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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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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장백산> 2018.6 루계222 댓글:  조회:474  추천:0  2019-07-16
장백산 총222호 2018년6호   권두칼럼 림원춘        작가는 탁상머리를따나야한다   기획조명-작가와 작품 주향숙        당신 (시, 외10수)  주향숙        가슴에 무한한 바람을 안고서 (작가노트) 주향숙        나는 너의 밖에서 (수필, 외3편) 우상렬        아, 그 향긋함…(작품평) 한영남        ‘그날처럼’(작가평)   기획련재 김  혁          한락연평전 (장편인물평전 련재 끝)   박초란소설코너 박초란       이기다의 선물(단편소설) 김홍월       정주와떠돔을소멸시키는여섯개의편린들(소설평)   소설광장 조  원         좌망, 빛이 기다리는 곳으로(단편소설) 조영욱       주체할 수 있는 욕망(소설평)   계렬수필 허룡석       녹쓴철길우에서(수필) 허룡석      새빨간거짓말과새하얀거짓말(수필) 허룡석      아픔이진주를낳는다(수필) 최삼룡       고향에 대한 상실감과 진주로 거듭나기(수필)       시인 시전  남철심    고요한 밤(시, 외5수) 손경란    고통과 성찰이드러나는남철심시인의시적세계(시평)   창작마당 김경희         옥상에 걸린하늘(단편소설) 엄정자         같은하늘아래다른땅(수필) 김경화         길목에서서(수필) 김명숙         언어의에너지(수필) 박장길         어둠의 혼 (시, 외2수) 류은종         빨래줄(시, 외1수) 김재연         가야금(시, 외1수) 리금화         초가삼간(시, 외1수)   8090문학코너  현청화         이모(단편소설) 리은실         나는 필요하다, 고로 존재한다?(수필) 리  미           품는 화분(수필) 김  연           곧 오색 음악이 흐를 것이다(시, 외2수)   기행문 류재순         '해가지지않는나라’ 옛훈장이빛나는-영국을 가다(기행문)   중국문학       마   분          회성인물淮城人物5인전 (단편소설 / 김견 옮김)     장편소설련재 김혁            무성시대(장편소설 련재6) 구호준        여백(장편소설 련재4)
66    마분马犇: 회성인물淮城人物 5인전(단편소설) 댓글:  조회:107  추천:0  2019-07-16
회성인물淮城人物 5인전 마분       표구사裱画师  서씨 회성은 자고로 수많은 문인 묵객들을 배출한 고장인 만큼 표구소裱画所가 꽤 많았다. 표구 하면 흔히들 수묵화를 떠올리지만 서예작품 표구 또한 그 범주에 포함된다.  표구소들에서는 본토 작품은 물론 타지역 작품과 여타 수선이 필요한 소장품들을 두루 취급하다 보니 표구시장은 꽤 흥성한 편이였다. 가끔 가다 후계자가 없는 고로 문을 닫게 되거나 또는 기계표구 기술을 인입하면서 대가 끊기는 가게들도 더러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남들이야 어찌하든 오로지 수공예 기술만을 고집하는 표구소들도 여럿 있었으니 회성 남문대가 동쪽 골목에 위치한 서씨네 표구소 ‘념로재念芦斋’가 그 대표적인 일례였다. 수십대째 대물려내려온 ‘념로재’는 어느 한 조상대에 이르러 어쩌다 변수민边寿民과 인연이 닿게 되였는데 그 작품들을 표구해주고 친분을 쌓으면서 상호 교감하고 가르침도 받고 한 덕에 그 조상할아버지는 표구는 물론 그림과 전각篆刻 기술 등에 두루 능한 기술자로 린근에 이름깨나 알려졌는데 지금 와서는 서씨가 그 기술들을 고스란히 전수받은 유일한 후손인 셈이였다.  변수민은 시와 서화에 두루 능해 정판교郑板桥, 금농金农 등과 비견되는 인물로 갈대와 기러기 그리기를 각별히 좋아해 일명 ‘변로연边芦雁’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한때 회성 천비궁天妃宫 린근 갈대밭 언덕에 기거해 살면서 위간거사苇间居士라는 호를 얻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서씨네 조상은 변수민과의 인연을 기리는 의미에서 표구소 이름을 ‘념로재’라고 지었던 것이다.  옛말에 ‘서화작품 3할에 표구가 7할’이라고 했을 정도로 서화작품에 있어서 표구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표구는 그 절차가 아주 복잡다단하고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표구사의 종합적 자질에 대한 요구 또한 상당히 엄격한 작업이다. 서씨네 표구소에는 세가지 철칙이 있었는데 하나는 그림을 분실하지 말 것, 둘은 모조품에 손 대지 말 것, 셋은 공들인 만큼 수금하되 명인의 작품이라 해서 돈을 많이 요구하지 말라였다. 일부 그림을 잘 모르거나 또는 멋모르고 조상으로부터 진귀한 그림을 물려받은 경우라면 가장 사기당하기 쉬운 사람들이였다. 한번은 남대문 서쪽 변두리에 사는 사람이 그림 한점 들고 표구하러 찾아왔는데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고 난 서씨는 아무 내색 않고 그림 임자를 다시 한번 훑어보고 나서 가격을 말해주고 언제 쯤 찾으러 오라 하고는 손님을 보냈다. 그 그림은 사실 서위徐渭의 유작이였다. 어려서부터 사의写意화법을 제법 익혔고 특히 화초 그리기에 능한 서씨였다. 그리고 모사临摹실력도 상당해서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 진위를 구분해내기 어려웠다. 그러나 서씨는 그 그림을 앞에 두고 이왕보다 좀 오랜 시간을 두고 감상했을 뿐 감상을 마치고 나서는 례사 그림을 표구할 때처럼 차근차근 작업에 림했으며 표구를 마친 다음에는 후일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권축卷轴 부분에 자그마한 날인을 남겼다. 그리고 약속날자가 되여 그림 임자가 돈을 지불하고 그림을 찾아갔는데 며칠 안 지나서 그 일은 곧 표구업계의 우스개로, 멍청한 표구사의 전형사례로 ‘회자’되였다.  표구에는 원표구原裱와 게표구揭裱가 있는데 원표구는 표구한 적 없는 그림을 처음 표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고 게표구는 이미 표구했던 그림을 다시 표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게표구는 아주 까다로운 작업이였던 만큼 웬만해서는 아무도 주문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반면 일부 기술이 뛰여난 악당들로 말하자면 게표구는 모조품을 얻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선지宣纸는 여러층으로 분리해낼 수 있어서 표구사가 마음만 먹으면 그림 한장을 여러층으로 분리해 여러장으로 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복제해낸 그림은 색채가 원작에 비해 연해지기 마련인데 그러면 거기에 ‘보완’작업을 한 연후에 다시 낡아보이게 하는 구제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림 한장을 감쪽같이 여러장으로 복제해서는 암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다.  회성에는 소장가들도 꽤 있었는데 오래된 그림들에 습기가 차거나 좀먹거나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그것도 장마철이면 더 심해지기 마련. 해서 장마철만 되면 회성에서 게표구 작업이 필요한 거의 모든 그림들이 ‘념로재’에 맡겨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렇게 한해 여름 동안 서씨 손을 거쳐야 하는 게표구 작업건만 해도 천건 남짓했지만 서씨가 실수로 그림을 훼손했다거나 모조품을 만들어 안속을 챙긴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하기에 설령 고개지顾恺之나 전자건展子虔과 같은 대가들의 유작이라 하더라도 일단 ‘념로재’에 맡겨놓았다 하면 아무 걱정 안해도 되였던 것이다.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자녀들 모두 해외로 이주해간 바람에 더 이상 가업을 이어갈 후계자가 없어서 년로한 서씨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였다.  그런데 그렇게 별탈 없이 조용히 여생을 마무리하는구나 싶었는데 그것마저도 여의치 못했다.  개혁개방 이후, 회성에도 남방에 가서 장사를 시작한 이들이 생겨나면서 이들 중 서화장사가 돈 번다는 것을 알고 모조품, 짝퉁 시장에 눈독을 들인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연 고향마을의 표구사 서씨를 떠올리게 되였고 서씨가 표구는 물론 회화 실력도 뛰여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지라 불법통로로 원작을 얻어다가 서씨한테 게표구를 시켜 복제품을 만들거나 또는 명화를 모사하게 하거나 혹은 아예 명화를 날로 그려내게 했다. 그 같은 요구에 순순히 응할 서씨가 아니였지만 놈들이 자식들을 앞세워 협박하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해외에 있는 자식들이 무탈하길 바란다면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을걸유.” 그렇게 서씨가 놈들의 요구 대로 위조품을 만들어주면 놈들은 그것들을 남방에 가져다 팔아넘겼는데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몇참 못 가 그 일은 들통나고 말았고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렇게 고상한 척 점잖을 빼더니 늘그막에 들어 돈에 눈이 멀었다고 서씨를 비난했다.  그러던 얼마 후, 서씨가 크게 한번 앓더니 돌연 세상을 떴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위조그림 장사를 해먹던 일당들이 일거에 체포되면서 회성 전체가 떠들썩했다.  사람들 모두 영문을 몰라 쉬쉬하는 중, 경찰에서 지방신문을 통해 사건 경위를 공개했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서씨가 죽기 전에 공안국에 편지 한통 부쳤는데 편지에서 서씨는 전반 사건의 경과를 진술하고 나서 자기 손으로 위조한 그림들의 족자 겹층 안쪽에 “핍박에 못 이겨 그린 위조품임”이라는 글귀를 남겼다는 설명과 함께 그 몇몇 악당들의 용모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초상화까지 그려두었다는 것이였다.  그렇게 ‘념로재’는 회성의 관광명소로, 수많은 관광객들과 회성 사람들이 오며 가며 종종 머물다 가는 유적지로 되였다.    오삼전吴三钱 중국문학사에서 조설근을 빼놓을 수 없듯 오국통吴鞠通이라 하면 중의학계에서 빠뜨릴 수 없는 대표적 인물이다. 오씨가 경성 의학계에서 명망 높은 의원이라는 소문이 회성까지 전해지자 수많은 회성 사람들이 중의공부를 하는 대오에 합류했다. 그렇게 아침엔 유학경전을, 저녁엔 의학경전을 읽으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유년시절부터 의학공부를 중시하는 풍기가 형성되다 보니 회성에는 대대손손 명의가 나와 오씨의 리론과 의술을 전승하였는데 력사에서는 이들을 ‘산양의학파山阳医派’라고 부른다. 오삼전은 오국통의 후손으로 그는 평생 경성은 고사하고 회성 성문 밖 한번 나가보지 못한 채 평생을 환자들을 위해 바친 사람이였다. 진료소를 운영하려면 우선 이름이 있어야 하는데 조상들이 운영하던 ‘문심당问心堂’은 일찍 전란시기에 파괴되였던 터, 그냥 문심당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라고 권유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삼전은 완연히 거절했다. 원체 겸손한 위인이였던 터, 행여 자기 수준 미달로 선인들 얼굴에 먹칠하는 일이라도 생길가 저어되였던 것. 해서 고민 끝에 결국 ‘양심당养心堂’이라 이름하기로 하였다.  겨우 한글자만 바꿨다지만 그 의지는 분명해서 말하자면 최선을 다해 자신과 환자들의 마음 그리고 조상들로부터 전수받은 의술, 의덕을 잘 가꾸어가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름이였던 것이다. 식이료법에 능한 오삼전은 어떤 한가지 식재료를 그대로 약으로 쓰거나 또는 식재료에 중약을 배합해 처방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침 치료법으로 대부분 의사들이 설탕과 배를 처방하지만 오삼전의 처방은 독특했다. 말하자면 날계란 한알을 사발에 까넣고 거기에 얼음사탕을 살짝 뿌린 뒤 휘젓지 말고 그대로 솥에 넣어 응고될 때까지 쪄서 복용한다. 그렇게 두세번만 복용하면 기침은 가뭇없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녀인들의 산후조리에 관해서도 그만의 처방이 있었는데 소량의 흑설탕을 탄 물에 본고장 특색음식 ‘참깨기름꽈배기’를 곁들여먹는 게 그 처방이였다. 꽈배기를 만드는 점포는 많지만 그는 하하河下 북쪽 끄트머리 가게 아니면 읍내 중심가에 위치한 진회루 1층에 있는 가게 혹은 남문부학 옆에 위치한 가게 등 세집에서 만든 꽈배기를 추천했다. 구전으로 전해진 처방이라지만 요즘도 회성에 가면 이 처방으로 산후조리를 하는 녀인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여름철이면 강물이 범람하고 읍내 곳곳에 건물이 침수되기 마련이요, 간신히 홍수를 지나보내고 나면 또 역병이 들이닥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한번은 숱한 민가들이 물에 잠긴 데다 전염병까지 번져서 동서남북 성문들 할 것 없이 매일같이 송장이 들려나가고 있었다. 그 무렵, 오씨는 마침 그 옛날 오국통이 경성에 있을 때에도 전염병이 크게 번져 경성에 있는 회안회관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냈다는 기록을 읽고 있었다.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 오삼전은 그 자리로 의약상자를 둘러메고 제자들을 이끌고 나가 서에서 남으로, 동에서 북으로 도성을 전전하며 수많은 위급환자들을 돌보느라 수일째 밤잠 한번 제대로 자보지 못했고 신발이 해지고 발이 까져 발톱 몇개가 떨어져나가기도 했다.  부득불 오씨는 제자들에게 들려 ‘양심당’으로 돌아가게 되였고 제자들이 그를 대신해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러던 하루는 제자들이 아무리 약을 쓰고 지극정성으로 돌봐도 효험을 보지 못하고 간들간들 숨만 붙어있는 환자가 있었다. 맥을 버린 환자 가족에서는 이제 후사를 치를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 환자 가족은 과거 오씨네가 신세진 적이 있는 집안으로 이는 제자들 모두 ‘양심당’에 입문할 때 스승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는지라 제자들은 환자에게 태만할 수도 없었거니와 또 ‘되든 안되든 한번 시도는 해보자’는 생각으로 환자를 일단 ‘양심당’으로 모시기로 했다.  이윽고 절룩거리며 나타난 오삼전이 극도로 지친 두눈을 간신히 비벼 뜨고 환자를 살피다가 다시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깊은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마침내 떨리는 손으로 약처방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제자가 약을 지으려고 받아보니 그것은 전钱 단위까지 소상하게 적혀있는 처방이였다. 자고로 의학계에는 역병 기간에는 어떤 사람에 한해서도 돈을 받지 않는다는 불문률이 있었다. 환자 가족들이 그 앞에 무릎 꿇고 사의를 표하자 오삼전은 사력을 다해 몸을 일으켜 그만 돌아가보라고 손짓으로 배웅하고는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안채로 들어갔다.  사흘이 지나자 그 환자는 언제 그랬던가 싶게 말끔히 나아 밭에 나가 일할 수 있었고 고마운 마음에 오삼전의 고명한 의술을 칭송하는 내용의 편액을 만들어 들고 온 가족과 함께 ‘양심당’을 찾아왔다. 구경을 나왔던 동네사람들도 집에서 북이며 꽹과리, 새납까지 들고 나와 편액 증정식에 가세하였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양심당’은 대문이 굳게 닫혀있고 가만히 귀를 강구고 들어보니 뒤울안에서 아녀자들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에 황급히 문을 두드리니 제자 한명이 문틈으로 머리를 내민 채 좀 조용히 하라는 것이였다. 알고 보니 오삼전은 그 며칠 동안 너무 무리했던 탓에 과로로 사망했다는 것이였다. 그에 편액을 들고 온 사람들이며 이웃들 모두 엉엉 울면서 편액이라도 관과 함께 묻어달라고 그리고 거기 모인 사람들 모두 오삼전의 령전을 지키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에 제자들이 편액은 받을 수 없다고 한사코 마다했고 이웃사람들한테는 그 마음 충분히 고맙지만 제발 그만 돌아들 가시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였다. 편액을 들고 온 사람들이 아무래도 납득할 수 없다는 눈치였고 그렇게 한창 실랑이가 벌어질 무렵 한 제자가 죽다 살아난 그 환자 귀가에 뭐라고 속삭이자 그 사내는 군말 없이 일행을 이끌고 편액을 둘러메고 돌아가는 것이였다. 일행이 집으로 돌아와 그 제자가 일러주던 대로 대문 안쪽 벽돌 한장을 들고 보니 그 밑에서 편지 한장이 나왔다. 편지에는 “지금 쯤이면 쾌차했으리라 믿네만 내게 고마워할 건 없네. 내 처방을 잘못 쓰는 바람에 약재 한가지가 3전이나 더 들어갔지 뭔가. 비록 큰 지장은 없었겠지만 처방에 차질이 생긴 건 틀림없는 일인즉 자네 병환은 내가 치료한 거라 할 수 없으니 내 심심히 사과하는 바네.” 편지에 피가 묻어있는 것으로 보아 제자의 말 대로 그것은 오삼전이 숨을 거두기 전, 잠시 정신이 맑아진 틈에 쓴 편지였다.  그 소문은 곧 회성 전체에 퍼져나갔고 오삼전이라는 호칭도 사실 그 때 생겨난 것이였다. 그로부터 오삼전은 회성 모든 의원들의 보기로 되였으며 회성 사람들 모두 몸이 고단하거나 병환에 시달릴 때면 자연스레 그 이름을 떠올리곤 했다.    대필자 빙冯씨  대필은 꽤 오래된 업종으로 우전국 주변에 가면 적어도 한두명, 많으면 일여덟명씩 대필자들이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있는 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필은 준비물도 크게 필요 없어서 책걸상과 종이, 필기구만 있으면 그만이다. 그나마 격식을 좀 지킨다 하는 이들은 전용편지지에 붓과 먹을 마련해두지만 보통 보면 필기장 따위를 북 찢어내거나 학교, 기업 등 기관단체의 사무용지에 만년필로 쓰는 이들이 상당수다.  편지를 대필해주는 일이 대부분이고 간혹 가다 소송장이라든가 유서, 전기, 가족사 따위를 대필해주는 경우도 있다. 편지 대필은 대개 손님이 대체적인 내용을 구술하면 그걸 받아 써주면 된다. 간혹 일자무식인 사람들이 편지를 들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손님이 편지 내용을 충분히 알아듣게끔 차분히 읽어주고 나서 답장할 내용을 구술하기를 기다려 답장을 써주면 그만이다.   빙씨가 대필자 노릇을 시작한 게 지난 세기 80년대 초반이였으니 린근에선 아마 가장 오래된 대필자 중 한명일 것이다. 그러나 빙씨가 대필 업종을 선택한 것은 결코 공장에서 퇴직한 원인만은 아니였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라지만 빙씨는 자기 직업원칙을 엄수했다. 어떤 내용의 편지든 대필을 마감해서 봉투에 넣는 즉시로 그 내용을 일절 되새기지 않았고 대필 과정에서는 손님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극력 정확하게 전달하도록 애썼으며 게다가 요구하는 대필 비용 또한 시종여일 변동이 없었으므로 자연 그를 찾는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여타 대필자들보다 좀 다른 점이라면 빙씨는 대만에 부치는 편지를 대필할 때면 사전에 그 손님과 “제가 봉투 뒤면에 제 가게 로고 하나 그려넣게 해주시오.”라고 청을 넣곤 하는 것이였다. 그러면 손님들 대부분은 군말 없이 그 청을 들어주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로고 하나가 아니라 봉투 앞뒤면 가득 로고를 그려넣는다 하더라도 우편료금이 더 붙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였으니 말이다.  빙씨의 대필소所 로고는 순무였는데 순무 아래쪽에는 ‘순무·빙’이라는 싸인이 있었다. 보다 쓰기 간편하고 식별하기 쉽게 하기 위해 빙씨는 그 로고 문양으로 된 전용도장을 새겨두었다.  해방 전, 회성에는 남경에 가서 국민당에 입당한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장개석이 패전하여 대만으로 건너갈 무렵 수많은 회성 출신 국민당 장교들이 가족, 친지들을 데려가기 위해 고향에 다녀갔었다. 그런 연유로 회성 사람들이 써보내는 편지들 중 상당수는 대만으로 부치는 편지들이였다.  빙씨는 아직도 여섯살 나던 그 해 가을의 정경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날은 국민당 장교인 외삼촌이 간만에 왔다가 안채에서 아버지랑 대작하고 있었다. 마당에서 놀던 빙씨와 그보다 네살 터울인 형이 호기심에 안채 쪽을 기웃거리는 중, 외삼촌이 손짓으로 형을 불렀고 그렇게 외삼촌한테로 쫑드르 달려가던 형과 글쎄 50년 남짓 생리별하게 될 줄이야 꿈엔들 알았으랴. 지난 세기 80~90년대, 해협 량안에는 리산가족 찾기 붐도 불고 했지만 그러나 고향의 길거리며 골목들 이름만도 벌써 수차 바뀌였으니 설령 형이 옛날 집주소로 편지를 했다 하더라도 진작에 반송되였을 것이였고 빙씨로서는 형의 주소를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형제간 모두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라면 어쩜 순무짠지 밖에 없을 것이였다. 어린 시절 집에는 순무짠지를 담그는 꽤 큰 작업장이 있었는데 골목길 저쪽 끝에 들어서면 벌써 순무짠지의 특유의 향기가 물씬 풍겨오곤 했던 것이다.  때는 다들 생활이 궁핍하던 때였으므로 순무짠지는 거의 모든 가정의 주메뉴였고 좀 어렵긴 했지만 락관적인 회성 사람들은 좀더 ‘정제된’ 순무짠지를 만들기 위해 여러 모로 많은 시도를 해봤다. 그리고 순무짠지를 담그는 간수老卤를 무슨 대물림보물인 양 고이 남겨두었다가는 대대로 내려오며 항아리에 저장해두었고 그렇게 해묵은 간수로 순무짠지 담그는 일은 이곳 민속풍경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그 시절 간수순무짠지는 단조로운 밥상에 이채를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곤궁한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도 했다. 그런 고로 생활형편이 넉넉해진 요즘에도 간수순무짠지는 여전히 밥상에 없어서는 안될 회성 사람들의 추억거리로 남아있으며 차츰 다른 지역들에 알려지면서 명품짠지로 거듭나게 되였다. 해서 회성에는 “순무는 반찬이 아니라 길 떠나는 이들의 필수품이다.”라는 속설도 있다. 회성 전통극 에서는 순무짠지를 보다 직설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하북에서 소문난 순무짠지 향기에 녕호宁沪 상인들 벌떼처럼 모여들고 트럭 가득 박아싣고 부두까지 가서는 선박 가득 싣고 가네. 멀리는 남경, 상해, 양주며 진강镇江까지 실어간다오. 하북에 가면 사람마다 짠지전문가요, 집집마다 짠지항아리 즐비하다오.” 이 에 나오는 하북은 하하河下 고진 북쪽에 위치한 하북촌을 이르는 말이요, 빙씨가 바로 이 마을 출신이고 어린 시절 끼니마다 순무짠지에 밥을 먹었던 그들 세대였다.  그렇게 10여년 동안 대필해준 편지가 수백통에 달했고 어느 겨울날 량씨가 대만에 있는 친척이 부쳐왔다며 편지 한통 들고 왔다. 빙씨가 편지를 읽어주려고 봉투를 뜯어보니 량씨 앞으로 보낸 편지 말고 선지에 붓글씨로 정히 쓴 편지 한장이 더 들어있었는데 내용인즉 이러했다. 근년 들어 몇몇 회성 출신 친구들이 종종 한자리에 모이곤 하는데 고향의 순무짠지 얘기가 좌중의 화제가 되곤 한다는 것, 그러다 한번은 량형梁兄이 고향에서 부쳐온 편지 한통 꺼내더니 봉투 뒤면에 찍혀있는 순무 모양의 로고를 보여주면서 하는 얘기가 회성에 있는 여느 대필소 로고인 것 같은데 대만으로 부쳐오는 편지들 모두 그 대필소에서 대필해주는 모양인지 편지마다 봉투 뒤면에 순무 문양 밑에 ‘순무·빙’이라는 싸인이 박혀있는 로고가 찍혀있더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그 대필소 주인이 행여 내 동생이 아닐가 하는 요행심리에 오늘 량형의 편지와 동봉하오니 답장만 고대한다는 내용이였다.  편지를 읽는 내내 빙씨의 량볼로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궁여지책으로 고안해낸 그 막연한 방법으로 정말 형을 찾게 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하여 우선 량씨를 위해 답장을 써준 뒤 그 자리에서 단숨에 10여장 되는 답장을 형한테 써보냈다. 그로부터 형제간은 빈번하게 편지를 주고받게 되였고 90년대 말에는 형이 고향을 탐방하여 수일간 머무르면서 50년 만에 형제간의 해후상봉이 이루어졌다. 빙씨가 고향 특색료리들로 푸짐한 상에 마지막으로 간수순무짠지를 올리자 형이 배낭에서 아직 개봉하지 않은 자그마한 단지를 꺼내 올려놓는 것이였다. 그것은 과거 외삼촌을 따라 떠나던 날, 어머니가 보따리 속에 넣어둔 순무짠지였던 것이다. 그렇게 형제간이 마주앉아 순무짠지를 씹으면서 옛추억을 곱씹고 있노라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알싸한 향기가 피여오르며 눈물이 앞을 가렸다.    당唐목수 “남자는 관음보살, 녀자는 부처님”이라는 말은 몸에 지니는 패물을 두고 하는 말이요, 그 패물은 대체로 금이나 은, 옥돌, 수정 등속으로 된 것은 많아도 나무로 된 패물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소이는 언제 봐도 항상 마작쪽 만한 크기의 그 나무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녔다.  그것은 얼핏 보면 그저 민숭민숭한 나무쪽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정교하고 예쁜 도안이 눈길을 사로잡는 목걸이였다. 그 자그마한 나무쪽에 지금 막 피여나고 있는 것 같은 정교하고 섬세한 국화꽃 세송이나 새겨져있었던 것이다. 그 목국木鞠의 래력을 알아내기 위해 사람들은 소이가 어린 시절에는 사탕공세를, 나중에는 술공세를 들이대며 무진 애를 썼지만 소이는 단 한번도 그 비밀을 발설한 적이 없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목국은 소이 할아버지의 작품임에는 틀림없다는 점이였다. 회성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들어봤음직한 노래가락이 있다.  “최고의 목수가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회성에서 제일 바삐 보내는 이를 찾으시오. 부리부리 두눈에 우뚝한 코, 말수는 적고 성은 당씨라오.”  노래가락에서 말하는 당목수가 바로 소이의 할아버지였고 대부분 사람들이 그 실명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소이가 목에 걸고 다니는 그 목걸이가 다름 아닌 당목수의 작품이라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당목수에 관한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 또한 노래가락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익히 들어 아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당목수는 나무의 크기와 재질, 량에 따라 그에 상응한 물건을 만들곤 했는데 도면도 필요 없이 목재를 눈대중으로 보기만 하고는 바로 작업을 시작하곤 했다.  필통이며 책꽂이, 접이의자, 책걸상, 옷궤, 침대 등 못 만드는 게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엔 나무집도 지었다고 한다. 고용주가 정해놓은 부지와 그 요구조건에 따라 즉석에서 면적을 추산하여 목재를 사오게 하는데 집이 준공된 다음에 보면 널판자 하나 보태지도 남아돌지도 않았다고 한다. 간혹 남아도는 나무토막이나 자투리가 있더라도 그것들을 활용하여 부삽이나 바가지, 국자 등을 만들었고 톱밥들도 모조리 담아두었다가 땔감으로 쓰게 하였다는 것이다. ‘추산’능력이 뛰여난 외 조각기술 또한 신기에 가까웠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통나무로 룡머리를 조각한다거나 그 입속에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구슬을 조각해넣는다던가 또는 통나무로 여러 고리들이 맞물려있는 형태의 나무목걸이를 만든다던가 하는 건 말할 나위도 없었고 뭐니 뭐니 해도 당목수는 미세조각에 가장 능했는데 호박씨 크기의 나무쪼각으로 주산을 만들면 그 주산알들은 깨알보다 작아도 어느 하나 들놀지 않는 게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주산’에서 만족할 수 없었던 모양, 한번은 이웃사람 두명이 찾아와서 한 사람은 열쇠를 내놓으며 나무열쇠를 ‘복제’해달라 청들었고 다른 사람은 이쑤시개를 내놓으며 거기에 풍경화를 그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 모두 뒤가 부옇게 돌아가야 했고 다시는 당목수를 괴롭힐 엄두를 못 냈다고 한다. 한편 당목수는 그 나무열쇠와 이쑤기개를 자그마한 함에 간직해둔 채 그것을 “기예를 갈고 닦는 데 게을리하지 말자”는 지침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한때 회성 사람들이 누군가의 뛰여난 기예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였고 아울러 망신을 자초하는 이들을 조롱하는 사례가 되기도 했다. 목수라면 의례 연필이나 먹으로 나무에 표기를 해놓고 그 선을 따라 나무를 켜고 자르기 마련인데 당목수는 종래로 귀등에 연필을 꽂거나 먹선 긋는 공구를 갖고 다니는 법이 없었다. 당목수한테는 두눈이 곧 공구였고 그렇게 눈대중으로 켜놓은 목재는 종래로 비뚤거나 모자라거나 넘치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자조차도 쓰는 일이 거의 없이 엄지와 식지, 중지를 리용하여 뼘으로 재면 그만이였다. 그러다 간혹 고용주가 재촉하기라도 하면 뼘으로 재지 않고서도 종래로 어떤 차질이 생기는 일이 없었다.  소이가 걸고 다니는 그 목국에 대한 사람들의 억측은 끊일 줄 몰랐고 당목수가 죽은 뒤로는 궁금해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그러던 하루는 금탕사우나에서 소이가 옷궤에 넣어둔 목걸이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나 깨나 항상 목에 걸고 다니다가 목욕할 때만 벗어놓곤 하는 목걸이였다. 금탕사우나는 꽤 오래된 사우나로 과거 당목수도 종종 즐겨 찾던 곳이였고 사우나를 수차 개조하는 과정에서 나무로 된 물건들 중 어느 하나 당목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게 없을 정도였다.  설마 새로 온 웨이터의 소행인가? 소이가 후끈 달아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무렵, 마침 새로 온 웨이터가 달려오더니 이실직고했다. “손님, 저들이 제가 그 목국을 가져오지 않으면 오늘 당금 쫓겨날 거라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갖다 주었습니다. 전에 다른 웨이터들한테도 시켰지만 그 사람들 모두 응하지 않아서, 그래서 금방 와서 멋모르는 저를 시켰던 것 같습니다.” “그래, 또 뭐라고 하던가?” “저보고 목걸이는 그냥 잠시 보관해드리는 것이니 걱정 마시라고, 이제 그 목걸이의 래력을 소상히 말해주면 그대로 돌려드릴 것이라고 그렇게 전해드리라고 했습니다.” “가서 래일 아침 다들 사우나 문앞에 모이라고 전하게.” 소이가 그렇게 쉽게 나오리라고는 그 사람들 역시 예상 밖이였다.  이튿날 아침, 사우나 문앞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뭉스런 얼굴들이였다. 이윽고 소이는 사람들을 이끌고 곧추 교외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내내 말 한마디 없었고 그에 사람들은 한층 불안한 표정이였고 개중에는 여차 하면 중도에 빠져나갈 기회를 엿보는 이들도 있었다.  몇참 안 가서 교외에 이르렀고 중학교 문앞에서 걸음을 멈춘 소이가 학교 이름이 새겨진 편액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자, 이게 바로 ‘목걸이’의 래력입니다.” 그에 사람들은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며 웅성거렸다. 그러자 소이가 사람 몇을 시켜서 그 편액을 약간 들어내여 뒤면과 벽 사이에 틈이 생기게 하고 다시 몇사람보고 그 뒤면에 새겨진 조화雕花를 확인하라 하고는 말했다.  “평생 동안 목수 노릇을 하신 저희 할아버지는 만년에 계획경제시대를 맞이했고 아시다 싶이 때는 목재가 귀한 시기라 회성 교외의 일부 농민들은 관널을 도적질해서 목재가 필요한 이들에게 팔아넘기곤 했지요.” “관널은 알짜 좋은 목재만 쓴다는 것을 잘 아는 그들이였고 그 목적은 물론 관널이였습니다. 물론 내친 김에 삽으로 항아리를 깨고 금품 따위가 있으면 훔쳐가는 이들도 간혹 있었지만 말입니다.” “이 교외 중학교의 목수일은 저희 할아버지가 사람들을 이끌고 진행한 공사입니다. 그런데 개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학교에서 할아버지보고 학교 이름이 새겨진 편액을 만들 것을 주문했고 구매 담당자는 어쩔 수 없이 관 도적들 손에서 목재를 사와야 했습니다. 녹나무로 된 이 편액에는 섬세한 조화까지 새겨져있습니다. 그리고 찬찬히 보면 조화 중앙부분에 당승중이라고 저희 증조부 이름이 새겨져있습니다. 당시 그걸 본 할아버지는 말 그대로 칼로 가슴을 저미는 것 같았지만 사람들의 기대 어린 눈길 속에서 차마 물러설 수도,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소이가 축축해진 눈가를 손등으로 찍어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몰래 그 관널 귀퉁이 부분을 살짝 잘라내여 손에 꼭 쥔 채 일을 계속했고 꽃 문양과 이름자를 지우지 않고 그 뒤면에 학교 이름을 새겨넣었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조상 무덤이 털리면 절대 소문 내지 말라’는 설이 있는데 할아버지는 저한테 이 일을 절대 발설하지 말 것과 이 ‘목걸이’를 자손 대대로 전해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 날 집에 돌아오신 할아버지는 낮에 잘라낸 나무쪼각에 국화꽃 세송이를 새겨넣은 뒤 제 목에 걸어주고 얘기 몇마디 하시다가 그렇게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비로소 사람들은 그 ‘목걸이’를 소이한테 돌려주었고 무척 미안한지 저마다 고개를 떨군 채 “미안하오, 미안하네.”라고 나직이 속삭였다.    견삼공犬三爷 견삼공 하면 딱 들어도 별명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별명이 불려진 지는 어언 30년도 더되였다. 그 별명을 붙여준 것은 동네 꼬마들이였고 처음에는 개삼공이라 부르던 것을 후일 어른들이 좀 완곡하게 견삼공이라 고쳐부르게 된 것이다.  견삼공이 있는 곳엔 언제나 개가 따라다녔고 견삼공은 개가 무슨 지팡이라도 되는 양 개가 없이는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처럼 하루종일 개들과 붙어다니곤 했다. 그 종류로는 늙은 개에서부터 강아지에 이르기까지, 암컷과 수컷, 토종과 서양종 그리고 종일 짖어대는 놈에서 종일 가다 몇번 짖지 않는 놈에 이르기까지, 비대한 놈에서부터 비루먹은 놈에 이르기까지 정말 없는 것 말곤 다 있었다.  견삼공의 일과 또한 모두 개들과 련관된 것들이여서 언제 어디에서 보나 이놈에게 먹거리를 주고 있지 않으면 저놈 등을 긁어주고 있었고 이놈을 데리고 산책하지 않으면 저놈을 끼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견삼공이 수양한 유기견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 그 먹이에 들어가는 돈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견삼공은 회성 읍내에서 가장 큰 식당 청소부로 취직을 했고 월급은 한푼도 필요 없으니 자기와 개들의 하루 세끼만 보장해달라고 자기가 한두끼 쯤 거르는 건 괜찮지만 개들은 절대 굶겨서는 안된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다행히도 식당에서 매일 버려지는 고기, 뼈다구 등속은 그 개들의 먹거리로 충분했고 이제 몇마리 더 추가하더라도 별문제 없을 것 같았다.  한편 그런 견삼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의문으로 가득했고 30년 전, 견삼공이 무슨 일로 갑자기 개한테 홀딱 반하게 되였는지 무척 궁금해했다. 30년 전의 견삼공은 집에서 개 한마리 기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골목에서 이웃집 개와 마주쳐도 종래로 눈길 한번 주는 일이 없는 위인이였던 것이다.  연유야 어찌 됐든 누구나 다 아는 견삼공의 외모특징, 그것은 사실 애초 견삼공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중요한 근거이기도 했다. 견삼공은 오른쪽 눈이 왼쪽 눈보다 컸고 동공이 작고 흰자위가 큰 오른쪽 눈은 언제 봐도 정기 없고 멀건 빛을 띠였으며 눈을 깜빡일 때도 아주 어색해보였는데 사실 그 눈은 개눈이였다. 그런데 견삼공이 개눈을 이식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누군가 빈말로라도 견삼공이 수양한 개들의 안부를 물으면 견삼공은 그 사람과 더없이 친근하게 굴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간혹 장난꾸러기 꼬마들이 견삼공이 안채에 들어간 틈을 타서 담장에 기여올라 개들한테 돌총질하곤 했는데 돌 맞은 개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면 견삼공은 득달같이 튕겨나와 비자루를 휘두르며 꼬마들을 뒤쫓았고 꼬마들은 그게 재미있다고 와 하고 함성을 지르며 뿔뿔이 달아나곤 했다.  외인은 그렇다 치고라도 그 아들과 손자마저 개들을 싫어하는 것은 어쩌면 견삼공이 거의 모든 정력을 개들한테만 기울이고 가족들한테 소원하는 탓이였다. 그 아들 역시 아버지가 개들한테 그토록 끔찍하게 구는 리유를 모르긴 매한가지, 외인들보다 좀더 아는 게 있다면 30년 전 아버지가 개눈을 이식해 넣게 된 경위를 알고 있을 뿐이였다. 30년 전의 어느 날 아침, 견삼공이 트럭을 몰고 이웃 현으로 화학비료 실으러 가는 길이였다. 도로에는 온통 자갈이 널려있었는데 아마 린근 공사장으로 자갈을 나르던 트럭이 지나가면서 흘려놓은 모양이였다. 그런 울퉁불퉁한 도로를 덜렁거리며 운전해가느라 심성이 불편해진 견삼공은 누구라 없이 투덜거리며 운전하던 중, 갑자기 자갈 하나가 눈앞으로 튕겨오는 바람에 엉겁결에 두눈을 꼭 감으면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였고 아들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아들은 아침에 아버지가 급히 나가면서 공장 소개신을 두고 간 것을 발견하고 급히 아버지를 뒤쫓다가 그런 사고현장을 목격하게 되였던 것이다. 그렇게 공장에서 화학비료를 사라고 준 돈은 비료는 고사하고 전부 병원비용으로 밀어넣게 되였다. 그런데 그보다 황당한 것은 오른쪽 눈알이 자갈에 맞아 터진 것이였다. 그것도 어처구니 없게도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랬다거나 인위적인 사고가 아닌, 견삼공이 몰고 가던 차 바퀴에 깔려서 튕겨오른 자갈이 오른쪽 차창을 뜷고 들어와 눈알에 박힌 것으로 교통사고사상 류례를 찾아볼 수 없는 참으로 황당무계한 사고였던 것이다.  일부에서는 개눈알을 이식하고 나면 자연스레 개습성을 갖게 되고 지어 안목까지도 개를 닮아가는 것 아니냐고, 그래서 견삼공이 갑자기 개들과 친밀해진 게 아닐가 하고 억측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가만 생각하면 그 말은 어불성설이였다. 왜냐면 때는 의료조건이나 사람들의 수입상황 등이 제한된 시절에 눈알을 다쳐서 개눈알을 이식해 넣는 사례가 회성에만도 여럿 있었으며 다만 사후에 견삼공처럼 개를 극진히 대하는 사례가 없었을 뿐이였다.  그러구러 수년이 지나고 견삼공이 중병으로 몸져눕게 되였는데 다들 이제 설을 넘기기는 글렀다고 맥 놓고 있는 중이였다. 한편 견삼공은 병상에 누워서도 자기 몸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듯 오직 개들 걱정 뿐이였다. 그러던 하루는 다들 잠든 야심한 시각에 아들과 손자를 조용히 불러놓고 이야기 하나 들려주면서 어떻게든 개들을 잘 돌봐야 한다고, 그리고 남의 집 개한테라도 절대 못되게 굴지 말 것을 당부했다.  사실 견삼공은 어린 시절 툭하면 고무새총으로 동네집 개눈을 쏴 멀게 하는 악당이였는데 그로 인해 한동안은 동네 개들 전부가 애꾸눈이 된 때도 있었다. 그러나 동네사람들은 아무도 그 원인을 알아채지 못했고 나중에는 약속이나 한듯 아무도 더 이상 개를 기르려 하지 않았다. 개를 기르기에 적절치 않은, 뭔가 사특한 기운이 도는 동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견삼공은 자기가 눈먼 돌에 맞아 눈이 먼 것을 꼭 인과응보라고 단언할 수는 없었지만 죄는 지은 데로 간다는 생각이 두고두고 마음속 응어리로 맺혀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난 아들과 손자는 연신 머리를 끄덕이며 시름 놓으라고 견삼공을 안심시켰고 그제야 견삼공은 비로소 안온한 미소를 머금은 채 숨을 거두었다. 아들과 손자는 슬픈 눈길로 망자의 얼굴을 이윽토록 바라보고 있었다. 한쪽 눈만 감겨져있고 커다랗게 뜬 채로 있는 다른 한쪽 개눈은 아직도 마당에 있는 개들 걱정으로 감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김견 옮김)   출처:2018 제6호
65    김연: 곧 오색 음악이 흐를 것이다(시, 외2수) 댓글:  조회:93  추천:0  2019-07-16
곧 오색 음악이 흐를 것이다(외2수) 김연   나무잎들이 술렁인다    스쳐가는 바람이    낯설단다       온몸을 시퍼렇게 달구고도 모자라   바람의 부축을 받던 여름은   어디 갔을가       이 가을에    여름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이 계절에    지난 계절은 묻고 싶지 않은데      여름 한웅큼이라도 잡았던 걸   해빛 한줌이라도 숨겼던 걸    지지리도 미운 땀방울이라도    한두방울 챙겼던 걸        갈 때가 되여서 가는 거겠지   어쩜 아직도 피여있는 저 꽃들이   여름이 남기고 간 입김이 아닐가    꽃들 꽃들 우로 제비 제비가 지나간다    가을비가 오시려나 보다    더 완연한 가을을 싣고 오시려나 보다        그러고 보니 나무잎 너희들    춤사위마저 다르구나      가고 오는 길목   맞고 바래는 련습   춤사위가 많이 다채로와졌구나…           일기예보    하늘이 쿨쩍거린다    걸려있어야 할 해가    종적을 감추었다      바람은 온 거리를 뒤지며    샅샅이 냄새까지 맡는다    창문에 매달려있던 마지막 온기가    슬그머니 피해간다      말의 온도가 식어갔다    발걸음 온도가 높아갔다      거리가 북적인다    침방울이 떨어진다      올칵 !    해는 소나기를 토해냈다           퇴색    이가 없는 바람이    해빛을 잘라먹고 있다    내동댕이쳐진 껍질들이    한구석에 모여 재생을 기다린다    어데서 온 개미들인지    그 껍질이 먹거리인양    집안으로 끌어들인다      열린 문으로 바람이    긴 혀를 내밀어 아예 개미 채로    삼켜버리고 아무 일 없듯 사라지면    비는 기꺼이 그 흔적들을 지워준다      나무잎들이 떨어지고    꽃들이 흐느적인다    지나가는 할머니의 하얀 머리카락   설명을 못한 채 그저 바람 따라 간다      태양을 잃어버린 하늘    달과 별에게 넉두리 늘여놓는 사이    6월은 색 바래고    곧 다가올 7월이 입술을 내민다 출처:2018 제6호
64    리미: 품는 화분(수필) 댓글:  조회:97  추천:0  2019-07-16
품는 화분 리미   무게도 안 가는 먼지들이 그렇게 묵직하게 앉아있는 줄 미처 몰랐다. 옅은 색에서부터 어느 순간 점점 진하게 변하더니 집안의 공기마저도 탁하게 만들어버렸다. 그제서야 난 그것들에 주의를 가졌다. 무질서하게 뻗은 나무잎들을 담은 화분들이였다.  언제 사놓았는지 알 수 없는 화분들이 집안의 바닥을 에돌고 있었다. 이쁨은 둘째 치고, 전자파를 막아준다는 명목하에 사놓은 뾰족한 다육이도 보이고 풍수에 좋다는 각가지 화분들은 집안의 또 다른 오아시스마냥 벽에 기대있었다. 누구나 처음 사온 화분에 대한 첫 만남을 기억할 것이다. 그다지 화려하지도 그다지 흥분되지도 않는 아주 잔잔한 만남을 말이다. 필경 살아움직이는 애완견이 아니기에 우리의 만남은 강렬한 떨림이나 화려함은 간략되였다. 그럼에도 좋은 흙 속에서 가끔씩 내리받는 해빛쪼임, 그리고 내가 주는 수분을 머금으면서 그들의 무성한 성장을 바랐다. 일종의 마음에 품고 있었던 작은 바람들이 그 잎 하나하나에 품어져있다고 생각했다. 잎이 번창하게 피여오르면 나의 옹송거렸던 소망도 같이 커질 것 같은 심리적 작용이 일었다. 시간이 날 때면 생명의 물을 그들에게 쏟아줄 것을 나 자신에게 무언의 약속을 했다.  여전히 나는 아침 6시 반의 알람에 몸을 일어세우고 허겁지겁 미완성이 된 화장으로 아침을 채우고 출근시간을 보낸다. 출근시간의 따분한 일분 일초는 이상하게도 퇴근 후면 눈 깜짝할 새에 다시 침대에 누워야 할 시간이 되고 만다. 그런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가끔씩 찾아오는 회식자리나, 술자리 지인들과 며칠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달력은 그 다음달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쩌다 여유가 생기니 집안에 초록색 눈을 하고 있는 그들이 보였다. 말도 없고 표정도 없는 그들이지만 과연 그들에게 또한 감정이 있음을 축 처진 이파리에서 느꼈다. 식사시간이 지난 후 놓인 밥상 우의 반찬과 국처럼 촉촉한 물기 대신 빼빼 말라버린 그들이 시무룩하게 나를 맞이했다. 며칠 동안 다이어트 때문에 굶주렸던 나의 허기짐을 상상해보았다. 미안함에 벌컥벌컥 그들에게도 충족하리 만큼의 물을 부어주었다. 그동안 나의 무관심에 대한 죄책감에 한꺼번에 몇주일 동안의 감정을 보상해주었다. 일방적으로 내가 그렇게 하는 것으로 내가 준 보상의 물기를 흡수하고 다시금 푸른 기운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방적인 무관심과 일방적인 베품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는 건 불과 몇분이 지나기도 전에 난 축축해진 바닥을 보고 알아버렸다. 물을 흡수하기에는 너무도 말라있었던 화초들의 ‘탈수’현상 때문이였다. 오랜 시간 동안 품어야 할 충분한 수분과 영양소를 흡수하지 못했던 그들에게 몰아주기식 베품은 매몰차게 외면을 받았다. 그래도 우선은 좀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들이 처량해진 다음에야 난 그들에게 좀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여전히 수분기 하나 없는 화분들이였지만 그 때라도 잘 보살핀다면 다시금 싱싱한 푸름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의 한달을 짬짬이 여전히 말라버린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관심을 쏟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였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수분과 영양소가 조금이나마 남아있을 때 주었더라면 죽지는 않았을 거라고 씌여져있었다. 잘 보살펴주리라 했던 무언의 약속은 여유라는 조건이 생겨야만 보살피는 것으로 되였고 그 핑게 같지 않은 변명의 결과물은 말라버린 화분이였다. 더 초췌해진 나무잎 우로 줄기줄기 뻗은 선들은 나의 고즈넉한 감정선을 동요하기에 충분했다. 생각해보니 화분을 다룬다는 건 어쩌면 인생을 다루는 것과 같은 것 같다. 탐탁치 않은 진한 토색의 토양과 그 안에 뿌리를 박은 초록색 가지들을 어떻게 거창한 인생살이와 비교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소소한 행복감, 수평선을 향하는 만족감, 닿을듯 말듯한 인연 여부가 우리의 인생이라는 늪에서의 감정선이 아니겠는가. 굳이 거창한 포장으로 인생을 포장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 작은 점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긴 려정을 그려냈을 뿐, 또한 매개 점들이 내뿜는 관심과 수요를 제때에 포옹해줘야만이 그나마 좀더 윤택한 삶이 되리라는 걸.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우리가 마주한 감정이든, 인연이든 참 오묘하게 우리를 비껴갈 때가 많다. 안심하고 있던 찰나에 두터웠던 감정이 와르르 무너져갈 때가 있다. 타인과 나 사이의 감정 뿐만 아닌, 나와 내 자신의 감정 또한 그 흐름을 빗겨가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는 흔히들 그런 말을 자주 내뱉곤 한다.  “어머나, 하는 게 없이 하루가 지났네, 일주일이 지났네…” 마치 주어진 시간의 매개 틈새에 무언가를 꽉꽉 채워야 산 것 같다는 강박감을 주는 요즘 사회다. 아무튼, 손에 남은 거라곤 줄어든 시간 밖에 없어진 우리는 여전히 바쁘게 사는 현대인임은 틀림이 없다. 바쁘다는 의식 속에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정작 자신이 원하는 건 무엇인지, 행복해지고는 있는지, 그 때 채 아물지 못했던 감정은 괜찮아졌는지… 많은 보살핌이 필요한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저기 한구석에 방치해둔 적이 많은 것 같다. 달리다 어느 순간 한발작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길 때 뒤돌아보니 저만치 남겨놓고 온 그들이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정작 필요한 행복감, 챙겨야 할 사람들, 토닥거림이 필요한 감정들이 목말라있을 때 허겁지겁 다시 부여해주려 하곤 한다. 바쁘다는 핑게 속, 너무 무관심했던 탓에 정작 행복해지는 방법을 잊은듯한 우리다. 뿌리부터 말라버린 저 구석진 화분들처럼 뒤늦은 후회를 안고 돌아갔을 땐 아무 것도 없을 뿐이다. 무턱대고 주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훅 던져주면 그만이니깐 말이다. 하지만 품는 건 일정한 열정의 온도를 머금은 채 가슴 밑 어느 한 구석에서 치솟아오르는 그 무언가와 함께 행해야 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어긋났었던 관계, 자꾸 덧나는 상처덩어리 등등을 보면 우리는 늘 일방적이였고 품기보다는 대처식이였다. 받은 상처를 더 들추어보기가 무서워서 그냥 일방적으로 덮었고 같은 상황이 돌아왔을 땐 몇십배 더 아프게 되였던 것 같다. 맴맴 도는 시간에 마음마저도 맴맴 돌며 그 모든 걸 얼렁뚱땅 지나가고 말았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서의 한구절이 나의 마음을 치고 갔다. ‘관통식의 감정’을 느끼라는 것이다. 즉 대수 지나치지 말고 그들이 당신 심장의 과녁을 뚫고 지나갈 만큼 아픔이나 기쁨 어떠한 것을 철저하게, 처절하게 느껴야만이 우리는 그 밑바닥까지 보아내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역시나 그러했다. 우리는 왕왕 느껴야 할 부분, 생각을 되뇌여야 할 부분을 묵과하고 나중에 다시 일방적인 보상을 해주리라는 다짐을 하곤 한다. 삶이라는 게 우리가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는 단락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그 상대방이 되는 경우도 있다. 친구들에게 소울메이트라고 소개를 해주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가히 최고의 행복을 느끼게 해줬으니 그 다음 행보도 행복의 마무리를 할 것만 같았다. 여태껏 글에서는 뒤늦은 후회를 품은 화분이였다면 나의 최근은 품었어도 결국 말라버린 그 어떠한 슬픔의 연장선이였다. 그 관계에서 일방통행적이였던 나의 노력이 상대방의 구미에 맞지 않아서일가, 모호해진 감정선은 결국 일정한 온도와 관심을 건넸음에도 불구, 오히려 나에게 상처만 더 안겨주었다. 무언가 채 마르지 않은 세멘트 공정 속, 꾸역꾸역 우에 덧발라서 표면상으로는 이미 다 굳어버린 세멘트덩어리지만 사실 속은 채 마르지 않은 슬픔의 끈적함 같은 비스름한 표현이 그 때 내 마음이였던 것 같다. 그 때 다시금 깨달았다. 인생의 구석구석 감정선은 내가 보살펴야 될 시기를 놓쳐서 끝나버리는 것도 있고 화분을 보살필 때 일방적인 물주기식 같은 일방적인 관심도 답이 없을 수 있다는 걸. 무작정스러운 관심, 혹은 여유가 생길 때만이 쏟는 일방적인 베품 그것만으로는 인생의 매개 굴곡진 점들은 쉽사리 우리와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오직 알심들여 그 관심과 사랑을 애틋하게 품어줄 뿐더러 서로 다같이 노력해야만 그 어떠한 결과물도 우리한테 안기려 할 것이다. 치유도 좋고 어긋남도 좋고 우리가 진정 원하는 건 무엇인지 시간을 품어서 나만의 온도로 품어보자, 그들을. 출처:2018 제6호
63    리은실: 나는 필요하다, 고로 존재한다?(수필) 댓글:  조회:104  추천:0  2019-07-16
나는 필요하다, 고로 존재한다? 리은실   몇년 전에 아이 봐주시러 친정 부모님이 우리 집으로 오셨다. 집을 떠나 외지에서 학교를 다니고 또 타향에서 취직을 하다 보니 그렇게 부모님과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것은 정말이지 오랜만의 일이였다.  그렇게 우리 집에 오신 엄마는 시집간 딸의 부족한 료리솜씨가 꼭 본인 탓인 것만 같아서 사위 앞에서 몹시 송구한 표정을 짓더니 뒤늦게 나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셨다. -장국은 두번째 쌀 씻은 뜨물로 하거라.  -계란말이에는 밀가루를 조금 넣으면 모양이 이뻐진다.  -무침에 설탕보다는 매실액을 넣거라. 이것저것 말씀해주시다가  -밥 세식구 먹을 만큼 할 때는 물이 손등 우로 안 올라와도 된다.  하시길래  -설명서에 쓴 대로 쌀 세컵이면 물을 눈금 대로 넣으면 되지요.  했더니 홀연 씁쓸한 표정을 짓고는 주방에서 나가는 것이였다.  그제서야 생각해보니 엄마가 한 밥은 어떤 날은 좀 질기도 또 어떤 날은 조금 딱딱하기도 했던 것 같다.  최신제품으로 나온 전기밥솥을 써도 엄마는 언제나 재래식으로 물을 맞추다 보니 밥물이 일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은 “계란말이할 때는”, “무침을 할 때는” 얘기하실 때부터 “인터넷에 다 있습니다.”라고 말하려다 용케 그 입을 다물었던 건데 참을걸 끝까지 참지 너무 성급하게 열심히 알려주시려고 하는 엄마에게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더 이상 전수해줄 경험이 궁해진 엄마는 거실로 나가셔서 TV에 시선을 던진 채 입만 다셨다.  엄마와 딸은 ‘앙숙’관계라고 누가 그랬던지, 우리는 갓난쟁이 아이를 놓고 또 서로의 의견을 좁히지 못해 아웅다웅했다.  아니다. 시간 지나 생각해보니 그건 할 줄 아는 게 없이 고집만 센 내 아둔함의 소치였다.  “책에선 이러는 게 아이한테 안 좋다고 했습니다.” “인터넷에선 이러라고 했습니다.” 나는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을 치켜들고 사사건건 애 봐주러 오신 엄마에게 반대표만 날렸다.  “그렇게 안했어도 애 셋을 길렀다.” 성격 짱짱하신 엄마 역시 의견을 굽히지 않았지만 결국 투항하고야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엄마는 그 활달하시던 성격은 어딜 가고 매우 소침해있었던 것 같다. 수십년간 애 셋 키운 경험이 스마트폰 앞에 빛을 잃고 무용지물이 되여버린 것에 대한 렬패감이였을 것이다.  엄마와 같이 우리 집으로 오신 아버지의 립장은 엄마보다도 난처했다. 딱히 필요하지 않은 군식구 아니냐는 자괴감 섞인 소리도 가끔 하시군 했다.  고된 로동 만큼 힘든 무료함을 달래고저 저녁에는 사위랑 술 한잔 부어놓고 권커니 작커니 할 때가 많았다.  술 한잔을 부어놓고는 젊어선 수호전을 달달 외울 만큼 짱짱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는 무용담도 조금의 허풍을 가미해 말씀하셨다. 그걸 증명이라도 할듯이 력사인물의 생몰년대까지 딱딱 제시하시며 사위 앞에서 한껏 과시를 하시기도 했다.  어느 날은 스딸린에 대해 말하게 되였다. “스딸린이 1953년도에 서거됐을 때…”라고 아버지가 운을 떼시는데 늘 조용하던 남편이 그 날 따라 아버지 말을 끊고 “아버지, 1954년이 맞을 겁니다.” 하며 겁도 없이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였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그 침묵이 못내 불편하게 느껴졌던 내가 그만 “아버지 이젠 기억력이 퇴보돼서…”라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그만 해버리고 말았다.  굳어진 아버지의 표정은 펴질 줄을 모르고 그런 채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가만히 스마트폰을 열어 검색했더니 아뿔싸, 이를 어째, 아버지 말씀이 맞는 것이였다.  “아, 아버지 맞았네. 1953년 맞습니다.”라고 내가 게면쩍게 말하자 아버지는 ‘그것 봐라.’라고 하는듯한 표정으로 다시 제꺽 평정심을 되찾은듯 보였으나 이내 소침해지는 것이였다. 작은 마을에서 자타공인 백과사전이고 기억력 왕이셨던 아버지는 컴퓨터 앞에, 컴퓨터만 맹신하고 늙으신 아버지는 일단 의심부터 하려 드는 딸 앞에 철저히 자존심을 구겼던 것이다.  엄마 아버지는 애 돌봐주는 수고에 대한 보상은 고사하고 눈에도 안 차는 작은 스마트폰에, 컴퓨터에, 그리고 많은 정보량을 자랑하는 책에 완전히 권위를 내여주고 몹시나 랑패한 심정이 되였다. 그런 와중에도 엄마 아버지가 유난히 기꺼워하시며 즐거워하셨던 적이 한두번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집에 온 지 두어달이 지나자 성격이 활달하신 엄마는 어느새 맞은편 집 할머니 할아버지와 친해져있었다. 그 집에 몇년을 살았건만 우리 내외는 그 집 사람들 얼굴도 알가말가였는데 엄마는 어느새 그 집 식구들에 대해 제법 많은 것을 알아오셨다. 그 집 손자가 이젠 안 쓰는 유모차를 빌려오는 외교수완을 펼치는가 싶더니 어느 하루는 그 답례로 김치를 해드린다는 것이였다.  한족들에게 우리 조선족 김치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파는 것보다 얼마나 차원 다른 맛인지를 보여주어야겠다며 온 저녁을 바삐 도셨다. 곱게 색갈을 입힌다며 찹쌀죽도 쑤고 배도 곱게 갈아넣는 품이 여간 정성스러운 게 아니였다.  이튿날 아침, 엄마는 그 김치를 정히 반찬통에 담아들고는 맞은편 집 문을 노크했다.  저녁에 퇴근해오니 엄마의 얼굴이 유난히 밝아져있었다. 그런 환한 웃음을 언제 봤던지… 엄마는 기다렸다는듯 김치를 가져다준 얘기를 눈을 반짝이며 하셨다. 점심을 먹고 나서 그 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쩜 이리도 맛있을 수 있냐고, 한국 마트에서 사먹어본 적도 있지만 이렇게 맛있는 김치는 처음이라고 인사를 하러 왔더라는 것이다. 며칠이 지나자 엄마는 앞집 가져다줄 김치를 또 흥얼흥얼 코노래를 부르며 담그셨다. “저렇게 고생을 자처할 것까지야 있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엄마의 보조역할만 하는 것에 가끔 불만을 품고 있던 아버지는 많은 시간을 트럼프 패를 떼거나 책을 보는 데 쓰곤 했다. 하기야 말도 못하는 어린 아기를 돌보는 데 아버지가 할 일은 딱히 없었던 것이다.  그 날 따라 아이는 유난히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더운가보다 싶어서 부채질을 해줘도, 그네를 태워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방귀를 몇번 퐁퐁 뀌더니 잠간 해쭉거리고는 또 울어대는 것이였다.  트럼프 패에 열중하던 아버지가. “애가 체했군.” 하더니 다가오셨다.  아버지는 젊어서 배웠던 중의학 지식을 더듬으며 이럴 땐 배의 어느 혈위를 눌러주고 다리의 족삼리 부분을 지긋이 눌러줘야 한다며 아이를 어루쓸어줬다.  이게 웬 기적인가? 십여분 쯤 지나니 그악스레 울던 아이가 눈물을 대롱대롱 단 채 울음을 그치는 것이였다. 그러더니 몇번을 더 방귀를 뀌고는 언제 아팠냐는듯 해쭉거리는 것이였다.  아버지는 길다란 두손을 마주쳐 작게 소리를 내시고는 신기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중의학 지식을 꽤나 열을 올려 펼치셨다.  젊어서 마을에 어떤 체한 할머니를 침 한번으로 낫게 해드린 이야기며, 한국에 가서도 아픈 사장님께 침을 놔주어 신뢰를 얻은 이야기며 모두가 “리씨 할아버지 최고!”라 엄지를 치켜세웠던 이야기를 아버지는 숨도 돌리지 않고  단숨에 하셨다.  그 희열에 찬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이후로 가끔 보는 아버지에게서 그런 표정을 다시 본 적이 없다. 내가 비싼 홍삼액을 사갔을 때도 옷을 사드렸을 때도 그렇게 번쩍이는 눈빛은 못 봤던 것 같다.  인정욕구, 존경욕구, 자기실현의 욕구… 메슬로우인가 어느 외국 량반이 내세웠다는 그런 리론들이 나는 그냥 먼곳에 있는, 아니면 책에나 있는 것인 줄로 알았다. 엄마, 아버지가 정말 바랐던 것은 그것이였음을 뒤늦게야 깨닫고 말았다. 그들은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타인의 인정과 존경 그리고 자기 가치 실현을 했을 때에야 비로소 행복했던 것이다. 젊은이들의 어쭙잖은 적선 같은 동정이 아닌, 진심으로 되는 인정과 존경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걸 모르고, 아니 모른 척하고 나는 명절 때 용돈 드리는 것, 온갖 생색 내며 보약 사드리는 것 등으로 너무 쉽게 효도 흉내를 내려고 했다.  저녁에는 엄마에게 전화를 드려야겠다. 아들애가 외할머니 해주신 떡갈비만 먹겠다 보챈다고, 엄마가 해준 감자전이 생각난다고 솔직하게 얘기해야겠다. “쏘파 커버 코바늘로 떠줄가?” 하시면 절대 거절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한다. 그리고 만년 ‘문예청년’이신 아버지에게는 편지를 써서 글 한편 써주실 것을 정중하게 부탁드려야겠다. 인정욕구인지, 존경의 욕구인지, 자기 실현의 욕구인지 그런 어려운 리론은 집어치우더라도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옆에 필요한 존재로 남아있을 때 행복한 것이다.  어린 손자, 손녀보다도 가전제품을 능숙하게 잘 다루지 못한다며 가끔 풀이 죽어있는 그들의 소외감을 모른 척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한다. “당신들은 나에게 정말정말 필요한 분들입니다.” 하고 어필해야겠다.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중양절 선물은 아닐지. 그저 말로만 에때우려는 막내딸의 계략은 아님을 아버지는 아시리라 믿는다.  출처:2018 제6호
62    리금화: 초가삼간(시, 외1수) 댓글:  조회:103  추천:0  2019-07-16
초가삼간(외1수) 리금화   사십 성상 사는 동안   그대가 심어준 꽃 한송이   내 마음속에 오롯이   뿌리를 박고 있나니     너하고 나 사이엔   열리고 닫힘도 없는   외딴 초가삼간   그 속에 내가 살아있나니       황금노을이 살짝 비낀 석양 속   포근한 잔주름으로 세월을 그리며   하나의 이야기꽃만 피워가리라           가로등   너는 항상 환한 가슴으로   사뿐사뿐 다가오는구나     별들의 형제가 수작을 부리고 있을 때도   너만은 리유없이 길을 열어주는구나     어둠 속을 착하게   자박자박 밟는 자리에게만   해바라기 같은 환한 웃음으로   사랑을 베푸나니     언제나 밝은 너 앞에서   나는 항상 말을 잊었어라 출처:2018 제6호
61    김명숙: 언어의 에너지 (수필) 댓글:  조회:98  추천:0  2019-07-16
언어의 에너지  김명숙   천성적으로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세상에 태여난 꽃은 사람들의 눈을 풍요롭게 호강시켜주는 즐거운 감상물로 널리 알려져있다. 대화가 필요 없고 동행자도 필요 없으며 표정관리에도 구애 없이 울적하고 괴로운 마음 그대로 소통을 가질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꽃이 아닐가? 꽃의 매력은 누구에게라 없이 똑같이 웃어주고 반겨주고 예쁨을 선사하는 대공무사함에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그가 소유하고 있는 특이하고 감미로운 향기가 그 어여쁨을 소리없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대자연의 황후로 떠받들리여 위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예뿐 꽃들 속에도 빛나는 그 이름과는 무관하게 사람들의 랭대를 받으며 생존하는 꽃도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자라고 있는 라플레시아는 세계적으로 제일 큰 꽃으로서 꽃 중의 왕으로 불리우지만 인간을 혼절시킬 만큼 심한 악취를 발산시키는 바람에 ‘악마의 혀’ 또는 ‘부두교의 백합’이라고도 불리운다. 라플레시아는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식물중의 하나이지만 사람들에게 아드레날린을 발산시켜 자기의 소중한 이미지를 잃어가기에 거의 멸종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게 된다. 그런 소통을 통하여 서로가 알아가고 익숙해지고 친해지면서 함께 원하는 뜻을 이루기도 한다. 소통의 주요한 요소는 서로 지간에 주고받는 대화들로서 그러한 언어들이 바로 소통의 지름길로 되고 있다. 향기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 꽃들처럼 같은 언어라도 그 표현이 다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가 하면 타인에게 주는 감수에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찍 세종대왕이 발명했다는 우리 문자는 못 나타낼 뜻이 없고 못 나타낼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언어라고 하지만 아해 다르고 어해 달라 사람들을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하며 지어 누군가를 험한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삶에 충실하고 부모한테 둘도 없는 극진한 효녀로 소문난 한 녀성의 이야기는 부정적인 언어의 위해성을 더더욱 명백히 깨우쳐주고 있다. 그녀는 일찍 사고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잃었고 50대 초반에 또 장대 같은 남편까지 잃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안고 하루하루 눈물로 절망의 나락에서 헤매이고 있을 때 일부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살이 센 녀자라 뒤공론을 했고 또 일부 사람들은 사나운 팔자여서 하늘이 벌을 내렸다고 터무니 없는 날조를 퍼뜨렸다. 가슴이 찢기는 아픔에 부대끼는 그녀에게 명석한 두뇌로 세상을 바라보기까지는 그 당시 너무나 막연한 일이였다. 그녀는 정말로 자신을 팔자가 나쁘고 살이 센 녀자로 착각하면서 밤이면 악몽에 시달리였고 점차 삶의 의욕마저 잃고 말았다. 한 사람의 소중한 존재가 이렇게 누군가가 아무렇게나 놀려버린 혀자루에 찔려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절벽의 나락에서 헤매이는 그녀로 하여 주위의 고마운 사람들은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 긴장에 떨었으며 그녀의 마음을 돌려세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지 모른다. 가정에 불화가 생긴 건 우연한 사고일 뿐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이 한 불행 앞에서 당연 위로의 말로 힘과 용기를 주어 상대로 하여금 시급히 극심한 고통 속에서 헤여나오게 하는 것이 천만 바람직한 일이 아닐가? 병은 치료하고 싸움은 말리라는 말이 있다. 굳이 아드레날린 같은 악취를 발산시켜 한 사람을 천길 나락에 빠드리는 건 인간으로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한치의 혀가 석자의 칼보다 더 무섭게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이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인듯 싶다. 이 얼마나 소름 끼치는 일인가? 사람들은 가끔 이런 말을 하군 한다. 부정적인 언어를 늘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현실이, 그리고 긍정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삶이 따른다고 한다. 주먹을 부르쥐고 열심히 뛰여도 딸리는 게 시간인데 뒤뜰에 앉아서 남의 험담이나 일삼으며 허송세월하는 사람들의 뒤에 구경 무엇이 따를가? 무심하게 뱉은 한마디 말이 가지를 치고 잎이 무성하게 자라면 어떤 악과가 초래될지 생각이나 해 보았는가? 타인에게 잘못 날린 한가닥 화살이 몇십개로 불어나 자신에게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점 생각이나 해보았는가? 높은 언어수양을 갖추려면 우선 인성적인 바른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소유하고 있는 지식과 재능이 뛰여나다 하더라도 타인에 대한 긍정, 배려, 존중의 가치를 깨치지 못한다면 천부적인 재능도 저층 바닥에서 나뒹굴 수 있고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악과를 빚어낼 수도 있다. 일찍 진秦나라에 진시황을 도와 중국 최초 통일 제국을 이룩한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이사’라는 승상이다. 이사는 문자와 각종 도량형을 통일하고 제도와 법률을 제정하여 진나라(통일제국)를 건설하였다. 이사는 법가사상으로 유명한 한비와 함께 순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동문수학하였다. 한비는 한나라 왕족으로 진나라에 온 한나라의 사절의 역할을 맡은 인물이였다. 순자의 문하에서 함께 수학한 이사는 간지奸智에 뛰여난 변설가辩说家인 반면 한비는 타고난 말더듬이였으나 두뇌가 매우 명석하여 학자로서는 이사가 도저히 미칠 바 못되였다고 한다.  진나라의 시황제는 한비의 《고분》과 《오두》의 론설을 보고 “한비와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감탄하였고 그 후 한비를 만나자 크게 기뻐하며 그를 진나라에 머물게 하려고 하였다. 진왕이 그를 총애하게 될 것을 념려한 이사는 한비의 재능을 몹시 질시하였다. 드디여 이사는 한비에게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도록 하고는 시황제에게 참언谗言하여 한비를 옥에 가두게 한 후 한나라로 돌려보내면 반드시 후환后患이 있을 거라고 모함까지 하여 한비에게 사약死药을 내려 자살하게 하였다. 이사는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여 권력과 부귀를 얻었을망정 공덕이 없었던 인물이다. 동문수학했던 한비도 비정하게 죽이는 친구였고 결국에 자신도 허리가 잘리는 참수를 당하였다고 한다. 권력과 부귀를 탐하여 생긴 지나친 질시는 종당에 소중한 자신마저 해치고 말았다.  언어란 잘 다루면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발산시켜 가물에 시들었던 꽃이 샘물을 듬뿍 먹고 생기를 되찾은듯 우리의 고달픈 삶에 좋은 영양소로 될 수 있다. 내가 살던 고향에 ‘효원’이라는 양로원이 있는데 친구들과 함께 봉사활동으로 겨울 김장일을 도와준 적이 있다. 아담하고 산뜻하게 꾸며진 ‘효원’이 좋은 환경으로 소문이 높은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른아침부터 밝은 웃음으로 로인들을 위한 봉사를 시작한다는 젊은 부부의 아름다운 소행이 더더욱 ‘효원’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되고 있다. “간밤 잘 주무셨어요?” “불편한 점 없으셨어요?” 모진 풍상에 부대끼고 지쳐서 머리에 하얀 서리를 이고 계시는 로인들, 멀리 떠난 자식들을 하염없이 그리며 기다리며 마음에 골병이 들 대로 들었지만 하루도 빠짐없는 그들 부부의 살뜰한 대화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군 한다. 서로 다른 지방에서 모여왔고 서로 다른 성격의 소유자로 때로는 애들처럼 옴니암니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의 불화를 못 이겨 장내가 떠들썩하게 말썽을 부리기도 한다는 로인들이지만 하냥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달래드리다 보면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고 얼굴에 웃음이 흐른다고 하였다. 저물어가는 황혼의 령마루를 바라보는 마음만으로도 서글프고 벅찰 것인데 힘도 딸리고 정력도 딸리는 만년에 믿고 의지할 데 하나 없이 부득이 낯선 곳에 정착해야 하는 그들의 허전한 마음 얼마나 쓰리고 아플가?  “할아버님, 오늘 참 멋지고 씩씩하신데요! 꼭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요.” “할머님. 어쩜 머리를 그렇게 이쁘게 빗으셨어요? 10년이나 젊어지셨어요.”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언어의 매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가? 한창 젊은이들에게는 싫증나고 아부가 거나하게 담겨진 귀찮은 존재로만 들릴지 모르지만 인생 마지막 종착역에서 허물어지는 담벽을 떨리는 손으로 부여잡고 간신히 버텨가는 로인들에게는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명약으로 그리고 생명의 연장선을 이어가는 값진 에너지로 될 수 있지 않을가? 금방 걸음마를 타기 시작한 애들에게는 힘겨운 한자국을 용감히 디딜 수 있도록 에너지를 부어주는 한마디가 무엇보다 소중하고 출국 바람이 적셔간 이 땅에서 따뜻한 엄마품을 잃고 울먹이는 애들에게는 엄마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는 한마디가 여린 마음을 굳혀주는 좋은 에너지로 될 것이다. 100년도 살기 힘든 우리의 삶에서 서로가 주고받는 언어의 가치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희로애락을 동반하는 짧은 삶 속에서 천성이 부드러운 혀끝을 굳이 날카롭게 세워가지고 소중한 인간을 무참히 찌르기보다는 바른손을 내밀어 감싸고 보듬고 베풀면서 응원을 준다면 세상은 얼마나 밝고 아름다울가! 정을 담은 따뜻한 말 한마디는 봄날의 순수한 꽃들마냥 내 주위를 포근하게 감싸주면서 서로의 마음을 무난하게 윤활시켜 삶의 참뜻을 멋지게 부각시켜줄 것이다. 아름다운 꽃이 한순간 내 주위를 황홀하게 빛내줄 수 있다면 아름다운 언어는 평생 나를 포옹해줄 수 있는 넓은 터전으로 되여준다. 산밑에 가면 그 산의 높이를 알 수 있듯이 한 사람의 언어수준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과 학식까지도 보아낼 수 있다. 겸손하고 수양을 갖춘 진정이 담긴 언어는 자신에 대한 존중이고 품위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이고 또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이다.  꽃이 아름다와도 가시가 있을 수 있고 매력적인 언어에도 독이 있을 수 있으니 그 속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를 얻고 잃음은 자신이 할 탓에 달렸다. 계절에는 엄동설한이 있고 울퉁불퉁 인생길에는 모래길도 자갈길도 있으니 힘을 부어주는 동행자의 에너지가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도리이다. 인생은 홀로 가는 것이 아니고 여럿이 어우러져 가는 길인 것 만큼 솔선적으로 누군가에게 선뜻 마음을 열어보라. 그리고 봄날의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는듯한 즐거운 마음으로 따뜻함을 전해보라. 그러노라면 당신의 고달픈 삶에 늘 값진 에너지가 투자되여있을 것이다! 출처:2018 제6호
고통과 성찰이 드러나는 남철심 시인의 시적 세계  -를 읽고 손경란   고통은 우리가 누구나 살면서 보편적으로 체험하는 감정이다. 고통의 류형은 육체적 고통, 내면적 고통, 세계의 부정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고통, 력사적으로 인식하는 고통이 있다.  이들 중에서 남철심 시인의 시에서 보이는 고통의 류형은 내면적 고통이 지배하며 그 원인은 그리움과 고독, 소외감, 상실감, 혐오감에서 비롯되고 있다. 시에서 시인은 고통의 순간을 자기 인식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깊은 성찰에 이른다. 남철심 시인의 시를 말하면서 고통의 문제를 먼저 떠올리게 된 것은 그의 시에서 시적 화자의 내면의 고통이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격하게 울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남철심 시인의 시 를 통해 고통과 성찰이 드러나는 그의 시적 세계에 접근해보고저 한다.    1.  그리움- 령혼으로 보는 고요의  소리  먼저 첫번째 시 을 읽어보자. 밤은 고요하다. 그래서 고요를 즐기는 사람은 밤을 찾는다. 한개 련으로 된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밤이 와야만 찾아오는 어둠의 세계 속에서 찾아오는 존재를 만난다.  시의 첫행 “고요가 뜯어먹은 밤의 가장자리에서”라는 표현은 시적 화자가 처해있는 현재 시점은 고요한 밤의 끝자락 시간임을 말해준다. 화자는 온밤 깊은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밤이 다 지나가는 시간에 이르러서야 “한걸음씩 사색이 물러가”게 되고 주위의 메뚜기, 꽃, 별 등 자연물들을 바라보게 된다. 어둠을 배경으로 우주 속의 만물은 잠들어있다. “여름을 만지며 놀던 / 메뚜기의 발가락도 잠들었고”  “꽃들이 꽃들의 모양을 하고 / 입 다문 별들을 본다”. 어둠은 모든 상황의 정지이며 쉼이며 묵언임을 일깨워준다. 이런 어둠을 통해 먼 은하에서 출발해 망막에 하나 둘 착상된 별빛은 시적 화자의 그리움을 불러오며 “서러운 이름 하나”를 기억해낸다. 그 이름은 이내 “흐르는 바람결과 어우르며” 시적 화자의  슬픈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리별의 순간을 기억하게 한다. 만물이 잠든 밤의 고요 속에서 움직여 살아나는 추억을 “흐르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잎새”로의 비유적 표현이 기발하다. 또한 추억에 대한 동적인 묘사는 밤의 고요와 대조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추억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인간은 태여나면서 모태와의 리별을 첫 경험으로 그 후의 삶 속에서 부단한 리별과 만남으로 살아가면서 리별의 아픔을 숙명적으로 맞아야 한다. 수많은 리별 가운데서 “생의 약속들을 날리며 / 하늘보다 먼 나라로 떠나는” ‘죽음’이라는 리별 앞에서 시적 화자는 생의 약속들이 부질없이 가벼운 것이였음을 느끼며 삶에 대한 성찰에 이른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정교한 유리알을 굴리며” 창밖을 보는 집고양이의 동반이다. 또 전반 시에서 ‘메뚜기’, ‘꽃’, ‘별’, ‘고양이’ 그리고 시적 화자가 하나의 풍경으로 스크랩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응하고 조응하는 인간과 자연이 융화된 모습 속에서 동기감응하는 자연의 질서를 돋보이게 한다.    2. 소외감- 작은 존재에 대한 응시와 공감  두번째 시는 들꽃의 한 종류인 을 시적 대상으로 쓴 시이다. 좁쌀꽃의 ‘좁쌀’ 이름만으로 좁쌀꽃을 상상해보면 아주 작은 꽃이 상상될지 모르겠지만 사전적 해석을 보면 좁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꽃이 크다고 한다. 물론 또 다른 꽃들과 비교하면 그리 큰 꽃은 아니다. 잘 익은 좁쌀의 색갈을 간직하고 피여난 꽃, 아마도 다닥다닥 꽃망울이 모여있는 모습이 마치 좁쌀이 모여있는듯해서 좁쌀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닌가 싶다.  이 시는 3련으로 되여있는데 1련의 첫 두행 “어디를 닮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 나를 닮은 풍뎅이 길에서 꽃이 핀다”라는 도입부의 시적 표현을 보면 화자는 강변의 야산이나 들판에 서식하는 15-21mm 크기의 작은 곤충인 풍뎅이와 자신을 부분적으로 동일시하는데 이는 독자들에게 구경 어디를 닮았을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며 좁쌀꽃 밭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3행과 4행에서의 “큰 것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 야리야리 서있는 노오란 좁쌀꽃”은 좁쌀꽃의 가늘고 노오란 식물적 속성을 강화하여 시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독자들의 시선을 좁쌀꽃에 집중시킨다. 그러면서 “큰 것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좁쌀꽃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큰 것들은 보지 않는다’는 뜻과 함께 ‘작은 것들은 본다’라는 뜻을  함축함과 동시에 화자가 숨기고 있던 풍뎅이와의 류사성이 실은 ‘작은 존재’라는 점을 넌지시 암시하며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2련의 첫 두행 “같이 온 계절의 겨드랑이에 끼워 / 훌 불면 날릴듯 가녀린 모습”은 1련에서 제기한  ‘야리야리 서있는 좁쌀꽃’에 대한 의인화적 표현이다. 좁쌀꽃은 수많은 꽃들이 만발하는 계절에 단지 “겨드랑이에 끼워”서 찾아오는 작은 존재로, 또 “가녀린 모습”의 약한 존재로 의인화되여 표현되며 이로부터 화자는 좁쌀꽃에서 “시집간 누이”의 뒤모습, 즉 “작은 등”을  발견한다. 뒤이어 좁쌀꽃은 또 “아지랑거리는 태양의 눈물”로 승화된다. “시집간 누이의 작은 등”과 “아지랑거리는 태양의 눈물”은 1련의 4행에서 제기한 원관념인 좁쌀꽃의 보조관념으로서 은유적인 표현이다. 즉 한개의 원관념 “좁쌀꽃”이 “시집간 누이의 작은 등”과  “태양의 눈물” 등 두개의 보조관념으로 전이되여 의미의 변용과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누이의 작은 등”이 좁쌀꽃의 “야리야리한 모습”과 동일시되였다면 “태양의 눈물”은 좁쌀꽃의 ‘태양빛’을 닮은 노오란 빛갈과 ‘눈물’의 방울크기와 같은 작은 물리적 속성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화로서 경이로운 표현이다. 또한 ‘눈물’ 이미지는 좁쌀꽃의 ‘슬픈 존재’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3 련에 이르러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해진 좁쌀꽃의 ‘잃어버린 애모쁨’의 모습을 되찾고저 하는 감정이 고조되며 시적 화자의 그리움이 솟구쳐 흐른다. 2련의 시적 정서가 3련에서 이어져 좁쌀꽃과 동일시된 누이에 대한 그리움도 혼재해있기에 그 감동이 독자들에게 더 절실히 다가온다. 3련의 1행과 3행에서 ‘다시’라는 낱말을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좁쌀꽃에 대한 시적 화자의 그리움의 정서가 더욱더 간절히 드러난다. 풍뎅이 길에 피였던 좁쌀꽃은 이미 시적 화자의 가슴속으로 고스란히 옮겨져있다.  4련은 1련과 호응을 이루며 화자의 정서는 계속해서 고조된다. “노오란 좁쌀꽃”은 작고 여리지만 “가볍잖은 생의 무게를 / 고스란히 껴안고” 살아가는 외유내강의 존재이다. 여기서 “노오란 좁쌀꽃”은 축자적인 의미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힘없이 살아가는 ‘누이’를 포함한 소외된 인간존재에 대한 상징적 의미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시 에서 시적 화자는 작고 소외된 존재에 대한 응시와 공감을 통해 소외된 자들과 하나가 되고저 한다. 이는 인간존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망각한 채 서로 소외시키고 또 소외당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무의식을 일깨우는 행위이기도 하다.    3. 상실감-몸안에 갇힌 상처  세번째 시의 제목은 주방의 의미를 나태내는 외래어 이다. 주방은 음식을 료리하는 물리적인 공간이다. 이 시에서는  ‘밥짓기’가 계기가 되여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시적 상상력을 펼치는 공간이다.  “금방까지 배고프다고 조르더니 / 부엌에서 밥 짓는 사이 / 그 사람은 홀랑 죽어버렸다”라는 표현에서 시적 화자는 밥 할 시간이 되여 주방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배가 고파 주방에 들어간다. 아마도 굶어있었던 모양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을가? 바로 이어지는 “밥 짓는 사이 / 그 사람은 홀랑 죽어버렸다.”라는 표현하에 갑자기 팽팽히 긴장되고 음산한 강박감이 흐른다. 이어 독자의 시선을 칼도마 우에서 죽은 잉어 우로 옮겨간다. “칼도마 우에서 팔딱거리던 / 잉어 대가리도 / 썰어놓은 고수풀 옆에서 / 눈도 못 감은 채 죽어있었다”. 화자는 잉어의 눈빛에 시안을 집중한다. 잉어는 림종시에 풀지 못하는  한이 있어 차마 눈을 감지 못하는 것일가? 정지된 생선의 눈빛에서… 죽임을 당한 잉어에게서 아찍 꺼지지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잉어를 죽이면서 “피를 먹어 인자한 칼을 내려놓”는다. 밥을 지을 때 칼은 늘 사용하는 도구이다. 칼은 사물을 자르거나 분할하여 가르는 역할을 하지만 칼자루를 쥔 자는 칼의 힘으로 권력이나 부나 욕망을 쟁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물리적인 칼이 아닌 인간의 마음속에도 칼이 있다. 화자가 한자루의 칼을 가지고 마음대로 휘두르는 리유는 무엇일가? 이어 “손바닥을 펴보니 / 손가락이 없다 / 눈을 비벼도 하나에서 열까지 / 손가락이 없다”. 인체의 중요한 부위로서 ‘손가락’의 상실은 육체적 불구를 의미한다. 이어서 “혼자 생각하던 담배불이 / 눈을 껌벅이며 / 터지려는 오줌을 참고 있다”라는 시적 표현으로 넘어가는데 그제야 안도의 숨이 나간다. 여기서 담배불은 화자를 가리키고 화자는 잉어를 죽이면서 칼자루에 묻어난 피를 보면서 ‘죽이고 싶은’ 좀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에서 내려놓고 싶은’ 누군가를 잊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더 죽여야 할 시간인데 / 누군가 하나만 더 / 죽여야 할 시간인데”라는 표현은 화자가 죽여야 하는 존재는 아직도 마음속에 하나, 둘 더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시의 공포를 자아내는 이미지들은 결코 실재 대상의 재현이 아니다. 시인의 내면세계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들이다. 이 시는 의식과 무의식의 층위를 오고가는 시적 특징을 보이기 때문에 다소 난해하고 해괴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한창 시 속에 머물며 서성이게 한다. 또한 행간의 이미지는 어떤 론리에 의해 형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시적 화자의 내면세계의 갈등과 모순의 이미지화이다. 이에 시적 표현을 다시 음미해보면 ‘홀랑 죽어버린 사람’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상대, ‘잘린 손가락’은 자아상실감, ‘더 죽여야 할 누군가’는 상실로 인한 주위 사물들에 대한 귀찮음의 정서로 볼 수 있다. 외부세계를 상실한 상황에서 시인이 보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 곧 자신의 내면세계이다. 전반 시는 화자의 내면세계의 강렬한 충동을 충격적으로 묘사하고 현실적 시공간과 환상이 뒤섞이면서 시적 긴장을 이루고 있다.    4. 고독감-페쇄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느끼는 환청  네번째 시 이란 시는 “재수 없는 날이면 / 고장난 세탁기가 돌아간다 / 베란다 구석에서 소리치며”라는 전도적 표현으로 시작된다. 세탁기가 고장났으니 재수가 없긴 없다. 고장난 세탁기의 소음 진동소리에 생각하며 그리워하던 누군가의 이름이 씻겨간다. “하얀 기억이 새롭게 표백된다”. 하얗게 희미해진 기억이 더 희미해진다. 기억과 그리움을 차단시키는 고장난 세탁기 소리가 그야말로 재수가 없긴 없다. “너무 오래 가리우고 살아온 / 슴슴한 일상의 냄새에 섞여 / 마지막 남았던 이름마저 / 비뚤어진 배수구로 도망간다”라는 표현은 일상사에 쫓기우고 또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가슴 깊숙한 자리까지 내밀려있던 누군가의 기억이 고장난 세탁기의 소음소리에 단절되였다는 의미이다. 원망과 아쉬움이 내재해있다. 하얗게 무색해진 기억은 화자가 떠올리고저 하는 아름다운 내면풍경이다.  2련에서 “아주 가끔씩 / 세탁기가 돌아가는 날이면 / 고장난 전화기가 울린다 / 걸어오는 사람도 없이 / 혼자 울린다”라는 시적 표현을 보면 고장난 전화기가 울릴 수 없다. 화자는 환청을 경험한 것이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음소리에 혹시라도 울릴지 모르는 전화소리를 듣지 못할가 안절부절 못했거나 아니 누군가 전화를 걸어오기를 기다렸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다 환청을 한 것이다. 전화기를 들고 일본어로 “모시모시(여보세요)”라고 인사를 해서야 확실히 잘못 들었음을 확인한다. 화자는 심심풀이를 세탁기를 돌리는 것으로 해소한다. 심심해서 세탁기가 돌아갈 때 환청하는 귀를 두고 ‘고장났다’라는 표현을 쓴다. 누군가를 애써 기억하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시간과 페쇄된 공간인 집에서 홀로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5.‘부드러운’ 육체를 통한  자아 및 인간에 대한 성찰  다섯번째 시 를 보자. 욕조는 우리가 하루의 일상을 마치고 따뜻한 물에 몸을 풀면서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기도 하며 알몸으로 들어서는 공간이다. 있는 그대로를 맡기는 공간이다. 가식이 필요없이 투명하게 물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시의 첫련 “뜨거운 욕조 속에 들어가면 / 아무렇게라도 이야기는 시작되겠지”라는 도입부의 추측적인 표현은 화자가  욕조 속의 ‘어떤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음을 말해주며 동시에 독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기대할가’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어서 2련 “몸의 중심에 달린 그것도 / 흐드러지고 희미해지고 흔들거린다 / 연하고 부드러운 것들은 / 다 녹여 하나로 되더니 / 손가락도 발가락도 거기도 / 길게 비뚤어져 녹을 것처럼 / 흐물거리다가 그대로 있다”라는 표현을 보면 화자는 육체와 물과의 교합 속에서 욕조 속의 알몸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이 때 몸은 뜨거운 욕망의 그릇이 아니라 자아를 포함한 인간을 성찰하는 시적 대상으로 기능하다. “모든 물상들 다 불러 / 함께 담그고 싶은데”라는 표현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저 하는 화자의 념원을 드러내지만 바로 “단단하고 각이 나서 맞히면 아프다” 라고 하면서 단념한다. 많이 부딪쳐 아픔을 겪은 기억 때문이다. 마지막 련은 돌연적으로 “사람 하나 사랑하기가 이리 어려운데 / 사람 하나 미워하기가 얼마나 힘들가”라는 독백으로 끝을 맺는데 이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 속에서 서로 사랑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미워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에 이르면서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경제적 론리에 따라 사고하고 움직이는 현대 인간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늘 쉽게 상처를 주거나 받는다.  전반 시의 흐름에는 욕조 속에 놓인 녹아든 ‘부드러운’ 몸에 대한 응시를 통해 더불어 살고저 하는 시인의 무의식적 사고가 내재해있다.    6.혐오감- 현대문명과 인간에 대한 비판 마지막 시 를 읽어보도록 하자. 긴자 욘쵸메는 일본 제일 번화한 쇼핑가로 고급 매장과 백화점이 자리잡고 있으며 고급 유흥업소들도 많다고 한다. 세련되고 아담한 상점과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고 찬란한 네온사인이 인상적인 곳, 현대 문명을 자랑하는 도꾜의 상징적 거리이기도 하다.  허나 이 시의 도입부에서는 일본의 현대문명과 부를 대표하는 가장 번화한 거리를 “银座四丁目 / 오줌싸개들의 거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비하한다. 오줌은 인체의 배설물로서 오줌싸개는 아무데서나 배설하는 추태를 보이는 행위를 말한다. 즉 추잡한 인간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2련에서의 “고귀한 것들이 / 다 모여 / 오줌을 싸는 거리”라는 표현은  ‘고귀’한 존재에 대한 반어적 비판과 조롱이다. 3련과 4련은 전도적 표현수법으로 되여있다. “숫구멍이 두개 달려 / 조금은 부실해보이는 / 착한 내 령혼을 / 유쾌히 짓밟으며 / 이쁜 종아리들이 지나가고 / 가랭이를 적시며 / 바람난 고양이도 지나가고”라는 표현은 긴자 욘쵸메에서 목격한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쁜 종아리들”은 이쁜 녀성을 말하고 떠돌이 고양이를  ‘바람났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긴자 욘쵸메의 주류 풍경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조금은 부실해보이는’ ‘모자라는’ 존재로 자조한다.  5련에서의 “미쳐버리도록 아릿다운 / 아래도리들의 정서를 만지작거리며”라는 표현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나 욕망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번화가에서 다들 점잖게 오가지만 내면엔 성적인 원초욕망이 우글거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밤은 이미 / 꽃의 변두리까지 오고 있다”라는 표현은 옥타비오 파스가  “섹스가 뿌리라면 에오티시즘은 줄기이고 사랑은 꽃”이라고 한 비유적 이미지와 맞물리는 시적 표현이라 생각된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으로서의 성욕은 우리 삶의 아름다움이기도 하고 온갖 추한 악의 근원이기도 하다.  6련과 7련의 “가랭이를 벌리면 / 시간이 털처럼 일어서는 / 銀座四丁目 / 아릿다운 것들이 / 다 모여 / 오줌을 싸는 거리”라는 표현은 소위 신사와 갑부들의 버젓한 외모와  대조되는 그들의 추태를 대조적으로 비판하고 조롱하면서  ‘아름다움과 고귀한 것’에 대한 사색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이상 남철심 시인의 를 읽으면서 가끔은 시인의 상상의 날개를 따라 자유롭게 노닐다가도 난해한 시적 표현에 이르러서는 한참 동안 시 속에 머물면서 머뭇거리게 된다. 또한  그 머뭇거림 때문에 읽을 재미가 더해지고 탐정미를 느낄 수 있었으며 시인의 진실한 령혼의 시세계를 만끽해 볼 수 있었다.  출처:2018 제6호
59    조영욱: 주체할 수 있는 욕망(소설평) 댓글:  조회:100  추천:0  2019-07-15
주체할 수 있는 욕망 조영욱   1. 들어가며 이 작품을 받았을 때 제목이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 제목이 아니라 노래 제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부에는 흔히 다룰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 읽고 나자 무언가가 암시하고 말하고저 하는 바가 있다고 느꼈다. 요즘 깨달은 도리이지만 시인은 말하고저 하는 바를 함축 혹은 비틀어서 표현하고 소설가는 사실적으로 말하고저 하는 바를 표현한다. 다시 말하면 시의 정수精髓는 상징이고 소설의 정수는 리얼리티이다.  조원의 단편소설 를 읽으면서 뒤로 가면 갈수록 시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비록 학이비재学而非才하지만 한번 다루어보려고 한다.    2. 플롯의 문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플롯은 사건의 결합이라고 했다. 이 작품도 여러가지 사건들로 이루어져있다.  구스타프 프라이타크(Gustav Freytag)의 5막극 구성법은 작품을 도입부(제시부: exposition), 상승행동(rising action), 위기(정점: climax), 하강행동(귀환: falling action), 파국(resolution)으로 나눈다. 이런 5막극의 구성을 따르는 드라마나 이야기, 연극이 많다. 이 작품도 거의 이런 구성에 잘 들어맞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도입부 이 작품의 도입부는 길다. 대개 십분의 일의 편폭으로 도입부를 구성하고 있다.  주로 주인공 ‘나’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있다. 작품은 시작부터 현대인의 곤혹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바로 이른바 ‘월요병’이다. ‘나’는 샐러리맨은 아니지만 ‘월요병’이 있는듯하다.  여기서 카메라가 등장한다. ‘내’ 직업은 이른바 인테리어 사업자 즉 시공기술자다. 잘 생각해보면 ‘나’는 카메라가 필요없다. 물론 인테리어에는 사진을 찍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요즘 같은 시대에 일반적인 인테리어사업자는 거의가 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리용한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리용하지 않고 여기에 DSLR카메라가 등장하는 것은 “‘나’는 일반 인터리어사업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뒤에 나오지만 ‘내’가 쓰는 카메라는 2017년에 출시된 캐논 EOS 800D라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또한 뒤에 카메라 때문에 어떤 사건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나’는 ‘월요병’이 있고 작업실과 거주공간이 따로 없이 하나이며 카메라와 같은 취미도 있고 또한 차에 있는 물건을 도적맞힐가봐 걱정하는 전형적인 현대인이다. 그러나 ‘내’ 이야기는 전형적이지 않고 특별하다.    상승행동 내가 웅이네 집에 도착하면서 상승행동은 시작된다.  ‘나’는 ‘녀인’의 전원주택의 다락방 증축공사를 맡았다. 다락방에 있던 물건을 옮기다가 ‘나’는 우연하게 ‘녀인’의 손을 터치하게 된다. 일을 하면서 곽명은 나에게 ‘녀인’에 관한 소문을 얘기해주게 된다. 그중에 한 소문은 ‘녀인’이 ‘나’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를 거부하면서도 내심 무언가를 기대한다. 곽명은 ‘나’와 ‘녀인’을 위해 자리를 피해 그 집을 떠난다.   위기 그러다가 나는 우연하게 ‘녀인’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가 잠옷 바람의 ‘녀인’과 조우하게 되며 그의 반라상태의 신체를 보게 된다. 그러나 “녀인은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짓”는다.   하강행동 ‘나’는 ‘녀인’으로부터 아들 웅이를 유치원에서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런데 웅이는 낮에 쓰레기 수거 수업을 하다가 어떤 물건을 주었는데 알고 보니 그 물건은 ‘나’의 것과 모델이 같은 카메라다. 그 카메라를 복원해보니 한 “남자와 녀자의 무릎 아래 종아리와 발” 사진과 일분 이십삼초짜리 동영상이다. 나는 타인의 사생활 속으로 잠간 빠져들었다가 SNS에 카메라 주인을 찾는 게시글을 올린다.    파국  카메라의 주인은 ‘나’에게 “오후 세시, 좌망바다가 좌망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한다. 그런데 그 카메라 주인은 바로 그 ‘녀인’이다. 이럼으로써 위기는 해소된다.   ‘내’가 속살을 보았을 때만 해도 주인공인 ‘내’가 이 분명히 남편이 있을 유부녀와 어떤 ‘위험한 불장난’에 빠져들 것만 같았지만 뒤에는 그렇지가 않다. 무언가가 보다 복잡한 현상이 보인다.    3. 욕망의 문제 주인공 ‘나’는 분명 이 작품에서 주체다. 주체는 욕망이 있다. 또한 타자가 있다. 그 타자는 ‘녀인’이다.  이 욕망은 ‘녀인’에게 통제당하고 있다. ‘나’는 곽명이 말해주는 것을 애써 거부한다. 곽명은 두가지 소문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하나는 ‘녀인’이 고위층 관리의 정부情妇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내’가 ‘녀인’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두 소문을 다 부정하고 있다. 왜냐 하면 ‘녀인’이 소문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거부 혹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녀인’에게 통제당하는 욕망도 이를 거부 혹은 외면하고 있다. ‘나’는 그 ‘녀인’과의 조우에서 무력감이 있다. 그래서 웅이를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수락하고 만 것이다. 무력감 때문에 거부하지 못했다. 거부하지 못하는 부탁은 사실 명령이다. 관음증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나’는 ‘녀인’에 대한 무력감 때문에 욕망을 억압하고 있으며 억압받고 있다.   ‘나’는 이 욕망을 카메라로 전이하고 있다. ‘나’는 주어온 카메라를 정성스럽게 청소한다. 왜냐 하면 거기에는 그 ‘녀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셀로판지에 포장된 물건”의 정체에 대해서 상상을 하고 그래서 우연히 짧은 실크 잠옷 차림의 ‘녀인’과 그 속살을 보았을 때 ‘나’는 당황했고 ‘녀인’은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또한 카메라를 다 청소하고 나서 안에 들어있는 동영상을 보다가 그 연장으로 마루바닥에 있는 ‘녀인’의 “빨간 발톱 우에 박혀있는 큐빅”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녀인’이 등장해 ‘머리카락’으로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여기에 웅이가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웅이는 어떤 존재일가? 단지 ‘내’ 욕망의 대상인 ‘녀인’의 아들일가? 특이한 것은 이 ‘녀인’이 전반 작품에서 ‘녀인’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웅이네’로 불려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웅이는 사실 내 사상写像이며 내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에 대해 ‘나’의 욕망을 대리만족시켜주는 존재이기도 하면서 조력자다. 혹은 ‘나’와 웅이는 하나다.  웅이가 주은 카메라 모델은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와 같다. 욕망 전이용 도구 혹은 욕망 만족 도구의 모델이 같음으로써 어떤 동질감이나 일체감을 가진다.  작품이 시작되는 데에서 “오늘은 웅이네 전원주택”이라고 했다. 여기서 ‘웅이네’는 그 ‘녀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웅이의 집’으로 해석된다. 웅이를 아주 피붙이거나 가까운 사람처럼 호칭하고 있는 것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나’는 ‘녀인’을 탐하려는 욕망이 있지만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고 웅이는 그 욕망의 대상과 한집에 있다. 그래서 작품에도 나오지만 나는 웅이네 집 다락방에 집착한다. ‘내’가 일하는 장소는 주로 다락방이다. 또한 ‘나’는 다락방에 대해서 공간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다락방에서 일을 하면서 나는 아래층 녀인의 시간을 함께 나누어쓰는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역경易经에서는 세상만물을 음양阴阳의 법칙으로 본다. 양은 우에 있고 음은 아래에 있다. 양은 남자이고 음은 녀자이다. 다시 말하면 남자는 우에 있고 녀자는 아래에 있다. 이 세상을 구성한 인간들 모두 남자가 우에 있고 녀자가 아래에 있는 체위体味에 의해서 생산된 것이다. 집 구조 자체가 그렇게 설계돼있다. 우층 다락방에는 남자-‘내’가 있고 아래층에는 녀자-‘녀인’이 있다.  해빛이 잘 들기 때문에 다락방은 양이기도 하다. 다락방은 누구의 공간인가? 나의 공간이기도 하면서 웅이의 공간이다. 그래서 웅이가 “다락방의 주인은 자신”이라고 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나’는 동일화된 웅이를 통해서 ‘녀인’과 성행위를 하며 무의식적으로 욕망을 배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머니를 범할 수 있다는 데서 오이디푸스적이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욕보이게 했다. 이 작품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서술이 나온다. 이 ‘녀인’은 고위층 관리의 정부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웅이는 이 고위층 관리의 아들이다. 나는 이 관리와 경쟁자다. 곽명의 입을 통해서 들은 소문은 두가지였다. 이 ‘녀인’이 관리의 녀자이거나 ‘나’의 녀자라는 소문이다. 소문끼리도 경쟁하고 있지만 ‘나’도 무의식중에 관리와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웅이와 일체다. 그렇다면 ‘나’는 웅이를 통해 관리와 오이디푸스적인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웅이가 주은 카메라에는 한 남성의 “무릎 아래 종아리와 발”만 등장한다. 론리적으로 분석하면 이 남성은 바로 그 관리이다. 웅이가 주어온 카메라의 사진과 동영상을 복원시켜놓고 감상하는 것은 욕망을 분출하는 행위이다.  욕망은 결국엔 카메라로 전이되였다. 그 카메라의 주인을 찾으려고 한다. 그것보다 아마 카메라에 등장하는 남성과 녀성이 누군지 확인하고 싶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 녀성은 다름 아닌 ‘녀인’이였다. 결국 분산된 욕망들이 하나로 회귀되였다. 이로써 오이디푸스적 인간이 완성되였다.     4. 욕망의 중개자의 문제 르네 지라르(Rene Girard)는 삼각형 욕망이라는 력동적인 리론을 제기했다. 대부분의 허구작품들은 자연발생적인 주체의 욕망을 대상으로 이어지는 간단한 직선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 직선 우에 주체와 대상 쪽으로 동시에 선을 긋고 있는 중개자가 있다. 이는 삼각형이다.  이 작품에서 주체는 ‘나’이다. 대상은 ‘녀인’이다. ‘나’는 ‘녀인’에게 욕망이 있다. 일반적인 소설 같으면 ‘내’가 ‘녀인’에게로 직접 련결(직선)되면 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떤 중개자를 통하여 련결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중개자는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먼저 웅이가 중개자다. 웅이가 카메라를 주어서 ‘나’한테 줬다. 카메라에 ‘녀인’이 있으므로 여기서 대상은 ‘녀인’인 동시에 카메라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주로 웅이의 암시를 받으며 ‘녀인’에게 카메라의 진상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있다. 지라르는 이 삼각형에 대해 특이한 해석을 했다. “욕망의 삼각형은 이등변삼각형이다. 중개자가 욕망하는 주체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욕망은 점점 더 강렬해진다.” 이를 어느 학자가 풀이했다. “주체와 중개자 사이의 거리가 멀면 대상과 중개자 사이의 거리도 멀고 주체와 중개자 사이의 거리가 가까우면 대상과 중개자 사이의 거리도 가까워진다. 중개자와 주체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 경우 대상과 중개자를 구분할 수 없게 되고 욕망도 강렬해진다.” 앞에서도 봤지만 ‘나’는 웅이와 일체다. ‘나’와 웅이가 가까워져서 구분할 수 없게 될 때 욕망이 더욱 강렬해지는 것이다. 이 중개자는 웅이 외에도 곽명과 장위이기도 하다. 특히 ‘나’는 곽명으로부터 ‘녀인’에 대한 암시를 받는다. 곽명은 ‘내’가 욕망을 실현하는 조력자다. 돈키호떼에게 충성하는 산초처럼 ‘나’와 곽명 사이에는 경쟁관계가 없다. 곽명은 ‘내’가 ‘녀인’에게 다가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나한테 ‘녀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며 ‘나’와 ‘녀인’을 위하여 자리를 비켜주기도 한다. 지라르는 주체와 중개자가 경쟁관계이면 이를 내면적 간접화(mediation interne)라 하고 경쟁이 없으면 이를 외면적 간접화(mediation externe)라고 했다. ‘나’는 ‘녀인’을 욕망하지만 직접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존재 즉 중개자와 경쟁을 통해서 욕망하고 있다. 오늘날 시장경제체제에서 생성된 소설은 그럴 수 밖에 없다. 특히 이 작품에서 ‘나’는 ‘녀인’과 경제적 관계로 이어졌다. 그래서 여러 중개자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웅이, 곽명, 장위, 웅이의 아버지로 추측되는 관리, 심지어 카메라도 어떻게 보면 중개자다.    5. 공간의 문제 작품의 제목은 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 ‘바다마을 좌망’은 대체 어디인가?  소설에서 공간 혹은 배경은 앞으로 발생할 일을 암시하거나 분위기 조성용이라고 여러 문학리론가들은 말한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도입부에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는데 좌망과 여러 도시에 있는 “내가 손을 댄 건물”을 보니 존재감을 느낀다고 했다. 어떤 존재론적인 사고를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를 도입부에 위치함으로써 정서적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뒤이어 ‘바다마을 좌망’에 대한 묘사가 있다. 이 마을은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휘여진 해안을 따라서 주택들이 산비탈에 제멋대로 앉아있”다. 모여있어서 둥그런 모양이 아니라 해안을 따라서 형성된 마을이기 때문에 기형적이다. 첫 시작에 나는 샐러리맨에 가까운 평범한 생활을 하는 청년, 그래서 ‘월요병’이 있는 청년이지만 이 이야기는 뒤에 가서는 결코 ‘나’처럼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로신의 소설에는 S성S城이 등장한다. 이 S성은 로신의 고향 소흥绍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좌망은 현실에서 어디인가? “시내에서 동쪽으로 40키로메터 떨어진” 바다가 마을이라고 했으니 중국의 청도와 같은 어느 해안도시인가? 아니면 한국 동해안의 어느 해안마을인가? 모티브는 현실에서 가져왔겠지만 중국이나 한국이나 어디에도 좌망이라는 마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좌망은 분명 허구적인 장소다.  김승옥의 에서 무진은 현실의 공간 서울과 대립되는 허구의 공간이다. 무진은 분명 주인공이 머무를 수 있는 도시지만 허구다. 주인공은 거기서 불륜도 저지르는 몽환적인 행위를 한다. 욕망을 실현하는, 현실(서울)에서는 불가능한 행위를 하는 공간이다.  이 작품에서의 좌망도 그러한 곳으로 보인다. ‘나’의 “작업실이자 거주공간인 집”은 현실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웅이네와 나는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다고는 했지만 ‘나’의 집이 더 이상 현실적일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물론 이 작품에서는 에서처럼 두 대립되는 공간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좌망에 치중점을 두었다. 좌망은 ‘내’가 욕망을 하는 공간이다. 마지막에 ‘나’는 카메라 주인 ‘녀인’과 좌망 바다가 좌망커피숍에서 만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녀인’은 나에게 그에 관한 소문을 믿느냐고 질문하면서 “편견과 맞서는 데는 오만 뿐만이 아니겠지요? 단순하게, 아주 단순하게 타인의 시선에서 멀어져서 나를 잊으면서 살 수 없을가요?”라면서 중얼거린다. ‘시내에서 동쪽으로 40키로메터 떨어진’ 마을에 사는 리유를 설명하는듯하다. 소문은 전부 다 사실이 아니며 자신은 빛, 그러니까 보다 편안하게 살 수 있기 위해 이 공간에 와있다는 말인 것 같다. 이를 ‘나’는 좌망坐忘하고 있을 따름이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진리는 저쪽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앉아서 욕망의 대상을 보고만 있는 것일가? ‘녀인’은 존 밴빌의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메모지에 무엇인가를 적었다. 《바다》는 안해를 잃은 주인공이 예전의 로맨스로 려행을 떠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카메라 속의 남자는 진정으로 전남편이였던 것일가? 이 전남편은 그 “탐오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고위층 관리”였을가? 그래서 메모에 “그는 / 철창 밖, 그 어두운 방에서 숨을 고른다”고 했던 것일가? 그가 ‘철창 밖’에 있다면 ‘녀인’은 철창 안에 있다는 얘기가 된다. 어떤 도착증 증세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바다’를 ‘어두운 방’이라고도 한 것이다.   6. 나가며  이 작품은 결국 따지고 보면 산업화와 시장경제가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의 현실사회에서 일상생활을 연명해나가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평범해보이는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누구나 다 욕망이 있다. 이 욕망은 에로틱한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다. 이 욕망은 전자기기들에 로출이 되여 간접화되고 있다. 이러한 욕망들은 평범한 욕망이란 없다. 다 특별하고 싶다. 전자기기를 통한 욕망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러한 욕망이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결코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허무감을 느끼게 되며 실존의 문제에 대해 사고하게 된다. 이러한 느낌과 생각이 문학으로 승화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좀더 깊게 들어가고 심각하게 다루었더라면 어땠을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출처:2018 제6호
정주와 떠돔을 소멸시키는 여섯개의 편린들 김홍월   1. 삶과 존재의 본질 정주定住와 떠돔에 갈 수조차 없음을 일깨우는 박초란의 여섯개의 소설들은 각자의 밀당이 많았다. 정주와 떠돔을 줄다리기시키며 끝없이 밀고 당겨 끝내 소멸시키는 과정, 다시 말하면 정주와 떠돔 사이의 끈을 팽팽히 당겼다가 끝내 끊어버리는 과정을 겪을 수 있다. 정주와 떠돔 어느 쪽에도 안착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비극이고 또한 삶과 존재의 본질이다. 정주와 떠돔 어느 쪽에도 긍정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정성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주와 떠돔 사이의 문제 속에서 항상 헤매고 있다. 이러한 삶과 존재의 본질을 박초란은 , , , , , 을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여섯개의 소설에서는 정착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은 물론 떠남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까지를 모두 보여주고 있다.    2. ,  존재하지 않는 욕망의 끝 사물에 구속되지 않고 자연에 맡겨둔다는 뜻으로 아버지는 ‘재유在宥’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재유는 《장자庄子》에서 따온 것인데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교육방침이기도 하다. 재유는 한국 류학을 갔다 와서 북경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런 그가 몸이 아프다는 어머니의 소식으로 고향에 오게 된다. 서른이 되기 전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재유는 별로 련락이 없었던 고향 동창 김인후의 생일 초대에 선뜻 대답을 한다. 김인후의 안해 서해영의 친구인 묘와 재유는 그렇게 만났다. 묘는 성이 장씨이고 이름이 미묘연인데 사람들은 그를 고양이 ‘묘’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류학을 마치고 귀국한 재유와 달리 묘는 한국으로 류학을 갈가 망설이는 중이다. 고향에서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묘는 더 큰 세상을 떠돌고 싶어한다. 한국에 머물고 있는, 하지만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남자친구를 찾아가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재유와 묘는 고향을 벗어나도 고향이 그리워지고 고향에 와도 고향을 벗어나고 싶어지는 사람을 각자 대표하는 것이다.  재유와 묘는 김인후의 집에서 나와 사우나로 향한다. 사우나에서 재유는 이름도 나이도 배경도 모르는 묘에게 갑자기 키스를 하고는 “내가 널 책임질게. 우리 결혼하자.”고 한다. 그리고 원한다면 북경에서 집도 장만해주겠다고 한다. 묘는 그런 재유의 행위에 어이없어한다. 다음날, 묘가 깨여나 휴대폰을 보니 둘이 키스한 장면을 찍어 누가 위챗에 올린 것을 발견한다. 그렇게 둘은 사우나에서 헤여지고 묘는 련락이 두절된다. 묘에 대해서 일말의 료해도 없는 재유가 묘에 대한 급격한 태도는 자칫 개연성이 떨어져보일 수 있다. 사실 재유는 나비가 꿈을 꿔서 장자가 되였듯이 고향을 떠나있다 보니 고향이 무조건적으로 좋아져서 고향의 묘에게 느닷없이 청혼한 것이다. 고향에 돌아온 재유가 고향을 떠나고저 하는 묘를 희구하는 것은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였다가 나비가 꿈을 꿔서 다시 장자가 되는 것과 같다.    “지하철 안에는 이미 콩나물시루 같이 사람들로 꽉 찼는데 자꾸만 사람들을 밀어넣는 거야. 꽉꽉 더 차야 출발할 수가 있다는듯이… 너무 덥고 숨까지 막혀. 깨고 보니 꿈이였는데 너무 더운 거야. 아버지가 그래도 오랜만에 온 아들이 추워할가봐 아궁이에 장작을 많이 밀어넣은 거지…”   재유는 고향에서 자신이 북경의 지하철 안에 있는 꿈을 꾼다. 깨여보니 아버지가 불 땐 뜨거운 방에 누워있었다. 이는 대체 자신이 꿈속에서 북경에 있는 것인지, 북경에서 고향의 불 때는 방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마치 장자가 나비인지 장자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재유는 정체성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장자가 나비인지 장자인지 정체성을 잃은 것처럼 재유는 자신이 찾아헤맨 대상이 고향을 상징하는지 타지를 상징하는지 알 수 없게 되였다. 즉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며 자기 정체가 무엇인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두터운 책 속의 삽화 하나가 떠올려졌다. 나비꿈을 꾸는 장자의 삽화. 나비꿈을 꾸고 있는 장자의 침대나 나무밑둥이나 그늘 속에 혹은 동자 하나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차를 끓이는 화로 뒤쪽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고양이 한마리가 숨어서 하품을 하다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을 것만 같았다. 삽화 속 어디에도 없는 고양이 한마리를 재유는 정말이지 너무 찾아내고만 싶었다. 그 때 재유는 왜 하필 고양이였는지, 왜 보이지도 않는 고양이를 찾고 싶었는지를 알지를 못했다. 뒤이어 재유의 휴대폰으로 끝없이 이어진 위챗 알림소리가 사정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재유는 아무리 ‘고양이’를 찾고 싶었으나 고양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묘, 다시 말해서 욕망의 끝은 장자의 꿈과 같이 우리의 인생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는 어디에도 결혼으로 상징되는 행복, 욕망의 끝은 없다는 것이다. 고양이를 찾는 재유에게 련락이 한꺼번에 오는 것은 자기를 찾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지는데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였다는 의미이다.    3. ,  이방인이 아닌 토착민 ‘나’는 서른여섯의 나이에 퇴직을 하고 유명한 출판사 편집 직을 사직한 ‘그녀’와 북경 교외에 나와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진다.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배낭을 메고 배낭려행을 떠나기 시작한다.   나는 이 동네에서는 제일 근사해보이는 호텔 입구에서 민박집 따거가 와서 나를 데려가기를 기다린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서있는 시간들이 싫다. 아니, 불안하다. 그녀가 내 어린 시절을 비난했던 것도 그 때문이였다. 어릴 때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나’는 어릴 적 상처로 누군가를 잃어버리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것에 상처를 입고 불안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나’는 가족과 함께하듯 사람들과 따뜻하게 함께할 수 없다는 어릴 적 상처로 인해 사람이 그립지 않은 것처럼 교외로 가기도 하며 외롭게 살아가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상처 때문에 만든 거짓 자신이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젊은이와 아이들은 보기가 힘들었고 양지바른 곳에는 로인들이 몇몇이 앉아서 지나가고 있는 나를 신기한듯 쳐다보았다. 간혹 뭐 하러 온 거냐고 먼저 물어오는 로인네들도 있긴 했다. 꽤 유명한 려행지인 수장성과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에 알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사람은 겉으로는 낯선 사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누구나 사람을 그리워한다. ‘나’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사람이 낯선 사람을 경계한다면 사람은 더더욱 사람을 그리워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교외의 산골 마을에서 조용히 살아가려고 하였으나 사실 마음 깊은 곳의 진짜 자신은 보통사람들처럼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    문득 나는 내 삶에서 모든 것이 빠져나간 뒤에 결국은 사람이 남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대도시의 인파 속에서 정작은 사람이 그리웠다는 걸 알았다. (…중략…) 이제 돌아가면 그녀를 위해서 무화과나무 한그루를 심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무화과가 주렁주렁 열리도록. 꽃이 피지 않는 과실이라고 해서 무화과라고 하나 실제는 과실 안에서 꽃이 핀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졌다.   ‘그녀’가 떠나간 후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새 가족을 꾸렸던 어머니까지도 ‘그녀’와 함께 돌아오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는 쉽게 갈라지지 않고 끈끈하게 이어져있는 것이다. ‘나’는 자신이 무화과 같은 꽃이 없는 이방인인 줄 알았는데 무화과를 좋아하는 ‘그녀’를 통해 알고 보니 무화과에는 열매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열매는 맛있었다. 즉 자신은 차거운 이방인이 아니라 열매가 있는 따뜻한 사람인 것이였다. 그런 점에서 ‘나’는 다시 어머니 그리고 ‘그녀’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였다.    4. ,  의미 있음의 의미 없음 누군가의 분주함이 좋다. 수저와 그릇, 컵을 정연하게 격식 대로 차려놓고 차 한잔을 따라주는 그런 잘 짜여진 서비스에 익숙한 몸짓마저도. 결국 깨닫게 된 건 그런 와중에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생생히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움직임, 그래서 서로가 영향을 주고 서로가 긴밀히 련결되여있는 것일지도…   낯설지 않은 사거리동네에 있는 모임장소에 도착한 ‘나’는 바쁘게 움직이는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을 즐겁게 여기고 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생생히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모임에서 누군가가 남경대학살 때 조선인들이 앞장서서 살육을 했다는 화제를 던지고는 토론을 벌인다. 한 사학자가 그것은 포털사이트에 떠도는 근거 없는 류언비어라고 주장한다.  모든 사건은 련결된다. 그 먼 남경대학살과도 우리는 모두 관계된다. 지금은 풍요로운 시대라 관계 없어보여도 학살의 끔찍한 진실과 현재의 삶은 관련이 있고 우리는 그 관련 만큼 책임을 갖는다. 그 관련, 관계에 대한 인식이 있을 때 진짜 살아있는 삶이 되는 것이다.  ‘나’는 북경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동업자이자 남자친구인 율과 창평昌平구의 사거리동네에서 서점을 오픈한다. 창평구에 있는 친구인 한과 ‘나’는 서점 근처에 위치한 초향로草香芦 가게에 들린다. 워낙 념주를 좋아하는 한은 평소에도 한두개를 꼭 몸에 하고 다녔다. 한의 손목에 금강보리념주가 감겨져있는 것을 보고 가게 주인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하나일 때가 더 좋은듯해서요. 좋은 것도 너무 많으면 소중하지가 않거든요…”라고 한다. 이것은 가게주인의 입을 빌어 우리들의,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생각의 틀을 보여준 것이다. 즉 지금의 행복이 너무 과해지면 그것은 남경대학살과 같은 불행하고 어두운 삶의 면을 잊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셋의 인연은 시작된다.    우리는 정신적인 것들이 물질적인 것보다 더욱 위대하고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부류에 속했다. 아직까지 한번도 처절한 가난도 굶주림도 전쟁의 상처나 느닷없이 찾아든 불행 따위를 겪어보지 못했다. 의미 있음의 의미 없음에 대해서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의미 없음의 의미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의미만 쫓는 것은 허무한 탁상공론과 같다. 삶은 의미와 실천이 병행될 때,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잘 호응할 때 가치를 지닌다. 정신적인 것만 따지는 것은 의미 있음의 의미 없음과 같다는 것이다.  한편, 율은 출장 간다는 핑게로 ‘나’의 돈을 빼서 달아난다. 이십대 대부분을 들여 모은 돈도 그리고 사랑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도 한순간에 사라진다. 서점을 정리하고 집에만 숨어있는 ‘나’에게 초향로 주인은 수제향을 만드는 일을 가르쳐준다. ‘나’는 그녀를 따라 향을 만들고 향기를 맡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심적 안정감을 되찾기 시작한다. 그렇게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한이 남경대학살에 관한 얘기를 꺼낸다.    “누군가의 롱간일 수도 있어.” 그녀였다. 잠자코 듣고 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고마웠다. “혹여 그렇다 하더라도 쟤 잘못은 아닌 거잖아.” 그녀가 아까부터 걸고 있던 향낭을 걸며 한마디 더 붙였다.   이 같은 생각은 현재의 물질적 풍요에 만족해서 과거의 아픔, 즉 그 아픔의 실제를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즉 ‘쟤 잘못은 아닌 거잖아’ 하면 과거와의 관련을 외면하는 편의주의로서 ‘우리의 잘못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당장의 윤택한 시대와는 별 상관 없어보인다는 리유로 남경대학살을 구체적으로 살피지 않고 편리하게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흐릿한 과거로 치부하면 과거의 아픈 력사라는 실제를 버리는 것과 같다. 실제를 외면하는 정신적 편의주의 사고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쟤 잘못은 아닌 거잖아’는 과거를 잊어버리는 태도에 해당한다. 따라서 ‘나’가 향을 맡고 있는 것은 향을 맡으면서 율이 떠난 것을 정신적으로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즉 율의 실제 일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나’가 향을 피우며 향에 취해서 실제 사건을 잊어버리는 것은 실제 사건에서 정신적으로 도피하는 행위이다.  향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날아가버리는 것이기에 안온한 정신에 대한 상징이고 벽은 존재하는 것이기에 어두운 실제를 상징한다. 어떤 문제 앞에서 벽은 현실적인 문제에 해당하고 향은 정신적인 도피에 해당한다. 남경대학살이라는 실제 사건 그리고 율이 돈을 훔치고 도망간 실제 사건을 두고 우리는 ‘쟤 잘못은 아닌 거잖아’라고 하거나 향을 피우며 잊어버리는 행위를 한다. 이것은 정신적인 것만 따지는 것이다. 즉 의미 있음의 의미 없음이다.   5. ,  락원의 불가능성 은 왕건의 아버지가 일하다 죽었던 것처럼 죽어서도 ‘일’을 해야 한다는 우리 삶의 비극이 잘 나타나는 소설이다. 어릴 적 왕건은 시골을 떠나려면 대학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공부를 한다. 그는 원하던 대학에 붙었고 조부모님과 부모님은 모든 저축을 학비로 보낸다. 왕건의 대학 뒤바라지를 위해서 부모님은 집을 팔았고 아버지는 곧바로 한국으로 나가서 일을 한다. 왕건이 대학을 졸업할 즈음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왕건이 대학원을 마친 그 다음해 아버지는 출근하던 길에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왕건이 취직을 해서 겨우 북경에서 안정될 만할 때 할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한국으로 갔고 왕건이 결혼을 하면서 집을 살 때 어머니의 도움이 컸다.  이렇듯 왕건은 ‘떠남’의 련쇄로 나은 삶을 찾았지만 돈에 허덕이지 않는 삶과 행복은 없었다. 태여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을 위해 수입이 안해보다 적은 왕건은 직장을 그만둔다. 대도시에서 돈 버는 일도 아이 키우는 일도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게다가 딸 지운은 아토피를 앓고 있었다. 바다와 가까운 산골동네에서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다형이 생각이 난 왕건은 지운을 데리고 찾아가본다.   다형의 농장은 웅기중기 들어선 산 밑에 있었는데 아득하니 넓었다. 낮다란 블루베리나무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가서 맘껏 따먹으렴.” 다형이 나무 밑에 지운을 내려놓았다. 산자락 아래로 멀리 잔잔한 바다가 바라보였다. 구수하게 몸안 깊숙이 파고드는 흙냄새, 모든 게 싱그러웠다. 지운은 벌써 몇개째 블루베리를 따먹었는지 손바닥까지 보라빛이다. 한가롭게 그냥 나무그늘 밑에서 누워자고만 싶은 오월의 끝자락이였다. 다형과 나란히 블루베리나무 밑에 앉았다. 블루베리밭 아래로 비닐하우스가 일여덟개 이어져있었고 거기엔 겨울채소와 딸기를 심는다고 했다. (…중략…) “초창기라서 수입은 적지만 이제 다음해부터는 블루베리도 대량으로 판매하게 되면 수입도 꽤 될걸세. 자신이 하고 싶은 생활을 하면서 돈걱정 없이 살 수가 있다는 게 참 행복이지 않겠니?”    농장은 다형네 부부 뿐 아니라 화가부부도 함께 경영하고 있었다. 왕건은 딸이 화가부부의 쌍둥이 아들과 블루베리농장에서 뛰여다니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한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에게 가장 어울리는 곳을 찾은 거라고 확신한다. 왕건과 안해 해도는 북경의 집을 팔고 시내 변두리의 자그마한 아빠트를 사고는 아주 간추린 살림으로 농장에 입주한다. 그리고 남은 90만원에서 50만원을 떼여 농장의 투자로 다형에게 건넨다. 그들은 농장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는듯하였다. 하지만 농장의 어려운 사정이 이내 드러난다. 농장 경영을 반대했던 다형의 안해는 남편이 모든 재산을 농장에 넣는다는 것을 계기로 다형에게 리혼을 요구한다. 화가부부는 2년 뼈빠지게 일을 했건만 투자한 돈은 한푼도 받지 못했거니와 일한 보수도 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쌍둥이 아들을 학교에 보낼 형편도 안된다. 이처럼 시골에서조차 돈문제에 허덕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어디에도 돈에 허덕이는 삶을 피할 락원은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왕건이 대학을 다닐 때도, 대학원을 마칠 때도, 직장을 얻었을 때도 행복이 없었던 것처럼. “엄마, 민수오빠한테 나 시집갈 거야!” 지운은 쌍둥이들과 잘 어울려 다녔다. 민수는 쌍둥이 형제 중 형이였다. 동생은 민석이였다. “왜 민수오빠야?” 해도가 목욕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닦아주다가 물었다. “민수오빠 멋있어.” “그래? 민수랑 민석이랑 똑같이 생겼잖아. 그럼 민석오빠도 멋있지.” “아냐, 민수오빠가 더 멋있어.” “뭐가?” “음… 민수오빠가 수제비 날리는 거 더 멋있어요.”   아이들은 돈 문제에 허덕이거나 돈에 욕심을 갖지 않고 순수하게 수제비 잘 던지는 것을 좋아하고 관심을 갖는다. 수제비는 순수한 어린 시절 그리고 그 어린 시절의 순수한 욕망에 대한 상징인 것이다. 그런 순수한 아이들이 어둠이 옅게 깔릴 때까지 바다가에서 놀던 중, 민수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가 죽은 것은 어디에도 없는 ‘락원’을 찾느라 그리고 돈 문제에 허덕이느라 아이로 상징되는 ‘미래’를 우리 사회가 놓친다는 의미이다.    6. ,  찾게 된 욕망의 근원 청도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심수로 옮겨다니는 ‘나’는 여기저기 직장을 기웃거리며 저축 같은 것 해본 적이 없고 늘 돈이 모자라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카드빚을 갚아달라고 언니에게 몇번 도움을 청하나 언니마저 련락을 끊어버린다. 그런 ‘나’를 북경으로 부른 건 중학교 동창 신희이다. ‘나’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지저분한 동네에서 사는 조촐한 옷차림의 신희를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그녀의 적금통장을 보았을 때에 ‘나’는 신희가 결코 궁색하지도 결핍하지도 않다는 것을 확신한다.   내게 빡빡한 이 세상을 신희는 즐기면서 살고 있듯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마음 붙이지 못하고 살아온 나와는 완연 다른 삶의 자세였다. 내가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그 순간 분명하게 알게 되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탓하고 이 불공평한 세상과 운명을 탓하느라 온 기운을 모조리 소모해왔다는 걸.   세상이 뒤틀려있고 불공평해보이지만 우리는 그 세상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또한 똑 부러진 신희가 의외로 술만 마시면 짐승이 되여버리는 전남편과 다시 함께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 바로 그 ‘세상’이다. ‘나’가 명품을 쫓으며 ‘불공평한 세상과 운명을 탓하느라’ 기운을 소모한 것은 어릴 적 상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섯살 때, 어머니는 일년 월급보다 훨씬 많은 돈으로 ‘나’에게 피아노를 사주었고 집안의 수입 대부분은 피아노 레슨비로 들어갔다. 한겨울에도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어머니와 함께 레슨을 받고 귀가하는 길에 ‘나’는 눈구덩이에 빠진다. 어머니는 주저없이 눈구덩이 안으로 뛰여들고 ‘나’를 올려보내고는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한다. 어머니가 아래서 손을 저으며 ‘나’에게 지은 웃음이 마지막 웃음이였다. 그 후 아버지는 피아노를 불살라버리고 ‘나’와의 대면도 대화도 회피한다. ‘나’가 사치를 부리는 것은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 것, 피아노가 불타버린 것에 대한 대리만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사실, ‘나’가 미운 것이 아니라 단지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나’가 사치를 부리는 대리만족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리해로 바뀔 때, 어릴 적 욕망의 대상이였던 피아노를 다시 찾게 될 때 진정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해결을 하려는지 ‘나’는 어릴적 상처가 되였던 불타버린 피아노를 대체해 고급 피아노를 산다. 즉 어릴적 상처의 중심, 그 피아노에 다시 접근한 것이다.    호흡을 다잡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달빛을 타고 선률이 흐른다. 애잔한 음들이 어둠을 간지럽힌다. 이제 고조로 치닫기 시작한다. 눈먼 소녀가 달빛 아래서 춤을 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어느새 나는 웃고 있었다. 손가락 끝마다 뼈에 사무치는 행복이 부딪쳐서 찡찡 맞혀온다. 그리고 춥다. 그 때였다. 창문이 탁 열려젖혀지는 소리가 나더니 머리 꼭대기에서 웬 사내의 술 취한듯한 거친 욕설이 우박처럼 투두둑 하고 피아노 우로 내 정수리로 쏟아져내렸다. “몇시야! 잠이나 퍼질러 자자. 좀! 할 지랄이 없어? 미친 년!” 거의 동시에 창문을 걷어닫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텅텅 울렸다. 나는 미친듯이 정말이지 달빛 아래서 춤이라도 추어대고 싶어졌다.   어쩌면 ‘나’는 신희가 전남편을 리해하고 다시 만나듯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고 원망스런 세상을 리해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신희의 소개로 아르바이트로 피아노를 친 적이 있지만 오로지 자신을 위하여 친 것이 아니다. 더 이상 타인이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해서 타인의 손가락질까지 받아가며 이루는 연주, 그것은 진정한 ‘나’의 욕망이다.    7. ,  ‘기다’와 ‘이게 아니다’ 사이에서  은 이기다라는 도시에서 네티와 네티가 처음 만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어떻게 된 거지?” 네티는 자신의 팔다리를 차례로 쓰다듬어보고 배와 가슴께를 쓸어본다. 그러다가 생각난듯 꽉 닫힌 창문을 들여다보았다. “앗!” 네티는 가볍게 비명소리를 냈다. (…중략…) 네티가 자그마한 소리로 불렀다. “네티!” 꼬마 네티가 그 부름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잠결에 샐쭉 웃었다. 티없이 맑은 이슬 같은 얼굴이였다. 네티는 꼬마 네티를 이슬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충동을 그 순간 느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네티의 입가에도 웃음이 상현달 같이 걸렸다. 그것이 네티와 네티의 첫 만남이였다.   이기다에서는 영아가 어머니를 필요치 않는다. 다시 태여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삶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 모두가 그렇게 새로 태여난다. 이기다는 그런 도시이고 이기다는 모든 불만이, 모든 결함이 만족스럽게 변할 수 있는 희망의 자궁이다. 이기다의 네티는 이기다의 다른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스물일곱번째의 네티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스물일곱번째 네티와 스물여덟번째 네티의 만남은 전에는 한번도 없던 일이다. 안교수가 이기다의 모든 사람들 중 유일하게 자궁을 가지고 있는 네티를 인간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여기고 아이 네티를 잉태시킨 것이다. ‘네티’는 벗겨없애는 과정을 통해서 본질에 도달할 때까지는 ‘이게 아니다’라는 뜻이다. 안교수는 2천년 전 생명과학원의 교수였고 한 녀자의 남편이였다. 11년간 아이를 가지기 위한 노력을 하였으나 안해의 자궁은 아이를 잉태하기를 거부했다. 몸도 정신도 힘들어가는 안해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안해의 이름은 ‘기다’였다.  안해는 ‘기다’이고 네티는 ‘이게 아니다’이다, 안해는 현실의 보통 사람이고 네티는 리상적으로 만든 존재이다. 불완전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기다’, 즉 ‘맞다’라는 수긍의 삶이고 ‘이게 아니다’라는 것처럼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 그 부정하는 것을 리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리상적인 삶, 즉 ‘이게 아니다’라는 네티를 이기다에서 만들어냈다. 네티는 양파 같이 계속 벗겨도 새로운 것이 나오는 ‘이게 아니다’이다.   “한겹한겹 다 벗겨내고 나니 마지막에 이게 남았어. 네티도 이렇겠지?” 나는 엄마의 텅 빈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엄마는 거기 소중한 것이 담겨져있기라도 하듯 두 손바닥으로 떠안고 있다. “이걸 기억해야 돼. 언젠가 너도 양파처럼.” 엄마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엄마의 눈동자 안에서 양파 하나를 보았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고 내가 엄마에게 쏘아붙였다. “싫어. 나는 양파가 아니란 말이야!”   양파는 이것이 양파다 혹은 어떠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한껍질 더 벗기면 그게 아닌 것이 된다. 이거다고 하면 한껍질 더 벗기면 이게 아니다가 되여버린다. 그런 련속적인 부정의 의미로 네티가 ‘이게 아니다’라는 뜻이 되여있는 것이다.  이처럼 뭐든지 무조건 긍정하지 말고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것이 리상적인 삶이고 제대로 된 삶이다. 그리고 ‘기다’, 즉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고 무비판적으로 수긍만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긍해야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의 삶이고 수긍하고 싶지 않은 것이 우리의 리상적인 마음일 수 있다. 우리는 사실 수긍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현실을 수긍하고 싶지 않을 때 리상이 생긴다. 리상은 만족하지 않을 때 꿈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족하는 삶은 수긍하는 삶이다. 따라서 ‘기다’, 즉 맞다라는 것은 수긍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의 삶을 뜻하고 ‘이게 아니다’는 수긍하지 않고 부정하는 리상의 삶을 뜻한다.  그래서 엄마 네티는 자신을 억압하는 안교수를 죽이게 된다. 네티라는 의미는 부정의 의미이다. 리상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 리상은 부정으로서의 리상이다. 현실을 수긍하지 않고 현실을 부정할 때 리상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작자는 네티라는 리상적 존재를 설정한 것이다. 네티의 본질은 부정이다. 그래서 자신을 속박하는 안교수를 부정해서 죽인다. 그리고 아이 네티는 그런 자신을 낳았던 엄마조차도 부정해서 죽인다. 부정의 련속인 것이다. 즉 리상적 세계는 부정의 련속이다는 의미이다.  수긍하는 삶, 혹은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삶이 현실이고 현실을 수긍할 수 없을 때 리상이 생긴다. 현실에 완전히 만족하면 리상은 생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작자가 리상의 본질을 부정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양파처럼 까도 까도 계속 새롭게 갱신되는 부정만 해야 되는 부정의 련속, 그것이 리상의 본질이다.    8. 정주와 떠돔의 단면들 이처럼 여섯개의 소설은 모두 정주와 떠돔이라는 테마로 얽혀있다. 이들은 정주와 떠돔에 관한 주제로 여러 단면을 보여주었다. 정주와 떠돔 사이의 문제는 곧 삶과 존재의 본질이다. 정주의 부정성, 떠돔의 부정성이 인간의 비극이다. 또한 정주와 떠돔 어느 것에도 안착할 수 없는 것도 인간의 비극이다. 정리를 하자면 에서의 재유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반면, 고향에 있는 묘는 타지로 떠나려고 한다. 즉 안에 있으면 밖이 그립고 밖에 있으면 안이 그립게 되는, 그러니까 인간의 마음은 계속 떠도는 것이고 인간은 정주하고 안착할 곳이 없다는 것을 드러낸 소설이다. 인간이 정주할 수 있는 욕망은 없고 정주할 수 있는 정체성도 없다. 사람의 욕망은 자꾸 바뀌기 때문이다. 재유는 고향이 그리워서 고향으로 왔는데 고향의 묘는 타지로 가고 싶어한다. 욕망이 정주하지 못하는 것이다.  혼자 외로이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 정착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 소설은 이다. ‘나’는 사람은 혼자라고 생각하다가 혼자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과 가족을 꾸려서 함께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처음에는 스스로 외면했을 뿐이며 이는 자기 방어적인 외곡이였다. 무화과나무는 꽃이 없는 나무이다. ‘나’는 무화과 같은 꽃이 없고 외로운 인생을 살 줄 알았는데 ‘그녀’를 통해서 무화과에는 열매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무화과를 무조건 이방인의 성격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고 자신도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정주하는 토착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에서는 사람 사이에 정착이라는 정주의 긍정성, 긍정적인 면을 보여준다. 정주의 긍정성은 떠돔의 부정성과도 같다.  반면, 정주의 량면성에서 부정성,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는 소설은 이다. ‘벽’이라는 것은 실제 사건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은 제목 자체에서 드러나듯이 향기만 맡고 살면 마치 아편에 취해 살듯이 실제 세계와 벽을 치고 살게 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향기는 정신적인 것에 취함, 벽은 실제 세계를 외면한다는 의미이다. 정신적인 것에 취하면 실제 세계를 외면하게 된다. 그래서 의미 있음의 의미 없음에 대한 비판이다. 즉 실제를 외면하는 정신적 편의주의 사고에 대한 비판이다. 정신적 편의주의, 거기에만 정주하는 것이다. 향기 같은 정신적인 것에만 정주하면 그것은 편의주의일 수 있다. 현실을 외면하고 당장의 편안함에만 향기에 취하듯 정착하고 있기에 이 소설은 안온한 정신에만 취한 부정적 정주를 보여주는 것이다.  에서 욕망은 정주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였다면 에서는 이 사회에 정주할 곳은 없다, 즉 떠돔의 련쇄성을 다루었다. 왕건은 시골에서도,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닐 때도, 북경에서 직장을 얻었을 때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런 그가 바다가에 있는 농장은 정주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곳인 줄 알았는데 그 곳도 락원은 아니였다. 이렇듯 이 소설은 어디에도 우리가 정주할 곳은 없고 반복하는 떠돌이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에서는 테마가 두개다. 하나는 과소비이고 다른 하나는 떠돌이 삶이다. ‘나’는 결핍의 근원을 잃어버려 결핍의 본질을 몰라서 정주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삶을 살게 된다. ‘나’가 결핍한 것은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 속에 나온다. 아버지가 피아노를 불태워버린 후, 아버지의 사랑 그리고 피아노의 꿈을 모두 잃어버렸다. ‘나’는 그 본질을 모른 채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과소비와 떠도는 삶으로 채우려고 한다. 이렇듯 이 소설은 정주하지 못하는 리유를 설명해나간다. 어릴 적 상처의 근원을 치료하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어서 우리는 영원히 독에 물을 채울 수 없고 따라서 영원히 정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정주하지 못하는 리유는 진짜 ‘나’를 찾지 못해서 생겨난 것이다. 정주를 위한 진짜 방법은 결핍의 근원을 찾는 것이다. 진짜 욕망을 찾지 못하는 리유로 정주의 불가능성, 혹은 떠돔이 생겨난다. 에서는 ‘기다’, 즉 수긍이라는 정주와 ‘이게 아니다’, 즉 부정이라는 부유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정주와 떠돔의 원론적 문제, 즉 인지의 기초 차원에서 정주와 떠돔을 설명한다.  무조건 정착이 좋거나 떠남이 좋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과 존재의 본질은 정착과 떠남, ‘기다’와 ‘이게 아니다’ 사이의 문제 속에서 항상 헤매고 있는 것이다. 처럼 인간의 욕망의 끝은 보이지 않는 것, 즉 내면에서의 정주의 불가능성이 있고 처럼 이 사회에 정주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 즉 외면에서의 정주의 불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와 은 긍정적 정주와 부정적 정주를 보여주는데 또한 떠돔의 부정성과 떠돔의 긍정성에 해당되기도 한다. 에서는 정주를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에서는 정주와 떠돔의 본질적 관계, 즉 정주와 떠돔 어디에도 갈 수 없는, 그래서 끝내 소멸시키는 과정을 극명하게 잘 보여준다.  출처:2018 제6호
57    <장백산> 2018.5 루계221 댓글:  조회:442  추천:0  2019-07-15
장백산 총221호 2018 제5호   권두칼럼 최홍일   위기에 처한 우리 문학   기획조명-작가와 작품 한영남   손톱(단편소설) 한영남   문학주름 만들기(작가노트) 우상렬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리호원   병든 개의 교활한 문학(작가평)   기획련재 김혁     한락연평전(장편인물평전 련재11)   박초란소설코너 박초란   월광곡月光曲(단편소설)   계렬칼럼 김병민   대학정신과 교장 그리고 보직자들(칼럼) 김병민   학문은 인격으로 한다(칼럼) 김병민   교수는 먼저 한우물을 잘 파야 학문에서 대성한다(칼럼) 김병민   ‘인재쟁탈전’과 ‘양귀비꽃’(칼럼)   시인시전 심명주   탈춤(시 외7수) 미주     아방가르드한 시의 향연(시평)   창작마당 장학규   개미 투(단편소설) 김경화   알바트로스(중편소설) 전향미   뜻밖의 쪽지(단편소설) 김두필   꿈은 깨고 나니 또 ‘꿈’(수필) 송련희   라목(수필) 김정권   상처(시 외1수) 방태길   신선 같은 세월(시 외1수) 장향화   6월 련서(시 외2수)   8090문학코너 조은경   한낮의 맥노리(단편소설) 김화     다녀茶女(시 외2수)   문학과 비평 손경란   양치기 처녀와 양떼들의 풍경에 매혹된 령혼의 메아리(평론) 리해연   리상각,그는 누구인가(평론)   중국문학 김인순   고려와 나(단편소설/왕염려 옮김)   장편소설련재 김혁     무성시대(장편소설 련재5) 구호준   여백(장편소설 련재3)
56    리해연: 리상각, 그는 누구인가(평론) 댓글:  조회:107  추천:0  2019-07-15
리상각, 그는 누구인가 리해연     들어가는 말 리상각(李相珏 1936-2018)은 해방 후 중국조선족사회의 전개와 변화과정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면서 각고의 노력으로 끊임없이 창작활동을 진행한 시인으로서 중국 조선족 시문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30여년간 문학잡지 편집사업에 종사하면서 민족문학의 발전을 위해 청춘을 불태웠고 동시에 후대양성을 위한 사업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하였다. 근 반세기 동안 시인으로서, 문학잡지 편집일군으로서 많은 업적을 쌓아온 리상각시인은 2018년 8월 17일 생을 마감하였다.  본고는 리상각시인이 걸어왔던 발자취에 따라 그의 삶을 돌아보고 그 속에 내포된 시인의 인생과 문학에 대한 태도를 두루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두었다.    1. 후대양성과 민족문학의  발전을 위한 발걸음   리상각은 1936년 조선 강원도 양구 해안면 만대리(조선전쟁 전에는 북에 속했고 전쟁 후에는 분계선의 변동으로 남에 속하게 됨)에서 태여났다. 그의 아명은 리상봉으로 리백설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38년, 세살 된 리상각은 부모님의 등에 업혀 두만강을 건넜고 중국 길림성 도문图们을 거쳐 흑룡강성 목단강 마도석磨刀石에 정착하였다. “만주에 가서 3년 동안 농사를 지어 부자가 되여 고향으로 돌아가자”던 리상각 일가의 꿈은 년년이 흉년이고 재난의 련속이라 환향은커녕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웠다. 극심한 생활고로 리상각의 부모는 중쏘中苏변경인 부금현富锦县 대면성촌으로 거처를 옮겨야만 했고 친척 할머니들과 고모는 다시 강원도로 돌아갔다. 1945년 고향땅은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리상각 일가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혈육들과 영원히 생리별을 하였다.  리상각은 1943년 1월, 흑룡강성 부금현 대면성소학교에, 1949년 1월, 밀산密山중학교에 입학을 하였고 그 곳에서 스승 한창립선생님을 만나게 되였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슬하에서 문학에 흥취를 가졌던 그는 스승의 지도하에 문학창작 능력을 제고할 수 있었는데 1950년 3월에는 그가 창작한 서사시 〈백설〉과 우화 〈메기와 붕어〉가 중학교 작문 1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51년 흑룡강성 상지尚志에 있는 사범학교에 입학한 그는 교내의 등사본 잡지인 《동학》의 주필을 담당하면서 잡지를 3기까지 출간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그립고 고향마을이 그리웠던 리상각은 편지를 써서 고향 친구들에게 띄우기도 했고 방학이면 집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어 학교에 남아있으면서 도서관에서 문학서적을 빌려보기도 했다. 겨울방학 동안 50권의 문학서적을 읽을 정도로 문학에 흥취를 갖고 있던 그는 오래전부터 시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졸업 후인 1954년 8월 리상각은 벌리현勃利县조선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했고 교육사업에 종사하면서도 창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56년에는 처녀작 시 〈아침〉을 《연변문예》에 발표하였고 1957년 7월에는 시 〈수수밭에서〉를 사천성의 《별星星诗刊》 잡지에 한문으로 발표하였다. 같은 해 8월 연변대학교 조문학부에 입학한 리상각은 시문학단체인 ‘시와 랑송’이라는 써클을 조직하였고 등사본 잡지인 《대학생》의 주필을 담당하면서 잡지를 출간했다.  1961년 대학교를 졸업한 뒤 리상각은 《연변문학》 월간지의 편집부에 취직하였고 1981년부터 16년 동안 《연변문학》의 총편집 직무를 맡게 되였으며 1996년에는 36년간의 근무생활을 끝마치고 정년퇴직을 하였다.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문학에 대한 애착과 열정으로 들끓었던 리상각은 30여년을 하루와 같이 후대양성과 민족문학 발전을 위해 청춘을 불태웠다.   열정의 사나이였던 리상각은 깊은 산골과 농촌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문학창작을 진행하던 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1962년 이른봄, 그는 시공부를 착실하게 하던 허흥식을 찾아 동불사향 영승촌으로 갔고 1963년에는 동요창작과 구전민요를 정리하던 나젊은 리룡득을 찾아 차조구로 갔으며 같은 해 겨울에는 한수동편집과 함께 몇십리의 눈길을 걷고 달려 숭선골안에 있는 차룡순을 찾아갔다. 그 외 연길현 태양공사 횡도대대에 살던 서광억, 연길현 팔도구 쌍봉촌의 김재권, 화룡 룡호촌의 정세봉 등 ‘숨어있는 별’들을 찾아 연변주 내 곳곳을 이리저리 뛰여다녔다. 그는 또 문학을 배우고저 하는 후대들을 위해 배움의 터전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1984년 5월, 《천지》 월간사에서 꾸린 문학창작 통신학부가 정식으로 개학을 맞이하였는데 리상각은 통신생들의 작품들을 《천지》와 《개간지》에 실어줄 것을 약속하면서 학생들의 문학열과 창작열을 북돋아주었다. 뿐만 아니라 중한 수교 이후 그는 한국의 학자, 시인들과 부지런히 교류하면서 중국 조선족 시문학의 발전을 위한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한국의 저명한 문학평론가이며 마광수의 지도교수인 연세대학교 신동욱교수와 한국의 저명한 시인 황송문선생을 연변대학교에 초청하여 특강을 조직하는 등 문학도들에게 학술적 시야와 사유체계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창조해주기도 했다.  리상각은 문학잡지사에 편집으로 배치를 받으면서부터 민간문학 수집 활동에 나섰다. 그는 조선족 민간문예 수집조 성원으로 있으면서 9개월 동안 발품을 팔아 민족민간문예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였다. 그는1980년에 《중국조선족구전민요집》을 출간(1995년에는 한국에서 재판)하였고 2000년에는 《북간도유머집》을 출간했으며 2007년에는 《조선족문단리면록》을 《연변문학》에 련재하였다. 뿐만 아니라 ‘민생단사건’에 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한 기초에서 그것을 작품화하여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잡지 《문학사계》(한국, 제38호부터 48호)에 《동만혈전비사东满血战秘史》를 련재하기도 했다. 력사적 사실로 인정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가와 시인들이 과감히 언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리상각은 오랜 시간 동안 끈질긴 노력과 용기로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리상각은 또 전통시조의 창작기법을 준수하는 기초상에서 현대시조를 창작할 것을 고수하면서 시인들을 동원하여 시조 창작에 열을 올렸다. 1989년 8월 15일, 한국 《시조생활》잡지사의 사장과 발행인 류성규박사가 연길을 찾아 《천지》 월간사와 결연을 맺었고 연변에서는 한국의 시조와 론문을 소개하였으며 시조 창작에 궐기하기 위해 몇차례에 걸쳐 시조묶음을 편찬하였다. 1990년부터 《도라지》와 《천지》는 서로 협력하면서 잡지에 시조를 대량적으로 실어내기 시작했다. 시조창작열이 고도로 팽창되면서 리상각은 시조문학단체를 결성하려는 의지가 강해졌고 시조선집을 출간하려는 념원이 갈수록 굳어졌다. 1990년 봄에는 송정환이 연변으로 와서 리상각에게 시조단체를 결성하자고 제의했다. 허룡구, 리해산 두 교수가 준비사업에 착수했고 500수에 달하는 시조를 묶어 《시조선집》을 민족출판사에 교부했다. 1994년에는 민족출판사를 통해 《중국조선족시조선집》을 출판하였으며 1993년 10월에 연변시조시사를 정식으로 설립하였다. 1994년 《천지》는 8월까지 65수의 시조를 발표했고 《료녕일보》에서도 시조와 시조평론을 자주 실었다. 리상각은 이처럼 20여년간 한국의 시조단체 및 시조시인들과 교류하고 중국조선족시인들과 련합하며 동료와 후배들에게 시조를 창작할 것을 제기하면서 중국 조선족 시문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어릴 적부터 고집불통이라고 소문이 난 그는 민족문학을 위한 사업이라고 인정되는 일이라면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무조건 밀어붙이고 실시하였다. 그가 발품을 팔아 수집하고 정리했던 민간문학 자료들은 문학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떠나 그 자체가 갖는 사료적 가치를 따져볼 때 리상각은 중국조선족의 민족사와 민족문학사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2. 시적 주장과 창작의 자세 시란 무엇이고 시를 어떻게 써야 하며 시인은 무엇을 써야 하는가? 이는 모든 시인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인간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견해와 세계에 대한 견해를 가지기 마련인데 시인은 보통 이런 인생관과 세계관을 삶의 기본토양으로 하여 울울창창한 시의 숲을 창조해낸다.  리상각은 시란 ‘언어의 그림’이고 ‘인생의 거울’이라고 했다. 그는 “시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인생의 고통, 슬픔, 고뇌, 추악한 것을 불사르기 위함이고 인간미를 찬양하기 위함이며 따라서 시인은 반드시 인생을 열렬히 포옹하고 인간미를 찬양하는 일에 자기의 령혼을 불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상각은 사랑의 감정과 서정의 미를 보여주는 것을 자신의 시의 천직으로 삼고 이를 통해 자신의 미학관을 표출하였다. 문학창작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로동으로서 로동자로서의 작가와 시인은 창작에서 자기만의 신념이 있어야 한다. 리상각에게 있어서 시란 인생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그려주는 예술이지만 그 속에 숨쉬는 인생의 꿈과 환상과 신념을 시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였다. 그는 “가령 나에게 청춘이 사라지고 사랑과 인정이 말라버리고 희망이 떠나버리면 시신도 나를 저버리고 말 것”이라고 하면서 희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를 쓸 것을 주장했다. 리상각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삶을 돌아보면 행복했던 순간보다 슬펐던 순간들이 더 많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삶의 고독과 절망, 방황과 우울 등으로 시를 비극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시련과 고통을 딛고 열정과 희망과 신념을 불어넣기를 강조했다.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어도 결코 절망하거나 비관하지 않았다. “인생살이가 아무리 지옥 같은 것일지라도 꿈을 잃지 않고 분투하면 나아갈 길이 열린다.”라고 말했던 리상각은 오히려 곤경 속에서 더욱 강해지고 희망적인 미래를 위해 살려고 노력하였으며 그것을 작품을 통해 표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문학창작을 하면서 민족혼을 기본으로 하고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쓰기를 제창하였다. 그는 “시는 언어예술이지 말장난이 아니며 심장으로 뿜어내는 진실한 감정을 감명깊게 그려주는 예술이므르 시인은 언제나 추호의 허풍도 떨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시를 쓰되 그 속에 시대의 변혁을 쓸 것을 호소했다.  이처럼 자신만의 확고한 시적 주장을 수립하고 창작활동을 진행해온 리상각은 1956년부터 반세기가 넘는 동안 총 642수에 달하는 시, 442수의 시조, 147수의 가사, 338편의 산문과 실화문학 및 평론,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각각 1편을 창작하였다. 그는 1980년 처녀시집 《샘물이 흐른다》를 시작으로 시집 14권, 시조집 6권, 가사집 1권, 수필집 2권, 문집 4권, 시론 1권, 민간자료집 1권 등을 중국과 한국의 출판사를 통해 출판하였다. 이상의 사실들로 알 수 있듯이 리상각은 다산작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리상각은 일생에 거쳐 향토적 서정시, 랑만주의적 경향의 사랑시와 송가, 현실비판과 자아반성의 풍자시들을 대거 창작함과 동시에 시조 창작과 그 발전을 위한 일에서 그 어느 시인보다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풍자시 창작에서도 선두주자로 나섰다. 일찍 리상각은 올곧은 성격 탓에 늘 ‘바른 소리’를 잘하여 가끔은 타인들의 미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러한 시인의 올곧은 성격이 바로 그가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를 예리하게 직시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는 받침돌이 되는 것이다. 평생 동안 열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삶을 대하며 미래지향적 정서를 작품에 담아냈던 리상각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변화되는 인간사회와 민족문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 속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바로잡아 보다 건전하고 밝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여 그는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추한 내면을 작품 속에 담아냈던 것이고 이러한 작품들은 개혁개방 후기의 우리 민족 사회의 한 면을 보아낼 수 있는 좋은 증거가 되였다. 리상각은 해방전 강원도 시골마을에서 태여나 흑룡강성을 거쳐 연변에 정착하기 시작하였으며 제3의 고향인 연변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산출하였고 평생을 문학창작과 민족문학 발전과 후대양성을 위해 살아왔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의 그의 작품들은 중국조선족문학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된다.  나가는 말 리상각은 암울한 일제식민시기에 조선에서 태여나 국경을 넘어 중국에 정착하여 평생을 중국조선족으로 살아왔다. 그의 삶에는 식민지시대의 잔상과 격변했던 중국 당대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따라서 그의 작품에는 해방 후 중국조선족문학의 발전력사, 중국조선족의 정치적, 사회적 특성 및 주체의식이 여실히 반영되였으며 향토적, 민족적 색채가 다분하며 디아스포라로서의 의식형태가 잘 드러나고 있다. 리상각은 현대시와 시조를 대량적으로 창작한 동시에 가사와 수필은 물론 오체르크, 단편소설과 장편소설도 창작하였으며 민간문학 수집 정리에도 열정을 쏟아부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반평생 문학창작과 문학잡지사 편집사업을 병행하면서 후대양성을 위한 사업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중국조선족문학의 발전을 위해 고뇌하고 사색하면서 방법을 모색하였는바 반평생을 시인으로서, 문학잡지 편집일군으로서의 사명감을 온몸으로 실천하였다. 일찍 “잊어다오 나를 / 나는 민들레 / 무덤가에 조용히 / 피였다 마는 / 못 본듯이 가다오 / 그대 갈길을.”(〈묘비에 쓴 시〉 중에서, 1992.)라고 했던 리상각시인, 그는 잊어달라 했으나 후세인들은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중국조선족문학의 발전을 위해 평생 자신의 정열을 불태우면서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하였던 리상각시인, 그는 떠났지만 떠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시인과 그의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더욱 활발히 진행할 것을 약속하면서 또한 이러한 작업이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진행되기를 기대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출처:2018 제5호
양치기 처녀와 양떼들의 풍경에 매혹된 령혼의 메아리 손경란     숙아, 너는 구름을                       박장길 산으로 들로 아침 먹으러 가자고 양우리문을 열면 숙아, 네 구름떼 흘러나온다지   어서 가자 빨리 가자 쨩쨩  채찍소리 울리면 하늘의 구름이 내린듯 숙아, 네 구름떼 산과 들을 덮는다지   해가 솟으면 산을 감았던 안개는 걷히지만 해가 솟으면 숙아, 네 구름떼는 피여난다지   굴리는 눈덩이 같이 커만 가는 양떼를 앞세우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 들에 가는 숙아, 너는 구름을 몰고 있구나   이 시는 박장길시인의 처녀작으로서 1979년에 창작되여 1980년 8월호 《연변문예》 (지금의 《연변문학》)에 발표되였고 그 이듬해인 1981년에 한어로 번역되여 《민족문학》에 발표되였다. 그러니까 이 시는 공교롭게도 필자가 태여나던 해에 창작된 시이다. 문학작품은 부동한 시대 부동한 독자들에 의해 새롭게 또 다양하게 읽히울 수 있다. 이 또한 문학작품의 생명력이기도 하다. 박장길시인의 이란 처녀작은 발표된 시간이 오래된 만큼 아마 많이 읽히웠으리라 믿는다. 39년이란 유구한 세월이 흘러 이 시를 처음 읽어보는 독자로서 필자는 시의 행간에 살아숨쉬는 그 진미와 향기를 느껴보고저 한다.  이 시는 양치기 처녀 ‘숙이’와 그녀의 양떼를 시적 대상으로 표현한 시이다. 시 은 발화체 형식의 제목으로 시작된다. ‘이름짓기’ 문화는 시대적인 특징을 보이는 바 70, 80년대까지만 해도 ‘숙’자는 우리 민족 녀자들의 이름자에 흔히 애용되던 글자이다. 영숙이, 옥숙이, 경숙이… 등 녀자들의 이름을 쉽게 볼 수 있었으며 략칭하여 ‘숙이’라고 부를 때가 많다. 이렇게 미루어볼 때 ‘숙이’라는 인물은 분명 우리 민족 녀성이다. 이어서 ‘너는 구름을’으로 이어지는 제목은 두개의 시적 대상물인 ‘숙이’와 ‘구름’이 어떤 련관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 호기심은 곧바로 시의 제1련에서 풀린다. 첫련 “산으로 들로 / 아침 먹으러 가자고 / 양우리문을 열면 / 숙아, 네 구름떼 흘러나온다지”에서 시인은 풀빛으로 물든 산과 들에 방목되고 있는 하얀 양떼들과 하늘의 하얀 구름떼의 류사성을 발견하고 시적 합일을 이루어낸다. 산과 들에 펼쳐진 짙푸른 풀빛, 파아란 하늘빛, 하얀 구름빛과 양떼빛 그 속에 서있는 한 처녀… 그야말로 한폭의 목가적인 풍경화이다. ‘숙이’와 ‘양떼’, ‘하늘’, ‘구름’, ‘산’과 ‘들’… 자연과 인간과 동물이 조화를 이룬 평화로운 세상이다. 이 련에서 사용된 시어들은 사물을 지칭하는 ‘산’과 ‘들’, ‘양우리’, ‘구름떼’ 등 명사적 낱말들로 되여있고 수식어인 ‘푸르다’, ‘하얗다’ 등 색채 형용사가 빠져있기에 오히려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제2련 “어서 가자 빨리 가자 / 쨩쨩 채찍소리 울리면 / 하늘의 구름이 내린듯 / 숙아, 네 구름떼 산과 들을 덮는다지”에서 ‘쨩쨩’ 울리는 채찍소리로 청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산과 들을 순식간에 덮어버린 양떼들을 하늘의 흰 구름이 내려앉은 이미지에 비유함으로써 생동한 시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제3련 “해가 솟으면 / 산을 감았던 안개는 걷히지만 / 해가 솟으면 / 숙아, 네 구름떼는 피여난다지”의 시구를 보면 해가 솟아나는 시점에 양치기 처녀 ‘숙이’의 방목은 시작된다. 부지런한 양치기 처녀의 삶은 자연의 리듬과 일치해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삶과 존재의 모델을 시인은 양치기 처녀에게서 발견했던 것이다.   제4련 “굴리는 눈덩이 같이 / 커만 가는 양떼를 앞세우고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 들에 가는 / 숙아, 너는 구름을 몰고 있구나”에서 ‘숙이’의 양떼는 굴리는 눈덩이같이 커져간다. 산과 들에 흘러가면서 하루하루 살찌는 양떼들의 모습이 눈덩이가 굴러가면서 커지는 이미지에 비유되는 이 시구에서는 양치기 처녀의 고생이 결실을 맺어 보람된 로고로 이어지고 있다. 1, 2, 3련의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이미지에 풍요로운 이미지가 가미되여 느껴진다. 또한 양치기 처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방목을 멈추지 않는다. 산과 들은 그녀의 삶의 터전이며 그 속에서 ‘숙이’의 충만된 끊이지 않는 하루 일상은 계속된다. 비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양치기 처녀 ‘숙이’의 정신력과 삶의 자세에 대한 감동과 찬미이다. 자연 속에서 점점 더 강인해지는 그녀의 찬란한 아름다움은 말없이 불타는 생명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전반 시의 시어 구성을 보면 형용사는 절제하고 동사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형용사가 사물의 성질, 감각, 색갈, 시간, 수량 등 정지 상태를 표현하는 데 반해서 동사는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력동적인 어휘이다. 동사가 움직이는 선이라면 형용사는 고정되여있는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이다. 각 련에 사용된 ‘열다’, ‘흘러나오다’, ‘가자’, ‘울리다’, ‘덮는다’, ‘피여난다’, ‘앞세우고’ 등 시어들은 양치기 처녀 ‘숙이’의 방목과정을 동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으며 시의 력동성을 더해주어 시가 살아 꿈틀거리며 뛰여가게 하고 날아가게 한다.  또한 각 련의 마지막 시구는 모두 “숙아, 네 구름떼…”란 반복구로 시적 리듬을 살려내며 음악성을 짙게 한다. 양떼는 구름떼가 되여 흘러나오고 산과 들을 덮고 피여난다. 이렇게 양치기 처녀 ‘숙이’는 “구름을 몰고 있”다. 마지막 시구 “숙아, 너는 구름을 몰고 있구나”란 시적 표현과 함께 구름을 탄 ‘선녀’의 모습이 확연히 안겨온다. 순간 “와!” 하는 감탄이 흘러나오며 독자의 시선은 다시 양치기 처녀와 양떼에 주목된다. 그러면서 “왜 양치기 소년이 아닌 양치기 처녀”였을가 하는 의문의 여운이 안겨온다.  양치기는 일명 목자라고도 부른다. 양치기는 소아시아에서 5000여년 전을 시작으로 가장 오래된 직업들 가운데 하나이다. 젖과 양고기, 특히 양털을 위해 양을 길렀다. 이후 수백년에 걸쳐 양과 양치는 일은 유라시아를 통해 퍼져나갔으며 양치기에 대한 이야기 또한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고 양치기는 이야기문학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헤라클레스, 오이디푸스, 다윗 등 인물은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양치기이다. 이 외에도 더 잘 알려진 양치기가 있다. 심심풀이를 하고저 “늑대가 왔다!”라고 거짓말이나 해대는 양치기 소년을 우리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양치기 하면 ‘양치기 소년’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시는 양치기 소년이 아닌 양치기 처녀 ‘숙이’와 그녀의 양떼를 시적 대상으로 표현한 시이다. 양치기 소년이 아닌 양치기 처녀의 등장에 호기심이 더해진다. 우리 민족은 농경민족인 만큼 양치기 처녀의 모습을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때문에 박장길시인의 에 등장하는 양치기 처녀는 더욱더 독자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정열로 불타는 19살 남자 시인의 감성으로 담아낸 20세기 우리 민족 양치기 처녀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잔잔한 감동으로 독자들의 가슴에 녹아들고 있다. 시인은 그의 시집 《너라는 역에 도착하다》(2016년 3월, 연변인민출판사) 후기에서 《시와 시창작》에 대한 시인의 견해를 피력하는 대목에서 “전통을 타파하지 않으면 거기에 얽매이게 된다. 하지만 전통이 없으면 목동이 없는 양떼와 같고 혁신이 없으면 시체와 같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는바 목동과 양떼가 어우러진 풍경은 이미 시인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녀작이란 첫 시적 체험인 만큼 그의 처녀작 은 양치기 처녀와 양떼들의 풍경에 매혹된 시인의 령혼의 메아리이다.  출처:2018 제5호
54    조은경: 한낮의 맥노리(단편소설) 댓글:  조회:105  추천:0  2019-07-15
한낮의 맥노리 조은경   “오는 일요일에 시간 좀 내라.” 오랜만이였다. 아버지가 시간을 내라고 전화한 것이.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주동적인 부름은 늘 불길함을 몰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자 윤주는 아버지와의 소통이 조금씩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윤주가 다니는 중학교에 찾아왔던 날도, 하숙하고 있는 친척집에 먹을 것을 한아름 사가지고 불쑥 나타났던 날도. 예고 없는 아버지의 방문은 윤주에게 반가움에 이어 의아함과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아버지는 리혼과 출국을 그런 방식으로 통보했다. 윤주에게 혼자라도 괜찮니 하고 묻는 것 따위의 의논은 하지 않았다.  윤주는 갑작스러우면서도 낯설지 않은 느낌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시간이 있다고 말하기도, 없다고 말하기도 애매하여 잠간 멍하니 있었다. “…” “성주가 결혼한다는구나. 다같이 밥이라도 한끼 먹어야 되지 않겠니…” 처음에 시간을 내라고 했을 때의 명령조와는 달리 아버지는 말꼬리를 흐렸다. 아버지의 그런 말투는 당신의 주장이나 의견에 자신 없어하는 것처럼 들렸다.  “네 어머니가 련락했더라. 결혼식에 올 수 있겠냐고.” 성주에게서 ‘나 결혼할지도 몰라.’라는 문자는 며칠 전에 받았다. 그런데 성주도 아닌 엄마가 직접 아버지에게 련락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자식의 결혼을 부모가 아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럼에도 윤주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르는, 은근한 배신감마저 들었다. 하긴! 글루건 심에 열을 가하여 떨어졌던 물건을 도로 붙여버리는 것처럼 끊길듯 이어지는 게 부모자식의 인연 아닌가. 그리고 자식을 둔 부부는 언제든 필요에 의해 련락을 지속해야 될 의무가 있었다.  엄마는 성주가 아버지처럼 리기적이고 폭력적이며 분노에 젖어있는 사람이 될가 두렵다고 했다. 사람이 어찌 평생 그런 태도로 살아가겠냐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엄마의 인식은 완고하여 부자간의 만남이라면 치를 떨 정도였다. 그런 엄마가 성주의 결혼 소식을 전하려고 아버지에게 먼저 련락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성주가 장손이라는 게 마음에 걸려서 아버지에게 련락한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가 성주의 결혼자금을 조금이라도 보태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올 수 있겠냐는 말은 또 뭔가. 오라면 오고 오지 말라면 안 가는 거지. 또 오지 말라고 해도 아버지인데 가고 싶으면 가는 게 아닌가. 윤주가 아는 한 아버지는 자식 일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였다. 아버지 가슴 속의 정체 모를 울분과 분노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옅어졌고 언젠가부터 딸의 눈치를 슬슬 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눈치 챈 지 꽤 됐다.  윤주는 별일 아니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저절로 눈살이 찌르려졌다. 아버지에게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그래서요?”  “새아버지가 있은 지 오래 됐고 성주는 대부분 엄마가 키웠으니 나까지 결혼식에 참석하는 건 모양새가 안 좋을 것 같아서 결혼 전에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했다. 부모 된 도리는 해야지. 그 자리에 너는 있어야 되지 않겠니? 몇년 만의 가족모임인데.” 부모 된 도리는 어떤 건데요, 하는 물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친아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성주에 대해선 스쳐가는 궁금증도 내비치지 않던 아버지였다. 가끔 윤주가 일부러라도 ‘성주 한국에 왔어요.’, ‘요즘은 공단에서 일하고 있어요.’, ‘공단 그만두고 무슨 학원 다니고 있어요.’ 하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는데 윤주는 그 순간 서운함이나 미안함 같은 것이 얼핏 서렸다고 생각했다. 기죽은듯한 아버지의 모습을 인지한 윤주는 성주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말해줄 걸 그랬나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윤주는 가족모임이라는 단어를 마치 오래 전부터 말해온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입 밖에 내는 아버지가 생경했다. 윤주네 부부와 식사하는 것조차 어색해하던 아버지가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였나 싶었다.  풍성한 료리들을 앞에 놓고 서로 눈을 맞추는 부부, 수시로 목소리를 높이는 토끼 같은 아이들, 그런 손주와 자식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어른들 등 삼세대가 함께 모인 풍경이 떠올랐다. 윤주는 왜 가족이라면 늘 오순도순 모여앉아 밥 먹는 장면부터 떠올리는지 모른다. 가족끼리의 만남이란 모름지기 그런 풍경이여야 될 것 같은 믿음이 있었다.  아버지가 말하는 가족모임에 대해서 윤주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갑자기 따가운 직사광선 때문에 눈 뜨기 힘든 것처럼 현기증이 일었다.  “야야! 말을 했는데 왜 대답이 없니?”  아버지가 질책하듯 소리쳤다. 윤주는 아버지의 다그침 속에서 식사자리에 꼭 참가하여 중간다리 역할을 해달라는 간절함을 보아냈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아버지는 어지간히 흥분한 것 같기도 했다.  정확하게 십팔년 만에 네 식구가 모이는 자리이다. 아니, 구성원이 다섯일지 여섯일지 모른다. 갈가 말가. 엄마가 자신을 통해서도 아니고 아버지에게 먼저 련락했다는 소외감 때문에 윤주는 가족모임에 갈지 말지 망설여졌다.  영원히 여덟살 꼬마여야만 할 것 같은 성주가 다른 사람과 가족을 이룬다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거부감이 들게 했다. 윤주에게는 언제 어디서든 련락할 수 있는 애인 같은 동생이였다. 불현듯 성주가 또다시 윤주의 손안에서 스르르 녹아버려 혼자 남을 것 같은 쓸쓸함이 갈마들었다.  “꼭 와야 된다. 전날에 내가 시간이랑 장소 문자로 보낼게. 들었니?” 언제부터 이런 열성을 보였나 싶을 정도로 아버지의 목소리는 격앙돼있었다. 윤주는 떨떠름한 채 예, 예, 하는 말만 남기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 날 지연이랑 만나기로 약속돼있었다.  아버지는 여기저기서 추천을 받아 정한 한정식집이라며 정중해보이는 게 가족모임 장소로는 정말 근사하지 않느냐고 윤주에게 자꾸 물었다. 나름 정성을 기울이고 격식을 차리기 위해 신경 썼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보였다.  윤주는 이게 뭐라고, 하는 생각에 성가셨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다. 아버지가 누구에게든 말을 걸고 싶어도 마땅한 대상이 윤주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안스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아버지,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이건 제가 준비한 선물인데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민아가 준비한 것은 닥스 로고가 박혀있는 와인색에 빗살무늬를 곁들인 넥타이였다.  아버지는 고맙다며 멋적게 웃었는데 윤주로서는 난생처음 보는 표정이였다. 아버지의 웃음이 수줍고 밝아서 윤주는 그만 짜증이 났다.  저런 넥타이를 매려면 정장도 한벌 있어야 되지 않나. 민아가 처음 만나는 아버지에게 넥타이만 준비한 게 마치 엄마 탓이라도 된 양 윤주는 엄마를 흘끔 쏘아보았다. 엄마는 아직도 윤주 앞에만 서면 움츠러들곤 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데도 엄마는 매번 주눅이 든 모습으로 윤주를 불편하게 했다. 그 때마다 윤주는 원망과 련민이 뒤섞인 마음을 자제하지 못하고 기어이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라면 자식한테 헌신적인 삶을 살았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윤주는 엄마가 자신을 먼저 배려하는 다소 리기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주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네요. 아버지도 과묵하실 것 같아요.” 아버지는 알코올만 섭취하지 않으면 이 말을 꽤 자주 듣는 편이다.  “그 놈의 술만 없었으면 네 엄마하고 잘살았을 텐데 어찌 술만 들어가면 그렇게 란폭해지는지… 네 아버지는 사는 게 뭐가 저리도 억울한지 모르겠다.” 고모할머니가 문턱을 넘어서는 아버지의 등뒤를 아리게 쳐다보다가 윤주를 향해 혀를 차던 모습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있었다.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와 이제 집에 와도 엄마와 성주가 없다고 말해줬던 그 날의 아득했던 기억과 함께.  윤주는 세살 때부터 애비 없이 자라서 그래요, 라는 말이 입안에 가득찼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를 좋아하는 건 아니였다. 그러나 윤주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이 아버지를 비난하는 주체가 되거나 그런 류의 말들에 동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가족이라고 여겼다.  “어머니, 이 나물 맛 좀 보세요. 쌉싸름한 게 자연의 맛이 느껴져요. 이 집 정말 좋은 것 같지 않아요?”  민아는 처음부터 말머리에 아버지, 어머니를 붙였다. 그 호칭이 자연스럽게 입에 붙어서 윤주는 들을 때마다 뜨악했다. 아버지는 어색함과 반가움이 뒤섞인 웃음을 희미하게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엄마는 그래, 그렇구나 하며 가볍게 맞장구를 쳤다.  윤주는 민아를 중심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인간관계란 참으로 오묘하다고 생각하면서 윤주는 맞은편에 앉은 성주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성주는 민아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말없이 저가락만 들었다 놨다 했다. 자신 때문에 이 자리가 마련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대화에 낄 생각이 없어보였다.  성주는 아버지와 형식적으로 인사를 나눈 후로는 눈도 마주치는 것 같지 않았다.  윤주는 웬지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났으면 했다. 그러나 한정식은 윤주의 마음과 달리 찔끔찔끔 계속해서 나왔다. 하필이면 한정식집에 와서 제일 비싼 코스요리를 주문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언니,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요즘은 다들 그렇게 불러요.” 느닷없이 민아가 훅 치고 들어왔다. 스스럼없는 호칭에 윤주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얘 좀 봐라, 하는 뜻으로 성주를 쳐다봤다.  내내 말이 없던 성주가 윤주를 보더니 가만히 웃었다. 그 순간, 윤주는 가슴 속에 맺혔던 응어리가 갑자기 풀어진 것처럼 울컥했다.  윤주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축하에 앞서 “누나, 나는 누구랑 같이 산다는 게 싫어.” 하고 말해서 황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어린 것이 외삼촌 집에 얹혀사는 동안 하루이틀 사이에 생긴 감정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윤주는 가슴이 아팠다. 사람은 늘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는데 그 인간관계가 낯설고 기피하고 싶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아서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방금 전 성주의 웃음은 윤주에게 안전감과 의아함이 뒤섞인 요상한 감정이 생기게 만들었다. 윤주는 낯설고도 야릇한 느낌에 눈을 몇번 깜박이다 말했다. “그럼요. 성주와 동갑이라고 하니 나보다 한창 어린데,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요.”  윤주는 어느새 자신을 무장하고 있던 까탈스러움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불현듯 자신의 존재로 인하여 지금 이 공간의 분위기가 좋아질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해야 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결혼식은 한국에서 해요? 오월의 신부, 너무 근사한데. 민아씨네 가족은 어디서 살아요? 알다 싶이 우리 가족은…” “누나!” 성주가 날카롭게 윤주의 말을 가로챘다.  윤주는 성주를 향해 눈을 부릅뜬 채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다시 민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버지가 좀더 당당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라도 꼭 고백하고 넘어가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정상적인 가족은 아니예요…”  “그만해! 누나가 말을 안해도 다 알아. 가족사도 모르고 만나는 사람이 있냐?” 성주가 짜증 내며 쏘아붙였다. 순간 남편을 떠올린 윤주는 허를 찔린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찌릿했다.  남편은 오늘의 가족모임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부모님에게는 건방진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둘러댔다. 그럴 사람도 아니지만 혹여 남편이 “뭐? 그게 어떻게 가족모임이야?” 하고 묻기라도 한다면 윤주는 모멸감을 느낄 것 같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직도 할아버지의 형제 넷이 살아계시는 대가족 속에서 성장한 남편은 결혼 전에 윤주네 가족에 대해 물어보더니 “그럼 친척이 별로 없네.” 하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각자 책임지고 양육한 자식들은 그렇다 치고 리혼한 지 이십년이 다돼가는 옛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식사를 하는 게 가능하냐며 의아해할지도 몰랐다. 가족 모두가 성주를 특별하게 여기는 게 확실하니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까지 창피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윤주는 남편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싫었다. 언제 튀여나올지 모르는 윤주를 비난하는 말 속에 가족이 포함된다면 그보다 더 비참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더우기 엄마는 윤주가 결혼하기 전에 둘을 불러 밥을 사주면서 남편이 경제력도 없고 시댁에서 특별히 해주는 것도 없다며 트집을 잡아 윤주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딸에 대한 걱정인지 사위를 향한 비난인지 알 수 없었다. 윤주는 그 순간 엄마에게 결혼 소식을 전한 것을 후회했다. 이번에도 남편에게 “학위를 따긴 딸 거냐? 아이는 언제 낳아서 키울 거냐? 돈은 남자가 팍팍 벌어야 되는데!” 따위의 말로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예 빌미를 제공하고 싶지 않았다.  윤주는 잔잔한 호수와 같은 결혼 생활에 한가닥의 물결조차 이는 것이 싫었다.  엄마는 사위 될 사람이 술에 련련하지 않는 것이라든지 성격이 유순한 건 마음에 드는데 연구소에서 받는 그 토끼꼬리 만한 연구비로 당장 밥을 먹고 살 수는 있는 거냐며 정색했다. 윤주는 돈은 내가 벌면 되지, 누가 벌면 어때 하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특권을 존중해주고 싶었고 남편에게 내 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아버지와 같은 류형의 사람인지 아닌지만 확인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는듯이 엄마는 윤주의 결혼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썩 내켜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윤주는 엄마의 미지근한 태도를 두고 직접 양육하지도 않은 자식 인생에 깊게 개입하는 것은 례의가 없거나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멋대로 믿어버렸다.  “민아는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셔. 없는 게 아니라 만나고 살지 않아. 할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착하고 똑똑해. 정도 많고.” “엄연히 살아있는데 민아씨네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시다는 말이 왜 네 입에서 나와? 부모님 만나는 봤니? 그럼 결혼식은 어디서 하는 건데? 할머니는 어디 계셔?” 윤주는 궁금한 것 투성이라 성주의 말을 급하게 받아쳤다. 어쩐지 이 식사모임이 성주의 결혼식을 대신하는 자리일 것 같은 불길함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시누이의 존재감을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조급함도 일었다.  어릴 적, 외삼촌에게 반말조로 말했다고 거의 한시간 동안 혼난 기억이 있는 윤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얄미웠다. 성주의 무례함을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닐 텐데 짐짓 모르쇠를 놓는 아버지가 딱해보였다.  민아는 언제 ‘아버지’, ‘어머니’를 불렀냐 싶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성주가 노기를 품은 채 윤주의 말을 잘랐다.  “그런 거 없어, 결혼식 하고 싶지도 않고.” 엄마는 뭔가 말할듯 입을 실룩거리다 성주의 결연함에 눈을 내리깔았다.  성주는 당장 누구 하나라도 팰듯 눈에 독을 품었고 민아는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실내에는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그 때였다. 아버지가 딸꾹! 딸꾹! 하고 딸꾹질을 시작한 것이.  민아의 가족사가 못마땅한지 아니면 짧고 건조하게 내던지는 성주의 화법에 놀랐는지 아버지는 한번 시작한 딸꾹질을 쉽게 멈추지 못했다. 뜻하지 않은 불청객에 아버지는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는 애들 앞에서 이게 무슨 경우냐는듯 도끼눈을 떴다.  윤주는 이런 걸 예상하지도 않고 아버지에게 련락했냐는 원망을 담아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윤주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민아에게 반찬을 집어주는 행위에 열중했다. 그 풍경이 다정한 모녀 같아서 윤주는 민아가 성주와 결혼한다고 해도 호감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빈 속에 마신 소주가 내장을 훑고 내려가는듯한 불안감이 마음속을 후렸다.  정적을 깨뜨리는, 간간한 딸꾹질 속에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삼킨 채 먹는 데에만 몰두했다.  갑자기 성주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그런 성주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체념과 간섭이 엇갈린듯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윤주는 그만 울고 싶었다. 한참 뒤에 들어온 성주에게서 담배냄새를 맡은 윤주는 당장 담배 한대 빌리고 싶어졌다. 아버지의 딸꾹질 소리와 그릇에 저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이따금씩 들리는 식사시간은 질식할 정도로 느리게 흘러갔다. 이러려고 모이자고 한 게 아닌데 하는 자책이 력력한 아버지의 표정을 보면서 윤주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였다. 아버지에게 성주의 결혼식에 올 수 있냐고 련락했던 엄마는 정작 말을 몇마디 하지도 않았다. 양꼬치 장사를 할 땐 멋있기만 하던 엄마는 왜 자식 앞에서는 이렇게도 눈치를 보고 자기 몫의 말도 못하는가.  “언니, 우리 친하게 지내요.”  헤여지면서 민아가 윤주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애가 당돌한 거야 친화력이 좋은 거야 하는 생각도 잠시, 윤주는 민아에게서 다치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건 마치 언니에게 할 얘기가 있어요 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 감정이 낯설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었던 묵혀두었던 서글픔이 다시금 살아났다.  윤주는 아무런 거부감도 표현하지 못한 채 민아의 휴대폰에 번호를 찍어주고 말았다.    별다를 게 없었다. 고중 동창 지연과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한두달에 한번 정도 만나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보글보글 끓는 전골에서 사이좋게 갈비를 건져먹었고 날치알에 배추김치와 김가루를 곁들인 볶음밥까지 해먹었다. 불룩한 배를 슬슬 만지며 스타벅스에서 티라미슈를 가운데에 놓고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잔을 마주쳤다. 겨우 한모금 될가 말가 하게 담겨있는 커피잔을 홀짝이는 윤주를 보더니 지연이 “독한 년”이라며 웃었다.  “그냥, 아메리카노는 좀 싱거워.” 속으로 ‘그래, 나 독한 년이다. 독하고 멋진 년이 되고 싶다.’ 이렇게 되뇌며 윤주는 지연의 표현이 바람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도 모르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자신을 인지할 때마다 윤주는 이건 쉬이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에 초라해졌다. 말하자면 납작 엎드린 자존감 같은 것.  이 때다 싶어 며칠 동안 입가에 맴돌았던 말을 꺼냈다.  “지연아, 왜 은화랑 려행 간 걸 비밀로 한 거야?” 머그컵을 입가로 가져가던 지연이 동작을 멈춘 채 윤주를 쳐다보았다. 윤주를 빤히 쳐다보던 지연은 이내 눈을 내리깔았다. 그 순간 윤주는 자신이 뭔가 크게 잘못한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그러나 내가 없는 말을 지어냈나 하는 생각에 이내 당혹감을 느꼈다.  둘이 몰래 려행 간 것은 부부동반 모임에서 은화네 부부가 소리 낮춰 이야기하는 걸 의도치 않게 엿듣고 알았다. 그 순간 윤주는 두 사람이 급격하게 가까워져서 배신감을 느낀 게 아니라 그걸 비밀이랍시고 귀속말로 하게 만든 지연이 때문에 수치심을 느꼈다. 게다가 대학을 함께 다닌 은화와는 지연이처럼 각별하게 지내는 편도 아니였다. 짐짓 못 들은 척 먹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윤주는 손이 부들부들 떨려 저가락질 하기도 힘들었다.  “윤주야, 사실 그동안 은화랑 쇼핑하고 커피 마시고 려행까지 가면서 많이 친해졌어. 널 통해서 알게 됐지만 너는 만날 먹고 사느라 바쁜 것 같아서 은화 만날 때 너에게 말을 못했지. 내 딴엔 널 배려하느라고 말을 안했는데 넌 그걸 리해 못하는 거야? 내가 일부러 너는 모르게 하자고 했어.” 지연이 윤주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쯤은 오랜 시간 이어온 우정을 통해 체득했다.  ‘내가 왜 너의 그 말도 안되는 배려를 리해해야 되는데? 그게 굳이 비밀로 할 일이야? 내가 화를 내는 게 정말 뭔지 몰라서 이래?’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지연의 억울함과 원망이 섞인듯한 표정을 보는 순간 윤주는 더 이상 따질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결혼생활은 윤주에게 때로 적라라하게 까발리거나 지나치게 모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적당히 눈 감아주고 슬쩍 넘어가야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윤주는 매번 그게 어려웠다.  뻐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오랜 기간의 련애를 끝낸 것 같은 후련함이 가슴을 후볐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굳은 표정을 본 윤주는 저도 모르게 민아를 떠올렸다.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지방 쪽으로 가면 서울의 삼분의 일 만큼만 줘도 비슷한 평수의 아빠트를 살 수 있대.” 지연의 말을 듣는 순간 떠올랐던 생각이 내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지연인, 내가 자신과 같은 수준이 되는 걸 싫어하는구나. 이상한 권유와 배려로 타인을 위로하려 드는구나.’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저도 몰래 한숨이 나왔다. 윤주는 삐딱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다.  아빠트를 마련한 지연에게 축하를 건넸고 주변에 자랑도 했다. 그러나 만날 때마다 할부금 타령을 하는 건 지겨움을 넘어 혐오감까지 들게 만들었다.  그냥 듣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윤주는 꼭 한마디를 던지고야 말았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누군 편하게 사니?” 사실 그건 지연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라도 하고 싶었던 말이였다.  언제부턴가 윤주는 지연과 만날 때마다 모든 비용을 자신이 지불해야 될 것 같은 부담감에 시달렸다. 금액을 떠나 그런 마음으로 지갑을 열면 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둘이 간단하게 먹는데 세트정식으로 주문할 것까진 없잖아. 단품으로 시켜도 충분할 것 같아. 내가 살게.” 음식을 주문할 때면 마치 윤주를 배려하듯 말하는 지연이 뻔뻔스러워보였다. 윤주는 자신이 밥을 사겠으니 근사한 걸로 먹자며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포기할 때가 많았다. 누가 밥값을 내든 메뉴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건 무의미한 감정랑비라고 생각했다.  윤주가 집이 있는 지연에게 부러움을 드러내면 “집이 있으면 뭐 해. 같이 살 남자도 없는데. 너는 그래도 남편이 있잖아.”라든가 “살아봐. 한순간 뿐이지 혼자만 왔다 갔다 하는 공간은 아무런 감흥이 없어.” 하고 말했다. 그 말은 윤주에게 묘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면서 기분이 잡치게 만들었다.  “남편이 있으면 뭐 해… 내 방도 없는데.” 그 때마다 윤주는 적의와 좌절감이 뒤섞인 감정을 짓누르며 시니컬하게 대꾸하려 노력했다.  이젠 자신의 렬등감을 드러내는 말을 들어줄 친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뜻밖에 외로움이 잔잔하게 차올랐다.    엘레베터를 타고 올라오는 사이에 아버지에게서 부재중전화가 와있었다.  윤주는 오늘 같은 날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하고 중얼거리며 커피머신에 진한 그린색상의 캡슐 하나를 집어넣었다.  윤주는 필요한 용건 외에는 아버지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다. 아버지와 통화할 때마다 뭔가를 해결해야 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어서 싫었다. 무엇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아서 늘 긴장을 풀 수 없었던 아버지가 윤주 앞에서 점점 나약해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가 증오의 대상에서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대놓고 허탈할 때가 많았다.  준비하지도 않았던, 가시 돋친 말이 튀여나갈 때마다 윤주는 머리 속에 리기적, 무책임, 불효 등 단어들을 라렬해보곤 했다.  “왜 전화를 안 받니?”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아버지가 또 전화를 걸어왔다. 윤주는 아버지가 꺼낼 말들을 알 것 같다는 생각에 피로감이 밀려왔다.  “낮에 봤는데 왜 또 전화까지 걸어요? 안 받으면 못 받는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 뭘 그렇게 따지고…” 아버지가 가족일로 의논할 상대가 자기 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윤주는 딴청을 부렸다.  “네 생각엔 어떠니?” “뭐가?” “성주랑 그 아이.” “알아서 잘살겠지, 뭘 걱정해요? 언제 그런 걱정을 하고 살았다고. 나 결혼할 땐 아무 말도 없었으면서.” “먹고야 살겠지. 그것보다 결혼식을 안하겠다는 성주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네 엄마는 결혼식을 했으면 하던데 성주가 말을 안 듣는단다. 결혼식 비용은 나도 보태줄 수 있는데. 식을 해야 책임감도 생기고 어른도 되지.” 엄마가 아버지에게 련락한 리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엄마는 여태 지인들의 결혼식에 뿌렸거나 뿌려야 될 부조돈이 있을 것이고 한국에 와서 늦깎이 대학생이 된 아들자랑도 은근히 하고 싶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엄마는 성주를 직접 양육하지 않은 데서 오는 죄책감을 결혼식을 잘해주는 것으로 해소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돈 때문이 아니잖아요.’ 하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고루한 화제거리의 꼭지를 트는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  “성주는 싫은가 보지… 아니면 필요 없거나! 사실 식이 뭐 꼭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됐다! 넌 뭐가 그렇게 시들하니?” 아버지는 자신의 말에 동조하지 않는 윤주가 못마땅한듯 벌컥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윤주는 아버지의 소통방식은 화끈한 것 같으면서도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성주에게 따지고 싶은 말을 윤주에게 하고 있다는 느낌에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윤주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다시금 떠올리며 진한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넘겼다. 아버지는 내게서 무슨 말을 듣고 싶었던 걸가. 다혈질적인 성격과 폭력적인 언행을 싫어하는 엄마 때문에 아버지는 리혼 후 성주를 거의 만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가끔 부모 구실을 못했다는 미안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때마다 윤주는 ‘꼭 술이 한잔이라도 들어가야 저런 말을 하지.’ 하는 야속한 마음에 아버지의 말을 흘려들었다.  윤주는 아버지가 성주 때문에 자신에게 화를 낸다는 게 당황스러웠고 서운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른들끼리 리혼을 결정했고 성주는 엄마와, 자신은 아버지와 살게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윤주는 그저 모든 게 싫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술만 마시면 자식들을 쥐 잡듯이 교육하는 방식으로 화풀이를 하려 들고 기물 파손에 폭력까지 행사하는 아버지는 가족 내에서도 소외의 대상이였다. 그런데 엄마가 평소에 그렇게도 의지하던 윤주를 아버지에게 맡겨버리다니. 아버지가 술에 취했거나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웃방에서 소리 죽여 우는 성주를 안고 있으면 그나마 불안감이 누그러들던 느낌이 생생했다. 윤주가 아버지와 살게 됐다는 건 이제 그런 것들을 혼자 감당해야 된다는 걸 의미했다.  이미 외삼촌 집으로 짐을 옮긴 엄마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말도 잘 듣고 성주도 잘 돌볼 테니 제발 아버지와 살지만 않게 해달라고. 엄마는 눈물 한방울 떨어뜨리지 않았고 함께 산 세월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막 학교생활을 시작한 성주만 눈치를 보며 윤주에게 자꾸 말을 걸고 싶어했다.  엄마는 “아버지는 술만 마시지 않으면 좋은 사람이니 네가 좀 참아라.”고 윤주를 달랬다. 좋은 사람인데 더이상 부부관계를 지속하지 않는 리유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윤주는 오기에서인지 복수심에서인지 그런 엄마에게 두번 다시 매달리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윤주는 친척집에 하숙했고 한주에 한번씩 집에 갔다. 그러나 부모의 리혼 후 윤주는 아버지만 있는 집에 발을 들여놓기가 싫었다. 엄마 없는 공간은 온기가 없었고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던 성주가 눈에 밟혀서 울컥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술을 마실가봐 가슴을 바싹 졸이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버지가 한국으로 가면서부터 윤주는 더이상 아버지 때문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윤주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었다. 홀가분함과 외로움이 뒤섞인 생활에 길들여진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인내와 포기를 필요로 했다.  “윤주야, 생각 같아선 너랑 성주 둘 다 껴안고 살고 싶었지만 사람 사는 게 어디 그렇게 쉽니? 나도 결혼한 지 얼마 안돼서 눈치가 보이고… 그럴 땐 손주들 맡아줄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린 세상 천지에 부모 형제라곤 딸랑 네 엄마랑 나 둘 뿐이잖니. 리혼한 지 얼마 안돼서 네가 엄마랑 살게 해달라며 왔다 간 날에 누나가 그렇게 매정하게 널 돌려보내놓고 정말 많이 울었다. 엄마가 그래서 너한테는 늘 꼼짝 못하는 거 알지?” 윤주가 대학에 입학하던 날, 외삼촌은 엄마가 한국에서 송금해준 돈을 전달하면서 말했다. 변명이고 자기 합리화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느 정도의 진실도 포함돼있었기에 윤주는 어색하게 입꼬리만 올렸다. 아직 자식도 없었던 외숙모가 조카 둘을 한꺼번에 품을 수 없다는 것 쯤은 윤주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리해했다. 그러나 윤주가 느꼈던 배신감과 불안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튀여나오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윤주는 진작 알았다. 오기로 버텨냈던 세월 동안 윤주 마음속의 비장이 점점 두꺼워졌음을. 막연하게 어른이 되면 엄마의 선택과 아버지의 삶을 리해할 수 있을 거라 짐작했다. 그러나 서른을 넘기고 결혼을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 것에 태연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날카롭게 튀여나오는 자기방어 때문에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 때마다 윤주는 수치심과 억울함이 교차한 감정을 추스르느라 애를 썼다.  엄마에 대한 애증이 반비례를 이루지 않아 괴로웠다. 미워하는 마음이 크면 그리움이라도 적었으면 좋겠지만 산다는 건 만만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두려울 때 윤주는 저도 모르게 엄마를 불렀다. 처음 남자친구와 헤여졌을 때 윤주는 엄마에게 남자친구에 대한 뒤담화를 시시콜콜 하고 싶었다. 처음 휴대폰을 갖췄을 때 엄마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걸고 싶었다. 대학입학 통지서를 받았을 때 윤주는 이제 혼자서 어디든 갈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윤주는 정작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아는 단둘이 맛있는 밥을 먹고 쇼핑도 하고 카페에서 노닥거리고 싶다고도 했다. 련인이나 친한 친구끼리 하는 짓을 하필이면 어려워해야 할 상대인, 시누이가 될지도 모르는 자신과 하고 싶다는 게 윤주는 못마땅했다. 어찌됐든 민아를 한번은 만나야 될 것 같은 책임감 때문에 약속을 잡았다.  베이지색상의 트렌치코트에 굽이 없는 옥스퍼드화를 신은 민아가 윤주를 보자 손짓하며 다가왔다. 크로스백을 벗은 민아는 손에 들었던 쇼핑봉투를 윤주에게 내밀었다. 생각보다 큰 부피에 갈마든 기대감도 잠시, 윤주는 이걸 내가 왜 받아야 되냐는 눈빛으로 민아를 쳐다보았다.  “언니. 부담 갖지 마세요. 저 좀 잘 봐달라는 뜻으로 딱 한번만 뢰물을 드리는 거예요.” 민아의 말에 윤주는 흠칫했다. 어떤 기대를 했든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고마워요. 일단은 잘 받아둘게요.” 민아가 고른 선물은 네이비색상의 가방이였다. 디자인이 심플했다. 윤주는 민아가 자신의 취향을 제대로 파악한 것 같아 흐뭇하면서도 언제 성주에게 흘렸던가 하는 알쏭함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언젠가 “너는 왜 남자들이 다 하는 그 흔한 문신 하나도 없냐.”, “누난 왜 핸드백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냐.”고 웃으면서 서로를 ‘비난’했던 기억만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무심하다고 생각했던 녀석이 의외로 속이 깊다는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말 놓으셔도 돼요, 언니.” 윤주는 말을 놓아달라는 건 가까워지고 싶다는 의미이고 그건 뭔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이 생겼다. 민아가 과도한 친밀감을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됐다.  “그런데 결혼식은 어떻게 된 거예요?” 윤주는 고르곤졸라 피자 한조각을 민아에게 내밀면서 망설였던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아버지가 끝내 성주에게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또 윤주에게 물어올 것이였다.  “어머니는 결혼식을 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성주는 그러고 싶지 않은가 봐요. 식을 한다고 잘사는 것도 아니고 식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라면서. 그리고 성주가 나이는 있지만 대학 졸업하려면 아직 삼년이나 남았잖아요.” “부모님 세대는 결혼식도 치르지 않고 사는 걸 남사스럽게 생각하니까. 그럼 민아씨 생각은 어떤데요?” 윤주는 어느새 자신도 결혼식을 치르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민아에게 부모세대처럼 가르치려 들거나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이 성취하기를 강요하는 사람으로 보여질가봐 창피했다.  “나는 뭐, 성주랑 생각이 같아요. 잘살고 못사는 게 결혼식과 관련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뭔데요?” “아니예요. 어쨌든 난 성주랑 살 거고… 가족은 만드는 것보다 어떻게 유지해나가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윤주는 민아가 삼켜버린 내용이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집은 엄마가 마련해준 오피스텔이 있으니 성주만 들어오면 돼요. 전 엄마가 같은 동생도 있고 아버지가 같은 동생도 있어요. 한국에 올 때 엄마가 절 데리고 살지 못하겠다며 오피스텔을 사줬어요. 전 위챗으로 옷을 팔고 있는데 장사 잘돼요. 연길에 있을 때부터 해온 일이라 단골 고객이 많아서 먹고 사는 데 걱정이 없어요. 이제 아이템도 더 늘여갈 예정이예요.” 민아가 미리 준비라도 한듯 자신에 대해 빠르게 설명했다.  “아…” 윤주는 의무적이면서도 사무적으로 말하는 이 아이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오늘 언니랑 저 만나는 거 성주는 몰라요. 나중엔 알게 되겠지만 미리 말을 못했어요.” 윤주는 민아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할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예감이 사실로 변한 것 같아 오늘의 만남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타인의 삶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강하게 밀려왔고 어서 빨리 이 자리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웬 일인지 엄마가 끝끝내 윤주에게 등을 돌렸던 그 날의 참담한 심정이 되여가면서 성주가 보고 싶었다.  식당을 나서면서 민아가 묻지도 않고 윤주의 팔짱을 꼈는데 기분이 묘했다.  둘은 올해 여름에는 린넨 재질에 심플한 디자인, 밝은 색상 계렬의 옷이 류행될 거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백화점 구석구석을 돌았다. 두시간을 내리 돌고 기진맥진했을 무렵, 민아가 카페로 윤주를 이끌었다. 윤주는 갑자기 급하게 처리해야 될 일이 생겼다고 말해버렸다. 거짓말인 줄을 민아가 눈치챘을 것이라는 짐작에 얼굴이 뜨거워났다. 그렇지만 이 쯤에서 헤여지는 게 민아나 성주, 자신에게 좋을 것 같았다.  윤주에게 다음에 또 만나요, 하고 손을 흔들 때까지도 민아는 성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윤주는 민아가 보기보다 강하고 속이 깊은 아이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성주에게 문자를 보냈다.  -결혼, 하고 싶은 거야? 하기 싫은 거야? 성주는 윤주만 집에 있을 때 잠간 들리겠다고 했다. 윤주는 성주가 자기 결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에 대해 누나한테라도 설명해야 된다는 의무감이 생긴 것이라 생각했다. 늘 그렇듯 성주는 말이 없었다. 술이 한잔이라도 들어가야 막혔던 말문이 트이는 걸 보면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는 확신이 단단해졌다. 그 때마다 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안심한 적이 많았다.  술이라면 질색하는 윤주를 잘 알기에 성주는 맥주 두캔만 사들고 올라왔다.  “민아가 뭐래?” 민아의 자백이 생각보다 빠르다고 생각했다. 민아의 그런 면이 과묵한 성주와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무 것도.” “걘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안해.” “그럴 것 같더라.” “누난 왜 이렇게 화가 나있는데?” “몰라. 속에서부터 뭔가 자꾸 끓어올라.” 매사에 랭소적인 성주가 민아를 제법 잘 리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윤주는 어쩌면 민아가 자신보다 성주에 대해 더 잘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별안간 적의가 생겼다. 그제야 윤주는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감정의 실체가 질투임을 알았다. 그런데 질투의 대상이 민아인지 아니면 지연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 화가 났다.  “난 사실 누나는 결혼 같은 거 안할 줄 알았어.”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중학교 때부터 련애를 하고 다닌 걸 몰라?” “몰라… 후훗! 그냥, 누나가 결혼하는 건 날 배신하는 거라고 생각했지. 우리 사이엔 어렸을 때부터 그런 무언의 약속 같은 게 있어왔다고 생각했나 봐.” “어쩜! 너 혼자만?” “집이라는 게 나는 너무 지겨워. 누나는 하숙하고 자취하고 기숙사에 살고 그렇게 혼자 살았지만 난 고중 가기 전까지 9년이나 삼촌 집에서 학교 다녔잖아. 그것도 고중에 입학해서는 같은 도시에서 뭔 자취냐며 펄쩍 뛰는 것도 내가 바락바락 우겨서 겨우 독립했다. 아마 삼촌은 내가 없으면 돈줄이 끊길가 두려웠을 거야.” “알지. 삼촌이 보기엔 멀쩡해도 끈기가 없잖아, 눈치도 무디고!” “말끝마다 자기 집처럼 편하게 있으라고 했지만 삼촌과 숙모가 싸우면 나 때문인 것 같고. 사촌동생이 밖에 나가서 다쳐도 나 때문인 것 같고. 삼촌이 자꾸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난 집에 들어가는 게 싫었어.” “우린 집이 없었지…”  “응. 지금은 엄마도 아버지도 한국에는 자기 집이 없지만 연길엔 다 있잖아. 우리가 언제 돌아가도 눈치 안 보고 먹고 잘 수 있는 집. 그런데 그 집이 다 비여있어. 집이 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냐. 그 집에서 살 사람도 없는데. 그런데 말이야, 엄마나 아버지는 왜 늘 집이 없이 사는지 모르겠어. 집이 없는 곳에서만 사는지 모르겠어.” “…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야.” “엄마가 날 맡기고 미안해서 삼촌네 생활비까지 다 보내주는 건 알았어. 그런데 집안엔 늘 랭랭한 기운이 돌아서 늦게까지 돌아다니다 들어갈 때가 많았지. 어릴 때 그렇게 방황하며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난 지금 쯤 대학 나와서 다른 삶을 살고 있을가?” 윤주는 말없이 성주를 향해 맥주캔을 내밀었다.  “엄마는 날 키운다는 명분일 뿐 삼촌 집에 던져놓고 돈만 보냈어. 난 차라리 먼 친척집에서 하숙하는 누나가 부러웠다? 혼자라면 오히려 자률성이 강한 아이로 성장했을지도 모르잖아?” 윤주는 혼자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알기나 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혼자라는 단어가 가지는 결의 다양함에 대해 일일이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성주가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형성하는 것 따위의 문제로 민아와 의견충돌이 생겼다면 어떻게 조언해줘야 될가. ‘가족은 말이야, 싸우다가도 마주보며 웃고 반목과 화해를 거듭하는 구성원이야. 게다가 특별한 의식 같은 게 없어도 화해가 가능해.’ 어른스럽게 그럴듯한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윤주는 도리질했다.  윤주 역시 가족끼리의 반목과 화해라는 의미를 잘 몰랐다. 남편은 윤주의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립장이였기에 결혼한 지 2년이 넘도록 그렇다 할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주는 남편의 눈에 씌운 콩깍지가 언제 벗겨질지 자신 없었다. 사실은 아직까지 자기 주장을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아서 사소한 문제라도 수면 우로 떠오르지 않았는지 모른다.  성주를 볼 때마다 ‘이 아이에게 혈육이라는 명분으로 관심과 책임을 강요하지 말아야지. 나 때문에 상처받는 일은 없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긴장을 풀지 않았다.  성주가 그다지 밝은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윤주는 단 한번도 물은 적이 없었다.  지금 기분이 어떠한지? 괜찮은지?  윤주 역시 이런 질문에 답해본 적이 없었다.  “민아는 착하고 영악한 애야. 어디 내놔도 똑 부러지게 살 걸?”  윤주는 그런 민아랑 가족이 되는 게 왜 두려운지 묻고 싶었다. 민아에 대해 왜 그렇게 모순적으로 평가하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만날 때까지 왜 가만히 있었는데?” “엄마랑 민아가 주도적으로 결정한 거야. 그래서 그 날 결혼식 같은 건 안한다고 못을 박았잖아.” “그 때서야?” 그런 변명 따윈 집어치우라고 욕을 하고 싶었다. 네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했으면 여기까지 올 일이 없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그냥 다 귀찮아.” 귀찮다는 말이 지금 성주의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말일지도 몰랐다. 윤주에게는 그 단어가 두렵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럼 뭐 어때서. 살다가 헤여지면 그만이지. 다들 그렇게 살잖아? 아버지도 엄마도, 민아네 부모도, 심지어 삼촌네도 결국은 리혼했잖아.” “미쳤어? 그런 마음을 품고 어떻게 형이랑 살아?”  성주가 눈을 흘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가 두렵다는 건지 목적어를 밝히지 않았지만 성주가 두려워하는 것의 실체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사람을 가볍게 여기라는 게 아니라 네가 선택한 연缘에 확신과 책임을 가지라는 거지…” “작년 여름인가. 민아 할머니의 일년 기일이 지난 지 얼마 안돼서, 어느 날은 나에게 임신했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묻더라. 그 날 저녁 누나에게 먼저 말할가 엄마한테 말할가, 온밤을 뜬눈으로 새면서 어떻게 해결해야 되나 고민했어.” “그런 고민은 아버지랑 공유해야 되는데.” “글쎄… 2주 정도 지나서 우연하게 민아가 친구들이랑 술 마시는 걸 목격했지. 그 순간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윤주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황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성주를 옭아매고 싶었던 걸가. 그런데 그 대상이 성주가 아닌 다른 남자라도 가능하지 않았을가 하는 추측에 윤주는 조금 아연해졌다. 여태 민아에게 가졌던 믿음이 날아가버리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민아는 거짓말이 발각된 줄도 모르고 계속 나에게 아이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거야.” “거짓말? 그래서?” “헤여지자고 하고는 잠적해버렸지, 물개처럼.” “비겁하다. 그런데 우리 남매는 의외의 지점에서 공집합이 생기는 것 같다. 난처하면 화제를 돌려버린다든가 말없이 등을 돌려버린다든가.” “응. 그냥 민아가 자꾸 따지고 밀어붙이는 게 싫어서 그랬는데 말하고 나서는 나도 깜짝 놀랐다? 누나도 극단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경향이 있잖아. 언젠가 분명 누나가 잘못했는데도 매형에게 적반하장 격으로 선수를 치는 걸 보고 이게 누나가 사는 방식이구나, 우리 누나는 어이없게 버텨왔구나, 하고 생각했지.” “알면서도 그래. 상처 받을 바엔 차라리 먼저 관계를 끊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버리고 버림받고. 그 다음엔?” “몰라. 엄마나 아버지는 뭐 자식이 둘이나 있으면서 그 다음을 생각하고 리혼했대?” “형이 가끔 나 밥 사주는 거 얘기하는지 모르겠네? 형은 부모님도 사이가 좋고 성격이 모나지도 않고 그래서 여태 누나랑 문제없이 사는지 모르겠어. 누나가 자신을 누르고 살 위인은 못 되잖아? 나는 가족이 뭔지도 모르겠고 가족을 만들 자신도 없어. 그냥 살 공간이 있으면 집이야? 사람 같은 사람이 살아야 집이고 가족이지. 살면서 엄마와 애틋했던 적은 없지만 아버지랑 헤여진 건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정말 많아.”  이상하게 윤주는 피붙이로부터 리해받는 느낌이 들어 목이 메여왔다. 위축되고 억울한 마음을 종종 공격적으로 표현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성주야, 결혼 같은 거 안해도 되고 민아랑 그냥 살아도 되고 헤여져도 돼. 누구한테든 미안할 거 하나도 없어. 엄마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건지 모르겠다.”  성주가 맥주캔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털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린 게 무슨! 그냥 자기만 생각하면서 사는 거지. 그걸 알면 이 따위로 살겠니?”  윤주는 성주의 머리를 쥐여박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둘은 환풍기를 켜고 나란히 담배를 태웠다.  성주가 스무살 되던 해의 어느 날, 윤주는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던진 한마디 때문에 한동안 충격에서 헤여나오지 못했다.  “누나. 나 유부남이 됐다.” 윤주는 아이가 생겼을가, 크게 꼬투리를 잡혔나, 녀자가 집착이 심한 건가 온갖 상상을 다하며 안절부절했다. 윤주는 스무살의 유부남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녀자 친구네 집에서 부동산을 분양받기 위해 부부관계를 증명하는 호적이 필요한데 자기가 남편으로 이름을 올려주는 대신 사례금을 받았다고 했다. 물론 나중에 녀자 친구 집에서 호적을 깨끗하게 처리해주기로 약속했고. “누나, 신기하게도 아무런 변화가 없어. 결혼 같은 거 누구랑 해도 상관이 없나 봐.” 윤주는 그 때 느꼈던 놀라움과 씁쓸함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호적은 깨끗해지겠지만 이토록 자신의 인생에 무책임한 아이라니.  “돈은 어디다 썼는데? 엄마가 돈 넉넉하게 주잖아?” “돈이야 늘 모자라지. 술 먹고 나이트 가고 련애도 하고… 벌써 다 없어졌어.” 몇만원 되는 돈을 그리 허망하게 써버렸다는 게 한심하고 그렇게라도 자신을 함부로 굴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주가 가여웠다.  윤주는 그 때 처음으로 담배를 입에 대봤다.  아버지는, 이제야 술과 담을 쌓은 아버지는 자식들이 이렇게 시시하게 살고 있는 걸 알기나 할가. 윤주는 저도 몰래 맥주캔을 옥여쥐였다. 모든 문제가 아버지로부터 비롯되기라도 한듯이 손마디에 힘을 실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됐으면서도 윤주는 그 감정의 끈을 쉽게 놓지 못했다.    원래는 두달 전부터 지연이랑 오기로 약속되여있던 경주행이였다. 무료로 문화탐방을 시켜준다는 공지를 보고 지연에게 련락했고 지연이도 그 즈음엔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윤주는 최근 지연이 은화와 가까워진 걸 알게 된 후부터는 지연과 동행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윤주는 집안 행사가 있어서 못 갈 것 같다고 했고 지연이도 공교롭게 그 즈음에 스케줄이 생겼다고 했다.  윤주의 제안에 민아는 문화탐방인데 언니랑 1박2일로 붙어다니는데 왜 안 가겠냐며 반색을 했다. 민아와 함께 뻐스에 오를 때 윤주는 맨 뒤자리에 앉은 낯익은 얼굴들을 보았다. 윤주는 지연과 은화가 모자를 눌러쓴 자신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도무지 가라앉혀지지 않는 분노에 가슴이 콩콩 뛰였고 숨 쉬기도 가빴다.  담당자에게 원래 함께 신청한 친구 대신 다른 사람과 동행해도 되냐고 물었을 때 잠간 침묵이 흘렀던 리유를 알 것 같았다. 윤주는 나중에 따로 탐방을 가느니 ‘무료’와 ‘단체’라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고액의 비용을 치르고 한둘이 총총거리며 다니기보단 여럿이 복작거리면서 어울리는 게 더 효률적이지 않을가 싶었다.  윤주의 신경은 온통 뒤자리에 쏠려있었다. 들떠서 이것저것 묻는 민아의 말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연아, 나 문화탐방 가는 뻐스 안이야. 윤주는 이따가 뻐스에서 내려서 어색하게 마주치기보다는 미리 동행을 알리는 게 나을 것 같아 문자를 보냈다.  “윤주야!”  지연과 은화가 손나팔을 한 채 동시에 윤주를 불렀다. 고개를 돌린 윤주는 그들을 향해 손짓하며 엷게 웃었다.  민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윤주에게 아는 사람이 더 있었냐고 물었다. 하필이면 출발시간에 맞춰 도착한 것이 짜증 났다. 윤주는 민아만 아니라면 당장 길가에 차를 세워 내리고 싶었다.  중간에 들린 휴계소에서 윤주는 지연과 은화와 태연하게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새침한 표정을 짓는다거나 뾰족하게 말한다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모든 게 예전과 똑같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건 윤주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자연스럽게 둘씩 짝을 지어 다녔고 윤주는 언뜻언뜻 지연이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 그만한 대가는 당연히 치러야 되는 게 아니냐는듯 윤주는 일부러 지연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언니, 난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 문화유적 같은 거 잘 몰라요.” 하며 어딜 가나 슬쩍 눈길만 주던 민아는 뜻밖에도 종소리에 관심을 드러냈다.  “언니, 종소리 한번 들어봐요. 그런데 왜 이렇게 울컥하지?” 경주박물관에서 민아는 신종의 디지털 종소리에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종소리가 울리고 나서도 오래동안 그 여운이 가셔지지 않는 게 마치 할머니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다고 했다. 민아는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좀 쉬여가자는 시늉을 하며 윤주를 끌어당겼다.  “맥노리현상 때문에 이런 소리가 난대요. 원래부터 이런 소리를 내는 게 아닌데도. 딱 요 정도로만… 부딪쳐 살면서 이런 소리를 오래도록 맑게 내면 얼마나 좋겠어요, 언니.” 민아는 휴대폰으로 성덕대왕 신종에 대해 검색하다 말고 갑자기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 맞는 장사잖소…” 하고 중얼거렸다. 윤주는 웬 애늙은이 같은 노래냐는 생각에 피씩 웃었다.  “우리 할머니도 이렇게 맑고 여운이 가시지 않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좋아할가요. 노래를 좋아했는데. 할머니는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라는 가사가 나오는 한국노래를 자주 들었어요.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김혜자 배우가 혼자 들었다는 노래. 난 드라마를 보지 못했지만 할머니가 하도 흥얼거리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부를 줄 알게 됐어요. 날 두고 그렇게 급하게 갈 필요까진 없었는데. 쓸데없이 난 좋아하지도 않는 민들레를 꼭 아침시장에 가서 사야 된다고 새벽같이 나서더니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어요.” “할머니의 보살핌이 딱 거기까지였던가 보네. 자책하는 순간 너는 잉여인간이 될지도 몰라. 삶의 마디마다 구구절절 후회가 갈마들고 결국은 거기에 빠져서 헤여나오지 못하게 되겠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며칠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고 텅 빈 집에서 나 혼자 자고 깨고 자고 깨고… 엄마는 내 기분이나 절망 따위엔 관심도 없이 빨리 한국으로 나오라는 말만 반복하고 아버지는 혹여 내가 재혼한 가정에 들어붙기라도 하면 어쩔가 걱정하는 눈치였어요. 아마도 부모 잃은 슬픔보다 갑자기 책임져야 할지도 모를 자식이 더 부담스러웠겠죠? 어떻게든 살아야 되니까. 성인이 된 내가 살 집이 없는 것도 아닌데 다 자기 생을 살 뿐인데 꼭 누가 누굴 책임져야 되는 것처럼 끔찍해하는 게 싫어요. 그냥 부딪치면서 맑게 빛나게 살면 되는 건데 그게 이렇게 어려워요.” “그래서 다들 피하고 도망가고 떠나고 그러나 봐. 그렇게 하면 지금과는 다른 생이 펼쳐지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에.” 윤주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민아에게 말을 놓은 자신을 발견했다.  “성주를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동갑이라고 해서 동창인 줄 알았는데?” 윤주는 우리 남매는 사실 서로의 인간관계에 대해 터치하며 왈가왈부하는 편이 아니라는 변명은 하지 않았다. 친남매인데 생각보다 살갑지 않네요 따위 의도가 불분명한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뭐 틀린 말도 아니죠. 제가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한동안 애를 좀 먹였어요. 비행소녀라 고중 때 친구랑 도둑담배 피다 걸린 적이 있어요. 수업시간에 따로 벌을 서는데 다른 반 남자애들이 대여섯 잡혀왔어요. 다들 뭔 녀자들까지 잡혀왔지 하는 눈길로 훔쳐보는데 성주는 감시하던 선생님이 자리만 뜨면 휘파람을 불며 “담배 피다 걸렸는데 뭘.” 하며 옆의 남학생이랑 속닥거렸어요. 설마 하며 우리를 쳐다보는 남자애들의 시선이 너무 싫어 나중에는 망신을 주고 싶은 마음에 작정하고 쫓아다녔죠.” “나쁜 놈이네! 그런 애랑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이를테면! 동질감 같은 것?” “흠…” 성주는 삼촌 집에서 나와 살면서 모든 것에 시큰둥해있었다. 거칠고 반항적이고 예리해서 윤주조차 함부로 말을 걸지 못했다. 성주는 “누난 뭐 말썽 없이 컸어?”, “그렇게 참견을 안해도 잘하고 있다고!”, “누구 좋으라고 착하게 살아?”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바쁘게 이런 대답들로 윤주의 입을 막아버렸다.  “모르죠? 성주 자퇴하겠다는 걸 설득해서 이번 학기에는 휴학했어요.” 민아가 윤주를 쳐다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휴학했다는 말을 웃으면서 하는 게 괘씸했다.  “무슨 소리야? 잘 다니고 있는 줄 알았는데! 고졸이라 걱정하던 차에 외국에서라도 대학 들어갔다고 모두들 얼마나 좋아했는데…”  “이 나이에 졸업하면 몇살이냐고. 자기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입에 달고 사는걸요. 질풍노도의 시기가 왔나 봐요. 그런데 그런 불안, 좋다고 생각해요. 그 끝에는 잔잔함이 있으니까.” “나한테는 아무 말도 없더니. 길이 어디 따로 있다고!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사는 거지.” 윤주는 가족의 기대에 부응해야 된다는 말을 자신한테 최선을 다해 살아야 된다는 것으로 둔갑시켜 말하는 스스로에 놀랐다.  “뭔가에 몰입하고 뭔가를 책임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민아는 웃음기를 살짝 띠운 채 담담하게 말했다.  어디선가 불협화음의 소리가 퍼져왔지만 윤주는 잠자코 들었다.  “언니가 좋아요. 예뻐서라고 하면 립서비스라고 할 거죠? 새침해서 피 한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을 땐 안아주고 싶고 부드러워서 모든 걸 나눠줄 것 같을 땐 한없이 기대고 싶고. 할머니랑 오래 살면서 저도 모르게 익숙해진 것들이 있나 봐요.” 민아가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한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워났다.  “에이. 칭찬이야 욕이야? 무슨 그런 낯 간지러운 말을 해?” 윤주는 쑥스러운듯 민아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나중에 손톱 네일을 예쁘게 해주는 것으로 고마움을 갚겠다고 했다.  옆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디지털 종소리에 귀 기울이는 민아를 보는 윤주의 마음속에는 종소리의 여운 만큼이나 안도감이 퍼져왔다.  갑자기 눈을 뜬 민아가 윤주를 향해 한마디 던졌다.  “저기 언니 친구들, 언니를 좋아해요. 그게 느껴져요, 저는.” 민아의 말에 윤주는 가만히 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미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때리는 어느 오후, 윤주는 인견이불을 뒤집어쓴 채 텔레비죤 채널을 돌리다가 노릇노릇 구워진 막창을 보여주는 데에서 멈췄다.  같이 먹으러 갔었는데 하고 중얼거리다가 지연이 궁금해졌다. 잘 지내고 있을 거야, 지연인 사람을 좋아하니까.  문화탐방을 다녀온 뒤로 지연이를 만나지 않았다. 지연이 먼저 련락 못할 것을 알면서도 윤주는 부러 모질게 후덥지근한 한여름을 보냈다. 윤주는 지연에게 웃으면서 말을 건네려면 자기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턴넬을 통과해야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턴넬 속 어둠을 떨쳐내지 않고서는 어떤 말도 자연스럽게 토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 날 이후, 무가내한 표정을 짓던 지연이 가끔 마음에 걸렸지만 애써 다른 것에 몰두했다. 그렇다고 지연을 련락처에서 삭제하거나 위챗에서 차단하는 따위의 짓은 생각지도 않았다. 지연이와 함께 지낸 시간들이 있었고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아도 생겨나는 믿음이 있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가라앉는 무언가가 있어서 예전과 달라진 감정으로 서로를 마주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몰래 가졌던 가족모임에 대해 설명하느라 부모님이 사위에 대해 전혀 불경스럽다는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고 변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런 자의적인 결정은 리혼 사유가 될 수도 있다고 조곤조곤 말하는 남편을 보면서 윤주는 결혼한 이래 처음으로 긴장했다.  정말 아무런 의식도 치르지 않은 성주의 결혼을 두고 집요하게 트집 잡는 아버지를 향해 크게 화를 냈다. 이번에는 아버지도 제법 오래동안 윤주에게 전화 한통 하지 않았다. 윤주 탓이 아닌데도 아버지는 자꾸만 윤주에게 서운함을 내비쳤다.  매일 네일샵을 열심히 운영했고 짬짬이 선배가 론문 집필에 필요하다며 부탁한 자료들을 수집하는 데에 열중했다.  일부러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서도 일상은 소란스럽게 굴러갔다.  민아가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를 안고 윤주 앞에 나타났다. 같이 살기로 마음먹었던 차에 윤주한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강아지를 좋아하던 지연이 생각났다.  “거의 죽어가는 강아지를 안고 택시에 앉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흐르는 거야. 조금만 더 버텨줘,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조금만 더… 하고. 강아지를 길에서 죽게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 몇년 동안 나를 지켜준 강아지가 제대로 죽지 못하면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없을 것 같아서…” 지연이 위로가 될 거라며 분양받으라고 그렇게 권고해도 윤주는 매번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윤주는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털이 날리는 게 짜증 났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강아지의 눈길도 싫었다. 심지어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타인의 취향에 대해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싫다고 말하는 것과 진짜로 싫어하는 게 다른 것처럼.  오늘은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걸고 싶은 날이였다.  출처:2018 제5호
53    신선 같은 세월(시, 외1수) 댓글:  조회:89  추천:0  2019-07-15
신선 같은 세월(외1수) 방태길     할머니는 멀리 간 손주놈 그리워 휴대폰 만지작 화상채팅 기다린다 하늘은 파랗게 뱅글뱅글 웃고    구름은 내려와 할머니를 간지른다    손주야, 도시는 찬바람도 많이 분다는데 와글와글 승냥이 같은 차도 많이 뛴다는데 길 나서면 동서남북 열심히 살펴야 한다  폰에는 고향의 개 닭 울음소리 없고 동네 앞 왜글왜글 달리는 시내물도 없고 하늘에 기대고 서있는 버드나무도 없고… 그래도 손주놈이 반짝반짝 웃어주니 좋다   그래서 할머니는 화상채팅 기다린다   인제는 어른 된 손주놈이 헤벌쭉  휴대폰 저쪽에서 반갑게 부를 때 휴대폰의 파란 곳을 꼭 누르면  천리 밖의 빙글빙글 웃는 층집도 보고 천당에서 온다는 손님도 본다    할머니는 폰 안의 신선 같은 세상 본다 래일은 저승 간 할배하구 화상채팅 해야지 이승에서 한 십년 더 멋지게 살겠다고… 할머니는 자기도 신선 되는 세월이라 한다      바람이 오면 바람이 오면 그리움도 온다 바람이 오면 멀리 돌섬을 넘어 푸르던 바다도 날아온다 그립던 꽃도 날아온다   눈물 나게 그립던 바람이여 청춘이 예쁜 꽃 바래며 눈물 지을 때 열매 위해 지는 꽃 사랑하라고 물같이 섬세한 마음으로 알려주었지 그래서 바람이 오면 추워도 행복했고 슬퍼도 행복했고 성숙을 위해 리별하고 고독해야 하는 십자로에서 웃으면서 울었지   그래서 바람이 오면  찬 돌멩이도 안 버리고 안아주고 외로운 나무도 안 버리고 살펴주며 엄마한테서 배운 사랑 하고 싶다 속삭인다   그래서 내 마음은   바람을 보내고는 또 그리는 거다 출처:2018 제5호
52    송련희: 라목(수필) 댓글:  조회:98  추천:0  2019-07-15
라목 송련희     뻐스는 내가 사는 작은 현성을 벗어나자 그리 넓지 않은 향촌길로 접어들었다. 차창 밖의 미끄러지듯 스쳐가며 물러가는 한그루 또 한그루의 가을나무들을 바라보며 난 나도 몰래 깊은 상념에 잠겼다. 아- 소학교를 졸업한 후 30년 만에 소학교 담임선생님을 뵈러 떠나는 이 심정을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가. 내가 졸업한 동광소학교는 흑룡강성 계림조선족향 로씨야 변경에 위치한, 전교 학생이라야 마흔두세명 밖에 안되는 작은 시골 소학교였다. 이처럼 작고 편벽한 시골 학교에서 우리들의 생활이 얼마나 단조로왔을가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린 박철규 담임선생님께서 항상 함께 해주셨기에 잊지 못할 동년의 추억들이 참으로 많았다. 남녀, 학년의 계선이 없이 함께 고무줄 뛰기, 제기차기를 놀던 일, 파란 운동장에 발자국 찍으며 박선생님이랑 함께 뽈을 차고 술래잡기를 놀던 일, 박선생님의 경쾌한 손풍금 소리에 맞추어 〈아동단단가〉를 배우던 일… 매양 아침이면 우리 9명 꼬맹이들은 박선생님의 손을 잡기 위하여 서로 승벽을 내며 학교로 일찍 갔었다. 운동장에서 뛰여놀다가도 우린 먼곳에서 선생님의 모습이 언뜻 보이기만 하면 죽기내기로 선생님께 뛰여갔다. 먼저 달려가 선생님의 손을 잡고 학교로 오는 것이 어쩌면 그처럼 즐거웠던지. 그 때 선생님의 손을 잡지 못한 애들은 선생님의 옷자락을 쥐고 뾰로통해 따라오면서 투덜거렸다. “야- 선생님의 손이 세개였으면 좋겠다야…” “애두, 그러면 선생님 《서유기》에 나오는 요귀가 되라고.” 매양 그 때면 박선생님은 제자들이 종알거리는 모습을 정겹게 바라보며 “허허-” 웃으시군 하셨다. 선생님은 또 손마디가 불뚝불뚝 튀여나온 손으로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익살을 부려가며 날마다 우리들의 연필을 정성 들여 깎아주었다. 선생님께서 연필을 깎을 때면 우린 선생님의 주위에 오구구 모여앉아 살진 고사리 같이 포동포동한 손으로 연필을 높이 쳐들고 서로 자기의 연필이 더 뾰족하다고 자랑하였다. 그 때 코흘리개들의 눈엔 농촌 일에 장알이 큼직큼직하게 박힌 선생님의 투박한 손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였다. 3학년 때의 어느 겨울날 방과 후였다. 우리들이 박선생님이랑 함께 눈싸움을 마치고 짝짜그르르 웃으며 집으로 가는데 불쑥  몇몇 웃학년 애들이 길목을 막는 것이였다. “야, 너들은 손이 없어? 왜 절로 청소를 하지 않고 계속 선생님만 청소 시켜? 너들 박선생님 얼마나 바쁘신 줄 알기나 알어!” 그들의 노기등등한 모습에 기가 눌려 우리는 두눈이 올롱해졌다. “선생님은 우리가 아직 어리다구 비자루를 들지 못하게 하는데 뭐. 그리구 우리가 학교에 등교했을 땐 선생님께서 이미 청소를 다해놨어…” 그 날 우리는 찍소리도 못하고 웃학년 선배들에게 호되게 닦이웠다. 그리고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박선생님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서 겨울철 날 밝기 전에 출근하여 난로불을 후끈후끈 지펴놓고 교실 청소를 깨끗이 해놓는가를 알게 되였다. 동광소학교는 교사가 엄중하게 부족한 상황이라 학과 분공이란 것이 없었으며 한 교원이 담임 직을 맡으면 거의 그 학년의 모든 과목을 도맡았다. 게다가 향촌 교사들은 한편 농사까지 지어야 했기에 더욱 팽이처럼 돌아쳤다. 하지만 박선생님께서는 이런 육체적인 고달픔보다도 더욱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아픔이 있었다. 바로 뇌성마비脑瘫로 다리를 심하게 절고 생활을 자립하지 못하는 4살 난 아들 상민이였다. 선생님은 퇴근 전후의 시간을 타 짬짬이 농사일을 했을 뿐만 아니라 또 공급판매합작사供销合作社에 출근하는 사모님과 륜번으로 상민이를 돌봐야 했던 것이였다. 박선생님이 우리들의 담임을 맡았을 땐 둘째아이 딸 건아를 금방 보았을 때였다.  일상 생활 속에서의 선생님은 우울한 눈빛의 과묵한 분이셨다. 흥성흥성한 놀음자리, 회식자리를 피하셨고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셨으며 조용히 책읽기를 즐기셨다. 하지만 선생님은 학생들 속에만 오면 완전 눈부셨다. 밝게 웃었고 목소리가 우렁찼으며 온몸이 활기로 넘쳤다. 우리가 제일 애타게 기다린 날은 매주 금요일이였다. 금요일 소선대활동 시간만 되면 선생님은 전교 학생들을 5학년 교실에 모여놓고 《홍길동전》, 《림해설원》, 《몽떼 크리스토 백작》 등 재미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기 때문이였다. 우리들이 가장 인상 깊게 들은 이야기는 곡파曲波의 《림해설원》이였다. 창밖엔 흰눈이 펄펄 날리고 교실엔 눈 덮인 망망한 림해林海를 누비며 적들을 소멸하는 소분대의 이야기가 한창 절정으로 치닫고… 선생님께서는 손짓 발짓 해가며 이야기를 하셨는데 우리들은 이야기의 내용에 따라 숨을 모으고 조마조마해 앉아있기도 하였고 두눈이 휘둥그래서 “어머나!”하며 새된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으며 서로의 잔등을 콩콩 두드리며 박장대소하기도 하였다. 박선생님은 《림해설원》 중의 호접미蝴蝶迷의 모양에 대하여 어찌나 생동하게 묘사하였는지 “얼굴이 옥수수대처럼 길다랗고 얼굴에 잔뜩 난 주근깨를 덮어감추기 위하여 분을 떡반죽처럼 발랐는데 눈을 끔쩍끔쩍할 때마다 분이 찔끔찔끔 떨어졌다”는 호접미의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보는듯 생생하다. 내가 문학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때부터였다. 박선생님과 함께 한 나날들 중 우리들의 성장에 참으로 큰 영향을 준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바로 영화 《소년범죄자少年犯》를 관람한 것이였다.  소학교 5학년 때 《소년범죄자》란 영화가 20여리 상거한 향소재지 계림영화관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며 상영되였다. 보고 온 사람마다 교육가치가 대단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허나 그 땐 계림으로 뻐스가 통하지 않을 때여서 우리 시골 애들은 그저 귀동냥이나 하여 영화 줄거리를 둬마디씩 주어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 때 박선생님은 참 큰 결정을 내렸는데 바로 마을의 핸드트랙터手扶拖拉机가 있는 학부형을 동원하여 우리 9명을 싣고 계림에 가서 그 영화를 관람시키는 것이였다. 아, 북경유람을 갔으면 그처럼 신났을가! 우린 너무 흥분되여 밤잠마저 이루지 못하였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동지달, 핸드트랙터의 뒤바구니에 앉아 20여리 길을 달려가 영화관람을 한다면 지금 애들은 무슨 고역인가고 아우성을 칠 테지만 우리들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었다. 곧 영화를 보게 된다는 흥분 그리고 우리들이 선생님과 함께 그 어떤 장거를 이루어내는듯한 격동은 우리들로 하여금 매서운 북방의 추위를 거뜬히 이겨내게 했던 것이였다. 우린 추위로 덜덜 떨면서도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선생님- 저 길가의 나무들 봐요. 막 뒤로 휙휙 달아나는 것 같아요!” “야! 나무에 하얀 눈꽃이 피니 진짜 예쁘네!”  “선생님, 선생님- 근데 저 나무들이 이렇게 추운 겨울에 나무잎들이 하나도 없어 춥지 않을가요?” 우린 확 다가오다가 어느새 훌쩍 멀어지는 겨울 벌판의 라목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까륵까륵 웃음을 토했다. 《소년범죄자》는 내가 여직 본 영화 중 그 어린 나이에도 ‘난 꼭 착하게 살아야지!’ 하며 눈물을 펑펑 쏟으며 본 가장 감명 깊은 영화였다.  세월은 흘러흘러 우리들이 선생님의 품을 떠난 지도 어언 30년이 되였다. 수십년의 흐름 속에서 선생님의 한기 또 한기의 제자들은 모두 큰 도시로, 외국으로 지구가 작다고 이 세상을 주름잡았고 한번 떠나간 제자들은 황페해진 고향으로 거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허나 선생님만은 여전히 교육의 터전을 경건히 지켰다. 변한 것이라면 선생님의 허리가 휘여지고 귀밑머리가 희슥희슥해진 것이였으며 조선족학생들이 적어지며 시골학교들이 페교되여 인젠 전교 학생이라야 역시 50명도 안되는, 예전 몇백명 학생들로 흥성했던 계림향중심소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였다.  선생님의 제자들 중 난 유일하게 고향에 남은 제자였다.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평생 직업으로 교사직을 선택하였고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계동현조선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전 현 조선족 교사 연수회에서 여전한 중산복 차림의 선생님을 가끔 만난 적도 있었지만 내가 “아! 선생님-” 하며 반색하며 달려가 선생님의 팔에 매달릴 때면 선생님은 어른이 되여 나타난 제자를 보고 몹시 쑥스러워했다. 선생님은 내가 중학교 조선어문 교사로 성장한 것을 무척 기뻐했다.  “음- 련희가 계동조중에서 조선어문을 잘 가르치고 있단 얘길 들었어. 학생 때부터 조선어문을 남달리 좋아했잖아. 훌륭해! 그래, 참 훌륭해!”  하지만 그것 역시 아주 잠간, 선생님은 인츰 우울한 눈빛의 조용한 선생님으로 변했고 선생님의 그 짙은 고독 속엔 일종 범접하기 어려운 엄엄함이 흘렀다. 그 때 선생님과 한학교에서 근무하는 선배가 하던 얘기는 지금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이, 박선생님께서 저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 첨 봐요. 평소 학교에선 다른 교원들과 얘기도 별로 하지 않고 동료들의 크고 작은 대사에도 일절 다니지 않죠. 십여년을 함께 근무하였지만 박선생님 댁에 가본 사람은 손 꼽을 수 있답니다. 모두들 뒤에서 박선생님을‘갑속에 든 사람’이라고 부르죠…”   난 선배님으로부터 박선생님과 사모님은 이미 헤여진 상태고 선생님 혼자서 뇌성마비에 걸려 행동이 불편한 상민이를 돌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시장경제의 충격으로 공급판매합작사는 부도가 나 사모님은 직장을 잃게 되였고 사모님은 선생님이 박봉의 교사 직업을 버리고 애들을 친척집에 맡긴 후 함께 한국으로 나가 돈을 벌기를 바랐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직업과 상민이 그 어느 하나도 내려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였다. 선생님과 헤여진 후 난 선생님이 애달파 내내 가슴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박선생님을 만나기가 두려워졌다.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 나와 선생님 사이에 두터운 장벽이 형성되였을가 두려웠고 현재 꽁꽁 닫힌 선생님의 심문을 열 수 있을가고 심히 고민되였다.  2017년 9월 18일, 내가 박선생님을 추억하며 쓴 수필 〈저 멀리 아름다운 별이 있다〉가 한국 KBS한민족방송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에서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여 전파를 타게 되였다. 내 글이 처음 한국 KBS한민족방송에서 방송되여 설레이고 가슴이 부풀기도 했지만 그 때 심사위원장이신 이상문선생님의 한 한마디가 참으로 채찍처럼 내 가슴을 아프게 때려오며 날 내내 부끄럽게 하였다.  “네, 그렇다면 세월이 흐른 뒤에 인생의 존경하는 큰 별이신 선생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어떠했을가요? 무척 궁금하시죠? 문장의 결말에서 선생님과 제자들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씌여졌더라면 더욱 좋았을것 같습니다. 왜냐면 어렵게 큰 은혜를 입었으면 잊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가능하면 작은 것으로도 갚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거든요…” 방송을 들을 땐 깊은 밤 홀로였지만 난 가슴이 저려오며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아- 난 왜 글로만 떠벌이며 불과 10여리 밖에 떨어져있지 않는 은사님과 따뜻한 밥 한끼 함께 나누지 못하였고 작은 선물 하나 드리지 못했으며 참으로 고마웠다는 말 한마디 직접 전하지 못했을가? 삶은 파란만장하고 세월의 강은 분명히 앞으로 흘렀지만 치졸한 난 선생님과 우리들의 이야기에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동화童话식 결말을 맺곤 선생님의 오늘은 아예 직시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였다. 한세대 또 한세대의 동년을 밝혀주신 선생님- 선생님은 분명 저 멀리에서만 아름다운 별이 아닌, 우리 삶의 영원한 멘토였던 것이다! 솔직히 사람들과의 만남을 싫어하는 선생님께 제자로서 30년 만에 불쑥 만나뵙고 싶다는 전화를 올리는 데는 참으로 용기가 필요했다. 조마조마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선생님은 전화 너머 내 목소리를 듣고는 마냥 목소리도 밝아졌고 만남을 부담스러워했지만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을 동의했다. 난 선생님께 드릴 선물로 피천득선생님의 수필집 《인연》과 근년 한국 KBS방송국에서 조직한 ‘북방동포체험수기공모’에서 상을 받은 작품들을 작품집으로 묶은 책자 세권을 준비하였다. 추억의 늪에 잠기다가 갑자기 뻐스가 “칙-” 하고 멈춰서더니 주위가 소란스러워졌고 어느새 선생님이 살고 있는 계림촌에 도착한 것이였다. 그제야 난 깊은 추억 속에서 헤여나오게 되였다. 하지만 차창 밖을 내다보는 순간 난 그만 “아!” 하고 환성을 지르고 말았다. 선생님이 마중을 나왔다. 선생님은 재빛 티셔츠에 미황색의 코트를 입었고 눈빛은 웅숭깊으면서도 평화로왔다.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나를 향해 걸어오는 선생님을 보는 순간 난 마치 또다시 동년의 세계로 돌아간듯 싶었다. “와! 우리 선생님 여전히 멋지십니다!” 난 저도 몰래 또 한번 환성을 터뜨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얼굴을 붉히시며 “에이- 퇴직을 앞둔 령감이 멋지긴. 오랜만에 학생을 만난다고 머리랑 염색해 그렇지. 아니면 온통 흰머리요.” 하며 수줍게 웃었다. 나와 선생님은 자그마한 간이음식점에서 식사를 나누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4학년 적 교사절 축하공연 때 우리 반 애들이 〈금실북과 은실북金梭和银梭〉이란 류행가에 맞춰 처음으로 디스코를 선보여 전교 사생들의 찬탄을 받은 일, 진달래가 온 산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던 봄날 남산으로 원족을 가기 위하여 선생님들이 나루배로 황니하黄泥河 량안을 수없이 오가며 학생들을 실어나르던 모습, 계림향조선족소학생 운동대회에서 우리 학교가 기타 6년제 학교들과는 아예 비기지도 못하고, 교사의 부족으로 역시 5학년제로 꾸린 유일한 경쟁자인 동명소학교를 이기고는 전교 사생들이 북을 치고 징을 울리며 환락의 도가니 속에 빠지던 장면도 떠올렸다. 허나 감회에 젖어 옛이야기를 하던 선생님은 동광소학교는 한족들의 소외양간牛棚으로 변했다며 깊은 한숨을 쉬셨다. 다음 난 또 선생님과의 얘기 중에서 제자인 나마저 2014년에 이미 중학교 고급교사로 평선되였는데 래년이면 퇴직을 맞게 되는 선생님이 여직 소학교 특급교사(소학교 특급교사는 중학교 고급교사에 해당함)로 평선되지 못하였다는 것도 알게 되였다. 선생님은 예전 동광소학교에서 대과교원으로 있다가 썩 늦어서야 정식교원으로 되였고 게다가 동광소학교가 페교되며 교원들이 여러 학교로 배치되였는데 대부분 변두리 교원 취급을 받으며 중시를 받지 못하였다는 것이였다. 특히 직함평의는 학력, 임무량, 공개수업, 론문발표 등을 종합적으로 보는데 한창 학교 골간으로 활약하는 젊은 교원들과는 아예 비길 수 없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애석해하는 나와는 달리 선생님은 “허허-” 웃으시며 소탈하게 말했다. “그래두 지금 정책이 좋아 해마다 로임이 올라 얼마나 좋소. 우리 딸애는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여 내 로임으로 나와 상민이가 생활하는데 매달 다 쓰지 못하고 남소.” 내가 상민이의 안부를 묻자 선생님의 얼굴은 금시 환해졌다. “양, 그 앤 지금 못하는 게 없소. 노래랑 한번 척 들으면 흥얼거릴 수 있고 컴퓨터랑 휴대폰이랑도 얼마나 통달했는지 이웃들 전자제품이 고장 나면 모두 우리 상민이를 찾소. 요 몇년 전엔 또 전기자전거电动自行车를 운전하는 것을 배워 마을 젊은이들 하구 전기자전거 몰고 연길까지 갔다왔소.” 선생님은 퇴근 후의 시간엔 손풍금을 치고 터전과 과일나무를 가꾸는데 올해엔 사과가 참 잘 달렸다는 것이였다.  “난 지금 소학교 2학년을 가르치오. 애들 모두 둘이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애들에게 사과를 한호주머니씩 뜯어다 주는데 허허허- 두 꼬맹이 놀가지처럼 홀짝홀짝 뛰며 와늘 맛있다고 야단이요.”   신나 두 꼬맹이의 이야기를 하시는 선생님의 얼굴엔 어느새 풋풋한 웃음이 싱싱하게 피여났다. 하지만 불현듯 잠간 침묵하더니 “사실 오늘 련희에게도 사과를 가져다 주고 싶었소. 그러다 다시 생각한 것이 몇십년 만에 제자를 만나는데 촌스럽게 터전의 사과를 들고 다니는 것 같아서…” 하며 쑥스러움에 넘쳐 얘기하시는 것이였다. 아! 순간 난 눈시울이 확 뜨거워났다. 불혹의 문턱에 올라서도록 여직 철 못 든 우리들,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어도 선생님의 마음속엔 우리가 여전히 사랑하는 아이였기 때문이였다. 난 선생님의 손을 꼭 잡고 축축히 젖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선생님, 분명히 사랑하여 교사사업을 선택하였지만 오늘까지 걸어오며 참 많이 방황했었습니다. 세상은 크고 눈부신데 젊은 난 편벽한 현성에서 청춘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우울했고 또 내 자신이 있는 자리와 자신이 하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고 뜨거운 땀방울을 쏟고 있을 때 조선족 학교들이 하나하나 페교되여 혹 저희 세대 교사들이 우리 조선족 학교 력사상의 마지막 조선어문 교사로 남지 않을가 하는 애끓는 아픔을 면대하게 되였습니다. 하지만 외롭고 힘들 때마다 전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같은, 학생들의 삶을 밝혀주는 따뜻하고 사명감 있는 교사로 성장하겠다는 초심을 더욱 굳건히 하였습니다. ‘너희들을 위해서라면 천만번이라도.’ 선생님께서 훤한 미소를 지으시고 늘 하시던 그 말씀 영원히 가슴 속에 새길 것입니다. ”  “련희가 훌륭하게 커줘서 정말정말 고마워!” 선생님의 두눈도 어느새 흥건히 젖어있었다. 난 나를 향해 오래오래 손을 저으시던 선생님과 작별하고 뻐스에 몸을 실었다. 뻐스는 무연하게 펼쳐진 논밭들 사이를 질주했고 나무잎이 한잎 두잎 지기 시작하는 백양나무들은 누런 논판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북방의 나무답게 어깨 겯고 름름히 서있었다. 겨울날의 가장 감동스러운 풍경이 될 나무들을 바라보며 난 그 추웠던 겨울 선생님과 나눈 대화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였다. “선생님, 선생님- 근데 저 나무들이 이렇게 추운 겨울에 나무잎들이 하나도 없어서 춥지 않을가요?” “허허- 물론 추울 테지. 하지만 이 라목들에겐 겨울 내내 소중히 품었다 봄이면 혼신의 사랑으로 키워야 할 어린 싹들이 있기에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거란다…”  출처:2018 제5호
51    전향미: 뜻밖의 쪽지(단편소설) 댓글:  조회:111  추천:0  2019-07-15
뜻밖의 쪽지 전향미     길림화공병원에서 서의 연수를 할 무렵이였다. 연수 과정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향진병원에서 보낸 연수생을 어느 과에서도 선뜻 받으려 하지 않았다. 맥을 짚는 중의 출신이고 림상경험이 짧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인듯했다.   돕다니? 배우러 왔지.  소개신을 들고 찾아들어간 병원 의무실에서 나는 주눅이 들어 앉아있었다. 의무과 선생은 전화기를 붙들고 서서 “아, 네, 아, 네.”를 련발하며 안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표정 뒤에서 얼른거리는 동정심 같은 것에 짜증이 밀려올 즈음, 심전도실에 파견하기로 결정이 났다.   “심전도 보는 법을 먼저 배우시오. 그러고 나서 다음 과로 배치해주지요.”  직원 기숙사로 나를 안내하며 의무과 선생은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네. 그러지요.”  나지막하게 대답하며 선생을 따라 기숙사로 향하는데 음달에 무더기로 남아있는 겨울눈이 3월의 봄 속에서 하얗게 웃고 있다. 병원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문진부와 입원부 건물이 8층으로 되여 앞뒤로 서있고 건물 왼쪽으로 나있는 돌계단을 따라 산비탈에 오르면 내가 류숙해야 할 기숙사가 있었다. 1년 동안 나는 이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진정한 의사로 거듭나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였다.    의무실에서 배정하는 대로 심전도실에서 2주 배우고 심혈관내과에 갔을 때 그녀가 하얀 가운을 입고 앉아있었다. 이름이 랭정이며 나를 책임질 지도의사라고 했다. 차가울 랭冷에 조용할 정静, 이름 그대로 차겁고 조용한 분위기가 느껴왔다. 자그마한 키에 통통한 몸매, 외꺼풀의 작은 눈에서 뿜어나오는 랭철한 눈빛이 인상적이였다. 환자의 고통을 정확히 집어낼듯한, 카리스마 있는 눈매라고 생각하니 존경스런 마음이 들었다.  “중의를 배운 미녀의사가 우리 과에 연수하러 왔어요. 랭의사와 나이가 비슷하니 통하는 데가 있을 겁니다. 랭의사가 맡아 지도하는 거로 하지요.” 미녀의사라는 말에 의사 사무실의 눈길이 쏴~하고 내 몸에 떨어졌다.  “랭의사는 서른 전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의료사업에 몸을 바치겠답니다. 아직 남자친구도 없어요. 랭의사한테서 많이 배우시오.” 주임이 소개하는 말에 그녀는 손가락을 코에 갖다 붙이며 살짝 웃었다. 그 웃음 뒤로 강렬한 눈빛이 터져나와 내 시야를 찔렀다. 그녀는 엑스레이 사진 찍듯 내 몸을 궤뚫고 그 검사 소견을 읽는듯했다.          나는 나보다 한살 어린 그녀를 랭선생이라 깍듯이 불렀고 그럴 때마다 조용한 미소가 응답이 되여 돌아왔다. 랭선생은 지도선생 답게 기회만 있으면 서의지식을 전수했고 나는 필을 휘갈기며 공책에 기록하군 했다. 혼자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뒤죽박죽 써갈긴 공책을 갸웃이 넘겨보며 흑흑 웃는 랭선생이 귀엽기도 했다.  그런데 웬일이지? 사흘이 지나지 않아 내리막길을 사정없이 떠밀려 내려가는 기분이 되여버렸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그녀 때문에 의학실습에 집중해야 할 신경이 조금씩 불쾌한 잡념으로 빠지는 것이 안타까왔다. 입을 오무리고 웃다가도 눈길이 마주치면 늦가을 된서리 내려앉은 영채밭처럼 서늘한 빛이 감도는 것이였다.  랭선생의 말에 토를 달았던 그 날부터 변화가 생긴 것으로 생각된다.  그 날은 병실에서 고혈압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링겔주사를 맞고 있던 환자가 눈을 반짝거리며 궁금한 게 있다고 했다. 중국 간호사들은 링겔주사를 눈 감고도 팍팍 찌르는데 외국 간호사들은 어설프다고 하더라. 실전 경험이 많고 적어서라고 들었다. 중국에서는 왜서 링겔주사 치료법이 성행하는가?… 환자가 묻는 말은 이러루한 문제였는데 랭선생이 말을 아끼면서 중국 실정에 맞는 치료법을 쓰는 것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하는 것이였다. 만족하지 못하는 환자의 눈길을 지나치지 못하고 내가 말을 늘구어서 보충설명을 해줬다. 친절한 미녀의사라는 칭찬을 받고 의사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랭선생은 화가 나있었다. “의사는 말이 많으면 안돼요. 랭정함을 잃어서는 안돼요. 환자를 생각한답시고 친절 이상을 베풀면 안된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자아보호의식이 십분 이십분 강해야 한다구요.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다가 말꼬리 잡히고 죽음으로 내몰리기도 하죠. 환자와 의사간 불신의 골이 아주 깊단 말입니다. 의사의 한쪽 발은 병원에, 다른 한쪽 발은 법원에 있다는 말이 그저 나온 게 아니지요. 언니도 제 말을 새겨들으면 본인에게 유리할 겁니다.” 그런데 내 입에서 바로 튀여나온 짤막한 응대가 랭선생의 비위를 긁어놓을 줄이야. “불신의 골이 깊기 때문에 환자들을 경계하기에 앞서 우리 의사들도 자신을 검토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싸늘한 눈빛이 내 얼굴을 무섭게 쓸어갔고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대화를 차단한 것이다. 심장이 철렁해지는 순간이였다. 그 날부터 시작된 썰렁한 냄새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어쨌든 불편한 감정을 누르면서 배움의 길을 헤쳐나갈 수 밖에 없었다.  낮에는 청진기를 목에 걸고 랭선생 꽁무니를 바지런히 따라다녔고 야간근무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남아서 함께 당직을 섰다.   부모가 지어주었을 이름에 미안하지 않을 만큼 랭정은 랭정한 녀자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야간근무에 나오는 나를 달갑지 않게 바라봤고 병실에서 환자의 호출이 있어 따라붙으면 차거운 얼굴이 되여 매정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  “따라올 필요 없어요. 그냥 누워 자세요.” 야간근무에 누워서 자라니? 말도 안되는 말이다. 하얀 옷을 입은 천사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다음부터 저녁 당직 때 나오지 말아요. 기숙사에서 편히 쉬면 좋잖아요.” 편히 쉬라고? 흥! 나는 응대 한마디 않고 이를 악물고 따라붙었다. 무응대는 무시다. 무시당하는 느낌 당신도 맛보시지.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몸부림 치는 사람에게 쉬라고 하는 그 저의가 무엇인가?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있다면 배우려고 한 죄 밖에 더 있는가?  그렇게 찬바람 쌩 일다가도 금새 진지한 얼굴이 되여 심방세동 심방조동과 같은 부정맥에 대해 요점을 딱딱 집어내여 말해주기도 하는 것이였다.   “우리 심혈관내과처럼 바쁜 과도 아마 없을 겁니다. 여기서 잘 단련되면 절반의사는 되는 셈이지요.” 병동이 조으는 느른한 오후 시간에 차물을 홀짝홀짝 들이켜며 말을 못해 환장이 난 사람처럼 수없이 많은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심혈관내과는 병세가 복잡하고 다변해요. 관심병이나 심부전 같은 병은 잠재적인 위험이 커서 수시로 경각성을 높여야 하지요. 응급상황이 나타나면 여러 원인을 고려할 수 있는 폭 넓은 지식과 경험으로 신속하게 판단하고 처리해야 되지요. 환자에게 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지표가 이상일 경우에도 면밀히 관찰해서 바로 처리해야 돌발상황을 모면할 수 있어요. 언니도 알고 있을 테지만 1년차 의사를 큰 의사라 하고 2년차 의사를 작은 의사라 하고 3년차 의사는 병을 볼 줄 모르는 의사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지금 병을 볼 줄 모르는 의사예요.” 랭선생은 마시던 차잔을 소리나게 탕 내려놓고 덧이를 드러내며 무기력하게 웃었다.  “시한폭탄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무서워요. 의사 직을 택한 것이 잘된 일이였나 싶기도 하고 겁이 날 때도 있어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류마티스 심장병 환자였지요. 28살 녀성, 혈전이 형성된 상태였구요. 주임의사가 회진을 하는데 약을 지어서 퇴원하겠다고 하더군요. 혈전이 떨어질 위험이 있어 안된다고 주임의사가 구구절절 설명을 해줘도 환자는 춤을 추듯이 손발을 너울거려 보이며 봐요, 별일 없지 않아요. 힉힉 웃으면서 기어이 퇴원하겠다고 하더군요. 다른 병실을 돌고 있는데 그 환자 가족이 소리를 질러서 뛰여가보니 글쎄 환자 입이 비뚤어져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순식간에 반신불수가 되였지 뭡니까. 젊은 나이에 너무 안됐지요. 심혈관 질병은 변화가 너무 빨라 정신을 도사리지 않으면 안되지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 쪽으로 끌어오는 작업이 우리 의사들의 몫이니까요.” 랭선생은 말을 하면 할수록 비 맞은 병아리처럼 폴싹해져서 한숨까지 내쉬는 것이였다. 그는 눈을 내리 깔고 책상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생과 사가 오가는 병원생활이 힘들어요. 피비린내 나는 침침한 곳이지요. 우리 엄마가 의사를 숭배했어요. 엄마는 소아마비증을 앓는 남동생을 둘쳐업고 학교를 다니면서 동생이 너무 애처로웠대요. 장차 커서 훌륭한 의사가 되여 동생 같은 불쌍한 애들을 치료해주려고 결심했는데 집이 가난해서 공부를 끝까지 못했다고 해요. 엄마는 저에게서 당신의 꿈을 보상받으려 했던 거예요. 의학원에 지망을 쓰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제가 좋아하는 금융 쪽으로 일하고 있을 테지요.”      랭선생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치렬한 노력을 해서 능수능란한 의사로 되겠다는 투지가 불타오르는 것이였다. 자신의 열정에 감동된 나머지 내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노래하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말이지요. 명의가 되는 것이 꿈이였어요. 의술과 인술을 갖춘 훌륭한 의사가 되여 환자들의 아픔을 치료하는 것이 꿈이였어요. 그래서 대학지망을 쓸 때 부모님께 얘기도 드리지 않고 무조건 중의학원에 제1지원을 했지요.” 후줄근해있던 랭선생의 눈길에 짜증이 벌겋게 피여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황급히 화제의 방향을 돌렸다.  “류마티스 심장병 환자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젊은 녀자가 입원 도중에 혈전이 떨어져 입이 돌아갔다는 사실은 너무 비참해요.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명의 편작의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에게는 의사인 형이 둘이 있는데 모두 의술이 뛰여났다고 해요. 위나라 임금이 편작에게 삼형제 중에서 누구의 의술이 제일 높은가고 물었을 때 큰형의 의술이 최고라고 대답했답니다. 큰형은 환자에게 고통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그 환자에게 닥쳐올 큰 병을 알고 미리 치료하기 때문이라고 했다지요. 우리 의사들도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젊은 녀성환자의 비극을 막을 수 있을 테지요.”  랭의사는 공감하는 태도였지만 이미 대화를 단절했다는듯 또 한번 입을 봉해버렸다.  그러한 대화가 있은 후로 내가 열정에 기름을 쏟아붓고 배우려고 달려들면 입에 자물쇠를 닫아걸고 눈빛이 매서워지는 것이였다.  어른도 사춘기가 있나? 그녀 때문에 나는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 되여있었다. 배움의 압력이 태산이 되여 가슴을 짓누르는 와중에 시간을 짜내여 랭선생과 나 사이를 진단해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중의를 배우고 향진병원에 배치받은 녀자,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면 농촌의 빈약한 의료시설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책임을 안고 있는 의사이다. 혀를 가로물고 밤낮없이 배워야 하는 리유다. 랭선생 당신은 누구인가? 운이 좋은지 뭐가 좋은지 도시의 큰 병원에 배치받은 녀자, 빠른 시간 내에 의술을 익힐 수 있는 잘 짜여진 시스템 내에서 어깨에 힘을 주는 녀자… 그 뿐이지 않은가? 아니 또 있지. 중의를 개무시하는 분위기에 은근히 동조하는 녀자…  점심식사가 끝난 어느 날, 트림을 껄-하고 나서 주치의사인 심의사가 말했다. “난 중의를 믿지 않아. 확실하지 못해. 202호 환자가 얼마나 중약 타령을 하는지 말이야. 관심병에는 중약이 좋다고 나를 막 가르치려 드네. 누가 의사고 누가 환자인지 모르겠어.” 그 때 흥흥 코맹맹이 웃음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랭선생이였다. 무심코 내 얼굴을 스치는 눈길에 악의 없는 웃음이 배여있었지만 내 표정이 굳어지는 찰나의 모습을 그에게 들켰다는 사실에 공연히 화가 치밀어올랐다. 이제 나는 그녀를 싫어할 구실을 찾았다. 싫어하고 싶다. 싫어할 테다. 도도하던 그녀가 허접하게 보이며 함부로 대해도 될 것 같은 오기 어린 심리가 발동되는 순간이였다.    중의가 확실하지 못한 건 아니지요. 중의학에 대한 지대한 자부심과 애정으로 몸과 맘을 불태우며 중의세계에 빠져들었던 학창시절이 있었답니다. 황제왈, 기백왈, 음양론, 오행론을 풀기 시작하면 그 장면 어련하겠습니까.  솔직히 나는 중의를 모르는 사람들과 왈가왈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남들이 모르는 내 우울했던 지난날의 상황을 념두에 두지 않을 수 없으니깐. 우여곡절 끝에 향진병원에 배치를 받았고 취직해서도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중의문진에 파견되여 로중의의 맞은켠에 앉았다. 새파란 중의의사에게 맥을 짚어보라고 손목을 들이댈 환자가 어디 있겠는가? 로중의의 비위 허약이니 간기 울결이니 병 보는 소리를 귀 따갑게 들어가며 시간 보내기가 죽을 만큼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구생 시험에 도전할 것을 선포하였고 새롭게 펼쳐질 앞날을 기대하면서 병원을 떠났었다. 그러나 여의치 않은 사정으로 연구생 시험을 포기하고 사회에서 뒹굴다가 다시 병원으로 회귀한 그 날부터 서의의술을 익힌 중의사로 변신해야만 시골의사의 위치를 굳힐 수 있다는 비장한 결심을 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의 연수기회는 의사의 길을 성공적으로 걷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목에 있는 것이라고 인생의 사활을 걸 만큼 중대하게 생각하고 있는 바였다.  이러한 과거를 시시콜콜 펼쳐보일 필요는 없는 일, 진료차트에 눈을 박고 있는 나는 얼굴에 명랑한 웃음을 만들어 가지고 만사 제쳐놓고 배워야 하는 목적만을 생각할 뿐이다.                     연수하러 온 첫날에 만났던 의무과 선생은 그 후 세번이나 나를 의무실로 불렀다. 농촌에서 똥비누라고 부르는 누르끼레한 빨래비누를 쥐여주면서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들었다. 후날에 틀림없이 향진병원의 원장감이 될 사람이다.”고 입에 침을 바르고 칭찬했다.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시오. 잘 배울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겠습니다.” 보글보글 거품이 일면서 빨래가 잘 씻기는 똥비누가 고맙고 병원의 따뜻한 관심에 마음이 후더워나지만 칭찬을 받는다고 기뻐서 날뛸 내가 아니였다. 랭선생과 벌이고 있는 미묘한 신경전을 생각하면 나오던 웃음도 서리 맞은 배추처럼 시들해지고 굳어버린다. 랭정. 참 변증이 어려운 녀자이다. 중의학 4진四诊으로 감당이 될 거 같지 않다. 의학의 성인으로 불리우는 장중경의 상한잡병론을 들이댄다면 모를가마는.   창문으로 해살이 부서져내리는 어느 날, 진료차트를 보고 있던 나는 귀신에게 홀린듯 잠간 랭선생을 연구하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앉아있는 그녀는 얼음을 뚫고 나온 복수초 같았다. 얼음 같은 랭랭한 공기가 그의 주변을 감돌았다.  랭정은 대체 어떤 의사일가?   흘끔 쳐다보는 내 시선을 잡으며 랭선생이 서류철을 들고 일어섰다. “우리 219호 병실에 가봅시다.” 219호는 복도 끝머리에 있는 고급병실이다. 길림북화대학 교장이 관심병으로 입원해있다. 58세이다. 하얀 가운을 입은 두 녀자는 소리 없이 복도를 걸어갔다. 쥐 죽은듯이 고요한 복도에서 나는 갑자기 입을 놀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랭선생, 우리 의사들은 걸을 때 이렇게 발자욱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되여있잖아요. 특히는 심혈관 병동. 그래서 우스운 일이 있었지요.” “흐흥?” 그녀가 힐 웃는 모습이 곁눈으로 느껴졌다. 우습지 않아도 웃어주겠다는 여유가 보인다. “대학 3학년 후학기 때, 병동에서 중간실습을 하고 있었지요. 의사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가는 겁니다. 우리 실습생들은 눈치를 주고받으며 재빨리 따라붙었지요. 선생은 앞에서 걷고 서너명 되는 학생들은 뒤에서 발볌발볌 따라가고… 하얀 옷을 입은 한무리 사람들이 음을 소거한 귀신연극을 벌이는듯했어요. 그렇게 한참을 소리 없이 걷고 걸어 선생이 어디로 들어갔게요? 화장실로 쑥- 사라져버리겠지요.”  큭- 랭선생의 반응이 총알보다 더 빨리 날아왔다. 그녀의 웃음소리에 힘을 얻어 219호 병실과의 남은 거리를 가늠하며 이야기 하나를 더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 순간 번개 치듯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는 예비의사들의 실습풍경이 의대생 시절을 거쳤던 랭선생에게도 익숙해마지 않는 정경일 테고 의대를 졸업해서는 실력 있는 의사로 인정받기 위해 치렬하게 배우고 익혀야 하는 직업특성을 랭선생 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뼈속깊이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였다. 그렇다면 배움에 열중하는 사람에게 무질서로 발병하는 랭선생의 차거움은? 내가 너무 설쳐댔나? 한술에 배부르려는 조급한 모습이 눈에 거슬렸고 그래서 때로는 나를 쫓아버리고 싶도록 꼴도 보기 싫었던 걸가? 랭선생의 ‘간헐적 랭담증’에 대해 추측을 하면서 서둘러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병동 순회시간이였어요. 의사와 실습생들이 적의 보루를 점령하듯 환자를 꽉 에워싸고 있었지요. 주임선생이 근엄한 얼굴을 하고 환자의 심장에서 나는 휘파람소리를 실습생들에게 들어보라고 했어요. 내 차례가 되여 청진기를 환자의 가슴에 대고 열심히 들었어요. 긴장으로 몹시 떨렸지만 문풍지가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제대로 들렸지요. 그런데 누워있는 그 환자가 눈을 껍쩍껍쩍하며 자꾸 암호를 보냅디다. 청진기가 제 귀에 꽂혀있지 않았던 거죠. 목에 건 채로…”  “풉.” 랭정다운 웃음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의과대 학생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번한 에피소드 두개를 공유하고 나서 219호 문을 밀고 들어설 때 나와 랭정은 모두 흐물흐물 웃는 얼굴이 되여있었다. “아이구, 서의와 중의 모두 오셨군요.”  앞머리를 말끔하게 뒤로 빗어넘긴 교장선생이 반겨주었다. 대학교 요직에 몸 담고 있은 세월의 품위가 병실을 옹근히 채우고 있었다.    “교장님, 어때요? 바깥에 온통 봄이 널렸는데 이렇게 화사한 봄날에 몸이 좀 가뜬하신가요?”  랭선생이 말을 건네고는 청진기를 교장선생의 가슴에 조심스레 갖다 댄다. 말에 향기가 있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놓고 말하는 것인가 보다. 랭선생이 평시에 하지 않던 말투와 한껏 웃는 얼굴을 보이고 있어 나는 새삼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청진기를 대고 심장소리를 듣고 있는 사색 어린 하얀 얼굴 우로 속눈섭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발자국 하나 없는 눈 벌판 우에 태양이 걷고 있는 그림자가 얼른거리는 정경이 떠오른다.      “봄이 밖에 가득하다구요? 빨리 나아서 봄을 만나러 나가야겠는데.” 교장선생이 그윽한 눈길로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교장님, 봄아씨 고게 쌀쌀맞아요. 환절기 감기는 무조건 사절하세요. 그러다가 페감염이라도 되면 치료기간이 더 길어지고 고생하게 되지요.” 청진기를 둘둘 말아 호주머니에 넣으며 랭선생은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교장님 많이 좋아지셨어요. 더 괜찮아질 겁니다.”   “네, 네, 주의하지요. 의사선생 말씀은 어명이니까요. 당신들 같은 의사가 있으니 나는 걱정 없어요.”  여기까진 참 분위기 좋았었다…  교장선생이 이런 칭찬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 의사선생은 하얀 옷을 입은 천사라는 말이 딱 어울려요. 보기만 해도 병이 절반은 나아지는 것 같답니다. 아름다움을 보면 마음이 즐거워지는 게 인지상정이지요.”  아름답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나는 겸손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 뒤끝에 고마운 표정을 곁들인다. 미녀의사라는 칭호에 짝지지 않을, 좋은 의사라는 칭호까지 따내야 한다는 압박을 심하게 느끼면서. “생긴 건 괜찮은데 병을 엉터리로 보는 그 녀자의사 있잖습니까.” 이런 평가는 절대 나라는 사람의 몸에서 연출되여서는 안될 것이다.        랭선생의 표정은 이미 굳어있었다. 병실을 떠나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연기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배우처럼 방금 전의 웃음을 싹 거두어들이고 랭정한 얼굴이 되여버리는 것이였다. 봄이 오다가 홱 머리를 돌려 겨울로 가버리듯이.   연수생으로 병원에 도착한 첫날, 산비탈에 있는 기숙사로 가면서 음달에서 보았던 눈이 새하얀 광채를 잃어버리고 물기 서린 푸석한 모습으로 봄 속에 잦아들고 있음을 아침 출근길에 분명히 보았다. 봄은 완연하게 온 것이다.   눈이 녹아 땅 속에 잦아드는 소리와 봄바람 휘휘 돌아다니는 소리가 기숙사가 있는 산비탈에서 아스라하니 들려온다.   그로부터 련일 화창한 봄날이 쭉 이어졌다. 이렇게 좋은 날씨가 지속되는 꼬라지를 보면 악기후로 돌변할 징조라고 남자처럼 거쿨진 체격을 가진 왕의사가 창밖을 내다보며 궁시렁댄다. 왕의사는 대학입시제도가 회복되던 1977년 첫해에 길림의학원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의사’라는 직업인생에 대해 류달리 깊은 애정과 감회를 품고 있었다. 입학통지서를 받은 날, 강변에 달려가서 둥실둥실 떠내려가는 얼음덩이를 바라보며 목 터지게 울던 일, 대학 5년 동안 갈증이 나서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정식교재도 없는 의학공부의 날을 헤쳐온 일, 해부실에서 다른 동학들에게 빼앗길세라 두개골을 꼭 끌어안고 뼈와 뼈 사이 경계와 련결을 찾아내던 일… “우리 77급 말이야.”는 그의 입버릇으로 굳어있고 77은 그의 별명으로도 통한다. “그 때 우리는 미친듯이 공부했어. 누구도 말릴 수 없었지. 몸을 불사르며 배웠다니까. 지금의 당신들은 죽었다 깨도 리해 못할 거야. 그 처절한 배움의 욕망을 말이야.” 끝도 없이 감개무량하는 왕의사를 보면서 그가 나의 지도담당이 되였더라면 하는 애석함이 파도처럼 밀려오군 했다. 배움의 갈증을 심하게 느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목마름을 헤아릴 수 있을 테지. 선생을 잘 만나야 해. 무시할 수 없는 관건이지. 이런 생각에 빠져들 때면 또다시 화가 울컥 치솟는 것이였다. 남경의 어느 대학교에서는 “지각하는 자 빵점, 숙제를 바치지 않는 자 빵점,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자 빵점.”이라고 규정한 선생님을 한개 반 학생들이 련명으로 탄핵했다는데 책임감이 강한 엄한 선생님 밑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 받은 일인지 전혀 모르는 놈들이다. 나는 제한된 연수시간 내에 깨칠 것을 깨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에 사로잡혀 ‘책임감 없는 선생’으로 랭선생을 몰아부쳐 탄핵할 생각을 했는데 말이다.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랴. 초보인 나에게 실력파 선생을 배치하지 않을 때는 그럴 만한 생각이 있었겠지. 심혈관내과에 들어온 첫날 주임이 말하지 않았던가. 랭의사와 나는 나이가 비슷하니 잘 통하리라고.  “로자의 말씀 중에 반자도지동反者道之动이란 것이 있어.”라고 중얼대며 77왕의사는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섰다. 어떤 것이든 극에 달하면 반전이 된다는 건데 이게 곧 도道의 움직임이라는 뜻이지. 좋은 날씨가 쭉 이어지다가 최고로 좋은 날을 맞이했다고 생각할 무렵에 날씨가 확 얼굴을 바꿔버리는 거야.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란 것도 그러하겠지만. “아. 맞아요. 맞아. 날씨가 확 변해버릴 것 같네요.” 랭선생도 점심 무렵의 창밖을 내다보며 깊이 공감한다.   로자의 말씀은 처음 듣는 소리라 잘 모르겠고 중의 음양학설에는 한寒이 극에 달하면 열热이 생기고 열이 극에 달하면 한이 생긴다는 음양전환의 리론이 있는데 지금 당신들이 하는 얘기와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전통의학이 얼마나 넓고 깊은가를 나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중의에서 말하는 오운륙기五运六气 학설만 봐도 그렇다. 작게는 인체의 질병을 연구하고 크게는 우주의 생사까지 탐구하고 예측한다. 이로써 볼 때 중의는 어디 의학의 범주라고만 간단히 말할 수 있으랴! “서의는 강대하고 중의는 위대하다.” 어느 교수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 구절을 매우 흔상한다. 왕의사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듯 저녁 무렵이 되자 화창하던 날씨가 곤두박질 치기 시작하더니 세찬 비바람이 병원을 집어삼킬듯 세차게 몰아쳤다. 굵은 비줄기가 후닥후닥 창문을 쳐갈겼다.    그렇게 시작한 봄비는 며칠이 지나도록 끊지 않았고 랭선생이 저녁당직을 하는 저녁에도 계속되였다. 질건질건 내리는 비는 온 세상을 축축하게 젖었다. 랭선생의 야간근무에 내가 껌딱지처럼 따라붙었다. 랭선생은 기숙사에서 자고 있으라는 말을 더는 하지 않았으며 내가 몰래 훔쳐보고 지켜보듯이 그도 나를 슬쩍슬쩍 훔쳐보는 곁눈길이 느껴졌다. 나를 연구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시골병원에서 온 연수생이 눈에 쌍불을 켜고 의학 수련에 열중하는 모습이 연구의 대상이 되였을지도 모른다.  간혹 그는 힐 웃으며 진지하게 말할 때도 있었다. “210호 협심증에 중약을 쓴다면 어떤 방제를 처방해야 되지요? 어떻게 변증을 하지요? 음양허실이 어떻게 되지요? 예후가 어떻다고 보나요?” 그럴 때면 철색인 내 얼굴색은 끄떡 변함이 없지만 몸 안은 쇠덩어리를 달군 것처럼 벌겋게 달아오른다. 아직은 중의와 서의 모두 어설프기만 하고 이도 저도 숙련치 못한 아마추어 의사라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랭선생이 음울한 얼굴로 차디차게 나를 대하는 그런 순간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미숙한 자신에게서 털끝 만한 경험이라도 캐내려는 나의 열정에 거부감이 들었을 테고 미주알고주알 물음에 대답이 궁색할 때는 스스로 화가 나고 속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병을 보는 도중에 중의방제가 생각나지 않을 때면 화장실 간다는 구실로 현장을 빠져나와 어느 구석에 숨어 호주머니 책을 꺼내보고 다시 진료에 림하라는 중의대 선생님의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생각나지만 랭선생은 몰아붙이듯하는 나의 물음에 어디 가서 답안을 얻어오랴. 아직은 주치의사나 주임의사의 지도를 받고 있는 일반의사의 한계를 느긋하게 배려해줄 수 없었던 나의 불찰이라면 불찰이지만 나 또한 느긋하게 배울 여유가 아니였던 것이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랭선생과 나는 윤활이 부족한 삐걱거림 속에서도 전쟁터와 다름없는 병동 생활에 미혼의 청춘을 온전히 투입시키고 있었다.    야간근무가 시작되여서부터 랭선생과 나는 머리가 팽팽 돌 정도로 바삐 돌아쳤다. 련일 이어진 침침한 날씨로 심혈관 질환이 증가된 탓인가 응급실을 통해 환자 4명이 륙속 입원해 들어왔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랴 입원일지를 쓰랴 처방을 내리랴 보호자 면담을 하랴 정신없이 움직였다.  시침이 밤 11시를 넘어서고 있을 즈음 나는 병동을 떠나 산비탈에 있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위중환자가 없는 날에는 자정이 지나서 별로 할 일도 없으니 기숙사에서 충분한 수면을 취하여 이튿날 낮출근을 계속하는 것이 더 효률적이였다.  밤비는 계속 오고 있었다. 듬성듬성 서있는 가로등 불빛 아래로 푸실푸실 흩날리는 봄비를 보며 나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이튿날, 직원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이른 시간에 병동으로 향했다. 병동 입구에 이르자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듯했다. 평시와 다른 괴괴한 침묵의 냄새가 심혈관 병동에 푹 드리워있었다. 복도에서 마주친 간호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직이 알려줬다. “219호 사망했어요. 새벽 4시예요. 주임도 왔어요.” “네?”  나는 깜짝 놀라 저도 몰래 소리를 질렀다. 교장선생이 왜? 호전세를 보이던 환자인데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주임까지 출동된 일이면 심상치 않은 일인데? 내 소리에 놀랐는지 간호사는 흠칫 떨며 총망히 자리를 떴다. 의사 사무실에 들어서니 주임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있었다. 랭선생은 진액이 빠져버린 사람처럼 책상모서리에 기대여 쓰러질듯 서있었다. 밝기 조절이 안되는 전등이 천정에 달라붙어서 이 모든 것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참담한 표정으로 락담하고 있는 랭선생의 모습을 나는 왜서 그렇게도 집요하게 관찰했는지? 그녀의 비참한 얼굴에서 떨어지는 눈물도 놓치지 않고 똑똑히 지켜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의사들이 하나 둘 출근하기 시작하고 환자 가족들이 떼를 지어 들이닥치고 사무실에 환자 가족들의 울음이 터지고 사망병례토론이 있고… 이러면서 하루가 지났다. 그러기를 또 며칠 지났다. 랭선생은 련일 초점 잃은 눈으로 여기저기 불려다녔다. 열흘 후 랭선생의 모습은 더는 병동에 나타나지 않았다. 병원에 사직서를 내고 몸져누워 당분간 집밖을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의료사업에 몸을 바치련다는 랭선생에 대해 주임의사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심혈관 병동은 여전히 전쟁터마냥 바빴고 이미 발생한 일들에 생각이 머물러있기에는 빡빡한 시간이 허용치 않았다. 랭정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천천히 멀어져갔다.  심혈관내과에서 연수가 끝나갈 무렵, 77급 대학생인 왕의사의 수하로 되여 정신없이 돌아치는 어느 날 나는 소포를 받았다. 두꺼운 수첩이였다. 파란색 바탕에 하얀 눈꽃이 그려져있는 겉표지가 산뜻했다. 뚜껑을 펼치자 하얀 쪽지가 미끄러져 나왔다.  “언니의 꿈을 응원해요. 좋은 의사가 될 거예요. 꿈에 미쳐있는 언니가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났어요. 언니의 아름다움도 저를 무척 속상하게 한 거 알지요? ㅎㅎ 저는 지금 새롭게 태여나고 있어요. 저도 꿈이 있어요. 응원받고 싶어요. 랭정 드림.” 또박또박 곱게 씌여진 글씨가 눈꽃이 피여있는 수첩에 내려앉았고 창밖의 하늘을 내다보고 있는 랭정의 얼굴도 함께 와 놓였다.   “랭정, 랭의사… 아니 이젠 의사가 아니지.” 갑자기 울컥하고 마음이 시려왔다. 그녀가 앞에 있다면 뜨겁게 눈길을 주면서 환자 이야기도 아니고 의학 이야기도 아닌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 서로의 꿈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을 것만 같은 이 충동은 무엇일가?… 뜻밖의 쪽지에 나는 한참이나 할 일을 잊고 있었다.     출처:2018 제5호
50    심명주: 탈춤(시, 외7수) 댓글:  조회:101  추천:0  2019-07-15
탈춤(외7수)  심명주   한삼 자락 길게 뽑아  구름을 서리하고   바람 빌어 육신으로 혼을 떨며 다가오는    희디흰 심장에 푸른 한을 덧얹어 운우 너머 흩뿌리는 망각의 무리들, 홀씨의 넉두리들   새 순을 내뱉어  아픈듯 넋을 흔들어 파가한 하루,    얼굴을 벗는다 눈 감고 줄을 내리운다 마음에 구멍 뚫는 저 광대가     담쟁이풀 한철만 겨냥하는 담바라기가 시든듯 피는 푸름이가 사느라 아우성 치는  덩굴의 저 무리가    바람이 오면 바람 타고 비 쏟치면 비를 품고 별이 보이면  별을 본따   어디까지 태워주려 모래 같이 흐트러지고 숲처럼 모여,   아,  혼자조차 버거운 이 계절에 하필 내 앞에 다가왔는가   릉소화도 아닌 것이  이토록 뭉클하게   추석달 복사꽃 하나가 떠온다 시원하고 맑으니 도화맛 같은   낮부터 흘러 숙야에 다다르니 어둠길이 춤추고 꽃가루 날리여   내 앞 창문이 너로 해 루추하고 구월 처마가 깊으게 호젓하노니   빌어빌어 또 빌고 다시 비노니 하늘이 밀린다 계절이 떠간다   가을을 쏟으려고 하얗게 청천에서 꽃 하나가 익어간다     봄을 추모하다 봄은 장송곡이다  세상에 푸른 서리를 드리워 생명에게 제주祭酒를 건네며 오가는 길손을 제멋대로 갈무리한다   사랑하는 것들은 것들끼리 비웃고 비웃는 것들은 것들끼리 짝을 지어 시작이 죄받이로 자처하는  긴 쇠길 우에다가 늙은 하루를 팽개치는,   봄아, 총 같은 사람아 천연스러이 한눈을 치켜뜨고 오늘은 또 무슨 음모를 장탄하고 있는가   바람이 설음을 실어주는 길에 시간을 효시하며 너는 오늘도 어김없이 세상과의 하직을 꾀한다     감나무 여름 막바지부터 꼬박 초겨울 한낮까지 정원에서 만났던  한그루 인연, 침묵을 력사처럼 남긴   혼자 찾아갔다가 혼자 바라보다가 끝내는 가지 끝 하늘에 앉아 내려오지 않던  열매 하나만 간혹 한여름 꿈이면  가을을 쥐고 우수수  나무는  자기가 낳은 감들을 가득 품은 채 부메랑처럼 달려온다    꽃 피울 때부터 열매는 노란 리별을 꿈꾸었을 거다 아마 감은 떫은 침묵 같은 등껍질을 벗어    나를 만나  속살을 흐트리려 했을 것이다     파장 몇십년을 하루같이 바람을 손님으로  공원다리 연집강은  장터로 지내온다   새벽 세시면  강을 탄 기운들과 풀숲과 벌레들이 잠자코 기다려주는 시간 먹을거리와 숨소리와  여럿 내음을 겉절이처럼 섞어 세상을 주무르는 등허리들 물소리들 풀소리들 살아나는 소리들 사그러지는 소리들   해가 나오고 다른 세상 소리 피기 시작하면 이곳은 겸손하게 입 닦고 손 씻고, 다리 털고 끝냄을 알린다  언제 그랬는듯이.   그리고 또 누구의 시작은 여기 파장에서 잉태난다     씀바귀 나물에 밥 말다 울컥하는 날 아버지는 밥상이다   수저 한쌍 밥 한알  그리움 한톨   자식 넷을  세상에 차려놓고 잠간 나물이라도 캐시러  하늘 나가셨나   내 아들을 눈에 비벼 밥에 말아 아버지를 먹는  그런 날 나는 바람 속에 서성이는  한잎의 씀바귀이다      해가 온다 점괘 하나 찾아 비가 오면 하얀 색으로 해가 오면 거품으로   “커피를 마실가 자살을 할가” 책제가 유난스러운 날   얼핏 블랙 알맹이와 떠있는 빛과 검은 공기들과  불쑥 옛 마을 입구 솟대까지   차이를 가늠해보다가 액즙을 추출한 뒤 혈관으로 추방시켜  다시 쓴맛과 체온과 비릿함들의 반란을 노린다   특기할 만한 날도 아닌 오늘 음식에다 생사를 버무리하는 날   내게는 해가 온다 가까이  큰 해가 머리 우로 쏟아진다 출처:2018 제5호
49    미주: 아방가르드한 시의 향연(시평) 댓글:  조회:86  추천:0  2019-07-15
아방가르드한 시의 향연 미주   한낱 뜨내기인 나에게 시평의 기회가 찾아왔다. 심명주시인님의 시라고 한다.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다. 올해에 들어서 제목부터 통통 튀는 매력을 지닌 작가님의 수필은 여러편 읽으면서 시도 어서 보여주십사 하고 학수고대해왔다. 이하 설레이는 마음을 눅잦히고 따끈따끈한 신상 시들을 맛보면서 어줍잖은 품평을 시도해보도록 하겠다.  . 춤추는 자가 우를 향해 팔을 치켜드는 찰나에 령민한 시인께서는 기회를 놓칠세라 시상이라는 셔터를 재빨리 누른듯하다. “한삼 자락 길게 뽑아 / 구름을 서리하고 / 바람 빌어 육신으로 / 혼을 떨며 다가오는”이라는 춤 속에 자연이 녹아든 명장면이 미세한 떨림을 전하면서 서서히 인화될 때 저도 모르게 감탄을 쏟게 된다. 큐레이터인 시인의 주문에 따라 한삼 자락을 주목해보도록 하자. 하늘과 맞닿은 탈을 쓴 자의 한삼 자락은 절묘하게도 구름과도 같은 흰색이다. 이 아름다운 증좌로 인해 무자舞者는 빼도 박도 못하고 구름을 서리했다는 “덤터기를 쓴”다.  계속되는 춤구경에 혼마저 쏙 빼앗겨 한시라도 눈을 떼지 못한 채 템포가 늦은 춤사위를 쳐다보고 있느라면 육안으로는 보아낼 수 없는 것들까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경지에 오르게 된다. 즉 물物에서 정신에 이르게 된다. “희디흰 심장에 / 푸른 한을 덧얹어”라는 묘사에서는 눈부신 흰색 주변을 감싸는 푸른빛과 흡사한 백의민족이 지닌 한의 정서를 그린다. “운우 너머 흩뿌리는 / 망각의 무리들, 홀씨의 넉두리들”. 어찌할고? 한을 죄다 털어버리고저 곱게 흩뿌리지만 사라져버리지 않는다. 다만 망각된다. 그것도 잠시, 이는 또다시 홀씨로서 생명력을 형성하게 되고 ‘새 순을 내뱉’는다.  이윽고 춤은 끝나고 춤추던 자는 탈이 아닌 ‘얼굴을 벗는다’. 시종일관 같은 표정일 수 밖에 없는 탈이 갖는 특성상 철저한 포커페이스를 자처하며 오로지 ‘넋을 흔드’는 춤을 추는데 집중한 그에게 있어 탈은 곧 얼굴이다. ‘진짜 얼굴’보여주기(얼굴 알리기)를 포기하고 보는 이의 ‘마음에 구멍을 뚫’는 춤군인 그는 ‘광대’로 불리운다. ‘광대’는 탈을 쓰고 춤을 추는 자에 대한 단순한 호명이 아니다. 심혈을 기울여 민족의 얼을 표현해내고 예로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전통문화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데 대한 최고의 찬사이다.  . 세상에 영원이란 없는 법이다. 흔히들 ‘예쁜 꽃도 한철이다’, ‘피여보지도 못하고 진다’ 등의 표현으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아쉬운 유감들을 전한다. 이 기준에만 근거하여 같은 덩굴과인 릉소화(여름에는 꽃 피고 가을에는 열매 맺는)와 비교해볼 때, 모름지기 한철만 푸른 담쟁이의 ‘삶’은 한없이 초라해보일 수도 있다.  “바람이 오면 바람 타고 / 비 쏟치면 비를 품고”. 얼핏 보면 담쟁이는 맞닥뜨린 상황들에 수긍을 하면서 무난하게 살아가는듯하다. 하지만 비바람에 담쟁이 잎 전부가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이를 상기해본다면 비와 바람은 단순히 자연현상이 아니라 살기 위해 힘겹게 이겨내야 하는 역경이다. 힘이 들 때 바라보게 되는 하늘의 ‘별을 본따’ 곁잎이 다섯으로 갈라지는 담쟁이 잎사귀 형태는 곧 희망이다. 희망은 판도라 상자 속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모래처럼 흐트러’져있다.  희망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리’가 되고 나아가 ‘숲’을 이룬다. 부지런히 담만 타는 담쟁이를 통해 시인은 “형태는 흐트러졌으나 정신은 흐트러지지 않形散神不散”은 한편의 훌륭한 수필을 읽어낸듯하다. 담쟁이가 전하는 ‘뭉클’함은 ‘혼자조차 버거운 계절’에 왜 ‘하필이면’ 시인을 찾아왔을가? “사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자를 위해 죽을 수 있士为知己者死음에 그 답이 있다. 릉소화 뿐만 아니라 담쟁이도 아는 시인은 나름 대로 치열한 삶의 가치를 보아내고 긍정해주는 혜안을 가진 자이다. . 이 시에 대한 전반적인 감수는 요즘 류행하는 신조어인 ‘과즙미’로 표현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는 싱그러운 매력이 터져나올듯 흘러넘침을 뜻한다. 가을을 맞아 땅 우에서 무르익은 백과를 제쳐두고 하필이면 하늘에 떠있는 둥근달에서 과즙미가 느껴지는 걸가? 이는 추석달에 대한 시인의 전반적인 낯설게 하기 시도 때문이다.  시에서는 밤하늘에 달이 뜬 모습을 “복사꽃 하나가 떠오른다”고 했다. 일정한 주기에 따라 변하는 달의 모습은 결코 둥근 원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꽃모양이라 하다니. 복사꽃이 둥그런 모양인지 하는 의심이 싹 가시기도 전에 “시원하고 맑은 도화맛 같다”고 하는 행이 이어진다. 한입 베여물고 싶은 미각적인 충동이 저도 모르게 일게 된다. 2련에서는 쏟아내리는 달빛을 두고 “꽃가루 날린”다고 했다. 눈부신 달빛을 두고 꽃가루 흩날리는 것이라고 한데 대해 수긍을 하게 된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시인의 표현에 ‘완전히 낚’여 영낙없이 달을 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겹겹이 쌓인 선입견의 먼지를 탈탈 털어내고 기억의 저편에 자리하고 있는 달을 길어올려보자. 달은 원체 둥그런 것이 아니지 않는가. 옳거니, 시인이 알려준 대로 달은 복사꽃으로 피여났고 꽃가루가 내려앉아 간절한 소원에 수정을 이루게 된다면 이는 다시 탐스러운 백도로 영글어져가는 것이다.  에서 시인은 봄이면 만물이 소생한다는 기본 통념을 완전히 전복시키고 죽음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그리하여 흥쾌한 멜로디가 아닌 장승곡을 봄노래로 선곡했다. ‘세상에 푸른 서리를 드리’운다고 하였는데 의문이 든다. 서리가 어떻게 되여 푸른색일가? 색상으로 짐작하건대 이 ‘서리’는 봄을 맞아 돋아난 새싹들을 말한다. 1련에서 ‘오가는 길손’은 봄이 되여 나타나는 새로운 기상들이다.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지나간 겨울을 위해 준비된 제주를 건네받아 마신다. 3련에서는 ‘긴 쇠길’이 등장한다. 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쇠길은 무엇일가? 해석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듯하다. 필자는 ‘늙은 하루’가 팽개쳐지는 이 길을 기온이 상승하면서 쌓였던 눈이 녹아내리며 형성된 진탕길로 풀이하고저 한다. 시간이 흐르며 봄이 깊어지고 봄이 아닌 흔적들은 하나씩 사라져간다. 이를 두고 4련에서는 봄을 ‘총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봄이라고 하는 스나이퍼의 위세는 영원할 수 없는 것이다. 봄도 언젠가는 자신이 물러나야 함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리하여 불어오는 바람에서 설음을 느낄 수 있고 날마다 세상과의 하직을 꿈꾼다. 이 시는 그동안 봄바람에 취해 영생만을 떠올렸던 자들에게 한치를 차이둔 거리에 사死가 존재함을 일깨워주는듯하다. 궤변인지는 모르겠으나 시가 원체 난해하게 씌여져 필자의 해석이 맞을 거라는 속단을 내리기가 주저된다.  . 심명주작가의 작품에 감나무가 등장하는 것은 로신문학원에서의 연수생활을 쓴 수필 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인 것 같다. 수필 속 “감이 익기 시작하여서부터 완숙되여 절로 떨어질 때까지, 그리고 끝까지 높이 매달려 까치밥으로 남던 마지막 한알의 감이 바람과 해빛에 쪼그라들어 기어이 푸석하게 변해서는 자연으로 돌아가던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는 작가의 고백이 인상적이였다. 수필 속 그 감나무를 시에서 또 만나게 된다. 시적화자는 정원에 있는 한그루의 나무와 인연을 맺는다. 돈독한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열매가 남을 때까지 기나긴 시간 동안 찾아주고 바라보는 등의 로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말할 수 없는 나무의 침묵 속에서 시적화자는 세심한 관찰을 통해 나무의 가을에 감들이 가득 달리는 꿈 및 노란 리별의 꿈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아마 감은 / 떫은 침묵 같은 등껍질을 벗어 / 나를 만나 / 속살을 흐트리려 했을 것이다”면서 시는 끝난다. 감이 자의에 의해 외피를 벗고 자신을 드러내보일 것이라는 추측은 무한한 신뢰관계가 형성되였음을 자부하는 것이다. 시에서는 감나무와 인연 맺기를 보여주는 것을 통해 옳바른 교우자세를 제시하고저 했다.  . 데면데면한 필자는 1련에 등장하는 ‘공원다리 연집강’, ‘장터’만을 포착하고는 좌표를 수상시장으로 잡고 달리려다 말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아래동네에서 비인간 군상들이 모여 이렇게 재밌는 시장놀이를 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무려 ‘몇십년’이나 되는 나름의 력사가 있다. 상상만으로라도 쌩할 바람이 손님이라고 하니 호객행위하기 참 힘들겠다. 그럼에도 벌레들의 기척마저 느끼기 힘든 새벽 3시라는 이른 시간부터 등허리를 주무르면서가 아니라 등허리들이 오히려 세상을 주물러가며 ‘각종 내음이 섞여’ 시장에 들고 갈(?) ‘겉절이’는 만들어진다. “물소리들 / 풀소리들 / 살아나는 소리들”로 북적이는 자연의 아침시장이 개장한다. “칵테일파티 효과”란 바로 이런 것이다. 자연의 일거수일투족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인지라 귀를 귀울여 “시장 아래 시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시인은 이 장터의 매력을 때가 되며는 “해가 나오고 / 다른 세상소리 피기 시작하면” ‘겸손하게’ 물러날 줄 아는 데서 찾는다. 공생관계에 있어 굳이 ‘본의’는 아니겠지만 기본적으로 지켜진 에티켓으로 인해 ‘또 누구의 시작’이 잉태될 수 있다. 결속의 의미로서 파장이 새로운 시작에 파장을 미치게 됨을 떠올려볼 때 끝남에 대한 아쉬움 또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는 사부곡이다. 아버지가 그리워난 것은 “나물에 밥을 말다 말고”이다. 촉물생정触物生情이라고 했다. 나물 때문에 아버지 생각이 나는 것으로 류추하건대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네 자식을 먹이려고 나물을 자주 캤었다. 그리하여 시적화자는 돌아가서 계시지 않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며 ‘잠간 나물이라도 캐시러 하늘 나가셨나’는 생각을 한다. 1련에서는 ‘아버지는 밥상’이라고 했다. ‘밥상’을 아버지의 형체라고 생각하여 그 우에 ‘수저 한쌍’, ‘밥 한알’과 함께 절절한 ‘그리움 한톨’까지 얹어놓는다. 아버지 생각에 울컥한 날이 있다면 ‘아버지를 먹는 날’도 있다. 우선 공포감을 조성하는 이 식인의식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형체로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륜리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내 아들을 눈에 비벼 밥에 말아’ 아버지를 먹게 된다. 눈에 비벼도 아프지 않은 내 자식인 ‘아들’은 할아버지인 나의 아버지를 닮은 것으로 사료된다. 아들을 보고 아버지를 떠올리며 밥을 먹었다. 이로써 ‘아버지 먹기’는 가능하다. 화자는 먹기 방식을 벗어나 아버지와의 만남을 꾀하고저 한다. 그것은 ‘내’가 ‘바람 속에 서성이는 한잎의 씀바귀’가 되는 것이다. 나물이 되여 아버지한테 캐여지고 싶다. 아버지는 밥상이니 나물인 ‘나’는 아버지 우에 차려진다. 시인은 의도적으로 전반 시의 곳곳에 리해에 어려움을 주는 난해한 표현들을 배치하여 곱씹어읽기를 유도한다. ‘나’의 영원한 식구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리해하겠으나 ‘내’가 수많은 나물을 제쳐두고 굳이 씀바귀이고 싶은 리유는 끝끝내 찾지 못했다. 시인만 알고 있는 사연이 있는 걸가? 그 궁금증은 쉬이 해소되지 않는다. . ‘커피를 마실가 자살을 할가’는 고민을 하는 시적화자에게 “그것도 고민이라고 해, 당연히…” 하고 면박을 주려다가 멈칫하게 된다.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은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을 ‘블랙 알맹이’, ‘떠있는 빛’, ‘검은 공기’, ‘옛 마을 입구 솟대’ 등의 차이를 그는 굳이 가늠해보았다고 한다. 동원된 시적 이미지로부터 보아낼 수 있듯이 그의 기분은 너무 다크하다. “액즙을 추출한 뒤 혈관으로 추방시키”는 것은 커피머신으로 커피를 내리는 것을 련상시키지만 그 결과물은 커피가 아니라 이름하여 ‘쓴맛과 체온과 비릿함들의 반란’이다. 그렇다면 시적화자는 왜 기분이 울적할가? ‘큰 해가 머리 우로 쏟아진다’고 했지만 해는 결코 원인 제공자가 아닌듯하다. 기분이 울적하다 보니 해가 내 머리 우에 드리우는 것 또한 싫은 것이다. 시는 난해함을 꾀하며 다음과 같은 리치를 전하고저 한다. 모든 일이 인과관계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기분에 충실하는 것은 진실된 자아를 만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해를 굳이 의식하지 말라. 때가 되면 스스로 지고 뜬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의 여름도 이제는 막바지에 들어섰고 슬슬 가을이 다가옴을 기대해볼 법도 하다. 심명주시인님의 8편의 시작품은 이러한 타이밍에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여름 내내 머리에 이고 있었던 뜨거웠던 해에 대한 짜증 나는 기억이 있는가 하면 잠시나마 땀을 들일 수 있던 식물들로부터 전해지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주는 시원한 기억도 있다. 이 또한 다 지나갈 것이라는 리치를 전하면서 가을의 표상들을 슬그머니 내놓는다. 시인님의 기발한 센스가 넘치는 8편의 시에 ‘좋아요’를 꾹꾹 눌러주고 싶다. 그리고 이들 중 몇편의 시에는 커다란 물음표 이모티콘도 잊지 않고 남겨야 될 것 같다.  출처:2018 제5호
48    <장백산>2018.4 루계220 댓글:  조회:318  추천:0  2019-07-14
장백산 총220호  2018 제4호   권두칼럼 장춘식    아름다운 글과 현대적 감각   기획조명-작가와 작품 남영도    ‘치타치타’(외2편) 남영도    부끄러운 고백(작가노트) 김호웅    수필의 현대성과 수필가의 자질(작품평) 최순희    꿈꾸는 지란지교(작가평)   기획련재 김혁     한락연평전(장편인물평전 련재10) 김혁     늦봄,계단을 오르다(만필 련재끝)   박초란소설코너 박초란    블루베리농장   소설광장 김경화    사랑한 죄(중편소설)   계렬수필 주향숙    더는 준비로 머뭇거리지 말며(수필) 주향숙    아름다운 시로 위로하고 싶다(수필) 주향숙    해비에 젖으며(수필)   시인시전 최룡관    축구장 별곡(시 외5수) 조영욱    란숙의 거리두기(시평)   창작마당 김견      혼인보험(단편소설) 김동수    유전(단편소설) 정호원    설 아닌 설날(수필) 김영춘    새로운 고향(수필 외1편) 박장길    달이 보고 있었다(시 외2수) 조광명    실면(시 외1수)   8090문학코너 김연      엄마(단편소설) 곽고분    기적의 접견(단편소설) 핑크오렌지 아버지는 나를 철학가라고 하셨다(수필)   문학과 비평 김영옥    시행으로 그린 삶의 자화상(평론)   기념문 김호웅   격정과 랑만의 화신-림휘교수님(수필)   중국소수민족문학 양수강    소녀 금매(단편소설/천년목 옮김)   장편소설련재 김혁      무성시대(장편소설 련재4) 구호준    여백(장편소설 련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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