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절휴식조절로 토요일이 근무일로 지정되여서 7일 일요일 일행 24명이 도문형제봉으로 출발했다.
새로 지은 도문북역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면 가야하건너 바위산 세개가 우뚝솟아있다. 바로 지도에 大砬子로 표시된 형제바위다. 당지에서는 삼형제바위란다. 형제바위 아래 서쪽 302국도변에서 산골짜기에 진입하여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한시간정도 산길을 톺으면 봉에 오를수 있다, 먼저 북쪽봉에 올랐다가 릉선 타고 남쪽봉에 오를수 있다. 전업대원들은 그냥 남쪽도로변에서 바줄을 타고 오를수 있으리라. 2006년 가야하북쪽 月晴镇의 水南、向阳、下嘎村이 석현진에 편입되면서 석현진의 범주의 산으로 되였다。大砬子村이 향양촌에 합병되여서 행정적으로 촌부가 존재하지 않지만 大砬子村大砬子山이 또 다른 이름이다.
형제봉은 남고령의 남쪽 가야하변의 바위다. 남고령과 북고령사이가 바로 봉오골이며 유명한 봉오동전투유적지이다. 지금은 도문시수원보호구역이 되여 민간인의 접근이 금지된다. 1920년 6월 7일 봉오동에서 홍범도, 최진동, 안무 등이 이끈 대한북로독군부의 독립군 연합 부대가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추격대대를 무찌르고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 봉오동 전투는 만주지역에서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 본격적으로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여 독립군의 사기가 크게 높아졌으며 이는 1920년대에 독립전쟁이 더욱 활발히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다.봉오동전투가 곧 청산리전투로 이어진다. 형제봉은 당시 독립군의 초소가 설치된곳으로 일본군의 동태를 파악하는 중요한 작용을 했단다.
골짜기에 가슴높이까지 싸인 락엽은 그냥 락엽헤염을 치게한다. 바위만큼 언제나 위험이 동반한다. 발착지점을 잘 찾고 침착하게 천천이 릉선을 넘는것이 자못 중요하다. 몇년전에 바로 이곳에서 한 대원이 발이 미끌어져 추락할번한 일이 있었는데 모두들 크게 놀랐고 그후 당사자는 등산을 그만두었다.
높은 바위까지 여회원들이 정성드려 갖춰온 간식을 모두들 맛있게 나누어먹으며 우의를 돈독히 하였다.
랑만산악회가 성립되여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777이란 등산차수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가 각별하다.
2023.5.9 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