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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렴치없이 산다면 아직도 몇 십년은 문제없소' 댓글:  조회:4511  추천:0  2018-12-21
 “렴치없이 산다면 아직도 몇 십년은 문제없소” 두 “100세 로인”의 인생스토리   필자는 올해 달력의 막장을 펼친 며칠 후 당금 찾아오는 100세 시대에 현존하는 100로인들의 인생스토리를 듣고저 일전에 룡정의 김수철(94)옹과 연길의 리남조(99세)할머니를 인터뷰를 하였다.     “원래는 두 분을 한자리에 모시려고 했는데 여러가지 불편으로 이틀 건너 이렇게 만났습니다”   “둘이 만나면 할말이 많아서 더 좋았겠는데…”   필자의 수인사에 두 분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이렇게 답하며 무척 아쉬워 했다.     필자는 같은 물음에 같은 형식으로 “대답을 간단히 하세요"로 인터뷰를 이었다.   무례로 되지만 로인들의 장설을 “짧게”하며 말 막이를 해야했다.   김수철은 연변농학원교수로1987년에 정년퇴직을 한 후에 여러 권의 책도 출간하고 한국과 일본의 학술무대에서 무게 있는 론문을 수편 발표했다.   그리고 “이미 출판된”길림성식물명록”에 빠진 것이 많아 내가 보충해야한다” 며 최근 몇 년간에 고군작전을 하면서 한평생을 채집, 정리한 수천수만점의 식물표본에서 2300종을 선정하여 그림까지 배합하여 “길림성식물도감”편집을 마무리 하였다.   리남조할머니는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부양사촌언니)가 반일렬사가정에서 자란7남 1녀 8형제로10살부터 어머니를 도와 가사와 농사일을 하였다. 결혼후2남 6녀의 어머니로 남편을 일찍 잃고 혼자서 자식들의 글공부를 섬기면서 슬하에 박사, 석사, 의사, 대학교수 5명을 키워낸 존경스러운 어머니이며 자랑스러운 할머니다.    할머니는 딸집에 놀려 다녀도 그사이에 볼 책과 신문을 챙기는 기억력이 좋고 한어말이 순통한 “현대할머니”이다.   문; 언제 중국에 오셨습니까? 김: 할아버지가 조선 함경북도명천군에서 50세에 사망한 아버지의 유골을 등에 업고1909년 음력 7월에 가족 10명을 이끌고 600리를 걸어서 조양천백석구에 정착하였다. 나는 백석구출생이다. 리: 우리의 원적은 한국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무의리이다. 백년 전에 증조할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신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단동 ㅡ 심양 ㅡ 해림에서 두루 살다가 나중에 흑룡강성 동경성에 정책했다. 나는 심양태생이다.   문: 문화정도는요? 김: 7살에 서당을 다니기 시작하여 10살에 소학교를,,, 최후의 학적이 대학 1학년이다. 리: 할아버지한테서 한글(韓文)과 한자(漢字)를 배우다가 할아버지가 “사람이 까막눈이 되여서는 안 된다”며 사비로 6년제 소학교를 세운후 4년간 소학공부를 하였다.    문: 결혼은 언제 하였습니까? 김; 백부님의 강권으로 연길국민고등학교 2학년을 다닐 때인1941년 1월 31일에 결혼하였다  리: 결혼을 말하자니 힘들다. 이때까지 비밀로 지켰다.  내가 18살 때 8남 1녀 형제네 막내아들의 눈에 들어 부모들이 그 남자가 병자인 것을 모르고 둘이 만나본 한 달 후인 10월 24일에 결혼시켰다. 그런데 결혼하자부터 앓는 남편을 보고 의사가 부부생활을 하면 안 된다기에7년간을 혼자서 지냈다.    25세에 5년 년상인 김병훈이란 남자와 결혼하고 한동안 임신을 못하다가 익모초를 부지런히 달여 먹었더니 1947년부터 시작하여 2년 터울로 6녀 2녀를 출산하였다. 나의 결혼은 “꽃봉오리를 맺고도 꽃을 피우지 못한” 실패결혼이다.   문: 지금의 건강상황은 ? 김: 유전관계인지 허리가 구불고 귀가 슬 들릴 뿐. 지금도 안경을 모르고 몸에 로인반점이 한개도 없다. 허리가 구불었지만 아무런 불편이 없다. 자식들만 안 말리면 산도 마음대로 다니고 달리기경기에도 나갈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다. 리: 지금도 안경이 없이 신문도 보고 바늘귀도 꿴다. 썩 오래 전에 딸집을 가다가 물도랑에 넘어져서 무릅뼈가 탈골했던 후유증으로 무릎이 가끔씩 아픈 외 아무런 이상이 없다. 단 이발이 부실하여 십년 전에 8500원을 팔아 치료를 했는데 요즘에 불편해 한다며 자식들이3000원을 투자해 틀이를 했다. 몸에 로인반점도 없다. 건강은 우리 집에서 누구도 나를 못 따른다.   문: 건강비결은 무엇입니까? 김 : 몸에 해가 되는 일을 안 한다. 담배는 배우지 않았고 젊어서는 술상에 앉으면 빼갈을 한 근을 남아 마셨는데 지금은 절제한다. 식약동원(食葯同源)이라 식단은 그저 먹기 위해서나 맛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영양을 따져서 배치한다.  나는 쑥, 되꼬리 등 길옆의 풀과 뜸으로 건강을 지키며 병원을 모르고 건강하게 살고 있디. 뜸은 살을 태워야 한다. 살을 태우지 않는 뜸은 효과가 거의 없다 “동의보감”을 쓴 리조말기 어의 허준도 뜸은 살을 태워야 효과가 있다고 말하였다.  리: 나는 늘 편안한 마음으로 남을 잘 받아 준다. 90세에 뇌출혈로 하루간 병원서 혼수상태에 처했다가 6일만에 출원하였다. 나는40세부터 의학서적을 보면서 스스로 여러가지 건강운동을 만들어 가지고   50년을 견지해 왔다. 얼마 전에 아들이 발운동을 이렇게 하면 좋다고 알려주니 나는 그 발운동을50년간 하루도 빼 놓지 않고 견지했다고 하니 놀라 하였다.    문: 이제 몇 년을 더 살수 있다고 자신합니까? 김: 교통사고만 없다면 렴치없이 살 것 같다.  교통사고를 피하기 위하여 길을 걸을 때 다른 생갹을 안 한다.  리:. 먹을 것을 제대로 먹으니 운동원처럼 건강하지는 안지만 지금 생각에 아직도 몇 십년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문: 지금까지 잘했다고 하는 일이 있다면? 김: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결혼 한 것이고 조강지처를 만나 사상을 개조한 것이며 우리 민족의 전통을 지겼고 계자로 들어가 백부를 잘 모신 것이다. 한눈도 팔지 않고 끝까지 식물학을 지켰고 한 우물을 판데서 오늘의 일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특히 잘한 것은 뜸으로 건강을 지키며 사업을 보증코 완성한 것이다.   일생을 아껴 쓰고 아껴 먹으며 간고분투하며 나의 사업에 모든 경제를 소비한 것이다. 경제가 딸리는 상황에서 일생 동안 배울 공구서적을 준비했기에 지금 내 집에서 자료를 찾을수 있다 내가 수장한 종이책들이 연변대학도서관보더 더 구전한 것 같더라. 리: 잘했다고 생각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재혼 때 둘이 털털 이로 만난 것이 잘한 것 같고 자녀들을 잘키운 것이 자랑스럽다.    문; 아쉬웠던 일이 있다면? 김: 비록 일심정력으로 일을 했다지만 그래도 옛날의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학술면에서 재간을 나타내자는 욕심이 없었다. 이면에서 기술(대인관계 기교)이 부족했다. 출세를 하자는 생각이 없이 그저 자기의 능력을 믿고 하면 된다고, 잘하면 인정해 주겠지 생각하고 령도들과의 접근을 멀리한것이다. 리: 생활이 그렇게 가난하면서도 없다는 말을 안하고 너무 간고히 살아 온 것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어머니를 소설로 쓰지 못한 것이 아쉽다.   문; 억울한 일이 있다면? 김: 크게는 없다. 내 잘못이 많다. 리: 한때는 내가 가도에서 련조장, 선전워원으로 공작하다가 감독원을 하라니 나는 남을 감독할 자격이 없다며 사양을 했다. 그런데 오빠가 일본놈들에게 총살 당한 아버지의 원쑤를 갚겠다며 집을 나갔는데 후에 보니 토비로 되였다. 하여 한때는 가도에서 오빠의 문제로 “可疑分子”로 몰려 모든 사업을 박탈당하였다.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가 항일렬사인데 오빠문제로 렬사가족을 묵과하고 “가이분자”로 몰리니 억울 하였다.   문: 반성되는 일은 없는지요? 김: 가정성원에 대한 관심이 부족 했고 만년에 부인의 병조리를  딸에게만 맡긴 것이 미안하고 후회된다. 리: 이때까지 “예, 예”하면서 살아왔기에 반성할 일이 별로 없다. 마음으로 가책되는 일이 한 점도 없다.   .문: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김: 가족에 대해 말한다면 자녀들이 결혼하자 자립을 했다고 경제적으로 돕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사회에 대해 말한다면 사회에 대한 관심이 적고 정치를 불문하고 “마이퉈우 쿠깐”(埋斗苦干)만 한 것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리: 지금까지 우리가문이 좋은 가문인지 아니면 나쁜 가문인지를 알려줬으면 좋겠다.(뜻인즉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의 항일력사기록이 없다고 ㅡ편자)   문: 효도란? 김: 효는 “백행지원”(百行之源)이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라에 충성할수 없다. 효는 나의 마음속 기둥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았고 이상분을 존경하고 내가 할수 있는 데까지 노력하며 책임을 지켰다. 리: 효는 부모님이상 조부, 증조부…에 대상해 쓰는 말이다. 녀자가 절개를 지키면 렬녀라 하고 훌륭한 안해를 조강지처라고 훌륭한 어머니를 현처량모라고 한다.   문: 자식들에게 할말이 있다면? 김: 자녀들게 크게 요구하지 않고 아이들과 모순도 없고 기대도 안한다. 나는 나절로 살고 너희들은 너희로 편리대로 살면 된다. 리: 아무런 요구가 없다. 너희들끼리 잘 살면 된다.   문: 그 년세에 이성에 대한 생각이 나는가요? 김: 남자니까 미녀가 나타나면 지금도 마음이 움직인다. 아니라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나는 사상을 개조하면서 조강지처를 지켰음을 자랑으로 느낀다. 한때는 리혼도 하자고 했다. 부부간에 싸움이 없었다면 거짓이다. 리: 나는 이성을 말하면 듣기도 싫다. 100세에 이성을 론하는 것은 나발이다. 총명한 증손들에게 빠진 재미로 산다. 나는 혼자 7년을 지날 때 대정원에 다니며 공부를 하고 중학교도 대수 다녔다.   인터뷰채록을 정리하면 김수철교수는 효를 백행지원으로 하고 풀과 책을 동무하며 평생식물학을 연찬하는 불로송이고 리남조할머니는 긍정적인 사고로 생을 지키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의 견증인이였다.    오기활 사진배합( 4장) 김수철 1, 최근 2년에 내몽골에 다니며 이 사진기로 수천장의 사진을 찍었다. 2, 이 토배기현미경을 리용하여 2600여가지 식물표본을 그렸다.  리남조 1, 지금도 안경이 없이 바늘뀌도 께고 신문도 본다. 2, 젊은들에게 당신이 고안해낸 건강체조를 전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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