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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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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7 ]

17    <장백산>2018.3 루계219 댓글:  조회:326  추천:0  2019-07-12
장백산 총219호 2018년3호 권두칼럼 김호웅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   기획조명-작가와 작품 구호준     여백(장편소설 련재1) 구호준     아름다운 려행(작가노트) 박초란     길우에서(작가평)   기획련재 김혁       한락연평전(장편인물평전 련재9) 김혁       늦봄,계단을 오르다(만필 련재1)   박초란소설코너 박초란     향기와 벽   계렬수필 조원       모멘트(수필) 천상규     자잘하다 평범하다 맛있다 멋있다(수필평)   시인시전 우도      개구리(시 외5수) 조영욱    과잉된 기억(시평)   창작마당 박명옥    엄마의 살구나무(단편소설) 연서      올가미(단편소설) 곽미란    목련꽃 피는 계절이면(수필) 리미      수세미앓이(수필) 신기덕    출제인생(수필) 리근      황혼찬가 더불어 인류(수필) 임은숙    최고의 음악(수필) 김학송    무제(시 외4수) 리성비    조각달(시 외4수) 전유재    허물 나비(시 외1수)   8090문학코너 현청화    장사장(단편소설) 미주      피빛 고민(칼럼) 김옥결    꿈에서 본 샹그릴라1(시 외3수) 리해연     을 통해 본 중국조선족의 어제,오늘 그리고 래일(평론)   문학과 비평 최병우     윤림호론:약자에 대한 동정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평론)   중국소수민족문학 손춘평     후사(단편소설/김제국 옮김)   장편소설련재 김허       무성시대(장편소설 련재3)
16    리근: 황혼찬가 더불어 인류(수필) 댓글:  조회:127  추천:0  2019-07-12
황혼찬가 더불어 인류 리근   황혼이란 대자연으로 말하면 해가 저물어 어득어득할 때를 일컫는데 인간으로 말하면 한창 때를 지나 쇠퇴하여 ‘종말’에 가까운 시기를 말한다.  인류는 지구란 이 독특한 행성이 태양을 한바퀴 공전하는 일년을 춘, 하, 추, 동으로 나누었고 광명과 암흑을 자연스레 엇바꾸며 자체의 축을 중심으로 한바퀴 자전하는 하루를 조, 우, 석, 야로 분류했으며 인류가 고고성을 울려서부터 심장박동이 멎을 때까지를 소, 청, 장, 로로 갈랐다. 그리고 소년시절은 불타는 아침해살로, 청년시절은 7~8시의 눈부신 태양으로, 장년시절은 혈기왕성한 한낮의 해님으로, 로년시절은 진붉은 석양으로 비유했다. 하기에 망팔을 넘어서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나는 어언간 황혼기에 들어서 조용히 대자연의 황혼을 진맥해본다.  황혼은 서천에서 오래동안 머물지 않지만 그 한때나마 자신을 황금빛으로 당차고 화려하게 단장한다. 이를테면 때로는 너울너울 춤추는 선녀마냥, 때로는 갈기를 휘날리며 무연한 초원을 내닫는 준마마냥, 때로는 끝없는 사막을 터벅터벅 주름잡는 락타마냥, 때로는 사품치는 만경창파를 줄기차게 헤가르는 고래상어마냥… 그런가 하면 황혼은 자체의 찬란한 빛갈로 부단히 대지를 곱게 분장시키며 자신의 도고한 위풍과 기개를 남김없이 과시한다. 그러면서 찬란한 금빛가루를 삼라만상에 골고루 분여해 신주를 곱게 물들인다. 동시에 여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웅위로운 서산 우에서 진붉은 병풍을 둘러세우며 창공에 두둥실 떠도는 구름들을 꽃보라로 아롱지게 만든다. 그러는 와중에 대자연은 부단히 숨 쉬고 조을고 뛰놀며 미소 짓는다.  이 뿐만이 아니다. 웅심 깊은 황혼은 부단히 추억을 더듬으며 현황을 진흥시키고 티 없는 백지마냥 깨끗한 바탕으로 미래를 기약한다. 동시에 래일을 고무하고 만사에 삼가해야 할 일들을 사전에 인류에게 속속들이 아뢴다. 다시 말해 어느 때 강풍이 불겠는가, 소나기가 억수로 내리겠는가, 기온이 급변하겠는가, 짙은 안개가 자옥히 서리겠는가, 우박이 무더기로 쏟아지겠는가… 등등이다. 그 뜻인즉 서천에 황혼이 깃들면 이튿날은 쾌청하고 황혼이 종적을 감추고 그 자리에 먹장구름이 뒤덮이면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광풍이 휘몰아치거나 소나기나 우박이 억수로 쏟아진다는 것이다. 하기에 인류는 이런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사전에 각종 대책을 강구한다.  황혼은 평생 말 한마디 없지만 흉벽을 치는 실제행동으로 자신을 부단히 불태우며 우주를 곱게 장식한다. 그런가 하면 하현달이 서천에 걸리면 마치 친혈육을 만난듯이 무척 반가워하고 하현달이 서서히 서산마루를 넘어설 때면 무등 섭섭해하며 아미를 다소곳이 숙인다.  그러다가 일단 지구촌에 삼복철이 도래하면 어른들은 만사를 불문하고 한자리에 모여 오구작작 떠들며 진종일 개추렴을 한다. 이때면 황혼은 그들을 굽어보며 환한 웃음을 선사한다.  이같이 다감다정한 황혼이 때가 되면 아무런 조건도 보상도 미련도 없이 조용히 서산 뒤로 사라진다. 후세의 갱신과 추진을 위한 이같은 자각적인 자리비움은 얼마나 도고하고 보귀하고 자랑차고 거룩한가!? 이로 하여 대자연은 또 용왕매진하는데 지구촌의 이쪽 절반은 고스란히 자장가를 부르고 저쪽 절반은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약동의 스타트를 뗀다. 그런가 하면 명월의 옥토끼는 자유자재로 뛰놀고 계수나무는 지구촌을 조용히 내려다보며 뜻깊은 웃음을 짓는다. 동시에 창공의 애기별들은 어미별과 숨박곡질을 하고 반짝이는 뭇별들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서서히 에도는데 때로는 밝디밝은 류성이 밤하늘을 쪼개며 쏜살같이 지구촌을 향해 내리꽂히는 장관을 이룬다.   이 뿐만이 아니라 황혼의 아룀으로 부엉이와 박쥐들은 나래를 활짝 펴고 동분서주하며 먹거리를 찾느라고 여념이 없고 박꽃은 곤충들을 한품에 안고 정겹게 키스한다.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벌레들의 대 합창이 귀맛 좋게 들려온다.  그런가 하면 황혼이 깃들 때면 기러기, 두루미, 물오리, 원앙새, 까치, 까마귀, 제비 등 모든 조류들이 제각기 자기의 보금자리로 찾아든다. 그리고 산천초목도 고스란히 설레이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황혼의 덕분이다.  대자연은 이러는 와중에 황혼을 맞고 바래는바 마치 운동건장이 부단히 계주봉을 받아쥐고 줄기차게 내닫듯한다.  만약 황혼이 없다면 지구촌은 이같이 찬란한 아침도 불타는 정오도 칠흑 같은 야밤도 결코 있을 수 없다.  광휘롭고 휘황찬란한 황혼의 생애, 그 절개와 기백 속에서 인류와 모든 동식물들은 부단히 생의 층계를 톺으며 새로운 삶의 탑을 줄기차게 쌓는다. 다시 말해 이같이 거룩한 황혼은 만물이 생존하는 이 독특한 행성ㅡ지구촌을 보다 활기차고 아름답게 만든다.  인류는 수천만년 대대손손 살아오며 줄곧 이 친근하고 자애롭고 거룩한 황혼을 절친한 벗으로 삼아왔는데 그 손에는 나도 있다. 하기에 나는 자애자정한 황혼을 본받아 여생을 보람차게 살련다. 심장박동이 멎을 때까지!  출처:2018 제3호
15    손춘평孙春平: 후사(단편소설) 댓글:  조회:122  추천:0  2019-07-12
후사 손춘평   로혁명가 진풍년이 세상떴다. 향년 98세이다. 생전에 로인은 내가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사후의 일이 걱정된다며 자신이 죽은 뒤에라도 아무런 말썽이 없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장례는 시로간부국의 사회하에 치루어졌다. 로인의 유언 대로 장례는 아무런 말썽도 없이 조용히 치러졌다. 유가족들은 인생의 막을 내리는 이번 연출무대에서 저마다 보조출연자에 불과했다. 그들은 사회자의 지휘하에 기와와 그릇들을 부수어버리기도 하고 령구 앞에 서서 기발을 치켜들기도 하고 큰절을 세번 올리기도 하고 유골을 골회함에 안치하기도 하면서 각자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출중하게 완성했다.   장례가 끝나자 여러 유가족들은 차에 앉아 곧바로 진풍년 로인이 생전에 살았던 별장으로 향했다. 이 별장을 진풍년로인이 생전에 살았던 별장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로인이 사망한 후부터 이 별장이 더는 진씨 가족들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도 집체 소유물이고 가구들도 집체 소유물에 속한다. 진정으로 진씨네 후손들에게 속하는 것이란 집안에 있는 몇몇 생활필수품들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구체적으로 이런 일을 담당한 사람은 성은 수, 이름은 초였는데 그는 시로간부국 종합과 과장이였다. 그의 다른 한 신분은 로간부 제1당지부 련락원이다. 수초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집문을 열어보이며 지금부터 진씨네 네 자녀들이 각기 대표 한사람씩 파견하여 집안에 들어가서 물건들이 진로인이 생전에 쓰던 그대로 있는지를 확인하고 만약 파손되거나 잃어지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여있다면 다음 절차로 넘어가겠다고 말했다. 네 자녀 대표는 집안에 들어간 지 얼마 안되여 금방 밖으로 나오더니 모두 말없이 수초를 향해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수초는 다시 한번 쉰 목소리로 선포했다.  “진로인님께서 생전에 시로간부국에 사후의 집안 재물에 대한 관리와 분배를 부탁하셨으므로 지금부터 제가 시로동국을 대표하여 구체적인 분배방안을 여러분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귀담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들으신 뒤 이의가 있으시면 별도로 협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진로인님께서 생전에 사셨던 이 집은 공공재산인바 장례 뒤 여전히 국영신광농장에 귀속되며 이번 분배 대상 범위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진로인 가족들은 그 어떤 리유로든 이 집에서 살 수 없습니다. 둘째, 집안에 있는 가구들, 이를테면 책상, 의자, 침대, 쏘파 등은 모두 신광농장과 시로간부관리국에서 진로인을 위해 특별히 맞추어드린 것이기에 이것들도 분배대상 범위에 속하지 않습니다. 셋째, 진로인께서 생전에 저축해놓은 약간한 저금은 잠시 시로간부관리국에서 통일적으로 보관하게 되는데 진로인의 보상금 및 장례비가 발급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돈에서 이미 지출된 비용들을 떼낸 다음 나머지를 네 자녀분들에게 균등하게 분배합니다. 그리고 지금 분배하는 물건들, 이를테면 집안의 일상용품들은 법적인 규정에 따라 첫 상속자에게 먼저 분배합니다. 저 개인의 생각인데, 먼저 네 자녀분들이 제비뽑기를 하여 순서를 결정한 뒤 1호가 먼저 들어가서 물건을 하나 골라내서 밖에 내놓은 다음 그 뒤를 이어 2호, 3호, 4호 순으로 고르되 매 집들에서 물건을 고르는 시간은 5분을 초과하면 안됩니다. 제2회 순서는 2341 순으로 하고 제3회 순서는 3412 순, 이런 식으로 계속 돌고 돌다가 네집에서 더 고르고 싶지 않아할 때 진로인의 다른 친척들이 집안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보기에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맏이의 아들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다들 한집안 식구인데 제비는 무슨 놈의 제비예요. 웃기지 않아요. 그냥 순서 대로 합시다!” 맏이는 진로인이 세상 뜰 때까지 줄곧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지어 장례식장과 산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건강이 좋지 않아 장손을 전권대표로 파견해왔다고 한다. 어쩌면 정말 건강이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장손의 말이 끝나자와 함께 넷째가 말을 이었다. “뭐가 순서인가? 설사 순서대로 한다 해도 웃어른들부터 해야 하지. 아무리 어째도 어른을 존중하는 례의는 지켜야 할 게 아닌가!” 오늘 모인 사람들 중에서 유독 넷째만이 어른이였다. 수초는 혹 말다툼이라도 벌어질가봐 급히 다시 한번 정색해서 해석했다. “오늘 오신 네 집 대표는 모두 제1 상속자의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권리와 의무가 똑같기에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그러니 이에 대해 더 론의하지 맙시다.” 모인 사람들 속에서 우하하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 웃음소리는 눈앞에서 막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는 어딘가 잘 어울리지 않았다. 진로인이 살던 집은 다섯칸 방으로 된 벽돌집이였고 사면에 예쁜 수목이 우거져있는 데다가 집앞에 자그마한 전원까지 시원하게 펼쳐져있었다. 초봄이여서 아무 것도 심지 않은 논밭두렁 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서 길게 목을 빼들고 집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진로인의 자손 외에 부고를 듣고 조문하러 온 진로인의 질남질녀들이였다. 어떤 사람들은 혹시 마지막 순서에라도 진로인의 유물이 차례져서 기념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가 해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듣는 말에 의하면 장수한 사람의 유물은 령험하다고 한다. 한참 후,  둘째의 딸이 다시 침묵을 깼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질질 끌지 말고 빨리 다그쳐요. 저 또 다른 볼일도 있거든요.” 진로인의 둘째는 딸이였다. 둘째는 이번에 장례식장에 오지 못했다. 부고를 보낸 뒤 수초는 이번만은 이 진씨네 누님을 꼭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그녀 대신 딸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말해줘서야 그는 진씨네 누님이 2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죽으면서까지도 아버지에게 소식 하나 전하지 않았다. 늙은 아버지가 불행한 소식을 들으면 상심할가봐 알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으나 일이 그렇게 간단한 것만도 아닌 것 같았다. 곰곰히 계산해보면 수초가 진로인을 위해 일한 지도 어언 20여년이라는 긴 세월을 헤아린다. 그동안 수초는 1주일에 적어도 두번은 진로인네 집에 드나들었다. 그런데도 그는 거의 한번도 이 진씨네 누님을 본 적이 없었다. 곰곰히 따져보면 만약 진씨네 누님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70세는 될 것이였다.  수초는 품속에서 사전에 프린트한 서류 한장을 꺼내들며 말했다.  “그럼 좋아요. 다그칩시다. 시작하기 전에 네집에서 각각 대표를 파견하여 이 서류에 싸인하시기 바랍니다. 서류 내용은 방금 제가 말한 몇가지입니다. 싸인하시기 전에 내용을 다시 한번 꼼꼼히 심열하시기 바랍니다.” 어제 저녁, 이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수초는 한밤중까지 자지 못했다. 도중에 깊이 잠든 안해까지 흔들어깨워 참고로 봐달라고 사정했다. 그의 안해는 법원 민사청에서 판사로 일한 적이 있어서 이런 일에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안해는 꿈결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시끄럽게 굴지 말라며 화를 냈다. 수초는 아첨하듯 안해를 달래고 구슬렸다.  “이건 시끄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심각한 문제란 말이야. 이 집안이 얼마나 복잡한 집안인지 알아? 복잡한 정도가 당신이 지금까지 맡은 그 어떤 안건도 비하지 못한단 말이야. 자칫 신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내가 시끄러워져!” 싸인하는 것마저 제비뽑기를 해 순서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첫사람으로 볼펜을 잡은 맏이 아들이 볼멘 소리로 투덜거렸다. “수형,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굴어요?!” 수초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짧으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건 꼭 해야 될 일이니 더 해석하지 않겠어!” 맏이의 아들은 수초와 나이가 거의 비슷해서 형님 동생 할 만도 했다. 진씨네 손자손녀들은 그를 아저씨라고도 부르고 할아버지라고도 불렀다. 그렇게 부르는 건 그를 진로인의 동료로 여기기 때문이였다. 그들에게는 동료란 곧 동년배였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라지. 수초는 그것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1호 제비를 뽑은 셋째의 딸이 금방 집안에서 나왔다. 그녀는 품에 작고 깜찍한 전자사진첩을 안고 있었다. 이 전자사진첩은 바로 이 외손녀가 진로인에게 선물한 것이였다. 그녀는 수집할 수 있는 모든 가족의 사진들을 모아서 이 메모리에 담아 외할아버지에게 드리면서 가족사진을 보고 싶을 때 이 키보드 하나만 누르면 사진들을 슬라이드처럼 볼 수 있고 음악을 선택하면 노래도 들을 수 있다고 설명해드렸다. 진로인은 마지막으로 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늘 이것을 품에 안고 가족사진을 보았었다. ‘1호선수’가 제일 먼저 안고 나온 것이 고작 이따위 것이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뜻밖이였다.  2호 제비를 뽑은 사람은 맏이의 아들이였다. 이른바 종가집 장손이였다. 장손은 조금 뒤 집에서 나오더니 자기는 거실에 놓여있는 스탠드형 에어컨을 가지겠다고 했다. 그는 오늘은 가져가지 않고 래일 트럭에 실어 가져가도 되는가고 수초에게 물었다. 그 말에 수초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미안, 미안, 나 금방 깜빡하고 말하지 않았군. 그 에어컨은 로간부국의 것이기에 분배 범위에 속하지 않아. 대신 너 두 방안에 있는 걸개식 에어컨을 가져. 그건 진로인이 자기 돈으로 보탠 거니까.” 장손은 큭- 코를 소리나게 들이켜며 얼굴을 찡긋해보이고는 다시 집안으로 사라졌다. 방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수초는 의자를 가져다가 문에 기대앉았다.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은 첫째는 밖에 있는 사람들이 순서를 어기고 란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이미 선택되여 밖에 내놓은 물건들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방금 그는 선택한 물건은 잠시 문 앞에 내놓았다가 물건을 선택하는 절차가 끝나고 나서 모두 통일적으로 점검해본 다음 다른 이의가 없으면 각자가 알아서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었다. 셋째는 자기도 좀 쉬여야 했기 때문이다. 간밤에 거의 잠을 못 잔 데다가 날도 밝기 전에 일찍 일어나서 진씨네 장례식 일들을 처리하느라 사처로 뛰여다녔다. 발인하고 장례식장에 가보고 유체와 고별하고 골회함을 선택하고 그것을 묘지에 안장하는 등등의 일들은 그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런 일 때문에 조급해하고 열 받아서 그는 목소리마저 쉬였다. 진씨네 자손들은 적지 않았지만 진로인이 생전에 자신의 후사를 전부 시로간부국에만 위탁해놓았기에 그들이 태만을 부려도 누가 나서서 감히 말하지도 못했다. 사람은 정말 세월을 우습게 알 일이 아니였다. 나이 반백을 넘으니 몸이 욕심을 따라주지 않았다.  집앞에 쌓아놓은 네개의 작은 산이 점점 높아져갔다. 어떤 사람은 밖으로 이불까지 안고 나오고 있었다. 돈이 될 만한 물건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수초는 그것들을 보기마저 싫어서 허리를 굽히고 자기가 쓰고 타자한 라는 글만 훑어보았다. 상급에서 추도회를 열지 않는다는 규정을 내려서 그로서는 다만 사망자의 생평에 대한 간단한 소개나마 작성하고 타자해서 유체와의 고별식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수 밖에 없었다. 수초의 눈앞에는 로인의 목소리와 웃던 모습이 또 한번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80세 가까이 되여갈 때 밭에 나가 일하던 모습이 더욱 생생히 떠올랐다. 수십년간 수많은 생사고비를 넘나들면서 살아온 로인은 공화국의 공신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럼에도 로인이 가슴 깊숙한 곳에 얼마나 많은 억울함과 외로움을 묻고 살았는지 이루 한마디로 다 말할 수 없었다. 만년에 이르러 생활은 별 걱정이 없었지만 자손들은 그에 대한 불만과 원망 때문에 평소 집에 거의 드나들지 않았다. 자식들이 불효자이기 때문만은 아니였다. 세간의 혈육의 정이란 어느 하나가 평소 서로 아끼고 보태고 나누면서 조금씩 쌓아지지 않는 것이 있는가! 그러나 진로인에게는 유감스럽게도 바로 이러한 침전과 루적이 조금 결여되였다.   진로인은 태항산에서 태여나 항일전쟁이 발발하자 팔로군에 참가했고 후에 무공대 대장까지 되여 부대를 이끌고 적후에서 유격전을 벌였다. 1943년, 왜놈들이 ‘3광정책’까지 실시해대며 화북지구를 포위하고 소탕할 때 진풍년은 적들에게 쫓겨 어느 한 동굴에 들어갔다. 동굴 속에는 마침 그와 거의 같은 시간에 뛰여들어 몸을 숨긴 부구회妇救会 처녀도 있었다. 동굴 밖에서 뜨거운 산불이 활활 타오르고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다. 처녀가 동굴 밖을 내다보며 진풍년에게 “대장님은 죽는 것이 겁난가요?” 하고 물었다. 진풍년은 코웃음 치며 “흥! 죽는 것을 겁나했다면 나 팔로군에 참가하지도 않았을 거요! 유감이라면 20살이 넘도록 아무 것도 못하고 헛되이 산 것 뿐이오…”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처녀는 “유감 중에 련애 한번 못해본 것도 있죠? 대장님께서 만약 못난 저를 꺼리지만 않는다면 굴 밖에 나가게 되면 제가 대장님의 안해가 되겠어요.” 하고 당돌하게 말했다. 일주일 후 왜놈들이 물러갔다. 부대로 돌아가기 전 진풍년은 처녀와 산과 바다 같은 사랑을 맹세했다. 그런데 그번의 리별이 둘을 음과 양으로 영영 갈라놓을 줄이야. 몇년 후 항일전쟁이 승리하자 진풍년은 다시 산골로 되돌아왔다. 그제야 그는 처녀가 왜놈들이 또 한차례 벌인 포위전에서 총알에 맞아 죽었다는 것과 그녀가 남긴 세살 난 남자애를 마을 사람이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풍년은 그 아이를 찾았다. 아이를 보는 순간 그는 첫눈에 그가 자기의 혈육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마음에 몸에 지니고 있던 모든 값진 것들을 다 꺼내서 아들을 키워준 마을 아주머니에게 주면서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천하의 주인이 되는 그 때 다시 돌아와서 은공에 보답하겠다며 아이를 계속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진풍년의 두번째 혼인은 1949년에 이루어졌다. ‘제4야전군’ 이 동북의 전역을 해방하고 군마를 이끌고 평진平津을 향해 진격할 때 진풍년이 소속된 퇀团은 명령을 받고 남아서 북구北口를 지키게 되였다. 그 때는 격정이 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사람마다 영웅을 찬미하고 숭배하던 년대여서 어떤 사람은 한개 퇀의 통수인 진풍년에게 끊임없이 애인을 소개해왔다. 진풍년이 왜놈, 장개석과 싸운 영웅이였을 뿐만 아니라 30살도 안된 멋진 총각이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때 진풍년은 한 녀대생을 좋아했다. 그 녀대생의 거절을 피면하기 위해 그는 태항산에 아들애 하나가 있는 사실을 숨겼다. 그는 녀대생과 결혼하여 안해가 아이를 낳은 다음 진실을 고백하려 했다. 그에게 아이가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녀자의 태도가 완전히 다를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수년간 병사를 이끌고 싸운 그가 어찌 적들의 고지를 점령하여 속전속결하는 전술을 모르겠는가! 그런데 결혼하여 밀월 같은 달콤한 결혼생활을 한 지 겨우 1년 남짓한 때, 부대가 명령을 받고 압록강가에 집결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진풍년은 임신중인 안해와 헤여지지 않으면 안되였다. 압록강 강변의 집결은 근근히 전주곡에 불과했다. 그 뒤를 이어 벌어진 전투는 왜놈과 벌인 전투나 장개석부대와 벌인 전투에 비해 훨씬 잔혹한 고전이였다. 1951년, 진풍년은 전 퇀을 이끌고 조선에서 련합군부대를 저격했다. 상급의 명령은 듣기만 해도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 명령이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24시간 동안 견결히 진지를 사수하라였다. 그번의 전투는 말 그대로 악전이고 고투였다. 미국 양키들의 비행기, 대포는 쉼없이 폭격과 포격을 거듭했고 련합군은 벌둥지를 터쳐놓은듯이 번갈아가며 돌격해올라왔다. 진풍년의 발아래의 진지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화에 양파처럼 한겹한겹 벗겨져갔다. 장장 하루 낮 하루 밤을 싸우고 나서 진풍년이 전사들을 이끌고 철퇴할 때는 신변에 남은 병사란 2백명도 안되였고 탄약은 더욱 적었다. 얼음을 밟고 강을 건널 때는 미군 비행기가 쫓아와 미친듯이 공중에서 소사하고 폭격해댔고 지면 우는 온통 앞을 가로막고 뒤를 차단하는 적군들 뿐이였다. 머리 우로는 또 적기가 투하한 조명탄이 높이 걸려 밤을 대낮 같이 환히 밝히기도 했다. 그번의 전투에서 몸에 중상을 입은 진풍년은 자신은 이미 혁명을 끝까지 했다고 생각하고 최후의 명령을 내리지 않고 병사들에게 우리의 임무는 이미 완성됐으니 즉시 세사람이 한조를 묶고 분산해서 포위를 뚫으라고 했다. 그는 될수록 상망을 적게 내고 꼭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고 병사들에게 부탁했다. 그는 또 적들 앞에서 무기를 놓되 당을 배반하고 나라를 배반하면 절대 안된다고 부탁했다. 무엇인가를 더 말하려고 했으나 바로 그 때 폭탄 하나가 옆에 떨어져 그 뒤의 일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틀밤과 이틀낮 후였다. 눈을 떠보니 어느 산 속의 동굴 안에 누워있었고 옆에서 조선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손짓발짓을 다해가면서 알려줘서야 진풍년은 그들이 죽은 시체더미 속에서 먹을 것을 찾다가 진풍년의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구해주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두 로인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면서 진풍년은 그 두메산골에서 옹근 반년을 숨어살았다. 지원군들이 또 한차례 전역을 벌여 다시 쳐들어올 때까지… 다리 하나를 절게 되자 진풍년은 더 부대에 남아있을 수 없어 재빨리 국내에 호송되여왔다. 그런데 그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그를 맞아준 것이란 꽃묶음도 박수소리도 아닌 감옥 같이 침침하고 은밀한 심문실이였다. 그는 그 곳에 갇혀 심사를 받기 시작했다. 심사원들은 그에게 부대가 진지에서 철퇴할 때 그가 어떤 명령을 내렸는가고 질문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알기로는 그가 그 때 중상을 입은 몸이여서 정신이 똑똑하지 못했다는 점에 특별히 력점을 두며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암시해주었는데도 진풍년은 자기가 부상을 입은 곳은 다리와 몸이였고 비록 폭탄에 두피도 벗겨지고 귀도 절반 떨어져나갔지만 정신만은 줄곧 말짱했다고 우겼다.  “내가 그 때 내린 명령은 분산적으로 포위를 뚫고 나가되 더는 죽기내기로 싸우지 말라, 무기는 놓아도 된다. 그러나 당을 배반하고 나라는 배반하지 말라!였습니다.”   이때 심사원이 그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당신이 말한 ‘죽기내기’란 무슨 뜻이오?” 진풍년이 가식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우리들이 거의 30시간 진지를 고수하느라 싸우는 과정에 희생된 전사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미 임무를 완성한 데다가 탄알과 쌀까지 떨어져서 더 싸우면 그대로 목숨을 적들에게 바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무리할 필요까지야 있습니까? 저의 전사들은 모두 훌륭한 청년들입니다. 저로서는 차마 눈 뜨고 그들이 부질없이 목숨을 바치는 걸 볼 수 없었습니다.”  진풍년의 말이 끝나자 심사원이 또 질문을 들이댔다.  “당신의 그 명령이 반역철학이나 생의 철학과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오?”  “저는 철학을 모릅니다. 다만 포로와 반역자가 같지 않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어떤 나라의 전쟁포로는 석방되여 귀국해도 여전히 영웅으로 받들린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 퇀의 어떤 전사가 포로되였지만 당과 나라만 배반하지 않는다면 저는 그도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의 전쟁포로가 귀국해서 영웅이 되였다는 말은 어디에서 들었소?” 심사원이 또 캐물었다. “저의 안해한테서 들었습니다. 안해와 그녀의 동창생은 2차 세계대전을 반영한 책과 영화를 보았답니다.”  심사원이 다시 물었다.  “당신이 살아돌아올 수 있었던 건 적군에게 포로됐기 때문이였소? 포로된 뒤 당과 나라를 배반한 일을 사실 대로 말하시오!”  그 말에 진풍년이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나 지팡이로 마루바닥을 탕탕 치면서 화난듯 소리 질렀다.  “전 적들에게 포로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백성들이 시체더미에서 저를 발견하고 구해주었습니다. 정 믿음이 안 가면 직접 조사해보세요. 전 그 때 제가 꼭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런 명령을 내렸습니다. 제가 당을 배신하려 했다면 항일전쟁 때 했지 하필 공산당이 천하 주인이 된 때에 와서 왜 배신하겠습니까! 그리구 배신하지 않는 포로로 되기도 어디 그렇게 쉬운가요? 배신하지 않는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죽기만 못하지요. 철 같은 의지가 없이는 당을 배신하지 않는 포로로 되기도 어렵단 말입니다.”  진풍년은 옹근 4년간 이런 식으로 심사를 받았다. 그가 이런저런 명목하에 얼마나 많은 담화와 취조, 심문을 당했는지는 그 자신도 잘 모른다. 그가 빨간 손도장을 찍은 심문서류만 쌓아놓아도 사람의 키 절반 높이는 족히 될 것이다. 그동안 전장에서 귀국한 사师의 수장이나 군军의 수장도 그를 유도하고 설득한다는 명목으로 찾아와 면회했다. 수장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감개무량한 어조로 그번 저격전에서 진풍년 퇀의 공로가 가장 컸다면서 진풍년 퇀이 적은 희생을 내면서 대부대의 반격전을 위해 보귀한 시간을 벌었다고 치하했다. 그 때 진풍년은 쓰겁게 웃으며 속으로 그번 전투에서 우리 한개 퇀의 전사들이 거의 전멸했는데 그 희생을 적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수장은 또 진풍년에게 우리 당은 력대로 한 간부를 평가할 때 그 사람의 한가지만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걸어온 력사와 일해온 정황들을 보면서 전면적으로 평가하니 머리에 너무 무거운 보따리를 짊어지지 말고 태연한 자세로 당의 심사에 림하라고 타일렀다. 수장들은 또 그와 작별할 때 몸에 상처를 입으면 정신상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병을 속이거나 병원을 기피하지 말고 제때에 치료하라고 간곡히 타일렀다. 진풍년은 수장의 성의를 모르는 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수장에게 상급 수장님께 꼭 자기의 건의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건의란 전장에서 아군의 실력이 절대적인 렬세에 처했을 때 저항을 멈추어도 전쟁의 전반 국면에 그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 정황하에서 전사들이 무기를 놓는 것을 허락하여 불필요한 희생을 피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장은 그렇게 많이 암시했는데도 그가 여전히 이런 식으로 말하니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진풍년에게 “자네의 상처가 정말 중하구만!” 했다.    바로 이렇게 고집이 세고 자기 주견만 내세운 탓에 진풍년은 류당사간留党查看 1년이라는 처분을 받았고 군적军籍에서도 제명당했다. 4년 후 그가 북구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에게 차례진 새로운 직무는 겨우 국영농장의 부농장장이였다. 듣는 말에 의하면 그것마저도 옛 수장이 차마 마음이 내려가지 않아서 특별히 아는 사람을 공작해서 쟁취해온 것이라고 한다. 북구로 돌아오자 진풍년은 안해부터 찾았다. 임신한 몸이였던 안해가 그를 보자 엉~엉~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안해는 울면서 당신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살아있으면서 왜 몇년간 편지 한장 없었느냐며 그를 원망했다. 진풍년은 한참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있다가 “우리 애는?” 하며 아이 안부를 물었다.      아이에 대한 말이 나오자 전처는 또 한번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아이의 행방에 대해 알려주었다. 전처는 애가 계집애였다면서 재혼하기 전에 상대방이 자기가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을 꺼려서 그 때 마침 자기 동창생의 고향에 있는 한 젊은 부부가 결혼한 뒤 줄곧 아이가 없어서 딸을 그 집에 줬노라고 했다. 전처는 자기는 이제 진풍년과 같이 살 수 없게 됐다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진풍년은 전처에게 아이를 누구에게 줬는가 따지며 당장 아이를 도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그 말에 전처는 더 슬프게 울면서 제발 찾아가지 말라고 애걸했다. 그녀는 당년에 아이를 줄 때 애 아빠가 죽었다고 보증했고 어떤 일이 있어도 앞으로 애에게 영향주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젊은 부부에게 맹세까지 했다고 했다. 그녀는 장차 애가 크면 자기가 꼭 방법을 대서 당신을 찾아가도록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진풍년은 또 결혼했다. 녀자는 과거 그의 수하에서 련장을 했던 젊은이의 미망인이였는데 슬하에 딸 하나 있었다. 그 몇년간 진풍년은 조금만 틈이 생기면 희생된 전사들의 가족들을 찾아다녔다. 그 때 그는 련장의 미망인이 딸 하나를 거느리고 힘들게 살고 있는 데다가 련장의 유복 딸이 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며 “저의 아빠 맞지요? 아빠 왜 이제야 돌아왔어요? 아빤 미국 양키들과 싸운 영웅이지요?” 하며 가엾게 응석을 부리기에 련장의 미망인을 보고 아이를 데리고 자기와 같이 농장으로 가서 출근하면 어떻겠느냐고 권했고 농장에서 출근하면 달마다 월급이 있어서 깊은 산골에 파묻혀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농장으로 돌아온 뒤 진풍년은 련장의 미망인 모녀를 자기 집에서 살게 하고 자기는 사무실에 침대 하나만 달랑 놓고 거기에서 혼자 하루 세끼를 대충 해먹으면서 살았다. 그로부터 몇달 뒤의 어느 날 미망인이 진풍년을 찾아와서 얼굴을 수줍게 붉히며 아이가 하루 종일 울면서 아빠를 찾는 데다가 농장사람들이 쩍하면 자기를 보고 ‘아주머니’라고 롱담을 하니 당신이 만약 우리 모녀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셋이 같이 사는 게 어떻겠는가고 물어왔다. 진풍년은 그녀와 결혼한 지 1년 만에 아들을 보았다. 진풍년의 생활은 그로부터 끝내 안정과 평온을 찾았다.  3년 곤난 시기 나라 곳곳에 큰 자연재해가 들어 밥을 빌어먹기 위해 떠돌이를 하는 사람들이 보물을 이루었다. 바로 그 때 태항산에 있던 아들이 찾아왔고 전처가 남에게 주었던 딸도 양아버지와 양어머니를 모시고 진풍년을 찾아왔다. 국영농장에는 당시 새로 직원을 모집할 때 농장직원의 친속을 우선하라는 규정이 있었다. 마침 그 때 슬하에 한쌍의 아들딸이 남아있어서 진풍년은 그들을 어렵지 않게 국영농장의 직원으로 넣을 수 있었다. 진풍년은 그 때문에 두 미망인 앞에서 좀 떳떳해진 것 같았다.  지난 세기 80년대에 이르러 진풍년은 당의 새로운 간부정책에 의해 끝내 과거에 조사받고 심문당했던 억울한 혐의에서 풀려났다. 애석하게도 그 때 그는 이미 퇴직로인이 되였다. 당조직에서는 진풍년이 과거 생사고비를 넘나들며 싸운 혁명경력과 여러차례 전장에서 세운 공로을 감안하여 그에 대한 대우를 시지급市地级 퇴직으로 진급시키기로 결정했다. 수초는 바로 그 때 시로간부국에 전근하여 진풍년과 익숙해지게 되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수초는 먼저 중학교에서 글을 가르쳤는데 마침 그 때 일부 년세 계시는 로간부들을 도와서 자료를 정리하고 회억록 같은 것을 대필해서 써야 하는 일들이 있어서 시에서는 그를 로간부국에 전근시켜 간사로 일하게 했다. 그는 진로인을 도와 리력서를 써드리는 과정에 진로인의 서류를 적지 않게 보았다. 진로인의 서류에서 그는 진로인이 사람을 찾아 진술한 대필자료도 보았고 진로인과 기률검사 감찰원들 간에 오고간 담화기록도 보았다. 후에는 진로인과 직접 대화하면서 그가 들려준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들었다. 수초는 진로인이 하나면 하나라고 하는 공명정대한 사람이라는 것과 사람됨이 간사하지 않고 거짓을 모르며 자신의 허물을 덮어감추려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할 줄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수십년 전에 심사를 받을 때 한 말을 그는 몇년 뒤에도 토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했다. 공명정대함은 로인에게 많은 불행을 가져다주었으나 공정함과 정의로움은 또 그의 공명정대함으로 해서 다시 되돌아오기도 했다. 거의 30여년간 부농장장으로 살아오면서도 그는 줄곧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했다. 그는 몇푼 안되는 월급으로 네식구를 먹여살려야 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어려운 생활을 하는 두 자녀도 돌봐야 했다. 일찍 농민이였던 아들과 딸은 올 때 식구들을 다 거느리고 오기는 했지만 그들 자신도 다만 농장에서 일하는 보통 로동자에 불과해서 돈이 늘 딸렸다. 진풍년은 그들을 볼 면목이 없어서 달마다 자기가 받는 월급에서 얼마간 덜어내서 주군 했다. 안해가 그러는 자신을 리해해주는 것이 늘 고마웠다.  그러나 달마다 하는 그의 구제도 아버지에 대한 아들딸의 몰리해나 원망을 밑뿌리까지 깨끗이 해소시키기에는 부족했다. 다른 집 로혁명가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호의호식시켜주는데 우리 진씨네 아버지는 왜 한달에 겨우 10원, 8원으로 친자식의 입을 막으려 하는가? 두 자녀는 늘 이런 식으로 진풍년과 트집을 잡았다. 그러다가 진풍년이 시지급퇴직간부 대우를 받게 된다는 소식이 봄바람이 되여 두 자녀와 아버지 사이에 생겼던 얼음층을 녹여버렸다. 그 몇년간 매번 설을 쇨 때마다 그들은 아들딸을 거느리고 와서 손자손녀를 할아버지 무릎에 앉힌다 어쩐다 하면서 떠들어댔다. 그러나 봄날의 따뜻함은 언제나 짧기 마련이다. 간혹 꽃샘추위라도 오면 이미 녹은 얼음층을 더욱 튼튼하게 얼어붙게 할 뿐만 아니라 땅을 헤치고 머리를 내민 새싹마저 모두 얼어죽게 하여 한 계절의 희망마저 훼멸시키는 경우도 있다. 어느 날 맏아들이 갑자기 찾아와서 홍두깨 내미듯 자기가 얼마 전에 성으로 가서 모청장을 만났는데 그 청장이 자기가 옛날 아버지의 부하였다면서 집에 돌아가면 옛 수장께 대신 꼭 안부를 전해달라고 부탁하더라는 것이였다. 아들의 말에 진풍년은 일개 농장의 로동자인 아들이 무슨 일 때문에 성에 갔고 왜 청장까지 만나고 왔는지 이상하기만 했다. 그가 막 물어보려고 할 때 아들이 솔직하게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아들의 말인즉 요즘 아주 중요한 공사 하나를 맡으려고 하는데 그 공사를 바로 아버지의 옛날 부하였던 청장이 관할한다는 것이였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그 청장에게 전화를 하거나 편지 한장을 써서 그를 도와 공사를 따오기만 하면 우리 부자가 평생 받는 월급보다 더 많은 리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이였다. 진풍년이 깜짝 놀라 아들에게 네가 회사를 차렸는가고 물으니 아들은 자기가 무슨 능력으로 회사를 차리겠는가며 사실은 자기 친구가 회사를 차렸는데 그가 어느 공사 입찰에 참가하려고 하는데 자기 능력으로 그 공사를 따올 자신이 없으니 수소문으로 아버지와 그 청장의 밀접한 관계를 알고 자기를 찾아와 회사의 부사장 직함까지 주면서 사정하더라는 것이였다. 아들의 말을 듣고 화가 상투밑까지 치민 진풍년은 간신히 지팡이에 의지해 일어나서 칼날 같이 섬뜩한 목소리로 호통쳤다. “너 이후 또다시 이따위 짓을 하면 그 땐 가만두지 않을 테다! 금후 사람들이 나에 대해 묻거든 차라리 내가 화장터에 간 지 오래다고 말해주어라! 난 이미 죽었단 말이다! 알아들었느냐?!” 비록 크고작은 차이는 있었지만 이와 비슷한 일들은 그 후에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둘째와 그 사위도 그를 찾아왔고 셋째 사위도 그를 찾아왔다. 넷째는 그 때 부모와 한지붕 아래에서 같이 살고 있었으므로 더욱 진풍년을 시끄럽게 굴었다. 그 때 막내아들은 직장에서 경선을 통해 과장자리에 초빙되려 했는데 쉽게 진풍년을 설득할 수 없음을 알고 지금 간부하는 사람들 중 인맥관계를 통하지 않고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아버지가 지금 살아계시니까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아버지를 존경하지 몇년만 더 지나면 아버지를 보는 척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으름장까지 놓았다. 그 말에 진풍년은 또 화가 치밀어 “내가 지금까지 거느린 병사가 만명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8천명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런데 난 지금까지 그중 어느 한 전사도 자기가 쥔 총칼이 아닌 인맥관계에 의지해서 적진으로 돌격했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네가 진짜 표범이라면 앞으로 밀고나가고 다만 편안하고 안일한 생활만을 원한다면 거부기처럼 대가리를 감추고 조용히 살아라. 나는 늙었어도 지금까지 평생 하지 못하는 일이 바로 허리를 굽신거리며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는 일이다. 왜냐 하면 난 그 사람을 잃어서는 안되기 때문이야!” 하고 아들을 타박주었다.  세상 어디에서나 인맥이나 사람관계를 리용하여 사적인 리득을 챙기는 문란한 풍기가 만연되고 있는 때에 진로인의 이러한 대공무사함은 가뜩이나 조화롭지 못한 부자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안해가 살아있을 때에도 친인척을 대하는 그의 무자비한 태도를 두고 한두번 말한 것이 아니였다. 살아있을 때 그녀는 “우리 집은 이 둥지 저 보금자리에서 자란 애들만 모여살고 있어서 오래지 않아 ‘혼인법’의 산 교재로 될 거예요. 아이들이 가뜩이나 당신과 친하지 못한데 이제 누구도 집으로 오지 않게 됐으니 차라리 잘됐지 뭐예요. 이제는 심지어 막내마저 밖에 나가 혼자 살게 됐어요. 내 보기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이렇게 돼먹은 것 같아요. 이런 풍기는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가니 우리 고집만 부리지 말고 애들을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도웁시다. 힘이 모자라서 돕지 못하면 애들두 우릴 원망하지 않아요.” 했다. 그 때 진풍년은 머리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없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나도 애들을 돕고 싶고 애들이 돌아와 함께 살기를 원한다는 걸 당신이 어찌 알겠소?! 이 네 아이가 모두 당신이 혼자 낳은 아이들이라면 난 누구의 미움을 사도 무섭지 않겠소. 그러나 바로 그 애들이 같지 않은 엄마의 배속에서 나왔기에 난 애들을 공평하게 대하지 못할가봐 늘 걱정이란 말이요. 그 때문에 집도 혼란스럽기만 하니 그렇게 하기보다는 그 애들이 자기 능력으로 분투하게 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낫지 않겠소? 후에 그 애들이 우리를 원망하고 싶으면 원망하고 미워하고 싶으면 미워하라지 까짓 걸!” 진로인이 80여세 다되여갈 때 시정부에서는 리직한 로간부들의 주거조건과 환경을 해결하기 위해 별장동네 하나를 축조했다. 매 별장의 면적은 평균 2백여평방이였다. 집을 분배할 때 시정부에서는 재산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집은 매 가족들에서 구매하는 것이지 무상으로 거주하는 것이 아니기에 먼저 얼마간의 집값을 지불한 후 3년 뒤에 이 집도 시내의 다른 상업성 아빠트처럼 70년 재산권을 갖게 되며 아울러 팔거나 양도할 수 있는 권리도 갖게 된다고 선포했다. 조금 사리에 밝은 사람이라면 시정부에서 말하는 이른바 집값이란 상징적으로 내는 것에 불과하며 돈보다 중요한 것은 집을 살 수 있는 자격이고 자격이 없으면 아무리 욕심나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집 수매계약을 맺기 전에 시로간부국에서는 차를 파견하여 로인들을 별장동네로 모셔왔다. 별장동네는 시내에서 가까운 교외에 있었는데 뒤에는 산 앞에는 강이 있었고 교통도 편리했다. 매 별장에는 두세대가 들기로 돼있어서 속칭 련립주택이라고는 하나 두집이 각기 자기의 단독 문을 갖고 있었고 문을 떼고 집안에 들어서면 집안이 2층식으로 돼있는 데다 해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했다. 더우기 로인들 대부분이 전원생활에 익숙한 점을 고려하여 매 집앞에 백여평방메터에 달하는 원포를 조성해 화초도 심을 수 있게 하고 채소도 심을 수 있게 했다. 그야말로 신선들이 모여사는 선경 같은 좋은 동네였다. 장차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시비를 피면하기 위해 시로간부국에서는 사전에 자격과 급별에 따라 순서를 배렬하는 수매 규칙을 제정했다. 그 날 진로인은 안해와 같이 집 보러 갔다. 안해는 그 때 이미 엄중한 페기종병을 앓고 있어서 가다가 쉬고 쉬고는 또 가군 했다. 가는 길에 진로인의 안해는 줄곧 수초의 부축을 받았다. 집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진로인의 안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듣자니 우리가 1호여서 제일 먼저 집을 고를 수 있다는데 당신은 어느 집이 마음에 들었어요?” 하고 진로인에게 물었다. 진로인은 조금 머뭇거린 뒤에야 겨우 급하지 않으니 집에 돌아가서 의논하자고 했다.  사흘 뒤 국장과 수초가 함께 진로인의 초대를 받고 진로인의 댁을 방문하게 되였다. 로인은 이미 우려놓은 룡정차를 기어이 두 사람의 잔에 손수 따르겠다고 했다. 이런 정경은 과거에도 있기는 했으나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국장과 수초는 몰래 눈을 맞추며 서로 진로인의 신상에 꼭 무슨 큰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가, 상긋한 엽차 향기가 집안에 가득 차자 진로인이 무겁게 입을 뗐다.  “조직에서 우리 늙은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좋은 집을 지어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네. 그런데 우리 집 정황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자네들이 다 알고 있지 않는가. 말로는 집을 우리 로간부들에게 준다고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살면 몇년 더 살겠는가? 언젠가는 이 강토를 위해 싸우다가 죽은 전우들과 만나러 나도 가야 하지. 우리 집 네 애들 말일세, 모두 이 둥지 저 둥지에서 태여나서 애비가 같지 않으면 어미가 다르고 어미가 같으면 또 애비가 달라서 누구나 우리 두 늙은이와 친하지 못하네. 사실 애들을 원망할 것도 없지. 천하를 위해 싸우기란 원래 쉽지 않은 일이네. 피 뿌리며 목숨 바쳐 싸우기도 쉽지 않구 혈육의 정을 버려야 하는 것도 쉽지 않네. 잃어버린 이 모든 것들은 아마 내 인생에는 되찾아오지 못할 것이네. 내가 오늘 말하고저 하는 건 우리 두 늙은이가 죽은 뒤에 이 집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일세. 다른 사람한테 맡겨서 애들이 서로 양보하면서 고루 살게 하거나 나중에 집을 판 돈을 똑같은 몫으로 나누어가지게 하고도 싶으나 우리 집 애들로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네. 전혀 래왕하지 않던 애들이 어쩌다 만나도 형님, 누나, 언니, 동생 하는 걸  듣기마저 힘드네. 그러다가 누가 먼저 집에라도 덜컥 들어보게. 애들이 네 죽네 나 죽네 싸우느라 정신이 없을 거네. 일이 그렇게 되면 우리 부부도 땅 밑에서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어지고 조직에서도 난처하게 될걸세.”  진로인이 차잔을 들고 엽차를 마시는 틈을 타서 수초가 한마디 했다.  “로인님께서 이것저것 너무 많이 고려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두분께서 공정한 유서만 남기시면 백년 뒤 시비가 있더라도 법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진로인이 머리를 저으며 얼굴에 쓴웃음을 띠고 말했다.  “아무리 청렴한 관리라도 가사와 관계를 끊을 수는 없다네. 이 며칠 사이 우리 부부는 텔레비죤에서 많은 법적 소송과 관계되는 프로를 보았다네. 이런 소송프로에서 보면 유서가 아니라 법적인 판결마저 집행하지 않으려 하는데 자네인들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친혈육을 적으로 만드는 것을 두 눈을 펀히 뜨고 지켜봐야 하는 경우도 있지.” 국장은 어딘가 실마리가 잡히기라도 한듯 진로인에게 “혹시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진로인이 입술에 침을 바르며 말했다.  “우리 부부가 요즘 반복적으로 상의해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아직 숨이 붙어있을 때 먼저 집을 애들에게 나누어주자는 거네. 돈과 집에 있는 물건들은 우리가 죽은 다음 조직에서 책임지고 평균 나누어주면 큰 말썽이 없을 줄로 아네. 내 말의 뜻인즉 국에서 상급에 청시해서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별장에 대해 값을 정한 다음 우리 부부에게 집값을 먼저 지불할 수 없는가 하는 것이네. 집은 쪼개서 자식들에게 나누어주지 못하지만 돈은 나누어줄 수 있지 않는가? 안 그렇수?”  그 말을 듣고 수초가 놀라며 물었다.  “그렇게 하시면 로인님은 어디에 가서 지내시겠습니까?”  수초의 걱정에 진로인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문제 없지. 나 농장의 이 집에서 살 수도 있지 않는가! 나의 이 요구를 전 농장에서 꼭 받아줄 거네. 물론 우리로서는 별장이 영원히 농장에 속한다는 것과 우리가 죽은 뒤 즉시 농장에 돌려준다는 보증서와 증거를 글귀로 남길 거네. 우리가 별장에 들어있는 이 몇년간은 달마다 집세를 지불할 거네. 이렇게 하면 개인이나 집체나 다 손해가 없지 않겠는가.”  국장이 잠간 갑자르다가 먼저 대답했다.  “진로인님께서 후사를 이렇듯 세밀하게 안배해놓으시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진로인님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이 몇년간 로간부국에서 가장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의 하나가 바로 사망한 로간부의 유산을 계승하는 문제입니다. 대부분 집들에서는 시비 없게 잘 처리하여 친목관계를 평소처럼 잘 유지해가지만 열집에서 간혹 한집에서라도 말썽이 생기면 헝클어진 삼실 같은 문제들이 꼬이고 꼬여서 삼년 오년, 심지어 십년 팔년이 지나가도 골머리를 앓게 만들지요. 제가 직접 성에 가거나 혹은 국에서 나서서 시의 어느 한 은행과 련계하여 담보대출을 맡는 방식을 참고하여 빠른 시일 내에 이 일을 현실화시키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번의 집 물량이 적어서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할 어떤 로간부도 미처 집을 가지지 못했답니다. 듣는 말에 의하면 시에서 성에 자금청구와 땅청구를 동시에 제출하여 별장을 더 짓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진로인님의 생각이 실현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금방 하신 진로인님의 말씀이 필경은 두분의 념원일 뿐입니다. 저의 뜻인즉 네 자제분에 대한 공작도 사전에 잘해놓으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국장의 말에 진로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두말이면 잔소리지. 그럼 우리 두길로 나누어 공작해보지. 나는 지금껏 자네들을 설득시키지 못할가봐 걱정했다네.” 진로인이 소집한 그번의 가정회의에는 네 자녀가 유산계승문제를 토론한다는 말을 듣고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출석했다. 진로인은 수초를 특별히 초청해서 회의기록을 담당하게 했다. 그리고 사전에 수초에게 부탁하여 협의서를 작성하여 타자까지 하게 했다. 회의가 끝난 뒤 매 자녀의 싸인을 받아 자료로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진로인이 내놓은 의견에 맏이와 둘째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얼굴에 담담한 기색만을 지어보일 뿐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러나 수초가 보니 그 두 사람이 태연한 척하면서도 몰래 눈짓으로 뭔가를 주고받고 있었다. 허공에서 부딪치는 그들의 눈빛에는 반가움과 기쁨이 가득 묻어났다. 셋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줄곧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얼굴에 같지 않은 의견이 드러나게 씌여있는 사람은 오직 넷째 뿐이였다. 넷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어머니, 로혁명가들을 위해 지은 별장을 저는 진작 가보았습니다. 보니 정말 좋더군요. 외부환경을 보나 내부구조를 보나 흠 잡을 데 없더군요. 두분이 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만년에 그런 별장에 들어 복을 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집에 들자면 몇만원은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두분이 돈 쓰기 아까우시면 제가 대신 쓰지요. 내부 인테리어라든가 가구구입까지 제가 전부 도맡을게요. 두분은 그냥 들어가서 사시기만 하면 돼요. 이러면 되겠지요?”  맏이가 그 말을 듣고 즉시 반응했다.  “그래도 내가 맏인데 돈을 내도 나부터 내야 하지.”  그 말에 둘째가 찬바람이 쌩쌩 이는 어조로 한마디 던졌다.  “다 같은 자녀인데 가깝고 멀고 먼저고 후고를 가르지 말아요.”  그 때까지 셋째만 침묵하고 있다가 머리를 들고 몇몇 사람을 휙 쓸어본 뒤 다시 머리를 떨구었다. 네 자녀가 갖게 될 심사와 태도에 대해 진로인은 가정회의 전에 이미 수초와 함께 대개 점쳐보았다. 맏이와 둘째는 다만 부모들이 넷째에게 편향할가봐 마음을 조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중 유독 넷째만이 두분의 피가 고루 섞인 친혈육이기 때문이였다. 만약 앞당겨 유산을 계승하고 평균 나눈다면 그들은 두손 들어 찬성할 것이다. 그러나 셋째의 경우는 비교적 특수했다. 혈연으로 따진다면 그녀와 진로인은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계승권을 가진다면 그녀로서는 당연히 감지덕지할 일이다. 네 형제들 중에서 사달을 낼 사람은 사실 넷째였다. 그는 부모와 갖고 있는 혈연의 우세를 믿고 재산문제에서 혼자 독점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할 것이다. 회의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자 그 때까지 침묵하고 있던 안해가 급히 입을 열었다.  “여보~! 당신도 좀 한마디 해보세유.”  그제야 진로인이 말했다.  “내가 너희들을 우리 집에 부른 것은 조직에서 나에게 준 이 돈을 평균으로 너희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좋겠는가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동의한다면 이 협의서에 서명하거라. 일단 동의하여 서명하면 영원히 뒤집지 못한다. 그 별장을 사느냐 않느냐는 내가 진작 시에 보고서를 써서 올렸다. 시에서 나의 청구에 따라 빠른 시일 내에 집값을 계산해서 나에게 돈을 보내올 것이다. 그러니 이 문제는 상의할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난 몸은 늙었지만 머리는 아직도 말짱하다. 내 이 몇마디 말이 아직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느냐?”  진로인의 얼굴빛이 엄숙하게 굳어지고 말에도 찬기운이 묻어있었다. 자녀들은 원래 속으로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데다가 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날을 세워 말하니 저마다 입을 꾹 닫아버렸다. 다만 넷째만이 볼멘 소리로 투덜거릴 뿐이였다. 지금 부동산시장이 하늘을 찌를듯 매일 뜨겁게 달아오르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집은 요구하지 않고 돈만을 중히 여기니 얼마나 바보스러워요? 그러자 안해가 낮은 목소리로 화내듯 말했다.  “이 일을 가지고 나와 네 아버지도 의논할 만큼 의논했다. 우리가 만약 돈만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이번에 내려오는 돈도 너희들에게 나누어주려고 하지 않았을 거다. 그것을 은행에 저축해두고 리자만 받아먹으면 좀 좋아서!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다 너희들을 위해서가 아니겠느냐! 집값이 올라간다면 돈을 나누어가진 뒤 그 돈으로 너희들도 집을 사면 될 것 아니냐? 큰 집을 사지 못하면 작은 집이라도 사면 되지. 듣자니 작은 집 값이 더 빨리 오른다더라. 너희들이 돈을 벌면 부모된 우리도 따라서 기쁜 거지 바보스럽기는 뭐가 바보스럽다는 거냐?”  진로인이 끙끙거리다가 퉁명스럽게 안해의 말을 잘랐다.  “그 자식과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해? 큰 집을 너 한놈에게만 주면 우리 집 식구들이 바보스럽지 않은 거지? 그런 거냐? 이 자식 꿈도 꾸지 마!” 진씨네 네 자녀들이 유물을 선택하는 순서도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셋째의 딸과 넷째는 이제는 더 집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맏이와 둘째의 아들딸만이 아직도 엇바꾸어 집문을 들락거릴 뿐이였다. 넷째가 부러 짜증스럽고 높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배고파 죽겠어요. 이제 그만들 해. 이 집에 또 뭐가 있다고 그래?”  수초가 담배를 꺼내 넷째에게 한대 내밀며 위로하듯 말했다.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좀더 참아요! 제 보기엔 위로금이 내려온 뒤 아저씨 형제들을 찾아 한번 더 모인 다음 다시 모일 기회는 아마 많지 않을걸요.”  넷째는 빨아들였던 연기를 토하며 “그건 그래. 오늘 같은 날에도 어떤 사람은 안 왔으니까!”  수초가 뒤이어 넷째에게 말했다.  “이 몇년간 관찰해보니 진로인이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아저씨였어요.”  넷째가 눈섭을 치켜세우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런데 난 왜 그걸 보아내지 못했을가?”  “만약 아저씨가 눈치 채게 했다면 아저씨 아버지 아니지요. 아저씨는 진로인이 생전에 누구와 말할 때 가장 눈을 많이 부릅떴는지 알아요? 바로 아저씨였지요.”  그 말을 듣고 넷째가 한참 멍청하게 있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  “눈을 부릅뜬 것도 관심으로 생각해야 돼?”  수초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생각하고 또 하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있을 거예요.” 얼마 지나지 않아 맏이와 둘째 집 사람들도 집안으로 더 들어가지 않고 휴대폰으로 물건을 실어갈 트럭을 부르고 있었다. 수초는 그제야 그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질녀와 질남들을 집안으로 들어가서 마음대로 물건을 골라가게 했다. 그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사람도 몇이 남지 않았다. 담배 한대를 피우는 사이에 누군가 진로인이 자체로 피나무가지를 손질해서 만든 지팡이를 들고 나왔고 누군가는 또 작탄 껍데기로 만든 녹이 알락달락하게 쓴 구리필통을 들고 나왔다. 또 누군가는 호두알 두개를 주었다. 그 호두를 수초는 잘 알고 있었다. 몇년 전 진로인은 그걸 손에 쥐고 자꾸 비벼댔다. 진로인은 그것을 농장의 늙은 호두나무 밑에서 주었다고 했다. 후에 중양절을 쇨 때 로간부국에서 매 로간부들에게 건강용 베아링볼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베아링볼은 움직일 때마다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진로인은 그제야 호두를 버렸다. 림종할 때 진로인은 그 베아링볼을 수초의 손에 놓아주며 “수초! 지난 몇년간 줄곧 날 돌봐줘서 정말 고마워. 이걸 기념으로 주니 받아주게나!” 했다. 모였던 사람들이 다 떠나가자 집은 휑뎅그렁했다. 어느덧 저녁이 되여 붉은 노을이 서쪽 하늘을 빨갛게 물들였다. 수초는 전화를 걸어 그 때까지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농장사람들을 불러왔다. 당년에 진로인이 여기에서 장기적으로 세내고 살아갈 계획을 농장 여러 사람들에게 말해주자 농장에서는 재빨리 집 수리와 인테리어에 착수해 원래 세칸이던 집을 다섯칸으로 뜯어고쳤다. 농장 령도들은 진로인이 여기에서 만년을 보내시는 건 우리 농장의 영광이니 장차 농장이 불경기에 처하더라도 로혁명가를 잘 모시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수초는 남아있는 진씨네 네 자녀 대표들에게 다시 한번 들어가서 잘 살펴보고 더 문제가 없으면 집 소유권 이전서에 서명하라고 말했다. 그들 몇은 수초 뒤를 따라 집안을 한칸한칸 순차적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어제날 진로인 부부의 숨소리와 살아가는 냄새로 꽉 찼던 집안에 남은 것이란 공허와 쓸쓸함 지저분함 뿐이였다. 바닥 여기저기에 가득 버려진 물건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물건들에 불과했다. 몇사람이 집 소유권 이전서에 막 싸인하고 있을 때 수초는 문득 벽에 비스듬히 걸려있는 낡은 거울틀을 보았다. 액틀은 면판이 작아서 안에는 몇장 안되는 옛날 사진이 들어있었다. 사진 속에는 가족사진이 있었고 진로인이 생전에 농장 동료들과 함께 찍은 집체사진도 있었다. 다른 한장은 언제인가 수초가 진로인을 부축하여 산을 내려오면서 찍은 사진이였다. 사진은 모두 퇴색하여 그다지 선명하지 않았다. 그중에서 칼라 사진이 가장 심하게 퇴색했다. 수초는 액틀을 벗겨낸 다음 바닥에 널려있는 낡은 옷으로 거울 우에 묻은 먼지를 닦으며 말했다. 이걸 누구도 가져가지 않으면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수초의 말에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그들이 수초에게 보여준 것이란 일부러 지어내는 초연함과 도망치듯 감추는 눈빛 뿐이였다. 혹시 셋째가 오늘 직접 이 집에 왔다면 옛날 사진이 들어있는 이 거울틀이 수초의 손에 들어올 수 없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셋째도 이미 60세를 넘긴 부인이여서 머리에 흰서리도 내려앉고 걸음걸이도 그다지 민첩하지 않았다. 진로인이 병원에 입원해있을 때 그녀만이 이틀 사흘 간격으로 병원에 찾아와서 진로인을 보살폈고 매번 진로인을 보러 올 때면 언제나 손에 닭고기탕이나 물고기탕이 들어있는 단지를 들고 있었다. 어떤 때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기가 올 수 없으면 아들이나 딸을 대신 보내기도 했다. 그녀 외의 다른 세 자녀와 그들의 식구들은 특수한 일로 병원에 오라고 전화하지 않는 한 거의 만나볼 수 없었다. 그들이 얼굴을 내밀지 않는 구실은 놀랄 정도로 일치했다. 말하자면 로인은 당의 사람이기에 로인의 일은 당을 믿고 당에 의뢰한다는 것이다. 진로인의 골회를 부인과 함께 합장한 후 셋째는 제일 마지막에야 묘지를 떠나면서 묘지 앞에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쫏듯 큰절을 올렸다. 그녀는 다시 한번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부터 이 딸이 두분을 만나뵈러 자주 여기에 찾아오겠습니다. 두분께서 하늘나라에서도 이 딸을 잘 보호해주시고 그곳에서 이 딸이 쓸 땅도 마련해주세요. 다음세상에 가서도 이 딸은 여전히 두분의 딸이 되겠습니다.”  셋째 말은 다시 한번 수초를 감동시켰고 슬프게 했다.  “피란 정말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피는 정말 물보다 짙은 것인가? 만약 낳아주고 키워준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친혈육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수초는 눈가장에 맺힌 눈물을 닦고 앞으로 걸어가 셋째를 부축하며 말했다.  “누님, 우리 이만 돌아갑시다. 이 몇년간 보여준 누님의 뜻을 로인님은 다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셋째가 말했다.  “난 여러분들이 모두 집에 일이 있다는 걸 알아요. 그러니 난 따라가지 않겠어요. 내가 여기에서 좀더 있으면서 아버지 어머님을 동무해드리면 안될가요?”  수초가 셋째를 보며 말했다.  “누님이 가시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네형제중 그 누구도 빠지면 안됩니다.”   셋째가 또 수초에게 사정하듯 말했다.  “정 그렇다면 저의 딸을 불러서 데리고 가요. 그 애가 나를 대표해 참가하면 돼요.”  밤장막이 서서히 내리고 있다. 옛날의 진씨네 집 식구들은 모두 가고 방에는 수초 한 사람만 외롭게 남았다. 수초는 갑자기 피곤을 느꼈다. 두다리가 힘이 빠져 후들거리는 데다가 마음까지 시큼해나서 어딘가에 숨어서 울고 싶었다. 진로인이 세상 떠서 지금까지 옹근 사흘 낮 사흘 밤 그는 쉼없이 빈객을 맞고 바래고 크고작은 가정회의를 소집하고 장례와 관계되는 모든 일들을 주관하면서 마치 자기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을 대하는 것처럼 줄곧 랭정하려 애썼다. 그러나 지금 긴장됐던 마음이 조금 풀리자 이제야 진풍년로인이 정말 떠나갔다는 생각이 실감 있게 찾아들었다. 그래, 진로인은 멀리 간 거야. 우리가 모르는 다른 한 세계로. 이제부터 진로인은 다시는 만날 수 없어. 수초는 진로인을 존경했다. 그러나 바로 존경하기 때문에 로인의 사망에 대해 이렇듯 절절한 애통과 비애, 공허함과 처연함을 느끼는 것이다. 네 자녀 중에서 다만 진로인과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딸만이 가까이 다가와서 살갑게 대했으니 진로인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수초는 어디에 가서 어찌해볼 방법이 없는 로인의 난감함과 답답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진로인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아물 수 없는 흉터가 남아있었다. 평소 사람들은 알면서도 그것을 건드리지 않으려 했고 더 상하게 하지 않으려 했다. 안해가 생존해있을 때에도 례외는 아니였다. 수초는 거울틀을 품에 안고 문밖의 계단 우에 쪼크리고 앉았다. 웬 영문인지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끊임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날 저녁 수초가 거울틀을 뜯어서 잘 닦은 다음 그 속에 들어있는 낡은 사진들을 자신의 사진첩에 옮겨놓으려고 거울틀의 모서리에 박혀있는 작은 못을 뽑아내고 사진틀 뒤에 있는 엷은 합판을 젖히는 찰나, 하나의 중요한 발견을 했다. 그 발견이란 화선지 우에 그려놓은 그림 한장이였다. 휘우듬하고 단단하게 우뚝 선 늙은 소나무 가지 우에 앉은 대머리 독수리 한마리가 동그렇게 뜬 매서운 눈으로 멀리 바라보며 막 날아가려고 몸을 한껏 움츠리고 있었다. 보는 사람의 눈을 그대로 사로잡는 독수리의 두 눈은 칼끝 같이 예리하고 악마 같이 흉악했다. 그림은 모두 먹으로만 그려졌는데 어떤 곳은 진하게 먹을 뿌리고 어떤 곳은 담백하게 슬쩍 칠해서 세밀한 화법과 간단한 스케치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게 했다. 그러나 화법보다는 그림이 보는 사람에게 주는 이미지가 기절할 만큼 충격적이였다. 그림의 왼쪽 아래 귀서리에 있는 락관에는 로유을묘년동老榆乙卯年冬日이라고 찍혀있었다. 그림에서 다만 도장만이 주홍색이였는데 바로 그 주홍색 때문에 화면이 보다 선명하고 산뜻하게 보여서 보는 사람에게 남다른 감개와 감동을 주었다. 그림 앞에 선 수초는 어리둥절한 채 못 박힌듯 오래도록 움직일 줄을 몰랐다. 을묘년, 당시는 바로 1975년이였고 바로 ‘문혁’이 끝나기 1년 전이다. 수년 전 수초는 진로인과 한담하다가 그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문혁’ 때 성소재지에서 한 화가가 살았는데 나이는 진로인과 비슷했고 그림 때문에 반혁명 루명을 쓰고 이곳 농장에 로동개조하러 왔다고 했다. 그 화가는 술을 잘 마셨는데 술을 마신 뒤에는 쩍하면 고함도 치고 노래도 불러대서 우사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싫어했다. 어느 해 겨울 화가가 병으로 몸져눕자 진로인은 그를 집으로 데려와 몸조리를 하게 했다.  “기인은 모두 이상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술을 마시지 않으면 붓을 잡기 싫다더군. 조금이라도 입에 술을 대야 필끝에서 신바람이 인다고 늘 말했지.” 그 때 수초가 진로인에게 물었다.  “화가를 집에까지 청해서 보살폈는데 그 때 그림 몇장이라도 그려달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 말에 진로인이 하하 통쾌하게 웃고는 한참 후에야 말했다.  “무슨 체면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겠는가?! 게다가 설사 그려준다 하더라도 나야 보고 모르지 않는가!”  수초가 진로인에게 물었다.  “그가 그렇게 엄중한 죄명을 썼다는데 무슨 그림을 그릴 줄 안대요?”  진로인이 대답했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 화가는 독수리를 그리는 것이 특기라고 하더군. 그런데 독수리를 그리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대머리 독수리만은 그리지 말았어야 했어. 그가 그린 대머리 독수리 그림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그가 장개석의 혼을 부른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림표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한다고 했다네. 장개석과 림표는 다 대머리 아닌가! 어휴~ ‘문혁’ 때는 이러한 황당한 일들이 많았지.”  수초가 또 물었다.  “그 화가가 떠나간 뒤 그 분과 더 련락하지 않았어요?”  진로인이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련락이라는 게 다 뭔가! ‘문혁’이 끝나자 그 화가는 성소재지로 돌아갔지. 그런데 듣는 말에 의하면 성에 도착하자마자 기쁜 김에 친구들을 찾아 술을 마시며 경축했는데 그 날 밤 너무 과음한 탓에 그 자리에서 취해 쓰러진 뒤 다시 깨여나지 못하고 승천했다지 뭔가! 어휴~ 이제 와서 보니 그가 성으로 돌아가지 말고 여기 농장에 계속 있었더라면 어쩌면 몇년 더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보아하니 그 화가가 바로 유씨였다. 유씨는 진로인의 댁에 자리를 옮겼다가 병이 낫자 진로인과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면서 진심을 털어놓았다. 혹시 술을 마신 뒤 주흥을 이기지 못해서였을가? 유씨는 진로인 집에 선지를 펴놓고 당장에서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력사의 화책에 길이 남을 대머리 독수리 그림을 그려서 선물했다. 혹시 진로인이 이 대머리 독수리 그림이 진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알고 또 유씨에게 죄명을 들씌울가봐 조심스럽게 거울틀 뒤에 감추어놓았는지도 모른다. 같은 도리로 유씨도 이 그림이 진로인에게 혹시 쓸 데 없는 시끄러움을 끼칠가봐 그림에 아정雅正이라든가 혜존惠存과 같은 글귀를 남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에 이르러 유씨와 진로인 모두가 학을 타고 신선이 돼서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수수께끼로만 남았다.   그 날 저녁 수초는 컴퓨터로 인터넷에 올라 바이두百度에서 유씨와 그의 그림의 가격을 검색해보다가 입이 딱 벌어져 한동안 숨도 바로 쉬지 못했다. 알고 보니 유씨는 화단에서 진작 잘 알려진 명숙名宿이였고 그의 유작은 그 어느 작품이나 천문학적인 값을 호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혹시 더 비싸지 않을가? 며칠간 련일 쉼없이 바쁘게 돌아친 수초는 실면했다. 명화가의 명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보통사람인 수초로서는 어떻게 해도 풀 수 없는 골드바흐의 추측이였다. 진로인의 넷째에게 줄가? 그러나 한장의 그림을 어떻게 평균 분배한단 말인가? 네형제자매가 만약 그림을 팔아서 돈을 나누어가지자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일을 말하지 않고 하자면 시끄럽지 않을가? 무서운 건 유씨네 자녀들이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림의 소유권 문제를 추궁하면 그 소송은 절대 짧은 시간 내에 공정한 판결이 내려질 일이 아니였다. 그럼 로간부국 령도들에게 바친다? 그러나 속담에 ‘철로 만든 아문, 흐르는 물 같은 벼슬’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지금의 국장들이 승진하거나 파면돼서 혹 다른 곳에라도 가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장래의 국장들 또한 어느 시점에서 신선이 되고 꽃잎새처럼 스러져버릴지 누가 알겠는가! 그럼 내가 소장하고 있을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수초는 가슴이 쿵쿵 높뛰여 자기도 모르게 벌떡 자리를 차고 침대에서 일어나앉았다. 그 바람에 옆에서 자고 있던 안해가 잠을 깨고 짜증냈다.  “귀신 같이 왜 이래요? 진로인이 꿈에 나타나 부탁한 걸 가지구 놀랄 것까지야 없잖아요!”  수초는 길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베개를 베고 도로 누웠다. 진로인의 유물들은 이미 네 자녀에게 평균으로 다 나누어주었고 분배 일정과 결과를 타자한 서류에 서명까지 깨끗이 했다. 그건 철 같은 증거이다. 지금 손에 있는 그림은 그들 네 자녀가 모두 가지지 않은 버린 물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후에 간혹 이 ‘독취도秃鹫图’가 세상에 공개돼서 사람들이 수초가 진로인의 유물을 나누기 전에 화가의 그림을 사적으로 감추어두었다고 모함하면 어떻게 변명해야 하는가?! 어느덧 창문 밖이 희붐히 밝아왔다. 이른아침부터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의 경적소리와 차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창틈을 비집고 간간이 들려왔다. 진로인이 선대仙台로 갔다고는 하지만 아직 첫 7일 종이를 태우지 않았고 내하교奈何桥도 건너지 못하고 맹파탕孟婆汤도 드시지 못해서 집에서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못했을 것이다. 수초는 어서 잠들기를 바랐다. 그래야 진로인이 꿈속에 나타나 어떻게 해야 안전할지 그에게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국 옮김)   출처:2018 제3호
윤림호론: 약자에 대한 동정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 최병우   1. 서론 윤림호는 소년기에 문혁 초기 홍위병들에 의한 혼란을 경험하고 문혁중에 성장한 세대이다. 윤림호는 1954년 5월 23일 흑룡강성 동녕현 로흑산향 만보만에서 윤영호와 라경옥 부부의 7남 3녀 중 아홉째로 태여났다. 형들이 다 요절하는 통에 아들이 귀한 집안에서 허약한 몸으로 태여난 윤림호는 자라면서 점차 건강해져 집안의 유일한 아들로 성장하였다. 아버지의 하방으로 쏘련과의 변경지대인 동녕현 삼자구향 포자연촌에서 소학교를 다니던 윤림호는 5학년 때 문혁이 시작되자 소학교를 자퇴하고 사회로 나온다. 윤림호의 아버지는 친일부역죄로 문혁 내내 타도대상이였고 남편 때문에 고초를 겪던 윤림호의 어머니는 1972년 사망한다. 어머니가 죽은 이듬해 둘째누이가 사는 흑룡강성 해림현 해남향 남라고촌으로 이주해 촌당지부서기였던 자형의 도움으로 벽돌공장 로동자 생활을 하며 1978년 박순녀와 결혼하여 두 딸을 얻는다. 아버지의 력사문제로 고민하던 윤림호는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저 1977년 겨울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로동과 창작을 병행하였다. 투고한 작품마다 주제가 산만하고 언어사용이 합당하지 않다는 리유로 퇴짜를 맞았는데 소학교 중퇴 학력인 윤림호로서는 리해하기 힘든 일이였다. 1979년 봄 《흑룡강신문》에 투고한 가 발표된 뒤 윤림호는 남라고촌에 살면서 창작을 지속하였고 1983년 조선족작가 양성의 필요성에 따라 연변대학교에 설립한 연변대학교 문학반에 입학하여 1985년까지 수학하였다. 졸업 후 윤림호는 1987년부터 1988년 사이 《송화강》편집부에서, 1993년부터 1996년까지 《꽃동산》 소년아동 편집부에서, 1997년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조문편집부에서 편집담당으로 근무한 3년 반 정도와 1996년 10월에 세계한민족문학인대회에 참가 차 한국에 갔다가 불법체류한 6개월을 제외하고는 농민작가로서 창작에 전념하였다. 그 결과 윤림호는 세권의 소설집과 두편의 장편소설 그리고 적지 않은 수의 중단편소설과 동화와 수필 등을 남기고 2003년 3월 31일 간암으로 타계하였다. 윤림호는 작품의 량이나 작가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평문이 열대여섯편에 불과할 정도로 비교적 평단의 관심 밖에 놓여있었다. 본고는 그의 소설 전체를 주제적 특징에 따라 정리하고 이러한 주제가 조선족이 처한 상황의 변화와 윤림호의 개인적 삶 등과 어떤 관련을 갖는가를 밝히고저 한다. 윤림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준 사건으로 청소년기의 삶을 규정한 문혁과 개혁개방, 인간으로서 또 작가로서의 삶에 변화를 준 연변대학 문학반 생활 그리고 조선족의 삶을 뒤흔든 중한교류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윤림호가 1985년에 《투사의 슬픔》을, 1992년에 《고요한 라고하》를 출간하고 2000년대에 들어 《조막손로친과 세다리 개》와 《승냥이가 울던 계절》 등을 상재한 것은 윤림호의 삶의 전환점과 어느 정도 일치점을 갖는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본고에서는 각 시기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주제의 경향을 정리하고 각 시기에 그러한 주제에 집중하게 된 내외적 요인을 찾아보고저 한다.    2. 억압된 정치상황 속의 감추어진 영웅 윤림호는 1983년 연변대학교 문학반 신입생을 선발할 때 흑룡강성에서 추천한 3명에 속해 소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대학생이 되였다. 서른 나이의 가장인 윤림호는 인생수업이나 문학수업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과목만 열심히 수강하고 여타의 과목은 불성실하게 넘어갔다. 당시 문학반의 대부분 학생들이 이미 결혼을 하였고 등단한 사람들도 없지 않아서 공부보다는 정치토론이나 문학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윤림호는 1985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등단 이후 쓴 작품들을 모아 《투사의 슬픔》을 간행한다. 그가 대학 졸업을 맞아 첫 작품집을 기획한 것은 소학교 중퇴 학력으로 소설가가 되여 작품을 창작하고 연변대학교 문학반에서 소설이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시각을 확보하고 난 뒤, 작가로서 하나의 전기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 하겠다. 《투사의 슬픔》에 수록된 작품들은 작가로서 출발점에 서서 정열적으로 창작에 림하던 시기의 문학정신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들이 지향하는 주제를 파악하는 일은 윤림호 소설의 밑바탕을 읽어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소설집 《투사의 슬픔》에 수록된 17편의 소설은 등단 후 6~7년간 발표한 작품 중에서 선정되여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 윤림호가 등단한 것은 문혁 직후인 1979년으로, 사회주의 리념 강화로 국가적 혼란을 경험한 중국 사회가 새시대로 나아가려 하지만 리념을 중시하는 보수파와 실리를 중시하는 진보파의 갈등으로 일정한 방향성을 갖지 못한 시기였다. 이 시기 중국 문단은 문혁의 상처를 기록한 상흔문학과 문혁시대를 반성하는 반사문학 등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투사의 슬픔》에 실린 작품 대부분은 새로운 시대를 지향하여 집체에서 개체로 나아가는 시기에 자신이 경험한 중국 현실을 소설화하고 있다. 특히 이들 작품은 중국현대사의 모순에 찬 시대에 주위의 비난을 감수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실천했던 인물, 즉 외곡된 현실 속에 감추어진 작은 영웅들을 기린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단편소설 은 위만주국 때 순사를 지낸 전력으로 정치투쟁의 대상이 되여 온갖 박해를 받다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절름발이 령감 렴창록의 숨은 과거를 제재로 한다. 위대한 항일투사 황영옥의 아들 김기욱이 교사가 되여 룡드레촌에 부임하자 친일분자로 마을 사람들의 멸시를 받는 절름발이 령감이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 당혹스럽게 한다. 자주 어머니의 안부를 묻던 령감은 죽음을 맞이한 순간 김기욱을 불러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말을 남긴다. 정치투쟁의 대상이였던 렴창록의 말에 모멸감을 느낀 김기욱이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하자 단숨에 달려와 심심한 조의를 표해 기욱을 당혹하게 한다. 어머니의 회고에 따르면 렴창록은 지주의 아들로 위만주국 시대에 순사를 지내 해방된 중국에서 정치투쟁을 받았지만 실상 그는 아버지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순사가 되였던 인물이다. 그는 짝사랑하던 황영옥이 항일운동을 하다 감옥에 갇히자 그녀의 부탁으로 항일무장단체에 일군의 동태를 전해주고 사형장에 끌려갈 때 사형집행인을 죽이고 총을 쥐여주면서 일을 수습한 후 항일무장단체에 귀순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황영옥을 추격하는 일본군을 따르다가 그녀가 쏜 총에 다리를 다쳐 순사를 그만두고 만다. 황영옥은 렴창록이 자신의 총에 맞아 죽은 줄만 알고는 그를 잊고 살았고 렴창록은 력사반혁명분자로 투쟁을 당하면서도 황영옥의 공적에 루가 될가 두려워 사실을 감추고 살았다. 은 한 투사의 회고를 통해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후 지주계급과 국민당 특무 그리고 친일분자를 투쟁의 대상으로 삼아 과거청산은 이루었겠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한 희생을 당했겠는가를 묻고 있다. 아울러 렴창록과 같이 암울한 시기를 살면서 과오보다 공적이 적지 않았음에도, 박해를 당하면서도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렴창록 같은 인물이야말로 암울하고 억압적인 정치상황 아래서 진실한 삶을 산, 감추어진 영웅이라 주장한다. 이렇듯 《투사의 슬픔》에 실린 작품들은 사회적으로 숭앙을 받을 만한 인물은 아닐지라도 억압된 시대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한 감추어진 영웅을 현양하는 데 바쳐지고 있다. 은 19년 동안 라고하에서 배사공 일을 하며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다가 라고하다리를 건설하는 공사가 시작되자 모아두었던 돈을 희사하고 다리가 완공되기 직전에 숨을 거둔 로인의 일생을 통해 남을 위해 헌신하는 작은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에서는 말광대다리 자리에 새 다리를 건설하려 애쓰던 할아버지가 문혁 중에 비판받다 죽고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할아버지를 돕던 벙어리 삼쇠가 자발적으로 헌금을 하자 마을사람들도 참여해 다리를 완공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리익을 돌보지 않고 마을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인물이 진정한 영웅이라는 시각을 드러낸다. 또 에서는 조선전쟁 때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경계심을 풀어내고 한국군의 특무로 체포된 명림의 마음을 되돌려 정보를 얻지만 총상으로 죽은 리철주 반장이, 에서는 녀성스럽지는 않지만 세쌍둥이 중 막내로 집안일을 다 하고 농사도 혼자 지어 집안의 기둥이 되는 삼숙이가, 에서는 자기 집 머슴을 도와주다 함께 도망쳐 정치투쟁이 심하던 시기에 비판을 받았으나 남편을 위해 헌신하다 죽은 녀성이, 에서는 항일운동을 하던 인물을 구하기 위해 일본인 의사를 죽였으나 놈이 지른 불에 다섯명의 환자가 죽어 해방 후 살인죄로 투쟁당한 큰아버지가, 에서는 혁명영웅이라는 이름 때문에 마을 일에 앞장서다 건강이 망가진 안해를 조금이라도 쉬게 하려 애쓴 남편이 등장한다. 또 이 작품들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리랑》 1986. 5)도 위만주국 말기부터 문혁까지의 무법적인 시대에 사령산의 나무를 지켜내려 노력하다 죽어 사령뫼에 묻힌 네 사람과 그들의 딸로 태여나 산과 나무를 돌보며 사령산을 미래의 자원으로 키우다가 실화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고 죽어 사령뫼의 다섯번째 인물이 된 산골처녀를 그리고 있다. 이들의 삶은 국가정책에 따라 모든 사람이 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 강요되는 정치상황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이 아니였지만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어 주변에서 그들을 칭송하지 않더라도 진정한 가치를 실천한 것이다. 윤림호는 이러한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듯하나 쉽지 않은 길을 간 사람들의 삶을 통해 억압된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킨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감추어진 영웅임을 강조한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와 타인에 대한 사랑을 견지한 작은 영웅들에 대한 관심이 윤림호의 초기 소설이 지향한 세계였다. 몇년간의 노력을 통해 등단을 하고 늦은 나이에 가장의 책무를 버려두고 가족과 떨어져 대학생활을 하면서 윤림호는 문학에 대한 열정과 인간의 진정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창작에 림하였다. 그의 초기소설이 보여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는 삶에 대한 례찬은 그의 초기소설을 관통하는 한 주제였다. 그의 이러한 인간다움에 대한 경사는 억압된 정치상황에 따라 시대의 흐름에 부화뢰동하여 인간성을 상실한 인물을 비판하는 소설로 변형되여 나타난다. 에서 문혁 중에 극렬좌파로 나선 한길녀는 남편 문일령감이 아들 약값에 보태려 시작한 담배밭을 고발하여 갈아엎고 인삼밭을 몰래 개간하자 소자본주의의 길로 나간다고 고발하려 한다. 또다시 조리돌림당할 일이 겁나고 너무나 변한 안해가 무서워진 령감은 안해의 목을 조른 뒤 스스로 목을 매여 죽는다. 다행히 죽음을 면한 안해는 남편의 유서를 보고 각성하여 공산당적을 버리고 참회 속에 살다 사망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령감의 인삼밭에서 몇년 묵은 인삼들이 발견되자 현정부에서는 큰 관심을 보인다. 문혁기간 중 그들이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문일령감이 억압의 시기에도 묵묵히 인삼밭을 일구고 경제문제에 치중한 데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린 것이다. 이 작품은 문혁이라는 정치적 광풍 속에 변해버린 인간성을 비판하고 그 속에서도 자신의 일에 충실했던 인물을 재평가하여 개혁개방 이후의 경제 정책을 옹호하고 있다. 로동영웅, 상장 등으로 호도하여 로동력을 착취하던 문혁이라는 정치황이 만든 사회적 혼란과 그에 부화뢰동하여 인간성을 내팽개친 인간들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보이는 이 작품은 《투사의 슬픔》에 실린 소설 중에서 가장 강한 비판 정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투사의 슬픔》에 실린 소설들은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보다는 렬악한 현실상황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움을 견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는바, 그 대표적인 례가 이다. 이 작품은 개혁개방으로 경제정책이 책임제로 전환된 후, 알뜰한 집안 살림으로 부자가 되지만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못 받는 조령감과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일을 도와 마을 인심을 얻어 좌상으로 숭앙받는 오로인과의 비교를 통하여 상부상조하는 공동체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몇년래 정책이 좋아지여 우리에겐 살길이 열리였네. 그러나 빨리 부유해지고 늦게 부유해지는 자가 있지만 빨리 부유해졌다구 사람들을 떠나선 안되네. (《투사의 슬픔》, 46쪽)   개혁개방으로 경제적인 부가 축적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면서 빈부의 차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적인 부지런함으로 다른 사람보다 부유해진 조령감은 자신의 부가 노력의 결과라는 생각에 마을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살다가 따돌림을 받는다. 오로인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억울해하는 오랜 벗 조령감에게 공동체의식을 가질 것을 부탁한다.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자유로와진 시대에도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자세와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충고이다. 이는 정치적 억압이 사라지고 경제적 자유가 주어진 시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작가 윤림호의 대답일 것이다.   3. 시대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 문혁이 끝나고 개혁개방이 본격화하면서 중국사회는 점차 경쟁이 치렬해지고 빈부의 차가 생겨나기 시작하여 돈에 대한 열망이 폭발한다. 개혁개방은 개인적인 부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였고 소수의 사람들이 부를 축적하여 개혁개방의 혜택을 누리게 되자 가난하나마 공동의 가치를 지향하던 마을이 와해되여 타락한 방법으로라도 부를 획득하기 위하여 혈안이 된다. 특히 조선족사회에서는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으로 대한민국의 존재를 알게 되고 가족방문의 형태로 한국에 가서 큰돈을 벌어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돈을 벌기 위해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출국을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일들이 빈발한다. 윤림호는 《투사의 슬픔》을 출간하고 남라고촌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창작을 하는 생활을 이어간다. 정치적 억압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작은 영웅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윤림호는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를 바라보면서 개혁개방이 갖는 의의보다는 그에 부응하여 폭발하는 인간의 욕망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윤림호는 7년 동안 발표한 소설 중에서 단편소설 13편과 중편소설 2편을 선별하여 한중수교가 이루어지기 직전에 《고요한 라고하》를 출간한다. 이 작품집에 실린 작품에서 우선 눈에 뜨이는 주제는 사랑인바 그 례로 로년의 사랑을 담고 있는 을 들 수 있다. 할머니가 산속 움막의 륙손이로인과 정분이 나서 돼지풀을 뜯으러 다니는 것을 안 아들 내외가 소문이 두려워 산에 가지 못하게 돼지를 팔고 남은 것은 도축한다. 륙손이로인을 만나지 못하게 된 할머니는 시름시름 앓고 로인이 찾아와 아들 내외에게 산속에 데려가 병을 고치겠다고 하나 거절당한다. 결국 할머니는 병으로 죽고 륙손이로인은 라고하에 투신자살한다. 삶의 끝자락에 선 로인들이라도 사랑을 느낄 수 있지만 자식들은 주변의 소문이 두려워 그것을 막는 것이 보통이다. 윤림호는 이러한 일반적인 행태에 대해 로년의 진실한 사랑이 그들에게 하나의 권리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누가 소문이라는 굴레로 로년의 사랑을 막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주변의 소수자, 약자들의 사랑에 대한 윤림호의 관심은 여러 작품에서 반복된다. 옆집 홀아비에 대한 관심을 주변과 시어머니의 눈 때문에 포기한 미망인 미금이가 리혼녀인 친구 미자가 홀아비와 결혼하자 미쳐가는 과부의 욕망을 그린 , 쌍둥이 아들을 가진 남선생과 사랑하여 자식을 얻는 추녀 녀선생의 사랑을 그린 , 남성스러운 외모와 성격으로 산속에서 양봉을 하며 홀로 지내던 손이랑이라는 처녀와 약재밭을 관리하러 온 정호와의 사랑과 리별을 그린 , 아버지의 력사로 살길이 없어 방목장 한족 장서방에게 팔려간 천치 빵떡이가 보여주는 남편과 동생에 대한 사랑을 그린 등의 작품이 그 례이다. 약자의 사랑, 인간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이성에 대한 욕망을 비난하기보다 그것을 리해하고 이성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그들의 권리이며 그들도 인간임을 강조한 이들 작품은 윤림호의 인간관을 잘 보여준다. 《고요한 라고하》에는 개혁개방과 한국과의 교류에 따라 일확천금하려는 욕망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다수 등장한다. 에는 가공공장 민창호와 양돈호 우대일 그리고 양계호 오봉식 등 선향촌에서 개체로 공장과 농장을 하려는 세 동서가 등장한다. 이들은 선향촌 출신으로 해외에서 부호가 된 우락부로인이 고향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행정단위 사람들을 따돌리고 로인을 마을로 모셔 극진히 대접한다. 그러나 많은 음식을 준비하여 아부하는 민창호, 안해 묘란의 애교로 환심을 사는 오봉식, 동성동본임을 내세워 접근하는 우대일 등이 각자의 욕심 때문에 갈등하지만 로인이 갑자기 죽어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된다. 개혁개방 이후 화교들이 고향에 투자를 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풍자한 이 작품은 돈을 벌려는 욕심에 들끓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이 작품의 말미에 우락부로인의 아들이 장례를 치르고 나서 세 동서에게 하는 마지막 말에 작품의 주제가 요약되여있다.   나는 부친이 오시기 전후의 일들을 다 료해하였습니다. 동포로서의 나의 이번 체득은 아주 깊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규납(귀납, 필자)한다면 합심이 투자보다 낫다는 그거지요. (《고요한 라고하》, 32쪽)   외국에서 들어오는 투자금을 잡기 위해 경쟁하기보다 합심하라는 이 말은 개혁개방으로 외국자본이 투자되고 화교들이 고향에 투자하는 상황에 대처할 방안을 소설적으로 제시한 것이라 하겠다. 투자를 기대하고 각자도생하기보다는 합심하는 것이 낫다는 지적은 개혁개방 직후 집체에서 개체로 나아가는 시기에 중국의 농촌사회가 겪은 현실과 새로운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잘 보여준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에서도 그려진다. 항미원조전쟁에서 포로가 되였던 과거 때문에 정치투쟁의 대상이 된 피덕구는 리혼을 당하고 자식과도 계선을 나눈 채 어렵게 살아간다. 그런데 한국에서 전사한 줄 알았던 전우 정회찬의 편지가 오자 왕래도 없이 지내던 두 아들은 갑자기 효도를 하고 새 남편이 감옥에 간 전부인도 찾아온다. 정치투쟁의 대상이 되여 힘든 아버지와 계선을 나누고 왕래를 단절했던 아들들이 한국에서 편지가 오자 돈을 벌 기회가 왔다는 욕심에 아버지를 서로 모시겠다고 싸우는 모습은 개혁개방과 한국과의 교류 이후 돈에 대한 욕망만 가득한 현실을 희화한 것이라 하겠다. 자신의 행동은 반성도 않고 돈만을 따라 달려드는 인간의 모습을 비판한 작품으로 백만호 부자와 불로담이라는 오지에 살고 있는 구구할미와의 관계를 그린 가 있다. 백만호의 아버지는 항일유격대의 자식인 자신을 불로담에 데려다 길러준 구구할미의 남편이 친일문제로 투쟁당했을 때 외면하고는, 자신이 정치적 리유로 타도되자 아들을 불로담에 보낸다. 백만호는 구구할미가 데려다 키운 깜장네를 겁탈하고 부부로 인정받았지만 아버지가 명예 회복이 되자 도시로 도망쳐 련락을 끊어버린다. 그러나 사업을 벌였다 망한 백만호는 큰돈을 벌었다는 구구할미를 찾아 불로담에 가서 대형 식당의 경리가 된 깜장네와 자신의 딸 산매를 만난다. 질병을 고쳐준다는 불로담이라는 신성 공간에서 백만호 부자의 모든 잘못이 용서되여 설화 같은 분위기를 보이는 이 작품은 자신에게 리익이 된다면 두번씩이나 배신하고 도망쳐 련락을 끊었던 곳까지 찾아가는 인간의 얄팍한 욕심을 보여준 점이 문제적이다. 이들 작품과는 달리 중편소설 에서는 렬사비에 적혀있던 사람이 퇴역장군이 되여 고향을 찾자 그의 위엄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장군의 젊은 시절 안해인 곱추할미와 서로 사랑하던 청춘남녀가 자살하게 하고 장군이 낚시할 장소를 만들다가 들판이 물에 잠기게 되자 장군의 손녀가 장군을 설득해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를 통해 귀향한 퇴역장군이 마을에 베풀 작은 리익을 기대해 일을 벌이는 소인배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이 작품은 개혁개방에 따른 돈에 대한 열망의 폭발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작은 리익 때문에 마을 사람들을 압박하고 퇴역장군의 눈에 들기 위해 온갖 불합리를 저지르는 인간을 풍자한다는 점에서는 우의 몇 작품과 동궤를 이룬다. 《고요한 라고하》에 실린 작품들은 남녀 사이의 진정한 사랑의 의미, 개혁개방 이후 돈에 대한 열망으로 변화한 인심 등을 소설화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와는 달리 라고하 배사공을 하며 고향을 떠나 두만강을 건널 때 헤여진 누이와 미국, 카나다, 일본, 한국으로 흩어진 자식들을 기다리다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로인을 그린 과 조선전쟁 때 만주로 이주해 라고하 배사공을 하며 평생 고향을 그리면서 산 부친이 한국에 두고 온 안해의 련락으로 고향방문 팀에 합류하나 출발 직전에 지병인 심장병이 발작해 사망하는 내용을 담은 등은 조선족의 리산과 이주의 체험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들은 만주로 이주하여 평생 떠나온 고향을 그리며 산 조선족들의 삶을 제재로 선택한 점에서 이주문학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작품들에서는 리산의 경험을 가진 조선족 1세대들과 만주에서 태여나 자란 2세대들의 고향의식이 같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라고하! 아버지께서 뿌리내린 곳, 어머니께서 묻힌 곳, 내가 나서 자란 고향, 여기에도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자랑과 피어린 투쟁사가 찬란하게 새겨져있는 것이다. (《라고하 배사공》, 97쪽)   에서 고향 방문을 하지 못하고 사망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그가 만주에서 새로 결혼하여 얻은 딸은 아버지가 평생을 잊지 못한 고향이 한국이듯이 자신의 고향은 바로 이곳 만주땅이라 생각한다. 조선족의 후예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땅이 선조들이 과경민족으로서 피어린 투쟁을 통해 힘들게 뿌리내린 이방이지만 자신들에게는 고향일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이는 한국과의 만남으로 조선족들이 경험한 정체성에 관해 윤림호의 견해를 드러낸 것으로 중한수교 이후 한국체류를 통해 조선족들이 경험한 이중정체성을 선취한 것이라 하겠다. 윤림호는 대학을 졸업하고 1987년부터 1년 정도 할빈에 소재한 《송화강》잡지에서 편집으로 일한 이외에는 남라고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창작에 힘을 기울였다. 이 시기 대학생활에서 작가로서의 능력과 자존감을 확인한 윤림호는 개혁개방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조선족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작가로서 왕성한 창작열을 가지고 개혁개방으로 급변하는 중국사회와 조선족이 경험하는 정체성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 개혁개방으로 나타난 금전만능주의와 인간의 도리를 잊어버리는 세태를 비판하는 작품과 자신들이 터 잡은 이 땅이 부모들의 피땀으로 일군 진정한 고향임을 보여주는 작품을 다수 발표하는바 이는 작가로서 현실을 바라보는 치렬한 의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에서와 같이 설화적 세계에 대한 탐닉을 보이거나 에서 보이는 주제의 분산은 작가로서의 긴장이 약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4. 환상을 통한 야생과 인간의 대비 윤림호는 1990년대 중반에 《꽃동산》잡지사와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근무하던 3년 반 정도를 목단강에서 살았고 6개월 남짓 한국에서 불법체류하는 등 4년 정도 도시 생활을 하였는데 이는 남라고촌에서 생활하던 그에게 있어 커다란 변화였다. 이 시기 10여년 동안 윤림호는 그로서는 번잡하게 살면서도 소설집 《조막손로친과 세다리 개》와 장편소설 《승냥이가 울던 계절》을 상재하고 장편소설 《명암의 세계》(《연변문학》 2000.1~2000.10)를 련재하였으며 (《천지》1998.6)을 비롯한 중편소설 10여편과 30여편의 단편소설 그리고 10여편의 동화와 적지 않은 수필과 수기 등을 발표하였다. 이 시기에 발표된 윤림호의 작품은 한국체험의 등장 여부에 따라 크게 두 경향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조막손로친과 세다리 개》에 수록된 9편의 소설 중에서 한국체험이 등장하는 작품은 한국에 가서 큰돈을 벌어오는 일을 소재로 사용하는 과 뿐이고 나머지 일곱 작품과 장편소설 《승냥이가 울던 계절》에는 한국체험이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 장편소설 《명암의 세계》는 작가 자신의 한국체험을 바탕으로 창작되였다. 《고요한 라고하》를 상재한 직후 중한수교가 이루어지고 조선족들의 한국행이 본격화되여 조선족사회의 이슈가 되였고 작가 자신이 한국에서 불법체류를 한 바 있음에도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에 한국행 열풍이나 한국체험 등이 등장되지 않은 것은 매우 특이하다. 는 한국에서 큰돈을 벌어와 삶은 풍요해졌지만 인정을 상실한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아이를 낳지 못하고 홀과부가 된 회령댁은 어미 잃은 한족아이를 양아들로 키우며 살림이 어려워 버려진 오두막에 살다가 다리가 셋 밖에 없는 강아지를 데려다 키운다.   그 때 보니 뒤다리 하나가 이런 병신이더군. 낳자 그런 병신이였던가봐. 주인집에서 싫다고 내다버린 게 분명했네. 그래서 난 불쌍히 여겨 감자씨광주리에 넣어 머리에 이고 왔네. 집에 들어서자 우리 영욱이가 보더니 내다버리라고 하더군. 내가 숨 가진 걸 그러면 못쓴다고 나무람하자 영욱인 개도 크면 사람처럼 은혜를 알 줄 아는가고 날 비난하더군. 나 그거야 키워봐야 안다고  대답했네. 내가 평생에 음덕 두가지를 쌓았다면 하나는 영욱이를 키운 거구 하나는 놔두면 죽었을 이 세다리 개를 가져다 키운 거라네. (《조막손로친과 세다리 개》, 183쪽)   양아들 영욱이 한족으로 족적을 바꾸기 위해 오두막으로 찾아온 자리에서 며느리에게 세다리 개를 키우게 된 경과를 말하는 인용부분에서 작품의 주제가 직접 로출된다. 자식을 키우고 싶었던 회령댁은 한족아기 영욱을 얻어다 조막손까지 되여가면서 정성을 다해 키웠다. 하지만 헤여진 지 50년 만에 남동생에게서 련락이 오자 영욱은 돈을 벌 기회라며 조선족으로 족적을 바꾸어 한국에 다녀와 새 집을 짓고 한족녀자와 결혼하지만 로친을 모시지 않는다. 그러다 사기를 당하고 리혼해야 할 상황에 다시 만난 생부의 재산을 탐내여 한족으로 족적을 바꾸겠다고 한다. 조막손로친이 영욱의 처신에 마음을 비우고 집을 나서는 순간 낡은 오두막이 무너지고 로친이 죽자 그녀의 무덤은 세다리 개만 지키고 있다. 이 작품은 데려다 키운 양아들과 얻어다 키운 세다리 개를 대비하여 개보다 못한 인간을 비판하는데 한국방문이 소재로 선택되였다. 이 작품에서는 조선족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한국행이 혈육상봉 욕망과 큰돈을 벌기 위한 기회가 교차하는 일 정도로 처리되여 큰돈을 번 뒤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잃어버리는 세태를 비판하기 소재로 사용된다. 에서도 억척스러운 로동으로 집안의 기둥으로 살아온 염씨는 아들 내외가 한국에서 큰돈을 벌어와서 새집으로 이사한 후부터 집안에서 존재감이 사라져 강아지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다고 느끼자 강아지를 밟아버린다. 이 작품에서도 돈 때문에 인간의 도리를 내팽개치는 조선족사회를 비판적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 한국행이 소재로 사용될 뿐이다. 이들 작품과는 달리 은 인간과 승냥이의 싸움을 통해 승냥이의 야생성과 종족간의 사랑을 보여준다. 산지기 령감이 백승냥이에게 죽은 뒤, ‘나’는 새끼 세마리를 승냥이에게 잃고 한마리(가미)만 키우는 황구와 산막에서 지낸다. 백승냥이를 사살하고 한마리 남은 백승냥이의 새끼(야미)를 산막에 데려와 황구의 젖을 먹여 키우자 야생성이 남아있는 야미는 가미를 죽이고 산막을 떠나 가끔 집 앞에 먹이를 물어다 놓는다. 쏘련과의 전쟁 준비로 승냥이골의 개를 박멸할 때 황구도 살해되고 승냥이 소탕 작전에 야미를 쫓아 굴까지 추적해보니 하반신을 못 쓰는 황구와 새끼 두마리가 살고 있어서 그 곳을 가려두고 돌아왔다가 후에 가보니 야미와 황구 가족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 작품은 백승냥이와 그 새끼 야미를 통해 승냥이의 지혜와 잔인성을 그리면서도 어미의 원쑤를 갚기 위해 가미를 죽이고 젖을 먹여 키워준 은혜를 갚으려 황구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또 황구의 목숨을 구해주는 야미에게서 인간 못지 않은 사랑을 보여준다. 이것은 야생성이란 날것 그대로의 삶이며 개체보존과 종족보존 본능만이 지배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본능만이 부딪치는 세계가 아니라 본능 속에 보존된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륜리보다 더 진실한 것일 수 있다는 윤림호의 생명관을 반영한다. 그러나 짐승의 삶을 통해 인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보여주려 한 이 작품은 설화적 분위기와 환상의 람용 등으로 사건의 전개에서 개연성이 부족해졌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조막손로친과 세다리 개》에 수록된 작품 중 앞의 세 작품을 제외한 작품들은 환상과 비현실적인 전개로 구성이나 주제 상에서 긴장감을 상실하고 있다. 는 신혼려행길에 산 속에 숨어사는 고모를 만나러 가다 길을 잃어 들어가면 죽는다는 귀신포에서 정신을 잃었다가 고모네 집에서 깨여나는 환상적인 상황과 비현실적 사건 전개를 보여준다. 또 는 산속  기상관측소에서 기사로 일하며 과학환상소설을 쓰는 인물이 엉터리 과학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외계인을 통해 영원한 청춘을 준다고 녀성을 속이고 지방정부로부터 사업제안을 받는 등 현실성 없는 사건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진다. 또 의부증 안해 때문에 교사에서 해직되여 술집을 운영하는 남자와 시누이 자리의 모함으로 교사직을 그만두고 술집에 취직한 녀자가 사랑을 일구는 과 같은 학교 민영교원인 친구의 녀동생이 사라져 ㅎ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갔다가 경험한 암흑세계의 이야기를 담은 은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듯하나 중편소설 정도의 분량에 너무 많은 음모와 우발적 사건들을 라렬해 작품의 주제가 분산되고 작품의 전개가 비현실적이라는 한계를 보인다. 장편소설 《승냥이가 울던 계절》은 문혁과 중쏘국경분쟁으로 긴박한 국경마을의 현실, 인간의 욕망이 드러나는 계급갈등, 인간과 승냥이 무리의 갈등 그리고 남녀간의 사랑 등 네가지 제재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건이 전개된다. 전쟁에 대비하여 방공호를 만들고 전투훈련도 하는 마을 사람들의 고통과 계급획분으로 투쟁당한 사람들의 억울함 그리고 마을의 작은 권력을 개인적 리익을 위해 휘두르는 인간들의 욕망과 렬사집안의 명예를 위해 인간성을 억압하는 비정상적 행태 등 다양한 사건이 전임 민병련장 조명섭을 둘러싼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품 전반부에 전개되는 한 마을에 압축된 모순과 갈등이 맺히고 풀어지는 모습은 작품의 긴박감을 형성한다. 그러나 작품 중반에서 의 제재인 렬사비에 적힌 전쟁영웅이 고향을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렬사비를 관리하던 로파의 자살, 전쟁위기 속에 련애나 하는 일은 총살감이라는 영웅의 한마디에 자살해버린 련인, 영웅의 낚시를 위해 마련한 보 때문에 농지가 물이 차는 사건 등 작품 전체와 동떨어진 사건들이 라렬되면서 작품의 전개가 혼란스러워진다. 특히 의 내용이 변형된 사냥개 랑구 가족과 백승냥이 종족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서사 중 하나로 자리잡고부터는 소설의 방향이 더욱 흔들린다. 랑구의 영특함과 용감함 그리고 승냥이 가족의 잔인함과 생명력이 대비되여 전경으로 등장하면서 도입부분에서 보여준 문혁과 중소분쟁시기의 계급갈등과 전쟁위기 등 중국현대사의 한 시기에 변방 마을에 살던 조선족들이 겪은 고난과 극복이라는 주제가 후경으로 물러선 것이다. 그 결과 동물들의 야생성에 관한 환상적 서사가 렬사의 아들 조명섭과 지주분자의 딸 렴윤자가 명섭 모친과 명섭을 짝사랑하는 오봉숙 등 주변사람들의 방해와 비난을 극복하고 우여곡절 끝에 산지기막에서 단둘이 결혼하는 사랑 서사와 혼합되면서 소설적 리얼리티를 상실하게 된다. 《고요한 라고하》를 상재하고 《승냥이가 울던 계절》을 출간하기까지 10년은 개혁개방의 성과가 드러나고 중한수교로 한국 방문이 자유로워져 조선족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맞이한 시기였다. 한국에서 부를 획득한 조선족들이 자녀교육의 기회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도시로 이동하여 농촌의 조선족공동체가 와해되였고 한국에서 류입되는 자본의 증가로 조선족사회는 돈이 지배하는 타락한 사회로 급변하는 등의 문제를 로정하였다. 나아가 한국과의 교류과정에서 이중정체성을 경험하고 한국인과의 접촉을 통하여 한국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기도 하였다. 윤림호 소설에는 조선족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서사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등단 초기부터 개혁개방으로 가난하나마 서로 돕던 공동체사회가 와해되는 현실에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그의 공동체지향 의식은 중한수교 이후에도 유지되여 그의 작품은 시대의 급변에도 변하지 않는 인간다움을 강조하고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도리를 망각하는 인간과 은혜를 갚는 짐승을 대비하여 인심의 변화를 비판한다. 이처럼 윤림호가 공동체적 가치관이 유지되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은 개혁개방과 중한수교 이후의 사회변화를 바라보는 나름의 현실인식 방법으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현실인식은 윤림호가 조선족집거지인 연변을 벗어난 산재지구에서 생활하여 조선족 공동체가 더욱 빨리 와해되는 현실을 목도한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금전중심으로 변화하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현실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소설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보다 야생성과 대비하거나 환상의 세계로 나아가 소설적 긴장감을 상실한 것은 윤림호의 작가적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는 작가 윤림호가 시대의 변화를 옳바로 인식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여 그 소설적 대안을 제시할 능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가능하게 한다.   5. 한국체험의 소설화, 그 한계와 의의 윤림호의 소설에 조선족들의 한국행과 관련한 소재가 사용된 것은 《고요한 라고하》를 상재한 시기부터이다. 그러나 이후 출간된 두 소설집에 실린 24편의 작품 중에서 한국방문이 소재로 사용된 것은 전 안해의 련락으로 가족방문의 기회를 잡으나 출국 전 사망하는 , 죽은 줄 알았던 전우의 편지에 자식들이 흥분하나 본인은 발광하는 , 어머니 덕에 한국에 가서 큰돈을 벌어와서는 인간의 도리를 잃어버리는 과 등 네편 뿐이며 한국방문 이후 발표한 중편소설 에서도 안해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로씨야로, 한국으로 돌아다녔다는 내용이 간단히 서술될 뿐이다. 한국방문을 마치고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 윤림호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울산의 현대콘테이너 공장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제재로 하여 한국사회에서 불법체류하는 조선족들의 삶을 다룬 《명암의 세계》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A시에 있는 태성산업이라는 하청 콘테이너공장을 공간적 배경으로 로동쟁의로 몸살을 앓는 한국사회, 한국인들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당하는 조선족의 고통, 렬악한 환경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조선족의 삶 등 세가지의 내용을 기둥으로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다룬다. 중국에서 체육교사를 하다 한국에 입국해 불법체류하면서 콘테이너 생산회사 로동자로 일하는 충호라는 인물을 초점화자로 하는 이 작품에는 외환위기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직전 한국사회에 만연했던 로동쟁의가 배경으로 깔려있다. 로동자들은 로동조합의 소식지를 돌리고 벽보를 붙이고 쟁의를 벌이고 사장과 간부들은 조회시간마다 경제현황과 회사의 사정을 알리고 애사심을 강조하고 로동자들을 회유하기도 한다. 특히 조선족로동자들에게는 불법체류중이므로 로동쟁의에 참가하면 강제출국된다고 겁을 주기도 한다. 조선족로동자들은 이런 현실을 혼란스럽다고 느끼고 또 이에 대해 한국인 로동자들이 바로 이런 것이 자유이고 정의라고 하는 말에 당황하기도 한다. 중국사회에 로동운동이라는 개념이 부재했던 1990년대 중반에 한국에 입국한 조선족들로서는 임금을 받고 로동을 하면서 회사를 상대로 시위하고 파업하는 일을 리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초점화자인 충호가 로동쟁의에 대하여 어떠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관찰자적 자리에 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불법체류 기간중에 3개월 정도 울산의 현대콘테이너에서 근무한 것이 한국에서의 로동체험의 거의 전부인 윤림호가 그 시기 한국사회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였던 로동문제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였을 것이다. 더우기 《명암의 세계》에서와 같이 대기업의 하청업체인 태성산업 같은 업체가 원청업체와 로동자 사이에서 겪는 복잡한 상황은 한국사회에 대한 리해가 부족한 작가로서는 관찰자적 서술 이외의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명암의 세계》에서는 한국사회의 거시적 문제보다 작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직장의 한국인 간부와 로동자, 집주인, 가게 주인 등 주변적 인물들이 주로 다루어진다. 직장에서 관리직 간부들은 로동자들을 무시하며 거친 언사를 사용한다. 특히 불법체류자 신분인 조선족들에게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녀성로동자들을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태성산업의 간부 류총무가 조선족 녀성 홍현실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것이 그 좋은 례이다. 또 술집주인은 갖은 애교로 조선족들의 임금을 노리고 려관이나 술집 종업원들은 외로운 조선족 남성에게 성을 팔아 돈을 챙기고 식당주인은 충호의 전우 청삼이의 한의학 지식을 리용하여 불법 시술로 큰돈을 벌려 하고 세집주인은 세 들어 사는 조선족 녀성에게 눈독을 들이고 한국인 로동자들은 허풍이 센 청삼에게서 술과 안주를 얻어먹으며 의리를 부르짖다가 막상 청삼이가 위급한 상황이 되자 등을 돌린다. 이렇듯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한국인들은 조선족들의 돈을 갈취하거나 성적 욕망을 채우는 인물로 그려져있다. 이러한 인물설정은 한국이 경제적 번영으로 가난으로부터 벗어났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륜리나 가치를 상실하였다는 비판을 위한 소설적 장치로 리해된다. 충호와 한조의 조원으로 일하면서 조선족이라고 업신여기고 괴롭히던 한씨는 충호와 주먹다짐을 하고는 절친한 관계로 발전하여 조선족의 처지를 리해하는 인물이 된다. 또 세집 주인의 딸 정임순은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조선족들을 도와주기에 힘써 기독교 협회의 이웃 돕기 활동의 도움을 받아 홍현실의 병을 고쳐주고 중국으로 귀국하도록 조치해주기도 한다. 이 두 인물은 조선족을 멸시하던 인물이 개심하는 경우와 원래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조선족을 포용하는 인물이라는 성격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이들 만큼이라도 조선족의 처지를 리해하고 공존하려는 인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렇듯 《명암의 세계》는 조선족을 괴롭히는 인물과 사랑을 베푸는 인물이 공존하고 경제적으로 번영했지만 륜리적으로는 타락한 사회 즉 명과 암이 함께 하는 한국사회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한국사회의 명과 암보다 더욱 중요한 제재는 한국에서 불법체류하고 있는 조선족들의 삶이다. 이 작품에서 한국에 입국한 조선족들은 중국에서 견디기 어려운 아픔을 겪고 그것을 피해 출국하여 쓰디쓴 삶을 살고 있다. 충호는 첫사랑 전순미가 한국남자와 결혼해 출국하자 마음 없는 결혼을 했다가 모순투성이인 혼인생활을 청산하고 출국하였고 청삼은 첫사랑을 현간부 아들에게 뺏기고 결혼 당일 술김에 신랑의 천치 녀동생을 겁탈했다가 그녀와 강제결혼하고 큰돈을 벌어온다는 핑게로 출국하였다. 또 충호와 결혼을 약속했던 전순미는 돈을 탐낸 아버지의 강요로 한국남자와 결혼해 출국하였고 조홍자는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강제로 결혼한 현 간부 아들이 도박을 일삼고 폭력을 휘두르자 자식을 친정에 맡기고 출국하였으며 할빈민족문화관 가무단원이였던 홍현실은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중국이 지겨워서 공연 차 한국에 왔다가 불법체류를 하였다. 이들은 돈 때문에 사랑이 파괴되자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또 자신을 이렇게 만든 돈을 벌어 꿈을 이루겠다는 심경으로 큰 빚을 져가며 한국행을 감행하였다. 이 작품의 인물들이 한국을 중국에서 겪은 견디기 힘든 고통을 회피할, 또 꿈을 이룰 만한 돈을 벌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은 조선족들의 내면적 진실의 한 부분을 보여준다. 한국에 입국한 조선족들은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아니 그보다 먼저 한국행을 위해 진 막대한 빚을 탕감하기 위해서 죽기살기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에 와서 차별과 멸시 속에 힘든 로동을 하여도 생각했던 것처럼 돈이 모이지는 않는다.   달세 10만원의 방값을 같이 지내는 현실이와 5만원씩 반분해 주인집에 내고 전기세, 물세, 위생비, 전화비 등 잡비용을 청리당하고 나면 매달 집에 40만원씩 송금하는 것도 아름찬 부담이 되여졌다. (중략) 휴무일까지 련속 작전해야 60만원이면 기록이였고 그것으로 잡세를 물고 회사의 식비를 떼고 집에 부치고 생활을 조직해야 했다. 한마디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강을 건너는 쥐무리처럼 일단 놓기만 하면 안되게 늘쌍 빠듯빠듯한 상태였다. (《명암의 세계》, 《연변문학》 2000.3, 105쪽)   조홍자의 생각으로 서술된 이 부분은 한국에서 로동자로 열심히 일하고 출퇴근 이외에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 두지 않아도 생각처럼 돈이 모이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 자식을 앞세워 돈을 강요하고 그 돈을 술과 노름으로 탕진하는 남편을 둔 조홍자나 가족의 생활비와 꾼 돈을 갚아야 하는 대부분의 조선족들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또 착실하기 그지없는 칠수처럼 몇년 동안 저금통장을 만들지 못해 임금을 류총무에게 맡겨두었다가 돈을 다 날릴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이처럼 돈은 모이지 않고 중국의 빚이 늘어가기만 하게 되면 청삼이처럼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술과 녀자에 탐닉해 돈을 탕진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중국에서의 삶이 어려웠듯이 한국에서의 삶 역시 불안정하다. 《명암의 세계》에서 이러한 상황을 설정한 것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중국을 떠나 한국으로 와도 그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작가의 현실인식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다. 충호는 불안정한 한국생활 중에 한국인 한씨와 주먹다짐을 벌인 일로 한국인의 차별을 견디며 살아가는 조선족들에게 주목을 받는다. 뛰여난 무술 실력과 타인의 어려움을 돌보는 그의 모습은 조선족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고 공장 측에서도 이전과는 다르게 취급해준다. 또 이 일로 조신한 처신으로 태성산업 남자들의 표적이 되던 조홍자도 충호에게 관심을 보이고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첫사랑 전순미가 한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궁금해하던 충호는 한씨의 부탁으로 폭력배 하나를 때려눕히고 형사들을 피해 도주하다가 피신해 들어간 집에서 지체 부자유에 성적 능력도 없는 의처증 환자와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전순미를 만난다. 그녀의 절망 끝을 보아버린 충호는 그녀와 영원히 헤여지자 결심했지만 전순미의 아버지가 사고로 죽은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다시 만나고 우여곡절 끝에 충호의 남성다움에 매료되였던 조홍자의 도움으로 전순미와 함께 중국으로 돌아간다. 충호는 한국에서 수많은 일을 경험하고 자신을 A시로 부른 전우 청삼을 잃고 남편에게서 도망치기로 한 전순미가 남편에게 남겠다고 하고, 함께 중국으로 가기로 한 조홍자도 동행을 포기하자 홀로 중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조홍자의 설득으로 함께 귀국하려 공항으로 달려온 전순미를 만나 비행기에 오르고, 리륙하는 순간 무엇을 위하여 한국에 와서 이런 생활을 했는가 하는 상념에 잠긴다. 중국민항 려객기는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해탈의 몸부림인듯 몸체를 세차게 떨고 있었다. 충호의 머리속에는 출국나들이붐으로 하여 황페해져가는 동네의 정경이 떠올랐다. 땅을 버리고 삶의 터전을 버리고 사랑을 버리고… 사실 조선족들의 비극은 한국땅에서가 아니라 두고 온 땅에서 더 크다는 것을 충호는 깨달았다. 무엇 때문인가? 누구 탓인가? (《명암의 세계》, 《연변문학》 2001.10, 118~119쪽.)   충호는 한국에서의 체험을 통하여 조선족들의 한국행 열풍의 비극은 차별과 멸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한국땅에서보다 남겨진 사람들과 황페화된 고향에서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자각에 이른다. 이는 한국과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불법체류를 하며 돈벌이에 나서 차별과 멸시를 견디며 살았다는 비극적인 사실보다 한국행 열풍으로 파괴되는 조선족 공동체의 와해가 더 심각한 문제라 인식한 것이다.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또 그 돈으로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면서 선조들이 낯선 땅에 이주해와서 피땀으로 일구어 만들어놓은 고향, 조선족 공동체 속에서 인정 가득하고 인간다움을 유지하면서 살았던 고향이 페허로 변하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라는 것이 윤림호가 《명암의 세계》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인 것이다. 윤림호가 보여준 인간다움과 공동체적 삶에 대한 지향은 중한교류 이후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겪은 차별과 멸시라는 현실적인 아픔이나 이중정체성과 국민정체성과 같은 관념을 문제 삼은 기존의 작가들과는 다른 현실인식이다. 더우기 조선족이 경험하는 한국에서의 인간적 모멸보다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선족 사회의 황페화가 더 문제라는 지적은, 허련순이 에서 보여준 한중수교 이후 조선족들이 국민정체성을 확인하게 되였다는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조상들이 가꾸어왔고 조선족의 미풍이 이어져 인정이 존재하고 화목하게 살아가던 고향의 회복이라는 현실 차원의 꿈을 보여준다. 이렇듯 윤림호가 《명암의 세계》에서 선조들이 일구고 그들이 삶을 영위해온 고향이 황페해지는 현실을 아쉬워하며 그 회복을 기대한 것은 그가 과거를 지향하는 보수적 현실인식을 견지했음을 알게 해준다.   6. 결론 본고는 윤림호의 소설을 창작시기 별로 작품의 주제와 경향을 정리하고 각 시기에 그러한 주제에 집중하고 일정한 경향성을 띠게 된 내외적 요인을 검토하여 윤림호 소설의 전체적 모습을 해명하고저 하였다. 이를 위하여 윤림호 소설을 작품집 발간을 기준으로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고 시기 별로 장을 나누어 작품의 특성을 살피고 작가 자신의 한국 체험을 제재로 한 《명암의 세계》는 별도의 장에서 한국행 열풍에 대한 윤림호의 현실인식을 검토하였다. 《투사의 슬픔》에 수록된 작품은 암울한 시대 상황에도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킨 감추어진 영웅을 선양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더라도 공동체 의식을 잃지 말고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고요한 라고하》에 실린 작품은 로인과 약자들의 사랑에 따뜻한 시선을 보이고 돈의 노예가 되여 인간의 도리를 잃어가는 인간을 비판하고 조상들이 뿌리내린 이 땅이 자신들에게는 고향이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조막손로친과 세다리 개》에 수록된 작품과 《승냥이가 울던 계절》은 큰돈을 벌고는 인간의 도리를 잃는 인간을 비판하고 동물들의 야생성을 례찬하고 있으나 환상에 치중해 비현실적인 전개를 보여 소설적 긴장감을 상실한 작품이 많다. 《명암의 세계》에서는 한국 체험을 바탕으로 로동쟁의로 혼돈스러운 한국사회와 그 속에서 차별을 견디며 묵묵히 일해 꿈을 이루려 애쓰는 조선족을 통해 조선족들에게 한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윤림호의 거의 모든 소설은 급변하는 현실에도 인간관계가 살아있던 공동체를 지향하고, 개혁개방과 중한수교 등으로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서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버리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의 교류로 조선족의 뿌리인 한국과 가까워지고 한국을 통해 부를 획득하였지만 한국과의 접촉과정에서 그들이 나서 자란 중국 땅이 진정한 고향이라는 의식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윤림호는 반우파투쟁기에서 문혁을 거치는 정치적 억압과 개혁개방과 중한수교로 상징되는 경제적 자유를 맞이한 중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 시대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공동체적 가치와 고향의 회복을 지향하는 점에서 작가적 일관성을 보인다. 윤림호 소설의 주제적 일관성은 문혁 이후 급변하는 조선족의 현실을 옳바로 형상화하고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가치관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또 〈조막손로친과 세다리 개〉 이후에 급격히 환상과 야생성에 매달림으로써 리얼리티를 상실하고 한 작품에서 필요 이상의 사건을 라렬함으로써 주제의 분산이 심해진다. 이는 조선족의 삶이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고향이 황페해지는 상황에서 이를 소설화할 새로운 주제나 제재를 마련하지 못해 창작의 동력을 잃은 결과로 보인다. 윤림호가 이러한 한계에 부딪치게 된 것은 그가 시종 견지한 보수적 현실인식으로 인해 급변하는 시대에 대응하여 조선족이 나아갈 길에 대한 소설적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출처:2018 제3호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통해 본 중국조선족의 어제, 오늘 그리고 래일    리해연   1. 문제 제기 본고는 김금희(1979- )의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에 실린 , , 등 세 작품을 중심으로 작가가 노마디즘 시각에서 말하고저 했던 중국조선족 디아스포라와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알아보는 글이다. 김금희는 한족 집거지인 길림성 구태시에서 출생한 조선족 작가로서 자신을 포함한 조선족들의 노마드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고저 하였으며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김금희는 《두만강》 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전쟁과 가난, 시장경제 같은 것들 말고 우리 민족이 떠나는 더 근원적인 리유는 없을가’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중편소설 의 창작배경에 대해 서술하였다. 그는 조선족들의 떠돌이 생활을 유목민의 삶, 유목민의 근성과 비교하면서 조선족 공동체의 유목적인 삶에 대해 탐구하였다.  노마드에서 파생된 노마디즘은 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불모지를 옮겨다니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일체의 방식을 의미하며 철학적 개념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문화, 심리 현상을 설명하는 말로도 쓰이면서 유목주의로 번역된다. 자크 아탈리는 현대사회를 노마드의 시대로 규정하고 노마디즘을 현대문화의 특징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였으며 신 유목사회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현대인들을 ‘호모 노마드’라고 부르고 현대사회를 유목적인 시각에서 노마디즘 시대로 인식하고 있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고국을 떠나 거주국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노마드들은 노마디즘 시대의 새로운 디아스포라이다. 조선반도 밖에 사는 백의겨레는 호모 노마드로서 디아스포라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유목의 시대에 코리안 디아스포라문학은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현시대의 중국조선족 또한 호모 노마드적인 디아스포라로서 그 문학 역시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금희는 노마디즘의 시각으로 조선족들의 삶을 바라보았고 이를 통해 현시대의 조선족 공동체에 존재하는 문제점을 제기하였으며 현재를 반성하고 래일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금희는 목적성과 회귀의식이 없는 조선족들의 노마디즘적 삶의 방식은 작게는 가정의 파괴, 더 나아가 민족의 해체로 이어질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조선족으로서 마땅히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떠남의 전제에는 그 목적과 원 위치에로의 회귀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노마드와 엉겅퀴의 공통점, 방황과 회귀를 통한 미래, 정체성 찾기에 이은 뿌리 내리기 등 세개 부분으로 나누어 김금희의 조선족 디아스포라와 정체성 문제에 대한 의식 및 그 작품세계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2. 노마드와  엉겅퀴의  공통점  노마디즘을 중심으로 한 노마드적인 삶의 욕망의 저변에는 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는 지난한 고통과 희망이 점철된다. 소설 의 주인공 ‘유’는 노마디즘 시대의 대표적인 노마드라 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유’는 계획경제라는 거대한 사회주의의 경제체제 속에서 국영기업에 출근하며 안일한 삶을 살다 갑자기 불어닥친 사회주의의 시장경제체제와 그 사회변화 속에서 ‘철밥통’을 버리고 장사의 길에 올라 중국 국내는 안 다녀본 곳이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소설의 또 다른 인물 ‘마로얼’은 ‘유’가 사는 조선족 동네로 이사온 최초의 한족이였다. ‘마로얼’ 일가는 ‘유’의 가족에서 키우던 곰을 받아 웅담장사를 하면서 생활을 일구었고 그 후 사정이 안 좋게 되니 그 일을 접고 더욱 깊은 산골로 들어가 농사와 방목을 통해 재물을 축적하였다. 여러 형 구조로 된 이 소설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떠돌기만 하는 조선족들의 삶과 그와 반대로 한번 정착하여 뿌리내린 곳이면 어디서든 그 삶을 확장해나가는 한족들의 삶의 특성을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대조적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동시에 작가는 주인공의 무정착의식, 무회귀의식적인 삶과 마지막 한족의 돈의 노예로 전락시킨 그의 삶을 비판하였다. 이는 작가가 전반 조선족사회에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이며 현재의 조선족들의 삶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일제의 식민지침략하에 두만강을 건넜던 조선인 이주1세대들은 광복이 되면 돌아가리라는 귀향의 꿈을 가슴에 새긴 채 토착민-한족들의 소작농으로 힘들게 생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이라는 낯선 땅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선반도가 남, 북으로 갈라지며 그들은 영영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새 중국이 창건되면서 소수민족정책하에 당당한 중국의 공민-중국조선족으로 살게 되였다. 그러나 조선족들은 현실에 대한 불만, 좀더 미래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떠돌이생활을 시작했다.  개혁개방과 더불어 중국은 사회, 경제 등 면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조선족들의 삶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위해 국내외로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떠남에는 종착역이 없었다. 한국으로 향했던 이들은 고국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달래보기도 전에 소외와 환멸을 느꼈고 관내 대도시로 향했던 이들은 한족과 한국인 사이에서 정체성에 대한 갈등을 겪게 되면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조선족들은 둥지 없는 새가 이 나무 저 나무 떠돌듯 어디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끝없는 방랑을 반복하기만 한다.   떠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였을가? 어떤 설렘? 열정? 도전 같은 것이였던가?(P121) 유는 그 문자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무엇 때문에 다니는 줄 안다니, 대체 뭘 안다는 걸가. 유의 할아버지 세대가 떠났던 것이 새로운 희망을 찾아서였다는 것? 유의 아버지가 떠났던 것은 자유를 위해서라는 것? 아니면 유가 떠났던 것처럼 어떤 꿈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P141). 마지막으로 사내는 유의 성씨가 남을 유遗인지 류랑할 류流인지를 말장난처럼 물어보았다.(P102)   주인공 이름을 ‘유’라고 했던 것이 작가의 의도된 설정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중국조선족으로 살면서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류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넓게 분포되여있지만 동시에 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소외의 대상인 조선족, ‘유’라는 이름 한글자로 작가는 조선족들의 이동적인 삶을 포괄적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세세대대 대물림되는 조선족들의 떠돌이생활을 력사라는 거울에 비춰보았을 때 그 어느 세대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적이 없었다. 이제는 방랑의 종지부를 찍고 뿌리를 내려야 할 때가 되였다.   순간, 유는 어떤 큰 짐승의 것이 분명한 포효를 똑똑히 들었다. 크르릉어엉-! 낮고 웅글진, 가슴을 허비는듯한 울음소리, 그럴 리 없겠지만 유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곰이 내는 소리라고 확신했다. 철창 속에 갇혀서 고향산을 그리며 검은 눈만 슴벅이던 웅담용 사육곰이 아니라 머루, 다래, 돌배와 찔광이를 뜯어먹고 물고기, 두더지도 잡아먹는 진정한 산의 곰 말이다. 숲속 어느 은밀한 공지, 한가위 보름달을 올려다보면서 곰은 앞발을 들고 빙글빙글 춤을 추고 있었다. 유흥을 아는 한량이나 한을 푸는 녀인네처럼 고즈넉한 정적과 일체를 이루며 무아지경 속으로 빠져들어간 채. 혹독한 겨울추위와 굶주림, 덫의 위험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점점이 별들이 살포시 내려와 파란 반디불로 그 주위를 날아다녔다. 인간이 추구하는 다른 모든 것처럼, 그것 역시 잡으면 벌레가 되고 바라보면 아름다운 빛이 되는 것이였다. 유는 캐리어의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월병박스를 옆구리에 낀 채 그것을 따라 걸어갔다. 룡의 머리를 새겨넣은 마로얼의 높은 대문이 바로 유의 앞에 있었다.(P141)   이 부분은 소설의 결말이자 소설의 제목에 대한 해석이며 작가의식이 가장 응축되여 표현된 부분이다. 산의 주인으로서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아가던 ‘곰’의 패기 넘치던 포효가 ‘유’에게 ‘가슴을 후비는’ 최후의 울부짖음으로 들려온다. ‘혹독한 겨울추위와 굶주림, 덫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한가위 보름달을 올려다보면서’ 한풀이를 하는 무당처럼, 유흥을 즐기는 한량처럼 ‘앞발을 들고 빙글빙글 춤을 추고 있’는 ‘곰’-‘유’는 정착점 없이 방랑하는 조선족들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곰’은 ‘유’이고 더 나아가 조선족 공동체이다. 따뜻했던 둥지를 버리고 새로운 둥지를 찾아헤매다 최후를 맞는 새처럼, 뿌리가 송두리채 뽑혀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나무처럼 조상들이 일궈놓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났던 ‘유’는 지팡살이를 살던 조상들의 생활을 되풀이할 위기에 처하게 되였다. ‘유’의 최후는 더 나아가 전반 조선족 공동체가 위태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현실을 암시하기도 한다.  김금희는 이처럼 조선족들의 목적성 없는 노마드적 삶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비판하였으며 그런 삶의 비참한 최후를 과감하게 예측하면서 동시에 현실적 대안을 세워야 하는 때임을 호소하고 있다.    3. 방황과  회귀를  통한  미래 우의 소설에서의 주인공 ‘유’는 정착점이 없이 끝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캐릭터였다면 소설 의 ‘박철’은 자신의 정착점이 어디인지를 알고 있고 떠남의 궁극적인 목적이 회귀에 있음을 인지하는 ‘유’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박철’은 ‘돈을 벌어 집을 사고 색시를 얻어서 시내에 나가 자그마한 가게라도 열어 먹고 살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려는 꿈을 안고 한국으로 시집간 누나의 초청하에 로무일군으로 한국행에 오른다. 애초부터 박철의 ‘떠남’은 ‘돌아오기 위함’이였기에 한국에서 죽은듯이 살면서 그 곳 사회와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박철’은 축구경기에서는 한국팀을 응원하지만 정작 ‘중국산 꽃게에서 또 다시 발암물질이 검출’되였다는 한국뉴스를 볼 때면 분개의 감정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한국인과는 동족이고 동시에 중국인임을 인지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지다가 결과적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중국조선족으로 살기를 택한다.  한국사회에 비쳐지는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거부감은 박철에게는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 더 나아가 한국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전이된다. 이런 박철의 감정은 탈북녀성 선아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선아’는 ‘박철’에게 있어서 한국인 눈 속의 조선족이 되여버린다. 목숨 걸고 탈북한 ‘선아’에게 ‘박철’은 처음에는 련민과 동질감을 느끼다가 만약 어느 순간 ‘진정한 한국인’이 되는 날이 온다면 그는 자기가 흠모하고 있던 조선족 불법체류자인 ‘수미’에게 가해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선아를 거부한다. 이렇게 ‘박철’은 동족이지만 하나로 어울릴 수 없는 한국인, 조선족, 탈북인 세 부류의 인간들의 련대적인 관계를 통해 민족적 정체성의 갈등을 겪게 되며 그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에 와보니 그의 사촌남동생은 한족 녀성과 결혼하고 농촌 총각으로 결혼하지 못한 친구는 탈북녀성과 잠시 살림을 합쳤다가 버림을 받는가 하면 사촌녀동생은 한국 남자의 내연녀로 살면서 경제적으로 보상을 받는 등 주변 모두가 기형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는 조선족 음식점이라는 간판을 걸고 한족들이 장사를 한다. 조선족사회가 와해되고 붕괴되는 현실에서 ‘박철’은 힘이 얼마가 들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물질적, 정신적 투자를 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며 고향땅을 지키려는 미래에 대한 굳은 결의를 다진다.   자기보다 훨씬 앞서 나간 도시에서 아빠트를 사고 가게를 사느니, 대신 이 넓은 옥수수밭에서, 혹은 논밭에서, 마을에서, 아니면 이보다 더 궁한 시골구석으로 들어가서 무어라도 시도해보는 건 어떨가? 도시사람들 앞에서는 도무지 기를 쭈욱 펴고 다닐 수 없었던 박철이지만 이렇게 마을로 돌아올 때면, 아직도 소수레를 끌고 휘청거리며 가는 한족 농부들을 볼 때면, 장마철의 김치움에 물이 차오르듯 자신감이란 것이 리유도 없이 절로 솟기 때문이다.(P260)   소설의 제목 와 걸맞게 ‘박철’은 생계를 찾아 이곳저곳 다니다가 마지막 종점은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것이였다. 고향을 떠나 한국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로정에서 박철은 동족 사이에서 느끼는 이중적 갈등에 대한 해답을 찾고 그 해답에 따라 자신의 앞날을 개척해나가려 하였다. 이러한 주인공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을 통해 작가는 소설 에서 찾고저 했던 조선족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였고 그것은 지극히 희망적이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조선족은 이제 더 이상 목표 없이 떠도는 방랑자로 살아서는 안된다. 조상들이 힘들게 가꿔온 고향으로 회귀하여 잃었던 어제를 되찾아야만이 래일을 살 수 있다. 의 ‘유’처럼 또다시 지팡살이를 하기 전에, 뼈아팠던 조상들의 력사를 되풀이하기 전에 조선족은 반드시 현실을 정시하고 정확한 대책을 세워 미래를 개척해야 할 것이다.   4. 정체성  찾기에  이은 뿌리  내리기 우 소설의 주인공 ‘박철’은 자신과 주변인들의 삶을 통해 자기 삶의 정착점을 찾고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는 캐릭터였다면 의 주인공 ‘나’는 ‘박철’이의 소망을 현실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는 ‘나’에게는 중국인-한족녀성 ‘닝’과 한국인 녀성 ‘연주’라는 벗이 있다. ‘닝’과 ‘나’, ‘나’와 ‘연주’는 자주 마라탕麻辣烫을 즐겨 먹는다. 중국인인 ‘닝’은 대충 맵게, 한국인인 연주는 소마다라少麻多辣 로, ‘나’는 그들 중 가장 맵고 가장 얼얼하게 먹는 편이다.   나는 닝이 보라는듯 나의 다마다라식 마라탕 그릇에서 한저가락 면발을 크게 감아 입안에 스윽 집어넣었다.… -독한 것, 넌 맵지도 않냐? 참 조선족스럽다…(P12). 코물을 훌쩍거리면서도 열심히 면발을 감아 입에 넣는 연주는 그 환상적인 맛의 지경 속에 푹 빠져서 몹시나 행복해했다. -참, 너도 한국스럽다. 나보다도 먼저 그릇을 비우는 연주를 보고 있자면 나는 그녀 앞에서 닝이 된 것 같은 느낌이였다…(P18)   마라탕 한그릇을 먹는 풍격에 따라 각자의 민족적 특성이 돋보이고 있다. 한족 친구는 강렬한 입맛을 가진 ‘나’를 보며 ‘조선족스럽다’고 하고 ‘나’는 나와 입맛이 비슷한 한국인 친구를 보며 ‘한국스럽다’고 한다. 매운 맛과 초산맛을 더욱 강하게 조리해서 전신으로 퍼지는 짜릿짜릿한 자극을 받으며 그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나’와 ‘연주’는 입맛이 같다는 점에서 ‘조선족스럽다’와 ‘한국스럽다’로 표현되면서 결과적으로는 ‘한민족스럽다’로 귀결되며 궁극적으로 조선족과 한국인은 같은 민족임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이로써 주인공은 민족적 정체성 문제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조선족의 고민과 그 속에서 정체성을 찾고저 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음을 암시하였다.   연주는 택배기사가 주소를 확인하는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나한테 휴대폰을 넘겨주며 투덜댔다. … 이봐, 나도 언니처럼 하잖아. 근데 왜 내 말은 못 알아듣는 거냐고? 닝도 가끔 내게 그런 말을 하곤 했다. 어느 금요일 저녁 우리 집에서 샤브샤브를 해먹던 날, 한국방송을 보며 그 분위기를 깊이 즐기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어쨌든 두 나라 말을 다 하니 넌 참 좋겠다고 부러워했다. (P20)   한족친구에게 있어서 ‘나’는 한국인과 많이 닮아있고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능숙하게 할 수 있는 부러운 존재라면 한국인 친구에게 ‘나’는 자기와 같은 민족인 데도 자신보다 중국어를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고 특히 중국에서 한족들과 어울리며 화합이 될 수 있는 것이 부러웠다. 한족과 한국인의 립장에서 볼 때 ‘나’는 그렇게 한국인스러운 중국인인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한족도 한국인도 아닌 중국조선족이다. 그들은 모두 ‘나’를 부러워했으나 ‘나’는 오히려 정체성을 갖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나는 때로 차라리 그들처럼 한가지 말만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것. 만약 그랬더라면 나는 그 둘 중의 한사람이 되였을 것이고 준표의 학교문제 따위를 가지고 머리를 썩일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였다.(P20)   남들의 눈에는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으나 본인은 정작 그러한 이중적 삶보다는 정체성을 갖고 살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고 때문에 ‘나’는 조선족으로서 자기 민족의 고유의 특성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하였다. ‘나’는 한국인 친구인 ‘연주’네 딸내미의 ‘표준한국어’ 억양을 들을 때마다 소위 한국어 선생이라는 자신이 슬그머니 무색해지곤 했고 또래 한국애들보다는 한국말이 처지고 동갑내기 중국애들보다는 중국어 표현력이 부족한 아들 ‘준표’를 보면서 늘 걱정하고는 했다. 하여 장춘시내에서 집과 가까운 곳에 한족유치원이 있지만 ‘나’는 남편의 권고도 무시하고 아들 ‘준표’를 집과 멀리 떨어져있는 조선족유치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혈액만 조선족이고 정작 생활습관이며 언어며 모든 것이 한족인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나’와 남편의 공동명의하에 새로 장만한 집의 인테리어 콘셉트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오로지 조선족 집답게 장식하려고 애를 썼고 끝내는 옛스러운 조선족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자기만의 집을 완성하였다.    나는 연주와 본능적으로 많이, 아주 많이 닮아있었지만, 같은 배경 속에서 살지 않은, 곧 분화의 위기에 놓인 두마리의 도롱룡 같아서 도무지 같은 시각으로 함께 현실을 해석할 수 없었다. 반면 닝과 나는 애초부터 한 배경 속에서 살고 있는 오리와 닭이였다. 우리는 우리의 시대와 배경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개인적인 습관과 취향을 송두리채 공유할 수는 없었다. 매번 그들과 만나고 돌아올 때면 나는 어느 누구하고도 같지 않은 나 자신을 더 또렷이 느끼곤 했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사람이 있을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그 자체일 것이다. (P20)   이 부분은 작가의 내면의 목소리가 그대로 울려퍼지는 대목이다. 그렇다. 중국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들은 비록 같은 나라,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한족들과 화합하고 어울리며 살 수는 있지만 완전히 다른 생활습관과 생활방식 때문에 결국은 하나가 될 수 없다. 반면 생활습관이며 삶의 방식이며 많은 면에서 서로 닮아있는 한국인들과는 살아온 환경과 공간적, 문화적 차이로 넘을 수 없는 벽 때문에 역시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렇게 조선족은 한족도, 한국인도 아닌 중국조선족 그 자체로 두 나라의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는 이른바 이중성을 띤 삶을 살고 있다. 사과도 아니고 배도 아닌 사과배처럼 조선족은 그렇게 갈등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저 노력하였고 오로지 그 자체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은 탈경계와 초국가주의의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소수자의 상징으로, 바다의 외로운 섬처럼 다민족사회에 뿌리내린 민족적 정체성의 상징으로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5. 결말 이주력사와 함께 시작된 조선족 디아스포라 문제는 오랜 시간 동안 풀어내야 할 숙제였고 그 연구는 지금도 진행중에 있다. 김금희작가는 늘 조선족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고스란히 작품으로 승화시킨 조선족 녀성작가로서 때로는 녀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때로는 거침없는 필치로 조선족사회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예리하게 짚어냈고 그 해결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김금희는 작품 를 통해 목적성 없는 조선족들의 방랑생활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풀이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 국내 타지-한족집거지를 돌아다니며 돈만 쫓아 방랑하는 주인공 ‘유’는 이름 그대로 종착점이 없이 부평초 같은 일상을 살다가 결국엔 귀향길에 오른다. 그러나 그 귀향길은 회귀의식에 의한 자발적인 귀향이 아닌 인생의 벼랑 끝에서 고향마을의 한족친구에게 마지막 구걸을 위한 귀향이였다. 김금희는 조선족들의 이러한 목적성 없는 방랑생활을 비판하면서 회귀의식이 없는 방랑생활은 결과적으로 파멸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는 관점을 작품을 통해 표출하였고 이러한 현상은 궁극적으로 민족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동시에 그는 이러한 민족공동체에 존재하는 문제를 정확하게 직시하고 보다 희망적인 미래를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였으며 작품 를 통해 그 해답을 제시하였다.  의 주인공 ‘박철’은 희망을 품고 한국으로 돈벌이를 떠났다가 그 곳에서 역시 소외와 멸시를 당하면서 삶에 대한 고민 끝에 고향마을의 건설에 자신을 이바지하려는 목적으로 귀향길에 오르는 인물이다. 비록 ‘박철’이 역시 돈을 위해 고향을 떠나지만 그 출발점에는 이미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오리라는 회귀의식과 목적의식이 깔려있었다. 작가는 ‘박철’이라는 인물을 통해 조선족들의 노마드적 삶의 전제에는 반드시 목적성과 회귀의식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고 그것만이 민족 공동체의 희망적인 미래를 위한 해결책임을 제시하고 있다. 의 ‘유’는 중국 국내 한족집거지를 돌아다닌 인물이고 의 ‘박철’은 고국에서 멸시와 소외를 받다가 귀향하는 인물로서 작가는 조선족들의 처지를 두 인물을 통해 형상화하였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작가는 작품 을 통해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는 조선족은 그 자체만으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의 주인공 ‘나’는 한족집거지인 대도시 장춘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으로서 한족친구와 한국인친구 사이에서 정체성 문제로 갈등하고 고민하는 인물이다. 한족친구는 한국어를 잘하는 ‘나’를 부러워했고 한국인친구는 중국에서 한족들과 화합하고 어울리며 토착민처럼 살고 있는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나’는 정작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그들을 부러워하는 디아스포라이다.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갈등 속에서 고민하던 주인공은 끝내는 조선족 그 자체로만으로의 삶을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뿌리를 내리고 정착지에서 자민족의 정체성을 갖고 본 민족답게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김금희는 예리한 시각으로 조선족공동체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 존재하는 문제를 거침없이 폭로하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제시하였다. 발 빠르게 변화하는 이 사회에서 진정 성공한 노마드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이 시각에도 쉼 없이 민족문제를 다룬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는 김금희는 중국조선족문단에서 굵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현직 작가이며 조선족문학을 연구하는 연구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로서 앞으로 그의 행보와 작품들에 기대를 해본다.  참고문헌 1. 자료 김금희, 《세상에 없는 나의 집》, 창비, 2015. ______, , 《두만강》, 연변소설가학회 제3호, 2011. 2. 론문  김호웅. 김관웅, , 《한중인문학연구》 제37집, 한중인문학회, 2012, p35-p55.  최병우, , 《한중인문학연구》 제37집, 한중인문학회, 2012, p107-p128. 오상순, , 《현대문학의 연구》 29권 0호, 한국문학연구학회, 2006, p37-p69. 장윤수, , 《재외한인연구》 제25호, 재외한인학회, 2011, p7-p40. 출처:2018 제3호
12    미주: 피빛 고민(칼럼) 댓글:  조회:83  추천:0  2019-07-12
피빛 고민 미주   글을 통해 생리대가 겁난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던 것 같다.  첫번째는 10대 때 어느 한 잡지에서 외국에서 쓰고 버려진 생리대를 회수해 재활용해 만드는 몰렴치한 저가 생리대 제품 생산단위가 존재한다는 글을 보고 나서이다. 자신이 그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듣보잡’ 브랜드 것이 아닌 제품 그리고 짝퉁제품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규성이 보장되는 대형마트에 가서 사려고 하는 로고를 아끼지 않았었다. 생리를 시작하면서부터의 매월의 그 날들은 엉덩이가 짓물러가며 자신에게 맞는 생리대가 뭔지를 골라가는 시련의 련속이였다. 생리대를 고르기란 브랜드, 규격, 형태, 두께, 재질, 량에 따른 날자 등에 모두 맞춘 복잡한 공식을 포장지면에 적힌 몇글자 안되는 불친절한 광고멘트 및 어려운 사용설명 문구에 대입시켜 독해해내야만 가능한 것이였다. 중국어로 된 그 생리대 선택문제에 대해 나만의 풀이방식을 습득했다고 의기양양해할 때 즈음, 나는 한국으로 류학을 오게 되였다.  비록 나의 모어와 같은 문자를 쓰지만 한국 생리대의 설명 또한 난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외국인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낯설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강박증 그리고 왠지 모를 쑥스러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선정하기가 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생리대 코너에서 너무 오래 기웃거리기가 무엇해서 서뿌른 판단으로 팬티라이너를 사는 실수도 범해봤고 마트 판촉 도우미의 사은품으로 견본품 생리대를 많이 챙겨주겠다는 유혹에 넘어가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닌 생리대를 한가방 가득 사기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지, 한국의 가난한 계층의 아이들은 신발깔개로 생리대를 대신한다고 할 만큼 한국의 생리대는 싼 가격이 아니라서 그 개수에 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서로 다른 기장의 생리대를 써야 하는데 기장에 따른 가격차이가 구매에 있어 부담으로 느껴졌다. 이런 나의 하소연에 한 친구가 소형 생리대 두장을 겹쳐서 오버나이트용으로 변신시키는 ‘묘기’를 해결책으로 제시해주었다. 어찌하든 간에 많은 개수의 생리대 확보가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원짜리와 천원짜리 지폐를 ‘0’이 몇개인지 세여보고서가 아니라 색상만 척 봐도 판단할 수 있을 만큼 한국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한국에서 생리대를 고르는 팁도 점차 익혀갔고 가성비에 대한 감도 점차 잡아가게 되였다.  지난달 어렵사리 구하게 된 관광통역아르바이트로 인해 약정된 날자 동안 팽이처럼 바삐 돌아쳐야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운이 나쁘게도’ 나는 그 며칠에 ‘마법에 걸’렸고 비축해두었던 생리대는 똑 떨어졌다. 긴긴 하루일정을 모두 끝마쳤을 때에는 땅거미가 질 무렵이였고 영업이 막 끝나 문 닫기 전의 매장에 간신히 방문하여 손에 쥐이는 대로 급하게 생리대를 구매하였다. 촌음을 다퉈가며 정신 없이 치른 구매전에서 내가 획득한 ‘전리품’은 릴** 생리대였다. 기타 브랜드에 비해 별로 익숙치 않아 평소에 구매하기를 망설였던 브랜드였다. 총망함 때문에 ‘깐깐’한 나 답지 않게 저지른 실수였을가? 현실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책’하는 나에게 구매 령수증이 그 리유를 설명해주었다. 바로 저렴한 가격 때문이였다. 근근득식해야 하는 고난한 이국라이프에서 우선시 고려되여야 하는 것은 주머니 사정이다 보니 ‘현명함’을 제쳐두고 ‘알뜰함’을 택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평소에 비해 생리가 너무 빨리 가버렸다. 한달에 두번 하게 되지 않을가 하는 우려와 함께 바쁜 이 고비에 잠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해탈감을 동시에 느꼈다. 생리대 풍파는 그렇게 일단락 되는가 싶었는데 야구선수 요기 베라가 했다고 하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을 접했다.  공포는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엄습해왔다. 바쁜 하루를 끝내고 나서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는데 릴**이 검색어에 올라와있었다. 클릭하고 검색창에 들어갔다가 눈이 뒤집혀질 뉴스를 보게 되였다. 릴** 유해물질 검출과 함께 생리량 감소를 일으킨다는 부작용이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였다. 머피의 법칙은 왜 항상 나를 피해가지 않냐는 자신의 불운에 대한 한탄과 함께 과연 저번달 생리의 사라짐은 피곤함 때문인지 아니면 생리대 때문인지 하는 의문이 가셔지지 않았다. 또한 발암물질 추출이라는 생리대에 대한 불안감은 기타 생리대에서도 량적 차이일 뿐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 심해졌다. 각종 포털사이트를 통해 생리대의 대체물로 생리컵에 대한 추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오던 것이 떠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생리컵의 공식수입이 허가된다는 ‘복음’을 자주 접했었다. 그러나 질속으로의 삽입이라는 착용방식이 주는 공포는 쉬이 누그러들지 않는다. 생리대 파문이 터진 시점 또한 생리컵의 원활한 수입목적을 달성하고저 하는 데 있지 않을가 하는 의심이 든다. 조류독감 때문에 발생한 닭알부족 사태를 하늘길을 통한 미국 닭알 수입으로 이루어내고저 했던 나라가 아닌가?  그나마 최선책으로서 덜 위험한 생리대를 골라쓰려고 하니 뉴스에서 제시한 비교설명이 참 불친절하다. 각 회사 단위로 설명했는데 브랜드명만을 보면 보았지 언제 제조사까지 살폈다고. 아무리 봐도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문득 몇년 전 친한 친구와 둘이서 생리대에 관한 론문을 쓸가 하면서 낄낄대던 일이 떠오른다. 생리대 사태를 보면서 그동안 예민하게 굴었던 선택이 불필요하다고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촉각을 세우고 생리대를 골라야 했었다는 것이 참 웃고픈 현실이다. 한 동영상을 보니 연예인들까지 동원하여 생리컵을 착용한 후기를 전하면서 생리컵의 우수성을 선전하기에 여념이 없다. 과연 생리대는 정말 아닌 걸가? 생리컵으로 갈아타야 하나? 생리컵에 대한 거부감은 내 몸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이물질이라는 것 때문일가? 물론 컵의 입구에 존재하는 구멍 하나로 인해 그 컵이 변기의 뚫어뻥마냥 나의 속살을 흡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리대가 피부에 대한 짓무름에 비견되는 그 어떤 부작용이 존재하지 않는 ‘만능컵’일가? 생리주기가 절대 불변성을 띤 것이 아니니 가끔 생리가 늦게 오거나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리가 갑자기 오지 않는 것에 대해 단순히 오지 않는다고만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편치 않은 것은 어디 마음 뿐인가? ‘손님 맞이 도구’ 또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방울방울 고민은 어디로 내리흘러야 할가?  출처:2018 제3호  
11    현청화: 장사장(단편소설) 댓글:  조회:111  추천:0  2019-07-12
장사장 현청화     구정이 가까워오자 남방 특유의 설 분위기가 광주 거리 곳곳을 채웠다. 추워서 몸이 움츠러드는 북방과는 달리 광주는 구정 전부터 초목이 푸르고 봄기운이 완연하다. 지금은 이 도시에 정착한 지 퍼그나 되여서 이런 날씨와 설 분위기에 적응되였지만 십년 전의 나는 설 쇠러 광주에 오면 이곳 기후 때문에 항상 눈살이 찌푸러졌었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은 기후 뿐만이 아니였다. 그 때 엄마는 광주에서 민박을 운영하셨다. 당시 북경에 있던 나와 상해에 있던 언니가 도착하는 날은 보통 그믐날이였고 엄마는 항상 푸짐하게 상을 차려놓고 우리를 맞이했다. 여기까지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한 가족의 구정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식구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서 설을 쇠게 된 것을 축하하며 서로 회포도 풀고 건배를 들 때였다. 문득 아버지가 이마살을 찌푸렸다. “장사장은?…” “글쎄요… 방이 잠겨있더라구요… 어디 나갔겠죠.” 엄마의 대답에 우리 자매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무슨 장사장…” 내가 의문을 표시하자 아버지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런 손님 하나 있다. 설에 손님 들이지 말라니 엄마가 듣지를 않고…” 그믐날 밥상을 마주한 채 잠시 장사장에 대한 소개가 시작되였다. “복장무역을 한다는데 말이 너무 많아. 밥상을 적어도 두시간 이상 끌고 꼬박꼬박 세끼 다 차리길 원하는… 엄마가 들였으니 별수 없다만 나 같으면 언녕 내쫓았다.” “그래도 설을 타국에서 쇠는 사람을 어떻게 가라 그래요.” 실은 다른 민박 손님인데 그 민박에서 식구들끼리 오붓하게 설을 쇠기 위해서 엄마한테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래도 설을 이렇게 보내는 건 싫소. 당신도 푹 쉬지 못하질 않소.”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문밖에서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려왔고 엄마가 급히 말했다. “쉿. 그래도 설인데 살갑게 대하자구요.” 문소리가 들리면서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작달막한 체구의 중년남성이 들어섰다. 엄마가 수저를 가져왔고 곧 타인이 끼인 어색한 그믐날 저녁식사가 시작되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 대로 이 분이 말이 너무 많으셨다. 속사포 랩처럼 쏟아지는 말들 속에는 한국의 정치, 경제, 력사, 인문은 물론 추후 한중관계와 그것이 무역에 미치는 영향까지 말에 말을 잇고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 그렇소?” 례의상 마지못해 응대하는 아버지의 말에 그는 바로 얼굴이 밝아졌다. “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틀림없으나 지금의 한국은…” 휴우. 그는 숨도 들이쉬지 않고 말을 이어내려갔는데 모두 복합문이였다. 즉 그 일은 여차여차하여 이리 되였는데 그렇게 된 리유는 이런 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또 다시 말해서 그런 것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으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도 틀리지는 않지만 제일 좋기는 이렇게 되여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아버지가 벌떡 일어섰다. “장사장, 난 술이 이만하면 됐네. 자넨 더 마실 텐가?” 아버지가 말을 놓으실 때는 이미 짜증이 났다는 뜻이다. “글쎄요… 저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 바쁘게 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우리도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를 하고 몸을 일으켰고 장사장은 혼자 상을 마주하고 있기가 민망한지 머뭇거리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저거 봐, 저렇게 말이 많다니까!” 잠시 후 다시 거실로 나온 아버지가 역증을 내셨다. 장사장의 방이 거실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 다행이였다. “당신 그러는 거 아니예요. 사람 대놓고 괄시하면 안되죠. 설에 얼마나 외롭겠어요…” “저 사람 외로움 달래주다간 내가 괴로워죽겠는 걸! 그러게 왜 그까짓 민박비를 탐내서…” “이게 지금 민박비 탐낸 걸로 보여요?” 급기야 두분이 티각태각하신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장사장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짜증이 솟구쳤다. 설에 식구끼리 모여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는데 낯도 잘 모르는 타인이 끼여있을 뿐만 아니라 그 수다가 ‘대화서유大话西游’의 당승 뺨 칠 정도다. 아버지가 화를 내시는 것도 리해가 갔다. 생각해보면 장사장은 설 기간 동안 끼니마다 밥상에 끼일 것이고 항상 자기가 대화의 주체가 되여서 얘기하려 할 것이다. 아예 밥을 따로 먹을가 생각도 했지만 엄마가 몇번 밥상을 차리느라 고생하는 것도 안스러웠다. 그 날 엄마와 아버지의 다툼은 손님이 먼저 밥을 먹고 나간 다음 우리가 먹기로 합의를 보고서야 막을 내렸다. 하지만 다음날인 설날부터는 그것이 더 고역이였다. 밥상의 채는 다 식어가는데 장사장의 말은 끝날 줄 몰랐다. 우리는 방안에서 그 식사자리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으므로 거의 두시간 동안 배를 곯아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거실로 나가지 않았던 걸가. 그 리유는 괜히 왔다갔다하다가 장사장 눈에 띄면 잘못 걸려들기 쉬웠던 것이다. 우리를 발견하면 장사장의 눈은 더없이 반짝거렸고 자기 옆 의자를 손바닥으로 닦으며 앉으라고 극성스레 권했다. 새로운 대화상대를 만난 절호의 기회를 장사장이 놓칠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설날 아침 멋모르고 세수하러 나갔다가 장사장의 눈에 띄인 나는 극성스런 권유에 못이겨 자리에 앉고 말았다. “앉으세요… 앉으세요… 식사하셔야죠… 맥주는?…” “죄송하지만 저 술 못 마십니다. 엄마… 밥 주세요.” 머리를 숙이고 열심히 밥을 퍼먹고 있는데 문득 껍질까지 바른 삶은 계란이 내 밥 우에 놓여졌다. 대체 우리가 주인인가 장사장이 주인인가. 나는 장사장의 그런 과잉친절이 부담스러웠고 이어지는 말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따님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신다고 하셨던지…” 아닌게 아니라 또 시작이였다. 주저리주저리… 그의 말은 그야말로 청산류수였고 만일 서면으로 옮긴다면 중간에 쉼표 하나 허용하지 않을 정도였다. 건성으로 몇마디 대꾸한 나는 그만 숟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먼저 일어날게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아, 식사 벌써 다하셨나요…”  장사장의 눈에는 아쉬움이 력력했다. 한편으로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아주 잠간이였다. 나는 한쪽으로 빈 그릇들을 주방에 내가면서 밥상에 마지못해 앉아있는 아버지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아버지, 우린 곧 시내돌이 가려는데 아버진 머 하실래요? 같이 안 갈래요?” “어, 그래. 나도…” 이쯤에서 장사장도 눈치는 챈 모양이다. “준비해서 따님들과 놀러 나가세요… 저도 이만…” 장사장이 저쪽 방으로 건너간 다음 나는 아버지한테 눈을 끔뻑하면서 웃었다. “봐요… 뭐가 어려워요. 나처럼 하란 말이예요.” “그래그래… 오늘은 니 덕분이다.” 아버지가 기꺼워하셨다. 설날 아침은 이렇게 지냈는데 점심과 저녁은 어떻게 할지 고민이였다. 결국 점심은 우리가 외출했다는 리유로 방에서 혼자 드시라고 엄마가 챙겨주기로 하고 저녁은 우리가 시내 갔다 와서 늦게 먹는 걸로 장사장과의 합석을 용케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초이튿날 나는 조카딸과 복도에서 놀다가 밖에서 들어오는 장사장과 면바로 마주쳤다. “저, 한가지 물어볼 거 있는데요. 잠시만 이쪽으로 와주실 수 있겠어요?” 딱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 잠시 망설이다가 기껏해야 한가지만 물어보겠지 하고 조카딸을 안고 따라갔다. “일단 여기 앉으세요.” 이 말을 듣자 갑자기 숨이 막히고 온몸의 피가 바싹 마르는 기분이였다. 이미 수차례 불편을 겪었으니 말이다. 궁시렁궁시렁… 여차여차… 그는 그야말로 지칠 줄 모르는 수다의 신神이였다. 나는 몇번이나 그의 말을 중단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주먹을 말아쥐였다 펴기를 몇십번 반복했다. “저기요…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는데 대체 뭔가요?” 이런 말 한마디로 상황을 종료하기엔 그는 너무나도 신명이 나있었고 활기에 차넘치는 모습이였던 것이다. 나도 매정한 성격은 못되는지라 그렇게 한시간 쯤 고역을 치르고 있는데 다행히도 조카딸이 나를 구해주었다. “이모, 나 먹을 거 사준다 해놓고 왜 안 가? 나 배고파.” “그래그래… 가자… 가서 맛있는 거 사줄게.” 그렇게 겨우 풀려나와서 거실로 나오니 온집 식구가 내가 실종되였다고 한창 찾고 있는 중이였다. “저쪽 방에서 장사장 얘기 들었어요.” 내 말에 언니가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무슨 얘기 하던?” “음… 자기가 판매하고 있는 옷 브랜드로부터 류행하는 패션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취급하는 아이템의 가격과 광주에 무역사무실 오픈하려 한다는 것까지…” “하는 얘기가 항상 똑같네. 근데 그 사람 있잖아. 아마도 저래서 원래 민박집에서 쫓겨나온 거 같애. 아니면 어느 민박이 손님을 딴 데 넘겨주겠냐.” 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 “그래도 그렇지 어쩌면 저렇게 말이 많을가!” 아버지도 심란한지 거실을 왔다갔다 하신다. “언제 간대요?” 나는 처음으로 손님을 쫓아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모레 아침.” “휴우.” 온 집 식구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였다. 서로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이틀만 참기로 한 암묵적인 합의였다. 초사흗날 밤 우리는 작은 방에서 자그마한 가족파티를 열었다. 끝내 오래간만에 집식구가 오붓하게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장사장은 다음날 새벽 비행기라고 저녁식사 후 방에 가서 누운 지 한참 되였다. 서로 흥겹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한사람 자리가 비여있었다. “엄마는요?” “저쪽 방에서 장사장 얘기 듣고 있다.” 끝내 엄마가 피해가지 못하고 장사장의 마지막 대화상대가 되여버린 것이다. 우리는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렸고 엄마는 그로부터 저그만치 세시간 반이 걸려서야 자리에 돌아올 수 있었다. “판이 다 깨지게 이게 뭐요?” 아버지의 불만에 엄마는 얼굴색을 흐렸다. “얼마나 말하고 싶었으면… 아마 남 모를 고충이 있어서 다른 말로 지금 풀고 있는 거 같아요.” “설사 그렇다 해도 그건 그 사람 사정이죠.” 내가 랭정하게 말하자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처에 호텔이 있는데 민박을 찾아온 거 보면 사람냄새가 그리워서 그런게 아니겠냐. 그리고 래일 간대잖냐.” 우리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래일 가지 않는다면 장사장 방문을 두드려서라도 그동안의 불만을 얘기하고 싶은 충동을 또 한번 억누르면서 말이다. 어디 우리가 사람을 용납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잡다한 말을 듣고 있느라면 마치 송충이 온몸을 기여다니는듯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던 것이다. 향항영화 《대화서유大话西游》에서는 손오공과 관음보살이 수다쟁이 당승 때문에 자제력을 잃고 살인충동이 일고 당승이 교수대에 매달려서도 옆의 요괴에게 수다를 떠는 바람에 요괴들은 허겁지겁 자결까지 하지 않았던가. 설사 영화가 과장된 거라 해도 지금 영화 속의 그 당승이 그대로 화면 밖에 나온 것만 같아서 우리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기분이였다. 가족모임은 어정쩡하게 끝났고 나는 꿈에서까지 장사장이 장편연설을 하는 것을 들었다. 다음날 아침 장사장이 가버린 방에서 청소를 하던 언니는 메모지 한장을 발견했다. 장사장이 남긴 것이 분명해보이는 그 메모지에는 어머니의 부고를 받고도 한국행 티켓이 없어 멘탈붕괴 직전에 이르렀던 자신에게 항상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고 이야기를 들어준 우리한테 고맙다는 인사가 적혀있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흔한 새해 인사로 끝난 메모지를 마주한 채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장사장 역시 우리 집 식구의 설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나름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설날 산책하러 나가서 거리 한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거지에게 십원짜리 한장 쥐여주면서 늙은이의 갈쿠리 같던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도, 설명절만 되면 예고도 없이 집을 방문하는 안면 있는 아줌마들의 모든 푸념을 들어주면서 집식구들의 불만을 감당해야 했던 엄마도 결국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들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토록 감내하기 어려웠던 장사장의 수다를 고즈넉이 들어주던 우리 가족들도 분명 마음 한구석에 이런 작은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그에게 상처되는 말이나 행동들을 간신히 자제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동락해야 할 구정에 슬픈 소식을 접한 장사장은 아마 쉴 새 없는 수다로 그것을 잊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보려고 끊임없이 대화상대를 갈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짜증과 불만을 느꼈던 우리는 구경 구정의 진정한 의미를 어떤 식으로 리해하고 있었을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행복해져야 할 구정을 우리는 굳이 우리 나름 대로의 형식에 맞춰 즐겨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것이 아닌가. 건강할 때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가질 것, 시간이 주어졌을 때 시간을 소중히 보낼 것, 나보다 남을 위해 베푸는 기회를 가질 것, 나보다 더 외롭고 아픈 사람을 생각해볼 것… 이런 구정의 진정한 의미를 리해하기엔 아직도 많이 부족한 인정세태에 그래도 장사장은 깍듯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겼고 그것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했다. 다음날 이른아침 아버지는 술상에서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장사장이 없으니 밥상이 썰렁하구나.” … …   올해 구정을 앞두고 나는 애들을 데리고 친정의 가족파티에 참석했다. 술상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내가 물었다. “엄마, 장사장 혹시 기억나세요?” “당연히 기억나지. 그 말이 많던 사람.” 엄마는 웃으면서 말하다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당신도 기억하죠? 그번에 그렇게 간 다음 많은 손님을 소개해줘서 우리 민박이 한때 엄청 잘되였잖아요.” “기억하고 말고. 그래서 다시 오면 내가 꼭 술 한번 사고 몇시간이고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했었는데 그 후엔 도통 안 오네.” 옆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던 딸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엄마, 장사장은 누구야?” “응, 말씀을 많이 하는 아저씨.” 나는 딸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창밖의 완연한 봄기운에 다시 시선을 주었다. 북방의 엄동설한보다 남방의 온화한 기후가 나는 좋아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엄청 따뜻했던 아저씨.” 출처:2018 제3호
10    전유재: 허물·나비(시, 외1수) 댓글:  조회:97  추천:0  2019-07-12
허물·나비(외1수) 전유재     비상을 위해 빠져나온다, 나비 침묵으로 지은 집, 번데기 별빛 스미고 이슬 젖은 사연, 실타래에 매우 감겼다   해빛 아래 어깨박죽 펴면 하늘 펼쳐진다 경계 밖 열린 날, 응집으로 서러웠던 밀도 와락 터진다 이제, 온갖 날개짓에 원없이 온몸 아픈 건 허락된 자유, 네 허물의 채무다   허물 밖을 날아라   추운 숲 푸드덕 새 날아간 희디흰 선은 바람이 놀란 흔적이다 줄기 이파리 사이로 올려다본 하늘 얼어서 금이 갔다 와르르 조각들 발치에 떨어지니   오솔길이다 멋모르고 망울진 봉오리에서 눈송이가 잠을 잔다   꽃이 흩날릴 날 다시 숲을 지날 것이다 출처:2018 제3호
9    신기덕:출제인생(수필) 댓글:  조회:107  추천:0  2019-07-12
출제인생 신기덕   출제인생 세월은 류수라더니 참으로 맞는 말이다. 1997년도에 처음 대학입시출제활동에 참가해서부터 어언 20년이 넘어흘렀다. 그 때로부터 기본상 한해도 빠뜨리지 않고 대학입시, 고중입시, 자격시험, 학업시험 등의 명제활동에 참가했고 이외에도 길림성교육청, 길림성인사청, 길림성교육학원, 장춘시교육국, 장춘시교육학원 등 단위에서 주관하는 여러가지 시험의 출제에 참가했으니 나의 출제시간은 참으로 길었으며 그냥 나도 모르게 출제는 내 인생의 한부분으로 되여버렸다.  한해에 시험명제로 ‘감옥 아닌 감옥’에 들어가는 일이 많을 때엔 다섯번이나 되였으니 나의 친구들이 나를 ‘시험전문호’로 부르는 데에도 너무 일리가 없지는 않다. 지금 이 시각에도 나는 출제하러 ‘감옥 아닌 감옥’에 들어와있다. 이곳도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곳이 되였다. 나이가 이미 60이 되였으니 이제 곧 나의 출제인생에도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여온다. 하여 출제하러 다니면서 있었던 일들 가운데서 인상 깊은 몇가지를 골라 미니수필 형식으로 적어보려 한다.    무릉도원 중국 고대의 저명한 작가 도연명이 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우리가 시험출제하러 들어오는 이곳도 무릉도원에 못지 않다. 하루 세끼 식사를 안배해주고 경찰들이 보위를 서면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니 더없이 안전한 곳이며 휴대폰도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기에 외계의 간섭도 받지 않으니 더없이 조용하고 안전하고 행복한 곳이라 할 수가 있겠다. 하여 나도 《도라지》잡지에 라는 제목으로 이곳의 생활을 적어 발표한 적이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글을 읽었었고 특히 출제와 관련이 된 사람들은 많이 읽었었다. 무릉도원이나 무풍지대로 불리우리 만치 고요하고 안전하고 행복해보이는 이곳에서는 사실 나라의 극비에 속하는 출제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게 표정이 안온해보이는 출제자들은 모든 말초신경까지 동원하여 이 중대한 임무의 완성을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출제기간에는 그야말로 밤낮이 따로 없다. 사람들은 시험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출제의 간고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모든 시험문제가 출제자들의 열번 이상의 수정을 거쳐서 완성이 된다. 하기에 무릉도원이나 무풍지대가 사실은 고강도의 뇌력활동이 진행되는 긴장한 로동장소인 것이다.   걷기운동 나는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다. 배구나 탁구와 같은 구류운동과 장기나 바둑과 같은 기류棋类운동을 아주 즐기는 편이였다. 하지만 출제활동에 참가하면서부터는 걷기운동의 매력에 푹 빠져 지금까지 그냥 걷고 있다. 출제장소에 오면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걷기운동을 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첫시작이다. 걸으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하기에 걷다 보니 시간을 넘겨 70분간을 걸어 350메터 코스를 20고패 훨씬 넘긴 적도 적지 않다. 지금은 의사의 부탁 대로 30분간만 걷는다. 그저 즐겁게 걷고 있는 나를 보고 ‘궁리 없이 걷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걷기운동을 운동의 왕이라고 한다. 다른 특수한 시설도 필요 없이 그저 자기의 두 다리로 걷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걷기운동에도 자기의 표준자세가 있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이 자세만 잘 장악하고 그대로 걸으면 된다. 여기서 관건은 견지이다. 사실 집에 있을 때에는 여러가지 일에 밀리고 또 술을 마셨을 경우에는 걷지 못한다. 하지만 출제장소에 와서는 견지하기가 비교적 쉽다. 이젠 걷기운동에도 웬간히 미립이 터서 속도가 비교적 빠르다. 집에 있을 때 승리공원에 가서 걷다 보면 천여명 중에 나를 초월하는 사람이 극상해야 한두명 뿐이다.   사전가치 우리 력사의 한시기에 사전词典을 아주 중시했었다. 그 때 어느 학자의 집에 사전이 많으면 그것은 그야말로 지식의 상징이고 부유의 상징이였다. 하기에 나도 천여원이라는 돈을 들여 6권사전을 갖춰놓았었고 그외에도 또 많은 사전을 갖춰놓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많은 사전이 하나의 부담으로 되였다. 버리자니 아깝고 둬두자니 가치가 적다. 지금은 컴에 모든 사전이 들어있어 사용하기가 특히 편리하다. 하여 나의 책장의 가장 눈에 뜨이는 위치에 배렬되였던 사전들이 아예 책장 우 ‘옥상’으로 쫓겨 올라가는 신세로 되고 말았다. 말 그대로 꿔온 보리자루 신세라고나 할가? 하지만 컴퓨터의 사전을 사용할 수 없는 이 출제장소에서만은 사전의 몸값이 대단하다. 조선어사정위원회에서 진행한 규범에 따라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사전은 그 규범에 따라 쉽게 편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여전히 이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편찬한 《조선말사전》을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다른 학과의 번역도 컴의 번역사전을 사용할 수가 없기에 책으로 된 《중한사전》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력사의 흐름에서 밀려났는가 싶은 물건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자기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도 하는구나 하는 깊은 인상을 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명태사건 명태와 출제생활이 무슨 련계가 있을가? 어찌 보면 련계가 없어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련계가 아주 크다고 해야겠다. 명태와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가 련계되기에 우리 민족과 관련된 출제생활에도 명태가 등장하게 되고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길 수가 있는 것이다. 명태는 동태국을 해먹어도 맛있고 말린 명태로 반찬을 해먹어도 맛있다. 그리고 마른 명태를 그대로 쭉쭉 찢어서 맥주안주를 해도 제격이다. 하기에 마른 명태는 우리 생활중에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려행시에 마른 명태를 가지고 떠나는 것이 하나의 습관으로 되였다. 출제장소에 오면서 명태를 가지고 오는 사람도 많았다. 몇년 전 출제에 참가했던 세명이 명태사건을 일으켜 우리 모두에게 웃음 한바구니를 안겨준 적이 있다. 출제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을 때 명태가 적어져서 이젠 명태대가리도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로 명태가 귀중해졌다. 그 때 한칸에 류숙하던 두 선생이 다른 칸에 류숙하는 선생이 자기들 칸으로 놀러 온 기회를 리용하여 명태대가리를 상 우에 올려놓은 것이 사건의 발단으로 되였다. 한 선생은 명태를 내놓으라 재촉하고 두 선생은 명태가 없다고 시치미를 떼는 신경전이 며칠 동안 지속되였는데 너무 재미가 있어서 나는 그 재미나는 이야기를 적어 《청년생활》잡지에 발표한 적이 있다.   고기잡이 여기 출제기지에는 비교적 큰 양어장이 두개 있는데 출제가 끝나 휴식단계에 들어서면 많은 아마츄어 어옹들이 즐기는 곳이다. 고기들도 잘 잡혀나오는데 자그마한 붕어가 특히 많이 잡혀나왔다. 나도 고기잡이를 무척 즐긴다. 하지만 낚시가 아니라 반두나 채발로 잡기를 즐기며 혹간 투망으로 잡기도 한다. 이 세상에는 고기잡이방식이 많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우산으로 고기잡이를 하는 곳은 보지 못했었다. 이 세상의 기상천외한 일이라고나 할가? 바로 아무런 마술재능도 갖추지 못한 내가 우산으로 고기를 잡아봤다. 그것도 한두마리가 아닌 수십마리를.  어느 해 출제가 끝나고 휴식단계에 들어선 어느 날이였다. 우리가 점심식사를 마치고 양어장 주위를 돌고 있는데 그 때 바로 담장 밖의 물도랑에서 큰 호스管子로 양어장에 물을 더 넣어주고 있었다. 호스가 양어장에 신선한 물을 넣어주니 고기들이 산소가 많아 기뻤는지 호스에서 물이 뿜어져나오는 곳으로 푸드득푸드득 뛰여오르는 것이였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쓰고 있던 우산을 가져다 거꾸로 댔더니 거퍼 몇분 사이에 수십마리의 붕어가 저절로 그 곳에 날아들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그 장면을 구경하였다. 물론 고기는 다시 놓아주었고.   돼지료법 고강도의 뇌력로동을 진행하자면 뇌건강과 더불어 강한 체력이 뒤받침해주어야 한다. 밤늦도록 일하고 나면 이튿날 오후에는 한잠을 푹 자게 되는데 우리는 보통 이불을 덮고 잔다. 대낮에 그렇게 자다나니 보기엔 게으름뱅이가 잠 자는 모습이다. 하여 나는 나름 대로 ‘돼지료법’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였다. 이 이름이 물론 아름답지는 못하지만 생동감과 형상성이 뚜렷한 이름임에는 틀림이 없다. 긴장하던 며칠 동안의 출제임무가 완성되면 우리 출제인원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는 것이 바로 이 돼지료법이다. 해탈감에서 느끼는 돼지료법의 그 느긋하고 미묘한 감각은 참으로 일품이다. 글을 쓰다 보니 《모택동전》에서 보았던 내용이 떠오른다. 모택동동지는 밤에 사업하기를 즐겼다. 그리고 독서도 밤이 가고 새벽이 올 때까지 하기가 일쑤였는데 이런 생활이 습관이 되다 보니 그에게는 오전시간이 바로 취침시간이 되여버렸다. 위인에게 감히 돼지료법이란 말을 붙이기에는 안됐지만 살다 보면 이렇게 대낮에도 이불을 덮고 푹 잘 때가 있게 된다. 내가 이미 발표한 글에 이 돼지료법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나의 한 친구는 그 돼지료법이 자기는 제일 부럽다고 했다. 자기는 신경이 쇠약해져 밤에도 잘 자지 못하는데 낮에 잔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란다. 소화기능 먹은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면 소화불량이 오고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소화시키지 못해도 소화불량이 온다. 무릇 소화가 안되면 언제나 몸이 뜨직하고 따라서 기분도 말째여서 생활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런데 출제하는 이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장소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 바로 시간으로 인한 소화불량이다. 출제나 번역하러 이곳에 오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경험이 없기에 출제가 끝난 후 차례지는 10일 남짓한 여유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몰라 어쩔 줄 모른다. 운동도 하고 오락도 하지만 이 시간으로 인한 소화불량은 쉽게 낫지를 않는다. 나도 이런 소화불량이 온 적이 한두번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 시간적인 여유가 그리워진다. 사실 나의 80여편의 론문 중의 절반은 아마 출제장소에서 씌여졌을 것이다. 그리고 허다한 문학작품도 여기서 만들어지고. 나는 출제하러 올 때 시험에 수요되는 자료를 200여편 가져오는 외 일거리를 알뜰히 차려온다. 론문과 문학작품을 쓰다 보면 시간이 언제 흐르는지도 모르게 흘러가버리고 어떤 때에는 시간이 모자라기도 한다. 여기서 일하면 그 로동효률이 아주 높다. 문득 이렇게 좋은 장소에서 소설이나 썼으면 하는 생각에 빠질 때도 있었다. 여기가 많이 그리울 것이다.   개척정신 살다 보니 나도 어쩔 수 없이 개척정신을 발휘할 때가 있었다.  2017년 학업시험출제차로 길림교육인쇄공장으로 가게 되였는데 우리는 고중입시와 맞띠우지 않으려고 4호별장을 사용하게 되였다. 30여명의 출제인원이 별장에 꽉 들어찼으니 식당도 없어 탁구실을 운동실 겸 식사실로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보다도 걷기운동을 좋아하는 나에겐 걸을 수 있는 장소가 없는 것이 큰 문제였다. 넓이가 3메터, 길이가 40여메터 남짓한 콩크리트길이 우리가 활동하는 유일한 장소였는데 거기서 바드민턴도 치고 태극권도 하며 줄뛰기도 해야 하니 우리 걷기운동은 하기가 힘들었다.  하여 나는 이튿날 새벽에 나절로 겁도 없이 나만의 걷기운동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별장의 북쪽 화원에 장방형의 오솔길을 냈다. 이것은 개척이 아니라 파괴였다. 돈을 들여 만든 화원에 오솔길을 낸다는 자체가 사실 파괴에 가까웠다. 그 날 저녁 나는 아예 우리 조선족 몇명과 함께 남쪽 화원에도 오솔길을 만들었다. 별장의 둘레를 따라 오솔길을 만드니 그 길이가 200메터 좀 넘는 걷기운동길이 완성된 셈이다. 그 후 인쇄공장의 공장장을 보고 그 길을 따라 좁은 콩크리트길을 만들라는 요구도 제기했었다. 공장장은 사람좋게 웃으면서 꼭 만들겠다고 대답했다. 이런 것이 개척인가?   음주문화 내가 출제장소에 와서 쓴 많은 문학작품 가운데서 아마 제일 환영을 많이 받은 작품이 술군의 이야기를 적은 일 것이다. 그 외 도 이곳에서 만들어진 해학적인 글이다. 이곳은 여러 민족이 함께 모이는 사회의 한 축소판이다. 하기에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다다소소 여기서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음주문화는 민족의 특색이 잘 반영되는 문화이다. 우리 조선족과 몽골족은 술을 비교적 즐기는 편이다. 하여 어느 해엔가는 한족 세명과 몽골족 두명, 조선족 두명이 함께 한상에 앉게 되였는데 그 상에 앉을 수 있는 유일 기준은 바로 반근 이상이 되는 주량이였다.  몇년 전만 해도 출제장소로 오면 조선족을 위해서는 개를 잡고 몽골족을 위해서는 양을 잡았다. 평소에는 술을 제한하다가도 그 날에는 술을 마신다. 한족 지도자들도 그 날만은 밥상을 돌아다니면서 술을 권하는데 참으로 열정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술문화가 몰라보게 많이 변했다. 식당에서도 술을 마실 수 있지만 시간을 정해놓아 오래 마시지 못한다. 하지만 침실에 돌아와서 마시는 것은 량과 시간을 제한하지 않는다. 아예 랭장고도 갖춰놓고 안주도 보관하게 한다. 이런다고 하여 자기의 주량도 모르고 마구 퍼마시는 경우는 기본상 없다. 오히려 더 자제하면서 신사적으로 마신다.    출제생애 1997년부터 출제에 참가하여 지금까지 출제에 바친 시간도 꽤나 된다. 1997년부터 시작된 전국고중입시 시험개혁에 호흡을 맞춰 우리 조선족은 1998년부터 개혁을 시작하여 4년 후인 2002년에 결속하게 되였다. 그 때 알게 된 우리 학원의 장익건张翼健선생을 통하여 실로 많은 걸 배우게 되였다. 사실 처음으로 시험개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그 때 알게 되였으며 이 경험은 금후 진행된 대학입시의 개혁에서도 귀감으로 되여 빛을 뿌리게 되였다. 그 때 먼저 고중입시 출제에 참가하여 임무를 완성하고 경찰차에 ‘압송’되여 대학입시문제를 출제하러 가던 기억이 어제런듯 새롭다. 소학교 교원들이 대학전과 학력을 얻는 시험을 대부분 내가 내게 되였고 그 채점도 맡게 되였다. 이렇게 시험출제로 ‘감옥 아닌 감옥’에 가서 보낸 시간도 일년에 평균 두달은 된다. 그 시간을 합하면 40개월이 되니 해수로 계산하면 3년도 넘는 셈이다. 그 외에 시험을 위해 기울인 학습시간과 연구시간을 가첨한다면 아마 어마어마한 수자가 될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시간 때문에 후회해본 적이 없다. 지금 이 시각 제일 많이 떠오르는 생각은 우리 민족과 이 시대가 나에게 부여란 이 출제라는 과업을 나는 훌륭하게 완성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70점 이상이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출제미래 2018년부터 대학입시와 고중입시가 개혁의 세찬 물결을 이루며 진행이 되고 있다. 이 세찬 물결 속에서 안전하게 나아가려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전에 장익건선생님께서 알려주던 방법 대로 한족들의 개혁보다 한발작 떨어져 한족들의 경험을 살리면서 개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한족들의 시험개혁과 우리 조선어문의 특점을 잘 결부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리고 작년에 길림성시험원吉林省考试院의 요구에 따라 시간을 들여 난생처음으로 길림성조선어문대학입시 시험요강을 만들어보았는데 아주 인상이 깊었다. 고중입시 조선어문 시험요강도 누군가 만들어야 할텐데… 지금 미래학교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른다. 지금의 현실에서 엄격하게 말하면 미래학교는 학술술어라고 하기보다는 시대가 발전하면서 나타난 교육화제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학교가 던져준 도전과 미래학교의 발전추세를 잘 알아보면서 거기에 따르는 시험개혁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도 중시를 돌려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근심은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미래의 출제임무를 떠메고 나갈 젊은 세대들이 어련히 잘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꼭 잘해나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선어문의 출제미래가 더욱 밝기를 기원한다. 출처:2018 제3호
8    리미: 수세미앓이(수필) 댓글:  조회:87  추천:0  2019-07-12
수세미앓이 리미   우리의 만남 야물딱지게 잘하는 청소는 아니지만 야금야금 피여오르는 봄의 기운은 정서적으로 행동적으로 나를 가만히 있게 하지 못했다. 진공청소기의 존재로 쉽게 먼지청소를 할 수 있는 거실과 안방과는 달리 주방은 녀성의 구역이 아니랄가봐 손이 좀더 많이 가는 곳이였다. 류통기한이 지난 각종 야채와 이미 물러터질 대로 터져버린 과일들을 모조리 치우고 조금씩 흘러버린 조미료들을 말끔히 구석구석 닦아주었다. 쉰내가 진동하는 이미 맛이 가버린 밑반찬통은 고스란히 설겆이거리로 전락되였다. 하나 둘 나의 일거리를 많이 만들기에는 그들은 참 협조적이였다. 싱크대에는 어느 순간 설겆이거리들이 가득 쌓여버렸다. 란장판이 되여버린 주방은 흡사 전쟁터에 나와있는 느낌이였다. 기름과 조미료 범범이 되여버린 싱크대는 또 어떠하리. 군인에게 총이 있다면 주방에서 주무기는 고무장갑과 수세미다. 하지만 그 날에는 어찌된 일인지 고무장갑은 보이지 않고 수세미도 옛날식 배배 꼬인, 철사수세미만 덩그러니 있었다. 할 수 없이 몽실몽실한 수세미에 세척제를 몇방울 떨구고 비누거품 놀이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바닥을 보일 때 쯤 철사수세미의 한가락은 고집스럽게 나의 손가락을 훑고 지나갔고 날렵한 그의 속도감에 내 손가락에서는 빨간 피가 샘솟아났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이 이 상황에 부합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가끔 날카롭고 작은 것에 더 베이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뜬금이 없는 얘기지만 회사에서 금방 인쇄해나온 복사지에 손가락을 베인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만큼 홀시하기 좋은 작은 것들은 언제나 작지만은 않은 또 다른 무언가를 안겨준다. 싱크대에 서있으면서 찰나에 베임과 함께 많은 작은 것에 대한 회억을 한번 해보았다. 그러면서 엄마에게는 이러한 작은 무언가에 쓰라렸던 적이 얼마나 많을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였다. 가느다란 철사수세미 한가락에 마구 내뿜는 선홍색을 그녀들은 아마도 아무렇지 않게 대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처럼 피야, 피를 웨치면서 호들갑을 떨 새도 없이 말이다.   기억의 습작 녀자의 가슴처럼 봉긋한 수세미는 처음에는 우아한 자세를 머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에 묻히기 전, 기름때가 잔뜩 묻혀진 접시와 어쩔 수 없는 상봉을 하기 전까지 흐트러짐이 없는 꼿꼿한 아가씨 같은 자세를 유지했었을 수도, 도도하게 코대를 치켜세우며 손에 물 한방울, 기름 한방울 묻히지 않았을 것 같은 이미지로 말이다. 아무런 화장품의 도움이 없이도 촉촉한 피부를 자랑하고 청바지에 티 하나 입어도 그냥 젊음이 뿜어져나오는 그녀들의 소시적은 이미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였다. 설겆이는 남의 나라 일일뿐더러 부드러운 손가지를 만들려 수시로 핸드크림을 듬뿍 발라줬을 터이다. 과거에는 핸드크림으로 손을 촉촉히 적셨다면 지금은 설겆이용 세척제나 빨래비누로 손을 거칠게 적시고 계신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엄마의 가녀린 손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선물해드린 핸드크림은 줄어들건만 그녀들의 손은 반대로 더 거칠어지는 것만 같았다.  “어려운 것도 아닌데 제때에 핸드크림을 바르쇼.” 안타까운 마음을 난 오히려 짜증을 머금은 말투로 툭 내쏘았다.  “바르면 설겆이할 때 미끌미끌해서 싫다.” 새침떼기 아가씨는 이젠 그냥 낡은 사진첩의 그녀의 과거일 뿐인가보다. 투박한 손이 곱디고운 아가씨의 손이 되였을 소시적에는 아마 그녀도 가녀린 존재임이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도깨비도 때려잡을 것 같은 무적의 아줌마 파워를 보여주는 그녀지만 불쑥불쑥 튀여나오는 옛날옛적 이야기에서는 혼자 밤거리를 누빌 때 무서웠던 얘기, 아빠가 출장을 가있는 동안에 혼자서 갓난애기인 나를 돌보며 안절부절 못했다는 얘기, 맥주로 머리를 감으면 노랗게 염색이 된다는 말에 맥주에 머리를 감았다는 얘기 등등 그저 마냥 귀여운 소녀이거나 여전히 가녀린 그녀의 이야기가 기억을 헤매고 있었다.   아름다운 앓이 얼기설기 배배 꼬여진 수세미의 가락들 사이로 덕지덕지 기름때가 너저분하게 붙어있다. 봉긋하던 수세미는 펑퍼짐하게 변형되여가고 있고 원래의 이쁘장하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날카로운 심경을 수세미는 가끔 가다가 날카로운 한가닥의 스침으로 주인에게 피를 보이게도 하고 있다. 그녀들의 말 못할 앓이는 마치 수세미앓이처럼 묘하게 아픔을 전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많은 앓이들이 존재한다. 철부지였던 일곱살 때 앓았던 이앓이, 갸우뚱거리며 앓았던 사랑앓이, 어떠한 아픔은 말 그대로 아픔이지만 수세미앓이는 아픔을 동반한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설겆이거리를 빛나게 해주는 데 일등 공신인 수세미처럼 그녀들은 자신의 안위보단 집안일의 일등공신임이 틀림이 없다. 이쁘게 한 네일아트도 금방 떨어지고 곱디고운 손은 늦가을의 물기 없는 단풍잎처럼 말라져가고 엄마라는 존재는 늘 녀자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 속에는 그냥 많은 걸 내려놓아야만 하는 엄마일 뿐이다. 어릴 적에는 초불처럼 자신을 희생하고 무언가를 빛나게 해준다. 아파도 참고 어쩐다 하는 밥 먹듯 제시하는 주제에 관한 작문주제는 따분하고 무언가를 많이 보태여서 형용을 해야만 그의 희생성이 더 부각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평생 대부분을 수세미앓이 같은 작지만 작지 않은 인내, 고통을 감내한 엄마라는 존재는 구태여 과장된 형용을 하지 않아도 그 존재로만 빛나고 있다.   언젠가 엄마는 한때 소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늘 맥심커피만 마시던 엄마를 모시고 커피숍을 방문했을 때에 딸기와플을 음미하시고는 이렇게 맛있는 것도 있구나 하시던 그 소녀 같은 모습에 나는 반대로 마음이 저미여왔던 적이 있다. 사소한 것에 기뻐하던 그녀는 엄마이기 전에 역시나 녀자였다.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덕지덕지 기름때가 묻어있는 싱크대를, 찰나의 부주의로 뿜어져나오는 피를, 그녀도 어쩌면 마주하기 싫을 수도, 아파할 수도 있는 엄마라는 또 다른 이름-녀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작은 것에 슬퍼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다는 걸 나는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나한테로는 작은, 그녀한테는 큰 비수를 꽂기도 한다. 세상의 그 많은 자녀들은 어째서 일관되게  타인에게는 온화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서 정작 그녀한테는 짜증세례만 퍼붓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작디작은 가녀린 수세미에 손을 훅 베였듯이 엄마라고 불리우는 그녀들의 마음 또한 작지만 작지 않은 인내와 상처를 동반하고 있을 것이다. 고요한 수면 우가 더 아프게 다가올 때가 있다. 소리없이 잔잔하지만 그 잔잔함 속에는 말 못할 아픔이 몸부림쳐있어보이기 때문이다. 이십대 처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은 수세미앓이에서 시작되는 작디작은 구석진 곳에서부터 령감을 받아 그녀를 보듬어주고 싶었던 것처럼 그녀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구석지고 잔잔한 무언가를 동반했을 것인가를 우리는 깊게 늘 마음속에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 마치 언제 훅 우리를 스칠 줄 모르는 수세미앓이처럼 말이다… 출처:2018 제3호
7    곽미란: 목련꽃 피는 계절이면(수필) 댓글:  조회:89  추천:0  2019-07-12
목련꽃 피는 계절이면 곽미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연한 노랑빛으로 망울져있던 창밖의 목련꽃이 터질듯 활짝 피여나 은은한 향기를 뿜어올리고 있었다. 목련꽃을 보고 있으면 저도 몰래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2년 전 이맘때였다. 엄마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친구들과 상해 민항체육공원에 가서 꽃구경을 하셨다. 하느적거리는 수양버들과 눈이 시도록 하얀 벚꽃나무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남기셨다. 그런데 그 이튿날부터 엄마는 련속 며칠 동안 머리가 지속적으로 아프다고 하셔서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는 가혹했다. 간암 말기였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후 일년 동안 엄마는 자연치료법과 기도와 명상으로 치료를 했다. 락천적인 엄마는 신념으로 병마를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고 가족들과 엄마의 친구들도 모두 엄마에게 많은 신심을 주었다. 하지만 엄마의 병은 전혀 차도가 없고 정직하리만치 차곡차곡 간암 말기에 나타나는 모든 증세의 단계를 밟아왔다. 겨울 환절기에도 용케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이겨낸 엄마는 이제 봄이 오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갖가지 반찬을 만들어서 공원놀이하러 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인지 뼈만 남아 앙상궂게 보이는 엄마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희미하게 어리는 걸 여러번 봤다. 하지만 청명절 날 위험은 예고 없이 엄마를 덮쳤다.    주말이였고 나는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구급차 불러. 위급하다.” 나는 엄마의 방으로 뛰여들어갔다. 롱구공처럼 빵빵하게 부은 엄마의 하얀 배가 제일 먼저 눈에 띄였다. 투명한 배가죽을 뚫고 울퉁불퉁하게 솟은 혈관은 당장이라도 배가죽을 뚫고 밖으로 튀여나올 것만 같았다. 엄마가 배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얼굴은 무섭게 이그러졌고 땀이 비오듯 흐르고 있었다. 복수가 찬 거였다. 간암 말기로 고생하는 엄마에게 수시로 찾아올 수 있는 위험신호였다. 나는 부리나케 다시 거실로 달려나가 120 에 전화를 걸어 앰뷸런스 요청을 했다.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엄마는 배를 부여잡고 계속 신음을 토했고 링겔을 꽂았지만 고통은 전혀 해결이 되지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해서 일련의 검사절차를 거치고 나서 엄마에게 진통제를 투여하기까지 한시간 반이 걸렸다. 엄마의 진통은 도저히 멈추지를 않았다. 그렇게 엄마는 병원에 입원했다.  그 날부터 엄마가 주관하던 우리 집안의 평화로움은 리듬이 깨졌고 삶의 현장에서 부딪치는 자잘한 마찰은 수시로 타닥타닥 불꽃을 튕겼다. 거기에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수시로 우리의 삶에 접근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졌다. 엄마가 없다면 과연 어떻게 될가 하는 생각이 언뜻 미치는 순간 나는 심하게 머리를 내저었다. 응급실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입원실로 옮겨간 이튿날 오전, 나와 동생은 수차례 담당의사한테 불리워갔다. 매 한차례 검사결과가 나올 때마다 의사는 위급통보를 전했다. 결국 그 날 나와 동생이 들은 최종의 통보는 삼일을 넘기지 못할 것 같으니 스물네시간 꼼짝 말고 환자 곁을 지키라는 것이였다. 엄마는 통증이 조금 가시자 자신의 병세를 의식했는지 우리를 불렀다. 엄마는 보고 싶은 사람들을 찾았다. 이튿날 엄마의 제일 친한 친구인 민성이 할머니가 병원에 오자 엄마는 가까이 불렀다. “민성이 할매, 이젠 나를 놔주게.” 눈물을 비오듯 흘리는 민성이 할머니에게 엄마는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알아, 이제 마지막 길인 것 같으니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마지막 길에 한복 입고 가고 싶으니 우리 집에 가서 한복 좀 찾아놓게. 두벌이 있는데 노란 저고리 있는 걸로.” 그 한복은 3년 전 환갑을 맞으면서 새로 지은 거다. 그 전에 막내동생이 결혼할 때 엄마도 한복을 한벌 맞춘 게 있어서 그걸 입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환갑이라고 새 한복을 지었길래 나와 동생들은 못내 아니꼬와하고 있었다. 한복은 평소에 별로 입을 일도 없고 나와 동생들도 다 결혼을 했으니 기껏해야 엄마가 한복을 입을 일이라고야 교회에서 명절에 성가 부를 때나 한번 입을가말가 하기 때문이다. 류달리 한복에 집착하는 엄마가 살짝 밉기까지 했다. 딸들한테 미안하지 않을세라 엄마는 한복을 입을 기회를 자주 만들었다. 그래 봤자 네댓번이나 입었을가. 내 인상 속의 엄마는 날씬한 몸매를 지녔던 적이 한번도 없다. 언젠가 앨범에 끼워져있는 엄마의 처녀시절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엄마는 날씬한 몸매에 기다란 외태머리를 땋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태여나서부터 본 엄마의 모습은 늘 파마머리에 남정네들 못지 않은 일솜씨를 자랑하는 굵은 팔뚝이였다. 엄마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일솜씨가 잽쌌다. 엄마는 펑퍼짐한 엉덩이에 굵은 팔뚝, 통통한 다리를 가진 전형적인 조선족 농촌 아줌마의 체형이였다. 그런 엄마에게 한족들이 명절 때나 행사 때 입는 치포우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엄마에겐 곡선미를 강조하는 치포우보다는 몸매의 단점을 커버해주는 통 너른 한복저고리와 치마가 훨씬 잘 어울렸다. 하지만 시골에선 치포우든 예쁜 한복이든 입어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엄마의 모습은 때가 절은 앞치마에 물 묻은 손을 쓱쓱 문지르며 주방에서 음식을 장만하거나 땀냄새가 배인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흙이 묻은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며 밭고랑을 타거나 빨래를 하는 모습이다. 한복을 입은 엄마의 모습은 평소의 억척스러운 모습과 너무나 대조를 이룬다. 인정하기 싫지만 엄마가 한복을 입은 모습은 참 아름답다.    엄마의 한복을 찾아놓고 광목천으로 이불과 요를 만들며 민성이 할머니는 계속 눈굽을 찍는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만 삶은 늘 우리의 생각 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라는 걸 나는 알았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몇번 안되는 엄마의 한복 입은 모습을 떠올렸다. 막내동생이 결혼할 때 하얀 저고리에 핑크 치마 한복을 차려입고 새색시처럼 수줍게 미소를 짓고 있던 엄마의 모습, 평소엔 웃음소리도 크고 성격도 괄괄한 편인 어머니가 한복을 입으면 마치 딴 사람으로 변한듯 싶다. 그리고 교회에서 크리스마스날 한복을 차려입고 다른 할머니들과 함께 성가를 부르던 엄마의 모습은 더없이 평화롭고 온화한 모습이였다. 꽃잎이 분분히 흩날리는 벚꽃나무 아래 한복을 입고 서서 찍은 엄마의 사진은 분명 행복에 겨운 모습이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들이 함께 사는 가정의 맏며느리로 들어와 늘 넉넉함과 드넓은 아량으로 집안의 평화를 지켰던 엄마의 성품은 풍성한 한복의 치마자락과 닮아있다. 그러고 보면 한복은 엄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였다. 나는 너무나 늦게야 알았다. 살아생전에 몇번 못 입어본 한복을 그 곳에 가서는 원 없이 입어보게 하고 싶었다.      나는 한복을 곱게 싼 보자기를 들고 집문을 나섰다. 고통과 질병과 전쟁이 없는 그 곳에서 엄마는 매일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평화롭게 지낼 것이다. 엄마의 부드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할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전통복장 한복을 입고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다.  엄마는 갔다. 목련꽃 피는 계절에 고운 한복을 입으시고 평화로운 얼굴로 갔다.  며칠만 지나면 만개했던 목련꽃은 이 봄에도 속절없이 벌써 지겠지. 흩날리는 목련꽃잎이 왠지 엄마의 치마자락 같아 나는 눈앞이 흐릿해진다.  출처:2018 제3호
6    연서: 올가미(단편소설) 댓글:  조회:110  추천:0  2019-07-12
올가미 연서   분명히 올가미였다는 것이 뚜렷이 실감나게 바로 무덤을 만들고 나서 며칠이 지난 어느 고요한 밤이였다. 낮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그 밤은 유난히 깊고 길었었다.  천근 무게라도 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길거리를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머리 속은 온갖 생각들이 의지와 상관 없이 활개를 치며 멈출 줄을 모른다. 한치한치 피부 속으로 파고드는듯한 한기 때문에 한여름철에도 련속 몸서리를 치게 했다. 그 날로부터 랭독은 지속적으로 세포를 탐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예고도 없이 불시에 엄습해올 때면 어떤 대비도 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갈 때까지 감내해야만 했다.    밖으로 나간 고양이는 잘 지내고 있을가. 갑자기 키우던 고양이 보리가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지금 이 마당에 고양이가 과연 중요할가? 모든 게 부질없는 존재다. 나의 존재도 지금 어둠 속에서 소외되여 점차 희미한 점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순간 나의 느낌과 감수는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가? 누군가와 함께 기상하고 식사하고 대화하고 영화 보고 취침하고… 모든 일상이 살아숨쉬며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미묘한 세상이 한없이 갈망된다.  홀로 남은 삶! 너덜너덜한 나의 삶을 감내하기가 벅차다.    어둑어둑한 골목을 빠져나와 옷깃을 여미고 달빛 속에서 한산한 거리를 계속 걸었다.  오른쪽 모퉁이로 굽으면 바로 도착하는 강가, 오늘도 강물만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아무런 감정도 없이 다만 일관된 류속을 유지하며 흘러가고만 있다. 납작한 돌멩이 하나를 집어서 던져보았다. 풍덩 울림 뿐이였다.  문득 명희가 한 말이 귀전을 맴돌았다.  -너는 너무 감정적인 게 문제야. 그러다 다치면 또 고슴도치처럼 숨어버리고. 론리적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해야지 말이야.  그리고 그녀 특유의 예리한 말투로 내게 령활성이라고는 도무지 한군데도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것이 어느 정도 중요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만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모양이다.  령활성, 그 울림이 주는 거대한 충격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가여운 인간들… 그런 것들을 맞추고 재고 하느라 진땀을 빼며 그 와중에 질식해죽은 정감… 그런 감정들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어보면 먼 허공에서 누군가가 돌연 질문을 던져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가요?  -혼자 남는 법은 어떤 건가요? 답이 있을 법하면서도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 령적인 질문이다.    어느새 슈퍼에 도착했다. 슈퍼 랭장고 문을 열고 캔맥주 두개와 흰술 한병을 꺼내 계산대로 향했다. 점원이 하나하나 체크하며 계산대에서 밀어냈다. 데구루루 병이 계산대 끝으로 굴러가며 소리를 냈다.  머리도 복잡하고 속도 터질 것만 같아 부지런히 입안으로 부어넣었다. 정적이 배제된 꽤나 번잡한 중심거리에서 순간 주변으로부터 격리된 착각이 스며온다. 머리가 무겁고 혼란스러웠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주위의 거리며 가게들이며 모든 환경이 생소해보이기도 했다.   가까운 지척에서 끼리끼리 무리 지은 사람들이 눈에 안겨왔다. 왼쪽에는 람루한 옷차림을 한, 현장일군으로 짐작돼보이는 남자들이 얼굴에 피곤기가 력력한 채 술을 마시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열예닐곱 쯤 돼보이는 고중생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긴 가랑잎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는 나이대였다.  길 건너편에서 내가 있는 쪽을 카메라 영상에 담는다면 그들 사이에 홀로 끼인 내가 꽤나 이상케 여겨질지도 모른다. 마치 외딴섬에 류배된 외계인처럼 말이다.  그들이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난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어. 어른들은 왜서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가? 사실 간단한 게 진리인데 말이야.  곁에 녀자애는 꽤나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차피 안되면 말고 애당초 결론짓고 말지. 다투고 또 다투고 결국 해결보는 게 하나 없잖아. 중요한 게 뭔지 알기나 할가. -너는 너무 어른인 척하는 게 문제야. 너무 빨리 셈이 든 척한단 말이야. 말하는 어조로 봐서 그다지 심각한 일은 아닌 같았다.  -괜히 분위기 잡지 마. 딱 보면 알리잖아. 어른들은 하나같이 다 자기 리익만 추구하는 것 같애. 뭐 큰 거라도 얻게 될 거라 착각하지? 실은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이야. 그렇지 않아? 그저 마음만 비우면 되는 건데… -그만해, 제발 일절만 하자. -우리 얘기만 하자, 어른들 말고 우리 관심얘기 말이야. … …   그들이 무슨 화제를 둘러싸고 얘기를 나누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때론 진지하게 때론 깔깔대며 주절주절 주고받는 대화를 곁에서 듣다 보니 꺽 하고 가슴이 막혀왔다. 이 아이들이 공유하는 대화내용이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새로운 각본이 생겨난 것인지 진부한 옛이야기들이 조소 속에서 함몰된 것인지, 하여튼 나는 완전히 이방인으로 소외된 사람이였다.  순간 무덤 속 존재가 서서히 떠올라 소녀들의 얼굴과 합치되였다. 십여년 후이면 아름답게 필 한송이 꽃…    -애송이들아, 니들이 뭘 알겠냐만… 아직은 코흘리개들이지. 람루한 차림의 아저씨가 훅 치고 들어왔다. -아저씨는 잘은 모르면서… 그중 한 녀자애가 말끝을 흐렸다.  -이제 너희들도 크면 다 알게 될 거다… 에고… 일단 쏘다니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거라. -앞으로 시간이 얼마 흐르면 알게 될가요?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가요? 어느 순간 확 알아버리는 그런 느낌인가요? 그렇죠? 맞죠? … 그리고 한치 앞도 모르는 래일 알아서 뭐 해요? 그러니 오늘이 중요하지 않을가요?  아저씨의 말에 녀자애는 자기 생각을 당차게 발설했다.  -맞아. 어제와 오늘의 온도가 너무 다르잖아. 옆에 있던 다른 한 아이가 공감하는듯 친구를 동조해나섰다.  -실리를 따지는 어른들은 따분한 벌레일지도 몰라. 야금야금 꿈을 좀먹게 할지도 몰라. 그거야말로 지루한 거야. 존재하는 것, 눈앞에 보이는 게 전부 아닐 수도 있는데 머리보단 가슴으로 생각하는 게 맞는데…  녀자애는 아저씨와의 대화를 중단하고 다소 날카로운 어투에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친구들에게 자기 하던 말을 계속했다.  -쯧쯧… 요즘 애들은 너무 조숙됐다니까. 그게 문제지… 아저씨는 혀를 끌끌 찼다. -본능에 충실하면 돼. 애당초 본능에서부터 시작되는 거 아니겠어. 어차피 영원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 느낌 그대로. -어우. 시인이 납시오.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영원, 그건 언어마법사의 진한 롱담이질도… 불현듯 취기가 괴여오르는지 피가 거꾸로 흐르는 감이 들었다. 캔맥주를 입에 대고 련속 들이켰다.  지루한 사람들, 가여운 사람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 빙글빙글 어지럽다. 이후 필을 들 때마다 심연에 빠진듯 혼자말로 되뇌이는 그 녀자애가 떠오를 것만 같았다. 이젠 집으로 돌아갈 때 아닌가 싶다. 머리 속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으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워났다. 도저히 발걸음을 옮길 힘이 나질 않는다. 심경은 심란하면서 삭막하기 그지없다. 그러고 있자니 무덤을 만들던 날 밤이 자꾸만 끔찍하게 떠올랐다. 심한 하혈이 시작되고 하혈과 섞여진 피덩이 하나…  나는 그 날 무언가에 끌리운듯 앞마당으로 향했다. 무언가 억울해서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하고 처절한 죽음을 마주해야 했다.   -낯선 인간과 낯선 곳에서 하루종일 이야기만 하다가 죽고 싶네요. 내 안의 다른 한 내가 말하고 있다.  -얼마나 낯설면 되지?  -나조차 못 알아볼 정도로 딱 그만큼만. 순간 나는 전률을 느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따지 않은 소주 한병을 들고 앞마당을 찾아갔다. 조그마한 언덕 같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미약한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생명의 꽃을 피워보지 못한 령혼이 허공 속을 회유하고 있었다.  나는 동그란 동산 같은 그 곳에 소주병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어떤 아이였을가? 나는 그 무덤가에 손을 살며시 얹었다. 열병처럼 뜨거웠다. 애처로운 오열… 가능하다면 나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아니 대신해서 땅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손을 내리고 아무 말 없이 뒤돌아서는 것 뿐이였다. 온몸의 중력이 아래로 내리꼰지고 있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였지? 스스로 자책하며 또다시 엄습해오는 상실감에 휩싸여 가슴이 미여지고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다시 무기력하게 심연 속으로 빠져든다. 앞마당에 올 때마다 있는 일이다. 마음 속 갑갑하고 불안한 정서가 이곳과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를 악물고 발버둥 치며 간신히 과거를 깊숙이 삼켜버렸다. 마귀의 손에서 탈출하여 요행 살아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것들이 새롭게 고개를 들고 부활한다면 이제는 참지 않고 스스로 숨을 끊을 것 같았다.  무덤 속으로 사라진 령혼과 별개로 숨쉬며 살아간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예전과 똑같이 먹고 자고 웃고 울고 꾸준히 살아간다. 그게 견디는 방법인지 그렇게 하는 것이 견디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지만 엄마는 살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앞마당을 떠나 네온사인이 가득한 사거리를 빠져나오자 구불구불한 골목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팔딱이고 있는 내 심장과는 무관하게 골목길은 고요한 정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고향집에 머문 같은 포근함이 느껴지며 이곳이 나의 귀속처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다. 누구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완벽한 자신이자 주인공이였다. 취기가 부족했다. 서서히 바닥 나는 통장 잔고, 누구와 신세한탄을 하면서 외로움을 토해내며 함께 마시는 것도 이젠 사치로 남았다. 그렇다면 이 몸 뉘울 곳은 가로등 밑 길다랗게 놓여진 벤치, 순간 그 곳에 누군가 와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주해오는 모든 우연과 필연을 스쳐지나 철저한 소외 속에서 눈 감으려 했던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였다. 그리고 삶을 서둘러 흘러보내려고 한 것도 아니였다.  반대편 그리고 골목의 입구 옆 자택에서는 밝은 불빛이 새여나왔다. 그 앞으로는 순시경찰차 한대가 덩그러니 세워져있다. 내 옆으로 심플해보이는 청년이 휘파람을 휙 불며 지나갔다. 그 남자는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휘청거리는 밤이다. 나는 골목길에서 십메터쯤 떨어져있는 벤치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가로등만이 어두커니 긴 밤을 지켜주고 있었다.  -어이, 거기… 아니나 다를가 중후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뒤를 돌아보니 중년남자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혼자인 것 같은데 우리 얘기 좀 나누지 않겠소? 남자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면서 물어왔다.  나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무서워 말게. 키가 큰 편이였다. 짙은 갈색 모자를 눌러쓰고 짧은 잠바를 입고 있었는데 옷깃을 세워 꽁꽁 앞을 가렸다. 한참 침묵이 흐른 뒤 나는 그에게 무덤덤히 하루밤 얼마 줄 건가고 묻자 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자기는 실은 조용한 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이라고, 마침 내가 그런 상대로 적절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지금 작업 거는 겁니까? -거 적당히 하소. 그런 게 아니라… 마누라가 암으로 돌아가고…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방향으로 따라오라고 내게 고개짓했다.  지끈한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다. 골목 사이로 그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아주 조용한 건물이 보였다. 일층의 슈퍼는 이미 문을 닫았고 2층은 간판도 걸려있지 않았다.  그는 무심히 걷고 있는 나의 팔소매를 붙잡고 2층으로 나를 이끌었다.  한적한 공간이였다.  -마누라가 작년 암으로 돌아갔소, 딸네미 하나 있는 건 한국으로 시집갔고… 이제 살 만하니… 이리 보톨 신세 면치 못했소! 나는 딱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장례식을 치르고 대략 일년간 벽과 마주하고 있었소. 어찌 이리 대화할 사람조차 곁에 없는지… 그의 어두운 얼굴에는 처량함이 어려있었다.  -그냥 이렇게 내 말만 들어주면 되오. 다른 뜻 없소. -그래요? 그럼 얘기 계속하세요.  나의 말에는 궁금증, 안타까움 같은 그 어떤 감정도 개입되지 않아있었다.  남자는 모자를 벗고 후- 한숨을 내쉬였다.  나는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였다. 의자등받이의 차거운 촉감, 밀페된 공간에 가득한 그의 숨소리, 이것이 내가 잠시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내가 나쁜 사람으로 보이오? 아 근데 처자는 왜 아까 그러고 혼자 있었소? -저도 잘 모르겠는 걸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갔다.  -처자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어차피 다시 못 볼 사이인데 다 터놓소. 말 못할 고충들을 쭉 얘기하오. -이 세상에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스스로에 대한 비아냥인지 부정인지 가늠할 수 없는 어투였다.  -그런가? 혼자 남는다는 게 얼마나 혹독한 건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였소. 젊었을 때 허구헌 날 술에 취해 마누라 속 적잖게 썩였댔소. 지금 후회해도 곁에 없으니 무슨 소용 있소, 에휴… 여기까지 말한 남자는 담배 한대를 집어물었다. 그러면서 내게 권하려는 제스처를 보였다. 내가 고개를 저으니 이내 손을 거두어들였다. -아주아주 미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줄가요? 남자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짧은 탄식을 하더니 담배를 한모금 들이켰다.  새파란 나이에 비해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듯한 서두여서 남자가 멍한 표정을 지었는지 나는 그의 의사 같은 건 전혀 개의치 않고 중이 경을 읊듯 주절주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봄이 한창 무르익을 때 있죠. 녀자에게는 꽃이 만발할 때가 구경 몇번 있을가요. -그래 녀자들은 거 뭐 있겠소, 그냥 적당한 시기에 좋은 남자 만나 시집 가는 게 좋은 직장 얻는 것보다 백배 잘된 거지. 우리 딸네미도 딱 한창 그 나이인데… -아는 녀자가 있었어요. 그 녀자는 한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어쩐지 두 사람 사이에 또 다른 한 녀자가 그들과 같이 사는 느낌이 드는 거 있죠. 기하학에서는 삼각형이 가장 단단한 구조라고 했는데 인간관계에서는 삼각관계가 가장 불안정한 관계인가 봐요. 그 집 남편은요, 두 녀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어느 쪽하고도 정리하지 않았어요.  -남편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자기 령역 안에 두어야 안심이 되는 안해는 남편에게 더더욱 집착할 수 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갈팡질팡 우유부단한 남편을 보고 안해는 차차 환멸을 느꼈어요.  여기까지 말하고는 긴 여백이 흘렀다.  -이미 그녀와 헤여질 수 없을 정도로 두 사람 깊이 사귄 것을 의식한 안해는 이를 악물고 그냥 받아들이려고 자신을 설득했어요. 숨을 죽이고 조용히 살아가는 게 모두에게 편한 방식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뜻밖에 안해의 배속에 새 생명이 잉태되였어요. 남편의 태도는 예전보다 어느 정도 살틀해지기도 했어요. 안해는 임신을 빌미로 그녀와의 관계정리를 요구했죠. 물론 남편은 안해의 말을 귀등으로 흘려버리고 행동이 불편한 임신 기간에 제 하고 싶은 대로 했죠.  남자는 나를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뽀얀 담배연기가 눈앞에서 하얗게 피여올랐다.  -있잖아요, 이 세상에는 겉은 멀쩡하게 생겼어도 속은 음흉한 생각들로 가득찬 인간들이 얼마나 수두룩해요. 자신이 한 남자의 안해라는 정체성을 잃어가는 분노와 불안에 시달리던 안해는 약간의 하혈이 시작되였는데 그 녀자의 과거를 들먹이며 예전에 류산한 적 있지 않냐며 야멸차게 굴더래요. 안해가 할 수 있는 것은 목놓아 우는 것 뿐이였겠죠.  남자는 상념에 빠진듯 담배만 뻑뻑 빨아댔다.  -그 집 남정네는 머 하고 있었다오. 남자는 중후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어쩌면 중재자가 십분 필요했었겠죠. 량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갈등을 중지시키고 판결을 내리는 역할을 수행하는 그런 역할 담장자.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결단코 그런 일은 없었다는듯 아주 잠간 눈을 감았다 떴다. -새우 등 터질가봐 상황을 다 알면서도 회피했죠. 조정자로서의 역할이란 것이 공정한 태도와 분명한 자기 주장을 갖고 있어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건데 모든 남편들에게 이런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죠. 나는 남자의 담배갑에서 담배 한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러고 나서 그러니까 얼마 안 지나 안해는 하혈이 점점 심해지더니 안타깝게도 배속 아이를 결국 잃고 말았어요. 그러자 이번에 그 녀자가 내 남자를 빼앗은 대가라며 욕지거리를 해왔어요. 뭐 내 남자를 빼앗은 대가? 너무 무자비하지 않아요? 생각할수록 너무 악에 받치는 거예요. 이보다 더 치욕스러운 일이 있나 싶을 정도니깐요. 안해가 미쳐버린 건 아마 그 때가 처음일 거예요. 벽을 얼마나 긁어댔는지 몰라요. 집안의 물건은 죄다 집어던지고 친정엄마가 와서 막 말리고… 근데 남편이 진짜 더 미친 놈이지요. 안해를 위로할 대신 혼이 나간 표정을 짓더니 그 녀자랑 갑자기 나가버리는 거예요. 완전 미쳤죠! 남자의 미간은 순간 찌프러졌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것들이 옮는 것 같은 표정이였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진짜 웃긴 건 말이예요. 그러고 나서 후에 누군가 그러는데 새로운 아빠트에서 남편이 그 녀자랑 함께 사는 걸 목격했대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리혼서류는 택배로 보내왔는데 택배를 뜯어보는 순간 쓰러져버렸어요.  나는 표독스럽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차거운 공기는 각막마저 딱딱하게 만들었다. -혼미에서 깨여나 보니 뱀의 혀가 보였다. 오롯이 자신에게 필요한 욕망, 자신만을 위한 술수에 뱀은 혀가 두개 필요했다. 하늘에 태양이 하나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두개의 태양이 뜬다면 인간은 죽음보다도 무서운 고갈을 맛보게 될 것이라. 두개의 혀를 가진 뱀, 죽음보다 무서운 뱀의 사악함… 뱀을 죽이지 않았으면 그 다음 차례는 안해였을 거예요. 틀림없어요. 남자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였다. -그래서 어떻게 되였소? 끔찍한 일이라도 발생했단 말이요?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였다.  나는 고개를 젓고 말을 이었다. -내가 무덤을 만들어봐서 알죠. 그는 담배를 올리던 손을 멈췄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는 사람은 안 묻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아주 속이 개운한 감이 들었다.  그는 궁금해하는 한편 념려되는 눈치였다.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차근차근 말을 이었다. -다만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다시 봄이 올가요? 그녀에게… -어험, 그러챈쿠, 그렇구말구… 남자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했다.  -내가 지금 당신 눈앞에서 죽으면 어떨 것 같아요? 남자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못 들은 걸로 하겠소. 한창 좋을 때요, 창창한 앞날이 기다리는데 나 같은 홀애비도 외로움 이겨내며 살고 있는데… 무슨 험한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다만 인생 망쳤다 생각 말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잘살아가야 하오… 죽으려는 생각은 하지도 마오.   그렇게 단호한 목소리를 참 오랜만에 들은 같았다. 나는 새파란 롱담이라고 얼버무리고서는 그에게서 담배 한가치 받아 피웠다.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내가 걱정된다는 표정이 남자의 얼굴에 씌여져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하나의 작은 파문이 되였음을 명백히 알아보았다. 더우기 그것도 가족이 아닌 타인한테서… 내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자 남자도 따라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두시 삼십오분을 넘기고 있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오백원을 꺼내 테이블 우에 올려놓고는 문을 떼고 나가더니 사라져버렸다.    나는 건물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돌아가는 길에 나섰다. 아까 머물렀던 골목길의 벤치에 이르렀다. 이상하게도 여태 나를 괴롭혔던 초조와 불안의 정서가 가뭇없이 사라렸다. 벤치에는 대학생들로 짐작되는 청년들이 앉아서 왁작지껄 떠들고 있었다. 지나가는 나를 의식했는지 시선이 나에게로 쏠리자 나는 조금 불편함을 느끼고 옆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고개 들어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들 이 유난히도 가슴 따뜻하게 느껴졌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을 만큼 마음이 후련했다.   마지막으로 그 무덤을 찾아가기로 작심하고 앞마당으로 향했다.  한 아이가 내게로 다가와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이고 있다.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다.  산 시체들의 삶은 아무 것도 아니다. 올가미의 올가미였다. 출처:2018년 제3호
5    박명옥: 엄마의 살구나무(단편소설) 댓글:  조회:90  추천:0  2019-07-12
엄마의 살구나무 박명옥   “어머! 살구네.” 윤은 불어오는 바람에 젖은 머리를 손빗질하며 걷다가 동네 과일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빠트 커뮤니티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였다. 과일가게는 이제 막 문을 열고 통로를 향한 창가 쪽에 과일을 예쁘게 진렬하고 있었다. 사과와 배는 물론 복숭아와 멜론, 수박과 같은 제철 과일이 바구니나 나무박스에 수북수북 담겨있었다. 살구는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구석 쪽 작은 바구니에 소복이 담겨있었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소박한 비주얼이였다.  윤은 살구가 담긴 바구니 쪽으로 허리를 숙이고 살구를 한알 집어들었다. 주황과 빨강으로 적당히 물든 살구는 입에서 군침이 돌 정도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윤이 관심을 보이자 과일가게 사장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요즘 살구 맛있어요. 싸게 드릴게 한봉지 담아가셔요.” 평소 같으면 무슨 과일이 이리 비싸냐고 타박을 했을 윤이지만 아무 소리 안하고 과일가게 사장이 담아주는 대로 살구 봉지를 받아들었다. 집으로 향하는 엘레베터를 기다리면서 윤은 봉지를 살짝 열고 코끝에 갖다 댔다. 달콤하고 향긋한 과일향이 풍겨왔다. 윤의 마음은 어느덧 35년 전 작은 시골마을 뒤마당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는 풍경 속으로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형체도 없지만 윤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집 마당에도 큰 살구나무가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수령이 꽤 됨직한 살구나무는 해마다 4~5월이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고 7~8월 되면 노랗게 익은 살구를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윤이네 살구는 보기 드문 참살구였는데 알이 굵고 겉모습은 허여멀쑥하지만 진한 맛이 덜한 백살구나 비주얼 만큼은 화려해 맛있어 보이지만 정작 먹어보면 시큼털털한 개살구와는 달리 진하고 달콤한 맛이 일품이였다. 잘 익은 살구를 힘줘서 누르면 반으로 톡 쪼개지면서 살구씨가 톡 튀여나온다. 살구씨는 따로 모아두었다가 말려서 한약으로 쓰기도 했다.  마을 맨 뒤편에 자리잡고 있던 터라 다른 집에 비해 유난히 마당이 컸던 윤의 고향집에는 앵두, 배,  자두 등 여러가지 과일나무가 있었지만 그중 으뜸은 단연 살구나무였다. 나무가 어찌나 큰지 거짓말 안 보태고 장정 둘이 마주서서 힘껏 팔을 벌려야 간신히 껴안을 정도였다. 나무가 크니 살구가 많이 열릴 때는 앞집, 옆집, 뒤집에서 빌려온 고무 다라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그 때는 과일이 많이 열려도 팔 생각은 못하고 동네 사람들과 나눠먹었다. 살구가 빨갛게, 노랗게 익다 못해 바닥에 한두개씩 떨어지면 엄마는 가족들을 불러모았다. 엄마, 오빠, 윤과 녀동생이 나무 밑에서 큰 비닐을 한 귀퉁이씩 잡고 서있으면 아버지는 긴 나무막대기로 살구나무 가지를 툭툭 건드렸다. 살구가 후두둑 비닐 우로 떨어질 때마다 윤과 녀동생은 살구가 머리 우로 떨어질가봐 “아악~” 비명을 질렀고 오빠는 그 때마다 “호들갑 좀 떨지 마.” 하면서 눈을 부라렸다. 비닐 우로 떨어진 살구들은 고무 다라에 모았다가 다시 크고 작은 대야와 바가지에 가득가득 담겨졌다. 윤과 녀동생은 바가지를 들고 앞집으로 옆집으로 뒤집으로 심부름을 갔다. “엄마가 갖다 드리래요~” 하면 동네사람들은 “아이구 맛나겠다. 엄마한테 잘 먹겠다고 전해~” 하면서 빈 그릇을 그대로 돌려주는 법이 없이 뭐라도 채워서 윤의 손에 들려줬다. 시골에 살기는 하지만 농사를 짓지 않았던 엄마는 그녀가 받아온, 밭에서 방금 따온 배추며 무우, 상추, 쌀독에서 퍼온 쌀과 잡곡, 하다못해 집에서 먹다가 덜어준 반찬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살구 덕을 톡톡히 보네.” 하고 뿌듯해했다.  살구 덕을 보기는 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잘난 척하고 까칠하게 굴던 친구들도 살구가 익을 때가 되면 괜히 그녀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친한 척을 했다. 어떤 아이는 아끼는 공책이나 연필 지우개를 통 크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 아이들에게 살구를 한줌씩 주고 “넌 좋겠다. 이렇게 맛있는 살구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서…” 부러움을 한눈에 받을 때는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한철이긴 했지만 윤은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할 수 있었고 한때나마 아이들에게 떠받들려 지내던 기억은 오래도록 윤에게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어느 해엔가 살구나무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살구가 많이 열려 동네사람들에게 나눠주고도 남게 되였다. 엄마는 “썩여버리느니 한번 팔아나 보자.” 하며 고무 다라를 이고 마침 동네서 열리던 체육대회로 향했다. 그 때 일년에 한번 열리는 체육대회는 향乡에 소속된 근처 마을 사람들이 바쁜 농사일을 잠시 내려놓고 배구, 축구와 같은 경기를 하며 먹고 즐기는 동네 잔치 한마당이였다. 윤이네 살구는 체육대회에서도 단연 인기를 차지해 담배 한대 필 새에 살구 한다라는 매진되였다. 엄마는 생각보다 큰 돈을 손에 들고 약간 떨떠름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해에도 엄마는 살구 다라를 이고 체육대회로 향했다. 한다라를 금방 팔고 들어와 또 한다라를 이고 갔다. 엄마의 살구 장사는 그 뒤로도 쭉 이어졌고 몇년 뒤 마을 한복판에 있는 벽돌집으로 이사한 뒤 엄마는 집 앞에 딸린 작은 방에 길가로 향한 출입문을 따로 내고 작은 식료품가게를 오픈했다. 수년간의 살구 장사 경험이 엄마가 가게를 오픈하는 데 큰 도움이 되였을 거라고 윤은 생각했다.  사실 엄마의 장사 경험은 살구가 처음이 아니였다. 윤이 어릴 때 아버지는 농구창(농기구공장)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엄마를 비롯한 공장 식구들은 여름 한철 공장측에서 마련해준 얼음과자 기계로 얼음과자를 만들어 판매했다. 사탕 과자가 귀했던 시절이라 달콤한 얼음과자는 더운 여름에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였다. 비록 물에 사카린을 대충 타서 틀에 얼린 이름 뿐인 얼음과자였지만 아이들은 다 먹은 나무막대기까지 쪽쪽 빨아먹을 정도로 얼음과자를 사랑했다. 밖에서 뛰놀다가 땀을 흠뻑 흘린 상태에서 시원하고 달콤한 얼음과자를 한입 베여물 때의 그 기분이란.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엄마가 일하는 얼음과자 공장에 들리면 그 맛있는 얼음과자를 량껏 먹을 수 있었다. 윤의 어린 시절 또 다른 행복한 추억이였다.  얼음과자 공장은 많이 팔든 적게 팔든 월급만 받으면 그 뿐이였지만 엄마는 다른 돈벌이 방법을 생각해냈다. 일이 끝난 늦은 저녁이나 주말이면 엄마는 얼음과자가 든 아이스 박스를 경운기에 싣고 몇십리 떨어진 근처 마을로 장사를 다녀왔다. 근처 마을은 윤이 사는 소재지 마을에서도 한참 떨어져있어서 어른들은 가끔 소재지 마을로 볼일을 보러 왔다가 집에 있는 아이들이 생각나 얼음과자를 사주고 싶어도 가는 길에 다 녹을가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개당 5전 하는 얼음과자에 조금씩 마진을 붙여 팔아도 너무 고맙다고 좋아했다. 공장측에 재료비 떼주고 경운기 기사 수고비 챙기고 남은 돈은 오롯이 엄마 몫이였다. 엄마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아이들의 학용품을 사주었고 철마다 옷과 신발도 바꿔주었다. 새옷과 신발을 받는 것은 기쁜 일이였지만 윤은 엄마가 무거운 얼음과자 상자를 내리다가 발등에 찍힌 상처를 보면 마음이 아팠다. 늘 일에 쫓기던 엄마는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많았다. 그 상처들은 오래도록 엄마를 괴롭혀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엄마는 묵은 상처에서 오는 통증 때문에 힘들어했다.  엄마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집과 멀찍이 떨어진 마당에 나무토막으로 대충 우리를 만들고 돼지 두세마리씩 키웠다. 봄에 아기돼지를 사다가 여름 내내 열심히 키워 가을에 팔면 꽤 쏠쏠한 목돈을 만질 수 있었다. 엄마는 마당에 낡은 솥을 따로 걸어놓고 아침마다 돼지한테 먹일 죽을 한솥 끓여놓고 일하러 가면서 윤에게 학교 다녀오면 돼지죽을 챙기라고 신신당부했다. 윤은 대답은 시원스레 했지만 학교 끝나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다 보면 늘 엄마의 부탁을 까먹기 일쑤였다. 그 때는 벼농사와 함께 담배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담배를 건조시키기 위해 만든 흙집이 빙 둘러서있는 가운데 자연스레 공터가 생겨 아이들이 뛰놀기에 딱 좋았다. 책가방을 한켠에 집어던지고 신나게 술래잡기도 하고 고무줄 놀이도 하다가 퍼뜩 엄마 부탁이 생각나서 헐레벌떡 뛰여가면 엄마는 벌써 돌아와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땀 범벅이 된 윤의 몰골을 보고 짐작이 된다는듯 혀를 끌끌 차며 “또 돼지죽 주는 거 까먹었지? 엄마가 뭐라고 그랬어? 놀더라도 돼지죽 먼저 주고 놀라고 안했어?” 야단을 쳤다.  엄마는 닭도 여러마리 키웠다. 덕분에 윤이 형제는 매일매일 신선한 닭알을 먹을 수 있었다. 여름이면 닭 배설물 냄새 때문에 좀 불편하긴 했지만 아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마자 닭장으로 달려가 금방 낳은 신선한 닭알을 꺼내올 때면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매번 닭장 앞에서 어린 윤은 제발 닭이 알을 많이많이 낳았기를 기도했다. 엄마는 늘 아버지와 오빠를 먼저 챙겼기 때문에 한두알 뿐이라면 윤의 몫은 없었기 때문이였다. 특히 병약한 오빠는 엄마에게 아픈 손가락이여서 엄마는 아침마다 찹쌀가루에 닭알 한알을 톡 깨서 넣고 뜨거운 물에 개서 주곤 했는데 윤은 그것이 너무 부러웠다. 어린 마음에 엄마가 오빠만 편애한다고 여기고 나중에 크면 찹쌀가루 반죽을 원 없이 먹어야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식료품가게를 차리고 난 후 엄마는 그나마 자질구레한 부업에서 해방되였다. 적어도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할 필요가 없었고 그 자리에서 돈을 받고 물건만 건네주면 다였다. 대신 자유가 없었다. 일년 365일 쉬는 날 없이 문을 열어야 했고 문에 매단 종이 딸랑 울리면 밥을 먹다가도 뛰여나갔고 화장실도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없었다. 하루에도 수십번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해서 그런지 엄마는 점점 무릎이 아프다고 했고 일어날 때마다 아이고, 아이고 신음을 하곤 했다.  가게를 차린 뒤에도 엄마의 넉넉한 인심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엄마는 지나가는 아이들을 불러들여 사탕 몇알씩 쥐여주었고 무게로 파는 술이나 사탕 과자도 저울추가 쑥 올라갈 정도로 넉넉히 담았다. 덕분에 윤이네 가게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사랑방이 되여갔다. 사람들은 딱히 살 것도 없으면서 “윤이 엄마 있소?” 하면서 들어와 한참을 수다를 떨다 돌아갔고 은행이나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도 꼭 들렸다 가곤 했다. 어떤 사람들은 가까운 상점을 놔두고 굳이 윤이네 가게에서 물건을 사기도 했다.  윤이 현성에 있는 고중을 마치고 대도시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그리고 결혼할 때까지 엄마는 작은 식료품가게를 계속했다. 말단 공무원이였던 아버지의 월급만으로 다섯 식구 먹고 살기 힘들던 때 엄마의 식료품가게는 생계에 큰 보탬이 되였다. 윤은 그 후로 오랜 시간 동안 엄마가 생각날 때마다 살구가 가득 담긴 커다란 고무 다라를 이고 가던 엄마의 뒤모습과 식료품가게 출입문에 매단 종소리를 듣고 에구구 무릎을 짚으며 일어나던 엄마의 모습을 함께 떠올리곤 했다.  “별일 없냐? 왜 전화도 안하고… 하도 전화가 없어서 무슨 일이 있나 근심했다.”  전화기에서 아버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1주에 한번, 늦어도 2주를 넘기지 않으려고 하지만 전화할 때마다 아버지는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다고 나무랐다. 정년퇴직을 하고 아버지는 별다른 소일거리 없이 집에서만 지냈다. 오전 오후 30분씩 산책하는 것 말고는 TV를 보거나 담요를 펴놓고 카드놀이를 했다. 친구들 만나는 것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늘 아팠다.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다는 타박과 여기저기 아프다는 하소연이 아버지가 무한 반복하는 레퍼토리였다. 다리도 아프고 가슴도 답답하고 심지어 치아가 안 좋아 잘 씹을 수 없다고 했다. 그마저도 아프지 않을 때는 화장실 가기 힘들다고 했다. 변비약을 매일 먹는데도 화장실 가기 힘들다며 어쩌겠냐, 나이를 먹었으면 죽어야지 하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였다.  “아버지 자꾸 아프다고 그러는데 내가 보기에 아버지는 오히려 건강념려증에 걸린 것 같아.”  녀동생은 아버지의 증세를 그렇게 단정지었다.  “어디 조금만 불편해도 바로 병원부터 뛰여가는데 뭐. 저번에도 변비 심하다고 대장내시경 하러 갔더니 의사가 그만 오라고 했대. 대장내시경도 너무 자주 하면 안 좋다고. 아마 아버지도 할머니처럼 오래오래 사실 거야.” 처음에는 윤도 녀동생처럼 아버지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온갖 약이며 건강보조제품을 바리바리 사서 보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미안함을 그렇게라도 대신하고 싶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아버지마저 떠나면 안된다는 강박 관념 같은 것도 있었으리라. 지금은 레퍼토리의 후유증 때문인지 아버지가 아프다고 해도 덤덤하게 래일 병원 다녀오세요 하고 만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윤은 스스로도 종잡을 수 없었다. 한창 나이에 어이가 없을 정도로 황망하게 세상을 뜬 엄마를 생각하면 그 모든 게 아버지 탓인 것 같아서 리유 없이 막 밉다가도 또 엄마가 없는 십수년의 세월을 마음 붙일 데 없이 여기저기 떠돌며 눈칫밥 먹고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한없이 짠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그런 모순된 마음으로 윤은 아버지에게 다가가다가 머뭇거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몇년에 한번 볼가말가한 물리적인 거리, 눈에 띄게 로쇠해져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여든을 바라보는 년세를 새삼스레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있을 때 잘해야지 하다가도 아버지가 한번씩 엄마 얘기를 하며 윤의 속을 긁을 때면 한동안 아버지에게서 멀어지곤 했다.  윤이 기억하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의 모습은 늘 엄격하고 딱딱했다. 잘 웃지도 않았고 늘 뭔가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말투도 윽박지르듯했고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벌컥벌컥 냈다. 집안 분위기는 늘 가라앉아있었고 식구들은 아버지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지금 아버지의 늙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면 아버지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아버지는 관공서에 볼일을 보러 가는 것도 두려워했고 사람들이 자신을 늙고 병든 로인네 취급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할 수 없지 뭐. 다 늙은 로인네를 누가 대우해주겠냐.”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후 내쉬였다. 윤은 가끔 아버지가 마흔을 훌쩍 넘긴 자식의 건강을 걱정한다거나 손주들과 함께 있을 때 껄껄 웃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늙긴 늙었구나 싶어 마음이 씁쓸했다.  아버지는 5남매의 장남이였다. 할머니는 자식을 9명이나 낳았지만 5남매만 살아남았다. 그 때문에 아버지는 밑에 동생들과 나이 차이도 꽤 있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군대 가있을 때 할머니가 막내삼촌을 낳았다는 전보를 받았다는 얘기를 하며 “그 때는 시어머니랑 며느리랑 같이 출산하는 일이 많았지 뭐.” 하고 혀를 끌끌 찼다. 할머니가 그 때까지 생산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당시 중학생이였던 윤은 적잖이 충격이였다. 실제로 막내삼촌은 윤의 오빠와 6살 밖에 차이나지 않았다. “시집왔더니 막내삼촌이 얼굴에 때국물이 꾀죄죄한 채 엉덩이를 드러낸 내복을 입고 누룽지를 먹고 있더라.” 라는 얘기는 윤이 자라면서 엄마에게서 수십번도 더 들은 얘기였다.  6살 짜리 막내시동생이 있는 집으로 시집온 엄마, 시작부터 험난한 시집살이가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부모님과 시누이, 시동생 거기다 시할머니까지 모시고 살았다. 열명도 넘는 대식구가 전부 엄마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마흔 후반 밖에 되지 않았던 할머니는 며느리를 보자마자 부엌일에서 손을 떼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대식구의 삼시세끼와 청소, 빨래는 아무 것도 아니였다. 엄마는 대부분 시간을 밭에서 보냈다. 군대에서 10년 가까이 복무한 경력으로 정부기관에서 말단 공무원 직을 맡고 있던 윤의 아버지는 농사를 짓지 않아 월급으로 쌀을 사먹어야 했다. 쥐꼬리 만한 월급은 대식구가 먹을 쌀과 부식품을 구입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엄마는 동네를 지나다가 손바닥 만한 자투리 땅만 보여도 호미로 밭을 일구고 가지, 고추, 오이 등 닥치는 대로 심었다. 엄마는 쉼 없이, 매일매일 투쟁하듯 일만 했다. 새벽에 별을 이고 나갔다가 밤 늦게 달을 이고 돌아왔다. 다람쥐 채바퀴 돌듯 녹초가 될 때까지 일해도 살림은 나아지지 않았다. 시누이, 시동생들이 시집 장가갈 나이가 되여 없는 살림에 넷이나 되는 동생들을 결혼시키고 나니 숟가락 몇개 남지 않았다. 식구는 줄었지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했다. 엄마는 쉴 수 없었다. 엄마가 하루라도 쉬면 당장 다음 끼니 걱정을 해야 할 정도였다. 그 때 얘기를 하자면 “아마 책을 몇권 써도 모자랄 거야.” 하며 엄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에야 그렇게 살라고 하면 싫다고 하겠지만 그 때는 왜 바보 같이 그리 살았나 모르겠다.” 동생들을 시집 장가 보내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실질적으로 동생들의 부모역할을 했던 아버지는 유난스럽다 할 정도로 동생들을 챙겼다. 엄마가 뼈빠지게 일해서 모은 돈은 거의 동생들 뒤바라지에 들어갔다. 마냥 순둥이 같던 엄마도 끔찍할 정도로 내 부모형제만 챙기는 아버지가 얄미웠는지 한번씩 대들기도 했지만 아버지를 이기지는 못했다.  “넌 나중에 절대 장남 만나지 말아.”  윤이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엄마가 입버릇처럼 되뇌던 말이였다.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는데 너희들은 절대 엄마처럼 살지 말아.”  운명의 장난인지 윤과 녀동생 모두 장남을 만났지만 엄마의 기도가 통했던 건지 엄마가 걱정했던 만큼 시집살이가 힘들지는 않았다.  윤은 엄마가 오랜 세월 짊어졌을 삶의 무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지금의 윤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삶의 무게였다. 그 무게를 버티느라 정작 엄마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못하고. 엄마의 인생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과정이였다. 모든 걸 내려놓고 오롯이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 헌신한 과정. 하지만 지금 어느 누가 엄마의 그런 헌신을 기억하고 있을지.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삼촌과 숙모들, 심지어 엄마가 업어키운 사촌동생들마저 엄마의 빈자리를 조금도 애틋해하지 않았다. 가끔 명절에 한자리에 모이거나 결혼식 같은 집안 행사가 있을 때 윤은 그들이 빈말이라도 엄마를 찾으며 “형(수)님도 이 자리에 있었으면…”과 같은 인사를 해주지 않을가 기대했지만 번번이 실망했다. 너무나 빨리 가족들에게 잊혀진 엄마, 그것이 엄마가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대가였다.    뒤마당에 살구나무가 있던 허름한 초가집에서 마을 한복판에 있는 으리으리한 벽돌집으로 이사를 하고 작은 식료품가게를 경영하면서 아버지의 월급 외에 어느 정도 수입이 보장되자 엄마의 살림에도 윤기가 돌았다. 먹을 것이 귀해서 고기나 사탕 과자 같은 귀한 음식이 생기면 서로 눈치 보며 양보하던 일도 옛말이 되여버렸다. 엄마의 가게는 윤이 형제들에게 천당 그 자체였다. 엄마가 팔다 남은 사탕 과자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윤은 너무 행복했다. 가끔은 아이들에게 사탕 한알씩 나눠주며 생색을 내기도 했다. 그 옛날 살구를 나눠먹을 때처럼 아이들은 또다시 윤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엄마는 저녁이면 가게 문을 닫고 시내 장마당에서 산 금고를 열고 하루치 판매수입을 정산했다. 습관적으로 손에 침을 뱉고 하나 둘, 지페를 세던 엄마의 모습, 그 순간 엄마의 얼굴에 피여오르는 뿌듯함과 환희를 지켜보는 일이 윤에게는 또 다른 행복이였다. 엄마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찬란한 시절이였다. 윤은 그 행복이 오래오래 가기를, 그래서 엄마가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기도했다.  그 시절이 조금이라도, 정말 조금만 더 오래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가. 하늘은 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병약해 제 앞가림도 간신히 하던 오빠도 장가를 가 색시를 맞이하고 윤도 대도시에 있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착한 신랑을 만나 결혼하고 녀동생도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취직하고 이제 자식들 효도 받으며 복을 누릴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엄마는 거짓말처럼 홀연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윤은 아직도 엄마가 떠나던 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비라도 금방 내릴 것처럼 잔뜩 흐린 수요일,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와 며칠 전 Y시 병원에 입원한 엄마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저편에는 엄마 대신 외삼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외삼촌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젖은 목소리로 조금 전에 엄마가 떠났음을 윤에게 알렸다. 윤은 누군가 망치로 세게 후려치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가 뗑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화기에서 외삼촌의 말소리가 계속 들렸지만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12층 회사 사무실이 금방이라도 땅속으로 푹 가라앉을 것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풍덩 주저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윤을 보고 지나가던 직장 상사가 놀라서 윤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은 남편이 데리러 올 때까지 회사 건물 로비 귀퉁이에 기대서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윤은 엄마가 아픈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아픈 줄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윤에게 그 사실을 속이고 있었다. 혹시라도 아이가 잘못되면 나중에 사돈들 볼 면목이 없지 않겠느냐가 아버지가 윤에게 사실 대로 알리지 않은 리유였다. 윤은 그 때 임신 8개월이였다. 윤의 출산에 맞춰 엄마는 윤의 산후조리 해주러 온다고 배내저고리부터 포대기, 천기저귀까지 다 준비해놓고 기차에 오르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지.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윤은 엄마와 통화를 했었고 엄마는 “수술만 하면 금방 나을 거야.” 하며 윤을 안심시켰다.  “엄마 가실 때 눈도 감지 못하고 가셨어. 얼마나 억울했으면…” 엄마의 림종을 지켰던 녀동생은 그렇게 말하며 흐느껴 울었고 윤도 녀동생을 붙잡고 같이 울었다. 아버지는 엄마의 병세를 윤에게 뿐만 아니라 엄마 본인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엄마는 돌아갈 때까지 그 사실을 몰랐으므로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였을 때 윤의 이모가 엄마를 붙잡고 세상에 이렇게 착한 사람이 어쩌다가 그런 몹쓸 병에 걸려가지고 하는 바람에 대충 짐작을 했는지 엄마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 파르르 떨리는 걸 보았다고 하면서 녀동생은 또 통곡을 했다.  가벼운 염증인 줄 알고 입원한 엄마가 다시 병원에서 나올 때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하루 반나절 걸릴 거라던 수술은 한시간 만에 끝나고 말았다. 이미 다른 부위로 전이가 많이 되여 더 이상 손쓸 수 없다는 게 병원 측의 설명이였다. 아버지는 객지에서 운명할 수 없다며 기어이 의식이 없는 엄마를 구급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갔다. 구급차가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릴 때마다 엄마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많이 힘들어했다. 당시 동행한 녀동생은 구급차가 출발하기 전 의사에게서 건네받은 모르핀주사는 까맣게 잊은 채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마지막 가는 길에 엄마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녀동생은 지금까지 후회로 가슴을 치고 있었다. 왜 주사가 있다는 걸 몰랐을가. 그랬으면 엄마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러웠을 텐데. 아버지는 왜 엄마에게까지 그 사실을 숨겼는지 윤은 리해할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버티다가 한순간에 무너진 엄마의 기대, 그 순간 절망했을 엄마를 생각하면 윤은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질듯 아팠다.  윤은 지금까지도 그 때문에 아버지한테 서운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아버지 때문에 엄마의 림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윤에게 한이 되였다. 적어도 사실 대로 얘기해주었으면 엄마의 림종은 지키지 못하더라도 엄마와 마지막 인사는 할 수 있었을 텐데. 엄마도 가족 친척들과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윤은 결국 엄마의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윤보다 윤의 아이를 걱정한 아버지와 친척들이 비행기를 타겠다는 윤을 극구 말렸고 윤 대신 장례식에 다녀오겠다던 남편도 혼자 남을 윤이 걱정되여 결국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몇날 며칠을 밥도 못 먹고 울다가 어느 날 배속의 아이가 먹을 걸 달라고 발로 차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남편의 손에 이끌려간 집 앞 식당에서 남편이 구워주는 고기를 꾸역꾸역 삼키며 윤은 또 통곡을 했다. 엄마가 떠났는 데도,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다는 데도 나는 이렇게 밥을 먹고 사는구나… 생각을 하자 먹은 음식을 다 토해내고 싶도록 후회스러웠다. 엄마에게 너무 큰 불효를 저지르는 것 같아 미칠 것만 같았다.  그 후로 오래동안, 배속의 아이가 성장하여 고중생이 될 때까지 윤은 엄마를 잃은 슬픔에서 헤여나오지 못했다. 한동안은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았고 윤이 부르기만 하면 엄마가 어디선가 짠 하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엄마와 관련된 대목이 나올 때마다 윤은 눈물을 한바가지씩 쏟았다. 예쁜 옷이나 화장품, 맛있는 음식을 보면 엄마 생각부터 났고 동네 아줌마들이 친정엄마 어쩌고 얘기할 때마다 부러워 미칠 지경이였다. 지금이라면 엄마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엄마는 옆에 없었다.  엄마의 빈자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컸다. 아이 둘을 다른 사람 손 하나 빌리지 않고 오롯이 혼자 키우면서 윤은 엄마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했다. 엄마는 늘 일에 쫓기면서 아이 셋을 어떻게 키웠을가. 새댁 시절 국이나 반찬이 생각했던 만큼 맛이 안 날 때도 엄마에게 전화해서 양념 비법을 물어보고 싶었다. 둘째를 낳고 이름 지으러 간 철학관에서 엄마, 아빠의 사주도 필요하다며 윤의 태여난 일시를 물었을 때 윤은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없었다. 음력 생일은 당연히 알고 있지만 정확한 시간까지는 몰랐다. 엄마가 계실 적에 얼핏 저녁 7~8시 사이로 들은 것 같아 아버지에게 확인했지만 아버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작고 소소한 일부터 크고 중요한 일까지 엄마가 필요한 곳은 많았지만 엄마는 없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확인할 때마다 후회는 늘 뾰족한 칼날이 되여 가슴을 찔렀다. 엄마를 좀더 아껴줄걸. 좀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줄걸. 아프다고 할 때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좀더 새겨들을걸.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엄마를 혼자 내버려두지 말걸.  돌아가시기 전해 엄마는 윤이 사는 도시로 려행을 다녀갔다. 엄마의 고질병인 관심병과 관절염이 마음에 걸렸던 윤은 엄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 검진을 받았다. 엄마가 다른 데가 아플 수도 있다는 걸 꿈에도 몰랐던 윤은 부분 엑스레이만 간신히 찍고 검진을 마쳤다. 엄마가 돌아간 뒤에야 윤은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그 때 제대로 된 검진을 받았더라면 엄마는 좀더 우리 곁에 있었을 텐데… 아버지를 탓하고 싶은 건 결국 그런 죄책감에서 피면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엄마를 아프게 한 건 아버지였고 엄마를 지키지 못한 건 윤이였다. 엄마가 평생 이루어놓은 질서는 엄마의 부재와 함께 한순간에 무너졌고 남은 가족은 우왕좌왕 헤매다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각자의 슬픔에 빠져 상대방의 상처를 외면했고 엄마의 부재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물으며 서로를 탓하고 질책했다. 원래부터 사이가 버성겼던 아버지와 오빠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이 멀어져갔다. 몇년 후 녀동생마저 결혼과 함께 타지로 떠나자 고향에는 아버지와 오빠만 남겨졌다. 처음 몇년은 오빠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으나 아버지 때문에 엄마가 돌아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오빠는 틈만 나면 아버지를 향해 으르렁댔고 그 때까지 서슬이 퍼런 성격을 버리지 못했던 아버지도 가만있지 않았다. 어쩌다 한번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아버지와 오빠의 피 튀기는 싸움을 목격하는 것도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이 되였다. 엄마의 삼년상이 끝나자마자 아버지는 기다렸다는듯 동네 사람들이 주선하는 대로 이웃 마을에서 혼자 된 아주머니를 데려와 살림을 합쳤다. 뾰족한 하관과 옴폭 들어간 눈 때문에 까칠한 인상의 아주머니는 들어온 지 한달도 안돼 오빠의 호칭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아버지의 옆구리를 찔렀고 아버지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앞뒤 사정 따지지 않고 오빠를 혼냈다. 오빠는 어떻게 처음 보는 아주머니한테 엄마 대접할 수 있냐며 언성을 높였고 화가 난 아버지는 작은 집을 하나 얻어 오빠네를 분가시켰다. 가뜩이나 과묵한 오빠는 점점 말이 없었고 가끔 술에 취해 엄마 무덤 앞에 쓰러져있다 오곤 했다. 명절에 한자리에 모일 때도 오빠는 아주머니가 만든 음식을 거부하고 깡술만 마셨고 아버지 또한 그런 오빠를 가만두지 않았다. 즐거워야 할 명절 마무리는 항상 아버지와 오빠의 잦은 다툼으로 끝났다.  물리적으로 떨어져있는 거리 만큼이나 멀어진 마음의 거리, 엄마가 남기고 간 가장 큰 숙제였다.  오빠처럼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윤도 아버지가 서둘러 살림을 합친 것에 대해 탐탁하게 생각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내가 달래 로친네를 얻었겠냐. 며느리 손에서 밥 얻어먹는 것도 눈치 보이고 다 늙어서 쭈그리고 앉아 혼자 속옷 빨아입는 것도 그렇고. 니네는 모를 거다. 내 심정이 어떤지. 어떤 때는 죽지 못해 산다.” 할 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처음 만난 아주머니와 오래 갈 줄 알고 그 자식들 생일까지 챙기며 정성을 쏟아부었지만 아주머니는 2년이 채 안된 어느 날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무척 락망했다. 하지만 공백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닥친 끼니와 빨래를 걱정하던 아버지는 서둘러 다른 사람을 만났고 곧바로 새로운 만남과 헤여짐을 반복했다. 몇년에 한번씩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아버지 옆에는 항상 새로운 사람이 있었다. 윤은 남편 보기가 부끄러웠다. 아버지는 미웠지만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보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처음 만난 아주머니가 집을 나간 후 윤은 아버지가 만나는 아주머니들한테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잘 챙겨달라는 부탁과 함께 옷과 화장품을 바리바리 선물했다. 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지 괜히 심통이 나기도 했다.  “어쩌겠냐. 그 사람들이 뭐가 좋다고 다 늙은 령감 시중을 들어주겠냐. 다 돈 보고 하는 짓이지.” 아버지는 어쩔 수 없는 만남과 헤여짐의 리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공무원이였던 아버지의 퇴직금은 적지 않았지만 리해관계에서 조금이라도 손해보기 싫어하는 아버지의 성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평생을 힘들게 살아온 만큼 아버지는 돈에 린색했다. 경제권은 여전히 아버지에게 있었고 필요할 때마다 고양이 오줌 누듯 찔끔찔끔 생활비를 타쓰던 아주머니들은 진저리를 치며 집을 나갔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신세 한탄을 했다.  “부모 복도 자식 복도 없는 놈이 무슨 처복이 있겠냐.” 아버지의 이상한 론리에 따르면 아버지 불행의 모든 원인은 결국 엄마에게 있었다. 엄마와 결혼으로 불행이 시작되였고 엄마가 일찍 떠남으로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불행해졌다는 것이다. 처음 아버지에게서 그 말도 안되는 론리를 들었을 때 윤은 파르르 몸을 떨며 분노했다. 엄마와 결혼이 잘못된 거라면 우리가 태여난 것도 잘못된 거네? 그게 지금 자식 앉혀놓고 할 소리냐고 바락바락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돌아가서도 아버지에게 그런 대접을 받는 엄마가 불쌍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나마 아버지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련민이 깡그리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그렇게 끝까지 리기적일 수 있는지. 나이를 먹으면서 윤은 엄마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다. 지금의 윤과 비슷한 나이대의 엄마, 엄마는 그 때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가. 엄마는 늘 소화제를 달고 살았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곤 했다. 엄마 주변에는 엄마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많은 세월 엄마가 받았을 마음의 상처는 아무도 들여다봐주지 않았다. 엄마 혼자 힘으로는 풀기 어려웠던 그 상처들은 좀벌레처럼 엄마의 몸을 조금씩 해치고 있었다.  윤은 자라면서 한번도 아버지가 엄마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어쩌다 화장품이라도 바를라 치면 쭈그렁 호박탱이에 그런 걸 바른다고 누가 쳐다보기나 하냐고 비아냥 댔고 아이들이 남긴 밥 한주먹이 아까워 먹고 있으면 배살이 남산만해가지고 뭘 또 먹느냐고 타박을 했다.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 트러블이 있을 때도 무턱대고 엄마부터 나무랐다.  윤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학교를 다녀오면 엄마는 웃목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었고 할머니는 미닫이문 옆에 다리를 가슴에 붙인 채 쪼그리고 앉아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밖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퇴근해오면 할머니는 아버지를 붙잡고 울며불며 하소연을 했고 아버지는 집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며 엄마를 윽박질렀다. 엄마는 처음에는 뭐라고 항변을 했지만 곧 그것이 아무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아예 엄마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편들어주는 아들을 믿고 기고만장해진 할머니가 입에 거품을 물고 “거짓말하지 마오.” 소리를 지르던 모습. 그 앞에서 엄마는 너무 힘 없고 약해보였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트집을 잡는 또 다른 리유는 오빠 때문이였다. 아버지는 오빠가 병약한 걸 모두 엄마 탓으로 돌렸다. 외가에서 유전되였다는 말도 안되는 리유를 대면서. 오빠는 물론 태여날 때부터 병약한 건 아니였다. 돌을 갓 넘기고 한번은 고열로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는데 그 때 집안 경제권을 가지고 있던 할머니가 돈을 주지 않아서 병원도 못 가고 동네 돌팔이의사를 찾아가 뜸만 죽어라고 떴다고 한다. 아이는 고열로 축 처져있는데 거기다가 뜨거운 뜸을 계속 떴으니. 엄마에게 두고두고 한이 되여버린 그 일을 아버지는 어떻게 엄마 탓으로 돌릴 수 있는지. 늙은이가 이제 앉으면 얼마나 오래 앉겠다고 그걸 하나 제대로 모시지 못하냐고 엄마를 나무라던 아버지의 말과는 달리 할머니는 엄마가 돌아가고도 십오륙년을 건재하다가 몇년 전에 95세로 타계하셨다. 윤의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는 아버지가 만나는 녀자들에게 우호적이지 못했다. 아버지가 초반에 만난 녀자들과 헤여질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경제적인 리유 외에 할머니도 한몫 하고 있었다. 앉은자리에서 풀도 나지 않는다는 최씨네 녀자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할머니는 많이 차겁고 정에 린색한 사람이였다. 어릴 적 윤의 형제들이 안아달라고 엉금엉금 기여가면 나는 팔이 아파서 하며 슬며시 밀어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윤은 할머니에게 안기거나 업힌 기억이 전혀 없었다.  “독한 년이 글쎄 집을 나갈 거면 곱게 나갈 것이지. 감자 깎는 칼까지 싹 챙겨서 나가지 않았겠니. 괘씸한 것, 길 가다가 다리나 확 부러져라.”  아버지가 맨처음 만난 아주머니랑 헤여졌을 때 할머니는 입술을 앙다물고 악담을 했다. 아버지만 모시면 되는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림을 합쳤던 녀자들은 의외의 복병을 만나고 질겁해서 도망쳤다. 아버지는 녀자 복이 없어도 너무 없다며 한숨만 쉴 뿐 할머니를 탓하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결국 양로원에서 돌아갔다. 엄마 말고도 며느리들이 셋이나 있었지만 아무도 모시려 하지 않았다. 숙모들은 하나 같이 할머니 얘기를 꺼내기만 하면 도리머리를 저었다. 젊었을 때 할머니한테 당한 거 생각하면 진저리가 난다고 했다. 엄마라면 그래도 서운한 감정을 꽁꽁 숨기고 할머니를 모시지 않았을가. 윤은 할머니가 마지막 순간 적막한 양로원에서 한번이라도 엄마 생각을 하지 않았을가 궁금했다.  엄마에게 고마웠다, 미안했다고 얘기해야 할 사람은 또 있었다. 윤은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서 먼저 떠난 배우자를 그리워하며 좋아하는 음식을 해준다거나 매일같이 예쁜 꽃을 놓아준다거나 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아버지의 고집스런 얼굴이 떠올라 안타까웠다. 평생을 자기애로 똘똘 뭉친 아버지, 아버지는 언제 쯤 아버지 인생에서 본인 말고도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가. 언제 쯤 엄마를 일찍 놓친 것이야말로 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큰 불행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가.  아버지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였을가. 엄마를 사랑하기는 했을가.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련민의 정도 없었을가. 엄마가 없는 세월 동안 대여섯번의 만남과 헤여짐을 반복하며 떠돌이 인생을 사는 아버지와 한창 나이에 미처 손쓸 새도 없이 허망하게 눈을 감은 엄마 중에 누가 더 불쌍한지 윤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둘은 상대방을 만나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중학생 딸아이가 신발을 벗고 현관에 들어섬과 동시에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윤의 가슴에 달려와 팍 안긴다. 밖에서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있었다. 윤은 딸아이의 머리에서 풍기는 향긋한 땀 냄새를 킁킁 들이마셨다.  “엄마 품은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워 정말 좋아. 히히…” 딸아이가 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윤은 빙그레 웃으며 딸아이를 안은 팔에 더 힘을 주었다. “그건 어째 엄마가 뚱뚱하다는 얘기 같은데?” 딸아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윤은 딸아이의 천진란만한 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요즘 아이들답게 키는 벌써 윤을 훌쩍 넘기게 성장했지만 하는 짓을 보면 영낙없는 어린 아이다. 나에게도 저만한 시절이 있었던가. 윤은 아득한 기억 저편 동네 병원 벤치에 누워있던 풍경이 떠올랐다. 첫 생리를 시작하고 심한 생리통 때문에 데굴데굴 구을 만큼 힘들어하자 엄마는 윤의 손을 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진통제를 맞고 병원 마당 벤치에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있던 기억, 그 때 윤에게 쏟아지던 따뜻한 봄 해살 그리고 윤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던 엄마의 손길. 가끔 손바닥으로 부채를 만들어 윤의 눈을 부시게 하는 해빛을 막아주던 엄마의 손길을 느끼며 윤은 어느새 소르르 달콤한 잠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왜 엄마가 계시는 동안 그런 소중한 추억을 더 많이 만들지 못했는지. 윤이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였다. 엄마가 그리울 때마다 그 몇 안되는 추억을 꺼내여 곱씹고 곱씹으면 내가 정말 엄마에게 해준 게 없구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 왜 엄마가 언제까지나 옆에 있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을가. 세상 두려울 것 없고 못할 것도 없는 엄마도 사실은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고 외롭고 힘들 때는 혼자서 울기도 한다는 걸 왜 미처 몰랐을가.  언젠가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다시 만난다면 무슨 말을 가장 하고 싶은지,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지 물었다.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윤은 생각만 해도 황홀하고 행복했다. 세상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엄마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해주고 미처 못했던 말들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해주고 싶었다. 죄송하다고, 감사하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엄마 왜 그래요?” 딸아이가 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윤은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음을 깨달았다. 윤은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응. 엄마 잠간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했어.” 윤의 눈앞에는 커다란 살구 다라를 이고 터벅터벅 걸어가던 엄마의 뒤모습이 떠올랐다. 엄마, 윤은 목놓아 불러보고 싶었다. 엄마가 한번이라도 뒤돌아봐주기를 바라면서. 엄마의 모습은 가물가물 아지랑이 속에 점점 작아지다가 마침내 보이지 않았다. 윤은 또다시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엄마가 사라진 길에서 엄마의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는듯했다. “윤아, 울지 마, 이제 그만 울어도 돼.”   하늘나라에 가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으로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여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 정채봉 출처:2018 제3호
4    우도: 개구리(시, 외5수) 댓글:  조회:77  추천:0  2019-07-12
개구리(외5수) 우도   혀가 길어 해를 감아삼키는 종이여 매머드의 오한을 잠재우고 이제 너는 동토의 뚜껑을  열어젖혀도 된다   주머니가 커 뻥이 화려한 종이여 춘몽을 여는 너의 열창은 아직은 빈 들을 꽈악꽈악 애드리브로 채워버려도 된다   목이 없어  정이 깊은 종이여 명낭에 풀어논 목걸이 구슬은 마른 풀 적시는 사랑의 세레나데로 깨여나는 새싹의 고막을 간지럽혀도 된다   고무줄이 싫어 팬티마저 벗어버린 종이여 불가항력의 떡판 지조 높은 너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불시착한 그 자리에 이부자리를 펴도 된다   첫사랑              로포수에게서 일곱가지 참새 사냥법을 전수받은 소년은 그 해 겨울 슬그머니 그중 착한 방법  하나를 뽑아들었다 랭동 빼갈백반 먹이기였다 절반의 성공이였다 재잘거리며 맛있다던 공 들인 첫사랑은  그렇게 남 집 부뚜막으로  제풀에 취하여 날아가고 말았다    수상한 부부                                        바람 난 울 아부지 돼지 팔러 가신 날 맞바람 선포하고  집 나가신 울 어무이   아아 어이하여 그 시절 사냥을 접어야만 했던 고양이들의 부언랑설은 가난을 릉가하여 인심을 수런수런 설레게 했던가여   하늘은 또 어이하여 우리 집에 열두마리의 소를 내려주시고 어무이 파마기술은 어이하여 시골 아낙네들을 줄 서게 했던가여   아아 이제는  천千의 바람이 되여 티없이 해맑은 우리 어무이 빠알간 머플러만 만지작이시는   대책 없는 령감탱이와 그 부름소리에 속아넘어가려는 못난 할망탕구를 고발합니다 수상합니다 사랑 때문인가 봅니다                                                소 85년 가을 그 해도 물을 뗀 강바닥에는 기름진 풀들이 봄날처럼 솟아올라있었고 그 날은 소년이 고삐로 마구 소를 때리고 운 날이였다 벼 한이삭 훔쳐먹은 리유로… 오늘도 나는  땅에 엎드려 새김질하며  먼산만 바라보던 그 날의 소를 불러내 화해중이다 그 날 산너머 하늘은 그렇게 푸르렀다   락엽                  락엽 지는데 비와 눈물도  섞여내리는 날이면 그 속에서 나와 같은 얼굴의 잎새를 찾아낼 일이다 한치 오차 없이 술량도 같고  황소 고집도 닮아있어야 한다 그리고 말해야 한다  나 대신 많은 비와 바람을 맞아주어 고마웠다고… 계절이 실어오는 메시지는 엽편에 저장하고 내 마음도 지그시  흙 속으로 자맥질할 일이다 다시 봄이 오기 전에  나의 색갈은 좀더 진한 원색으로  화알화알 불타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폰생폰사                    폰도 자고  바람도 엎드린 밤은  호젓한 방 어둠이 깃든 내 마음에 작은 호롱불 하나 밝힐 일이다 백년 후를 마실 나가 오십년 전을 되돌아볼 일이다   내가 도착한 천국에는  선택받은 인체기관들이 둥실둥실 부유하고 있었는데 면목 있는 그 목사님은 예상 대로 입만 오고 몸은 오지 못한듯했다 찰나에 나는 저만치서  솟구쳐오르는 뱀장어가 나의 몫임을  감으로 찰지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십색찬연한 자궁을 비롯한  기타 부위들이 의기양양  열을 내며 모여들고 있었다 사무치게 인간이 그리웠나보다 남녀합일의 인간으로 합쳐본다나 뭐라나   그 다음은 나도 모를 일이다 거품 찬란한 새벽 쉬 타임 애써 상쾌한 척 빠꼼히 깨여보니 불감의 휴대폰은 랭증에 울고 있고 그래도 그만하면 쓸 만한 아침이였다 일어나자 오줌도 싸고 물도 먹고 마실도 겸해 충전기도 찾아와야겠다 출처:2018 제3호
3    조영욱: 과잉된 기억(시평) 댓글:  조회:95  추천:0  2019-07-12
과잉된 기억 조영욱   우도시인의 여섯수의 시를 접하고 나서 총체적으로 든 생각은 문학에서 말하는 기억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는 점이다. 여러 문학연구자들과 철학자들의 관점에 의하면 기억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추억으로서의 상’이고 또 하나는 ‘조작적인 것으로서의 상’이다. 이 두가지 기억은 모두다 문학으로 승화할 수 있다.  는 이 여섯수의 시 중에서 제일 앞에 위치해있다. 4련으로 구성된 이 시는 각 련 마지막 행에서 ‘…된다’로 압운 혹은 라임rhyme을 맞춘 데서 시인이 아주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대표작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여섯수의 시 중에서는 가장 중요한 시라고 할 수 있겠다.  시 중에는 이른바 ‘뻥’이라고 한 점과 ‘정이 깊다’고 한 것은 엄마 말을 잘 듣지 않는 개구리 설화를 념두에 둔 것 같다. 이러한 것은 물론 개구리와 관련이 있지만 ‘목걸이 구슬, 고무줄, 팬티, 불가항력의 떡판, 지조, 이부자리’와 같은 것은 개구리와 어떤 론리적인 관련은 없어보인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현재의 지각대상에 많은 과거를 집중시키면 그 대상의 물질적 제한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현재 지각대상에 속하는 개구리에 ‘목걸이 구슬, 고무줄, 팬티, 불가항력의 떡판, 지조, 이부자리’와 같은 것을 결합시킴으로써 개구리는 한층 더 연장된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그래서 1, 2, 3련은 총체적으로 봄을 여는 개구리의 역할을 그리다가 4련에 와서는 봄이나 개구리와는 상관이 없는 묘사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장된 의미는 어설프기는 하지만 4련에서 개구리와 ‘상봉’함으로써 이 시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은 말 그대로 시적 화자의 첫사랑 얘기를 하고 있다. ‘로포수’는 련애경험이 아주 풍부한 ‘소년’의 선배(?)라고 할 수 있다. 그 선배로부터 소년은 어떤 수단(일곱가지 참새 사냥법)을 전수받았다. 그중에서 한가지 방법을 사모하고 있는 이성(참새)에게 써먹었다. 그러나 그 참새(첫사랑)는 지금 다른 사람과 결혼(남집 부뚜막으로 날아가다)해있다.  참으로 가슴 시린 첫사랑, 조금은 유치한 첫사랑이다. 흔히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이 들어맞는듯하다. 는 시어가 아주 명백한 데 비하여 이 여섯수 중에서 가장 난해한 시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가장 론리에 맞지 않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총제적으로는 부부싸움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1련은 그나마 난해하지 않고 론리에도 맞다. ‘울아부지’와 ‘울어무이’가 ‘맞바람’을 하고 있다. 3련은 어머니 얘기를 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2련은 당연히 아버지 얘기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확실치 않다. ‘사냥’, ‘고양이’ 등등 2련에 출현하는 단어들은 론리적으로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러나 2련을 아버지에 관한 얘기라고 가정한다면 이 아버지는 아주 잘생겼거나 금전적으로 좀 여유가 있었나 보다. 그래서 ‘인심을 설레게 했’던 것이다. 3련에서 보듯이 어머니 역시 ‘파마기술’이 있어 돈을 좀 벌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버지가 먼저 바람을 피는 바람에 어머니도 ‘맞바람을 선포’하고 집을 나간다.  이 충돌에 대해서 시적 화자는 어머니 편인듯 싶다. 그래서 4련에서 어머니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천의 바람이 되여’라고 한 2행에서 ‘천千’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실치 않다. 몇가지 추측은 있지만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는지 불명확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천’이 무언가 중요한 기억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시인은 특별히 괄호 안에 한자까지 써넣으면서 표기한 것 같다. 정녕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시인만이 알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 5련은 4련의 마지막 행의 련속인듯하다. 어찌됐든 이 부부는 싸움 끝에 화해를 한듯하다.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과 같은 부부싸움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 화해를 마지막 행 ‘수상합니다 사랑 때문인가 봅니다’로 표현한다.  는 전형적으로 시인의 동년의 기억을 그린 시다. 시인은 이른바 70후70后다. 시에서는 85년이라고 했으니 시인이나 ‘소년’은 10대일 때이다. ‘벼 한이삭 훔쳐먹은 리유로’ ‘소년’은 소를 울면서 때렸다. 지금은 이를 후회하며 ‘화해’를 하고 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벼 한이삭’이다. 소가 그 작디작은 ‘벼 한이삭’을 훔쳐먹은 것 때문에 ‘소년’과 충돌이 생긴 것이다. 이는 아마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하던 70, 80년대 시인의 어떤 기억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소’로 표현되는 상대가 꼭 소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소는 어느 인간일 수도 있다. 그 인간과 먹을 것 때문에 생겼던 어떤 충돌을 오늘날에 와서는 후회하고 그것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그 날 산너머 하늘은 그렇게 푸르렀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절을 산 인간이라면 비슷한 경험들이 하나씩은 다 있을 것이다. 은 시인이 아마 기본적으로 어떤 동일성identity을 찾는 데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시적 화자인 ‘나’는 세계(락엽)에서 동일한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그 ‘나’는 ‘나’처럼 ‘한치 오차 없’어야 한다. 그런 끝에 ‘나’를 재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나의 색갈은 좀더 진한 원색으로 화알화알 불타올라야 한다’고 하였다. 이 시에는 또한 시인의 도플갱어적 시각도 보이고 있다. 미치오 카쿠의 평행우주 리론처럼 우주 어딘가에는 지구와 똑같은 혹은 비슷한 행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하는 데 의하면 괴테가 도플갱어를 경험했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도 이를 경험하고 작품을 썼다고 한다. 자의식 혹은 기억의 과잉이 이러한 현상을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는 이 여섯수의 시 중에서 제일 맨 마지막에 위치해있다. 여섯수의 시 모두다 심혈을 기울였겠지만 이 마지막 한수는 특별히 신경을 쓴듯하다.  제목에 휴대폰을 뜻하는 폰이라는 글자가 있어 휴대폰과 관련이 있음을 나타냈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라는 90년대 류행가 제목을 빌어 라고 이름 하였다. 이 시는 두가지 경우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꿈에서 겪는 일이다. ‘폰도 자고 바람도 엎드린 밤’에 이것저것 잡생각을 하다가 잠이 든 모양이다. 꿈에 아마 휴대폰 내부를 상징하는 얼키설키 뒤엉킨 전기선은 ‘선택받은 인체기관들’로 나타난다. 이는 또한 ‘십색찬연十色灿然’이라는 독특한 낱말로도 표현되고 있다. 아무튼 이는 꿈속에서 본 내용이다. 인간은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는가? 꿈을 꾸었는데 아주 생뚱맞아서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을 때. 어찌됐든 꿈에서 깨여나 보니 꿈에 내부를 보았던 휴대폰은 배터리가 다됐다.  둘째는 시적 화자인 ‘내’가 밤에 잠을 못 이루고 21세기 스마트폰 시대에 살고 있는 여느 인간이 그러듯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다. 1련의 ‘작은 호롱불’은 ‘내 마음에 밝힌 불’인 동시에 휴대폰 액정화면의 불빛인듯하다. 휴대폰으로 여러 정보를 접하는 것이 바로 2련이다. ‘내’가 접한 정보들은 별의별 게 다 있다. ‘천국, 목사님’과 같은 종교적인 것도 있고 남성을 상징하는 ‘뱀장어’와 녀성을 상징하는 ‘자궁’처럼 섹슈얼리티한 것도 있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사실 무의미하다. 다시 말하면 이른바 스마트폰 시대의 다량의 정보는 사실 정보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온밤 휴대폰을 가지고 놀다 보니 새벽이 되였다. 휴대폰은 배터리가 다돼 ‘랭증에 울고 있’다. 인간의 급한 생리현상도 해결할 겸 충전기도 찾아온단다.  그야말로 요즘 ‘스마트 시대’ 혹은 ‘스마트폰 시대’에 살고 있는 시인 본인의 자화상이면서도 우리의 자화상이다. 말이 스마트폰이지 전화기가 스마트한지는 몰라도 그것을 쓰고 있는 우리는 꼭 스마트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화자는 1련과 2련에서는 신비한 무엇을 만들고 있다가 3련에서는 자조 섞인 어투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인의 직업과 관련이 있는듯하다. 과학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딸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동시에 과학자였다. 아인슈타인은 상상에서 출발하여 상대성 리론을 고안해냈고 얼마 전에 타계한 스티브 호킹도 상상에서 출발하여 블랙홀을 발견하였다. 시인도 바로 이러한 상상력이 있기에 일도 할 수 있고 이러한 예술행위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억은 추억으로서의 기억보다는 연장된, 과잉된 기억이 리얼리티를 가진다. 예술이란 바로 이런 과잉된 기억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출처:2018 제3호
2    천상규: 자잘하다 평범하다 맛있다 멋있다(수필평) 댓글:  조회:101  추천:0  2019-07-12
자잘하다 평범하다 맛있다 멋있다 천상규   수필은 자잘할 수 있다.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시시콜콜 들려주어도 괜찮다는 말이다. 수필은 평범할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이 흔히 겪는 일상을 수필의 소재로 삼아도 괜찮다는 말이다. 자잘하고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작가의 메시지를 도출해내고 문학적 가공을 거쳐 예술적 승화를 시킨다면 훨씬 강한 설득력을 획득하게 된다.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되는 조원의 수필 는 바로 아무라도 겪을 법한 범상한 일상으로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스한 인정을 견인해내고 다소 이색적인 기술법으로 펼쳐지면서 독자들을 글 속에 깊숙이 끌어들여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라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이것은 그냥 일상의 어떤 순간 포착이고 그 순간 포착으로 인생포인트를 잡아내서 수필의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범람하고 있는 신변잡사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신변잡사도 이렇게 재미있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마저 느낄 정도로 이색적이고 재미있는 시작이 인상적이다. 말로만 하지 말고 구체적인 작품 속으로 들어가보기로 하자.   수필 는 사랑의 순애보를 떠올리고 있다. ‘나’는 련휴를 맞아 이것저것 짓거리를 펼치다가 결국 책을 펼쳐든다. 그리고 그 책에서 심쿵스런 문자를 발견하고 만다. ‘1991. 9. 27. / 용인 동아서점에서. / 남편이 사줬음. / -최’라는. 그래서 호기심 많은 ‘나’는 그것으로부터 추리(상상)를 해나간다. 우선 친구의 손때가 묻었지만 친구의 지인의 책은 아니며 그래서 친구가 중고에서 구입한 책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얻은 단서는 이 책을 소유했던 아무도 이 책을 읽지는 않았다는 추정. 그래서 ‘나’는 ‘최씨 녀자에게로 걸어들어간다’. 잠시 책에 대한 추리는 여기서 한단락 짓고 《세렌디피티》라는 제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이 책의 내용을 반추해보자. 뉴욕의 한 남자와 한 녀자가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반한다. 남자는 녀자에게 다시 만날 수 있는 련락주소와 전화번호를 묻는다. 녀자는 거절한다. 그러나 녀자는 자기의 책 첫 페지에 자신의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어서 헌 책방에 넘긴다. 인연이 닿으면 만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면서. 7년이란 시간이 지난다. 남자가 녀자에게 건네려고 했지만 바람에 날려간, 전화번호가 적힌 5딸라짜리 지페는 사람들 손에서 떠돌고 남자와 녀자는 서로를 찾아떠난다… 그리고 ‘나’는 련휴에 고른 다른 책 이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떠올린다. 인연과 운명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경험하는 모습이다. 모든 문학쟝르에서 사랑은 영원한 주제라는 데 동의한다면 수필 가 우리에게 시사하고저 하는 의미는 분명해진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고 사랑의 순애보이며 사랑을 통한 생명의 찬가인 것이다. 인연이고 운명이고 숙명이라는 명제를 떠나서 인간은 사랑을 해야 하고 사랑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만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 될 것인가. 수필 역시 일상의 사소하고 자잘한 이야기가 모티브이다. 살면서 리유 없이 그냥 좋아지는 낱말들을 떠올려본다. ‘어스름’, ‘다만’, ‘창’, ‘순간’, ‘사이’ 등. 특히 이 ‘사이’라는 낱말은 홀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우리 사는 세상을 집약시키고 있다. 누군가 ‘인생’이라는 시를 ‘망网’이라는 단 한글자로 쓴 적이 있다고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결국 인간人间세상이 아니던가. 작가는 수많은 사이들을 렬거하면서 누군가에게 던져주었던 손가락말을 떠올린다. ‘내 손가락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을, 메시지를 전한다. 따스한 마음이 보는 이들의 눈망울마저 따스하게 어루만져준다. 자신에 대한 반성과, 타인을 보다 다정하게 대해야겠다는 다짐과, 인간 사이가 보다 부드럽고 따스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들이 두루 녹아있어서 이 수필은 이 봄에 더욱 와닿는다. 수필 는 ‘내 출퇴근길의 코스’로 시작된다. 역시 더 이상 평범할 수 없는 일상이다. 그 출퇴근길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이들이 있다. 대개는 코를 싸쥐고 피해다니는 고물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따스함 그 자체이다. 자칫 쓰레기 취급을 당할지도 모르는 고물상인데 질서정연, 안성맞춤, 다양한 모습 등 따스한 언어들과 주인들의 취향과 마음마저 읽을 수 있다는 필놀림이 례사롭지 않다. 그러다가 마침내 ‘뛰여들어 촬영’을 감히 해대고 주인장한테 ‘쫓겨’나오는 모습들을 려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골목길을 다시 찾는 ‘나’, 뒤바뀐 풍경이 펼쳐진다. 고물상 할아버지를 설치예술가로 둔갑시킨 작가의 의도는 분명하다. ‘누군가의 기억의 손때 묻은 것들이 모여있는, 버려져서 쓸모 없게 된 것들이 대화하는, 버려져서 버려지지 않은 것들을 구원하는 곳인 고물상네 울안’이라는 문구가 충격적으로 안겨온다. 하기야 이 세상 무엇인들, 누구인들 쓰레기로 되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그것을 사뭇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아줄 때 쓰레기는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고 인간세상을 향해 마지막 아름다움, 마지막 철학적 메시지를 던져주는 일말의 존재로 각인되는 것이다. ‘고물상네 할아버지의 설치예술은 일년 중에서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의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었다. 가장 짧은 하지날의 밤을 기다리면서’라는 결말구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바로 인간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목이 1차적인 것에서 벗어나 2차, 3차적으로 변화하고 그런 변화과정에서 인간들의 아름다운 심성이 더욱 커다란 아름다움으로 화해주었으면 하는 작가의 메시지인 것이다.   이상 3편의 짧은 수필 묶음을 헤쳐보았다. 주지하다 싶이 소설가 조원씨는 사뭇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인간세상을 바라보면서 밝고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이 세상이 차고넘치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사람 사이에 서로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시키고 있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서 받았던 사랑의 감정은 그대로 씨앗이 되여 가슴 속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서 마침내 커다란 사랑나무가 되여 사랑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맛본 사람들 역시 사랑에 전염되여 또 다른 사랑나무들을 키우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사는 지구는 점차 사랑의 물결로 출렁이게 되리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참으로 따스하게 다가오는 수필 묶음이다. 자잘한 일상에서 따스한 사랑을 발굴해내고 그것을 인간세상의 씨앗으로 삼아 보다 큰 사랑을 키워가고저 하는 작가 조원씨의 애정 어린 심성은 그래서 이 봄에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출처:2018 제3호
1    김혁: 늦봄, 계단을 오르다(만필,련재1) 댓글:  조회:99  추천:0  2019-07-12
늦봄, 계단을 오르다 -2017 《민족문학》 시상식 수감록 김혁   중경을 다녀왔다. 2017 《민족문학》 문학상 시상식 참가차 아름다운 산간도시를 다녀온 것이다.   행차를 앞두고 도춘한倒春寒이런듯 연변에는 아닌 폭설이 내려 비행기가 지연되는 등 소동을 빚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다달은 3월의 중경에는 봄이 먼저 와있었다. 청도를 경유, 무려 6시간의 긴 비행 끝에 중경에 다달았다. 려객기 탑승용 계단을 내리기 바쁘게 더위가 확 덮쳐왔다.  떠날 때 뉴스에 귀를 기울이니 올해 중경에는 30여일 앞당겨 봄이 찾아왔다고 했다. 올해 중경은 63년 이래 지속시간이 두번째로 짧은 겨울이였다고 한다. 그 봄도 이제는 막 가려 하고 있었다. 늦봄의 중경이였다. 날씨는 거의 초여름 날씨에 가까웠다.  무려 20도를 넘나드는 기온의 차이 때문에 공항 터미널에서 입고 갔던 무거운 털세타를 벗어야 했다. 칙칙한 옷가지를 벗어버리고 준비해갔던 봄옷으로 일습을 개비하고 나니 걸음들이 날듯이 가벼웠다.  연도에서 본 벤자멘나무에도 진하게 봄물이 들어있었다.    달빛 어린 삼협의 물을 차지하고  구름 밖의 봄을 가만히 훔치네 清占月中三峡水,丽偷云外十洲春       당나라 재상 심빈沈彬의 시 한구절을 련상케 하는 풍경이 려로에 지친 마음들에 스며들었다.  그야말로 추운 변강의 오지에서 온 흥감스러운 나그네가 봄 한자락을 훔쳐가진듯한 향그러운 마음이였다.    ‘나루터’의 축제 시상식은 3월 2일, 중경시 강진호텔에서 열렸다. 강진구는 중경시의 맨 서남쪽에 위치해있었는데 옛날부터 장강 웃쪽의 나루터로 이름이 있었다.  이곳은 지금도 장강의 가장 중요한 항운구역과 물류의 집산지일뿐더러 곡창과 어미지향鱼米之乡으로도 널리 알려진 천혜의 땅이였다.  민족문학잡지사, 중경시 강진江津구 인민정부, 중경시작가협회의 공동 주최로 된 시상식에 중국작가협회 명예부주석 단증, 중국소수민족 작가학회 상무부회장 엽매, 《민족문학》 주필 석일녕, 중경시작가협회 당조서기 신화 등 귀빈들과 수상작가들, 매체 기자 등 도합 80여명이 참가했다.  조선족 작가들로는 수상자들인 나와 조광명, 리홍규, 강정숙 그리고 연변작가협회 상무부주석 정봉숙이 참석했다.  1981년에 창간된 《민족문학》은 56개 민족을 위한 순수 문학지로서 현재 한어, 몽골어, 장어, 위글어, 까자흐어, 조선어 등 6개의 민족 언어로 꾸려지고 있다. 그 와중에 《민족문학》 문학상이 2010년에 발족되여 해마다 시상하고 있으며 올해로 제8회를 맞았다.  19명 심사위원들의 진지한 심사를 거쳐 23명의 작가들이 창작상과 번역상을 수상했다. 그 가운데 조선족 작품으로는 김혁의 단편소설 〈피에 누아르의 춤〉, 조광명의 수필 〈상처 입은 단풍잎과 길게 키스하리라〉 그리고 리홍규, 강정숙의 번역작품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몽골족, 장족, 까자흐족, 조선족 작가들이 차례로 시상대에 올라 수상했다. 소수민족 작가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민족복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한쪽 어깨를 드러낸 장포를 벗지 않았고 머리에 두른 히잡을 벗지 않고 있었다. 그 이색적인 민족복장 차림이 시상식에 풍경을 돋구어주었다. 나는 불과 얼마 전 일껏 맞추어놓은 우리의 민족복장을 입고 오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되기도 했다.  조선족 작가들을 대표하여 내가 〈빛나는 비단결 같은 우리의 문학灿烂如锦的民族文学〉이라는 제목의 수상소감을 발표했다.  천애지각에서 모여온 여러 민족, 여러 어종의 소수민족 수상자들과 더불어 시상대에 올라 어눌한 중국어로 감수를 토파하며 나는 저으기 감개에 빠져들었다.  “한 민족의 문학은 그 민족의 구성원들이 오랜 시간 동안의 탐색과 분투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이로써 그 문학은 민족의 휘황한 성과 중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문학은 한 민족이 생존하고 존속해나가는 데서의 령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물과 불의 세례를 거친 조선족 문학은 독특한 지연地缘과 문화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한국, 조선 그리고 기타 소수민족 문학과는 동질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판다른 자기만의 특성을 갖추었으며 중화문화의 토양 속에 참신한 봉오리를 맺었고 개화기를 맞고 있습니다.  글로벌 일체화의 현대화된 언어환경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조류, 새로운 사유에 적응해야 하며 우리 민족의 근로함과 견인불발의 정신을 그 속에 투영시켜야 합니다. 하여야만 중화민족 대가정 속의 우수한 일원으로 그리고 나아가 중국문단, 세계문단에서 일석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 존재를 빛낼 수 있을 것입니다.”    수상소감에서 나는 고향의 성산-장백산을 떠올렸고 우리의 꽃-진달래를 떠올렸고 우리의 강-두만강을 떠올렸다. 또한 그 산자락 강기슭의 흰옷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여러 소수민족 작가들을 향해 우리의 ‘시성’ 윤동주를 알렸고 우리 문단의 거목 김학철을 알렸고 65성상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의 문학지 《연변문학》을 알렸다.  과경해온 백의의 족속으로서 척박한 땅의 개척과 일제와의 항쟁 속에 점차 생성된 우리 문학의 ‘원류源流’에 대해 소개했다.    수상소식을 듣고 나는 수상작가들의 주요 작품들을 다운해놓았고 서재에서, 비행기 우에서, 터미널에서 새삼스럽게 다시 읽어보았다.  역시 우리 조선족 작가들처럼 민족과 문학의 생존을 위해 고전하고 있는 여러 소수민족 형제작가들의 호흡과 맥박을 작품들에서 더듬어보았다.    84세 고령의 몽골족 작가 나·세시아라투의 수상 평론 〈자치구 설립 초기의 문학사업 회억록〉은 그의 구리빛 피부 만큼이나 중후한 빛을 발하는 작품이였다. 작품은 지난해 자치구 설립 70주년을 맞아 내몽골자치구 문학인들의 문학려정을 총결한 기록문학이였다.  사료적 가치로 가득한 작품은 역시 지난해 연변조선족자치주 설립 65주년을 맞은 우리에게 커다란 동질감을 불러일으켰다.  작품은 견증자로서 본인이 피부로 겪은 사실들을 통해 개체의 기억과 문학사의 상호 인증을 도출해냈으며 소수민족 문학의 발전려정에 대해 나름의 정감으로 다듬어내여 묘술하였다.    장족 녀류시인 완머춰의 〈둥근 광환〉은 시의 격률과 생기 있는 절주감 사이의 장력张力으로  미학적 함의를 둥글게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완머춰는 장족 가운데 몇명 안되는 녀류시인 중에서 뛰여난 한 시인이라고 한다.    번역작 〈초원에 부는 바람〉으로 수상한 나이만 싸판은 까자흐족의 유명한 번역가, 언어학가라고 했다. 그는 《까자흐어 한어대사전》의 편역에도 참가했고 중외 문학명작도 까자흐어로 여러권 번역해냈다고 한다. 그는 “창조적인 언어 그리고 적절한 언어로 원작의 예술풍모를 살려냈다”는 평을 들었다.    조선족 작가 김혁의 단편소설 〈피에 누아르의 춤〉은 그가 다년래 현실 속에 살아있는 ‘민족적 기억’의 재현에 주력하고 있는 작품 중의 한편이다. 그는 출국, 리산가족에 관한 계렬소설을 잇달아 발표, 글로벌화, 도시화의 진척과정에서 엇갈린 삶과 운명을 화려한 문체, 강한 울림으로 보여주었다.  금번 수상작은 이 계렬 중의 한부로서 독특한 시각과 철학적인 사고로 이채로운 수작을 펼쳐보이고 있다.   조광명의 수상 수필 〈상처 입은 단풍잎과 길게 키스하리라〉는 감각적인 체험과 정감체험에 머물지 않고 이를 심미체험으로 승화시켜 수필을 ‘정감과 상처’를 다룬 일반적인 미문에서 탈바꿈시켰고 신선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수상작들을 살펴보면 우리의 소수민족 작가들이 이채롭고 다원화된 서술시각으로 약속이나 한듯이 력사와 시대의 소용돌이 속 소수민족의 운명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작품 속에 아우르고 있음을 보아낼 수 있었다.  또한 변혁기 속에 맞닥뜨린 가지가지 현실의 시련들을 헤쳐나가는 현시대 소수민족 인물들의 독특한 형상들을 부각해내고 있었다.    여러 소수민족 작가들의 수작을 읽으면서 한낱 자신감에도 불과하고 날로 부박함의 한계를 보이고 있는 우리의 문학창작에서 새로운 글쓰기 전략이 필요함을 절감하였다.  여타 소수민족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그들이 착복한 복장 만큼이나 자신만의 특색을 오롯이 간주하고 있었다. 그들의 작품에서는 말젖냄새, 쑤유차酥油茶냄새를 강렬하게 체취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 특색의 문학에 대한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이른바 우리 특색의 문학이란 곧 지역문학사의 특수성과 독자성을 어떻게 간직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지역특수성과 독자성을 밝혀내지 못하게 되면 변별성을 잃게 되고 반복적인 소재로 말미암아 우리의 문학은 매력과 탄력성을 잃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주류문단과의 접목이며 세계로의 진출은 지상담론에 그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문학의 특수성과 독자성을 통해서 조선족 문학의 본연의 모습을 우리의 공동체를 바탕으로 이야기해낼 수 있어야 하며 그로써 자가自家의 독특한 경지를 새로 개척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말 작품 번역의 진부함에 관해 감히 말해보고저 한다.  글로벌화 시대, 번역의 중요성은 더 운운할 나위가 없이 중요하다. 우리 문학이 “중국 문단과 접목하고 세계로 나가자”고 호소를 거듭한 지도 수십년째 잘된다. ‘쌍수리개 전략’이요 하고 거창한 이름을 달고 진척해보았지만 그 효과는 미비하기 짝이 없다. 우리의 훌륭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전면적으로, 체계적으로 번역 소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러해째 번역이 몇몇 같은 사람에만 국한적으로 그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어 우리 문학의 최고봉인 윤동주나 김학철 같은 별과 거목들의 보귀한 유산인 주옥 같은 작품들에 대한 번역조차 빈약하다. 타민족은 이들이 누군지조차 잘 모른다.    번역인재는 타지로 대도시로 빠지고 있고 번역의 후배양성도 미흡하다.  번역가들은 생계 때문에 한국의 작품 그리고 상업성에 치우친 작품을 번역하는 데 많은 필봉을 바친다.  조선족 번역가가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나가서 타민족의 민족영웅을 소재로 한 대형 프로젝트의 기획자로 활약하는 것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은 적 있다.  또 《민족문학》과 같은 소수민족 작가들을 전문 소개하는 권위 문학지를 받아들고 목록을 펼치면 조선족 작가가 가장 적고 때론 지어 작품 한편도 수록돼있지 않을 때면 그야말로 얼굴이 붉어진다.   우리 작가들 중에 한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명 안된다.  근년래 우리 문학사에서는 한어로 전문 창작하고 있는 김인순, 전용선, 김창국 등을 문학사에 보충해넣음으로써 이 면에서의 공백의 유감을 무마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문단에서는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지만 이들의 작품 중 민족제재는 거의 비여있으며 설령 한두편 써낸 작품이라도 우리 민족의 호흡과 결이 보이지 않는다.  이로써 번역에 대한 중시도를 다시금 더 강도 있게 호소하고 관련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본다. 소수민족 문학 치고는 비교적 많은 문학상을 갖고 있는 우리의 허다한 작품상 중에 번역상은 없다. 우리의 문학지들은 더불어 코너를 신설하여 조선족  번역작품도 중국어로, 외래어로 싣고 소개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좋은 작가, 좋은 작품을 선정, 기획하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상급과 기업가들의 호응과 찬조를 얻어내야 한다. 이 면에서 연변의 가무와 축구는 좋은 본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작가는 “번역은 나를 국경 밖으로 데리고 가는 우방과도 같다”고 했다. 번역이 없다면 한 어종의 문학이 다른 어종의 나라로 뻗어나갈 방법이 없다. 우리 작가들의 작품이 주류문단과 접목하고 세계로 나가는 지름길은 좋은 번역가를 만나고 그에 따른 마케팅법을 기획하는 것이다. 일전 FTA, 즉 자유무역협정에서는 “수출입 장벽을 낮춰 경제령토를 넓힌다”는 것을 슬로건처럼 내걸었다.   이 슬로건처럼 외국과 타민족과의 문학이 우리에게 많이 소개될뿐더러 우리의 좋은 작품이 더 많이 더 수준 높게 번역되여 널리 읽힐수록 우리 작가들에게는 높기만 한 언어 간의 장벽이 낮아지며 문학, 문화의 령토가 더욱더 넓어질 것이다. 시상식 기간 그리고 외성의 문학행사들에서 시종 느끼는 바이지만 여러 소수민족 작가들의 한어 구사수준이 조선족 작가들보다는 거개가 월등했다.  우리는 중국의 최변방에서 일제식민지의 지배와 민족분단의 경험을 지닌 과경민족으로서 소수언어 사용자라는 사실을 랭정하게 의식하지 않고서는 주류문단과의 접목과 세계문학에로의 진출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민족적 독자성을 지니면서 주류문단과 세계문학이라는 지평으로 시야를 확장해야만 우리 문학의 살길이 있다. 거대한 주류문단의 중심과 질서를 정시하고 그 중심부에 우리의 문학을 진입시키는 노력을 가하면서 중심부와 주변부 간의 격차와 차별을 극복하는 노력을 장기적으로 기울여야 우리 문학이 진정 구태를 벗고 더 넓은 세상에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어눌하게나마 한어로 여러 작가들과 소통을 가지며 나는 좁은 울타리에서의 일탈을 꾀하며 주류문단과의 접목과 개화를 꿈꾸는 우리 작가와 번역가들의 선전善战을 빌어보았다.   돌에 새긴 사랑의 판타지 시상식이 끝난 뒤의 여가에 여러 작가들은 강진구의 풍경구들을 찾아떠났다.  천년의 오래된 산간마을 중산진中山镇으로 간다고 했다. 그 곳으로 가면 ‘타이타닉호’ 이야기 같은 것은 울고 갈 사랑이야기가 깃들어있는 곳이 있다고 짙은 사천억양으로 구사하는 가이드 아가씨가 알려주었다.  강진구에서 뻐스를 타고 남으로 30여리 가량 달리고 나니 험준한 산세의 산이 나타났다. 반백파半百破, 해발 1500메터 되는 산이라고 가이드가 알려주었다.  산중턱의 암바위를 깎아만든 표지석이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다. 바위에는 ‘사랑의 하늘계단’이라고 새겨져있었다. 산자락에 걸린 구름다리를 건들건들 건느니 강기슭에 세워진 사람 키 높이의 동상이 맨먼저 맞아준다.  안존한 얼굴의 늙은 량주가 머리에 땀수건을 두르고 죽장竹杖을 짚고 어깨 겯고 서있는 오목빛 동상이였다.  달콤한 사랑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는 유람객들 앞에 막상 나타난 가이드는 달콤함과는 거리가 먼 석쉼한 소리를 뿜는 50대의 장년이였다. 가이드 아저씨가 동상을 가리키며 그들이 바로 이곳을 세상에 알린 전설 같은 사랑의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동상의 뒤편으로 산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뻗어있었다.  이끼 돋은 돌계단 아래로 그야말로 말간 시내물이 도란도란 흐르고 있었다. 물 속에 잠긴 돌이며 풀, 그 사이를 누비는 물방개까지 오목렌즈처럼 환히 보이는 시내물은 문자 그대로 청정함 그 자체였다. 약수병을 지니고 왔음에도 모두들은 손으로 옴켜서 청정의 물을 마셨다. 물에 손을 담그니 물이 뼈속을 적셨다.  과즙같이 청량한 산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한 바람에 들뜬 마음들을 식히며 가이드의 뒤를 따라 산길로 올랐다.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 속에 아저씨의 석쉼한 목소리로 자아올리는 사랑이야기에 간간히 귀를 기울이며 허위단심 돌계단을 올랐다.    아저씨의 이야기는 2001년으로 거슬러올라갔다.  그 해의 늦은 여름 중경의 유백구俞白区의 등산탐험가들이 이 일대의 원시산림으로 탐험을 떠났다.  산첩첩 물겹겹의 심심산곡이라 이틀 낮 이틀 밤을 강행군해도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탐험대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어떻게 먼길을 돌아가야 하는지 한숨을 쉬며 고민하고 있는데 문뜩 기적과 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험준한 산의 내리막길 한켠으로 돌계단이 놓여져있었던 것이다.  뜻밖에도 그것은 인공의 흔적이 보이는 돌계단이였다.  돌계단은 일매지게 뻗어있었다.  한계단 한계단 산정상까지 이어져있었다.  계단을 타고 산정상까지 오른 탐험대는 인적을 발견했다. 놀라웁게도 산정상에는 초옥이 있었고 그 초옥에 늙은 량주가 살고 있었다. 전문 탐험대조차 오르기 힘들어하는 이 산꼭대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니? 탐험대가 량주의 사진을 찍으려 하자 할머니는 깜짝 놀라하며 얼른 할아버지 뒤로 가서 숨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표정을 보아 아마 카메라를 처음 보는듯했다.  이윽고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탐험대 대원에게 물었다.  “모주석께서는 옥체건강하신지요? ” 수십년 전에 이미 고인이 된 모택동주석의 안부를 묻다니? 탐험대 대원들은 서로 마주보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들이 이 산꼭대기에서 숨어산 지가 벌써 50여년이 넘는다고 했다. 할아버지 이름은 류국강刘国江이며 70여세이고 할머니 이름은 서조청徐朝清80세라고 했다. 부부라고 했는데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10년이나 년상이다.    지난 1956년, 중산진 고탄촌高滩村에 살던 20살 청년 류국강은 짝사랑에 빠졌다. 그것도 10살 년상에 아이가 넷이나 딸린 과부 서조청에게 말이다.  이들의 첫 만남은 류국강이 여섯살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섯살 꼬마 류국강의 앞이가 빠진 게 그들 만남의 첫 계기였다. 시골에는 새색시가 이 빠진 자리를 만져주면 새 치아가 잘 나온다는 풍속이 있었다.  서조청이 이 마을로 시집오던 날, 어린 류국강은 큰엄마의 손에 딸려 신부를 처음 보았다.  새색시의 꽃가마가 류국강네 집 앞을 지날 때였다.  큰엄마는 류국강의 손을 잡고 꽃가마를 가로막으며 새색시 서조청더러 아이의 이 빠진 이몸을 한번 쓰다듬어달라고 청을 들었다.  새댁이 이발 빠진 곳에 손가락을 넣는 순간 류국강은 놀라서 서조청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새색시도 깜짝 놀라했고 사람들은 재미나게 지켜보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렇게 꼬마는 처음 아름다운 새댁 서조청을 알게 되였다.  그 후로 류국강은 서조청을 고모라 불렀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남편은 괴질로 세상을 떠나고 서조청은 홀로 네명이나 되는 아이를 키우는 과부가 되였다.  동시에 류국강은 어엿한 청년이 되였고 청상과부가 되여 평소 온갖 고초를 겪고 있는 고모를 때때로 돌봐주었다. 그러는 사이 류국강은 자신보다 10살 많은 과부를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류국강은 4년 동안 줄곧 그녀네 집 땔나무를 해주고 물을 길어주는 등 가사일을 도우며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고 서조청도 결국 그의 마음에 감복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당시의 통념으로는 두 사람의 사랑은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용인될 수도 허락받을 수도 없었다. 구습과 보수가 뼈골까지 스민 이 작은 마을에서 류국강이 고모와 사랑을 한다는 소문은 그야말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주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갖은 비난을 견디다 못한 두 사람은 사랑의 도피를 마음먹었다.  드디여 1956년 8월, 20살 류국강刘国江과 30살 서조청은 야밤도주를 하였다. 이후로 중산진 사람들은 더는 두 사람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마을사람들의 쑥덕거리는 소리와 따가운 시선을 피해 두 사람은 마을을 떠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고 스스로 세상과 담을 쌓았다.  부부가 네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정착한 곳은 마을에서 산길로 다섯시간 여를 걸어들어간 심산오지였다. 인적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고 한낮에도 산짐승이 돌아다니는 그런 곳이였다. 처음에는 동굴에 들었고 산과 들 이곳저곳에서 산나물들을 캐여 끓여먹었다. 이제 그들의 사랑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상대로 해야 했고 스스로 선택한 시련을 극복해야만 했다.  야반도주를 할 때, 서조청이 농사를 지을 각종 알곡과 채소 씨앗을 챙겨나왔다. 류국강부부는 조악한 농기구로 땅을 일궈 먹을거리를 마련했다.  기거할 집도 지었는데 다 짓기까지는 2년이란 품이 들었다. 또 화전을 일구었고 오리와 돼지 그리고 개도 키웠다. 그리고 양봉도 했다. 두 사람이 처음 산으로 올 때는 서조청의 아이들 4명을 데려와 모두 6명이였지만 산에 오고난 뒤 또 류국강의 아이 넷을 낳았다. 그중 아이 하나가 요절했지만 자식이 7명이 되였다.  이 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두 사람은 손톱이 벗겨지고 등골이 휘여지게 밤낮으로 일했다.  그러던 류국강에게는 절벽을 타고 오르내리는 길 아닌 산길이 늘 걱정이였다.  안해와 아이들이 이동할 때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그는 산정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고된 농사일의 짬을 내여 류씨는 수직에 가까운 바위 절벽에다 망치와 정으로 돌을 쪼아 계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원석을 짐져 날라서는 손에 물집이 지고 손톱이 닳아떨어지게 망치질을 했다. 계단 옆에 작은 구멍까지 따로 내여 손으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아이들은 어렸고 서조청도 밭일 하고 밥 짓고 아이들을 돌보느라 시간을 낼 수 없어 계단을 쌓는 작업은 류국강 혼자 할 수 밖에 없었다.  검은 머리의 젊은이가 백발의 로인이 될 때까지… 그 무슨 신자가 사원을 짓듯이 경건한 마음으로 한계단 한계단 쌓아올렸다. 그동안 20여개의 정, 40여개의 망치가 마모되였다고 한다. 그렇게 50년간 오로지 망치와 정 그리고 곡괭이로 그가 쌓아올린 돌계단이 무려 6000계단이 되였다. 가히 천국의 계단이라 할 만하였다. 가난 뿐인 두 사람에게는 반짝거리는 결혼반지도, 화려한 결혼식도 없었다. 그러나 남편 류씨는 사랑하는 녀인을 위해 ‘사랑의 징표’를 만들어 보였다.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의 하늘계단爱情天梯’을 쌓아올렸다.  그는 장장 50년에 걸쳐 6000개의 돌계단에 돋을새김으로 새겨 사랑의 힘이란 뭔지를 증명했다.   이들 부부의 사연은 당시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해일과도 같은 큰 여운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2007년 중경을 감동시킨 인물’에 선정되였다.  이들의 이야기는 싱가포르의 국영방송에 의해 《사랑의 하늘계단》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되였다.      나이가 들면서 두 사람은 모두 상대방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길 바랐다. 남아있는 사람이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은 오랜 시간을 가지고 자신들의 사후에 대해 의논했다.  둘 중의 하나가 먼저 세상을 뜨면 그를 돌계단 옆에 묻어주고 남은 사람은 하산하여 자식들과 같이 생활하다가 그마저 세상을 뜨면 다시 돌계단 옆에 둘을 합장하게 해달라는 유언을 작성했다.  그러다 지난 2007년 류국강이 로환으로 애정 어린 세상을 먼저 떠나고 말았다.   류국강은 궤짝 우에 고히 얹어두었던 그림 한폭을 가슴에 꼭 그러안고 세상을 떴다고 한다. 그 그림은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에 감동된 나머지 일본에서 한 유명 화가가 이 산곡에까지 찾아와 그려준 두 사람의 젊은 모습의 초상이였다. 결혼식도 못 치르고 사진도 못 남겼던 그들 부부는 젊은 모습이 재현된 이 그림을 애지중지했다고 한다.  장례날을 정하고 출빈을 앞두고 서조청은 꼬박 6일간을 남편의 시신을 지켰다고 한다.  드디여 출빈하던 날, 서조청은 관을 어루쓸며 혼자말처럼 되뇌였다. “이보시게 ‘총각’.” ‘총각’은 서조청이 자신보다 열살이나 손아래였던 남편에 대한 애칭이였다.  “당신은 일 밖에 몰랐지요. ‘총각’, 낮에는 돌층계를 만들었고 밤이면 원숭이가 헛간의 쌀을 도적질할가 잠을 못 잤지요. 어느 한번 독수리가 닭알을 물어가자 당신은 그렇게 화를 냈지요. 당신은 그 닭알로 내게 맛있는 찬을 만들어주려 했던 거죠 ‘총각’.” 전국 각지에서 모여온 수백명이 그의 장례식에 참가했고 사랑의 계단을 찾아 절절히 애도를 표했다.  출빈이 시작되였다. 상복을 차려입은 아들딸들이 곡을 하며 앞섰고 상여군들이 관을 지고 뒤따랐고 그 뒤를 악대가 슬픈 주악을 하며 6000개의 돌계단을 내렸다.  고령 때문에 산을 내릴 수 없었던 서조청은 산꼭대기에 홀로 서서 한걸음 한걸음 멀어져가는 상빈대오를 굽어보며 바랬다. 그러던 서조청이 목메인 소리로 웨쳤다. “잘 가시게 ‘총각’.” 본인의 유언 대로 류국강은 산자락 돌계단 옆의 수림 속에 안장되였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자신의 발밑에서 사랑을 느껴왔을 서조청도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2012년 11월 4일, ‘천국의 계단’에 올랐다. 돌계단 곁에, 남편 류국강의 묘지 곁에 묻혔다. 두 로인의 작고소식을 들은 네티즌들은 “너무 슬프다”, “저세상에서도 행복하길 바란다”, “당신 덕분에 세상에 진정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였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줘 고맙다”며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사랑의 주인공들은 갔지만 이 ‘세기의 사랑’이 주는 감동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장장 반세기라는 년륜으로 두 사람의 사랑이 각인된 이곳은 지금 진강구의 중요한 유람경관으로 되였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온 련인들은 50여년 전의 러브 스토리에 흠뻑 젖어들고 있다.  지금 이들의 사랑이야기는 ‘량산백과 축영대’에 비견될 만한 ‘중국 10대 사랑 이야기’의 하나로도 불린다.   고금으로부터 해내외에 이르기까지 사랑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가 되여왔다.  그렇게 많은 문인, 명사名士들이 필봉으로 사랑이란 불멸의 탑을 쌓아올렸음에도 우리의 제재 령역에서 사랑의 탑은 무너질 줄 모르고 그냥 솟아오르고 있다. 사랑은 시간과 공간, 문화를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담고 있다. 이렇게 인류 공동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사랑은 한편의 아름다운 판타지에 다름 아니다.  사랑의 계단을 쌓아올린 류국강, 서조청 두 사람의 사랑도 마치 아름다운 고전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판타지가 아니인가!   하지만 어쩌구려 요즘 세월은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판타지마저 물질에 둔화되여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전락되거나 상업주의에 기대인 흔하디 흔한 싸구려투성이로 되여버렸다. 사랑이 금전으로 쉽게 환산되고 있는 요즘, 또 일회용 속찬 같이 흔해빠진 사랑이 더는 향기가 아니라 쉬쉬한 냄새를 풍기는 요즘, ‘사랑의 하늘계단’ 이 이야기가 우리의 메마른 감성을 성찰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을듯하다.   어떻게 그 높은 계단을 오르고 내렸던지 나는 몰랐다. 산길에서 들춤질하는 뻐스에서 나는 주먹 만한 갱엿이라도 삼킨듯 목구멍 가득한 감동을 애써 삭이고 있었다. 가실 줄 모르는 여운에 떠밀려 나는 차창으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안존한 두 얼굴의 동상은 정오의 빛 아래 더더욱 빛나오르고 있었다.  어깨를 맞대이고 은애의 미소를 머금은 두 사람의 머리 우로 빛은 성수처럼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그 뒤로 돌계단이 전설마냥 멀리 뻗어있었다.  (계속 이음) 출처:2018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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