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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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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폭력적인 그러나 아름다운 은유를 기다리며 / 양병호 댓글:  조회:921  추천:0  2019-02-01
폭력적인 그러나 아름다운 은유를 기다리며 / 양병호   어찌 보면 세상은 그렇고 그런 일이 반복되는 곳이다. 일견 복잡다단한 것처럼 보이는 세상을 본질적이거나 추상적으로 요약 압축하면 더욱 그렇다. 자연도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일정하게 반복되는 패턴을 지니고 있다. 인생 역시 원형적 패턴에 따라 일정한 단계를 밟아 진행된다 하루 일과 역시 시간에 따라 동일하고 반복적인 노동과 휴식으로 이루어진다. 세계나 존재 모두 동일하고 반복적인 행동패턴에 따라 안도감을 느끼며 흘러간다. 이처럼 동일한 것의 반복을 통해 생성되는 일상의 낯익음은 안락이나 편안함과 더불어 권태와 지루함을 제공한다. 그래서 세상은 따분하고 인생은 지리멸렬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 유발되는 답답한 권태와 지독한 환멸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그 중의 하나가 예술과 접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은 신기하고 낯설은 감각과 인식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에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예술 중에서 시 역시 마찬가지 소명과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시는 존재와 세계에 대한 느낌과 관념을 형상화한다. 사물과 관념을 형상화람에 있어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 창발적인 정신은 필수적이다. 시인은 고유하고 독자적인 시선을 통해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세계와 존재에게 특수하고 창의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하여 시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일탈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고정적이고 반복적인 일상적 존재와 세계를 참신하고 창발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물론 시에 관여하는 모든 언어학적 자질의 활용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계를 응시하는 시인의 은유적 사유체계가 중요하다. 은유는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사물들을 유사한 다른 사물이나 관념을 통하여 인식하려는 사유방식이다. 사물 A를 사물 B를 통해 인지하면 사물 B의 속성이나 이미지가 결합되어 독창적인 사물 A의 의미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은유적 사유체계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세계를 전복함으로써 낯설음과 일탈의 재미를 제공한다. 은유는 존재와 세계를 새롭게 재현하여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활성화시킨다.   이번 달 [시문학]에 이러한 은유의 사유체계를 통해 존재와 세계를 새롭게 응시하고 있는 작품들을 살펴본다.      붉은 심장들 깃발처럼 내걸렸다    그 중 가장 뜨거운 심장    손가락 인장 찍어    푸른 하늘에 걸어두고,    마지막 감동    나뭇잎의 유장한 번지점프    심장들 폭탄처럼 터지자    새빨간 파편 조각들    사람들 가슴에 일직선으로 날아가    박힌 그대로    천년 심장 화석이 된다    그, 때, 부, 터,    가을이 되면    가로수 밑을    복건 두른 신라인들도 서성거리고    대한민국 넥타이부대도 서성거리고                                                    -이옥교, [단풍낙엽]     이 작품은 '단풍낙엽'을 통해 가을의 정취를 형상화하고 있다. 가을 나무의 이파리들이 단풍으로 물들고 낙하하는 과정을 은유적 상상력을 통해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첫행 "붉은 심장들 깃발처럼 내걸렸다"는 단풍잎을 '심장'과 '깃발'로 이중 은유하고 있다. 이 은유를 통해 단풍잎은 단순한 이파리에서 '심장'의 살아 있는 생명선을 함축하고, 나아가 '깃발'처럼 나부낌을 예비한 활력으로 의미가 변전된다.   이어서 단풍잎은 '손가락 인장'으로 또 다시 은유화된다. 이는 단풍잎이 물드는 것이 이미 굳게 계약된 약속에 의한 것이라는 기호로 의미가 부여된다 이 단풍잎은 계속하여 '감동, 폭탄, 파편, 화석'으로 변주되어 은유화된다. 단풍은 가을이 되어 엽록소의 색깔이 변한다는 단순한 자연과학적 사실로부터 은유적 상상력을 통해 새롭고 낯선 의미를 획득한다. 하여 관습적이고 상투적인 관찰과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의미의 창발에 이른다.   위에서 다양하게 은유화된 '심장, 깃발, 감동, 폭탄, 파편, 화석'의 내포적 의미를 지닌 단풍잎이 지는 가을날, 현재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과거 신라인들이 그랬듯이 가로수 밑을 서성거린다. 이는 단풍과 교감하는 정서가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반복 지속되는 속성임을 통시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는 단풍을 시적 대상으로 하여 가을날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시적 대상과 정서가 다양한 은유적 상상력으로 인해 의미심장한  함축과 내포를 획득한다. 하여 시의 의미 질량이 농후해지면서 신선하고 낯설은 세계와 조우할 수 있도록 충격을 준다. ....(중략).....     지금까지 은유적 상상력이 활달하고 독창적인 작품 몇 편을 은유의 분석으로 살펴보았다. 은유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굳어지고 딱딱해져서 관습화, 상투화된 시적 대사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도록 한다. 즉 시적 대상의 새로운 모습이나 의미를 드러내어 세계를 낯설게 하고 나아가 삶과 존재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견인한다. 이러한 은유의 기능으로 인해 세계는 새로운 모습으로 갱신을 계속하고, 존재는 새로운 모습으로 신선해지고 삶에의 탄력을 받는다. 더욱 창의적이고 창발적인 은유적 상상력을 통해 시와 세계가 새롭게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언제나 반복과 상투로 다가오는 권태와 환멸의 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도록.                                             (2008, 시문학 12월호) [출처] 폭력적인 그러나 아름다운 은유를 기다리며 / 양병호|작성자 옥토끼  
11    [스크랩] 이미지에 말을 걸다 / 황정산 댓글:  조회:1318  추천:0  2019-02-01
송시월 시 접신 외 4편을 중심으로 이미지에 말을 걸다   황정산(문학평론가, 대전대학교 교수)     많은 비약을 무릅쓰고 이야기하자면 현대시는 언어의 자각으로부터 시작한다. 과거의 언어는 투명한 매체였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고 하늘의 이치를 형상화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바로 말이었다. 그때는 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또는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하고 낭송하기 위해 비유나 운율 등의 시법을 만든 것이다. 현대시는 바로 이런 것들에 대한 뒤집기라고 할 수 있다. 현대시는 언어가 언어이기 때문에 진실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언어가 언어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시가 거쳐 온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극단에 무의미시가 존재한다. 무의미시는 언어의 언어성을 배제하고 언어가 가진 물질성만 남겨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을 극단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송시월의 시는 현대시가 이루어온 이러한 방향성의 또 한 극단에 서있다. 그의 시는 어떠한 서술도 부정한다. 서술이라는 것은 말이 인간이 세상을 설명하는 한 방법일 뿐이고 말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송시월 시인은 그 환상 대신 거기에 이미지는 놓아둔다. 하지만 그 이미지들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도 형성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이미지는 그냥 이미지로만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이렇게 이미지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지에게 말을 걸 때 이 작품은 해석되고 이해된다. 다시 말하면 송시월의 시는 이미지로 된 놀이터라 할 수 있다. 한 작품의 예를 들어 보자.   여자의 잠을 기습 공격하는 말들 여자를 끌고 시베리아의 최북단 툰두라의 벌판을 달린다 투바크 카스쪼르킨과 점니네 카스쪼르킨이 접신예식을 마치고 여자의 껍질을 벗긴다 대지와 강물의 신에게 피를 뿌리고 피를 마신다   순록이 된 여자가 무수한 순록을 낳는다   순한 눈망울 굴리며 바다를 건너려다 물에 빠진 순록들   탕탕탕...... 연평도가 흔들린다 망원경속 나무들이 흔들린다 NLL를 엎어치는 파도   집단 사냥꾼들 쓰러진 순록을 바다의 냉동고에 넣는다 진피가 벗겨지고 알집을 긁어낸 채 부력으로 떠오른 ㅅ ㅜ ㄴ ㄹ ㅗㄱ 이란 자모음들 차마고도를 오른다   길을 구르던 천년 묵은 염주알에 싹이 튼다 - 전문   이 시는 쉽게 연결되지 않은 이미지들의 나열로 되어 있다. 그렇다고 그 이미지들이 시인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연결된 것도 아니다. 또한 그 이미지들 사이의 논리적 연관이나 서사적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애써 그것을 만들어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시인이 요구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시인은 이미지를 통해 의미를 만들고 무엇인가 우리에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미지의 꼴라쥬만을 보여줄 뿐이다. 이렇게 이미지의 꼴라쥬를 보여주자 순록은 "ㅅ ㅜ ㄴ ㄹ ㅗㄱ 이란 자모음들"로 분리가 된다. 말이 의미를 상실하고 완전한 물질성으로 해체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리된 말의 자료들이 “차마고도를 오”르는 고행을 수행할 때 “천년 묵은 염주알에 싹이” 트는 기적이 만들어 진다. 차마고도를 오른다는 것은 언어의 장벽을 넘는 것이다. 말의 의미를 해체하는 것으로 말이 보여줄 수 없는 진실을 찾아가는 힘든 고행길을 상징한다. 그것은 시를 쓰는 작업이고 부단히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럴 때 “천년 묵은 염주알” 즉 이미 사문화된 종교적 설법이나 사상 등이 비로소 생명력을 얻어 가치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이 시는 이미지로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던져진 이미지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시적 이미지에 부단히 말을 걸어야 한다. 다음 인용된 시는 이 이미지에 말 걸기를 형상화 시켜서 보여주고 있다.   접시에 담긴 피라미드형원형아파트 무덤 한 알 한 알을 따서 깨물어먹는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먹고 아직 보랏빛 신맛이 도는 조카들을 먹는다 고택이 된 고조부 증조부 할아버지를 먹고 망우리 공동묘지 몇 알도 먹는다 씨를 뱉는다 잇사이에 검푸른 이끼가 낀다   갓을 쓰신 아버지가 걸어 나와 기웃거리다가 다른 씨방으로 들어가신다 또 하나의 씨에서 나오신 백발의 어머니 두리번두리번 문을 잊은 듯 공동묘지로 들어가신다 내가 잠시 흔들린다 - 부분   이 시는 포도송이와 한 집안의 가계를 연결시키고 있다. 우리가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도를 한 알 한 알 먹는 감각을 다시 입안에서 느껴보아야 한다. 그 감각을 회복하는 것은 포도송이의 생생함을 언어의 감옥에서 해방시켜 다시 되살리는 길이다. 말을 하는 것은 어쩌면 포도알을 한 알 한 알 되새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똑 같은 맛과 비슷한 모양을 갖춘 포도알에 우리는 의미를 부여하여 한 가계의 모습을 투사한다. 포도알이 아버지도 되고 조부도 되고 어린 조카도 된다. 하지만 그것은 말일 뿐이고 포도송이를 이루는 하나의 포도알일 뿐이다. 그런데 그 포도알이 포도알을 넘어, 다시 말해 호칭이 붙여진 조카니 아버지를 넘어 한 알 한 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입안에서 씹혀져야 한다. 그것은 바로 말이기도 하다. 주어진 이미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주어진 이미지에 우리의 모든 감각을 이용하여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그럴 때 이 시는 우리에게 비로소 말을 건넨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시에게 꺼낼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포도송이 같은 것이다. 한 알 한 알 따서 입안에서 씹지만 그 모두는 가계의 계보처럼 주렁주렁 열려 있는 한 무더기를 형성하고 있다가 우리 입안에서 몇 개의 신맛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것은 바로 말이다. 말을 걸어서 말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바로 이 포도송이다.   뒷산 딱따구리가 드르르르 지나간다 내 배꼽을 중심으로 쩍― 갈라지는 오른쪽과 왼쪽 끊긴 탯줄에서 붉은 강물이 쏟아진다 나는 오른쪽과 왼쪽 손목을 꺾어 강물에 던진다 연어 두 마리 강물을 거슬러 오른다   흔들리다 흔들리다 충돌하는 두 대륙사이, 깊이를 잴 수 없는 눈물의 호수 밤마다 별처럼 반짝이는 울음을 낳는 好哭場 웅얼웅얼 별천지다 근육질의 별을 먹는 연어 온몸 팽팽하게 불을 켠다   불빛지느러미로 물줄기를 당긴다 쭈-욱 끌려오는 알래스카와 베링해협 - 부분   딱다구리와 연어와 강물은 이 시 안에서 의미로 연결되지 않는다. 연어가 강물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배경을 이루는 산자락에서 “딱따구리가 드르르르 지나”가고 있어도 이 들이 하나의 의미로 연결되지 않는다. 사물들은 사물들 나름의 물질성으로 다만 존재할 뿐이다. 첫 연은 바로 이런 사물들의 물질성을 일부러 갈라놓는다. 전통적인 서정시에서라면 이 모든 존재들은 하나의 거대한 세계 속에서 통일성을 형성하고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안온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시의 사물들은 배꼽을 중심으로 갈라지듯이 분열한다. 그리고 다음 연에서는 더 크게 두 대륙 사이로 갈라진다. 거기에 알라스카도 만들어지고 베링해협도 만들어진다. 이렇게 거대한 각자 하나의 사물로 형성된 이미지의 물질성은 그것이 그 자체로 말하지 않는다. 또한 그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의미를 형성하지도 않는다. 이미 그런 의미와 그 의미를 전달하는 말들은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에게 거대한 이미지의 압도적인 크기만이 남는다. 그 이미지의 꼴라쥬에 우리는 말은 건다. 이미지야 얼마나 더 가야 너는 의미를 형성할 수 있느냐고, 이미지는 대답한다. 우리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아니 어쩌면 베링 해협이 존재하고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알래스카와 베링 해협을 끌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인의 가당치 않은 손놀림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시를 쓰는 일은 의미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더욱이 존재하는 의미를 전달하는 일은 더욱 아니다. 다만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에 말 거는 우리의 존재를 살아있게 하는 일이다. 바로 이 점은 송시월의 시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 황정산 : 1993년 창작과비평으로 평론 시작, 2002년 현대시문학으로 시 발표, 현재 대전대학교 교수, 월간 『우리詩』주간. 비평집으로 가 있음 [출처] [스크랩] 이미지에 말을 걸다 ( 송시월 시 접신 외 4편을 중심으로, 시문학 7월호)|작성자 옥토끼  
10    [공유] 시(詩)는 감춤의 미학(美學)이다 댓글:  조회:1106  추천:0  2019-02-01
전용뷰어 보기  출처 은유의 바다 | 아로마 원문 http://blog.naver.com/kjsrucia/80024315123 1. 시(詩)는 감춤의 미학(美學)이다      시는 예쁜 포장지 속에 들어 있는 빛나는 보석이다. 고로 감춤의 미학이다.  그러나 시는 감춤만을 본질의 특성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때론 우회나 굴절 그런 다음 스팩트럼의 추상에서 즐거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은 시가 지각(知覺)에 의해서만 기쁨과 즐거움을 배태하기 때문이다.  그럼 시는 지각 이외에는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수 없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그렇다. 그러나 다른 장르는 예외다    또한 예술과 관련, 즐거움을 주는 것이 모두 다 아름다우며 모두 다 가치 있는 것이냐 하는 명제의 질문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만 답변할 수는 없다.  가령, 미술에 있어 ‘로센버그’의 를 예로 들어보면 페인트칠한 침대를 벽에 걸어놓음으로써 침대는 예술작품으로 인정되는데 이때 폭신폭신한 느낌을 주는 예쁜 색깔의 침대가 우리에게 대단한 즐거움을 주는 사물임은 분명하게 인지되지만 실용성과 관련 있는 그 침대가 꼭 아름다워야 한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결국 시는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예술에서 한 발짝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순으로 보면 예술의 맨 앞자리에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미’는 본디 유용성이나 그와 비슷한 이유에서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미’란 바라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단계 더 천착해 보면 진정한 즐거움이란 현상적 감각적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적 즐거움에 가까운 것이어야 한다. 시각이나 청각에 의존한 감각적 즐거움은 순간적이며 단순하지만 지각에 의존한 즐거움은 직선적으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비밀이 이해되지 않는 한 쾌미음을 부를 수 없다. 그러나 어려운 수학문제를 한참 끙끙거리며 풀어나가다가 갑자기 해답이 전광석화처럼 눈에 들어올 때의 그 기쁨은 예상외로 크다. 그것은 노력 뒤에 오는 배가된 희열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기쁨을 이라고 하였는데 감춤의 껍질을 벗긴 뒤에 나타나기에 피부반응보다 더 큰 물결 같은 감동이 되는 것이다.  시는 바로 이 이라는 장르이기에 다른 예술보다 한 단계 위에 자리 매김 되어진다.    예술은 신의 예지에 의해 창조된 질서정연한 자연을 인식함으로써 성립하는 모방이다. 따라서 예술에는 자연의 질서가 반영된다. 또 예술은 자연에서 표현수단과 방법을 빌려온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예술을 신의 창조와 비교한다. 신은 자연의 내적 원리에 따라 창조를 하셨지만 예술가는 자연의 외적원리에 따라 모방할 뿐이다. 예술은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 낼 수 없고 단지 신이 창조한 자연 속에서 형상을 인식하여 그걸 모방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신의 창조보다 저급하다. 하지만 예술은 인식활동 및 도덕적 실천 활동과 함께 인간정신 활동의 하나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시는 이런 토양 위에서 삶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정신적 행복을 가장 작은 그릇에 담아내기 위하여 비유를 통한 압축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노력의 산물인 예술이 '시’이다.    그런데 문제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분절성, 상상의 한계성, 추상성이 전제되어 있는 정형성을 깨뜨리지 않는 한 진정한 시문학이 탄생할 수 없다고 제창하며 추상적 기호로서의 언어를 극복하고 언어의 인습을 거부해야 한다는 낯설게 하기(포스트 모더니즘 포함)의 기법을 주장하면서 실천해야 한다는 시인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인의 모방은 아무런 통일성도 없는 사건의 복합을 사진사처럼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유기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는 사건을 필연적인 인과관계의 테두리 내에서 재현하는데 있다’라는 이 말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어떤 형태로든 시인들은 단순한 모방자가 아니라 일종의 창작자임이 분명하기에 기존의 질서와 전통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것에 대해 도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감춤의 원리에 의한 암시성의 본질을 몰각한 채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긴장감이 흘러 넘쳐야만 좋은 시가 되는 줄 알고 기상(.奇想)과 절연(絶緣)만을 일삼는 시업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란, 자아와 세계의 만남으로 인한 미적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구원으로 나가야함을 직시해야 하는데, 그것은 웅변과 같은 호소나 만화 같은 표현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찾아지는 감춤만이 진정한 시의 미덕이며 미학이기 때문이다.    시를 은유적으로 진술하면 여인의 한복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시=한복)  목부터 발끝까지 몸을 완전히 가리고 덮은 옷, 성적 매력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지지 않는 여성이 제거된 상태 그러니까 머리부터 발 밑까지 내려가면서 점점 넓어지고 퍼지는 전형적인 산의 모습인 이등변 삼각형 속에 인간이 묻힌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여인에게서 생명선이라 할 수 있는 가슴라인, 허리라인, 다리라인이 완벽하게 사라진 미(美)의 실종은 말할 것도 없고 통상적으로 표현하는 날렵한 몸매인지 밥상을 다 석권한 몸매인지조차 가늠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감추고 여미는 한복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남자의 시선을 단숨에 잡아당기는 하반신과 그에 따르는 각선미를 도외시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인들이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상반신의 가슴마저 치마끈으로 꽁꽁 묶어 천인단애한 상태를 만들어 놓았으니 상대적 박탈감 운운 이전에 여성은 이미 에로스의 대상에서 제외된 탈 여성의 형이상학적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한복은 앞 코가 뾰족한 버선과 꽃무늬 고무신으로 발의 본 모양을 대치시킴으로써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미를 불러 일으켰으며 반투명의 질감으로 전신의 모습을 우련의 상태로 만들어 매혹감을 증폭시키는 장치를 해 두었던 것이다. 즉 모시 저고리 속으로 가는 어깨 끈을 보이게 함으로써 속화되기 쉬운 욕정을 천천히 눈빛으로 더듬어가게 하는 미적 배려라든지, 또 속살이 보일 듯 말 듯하게 함으로써 미감(美感)의 살색을 극대화 시켜 노골적이며 천박해지기 쉬운 급진적 성욕을 반감시킨 다음, 여인의 섬세한 감정을 숨이 막힐 듯 흘러내리는 멋으로 승화시킨 혜안은 한복만이 가진 최대의 상징적 장점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단선적 즐거움을 배제시키고 저고리와 버선의 합일치를 통한 곡선과 몸이 움직일 적마다 사각거리는 음향을 배합한 후, 보는 이로 하여금 스팩트럼의 즐거움을 향유케 하는 고차원적 사랑의 과정을 대변하는 한복, 바로 이 한복이 시(詩)이며, 이 시가 바로 한복인 것이다. 한복은 틀림없이 시(詩)의 변형된 현시적 사물인 것이다.  한복은 감춤의 옷이지 가림의 옷이 아니다. 한복은 숨김의 옷이지 막음의 옷이 아니다. 한복은 밝힘의 옷이지 어둠의 옷이 아니다. 한복은 분명 뜨거운 감성을 용해시키기 위해 걸친 것이지 음흉한 시선을 거부하기 위해 감싼 것이 아니다. 덧붙이면 신비스러운 몸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기 위해 한복을 도구로 삼았다는 뜻이다.  한복이, 몸의 아름다움을 증대시키기 위해 전신을 감추고 숨겼다면, 시는, 느낌의 절묘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현묘한 사상을 숨긴 것이다.  한복이 은근함을 강조하는 굴절의 시선을 선호하며 상상력을 발동하여 무한한 황홀감에 접근토록 하는 감춤의 의상이라면, 시는 비유와 압축으로 깊은 맛을 숨긴 감춤의 미학인 것이다.    따라서 한복이 노출을 거부하듯 시도 직설적 표현을 거부해야 한다. 한복이 은근함을 좋아하듯 시도 은근한 비유의 표현을 좋아해야 한다.  한복이 보는 이에 의하여 아름다운 자태가 드러나는 효과를 감춤 속에서만 확인할 수 있게했다면, 시도 읽는 이로 하여금 곰씹는 맛의 효과를 극도로 절제된 단어와 문장 속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감춰야 하는 것이다.  한 마디 부연하면,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우울해 보이기도 하는 의 그 미소의 비밀이 뭔지 아십니까?”  이 질문은 미술에서도 감춤의 미학을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감춤의 미학은 이렇게 예술 전반에 펼쳐져 있는데 시에서 이것을 소홀히 하고 있어 화룡(畵龍)에 점정(點睛)이 빠진 것이나 진 배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모나리자의 비밀이요? 그건 눈 꼬리와 입가에 있습니다. 살짝 그림자로 덮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감춤의 미학의 진수를 보았을 것입니다. 즐겁지 않습니까?  을 위한 한복의 감춤, 시도 그래야 할 것 아닙니까  역시 시는 예쁜 포장지 속에 들어 있는 빛나는 보석이며 감춤의 미학입니다.    2. 시(詩)는 꽃씨와 불씨와 꿈을 지닌 여백(餘白)의 미학(美學)이다    시는 작지만 깨닫고 나면 커지고 미약하지만 터득하고 나면 강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시의 특수성이기에 그 원리는 꽃씨에도 적용되고 불씨에도 적용되고 꿈에도 해당된다. 그러나 시는 별스럽게 작다. 사람으로 말하면 그저 꿈만 지닌 어린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서사과정을 감출 수밖에 없는 것이고 행간에 의미를 숨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행간과 끝 구절 다음에는 뒷맛이 길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분명 시는 긴 감동의 여운을 주는 여백의 미학이다.  시의 본질은 정서(情緖)와 사상(思想)의 결합이다. 이때 정서와 사상은 교직된 직물처럼 서로 녹아 있어야 한다.    사상은 지각(知覺) 지식(知識) 신념(信念) 의견(意見)의 종합물이고 정서는 감화적 요소로서 유기체의 전신적 감각이다. 그러나 시의 효용은 궁극적으로 감동과 쾌락에 있기 때문에 사상이 정서를 앞설 수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시의 정서가 한없이 약하다는 점이다. 어떤 형태의 정서라 할지라도 시라는 근원적 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전무하리 만큼 미미한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고자 반응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쁨, 두려움, 슬픔, 근심, 노여움 등을 유발하는 매체는 시각과 청각이 주를 이룬다. 이때 시각의 예술이 미술이고 청각의 예술이 음악이다. 연극과 영화는 시청각을 다 합친 것이다.    미술은 원초적 반응을 유발시키고 음악은 몸을 흔들어 춤을 추게 한다. 연극과 영화는 사람을 흥분시키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러나 시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도 눈물을 흘리게 하지도 못한다. 시는 율동을 하게 할 신명의 청각적 요소도 없고 미추를 구별케 할 시각적 요소도 없다.  이처럼 시는 다른 장르의 예술에 비하면 초라하다 할 만큼 내 세울 것이 없다. 동물로 말하면 날카로운 이빨도, 추위를 견딜 수 있는 털도, 빨리 달리 수 있는 다리도 없는 하등동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그 하등동물이 인간인 것처럼 미미한 정서를 수반하는 시 또한 굴절의 예각 같은 지각의 촉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차원적인 시청각과는 다른 영역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환언하건데 시는 사물의 순간적 파악을 속성으로 하는 상상력의 산물이기에 작고 가볍다. 그래서 누구든지 쉽게 암기할 수 있다. 일단 시를 외워 몸의 살붙이가 되도록 만들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수없이 반복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경험이나 비전이 집중되는 결정의 순간들 속에 존재하는 시의 특성상 인간을 취하게 하고 인간을 변모하게 하는데 있어 더 이상 좋은 처방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시는 예술 중에서도 명약임이 분명하다  시는 바로 이런 강점을 지닌 탁월한 정서를 지닌 문학인 것이다. 강한 충격 한 방으로 인생을 전환시키는 음악과 미술, 연극과 영화도 상당히 효과 있는 장르이긴 하지만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아무리 거대한 철옹성 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시를 외워 암송하기만 하면 그 시의 정서는 마음속을 파고 들어가 드디어 한 인간을 참 사람으로 바뀌어 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시는 참으로 작지만 매력적인 장르임이 분명한 것이다.    전쟁이 한참 치열하던 어는 날,  석양 녘 적탄의 총을 맞은 국군 병사 하나가 피가 흐르는 다리를 끌며 민가에 찾아든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생사기로에 처해 있는 위급한 상황이다.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이러다간 죽고 말겠구나’ 절망이 엄습할 때 주인집 딸로 여겨지는 젊은 여자가 툇간 옆 은폐된 지하곳간으로 병사를 숨겨준다. 병사는 그만 안도감과 함께 의식을 잃는다.  한참 뒤 의식을 차린 병사는 아름다운 처자를 바라보며 고마움의 표시로 씩 웃음을 짓는다. 고맙다는 말은 목 속에 잠겨 혀 밑에 숨고 만다. 젊은 처자는 전쟁의 비극 속에 희생되고 있는 꽃다운 젊은이의 부상이 안쓰러워 울먹 울먹거린다. 젊은이도 눈물이 맺힌다.  “걸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 - - - -- - -”  “저어 - - - - - ”  “저도 최대한 지혈을 하고 치료를 했습니다만 특별히 준비된 약이 없어 죄송하군요”  젊은 처자는 모든 것이 자신의 죄인 듯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뜻이 아니고- - - - - ”  “ - - - - - - - ”  병사는 젊은 처자의 방울진 눈동자를 보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잠시 두려움이 없어진다    부상당한 군인병사와 산골 젊은 처자와의 만남, 그것도 전쟁터에서 피아간의 교전 중에 일어난 불행이 주선한 가교, 별난 조우, 숨막히는 치료, 공포와 두려움의 시간, 목숨을 건지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막연한 궁금증, 절박한 상황의 눈빛과 눈빛, 그리고 짧은 대화, 바로 여기에 슬픔과 연민의 정이 교차하면서 희망이라는 거대한 생의 좌표가 떠오르는 것이다. 이것이 한편의 시이며 아름다운 정서의 채색인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이 상황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어 보겠다고 꾸역꾸역 자꾸 말을 건넨다면 이것이 어찌 전쟁터의 긴박한 상황의 분위기라 할 수 있으며 처음 만난 남녀의 떨림과 애처로움이 섞인 모습이라 하겠는가. 무언의 눈빛에 담겨진 수줍은 슬픔, 이미 서로의 마음이 다 드러나 있는 것이다.    시는 이처럼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여인의 작은 손길의 정서, 순박한 정서, 애절한 정서, 말을 다 삼켜버린 아픔의 정서- - - 그런 다음 처자의 가슴에 짙게 배어있는 고혹적인 정서, 그리고 한 움큼의 피와 출렁이는 긴 머리, 숨죽인 산 그림자, 이 모든 것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자연, 그 침묵의 여백    우리는 이들의 다음 대화를 더 들을 필요가 없다.  그 뒤의 상황을 작가가 책임을 지면 소설이 되고 눈에 보이게 만들면 연극이나 영화가 되는 것이다    시는 짧은 대화로 형식적 소임을 다한 것이다. 비록 주인공이 치료 불능으로 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고 살아난다 해도 불구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는 비극적 결말보다 행복한 결말을 상상하며 유추할 것이다. 그 유추가 여백이다    시는 꽃씨이기 때문에 착지하기만 하면 꽃을 피울 것이고  시는 불씨이기 때문에 눈빛과 만나기만 하면 생의 불을 지필 것이다  시는 꿈이기 때문에 한 발자국 내딛기만 하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상상의 날개 속에서 형용키 어려운 감격을 느낀다면---  생각만 해도 시의 여백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다.  시란 참으로 위대하다. 그 작은 것이  시(詩)는 꽃씨와 불씨와 꿈을 지닌 여백(餘白)의 미학(美學)이다.        작자미상   [출처] [공유] 시(詩)는 감춤의 미학(美學)이다 |작성자 옥토끼  
9    낯설게 하기(시치미떼기) 댓글:  조회:1012  추천:0  2019-02-01
낯설게 하기(시치미떼기)      낯설게 하기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로서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의 지각이나 인식의 틀을 깨고 사물의 모습을 낯설게 하여 사물에게 본래의 모습을 찾아 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낯설게 하기란, 그런 점에서 형식을 난해하게 하고 지각에 소요되는 시간을 연장시킴으로써 표현 대상이 예술적임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양식인 셈이다. 낯설게 하기는 궁극적으로 독자의 기대 지평을 무너뜨려 새로운 양식을 태동시키게 된다. 의미 심장한 내용을 작가가 모르는 체하며 이야기하는 수법이다.      최인호의 '영가', 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때',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 최인훈의 '총독의 소리', '서유기',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 등의 작품이 이러한 낯설게 하기를 보여 주는 작품들이다.    1. 낯설게 하기란? 낯설게 하기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로서 하나의 문학적 장치에 한정적으로 사용되기보다는 오히려 문학이나 예술 일반의 기법에 관련되어 있는 용어로 보는 편이 더 옳다.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의 지각은 보통 자동적이며 습관화된 틀 속에 갇혀 있다. 특히 일상적 언어의 세계는 이런 자동화에 의해 애초의 신선함을 잃은 상태이며 자연히 일탈된 언어의 세계인 문학 언어와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지각의 자동화 속에서 영위되는 우리의 일상적 삶과 사물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퇴색되는데, 예술은 바로 이러한 자동화된 일상적 인식의 틀을 깨고 낯설게 하여 사물에게 본래의 모습을 찾아 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낯설게 하기란 그런 점에서 오히려 형식을 난해하게 하고 지각에 소요되는 시간을 연장시킴으로써 한 대상이 예술적임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양식인 셈이다. ※참고사항 -전경화와 배경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낯설게 하기'는 체코 구조주의에서 '전경화'라는 개념으로 전환된다. '낯설게 하기'를 한 결과로서, 낯선 부분은 '전경화(foregrounding)'가되고, 친숙한 부분은 '배경화(backgrounding)'가 된다고 본다.   2. 소설 속에 낯설게 하기 서사체에 있는 스토리를 플롯화 할 때 낯설게 하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독자가 어떤 유형의 이야기에 대해 이미 선지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작가는 이야기를 낯설게 변형시킨다는 것이다.  예) 도미부인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한국인이라면 이미 그 내용(스토리)은 알고 있다. 이에 한 작가는 이를 새로운 형태(플롯)를 사용해 소설화하고 그 결과 그 이야기는 낯선 형태로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효과를 발휘한다. 또한 기법 적인 측면에서 소설 속의 낯설게 하기는 몽타주 기법, 콜라주 기법, 근대에 나타난 입체적 인물이 독자에게 던진 충격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나타나기도 하며, 독자들의 기대지평을 좌절시키면서 새로운 형식을 창출하며 낯설게 하기를 실현한다.  ◎콜라주 기법의 예 : 최인호의 의 마지막 결말부에 주인공에게 배달되는 편지가 그대로 옮겨져 있어 화자로 하여금 설명을 줄일 수 있게 해 주면서 현실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주어 독자에게 충격을 준다. ◎독자들의 기대지평 좌절의 예 : 장정일의 와 같은 소설은 기존의 도덕적 권위에 친숙해져 있던 독자들의 지평에 대해  '나'라는 재수생의 사랑과 성편력, '록'에 대한 경도등 대담한 풍속 묘사를 통해 방황하는 섬세한 자아의 초상을 보여 주는 새로운 성장 소설을 보여준다. 이 외에 옴니버스 연작 소설로 , 이인성의 가 있고, 최인훈의 등의 실험소설도 낯설게 하기의 기법이 두드러진 예로 제시할 수 있다. 현대 소설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가 형식적 정형에 대한 거부와 해체의 움직임이라고 한다면 낯설게 하기는 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포스트 모더니즘 계통의 소설은 그 자체가 외국 문학에서 도입된 외적 형식의 모방에 치우친 감이 있는 데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3 시에서의 낯설게 하기 ① 비유 : 쉬클로프스키는 시적 비유를 정서를 전달하기 위한 시적 담화에서 독자의 습관적 반응을 차단하기 위해 사용되는 낯설게 하기의 장치라고 보았다.      예1)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 -서정주, 위의 시에서 '광화문'이라는 구체물을 '종교'라는 추상적 관념으로 바꾸고 있다. 여기서 시적 은유는 하나의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치환하여 의미 차가 나도록 만들고 독자로 하여금 왜 유사성이 없는데도 그렇게 바꾸었는가를 주목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예2)       새는 사철나무 키 작은 나무가지 끝에, 바람은 멀리멀리 낮달과 함께, 혹은 막 잠깬 골목길 입구 손수레 곁에, 하느님은 어린 나귀와 함께 이번에도 동쪽 포도밭 길을 가고 있다. 해가 뜨기 전에,                                                             김춘수, 전문 이 작품의 주된 의미는 로 이어진다. 새가 사철나무 가지 끝에 앉아 있다든지, 골목길에 손수레 곁에 바람이 분다는 것은 경험상으로 연접된 감각이지만, '바람'과 '하느님'은 서로 단절된 감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유한 이미지의 배열 과정에서 인과 관계를 차단하는 방법으로도 얻을 수 있다. ② 리듬 : 고정적인 정형율에 얽매인 작품은 낭독할 때 휴지, 장음화, 축약과 같은 '율격 이외의 시간'을 설정할 여지가 없어지고, 독서 과정에서 독자의 기대를 계속 적중시켜 주어 오히려 자동화되기 때문에 리듬도 '규범으로부터 이탈'하는 부분을 설정하여 탈자동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예) 현대시의 자유율 ③ 어휘 : 시어의 의미의 선명도에 따라 로, 어휘 탄생 배경에 따라서   ,계층에 따라서 같은 대립된 짝으로 이루어진다. 어느 한 쪽을 기준으로 삼은 다음 여기서 이탈된 어휘를 결합하여 낯설게 한다. ④ 음성 :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서정주 중에서 으로 음성을 변화하여 그 어휘들의 의미와 뉘앙스를 주목해 주게 한다. ⑤ 통사 : 문장의  배치에 따라   문자의 길이에 따라 통사론적 반복 여하에 따라 등을 대치시켜 표현하여 낯설게 한다. ⑥ 해체 : 시의 구조적인 틀을 깨고 시의 형식에 새로운 틀을 보여줌으로써 낯설게 한다 이상의 시처럼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글의 어법상의 해체, 영어를 섞어 쓰는 등의 언어에 대한 해체, 글씨 크기나 연과 행의 변형을 통한 형태의 해제, 타장르를 시에 끌어들이는 장르간에 해체 등이 현대시에 주로 쓰이고 있는 낯설게 하기이다. 예) 나는 시를, 당대에 대한, 당대를 위한, 당대의 유언으로 쓴다.     上記 진술은 너무 오만한다 ( )     위풍당당하다( )     위험천만하다( )     천진난만하다( )                                       황지우, 중에서 하지만 낯설게 하기는 그 작품 자체의 구조와 조직만으로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시대의 문학적 관습과 그 시인의 관습, 그 시인의 일반적 관습과 그 작품만의 관습, 다시 그 작품을 지배하는 일반적 질서와 어느 한 부분의 일탈 같은   등의 기준에 의해 결정된다. 예) 환상이라는 이름의 역은 동해안에 있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 바다- 거기 하나의 암호처럼 서 있습니다. 아무도 가본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이 거기에 닿을 때, 그 역은 홍을 맞아 경련합니다. 경련 오오 존재, 돌이 파묻힐 때, 물들은 몸부림칩니다. 물들의 연소 속에서 당신도 당신의 몸부림을 봅니다. 존재는 끝끝내 몸부림 속에 있습니다. 아무도 가본 사람은 없습니다. 푸른 파편처럼, 바람 부는 밤에 환상이라는 이름의 역이 보입니다.                                                           -이승훈, 전문 이승훈의 를 이 시대의 일반적 관습과 비교할 때 산문적 어법으로 말하고 대상을 모방하는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낯설다고 할 수 있다.   4. 연극에서의 낯설게 하기 낯설게 하기 이론이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제안한 연극 기법인 낯설게  하기 효과에 관한  이론이다. 연극론에서의 낯설게 하기는 자명한 사건이나 인물을 낯설게 보도록  만들어 그 배후의 사상을 깨닫도록 하는 기법이다. 그러나 그 기법이 겨냥하는 궁극적인 효과에 비추어 볼  때, 연극론이라는 그릇은 그  기법의 의의를 담기에  협소하다. 왜냐하면 낯설게하기  기법은 기존의 연극뿐만 아니라, 미학과 예술론에도 적용되는 미학적 입안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반영으로는 자신의 존재를 쉽게 확인할 수  없는 시대에는 좀더 구조화된 방식이 요청된다. 즉, 주어진  현실을 모순된 채 일시정지 시킴으로써  이상하게 보이게 하는 반감정이입론이다 [출처] 낯설게 하기(시치미떼기)[문학♡용어사전]|작성자 옥토끼  
8    포스트모더니즘 시론 댓글:  조회:1061  추천:0  2019-02-01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김경린(시인/평론가) 1918-2006.  저서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주변 이야기’ 중에서 (요약자/정숙)     포스터모더니즘을 이해하려면 20세기 상반기를 휩쓸었던 모더니즘의 기본 정신과 그 방법을 알아야 하며 공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현대시에 과학은 어떻게 접목하는가   ♣모더니즘의 태동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과학 문명의 급속한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세기 중엽까지 농경사회의 단순성 환경에서 평면적으로 보려는 리얼리즘이 모든 문학. 예술 분야를 지배해 왔지만 세기말에 이르러 영국 산업혁명에 힘입어 재래의 가내 공업으로부터 대량생산을 위주로 산업화 사회를 이루게 되었고, 사물을 보는 시각도 달라져 인간의 마음속 깊이 내재해 있는 제2의 심의의 세계를 발굴하려는 상징주의가 대두되게 되었다.    20세기 과학은 더욱 발전하였고 현대의 문화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인구도 늘어나게 되었다. 인구밀도가 문제시되고 토지이용도가 높아지면서 모든 시설이 입체화됨에 따라 인간이 사물을 보는 시각도 입체성을 띠게 된 것이다.      이에 즈음하여 20세기 제2의 르네상스라 일컬어지는 피카소의 입체파가 1907년에 프랑스에서, 기계의 역동감을 주축으로 마리네티의 미래파가 이태리에서, 대두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두 가지야말로 20세기 상반기를 지배해 온 변형의 미학의 기조를 이루는 미학의 원리이다.   다시 말해 모더니즘 표현기법의 핵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급기야 인간을 대량 살상할 수 있는 무기의 생산을 가능케 하면서 타민족을 정복하려는 정치가들의 야욕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세계1.2차 대전이 바로 그것이다. 지구는 포화 속에 불타고 사람들은 총탄과 파편에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현실앞에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쓸리게 된 것이다. 과학문명에 의한 인간의 불안의식이 대두하면서 모더니즘은 그런 의식을 기본 바탕으로 모든 사물을 지적인 시각을 통하여 보고 느끼고 경험을 질서화 하였으며 기법에 있어서도 변형의 미학을 기저에 두면서 추상성을 주축으로 문학. 예술의 세계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모더니즘의 기본 정신과 방법론이 온 지구의 지성인들에게 자극을 주는 결과가 되어 각기 스스로의 전통과 환경 토양에 따라 여러 가지 유파를 파생하게 되었다. *기성 관념의 파괴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는 다다이즘이 1916년에 스위스에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무의식 세계를 기저에 두는 초현실주의가 1924년 프랑스에서, *이미지의 입체적인 조형성을 위주로 하는 이미지즘이 1913년 영.미를 중심으로, *시적 언어의 과학적인 분석을 표방하는 러시아 포말리즘이 1915년에 대두하는 등 건축. 회화. 사진. 조각. 음악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속도로 전파되었다.   구미에서 효시를 이루면서 전 세계로 전파되어 동양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에서도 '시와 시론' 운동이 1928년에 '신영토'와 'VOU의 운동' 전후 '아레지'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이상의 '오감도' 김기림의 '기상도'가 1936년에, (동인/사화집)'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대한 운동이 1948년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모더니즘이 순조롭게 서식해 왔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상반기를 송두리째 삼켜버리기라도 하듯 인간의 자유를 말살하고 타민족을 정복하기에 혈안이 되었던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국가들(독일 나치즘/ 이탈리아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 소련의 사회주의)등은 정치적 야욕을 국민들에게 침투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더니즘을 타락한 예술이라는 지탄으로 탄압하기도 했다. 이에 동조하여 분에 넘치는 영광을 누렸거나 항거하다 생명을 잃은 문학. 예술가도 많았다. 특히 일본에서는 전쟁중인 탓도 있지만 '신영토' 1942년 'VOU'1943년에 친미 문학 단체라며 강제 폐간 시켰다. 동경 유학시절 VOU의 회원이었던 김경린 선생님도 수시로 일본 경찰의 사찰을 받으셨다. 사조가들은 20세기를 모더니즘과 이데올로기의 투쟁사로 규정짓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포스트모더니즘 현상 20세기 하반기에 들어오면서 전쟁 복구가 완료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과학은 더욱 발전되어 인공 두뇌 개발에 즈음하여 정보화 사회에 이르게 되었다. 경제의 급속한 성장과 사회 구조도 다원화와 다중화를 이루게 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현상이 노정되기 시작하였다. 1) 인공 두뇌(컴퓨터)가 인간이 하던 일을 대신 하는데서 오는 인간의 소외감(존재의식) 2) 경제 구조가 대형화되면서 커다란 관리 사회가 가져다 주눈 인간의 개성 상실. 3) 고도의 소비문화가 만연하면서 물질 문명에 대한 욕구와 이에 수반하지 못하는 정신적 불균형  에서 오는 사회악.  이러한 현상을 포스트모던사회의 특징이라 규정 짓는다면 모더니즘 시대의 종속성이나 서열성과 다른 병렬성과 무서열성의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좀처럼 과학을 인정하지 않던 철학마저도 니체 이후 이를 인정하면서 여러 가지 학설을 낳게 되었다. 프랑스/미셀 푸코. 독일/하버마스. 미국/다니엘 벨 등 이데올로기에 대한 학설들은 하반기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광채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하반기 현상에 대한 방향제시로 자크 데리다는 포스트구조주의적인 견지에서, 다니엘 벨은 사회학적인 견지에서, 로만 야곱슨은 기호론 견지에서,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속출하였지만 김경린선생님은 프랑스 철학자(파리의제8대학 교수)인 프랑수아 리오타르를 가장 꼽았다. 그 이유로 프랑수아 저서(포스트모던의 조건 La condition postmoderne 1979)의 서두에 "고도로 발전한 선진사회에 있어서의 지知의 상태를 우리는 포스트모던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 용어는 현 미국 대륙의 사회학자와 비평가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19세기말기에 시작되어 과학과 문학. 예술의 게임 규칙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의 또 다른 저서(포스트모던 통신 La postmoderne exqlique aux enfants 1986)에서  "포스트모던이란 모던의 내부에 있어서 제시상提示像 그 자체 속에 제시가 불가능한 것을 찾아내려는 그 무엇인가일 것이다" 불가능한 것에의 노스탈자를 공유하는 것을 용허하는 것과 같은 취미의 컨센서스의 입장에서 새로운 여러 가지 제시,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닌, 제시할 수 없는 것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감지하게끔 하기 위하여 찾아내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더니즘으로서는 찾아낼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표출하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해석이다.    ♣모더니즘의 공과 그렇다면 그동안 모더니즘의 공과에 대해서 규명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이 지향하는 바 방법론이 도출되리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모더니즘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기저로 무의식세계의 (초현실주의), 이미지의 입체적 조형성(이미지즘), 기성 관념의 연상 파괴(다다이즘), 시적 언어의 발굴(러시아 포말리즘) 등에 크나큰 공적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사물을 지적인 시각에서 관찰한 나머지 서정성과 휴머니즘을 배제한 데서 시의 세계를 건조하게 만들었으며 표현기법에 있어서도 지나친 은유의 편중으로 독자로 하여금 해석의 다양성을 추구한 결과 시의 라인을 지나치게 응축함으로써 난해성을 초래하여 독자와 커뮤니케이션에 장해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추상성에 의한 미지의 미학에 매력은 있다손 치더라도 극단의 엘리트 의식으로 흘렀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런 의식으로는 오늘의 복잡다기한 포스트모던 사회를 더 이상 모더니즘 기법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모색 의식적인 면에서는 과학문명의 발달에 의한 인간의 소외의식을 바탕으로 1)아무런 기성 관념없이 현대적인 시각에서 직시하며, 2)거기에서 얻어지는 경험을 질서화함에 있어서도 현장감을 중요시하며, 3)소재면에서도 자잘한 일상 생활에서의 이벤트. 공해로 인한 환경문제에 대한 에콜로지와 페미니즘문제. 우주개발에 수반되는 우주관에 대한 관심.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4)이미지 구성면에서도 지나친 응출성을 배제하고 이미지군에 연계 작용에 의한 매크로이미지 세계를 구축하면서 작자의 현대적인 시각에서의 메시지를 깔아보자는 것이다. 5)표출기법에 있어서도 재래의 시적인 신택스를 해체한 다음 새로운 신택스로서의 참신성을 위해 언어의 기호론에도 관심을 가지며 대화체로 발전시켜 보자는 것이다.   최근에 급속히 대두되는 시낭송과도 관련지으려는 의도도 깔려있다. 모더니즘시가 은유에 편중되어 있는 대신 직유. 은유. 환유. 제유. 등을 적절히 혼용하면서 새로운 하이퍼리얼리즘 또는 뉴리얼리즘으로서 언어의 신선감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스위스에서 1953년에 구체시의 새로운 구문에 대한 관심과 미국에서 60년대에 대두한 (투사시/비트파운동), 70년대의(페미니즘) 80년대의(미니멀리즘)등이 세계적인 영향을 받았다. 오늘과 같은 국제사회에서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출처] 알기쉬운/포스트모더니즘 시론|작성자 옥토끼  
7    원관념과 보조관념 / 박병규 댓글:  조회:1199  추천:0  2019-02-01
원관념과 보조관념 박  병  규   비유 : 나타내고자 하는 추상적인 관념(원관념)을 구체적인 사물(보조관념) 을 통해 형상화 하는 방법.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성립.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거리가 멀고 만남이 1회적일수록 참신한 비유. ‘구름 같은 솜사탕’ 원관념 (구름)과 보조관념 (솜사탕)사이의 거리가 가깝고 상투적이어서 비유라 하기 힘듬. ‘하느님은 푸줏간의 살점’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거리가 멀고 그 만남이 1회적이기 때문에참신한 비유 직유법 :두 대상의 유사성으로[~처럼, ~듯이, ~인양, ~같이]의 말들로 연결시키는 방식(A≒B이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은유법 :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연결어 없이 직접 연결. (A=B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 (내 마음 = 호수) 눈부신 장미꽃 한 송이가 내 마음 속에 들어왔다. (장미꽃 = 그녀)   의인법 :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처럼. 감정이입 갈대들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어 예어 가는고   활유법 : 무생물을 생명체처럼. 성난 파도가 으르렁거린다. 안개의 숨결이 온 마을을 에워쌌다.    대유법 : 제유법 + 환유법. 부분이나 특징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방식. 제유법 :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방식. 한반도와 백두(한반도), 빼앗긴 들(조국), 일손(노동자) 환유법 : 특징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방식. 별(장군), 군복(군인), 하이힐(숙녀), 쇠붙이(무기) 제유법인지 환유법인지 굳이 안 따져도 된다. 상징 : 은유의 함축성이 고도화 된 것. 원관념이 사라진 은유. 은유는 원관념:보조관념이 1:1상징은 원관념:보조관념이 1:多 (님의 침묵에서 님의 상징적 의미는 1‘조국’, 2‘부처’, 3‘애인’)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사이에 유사성이 있지만 상징은 둘 사이의 유사성이 없어도 성립한다. (태극기는 우리나라를 상징하지만 우리나라를 닮지 않음. 비둘기는 평화, 순결을 상징하지만 실제로는 더러움) *원형적 상징 : 보편적인 역사, 문학, 종교 등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온 어떤 이미지나 테마 빛(근원, 신성), 물(순수, 정화, 생명), 바다(생명, 모성, 죽음, 부활, 염원) *관습적 상징 : 특수한 역사적 조건이나 종교적, 문화적 관습에 의해 널리 알려져 있는 이미지 양(희생), 십자가(구원), 연꽃(해탈), 붉은색(공산주의자) *개인적 상징: 시인의 독창적인 표현습관에 의해 이루어지는 상징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도시화로 소외된 인간성), 김종길의 ‘산수유 열매’(아버지의 사랑)  댓글쓰기   블로그카페북마크메모보내기 인쇄 시창작론숲 알기쉬운/포스트모더니즘 시론  프로파일  옥토끼 ・ 2018. 6. 9. 22:02 URL 복사  이웃추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김경린(시인/평론가) 1918-2006.  저서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주변 이야기’ 중에서 (요약자/정숙)     포스터모더니즘을 이해하려면 20세기 상반기를 휩쓸었던 모더니즘의 기본 정신과 그 방법을 알아야 하며 공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현대시에 과학은 어떻게 접목하는가   ♣모더니즘의 태동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과학 문명의 급속한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세기 중엽까지 농경사회의 단순성 환경에서 평면적으로 보려는 리얼리즘이 모든 문학. 예술 분야를 지배해 왔지만 세기말에 이르러 영국 산업혁명에 힘입어 재래의 가내 공업으로부터 대량생산을 위주로 산업화 사회를 이루게 되었고, 사물을 보는 시각도 달라져 인간의 마음속 깊이 내재해 있는 제2의 심의의 세계를 발굴하려는 상징주의가 대두되게 되었다.    20세기 과학은 더욱 발전하였고 현대의 문화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인구도 늘어나게 되었다. 인구밀도가 문제시되고 토지이용도가 높아지면서 모든 시설이 입체화됨에 따라 인간이 사물을 보는 시각도 입체성을 띠게 된 것이다.      이에 즈음하여 20세기 제2의 르네상스라 일컬어지는 피카소의 입체파가 1907년에 프랑스에서, 기계의 역동감을 주축으로 마리네티의 미래파가 이태리에서, 대두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두 가지야말로 20세기 상반기를 지배해 온 변형의 미학의 기조를 이루는 미학의 원리이다.   다시 말해 모더니즘 표현기법의 핵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급기야 인간을 대량 살상할 수 있는 무기의 생산을 가능케 하면서 타민족을 정복하려는 정치가들의 야욕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세계1.2차 대전이 바로 그것이다. 지구는 포화 속에 불타고 사람들은 총탄과 파편에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현실앞에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쓸리게 된 것이다. 과학문명에 의한 인간의 불안의식이 대두하면서 모더니즘은 그런 의식을 기본 바탕으로 모든 사물을 지적인 시각을 통하여 보고 느끼고 경험을 질서화 하였으며 기법에 있어서도 변형의 미학을 기저에 두면서 추상성을 주축으로 문학. 예술의 세계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모더니즘의 기본 정신과 방법론이 온 지구의 지성인들에게 자극을 주는 결과가 되어 각기 스스로의 전통과 환경 토양에 따라 여러 가지 유파를 파생하게 되었다. *기성 관념의 파괴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는 다다이즘이 1916년에 스위스에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무의식 세계를 기저에 두는 초현실주의가 1924년 프랑스에서, *이미지의 입체적인 조형성을 위주로 하는 이미지즘이 1913년 영.미를 중심으로, *시적 언어의 과학적인 분석을 표방하는 러시아 포말리즘이 1915년에 대두하는 등 건축. 회화. 사진. 조각. 음악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속도로 전파되었다.   구미에서 효시를 이루면서 전 세계로 전파되어 동양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에서도 '시와 시론' 운동이 1928년에 '신영토'와 'VOU의 운동' 전후 '아레지'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이상의 '오감도' 김기림의 '기상도'가 1936년에, (동인/사화집)'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대한 운동이 1948년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모더니즘이 순조롭게 서식해 왔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상반기를 송두리째 삼켜버리기라도 하듯 인간의 자유를 말살하고 타민족을 정복하기에 혈안이 되었던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국가들(독일 나치즘/ 이탈리아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 소련의 사회주의)등은 정치적 야욕을 국민들에게 침투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더니즘을 타락한 예술이라는 지탄으로 탄압하기도 했다. 이에 동조하여 분에 넘치는 영광을 누렸거나 항거하다 생명을 잃은 문학. 예술가도 많았다. 특히 일본에서는 전쟁중인 탓도 있지만 '신영토' 1942년 'VOU'1943년에 친미 문학 단체라며 강제 폐간 시켰다. 동경 유학시절 VOU의 회원이었던 김경린 선생님도 수시로 일본 경찰의 사찰을 받으셨다. 사조가들은 20세기를 모더니즘과 이데올로기의 투쟁사로 규정짓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포스트모더니즘 현상 20세기 하반기에 들어오면서 전쟁 복구가 완료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과학은 더욱 발전되어 인공 두뇌 개발에 즈음하여 정보화 사회에 이르게 되었다. 경제의 급속한 성장과 사회 구조도 다원화와 다중화를 이루게 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현상이 노정되기 시작하였다. 1) 인공 두뇌(컴퓨터)가 인간이 하던 일을 대신 하는데서 오는 인간의 소외감(존재의식) 2) 경제 구조가 대형화되면서 커다란 관리 사회가 가져다 주눈 인간의 개성 상실. 3) 고도의 소비문화가 만연하면서 물질 문명에 대한 욕구와 이에 수반하지 못하는 정신적 불균형  에서 오는 사회악.  이러한 현상을 포스트모던사회의 특징이라 규정 짓는다면 모더니즘 시대의 종속성이나 서열성과 다른 병렬성과 무서열성의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좀처럼 과학을 인정하지 않던 철학마저도 니체 이후 이를 인정하면서 여러 가지 학설을 낳게 되었다. 프랑스/미셀 푸코. 독일/하버마스. 미국/다니엘 벨 등 이데올로기에 대한 학설들은 하반기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광채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하반기 현상에 대한 방향제시로 자크 데리다는 포스트구조주의적인 견지에서, 다니엘 벨은 사회학적인 견지에서, 로만 야곱슨은 기호론 견지에서,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속출하였지만 김경린선생님은 프랑스 철학자(파리의제8대학 교수)인 프랑수아 리오타르를 가장 꼽았다. 그 이유로 프랑수아 저서(포스트모던의 조건 La condition postmoderne 1979)의 서두에 "고도로 발전한 선진사회에 있어서의 지知의 상태를 우리는 포스트모던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 용어는 현 미국 대륙의 사회학자와 비평가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19세기말기에 시작되어 과학과 문학. 예술의 게임 규칙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의 또 다른 저서(포스트모던 통신 La postmoderne exqlique aux enfants 1986)에서  "포스트모던이란 모던의 내부에 있어서 제시상提示像 그 자체 속에 제시가 불가능한 것을 찾아내려는 그 무엇인가일 것이다" 불가능한 것에의 노스탈자를 공유하는 것을 용허하는 것과 같은 취미의 컨센서스의 입장에서 새로운 여러 가지 제시,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닌, 제시할 수 없는 것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감지하게끔 하기 위하여 찾아내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더니즘으로서는 찾아낼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표출하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해석이다.    ♣모더니즘의 공과 그렇다면 그동안 모더니즘의 공과에 대해서 규명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이 지향하는 바 방법론이 도출되리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모더니즘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기저로 무의식세계의 (초현실주의), 이미지의 입체적 조형성(이미지즘), 기성 관념의 연상 파괴(다다이즘), 시적 언어의 발굴(러시아 포말리즘) 등에 크나큰 공적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사물을 지적인 시각에서 관찰한 나머지 서정성과 휴머니즘을 배제한 데서 시의 세계를 건조하게 만들었으며 표현기법에 있어서도 지나친 은유의 편중으로 독자로 하여금 해석의 다양성을 추구한 결과 시의 라인을 지나치게 응축함으로써 난해성을 초래하여 독자와 커뮤니케이션에 장해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추상성에 의한 미지의 미학에 매력은 있다손 치더라도 극단의 엘리트 의식으로 흘렀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런 의식으로는 오늘의 복잡다기한 포스트모던 사회를 더 이상 모더니즘 기법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모색 의식적인 면에서는 과학문명의 발달에 의한 인간의 소외의식을 바탕으로 1)아무런 기성 관념없이 현대적인 시각에서 직시하며, 2)거기에서 얻어지는 경험을 질서화함에 있어서도 현장감을 중요시하며, 3)소재면에서도 자잘한 일상 생활에서의 이벤트. 공해로 인한 환경문제에 대한 에콜로지와 페미니즘문제. 우주개발에 수반되는 우주관에 대한 관심.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4)이미지 구성면에서도 지나친 응출성을 배제하고 이미지군에 연계 작용에 의한 매크로이미지 세계를 구축하면서 작자의 현대적인 시각에서의 메시지를 깔아보자는 것이다. 5)표출기법에 있어서도 재래의 시적인 신택스를 해체한 다음 새로운 신택스로서의 참신성을 위해 언어의 기호론에도 관심을 가지며 대화체로 발전시켜 보자는 것이다.   최근에 급속히 대두되는 시낭송과도 관련지으려는 의도도 깔려있다. 모더니즘시가 은유에 편중되어 있는 대신 직유. 은유. 환유. 제유. 등을 적절히 혼용하면서 새로운 하이퍼리얼리즘 또는 뉴리얼리즘으로서 언어의 신선감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스위스에서 1953년에 구체시의 새로운 구문에 대한 관심과 미국에서 60년대에 대두한 (투사시/비트파운동), 70년대의(페미니즘) 80년대의(미니멀리즘)등이 세계적인 영향을 받았다. 오늘과 같은 국제사회에서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출처] 원관념과 보조관념 /박 병 규|작성자 옥토끼  
6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린,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와 재해석 / 이선(시인,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사무처장) 댓글:  조회:1353  추천:0  2019-02-01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린,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와 재해석     이선(시인,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사무처장)     박진섭의 시는 짧고 간략한 시어로 구성된,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린 수채화다. 이미지들은 시인의 삶처럼 담백하고 솔직하며 객관화를 획득하고 있다. 제목과 내용의 해석적 시각이 상흔처럼 도드라진다. 필자가 박진섭의 시를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린,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와 재해석이라는 제목을 부여한 이유다.   프로이드는 시인은 사회적 부적응자가 불안과 고독감을 시 작품으로 승화시켜, 사회적 부적응자인 독자의 공감을 얻어 감동시키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프로이드의주장처럼 박진섭은 사회적 부적응과 상처를 시로 승화시켰다. 자신의 체감적 경험을 진선미를 지닌 예술작품으로 완성도 있게 제작하여 독자의 공감을 유도한다. 박진섭의 시에서 보여주는 외로움, 그리움, 동병상린, 짝사랑은 시인들이 지닌 감성적 속성이다. 시는 외로움과 그리움,결핍과 상처에서 피어난 꽃이다.   박진섭의 시는 대중의 사랑받을 수 있는 여러 대중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첫째, 그중 가장 주요한 포인트 하나는 대부분의 시가 사랑시라는 점이다. 남녀상열지사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대중의 관심을 촉발시킨다. 특히 성애시, 짝사랑시, 이별 시, 불륜시는 언제나 영화, 소설, 드라마의 단골 주제다. 대중의 촉각을 자극하여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러나 박진섭의 시는 난삽하거나 화려한 기교의 사랑 시가 아니다.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자연미인,숫처녀 같다. 시어와 표현이 유치하거나 저급하지 않다. 두 번째 특징은 짧은 시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속도화 시대의 대중은 바빠서 긴 글을 읽을 시간도 참을성도 없다. 우연인지 기획의도인지 박진섭의 시는 손바닥 시보다 더 짧다. 시에 군더더기가 없다. 시는 짧지만 내용은 허술하지 않다. 짧아서 지루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다. 세 번째 특징은 슬픈 여운이다. 박진섭은 표현주의 문학이 범하는 기교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오롯이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어 그 상처를 부끄러운 일기장처럼 세상에 보여주고 있다. 사실 용기가 필요한 장인정신이며 고집이다.부끄러움을 벗고 당당하게 대중과 맞서는 것은 작가의 필요충분조건이다. 필자는 박진섭의 첫 시집 「소소한 안부」 중에서 아래 7편을 그의 대표시로 선정하였다. 각각의 시를 읽고, 그 특징과 표현기법을 상세히 논의해 보자.   이른 아침 단풍국에서 온 안부문자를 꽃이름 어플에 입력합니다   사과나무, 17페이지 책갈피를 펼치면 그 동안 건강은 괜찮은지 어찌 사는지   서울 하늘을 이고 사는, 나는 단풍나무 씨앗 같은 핼쓱한 얼굴, 찌뿌둥 합니다   이상 기후에 혈압이 오르는지 과실들이 곤혹을 치른다는 당신 푸념에 황사비, 미세먼지 뒤집어쓴 듯 내 마음도, 어찔어찔   당신 목소리는 붉은 사과 빛깔로 곱게 깔깔깔, 물들어 가고   나는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날씨 이야기를 큰소리로 웃으며, 주절주절   우린 같은 파란하늘 밑, 흰 깃털구름이불 나란히 덮고 다정하게 누워 토닥토닥 잠들었는데, 왜 나는 당신에게 팔베개를 해줄 수 없는지요? 당신은 거기, 나는 여기   비 온다는 핑계로 안부를 물으며 당신 목소리 아껴 듣는, 이 아침   ―「소소한 안부」 전문   위의 시 「소소한 안부」 는 박진섭의 첫 시집 제목이다. 짧은 사랑 시 모음들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제목이다. 애인을 향한 물음, 간절함, 애틋함, 슬픔, 비련, 절망감 등 여러 복합적 시적 화자의 감정을 「소소한 안부」라고 통칭하고 있다. 안부전화, 안부편지, 안부문자. 애인의 소식을 묻는 다변화된 시적 장치다. 위의 시는 일상적 안부 인사를 나누면서, 속 깊이 숨겨놓은 밀애의 감정을 은근히 즐기고, 은근히 아파하는 시적화자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시는 클로즈업 과정이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게 보내는 마음의 편지다.소소한 안부인사다. 1연에서는 ‘단풍국’에서 온 안부문자 같은, ‘꽃이름 어플’에 기록해 놓고 싶은 소시민적 사랑의 아픔을 잔잔하게 적고 있다. 1-3연은 단순한 안부로 시작하여, 4-8연은 고백적 심정을 은은하게 피력하며 점층적 구조로 감정을 증폭시킨다. 이 세상에 가장 슬프고 아픈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박진섭 시의 매력은 현대적 감각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독자와 평자를 애수에 젖게 한다. 안부인사로 시작하여 사랑고백을 절절하게 하는 역설적 문장이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   아래 시를 읽고 접속사의 중요성과 이미지 형상화 과정을 논의해 보자.   나는 향기로운, 살구빛 갈색 눈 당신에게 접속합니다   사랑하면 그리고   아픔이면 그러나   잊으려면 오히려   소망하면 혹시나   노랑허리솔새 부리가 긁은 올리브녹색 잎사귀, 흉터처럼   나는 매일 접속사를 바꿔, 당신을 소환합니다   ―「접속사」 전문   위의 시 「접속사」는 남녀상열지사를 고품격 예술작품으로 격상시킨 작품으로 문법의 접속사 를 사랑의 각 상징 단계로 표현하였다. 발랄한 상상력과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랑을 체험적으로 터득한 재해석의 시각이 돋보인다. 현대적 감각의 ‘접속’과 ‘소환’ 등 폭력적 시어와 ‘노랑허리솔새’와 ‘올리브녹색’ 등 아름다운 한국적 자연 속에서 사물을 발견해내는 시어 발굴 능력이 탁월하다.   아래 시를 읽고, 사랑에 대한 직관과 사랑의 속성이 가진 진정성을 논의해 보자.   모르는 거 아니고 서투른 거 아니고 고장 난 거 아니고   조급한 거 알고 서투른 거 알고 미숙한 거 알아   그래도 네게는 작동되지 않는, 제어장치란 걸   ―「브레이크」 전문   위의 시 「브레이크」 는 사랑의 속성인 ‘조급한 거 알고/ 서투른 거 알고/ 미숙한 거 알’지만 ‘제어장치’가 풀려서 급속발진 하게 되는 사랑의 속성을 적확하게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겉돌거나 에두르지 않고 직접적이고 선명한 표현을 함으로써, 독자를 통쾌하게 한다. 객관화와 진정성, 직관을 실현한 짧지만 강렬한 작품이다.   아래 시를 읽고,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린,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 과정을 논의해 보자.   만난 것 같고 만날 것 같고   보인 것 같고 보일 것 같고   사라진 것도 아니고 사라질 것도 아닌데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날아간 ‘묵은실잠자리’ 발자국 같은, 너는   ―「소실점」 전문   위의 시 「소실점」은 사랑을 방금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억압과 불안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날아간/ ‘묵은실잠자리’ 발자국 같은, / 너는'(4연 1-3행)라는 표현은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가 돋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의 교차하는 행복감과 불안감 등, 사랑의 속성을 극명하게 잘 그렸다.   아래 시를 읽고, 시의 상징을 논의해 보자.   마주 보라 찍었더니 선 하나 그었더라   서로 기대라 찍었더니 아예 등지고 섰더라   ―「데칼코마니」 전문   위의 시 「데칼코마니」는 서정시 계열이 아니다. 상징시의 예리한 직관이 돋보인다. 사랑의 이중성과 배리, 변덕 등 복합적이면서 감정기복이 심한 부정적인 폭력적 감정을 날카롭게 절단하듯이 절명하게 직관하였다. 「데칼코마니」는 시집 제목으로 하여도 좋은 박진섭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아래 시에 나타난 직관과 사유, 아하 깨달음에 대하여 논의하여 보자.   가는 길에 부딪혔나 보다   오는 길에 엇갈렸나 보다   ―「교차선」 전문   위의 시는 TV 프로그램에서 보던 ‘사랑의 막대기’가 생각난다. 사랑의 단면을 칼로 잘라서 보여주는 것 같다. 부딪치며 엇갈리고, 좌충우돌 어긋나기만 하는 사랑을 대변하는 시다. 보통 등단 시나 시집에서 가장 긴 호흡의 시와 가장 짧은 한 줄짜리 시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시적 필력을 과시하는데 경우가 있다. 긴 시는 시적 긴장력을 늦추지 않고 시력을 펼치는 힘을 보여준다. 가장 짧은 한 줄 시는 촌철살인의 직관과 사유를 보여준다. 작가의 다채로운 시력을 입증하는 ‘아하 깨달음’을 주는 짧은 시다. 독자의 뇌에 감각적 미의식을 주며, 사랑의 깨달음을 주는 사유와 철학이 있다.   아래 시에서 사랑의 방향과 속도에 대한 시적화자의 직관에 대하여 논의해 보자. 사랑은 누구나 참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너와 나는 방향이 문제였을까 속도가 문제였을까   난 속도가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넌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답을 찾을 수 없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전문   위의 시 「답을 찾을 수 없는」은 사랑을 가장 적절하게 관통한 표현이 돋보인다. 사랑의 중심을 과녘으로 통과한 명쾌한 답변이다. 도대체 사랑은 답이 없다. 맞는 게 없고, 틀린 게 없다. 도대체 사랑은 방향이냐, 속도냐 시시비비를 따질 수가 없다. 사통팔달, 어느 방향으로든 진행한다. 역방향이냐 순방향이냐 따질 수가 없다. 나이, 국적, 피부색, 사고방식, 빈부격차, 학벌, 도대체 일촉즉발 사고다. 사랑은 내가 원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싫다고 떠나는 것도 아니다. 일방통행, 쌍방통행 따지지 않는 건, 사랑은 사고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영화, 소설, 시에서 사랑의 사고를 보여준다. 사랑은 정답이 없다. 특히 불륜의 사랑은 현실에서는 부정하고 비난하지만, 드라마에서는 환타지하고, 시에서는 비련의 슬픈 주인공을 동정한다. 예술에서 불륜은 단골주제며 소재다. 화가에게 벌거벗은 모델은 지치지 않는 영감의 샘이 된다. 예술은 모든 시점과 관점, 결과가 용서된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도덕과 윤리의식으로 억압받은 사랑을 드라마, 영화, 소설, 시, 연극을 통하여 대리만족하며 보상심리를 갖는다. 특히 벗기기, 야한 영화에 몰리는 수백만 관객의 흥행수입이 그것을 입증한다.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짝사랑이라도 한다. 결국 사랑이 시의 단골 소재가 되는 이유다. 누구나 하는 사랑, 언제나 하는 사랑, 어디서나 하는 사랑 이야기는, 성공을 약속받는다. 가끔 여배우와 감독의 불륜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곧 대중은 잊고 용서하며 시인한다. 박진섭은 너무 순진하거나, 고도로 세련된 사랑의 관찰자인지도 모른다. 그가 제작한 모든 시는 사유, 직관, 철학의 유무에 관계없이, 그 사랑의 중심에 자신을 출연시킨다. 실화인가? 비밀리에 만나는 여자가 있을까?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적 장치다. 만약 시적 장치라면 여우같은 책략이고, 시적 화자가 시인 자신이라면 슬픈 사랑 이야기에 독자는 혹해서 빨려들어간다. 성은 만고불변의 진리며 명약이다. 성은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시킨다. 뻔한 스토리인데도 남녀상열지사는 흥분시킨다.     위에서 필자는 박진섭의 대표 시 7편을 언급하며 여러 방향에서 논의해 보았다. 박진섭은 사랑을 객관화시켜 이미지로 선명하게 형상화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참신하고 공격적인 이미지의 패턴을 보여주는데, 재해석을 통한 시적 구조가 탄력적이다. 보통 첫 시집은 과거의 장례식이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어릴 적 상처나 과거의 상처를 토로하는 정신과 자가치료 과정을 통과의례처럼 치른다. 그래서 첫 시집에 발표한 시들은 사변적이거나 상투적 표현이 많다. 그 이유는 인간이 살아온 과정은 거의 비슷비슷하고, 동시대를 살아낸 시인들의 아픔도 비슷하기 때문에 소재와 표현도 유사하다. 박진섭의 첫 시집은 서투르지만 솔직하고, 직접적이며 직설적인 특징이 매력 포인트다. 보통 신인 시인들이 범하는 우는 시의 픽션과 기교주의를 무시하는 것이다. 과거를 소환한 체험적 진정성과 팩트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첫 시집은 자서전적 성격을 나타낸다. 또한 관념과 주장이 많은 것이 첫 번째 자전적 서정시집의 특징이다. 그러나 박진섭의 시는 상징성과 객관화를 실현하여 관념을 탈피하고 있다. 제목과 내용의 통일성, 재해석이 있는 유미주의적 순수를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오랜 시간 혼자 시에 탐닉하여 시창작 기법을 터득하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의 패턴화가 고정되었다. 시의 패턴화는 독자에게 특허상표로서 개성적이란 주목을 받기도 하지만, 평자에게는 패턴화와 획일성이 비판과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고정된 시창작 기법은 자칫, 퇴행으로 역행하기도 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필자는 박진섭의 첫 시집에서 보여주는 일관된 수준과 상징, 재해석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앞으로 신인으로서 과감한 실험과 도전을 할 것을 촉구한다. 절대 예술의 경지에서 느끼는 심미적 감각과 카타르시스를 쾌감할 것이다. 짧은시, 긴시, 서정시, 이미지시, 철학시, 소설시, 드라마시, 사유시, 초현실주의시, 하이퍼시 등 시창작 과정의 여러 단계적 성장을 경함해 보기 바란다. 시는 표현주의 미학이 주는 절대 선이다. 예술의 정점에서 느끼는 절대 자유와 희락은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지 못할 가치가 있다. 앞으로 사랑 시에 국한된 한계성을 갖지 말고, 사유와 철학이 있는 다양한 시적 방향과 소재를 탐색하여 장르를 통합하는 개성적인 테러를 자행할 것을 당부한다. 첫 시집 「소소한 안부」 발간을 축하하며, 앞으로 치열하게 시 공부를 계속하여, 시단에 큰 족적을 남겨주기 바란다. [출처]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린, 미려한 이미지의 형상화와 재해석 / 이선(시인,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사무처장)|작성자 옥토끼
5    묘사시, 이미지시, 사물시 유형의 시 쓰기(문광영문창5) 댓글:  조회:2696  추천:0  2019-02-01
묘사시 이미지시 사물시 유형의 시 쓰기(문광영문창5)    "공부하는 인천문협"       5차 강의는 묘사시(descriptive poetry), 이미지(image)시, 사물시((physical poetry)의 미학적 형상화입니다. 묘사시, 이미지시, 사물시는 서로 깊게 관련되기 때문에 같이 논의를 하려고 합니다.     문학 창작에서 묘사는 서사와 함께 대단히 중요합니다. 화가가 색과 선으로 형체를 드러내야 하듯이, 문학 작가는 묘사로서 외면풍경의 대상과 그리고 내면 풍경의느낌,생각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인천문협 작가 가운데 묘사력이 미흡한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문제는 자신이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문학은 진술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묘사의 '보여주기'와 진술의 '드러내기'가 잘 어우러져야 합니다.   대개의 시, 수필, 소설들의 경우 첫 모티브에서 묘사로 이루어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바람직한 서두 쓰기, 곧 good begining은 작품의 성공여부를 판가름짓게 합니다. 나아가 좋은 작품은 묘사력에서 금방 드러납니다. 정서 표현에서 훌륭한 묘사는 글의 구체성과 생동감, 환기력이 높혀 주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묘사시, 이미지시, 사물시의 미학적 형상화       1. 감각적(비유적) 묘사란?       ○ 어떤 대상을 놓고 모양, 빛깔, 감촉, 소리, 냄새 등을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려내는 방법을 묘사라고 한다. 대상을 구체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묘사의 방법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그 대상에 대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묘사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은행 잎이 노랗다. 은행잎이 金貨로 보인다     ○ 묘사는 대상을 그려 보인다 해도 그 목적이 그 대상에 관한 정보나 지식의 전달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대상에서 받은 인상을 전달하고자 하는데 있다는 점에서 설명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은행 잎이 노랗다.”라고 할 때, 은행잎이 ‘노랗다’는 기술은 일반적으로 은행잎이 지닌 형태의 한 부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대로 “은행잎이 金貨로 보인다.” 라고 할 때 은행잎의 구체적 상황이 주관적 해석을 통해 관찰자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인상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은행잎 = 금화’라는 등식에 은행잎은 새로운 감각의 세계로 변하고 은행잎이 주는 인상이 금화로 의미론적 이동을 함으로써 특이한 감각을 낳게 하는 것이다.   ○ 그런데, 어떤 대상을 묘사한다고 할 때, 글쓴이의 눈에 비친 모든 대상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자세하게 그려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쓴이는 그 대상으로부터 가장 강렬하게 느낌을 받은 인상을 그릴 수도 있고,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중심으로 묘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중심을 이루는 인상을 ‘支配的 印象’(dominant impression)이라 한다. 말하자면 사물의 특징이 있는 그대로 다 나타내는 것은 아니므로 지배적인 인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특징을 선택하여 묘사해야 한다.   ○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요소가 대상의 지배적인 인상과 관계되는 것인지는 쉽게 설명할 수 없다. 대상을 보는 입장, 곧 관찰자의 시점․위치․태도․개성․분위기 등이 이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다만, 치밀한 관찰이 언제나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2) 묘사하는 글을 잘 쓰려면     ○ 묘사를 잘 해야 글을 잘 쓸 수가 있다. 마치 화가가 뎃쌍을 수없이 연습해 오듯 글쓰기에서 묘사는 문장 표현의 기초가 된다.     (1) 지배적 인상을 중심으로 조화롭게 구성하라 (2) 감각적 인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라. (3) 자신의 느낌을 창의적으로 명료하게 나타내라.     ○ 예를 들어 “그날 밤은 매우 조용했다.”라고 표현했을 경우, 과연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충분히 나타냈다고 볼 수 있는가. 얼마나 조용했다는 걸까? 조용한 밤의 정적을 명백히 나타내기 위해서는 조용한 밤에 들을 수 있었거나 없었던 소리를 쓸 필요가 있다. 셰익스피어(Shakespeare)는 그의 작품 ‘햄릿’의 서두에서 이 문제에 부닥쳤는데, 그는“쥐가 움직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이라고 씀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너무나 조용하기에 야행성 동물인 아주 작은 쥐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확한 묘사로써 셰익스피어는 밤의 고요함을 명확하게 나타냈다.   ○ 자신의 느낌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는 반응의 결과가 아닌 반응의 원인에 대해 써야 한다.“나는 두려움을 느꼈다.”라고 쓰는 대신 자신의 두려움을 명백히 해서 독자로 하여금 역시 같은 공포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신이 가졌던 느낌을 독자들도 똑같이 가질 수 있게 할 때, 자신의 느낌을 성공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것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 자신의 경험을 재창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       3) 이외수의 고정 관념의 틀 깨기     나는 소설이라는 난공불락의 성을 함락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정신을 강화시킬까를 모색해 보았다. 밥이 떠올랐다. 일찍이 밥만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존재는 이 세상에 없었다. 나는 한솥 가득 밥을 지어서 바깥에 내다 놓았다. 얼음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나는 얼음밥으로 끼니를 연명하면서 묘사적 문체를 획득하는 일에 골몰해 있었다. 더럽게 눈물겨운 겨울이었다. 얼음밥은 도저히 수저로는 먹을 수가 없었다. 망치와 못을 이용해서 깨뜨린 다음 으적으적 씹어먹는 수밖에 없었다. 정신뿐만이 아니라 내장까지도 투명해지는 느낌이었다. 한 솥 가득 밥을 지어서 바깥에 내다 놓으면 1주일은 족히 정신과 내장을 투명하게 유지시킬 수가 있었다.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는 어느 날이었다. 나는 방문을 열어 놓고 흩날리는 눈보라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 때 문득 글 한 줄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습관적으로 원고지에다 옮겨 보았다.   수천만 마리의 나비떼가 어지러이 허공을 날고   단 한 줄이었다. 더 이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너무 추워서 방문을 닫고 방금 원고지에 옮겨 놓은 글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게 만약 한 줄짜리 시라면 어떤 제목이 어울릴까. 눈보라로 정한다면 역시 고정관념을 탈피하지 못한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터. 나는 왜 그때 화장터라는 단어가 떠올랐을까. 혹시 얼음밥을 먹어가면서까지 묘사적 문체를 얻어내려고 발버둥치는 내게 하나님이 영감이라도 내려주신 것이나 아닐까. 화장터라는 제목을 붙이자, 나비떼는 놀랍게도 사자의 소지품을 태울 때 날아오르는 연소물의 사해조각을 연상시키더니 이내 영혼의 편린으로 변하고 있었다. 제목을 제지공장으로 붙인다면, 나비떼는 종이조각으로 변해 버릴 것이 분명했다. 내가 원고지에 써넣은 나비떼는 곤충이 아닐 수도 있었다. 눈보라가 될 수도 있었고, 사해조각이 될 수도 있었고, 종이조각이 될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혼의 편린까지 될 수 있었다. 관측자의 위치가 어딘가에 따라 내가 빌려오는 사물들은 판이하게 다른 상징성으로 되살아날 수가 있었다. 알았다. 불시에 막혀 있던 시야가 환하게 밝아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마침내 고정관념의 껍질을 탈피하고 있었다. 배반자로부터 보내온 설탕은 달지 않다. 결핵에 걸린 태양은 눈부실 수가 없다. 발가락이 자라는 조랑말의 당혹감. 구걸을 중단한 거지의 허영. 쥐를 보면 도망치는 고양이의 비야. 목이 짧은 기린의 절망.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순간 나는 만물들의 외형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면서 상징성을 부여하는 능력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제 사물의 외형이 주는 고정관념 때문에 사물의 내부를 들여다 보지 못하는 난관은 극복되어 있었다. 세 솥째의 얼음밥이 비어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사물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하늘을 쳐다보며 앙상한 모습으로 겨울을 지키고 있는 굴참나무의 간절한 소망이 무엇인지도 알아낼 수가 있었고, 끊임없이 얼음 밑으로 흐르고 있는 개울물의 도란거림도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찌푸린 표정으로 낮게 내려앉아 있는 회색 하늘의 음모도 간파할 수가 있었고, 폭설을 뒤집어쓰고 묵상에 잠겨 있는 산들의 자비심도 읽어낼 수가 있었다. 나는 고정관념의 껍질을 탈피하면서 만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게 되었고, 만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면서 만물의 영혼과 합일하게 되었다. 어느새 개떡 같은 세상에 대한 증오심조차 모조리 소멸되어 있었다. 아무리 개떡 같은 세상이라도 눈물겹게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외수 중에서       4) 대화적 묘사문단 쓰기를 통한 시 쓰기     o 질문 : 여러분들이 가장 아끼는 물건 하나씩 있지요? 골동품 가운데, 혹은 주방 용품, 혹은 누구로부터 받은 선물, 내가 만든 것 , 오랫동안 보관해 오던 장신구, 혹은 가구 등 하나만 적어 봅시다.   답 : “오지항아리요!”                                                                            답-------------------------------     o 질문 : 그 오지 항아리는 전체적으로 어떻게 보입니까? 받은 인상대로 펼쳐보이세요. 앙증맞고 똑똑해 보이나요? 바보스럽게 보이나요? 아니면 슬프게 보이나요? 고독해보이나요? ---------- 형용적 표현   답 : “바보스럽게 보이는데요”                                                               답--------------------------------   o 질문 : 바보스럽게 보인다구요? 바보스럽게 보이는 부분은 무엇을 떠올리게 하나요? 비유로 표현한다면, 무엇처럼 보이는 가요? ---------------------> 시각적 비유 표현, 혹은   답 : 어깨로부터 둥글 넙적한 몸통은 마치 풋고추 된장에 보리밥을           답-------------------------------- 실컷 먹고 낮잠을 자는 머슴의 배같이 튀어나와 있네요. 아니에요, 마치 만삭이 된 시골 누님의 배와 같으네요.   o 질문 : 왜, 그런 표현을 하고 싶은 데요?                       ----------------------> 상상적 진술     답 : 항아리의 생리가 아무 것이나 주는 대로 먹을 수 있기                       답------------------------------- 때문이지요.                                                                                                                 o 질문 : 주는 대로 다 받아먹고 만 마는가요? 그 가치를 인생의 의미에 두고 한번 간파(看破)해 볼까요? -------------------------> 간파, 통찰, 의미부여하기   답: 아니지요. 다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간수할 뿐이지요. 배고픈 자의  답------------------------------- 굶주림을 구원하기 위해 고이 간직하는 것이지요. 우리를 위해 희생하는 항아리지요.     o 질문 : :오지항아리를 보면 자꾸 누가 떠오르나요?     답 : 어머님이요                                                                                    답 ------------------------------         ● 대화에서 얻은 내용을 묘사문장(문단)으로 나타내기                                                         오지 항아리 20여년 이사 갈 때마다 갖고 다니는 오지항아리는 못난 듯 바보스럽다. 그 어깨로부터 흘러내린 둥글넙적한 몸통은 마치 풋고추 된장에 보리를 실컷 먹고 낮잠을 자는 머슴의 배 같이 튀어나왔다. 아니 만삭이 된 시골 누님의 배 같다. 그런 뱃속에다 아무 것이나 주는 대로 먹는 항아리, 그런 항아리의 생리가 바보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 바보스러움은 어리석고 못난 바보스러움이 아니다. 오히려 바보의 멋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깃들어 있다. 주는 대로 먹는 바보스러움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지 항아리는 그것을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다. 오직 간수할 뿐이다. 배고픈 자의 굶주림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하는 항아리, 그것이 곧 항아리의 사상이요. 돌아가신 어머님의 철학이다       ● 묘사문단 내용을 바탕으로 시로 써보기                   오지 항아리     20여년 이사 갈 때마다 따라다니는 못난 듯 바보스러운 오지항아리   어깨로부터 흘러내린 둥글 넙적한 몸통, 마치 풋고추 된장에 보리를 실컷 먹고 낮잠을 자는 머슴의 배 같은 만삭이 된 시골 누님의 배 같은   아무 것이나 주는 대로 먹는 어리석은 항아리의 생리 바보스러운 멋, 오직 간수만 할 뿐 그러나, 배고픈 자의 굶주림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하는 항아리의 사상   돌아가신 어머님의 철학             2. 묘사시(descriptive poetry) 쓰기   1) 비유적 묘사지향의 시 : 사물(풍경)의 감각적 묘사, 이미지, 비유적으로 나타내기     마량진                                                           김 윤                 갈메기떼가 썰물을 끌고 간다 가다가 저만큼 부리의 힘을 탁 놓아버린다 뻘 건너 수평선이 팽팽해진다 발바닥이 드러난 어선들이 스크류를 이빨처럼 간다 뻘밭이 수천 개의 흡반을 들이댄다 박하지 새끼가 구멍마다 집게발 하나씩을 내밀고 노을을 섬득 베어문다 뻘이 번득이며 붉게 물든다 아직도 흙탕인 바다가 지는 해를 한 번 더 울컥 떠 올린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듯이 뻘이 깊이깊이 가라앉는다 작은 횟집 몇이 불을 켜들고 흡반 속으로 빨려든다                                                                        (《현대시학》2006년 10월호)         ○ 마량진은 충남 서천군에 있는 어촌 포구이다. 우선 이 시는 개펄 바닷가의 노을을 그림 그리듯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갈메기떼가 썰물을 끌고 간다”든가, “수평선이 팽팽해진다”든가, “어선들이 / 스크류를 이빨처럼 간다”든가, “박하지 새끼가 … 노을을 섬득 베어문다” 등의 이미지들이 섬뜩할 정도로 신선하고 생동감이 있다.     ○ 경험시가 서사의 양식을 지향한다면, 묘사시는 묘사 양식을 지향한다. 묘사란 사물의 감각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범이다. 묘사시란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시라고 할 수 있다.   ○ 화가의 경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쉽지만, 시인의 경우에는 비록 언어로 그린다고 해도 그리 쉽지 않다. 무엇보다 시인의 매체인 언어는 화자의 색이나 선과는 다른 특성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무엇보다도 개념(관념)을 소유한다. 그만큼 추상적이고 일반적이다. 이를테면 푸른 하늘을 보고 ‘하늘은 푸르다.’고 해도 이 때의 ‘푸르다’는 말은 개념적이고 일반적인 의미를 나타낼 뿐이다. 우리가 푸른 하늘을 보고 느끼는 감각성 특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 그렇기 때문에 시인들은 언어로 그림을 그릴 때, 언어의 이러한 특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특수한 기법을 사용한다. 언어가 감각적 특성을 그대로 드러낼 때 우리는 그것을 흔히 심상 혹은 이미지라고 부른다. 이미지 표현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언어를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다”에서 알 수 있듯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대한 감각을 보자.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은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이장희 (1924) 전문   ○ 1연과 2연에서 시인은 시적 사물을 다른 사물에 비유하고 있다. 곧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은 ‘꽃가루’에 비유되며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은 금방울에 비유된다. 전자는 촉각, 후자는 시각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그리하여 '봄=고양이' 이라는 은유법을 구사(권도현, 「이장희론」, 현대문학11, 1976. 참고)하여 고양이를 객관적으로 이미지화하면서 대상의 감각적 측면만을 묘사하고 있다. 즉 1연에서는 고양이의 털에서 봄의 향기를, 2연에서는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서 봄의 생명적 불길을, 3연에서는 고양이의 입술에서 나른한 졸음을, 4연에서는 고양이의 수염에서 푸른 생기를 각각 예리한 관찰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각 연들은 고양이를 객관적으로 시각화시켜 한 마리의 완벽한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 이장희의 특이성은 ‘객관적인 감성’으로 요약된다. 이런 감각성은 1920년대 우리 시의 전통적 요소 말하자면 주관의 범람, 감상적 낭만주의에 대한 변증법적 비판으로 당시의 시 흐름에서「봄은 고양이로다」는 감상적 낭만성을 극복하고 현대성을 획득한다(이승훈, 『한국 모더니즘 시사』, 문예출판사, 2000. 참고). 비록 그의 모든 작품에서 이런 면모가 보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시를 당시에 쓸 수 있었던 것은 이장희의 독특한 시세계로 보여진다.   ○ 직유는 대체로 사물의 감각적 묘사보다는 사물을 산문적으로 설명하는 폐단이 있다. 따라서 같은 비유의 방법이라 하여도 은유의 방법이 시로서는 더욱 적절하다.   ○ 은유의 방법에 따라 하나의 사물을 묘사하는 전봉건의 를 보자.   ○ 언어를 감각적으로 시의 형식을 빌어 쓸 때, 시는 묘사적 양식을 지향한다. 말하자면 언어가 사물의 감각성을 드러낼 때 그것을 우리는 심상(이미지)이라 부르는데, 언어가 운율적으로 이미지를 생산하거나, 언어가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한 해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 흩날리는 눈발을 본다.   흩날리는 눈발에 섞여 흩날리는 작은 나비들을 본다.   한 해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 흩날리는 눈발은 이내 그치고 작은 나비들도 꿈처럼 사라진다.       ○ 이 시에서 시인이 보는 것은 겨울 저녁의 눈발이다. 1연에서 시인은 ‘흩날리는 눈발을’을 본다. 2연에서는 ‘작은 나비들’로 변용된다. 시인은 눈발을 나비들에 비유함으로써 눈발에 대한 독특한 감각을 보여준다.   ○ 은유는 소박하게 정의하면 표면적으로 다른 두 사물 사이에서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가하면 사물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으로는 이렇게 비유의 방법에 기대지 않고 사물의 구체적 감각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법이 있다.   ○ 김춘수의 의하면 사물을 비유적으로 묘사할 때는 묘사적 이미지, 사물을 어떤 비유에도 기대지 않고 묘사할 때는 사물적 이미지가 드러난다. 전자는 이미지가 어떤 관념을 말하기 위한 도구가 되며 , 후자는 이미지 자체를 위한 이미지가 된다. ○ 이런 유형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시로 김춘수의 을 들 수 있다.   눈 속에서 초겨울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               --- 사물의 감각적 특성 서울 근교에서는 보지 못한         --- 시인의 관념 진술 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 그것을 쪼아먹고 있다                 --- 사물의 감각적 특성 월동하는 인동잎의 빛깔이           --- 시인의 관념 진술 이루지 못한 인간의 꿈보다도        --- 시인의 관념 진술 더욱 슬프다                                 --- 시인의 관념 진술           ○ 어떤 관념도 드러내지 않고 사물을 묘사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묘사시에서는 보여주기라는 묘사와 관념적 진술이 함께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화자의 반응, 심리, 생각 - 주관적 정서가 꼭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 위 시의 경우, 3행과 6,7,8행에서는 사물의 감각적 특성이 아니라 시인의 관념이 드러나고 있다. 나머지 시행들에서는 초겨울의 붉은 인동초의 열매에 대한 감각성, 특히 시각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한 시각적 ‘한 해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에서 읽을 수 있었던 비유의 방법에 기대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사물의 사물성을 드러내는 시를 ‘사물시’(physical poetry)라 한다.     3. 이미지(image)시 쓰기       ○ 비유적 묘사를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미지시로 발전한다. 이미지시는 시의 구체성을 확보하고, 환기력을 높여주며, 신선감을 가져다 준다.   ○ 이미시의 대두 배경     이미지시 ---감각적 정서를 환기 관념시-----지적 사유를 매개로 하여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독자들에게 인식     (1) 관념의 횡포를 증오하는 새로운 독자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현대시에서 시의 회화성이 지배적인 요소가 됨. (2) 현대시에서 시의 이미지가 강조되는 것은 현대 과학문명 자체가 가시적인 실증성을 바탕으로 한 시각형의 문화가 창출한 데서 비롯됨. (3) 주관적인 사상과 감정을 재구성하면서 시의 대상에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회화적 이미지를 주로 사용함. (4) 이미지는 언어에 의해 조직화한 그림이며 , 대상에 대한 감각적, 지각적 체험을 신선하고 강렬하게 환기시키면서 비유와 상징을 결합하는 것 (5) 이미지의 시적 기능은 크게 의미의 전달과 정서 환기로 나누어질 수 있다.     (1) 심리적 이미지(정신적 이미지, 지각이미지)   ○ 심리적 이미지는 시인이나 독자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감각적 체험과 인상을 중시한다.     ① 시각적 이미지     나의 심장 앞에서 나의 불을 지키는 피의 사냥개 내 비참의 교외(郊外)에서 쓰거운 콩팥을 먹고 사는 새                      너의 혀의 젖은 불꽃으로 내 땀의 소금을 핥아라 내 죽음의 설탕을 핥아라                               -    Ivan Goil 부분         ○ 시각적 이미지는 가시적 대상이나 추상적 관념을 재생하고 묘사하는 기능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체험을 독자들이 볼 수 있게 바꾸어 놓는다.   ○ 시인은 백혈병에 대한 자신의 절망감을 ‘피의 사냥개’로 가시화시켜 다른 이들에게는 막연하고 모호한 것을 명확하게 그려냄으로써 생생한 고통의 체험을 독자들에게 환기시켜 예술적 감동을 느끼게 한다.       ② 청각적 이미지   明明한 明明한 매미가 우네                             박재삼 부분     ○ 이도령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춘향이의 시점에 선 화자가 한 여름 숲에서 매미 우는 소리를 ‘明明한’ 소리를 들음으로써, 반가운 임의 말소리, 미더운 발소리, 대님 푸는 소리 등으로 자연스럽게 연상시켜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 특히 의성어를 구사한 ‘明明한’ 이미지는 의미적 요소와 결합되어 기다리는 이의 어두운 마음을 스스로 밝은 마음으로 바꾸어내는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한다.     ③ 후각적 이미지     혼자 몰래 마신 고량주 냄새 조금 몰아내려 거실 창을 여니 바로 봄밤 하늘에 달무리가 선연하고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비릿한 비 냄새 겨울난 화초들이 심호흡하며 냄새 맡기 분주하다                                                                                  황동규 부분       ○ 고량주의 냄새를 조금 내보내려던 화자가 창을 여니, 오히려 봄밤의 비릿한 비 냄새가 코 끝에 스쳐오고, 겨울을 난 화초들도 심호흡하여 봄냄새 맡기에 분주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시인은 후각적 이미지를 통해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사물들이 서로의 체취를 맡으며 왕성한 생명력을 새롭게 교감하는 미적 체험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④ 미각적 이미지     메밀묵이 먹고 싶다 그 싱겁고 구수하고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촌 잔칫날 팔모상에 올라 새 사돈을 접대하는 것                                              박목월         ○ ‘싱겁고 구수한’ 메밀묵 맛을 통해 인간의 유한성을 오히려 아름다운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화자의 인간미를 돋보이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각적 감각은 감각 자체로 끝나지 않고,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전통적인 인간미로까지 확장한다.         ⑤ 촉각적 이미지                         젖은 안개와 혀와 街燈의 하염없는 혀가 서로의 가장 작은 소리까지도 빨아들이고 있는 눈물겨운 욕정의 親和                                                 정현종 부분           ○ 사물인 안개와 街燈의 관계를 시인 나름의 느낌으로 그리고 있다. 안개와 가등의 존재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젖은 안개의 혀'와 ’ 가등의 하염없는 혀‘처럼 촉각적 느낌으로 구체화시키면서, 그 교감의 밀도 있는 흐름을 감지하기 위해 ’작은 소리까지도 빨아들이고 있는‘ 청각적 이미지와 근육감각적 이미지를 아울러 구사하고 있다.       ⑥ 역동적 이미지     어떤 놈은 화분에서 흘러내리는 폭포가 되어 빛깔의 어기찬 흐름을 흐르고 어떤 놈은 하늘이라도 받들었는가 하나의 발족한 소반이 되어 하늘의 이슬을 받고 있다                                                                                                 박남수 부분       ○ 역동적 이미지는 정지적 이미지의 대립적 개념이다. 이 시에서는 국화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폭포를 방불케 하는 ‘빛깔의 어기찬 흐름’으로 보고, 또 하늘을 떠받들기라도 할 듯 ‘발족한 소반’처럼 오뚝이 서서 하늘의 이슬을 받고 있다고 표현한다.   ○ 시인의 개성적인 시각은 진부한 우아함이 아니라 꽃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곧고 강인한 생명력과 힘찬 순수성을 발견함으로써 새롭고 신선한 이미지를 찾아낸 것이다.     ⑦ 공감각적 이미지     물에서 갓나온 여인이 옷 입기 전 한 때를 잠깐 돌아선 모습   달빛에 젖은 塔이여!   온 몸에 흐르는 윤기는 상긋한 풀내음새라                                               조지훈< 여운> 부분         ○ 이 시의 중심 소재는 탑이다. 달빛 아래 서 있는 탑의 모습은 시인과의 상상력 속에서 ‘물에서 갓나온 여인’으로 바뀌면서, 종교적 심상인 성(性)스러움이 스스럼없이 생생하게 교감되고 있다.     ○ 달빛을 물의 이미지로 치환한 것은 시각의 촉각화이며, ‘온몸에 흐르는 윤기’를 ‘상긋한 풀냄새’로 옮기는 것도 시각적 이미지에서 후각적 이미지로 전환된 것이다. 이 시는 공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성,속의 미적 경지를 훌륭하게 결합시키고 있다.       (2) 비유적 이미지     ○ 이 세상은 실제로 무수한 비유가 서로 엉켜 존재한다. 시의 비유적 이미지는 시의 내포성과 더불어 비유의 개념이 새롭게 인식되면서 심리적 이미지보다 현대시의 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게 되었다.   ○ 이질적인 두 사물을 극적으로 결합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비유적 이미지인데, 비유적 이미지의 일반 유형은 직유, 은유, 제유, 환유, 의인화, 풍유 등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① 은유적 이미지     ○ 두 이미지(언어) 사이의 역동성과 긴장성에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역동성과 긴장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두 언어가 고정됨 관념으로 환원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바로 창의적 이미지가 요구되는데, 창의적 이미지는 은유적 이미지의 역동성에 의해 산출된다. 이 역동적 은유는 내포의 동질성과 외연의 이질성 사이의 긴장관계에 의해 설립된다.     물로 되어 있는 바다 물로 되어 있는 구름 물로 되어 있는 사랑 건너가는 젖은 목소리 건너오는 젖은 목소리                                      정현종 부분       ○ 이 시에서 ‘술’의 이미지와 ‘바다’,‘구름‘,’사랑‘의 이미지는 서로 이질적인 존재로 병치되고 있지만, 시인의 의식 속에서 그것은 일차적으로 물을 매개로 결합되고, 이차적으로 물과 술이 매개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술에 취해 주고 받는 사랑의 대화 속에서 젖은 목소리가 연역된다.   ○ 시인은 이제 무수한 수평과 수직을 가로지는 바다와 구름의 거대한 존재가 사랑이라는 젖은 감정 속에 하나로 통합되는 원리를 독자들에게 환기시켜 준다.     ② 환유적 이미지   ○ 은유적 이미지가 정서, 사상, 윤리 등의 주관적 요소를 개관적 상관물을 통하여 객관화하는 구조를 지닌 반면에 환유적 이미지는 언어의 지시성을 통해 외부 대상을 형상화하기 때문에 객관적 대상, 배경, 사건을 내면적으로 자기인식화하는 구조를 드러낸다.   ○ 정서 중심의 은유적인 이미지의 시는 객관적 상관물을 배경으로 자기 인식을 환기시키며 인식 중심의 환유적 이미지의 시는 어떤 배경, 사건에 대한 인식 및 자기 인식이 중심이 된다.     눈 덮힌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한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 듯 차창이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몸부리친다.                                   오장환       ○ 이 시에서 ‘눈 덮인 철로’, ‘소반 귀퉁이’의 ‘농군‘, ’어린애‘의 울음 등의 이미지는 내포적 문맥이 아니라 지시적 문맥 속에서 결합된 환유적 이미지이다. 시인은 배경과 사건을 전경화함으로써 현장감을 환기시키면서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하는 궁핍하고 참담한 이농민의 전형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3) 상징적 이미지     ○ 상징은 비유와 함께 시의 내용을 이미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비유는 두 이미지를 결합시키는 반면, 상징은 하나의 이미지만을 표면에 내세운다. 곧 상징은 매재(보조관념)의 이미지만을 사용하여 본의(원관념)를 연상시키는데, 상징적 이미지가 본의를 연상시키는 힘은 시의 전체 문맥 속에 퍼져 있다. 그래서 시인이 유사한 비유적 이미지만들을 반복해 서 사용할 때 취의를 생략하고 매재만 사용해도 우리는 숨겨진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 반복 양상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의 다발은 하나의 통일된 이미지로 회귀하면서 상징적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비유적 이미지를 이미지의 사용이 전제된다는 점에서 상징은 “확장된 비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상징적 이미지의 본의는 비유적 이미지의 본의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고 암시적인 성격을 띤다.   ○ 상징적 이미지의 효과는 매재의 이미지가 얼마나 생생한가. 혹은 그 이미지가 본의를 얼마나 강력하게 환기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보편적 상징, 곧 인습적인 상징은 본의를 환기시키는 힘은 크지만, 창의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지만 반대로 개인적 상징은 독창적이지만 본의를 환기시키는 힘이 미약해 난해한 이미지를 종종 산출해 나쁜 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 따라서 시적 상징은 이미지가 독창적이면서도 본의를 환기시키는 힘이 큰 보편성을 띠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 사랑을 잃은 화자는 ‘짧았던 밤들’,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 등 비유적 이미지들을 구사하면서 사랑의 열망을 떠나 보내고 난 후의 절망감과 허무를 “빈 집”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 대화를 활용한 비유적(감각적, 상상력, 이미지시를 위한)인 시 쓰기 훈련   ① ______________________를(가) 보고 싶으면(싶을 때) ① “누군가(무엇인가)를 보고(먹고,) 싶을 때 ( 누구 / 무엇 )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유롭게 떠올려봅시다” (시간을 두고 나서)   대답 :“민정이요”, 혹은 “조카의 웃음이요”   ② 내 몸은 ___________________같이 ___________________ 다. ② “떠올렸더니, 그럼 보고싶을 때 몸이 어떠니? (비유) (온도-촉각적 표현) 따뜻하니? 뜨겁니?”   대답 : “뜨거워요” 혹은 “따뜻해요”   “ 무엇처럼 뜨겁니(따뜻하니)?”   대답 :“ 끓는 주전자 같아요.” 혹은 “아랫목에 묻어둔 밥그릇 처럼요.”   ③ 내 마음은 __________________같은 __________________ 인데, ③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해보자. 보고싶은 마음 (소리-청각적 표현) (색깔-시각적 표현) 은 무슨 색이지?”   대답 : “빨강이요.” 혹은 “은빛색이요”   “잘 들어 봐! 빨강, 빨강.” “들었지? 빨강(은빛색)은 무슨 소리와 같지?”   대답 : “빨강은 달리는 기차소리요.” 혹은 은빛색은 출렁거리는 바닷물소리요.“   ④ 그것은 -------------- 이다 ④ “또다시 새로 시작해 보자. 보고 싶은 마음 (맛-미각적 표현) 은 무슨 맛이지?”   대답 “맛있는 햄버거맛이요.” “달콤한 박하 사탕맛이요.”   ⑤ _________________는 ______________________이다. ⑤ “ 하나만 더 해보자. 그 보고싶은 마음 (누구 / 무엇) (냄새-후각적 표현) 무슨 냄새지?“   대답 : “피자 냄새요.” “고기 굽는 냄새요.” “갓 구워낸 버터빵 냄새요.”   * 반전 혹은 비약으로 연(聯)을 준다.     ⑥ _________________는 ____________________을 떠올리게 한다. ⑥ 마지막으로 연상을 해보까요? 누군가(무 (누구 / 무엇) (사물, 풍경, 기억) 엇인가)는 무엇을 떠올리게 하나요?   대답 : “예술의 전당의 음악분수요.”          “ 내 삶의 비타민이요.”       ● “그러면, 지금까지 적은 것을 활용하여 다음 빈 칸에 짧은 시로 만들어 볼까요?”                         예시 (1)   민정이가 보고 싶을 때   내 몸은 끓는 주전자같이 뜨겁다. 내 마음은 달리는 기차소리 같은 빨강색이 된다 그 보고 싶은 마음은 맛있는 햄버거 맛이고, 피자 냄새다.   민정이는 예술의 전당의 음악분수다.           예시 (2)     조카의 웃음이 보고 싶으면   내 몸은 아랫목에 묻어둔 밥그릇처럼 따뜻해진다 내 마음은 아침바닷물처럼 은빛색깔로 출렁거린다 그 맛은 달콤한 박하사탕맛이다. 조카의 웃음은 갓 구워낸 버터빵 냄새다.   조카의 웃음은 내 삶의 비타민이다.         4. 사물시(physical poetry) 쓰기       (1) 사물시 : 사물에 대한 느낌의 미학(aesthetics) : 감성적 느낌(feeling) - 감각(sensation) - 감동(感動)   ○ 美 : 자연 • 인생 • 예술에 담긴 아름다움의 현상이나 가치 그리고 체험 따위   ○ 미적사실(美的事實) : 심리학•사회학•철학 등 다양한 각도에서 시도할 수 있으며, 또한 미적 사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미학의 성격도 달라진다. 미적 사실을 아름다움을 가능케 한 창조적 심리로 본다면, 우리는 미학이 창조적 심리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산출된 아름다움 자체.   ○ 미학은 플라톤에서 비롯되었지만, 미학을 독립된 학문으로 정립한 자는 독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이며, ‘감성적 인식의 학문(Scientia Cognitionis Sensitivae)’이라는 의미로서 에스테티카(aesthetica : 그리스어의 감성적 aisthetikos라는 말에서 유래)라는 명칭을 사용한데서 기인한다. 그는 볼프와 라이프니츠가 이성적 인식이론을 체계화하여 논리학을 수립한 것에 대하여 감성적 인식 이론을 확립하려고 했다.   ○ 이후 미학은 대체로 관념론적 미학과 경험주의 내지 심리학적 미학 등으로 나뉘어 전개되었다.   ● 관념론적 미학의 창시자는 칸트인데, 그는 미와 예술에 있어서 관념을 넘어선 경험적 판단을 인간의 정신능력 가운데 중요한 측면으로 파악하며, 이것을 미적 판단력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또한 미적 판단력이 오성(悟性) • 이성(理性) 등과 병치(竝置)되는 상태에서 존재하는 인간의 정신 능력이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미적 판단력은 특수한 인식능력이다. 칸트 이후 이러한 선험적•비판주의적 미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철학자로 쉘링 • 헤겔 • 쇼펜하우어 등이 있다.   ● 경험주의 내지 심리학적 미학은 19세기 말 실증주의(Positivism)의 전개에 힘입어 형성된 미학이다. 이 미학은 특히 실험적 방법에 의지한다. 특히 립스나 폴켈트 등이 내세운 감정이입설(感情移入說, Empathy)은 경험 및 심리 작용을 잘 설명해준다. 한편으로 미적 규범의 문제를 다루는가 하면, 심리학적인 입장에서 미적 형식의 문제를 다루며 미적 관조의 구조도 파헤치고자 시도한다. 이와 같은 경험주의의 입장은 프랑스 역사학자인 텐느와 기요 등에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사회학적인 방법을 활용한 미학을 성립시켰는가 하면 예술학의 토대를 닦기도 했다.   ● 20세기 독일 철학자 후설은 현상학(現象學)을 도입한 현상학적 미학을 성립한다. 그밖에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듀이의 프래그머티즘 형에 속하는 미학,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미학 등이 있다.     (2) 사물의 속성을 살려 쓰기, 시 비교해 보기                    불빛 나가는 창가에 줄을 쳐 놓았다 새소리와 꽃향기를 가로 막고 내 집을 기둥 하나로 삼아 농부가 논두렁에 쪼그려 앉아 있다                                         함민복 전문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된다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슬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곤충의 마지막 날개짓이 그물에 걸려 멈춰 있듯 사내의 맨 나중 생이 공중에 늘어져 있었다   그 사내의 눈은 양조장 사택을 겨누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당겨질 기세였다 유서의 첫 문장을 차지했던 주인공은 사흘 만에 유령거미 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조장 뜰에 남편을 묻겠다던 그 사내의 아내는 일주일이 넘어서야 장례를 치렀고 어딘가로 떠났다 하는데 소문만 무성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그 사내의 집을 거미집이라 불렀다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                                          박성우 전문           그는 목수다 그가 먹줄을 튕기면 허공에 집이 생겨난다 그는 잠자리가 지나쳐 간 붉은 흔적들을 살핀다 가을 비린내를 코끝에 저울질해 본다 그는 간간이 부는 동남쪽 토막바람이 불안하다 그는 혹시 내릴 빗방울의 크기와 각도를 계산해 놓는다 새털구름의 무게도 유심히 관찰한다 그가 허공을 걷기 시작한다 누군가 떠난 허름한 집을 걷어내고 있다 버려진 날개와 하루살이 떼 돌돌 말아 던져버린다 그는 솔잎에 못을 박고 몇 가닥의 새 길을 놓는다 그는 가늘고 부드러운 발톱으로 허공에 밑그림을 그려넣는다 무늬 같은 집은 비바람에도 펄럭여야 한다 파닥거리는 가위질에도 질기게 버텨내야 한다 하루 끼니가 걸린 문제다 그는 신중히 가장자리부터 시계방향으로 길을 역고 있다 앞발로 허공을 자르고 뒷발로 길 하나 튕겨붙인다 끈적한 길들은 벌레의 떨림까지 중앙 로터리에 전달할 것이다 그가 완성된 집 한 채 흔들어 본다 바람이 두부처럼 잘려 나가고 거미집이 숨을 쉰다                                                                             김두안 전문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그물을 짠다 잡는 즉시 단단히 포박한 채   투명한 유혹의 은실을 풀어 고문하듯 뒤틀고 뒤집고 까봐야 한다 끈끈한 욕망의 신경을 늘여 실컷 두들겨 혐의가 풀린 다음 그물을 친다 꼭꼭 씹어 먹어야 좋은 실이 뽑히듯 씨줄과 날줄을 걸어 오늘도 나는 그물을 짠다 사방팔방 짜 늘인 레이스 빈방에 홀로 웅크린 거미처럼 경계가 삼엄한 레이더망이다 은빛 투명한 그리움 풀어 지난 과오를 줄줄이 실토하듯 막막한 허공에 그물을 친다 감히 공중에 내건 죄가 온 하루 날파리를 기다리다 지치면 저토록 길고 아름다울 줄이야 내가 친 그물에 매달려 속셈이 교활한 자의 언어는 늘 대롱대롱 그네나 타고, 때로는 현란하고 멋지고 향기롭다지? 가장 팽팽한 현을 골라 그러니까 머리만 큰 짐승이 뱉어낸 차이코프스키의 을 탄주한다. 달변과 혀를 조심하도록 그건 대개 사람 잡는 덫이 아니면 어디서 슬쩍 해온 장물이므로 저런! 그새 또 걸려들었군                                                   임영조 전문       ○ 위의 시들은 같은 소재의 ‘거미’지만 소재에 대해 접근 방식들이 모두 다르다. 특히 시인마다 사물의 감각적 특성과 그 사물에 대한 관념의 진술이 시마다 각기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 사물 중심의 시는 이미지스트 시인들의 시, 일반적으로 물질현상을 노래하는 시, 순수시 등을 포함한다. 이미지스트 시인들은 사물을 사물성 속에서 제시한다. 순수시는 사물시의 변주이며, 죠지 무어처럼 이미지의 구성을 통한 순수한 재현ㆍ관조의 세계를 창조한다.   ○ 사물시는 이미지스트의 시이든, 일반적 개념으로서의 시이든, 순수시이든 한결같이 관념을 죽임으로써 관념의 허위에서 벗어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미지스트의 경우, 체계적인 추상화의 세계, 곧 과학의 세계에 대한 혐오가 시적 동기를 이룬다.   (3) 내가 사물로서 주인공 되어보기                      너의 좁은 아파트 한 구석            시든 꽃잎 하나 헉! 소리를 내며            우글쭈글해진 모노륨 마루 위에 눕는 소리 들린다.             - 땅에 내려가고 싶다             누가 흑흑 흐느끼기 시작한다 .                                         강은교 전문           ○ 리모콘, 휴대폰, 연필, 스탠드, 화분, 시계, 거울 - 주위에서 온갖 사물 중 시의 소재로 삼을 만한 것들을 많이 발견해 내는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그 능력은 달리 말하면 관찰력과 상상력이다.   ○ 유심히 주변을 관찰하면 쓸거리, 글 쓸 꼬투리는 무궁무진하다. 쓸거리가 많으면 글 (시)을 자꾸 쓰고 싶어지고, 마땅한 소재를 찾지 못하면 글(시) 이 잘 안 씌어진다. 글감 선택의 능력과 관찰력, 상상력, 통찰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연습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 어떤 사물을 보고 고정관념에 얽매인,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 따분하고 재미없는 접근은 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1) 끊임없이 사물의 속성을 재해석하고, 2) 확장시켜나가고 3) 부정하고 거꾸로 생각해보고 4) 사물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5) 낯설게 보는 곳에서 6) 남과 달리 보는 데서 시는 탄생한다. 7) 그래서 사물의 본래 모습, 혹은 또다른 모습을 찾아준다.       (4) 사물의 속성에 의미를 부여하기 ( 본 것(사물 현상, 속성)을 정신(관념)으로 진술하기)     ○ 본 것의 현상, 속성을 + 새롭게 발견된 사실이나 삶(존재)의 의미, 깨달음으로 진술해 나가는 방법이다. 문학은 인간의 지각과 상상력을 넓혀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낙엽도 방금 떨어진 낙엽은             살아 있는 것 같다             웃는 것 같다             말하는 것 같다             나뭇가지에 매달아 주면             다시 나무랑 살겠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생진 전문(2012.11.7)           이놈을 잡는 일은 너무 쉽다 줄에 소라껍질을 매달아놓으면 은신처로 알고 들어가 걸려드는데 문제는 문단속을 잘한다는 것 혹시 남에게 들켜 잡아먹힐까봐 펄을 뭉쳐 입구를 꽉 틀어막다보니 퇴로도 없이 잡히고 만다 바보같이 ‘나 여기 들어 있소’ 자수하거나 ‘눈 가리고 야옹’인 셈이다 하여 입구가 막힌 소라껍질 속에는 틀림없이 쭈꾸미가 들어있다 어부는 옛날 처녀 보쌈해오 듯 그냥 걷어오기만 하면 된다.   세상에는 지나치게 문단속 잘해 폐가망신당한 사람들이 있다.                                                         김선태 부분           ○ 시인에게 있어 자연과 사물이란 우주의 섭리, 비밀을 풀어가는 열쇠요, 인간의 지각과 상상력을 넓혀가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김선태의 시 에서는 쭈꾸미의 생리를 통하여 인간의 어리석음을 발견해 낸다. 그는 남도의 목포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시간만 나면 섬으로, 바닷가로, 갯벌로 시 사냥을 나간다. 그의 시에는 연체동물이나 꽃게, 숭어, 우럭, 홍어, 말미잘, 개불 등 물고기만을 엮어 올리는 것이 아니다. 한층 더 파고들어 물고기를 통해서 보는 인간 세상의 모습이라든가, 남도 바닷가 사람들과 풍경과 그윽한 향수를 수거하여 시편들 속에 담아낸다. 섬마을의 이팝나무를 조상들의 유산인 ‘쌀밥’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해안선을 어머니의 치맛자락으로 묘사하거나, 갯벌을 ‘넉넉하고 깊은 그늘’을 드리운 ‘진창의 노래판’으로 인식해 ‘잘 삭은 적막’과 ‘절창’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또 진주조개에서 ‘찬란한 중심에 스며 있는 고통’의 삶을 통찰해 내기도 한다.                     처마 끝에 매달린 옥수수 봄볕에 슬몃슬몃 눈을 뜬다 질끈 머리를 틀어 올리고 알몸으로 겨울을 버틴 씨옥수수 따순 바람에 발이 가렵다 알알이 쟁여둔 욕망들 웃자란 몸 속의 뿌리들 우르르 봄을 향해 발을 뻗는다 세상으로 뛰쳐나갈 신호를 기다린다 딱딱한 알갱이 속, 저 푸른 풀씨들               들판에 확, 불이 붙겠다                                                         마경덕 전문                       구르는 것이 일생인 삶도 있다 구르다가 마침내 가루가 되는 삶도 있다 가루가 되지 않고는 온몸으로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뜨겁게 살 수 있는 길이야 알몸밖에 더 있느냐 알몸으로 굴러가서 기어코 핏빛 사랑 한번 할 수 있는 것이야 맨살밖에 더 있느냐 맨살로 굴러가도 아프지 않은 게 돌멩이밖에 더 있느냐 이 세상 모든 것, 기다리다 지친다 했는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지치지 않는 게 돌밖에 더 있느냐   빛나는 생이란 높은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치열한 삶은 가장 낮은 데 있다고 깨어져서야 비로소 삶을 완성하는 돌은 말한다 구르면서 더욱 단단해지는 삶이 뿌리 가까이에 있다고 깨어지면서 더욱 뭉쳐지는 돌은 말한다                                       이기철 전문         ○ 사물시는 하나의 사물을 글감으로 삼아 특징, 성질, 속성을 꼼꼼하게 묘사하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시이다.   ○ 우리 주위의 흔한 사물을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시인이고 작가다. 여기에서 글쓰기는 출발한다. 주위의 사물을 잘 관찰하고 관심을 갖고 몰입하고, 상상력을 부여하여 속성을 깊이 들여다보면 통찰의 세계가 발견된다. , 관계짓기를 잘 발휘하면, 그리고 나만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나가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이른 아침 거울을 보며     스스로 목을 맨 올가미가       온종일 나를 끌고 다닌다       사무실로 거리로       찻집으로 술집으로       또 무슨 식장으로 끌고 다닌다       서투른 근엄을 위장해 주고       더러는 나를 비굴하게 만들고       갖가지 자유를 결박하는 끈       도대체 누굴까?       이 견고한 줄로       내 목을 거뜬히 옭아 쥔 者는...       답답해라       어머니의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이후       나는 아무런 줄도 잡지 못하고       불안한 도시 안개 속을 헤매는 羊       제발 정신 좀 차려야지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하면서       뒤틀린 넥타이를 고쳐 매지만       나는 다시 고분고분 길들여진다             낯선 시간 속으로               바쁘게 끌려가는 서러운 노예처럼                                      임영조 전문           (5) 사물의 속성에 따른 비유적 관계짓기       ○ 이 세상의 사물들은 다 연관되어 있다. 사물들은 서로 다르지만 연상과 상상을 통하여 같은 속성, 곧 유사성을 발견해 나가는 비유적 관계짓기가 곧 시의 세계다. 그래서 시는 비유덩어리가 아닌가.                   모두들 못생겼다고 하지만 모과는 얼굴이 아니고 주먹이다 돌덩이만큼 단단한 주먹이다                                                                           이 안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출옥하면 또 무슨 일을 저질을 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다                오랜 연금으로 흰 뼈만 앙상한 체구에 표정까지 굳어버린 돌대가리를 언제나 남의 손 끝에 잡혀 머리부터 돌진하는 下手人이다.               어둠 속에 갖히면 누구나 오히려 대범해지듯 저마다 뜨거운 敵意를 품고 있어 언제든 부딪치면 당장 焚身을 각오한 요시찰 인물들 그들은 지금 숨을 죽인 채 어두운 棺 속에 누워있지만 한 순간 화려하게 데뷔할 절호의 챤스를 노리고 있다 빛나는 출세를 꿈꾸고 있다 임영조 전문   이 시대에 희한한 聖者 親水性 체질인 그는 성품이 워낙 미끄럽고 쾌활해 누구와도 빈말 없이 친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온몸을 풀어 우리 죄를 사하듯 더러운 손을 씻어주었다 밖에서 묻혀오는 온갖 불순을 잊고 싶은 기억을 지워주었다                                          임영조 전반부           세 자매가 손을 잡고 걸어온다    이제 보니 자매가 아니다 곱추인 어미를 가운데 두고 두 딸은 키가 훌쩍 크다 어미는 얼마나 작은지 누에 같다 제 몸의 이천 배나 되는 실을 뽑아낸다는 누에 저 등에 짊어진 혹에서 비단실 두 가닥 풀려 나온 걸까 비단실 두 가닥이 이제 빈 누에고치를 감싸고 있다               그 비단실에 내 몸도 휘감겨 따라가면서 나는 만삭의 배를 가만히 쓸어안는다                                      나희덕 전문         ○ 우리 주위의 흔한 사물을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시인이고 작가다. 여기에서 글쓰기는 출발한다. 주위의 사물을 잘 관찰하고 관심을 갖고 몰입하고, 상상력과 통찰, 관계짓기를 잘 발휘하면, 그리고 나만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나가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 우리말의 ‘짓다’라는 단어를 다시금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이 단어는 ‘집을 짓다’, ‘밥을 짓다’, ‘옷을 짓다’, ‘다리를 짓다’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만든다’는 것이 기본적인 의미자질이다. 이러한 기본의미에서 전이되어 ‘글을 짓다’, ‘시를 짓다’, ‘소설을 짓다’ 등으로 쓰인다. ‘만들기’는 ‘형성하기’이기도 하다. 이는 독일어의 ‘만든다’는 의미의 동사 빌덴(bilden)과 그 명사형 빌둥(Building)에 상응한다. 독일어에서 교양소설을 ‘빌둥스로만(Bildungsroman)’이라고 하는 것은 한 인간의 형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조어법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상상력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만들고 형성하는 능력을 뜻한다.     ○ 사물의 겉모습을 보여주는 묘사에서 그치지 않고, 상투성의 껍질을 벗겨가다 보면 맛깔스런 과육, 속살이 보인다. 과일에게서 속살의 의미(정신)는 무엇인가? 이것을 나의 일상사에 비춰본다면 여기에서 발견하는 그 어떤 관념이 존재한다.   ○ 마중물을 아는가. 양질의 생명수를 얻으려면, 사물의 또다른 본질, 의미를 찾아내려면 한 바가지, 두 바가지 마중물을 넣고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탁한 물이 나오게 마련, 사물의 관조와 몰입- 상호텍스트의 관계짓기, 스키마, 연상, 상상, 비유적 상상 등에 매진하다 보면 나중에는 맑고 차가운 생수가 나오기 시작한다.   ○ 시란 생수와 같은 대상의 비밀을 캐내는 작업이다. 현실적, 실용적, 일상적, 논리적 관찰을 거부하고 그 안에 잠재되어 있는 새로운 의미를 읽어내려고 하는 노력에서 비로소 그 대상은 자신의 비밀을 열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6) 사물 수필의 예                                                        명품                                                                                                             홍경희 (수필가, 경인문학회)    주책스럽게도 백발에 어울리지 않게 나는 쓰는 도구들을 좋아한다. 뾰족한 모양을 내서 예쁘게 깎을 수 있는 연필,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써지는 볼펜, 꼭지만 누르면 심 조절이 가능해서 편리한 샤프, 시끄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는 데는 제일인 붓, 정봉 중봉 세필 등의 필기구이다.  연필에 대한 욕심은 국민학교 때부터인 것 같다. 공부는 지질하게 하면서도 내 함석필통은 키가 제각각인 연필들이 잘 깎여진 채로 올망졸망 가득 차 있곤 했다. 어쩌다 친구가 가진 연필이 욕심 날 때는 만화책을 빌려주거나 물물교환으로 기어코 내 것을 만들고야 마는 집념까지 있었다.  나는 또 만화책을 동무들이 부러워 할 만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유는 아버지가 근무하던 은행이 학교 담과 붙어 있는지라 쉬는 시간이라도 달려가 떼를 쓰면 용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가 사고 싶거나 보고 싶은 물건을 학교 앞 문구점이나 서점을 통해 곧잘 구할 수 있는 때문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해진다.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사무실로 불숙불숙 찾아오는 딸이 귀여워서라기 보다 창피해서 선뜻 돈을 쥐여 주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제일 예뻐한다는 착각 속에 철없는 유년을 그렇게 보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연필회사인 독일의 ‘파버카스텔’ 에는 백 만원이 넘는 연필이 있다고 한다. 대 문호 궤테를 비롯해서 화가 빈센트, 반고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그라스 ,영국 수상 처칠,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애용하던 연필이 이 회사 제품이라고 한다. 이렇게 유럽의 귀족이나 국제적 명망가들의 애장품이 된 것은 우연히 그들이 먼저 쓰게 되서 유명해진 것인지 아니면 유명회사의 연필이어서 그들이 쓰게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명품브랜드의 값을 높이는 데는 그들의 공이 크다고 볼 수 있겠다.  볼펜에 욕심이 많은 내게 손녀는 빈번이 제 필통을 열고 갖고 싶은 걸 고르라고 한다. 그리고 아들은 출장길에 기내에서 받는 볼펜과 호텔에서 색다른 모양의 볼펜이나 연필이 눈에 띄면 챙겨다 준다. 이렇게 출신지가 각각 다른 심이 가늘고 굵고, 여러 색을 내는, 이름도 가지가지의 볼펜들로 문구점에 가는 번거로움 없이도 내가 가진 네 개의 필통은 늘 배가 부르다.  이번에 새 식구가 늘었다. 아들이 작년에 박사학위 받을 때 들어온 선물이라며 까만 몸통에 은테를 두르고 뚜껑에는 흰 꽃을 얹은 중후한 모습의 볼펜 하나를 가져왔다. 언뜻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데 그거야 말로 명품이란다. 나는 눈물날 것같이 감격했고 기뻤다. 명품이라서? 아니 그건 절대 아니고 짜-ㄴ 한 안스러움과 대견함에서 오는 에미의 마음에서였다. 직장 다니며 자식들 가르치며 남보다 곱절의 고생으로 일궈낸 형설지공(螢雪之功). 조금의 뒷받침도 못 해 준 부모의 미안함 때문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 의미를 지니고 내게로 온 그 까만 볼펜은 명품중의 명품임은 물론이고 대대로 소장(所藏)하는 가보(家寶)로 삼을 작정이다. 자랑할 기회가 있을 때 언제 어디서나 꺼내 자랑하려고 핸드백 속에 늘 넣고 다닌다. 희망사항 일 뿐이지만 내가 언젠가 그럴듯한 책을 쓴다면 이 볼펜으로 싸인을 해서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꿈은 항상 착각 속에 꾸는 것일까.  대학생인 손녀는 요즘도 필통을 열고 내게 자유 선택권을 준다. 할머니에 대한 최대의 사랑 표현 방법이다. 이렇게 모여든 사랑 때문에 가슴은 늘 훈훈하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 볼펜들 하나 하나가 내겐 소중한 명품이 아닐까 생각하며 불룩한 네 개의 필통을 어루만져 본다                                                                아주 특별한 만년필 문화                                                                                                                                 류종호(인천문협 이사. 시인)    내게 좋은 만년필을 꼽으라면 파카(Parker), 파이롯트(PILOT), 몽블랑(montblanc), 쉐퍼(Sheaffer), 워터맨(waterman)을 말하고 싶다. 가격은 변론으로 한다. 파카는 오랜 세월 우리의 인식에 뿌리박힌 만년필이다. 파카21, 파카29, 파카45, 파카51 등 다양한 모델에 관해 들었을 것이다.  파카 만년필 한 자루 갖고 싶던 학창시절이 엊그제 같다. 파이롯트 만년필도 파카 못지않게 익숙한 이름이다. 지금은 대중적인 국산 모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종각에 파이로트 대형 매점이 있긴 하나 과거와는 많이 다른 양상이다. 몽블랑은 독일 브랜드로 수제품임을 강조하고 있다. -대개의 전통 깊은 외국 브랜드는 거의 수제품이다- 아무래도 유럽 쪽에서 인기가 높은 것 같다. 몽블랑산이 4개국에 걸쳐있는 광대한 산세라 그런지는 몰라도 'montblanc' 이라 하면 받아들이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참고로 몽블랑 산의 높이가 4,810m인 바 몽블랑 만년필 닙(nib)에 각인된 '4810' 로고가 몽블랑 마운틴의 높이를, 뚜껑의 흰색 문양이 몽블랑 정상의 만년설(萬年雪)을 의미한다. 쉐파는 미국 브랜드로 아주 오래 전부터 생산되었다. 이베이(ebay) 사이트를 뒤지다 보면 빈티지 제품으로 40-50년 전에 생산된 민트급 제품들이 상당수 올라와 있다. 당시의 주조방식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쉐파 제품의 대다수는 강성(强性)의 닙(nib)을 토대로 한다. 워터맨은 프랑스 제품으로 에드슨 모델을 비롯하여 다양한 제품들이 있다.  쉐퍼와 워터맨 두 브랜드의 역사 역시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다. 국내엔 쉐퍼보다 워터맨이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외국에 나가서도 만년필 만년필을 뒤지고 다닌 적이 있는데 좋은 예로, 홍콩의 골동품 거리에선 파카가 단연 압권이었다. 의외인 점은 국내에서 인식했던 몽블랑 만년필에 대한 눈높이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홍콩의 마니아들은 몽블랑 만년필을 빈티지 펠리칸 제품보다 선호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몽블랑의 단점(?)은 절대 바겐세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모델이라 해도 롯데 본점에서 보는 가격과 남대문 지하상가에서 만나는 가격 차이는 현저하다. 이런 현상을 두고 업자들은 A/S같은 혜택에서 ‘정품’을 구입하는 게 유리하다 말하지만 몽블랑 수입업체인 강남의 '유로통상'에선 모든 몽블랑 제품을 차별 없이 대한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만년필을 점검 받거나 수리하러 갈 경우 제품의 구입처를 확인하고 A/S에 임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몽블랑의 트레이드마크인 만년설 문양만 정확하면 균등히 접수하여 처리해준다. 하긴 만년필은 치명적인 결함만 아니라면 수리할 게 없다.  만년필 매장에선 반드시 몽블랑 만년필에 무게를 두고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몽블랑 만년필은 브랜드 가치는 뛰어날지 몰라도 한글이나 한문체엔 어울리지 않는 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글이나 한문체엔 파카 혹은 파이롯트(일제) 제품이 훨씬 잘 어울린다. 닙의 재질이 약간 탄력적이어야 한글체와 한문체에 적합하다. 한글체와 한문체는 글씨의 획을 긋는데 있어 알파벳 필기체처럼 지속적이지 않고 그때그때 유연하고 날렵하게 처리해야하는 특성을 띠기 때문이다.    다음은 만년필 펜촉(nib)의 사이즈에 대한 설명이다. 만년필 펜촉은 회사별 제품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한글체엔 F(fine) 사이즈가 적당하다. 일제 파이롯트나 세일러 같은 제품은 사이즈가 정교한데 일제 만년필 대부분이 펜촉에 민감하다. 일본인들의 정신을 보는 것 같다. 수제품의 경우도 돋보기나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면 양쪽의 닙 균형이 아주 정확하다. 사실 만년필의 펜촉은 그 자체가 생명이나 다름없다. 비싼 만년필을 사서 잉크 흐름이 좋지 않거나 글씨 써지는 감촉이 매끄럽지 못하다면 스트레스 쌓일 일이다. 물론 몇 달을 꾸준히 연습하면 익숙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왜 비싼 제품을 구입해서 몇 달씩이나 길들여야 하는가? 독일제 몽블랑의 경우 수제품으로 만든다는 명목하에 닙의 구조가 제품에 따라 각기 다른 걸 볼 수 있다. 꼼꼼한 일제에 비하면 다소 엉성한 인상마저 띤다. 과거 미제 쉐퍼 만년필을 보아도 몽블랑처럼 펜촉을 함부로 깎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몽블랑 만년필은 세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숭례문 지하 수입상가에 가면 신품 기준 백화점 가격의 60% 정도로 구입 가능한 제품도 있다.  만년필은 처음 살 때 진열장 형광등 불빛을 통해서 혹은 기타의 방식으로 닙의 균형이 정확한지부터 면밀히 살펴야 한다. 또한 몸통이 지나치게 가늘거나 굵은 제품은 피하는 게 좋다. 손에 쥐어 아담히 쥐어지는 굵기가 적당하다. 지나치게 가늘거나 굵은 몸통의 제품은 오랜 필기시 피로감이 따른다. 펜촉의 사이즈는 F(fine) 사이즈 닙의 만년필을 구입하시는 게 좋다는 입장이다. 세필(EF) 촉은 가늘어서 그렇고, -남성적인 필체와는 동떨어진- 미드움(M) 촉은 서류 결재 시 사인으로나 어울린다. 따라서 원고용 필기에 어울리는 사이즈는 F촉이다. 컨버터나 카트리지, 플린저 방식은 별로 중요한 부분이 아니므로 언급을 하지 않겠다.  내가 소장한 워터맨 중에서 에드슨 모델을 보면 몸통의 굵기가 동양인 손아귀로선 다소 벅찬 느낌이 있어 오랜 시간 글을 쓸 경우 피로가 따른다는 약점이 있다. 물론 워터맨 중에도 몸통이 가느다란 제품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몽블랑이나 쉐퍼 혹은 파카 제품에 비해 전체적으로 무겁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주 가벼워도 경박한 느낌이 따르겠지만 무게감 지나치면 날렵하게 흘려 쓰는 필발에 제약으로 작용함을 유념해야 한다. 물론 원고용이 아닌 결재(사인) 전용이라면 오히려 무게감이 있는 게 엄숙히 보일지도 모르겠다.  어제 모 사이트에서 아주 오래된 쉐퍼 만년필을 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사람이 내놓은 만년필인데 모두 하나같이 쉐퍼 제품이었다. 펜촉 형태가 이미 내게 있는 것과 흡사한 것들이지만 오래된 제품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끌렸다. 열 자루의 만년필을 모두 구입해도 100달러가 넘지 않는 것이었다. 국제 배송료를 따져도 10자루라는 점을 감안하면 행운이나 다름없다. 언제 어떤 경로로 저런 만년필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말인가?  모든 것이 디지털화 돼 가는 세상에 만년필의 정서를 고집한다는 게 뒤떨어진 발상인지 몰라도 '만년필만의 필감(筆感)'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면 컴퓨터를 접고 오직 만년필만으로 글을 쓰는 자세를 고집하고 싶다. 더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오랜 세월 만년필을 애용해온 나로선 얼마든지 가능하다. 상급학교 진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아담한 만년필 한 자루 선물하는 건 어떨까? 각별한 사람의 정이 느껴지는 만년필을 와이셔츠 주머니에 꽂고 다니면 그가 멀리 있어도 항상 그의 체취가 느껴질 것이다. 진정 만년필을 아끼고 사랑한다. [출처] 묘사시, 이미지시, 사물시 유형의 시 쓰기(문광영문창5)|작성자 옥토끼  
4    새로운 시 쓰기의 고찰 / 예술학 석사 박연복 댓글:  조회:865  추천:0  2019-02-01
새로운 시 쓰기의 고찰    예술학 석사      박연복                                                                                                                         나는 언제부터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시를 맛이라고 생각해온 터였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이 말을 듣는 사람들 대부분은 멋스럽지 않게 반응 할 것이다. 시가 무슨 음식이냐는 식일 것이다 그 도 그럴 것이 맛이라는 그 단어 자체가 시라는 단어와 쉽게 어우러지지 않기 때문에 생소하고 조급한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좀더 넓고 깊고 형이상학적으로 드려다 보면 그렇게도 잘 어우리는 단어가 없을 상 싶어 이를 종종 사용해 왔다. 우리가 먹는 일상의 음식이 맛이 나지 않으면 먹으려 들지 않듯 시도 맛이 나지 않으면 읽으려 들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무서운 존재자는 독자들이기 때문에 그 시를 쓰는 작가는 그 글을 읽는 독자를 단 한 시간만이라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시인은 더 좋은 작품을, 독자들에겐 사랑받는 시를 쓰려고 혼신의 노력을 한다. 조리사가 한 황홀한 맛과 보기에도 아름다운 음식을 빗어내기 위해 노력하듯이 작가도 매양 그렇게 한다. 그러자면 시인은 옛 법에 따라(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모방과 모사를 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시적 변용과 시적 도구, 또는 새로운 기법을 연구하고 만들어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려고 들 것이다. 시 쓰기는 이런 방법으로 출발 한다. 그러므로 시 쓰기에 필요한 언어는 일상에서 사용되는 사실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상상을 초월할 수 있는 감성적인 언어를 구사한다. 그래서 시 쓰기란 논리적이고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 한다. 그래야만 시로써 독자들에게 그 본 뜻을 들어 내 보여주게 되며 충격적인 감동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1. 시는 그냥 써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이 그 대가를 필요로 하듯이 시 쓰기에도 그럴만한 대가를 요구받는다. 그 것은 새로움과 낯설음, 삐딱하게 보기다. 김소월의 산유화는 일제 강점기에 쓰여 졌다. 그러므로 시대적 배경과 문화가 존재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 해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시가 그와 같이 형식과 내용으로 쓰여 진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독자를 확보 할 수 있을 것이고 읽혀질지 의문스럽지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서구적인 시풍에만 의존하려는 것도 우선 경계되어야 하지만 동양적인 것, 그리고 인접하고 있는 가까운 나라의 시풍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시 쓰기가 어느 한쪽 형식과 내용으로 치우쳐 편중되는 일은 더더욱 없도록 노력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 시는 삶의 거울이며 나를 또 다른 모습으로 형상화해 내보이는 작업이다. 시들어 가는 풀잎 하나에도, 그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데도 철학이 있듯 우리가 인식 되어지는 세계는 우리를 바로 비춰주는 거울이기 때문에 쓰고 싶거든 어떤 소재이던지 또 그것이 무엇을 의미 하던지 가리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써라. 그러게 하면 당신은 새로운 삶의 행복과 글쓰기의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예시를 한번 감상해보기로 하자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도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 머언 먼 젊은 뒤안 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서정주님의에서-       2. 감정의 형상화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     T.S 엘리엇은 주지주의에서 “지성을 존중하고 감성을 억제하는 노력은 자신이 한다.”라고 말했듯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것을 내면으로부터 외연으로 들어내는 작업도 쉽지 않다. 사랑하고 이별하는 문제, 슬프고 기쁨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서 정서화 하는 문제, 죽고 사는 철학적인 것과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과정도 그리 만만치만은 않다. 등나무에 하얀 눈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는 것을 이른 아침에 보았다고 치자, 그 것을 보는 순간 누구나 똑같은 감정으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일상적인 일로 보아 버릴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막연하게 연민의 정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껴안고 즐거움과 슬픔과 괴로움을 고뇌할 것이다. 왜일까? 그것은 사물을 보는 시각과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서로 자라난 환경과 문화가 달라 그 느낌의 깊이와 정도의 차이가 다른데서 오는 문제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식 정도와 세계를 보고 느끼는 인식의 차이일 수도 있고, 경제적인 측면과 육체적인 결함에서 올 수도 있다. 그래서 시를 쓰려는 사람은 삶 그 자체를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세계를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것이 곧 시를 쓰는 배우려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자세다. 이럴 때만이 자기의 감정 속에 자신의 의식을 녹아내려 아름다운 이야기와 훌륭한 이미지를 내연에서 외연으로 끄집어내 감동적인 작품을 써 낼 수 있을 것이다. 삶의 경험이 곧 시라고 하는데도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이 개미들을 위하여 6월은 연분홍 잠옷 속에 있는 소녀의     이마 위에서 푸른 6월은 총살되고            -전봉건의에서-         3. 동심을 가져라     어린이는 쪽빛 하늘을 바라볼 때, 그 하늘이 어떤 하늘인가 하는 물음 이전에 하늘을 자기 눈 안으로 들어 온 그림 그대로의 하늘로 본다. 여기에 어떠한 사상이나 철학을 그들은 가감하지 않는다. 이것은 동심의 그대이며 더러움이 묻지 않은 깨끗함 그대로의 심성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 파란 하늘과 푸른 하늘을 구별하고 구름이 낀 하늘과 새털구름의 하늘을 구별하여 자신의 생각과 이데 오르기 을 접목 시킨다. 그들의 사고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어린이는 한 마리의 개미를 보게 되면 동화 속에 나오는 부지런한 개미를 연상 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이성적 논리에서 오는 이성적 어긋남이다. 시를 쓰기를 원환다면 이런 생각보다는 티 없이 맑은 가슴과 눈을 가진 아이를 닮아야 한다. 그래야 시가 맑은 호수와 같다. 그 뿐이fi. 어린이들은 창조적인 상상력과 미래를 생각하는 원만함이 있다. 그들의 꿈이야 말로 곧 세계이자 그 세계가 시가 된다. 꿈은 곧 미래를 상징한다. 참신한 상상력은 글의 원동력이 된다. 길섶 민들레는 키가 작다고 해서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작아도 제일 먼저 봄을 알리기 위해 샛노란 꽃을 피운다. 그 길고 모진 겨울을 견디고 제일 먼저 봄의 화신이 되는 것처럼 좋은 시를 쓰고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면 우린 작은 이 꽃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매화 잔치는 끝난 줄 알았는데     쏟아지고 있었다 동백처럼 뭉텅뭉텅 나의 하늘임이 목련 같은 실바람 곁에     아침, 꽃잎을 처음 열려는 박미 마을에 개나리가                         * 이글은 거꾸로 읽어야 합니다                            * 박미: 서울 금천구 시흥3동 금천고등학교가 있는 자리의 옛 이름                            -박연복의에서-         4. 삐딱하게 보기     가) 패스타쉬의 기법     언어는 두 가지 속성이 있다. 그 하나는 우리가 매일 의사를 소통하기 위해 사용되는 일상적인 사실 언어(과학언어)가 있고 다른 하나는 문학을 위한 감성이 풍부한 감성언어가 있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과학언어보다는 시적언어(감성언어)를 쓴다. 그렇다고 해서 한 편의 시 속에 일상 언어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가능하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시를 쓰기 위해선 시적 요소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소설이나 수필을 쓰듯 배경과 인물, 행동의 삼요소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시는 그런 논리적인 체제를 탈피하고 자유스럽게 쓰기를 원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전자와 같이 복잡하지 않다. 다만 시적 언어는 그 언어적 구조와 기능이 소설이나 수필 또는 희곡의 언어와는 다르다. 이것은 시에는 리듬(음악성)과 은유(비유), 상징, 아이러니, 원형 이미지, 등과 같은 시적 도구가 있는가 하면, 삐딱하게 보기, 낯설게 하기, 패쉬타쉬, 등의 기묘한 표현 방법도 있지만 소설이나 수필은 그렇지 않다. 앞부분에서 언급한 제 요소들은 시간과 지면 관계로 생략하고 여기선 “삐딱하게 보기”만 다루기로 하겠다. 이 기법은 꼭 그렇게 활용해야만 시가 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것을 주장하는 것은 기법상의 훌륭함이며 이를 활용해 창작된 작품 자체가 맛나기 때문이다. 또 사회적 비판을 가해야 할 부분엔 이 이상 더 좋은 기법이 없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자는 것일 뿐이다. 현대 사회는 전자산업의 획기적인 발달로 그 매체를 이용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은 곧 언어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언어의 해체는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다. 언어의 절대적인 논리는 객관적으로 의심받기 시작했고, 언제부턴지 잘 구분이 되지 않지만 객관적 진실 찾기에서 주관적인 진실 찾기 패턴으로 돌아가기 시작 했다. 바로 언어를 삐딱하게 활용해보자는 것이다. 언어를 삐딱하게 보자는 것은 사회적 사건들을 삐뚤어지게 보자는 의미도 된다. 문학에서는 그것이 인유나 페러디, 혼성보방 등으로 변질되어갔다. 삐뚤어지게 보기와 패스 타쉬는 인유(引喩)가 그 본질이다. 인유법은 유명한 시나 문장, 어구 등을 끌어다 자신의 표현으로 대신하는 기법을 말한다.      그럼 시 한편을 보기로 한다.     그러한 실예를 나의 가친의 경우에서 보았습니다. 그가 88세를 끝으로 5년 전 지구 밖으로 떠나야 할 대, 그이 자산은 6억 정도는 되었지만 후처인 Y씨에게 모든 거슬 유산으로 주었으면 하는 의사를 비친 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재혼해 온지 24년은 됐고 서로가 진정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임종할 때의 모든 일을 니다. 그 모습을 본 우리들은 아버지의 유지에 다라서 그의 모든 것들이 계모에게 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녀가 도밭아서 하는 모습은 사랑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움이었습     또한 그와 비슷한 예를 미국의 베스트셀러의 소설인(the bridge df madison county)에서도 보았습 니다. 사진작가인 주인공이 취재차 그 유명한 매디슨 고을 다리에 갔을 때, 그를 안내해 주었던 유부녀와의 사을 동안의 열애를 잊지 못한 나머지, 독신으로 일생을 보낸 끝에 자기의 모든 유물을 유 언 집행 대리관을 통하여 그녀에게 보내는 광경은 참으로 감동적 이기까지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몸도 마음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사라이야 말로 참으로 아름답다는 실예이기도 한 것입니다.                                  - 김경린의< 사라의 선물과 아버지 유산>에서-        나) 비틀어 짜기의 기법     비틀어 짜기의 기법은 언어의 질서를 파괴하고 그 논리성을 부정하므로 새로움과 낯설게 하는 기법을 말한다. 언어의 질서를 파괴한다는 것은 언어의 비 논리성을 시 창작에 활용한다는 것이 된다. 이는 언어의 본질 중 지시기능을 초월하지는 의미다. 즉 언어의 모순이다. 또 언어의 모순은 관념에서 일탈 해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일 수도 있다. 그래서 비틀어 짜기의 기법은 최대한의 언어 모순이 일어났을 때 성공한다. 이 방법을 개그 쪽에서도 많이 활용한다. 곤 역설적이어야만 흥미를 끌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러니의 기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웃기는 행위란 진실을 사실적 언어만 웃길 순 없다. 그것은 반듯이 언어의 비대칭적인 관계나 비정상적인(비틀어진) 어법에서 웃음을 자아내게 된다. 이것이 언어의 비틀어 짜기다. 시의 장르에서도 이 기법을 활용한다. 다시 말하자면 언어가 초월이어야 한다. 언어의 초월은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낸다.                                   그럼 예시를 보기로 한다.                             처 죽일 놈의 오월, 환희의실록은심장을이렇게미치게한다 잔디처럼 납작 엎드린 초록의 신들이 바람가지에 가랑가랑 매달려 어깨를 욱실욱실 쑤셔댄다 홀딱 발가벗은 태양 말고도 허였게 맑아버린 내 육신이 더 무섭다 돈이라고는 고작 천원자리 두장뿐인데 손님커녕 전화 한번 진종일 걸려들지 않는다 내일은라면을사야할일이다 지난 아이엠에프 때도 이렇진 안했다 그래도 나줏손 무렵 흐릿한 포장마차에 들러 소주 한잔 마실 수 있는 꿀벌 똥구 만큼의 여유쯤 있었다 처 죽일 놈의 오월, 불행한실록은이렇게미쳐버리게한다 집세줄날이돌아온다 벼락 같이 주인이 달려올 터이다 콘크리트같은 내얇은주둥이를꿰매어놓을일만남았을터이다                                     박연복의에서     누구나 시를 잘 써 보려고 한다. 그러나 마음뿐이지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무엇을 쓸까 망설이다 하루해를 다 보낸다. 그것은 시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자신의 이성을 옭아매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편안한 마음에서 써야한다. 무엇을 쓸까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쉽게 시에 다가갈 수 있을까가 더 중요 하다. 시는 삶의 경험을 쓰는 것이다. 그 삶이 거짓이어서는 안 된다. 진실을 말할 때 진정한 시로서 보이는 것이다. 진실한 사건을 언어라는 기호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시적 응용과 변용이 따르는 것이며 위에서 거론한바와 같은 기법들이 필요한 것이다. 시는 일상의 활용 언어로 쓰는 것이 아니라 변용된 언어와 비유된 언어, 상징된 언어들을 차용한다. 시가 좋다 시가 맛이 있다, 그 시 훌륭하다고 할 때는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은 시적 도구를 잘 활용한 탓이기도 하다. 시는 언제나 가볍게 써라,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어라, 가급적 사건은 한 가지만 다뤄라, 매미의 울음소리에도 눈을 기우여라, 그리고 아무것이나 무조건 써라, 연필로 써라, 내용은 어쩌던 길게 써라, 지금은 산문의 시대다 가급적이면 그렇게 하라. 이렇게 하면 자신의 시적 진실을 새로운 시적언어로 아름다운 낯선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리라.                                                          -끝-   시인 박연복 (홈바로가기) [출처] 새로운 시 쓰기의 고찰 / 예술학 석사 박연복|작성자 옥토끼  
3    의식의 흐름 (이상섭. 문학비평용어사전) 댓글:  조회:968  추천:0  2019-02-01
 의식의 흐름 (이상섭. 문학비평용어사전)     이라는 말은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즈가 1890년에 사람의 정신 속에서 생각과 의식이 끊어지지 않고 연속된다는 견해를 말하면서 처음 썼다. 현대소설의 한 소재로서의 은 소설적 인물의 의식이 중단되지 않은 채로 연속되는 것을 말한다. 생각, 기억, 특히 비논리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연상이 때때로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단편적 사고와 뒤섞여 흐르는 것을 말한다. 을 사실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소설가는 이야기와 논리와 수사법과 문법을 희생시키면서라도 그러한 무질서한 잡다한 흐름을 그대로 옮겨놓고자 한다. 자기의 설명이 필요하다면 극히 간결하게, 객관적으로, 삽입할 뿐이다.     을 주 소재로 삼는 소설가는 사람의 실존은 외부로 나타나는 것에서 보다는 정신과 정서의 끝없는 과정에서 더 잘 발견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의 내적 실존은 외부에 나타나는 것처럼 조직적이고 논리적이 아니라 비논리적이고 파편들이 뒤섞여 연속되어 있으며 이 파편들이 연속될 수 있는 것은 잡다한 일상체험의 연속성과 자유로운 연상작용 때문이라고 믿는다.     (interior monologue)은 의 또 다른 명칭이기도 하지만 이론가들은 그것을
2    의식과 무의식 – 의식의 주인은 무의식 댓글:  조회:878  추천:0  2019-02-01
  출처 방정민(hobero338)의 블로그 | 수풀넷 원문 http://blog.naver.com/hobero338/220699340656 3. 의식과 무의식 – 의식의 주인은 무의식   인간 행동이나 성격의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무의식은 직접 알 수는 없지만 행동으로 추론될 수 있다. 무의식에 대한 임상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1) 무의식적 욕구, 소망, 갈등의 상징적 표상인 꿈, (2) 말의 실수나 친숙한 이름 등의 망각, (3) 후최면 암시, (4) 자유연상으로부터 도출된 자료, (5) 투사법으로부터 도출된 자료, (6) 정신증적 증상의 상징적 내용. 의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무의식에는 모든 경험, 기억, 억압된 재료들이 저장되어 있다. 접근할 수 없는, 즉 의식영역 밖에 있는 욕구나 동기는 의식적 조절 밖에 있다. 대부분 심리적 기능은 의식 영역 밖에 존재한다. 동기를 의식할 수 있을 때만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분석적 치료의 목표는 무의식적 동기를 의식화하는 것이다. 무의식적 과정들은 모든 신경증적 증상이나 행동의 근원이다. 정신분석적 치료는 증상의 의미, 행동의 원인, 건강하게 기능하는 것을 방해하는 억압된 재료들을 밝히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지적 통찰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내담자의 전이왜곡의 훈습을 통해 직면시켜야 한다.   내 안에 있는, 나도 모르는 부분, 그것이 바로 무의식이다. 의식의 쌍둥이 같은 존재이면서 의식의 구박과 박대를 받아 언제나 의식의 뒤에 숨어 있는 무의식, 그러나 그러다가도 엉뚱하게 자신의 존재를 밖으로 불쑥 드러내곤 해서 우리를 당혹케 하는 무의식, 무의식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여러 학자들이 지적해 오고 있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과 의사로서 배운 최면술 덕분이었다. 최면술을 걸어 의식을 빼앗아야만 비로소 정체를 드러내는 기억, 그것을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 불렀다. 의식을 잃는 경우는 최면술 외에도 최소한 세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죽는 것, 그러나 이 경우에는 의식도, 무의식도 모두 사라지므로 논외다. 또 하나는 술이나 마약 같은 약물의 힘에 취하는 것, 그러나 이 경우에는 대개 무의식이라기보다는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 마지막은 기절하는 것 혹은 잠드는 것인데, 이것이 무의식을 경험하는 기회다. 잠이 들면 꿈을 꾼다. 그런데 이 꿈은 의식의 소유자가 마음대로 내용을 선택하고 채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의 발현이라 여기고 꿈에서 나타난 상징을 해석하고자 했다. 흔히 말하는 잠재의식과 무의식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전 인사 나눈 사람 이름을 잊었다가 우연히 생각해 낸다든가, 아침에 흥얼거리던 노래 곡조가 오후에 다시 생각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은 잠재의식과 연관되는데, 프로이트는 이것을 전의식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의식의 일부이며 의식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그에 반해 무의식은 의식의 일부가 아니며, 의식에 의해 억압되어 있으므로 오히려 의식에 대해 대립적이다. 프로이트는 잠재의식과 달리 무의식은 의식으로 전환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무의식은 의식만큼이나, 아니 의식보다 더 체계적이며 보편적인 것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그때까지 사람들이 자기 사고의 전부라고 생각해 왔던 의식이 사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오히려 의식의 수면 아래 잠겨 있는 무의식이 훨씬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더구나 그는 무의식도 의식처럼 나름대로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욕구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무의식 역시 의식을 통해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무의식은 의식에 비해 비체계적이고 우연적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또한 그렇게 때문에 무의식은 꿈이나 농담, 실언 등 우연적인 계기를 통해 그 존재의 징후를 드러내는 것이다. 무의식의 지위를 의식 이상으로 격상시키려면 무의식도 의식 못지않게 체계성을 지닌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다음 과제는 무의식의 구조를 밝히는 것이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무의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충동과 감정에 따라 제멋대로 움직이는 이드(id: 라틴어로 ‘그것’이라는 뜻이다. 즉 정체불명이라는 의미이다)다. 또 하나는 도덕적, 사회적 질서가 내면화되어 있는 초자아(superego)인데, 이것은 이드를 억압하는 역할을 한다. 무의식을 이루는 이 두 가지 요소는 서로 다투고 대립하는 긴장관계에 있는데, 이런 상태가 마냥 지속된다면 나는 견디지 못하고 박살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를 완화하고 조절하는 또 다른 요소가 필요해진다. 이것이 곧 자아(ego)인데, 이것은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에 속한다. 프로이트는 이드의 에너지가 특히 성욕에 집중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의 극단으로 제시하는 것이 이른바 외디푸스 콤플렉스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자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이 바로 외디푸스 콤플렉스다. 데카르트 이래 자아의 동일성은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일단 자아를 선험적으로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만 근대의 철학과 학문은 가능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그런 선험적 자아의 환상을 무참히 깨부순다. 우선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근대 철학의 출발점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나도 모르는 나, 나도 모르게 하는 나의 행동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인간 주체를 분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무의식이 의식의 수면 아래에 거대한 빙산처럼 잠겨있다는 사실은 의식을 기준으로 주체를 구성한 근대적 관점을 아예 초토화시킨다. 나도 모르는 나,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 오히려 더욱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면, 투명하고 자명한 나에 기초한 근대 철학이 설 땅은 이미 없다.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무의식을 정립하면서 자연히 뒤따르게 된 이 명제는 이후에 ‘그럼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라는 물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구조주의자들은 그것을 ‘구조’라고 보았으며, 프로이트의 뒤를 이은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그것을 언어라고 보았고,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라고 보았다. 20세기 지성사에 컨 영향을 미친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엄청난 반발에 시달렸다. 그것은 바로 무의식도 의식을 통해 말해질 수밖에 없다는 모순, 즉 말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말로 할 수밖에 없다는 무의식과 의식의 모순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4) ​                               ..................................................................................   4) ​프로이트 이론의 핵심 개념은 아마 ‘무의식’일 것이다. 이 개념은 프로이트가 최초로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그 의미는 고대 그리스철학자들도 언급했다고 하고, 특히 니체가 현상학자들도 주목했다고 한다. 그런데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우리는 너무 흔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실상 그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전문가라 해도 거의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독일어의 Unbewuβte, 영어 Unconscious를 우리말로 일반적으로는 무의식(無意識)이라고 변역하는데, 프로이트 전문가라 하는 이무석 박사는 자신의 논문이나 책에서 비의식(非意識)이라고 표현한다.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프로이트의 Unconscious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면서 쓰거나, 아니면 한자를 모르고 쓰거나 둘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의문을 제기하면 정말 무의식이 있냐 하는 것이다. 최근 뇌과학이 발달하고 있지만 이쪽 분야가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서 우리 인간의 뇌를 완전히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무튼 개념적으로만 설명하면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의식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무석 박사의 표현인 비의식이 맞다. 왜냐하면 한자의 ‘비’(非)와 ‘무’(無)는 비슷하게 ‘아니다’라는 의미로 쓰일 때가 있지만 철학적 의미는 완전 다르다. ‘비(非)’자는 단순 부정이다. 다음에 오는 단어를 단순 부정하는 단어로 쓰이기 때문에 비의식이라고 하면 의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무(無)’자는 철학적 단어로 그 의미가 상당히 복잡하다. 단순 부정이 아니라 다음에 오는 단어의 근원적 존재(자)가 된다는 의미다. 즉 무의식이라고 하면 의식의 근원적 존재가 바로 ‘무(의식)’라는 것이다. 무사상은 특히 노자의 사상에서 두드러지는데, 노자의 무는 유의 원인이 아니다. 무가 유를 생기하게 한다는 사고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형이상학적이고도 존재론적인 표현인데, 무가 유를 창조한 초월적 원인이 아니라, 자기 안에 유가 이미 내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근거라는 것이다. 무가 유를 생산한 원인이 아니라 무의 바탕 안에 이미 유의 무늬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임을 말한다. 즉 허공의 무가 그릇과 바퀴살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론적 근거가 된다는 말이다. 그릇과 바퀴살의 유용함은 그것이 비워있어서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릇과 바퀴살을 만든 원인은 외부에 있는 장인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존재론적 근거를 제공해주는 것은 바로 무라는 것이다. 집이 집이 되는 존재론적 근거는 그 집을 생산한 목수(집이 집이 되게 한 원인이 됨)가 아니라, 그 집을 자기 안에 품고 있는 허공인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프로이트가 죽기 직전 무의식은 없다고 고백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가 의식도 제대로 모르면서 함부로 무의식을 언급하는 것은 큰 오류의 가능성을 늘 안고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마음, 또는 의식을 총 8식으로 나눈다.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말나식(末那識),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말나식, 특히 아뢰야식은 심층의 근저에 도달하는 것으로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무의식보다 훨씬 복잡하고 심오하다. 우리 수업 부재인, ‘시각경험과 이미지’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프로이트는 신경증의 원인을 파헤치면서 성욕의 억압이 환상으로 나타난다고 했는데, ‘매 맞는 아이’는 결국 왜곡된 성욕의 환상(시각 이미지)인 셈이다. 가령, 들뢰즈의 ‘시뮬라크르’처럼 진정한 자기 존재가 아닌 복제물인 것이다. 그러나 이 복제물이 왜곡된 환상(이미지)-이것은 가짜임-이라 할지라도 자기 지속성과 동일성, 내지 정체성을 확립해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는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데아는 아니므로 진리(그 아이의 정체성 내지 성적 욕구)를 알기 위해 복제물인 시뮬라크르, 즉 ‘매 맞는 아이의 환상’, 이 시각 이미지를 잘 분석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출처] [공유] 3. 의식과 무의식 – 의식의 주인은 무의식|작성자 옥토끼  
1    나의 하이퍼시 쓰기 / 이선 댓글:  조회:1665  추천:0  2019-02-01
나의 하이퍼시 쓰기     1. 상상력의 공간이동   파란 해바라기   이선   고흐의 해바라기 밭에서 노란 해바라기꽃 두 개를 꺾었습니다     샤갈 그림에서, 파랑색만 손가락에 묻혀 당신 등에 문질렀습니다 해바라기 언덕에는, 종일 해바라기꽃이 핍니다     나는 김병휘 그림- 파란 해바라기 세 송이를 들판에 남겨 두고 그냥 떠납니다     뒤돌아서는 발길은 초록 풀섶입니다     김병휘의 흰 얼굴은 큰 그림책 창백한 여백이 많습니다     나는 그 여백에 갇혀 온종일 파랑색, 분홍색, 색칠공부하며 놀고 싶습니다               2. 상상력의 시간이동   갈라파고스Galápagos 섬에서 2/ 이선         해초보다 미끄러운 피부의 ‘그녀’를   사람들은 ‘물고기자리’라고 부른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아들 에로스가, 접신한 몸   ‘그녀’ 배꼽에서 적도좌표 원점이 시작된다       다윈핀치새가 뾰로로 쫑~쫑 휘파람소리로 유혹할 때   서쪽나라와 북쪽나라로, 적도의 꿈이 갈라진다   날카로운 톱날 지느러미, 펄쩍펄쩍 물살을 가르며   적도의 꼬리가 힘껏 하늘로 치솟는다   꼬리를 맞붙이고, 거대한 섬이 갈라져 서쪽과 북쪽으로 내달린다   연모하는 ‘붉은 해’를 향해 양쪽으로 몸을 서로 당기면서       오, 검은 괴수 ‘티폰'이여,   낮을 질투하는 밤의 마왕이여,   그는 마법을 걸어 아름다운 '이사벨라섬' 입속에   초록 ‘가시선인장’을 빼곡히 심는다   융기한 젖가슴― 납작한 아랫배   이사벨라섬은 발가락과 손가락까지 초록이다     이사벨라섬 항문을 간지럽히며, 춘분점이 지나간다   축축하고 비릿한 땅거미를 삼키는   갈라파고스거북,       용암(Lava)을 삼킨 '아술산' 입술, 석양에 붉다     3. 시간과 공간 순간이동   칼릴 지브란에게/ 이선 칼릴 지브란이여, 당신은 말합니다 “몸의 사랑을 나누면 당신과 영혼의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나의 하얀 목을 더듬는 당신 눈에, 그믐달 그림자가 얼룩집니다 백향목 향기 그윽한 ‘지혜의 숲’은 창백합니다 보랏빛, 달무리 스카프를 벗겨 내 벗은 몸에 칭칭 감아 주세요, 지혜라는 이름은 뱀의 혀처럼, 향기롭지만 당신 말씀은 수백 년 동안 느리게 자라서 우거진 ‘백향목 숲’이 될 것입니다 숲의 어두운 잔금을, 달빛이 환히 드러냅니다 내 머리를 틀어 올린, 황금 핀을 빼는 데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갈색 머리카락, 귓불은 조금만 드러낼 것 저 새의 울음소리는, 누구의 잃어버린 욕망입니까? 칼릴 지브란, 당신 詩를, 내 헐벗은 영혼의 이불로 덮고 누운 그 밤에 젊은 여자와 나눈, 정사고백을 내게 하던 당신 ―감질나게, 벗었던 옷을 나는 도로 입었지요 내 몸은 난롯불 앞에서도 부끄러움으로 떨립니다 “메리 해스켈*의 별난 사랑을 위하여 건배!” 흰눈 덮인, 레바논 삼나무 숲에 아직 녹지 않은, 에로스의 뿌리를 묻어 둡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내 사랑을 폭력하지 않도록, * 메리 해스켈: 미혼으로 평생 칼릴 지브란과 정신적 사랑을 나누며 헌신한 칼릴지브란의 책을 편찬한 출판인. 칼릴 지브란보다 훨씬 연상임.   4. 링크 - 각 연은 독립적이며 자립적이다       랭보와 베를렌느, 사이에서     이선   눈썹연필을 깎는데 심이 자꾸 부러집니다 랭보와 베를렌느, 사이에는 푸른 침대와 흰구름, 부러진 연필심이 있습니다   바다뱀이 S자로 리드미컬하게 헤엄칩니다 파란 발광채를 발사하는, 꽃등 깊은 바다에는 도로가 따로 없습니다 천지사방 어느 방향이든지 새 도로가 됩니다 물고기는 부리로 초고속 도로를 내며 헤엄칩니다 사랑에도 면허증이 필요합니까? 파도가 나선형을 그리며 밀려오는 긴 밤입니다 ⊂거나 ∪∩거나   달빛은 어둑어둑 춥습니다 허공을 밀어내는 바람에서 두-둥 빈 소리가 납니다   젖은 낙엽 어디쯤에선가 살모사, 풀잎 위로 소리 없이 헤엄치던 밤 바람이 방향을 잃고, 내 속눈썹에 눕던 그 밤 당신은 첫눈처럼 어둠 속에서 빛났습니다   지느러미를 흔들며, 당신이 떠난 뒤 나는 미장원에서 긴 파마머리를 자릅니다 “진작, 보라색으로 염색할 걸” 후회합니다   랭보는 베를렌느의 마침표가 됩니다       5.     동백꽃 잎, 또는 공룡의 입   이 선       남해안 붉은 동백꽃들은, 백악기의 거센 파도와 해일이 휩쓸어다 바닷가에 펼쳐 놓은 모래사장, 흰 동백꽃 따라 긴 해안선을 걸어간 프로토케라톱스 공룡발자국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지구에서 질식한 삼엽충 꽃말을,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주문하듯, 당신은 중얼거린다. 비릿한 미역냄새, 해풍과 접속한 빗방울의 DNA, 바닷물에 젖은 당신 눈동자에 파도의 페로몬이 묻어난다.   벽에 걸려있는 추시계는 몇 년째 1시 17분에 멈춰 있다. 말라버린 시간의 벽에 갇혀, 죽은 줄 알았던 몇 마리 거미가 몸을 움찔거린다. 당신은 첫눈이 내리는 광화문 거리에서, 시위대들과 함께 거리공연을 하는 풍물패를 찍고 있다.   악어도마뱀요리가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며 웃는 중국남자의 검은 이가 TV 화면에 클로즈업 된다. 동백 꽃잎, 붉디 붉은 페로몬 향기에 이끌려, 당신이 찍어 온 사진을 들여다보며 나는 냉동오디를 먹는다. 어느새 화면은 딸기아이스크림 광고가 사라지고, 살품이춤을 추던 여인의 하얀 손가락이 사라지고, 사슴을 잡아먹는 악어의 노란 눈이 확대된다. 나는 타르보사우르스 공룡발자국 분지에서, 키가 ‘줄풀’만큼 자란 붉은 점박이별과 하늘을 날아다니며 노는 꿈을 매일 꾼다. 별똥별이 되어 곧 지구로 귀환할 점박이 아기공룡을 따라 나는 ‘솔잎란’ 꽃씨를 바구니 가득 딴다.   6. 중첩 이미지 만들기 세 개의 이미지           태양이 달의 입술에 엄지발가락을 집어넣는 날, “지진과 전쟁의 소문이 무성하리라” 올리브나무는 비둘기 입맞춤을 물고 지중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잎사귀 귀를 떨고 있지 아담 겨드랑이에서는 싱싱한 유칼립투스 향기가 나지   문명의 아들들은 불의 고리 위에 수많은 대도시를 건설했지 - 화산과 전쟁의 흉터자국 투창과 방패를 베고 잠든 병사의 품에서 재간둥이 암고양이는 불의 고리를 훔쳐 앞발로 톡톡, 재롱을 부리지 나는 미네르바 여신의 어깨에 올려놓은 올빼미 눈이 머무는 곳마다, 두려움에 떨며 초록 세콰이어 나무를 심었네   전생 전부터 시작 된 불놀이야 손이 뭉툭한 어머니 지구는, 고막이 터지도록 열병을 앓고 있지 화성과 토성이 일직선상에 있는 날, 암코양이 수염을 자른 건, 이브들 잘못이지 바다가 대륙의 지진을 음모하는, 날에     7.       북극에서 온 편지           “툰드라의 아침밥상은 눈꽃 천지인 걸요…” 북극여우가 긴 꼬리로 허공을 흔들며, 빗줄기의 허리를 자릅니다   번식기 북극곰의 간식을 만들기 위해서 신은 고요라는 이름으로, 흰눈을 빙하 위에 내려놓으십니다 조용히   내 아버지는 툰드라가 되지 못한, 어둠 겨울을 낳다가, 바다로 침몰한 내 어미의 눈빛은 북극성   나는 얼음조각 유리바다에서 표류 중입니다 바다 거품과 “안녕!” 입맞춤을 하기엔 나는 아직 늙지 않았소만 ―내 고향 그린란드,   내 털들이 하늘로 곤두섭니다 얼음판을 놓쳐서 -40℃ 얼음바다로 미끄러졌습니다   습지의 낮은 구릉을 지나, 수컷의 향기를 뽐내며 눈향나무 언덕 향해 달리는, 어린 순록의 맑고 유순한 눈빛을 나도 지닌 적 있는데   내 심장은 얼음바다를 부둥켜안고, 쪼그라듭니다 참, 내 꼬리가 퇴화한 사연은 짐작하시겠습니까? ―이글루에 발톱을 날카롭게 벼리다가, 수천 번 얼음빙판에 엉덩방아를 찧은 다음, 꼬리가 자라지 않는 겁니다? 내 참…   보름달을 사모하며 포효한 것도 죄입니까? -40도의 얼음바다, 120km 강풍, 내 몸속 짐승의 비애   보름달 저주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까? 얼음을 녹이는 것은, 내 원죄를 지우는 일 나는 퇴화한 꼬리를 치켜세우고, 어둠을 힘껏 문지릅니다 ― 흰색이거나, 얼룩무늬거나   툰드라의 밤이 녹고 있습니다 순록의 뿔에 찔린, 달웅덩이   눈향나무 향기로 추위를 녹이며, 나의 젖은 몸을 말립니다 길은 추울수록, 달빛 투명하고 향기로와서     8.   자서전           레몬 유카리(Eucalyptus citriodora) 향기가 화장대 거울 위로 흘러내린다 (상큼한 유칼립투스 향수)   당신이 ‘망상 중독’이라고 말하는- 유칼립투스 꽃을 채취하던, 푸른 달빛을 흰 샴 고양이, 어깨 위에 올려놓는다 (당신의 웃음소리거나, 나의 울음소리거나)   키가 10km까지 자란, 파란 하늘지붕 뭉게구름 발톱에 긁힌 아담의 방언 몇 개, 선캄브리아기 폭풍에 떠밀려 유칼립투스 숲으로 날아갔다는데, Queensland 북부에서- Victoria 남동부까지   늙은 회색코알라는, 아담의 방언을 해독하듯, 말없이 태고의 눈으로, 내 입술을 지긋이 바라본다 “태초에 말씀이 잉태하였나니,”   - 나의, 맹장은 2.5cm 나는 이국의 유칼립투스 향기에 취한다 한때는 유칼립투스 꽃의 꽃술이었을지도 모를, 내 입술 천식에 걸린 캥거루처럼,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며 나는, 노랗게 어지럽다   - 코알라, 맹장은 3m 독성이 엷어진, 늙은 잎만 골라 먹는 어미코알라 어미의 배설물만 먹으며, 면역력을 키우는 아기코알라 “나의 뇌에는 독성이 없어요. 코알라는 하루 2시간 먹고, 종일 22시간 잠만 자는 걸요“   호주 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뉴칼레도니아 독감에 걸렸다, 콜록           9. 겨울, 카페테라스에서 바라본 TV풍경           “당신의 연애는 언제부터 해빙을 시작한 것일까요?”   그녀의 눈은 웃고 있지만, 울고 있다 나는 그녀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파랑색 벽을 칠한다 그녀 눈빛은, 비의 얼룩 같은 것이어서   네모난 탁자 위에선 레몬차 식어가고   그녀의 툰드라 언덕에, 나는 야생 히아신스 꽃밭 향기를 내려놓는다 두꺼운 스웨터처럼, 내 몸은 그녀의 향기로 체온이 급상승한다 여자의 하늘색 머리카락이 허공을 흔들며, 어둠을 자른다 흰 망사장갑은, 여자의 가늘고 긴 손가락을 조용히 빠져나간다 북극곰 발톱처럼 뾰족한 그녀 손가락이, 움켜 쥔 공허   해빙기, 그녀 심장은 더 이상 얼지 않아서 습지의 낮은 구릉을 지나, 노을빛 구름을 뱉어내는 북극양귀비꽃 언덕을 지향하고 있다   ―40℃ 빙하기 옷을 벗고 다시 사랑을 시작할까? 예감하는 저녁에   백야의 푸른 들판을 건너가는 순록 떼, 툰드라가 녹고 있다   그녀의 눈꼬리가 내 눈을 어루만진다   “빙하는, 빗방울의 힘을 버틸 수 있을까요?”     10.   칵테일파티 효과             새벽 로데오 거리, 안개 숲은 포옹을 풀고 창세기 1장 28절은, 개화와 낙화를 반복합니다   내 입술은 당신의 펜촉 끝에서, 빨갛게 착색되거나 억압된 욕망은, 당신의 손바닥에서 결박이 풀립니다 당신, 기억의 저장고에는 패턴분리가 되지 않은, 욕망 알갱이들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당신은 창세기를 거꾸로 읽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여자여, 당신의 욕정은 아직 생리를 합니까?   당신 심장의 빠른 박동은, 욕정의 첫단계 그 긴장과 공포를 압축하여 옥죄면, 오르가즘이 증폭됩니다 양버즘나무 열매가 슬몃슬몃, 떨어집니다 잎새들 눈빛이 흔들립니다   가로수들은, 등과 등이 결박당하는 꿈에서 깨어나 허공을 잉태합니다   결박된 거리의 욕정이 해체되며, 2단계로 발효 중입니다   11.     저녁에 드리는 기도     이 선     주여, 내 몸의 마디는 부끄러움과 죄로 뚱뚱합니다 매조히즘으로 뭉쳐진, 내 관절의 혹들 겨울밤, 가난한 초록별들은 내 지독한 마디의 아픔에 이란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만, 학자들은 나의 혹을 분류하여 이라 명명합니다 내 마디의 벌레혹들, 초봄에 비밀리에 잉태하여 보리밭에 종달새 알을 낳을 때쯤, 무성하게 자랍니다 눈의 조직들, 3-6개씩 무더기로 산란하고 유충을 부화시켜 원죄의 잎사귀 왕국을 번식시킵니다   천둥이 칩니다, 내 죄 때문입니까? 지진과 해일 소문이 무성합니다 남은 죄가 더 있습니까?   중독성 강한 밤나무꽃에 모여, 꿀벌들이 춤을 춥니다 반전과 아이러니의 원을 그립니다 원죄의 껍질은 두껍고 질깁니다만, 그 속살은 여리고 아릿합니다   내 죄의 유충은 2.5mm, 몸은 유백색, 또는 반투명 회백색- 기름지고 달달하여, 벌레들이 탐냅니다 주여, 벌레들이 갉아 먹다 남긴 부끄러움으로 겨울 별꽃 밭에, 하얗게 한 줄 시를 쓰게 하소서   12. 복합적 구성     저녁입니까?     이 선       꽃잎 문을 닫는, 저녁입니까? 별빛 부엉이 항문을 닦는, 저녁입니까?   파꽃을 잘라 줄까요? 대파 줄기를 잘라야 튼실한 새 줄기가 난다네요   구기자, 인동초, 컴프리, 비비추, 만수국, 두릅, 뽕나무, 칠자화, 산딸나무 - 서로 엉기어, 밀치고 밀치며, 키가 자라는 데 안경을 맞춰야 하늘이 보인다며, 농성을 벌이는데 말입니다   동네 노인네들 제초제를 마구마구, 뿌리는 날 말입니다 초복날 잡는다고 개를 부지런히 키우는데 말입니다 산수유, 매실, 개복숭아, 농약을 함초롬히 맞고 서 있습니다   고비사막, 켜켜이 쌓인 주름살커튼을, 펼치는 저녁 두물머리에는, 황사비, 초미세먼지 자욱자욱, 물결을 지우는 데 말입니다   아홉 개 꼬리에서 훌훌, 치솟는 불길 끄려고 여우가 강물에 풍덩풍덩, 뛰어들어 목욕하는, 은근한 저녁에 말입니다   민들레 다복다복, 노랗게 핀 계절을 건너 들국화 듬뿍듬뿍, 핀 가을언덕으로 비늘구름 내달리는 저녁 때, 말입니다 저녁 한 끼 건너뛰어도 좋은 그 저녁에 말입니다   맨드라미 꼬불꼬불, 꽃길에 갇혀 별빛에 몸을 적시며, 잠들어도 좋은 저녁인데 말입니다 -쉿, 꽁지 붉은 어미 새, 대문 우편함에, 새끼 일곱 마리를 부화시키고 있습니다 - 사람을 경계하며, 대문 맞은편 매실나무 가지에서 수컷 작은 새가 쏘로롱, 쏘로로롱 보초를 서고     13.     이브의 예언       이 선       내 꿈을 도둑맞은 적이 있어 내 과거가 나를 협박하는 이상한 날이었지   그날 내 전생의 남자가 나를 방문하였지 오늘 내가 탄 파랑색 택시는 2년 전, 대학로 연극이 끝나고 자정에 탔던 택시였어 “아직도 배우세요?”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내게 아는 척을 했어 八자 콧수염, 방점처럼 찍힌 미간의 사마귀, 그가 분명해   인도 시장 골목을 헤매다, 전생에서 건너온 듯, 상처투성이 맨발 계집아이를 만났어 그 아이의 날갯죽지에 난, 혹을 만져보았지 "갠지스 강에 알을 낳은 네 자매니라" 우렁우렁 물속에서 말하는 것 같은 미세한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증폭되어 들렸어 그 계집아이는 물고기의 DNA를 지니고 있었어 그 계집아이가 바로 나라는 걸, 난 금방 알아챘지   2천 년 전 그날부터, 이브의 딸들 DNA는 슬픔을 직감했어 날지 못하는, 남자의 깃털은 부드럽지 아담의 이마엽 향기를 맡아봤니? 지구에서 사라진 새들은, 여자의 심장에 부리를 모아놓은 걸까? 수다의 색깔은, 늘 친절한 빨간색이지   자, 시조새로 바비큐 파티를 할 시간입니다! (마을회관 노인들도 후다닥, 화투판 접고, 소주병 들고)     14.   0, 또는 Oh~ Henry   이 선         교도소에서 탈옥한 바람은 조금 홀쭉하거나 눈매가 어둡습니다 풋사과 꽃, 수정하기 좋은 날 당신 회색눈동자는 출소했습니다만   "O. Henry~" 당신이 잃어버린 미래는 무엇입니까? 감탄사 O든지, 또는 아라비아 숫자 0든지   결핵에 걸린 당신처럼, 회색도시의 두툼한 입술은 육감적입니다 당신의 아내 ‘아솔’을 닮은,   야생 길고양이가 신발이 닳도록 어슬렁거리며 찾는 달빛꼬리처럼 낭낭하오   당근주스 꼴깍꼴깍 마시고, 입을 쓱 닦은 별무리들 입을 O로 벌리고, Oh~ Oh~ "Oh~~ 헨리,"   토요일 저녁, 홍대역 9번 출구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 ‘마지막 잎새’처럼 3포 시대, 합병증에 걸린 청춘의 클럽문화를 소개하겠소 저들 청춘의 잃어버린 113페이지 의식의 두피에 낀 비듬을 먹고 자란, 가로수의 비애를 논쟁합시다 광란의 춤과 음악으로 밤새 자라난 가시를, 서로 어루만져 주며 새벽거리는 구토를 합니다 가로수의 굽은 줄기를 펴기엔, 네온사인 불빛 허리가 연약합니다만   식탁 위에 올려놓은 수박을 닮은, 0의 줄기세포 (햇빛을 못 본 탓인지, 당신 왼쪽 눈이 파르르, 떨립니다)     이방인 0, 당신에게 나는 집착합니다 천재를 뽐내시는 겁니까? (나는 0를 질투하며 비아냥거린다) 0는 큰 눈을 몇 번 껌벅이더니, 눈을 감아버린다 (실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스마트 폰을 꺼버린 거지만) 연일 번성하는 ‘0’ 왕국을 지지합니다만, 유행이란 변덕스럽고, 외도가 심한 법인걸요   15.   이브의 예언       이 선       내 꿈을 도둑맞은 적이 있어 내 과거가 나를 협박하는 이상한 날이었지   그날 내 전생의 남자가 나를 방문하였지 오늘 내가 탄 파랑색 택시는 2년 전, 대학로 연극이 끝나고 자정에 탔던 택시였어 “아직도 배우세요?”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내게 아는 척을 했어 八자 콧수염, 방점처럼 찍힌 미간의 사마귀, 그가 분명해   인도 시장 골목을 헤매다, 전생에서 건너온 듯, 상처투성이 맨발 계집아이를 만났어 그 아이의 날갯죽지에 난, 혹을 만져보았지 "갠지스 강에 알을 낳은 네 자매니라" 우렁우렁 물속에서 말하는 것 같은 미세한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증폭되어 들렸어 그 계집아이는 물고기의 DNA를 지니고 있었어 그 계집아이가 바로 나라는 걸, 난 금방 알아챘지   2천 년 전 그날부터, 이브의 딸들 DNA는 슬픔을 직감했어 날지 못하는, 남자의 깃털은 부드럽지 아담의 이마엽 향기를 맡아봤니? 지구에서 사라진 새들은, 여자의 심장에 부리를 모아놓은 걸까? 수다의 색깔은, 늘 친절한 빨간색이지   자, 시조새로 바비큐 파티를 할 시간입니다! (마을회관 노인들도 후다닥, 화투판 접고, 소주병 들고) 16.   그 숲속, 바람소리처럼   이 선       파가니니의 손가락이 지향하는, 바이얼린 현의 능선에는 군화를 벗어던지고 뛰쳐나온, 야생화 구호가 함몰되어 있다   “꼭지점에서 뒤돌아 서!”   ‘처녀치마’의 레이스자락을 밟는 군화소리 거꾸로 힘껏 능선을 뛰어내려오는 ‘노루귀’의 절규   캐비어는 철갑상어 가죽의 상처를 기억하지 않는다 어린 풀꽃들은 속기 쉽지   ‘각시붓꽃’은 사관의 모자를 쓰고 사열을 흉내 내려다가 ‘복수초’ 목을 투두둑, 꺾는다   백화점에서 빌린 유모차처럼, 색깔과 모양이 똑같은 지식을 만나면 ‘너도바람꽃’ ‘꿩의 바람꽃’   ‘쇠뜨기’ 생식줄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하는, 밤 여자들은 ‘얼레지’ 꽃잎 물고, 사내를 유혹하고 -‘홀아비바람꽃’ 씨눈 품는, ‘요강꽃’ 사내들은 술과 혁명을 모의하며, ‘양지꽃’ 언덕 구석기시대를 꿈꾼다   고라니, 바람을 껴입고 피아노 선율처럼 개울을 건너는, 밤   흐느적거리며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뿌리에서 다시 뿌리가,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17.   기억의 초상(肖像) - 기형도 시인에게 바칩니다     이 선     신들이 잠들어 있는 도시, 족자카르타에는 보름달 뜨는 밤에, 북극성을 찾아 산을 넘는 표범이 살고 있다   그믐밤엔, 특히 꿈을 조심하라 꿈 조각 틈새로, 악마의 날갯짓소리 범람하리라   아담의 얼굴은 불의 고리- 환태평양 지진대 불의 왕국 손이 뭉툭한 어머니 지구는, 고막이 터지도록 열병을 앓고 있다 -화산과 전쟁의 흉터자국   83세의 늙은 어머니는, 2014년에야 한글을 터득한 늙은 어머니는, 암호처럼, ‘입 속에 검은 잎을 물고’ 퍼즐보다 어려운 아들의 시를, 읽는다   피카디리 극장에는 XXXX년 3월 7일, 기형도의 지문을 기억하는, 아침 9시에 눈을 뜨는 의자가 있다 붉은 의자는 기형도의 이름을 만지작거리며 짜라투스트라의 눈빛은, 버드나무 잎사귀를 닮았다고 중얼거린다   27살의 기형도 이름이 요절한, P영화관 극장 입구에는 노란색 리본을 단, 동성애자들이 피켓을 흔들고 있다   18.   바람기둥에 대하여   이선   사막의 허공에, 남북으로 길게 카페트를 깔면서 날아가는 시조새를 잡아주겠소?   한랭하고 몹시 건조한 내 목소리는, 모래언덕에 분양하여도 좋소 잠자거나 깨어 있거나   파랑색 대문 안, 그 책상서랍은 아직 수리되지 않았소? 닫혀 있거나 열려 있거나   서랍 속에서 하얗게 질려 기절한, 그녀 목소리는 가늘고 앙칼지오 점심‘전갈비빔밥’양념으론 충분하오 참회의 땅은, 붉은 입술 건너편 고백의 땅은, 무지개 건너편 비늘구름 켜켜이 우거진, 오아시스가 적당하겠소   하늘에는 모시조개 구름 땅에는 가시도마뱀   직경 10km 크기 시속 7만 km 소행성, 내 식구들 목소리 아직도 울창, 울창 기억하오   그 파랑색 구름대문을, 내가 아직 열어두고 나왔소?       20.   무릎 자서전     이선       한 각도에서 떨어져 나온 연골이 삐그덕, 소리를 낸다   행성의 틈새로 푸른 잉크빛 바람이 흐른다 무릎연골에서 잘 익은 과육이 빠지고 있다   심층 해류가 사는 어느 몬순 기후에서 불어온 습한 바람인가? -이 비릿한 살바람   무릎과 무릎, 사이 관절과 관절, 사이   사막모래 언덕에도 선인장 꽃은 핀다 스크린의 검은 자막처럼, 선명한 초원의 배꼽 허공으로 튀어오르는 날치의 은빛 몸부림을 닮은 줄무늬 초록빛 오로라, 모래언덕에 켜켜이 쌓인 빛의 스크럼 아침을 떠나서 저녁의 사랑을 이야기할 시간이다   산호섬 저 너머 사막여우, 사막뱀, 전갈 꼬리 저 너머   사막의 갈비뼈를 더듬으며 낙타는 모래벌판에 하얀 발을 내딛는다 비릿한 붉은 살점 같은, 텁텁한 공기는 귀납법이거나 점층법   은빛 물방울무늬 사랑의 밀어를 나누기엔 달빛조차 무너진, 오늘 같은 한밤중이 알맞다   “긴 혀를 내밀어 선인장꿀을 맛볼 황홀한 시간입니다. ”   무릎 활막 기포들이 헉헉, 숨가쁘게 모래방파제 안개더미 위로, 은밀한 기표들을 뱉어놓는다 (스콜 내리기 10분 전)   낙타는 인어공주가 사는 전설을 나타샤별에게 듣는다 (무릎 관절이 시릴 때, 미완의 사랑이 완성된다는,)   21.     소금꽃을 꺾다     이선(李仙)     모래고양이 발톱과 사막의 낙타 발자국은 푸른색인가요, 신이여 그래, 새끼낙타를 삼켜버린 밤도 푸른색이지 어미낙타 눈동자가 점점 줄무늬하이애나를 닮아가요 괜찮아 곧 나이를 먹을 테니까, 뱀의 푸른 눈이 살아 있어요 그래 파푸아뉴기니로 날아가는 8000피트 상공에서도 살아 있더구나 모래고양이가 파 놓은 토굴에 숨어 새끼를 낳는 도마뱀 빨간 엉덩이를 보았지? 거울 속, 염색한 내 빨강 머리카락을 보고 있어요 오늘을 부정하면서, 벌써 내일을 초대한 거니? 이 거리에서 입양에 대하여 말하는 건 금기어예요 그 아이들은 곧 자기의 성이나 이름을 버리게 될 거다 14세 여중생이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았어요 신이여, 날기를 거부한 새가 새벽 공원에는 많아요 밤새 도둑고양이를 피해 잠을 설쳤나보다 그래 삭제할 게 많은 서울거리는 참 부지런하구나 경계경보를 울릴까요, 지금? 땅! 총을 쏘기 전에 선을 넘으면 아웃이라고   23.   대륙붕 크루즈여행 체험기       이 선       차가운 눈(雪)과 어두운 박쥐가 악수를 하는 저녁 우아한 손님처럼, 경쟁은 또 시작되곤 했지   희고 정갈한 탁자 위에 하얀 케이크와 촛불을 켜 놓을까요? -가면무도회처럼, 23:00 정각에   바다는 달빛에 취한 흰 파도 위에, 낯선 물고기들 이름을 샴페인처럼 터뜨린다 청춘이 저지른 실수를 위해 건배! 늙은 가수의 흘러간 팝송이 끝나기 전에 다행히 사람들은 수다를 멈추었다   바다는 잃어버린 산호숲을 다시 찾아 나선다 스마트폰에서 삭제된 이름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번진다   바다 속 200미터 대륙붕 정거장엔 자유를 예약한 크루즈여행 궁전엔 과열경쟁에 지친 탁자들이, 담뱃재를 털러 모여들고 있었다       25. 무의미 불확정 무제한적 상상력의 최대치 확대   탁상공론 문명일지       이 선(李 仙)       책꽂이에 거꾸로 돌아앉은 사르트르는 더러운 손과 지저분한 손, 그 차이점을 모르지 바람이 꽃씨의 발화점을 외우는 동안 바다는 구름을 잉태하지 늙은 토인 여자의 자궁은, 그린파파야 향기     “당신은 곧 당신이 먹은 것”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몸은 화학적으로 다르다는군 프랑스 남자가 고급 바닷가재 요리를 먹을 때 아프리카 아이들은 쓰레기더미를 뒤지지 부자가 먹은 바닷가재 '수은, 비소'가 더 고가의 죽음이라고 현대문명은 우기지     아프리카 처녀, 녹슨 깡통이 익히고 있는 흰개미죽은 21c 서울처녀가 꿈꾸는 다이어트 음식, 파파야 통조림은 고갱의 여인, 젖은 머리카락 냄새가 나지     현대문명이 5분 동안 끙끙, 자동차 바퀴를 굴리는 동안 아프리카 사슴은 태어난 지 5분 만에 걷는다네 탯줄 피막 피냄새를 맡고 곧 달려들 맹수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동물들 연애사를 들먹이는 건 철학의 수치라고 사르트르는 주장하지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던 사자의 갈퀴 따윈 잊었다고 현대문명은 또 곧 우기겠지만,   26.   결론     이선     곁가지, 원가지보다 더 길게 뻗은 새벽 찔레꽃길, 건너왔구나. 기어이, 구렁이 입속에서 뒷다리부터 몸통 반쪽 물린, 개구리 울음소리를 만나는구나. “웩, 웩” 거꾸로 뒤집혀 쑥을 부둥켜안고 파닥이는 장수풍뎅이 집착을 만났구나. “놓아라, 놓아야 네가 살아”   헌 벽난로 연통에서 부화한, 오색무늬 새끼 새들 오늘도 기다리는구나 찌찌찌찌 삐삐삐삐, 요란했던 여섯 바퀴 비행연습 4년째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두나무 자를까, 말까 또 3년을 지켜보는구나   꽃뱀이 목 치켜세우고, 코앞에서 나를 노려보는구나 장맛비에, 엄지손톱만한 청개구리 스물세 마리 여기서 톡, 저기서 톡 온 천지가 미끌, 미끌 흐르는구나 ―양평군 양평읍 대흥리 300번지, 여름     27.       서론     이 선     그 밤, 성경의 를 읽었지 생선비린내가 베어있는 작은 다락방에서 잃어버린 내 청춘, 116페이지 원고를 넘겼지 혁명을 외치는 낡고 더러운 붉은 양탄자 위로 검정도둑고양이가 먼저 지나갔지 앞집 길고양이와, 내 집 길고양이가 네 팔, 네 다리 서로 껴안고, 한데 엉겨붙어 가파른 언덕을 데굴데굴 굴렀지,   붉은 단풍나무 그림자가 누워있는 내 의식의 흐름을 흔드는, 개울물소리 자갈 밟히는, 소리   냇물 속으로 뛰어든 단풍잎들은 계절을 순환하며, 흰돌을 암갈색으로 물들였지 구름발바닥에서는 풀꽃향기가 났지 똑바로 걸어오던 바람이 뒤돌아섰지   ‘서다’라는 이미지를 잡고 치타가 긴 꼬리를 돌려, 방향을 바꾸는 밤에       인연론   이선   불광사, 스님 황금빛 옷자락에 기와지붕 씻어낸 처마 물이 떨어진다 저 빗물은 내가 아침밥상에서 먹은 한강 물이다   한 컵 푸른 유리컵 안에는 계곡을 온 몸으로 휩쓸고 내려온 비의 DNA가 숨어 있다 비릿한 살내음이 묻어 있다   어제 먹은 쑥차는 오늘 내 몸에서 들풀의 생각을 키운다   물길은 제 근본을 버리지 않는다 어제 골짜기에 남겨놓은 비의 족보를 또 다른 빗줄기가 오늘 읽어내린다   지금, 계곡 돌틈에 남겨놓은 물의 DNA 족보를, 스님의 젖은 법의가 기운차게 읽어낸다 계곡 물은 넓적한 바위를 지날 때 몸을 납작 업드려 바위인양 딱 달라붙어 낮게 흐르고 높은 언덕에선 눈을 질끈 감고 천길 아래 바위로 뛰어내려, 몸을 만신창이로 부서뜨린다 낮은 골짜기를 지날 때에는 가로 막는 바위를 비껴서 제 몸을 아프게 찢어, 유순하게 두 갈래로 갈라져 길을 내며 흐른다 안개숲을 지날 땐 몸을 가볍게 오므린다 그대여,   석촌호수 혼탁한 물에도, 오늘 아침엔 맑은 이슬, 통통 튀며 빗방울 내린다   그대여, 콧물을 훔치는가 역한 냄새로 숨어들어, 숨 가쁜 비의 DNA 당신께 무어라 웅얼거리는가     이사도라 덩컨   이선     아프로디테의 부서진 거품 알갱이들이 얼어붙어 내 몸을 만들었다는 전설을 나는 믿는다 내 춤의 원소는 1905년 1월 5일, 겨울궁전에서 학살당한 노동자들의 맨발이다 -47˚c 가로수 잎, 잎사귀에 맺혀 얼어붙은 눈물(雪淚)은 내 춤의 세포조직,   내 몸의 원소는 바다와 바람, 러시아 설원에 첫발을 내딛는 순록의 맑은 눈망울, 첫눈, 첫 입맞춤   “내 영혼이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때까지, 지상을 떠나지 않을 거야”   발끝으로 세상을 밟으며 허공을 껴안고 춤추던, 그 밤 별빛에 내 몸이 쓰러지던, 그 밤 안개 숲을 헤치고, 맨몸으로 나이어린 가로수가 나를 부둥켜안고 키스를 퍼부었지 그 밤, 어린 날 사고로 강물에 빠져죽은 내 아들 패트릭 깃털처럼 가볍게 내 품속을 파고들었어 “내가 어떻게 그를 상처낼 수 있겠어?” ―예세닌 내 아들, 내 남편   밤마다 그의 꿈은 신경쇠약, 알코올 중독, 간질, 술과 폭력의 공포에 떨며 자살을 기도한다 ―젊은 천재시인, 예세닌   “내 안의 詩가 날 잠재우지 않아” 내 춤의 날개인, 우주의 긴 푸른 스카프에 소리와 빛을 담고, 나는 뜬 눈으로 그의 꿈을 지킨다     * 이사도라 덩컨: 1877~1927년 미국 출신의 현대무용의 개척자. 전통 발레를 거부하고 맨발로 춤을 추었다.     28.     달팽이 학습일지   이선     월요일 나는 앞얼굴과 뒷얼굴이 다른 껍질이 부서진 달팽이, 내 주인은 아픈 나를 ‘옐로우 트리’라고 불러요 그녀와 나는 자웅동체 한 몸이예요 나처럼 그녀도 우렁이 껍질같은, 곱사등을 형벌처럼 짊어지고 살지요. 작고 왜소한, 달팽이 껍질 같은 그녀 나는 광렌즈 끼고, 매일 그녀를 은밀하게 관찰합니다. -한번 뒤집어지면 말라죽어버리는, 그녀도 나처럼 똑바로 누울 수가 없어요.   화요일 그녀는 매일 달팽이를 관찰합니다 달팽이똥을 이쑤시개로 뒤적이며 근심스레 살핍니다 -녹색, 빨강색, 노란색 나도 그녀 몸을 관찰합니다 그녀 정수리, 미간, 목울대 그녀가 나를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나는 그녀를 애처롭게 쳐다봅니다. 그녀가 오늘 밥을 얼마나 조금 먹었는지 내 더듬이는 그녀에게 예민합니다.   수요일 달팽이는 어둡고 조용하며 따뜻한 곳을 좋아해요 좁고 아늑한 그녀 방이 좋습니다 그녀는 오늘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싱싱한 상추, 당근, 바나나를 먹여주고 싶어요 그녀 속을 말갛게 헹궈주고 싶어요   목요일 새벽이슬은 허기져요 삭제된 그녀의 뇌도 허기져요 신경섬유의 다발성 병변(neurofibrillary tangle)과 초로성 반점(neuritic plaque) -옐로우 트리, 그녀에게 Dr. 알츠하이머씨가 왕진을 왔냐고요?   금요일 기억장애로 햇빛을 폭식하는, 그녀 하루종일 달팽이가 몇 cm 기어갔는지 집착하는, 그녀 솔론드 박사에게 내일은 편지를 부쳐야겠어요 그녀의 알츠하이머 10번 염색체, 11번 염색체에 이상이 생겼는지?   토요일 20121213 암호처럼 비종일비 주룩주룩비 주룩 그녀가 연애를 하냐고요? 14살, 소녀의 꿈을 임신중절수술 시킨, 친 오빠 곁가지 꺾인 뒤, 말을 놓아버린 그녀 그녀 속잎이 아파요 오, 나는 그녀와 짝짓기를 할 수 없어요   일요일 그녀 베개 밑에 구겨진, 예로우 트리 잠든 그녀 손가락에 더듬이가 닿았습니다   달팽이, 뿔에 붙은 꽃불,     29.   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     이 선   나의 젖가슴은 보름이면 살이 오르고 조금 때는 살이 빠진다 해와 달과 별이 내 줄기세포를 키우는가보다 누군가 나를 지었다, 작은 키, 급한 성격, 갈색 눈동자, 예민한 입맛 가는 목소리, 위의 크기와 창자길이, 누군가 내 유전자를 조립한 거다   내 정신의 줄기세포는 어디에서 이식받은 것일까?   페이지가 접혀, 뇌혈관 어디쯤 파묻혀 있을 니체, 보들레르, 토스토에프스키, 이사도라 덩컨, 까미유 끌로델, 열기와 헛소리 내 피는 샤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가? 파랑색 스카프, 파랑색 가방, 파랑색 원피스, 나의 詩도 파랑색이다. 착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은 나의 詩, 나의 詩에는 적도의 피가 들끓고 있는데 러셀의 연애론보다 더 겁쟁이인 불쌍한 나의 詩, 감염되지 않은 단어가 내 시에 한 줄이라도 있을까? 생각의 껍질까지, 타인의 유전자가 흐른다 (어머니의 눈으로 본 아버지,) (언니의 코로 맡은 돈 냄새,) 내 몸의 세포조직엔 적도의 바람과 햇빛이 녹아 있다 (한국인의 조상은 동남아인이라고 흥분하던 KBS, 9시 뉴스앵커, 내 두툼한 입술과 주먹코는 분명 남방계다)   하늘은 초록색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나무들 밑둥 잡고, 오늘도 땅에다 열심히 글씨를 쓴다 제 생각을 뿌리 채 땅속에다 모두 이식하고 싶은 거다.   나뭇잎의 떨림을 이식받아 바람 앞에 내 줄기가 떨리듯 내 굴절된 파장이 혹, 누군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당신 심장 한쪽을 떼어내 내 할딱이는 심장에 마저 붙여주고 갔듯이,   지금, 나는 누구의 푸른 눈동자로 응고되어 가는 너를 보는가?   * 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 장기이식 후 기증자의 성격과 습성까지 전이되는 현상. 애리조나주립대학 심리학 교수 게리 슈왈츠(Gary Schwartz)가 처음 발견함. * 2011년 웹진 시인광장 100인 선정 작품     30.   까미유 끌로델의 외출   이선   빨강, 주황, 흰색 아네모네 꽃을 내 젖가슴에 탐스럽게 그려줄래요? 나는 연보라색 줄무늬 드레스를 벗고 바람 앞에 가슴을 드러내고, 달빛에 젖을 거예요 북쪽 작업실 창문 모서리엔 노란 수은등 북두칠성 자리에 둥둥 떠 있어요 나는 그 별을 ‘나의 거북이별’이라고 불러요 나는 ‘나의 별’에 천년 동안 등뼈를 문질러댔죠 몽블랑, 에펠탑, 미라보다리 건너 오늘밤에도 내 침실로 달려오신, 당신 오, 나의 어여쁜 신神이여   나는 우주의 원기元氣를 빨아들인, 흰돌 로댕의 긴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요 나는 그 커다란 손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껴요 부드럽게 열리는, 돌의 입술 오, 돌의 처녀성   “아~악, 난 미치지 않았어요!”   로댕의 길고 하얀 손톱이 돌의 입술을 찢어요 점점 야위어가는, 수백만 년 풍화된 흰돌의 갈비뼈 달그락, 누군가 내 전두엽 뚜껑을 열어요 내 천재를 염탐질하는, 당신 차가운 회색눈,   별똥별 우르르 쏟아지는, 봄밤 아직, 아기별은 등불을 끄지 않았나요? 로댕, 당신 눈동자가 어두워요 나의 미소로, 당신 눈동자를 반짝반짝 닦아 드릴게요   1억 5천만년 후,       로댕, 나는 당신의 초록별로 다시 태어날 거예요, [출처] 나의 하이퍼시 쓰기|작성자 옥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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