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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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암행어사” 출두의 의미 댓글:  조회:207  추천:0  2017-08-31
중앙독찰조의 환경보호독찰 ‘촉수’가 길림성과 우리 주에 와닿았다. 언론에서는 이들을 ‘환경보호 암행어사’라고 친절히 부르고 있다. 신비감을 증폭시키는 의미 있는 별칭이 아닐 수 없다. 암행어사란 봉건시대 군명(君名)을 받들어 지방관의 치적과 백성의 질고를 비밀히 답사하는 특파원에서 유래된 말이다. “암행어사 출두!” 하면 산천초목도 떨고 흔천동지(掀天动地)한다는 가공할 위력을 과시해왔던 암행어사의 존재는 오늘에 와서도 정의의 사자 대명사로 통한다. 중앙환경보호독찰조가 ‘환경보호 암행어사’로 불리는 까닭이 있다. 이들이 진주한 각 지역에서 수많은 환경 ‘고질병’을 끄집어냈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강도 역시 전례없기 때문이다. 앞선 3라운드 독찰에서 수만명의 책임을 추궁한 데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앙이 생태환경보호를 두고 전국 각 성 시, 자치구에 독찰조를 보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우리 나라가 직면한 생태환경보호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가? 중앙독찰조는 환경 ‘고질병’척결을 이번 독찰의 핵심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중앙독찰이 지적하는 환경 ‘고질병’은 무엇을 두고 말하는 걸가? 지금까지 공개된 3라운드 독찰결과에 따르면 생태환경 파괴, 오염단속 부진, 환경보호 직무유기, 사업실적 허위조작 등등이 환경 ‘고질병’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고질병’의 직접적 피해자는 인민대중이다. 때문에 이번 중앙독찰의 중점을 대중의 신소사건처리에 두고 있다. 따라서 이런 ‘고질병’치유를 지방의 사업회보가 아닌 중앙 ‘암행어사’의 체찰(体察)로 직접 느끼면서 상황파악을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여서 대중들의 만족감과 신뢰도를 향상시키고 있다. 사실 이번 중앙환경 ‘암행어사’들의 행보는 지극히 투명하고 공개적이란 점이다. 언론에 의한 환경보호독찰제보신소사항 처리 결과에 대한 철저한 규명은 그야말로 전례없는 높은 수준으로서 인민대중 만족도를 중심에 놓는 중앙 ‘암행어사’의 명쾌한 ‘판결문’이 아닐수 없다. 지난 8월 11일에 길림성에 진주한 중앙독찰조는 9월 11일까지 한달간 머물게 된다. 8월 26일까지 중앙독찰조가 우리 주에 열다섯번째로 넘긴 제보수리사항 37건 전부가 첫 시간대에 관련 부문과 현(시)의 처리에 교부되였다고 한다. 연변은 환경보호의 ‘무풍지대’가 아니다. 지금까지 제보신소된 사항에는 역시 환경 ‘고질병’증세를 보이는 ‘병원체’가 꽤많이 검출되여있다. 이제 계속 이어질 제보신소사항에 의해 또 어떤 환경 ‘고질병’이 정체를 드러낼지 의문이다. 필자는 우리 주 ‘군중신소 이첩 및 독찰과 개선 병행사업추진 상황 일람표’를 괄목하면서 생활쓰레기적치문제, 수도배관 파렬문제, 사회구역 주변환경 오염문제, 하수배관 분리문제, 검은연기 배출보이라제거문제 등 가두나 현시 정부차원에서 풀어줄 수 있는 군중생활 일상문제도 꼭 중앙 ‘암행어사’들이 출두해야 치유될 수 있는 ‘고질병’인지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적지 않은 제보수리사항은 처리문책중 또는 처리될 ‘예정’ ‘계획’이라고 하니 아직도 진행형인 셈이다. 사실 우리 주변의 많은 환경생태문제는 군중이 신고하니 알아차리고 독찰조가 지적하였기에 문제 엄숙성을 느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넌센스한 표현이 아닐가? 특히 군중이 감히 신고하지 못하거나 백성들이 내막을 모르는 생태환경 파괴, 훼손 문제 같은 것은 구태여 군중제보가 들어올 때를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해결대안을 대는 것이 명지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중앙환경 ‘암행어사’들은 한 지역에 영원히 진을 치고 있을 수 없지만 백성은 영원한 거주자로 남아있으면서 지역환경보호의 영구한 발제, 질의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게 된다. 수년 전 중앙TV 뉴스프로에서 방송한 ‘검사단이 다녀갔다’라는 추적보도를 인상깊게 시청했던 기억이 있다. 중앙위생검사단이 온다고 하니 `××시공상행정관리국에서 며칠 전부터 시장문을 닫아걸고 대청소와 환경미화로 한바탕 난리를 겪더니 검사단이 돌아간 뒤 쓰레기와 악취가 다시 진동하며 모든 게 ‘원상복귀’된 우리 사회의 롱허작가(弄虚作假), 기상만하(欺上瞒下)의 ‘고질병’을 폭로한 보도였다. 언론의 감시역할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누구한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쾌적한 생태환경을 향유하면서 행복지수를 늘여간다는 자세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정부와 손잡고 우리 삶의 터전을 무릉도원으로 가꿔간다면 ‘암행어사’도 출두할 리유가 없지 않을 가? 연변일보 2017-8-30  
66    사랑으로 가는 길 댓글:  조회:136  추천:0  2017-08-16
시장경제사회에서 돈이 모든 일의 원동력인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돈이란 인간을 추접스럽게 만들수 있고 또 고상하게 만들수 있는 징표이기도 하다.   국가녀자배구스타 주정(朱婷)이 년수입 2천만원을 반 년 동안에 “탕진”해버린 “사건”이 에스엔에서 뜨거운 화제 로 떠오르고 있다.  2천만원, 말 그대로 천문학수자인 이 돈을 역시 배구스타답게 쾌속으로 때려치운 것이다.   2천만원의 출처는 이랬다. 부모님한테 60만원짜리 집 한채를 장만해 드린 뒤 나머지 1300여 만원을 주정은 농촌 고향마을의 아스팔트 포장과 양로원, 희망학교, 배구학교 신축에 전부 기부해버렸다고 한다. 아무런 미련없이 “사랑 으로 가는 길”에 깨끗히 “처분”해 버린 것이다.   양로원과 학교를 그녀의 이름으로 명명하는 게 어떠냐는 정부일군의 문의에 준 주정의 대답 또한 배구스타다운 명쾌함 그 자체였다 –   왜 제 이름이죠? 나라 이름이면 돼요.   금전지상주의와 개인리익 추구의 풍조가 고개를 쳐드는 시장경제조건하에서 몸값이 수억에 달하는 재벌과 비교해도 주정은 단연히 “대 부자”급 스타임이 틀림없다. 부자란 많이는 돈 보다 품덕에서 드러난다는 도리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 사례가 아닐가.   주정의 “쾌속기부”는 물론 어마어마한 액수의 금전을 전제로 하지만 금전액수보다 더 값진 스타의 찬란한 심성을 완벽하게 기부하였다고 생각해본다. 옳곧은 마음으로 만들어진 기부는 액수와 상관 없이 아름답기만 한 것이다.   중한수교 흐름을 타고 조선족사회에 서서히 불기 시작한 불우한 학생 돕기 기부문화바람은 페쇄된 환경에서 “자선”, “기부”를 “자산계급 박애”의 정신아편으로 멀리 했던 우리 모두의 사유를 세척하고 “나눔, 공유”라는 아름다운 공동체 생태의 정착을 선도하는 “인간사랑”으로 각광받고 있다.   필자는 일전에 어느 한 언론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10여년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불우한 조선족 대학생들을 돕기 위해 어느 지역 각계 조선족 애심인사로 결성된 조학후원회가 300여명 조선족 대학생들에게 도합 70여만원을 기부했는데 도움을 받았던 장학생들 가운데 현재 투자회사 사장으로, 변호사로, 대학교 강사로, 언론인으로 사회 여러분야에서 활약하는 이들이 많다고 하였다. 주목할만 한 것은 10여년간 도움 받았던 그젯날의 장학생들이 오늘날 후원자의 신분으로 탈 바꿈하면서 조선족 기부문화의 대를 잇는 사랑의 “릴레이" 가 됐다는 것이다.   10여년간 300여명 대학생에게 기증된 70여만원 조학금은 많지 않은 돈이다. 필자는 이 기사의 핵심포인트는 300여명 장학생이 이미 만들어 냈거나 이제 만들어 낼 “사 랑의 릴레이” 도미노현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도움 받았던 이들이 도움의 절박함을 아는 법이다. 이제 이 300여명이 조선족 기부문화의 전도사로 되여 우리 조선족사회의 “사랑 으로 가는 ” 아름다운 길을 포장해나간다고 할 때 그 가치는 금전액수로 계산할수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으로 가는 길”, 연변TV 사랑콘서트무대가 몰고 온 뜨거운 공감대에 힘입어 오늘날 조선족사회 기부문화는 다 양한 물살을 타고있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르게” 펼쳐지고 있는 “은밀한 사랑기부작전” 또한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얼마전 필자는 문화계 몇몇 지인들로부터 조선족청소년 문화진흥과 조선족문학연구 사업과 관련하여 고마운 분들의 정기적인 성금기부를 받고있는데 “절대 소문을 내지 말아 달라”는 철석같은 주문이 그 전제요구여서 고마움마저 표시 할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이라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필자도 모르는, “몽떼 크리스도 백작” 같은 신비의 지성인들이 깜쪽같이 펼치고있는 물밑 기부작전으로 탄력을 입고있 는 조선족청소년문화진흥사업과 조선족문학연구사업 실적 에서 “사랑으로 가는 길”이 외길 만이 아님을 실감하면서 어느 때인가 멋진 신사지성인들의 정체가 드러나리라 기대해 본다.   “사랑으로 가는 길”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 맑은 심성의 정착, “나눔, 공유”의 따뜻한 공감대 구축”으로 통하는 행복의 길이 되리라 바라마지 않는다. 연변일보 2017-8-16
65    물리적 해체와 정신적 융합 댓글:  조회:208  추천:0  2017-08-04
올해는 연변조선족자치주 65돐, 연변 나아가 중국조선족 가족 모두에게는 자치주의 “무병장수”를 자축하며 밝은 미래를 기원하는 뜻깊은 해이다. 그런데 류례없는 고온날씨 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장마전선 때문인지 아니면 수십만 조선족이 해외와 국내 여러지역으로의 이동에 따른 탈 연변 후유증 때문인지 명절분위기 초읽기에 들어가야 하는 연변의 표정이 너무 차분하다는 느낌이다.   글로벌시대 조선족가정마다 정도부동하게 겪고있는 새 “리산가족”현상은 오늘 자치주 창건 65돐을 맞는 연변 대가정 축소판이 아닌가 싶기도하다. 이 상황은 대학입시 판도에도 그 영향을 미치고있다. 조선족수험생이 10년전의 5470명에서 2014년 처음으로 2000명 선으로 추락하더니 올해는 1512명에 그쳤다고하니 이런 추세대로라면 1000명 선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가 아닐가? 5년 후 연변이 70돐을 맞게 될때 또 어떤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무척 우려스럽다. 예측하지 않은건 아니지만 그 진행속도가 너무 빨라 당혹스럽다. 받아드릴건 받아드리면서 현실을 직시 하는 랭정한 자세로 대안을 찾아야하는 것이 예슨다섯살 연변이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가 한다.   자치주의 “무병장수”는 당과 정부의 일관한 바램이고 연변을 포함한 중국조선족 모두의 절절한 념원일 것이다. 인생에서 예슨다섯살은 중요한 전성기로 된다. 연변은 지금까지 그런대로 별탈없이 건강모범생으로 멋진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강건함으로 그 어떤 바이러스에도 끄떡없는 매력적인 삶을 계속 이어갈수있는가는 전적으로 연변자체에 달렸다.   글로벌시대 자치주의 “무병장수”, 연변의 정치적혜안과 지혜는 새로운 검증대에 올랐다. “로무수출”과 “농촌공동화 (空心化)” 이 대립통일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포획하는 것은 자치주당정 앞에 놓인 난해한 “고등수학방정식”으로서 글로벌 연변의 건강한 생태와 맞물리는 첫번째 도전이 아 닐수 없다. 그런데 연변의 대응책은 만족스럽다. 그 어떤 “참조물”도 없는 상황에서 자치주당정이 선후하여 출범시킨 “귀향창업 만인계획”프로젝트와 “우수대졸생영입 천인계획” 프로젝트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겨냥한 명지한 답안이 아닌가 생각한다.   “귀향창업 만인계획”프로젝트에 의해 실질적이고 능률적 인 대책마련과 시스템의 력동적인 운행으로 이미 1만3천여 명의 귀향을 이끄는 국면이 열리면서 귀향창업이 급물살을 타는 조짐을 보이고있다.   “우수대졸생 천인계획”프로젝트는 5년사이 천명 우수대 졸생을 영입한다는 목표하에 이미 “2017년’천인계획’제1기 강습반” 졸업식까지 마무리하면서 21세기 지식경제시대에 걸맞는 연변인적자원구축의 야심찬 전략이 실천단계를 소화 하고있다.   자치주당정이 마련한 이 두 프로젝트가 로무수출에 의한 연변농촌”공동화”병환을 치유하고 새농촌건설 성장동력의 긍정적에너지로 자리매김하게 됨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필자는 민족대이동에 따른 조선족전통거주구도 의 물리적해체라는 전대미문의 균렬양상에 좀 더 정신적 으로 대응하는 비대칭전략이 병행돼야 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물리적인 의미보다 정신적인 의미가 내포되여있다. 물리적으로 아무리 뭉쳐져 있어도 정신적으로 사분오렬돼 있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덩어리 에 불과할것이나 물리적으로는 모래알처럼 흩어져있어도 정신적으로는 글로벌 시공간을 넘어서는 공동체의식으로 뭉쳐져 있으면서 민족정체성과 애국애족애향의식의 강한 뉴대감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민족대이동에 따른 그 어떤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수 있을것이다.   조선족전통거주구도의 물리적해체라는 변화흐름속에서 자 치주의 “무병장수”를 현실화할수 있는 대안은 정신적융합 으로 특징지어지는 조선족공동체 삶의 근간을 더 굳건히 다져나가는데 있다고본다. 연변성채의 본질적의미는 “조선 족집거지구”라는 물리적수량개념을 떠나 “조선족문화메카” 라는 정신적구심점으로 정리된다고 생각한다. 연변성채만 반듯하게 지켜진다면 조선족사회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리치이기도 하다.   연변성채를 지탱하는 힘은 조선언어문자를 토대로 하는 조선족문화의 건재에서 온다. 오늘 이 시각에도 이 신성함 을 지켜내기 위한 조선족 언어문화권의 필사적인 노력이 아름다운 진풍경으로 안겨온다 …   오랫동안 당보의 얼굴에 퍼져있던 흉물스런 “소버짐”을 일거에 차단하고저 수백만원의 광고수입원과 결별한 문화 용기, 그 대가로 만들어진 지성이 넘치는 매력적인 패턴, 감칠맛나는 풍성한 내용콘텐츠가 본보 독자들과 따뜻하게 마주하고있다.   67년만에 연변조선족소학교 학생들을 위한 무료배포의 “꿈”을 현실화시킨 장거에 힘입어 산재지역까지 포용한다는 대담한 씨나리오를 추진하고있는 중국조선족소년보에 고맙 고 그 뒤심이 돼주고있는 자치주당정에 고맙다.   힘든 여건에서 시청자 눈높이에 맞춘 방송프로그램의 정기개편과 갱신, 중앙방송과의 긴밀한 동조로 이루어지고 있는 방송네트워크 활성화를 선도하고있는 연변방송의 자 세가 돋보인다.   국가와 성의 정책적지지를 애써 도모하며 조선문 교과서, 도서와 잡지출판물의 질적인 도약에 엄청난 자금을 투입 하면서 조선족독자층과 끈끈한 련대성을 이어가고있는 연변 출판동네의 노력에 눈물겹다.   작가와 미술가들이 기업계의 힘을 입어 중국조선족백년 사를 작품화하는 중대한 “사건”을 벌리고있다는 굉장한 메시지가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10년만에 바뀌여진 중국조선언어문자 새규범보급을 위한 연변대학조선말언어학자들의 강습로고가 수강생들과 각계 인사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독서문화와 청소년문화선도를 위한 독서협회, 청소년진흥 회의 멋진 활약과 더불어 조선언어문화를 고양시키기 위한 조선언어문화진흥회가 출범을 앞두고있다한다.   조선족언어문화권의 이 모든 활약상은 한마디로 자치주 “무병장수”를 위한 조선족사회의 정신적융합의 초석으로 다져지고있다고 필자는 생각하고있다.   물리적해체에 대처하기 위한 자치주당정의 “만인계획” “천인계획” 두 프로젝트와 정신적융합에 뜻을 둔 조선족 언어문화권의 지속적인 노력에 의해 글로벌 연변성채가 반듯하게 지켜질 때 중국조선족은 이 땅에서 “샘이 깊은 물”,”뿌리깊은 나무”로 영원하지 않겠는가! 연변일보 2017-8-2
64    ‘선택하다’와 ‘선택당하다’의 차이 댓글:  조회:167  추천:0  2017-07-07
인간은 미성년 딱지를 떼는 순간부터 선택의 갈림길에 로출되 게 된다. 그 어떤 리허설도 없이 치러지는 “선택 신고식”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자신일수 밖에 없으며 그 결과는 “선택하다”와 “선택당하다”로 갈라진다고 생각한다.   수석으로 미국의 어느 명문고중을 졸업하면서 미국국민한테만 차례지는 “대통령상”후보자로 지명되여 미국국적을 가질수 있는 “영예”의 기회를 두고 “그 어떤 영예도 조국보다 우선일수는 없다”면서 “대통령상”을 거절한 재미화교 녀고중생 왕연의 “선 택”은 지금까지 미담으로 전해지고있다. 미국의 “선택”을 따르지 않고 조국을 “선택”한 수년전에 있었던 이 사례의 정치성을 떠나 자신의 인생선택권을 멋지게 행사한 고중생의 용기에 필자는 많이 감동했었다.   일전에 어느 신문지상에서 본 보도사진이다 … 두 손으로 수험표를 정중하게 받쳐든 허름한 작업복차림의 로인이 구부정한 자세로 손자벌 되는 대학입시 수험생들과 나란히 수험장으로 들어간다 …   희한한 이 사진의 내용은 이랬다. 올해로 71살 되는 이 로인 은 우리 나라 대학입시 년령제한이 풀린 2002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시험에 응시하고 있는데 올해는 그가 17번째로 시험에 도전하는 해라고 한다. 정부에서 나오는 최저생계비 300원과 넝마를 주어 팔아모은 돈으로 매달을 살아가는 이 로인의 매일 오후일과는 무조건 대학입시공부라고한다.   그런데 필자에게 깊은 충격을 준것은 로인이 2002년 대학 입시 때 전문대학에 합격했지만 자신이 바라는 전업이 아니여서 진학을 포기하고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대학학과만 겨냥한 “무모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였다. 말하자면 대학에 “선택당하였지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보이는 학과진입을 위해 그 대학의 진학을 포기하는 “과감한 선택”을 한것이다. 오직 자신이 바라는 학과진입을 위해 17년을 변함없이 도전장을 던져 온 로인의 선택이 옳은 지를 떠나 필자는 “내 선택은 내가 한다” 는 그 강한 집념에 머리가 숙어졌다.   재미화교 고중생의 선택이나 17년째 입시도전에 나선 71세 로인의 선택은 부동한 성격의 의미를 띄지만 그 선택의 뚜렷한 목표성은 동일하지 않을가?   “선택하다”와 “선택당하다”의 차이는 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 다. 내 의지에 따른 준비된 자세에 올인한 스스로의 “선택”은 뚜렷한 목표성에 토대한 폭발적인 출발과 탄력을 잃지 않는 충실한 내용의 “나”를 각색할수 있지만 자신의 뜻과는 전혀 다 른 남의 “선택”으로 어정쩡하게 짜여진 각본은 아무리 화려해도 그 행보는 후회로 이어질 소지가 충분하다.   대학입시제도 회복 40년을 맞는 오늘날 입시생들이 마주한 선택공간은 더없이 넓지만 대신 자신에 대한 틀린 리해, 전무한 목표의식에 따른 준비없는 대응으로 자칫하면 스스로의 선택 주도권의 포기상황으로 치달을수 있다는 것이 치렬한 경쟁시대가 주는 경종이다. 여기에서 관건포인트는 “나”자신의 깨여있는 선택주도권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선택은 누가 대신할수 없다.   미국의 어느 명문대학교가 본기 졸업생들을 대상하여 졸업한 후 어떤 목표가 서 있는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리였는데 3%에 해당하는 학생만이 “목표가 있다”고 대답했다. 계속되는 추적조 사결과 학교에서 명확한 “목표가 있다”고 대답한 3%의 학생 들은 20년 후 모두 성취한 인물로 되여있었다고 한다. 이는 결코 미국대학만의 사례가 아니다.   우리 나라 어느 명문대학교가 진행한 해당조사에서 나타난데 따르면 60%에 이르는 대학생들이 대학교와 전업을 선택할 때 무조건 부모와 선생님의 뜻에 복종하여 자신의 생각을 접고 대학교와 전업학과를 “선택당하였다”고 고백하였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대학교와 전업학과를 다시 선택하고 싶다고 밝힌 대 학생이 50% 이상으로 나타났다.   학교선택은 미래선택과 맥락을 같이 하고있다. 알맞는 선택이 가장 좋으며 그 선택은 단연히 대학생 스스로가 풀어야 할 몫 이다. 17년간 자신이 선호하는 학과선택을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는 71세 로인응시생의 집념이 돋보이는 리유다.   올해 우리 연변에서도 8314명의 수험생들이 대학입시에 도전하였으며 때를 같이 하여 연변대학은 3941명의 본과생을 배출하였다. 대학입시수험생들한테는 이제 “내가 좋아하는 전업 을 선택하고 내가 선택한 전업을 사랑하여” 자신의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일만 남았고 연변대학과 국내 연변적 대학졸업생들한테는 자기 기호에 가장 알맞는 일자리 선택으로 자기 인생가치증명의 그라프를 진지하게 짜는 숙제가 기다리고있다.   글로벌시대 연변수험생이나 졸업생들의 선택폭은 넓다 하여도 가장 “나”한테 가깝고 친숙한 희망의 향토로는 고향 연변이 적격이 아닐가 생각한다. 오늘의 연변은 지난날 페쇄된 변두리 지역이 아님은 분명하다. 세계인이 주목하는 가운데 장길도 선도구개발개방의 새로운 플랫폼, 동북아문화관광의 새로운 지표, 연룡도경제일체화발전의 새로운 담체, 길림성록색전환발전의 새 로운 고지, 우리나라 실크로드 북향개방의 새로운 거점으로 특징지어진 연변의 매력적인 타이틀을 현실로 전환시키기 위한 위대한 변혁의 프로젝트는 연변적 유능한 인재들의 동참을 부르고있다.   고향 연변의 무한한 발전과 자신의 인생가치증명으로 접목된 대학졸업생들의 후회 없는 멋진 선택! 많이 기대된다. 연변일보 2017-7-5
63    불후의 우리 민족 교향곡이 기다려 진다 댓글:  조회:243  추천:0  2017-06-22
저명한 음악곡은 자기만의 범상치 않은 탄생 사연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그 탄생 사연이 음악곡의 주제와 맥락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은것 같다. 1867년, 오스트리아가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전하자 어떻게 하면 비엔나시민들을 비애와 절망속에서 구해내고 비운이 감도는 도시에 활력을 부어넣을것인가를 두고 고민 하던 요한 슈트라우스는 쉬임없이 줄기차게 흐르는 아름 다운 도나우강에서 그 주제의 답을 찾는다 – 생성과 발전을 멈출줄 모르는 국민, 아름답고 밝은 미래! 그 발견으로 쏟 아낸 격정이 오스트리아의 “두번째 국가”로 칭송받는 절세 의 원무곡 “푸르른 도나하강”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였다. 1956년 전국음악주(周)에서 수도무대를 들썽하게했고 그 이듬해 모스크바에서 있은 제6차 세계청년련환절 예술콩클 에서 은질상까지 수상한 대합창교향곡 “장백의 노래”, 필자 는 오랬동안 이 대합창교향곡이 김철 작사, 정진옥 작곡, 박 우 지휘로 유명하다는 것만 알았지 음악곡 탄생 전후 사연 에 대해서는 전무했었는데 일전에 자치주 65주년 기념문집 원고감수차 “장백의 노래” 탄생경위에 대해 알게되였다. 그 과정은 이랬다. 어느날 초대 주덕해주장은 몇몇 시인, 예술인을 사무실로 불러 항일투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연변이 항일투쟁을 반 영한 대형무대작품을 내놓지 못하다니 말이 되느냐면서 항 일투쟁을 구가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라는 지시를 내린다. 김철, 정진옥 등 시인, 예술인들의 창작행보가 시작된다. 그 러던 어느 하루 창작팀은 장백산어귀에서 바위같은 먹장 구름이 몰려오고 천둥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억수로 쏟아 져내리는 악천후에 로출된다. 이 상황에 한동안 넛을 잃었 던 정진옥, 김철은 누가 먼저라 할것 없이 동시에 짚차에 서 뛰여내려 쏟아지는 장대비속에서 “올리뛰고 내리뛰면서”  “곡상이 떠올랐다” “시상이 떠올랐다”고 웨치며 환호한다. 결국 장백산어귀에서 조우한 “바위같은 먹장구름”, “천둥번 개”, “소나기”가 “장백의 노래” 제1악장, 제2악장의 탄생에 령감을 던져주었다고 김철시인은 말한다. 줄기차게 흐르는 도나우강과 얽혀진 원무곡 “푸르른 도 나우강”, 장백산의 악천후와 얽혀진 대합창교향곡 “장백의 노래”, 물론 그 시대적배경은 여하하던 모두 대자연의 힌트 로 완성된 음악곡이다. 대합창교향곡 “장백의 노래”는 자치주창립초창기 연변 의 름름한 기상을 국내외에 널리 과시한 위대한 예술사절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70여년 세월이 흘렀다. 오늘날 개혁개방의 흐름속에서 조선족사회는 제3차 민족대이동의 급물살을 타게 되였다. 거의 백만에 육박하는 조선족이 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 여러 나라와 국내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나가 글로벌화를 몸으로 체험하는 변화의 최전방에서 뛰고있다. 중국조선족 메카로서 연변의 구심점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절박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국내외 여러 나라, 지역에 흩어져있더라 도 중국조선족 일원임을 항시 가다듬도록 마음의 등불을 밝혀주는 문화에너지의 력동적인 힘, 그 위대한 힘이  우리 민족의 토템같은 존재인 해란강에 고스란히 상재되여 번뜩 이고 있지않나 생각해본다. 해란강을 대할 때마다 필자는 가난의 때를 벗지 못하고 고갈의 위험을 안은 초췌한 모습이지만 그 어떤 힘든 내색도 내지 않고 아무런 바람도 미련도 없이 오직 자식 위한 모성애로 모든것을 묵묵히 감내해나가는 어머니의 거룩함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열악한 생태에서도 억세고 슬기롭게 끊임없는 흐름을 지속해가는 우리 민족의 자화상 을 보는것 같다. 따라서 화룡증봉산 동북쪽협곡의 맑고 푸른 해란강 발원지에서 “샘이 깊은 물”, “뿌리 깊은 나무” 로 특징지어진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 의미에 도취돼 보기도 한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도나하강을 소재로 오스트리아인들이 세계의 어디에서 만나던 그들만의 무형의 신분증으로 될수 있는 가사없는 불후의 원무곡 “푸르른 도나하강”을 탄생 시켰다. 하다면 어머니강 해란강을 소재로 글로벌시대 조선족들이 세계의 어디에서 만나던 중국조선족 무형의 신분증으로  떳떳히 결집될수 있는 해란강교향곡의 탄생에 기대를 걸어보는것은 어떨가? 물리적으로 흩어졌어도 정신 적으로 융합되여있는 문화민족의 구축! 이 간거하고 위대한 소명을 멋지게 감당할수 있는 우리 민족 불후의 교향곡을 떠올려본다. 음악은 인간이 현재를 인식하는 유일한 령역이라고 누군가 말하였다. 그 누구의 정치적설교나 강압적동원이 아니라 심금을 울려주는 무한한 감동의 음악선률로 파생 되는 력동적인 힘! 우리 민족 음악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라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과 공존공생하는 해란강을 소재로 한 불후의 교향곡이 이 감동과 힘을 대대손손 간직할수 있는  캐리어 로 영원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연변일보 2017-6-21
62    사유가 바뀌면 새 길이 열린다 댓글:  조회:211  추천:0  2017-06-11
“실크로드 북향개방의 새 거점” ! 참 거창한 타이틀이다. 그것도 타성이 아닌 내 고향 연변을 말하는 호칭이여서 어딘가 당혹스럽지만 흐믓한 기분이다. “200년 봉금지대”, 가장 페쇄되였던 연변이 우리 나라가 주도하는 21세기 실크로드 북향개방의 새 거점으로 탈바꿈 한다?! 그런데 허황한 기대사항이 아닌 흥겨운 기성사실로 떠오르고있다. 10여년 안에 동북아를 마주한 국제화구역 중심도시의 출범으로 동북지구 “실크로드 전략”의 새 거점으로 거듭난다는 야심찬 씨나리오가 가동된것이다. 홍콩의 한 언론은 연룡도신구역이 담고있는 가치의 가장 뚜렷한 독점성으로 매력적인 생태조건과 독특한 인문자원의 고도의 융합을 꼽으면서 연룡도신구역은 그 누구도 넘볼수 없는 폭발적인 인기를 몰고올것이라고 분석하였다. “200년 봉금지대”의 화려한 변신, 생각만 해도 가슴 뭉 클하다. 여기에서 핵심키워드가 “록색전환”이라고 할 때 일이야 어떻게 발단됐던지 일단은 강희(康熙)령감님께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340년 전 그의 성지 한쪽이 이 지역을 전세계가 주목하는 청산록수의 매력적인 생태보존으로 이 어지게 하였고 우리는 또 이를 바탕으로 록색전환의 푸른 꿈을 펼칠수 있는 현실을 만끽할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거기다 우연의 일치랄가? “200년 봉금지대”가 마치도 연룡도신구역개발을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에야  1억년을 품고 있던 백악기시대 공룡화석무덤군의 정체를 넌지시 드러내 보이면서 연변도약의 무한한 가능성에 축복선물을 하사하 고있지 않는가? 그리고 또 있다. 공룡화석무덤 발굴현장과 거의 나란히 위치해있는 2, 3천년 전 청동기시대 력사문물유적지라는 “옛날옛적”의 푸짐한 선물세트까지 추가되여 연변사람들이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된것이다. 연변은 분명 축복을 받고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축복은 전대미문의 엄청난 기회로 될수도 있다. 필자는 자치주정부가 내세운 연룡도신구역개발 록색전환좌표에서 관건포인트는 “전환”이라고 생각해본다. 한 지역사회 발전모식이나 루트는 고정불변이 아니다. 그 지역이 담고있는 독점성가치 에 대한 지역인들의 옳바른 인식이 살아나면서 사유의 중대한 변화가 발전모식과 루트의 엄청난 전환으로 이어지게 될 때 지역발전은 어마어마한 탄력을 입게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연변은 페쇄적인 공간의 변두리화에 길들여진 사유관행에서 해탈하고저 엄청난 수험료를 지불하면서 연변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정답에 접근하여왔다고 생각한다. “변강근해주”라는 좌표로 “개변통해(开边通海)”의 거시적전략을 “차항출해(借港出海)”의 미시적전술로 풀어나가 는  융통성, “장길도선도구 교두보”라는 “인식표”로 “연룡도 경제일체화”사유를 이끌어내고 륙해공 “통로”네트워크화에 다가서는 추진력, “연룡도신구역”이라는 새로운 발상으로 국가 “신 실크로드” 북향개방전략에 부응하기 위한 새 거점 으로 정착하려는 원견성… 이같은 력사적행보에는 우리자신을 정확히 리해하고 모든 기회를 소중히 다루어 우리의 발전진로에 긍정적에너지를 부여하려는 탐구와 노력이 깃들어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대체로 우리 연변을 그 어떤 통로, 플랫폼, 교두보, 활주로에만 국한시키면서 우리의 이같은 변두리 의식의 산물인 “득천독후(得天独厚)”전략적지위에 기꺼워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우매는 유전하지만 현명은 획득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남들의 발전을 위한 징검다리, 버팀목으로만 돼주는 데 만족하느냐 아니면 남들이 우리 발전의 에너지공급원이 될수 있게 유인하느냐의 구별은 우리 자신의 슬기와 현명에 있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자치주 정부의 연룡도신구역개발 “록색전환”카드는 우선 우리자신 고루의 사유관행에 던진 도전장으로서 연변에 대한 과학적인 리해로 현명한 결과도출을 시도한 바람직한 선택이 되리라 생각한다. “록색전환”카드가 제시한 “처방전”은 “자원을 팔던”데로 부터 “볼거리를 팔고” “풍경을 파는” 명지한 “판로”전략의 정착이고 그 시행방식은 하늘길, 땅길, 바다길이 다 뚫린 사통발달한 교통수단으로 세상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연룡도신구역프로젝트가 발산하는 매력볼거리로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것이다. 한 지역사회가 갖고있는 여러가지 우세는 발전의 조건일 뿐이고 결코 발전의 근거는 못된다. 훌륭한 식재는 수준급 주방장의 아이디어에 의해 멋진 료리로 완성된다. 현란한 타이틀과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연우세는 연변 “인식표”에 불과하다. “인식표”를 매력의 현실로 탈바꿈시키는 관건은 우리의 멋진 사유에 의한 실천에 있다. 장길도선도구 개발개방의 새로운 플랫폼, 동북아문화관광의 새로운 지표, 연룡도경제일체화발전의 새로운 담체, 길림성록색전환발전의 새로운 고지, 우리 나라 실크로드 북향 개방의 새로운 거점 …, 연룡도신구역에 붙혀진 이 현란한 타이틀들의 현실적 “새로움”은 우리의 “새로운” 사유의 전환에서만이 가능하지 않을가 생각해본다. 우리의 사유전환에 의한 연변발전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연변일보 2017-6-7
61    상식이 통하는 관전문화론 댓글:  조회:355  추천:1  2017-05-25
상식을 벗어난 기대는 허탈, 실망 심지어 폭언으로 이어질수 있다. 반대로 상식에 맞는 바람은 경이로움과 환회를 만끽할수 있는 즐거움을 선물받을수 있다. 연변부덕팀이 북경국안, 산동로능 두 팀과의 홈장경기를 통해 우리에게 준 “상식론” 깨우침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5월 13일, 북경국안팀과의 홈장경기를 앞두고 연변축구팬 동네에서는 상식을 벗어난 기대의 분위기가 팽배하고있었다. 우선 지난해 우리 팀의 9위 성적순위로 머리가 뜨거워져 많은 축구팬들이 초심을 잊고 올해 리그에 비상식적인 성적기대치를 걸게 된것이 문제였다. 결과 8라운드까지의 경기성적이 1승 3무 4패로 나타나자 이 성적표가 연변팀에게 가당치 않다는 비상식적인 억울함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이같은 심기에서 파생돼 나온 비상식적인 기대치가 5월 13일 북경국안팀이 홈장의 반전제물로 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이변도 있을수 없다는 황당함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자기망상”에 도취돼있는 틀린 여론을 부채질한것이 일부 언론이였다. 연변과 북경 두 팀의 교전력사와 경기결과에 대한 과학적인 “판독”으로 연변팀의 실력이 한수 아래임을 정확히 진단해내고도 지난해 연변이 홈장에서 북경을 눌렀었다는 단 한가지 리유만으로 올해도 북경국안은 연변부덕의 제물로 될것이라 공언한것이다. 상당히 위험한 “권위적” 호도가 아닐수 없었다. 결과 “꼭 이겨야 한다”는 축구팬들의 절박한 소망을 리성적으로 리드할 대신 “이기지 못할 리유가 없다”는 당위성으로 점철시키고 축구팬들에게 틀린 메시지를 심어주어 홈장경기에 비상식적인 기대치를 한껏 높이는 상황으로 치닫게 하였다. 이같은 비상식적인 여론분위기는 연변팀이 홈장경기를 부담스럽게 치를수밖에 없게 하였고 결국 1:2의 아쉬움이 연출되자 비상식적 기대치로 잔뜩 부풀었던 일부 축구팬과 관객들속에서 야유와 폄하, 폭언과 비난이 쏟아져나오게 된것이다. 언론, 특히 주류언론의 책임을 통감하게 하는 따가운 대목이 아닐수 없다. 5월 15일에 있은 본사편집부의 기획대담은 “지역과 민족사회 화합의 정석으로서 연변축구”에 긍정적에너지를 실어주고저 응분한 소임을 다하려는 정통언론지의 책임적 자세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 모든 언론이 상식이 통하는 관전문화공감대구축에 힘을 합치자는 리더언론의 시도가 우리 사회 여론에 먹혀들어갔으리라고 느낀다. 한 지역사회 축구팬들의 성숙된 자세가 많이는 자기 축구팀이 이겼을 때보다 졌을 때 잘 드러난다. 박태하감독이  지난해 매껨 경기후 기자회견 때마다 곱씹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항상 연변팀을 사랑해주는 축구팬들의 변함없는 성원이 팀의 원동력이 되고있습니다.” 박태하 이 말의 핵심포인트는 “변함없는 성원”이라고 생각한다. 팀이 어떤 상황에 처했어도 “변함없는” 사랑과 성원, 우리 축구팬들의 관전자세가 연변팀에게 기적을 창출해내는 원동력이 될수도 있고 “깊은 슬럼프”에서 헤여져나오지 못하게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수도 있음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 아닐가? 연변팀의 사령탑을 잡고 지금까지 헌신해오면서 과묵한 성격으로 말을 자제해온 박태하감독이 5월 20일 대 산동로능팀전 경기후 이례적으로 쏟아낸 “연변팀을 사랑하는 팬 여러분들께 드리고싶은 말”을 음미하면서 필자는 박태하감독의 절절한 마음의 호소를 읽을수 있었다. “비록 팀은 순위 밑바닥에 있지만 …현재의 아픔은 나중에 우리 팀에 거름이 될것이고 자양분이 될것이다 … 팬들도 함께 팀을 생각하고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변축구팀 “제12인자” 동네에 정중히 보낸 의미심장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이 메시지에는 연변축구팬들이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자세로 오늘의 연변축구팀이 갖고있는 자원한계를 리해하고 이에 걸맞는 기대를 걸었을 때 축구팀은 모든 정신적부담에서 해탈된 거뿐한 컨디션으로 기대이상의 경기력을 보일것임을 믿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이 탑재돼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랬다. 5월 20일, 산동로능팀과의 홈장경기는 지금까지 치른 경기에서 제일 멋진 경기였다고 본다. 1:1이라는 경기결과를 떠나 강팀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경기를 주도해나가며 연변팀의 특색인 정신력을 남김없이 과시했다는 점에서 축구팬동네는 “기대이상”이란 표현으로 고향축구팀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같은 고무적인 상황이 연출될수 있은것은 우리 언론들의 랭정한 자세에 힘입은 옳바른 여론의 정착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대 북경국안팀전과 대조적으로 상식에 맞는 여론안내로 만들어진 차분한 경기분위기는 우리 선수들에게 안정제로 작용했고 결국 기대이상의 경기력으로 이어질수 있게 하였다. 지난해 시즌때 박태하감독은 슈퍼리그진영에서 연변팀보다 약한 팀은 없다고 선을 그었었다. 말 그대로 연변팀은 슈퍼리그에서 “제3세계”이다. 우리 팀을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올해에 들어와 각 팀은 엄청난 투입으로 팀보강에 전력하였으나 연변팀은 “자원한계”때문에 여전히 가장 약세팀으로 자리매김하고있다. 연변팀의 올 시즌 목표는 슈퍼리그 잔류가 될수밖에 없다. 이같은 목표를 한계로 축구팀과 축구팬이 상식이 통하는 노력과 바람으로 혼연일체가 되였을 때 우리 팀이 기대이상의 경이로움으로 연변 나아가 조선족사회에 환회의 즐거움을 줄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가 관건이다. 남아있는 20라운드 경기에서 더 험악하고 힘든 상황이 계속 연변팀을 괴롭힐것임을 충분히 예견하면서 상식에 맞는 전략전술변화로 매력적인 경기과정 창출에만 전념하다보면 기대이상의 성적표가 따라오지 않겠는가? 이 과정에서 상식이 통하는 관전문화가 우리 언론의 리지적인 자세에 힘입어 업그레이드될 때 연변축구의 수준급 도약이 동반될것이라고 확신한다. 연변일보 2017-5-24
60    “르네상스” 기류의 연변 상륙 댓글:  조회:320  추천:0  2017-05-10
하나의 기류가 연변 땅에서 배회하고있다 …   서두를 이렇게 떼고보니 어쩐지 《공산당선언》머리글 구조와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심각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유령”이 아닌 “기류”, 연변의 일대 사회변혁도래를 예고하는 조짐이 서서히 증폭되는 느낌이다. 정부 주도로 성세 호대하게 일궈내는 도시중심 하드웨어 경제개발붐의 확산이 아니라 정부 지지에 힘입어 도시외곽, 시골에서 도시중심으로 조용히 공략해들어오는 민간인 발상의 소프트웨어 문화개발이여서 필자는 그 개발흐름의 생명력에 관심을 쏟지 않을수 없다.   이 기류에 필자가 나름대로 “르네상스” 라벨을 첨부하게 된것은 기류의 탑재물이 미술이라는 점, 그리고 이 미술탑재물이 연변사람들의 문화관념갱신과 사상해방을 이끄는 문화부흥 열정으로 이어지리라는 강한 믿음에서였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달 모조선족기업인과의 만남에서 비롯되였던 같다. 그날 모아산 동남쪽, 룡정시 동성용진 연동촌 의 “화가공사”령지에 들어서는 순간 필자는 연동촌 문화관청에 오입한 연길촌닭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꼴이 돼버렸다. 아직은 미완성 초보단계지만 분명 력동적인 움직임이 살짝 경사진 연동 구릉지대 7000여평 부지에서 팽배하고있었다.   화가클럽, 화가작업실, 미술품소장고, 미술관 등 건물들이 이미 사용에 교부됐거나 바야흐로 오픈을 앞두고있는 시점에 타 성의 화가들도 연동촌입주 담금질에 시동을 거는 눈치라고 한다. 룡정시정부의 지지에 힘입어 “연동예술촌”이 정식 가동된 후에도 계속되는 투자로 “조선족골동품가구박물관”, ”미술품소장박물관”,”조각공원”이 잇달아 기지개를 켜게 되리라는 기업인의 격정토로에서 필자는 이 어마어마한 예술성찬규모를 연동촌 단독으로는 수용불가능하지 않을가 하는 행복한 우려마저 슬그머니 들 정도였다. 4년 전 심수 “대분유화촌”견학시 받았던 그 문화적충격이 “연동예술촌”에서 또 한번 필자를 압박하는 순간이였다.   심수대분유화촌, 물고기 포획이 생계수단의 전부였던 300명 원주민의 작은 어촌마을이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유화 도매시장, 세계의 이목을 끄는 유화촌으로 변신하였다. 만여명의 화가와 화공을 포섭한 대분유화촌의 700여개 화랑과 작업실에서 뽑아져나오는 년간 600만폭의 유화작품이 800여개의 가게에서 판매돼나가 년간 1억원 이상의 수출액을 올린다. 그 물량은 전세계 유화작품의 60%가 이곳에서 거래된다는 이야기다.   자으마한 어촌을 세계이목이 집중된 유화촌으로 변신시킨 주역은 심수사람들이고 그 “깜짝쇼”의 비결은 글로벌사고와 본토화 실천의 환상적인 궁합에서 비롯되였음을 대분촌입구에 세워진 슬로건 현수막이 보여준다–“예술과 시장 이곳에서 접 목되고 재능과 재부 이곳에서 전환된다”   지리적, 환경적으로 대분촌은 세계유화생산류통기지로 변신 가능한 필연적인 고리나 우세가 없다. 내 고향 연변은 어떤가? 연변은 지리적으로 세계미술작품생산류통기지로는 적격인 동북아복지, 삼국접경지대에 위치해있다. 유화의 메카라 할수 있는 로씨야, 조선화의 발언지인 조선, 서방 각 미술류파의 회화영향 이 잘 섭취된 한국, 일본이 지척에 있다. 생태적으로 연변은 구쏘련의 영향으로 유화토대가 잘 갖춰진 지역이며 자체의 미술 가협회, 미술대학원, 미술관 같은 전문단체와 교육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져있다. 어느 면으로 봐도 연변이 심수대분촌보다 조 건이 우월하다고 할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정답은 심수사람들의 “글로벌사고와 본토화실천을 환상적으로 융합시 키는” 그같은 창의력과 도전정신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민족의 한 미술기업인이 멋진 발상과 대담한 시도로 심수사람들을 향해 도전장을 던지지 않았나하는 생각에 흥분을 금할수 없다. 이 도전이 성공과 직결되리라는 즐거운 예감의 유력한 근거를 필자는 앞에서 렬거한 우리지역의 지리적, 생태적,인문적 우세외에 우리 고장이 지금 본격적으로 펼쳐내고있는 천재일우의 연룡도신구 프로젝트에서 찾고있다. 연룡도신구의 성격이 공업단지가 아닌 문화관광구라는 좌표설정, 이 거물급 프로젝트의 개발범위가 남쪽으로 룡정시 동성용 진 동성촌을 포섭하고있으며 새로 착공되는 해란교가 연동촌 과는 코를 맞댄 신통한 위치에 있어 연동예술촌의 비상에 나래를 달아주는 격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연동예술촌의 매력은 연변대지에 배회하는 “르네상스”기류의 요상호응(遥相呼应)으로 엄청난 탄력을 입을수 있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연룡도신구개발의 북쪽 한계선에 들어가있으며 연동촌보다 썩전에 오픈한 도문시 장안진 룡가촌의 룡가미원이 미술소장전시관, 화가체험공간, 문화명인 조각공원 조성을 토대로 격상시키고있는 미술분위기, 그 지척에 있는 연길시 의란진 춘흥촌의 몽두미(梦都美)민속관광리조트가 조형예술의 격정으로 인문과 자연의 융합, 전통과 현대의 접목을 이뤄내여 국내외에서 으뜸가는 청소년수학연수려행의 문화적보금자리로 거듭나게 하려는 노력, 그밖에 연변 곳곳에서 꿈틀대는 미술문화부흥풍조와 이에 녹아들고있는 연변사람들의 삶의 자세는 연동예술촌이 내건 “세계는 연동에서”라는 슬로건의 현실화를 떠밀어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될것이다.   연변의 많은 화가들이 북경에서 미술활동을 벌리고있다. 스모 그와 황사로 고역을 치르는 이들에게 산좋고 물맑은 고향땅 연동예술촌이야말로 “귀향예술창업” 최적의 출구가 아닐가?  연동예술촌이 타성에 거주하고있는  연변화가들을 고향으로 결집시키고 국내외 명가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황홀한  창작기지의 정착으로 이어지게 할수 있는 플래폼이 된다면 연룡도문화관광 구의 실질적 도약은 어마어마한 탄력을 입을 것이 아니겠는가?   연동예술촌은 “엉뚱함”을 저지르고 있다. 이 엉뚱함이 “르네 상스”기류의 배회를 상륙에로 견인하는 긍정적 힘이 되여 연변 “르네상스”  참신한 시대와의 도킹을 완수할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변일보 2017-5-10
59    민족자부심 정착, 기업계가 나선다 댓글:  조회:291  추천:0  2017-04-27
일전에 어느 조선족기업인과 열 띤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필자가 재직에 있을 때 품었다가 무산된바 있던 시도가 만남의 화제였다. 수년 전 새중국 창건 60돐 기념 국가 중대한 력사제재미술창작 프로젝 트가 가동되여 아편전쟁이래 우리나라 100여년의 창상지변이 미술계에 의해 조형화되는 문화장거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자금이 투입된 대형프로 젝트였다.《중국문화보》지면을 통해 입선된 부분적 미술작품들을 목격 하는 순간 필자는 시대정신의 구가와 민족력사의 재현에서 미술창작이 발산하는 독특한 힘과 매력에 가슴뭉클하였었다. 여기서 령감을 얻어 조선 족 100여 년 이주력사의 형상화 가능성에 미련을 걸고 미술계 화백, 지인 들과 함께 연변중대력사제재 미술창작프로젝트를 공론화했던적이 있었다. 물론 여러가지 원인으로 시도가 무산됐지만 필자는 이 “꿈”을 접을수 없어 언론을 통해 들먹거렸었는데 상기의 기업인이 이 사실을 알고 필자와의 만남을 주문해오면서 이 시도를 현실화하기 위한 공감대 형성에 이르게 된것이다. 이 “꿈”이 현실화되는 경우 현재 정부의 계획추진단계에 있는 연변 미술관은 명실공히 조형예술에 의한 연변중대혁명력사재현의 산실로, 살아 숨쉬는 전통교육의 느낌공간으로 부상될수 있을것이다. 이 순간 눈물 젖은 두만강을 건너 허허 만주벌판에 개척의 첫 괭이를 박았던 연변조선족 이주력사의 시작으로부터 새중국창건에 이르는 파란만 장한 세월이 살아 숨쉬는 형상화폭들에 탑재되여 숭엄하게 펼쳐진다… “룡정 ‘3.13’반일시위의 도도한 흐름이 밀려온다. 일제의 ‘경신년 대토 벌’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조선족반일부대의 봉오동,청산리 대첩의 함성이 메아리친다. 동만, 남만, 북만의 조선족항일무장투쟁의 비장한 전투화면들, 일제의 패망과 동북근거지 창설, 토비숙청, 토지개혁, 참군참전, 전국해방 전쟁에서 조선족인민들의 피어린 업적이 조형예술의 매력으로 재생되여 있다.”(필자: 숨쉬는 연변의 느낌공간 만들기) 연변혁명렬사릉원 해독(解读)공간으로 떠오를 연변 중대혁명력사제재 미 술작품전시궁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실현불가능한 “꿈”일가? 물론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분명한것은 그날 필자가 만난 기업인이 표출한 우리민족력사관 정립에 대한 열렬한 소명감과 절박한 감당의식은 고립적이 아니라 최근 년간 증폭되고있는 민족사교육에 대한 기업인들의 보편적인 관심과  맥락을 함께 하면서  서서히 정착해가고있는 우리사회의 긍정적인 기류를 반영하고있다는 생각이다. 문화자각에 뿌리를 둔 민족 기업인들의 량심적 움직임은  력동적인 힘 그 자체이다. 필자가 감동하는 리유이다. 지난 3월, 조선족기업인 리더들이 주역이 되여 조선족청소년과 서민층을 겨냥한 중국조선족력사필독서 출판관련  문학계, 출판계, 기업계 리더들의 개별적만남이 있었다. 조선족력사교육이 글로벌시대에 뒤떨어져있는 상황 을 반성하면서 오랫동안 체계적인 민족사교과서나 필독서가 없어 우리의 주도적인 력사의식 구축에서 무지와 혼선이 빚어지는 국면에 제동을 걸고 광범한 조선족청소년층과 서민층을 위한 우리의 력사교육 필독서를 만들어 내자는 그 공감대가  우리민족 기업인들에 의해 기지개를 켠것이다. 지난해에는 조선족문학의 수준급 도약을 위한 사상 최고액수의 상금이 걸린 “단군문학상”이 조선족과 타민족 기업인들의 정성에 받들려 고고성을 울리면서 세상을 놀래웠었다. 아직 기획단계에 있는 연변의 중대한 력사제재 미술창작프로젝트나 조선족청소년층을 대상한 민족사필독서 출판프로젝트, 그밖에 이미 해볕을 본 조선족“단군문학상”프로젝트는 그 성격여하를 막론하고 모두 민족자 부심 정착에 그 뿌리를 두고있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민족의 빛나는 력사 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그 자부심으로 글로벌시대의 당당함을 지켜나가는 자세가 절박할 때이다. 자부심이 흔들리면 당당함이 무너진다. 그 민족 자부심 정착을 위해  나서고있는 민족기업인들의 량심행보가 멋지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타민족의 한 망나니가 조선말을 구사하는 조선족 젊은이들게  모욕적인 폭언을 내뱉는 동영상을 보고 기가 질렸던 적이 있다. 물론 극개별적인 “미꾸라지”의 망동이고 사건이 터진후 여러 민족 네티즌들의 준렬한 성토가 이어졌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자초지종은 그만두더라도 만약 조선족을 타매한 그 망나니의 머리속에 조선족의 자랑찬 력사에 대한 약간의 먹물이라도 들어있었다면 그같은 엄청난 무례함까지는 범하지 않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침묵을 지키며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 조선족젊은이들 역시 우리민족의 빛나는 력사의식에서 루적된 당당함을 간직하였다면 역전상황이  나타났을 수도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지을수 없다. 결국 무지는 가해자의 무례함을 낳았고 동시에 피해자들이 굴욕을 감수해야 했다. 정답은 하나-이번 일은 우리민족사교육의 창백함에서 유발된 비극이다. 우리에게는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라는 어디에 내놓아도 당당한 중국조선족의 빛나는 상징아이콘이 있지만 그 심오한 뜻이 조선족 구성원 특히 신세대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있으니 타민족은 더 말해 무엇하랴? 어찌보면 이번에 조선족기업인들의 후원으로 추진하게 될 조선족 청소 년을 대상한 중국조선족100년사 필독서출판 프로젝트와 연변 중대한 혁명력사제재미술창작 프로젝트는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 해독 편,  축소판이라 할수 있으며 민족자부심 정착을 위한 우리민족 기업계와 문학계, 미술계, 출판계의 전략적합동플레이의 멋진 시험이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성공을 미리 기대한다. 연변일보 2017-4-26
58    국격과 인격 댓글:  조회:453  추천:0  2017-04-13
지난 3월 필자는 서울에서 한국사회의 이슈로 돼있는 두 가지 사건을 직접 체험할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였다.   하나는 한국국민의 시선을 사로잡은 세월호 선체인양작업 이였고 다른 하나는 로씨야월드컵 아세아 최종예선 중한 대항전이였다. 두 사건 모두 중국과 엮어진 때문에 필자 또한 각별한 관심을 가질수 밖에 없었다.   세월호, 한국정치사에 악재로 기록된 특대 해상조난사고 가 한국사회를 슬픔속에 빠뜨린지 3년 만에 우리 나라의 거대한 바지선 두 척 사이로 한많은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 내는 순간 한국국민은 바지선 위에서 펄럭이는 상해샐비지 (上海打捞)의 깃발을 바라보며 중국의 힘에 놀라워했다. 따라서 이 기적을 스무달 동안 350명의 중국직원들이 차디 찬 바지선우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쪽잠을 자면서 이 뤄낸 것임을 알게되면서 상해샐비지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선은 경건해질수 밖에 없었다. 한국의 한 주류매체는 “916억원 받는 상해샐비지, 쓴 돈은 2000억원 넘어”, “금전적 손실이 크지만 고난도 인양작업을 성공시켜 기술력 있는 업체라는 명성을” 얻을수 있었다고 극찬하였다.   바지선 위에서 악전고투한 350 명 중국직원의 헌신적 노력으로 중국의 국가위상이 소리 없이 올라가는 순간이 였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돈이 아닌 마음으로 한국국민과 비통을 함께 나누며 열악한 해상선체 인양을 성공시킨 상해샐비지는 고상한 인격으로 한국국민에게 잔잔한 감동과 더불어 중국의 국격을 보란듯이 과시하였다고 생각한다.   중한대항전, “사드”원인으로 두 나라 사이에 껄끄럽지 못한 분위기가 감도는 상황에서 치뤄질 로씨야월드컵 아세아 최종예선 중한전은 불꽃 튀는 접전이 예상되는 경기가 아닐수 없었다. 한국팀은 물론 취재길에 오르는 한국 기자들의 공통된 생각은 불안감이였다. 필자 또한 홈장 모든 주도권을 거머쥐고있는 중국에서 혹시나 불민한 일이 생기지 않을가 은근히 마음을 조였었다.   하지만 한국기자들의 불안감이나 필자의 우려는 부질없는 것이였음이 판명되였다. 장사는 이날 한국팀이나 한국언 론이 수긍하는 멋진 경기를 차분하게 소화했다. 중한 두팀 의 경기와 경기장 안팍 장사시민들의 표정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가 이 점을 실증하고있었다. 두 팀의 경기를 두고 한국의 주류언론은 이렇게 평 가하였다. “중국축구는 한국보다 한 수 아래였다. 적어도 지금까지 한국인들이 아는 모습은 그랬다. 이제는 이 생각을 바꿔야 할것 같다 … 인정하기 어렵지만 중국축구는 한국보다 한 수 위의 모습을 보였다.” “중국은 거친 반칙, 침대축구 일절 없이 투지, 경기력 면에서 한국을 앞섰다.”   경기장 안팎 장사시민들의 표정에 대해 한국매체는 이런 인상을 담아냈다. “정치와 축구가 이상하게 엮인 분위기 속에서 발을 들여놓은 장사는 너무 평온했다. ”, “한.중전이 열린 당일, 경기장 안팎에서는 적대감을 느낄수 있었다. 그런데 그건  중요한 축구 경기를 앞두고 상대를 흔들어서라도 상대를 이기고 싶은 자연적인 감정의 표현일 뿐이다. 그걸 누군가 ‘사드 적대감’으로 해석한다면 그건 분명히 잘못됐다고 본다. 최소한 기자가 만난 장사사람들은 한국을 지금도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배원인을 늘 궁색하게 합리화하며 대방 꼬집기에 정평 난 한국언론이 이번 중한전 관전평 그리고 경기장 안팍 장사 시민들의 표정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이례적이지만 그만큼 중국국가팀과 장사시민들의 긍정적모습이 이끌어낸 긍정적 반응이 아니겠는가?   중국국가팀 선수들은 멋진 정신력과 경기력으로 홈장경기 에서 축구인이 갖춰야 할 인격을 완벽하게 펼쳐보였고 장사시민들은 성숙된 시민의식으로 한국인들에게 깍듯한 례 우를 갖춤으로서 우리 나라의 국격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국격은 국가의 체면이고 존엄이다. 국격의 핵심요소는 국 민의식수준으로서 국격이 높아지려면 국민의 생각과 생활자 세의 격이 높아져야 한다. 상해샐비지 350명 직원들이 보여준 치렬한 직업의식이나 중한전에서 보여준 국가팀 선수들의 진지한 경기자세, 그리고 장사시민들의 성숙된 시민의식은 모두 우리 나라 국민인격의 자연적인 발로로써 우리 나라 국격향상에 이바지되였는바 이거야말로 가장 진솔한 애국행위라 볼수 있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애국”이란 타이틀을 걸고 국격을 보란듯이 훼손하는 좀벌레들도 가끔 눈에 띄여 가슴 아프 다. 대한국팀전 경기 전날 중앙 어느 언론매체의 앵커라는 자는 중한 두 나라 국가팀 훈련모습을 생중계하는 마당에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치졸한 언사를 내뱉어 국가언론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국격을 훼손하는 추태를 연출하였다. 사회적공분을 일으킨 이 행위를 질책한 건강한 사회여론에 대해 “매국노”, “한간”이라고 헐뜻는 무뢰한도 있었다. 이같 은 망발은 적어도 그날 긍정적자세로 열심히 경기를 치른 국가팀 선수와 성숙된 시민의식을 선보인 광범한 장사시 민들의 인격에 먹칠을 한 무모한 행위가 아닐수 없다.   애국은 일종의 정감이면서 동시에 리성화한 능력이라 할수 있다. 중국이 세계무대의 중심에 선 오늘 글로벌 좌표하에서 어떻게 애국정서를 리성적으로 다루는가 하는 것은  모든 중국국민이 풀어야 할 필답과제로 되고있다.   사드배치로 동북아정세에 그늘이 드리운 시점에 가장 신경이 날카로운 군체가 재한 70만 조선족이 아닐가 생각 한다. 이런 사태에서 우리 조선족들은 보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로 성숙된 재한조선족사회 공동체의식을 부각시키며 보다 리성적이고 책임적인 재한조선족 인격의 함양으로 중한관계발전의 민간버팀목으로 되며 우리 나라 국격이미지 수호에 보탬을 주어야 할것이다. 연변일보 2017-4-12
57    우리 력사의식 이대로 괜찮을가? 댓글:  조회:495  추천:0  2017-03-31
“1906년 중국동북지역에 설립된 최초의 해외민족교육기관인 이곳은 어디일가요?”, 한국 어느 방송사의 중국조선족청소년 대상 퀴즈프로그램에서 반일계몽교육의 요람, 중국조선족근대교육의 효시인 룡정의 서전서숙을 두고 골든벨 도전자에게 던진 맨 마지막 질문이다 ... “밀정”, “ 놈, 놈, 놈!”, 중국조선족 항일투쟁사에 굵은 획을 그은 1920년 룡정동량리 “15만원 탈취사건”을 모티브로 한국영화계가 제작하여 엄청난 흥행효과를 거둔 액션영화들이다 ... “윤동주시인 교토서 마지막 사진 찍은 자리에 시비 세운다”, 항일저항시인 윤동주탄생 100주년을 맞아 일본시민단체가 시인이 도지샤대학 류학시절 일본인 학우들과 야외송별회를 하며 생전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 장소에 “기억과 화해의 비”를 세운다는 내용의 한국 어느 주류언론사 보도기사제목이다 ... 력사를 보는 관점이 크게 시간, 공간, 인간 3요소로 이루어진다고 할 때 “서전서숙”, “15만원 탈취사건”, “저항시인 윤동주”는 일제강점기 룡정이라는 특정된 시공간에서 엮어지고 완성된 가슴뭉클한 력사기억의 부호이다. 이 력사기억을 긍정적으로 되살린 이방국 언론에 얼굴을 붉혀야 할 리유가 없지만 솔직히 마음 한구석은 어쩐지 찜찜한 느낌이다. 마치도 종가집 명물이 남에게 도용된것 같은 그러한 맹랑함이랄가? 조선반도의 일제식민지통치 36년과 우리 나라의 항일전쟁 14년 세월은 끈끈히 밀착되여있다. 특히 지난세기 초엽 반일항일투쟁 테라스의 특수성은 이 시기 반일, 항일투쟁이 어느 한 나라 한 지역에만 국한된 고립적인 항쟁이 아니라 국제반파쑈동맹의 련대성으로 이어지게 하였으며 이같은 배경에서 출현된 반일, 항일지사와 명인들, 사건들 역시 어느 한 나라의 “전매특허”로 규제할수 없는 특수한 성격을 띌수 밖에 없게 하였다.  “서전서숙”, “15만원 탈취사건”, “윤동주”에도 당연히 이같은 특수성이 복합되여 있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문제는 반일항쟁의 종가 룡정이 배출시킨 연변지역 영광과 자랑의 력사단면들이 종가가 아닌 이웃들에 의해 발굴되고 재현되고 흥행되면서 연변자산의 내역을 전체적으로 종가보다 이웃들이 더 잘 꿰고있다는 점이 우리를 부끄럽게하고있는 나머지 불안감마저 들게 하고있는 것이다. 제 터전에 숨겨진 비장한 력사에 관심이 무디고 쓰러져가는 허름한 종가울바자를 그냥 방치해둔다면 종가가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점을 “서전서숙”, “15만원 탈취사건”, “윤동주” 관련 이웃들의 당당한 행보가 우리에게 넌지시 깨우쳐주고있다. 우리의 력사의식 이대로 괜찮은걸가? 따져보면 중국과 조선반도 반일항일투쟁의 련대성과 점철된 천입민족인 조선족의 근대력사 특수성, 랭전사유로 얽혀진 “진영론”의 삐뚠 시각이 반죽되여 오늘날 우리가 자신의 자랑스런 력사의 리해에서 혼선을 빚게하고있다는 점도 간과할수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중국조선족력사에서 이주초기 반일항일투쟁사는 우리 나라 기타민족에게서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비장한 력사로서 중국근대혁명사를 빛나게 장식하는 거룩한 정신적재부이며 우리민족의 자랑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이 시기 력사를 종가의 주도적인 관점에서 인식하지 못하고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자신의 력사에 대한 판단을 주변이웃들에게 맡겨버리는 참담함을 연출하게 될것이며 궁극적으로 중화민족 일원으로서의 떳떳함이 거세당하고 우리조상과 후세들에게 씻을수 없는 오욕을 남기게 될것이다. 우리민족 력사의식의 정립에서 관건은 천입민족으로서의 우리의 올바른 자세, 올곧은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재중교포의 의식이 아닌 중국조선족의식, 중국과 반도의 변두리의식이 아닌 동북아복지의식으로 심어지고 뿌리내린 글로벌시대의 애국애족애향의식의 완벽한 정착이 우선시되여야 우리민족력 정립에서 흔들림없는 종가의 당당함을 지켜나갈수 있다. 우리민족 력사의식의 정립에서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는 중국조선족력사교육이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있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계통적인 민족사교과서나 필독서가 없었고 정규화되고 효률적인 교육시스템이나 플랫폼이 없었던점을 우리는 깊히 반성해보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웃나라와의 대응에서 우리의 주도적인 력사의식이 제대로 설자리를 찾을수 없을것이며 우리는 그냥 이웃들의 씨나리오에 맞춰 노래하는 어리숙함을 되풀이할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전에 출판계와 문학계, 기업계의 리더들과 함께 이 몇년래 사학계가 일궈낸 풍부한 사료문헌성 출판성과에 힘입어 광범한 조선족민중과 청소년들을 대상한 중국조선족력사필독서(세트) 출판을 가동시켜 오랫동안 랭담했던 조선족력사교육현주소에 뜨거운 열기를 주입할데 대한 의미있는 대화를 나눈적이 있다. 긍정적인 국면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룡정실험소학교 울안에 자리한 “서전서숙” 옛터 비, 룡정동량리 길어귀에 우뚝 솟은 “15만원 탈취사건비”, 룡정명동에 자리잡고있는 “윤동주생가”, 그밖에 수많은 반일항일넋을 담은 종가의 명물들이 이제 빛을 보게 될 중국조선족력사필독서와 더불어 우리 력사의식정립의 산 교재로 거듭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청명이 다가온다.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라는 시구의 무거운 의미로 우리모두의 력사의식을 반추해보면서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소중한 순간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연변일보 2017-3-29  
56    윤동주, 연변의 자산 겨레의 재부 댓글:  조회:622  추천:0  2017-02-16
오늘(2월 16일)은 항일저항시인 윤동주가 일제감방에서 생을 마감한지 72돐이 되는 날이다. 또한 올해는 윤동주의 탄신 100돐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72년 전 일제감방에서 28세의 젊은 나이에 옥사한 시인의 육신은 고향 룡정에 묻혔어도 그 넋은 우리와 함께 하면서 무한한것을 깨우쳐주고있다. 누군가 “세익스피어는 시대가 없다”는 말로 위인이 창출한 문학정신의 영구불멸을 함축성있게 정리한바 있다. 민족수난기 겨례의 비극을 뼈저리게 아파하고 이를 극복할수 있는 힘이 자기에게 없음을 부끄러워한 윤동주의 순수한 정신, 반성의 자세는 일제식민지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겨례의 소중한 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있다. 세계 기타 민족의 명인들과 마찬가지로 윤동주는 연변의 자산임과 동시에 겨레의 공동한 문화재부로서 그가 부각시킨 불멸의 정신적 유산은 지역을 넘어  민족과 나라, 더 나아가서 세계 평화애호인민에게 속한다. 고금중외에 자국의 력사문화명인을 초개처럼 대한 나라는 없는 줄로 알고있다. 자국인이 아니더라도 일단 자국운명에 적극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결코 “홀대”하지 않고 자국력사에 기록돼온 사례는 많고도 많다. 몇년전 19세기 저명한 작가 고골리의 탄생 200주년에 즈음  하여 로씨야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 사이에 고골리의 나라귀속 문제를 두고 치렬한 론쟁이 벌어졌었다. 고골리가 우크라이나 에서 태여났고 우크라이나에서 생활했으니 당연히 우크라이나 작가라는것이 우크라이나측의 태도였고 고골리는 로씨야어로 집필하고 로씨야어로 사고하였으니 백퍼센트 로씨야작가라는게 로씨야측의 주장이였다. 구쏘련이 해체되기전에는 전혀 문제시 되지 않았던 이슈다. 결국은 두 나라에서 각자 자기“유산”으로 표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수 밖에 없었던것 같다. 고골리 나라귀속이 어떻게 변했던 그가 19세기 저명한 비판적사실주의 문학정초자로서의 세계적지위, 그와 관련된 지금까지의  문화콘텐츠내역은 변한게 없다. 윤동주도 가끔 나라귀속론란에 휩싸일때가 있다. 장장 150 여년이라는 중국조선족이민사에 대한 료해가 전무하거나 삐뚠시 각을 가진 일부 이방국학자들이 윤동주가 처했던 일제식민지 력사시기 민족수난의 생태를 도외시하면서 상식을 벗어난 이른 바 윤동주 “국적반환싸인” 헤프닝까지 벌리여 우리 나라 학자들 의 빈축을 샀던적까지 있다. “헤프닝”은 어디까지나 “헤프닝”일 뿐이지만 우리에게 은근히 시사하는바가 크다고 생각해본다. “위인 치고 고립된 산정(山顶)은 드물다. 위인은 련산(连山)  의 정상이다.” 윤동주는 “고립된 산정”에서 우연하게 배출된 인물이 아니라 20세기초  룡정반일항쟁의 피어린 “련산”에서 솟아난 선각자의 한사람이라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윤동주에 대한 리해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패러다임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윤동주는 28년이라는 짧은 생애에서 21년을 룡정이라는 이 반일항쟁성지에 몸담고 반일계몽교육을 받으며 항일저항시인으로 부상되는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과정을 차례로 소화했다고 할수 있다. 룡정의 비장한 반일 넋이 윤동 주의 정신을 정화시켰고 시인의 지조와 사상적 뿌리가 고향룡정 에 내려지게 하였다. 어찌보면 일제의 감옥에서 옥사한 시인의 룡정회귀는  락엽귀근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겠는가? 윤동주는 룡정이 낳은 연변의 아들로서 숙명적으로 우리가 정중하게 대해야 할 위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윤동주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초급단계에 머물러있 다는 점이다. 윤동주 발견이 우리가 아닌 일본학자에 의해 지난 8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후 연변문단이 비로서 윤동주에 접근하기 시작했지만 어쩔수 없이 이방국 연구성과에 편중해온 것도 사실이다. 어찌됐던 이는 윤동주고향의 타이틀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수 없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때 남의 “입양아”로 전락될수도 있음은 먼 일이 아닐것이다. 일부 이방인들이 벌린 “싸인” 촌극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오지 않았나싶다. 다행스러운것은 소설가 김혁선생이 3년전 대학교교수, 문인 들을 규합하여 룡정· 윤동주연구회를 발족시키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 늦은대로 윤동주연구가 본격적인 흐름을 타고있어 체면을 살리게 되였다. 윤동주살리기, 우리 정부의 힘이 보태 져야할 시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윤동주연구는 문학인들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따라서 조선족에게만 국한된 명인연구가 돼서도 안된다. 윤동주연구가 광범 한 조선족과 기타 민족, 나아가서 아세아 여러 나라 학자들의 폭넓은 관심, 동참, 성원과 이어졌을때만이 윤동주정신의 탈지역 세계화의 가치성이 증폭될수  있다. 올해는 윤동주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윤동주의 고향 룡정이 세계 윤동주연구의 구심점으로 돼야 함은 당연지사인줄 안다. 시인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연구작품활동, 연구포럼, 각종기념이벤트가 탄력을 입으며 윤동주생가기념관, 명동기념 관을 비롯한 룡정의 관련유적지건설이 세계적인 눈높이에서 재검토, 재기획, 재정리되면서 명실공히 정신적 품위가 돋보이고 문화적 향기가 그윽하며 새로운 비전이 꿈틀거리는 거창한 윤동주연구전시체험공간으로 재건되리라는 소망을 가져본다. 연변일보 2017-2-15
55    내 고향을 디자인하다 댓글:  조회:653  추천:1  2017-01-05
세상에 이름난 도시들은 모두 자기만의 독특한 운치와 표정을 간직하고있다. 따라서 클론(克隆) 불가능한 이런 도시의 매력은 일종의 상징아이콘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히 각인된다. “천 안문”하면 명청시대의 웅장한 력사문화명소들과 더불어 찬란한 5000년 중화문명의 천년고도(千年古都) 북경을 떠올릴 수 있고 “피라미드 왕국”하면 나일강연안의 고대 이집트 문명성지 카이 로가 신기루처럼 우리 앞에 다가오는것 같다. “유럽의 도읍” 하 면 벨기에 수도 부뤼셀대광장의 오줌으로 타들어가는 도화선의 불을 꺼 도성을 구했다는 유명한 “오줌싸개 꼬마 줄리앙” 동상 이 방불히 우리를 반기는 것 같다.   한 도시의 독특한 매력과 멋진 이미지가 물론 자화자찬으로가 아니라 세상사람들에 의해 객관적으로 인식되고 평가된다고 하 지만 도시주인의 심오한 사상적 깊이와 확실한 미학적 품위에 의한 수준급 디자인이 되여있지 않는 도시일 때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 현대멋을 살리느라 애써도 결국 도시 혼이 빠진 서투 른 아마추어 작품으로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된다.   수년전 재직에 있을때 필자는 서북의 어느 한 사막도시를 견학했던적이 있다. 풍부한 광물자원개발로 엄청난 부를 창조한 K시는 당시 거금을 투입하여 신도시 주택건설에 한창 열을 올 리고있었는데 필자의 눈에 맞쳐온 신도시의 화려한 별장식 주택단지들은 사람 사는 아늑한 공간보다도 무대세트장과 같은 텅빈 인상을 강하게 풍기면서 “유령도시”를 마주한것 같은 공포감마저 엄습해왔었다.   1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K시는 우리 나라 50여개 “유령 도시”의 앞자리를 내주지 않고있다고 한다. 어느 한 외신은 K시의 이미지를 초현실주의 기이한 색채로 만들어진 “유토피아 실패작”으로 정립하고있다. 화려함이 도시품위를 낳 을수 없고 돈다발이 도시매력을 사들일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 사례가 아닐가 생각한다.   필자는 가끔 내 고향 연길을 떠올려본다. 50여만 인구에 100여년 력사를 품은 변강도시, 덩치 큰 천년고도와는 비교도 안되는 미니 도회지임은 분명하지만 나름대로 자기 개성이 뚜렷 한 체통을 갖추고 활력이 넘치는 청춘도시로의 도약가능성이 열려있는 향토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거기에다 연룡도신구역 이라는 세기적 프로젝트의 가동에 힘입어 새롭게 업그레드 될 내 고향의 미래는 기대해볼만하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그 성공키워드는 “세기적 프로젝트”에 걸맞는 “세기적 디자인” 의 창출에 있을것이다. “유령도시”의 전철을 밟지 않고 “유토 피아 실패작”의 뼈아픈 교훈을 경계하면서 우리 체통에 걸맞는 우리만의 디자인으로 내 고향을 “제작”해냈을 때 세상이 내 고향을 보는 눈길은 정중해지리라 생각한다. 도시문화란 따져보면 순박한 민풍, 천연적 산수, 독특한 문화 풍토의 적절한 조합이라 할수 있다. 한 고장의 지역특성은 때려 맞추는게 아니라 생태, 력사, 전통, 문화에 힘입어 자연스럽게 신장되여야한다는 도리를 “유토피아 실패작”인 “유령도시”들이 잘 말해준다.   연변은 중국조선족의 주요집거지이고 중국조선족문화의 메카 이며 조선족과 여러민족 다문화, 대화합의 정치풍경구이기도 하다. 연변의 가장 선명한 특색이 “조선족”이라는 점은 세상이 다아는 사실이다. 연길이 조선족 인문풍토의 대표자, 중국조선 족의 심장부라는 사실 또한 비밀이 아니다. 이것이 내 고향의 기본체통이며 미래지향적인 조선족메카, 조선족중심의 다문화 연길을 디자인함에 있어서 감안해야할 지침으로 된다.   “조선족”하면 연변을, “연변”하면 친근하게 다가오는 브랜드가 어느때부터였는지 서서히 진달래로 자리매김하였다. 진달래가 함유하고있는, 그 어떤 조건부나 시주(施舍)를 바라지 않고 그 어떤 열악한 환경도 운명으로 받아드려 꿋꿋히 뿌리를 내리며 싱글매치가 아닌 화끈한 단합으로 정열을 사르고 힘을 과시하는 그 풍격이야말로 조선족의 정신, 연변의 상징이라는 점에 대해 서 반론을 제기할 이는 없다. 진달래의 외연보다도 진달래가 품고있는 내적함의와 품격을 내 고향 연길과 일체화시켜 전통과 현대, 자연과 인문, 지역과 세계의 숨결이 느껴지는 사랑의 향토를 완벽하게 디자인하는것은 우리가 숙명적으로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고속철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연길공항이주확장공사의 가동, 연룡도 신구역건설프로젝트의 출범, 연변초요사회진입 청사진의 발족 등 굵직굵직한 대상들은 내 고향의 세기적 디자인이 국부 적인 아마추어 터치가 아니라 전방위적인 수준급 조감에 의한 균형감각으로 이뤄낸 감동의 파노라마이기를 갈망하고 있다.   솔직히 오늘날 세인들 앞에 펼쳐진 연길도시의 총체적 디자 인은 중국조선족의 심장부, 중국조선족문화메카의 구심점, 다문 화 대화합 인문풍토의 전당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상당히 거리 가 있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조선족이 여러민족과 함께 한 100여년 개척, 항쟁, 건설의 력사와 정채로운 조선족 범문화의 맥락을 박물관이나 당안관, 도서관의 사료가 아닌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가슴뭉클하게 피부로 느낄수 있는 그같은 탑재물, 구조물, 기획물의 미숙함은 여전히 진행형으로 되고있다. 가장 섬찍한것은 연길 심장부에 도시의 “핵”이 없다는 점이다. 넋이 없는 도시의 매력은 상상할수 없다. 도시의 넋이 정착해야할 “성지”라고 판단되는 공간은 늦더라도 가차없이 “수술칼”을 들이대는 단호함을 보여야한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성지”가 바로서야 도시의 귀틀이 안정감을 찾을수 있다.   올해는 진달래가 자치주 주화(州花)로 추대된 30주년이다. 이 력사의 해를 맞아 내 고향이 멋진 세기적 디자인의 꿈을 무르 익혀 우리체통에 맞는 매력적인 “생태, 민족, 변강” 테마도 시로의 행보를 거듭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변일보 2017-1-4
54    한국젊은이의 “조선족 재발견”을 두고 댓글:  조회:767  추천:4  2016-11-25
“지난 8월 처음으로 연길에 가게 되였다. 솔직히 어린 딸애를 데리고 떠날 때까지 엄청 무서웠다. 연길은 영화 ‘황해’의 한 장면처럼 시장바닥에 개를 끌고다니는 락후한 모습에 인신매매에 걸려 장기라도 적출당할거 같은 범죄천국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처음 만난 연길은 충격자체였다. 한국언론이나 영화에 비친 모습이 아니였다. 빌딩이 숲을 이룰만큼 도시는 너무 발전해있었고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조선족안해를 둔 한국 젊은이가 연길초행길을 두고 언론에 터놓은 솔직한 마음의 고백이다.   “연변에서 느꼈던 충격과 부끄러움만큼… 연변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조선족 재발견”이라는 “량심저술”을 기획하기에 이른 한국 젊은이한테서 필자는 신선한 감흥을 느꼈다.   연변을 다녀온적 없는 대부분 한국인들이 연변과 조선족에 대한 리해는 백지화수준이라 할수 있다. 민족상잔의 피비린 악연과 점철된 반목의 깊은 곬, 그속에서 파생된 무지와 편견은 반세기를 주름잡으며 지금까지도 진행 형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남고있다. 연길에서 10여년 살아온 “연변통” 한국기업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한국친구를 연변으로 초청했는데 처자식은 물론 한국의 대부분 사람들이 “연변이 어떤 곳인지 알고 가느냐”며 극구 말리더라면서 “연변에 한국인을 전문 납취하여 눈, 간, 심장 등 장기들을 적출해 팔아먹는 범죄집단이 있 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는데 사실이냐고 묻는 말에 너무 기가 차서 까무러칠뻔 했다고한다. 더 한심한것은 이같은 악성 루머를 영상화하여 연변 과 조선족을 매도하는 여론의 앞장에 서서 한국사회의 삐뚠시각을 가시화 하는 한국 일부언론의 저의가 의심스러울수 밖에 없다.   연변에 지점장으로 부임된 한국인 한분은 연변을 공포지역으로 알고 발령 받는 순간 “죽었구나”라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둘 생각했는데 와서 지내며 보니 여기처럼 안전하고 살기좋은 곳이 없다고, 오히려 한국보다 더 안전 하지 않나하는 생각까지 들며 왜 연변이 무시무시한 고장으로 소문났는지 모르겠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한다.   2년 전 필자도 오랜 고민끝에 연변행을 작심하고 떠나온 처가편 한국 친척분들과 함께 할수 있는 기회를 가진적이 있었다. 며칠간의 연길체류에 서 보여준 한국친척분들의 충격적인 반응과 믿기지 않아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그들이 얼마나 한국사회의 조작되고 왜곡되고 부풀어진 여론에 세뇌되여 왔는지를 알것 같았다.   페쇄된 환경에서 세상을 보는 창은 언론 한편, 영상화면 한순간으로 커버될수 있다. 연변에 대해 생면부지인 한국인들에게 주류매체가 만들어 내는 영화 “황해”나 “아수라”, 드라마 “신세계”, 뉴스언론에서의 연변비하 화면과 보도는 려과없이 한국인들에게는 연변인상 가이드로 작용된다. “국민의 알권리”를 그처럼 강경하게 표방하는 한국일부언론이 랭전시대의 진영론 사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연변과 조선족을 제멋대로 우롱하고 릉멸하는 추태에 마음이 무겁다.   지난세기 80년대 초반까지 연변사람들이 한국에 대한 인식은 “인간 생 지옥”이였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그 당시 “남조선”을 료해할수 있는 유일 한 통로는 조선의 간행물과 영화가 전부였다. 어느 월간 화보에 실리 군하던 남조선의 처참한 사진화면은 끔찍함 그 자체로 받아드려졌었다 …   가물로 쩍쩍 갈라터진 논밭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초췌한 모습의 농부, 깡통을 차고 거리를 류랑걸식하는 소년거지, 허름한 판자집으로 덮힌 빈민 굴동네 …, 어느 년대의 사진인지는 몰라도 “헐벗고 굶주리는 남조선 인민 들의 참상”은 액면그대로 우리 머리속에 각인되였었다. “국민의 알권리”가 철저히 유린되였던 세월의 징표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같은 상황이 오늘날 한국판으로 재연되는게 아닌가 싶다. 랭전 시대 페쇄된 적대리념공간에서 만들어진 왜곡된 연변관(观)이 중한수교 20 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여전히 악성바이러스로 류포되면서 “범죄천국” 으로 요괴화되고있음을 한국젊은이의 고백이 실증하고있어 가슴 아프다. “연변의 모습은 한국언론이나 영화에 비친 모습이 아니였다”고 까밝힌 한국젊은이의 말은 한국국민을 바보취급하는 한국 일부언론에 날린 경고메 세지라고 생각한다.   연변은 무릉도원이 아니다. 하지만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동북아의 명주로 부상하고있는 매력적인 고장이라는 점은 객관적사실로 세인들 앞에  드러나있다. 일부 한국언론이 연변을 “인신매매”와 “장기적출”이 성행 하는 “범죄천국”이라고 릉멸하는 무모함에서 그들이 표방하는 “국민의 알권리”가 얼마나 허황하고 창백한가를 보여줄뿐이다.   한국 젊은이의 “조선족 재발견”이 더많은 한국인들의  연변행에 긍정적 에너지로 되면서  연변과 조선족에 대한 한국사회의 편견과 오해가 깨끗히 세척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연변일보 2016-11-23
53    리피감독은 무슨 생각을 했을가? 댓글:  조회:753  추천:0  2016-10-31
멋진 대결이였다.   역시 강호킬러다운 연변팀의 완벽에 가까운 선전이였다.   지난 3라운드의 부진으로 쌓였던 체증을 싹 가시게 한 후련 한 격돌에 연변은 잠시 밝은 표정이다.   솔직히 연변부덕팀과 광주항대팀전에 앞서 국내 매체와 세간의 여론은 이번 겨룸이 가장 볼멋이 없는 광주항대의 일방적인 경 기로 될것이라고 속단하였었다. 연변팀은 일찌감치 2륜 앞당겨 시즌우승을 거머쥐려는 광주항대의 가련한 제물로 되리라는게 중론이였다. 누가 봐도 이날경기의 주역은 광주항대인듯 했다. 특수관중으로 관람석에 앉은 신임 국가대표팀 리피감독도 똑같 은 생각이였을가?   스크린을 통해 슈퍼리그 우승 6련패의 축포를 터치고저 경기장을 물샐틈없이 메운 수만명 광주항대 축구팬들의 무서운 응원 열기를 업고 출전한 “슈퍼리그 최강자, 막강한 자금실력을 자랑 하는 최고의 부자구단” 광주항대팀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면서 필자는 은연중 중세기 로마투우장의 덩치 큰 사자와 왜소한 혈혈단신의 투우사와의 대결을 떠올리게 되였다.   강호킬러의 본색은 대방의 기세가 사나울수록 대결의욕이 한층 부풀러지면서 대방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전혀 기죽지 않는 끈질긴 각축전을 벌리는데서 드러나군 한다. 연변팀이 그랬다. 이번 광주항대팀전은 연변팀이 올 슈퍼리그 원정경기 에서 강호킬러로서의 색갈을 가장 진하게 드러내면서 가장 멋지고 통쾌한 대결을 선보인 모델로 되기에 부끄러움없는 경기였다고 단언한다.   이번 경기는 “연변보위전”에 맞먹는 자존심의 대결이였다. 연변팀이 3련패의 음영에서 해탈하여 슈퍼리그 잔류에 한발자국 다가서는 위기탈출의 드라마를 연출했다는 점이 물론 값졌지 만 그보다도 슈퍼리그가족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막둥이 소수민족 서민구단이 뛰여난 집단 정신력과 자신감으로 “최고의 부자구단”을 무력화시키면서 연변풍채와 매력을 남김없이 과시 하고 축구고향 연변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점에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연변팀이 이번경기에서 보여준 “투혼으로 다져진 뛰어난 정신력, 강렬한 승부욕으로 불타는 팀전체의 이심전심의 자신감, 거센 압박으로 밀어부치는 경기주도력, 놀라운 집중력 으로 경기에 임하는 프로구단의 자세”는 단연히 “적진”에서 1:1 의 무승부를 기록할수 있은 비결이고 나아가서 광주항대팬들의 절찬까지 받을수 있는 리유였다고 느낀다.   이번 경기를 보고 리피감독은 무슨 생각을 했을가? 광주항대 에 국가팀선수선발을 위한 관찰렌즈를 고정했을 리피감독의 평가가 궁금하다.   6명의슈퍼리그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최정예 용병과 7명의 국가팀 맴버들을 보유하고있는 “최고의 부자구단” 광주항대팀은 슈퍼리그 우승팀으로 손색없는 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팀의 실력과 이날 보여준 경기력은 어딘가 정비례되지 못한 느낌을 강하게 풍기면서  우승후보 답지않는 부끄러운 아마츄어추태를 꺼리낌없이 연출하여  축구팬들의 눈살을 찌프리게 하였다.   --- 경기 막바지에 이르러 항대팀 선수들의 체력이 바닥났 는지 근육경련(?)으로 하나 둘 그라운드에 쓰러지는 민망한 장 면이 연출되고, 풀리지 않은 신끈을 고쳐동여매면서 내놓고 시 간끌기 “작전”에 공들이고, 1점 아닌 3점을 바라고 맹렬하게 퍼붓는 연변팀의 공세에 놀라 소극적인 오버헤드킥(倒脚) 헤프 닝까지 벌리고, 항대팀선수들의 이같은 소극적인 모습에 대해 “축구에는 통제라는 단어가 있다. 당시 피동적인 상황이였기 에… 계속해 공격하는것보다 상황을 통제했다”고 능청맞게 리론 강의를 한 스콜라리 감독 …   광주항대팀의 이같은 경기운영이 우승후보에 걸맞는 정상적인 패턴일가? 리피감독의 혜안에서 나온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중국국가축구팀의 사령탑을 잡은 리피감독에게 서민구단 연변팀과  최고갑부 광주항대팀간의 대결양상은 많은것을 시사하 는 경기로 각인되리라 믿고싶다. 80억원의 금원투입으로 시글 법석한 슈퍼리그에 국제급스타들이 줄줄이 영입되고 국내선수들의 수입도 격에 맞지 않게 천문수자를 기록하건만 왜 중국남자축구는 별종의 기형아처럼 진보가 아닌 퇴보를 곱씹는가? 우리 나라 축구를 관심하는 모든 이들의 이 의문이 과연 리피감독에 의해 풀어질수 있을가?   일전에 있은 로씨야월드컵 아세아최종예선경기에서 2련패를 기록한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다름아닌 금원으로 질척거리는 슈퍼리그 비정상생태의 파생물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금원에 의한 외국용병영입이 본토축구인재의 발굴과 발전을 저애한다는 점, 거금으로는 축구현대화를 사들이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하였다. 동시에 금원으로 부풀린 토호전차구단과의  대결에서 보여준 연변팀의 투혼은 거금으로 영입불가능한 정신력축구의 매력이야말로 우리가 애써 추구해야할 프로축구의 핵심키워드 라는  도리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리피감독도 이에 공감 할줄 믿는다.   올해 나머지 두껨경기에서 연변팀이 광주항대팀에 보여준 경기력으로 좋은 마무리를 하여  보다 성숙된 자세로 명년 시즌 에 당당히 도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변일보 10월 26일자  
52    력사와 문학의 만남이 주는 의미 댓글:  조회:812  추천:3  2016-09-01
소설가 김혁이 이끄는 윤동주연구회가 일전에 력사답사팀을 결성하여 1920년 룡정지역에서 있었던 “15만원 탈취의거” 유적지 답사를 시작으로 유적지 정기답사 루트를 밟아나가고있다. 이 답사활동에 작가협회 주석, 대학교 교수들까지 가세하면서 모임이 탄력을 받는데다가 현대판 사이버공간을 리용한 생생한 커뮤니케이션 작전까지 곁들여져 사회공감대 확산에 일조하고있는 고무적인 모습이다. 솔직히 필자는 윤동주연구회를 단순한 윤동주 한 사람에 국한된 연구단체 정도로 착각했었는데 이번의 유적지답사, 그리고 연구회가 밝힌 올해 답사기획을 보면서 반짝이는 그 무언가를 발견하고 짜릿한 충동을 느끼게 되였다. 력사와 문학의 만남! 문학인들이 저지르고있는 이 뜻깊은 력사와의 현지만남을 거쳐 파생되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는 우리 고향, 우리 력사에 대한 우리들의 재인식을 유발하고 정착시키는데 맥락을 두고있는것이다. 필자는 이들의 장거에서 자치주 당정이 제시하고있는 애국, 애족, 애향의 원론적인 호소를 문학적으로 풀어 조선족들의 마음에 심어주려는 문학인들의 올곧은 량심과 책무감을 읽을수 있었다. 우리 문단이 력사에 대한 조감은 줄곧 이어져왔다. “고난의 년대”, “아리랑”, “눈물 젖은 두만강”, “광복의 후예들”, “룡정 별곡” 등 력사테마 장편소설이 우리 작가들의 고된 창조적로동으로 뽑아낸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자산이라면 윤동주연구회의 문학답사는 이들이 펼쳐낸 우리 력사에 대한 집단적인 재읽기, 재확인이라는 일차적목적하에 조선족들의 폭넓은 관심과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한  대중적”이동포럼”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몇년사이 정률성, 최채, 윤동주, 석정, 주덕해, 김학철 등 우리 민족 력사인물 평전저술과 출판이 보기드문 탄력을 받고있는데 이런 력사인물들이 우리의 지난 력사를 조명할수 있는 력사사전으로, 거울로 될수 있어 가깝게는 오늘을 살아가는 조선족들에게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를, 우리 후대들에게는 굉장히 값진 인문유산을 남기는 전략적의미를 내포하고있다고 생각한다. 력사사건, 력사인물 자체는 필경 우리 기억에서 멀어져가기마련인 일종의 바람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문학이 어루만져주고 포용해준다면 그 력사와 인물은 되살아나 생기와 활력을 되찾고 우리와의 동행을 함께 하면서 우리에게 무한한 깨우침을 줄것이다. 막언문학이 깊은 잠에 빠져있던 그의 고향 산동고밀동북향을 깨웠고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고향의 “귀신”들을 차례로 부활시켜 세상사람들과 만나게 하였다는 점은 우리에게 깊은 사색을 던져주고있다. 우리가 살아온 고장의 력사를 더 폭넓게 그리고 다각적으로 파헤치고 정리하는 작업은 물론 사학가들의 몫이지만 문학인들의 창조적로동이 안받침됐을 때 피와 살, 뼈와 신경이 살아있는 우리 력사의 완벽한 몸체로 재활된다는 도리를 시사하는 사례로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의 이주초기 개척, 수난, 항쟁의 력사는 연변지역에 광범위하게 산재해있는 유적지, 문물들이 문학인들의 창조적인 로동과 복합되였기에 비로소 비장한 인문풍경선으로의 승화를 이루면서 향후 우리 력사에 대한 고차원의 복원 가능성을 열어놓은것이다. 룡정, 해란강, 륙도하, 청산리, 봉오동, 어랑촌 민주촌 … , 아주 평범한 지명에 불과할뿐이다. 하지만 력사와 문학의 만남이라는 “합성법”으로 복합시켰기에 총탄이 빛발치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며 항쟁의 함성이 메아리치는 1920년대 우리 민족 격정의 현장으로 가슴이 뭉클하게 재현될수 있는것이다. 이것이 문학의 매력이다. 그래서 필자는 문학인들의 력사답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싶은것이다. 문학을 포함한 문화의 포용이 없이는 지역사회 력사 재활, 복원은 불가능하다는게 필자의 소견이다. 연길 국자가(局子街)  복원은 좋은 발상임이 분명하다. 연길의 원조인 국자가를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옛 거리의 복원을 통해 연길시민들에게는 물론 연길을 찾아온 세상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보여줘야 할 력사의 현장이니깐. 청나라말 간무국(招垦局)이 들어서면서 발달한 도시임에 유래한 지칭 ㅡ 국자가, 어떻게 하면 130여년전 청나라말의 문화가 짙은 옛 거리를 생생하게 부활시키겠는가? 우선은 국자가복원의 좌표에 대해 정확한 리념이 선행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로 량켠의 건물들에 자홍색, 재회색 벽돌색상을 입힌다하여 옛 거리가 부활되는게 아니다. 무대세트장이 아니라 인간 삶의 특이한 력사공간을 조성해야 한다는 시각에서 “복원”의 함의를 리해하여야 할것이다. 때문에 국자가 옛 거리의 부활은 력사와 문학(문화)의 만남으로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국자거리를 청나라말 사회풍토와 인정세태를 완벽하게 느낄수 있고 여러 민족의 조화로운 삶이 무르익는 복합적인 체험공간으로 만드는 일의 정답은 랭철한 력사의식과 심오한 문학정신의 융합으로 풀어야 할것이다. 력사를 동강 내지 말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더 부언한다면 우리 고장의 력사맥락에 대한 복원은 현대, 근대는 물론 고대에까지 거슬러올라갈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끔은 “옛날옛적”의 연변을 떠올려볼 때가 많다. 연변은 풍부한 력사문화가 루적 되여있는 고장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부동한 력사시기 유적지는 무려 천여곳에 이른다. 우리는 150년전 우리 조상들이 반도에서 건너올 때 이 지역이 청나라 봉금지역이였던것까지만 알고있을뿐 그 이전의 력사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것이 사실이다. 우리 력사의 부분적인 발췌가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의 재연에 초점을 맞췄을 때 “가장 훌륭한 목적으로 정돈되고 가장 강력한 힘과 가장 위대한 재능이 구사된 문학”과의 맞물림으로 력사복원의 의미가 살아나지 않을가 생각해본다. “민족의 력사와 문화를 고양하는 선봉장으로 게으름없이 앞장설것임을 표방”하고있는 윤동주연구회의 력사답사가 이 화제를 풀어갈수 있지 않을가 기대해본다. 2016-8-31
51    감동영탄곡 댓글:  조회:637  추천:2  2016-08-22
인간세태에서 목격할수 있는 화려하고 고상하고 감격적인 사건들의 탄생 은 그것을 배태시킨 그 어떤 요인의 결정적 힘에 있다. 모든 감동의 배후 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다른 감동이 숨겨져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에 숭엄해하고 열광하고 감동하지만 이같은 어마어 마한 상황을 도출시킨 베일속의 감동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한것 같다. 변화의 과정보다 결과에 편중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 한다. 3년 전, 필자는 중앙TV에서 원 중국인민지원군 참전로병과 원 한국군 참전로병들이 한국(조선) 휴전선부근의 어느 지원군묘소 앞에서 군례를 부 치고 뜨겁게 악수를 나누는 굉장히 이색적인 광경에 넋을 잃은적이 있다. ( 60년 전 포연이 자욱한 고지탈환전에서 서로간에 총대를 겨누었던 20 대 애된 젊은 나이의 “불구대천의 원쑤”들이 60년 후 백발의 80대 로인 이 되여 옛 작전지에서 재회하다!?) 이 가슴 뭉클한 인간사에 필자는 형언하기 힘든 감정소용돌이속에 휘말 리는 그런 느낌이였다. 어떻게 믿기 어려운 이런 드라마같은 스토리가 연 출될수 있을가? TV화면이 펼쳐낸 충격적인 감동에 빠져있다보니 당시 필자는 이같은 극적인 상황이 만들어진 배경같은 것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일전에 서울의 어느 커피숍에서 필자는 까맣게 잊을번했던 3년 전 영상프로의  그 감동배후에 숨겨져있는 주인공들이 다름아닌 필자와 가 깝게 사귀여온, 바로 눈앞의 친구분들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놀람을 금할수 없었다. 평범한 퇴직공무원, 교수, 출판인, 사업가들인 이 분들이 중국과 조선족 들에게 각별히 따뜻한 감정을 갖고 많은 미담을 뿌려온줄은 잘 알고있지만 이”지원군묘지사건”과 관련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던 터였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공식집계에 따르면 조선전쟁에서 지원군 사상자는 39만명, 그중 14만 지원군용사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고 이국의 외진 땅에 묻혀있다. 한국정부가 한국군 전사자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 부분적 지원군렬사들의 유해도 발견되면서 따로 휴전선의 림진강근처 언덕에 림시 안장되였었는데 돌보는 이도 없이 방치되여있다보니 잡초가 무성하고 나무 말뚝이 다 썩어있는 상황이였다. 세월의 흐름속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번 했던 지원군무명묘지가 세 간의 관심사로 떠오르며 운명을 새롭게 할수 있은데는 다름아닌 앞에서 언급한 필자친구분들의 남모르는 조용한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였다. “죽은 적은 적이 아니다”며 버려지다 시피한 지원군묘지를 정성껏 가꾸고 돌보 면서 지원군전사자 위령제를 정례화해온 이 분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설득 으로 한국정부는 2012년 가을에 초라한 나무막대묘비들을 전부 화강암 으로 교체함과 더불어 주차장과 진입로를 만들고 지원군묘역을 잘 정비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소행에 감동된 한국의 참전로병들도 지원군 묘역을 찾아와 술을 따르면서 “친구야, 나도 머지 않아 간다”고 말하며 위령제에 동참했다고 한다. 이 분들의 이같은 사연이 계기가 되면서 2013년 조선전쟁정전 60 주년이 되던 해 이곳에 안치되였던 360구의 지원군용사유해가 우리 나라에 송환되는 장엄한 거사로 이어지게 되였다. 첫 유해송환의전행사를 위해 휴전선 지원군전사자묘지로 안내받은 우리 나라 정부대표는 감격의 눈물을 지으며 고맙다는 말만 곱씹었으며 함께 동행한 우리나라와 한국의 6.25 참전로병들이 정중히 군례를 부치고 악수를 나누는, 본문 앞에서 기술한 그같은 21세기 감동의 현장이 탄생한 것이다. 이처럼 굉장한 감동을 만들어내고도 담담한 표정으로 조용히 차를 마시 며 담소하는 이들에게 필자는 머리가 숙어지지 않을수 없었다. 이들의 소행이 결코 우연한 순간적인 충동이 아니라 몸에 깊이 밴 그 어떤 반듯한 리념의 자연적인 표출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안겨오는 순간이였다. 조선족문화의 부흥에 힘을 보태고싶다는 마음 하나로 10여년간 지속 적으로 중국조선족 중소학생 글짓기경연과 같은 민족문화발전추진행사에 아무런 요구조건도 없이 백만원의 성금응 내놓은 분, 중국을 깊이 있게 한 국사회에 알리고싶다며 《중국예술정신》,《중국문화개론》, 《중국무협사》 등 “전혀 돈이 되지 않는” 중국관련책자만 골라 출판해온 분, 중국의 거족 적인 발전과 굴기를 진심으로 경탄해하며 중한친선사업을 몸으로 실천하는 분 … 바로 이런 분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감동군체이기에 지원군묘지의 감동신화가 탄생할수 있은 것이다. 중한수교가 이루어진지도 20여년, 하지만 한국사회에는 우리나라와 조선족을 부정적시각으로 대하고 펌하하는 한국인들이 꽤있다. 중국을 “거지떼들”이라고 맹비난을 해대는 철모르는 일부 정치인, 조선족을 무지 한 촌놈으로 추악화하는데 선봉으로 나서는 일부 방송인, 연변에서 열심히 뛰는 한국적선수를 중국과 연변에 빗대여 마구 조롱하는 머리 빈 일부 연예인 …, 이런 미숙한 “엘리트”들이 일종의 중한관계를 좀먹게 하는 “바이러스”로 성행하고있을 때 지원군묘지 감동신화를 만들어내고 “슈퍼 차이나”와 중국조선족을 긍정적으로 한국사회에 심고저 애쓰는 분들의 그 인격이 얼마나 돋보이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이런 인격자들을 친구로 사귀고있어 정말 자부감을 느낀다. 중한 관계에서 이들의 성숙된 리념과 올곧은 자세, 중국조선족사회에 대한 드팀 없는 사랑과 결백한 마음이 진한 감동으로 한국인들을 깨우치면서 한국 사회의 반듯한 주류성향으로 정착하리라는 믿음을 갖게 되는 리유이기도 하다. 2016년 8월 10일 연변일보 8월 17일자  
50    스모그와 “막말바이러스” 댓글:  조회:833  추천:1  2016-08-04
썩전에 TV를 통해 방독마스크를 착용한 북경시민들이 짙은 안개(스모그) 를 헤치며 출근길에 오르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핵폭발현장을 련상시키는 이같은 공포의 장면이 서울에서도 례외가 아닌것을 보면서 필자는 다시 한번 “지구촌”의 의미를 실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석탄의존도가 70%가량되는 우리 나라에서 자주 발생하는 중국발 스모그가 서풍 또는 북서풍계렬의 바람을 만나면 영락없이 편서풍지대에 위치한 한국으로 날아가 한국에서 배출된 오염물질과 혼합, 축적되여 한국형 스모그농도를 높이게 된다. 지구상의 생태변화가 더는 한개 나라에만 국한 되여있는 “페쇄형”이 아니라 세계가 함께 공유하고 치유할수 밖에 없는 “개방형”으로 되여있음을 시사하는 사례로 된다. 그런데 국제사회의 공조가 아닌 한 나라 자체의 독자적인 힘으로 치유할수 밖에 없는 “난치병”이 있으니 바로 한국 "막말바이러스”가 아닌가 한다. 일전에 사드배치론란과 관련된 TV토론에서 한국의 한 녀성정치인 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를 “11억 거지 떼들”이라고 악담하는 망동을 지켜 보면서 필자는 한국의 “막말 바이러스” 가 결국 올데까지 왔다는 생각을 접을수 없었다. 자국 국민을 개, 돼지라고 릉멸한 어느 한국고위공직자의 “막말”추태로 온 나라가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시끄럽더니 이번에는  한 정치인의 국제망언까지 가세하면서  한국 “막말 바이러스”는 해외급으로 업그레드하는 양상이다.   스모그나 황사와 달리 한국판 “막말바이러스”는 국제사회공조로 치유할수 있는 그같은 성격의 바이러스가 아니다. 일종의 문화로 뿌리를 내린 “막말”관행 독버섯, 그 해결대안은 자연이 아닌 인문에서 찾아야 한다.   사실 한국 특유의 갑을관계, 권위의식과 배타심리에서 생성한 “막말바이러스”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색적인 “풍속도”로 필자의 머리속에 자리 잡은지 꽤 된다. 여야간의 막말대결, 선거유세에서 공방설전, 청문회의 폭언세례, 남북간의 막말비난전을 필자는 먼산의 불구경하는 식으로 부담없이, 때로는 흥미를 겯들여 대해 왔었다. 그런데 한국의 막말관행이  중한수교의 흐름을 타면서 도를 넘어 조선족, 나아가 중국을 겨냥한 일종의 국제패턴 바이러스로 둔갑되고있는 사실에 이제 한국의 “막말바이러스”가 더는 “먼산의 불”이 아닌 지척의 위험임을 깨닫게 한다.   스모그와 황사는 “바람”이라는 자연현상에 의해 대기오염을 확산시키지만 한국의 “막말 바이러스”는 “다매체”라는 인위적인 현대캐리어를 타고 국내외에 병균을 류포시키고있다는게 오늘의 묵과할수 없는 현실로 되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국민의 언론자유는 국민의 알권리와 더불어  법적보장을 받는다. 하지만 “막말”은 제외이다. 모든 언론매체의 “률”로 엄격히 통제돼야 할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례외일수 없다.   올 6월 중순, 중국슈퍼리그 그라운드에서 연변팀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한국외적선수 윤모에 대한 한국 어느 연예인의 막말비난이 도를 넘어 연변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 릉멸로 이어지면서 중한 네티즌들의 강력한 반발이 터졌는데 그것이 사이버공간에서 그런대로 무마됐지만 중국을 “11억 거지떼들”이라고 한 막말은 한국주류매체의 생방송프로그램에서 쏟아낸 중량급 망언이라는 점이다.   솔직히 오늘날 한국 일부 방송매체들이 언론자유를 빙자하여 “막말바이러스”확산에 푸른등을 켜주고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한국 어느 매체의 TV드라마에서는 몇몇 조선족건달을 한국조폭의 하수인, 청부살인자로 각색하였는데 그 생긴 몰골이나 초라한 행색이 영락 없는 우거지꼴이고 이들에 대한 드라마의 공식적인 막말호칭은 “연변거지새끼”들이다. 어느 예능프로에서는 아예 연변조선족을 싸가지 없는 사기군, 넌덜머리나는 무지한 촌놈으로 추악화한 코너를 시리즈로 다루면서 조선족을 “막말바이러스” 실험대상으로 삼지 않았던가?   “거지새끼”, “거지떼” 한국의 공중언론매체를 거쳐 한국인들에게 류포되여있는 조선족과 중국에 대한 이 “막말”호칭의 저변에는 한국인의 말못할 콤플렉스가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반도라는 지리학적 특점과 36년 일제 식민지의 아픈 상흔, 그로부터 받은 패배감과 수치심, 세계 유일 분단국 국민의 불안감 등이 복합되여 형성된 한국인의 심리구조, 이런 특유 심리구조의 공격분출구가 조선족과 중국사회에 돌려진게 아닌가 싶다.   어느 민족에게나 빈곤에 허덕였던 력사가 있다. 사실 한국이 “한강기적” 을 이뤄내고 경제강국으로 발돋음한 력사는 그리 길지 않다. 상당히 긴 세월을 한국은 가난때문에 울었고 가난때문에 세계렬강들의 갖은 멸시와 수모를 받아왔다. 중국과 한국은 모두 일제식민지치하에서 “거지”같은 삶을 강요당했던 치욕의 력사를 갖고있다. 오늘 한국이 중국보다 먼저 빈곤에서 벗어나 현대화를 달성하였다하여 일부 철없는 정치인을 망라한 부분적인 한국인들이 중국을 “거지떼들”이라고 비난하고 같은 혈통의 연변조선족을 “연변거지새끼”라고 릉멸하는것은 자기의 력사를 망각한  유치한 행위가 아닐수 없다. 개구리가 됐다하여 올챙이 때를 망각하는 행태야말로 결국 자기를 부정하는 비극을 자초하는 것으로 밖에 안된다.   한국 “막말 바이러스”에 로출돼있는 재한조선족과 본토 조선족, “막말바이러스”가 주는 피해앞에서 무작정 인욕부중(忍辱负重)하며 당하지만 말고 조선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리성적이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스모그에 맞서는 그같은 자세로 “방독마스크”의 착용으로 한국의 “막말바이러스”로부터의 오염을 막아내고 우리의 유족한 삶을 창출, 수호해야 할것이다. 2016년 8월 2일 연변일보 2016-8-3
49    장안은 어디에 있느냐, 오로지 말발굽밑에 있어라 댓글:  조회:623  추천:0  2016-08-01
슈퍼리그 연변부덕팀 병신년 도전 관전 잡담   자욱한 슈퍼리그의 병신년 각축장은 연변팀의 가맹, 도전으로 심상치 않 은 열기가 서서히 고조되는 느낌이다.   올 3월초, 우리 나라 축구정상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연변구단, “금원경쟁”으로 잔뜩 부풀려진 덩치 큰 슈퍼강호들앞에 나타난 왜소한 민족자치주 막둥이 구단을 바라보는 세간의 눈길에는 당연히 동정과 련민이 반죽된 그같은 측은함이 묻어있었다. 이에 동조하여 일부 촐랑대는 언론은 “금원” 자대로 올 슈퍼리그 성적순위를 일찌감치 배정하고 강등팀을 가려내는 약삭빠름까지 연출하면서 연변팀을 아예 무시해버리는 경향까지 로골화했던 그 상황을 우리는 기억하고있다.   솔직히 천문학적 수자의 금원을 쏟아부어 최상의 전력을 다지는 “토호” 팀들을 지켜보는 연변사람들의 마음 또한 편안할리 없었다. 가난한 경제여건때문에 남들처럼 강대한 전력 보강을 하지 못해 주눅이 들고 기가 죽어 함몰할가봐 걱정하는 애틋한 마음, 그러면서도 갑급리그전 “리허설”을 거쳐 더한층 성숙된 자기 팀에 대한 충분한 믿음, 이같은 찬반의 우려와 기대를 안고 연변사람들은 사랑하는 자기의 구단과 더불어 병신년 도전의 장을 열었다. 그런 연변팀이 파죽지세로 8위권으로 랭킹하면서 슈퍼리그 현존 판도를 위협하며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있다. 연변팀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가?   궁(穷)하면 변(变)하고 변하면 통(通)할수 있다. 연변팀이 “금원경쟁”에서 절대 슈퍼리그 “토호”들의 경쟁상대가 될수 없음은 불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연변팀은 변할수밖에 없다. 바로 이같은 변화에 의해 우리만의 축구리념, 전술풍격, 정신투지로 짜여진 “투혼”이라는 연변팀의 비대칭전략과 “금원”이라는 “토호전차구단”의 맞대결이 그 시작부터 세간의 이목을 끌수밖에 없었다.   연변팀이 3월 중순에 치른 올시즌 첫껨의 원정경기와 최근에 잇달아 치른 13, 17, 19라운드의 홈장경기는 “투혼”비대칭전략으로 일궈낸 가장 전형적이고 설득력 있는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연변팀의 변(变)은 “투혼”이라는 비장한 카드에 의해 아래의 “3력”으로 통(通)하였다고 생각한다.   “투혼” 1: 집중력이다. 경기결과보다 경기내용을 강조해온 박태하감독의 일관된 주문은 연변팀 11명 선수가 강한 자신감을 동반한 집중력으로 경기내용을 주도하여 대방을 주눅이 들게 하고 패배로 몰아갈수 있도록 깨우쳐주는 청량제로 작용하였다고 생각한다.   “연변팀의 공방절주가 너무 빨라 상당히 힘에 부쳤다”(료녕팀 감독 마림) , “연변팀은 관상성 있는 패싱축구를 보여줬다”(석가장팀 감독 야센), 연변팀에 패배한 두개 팀 감독의 이같은 평가는 연변팀의 경기 집중력을 가장 진솔하게 수긍한 반증으로 된다. 감독이 늘 강조한 경기과정을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집중력이 굉장히 고무적인 경기내용의 창출을 안받침해주었다는 지적이다.   “투혼” 2: 정신력이다. 올시즌에서 우리보다 전력이 한수 우인 상대 팀에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구사할수 있었던 연변팀의 비결은 역시 뛰여난 정신력에 의한 선수들의 지칠줄 모르는 투지와 놀라운 자신감이 일궈낸 압박축구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적수와의 겨룸에서 대칭우세가 없다고 판단한후 정신력을 극대화한 투혼으로 대방을 제패한 사례로 광주부력팀전을 들수 있다.   “우리는 경기를 리드하고도 패배했다. 결국 오늘은 우리의 날이 아니였다”고 맥빠진 변명을 한 스토이코비치감독의 모습은 13년전 한일 월드컵때 한국팀에 패배한 유럽강호 에스빠냐팀 감독이 “오늘 밤은 우리에게 끔찍한 밤이다. 우리는 운이 없었다”고 기죽은 푸념을 하던 광경과 너무나 흡사하다. 결국 “정신력축구”앞에서 “스타축구”가 얼마나 무력한가를 시사한 좋은 사례가 된다고 생각한다.   “투혼” 3: 결속력이다. 집단결속력으로 역경과 압력을 무력화시키고 “금원”으로 부풀어진 스타중심의 대방 플레이에 제동을 걸면서 팀의 경기력을 격상시키기 위한 연변팀의 노력이 돋보이고있다. 몇몇 스타가 아닌 팀 전체가 감독의 전술의도를 제대로 소화할수 있고 팀 전체의 집단플레이로 전환시킬수 있을 때 승리는 거머쥔거나 다름없다.   연변팀 대 강소소녕팀전에서 집단결속력으로 다져진 서민구단 연변팀 선수들앞에서 “아시아 력대 최고이적료”의 몸값을 자랑하는 강소소녕팀의 브라질스타 알렉스 테세이라의 스타역할이 어떻게 무력화되는가를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경기 패배후 “외적선수들을 포함해 여러 주전선수들의 결장”을 패배의 원인으로 돌리는 강소팀 최룡수감독의 변명은 윤빛가람, 하태균 등 주전선수가 결장한 연변팀앞에서 얼마나 슴슴하고 허우룩한지를 실감있게 보여주었다고 느낀다. 강적을 이겨낸자는 우선 자기 자신을 이겨낸자이다. “신뢰가 바탕이 된 팀”, 이는 지난해 갑급리그시즌에서 검증된 박태하 축구철학의 핵심포인트로서 올 슈퍼리그시즌에서 그 맥락을 계속 이어나가고있다. 올해초 북경국안팀의 감독은 예리한 혜안으로 “연변팀은 감독의 전술체계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팀”이라고 절찬한적이 있다. 이 평가는 상당히 중요한 내용을 담고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오늘날 “금원”경쟁 상황에서 돈만 있으면 세계 어느 나라의 어떠한 명감독이라도 영입해올수도 있겠지만 한 명감독의 전술체계를 선수들이 완벽하게 소화하고 구사할수 있게 하는 만능시스템 영입이란 있을수 없는 법, 이는 오늘날 모든 명감독들이 손수 풀어야 할 숙제이다. 이 면에서 박태하감독은 앞서나가고있다. 자신만의 “신뢰”에 토대한 특이한 “소통”방식으로 감독과 구락부, 코치, 선수, 축구팬들간의 환상적인 찰떡궁합을 이뤄내고 즐기면서 우선은 연변팀 자신을 이겨내기에 최선을 다하는데 게으르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단단하려면 부드러운것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신뢰”라는 이 부드러움은 구락부의 확 바뀐 봉사, 사령탑의 인성화 관리, 외적선수와 토종선수들의 조화로 이어지면서 마침내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난제를 해결할수 있었으며 연변팀과 “제12인자”—사랑스런 연변축구팬군단과의 도킹으로 결성된 대형집단플레이의 완벽한 발휘를 위한 유력한 담보로 정착하게 된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담보가 “강적을 이겨내기 위한” 감독 전술체계의 완벽한 소화를 뒤받침해준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이것이 북경팀 감독과 다른 슈퍼팀들이 연변팀을 주목하는 부분이 아닐가 생각한다.   박태하감독은 연변이란 이 특수한 축구풍토의 천시, 지리, 인화 생태환경에서만 성장가능한 “한류스타”라 할수 있다. 박태하현상의 영향으로 홍명보, 최룡수 등 한국감독들이 영입되여 슈퍼리그 강호팀의 사령탑을 잡는 사태가 줄줄이 연출되고있지만 필자는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있다. 한국감독도 한국감독나름이고 연변은 세상에 하나뿐이니깐.   자기 자신을 부단히 이겨내고있는 연변팀이기에 그 어떤 강적도 겁날것 없을것이고 따라서 박태하감독의 그 어떤 전술체계도 완벽하게 구사되면서 모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장거를 계속 이뤄낼것이라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손자병법에 있는 말이다-날랠 때는 바람 같고 천천히 진군할 때는 수풀 같고 공격할 때는 성화 같고 멈출 때는 산과 같다. 연변팀이 지향할만한 목표가 될수 있지 않을가?   연변팀 병신년 도전은 계속되고있다. 이 특수구단은 빈곤하지만 대신 연변 나아가서 국내외에 산재해있는 막강한 조선족축구팬들의 끔찍한 사랑을 뒤심으로 하고있다. 그래서 자신의 저력을 굳게 믿으면서 달리는 말에 계속 박차를 가할것이다. 연변팀의 승리는 “오로지 말발굽밑에” 있으니깐. 연변일보 2016-7-29
48    연변표정 가꾸기론 댓글:  조회:922  추천:1  2016-06-23
미모가 뛰여나지만 경망스럽고 오만무례하여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인간추태를 우리는 일상에서 많이 본다. 부모가 준 선천적인 아름다움을 자신의 후천적인 노력으로 열심히 잘 가꾸어나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텐데 너무나 아쉽다. 절승경개를 자랑하는 연변의 천연적인 자연매력도 연변인들의 후천적인 인문풍토와 잘 어울렸을 때 연변의 표정은 찬란하게 빛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아래의 코믹한 진풍경은 일전에 필자가 야외에서 겪었던 연변 인간상이다. 그날따라 모아산 주차장은 하산뻐스를 기다리는 등산객과 관광객들로 일대혼잡을 이루고있었다. 그런데 x선 뻐스는 웬 영문인지 떠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있는다. “쇼꿍궁(小公共)” 뻐스형체를 보아 언녕 페차수준의 헐망한 차였지만(연길시안에는 이런 “쇼꿍궁”뻐스가 적지 않다.) 승객들의 관심사는 뻐스가 아니라 운전석에서 코를 골며 자는 운전기사의 행태였다. 헐망한 운전석 차창밖으로 불결한 두발을 내뻗치고 잠에 빠졌던 운전기사는 지나가던 자동차의 경적소리에 놀라 깨여나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 소란스런 마당에 차분하게 잠을 청할수 있는 운전기사의 인내심이 놀랍다. 문제의 “코미디 동영상”은 이때부터였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뻐스안은 잠간사이에 탑승객으로 발을 디딜 틈도 없는데 한 조선족아줌마가 운전석뒤에 붙은 철궤를 용케 발견하고 거기에 걸터앉는다. 바로 이때 한족운전기사의 추상같은 불호령이 떨어진다. “당장 거기서 일어나지 못할가? 어디에 함부로 앉아!?” 깜짝 놀란 조선족아줌마는 황급히 일어서면서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변명한다. “난 …앉아도 되는줄 알고서…” 그런데 운전기사의 호통은 계속된다. “제기랄, 보면 몰라!” 그 철궤는 누가 봐도 공구상자따위에 불과하다. 차안의 승객들은 운전기사의 험상궂은 표정과 거칠은 언행을 어이없이 지켜볼뿐이다. 다음 정류소에서 또 승객 몇명이 오르면서 이번에는 점잖은 스타일의 한족아줌마가 그 “문제”의 철궤우에 털썩 주저앉는다. “당신, 거기서 당장 일어나!” 기다렸다는듯이 운전기사의 호통이 또 떨어진다. 화들짝 놀라며 철궤에서 물러난 한족아줌마는 게면쩍게 웃으며 “아, 앉으면 안되는 자리였구만. 어떤 차는 앉게 하더마는 …” 하고 중얼거리는데 운전기사의 면박이 계속 이어진다. “앉기는 어데 앉아, 자각이 없는 사람 같으니!” 그런데 한족아줌마의 낯색이 례사롭지 않다싶더니 운전기사쪽으로 다가서며 한마디 따끔하게 내쏜다. “아니, 그럼 그렇다고 조용히 말할게지 어디에 대고 고함치며 란리야!” (옳지, 바로 그거다!) 필자를 포함한 차안의 승객들의 한결같은 반응이였다. 그 철궤는 여차여차한것이니 앉지 말아달라고 조용히 귀뜀해주면 끝날 일이였는데 운전기사의 몰상식으로 일이 걷잡을수 없이 터진것이다. 한족아줌마는 아예 작정하고 운전기사 곁에까지 접근해가더니 거칠게 몰아붙인다. “수양이 없이 너 어디에 대고 X행패야? 저기에 앉으면 안된다고 써라도 놨어?” 이건 완전히 역전 드라마였다. 기세등등하던 운전기사가 이번에는 완전히 수세에 몰려 전전긍긍하는 꼴이 돼버렸다. 그쯤하고 함구했더면 한족아줌마는 정의의 “녀성스타맨”으로 우러러 보였을수도 있었다. 하지만 운전기사에 대한 한족아줌마의 카랑카랑한 욕설사례가 “마라톤”으로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아줌마도 운전기사와 별반 다르지 않게 구겨지면서 승객들의 눈살을 찌프리게 하였다. 운전기사와 아줌마는 누가 옳고 그름이 아닌 똑같은 꼴로 각인되고말았다. 아름다운 모아산의 초여름 황홀경에 매료되여 즐거웠던 기분은 공공뻐스안 막장드라마로 싹 잡치고말았다. 페차수준의 뻐스도 꼴불견이지만 그 차안에서 벌어진 연변인들의 거칠은 마찰음 또한 페차수준에 맞먹는 꼴불견이 아니고 무엇이랴! 연변의 선천적인 자연생태의 경치와는 너무나 색상이 틀린 후천적인 인간행태의 스캔들이 연변의 표정을 어둡게 하고있는것이다. 모아산 행선지에서 목격한 “코미디”가 우연하게 발생한 “꼴불견”이 아니라는것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있다. 연변의 매력적인 자연경관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못하는 인간삶의 치부(耻部),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부 연변인들에 의해 외부인들앞에 로출된 아름다운 연변의 표정은 찌그러져가고있다. 후천적인 몰상식, 몰렴치가 선천적인 아름다운 표정에 금이 가게 하고있는것이다. 국내외에서 연변을 찾는 관광객과 오래동안 해외에서 로무자로 근무하다가 귀국하는 연변인들에게 연변표정의 첫 검색은 하늘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릇 하늘길을 타고 연변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하늘에서 본 연변의 엇갈린 명암이 서서히 눈에 안겨온다. 려객기가 연변경내에 들어서면서 록수청산의 아름다운 자연 생태 피복이 펼쳐지면서 탑승객들이 한결같이 감탄사를 련발하는가싶더니 연길공항으로 기수를 꺾으면서 점차 도시의 란개발로 처참히 훼손된 삼림과 록지의 헐벗은 모습이 하나, 둘 적라라하게 눈을 자극하며 승객들의 량미간을 찌프리게 한다. 활주로로 착륙하기전 시안의 고층건물 옥상들에 추접스럽게 방치된 건축물쓰레기와 생활쓰레기들이 전국 100강현도시 이미지를 흐리는 치부전시장으로 조명받고있다. 땅우에서 본 도시와 사뭇 틀린 광경에 얼굴이 붉어질수밖에 없다. 착륙한 후 공항의 경직된 통관절차와 서비스수준이 해외공항에서 받았던 좋은 인상과 대조적으로 로출되면서 수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해외 로무자들은 실의를 느낀다. 공공뻐스, 택시, 자가용 승용차와 더불어 운전기사, 승객, 교통경찰 또한 연변표정의 풍향계, 전도사로 통한다. 차의 안팎이 불결하기 짝이 없는 “쑈꿍궁”뻐스, 기분 잡죄는 불편한 냄새로 진동하는 택시, “인간위주”가 아니라 “차량위주”로 설계된 교통신호등 교체시스템과 함께 란폭한 뻐스운전기사, 비위생적인 택시기사, 몰상식한 승객들이 찌그러진 연변표정을 완벽하게 각색하고있는것이다. 연변표정은 연변사람들이 가꾸어야 한다. 연변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업종, 직종의 매 한 사람이 연변표정미용사의 자세를 갖추었을 때 연변은 “선천적인 아름다움+후천적인 인문문화”의 완벽한 맞물림으로 연변의 매력지수를 한껏 부풀릴것이고 세상은 연변을 정중하게 대할것이다. 연변표정 가꾸기, 이제부터다! 연변일보 2016-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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