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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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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윤동주 시 리해돕기와 "비둘기" 댓글:  조회:4466  추천:0  2018-10-15
  분류 비둘기과 성격 동물, 조류 유형 동식물 분야 과학/동물 요약 비둘기과에 속하는 새의 총칭.   내용 지구상에는 약 300종에 달하는 비둘기과 조류가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집비둘기의 조상인 낭(양)비둘기·흑비둘기·염주비둘기 및 멧비둘기 등 4종의 텃새가 살고 있다. 낭비둘기는 한탄강 자유의 다리 교각 같은 곳에 정착하기도 하지만 해안의 바위 절벽 또는 내륙의 바위 산, 바위 굴 등 산간지역에서도 산다. 흑비둘기는 천연기념물 제21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울릉도·소흑산도·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의 사수도 등지에 서식하는 희귀한 도서종이다. 염주비둘기는 희귀종이며, 가장 대표적인 흔한 종은 사냥새인 멧비둘기이다. 이 밖에는 제주도에서 1977년 4월 10일 녹색비둘기가 단 한 번 잡혔을 뿐이다. 멧비둘기는 유라시아 동부대륙의 온대에서 아한대에 걸쳐 번식하며 아한대에서 번식하는 무리는 남하, 이동한다. 평지에서 산지에 이르는 산림과 농촌·도시 할 것 없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텃새이다. 일년에 2회 정도 번식하며 한배에 2란을 낳아 15∼16일간 육추(育雛)하여 둥우리를 떠난다. 새끼는 어미새가 콩 및 기타 식물질을 비둘기젖 형태로 토해 내어 키운다. ‘구굿-구-, 구굿-구-’ 소리내어 운다. ===================///   비둘기 비둘기는 비둘기과에 딸린 새로, 극지방과 사막을 제외한 전세계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성질이 순하여 길들이기 쉽고 귀소성을 이용하여 통신용으로 쓰기도 한다. 몸길이는 15~84cm이며, 머리는 비교적 작고 목과 다리는 짧다. 부리는 굵고 짧으며 부드럽다. 털 색깔은 여러 가지이나 회색이 많고, 수컷이 암컷보다 화려하다. 과일 · 곡물 · 씨앗 등을 주로 먹는다. 둥지는 주로 나무 위에 잔가지를 쌓아 접시 모양으로 짓는다. 1~2개의 알을 낳으며, 비둘기의 몸 크기에 따라 암수 교대로 14~30일간 알을 품는다. 새끼는 어미의 모이주머니 안쪽 벽에서 분비되는 즙(젖)으로 기른다. 비둘기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000년부터이다. 인도 · 미얀마 · 하이난 섬 등지에 사는 참비둘기를 길들인 것이 집비둘기이다. 기르는 비둘기는 통신용 · 식용 · 애완용의 품종이다. 비둘기와 비둘기의 구애 행동(원 안). 수컷비둘기의 부리 속에 암컷 비둘기가 부리를 집어 넣는다. ⓒ (주)천재교육  애완용으로 키우는 공작비둘기 ⓒ (주)천재교육  흑비둘기. 천연 기념물 제215호. ⓒ (주)천재교육  비둘기의 알 ⓒ (주)천재교육  알을 품고 있는 비둘기 ⓒ (주)천재교육 새끼비둘기 ⓒ (주)천재교육    비둘기 (Dove)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가 요즘 ‘골칫덩이’ 취급을 받고 있다. 쓰레기를 뒤지며 이것저것 주워 먹어 잘 날지 못할 만큼 살이 쪘다는 의미로 ‘닭둘기’, 배설물과 깃털로 각종 세균을 옮길 수 있다는 뜻에서 ‘쥐둘기’라는 별명까지 생겼을 정도다. 엽기적인 별명을 넘어 비둘기는 이제 법적으로도 ‘해로운 동물’로 지정될 모양이다. 환경부는 최근 집비둘기를 ‘유해야생동물’로 규정하는 ‘야생동물보호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내놓았다. 비둘기로 피해를 보는 사람은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만 받으면 포획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으로, 법제처 심사를 거쳐 6월경 공포될 예정이다. 환경부의 발표에 네티즌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것 같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입법예고안이 발표된 후 인터넷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101명 중 83%가 환경부의 개정안에 ‘찬성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적어도 사람들이 비둘기를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국동물보호연합, 동물사랑실천협회 등 국내 동물보호단체들이 ‘정부가 과학적인 근거 없이 비둘기의 유해성을 단정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람들이 비둘기가 사람에게 해롭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먼저 건강에 나쁘다는 생각 때문이다. 비둘기의 배설물은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건조된 뒤 가루가 되고, 공기 중에 날리게 되면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각종 병균을 사람에게 전파할 수도 있다. 비둘기의 우리에서 발견되는 빈대, 진드기, 벼룩 등도 사람에게 옮을 수 있다는 주장과 조류인플루엔자(AI) 등 인수공통 전염병의 매개체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한 몫하고 있다. 또한 비둘기의 배설물은 도시 미관에도 좋지 않고, 건물이나 유적지 등 기타 시설물 자재를 부식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배설물이 석회암 구조물에 손상을 주는 것은 과학적 실험으로 증명돼 있다. 비둘기의 배설물이 물과 닿으면 다양한 종류의 곰팡이 진균류가 성장하고, 대사과정에서 산성 물질이 나온다. 이 산성물질이 석회석을 녹여 구조물 곳곳의 색이 바랜다. 심할 경우는 미세한 틈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 틈 속으로 물이 스며들어 얼면 구조물에 금이 갈 수도 있다. 도시 비둘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비둘기는 ‘집비둘기’로 분류되는데, 원래는 바닷가 암벽지대에 사는 새라고 해서 영어로는 ‘Rock Dove’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학명은 납빛 비둘기라는 뜻의 ‘콜룸바 라비아(Columba lavia)’이다. 이 비둘기의 특징 중 하나가 강력한 번식력과 빠른 성장 능력이다. 집비둘기는 1년에 1~2회, 매번 두 개의 알을 낳는데 주변 환경이 좋으면 1년에 4번에서 6번까지 알을 낳기도 한다. 성장도 매우 빨라서 갓 태어난 새끼가 34~36시간 만에 몸무게를 두 배로 늘리고, 4~6주가 지나면 거의 다 자라 독립을 한다. 새끼 비둘기는 태어나자마자 ‘피존 밀크’라는 특별식을 공급받는데, 이는 암수 모두로부터 공급받는 젤 형태로,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고 각종 면역성분이 함유된 농축 영양덩어리여서 성장에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비둘기가 이렇게 까지 빠르게 번식하고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도시환경에서 주어지는 풍부한 먹이 때문이다. 시민들이 던져주는 모이와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는 비둘기가 하루에 필요한 먹이의 양인 20~50g을 단번에 먹어치울 수 있게 한다. 이런 환경에 있으니 도시 비둘기들은 어렵게 먹이를 구하러 다닐 필요가 없어 여유시간이 많아지고, 이 시간의 대부분은 번식을 위해 노력할 수있게 된다. 풍부한 먹이가 안정된 성장과 높은 번식률을 보장해 주는 셈이다. ‘비둘기와 인간의 전쟁’이 그렇게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20세기 초부터 이 ‘납빛 비둘기’ 구제를 시도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이 났다. 독약이나 마취제, 총포, 덫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허사였다. 일시적으로 비둘기의 개체 수가 감소하는 듯 보이다가 이내 예전 수준을 회복하거나 오히려 늘어나는 결과를 보였다. 또 영국에서는 ‘비둘기용 피임약’을 모이에 섞어줘 개체 수를 줄이려는 시도도 해 봤지만 이 역시 허사였다. 약을 먹지 않은 다른 무리의 비둘기가 재빨리 유입돼 별 효과가 없었다. 이처럼 사람이 비둘기의 개체수를 줄이지 못했던 이유는 뭘까? 안정적인 번식의 근원인 먹이 공급은 차단하지 않고 ‘사냥’ 에만 나섰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비둘기 방제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시작한 스위스 바젤대학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총포와 덫, 독약 등으로 비둘기를 살상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으며 개체 수는 먹이의 양과 가장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바젤 시 당국과 동물보호협회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말자는 캠페인을 시작했고, 50개월 뒤 2만 마리로 추정되던 이 지역 비둘기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비둘기 먹이 주는 모습   하지만 우리나라는 스위스 같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비둘기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20세기 초부터 유럽 각지에서 벌어졌던 비둘기와의 전쟁은 비둘기의 생태 습성을 과학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작정 덤벼들면 결국 실패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과학적인 연구와 논의를 통해 생명을 경시하지 않으면서도 개체수를 자연스럽게 줄일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기이다. 인간은 비둘기를 통해 도심에서 동물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글 : 서영표 동아사이언스 과학전문기자 ======================///   특징 • 집비둘기는 원종이 비제비둘기(Columba livia)로서 개량되어 만들어진 품종으로 전 세계에 약 280종이 있다. • 우리나라에서는 도심, 공원, 하천, 강 등 다양한 지역에 서식하며, 사람에게 적응한 종이다. • 먹성이 좋아 하루에 1∼2㎏까지도 거뜬히 먹어 치운다. • 외형상 양비둘기가 가장 비슷하지만 도심지역에 서식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 환경부는 2009년부터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하여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 포획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번식정보 • 2∼9월 사이에 번식하지만 주로 5∼6월에 가장 많이 한다. • 도심공원의 인공새집, 주택, 건물, 나무 등 다양한 곳에서 번식한다. • 알은 보통 2개 정도 낳으며, 색깔은 흰색이다. • 알을 품는 기간은 약 17∼18일 정도이며, 암수가 교대로 품는다. 새끼는 부화 후 일명 어미의 ‘비둘기 젖’을 먹고 자라며 약 20일 이후에 둥지를 떠난다. 구별하기(동정 포인트) 집비둘기 ⓒ 국립중앙과학관  • 깃의 색은 기본적으로 짙은 회색 바탕에 날갯깃에 2줄의 검은색 줄무늬가 있다. 개체별로 검은색, 회색, 갈색 등 변이가 심하다. • 양비둘기와 외형적인 특징이 가장 유사하지만 주 서식지의 차이가 크므로 구별에 어려움이 없다. 골칫거리가 된 신세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가 이제는 제 살길을 찾아야 할 신세가 되었다. 원래는 야생에서 생활하였지만 사람에 의해 사육되기 시작했고, 방사되면서 개체수가 크게 늘어나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동년 장애인 올림픽 때 많은 수의 비둘기를 방사하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먹성이 좋고 번식력이 뛰어나 2009년 환경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에만 약 35,000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공원을 비롯한 도심 곳곳에서 강한 산성의 배설물로 건축물과 구조물 등을 부식시키고, 흩날리는 깃털 때문에 비위생적으로 불쾌감을 주어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2009년 6월 비둘기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하고 지자체의 포획허가를 받아 잡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도심 속의 한 생태계로 자리 잡은 비둘기의 무차별한 퇴치는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모이주기 금지, 행사용 방사 금지, 비둘기 둥지 알 수거 등의 방법으로 개체수를 점차 줄여나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오랜 세월을 인간과 함께해온 비둘기가 이제는 인간에 의해 생존을 위협받게 된 지금, 같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비둘기의 귀소본능 비둘기는 귀소본능이 뛰어나 기원전 이집트에서부터 사람에게 사육되어 통신용으로 이용되었고, 전쟁 때는 편지를 보내는 ‘전서구’로서 활약했다. 우리나라에서도 6 · 25전쟁 때 미군이 이용한 기록이 남아있다. 비둘기가 집을 잘 찾는 이유는 첫 번째로 태양의 빛을 보고 판단할 수 있다는 ‘태양방향 판정설’과 두 번째로 본능적으로 지구의 자기를 느껴 방향을 잡는다는 ‘지자기 감응설‘이 있는데, 태양이 없는 밤에도 이동하는 점으로 미루어 지자기 감응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현재는 통신기기의 발달로 거의 쓰이지 않고 있으며, 대신에 서유럽과 중화권에서 경주비둘기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 집비둘기 ⓒ 국립중앙과학관  집비둘기 ⓒ 국립중앙과학관  집비둘기 ⓒ 국립중앙과학관  =============================/// @@비노아의 방주에서 유래합니다.. 40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내리고 세상은 암흑으로 뒤덮혀 있을 때 노아가 하느님의 심판이 끝났는지를 알아 보기 위해 비둘기를 방주 밖으로 날려 보냅니다. 방주 밖으로 날아간 비둘기는 어딘가에서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와서 심판의 대홍수가 끝나고 평화가 찾아 오고 있음을 노아에게 알려주게 됩니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 된 것은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 입니다.  비둘기는 전혀 평화로운 동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평화의 상징이라는 비둘기의 역할은 잘못 주어진 것이다. "인디언의 고문 말뚝을 제외하고 비둘기처럼 동족을 서서히 끔직하게 죽도록 잔혹한 상처를 입히는 동물은 또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와 같이 말하고 있는 비투스 드뢰셔는 콘라트 로렌츠의 실험을 그에 대한 예로 제시하고 있다. 로렌츠는 일 관계로 며칠간 여행을 떠나면서 수컷 비둘기 윌리와 암컷 비둘기 페트라의 사랑이 진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두 마라의 비둘기들을 한 새장 안에 넣어두었다. 그러나 그가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사랑은 커녕 끔직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윌리는 새장 귀퉁이의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뒷머리와 목의 윗면 그리고 꼬리 부분가지 등 전체의 깃털이 모조리 뽑혀 있었을 뿐 아니라 그 부분의 살갗 전체가 완전히 벗겨져 있었고 상처 부위 중앙에는 또 다른 평화의 비둘기 페트라가 마치 먹이 위에 올라앉은 독수리처럼 버티고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에게 사랑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그 비둘기는 쉬지 않고 '패배자'의 상처 부위를 쪼아댔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암컷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컷 비둘기가 벌떡 몸을 일으켰으나 암컷은 어느새 뒤쫓아와 그 부드러운 날개로 수컷을 바닥에 때려눕혔다. 그러고 나서 '여전사' 페트라는 자신도 눈이 감길 정도로 지쳤음에도 가차없이 서서히 죽이는 작업을 계속했다." 비둘기들은 두 마리 이상을 한 새장 안에 가둘 경우 그와 같은 행동을 규칙적으로 나타내는데, 그들은 상대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서로를 쪼았습니다.둘기가 평화의 상징이 된 리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와 실제 전쟁에서 비둘기가 리용되면서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옛날, 사람들이 저지른 죄에 화가 난 하나님이 대홍수를 일으켜서 지구의 모든 곳이 물에 잠겼을 때, 노아일족과 노아의 방주에 탄 생물들을 생각하여 40일만에 비를 멎게 했답니다,  홍수가 끝나갈 무렵 비둘기가 저지대에서 자라는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온 것을 보고 노아는 드디어 대 홍수가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이때부터 비둘기는 큰 재난이 끝난 상태를 알려주는 반가운 새가 되었답니다.  이후 비둘기는 증오와 분노를 가지지 않은 평화로운 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세계대전 당시에 비둘기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전쟁포로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비둘기를 이용해서 군사정보를 알리는 역할을 했는데 그 것으로 인해서 전쟁이 끝난뒤 비둘기는 훈장 까지 받았답니다.  교도소에 포로로 수감된 사람들이 비둘기를 이용해 군사정보를 자국에 알려주고, 그럼으로 인해서 비둘기의 공을 인정 훈장까지 주고 그 뒤부터 평화의 상징으로 비둘기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     졸지에 '날아다니는 공해'가 되기는 했지만 비둘기는 오랫동안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사랑받아 왔다. 비둘기 상징의 유래는 구약성서 '창세기'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이 대홍수로 인간세상을 심판하실때 방주를 타고 살아남았던 노아와 그 식구들은 홍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홍수가 끝났는지 알 길이 없었던 노아는 고민하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비둘기를 이용하기로 한다. 비둘기는 집으로 돌아오는 습성인 귀소 본능이 있었기 때문. 바깥 세상에 나갔던 비둘기는 다시 방주로 돌아왔고 그 입에는 올리브 나뭇가지가 물려 있었다. 물이 빠져 육지가 드러났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비둘기가 대재앙인 홍수에서 희망의 올리브 나뭇가지를 가져다 주었다는 의미에서 평화의 상징이 됐다. 이후에 성령이 내려와 하나님의 계시를 전할 때 빛무리에 쌓인 흰 비둘기 형상으로 내려오는 등 성스러움, 순결, 안전, 평화 등 긍정적인 의미로 두루 쓰인다. 예전엔 그 상징성 때문에 무엇을 하든 용서받았던 비둘기지만 이제 도농 공통의 골칫덩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 하나님이 인간세상을 모든 인간을 휠쓸려고하자 하나님이 노아한테 배를 만들고 모든 동물 남녀 각각과 노아,노아의 가족다 방주에 태워서 살아남았습니다. 몇십년후에 물이 빠져 육지드러나는지 확인하기위해 맨처음에 까마귀를 내보내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지않았습니다.. 그래서 비둘기를 내보냈고 올리브 나뭇가지를 껶어와서 귀소본능인해 돌아왔습니다. 이후에 인간이 휠쓸던 물을 빠져 육지드러나 하나님한테 제사드렸습니다.. 비둘기가 올리브나뭇가지 입물고 돌아올때는 그때 평화의 상징되었다하죠 ===================///   [ 창8:8 ]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 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 마3:16 ]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성경에서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온 세상에 임하게 평안, 안식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노아의 방주에서 유래합니다.. 40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내리고 세상은 암흑으로 뒤덮혀 있을 때 노아가 하느님의 심판이 끝났는지를 알아 보기 위해 비둘기를 방주 밖으로 날려 보냅니다. 방주 밖으로 날아간 비둘기는 어딘가에서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와서 심판의 대홍수가 끝나고 평화가 찾아 오고 있음을 노아에게 알려주게 됩니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 된 것은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 입니다.  비둘기는 전혀 평화로운 동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평화의 상징이라는 비둘기의 역할은 잘못 주어진 것이다. "인디언의 고문 말뚝을 제외하고 비둘기처럼 동족을 서서히 끔직하게 죽도록 잔혹한 상처를 입히는 동물은 또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와 같이 말하고 있는 비투스 드뢰셔는 콘라트 로렌츠의 실험을 그에 대한 예로 제시하고 있다. 로렌츠는 일 관계로 며칠간 여행을 떠나면서 수컷 비둘기 윌리와 암컷 비둘기 페트라의 사랑이 진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두 마라의 비둘기들을 한 새장 안에 넣어두었다. 그러나 그가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사랑은 커녕 끔직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윌리는 새장 귀퉁이의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뒷머리와 목의 윗면 그리고 꼬리 부분가지 등 전체의 깃털이 모조리 뽑혀 있었을 뿐 아니라 그 부분의 살갗 전체가 완전히 벗겨져 있었고 상처 부위 중앙에는 또 다른 평화의 비둘기 페트라가 마치 먹이 위에 올라앉은 독수리처럼 버티고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에게 사랑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그 비둘기는 쉬지 않고 '패배자'의 상처 부위를 쪼아댔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암컷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컷 비둘기가 벌떡 몸을 일으켰으나 암컷은 어느새 뒤쫓아와 그 부드러운 날개로 수컷을 바닥에 때려눕혔다. 그러고 나서 '여전사' 페트라는 자신도 눈이 감길 정도로 지쳤음에도 가차없이 서서히 죽이는 작업을 계속했다." 비둘기들은 두 마리 이상을 한 새장 안에 가둘 경우 그와 같은 행동을 규칙적으로 나타내는데, 그들은 상대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서로를 쪼았습니다. =====================///   평화를 상징하는 새 : 비둘기 평화를 상징하는 음악 :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 평화를 상징하는 식물 : 올리브  
5    {자료} - 사투리는 사투리이고, 방언은 방언이다... 댓글:  조회:3803  추천:0  2018-10-15
한국어의 방언       방언별로 나타낸 ‘잠자리’를 뜻하는 낱말.   //   [편집] 일반적인 구획 한국어 방언은 음운, 문법, 어휘의 측면에서 몇 개 구획으로 나뉜다. 방언 구획은 연구자 사이에서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어 꼭 일치되지 않지만 많은 경우 아래 여섯 개 방언을 구분한다. 각 방언의 명칭은 방언연구회(2001)에 의거한다. 서북 방언 … 구 평안도(현재의 평양직할시, 평안남도, 평안북도, 자강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방언. 평안도 방언이라고도 한다. 황해도 지역 북부 또는 전역을 이 방언 구역에 포함시키는 연구자도 있다. 동북 방언 … 구 함경도(현재의 함경남도, 함경북도, 량강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방언. 함경도 방언이라고도 한다. 구 평안북도 동북부(현재의 자강도, 량강도 경계 지역)을 포함시킬 경우가 많다. 보통은 함경남도 남부를 제외하지만 구 함경남도 남부(현재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조선’이라 함) 강원도 북부) 부근의 취급은 연구자마다 다를 수 있다. 함경북도 최북부인 회령시(會寧市), 온성군(穩城郡), 종성군(鐘城郡, 현재의 온성군의 일부), 경원군(慶源郡, 현재의 새별군) 등지의 방언은 ‘육진(六鎭) 방언’이라 하며 동북 방언과 구별하는 연구자가 있다. 중부 방언 … 경기도(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포함), 황해도, 강원도, 충청도(대전광역시 포함) 지역을 중심으로 한 방언. 구 영흥군(현재의 금야군) 이남의 함경남도 지역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황해도 북부 또는 전역을 서북 방언으로 보는 연구자도 있다. 또 강원도 영동 지방의 방언을 중부 방언으로부터 구분할 경우가 있다(‘영동 방언’, ‘충청 방언’ 참조). 서남 방언 … 전라도 지역(광주광역시 포함)을 중심으로 한 방언. 전라도 방언, 호남 방언이라고도 한다. 하위 방언은 북부 서남 방언(전북 방언), 남부 서남 방언(전남 방언)이라 불린다. 동남 방언 … 경상도 지역(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포함)을 중심으로 한 방언. 경상도 방언, 영남 방언이라고도 한다. 하위 방언은 북부 동남 방언(경북 방언), 남부 동남 방언(경남 방언)이라 불린다. 제주 방언 … 제주도와 주변 섬들의 방언. [편집] 방언 구획에 관한 견해들 【그림1】오구라 신페이 방언 구획 Ogura(1940)에 의거함 1.평안도 방언 2.함경도 방언 3.경기도 방언 4.전라도 방언 5.경상도 방언 6.제주도(濟州島) 방언 【그림2】이숭녕 방언 구획 李崇寧(1967)에 의거함 1.평안도 방언 2.함경도 방언 3.중부 방언 4.전라도 방언 5.경상도 방언 6.제주도(濟州道) 방언 한국어 방언 구획은 이극로 ‘조선말의 사투리’(1932년)에 시작된다고 한다.[1] 이극로는 한국어 방언을 다섯 개 구역으로 나누었다고 한다.[2] 여기서는 제주 방언에 관한 언급이 없으나 반도 지역의 방언을 중부, 서북부, 동북부, 서남부, 동남부의 다섯 개로 나누는 방법은 이미 이 시기부터 이뤄지고 있다. 제주도 방언을 포함해 한국어 방언 전체의 체계적인 구분법은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에 의해 이루어졌다(Ogura 1940). 오구라는 한국어 방언을 ‘평안도 방언’(구 후창군을 제외한 구 평안남북도 지역), ‘함경도 방언’(구 영흥군 이남을 제외한 구 함경남북도 지역, 구 평북 후창군 포함), ‘경기도 방언’(구 황해도, 경기도, 구 울진군을 제외한 구 강원도, 충청남북도, 구 영흥 이남의 구 함경남도, 전북 무주군), ‘전라도 방언’(무주군을 제외한 전라남북도 지역), ‘경상도 방언’(경상남북도 지역, 구 강원도 울진군 포함), ‘제주도 방언’의 여섯 개 방언을 구분했다(【그림1】 참조). 또 고노 로쿠로(河野六郞)는 오구라의 구분법을 기본적으로 답습하면서 ‘서선(西鮮) 방언’(“河野六郞著作集1” 수록판에서는 ‘서북 방언’), ‘북선(北鮮) 방언’(동 ‘동북 방언’), ‘중선(中鮮) 방언’(동 ‘중부 방언’), ‘남선(南鮮) 방언’(동 ‘남부 방언’, Ogura(1940)의‘전라도 방언’과 ‘경상도 방언’을 통합한 구역), ‘제주도 방언’의 다섯 개 방언을 구분했다(河野 1945). 대한민국에서의 구분법을 살펴보자. 이숭녕은 ‘평안도 방언’, ‘함경도 방언’, ‘전라도 방언’, ‘경상도 방언’, ‘제주도 방언’, ‘중부 방언’의 여섯 개 방언을 구분했다(李崇寧 1967). 구획은 오구라의 구분법과 동일하지만 각 구획의 범위는 오구라와 꼭 일치되지는 않는다(【그림2】 참조).[3] “方言學 事典”의 구분은 오구라, 이숭녕의 구분을 답습한다. 서북 방언에 관해서는 구 후창군을 포함시키면서도 구 후창군과 구 양덕군은 ‘동북 방언의 영향이 현저하다’고 한다. 중부 방언에 관해서는 황해도 재령군(載寧郡) 이남으로 하며 황해(북)도 북부를 소속시키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충청북도 단양군과 영동군은 동남 방언의 심한 영향 아래에 있다고 한다(방언연구회 2001). 오구라와 다른 체계로 구분한 것으로 최학근의 구분법이 있다. 최학근은 충청도 북부와 강원도 강릉 이남의 영동 지역을 연결하는 선을 경계로 하여 북부 방언군과 남부 방언군으로 크게 나누며, 전자에는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 북부, 강릉 이남의 영동 지역을 제외한 강원도의 방언들을 소속시키고 후자에는 충청도 남부, 강원도 강릉 이남의 영동 지역,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의 방언들을 소속시켰다. 다음으로 북조선에서의 구분법을 살펴보기로 한다. 김병제의 구분법은 방언을 동부 방언과 서부 방언으로 나눈 다음에 동부 방언을 다시 동북 방언과 동남 방언의 두 가지로 나누며, 서부 방언을 서북 방언, 중부 방언, 서남 방언, 제주 방언의 네 가지로 다시 나눈다. 여섯 가지로 나누는 방법은 오구라의 구분법과 동일하지만 황해도 방언은 평안도 방언과 합쳐 ‘서북 방언’으로 삼고 있다. 김성근의 구분법에서는 서북, 동북, 중부, 서남, 동남, 제주, 륙진의 일곱 개 구획을 인정한다(김성근 2005) 육진 방언을 동북 방언으로부터 적극적으로 구별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또 황해도 지역의 방언 전체를 중부 방언으로 보는 견해에 이의를 제창하며 황해북도 지역을 서북 방언으로 보는 것에 타당성을 주고 있다. 이상과 같이 현재 남북한 방언학에서는 몇 가지 방언 구획이 제창되고 있지만 그것들은 오구라가 제시한 여섯 가지 구분법에서 크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대략 오구라의 구분법이 기초가 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4    {자료} - 여러 지방의 방언들을 알아보기 댓글:  조회:3035  추천:0  2018-10-15
[참고자료1] 강원도 방언 예문     강원도 방언예문 강원도 방언의 특징 1. 음 운 (1) 음운체계 1) 자음체계 전국적으로 자음체계는 그리 큰 방언적 차이를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강원도방언의 자음체계도 다른 방언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학자에 따라서는 후두파열음 ‘ᅙ’이 있다고 보아 ‘ᅙ’을 영동방언의 한 音素로 설정하기도 한다. 2) 모음체계 단모음 체계는 10모음 체계로 되어 있다. 다만 ‘ㅚ’와 ‘ㅟ’가 각각 單母音 ‘φ’와 ‘y’로 실현되기도 하고 二重母音 ‘we’와 ‘wi’로 실현되기도 한다. 그리고 重母音으로는 ㅑ(ja), ㅕ(jӘ), ㅛ(jo), ㅠ(ju), ㅒ(jɛ), ㅖ(je), ㅘ(wa), ㅝ(wə), ㅟ(wi), ㅞ(we), ㅙ(wɛ) 가 쓰이고 있다. 그리고 강원도방언에서는 ‘영감(令監)⋅연(軟)하다⋅여부(與否)’ 등의 ‘ㅕ’가 일반적으로 ‘j+ɨ’의 결합음인 ‘jɨ’로 실현되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이 ‘jɨ’를 ‘ㅕ(jǝ)’와 구별되는 별개의 중모음으로 처리하여 강원도방언에 특이한 중모음 ‘=(jɨ)’가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이익섭, 전성탁), ‘jǝ’의 變異音으로 처리하기도 한다(李秉根) 3) 고조와 장단 강릉방언은 고조와 장음을 가진다.       고조 저조 가래(農具) 금(金) 허물(過) 침(針) 가래(楸子) 금(線) 허물(껍질) 침(唾)     장음 단음 눈(雪) 못(not) 밤(栗) 간다(磨) 눈(目) 못(釘) 밤(夜) 간다(行)     (2) 음운현상 음운현상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통시음운론과 공시음운론으로 나누어 기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시음운론과 통시음운론의 차이는 단어 내부에서 변화양상이 보이느냐와 활용 및 곡용에서 변화양상을 보이느냐에 따라 나누어진다고 할 수가 있는데 전자를 통시음운론, 후자를 공시음운론이라 한다. 1) 공시음운론   위에 언급했다시피 공시음운론은 단어에 어미나 접사 혹은 조사가 결합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통 통시음운론보다 수도 적고 조사가 적어 여기에서는 간략히 소개만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강원도에서 보이는 공시음운론은 ㅣ逆行同化(움라우트, Umlaut)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지역에서는 ‘먹이다’가 ‘멕이다’로 ‘언덕이야’ 가 ‘언덱이야’로 종종 나타난다. 그리고 구개음화와 관련해서도 지역에 따라 ‘밭이’가 ‘바티’로 발음이 되고 있다. 2) 통시음운론 강원도 방언의 두드러진 音韻現象들로는 語頭의 硬音化, 口蓋音化, ㅣ逆行同化(움라우트, Umlaut), 單母音化 현상 등이 있다. 어두의 경음화 현상은 임진왜란 이후 국어에서 활발하게 확대되고 있는 음운현상 중의 하나인데, 강원도방언에서도 ‘개구리→깨구리, 가위→까새, 갓난아이→깐난애기’에서 보듯 어두의 경음화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어두의 경음화 현상 보다 약하기는 하나 ‘갈치→칼치, 구리다→쿠리다; 달팽이→탈팽이’ 처럼 有氣音化(激音化) 현상도 나타난다. 강원도방언에서는 구개음화 현상도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ㄷ→ㅈ, ㅌ→ㅊ’의 구개음화 외에 ‘ㄱ→ㅈ, ㄲ→ㅉ, ㅋ→ㅊ, ㅎ→ㅅ’의 구개음화도 실현된다. 그 예는 ‘겨드랑→저드랑, 기지개→지지개, 김(海苔)→짐 ; 끼다→찌다 ; 키(箕)→치 ; 형→성, 효자→소자, 혀→세’ 등이다. 이 현상은 어두 음절 외의 자리에서는 실현되지 않는다. 근대국어 이후에 발생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ㅣ역행동화 현상 역시 강원도방언에서 매우 활발하다. ‘두루마기→두루매기, 잠방이→잠뱅이 ; 누더기→누데기, 꾸러미→꾸레미, 지렁이→지렝이, 먹이다→멕이다’ 등. 그런가 하면 강원도방언에는 ㅣ역행동화에 의한 것이 아닌 ‘ㅏ→ㅐ’의 현상이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가마→가매, 가르마→가르매, 처마→초매, 얼마→얼매, 씨아→씨애, 감자→감재, 사다리→새다리’에서 보듯 주로 단어의 마지막 音節이 ‘ㅏ’로 끝나는 경우에 일어나며, 지역적으로는 대개 영동지방을 중심으로 한 東部 지역에서 나타난다. 단모음화도 강원도방언에서 활발하게 실현되고 있다. ‘목화→모카, 환갑→한갑 ; 사위→사우, 사마귀→사마구 ; 꾸겨지다→꾸게지다, 누벼라→뉘베라 ’등. 그런데 용언의 活用形에서의 단모음화 현상은 지역에 따른 심한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이 예는 여기에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이 외에 母音調和, 語幹末 子音群 단순화, 일부 모음교체 현상 등에도 특기할 만한 것이 있다. 다른 방언들에서도 그러하지만 강원도방언도 용언의 활용형에서 모음조화가 잘 지켜지지 않아 어간이 자음으로 끝나면 비록 어간의 끝모음이 陽性母音이어도 대부분 ‘잡어라, 잡었다, 좁어서’ 처럼 陰性母音 語尾 ‘-어라, -었-, -어서’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어간말의 자음군(겹받침) 가운데 하나가 자음 앞에서 탈락하는 어간말 자음군 단순화 현상은 어느 방언에나 있는 현상이나, 어느 자음이 탈락하는가는 방언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닮다, 앉다, 몫, 값’의 ‘ㄻ,ㄵ, ㄳ, ㅄ’은 다른 방언에서도 그러하듯이 강원도방언에서도 ‘담-, 안-, 목, 갑’ 처럼 각각 ‘ㄹ’, ‘ㅈ’, ‘ㅅ’이 탈락한다. 그러나 ‘늙다, 밟다’의 ‘ㄺ, ㄼ’의 경우에는 영동방언에서 뒷자음 ‘ㄱ’과 ‘ㅂ’이 탈락하고 앞자음 ‘ㄹ’이 남는다. 그리고 강원도방언에서는 지역에 따라 ‘ㅗ’가 양순음 아래에서 ‘ㅓ’로 실현되는데 ‘볼→벌, 보리→버리, 볼거리→벌거리, 포대기→퍼대기, 모루→머루’등이 그 예이다. 강원도방언에는 語中子音 ‘ㄱ, ㅂ, ㅅ’이 약화, 탈락한 방언형과 이들을 유지하고 있는 방언형이 공존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어중자음 ‘ㄱ, ㅂ, ㅅ’이 개재(介在)되어 있는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노른자위→노란자구, 개암→개금, 머루→멀구, 모래→몰개, 어레미→얼게미, 달래다→달개다, 절이다→절구다, / 지붕→지붕ㄱ, 개울→개욹, 입술→입쑭, 가을→가읅, 겨울→겨욹 ; 다리(月子)→달비, 벙어리→버버리, 확(臼)→호박, 다리미→다래비, 똬리→또바리, 졸리다→졸립다 ; 마을→마실, 구융→귀숭, 모이→모시, 냉이→나생이, 과일→과실, 가위→가새, 그을다→끄실다 그런데 ‘ㄱ’이 개재되어 있는 형태들 가운데 ‘지붕ㄱ, 개욹, 입쑭’ 등은 그 다음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助詞가 올 때 ‘ㄱ’이 나타나는 것들로 그 외의 것들과 성격을 달리한다. 그리고 ‘ㄱ, ㅂ, ㅅ’을 유지하고 있는 방언형들 중 ‘ㄱ, ㅂ’ 개재형은 영동방언에서, ‘ㅅ’ 개재형은 영서방언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강릉과 삼척에서는 ‘ㄹ’이 자음 ‘ㄴ, ㄹ, ㅅ, ㅂ’ 앞 외에 어미 ‘-우’ 앞과 ‘ㄷ, ㅈ’ 앞에서도 탈락하는 ㄹ변칙활용이 나타난다.    그러 머:지두 않지 머. /  더 노:더(놀다) 가지.  / 쇠꽂이 가:지요(갈지요)   2. 문 법 (1) 조 사 1) 주격조사 : 일반적으로 자음으로 끝나는 체언 아래에서는 ‘-이’, 모음으로 끝나는 체언 아래에서는 ‘-가’가 쓰인다. 영동방언에서는 모음으로 끝나는 체언 아래에서 ‘-거’가 쓰이기도하는데 특히 강릉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니: 거 그랬나?(네가 그랬나?) / 비거 온다(비가 온다).   모음 아래에서 ‘-가’나 ‘-거’가 아닌 ‘-이’가 실현되기도 한다.    머이 그래나?(무엇이 그러니?) / 파이 크다(파가 크다).   삼척지역에서는 ‘-이’와 ‘-가’가 겹쳐 쓰이기도 하는데 항상 겹쳐 쓰이는 것은 아니며, 중복형과 단독형의 차이가 분명하지 않다.    건물이가 있습니다. / 돈이가 2) 목적격조사 : ‘-을/를’의 음절말 ‘ㄹ’을 탈락시킨 형태인 ‘-으/르’가 쓰이기도 하는데, 강릉과 삼척지역에서 그 빈도가 높고 그 외 다른 영동지역에서는 빈도가 낮다.    팔으 볶아서는 / 재르 넘어 산꼴이지요.   ‘-으’는 ‘ㅇ'으로 끝나는 명사 아래에서 선행명사의 끝음절 모음을 닮아 그 모음과 같은 형태로 실현되기도 한다.    장아(市場을) 보구 / 정어(情을) 주문 3) 관형격조사 : 영동방언에서는 ‘-으, -어’가 쓰인다. 다만 명사가 ‘-앙’으로 끝나면 ‘-어’가     ‘-아’로 동화된다.    남으 땅 / 일:꾼어 상(일꾼의 상)    신랑아 집에 가문(신랑의 집에 가면) 4) 부사격조사 : 장소와 시간을 나타내는 조사로는 강릉에서 주로 ‘-애’가 쓰이고 양양과 삼척에서는 ‘-에’가 쓰인다.    밤:애 어대 가나? / 집에 모이지.   ‘-애’나 ‘-에’에 다시 ‘-다/다가’를 결합시킨 형태도 널리 쓰이는데, 강릉은 ‘-다/다가’ 대신 ‘-더.더거’가 결합되는 특징을 보인다.    잿물에더거 그그 쌂어 가지고(잿물에다가 그것을 삶아 가지고)   시간을 나타내는 조사로 ‘-로/으로’, ‘-루/으루’가 널리 쓰인다.    제사는 새복으루 지내지요(제사는 새벽에 지내지요).   영동지방과 영서남부에서는 ‘-한테’가 ‘-인테, -인데’로 실현되는 일이 있다.    너인테 / 사람인테 / 사람인데   강릉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처럼’과 비슷한 뜻을 가지는 ‘-매름, -매루’가 쓰이고, 영서 일부 지역에서는 ‘-하고’가 ‘-하과, -허과’로 실현되기도 한다.    니: 매름(매루) / 소매루    나하과 / 나허과 5) 호격조사 : ‘-아/야’ 외에 ‘-아이/야이, -요’도 쓰이는데, ‘-아이’는 자음으로 끝나는 체언 아래에, ‘-야이’는 모음으로 끝나는 체언 아래에 쓰인다. ‘-요’는 높임을 나타낸다.    영식아이 /종수야이/ 선생님요 6) 보조조사 : ‘-마다’가 ‘-마둥/마당’으로, ‘-부터’가 ‘-부텀/버텀’으로, ‘-까지’가 ‘-꺼정/꺼짐’으로, ‘-마저’가 ‘-마주’로, ‘-보다’가 ‘-보담/보덤)으로 쓰이기도 한다. 삼척과 그 인접지역에서는 주격조사의 중복형 ’-이/가‘처럼 ’-은/는‘이 반복되어 쓰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경상도 방언의 영향으로 보이며 항상 겹쳐 쓰이는 것은 아니다.   (2) 어 미 1) 종결어미   ① 평서형: 특징적인 것으로는 ‘-래요, -과, -다오, -ㅂ닌다’ 등이 있다. 영동방언과 영서남부의 일부 지역방언에서는 체언 아래에서 ‘-어요’가 아닌 ‘-래요’가 쓰이고, 강릉방언에서는 하게체의 어미로 ‘-과’가 여자들 사이에서 많이 쓰인다. 삼척방언에서는 하오체 어미로 ‘-다오’가, 강릉과 삼척 방언에서는 합쇼체의 어미로 ‘-ㅂ닌다’가 쓰이기도 한다.    이기 즈: 집이래요. / 삼년째래요.    돈으 애껴 써야 하겠과. / 창 고맙과.    등 끍는 기 이러 있다오.            저 사람입닌다. / 그렇게 했습닌다. 또한 반말체 終結語尾는 지역에 따라 이와 반대 현상을 보이는 일이 있다. 곧 강릉과 삼척지역에서는 어간이 자음으로 끝나면 어간의 끝모음이 음성모음일 때에도 ‘그만 먹아’ 처럼 반말체 종결어미가 ‘-아’로 실현되는 특이한 현상을 보인다.   ② 의문형 : 특징적인 것으로는 ‘-나, -재, -ㅂ닝꺄’가 있다. ‘-나’는 해라체의 어미 ‘-니’에 대응되는 것으로 영동방언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나’는 때로 ‘-ㄴ’으로 축약되어 실현되기도 한다. 그리고 ‘-재’는 ‘-지’에 대응되는 것으로 양양이남 지역에서, ‘-ㅂ닝꺄’는 합쇼체의 어미로 강릉지역에서 주로 쓰인다.    누거 가나? / 머:르 사먹나? ; 그래니 머 나:진(←나아지나)? / 어대 인(←있나)?    이그 다 보선 (←보시었나)? / 그러두 안 떨어지갠(←떨어지갰나)? 오늘 덥재? / 감이 많재? / 머:르 드시갰습닝꺄? 이들 의문형어미 외에 양양지역에서는 하게체의 의문형어미로 ‘왜 그래너?’ 처럼 ‘-너’가 쓰이며, 삼척지역에서는 ‘마이 춥당가?’에서 처럼 ‘-던가’가 ‘-당가’로 실현되고, 또 ‘가와?’의 ‘-와’ 같은 특이한 어미가 쓰이기도 한다.   2) 연결어미   ① -구(고) : 대등한 접속이나 계기적인 접속의 기능을 하는, 표준어 ‘-고’에 해당하는 어미로서 ‘-구’ 또는 ‘-고’가 사용된다. 이 둘은 뚜렷한 차이가 없이 쓰이는 때가 많다.    너머 대:두 못쓰구 질어두 못쓰구   ② -문/으문 : 가정의 ‘-면’에 해당하는 이 지역의 방언은 ‘-문’으로 많이 쓰이고, 축약되어 ‘-ㅁ/음’이 되기도 한다.    슥:달 후이문 먹지요(3개월 후면 먹지요).   ③ -만 : 뒤에 어떤 반전의 문장을 이끄는 어미로서 대체로 표준어 ‘-마는’에 짝이 되는 어미이나 ‘-마는’이 아닌 그 축약형 ‘-만’으로 실현된다. 회상의 선어말어미 ‘-더(드)-’에 직접 결합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딴깬 다 절루 된다드만(다른 사람은 다 저절로 된다더만)   ④ -던(든)지, -단지 : 택일을 나타내는 어미로서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던지/든지’가 일반적으로 쓰이는데 반해 삼척에서는 택일을 나타내는 어미로 ‘-단지’가 많이 쓰인다. (3) 사동/피동 강원도방언의 사동사, 피동사 형성에서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접미사 ‘-키-’가 매우 활발한 생산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곧
3    [쉼터] - 그림 가격에 눈이 휘둥그래지다... 댓글:  조회:2780  추천:0  2018-10-15
  제작시기 1901년 가격 $47,850,000(502억 원)1) 작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파블로 피카소, 〈요, 피카소〉, 캔버스에 유화 / 73.5×60.0cm   “모든 사람은 잠재적으로 같은 양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 에너지를 여러 가지 사소한 일로 낭비한다. 나는 내 에너지를 단 한 가지, 그림에만 집중한다. 그림을 위해 나머지 모든 것은 포기한다.” -파블로 피카소 1989년은 세계 미술 시장이 아주 호황이던 때라 미술품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무렵에는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가격에 거래된 그림이 많이 나왔다. 〈요, 피카소〉는 원래 1981년에 미국의 사업가 웬들 체리가 소더비 경매에서 580만 달러(60억 원)에 산 것인데 8년 만에 다시 내놓아 무려 여덟 배가 넘는 가격으로 팔았다. 4785만 달러(502억 원)는 1989년 당시 파블로 피카소 작품 중 최고가이자, 전 세계 미술 경매 역사상 두 번째로 비싼 금액이었다. 사실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가격이 이렇게까지 치솟는 일은 흔하지 않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세계 미술 시장이 워낙 달구어진 데다 피카소 작품 중 시장에 흔하게 나오지 않는 초기 작품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 그림이 그려진 1901년은 피카소의 청색 시대가 시작된 시기다. 사실 청색 시대 경향은 1901년 후반기에 나타났고 이 그림은 1901년 전반기에 그려졌기 때문에 청색 시대의 우울한 모노톤이 나타나기 직전의 작품이다. 1902년에 그려진 〈팔짱을 끼고 있는 여인〉처럼 청색 시대의 우울한 특징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 그림에는 오히려 당시 스무 살이던 젊은 화가 피카소의 자신감에 찬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우선 모델이 이젤 앞에 앉아 관객을 바라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화가의 자화상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자세다. 눈에 띄는 짙은 주황색 머플러, 관객을 바라보는 매서운 눈매, 전체적으로 굵고 힘찬 붓질 등에서 매우 자신만만한 젊은 예술가의 힘이 느껴진다. 이런 힘있게 묘사된 피카소의 자화상은 흔하지 않다. 피카소는 서른 살 이후부터는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그림은 20대 때 그린 다른 자화상에 비해서도 훨씬 당당한 모습을 담고 있다. 스페인 출신의 피카소는 1901년 5월에 두 번째로 파리에 가서 그해 2월에 자살한 친구 카사게마스의 집에 자리를 잡고 전시 준비를 한다. 바로 그해 6월에 앙브루아즈 볼라르 갤러리에서 열릴 개인전을 위한 준비였다. 앙브루아즈 볼라르는 피카소의 초기 딜러이면서 당시 파리의 아방가르드 화가들을 일찍부터 알아본 역사적인 딜러다. 이 그림은 이렇게 중요한 앙브루아즈 볼라르 갤러리에서 전시된 데다 당시 전시 도록의 제일 앞부분에 소개되었다. 이후에도 이 그림은 뉴욕 현대 미술관과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공동으로 연 피카소 일흔다섯 살 기념 회고전, 뉴욕 현대 미술관의 피카소 회고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기획전 등 세계적인 미술관 전시에 여러 번 나왔다. 이런 뛰어난 전시 기록이 있으면 작품의 가치는 더 올라가게 된다.
2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비둘기 댓글:  조회:3575  추천:0  2018-10-15
  비둘기     윤동주 안아보고 싶게 귀여운 산비둘기 일곱 마리 하늘 끝까지 보일 듯이  맑은 공일날 아침에 벼를 거두어 빤빤한 논에 앞을 다투어 요(모이)를 주우며 어려운 이야기를 주고 받으오. 날씬한 두 나래로 조용한 공기를 흔들어 두 마리가 나오 집에 새끼 생각이 나는 모양이요. 비둘기하면 평화와 순결의 상징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평화와 순결의 상징 비둘기를 빗대어 현실적으로 어둡고 답답한 환경과 심정을 펼쳐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이 현 숙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윤동주는 펜으로, 송몽규는 총으로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글자크게글자작게| 페이스북트위터 시(詩)로 시대에 저항했던 청년 윤동주 … 재정·통화정책에도 매파와 비둘기파로 갈려...     1947년 2월13일 경향신문에 한 청년의 시가 실렸다. 그의 이름 앞에는 ‘고(故)’가 붙었다. 신문사 주간이었던 정지용은 작가를 이렇게 소개했다. ‘간도 동촌 출생. 연전문과졸업. 교토 도시샤대학 영문학과 재학중 일본 헌병에 잡히어 무조건하고 2개년도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복역중 음학한 주사 한 대를 맞고 원통하고 아까운 나이 29세로 갔다. 일황 항복하던 해 2월26일에 일제 최후 발악기에 ‘불령선인’이라는 명목으로 꽃과 같은 시인을 암살하고 저이도 망했다. 시인 윤동주의 유골은 용정동 묘지에 묻히고 그의 비통한 시 10여 편은 내게 있다. 지면이 있는 대로 연달아 발표하기에 윤군보다도 내가 자랑스럽다(※일부 표현은 각색했다)’ 시인 윤동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쉽게 씌여진 시](원문에는 ‘쉽게 씨워진 시’)는 이렇게 세상과 조우했다. 올해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다. 윤동주는 자신이 쓴 시마다 시를 쓴 날짜를 기록했다. [쉽게 씌여진 시]는 1942년 6월 일본 도쿄에서 유학중에 쓴 작품이다. 이미 조선어로는 어떤 글도 쓰지 못하게 하던 험악한 때다. 윤동주는 이 시를 친구인 강처중에게 보냈다. 윤동주는 45년 2월 후쿠오카 감옥에서 사망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조선은 독립했다. 기자가 된 강처중은 이 시를 갖고 있다가 정지용에게 보여줬다. 그의 시는 서거한 지 2년5개월 만에 비로소 대중에게 알려졌다. [쉽게 씌여진 시]는 부끄러움을 표현할 때 곧잘 인용된다. 일제강점기, 자국의 말도 글도 쓰지 못하는 불합리한 시대에 윤동주는 제대로 항거하지 못했다. 윤동주는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했다. 6첩방은 다다미가 깔린 일본식 방이다. 밤비 내리는 밤, 일본 하숙집에서 자신을 돌아보니 ‘나는 뭐하는가’ 싶었던 게다. 자신은 시인이니까 시만 잘 쓰면 되는 것 아닌가, 자위를 해본다. 하지만 양심에 찔렸다. 일제 치하, 동무들은 싸우다 하나 둘 죽임을 당하거나 실종됐는데 자신만 부모님이 보내주신 학비를 받아 편안하게 유학생활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끝내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런 윤동주의 모습은 송몽규와 대비된다. 송몽규는 윤동주의 고종사촌이면서 친구이자 평생의 동지다. 둘은 석 달 차이로 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고, 한 달 차이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었다. 송몽규는 중국 군관학교에 들어가 무력 투쟁을 시도하고, 유학생을 규합할 목적으로 일본 유학을 떠난다. 송몽규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될 정도의 문재였지만 글쓰기를 포기한다. 글은 주권을 잃은 나라를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 탓이다. 윤동주는 ‘비둘기파’, 송몽규는 ‘매파’성향의 청년이다. 비둘기파란 어떤 문제에 대해 과격하지 않고 온건한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대화와 타협, 협상을 중시하고 신중한 결정을 선호한다. 이들에게 비둘기파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온순하고 평화적인 해결책을 도모하는 것이 꼭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닮았기 때문이다. 비둘기파가 본격 알려진 것은 베트남전쟁 때다. 전쟁을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고 한정된 범위 안에서 해결할 것을 주장한 주화파(主和派)들을 ‘비둘기파’라 불렀다. 윤동주는 비둘기파, 친구 송몽규는 매파 비둘기파의 반대편에 매파가 있다. 강경론자거나 무력동원을 지지하는 주전파(主戰派)다. 1798년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이 처음 사용했다. 국내 정치와 대외정책에서는 보수 강경파를 의미한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이민 반대 등을 내세우는 미국의 트럼프 신행정부는 전형적인 매파 정부다. 중동과 북한을 악의 축으로 정의하고 힘으로 해결하려 했던 부시 행정부도 매파정부다. 경제학에서도 매파와 비둘기파가 있다. 재정건전성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강경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을 ‘재정 매파’로 부른다. 글로벌 분석기관인 스테이트 스트릿은 최근 ‘긴축의 소멸’이라는 자료를 내고 “재정 매파들이 둥지를 떠나버렸다고 봤던 기존의 가정들이 올해는 반복해서 시험을 받을 것”이라며 “트럼프가 공약한 재정 정책이 완전히 실행된다면 미국 연방정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다음 임기에 100%를 넘어설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현 부채비율은 GDP 대비 77%다. 트럼프는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돈을 퍼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공약했다. 감세에 이은 재정 지출로 재정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하면 재정 매파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의미다. 통화정책을 놓고도 비둘기와 매가 싸운다. 기준은 물가다. 금리를 인하해 경기를 부양하고 성장을 도모하겠다면 비둘기파다. 반면 금리를 올려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면 매파다. 즉 물가를 잡겠다면 매, 물가를 잡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비둘기, 이렇게 이해하면 쉽다. 돈을 잡겠다면 매, 돈을 풀겠다면 비둘기, 이렇게 생각해도 된다. 중앙은행은 매파 성향이다. 본업이 물가안정이기 때문이다. 반면 경제정책당국은 비둘기파가 많다. 높은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경제당국의 역할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물가안정을 중시해 매파로 종종 분류된다. 앞선 이성태 총재도 역시 매파였다. 반면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저금리를 선호해 ‘비둘기파’로 본다. 물론 이 총재나 옐런 의장은 손사래를 친다. 이들은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상황에서 판단한다”며 자신을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경제지표를 보고 통화정책 판단을 판단)라고 강조한다. 통화정책 결정권자 입장에서는 어느 한쪽에 편향됐다는 얘기를 듣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정지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문에서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라고 말했다. 윤동주는 비둘기였다. 하지만 비둘기는 결코 매보다 약하지 않았다. 윤동주가 남긴 시는 최고의 저항시로 남아 한국인과 영원히 함께하게 됐다. 윤동주의 시는 안중근·윤봉길 의사의 의거만큼 빛난다. 윤동주는 ‘동(冬)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 시인’이었다. 쉽게 씌여진 시 - 고 윤동주 -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6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우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6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1942년 6월3일]   페이스북트위터    
1    [고향문단소식]- 동시인 김득만과 "고드름" 동시비 댓글:  조회:2557  추천:0  2018-10-15
김득만시비 제막식 연길공원 동시동네서 (ZOGLO) 2018년10월13일      김득만선생이 창작한 동요를 부르고 있는 소학생들 처녀작을 발표하여서부터 지금까지 58년 세월을 줄곧 아동문학창작이라는 외길을 걸어온 로시인 김득만선생의 시비가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기획, 칠전팔기동아리의 후원으로 연길시인민공원 동시동네에서 제막되였다. 이로서 동시동네는 채택룡, 김례삼, 윤동주, 윤정석, 최문섭, 한석윤, 김득만 등 해방전후의 중국조선족아동문단을 이끌어온 7명 시인들의 시비로 동시동네를 찾는 시민들을 맞게 되였다. 정봉숙, 림원춘, 한석윤 등이 시비를 제막하였다.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최상철 회장은 에서 김득만선생은 동요집 《떡방아》, 동시집 《고드름》 등 26여부의 동요, 동시집을 출판하고 , , 등 33수의 노래와 동시를 음악교과서와 조선어문교과서에 수록한 우수한 아동문학작가로 중앙선전부상을 포함한 수많은 상을 수상하였으며 중국조선족아동문학발전에 큰 성과를 올린 분이라고 소개하면서 연변주당위 선전부, 연변주문화텔레비죤방송신문출판국, 연길시정부의 비준으로 시비를 건립하게 되였다고 소개하였다. 연변주당위 선전부 전임 부부장 채영춘은 축사에서 40년전 연변인민출판사 미술편집으로 근무하던 시절 동요동시집《맑은 샘》의 표지디자인을 맡으면서 김득만선생과 인연을 맺게 되였다고 하면서 “아동문학은 어른들이 외면하는 글이 아니라 어른이 되여서도 기억에 담을 수 있는 부호”라고 하면서 시비에 새겨진 과 같은 금싸락같은 동요동시들은 오늘의 아이들과 래일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두고두고 기억하는 글로 자손만대 남아있을 것이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는 또 7개의 동시비가 경립된 동시동네가 소음과 오염으로 혼탁한 오늘날 순수함과 결백함의 샘터로, 맑고 밝은 눈을 가진 우리 민족 어린이들의 동산으로 그리고 어른들이 동년의 순결을 되찾고 마음의 정화를 이어갈 수 있는 매력적인 성지로 되기를 희망하였다. 답사를 하고 있는 김득만선생 동시동네의 첫시비인 채택룡선생의 시비를 14년전에 건립하면서부터 줄곧 이러한 사업을 이끌어온 연변청소년진흥회 명예회장 한석윤은 “동시동네를 건립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단순히 어느 개인 한사람을 칭송하고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함만은 아니”라고 하면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예쁜 동시를 읽으면서 고운 꿈과 민족의 얼을 키우고 지키도록 하는데 큰 의의를 두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이날 제막식에는 연변작가협회 상무부주석 정봉숙, 원로작가 림원춘, 연변주당위 선전부 전임 부부장 채영춘, 연변조선언어문화진흥회 회장 김정일 등과 아동문학학회, 아동문학연구회 등 관련분야 문인 50여명이 참석하였다. ///길림신문 김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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