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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신한금융그룹, 글로벌 500대 금융 브랜드 선정, 대한민국 1위 댓글:  조회:642  추천:0  2012-02-11
신한금융그룹, 글로벌 500대 금융 브랜드 선정, 대한민국 ‘1위’   세계적 권위의 금융전문지 더 뱅커(The Banker)誌는 2월 1일(수) 신한금융그룹(회장 한동우)을 2012년 2월호에 발표한 ‘글로벌 500대 금융 브랜드 (Top 500 Banking Brand)’에서 대한민국 1위, 세계 57위로 선정하였다. 국내 단일 금융사가 아닌 금융그룹으로서 이 같은 평가를 받은 것은 신한금융그룹이 처음이다. ‘글로벌 500대 금융브랜드’는 더 뱅커誌와 영국의 브랜드평가전문기관인 브랜드 파이낸스(Brand Finance)社가 공동으로 선정하는 것으로, 전 세계 천 여 개 금융기관에 대한 브랜드 가치 평가 후 1위부터 500위까지의 순위를 선정해 매년 2월 발표하는 것이다. 신한금융그룹은 “지금까지는 신한은행이 평가를 받아왔으나, 지난해부터 금융그룹 단위의 평가로 전환되었고, 지난해 125위에서 올해 68단계 상승해 57위에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선정 방법은 금융회사의 전년도 재무 실적을 기준으로 미래 실적을 추정하고, 해당 기업의 고객서비스, 명성 및 고객충성도 등을 종합적으로 측정해 최종 브랜드가치를 산출하는 방식이다. 신한금융그룹은 우수한 재무 실적과 업계를 선도하는 각종 사회공헌활동 등 그룹 차원의 지속적인 브랜드 마케팅 활동과 한동우회장이 추진해온 ‘따뜻한 금융’이 고객들과 평가사로부터 호의적인 이미지를 확보한 것이 높은 점수를 받아 이 같은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는 “‘신한’이라는 그룹 브랜드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첫 걸음으로 생각한다”며 “이번 선정을 계기로 글로벌 금융브랜드와 경쟁하는 한국의 대표 금융 브랜드로 확고히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안녕하십니까? 신한은행상해포서점에 안귀선입니다,   금년한해는 하시는 사업이 더욱 번창발전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지금처럼 많은 지지와 협조 부탁드립니다, 신한은행을 많이 활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상해 우중루쪽으로 나오시면 꼭 신한은행 사무실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현윤국제빌딩 820실입니다, 따뜻한 커피한잔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9    同胜,同行,同乐-신한은행! 댓글:  조회:938  추천:0  2012-01-04
한국신한은행 상해 포서지점은 민항구 우중루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은행과 유관되는 일이 잇으면 언제든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주소: 상하이민항구 우중루 1100호 820실 헨드폰: 1381-7994-701/158-2193-7831(안귀선) 전화: 021-6465-2355 큐큐: 12244-62744 메신저: nettimecc@hotmail.com 신한은행 사이트: http://www.shinhanchina.com 사진은 신한은행 사무실을 방문했던 지인들입니다, 새로운 한해 더욱 팍팍 밀어주실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8    결혼 25주년 기념 사진입니다, ... 댓글:  조회:1261  추천:0  2012-01-04
25년전에 남편 김휘를 만나,,결혼하여 딸 김증언 아들 김길성을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아왔습니다. 특히 자녀들이 훌륭하게 성장해서 더욱 맘이 뿌듯 해 집니다. 앞으로 더욱 놀라운 은혜와 평강이 우리한가족에게 임할것이라 확신합니다. 늘 옆에서 따뜻한 맘으로 기도 해 주시고 씩씩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남편에게 고맙고 또 귀여운 딸 그리고 의젓해 보이는 아들이 ,,,기특 해 보이고,,,자랑스럽습니다. 결혼 25주년 은혼식을 축하 해 주신 상하이소수민족연합회 회장을 비릇한 각지역 소수민족 대표들 그리고 상하이조선족여성기업인회, 상하이독서회, 각단체 대표들과 김진영회장,문명걸회장.전기태회장,김룡호회장. 이외에  모든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은혼축하식 동영상을 아래주소를 클릭하면 보실수 있습니다. http://www.anguishan.com/결혼-25주년-기념영상입니다아들과-딸이-직접-만든-이/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한가족이 하문에서 모여  한 자리에 앉아,,,독서계획을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저는 해년마다 거의 비슷하게 독서를 하군 하는데 그것은  매월 /2권 24권/년이엿습니다, 그 독서목표 달성을 향하여 ,,오늘날까지 독서를 해왔습니다, 책을 읽을때는 늘 메모하면서 읽었고 독서하는 시간을 아침 5시반~7시반까지 정했습니다,  그 다음은 신한은행  포서점에 출근해야 해서 ,더 읽을 수가 없었고 때로는 책속에 주인공과 함께 하고싶은 맘이 불같았지만 사업을 위해 절제해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생각같아서는 맘대로 책읽는 시간이 주어 졌으면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넘 책만 읽고 실천하지 않으면 ,,,자만에 빠지게 되고 세상사람들과 동떨어진 ,,,사람이 될수 있음에 두려운 맘이 들기도 했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지우치지 않는 생활을 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은행일에 몰두하게 되군 하였습니다, 매번 새로운 책을 손에 쥘때마다 한순간에 다 읽어내려가군하던 저는 절제하는 연습을 거듭했고 읽은내용들을 그 이튿날에는 다시보면서 묵상하고 새로운 내용을 읽어내려가는 습관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독서는 저의 삶속에서 넘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앞으로도 상상치 못하는 선물을 많이 받으리라 확신합니다, “시간을 내어 일하라! 성공의 지름길이다, 시간을 내어 운동하라! 젊음의 비결이다. 시간을 내어 친절하라! 행복이 찾아온다 시간을 내어 사랑하라! 삶의 가장 큰 기쁨이다 시간을 내어 사고하라! 힘의 근원이다, 시간을 내어 꿈을 꾸라! 성공의 길잡이이다 시간을 내어 웃으라! 영혼의 음악이다” 제가 좋아하는 구절들입니다, 2011년 12월 20일 상하이독서회 마지막 송년모임에서도 이내용을 나눴던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내어 할 일들이 많은데 … “ 그동안 독서를 위해 시간을 낸 다는게 참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시간을 내어 독서했더니 ,,,아래에 시간을 내어서 해야할 일들이 재대로 풀림을 깨닫게 되였습니다, 독서하면서 직접적으로 저의 사업과 삶에 변화를 가져왔던 점들을 몇가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게으름"과 "일초를 잡아라"란 책을 읽으면서 거룩한 삶의 은밀한 대적 게으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바이러스를 물리치지 않고서는 분초를 다투면서 살수없었고 아무일도 이뤄나갈수 없음을 깨닫았습니다, 그리하여 부단히 게으름을 저의 삶속에서 조금도 살아남지 못하도록,,,강하게 자신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때로는 좀더 자자 좀더 눕자 푹 쉬고 싶다 생각이 들때면 ,,,”내가 게으름 너한테 져서는 절대 안되~ 일어나자~”하면서 무조건 세면실로 가서는 얼굴씻으면서 ,,,정신을 차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군 한게 그동안 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였습니다, 2.”인재경영의 법칙””리더십 키워드” “나의 강점 혁명"이란 책을 읽으면서 저는 회사를 운영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을 키워라” 저는 이책을 읽으면서부터 저 자신이 생산현장에 서서 일만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였고 서서이 직원들의 적극성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회사 모든 직원들이 살아잇는 하나의 세포가 되여 목표를 갖고 움직일수 잇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완전히 직원들이 모든일에 주축이 되여서 ,,,움직이고 저는 단 확인 하는 일과 직원들을 섬기고 교육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잠재력테스트를 하면서 ,,, 시스템도 건물도 계속 가꾸지 않으면 곧 낡아 허물어지게 되어 있는데. 하물며 사람 키우는 일을 하지 않고, 지금 그 상태로 머물게 한다면, 어찌 될가?를 고민하게 되였습니다, 예비 리더를 성장시키고 개발하면. 지금보다 더 유능한 재원이 되어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으며.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될 것은 그들의 잠재된 가치를 인정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여 “잠재력 테스트”를 함으로서 직원들의 깊은데까지 요해하는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3.”돈 버는 회사로 만들수 있는 109 가지” “불가능은 없다”등 책을 읽으면서 온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저는   생각을 바꾸는 경영자만이 돈벌 수 있는 회사를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그동안 모든 일들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기업이라는 생명체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미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위로는 경영자에서 아래로는 말단 사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보편적 진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면서 회사 경영 비젼과 경영이념 목표 등을 실제로 고민하면서 정리하고 회사직원들과 공유하면서 매일 외우도록 ,,하면서 회사를 한걸음 높이 끌어올릴수 있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다가는 때로는 떠오르는 영감을 늘 책에 기록하군 했습니다., 특히 저혼자서만 독서할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동원해서 지적재산을 쌓는 일에 동참하도록 하자고 ,,,생각하고 매월 상하이독서회모임을 조직하군 했습니다.  “한시간 만은 자기 자신을 위한 투자시간”으로 간주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때로는 귀중한 선물까지 걸어놓고 일찍 독서를 끝내는 회원한테 선물을 주기도 햇습니다,  4,”희망을 굽는 토스트맨”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누구나 “3뻐”를 이뤄나가는 사람이여야 함을 깨닫게 되였습니다, 이번 제6차 cbmc 기업인 중국 전국대회가 상해 태양도에서 열렸는데 저는 한참 강연을 듣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강연을 듣는중에 “3뻐”라는 말이 나와서 호기심에 더 집중했더니 바로 책을 쓴 작가 김석봉씨가 현장에서 강연하고 계셨습니다, “3뻐” 참 궁금하죠? 그것은 바로 “나는 바뻐,나는 예뻐, 나는 기뻐”였습니다, 우리는 실생활속에서 3뻐를 이루고 있는지요? 바쁘다는것은 부지런히 산다는 뜻입니다, 예뻐는 맘 덕을 쌓는 사람 다시말하면 미덕을 가리킵니다, 물론 눈으로 보기에도 예쁘면 더욱 좋죠, 건강한 모습 자신을 더욱 단정하게 다듬은 후에 사람들 앞에 나선다면 … 기뻐는 감사하는 사람,,,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참 듣기에는 쉬운 것 같은데,,,이 3가지를 실천하는데는 그리고 자신이 늘 가슴에 손을 얹고 “3뻐”를 말할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저는 이 3뻐를 이뤄가는 한사람으로서 앞으로 더욱 충실한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5.책을 읽다 보면 눈이 힘들때가 넘많았습니다, 때로는 글이 흔들거리고 희미하고,,,그래서 앞으로 계속 책을 읽어야 하는데 어떻게 한다? 참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김남수 회장책장을 들여다 보다가 “눈 이렇게 하면 좋다”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여 보게 되였는데 ,,,참 많은것들을 깨닫게 되였습니다, 우리몸에 건강을 유지하는것, 그것은 이세상에 살아가면서 제일우선순위임을 알게 되여 이제는 건강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였습니다, 이세상에 모든것을 다 얻고도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겟습니까? 6.”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이책은  나의 인생에 새로운 열정의 불을 지피는 놀라운 작용을 해주었던 책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듯 ‘무식하고 미련하게’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물이 가득 차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경험했고,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듯이 아픈 비판일수록 나를 강하게 키워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힐러리에게 '여자도 야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배웠고, 콘디에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것을 배웠으며, 피터 드러커에게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나날이 성장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7."극단적 미래예측"이라는 책은 제가 얼마전에 다 읽은 책인데 이책을 읽으면서 저는 "직원들이 행복해야 기업이 성공함"을 깨닫게 되엿습니다.”기업의 장단기 비젼을 다시 수립하라! 새로운 미래전략지도를 그려라”라는 내용은 지금까지도 맘을 울려줍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자면 정신차리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수 없음을 느끼게 되였습니다. 책속에는 모든 기업을 운영하는 사장들이 심사숙고해야할 질문이 들어있습니다. 1-10년후 당신이 경영하고 있는 기업은 어디로 가고 있을가? 2-회사의 성장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고 있는가? 3-어떤방법으로 직원들을 혁신적으로 관리할것인가? 4-기업에서 성공할려면 우리회사는 어떤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는가? 5-직원들의 열정과 잠재력을 발휘하자면 어떤 방법을 활용해야 하는가? 6-직원변동이 심한 현재 화사와 나는 어떻게 혁신하고 변화해야 하는가? 7-어떻게 하면 직원들로 하여금 스스로 효율을 높이는데 집중시킬것인가? 8-어떻게 하면 회사에 좋은 인재를 더 많이 유치할수 있을가? 저는 책을 읽으면서 반복적으로 질문하고 답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며, 우선 직원들을 행복하게 하는길을 찾을려고 애를 썼습니다. 특히 직원들의 잠재력을 불러일으키기위하여 아침마다 한시간 교육시간을 정하여 전반적으로 직원들의 수준을 제고하는데 신경을 썼습니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들도 행복하고 고객들이 행복해야 기업에 부가가치가 제고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였고 또 직원들을 행복하게 할려면 아래와 같은점을 실천해야 함을 터득하게 되였습니다. 명령만 하지말고 부하 직원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하고 관심과 기대를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하며 못한 것을 질책하기보다는 잘한 것을 칭찬해야 하고 .의심하지 말고 믿고 맡겨야 하며 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강점을 육성시켜야만 기업이 살수 있음을 알게 되였습니다. 저는 한번은 왜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보면서 하염없이 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과 북조선, 그리고 중국이라는 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들의 모습이 마치 뿌리는 흙에 묻고 자라야 되는데 자랄수 없어서 ,,,바위틈에 돌틈에 뿌리를 내리면서 충분한 영향공급을 받지 못해 약해보이면서도 강한 소나무의 모습이'''강하지 않으면 죽을수 밖에 없는 ... 나름대로 저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더욱 지적인 재산을 쌓아가야만 살아남을수 있는 조선족이 아닐가? 생각해 보군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지혜와 총기를 가진 민족으로서 잘해낼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생각의 그 깊이를 여기서 다 펼칠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인생의 좌우명이라면 “높은곳에 서서 멀리 바라보고 현실속에서 열매맺는” 저 자신이 되고 싶습니다, (站在高处. 看在远处. 干在实处!!) 그리고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되고 싶고 지혜의 근본이 되는 독서를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모든 우리민족이 독서에 게을리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더욱 우리민족의 발전에  힘쓰고 다른 사람들의 나눔에 귀를 기우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독서로 인하여 실제 삶에 열매맺는 참된분들이 용솟음쳐 나오리라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6    산 좋고 물 맑은 하문에서,,,,1월 2-3일 댓글:  조회:631  추천:0  2012-01-03
매일 24층 고층 아바트에서 바다를 바라 볼수 있어서 ,,더욱 행복했다.,, 아들은 매일 차를 몰고 ,,우리 한가족을 태우고,,, 하문에서 제일 좋은 여행지는 다 데리고 다녔다.. 제일 맛잇는 음식점도 찾아 다녔다.. 산을 찾아 등산도 했고,,, 바다를 찾아 배도 탔다,,, 산속 바위돌위에   앉아서 새로운 한해…비젼도 나누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5    조선 여행기... 댓글:  조회:809  추천:0  2012-01-01
중단되였던조선여행길이4년만에다시열렸다. 중국절강성국제여행국에서조직한조선여행단체가2010년4월20일저녁전문열차로온주에서떠나주지.항주등역에서여행객을싣고떠났다. 나는이번400여명의여행객들과함께9박10일을보냈다. 여행객대다수가온주,주지,항주지역인들중유독저와남편이교포이고또항미원조지원군에참가했거나혹은지원군가족들도많이있었다이번많은여행객들은국내외여행을많이다녀왔고 이제는  조선을한번가보고싶었다고한다. 나는한민족의핏줄이그립고또힘들고어렵게살아가고있다는조선에대한애착심에이번여행에나셨다. 여행열차는4월23일오후4시중국단동역에도착했다. 열차에서시달린여행객들은단동역광장에서흘러나오는환영군악나팔소리에정신을차렸다. 중국에서첫조선여행단체이기에단동시정부에서환영식을거행했고그수백명의저녁만찬파티까지열어주었다. 丹東시는다민족도시이다. 한족, 만족, 몽고족, 회족, 조선족, 희박족등29개민족이있고한족이외의소수민족중에만족이인구가제일많은소수민족이며전도시총인구의32%를차지하고있다. 요동반도경제개발구동남부압록강과황해가합류하는위치에있으며동북아경제권중심지대로조선의신의주와압록강을사이에두고바라보고있다. 환영식을마치고“항미원조기념관”을참관하였다. “항미원조기념관”은부지면적이18만평방메터,건축면적이13790평방메터인데기념탑, 진렬관, 파노라마그림관과  노천무기진렬장으로구성되였다.기념탑은화강암재료로 높이가53메터, 거기에는등소평의  비문제사가새겨져있기도한다. 진렬관은《品》자형의3층건물인데건물높이가19.4메터, 건축면적이5800평방메터이다. 진열관에는4개의주제로10개의진열실에 귀중한 력사사진500여장과 1000여건의물품들이진렬되여있었다.  파노라마그림관은높이가24메터이고 직경이44메터인 원주형건물이다. 건물안에는현대과학기술수단으로그림, 플라스틱모형, 불빛과음향을하나로융합시켜《청진강전멸전》의  격전장면을 생동하게재현시켜놓았다. 파노라마그림관내의화폭은높이가16메터, 둘레길이가132메터,  참관자들이전동회전식스탠드에 서기만하면 당시치열한전쟁분위기와 지원군전사들의영웅적전투장면을직접감수할수있었다. 노천무기진렬장은면적이2000평방메터로항미원조전쟁중에투용되였던 비행기, 야전포, 레이다, 땅크, 중형무기와전쟁에서로획한적들의중형무기장비들이질서있게  진렬되여있었다. 항미원조전쟁기념관은1958년9월29일처음건설되였는데 지금의기념관은1993년7월27일조선전쟁정전협약  40년을계기로원지원군지휘부유적지이였던영화산(英华山)에새롭게신축되였다고한다. 애국교육기지로지정된기념관은무료참관을실행해오면서개관이래100여만명의참관자들이답사하였다고한다. 나는기념관을다돌아보면서내내맘이아팠다. 어떤원인으로왜전쟁을했던간에무고하게죽어나간사람들의그아픔소리가,,,귀에서방불히들려오는것만같았다.  “항미원조기념관”을보고난후우리민족의아픈흔적으로남은압록강단교(鸭绿江断桥) 로향했다. 압록강단교아래서는오늘날평화의혜택을누리며삶을즐기는국내외관광객들을실은유람선들이“도라지”의조선민요곡조속에서여유롭게오가고있었다. 중국의여러도시를경유하면서살았지만 조선민요가락이온도시에울려퍼지는이런정경은처음으로목격했던거같다. 금빛노을이아름다운압록강에어둠이드리워지면서단동과신의주의야경은더욱극명해졌다. 압록강강물은더욱짙은어둠속으로침잠한다. 유사이래크고작은전투로끊임없이붉은피로물들었던압록강. 새로운나라의탄생과멸망을묵묵히지켜봐야했던압록강. 다리가끊기고생살이찢기는아픔에절규했던압록강. 그래도압록강은그아픔과상처를보듬은채흐름을멈추지않았다. 4월24일단동역에서 단동-신의주열차가떠났다. 이번조선여행을하면서한국재품과사진기,컴퓨터,비디오,헨드폰등물건은갖고갈수없다고해서많은물건은단동호텔에맏겨놓고떠났지만유독사진기만은  고집하고갖고떠났다. 가이드도사진기를조선통관할때빼앗길수도있다고귀띰을해주었지만,, 열차는신의주역에도착했다. 모든여행객들은북한군인들이열차에올라오자,,,갑자기잠잠하고긴장해졌다.무시무시했던거같다. 군인들의검사에서무사히사진기를뺐기지않고통과하여안도의숨을쉴수가있었다. 한2시간의통관수속을마친후“신의주-평양”열차는  떠났다. 그동안신비하게만느껴졌던나라, 조선여행이이제부터시작되였다. 조선땅에서  이몸이열차를타고평양으로가고있다는게  꿈만같았다. 지나고지나도똑같은마을,똑같은논팥이한눈에안겨왔다. 저멀리에서어렴풋이보이는나물캐는사람들을바라보는순간나는눈물이핑돌았다. 한국에처음갔을때도,,똑같이눈물을흘렸었다. 한국은부모님들이태여난고향땅이여서그렇게그리워하던나라였다. 살아생전한국을가보고싶어외우고외웠지만편안하게한국을오갈수없었던연대에돌아가셨으니, 부모님생각에눈물을흘렸다.  이번조선여행하면서울었던것은   아마한민족이기에흘러오는감격이였으리라,  오후5시가넘어서열차는평양역에도착하였다. 평양의햇볕은뜨거웠고, 공기는맑았다. 평양땅을밟은여행객들의얼굴하나하나에서열차안에서보았던것과는또다른감회가엿보였다. 반가움, 신기함, 놀라움, 호기심, 긴장감등등의눈빛이햇볕에부딪쳐번뜩이는듯했다. 나에게도역시그런비슷한감회가교차되어다가왔다.한복을차려입은가이드처녀의웃음때문인지조금더편안해진마음으로창밖을바라봤다. 신이주에서평양근교까지지형이나토목화초모두가안내자의말처럼실제로‘고향에왔다’는느낌이들었다. 물론북한에서만난시골풍경은조금남달랐다. 그러니까굳이표현하자면현재중국에도엄연히존재하는시골을방문한느낌이라기보다내가살았던,그러나이제는거의사라진, 어린시절의시골고향집에와있는느낌이었다. 조선에서특급이라는양각도호텔에투숙하였다. 호텔에서3일투숙하는동안식사는  내가좋아하는음식들이많아서아주좋았다. 호텔도생각이상으로불편함을느낄수가없었다. 호텔방에서평양의야경을내려다볼수가있었다. 좀어둡긴하지만나름대로잔잔한아름다움이슴베여있었다. 4월25일 이른아침관광뻐스는 개성시판문점으로향했다. 판문점입구에들어서자  또무시무시했다. 군인들의안내를받으면서판문점을관람하였다. 가깝게보이는조선국기와멀리서날리고있는한국태극기를번갈아보면서나는깊은생각에잠겼다. 언제가면이두나라가하나로통일되는그날이올가?  분단의아픔은  이번여행객들속에서조선족으로살아가고있는나에게제일큰거같다. 지난날부모님들이살아계셨을때늘부르던“삼팔선아가거라”이유행가가떠오르면서분단전머리에보자기를이고어깨에짐을지고옆집다니던우리민족이오고가던그모습이되새겨지면서그때가그리워졌다……나는속으로한국과조선의통일을위하여묵묵히기도하면서판문점을떠났다. 판문점을참관한후오전11시쯤고려박물관에도착했다. 민족복장을곱게받쳐입은안내원이고려박물관에서여행객들을맞아주었다.고려박물관은개성특급시에위치한유일한박물관인데조선에유일하게 남아있는옛날건물이라고한다. .고려시대부터조선시대까지최고의교육기관이였던성균관의모습을본따서만들었는데1987년에개관되였다. 12동의본관, 6동의분관으로구성되어있으며총면적은7만평방미터이다. 내부는약천여건의역사적인유물,외부는석탑등이전시되어있다.. 중국여행객들은가는곳마다쇼핑하는데정신이없었다. 물건을많이사주는게조선을돕는다는  헌신적인생각에서일가?  처음으로  개성시에서살고있는조선시민들을멀리서나마바라볼수있었다. 이쁘게차려입은한복을받쳐입은여인들이많이보인다. 가는날이장날이라고이날이건군절이라거리의분위기도한결더흥성해보였다. 점심은궁중요리를먹었다. 점심을먹고난후모처럼조선사람들과대화를나누는시간을가졌다. 점심에먹은궁중요리값이얼마인지? 궁금해물었더니값이얼마인지? 모른다는것이다. 왜냐하면일반평민들이먹을수없는요리라서값을모른단다. 지나치는시민들은모두다우리여행객들을멀리서쳐다보고만있었다. 북한여행시주의할점에시민들과대화를나누지못하도록되여있어서,,,다가가고싶었지만절제할수밖에얿었다. 나는충분히그들과대화를나눌수있었음에도불구하고,,,, 점심을먹고난후여행뻐스는평양방향으로달렸다. 길옆에피여난진달래가끊없이보여반갑게여행객들을맞아주었다. 조선땅에도착해서부터쓰레기라고는  찾아볼수가없었다. 순간“아환경오염이없는유일한나라,우리조상때부터깨끗함을지켜온한민족이구나!”라는 생각이머리를스쳐지나갔다. 쓰레기는커녕지저분한종이쪼각하나찾아볼수가없었으니,,,실로탄복이되였다. 한국에처음갔을때도깨끗한도시환경에감탄했었다. 뻐스는평양대동강에도착했다. 대동강모래톱에는제너럴셔먼호미국배한척이보였다.1966년(고종3년)음력7월12일대동강을거슬러올라가평양에서통상을요구하며행패를부리던미국상선제너럴셔먼호를평양군민들이반격하여태워버린사건이다. 셔먼호배를참관하고나서  평양지하철에도착했다. 평양지하철은100미터깊이로만들어진고심도지하철이다. 1968년에건설이시작되였고1973년9월에개통되였다. 총길이는34키로미터이다. 평양지하철은지하궁전이라고불릴정도로화려하고내부는대리석으로되여있다. 다른나라에서는지하철이여행지로구경시킬리가만무하지만유독평양에서는  지하철이  여행관광지로뜨고있다. 평양지하철을관람하고나서는만경대에도착하였다. ‘만경대’는이름그대로만가지경치를감상할수있는곳’이었고, ‘김일성장군생가’가있는곳이기도했다. 평양시내를어느정도벗어나대동강을만났고, 대동강가를따라제법서쪽으로가다가빠져나와‘만경대’에도착했다. ‘김일성생가’에서도확연히느꼈지만 조선사람들의마음과그마음이발현되는행동에 한결같이하나의거대한‘중심’이존재하고있다는사실을어렵지않게발견할수있었다. 바로김일성전주석에대한경외심과충성심이다. 생가를소개하는  안내자들이설명중간중간울먹거리며혼신의힘을다해소개하는모습에서더더욱극명하게드러났다. 그런존재였기에‘그’가태어난이곳생가는 조선주민들에게최고의순례지이자성지와다름없었다. 4월26일오전10시쯤묘향산에도착하였다. 가이드말에의하면묘향산은북한북부의평안남도, 자강도와평안북도의접경지에위치해있는북한에서이름난관광명승지로서4대명산중의하나이고. 산세가기묘하고신비하며산우에측백이향기를뿜고있어묘향산이라불렀다 고한다. 북한에서이름있는국제우의전람관이묘향산에위치해있었다.묘향산에도착해서처음여행코스가바로김일성국제우의전람관을관람하였다.  여기에는세계의수많은국가와조직및개인이김일성과김정일에게증정한선물21.3만건중일부분이전시되여있다. 그중에서중국의기증품수량이제일많았다. 국제우의전람관은김일성국제우의관(본관)과김정일국제우의관(별관)으로구성되였으며전자는후자보다큰여러층의대형조선식건물이며멀리서보면목조건물같지만사실은콩크리트건축이다. 관내에서는사진, 촬영과떠드는것을금지하며승강엘레베이트와계단이있으며전람청이많고정결하게구분되여있었다. 묘향산지구에는향산호텔(특급)과청천호텔(2급) 등두개호텔이있었다. 국제우의전시관을관람하고난후보현사로이동하였다. 보현사는묘향산에위치한불사이고지금은북한불교의종교적인역할을담당하고있다. 가이드말에의하면불교신자가약만명좌우되고기독교신자도한만명정도된다고한다. 묘향산을구경하고 내려오는데소낙비가억수로내리기시작했다.비는평양에도착해서도계속내렸다. 중조우의탑을올라가면서많은중국여행객들은“하늘도슬퍼서운다”면서중조우의탑에헌화를하였다. 이어서만수대소년궁으로향했다. 어린이들은오전에는공부하고오후에는소년궁에와서과외활동에참가한다고하였다. 어린이들의생기발랄한과외활동은여행객들의맘을기쁘게해줬고특히만수대소년궁어린이들의공연은여행객들의박수갈채를받았다. 사람들은문화앞에서는환한웃음과박수갈채를보내게되는데과연무엇때문일가? 나는공연을보면서많은생각에잠겼다……. 이제21 세기가문화의세기라는말은벌써낡은말이되었다. 이처럼오늘날우리들에게문화는삶의본질이며내용이자미래의비전이되어있다. 따라서문화는곧우리시대의시대사조라고할수있을것이다.  조선의수도평양에서상상하기어려울정도인10만명이함께벌이는아리랑축제의문화를체험했다. 그리고대한민국에는 4천만의국민이한마음이되어월드컵축구경기에집중하는모습을보았다. 이것이바로우리민족의힘이다우리는이엄청난에네르기를앞으로어떻게집중시키며미래의비전에활용할것인가를활발히논의해야한다고생각한다그런데나는이문제에대해남북이함께쏟아야할우리의역량이나에너지는바로양측의화합과통일에있다고생각한다. 그러나그길은통일과같은거창한구호가아니라아주소박하고친근하게접근하며서로의동질성을찾아내고확인하며그것을함께성장시켜나가야한다고믿는다. 이러한힘이나방법이바로문화이다.  우리는원래둘이아니었기에‘본래하나이던것을다시하나로’ 만들면되는것이다. 그힘의바탕이이문화속에있음을나는확신한다. 4월27일도평양시는비바람에휩싸였다. 중국여행객들은조선여행을마치고평양-신의주열차에몸을싫었다. 열차는  평양시김일성김정일동상. 그리고주체사상탑을멀리하면서,,,,,신의주역에도착했다. 갑자기울리는나팔소리소고소리에정신이번쩍들었다. 단동에서처럼우리를환송해주는환송식이기다리고있는줄알았는데…자세히보니신입군대환송식이신의주에서진행되고있었다. 처음으로그렇게많은사람들이오르락내르락기차밑으로많은사람들이왔다갔다는데저는한참멍했다이것이무슨관경인지….기차차창밖에서흐르는비줄기를바라보면서신의주기차역에모였던사람들의생활이궁금해졌다. 혹시어둠과배고픔에떨고있지는않는지?. 이번여행에서 농민들의생활을볼수없어서유감이였다. 열차가신의주역을벗어나중국단동으로들어서는그순간, 저도모르는사이에그렇게맘이편할수가없었다. 여기가바로내가사는중국이구나! 하는생각이들면서 온몸에긴장이확풀렸다. 여행을가면사람들은집에안부전화를하느라법석이지만북한에있는동안에는아무데도전화를할수가없으니그또한단절된공간이며고립된시간이아니겠는가? 소음과공해와교통체증으로뒤범벅이된우리의삶에서이모두가갑자기조용해진아름다운진정한휴가여행이기도했다. 떠나기전조선에대한많은생각들이 실제로조선여행을하면서 안내자들의언행, 식당종업원들의서비스, 평양시내의면모등등이  훨씬많이밝아보인것도사실이다. 이번의첫여행으로그변화의양상을다알길이없었지만단한가지- 우리민족은꼭앞으로부강해질것이며한국, 북한, 또세계에널려살아가고있는재외동포들의지혜와힘을합친다면한반도의통일도머지않아꼭이뤄질것임을확신한다. 이번여행은나로하여금많은것을깨닫게하였다. 나는재중동포로살아가고있는조선족이다. 큰바다를이루는데하나의작은물방울에불과한존재이지만방울방울의물이모여서바다가되듯이우리모두가“우리서로하나되자”라는이념과정신으로뭉친다면통일의배는결코한강과대동강에서뜨고말것이라믿는다. 그날을위해바위틈에서싱싱하게자라는소나무를바라보면서더강하고보람된삶을살리라!/안귀선   중단되였던조선여행길이4년만에다시열렸다. 중국절강성국제여행국에서조직한조선여행단체가2010년4월20일저녁전문열차로온주에서떠나주지.항주등역에서여행객을싣고떠났다. 나는이번400여명의여행객들과함께9박10일을보냈다. 여행객대다수가온주,주지,항주지역인들중유독저와남편이교포이고또항미원조지원군에참가했거나혹은지원군가족들도많이있었다이번많은여행객들은국내외여행을많이다녀왔고 이제는  조선을한번가보고싶었다고한다. 나는한민족의핏줄이그립고또힘들고어렵게살아가고있다는조선에대한애착심에이번여행에나셨다. 여행열차는4월23일오후4시중국단동역에도착했다. 열차에서시달린여행객들은단동역광장에서흘러나오는환영군악나팔소리에정신을차렸다. 중국에서첫조선여행단체이기에단동시정부에서환영식을거행했고그수백명의저녁만찬파티까지열어주었다. 丹東시는다민족도시이다. 한족, 만족, 몽고족, 회족, 조선족, 희박족등29개민족이있고한족이외의소수민족중에만족이인구가제일많은소수민족이며전도시총인구의32%를차지하고있다. 요동반도경제개발구동남부압록강과황해가합류하는위치에있으며동북아경제권중심지대로조선의신의주와압록강을사이에두고바라보고있다. 환영식을마치고“항미원조기념관”을참관하였다. “항미원조기념관”은부지면적이18만평방메터,건축면적이13790평방메터인데기념탑, 진렬관, 파노라마그림관과  노천무기진렬장으로구성되였다.기념탑은화강암재료로 높이가53메터, 거기에는등소평의  비문제사가새겨져있기도한다. 진렬관은《品》자형의3층건물인데건물높이가19.4메터, 건축면적이5800평방메터이다. 진열관에는4개의주제로10개의진열실에 귀중한 력사사진500여장과 1000여건의물품들이진렬되여있었다.  파노라마그림관은높이가24메터이고 직경이44메터인 원주형건물이다. 건물안에는현대과학기술수단으로그림, 플라스틱모형, 불빛과음향을하나로융합시켜《청진강전멸전》의  격전장면을 생동하게재현시켜놓았다. 파노라마그림관내의화폭은높이가16메터, 둘레길이가132메터,  참관자들이전동회전식스탠드에 서기만하면 당시치열한전쟁분위기와 지원군전사들의영웅적전투장면을직접감수할수있었다. 노천무기진렬장은면적이2000평방메터로항미원조전쟁중에투용되였던 비행기, 야전포, 레이다, 땅크, 중형무기와전쟁에서로획한적들의중형무기장비들이질서있게  진렬되여있었다. 항미원조전쟁기념관은1958년9월29일처음건설되였는데 지금의기념관은1993년7월27일조선전쟁정전협약  40년을계기로원지원군지휘부유적지이였던영화산(英华山)에새롭게신축되였다고한다. 애국교육기지로지정된기념관은무료참관을실행해오면서개관이래100여만명의참관자들이답사하였다고한다. 나는기념관을다돌아보면서내내맘이아팠다. 어떤원인으로왜전쟁을했던간에무고하게죽어나간사람들의그아픔소리가,,,귀에서방불히들려오는것만같았다.  “항미원조기념관”을보고난후우리민족의아픈흔적으로남은압록강단교(鸭绿江断桥) 로향했다. 압록강단교아래서는오늘날평화의혜택을누리며삶을즐기는국내외관광객들을실은유람선들이“도라지”의조선민요곡조속에서여유롭게오가고있었다. 중국의여러도시를경유하면서살았지만 조선민요가락이온도시에울려퍼지는이런정경은처음으로목격했던거같다. 금빛노을이아름다운압록강에어둠이드리워지면서단동과신의주의야경은더욱극명해졌다. 압록강강물은더욱짙은어둠속으로침잠한다. 유사이래크고작은전투로끊임없이붉은피로물들었던압록강. 새로운나라의탄생과멸망을묵묵히지켜봐야했던압록강. 다리가끊기고생살이찢기는아픔에절규했던압록강. 그래도압록강은그아픔과상처를보듬은채흐름을멈추지않았다. 4월24일단동역에서 단동-신의주열차가떠났다. 이번조선여행을하면서한국재품과사진기,컴퓨터,비디오,헨드폰등물건은갖고갈수없다고해서많은물건은단동호텔에맏겨놓고떠났지만유독사진기만은  고집하고갖고떠났다. 가이드도사진기를조선통관할때빼앗길수도있다고귀띰을해주었지만,, 열차는신의주역에도착했다. 모든여행객들은북한군인들이열차에올라오자,,,갑자기잠잠하고긴장해졌다.무시무시했던거같다. 군인들의검사에서무사히사진기를뺐기지않고통과하여안도의숨을쉴수가있었다. 한2시간의통관수속을마친후“신의주-평양”열차는  떠났다. 그동안신비하게만느껴졌던나라, 조선여행이이제부터시작되였다. 조선땅에서  이몸이열차를타고평양으로가고있다는게  꿈만같았다. 지나고지나도똑같은마을,똑같은논팥이한눈에안겨왔다. 저멀리에서어렴풋이보이는나물캐는사람들을바라보는순간나는눈물이핑돌았다. 한국에처음갔을때도,,똑같이눈물을흘렸었다. 한국은부모님들이태여난고향땅이여서그렇게그리워하던나라였다. 살아생전한국을가보고싶어외우고외웠지만편안하게한국을오갈수없었던연대에돌아가셨으니, 부모님생각에눈물을흘렸다.  이번조선여행하면서울었던것은   아마한민족이기에흘러오는감격이였으리라,  오후5시가넘어서열차는평양역에도착하였다. 평양의햇볕은뜨거웠고, 공기는맑았다. 평양땅을밟은여행객들의얼굴하나하나에서열차안에서보았던것과는또다른감회가엿보였다. 반가움, 신기함, 놀라움, 호기심, 긴장감등등의눈빛이햇볕에부딪쳐번뜩이는듯했다. 나에게도역시그런비슷한감회가교차되어다가왔다.한복을차려입은가이드처녀의웃음때문인지조금더편안해진마음으로창밖을바라봤다. 신이주에서평양근교까지지형이나토목화초모두가안내자의말처럼실제로‘고향에왔다’는느낌이들었다. 물론북한에서만난시골풍경은조금남달랐다. 그러니까굳이표현하자면현재중국에도엄연히존재하는시골을방문한느낌이라기보다내가살았던,그러나이제는거의사라진, 어린시절의시골고향집에와있는느낌이었다. 조선에서특급이라는양각도호텔에투숙하였다. 호텔에서3일투숙하는동안식사는  내가좋아하는음식들이많아서아주좋았다. 호텔도생각이상으로불편함을느낄수가없었다. 호텔방에서평양의야경을내려다볼수가있었다. 좀어둡긴하지만나름대로잔잔한아름다움이슴베여있었다. 4월25일 이른아침관광뻐스는 개성시판문점으로향했다. 판문점입구에들어서자  또무시무시했다. 군인들의안내를받으면서판문점을관람하였다. 가깝게보이는조선국기와멀리서날리고있는한국태극기를번갈아보면서나는깊은생각에잠겼다. 언제가면이두나라가하나로통일되는그날이올가?  분단의아픔은  이번여행객들속에서조선족으로살아가고있는나에게제일큰거같다. 지난날부모님들이살아계셨을때늘부르던“삼팔선아가거라”이유행가가떠오르면서분단전머리에보자기를이고어깨에짐을지고옆집다니던우리민족이오고가던그모습이되새겨지면서그때가그리워졌다……나는속으로한국과조선의통일을위하여묵묵히기도하면서판문점을떠났다. 판문점을참관한후오전11시쯤고려박물관에도착했다. 민족복장을곱게받쳐입은안내원이고려박물관에서여행객들을맞아주었다.고려박물관은개성특급시에위치한유일한박물관인데조선에유일하게 남아있는옛날건물이라고한다. .고려시대부터조선시대까지최고의교육기관이였던성균관의모습을본따서만들었는데1987년에개관되였다. 12동의본관, 6동의분관으로구성되어있으며총면적은7만평방미터이다. 내부는약천여건의역사적인유물,외부는석탑등이전시되어있다.. 중국여행객들은가는곳마다쇼핑하는데정신이없었다. 물건을많이사주는게조선을돕는다는  헌신적인생각에서일가?  처음으로  개성시에서살고있는조선시민들을멀리서나마바라볼수있었다. 이쁘게차려입은한복을받쳐입은여인들이많이보인다. 가는날이장날이라고이날이건군절이라거리의분위기도한결더흥성해보였다. 점심은궁중요리를먹었다. 점심을먹고난후모처럼조선사람들과대화를나누는시간을가졌다. 점심에먹은궁중요리값이얼마인지? 궁금해물었더니값이얼마인지? 모른다는것이다. 왜냐하면일반평민들이먹을수없는요리라서값을모른단다. 지나치는시민들은모두다우리여행객들을멀리서쳐다보고만있었다. 북한여행시주의할점에시민들과대화를나누지못하도록되여있어서,,,다가가고싶었지만절제할수밖에얿었다. 나는충분히그들과대화를나눌수있었음에도불구하고,,,, 점심을먹고난후여행뻐스는평양방향으로달렸다. 길옆에피여난진달래가끊없이보여반갑게여행객들을맞아주었다. 조선땅에도착해서부터쓰레기라고는  찾아볼수가없었다. 순간“아환경오염이없는유일한나라,우리조상때부터깨끗함을지켜온한민족이구나!”라는 생각이머리를스쳐지나갔다. 쓰레기는커녕지저분한종이쪼각하나찾아볼수가없었으니,,,실로탄복이되였다. 한국에처음갔을때도깨끗한도시환경에감탄했었다. 뻐스는평양대동강에도착했다. 대동강모래톱에는제너럴셔먼호미국배한척이보였다.1966년(고종3년)음력7월12일대동강을거슬러올라가평양에서통상을요구하며행패를부리던미국상선제너럴셔먼호를평양군민들이반격하여태워버린사건이다. 셔먼호배를참관하고나서  평양지하철에도착했다. 평양지하철은100미터깊이로만들어진고심도지하철이다. 1968년에건설이시작되였고1973년9월에개통되였다. 총길이는34키로미터이다. 평양지하철은지하궁전이라고불릴정도로화려하고내부는대리석으로되여있다. 다른나라에서는지하철이여행지로구경시킬리가만무하지만유독평양에서는  지하철이  여행관광지로뜨고있다. 평양지하철을관람하고나서는만경대에도착하였다. ‘만경대’는이름그대로만가지경치를감상할수있는곳’이었고, ‘김일성장군생가’가있는곳이기도했다. 평양시내를어느정도벗어나대동강을만났고, 대동강가를따라제법서쪽으로가다가빠져나와‘만경대’에도착했다. ‘김일성생가’에서도확연히느꼈지만 조선사람들의마음과그마음이발현되는행동에 한결같이하나의거대한‘중심’이존재하고있다는사실을어렵지않게발견할수있었다. 바로김일성전주석에대한경외심과충성심이다. 생가를소개하는  안내자들이설명중간중간울먹거리며혼신의힘을다해소개하는모습에서더더욱극명하게드러났다. 그런존재였기에‘그’가태어난이곳생가는 조선주민들에게최고의순례지이자성지와다름없었다. 4월26일오전10시쯤묘향산에도착하였다. 가이드말에의하면묘향산은북한북부의평안남도, 자강도와평안북도의접경지에위치해있는북한에서이름난관광명승지로서4대명산중의하나이고. 산세가기묘하고신비하며산우에측백이향기를뿜고있어묘향산이라불렀다고한다. 북한에서이름있는국제우의전람관이묘향산에위치해있었다.묘향산에도착해서처음여행코스가바로김일성국제우의전람관을관람하였다.  여기에는세계의수많은국가와조직및개인이김일성과김정일에게증정한선물21.3만건중일부분이전시되여있다. 그중에서중국의기증품수량이제일많았다. 국제우의전람관은김일성국제우의관(본관)과김정일국제우의관(별관)으로구성되였으며전자는후자보다큰여러층의대형조선식건물이며멀리서보면목조건물같지만사실은콩크리트건축이다. 관내에서는사진, 촬영과떠드는것을금지하며승강엘레베이트와계단이있으며전람청이많고정결하게구분되여있었다. 묘향산지구에는향산호텔(특급)과청천호텔(2급) 등두개호텔이있었다. 국제우의전시관을관람하고난후보현사로이동하였다. 보현사는묘향산에위치한불사이고지금은북한불교의종교적인역할을담당하고있다. 가이드말에의하면불교신자가약만명좌우되고기독교신자도한만명정도된다고한다. 묘향산을구경하고 내려오는데소낙비가억수로내리기시작했다.비는평양에도착해서도계속내렸다. 중조우의탑을올라가면서많은중국여행객들은“하늘도슬퍼서운다”면서중조우의탑에헌화를하였다. 이어서만수대소년궁으로향했다. 어린이들은오전에는공부하고오후에는소년궁에와서과외활동에참가한다고하였다. 어린이들의생기발랄한과외활동은여행객들의맘을기쁘게해줬고특히만수대소년궁어린이들의공연은여행객들의박수갈채를받았다. 사람들은문화앞에서는환한웃음과박수갈채를보내게되는데과연무엇때문일가? 나는공연을보면서많은생각에잠겼다……. 이제21 세기가문화의세기라는말은벌써낡은말이되었다. 이처럼오늘날우리들에게문화는삶의본질이며내용이자미래의비전이되어있다. 따라서문화는곧우리시대의시대사조라고할수있을것이다.  조선의수도평양에서상상하기어려울정도인10만명이함께벌이는아리랑축제의문화를체험했다. 그리고대한민국에는 4천만의국민이한마음이되어월드컵축구경기에집중하는모습을보았다. 이것이바로우리민족의힘이다우리는이엄청난에네르기를앞으로어떻게집중시키며미래의비전에활용할것인가를활발히논의해야한다고생각한다그런데나는이문제에대해남북이함께쏟아야할우리의역량이나에너지는바로양측의화합과통일에있다고생각한다. 그러나그길은통일과같은거창한구호가아니라아주소박하고친근하게접근하며서로의동질성을찾아내고확인하며그것을함께성장시켜나가야한다고믿는다. 이러한힘이나방법이바로문화이다.  우리는원래둘이아니었기에‘본래하나이던것을다시하나로’ 만들면되는것이다. 그힘의바탕이이문화속에있음을나는확신한다. 4월27일도평양시는비바람에휩싸였다. 중국여행객들은조선여행을마치고평양-신의주열차에몸을싫었다. 열차는  평양시김일성김정일동상. 그리고주체사상탑을멀리하면서,,,,,신의주역에도착했다. 갑자기울리는나팔소리소고소리에정신이번쩍들었다. 단동에서처럼우리를환송해주는환송식이기다리고있는줄알았는데…자세히보니신입군대환송식이신의주에서진행되고있었다. 처음으로그렇게많은사람들이오르락내르락기차밑으로많은사람들이왔다갔다는데저는한참멍했다이것이무슨관경인지….기차차창밖에서흐르는비줄기를바라보면서신의주기차역에모였던사람들의생활이궁금해졌다. 혹시어둠과배고픔에떨고있지는않는지?. 이번여행에서 농민들의생활을볼수없어서유감이였다. 열차가신의주역을벗어나중국단동으로들어서는그순간, 저도모르는사이에그렇게맘이편할수가없었다. 여기가바로내가사는중국이구나! 하는생각이들면서 온몸에긴장이확풀렸다. 여행을가면사람들은집에안부전화를하느라법석이지만북한에있는동안에는아무데도전화를할수가없으니그또한단절된공간이며고립된시간이아니겠는가? 소음과공해와교통체증으로뒤범벅이된우리의삶에서이모두가갑자기조용해진아름다운진정한휴가여행이기도했다. 떠나기전조선에대한많은생각들이 실제로조선여행을하면서 안내자들의언행, 식당종업원들의서비스, 평양시내의면모등등이  훨씬많이밝아보인것도사실이다. 이번의첫여행으로그변화의양상을다알길이없었지만단한가지- 우리민족은꼭앞으로부강해질것이며한국, 북한, 또세계에널려살아가고있는재외동포들의지혜와힘을합친다면한반도의통일도머지않아꼭이뤄질것임을확신한다. 이번여행은나로하여금많은것을깨닫게하였다. 나는재중동포로살아가고있는조선족이다. 큰바다를이루는데하나의작은물방울에불과한존재이지만방울방울의물이모여서바다가되듯이우리모두가“우리서로하나되자”라는이념과정신으로뭉친다면통일의배는결코한강과대동강에서뜨고말것이라믿는다. 그날을위해바위틈에서싱싱하게자라는소나무를바라보면서더강하고보람된삶을살리라!/안귀선  
4    말레지아 여행이야기 댓글:  조회:993  추천:0  2012-01-01
이번 말레지아 여행은 정말 의미있고 뜻있었던것 같다,, 중국말을 잘하는 가이드도 참 열정적이였고 ,,함께 여행한 일행들도 너무들 다 친절했다… 마지막 여행날 호텔안에서의 파티는 더욱 말레지아 사람들의 풍속을 알게하는 좋은 시간이였다,, 그들의 열정적인 공연은 인간세상의 따뜻하고 풍요로움을 가져다 줬다.,,, 말레지아 여행마지막 날 황궁호텔안에서 남긴 한순간이였다… 황제들이 살고 있는 황궁처럼 어디에 가던지 말들이 ,,,,,,,많았다… 음식도 중국 못지않게 요리맛이 좋았고 깨끗하고 ,,,공기도 청신하였다…
3    2012년 1월 1일 하문에서 ... 댓글:  조회:705  추천:0  2012-01-01
한가족이 하문에 모여서 즐거운 원단을 보내고 있는 사진입니다, 저와 남편은 상하이에서,,아들과 딸은 하문에서 살고 잇다가,, 이번 원단에,,,  하문에서 한가족이 모였습니다, 제일 먼저 바다구경부터 나갔습니다,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한없는 대지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껴 보았습니다,
2    상하이 조선족여성기업인회 송년회에서 남긴 한순간... 댓글:  조회:1725  추천:0  2012-01-01
2011년 12월 3일 상해조선족여성기업인회 송년회에서 남긴 사진입니다, 처음으로 한민족복장을 예쁘게 입고 ,,임원들이 송년회에 참가해서 민족의 풍요로운 분위기를 느낄수 있도록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상해 한민족무용원의 공연, 그리고 조선족노인회 공연과 더불어 어우러진 한민족 한마당은 마치 고향에서 보내는 설 명절을 방불케했다,,,, 4년동안 여성기업인회 회장으로 섬기면서,,. 사랑의 힘,,,헌신의 힘을 체험해 보기도 했다....
1    송수근 회장님 회사 오픈식에 참가하여,,남긴 한페지,,,,, 댓글:  조회:922  추천:0  2012-01-01
2011년 12월 16일 오후 2시-4시 불란서 러브켓(LOVCAT) 명 브렌드 회사 오픈식을 상하이 구베이 황금성도에서 진행하였다,, 사진은 송수근 회장님 회사 오픈식에  참가하여 남긴 한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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