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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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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2018년 제6기

전체 [ 8 ]

8    <장백산> 2018.6 루계222 댓글:  조회:821  추천:0  2019-07-16
장백산 총222호 2018년6호   권두칼럼 림원춘        작가는 탁상머리를따나야한다   기획조명-작가와 작품 주향숙        당신 (시, 외10수)  주향숙        가슴에 무한한 바람을 안고서 (작가노트) 주향숙        나는 너의 밖에서 (수필, 외3편) 우상렬        아, 그 향긋함…(작품평) 한영남        ‘그날처럼’(작가평)   기획련재 김  혁          한락연평전 (장편인물평전 련재 끝)   박초란소설코너 박초란       이기다의 선물(단편소설) 김홍월       정주와떠돔을소멸시키는여섯개의편린들(소설평)   소설광장 조  원         좌망, 빛이 기다리는 곳으로(단편소설) 조영욱       주체할 수 있는 욕망(소설평)   계렬수필 허룡석       녹쓴철길우에서(수필) 허룡석      새빨간거짓말과새하얀거짓말(수필) 허룡석      아픔이진주를낳는다(수필) 최삼룡       고향에 대한 상실감과 진주로 거듭나기(수필)       시인 시전  남철심    고요한 밤(시, 외5수) 손경란    고통과 성찰이드러나는남철심시인의시적세계(시평)   창작마당 김경희         옥상에 걸린하늘(단편소설) 엄정자         같은하늘아래다른땅(수필) 김경화         길목에서서(수필) 김명숙         언어의에너지(수필) 박장길         어둠의 혼 (시, 외2수) 류은종         빨래줄(시, 외1수) 김재연         가야금(시, 외1수) 리금화         초가삼간(시, 외1수)   8090문학코너  현청화         이모(단편소설) 리은실         나는 필요하다, 고로 존재한다?(수필) 리  미           품는 화분(수필) 김  연           곧 오색 음악이 흐를 것이다(시, 외2수)   기행문 류재순         '해가지지않는나라’ 옛훈장이빛나는-영국을 가다(기행문)   중국문학       마   분          회성인물淮城人物5인전 (단편소설 / 김견 옮김)     장편소설련재 김혁            무성시대(장편소설 련재6) 구호준        여백(장편소설 련재4)
7    마분马犇: 회성인물淮城人物 5인전(단편소설) 댓글:  조회:456  추천:0  2019-07-16
회성인물淮城人物 5인전 마분       표구사裱画师  서씨 회성은 자고로 수많은 문인 묵객들을 배출한 고장인 만큼 표구소裱画所가 꽤 많았다. 표구 하면 흔히들 수묵화를 떠올리지만 서예작품 표구 또한 그 범주에 포함된다.  표구소들에서는 본토 작품은 물론 타지역 작품과 여타 수선이 필요한 소장품들을 두루 취급하다 보니 표구시장은 꽤 흥성한 편이였다. 가끔 가다 후계자가 없는 고로 문을 닫게 되거나 또는 기계표구 기술을 인입하면서 대가 끊기는 가게들도 더러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남들이야 어찌하든 오로지 수공예 기술만을 고집하는 표구소들도 여럿 있었으니 회성 남문대가 동쪽 골목에 위치한 서씨네 표구소 ‘념로재念芦斋’가 그 대표적인 일례였다. 수십대째 대물려내려온 ‘념로재’는 어느 한 조상대에 이르러 어쩌다 변수민边寿民과 인연이 닿게 되였는데 그 작품들을 표구해주고 친분을 쌓으면서 상호 교감하고 가르침도 받고 한 덕에 그 조상할아버지는 표구는 물론 그림과 전각篆刻 기술 등에 두루 능한 기술자로 린근에 이름깨나 알려졌는데 지금 와서는 서씨가 그 기술들을 고스란히 전수받은 유일한 후손인 셈이였다.  변수민은 시와 서화에 두루 능해 정판교郑板桥, 금농金农 등과 비견되는 인물로 갈대와 기러기 그리기를 각별히 좋아해 일명 ‘변로연边芦雁’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한때 회성 천비궁天妃宫 린근 갈대밭 언덕에 기거해 살면서 위간거사苇间居士라는 호를 얻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서씨네 조상은 변수민과의 인연을 기리는 의미에서 표구소 이름을 ‘념로재’라고 지었던 것이다.  옛말에 ‘서화작품 3할에 표구가 7할’이라고 했을 정도로 서화작품에 있어서 표구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표구는 그 절차가 아주 복잡다단하고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표구사의 종합적 자질에 대한 요구 또한 상당히 엄격한 작업이다. 서씨네 표구소에는 세가지 철칙이 있었는데 하나는 그림을 분실하지 말 것, 둘은 모조품에 손 대지 말 것, 셋은 공들인 만큼 수금하되 명인의 작품이라 해서 돈을 많이 요구하지 말라였다. 일부 그림을 잘 모르거나 또는 멋모르고 조상으로부터 진귀한 그림을 물려받은 경우라면 가장 사기당하기 쉬운 사람들이였다. 한번은 남대문 서쪽 변두리에 사는 사람이 그림 한점 들고 표구하러 찾아왔는데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고 난 서씨는 아무 내색 않고 그림 임자를 다시 한번 훑어보고 나서 가격을 말해주고 언제 쯤 찾으러 오라 하고는 손님을 보냈다. 그 그림은 사실 서위徐渭의 유작이였다. 어려서부터 사의写意화법을 제법 익혔고 특히 화초 그리기에 능한 서씨였다. 그리고 모사临摹실력도 상당해서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 진위를 구분해내기 어려웠다. 그러나 서씨는 그 그림을 앞에 두고 이왕보다 좀 오랜 시간을 두고 감상했을 뿐 감상을 마치고 나서는 례사 그림을 표구할 때처럼 차근차근 작업에 림했으며 표구를 마친 다음에는 후일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권축卷轴 부분에 자그마한 날인을 남겼다. 그리고 약속날자가 되여 그림 임자가 돈을 지불하고 그림을 찾아갔는데 며칠 안 지나서 그 일은 곧 표구업계의 우스개로, 멍청한 표구사의 전형사례로 ‘회자’되였다.  표구에는 원표구原裱와 게표구揭裱가 있는데 원표구는 표구한 적 없는 그림을 처음 표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고 게표구는 이미 표구했던 그림을 다시 표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게표구는 아주 까다로운 작업이였던 만큼 웬만해서는 아무도 주문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반면 일부 기술이 뛰여난 악당들로 말하자면 게표구는 모조품을 얻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선지宣纸는 여러층으로 분리해낼 수 있어서 표구사가 마음만 먹으면 그림 한장을 여러층으로 분리해 여러장으로 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복제해낸 그림은 색채가 원작에 비해 연해지기 마련인데 그러면 거기에 ‘보완’작업을 한 연후에 다시 낡아보이게 하는 구제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림 한장을 감쪽같이 여러장으로 복제해서는 암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다.  회성에는 소장가들도 꽤 있었는데 오래된 그림들에 습기가 차거나 좀먹거나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그것도 장마철이면 더 심해지기 마련. 해서 장마철만 되면 회성에서 게표구 작업이 필요한 거의 모든 그림들이 ‘념로재’에 맡겨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렇게 한해 여름 동안 서씨 손을 거쳐야 하는 게표구 작업건만 해도 천건 남짓했지만 서씨가 실수로 그림을 훼손했다거나 모조품을 만들어 안속을 챙긴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하기에 설령 고개지顾恺之나 전자건展子虔과 같은 대가들의 유작이라 하더라도 일단 ‘념로재’에 맡겨놓았다 하면 아무 걱정 안해도 되였던 것이다.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자녀들 모두 해외로 이주해간 바람에 더 이상 가업을 이어갈 후계자가 없어서 년로한 서씨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였다.  그런데 그렇게 별탈 없이 조용히 여생을 마무리하는구나 싶었는데 그것마저도 여의치 못했다.  개혁개방 이후, 회성에도 남방에 가서 장사를 시작한 이들이 생겨나면서 이들 중 서화장사가 돈 번다는 것을 알고 모조품, 짝퉁 시장에 눈독을 들인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연 고향마을의 표구사 서씨를 떠올리게 되였고 서씨가 표구는 물론 회화 실력도 뛰여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지라 불법통로로 원작을 얻어다가 서씨한테 게표구를 시켜 복제품을 만들거나 또는 명화를 모사하게 하거나 혹은 아예 명화를 날로 그려내게 했다. 그 같은 요구에 순순히 응할 서씨가 아니였지만 놈들이 자식들을 앞세워 협박하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해외에 있는 자식들이 무탈하길 바란다면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을걸유.” 그렇게 서씨가 놈들의 요구 대로 위조품을 만들어주면 놈들은 그것들을 남방에 가져다 팔아넘겼는데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몇참 못 가 그 일은 들통나고 말았고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렇게 고상한 척 점잖을 빼더니 늘그막에 들어 돈에 눈이 멀었다고 서씨를 비난했다.  그러던 얼마 후, 서씨가 크게 한번 앓더니 돌연 세상을 떴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위조그림 장사를 해먹던 일당들이 일거에 체포되면서 회성 전체가 떠들썩했다.  사람들 모두 영문을 몰라 쉬쉬하는 중, 경찰에서 지방신문을 통해 사건 경위를 공개했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서씨가 죽기 전에 공안국에 편지 한통 부쳤는데 편지에서 서씨는 전반 사건의 경과를 진술하고 나서 자기 손으로 위조한 그림들의 족자 겹층 안쪽에 “핍박에 못 이겨 그린 위조품임”이라는 글귀를 남겼다는 설명과 함께 그 몇몇 악당들의 용모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초상화까지 그려두었다는 것이였다.  그렇게 ‘념로재’는 회성의 관광명소로, 수많은 관광객들과 회성 사람들이 오며 가며 종종 머물다 가는 유적지로 되였다.    오삼전吴三钱 중국문학사에서 조설근을 빼놓을 수 없듯 오국통吴鞠通이라 하면 중의학계에서 빠뜨릴 수 없는 대표적 인물이다. 오씨가 경성 의학계에서 명망 높은 의원이라는 소문이 회성까지 전해지자 수많은 회성 사람들이 중의공부를 하는 대오에 합류했다. 그렇게 아침엔 유학경전을, 저녁엔 의학경전을 읽으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유년시절부터 의학공부를 중시하는 풍기가 형성되다 보니 회성에는 대대손손 명의가 나와 오씨의 리론과 의술을 전승하였는데 력사에서는 이들을 ‘산양의학파山阳医派’라고 부른다. 오삼전은 오국통의 후손으로 그는 평생 경성은 고사하고 회성 성문 밖 한번 나가보지 못한 채 평생을 환자들을 위해 바친 사람이였다. 진료소를 운영하려면 우선 이름이 있어야 하는데 조상들이 운영하던 ‘문심당问心堂’은 일찍 전란시기에 파괴되였던 터, 그냥 문심당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라고 권유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삼전은 완연히 거절했다. 원체 겸손한 위인이였던 터, 행여 자기 수준 미달로 선인들 얼굴에 먹칠하는 일이라도 생길가 저어되였던 것. 해서 고민 끝에 결국 ‘양심당养心堂’이라 이름하기로 하였다.  겨우 한글자만 바꿨다지만 그 의지는 분명해서 말하자면 최선을 다해 자신과 환자들의 마음 그리고 조상들로부터 전수받은 의술, 의덕을 잘 가꾸어가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름이였던 것이다. 식이료법에 능한 오삼전은 어떤 한가지 식재료를 그대로 약으로 쓰거나 또는 식재료에 중약을 배합해 처방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침 치료법으로 대부분 의사들이 설탕과 배를 처방하지만 오삼전의 처방은 독특했다. 말하자면 날계란 한알을 사발에 까넣고 거기에 얼음사탕을 살짝 뿌린 뒤 휘젓지 말고 그대로 솥에 넣어 응고될 때까지 쪄서 복용한다. 그렇게 두세번만 복용하면 기침은 가뭇없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녀인들의 산후조리에 관해서도 그만의 처방이 있었는데 소량의 흑설탕을 탄 물에 본고장 특색음식 ‘참깨기름꽈배기’를 곁들여먹는 게 그 처방이였다. 꽈배기를 만드는 점포는 많지만 그는 하하河下 북쪽 끄트머리 가게 아니면 읍내 중심가에 위치한 진회루 1층에 있는 가게 혹은 남문부학 옆에 위치한 가게 등 세집에서 만든 꽈배기를 추천했다. 구전으로 전해진 처방이라지만 요즘도 회성에 가면 이 처방으로 산후조리를 하는 녀인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여름철이면 강물이 범람하고 읍내 곳곳에 건물이 침수되기 마련이요, 간신히 홍수를 지나보내고 나면 또 역병이 들이닥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한번은 숱한 민가들이 물에 잠긴 데다 전염병까지 번져서 동서남북 성문들 할 것 없이 매일같이 송장이 들려나가고 있었다. 그 무렵, 오씨는 마침 그 옛날 오국통이 경성에 있을 때에도 전염병이 크게 번져 경성에 있는 회안회관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냈다는 기록을 읽고 있었다.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 오삼전은 그 자리로 의약상자를 둘러메고 제자들을 이끌고 나가 서에서 남으로, 동에서 북으로 도성을 전전하며 수많은 위급환자들을 돌보느라 수일째 밤잠 한번 제대로 자보지 못했고 신발이 해지고 발이 까져 발톱 몇개가 떨어져나가기도 했다.  부득불 오씨는 제자들에게 들려 ‘양심당’으로 돌아가게 되였고 제자들이 그를 대신해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러던 하루는 제자들이 아무리 약을 쓰고 지극정성으로 돌봐도 효험을 보지 못하고 간들간들 숨만 붙어있는 환자가 있었다. 맥을 버린 환자 가족에서는 이제 후사를 치를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 환자 가족은 과거 오씨네가 신세진 적이 있는 집안으로 이는 제자들 모두 ‘양심당’에 입문할 때 스승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는지라 제자들은 환자에게 태만할 수도 없었거니와 또 ‘되든 안되든 한번 시도는 해보자’는 생각으로 환자를 일단 ‘양심당’으로 모시기로 했다.  이윽고 절룩거리며 나타난 오삼전이 극도로 지친 두눈을 간신히 비벼 뜨고 환자를 살피다가 다시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깊은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마침내 떨리는 손으로 약처방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제자가 약을 지으려고 받아보니 그것은 전钱 단위까지 소상하게 적혀있는 처방이였다. 자고로 의학계에는 역병 기간에는 어떤 사람에 한해서도 돈을 받지 않는다는 불문률이 있었다. 환자 가족들이 그 앞에 무릎 꿇고 사의를 표하자 오삼전은 사력을 다해 몸을 일으켜 그만 돌아가보라고 손짓으로 배웅하고는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안채로 들어갔다.  사흘이 지나자 그 환자는 언제 그랬던가 싶게 말끔히 나아 밭에 나가 일할 수 있었고 고마운 마음에 오삼전의 고명한 의술을 칭송하는 내용의 편액을 만들어 들고 온 가족과 함께 ‘양심당’을 찾아왔다. 구경을 나왔던 동네사람들도 집에서 북이며 꽹과리, 새납까지 들고 나와 편액 증정식에 가세하였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양심당’은 대문이 굳게 닫혀있고 가만히 귀를 강구고 들어보니 뒤울안에서 아녀자들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에 황급히 문을 두드리니 제자 한명이 문틈으로 머리를 내민 채 좀 조용히 하라는 것이였다. 알고 보니 오삼전은 그 며칠 동안 너무 무리했던 탓에 과로로 사망했다는 것이였다. 그에 편액을 들고 온 사람들이며 이웃들 모두 엉엉 울면서 편액이라도 관과 함께 묻어달라고 그리고 거기 모인 사람들 모두 오삼전의 령전을 지키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에 제자들이 편액은 받을 수 없다고 한사코 마다했고 이웃사람들한테는 그 마음 충분히 고맙지만 제발 그만 돌아들 가시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였다. 편액을 들고 온 사람들이 아무래도 납득할 수 없다는 눈치였고 그렇게 한창 실랑이가 벌어질 무렵 한 제자가 죽다 살아난 그 환자 귀가에 뭐라고 속삭이자 그 사내는 군말 없이 일행을 이끌고 편액을 둘러메고 돌아가는 것이였다. 일행이 집으로 돌아와 그 제자가 일러주던 대로 대문 안쪽 벽돌 한장을 들고 보니 그 밑에서 편지 한장이 나왔다. 편지에는 “지금 쯤이면 쾌차했으리라 믿네만 내게 고마워할 건 없네. 내 처방을 잘못 쓰는 바람에 약재 한가지가 3전이나 더 들어갔지 뭔가. 비록 큰 지장은 없었겠지만 처방에 차질이 생긴 건 틀림없는 일인즉 자네 병환은 내가 치료한 거라 할 수 없으니 내 심심히 사과하는 바네.” 편지에 피가 묻어있는 것으로 보아 제자의 말 대로 그것은 오삼전이 숨을 거두기 전, 잠시 정신이 맑아진 틈에 쓴 편지였다.  그 소문은 곧 회성 전체에 퍼져나갔고 오삼전이라는 호칭도 사실 그 때 생겨난 것이였다. 그로부터 오삼전은 회성 모든 의원들의 보기로 되였으며 회성 사람들 모두 몸이 고단하거나 병환에 시달릴 때면 자연스레 그 이름을 떠올리곤 했다.    대필자 빙冯씨  대필은 꽤 오래된 업종으로 우전국 주변에 가면 적어도 한두명, 많으면 일여덟명씩 대필자들이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있는 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필은 준비물도 크게 필요 없어서 책걸상과 종이, 필기구만 있으면 그만이다. 그나마 격식을 좀 지킨다 하는 이들은 전용편지지에 붓과 먹을 마련해두지만 보통 보면 필기장 따위를 북 찢어내거나 학교, 기업 등 기관단체의 사무용지에 만년필로 쓰는 이들이 상당수다.  편지를 대필해주는 일이 대부분이고 간혹 가다 소송장이라든가 유서, 전기, 가족사 따위를 대필해주는 경우도 있다. 편지 대필은 대개 손님이 대체적인 내용을 구술하면 그걸 받아 써주면 된다. 간혹 일자무식인 사람들이 편지를 들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손님이 편지 내용을 충분히 알아듣게끔 차분히 읽어주고 나서 답장할 내용을 구술하기를 기다려 답장을 써주면 그만이다.   빙씨가 대필자 노릇을 시작한 게 지난 세기 80년대 초반이였으니 린근에선 아마 가장 오래된 대필자 중 한명일 것이다. 그러나 빙씨가 대필 업종을 선택한 것은 결코 공장에서 퇴직한 원인만은 아니였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라지만 빙씨는 자기 직업원칙을 엄수했다. 어떤 내용의 편지든 대필을 마감해서 봉투에 넣는 즉시로 그 내용을 일절 되새기지 않았고 대필 과정에서는 손님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극력 정확하게 전달하도록 애썼으며 게다가 요구하는 대필 비용 또한 시종여일 변동이 없었으므로 자연 그를 찾는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여타 대필자들보다 좀 다른 점이라면 빙씨는 대만에 부치는 편지를 대필할 때면 사전에 그 손님과 “제가 봉투 뒤면에 제 가게 로고 하나 그려넣게 해주시오.”라고 청을 넣곤 하는 것이였다. 그러면 손님들 대부분은 군말 없이 그 청을 들어주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로고 하나가 아니라 봉투 앞뒤면 가득 로고를 그려넣는다 하더라도 우편료금이 더 붙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였으니 말이다.  빙씨의 대필소所 로고는 순무였는데 순무 아래쪽에는 ‘순무·빙’이라는 싸인이 있었다. 보다 쓰기 간편하고 식별하기 쉽게 하기 위해 빙씨는 그 로고 문양으로 된 전용도장을 새겨두었다.  해방 전, 회성에는 남경에 가서 국민당에 입당한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장개석이 패전하여 대만으로 건너갈 무렵 수많은 회성 출신 국민당 장교들이 가족, 친지들을 데려가기 위해 고향에 다녀갔었다. 그런 연유로 회성 사람들이 써보내는 편지들 중 상당수는 대만으로 부치는 편지들이였다.  빙씨는 아직도 여섯살 나던 그 해 가을의 정경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날은 국민당 장교인 외삼촌이 간만에 왔다가 안채에서 아버지랑 대작하고 있었다. 마당에서 놀던 빙씨와 그보다 네살 터울인 형이 호기심에 안채 쪽을 기웃거리는 중, 외삼촌이 손짓으로 형을 불렀고 그렇게 외삼촌한테로 쫑드르 달려가던 형과 글쎄 50년 남짓 생리별하게 될 줄이야 꿈엔들 알았으랴. 지난 세기 80~90년대, 해협 량안에는 리산가족 찾기 붐도 불고 했지만 그러나 고향의 길거리며 골목들 이름만도 벌써 수차 바뀌였으니 설령 형이 옛날 집주소로 편지를 했다 하더라도 진작에 반송되였을 것이였고 빙씨로서는 형의 주소를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형제간 모두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라면 어쩜 순무짠지 밖에 없을 것이였다. 어린 시절 집에는 순무짠지를 담그는 꽤 큰 작업장이 있었는데 골목길 저쪽 끝에 들어서면 벌써 순무짠지의 특유의 향기가 물씬 풍겨오곤 했던 것이다.  때는 다들 생활이 궁핍하던 때였으므로 순무짠지는 거의 모든 가정의 주메뉴였고 좀 어렵긴 했지만 락관적인 회성 사람들은 좀더 ‘정제된’ 순무짠지를 만들기 위해 여러 모로 많은 시도를 해봤다. 그리고 순무짠지를 담그는 간수老卤를 무슨 대물림보물인 양 고이 남겨두었다가는 대대로 내려오며 항아리에 저장해두었고 그렇게 해묵은 간수로 순무짠지 담그는 일은 이곳 민속풍경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그 시절 간수순무짠지는 단조로운 밥상에 이채를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곤궁한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도 했다. 그런 고로 생활형편이 넉넉해진 요즘에도 간수순무짠지는 여전히 밥상에 없어서는 안될 회성 사람들의 추억거리로 남아있으며 차츰 다른 지역들에 알려지면서 명품짠지로 거듭나게 되였다. 해서 회성에는 “순무는 반찬이 아니라 길 떠나는 이들의 필수품이다.”라는 속설도 있다. 회성 전통극 에서는 순무짠지를 보다 직설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하북에서 소문난 순무짠지 향기에 녕호宁沪 상인들 벌떼처럼 모여들고 트럭 가득 박아싣고 부두까지 가서는 선박 가득 싣고 가네. 멀리는 남경, 상해, 양주며 진강镇江까지 실어간다오. 하북에 가면 사람마다 짠지전문가요, 집집마다 짠지항아리 즐비하다오.” 이 에 나오는 하북은 하하河下 고진 북쪽에 위치한 하북촌을 이르는 말이요, 빙씨가 바로 이 마을 출신이고 어린 시절 끼니마다 순무짠지에 밥을 먹었던 그들 세대였다.  그렇게 10여년 동안 대필해준 편지가 수백통에 달했고 어느 겨울날 량씨가 대만에 있는 친척이 부쳐왔다며 편지 한통 들고 왔다. 빙씨가 편지를 읽어주려고 봉투를 뜯어보니 량씨 앞으로 보낸 편지 말고 선지에 붓글씨로 정히 쓴 편지 한장이 더 들어있었는데 내용인즉 이러했다. 근년 들어 몇몇 회성 출신 친구들이 종종 한자리에 모이곤 하는데 고향의 순무짠지 얘기가 좌중의 화제가 되곤 한다는 것, 그러다 한번은 량형梁兄이 고향에서 부쳐온 편지 한통 꺼내더니 봉투 뒤면에 찍혀있는 순무 모양의 로고를 보여주면서 하는 얘기가 회성에 있는 여느 대필소 로고인 것 같은데 대만으로 부쳐오는 편지들 모두 그 대필소에서 대필해주는 모양인지 편지마다 봉투 뒤면에 순무 문양 밑에 ‘순무·빙’이라는 싸인이 박혀있는 로고가 찍혀있더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그 대필소 주인이 행여 내 동생이 아닐가 하는 요행심리에 오늘 량형의 편지와 동봉하오니 답장만 고대한다는 내용이였다.  편지를 읽는 내내 빙씨의 량볼로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궁여지책으로 고안해낸 그 막연한 방법으로 정말 형을 찾게 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하여 우선 량씨를 위해 답장을 써준 뒤 그 자리에서 단숨에 10여장 되는 답장을 형한테 써보냈다. 그로부터 형제간은 빈번하게 편지를 주고받게 되였고 90년대 말에는 형이 고향을 탐방하여 수일간 머무르면서 50년 만에 형제간의 해후상봉이 이루어졌다. 빙씨가 고향 특색료리들로 푸짐한 상에 마지막으로 간수순무짠지를 올리자 형이 배낭에서 아직 개봉하지 않은 자그마한 단지를 꺼내 올려놓는 것이였다. 그것은 과거 외삼촌을 따라 떠나던 날, 어머니가 보따리 속에 넣어둔 순무짠지였던 것이다. 그렇게 형제간이 마주앉아 순무짠지를 씹으면서 옛추억을 곱씹고 있노라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알싸한 향기가 피여오르며 눈물이 앞을 가렸다.    당唐목수 “남자는 관음보살, 녀자는 부처님”이라는 말은 몸에 지니는 패물을 두고 하는 말이요, 그 패물은 대체로 금이나 은, 옥돌, 수정 등속으로 된 것은 많아도 나무로 된 패물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소이는 언제 봐도 항상 마작쪽 만한 크기의 그 나무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녔다.  그것은 얼핏 보면 그저 민숭민숭한 나무쪽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정교하고 예쁜 도안이 눈길을 사로잡는 목걸이였다. 그 자그마한 나무쪽에 지금 막 피여나고 있는 것 같은 정교하고 섬세한 국화꽃 세송이나 새겨져있었던 것이다. 그 목국木鞠의 래력을 알아내기 위해 사람들은 소이가 어린 시절에는 사탕공세를, 나중에는 술공세를 들이대며 무진 애를 썼지만 소이는 단 한번도 그 비밀을 발설한 적이 없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목국은 소이 할아버지의 작품임에는 틀림없다는 점이였다. 회성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들어봤음직한 노래가락이 있다.  “최고의 목수가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회성에서 제일 바삐 보내는 이를 찾으시오. 부리부리 두눈에 우뚝한 코, 말수는 적고 성은 당씨라오.”  노래가락에서 말하는 당목수가 바로 소이의 할아버지였고 대부분 사람들이 그 실명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소이가 목에 걸고 다니는 그 목걸이가 다름 아닌 당목수의 작품이라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당목수에 관한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 또한 노래가락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익히 들어 아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당목수는 나무의 크기와 재질, 량에 따라 그에 상응한 물건을 만들곤 했는데 도면도 필요 없이 목재를 눈대중으로 보기만 하고는 바로 작업을 시작하곤 했다.  필통이며 책꽂이, 접이의자, 책걸상, 옷궤, 침대 등 못 만드는 게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엔 나무집도 지었다고 한다. 고용주가 정해놓은 부지와 그 요구조건에 따라 즉석에서 면적을 추산하여 목재를 사오게 하는데 집이 준공된 다음에 보면 널판자 하나 보태지도 남아돌지도 않았다고 한다. 간혹 남아도는 나무토막이나 자투리가 있더라도 그것들을 활용하여 부삽이나 바가지, 국자 등을 만들었고 톱밥들도 모조리 담아두었다가 땔감으로 쓰게 하였다는 것이다. ‘추산’능력이 뛰여난 외 조각기술 또한 신기에 가까웠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통나무로 룡머리를 조각한다거나 그 입속에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구슬을 조각해넣는다던가 또는 통나무로 여러 고리들이 맞물려있는 형태의 나무목걸이를 만든다던가 하는 건 말할 나위도 없었고 뭐니 뭐니 해도 당목수는 미세조각에 가장 능했는데 호박씨 크기의 나무쪼각으로 주산을 만들면 그 주산알들은 깨알보다 작아도 어느 하나 들놀지 않는 게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주산’에서 만족할 수 없었던 모양, 한번은 이웃사람 두명이 찾아와서 한 사람은 열쇠를 내놓으며 나무열쇠를 ‘복제’해달라 청들었고 다른 사람은 이쑤시개를 내놓으며 거기에 풍경화를 그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 모두 뒤가 부옇게 돌아가야 했고 다시는 당목수를 괴롭힐 엄두를 못 냈다고 한다. 한편 당목수는 그 나무열쇠와 이쑤기개를 자그마한 함에 간직해둔 채 그것을 “기예를 갈고 닦는 데 게을리하지 말자”는 지침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한때 회성 사람들이 누군가의 뛰여난 기예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였고 아울러 망신을 자초하는 이들을 조롱하는 사례가 되기도 했다. 목수라면 의례 연필이나 먹으로 나무에 표기를 해놓고 그 선을 따라 나무를 켜고 자르기 마련인데 당목수는 종래로 귀등에 연필을 꽂거나 먹선 긋는 공구를 갖고 다니는 법이 없었다. 당목수한테는 두눈이 곧 공구였고 그렇게 눈대중으로 켜놓은 목재는 종래로 비뚤거나 모자라거나 넘치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자조차도 쓰는 일이 거의 없이 엄지와 식지, 중지를 리용하여 뼘으로 재면 그만이였다. 그러다 간혹 고용주가 재촉하기라도 하면 뼘으로 재지 않고서도 종래로 어떤 차질이 생기는 일이 없었다.  소이가 걸고 다니는 그 목국에 대한 사람들의 억측은 끊일 줄 몰랐고 당목수가 죽은 뒤로는 궁금해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그러던 하루는 금탕사우나에서 소이가 옷궤에 넣어둔 목걸이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나 깨나 항상 목에 걸고 다니다가 목욕할 때만 벗어놓곤 하는 목걸이였다. 금탕사우나는 꽤 오래된 사우나로 과거 당목수도 종종 즐겨 찾던 곳이였고 사우나를 수차 개조하는 과정에서 나무로 된 물건들 중 어느 하나 당목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게 없을 정도였다.  설마 새로 온 웨이터의 소행인가? 소이가 후끈 달아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무렵, 마침 새로 온 웨이터가 달려오더니 이실직고했다. “손님, 저들이 제가 그 목국을 가져오지 않으면 오늘 당금 쫓겨날 거라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갖다 주었습니다. 전에 다른 웨이터들한테도 시켰지만 그 사람들 모두 응하지 않아서, 그래서 금방 와서 멋모르는 저를 시켰던 것 같습니다.” “그래, 또 뭐라고 하던가?” “저보고 목걸이는 그냥 잠시 보관해드리는 것이니 걱정 마시라고, 이제 그 목걸이의 래력을 소상히 말해주면 그대로 돌려드릴 것이라고 그렇게 전해드리라고 했습니다.” “가서 래일 아침 다들 사우나 문앞에 모이라고 전하게.” 소이가 그렇게 쉽게 나오리라고는 그 사람들 역시 예상 밖이였다.  이튿날 아침, 사우나 문앞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뭉스런 얼굴들이였다. 이윽고 소이는 사람들을 이끌고 곧추 교외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내내 말 한마디 없었고 그에 사람들은 한층 불안한 표정이였고 개중에는 여차 하면 중도에 빠져나갈 기회를 엿보는 이들도 있었다.  몇참 안 가서 교외에 이르렀고 중학교 문앞에서 걸음을 멈춘 소이가 학교 이름이 새겨진 편액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자, 이게 바로 ‘목걸이’의 래력입니다.” 그에 사람들은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며 웅성거렸다. 그러자 소이가 사람 몇을 시켜서 그 편액을 약간 들어내여 뒤면과 벽 사이에 틈이 생기게 하고 다시 몇사람보고 그 뒤면에 새겨진 조화雕花를 확인하라 하고는 말했다.  “평생 동안 목수 노릇을 하신 저희 할아버지는 만년에 계획경제시대를 맞이했고 아시다 싶이 때는 목재가 귀한 시기라 회성 교외의 일부 농민들은 관널을 도적질해서 목재가 필요한 이들에게 팔아넘기곤 했지요.” “관널은 알짜 좋은 목재만 쓴다는 것을 잘 아는 그들이였고 그 목적은 물론 관널이였습니다. 물론 내친 김에 삽으로 항아리를 깨고 금품 따위가 있으면 훔쳐가는 이들도 간혹 있었지만 말입니다.” “이 교외 중학교의 목수일은 저희 할아버지가 사람들을 이끌고 진행한 공사입니다. 그런데 개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학교에서 할아버지보고 학교 이름이 새겨진 편액을 만들 것을 주문했고 구매 담당자는 어쩔 수 없이 관 도적들 손에서 목재를 사와야 했습니다. 녹나무로 된 이 편액에는 섬세한 조화까지 새겨져있습니다. 그리고 찬찬히 보면 조화 중앙부분에 당승중이라고 저희 증조부 이름이 새겨져있습니다. 당시 그걸 본 할아버지는 말 그대로 칼로 가슴을 저미는 것 같았지만 사람들의 기대 어린 눈길 속에서 차마 물러설 수도,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소이가 축축해진 눈가를 손등으로 찍어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몰래 그 관널 귀퉁이 부분을 살짝 잘라내여 손에 꼭 쥔 채 일을 계속했고 꽃 문양과 이름자를 지우지 않고 그 뒤면에 학교 이름을 새겨넣었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조상 무덤이 털리면 절대 소문 내지 말라’는 설이 있는데 할아버지는 저한테 이 일을 절대 발설하지 말 것과 이 ‘목걸이’를 자손 대대로 전해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 날 집에 돌아오신 할아버지는 낮에 잘라낸 나무쪼각에 국화꽃 세송이를 새겨넣은 뒤 제 목에 걸어주고 얘기 몇마디 하시다가 그렇게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비로소 사람들은 그 ‘목걸이’를 소이한테 돌려주었고 무척 미안한지 저마다 고개를 떨군 채 “미안하오, 미안하네.”라고 나직이 속삭였다.    견삼공犬三爷 견삼공 하면 딱 들어도 별명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별명이 불려진 지는 어언 30년도 더되였다. 그 별명을 붙여준 것은 동네 꼬마들이였고 처음에는 개삼공이라 부르던 것을 후일 어른들이 좀 완곡하게 견삼공이라 고쳐부르게 된 것이다.  견삼공이 있는 곳엔 언제나 개가 따라다녔고 견삼공은 개가 무슨 지팡이라도 되는 양 개가 없이는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처럼 하루종일 개들과 붙어다니곤 했다. 그 종류로는 늙은 개에서부터 강아지에 이르기까지, 암컷과 수컷, 토종과 서양종 그리고 종일 짖어대는 놈에서 종일 가다 몇번 짖지 않는 놈에 이르기까지, 비대한 놈에서부터 비루먹은 놈에 이르기까지 정말 없는 것 말곤 다 있었다.  견삼공의 일과 또한 모두 개들과 련관된 것들이여서 언제 어디에서 보나 이놈에게 먹거리를 주고 있지 않으면 저놈 등을 긁어주고 있었고 이놈을 데리고 산책하지 않으면 저놈을 끼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견삼공이 수양한 유기견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 그 먹이에 들어가는 돈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견삼공은 회성 읍내에서 가장 큰 식당 청소부로 취직을 했고 월급은 한푼도 필요 없으니 자기와 개들의 하루 세끼만 보장해달라고 자기가 한두끼 쯤 거르는 건 괜찮지만 개들은 절대 굶겨서는 안된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다행히도 식당에서 매일 버려지는 고기, 뼈다구 등속은 그 개들의 먹거리로 충분했고 이제 몇마리 더 추가하더라도 별문제 없을 것 같았다.  한편 그런 견삼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의문으로 가득했고 30년 전, 견삼공이 무슨 일로 갑자기 개한테 홀딱 반하게 되였는지 무척 궁금해했다. 30년 전의 견삼공은 집에서 개 한마리 기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골목에서 이웃집 개와 마주쳐도 종래로 눈길 한번 주는 일이 없는 위인이였던 것이다.  연유야 어찌 됐든 누구나 다 아는 견삼공의 외모특징, 그것은 사실 애초 견삼공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중요한 근거이기도 했다. 견삼공은 오른쪽 눈이 왼쪽 눈보다 컸고 동공이 작고 흰자위가 큰 오른쪽 눈은 언제 봐도 정기 없고 멀건 빛을 띠였으며 눈을 깜빡일 때도 아주 어색해보였는데 사실 그 눈은 개눈이였다. 그런데 견삼공이 개눈을 이식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누군가 빈말로라도 견삼공이 수양한 개들의 안부를 물으면 견삼공은 그 사람과 더없이 친근하게 굴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간혹 장난꾸러기 꼬마들이 견삼공이 안채에 들어간 틈을 타서 담장에 기여올라 개들한테 돌총질하곤 했는데 돌 맞은 개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면 견삼공은 득달같이 튕겨나와 비자루를 휘두르며 꼬마들을 뒤쫓았고 꼬마들은 그게 재미있다고 와 하고 함성을 지르며 뿔뿔이 달아나곤 했다.  외인은 그렇다 치고라도 그 아들과 손자마저 개들을 싫어하는 것은 어쩌면 견삼공이 거의 모든 정력을 개들한테만 기울이고 가족들한테 소원하는 탓이였다. 그 아들 역시 아버지가 개들한테 그토록 끔찍하게 구는 리유를 모르긴 매한가지, 외인들보다 좀더 아는 게 있다면 30년 전 아버지가 개눈을 이식해 넣게 된 경위를 알고 있을 뿐이였다. 30년 전의 어느 날 아침, 견삼공이 트럭을 몰고 이웃 현으로 화학비료 실으러 가는 길이였다. 도로에는 온통 자갈이 널려있었는데 아마 린근 공사장으로 자갈을 나르던 트럭이 지나가면서 흘려놓은 모양이였다. 그런 울퉁불퉁한 도로를 덜렁거리며 운전해가느라 심성이 불편해진 견삼공은 누구라 없이 투덜거리며 운전하던 중, 갑자기 자갈 하나가 눈앞으로 튕겨오는 바람에 엉겁결에 두눈을 꼭 감으면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였고 아들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아들은 아침에 아버지가 급히 나가면서 공장 소개신을 두고 간 것을 발견하고 급히 아버지를 뒤쫓다가 그런 사고현장을 목격하게 되였던 것이다. 그렇게 공장에서 화학비료를 사라고 준 돈은 비료는 고사하고 전부 병원비용으로 밀어넣게 되였다. 그런데 그보다 황당한 것은 오른쪽 눈알이 자갈에 맞아 터진 것이였다. 그것도 어처구니 없게도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랬다거나 인위적인 사고가 아닌, 견삼공이 몰고 가던 차 바퀴에 깔려서 튕겨오른 자갈이 오른쪽 차창을 뜷고 들어와 눈알에 박힌 것으로 교통사고사상 류례를 찾아볼 수 없는 참으로 황당무계한 사고였던 것이다.  일부에서는 개눈알을 이식하고 나면 자연스레 개습성을 갖게 되고 지어 안목까지도 개를 닮아가는 것 아니냐고, 그래서 견삼공이 갑자기 개들과 친밀해진 게 아닐가 하고 억측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가만 생각하면 그 말은 어불성설이였다. 왜냐면 때는 의료조건이나 사람들의 수입상황 등이 제한된 시절에 눈알을 다쳐서 개눈알을 이식해 넣는 사례가 회성에만도 여럿 있었으며 다만 사후에 견삼공처럼 개를 극진히 대하는 사례가 없었을 뿐이였다.  그러구러 수년이 지나고 견삼공이 중병으로 몸져눕게 되였는데 다들 이제 설을 넘기기는 글렀다고 맥 놓고 있는 중이였다. 한편 견삼공은 병상에 누워서도 자기 몸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듯 오직 개들 걱정 뿐이였다. 그러던 하루는 다들 잠든 야심한 시각에 아들과 손자를 조용히 불러놓고 이야기 하나 들려주면서 어떻게든 개들을 잘 돌봐야 한다고, 그리고 남의 집 개한테라도 절대 못되게 굴지 말 것을 당부했다.  사실 견삼공은 어린 시절 툭하면 고무새총으로 동네집 개눈을 쏴 멀게 하는 악당이였는데 그로 인해 한동안은 동네 개들 전부가 애꾸눈이 된 때도 있었다. 그러나 동네사람들은 아무도 그 원인을 알아채지 못했고 나중에는 약속이나 한듯 아무도 더 이상 개를 기르려 하지 않았다. 개를 기르기에 적절치 않은, 뭔가 사특한 기운이 도는 동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견삼공은 자기가 눈먼 돌에 맞아 눈이 먼 것을 꼭 인과응보라고 단언할 수는 없었지만 죄는 지은 데로 간다는 생각이 두고두고 마음속 응어리로 맺혀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난 아들과 손자는 연신 머리를 끄덕이며 시름 놓으라고 견삼공을 안심시켰고 그제야 견삼공은 비로소 안온한 미소를 머금은 채 숨을 거두었다. 아들과 손자는 슬픈 눈길로 망자의 얼굴을 이윽토록 바라보고 있었다. 한쪽 눈만 감겨져있고 커다랗게 뜬 채로 있는 다른 한쪽 개눈은 아직도 마당에 있는 개들 걱정으로 감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김견 옮김)   출처:2018 제6호
6    김연: 곧 오색 음악이 흐를 것이다(시, 외2수) 댓글:  조회:344  추천:0  2019-07-16
곧 오색 음악이 흐를 것이다(외2수) 김연   나무잎들이 술렁인다    스쳐가는 바람이    낯설단다       온몸을 시퍼렇게 달구고도 모자라   바람의 부축을 받던 여름은   어디 갔을가       이 가을에    여름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이 계절에    지난 계절은 묻고 싶지 않은데      여름 한웅큼이라도 잡았던 걸   해빛 한줌이라도 숨겼던 걸    지지리도 미운 땀방울이라도    한두방울 챙겼던 걸        갈 때가 되여서 가는 거겠지   어쩜 아직도 피여있는 저 꽃들이   여름이 남기고 간 입김이 아닐가    꽃들 꽃들 우로 제비 제비가 지나간다    가을비가 오시려나 보다    더 완연한 가을을 싣고 오시려나 보다        그러고 보니 나무잎 너희들    춤사위마저 다르구나      가고 오는 길목   맞고 바래는 련습   춤사위가 많이 다채로와졌구나…           일기예보    하늘이 쿨쩍거린다    걸려있어야 할 해가    종적을 감추었다      바람은 온 거리를 뒤지며    샅샅이 냄새까지 맡는다    창문에 매달려있던 마지막 온기가    슬그머니 피해간다      말의 온도가 식어갔다    발걸음 온도가 높아갔다      거리가 북적인다    침방울이 떨어진다      올칵 !    해는 소나기를 토해냈다           퇴색    이가 없는 바람이    해빛을 잘라먹고 있다    내동댕이쳐진 껍질들이    한구석에 모여 재생을 기다린다    어데서 온 개미들인지    그 껍질이 먹거리인양    집안으로 끌어들인다      열린 문으로 바람이    긴 혀를 내밀어 아예 개미 채로    삼켜버리고 아무 일 없듯 사라지면    비는 기꺼이 그 흔적들을 지워준다      나무잎들이 떨어지고    꽃들이 흐느적인다    지나가는 할머니의 하얀 머리카락   설명을 못한 채 그저 바람 따라 간다      태양을 잃어버린 하늘    달과 별에게 넉두리 늘여놓는 사이    6월은 색 바래고    곧 다가올 7월이 입술을 내민다 출처:2018 제6호
5    리미: 품는 화분(수필) 댓글:  조회:339  추천:0  2019-07-16
품는 화분 리미   무게도 안 가는 먼지들이 그렇게 묵직하게 앉아있는 줄 미처 몰랐다. 옅은 색에서부터 어느 순간 점점 진하게 변하더니 집안의 공기마저도 탁하게 만들어버렸다. 그제서야 난 그것들에 주의를 가졌다. 무질서하게 뻗은 나무잎들을 담은 화분들이였다.  언제 사놓았는지 알 수 없는 화분들이 집안의 바닥을 에돌고 있었다. 이쁨은 둘째 치고, 전자파를 막아준다는 명목하에 사놓은 뾰족한 다육이도 보이고 풍수에 좋다는 각가지 화분들은 집안의 또 다른 오아시스마냥 벽에 기대있었다. 누구나 처음 사온 화분에 대한 첫 만남을 기억할 것이다. 그다지 화려하지도 그다지 흥분되지도 않는 아주 잔잔한 만남을 말이다. 필경 살아움직이는 애완견이 아니기에 우리의 만남은 강렬한 떨림이나 화려함은 간략되였다. 그럼에도 좋은 흙 속에서 가끔씩 내리받는 해빛쪼임, 그리고 내가 주는 수분을 머금으면서 그들의 무성한 성장을 바랐다. 일종의 마음에 품고 있었던 작은 바람들이 그 잎 하나하나에 품어져있다고 생각했다. 잎이 번창하게 피여오르면 나의 옹송거렸던 소망도 같이 커질 것 같은 심리적 작용이 일었다. 시간이 날 때면 생명의 물을 그들에게 쏟아줄 것을 나 자신에게 무언의 약속을 했다.  여전히 나는 아침 6시 반의 알람에 몸을 일어세우고 허겁지겁 미완성이 된 화장으로 아침을 채우고 출근시간을 보낸다. 출근시간의 따분한 일분 일초는 이상하게도 퇴근 후면 눈 깜짝할 새에 다시 침대에 누워야 할 시간이 되고 만다. 그런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가끔씩 찾아오는 회식자리나, 술자리 지인들과 며칠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달력은 그 다음달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쩌다 여유가 생기니 집안에 초록색 눈을 하고 있는 그들이 보였다. 말도 없고 표정도 없는 그들이지만 과연 그들에게 또한 감정이 있음을 축 처진 이파리에서 느꼈다. 식사시간이 지난 후 놓인 밥상 우의 반찬과 국처럼 촉촉한 물기 대신 빼빼 말라버린 그들이 시무룩하게 나를 맞이했다. 며칠 동안 다이어트 때문에 굶주렸던 나의 허기짐을 상상해보았다. 미안함에 벌컥벌컥 그들에게도 충족하리 만큼의 물을 부어주었다. 그동안 나의 무관심에 대한 죄책감에 한꺼번에 몇주일 동안의 감정을 보상해주었다. 일방적으로 내가 그렇게 하는 것으로 내가 준 보상의 물기를 흡수하고 다시금 푸른 기운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방적인 무관심과 일방적인 베품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는 건 불과 몇분이 지나기도 전에 난 축축해진 바닥을 보고 알아버렸다. 물을 흡수하기에는 너무도 말라있었던 화초들의 ‘탈수’현상 때문이였다. 오랜 시간 동안 품어야 할 충분한 수분과 영양소를 흡수하지 못했던 그들에게 몰아주기식 베품은 매몰차게 외면을 받았다. 그래도 우선은 좀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들이 처량해진 다음에야 난 그들에게 좀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여전히 수분기 하나 없는 화분들이였지만 그 때라도 잘 보살핀다면 다시금 싱싱한 푸름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의 한달을 짬짬이 여전히 말라버린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관심을 쏟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였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수분과 영양소가 조금이나마 남아있을 때 주었더라면 죽지는 않았을 거라고 씌여져있었다. 잘 보살펴주리라 했던 무언의 약속은 여유라는 조건이 생겨야만 보살피는 것으로 되였고 그 핑게 같지 않은 변명의 결과물은 말라버린 화분이였다. 더 초췌해진 나무잎 우로 줄기줄기 뻗은 선들은 나의 고즈넉한 감정선을 동요하기에 충분했다. 생각해보니 화분을 다룬다는 건 어쩌면 인생을 다루는 것과 같은 것 같다. 탐탁치 않은 진한 토색의 토양과 그 안에 뿌리를 박은 초록색 가지들을 어떻게 거창한 인생살이와 비교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소소한 행복감, 수평선을 향하는 만족감, 닿을듯 말듯한 인연 여부가 우리의 인생이라는 늪에서의 감정선이 아니겠는가. 굳이 거창한 포장으로 인생을 포장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 작은 점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긴 려정을 그려냈을 뿐, 또한 매개 점들이 내뿜는 관심과 수요를 제때에 포옹해줘야만이 그나마 좀더 윤택한 삶이 되리라는 걸.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우리가 마주한 감정이든, 인연이든 참 오묘하게 우리를 비껴갈 때가 많다. 안심하고 있던 찰나에 두터웠던 감정이 와르르 무너져갈 때가 있다. 타인과 나 사이의 감정 뿐만 아닌, 나와 내 자신의 감정 또한 그 흐름을 빗겨가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는 흔히들 그런 말을 자주 내뱉곤 한다.  “어머나, 하는 게 없이 하루가 지났네, 일주일이 지났네…” 마치 주어진 시간의 매개 틈새에 무언가를 꽉꽉 채워야 산 것 같다는 강박감을 주는 요즘 사회다. 아무튼, 손에 남은 거라곤 줄어든 시간 밖에 없어진 우리는 여전히 바쁘게 사는 현대인임은 틀림이 없다. 바쁘다는 의식 속에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정작 자신이 원하는 건 무엇인지, 행복해지고는 있는지, 그 때 채 아물지 못했던 감정은 괜찮아졌는지… 많은 보살핌이 필요한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저기 한구석에 방치해둔 적이 많은 것 같다. 달리다 어느 순간 한발작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길 때 뒤돌아보니 저만치 남겨놓고 온 그들이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정작 필요한 행복감, 챙겨야 할 사람들, 토닥거림이 필요한 감정들이 목말라있을 때 허겁지겁 다시 부여해주려 하곤 한다. 바쁘다는 핑게 속, 너무 무관심했던 탓에 정작 행복해지는 방법을 잊은듯한 우리다. 뿌리부터 말라버린 저 구석진 화분들처럼 뒤늦은 후회를 안고 돌아갔을 땐 아무 것도 없을 뿐이다. 무턱대고 주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훅 던져주면 그만이니깐 말이다. 하지만 품는 건 일정한 열정의 온도를 머금은 채 가슴 밑 어느 한 구석에서 치솟아오르는 그 무언가와 함께 행해야 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어긋났었던 관계, 자꾸 덧나는 상처덩어리 등등을 보면 우리는 늘 일방적이였고 품기보다는 대처식이였다. 받은 상처를 더 들추어보기가 무서워서 그냥 일방적으로 덮었고 같은 상황이 돌아왔을 땐 몇십배 더 아프게 되였던 것 같다. 맴맴 도는 시간에 마음마저도 맴맴 돌며 그 모든 걸 얼렁뚱땅 지나가고 말았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서의 한구절이 나의 마음을 치고 갔다. ‘관통식의 감정’을 느끼라는 것이다. 즉 대수 지나치지 말고 그들이 당신 심장의 과녁을 뚫고 지나갈 만큼 아픔이나 기쁨 어떠한 것을 철저하게, 처절하게 느껴야만이 우리는 그 밑바닥까지 보아내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역시나 그러했다. 우리는 왕왕 느껴야 할 부분, 생각을 되뇌여야 할 부분을 묵과하고 나중에 다시 일방적인 보상을 해주리라는 다짐을 하곤 한다. 삶이라는 게 우리가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는 단락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그 상대방이 되는 경우도 있다. 친구들에게 소울메이트라고 소개를 해주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가히 최고의 행복을 느끼게 해줬으니 그 다음 행보도 행복의 마무리를 할 것만 같았다. 여태껏 글에서는 뒤늦은 후회를 품은 화분이였다면 나의 최근은 품었어도 결국 말라버린 그 어떠한 슬픔의 연장선이였다. 그 관계에서 일방통행적이였던 나의 노력이 상대방의 구미에 맞지 않아서일가, 모호해진 감정선은 결국 일정한 온도와 관심을 건넸음에도 불구, 오히려 나에게 상처만 더 안겨주었다. 무언가 채 마르지 않은 세멘트 공정 속, 꾸역꾸역 우에 덧발라서 표면상으로는 이미 다 굳어버린 세멘트덩어리지만 사실 속은 채 마르지 않은 슬픔의 끈적함 같은 비스름한 표현이 그 때 내 마음이였던 것 같다. 그 때 다시금 깨달았다. 인생의 구석구석 감정선은 내가 보살펴야 될 시기를 놓쳐서 끝나버리는 것도 있고 화분을 보살필 때 일방적인 물주기식 같은 일방적인 관심도 답이 없을 수 있다는 걸. 무작정스러운 관심, 혹은 여유가 생길 때만이 쏟는 일방적인 베품 그것만으로는 인생의 매개 굴곡진 점들은 쉽사리 우리와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오직 알심들여 그 관심과 사랑을 애틋하게 품어줄 뿐더러 서로 다같이 노력해야만 그 어떠한 결과물도 우리한테 안기려 할 것이다. 치유도 좋고 어긋남도 좋고 우리가 진정 원하는 건 무엇인지 시간을 품어서 나만의 온도로 품어보자, 그들을. 출처:2018 제6호
4    김명숙: 언어의 에너지 (수필) 댓글:  조회:377  추천:0  2019-07-16
언어의 에너지  김명숙   천성적으로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세상에 태여난 꽃은 사람들의 눈을 풍요롭게 호강시켜주는 즐거운 감상물로 널리 알려져있다. 대화가 필요 없고 동행자도 필요 없으며 표정관리에도 구애 없이 울적하고 괴로운 마음 그대로 소통을 가질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꽃이 아닐가? 꽃의 매력은 누구에게라 없이 똑같이 웃어주고 반겨주고 예쁨을 선사하는 대공무사함에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그가 소유하고 있는 특이하고 감미로운 향기가 그 어여쁨을 소리없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대자연의 황후로 떠받들리여 위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예뿐 꽃들 속에도 빛나는 그 이름과는 무관하게 사람들의 랭대를 받으며 생존하는 꽃도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자라고 있는 라플레시아는 세계적으로 제일 큰 꽃으로서 꽃 중의 왕으로 불리우지만 인간을 혼절시킬 만큼 심한 악취를 발산시키는 바람에 ‘악마의 혀’ 또는 ‘부두교의 백합’이라고도 불리운다. 라플레시아는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식물중의 하나이지만 사람들에게 아드레날린을 발산시켜 자기의 소중한 이미지를 잃어가기에 거의 멸종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게 된다. 그런 소통을 통하여 서로가 알아가고 익숙해지고 친해지면서 함께 원하는 뜻을 이루기도 한다. 소통의 주요한 요소는 서로 지간에 주고받는 대화들로서 그러한 언어들이 바로 소통의 지름길로 되고 있다. 향기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 꽃들처럼 같은 언어라도 그 표현이 다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가 하면 타인에게 주는 감수에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찍 세종대왕이 발명했다는 우리 문자는 못 나타낼 뜻이 없고 못 나타낼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언어라고 하지만 아해 다르고 어해 달라 사람들을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하며 지어 누군가를 험한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삶에 충실하고 부모한테 둘도 없는 극진한 효녀로 소문난 한 녀성의 이야기는 부정적인 언어의 위해성을 더더욱 명백히 깨우쳐주고 있다. 그녀는 일찍 사고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잃었고 50대 초반에 또 장대 같은 남편까지 잃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안고 하루하루 눈물로 절망의 나락에서 헤매이고 있을 때 일부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살이 센 녀자라 뒤공론을 했고 또 일부 사람들은 사나운 팔자여서 하늘이 벌을 내렸다고 터무니 없는 날조를 퍼뜨렸다. 가슴이 찢기는 아픔에 부대끼는 그녀에게 명석한 두뇌로 세상을 바라보기까지는 그 당시 너무나 막연한 일이였다. 그녀는 정말로 자신을 팔자가 나쁘고 살이 센 녀자로 착각하면서 밤이면 악몽에 시달리였고 점차 삶의 의욕마저 잃고 말았다. 한 사람의 소중한 존재가 이렇게 누군가가 아무렇게나 놀려버린 혀자루에 찔려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절벽의 나락에서 헤매이는 그녀로 하여 주위의 고마운 사람들은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 긴장에 떨었으며 그녀의 마음을 돌려세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지 모른다. 가정에 불화가 생긴 건 우연한 사고일 뿐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이 한 불행 앞에서 당연 위로의 말로 힘과 용기를 주어 상대로 하여금 시급히 극심한 고통 속에서 헤여나오게 하는 것이 천만 바람직한 일이 아닐가? 병은 치료하고 싸움은 말리라는 말이 있다. 굳이 아드레날린 같은 악취를 발산시켜 한 사람을 천길 나락에 빠드리는 건 인간으로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한치의 혀가 석자의 칼보다 더 무섭게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이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인듯 싶다. 이 얼마나 소름 끼치는 일인가? 사람들은 가끔 이런 말을 하군 한다. 부정적인 언어를 늘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현실이, 그리고 긍정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삶이 따른다고 한다. 주먹을 부르쥐고 열심히 뛰여도 딸리는 게 시간인데 뒤뜰에 앉아서 남의 험담이나 일삼으며 허송세월하는 사람들의 뒤에 구경 무엇이 따를가? 무심하게 뱉은 한마디 말이 가지를 치고 잎이 무성하게 자라면 어떤 악과가 초래될지 생각이나 해 보았는가? 타인에게 잘못 날린 한가닥 화살이 몇십개로 불어나 자신에게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점 생각이나 해보았는가? 높은 언어수양을 갖추려면 우선 인성적인 바른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소유하고 있는 지식과 재능이 뛰여나다 하더라도 타인에 대한 긍정, 배려, 존중의 가치를 깨치지 못한다면 천부적인 재능도 저층 바닥에서 나뒹굴 수 있고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악과를 빚어낼 수도 있다. 일찍 진秦나라에 진시황을 도와 중국 최초 통일 제국을 이룩한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이사’라는 승상이다. 이사는 문자와 각종 도량형을 통일하고 제도와 법률을 제정하여 진나라(통일제국)를 건설하였다. 이사는 법가사상으로 유명한 한비와 함께 순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동문수학하였다. 한비는 한나라 왕족으로 진나라에 온 한나라의 사절의 역할을 맡은 인물이였다. 순자의 문하에서 함께 수학한 이사는 간지奸智에 뛰여난 변설가辩说家인 반면 한비는 타고난 말더듬이였으나 두뇌가 매우 명석하여 학자로서는 이사가 도저히 미칠 바 못되였다고 한다.  진나라의 시황제는 한비의 《고분》과 《오두》의 론설을 보고 “한비와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감탄하였고 그 후 한비를 만나자 크게 기뻐하며 그를 진나라에 머물게 하려고 하였다. 진왕이 그를 총애하게 될 것을 념려한 이사는 한비의 재능을 몹시 질시하였다. 드디여 이사는 한비에게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도록 하고는 시황제에게 참언谗言하여 한비를 옥에 가두게 한 후 한나라로 돌려보내면 반드시 후환后患이 있을 거라고 모함까지 하여 한비에게 사약死药을 내려 자살하게 하였다. 이사는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여 권력과 부귀를 얻었을망정 공덕이 없었던 인물이다. 동문수학했던 한비도 비정하게 죽이는 친구였고 결국에 자신도 허리가 잘리는 참수를 당하였다고 한다. 권력과 부귀를 탐하여 생긴 지나친 질시는 종당에 소중한 자신마저 해치고 말았다.  언어란 잘 다루면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발산시켜 가물에 시들었던 꽃이 샘물을 듬뿍 먹고 생기를 되찾은듯 우리의 고달픈 삶에 좋은 영양소로 될 수 있다. 내가 살던 고향에 ‘효원’이라는 양로원이 있는데 친구들과 함께 봉사활동으로 겨울 김장일을 도와준 적이 있다. 아담하고 산뜻하게 꾸며진 ‘효원’이 좋은 환경으로 소문이 높은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른아침부터 밝은 웃음으로 로인들을 위한 봉사를 시작한다는 젊은 부부의 아름다운 소행이 더더욱 ‘효원’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되고 있다. “간밤 잘 주무셨어요?” “불편한 점 없으셨어요?” 모진 풍상에 부대끼고 지쳐서 머리에 하얀 서리를 이고 계시는 로인들, 멀리 떠난 자식들을 하염없이 그리며 기다리며 마음에 골병이 들 대로 들었지만 하루도 빠짐없는 그들 부부의 살뜰한 대화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군 한다. 서로 다른 지방에서 모여왔고 서로 다른 성격의 소유자로 때로는 애들처럼 옴니암니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의 불화를 못 이겨 장내가 떠들썩하게 말썽을 부리기도 한다는 로인들이지만 하냥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달래드리다 보면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고 얼굴에 웃음이 흐른다고 하였다. 저물어가는 황혼의 령마루를 바라보는 마음만으로도 서글프고 벅찰 것인데 힘도 딸리고 정력도 딸리는 만년에 믿고 의지할 데 하나 없이 부득이 낯선 곳에 정착해야 하는 그들의 허전한 마음 얼마나 쓰리고 아플가?  “할아버님, 오늘 참 멋지고 씩씩하신데요! 꼭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요.” “할머님. 어쩜 머리를 그렇게 이쁘게 빗으셨어요? 10년이나 젊어지셨어요.”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언어의 매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가? 한창 젊은이들에게는 싫증나고 아부가 거나하게 담겨진 귀찮은 존재로만 들릴지 모르지만 인생 마지막 종착역에서 허물어지는 담벽을 떨리는 손으로 부여잡고 간신히 버텨가는 로인들에게는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명약으로 그리고 생명의 연장선을 이어가는 값진 에너지로 될 수 있지 않을가? 금방 걸음마를 타기 시작한 애들에게는 힘겨운 한자국을 용감히 디딜 수 있도록 에너지를 부어주는 한마디가 무엇보다 소중하고 출국 바람이 적셔간 이 땅에서 따뜻한 엄마품을 잃고 울먹이는 애들에게는 엄마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는 한마디가 여린 마음을 굳혀주는 좋은 에너지로 될 것이다. 100년도 살기 힘든 우리의 삶에서 서로가 주고받는 언어의 가치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희로애락을 동반하는 짧은 삶 속에서 천성이 부드러운 혀끝을 굳이 날카롭게 세워가지고 소중한 인간을 무참히 찌르기보다는 바른손을 내밀어 감싸고 보듬고 베풀면서 응원을 준다면 세상은 얼마나 밝고 아름다울가! 정을 담은 따뜻한 말 한마디는 봄날의 순수한 꽃들마냥 내 주위를 포근하게 감싸주면서 서로의 마음을 무난하게 윤활시켜 삶의 참뜻을 멋지게 부각시켜줄 것이다. 아름다운 꽃이 한순간 내 주위를 황홀하게 빛내줄 수 있다면 아름다운 언어는 평생 나를 포옹해줄 수 있는 넓은 터전으로 되여준다. 산밑에 가면 그 산의 높이를 알 수 있듯이 한 사람의 언어수준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과 학식까지도 보아낼 수 있다. 겸손하고 수양을 갖춘 진정이 담긴 언어는 자신에 대한 존중이고 품위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이고 또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이다.  꽃이 아름다와도 가시가 있을 수 있고 매력적인 언어에도 독이 있을 수 있으니 그 속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를 얻고 잃음은 자신이 할 탓에 달렸다. 계절에는 엄동설한이 있고 울퉁불퉁 인생길에는 모래길도 자갈길도 있으니 힘을 부어주는 동행자의 에너지가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도리이다. 인생은 홀로 가는 것이 아니고 여럿이 어우러져 가는 길인 것 만큼 솔선적으로 누군가에게 선뜻 마음을 열어보라. 그리고 봄날의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는듯한 즐거운 마음으로 따뜻함을 전해보라. 그러노라면 당신의 고달픈 삶에 늘 값진 에너지가 투자되여있을 것이다! 출처:2018 제6호
고통과 성찰이 드러나는 남철심 시인의 시적 세계  -를 읽고 손경란   고통은 우리가 누구나 살면서 보편적으로 체험하는 감정이다. 고통의 류형은 육체적 고통, 내면적 고통, 세계의 부정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고통, 력사적으로 인식하는 고통이 있다.  이들 중에서 남철심 시인의 시에서 보이는 고통의 류형은 내면적 고통이 지배하며 그 원인은 그리움과 고독, 소외감, 상실감, 혐오감에서 비롯되고 있다. 시에서 시인은 고통의 순간을 자기 인식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깊은 성찰에 이른다. 남철심 시인의 시를 말하면서 고통의 문제를 먼저 떠올리게 된 것은 그의 시에서 시적 화자의 내면의 고통이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격하게 울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남철심 시인의 시 를 통해 고통과 성찰이 드러나는 그의 시적 세계에 접근해보고저 한다.    1.  그리움- 령혼으로 보는 고요의  소리  먼저 첫번째 시 을 읽어보자. 밤은 고요하다. 그래서 고요를 즐기는 사람은 밤을 찾는다. 한개 련으로 된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밤이 와야만 찾아오는 어둠의 세계 속에서 찾아오는 존재를 만난다.  시의 첫행 “고요가 뜯어먹은 밤의 가장자리에서”라는 표현은 시적 화자가 처해있는 현재 시점은 고요한 밤의 끝자락 시간임을 말해준다. 화자는 온밤 깊은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밤이 다 지나가는 시간에 이르러서야 “한걸음씩 사색이 물러가”게 되고 주위의 메뚜기, 꽃, 별 등 자연물들을 바라보게 된다. 어둠을 배경으로 우주 속의 만물은 잠들어있다. “여름을 만지며 놀던 / 메뚜기의 발가락도 잠들었고”  “꽃들이 꽃들의 모양을 하고 / 입 다문 별들을 본다”. 어둠은 모든 상황의 정지이며 쉼이며 묵언임을 일깨워준다. 이런 어둠을 통해 먼 은하에서 출발해 망막에 하나 둘 착상된 별빛은 시적 화자의 그리움을 불러오며 “서러운 이름 하나”를 기억해낸다. 그 이름은 이내 “흐르는 바람결과 어우르며” 시적 화자의  슬픈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리별의 순간을 기억하게 한다. 만물이 잠든 밤의 고요 속에서 움직여 살아나는 추억을 “흐르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잎새”로의 비유적 표현이 기발하다. 또한 추억에 대한 동적인 묘사는 밤의 고요와 대조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추억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인간은 태여나면서 모태와의 리별을 첫 경험으로 그 후의 삶 속에서 부단한 리별과 만남으로 살아가면서 리별의 아픔을 숙명적으로 맞아야 한다. 수많은 리별 가운데서 “생의 약속들을 날리며 / 하늘보다 먼 나라로 떠나는” ‘죽음’이라는 리별 앞에서 시적 화자는 생의 약속들이 부질없이 가벼운 것이였음을 느끼며 삶에 대한 성찰에 이른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정교한 유리알을 굴리며” 창밖을 보는 집고양이의 동반이다. 또 전반 시에서 ‘메뚜기’, ‘꽃’, ‘별’, ‘고양이’ 그리고 시적 화자가 하나의 풍경으로 스크랩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응하고 조응하는 인간과 자연이 융화된 모습 속에서 동기감응하는 자연의 질서를 돋보이게 한다.    2. 소외감- 작은 존재에 대한 응시와 공감  두번째 시는 들꽃의 한 종류인 을 시적 대상으로 쓴 시이다. 좁쌀꽃의 ‘좁쌀’ 이름만으로 좁쌀꽃을 상상해보면 아주 작은 꽃이 상상될지 모르겠지만 사전적 해석을 보면 좁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꽃이 크다고 한다. 물론 또 다른 꽃들과 비교하면 그리 큰 꽃은 아니다. 잘 익은 좁쌀의 색갈을 간직하고 피여난 꽃, 아마도 다닥다닥 꽃망울이 모여있는 모습이 마치 좁쌀이 모여있는듯해서 좁쌀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닌가 싶다.  이 시는 3련으로 되여있는데 1련의 첫 두행 “어디를 닮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 나를 닮은 풍뎅이 길에서 꽃이 핀다”라는 도입부의 시적 표현을 보면 화자는 강변의 야산이나 들판에 서식하는 15-21mm 크기의 작은 곤충인 풍뎅이와 자신을 부분적으로 동일시하는데 이는 독자들에게 구경 어디를 닮았을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며 좁쌀꽃 밭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3행과 4행에서의 “큰 것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 야리야리 서있는 노오란 좁쌀꽃”은 좁쌀꽃의 가늘고 노오란 식물적 속성을 강화하여 시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독자들의 시선을 좁쌀꽃에 집중시킨다. 그러면서 “큰 것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좁쌀꽃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큰 것들은 보지 않는다’는 뜻과 함께 ‘작은 것들은 본다’라는 뜻을  함축함과 동시에 화자가 숨기고 있던 풍뎅이와의 류사성이 실은 ‘작은 존재’라는 점을 넌지시 암시하며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2련의 첫 두행 “같이 온 계절의 겨드랑이에 끼워 / 훌 불면 날릴듯 가녀린 모습”은 1련에서 제기한  ‘야리야리 서있는 좁쌀꽃’에 대한 의인화적 표현이다. 좁쌀꽃은 수많은 꽃들이 만발하는 계절에 단지 “겨드랑이에 끼워”서 찾아오는 작은 존재로, 또 “가녀린 모습”의 약한 존재로 의인화되여 표현되며 이로부터 화자는 좁쌀꽃에서 “시집간 누이”의 뒤모습, 즉 “작은 등”을  발견한다. 뒤이어 좁쌀꽃은 또 “아지랑거리는 태양의 눈물”로 승화된다. “시집간 누이의 작은 등”과 “아지랑거리는 태양의 눈물”은 1련의 4행에서 제기한 원관념인 좁쌀꽃의 보조관념으로서 은유적인 표현이다. 즉 한개의 원관념 “좁쌀꽃”이 “시집간 누이의 작은 등”과  “태양의 눈물” 등 두개의 보조관념으로 전이되여 의미의 변용과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누이의 작은 등”이 좁쌀꽃의 “야리야리한 모습”과 동일시되였다면 “태양의 눈물”은 좁쌀꽃의 ‘태양빛’을 닮은 노오란 빛갈과 ‘눈물’의 방울크기와 같은 작은 물리적 속성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화로서 경이로운 표현이다. 또한 ‘눈물’ 이미지는 좁쌀꽃의 ‘슬픈 존재’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3 련에 이르러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해진 좁쌀꽃의 ‘잃어버린 애모쁨’의 모습을 되찾고저 하는 감정이 고조되며 시적 화자의 그리움이 솟구쳐 흐른다. 2련의 시적 정서가 3련에서 이어져 좁쌀꽃과 동일시된 누이에 대한 그리움도 혼재해있기에 그 감동이 독자들에게 더 절실히 다가온다. 3련의 1행과 3행에서 ‘다시’라는 낱말을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좁쌀꽃에 대한 시적 화자의 그리움의 정서가 더욱더 간절히 드러난다. 풍뎅이 길에 피였던 좁쌀꽃은 이미 시적 화자의 가슴속으로 고스란히 옮겨져있다.  4련은 1련과 호응을 이루며 화자의 정서는 계속해서 고조된다. “노오란 좁쌀꽃”은 작고 여리지만 “가볍잖은 생의 무게를 / 고스란히 껴안고” 살아가는 외유내강의 존재이다. 여기서 “노오란 좁쌀꽃”은 축자적인 의미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힘없이 살아가는 ‘누이’를 포함한 소외된 인간존재에 대한 상징적 의미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시 에서 시적 화자는 작고 소외된 존재에 대한 응시와 공감을 통해 소외된 자들과 하나가 되고저 한다. 이는 인간존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망각한 채 서로 소외시키고 또 소외당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무의식을 일깨우는 행위이기도 하다.    3. 상실감-몸안에 갇힌 상처  세번째 시의 제목은 주방의 의미를 나태내는 외래어 이다. 주방은 음식을 료리하는 물리적인 공간이다. 이 시에서는  ‘밥짓기’가 계기가 되여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시적 상상력을 펼치는 공간이다.  “금방까지 배고프다고 조르더니 / 부엌에서 밥 짓는 사이 / 그 사람은 홀랑 죽어버렸다”라는 표현에서 시적 화자는 밥 할 시간이 되여 주방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배가 고파 주방에 들어간다. 아마도 굶어있었던 모양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을가? 바로 이어지는 “밥 짓는 사이 / 그 사람은 홀랑 죽어버렸다.”라는 표현하에 갑자기 팽팽히 긴장되고 음산한 강박감이 흐른다. 이어 독자의 시선을 칼도마 우에서 죽은 잉어 우로 옮겨간다. “칼도마 우에서 팔딱거리던 / 잉어 대가리도 / 썰어놓은 고수풀 옆에서 / 눈도 못 감은 채 죽어있었다”. 화자는 잉어의 눈빛에 시안을 집중한다. 잉어는 림종시에 풀지 못하는  한이 있어 차마 눈을 감지 못하는 것일가? 정지된 생선의 눈빛에서… 죽임을 당한 잉어에게서 아찍 꺼지지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잉어를 죽이면서 “피를 먹어 인자한 칼을 내려놓”는다. 밥을 지을 때 칼은 늘 사용하는 도구이다. 칼은 사물을 자르거나 분할하여 가르는 역할을 하지만 칼자루를 쥔 자는 칼의 힘으로 권력이나 부나 욕망을 쟁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물리적인 칼이 아닌 인간의 마음속에도 칼이 있다. 화자가 한자루의 칼을 가지고 마음대로 휘두르는 리유는 무엇일가? 이어 “손바닥을 펴보니 / 손가락이 없다 / 눈을 비벼도 하나에서 열까지 / 손가락이 없다”. 인체의 중요한 부위로서 ‘손가락’의 상실은 육체적 불구를 의미한다. 이어서 “혼자 생각하던 담배불이 / 눈을 껌벅이며 / 터지려는 오줌을 참고 있다”라는 시적 표현으로 넘어가는데 그제야 안도의 숨이 나간다. 여기서 담배불은 화자를 가리키고 화자는 잉어를 죽이면서 칼자루에 묻어난 피를 보면서 ‘죽이고 싶은’ 좀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에서 내려놓고 싶은’ 누군가를 잊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더 죽여야 할 시간인데 / 누군가 하나만 더 / 죽여야 할 시간인데”라는 표현은 화자가 죽여야 하는 존재는 아직도 마음속에 하나, 둘 더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시의 공포를 자아내는 이미지들은 결코 실재 대상의 재현이 아니다. 시인의 내면세계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들이다. 이 시는 의식과 무의식의 층위를 오고가는 시적 특징을 보이기 때문에 다소 난해하고 해괴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한창 시 속에 머물며 서성이게 한다. 또한 행간의 이미지는 어떤 론리에 의해 형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시적 화자의 내면세계의 갈등과 모순의 이미지화이다. 이에 시적 표현을 다시 음미해보면 ‘홀랑 죽어버린 사람’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상대, ‘잘린 손가락’은 자아상실감, ‘더 죽여야 할 누군가’는 상실로 인한 주위 사물들에 대한 귀찮음의 정서로 볼 수 있다. 외부세계를 상실한 상황에서 시인이 보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 곧 자신의 내면세계이다. 전반 시는 화자의 내면세계의 강렬한 충동을 충격적으로 묘사하고 현실적 시공간과 환상이 뒤섞이면서 시적 긴장을 이루고 있다.    4. 고독감-페쇄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느끼는 환청  네번째 시 이란 시는 “재수 없는 날이면 / 고장난 세탁기가 돌아간다 / 베란다 구석에서 소리치며”라는 전도적 표현으로 시작된다. 세탁기가 고장났으니 재수가 없긴 없다. 고장난 세탁기의 소음 진동소리에 생각하며 그리워하던 누군가의 이름이 씻겨간다. “하얀 기억이 새롭게 표백된다”. 하얗게 희미해진 기억이 더 희미해진다. 기억과 그리움을 차단시키는 고장난 세탁기 소리가 그야말로 재수가 없긴 없다. “너무 오래 가리우고 살아온 / 슴슴한 일상의 냄새에 섞여 / 마지막 남았던 이름마저 / 비뚤어진 배수구로 도망간다”라는 표현은 일상사에 쫓기우고 또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가슴 깊숙한 자리까지 내밀려있던 누군가의 기억이 고장난 세탁기의 소음소리에 단절되였다는 의미이다. 원망과 아쉬움이 내재해있다. 하얗게 무색해진 기억은 화자가 떠올리고저 하는 아름다운 내면풍경이다.  2련에서 “아주 가끔씩 / 세탁기가 돌아가는 날이면 / 고장난 전화기가 울린다 / 걸어오는 사람도 없이 / 혼자 울린다”라는 시적 표현을 보면 고장난 전화기가 울릴 수 없다. 화자는 환청을 경험한 것이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음소리에 혹시라도 울릴지 모르는 전화소리를 듣지 못할가 안절부절 못했거나 아니 누군가 전화를 걸어오기를 기다렸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다 환청을 한 것이다. 전화기를 들고 일본어로 “모시모시(여보세요)”라고 인사를 해서야 확실히 잘못 들었음을 확인한다. 화자는 심심풀이를 세탁기를 돌리는 것으로 해소한다. 심심해서 세탁기가 돌아갈 때 환청하는 귀를 두고 ‘고장났다’라는 표현을 쓴다. 누군가를 애써 기억하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시간과 페쇄된 공간인 집에서 홀로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5.‘부드러운’ 육체를 통한  자아 및 인간에 대한 성찰  다섯번째 시 를 보자. 욕조는 우리가 하루의 일상을 마치고 따뜻한 물에 몸을 풀면서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기도 하며 알몸으로 들어서는 공간이다. 있는 그대로를 맡기는 공간이다. 가식이 필요없이 투명하게 물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시의 첫련 “뜨거운 욕조 속에 들어가면 / 아무렇게라도 이야기는 시작되겠지”라는 도입부의 추측적인 표현은 화자가  욕조 속의 ‘어떤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음을 말해주며 동시에 독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기대할가’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어서 2련 “몸의 중심에 달린 그것도 / 흐드러지고 희미해지고 흔들거린다 / 연하고 부드러운 것들은 / 다 녹여 하나로 되더니 / 손가락도 발가락도 거기도 / 길게 비뚤어져 녹을 것처럼 / 흐물거리다가 그대로 있다”라는 표현을 보면 화자는 육체와 물과의 교합 속에서 욕조 속의 알몸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이 때 몸은 뜨거운 욕망의 그릇이 아니라 자아를 포함한 인간을 성찰하는 시적 대상으로 기능하다. “모든 물상들 다 불러 / 함께 담그고 싶은데”라는 표현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저 하는 화자의 념원을 드러내지만 바로 “단단하고 각이 나서 맞히면 아프다” 라고 하면서 단념한다. 많이 부딪쳐 아픔을 겪은 기억 때문이다. 마지막 련은 돌연적으로 “사람 하나 사랑하기가 이리 어려운데 / 사람 하나 미워하기가 얼마나 힘들가”라는 독백으로 끝을 맺는데 이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 속에서 서로 사랑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미워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에 이르면서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경제적 론리에 따라 사고하고 움직이는 현대 인간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늘 쉽게 상처를 주거나 받는다.  전반 시의 흐름에는 욕조 속에 놓인 녹아든 ‘부드러운’ 몸에 대한 응시를 통해 더불어 살고저 하는 시인의 무의식적 사고가 내재해있다.    6.혐오감- 현대문명과 인간에 대한 비판 마지막 시 를 읽어보도록 하자. 긴자 욘쵸메는 일본 제일 번화한 쇼핑가로 고급 매장과 백화점이 자리잡고 있으며 고급 유흥업소들도 많다고 한다. 세련되고 아담한 상점과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고 찬란한 네온사인이 인상적인 곳, 현대 문명을 자랑하는 도꾜의 상징적 거리이기도 하다.  허나 이 시의 도입부에서는 일본의 현대문명과 부를 대표하는 가장 번화한 거리를 “银座四丁目 / 오줌싸개들의 거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비하한다. 오줌은 인체의 배설물로서 오줌싸개는 아무데서나 배설하는 추태를 보이는 행위를 말한다. 즉 추잡한 인간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2련에서의 “고귀한 것들이 / 다 모여 / 오줌을 싸는 거리”라는 표현은  ‘고귀’한 존재에 대한 반어적 비판과 조롱이다. 3련과 4련은 전도적 표현수법으로 되여있다. “숫구멍이 두개 달려 / 조금은 부실해보이는 / 착한 내 령혼을 / 유쾌히 짓밟으며 / 이쁜 종아리들이 지나가고 / 가랭이를 적시며 / 바람난 고양이도 지나가고”라는 표현은 긴자 욘쵸메에서 목격한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쁜 종아리들”은 이쁜 녀성을 말하고 떠돌이 고양이를  ‘바람났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긴자 욘쵸메의 주류 풍경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조금은 부실해보이는’ ‘모자라는’ 존재로 자조한다.  5련에서의 “미쳐버리도록 아릿다운 / 아래도리들의 정서를 만지작거리며”라는 표현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나 욕망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번화가에서 다들 점잖게 오가지만 내면엔 성적인 원초욕망이 우글거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밤은 이미 / 꽃의 변두리까지 오고 있다”라는 표현은 옥타비오 파스가  “섹스가 뿌리라면 에오티시즘은 줄기이고 사랑은 꽃”이라고 한 비유적 이미지와 맞물리는 시적 표현이라 생각된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으로서의 성욕은 우리 삶의 아름다움이기도 하고 온갖 추한 악의 근원이기도 하다.  6련과 7련의 “가랭이를 벌리면 / 시간이 털처럼 일어서는 / 銀座四丁目 / 아릿다운 것들이 / 다 모여 / 오줌을 싸는 거리”라는 표현은 소위 신사와 갑부들의 버젓한 외모와  대조되는 그들의 추태를 대조적으로 비판하고 조롱하면서  ‘아름다움과 고귀한 것’에 대한 사색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이상 남철심 시인의 를 읽으면서 가끔은 시인의 상상의 날개를 따라 자유롭게 노닐다가도 난해한 시적 표현에 이르러서는 한참 동안 시 속에 머물면서 머뭇거리게 된다. 또한  그 머뭇거림 때문에 읽을 재미가 더해지고 탐정미를 느낄 수 있었으며 시인의 진실한 령혼의 시세계를 만끽해 볼 수 있었다.  출처:2018 제6호
2    조영욱: 주체할 수 있는 욕망(소설평) 댓글:  조회:403  추천:0  2019-07-15
주체할 수 있는 욕망 조영욱   1. 들어가며 이 작품을 받았을 때 제목이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 제목이 아니라 노래 제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부에는 흔히 다룰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 읽고 나자 무언가가 암시하고 말하고저 하는 바가 있다고 느꼈다. 요즘 깨달은 도리이지만 시인은 말하고저 하는 바를 함축 혹은 비틀어서 표현하고 소설가는 사실적으로 말하고저 하는 바를 표현한다. 다시 말하면 시의 정수精髓는 상징이고 소설의 정수는 리얼리티이다.  조원의 단편소설 를 읽으면서 뒤로 가면 갈수록 시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비록 학이비재学而非才하지만 한번 다루어보려고 한다.    2. 플롯의 문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플롯은 사건의 결합이라고 했다. 이 작품도 여러가지 사건들로 이루어져있다.  구스타프 프라이타크(Gustav Freytag)의 5막극 구성법은 작품을 도입부(제시부: exposition), 상승행동(rising action), 위기(정점: climax), 하강행동(귀환: falling action), 파국(resolution)으로 나눈다. 이런 5막극의 구성을 따르는 드라마나 이야기, 연극이 많다. 이 작품도 거의 이런 구성에 잘 들어맞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도입부 이 작품의 도입부는 길다. 대개 십분의 일의 편폭으로 도입부를 구성하고 있다.  주로 주인공 ‘나’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있다. 작품은 시작부터 현대인의 곤혹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바로 이른바 ‘월요병’이다. ‘나’는 샐러리맨은 아니지만 ‘월요병’이 있는듯하다.  여기서 카메라가 등장한다. ‘내’ 직업은 이른바 인테리어 사업자 즉 시공기술자다. 잘 생각해보면 ‘나’는 카메라가 필요없다. 물론 인테리어에는 사진을 찍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요즘 같은 시대에 일반적인 인테리어사업자는 거의가 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리용한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리용하지 않고 여기에 DSLR카메라가 등장하는 것은 “‘나’는 일반 인터리어사업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뒤에 나오지만 ‘내’가 쓰는 카메라는 2017년에 출시된 캐논 EOS 800D라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또한 뒤에 카메라 때문에 어떤 사건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나’는 ‘월요병’이 있고 작업실과 거주공간이 따로 없이 하나이며 카메라와 같은 취미도 있고 또한 차에 있는 물건을 도적맞힐가봐 걱정하는 전형적인 현대인이다. 그러나 ‘내’ 이야기는 전형적이지 않고 특별하다.    상승행동 내가 웅이네 집에 도착하면서 상승행동은 시작된다.  ‘나’는 ‘녀인’의 전원주택의 다락방 증축공사를 맡았다. 다락방에 있던 물건을 옮기다가 ‘나’는 우연하게 ‘녀인’의 손을 터치하게 된다. 일을 하면서 곽명은 나에게 ‘녀인’에 관한 소문을 얘기해주게 된다. 그중에 한 소문은 ‘녀인’이 ‘나’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를 거부하면서도 내심 무언가를 기대한다. 곽명은 ‘나’와 ‘녀인’을 위해 자리를 피해 그 집을 떠난다.   위기 그러다가 나는 우연하게 ‘녀인’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가 잠옷 바람의 ‘녀인’과 조우하게 되며 그의 반라상태의 신체를 보게 된다. 그러나 “녀인은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짓”는다.   하강행동 ‘나’는 ‘녀인’으로부터 아들 웅이를 유치원에서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런데 웅이는 낮에 쓰레기 수거 수업을 하다가 어떤 물건을 주었는데 알고 보니 그 물건은 ‘나’의 것과 모델이 같은 카메라다. 그 카메라를 복원해보니 한 “남자와 녀자의 무릎 아래 종아리와 발” 사진과 일분 이십삼초짜리 동영상이다. 나는 타인의 사생활 속으로 잠간 빠져들었다가 SNS에 카메라 주인을 찾는 게시글을 올린다.    파국  카메라의 주인은 ‘나’에게 “오후 세시, 좌망바다가 좌망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한다. 그런데 그 카메라 주인은 바로 그 ‘녀인’이다. 이럼으로써 위기는 해소된다.   ‘내’가 속살을 보았을 때만 해도 주인공인 ‘내’가 이 분명히 남편이 있을 유부녀와 어떤 ‘위험한 불장난’에 빠져들 것만 같았지만 뒤에는 그렇지가 않다. 무언가가 보다 복잡한 현상이 보인다.    3. 욕망의 문제 주인공 ‘나’는 분명 이 작품에서 주체다. 주체는 욕망이 있다. 또한 타자가 있다. 그 타자는 ‘녀인’이다.  이 욕망은 ‘녀인’에게 통제당하고 있다. ‘나’는 곽명이 말해주는 것을 애써 거부한다. 곽명은 두가지 소문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하나는 ‘녀인’이 고위층 관리의 정부情妇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내’가 ‘녀인’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두 소문을 다 부정하고 있다. 왜냐 하면 ‘녀인’이 소문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거부 혹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녀인’에게 통제당하는 욕망도 이를 거부 혹은 외면하고 있다. ‘나’는 그 ‘녀인’과의 조우에서 무력감이 있다. 그래서 웅이를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수락하고 만 것이다. 무력감 때문에 거부하지 못했다. 거부하지 못하는 부탁은 사실 명령이다. 관음증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나’는 ‘녀인’에 대한 무력감 때문에 욕망을 억압하고 있으며 억압받고 있다.   ‘나’는 이 욕망을 카메라로 전이하고 있다. ‘나’는 주어온 카메라를 정성스럽게 청소한다. 왜냐 하면 거기에는 그 ‘녀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셀로판지에 포장된 물건”의 정체에 대해서 상상을 하고 그래서 우연히 짧은 실크 잠옷 차림의 ‘녀인’과 그 속살을 보았을 때 ‘나’는 당황했고 ‘녀인’은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또한 카메라를 다 청소하고 나서 안에 들어있는 동영상을 보다가 그 연장으로 마루바닥에 있는 ‘녀인’의 “빨간 발톱 우에 박혀있는 큐빅”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녀인’이 등장해 ‘머리카락’으로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여기에 웅이가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웅이는 어떤 존재일가? 단지 ‘내’ 욕망의 대상인 ‘녀인’의 아들일가? 특이한 것은 이 ‘녀인’이 전반 작품에서 ‘녀인’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웅이네’로 불려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웅이는 사실 내 사상写像이며 내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에 대해 ‘나’의 욕망을 대리만족시켜주는 존재이기도 하면서 조력자다. 혹은 ‘나’와 웅이는 하나다.  웅이가 주은 카메라 모델은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와 같다. 욕망 전이용 도구 혹은 욕망 만족 도구의 모델이 같음으로써 어떤 동질감이나 일체감을 가진다.  작품이 시작되는 데에서 “오늘은 웅이네 전원주택”이라고 했다. 여기서 ‘웅이네’는 그 ‘녀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웅이의 집’으로 해석된다. 웅이를 아주 피붙이거나 가까운 사람처럼 호칭하고 있는 것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나’는 ‘녀인’을 탐하려는 욕망이 있지만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고 웅이는 그 욕망의 대상과 한집에 있다. 그래서 작품에도 나오지만 나는 웅이네 집 다락방에 집착한다. ‘내’가 일하는 장소는 주로 다락방이다. 또한 ‘나’는 다락방에 대해서 공간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다락방에서 일을 하면서 나는 아래층 녀인의 시간을 함께 나누어쓰는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역경易经에서는 세상만물을 음양阴阳의 법칙으로 본다. 양은 우에 있고 음은 아래에 있다. 양은 남자이고 음은 녀자이다. 다시 말하면 남자는 우에 있고 녀자는 아래에 있다. 이 세상을 구성한 인간들 모두 남자가 우에 있고 녀자가 아래에 있는 체위体味에 의해서 생산된 것이다. 집 구조 자체가 그렇게 설계돼있다. 우층 다락방에는 남자-‘내’가 있고 아래층에는 녀자-‘녀인’이 있다.  해빛이 잘 들기 때문에 다락방은 양이기도 하다. 다락방은 누구의 공간인가? 나의 공간이기도 하면서 웅이의 공간이다. 그래서 웅이가 “다락방의 주인은 자신”이라고 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나’는 동일화된 웅이를 통해서 ‘녀인’과 성행위를 하며 무의식적으로 욕망을 배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머니를 범할 수 있다는 데서 오이디푸스적이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욕보이게 했다. 이 작품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서술이 나온다. 이 ‘녀인’은 고위층 관리의 정부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웅이는 이 고위층 관리의 아들이다. 나는 이 관리와 경쟁자다. 곽명의 입을 통해서 들은 소문은 두가지였다. 이 ‘녀인’이 관리의 녀자이거나 ‘나’의 녀자라는 소문이다. 소문끼리도 경쟁하고 있지만 ‘나’도 무의식중에 관리와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웅이와 일체다. 그렇다면 ‘나’는 웅이를 통해 관리와 오이디푸스적인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웅이가 주은 카메라에는 한 남성의 “무릎 아래 종아리와 발”만 등장한다. 론리적으로 분석하면 이 남성은 바로 그 관리이다. 웅이가 주어온 카메라의 사진과 동영상을 복원시켜놓고 감상하는 것은 욕망을 분출하는 행위이다.  욕망은 결국엔 카메라로 전이되였다. 그 카메라의 주인을 찾으려고 한다. 그것보다 아마 카메라에 등장하는 남성과 녀성이 누군지 확인하고 싶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 녀성은 다름 아닌 ‘녀인’이였다. 결국 분산된 욕망들이 하나로 회귀되였다. 이로써 오이디푸스적 인간이 완성되였다.     4. 욕망의 중개자의 문제 르네 지라르(Rene Girard)는 삼각형 욕망이라는 력동적인 리론을 제기했다. 대부분의 허구작품들은 자연발생적인 주체의 욕망을 대상으로 이어지는 간단한 직선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 직선 우에 주체와 대상 쪽으로 동시에 선을 긋고 있는 중개자가 있다. 이는 삼각형이다.  이 작품에서 주체는 ‘나’이다. 대상은 ‘녀인’이다. ‘나’는 ‘녀인’에게 욕망이 있다. 일반적인 소설 같으면 ‘내’가 ‘녀인’에게로 직접 련결(직선)되면 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떤 중개자를 통하여 련결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중개자는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먼저 웅이가 중개자다. 웅이가 카메라를 주어서 ‘나’한테 줬다. 카메라에 ‘녀인’이 있으므로 여기서 대상은 ‘녀인’인 동시에 카메라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주로 웅이의 암시를 받으며 ‘녀인’에게 카메라의 진상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있다. 지라르는 이 삼각형에 대해 특이한 해석을 했다. “욕망의 삼각형은 이등변삼각형이다. 중개자가 욕망하는 주체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욕망은 점점 더 강렬해진다.” 이를 어느 학자가 풀이했다. “주체와 중개자 사이의 거리가 멀면 대상과 중개자 사이의 거리도 멀고 주체와 중개자 사이의 거리가 가까우면 대상과 중개자 사이의 거리도 가까워진다. 중개자와 주체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 경우 대상과 중개자를 구분할 수 없게 되고 욕망도 강렬해진다.” 앞에서도 봤지만 ‘나’는 웅이와 일체다. ‘나’와 웅이가 가까워져서 구분할 수 없게 될 때 욕망이 더욱 강렬해지는 것이다. 이 중개자는 웅이 외에도 곽명과 장위이기도 하다. 특히 ‘나’는 곽명으로부터 ‘녀인’에 대한 암시를 받는다. 곽명은 ‘내’가 욕망을 실현하는 조력자다. 돈키호떼에게 충성하는 산초처럼 ‘나’와 곽명 사이에는 경쟁관계가 없다. 곽명은 ‘내’가 ‘녀인’에게 다가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나한테 ‘녀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며 ‘나’와 ‘녀인’을 위하여 자리를 비켜주기도 한다. 지라르는 주체와 중개자가 경쟁관계이면 이를 내면적 간접화(mediation interne)라 하고 경쟁이 없으면 이를 외면적 간접화(mediation externe)라고 했다. ‘나’는 ‘녀인’을 욕망하지만 직접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존재 즉 중개자와 경쟁을 통해서 욕망하고 있다. 오늘날 시장경제체제에서 생성된 소설은 그럴 수 밖에 없다. 특히 이 작품에서 ‘나’는 ‘녀인’과 경제적 관계로 이어졌다. 그래서 여러 중개자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웅이, 곽명, 장위, 웅이의 아버지로 추측되는 관리, 심지어 카메라도 어떻게 보면 중개자다.    5. 공간의 문제 작품의 제목은 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 ‘바다마을 좌망’은 대체 어디인가?  소설에서 공간 혹은 배경은 앞으로 발생할 일을 암시하거나 분위기 조성용이라고 여러 문학리론가들은 말한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도입부에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는데 좌망과 여러 도시에 있는 “내가 손을 댄 건물”을 보니 존재감을 느낀다고 했다. 어떤 존재론적인 사고를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를 도입부에 위치함으로써 정서적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뒤이어 ‘바다마을 좌망’에 대한 묘사가 있다. 이 마을은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휘여진 해안을 따라서 주택들이 산비탈에 제멋대로 앉아있”다. 모여있어서 둥그런 모양이 아니라 해안을 따라서 형성된 마을이기 때문에 기형적이다. 첫 시작에 나는 샐러리맨에 가까운 평범한 생활을 하는 청년, 그래서 ‘월요병’이 있는 청년이지만 이 이야기는 뒤에 가서는 결코 ‘나’처럼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로신의 소설에는 S성S城이 등장한다. 이 S성은 로신의 고향 소흥绍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좌망은 현실에서 어디인가? “시내에서 동쪽으로 40키로메터 떨어진” 바다가 마을이라고 했으니 중국의 청도와 같은 어느 해안도시인가? 아니면 한국 동해안의 어느 해안마을인가? 모티브는 현실에서 가져왔겠지만 중국이나 한국이나 어디에도 좌망이라는 마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좌망은 분명 허구적인 장소다.  김승옥의 에서 무진은 현실의 공간 서울과 대립되는 허구의 공간이다. 무진은 분명 주인공이 머무를 수 있는 도시지만 허구다. 주인공은 거기서 불륜도 저지르는 몽환적인 행위를 한다. 욕망을 실현하는, 현실(서울)에서는 불가능한 행위를 하는 공간이다.  이 작품에서의 좌망도 그러한 곳으로 보인다. ‘나’의 “작업실이자 거주공간인 집”은 현실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웅이네와 나는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다고는 했지만 ‘나’의 집이 더 이상 현실적일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물론 이 작품에서는 에서처럼 두 대립되는 공간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좌망에 치중점을 두었다. 좌망은 ‘내’가 욕망을 하는 공간이다. 마지막에 ‘나’는 카메라 주인 ‘녀인’과 좌망 바다가 좌망커피숍에서 만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녀인’은 나에게 그에 관한 소문을 믿느냐고 질문하면서 “편견과 맞서는 데는 오만 뿐만이 아니겠지요? 단순하게, 아주 단순하게 타인의 시선에서 멀어져서 나를 잊으면서 살 수 없을가요?”라면서 중얼거린다. ‘시내에서 동쪽으로 40키로메터 떨어진’ 마을에 사는 리유를 설명하는듯하다. 소문은 전부 다 사실이 아니며 자신은 빛, 그러니까 보다 편안하게 살 수 있기 위해 이 공간에 와있다는 말인 것 같다. 이를 ‘나’는 좌망坐忘하고 있을 따름이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진리는 저쪽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앉아서 욕망의 대상을 보고만 있는 것일가? ‘녀인’은 존 밴빌의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메모지에 무엇인가를 적었다. 《바다》는 안해를 잃은 주인공이 예전의 로맨스로 려행을 떠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카메라 속의 남자는 진정으로 전남편이였던 것일가? 이 전남편은 그 “탐오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고위층 관리”였을가? 그래서 메모에 “그는 / 철창 밖, 그 어두운 방에서 숨을 고른다”고 했던 것일가? 그가 ‘철창 밖’에 있다면 ‘녀인’은 철창 안에 있다는 얘기가 된다. 어떤 도착증 증세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바다’를 ‘어두운 방’이라고도 한 것이다.   6. 나가며  이 작품은 결국 따지고 보면 산업화와 시장경제가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의 현실사회에서 일상생활을 연명해나가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평범해보이는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누구나 다 욕망이 있다. 이 욕망은 에로틱한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다. 이 욕망은 전자기기들에 로출이 되여 간접화되고 있다. 이러한 욕망들은 평범한 욕망이란 없다. 다 특별하고 싶다. 전자기기를 통한 욕망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러한 욕망이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결코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허무감을 느끼게 되며 실존의 문제에 대해 사고하게 된다. 이러한 느낌과 생각이 문학으로 승화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좀더 깊게 들어가고 심각하게 다루었더라면 어땠을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출처:2018 제6호
정주와 떠돔을 소멸시키는 여섯개의 편린들 김홍월   1. 삶과 존재의 본질 정주定住와 떠돔에 갈 수조차 없음을 일깨우는 박초란의 여섯개의 소설들은 각자의 밀당이 많았다. 정주와 떠돔을 줄다리기시키며 끝없이 밀고 당겨 끝내 소멸시키는 과정, 다시 말하면 정주와 떠돔 사이의 끈을 팽팽히 당겼다가 끝내 끊어버리는 과정을 겪을 수 있다. 정주와 떠돔 어느 쪽에도 안착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비극이고 또한 삶과 존재의 본질이다. 정주와 떠돔 어느 쪽에도 긍정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정성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주와 떠돔 사이의 문제 속에서 항상 헤매고 있다. 이러한 삶과 존재의 본질을 박초란은 , , , , , 을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여섯개의 소설에서는 정착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은 물론 떠남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까지를 모두 보여주고 있다.    2. ,  존재하지 않는 욕망의 끝 사물에 구속되지 않고 자연에 맡겨둔다는 뜻으로 아버지는 ‘재유在宥’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재유는 《장자庄子》에서 따온 것인데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교육방침이기도 하다. 재유는 한국 류학을 갔다 와서 북경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런 그가 몸이 아프다는 어머니의 소식으로 고향에 오게 된다. 서른이 되기 전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재유는 별로 련락이 없었던 고향 동창 김인후의 생일 초대에 선뜻 대답을 한다. 김인후의 안해 서해영의 친구인 묘와 재유는 그렇게 만났다. 묘는 성이 장씨이고 이름이 미묘연인데 사람들은 그를 고양이 ‘묘’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류학을 마치고 귀국한 재유와 달리 묘는 한국으로 류학을 갈가 망설이는 중이다. 고향에서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묘는 더 큰 세상을 떠돌고 싶어한다. 한국에 머물고 있는, 하지만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남자친구를 찾아가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재유와 묘는 고향을 벗어나도 고향이 그리워지고 고향에 와도 고향을 벗어나고 싶어지는 사람을 각자 대표하는 것이다.  재유와 묘는 김인후의 집에서 나와 사우나로 향한다. 사우나에서 재유는 이름도 나이도 배경도 모르는 묘에게 갑자기 키스를 하고는 “내가 널 책임질게. 우리 결혼하자.”고 한다. 그리고 원한다면 북경에서 집도 장만해주겠다고 한다. 묘는 그런 재유의 행위에 어이없어한다. 다음날, 묘가 깨여나 휴대폰을 보니 둘이 키스한 장면을 찍어 누가 위챗에 올린 것을 발견한다. 그렇게 둘은 사우나에서 헤여지고 묘는 련락이 두절된다. 묘에 대해서 일말의 료해도 없는 재유가 묘에 대한 급격한 태도는 자칫 개연성이 떨어져보일 수 있다. 사실 재유는 나비가 꿈을 꿔서 장자가 되였듯이 고향을 떠나있다 보니 고향이 무조건적으로 좋아져서 고향의 묘에게 느닷없이 청혼한 것이다. 고향에 돌아온 재유가 고향을 떠나고저 하는 묘를 희구하는 것은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였다가 나비가 꿈을 꿔서 다시 장자가 되는 것과 같다.    “지하철 안에는 이미 콩나물시루 같이 사람들로 꽉 찼는데 자꾸만 사람들을 밀어넣는 거야. 꽉꽉 더 차야 출발할 수가 있다는듯이… 너무 덥고 숨까지 막혀. 깨고 보니 꿈이였는데 너무 더운 거야. 아버지가 그래도 오랜만에 온 아들이 추워할가봐 아궁이에 장작을 많이 밀어넣은 거지…”   재유는 고향에서 자신이 북경의 지하철 안에 있는 꿈을 꾼다. 깨여보니 아버지가 불 땐 뜨거운 방에 누워있었다. 이는 대체 자신이 꿈속에서 북경에 있는 것인지, 북경에서 고향의 불 때는 방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마치 장자가 나비인지 장자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재유는 정체성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장자가 나비인지 장자인지 정체성을 잃은 것처럼 재유는 자신이 찾아헤맨 대상이 고향을 상징하는지 타지를 상징하는지 알 수 없게 되였다. 즉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며 자기 정체가 무엇인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두터운 책 속의 삽화 하나가 떠올려졌다. 나비꿈을 꾸는 장자의 삽화. 나비꿈을 꾸고 있는 장자의 침대나 나무밑둥이나 그늘 속에 혹은 동자 하나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차를 끓이는 화로 뒤쪽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고양이 한마리가 숨어서 하품을 하다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을 것만 같았다. 삽화 속 어디에도 없는 고양이 한마리를 재유는 정말이지 너무 찾아내고만 싶었다. 그 때 재유는 왜 하필 고양이였는지, 왜 보이지도 않는 고양이를 찾고 싶었는지를 알지를 못했다. 뒤이어 재유의 휴대폰으로 끝없이 이어진 위챗 알림소리가 사정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재유는 아무리 ‘고양이’를 찾고 싶었으나 고양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묘, 다시 말해서 욕망의 끝은 장자의 꿈과 같이 우리의 인생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는 어디에도 결혼으로 상징되는 행복, 욕망의 끝은 없다는 것이다. 고양이를 찾는 재유에게 련락이 한꺼번에 오는 것은 자기를 찾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지는데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였다는 의미이다.    3. ,  이방인이 아닌 토착민 ‘나’는 서른여섯의 나이에 퇴직을 하고 유명한 출판사 편집 직을 사직한 ‘그녀’와 북경 교외에 나와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진다.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배낭을 메고 배낭려행을 떠나기 시작한다.   나는 이 동네에서는 제일 근사해보이는 호텔 입구에서 민박집 따거가 와서 나를 데려가기를 기다린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서있는 시간들이 싫다. 아니, 불안하다. 그녀가 내 어린 시절을 비난했던 것도 그 때문이였다. 어릴 때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나’는 어릴 적 상처로 누군가를 잃어버리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것에 상처를 입고 불안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나’는 가족과 함께하듯 사람들과 따뜻하게 함께할 수 없다는 어릴 적 상처로 인해 사람이 그립지 않은 것처럼 교외로 가기도 하며 외롭게 살아가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상처 때문에 만든 거짓 자신이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젊은이와 아이들은 보기가 힘들었고 양지바른 곳에는 로인들이 몇몇이 앉아서 지나가고 있는 나를 신기한듯 쳐다보았다. 간혹 뭐 하러 온 거냐고 먼저 물어오는 로인네들도 있긴 했다. 꽤 유명한 려행지인 수장성과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에 알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사람은 겉으로는 낯선 사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누구나 사람을 그리워한다. ‘나’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사람이 낯선 사람을 경계한다면 사람은 더더욱 사람을 그리워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교외의 산골 마을에서 조용히 살아가려고 하였으나 사실 마음 깊은 곳의 진짜 자신은 보통사람들처럼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    문득 나는 내 삶에서 모든 것이 빠져나간 뒤에 결국은 사람이 남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대도시의 인파 속에서 정작은 사람이 그리웠다는 걸 알았다. (…중략…) 이제 돌아가면 그녀를 위해서 무화과나무 한그루를 심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무화과가 주렁주렁 열리도록. 꽃이 피지 않는 과실이라고 해서 무화과라고 하나 실제는 과실 안에서 꽃이 핀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졌다.   ‘그녀’가 떠나간 후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새 가족을 꾸렸던 어머니까지도 ‘그녀’와 함께 돌아오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는 쉽게 갈라지지 않고 끈끈하게 이어져있는 것이다. ‘나’는 자신이 무화과 같은 꽃이 없는 이방인인 줄 알았는데 무화과를 좋아하는 ‘그녀’를 통해 알고 보니 무화과에는 열매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열매는 맛있었다. 즉 자신은 차거운 이방인이 아니라 열매가 있는 따뜻한 사람인 것이였다. 그런 점에서 ‘나’는 다시 어머니 그리고 ‘그녀’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였다.    4. ,  의미 있음의 의미 없음 누군가의 분주함이 좋다. 수저와 그릇, 컵을 정연하게 격식 대로 차려놓고 차 한잔을 따라주는 그런 잘 짜여진 서비스에 익숙한 몸짓마저도. 결국 깨닫게 된 건 그런 와중에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생생히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움직임, 그래서 서로가 영향을 주고 서로가 긴밀히 련결되여있는 것일지도…   낯설지 않은 사거리동네에 있는 모임장소에 도착한 ‘나’는 바쁘게 움직이는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을 즐겁게 여기고 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생생히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모임에서 누군가가 남경대학살 때 조선인들이 앞장서서 살육을 했다는 화제를 던지고는 토론을 벌인다. 한 사학자가 그것은 포털사이트에 떠도는 근거 없는 류언비어라고 주장한다.  모든 사건은 련결된다. 그 먼 남경대학살과도 우리는 모두 관계된다. 지금은 풍요로운 시대라 관계 없어보여도 학살의 끔찍한 진실과 현재의 삶은 관련이 있고 우리는 그 관련 만큼 책임을 갖는다. 그 관련, 관계에 대한 인식이 있을 때 진짜 살아있는 삶이 되는 것이다.  ‘나’는 북경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동업자이자 남자친구인 율과 창평昌平구의 사거리동네에서 서점을 오픈한다. 창평구에 있는 친구인 한과 ‘나’는 서점 근처에 위치한 초향로草香芦 가게에 들린다. 워낙 념주를 좋아하는 한은 평소에도 한두개를 꼭 몸에 하고 다녔다. 한의 손목에 금강보리념주가 감겨져있는 것을 보고 가게 주인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하나일 때가 더 좋은듯해서요. 좋은 것도 너무 많으면 소중하지가 않거든요…”라고 한다. 이것은 가게주인의 입을 빌어 우리들의,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생각의 틀을 보여준 것이다. 즉 지금의 행복이 너무 과해지면 그것은 남경대학살과 같은 불행하고 어두운 삶의 면을 잊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셋의 인연은 시작된다.    우리는 정신적인 것들이 물질적인 것보다 더욱 위대하고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부류에 속했다. 아직까지 한번도 처절한 가난도 굶주림도 전쟁의 상처나 느닷없이 찾아든 불행 따위를 겪어보지 못했다. 의미 있음의 의미 없음에 대해서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의미 없음의 의미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의미만 쫓는 것은 허무한 탁상공론과 같다. 삶은 의미와 실천이 병행될 때,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잘 호응할 때 가치를 지닌다. 정신적인 것만 따지는 것은 의미 있음의 의미 없음과 같다는 것이다.  한편, 율은 출장 간다는 핑게로 ‘나’의 돈을 빼서 달아난다. 이십대 대부분을 들여 모은 돈도 그리고 사랑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도 한순간에 사라진다. 서점을 정리하고 집에만 숨어있는 ‘나’에게 초향로 주인은 수제향을 만드는 일을 가르쳐준다. ‘나’는 그녀를 따라 향을 만들고 향기를 맡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심적 안정감을 되찾기 시작한다. 그렇게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한이 남경대학살에 관한 얘기를 꺼낸다.    “누군가의 롱간일 수도 있어.” 그녀였다. 잠자코 듣고 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고마웠다. “혹여 그렇다 하더라도 쟤 잘못은 아닌 거잖아.” 그녀가 아까부터 걸고 있던 향낭을 걸며 한마디 더 붙였다.   이 같은 생각은 현재의 물질적 풍요에 만족해서 과거의 아픔, 즉 그 아픔의 실제를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즉 ‘쟤 잘못은 아닌 거잖아’ 하면 과거와의 관련을 외면하는 편의주의로서 ‘우리의 잘못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당장의 윤택한 시대와는 별 상관 없어보인다는 리유로 남경대학살을 구체적으로 살피지 않고 편리하게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흐릿한 과거로 치부하면 과거의 아픈 력사라는 실제를 버리는 것과 같다. 실제를 외면하는 정신적 편의주의 사고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쟤 잘못은 아닌 거잖아’는 과거를 잊어버리는 태도에 해당한다. 따라서 ‘나’가 향을 맡고 있는 것은 향을 맡으면서 율이 떠난 것을 정신적으로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즉 율의 실제 일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나’가 향을 피우며 향에 취해서 실제 사건을 잊어버리는 것은 실제 사건에서 정신적으로 도피하는 행위이다.  향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날아가버리는 것이기에 안온한 정신에 대한 상징이고 벽은 존재하는 것이기에 어두운 실제를 상징한다. 어떤 문제 앞에서 벽은 현실적인 문제에 해당하고 향은 정신적인 도피에 해당한다. 남경대학살이라는 실제 사건 그리고 율이 돈을 훔치고 도망간 실제 사건을 두고 우리는 ‘쟤 잘못은 아닌 거잖아’라고 하거나 향을 피우며 잊어버리는 행위를 한다. 이것은 정신적인 것만 따지는 것이다. 즉 의미 있음의 의미 없음이다.   5. ,  락원의 불가능성 은 왕건의 아버지가 일하다 죽었던 것처럼 죽어서도 ‘일’을 해야 한다는 우리 삶의 비극이 잘 나타나는 소설이다. 어릴 적 왕건은 시골을 떠나려면 대학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공부를 한다. 그는 원하던 대학에 붙었고 조부모님과 부모님은 모든 저축을 학비로 보낸다. 왕건의 대학 뒤바라지를 위해서 부모님은 집을 팔았고 아버지는 곧바로 한국으로 나가서 일을 한다. 왕건이 대학을 졸업할 즈음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왕건이 대학원을 마친 그 다음해 아버지는 출근하던 길에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왕건이 취직을 해서 겨우 북경에서 안정될 만할 때 할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한국으로 갔고 왕건이 결혼을 하면서 집을 살 때 어머니의 도움이 컸다.  이렇듯 왕건은 ‘떠남’의 련쇄로 나은 삶을 찾았지만 돈에 허덕이지 않는 삶과 행복은 없었다. 태여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을 위해 수입이 안해보다 적은 왕건은 직장을 그만둔다. 대도시에서 돈 버는 일도 아이 키우는 일도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게다가 딸 지운은 아토피를 앓고 있었다. 바다와 가까운 산골동네에서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다형이 생각이 난 왕건은 지운을 데리고 찾아가본다.   다형의 농장은 웅기중기 들어선 산 밑에 있었는데 아득하니 넓었다. 낮다란 블루베리나무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가서 맘껏 따먹으렴.” 다형이 나무 밑에 지운을 내려놓았다. 산자락 아래로 멀리 잔잔한 바다가 바라보였다. 구수하게 몸안 깊숙이 파고드는 흙냄새, 모든 게 싱그러웠다. 지운은 벌써 몇개째 블루베리를 따먹었는지 손바닥까지 보라빛이다. 한가롭게 그냥 나무그늘 밑에서 누워자고만 싶은 오월의 끝자락이였다. 다형과 나란히 블루베리나무 밑에 앉았다. 블루베리밭 아래로 비닐하우스가 일여덟개 이어져있었고 거기엔 겨울채소와 딸기를 심는다고 했다. (…중략…) “초창기라서 수입은 적지만 이제 다음해부터는 블루베리도 대량으로 판매하게 되면 수입도 꽤 될걸세. 자신이 하고 싶은 생활을 하면서 돈걱정 없이 살 수가 있다는 게 참 행복이지 않겠니?”    농장은 다형네 부부 뿐 아니라 화가부부도 함께 경영하고 있었다. 왕건은 딸이 화가부부의 쌍둥이 아들과 블루베리농장에서 뛰여다니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한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에게 가장 어울리는 곳을 찾은 거라고 확신한다. 왕건과 안해 해도는 북경의 집을 팔고 시내 변두리의 자그마한 아빠트를 사고는 아주 간추린 살림으로 농장에 입주한다. 그리고 남은 90만원에서 50만원을 떼여 농장의 투자로 다형에게 건넨다. 그들은 농장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는듯하였다. 하지만 농장의 어려운 사정이 이내 드러난다. 농장 경영을 반대했던 다형의 안해는 남편이 모든 재산을 농장에 넣는다는 것을 계기로 다형에게 리혼을 요구한다. 화가부부는 2년 뼈빠지게 일을 했건만 투자한 돈은 한푼도 받지 못했거니와 일한 보수도 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쌍둥이 아들을 학교에 보낼 형편도 안된다. 이처럼 시골에서조차 돈문제에 허덕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어디에도 돈에 허덕이는 삶을 피할 락원은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왕건이 대학을 다닐 때도, 대학원을 마칠 때도, 직장을 얻었을 때도 행복이 없었던 것처럼. “엄마, 민수오빠한테 나 시집갈 거야!” 지운은 쌍둥이들과 잘 어울려 다녔다. 민수는 쌍둥이 형제 중 형이였다. 동생은 민석이였다. “왜 민수오빠야?” 해도가 목욕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닦아주다가 물었다. “민수오빠 멋있어.” “그래? 민수랑 민석이랑 똑같이 생겼잖아. 그럼 민석오빠도 멋있지.” “아냐, 민수오빠가 더 멋있어.” “뭐가?” “음… 민수오빠가 수제비 날리는 거 더 멋있어요.”   아이들은 돈 문제에 허덕이거나 돈에 욕심을 갖지 않고 순수하게 수제비 잘 던지는 것을 좋아하고 관심을 갖는다. 수제비는 순수한 어린 시절 그리고 그 어린 시절의 순수한 욕망에 대한 상징인 것이다. 그런 순수한 아이들이 어둠이 옅게 깔릴 때까지 바다가에서 놀던 중, 민수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가 죽은 것은 어디에도 없는 ‘락원’을 찾느라 그리고 돈 문제에 허덕이느라 아이로 상징되는 ‘미래’를 우리 사회가 놓친다는 의미이다.    6. ,  찾게 된 욕망의 근원 청도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심수로 옮겨다니는 ‘나’는 여기저기 직장을 기웃거리며 저축 같은 것 해본 적이 없고 늘 돈이 모자라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카드빚을 갚아달라고 언니에게 몇번 도움을 청하나 언니마저 련락을 끊어버린다. 그런 ‘나’를 북경으로 부른 건 중학교 동창 신희이다. ‘나’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지저분한 동네에서 사는 조촐한 옷차림의 신희를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그녀의 적금통장을 보았을 때에 ‘나’는 신희가 결코 궁색하지도 결핍하지도 않다는 것을 확신한다.   내게 빡빡한 이 세상을 신희는 즐기면서 살고 있듯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마음 붙이지 못하고 살아온 나와는 완연 다른 삶의 자세였다. 내가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그 순간 분명하게 알게 되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탓하고 이 불공평한 세상과 운명을 탓하느라 온 기운을 모조리 소모해왔다는 걸.   세상이 뒤틀려있고 불공평해보이지만 우리는 그 세상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또한 똑 부러진 신희가 의외로 술만 마시면 짐승이 되여버리는 전남편과 다시 함께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 바로 그 ‘세상’이다. ‘나’가 명품을 쫓으며 ‘불공평한 세상과 운명을 탓하느라’ 기운을 소모한 것은 어릴 적 상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섯살 때, 어머니는 일년 월급보다 훨씬 많은 돈으로 ‘나’에게 피아노를 사주었고 집안의 수입 대부분은 피아노 레슨비로 들어갔다. 한겨울에도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어머니와 함께 레슨을 받고 귀가하는 길에 ‘나’는 눈구덩이에 빠진다. 어머니는 주저없이 눈구덩이 안으로 뛰여들고 ‘나’를 올려보내고는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한다. 어머니가 아래서 손을 저으며 ‘나’에게 지은 웃음이 마지막 웃음이였다. 그 후 아버지는 피아노를 불살라버리고 ‘나’와의 대면도 대화도 회피한다. ‘나’가 사치를 부리는 것은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 것, 피아노가 불타버린 것에 대한 대리만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사실, ‘나’가 미운 것이 아니라 단지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나’가 사치를 부리는 대리만족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리해로 바뀔 때, 어릴 적 욕망의 대상이였던 피아노를 다시 찾게 될 때 진정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해결을 하려는지 ‘나’는 어릴적 상처가 되였던 불타버린 피아노를 대체해 고급 피아노를 산다. 즉 어릴적 상처의 중심, 그 피아노에 다시 접근한 것이다.    호흡을 다잡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달빛을 타고 선률이 흐른다. 애잔한 음들이 어둠을 간지럽힌다. 이제 고조로 치닫기 시작한다. 눈먼 소녀가 달빛 아래서 춤을 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어느새 나는 웃고 있었다. 손가락 끝마다 뼈에 사무치는 행복이 부딪쳐서 찡찡 맞혀온다. 그리고 춥다. 그 때였다. 창문이 탁 열려젖혀지는 소리가 나더니 머리 꼭대기에서 웬 사내의 술 취한듯한 거친 욕설이 우박처럼 투두둑 하고 피아노 우로 내 정수리로 쏟아져내렸다. “몇시야! 잠이나 퍼질러 자자. 좀! 할 지랄이 없어? 미친 년!” 거의 동시에 창문을 걷어닫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텅텅 울렸다. 나는 미친듯이 정말이지 달빛 아래서 춤이라도 추어대고 싶어졌다.   어쩌면 ‘나’는 신희가 전남편을 리해하고 다시 만나듯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고 원망스런 세상을 리해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신희의 소개로 아르바이트로 피아노를 친 적이 있지만 오로지 자신을 위하여 친 것이 아니다. 더 이상 타인이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해서 타인의 손가락질까지 받아가며 이루는 연주, 그것은 진정한 ‘나’의 욕망이다.    7. ,  ‘기다’와 ‘이게 아니다’ 사이에서  은 이기다라는 도시에서 네티와 네티가 처음 만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어떻게 된 거지?” 네티는 자신의 팔다리를 차례로 쓰다듬어보고 배와 가슴께를 쓸어본다. 그러다가 생각난듯 꽉 닫힌 창문을 들여다보았다. “앗!” 네티는 가볍게 비명소리를 냈다. (…중략…) 네티가 자그마한 소리로 불렀다. “네티!” 꼬마 네티가 그 부름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잠결에 샐쭉 웃었다. 티없이 맑은 이슬 같은 얼굴이였다. 네티는 꼬마 네티를 이슬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충동을 그 순간 느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네티의 입가에도 웃음이 상현달 같이 걸렸다. 그것이 네티와 네티의 첫 만남이였다.   이기다에서는 영아가 어머니를 필요치 않는다. 다시 태여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삶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 모두가 그렇게 새로 태여난다. 이기다는 그런 도시이고 이기다는 모든 불만이, 모든 결함이 만족스럽게 변할 수 있는 희망의 자궁이다. 이기다의 네티는 이기다의 다른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스물일곱번째의 네티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스물일곱번째 네티와 스물여덟번째 네티의 만남은 전에는 한번도 없던 일이다. 안교수가 이기다의 모든 사람들 중 유일하게 자궁을 가지고 있는 네티를 인간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여기고 아이 네티를 잉태시킨 것이다. ‘네티’는 벗겨없애는 과정을 통해서 본질에 도달할 때까지는 ‘이게 아니다’라는 뜻이다. 안교수는 2천년 전 생명과학원의 교수였고 한 녀자의 남편이였다. 11년간 아이를 가지기 위한 노력을 하였으나 안해의 자궁은 아이를 잉태하기를 거부했다. 몸도 정신도 힘들어가는 안해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안해의 이름은 ‘기다’였다.  안해는 ‘기다’이고 네티는 ‘이게 아니다’이다, 안해는 현실의 보통 사람이고 네티는 리상적으로 만든 존재이다. 불완전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기다’, 즉 ‘맞다’라는 수긍의 삶이고 ‘이게 아니다’라는 것처럼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 그 부정하는 것을 리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리상적인 삶, 즉 ‘이게 아니다’라는 네티를 이기다에서 만들어냈다. 네티는 양파 같이 계속 벗겨도 새로운 것이 나오는 ‘이게 아니다’이다.   “한겹한겹 다 벗겨내고 나니 마지막에 이게 남았어. 네티도 이렇겠지?” 나는 엄마의 텅 빈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엄마는 거기 소중한 것이 담겨져있기라도 하듯 두 손바닥으로 떠안고 있다. “이걸 기억해야 돼. 언젠가 너도 양파처럼.” 엄마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엄마의 눈동자 안에서 양파 하나를 보았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고 내가 엄마에게 쏘아붙였다. “싫어. 나는 양파가 아니란 말이야!”   양파는 이것이 양파다 혹은 어떠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한껍질 더 벗기면 그게 아닌 것이 된다. 이거다고 하면 한껍질 더 벗기면 이게 아니다가 되여버린다. 그런 련속적인 부정의 의미로 네티가 ‘이게 아니다’라는 뜻이 되여있는 것이다.  이처럼 뭐든지 무조건 긍정하지 말고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것이 리상적인 삶이고 제대로 된 삶이다. 그리고 ‘기다’, 즉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고 무비판적으로 수긍만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긍해야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의 삶이고 수긍하고 싶지 않은 것이 우리의 리상적인 마음일 수 있다. 우리는 사실 수긍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현실을 수긍하고 싶지 않을 때 리상이 생긴다. 리상은 만족하지 않을 때 꿈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족하는 삶은 수긍하는 삶이다. 따라서 ‘기다’, 즉 맞다라는 것은 수긍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의 삶을 뜻하고 ‘이게 아니다’는 수긍하지 않고 부정하는 리상의 삶을 뜻한다.  그래서 엄마 네티는 자신을 억압하는 안교수를 죽이게 된다. 네티라는 의미는 부정의 의미이다. 리상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 리상은 부정으로서의 리상이다. 현실을 수긍하지 않고 현실을 부정할 때 리상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작자는 네티라는 리상적 존재를 설정한 것이다. 네티의 본질은 부정이다. 그래서 자신을 속박하는 안교수를 부정해서 죽인다. 그리고 아이 네티는 그런 자신을 낳았던 엄마조차도 부정해서 죽인다. 부정의 련속인 것이다. 즉 리상적 세계는 부정의 련속이다는 의미이다.  수긍하는 삶, 혹은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삶이 현실이고 현실을 수긍할 수 없을 때 리상이 생긴다. 현실에 완전히 만족하면 리상은 생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작자가 리상의 본질을 부정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양파처럼 까도 까도 계속 새롭게 갱신되는 부정만 해야 되는 부정의 련속, 그것이 리상의 본질이다.    8. 정주와 떠돔의 단면들 이처럼 여섯개의 소설은 모두 정주와 떠돔이라는 테마로 얽혀있다. 이들은 정주와 떠돔에 관한 주제로 여러 단면을 보여주었다. 정주와 떠돔 사이의 문제는 곧 삶과 존재의 본질이다. 정주의 부정성, 떠돔의 부정성이 인간의 비극이다. 또한 정주와 떠돔 어느 것에도 안착할 수 없는 것도 인간의 비극이다. 정리를 하자면 에서의 재유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반면, 고향에 있는 묘는 타지로 떠나려고 한다. 즉 안에 있으면 밖이 그립고 밖에 있으면 안이 그립게 되는, 그러니까 인간의 마음은 계속 떠도는 것이고 인간은 정주하고 안착할 곳이 없다는 것을 드러낸 소설이다. 인간이 정주할 수 있는 욕망은 없고 정주할 수 있는 정체성도 없다. 사람의 욕망은 자꾸 바뀌기 때문이다. 재유는 고향이 그리워서 고향으로 왔는데 고향의 묘는 타지로 가고 싶어한다. 욕망이 정주하지 못하는 것이다.  혼자 외로이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 정착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 소설은 이다. ‘나’는 사람은 혼자라고 생각하다가 혼자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과 가족을 꾸려서 함께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처음에는 스스로 외면했을 뿐이며 이는 자기 방어적인 외곡이였다. 무화과나무는 꽃이 없는 나무이다. ‘나’는 무화과 같은 꽃이 없고 외로운 인생을 살 줄 알았는데 ‘그녀’를 통해서 무화과에는 열매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무화과를 무조건 이방인의 성격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고 자신도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정주하는 토착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에서는 사람 사이에 정착이라는 정주의 긍정성, 긍정적인 면을 보여준다. 정주의 긍정성은 떠돔의 부정성과도 같다.  반면, 정주의 량면성에서 부정성,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는 소설은 이다. ‘벽’이라는 것은 실제 사건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은 제목 자체에서 드러나듯이 향기만 맡고 살면 마치 아편에 취해 살듯이 실제 세계와 벽을 치고 살게 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향기는 정신적인 것에 취함, 벽은 실제 세계를 외면한다는 의미이다. 정신적인 것에 취하면 실제 세계를 외면하게 된다. 그래서 의미 있음의 의미 없음에 대한 비판이다. 즉 실제를 외면하는 정신적 편의주의 사고에 대한 비판이다. 정신적 편의주의, 거기에만 정주하는 것이다. 향기 같은 정신적인 것에만 정주하면 그것은 편의주의일 수 있다. 현실을 외면하고 당장의 편안함에만 향기에 취하듯 정착하고 있기에 이 소설은 안온한 정신에만 취한 부정적 정주를 보여주는 것이다.  에서 욕망은 정주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였다면 에서는 이 사회에 정주할 곳은 없다, 즉 떠돔의 련쇄성을 다루었다. 왕건은 시골에서도,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닐 때도, 북경에서 직장을 얻었을 때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런 그가 바다가에 있는 농장은 정주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곳인 줄 알았는데 그 곳도 락원은 아니였다. 이렇듯 이 소설은 어디에도 우리가 정주할 곳은 없고 반복하는 떠돌이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에서는 테마가 두개다. 하나는 과소비이고 다른 하나는 떠돌이 삶이다. ‘나’는 결핍의 근원을 잃어버려 결핍의 본질을 몰라서 정주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삶을 살게 된다. ‘나’가 결핍한 것은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 속에 나온다. 아버지가 피아노를 불태워버린 후, 아버지의 사랑 그리고 피아노의 꿈을 모두 잃어버렸다. ‘나’는 그 본질을 모른 채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과소비와 떠도는 삶으로 채우려고 한다. 이렇듯 이 소설은 정주하지 못하는 리유를 설명해나간다. 어릴 적 상처의 근원을 치료하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어서 우리는 영원히 독에 물을 채울 수 없고 따라서 영원히 정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정주하지 못하는 리유는 진짜 ‘나’를 찾지 못해서 생겨난 것이다. 정주를 위한 진짜 방법은 결핍의 근원을 찾는 것이다. 진짜 욕망을 찾지 못하는 리유로 정주의 불가능성, 혹은 떠돔이 생겨난다. 에서는 ‘기다’, 즉 수긍이라는 정주와 ‘이게 아니다’, 즉 부정이라는 부유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정주와 떠돔의 원론적 문제, 즉 인지의 기초 차원에서 정주와 떠돔을 설명한다.  무조건 정착이 좋거나 떠남이 좋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과 존재의 본질은 정착과 떠남, ‘기다’와 ‘이게 아니다’ 사이의 문제 속에서 항상 헤매고 있는 것이다. 처럼 인간의 욕망의 끝은 보이지 않는 것, 즉 내면에서의 정주의 불가능성이 있고 처럼 이 사회에 정주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 즉 외면에서의 정주의 불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와 은 긍정적 정주와 부정적 정주를 보여주는데 또한 떠돔의 부정성과 떠돔의 긍정성에 해당되기도 한다. 에서는 정주를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에서는 정주와 떠돔의 본질적 관계, 즉 정주와 떠돔 어디에도 갈 수 없는, 그래서 끝내 소멸시키는 과정을 극명하게 잘 보여준다.  출처:2018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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