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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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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바람이 불어 댓글:  조회:3326  추천:0  2018-10-09
  바람이 불어 윤동주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1948)        ■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상징적. 자기 응시적 ▮제재 : 바람 ▮주제 : 자아의 번민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해석에 난점이 많다. ‘바람’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고, 그 ‘바람’의 의미에 따라 시상은 달리 해석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평자들은 ‘바람’을 부정한 세력으로 보고 그 세력에 맞서는 자아의 결의가 표명된 것으로 해석해 온 경우가 많았다. 이는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다분히 도식화된 틀에 얽매인 면이 보인다. 왜냐하면 바람이 딱히 부정한 이미지를 지닌다고 볼 근거가 문면(文面)에 드러난 그대로 해석하여 시의 흐름을 좇아갈 때 그 의미가 어느 정도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화자는 바람을 맞고 서 있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지 몰라도 나를 스쳐 어디론가 불어 간다. 그 장면을 보고 화자의 인식은 내면으로 향한다. 바람이 저렇게 불어 오고 불어 가는데 시적 자아는 까닭 모를 슬픔에 잠겨 있다. 이 괴로움은 과연 이유가 없는 것일까? 흔히들 실연의 괴로움에 젖지만 나는 한 여자도 사랑해 본 일이 없으니 이 괴로움은 사랑 때문은 아니다. 그렇다고 시대에서 느낀 슬픔도 아니다. 시대적 고민에 빠져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괴로움의 근거를 생각할 때 바람은 또 연이어 불어 가고, 강물도 흘러 가는데 나는 여전히 서 있기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문맥을 생각해 보면, 화자는 바람 때문에 괴로움의 이유를 찾는 계기를 가졌음이 드러난다. 따라서 그 바람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으로 이미 생긴 괴로움의 이유를 찾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5,6연은 같은 구조를 가지며, 의미 또한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람이 불고 강물이 흐르는데 나는 그 곁에 서 있다는 진술이니 별반 다르게 해석되지 않을 것이다. 바람과 강물이 결국 같은 의미를 내포한다면 그 둘의 공통된 속성은 유동성이다. 불어 가고 흘러 가는 강과 바람 곁에서 흐르지 않고 부동하는 존재가 화자이다.    그렇다면 1연에서 품은 의문은 의문이라기보다는 관심의 표명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바람도 어딘가에서 불기 시작해 어딘가로 향해 간다. 무심히 불어 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향해 갈 것이다. 바람도 무엇인가를 향해 가는데 나는 까닭 모를 괴로움에만 잠겨 있다. 내 괴로움에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이유를 대어 보아도 그것은 내 괴로움에 젖어 있을 때, 바람은 자꾸 불어 오고, 그에 대비되어 나는 굳건한 반석 위에서 움직일 줄 모른다. 모두가 변해 가고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나만 정체되어 있다. 이 정체의 정도는 반석의 부동성으로 심화된다.    바람이 불 듯 강물이 흐르는데 나는 흐르지 못하고 언덕에 머물고 있다는 자기 응시가 보인다. 이처럼 바람에 의해 화자 자신을 살펴보는 기회를 가지고 자신이 지닌 무력감과 괴로움의 본질을 살펴보지만 그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 ==================/// 바람이 불어 - 윤동주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반어법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盤石)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안일한 삶에 대한 자책   ● 해제 : 윤동주의 시에서 보이는 가장 중요한 정신은 자아 성찰과 부끄러움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시 역시 일제 강점기의 부당한 현실 앞에서 방관자로 남은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하며 반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람은 불고 강물 역시 목표를 향해 흐르는데, 정작 자신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반석과 언덕 위에 그대로 머문 채, 정체된 삶을 살고 있다는 자기 응시를 통한 자아 성찰이 잘 드러난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의 괴로움의 원인은 마지막 두 연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바람이 부는데도, 곧 현실이 어려운데도 반석 위에 서 있거나 언덕 위에 서 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반석 위에 서 있다’는 것은 일제 강점기라는 민족의 어려움 속에서 자신은 그저 편안하게 살아가면서 구경꾼처럼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이처럼 방관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 주제 : 흐르지 못하고 정체된 삶에 대한 번민 ● 구성 :   1연 어디론가 불어 가는 바람 2연 ‘나’의 괴로움 3~4연 괴로움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나’ 5~6연 흐르지 못하고 한 곳에 서 있는 ‘나’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해석에 난점이 많다. ‘바람’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고, 그 ‘바람’의 의미에 따라 시상은 달리 해석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평자들은 ‘바람’을 부정한 세력으로 보고 그 세력에 맞서는 자아의 결의가 표명된 것으로 해석해 온 경우가 많았다. 이는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다분히 도식화된 틀에 얽매인 면이 보인다. 왜냐하면 바람이 딱히 부정한 이미지를 지닌다고 볼 근거가 문면(文面)에 드러난 그대로 해석하여 시의 흐름을 좇아갈 때 그 의미가 어느 정도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화자는 바람을 맞고 서 있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지 몰라도 나를 스쳐 어디론가 불어 간다. 그 장면을 보고 화자의 인식은 내면으로 향한다. 바람이 저렇게 불어 오고 불어 가는데 시적 자아는 까닭 모를 슬픔에 잠겨 있다. 이 괴로움은 과연 이유가 없는 것일까? 흔히들 실연의 괴로움에 젖지만 나는 한 여자도 사랑해 본 일이 없으니 이 괴로움은 사랑 때문은 아니다. 그렇다고 시대에서 느낀 슬픔도 아니다. 시대적 고민에 빠져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괴로움의 근거를 생각할 때 바람은 또 연이어 불어 가고, 강물도 흘러 가는데 나는 여전히 서 있기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문맥을 생각해 보면, 화자는 바람 때문에 괴로움의 이유를 찾는 계기를 가졌음이 드러난다. 따라서 그 바람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으로 이미 생긴 괴로움의 이유를 찾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5,6연은 같은 구조를 가지며, 의미 또한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람이 불고 강물이 흐르는데 나는 그 곁에 서 있다는 진술이니 별반 다르게 해석되지 않을 것이다. 바람과 강물이 결국 같은 의미를 내포한다면 그 둘의 공통된 속성은 유동성이다. 불어 가고 흘러 가는 강과 바람 곁에서 흐르지 않고 부동하는 존재가 화자이다. 그렇다면 1연에서 품은 의문은 의문이라기보다는 관심의 표명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바람도 어딘가에서 불기 시작해 어딘가로 향해 간다. 무심히 불어 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향해 갈 것이다. 바람도 무엇인가를 향해 가는데 나는 까닭 모를 괴로움에만 잠겨 있다. 내 괴로움에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이유를 대어 보아도 그것은 내 괴로움에 젖어 있을 때, 바람은 자꾸 불어 오고, 그에 대비되어 나는 굳건한 반석 위에서 움직일 줄 모른다. 모두가 변해 가고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나만 정체되어 있다. 이 정체의 정도는 반석의 부동성으로 심화된다. 바람이 불 듯 강물이 흐르는데 나는 흐르지 못하고 언덕에 머물고 있다는 자기 응시가 보인다. 이처럼 바람에 의해 화자 자신을 살펴보는 기회를 가지고 자신이 지닌 무력감과 괴로움의 본질을 살펴보지만 그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   ====================///     1941년 5월 무렵, 연희전문에 다니던 윤동주는 정병욱과 함께 누상동 김송의 집에서 하숙을 시작 한다. 당시 일제의 ‘요시찰’ 인물이었던 소설가 김송의 집에는 일본 고등계 형사들이 수시로 드 나들면서 서가를 확인하고 편지들을 빼앗아 갔다고 정병욱은 회고한다. 연희전문 문과 학생들에게 이 광경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을 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새삼스러운 경각심을 갖게 할 만한 것 이었을지도 모른다. 부조리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성인의 의식이 작동하기도 전에 개입된 것은 ‘나’ 의 안위와 이웃의 안위하지 못함 사이의 교착상태, 또는 개개인 모두에게 퍼져가는 불운의 과정에 대한 인식이기 때문이다. 이 무렵 윤동주의 작품에 나타난 실존적 아이러니의 상황이 이를 보여준다.   알려져 있듯 이 시기 동안 창작된 윤동주의 시편들을 대표하는 특성은 ‘양심’이나 ‘부끄럼’으 로 칭해지는 섬세한 감성이다. 이는 단지 어느 내성적인 청년의 자기반성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폭력 적인 현실의 고통과 실상을, 나아가 그 역사적 무게를 한 명의 인간으로서 감당하기는커녕 정확한 체 감조차 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십자가」에서 첨탑에 걸려 멈춘 햇빛을 보며 휘파람이 나 불며 서성거리는 상황이라든가, 이틀 후에 창작된 「바람이 불어」에서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 에는 이유가 없다.”는 구절이 이를 드러낸다. 둘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십자가」에서는 순교자 의 식을 통해 이 괴로움의 해결책 또는 일종의 승화를 갈구하지만, 「바람이 불어」에서는 괴로움과 고통 을 끝까지 응시하며 추적해 본다는 것이다. 바람이 부는데 나만은 ‘반석’ 위에 발 딛고 있으며, 강 물이 흐르는데 나는 ‘언덕’ 위에 올라서 있다는, 조금쯤 옆으로 비켜나 있다는 자각은 현실의 비참 을 나란하게 겪어내지 못함에 대한 불가피하고 형이상학적인 책임감을 지시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바람이 불어」는 윤동주 시세계에서 주요한 분절점이다. 「자화상」을 쓴 섬세 한 응시자로서의 윤동주가 있고, 1년 3개월여의 기간 동안 침묵한 후 「위로」, 「팔복」, 「병원」을 통해 ‘병든 세계’를 진단하고 공감한 윤동주가 있다면, 「바람이 불어」와 이후의 시편들에서는 끝까지 괴 로움의 교착상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를 멈추지 않는 윤동주를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이 지점부터 우리는 그의 시를 두고 ‘윤리’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윤동주 시의 ‘내성적’인 특성을 바깥과의 대화로 확장시키거나(정명교) ‘저항시’라는 키워드를 넘어서 미학적 자질로 확대시켜 바 라보는(유성호) 연구자들의 시선이 모두 윤동주 시의 형식적·미학적 차원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윤 동주 특유의 ‘내적인 고백적 발화’로 평가되는 자질이 사실상 윤리의 차원에서 논의될 필요성이 있 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윤동주의 시를 새롭게 바라보는 방 식을 찾아가는 중요한 지점에 「바람이 불어」가 있다.          /김이강  ========================///       다음 로고찾아, 항일운동을 배우다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카카오스토리 메일   서시의 윤동주생가를 찾아, 항일운동을 배우다항일진보의 요람 - 용정중학교(옛대성중학) 김현태 기자 2018.08.01  글씨키우기 메일보내기 인쇄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카카오스토리       [뉴스프리존= 김현태 기자] 용정중학교는 일제강점기시절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에 위치한 학교로 일제의 탄압과 착취를 피해 이주해온 조선인들에게 근대교육을 실시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항일투사를 육성하는데 주력해 민족해방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곳이다. 20세기초 용정지역에는 광명∙은진∙대성∙동흥∙명신여고∙광명여고 등 민족사립학교가 연달아 세워졌고 이후 역사의 변천과 함께 6개의 중학이 합병되면서 1946년 용정중학교가 됐다. 항일민족시인으로 잘 알려진 윤동주(1917~1945)가 바로 용정중학의 전신인 광명중학출신이다. 윤동주시인이 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대성중학이란 이름으로 당시 민족주의교육의 산실로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를 배출해냈다. 학교건물은 신관과 구관이 있는데, 구관건물앞에는 윤동주의 를 새긴 시비가 세워져 있고 그 주변에는 시인의 일편단심을 기리는 소나무들로 교정이 꾸며져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올곧이 걸어가다 항일민족사상범 혐의로 후쿠오카형무소에 수감됐던 시인은 이름모를 생체실험 주사를 맞고 1945년 2월16일 28세의 나이로 옥사한다. 시인의 숭고한 정신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체관람을 온 청소년들의 표정은 한없이 밝기만 하다. 구관건물 2층에 있는 사적전시관에는 윤동주시인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항일청년 송몽규와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앞장섰던 늦봄 문익환선생 등의 활동들이 기록돼있으며 1900년대 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용정과 주변지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각종 사료들, 안중근의사의 의거와 김일성주석(당시 호칭은 )의 항일무장투쟁 기록들, 연변에서 벌어졌던 3.13만세운동 등을 역사관에 있는 해설사가 친절히 설명해준다.   이곳에서 뜻깊게 기억해야 할 위인이 한분 더 있다. 바로 보재 이상설선생이다. 이상설(1871∼1917)선생은 충북 진천 사람으로 24세(1894년, 고종 31년)에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고 2년만에 성균관교수겸 관장을 지낼 정도로 수재였다. 선생은 1905년 의정부참찬 당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종황제에게 상소를 올리면서 경복궁 앞에서 땅에 머리를 찧으며 국권회복을 위해 총궐기하자고 호소했던 인물이다. 이후 일제에 의해 국권이 넘어가자 사직해 실업자가 된 선생은 이동녕 등과 함께 러시아령 연해주로 망명을 떠났다. 그가 연해주와 만주지역에 주목한 것은 그곳이 일찍부터 많은 조선인들에 의해 개간되고 정착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만주의 용정지역은 연해주 못지않게 많은 조선인이 살고 있는 곳이었고 조선의 영토임에도 일본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1906년 여름 용정에 온 이상설은 인재양성이야 말로 국권회복의 지름길임을 알고 그해 8월 우리나라 국외민족교육의 전형이 된 서전서숙을 세우고 스스로 교장이 된다. 이후 선생의 동료였던 이회영형제가 세운 신흥무관학교는 물론 이후 용정의 최고지도자로 부각되는 김약연선생의 명동학교, 대성중학교, 용정중학교, 동흥중학교 등 모든 학교가 서전서숙의 학교운영과 커리큘럼을 계승한다. 이 지역 민족학교들은 용정지역의 조선청년들뿐만이 아닌 경기도지역에서 조국을 되찾기 위해 만주로 찾아온 청년들에게 민족정신과 항일의식을 키우는 항일해방운동의 근거지로 자리 잡았으며 1920년대 맑스-레닌주의가 교원들과 학생들사이 전해지면서 진보주의자들의 요람이 된다. 이상설선생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헤이그밀사사건이다.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정사에 이상설, 부사로는 법률가인 평리원검사 이준을 파견했다. 여기에 더불어 전러시아공사 이범진의 아들 이위종을 통역으로 합류시켰다. 이위종은 프랑스 생시르군사학교출신으로 러시아어, 영어, 불어에 능통한 인물로 언어의 귀재다. 6월25일 이들은 헤이그에 도착했으나 일본과 동맹국인 영국의 방해로 전혀 환영받지 못했다. 이위종은 회의에 참여한 나라들의 외교관들을 상대로 유인물을 만들어 설명했고 또 을사늑약의 무효를 선언하는 문서를 번역해 돌리기 시작했다. 그의 활동이 조금씩 알려지자 서양기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언론에 보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밀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헤이그만국평화회의는 일제의 조선침략에 대한 부당성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분노한 이준열사는 현장에서 분사한다. 이상설의 통곡소리가 밀사들이 묵었던 숙소밖에서도 크게 들렸다고 당시 외신은 기록했다고 한다. 해방에 대한 굳은 의지와 신념으로 무자비한 일제의 탄압을 뚫고 민족의식과 문화를 지켜가며 기어이 광복을 맞이한 우리 민족은 해방과 동시에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에 의해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분단의 비극을 맞이하게 됐다.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아 빛을 회복하기는커녕, 1945년 8월15일 해방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분단돼 광복70주년과 분단 70년을 함께 맞은 2015년, 이 억울하고 뒤틀린 역사를 바로 세울 주체는 누구인가. 우리는 바로 보아야 할것이다. 지금으로부터 70년전 일장기가 내려간 그 건물에 누구의 깃발이 올라갔는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를. 윤동주시인의 서시가 이토록 심금을 울린적이 또 있었던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를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김현태 기자  
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동굴소년" 축구팀, 힘내라...화이팅!!! 댓글:  조회:3065  추천:0  2018-10-09
태국 동굴소년들, 아르헨티나서 친선경기  2018.10.08.  자동요약   음성 기사 듣기   번역 설정   공유   글씨크기 조절하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부에노스아이레스 AP=연합뉴스) 홍수로 진입로가 막힌 동굴 속에 17일간 갇혀 있다가 기적적으로 구조된 태국 유소년 축구팀 '무 빠' 선수들(짙은 파란색 유니폼)이 7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 유소년팀과 친선 경기를 하고 있다. 동굴에서 구조된 소년 12명과 코치로 구성된 '무 빠' 팀은 지난 6일 개막해 18일까지 계속되는 2018 부에노스아이레스 하계청소년올림픽대회(유스올림픽) 개막 기간 행사에 초대됐다.
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훈민정음과 서예 댓글:  조회:3627  추천:0  2018-10-09
광화문광장에 써내려가는 훈민정음 신웅수 기자  2018.10.08.  음성 기사 듣기   번역 설정   공유   글씨크기 조절하기   인쇄하기 새창열림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572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김동욱 서예가가 길이 120m, 폭 1.6m 크기의 광목천에 훈민정음 서문을 쓰는 서예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8.10.8/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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