만 한번 고집이 나면 외통수이다. 우두머리격의 품 격이 있다.   ● 호랑이(인-寅)    ㆍ상징 - 호랑이는 진부, 독립, 모험, 투쟁 등의 속성을 갖는다. 삶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갖는 현실적 동물이다. 용맹과 투쟁의지는 딱딱한 현실세계를 개척하는 적극적인 삶의 의지를 안정보다 불안속의 기대욕구를 갈망한다. ㆍ성격 - 포부가 크고 인정이 많다. 자기중심적 사고로 주위에 적을 만들기 쉽다. 고독에 젖어 있고 염세적인 일면도 지니고 있다. 종교적 또는 예술적 기질을 타고나 출 세나 안정된 생활보다는 타고난 기를 주체못하여 방황을 사서하기도 한다. 성격 이 급하고 감상적인 추억에 잘 빠진다. 궁핍하면 능력을 발휘하고 여유로우면 나 태해지기 쉽다. 자포자기를 잘하고 게으른 편이다.    ● 토끼(묘-卯)    ㆍ상징 - 토끼는 우리의 정서속에 가장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조그마하고 귀여운 생김새며 놀란듯한 표정에서 약하고 선한동물로 그리고 재빠른 움직임에서 영특한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토끼띠는 묘(卯)의 속성이 번 성, 풍요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열두띠 중 가장 생기가 발동하는 띠로서 그 성격 과 기질은 자애롭고 온순하며 영리하고 지혜로운 반면 유약하고 경박한 측면도 있 다.    ㆍ성격 - 부모덕을 타고나지 못하니 자수성가해야 한다. 사교성이 부족하지만 예술적 재능 과 감각은 풍부하다. 매사 분명하고 논리정연하며 총명하다. 청빈함을 부끄러워하 지 않는 학자적기품을 지녔다. 후회할 줄 몰라서 손해보는 경우가 많다. 사업에 적합치 못한 성격이다. 학문, 창작, 예술 분야에 적합하다. 인내심은 강하지만 뒷 심이 약한 것이 흠이다. 늘 자신을 성찰하는 삶을 살기에 이중적인 모습을 때로 보이기도 한다. 사교성이 부족하다. 남성과 여성 모두 자학과 우울증을 조심해야 한다.    ● 용(진-辰)    ㆍ상징 - 중국과 마찬가지로 용은 왕이나 남성 및 권력을 상징한다. 그리하여 꿈도 용꿈이 면 좋은 꿈이고 길지도 용이 있는 곳이면 상서로운 곳이라 믿는다. 민속놀이, 속 담, 세시풍속에 나타난 용의 상징은 대개 초복신과 수신, 지신, 수송신, 수호신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으로 보면 비상인ㆍ제왕ㆍ예언자적위 치를 점하고 있다.    ㆍ성격 - 꿈과 이상이 원대하다. 현실에 집착하지 않으며 공상적 기질이 풍부하다. 남의 이 목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행동한다. 잠재력을 우수하나 현실감 은 뒤떨어진다. 남성은 리더십이 있고 인기가 많으며 여성은 돈과 유혹에 약하고 사치스럽고 입이 크다. 마음에 맞지 않으면 냉정한 일면을 지녔다. 신경질적인 반 응을 보이기도 한다. 변덕이 심하고 남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다. 순발력과 재 치로 힘든 상황을 넘긴다. 처세술이 뛰어나고 감정이 풍부하다.    ● 뱀(사-巳)    ㆍ상징 - 뱀은 그 생김새 때문에 사람들이 징그러워하고 또한 뱀에 물렸을 때는 맹독성 때 문에 생명을 잃기도 하므로 더욱 두려워한다. 서양에서는 지혜가 있고 교활한 짐 승이라고 해서 뱀을 흔히 '악마의 사자'라고 하는 반면 우리는 구렁이가 오랜 세 월을 지나면 용이 된다고 믿고 또 집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고 믿어 신앙의 대상 으로 삼기도 한다.    ㆍ성격 - 지적이지 못하면 음탕한 쪽으로 머리를 쓰는 극단의 삶이 되기 쉽다. 미추를 불문 하고 타고난 성적 매력이 어필된다. 재주꾼이며 두뇌가 명석하다. 변덕이 시하며 비밀이 많다. 이별수가 많고 방황을 많이 한다. 현실도피와 방랑, 은둔생활에 빠지기도 한다. 저돌적이며 공격적 성향을 지졌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며 사회성에 문제가 있 다. 지적이고 헌신적인 성격도 있으니 자기개발에 열중하면 크게 성공한다. 이성 을 잘 유혹하며 허영심이 많다. 욕구불만이 많은 편이다.    ● 말(오-午)    ㆍ상징 - 말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오래된 가축 가운데 하나이다. 신화의 시대에는 신성 하게 여겨 숭앙되었고, 전설의 시대에는 신화 전설의 흔적이 작용하여 우리 나라 전역에 걸쳐 아기 장수 설화에 주인공과 함께 충실한 화소로 작용한다. 그 후 전 쟁, 교통 등의 말에 대한 이용이 확대되자 국가적 馬政이 있어 왔다. 그리고 말은 활동적이며 민첩하고 날렵한 특성을 지닌다    ㆍ성격 - 겉으로는 강하나 속 마음은 부드러운 유형이다. 매사에 변화가 많고 남을 쉽게 믿 지 않는다. 고집이 지나치게 강하다. 공상과 환상을 좇다가 불행한 삶을 살기도 한다. 스케일이 크고 실리를 추구하며 공명심이 많다. 현실적응력이 뛰어나 어떤 환경에서든지 순응해 나간다. 싫고 좋고의 구별을 뚜렷이 해 태도가 분명하다. 식 성이 까다롭다. 정보수집력이 뛰어나고 언변 또한 우수하다. 실리적이면서도 체면 을 중요시한다. 여성은 가정적이기 보다는 활동성이 강한데 그것이 지나쳐 때론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양(미-未)   ㆍ상징 - 양은 일반적으로 선하고 순하며, 군거생활을 잘하는 동물로서 생각되면서 이러한 양의 속성이 관용어나 속담, 또는 비유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ㆍ성격 - 온순하고 침착하며 너그럽고 욕심이 없다. 매사 꾸준하고 꼼꼼하여 빈틈없이 처리 한다. 학자적 기품을 지니고 학구적 사색을 즐긴다. 남에게 간섭받는 것을 지극히 꺼린다.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독선적이고 우월감에 빠지기 쉽다. 자존심이 무척 강하다. 자신의 감성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소탈하며 재물에 과한 욕심 을 품지는 않는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이재에 밝지 못하다. 금전에 관한 한 과 한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인내심이 강하여 어려운 환경도 잘 극복해낸다.    ● 원숭이(신-申)    ㆍ상징 - 시간에 표출된 원숭이의 외로움과 고독의 상징, 생활 속에 수용된 원숭이는 시간 과 방위의 수호신, 벽사진경(壁邪進慶)의 길상(장수)으로 여겨진다.    ㆍ성격 - 머리가 영리하고 재주가 많다. 꿈과 이상이 뛰어나다. 약삭빠른 성품을 지니고 있 다. 환상과 낭만을 지닌 로맨티스트로서 유머가 풍부하다. 가정적이지 못해 부부 화합에 문제가 있으나 자식 사랑은 깊다. 사교적이며 언변이 좋아 인기가 좋다. 방황을 잘하며 현실에 불만족하면 극단적으로 대처한다. 남성은 중년 이후 의처 증, 여성은 히스테리를 주의하라. 자신의 재주를 너무 믿어 자승자박의 문제를 일 으키기도 한다.    ● 닭(유-酉)    ㆍ상징 - 천지창조 설화중의 태초의 천지는 혼돈으로 있었다. 이때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 인 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크게 우니, 갑을동방에서 먼동이 트기 시 작했다. 이에 하늘의 옥황상제 천지왕이 해도 둘, 달도 둘을 내보내어 천지는 활 짝 개벽이 되었다. 신화에 등장하는 닭은 천지창조를 담당하는 신격 또는 혼돈을 극복하는 강인한 생명체로 등장한다. 이것은 계성이 어둠을 물리치고 광명을 가져 오는 창조적 의미로 인식된 데에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ㆍ위인탄생 닭의 울음은 한 국가 지도자의 탄생을 알리는 고고한 외침소리로도 나타난다. 삼 국유사 혁거세편에 보면, 왕이 계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계림국이라 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ㆍ개세(開歲)와 개명(開明) 계성은 창세 및 위인 탄생 이외에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신성한 개세명(開歲明) 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닭이 세화(歲畵)에 등장하게 된다. 닭울음소리를 통해 그 해의 풍흉을 점치기도한다. 정월보름 풍속에 '닭울음소리가 10번을 넘으면 그 해에 풍년이 들고 그렇지 못하면 흉년이 든다'는 말이 전한다.    ㆍ깨달음 불교나 유교에서는 닭을 깨달음의 주체 또는 덕성을 지는 동물로 여기고 있다. 불 전에 나오는 '수탉의 전생이야기'에는 부처가 전생에 수탉으로 태어난 닭을 잡아 먹는 매를 훈계한 이야기가 전한다. ㆍ삶의 전환 우리의 혼례에서는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집의 초례상(醮禮床) 위에 산닭을 2마리 묶어서 올린다. 여기에서 닭은 광명을 가져다 주는 존재로서 제 2의 인생을 출발 하는 신성한 혼례의 자리에 등장한다. 한편 새벽에 울리는 계성은 인간에게 만남 과 이별의 전환을 가져오기도 한다.    ㆍ영혼의 소리 민간신앙에서는 현세의 삶에 미진함을 지니고 죽은 귀신에 대한 해원(解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원혼을 위한 굿에는 닭이 등장하여 그 혼령의 소리를 대 신한다. (계성에 의해 혼령은 이승의 미진함을 풀고 저승으로 되돌아간다) ㆍ성격 - 마음이 청순하고 깨끗하다. 희생정신을 가지고 있다. 예민한 성격 때문에 신경과 민으로 고생한다. 고집이 세고 성급하다. 똑똑하고 꼼꼼하나 실패가 의외로 잦다.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으며 자신을 신앙적으로 이끌어간다. 새벽잠이 없고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있다. 인정이 많은 편이다. 종교와 관계가 많아 종교 와 밀접한 삶을 산다. 편두통이 잦고 성품이 괴팍하다. 예지력이 뛰어나다.    ● 개(술 - 戌)    ㆍ상징 - 개는 고대사회에 가축의 한 구성원이 된 이래로 사람의 곁에서 줄곧 살아왔던 동 물이다. 이것은 인간과 공생하여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개가 인 간을 좋아한다는 속성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개의 속성을 심리적인면에 서 순응성(順應性), 작업용(作業性), 과민성(過敏性), 후적추구력(喉跡追求力) 등 으로 볼 수 있다.    ㆍ성격 - 충직하고 믿음이 강하다. 개척하고 개발하려는 정신이 강하다. 중상모략과 구설에 휘말리기 쉬우니 평소의 언행을 삼가야 한다. 추진력이 약하고 적응력 면에서 약 점이 있다. 경제적으로 집착하진 않지만 관심은 높다. 색욕이 강하므로 이성관계 를 절제하지 않으면 건강을 해친다. 독립, 독행의 정신이 강해 자립을 추구하는 유형이다. 임기응변에 능하고 언변이 뛰어나다. 한번 잔인하기 시작하면 끝까지 잔인한 태도를 견지한다. 여성은 팔자가 세므로 조신하게 행동해야 한다. 애정표 현이 솔직담백하다.    ● 돼지(해 - 亥)    ㆍ상징 - 돼지는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는 잡식동물이다. 그러면서도 강하게 자라나며 먹는 욕심외엔 별 욕심이 없다. 그리고 제사를 올릴 때 반드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돼 지이다. 이것은 곧 돼지를 옛부터 신성한 동물의 상징으로 여겨 왔음의 표징이다. 또한 자손이 귀한 집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10세때까지 돼지라고 부른다. 이것은 돼지가 새끼를 낳을 때 여러마리를 한꺼번에 낳기 때문에 다산(多産)의 상징이 부 여됐음을 알 수 있다.    ㆍ성격 - 지혜가 많고 인정 또한 많다. 식복은 타고났다. 변화가 무쌍하다. 다재다능한 재 주꾼이다. 수동적인 일보다는 독창적이고 능동적인 일을 선호한다. 독립,독선, 독 창적이고 사고력이 발달되어 단체성에는 맞지 않고 개인적인 실력발휘의 기회에 강하다.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고루 섭렵하는 돈키호테형 삶의 주인공이 많 다. 여성은 비밀이 많고 단체활동에 적응이 힘들다. 즉흥적인 순간에 당황하지 않 고 실력을 발휘하는 능력이 좋다 ====================/// 지지 (역법)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검색하러 가기 천간   목 화 토 금 수 양 갑 병 무 경 임 음 을 정 기 신 계 지지 양 자 인 진 오 신 술 음 축 묘 사 미 유 해 지지(地支) 또는 십이지(十二支)는 천간과 함께 간지를 이루며,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를 말한다. 목차 1십이지신상 1.1중국 1.2한국 2각국의 명칭 3지지가 나타내는 의미 4같이 보기 5각주 십이지신상[편집]   각 지지에 대응시켜 놓은 열두 동물의 상을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십이지생초'(十二支生肖)라 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출생년도의 십이지를 ‘띠’로 구분한다. 각 나라의 문화에 따라 십이지의 동물 배치가 조금씩 다르다. 베트남에서는 두 번째 동물이 물소이다. 베트남과 타이에서 네 번째 동물은 고양이다. 일본에서는 열두 번째 동물로 돼지 대신 멧돼지를, 타이에서는 코끼리를 꼽는다. 중국[편집] 지지가 문헌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중국 상나라 말기의 갑골문자이며, 한나라 때 일반화되어 방위나 시간에 대응시켰다. 다시 이것을 쥐·소·범·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의 12동물과 대응시킨 것은 훨씬 뒤의 일이며, 그것은 농민들이 쉽게 외우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설이 있다. 묘지의 둘레에 십이지생초를 조각한 것은 당대(唐代)부터로 여겨진다. 십이지 생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수호지(睡虎地)에서 출토된 운몽진간(雲夢秦簡) 일서(日書)에 있다. 십이지 생초의 모습을 조각한 수면인신상(獸面人神像)인 십이지 신상(十二支神像)이라는 당나라 때 석상 및 토우도 있다. 한국[편집] 한국에서는 남북국 시대에 능묘의 호석(護石)에 12지신상을 조각하게 되었는데, 경주의 괘릉(掛陵)이나 김유신 묘(金庾信墓)가 최초의 것으로 여겨진다. 성덕왕릉에 특이한 형식이 나타나고, 대개는 괘릉과 마찬가지로 호석면에 양각하였다. 각국의 명칭[편집] 지지 한국어 중국어 병음 일본어 베트남어 몽골어 만주어 음독 훈독 子 자 zǐ し (시) ね (네) tý (티) ᠬᠤᠯᠤᠭᠠᠨ᠎ᠠ 호스간 ᠰᡳᠩᡤᡝᡵᡳ 싱거리 丑 축 chǒu ちゅう (츄-) うし (우시) sửu (스우) ᠦᠬᠡᠷ 우헤르 ᡳᡥᠠᠨ 이한 寅 인 yín いん (인) とら (토라) dần (연) ᠪᠠᠷᠰ 바르 ᡨᠠᠰᡥᠠ 타스하 卯 묘 mǎo ぼう (보우) う (우) mão (마오/매오) ᠲᠠᠤᠯᠠᠢ 토올래인 ᡤᡡᠯᠮᠠᡥᡡᠨ 굴마훈 辰 진 chén しん (신) たつ (타츠) thìn (틴) ᠯᠤᠤ 로오 ᠮᡠᡩᡠᡵᡳ 무두리 巳 사 sì し (시) み (미) tỵ (떠이) ᠮᠣᠭᠠᠢ 머거이 ᠮᡝᡳᡥᡝ 머이허 午 오 wǔ ご (고) うま (우마) ngọ (응어) ᠮᠣᠷᠢ 멀흔 ᠮᠣᡵᡳᠨ 모린 未 미 wèi び (비) ひつじ (히츠지) mùi (무이) ᠬᠣᠨᠢ 헌 ᡥᠣᠨᡳᠨ 호닌 申 신 shēn しん (신) さる (사루) thân (턴) ᠪᠡᠴᠢᠨ 비츠 ᠪᠣᠨᡳᠣ 보니오 酉 유 yǒu ゆう (유우-) とり (토리) dậu (여우) ᠲᠠᠬᠢᠶ᠎ᠠ 타햐 ᠴᠣᡴᠣ 초코 戌 술 xū じゅつ (쥬우츠) いぬ (이누) tuất (뚜얻) ᠨᠣᠬᠠᠢ 너허이 ᡳᠨᡩᠠᡥᡡᠨ 인다훈 亥 해 hài がい (가이) い (이) hợi (허이) ᠭᠠᠬᠠᠢ 아하에 ᡠᠯᡤᡳᠶᠠᠨ 울기얀 지지가 나타내는 의미[편집] 여기에 표시되어 있는 지지는 하나가 12년 주기로 찾아온다. 지지 생초 방위 시간 음력 음양 오행 오경[1] 자(子) 쥐(鼠) 0° (북) 23시–01시 11월 양 수 삼경 축(丑) 소(牛) (베트남에서는 물소) 30° (북북동) 01시–03시 12월 음 토 사경 인(寅) 범(虎) 60° (동북동) 03시–05시 1월 양 목 오경 묘(卯) 토끼(兎) (베트남과 타이에서는 고양이) 90° (동) 05시–07시 2월 음 목 - 진(辰) 용(龍) 120° (동남동) 07시–09시 3월 양 토 - 사(巳) 뱀(蛇) 150° (남남동) 09시–11시 4월 음 화 - 오(午) 말(馬) 180° (남) 11시–13시 5월 양 화 - 미(未) 양(羊) 210° (남남서) 13시–15시 6월 음 토 - 신(申) 원숭이(猿) 240° (서남서) 15시–17시 7월 양 금 - 유(酉) 닭(鷄) 270° (서) 17시–19시 8월 음 금 - 술(戌) 개(犬,狗) 300° (서북서) 19시–21시 9월 양 토 초경 (일경) 해(亥) 돼지(豚,猪,豕) (일본에서는 멧돼지, 태국에서는 코끼리) 330° (북북서) 21시–23시 10월 음 수 이경   ====================/// 각 지지에 대응시켜 놓은 열두 동물의 상을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십이지생초'(十二支生肖)라 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출생년도의 십이지를 ‘띠’로 구분한다. 각 나라의 문화에 따라 십이지의 동물 배치가 조금씩 다르다. 베트남에서는 두 번째 동물이 물소이다. 베트남과 타이에서 네 번째 동물은 고양이다. 일본에서는 열두 번째 동물로 돼지 대신 멧돼지를, 타이에서는 코끼리를 꼽는다. 중국 지지가 문헌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중국 상나라 말기의 갑골문자이며, 한나라 때 일반화되어 방위나 시간에 대응시켰다. 다시 이것을 쥐·소·범·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의 12동물과 대응시킨 것은 훨씬 뒤의 일이며, 그것은 농민들이 쉽게 외우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설이 있다. 묘지의 둘레에 십이지생초를 조각한 것은 당대(唐代)부터로 여겨진다. 십이지 생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수호지(睡虎地)에서 출토된 운몽진간(雲夢秦簡) 일서(日書)에 있다. 십이지 생초의 모습을 조각한 수면인신상(獸面人神像)인 십이지 신상(十二支神像)이라는 당나라 때 석상 및 토우도 있다. 한국 한국에서는 남북국 시대에 능묘의 호석(護石)에 12지신상을 조각하게 되었는데, 경주의 괘릉(掛陵)이나 김유신 묘(金庾信墓)가 최초의 것으로 여겨진다. 성덕왕릉에 특이한 형식이 나타나고, 대개는 괘릉과 마찬가지로 호석면에 양각하였다. ========================///   십이지의 형성시기는 중국 하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왕조시절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황하의 서쪽 지류부근에 거주했던 민족은 천문학이 매우   발달하여 그 당시 십이지로 연월일시를 기록하였다고한다.   이곳에서부터 동쪽으로는 한국과 일본, 북쪽으로는 몽골, 남쪽으로는 인도와 월남 등 동남아시아로   전해지고 다시 멀리 대양을 건너 멕시코까지 전파되었다. 은왕조에 이르러 이미 널리 사용된   십이지는 한대중기에 이르러 시간과 방위의 개념에 연결되었다.   당대에 이르면서 비로소 십이지에 동물을 적용시켜 쥐(자), 소(축), 범(인), 토끼(묘), 용(진), 뱀   (사), 말(오), 양(미), 원숭이(신), 닭(유), 개(술), 돼지(해)의 순서가 확립되었다.   그럼 지구상의 수 많은 동물 중 왜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원숭이.닭.개.돼지 등의 열 두 동물만   이 선택되었으며, 그 순서는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석가유래설   석가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에 모든 동물들을 다 불렀는데 열 두 동물만이 하직인사를 하기 위해   모였다고 한다. 석가는 동물들이 도착한 순서에 따라 그들의 이름을 각 해(년)마다 붙여 주었다.    쥐가 가장 먼저 도착하였고, 다음에 소가 왔다. 그리고 뒤이어 호랑이 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   개,돼지가 각각 도착하였다. 이것이 오늘날의 12지가 된 것이다.     도교장자설   대세지보살은 아미타불의 오른편에 있는 지혜의 문을 관장하는 보살이다.    하루는 석가가 대세지보살을 불러 천국으로 통하는 12개 문의 수문장을 지상의 동물 중에서   선정하여 1년씩 돌아가면서 당직을 세우도록 했다.   이에 대세지보살은 12동물을 선정하고 그들의 서열을 정하기 위해서 모두 불러모았다.    12동물 중 고양이는 모든 동물의 무술 스승이므로 제일 앞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순서대로 소.범.   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돼지.개를 앉혔다.    대세지보살은 12동물의 서열을 정한 후 석가여래에게 훈계를 청하려고 맞이하러 갔다.    석가를 기다리던 고양이는 갑자기 뒤가 마려워 참다참다 견딜 수 없어 잠시 으슥한데 가서 뒤를   보려고 자리를 비웠다. 공교롭게도 이 때 석가가 왕림하셨다. 석가가 소집된 동물들을 살펴보니   한 동물이 부족했다. 어찌된 영문인지를 몰라 물어보니 마침 고양이를 따라 구경온 생쥐가 쪼르르   달려나와 석가에게 말했다. 자신은 고양이 친구인데 고양이는 수문장의 일이 힘들고 번거로워서   수문장이 싫다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에 석가는 쥐에게 어쩔 수 없으니 네가 고양이 대신 수문장을 맡으라고 했다.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으므로 마침내 쥐를 포함한 12동물이 천국의 수문장이   되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고양이는 간교한 쥐에게 원한을 품고 영원토록 쥐를 잡으러 다니며,   이때부터 고양이와 쥐는 천적사이가 되었다.     유교황제설   아득한 옛날에, 하나님이 뭇짐승들을 소집하고 '정월 초하루날 아침 나한테 세배하러 와라. 빨리   오면 일등상을 주고 12등까지는 입상하기로 한다."하고 말했다. 달리기 경주라면 소는 자신이 없다. 말이나 개나 호랑이에게는 어림도 없고 돼지 토끼에게도 이길 가망이 없다. 그래서 소는 자기는   워낙 '소걸음'이니까 남보다 일찍 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우직한 소는 남들이 다 잠든   그믐날 밤에 길을 떠났다. 눈치빠른 쥐가 이것을 보고 잽사게 소등에 올라탔다. 드디어 소는 동이   틀무렵에 하느님 궁전 앞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쥐가 날세게 한발 앞으로 뛰어 내려   소보다 먼저 문안에 들어와서 소를 제치고 1등이 되었다.    천리를 쉬지않고 달리는 호랑이는 3등이 되었고 달리기에 자신이 있는 토끼도 도중에 낮잠을 자는   바람에 4등이 되고 그 뒤를 이어 용.뱀.양.원숭이.닭.개.돼지 차례로 골인했다. ==========================///    
6    [작문써클선생님께] - 아이들에게 설화와 추상화와 상상력과... 댓글:  조회:2687  추천:0  2018-08-23
명감3(물의힘), 120x150㎝, 한지에 채색   가장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라고 하면 대부분 큰 걱정 없이 마냥 하루하루가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세상의 무서움을 모르던 시절, 어떻게 놀면 재미있을까 궁리하던 시절. 자연과 어우러지고 만화영화 속의 세계가 현실이 되고,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든 장차 그것이 되고 싶었던 시절을 말이다. 우리는 동심을 통해 긍정적인 기운을 얻는다. 상상력은 호기심과 함께 문명을 발달시켜 온 주요한 특성이다. 스스로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성인을 보면 우리는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실제로 ‘피터팬’ 극작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를 보면 주인공은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마술을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스꽝스러운 변장을 하고, 함께 해적 놀이를 하며 동심의 나날을 보낸다. 실비아 가족과 자주 어울리며 그들에게서 얻은 영감으로 작품을 쓴 그는 네 아이들 중 유난히도 예민하고 섬세한 영혼을 가진 피터에게서 이름을 딴 동화 속에 숨겨진 그들만의 세계가 펼쳐진다. ‘피터팬 증후군’은 어떤 병적인 현상 같지만 새로운 문화를 흡수하고, 인생을 즐길 줄 안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신화를 접하게 하면 어떨까. 즉 신의 이야기, 보통의 인간이라면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과 자신이 모르는 것에 막연한 불안을 느낀다. 게다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이 작용해 ‘신이 만물을 존재하게 하고 모든 것들을 일으킨다’는 결론을 내린지도 모르겠다. 이런 인간의 공통된 심리는 세계 각국에 공통된 신화를 남기기도 했다. 하나의 신화 속에 여러 상징이 들어 있고, 상상력을 동원시키면 더 많은 것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풀이해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신화를 읽으면 상상력을 발전시키기에 좋다. 동양의 경우를 보면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상징적 동물을 그린 그림, 사신도가 있다. 사신(四神)은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 남쪽의 주작(朱雀), 북쪽의 현무(玄武)를 일컫는다. 사신에 대한 도상(圖像)과 관념이 언제부터 유래했는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중국의 전국시대부터 진한시대에 걸쳐 정착된 것으로 생각된다. 사신도의 형상은 시대마다 약간씩 다른 양식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대체로 현실과 상상의 동물이 복합된 내용으로 그 모습이 서로 유사하다. 청룡과 백호는 두 날개와 사지(四肢)를 가진 상상적인 동물로 허공을 나는 자세나 외형이 비슷하게 표현된다. 청룡은 몸에 뱀의 비늘로 무늬를 넣고 눈을 부리부리하게 뜬 머리에 뿔이 하나 혹은 두 개 돋아 있다. 화염을 뿜고 있는 것이 통례다. 백호는 호랑이의 특징을 살린 안면과 호피문으로 표현됐으며, 혀를 내밀어 위용을 나타냈다. 주작은 봉황과 유사한 형상이며, 일반적으로 한 쌍으로 등장한다. 거북과 뱀으로 표현되는 현무는 청룡·백호·주작 등과 다르게 실존하는 동물로 구성돼 있다. 뱀과 거북이 서로 몸을 휘감고 엉킨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런 사신에 얽힌 옛이야기들은 참으로 많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순수한 어린 시절이 지나치게 짧다. 유치원 시절부터 경쟁이 시작되고, 감수성이 풍부해야 할 시기에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할 정도로 세상은 각박하다. 그러하니 자연히 순수한 동심을 점점 잃어간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의 아이들은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매체로 인해 이미 기대 이상으로 영리하다. 어쩌면 아이들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지도 모른다.그러한 아이들에게 메마른 감정을 체계적으로 자극하고 고취시킬 수 있는 신화의 생명력과 상상력은 무한한 에너지가 된다.     ■전수민은?  전수민은 어디선가 본 것 같지만 그 어디에도 없는 풍경을 그린다. 전통한지와 우리 재료 특히 옻칠을 이용해 우리 정서와 미지의 세계를 표현하는 한국 화가다. 한국은 물론 미국 워싱턴 D.C. 한국 문화원, 프랑스 아리랑 갤러리, 이탈리아 베네치아 레지던스, 중국 생활미학 전시관 등의 초대전을 비롯한 16회의 개인전 그리고 일본 나가사키 현 미술관, 프랑스 숄레 등의 단체전 90여 회, 각종 해외 아트 페어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2012), (2013),(2014),(2015) (2016), (2017), (2018), (2018)등이 있다.  현재 화천소도마을 대안학교 ‘신농학당’의 교장으로도 근무하고 있다. 또한 그림 수필집 (2016) 을 출간했다.   ■ 오늘의 그림은?    에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신비의 동물인 고래와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스며들어 있다. 현생의 모든 고래는 약 200만 년 전에 모두 출현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먼 두 지점에 떨어져 있더라도 두 마리의 고래가 상대방의 소리를 알아듣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광대무변의 심해에서 1만 5000㎞나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고래들은 사랑의 노래로 서로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신비로운 존재다. 설화에서도 고래는 큰 동물 또는 은혜를 베푸는 동물로 나타난다.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정신과 생명을 존중하는 가치관이 배어 있고 사임당이 추구하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소박하고 단순한 자연미에 잘 나타나 있다.  ============================/// 베이징 최초 동시 보행 신호 사거리 등장 (ZOGLO) 2018년8월24일 8월 19일 베이징시 최초의 동시 보행 신호 적용 사거리 [촬영: 중국신문사 자톈융(賈天勇) 기자]   [인민망 한국어판 8월 24일] 베이징 스징산(石景山)구 루구서가(魯谷西街)와 정다로(政達路)가 교차하는 사거리에 녹색 보행자 신호등이 켜지면 자동차 신호등에는 모두 빨간불이 켜진다. 보행자들은 도로 맞은편 및 대각선 맞은편으로 자유롭게 건널 수 있다. (번역: 은진호)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5    [그것이 알고싶다] - "태풍 이름"과 순서?... 댓글:  조회:4600  추천:0  2018-08-23
태풍(Typhoon)은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이 17.2 m/s 이상의 강한 폭풍우를 동반하고 있는 기상 현상을 말합니니다. 7월과 10월 사이에 가장 많이 발생을 하는데요. 자연 현상 중 유일하게 태풍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태풍에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와 태풍 이름 정하는 방법 그리고 태풍 순서에 대하여 공무원닷컴에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태풍 이름 정하는 방법 1. 태풍 이름 사용 이유 다른 자연 현상이나 재난과 달리 태풍에는 이름을 붙여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태풍은 한번 발생하면 일주일 이상 지속될 수 있다보니 동시에 같은 지역에 여러개의 태풍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 이상의 태풍을 서로 혼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이름을 붙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1953년 호주 예보관들이 처음으로 태풍에 이름을 붙여 예보하기 시작하였으며, 싫어하는 정치인들의 이름을 태풍 이름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공군과 해군에서 공식적으로 태풍 이름을 붙여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북서태평양에서의 태풍 이름은 1999년까지 괌에 있는 미국 태풍합동경보센터에서 정한 이름을 사용 하였습니다. 그러다 2000년부터는 태풍위원회에서 아시아 각국의 태풍에 관한 관심을 높이고자 아시아 지역 14개국의 고유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2. 태풍 이름 정하는 방법 및 순서 태풍 이름은 한국, 캄보디아, 중국, 북한, 홍콩, 일본, 라오스, 마카오, 말레이시아, 미크로네시아, 필리핀, 태국, 미국, 베트남 14개 국가별로 10개씩 제출한 총 140개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28개씩 5개조로 구성이 되었으며, 1조부터 5조까지의 이름을 순차적으로 사용을 합니다. 140개의 이름을 모두 사용하면 다시 1번 부터 다시 사용을 합니다. 1년에 태풍이 30여개 발생하므로 140개 이름을 한번 다 사용하는데 평균 4~5년이 걸립니다. 태풍 이름 순서 우리나라에서는 개미, 나리, 장미, 미리내, 노루, 제비, 너구리, 고니, 메기, 독수리 등의 태풍 이름을 제출하였습니다. 북한에서 제출한 태풍의 이름은 기러기, 도라지, 갈매기, 수리개, 메아리, 종다리, 버들, 노을, 민들레, 날개 입니다. 2018년에 개정된 태풍의 이름입니다. 순서대로 사용을 합니다. 2018년 6호 태풍은 개미이며, 7호 태풍 이름은 쁘라삐룬입니다. 8호 태풍은 마리아가 되겠죠? 이런식으로 순서대로 사용을 합니다.                     짜미 할롱 밤꼬 송다 사올라 Trami Halong Vamco Songda Saola 3. 태풍 이름 의미 각 나라에서 제출한 태풍에는 이름마다 의미가 있습니다. 7호 태풍 쁘라삐룬의 뜻은 비의 신을 의미합니다. 1조부터 5조까지 태풍의 의미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1조 태풍 이름 의 뜻 1조에는 코끼리를 뜻하는 담레이, 말미잘을 의미하는 하이쿠이, 옛 공항이름 카이탁 등이 있습니다. 손 띤은 여자의 이름을, 우쿵은 손오공을 의미합니다. 그 밖에 종다리, 산산, 야기, 리피, 버빙카, 룸비아, 솔릭, 시마론, 제비, 망쿳, 바리자트, 짜미 등의 태풍이름도 확인해보세요. 1조 태풍 이름 의 뜻 ▼ 2조 태풍 이름 의 뜻 2조에 있는 콩레이는 산의 이름을, 위투는 전설 속 옥토끼를 바이루는 하얀사슴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2조 태풍 이름 의 뜻 ▼ 3조 태풍 이름 의 뜻 3조 태풍 이름 의 뜻 ▼ 4조 태풍 이름 의 뜻 4조 태풍 이름 의 뜻 ▼ 5조 태풍 이름 의 뜻 5조 태풍 이름 의 뜻 4. 없어진 태풍 이름 매년 개최되는 태풍위원회에서는 그 해 막대한 피해를 입힌 태풍의 이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변경하여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출한 나비는 독수리로 대체되었으며, 매미는 무지개로 수달은 미리내로 변경되어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제출한 태풍 이름 중 없어지 이름은 봉선화, 소나무입니다. 각각 노을과 종다리로 대체되어 사용 중입니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퇴출된 태풍이 이름입니다. 없어지 태풍이름 태풍의 이름을 짓는 법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제는 태풍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셨나요? 이제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과 함께 올 크고 작은 태풍에 대해 대비를 잘하여 큰 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   ▼ 2018년 개정된 태풍의 이름 국가명 1조 2조 3조 4조 5조 캄보디아 담레이 콩레이 나크리 크로반 트라세 Damrey Kong-rey Nakri Krovanh Trases 중 국 하이쿠이 위투 펑선 두쥐안 무란 Haikui Yutu Fengshen Dujuan Mulan 북 한 기러기 도라지 갈매기 수리개 메아리 Kirogi Toraji Kalmaegi Surigae Meari 홍 콩 카이탁 마니 풍웡 초이완 망온 Kai-tak Man-yi Fung-wong Choi-wan Ma-on 일 본 덴빈 우사기 간무리 고구마 도카게 Tembin Usagi Kammuri Koguma Tokage 라오스 볼라벤 파북 판폰 참피 힌남노 Bolaven Pabuk Phanfone Champi Hinnamnor 마카오 산바 우딥 봉퐁 인파 무이파 Sanba Wutip Vongfong In-fa Muifa 말레이시아 즐라왓 스팟 누리 츰파카 므르복 Jelawat Sepat Nuri Cempaka Merbok 미크로네시아 에위니아 문 실라코 네파탁 난마돌 Ewiniar Mun Sinlaku Nepartak Nanmadol 필리핀 말릭시 다나스 하구핏 루핏 탈라스 Maliksi Danas Hagupit Lupit Talas 한 국 개미 나리 장미 미리내 노루 Gaemi Nari Jangmi Mirinae Noru 태 국 쁘라삐룬 위파 메칼라 니다 꿀랍 Prapiroon Wipha Mekkhala Nida Kulap 미 국 마리아 프란시스코 히고스 오마이스 로키 Maria Francisco Higos Omais Roke 베트남 손띤 레끼마 바비 꼰선 선까 Son-Tinh Lekima Bavi Conson Sonca 캄보디아 암필 크로사 마이삭 찬투 네삿 Ampil Krosa Maysak Chanthu Nesat 중 국 우쿵 바이루 하이선 뎬무 하이탕 Wukong Bailu Haishen Dianmu Haitang 북 한 종다리 버들 노을 민들레 날개 Jongdari Podul Noul Mindulle Nalgae 홍 콩 산산 링링 돌핀 라이언록 바냔 Shanshan Lingling Dolphin Lionrock Banyan 일 본 야기 가지키 구지라 곤파스 하토 Yagi Kajiki Kujira Kompasu Hato 라오스 리피 파사이 찬홈 남테운 파카르 Leepi Faxai Chan-hom Namtheun Pakhar 마카오 버빙카 페이파 린파 말로 상우 Bebinca Peipah Linfa Malou Sanvu 말레이시아 룸비아 타파 낭카 냐토 마와르 Rumbia Tapah Nangka Nyatoh Mawar 미크로네시아 솔릭 미탁 사우델 라이 구촐 Soulik Mitag Saudel Rai Guchol 필리핀 시마론 하기비스 몰라베 말라카스 탈림 Cimaron Hagibis Molave Malakas Talim 한 국 제비 너구리 고니 메기 독수리 Jebi Neoguri Goni Megi Doksuri 태 국 망쿳 부알로이 앗사니 차바 카눈 Mangkhut Bualoi Atsani Chaba Khanun 미 국 바리자트 마트모 아타우 에어리 란 Barijat Matmo Etau Aere Lan 베트남 짜미 할롱 밤꼬 송다 사올라 Trami Halong Vamco Songda Saola   ======================///   태풍 이름 및 순서     국가명 1조 2조 3조 4조 5조 캄보디아 돔레이 Damrey 콩레이 Kong-rey 나크리 Nakri 크로반 Krovanh 사리카 Sarika 중국 롱방 Longwang 위투 Yutu 펑셴 Fengshen 두지앤 Dujuan 하이마 Haima 북한 기러기 Kirogi 도라지 Toraji 갈매기 Kalmaegi 매미 Maemi 메아리 Meari 홍콩 카이탁 Kai-tak 마니 Man-yi 퐁웡 Fung-wong 초이완 Choi-wan 망온 Ma-on 일본 덴빈 Tembin 우사기 Usagi 간무리 Kammuri 곳푸 Koppu 도토게 Tokage 라오스 볼라벤 Bolaven 파북 Pabuk 판폰 Phanfone 켓사나 Ketsana 녹텐 Nock-ten 마카오 잔쯔 Chanchu 우딥 Wutip 봉퐁 Vongfong 파마 Parma 무이파 Muifa 말레이시아 절라왓 Jelawat 서팟 Sepat 루사 Rusa 멀로 Melor 머르복 Merbok 미크로네시아 이위냐 Ewiniar 피토 Fitow 신라쿠 Sinlaku 니파탁 Nepartak 난마돌 Nanmadol 필리핀 빌리스 Bilis 다나스 Danas 하구핏 Hagupit 루핏 Lupit 탈라스 Talas 한국 개미 Kaemi 나리 Nari 장미 Changmi 수달 Sudal 노루 Noru 태국 프라피룬 Prapiroon 비파 Vipa 멕클라 Megkhla 니다 Nida 쿨라브 Kularb 미국 마리아 Maria 프란시스코 Francisco 히고스 Higos 오마이스 Omais 로키 Roke 베트남 사오마이 Saomai 레기마 Lekima 바비 Bavi 콘손 Conson 손카 Sonca 캄보디아 보파 Bopha 크로사 Krosa 마이삭 Maysak 찬투 Chanthu 네삿 Nesat 중국 우콩 Wukong 하이옌 Haiyan 하이셴 Haishen 디앤무 Dianmu 하이탕 Haitang 북한 소나무 Sonamu 버들 Podul 봉선화 Pongsona 민들레 Mindulle 날개 Nalgae 홍콩 산산 Shanshan 링링 Lingling 야냔 Yanyan 팅팅 Tingting 바냔 Banyan 일본 야기 Yagi 가지키 Kajiki 구지라 Kujira 곤파스 Kompasu 와시 Washi 라오스 샹산 Xangsane 파사이 Faxai 찬홈 Chan-hom 남테우른 Namtheun 맛사 Matsa 마카오 버빈카 Bebinca 와메이 Vamei 린파 Linfa 말로우 Malou 산우 Sanvu 말레이시아 룸비아 Rumbia 타파 Tapah 낭카 Nangka 머란티 Meranti 마와 Mawar 미크로네시아 솔릭 Soulik 미톡 Mitag 소델로 Soudelor 라나님 Rananim 구촐 Guchol 필리핀 시마론 Cimaron 하기비스 Hagibis 임부도 Imbudo 말라카스 Malakas 탈림 Talim 한국 제비 Chebi 너구리 Noguri 고니 Koni 메기 Megi 나비 Nabi 태국 투리안 Durian 라마순 Ramasoon 하누만 Hanuman 차바 Chaba 카눈 Khanun 미국 우토 Utor 차타안 Chataan 아타우 Etau 쿠도 Kodo 비센티 Vicente 베트남 차미 Trami 할롱 Halong 밤코 Vamco 송다 Songda 사올라 Saola       ===============================/// 태풍 태풍의 모습 원형 에 가까운 소용돌이로 중심 부근의 바람이 몹시 강하다 ⓒ (주)천재교육 | BY-NC-ND 태풍의 경로 ⓒ (주)천재교육 | BY-NC-ND 태풍의 일생 ⓒ (주)천재교육 | BY-NC-ND 태풍으로 뿌리가 뽑힌 나무 ⓒ (주)천재교육 | BY-NC-ND 미국 마이애미 지방을 강타한 허리케인 ⓒ (주)천재교육 | BY-NC-ND 태풍의 피해를 크게 입은 필리핀 지역 ⓒ (주)천재교육 | BY-NC-ND 태풍은 주로 북태평양 남서부 해상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의 하나이다.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이 초속 32m 이상이며, 중심부의 좁은 지역이 매우 낮은 기압을 나타낸다. 난폭한 폭풍우로 많은 비와 강한 바람을 동반한다. 태풍은 주로 7~10월 사이에 많이 발생하며, 발생해서 소멸할 때까지 1주일에서 1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열대 지방의 바다에서는 해마다 수없이 많은 열대 저기압이 발생하지만 그 중에서 한 해 평균 60개월쯤이 태풍으로 발생한다. 태풍은 저위도에서 발생하여 서쪽으로 계속 진행하다 소멸하는 것과, 북서쪽으로 진행하다가 방향을 바꾸어 북동쪽으로 진행하여 소멸하는 것이 있다. 태풍을 위에서 똑바로 내려다보면 중심 부분에 나선 모양의 구름띠가 줄지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태풍의 중심부는 그 주위가 두껍고, 높은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맑게 개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곳을 태풍의 눈이라 한다. 지름은 약 30~50km에 이르며, 이 곳에서는 바람도 약해지고 비도 멎으며 때로는 푸른 하늘도 보인다. 태풍은 발생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인도양이나 벵골 만에서 발생하여 인도·파키스탄 등지에 해를 입히는 태풍은 사이클론, 카리브 해에서 발생하여 미국 동부 해안과 쿠바 등지에 해를 입히는 태풍을 허리케인, 오스트레일리아 북쪽 주변의 바다에서 발생하여 남반구로 진행하는 것을 윌리윌리라고 한다. 또 북태평양 남서부에서 발생하여 필리핀·일본·우리 나라 등지에 해를 입히는 것을 타이푼이라 하여, 일반적으로 태풍이라 하면 이를 가리킨다. 태풍의 구조 ⓒ (주)천재교육 | BY-NC-ND 태풍의 명칭 ⓒ (주)천재교육 | BY-NC-ND ▶태풍의 이름은 발생하는 지역에 따라 사이클론·허리케인·윌리윌리·타이푼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태풍의 이름을 붙일 때 매년 발생 순서에 따라 일련 번호와 이름을 함께 쓰고 있다. 이를테면 '제9호 태풍 앤디' 등과 같다. 미국에서는 번호를 붙이지 않고 남녀의 이름을 알파벳 순서대로 붙이고 있다. 태풍은 대부분 세찬 바람과 비를 몰고 오므로 많은 피해를 준다. 폭우에 의해 하천이 넘치고, 해안 지방은 폭풍과 해일에 의해 건물과 나무들이 무너지며, 논밭이 물에 잠기는 심한 해를 입게 된다. 태풍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태풍의 발생을 미리 알아 내어 지속적으로 관측함으로써 그 진로를 미리 예상해야 한다. 현재는 기상 위성의 관측에 의해 태풍의 발생 초기부터 추적할 수 있다. 따라서 태풍이 다가오면 그 움직임이나 구조를 알아냄으로써 앞으로의 진로, 상륙 지점, 강우 상태 등을 미리 예상하여 태풍 통보·주의보·경보 등을 발표한다. 또 이러한 예보에 맞추어 태풍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한다. =============================/// 제19호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관통하고 있는 사이 허리케인 '레인'은 미국 하와이를 곧 엄습할 태세입니다. 바람이 시속 74마일(시속 약 119km) 이상인 열대성 저기압이란 점에서 같지만 한쪽에서는 '태풍'(typhoon)으로, 다른 쪽에서는 '허리케인'(hurricane)으로 불리며 해당 지역을 공포 속으로 밀어 넣는 분위기입니다. 미국 시사지 뉴스위크와 기상전문매체 웨더채널 등은 22일(현지시간) 태풍과 허리케인이라는 명칭이 다른 것은 순전히 지역적 차이에 따른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북대서양이나 북태평양 중·동부에서는 허리케인이라 부르고, 북태평양 서부에서는 태풍이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웨더채널은 지난 7일 하와이를 지난 허리케인 '헥터'가 이후 태풍이 될 수 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태평양 중부에서 생긴 핵터는 하와이 남부를 거쳐 서쪽으로 이동했는데, 국제날짜변경선(동경 또는 서경 180도의 자오선)을 지나면 성질이나 위력에 변화가 없어도 태풍으로 이름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웨더채널은 이 같은 명칭 변화가 해당 열대성 저기압을 담당하는 '기관'이 바뀌는 것과 보조를 맞춰 이뤄지는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미국을 기준으로 대서양과 동태평양해역은 국립허리케인센터가, 서경 140~180도 부근은 중앙태평양허리케인센터가 담당하고, 서경 180도를 넘어서는 북서 태평양지역은 한국, 일본, 필리핀 등 역내 국가들이 맡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앞서 2014년 허리케인 제너비브, 2015년 허리케인 킬로 등도 국제날짜변경선을 지난 뒤에도 위력을 유지하며 태풍이 된 바 있습니다. 다만 허리케인이 태풍으로 명칭이 바뀔 때까지 지속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데, 열대성 저기압이 일반적으로는 북쪽으로 이동하다 강한 바람과 낮은 수온과 맞닥뜨리며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사진=Earth Nullschool 연구소, 연합뉴스)  출처 : SBS 뉴스
4    [그것이 알고싶다] - "태풍의 이름"?... 댓글:  조회:4281  추천:0  2018-08-23
태풍의 이름은 어떻게 붙이나요?  2012년은 유난히 태풍 피해가 큰 해였어요. 카눈, 덴빈, 볼라벤, 산바까지 모두 4개의 태풍이 상륙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어요. 태풍이 상륙하면 엄청난 재산 피해와 인명 피해를 입어요. 이렇게 무서운 태풍의 이름은 어떻게 붙여지나요?     태풍의 이름은 어떻게 붙이나요?    태풍의 이름은 1953년 호주의 예보관들이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 호주 예보관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의 이름을 이용하여 태풍 예보를 했다고 해요. 1999년까지 태풍의 이름은 괌에 있는 미국 태풍합동경보센터에서 정한 이름을 사용했어요. 그러다가 2000년부터 아시아 각국 사람들의 태풍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태풍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아시아 14개국의 고유한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태풍의 이름은 각 국가별로 10개씩 제출하여 총 140개가 사용됩니다. 각 28개씩 5개 조로 구성하여 1조부터 5조까지 차례로 사용해요. 140개를 전부 사용하는 데는 대략 4~5년이 걸려요. 다 사용하고 나면 다시 1번부터 시작해요. 그러나 루사, 매미와 같이 유난히 큰 피해를 입힌 태풍의 이름은 여러 나라가 합의하여 다시 사용하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요. 그래서 북한에서 제출했던 ‘매미’는 우리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입혀  ‘무지개’로 바뀌었어요. = 태풍의 이름은 이렇게 만들어져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특별한 큰 의미는 없고, 미리 만들어 놓은 이름을 도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랍니다.     구지 의미를 논하라 한다면, 단어를 제출한 그 나라 자체에서 의미를 부여했다면 그게 의미겠지요. 태풍 자체적으로는 의미가 없이 사용되 고 있는 게 태풍의 이름 입니다.     태풍의 눈은 왜 맑은가요? 열대 지역의 바다에서 만들어진 태풍은 점점 세력이 커져요. 구름(적란운)이 어느 정도 생기면 바람은 최초에 생긴 적란운의 중심을 향해 반시계 방향으로 계속 불어와요. 그러면 주위의 적란운은 이 흐름을 타고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해요. 이때 매우 강한 원심력 때문에 중심의 구름이 주위로 밀려나서 지름이 수십 킬로미터나 되는 태풍의 눈이 생기게 돼요. 인공위성에서 촬영하면 태풍의 중심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점으로 보이는데,  이 부분을 태풍의 눈이라고 해요.                       태풍은 어떻게 생기나요? 물은 증발할 때 주변의 열을 빼앗고, 다시 물이 될 때는 주변에 열을 내뿜어요. 더운 여름철에 마당에 물을 뿌리면 시원해지는 것, 사람이 땀을 흘려 체온을 조절하는 것도 물이 증발할 때 열을 빼앗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수증기가 뭉쳐서 물방울이 될 때는 열을 다시 주변으로 내보내요. 열대지역의 바다 표면에서는 증발량이 많아서 더 많은 수증기가 공급되어 더욱 큰 구름이 만들어지고 더 많은 열을 내보내요. 구름의 온도는 수증기가 응결될 때 방출한 열 때문에 주변의 공기보다 온도가 높아져요. 온도가 높아진 구름은 더욱 빨리 상승하게 되고, 따라서 바다 표면의 공기가 빠르게 상승하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주변의 공기들이 빠르게 모여들어요. 즉, 상승기류(하늘로 올라가는 바람)가 강할수록 바닥에서는 바람이 더 강해져요. 이때 바람의 풍속이 17m/s가 넘을 때 태풍이라고 해요. 태풍은 수증기의 공급이 잘 이루어지는 바다에서는 더욱 강해지지만 육지에 상륙한 태풍은 수증기 공급도 줄어들고, 지표와 마찰각주1) 하여 급속히 약해져요. 태풍의 눈                         ===========================///   태풍(颱風)의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태풍(颱風, typhoon) 이란 북태평양 서쪽에서 발생하는 열대저기압을 부르는 말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미크로네시아 일부에 영향을 줍니다. 태풍 발생 통계(1959-2005)에 따르면 태풍은 1년에 31.6건이 발생하여 그 중 68%인 21.5건이 7월에서 10월까지 발생하였습니다.     태풍의 판정 기준은 최대풍속이 17m/s 이상이며 기상위성 사진으로 분석한 열대저기압 강도지수가 일정 값 이상(2.5)이며 계통적인 강풍반경의 존재 여부, 열대저압부의 상하층 조직화 정도, 상층의 발산, 하층의 수렴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된 후 기준 이상이라고 판단될 때 태풍으로 선언합니다.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하는 열대저압부가 태풍으로 발달하였다는 선언은 일본 도쿄에 위치한 지역태풍센터(RSMC)에서만 공식적으로 발표할 수 있으며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에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권한도 이곳에 있습니다.     태풍은 매년 발생 순서에 따라 1호, 2호 하는 식으로 번호가 붙습니다. 번호 외에도 태풍에는 고유 이름이 붙게 됩니다. 태풍은 일주일 이상 지속될 수 있으므로 동시에 같은 지역에 하나 이상의 태풍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때 발표되는 태풍 예보를 혼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태풍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태풍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것은 1953년부터입니다.     태풍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인 것은 호주의 예보관들로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가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었이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공군과 해군에서 공식적으로 태풍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이때 예보관들은 자신의 아내나 애인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태풍 이름이 여성이었다가 각국 여성단체의 나쁜 것에 여성의 이름만 붙이는 성차별이라는 이유로 1979년부터 남성과 여성 이름을 번갈아 사용하였습니다.     북서태평양에서의 태풍 이름은 1999년까지 괌에 위치한 미국 태풍합동경보센터에서 정한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 세계기상기구(WMO) 아시아태풍위원회에서 아시아 각국 국민들의 태풍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태풍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서 태풍 이름을 서양식에서 아시아 지역 14개국의 고유한 이름으로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기상기구(WMO) 태풍 위원회 14개국이 10개씩 제안한 것으로 국가명을 기준으로 로마자 순으로 돌아가며 붙입니다. 총 140개의 이름들은 28개씩 5개 조로 나뉘어 1조 부터 5조 까지 순환되면서 사용됩니다. 하지만, 회원국에게 아주 심각한 피해를 입힌 태풍의 이름은 영구 제명되고 새로운 태풍이름으로 교체됩니다. (태풍이 보통 연간 30여 개쯤 발생하므로 전체의 이름이 다 사용되려면 약 4∼5년이 소요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미(Kaemi), 나리(Nari), 장미(Changmi), 미리내(Mirinae), 노루(Noru), 제비( Chebi), 너구리(Noguri), 고니( Koni), 메기(Megi), 나비(Nabi) 등 10개의 이름을 제출했고, 북한에서도 기러기(Kirogi), 도라지(Toraji), 갈매기(Kalmaegi), 매미(Maemi), 메아리(Meari), 소나무(Sonamu), 버들(Podul), 봉선화(Pongsona), 민들레(Mindulle), 날개(Nalgae) 등 이름을 제출했으므로 한글 이름의 태풍도 많이 있습니다.     1조 부터 5조까지 조별로 순환되면서 사용되는 태풍이름 [4조 예] /{2010년도} 크로반(KROVANH, 캄보디아) → 두쥐안(DUJUAN, 중국) → 무지개(MUJIGAE, 북한) → 초이완(CHOIWAN, 홍콩) → 일본 곳푸(KOPPU) → 켓사나(KETSANA, 라오스) →  파마(PARMA, 마카오) → 멜로르(MELOR, 말레이시아) → 네파탁(NEPARTAK, 미크로네시아 연방) → 루핏(LUPIT, 필리핀) → 미리내(MIRINAE, 대한민국) → 니다(NIDA, 타이) → 오마이스(OMAIS, 미국) → 꼰선(CONSON, 베트남) → 찬투(CHANTHU, 캄보디아) → 뎬무(DIANMU, 중국) → 민들레(MINDULLE, 북한) → 라이언록(LIONROCK, 홍콩) → 곤파스(KOMPASU, 일본) → 남테운(NAMTHEUN, 라오스) → 말로(MALOU, 마카오) → 므란티(MERANTI, 말레이시아) → 파나피(FANAPI, 미크로네시아 연방) → 필리핀 말라카스(MALAKAS) → 메기(MEGI, 대한민국) → 타이 차바(CHABA) → 에어리(AERE, 미국) → 송다(SONGDA, 베트남)     =====================/// 세계기상기구(WMO)에서 태풍의 영향을 받는 14개국(한국, 북한, 미국, 중국, 일본, 캄보디아, 홍콩,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라오스, 마카오, 미크로네시아)에서 10개씩 제출한 140개의 이름을 28개씩 5개로 나누어 국가명 알파벳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붙인다. 140개를 다 사용한 후에는 다시 1번부터 시작한다. 원래 태풍 이름은 괌에 있는 미국 해 ・ 공군 합동 태풍경보센터(JTWC)에서 남녀 영문이름을 지어놓은 것을 사용했지만 1997년 홍콩에서 열린 제 30차 태풍위원회에서 회원국인 미국과 아시아 각국 언어로 바꾸기로 결정한 후, 2000년부터 지금의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제안한 이름 개미, 제비, 나리, 너구리, 장미, 고니, 수달, 메기, 노루, 나비 등 10개와 북한이 제안한 이름 기러기, 소나무, 도라지, 버들, 갈매기, 봉선화, 매미, 민들레, 메아리, 날개 10개를 합하여 한글 태풍 이름은 모두 20개가 있다. ============================/// 1. 태풍 이름 사용 이유 다른 자연 현상이나 재난과 달리 태풍에는 이름을 붙여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태풍은 한번 발생하면 일주일 이상 지속될 수 있다보니 동시에 같은 지역에 여러개의 태풍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 이상의 태풍을 서로 혼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이름을 붙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1953년 호주 예보관들이 처음으로 태풍에 이름을 붙여 예보하기 시작하였으며, 싫어하는 정치인들의 이름을 태풍 이름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공군과 해군에서 공식적으로 태풍 이름을 붙여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북서태평양에서의 태풍 이름은 1999년까지 괌에 있는 미국 태풍합동경보센터에서 정한 이름을 사용 하였습니다. 그러다 2000년부터는 태풍위원회에서 아시아 각국의 태풍에 관한 관심을 높이고자 아시아 지역 14개국의 고유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2. 태풍 이름 정하는 방법 및 순서 태풍 이름은 한국, 캄보디아, 중국, 북한, 홍콩, 일본, 라오스, 마카오, 말레이시아, 미크로네시아, 필리핀, 태국, 미국, 베트남 14개 국가별로 10개씩 제출한 총 140개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28개씩 5개조로 구성이 되었으며, 1조부터 5조까지의 이름을 순차적으로 사용을 합니다. 140개의 이름을 모두 사용하면 다시 1번 부터 다시 사용을 합니다. 1년에 태풍이 30여개 발생하므로 140개 이름을 한번 다 사용하는데 평균 4~5년이 걸립니다. 태풍 이름 순서 우리나라에서는 개미, 나리, 장미, 미리내, 노루, 제비, 너구리, 고니, 메기, 독수리 등의 태풍 이름을 제출하였습니다. 북한에서 제출한 태풍의 이름은 기러기, 도라지, 갈매기, 수리개, 메아리, 종다리, 버들, 노을, 민들레, 날개 입니다. 2018년에 개정된 태풍의 이름입니다. 순서대로 사용을 합니다. 2018년 6호 태풍은 개미이며, 7호 태풍 이름은 쁘라삐룬입니다. 8호 태풍은 마리아가 되겠죠? 이런식으로 순서대로 사용을 합니다.     ==========================/// 태풍의 이름은 어떻게 붙일까? Q) "이번 태풍 나비가 현재 계속 북서쪽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던 이슬이는 깜짝 놀라 엄마를 쳐다보았어요. "엄마, 태풍 이름이 나비래요."과연 태풍의 이름은 어떻게 붙이는 걸까요? ⓒ (주)천재교육 | BY-NC-ND 정답 : ③ 알아보기 태풍은 북태평양 남서부에서 발생하여 동북 아시아 내륙으로 불어닥치는 열대성 저기압을 말해요. 태풍에 이름을 붙인 것은 1953년부터예요. 괌에 있는 미국 태풍 합동 경보 센터에서 태풍의 이름을 알파벳 순서로 정해 놓고 발생 순서에 따라 하나씩 차례로 썼어요. 1987년까지는 태풍에 여자의 이름을 붙였어요. 그 다음에는 남자 이름과 여자 이름을 번갈아 썼지요. 2000년부터는 아시아 태풍 위원회에 속한 14개 나라가 각각 10개씩 낸 이름을 번갈아 쓰고 있어요. 아시아 각 나라 국민들의 태풍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태풍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서지요. 우리 나라는 개미, 나리, 수달, 너구리, 메기, 장미, 고니, 제비, 나비, 노루 등의 태풍 이름을 냈고, 북한에서도 도라지, 버들, 갈매기, 기러기 등 10개의 한글 이름을 냈어요. ===========================///   태풍은 일주일 이상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동시에 같은 지역에 하나 이상의 태풍이 있을 때를 대비해 태풍 예보를 혼동하지 않기 위해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태풍이름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태풍이름은 태풍위원회에서 정해지는데, 이 기구에는 태풍의 영향을 받는 14개국이 속해 있는데 각 나라에서 10개씩 제출해서 태풍이름으로 사용합니다. 각 나라에서 정한 140개 이름을  모두 사용하고 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태풍은 1년에 대략 20개에서 30개정도 생기니 140개면 5-7년마다 돌아 온다고 보면 되겠네요.. 쁘라삐룬이 지난주에 왔으니,지금올라오는 태풍은 마리아 네요.. 태풍위원회는 매년 총회를 여는데, 이 총회에서 큰 피해를 주는 태풍 이름은 없애기도 하는데 대표적인게 매미와 나비 입니다. 2003년 매미는 우리 나라를 강타했고, 나비는 2005년 일본을 강타하여 엄청난 재해를 일으켰었네요..그래서 매미와 나비를 빼고, 독수리와 무지개를 넣었지요.. 태풍이름 의미는 어떨까요.. 태풍에서 퇴출된 이름 태평양 북서부에서 발생해서 동부 및 동남아시아에 영향을 주는것을 태풍 태평양 남부에서 발생해 오세아니아에 영향을 주는 것을 윌리 인도양에서 발생해서 남부아시아 일대에 영향을 주는 것을 사이클론 멕시코 만에서 발생해 북아메리카에 영향주는것을 허리케인      
3    [이런저런] - 무서운 폭염으로 "72년전"이 드러나다... 댓글:  조회:2851  추천:0  2018-08-23
알프스 눈 녹자 드러난 72년 전 비행기 (ZOGLO) 2018년8월23일  유럽의 폭염으로 스위스의 알프스 눈이 녹으며 72년 전 알프스에 추락한 비행기 잔해가 발견됐습니다. 15일 스위스 베르네즈 알프스의 가울리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수송기 C-53 스카이트루퍼 다코타의 잔해가 공개된 것입니다. 이 항공기는 1946년 11월 19일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던 중 악천후 탓에 불시착했습니다. 당시 8명의 승객과 4명의 승무원은 초콜릿바와 눈 녹인 물에 의지해 5일을 버티다 스위스군에게 구조됐습니다. 스위스 과학자들은 올해와 같은 폭염이 계속된다면 2050년에는 알프스의 눈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가울리=AP 뉴시스
2    [이런저런] - 유언이 사실로... 댓글:  조회:3028  추천:0  2018-08-23
'아들도 죽는다면…' 英 백만장자 파격 유언장 (ZOGLO) 2018년8월23일  작년 말 가족과 사고死 당한 故 커즌스 컴퍼스그룹 회장 유언대로 구호단체에 재산 넘겨 리처드 커즌스 회장   "만약 내가 두 아들과 동시에 죽는 일이 생긴다면 재산을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에 기부하겠다."   세계 최대 케이터링(식음료 출장 서비스) 업체인 영국 컴퍼스그룹을 이끌던 리처드 커즌스(Cousins·사진) 회장은 2015년 33년을 함께 산 아내를 암으로 잃었다. 사별 후 커즌스 회장은 자신이 죽으면 두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준다는 내용으로 유언장을 썼다. 여기에 한 줄짜리 '공동 비극 조항'을 넣었다. 만약 자신과 두 아들까지 세 사람이 한꺼번에 죽는 일이 생긴다면 세계 최대 구호단체인 옥스팜에 재산의 대부분을 넘기겠다고 했다.   이런 내용이 담긴 유언장을 작성한 지 1년 만에 셋이 한꺼번에 숨지는 비극이 실제로 일어났다. 작년 12월 31일 호주 시드니 근교에서 커즌스(당시 58세) 회장은 아들 둘과 함께 탄 관광용 경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숨졌다. 커즌스 회장이 약혼한 잡지 편집장 엠마 보든과 보든이 전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딸도 함께 목숨을 잃은 사고였다.   커즌스 회장이 남긴 재산은 4400만파운드(약 635억원)에 달했다. 유언장의 '공동 비극 조항'은 구체적으로 그가 아들 둘과 동시에 사망할 경우 친인척에게 줄 300만파운드(약 43억원)만 빼고 전액 옥스팜에 기부한다고 돼 있다. 이에 따라 옥스팜은 예상치 못했던 4100만파운드(약 592억원)를 건네받게 됐다. 커즌스 회장의 두 형제는 각 100만파운드(약 14억4000만원)만 상속한다.   옥스팜은 가뭄 속 단비를 맞게 됐다. 커즌스 회장이 숨진 지 40여 일 만에 옥스팜은 2011년 아이티 지진 당시 구호 활동에 나선 직원들이 기부금으로 성매수를 한 사실이 드러나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동아닷컴  
1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태초의 아침 댓글:  조회:3511  추천:0  2018-08-23
    윤동주  /태초의 아침 봄날 아침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 그런 날 아침도 아닌 아침에 빨-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푸른데, 그 전날 밤에 그 전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 사랑은 뱀과 함께 독은 어린 꽃과 함께. '태초의 아침'은 우리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시간, 흔히 말하는 사계절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아닙니다. 계절을 뛰어넘어 최초의 시간을 말하는것 같습니다. 시를 읽다보면  푸른 빛 사이에서 핀 빨간 꽃의 의지도 느껴지는데요. 시는 읽는 사람의 현재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를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   윤동주의 태초의 아침   태초(太初)의 아츰 봄날 아츰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 그런날 아츰도 아닌 아츰에   빨-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푸른데   그 전(前)날 밤에 그 전(前)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   사랑은 뱀과 함께 독(毒)은 어린 꽃과 함께   이 시는 사랑과 죽음은 태초의 아침 전날 밤에 마련된 것이다는 내용이다.   화자는 세상이 창조된 ‘태초(太初)의 아츰’은 ‘봄날’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이 생기기 전의 아침이며 그날 아침은 ‘햇빛이 푸’르른 아침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침에 ‘하와’를 의미하는 아름답고 ‘어린 꽃’인‘빨-간 꽃이 피어났’고, ‘뱀’은 ‘어린 꽃’를 사랑하여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불륜을 저지른 존재이며, 이로 인해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온 ‘독’은 ‘어린 꽃’인 하와로 인해서 생긴 것이나 이 모든 것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날 밤에 창조주에 의해 ‘마련’된 것이다고 바이블의 창세기 설화를 해석을 하였다.   ‘태초(太初)의 아츰’은 ‘하늘과 땅이 생겨난 맨 처음’ 맞이 하는 ‘아침’이다. 이 아침은 우리가 알고 있는 ‘봄날 아츰도 아니고/ 여름, 가을, 겨울’의 ‘아츰도 아닌 아츰’으로 우리는 모르는 아침이다.   ‘빨-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푸른데’는 도치된 문자이다. 화자가 생각는 ‘태초(太初)의 아츰’은 ‘햇빛이 푸’르게 빛나는 맑은 아침이다. ‘푸른데’의 ‘-데’는 사전에 ‘하게할 자리에 쓰여, 과거 어느 때에 직접 경험하여 알게 된 사실을 현재의 말하는 장면에 그대로 옮겨 와서 말함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이다. 그러나 ‘-데’는 ‘-데’ 앞에 붙은 어간의 의미와 배치되는 일이 일어나는 상황이 생겼다는 느낌을 풍긴다. 이 일이 ‘빨-간 꽃이 피어났네’이다. ‘빨-간’은 ‘빨간’을 강조하는 말이며, ‘푸른’과 색이 대비되어 ‘정열, 아름다움, 유혹’의 느낌을 주는 색이다. ‘푸른’이 주는 ‘차분함, 맑음, 이성’과 대비된다. ‘꽃’은 관습적 상징으로 ‘여자’를 의미한다.   ‘그 전(前)날 밤에/ 그 전(前)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 // 사랑은 뱀과 함께/ 독(毒)은 어린 꽃과 함께’는 연이 도치되었다. ‘사랑은 뱀과 함께/ 독(毒)은 어린 꽃과 함께’에서 ‘뱀’은 바이블 ‘창세기’에 에 기록된 설화에 나오는 뱀이다. 이 설화는 ‘신이 세상을 창조하였고,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는데 뱀이 하와에게 신이 먹지 말라한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게 하고 하와가 짝인 아담에게 이를 먹게 해서 신에게 죄를 짓게 했고 그 결과 죽음을 얻었다.’는 내용이다. 화자는 ‘뱀’이 ‘하와’에게 신이 먹지 말라한 생명나무 열매를 먹게 한 행위를 ‘하와’를 사랑하여 유혹한 것으로 본 것이다. ‘뱀’의 ‘사랑’의 대상은 ‘빨-간 꽃’인 매우 아름답고 정열적이며 유혹적인 ‘하와’이다. ‘하와’는 짝이 있었으므로 지금의 윤리로 보면 ‘뱀’의 ‘사랑’은 불륜의 사랑이다. ‘독(毒)’은 ‘건강이나 생명에 해가 되는 성분’으로 중독(中毒)되면 죽음에 이른다. 그러므로 ‘죽음’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온 ‘뱀’의 ‘독’은 불륜으로 생긴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인간의 죽음이 온전히 ‘뱀’에게서만 온 것으로 보지 않고 ‘뱀’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자기 짝을 신에게 거역하게 한 ‘하와’에게서도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린 꽃’은 하와를 말하는데 여기서 ‘어린’은 하와의 정신적 성숙도를 말하는 것이다. 아직 하와는 어려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불륜인지 모르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뱀의 사랑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죽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전(前)날 밤에/ 그 전(前)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는 화자가 바이블을 해석하는 관점을 나타낸다. 신의 명령을 어기게 만든 뱀과의 불륜의 ‘사랑’을 한 죄와 죽음을 가져오는 ‘독’이 ‘뱀’과 ‘하와’에서 온 것이라 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이’ 그 근원을 탐구하면 ‘태초(太初)의 아츰’이 오기 전인 ‘그 전(前)날 밤에’ 이미 신에 의해 ‘마련’된 것이다는 생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사상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기독교는 ‘뱀’을 신에 대항하는 적대 세력인 ‘사탄’으로 보고 인류가 영생하지 못하고 신의 명령을 거역한 죄를 지어 ‘죽음’에 이르게 됐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화자는 이 모든 죄와 죽음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마련된 신의 계획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시를 쓴 윤동주를 기독교 시인이라 하는 주장이 있는데 이 시를 보면 이러한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시인 윤동주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으나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받아들였고 기독교의 모티브를 차용하여 시를 썼으나 기독교의 사상을 반영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윤동주를 기독교 시인이라 하는 항간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전한성     ======================/// 유성호의 윤동주 100주년, 문학과 역사  -  ‘1인칭’ 과 ‘너머’ 의 시인 ◇ 윤동주의 생애를 다시 보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나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福岡) 감옥에서 타계하였다. 우리 나이로 스물아홉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한국문학사에서 윤동주처럼 이른바 요절 문인으로 알려진 이들은 이상(1910∼1937), 김유정(1908∼1937), 박인환(1926∼1956), 기형도(1960∼1989) 등이다. 모두 30년을 채 못 살았지만, 이들이 남긴 작품들은 한결같이 한국문학사를 환하게 비추는 당대의 별이자, 지금도 애독되는 고전적 텍스트들이다. 그런데 이들과 윤동주가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윤동주는 마지막 생애 1년 7개월가량을 경찰서와 감옥에 있었다. 1943년 7월 14일 일본 교토(京都)에서 독립운동 혐의로 피검되어 12월 6일 검사국으로 송국되었고, 1944년 2월 22일 송몽규와 함께 기소되었고, 3월 31일 교토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형을 받았고, 그 후 후쿠오카로 이감되어 그곳에서 이름 모를 주사를 맞으면서 죽어갔다. 그러니 그의 27년 1개월 남짓한 생애에서 1년 7개월의 공백이 생긴다. 계산하면 그가 자유롭게 세상을 호흡한 시간은 25년 6개월 15일 정도인 셈이다.  그런데 윤동주가 교토에서 살았던 동안의 기록들 역시 망실되어 지금 찾을 수 없다. 당시 도쿄(東京)에 있던 당숙 윤영춘이 서둘러 교토에 와 윤동주를 취조실에서 면회했을 때 윤동주가 자신이 쓴 조선어 글을 모두 일본어로 번역하고 있었다고 술회한 것으로 미뤄, 윤동주는 교토에 있는 동안에도 많은 글을 썼을 것이다. 윤영춘도 그 원고량이 상당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하지만 그 글들은 지금 우리에게 없다. 그러고 보면 윤동주가 우리에게 남긴 지상 최후의 기록은, 도쿄의 릿쿄(立敎)대를 다니던 1942년 6월 즈음에 연희전문 동기인 강처중에게 편지와 동봉하여 보낸 시편들이다. 릿쿄대 편지지에 깨끗하게 정서한 그 작품들은 ‘흰 그림자’ ‘사랑스런 추억’ ‘흐르는 거리’ ‘쉽게 씌어진 시’ ‘봄’이다. 앞의 네 편에는 창작 일자가 남아 있고, 마지막 ‘봄’에만 날짜가 빠져 있다. ‘사랑스런 추억’과 ‘흐르는 거리’는 각각 5월 13일과 5월 12일의 창작 일자를 달고 있으니까 윤동주가 꼭 창작 순서대로 정서를 한 건 아니다. 그러니까 ‘봄’은 대략 ‘흰 그림자’를 쓴 4월 14일부터 ‘쉽게 씌어진 시’를 쓴 6월 3일까지 어름에 쓰였을 것이다. 늦게 잡아도 ‘봄’이라는 시상에 어울리려면 6월 안에는 썼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윤동주가 남긴 120여 편의 시와 4편의 산문은 모두 1942년 6월 이전의 작품이 된다. 어림잡아 윤동주의 ‘기록자로서의 생애’는 24년 5개월 남짓이 되는 셈이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윤동주의 발화는, 모두 20대 초반에 이뤄진 것들이다. 이는 앞에서 거론한 이상, 김유정, 박인환, 기형도 등의 대표작이 대부분 20대 후반에 쓰였다는 점과 유의미한 대조를 이룬다. 이상의 ‘날개’나 ‘권태’ ‘실화’ 등은 그의 말년에 쓰였고, 김유정의 ‘동백꽃’ 등도 마찬가지다. 박인환의 걸작 ‘세월이 가면’도 유작으로 쓰인 것이고, 기형도도 대부분 20대 후반에 절창들을 연쇄적으로 써나갔다. 그런데 윤동주는 20대 초반에 그의 모든 작품을 쓴 것이다. 이 점은 강조되어 마땅한데, 그만큼 윤동주가 과조숙한 사람이었으며, 또 그에게 20대 후반이 허락되었다면 더욱 훌륭한 작품을 남겼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해주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윤동주는 진짜 ‘청년 시인’이 아닐 수 없다.     ◇‘일인칭’의 시인 윤동주 하지만 이러한 요절 자체가 윤동주에 대한 비상한 매혹을 불러온 것은 아니다. 그는 좋은 시를 다수 남긴 훌륭한 근대 시인이고, 어쩌면 한국문학사 전체를 조회해 보더라도 그 함량과 파생력에서 단연 일급에 속한다. 그렇다면 윤동주 시가 가지는 진짜 브랜드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부끄럼’을 키워드로 하는 성찰의 언어와 ‘저항’을 키워드로 하는 민족주의적 독법이 오래전부터 매개하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조금 시각을 달리하면, 윤동주는 다른 시인에게서는 찾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그만의 독자적인 특장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한편으로는 ‘나’를 고백한 시로, 다른 한편으로는 ‘너머’를 상상한 시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끊임없이 토로하고 고백한 일종의 ‘자기 폭로’로서의 예술을 보여준 윤동주의 특성은,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서정시의 원리이니 새삼 크게 강조할 것도 못 된다. 하지만 윤동주가 시를 공부하고 노트에 써두고 또 자필 시고를 묶을 때의 한국 시의 맥락과 성취를 전제해 보면, 그 방향과 성취는 자못 돌올하다.  먼저 윤동주가 깊이 사숙하고 모방하고 또 비껴갔던 정지용의 경우, 그는 근대적 개인으로서의 ‘나’를 전면에 내세우는 고백 시편보다는 풍경을 발견하고 그것을 선명하게 담아내는 사물 시편을 많이 썼고, 아니면 주체를 지우면서 신성이나 풍경 속에 몰입하는 신앙 시편과 후기 ‘백록담’ 시편을 썼다.  윤동주는 그에게서 시어의 혁신, 이미지의 참신함, 조선어의 예술성 구현 등을 정성껏 배웠지만, 시 안에서 차분하게 일인칭의 목소리를 발화하는 점에서는 스승의 시로부터의 역주행을 택했다. 사실 윤동주의 화자는 그대로 청년 윤동주의 발화와 가장 가까운 근사치이다. 이 점은 앞 시대의 소월이나 만해가 주로 배역 시편을 썼다거나, 임화나 이상이 실험적인 다양한 화법의 시를 썼다거나, 김기림이나 김광균 등이 묘사 시편을 썼다거나 하는 사실로부터 훌쩍 벗어난 윤동주만의 문학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에게는 시인과 화자 또는 내포적 화자와 현상적 화자 같은 개념이 미분화한 채, 시인 자신의 진솔한 고백에 시적 발화가 통합되어 있다. 물론 이는 백석의 후기 시편들과 구조적 동류항을 이룬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윤동주 시만의 ‘자기 폭로’ 방법을 독자들이 좋아했던 데 있다. 윤동주는 끊임없는 부끄럼과 고통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스스로를 들여다보았다. 그가 시 안에서 “괴로워했다”라고 쓰면 그것은 그대로 윤동주 자신의 괴로움이 되고,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바람이 불어’)라고 말하면 연애 한 번 안 해본 사람으로 의심 없이 받아들여진다. 우리 근대 독자들은 서정시의 이러한 고백을 마음 열고 엿들으면서, 자기와의 동화와 투사를 감동 깊게 수행해간 것이다.  이때 시의 화자 ‘나’는 시의 독자 ‘나’와 순간적으로 통합되면서 일체감을 낳는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사랑스런 추억’)라는 예언을 들으면서는 그 예언이 이뤄지지 않은 그의 불행한 생애를 불멸처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나오는 ‘나’는 그대로 ‘청년 윤동주’였고, 우리는 그가 고백하는 ‘나’를 만나 “최초의 악수”(‘쉽게 씌어진 시’)를 한 셈이다. 윤동주가 우리에게 이렇게 보편성과 항구성을 띤 채 새롭게 읽히는 것은, 그가 그 당시에 매우 새롭게 채택한 일인칭 고백으로서의 시법에 원인이 있고, 그 형식을 통해 자신만의 흔치 않은 진정성을 보여준 데 더 큰 까닭이 있는 것이다. ◇‘너머’의 시인 윤동주 이렇게 ‘나’를 고백한 시 외에도, 윤동주에게는 그만이 가진 매우 중요한 지향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을 우리는 ‘너머’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윤동주는 현상적인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들여다보면서도 그 ‘너머’에 존재하는 ‘또 다른’ 곳을 넘겨다본 시인이다. 그는 고향에 돌아와서도 “또 다른 고향”을 찾아 떠난다. 그곳이 진정한 고향이 아니라 고향 ‘너머’의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전제한 발화이다. 또한 그는 참회록을 써놓고도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쓰고자 한다. 날카로운 첨탑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또 다른 십자가를 상상적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인류의 괴로움을 지고 괴로워했던 그리스도의 희생 이미지와 연결된 것이다. 그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기꺼이 희생의 불가피성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또 다른’ 속성의 확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태초의 아침’을 넘어 ‘또 태초의 아침’을 노래하는 것 역시 차원이 전혀 다른 아침을 통해 신성과 세속이 벌이는 갈등의 드라마를 보여주려는 의욕을 담고 있지 않은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자화상’에는 세 명의 ‘사나이’가 나온다. 가을밤에 논가 외딴 우물에 가서 윤동주는 ‘한 사나이’를 들여다본다.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가다 다시 그 사나이가 가엾어져 도로 가 들여다본 것은 ‘그대로 있는 사나이’다. 다시 그가 미워져 돌아가다 생각하니 이제 그 사나이가 그리워진다. 이제는 그 사나이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 그 우물 속에는 천체들의 이동과 함께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처럼 ‘미움-연민-미움-그리움’의 감정 회로를 따라가면서 궁극적으로 성숙한 시선을 통한 자기 긍정에 이르는 이 감동적인 흐름 역시 ‘사나이’와 ‘또 다른 사나이’ 사이의 시간과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집 마지막 작품인 ‘별 헤는 밤’에서 흙으로 덮어버린 이름 위에 자랑처럼 무성한 풀 역시 시인이 욕망하는 ‘또 다른 이름’의 형상일 것이다. 그렇게 윤동주는 현상 ‘너머’, 지금 ‘너머’, 이곳 ‘너머’를 오래도록 상상한 시인이다.   이 점은 재차 강조되어 마땅한데, 사실 이처럼 ‘또 다른’ 차원으로의 존재 전환에 대한 갈망과 희원은 우리 시사에서 매우 드문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를 일러 이원론적 사유라고 해도 좋고, 형이상학적 전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윤동주는 이러한 입체적인 ‘치명적 도약’(옥타비오 파스)을 이뤄낸 시인으로서, 이는 소월이나 백석이나 김수영조차 가지지 못했던 영역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존재 비약과 전환의 욕망은 앞으로 더욱 세심하게 논구되어야 할 윤동주 득의의 브랜드일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윤동주가 요절 때문에 작품 외적으로 과대평가된 것이 아니라, ‘저항시인’이라는 민족주의적 독법에 따라 시대적 후광을 얻은 것이 아니라, 우리 근대 시사에서 퍽 드문 영역인 ‘나’를 고백한 시, ‘너머’를 상상한 시로 남은 고전적 텍스트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문화일보 9월 12일자 25면 6회 참조)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 유성호의 윤동주 100주년, 문학과 역사   - 윤동주와 기독교  ◇윤동주와 기독교  마르틴 루터에 의한 근대 종교개혁이 올해로 500주년을 맞았다고 연일 매스컴에서 강조하고 있다. 종교개혁이란, 로마 가톨릭의 역사적 과오와 한계를 비판하면서 시작된 ‘저항 종교’로서의 프로테스탄트가 새로운 근대를 열면서 중세의 인적, 제도적 질서를 허문 사건이다. 우리가 윤동주를 생각할 때, 떼려야 뗄 수 없는 발생론적 원천처럼 생각하는 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트를 둘러싸고 그가 수용한 지적, 정서적, 영적 경험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윤동주의 시가 북간도 기독교와 여러모로 연관성을 가진다는 사실은 그간 윤동주 연구에서 누차 강조되어온 터였다. 특별히 복음주의적 전통이 깊이 착근된 서북 기독교와는 달리, 민족주의를 사상적으로 받아들인 채 전개된 북간도 기독교는 그의 사유와 경험 체계에 매우 중요한 개성과 전기를 부여했을 것이다. 따라서 북간도 기독교는 윤동주로 하여금 수난과 영광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영적 선지자들의 계보를 잇는 종교적 프리즘으로 세상을 바라보게끔 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동주의 시를 기독교라는 원리나 역사의 선명한 번안 정도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의 복합적인 내면과 언어와 전망은 기독교라는 원근법으로만 해석하기에는 워낙 강한 원심력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검출되는 종교적 상상력이란 내적 성찰과 완성을 향하여 저류(底流)에서 흐르는 힘이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그러한 지향이 잘 담겨 있는데, 그 점에서 이 시집은 식민지 시대에 쓰인 가장 중요한 종교적 상상력의 보고이기도 하다.  ◇윤동주의 종교적 작품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윤동주가 직접 자선하여 실은 종교적 작품은 모두 여섯 편이다. 이미 창작 노트에 훨씬 많은 작품을 써놓은 터에 그 가운데서 윤동주가 열여덟 편만을 뽑았다는 것은, 이 시집 원고가 1941년 11월 시점에서 윤동주 시의 정점이었음을 잘 알려준다. 그 점에서 이 시집 원고에 종교적 작품이 여섯 편이나 된다는 것은 매우 높은 비중이 아닐 수 없다. 시집에 실은 순서대로 보면 ‘태초의 아침’ ‘또 태초의 아침’ ‘새벽이 올 때까지’ ‘무서운 시간’ ‘십자가’ ‘바람이 불어’ 등이 그 목록을 차지한다. 먼저 ‘태초의 아침’에서 윤동주는 신의 창조 사역이 완전무결한 질서로 귀결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모순으로 둘러싸인 세계로 나아갔다는 개성적 인식을 드러낸다. 가령 그는 ‘사랑’과 ‘뱀’, ‘독(毒)’과 ‘어린 꽃’이 갈등적으로 공존하는 세계를 노래한다. 이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조를 동반하면서 선명하게 모순과 갈등으로 점철되어갈 세계를 예견하게끔 해준다. 이어지는 작품 ‘또 태초의 아침’ 역시 창조의 과정에서 계시와 함께 낙원 상실이 함께 왔음을, 그리고 원죄와 부끄럼과 노동과 해산이라는 인간적 고통의 목록들이 연이어 역사 안으로 개입해왔음을 증언한다.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라는 마지막 행의 다짐은 신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함의하기도 하지만, 갈등의 시대에 자신을 숨기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희생적 이미지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새벽이 올 때까지’는 이러한 창조와 희생의 이미지가 종말론적으로 반추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종말론이란 지상에서의 마지막 일들에 관한 예언 혹은 묵시적 가르침을 함의한다. 이는 신의 뜻에 의한 역사의 완성을 전제로 하는데, 이를 통해 인간은 신의 뜻에 따라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동기를 부여받게 된다. 새벽이 되어 울려올 “나팔소리”는 죽음과 삶의 반영체인 ‘잠’과 ‘젖’을 하나로 묶어주면서, 결국 ‘죽어가다’와 ‘살아가다’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종말론이 운명적 비관론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종말론적 관심은 ‘무서운 시간’으로 자연스럽게 연계되는데, 이 작품에서 윤동주는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와 그것을 일종의 윤리적 의지로 탈바꿈시키려는 사명감을 함께 보여준다. “일이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은 어쩌면 ‘사랑’과 ‘뱀’이 함께 창조된 그날 아침의 필연적 결과일 것이다. 그다음에 실린 ‘십자가’는 윤동주 종교 시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윤동주는 희생과 속죄양 의식을 동시에 노래한다. 사실 ‘십자가’는 기독교 전통의 표상이자 고난의 상징이다. 시인은 첨탑 위의 십자가가 비록 구원에 이르는 길일지라도 그것이 너무 높고 다다르기 힘든 대상임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그래서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라면서 서성일 뿐이다. 그러나 윤동주는 여기서 ‘또 다른 십자가’를 상상함으로써 새로운 언어를 얻어간다. 그것은 인류의 고통을 짊어지고 괴로워했던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높고 날카로운 천상의 십자가가 그리스도가 기꺼이 졌던 지상의 십자가로 몸을 바꾸는 순간이다. 이때 우리 시사의 한 절창이 이어진다. 그것은 “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는 구절이다. 이는 앞으로 시인 자신이 겪어야 할 수난과 희생의 장면을 뚜렷하게 암시하는 표현이다.  마지막으로 ‘바람이 불어’는 그러한 종교적 갈등을 벗고 십자가를 내면화한 채 나아가는 출사표와 같이 다가온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라는 구절에서의 ‘반석’과 ‘언덕’은 단연 신약성서의 키워드이다. 그것은 가혹한 수난과 굳건한 기초라는 함의를 한꺼번에 띠면서 윤동주가 비록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고 고백할지라도 앞으로 시대와 신앙을 결속하면서 움직여갈 것임을 암시해준다. 이처럼 시집에 실린 여섯 편의 작품은 ‘창조-모순-갈등-희생-종말-십자가-반석’의 서사를 완성하면서 그가 원숙한 신앙적 단계를 경험하고 반추하고 또 귀납했음을 알려준다. 그래서 이 여섯 편은 내용적으로도 하나같이 중요하지만, 실린 순서도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새로운 종교성을 향하여  그런가 하면 윤동주가 시집 원고를 마련한 후에 쓴 ‘간’이라는 작품은, 윤동주 시의 일반적 주제인 자아와 세계 사이의 갈등과 긴장이라는 문제를 설화를 빌려 파고들어 간 결실이다. 작품 안에는 두 개의 설화 곧 프로메테우스와 귀토 설화가 뒤섞여 있다. 이 둘은 간이라는 공통 소재를 중심으로 결합되어 있다. 여기서 토끼의 설화는 현실의 고난을 벗어나기 위해 환상을 꿈꾸지만 자신이 바라던 이상 세계는 갈등의 현세이며 지상이 소중한 낙원임을 깨닫는 인간의 자각을 담은 이야기이다. 토끼는 바닷가 바위 위에 간을 말리고 있으며 그 둘레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킨다. 이때 시인은 코카서스의 큰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묵묵히 감내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로 상상을 이어간다. 여기서 간은 인간의 실존적 본질로서 매일 쪼아 먹히면서도 새로 돋아나는 인간적 고통의 핵심이 된다. 토끼와 독수리는 인간의 양면 혹은 두 개의 자아를 표상한다. 곧 독수리는 화자의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을 쪼아내며 자신에게 아픔을 주는 내부의 예리한 의식이다. 곧 이것은 현실적 자아를 반성하는 도덕적 결백성의 반성적 자아이다. 화자는 이 고통을 통해 반성적 의식이 살질 것을 기대하며, 용궁의 유혹을 벗어나 보겠다는 덧없는 환상에 빠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는 어떤 초월적 희망에 대한 환상도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고, 고통스러운 자기 응시의 긴장을 항구적으로 택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결연한 의지로 맞서는 비극적 인간 곧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으로서, ‘십자가’의 속죄양 의식과도 적극적으로 상통한다. 결국 이 작품은 윤동주 시에서 가장 의지적이고 적극적인 자아상이 등장하는 시편이다. 설화를 상상적으로 변용하여 시인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 존엄성을 잃지 않는 이상적 자아의 모습을 설화 주인공과 동일시하여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종교적 상상력은 설화적 차용의 모티브뿐만 아니라, 견인과 의지라는 표상을 역설적으로 제시해주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 작품은 이처럼 윤동주에게 새로운 종교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단초가 되어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호 융합적인 활달한 상상력은 그의 생애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 후 그는 일본으로 떠났고, 다섯 편의 도쿄(東京) 시편을 남겼을 뿐이다.  ▲  윤동주가 1942년 유학했던 일본 도쿄의 릿쿄대. ◇가혹한 현실을 견디게끔 해준 견인의 바탕  윤동주는 생애 내내 학생이었고 학교도 여럿 다녔다. 그 가운데 명동소학교, 은진중학, 숭실중학, 연희전문은 물론, 일본의 릿쿄(立敎)대학과 도시샤(同志社)대학도 모두 개신교 계열의 미션스쿨이었다. 윤동주가 근대적 의미의 종교개혁이나 이스라엘 수난사로서의 성경 내러티브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고 또 그것을 자신의 의식 전면에 장착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윤동주에게 종교란 자신을 성찰하고 완성해가는 중요한 원천이자 통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슬픔과 연민, 죽음과 부활의 연쇄적 서사는 어떤 의미로든 그에게 “나한테 주어진 길”을 상상하게끔 했을 것이며, 성경 안에 자욱하게 펼쳐진 어둑한 묵시록이나 종말론은 모두 가혹한 현실을 견디게끔 해준 견인의 바탕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윤동주는 제재 차원의 배경적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은총과 갈등을 함께 가능하게 한 광장이자 감옥으로서의 종교를 경험하고 상상했다. 그래서 그의 시에 나타나는 종교란, 경험적 구체성과 함께 한국 기독교 시의 역사에서 가장 개성적인 갈등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장관으로 다가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과는 그를 척박한 근대 종교사에서 가장 우뚝한 시인으로 서게끔 해주는 핵심적 질료가 되었던 것이다. 이 점은 김현승, 박목월, 박두진 등의 종교 시편들과 함께 궁구되어야 할, 우리 근대시 역사 전체에서의 윤동주 득의의 성취일 것이다. (문화일보 10월 10일자 25면 7회 참조)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 유성호의 윤동주 100주년, 문학과 역사   윤동주를 위하여 -끝-   단정하고 치열하고 아름다운   삶과 시가 일치했던 시인   韓 현대문학사 독특한 성취  자기고백과 성찰 기록한 시   먼 식민지배에 대한 기억 아닌   지금 우리의 망각에 대한 각성  윤동주 탄생 100주년 맞아   ‘영원한 청춘’의 시인 재평가   세월 가로지른 감동으로 부활  ◇현대문학사에서의 윤동주 = 그동안 우리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를 따라, 윤동주를 찾아, 많은 길을 가로지르고 또 돌아왔다. 이제 우리는 윤동주를, 길지 않은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남다른 가치와 개성으로 숨 쉬고 있는 시인으로 기억하게 됐다. 그가 남긴 오롯한 시편들은 원초적으로 시와 삶의 분리 불가능성 속에서 발원하여 우리의 가장 깊은 실존의 심부에 와 닿는다. 어쩌면 그의 삶 못지않게 그의 죽음 역시 그 극적 성격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를 불멸로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언어는 상황과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 감동으로 살아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른 나이에 운명한 사람의 불가피한 미완의 성격을 염두에 두고라도, 윤동주의 단정하고 치열하고 아름다운 시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탈환시키는 항구적 보고(寶庫)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윤동주의 시는 자전적 성격이 강하고, 그의 시에 나타나는 화자는 윤동주 개인과 거의 일치한다. 그의 시가 비록 연륜을 쌓은 원숙함과는 다른 청년기의 속성을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형성 중에 있는 청년의 이상과 그 아픔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빛나는 장면으로 어느새 몸을 바꾼다. 그래서 그가 노래한 ‘부끄럼’과 ‘성찰’은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실존적 차원의 것이 되고, 그 실존적 치열함은 부끄럼 자체가 부끄럼의 대상이 되는 끝없는 극화의 성격을 파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때 그의 연희전문학교 입학은 일종의 성년식으로서의 의미를 띤다. 그는 연희전문학교에서는 ‘늙은 의사의 진단’(‘병원’)을 받았고, 일본의 릿쿄대학에서는 ‘늙은 교수의 강의’(‘쉽게 씌어진 시’)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근대 학문이나 합리성의 체계에 자신의 실존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 ‘피로’와 ‘침전(沈澱)’을 택하였다. 이 또한 ‘자기 인식의 위기’(Identity crisis)를 스스로를 발견하는 계기로 삼은 그의 투명한 눈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윤동주의 삶과 시의 궤적은 자기 성찰보다는 자기 도취나 현시로 종종 기울어가는 현대인의 영혼을 깨우고 세상에 맞설 항체를 제공하는 자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윤동주만이 누리는 매우 중요한 권역이 아닐 수 없다.  ◇고백과 성찰의 기록 = 상식적으로 말해 시의 표면에 등장하는 화자는 실제 자연인인 ‘시인’과 같지 않다. 소월 시의 여성 화자라든가 정지용 초기 시에 나타나는 유년 화자 등이 그 시인과 같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시에는 시가 구현하려고 하는 주제 또는 내용에 따라 그에 걸맞은 일종의 ‘퍼스나(Persona)’가 방법적으로 설정된 것뿐이다. 그런데 윤동주 시에 나타나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는 아무래도 시인 자체가 직접 화자가 돼버리는 속성이 매우 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만큼 그의 시의 특성은 강한 ‘자기 고백성’에 있다. 그것은 이 시인이 시를 하나의 발표 양식으로 생각하거나 전문적인 독자를 의식하고 창작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자기의 제일의적 독자가 돼 시를 썼기 때문에 나타난 형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시들은 그러한 고백과 성찰의 기록이다. 윤동주의 이러한 자기 성찰의 힘은, 종교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원죄 의식, 낙원 상실, 그리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계시),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럼, 고통스럽지만 땀 흘리며 살아가야 함(‘또 태초의 아침’)에 대한 지속적인 윤리적 준거로 작용한다. 그 윤리적 준거가 윤동주에게 ‘자기 희생’의 이미지라는 ‘자기 성찰’의 변용된 에너지를 선사한 것이다. 이 점은 그의 시가 그동안 ‘저항시’라는 문맥으로 통용돼온 것에 대한 강력한 조정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만큼 그의 시는 투명하고도 진정성 있는 자기 탐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는 윤동주를 민족 바깥으로 밀어내려는 기획과는 전혀 다른, 말하자면 ‘기원의 기억 상실’을 극복하는 자료로 기억해야 함을 다시 한 번 의미한다.   ‘기원의 기억 상실’이란, 기억과 망각의 장(場)을 통해 바로 그 기원이 은폐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자연화한 기억은 성과 계급과 인종의 차별적 위계화를 지워감으로써 개인을 동질화한 집단으로 호명하는 기제를 말한다. 그것은 그래서 우리 민족의 식민 경험을 그야말로 ‘원경(遠景)’으로 처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때 윤동주는 ‘식민’과 ‘언어’에 대한 망각에 대해 저항하는, 기억의 정치학을 아름답게 보여줄 것이다. 그때 비로소 내면의 저항이라는 실존적 언어 행위가 극명하게 윤동주 시의 본래적 성격으로 조명돼갈 것이다.   물론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저항(抵抗)’은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을 해치는 모든 폭력에 대항하여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모든 행동과 사유를 포괄한다. 거기에는 어떤 부정한 폭력에 대한 반작용이 그 본질적 속성으로 담겨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는 오도된 권력에 대해 반대하는 힘으로서 일종의 정당방위적 속성을 띠게 된다. 물론 이는 협의의 저항이 정치적 해방을 목표로 삼는 실천적 움직임을 말하는 데 대한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광의의 저항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준 윤동주의 생애와 시는, 가장 협의의 저항으로 그동안 유통되고 재생산된 측면이 있는 셈이 된다. 그 결과가 바로 집단적 기억으로 소통돼온 것은, 윤동주를 그런 표상으로 기억함으로써 그와는 전혀 다른 욕망으로 움직여온 어떤 이들의 행태들에 대한 망각을 동반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윤동주를 제자리의 기억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윤동주라는 창(窓)을 통해, 식민지 시대 제국에 동화하려 했던 욕망들을 모두 은폐하려는 또 다른 욕망들과 힘겹게 싸워가야 한다.  ◇윤동주는 누구인가 = 내게는 귀중본이 얼마 있다. 오래전 출간된 초판본 시집이나 잡지 창간호 같은 것들, 귀중한 분들로부터 친필 사인을 직접 얹어 받은 책들, 그리고 각별하고도 유일한 기억이 얹혀 있는 책들이 그 목록을 차지한다. 서서히 낡아가는 종이의 속성 때문에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읽어내기조차 어렵게 된 이 책들은, 한사코 교환가치에 의해 값이 매겨지지 않는 자신만의 유일한 자리를 구축하고 있다. 그 가운데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있다. 물론 정음사 판 초간본은 아니다. 1955년 2월 16일 그러니까 그의 10주기를 기념하여 정음사에서 펴낸 중간본이다. 초간본에 선명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정지용 서문과 강처중 발문이 빠졌고, 그 대신 동생 윤일주의 글 ‘선백(先伯)의 생애’와 정병욱이 쓴 후기가 말미에 붙어 있다. 오랜 세월을 훌쩍 넘어 종이들이 나풀대기까지 하는, 고서(古書)에 가까운 이 책을 나는 무슨 불멸의 기억처럼, 내 문학의 깊은 수원(水源)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렇게 윤동주는 나의 문학적 욕망 안에 거의 첫사랑의 흔적처럼 숨 쉬고 있는 시인이다. 대학 1학년 수업 한 장면에 나는 윤동주에 관한 발표를 했다. 그때 나는 무슨 고해성사처럼, 문청(文靑)으로서의 과장된 자기 다짐 같은 것을 윤동주와 관련하여 어색하게 엮어나갔던 것 같다. 그때 교수님은 발표자가 윤동주와 비슷한 성정을 가진 것 같다고 무슨 ‘화인(火印)’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부끄러웠고 용기 충천했었다. 그런데 졸업식 때, 한 동기가 “이제는 윤동주에서 벗어나야지?”라는 충격적인 말을 건넸다. 그렇게 내가 그에게 함몰됐던가? 그의 말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대학원 과정 내내 윤동주를 찾지 않았다. 내 시선은 정지용으로, 백석으로, 임화로, 김수영으로 분주하게 옮겨 다녔다. 윤동주 시가 가지고 있는 순결하고도 선명한 메시지를 피해, 이념적으로나 방법적으로나 훨씬 복합성을 띠었던 근대시의 전범들을 읽고 외우고 공부하고 그들에 관한 글을 부지런히 썼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의 나이를 훌쩍 넘어, 나는 윤동주라는 불멸의 젊음이 가지는 기억으로 귀환했다. 여기 연재한 글은 모두 그러한 귀환의 흔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탄생 100주년을 넘어 = 또한 우리는 그동안 윤동주를 이렇게 아름다운 표상으로 남게 해준 이들의 공력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윤동주의 시집을 보관하여 세상에 알린 정병욱 선생, 오빠의 친필 시작 노트를 소중하게 옆에 끼고 월남하여 일반에게 알려준 누이동생 윤혜원 여사, 형님을 증언하고 시집을 묶어낸 남동생 윤일주 선생, 불행하게 죽어간 조카를 마지막에 만나고 또 여러 기억의 문맥에서 윤동주를 섬세하게 살려낸 오촌당숙 윤영춘 선생, 그리고 아무런 증언도 없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지만 윤동주의 유고를 간직했다가 해방 후에 단아한 시집으로 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연희전문 동기 강처중 선생을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 이분들은 모두 윤동주에게 우호적인 기억을 남겼다. 특별히 자기 정보를 산문을 통해 노출한 적이 거의 없는 윤동주를, 우리는 이분들의 공력을 통해 알게 되었다. 모두 소중하게 기억해야 할 분들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이 불멸의 청년 시인에게서 그가 느꼈던 ‘부끄럼’과는 또 다른 ‘부끄럼’을 느끼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윤동주는 언제나 우리에게 ‘부끄럼’을 끊임없이 복습시키는 항구적 원인이 될 것이다. 진정으로 부끄러워하는 자만이 남을 부끄럽게 하니까 말이다. 그는 우리에게 그러한 불멸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것의 결정(結晶)인 아름다운 시편들을 남기고 그렇게 세월을 가로질러 ‘또 다른 고향’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의 언어는 시대와 상황을 넘어 크나큰 감동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이제 그의 탄생 100주년이라는 시기적 분기점을 지나 그에 대한 실증적, 역사적, 미학적 해명과 담론적 축적을 더욱 정밀하고 세련되게 해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모두의 실존적 책무이기도 할 것이다. 그동안 소중한 지면을 주신 문화일보와, 이 글들을 따라와 주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를 올린다.   (문화일보 11월 21일자 25면 9회 참조)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 “동주는 말이 없다가도 이따금 한마디씩 하면 뜻밖의 소리로 좌중을 놀라게 했다”는 친구 유영의 증언처럼, 말수 적은 동주가 글을 남기지 않은 두 번의 침묵기가 있었다. 1938년 연희전문 1학년 9, 10월경 몇 편 쓰고 9개월쯤 지나고, 2학년 1939년 9월에 ‘자화상’, ‘투루게네프의 언덕’ 등을 쓴다. 다시 긴 침묵으로 들어가 1940년 12월까지 1년 2, 3개월의 침묵 기간을 지낸다. 침묵을 끝내고 ‘팔복’ ‘위로’ ‘병원’을 쓴다.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팔복’)라는 말은 끝없는 절망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말이다. ‘팔복’은 냉소적인 풍자 혹은 절망시일까. 오히려 “슬퍼하는 자(와 함께하는 이)는 복이 있다”는 예수의 말에 적극적으로 긍정한 시다.  ‘팔복’과 같은 시기인 1940년 12월에 쓴 ‘병원’을 보면 더 명확하다. ‘나도 모를 병’을 의사도 모른다 한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식민지 공간의 은유일 수 있다. 3연 끝 문장을 보면 병원에서 영원히 슬플 행복을 살며시 언급한다.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팔복’과 ‘병원’에 나오는 인간은 인간으로서 대우받지 못하는 존재다. 침묵기 이후 동주는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서울 종로구 누상동 하숙집에서 겪는다.  연희전문 입학하고 3년 동안 기숙사에서 지내고 2학년 때 1939년에는 신촌, 북아현동과 서소문에서 하숙했고, 3학년 때 다시 기숙사로 돌아갔다. 4학년 때인 1941년 5월 초 정병욱과 함께 기숙사를 나온다.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기숙사 식사가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산문 ‘종시’에는 생활을 더 알기 위해 성문 안으로 들어가 살기로 했다는 말이 나온다. 윤동주와 정병욱은 누상동에서 옥인동 쪽으로 내려가다 전신주에 붙은 ‘하숙 있음’이라는 쪽지를 발견했다.    ‘누상동 9번지였다. 그길로 우리는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집주인의 문패는 김송이라 씌어 있었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설마 하고 대문을 두들겨 보았더니 과연 나타난 집주인은 소설가 김송 씨 바로 그분이었다.’(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 형’)  집 주인은 소설가 김송으로 윤동주보다 여덟 살 위였다. 일본 유학 시절의 감옥 체험을 다룬 데뷔작 ‘지옥’을 공연하려다가 중단당한, 당연히 피해야 할 기피 인물이건만 두 사람은 오히려 김송의 집을 하숙집으로 정한다.    성악가인 부인의 노래를 가끔 들을 수 있는 ‘오붓하고 가족적인 분위기’를 누렸다. ‘아침 식사 전에는 누상동 뒷산인 인왕산 중턱까지 산책’하며 계곡물에 아무렇게나 세수하기도 했다. 겸재 정선(1676∼1759)의 ‘장동팔경첩’에 나오는 돌다리 기린교가 등장하는 수성동 계곡 그 근방일 것이다. ‘하학 후에는 충무로 책방들을 순방하였다. 음악다방에 들러 음악을 즐기면서 우선 새로 산 책을 들춰보기도 했다. 오는 길에 명치좌에 재미있는 프로가 있으면 영화를 보기도’ 하며 경성(서울) 생활을 즐겼다.  1941년 5월 그믐부터 9월, 불과 3개월만 지낸 이 집에서 동주는 ‘또 태초의 아침’ ‘십자가’ ‘눈 감고 가다’ ‘돌아와 보는 밤’ ‘바람이 불어’ 등 9편의 시를 쓴다. 효자동 종점에서, 전차와 기차에서 동주는 식민지 경성 사람들의 내면을 본다.  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오.  다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흰옷을 입히시오.  그리고 한 침대(寢臺)에   가지런히 잠을 재우시오.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오.     ―‘새벽이 올 때까지’(1941년 5월)    ‘다들 죽어가는’이라는 표현은 여기서 처음 나온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살아있지만 죽어가는 사람들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표현은 6개월 전 이런 모양새로 나왔다. ‘죽어가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옷을 입고, 잠을 자며 쉬고, 서로 젖을 먹으며 힘을 내잔다.   윤동주는 스스로 죽어가는 존재와 동일시했다. 그래서 ‘고향(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고, ‘백골(白骨)을 들여다보며/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백골(白骨)이 우는 것이냐’(‘또 다른 고향’)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幸福)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십자가’(1941년 5월 31일)    이 시를 쓴 때는 1941년 5월 31일이다. 다만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이라는 문장은 11월경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수정할 때 썼던 얇은 펜으로 쓰여 있다. 동주는 왜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라는 문장을 삽입했을까.   쇠붙이를 녹여 무기로 만들려고 일제는 모든 쇠붙이를 쓸어갔다. 1941년 10월경부터 조선 교회의 노회 보고서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교회 종(鐘)을 떼어 바치는 보고서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선감리교단연맹은 1941년 10월 21일 이사회를 열고 제4항 ‘각 교회 소유의 철문과 철책 등을 헌납’하기로 결의했다. 아침예배 후 ‘영미응징승전기원’을 하고, 애국헌금도 하기로 결의했다. 1942년에는 ‘조선장로호’라는 이름이 붙은 해군함상전투기 1기와 기관총 7정 구입비 15만317원50전을 바치기도 했다. 당연히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끔찍한 상황이다.  희망이 없는 시대에 그는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린다. 이후 극적 전환이 이루어진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처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동주는 알고 있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이야말로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죽어가는 존재들, 병들거나 굶주려 죽어가거나, 징용되어 죽어가거나, 사라져가는 한글, 모든 슬픈 존재들이다. 타인의 괴로움을 외면치 않고 그 고통을 나누는 순간, 개인은 행복한 주체가 된다. 그들과 슬퍼하는 것, 곁으로 가는 것이 삶이며 신앙이라는 깨달음이다.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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