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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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날짜 : 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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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람은 아는 것만큼 본다 댓글:  조회:3997  추천:0  2017-10-16
한 스승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궁금해 하는 제자에게 보석을 주면서 값을 알아보라고 하였다. 제자는 먼저 야채가게에 가서 주인에게 이 보석을 드리면 나에게 무엇을 주겠는가고 물으니 배추 두 포기를 주겠다고, 다음은 대강간을 찾아 가서 같은 물음을 했더니 꽤 많은 돈을 주겠다고, 다시 보석상을 찾아 가니 보석상이 보석을 유심히 보더니 “이 보석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가치가 있습니다”고 했다. 제자가 돌아와서 스승에게 들은 대로 말했더니 스승의 말이 “사람은 아는 것만큼 본단다. 자신을 하찮은 배추 두 포기에 팔수도 있고 더 많은 돈을 받고 팔아 수도 있다. 사람은 자기에 따라서 돈으로 계산할수 없을 만큼 고귀한 존재로 만들수 있다. 안다는 것은 지식과 지혜를 말한다. 지식은 책으로 얻고 지혜는 경험으로 얻는다. 고금중외의 세인들은 독서로 눈을 뜨고 지혜로 자기를 갈며 닦았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남자는 다섯 수례의 책을 읽어야 삶의 정도를 찾는다.” “책은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고 마음으로 깨우치라”며 “독서3도(讀書3到)”를 후세에 유물로 남겼다. 고려후기의 문신, 조선초의 성리학자 길재(吉再)는 10대부터 책속에 묻혀 독서삼매(讀書三昧)로 불리며”책 속에 크게는 하늘, 땅, 나라, 작게는 날짐승, 길벌레들의 일, 사람이 행해야 할 례절, 도리, 아주 먼 옛적 일, 그리고 4계절이 변하는 리치,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등 세상의 모든 일과 조화가 다 들어 있다”고 했다. 2008년에 580억 딸라의 재산으로 세계 최고 부자, “가치투자의 귀재”로 불린 위렌 버핏(미국)은 “현명함이 어디서 오는가?”는 질문에 “책에서 온다”며 “나의 독서량이 일반인들의 5배가 될 것이다”고, 미국 월가에서 가장 존경 받는 영국투자인 존 템플턴은 사람들게 “자신을 ‘살아있는 도서관’으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똑 같은 물건도 예술인이 만나면 예술품이 되고 청소부가 만나면 쓰레기가 된다. 로마에 가면 돌멩이만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모르고 보면 그냥 돌멩이지만 알고 보면 단순한 돌멩이가 아닌 력사로 보인단다.   오기활  
2    책임과 신념 댓글:  조회:3710  추천:0  2017-10-16
이런 미담이 있다. 영국의 왕자가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한 목동을 만나 길안내를 부탁했다. “미안합니다. 저는 남의 양을 거두는 목동입니다. 그러니 양들을 놔두고 길을 안내할 수는 없습니다.” 왕자는 목동이가 받는 월보수가 얼만가를 묻고 그 돈의 3배를 줄테니 길을 안내해 달라고 했다. “참 미안합니다. 저는 이미 이 양들을 보기로 약속 했으니  돈을 많이 준다고 이 자리를 떠나면 도리가 아닙니다.” 화가 난 왕자는 목동에게 총을 겨누며 명령했다. “내 말을 안 들으면 죽이겠다” “할수 없습니다. 죽을지언정 약속은 지키겠으니 말로 안내하지요.” “저 산 넘어 계곡을 따라서 서쪽으로 좀 가면 길이 나올 것입니다. 그 길을 따라 내려 가면 됩니다.”   후에 왕자가 왕으로 되였다. 왕은 책임을 굳게 지키던 그 목동을 재상에 임명했다. 왕청현교통경찰대대 도시중대 최광일이 바로 책임과 신념을 확고히 지킨 사람이다. 그는 근 30년간 맡은 일터를 지키며 만 수차의 교통사고를 처리했지만 한차례의 오차가 없었다. 뇨독증말기라는 죽음 앞에서 최광일은 “이런 이상 죽어도 일터에서 죽겠다.”며 일터로 나갔고 남편의 치료비를 벌려고 출국한 안해의 빈자리를 메우며 새벽에 일어나 딸의 밥상을 마련하고 뒤늦게 퇴근하여 가무를 책임적인 주부였다. 책임과 신념은 믿음을 낳고 그 믿음이 기적을 낳는다. 금전의 유혹과 생명의 위험 앞에서 확고한 책임과 신념을 지킨 목동을 재상이란 기 적을 낳았고 최광일은 전 국민의 애대를 받는 “가장 사랑하는 경찰”과  19차 당대표 기적을 낳았다. 오기활
1    개산툰“어곡전”의 유공자들(오기활) 댓글:  조회:3787  추천:0  2017-10-16
지난 9월 5일, 룡정시 개산툰진 광소촌 하천평마을에서 펼쳐졌던 중국 룡정 제8기 조선족 어곡전 농부절 “풍수제” 때 전임 룡정시당위 서기이며 “중국 단군문학상”리사회 회장인 신봉철은 “‘못 말리는 어곡전’은 중국 조선족의 문화브랜드다” “어곡전의 탄생부터 어곡전의 부흥은 우리 민족 이민사의 축도이며 민족정신, 민족진보, 민족부흥의 생동한 귀감이다”“우리는 어곡전의 부흥, 농부절이 탄생, 어곡미의 상품화…를 위해 특별한 공헌을 한 최학출, 오정묵, 한화석을 절대 잊을수 없다”며 이들의 로고에 허리 굽혀 경의를 보냈다. 이날 “못 말리는 어곡전”의 저자 한화석(80)선생이 “어곡전 만세!”를 높이 웨치자 9월 풍수제의 하늘은 참가자들의 힘찬 박수소리로 울려 퍼졌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망각이란 잊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비록 과거의 일을 머리에 간직은 했으나 되살리지 못한다면 역시 망각에 속한다. “최학출, 오정묵, 한화석을 잊을수 없다.” “‘못 말리는 어곡전’만세!” 이는 어곡전과 어곡미에 슴배인 유공자들을 망각하면 안 된다는 선언서라 하겠다. 1976년에 어곡미가 중남해에 공급되였고 2009년에 어곡전 ‘농부절’과 ‘풍수제’가 성급무형문화재로 등재 되였으며 2011년에 장춘시 위만황궁박물원에 어곡전 전시관이 개관되였다. 우리가 어곡전을 기억하고 어곡전의 유공자들을 기억함은 우리 민족의 농경 문화 학문과 력사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이에 필자는 어곡전에 이어지는 발자취에 따라 기억해야 할 다섯 분들을 력사순으로 기록한다. 물론 다섯분들 외 김승룡, 박룡호…등 인물들이 많고도 많다. 최학출 ; 1941 년에 “어족전”과 “어곡미”를 산출한 산모이다. 최학출농민은 선진적인 육모기술과 새로운 농법으로 벼생산량과 미질을 제고시켜 하천평의 입쌀을 위만주국 강덕“황제”의 수라상에까지 올라가게 한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농부이다. 서규철: 1982년에 연변농업과학연구소 벼재배연구실 서규철주임이 주인대상무위원회에서 제일 처음으로 “어곡전기념비”를 세울 것을 제안한 유공자이다. 2006년에 연변주문화국에서 “어곡전비”를 세울 것을 정식으로 비준했다. 심정호: 1995년에 개산툰 농민작가 심정호씨가 개산툰의 “백락”으로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어곡전의 전설을 정리하여 처음으로 어곡전을 문자로 세상(연변일보)에 알린 유공자이다. 1999년에 심정호씨는 사비로 최초의 “어곡전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오정묵: 2001년부터 룡정시 용남강덕중의진료소 오정묵원장이 어곡전의 새 주인으로 되였다. 오정묵씨는 2006년 8월 15일에 8만원을 투자해 “어곡전”돌비석을 세우고 계속하여 어곡전의 부흥, 농부절의 탄생, 어곡미의 상품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600 만원이상을 투자하였고 유지인사와 해당부문과 손잡고 어곡전 농경문화를 창출, 발전시켜 2009 년에 어곡전 “농부절”을 성급문화재로 등재시켰다. 한화석; 2013년에 오정묵씨의 부탁을 받고 송정현, 정두길, 심정호의 뒤를 이어 어곡전의 발자취를 수집, 정리하여 “못 말리는 어곡전”을 출간한 유공자이다. “못 말리는 어곡전은 우리 중국 조선족의 농경문화브랜드이다” 기억도 의무이다. 1985년 5월 8일 독일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는 2차 세계대전 패전 40주년 기 념식에서 “기억은 사람들의 의무이다. 의무는 책임을 회피할수 없다.”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도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가 오늘 어곡전과 어곡전에 슴배여있는 인물들을 기억함은 력사를 기억하고 력사 인물들을 기리는것으로 더욱 힘찬 도약을 하기 위함이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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