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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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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 시인, 생명운동가 - 김지하 댓글:  조회:3292  추천:0  2020-01-23
두산백과 김지하   [ 金芝河 ] 요약 시인이자 생명운동가. 1970년대 내내 민족문학의 상징이자 유신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의 중심으로서 도피와 유랑, 투옥과 고문 등 형극의 길을 걸어온 작가이다.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로부터 로터스상 등을 받았다. 출생-사망 1941.2.4 ~ 본명 영일 별칭 필명 형(灐), 반체제 저항시인 국적 한국 활동분야 문학(시) 출생지 전남 목포 주요수상 로터스상(1975), 세계시인대회 위대한 시인상, 브루노 크라이스키상(1981), 정지용문학상(2002) 주요저서 시집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별밭을 우러르며》 《이 가문 날의 비구름》, 산문집 《밥》 《남녘땅 뱃노래》 《살림》 《옹치격》 《동학이야기》 《생명》 《대설, 남》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반체제 저항시인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생명사상가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본명은 영일(英一)이며, 지하(芝河)는 필명으로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을 안고 있다. 1941년 2월 4일 전라남도 목포의 동학농민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원주중학교 재학 중 천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池學淳) 주교와 인연을 맺은 뒤 서울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1959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19혁명에 참가한 뒤,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수배를 피해 항만의 인부나 광부 등으로 일하며 도피 생활을 하였다. 1963년 3월 《목포문학》에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시〈저녁 이야기〉가 처음으로 활자화되었고, 같은 달 2년 동안의 도피 생활을 청산하고 복학해 이듬해부터 전투적인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1964년 6월 '서울대학교 6·3한일굴욕회담반대 학생총연합회' 소속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4개월의 수감 끝에 풀려난 뒤, 1966년 8월 7년 6개월 만에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번역과 학생 연극에 참여하는 한편, 1969년 11월 시 전문지 《시인》에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저항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듬해 《사상계》 5월호에 권력 상층부의 부정과 부패상을 판소리 가락으로 담아낸 담시 〈오적〉을 발표하면서 단숨에 박정희 군사 독재시대의 '뜨거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 〈오적〉으로 인해 《사상계》와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의 발행인·편집인이 연행되었고, 《사상계》는 정간되었다. 김지하는 이때 '〈오적〉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었으나 국내외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석방되었다. 이후 계속해서 희곡 《나폴레옹 꼬냑》, 김수영(金洙暎) 추도시론 《풍자냐 자살이냐》를 발표하였고, 1970년 12월 첫시집 《황토》를 발간하였다. 1971년 이후에는 천주교 원주교구를 중심으로 계속 저항시 발표 및 저항운동에 전념하면서 연행과 석방, 도피 생활을 거듭하던 중 1974년 4월 체포되어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주일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80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1984년 사면 복권되고 저작들도 해금되면서 1970년대 저작들이 다시 간행되었고, 이 무렵을 전후해 최제우(崔濟愚)·최시형(崔時亨)·강일순(姜一淳) 등의 민중사상에 독자적 해석을 더해 '생명사상'이라 이름하고 생명운동에 뛰어들었는데, 이때 변혁운동 진영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 당시의 시집으로 《애린》 《검은 산 하얀 방》과 최제우의 삶과 죽음을 담은 장시집 《이 가문 날에 비구름》, 서정시집 《별밭을 우러르며》 등이 있다. 1990년대에는 1970년대의 활기에 찬 저항시와는 달리 고요하면서도 축약과 절제, 관조의 분위기가 배어나는 내면의 시 세계를 보여주었는데, 《일산 시첩》이 대표적인 예이다. 1992년 그 동안 써낸 시들을 묶어 《결정본 김지하 시 전집》을 출간하였고, 1994년 《대설, 남》과 시집 《중심의 괴로움》을 간행한 뒤, 1998년에는 율려학회를 발족해 율려사상과 신인간운동을 주창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민족문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70년대 내내 민족문학의 상징이자 유신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의 중심으로서 도피와 유랑, 투옥과 고문, 사형선고와 무기징역, 사면과 석방 등 형극의 길을 걸어온 작가로, 복역 중이던 1975년에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로부터 로터스상을 받았고, 1981년에 세계시인대회로부터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받았다. 위의 저서 외에 시집으로 《꽃과 그늘》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생명》 《율려란 무엇인가》 《예감에 찬 숲 그늘》 《옛 가야에서 띄우는 겨울편지》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지하 [金芝河] (두산백과) ================================/// 시인 김지하에 대해       김지하(金芝河, 본명 김영일(金英一), 1941년 2월 4일 ~ )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박경리의 사위이다.   목포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으며, 종교는 본래 개신교였으나 천주교로 개종하였다. 1964년 한일정상회담 반대 시위에 가담하여 구속되었다.   1970년 부패된 정권을 비판한 〈오적(五賊)〉이라는 시를 써서 《사상계》 5월호에 실었는데, 이것이 신민당 기관지인 〈민주전선〉에 실리면서 문제가 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00일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74년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되어 7월 9일 결심 공판에서 긴급조치 4호 및 국가보안법 위반, 그리고 내란선동죄 등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감형받았다가 석방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오적 새 황톳길 타는 목마름으로등이있다.   현재는 동국대학교와 원광대학교의 석좌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1941년 전남 목포(木浦) 출생 1966년 서울대 미학과 졸업 8년여 투옥 생활,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 1969년 「황톳길」 등 시 5편을 『시인 詩人』지에 발표 1970년 5월, 담시 『오적(五賊)』 필화 사건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받음, 7월 무기징역 감형 1975년 2월 출옥후 옥중기 「고행―1974」 발표, 재차 투옥됨 1975년 특별상 수상, 노벨문학상 후보 추대됨 1981년 과 수상 1999년 율려학회 창립     김지하 본인이 말하는 필명이 만들어진 사연             5. 16 군사 쿠데타 뒤니까, 아마도 스물두 살 때였나 보다. 그때 나는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학교 앞에 ‘학림’이라는 음악다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다방에서 곧 나의 시화전(詩畵展)이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가 여름이었다. 그때 내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인데 문단에 이미 같은 이름의 문사들이 여럿 있었다. 당시 서울대 학생이 개인 시화전을 여는 것은 마치 시집을 한 권 내는 것만큼 ‘준문단적’, 혹은 ‘준준문단적’ 사건이었는지라 아무래도 필명(筆名)이 하나 필요했던 것이다. 그랬다. 그런데 그런 어느 날 동아일보사에서 일하던 한 선배가 점심때 소주를 사줘서 실컷 먹고 잔뜩 취해가지고 거기서 나와 동숭동 대학가의 아지트였던 바로 그 음악다방으로 가려고 호주머니를 뒤지니 돈도 버스표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여름 한낮의 태양은 뜨겁고 술은 오를 대로 올라 비틀거리며 종로길을 갈지 자로 걸어오던 때다. 그 무렵 막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있었는데, 요즘에도 흔한 것이지만 길가에 자그마한 입간판이 주욱 늘어선 것이다. 다방, 이발소, 이용실, 뭐 그런 것들의 입간판인데 술김에도 괴상하게 여긴 것은 그 간판 위쪽에 다 똑같은 자그마한 검은 가로 글씨로 모두 한글로 ‘지하’라고 하나같이 써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하실에 다방, 이발소, 이용실이 있다는 얘긴데 왜 하필 그 글자만은 유독 똑같은 한글, 똑같은 검은 글씨로 맨 위쪽에 가로로 조그맣게 써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똑같은 것들이 여기도 ‘지하’ 저기도 ‘지하’ 저기만큼 가서도 또 ‘지하’, ‘지하’, ‘지하’! 그야말로 도처에 유(有) ‘지하’였다.   ‘옳다! 저것이다! 저것이 내 필명이다!’   이렇게 된 것이다.         김지하의 작품             첫 시집 『황토(黃土)』(1970) 이후,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1982), 『검은 산 하얀 방』(1986), 『애린』(1986), 장시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6), 『별밭을 우러르며』(1989), 담시집 『오적』(1993), 『중심의 괴로움』(1994) 등의 시집이 있다. 이밖에도 대설(大說) 『南』(전5권, 1994년 완간)을 비롯해, 산문집 『나의 어머니』(1988), 『밥』(1984),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1984), 『남녘땅 뱃노래』(1985), 『살림』(1987), 장시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1991), 대담집 『생명과 자치』(1994),『사상기행』(전2권, 1999), 『예감에 가득찬 숲그늘』(1999), 강연 모음집 『율려란 무엇인가』(1999) 등의 다수의 저서가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루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1    한국 시인 김지하 장편 풍자 담시 - 오적 댓글:  조회:3124  추천:0  2020-01-23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현대문학 오적     요약 1970년에 발표된 김지하의 이 시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다섯 종류의 오적(五賊)으로 간주하고 풍자․비판한 작품이다. 작가 김지하 (1941년 ~) 발표 1970년 장르 현대시 종류 담시(譚詩) 1.작가소개와 작품해설 2.작품해설 3.작품 속의 명문장 4.작품읽기 & 참고자료 작가소개와 작품해설   김지하 이 작품은 1970년 5월《사상계》에 발표한 김지하의 담시(譚詩)이다. 담시란 “어원적으로 무가(舞歌)에서 출발한 장르로서 서정적, 서사적, 드라마적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특수한 형식”(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인용)인 서구의 발라드(ballade)를 번역․차용한 번역어인데, 김지하는 전통적인 민중적 예술 형식인 판소리의 미학을 계승하여 극적 요소, 서정적 요소, 서사적 요소를 모두 결합한 ‘소리’를 ‘담시’라고 규정했다. 김지하는 1970년대에 여러 편의 담시를 창작했는데, 「오적(五賊)」은 그 첫 번째 발표작이다. 이 작품은 1970년대 개발독재 과정에서 부정부패로 엄청난 부(富)를 축적한 대표적 인물형을 을사오적에 빗대어 비판한 정치시이자 풍자시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오적’의 구체적 정체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다. 김지하는 이들 다섯 인물 유형의 한자 표기를 ‘개견(犬)’자(字)가 들어가는 새로운 조어로 표기함으로써 그들을 동물화했다. 이 시의 구체적인 배경은 6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인데, 시인은 국민들 대다수가 가난하게 살고 있음에도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이들 ‘오적’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 비판하기 위해 이 시를 썼다. 특히 이 시에는 ‘오적’ 이외에도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할 임무를 맡은 포도대장이 등장한다. 경찰이나 사법당국을 상징하는 포도대장은, 그러나 시에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오적에게 매수되어 죄 없는 국민들을 투옥하는 권력의 앞잡이로 등장한다. 결국 포도대장은 날벼락을 맞고 갑작스럽게 죽는데, 이는 고전소설의 권선징악을 차용하여 경찰과 사법당국을 비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김지하의 이 작품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사상계》는 폐간되었고, 작가와 편집인 등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오적」은 외화(外話)와 내화(內話)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판소리의 형식을 차용한 것이다. 이 시에서 외화(外話)에는 창작의 배경을 서술한 부분(“~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과 자신의 시가 구전되는 이야기를 집약한 것임을 밝히는 뒷말(“~이런 행적이 백대에 민멸치 아니하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여 날같은 거지시인의 싯귀에까지 올라 길이 길이 전해오겄다.”)의 두 부분이 포함된다. 내용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화(內話)는 9개의 작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대략적인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다. 판소리와 마찬가지로 담시는 민중적 장르이기 때문에 오적에 대한 비판과 풍자는 매우 적나라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시의 화자는 오적 이야기가 마치 전래되는 이야기를 구술한 것처럼 표현하고 있으나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처럼 공간적 배경을 ‘서울’로 설정함으로써 60~70년대 한국의 정치․경제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 시가 발표될 무렵 우리 사회는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국가권력의 강압적인 통치에 신음하고 있었다. 발표 직전인 1969년 9월에는 국회에서 대통령의 3선 개헌안이 단 6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통과됨으로써 군부 정권의 장기 집권 시도가 노골화되었고, 발표 즈음인 1970년 3월에는 정인숙이라는 여인이 한강변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4월에는 부실 시공한 와우아파트가 붕괴되어 33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해 11월에는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것을 요구하며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배경으로 발표된 「오적」의 영향력이란 대단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 작품이 발표된 《사상계》5월호는 5,000부가 모두 팔려 매진되었다고 한다. 작품해설   「오적」은 외화(外話)와 내화(內話)로 구성되었다. 외화는 창작의 배경을 밝힌 부분과 자신의 이야기가 창작이 아니라 구전되는 내용임을 밝히는 뒷말로 이루어졌고, 내화는 ‘오적’에 해당하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의 부정 비리를 고발하고 조롱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작품 속의 명문장   “또 한 놈 나온다. / 국회의원 나온다. /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 가래끓는 목소리로 웅숭거리며 나온다 /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약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예나 지금이나 국민의 행복한 삶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안위와 출세만을 살피는 정치인들은 문학의 유력한 비판 대상이었다. 하지만 정치인에 대한 김지하의 비판은 지금 보아도 섬뜩할 정도의 살기와 풍자이다. 특히 박정희를 비롯하여 권력을 장악한 군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장면은 지금 읽어도 흥미롭다. 작품읽기 & 참고자료   크게보기 오적 한글판 + 영문판 김지하 저 답게 2001.10.25 크게보기 탈춤의 민족미학 미학강의 김지하 저 실천문학사 2004.02.15 크게보기 김지하 문학연구 홍용희 저 시와시학사 2000.03.20     관련이미지 담시 오적출처: e뮤지엄 (촬영: ) [네이버 지식백과] 오적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현대문학)   한국문학 오적   [ 五賊 ] 구분 장편 풍자시 저자 김지하 출판사 사상계 출판일 1970년 작품해설 시인 김지하가 1970년 『사상계(思想界)』 5월호에 발표한 장편 풍자시. ‘이야기조의 시’라는 의미로 ‘담시(譚詩)’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당대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비리의 실상을 을사오적(乙巳五賊)에 비유해 비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이 작품은 발표 직후의 사회정치적 파장으로 더 유명하지만 양식적인 면에서 전통적 운문양식인 가사, 타령, 판소리사설 등을 현대적으로 변용함으로써 새로운 풍자적 장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대담한 사설의 도입과 함께 이루어진 언어의 해체를 부분적으로만 보게 된다면, 시적 긴장이나 정서의 절제보다는 격렬한 사설조에 조소와 풍자의 어조를 담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해학을 동반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비장함을 드러내기도 하는 이 풍자의 어조는 운문양식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경지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이래 으뜸 /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게 일쑤요 /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 (중략) / 서울이란 장안 한복판에 다섯도둑이 모여 살았것다.’로 시작되는 이 작품에서 그 풍자성과 격렬한 어조는 시대성 또는 상황성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지는 실천적 의지를 보여준다. 시어의 반복과 대담한 생략, 이념적 추상성을 제거해 주는 의성 · 의태어의 활용, 시의 언어로서 부적절한 것으로 취급되어 온 비어와 속어의 배치 등은 김지하의 담시가 보여주고 있는 수사학적 특징들이다. 이러한 수사적 장치는 권위에 대한 부정, 비리에 대한 풍자와 비판, 시인의 행동적 의지의 적극적인 구현을 위해 기능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지하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대상은 재벌, 국회위원, 고급관료, 장차관, 장성 등이다. 이 다섯 역적을 탄핵하려 하지만, 포도대장마저 매수되어 오적(五賊)의 개집을 지키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다. 하지만 이 작품은 포도대장과 오적(五賊)들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벼락을 맞고 급살한다는 결말을 통해 당시 정치 세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가 발표된 직후 시인 김지하는 반공법(反共法) 위반으로 100여 일간 투옥되었고 잡지 『사상계』는 강제 폐간당한다.   관련이미지 2                               이미지 이전 담시 오적 이미지 갤러리 출처: e뮤지엄 [네이버 지식백과]오적 [五賊] (한국현대문학대사전)   e뮤지엄 담시 오적     이미지 크게보기   국적 > 시대 한국 > 광복이후(光復以後) 재질 지(紙) 크기 가로 15 세로 21 용도 · 기능 문화예술 > 문헌 > 문학 > 시(詩) 소장처 목포자연사박물관 유물번호 문예역사(문예역사) 140036-000 1993년 5월 솔 출판사에서 펴낸 김지하 시집.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분단 시대를 통과해오면서 우리 민족문학사는 불운과 고통으로 점철된 우리 현대사만큼이나 깊이 상처가 나고 그 상처는 치유를 잊은 대 거듭 덧났다. 민족문학사는 그러나 그 신음의 세월 속에서도 저 찬란한 민족사의 전통과 기억을 마침내 되살려 꽃피우니, 그 화려하고 장엄한 개화가 바로 김지하의 담시(譚詩)이다. 부정과 부패로 찌든대로 찌든 군사 독재 정권이 탄압과 흉계를 노골화하기 시작하던 1970년에 시인 김지하는 통쾌 무비하게 군사 정권의 부패상을 통타하는 내용의 장시를 (담시)라는 독창적인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민족의 무한한 문화적 긍지인 판소리 형식에 실어 당시 부정 부패의 주범들을 (오적 五賊)으로 규정, 이들의 반-민주적, 반-민족적 행태를 통쾌하게 풍자하고 공격한 담시 (오적 五賊)은 살벌했던 군사 공포 통치에 대해 정면 항전을 전개한 민주적이고 민중적이며 애족적인 시인의 행동하는 양심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김지하의 담시가 지닌 귀중함과 탁월함은 단지 이러한 행동하는 양심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더 깊이는 오랫동안 짓눌리면서 무수히 유실되어온 우리 민족의 정통적 문화적 유산을 후련하게 복권시키고 창조적으로 계승한 민족문화사적 의의 속에서 찾아질 수 있다. *김지하 1995년 9월 17일자 일간지에 김지하 시인은 고통과 수난, 압박의 상징이었던 과거의 `지하`란 이름을 버리고 `김형`이라는 필명(筆名)을 사용한다고 하며, 새롭게 태어난 모습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1941년 전남 목포 출생으로 1966년 서울대 미학과 졸업했다. 그는 6.3 사태(1964) 당시 대일 굴욕 외교 반대 투쟁에 참가한 이후 1970년대를 온통 도피와 체포와 투옥을 거듭하며 살아왔다. 오로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만세`를 부를 날을 애타게 염원하며 절규하듯 살아왔다. 1963년 첫 시 를 발표한 이후, 계열의 초기 민중 서정시와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판소리 가락에 실어 통렬하게 비판한 특유의 장시(長詩) 계열의 시들, , 등의 빼어난 70년대의 서정시들, 그리고 80년대의 `생명`에의 외경(畏敬)과 그 실천적 일치를 꿈꾸는 아름다운 `생명`의 시편들을 만들어 냈다. 1975년에는 `로터스(LOTUS) 특별상`을 수상. 시집으로 (1970), (1982), (1986), (1988), (1989), 등이 있다. 관련이미지 김지하출처: (CC BY-SA)LTI Korea@wikipedia (촬영: ) [네이버 지식백과] 담시 오적 (e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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