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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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애심련동협주곡 댓글:  조회:53  추천:0  2018-08-16
인간(人间)이란 낱말을 구조적으로 해체해보면 ‘사람과의 사이’,  즉 상대적인 관계에서의 인간으로 풀이 할 수 있다. 사람과의 사이가 도의적인 사이로 유지될 때 인간일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할 때 비인간이 된다. 천재(天灾)에 의해 인간의 생태환경이 쑥대밭으로 변하고 사람들의 정상적인 생활절주가 뒤죽박죽이 된 비상사태가 들이 닥쳤을 때 사람과의 사이가 도의적인 사이로 유지될 수 있는가에서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변 사상 류례없던 올여름 지속적인 폭염은 연변사회 재난 대처능력과 더불어 연변사람들의 가치관, 륜리관이 시험대에 오르게 하였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도시 전체를 하나의 화독으로 가열시켜 사람들의 숨통을 콱콱 막히게 하는 렬악한 상황에서도 도시교통 질서와 환경정리, 시민생활봉사 등 도시기능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비지땀을 흘리며 자기 직분에 충실한 교통경찰, 도시 청소공, 택배 우체원, 도시기초시설 정비공, 포장음식 배달원들 … 이들에게 감사하며 배려와 사랑의 손길을 뻗치는 시민사회의 자각이 올여름 연변의 ‘재난은 무정, 인간은 유정’이라는 테마의 아름다운 인간애심련동협주곡으로 잔잔한 흐름을 이루면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었다. 룡정 한 시민의 ‘애심 랭장고’ 발상에서 비롯된 연변판 애심련동협주곡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도시 곳곳에 애심 무인 릴레이 랭장고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랭장고마다에 음료수와 수박 채워넣기 시민운동이 급물살을 타는가 싶더니 거기에 멈추지 않고 환경청결공들에게 ‘애심 랭면 대접하기’ 이벤트와 같은 집단별 초청 깜짝쇼까지 가세하여 독주(独奏)가 아닌  전사회의 협주곡이 연변사회를 풍미하며 민족지역의 인간매력지수를 한껏 높이였다. ‘애심랭장고’는 시혜(施惠)가 아니라 감사한 마음의 사절이다. 대다수 국민의 행복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의 징표이다. 그래서 필자는 ‘애심랭장고’를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서로 주고받는 인간소통의 따뜻한 안방으로 부르고 싶다. 일전에 본보 1면 톱에서 인제 갓 걸음마를 타는 아기가 젊은 엄마와 함께 애심랭장고에 음료수를 넣는 진지한 모습의 사진 화면을 보고 진한 감동을 받았다. 이 사진은 연변의 애심 릴레이가 한해 한 계절에 국한된 어른들 만의 애심쇼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퇴색하지 않는 영원한 애심협주곡으로 우리 후대들의 마음속에 안주시킨다는 련동의미까지 담고 있어 우리 모두의 마음을 더 맑게 해주었다. ‘감사할줄 알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애심의 깊은 뜻이 어려서부터 반듯한 인간적 도의로 움틀수 있게 리드하는 것, 당연히 부모 ‘공부방’의 몫임을 시사한 사진 보도가 아니였나 생각한다. 행복은 서로 사랑하고 돕는 곳에 있다. 따라서 감사하며 살아가는 생활속에서 반짝인다. 인간애심협주곡이 이런 악장으로 엮어질 때 아름다운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올여름 애심협주곡이 몇몇 고마운 분의 소행으로 끝났더라면 좀 아쉬웠을 것인데 폭넓은 시민사회 공감대로 되여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기들까지 동참시킨 미래지향적인 애심 련동협주곡으로 격상됐다는 점은 더없이 감격스럽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가뭄과 침수피해를 동반한 천재의 위협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전망이지만 정부의 재난 대처 시스템의 완벽화와 더불어 시민사회의 애심자각 릴레이가 시민 모두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릴 때 연변성채는 끄떡 없을 것이다. 올여름 우리 연변이 만들어낸 애심련동협주곡이 ‘사람마다 조금만 사랑의 손길을 내민다면 이 세계는 아름다운 인간세상으로 변하리라’는 유명한 사랑멜로디와 멋진 화음을 이루면서 연변이 찬란한 인간애심의 향토로 가는 길을 밝혀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변일보 2018.8.15
75    로씨야월드컵이 주는 계시 댓글:  조회:139  추천:0  2018-07-19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지구촌 최고의 축구축제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32개국 대표팀이 로씨야에서 32일간 64껨의 치렬한 격돌을 거쳐 16강, 8강, 4강, 챔피언을 가려내고 새로운 세계축구렬강의 구도를 재편성하였다. 월드컵 초연은 사라졌지만 우리에게 남긴 계시는 심각하다.   ◆관객   중국이 불참한 세계축구 축제를 지켜보는 우리 나라 축구팬들의 시선은 통한, 비애, 울분으로 반죽된 착잡함 그 자체였다.   들리는 바로는 월드컵이 ‘참전국’비례를 늘인다고 한다. 아세아권에서도 다섯개 팀으로부터 여덟개 팀이 본선에 진출한단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드디여 월드컵 본선 진출을 바라볼수 있게 됐다고 들떠있다. 하지만 피 파랭킹 75위의 중국이 과연 아세아 8위권에 들어갈 수 있을가? 솔직히 지금의 국가팀 행실이나 우리 나라 축구생태를 조명해보면 비례를 늘여도 월드컵 본선으로 가는 길은 더없이 험난하리라는 느낌이다. 다음의 월드컵에서도 우리가 싫은 대로 계속 ‘멋적은 관객’으로 머물 수밖에 없는 억울함을 감수해야 할지 모를 일이라는 말이다.   ◆33만과 13억   세상의 많은 일은 그 존재자체로 문제가 설명된다. 연길 인구보다 더 적은 북유럽 33만 인구의 섬나라 아슬란드가 그렇다. 거기에다 세계강호 아르헨띠나와 1:1의 멋진 무승부를 펼치는 결과를 연출하자 우리 나라 축구팬들의 아슬란드국가팀에 대한 공경은 드디여 중국국가팀에 대한 조롱으로 승화된다. ‘주방장’, ‘운전수’, ‘목수’, ‘건축로동자’, ‘연출’, ‘치과의사’로 무어진 아슬란드 ‘아마츄어축구팀’ 일화가 한때 인터넷게시판을 도배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아슬란드팀에는 기실 아마츄어선수가 없다.”는 신화사의 정정보도까지 겹치게 하는 생각 밖의 시너지효과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기실 아슬란드팀의 직업화 수준은 상당히 높다. 국내 70여명의 선수들이 유럽의 큰 련맹경기에서 뛰고 있다. 33만 인구에서 축구적령인구가 5만에 불과하지만 해마다 다섯개 급별의 프로련맹경기를 소화하고 있으며 유럽련맹이 발급한 A급 및 B급 증서를 가지고 있는 감독이 700여명이나 있다고 한다. 이 미니국가에 표준축구경기장이 179개가 있어 평균 1800명 주민이 정규화 축구장 하나를 갖추고 있는 셈이며 이 수치가 세계 평균수준을 훨씬 릉가한다고 하니 그들이 피파랭킹 131위에서 6년 사이에 22위로 승격한 것은 너무나 당연할 수밖에 없다. 아슬란드정부측 통계에 따르면 아슬란드팀과 아르헨띠나팀 전 경기 생방송 국내 시청률은 99.6%, 0.4%는 로씨야현지에서 관전했다고하니 사실 100% 국민이 경기응원에 나섰다는 말이 된다.   나라 인구가 아니라 나라 축구인구의 규모가 판단기준이 돼야 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며 축구문화 보편화, 대중화의 높은 수준에서만이 수준급 스타를 배출할 수 있다는 유력한 반증으로 된다.   오늘날 우리 나라 직업축구는 대중화가 되지 않은 황페한 축구토양에서 자체의 조혈기능보다 외부의 보혈기능에만 집착하고 있는 영양실조 체질로서 겉보기에는 허우대가 큰 슈퍼맨 같지만 내실이 다져지지 않은 허약한 존재라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시장화로 꾸며진 직업축구는 경제발달 지역을 전제로, 대중화 축구보다 구락부축구를 근본으로, 본토화 선수 양성보다 용병인입을 앞자리에 놓는데 박차를 가하다보니 중국 프로축구 그라운드는 사실상 외국용병들이 묘기를 뽐내는 무대로 되여 본토화 축구의 설자리를 잠식당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 미발달 대부분 지역이 직업축구 시장과는 담을 쌓고 있으며 13억 대국의 축구시장이 아니라 부분적 도시의 구락부 축구시장으로 되여있다. 금원으로 퇴색되는 직업축구 토양에서는 대중화 축구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연변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프로축구 그라운드에서 활약하는 소수민족자치주 구단이다. 어려운 경제여건에서 오랜 세월 축구 전통과 투혼에 힘입어 금원으로 무장한 국내 부호구단과 당당하게 대치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만으로도 연변팀은 우리 나라 축구계의 전설이라 할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연변이 양성해낸 십여명의 토종선수들이 국가팀과 국내 여러 프로축구단에서 두각을 나타내고있다. 이 같은 연변의 치적은 우리 나라 축구발전에서 빛나는 한획을 그은 것으로서 나라의 특별한 포상을 받아야 할 줄 안다.   ◆선택과 결과   모든 결과는 선택의 산물이다.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는 법이다. 로씨야월드컵에서 아세아를 대표하여 출전한 다섯개 팀은 세계를 놀래우는 이변을 연출하여 아세아축구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일본은 ‘아세아팀이 남미팀을 이겨본 적이 없다.’는 징크스를 깨고 남미강호 꼴롬비아팀을 제패한데 이어 세네갈팀과 무승부를 기록하고 월드컵 우승후보로 쟁쟁한 벨지끄와 2:3의 경전급 경기를 펼쳐 아세아의 자존심을 지켰다. 일본의 이 같은 경기력을 지켜보는 우리 나라 축구팬들의 표정에서는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섬뜩함이 교차되면서 ‘일본이 어느 때부터 중국을 추월해버렸지?’라는 궁금증까지 발동된다.   그렇다. 오래동안 중국축구는 일본보다 한수 우였다. 중국과 일본의 축구대항전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917년 제3회 원동운동회 때 중국은 5:0으로 일본을 꺾고 중일축구대항사의 멋진 출발을 하면서 1934년 제10회 원동운동회까지 여덟차의 대항경기를 7승1무의 절대적인 우승으로 장식한다. 그 후 중일축구사이의 교류는 40여년의 공백기를 거친다. 1975년 아세아컵 예선경기에서 다시 중국과 만난 일본은 여전히 1:2로 중국에 패하는 난국을 돌려세우지 못했다. 1993년 일본은 제1회 프로축구련맹경기를, 중국도 그 이듬해 프로축구 갑급련맹경기를 벌리면서 두 나라는 다시 같은 출발선에 서는 듯했지만 결과는 판이했다. 1997년 일본이 이란을 꺾고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입장권을 쟁취한 후 줄곧 월드컵본선의 ‘단골’이 되였지만 중국은 2002년 어렵사리 단 한번 월드컵 본선에 비집고들어간 뒤 오랜 세월을 월드컵 ‘관객’으로 추락되는 운명을 뒤집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아래의 상황대비에서 정답을 류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로씨야월드컵에 출전한 일본팀 23명 선수 가운데 12명이 독일, 영국,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프로축구련맹전에서 뛰고 있는 ‘해외파’들이다. 해외단련을 거친 토종선수로 무어진 일본팀이 남미나 유럽팀에 밀리지 않는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하지 않다. 중국선수들은 이 몇년간 유럽 프로련맹전에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개인능력의 미달도 있지만 우리 나라 프로축구의 금원경쟁에 따른 높은 로임과 뽀나스의 유혹으로 유럽행을 포기하는 선수들이 적잖다고 한다. 유럽에서 낮은 몸값으로 고생스럽게 뛰여야 하는 ‘억울함’보다 국내 구락부의 안일한 ‘온실’에서 ‘스타’대접을 받으며 금원의 노예가 되는 쪽이 월등 낫다는 계산에서이다. 외국용병을 대거 유치해 치르는 구락부축구는 두차례나 아세아 챔피언컵을 안아올 수 있지만 토종으로 무어진 국가팀으로 돌아오면 동아세아벽은커녕 동남아 약소국과도 땀을 빼며 아세아 2류 구단으로 추락하는 중국국가팀이다.   일본의 축구생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만명당 200개의 축구운동장이 있다. 중국은 고작 만명당 7개이고 그 대부분이 학교운동장이라는 통계가 있다. 중국의 도시 부동산가격이 계속 상승세를 타는 현실에서 도시안에 축구장과 같은 시설을 구축한다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축구운 동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을 개변시키지 않는다면 축구문화의 대중화, 보편화는 공담에 그치고 중국축구의 아세아 탈출은 그림 속의 떡으로 될수밖에 없다.   일본축구의 청소년양성은 줄곧 아세아에서 선두를 달려왔 다. 일본축구의 청소년양성체계는 ‘3위1체+풀뿌리 축구’의 리념을 시행하고 있으며 그 구조는 ‘전국차원의 국가양성쎈터 ㅡ 9개 지구의 양성쎈터 ㅡ 47개 도, 부, 현의 양성쎈터 ㅡ 시, 구, 정, 촌의 양성쎈터’로 짜여있다고 한다. 양성받은 청소년축구운동선수들은 U17, U20, U23 및 성인국가팀에 들어갈 수 있으며 국제축구련맹(피파) 경기에도 출전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 다수의 슈퍼축구구락부는 U19 한가지 편대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있다. “우리의 개인실력과 팀 전체의 실력은 아세아 1류 수준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이 거리를 좁히려면 우선 청소년 양성 체계를 바꿔야 한다. 청소년 양성체계 건설을 멀리하는 중국축구는 전도가 없을 것이다.” 중국축구협회 당조서기의 말이다.   10여년간 일본이 선택한 축구발전모식은 그에 맞먹는 긍정적인 결과를 안아왔다. 랭철한 자성에 의한 과학적인 선택, 뼈를 깎는 실질적인 노력으로  아세아 1류 축구문화와의 거리감을 좁히면서 다시한번 아세아 축구강국으로 도약하는 우리 나라 축구의 새봄을 떠올려본다. 그 과정에 축구의 고향 연변이 할 일은 참 많을 것이다. 연변일보 2018.7.19
74    장군의 민족정신 댓글:  조회:148  추천:0  2018-07-05
조선족의 장군별이 졌다. 별이 지고 나서야 그 빈자리가 얼마나 엄청난 것임을 통감하게 된다.   당중앙이 조남기 장군의 서거를 두고 표출한 정중하고 높은 례우는 조선족 장군에 대한 당과 국가의 두터운 신임을 단적으로 보여주어 더더구나 장군에 대한 숙연한 마음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장군생애에 내린 당중앙의 빛나는 평가에서 필자의 눈을 끈 문구는 ‘걸출한 민족사업 지도자’였다. 아마도 필자의 머리속에 가장 뚜렷하게 각인됐던 장군의 이미지 때문이 아니였을가?   ‘걸출한 민족사업 지도자’ 평가를 안받침한 장군의 사상적 근간은 투철하고 확실한 민족관으로 정립된다고 생각한다.   자기 민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민족을 사랑할 수 없으며 민족의 리더로 된다는 것은 더구나 불가능하다는 게 고금중외의 정설이다. 장군생전에 가깝게 지냈던 여러 민족 지도자들이 장군에 대한 한결같은 평가가 “민족에 대한 깊은 감정, 민족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다.   장군의 민족감정, 민족사랑이 협애한 민족주의와 엄연히 담을 쌓고 있다는 점을 5년간 장군의 비서로 임직해온 전임 연변 주정협 황삭 주석이 반증한 말로 대신한다 ㅡ   “조선족 지도자로서 그이는 자기 민족의 발전을 지극히 관심하여왔습니다. 늘 자기 민족 간부와 군중의 소원과 애로사항을 있는 그대로 상부에 보고하여 해결을 보군 하였지요. 그이는 늘 이런 말씀을 하군 했답니다. ‘연변은 중국조선족이 민족구역자치를 실시하는 고장이기에 조선족의 제반 사업을 중시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 점에 대해 한족동지들은 납득해야 합니다. 하지만 연변은 여러 민족이 공생하는 지역이고 한족 또한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한족과 기타 소수민족도 고루 돌봐야 합니다.’”   투철하고 확실한 민족관을 지녔기에 장군이 조선족의 발전과 관련되는 모든 일에서의 관심과 배려는 정당하였으며 내린 결책은 설득력이 있었고 한족을 비롯한 기타 소수민족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연변일보》는 조선문판을 위주로 해야 한다는 리유에 대해 장군은 이렇게 말한다 ㅡ 한족간부와 한족군중들은 그래도 《연변일보》한문판 말고도 한문으로 된 여러가지 신문간행물을 볼 수 있지만 조선족은 《연변일보》조선문판이 그들의 유일한 신문이기 때문이다. 조선문판을 위주로 한다는 것은 민족구역자치를 실시하는 연변에서 응당 자치민족의 문자로 된 신문을 앞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며 문화대혁명시기와 그 후의 상당한 시기에 조선문판이 한문판의 번역판으로 된 상황을 개변시키자는 것이다.   장군의 《연변일보》조선문판 위주설은 또 인원편제와 운영자금 면에서 우선 조선문판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전제하에 조한문을 고루 돌본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민족자치를 실시하는 연변에서 조선족의 발전을 우선시하면서 한족과 기타 소수민족을 고루 돌본다는 장군의 일관된 ‘조선족 우선’ 당위성과 그 맥락을 함께 하고있다.   오늘날 조선족이 교육, 문화, 라지오TV, 신문출판 등 민족문화 많은 분야에서 국가로부터 받고 있는 우대정책 대부분이 장군의 민족사랑으로 이뤄낸 것이다. 오래동안 장군과 좋은 뉴대관계를 맺고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북경의 한 조선족 유명 학자의 말이다 ㅡ   “소수민족 출신으로서 높은 직위에 올라온 후에는 자기 민족과 접촉하면 불리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조남기 부주석은 그런 개념이 전혀 없는 분이셨다.”   사실 그랬다. 공직에 계실 때나 퇴임하신 후에도 수도나 지방이나 고향마을 조선족들의 그 어떤 주문도  무릇 조선족 발전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내색도 내지 않으며 발벗고 나선 장군이셨다. 투철하고 확실한 민족관을 지닌 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였다.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계산된 꼼수에 전전긍긍하면서 자기 민족의 리익과 발전에 별다른 관심이 없고 자기 민족 문화와 관련된 여건은 수수방관하며 선대들이 구축한 민족문화에 팔짱끼고 강건너 불보듯 하는 일부 조선족간부들의 행태를 우리는 가끔 봐왔다. 남의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으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민족발전에 등을 돌린 개별적인 간부의 행실도 좌시해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장군의 민족관에 비춰볼 때 너무나 거리가 멀다. 따져보면 이 같은 행태는 자기 민족에 대한 불충이면서 동시에 당의 민족정책에 대한 불충이 아닐 수 없다.   조선족에 대한 장군의 깊은 감정과 따뜻한 사랑에는 조선족의 빛나는 혁명투쟁력사에 대한 자부감, 조선족의 혁명유산을 대대손손 전승해야 한다는 절절함이 스며있다.   장군은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 인문경지를 조선족 로세대들이 목숨으로 바꿔온 홍색유전인자로, 중국조선족의 영원한 대물림 긍정적 에너지로 마음에 담고 있으면서 그것을 미디어 영상물로 재연시키려는 확고한 의지를 세우고 계셨다.   1946년부터 1948년 3년간 연변에서 해방군에 참군한 인수는 5만 1000여명, 그 중 조선족이 85%를 차지하며 전쟁터에서 희생된 연변의 혁명렬사는 3000여명으로 조선족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3년 해방전쟁은 중국조선족이 중국인민의 해방위업을 위해 지불한 희생이 가장 많고 지불한 대가가 가장 큰 시기로 되고 있다. 이 불멸의 조선족력사는 줄곧 장군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1993년, 장군은 연변TV방송국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력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조선족이 해방전쟁에서 보여준 비장한 혁명영웅들의 형상을 영상화할 데 대해 지시하면서 저세상으로 간 해방전쟁시기 조선족 혁명렬사와 렬사가족, 해방전쟁에 참가한 모든 로병들 그리고 연변 여러 민족들에게 값진 ‘선물’을 드리자고 의미심장하게 말씀하면서 몸소 영상물의 기획과 설계에 구체적인 지도를 주고 자금마련에도 나섰다. 12집 련속 드라마 《초연 속의 수리개》는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되였다.   그 당시 TV방송국 책임자로 있던 필자에게 있어서 이 드라마의 기획, 설계, 촬영, 제작 전반 과정은 장군의 우리 민족 혁명투쟁력사에 대한 진지한 감정, 희생된 선렬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지척에서 읽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조선족에 대한 장군의 깊은 감정과 따뜻한 사랑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였다. 제작이 완료된 후 미숙한 드라마 견본을 자세히 봐주시고 그처럼 기뻐하시며 구체적인 수정의견을 제시해주시던 장군의 23년 전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장군은 저세상으로 떠나갔다. 하지만 조선족 불세출 장군이 생애 전반에서 보여준 민족에 대한 깊은 감정과 따뜻한 사랑은 불멸의 정신금자탑으로 되여 우리의 민족관을 쉼없이 정화시켜주리라 믿는다. 장군의 민족정신 영원하리라! 연변일보 2018.7.4
73    새로운 대외개방의 호재와 우리의 자세 댓글:  조회:134  추천:0  2018-06-07
반도의 해빙무드가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평창올림픽에서 남북화해의 실질적 조짐이 보이고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판문점선언이 발족하기까지는 불과 2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물론 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향해 가야 할 길은 아직 두고 봐야 하지만 휴전체제 력사의 종식을 위한 해빙 무드는 전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제날의 대립과 반목에서 서로 평화를 지향하고 화해를 도모하는 그 자체에 대해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언제 그랬냐듯이 반도 전반에는 난기류가 감돌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웃나라의 정세 변화가 과연 우리 고장과 어떤 관계가 있을가?   우선, 해빙배경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반도해빙을 가능하게 한 요인은 물론 대화를 통한 남북반목의 해소와 화해의 공감대의 형성으로 안아온 긴장완화 국면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심층의 지각변화를 이끌어낸 결정적 변수는 서로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각자의 지향점을 조정하고 평화와 발전을 토대로 한 랭전의 력사를 종말짓겠다는 굳은 의지로 정리할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벌써 인프라의 허브격인 경의선 등 고속철과 고속철화 로선 건설프로젝트가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반도의 평화가 진정으로 고착이 된다면 동북아 경제흐름이 새로운 급물살을 탈 것이며 우리 나라가 그 중심에 서게 될 전망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연변은 무풍지대가 아닌 중조경제협력의 교두보로서의 력사소임을 감당하리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다음, 무관할 수 없는 것은 반도 해빙에 따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우리 연변에 엄청난 경제 특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좌시해서는 안된다. 중국 유일 조선족자치주의 인문풍토와 ‘동음일강수(同饮一江水)’의 순치관계, 거기에 사회주의 리념체제로 다져진 두 나라 친선혈맥에 힘입어 연변은 전통적으로 조선과의 변경무역, 민간래왕이 활성화되여있는 고장이다. 도문통상구를 비롯하여 주 안에는 조선과의 무역을 지탱해온 7개의 통상구가 있다. 권하통상구는 조선경제특구의 ‘시험전’인 라진선봉을 잇는 국내 유일한 륙로경제로드이다. 우리 나라의 개혁개방이 심화되면서 연변은 국가의 정책지원 레이어드(叠加)효과에 힘입어 ‘정책고지(高地)’로 몸값을 올리고 있다. 동북로공업기지 진흥, 서부대개발, 장길도(长吉图)개발, 연룡도 신구역 건설 등에서 지금 향수하고 있는 우대정책은 연변이 국가 북향개방 실크로드 허브로서의 립지를 굳히게 되면서 연변이 조선의 개혁개방과 맞물림을 이룰 수 있는 천연창구로 부응한 셈이다. 어느 지역도 대신할 수 없는 연변만의 완벽한 국제무역공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정세의 변화는 연변의 기회이다. 두만강개발은 변강근해주라는 연변의 지리적 특점을 겨냥하여 국가가 펼쳐낸 세기적 프로젝트이다. ‘차항출해(借港出海)’는 바다로 나갈 그 어떤 “길”도 막히고 ‘항구’도 없는 상황에서 손을 놓고 앉아 ‘망양흥탄(望洋兴叹)’만 할 것이 아니라 이웃과의 ‘거래’를 벌린다는 융통성 있는 대안이며 그 핵심요소는 ‘국제협력’으로 풀이된다. 페쇄형으로부터 개발형으로의 탈바꿈이 ‘통상구’를 통한 ‘출해’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조건미달의 우리에게는 ‘가까운 이웃’과 서로 의기투합하는 ‘국제협력’이 해결카드로 될 수밖에 없다.   두만강개발 20여년 사이 우리는 숱한 애로와 곡절을 겪으며 ‘국제협력’프로젝트의 정답에 접근하면서 나름 대로 조선의 라진항, 로씨야의 자르비노항 등 ‘이웃집’항구를 빌려 ‘출해’라는 탈출구를 뚫었지만 두만강개발과 ‘일대일로’ 세기적 프로젝트의 시각에서 볼 때 연변은 겨우 첫 걸음마를 뗐을 뿐이다. 이번에 조선의 개혁개방이 전격적으로 가동된다면 지금까지 이룩한 결실을 토대로 우리의 ‘차항출해’전략은 보다 화려하고 값진 내용물을 끊임없이 뿜어낼 것이며 연변은 명실공히 우리 나라 북향개방 실크로드 허브로서의 역할을 해낼 것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반도의 해빙으로 연변은 천재일우의 발전과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였다. 연변은 시대와 함께 하는 정치적 혜안과 글로벌 사유, 준비된 자세와 포용력으로 주변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여야 한다. 대외개방의 가장 중요한 두가지 면이 상품시장과 자본시장 개방이다. 이웃나라의 경제 메카니즘이 전환되면 연변을 우리 나라 동북아시아 협력과 개발의 중요한 플랫폼, 동북아 지역의 중요한 경제성장구와 두만강지역 합작개발 교두보, 연룡도 일체화 신구역, 우리 나라 북향개방 실크로드 허브로 구축한다는 세기적 프로젝트는 지상담병(纸上谈兵)이 아닌 엄청난 실질적 탄력을 입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도의 해빙이 우리 연변과 무관할 수 없는 리유이다. 연변일보 2018.6.6
72    민족언론부흥의 빛과 그림자 댓글:  조회:282  추천:0  2018-04-13
연변일보는 민족언론지로서 서렬 66번째로 ‘전국 100강언론사’그룹에 들었다. 또 길림성당위 선전부로부터 유일하게 ‘전 성 매체융합발전’시행단위로 선정되였다. 이는 주로 연변일보 조선문의 지역적 한계를 딛고 세계를 향한 해외 전파력 등을 감안한 대표적인 뉴미디어 발전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허나 연변일보는 현재 선진적인 설비 투자에도 불구하고 인재수요의 ‘갈증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으며 더우기 연변일보 조문판은 비정규직 기자( 계약기자)들의 정규직 전환이 이어지지 않은 탓에 인재류실이 가시화되는 추세를 잠재울수가 없다...   2018년 4월1일은 연변일보 창사70돐이 되는 날이다. 이 땅 에 태동하여 파란만장한 70성상을 조선족민중과 함께 숨쉬며 지역의 당 기관지로, 조선족여론의 구심점으로, 조선족사회발전의 견인차로 정착해온 연변일보는 명실공히 민족언론의 홰불, 선두주자로 되기에 손색 이 없었다. 그 위대한 려정의 초창기를 연 로일대 공신들이 하 나, 둘 저 세상으로 사라지면서 후대들에 의해 전승되고있는 선 배들의 초심은 오늘도 당보의 지면에서 반짝이고있다. .4월1일 당날, 창사 70돐을 맞는 연변일보는 너무나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가가 력력했다. 알싸한 마음을 달래며 펼쳐든 책이 이미 작고한 로언론인 오태호선생이 1998년에 저술한 《연변일보 50 년사》였다. 연변일보 반세기의 족적이 진실하게 기록된 이 사초(史草)는 오늘은 물론 향후 오래동안 우리 민족언론사의 근간으로, 밑거름으로 되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오늘의 연변일보 를 영위해가고 있는 후배들에게는 초심을 잃지 않고 승승장구 하도록 편달하는 긍정적에너지로 되리라 믿는다.   《연변일보 50년사》가 필자에게 준 감명과 계시는 크게 네가지였다.   하나는 주당위기관지로서 자치지역으로서 연변에서 당의 로선 방침 정책을 조선족들에게 전파하고 정확한 여론선도 역할로 조선족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점이다. 이로서 지역의 진화와 타민족과의 화합을 이뤄 수차나 전국 민족단결 자치주로 선정되는 등 성과를 올리는데 일조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현재 연변일보는 중국 전역에서 유일하게 8개면으로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조선문 당의 기관지자로 거듭났다.   다른 하나는, 중앙지도동지들의 지대한 관심이였다. 1962년 6월 23일 주은래 총리는 연변시찰시 >에 깊은 관심을 돌리면서 조선문 신문을 잘 꾸릴것을 원 주당위서기 주덕해 등 주당위 지도자들에게 지시했다. 80 년대 초반 당시 주당위 제1서기였던 조남기는 연변일보는 조문 판을 위주로 해야 한다고 하면서 “조문판을 위주로 한다는 것은 민족구역자치를 실시하는 연변에서 마땅히 자치민족의 문자로 된 신문을 앞자리에 놓아야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인원편제와 경비 예산면에서 우선 조문판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전제하에 조한문 을 고루 돌봐야 한다고 밝히고있다. 세월은 흘러도 연변일보 조문판을 우선시할 데 관한 지도자들의 지시는 자치주당정 의 드팀없는 민족언론관으로 영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는 “자치주기관은 직무를 리행할 때 조선어와 조선문, 한어와 한문을 통용하되 조선언어문자를 위주로 한다”는 자치주 조선 언어문자사업조례와 맥락을 함께하고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연 변일보 조문판은 법적으로 건실하게 자랄수 있는 생존발전여건 을 충분히 보장받아야 한다.   또 민족언론지의 용기있는 책임적자세에 힘입은 지상토론의 활성화였다. 70년대 후반 화룡농민 오모가 500원을 주고 산 소를 6개월간 길러 1500원을 받고 팔아버린 사건을 두고 “자본주의적 소되거리”라며 당지에서 시비가 자자할 때 연변일보가 대담하게 벌린 소매매사건 지상토론, 룡정 어느 농촌에서 장려처분문제로 쟁론이 벌어졌을 때 ‘큰 솥밥’을 먹던 평균주의경향타파와 관련하여 벌린 지상토론, 80년대 중반 같은 자연조건하에서 조선족농민과 한족농민의 수입차이를 두고 조선 족농민들이 ‘큰돈’, ‘덕대돈’만 바라고 ‘티끝모아 태산’이라는 치 부의식이 부족함을 꼬집은 지상토론들은 민족언론지의 감당의식 으로 연변농촌개혁의 여론안내역할을 훌륭히 해내여 광범한 조선족농민들의 운명을 바꿔놓은 촉매제로 거듭나는 허다한 지 상토론사례가운데서 전형모델이라 할수 있다. 오늘날 조선족사회전반이 민족대이동의 급물살로 몸살을 앓고있으며 많은 문제점들이 불거져나오고있는 시점에서 지난세기에 연변일보가 활발히 벌려왔던 지상토론진수를 살리는 것이야말로 우리 언론 의 우세를 부활시키고 조선족사회여론의 구심점을 형성해갈수 있는 명지한 선택이라 하겠다.   마지막 하나는, 창의력으로 만들어낸 민족언론지의 폭넓고 통큰 합동취재였다. 1996년 9월 23일 ‘연변일보’는 ‘대서 특기할 일대장거’라는 표제로 연변일보사, 연변TV방송국 ‘조국 만리변경기행’공동취재팀 출정소식을 1면 톱으로 다뤘다. ‘력사 의 한페지로 기록될 연변일보, 연변TV의 조국만리변경기행 취재팀은 훈춘경신의 방천, 동북아 중국국경선인 토자비에서 23 일 오후 3시 첫 코스로 출발하였다. 이로써 장장 7개월이 걸릴 특별취재활동이 정식으로 막을 펼쳤다. 그 당 시 연변TV방송국 책임자로서의 필자는 이 특별취재활동의 성공포인트는 ‘합동’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연변언론사상 전무후 무한 연변의 두 주류언론매체의 공감대가 일궈낸 합작품이였다. 북경에서 개최한 중국기자협회 및 수도 부분적 언론사가 참가한 ‘조국만리변경기행’취재활동 상황회보회에서 중국기자협회 서기 처서기 소동생이 ‘연변일보사와 연변TV방송국에서 련합으로 대규모취재활동을 벌린것은 우리 나라 보도계의 일대 장거’라면 서 격정 넘친 극찬을 해주던 그 장면이 지금도 필자의 눈앞에 선하다. 오늘날 전통매체와 현대매체의 융합을 주창하는 다매체 멀티미디어시대의 흐름속에서 지난세기 연변일보와 연변TV가 찰떡궁합으로 빚어낸 공동취재장거야말로 우리민족언론의 새로 운 매력으로 부활돼야 할 ‘플레이’가 아닐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2005년에 진행됐던 대형 기획 취재 >는 중국내 10개 대도시의 조선족들의 생활상을 다각적인 파노라마로 펼쳐 변화의 시점에서 일등 시민들으로 거듭나는 민족의 당위성과 우수성을 진실한 르포로 보여줬다...   창사 70년을 맞는 연변일보는 새로운 변화와 부흥의 길목에 서있다. 후배들에 의해 지켜지고있는 민족언론의 위상은 여전하 다. 지난해 전국언론사 비교평가에서 연변일보는 민족언론지로서 서렬 66번째로 ‘전국 100강언론사’그룹에 들었다. 따라서 길림성당위 선전부로부터 유일하게 ‘전 성 매체융합발전’시행단위로 선정되였다. 이는 주로 연변일보 조선문의 지역적 한계를 딛고 세계를 향한 해외 전파력 등을 감안한 대표적인 뉴미디어 부흥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에 연변일보가 지금까지 향유하고있는 모든 우세가 잘 접속될 때 연변일보가 발산하는 ‘빛’은 더없이 찬란 하리라 사료된다.   하지만 모든 사물이 량면성을 띄듯 연변일보의 ‘빛’과 더불어 우리가 경계해야 할 ‘그림자’가 따라붙어있음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뉴 미디어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력이 부족한 연변일보 조문판의 운영상황은 무언의 경고메세지로 ‘그림자’폭을 서서히 확대하고있어 우려스럽다. 지난세기 90년대까지만 해도 편제안의 취재편집기자가 120 여명이였으나 지금은 겨우 54명, 기타 18명은 ‘신분보장’ 이 전혀 없는 비 정규직 계약기자로서 조선족 제1언론지의 지위와 어울 리지 않는 위험수위에 로출돼있다. 연변일보는 현재 선진적인 설비 투자에도 불구하고 인재수요의 ‘갈증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으며 더우기 연변일보 조문판은 비정규직 기자( 계약기자)들의 정규직 전환이 이어지지 않은 탓에 인재류실이 가시화되는 추세를 잠재울수가 없다...   현재 연변일보는 인재수요의 ‘갈증’ 에 허덕이고 있다. 비정규직 기자들이 정식 시험을 통한 정규직 편제내로 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탓에 인재류실이 가시화되는 추세를 잠재울수 없는 ‘그림자’가 무겁게 드리워 있다. 연변일보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남다른 애착으로 비정규직 기자(계약기자)로 몇년씩 청춘을 불태우며 근무했으나 정규입사시험이 오래동안 비여있어 결국 다른 업종으로 직장을 바뀌여야 하는 현실이 가슴아프지 않을수 없다. 이는 단순한 연변일보 민족언론지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족의 운명과 직결되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자치주당정의 배려, 언론사 자체의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 사회 여러분야의 성원에 힘입은 연변일보의 부흥이 절실하다.   창사 70년을 전기로 새로운 스타트선에 선 연변일보인들은 초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땀과 정성과 슬기로 조선족 제1언론지의 새 기원을 열어나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당과 정부의 따뜻한 독려와 지원 그리고 자체의 각고의 노력 등으로 이제 찬란한 ‘빛’이 솟구칠 순간을 기대해본다. 역시《연변일보 50년사》에서 발췌해낸 말로 이 글을 마무리 하련다 –   ‘력사는 기백있고 용기있는 자들의 것’, ‘력사는 창의력을 앞세 운 슬기로운 자들의 것’, ‘력사는 실제적인 일을 하는 부지런한 자, 강한 의지의 소유자의 것’ 연변일보 2018.4.11
71    ‘어물전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론 댓글:  조회:419  추천:0  2018-03-15
일전에 인터넷에서 “중국승객 175명이 나리타공항에 내려진 가운데 일본경찰이 폭력으로 한 동포를 구금하자 현장의 중국승객들이 국가를 우렁차게 불렀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얼핏 보면 마치도 중국승객이 일본에서 엄청난 굴욕을 당하고 민족자존심이 여지없이 짓밟힌 것처럼 비춰진다. 하지만 이 사건은 기실 항공회사와 려객들 사이에 생긴 민사분쟁으로서 력사갈등, 국가대의, 민족감정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였다고 한다. 승객들은 항공회사를 질타 또는 기소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민사분쟁선에서 끝을 봐야 할 여건이지 민족주의 문제에까지 격상시킬 일은 아니였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환구시보》는 나리타공항사건을 공공연히 민족주의 높이에까지 부풀린다면 그야말로 민족주의의 반면교재로 돼야 할 것이라고 몰상식한 일부 중국승객들의 행태를 비난하였다. 어물전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더니 공항이라는 국제적 공중장소에서 내놓고 나라망신을 시키는 못난 개별적 국민들의 추태가 한심하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이 같은 황당한 일을 저지르는 ‘꼴뚜기’ 들이 자주 눈에 밟힌다. 나라국력이 강대해지고 물질생활이 좀 풍요로워지니 올챙이 때를 망각하고 안하무인 격으로 도처에서 사달을 일으키는 망발을 ‘애국주의’로 합리화시키는 개별적 국민들이야말로 ‘중국굴기(崛起)’의 위업에 먹칠을 하는 ‘꼴뚜기’가 아닐 수 없다. 올 음력설기간 타이로 가족려행을 다녀왔었다. 공항터미널, 비행기기내, 면세점, 관광명소… 어디로 가든 중국 여러 려행사들의 안내기발을 따라 인파들이 몰려다니는데 고성과 괴성, 소란과 무질서가 란무하는 곳이면 당연히 중국관광객들이 모여있는 공간이였다. 타이에 도착한 이튿날 저녁 ‘동방베니스’로 불리우는 방코크의 차오프라야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강 량안의 야경을 즐기는 시간을 갖게 되였다. 유람선 갑판 우에 설치된 무대 우에서는 당지 연예인들이 민족음악과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은 타이연예인들이 만들어가는 이색적인 문화 분위기에 심취되여 기분 좋게 야경을 즐기고 있었는데 돌연히 중국 남방관광객들 속에서 두억시니 같은 장신의 젊은이가 무대 우로 뛰여올라가 진행자의 마이크를 낚아채더니 자기는 중국에서 왔노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하더니 듣기 구차한 괴성의 엇박자로 중국노래를 불러대는 것이였다. 타이문화 뜨거운 분위기에 빠져있던 여러 나라 관광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일부는 량미간을 찌프리고 일부는 그 어떤 미지의 행성에서 온 외계인의 괴상한 행태를 구경하듯한 놀라운 표정이였다. 뒤이어 중국 남녀관광객 몇몇이 무대에 뛰여올라 아예 타이연예인들의 공연무대를 석권하더니 자기들 광란의 무대로 만들어버렸다. 그들의 무분별하고 방종한 행태에서는 ‘우리가 좋아서 맘껏 즐기는데 무슨 상관이냐?’라는 도전적인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필자는 낯이 붉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중국동포들도 ‘어물전망신은 너희 꼴뚜기들이 다 시키는구나’는 눈치였다. “강산은 바뀌기 쉬워도 타고난 사람의 본성은 바뀌기 어렵다” 는 말이 있다. 몇천년을 아우르는 문화루적, 풍속전통, 대환경과 대기후를 거치며 형성된 중화민족의 국민성은 파격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발전과 진보를 거듭하는 중국은 성형수술을 거친 미인으로, 그 외모는 옛날과 비교할 수 없게 찬란하지만 국민소질은 그렇지 못하다”고 학자들은 우리 나라의 국민성을 신랄하게 지적하고있다. 나리타공항이나 방코크유람선에서 발생한 개별적 국민들의 추태는 우리 국민성의 현주소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아무리 개별적 ‘꼴뚜기’의 장난이래도 국제사회에서 어설픈 불협화음으로 야기되면서 ‘평화굴기’를 실천하고 있는 우리 나라 대외형상을 훼손시키는 부정적 요소로 될 수밖에 없다. 한 나라의 국민이랄 때 자기 나라가 더 빨리, 더 좋게 발전하기를 바란다면 우선 자신의 콤플렉스가 어디에 있는 지를 알아야 하고 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는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공동체이다. 민족단결, 민족평등, 민족상호존중은 우리 당과 정부가 일관하게 강조해온 중화부흥의 기본토대이다. 하지만 일부 ‘꼴뚜기’들이 물을 흐리우고 있어 안타깝다. 지난해 조선족 산재지역에서 민족언어를 구사한 조선족 젊은이를 향해 한어로 말하라며 눈을 부라리며 횡포를 부렸던 깡패 같은 망나니는 물론 개별적이지만 얼마나 많은 조선족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혔는지 모른다. 지금도 주안의 공중기관이나 공중장소에서 한어를 몰라 조선말로 용무를 보는 조선족 어르신들이 개별적 타민족일군들의 차거운 시선과 곱지 않은 태도에 주눅이 들어하는 광경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한둘의 한족이 있어도 배려차원에서 한어로 말하는 데 습관돼온 언어환경이 빚어낸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다섯차례나 국가로부터 민족단결진보선진으로 추대받은 모범자치주와는 거리가 있는 살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이 극소수의 ‘꼴뚜기’들에 의해 벌어지면서 나라의 민족정책에 악영향을 끼치고 조선족과 기타 민족의 수십년간 이어온 공존공생의 아름다운 인문풍토를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어물전의 꼴뚜기, 좌시할 수만은 없다. 어물전을 살리고 어물전의 매력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마구 날뛰는 개별적인 꼴뚜기들을 잠재우거나 제거하여야 할 것이다. 습근평 총서기는 19차 당대회 보고에서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을 사회발전의 여러 면에 융합시키며 그것을 사람들의 의식공감대로, 행위습관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전 국민들 속에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이 ‘의식공감대’와 ‘행위습관’으로 자리잡았을 때 ‘꼴뚜기’들의 설자리는 없을 것이다. 연변일보 2018.3.14
70    잃은 것과 얻은 것 댓글:  조회:527  추천:0  2018-03-01
50년이 지났다.   이른바 지식청년이라는 감투를 쓰고 상산하향 (上山 下乡) 운동의 급류에 휘말려 ‘광활한 천지’로 내몰렸던 지가 올해로 꼭 50년이 된다.   반세기가 흘러 ‘지식청년’, ‘집체호’는 시간적, 공간적 개념으로 되여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 하는데 저 산너머에 묻고온 청춘비극의 가슴 허비는 황홀한 악몽과 그리운 추억으로 점철된 그 시절의 애틋한 정감 속에 무시로 빠져버리군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그 시대를 몸으로 겪어온 수천만 ‘로싼제 (老 三届)’들의 일원으로서 쉽게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영원할 것 같다.   문화대혁명 10년동란 속에서 정치운동으로 격상된 지식청년상산하향운동은 중국력사에 심원한 영향을 끼쳤고 수천만 지식청년들에게 불행한 운명을 안겨준 전대미문의 력사사건이였다. 이 운동의 기원과 목적, 과정과 결과 그리고 이 운동이 구현한 정치색채, 사회충돌과 가치관념은 여하하든 지식청년세대는 공화국과 운명을 함께 하면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른 군체라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이고 지식청년세대의 공동한 감수이다.   제3차공업혁명의 물결이 지구촌을 휩쓸며 인류가 우주공간 정복시대에 들어서고 있을 때 중소학교 학력의 청소년들을 학교가 아닌 산간벽지로 보내여 원시로동에 매운 ‘재교육’을 받게 한 자체가 인간의 퇴화, 사회의 퇴보를 의미하는 한심한 실책일 수밖에 없었다.   고삐 풀린 말처럼 산간벽지로 몰려가던 호호탕탕한 대흐름이 결국 10년동란의 종말과 더불어 도시에 다시 목을 매는 허탈한 귀성흐름으로 반전되면서 상산하향 운동 비극의 막이 내려졌지만 지식청년 매개인들의 인생은 또 다른 고민과 시련을 마주해야 했다. 황페화된 학력구조에 의해 지식경제시대와 어울리지 못하면서 도시산업현장에서 2차 희생양으로 추락하게 될 새로운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문화대혁명 10년과 반죽되면서 정치운동으로 변질된 상산하향이 도시중학생들에게는 불행의 ‘예고편’이였다면 귀성 후의 도시산업 현장은 불행의 ‘련옥(炼狱)편’이였다.   “큰 슬픔은 불행한 자를 변모시키는 신성한 빛이다.” (빅또르 유고) 지식청년 상산하향 운동이 수천만 청년학생들에게는 ‘슬픔’을 안겨준 ‘불행’임이 분명하였지만 이 슬픔은 동시에 불행한 청년학생들을 ‘변모’시키는 ‘신성한 빛’으로 작용하면서 그들이 자신의 운명에 도전하며 자립자강하는 굴강한 의지의 소유자로 되게 한 것도 사실이다. 어린 나이에 렬악한 사회생활에 내몰리여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며 인생의 달고 쓴 맛을 일찌기 맛보면서 이 세대는 책임감을 키웠고 강인한 의지와 적응력을 키웠으며 열혈청소년으로부터 리성과 사고를 앞세운 젊은이로 탈바꿈할수 있었다. ‘농’자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도시청년학생들의 농촌관, 농민관 의식을 싹트게 한 점은 상산하향 운동의 목적여하를 떠나 긍정적으로 평가돼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고희년을 바라보거나 훌쩍 넘긴 당년의 지식 청년세대들은 통상적으로 중국농민의 진실한 생활상황 을 료해할 수 있었던 것이 상산하향운동에서의 한차례 중요한 공부, 유익한 경험이였으며 이 또한 지식청년 상산하향운동의 가장 가치 있고 영향력을 내재한 면이 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런대로 상산하향의 비극에서 얻어 낸 수확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 속담에 “세상만사는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문화혁명세월 속의 지식청년 상산하향운동이 지식 청년세대에게 들씌운 불행과 그 비극적성질을 긍정하는 전제하에서 이 비극이 청년학생들에게는 특이한 ‘인생 대학’으로 되여 소중한 인생단련을 체험할 수 있었고 따라서 인생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상산하향운동의 ‘실’과 ‘득’, 그 까닭에 필자는 상산하향운동을 ‘황홀한 악몽, 그리운 추억’으로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50년이 지났다.   그 시절의 지식청년세대는 인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가고 있다. 산천은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 농촌의 변혁은 심각하다. 전통농업이 현대농업으로의 전환은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 농촌은 엄청난 리념변화를 겪고 있다. 인민공사화시절의 유적들인 우사칸, 건조실, 공소사 건물들과 더불어 지식청년집체호 토벽집들은 유령처럼 잡초와 쑥대밭 속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다. 대신 새농촌건설의 동음이 도처에서 새로운 현대화 농업의 부흥을 예고하고있다.   이제 더는 50년 전과 같은 지식청년 상산하향운동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3농(농업, 농촌, 농민)’이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무거운 화제로 되고 있는한 우리의 젊은 세대들에게 농촌을 알게 하고 농민의 삶을 리해하게 하며 농업의 함의를 터득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나 통로는 있어야 한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후대교육의 방향타를 설정함에있어서 인간육성이라는 핵심리념을 현실화할 대안이 허술한 오늘의 현실에서 이미 사라져버린 중소학교의 농촌모내기, 농작물 거두어들이기 지원로동 같은 미래지향적인 실천로동의 부활이 요청될 때라고 생각한다. 농민을 알게 하고 농촌을 알게 하는 들창이 꼭 있어야 한다.   50년이 지난 오늘, 비극의 상산하향운동을 들먹이는 것은 결코 슬픔을 다시 체험해보려는 여유로운 사치가 아니라 그 비극의 부정적 성격을 재조명하고 비극희생 양들의 긍정적인 자세를 분명히 하면서 깨지고 짓밟힌 아름다움의 가치를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따라서 지식청년현상이 오늘날 우리한테 주는 계시에 대해 진지하게 사색하자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50년 세월이 지난 후 지식청년 상산하향운동을 조감해보니 그야말로 희비가 엇갈리고 감개무량함을 금할 수 없다.   요즘 ‘우리 이 세대’라는 노래가 지식청년로병들 속에서 커다란 공명을 일으키고 있다. 노래가사에는 이같은 내용이 번뜩인다 –   “우리 이 세대 / 인내를 배워내고 후회를 삼키며 시고 달고 쓰고 매운 인생고배술 / 얼마나 삼켰더냐? 로심초사 다 겪으며 / 인생수험료 다 냈거늘 우리 이 세대 / 사람되는 리치 진정으로 깨쳤네. 그 인생에 후회 없다네.”   50년 전 지식청년 로일대 삶의 경지가 꿈틀대는 이 멋진 토로가 우리 후대들의 거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연변일보 2018.2.28
69    우리 고장의 이미지 우리 스스로 지켜야 댓글:  조회:412  추천:0  2018-01-19
그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지역과 민족사회는 국가충성도와 정치신앙에서 무형의 검증 “문턱”을 거치기 마련이다. 특히 변강소수민족 지구일 경우 더구나 그렇지 않을가 생각한다.   우리 나라에는 연변을 포함하여 25개의 민족자치주가 변경 선에 포진되여 있으며 조선족을 망라하여 56개 민족이 중화대 가정을 이루고있다. 그렇다면 25개 민족자치주 가운데서 연변의 국가충성도 서렬을 몇번째로 매길수 있을가? 조선족은 56개 민족 가운데서 정치신앙급수가 얼마나 높을가? 그 답을 류추해 낼 시스템은 긍정적으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민족력사와의 접근법으로 풀이해보는건 무리가 없으리라는 느낌이다.   요즘 와서 필자는 은근히 이 점에 생각이 많이 미치는 것을 어쩔수 없다. 아마도 반도의 랭전기류와 연변의 지정학적 좌표 에서 오는 관심에서 기인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조선족 구성 원 모두가 심각하게 대해야 할 화제가 아닐가 생각한다.   지난 100여년의 파란만장한 세월속에 우리 선대들에 의해 구축되고 후대들에 의해 전승돼 온 연변과 조선족의 형상은 더없이 찬란하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영광스런 혁명투쟁력사를 자랑하는 로혁명근거지”,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 등 표현은 연변의 국가충성도를 단적 으로 시사하는 가장 적중한 신분부호로서 25개 민족자치주 가운데서 단연 돋보이는 지역이 아닐가 생각한다.   조선족의 정치신앙은 더구나 화려하다고 할수 있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해방전쟁기간에 연변지구에서 참군한 인수가 5만1천여명, 그 가운데 조선족이 85%를 차지하며 항일 전쟁 과 해방전쟁에서 희생된 연변지구의 렬사가 1만4천7백 여 명, 그 가운데 조선족이 97% 이상을 차지한다. 모택동주석이 공화 국의 오성붉은기에는 조선족들의 선혈이 스며있다고 한 절찬을 유력하게 받쳐주는 증거가 아닐수 없다. 조선족의 정치신앙 급수를 이보다 더 설득력있게 립증하는 사례가 또 있을가? 필자는 30여년전 로일대 조선족지도자가 “연변 로혁명근거 지 혁명유산은 선대들이 후대들에게 남겨준 가장 값진 호신부” 라고 하던 말을 기억하고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 말의 깊은 의미가 가슴속 깊이 안겨온다.   우리 민족 력사에 자호감을 가지고 이 땅에서 당당하게 살아 가라는 선대들의 부탁에는 선대들이 이룩해놓은 조선족이미지를 잘 지켜나가라는 깊은 뜻도 내포되여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족은 천입민족이다. 천입민족이라는 조선족의 좌표에서 우리가 리념적으로 갖춰야 할 자세가 바로 재중교포의식이 아닌 중국조선족의식의 확고한 정립이다. 남의 땅에 와 산다는 틀린 시각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이 땅을 개척하고 우리 민족이 기타 민족과 더불어 이 땅을 지켜내고 건설하여 나라의 인정을 받은 중국소수민족 일원으로서의 립지를 확실히 다지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민족 대류동이 가시화되고있는 때 이같은 의식이 함몰된 다면 조선족은 전도가 암울할 것이다.   천입민족은 토착민족과 구별되는 호칭으로서 이 말에는 가변 적인 요인이 함유되여 있다. 학계는 조선족에 대해 이렇게 평가 하고있다 – 이주(迁移)는 조선족의 특징으로서 영원히 높은 데로 류동하려한다. 나름대로 이 해석에는 조선족의 쉼없는 추구와 향상정신이 내포되여 있으나 다른 일면 한곳에 영원히 정착하려않는 가변성을 띄고있어 조선족의 긍정적 이미지를 흐리우는 역효과로 인식되고 있다.   오늘날 해외로무송출로 특징지어지는 조선족대이동이 조선족 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글로벌화에 부응하는 조선족들의 관념 변화를 이끌어내며 자치주 외향성경제의 중요한 엔진으로 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할 바이다. 따라서 조선족의 대류동이 “조선 족 이미지를 지킨다”는 소박한 자세에서 “조선족 이미지를 쇄신 한다”는 현대적 리념에로의 전환을 부추키는 위대한 변혁의 긍정적 에너지로 된다는 점 또한 고무적이라 본다.   하지만 해외로무송출로 초래된 수십만 조선족인구의 “탈연변” 영구화 현실은 간과할 수만 없는 상황이다. 연변의 조선족 호적 인구는 79만이라지만 현재 한국으로 나간 로무자가 30만으로 집계되여있고 거기에다 국내외 기타지역에 나가있는 조선족까지 합치면 거의 절반 인구가 연변을 빠져나가있다는 말 이 된다. 조선족 산재지역과 달리 연변은 조선족자치주이다. 이같은 인구류동추세가 한계를 벗어날 때 자치주성채는 위기를 맞을 것이고 그 존재의미가 소실될 것이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만 된다면 “영광스런 혁명투쟁력사를 자랑하는 로혁명근거지”,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 연변상징아이 콘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며 조선족의 국가충성도, 정치신앙급수도 모두 백지화되면서 조선족의 “호신부”는 아리숭 한 옛말로 돼버릴 것이다. 무릇 조선족이라면 이같은 상황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풀어나가는 우환의식이 있어야 한다.   “이 땅의 주인으로서의 의식과 자세를 갖지 못하면 우리는 하루아침에 천시당하는 천덕꾸러기로 정착하게 될 것입니다.”   일제가 패망하고 새중국이 탄생되기 전야 조국관과 민족정체 성으로 갈등하며 반도이동을 서둘르는 조선족동포들을 향해 터쳐낸 초대 자치주 주장 주덕해의 이 절절한 호소가 당시 광범한 조선족민중을 이 땅에 결집시킨 안정제로 되였다면 오늘날 조선족 구성원들 모두에게는 연변 이미지를 지키라는 절박한 경고메세지로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난날 준엄한 시련을 이겨내며 구축한 연변의 국가충성도와 조선족의 굳센 정치신앙이 새로운 력사시기에도 끄떡없도록 지켜주는 호신부로 되리라 믿는다. 연변일보 2018.1.17
68    비대칭 도전 잡담 댓글:  조회:455  추천:0  2017-11-23
지난해 3월, 바둑천재 리세돌과 구글(谷歌)이 연구개발한 인공지능 알파와의 바둑대결은 슈퍼시대를 실감케하는 지구촌 오만가지 대결구도에서 가장 ‘황당’하면서 멋진 슈퍼 비대칭게임이였던 것같다. 결과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가 4:1 총득점수로 인류대표 리세돌을 꺾었을 때 인간사회는 깊은 실의에 빠졌었다. 하지만 이틀 후에 있은 또 한차례의 ‘인간과 컴퓨터의 대결’에서 중국참전팀은 세계최상의 구글 브라우저에 도전하여 세계헤커경 기 pwn20wn를 인간의 쾌승으로 장식하며 완전히 허물어졌던 인간의 자존심을 다시 살리는 이변을 연출한다.   인간과 컴퓨터의 슈퍼 비대칭게임을 거친 후 중국대표 정문빈이 류추해낸 말은 의미심장하다 -“정확한 방법에 충분한 시간지불을 추가한다면 어리석한 자도 산을 옮길 수 있다.” ‘정확한 방법 + 충분한 시간지불’, 이 말을 어떠한 성격의 대결이든, 그 난이도가 여하하든간에 적중한 방법을 소화에 합리한 시간으로 풀어나갈 때 모든 가능성의 문은 다 열려진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사실 동물세계의 비대칭대결은 상기한 뜻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교과서라 할 수 있다.   덩치 큰 아프리카 물소를 포획하기 위한 사자들의 비대칭전술을 관측해본다면, 우선 물소무리에서 물색한 사냥감을 집단적 힘으로 무리와 격리시킨다. 다음 몇마리 사자가 일사불란하고 빈틈없는 ‘집단플레이’로 그 물소를 고립무원한 상황에서 힘빠지게 만든다. 몇마리 사자는 물소무리가 개입 못하게 방어선을 구축한다. 충분한 시간으로 물소를 기진맥진시킨 후 가장 순발력이 뛰여난 사자가 날쌔게 점프하면서 물소의 코부위를 조준하여 덥석 물어버린다.  이로써 물소와 사자의 비대칭대결은 사자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일전에 필자는 자연다큐프로에서 ‘배수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산양과 표범의 대결을 흥미있게 감상한 적이 있다. 산양 한마리가 겨우 비비고 설수 있는 현애절벽 비좁은 공간에서 이끼를 뜯어먹는데 표범 한마리가 뛰여든다. 아츨한 절벽낭떠러지에서 산양은 조금도 흔들림없이 바위처럼 버티고 서있을 수 있는 우세를 갖고 있지만 표범은 자기우세인 스피드와 점프실력을 전혀 구사할수 없다. 산양은 표범이 꼼짝달싹 못하게 완강히 밀어붙이는 배수진으로 끝내 표범을 내쫓는다.   ‘인간과 컴퓨터 대결’에서 리세돌의 완패나 정문빈의 완승, ‘초식과 육식 동물 대결’에서 사자나 산양의 성공은 모두 ‘정확한 방법+충분한 시간지불’ 방정식 소화로 만들어진 필연적 답이라고 본다.   올해 슈퍼리그 시즌에서 연변팀의 5승 7무 18패 성적표를 자세히 관측해보면 동물세계의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한 양장피단(扬长避短) 비대칭도전과 흡사한 사투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다.   2017년 슈퍼리그 시즌에서 연변팀 탈락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자금난이 안아온 불안정, 축구협회 새 규제에 따른 곤혹, 부상선수 속출로 흔들린 전술체계, 심판의 편파적 판정에 의한 발목잡기, 그 밖에도 탈락의 객관적 리유를 얼마든지 들 수 있다. 하지만 연변팀 탈락의 궁극적 원인은 주관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연변프로축구정신의 주요한 변수로 작용했던 ‘투혼 3력’–집중력, 정신력, 결속력에 대해 반성하는 자세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본다. ‘투혼 3력’은 연변팀이 2015년의 갑급 리그 챔피언으로 우뚝 솟게 한 비결이였고 2016년 슈퍼리그 각축장에서 ‘토호전차군단’과 밀리지 않는 대결을 펼칠 수 있은 강심제였으며 2017년 슈퍼리그 그라운드에서 축구계를 놀래우는 이변까지 연출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였다. 한마디로 ‘투혼 3 력’은 연변팀의 오늘이 있게 한 리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2017년 연변팀 강등의 관건요인을 필자는 팀 ‘투혼 3력’의 일관성이 떨어지면서 생긴 굴절, 침체, 쇠진, 퇴색으로 보고 있다.   2017년 시즌에서 경전에 가까운 두껨의 멋진 경기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5월 20일, 산동로능팀과의 홈장경기는 1:1이라는 경기 결과를 떠나 강팀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경기를 주도해나가며 연변팀의 특색을 유감없이 보여준 전형사례로 되기에 족했으며 언론과 축구팬동네는 ‘기대이상’이란 표현으로 팀을 환호하였다. 10월 13일, 슈퍼리그 최강 광주항대팀과의 원정경기는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빚어진 3:4라는 경기성적과 무관하게 ‘파죽지세 연변팀’을 세상에 보란 듯이 부각시킨 ‘명품경기’로서 중국조선족축구팬세계가 억울한 눈물을 휘뿌리며 ‘연변승리’의 촛불을 높이 추켜들 수 있었다.   이 두껨의 ‘경전’급 ‘명품’경기를 탄생시킨 연변팀의 비결에 대해 언론은 ‘투혼을 불사른’ 연변팀 정신력, 집중력, 결속력의 경이로운 발휘로 꼽고있다.   또 다른 연변팀 낯선 두껨의 경기를 잊어서는 안된다. 7월 23 일 광주부력팀과의 원정경기와 8월 19일 강소소녕팀과의 홈장 경기였다. 광주부력팀과의 2:6 경기 결과는 연변팀이 ‘집중력을 상실한’ 무기력한 경기를 펼친 필연적인 성적표였고 강소소녕 팀과의 0:4 경기 결과는 홈장인데도 불구하고 주도권을 대방에 빼앗긴 허술한 경기의 소산이였다.   ‘경전’급 ‘명품’경기나 아마추어식 ‘허술한’ 경기 모두가 ‘투혼 3력’의 발휘가 주요변수로 됐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연변팀의 인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연변팀 선수들이 시즌 마지막 고비에서 보여준 강인한 정신력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경기태도’를 꼽았다.   2015년과 2016년을 거쳐 검증받은 ‘신뢰가 바탕이 된 구단의 정신력, 스타독주가 아닌 11명 집단플레이의 결속력, 경기 결과보다 경기과정에 집착하는 집중력’, 연변팀의 이 ‘비대칭 3력’은 연변팀을 강등에서 구출할 수 있는 ‘정확한 방법’ 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 방법을 실천하는 2년여 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교훈은 ‘충분한 시간지불’의 수험료로 되여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이 힘들고 불확실할수록 초심을 잃지 않고 ‘투혼 3력’에 올인하면서 다른 팀과 차별화된 연변팀의 본토화와 민족특색을 살려나가는 행보에 힘을 실어야 한다. 기나긴 중국프로축구려정에서 정유년 강급은 잠시적 상황이다. 차분하게 올해의 잠시적인 상황 발생의 여러가지 요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우리 자신을 정확히 인식한다면 정유년의 강급은 무술년 진급의 발판으로 된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며 허물어졌던 연변의 자존심은 ‘봄바람이 불어오면 또다시 되살아나는’ 진풍경으로 바뀔 것이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어도 패하지는 않는다’는 헤밍웨이의 말이 주는 계시이다. 연변일보 2017.11.22
67    생태자원과 생태문명 댓글:  조회:545  추천:0  2017-10-26
요지음 19차 당대회 보도에서 생태문명이 압권으로 다뤄지고있는 느낌이 강하게 안겨온다.   지난 8월, 중앙 생태환경보호 독찰조의 제4라운드 독찰 “촉수”가 우리 주에 와 닿았을 때 필자는 중앙이 이처럼 고강도 생태환경보호독찰을 실시하는 것은 상당 히 의례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만큼 우리 나 라가 직면한 생태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뜻으로 해 석할수 있겠지만 지금와서 보면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생을 도모하는 현대화 새구도 정착을 위한 당중앙의 강경한 의지를 보여준 예고편의 초읽기였음이 이번 19차 당대회 보고에서 확실하게 립증되였다.   따라서 중앙독찰조가 2년여의 체찰(体察)을 거쳐 걸러낸 “생태환경 파괴, 오염단속 부진, 환경보호 직무 유기, 사업실적 허위조작” 등 4대 환경고질병 및 생태 환경 상황파악이 19차 당대회 “생태문명 체제개혁 가속 화” 전략창출의 밑거름으로 되였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생태문명이 19차 당대회에서 새시대 중국특색의 사회 주의를 견지하고 발전시키는 기본방략으로 강조되고 록색발전 추진문제, 환경에 영향을 주는 두드러진 문제, 생태계에 대한 보호강도를 높이는 문제, 생태환경에 대 한 감독관리체제를 개혁하는 문제 등이 아름다운 중국 건설의 미룰 수 없는 준엄한 과제로 명문화되면서 우리 는 비로서 우리 당의 이 위대한 전략이 인민대중 과의 밀접한 련계속에서 형성된 산물이란 점을 깨닫게 된다.   생태문명은 두가지 의미를 담고있다. 하나는 자연 그 대로의 원초적인 생태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생태계 에 미친 인문적 영향이다. 이 두가지 요소의 원활한 복합에 의해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생”이 이뤄진다.   아무리 선천적으로 멋진 생태계를 가졌다고 해도 인 간의 후천적인 문명자세가 문제시 됐을 때 생태문명은 심한 내부 마찰음과 갈등을 유발하며 결과적으로 비극 을 초래하게 된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렬악한 자연생태 환경에 로출됐지만 인간이 후천적으로 몰부은 뼈를 깎는 각고와 옳바른 리념에 의해 생태문명의 멋진 매력 이 과시되는 사례를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렬악한 자연환경속에서 근 50년의 간고분투로 140만무의 사막화 땅에 세계 최대규모의 112만무의 인공숲을 성공적으로 키워내 삼림피복률을 60년대 초의 11.4%에서 지금의 80%로 격상시키고 황 원을 림해로, 사막을 록주로 변화시킨 싸이한바(塞罕坝) 몇세대 사람들의 록색기적은 세계인들을 경악시킨다. 렬악한 자연환경이 인간의 도전정신을 증폭시키는 굉장한 에너지로 전환되였음을 보여준 감동드라마이다.   생태문명, 내 고향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연변의 생태 문명을 평가함에 있어서 우선 실사구시적으로 연변의 자연생태를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봉금 200년”으로 철저히 보호된 연변지역의 록수청 산이 오늘날 연변의 “팔산 일수 반초 반전(八山一水半草 半田)”의 생태구조를 있게 하였고 연변사람들이 하늘이 보우하는 둘도 없는 생태계를 품고 살 수 있는 혜택을 누리게 하였다. 80%가 산지로 되여있는 연변의 지리적 특점은 주 안의 여덟개 현시 도회지가 전부 산간도시, 록색도시의 성격을 띄게 하고있으며 매력적인 생태고 장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본조건을 갖추게 하였다.   다음 연변 여러 민족 인민들이 반세기를 주름잡으며 생태계를 보호하고 록색 가지속발전을 전승해온 간단없 는 인문적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연변 4만2천7 백 킬로메터 토지면적의 1/3을 차지하는 주 안의 10여개 자연보호구의 건설, 수십년간 산불위험을 방지하고저 벌려온 봉산호림의 장거 등 만으로도 생태문명건설에서 연변사람들의 높은 자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천적인 생태와 후천적인 보호로 만들어진 연변의 자연생태환경의 매력은 세상이 공인하는 바이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생을 위한 생태문명은 자연 생태에 대한 보호만 의미하는게 아니다. 솔직히 말해 연변땅의 삼림면적이 78%, 록지피복률이 80%라지만 그 절대 대부분이 사람이 정착하지 않는 삼림지대이고 실 제로 주민거주지역의 록색공간확보는 그닥 락관적이지 못 하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도시는 생태문명의 중요한 담채이고 생태문명은 도시 의 최고경지이다. 19차 당대회의 생태문명 체제개혁의 네가지 방면 요구에 비춰볼 때 우리 연변의 생태문명 현주소에서 우려스러운 점이 적잖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다른 건 젖혀놓더라도 도시록화  한가지만 봐도 문제가 설명된다.   우리 이제는 “산좋고 물맑은 아름다운 고장”이란 평 가를 겸허하게 받아드리며 잔뜩 뜨거워졌던 머리를 랭 각시킬 때가 된 것 같다. 급변하는 바깥 세상을 모르고 그냥 수십년 전의 생태밑천에만 매달려 야랑자대 (夜 郎自大)식으로 생태문명 “실적”을 자화자찬, 과대포장 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닌줄 안다. 세상은 참 크 게 변하고있다. 그야말로 깜짝깜짝 놀랄 만한 천지개벽 의 진풍경들이 우리 눈을 의심스럽게 한다.   30여년 전 필자는 자치주당정대표단 성원으로 자매 자치주 신강 창길회족자치주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신강을 다녀온 후 사막화로 황페한 서부의 모습이 련 며칠간 눈앞에서 어른거리며 연변 같은 매력적인 고장 은 세상에 없다고 여겨왔었다. 그런데 일전에 19차 당대회 생태문명보도소식을 접하다가 우연히 신강 창길 자치주에서 사막화 피해가 가장 심한 짐싸르현이 몇십 년의 피타는 분투를 거쳐 록화피복률을 40%로 끌어 올려 “가는 곳마다 풍경이 있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기사를 읽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록화피복률 40% 라면 연길시와 동등한 수준이 아닌가? 그것도 사막과 린접한 서부 불모지대의 현에서 말이다. 솔직히  연길시와 짐싸 르현의 40% 록화피복률은 차원이 다르다는 건 다아는 사실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필자는 낯이 뜨거워났다.   렬악한 생태시련을 겪어본 사람이여야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의 소중함을 안다. 우리한테도 서부사람들과 같은 생태계에 대한 경이로움, 싸이한바사람들과 같은 간고분투정신이 정착한다면 연변의 생태문명은 어떤 상황일가?   연변, 생태자원의 우세에 힘입은 생태문명이 연변사람 들의 새로운 리념, 지혜와 간고분투의 노력에 힘입어 거족적인 록색발전의 힘찬 행보를 시작하리라 믿는다. 연변일보 2017-10-25
66    '연길기억찾기’ 발상론 댓글:  조회:634  추천:1  2017-09-28
멋진 발상이다.   연길시가 “력사문맥 발굴, 연길기억 찾기” 문화캠페인을 벌리여 첫 “문화풍경유적지(文化景址)”12곳을 선정하였다.   콩크리트 도배로 전통적인 생태계가 몸살을 앓고 화려함과 삭막함이 서로 교차되는 도시화의 낯선 표정, 인구 대류 동의 거센 바람속에 허무하게 로출된 도시인들의 들떠있는 “글로벌화” 심적고민을 정조준하여 내놓은 연길시의 이색적인 “발상”씨나리오는 소담하게 걸러낸 “옛날옛적”의  연길추억담체로 시민사회의 도시문맥 공감대를 이끌어내려는 시도가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연길시의 멋진 발상이 시민들 마음에 푸근하게 다가가리라는 느낌이다.   최종 선정된 12곳 첫 그룹의 “문화풍경유적지”는 현장답사, 시민참여, 매체공모로 추천된 169곳 후보명단에서 엄선, 그 중에는 연길시민들에게 너무나 친숙한 국자가,  연길교, 연길공원, 삼둥이 소나무 등도 포함되여 있어 시민사회의 폭넓은 관심과 동참을 이끌어낼수 있는 흥분제로 되기에 충분할것 같다.   연길시는 생태와 인문의 유구한 력사를 간직하고있는 도회지이다. 중국조선족집거지구의 수부도시라는 정치적 성향에 앞서 연길은 력사명승지이다.   연길에 관광 온 타지방 손님이 어느 유명한 유적지 내 역에 대한 연길시민의 한심한 해석을 듣더니 정중하게 바로 잡아주더라는 낯이 붉어지는 일화를 들은적이 있다. 시민만 탓할 일이 아닌것 같다. 시민들의 “알아야” 하는 의무감은 “알게” 하는 정부의 일관한 안내가 안받침돼야 한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특히 오늘날 인구 대류동에 따른 도시 전통구성원들의 심각한 변화구도에서 정부의 이 방면 노력이 어느 때보다 선행돼야 할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길시의 제 1책임자가 “사령탑”을 잡고 벌려가고있는 “연길기억 찾기” 캠페인은 옳바른 리념으로 기획된 매력적인 프로젝트임이 분명하다고 본다.   한 도시의 특성이 생태, 력사, 전통, 문화에 힘입은 자연 스러운 신장으로 이뤄진다고 할 때 “문화풍경유적지”는 이 구성요소들을 두루 결집시킨 촉매제로서 연길시 일석이조 (一石二鸟)의 명지한 대안이 아닐수 없다.   력사는 인간의 기억위에 시간에 의해 쓰여진 전설시라고 누군가 말하였다. 도시력사문맥은 도시성격을 형성하고 루적하는 문화유전자라고 할수 있다.   오랜 세월의 흐름속에서 인간에 의해 퇴색되고 훼손되고 형체가 사라져가는 우리의 도시력사문맥을 재발굴하고 복원시키는 작업은 문화유전자 전승을  위한 탁월한 공정이다.   “문화풍경유적지”, 선정의 목적은 복원과 재건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연길시가 선정한 12곳의 명소는 정도부동하게 복원과 재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례를 들면 연길 의 파란만장한 력사를 견증하는 “백년거리” 국자가(局子街) 는 연길명소의 “넘버원”이지만 아쉽게도 오늘날 여기서는 그 당시 초창기 생명력사의 그 어떤 맥박과 흔적을 전혀 느낄수 없다. 국자가의 복원과 재건의 좌표에 대해 옳바른 리념이 선행돼야 한다. 도로 량켠의 기성 건물에 자홍색, 재회색 색상을 입힌다하여 옛 거리가 부활되는게 아니다. 무대세트장이 아니라 인간 삶의 특이한 력사공간을 조성해 야 한다는 시각에서 복원의 함의를 리해해야 한다. 국자가를 청나라 말 사회풍토와 인정세태가 철철 흐르는 여러 민족 삶의 체험공간으로 만듬에 있어서 적재적소의 부지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자교부터 북대까지의 긴 구간을 옛 국자가로 복원시킨다는 계획은 무리이고 력사시각으로 보더라도 무의미하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당시 연길청을 중심으로 무간국, 세무국, 전신국 등 “국” 자가 붙은 기관들이 들어앉으면서 국자가라 부르게 되였다 면 우리는 그 당시 무간총국의 옛터인 원 해방로상점이 자리잡은 보행거리 입구에서 동쪽으로 연길청 청사의 옛 터(지금의 진학소학교)까지의 보행거리 전 구간만을 국자가 복원, 재건의 목표로 조준할수 있지 않을가 생각한다.   1907년에 변무독판 (边务督办)오록정의 제의로 건설된 연길공원은 연길시민들에게는 더없이 친숙한 휴식의 공간으 로 정착해왔다. 오랜 세월 연길공원이 동물원과 더불어 우리에게 심어준 이미지는 아늑하고 편안한 쉼터, 인간과 동물이 조화공존하는 매력적인 친환경 록색지대였다.   그러나 오늘의 연길공원은 쉼터가 아닌 장터로, 친환경 생태계가 아닌 상업화, 란개발에 로출돼 있는 초토화, 복새판 그 자체이다. 놀이장에서 간단 없이 울려오는 시끌법적 한 소음, 로점 업주들이 소비자 유치목적으로 터쳐내는 거대한 음향폭발음, 싸구려매대에서 서로 뒤질세라 뽑아내는 요란한 노래가락, 거기에 공원주변의 대통로로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경적소리, 모든 것이 공원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살풍경이다.   심각한 스트레스로 전률하는 연길공원, 더는 미룰수 없는 상황에까지 왔다. 명소의 선정도 중요하지만 백년공원에 옛 생태계를 돌려주는 “대수술”이 절박한 시점이라고 생각한 다.   “문화풍경유적지”, 발굴과 기억 살리기 과정이 우리의 도시 문맥의식을 진지하게 반성해보는 전기로 돼야 한다.   연길분지는 력사적으로 도처에 버들방천이 깔렸었다. 특히 부로하통하 이북지역은 버드나무가 우거졌고 늪과 개천이 즐비한 습지형 생태계로 특이했다고 한다. 연길시의 시수(市树)가 버드나무인 리유를 설득력 있게 받쳐주는 리유이다. 오랜 세월 수양버들로 울창한 연길늪(청년호)은 특이한 연길생태계를 대변하는 유일한 늪으로서 연길시민 들한테는 애정 그 자체였다.   그런데 연길의 징표로 생태계의 모델로 자리매김해온 연 길늪이 몇년전 콩크리트로 생매장되는 어처구니 없는 비극 을 맞게 되였다. 남들은 지난 공업화시대에 생매장됐던 하천을 재생복원하는 친환경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때에 우리는 그 멋진 연길생태계 걸작을 꺼리낌없이 메꿔버리는 돈키호테식 “용맹”을 과시한것이다.   연길늪, 마땅히 이번 연길 “문화풍경유적지” 명단에 당당 히 이름을 올려야 했던 명소였건만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연길늪과 연길도심의 “핵”인 서광장의 “증발”은 이번 “력사문맥 발굴, 연길기억 찾기” 문화캠페인에서 철저히 반성돼야 할 중대사안으로 돼야한다는게 필자의 소견이다.   력사는 뿌리이고 문화는 넋이다. 연길시의 멋진 발상이 단순한 명소선정의 캠페인에만 그치지 말고 우리 력사문화 의식을 반성하고 명소의 복원, 재건으로 우리 인간의 잘못된 관행과 철저히 결별하는 전기로 될수 있기를 기대한다. 연변일보 2017-9-27
65    “암행어사” 출두의 의미 댓글:  조회:714  추천:0  2017-08-31
중앙독찰조의 환경보호독찰 ‘촉수’가 길림성과 우리 주에 와닿았다. 언론에서는 이들을 ‘환경보호 암행어사’라고 친절히 부르고 있다. 신비감을 증폭시키는 의미 있는 별칭이 아닐 수 없다. 암행어사란 봉건시대 군명(君名)을 받들어 지방관의 치적과 백성의 질고를 비밀히 답사하는 특파원에서 유래된 말이다. “암행어사 출두!” 하면 산천초목도 떨고 흔천동지(掀天动地)한다는 가공할 위력을 과시해왔던 암행어사의 존재는 오늘에 와서도 정의의 사자 대명사로 통한다. 중앙환경보호독찰조가 ‘환경보호 암행어사’로 불리는 까닭이 있다. 이들이 진주한 각 지역에서 수많은 환경 ‘고질병’을 끄집어냈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강도 역시 전례없기 때문이다. 앞선 3라운드 독찰에서 수만명의 책임을 추궁한 데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앙이 생태환경보호를 두고 전국 각 성 시, 자치구에 독찰조를 보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우리 나라가 직면한 생태환경보호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가? 중앙독찰조는 환경 ‘고질병’척결을 이번 독찰의 핵심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중앙독찰이 지적하는 환경 ‘고질병’은 무엇을 두고 말하는 걸가? 지금까지 공개된 3라운드 독찰결과에 따르면 생태환경 파괴, 오염단속 부진, 환경보호 직무유기, 사업실적 허위조작 등등이 환경 ‘고질병’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고질병’의 직접적 피해자는 인민대중이다. 때문에 이번 중앙독찰의 중점을 대중의 신소사건처리에 두고 있다. 따라서 이런 ‘고질병’치유를 지방의 사업회보가 아닌 중앙 ‘암행어사’의 체찰(体察)로 직접 느끼면서 상황파악을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여서 대중들의 만족감과 신뢰도를 향상시키고 있다. 사실 이번 중앙환경 ‘암행어사’들의 행보는 지극히 투명하고 공개적이란 점이다. 언론에 의한 환경보호독찰제보신소사항 처리 결과에 대한 철저한 규명은 그야말로 전례없는 높은 수준으로서 인민대중 만족도를 중심에 놓는 중앙 ‘암행어사’의 명쾌한 ‘판결문’이 아닐수 없다. 지난 8월 11일에 길림성에 진주한 중앙독찰조는 9월 11일까지 한달간 머물게 된다. 8월 26일까지 중앙독찰조가 우리 주에 열다섯번째로 넘긴 제보수리사항 37건 전부가 첫 시간대에 관련 부문과 현(시)의 처리에 교부되였다고 한다. 연변은 환경보호의 ‘무풍지대’가 아니다. 지금까지 제보신소된 사항에는 역시 환경 ‘고질병’증세를 보이는 ‘병원체’가 꽤많이 검출되여있다. 이제 계속 이어질 제보신소사항에 의해 또 어떤 환경 ‘고질병’이 정체를 드러낼지 의문이다. 필자는 우리 주 ‘군중신소 이첩 및 독찰과 개선 병행사업추진 상황 일람표’를 괄목하면서 생활쓰레기적치문제, 수도배관 파렬문제, 사회구역 주변환경 오염문제, 하수배관 분리문제, 검은연기 배출보이라제거문제 등 가두나 현시 정부차원에서 풀어줄 수 있는 군중생활 일상문제도 꼭 중앙 ‘암행어사’들이 출두해야 치유될 수 있는 ‘고질병’인지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적지 않은 제보수리사항은 처리문책중 또는 처리될 ‘예정’ ‘계획’이라고 하니 아직도 진행형인 셈이다. 사실 우리 주변의 많은 환경생태문제는 군중이 신고하니 알아차리고 독찰조가 지적하였기에 문제 엄숙성을 느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넌센스한 표현이 아닐가? 특히 군중이 감히 신고하지 못하거나 백성들이 내막을 모르는 생태환경 파괴, 훼손 문제 같은 것은 구태여 군중제보가 들어올 때를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해결대안을 대는 것이 명지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중앙환경 ‘암행어사’들은 한 지역에 영원히 진을 치고 있을 수 없지만 백성은 영원한 거주자로 남아있으면서 지역환경보호의 영구한 발제, 질의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게 된다. 수년 전 중앙TV 뉴스프로에서 방송한 ‘검사단이 다녀갔다’라는 추적보도를 인상깊게 시청했던 기억이 있다. 중앙위생검사단이 온다고 하니 `××시공상행정관리국에서 며칠 전부터 시장문을 닫아걸고 대청소와 환경미화로 한바탕 난리를 겪더니 검사단이 돌아간 뒤 쓰레기와 악취가 다시 진동하며 모든 게 ‘원상복귀’된 우리 사회의 롱허작가(弄虚作假), 기상만하(欺上瞒下)의 ‘고질병’을 폭로한 보도였다. 언론의 감시역할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누구한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쾌적한 생태환경을 향유하면서 행복지수를 늘여간다는 자세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정부와 손잡고 우리 삶의 터전을 무릉도원으로 가꿔간다면 ‘암행어사’도 출두할 리유가 없지 않을 가? 연변일보 2017-8-30  
64    사랑으로 가는 길 댓글:  조회:580  추천:2  2017-08-16
시장경제사회에서 돈이 모든 일의 원동력인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돈이란 인간을 추접스럽게 만들수 있고 또 고상하게 만들수 있는 징표이기도 하다.   국가녀자배구스타 주정(朱婷)이 년수입 2천만원을 반 년 동안에 “탕진”해버린 “사건”이 에스엔에서 뜨거운 화제 로 떠오르고 있다.  2천만원, 말 그대로 천문학수자인 이 돈을 역시 배구스타답게 쾌속으로 때려치운 것이다.   2천만원의 출처는 이랬다. 부모님한테 60만원짜리 집 한채를 장만해 드린 뒤 나머지 1300여 만원을 주정은 농촌 고향마을의 아스팔트 포장과 양로원, 희망학교, 배구학교 신축에 전부 기부해버렸다고 한다. 아무런 미련없이 “사랑 으로 가는 길”에 깨끗히 “처분”해 버린 것이다.   양로원과 학교를 그녀의 이름으로 명명하는 게 어떠냐는 정부일군의 문의에 준 주정의 대답 또한 배구스타다운 명쾌함 그 자체였다 –   왜 제 이름이죠? 나라 이름이면 돼요.   금전지상주의와 개인리익 추구의 풍조가 고개를 쳐드는 시장경제조건하에서 몸값이 수억에 달하는 재벌과 비교해도 주정은 단연히 “대 부자”급 스타임이 틀림없다. 부자란 많이는 돈 보다 품덕에서 드러난다는 도리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 사례가 아닐가.   주정의 “쾌속기부”는 물론 어마어마한 액수의 금전을 전제로 하지만 금전액수보다 더 값진 스타의 찬란한 심성을 완벽하게 기부하였다고 생각해본다. 옳곧은 마음으로 만들어진 기부는 액수와 상관 없이 아름답기만 한 것이다.   중한수교 흐름을 타고 조선족사회에 서서히 불기 시작한 불우한 학생 돕기 기부문화바람은 페쇄된 환경에서 “자선”, “기부”를 “자산계급 박애”의 정신아편으로 멀리 했던 우리 모두의 사유를 세척하고 “나눔, 공유”라는 아름다운 공동체 생태의 정착을 선도하는 “인간사랑”으로 각광받고 있다.   필자는 일전에 어느 한 언론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10여년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불우한 조선족 대학생들을 돕기 위해 어느 지역 각계 조선족 애심인사로 결성된 조학후원회가 300여명 조선족 대학생들에게 도합 70여만원을 기부했는데 도움을 받았던 장학생들 가운데 현재 투자회사 사장으로, 변호사로, 대학교 강사로, 언론인으로 사회 여러분야에서 활약하는 이들이 많다고 하였다. 주목할만 한 것은 10여년간 도움 받았던 그젯날의 장학생들이 오늘날 후원자의 신분으로 탈 바꿈하면서 조선족 기부문화의 대를 잇는 사랑의 “릴레이" 가 됐다는 것이다.   10여년간 300여명 대학생에게 기증된 70여만원 조학금은 많지 않은 돈이다. 필자는 이 기사의 핵심포인트는 300여명 장학생이 이미 만들어 냈거나 이제 만들어 낼 “사 랑의 릴레이” 도미노현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도움 받았던 이들이 도움의 절박함을 아는 법이다. 이제 이 300여명이 조선족 기부문화의 전도사로 되여 우리 조선족사회의 “사랑 으로 가는 ” 아름다운 길을 포장해나간다고 할 때 그 가치는 금전액수로 계산할수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으로 가는 길”, 연변TV 사랑콘서트무대가 몰고 온 뜨거운 공감대에 힘입어 오늘날 조선족사회 기부문화는 다 양한 물살을 타고있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르게” 펼쳐지고 있는 “은밀한 사랑기부작전” 또한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얼마전 필자는 문화계 몇몇 지인들로부터 조선족청소년 문화진흥과 조선족문학연구 사업과 관련하여 고마운 분들의 정기적인 성금기부를 받고있는데 “절대 소문을 내지 말아 달라”는 철석같은 주문이 그 전제요구여서 고마움마저 표시 할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이라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필자도 모르는, “몽떼 크리스도 백작” 같은 신비의 지성인들이 깜쪽같이 펼치고있는 물밑 기부작전으로 탄력을 입고있 는 조선족청소년문화진흥사업과 조선족문학연구사업 실적 에서 “사랑으로 가는 길”이 외길 만이 아님을 실감하면서 어느 때인가 멋진 신사지성인들의 정체가 드러나리라 기대해 본다.   “사랑으로 가는 길”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 맑은 심성의 정착, “나눔, 공유”의 따뜻한 공감대 구축”으로 통하는 행복의 길이 되리라 바라마지 않는다. 연변일보 2017-8-16
63    물리적 해체와 정신적 융합 댓글:  조회:750  추천:0  2017-08-04
올해는 연변조선족자치주 65돐, 연변 나아가 중국조선족 가족 모두에게는 자치주의 “무병장수”를 자축하며 밝은 미래를 기원하는 뜻깊은 해이다. 그런데 류례없는 고온날씨 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장마전선 때문인지 아니면 수십만 조선족이 해외와 국내 여러지역으로의 이동에 따른 탈 연변 후유증 때문인지 명절분위기 초읽기에 들어가야 하는 연변의 표정이 너무 차분하다는 느낌이다.   글로벌시대 조선족가정마다 정도부동하게 겪고있는 새 “리산가족”현상은 오늘 자치주 창건 65돐을 맞는 연변 대가정 축소판이 아닌가 싶기도하다. 이 상황은 대학입시 판도에도 그 영향을 미치고있다. 조선족수험생이 10년전의 5470명에서 2014년 처음으로 2000명 선으로 추락하더니 올해는 1512명에 그쳤다고하니 이런 추세대로라면 1000명 선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가 아닐가? 5년 후 연변이 70돐을 맞게 될때 또 어떤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무척 우려스럽다. 예측하지 않은건 아니지만 그 진행속도가 너무 빨라 당혹스럽다. 받아드릴건 받아드리면서 현실을 직시 하는 랭정한 자세로 대안을 찾아야하는 것이 예슨다섯살 연변이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가 한다.   자치주의 “무병장수”는 당과 정부의 일관한 바램이고 연변을 포함한 중국조선족 모두의 절절한 념원일 것이다. 인생에서 예슨다섯살은 중요한 전성기로 된다. 연변은 지금까지 그런대로 별탈없이 건강모범생으로 멋진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강건함으로 그 어떤 바이러스에도 끄떡없는 매력적인 삶을 계속 이어갈수있는가는 전적으로 연변자체에 달렸다.   글로벌시대 자치주의 “무병장수”, 연변의 정치적혜안과 지혜는 새로운 검증대에 올랐다. “로무수출”과 “농촌공동화 (空心化)” 이 대립통일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포획하는 것은 자치주당정 앞에 놓인 난해한 “고등수학방정식”으로서 글로벌 연변의 건강한 생태와 맞물리는 첫번째 도전이 아 닐수 없다. 그런데 연변의 대응책은 만족스럽다. 그 어떤 “참조물”도 없는 상황에서 자치주당정이 선후하여 출범시킨 “귀향창업 만인계획”프로젝트와 “우수대졸생영입 천인계획” 프로젝트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겨냥한 명지한 답안이 아닌가 생각한다.   “귀향창업 만인계획”프로젝트에 의해 실질적이고 능률적 인 대책마련과 시스템의 력동적인 운행으로 이미 1만3천여 명의 귀향을 이끄는 국면이 열리면서 귀향창업이 급물살을 타는 조짐을 보이고있다.   “우수대졸생 천인계획”프로젝트는 5년사이 천명 우수대 졸생을 영입한다는 목표하에 이미 “2017년’천인계획’제1기 강습반” 졸업식까지 마무리하면서 21세기 지식경제시대에 걸맞는 연변인적자원구축의 야심찬 전략이 실천단계를 소화 하고있다.   자치주당정이 마련한 이 두 프로젝트가 로무수출에 의한 연변농촌”공동화”병환을 치유하고 새농촌건설 성장동력의 긍정적에너지로 자리매김하게 됨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필자는 민족대이동에 따른 조선족전통거주구도 의 물리적해체라는 전대미문의 균렬양상에 좀 더 정신적 으로 대응하는 비대칭전략이 병행돼야 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물리적인 의미보다 정신적인 의미가 내포되여있다. 물리적으로 아무리 뭉쳐져 있어도 정신적으로 사분오렬돼 있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덩어리 에 불과할것이나 물리적으로는 모래알처럼 흩어져있어도 정신적으로는 글로벌 시공간을 넘어서는 공동체의식으로 뭉쳐져 있으면서 민족정체성과 애국애족애향의식의 강한 뉴대감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민족대이동에 따른 그 어떤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수 있을것이다.   조선족전통거주구도의 물리적해체라는 변화흐름속에서 자 치주의 “무병장수”를 현실화할수 있는 대안은 정신적융합 으로 특징지어지는 조선족공동체 삶의 근간을 더 굳건히 다져나가는데 있다고본다. 연변성채의 본질적의미는 “조선 족집거지구”라는 물리적수량개념을 떠나 “조선족문화메카” 라는 정신적구심점으로 정리된다고 생각한다. 연변성채만 반듯하게 지켜진다면 조선족사회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리치이기도 하다.   연변성채를 지탱하는 힘은 조선언어문자를 토대로 하는 조선족문화의 건재에서 온다. 오늘 이 시각에도 이 신성함 을 지켜내기 위한 조선족 언어문화권의 필사적인 노력이 아름다운 진풍경으로 안겨온다 …   오랫동안 당보의 얼굴에 퍼져있던 흉물스런 “소버짐”을 일거에 차단하고저 수백만원의 광고수입원과 결별한 문화 용기, 그 대가로 만들어진 지성이 넘치는 매력적인 패턴, 감칠맛나는 풍성한 내용콘텐츠가 본보 독자들과 따뜻하게 마주하고있다.   67년만에 연변조선족소학교 학생들을 위한 무료배포의 “꿈”을 현실화시킨 장거에 힘입어 산재지역까지 포용한다는 대담한 씨나리오를 추진하고있는 중국조선족소년보에 고맙 고 그 뒤심이 돼주고있는 자치주당정에 고맙다.   힘든 여건에서 시청자 눈높이에 맞춘 방송프로그램의 정기개편과 갱신, 중앙방송과의 긴밀한 동조로 이루어지고 있는 방송네트워크 활성화를 선도하고있는 연변방송의 자 세가 돋보인다.   국가와 성의 정책적지지를 애써 도모하며 조선문 교과서, 도서와 잡지출판물의 질적인 도약에 엄청난 자금을 투입 하면서 조선족독자층과 끈끈한 련대성을 이어가고있는 연변 출판동네의 노력에 눈물겹다.   작가와 미술가들이 기업계의 힘을 입어 중국조선족백년 사를 작품화하는 중대한 “사건”을 벌리고있다는 굉장한 메시지가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10년만에 바뀌여진 중국조선언어문자 새규범보급을 위한 연변대학조선말언어학자들의 강습로고가 수강생들과 각계 인사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독서문화와 청소년문화선도를 위한 독서협회, 청소년진흥 회의 멋진 활약과 더불어 조선언어문화를 고양시키기 위한 조선언어문화진흥회가 출범을 앞두고있다한다.   조선족언어문화권의 이 모든 활약상은 한마디로 자치주 “무병장수”를 위한 조선족사회의 정신적융합의 초석으로 다져지고있다고 필자는 생각하고있다.   물리적해체에 대처하기 위한 자치주당정의 “만인계획” “천인계획” 두 프로젝트와 정신적융합에 뜻을 둔 조선족 언어문화권의 지속적인 노력에 의해 글로벌 연변성채가 반듯하게 지켜질 때 중국조선족은 이 땅에서 “샘이 깊은 물”,”뿌리깊은 나무”로 영원하지 않겠는가! 연변일보 2017-8-2
62    ‘선택하다’와 ‘선택당하다’의 차이 댓글:  조회:515  추천:0  2017-07-07
인간은 미성년 딱지를 떼는 순간부터 선택의 갈림길에 로출되 게 된다. 그 어떤 리허설도 없이 치러지는 “선택 신고식”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자신일수 밖에 없으며 그 결과는 “선택하다”와 “선택당하다”로 갈라진다고 생각한다.   수석으로 미국의 어느 명문고중을 졸업하면서 미국국민한테만 차례지는 “대통령상”후보자로 지명되여 미국국적을 가질수 있는 “영예”의 기회를 두고 “그 어떤 영예도 조국보다 우선일수는 없다”면서 “대통령상”을 거절한 재미화교 녀고중생 왕연의 “선 택”은 지금까지 미담으로 전해지고있다. 미국의 “선택”을 따르지 않고 조국을 “선택”한 수년전에 있었던 이 사례의 정치성을 떠나 자신의 인생선택권을 멋지게 행사한 고중생의 용기에 필자는 많이 감동했었다.   일전에 어느 신문지상에서 본 보도사진이다 … 두 손으로 수험표를 정중하게 받쳐든 허름한 작업복차림의 로인이 구부정한 자세로 손자벌 되는 대학입시 수험생들과 나란히 수험장으로 들어간다 …   희한한 이 사진의 내용은 이랬다. 올해로 71살 되는 이 로인 은 우리 나라 대학입시 년령제한이 풀린 2002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시험에 응시하고 있는데 올해는 그가 17번째로 시험에 도전하는 해라고 한다. 정부에서 나오는 최저생계비 300원과 넝마를 주어 팔아모은 돈으로 매달을 살아가는 이 로인의 매일 오후일과는 무조건 대학입시공부라고한다.   그런데 필자에게 깊은 충격을 준것은 로인이 2002년 대학 입시 때 전문대학에 합격했지만 자신이 바라는 전업이 아니여서 진학을 포기하고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대학학과만 겨냥한 “무모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였다. 말하자면 대학에 “선택당하였지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보이는 학과진입을 위해 그 대학의 진학을 포기하는 “과감한 선택”을 한것이다. 오직 자신이 바라는 학과진입을 위해 17년을 변함없이 도전장을 던져 온 로인의 선택이 옳은 지를 떠나 필자는 “내 선택은 내가 한다” 는 그 강한 집념에 머리가 숙어졌다.   재미화교 고중생의 선택이나 17년째 입시도전에 나선 71세 로인의 선택은 부동한 성격의 의미를 띄지만 그 선택의 뚜렷한 목표성은 동일하지 않을가?   “선택하다”와 “선택당하다”의 차이는 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 다. 내 의지에 따른 준비된 자세에 올인한 스스로의 “선택”은 뚜렷한 목표성에 토대한 폭발적인 출발과 탄력을 잃지 않는 충실한 내용의 “나”를 각색할수 있지만 자신의 뜻과는 전혀 다 른 남의 “선택”으로 어정쩡하게 짜여진 각본은 아무리 화려해도 그 행보는 후회로 이어질 소지가 충분하다.   대학입시제도 회복 40년을 맞는 오늘날 입시생들이 마주한 선택공간은 더없이 넓지만 대신 자신에 대한 틀린 리해, 전무한 목표의식에 따른 준비없는 대응으로 자칫하면 스스로의 선택 주도권의 포기상황으로 치달을수 있다는 것이 치렬한 경쟁시대가 주는 경종이다. 여기에서 관건포인트는 “나”자신의 깨여있는 선택주도권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선택은 누가 대신할수 없다.   미국의 어느 명문대학교가 본기 졸업생들을 대상하여 졸업한 후 어떤 목표가 서 있는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리였는데 3%에 해당하는 학생만이 “목표가 있다”고 대답했다. 계속되는 추적조 사결과 학교에서 명확한 “목표가 있다”고 대답한 3%의 학생 들은 20년 후 모두 성취한 인물로 되여있었다고 한다. 이는 결코 미국대학만의 사례가 아니다.   우리 나라 어느 명문대학교가 진행한 해당조사에서 나타난데 따르면 60%에 이르는 대학생들이 대학교와 전업을 선택할 때 무조건 부모와 선생님의 뜻에 복종하여 자신의 생각을 접고 대학교와 전업학과를 “선택당하였다”고 고백하였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대학교와 전업학과를 다시 선택하고 싶다고 밝힌 대 학생이 50% 이상으로 나타났다.   학교선택은 미래선택과 맥락을 같이 하고있다. 알맞는 선택이 가장 좋으며 그 선택은 단연히 대학생 스스로가 풀어야 할 몫 이다. 17년간 자신이 선호하는 학과선택을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는 71세 로인응시생의 집념이 돋보이는 리유다.   올해 우리 연변에서도 8314명의 수험생들이 대학입시에 도전하였으며 때를 같이 하여 연변대학은 3941명의 본과생을 배출하였다. 대학입시수험생들한테는 이제 “내가 좋아하는 전업 을 선택하고 내가 선택한 전업을 사랑하여” 자신의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일만 남았고 연변대학과 국내 연변적 대학졸업생들한테는 자기 기호에 가장 알맞는 일자리 선택으로 자기 인생가치증명의 그라프를 진지하게 짜는 숙제가 기다리고있다.   글로벌시대 연변수험생이나 졸업생들의 선택폭은 넓다 하여도 가장 “나”한테 가깝고 친숙한 희망의 향토로는 고향 연변이 적격이 아닐가 생각한다. 오늘의 연변은 지난날 페쇄된 변두리 지역이 아님은 분명하다. 세계인이 주목하는 가운데 장길도 선도구개발개방의 새로운 플랫폼, 동북아문화관광의 새로운 지표, 연룡도경제일체화발전의 새로운 담체, 길림성록색전환발전의 새 로운 고지, 우리나라 실크로드 북향개방의 새로운 거점으로 특징지어진 연변의 매력적인 타이틀을 현실로 전환시키기 위한 위대한 변혁의 프로젝트는 연변적 유능한 인재들의 동참을 부르고있다.   고향 연변의 무한한 발전과 자신의 인생가치증명으로 접목된 대학졸업생들의 후회 없는 멋진 선택! 많이 기대된다. 연변일보 2017-7-5
61    불후의 우리 민족 교향곡이 기다려 진다 댓글:  조회:548  추천:0  2017-06-22
저명한 음악곡은 자기만의 범상치 않은 탄생 사연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그 탄생 사연이 음악곡의 주제와 맥락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은것 같다. 1867년, 오스트리아가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전하자 어떻게 하면 비엔나시민들을 비애와 절망속에서 구해내고 비운이 감도는 도시에 활력을 부어넣을것인가를 두고 고민 하던 요한 슈트라우스는 쉬임없이 줄기차게 흐르는 아름 다운 도나우강에서 그 주제의 답을 찾는다 – 생성과 발전을 멈출줄 모르는 국민, 아름답고 밝은 미래! 그 발견으로 쏟 아낸 격정이 오스트리아의 “두번째 국가”로 칭송받는 절세 의 원무곡 “푸르른 도나하강”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였다. 1956년 전국음악주(周)에서 수도무대를 들썽하게했고 그 이듬해 모스크바에서 있은 제6차 세계청년련환절 예술콩클 에서 은질상까지 수상한 대합창교향곡 “장백의 노래”, 필자 는 오랬동안 이 대합창교향곡이 김철 작사, 정진옥 작곡, 박 우 지휘로 유명하다는 것만 알았지 음악곡 탄생 전후 사연 에 대해서는 전무했었는데 일전에 자치주 65주년 기념문집 원고감수차 “장백의 노래” 탄생경위에 대해 알게되였다. 그 과정은 이랬다. 어느날 초대 주덕해주장은 몇몇 시인, 예술인을 사무실로 불러 항일투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연변이 항일투쟁을 반 영한 대형무대작품을 내놓지 못하다니 말이 되느냐면서 항 일투쟁을 구가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라는 지시를 내린다. 김철, 정진옥 등 시인, 예술인들의 창작행보가 시작된다. 그 러던 어느 하루 창작팀은 장백산어귀에서 바위같은 먹장 구름이 몰려오고 천둥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억수로 쏟아 져내리는 악천후에 로출된다. 이 상황에 한동안 넛을 잃었 던 정진옥, 김철은 누가 먼저라 할것 없이 동시에 짚차에 서 뛰여내려 쏟아지는 장대비속에서 “올리뛰고 내리뛰면서”  “곡상이 떠올랐다” “시상이 떠올랐다”고 웨치며 환호한다. 결국 장백산어귀에서 조우한 “바위같은 먹장구름”, “천둥번 개”, “소나기”가 “장백의 노래” 제1악장, 제2악장의 탄생에 령감을 던져주었다고 김철시인은 말한다. 줄기차게 흐르는 도나우강과 얽혀진 원무곡 “푸르른 도 나우강”, 장백산의 악천후와 얽혀진 대합창교향곡 “장백의 노래”, 물론 그 시대적배경은 여하하던 모두 대자연의 힌트 로 완성된 음악곡이다. 대합창교향곡 “장백의 노래”는 자치주창립초창기 연변 의 름름한 기상을 국내외에 널리 과시한 위대한 예술사절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70여년 세월이 흘렀다. 오늘날 개혁개방의 흐름속에서 조선족사회는 제3차 민족대이동의 급물살을 타게 되였다. 거의 백만에 육박하는 조선족이 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 여러 나라와 국내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나가 글로벌화를 몸으로 체험하는 변화의 최전방에서 뛰고있다. 중국조선족 메카로서 연변의 구심점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절박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국내외 여러 나라, 지역에 흩어져있더라 도 중국조선족 일원임을 항시 가다듬도록 마음의 등불을 밝혀주는 문화에너지의 력동적인 힘, 그 위대한 힘이  우리 민족의 토템같은 존재인 해란강에 고스란히 상재되여 번뜩 이고 있지않나 생각해본다. 해란강을 대할 때마다 필자는 가난의 때를 벗지 못하고 고갈의 위험을 안은 초췌한 모습이지만 그 어떤 힘든 내색도 내지 않고 아무런 바람도 미련도 없이 오직 자식 위한 모성애로 모든것을 묵묵히 감내해나가는 어머니의 거룩함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열악한 생태에서도 억세고 슬기롭게 끊임없는 흐름을 지속해가는 우리 민족의 자화상 을 보는것 같다. 따라서 화룡증봉산 동북쪽협곡의 맑고 푸른 해란강 발원지에서 “샘이 깊은 물”, “뿌리 깊은 나무” 로 특징지어진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 의미에 도취돼 보기도 한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도나하강을 소재로 오스트리아인들이 세계의 어디에서 만나던 그들만의 무형의 신분증으로 될수 있는 가사없는 불후의 원무곡 “푸르른 도나하강”을 탄생 시켰다. 하다면 어머니강 해란강을 소재로 글로벌시대 조선족들이 세계의 어디에서 만나던 중국조선족 무형의 신분증으로  떳떳히 결집될수 있는 해란강교향곡의 탄생에 기대를 걸어보는것은 어떨가? 물리적으로 흩어졌어도 정신 적으로 융합되여있는 문화민족의 구축! 이 간거하고 위대한 소명을 멋지게 감당할수 있는 우리 민족 불후의 교향곡을 떠올려본다. 음악은 인간이 현재를 인식하는 유일한 령역이라고 누군가 말하였다. 그 누구의 정치적설교나 강압적동원이 아니라 심금을 울려주는 무한한 감동의 음악선률로 파생 되는 력동적인 힘! 우리 민족 음악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라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과 공존공생하는 해란강을 소재로 한 불후의 교향곡이 이 감동과 힘을 대대손손 간직할수 있는  캐리어 로 영원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연변일보 2017-6-21
60    사유가 바뀌면 새 길이 열린다 댓글:  조회:515  추천:0  2017-06-11
“실크로드 북향개방의 새 거점” ! 참 거창한 타이틀이다. 그것도 타성이 아닌 내 고향 연변을 말하는 호칭이여서 어딘가 당혹스럽지만 흐믓한 기분이다. “200년 봉금지대”, 가장 페쇄되였던 연변이 우리 나라가 주도하는 21세기 실크로드 북향개방의 새 거점으로 탈바꿈 한다?! 그런데 허황한 기대사항이 아닌 흥겨운 기성사실로 떠오르고있다. 10여년 안에 동북아를 마주한 국제화구역 중심도시의 출범으로 동북지구 “실크로드 전략”의 새 거점으로 거듭난다는 야심찬 씨나리오가 가동된것이다. 홍콩의 한 언론은 연룡도신구역이 담고있는 가치의 가장 뚜렷한 독점성으로 매력적인 생태조건과 독특한 인문자원의 고도의 융합을 꼽으면서 연룡도신구역은 그 누구도 넘볼수 없는 폭발적인 인기를 몰고올것이라고 분석하였다. “200년 봉금지대”의 화려한 변신, 생각만 해도 가슴 뭉 클하다. 여기에서 핵심키워드가 “록색전환”이라고 할 때 일이야 어떻게 발단됐던지 일단은 강희(康熙)령감님께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340년 전 그의 성지 한쪽이 이 지역을 전세계가 주목하는 청산록수의 매력적인 생태보존으로 이 어지게 하였고 우리는 또 이를 바탕으로 록색전환의 푸른 꿈을 펼칠수 있는 현실을 만끽할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거기다 우연의 일치랄가? “200년 봉금지대”가 마치도 연룡도신구역개발을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에야  1억년을 품고 있던 백악기시대 공룡화석무덤군의 정체를 넌지시 드러내 보이면서 연변도약의 무한한 가능성에 축복선물을 하사하 고있지 않는가? 그리고 또 있다. 공룡화석무덤 발굴현장과 거의 나란히 위치해있는 2, 3천년 전 청동기시대 력사문물유적지라는 “옛날옛적”의 푸짐한 선물세트까지 추가되여 연변사람들이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된것이다. 연변은 분명 축복을 받고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축복은 전대미문의 엄청난 기회로 될수도 있다. 필자는 자치주정부가 내세운 연룡도신구역개발 록색전환좌표에서 관건포인트는 “전환”이라고 생각해본다. 한 지역사회 발전모식이나 루트는 고정불변이 아니다. 그 지역이 담고있는 독점성가치 에 대한 지역인들의 옳바른 인식이 살아나면서 사유의 중대한 변화가 발전모식과 루트의 엄청난 전환으로 이어지게 될 때 지역발전은 어마어마한 탄력을 입게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연변은 페쇄적인 공간의 변두리화에 길들여진 사유관행에서 해탈하고저 엄청난 수험료를 지불하면서 연변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정답에 접근하여왔다고 생각한다. “변강근해주”라는 좌표로 “개변통해(开边通海)”의 거시적전략을 “차항출해(借港出海)”의 미시적전술로 풀어나가 는  융통성, “장길도선도구 교두보”라는 “인식표”로 “연룡도 경제일체화”사유를 이끌어내고 륙해공 “통로”네트워크화에 다가서는 추진력, “연룡도신구역”이라는 새로운 발상으로 국가 “신 실크로드” 북향개방전략에 부응하기 위한 새 거점 으로 정착하려는 원견성… 이같은 력사적행보에는 우리자신을 정확히 리해하고 모든 기회를 소중히 다루어 우리의 발전진로에 긍정적에너지를 부여하려는 탐구와 노력이 깃들어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대체로 우리 연변을 그 어떤 통로, 플랫폼, 교두보, 활주로에만 국한시키면서 우리의 이같은 변두리 의식의 산물인 “득천독후(得天独厚)”전략적지위에 기꺼워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우매는 유전하지만 현명은 획득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남들의 발전을 위한 징검다리, 버팀목으로만 돼주는 데 만족하느냐 아니면 남들이 우리 발전의 에너지공급원이 될수 있게 유인하느냐의 구별은 우리 자신의 슬기와 현명에 있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자치주 정부의 연룡도신구역개발 “록색전환”카드는 우선 우리자신 고루의 사유관행에 던진 도전장으로서 연변에 대한 과학적인 리해로 현명한 결과도출을 시도한 바람직한 선택이 되리라 생각한다. “록색전환”카드가 제시한 “처방전”은 “자원을 팔던”데로 부터 “볼거리를 팔고” “풍경을 파는” 명지한 “판로”전략의 정착이고 그 시행방식은 하늘길, 땅길, 바다길이 다 뚫린 사통발달한 교통수단으로 세상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연룡도신구역프로젝트가 발산하는 매력볼거리로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것이다. 한 지역사회가 갖고있는 여러가지 우세는 발전의 조건일 뿐이고 결코 발전의 근거는 못된다. 훌륭한 식재는 수준급 주방장의 아이디어에 의해 멋진 료리로 완성된다. 현란한 타이틀과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연우세는 연변 “인식표”에 불과하다. “인식표”를 매력의 현실로 탈바꿈시키는 관건은 우리의 멋진 사유에 의한 실천에 있다. 장길도선도구 개발개방의 새로운 플랫폼, 동북아문화관광의 새로운 지표, 연룡도경제일체화발전의 새로운 담체, 길림성록색전환발전의 새로운 고지, 우리 나라 실크로드 북향 개방의 새로운 거점 …, 연룡도신구역에 붙혀진 이 현란한 타이틀들의 현실적 “새로움”은 우리의 “새로운” 사유의 전환에서만이 가능하지 않을가 생각해본다. 우리의 사유전환에 의한 연변발전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연변일보 2017-6-7
59    상식이 통하는 관전문화론 댓글:  조회:686  추천:1  2017-05-25
상식을 벗어난 기대는 허탈, 실망 심지어 폭언으로 이어질수 있다. 반대로 상식에 맞는 바람은 경이로움과 환회를 만끽할수 있는 즐거움을 선물받을수 있다. 연변부덕팀이 북경국안, 산동로능 두 팀과의 홈장경기를 통해 우리에게 준 “상식론” 깨우침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5월 13일, 북경국안팀과의 홈장경기를 앞두고 연변축구팬 동네에서는 상식을 벗어난 기대의 분위기가 팽배하고있었다. 우선 지난해 우리 팀의 9위 성적순위로 머리가 뜨거워져 많은 축구팬들이 초심을 잊고 올해 리그에 비상식적인 성적기대치를 걸게 된것이 문제였다. 결과 8라운드까지의 경기성적이 1승 3무 4패로 나타나자 이 성적표가 연변팀에게 가당치 않다는 비상식적인 억울함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이같은 심기에서 파생돼 나온 비상식적인 기대치가 5월 13일 북경국안팀이 홈장의 반전제물로 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이변도 있을수 없다는 황당함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자기망상”에 도취돼있는 틀린 여론을 부채질한것이 일부 언론이였다. 연변과 북경 두 팀의 교전력사와 경기결과에 대한 과학적인 “판독”으로 연변팀의 실력이 한수 아래임을 정확히 진단해내고도 지난해 연변이 홈장에서 북경을 눌렀었다는 단 한가지 리유만으로 올해도 북경국안은 연변부덕의 제물로 될것이라 공언한것이다. 상당히 위험한 “권위적” 호도가 아닐수 없었다. 결과 “꼭 이겨야 한다”는 축구팬들의 절박한 소망을 리성적으로 리드할 대신 “이기지 못할 리유가 없다”는 당위성으로 점철시키고 축구팬들에게 틀린 메시지를 심어주어 홈장경기에 비상식적인 기대치를 한껏 높이는 상황으로 치닫게 하였다. 이같은 비상식적인 여론분위기는 연변팀이 홈장경기를 부담스럽게 치를수밖에 없게 하였고 결국 1:2의 아쉬움이 연출되자 비상식적 기대치로 잔뜩 부풀었던 일부 축구팬과 관객들속에서 야유와 폄하, 폭언과 비난이 쏟아져나오게 된것이다. 언론, 특히 주류언론의 책임을 통감하게 하는 따가운 대목이 아닐수 없다. 5월 15일에 있은 본사편집부의 기획대담은 “지역과 민족사회 화합의 정석으로서 연변축구”에 긍정적에너지를 실어주고저 응분한 소임을 다하려는 정통언론지의 책임적 자세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 모든 언론이 상식이 통하는 관전문화공감대구축에 힘을 합치자는 리더언론의 시도가 우리 사회 여론에 먹혀들어갔으리라고 느낀다. 한 지역사회 축구팬들의 성숙된 자세가 많이는 자기 축구팀이 이겼을 때보다 졌을 때 잘 드러난다. 박태하감독이  지난해 매껨 경기후 기자회견 때마다 곱씹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항상 연변팀을 사랑해주는 축구팬들의 변함없는 성원이 팀의 원동력이 되고있습니다.” 박태하 이 말의 핵심포인트는 “변함없는 성원”이라고 생각한다. 팀이 어떤 상황에 처했어도 “변함없는” 사랑과 성원, 우리 축구팬들의 관전자세가 연변팀에게 기적을 창출해내는 원동력이 될수도 있고 “깊은 슬럼프”에서 헤여져나오지 못하게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수도 있음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 아닐가? 연변팀의 사령탑을 잡고 지금까지 헌신해오면서 과묵한 성격으로 말을 자제해온 박태하감독이 5월 20일 대 산동로능팀전 경기후 이례적으로 쏟아낸 “연변팀을 사랑하는 팬 여러분들께 드리고싶은 말”을 음미하면서 필자는 박태하감독의 절절한 마음의 호소를 읽을수 있었다. “비록 팀은 순위 밑바닥에 있지만 …현재의 아픔은 나중에 우리 팀에 거름이 될것이고 자양분이 될것이다 … 팬들도 함께 팀을 생각하고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변축구팀 “제12인자” 동네에 정중히 보낸 의미심장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이 메시지에는 연변축구팬들이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자세로 오늘의 연변축구팀이 갖고있는 자원한계를 리해하고 이에 걸맞는 기대를 걸었을 때 축구팀은 모든 정신적부담에서 해탈된 거뿐한 컨디션으로 기대이상의 경기력을 보일것임을 믿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이 탑재돼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랬다. 5월 20일, 산동로능팀과의 홈장경기는 지금까지 치른 경기에서 제일 멋진 경기였다고 본다. 1:1이라는 경기결과를 떠나 강팀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경기를 주도해나가며 연변팀의 특색인 정신력을 남김없이 과시했다는 점에서 축구팬동네는 “기대이상”이란 표현으로 고향축구팀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같은 고무적인 상황이 연출될수 있은것은 우리 언론들의 랭정한 자세에 힘입은 옳바른 여론의 정착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대 북경국안팀전과 대조적으로 상식에 맞는 여론안내로 만들어진 차분한 경기분위기는 우리 선수들에게 안정제로 작용했고 결국 기대이상의 경기력으로 이어질수 있게 하였다. 지난해 시즌때 박태하감독은 슈퍼리그진영에서 연변팀보다 약한 팀은 없다고 선을 그었었다. 말 그대로 연변팀은 슈퍼리그에서 “제3세계”이다. 우리 팀을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올해에 들어와 각 팀은 엄청난 투입으로 팀보강에 전력하였으나 연변팀은 “자원한계”때문에 여전히 가장 약세팀으로 자리매김하고있다. 연변팀의 올 시즌 목표는 슈퍼리그 잔류가 될수밖에 없다. 이같은 목표를 한계로 축구팀과 축구팬이 상식이 통하는 노력과 바람으로 혼연일체가 되였을 때 우리 팀이 기대이상의 경이로움으로 연변 나아가 조선족사회에 환회의 즐거움을 줄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가 관건이다. 남아있는 20라운드 경기에서 더 험악하고 힘든 상황이 계속 연변팀을 괴롭힐것임을 충분히 예견하면서 상식에 맞는 전략전술변화로 매력적인 경기과정 창출에만 전념하다보면 기대이상의 성적표가 따라오지 않겠는가? 이 과정에서 상식이 통하는 관전문화가 우리 언론의 리지적인 자세에 힘입어 업그레이드될 때 연변축구의 수준급 도약이 동반될것이라고 확신한다. 연변일보 2017-5-24
58    “르네상스” 기류의 연변 상륙 댓글:  조회:678  추천:0  2017-05-10
하나의 기류가 연변 땅에서 배회하고있다 …   서두를 이렇게 떼고보니 어쩐지 《공산당선언》머리글 구조와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심각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유령”이 아닌 “기류”, 연변의 일대 사회변혁도래를 예고하는 조짐이 서서히 증폭되는 느낌이다. 정부 주도로 성세 호대하게 일궈내는 도시중심 하드웨어 경제개발붐의 확산이 아니라 정부 지지에 힘입어 도시외곽, 시골에서 도시중심으로 조용히 공략해들어오는 민간인 발상의 소프트웨어 문화개발이여서 필자는 그 개발흐름의 생명력에 관심을 쏟지 않을수 없다.   이 기류에 필자가 나름대로 “르네상스” 라벨을 첨부하게 된것은 기류의 탑재물이 미술이라는 점, 그리고 이 미술탑재물이 연변사람들의 문화관념갱신과 사상해방을 이끄는 문화부흥 열정으로 이어지리라는 강한 믿음에서였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달 모조선족기업인과의 만남에서 비롯되였던 같다. 그날 모아산 동남쪽, 룡정시 동성용진 연동촌 의 “화가공사”령지에 들어서는 순간 필자는 연동촌 문화관청에 오입한 연길촌닭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꼴이 돼버렸다. 아직은 미완성 초보단계지만 분명 력동적인 움직임이 살짝 경사진 연동 구릉지대 7000여평 부지에서 팽배하고있었다.   화가클럽, 화가작업실, 미술품소장고, 미술관 등 건물들이 이미 사용에 교부됐거나 바야흐로 오픈을 앞두고있는 시점에 타 성의 화가들도 연동촌입주 담금질에 시동을 거는 눈치라고 한다. 룡정시정부의 지지에 힘입어 “연동예술촌”이 정식 가동된 후에도 계속되는 투자로 “조선족골동품가구박물관”, ”미술품소장박물관”,”조각공원”이 잇달아 기지개를 켜게 되리라는 기업인의 격정토로에서 필자는 이 어마어마한 예술성찬규모를 연동촌 단독으로는 수용불가능하지 않을가 하는 행복한 우려마저 슬그머니 들 정도였다. 4년 전 심수 “대분유화촌”견학시 받았던 그 문화적충격이 “연동예술촌”에서 또 한번 필자를 압박하는 순간이였다.   심수대분유화촌, 물고기 포획이 생계수단의 전부였던 300명 원주민의 작은 어촌마을이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유화 도매시장, 세계의 이목을 끄는 유화촌으로 변신하였다. 만여명의 화가와 화공을 포섭한 대분유화촌의 700여개 화랑과 작업실에서 뽑아져나오는 년간 600만폭의 유화작품이 800여개의 가게에서 판매돼나가 년간 1억원 이상의 수출액을 올린다. 그 물량은 전세계 유화작품의 60%가 이곳에서 거래된다는 이야기다.   자으마한 어촌을 세계이목이 집중된 유화촌으로 변신시킨 주역은 심수사람들이고 그 “깜짝쇼”의 비결은 글로벌사고와 본토화 실천의 환상적인 궁합에서 비롯되였음을 대분촌입구에 세워진 슬로건 현수막이 보여준다–“예술과 시장 이곳에서 접 목되고 재능과 재부 이곳에서 전환된다”   지리적, 환경적으로 대분촌은 세계유화생산류통기지로 변신 가능한 필연적인 고리나 우세가 없다. 내 고향 연변은 어떤가? 연변은 지리적으로 세계미술작품생산류통기지로는 적격인 동북아복지, 삼국접경지대에 위치해있다. 유화의 메카라 할수 있는 로씨야, 조선화의 발언지인 조선, 서방 각 미술류파의 회화영향 이 잘 섭취된 한국, 일본이 지척에 있다. 생태적으로 연변은 구쏘련의 영향으로 유화토대가 잘 갖춰진 지역이며 자체의 미술 가협회, 미술대학원, 미술관 같은 전문단체와 교육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져있다. 어느 면으로 봐도 연변이 심수대분촌보다 조 건이 우월하다고 할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정답은 심수사람들의 “글로벌사고와 본토화실천을 환상적으로 융합시 키는” 그같은 창의력과 도전정신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민족의 한 미술기업인이 멋진 발상과 대담한 시도로 심수사람들을 향해 도전장을 던지지 않았나하는 생각에 흥분을 금할수 없다. 이 도전이 성공과 직결되리라는 즐거운 예감의 유력한 근거를 필자는 앞에서 렬거한 우리지역의 지리적, 생태적,인문적 우세외에 우리 고장이 지금 본격적으로 펼쳐내고있는 천재일우의 연룡도신구 프로젝트에서 찾고있다. 연룡도신구의 성격이 공업단지가 아닌 문화관광구라는 좌표설정, 이 거물급 프로젝트의 개발범위가 남쪽으로 룡정시 동성용 진 동성촌을 포섭하고있으며 새로 착공되는 해란교가 연동촌 과는 코를 맞댄 신통한 위치에 있어 연동예술촌의 비상에 나래를 달아주는 격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연동예술촌의 매력은 연변대지에 배회하는 “르네상스”기류의 요상호응(遥相呼应)으로 엄청난 탄력을 입을수 있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연룡도신구개발의 북쪽 한계선에 들어가있으며 연동촌보다 썩전에 오픈한 도문시 장안진 룡가촌의 룡가미원이 미술소장전시관, 화가체험공간, 문화명인 조각공원 조성을 토대로 격상시키고있는 미술분위기, 그 지척에 있는 연길시 의란진 춘흥촌의 몽두미(梦都美)민속관광리조트가 조형예술의 격정으로 인문과 자연의 융합, 전통과 현대의 접목을 이뤄내여 국내외에서 으뜸가는 청소년수학연수려행의 문화적보금자리로 거듭나게 하려는 노력, 그밖에 연변 곳곳에서 꿈틀대는 미술문화부흥풍조와 이에 녹아들고있는 연변사람들의 삶의 자세는 연동예술촌이 내건 “세계는 연동에서”라는 슬로건의 현실화를 떠밀어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될것이다.   연변의 많은 화가들이 북경에서 미술활동을 벌리고있다. 스모 그와 황사로 고역을 치르는 이들에게 산좋고 물맑은 고향땅 연동예술촌이야말로 “귀향예술창업” 최적의 출구가 아닐가?  연동예술촌이 타성에 거주하고있는  연변화가들을 고향으로 결집시키고 국내외 명가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황홀한  창작기지의 정착으로 이어지게 할수 있는 플래폼이 된다면 연룡도문화관광 구의 실질적 도약은 어마어마한 탄력을 입을 것이 아니겠는가?   연동예술촌은 “엉뚱함”을 저지르고 있다. 이 엉뚱함이 “르네 상스”기류의 배회를 상륙에로 견인하는 긍정적 힘이 되여 연변 “르네상스”  참신한 시대와의 도킹을 완수할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변일보 2017-5-10
57    민족자부심 정착, 기업계가 나선다 댓글:  조회:648  추천:0  2017-04-27
일전에 어느 조선족기업인과 열 띤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필자가 재직에 있을 때 품었다가 무산된바 있던 시도가 만남의 화제였다. 수년 전 새중국 창건 60돐 기념 국가 중대한 력사제재미술창작 프로젝 트가 가동되여 아편전쟁이래 우리나라 100여년의 창상지변이 미술계에 의해 조형화되는 문화장거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자금이 투입된 대형프로 젝트였다.《중국문화보》지면을 통해 입선된 부분적 미술작품들을 목격 하는 순간 필자는 시대정신의 구가와 민족력사의 재현에서 미술창작이 발산하는 독특한 힘과 매력에 가슴뭉클하였었다. 여기서 령감을 얻어 조선 족 100여 년 이주력사의 형상화 가능성에 미련을 걸고 미술계 화백, 지인 들과 함께 연변중대력사제재 미술창작프로젝트를 공론화했던적이 있었다. 물론 여러가지 원인으로 시도가 무산됐지만 필자는 이 “꿈”을 접을수 없어 언론을 통해 들먹거렸었는데 상기의 기업인이 이 사실을 알고 필자와의 만남을 주문해오면서 이 시도를 현실화하기 위한 공감대 형성에 이르게 된것이다. 이 “꿈”이 현실화되는 경우 현재 정부의 계획추진단계에 있는 연변 미술관은 명실공히 조형예술에 의한 연변중대혁명력사재현의 산실로, 살아 숨쉬는 전통교육의 느낌공간으로 부상될수 있을것이다. 이 순간 눈물 젖은 두만강을 건너 허허 만주벌판에 개척의 첫 괭이를 박았던 연변조선족 이주력사의 시작으로부터 새중국창건에 이르는 파란만 장한 세월이 살아 숨쉬는 형상화폭들에 탑재되여 숭엄하게 펼쳐진다… “룡정 ‘3.13’반일시위의 도도한 흐름이 밀려온다. 일제의 ‘경신년 대토 벌’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조선족반일부대의 봉오동,청산리 대첩의 함성이 메아리친다. 동만, 남만, 북만의 조선족항일무장투쟁의 비장한 전투화면들, 일제의 패망과 동북근거지 창설, 토비숙청, 토지개혁, 참군참전, 전국해방 전쟁에서 조선족인민들의 피어린 업적이 조형예술의 매력으로 재생되여 있다.”(필자: 숨쉬는 연변의 느낌공간 만들기) 연변혁명렬사릉원 해독(解读)공간으로 떠오를 연변 중대혁명력사제재 미 술작품전시궁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실현불가능한 “꿈”일가? 물론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분명한것은 그날 필자가 만난 기업인이 표출한 우리민족력사관 정립에 대한 열렬한 소명감과 절박한 감당의식은 고립적이 아니라 최근 년간 증폭되고있는 민족사교육에 대한 기업인들의 보편적인 관심과  맥락을 함께 하면서  서서히 정착해가고있는 우리사회의 긍정적인 기류를 반영하고있다는 생각이다. 문화자각에 뿌리를 둔 민족 기업인들의 량심적 움직임은  력동적인 힘 그 자체이다. 필자가 감동하는 리유이다. 지난 3월, 조선족기업인 리더들이 주역이 되여 조선족청소년과 서민층을 겨냥한 중국조선족력사필독서 출판관련  문학계, 출판계, 기업계 리더들의 개별적만남이 있었다. 조선족력사교육이 글로벌시대에 뒤떨어져있는 상황 을 반성하면서 오랫동안 체계적인 민족사교과서나 필독서가 없어 우리의 주도적인 력사의식 구축에서 무지와 혼선이 빚어지는 국면에 제동을 걸고 광범한 조선족청소년층과 서민층을 위한 우리의 력사교육 필독서를 만들어 내자는 그 공감대가  우리민족 기업인들에 의해 기지개를 켠것이다. 지난해에는 조선족문학의 수준급 도약을 위한 사상 최고액수의 상금이 걸린 “단군문학상”이 조선족과 타민족 기업인들의 정성에 받들려 고고성을 울리면서 세상을 놀래웠었다. 아직 기획단계에 있는 연변의 중대한 력사제재 미술창작프로젝트나 조선족청소년층을 대상한 민족사필독서 출판프로젝트, 그밖에 이미 해볕을 본 조선족“단군문학상”프로젝트는 그 성격여하를 막론하고 모두 민족자 부심 정착에 그 뿌리를 두고있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민족의 빛나는 력사 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그 자부심으로 글로벌시대의 당당함을 지켜나가는 자세가 절박할 때이다. 자부심이 흔들리면 당당함이 무너진다. 그 민족 자부심 정착을 위해  나서고있는 민족기업인들의 량심행보가 멋지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타민족의 한 망나니가 조선말을 구사하는 조선족 젊은이들게  모욕적인 폭언을 내뱉는 동영상을 보고 기가 질렸던 적이 있다. 물론 극개별적인 “미꾸라지”의 망동이고 사건이 터진후 여러 민족 네티즌들의 준렬한 성토가 이어졌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자초지종은 그만두더라도 만약 조선족을 타매한 그 망나니의 머리속에 조선족의 자랑찬 력사에 대한 약간의 먹물이라도 들어있었다면 그같은 엄청난 무례함까지는 범하지 않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침묵을 지키며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 조선족젊은이들 역시 우리민족의 빛나는 력사의식에서 루적된 당당함을 간직하였다면 역전상황이  나타났을 수도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지을수 없다. 결국 무지는 가해자의 무례함을 낳았고 동시에 피해자들이 굴욕을 감수해야 했다. 정답은 하나-이번 일은 우리민족사교육의 창백함에서 유발된 비극이다. 우리에게는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라는 어디에 내놓아도 당당한 중국조선족의 빛나는 상징아이콘이 있지만 그 심오한 뜻이 조선족 구성원 특히 신세대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있으니 타민족은 더 말해 무엇하랴? 어찌보면 이번에 조선족기업인들의 후원으로 추진하게 될 조선족 청소 년을 대상한 중국조선족100년사 필독서출판 프로젝트와 연변 중대한 혁명력사제재미술창작 프로젝트는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 해독 편,  축소판이라 할수 있으며 민족자부심 정착을 위한 우리민족 기업계와 문학계, 미술계, 출판계의 전략적합동플레이의 멋진 시험이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성공을 미리 기대한다. 연변일보 2017-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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