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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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래일을 생의 마지막 날로 삼고 오늘을 살라 댓글:  조회:186  추천:0  2017-11-09
“당신이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을지,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이런 물음에 확답할 사람이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해야 할 일들을 뒤로 미루는 것이 보편적인 현실이다. 그런데 연변대학 농학원 식물학박사 김수철(93세)교수는 침대머리에 ‘죽음체험’이란 글을 큼직이 붙여놓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래일 죽을 것처럼 일한다’며 죽음을 맞이한다. 김교수는 정년퇴직 후에 식물학연구의 새로운 황금시기를 맞이하며 인생 후반전에 멋진 ‘꼴’을 넣고 있다. 김교수는 “이미 출판한 《길림성식물명록》에 빠진 것이 너무 많아 내가 보충해야지...” 하며 몇년 전부터 자기가 수십년간 수집한2600종의 식물표본으로 《길림성식물독본》을 출판할 타산이다. 90고령에 안해를 딸네 집에 보내고 영, 한(汉)문 설명문에 직접 그린 2600폭의 그림을 배합하고도 더 좋은 책을 만들겠다며 지난해부터 거의 혼자몸으로 성내외를 다니며 사진을 찍으며 고군작전을 하고 있다. 올해 그가 성내외에 다니며 찍은 사진만 해도 4만장에 달한다. 지난 10월 27일에 김교수가 들려준 얘기이다. “지난 겨울 어느 날 새벽에 찬바람을 맞고 잠에서 깼지요.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말을 안 들어줘서 약 15분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중풍징조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정신을 가다듬고 악을 쓰고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다음 억지로 뒹굴며 보건상자 앞까지 기어가서 준비한 뜸쑥으로 발바닥에 뜸을 떴지요. 한참 지나니 몸이 정상으로 회복되더라구요.” “그 일이 나한테는 죽음체험이 되였지요, 그래서 침대머리에 ‘죽음체험’이란 대자를 써 붙여놓고 래일을 생의 마지막 날로 생각하며 오늘의 일에 열심 합니다.” 죽음은 삶의 가장 큰 상실이 아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스스로가 어떤 것을 죽여버리는 것이다. 삶은 기회이고 아름다움이며 놀이이기도 하다. 삶을 붙잡고 감상하고 누리는 것은 자신에게 달린 몫이다.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너무 늦을 때까지 기다려서도 안된다. 독일의 노벨상 수상자 하우프트만은 “매일을 당신의 최초의 날인 동시에 최후의 날처럼 살라”고 말했다. ‘오늘은 인생의 최초의 날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많은 희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고 또 얼마나 많은 계획을 세우며 도전할 수 있겠는가. ‘오늘은 인생의 최후의 날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삶의 희망과 계획을 이루기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며 매진하겠는가.   길림신문 ( 2017-11-09 ) 길림신문 칼럼리스트 오기활  
1    리광남대좌의 ‘효’ 댓글:  조회:128  추천:0  2017-11-09
일전에 필자는 리광남대좌(67세)를 만나 ‘효'를 화제로 대담을 하였다. 특수 사정외에 해마다 청명, 추석에 조상 성묘를 한다는 공군대좌의 이번 걸음도 추석성묘를 위해서 였다. “아버님과 어머님의 교육으로 뼈를 굳혔고 민족의 혼을 키웠습니다. 아버지는 늘 ‘남의 물건은 벼짚 한오리라도 집에 가져와서는 안된다’, ‘내 가정 일부터 잘 해야 한다’, ‘가족, 국가, 민족에 효도 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참군하는 것을 부모와 나라에 효도하는 것이라면서 군대는 ‘종합대학’이요, 군대에 가 자기만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다 배울 수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아버님을 그리는 공군대좌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1970년 11월에 제가 입대하자 아버님은 생산대로부터 분배 받은 저의 몫의 1년 량식을 수레에 싣고 애국량으로 바쳤습니다. 돌아오던중 찬바람을 맞고 중풍으로 쓰러졌답니다. 제 한테는 소식을 알리지 않아서 몰랐지요…”, “…중풍으로 3년간 시달리다가 63세에 타계했는데 그때도 저는 아버님 곁에 없었지요… 생전에 부모님께 효도를 못한 것이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남의 물건은 벼짚 한오리도 집에 가져 오면 안된다는 아버님께서 입대한 아들 몫의 량식을 애국량으로 바치다가 쓰려졌다는 소식을 들은 그때부터 나는 ‘가족, 국가, 민족에 효도 해야 한다’는 아버님의 부훈(父訓)에 따라 나라에서 맡긴 일을 잘 하는 것으로 하늘 나라에 계시는 아버님께 효도 하리라고 결심하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리광남은 효자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초중 문화수준밖에 안되는 문화기초로 해방군 ‘종합대학’에서 모든 일에 미친듯 배우고 일하며 공군장비고급공정사, 과학기술발명가, 국무원 특수보조향수자,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 전국로력모범 등등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참군할 때 어머님은 “군대에 갔다 와서 조선말을 안하면 동네에서 너를 ‘덜 된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하기에 40여년간 군생활을 하면서도 우리 말을 잊지 않았고 한족들속에 묻혀 있는 두 자식들도 우리 말을 잘 배우도록 강요한 그다. ‘효’는 부모를 섬기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충’은 ‘효’의 정성으로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덕을 근본으로 안으로는 ‘효’를 다하고 밖으로는 ‘충’을 다하는 것이 리광남대좌가 말하는 ‘효’의 실질이라 하겠다. 길림신문 (2017-11-08)       길림신문 칼럼리스트 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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