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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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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2018년 제4기

전체 [ 5 ]

5    <장백산>2018.4 루계220 댓글:  조회:644  추천:0  2019-07-14
장백산 총220호  2018 제4호   권두칼럼 장춘식    아름다운 글과 현대적 감각   기획조명-작가와 작품 남영도    ‘치타치타’(외2편) 남영도    부끄러운 고백(작가노트) 김호웅    수필의 현대성과 수필가의 자질(작품평) 최순희    꿈꾸는 지란지교(작가평)   기획련재 김혁     한락연평전(장편인물평전 련재10) 김혁     늦봄,계단을 오르다(만필 련재끝)   박초란소설코너 박초란    블루베리농장   소설광장 김경화    사랑한 죄(중편소설)   계렬수필 주향숙    더는 준비로 머뭇거리지 말며(수필) 주향숙    아름다운 시로 위로하고 싶다(수필) 주향숙    해비에 젖으며(수필)   시인시전 최룡관    축구장 별곡(시 외5수) 조영욱    란숙의 거리두기(시평)   창작마당 김견      혼인보험(단편소설) 김동수    유전(단편소설) 정호원    설 아닌 설날(수필) 김영춘    새로운 고향(수필 외1편) 박장길    달이 보고 있었다(시 외2수) 조광명    실면(시 외1수)   8090문학코너 김연      엄마(단편소설) 곽고분    기적의 접견(단편소설) 핑크오렌지 아버지는 나를 철학가라고 하셨다(수필)   문학과 비평 김영옥    시행으로 그린 삶의 자화상(평론)   기념문 김호웅   격정과 랑만의 화신-림휘교수님(수필)   중국소수민족문학 양수강    소녀 금매(단편소설/천년목 옮김)   장편소설련재 김혁      무성시대(장편소설 련재4) 구호준    여백(장편소설 련재2)
4    김연:엄마(단편소설) 댓글:  조회:391  추천:0  2019-07-14
엄마 김연   무려 10년간 얼굴 못 봤던 엄마가 집을 방문한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혼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은호는  남편 지훈을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겉으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련락해온 것은  점심을 먹고 동료들과 한참 수다를 떨고 있던 때였다. 휴대폰에 낯선 번호가 떴을 때 그저 스펨전화인 거 같아서 받기가 싫었다. 휴대폰이 지치지도 않고 5번이나  울리고 동료들이 의아한 시선을 보내서야 그녀는 통화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귀가에 가져갔다. “엄마다.” 전화기 너머로 낯설면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은호가 12살 되던 해 아버지와 리혼을 한 엄마는 집을 나갔다. 그 때 은호는 공교롭게 생애 첫 생리가 시작되였고 어린 소녀에게 그건 대참사였다. “생리대를 갖고 다니는 걸 잊지 말고, 생리 그거 별거 아니야.” 짐을 싸면서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그녀에게 말했다. 처음 생리대를 사용할 때 은호는 속옷이 아닌 자기 몸에 붙여버렸다. 아픈 건 둘째 치고 너무 불편했으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 같아서 수업시간에 은호는 옆자리 친구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생리할 때 화장실은 어떻게 가는 거야?” 친구가 얼굴을 붉히며 설명을 해주어서야 그녀는 생리대의 정확한 사용방법을 알게 되였다. 엄마는 늘 집으로 전화를 해왔지만 마침 사춘기였던 은호는 엄마한테 버림받은 기분에서 헤여나오지 못한 채  분노했고 전화기는 항상 아버지한테 돌아갔다. 반년 후, 엄마는 당신이 처녀시절부터 동경했다던 S도시로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은호 부모님들은 각자 재혼하였다. 련락은 점점 줄었고 직접 만나는 건 더더욱 어려웠다. 그런 엄마가 주말에 은호가 사는 T도시로 오고 그녀의 집을 방문하겠다고 한다. 엄마가 오기로 한 토요일, 오전 내내 은호는 주방에 틀어박혀 청소를 하였다. 그릇과 수저들을 꼼꼼히 씻고 후라이팬 두개를 반짝반짝하게 닦았다. 가스레인지도 왠지 더러워보여서 광이 나게 빡빡 닦아냈다. 그러고 나니 주방 환풍기에 씌인 먼지가 거슬렸고 그 다음엔 찬장도 맘에 안 들었다. 점심에 라면을 끓여먹고 나서야 은호는 거실이 전혀 정리가 안되여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늘 정작 중요한 문제를 외면하고 있으며 그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뭔가 기대를 가지는 것을 애써 경계하기 위함이였음을. 이 때 초인종이 울렸다. 시계바늘은 정확히 오후 1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현관문을 여니 엄마가 문밖에 서있었다. 엄마는 마치 어제도 다녀갔던 사람처럼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 엄마라는 부름 대신 은호는 짧고도 낮은 소리를 내고 말았다. 계산해보니 엄마는 올해 57살이였고 얼굴은 10년 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잘 정돈된 짧은 매직머리에 회색의 트렌치코트와 검정색 베이직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디자인이 심플한 커피색 토치가방을 들고 있었다. 얼굴엔 연한 화장을 하고 있었고 주름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나 새 슬리퍼 줘.” 엄마는 허리를 꼿꼿이 한 채 집안으로 들어왔다. 머리 속에 수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은호는 한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거실을 제대로 치우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도시 변두리에 위치한 90평방메터의 아빠트가 괜히 허접하고 지저분해보였다. 은호는 엄마에게 뭘 마시겠냐고 물었다. 엄마는 커피를 달라고 했지만  집에는 커피가 없었다. 랭장고에 커피음료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꺼내서 엄마한테 흔들어보였다. “그냥 물 줘.” 은호는 왠지 꿈을 꾸는 기분이였고 이 상황이 현실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서로가 서먹한 모녀는 식탁을 마주하고 앉아 각자 손에 물컵을 들고 있었다. 은호네 집 식탁은 집 실내구조 중 가장 북쪽에 놓여져있어서 대낮에도 어두운 편이였다. 그래서 집에 사람이 있으면 식탁 우 천장의 상드리에에는 늘 불이 들어와있었다.  밝고 환한 조명을 통해 엄마 얼굴을 찬찬히 보게 된 은호는 그제서야 엄마와의 사이에 놓인 10년의 세월을 실감했다. 엄마는 확실히 예전보다 늙었고 머리는 흰 머리카락을 감추려고 염색한 티가 났다. 탱탱하던 얼굴 피부도 느슨하고 처져있었으며 잔주름들이 눈에 띄였다.  상대도 분명 자신의 변화를 눈치챘을 것이다. 이제 서른두살이 된 딸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지 궁금했다. 은호는 엄마가 그녀를 떠났던 그 때의 모습을 애써 떠올렸다.  20년전, 그 때 자신은 12살이였고 엄마는 37살이였다. 그 때 엄마는 일말의 망설임이 없이 아버지와 자신을 떠났었다. “너 결국 그 남자랑 결혼했구나.” 엄마의 말투에는 실망보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단정이 묻어있었다. 은호가 지훈이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가타부타 반응이 없었다. 아버지가 전화로 엄마한테 결혼소식을 전했고 은호는 아버지의 재촉에 마지못해 청첩장을 엄마에게 보냈다. 물론 엄마는 그녀의 길고 정신 없었던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았고 축하전화조차도 없었다. 은호와 지훈의 웨딩사진은 현재 거실 한가운데에 걸려져있었고 사진 속 신혼부부의 진한 웨딩화장과 촌스러운 가짜 유럽 배경에 엄마가 얼마나 한심해할지 그녀는 짐작이 갔다. 22살이 되던 해, 엄마는 은호가 다니는 대학에 나타났다. 그 때 그녀는 막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불안한 상태였다. 별 야망이 없는 남자친구는 졸업하면 현지인 T시에 남아 공무원시험을 봐서 편하게 나머지 인생을 보내려고 하였고 은호는 외국 아니면 수도인 B시로 가서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었다. 엄마와 은호는 학교 대문 근처의 작은 음식점에서 10년 만에 만났다. 엄마의 얼굴에는 긴 세월 무관심하게 방치해두었던 딸에 대한 그 어떤 미안함도 자책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엄마가 집을 떠난  1년 후, 은호는 부주의로 팔에 화상을 입었고 선명한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 날 은호는 반팔을 입어 상처자국이 확연히 눈에 띄였음에도 엄마는 그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대신 은호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물었다. 남자친구가 있냐고도 물어서 은호는 기숙사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지훈이를 음식점으로 불러냈다. 셋이서 식사를 마친 엄마는 은호한테 혼자서 공항까지 배웅해달라고 하였다. 탑승게이트로 들어가면서 엄마가 은호에게 말했다. “그 남자랑은 헤여져. 걔는 전도가 없어. 넌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졸업 후 은호는 B시로 가서 직장을 찾고 취직을 하였다. 지훈이와는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리별을 하고 말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 빨리 자리잡으려고 급히 찾은 첫 직장은 엄청 바빴고 그만큼 재미없었다. 아침 일찍 붐비는 지하철을 견디며 출근을 했고 늘 잔업때문에 막차를 놓칠가 뛰여다녔다.  반년 후의 어느 주말 반지하 세집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은호는 해질녘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바로 기차역으로 간 은호는 T시로 가는 티켓을 끊고 지훈한테 문자를 보냈다. 기차는 한밤중이 되여서 T시에 도착하였고 지훈이가 마중나와있었다. 둘은 서로 시선만 주고받은 채 나란히 말없이 걸었다. 늦은 밤, 적막한 거리는 뿌연 가로등이 길을 밝혀주었고 말로 내뱉지 않은 모든 감정이 그 순간 확인되였다. 이건 사랑이라고… 엄마는 죽어도 모르는 사랑이라고 은호는 그 때 속으로 곱씹었었다. T시로 돌아온 은호는 3년 후 지훈이와 결혼을 하였다. “나  리혼해. 세번째야. 이젠 다신 결혼을 안할 거다.” 아버지랑 리혼 후 S시로 간 엄마는 중한합작회사에 출납으로 취직했고 얼마 안 지나서 한국에서 파견 나온 한국인 로총각과 결혼했다고 한다. 1년 후 그 한국인 남편을 따라서 한국에 갔던 엄마는 7년 후에 또다시 리혼녀가 되여서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세번째 남편은 S시에서 만난 중국인 홀아비라는 얘기는 아버지한테서 얼핏 들은 바가 있었다.  “은호 너 말고 따로 자식을 안 낳았으니 니가 내 유일한 딸이야. 나도 점점 늙어가니 나중에 너한테 신세 질 것 같기도 하네.” 엄마는 남 얘기하듯 표정이 흐트러짐이 없었다. 은호는 엄마한테 시선을 똑바로 고정시킨 채 자신에게 물었다. “이 녀자, 내 눈앞에 있는 이 녀자가 나랑 무슨 상관이지?” 엄마는 의자를 앞으로 끌어서 좀더 은호 쪽으로 다가오면서 비밀을 얘기해주는듯한 은밀한 어투로 말을 계속했다. “이번에 리혼하면 재산분할을 하게 되는데 액수가 상당해. 지금 소송 중이라 변호사도 있어. 은호 니가 내 유일한 자식이니 앞으로 내 재산은 전부 니 거가 되는 거야.  너 내 말 안 듣고 결혼하더니 상태를 보니 그다지 넉넉치는 않은 것 같구나.” “나 잘살고 있는데요.” 은호는 단호하게 반박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엄마는 앞으로 쏠렸던 웃몸을 다시 의자 등받이 쪽으로 옮겨갔다. “나 이번에 마무리되면 고향에 돌아갈거야 . 돌아가서 가게를 하나 할려구. 좋은 곳으로 구해서 이미 계약했고 지금 인테리어 중이야.“ 엄마가 자신의 얘기를 이렇게 자세하게 들려준 적은 처음이였다.  10년 만에 찾아와서 왜 이런 얘기를 소상하게  하는지 은호는 아직 알지 못했다.  “가게 세맡고 인테리어 하는데 돈을 좀 쓰다 보니 내가 살 아빠트를 사려니깐 돈이 좀 부족하네. 재산분할을 하게 되면 아빠트 하나 사는 건 문제도 아닌데 리혼소송은 시간이 좀 걸려서 그 쪽 돈은 지금 쓸 수 없거든. 그래서 너한테 20만원을 꾸려고 해. 걱정하지 마, 소송이 끝나면 내가 리자까지 쳐서 돌려줄 테니깐. 그리고 어차피 그 집은 나중에 니 거야.” 엄마의 전화를 받고 지금까지 비록 수많은 시물레이션을 해봤지만 은호는 엄마의 오늘 방문이 돈을 꾸기 위해서일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잠간 말문이 막힌 그녀는 한참을 엄마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와 동시에 은호의 머리 속은 어이없게도 은행계좌에 25만원 정도의 돈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나 그렇게 많은 돈이 없어요.” 은호는 천천히 한글자 한글자 내뱉았다. 엄마의 입매가 살짝 우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웃몸은 완전히 의자등받이에 기대고 있었다.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가? 너 이제 서른도 넘었잖아.” 어릴 적 엄마는 은호가 학교에서 갖고 온 시험지를 보면서 얼굴은 늘 웃고 있었다. “왜 백점을 못 맞은 거지? 넌 백점 맞을 수 있는 아이잖아.” 그 생각에 은호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고 식은땀이 쫙 났다. 하지만 이제 은호는 어린 애가 아니였다.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엄마한테 소리 지르고 싶었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요구를 하냐고 소리쳐 묻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심장만 쿵쿵 뛸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까 엄마가 문밖에 서있던 그 순간 자신이 이미 22살, 아니 12살로 돌아가 엄마 품에 뛰여들어가 엉엉 울고 싶었었다는 걸 은호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녀는 엄마한테 안기지도, 울지도 않았다. 은호는 최대한 딱딱하게 말했다. “나도 돈이 필요해요. 나 임신했어요.” 임신 소식은 자신을 제외하고 엄마한테 처음 하는 거고 아직 지훈이한테도 알리지 않았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자신이 아이를 위해서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두렵고 자신이 없었으며 전혀 마음의 준비가 되여있지 않았다. “난 또 네가 아이를 못 낳는 줄 알았지. 결혼한 지 꽤 됐잖아.” “일이 바빠서요. 그리고 난 내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거든요.” “무슨 자격?” “좋은 엄마가 될 자격이요.” “이 참에 날 비난할 생각을 하지 마. 내가 니 우상도 아니잖아.” 엄마의 말투도, 표정도 차겁기 그지없었다. 은호는 아래입술을 깨물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던 중 웃층에서 뭔가 둔탁한 물체가 넘어지는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금새 탁탁 하는 분주한 발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니?” 엄마가 짜증을 냈다. “늘 그래요. 웃층이 남자아이를 키우는 집인데 애가 맨날 신발 신고 뛰여다니나 보더라구요.” “가서 따져봤니?” “어린 애랑 뭘 따져요?” “가정교육 제대로 못 받은 애들이 제일 싫어.” 엄마는 고개를 들어 웃층을 향해 눈을 흘기기까지 했다. “너 나중에 애 낳으면 다른 데로 이사해. 이 집 너무 작다. 주변 환경도 안 좋고.” “그래서 돈을 꿔줄 수 없는 거예요.” “내가 공짜로 꿔달라고 했니? 투자한다고 생각해.” 은호는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한참 후 엄마는 다시 은호 쪽으로 몸을 가까이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좀전보다 낮은 소리로, 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사실… 네가 낳고 싶지 않으면 안 낳아도 돼. 요즘은 수술도 쉽고 안전하다잖아.” “엄마는 외할머니가 되고 싶지 않나요?” 이 식상하고 멍청한 질문을 은호는 그 후 며칠 동안 내내 후회하였다. “별로.” 은호의 손을 놓아버린 엄마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손목시계를 본다. “나 있다가 누구 만나기로 했어. 지금 가야 해.”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더이상 앉아있기 싫다는듯이. 문가로 간 엄마는 신발을 신고 가방을 든 채 스스로 문을 열었다. 문밖으로 나가려다 다시 몸을 돌려 은호를 향해 말했다. “내 은행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내줄게. 다음주까지 돈을 보내줘 알았지?” 시끄럽던 웃층은 한참 후에 조용해졌다. 식탁 우에 식어버린 물컵이 아니였으면 엄마가 다녀간 흔적은 아무 것도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물 한잔 마시지 않은 채 바람처럼 왔다가 가버렸다. 20년 전 엄마가 떠난 후 적어도 세명의 녀자가 은호의 엄마가 되고 싶어했다. 그녀들은 은호에게 다가와 환심을 사려고 했고 집에 올 때마다 은호에게 선물을 줬다. 다정한 말투로 그녀를 대했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면서 아버지의 호감을 사려고 했다. 그녀들은 서로 성격이 달랐지만 공무원이였거나 학교 선생님이였다.  엄마처럼 대학을 나왔고 현명했으며 엄마보다 더 상냥했다. 그 중에 한 녀자는 엄마보다 더 이뻤다. 후에 아버지는 재혼을 했고 재혼대상은 공장에 출근하는 평범한 녀자였다.  그 날 저녁, 잔업을 마친 지훈이는 은호가 저녁상을 차려놓은 후에야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설겆이까지 마친 지훈이가 거실 쏘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을 때 은호는 임신테스트기를 그의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지훈이는 처음에 놀라더니 바로 희색이 만면하여 드라마 속 수많은 남자들이 그러했듯 은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내가 더 잘할게.” 어쩜 대사마저 똑같았다. 사실 은호는 지훈이가 좀 다른 반응을 보여주길 바랐었다. 조금은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지금 상황에 대해서 고민해보기를 바랐지만 이 남자는 각박한 현실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이 아예 없었다. “아이를 낳으면 자기 어머니가 분명히 애 봐주러 온다고 할 거고, 그럼 지금 집은 방도 없고 작잖아.” “괜찮아.” “이 근처 학교들도 별로고 나중에 애가 학교 가는 문제는 어떻게 해?” “그 때 가면 방법이 생길 거야.” “난 이 동네 사람들이 싫어.” “난 괜찮은데…” “어떡해?” “다 방법이 있을 거야.” 지훈이는 지나치게 락관적이였다. 더 이상 이 화제는 계속할 수 없었고 은호는 낮에 엄마가 돈 꾸러 왔던 걸 얘기했다. “그 리혼소송은 확실히 이길 수 있는 거야?” 지훈의 첫 반응은 이러했다. “당연하지! ” 왠지 모르게 거슬려서 은호는 볼멘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네가 꿔주고 싶으면 꿔줘 … 그래도 엄마잖아.” 지훈이는 딱 한번 만난 엄마한테 유치한 호감이 있었으며 웃기게도 그녀도 자신을 맘에 들어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은호는 더욱 화가 났다. “만약 엄마가 돈 안 갚으면 어떡해? 우리한테도 돈이 얼마 없잖아.” “내가 더 노력할게.” 지훈이가 태평스럽게 말했다. 다음날, 은호는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냈고 바로 지훈에게 얘기했다. “엄마가 다시 돈 꿔달라 그러면 우리 돈 없어서 남한테 꿔야 한다고 하자. 그러니깐 엄마가 차용증을 써줘야 한다고 하는 거야. 어때? 이 방법이 괜찮지 않아?” 3일 후 엄마가 문자를 보냈다. 문자는 간단했다. 우리 딸, 엄마다. 이건 내 은행계좌야~ ‘우리 딸…’이라는 세글자를 노려보던 은호의 머리 속은 순식간에 뒤죽박죽이 되였다.  불신과 계산으로 가득한 준비됐던 말들이 차마 쉽게 내뱉어지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점차 리성은 감정을 이겨냈고 그녀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차용증 얘기를 했다.  엄마는 별다른 감정기복이 느껴지지 않는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그래… 그렇게 하자. “ 그리고 이틀 후 그녀는 엄마가 택배로 보내온 차용증을 받았다. 차용증 아래부분에는 엄마의 싸인과 더불어 붉은 손도장까지 찍혀있었다. 택배 속에는 차용증 뿐만 아니라 엽산과 종합비타민이 함께 들어있었다.  임신은 예상보다 더 힘든 일이였다. 입덧이 시작된 은호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고 갈수록 구토가 심해졌다. 몸이 힘든 것보다 더 괴로운 건 아직도 확신이 안되는 마음이였다. 그녀는 이 결정이 옳은 건지 하루에도 수없이 생각했고 고민했다. 필경 임신은 그녀의 인생 계획을 파괴하는 중대한 사안이였다. 두달 전, 중요한 프로젝트를 완성시킨 그녀에게 회사는 래년 해외근무를 약속했었고 얼마 전 공교롭게도 B시의 헤드헌터로부터 업계 유망한 회사로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동안 성실하게 묵묵히 달려온 그녀에게 32살이 되던 해에 마침내 눈에 띄는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던 차에 임신은 이 모든 것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드는 치명적인 것이였다.  하지만 임신은 또 은호로 하여금 엄마를 자주 떠올리게 했다. 어쨌던 엄마도 수많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열달 동안 수고스레 잉태하여 그녀를 낳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은호의 손을 잡고 ‘낳고 싶지 않으면 낳지 않아도 돼.’라는 말을 해주었다. 어쩌면 오로지 엄마만이 딸에게 할 자격이 있었던 조언이였고 그건 또 같은 녀자로서 녀자의 삶에 대한 리해를 동반한 련민이라고 은호는 생각했다. 그 장면은 반복적으로 은호의 머리 속에 떠올려졌다. 엄마는 자기 딸이 자신과 같이 랭정하고 무정한 녀자가 되여 그저 자신의 인생을 즐기길 바랐던 걸가? 임신 4개월이 지나자 지훈이는 자가용차를 사야겠다고 했다. 임산부정기검진을 위해서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녀야 했고 차가 없으니 확실히 불편했다. 엄마가 돈을 꿔간 지 두달이 지났고 그 두달 동안 엄마는 감감무소식이였다. 지훈이는 은호에게 엄마한테 련락해서 언제 쯤 돈을 돌려줄 수 있는지 물어보라고 넌지시 말했다. 그래야 자신이 몇달을 할부해서 차를 살지 결정할 수 있잖냐고 하면서. “그래서… 자긴 아직도 엄마를 믿을 수 없다는 거네.” “적어도 소송이 어떻게 되는지는 물어볼 수 있잖아.” “그 때 자기 어머니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우린 차를 사고도 남았어.” 결국 은호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어떤 때 보면 엄마가 없는 게 훨씬 나아.” 얼굴색이 확 바뀐 지훈이가 몸을 돌려 침실을 나갔다. 그리고 그 날 밤 지훈이는 거실의 쏘파에서 잠을 잤다. 밤새 은호는 실면했다. 지훈이와 련애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은호는 그에게 엄마에 관해 얘기해줬다. 화목한 부모 슬하에서 곱게 자란 지훈이는 그 후 은호를 무슨 깨지기 쉬운 도자기 쯤으로 여겼다.  은호네 가족사가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었고 지훈이는 그녀를 각별한 사랑이 필요한 녀자로 대했다. 결혼 후 은호는 지훈이가 시시때때로 보여주는 ‘내 안해는 엄마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야’라는 태도 때문에 조금은 어이없고 화도 났다. 어느 날 그녀가 부주의로 울 니트를 세탁기에 돌리는 바람에  니트가 확 줄어버렸다. 지훈이는 은호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랍시고 말했다.  “괜찮아. 아무도 너한테 이걸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그럴 수 있어.”  그녀가 무지해서가 아니고 그냥 부주의로 인한 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훈이는 은호가 엄마가 없어서 모르는 거라고 제멋대로 판단했다. 재작년에 시어머니가 지병으로 몇달간 입원하여 지훈이도 은호도 지쳐 나가떨어질 번한 적 있었다. ‘엄마가 없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잖아.’  은호는 입밖으로 나오려는 이 말을 계속 꾹꾹 속으로 삼켰었다.   다음날, 은호는 아빠트 엘레베터에서 웃집 사람들을 만났다. 한 할머니가 예닐곱살짜리 남자아이의 손목을 잡고 있었으며 두 사람 모두 표정이 구겨져있었다. 남자아이는 처음에 7층 스위치를 누르더니 련이어 그 웃층 스위치들을 전부 눌러버렸다.  은호가 6층을 누르자 로인은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쳐다보더니 입을 삐죽했다. “임신이 뭐 별 거라구… 사람들 다 그렇게 사는 거구만. 집안에서 소리가 날 수도 있지. 자네도 아이가 있으면 알게 될 거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로인이 자신을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아서 은호는 되물었다. “자네 엄마가 그 날 올라와서 란리 친 거 모르나? 우리 집 초인종이 아주 부서져라 누르더니 문앞에서 욕도 하고 갔구만.” 6층에 도착하여 은호는 엘레베터에서 내렸다. 아직 문이 닫기지 않은 틈을 리용해 그녀는 남자아이를 향해 말했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애들이 제일 싫어.” 바로 그 날, 은호는 엄마의 문자를 받았다. -너의 은행계좌를 확인해줘. 이번 주일내에 돈을 돌려줄게. 시간 있으면 너 보러 가마. 문자 맨 마지막에 ‘엄마’라는 두글자가 적혀져있었다. 지훈이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지만 은호는 그에게 사과했다. “어머님 이제 괜찮아졌잖아, 모든 게 좋아질거야. 엄마가 돈을 돌려주면 우리 차 사러 가자.” 둘은 언제 싸웠냐 싶게 머리를 맞대고 무슨 차를 살 것인가 열렬히 토론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크고 널직한 모델로 사기로 약속했다. 지훈의 장농 면허가 곧 쓸모가 있어질 것 같았다. 은호는 이제 옆으로 누워서 자기 시작했다. 아직 초반이여서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그녀는 배속의 새 생명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크게 티가 나지 않았지만 이제 배가 나와서 청바지를 입을 수 없었고 그녀는 허리가 넉넉한 배바지를 입고 임산부처럼 걸어다녔다. 임신 후 호르몬의 변화로 피부가 나빠졌고 이몸에서는 피가 났다.  약간의 자신감도 붙었다. 어쩜 자신을 용서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될 자격도 자신도 없어서 수없이 망설였던 것을, 심지어 류산에 관해서 검색을 해본 것에 대해서도. 그녀는 그런 자신을 용서하고 용기를 내기로 했다. 신기하게 그 용기의 근원은 엄마였다. 엄마처럼 리기적인 사람도 그녀에게 엄마로서의 존재의 가치와 모성을 보여주고 있고 힘들지라도 이 세상을 보고 경험하게 해주지 않았던가.  주말, 지훈의 배석하에 은호는 병원에 가서 임산부 검진을 받았다. 길고 번거로운 각종 검사를 하고 또 그 결과를 기다렸다. 혈압을 재던 중 휴대폰에 문자가 들어왔고 은호는 흘낏 한번 보고 가방에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의사는 이제 태심을 들을 수 있다고 하면서 그녀를 침대에 똑바로 누우라고 하였다. 은호의 배 우로 차겁고 끈적한 젤를 바른 후 초음파 기계를 이리저리 조절했다. 상대적으로 긴 시간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고 그녀가 조바심이 날 무렵 갑자기 소리가 들렸다. “탁! 탁! 탁!” 선명한 소리가 점점 빨라졌고 뭔가 재촉하는듯한 그 소리는 심장 뛰는 소리라기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선언하는 움직임 같았다. “태아의 심장박동소리는 원래 빨라요.” 의사가 말했다. “자기야!” 은호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지훈이를 불렀고 밖에 있던 지훈이가 뛰여들어왔다. 검사가 끝난 후, 지훈이와 함께 병원 앞에 공원으로 갔다. 맑고 따뜻한 봄날이였다.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잔디 우를 걷고 있었다. 젊은 부부도 있고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도 있고 휠체어를 탄 로인도 보였다. 그들을 둘러보면서 은호는 그 사람들에겐 또 어떤 많은 사연들이 있었고 그들은 또 어떤 의미 있으면서도 피곤한 삶을 살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천천히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좀전에 들어온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엄마가 보낸 것이였다. “20만원을 보냈어. 리자는 네가 먼저 갚아줘.“ 별다른 해석은 없었다. 어쩌면 엄마는 처음부터 그 돈이 은호 자신의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게 되였다. 은호의 의식 깊숙이 박혀있던 불안과 두려움이 이제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지훈의 손을 잡고 다시 한번 이 감정을 확인했다. 저주가 풀린 것 같은 기분이였다. 지난 20년간 엄마에 대한, 엄마의 사랑에 대한 갈구가 이제  마침내 사라져버렸다. 사랑을 받지 않아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였다. 이제 그녀는 누구의 딸이 아니라 한 생명을 책임질 엄마가 된 것이였다.  출처:2018 제4호
3    김동수: 유전(단편소설) 댓글:  조회:441  추천:0  2019-07-14
유전 김동수   ㄱ 동철아, 동철아… 두세번 불러도 아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도무지 통 대답이 없이 이불을 둘둘 말아 가랭이에 끼고는 참바로 사지를 꽁꽁 묶어 끌고 가도 모르게 달게 자고 있었다.  요염한 목단꽃 두송이를 한뜸한뜸 화사하게 수놓은 핑크빛 베개는 저혼자 외로이 너부러져있고 머리맡에는 빨간 담배곽과 하얀 종이장들이 삐죽이 얼굴을 내민 검은색 문건가방이 자고 있는 주인이 깨기를 기다리는듯 입을 벌리고 댕그러니 놓여있었다. 동철이가 늘 보물처럼 겨드랑이에 끼고 달아다니던 문건가방이였다.  무슨 악어가죽이라나. 쳇, 악어피면 어떻고 잉어피면 어떻고 그 속에서 밥이 나나 돈이 생기나? 애비의 부탁은 강건너 불 보듯하면서… 박령감은 죽은 검은 개미가 총총 들어박혀있는 것 같은 묵은 흑미밥을 밥솥에 쏟아넣고 재가열 버튼을 눌러놓고는 부엌에 내려가 아궁이에 콩각대를 밀어넣고 두꺼비 껍질 같이 터실터실하고 커쿨진 손가락으로 앙증맞은 라이타 다이얄을 홱 돌렸다.  불똥이 퐁 솟으며 하얀 봇에 불이 확 달렸다. 뭐니뭐니해도 불쏘시개는 기름기 많아 물에 젖어도 불이 잘 붙는 봇이 최고였다.  푸접 좋은 이웃집 한족아낙네의 뒤잔등처럼 넙죽한 평가마우에 흑석을 쪼아 다부지게 만든 곱돌을 올려놓고 몇해 잘 묵은 된장 한술을 푹 떠넣고 엊저녁에 먹다 남은 콩나물채를 쭈룩 쏟아넣었다. 동철이가 끙! 발로 이불을 걷어차며 돌아누웠다. 뽀얀 먼지발이 가마목 우에서 시루떡가루처럼 날렸다. 다리가 몹시 쏜 모양이였다. 후! 무슨 놈의 세월인지. 옛날에는 자식을 키워 대학문에까지만 집어넣으면 출세의 길이 순한 아낙의 곧은 가리마 같이 거침이 없이 순순히 열려 만사대길이였는데 요즘은 어지간한 대학문을 나와서는 사업터에 두발은 고사하고 발가락 하나 걸기도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능력과 돈은 제쳐놓고도 빽이 있어야 하고 배경이 있어야 하고 문이 있어야 하고 줄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줄과 문은 대체로 어떻게 생겨먹었고 또 어떤 이들이 드나드는 문인지 마치도 연기를 피운 오소리굴 속 같아 박령감 같은 평백성은 열번 죽었다 깨여나도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미궁 같은 존재였다. 아들 동철이도 그렇다. 연변대학이면 청화대나 북경대에는 못 미쳐도 지방에서는 몇손가락 안에 꼽는 유명대학이였다.  이 세상에 부모마음 다 그러하듯이 박령감도 겉으로는 통 아무런 내색을 내지 않았지만 속궁리로는 아들이 큰 나라님은 못되여도 어느 괜찮은 단위에서 꼬리에 장자 붙은 자리나 한자리 했으면 하고 중이 념불하듯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그런데 믿던 나무기둥이 바람에 쓰러진다고 아들 동철이가 고작 대학생촌관으로 발탁되여 마래동의 촌장을 맡는다고 하였을 때 가슴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아 결사반대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었다.  동철이는 부임하는 그 날부터 ‘새농촌건설’이니 뭐니 하며 가랭이에 불이 날 지경으로 향으로 현정부로 올리뛰고 내리뛰고 하더니 게딱찌 같이 올망졸망한 초가집들을 일거에 허물어버리고 고래등 같은 벽돌집 30채를 덩실하게 지어놓았다. 장화의 신세 없이는 촌보난행이던 진흙탕길은 반듯한 세멘트길로 바뀌였고 신비하기 그지없는 태양능가로등이 기린처럼 줄줄이 세워졌으며 두만강가에 흔해빠진 둥글둥글한 물돌들로 고풍스럽고 아담한 담장길도 만들어졌다.  담장 밑에는 키 낮은 과일나무들과 아름다운 화초들이 심어졌다. 마래동은 일약 전 현의 새농촌 건설 모범촌으로 지정되여 매일이다 싶이 견학이나 참관을 빌미로 찾아오는 손님들의 발길이 줄레줄레 끊기지 않았다. 그 통에 아들 동철이는 손님접대로 술자리가 마를 새 없었다. 보글보글 콩나물국이 끓어오르며 구수한 토장국냄새가 집안에 다분히 퍼졌다.  어느새 아침해살이 창문을 꿰뚫고 방안에 환등빛 같이 속속 쏟아져내렸다. 올여름에는 무슨 스내민지 잰내빈지 머리에 털이 돋아서는 있어본 적 없는 엄청 큰 폭우가 쏟아져 온 동네가 물에 잠기는 통에 제 몸도 운신이 바쁜 늙은이들을 뒤산으로 엎다 싶이 대피시키고 생나무를 찍어 비바람을 피하고 뜨거운 물이라도 끓여마실 수 있게 챙기느라 동철이는 꼬박 이틀을 지새워 두눈이 토끼눈처럼 뻘겋게 충혈이 되여 뛰여다녔다.  다행히 재산은 조금 피해를 봤으나 인명사고 하나 없어 향정부에서도 그렇고 동네에서도 나이 어린 동철이에 대한 칭찬이 입이 다슬도록 자자하였다.        그러나 홍수 지기 전부터 부탁하고 닥달을 멈추지 않던 청을 마치도 이붓애비 제사날 취급하는 아들에게 고까운 생각이 가셔지지 않고 벼르고 벼르다가 어제저녁 밤 늦게 귀가한 아들에게 최후통첩 식으로 그루를 박아 말했다. “동철아 어쩌겠니? 이제 안 고쳐주면 래일 당장 현장을 찾아갈 거다.” “야- 아버지, 아들을 망신시킬 일이 있슴까? 향민정에서 이미 고쳐준다고 했잽니까?” “민정조리, 고 이마에 피도 안 마른 건방진 눔을 그러지. 고쳐준다 고쳐준다 하며 벌써 1년이 거의 된다. 80이 래일모레인 이 늙은 게 향정부 문턱이 다슬게 몇십번을 뛰여다녔는지 아니. 원래 너를 믿은 내가 곰보다 더 우둔하지. 현장어른을 찾아야 해결되지 안되겠다.” “어디 가기만 해보쇼. 아버지하고 리별임다, 리별.” 아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속으로 중대한 결심을 굳힌 터라 높이 계시는 현장을 만나면 무슨 말부터 어떻게 해야 할가 하고 이 궁리 저 궁리로 장밤을 거의 뜬눈으로 새우다 싶이 했다. 박령감은 가마목에 쭈크리고 앉아 아침밥을 둬술 뜨네 마네하고 옷궤 깊숙한 곳에 누구도 모르게 소중히 갈무리해두었던 신문지에 꽁공 싸고 비닐주머니를 돌돌 감은 작은 함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현성으로 향하는 뻐스에 올라탔다.   ㄴ 아침안개에 씻긴 시골의  산과 들은 마치도 해수욕을 마치고 금방 뭍에 오른 말쑥하고 터질 것 같은 녀인의 몸매처럼 청신하고 싱그럽고 쾌청하였다.  뻐스가 삼각산 기슭을 에돌아 열아홉굽이 령길에 들어섰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였다. 마차나 소수레가 겨우 굴러다니던 가파르고 험한 이 령길에 비행기 활주로 같이 넓고 반들반들한 아스팔트길이 생기리라고는 누가 꿈엔들 생각이나 했을가. 말 그대로 천지개벽이고 상전벽해였다. 차가 통하지 않던 그 시절 소 되넘기기 장사를 하면서 몇십번 이 산길을 넘어다니며 더운 고생 추운 고생 배고픈 고생 다해봤고 몇번은 죽을 번한 고비도 넘겼었다. 한번은 친구를 만나 음식점에서 진한 국밥에다 얼큰히 한잔씩 하고 얼룩황소를 앞세우고 령을 내리는데 갑자기 소가 코김을 푸푸거리며 가재뒤걸음을 치는 것이였다. 차디차고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휙 스치고 몸이 오싹해나며 말할 수 없는 공포로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였다. 틀림없이 큰 짐승이 나타난 것이였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은 똑바로 차리라고 했다. 급급히 쌈지에서 담배를 말아물고 성냥을 그으려니까 손이 와들와들 떨려났다. 가까스로 진정하고 담배불을 붙여물고 길가의 검불에 불을 달자 주위가 밝아졌다. 한참 지나니 얼룩이가 투레질을 멈추고 긴 혀로 옷섶을 핥으며 길을 재촉했다. 사람이고 소고 뒤잔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히 젖어있었다. 이 근방에서 제일 이름이 높고 신비한 산은 삼각산이다. 말 그대로 생김새가 삼각형 모양인 산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나 변함없이 그 모양 그대로 삼각으로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때묻지 않은 숫처녀의 야드르르한 몸매 같이 수려한 삼각산은 티없이 맑디맑은 골물과 소소리 높고 험한 기암괴석 그리고 수백년 우거진 무성한 나무숲이 꽉 들어찼고 그 속에서 진귀하고 이름 높은 야생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산 그 자체가 보물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요 사이에는 얼룩배기 동북호랑이가 송아지를 잡아먹는 모습이 림업부문에서 가설한 고성능 카메라에 포착되여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전하는 데 의하면 옛날 이곳 깊은 산속에 한 로스님이 작은 암자를 짓고 하얀 구름과 푸르른 산과 청정한 공기와 청아한 물소리를 벗 삼아 청빈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 스님은 몹시 가난하여 겨우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남에게 페가 되는 일을 티끌 만치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님은 늘 삼각형 모양으로 만든 선상 우에 앉아서 좌선했는데 그 우에 앉기만 하면 인간세상의 모든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와 흥망성쇠들이 제 손금 들여다보듯이 알린다고 하였다. 한번은 욕심 많은 이웃나라 왕이 스님이 좌선한다는 그 삼각형 모양의 선상이 부럽고 탐이 나서 부하들을 이끌고 스님을 찾아와서 숱한 금은보화를 두두룩이 하사할 테니 선상을 내놓으라고 호령하였다. 그러자 스님은 “로승은 불법을 위해 선상에 앉아있기 때문에 그까짓 하찮은 금은보화가 나한텐 필요치 않습니다.”고 단연히 거절하였다. 화가 치민 왕이 큰 칼로 스님을 내리치자 갑자기 땅이 천길이나 갈라지며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타래쳐오르고 하늘에서 불광이 번뜩이더니 스님은 큰 산으로 변하였다.  그 때로부터 사람들은 이 산을 삼각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삼각산이 푸르른 치마폭을 내리고 수많은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메돼지무리처럼 들어앉은 큰 골짜기 어귀에 두만강을 끼고 남향으로 오붓하게 터를 잡은 동네가 바로 박령감이 살고 있는 마래동이다. 어느 해인가 단발머리에 군대모를 눌러쓰고 팔에 붉은색 완장을 두르고 까죽띠로 허리를 질끈 조인 꼬마맹장들이 하루아침에 몇백년의 년륜을 자랑하는 큰 수양버드나무 밑에 자리잡고 있던 사당을 재더미로 만들어버렸다.  해마다 마래동 사람들의 명줄이나 다름없는 송이버섯의 풍년을 기원하며 송이제를 지내던 사당이였다.  한번은 재빛 장삼을 거치고 중머리를 빡빡 깎은 웬 늙은이가 마을에 나타나서 자기는 가근방에서 일등으로 알아주는 점술쟁이인데 풍수지리도 기막히게 잘 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없는 살림에도 배 터지도록 만대접을 받은 그는 마래동이 수입이 낮고 생활이 가난하고 구차한 것은 전적으로 마을 뒤산에 아슬하게 솟아있는 도끼봉 탓이라고 주절거리였다. 도끼봉이 퍼런 도끼날을 번뜩이며 마을을 찍을듯이 내려다보고 있으니 어떻게 마을이 번창하고 잘살 수 있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였다. 지푸라기든 뭐든 잡고 싶은 어렵고 궁벽하고 무지한 시기라 이튿날부터 마을 남정네들은 죄다 동원되여 하루아침에 도끼봉을 허물어버렸다. 그래도 수입이 오르기는커녕 되려 곤두박질쳐서 나중에는 마이나스를 기록하면서 일을 하면 할수록 밑지고 마는 형국에까지 이르렀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마래동 사람들에게도 짓눌렸던 허리와 오금을 쭉 펴고 때벗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도래했다. 쥐구멍에 볕이 든 것이다. 산골에서 사는 사람들은 산을 파먹고 산다고 송이버섯은 마래동 사람들에게는 황금덩어리였다. 아니, 세상에 금덩어리가 어디 그리 흔할가? 브로콜리를 채소 중의 왕이라고 하면 송이버섯은 버섯 중의 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문 일본으로 수출한다는 송이버섯은 그 값과 인기가 구름을 꿰뚫고 하늘에 치닫고 있었다.  정말인지는 몰라도 원자탄의 폭격을 받은 이듬해 산림 속에서 모든 식물들이 재생하지 못하였지만 유독 송이버섯만이 자라났다는 아이러니한 말까지 일본땅에서 류행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바야흐로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현재까지도 송이버섯 인공재배가 불가능하다고 하니 자연산 송이버섯의 인지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송이버섯 말이 나왔으니 하는 소리지만 조상 때부터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산속을 훑듯 샅샅이 누비다 싶이 살아온 박령감은 송이 뽑기에서만은 최고의 달인이라고 늘 자부하고 있었다. 그만큼 일초일목이 사뭇 눈에 익고 기억 속에 또렷했다. 아들 동철이는 부임한 이듬해 연변대학 교수들과 조선족민속학자들을 부지런히 쫓아다니더니 마래동 입구에다 ‘송이고향’이라고 둥글소 머리 만한 큰 글자를 음각한 어마어마한 석비와 함께 거인의 거시기 같이 거대한 송이모양의 조형물을 제작하여 보란듯이 세워놓았다. 그리고는 마래동에서 대대로 내려오면서 관행으로 벌려오던 송이제를 다시 회복하였다. 송이제의 회복은 마래동 력사에서 일대 ‘혁명’이였고 대사중의 대사였다. 송이버섯 뽑기 체험, 송이버섯 문화관광을 활성화하여 마래동에 잠재해있는 오랜 전통과 민속을 발굴하고 지명도와 이미지를 최대한 높임과 동시에 마을 사람들의 수입을 몇배로 늘인다는 오돌찬 야심에서 벌이는 축제였다. 첫 송이제를 지내던 날은 그야말로 굉장하였다.  로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령감이 하얀 두루마기에 누른색 배감투를 눌러쓰고 흰 수염발을 날리며 송이제를 선두 지휘하였다.  돼지머리를 삶아 가운데 놓고 떡, 과일, 포, 전, 생선 등속들이 홍동백서红东白西, 어동육서鱼东肉西의 순으로 질서정연하게 진설된 푸짐한 제사상이 정성껏 마련되였다.  그 좌우에 아침결에 산에 가서 금방 채집해온 향기롭고 싱싱하고 탐스러운, 넉살 좋고 수다스럽고 입이 걸죽한 동네 아낙네들이 송이 뽑으러 산에 갔다가 거시기하게 잘생긴 먹음직스러운 동송이를 만나면 치마를 활 올리고 얼씨덩 앉았다 일어난다는 송이버섯들이 보기만 해도 군침이 꿀컥 돌았다. 징징, 쟁강쟁강, 투덕투덕, 둥둥 그 주위를 동네 사물놀이패들이 용케 타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돌았다. 숱한 형형색색의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섰고 소형 대포신 같은 렌즈가 달린 고급카메라를 둘러멘 기자들과, 민속춤 표현을 준비하고 온 오뉴월 물오이처럼 잘 빠진 녀배우들과 사처에서 모여온 호기심 많은 관중들로 마을은 그야말로 울긋불긋 시끌벅적 장사진을 이루었다.  공중에서는 대게 다리 같이 사면으로 뻗은 다리에 앙증맞은 프로펠라를 부착한 드론이 대가리 파란 쉬파리처럼 윙윙 소리내 울며 아래우로 솟구쳤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첫시작부터 박령감과 촌장인 동철이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동철아, 아무리 궁리해도 송이제를 지내기 전에 먼저 렬사비를 참배하는 것이 도리인 것 같다.” “그건 아무런 상관 없는 일임다.” “왜 상관 없냐? 그게 말이 되냐?” “렬사비야 청명이나 추석에 올라가면 되지. 하필 오늘…” “헛소리 집어쳐라. 피와 목숨을 바친 저들을 잊어서는 절대 안된다. 렬사비를 참배하지 않으면 우리 로인회에서는 집단적으로 송이제에서 탈퇴하겠다.” “야, 아버지!” “왜?” 결국 동철이가 두손 들고 말았다. 어느 땐가부터 농촌에서 청년조직이 아침해빛을 받은 안개처럼 가뭇없이 사라지고 대신 로인회가 그 자리를 메우면서부터 로인회의 지위와 작용이 급상승하며 역할이 만만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로인회가 집단탈퇴하는 날에는 어벌 크게 준비한 전반 송이제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것도 문제겠지만 아버지의 말에도 너무 일리가 없는 건 아니였다.  하여 그 날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마을 뒤산 언덕에 있는 렬사비 앞에서 3분간 묵념을 드리고 나서야 송이제를 시작하였다. 송이제는 송이술, 송이차, 송이화장품 등 송이제품 판촉행사와 함께 성황리에 성공적으로 막을 내리였다.   ㄷ 현장을 찾아간다고 아들 앞에서 큰소리 떵떵 치던 박령감은 뻐스가 향정부소재지 마을에 도착하자 슬며시 뻐스에서 내렸다. 현장어른을 찾아갈 담도 담이겠지만 잘못하다간 공연히 그것도 벼슬이라고 촌장으로 일하는 나이 어린 아들의 장래에 혹시 좋지 않거나 시끄러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꼼꼼하면서도 단순한 속궁리와 부질없는 로파심을 더한 계산에서 도중하차하였다.  대신 속으로는 오금에 불이 나게 몇번을 찾아다니며 홀아비가 과부한테 청혼하듯 청들고 부탁해도 마이동풍으로 여기는 아들 또래의 향민정 조리 녀석을 어지간히 혼구멍을 내줄 잡도리를 단단히 하였다.  노크고 뭐고 자주 다녀 익숙해진 민정 조리 사무실 문을 발로 툭 차고 들어서니 검은 구두를 신은 커다란 두발을 책상 우에 걸쳐놓고 의자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정신없이 휴대폰을 주물고 있던 민정 조리 녀석이 놀라 화닥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랐슴다. 동철이 아버지.” “왜? 놀라긴 무슨 죄를 범했냐?” “죄는 무슨, 어째 또 왔슴까?” “어째라니, 몰라서 묻냐?” “인차 고쳐준다는데 고까짓 작은 일을 가지고.” 민정 조리 녀석은 바쁘고 시끄럽다는듯이 눈이 꼿꼿해서 다시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제 놀음에 다시 빠졌다. “뭐, 작은 일? 어쩜 요즘 젊은 애들은 모두 한결같이 그 모양이냐? 야 이눔아, 니한테는 써개같이 작은 일일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세상 큰일이다. ”  화가 치밀어 소리 치는 박령감의 목소리가 복도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키가 작달만하고 양복을 입고 안경을 쓴 다부진 중년사나이가 들어와서 웬 일이냐고 물었다. 민정 조리 녀석이 금방까지도 돌장승처럼 굳어졌던 얼굴표정과 꼿꼿하던 눈길을 자라 목 움츠리듯 어디다 감춰버리고 금시 해시시 날웃음을 개여올리며 김서기라고 굽신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로인님,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저의 사무실에 가서 얘기합시다.” 말씨가 무척 부드러웠다. 그 사람이 이끄는 대로  2층으로 올라가 어딘가는 조금은 초라한 코구멍 만한 사무실에 들어섰다. 제 스스로는 오지랍이 넓고 온갖 산전수전 다 겪은 이 세상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노라고 언제 어디 가나 당당하고 배포가 두둑한 박령감이였지만 정작 작고 매운 고추 같은 서기어른 앞에 마주앉자 어딘가는 조금은 긴장해났다.  그것을 알기라도 한듯 그 사람은 손수 커피를 풀어 두손에 쥐여주었다.  로친 생전에 아침마다 늘 챙겨주던 감자누룽지 숭늉처럼 구수하고 향긋하며 어딘가는 야릇하기도 한 커피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간지럽혔다.  “마래동이면 올해 홍수피해를 많이 본 촌이지요. 참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렇게 노하셨습니까?” “김서기, 내 성깔이 나지 않게 생겼나 한번 들어봅소.” 박령감은 그 때야 호주머니에서 소중히 지니고 온 작은 함을 서기 앞에 조심히 펴놓고는 내 이래 뵈도 30년 당령이라고 서두를 떼였다.  곤두세웠던 긴장이 점차 풀리면서 아버지와 삼촌의 얼굴이 눈앞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박령감이 여섯살 먹던 해 한살 터울인 아버지와 삼촌은 한날한시에 참군하여 해방전쟁에 뛰여들었고 뒤이어는 영문도 모르게 군복을 갈아입고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였다.  전쟁은 가렬처절하였다.  아버지와 삼촌이 소속된 반은 낮다란 언덕 우에 있는 큰 바위 앞에 전호를 파고 놈들의 진공을 두차례나 물리쳤다. 오후 5시까지만 진지를 고수하면 반은 임무를 완수하고 퇴각할 수 있었다. 그 때까지도 아버지가 손등에 쌀알 같은 작은 파편이 몇알 박힌 외에 삼촌과 둘다 크게 다친 데 없이 무사하였다.  “형, 집앞에 있는 백살구가 먹고파요. 올해도 주렁주렁 많이 열렸을 텐데. 살아돌아갈 수가 있을가요?” “어떻게든 꼭 살아돌아가야 해. 자두도 참 맛있었지.”   두 형제는 갈라터진 입술과 숯검댕이칠을 한 것처럼 시꺼멓게 탄 얼굴을 마주보며 두손을 꼭 잡았다. 갑자기 매캐한 화약냄새와 개를 그슬릴 때 풍기던 역한 냄새가 고지에 차고 넘칠 뿐 마치도 전쟁이 결속 된 것처럼 잠잠하고 조용해졌다. 전쟁의 시련을 겪어본 사람들은 다 알지만 싸움터에서 까닭없이 갑자기 찾아드는 고요함과 정적은 이제  곧 더 큰 전투가 벌어짐을 의미하는 것이였다.  반장이 모든 쌀주머니를 죄다 털어서 밥을 지으라고 명령했다. 생사를 코앞에 둔 전사들에게 맨밥이라도 배부르게 먹이고 싶은 심정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가 해질 무렵에 적들의 진공이 개시되면서 대포알들이 쉴새없이 날아와 굉음을 울리며 터졌다. 그 때 마침 5시, 퇴각명령이 떨어져 전사들은 바위 뒤로 통하는 길에 들어서서 산아래로 내달리였다. 갑자기 쉭쉭 하는 아츠러운 소리가 귀전을 때리더니 꽝! 하고 포탄이 퇴각하는 전사들 앞에서 지축을 울리며 요란하게  터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아버지가 눈을 떠보니 얼굴이 검붉게 탄 몇몇 전사들이 둘러서서 아버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피가 랑자한 왼팔이 제 팔 같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뼈를 깎는 동통을 참으며 동생의 얼굴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동생을 포함한 몇몇 전사들이 당장에서 시체도 찾아볼 수 없게 즉사했다는 것이였다. 너무나도 억이 막혀 아버지는 울음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름 뿐인 허술하고 초라한 후방병원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한 아버지는 북으로 북으로 몇날 몇밤을 하염없이 걷고 걸어 마침내 고향이 지척인 두만강가에 이르렀다. 그 때 20호 남짓한 마래동에서 10여명의 끌끌한 청년들이 총을 메고 전쟁에 참가하였는데 대부분은 전장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아버지가 하나 밖에 없는 살붙이 동생을 잃고 여위다 못해 피골이 상접한 상거지 같은 몰골로 손목이 없는 왼팔을 가슴 앞에 처매고 홀로 마래동에 나타났을 때 동네는 물론 온 집안은 눈물바다가 되였다. 땅을 치며 울다 못해 할머니는 까무러치기까지 하였다. 얼마 후 삼촌은 혁명렬사로 추존되였다.    ㄹ 박령감은 현성에서 출발하여 향정부 소재지 마을을 거쳐 마래동으로 돌아오는 뻐스에서 내려 뉘엿뉘엿 지는 해와 함께 집에 들어섰다.  동철이가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저녁쌀을 일고 있었다. 에미를 일찍 떼운 늦둥이 아들의 처지가 참으로 안스럽기도 하고 불쌍도 하여 가끔 코마루가 찡해날 때도 있었다.  제 각시가 옆에 있어서 옷도 빨아주고 때시걱이라도 제때에 끓여주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련만 개도 먹지 않는 그 돈이 무엇인지 새각시는 결혼 이튿날에 한국으로 제비처럼 날아가버렸다.  하긴 돈이 없이는 못 사는 세월이니 별수가 없었다. 그래도 잊지 않고 두 홀아비의 용돈은 꼭꼭 챙겨보내서 그 감사함과 고마움을 잔치날 아침 떡사발을 받아안은 벙어리처럼 마음속 깊숙이 안고 살고 있었다. “아버지 어디 갔다옴까?” “왜 궁금하냐? 룡정에 가 현장을 만나고 오는 길이다. 왜?” “예? 정말임까? 거짓말. 이나저나 전번에 하다 만 할아버지의 얘기를 마저 들었으면 좋겠는데…” 동철이가 밥상에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 “허허, 웬 일이냐. 래일 아침엔 해가 서쪽에서 뜰가부다. 그게 그러니까 아버지가 제대 후였다…” 전쟁마당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1등영예군인으로 되여 현정부에서 어느 기관에 사업터를 배치해주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낫 놓고 기윽자도 모르는 까막눈인 내가 무슨 일을 하겠냐며 굳이 사양하고 대대의 지부서기를 맡았다. 그 때 마래동은 전부 한전이였다. 아버지는 시골사람들에게도 벌방사람들처럼 백옥같이 새하얀 이밥을 배불리 먹이려고 두만강의 물을 끌어들여 논을 풀려고 굳게 작심하고 불철주야로 로심초사하였다.  그런데 제일 큰 문제는 양수기였다. 몇번을 수리국으로 사람을 띄웠으나 이탈 저탈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였다. 성이 난 아버지가 수리국에 찾아가 손목이 없는 왼팔을 내 휘두루며 어지간히 목소리를 높여서야 양수기가 해결되였고 소원 대로 수전을 풀고 벼를 심을 수 있었다.  벼산량을 높이려면 비료가 있어야 했다. 그 때는 지금처럼 화학비료가 흔하지 않았기에 부득불 토비를 모아 밭에 낼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사원들을 동원하여 적비운동을 벌렸다. 진흙을 파다 무지고 온갖 잡풀들을 베여다 작두로 썩둑썩둑 썰어서 한벌 덮고는 그 우에 겨울철에 모아두었던 인분을 큰 가마에 설설 끓여 똥바가지로 똥물을 퍼서 골고루 퍼부었다. 그 우에 또 진흙을 두툼하게 한벌 덮었다.  한가한 겨울철이면 온 마을 남녀로소를 죄다 동원하여 거름 모으기에 나섰다. 돼지똥이든 소똥이든 사람똥이든 가리지 않고 모았다. 지어 아버지는 오줌장군을 등에 짊어지고 차디찬 이른새벽에 집집이 찾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오줌까지 받아왔다.  이렇게 산더미처럼 적비를 썩혀서는 이듬해 봄에 논과 밭에 내다 골고루 폈다.  전 현 적비운동 현장회의가 마래동에서 열렸다.  그 때 현문화관의 한 작곡가가 〈적비가〉라는 노래를 지었는데 대대의 업여문예선전대가 그 노래에 맞추어 자체로 〈적비춤〉을 창작하여 현장회의 전에 선보였다. 삽과 지게 그리고 쇠갈고랑이를 무대도구로 사용한 〈적비춤〉은 뭇참가자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적비로세 얼씨구 절씨구 적비로세 거름더미 쌀더미라 어서 빨리 거름 내세 일망무제 저 논판에 풍년가을 손짓하네 적비로세 얼씨구 절씨구 적비로세   아버지가 현장회의에서 경험총화발언을 하였다.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의 공동한 노력으로 벼 단위당 산량이 푹푹 몰라보게 올랐다. 아버지의 감동적인 사실을 알고 어느 기자가 〈똥서기-쌀서기〉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써서 지방신문에 보도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별명이 똥서기로 되였다.  한번은 최현장이 현지 시찰을 내려왔다가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을 만나보고 똥서기라는 말이 듣기에 거북하고 입에 거슬린다고 하면서 이제부터 우리 모두 쌀서기라고 부르자고 제안하여 아버지는 그 때로부터 쌀서기로 별명이 바뀌였다. 하루는 어머니가 난데없이 꿈결에도 그토록 못 견디게 욕심나고 신고팠던 파란 고무신을 우리 형제들에게 하나씩 신겨주는 것이였다.  그런데 그것이 큰 화단을 일으킬 줄이야.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가 우리가 신은 고무신을 보더니 어디서 난 돈이냐고 어머니께 바투 따지고 들자 어머니가 실토정 안할 수 없었다. “뭐라, 이 싸가지 없는 녀편네, 머리는 한발씩이나 길어싸도 소견머리라곤 통 없는 것이… 그 돈이 어떤 돈이라고… 당장 신을 물리지 못할가!” 화가 난다면 불이고 물이고 가리지 않는 아버지는 담배통을 번쩍 들어 어머니 코앞에 꽝! 메치고는 문을 걷어차고 나가버렸다.  한참 후 짙고 역한 술냄새를 풍기며 집에 들어선 아버지는 자식들을 조롱조롱 앉혀놓고는 이 돈은 삼촌의 목숨으로 바꾸어온 돈이다. 이 다음 아버지가 꼭 새 고무신을 사주겠다고 약속하고는 고무신을 물린 돈을 움켜쥐고 어머니를 이끌고 삼촌댁을 찾아가 이실직고하였다. “제수씨, 이 돈은 제수씨 앞으로 내려온 무휼금 200원일세. 다음부터는 제수씨 이름으로 다달이 내려올 거네. 어떡하겠나?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법도 없고… 아직 젊고 홀몸이니 새 사람을 만나게나. 진심이네.” “아주버님, 고맙습니다. 이 돈을 제가 받은 셈 치고… 이제 마을에서 렬사비를 세운다는데 거기에  보태세요. 흑…” 그 후 얼마 안되여 삼촌댁은 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의 권유로 죽어도 살아도 시집귀신이 되여야 한다던 당시 세습적인 낡은 관습과 룰을 깨뜨리고 말없이 박씨 가문을 떠났다.  한푼 두푼 돈이 모아지자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을 이끌고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뒤산 기슭의 양지바른 언덕받이에 낮다란 렬사비를 세우고 마래동에서 희생된 10명 렬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정교한 나무패쪽에 정성들여 음각하여 걸어놓고는 비바람과 먼지를 막기 위하여 작은 유리창문까지 안장하여놓았다.  하얀 렬사비 주위에는 푸르청청한 애솔들이 심어졌고 점차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무성하게 가지도 뻗었다.  아버지는 매일이다 싶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비자루를 들고 렬사비 주위를 깨끗이 쓸고는 한참씩 멍하니 앉아서 날마다 새롭게 변모되여가고 있는 마을과 황금파도 출렁이는 풍요로운 논벌과 여울치며 흐르는 두만강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과 추억에 잠기군 하였다. 어느 날 렬사비 앞에 그대로 쪼크리고 앉아있는 어버지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몸은 차겁게 굳어있었다. “후, 네 할아버지는 오늘 같이 좋은 세상을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게다.”   ㅁ 다음날, 지난해 전 현적으로 거금을 투자하여 낡은 렬사비를 허물고 통일적으로 새로 웅장하게 건설한 뒤산 언덕에서 대리석을 까고 부시고 하는 소리가 아츠렇게 들려오며 마을의 고요와 정적을 깨드렸다. 박령감은 휘청휘청 힘겹게 몸을 가누며 렬사비 쪽을 향해 어정어정 달려갔다.  글자가 잘못 새겨진 대리석판이 떨어져나가고 대신 새로운 검은색 대리석이 다시 붙여졌다. 오후부터는 렬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시 음각하고 틀림이 없음을 꼼꼼히 재확인하고서야 현성에서 온 일군들은 돌아갔다. 박충국朴忠国 ! 박령감은 두눈을 똑바로 뜨고 삼촌이름의 가운데 글자가 전번처럼 중中자가 아니라 밑에 마음심心자가 들어간 충忠자로 정확히 새겨진 것을 똑똑히 확인하고서야 작은 함을 렬사비 앞에 열어놓고는 지니고 간 술을 차넘치게 부었다. 언덕 아래로 동철이가 헐레헐레 뛰여오는 모습이 보였다. 퍽이나 오랜만에 보는 불타는듯한 저녁노을이 동철이의 얼굴과 삼촌의 영웅메달을 진붉게 물들였다. 출처:2018 제4호
2    김견: 혼인보험(단편소설) 댓글:  조회:539  추천:1  2019-07-14
혼인보험 김견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일이였다. 인구가 불과 3백만 정도 밖에 안되는 지역에 다이아몬드급이 무려 수십만 커플, 일차적 장려금만 수백억이 지급되다니…  착잡한 마음에 지그시 눈을 감고 있노라니 아이템 하나로 황금빛 인생을 질주해왔던 지난 30년 세월이 꿈결처럼 떠올랐다.  정확히 31년 전, 2018년 보험회사에 면접 보러 갔을 때의 정경이 생생히 떠올랐다.  “막강이라… 거 이름 한번 마음에 드는군. 그래, 꼭 우리 대망보험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는데 무슨 특별한 사유라도 있는 건가?” “그게 저… 실은 제가 보험 관련 아이템 하나 구상해봤는데 귀사에서 채납만 하신다면 대박 날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 정말 대박 날 아이템이라면 채납 못할 리유가 없지. 그래, 뭐 어떤 아이템인데? 정말 쓸 만한 거라면 내 자네 입사는 보장할 거니까 어디 함 들어나 봄세.” “에,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럼 회장님만 믿고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실은 오래 전부터 ‘혼인보험’이라는 아이템을 내오면 어떨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는데 말입니다.” “혼인보험이라… 음, 그거 참 흥미롭군. 그래, 구체적인 방안 같은 건 있고?” “네, 여기 있습니다.” 막강이 미리 작성해 들고 간 기획서를 두손으로 공손히 내밀자 막강을 흘끔 쳐다보던 회장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잠자코 기획서를 들여다보았다. 기획서는 대개 이러한 내용이였다.   ‘혼인보험’ 혹은 ‘사랑보험’아이템 기획안   취지  리혼률이 급증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 알맞는 아이템으로 신혼커플들의 참여률을 자극함으로써 회사 수익 제고는 물론 나아가 전반 사회의 리혼률을 낮추는 것을 취지로 한다.   구체 방안 1.보험 가입 대상: 년령제한 없이 결혼을 앞둔 남녀 모두 가입 가능. 2.가입 비용: 가입금액은 만원으로(할부 가능) 계약기한 만료 전 환불은 일절 불가. 3.계약 기한 및 조건: 결혼 당일(계약 당일)부터 10년 사이에 리혼하면 자동퇴출로 간주하여 가입금을 일절 환불하지 않음. 4.가입자 등급 분류: 가입자 등급은 10년 은혼, 20년 금혼, 30년 이상은 다이아몬드급 등 세가지로 분류하며 가입자 임의로 기중 한가지를 선택하도록 함.    혜택: 계약기한 만료 후 분류에 따라 향수할 수 있는 혜택은 은혼일 경우 가입금 전액을 환불함과 동시에 장려금 2만원까지 총 3만원을 일차적으로 지급하며 은제 커플반지 한쌍을 선물한다. 금혼일 경우 가입금 전액을 환불함과 동시에 장려금 4만원까지 총 5만원을 일차적으로 지급하며 순금 커플반지 한쌍을 선물한다.  다이아몬드일 경우 가입금 전액을 환불함과 동시에 장려금 10만원까지 총 11만원을 일차적으로 지급하며 다이아몬드 커플반지 한쌍을 선물한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커플에 한해서는 30년 이후 로동력을 상실할 때를 대비해서 매년 년금年金 5만원을 추가 지불한다.    계약기한 만료 후 커플 중 한 사람이 불의사망했을 경우 은혼커플 유가족에게는 위로금 만원을, 금혼커플 유가족에게는 2만원을 지불하며 다이아몬드커플 유가족에게는 평생 동안 매년 5만원의 년금을 지불한다.  *주:인간보편심리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암환자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가입자의 99%가 다이아몬드급을 선택할 것임.   “음, 아주 그럴싸한 방안이군. 좋아. 계약기한 만료 시 지불해야 할 장려금이 좀 과하다 싶은 게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말이야…” “네, 제가 아직 보험업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는 터, 그저 대체적인 구상만 적어올린 거라 미흡한 점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회장님, 요즘 국내사회의 리혼률이 60%에 육박한다는 점 그리고 향후 20~30년 후엔 70~80%도 넘길 거라는 점을 감안하신다면 그 정도 장려금은 그리 과한 것도 아니지 싶은데 말입니다.” “허허, 하긴… 리혼시대니 자유시대니 하는 게 실없는 소리야 아니지. 음, 좋아. 약속 대로 일단은 기획부에 자리 하나 만들어놓을 것이니 래일부터 출근하도록 하게. 그리고 이 기획안은 리사회에서 함 검토해보고 결정하도록 하지.” … … 그렇게 ‘혼인보험’ 프로젝트는 불과 일주일 만에 막강이 작성한 기획안 그대로 리사회를 통과해 정식 출범되였고 ‘혼인보험’아이템이 출시했다는 소식을 접한 여러 매체들에서 앞다투어 취재, 보도하고 신문기사가 쏟아져나가는 바람에 굳이 돈 먹여 홍보할 필요도 없이 대대적인 홍보작업이 대행되였다. 보험업 유사 이래 처음으로 출범한 아이템이였던 만큼 ‘혼인보험’은 전반 보험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고 그 인기는 예상을 훨씬 초월해 해당 아이템이 출시한 해인 2018년 하반기에만 전국적으로 무려 수백만 커플이 가입했고 이듬해 설련휴가 끝나기 바쁘게 주문이 폭주하더니 급기야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신혼을 앞둔 커플이 백이면 백 모두 혼수용품으로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혼인보험 가입은 필수품목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물론 극소수, 0.01% 꼴로 가입하지 않는 커플들도 있긴 했지만 그것은 극소수 빈곤지역이나 계약결혼 등 특수사유로 인한 개별적인 경우였을 뿐 ‘혼인보험’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였다.  그렇게 대망보험회사는 혼인보험이라는 아이템 하나로 2018년 하반기에만 2천억의 수익을 창출하며 일취월장하더니 이듬해 수익은 무려 3조에 달했고 불과 5년 만에 국내에서 년간 매출액이 가장 높은 기업으로 급부상하여 우수기업상, 공로상과 같은 국가급 상을 싹쓸이하다 싶이 했다.  그동안 막강 또한 과원에서 팀장으로, 부문경리로 승진을 거듭한 건 이루 말할 것 없고 회장 사위가 되는 행운까지 차례지게 되였다. 물론 투박한 얼굴 륜곽이며 곰처럼 우람진 체구까지 회장을 판박이로 빼다 닮은 와이프를 마주할 때마다 서운한 마음을 금할 길 없었지만 어찌됐건 일개 시골출신인 막강이 내노라 하는 거부 반렬에 올라 떵떵거리며 살게 된 건 어디까지나 그 곰 같은 녀자랑 결혼한 덕이라 해야 할 것이였으므로 너무 락담할 일만은 아니였다. 해서 막강은 그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또 덕분에 그만큼 호강하고 살았으면 됐지…’ 하고 체념하고 산 지도 한참 되였다… “저기… 미안하지만 이 사람이 창밖을 내다보고 싶다 해서 그러는데… 어떻게 잠간만이라도 자리 좀 바꿔앉으면 안될가유?” 어눌한 말소리에 눈을 뜨고 보니 7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점잖은 인상의 늙은이가 어줍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 뭐 그러지요…” 막강이 군말 없이 몸을 일으키자 량주간이 연신 고맙다고 치사를 해왔고 그렇게 안로인이 창가 좌석에, 바깥로인이 중간에, 막강이 통로쪽 좌석에 자리하고 앉았다.  “어디 려행 다녀오시나 보죠?” “아, 네. 피서 삼아 호주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네. 말투를 들어보니 소수민족이신 것 같은데 혹시…” “네, 그래요. 백산족입니다. 선생은 남방사람 같으신데… 우리 백산엔 무슨 일로?” “아, 소문으로만 듣던 곳이라 려행 삼아 함 둘러보려구요.” “아, 네…” 막강이 이번 걸음을 하게 된 것은 사실 한가하게 려행이나 하기 위함이 아니라 상황 파악 차 나온 것이였다. 말하자면 회사를 자금위기에 빠뜨린 장본인인 백산이라는 소수민족 집거지역이 대체 어떤 곳인지, 어떤 종족들이 모여살기에 다이아몬드급 커플이 수십만씩이나 되는지 료해하기 위함이였다.  20여년 동안 년평균 수천억의 수익을 유지해오며 별탈 없이 잘만 돌아가던 ‘혼인보험’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건 최근의 일이였다.  시초의 예상 대로 혼인보험 아이템을 정식 가동해서 20여년 되는 동안, 90%에 가까운 보험 가입자들이 중도퇴출, 말하자면 10년, 20년을 채 못 버티고 리혼해준 덕에 회사는 숫제 누워서 떡 먹기로 가입금만 꼬박꼬박 받아챙기면 되였다. 그 쯤에서 전임회장-장인어른은 하와이에 가서 처남과 함께 도박장을 세운다며 이주해 갔고 이제 보험회사 운영은 막강이 전적으로 책임진 셈이였다.  그렇게 순풍에 돛 단듯 순탄하기만 하던 황금대로였는데… 아이템 출범 30년 만인 지난해, 중뿔나게 백산이라는 소수민족 집거지역에 단번에 장려금 수백억이 뭉청 빠져나가면서 회사 전체가 자금위기로 휘청거리게 된 것, 급기야 그 자초지종을 파악하고저 회장 신분에 걸맞지 않게 막강이 몸소 움직이게 된 것이였다.  “안녕하세요, 기내식입니다.” 스튜어디스의 친절한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여난 막강은 앞좌석에 붙어있는 간이식탁을 내려놓고 식사는 마다하고 쥬스만 청했다. 그런데 옆에 앉은 량주가 간이식탁을 펴고 기내식을 받아챙기는 동안 몸을 한껏 의자 등받이에 밀착시킨 채, 무망간 눈앞으로 오가는 그들 량주의 손을 지켜보던 중 두 사람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커플반지가 왠지 눈에 익어보였다. 유심히 살펴본즉 회사에서 지난해 다이아몬드급 커플들을 위해 특별히 주문 제조한 반지가 틀림없었다.  막강이 쥬스를 마시며 량주가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은근슬쩍 늙은이에게 말을 건넸다.  “두분 혹시 혼인보험에 가입하셨습니까?” “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 이 반지를 알아보셨군요? 하면 선생도?” “아, 그게 아니라… 전에 친구가 그런 반지를 낀 걸 본 기억이 있어서…” “네, 그러셨군요. 근데 글쎄 뭐 얼마나 비싼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거기선 뭐 별로 희한할 것도 못된답니다. 이제 가보면 아시겠지만 이런 반지를 끼고 다니는 사람들이 쌔고버렸답니다.” “그래요? 그거 결혼 30년 차 이상인 다이아몬드급 커플들에 한해서만 선물하는 반지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럼 그 고장엔 다이아몬드급 커플이 쌔고버렸다는 얘긴데 요즘 같은 세월에 그것 참 보기 드문 현상인 걸요.” “헤헤, 모르시는 말씀, 우리 거기선 다이아몬드 커플인가 하는 게 보기 드문 게 아니라 리혼한 사람이 괴물 취급 당할 정도로 보기 드물답니다.” “그래요? 그럼 그럴 만한 특별한 비법 같은 거라도 있나 보죠?” “허, 글쎄 뭐 비법이라 할 것까진 없겠지만 그럴 만한 여건, 풍토문화라고나 할가요? 아무튼 그런 게 있다고 해야겠죠. 허허…” “풍토문화요? 하면 리혼하면 안된다는 풍습이나 규제라도 있다는 얘깁니까?” “그게 아니라… 전반 지역사회의 생활방식, 또는 의식형태가 그렇게 형성돼있다는 얘기지요.” “무슨 뜻인지 좀더 상세하게 얘기해줄 수 없으신지요?” “허 참, 아주 집요하시군요. 혹시 기자량반?” 늙은이가 새삼 막강을 우아래로 훑어보며 묻는 말이였다. “네, 뭐 그 비슷한 직종이긴 합니다만…” “네… 정히 그러시다면 뭐 말씀 드리지 못할 것도 없죠. 에… 하면 먼저 한가지 여쭤봅시다. 사람들이 걸핏하면 리혼하는 가장 큰 리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아무래도 그건… 전반 사회적인 풍기, 또는 서방사회의 영향 탓이 아닐가 싶습니다만…” “음, 그것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겠지요. 하지만 저 개인적으론 그보다 더 큰 원인은 결혼만 했다 하면 두 사람이 맨날 얼굴 맞대고 살아야 하는 줄로 아는 그런 어리석은 의식형태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생각해보십시오. 제아무리 죽도록 좋아하는 사람이고 한시도 떨어져선 못 살 것 같은 사람이라 한들 매일같이 얼굴 맞대고 있다 보면 눈만 뜨면 그 나물에 그 밥인데 언제까지고 처음처럼 그렇게 곱게 보이고 사랑스러울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그렇게 달이 가고 해가 바뀌다 보면 자연 서로에게 권태감을 느끼고 티격태격하게 될 것이요, 그러다 어느 순간 폭발하면 파탄에 이르고 뭐 그런 게 리혼이 아니겠습니까.” “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하면 당신들 백산족은…?” “네, 그래요. 우리 백산족 남자들은 결혼해서 한동안 살다가 아이만 생겼다 하면 바로 떠난답니다.” “떠난다면 어디로 무엇 하러…” “무엇 하긴요. 가족을 먹여살리자면 돈을 벌어야 할 거잖아요. 해외로, 타지역으로 돈벌이 가는 거죠.” “근데 왜 꼭 해외, 타지역으로 가서 돈을 벌어야 하죠? 돈이야 본지방에서 벌어도 되잖습니까?”  “자고로 우리 고장엔 큰 공장이나 대기업 같은 게 없다 보니 일자리 찾기가 쉽지도 않거니와 또 인건비가 너무 싸서 일해봤자 얼마 못 받는답니다. 해서 젊은 로동력들은 거진 다 빠져나가고 없지요. 남아있는 남정들이란 저처럼 별 볼일 없는 늙은이들이나 정부 관원과 같은 특수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뿐이고.” “네… 그럼 그렇게 서로 떨어져 살다 보면 리혼 같은 건 할 리유가 없다, 그런 얘긴가요?” “그렇죠. 적어서 수년, 길면 십수년씩 떨어져 살다가 어쩌다 만나면 좋아해도 다 좋아하지 못하겠는데 리혼이 다 뭡니까.” “네, 일리가 있군요. 그러니까 사랑을, 말하자면 혼인관계를 오래동안 지속할 수 있는 비법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거다, 그거군요? 참 그럴 법한 얘기인데… 이러한 풍토, 문화가 형성된 건 대개 언제 쯤이였죠?” “에, 그게 글쎄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하기엔 좀 그렇고… 아무튼 제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들이 그렇게 사시는 걸 쭉 보고 자랐으니 백년까진 몰라도 얼추 70~80년 쯤은 되겠죠.” “네… 그런데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혈기왕성한 나이에 한두해도 아니고 오래동안 그렇게 서로 떨어져 살다 보면 솔직히 가끔 탈선할 수도 있고 그럴 터인데 그런 건 전혀 문제 안될가요?” “물론, 한창 나이에 홀몸으로 밖에서 떠돌다 보면 외도할 때도 있고 그러기 마련이죠. 근데 정작 오래동안 바깥에서 떠돌다 보면 그리고 외도라는 것도 몇번 해보고 나면 그래도 지 마누라, 지 새끼, 지 가정이 귀한 줄 알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당신네 한어에서는 부부간에 덮어놓고 서로를 늙은 아줌마老婆, 늙은 남정네老公라고 칭하지만 우린 서로를 여보如宝라고 부른답니다. 솔직히 볼장 다 본 늘그막에야 서로 등이나 긁어줄 마누라, 령감 만큼 소중한 게 또 뭐가 있겠습니까.” 늙은이가 그렇게 말하며 옆자리를 힐끔 돌아보자 안로인이 이쪽을 향해 곱게 눈을 흘기더니 막강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뭐라 중얼거리고는 다시 창밖에 눈길을 두었다.  “저기 그럼, 두분처럼 이렇게 려행도 다니고 하면서 여생을 즐기는 분들이 그 곳엔 꽤 많겠군요?” “허허, 많다 뿐이겠어요. 지난번 인구조사 보고를 보니 전체 지역인구 3백여만 중 나가있는 인구가 40여만명, 아녀자와 아이들이 60여만명 그리고 80대 이상 늙은이들이 좀 있고… 그 외는 전부 우리 또래 60~70대들이니까 얼추 2백만 정도 되지 않을가 싶습니다만 허허, 말하자면 우리 늙은이들의 천국인 셈이죠. ” !!!… … 눈앞이 노래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백만 커플에게 1차적으로 지불해야 할 금액을 얼추 주먹구구를 해봐도 천오백억! 년수익 전부를 그대로 갖다 부어도 모자랄 판이였던 것이다!  부도 신청을 하든가, 하루빨리 몸을 빼든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난 막강은 선반우로 손을 뻗었다.  비행중이라는 사실도 망각한 채 짐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 … 출처:2018 제4호
1    조영욱: 란숙의 거리두기(시평) 댓글:  조회:317  추천:0  2019-07-14
란숙의 거리두기 조영욱   조선족 문단의 중견시인 최룡관의 신작시 여섯수는 절제가 잘되여있다. 어떤 숭고한 생각을 내포하고 있지도 않고 쉽게 의도를 드러내보이지도 않는다. 필자는 감상자의 립장에서 이 여섯수 시의 미적 거리에 주목하였다.  은 ‘축구장의 오감도’라고 할 수 있다. 조선족 문단의 작가들은 거개가 다 연변축구팬이다. 시인도 례외가 아니기에 이런 시가 나오지 않나 싶다. 아마 화자는 관중석에서 축구장을 내려다보는 시각이다. 키퍼의 움직임을 ‘폴짝폴짝 뛰는 개구리’에 비유하였다. 2행 “무르익은 검은 포도 박스에 넘쳐”라고 한 것은 카트에 담겨있는 축구공을 련상케 한다. 또한 3행 “꽃물결 우-우- 운다”라고 한 것은 상대편을 야유할 때나 심판의 판정을 야유하는듯하다. 축구공을 ‘검은 포도’에 빗댄 것은 아마 정당치 못한 판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6행과 맞물린다. “흰 거미 한마리 중심에서 눈을 뒤룩거린다”라고 한 것은 심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4행은 아마 정말로 차유리에 돌을 던진 것 같다. 차유리가 돌을 맞으면 그 모양이 거미줄 같지 않은가? 그래서 5행에는 거미줄이 등장하고 6행에는 거미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어서 7행에서는 ‘사람들 목에서 찬탄을 뽑아 하늘에 널어’놓았다고 했다. 이는 아마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관중들이 ‘찬탄’하는 것이거나 우리 편이 경기에서 져서 하는 ‘찬탄’ 같다. 그래서 마지막 행에서는 비가 온다. 슬프기 때문에 비가 오는 것이다.  이 시는 축구장과는 상관이 없는 사물들을 폭력적으로 결합시키는 몽타주기법(montage techinique)을 구사하고 있다. 어느 학자의 말을 빌린다면 몽타주란 이질적 이미지들을 폭력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인데 이것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존재할 수 없는 사물들을 결합시키거나 사물을 원래의 장소에서 추방시키는 기법이다. 개구리나 포도, 거미 등은 축구장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 시는 론리가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따져본 결과 그래도 하나의 구조를 추상적이나마 이루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이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다. 시인은 새 세기에 들어서 이른바 다다이즘시 혹은 이체시异体诗를 쓰기도 하고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쓰기도 한다. 이러고 보면 그 유명한 리상李箱의 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이 시에서도 보인다.  은 제목에 시적 상관물을 명시해놓고 있지만 아주 난해한 시다. 제목부터 내용과는 반대된다.  첫 행부터 ‘단풍이 바람을 뿜는다’고 했다. 낯설게 하기는 맞는데 류사성과 린접성을 가진 사물들을 배치하여 혼란을 주게 하는 게 아니다. ‘꽃비가 내리여 강이 된다’고 하다가 갑자기 ‘뽈’이 등장한다. 단풍 얘기를 하다가 ‘빨간 노란 바람’이라고 한 점까지는 알겠는데 ‘사막’이 나오고 ‘뽈’이 나오다가 ‘둥지에 꿀을 채운다’고 했다. 그래서 화자는 모든 것을 해체하고 불확실한 것을 추종하는 해체주의자다.  라는 시는 ‘진창’을 중심으로 시가 전개된다. 진창이라는 것은 땅이 질어서 질퍽질퍽하게 된 곳을 말한다. ‘새는 하늘진창’에, ‘가오리는 바다진창에’, ‘소나무는 바위진창’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고 했다. 이 시의 이른바 진구真句는 ‘사람은 관계진창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이다. 이러한 구절은 일반적으로 시의 마지막에 배치되는데 반해 이 시에서는 세번째 행이다. 과연 우연일가? 진창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그 가운데에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 세번째 행이 바로 이 시의 가운데 행이다.  ‘사람은 관계진창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라는 것은 요즘 사회의 현상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픔’이다. 화자는 시종 시 안에서 ‘아픔’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찾고 있다. 그래서 ‘폭풍은 고요의 진창에서 뛰쳐나와 장벽을 짓부시며 달리는 말떼’라고 했다. 는 어렵다.  ‘나락’이라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이다. 물론 오늘날 현대조선어에서는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화자의 인상 중에서 나락 혹은 지옥은 ‘검푸른’색이다. 화자는 아마 하늘 혹은 하늘과 바다가 보이는 풍경과 마주하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거기에 ‘나락’이 등장한다. ‘나락’이 출현한 것은 화자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얄밉게도 날은 아주 화창하다. 손을 벗어난 ‘연’이 보인다는 것은 하늘이 맑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래서 ‘빨간 장미 한송이’가 등장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가 비유하는 바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고 의도하는 바는 확실치 않다. 단지 ‘나락’, ‘하늘’, ‘가슴’, ‘장미’, ‘연’ 등등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라렬되여있다. 이 이미지들은 어떤 통일성에 따라 배치된 것이라기보다 서로 경쟁하듯이 공간을 차지한다. 그래서 통일성이 없고 원리도 없으며 중심도 없다. 다시 말하면 어떤 중심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른바 환유시처럼 시적 자아의 간섭이나 통제를 배제하여 미적 거리를 무화시킨 것은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렇다고 어떤 중심을 향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화자는 로련한 거리두기를 한다고 할 수 있다.  시인들은 동년을 시화诗话하기를 즐긴다. 이 그러한듯 보인다. 제목이 그냥 ‘살구꽃’이 아니라 ‘살구꽃 시절’이라고 한 점이 이를 증명하는듯하다. 또한 확실치는 않지만 이 시는 그 유명한 의 가사 ‘복숭아꽃 살구꽃’의 그림자도 보인다. 그러나 이 시는 과 같은 동시가 아니다. 이 시의 시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행 ‘쌓였네’(과거), 2행 ‘섰네’(현재), 3행 ‘덮었네’(과거), 4행 ‘날리네’(현재), 5행 ‘있네’(현재), 6행 ‘도배하였네’(과거).  앞서도 언급하였다만 이 시는 동년의 기억과 성년의 감정을 결합하였다. 시는 전체적으로는 기억 즉 과거다. 그 과거 속에 과거가 있고 현재진행형이 있다. 화자는 현재에 서서 이를 성년의 감정으로 맞이하고 있다.  이 시의 시제는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과거→현재→과거→현재→현재→과거 이를 더 묶으면 다음과 같다. 과거.현재→과거.현재→현재.과거.  과거와 현재가 한번씩 엇갈아서 순서 대로 된 것이 아니고 5행과 6행에서 순서가 바뀐 것이다. 이른바 AAB 혹은 ‘같음 같음 다름’인 것이다. 시조의 기본구조가 대개 이러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시조의 영향도 받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용은 살구꽃이 핀 산을 다른 산 우나 중턱에서 바라본 오감도다. 그 하얀 살구꽃이 ‘하얀 눈, 양산(하얀 양산으로 추측됨), 락하산, 하얀 연, 학, 하얀 종이’로 보였다고 화자는 기억하고 있다.  그 동년의 기억을 직접 표출하지 않고 성년의 감정과 결합시켰다. 그럼으로써 일정한 거리두기를 시도하여 성공적으로 오감도식 기법을 구사한듯하다. 다시 말하면 감정의 양식화에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가지 의문이 있다. 학은 10월에 나타나 2월에 사라지는데 왜 4월에 나타난다고 했는지 의문이 든다. 그것도 ‘학이 울다’가 아니라 ‘지저귀다’라고 했다. 지저귀는 것은 참새나 종달새인데 왜 학이 지저귄다고 했을가? 살구꽃이 4월에 피는 것은 맞으나 학은 4월에 보기 힘들다. 4월 살구꽃이 필 때 다른 것을 경험했는데 학에 빗대여 말하고 있는 것일가? 시인의 의도가 궁금하다. 도 시적 상관물이 명확하다. 바로 별이다. 화자는 별 관찰하기를 즐기는듯하다. 별을 오래 관찰하다 보면 류성우流星雨를 보게 된다. 이를 ‘함박눈이 내린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혹은 맑은 날(‘연푸른 밤하늘’) 별이 많을 때를 표현하고 있는듯하기도 하다. 별은 항구적으로 대개 원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만년, 억년’이라 표현하고 있다.  별을 관찰하는데 별은 ‘강물, 소무리, 국자, 사자, 개발자국, 지렁이’ 등등 여러가지 모양으로 다가온다. 중국인들은 고대에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리념하에 천문으로부터 대일통大一统을 상상했다. 이러한 경향이 마지막 행으로 표현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화자는 분명 별 관찰하기를 즐긴다. 그러나 그 즐기는 감정을 직접 표출하지 않고 ‘색스폰 연주’라고 객관화하여 표현하였다.  시인은 시학 리론서를 쓸 만큼 학문적으로도 해박하다. 이 여섯수의 시에서도 보다 싶이 로련한 시인답게 거리두기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여느 미숙한 시인과는 다르게 이 여섯수의 시에는 ‘나’가 등장하지 않는다. 사물과 일정한 거리를 둠으로써 객관화시켜 감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시종 적절한 거리를 두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단어를 절제하려고 한 흔적이 력력하다. 이는 이미지들을 폭력적으로 결합하는 몽타주기법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이 여섯수의 시들은 또한 모두 시적 상관물이 명확하다. 제목에 벌써 시적 상관물을 드러내고 있다. 명확한 시적 상관물을 명시하고 있다는 것은 거리두기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시들은 통일된 구조가 있는듯하면서도 탈구조주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여러가지 목소리들이 란립하는 것이다. 거리두기를 의식적으로 했든 하지 않았든 중요한 것은 시인이 여러 기법을 동원하여 어떤 시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1960년대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개혁개방 전까지는 당시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거리두기를 지나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그 뒤 자기반성을 하면서 여러 시험을 하며 시를 쓰고 시집을 냈다. 이 시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여섯수의 시에서 알 수 있다. 다다이즘, 시조, 천문, 몽타주기법 등등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시를 쓰면서 그 우에 어떤 다른 시도를 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족 시문학의 모방성과 변방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인의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출처:2018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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