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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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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강북江北: 개고기 서령감(단편소설) 댓글:  조회:406  추천:0  2019-07-08
개고기 서령감 강북       서령감이 나타난 것은 서북풍이 기승스레 휘몰아쳐 연구소 옥상에 걸어놓은 현수막이 금방 찢겨나갈듯 기를 쓰고 펄럭거리던 그 날이였다.  소장이 현수막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말고 몇 안되는 남자직원들보고 누가 옥상에 올라가서 어떻게 해볼 사람 없느냐고 묻자 멀뚱멀뚱 서로를 마주보던 남정들은 혹자는 고소공포증 때문에, 혹자는 고혈압 때문에 올라갈 수 없다며 하나같이 도리질만 할 뿐이였다.  어쩔 수 없이 비대한 체구에 반백이 훨씬 넘은 소장이 몸소 나서야 했는데 남산 만한 배를 내민 채, 헐금씨금 기여오르느라 추운 날씨임에도 금세 땀벌창이 되여 헐떡거리면서 욕지거리는 차마 못하고 이런, 이런…만 련발하고 있었다. 서령감이 고양이처럼 살금 나타난 것은 바로 그 위태위태한 순간이였다. 별로 힘들이는 내색도 없이 여차여차하더니 금세 옥상에 올라선 서령감이 손을 뻗어 현수막 한쪽 귀퉁이를 냉큼 잡아채는 것이였다. 그 바람에 더 이상 마음껏 펄럭일 수 없게 된 현수막은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때껏 아래에서 구경만 하고 있던 사람들은 손짓발짓 해가면서 왼쪽, 오른쪽 하고 소리소리 지르며 저마다 지휘에 열 올리고 있었다. 한편 옥상에서 상체를 수굿한 채 목을 잔뜩 빼들고 현수막을 들고 있는 서령감은 얼핏 볼 바엔 《미녀귀신》에서 나오는 시뻘건 혀를 기다랗게 빼문 귀신할망구를 련상케 했다. 그러는 서령감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소장이 누구라 없이 물었다.  “저치 누구지? 제법인걸.” 그에 누군가가 응수했다. “그러게요. 정말 날래죠. 꼭 무슨 날다람쥐 같은걸요.” 이윽고 옥상에서 내려온 서령감을 살펴보니 그 걸음걸이가 얼마나 잽싼지 발이 땅에 닿는 기미도 없이 이리저리 다니는 양이 정말 날다람쥐 따로 없지 싶었다. 서령감은 보일러 때는 일거리나 찾아하려고 왔노라고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보일러공은 이틀 전에 금방 받아두었으니 어떡하지? 그 말에 서령감은 한대 맞은 놈처럼 맹랑한 표정이 되여 좀 전의 그 생기 넘치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당금 그 자리에 주저앉기라도 할듯 축 처져있었다. 마누라의 성화로 돼지 흥정 때문에 지체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맹랑한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마누라가 패주고 싶도록 미웠다. 볼품 없이 가무잡잡하고 왜소한 몸집에 자글자글 주름투성이 얼굴, 게다가 시선을 내리깔 때 유표하게 푸들거리는 안대까지… 보는 사람이 다 불편해지는 몰골이였지만 그 시각,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의 련민의 정을 자극한 것은 다름 아닌 그 꾀죄죄하고 애가 바싹 탄 몰골이였다.  그런다고 련민의 정 따위에 련련해 원칙을 어길 순 없는 일이고 해서 사람들은 그러다 돌아가겠지 하고 뿔뿔이 흩어져가는데 혹 가다 명년엔 좀 일찍 와보라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그 쯤에서 물러날 줄 알았던 서령감이 소장의 꽁무니를 졸졸 묻어다니며 수작을 거는 것이였다. 뭐, 아까 보니 옥상에 현수막을 고정하는 가름대도 변변치 못하던데 그대로 놔뒀다간 조만간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자기가 쇠갈고리로 단단히 고정해놓겠다는 둥, 그리고 자긴 벽 쌓고 회칠하는 등 일에도 능해서 집 지을 때도 거진 혼자 손으로 했다는 둥, 손짓발짓 해가며 시늉까지 해보이는 양이 꼭 ‘손시늉 보고 알아맞추기’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 같았다. 그 쯤 되자 사람들 모두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며 시름없이 웃었고 그에 소장도 저으기 난감한 모양 허허 웃기만 할 뿐이였다. 그런데 그 악의 없는 웃음에 서령감은 오히려 어리둥절해졌다. 그로서는 사람들이 자기 말을 못 믿어서 웃는 건지 아니면 자기 일솜씨를 의심해서 그러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후끈 달아난 서령감은 목소리까지 변조되여 볼멘 소리로 웅얼거렸다. 저기 대문 앞 계단이며 2층 창틀도 잘 손봐야지 아니면 몇참 못 가 군데군데 떨어질 거라고, 그만한 일은 자기 혼자서 넉근히 해낼 수 있다고. 미구엔 정문 앞 공터를 가리키며 이제 눈이 오면 저기 쌓인 눈도 자기가 알아서 칠 거라고 덧붙였다.  그리고는 애원 어린 눈길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집을 짓느라 8천원 남짓 꾼 리자돈도 갚아야 하고 뇌위축증으로 여나문살 되도록 바로 걷지도 못하는 아들까지 있다고 하소연하는 것이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서령감은 일남이녀를 두었는데 큰딸이 다섯살 나던 해에 뇌위축증으로 죽고 나서 아들딸 쌍둥이를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쌍둥이 역시 뇌위축증을 앓았는데 그마저 딸애는 이태 전에 죽고 지금 아들만 살아남았다는 것이였다. 원체 과학기술연구기관이라는 리유로 서류관리일군까지 전부 대졸 이상만 받는 연구소라서 그런지 그 말을 들은 직원들의 반응 역시 지극히 론리적이였다. 남자직원들 대부분은 그런 상황이라면 유전자 검사부터 해봐야 한다며 면역력 결핍은 아닌지 검사해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고 녀직원들은 회임기 음식물 섭취에 문제 있었던가 아니면 방사선에 로출된 탓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한 론리들을 알아먹을 리도 없었거니와 애초에 여겨들을 념조차 않던 서령감은 자기만의 지론, 그러니까 좀 유명하다는 점쟁이가 그러는데 조상들의 묘자리를 잘못 쓴 탓에 귀신이 ‘작간’한 것이라고 우겼다. 그 황당한 지론에 기막히고 어처구니 없는 한편 측은한 생각이 든 사람들이 생명 형성의 원리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주려고 하자 서령감은 개 벼룩 씹듯 도리머리만 홰홰 저을 뿐이였다. 하긴 지식인과 일개 농군의 주장을 동일선상에 놓고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일지도 모를 일. 이 또한 후담이지만 말이다. 그 무렵 보일러공의 월급이 6백원 정도였고 1년 중 난방기가 6개월이였으니 년수입이 3600원인 셈. 겨울철에 아무런 수입도 없는 농군으로 말하자면 꽤 유혹적인 일자리였을 것이였다.  어쩌면 그래서 원하던 바를 얻지 않고는 절대 물러설 줄 모르는 서령감의 성격이 더 여실히 드러났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밑도끝도 없이 늘어놓는 자기 자랑에 현혹되였는지 아니면 뇌위축증을 앓는 아들이 있다는 말에 측은지심이 발동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서령감이 소장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한 것은 틀림없어보였다. 그런데 소장으로서도 참으로 난감한 일이였다. 금방 이틀 전에 계약한 보일러공은 또 무슨 리유로 해고하는가 말이! 아무런 리유 없이 사람을 내쫓을 순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해서 소장은 일단은 서령감부터 구슬려 보내놓고 조주임을 찾아가서 반나절 남짓 입씨름을 해야 했다.  그렇게 퇴근 무렵이 다돼서야 조주임은 맥관염脉管炎에 걸린 오른다리를 절룩거리며 뒤울안으로 향했고 몇참 안 지나 보일러실로부터 악에 받쳐 내뱉는 욕설과 함께 쾅쾅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 죄 없는 보일러실 문이 서령감 대신 봉변을 당한 것이였다. 모르긴 해도 서령감도 사람이였다면 그맘때 쯤 배갈 한종지 삼킨 것 만큼 귀볼이 화끈거렸을 것이였다.  그렇게 조주임은 서령감의 은인이 되였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서령감이 첫 출근을 하던 날 첫눈이 내렸다. 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사람들은 자연스레 서령감의 호언장담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가, 한참 만에 마당에 나타난 서령감이 보리밭 둑길을 련상케 하는 도형을 만들며 분주히 눈을 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은 보리밭 한가운데 중뿔나게 자라난 인삼과를 방불케 했다. 그렇게 출근 첫날, 서령감은 실제행동으로 자신의 부지런한 성품을 증명해보인 셈이였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무언가를 시작하긴 쉬워도 뒤감당은 쉽지 않은 법. 그러나 그러한 리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서령감이였고 일개 잡역부라고 해서 그 지능지수까지 낮아야 한다는 법은 없는갑다. 아니, 어쩌면 그는 보통사람들보다 더 뛰여난 두뇌의 소유자일지도 모를 일이였다.  그렇게 연구소에 취직한 서령감은 온갖 잡다한 일을 시켜도 군말 없이 수걱수걱 잘해냈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궂은 일이더라도 우물쭈물, 저어하는 법 없이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곰상곰상 굴었다. 서령감의 가장 큰 우점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사람들이 뭐라고 쑥덕거리든 일절 토 다는 법 모르고 시비를 따지는 법이 없다는 것이였다. 그렇게 수년 세월이 지나고 이젠 사람들과 제법 익숙해진듯 싶어지자 서령감도 툭하면 보일러실 환경이 너무 렬악하다느니, 도처에서 찬바람이 숭숭 새들어온다느니 하며 불평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수년 전부터 보일러실을 개조한다고 벼르고는 있는데 재정문제로 지금껏 미루고 있는 거라고 설명해주면 서령감은 대뜸 “암, 개조해야죠, 해야 말구요.”라고 응수하곤 했다.  근데 사실 서령감은 보일러실 개조가 대체 무얼 의미하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젊은 시절 로동개조 전과가 있었던 터, 개조라는 말을 듣는 순간 로동개조를 떠올렸고 무릇 개조가 들어간 어휘면 그저 수고스레 일하는 것을 의미하는 줄로 어림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서 할일 없을 때면 온통 철로 만들어진 그 거무튀튀한 녀석을 쳐다보면서 머리를 굴려보기도 했지만 대체 저딴 녀석을 어떻게 개조한다는 건지 암만해도 알 수 없는 노릇이고 해서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그만 궁리하기로 했다. 사실 서령감은 평소에 욕지거리를 곧잘하는 편이였다. 혼자서 울적하고 답답할 때 욕지거리를 하면 채소밭에 비료 주듯이 속이 다 시원해졌던 것이다. 그런다고 직장에서까지 욕지거리를 달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한번은 월급 타던 날, 돈을 세다가 무망간 “염병할!” 하고 내뱉었다가 출납원 아가씨의 따끔한 눈총과 함께 언사에 주의하라는 경고까지 받은 일이 있었다.  그 날 월급을 받아들고 계단을 내려오던 서령감은 자기 뺨을 후려치며 좀 전의 실수를 뉘우쳤고 그로부터 ‘염병’ 같은 욕지거리가 다시는 입에서 빠져나가지 않게 각별히 주의했다. 그만한 일은 연구소 직원들한테는 일도 아닐 것이였지만 일개 잡역부 서령감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였다. 그렇게 해가 가고 달이 바뀌는 동안, 서령감은 자기가 갈수록 말린 오이처럼 시들시들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원체 성품이 어고 무른 사람이라서 그런갑다고 생각하는 모양, 툭하면 서령감과 롱을 지껄이기도 했다. “령감님이 우리 연구소에 들어온 지도 한참 되는데 여기가 뭐가 좋다고 그러십니까. 쥐꼬리 만한 월급에 환경도 렬악한데. 이제 빚도 거진 다 갚으셨을 텐데 때려치지 그래요!” 그러면 서령감은 제법 황공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투로 공손하게 개올리곤 했다. “이곳 사람들 너무 좋아서요. 정말 기막히게 좋은 사람들이거든요!” 그에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웃으면 그는 상대가 자기 말을 믿지 못해서 그러는 줄 알고 손으로 지페를 세는 동작까지 곁들여가면서 아주 정색하여 설명을 붙이곤 했다. “저 거짓말 같은 거 안해요. 있으면 있는 대로,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말한다구요. 달마다 꼬박꼬박 월급을 주지 얼마나 좋다구요.” 그러면 사람들은 또 와그르르 배를 잡곤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게 재미있다고 웃으면 덜컥 겁부터 앞세우는 서령감이였다. 그래서 대체 뭐가 그렇게 웃기는가 하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머룩머룩 쳐다보고 있기가 일쑤였다.  서령감의 말은 사실이였다. 거의 모든 업체들이 상호 련쇄채무관계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렇고 그런 시절이다 보니 민공들의 월급을 밀리는 일도 허다했고 걸핏하면 해고다, 생산정지다 하던 시절이였던 만큼 서령감으로서는 그렇게 달마다 꼬박꼬박 월급을 탈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한 일이였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 좋은’ 서령감이였지만 정작 사람들한테 서령감에 대해 물으면 좋다는 사람도 있고 별로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보다는 글쎄… 라며 대답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 서령감에 대한 이 같은 평판은 조주임의 작용이 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조주임은 총무주임으로서 소장과 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외 연구소 내에서는 거의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가깝지 않은 정도라면 또 모를가,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경원시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하지만 조주임은 사람들이야 자기를 어떻게 보든 상관없다는 심드렁한 투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사람들이야 뭐라 하든 영화에 나오는 여느 부자집 집사처럼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을 일일이 다 간섭하고 신경 써야 하는 게 총무주임의 역할이다 보니 자기 소임을 리행함에 있어서 사람들의 평판 따위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직원들의 복리라든가 로동보장, 식당화식 등 문제들을 일일이 체크해야 하는 게 그의 직책이였고 그 밖에 로동질서까지 감독해야 했던 것이다. 전에는 정치사상업무를 책임진 리서기가 로동질서를 담당했는데 어쩌다 보니 나중엔 조주임 소관이 된 것이였다.  조주임은 직무 수행에 있어서 인정사정 보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였다. 무릇 사무에 한해서는 얼굴을 푹 떨어뜨린 채, 아무리 별난 사람이라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터, 지어 소장과 서기가 조퇴를 하더라도 조주임한테 청시해야 했으니 여타 직원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조주임은 모든 임직원들의 지각, 조퇴, 병가, 휴가 등 사항을 상세하게 기록해두었다가 월말이면 그 명세서를 재회과에 넘기곤 했다. 간혹 누군가가 그 명세에 불복하여 몇월 며칠 기록이 잘못되였다고 따질라 치면 조주임은 일절 해명 따위를 하는 법 없이 상대를 노려보기만 했고 그러다 수 틀리면 한바탕 욕바가지를 퍼붓기도 했다. 그러면 욕을 얻어먹은 사람은 대꾸 한마디 못하고 물러가기 일쑤였고 속으로는 조주임을 개니 돼지니 하고 욕하며 잔뜩 벼르기 마련이였다.  그런 연유로 많은 사람들이 조주임의 처사에 앙앙불락이였지만 언제 봐도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대하는 조주임이였던 터, 어떤 꼬투리를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었으므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모든 일에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게 있다. 애초 서령감이 조주임과 부쩍 친해진 것도 따지고 보면 조주임을 은인으로 생각하는 갸륵한 마음이 작용한 것도 있었겠지만 서령감한테도 조주임의 덕을 보려는 속셈이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쨌거나 한동안 두 사람은 정말 끔찍하다 할 만큼 각별히 친했다. 그 끔찍함은 조주임 일이라 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나서는 서령감의 태도에서 여실히 반영되였다.  그러는 두 사람을 지켜보면서 조주임이 전횡을 일삼는다느니 갑질을 한다느니 하며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들 모두 과거 조주임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악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이들은 눈에 불을 켜고 조주임의 일거일동을 살폈고 무슨 일이든 조주임과 털끝 만치라도 관계되는 일만 있으면 얼씨구나 하고 들고 일어나 롱성을 벌이곤 했다.  그러던 하루는 조주임과 서령감이 오전 시간에 공구를 챙겨들고 출타한 일이 있었는데 사실 그만한 일은 일도 아니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갈 일이였다. 그런데 그 당자가 조주임이였으므로 문제는 심각해질 수 밖에 없었고 사람들의 불평불만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복도에 나와 서성이며 서령감이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실내온도가 15~16도 밖에 안된다며 볼펜도 바로잡을 수 없다며 투덜대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복도로 나온 소장이 조주임네 부서 직원보고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 직원이 하는 말이 조주임네 집 스팀이 고장나서 서령감을 데리고 수리하러 갔다는 것이였다. 그에 소장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가 이윽고 두부주임을 불러놓고 몇마디 당부하였다.  이윽고 두부주임이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다들 추우면 서류실에 가서 전기난로를 쪼이라고 했다. 두부주임은 조주임 못지 않게 소장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였는데 조주임이 소장의 총애를 받는 리유가 오랜 시간 소장 아래서 일해온 충실한 심복이기 때문이라면 두부주임의 경우는 좀 달랐다. 두부주임은 두뇌회전이 빠르고 일처리가 야무지고 확실한 사람으로 연구소 내 대외사무는 거진 그가 총괄하다 싶이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들 두 사람은 소장의 왼팔, 오른팔인 셈이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들 두 사람이 서로 반목하고 있었으니… 이 또한 회사 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였다. 두부주임과 좀 가깝다는 이들은 이 좋은 기회를 놓칠세라 그 주변에서 촐싹거리며 은근히 싸움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그에 두부주임은 아무 대꾸도 태도표시도 안했지만 얼굴 가득한 동감조의 미소만은 굳이 감추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아부와 험담을 일삼는 이들은 아주 신명이 나서 사실을 기껏 부풀리고 외곡하여 조주임을 헐뜯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 쯤 되자 그 자리는 숫제 살벌한 규탄대회장으로 돼버렸다. 과거지사에서부터 오늘 일에 이르기까지, 월급을 깎인 일에서부터 억울하게 처분받던 일까지… 그렇게 각자 속에 쌓인 불만을 토로하다가 결국 오늘 조주임의 조퇴도 월급을 깎아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게 되였다. 배가 출항하려면 누군가 뭍에서 떠밀어주는 이가 있어야 하듯이 무슨 일인가를 도모하려면 누군가 그 동력이 될 만한 화제, 사건을 제시해야 했다. 말하자면 느슨해진 이야기보따리 매듭을 슬쩍 끌러놓을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일단 누군가 선코를 떼놓으면 이야기보따리는 이내 활활 풀어헤쳐지고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게 되는 법. 그렇게 하나, 둘 이야기들을 들춰내다 보면 그중에 쓸 만한 내용들이 꽤 많을 것이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책상 우에는 온갖 잡다한 이야기들이 수북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여기에 동참한 이들 모두 할일없이 입방아나 찧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같은 날이 오기를 잔뜩 벼르고 있던 사람들이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 얘기들 중에는 속이 뻥 뚫릴 만한 소식은 하나도 없었다. 해서 잔뜩 심사가 뒤틀린 몇몇 사람들이 다시 두부주임을 찾아갔다. 굳어진 표정으로 출퇴근기록부를 마주하고 앉은 두부주임은 찾아온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였다. 누군가 왜 그러느냐고 조심스레 묻자 두부주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별일 아니라고 일축했고 누군가 이내 그 속셈을 알아채고 기분을 맞춰주느라 알랑거리자 가뜩이나 꿀꿀하던 차, 자기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꽤 있다는 생각이 든 두부주임은 마침내 속에 쌓였던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 연고 없는 사람일지라도 자기 역시 피해자인 양, 눈치껏 응수하는 게 가장 명지한 방법일 것이였다. 조주임은 이젠 볼 장 다 본 사람이지만 두부주임은 이제 막 동녘하늘에 떠오르는 태양 같은 존재라는 것을 연구소 직원들 치고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무렵, 문을 밀고 들어선 소장이 이달 지출금액을 묻다 말고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는 은근히 놀라운 눈빛이더니 이내 롱조로 무슨 회의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에 좌중 모두 입 닥친 채 긴장된 눈빛으로 두부주임만 바라보고 있는데 두부주임이 재치 있게 둘러댔다.  “다들 궁금해하지 뭡니까! 서령감이 조주임네 집 스팀 수리하러 간 건 근무리탈인지, 아니면 뭔지 하고 말입니다.” 그야말로 기막힌 림기응변이요, 좌중의 말문을 트기 위한 절묘한 암시였다. 비로소 좌중은 왁자지껄 열띤 토론을 재개하였다.  처음 한동안은 그래도 사람 좋게 웃으며 응수하는가 싶던 소장은 나중엔 안되겠던지 이마살이 꽈배기처럼 잔뜩 뒤틀려있었다. 그에 좌중은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도로 삼켜야 했다. 아주 미세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식인이라는 이 민감한 집단, 이들이 처세술에 능하고 말고를 떠나서 말하자면 그것은 오랜 세월 계급투쟁 경험으로부터 몸에 배인 본능이였다. 좌중이 조용해지자 소장은 조주임 일에 대해 해석을 했다. 소장의 해석을 가만 들어보니 그 역시 맞는 말이였다. 지난 수십년 동안, 조주임이 종래로 5.1절이나 10.1, 설날 같은 휴가를 제대로 쉬여본 적이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반박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소장이 하는 말에 귀기울이다 말고 사람들은 서로 눈길을 마주치고는 하나, 둘 조용히 자리를 떴다.  이윽고 사람들이 다 가고 없자 소장은 비로소 두부주임과 독대하게 되였다. 바빠맞은 두부주임이 무어라 변명하려고 입을 열려는 것을 소장이 눈짓으로 제지하고는 이제 다시 이 같은 일이 있으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어떻게 가만두지 않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마 소장 자신도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일 것이지만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두부주임은 모욕감에 가슴이 답답해나며 목구멍에 가시가 걸려 뱉어낼래야 뱉어낼 수 없고 삼킬래야 삼킬 수도 없을 때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얘기는 결국 서령감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였고 서령감은 어느 날 두부주임이 차 수리하는 것을 거들던 중 몸은 비록 조주임과 가까이 있지만 마음만은 항상 두부주임을 향해있다며 자신의 심정을 고백했다.  그에 두부주임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가타부타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시물시물 웃기만 할 뿐이였다.  아니나 다를가, 그 날 이후로 서령감은 정말 조주임과 소원해지려고 작심한듯 종전처럼 주동적으로 앞마당에 나가 일하지도 않고 하루종일 보일러실에만 틀어박혀있었다. 해서 조주임은 무슨 일 있으면 절름거리며 뒤울안까지 가서 서령감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서령감은 조주임이 시키는 일 만큼은 군말 없이 잘했다. 닭 몇마리 돌보는 일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 닭들은 서령감이 연구소에 취직하던 해 봄, 조주임이 얻어온 것이였다. 연구소 뒤울안에는 닭 몇마리가 아니라 양계장을 꾸려도 좋을 만큼 널직한 공터가 있었다. 거기에는 과거 숙직을 서던 장령감이 짬짬이 일구어놓은 터밭이 있었는데 장령감이 일을 관두고 나서도 조주임은 그 터밭에 파나 배추 따위 채소를 심어 가꾸었다. 그리고 거기에 닭 몇마리까지 가세하면서 제법 그럴듯한 전원풍경의 몰골을 갖추게 된 것. 틈만 나면 터밭에서 기음을 매지 않으면 땅을 고르고 터밭 여기저기서 닭들이 모이를 쫏느라 분주한 양이 보는 이들을 은근히 시골정취에 빠져들게 하였다. “저녁노을 잔잔한 채마전 한가운데 기음 매는 농군 따라 오리새끼 박박거리고…”라는 시구가 떠오르는 풍경이였다.  그 터밭 덕에 점심 때면 식당 식탁에는 어김없이 싱싱한 야채수프나 야채무침이 오르곤 했다. 그것을 먹으면서 소장이 연구소가 시골과 도시 린접지역에 위치해있는 고로 상점과 채소시장이 없어서 고생이였는데 이젠 자체로 채소 뿐만 아니라 닭까지 쳐서 잡아먹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엉너리를 치면 아무도 그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다들 썩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속으로는 그 터밭만 아니였어도 화식형편이 좀더 좋아질 수도 있겠건만 그 놈의 터밭 덕에 소장인 당신이야 글쎄 돈을 절약해서 좋겠지만 직원들 모두가 본의 아니게 소식素食주의자가 돼버리는 건 어떡하느냐는 거였다.  한번은 누군가가 닭 두어마리 잡아서 화식 좀 개선하자고 장난조로 말했다가 퉁 맞은 일이 있었다.  “조주임 명줄 같은 닭을 잡아먹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자고! 한번은 글쎄 조주임이 수탉한테 손등을 쪼여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녀석을 한대 쥐여박을 생각조차 않더라니까.” 그 때 잠자코 듣고 있던 장회계가 불쑥 끼여들었다. “어느 비 오던 날, 닭들이 널판자 아래 오구구 모여들어 비를 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널판자는 너무 작고 닭들은 많다 보니 암탉 한마리가 밖으로 밀려나게 되였더라구요. 근데 한참 만에 그 털빛 고운 수탉이 글쎄 널판자 밑에서 성큼 나오더니 밀려난 암탉한테 자리를 양보하고 자기는 고스란히 비를 맞고 서있는 거예요. 참, 어찌나 감동스러운지 정말이지 사람보다 낫구나 싶더라구요.” “조주임보다는 낫네요!” 누군가가 그렇게 롱조로 말을 받았다. 물론 그것은 악의 없이 그저 웃자고 해본 소리였다. 그런데 또 한 녀직원이 불쑥 끼여들었다.  “아니죠! 수탉이 암탉을 보호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죠. 그 암탉들 다 수탉의 처첩일 거잖아요! 장회계가 만약 조주임의 처첩이라면 역시 조주임의 보호를 받았을 거구요.” “너야말로 조주임 처첩 아냐?! 그래서 저번에 조퇴했을 때 기록하지도 않았던 거고!” 그 쯤 되자 두 녀인은 잔뜩 독이 올라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대고 있었다.  그 무렵, 문 열고 들어서다가 잠자코 듣고 있던 두부주임이 입을 열었다. “고만한 일로 두 사람이 아웅다웅할 게 뭡니까. 이 모든 게 결국 그 망할 놈의 수탉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처첩 여섯씩이나 거느리고 살면서 이건 엄연히 일부일처제에 위배되는 행위지 뭡니까. 참 재간도 좋지요. 글쎄 처첩 여섯씩이나 거느리고도 아무 탈 없다니 말입니다.” 두부주임이 짐짓 혀까지 끌끌 차면서 그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미처 그 말뜻을 가늠할 수 없어 어정쩡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고 그렇게 실내에는 일순 침묵과 함께 어딘가 이상야릇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런데 그 어색한 분위기가 싫었던 걸가, 아니면 좀 전에 자기가 한 말을 둘러맞추기 위함이였을가? 아무튼 두부주임이 침묵을 깨뜨렸다. “수탉이 사람 쪼은 것도 누군가가 그 처첩을 건드려서 화났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자기 처첩을 건드리는데 어느 바보인들 가만있겠습니까!” 두부주임이 그렇게 얼버무리고 나간 뒤 아까 두 녀인이 가만 생각해보니 자기들까지 곁들어 수모를 당한 기분이였다. 화가 꼭두까지 치민 두 녀인은 워낙 조주임과의 관계가 그닥 좋지 않았음에도 그 길로 조주임을 찾아가 두부주임이 한 말에 식초, 양념 쳐가면서 전후사연을 설명했다. 그렇게 그 말은 결국 조주임은 색마라는 뜻으로 번져지게 되였다.  평생을 수더분하게 살다가 퇴직을 앞두고 이런 얼토당토 않은 소리나 듣는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가만있지는 못할 것이였다. 해서 두부주임과 조주임이 식당 장부를 맞추던 날, 일은 터지고야 말았다. 그 시절 장부에 약간 차질이 생기는 건 큰 문제가 아니였다. 하지만 조주임은 그 차질 생긴 장부를 근거로 두부주임을 맡은 바 일에 열중하지 않는다느니, 선배를 존중할 줄 모른다느니, 인격을 모욕한다느니 하며 혼쭐나게 닦아세웠다. 처음엔 어떻게든 해석을 해보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하여 다시 변명을 늘어놓던 두부주임은 아무래도 안되겠던지 미구에는 제 쪽에서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그에 조주임도 전혀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 소리를 질렀다. 비록 그 목소리는 두부주임보다 높지 못했지만 말 마디마디가 정곡을 찔렀고 빈말 한마디 없었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였다! 그 일로 소장 역시 두부주임을 단단히 꾸짖고 나서 조주임이 그렇게 한 것은 다 널 더 잘되라고 그런 거라고 타일렀다. 그에 상황파악을 잘하는 두부주임은 변명 한마디 안했지만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지더니 자취를 감춘 지 오래 되였던 뾰루지까지 선명하게 드러나있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두부주임이 조주임을 뼈에 사무치게 미워했다면 글쎄 좀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그 망할 놈의 수탉을 뼈에 사무치게 미워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였다.  그런 내막을 감감 모르는 서령감은 매일같이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어대며 머리를 수굿한 채, 식칼을 휘둘러 닭모이를 쪼아주곤 했는데 그 리듬감 있는 몸놀림으로 보아서는 아주 신명나 죽겠다는 투였다. 서령감이 하는 양을 말없이 지켜보던 두부주임의 두눈에 차츰 싸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서령감한테 그 사건의 전말을 소상하게 얘기해주었고 그 날 이후로 서령감이 낮에 닭모이를 쪼아주는 모습은 다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서령감은 정말 눈치 9단이였다. 연구소 내 직원들이 누가 어떻고 어떻다는 것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는 어떤 사람에겐 얼마 만큼 잘해주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주 적절하게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해 겨울, 연구소에서 지출을 줄이기 위해 숙직 서는 사람을 내보낸 고로 휴무일이나 설명절 때면 직원들이 륜번으로 당직을 서야 했던 터, 몇몇 특수부서를 제외한 3분의 2 정도의 직원들 모두 당직을 서야 했다. 춥고 더운 건 둘째 치고라도 그 큰 건물에 덩그러니 홀로 남아야 하는 당직을 누군들 서기 좋아하겠소만, 그보다는 무료하고 적적하다는 점이 제일 싫었던 것이다. 그러다 간혹 이상한 소리라도 들리면 덜컥 겁이 나서 속이 한줌 만해지고… 해서 녀직원들의 불만이 제일 많았다. 하지만 소장의 한마디에 다들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들 힘들더라도 좀만 극복하자구! 연구소에 경비가 없는데 별도리가 없지 않은가!” 처음 한동안 당직 서는 사람들은 그저 고스란히 앉아서 시간만 열심히 때웠다. 그러다 점심 때 쯤 되면 의례 서씨가 나타나서는 주전자를 들고 물 길러 오지 않으면 신문이나 빌려보자는 등 리유로 찾아와 은근슬쩍 수작을 걸다가 이윽고 지나가는 말처럼 고작 집 지키는 일인데 자기가 대신할 테니 이제 그만 집에 가라고 한다. 그러면 상대는 미안해서 연신 아니, 아니요를 련발하기 마련, 그러면 서령감은 뱁새눈을 슴벅이며 왜, 사람 믿지 못해 그러느냐며 아주 억울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고 그러면 상대는 손사래를 치며 그게 아니라 미안해서 그런다 하고 그러면 서령감은 사람 좋게 웃으면서 걱정 말고 가보라고. 당신 욕보이는 일 같은 건 절대 없을 것이니 걱정 말라고 한다. 그렇게 그 직원은 서령감의 미소 띤 얼굴을 뒤로 한 채 집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좀 세심한 사람들은 서령감이 모든 이들에게 일괄적으로 그렇게 잘해주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말하자면 서령감의 도움을 받았던 이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금방 서령감한테 일러주었고 반대로 도움을 받지 못한 이들은 심사가 뒤틀려 뒤에서 꼴에 권세에 빌붙는다고 험담이나 하기가 일쑤였다. 두부주임이야 물론 서령감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 중 하나였지만 겉으로는 서령감에게 아무런 의사표시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름지기 소장보고 휴무일 당직 서는 일을 이제 그만 서령감에게 맡기자고 제안하면서 각 소조별로 10원씩 거둬서 서령감에게 주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그렇게 수차 설득한 결과, 소장도 마침내 그에 동의하고 말았다.  이 같은 은덕은 서령감이 조주임과의 결별을 결심하고 두부주임한테 진일보 다가서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였다. 서령감의 식견머리로 글쎄 “시대의 흐름을 아는 자가 인물이다”라는 성구까지는 모른다 치더라도 막말로 “고기를 얻어먹지 못할 거면 비린내나 옮아다니지 말라.”는 리치 정도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추운 겨울날이면 조주임은 닭장을 보일러실에 들여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조주임은 아침이면 제일 우렁차게 울어대던 수탉이 닭장 안에서 몸을 옹크린 채 옴짝 않는 것을 발견했다. 나무가지로 수탉을 적신적신 건드려보았지만 여전히 근근해있었다. 보일러실 내부 조명이 어두운 데다 시력도 안 좋다 보니 어찌된 영문인지 살펴볼 수도 없고 해서 닭장과 문 하나 사이 둔 안쪽에 대고 서령감을 불렀더니 서령감도 감감 대꾸가 없었다. 그래서 손전등을 켜들고 안으로 들어가 부스럭거렸지만 서령감은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상한 생각에 다시 돌아져 나와 손전등으로 비춰본즉, 볏이 거무죽죽하고 눈을 꼭 감은 수탉이 거기 누워있었던 것이다. 기겁한 조주임이 냉큼 손을 뻗어 수탉을 꺼내 보니 놈은 이미 싸늘한 시체로 굳어있었다.  조주임은 한대 맞은 사람처럼 그렇게 오래동안 서있었다. 수탉을 받쳐든 두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천만금 재산 중에 털 달린 짐승만은 재산으로 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수탉의 죽음을 지극히 례사로운 일로 간주했다.  유독 조주임만은 어떤 묵직한 것에 가슴을 짓눌린 것처럼 무시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으며 배속에 무언가 가득 들어찬 것처럼 무시로 꾸르륵꾸르륵 소리가 진동하곤 했다.  죽은 수탉의 입가에 피가 묻어있는 것을 보고 조주임은 누군가 때려죽인 게 아니면 냅다 메쳐서 죽인 거라고, 틀림없이 서령감의 소행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래 봤자 겨우 닭 한마리가 아니냐는 대수롭잖은 눈치였고 일부에서는 차라리 잘됐다고 잘코사니를 부르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일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한주 뒤, 닭 두마리가 또 죽었던 것이다.  그 쯤 되자 대수롭잖게 생각하던 이들까지 더럭 겁이 났다. 설령 접때 수탉을 죽인 이가 서령감이라 하더라도 한마리를 죽였으면 됐지 계속해서 이런 불미스런 일을 저지른다는 건 사람이 인격적으로 문제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한편 두부주임은 그 사건에 관해 자기가 서령감한테 직접 물어봤다면서 서령감은 족제비가 한 짓이라고 하던데 아무 증거 없이 사람을 모함하지 말자며 닭이 병들어 죽거나 족제비한테 물려 죽는 건 지극히 례사로운 일이라고 잘못되였다면 닭을 사람 자는 집안에 들인 것부터가 잘못된 게 아니냐고 이건 엄연한 인간차별이라며 서령감을 대신해 하소연했다. 듣고 보니 그 말 역시 일리 있는지라 사람들은 옳거니 그르거니 쟁론을 벌이다가 결국 서령감 역시 나름 말 못할 고초가 있겠지 하고 입을 모았다.     어찌됐든 서령감은 조주임과는 그렇게 철저히 틀어졌고 두부주임과 부쩍 친해졌다.  한편 조주임은 닭의 죽음보다는 사람 때문에 상심이 컸던 터, 난생처음 퇴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등골이 다 오싹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눈길에 미끌어 넘어진 뒤로는 그것을 핑게로 출근하지 않았다. 몇몇 연구소 령도들이 병문안 갔을 때, 조주임은 30여년을 하루같이 일했고 이제 1년만 있으면 퇴직하게 되는데 먼저 내부퇴직을 하고 싶다면서 월급이나 복리 모두 관례 대로 하고 때가 되면 퇴직수속을 밟겠노라고 했다. 그만한 요구를 들어주지 못할 리유가 없었던 터, 소장은 좀 만류하는 척하다가 결국 그 요구를 수락했다.  헤여질 무렵, 조주임은 식당에 일러서 남은 닭들을 잡아 직원들한테 대접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 닭들은 사실 퇴직할 때 기념물 삼아 남겨둘 생각이였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에 사람들은 비로소 무언가 깨닫는 바가 있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식당 료리사가 자기 손으로는 닭을 잡지 못하겠다고 나눕는 바람에 닭을 붙잡아오는 일에서부터 닭 모가지 비트는 일까지 서령감 혼자서 해야 했다. 식칼이 언뜰하더니 닭 모가지에서 시뻘건 피가 솟구쳤고 그렇게 별로 힘들이지 않고 잠간 사이에 후딱 해치워서 사람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기도 했다. 반사발 정도 받은 닭피는 아무도 요구하는 사람이 없어서 서령감이 보일러실에 갖고 가서 맛있게 끓여먹었다. 입가 가득 피가 게발린 그 모습은 《흡혈귀2》에서 나오는 흡혈박쥐를 보는 것 같았다. 언제 왔는지 저편에서 서령감의 뒤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두부주임은 한참 만에야 자기가 지금 왜 여기 와있는지를 상기하고는 인기척을 했다.  때는 두부주임이 조주임을 대신해 주임으로 승차한 뒤였다. 그런데 조주임과는 달리 두주임은 직원들과의 관계가 아주 좋았던 터, 일부 사무적인 일들은 오히려 규정 대로 처리할 수 없어서 난감했다. 이를테면 누가 지각하거나 휴가를 내거나 또는 조퇴하는 등 문제들을 규정 대로 처리하자니 너무 난처했던 것이다. 누군가 찾아와서 누구는 언제 조퇴했소, 누군 지각했소 하며 일일이 따지고 들 때는 정말 머리가 터질 지경이였다. 해서 아예 그런 일은 상관하지 않기로, 보고도 못 본 척하기로 했다.  그러다 년말이 되여 선진일군을 선출하게 되자 소장이 두주임보고 출퇴근기록부를 가져오라고 했다. 이왕 같았으면 조주임이 그 기록부만 척 내놓으면 다들 아무 의견이 없었을 것이지만 지금은 기록부에 아무런 기록도 없으니 누가 열심히 출근했고 누가 태만했는지 아무런 근거가 없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게다가 아무도 물러설 념을 않고 서로 자기가 선진으로 선출돼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다 나니 선거는 란장판이 되고 말았다. 소장이 붉으락푸르락하여 고개를 푹 떨군 채 입 닥치고 있는 두주임을 노려보다 말고 버럭 소리질렀다. “뭐라고 말 좀 해봐!” 그러자 두주임은 기다렸다는듯 소장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소장님, 우리 차라리 선진일군 장려제도를 취소하고 말죠!” 그에 소장이 멍한 표정으로 이쪽을 마주보고만 있자니 두주임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면 그야말로 일거량득일 거잖아요. 우리 연구소 지출도 줄이고 직원들 간에 경쟁할 일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직원들끼리 맨날 경쟁을 해봤자 각자 업무실력은 다 비슷하고 한데 절대적으로 누군 잘했고 누군 못했다고 평가한다는 게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 일도 아니고 말입니다.” 소장이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한 얘긴지라 직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직원들은 이런저런 리유를 들어가며 한사코 동의하지 않았다. 그에 두주임이 그럼 직원들 골고루 돌아가며 그러니까 진급을 눈앞에 두었거나 상을 타게 될 직원들을 우선순으로 하고 다음은 선진에 당선되지 못한 직원들 순으로 돌아가면서 선진이 되는 건 어떠냐고 했다.  그 제안에는 찬성, 반대가 반반이였던 터, 소장이 그럼 거수표결로 결정하자고 했다. 결과적으로 두주임이 내놓은 방법이 비록 정당하지는 못하지만 누구나 다 선진에 당선될 기회가 있었으므로 해마다 몇몇 직원들한테만 기회가 돌아가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에 그 제안은 결국 통과되였다.  그번 선거가 끝나자 두주임은 이제 더 이상 로동질서를 책임지지 못하겠다고 나누웠다. 소장이 그 까닭을 뻔히 알면서도 짐짓 왜냐고 물었더니 두주임은 그저 죽어라 도리질만 해댈 뿐이였다. 그 뒤로 사람들은 아침시간에는 복도에 서있다가 오후에는 각 부서 사무실에 불쑥불쑥 나타나곤 하는 소장을 종종 보게 되였고 직원들 모두 그 까닭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터, 멋대로 지각, 조퇴하는 일도 전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 소장의 감독방식은 조주임과는 전연 달라서 정말 예측불허였다. 조주임은 매일마다 감독했던 데 반해 소장은 며칠 가다 한번씩, 아무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나곤 했던 것이다. 어떤 때는 분명 회의하러 갔다가도 퇴근 무렵에 불쑥 얼굴을 들이밀 때도 있었고 해서 그런 날 멋대로 자리를 비운 사람은 재수에 옴 붙은 날이였다.  그런 일이 루차 반복되자 사람들은 차츰 겁을 집어먹었고 정말 휴가를 내야 할 일이 있더라도 소장한테 청시할 념을 못했다. 월급 몇푼 깎이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소장의 눈에 나기라도 할가봐 저어되였던 것이다. 다해봤자 스물 남짓 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단체라지만 여타 큰 기관단체와 다를 바 없이 승직, 진급, 직함 따위를 통과하려면 우선 상급령도와의 관계부터 잘 처신해야 했으므로 괜한 일로 큰일을 그르치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몇참 안 가서 지각, 조퇴 현상은 거의 근절되였고 직원들 모두 전에 없이 자각적으로 로동질서를 잘 지켰다.   다시 월말이 림박했고 결산을 마친 두주임은 소장을 찾아가 식당 재정 보조금을 달라고 했다. 그에 소장은 무척 당황한 모양, 한동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는 것이였다. 사실 오래 전부터 소장에게는 누군가 돈 얘기만 꺼내면 어쩔 바를 모르고 쩔쩔 매는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때는 이태 째 직원 로동보험금도 발급하지 못하고 난방비도 수년이 지나도록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던 무렵이였다. 게다가 홀몸인 녀직원은 난방비를 대주지 않는다는 규정까지 내왔던 터, 몇몇 리혼한 녀직원들은 성차별을 한다며 남녀평등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런데 까놓고 말해서 이 연구소와 같은 작은 단체들이 재정난에 쪼들리는 일은 다반사였다. 겨울철 보일러 때는 석탄마저도 마음껏 들여오지 못하고 아껴 때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소장은 서령감을 볼 때마다 석탄 좀 아껴 때라고 당부했고 서령감이 아껴 때느라 하면 사람들은 춥다고 아우성치며 서령감을 탓하기 일쑤였다. 해서 처음엔 묵묵부답, 그저 헤헤 웃어넘기던 서령감도 여기저기서 핀잔을 너무 듣고 나니 더 이상 못 참겠던 모양, 한번은 불만을 토로하고야 말았다. “에라, 못해먹겠네. 이 짓거리 집어치우면 차라리 방구라도 시원하게 뀌지. 이거라구야 원, 방구 한번 속시원히 못 뀌고 맨날 뀔락말락 뉘 눈치만 살피다 말게 생겼으니.” 그에 사람들이 거참 적절한 표현이라며 배를 끌어안고 웃으면 서령감은 못 알아먹을 소리를 한 것도 아니고 그게 뭐가 그리 웃긴다는 건지 모르겠다는듯 머룩머룩 사람들 얼굴만 쳐다보곤 했다.  애초부터 식당의 모든 지출은 줄곧 재정보조금으로 충당해온, 말하자면 직원들에 한한 일종 복리인 셈이였다. 재정형편이 넉넉한 단체라면 글쎄 있으나마나한 액수겠지만 이 연구소 같은 소규모 단체로 놓고 보면 식당에 들어가는 비용도 사실 적지 않은 지출이였다. 스무명 남짓이 식사하는데 한끼에 료리 한가지, 국 한가지 표준으로 치더라도 매달 천원 남짓 되는 액수였으니. 게다가 료리사 월급까지 꼬박꼬박 지급해야 했으니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일! 어쩌면 조주임 같은 비교상대만 없었더라도 그 정도로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어쩜 소장은 영화 《백모녀》에 나오는 악덕지주 황세인 비슷한 존재였다. 조목조목 상세하게 기록한 장부를 한참이고 들여다보던 소장이 이윽고 탁 소리나게 장부책을 덮어버리면서 말했다. “조주임이 있을 땐 왜 항상 여유가 있었는데 자네 손에 가선 왜 항상 모자라기만 한 거지?”  그 말에 두주임은 폭탄이라도 맞은듯 한동안 귀가 먹먹해지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마주앉은 그는 와락와락 주산알을 미친듯이 튕겨댔다. 저편에 앉아있던 출납이 눈치껏 밖으로 나가면서 10원짜리 한장을 두주임 책상 우에 올려놓더니 장회계가 반날 휴가를 맡으면서 내고 간 돈이라고 했다.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손동작을 멈추던 두주임이 그 지페를 움켜쥐고 곧장 소장을 찾아갔다.  “전에 조주임 때는 지각이나 조퇴, 또는 휴가를 내면 월급에서 깎아낸 돈을 전부 식당화식 비용으로 충당했지만 지금은 그 수입이 전무한 상태잖습니까!” 그 말에 소장은 웃도 울도 못하고 있다가 곰곰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것도 같았다. 직원들이 지각, 조퇴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식당 화식비용이 모자란다는 건 참으로 골치 아픈 일이다. 그런다고 직원들한테 지각, 조퇴를 선동할 순 없는 일!  아무래도 재정보조금을 내놓기 싫었던 소장은 두주임보고 직원들로부터 화식비용을 거두자고 부추겼다. 그러자 두주임이 펄쩍 뛰면서 이제껏 무상이다가 이제 와서 돈 내라면 자기만 죽일 놈이 될 게 아니냐고 했다.  그에 소장은 아무튼 재정보조금은 한푼도 건드리지 못하니 그리 알라고 잘라 말했다.  그 쯤 되자 두주임은 마지못해 화식비용을 거두어야 했다. 무상일 때는 아무 문제 없었는데 돈소리가 나오자 그것은 개인의 리익과 직접 관계되는 일이였으므로 지식인의 본새가 금방 드러났다. 저마다 불평조로 툴툴거리는 품이 누가 봤으면 몇십원이 아니라 수백, 수천원을 내놓으라고 하는 줄로 알았을 것이였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두주임이 절약할 줄 모른다는 둥, 과거 조주임이 있을 때는 매일 인원수를 확인한 뒤 인원수에 맞게 쌀을 저울에 떠서 안치곤 했는데 지금은 뭐든 눈대중으로 하다 보니 언제 봐도 음식이 남지 않으면 모자라곤 한다는 둥, 또 두주임은 료리사보고 묵은 밥이나 반찬을 이튿날 그대로 올리게 한다며 묵은 음식은 인체에 좋지 않아 자칫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둥, 서령감이 나올 때면 일부러 밥을 넉넉히 안치게 했다가 서령감을 먹인다는 둥, 요즘 들어 식당 화식은 점점 말이 아닌데 돈은 점점 모자란다 하니 그럼 그 돈은 대체 어딜 간 거냐는 둥… 아무튼 별별 못하는 소리가 없었다.  그 뒤공론은 어김없이 두주임 귀에까지 들어갔을 터, 그 며칠 동안 두주임은 황달에 걸린 사람처럼 누르께한 얼굴에 잠 못 잔 사람처럼 부스스한 게 탈망살이에 빠진 사람 같았다.  조주임이 아닌 이상 조주임 방식으로 돈을 얻어올 수는 없는 일. 한동안 골머리를 앓는듯 싶던 두주임은 미구엔 뒤울안의 공터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며칠 뒤, 그 공터의 절반에 작은 창고까지 곁들여 임대 주기로 결정되였다. 합의서를 체결하던 날, 연구소에서는 여태 밀렸던 직원들의 난방비와 로동보험비를 한꺼번에 지불했다. 그에 무척 흡족해진 소장은 두주임을 창의적인 신형 인재라며 엄지를 내들었다.  다시 겨울이 오고 서령감이 출근해보니 그렇게 널직하던 뒤울안이 절반이나 뭉청 잘려져나가고 그것마저 보기 흉한 철제란간으로 분단돼있었다. 란간 저쪽에서는 털빛이 시커먼 개 한마리가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 개를 보고 있노라니 서령감은 자기도 개 한마리 있었으면 싶었다.  그리고 며칠 뒤 서령감네 마을 사람이 경운기를 툴툴거리며 개 한마리를 실어왔다.  누런 털빛의 그 개는 평범한 당지 똥개였는데 털빛이 눈부실 정도로 하르르하고 몸매가 늘씬했으며 눈과 코는 마치 황금조각상에 박힌 흑마노처럼 윤기 반들반들한 게 례사 똥개들보다는 뭐가 달라도 달라보였다. 무엇보다 누렁이는 눈치 빠르고 령리해서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놈은 앞쪽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 모두 자기네 식구라는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듯 누군가 창문으로 이쪽을 내다보면 이쪽저쪽 신나게 뛰여다니며 재롱을 부리곤 했다. 그러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눈 덮인 뒤울안을 이리저리 뛰여다니는 놈은 마치 온통 은백색 세계를 굴러다니는 황금빛 요정처럼 생기 넘치고 눈뿌리가 즐거워졌다. 그 누렁이를 가장 애지중지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두주임이였다. 어느 눈 내리던 저녁, 서령감이 잠잘 채비를 하다가 밖에서 개 짖는 소리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에 시계를 쳐다보니 8시가 넘은 시각이였다. 이 시간에 누구지? 하며 옷을 걸치고 나갔는데 철대문 저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누렁이가 금세 짖음을 멈추더니 애교를 부리듯 끼잉~ 끄응~ 하며 간드라진 소리를 뽑아내는 것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두주임이였다. 문을 열어주면서 이 늦은 시간에 웬 일이냐고 물었더니 말없이 들어서던 두주임이 그 주위를 뱅뱅 맴도는 누렁이를 툭툭 치면서 그릇 하나 내놓으라고 했다. 보일러실에 들어가서 세수대야를 두주임 앞에 내밀었더니 두주임이 손에 들고 있던 비닐주머니에 든 내용물을 와르르 쏟아부었다. 실내에는 대뜸 료리냄새가 진동했고 반대야 남짓 되는 그 음식물을 보면서 서령감은 다른 그릇을 내놓을 걸 하고 후회스러웠다. 그 세수대야는 접때 마누라가 엉덩이를 씻었던 건데… 그런 생각을 굴리는 중, 두주임은 벌써 문 열고 바깥에서 낑낑거리는 누렁이를 불러들였다. 벌써부터 냄새를 맡은 누렁이는 냉큼 달려들어 게걸스레 먹어대는 품이 세수대야 채 통채로 먹어버리지 못하는 게 한스러운 모양이였다.  “그러다 체할라. 천천히 먹어, 천천히.” 두주임이 흐뭇한 눈길로 누렁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정경을 지켜보다 말고 서령감은 까닭 없이 속이 알알해나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니미 젠장할.” 누렁이는 대야를 다시 씻을 필요도 없게 아주 깨끗이 먹어치웠다. 그에 두주임이 누렁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허, 이 놈이 령감님보다 더 깔끔한걸요.” 그 말에 서령감은 그저 헤헤 하고 헤식게 웃어넘기고 말았다.  누렁이는 서령감이 시샘할 정도로 두주임을 끔찍하게 따랐다. 해서 서령감은 오다가다 툭하면 누렁이를 발길질하곤 했는데 그것도 저녁이면 더 시름놓고 걷어차곤 했다. 개우리는 전에 조주임이 닭장을 세워놓았던 자리에 만들어놓았는데 그것도 두주임이 손수 만든 것으로 안에는 두툼한 솜을 깔고 그 우에 접때 말썽이던 그 현수막을 담요로 깔아두어서 누렁이가 그 우에 척 드러누우면 얼핏 봐선 시뻘건 피못에 드러누운 것 같았다. 해서 서령감도 오다가다 몇번이고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십여년 전부터 불면증에 시달려온 서령감은 잠잘 때 무슨 인기척이나 미세한 소리가 들려도 머리 속에 사발시계가 들어있는 것처럼 재깍거려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조주임이 있을 때는 닭들 때문에 고생이였는데 지금은 또 누렁이가 있어서 머리 밖에까지 사발시계 하나 있는 셈이라, 머리 안팎에서 쉼없이 재깍거리는 시계소리에 시달려 서령감은 두눈이 아주 등잔처럼 퀭해져있었다. 그 날도 잠 못 이루고 궁싯거리던 서령감은 화김에 습관처럼 누렁이를 걷어찼다. 까닭 없이 얻어맞은 놈이 끼잉끼잉 애처롭게 울며 꼬리를 사타구니에 가둬붙인 채 튕겨나가자 서령감은 기다렸던듯 이내 문을 닫아걸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몇참 안 지나 이번에는 바깥에서 문 허비는 소리가 온갖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이였다. 그동안 따스한 보일러실에서 잘버릇한 놈을 이제 다시 살을 에는 밤추위에 석탄더미에서 자라고 내쫓는다고 먹혀들 리 없었던 것이다. 이윽고 씩씩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선 서령감은 부지깽이를 집어들고 벌컥 문을 열고는 누렁이를 향해… 이튿날, 누렁이가 다리를 심하게 저는 것을 본 사람들은 서령감을 너무 잔인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다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순 없었던 모양, 서령감을 사정없이 몰아세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격분한 두주임은 서령감 면전에 얼굴을 바투 들이대며 소리소리 질러댔다. 그 서슬에 어마지두 놀란 서령감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만 살아서 머룩거릴 뿐이였다. 겨우 개 한마리 때문에 왜들 이렇게 란리법석인지 아무래도 모르겠다는 것이였다. 하면 나 서모모가 개보다도 못하단 말인가?! 나중에 일이지만 “당신들 눈엔 개가 무엇으로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 개는 그냥 개고기일 뿐이다.”라는 게 서령감의 지론이였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였다. 장자도 왜 “세상 어디든 도道가 없는 곳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부동한 사상, 생존환경에 따라 생명의 의의도 각자 부동하기 마련. 과학연구소 직원들 눈에 비친 개는 소중한 생명이요, 존중이 필요한 존재일 수도 있겠지만 서령감 눈에 비친 개는 그냥 배를 불리기 위한 고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그러니까 백정의 눈에 비친 돼지는 사지를 다 떠놓은 돼지고기일 뿐이요, 말 또한 사지를 떠놓은 말고기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는 커피로 갈증을 해소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리치일 것이다. 그런데 연구소 직원들은 이 같은 차이를 홀시하고 있었다. 이는 자칫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그들의 실책이였다. 그리고 분명한 건 사람들은 지금 서령감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이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 출납이 누렁이한테 고기뼈다구를 주려고 창문을 열고 누렁이를 찾다가 갑자기 누렁이를 무어라 불렀으면 좋을지 궁리가 나지 않아서 망설이던 중, 새삼 서령감의 그 개고기리론이 떠올라서 “개고기야, 개고기!” 라고 불러보았다. 그러나 누렁이는 움쩍도 하지 않았고 해서 출납은 다시 이래저래 머리를 굴리다가 아무래도 서령감을 불러내야겠지 싶어서 “서령감, 일루 와봐요!”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서령감이란 소리가 떨어지기 바쁘게 누렁이가 쫑드르 이쪽으로 뛰여오는 것이였다. 그에 장난기가 발동한 출납은 동료들보고 누렁이가 ‘서령감’이라고 불러주면 좋아하더라고 했다. 그렇게 그냥 장난으로 해본 소리였는데 후일 누렁이한테 먹거리를 던져줄 때면 사람들 모두 습관처럼 “서령감, 일루 와!”라고 부르게 되였다.   한편 사람들이 부르는 ‘서령감’이 자기가 아닌 누렁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서령감은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고, 이렇게 모욕해도 좋은가? 그런 생각이 들자 그동안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서러운 감정들이 욱 하고 치밀면서 과거 극력 억제해왔던 욕지거리들이 우르르 목구멍으로 튕겨나오는 것이였다. 그리고 누렁이를 노려보는 눈빛에는 보기에도 섬뜩한 독기와 싸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에 사람들은 서령감이 요즘 들어 너무 생소해졌다고, 너무 생소해서 과거 그 공손하고 친절하던 모습들 다 꾸민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했다.  서령감은 누렁이가 한창 단잠에 빠져있을 때, 보일러탱크 문을 열어젖히고 부지깽이로 불을 뒤적거려서는 누렁이 몸에 불꽃이 옮아붙게 한다던가 등 갖은 방법을 다해 누렁이를 괴롭혔다. 그러다 한번은 이글거리는 석탄덩어리가 통채로 누렁이 몸에 떨어지는 바람에 누렁이가 새된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튕겨나가 밤새 낑낑 신음한 적도 있었다. 누렁이 몸에 커다란 화상 자국이 생긴 것을 본 사람들은 또 서령감을 한바탕 비난했지만 그런 비난 따위는 이제 서령감에게 씨도 먹혀들지 않았다. 내 개를 내가 어떻게 하든 너희가 무슨 상관이냐, 무슨 생명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따위 개방구 같은 소린 됐다고 해라는 투였다. 그렇게 서령감은 누렁이 문제에서 자신의 완고불변의 개성을 여실히 과시해보였다. 그러던 하루는 누군가가 개가 그리 싫으면 팔아버리면 그만 아니냐고, 말 못하는 짐승을 그렇게 괴롭혀선 뭐 하느냐고 넌지시 뚱겨주었다.  그 말에 서령감은 크게 깨도되는 바가 있어 힘껏 머리를 끄덕였다. 돌이켜보면 지난 며칠 동안, 누렁이는 서령감에게 정말 악몽 같은 존재였다. 놈 때문에 맘 편히 잘 수 없었을 뿐더러 여러 직원들과의 관계마저 껄끄럽게 되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서령감은 맞은편에 있는 식당을 찾아갔다.  서령감이 누렁이를 팔아버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 모두 서령감에게 그런 제안을 해준 사람을 질책했다. 그에 그 사람은 자기도 얼결에 해본 소린데,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며 이젠 정말 영낙없는 개고기가 되였구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소식을 들은 두주임이 서령감을 찾아가서 누렁이를 팔겠으면 자기한테 팔라고 했다. 그에 서령감이 두주임이 사겠다면 그저 드리겠노라고 하자 두주임은 자기가 사서 그냥 보일러실에서 기를 거라고, 대신 다시는 누렁이를 괴롭히지 말라고 했다.  그에 두주임을 멀거니 바라보고 섰던 서령감은 불현듯 울컥 화가 치밀며 얼굴근육이 심하게 구겨지는가 싶더니 울 때보다 더 심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입귀를 실룩거리며 말했다. “두주임이 가져다 기르겠다면 그냥 드리고 아니면 식당에 팔 겁니더.” 그것은 두주임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바, 참으로 주책머리 없고 귀찮은 령감탱이였다.  “내게 팔지 않을 거면 팔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마시고 내가 팔지 못하게 할 거니까!” 그렇게 한마디 내뱉고 자리를 뜬 두주임은 곧장 식당 사장을 찾아갔다. 식당 사장은 머리가 아주 잘 돌아가는 사람으로 두주임의 비위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자칫 연구소 손님들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해서 서령감이 다시 찾아오자 그는 두주임이 다녀갔다는 얘기를 그대로 전하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 쯤에서 두주임에 대한 울분은 과거 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그렇게 여태 마음속 깊이 억누르고만 있던 울화는 마침내 이글거리는 불길로 타번지기 시작했고 그 불길은 갈수록 점점 세차게 타올랐다.  사실 서령감은 성격이 꽤 거친 사람이였다. 걸핏하면 마누라며 아이들한테 손찌검질 하는가 하면 촌민들하고도 쩍하면 치고 박고 해서 마을 사람들 모두 서령감이라면 멀찌감치 피해다녔다. 지금 심정 같았으면 정말이지, 한바탕 치고 박고 싸우고 싶은 서령감이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때마침 보일러가 고장났다.  몸소 뒤울안에 찾아온 소장이 서령감 보고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지만 서령감은 횡설수설하기만 할 뿐, 반나절이 지나도록 그 명백한 리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초조해난 소장이 당신 뭐 해먹고 사는 인간이냐고 버럭 화를 냈다. 사실 서령감으로서는 정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냥 한잠 자고 일어나 보니 그리 된 걸 어쩌란 말인가? 그런다고 곧이곧대로 한잠 자고 일어났더니 그리 됐더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 그런데 소장한테까지 욕을 얻어먹고 나니 속이 부글거려서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았다. 누르고 눌렀던 울화가 이젠 딸꾹질처럼 목구멍까지 올라와 부글거려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한편 보일러가 고장나면 수리비가 들어야 할 것이였으므로 사실 소장도 화가 날 만도 했다. 다만 소장은 화김에 서령감의 립장을 홀시했던 것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모양, 서령감이 불쑥 내뱉었다.  “그래요, 저 개보다도 못한 인간입니더!” 그 무렵, 서령감의 울분은 극에 달해있었다.  그 날 밤 꿈에 서령감은 바닥 가득 흥건히 고여있는 자기 피를 보았다. 난방기가 이제 막 끝나가고 있던 어느 날 오후, 두주임이 사람 몇명 대동하고 뒤울안으로 왔다. 그 사람들은 측량기구로 여기저기 재보기도 하고 도면도 그리고 하더니 마지막으로 보일러실까지 둘러보는 것이였다. 잠자코 구경만 하다 말고 서령감이 두주임보고 무얼 하는 거냐고 묻자 두주임이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우리도 더 이상 보일러 땔 일 없게 됐시유. 이젠 집중난방을 한답니다.” 비로소 서령감은 보일러 개조란 보일러를 개조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개조해버린다는 뜻이였음을 알 수 있었다. 홀연 무언가가 가슴을 마구 휘저어놓는듯한 느낌과 함께 눈앞이 서리가 내린 것처럼 흐릿해졌다. 그렇게 사람들이 손짓발짓하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노라니 어느 순간 귀가 먹먹해지는가 싶더니 더 이상 귀에 들리는 것도, 눈에 보이는 것도 없었다. 다만 저만치서 신나게 뛰여다니는 누렁이가 어슴푸레 보일 뿐이였다. 그런데 신나게 뛰여다니던 놈이 홀연 이쪽을 돌아보고 씨물씨물 웃는 것이였다! 어라, 저 놈이 시방 웃었어! 서령감은 곧추 식당을 찾아가 식칼과 바줄을 빌려왔다.  그리고 뒤울안에 말뚝 하나 세우고 거기에 쇠갈고리를 걸어놓고 그렇게 자기의 일솜씨를 남김없이 발휘해보일 모든 준비작업을 마쳤다.  그리고 그 날 오후, 뒤울안에서 들려오는 애처로운 개 비명소리와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눈길 속에서 서령감은 목 매달고 껍질을 벗기는 등 일련의 도살과정을 일매지게 마무리했다. 시뻘건 피가 하얀 눈을 빨갛게 물들였고 서령감의 두눈도 몸서리쳐질 정도로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김견 옮김) 출처:2019제1호  
9    미주: 조선문 잡지 주문을 류보한다(칼럼) 댓글:  조회:407  추천:0  2019-07-08
조선문 잡지 주문을 류보한다   미주           요즈음 위챗 모멘트에는 2019년도 조선문 잡지를 주문해볼 것을 독려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나의 위친(위챗친구) 중에는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조선족 문학에 애정을 갖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이들은 누군가의 독촉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서 홍보에 열의를 다하는 것이다. 조선족 문학을 사랑하는 내 마음 또한 이들에 못지 않아 주문광고를 올리는 데는 동참하지만 정작 내 본인이 잡지를 주문할지를 두고서는 류보상태이다.    돈이 아까와 주문을 망설이는 것은 절대 아니다. 1년치 잡지 가격이라고 해도 책 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한국 학술도서 한권 가격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언젠가 조선문 잡지 만드는 일을 하는 동창에게 너희 잡지를 팔아 남는 돈이 있냐고 우스개 소리로 물어본 적이 있다. 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지만 표정이 어두워진 그네의 얼굴빛에 그 답은 씌여져있었다. 쓰잘데기 없이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해주면서도 조선문 잡지를 사보지 않은 지 꽤 되였다.    십여년 전 조문학과를 다니던 학부 시절에는 길거리에 있는 잡지가게에서 조선문 잡지들을 사보았는데 말이다. 그 시절에 겪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내가 내 자신을 잡지가게의 단골고객이라고 자부했던 것과 달리 그 잡지가게의 주인인 한족아주머니는 내가 주로 무슨 잡지를 사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한번은 《장백산》을 달라고 하니, ‘롼허软盒’를 달라는지 아니면 ‘잉허硬盒’를 달라는지 물어봤다.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흡사 빨간 휴지를 줄가 파란 휴지를 줄가 하는 귀신이 등장하는 화장실 괴담 같은 이 시츄에이션을 어떻게 리해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혹시 잡지가 이제는 커버가 다른 두가지 버전으로 출판되는 건가? 머리 속에 커다란 의문부호를 걸고 그것이 무슨 얘기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장백산표 담배를 사려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흡연을 두고서 무조건 불량한 자의 이미지와 련결지어 생각하던 나인지라 내가 어딜 봐서 흡연자인 것 같냐는 항변을 하지 못하고는 담배 말고 잡지를 달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 일이 떠오를 때마다 내가 ‘담배 피는 녀자’로 보이나 하는 고민에 시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깨우침이 찾아왔다. 아, 잡지에 대한 수요가 동명의 담배에 미치지 못하니 판매자 립장에서는 담배가 먼저 떠오를 수 있겠구나 하고.    그렇게 존재감이 없는 조선문 잡지 구매자로 살아가다가 집을 이사하게 되였다. 이사를 한다는 것은 갖고 가지 않고 버려야 할 물건도 정해야 하는 일이였다. 무거운 책짐은 몇박스가 되였고 가족들은 ‘다 본 책’들은 버릴 것을 권했다. 결국 류비가 아두를 들어메치는 것과 같은 착잡한 심정으로 버린 것은 그동안 애지중지 사서 모은 조선문 잡지였다.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지속되여왔다.   취사선택에 있어 단행본 도서들과 달리 잡지는 ‘함부로 던져도 될 책’으로 취급하게 된다. 이러한 ‘편애’의 발생은 잡지는 천성적으로 ‘한번 보며는 그만’인 ‘경전반렬’에 오르지 못하는 인쇄품이라는 편견을 갖게 하는 인쇄물이기 때문이다. ‘일반독자’에 상정하여 잡지의 지위는 대략 이러할 거다. 그러나 나는 명색이 문학연구자이고 조선문 문학작품들을 나의 잠정적 연구텍스트로 간주한다. 그러니 조선문 잡지는 나에게 한없이 소중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조선문 잡지를 주문함으로써 내 미래의 연구를 위한 재테크를 하지 않는 ‘변명’을 해본다면 보관하기가 불편해서이다. 타국에서 박사과정에 다니는 중인지라 중국에서 출판되는 잡지들을 국제택배로 받아본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택배비를 고려할 때 애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이다. 주문해서 고향 집에 모아둘 생각도 해보았지만 내가 향후에 정착할 곳이 어디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잡지들을 다시 옮길 일도 고역일 것 같았다. ‘신중한’ 고민들 끝에 나는 ‘나쁜 실용주의자’로 전락되였고 조선문 잡지들을 주문하지 않았었다.    한술 더 떠서 ‘궤변’을 늘여놓는다면 비록 잡지를 주문하지 않지만 위챗계정에 올라오는 조선문 잡지에 실렸던 글들은 빠짐없이 읽고 즐겨찾기에 추가해둔다. 사는 것보다 읽는 것이 더 유의미하다고 출판시장 발전에는 불리한 ‘어거지’를 도둑질해서라도 책소유에 집착을 보이는 공을기보다는 내가 좀 났네 하는 심정으로 부려보는 바이다. 위챗 인기가 시들해져 어느 날 갑자기 해당 콘텐츠가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가끔씩 든다.    조선문 잡지를 주문하지 않은 탓에 연구텍스트로 보고저 하는 작품이 실린 잡지가 수중에 없어 애달플 때가 종종 있다. 다행히도 출판계통에 종사하는 지인들을 둔 덕분에 구해볼 수 있는 루트를 수시로 ‘개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문 잡지를 구하는 그 길이 수월하지 않은 것이 설령 해당 잡지사라고 해도 출간되였던 모든 잡지들을 빠짐없이 보관할 정도로 보관상태가 좋은 것은 아니였다. 또 구하고저 하는 잡지의 관계자 분들 중에 지인이 없을 때에는 명망 없는 일개 박사생인 나로서 입을 떼기 여간만 힘들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론문을 씀에 있어 가끔 연구자료로 활용하고저 하는 글들 대다수가 근년에 나온 작품이 아닌 2000년대 이전 혹은 초반에 나온 조선문 잡지에 실린 것이다. 해당 시기에 출판된 잡지들은 내가 다니는 한국 대학의 도서관에서 한호도 빠짐없이 서울출판사에 출판된 하드커버를 씌운 영인본으로 보관되여있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조선문 잡지를 구함에 있어 지인들의 신세를 조금이나마 적게 질 수 있으니 마음의 무거움을 덜 수 있었다. 커버에 금빛 글씨까지 박아넣은 도서관의 소장본 잡지들을 볼 때마다 내 미래의 책장에 년도별로 묶은 이러한 형태로 만들어진 조선문 잡지들이 진렬되였으면 하는 욕심을 내게 된다.    ‘신생사물’을 보고 기분이 들떠 조선문 잡지들을 묶음용으로는 출판하지 않냐는 문의를 하기에는 기한에 맞춰 얼마 안되는 인력으로 조선문 잡지를 발간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을 것임을 먼저 떠올려볼 때, 메아리처럼 회음을 기대할 수 없는 혼자말이 될 것 같아 내뱉기를 꺼리게 된다.    잡지를 주문하지 않으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이 참으로 고약한 짓임을 나도 뻔히 잘 안다. 나쁜 사람을 자처한 바 하고는 몇마디 더하고 싶다. 조선족 인구 전체를 잠재적 독자군으로 상정하고 추측을 해보더라도 어마어마하게 큰 도서 소비시장이 형성되기는 어렵다.    경제적 가치 생성 여부만을 따져볼 때 ‘돈값 못’하는 ‘존재’들은 아웃될 것을 권고받게 된다. 그러나 인문학이라고 하는 령역을 두고 경제적인 실용성만을 갖고 재단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조선문 출판물들이 많이 출간되지 못하는 ‘난임’을 앓는 출판구조에서 조선문 잡지들은 그야말로 손이 귀한 집안의 귀하디 귀한 ‘자식’들이다. 미래적 가치를 따져볼 때 문학작품은 후세에 전해져야 할 한 시대의 실존에 대한 기록이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서 잡지들도 데이터 베이스화되고 있다. 책 한권 크기 만한 경량의 태블릿 pc에 어마어마한 량의 책들이 담겨져있고 독자들은 가뿐하게 이를 하나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독서를 즐긴다. 설령 구매기간을 놓친 오래전의 잡지라 하더라도 온라인으로 구매하여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직까지 조선문 잡지에는 전자책으로서의 소비구독방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사를 할 때마다 페기대상 1호로 생각하면서 잡지들을 주문하고 품에 죄다 끌어안기에는 그 잡지들 미래의 거처를 두고 견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 자꾸만 이동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주형태에서는 종이로 된 잡지 보관이 용이하지 않다. 유목민처럼 사는 사람이 어디 나 뿐이랴. 어쩌다 보니 잡지와 나는 상부상조하면서 오손도손 살지 못하게 되였다.   ‘우리’의 긴밀한 관계 구축을 다시 형성하기 위해서는 태블릿 pc에 전자화된 조선문 잡지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날이 빨리 옴으로써 더 이상 종이로 된 잡지를 놓고 보관이 불편하다는 리유로 주문할지 말지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될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곡하게 희망할 뿐이다.    추억을 더듬어보니 조선문 잡지의 데이터 베이스화는 갑자기 떠오른 구상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바라오던 숙원이다.   출처:2019 제1호  
8    신조: 작은 방(단편소설) 댓글:  조회:432  추천:0  2019-07-08
작은 방   신조           문밖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준이는 눈을 떴다. 두터운 흑갈색 카텐과 창문 사이의 얼마 안되는 틈으로 해빛이 꾸역꾸역 방안으로 기여들어오고 있었고 흐릿하던 눈동자의 초점이 점점 모여들면서 방안 정경이 하나 둘 눈망울에 투영되기 시작했다. 준이가 누워있는 2인용 침대 그리고 침대 왼쪽에는 노트북과 갖가지 배달용 전단지가 어지러이 널려있는 작은 책상이 보였고 그 밑으로는 책가방이 걸려있는 걸상 하나가 빠금히 뒤태를 보이고 있었다. 침대 오른쪽에는 나무로 된 량문형의 큼지막한 옷장 하나가 있었으며 그 옆에는 천으로 된 간이옷장 하나가 나무옷장과 출입문 사이에 자리잡고 있어 출입문을 열면 금세 부딪칠 것만 같이 위태해 보였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로도 모자라 이제는 쏴- 하는 물소리까지 고요한 준이의 방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준이의 방과 함께 북쪽에 붙어있는 화장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이다. 그리고 이 소리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아는 준이는 귀찮다는 얼굴로 다시 눈을 감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10평방 남짓한 이 방에 오게 된 지도 벌써 석달여, 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코 짧은 시간도 아니였다. 준이가 살고 있는 집은 원래 남향의 방 2개와 서재용으로도 볼 수 있는 북향의 방 1개를 가지고 있는 3방 1거실의 90평방이 조금 넘는 25층 아빠트의 9층에 위치한 집이였다. 하지만 집주인이 거실을 막아 방을 하나 더 만들다 보니 집은 거실이 없는 4방짜리 아빠트로 바뀌였고 준이는 그중 북향의 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남북 방향으로 되여있는 이 집은 서쪽에 문이 있고 문에 들어서서 오른손 편에 거실을 변형시켜 만든 방에는 동년배 조선족 녀자 두명이, 그리고 바로 그 옆의 작은 방에는 입주한 이래 단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조선족 남자 한명이 살고 있었고 그 옆의 화장실이 달린 큰 방에는 한족 커플이 살고 있었다. 남쪽의 거실이 막힌 데다 북쪽에 유일하게 남은 베란다마저 빨래가 빼곡이 걸려있어 집안은 늘 어두컴컴했다.    조선족 녀자 두명은 늘 아침 8시 쯤에 집을 나가 저녁 7시 쯤에 귀가를 하는 평범하면서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고 조선족 남자는 아침 8시 30분 쯤에 집을 나가 저녁 10시 쯤에 귀가하는 빡센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으며 한족 커플은 저녁 6시 정도에 집을 나가 새벽 2시가 넘어 귀가를 하고는 11시 좌우에 기상하는 결코 평범해보이지 않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석달이 넘는 백수생활이 알려준 집안의 기본정보를 리용하여 준이는 그들과 거의 마주치지 않는 생활을 해왔고 사실상 별로 마주치고 싶지도 않았다.    원래 준이가 살던 집은 여기가 아니였다. 시중심은 아니지만 그동안 준이는 꽤나 괜찮은 지역의 2인1실의 집에서 합숙하면서 나름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녀자친구가 편히 놀러 올 수 있게 혼자 집을 잡고 살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사실 월급의 반 가까이 월세로 나가는 것을 고려하면 그 집도 준이에게는 사치라면 사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녀자친구가 놀러 오면 금요일, 토요일 이틀씩은 준이네에게서 편히 쉬고 갈 수 있다는 것과 회사가 도보로 15분 거리라는 것이 위로 아닌 위로였다.        “미안해, 준이씨.”   열심히 일했던 직원에게 퇴사통보를 해야 하는 상황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회사가 부도가 난 것이 아쉬워서인지 판단이 안되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사장님이 귀퉁이에 김준이라는 이름이 씌여있는 봉투 하나를 내밀었던 것이 석달 전의 일이였다.    그동안 몸이 아파도 이를 악물며 출근을 견지하고 어떻게든 회사에 보탬이 되고저 했던 하루하루를 통하여 준이는 어느 정도 감이 왔다. 이 회사는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준이는 이 회사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벌써 회사를 몇번이나 옮겨다니며 겨우 잡은 기회였다. 단지 돈벌이 수단이 아닌 커리어를 쌓기 위한 미래에 대한 투자였었는데 쥐꼬리 만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시간도 겨우 반년이 고작이였다.    돈봉투를 건네는 사장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회사의 모든 직원이 며칠간 밤을 새면서 준비한 계약이 무산되는 순간 지금의 이 자리는 이미 피할 수 없는 자리가 되여버렸다. 준이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하나 뿐이였다. 이 회사에서의 경력 그리고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 만큼의 시간, 어렵게 잡은 기회였건만 그것도 이젠 여기까지인 것이다. 그래서 준이는 사장님이 부를 때 이 방에 들어오고 싶지 않았다. 벌써 준이 먼저 몇명이 사장실에서 우울한 표정으로 나왔다. 몇 안되는 직원이 벌써 반이 넘게 사장실을 오갔다. 저기에서 어떤 말들이 오갔을지 눈에 선했다. 그럼에도 준이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최소한 너는 남아달라는 말이라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례외는 없었다. 결국 준이는 사장님과 마주앉게 되였고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준이는 자신을 향해 내민 그 봉투에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봉투를 반납하는 대신 조금만 이 회사에 머물게 해달라고 손이야 발이야 빌고 싶었지만 그것마저 욕심이라는 생각에 준이는 저도 몰래 눈물이 났다. 어떻게 통과한 면접인데,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겨우 잡은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이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번 달 급여에 조금 더 넣었어. 알다 싶이 더 이상 회사운영을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아. 이 돈이 얼마나 보탬이 될지 모르지만 하루라도 빨리 안정적인 회사 찾기 바란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준이는 그런 사장님이 야속하기만 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돈이 아니였다. 원하는 것이 돈이였다면 준이는 스쳐갔던 그 몇몇 회사들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 회사에서 받는 월급보다 훨씬 나은 혜택을 보장받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준이는 그 회사들을 과감하게 버리면서 지금의 이 회사를 선택했다. 도무지 맞지 않는 적성에 매일매일을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를 준이는 감당할 수 없었다. 지난 5년 동안 두번의 업종변경과 일곱번의 직장이동을 경험했다.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자신이 좋아할 수 있고 견지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고 싶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힘들게 들어온 회사인데 하필…   “아무런 경험도 없는 저를 받아주시고 가르쳐주셔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그 말을 끝으로 준이는 봉투를 꽈악 움켜쥐고 사장실을 나섰다. 자리에 돌아온 준이는 컴퓨터에 있던 자료들을 하나하나 지워나갔다. 그리고 혹시라도 남았을 자신의 개인정보를 삭제하기 위하여 드라이브 하나하나를 포맷하기 시작했다. 포맷 완료를 기다리면서 준이는 그사이 정이 무척이나 들어버린 사무실 구석구석에 눈길을 주었다. 때가 가득 낀 중고랭장고, 쩍하면 고장이 나 모두를 곤욕에 빠뜨렸던 구식 프린터,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라는 사훈과 함께 계획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벽, “지성이 곧 경쟁력이다”라는 의념하에 조금씩 채워가던 책장, 고물 책상과 의자, 밥상 겸 회의용 탁자였던 거무틱틱한 타원형 회의용 책상 우에 어지러이 널려진 서류들까지… 준이는 지난 반년간의 체취 하나하나가 묻어있는 이 50평방 남짓한 사무실과 서서히 리별을 준비해야만 했다.        문이 두개나 닫혀있는 데도 화장실에서 흘러나오는 쏴- 하는 소리는 도무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한여름이라 땀이 많이 난다고 하지만 아침 출근시간에 샤워를 하는 것도 모자라 공용화장실을 30분 넘게 리용하는 것은 사실 너무한 처사라는 생각이 들 법도 했지만 백수생활을 하는 준이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속되는 물소리와 함께 며칠 전 그 일이 떠오르면서 한창 젊은 나이의 준이 몸에 금세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짜증이 나버린 준이는 베고 있던 베개로 귀를 틀어막으면서 속으로 젠장을 련발했다.        며칠 전 아침이였다. 합숙인들이 집을 비우기 전에는 거의 자신의 방을 나서지 않던 준이가 방을 나서게 된 건 지나치게 부지런한 택배아저씨 때문이였다. 전화소리에 잠을 깬 준이는 대충 옷을 걸쳐입고 까치둥지머리를 손볼 여유도 없이 살금살금 자신의 방에서 나와 1층까지 내려가 택배를 받았다. 엘레베터에서 주민들의 힐끔거리는 눈길을 온몸으로 받으며 준이는 속으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온 택배아저씨와 고장나버린 벨을 저주했다. 빼앗듯이 받아든 택배를 가지고 다시 조용조용 자신의 방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고 준이는 본능적으로 그 자리에 멈춰서버렸다. 그리고 눈길이 문을 연 이가 아닌 그 뒤의 사람에게로 이동해감과 동시에 이른아침의 적막을 산산히 부셔버리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팬티만 입고 있던 녀자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쳐버렸기 때문이다.    두팔로 가슴을 가리며 그대로 주저앉는 녀자를 뒤로 하고 화장실 문을 열었던 녀자가 급히 뛰쳐나오며 문을 거세게 닫았다. 쾅 하는 소리가 또 한번 집안을 뒤흔들었다.    “화장실 앞에서 뭐 하는 거야!”   거침없는 반말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준이가 미처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 녀자의 속사포 같은 욕설이 뒤를 이었다.    “사람이 있는 화장실을 기웃거리다니. 너 변태야? 어? 무슨 이런 미친 놈이 다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생긴 것도 돼지처럼 생겨가지고 감히 이런 변태 짓거리를 하다니. 대체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던 거야! 어?”   “난 그냥 택배…”   그 녀자는 도무지 준이의 말을 들어볼 념을 안하면서 계속해서 듣기 거북한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 쯤 되니 집안에 있던 사람들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되여버렸다. 제일 먼저 그동안 본 적이 없던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왔고 그 뒤를 이어 한족 커플이 나왔지만 그들은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그런지 그냥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물론 자신들의 단잠을 깨웠다는 짜증을 얼굴에 그대로 달고 말이다. 그들의 등장으로 좀처럼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녀자의 욕설이 겨우 멈췄다. 준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서둘러 상황을 설명했다.    “저기요. 저는 다만 택배 받으러 나갔다가 지금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쪽이 생각하는 그런 게 절대 아닙니다.”   “그 말을 지금 나 보고 믿으라고? 뭘로 증명할 건데?”   “금방 누군가 밖에 나갔다 온 건 맞는 것 같은데… 그리고 저번에도 말했지만 아침에 화장실을 너무 오래 쓰는 건 좀 자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소리 때문에 화장실에 있던 녀자들은 듣지 못했지만 방에 있었던 앞방 남자는 문이 여닫히는 소리를 들었는지 조용히 한마디 거들었다. 얼마 전 화장실을 오래 쓰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서 언성이 높았던 적이 있은 건 준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준이는 그 때 방안에서 듣기만 할 뿐 나서지는 않았다. 물론 준이도 불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였다. 갑자기 배가 너무나 아픈데 도무지 비여지지 않는 화장실로 인해 방안 휴지통에서 급한 일을 해결한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이건 별개의 문제였다. 변태라는 락인이 찍히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였다. 조선족 바닥은 거기서 거기였다. 이 집을 벗어난다고 해서 결코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쯤은 준이도 잘 알고 있었다.    “네. 저는 택배를 받아가지고 방으로 가던 길이였습니다. 진짭니다. 갑자기 화장실 문이 확 열려서 너무 놀라서 멈춰섰을 뿐 절대 그쪽이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닙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놀래우려고 했던 건 진짜 아니였는데…”   서둘러 사과까지 한 준이는 조심스럽게 그 녀자의 반응을 살폈다. 한참 씩씩거리던 녀자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가면서 누구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린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언제 한번 걸리기만 해봐. 바로 신고해버릴 테니까.”   쾅 하고 닫히는 문소리와 함께 개자식이라는 소리를 언뜻 들은 것 같았지만 준이는 개의치 않고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가슴이 쿵쿵 뛰였다. 차라리 큰소리를 내면서 나갔다 올걸, 차라리 같이 욕이라도 해줄걸 하는 생각들이 머리 속을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였다. 준이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앞방에 살고 있던 남자까지 출근을 해버리자 집은 또다시 고요함을 되찾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저녁이 되자 녀자들이 어김없이 귀가를 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는지 주방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그녀들이 하는 대화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면서 조용한 준이의 방까지 비집고 들어왔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조심해야 돼. 남자들도 있는 집이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니까.”   “그러게 말야. 아침에 놀란 걸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진정이 안된다니까.”   분명 준이에게 들으라고 하는 날 선 말이였고 준이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준이는 이를 악물고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면 아닌 것이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는 없다. 녀자와 싸워봐야 남는 것도 없다는 생각만 머리 속을 온통 지배했다. 화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정신없이 그 작은 방을 왔다갔다하면서 준이는 하루라도 빨리 이 작은 방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뿐이였다. 꽈악 움켜쥔 주먹에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앞방 남자까지 귀가를 하고 집에는 적막이 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준이는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눈만 감으면 아침의 그 소동이 떠오르면서 그 녀자의 욕설이 귀가를 맴도는 것만 같았다. 이리저리 뒤척이던 준이는 결국 잠자는 것을 포기하고 주방으로 가 랭장고문을 열고 자신의 캔맥주를 모조리 꺼내왔다. 마른 명태도 몇마리 있었지만 한가롭게 그걸 뜯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준이는 자신의 작은 방 책상에 앉자마다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시원한 맥주가 요동을 치며 식도를 지나 텅 빈 위장을 헤집고 다녔다. 그제서야 끓어오르던 화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래. 참자, 참아. 이미 밟아버린 똥 어쩔 수도 없으니까. 하루라도 빨리 직장을 구해 이 방구석을 벗어나야지. 더러워서 원.”   준이는 입속으로 낮게 되뇌이며 부지런히 맥주를 위안에 쑤셔넣었다. 비여가는 캔이 점점 많아질수록 준이도 서서히 취기를 느꼈다. 저녁을 걸러서 그런지 오늘따라 더욱 빨리 취하는 것 같았다. 준이는 자신의 작은 방에 꼭 어울리는 하나 밖에 없는 작은 창을 통해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정이 다되였는데도 길에는 아직도 적지 않은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경주하듯이 달리고 있었다. 저들은 누군가가 기다리기에 저리도 분주하게 달리는 거겠지,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보냈기에 돌아가는 길이 저리도 당당한 거겠지… 준이는 갑자기 녀자친구가 보고 싶었다. 그녀의 그 작은 품에 안겨 괜찮다는 말 한마디만 들어도 이렇게 힘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술기운 때문이였을가? 준이는 갑자기 녀자친구를 안고 싶어졌다. 몸은 점점 달아올랐고 도저히 주체가 되지 않았다. 결국 준이는 노트북을 열어 성인영화를 틀어놓고 마스터베이션을 했다. 홀로인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끔 있는 일이였고 또 익숙한 일이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떠오른 얼굴은 녀자친구가 아닌 아침에 보았던 그 녀자들이였다. 뽀얀 살결과 탐스러운 가슴, 잘록한 허리와 미끈한 다리, 손바닥 만한 팬티에 은근히 비치던 검은 숲 그리고 자신을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붓던 녀자의 반팔티에 가려졌으면서도 은근히 자신의 존재를 도드라지게 알리던 볼록한 돌기 두개… 온몸 구석구석을 휘감아치던 희열이 절정을 지나 서서히 잦아들 때까지도 준이의 머리 속에는 온통 그녀들 생각 뿐이였다. 하지만 작은 방에 또다시 적막이 찾아오자 준이는 그런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그녀의 욕설에 화조차 내지 못했던 자신이 한심했으며 화장실 사용 문제로 당당하게 말하던 앞방 남자와는 달리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과 비교되면서 더더욱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먹고 살기 힘든 이 와중에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욕망에 몸부림치는 이 배알 없는 몸뚱이도 저주스러웠다. 준이는 결국 그 날 밤 모든 맥주를 마셔버리고는 치우지도 못한 채 침대에 쓰러졌다.        직장을 잃은 첫 몇주는 그나마 괜찮았다. 이곳저곳 리력서도 보내고 그동안 시간이 없어 밀렸던 애니메이션도 밤을 새우면서 보았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녀자친구와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이였다. 준이는 포서에, 녀자친구는 포동에 살고 있었다. 거리가 먼 탓에 주말에만 겨우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모자라 그동안 주말마저 반납하고 일한 탓에 만나기는 더더욱 어려워졌다. 매일이다 싶이 하던 전화는 한주일에 한번으로 바뀌였고 주말마다 하던 데이트도 한달에 한두번으로 줄어들었다. 출근이라는 좋은 핑게거리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그렇게 힘들게 관계를 유지해왔었다. 그런 준이였기에 녀자친구와 수시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즐거운 일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것 역시 쉽지 않았다. 방 하나 달랑 있는 집에서 친구랑 같이 살고 있었기에 준이는 그녀의 집에서 머무를 수가 없었고 시간이 늦어지면 호텔을 잡거나 집으로 돌아오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수입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호텔에 자주 드나드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고 그녀와 데이트를 하고 두시간이 넘는 시간을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것 역시 고역이였다. 편해지면 자주 만날 수 있을 거라던 생각은 허황된 상상일 뿐이였다.    포동에서 회사를 구해 그리로 이사를 가는 것, 그것이 준이의 다음 목표로 되였다.    전공은 별로였지만 준이가 졸업한 대학은 번듯했다. 다녔던 대학이 있던 도시에서는 그래도 나름 알아주는 학교였고 그 학교 졸업생이라는 리유 하나만으로도 어느 정도 대우를 받았었다. 남자가 어찌 좁디좁은 웅뎅이에서 살 수 있냐며 더욱 큰 도시에서 보란듯이 성공하겠다며 다니던 회사를 뒤로하고 객기를 부리면서 찾아왔던 이곳, 상해는 결국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름 중점대학이라는 곳을 졸업했지만 이 도시에는 그보다 뛰여난 학교들이 수두룩했고 졸업장 하나만을 믿고 뛰여들기에는 상해라는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피 튀기는 치렬한 경쟁, 졸업을 했던 도시에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 돌멩이를 던져서 맞히는 사람들 중 십중팔구는 명문대 졸업생이였고 그중 절반은 류학파였다. 작은 도시의 중점대학에, 거기에 보잘 것 없는 전공으로는 그야말로 명함을 내밀기도 쑥스러울 지경이였다.    준이는 거의 매일이다 싶이 모든 구직사이트를 뒤지면서 관련 업종이 보이는 족족 리력서를 넣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이 보낸 리력서가 통과된 곳은 겨우 세곳, 그마저도 두곳은 준이의 관련 경력이 별로 없어 어려울 것 같다는 뉘앙스를 면접을 보는 내내 은근슬쩍 흘려댔다. 마지막으로 면접을 봤던 회사는 경력을 보지 않는다고 하여 은근히 기대를 하고 갔지만 정작 문제가 된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빈번하게 바꿔온 직장, 이런 저런 리유를 댔지만 면접관의 얼굴은 굳어있었으며 별로 볼 것도 없는 리력서를 신경질적으로 번져가면서 몇번이고 보고 또 봤다. 준이에게는 별로 눈길도 안 주면서 말이다. 면접실을 나오는 순간까지도 면접 볼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인사치례로 하긴 했지만 준이의 속은 편치 않았다. 한편으로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잘못하면 직장을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준이는 머리를 휘저어 불길함을 쫓아내려고 애썼다.        “어째 배가 더 나온 것 같다. 오빠 요즘 전혀 운동 안하지?”   오랜만에 놀러 온 녀자친구가 준이의 아래우를 훑어보며 눈살을 찌프렸다. 그런 그녀에게 준이는 허허 웃어버렸다.    “좀 바빴어. 나도 나름 먹고 살려고 열심히 하다 보니.”   “아무리 바빠도 운동 좀 해. 출근할 때야 바쁘니까 어쩔 수 없다지만 요새는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여유를 낼 수 있잖아.”   “알았어. 헬스장은 좀 그러니까 가끔 나가서 뛸게.”   준이의 말에 녀자친구는 활짝 웃어보이며 아직까지 걷어내지 않은 두터운 카텐을 열어젖히고는 준이의 침대에 다소곳이 앉았다. 그러면서 눈길은 책상 우에 어지러이 널려있는 배달전단지에 가 멈췄다.    “귀찮아도 집에서 밥 좀 해먹지. 맨날 시켜먹으면 몸에 안 좋잖아.”   “나중에 같이 살게 되면 너가 해주는 밥 먹으면 되지. 그 때까지는 참을란다.”   피식 웃으며 언제나 그리 될지 하면서 넉두리를 하던 그녀는 그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얘기해주었고 준이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련애한 지도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작은 키에 평범한 외모, 통통한 몸매를 가진 그녀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또 뭐든 열심히 하는 온천한 스타일이였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잘 몰랐는데 그녀와 함께 지내다 보니 그녀의 진가가 서서히 빛을 발했다. 자신 스스로도 열심히 사는 사람이였지만 자신의 주위 사람들한테도 그 열정을 나눠줄 줄 아는 녀자였다. 준이는 그런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왜냐하면 대화의 끝은 늘 준이가 외면하고 싶은 화제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오빠. 이젠 아무 일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냐? 일을 그만둔 지 벌써 반년이 돼가. 나 너무 걱정돼. ”   “네 눈에는 내가 놀고 있는 것으로 보여? 나도 나름 일자리 구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데? 안 그래도 일이 안 풀려서 짜증 나는데 볼 때마다 꼭 이래야 돼?”   듣기 좋은 말도 세번 들으면 질리는 법이다. 하물며 자신의 아픈 부분을 만날 때마다 얘기하는 녀자친구의 말이 이쁘게 들릴 리가 만무했다. 조곤조곤한 그녀의 말투에 결국 준이는 폭발하고야 말았다. 그런 그에게 녀자친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빠,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야? 나는 그냥 오빠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잖아.”   “그걸 누가 몰라서 그래? 한다고, 하고 있잖아.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너랑 같이 살려고 포동 쪽에 일자리도 찾고 있어. 그런데 잘 안되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오빠 지금 그게 말이나 돼? 아직도 하고 싶은 일 타령이야? 오빠 그러다 진짜 길 바닥에 나앉을 수 있다고. 일단 아무 일이나 하면서 생활하는 게 우선 아니야? 일단 정기적인 수입이라도 있어야 오빠가 하고 싶은 일을 구하든 말든 할 거 아니냐구?”   “수입은 걱정 마. 안 그래도 요즘 아르바이트로 번역일을 구해놨어. 일을 마치면 적어도 2만원은 받을 수 있어. 그 정도면 한동안 버틸 수 있으니 괜찮을 거야.”   하지만 준이의 말에 녀자친구는 전혀 수긍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대화를 하는 내내 작은 한숨을 내쉬곤 했다.    “하, 오빠, 진짜… 그건 말 그대로 아르바이트야. 오빠가 무슨 프리랜서야? 그런 불안정한 거로는 안된다니까.”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넌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내가 남이야? 그건 그렇고. 저번에 내가 리력서 보내보라는 데는 보냈어?”   준이는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여버렸다. 영어 6급, 관련 직종 경력 최소 2년… 준이가 유일하게 한국말을 류창하게 할 수 있는 조선족이라는 것 외에는 회사가 원하는 자격 중 어느 하나 부합되는 것이 없었다. 눈빛을 피하는 준이의 모습을 보자마자 녀자친구가 채근을 시작했다.    “설마 진짜 안 보낸 거야? 대체 왜 그러는데?”   “얘기했잖아. 거기는 조건이…”   “꼭 그런 것이 아니래두 그러네 진짜. 그리고 오빠 경력으로는 웬만한 회사는 조건 만족시키기 어려워. 되든 말든 일단 리력서라도 넣어보라니까.”   “됐다. 그냥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넌 신경 꺼!”   “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래? 맨날 오빠 걱정하는 내 생각은 안하는 거야?”   “한번으로 끝내자. 어차피 얘기 길어져봤자 답이 없는 건 너도 알잖아.”   준이는 마주보고 있던 그녀를 외면한 채 창문가로 다가가 창문을 확 열어젖히고는 담배 한대를 빼여물었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준이식 의사표현이였다. 그걸 모를 녀자친구도 아니였다. 결국 녀자친구는 그 길로 준이의 작은 방을 나가버렸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오랜만에 왔는데 자고 가라는 얘기를 준이는 차마 입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돌아선 등뒤로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따각거리는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이어 쾅 하는 문소리에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홀연 가슴에서 무언가 새나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작은 방에 언제는 홀로가 아니였던 것처럼 갑자기 허전함이 찾아왔다. 그렇게 작았던 방이 오늘따라 어쩐지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준이는 한참이나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요즘 들어 준이의 일과는 단순했다. 잠에서 깨여나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다양한 구직사이트를 훑으며 리력서를 넣는 일과 이젠 떨어질 대로 떨어져 기사회생할 가망조차 보이지 않는 자신의 주식과 펀드상황을 살피는 일과 길어질 대로 길어져버린 하루하루를 한숨으로 흘려보내는 일이였다. 그나마 번역일이라도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이 아직 준이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였다. 며칠 전 석달치 월세인 5000이 넘는 거금이 통장을 빠져나갔다. 백수가 된 지 반년, 드디여 준이의 통장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름 아껴쓴다고 해도 다달이 빠져나가는 식비와 생활비는 도저히 줄일래야 줄일 수가 없었다. 거기다 술과 담배값까지 소소하게 나가다 보니 얼마 안되는 잔고가 결국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준이는 녀자친구와 가끔 통화를 할 뿐 만나자는 얘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호텔비는 고사하고 데이트 비용까지 줄여야 했던 준이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였다. 그렇다고 부모님한테 손을 벌리거나 그녀한테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았다. 차라리 안 만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준이는 지금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번역비가 들어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남은 돈으로 그 때까지만 잘 나눠쓰면 또 반년은 버틸 수가 있다, 그 사이에 일자리를 구하면 된다. 준이의 머리 속에는 온통 그 생각 뿐이였다.       라면 하나를 끓여먹고 또다시 일을 시작하려던 순간 전화가 울렸다. 혹시 하는 생각에 급히 휴대폰을 집어들었지만 기다리던 면접전화가 아닌 친구 호석이의 이름이 액정에 찍혀있었다. 얼굴을 찡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던 준이는 결국 전화를 받았다.    “응, 호석아. 잘 지내고 있지?”   “요! 브로. 나야 늘 잘 지내고 있지. 그런데 우리 브로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나야 늘 그렇지. 한동안 잠잠하더니 무슨 일이냐?”   “육아에 바빠 도통 시간이 나야 말이지.”   뭐가 그리도 신이 나는지 호석이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육아?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든 준이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설마 아니겠지를 속으로 되뇌였지만 설마는 역시나 사람을 잡았다. 호석이네 공주님이 다음주 토요일에 첫돌 생일을 쇤다는 얘기를 전하면서 꼭 오라는 얘기를 몇번이나 강조했다. 축의금 같은 건 필요없으니 그냥 오면 된다, 그래도 아이의 첫돌 생일인데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말에 준이는 어쩔 수 없이 그러마 하고 통화를 끝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지는 못할망정 호석이의 그 한마디는 웃는 얼굴로 돌멩이를 쥐여준 격이 되여버렸다. 준이는 한숨을 내쉬면서 휴대폰을 들어 통장 잔고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한편으로는 머리 속으로 돌잔치 축의금을 내면 번역비가 들어올 때까지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어느 정도인지 빠른 속도로 계산해봤다. 답이 없었다. 입에서 또다시 긴 한숨이 새여나왔다. 호석이는 몇 안되는 친구였다. 그리고 상해에 처음 왔을 때 물심량면으로 준이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그런 호석이에게 그 날 일이 있다고 참여가 힘들다는 얘기를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일이 없이 집에서 놀고 있는 것을 빤히 알고 있기에 축의금 같은 건 필요없다고 얘기를 한 것일 테지만 준이는 그런 호석이가 야속하기만 했다. 그런 자리에 빈손으로 가기에는 준이의 그 얄팍한 자존심이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이는 라면그릇도 치우지 않은 채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불쌍한 머리칼을 쥐여뜯었다. 아직까지 쳐져있던 카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쩐지 작은 방이 더욱 어두워지는 것만 같았다.       무정한 시간은 단 1분 1초도 기다려주지 않고 느긋하게 흘러갔고 결국 호석이네 공주님 첫돌 생일날이 되였다. 느긋하게 잠에서 깬 준이도 슬슬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집을 나서는 준이의 기분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사람 죽어라는 법은 없는지 다행히 주말에 통역일이 생기는 바람에 1600원이라는 생각지 못한 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 준이는 오랜만에 사우나에 가서 묵은 때도 벗겨냈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발걸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물론 그건 준이만의 생각이였다. 오랜만에 찾아 입은 셔츠는 불어날 대로 불어난 준이의 몸을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금방이라도 터질듯 빵빵하고 셔츠가 벌려지지 않도록 불안불안하게 잡고 있는 단추들은 위태로워보이기만 했다.    “살을 빼기는 빼야겠구나.”   준이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여나왔다. 어제 저녁 오랜만에 올라선 체중계를 보면서 준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173cm의 준이가 어느새 110키로가 넘어갔다는 것은 스스로도 몰랐다. 날씬하지는 않았어도 비게가 출렁이지는 않았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상황이 이렇게 되여있었다. 한달 가까이 밤 늦게까지 일하면서 뭘 자꾸 주어먹었더니 그것이 모조리 살로 갔나 보다. 물론 그동안 출근을 하면서 잦아진 야근 때문이 더욱 컸겠지만 준이는 그것마저 의식하지 못했다. 운동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동안은 말로만 한다한다 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조차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자각했기 때문이다.    식장에 도착할 때 즈음 준이는 땀으로 샤워를 한 것만 같았고 어느새 속옷도 축축히 젖은 것 같았다. 뻐스를 타고 왔기에 별로 걷지도 않았는데 아무리 날씨가 무덥다고 해도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식장의 1층 로비에서 한참이나 땀을 들이고서야 준이는 식장으로 이동했다.    돌잔치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해주었고 준이도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몇달 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섭취했다는 포만감이였다. 집으로 들어가 또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술은 자제를 했던 터라 오히려 음식을 더 많이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돌잔치가 마무리되자마자 귀가를 하려던 준이를 친구들이 잡았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저녁까지 신나게 달리자. 주말인데 급히 들어갈 필요는 없지?”   “그래. 어차피 노래방도 잡아놨으니 오랜만에 한곡 뽑아야지?”   호석이까지 만류하고 나섰고 다른 친구들은 준이가 백수가 된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런 호석이에게 준이는 왠지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준이도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인지 그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버렸다. 오케이 싸인을 보내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대 태우고 있는데 익숙한 전화벨이 울렸다. 녀자친구만을 위해 설정한 벨소리, 반가운 마음에 준이는 얼른 통화버튼을 눌렀다.   “오빠 어디야? 지금 좀 만나.”   “응. 지금 친구 딸아이 돌잔치에 와있어. 오후에 오랜만에 애들이랑 어울리기로 했는데 급한 일이야? 저녁에 보면 안될가?”   “괜찮아. 잠간이면 돼.”   잠간이라는 말에 준이는 친구들에게 량해를 구하고 부랴부랴 그녀를 만나러 달려갔다. 그리고 둘의 만남은 그녀의 말대로 진짜 너무나도 잠간이였다. 커피숍에 앉아 아직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녀자친구는 리별을 고했고 커피가 나왔을 때에는 녀자친구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하지만 준이는 아이스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모조리 녹고 플라스틱컵에 맺혔던 물방울들이 모두 사라지도록 오래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깊은 신음과 함께 무거운 머리를 든 준이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참이나 앉아있다가 겨우 이불 속에서 빠져나왔다. 밤새 얼마나 마셔댔는지 그리고 또 언제 집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으나 아직도 하늘땅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아 준이는 오만상을 찡그리면서 엉금엉금 정수기로 기여가 물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오늘따라 비게가 출렁이는 몸뚱아리가 한결 더 무겁게 느껴졌다.    두터운 흑갈색 카텐 사이로 빛이 꾸물꾸물 기여들어오고는 있었지만 아직도 방안은 어둠이 떡진 준이의 머리칼 만큼이나 두텁게 깔려있었다. 물을 마시고 벽에 기대 울렁거리는 속을 겨우 달랜 준이는 벽을 짚어가면서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바지를 내리려다가 그대로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변기를 부여잡고 토악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토악질을 해대도 어제 저녁의 한심했던, 지금 현재 가장 버리고 싶은 그 기억들은 결코 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비여지는 위 속에까지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들이 차곡차곡 들어차는 것 같아 준이는 변기를 잡고 있던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부둥켜안았다.    눈물이 났다. 토악질에 쓰라린 비강 때문인지 아니면 이 령혼을 점점 잠식해가는 괴로운 기억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눈물이 났다. 취기에 사라졌다고 믿었던 어제 저녁의 일들이 꾸역꾸역 밀려와 준이의 목을 조여왔다. 준이는 더 이상 토가 나오지 않는 그 입을 통하여 새여나오려는 울음소리를 입을 앙다물고 견뎌냈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큰 축복 중 하나가 바로 망각이라고 했다. 그 어떤 괴로운 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농도가 희석되여 결국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을 수 있으니 말이다. 준이는 할 수만 있다면 불도 켜지 않은 이 어두컴컴한 화장실에서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었다. 지금 이 찢어질듯이 아픈 기억도, 물밀듯이 밀려드는 후회도 모두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그리 되도록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상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지는 그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준이의 몸뚱아리가 먼저 신호를 보내왔다. 안 그래도 팽창할 대로 팽창해졌던 오줌보는 쭈그리고 앉은 덕분에 아예 터지기 일보 직전이였고 눈물이 흘러나오는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비상을 보내는 뇨의는 그의 슬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우기 이 화장실은 준이 혼자만이 사용하는 공간도 아니였다. 결국 준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먹으로 닦아내며 화장실 청소까지 마치고서야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머리는 여전히 어지러웠고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겁기 그지없었으며 속은 쓰리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살짝 들려진 카텐을 정리하러 가는 그 짧은 순간마저도 준이에게는 크나큰 고역이였다. 카텐 사이를 비집고 힘겹게 흘러들어오던 빛 한줄기마저 차단되니 순간 방을 가득 채운 어둠의 무게가 배는 되여버린듯 싶었다. 결국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준이는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뉘였다. 적막의 밀도마저 높아져버렸는지 유일하게 슬픔을 흘려주던 눈물샘마저 막혀버렸다. 이 작은 공간은 시간마저 멈춰버린듯했다. 준이는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대도시 상해에 온 지도 어언 5년차, 준이는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현실은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지난 5년 동안 두번의 업종변경과 일곱번의 직장이동은 조금씩 준이를 스스로 하고 싶어하는 일에 가까이갈 수 있도록 해주었고 넘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급여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운명의 녀신은 더 이상 그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고 마지막 직장이 부도가 나면서 출근한 지 반년 만에 또다시 직장을 잃고 이사까지 한 준이에게 지난 4개월 동안 그 어떠한 회사도 단단히 닫혀있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쓰린 속을 달래며 겨우 눈을 뜬 준이는 침대에 누운 채로 손을 뻗어 휴대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하였다. 오전 11시 11분, 휴대폰 시계의 수자가 모두 같은 수자로 보여진다면 누군가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과연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누군가 자신을 그리워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하면서 준이는 힘없이 휴대폰을 제자리에 다시 돌려놓았다. 그동안 면접통지 한번 없이 집을 사라느니, 영어교육 학원이니, 거기에 잘못 걸려온 전화까지 빼면 준이의 휴대폰은 그야말로 스마트한 시계에 불과했다. 가끔씩 술 한잔 하자던 친구들도 요즘은 련락이 뜸해졌고 잘 지내냐는 안부 한번 없는 위챗에는 무음으로 해놓은 여러가지 모임들의 메시지 수자만 멈출 줄 모르고 증가하고 있었다.    맞은편 방에 살고 있는 커플이 점심을 하고 있는지 향기로운 냄새가 문틈을 스멀스멀 비집고 들어왔다. 한참 전에 한 토악질 때문인지 머리가 아픈 와중에도 준이는 시장함을 느꼈다. 주방에는 엄연히 준이만의 공간이 배정되였지만 거기에는 가끔씩 준이한테 들리던 녀자친구가 밥을 해준다고 사들였던 식기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먼지만 먹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준이는 밥을 할 수 있는 그 어떤 재료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준이는 자신의 비대한 몸을 겨우 일으켜 책상으로 다가가 어지러이 널려있는 음식물 배달전단지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며 해장국을 배달해줄 조선족 식당을 찾아 해장국을 시키고는 컴퓨터를 켰다. 지금 이 상황에서 컴퓨터를 켜봐야 일을 할 수는 없어도 그거라도 켜지 않는다면 완벽한 혼자라는 사실에 더욱 서글퍼질 것이 자명했다. 아무 소리라도 이 어두컴컴한 작은 방을 메워야만 했다. 평소에 즐겨보던 한국의 예능프로그램을 틀어놓았지만 준이는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방청객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지금의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아서 오히려 기분이 더욱 다운되였다.    해장국 한그릇, 밥 두도시락, 서비스로 온 깍두기 몇점, 이것이 준이의 점심식사였다. 준이는 아무 드라마나 하나 틀어놓고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밥을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에어컨을 틀어놓았지만 그의 몸은 계속하여 땀방울을 쏟아냈고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니 겨우 속이 풀리기 시작했다. 배가 불러오자 준이는 순간 편안함을 느꼈고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밥 한그릇이 슬픔으로 차고 넘쳤던 마음을 위로해서가 절대 아니였다. 오히려 그것은 어제 저녁의 그 곤혹을 치르고도 변함없이 허기를 느끼는 배알 없는 자신의 몸뚱이 때문이였고 녀자친구로부터 받은 질책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였으며 구제불능의 자신에 대한 끝없는 패배감 때문이였다.    실컷 울고 났더니 어제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커피숍으로 들어오던 그녀의 싸늘한 눈빛은 평소에 익숙했던 그녀의 것이 아니였다. 순간 불안감이 준이를 두텁게 감쌌다. 잘 지냈냐는 안부 말에도 아무런 대꾸 없이 조용히 앉아만 있던,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훑었던 그녀의 그 아름다운 붉은 입술 사이로 헤여지자는 말이 튀여나오는 순간 준이의 령혼은 나락으로 떨어지는듯하였다. 지금의 준이에게 그녀의 리별선고는 마치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준이는 묻고 싶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었냐고, 그동안의 추억이 소중하지 않았었냐고, 함께 미래를 꿈꾸지 않았었냐고, 지금 빈털터리여서 리별을 고하는 것이냐고, 너한테 나는 겨우 이 정도의 사람이였느냐고… 하지만 준이는 그 말들을 결코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자비감이 아닌,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입술에 닿았던 그녀의 그 아름다운 입술에서 긍정을 얘기할가봐 오는 두려움 때문이였다.    모든 감정을 무너지는 억장 속에 감춘 준이의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튀여나왔다. 나와 헤여지려는 리유가 나의 뚱뚱함 때문이냐고. 어쩌면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비참함을 감추려는 준이의 마지막 절규였을지도 몰랐다.    그 말을 하던 순간 준이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올라 겨우겨우 내뱉은 그 한마디는 결국 울먹임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되돌아온 그녀의 대답에 준이는 그녀에게 한번만 용서해달라는, 앞으로는 진짜 잘하겠다는, 제발 자신을 떠나지 말아달라는 애원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결코 뚱뚱한 오빠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야. 다만 자신의 뚱뚱함을 비관으로 일관하는 자신감 없는 오빠가 싫을 뿐이고 자신의 뚱뚱함을 혐오하면서도 그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게으른 오빠가 싫을 뿐이고 날씬함을 동경하면서도 도전조차 하지 못하는 겁쟁이 오빠가 싫을 뿐이야.”   일정한 속도로 높낮이 없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던 그녀의 리별에 대한 리유, 노트에 적어 달달 외우고 나온 것이 아니였나 의심이 갈 정도로 조리정연한 그녀의 말은 결코 즉흥적으로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했다. 너무나도 비참했다. 그 어떤 반박도 하지 못했던 자신이 너무나도 비참했고 좀처럼 곁을 주지 않던 녀자친구로 인해 끓어오르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성인영화를 틀어놓고 그 날 아침 보았던 이웃 녀자의 뽀얀 젖가슴을 상상하며 마스터베이션을 했던 그 날 밤보다도 더욱 비참했다.    또다시 눈물이 흘러나왔다. 얼마나 울었을가? 실컷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흘러나올 눈물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지칠 대로 지친 준이는 한결 편해져버린 마음으로 어제 저녁 그녀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자신감, 노력, 겁쟁이… 처음 상해에 왔을 때만 해도 이러한 단어는 자신의 사전에는 없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위해 미친듯이 뛰였던 추진력과 실수는 단지 경험일 뿐이라는 패기는 준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엔진과도 같았다. 준이는 멈출 줄 몰랐고 반복되는 야근에 야식으로 인해 뚱뚱해져가는 몸매와 떨어져가는 체력을 위하여 평소에는 시도조차 안했었던 산책을 시작했고 스스로 자신을 가꾸려는 시도도 했었다. 그 때의 자신은 그랬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지금의 자신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은 명백한 루저였다.    마음이 차분해지니 그녀의 리별통보 역시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어쩌면 그녀는 일찍부터 조금씩 조금씩 준이와의 리별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전화를 하면 예전처럼 따듯하게 대화를 이어나간 것이 아니라 일이 바쁘다든지 아니면 졸리다든지 하면서 서둘러 대화를 끝냈고 만나자고 하면 몸이 안 좋다든지 친구가 놀러 왔다면서 만남을 피해왔었다. 몇 안되는 자신의 물건들을 하나 둘 챙겨가거나 실수라는 리유로 준이가 주었던 집의 열쇠를 두고 가기도 했다. 번호를 바꾼다는 리유로 준이와의 커플료금제 서비스를 끊었을 때 이미 깨달았어야 했다. 아니, 준이가 사준 옷과 액세서리가 보이지 않았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그리고 늘 바르던 향수가 바뀌였을 때, 무언가 결단을 할 때면 늘 횡액을 당해야만 했던 긴 생머리가 짧아졌을 때, 어머니가 늘 건강하시라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너희들 무슨 일이 있냐고 자신을 다그치던 그 모든 순간 알았어야 했다. 그녀는 이미 님이라고 부르기에는 점 하나가 더 붙어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눈을 감고, 귀를 막은 대가 치고는 너무나도 컸다. 그 날 밤 준이는 자신의 작은 방에 꼭 어울리는 그 작은 창문가에 서서 고요히 잠들어버린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손가락을 꼽아가며 찾고 또 찾았다.        아무리 슬프고 아파도 시간은 알아서 흘러갔다. 너무나도 비참하고 슬퍼 9층의 단칸 방 그 작은 창을 통해 확 뛰여내릴가 하는 생각을 했던 시간도, 밥은 잘 먹고 있냐는 어머니의 따듯한 말 한마디에 통화를 끝내고 눈물을 흘렸던 시간도, 집을 사라는 부동산의 광고전화에 처음으로 욕설을 퍼붓고는 바보 같이 가슴 졸였던 조마조마했던 시간도 어느덧 모두 흘러간 시간이 되여버렸다. 준이는 매일매일 잠자는 시간과 먹고 싸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미친 사람처럼 번역일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마감일 2주 전에 일을 마무리하는 결과를 낳았다. 준이는 오랜만에 보람을 느꼈다. 지난번 통역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 주 주중에 또다시 통역을 나가게 된 것도 조금의 여유를 만들어주었다. 친구의 공주님 돌잔치에 내여놓을 축의금 500원에 똥줄이 바짝바짝 탔던 시간은 어느덧 희미해져갔다.    준이는 오랜만에 외출을 준비했다. 돌잔치에서 만났던 또 다른 친구의 권유로 바드민톤을 하러 가려는 것이다. 일도 마무리했고 준이도 운동의 필요성을 느꼈기에 오늘의 약속을 펑크낼 생각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물론 다음 주와 다다음 주에 들어오게 될 돈들이 준이의 망설임을 깨끗이 없애준 것도 한몫 했지만 말이다.    친구와 함께 들어간 바드민톤 구장은 동네 중학교의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준이는 구장에서 확 뿜어져나오는 열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기합성과 함께 흘러나오는 투지도 있었겠지만 문자 그대로 구장은 엄청나게 더웠다. 한여름이라 밖의 날씨도 무더웠는데 구장은 그보다 더했다. 준이는 순간 저번에 갔던 사우나가 떠올랐다. 이것이 정녕 사람한테서 뿜어져나오는 열량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에 놀라웠고 이렇게 더운 곳에서 저렇게 즐겁게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이 준이에게는 신세계나 다름이 없었다.    바드민톤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고향에 있을 때 길가에서 친구들이랑 가끔 해봤을 때는 몰랐는데 정작 해보니 잘 맞추지도 못했고 멀리까지 콕을 날리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지경이였다. 결국 준이는 15분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포기를 선언했다. 숨은 턱끝까지 차올랐고 요동치는 심장은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여나올 것 같았다.    “어때? 생각보다 쉽지 않지? 이거 은근 운동 된다니까. ”   맨땅에 축 늘어져있는 준이에게로 다가와 큭큭거리면서 웃는 친구에게 말 한마디 할 수 없을 지경으로 숨을 헐떡이던 준이는 그만 가보라는 손시늉을 하고는 열심히 반복 동작을 련습하는 사람들을 존경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자신이 이렇게도 나약한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한참을 쉬고 난 준이는 코트가 비자 다시 도전을 했다. 몇번이고 쉬고 재도전하기를 반복한 준이는 활동이 끝날 즈음에는 완전 녹초가 되여버렸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동공은 풀려버렸다.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 속으로는 이걸 계속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까지 들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땀을 듬뿍 쏟아내서 그런지 가슴만은 후련했다.        집으로 돌아와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겨우 달래며 샤워를 마친 준이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준이가 깬 것은 밝음보다는 아직 어둠이 좀더 많은 새벽이였다. 몸 구석구석이 쑤셔났지만 준이는 씨익 웃을 수 있었다.    준이는 참으로 오랜만에 아침산책을 나왔다. 어제 무리한 운동을 했으니 자기 전에 찜질이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러지를 못했으니 이렇게라도 근육을 풀어주면  근육통이 줄어들 것이라는 걸 준이도 잘 알고 있었다. 산책을 하는 내내 준이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운동을 했다는 희열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것이 준이의 가슴을 설레게 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신입이라고 준이에게 이것저것 얘기해주던 동호회 회원들과의 만남도 너무나 신선했다. 준이는 그 때 자신의 가슴을 뛰게 했던 대화들을 다시 떠올렸다.    “바드민톤은 처음이라고 하시던데 생각보다 빨리 배우시네요.”   “네. 맞아요. 배운 걸 금방 금방 소화하시고. 혹시 다른 데서 하다 오신 것 아니예요?”   여기저기에서 듣기 좋은 얘기들이 들려왔다.    “처음 맞아요. 사실 저도 왕년에는 운동 좀 했는데 보다 싶이 지금 요 모양 요 꼴이라 너무 힘드네요.”   준이는 머쓱하게 웃어버렸다. 누군가의 칭찬도 오랜만이라 살짝 어색하기도 했다.   “하다 보면 살은 빠지게 돼있어요. 이거 운동량 생각보다 많거든요.”   “네. 여기 다이어트 성공하신 분들 꽤 돼요. 그리고 힘도 좋으시니 금방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능성이 보여요.”   준이는 자신의 비대한 몸을 가리키면서 이 거대한 몸뚱아리를 지탱해나가는데 그 정도 힘도 없다면 그거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힘을 얻은 대신 민첩함과 지구력을 잃었다는 말 한마디로 주위 사람들을 온통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저들의 웃음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준이는 좋았다. 가능성이 보여요라니, 이 얼마 만에 듣는 희망찬 단어란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준이의 입에서 저도 몰래 웃음이 터져나왔다. 산책하는 와중에 팔을 주무르고 어깨를 휘휘 돌리던 준이는 내친 김에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빠트단지 둘레에 나있는 길을 반도 뛰지 못하고 준이는 다시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뛰기에는 아직 무리인듯 싶었다.   그동안 아무런 변화도 없던 준이의 일상에 바드민톤이라는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갑자기 변한 것은 아니였다. 준이는 여전히 찾아주는 통,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기회만 되면 이곳저곳 리력서를 넣었고 면접을 보고 퇴짜를 맞았다.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재삼 확인하는 와중에도 준이는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산책과 함께 간단한 조깅을 곁들였고 한주일에 두번 있는 바드민톤 동호회 활동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준이가 처음으로 동호회 회식에 참여한 것은 찌는듯한 무더위가 한풀 꺾인 늦가을이였다. 술잔을 주고받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준이는 아늑함을 느꼈다. 자신과 함께 어울리며 웃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준이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그것이 회식은 비용이 얼마가 나오든 무조건 더치페이라는 말에도 이 자리에 당당히 나올 수 있는 리유이기도 했다. 그동안 작은 방에서 홀로 외로움을 삭혔던 시간들이 오히려 억울하게만 느껴졌다. 왜 그 작은 방을 진작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지 후회가 되기까지 했다.   준이도 이제는 초보티를 완전히 벗어나 어느덧 다른 회원들과 경기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실력도 조금 붙었고 말이다. 무르익어가는 분위기 속에서 준이는 동호회 회장에게 어떻게 하면 바드민톤을 잘 칠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누군가에게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는 것은 언제나 준이에게는 망설여지는 일이였다. 경쟁이 치렬한 회사생활에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잠재적인 경쟁자를 만든다는 인식이 짙게 배여있던 준이에게는 무언가 하는 방법을 묻는다는 그 간단한 행위마저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였다. 하지만 생각 밖으로 시원하게 답이 흘러나왔다.    “간단해요. 모르는 것은 묻고 배우고 나면 반복적으로 련습하고 그러다 보면 잘 치게 돼있어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요. 바닥에서부터 한걸음 한걸음 걸어야 정상 가까이라도 가는 거죠.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르면 물어보고 틀리면 고쳐야 한다는 것이예요. 안 그랬다가는 누구처럼 맨날 제자리 걸음만 한다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해요.”   회장의 눈길은 친구녀석에게로 향했고 모두가 맞는 말이라면서 왁자지껄 웃어댔다. 지적을 당한 친구녀석은 머쓱한지 앞으로는 정말 잘하겠습니다를 웨치며 건배를 제안했고 다들 그에게 호응해줬다. 준이는 조금 놀랐다. 자신이 보기에도 친구 녀석은 꽤나 실력이 있어보였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였던듯 싶었다.    잠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온 준이는 동호회 회장이 했던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동안 준이는 잘 묻지도 않았고 어떻게든 스스로 방법을 찾으려고 했으며 다른 사람들이 말해줘도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을 신념이라고 믿었으며 언젠가는 저들보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겨우 그것이 어쩌면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들어가고 뭐 해?”   “숨 좀 돌리는 중. 그러는 넌?”   “난 화장실 잠간. 야, 담배 좀 줘봐.”   “여기.”   “근데 너 생각보다 인기 있더라?”   담배를 받으면서 친구 녀석이 툭 던진 한마디에 준이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뭔 소리냐?”   “누구 너 녀자친구 있냐고 은근슬쩍 떠보길래 있다고 그랬거든.”   “누가 그랬는데?”   “녀자친구도 있는 녀석이 별거 다 궁금해한다. 얼른 들어와. 너 신고식 해야 한다고 다들 난리다.”   가게로 들어가는 친구녀석의 뒤모습을 바라보면서 준이는 자신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 대학교 때를 제외하면 참으로 오래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준이는 가게 유리에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 잔뜩 부풀었던 몸은 어느새 많이 줄어있었고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찾기 힘들었던 목 우에는 턱선이라고 불리는 그 무엇이 은근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듯했다. 이제는 거울을 외면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녀자친구라… 준이는 휴대폰을 꺼내들고 번호를 눌렀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련락 한번 한 적이 없었다. 이미 오래전에 폰에서 지워버린 번호지만 마음에서까지 지워진 건 아니였나 보다. 한번도 잡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놓아버린 것도 아니였나 보다. 이 번호 너머에 그리운 그녀의 목소리가 있을 테지만 준이는 결국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녀를 잊은 것은 결코 아니였다. 그녀가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였다. 지금도 그 작은 방에 적막이 찾아올 때면 그리고 혼자라는 것을 의식할 때면 늘 그녀가 먼저 떠올랐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팔짱을 끼고 데이트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제보를 받지만 않았어도 전화를 했었을가?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매달렸었을가?   헤여진 녀자친구를 떠올리던 준이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스스로에게 변화를 주기까지 준이는 적지 않은 시간을 소요해야만 했다. 그리고 자신한테 필요했던 시간 만큼 그녀 역시 리별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저런 리유로 자신과의 만남을 피하고 열쇠를 돌려주고 어쩌면 그녀는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오는 만큼 자신을 밀어낸듯 싶었다. 이 모든 것이 준이 자신만의 상상이고 핑게였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배신했다는, 자신이 그녀에게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패배자의 자격지심이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준이는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시간은 흘렀고 그 자리에 멈춰서있던 것은 자신 뿐이였으니까.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이 떠안아야 할 인과응보였으니까. 그것들을 인정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결국 준이는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하였다. 다만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기를 바랐다. 지금 자신이 느끼는 이 색다른 느낌보다 더.   몸을 돌리니 가게 유리창으로 아직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얘기가 오고가는 것인지 친구 녀석이 자리에 선 채 손짓발짓을 하고 있었고 그 녀석한테 눈길을 주고 있던 사람들은 손벽을 치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역시나 재주가 좋은 녀석이였다. 저들한테 완전히 녹아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가 않았다. 적어도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이름 정도는 부를 수 있으니까. 아직 신고식이 남았다고 했나? 저도 몰래 입가에 미소가 걸린 준이는 힘차게 가게 문을 열어젖혔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온 준이는 습관처럼 컴퓨터를 켰다. 이 작은 방에서 준이가 가장 많이 했던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준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면접소식이 와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얼마 만에 받아본 면접소식인지 준이는 마냥 기쁘기만 했다. 물론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는 아니였다. 그가 8개월 정도 일하면서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업종의 면접통지였고 준이는 가능하다면 자신이 원하는 업종의 면접통지를 받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기회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지나간 시간들이 충분히 인지시켜주고 있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게 업무 내용은 그나마 마음에 들었다. 준이는 그동안 했던 면접들을 떠올리며 예상질문과 표준답안들을 하나하나 머리 속에 적어나갔다. 왠지 느낌이 좋은 밤이였다.   준이는 참으로 오랜만에 일찍 깨여났다.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든 것도 있겠지만 그동안 알람 작용만 열심히 해왔던 폰이 드디여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 것도 리유라면 리유였다. 준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두텁게 감싸고 있던 카텐을 열어젖혔다. 아직 이른 시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창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준이는 오라지 않아 자신도 저들 사이의 한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깊게 심호흡을 한 준이는 어제저녁 잠들기 전 머리 속으로 떠올렸던 사항들을 하나하나 되새기면서 스스로를 가다듬어나갔다.   준이에게 아침이 온다는 것은 늘 그랬던 것 같다. 삐걱거리는 문소리와 자박자박하는 발걸음 소리, 아마도 조금만 지나면 하얀 젖가슴과 잘록한 허리는 또다시 그 눈부신 동체를 자랑하며 샤워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동거인은 언제나 그랬듯이 파수군이라도 된듯 함께 화장실을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화장실에 온갖 체취를 남긴 채 솔로인 자신과 앞방 남자를 홀릴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준이는 충분히 그 모든 것들을 미소로 화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또다시 자신의 작은 방을 가득 메우는 샤워기의 물 뿌려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준이는 카텐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자 창문으로 창턱을 종내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뜨거운 해살이 지저분한 준이의 작은 방에 물밀듯이 밀려들면서 두텁게 깔려있던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이는 얼마 만인지 모를 아침해를 온몸으로 느꼈다. 눈부셨다. 따스했다. 그리고 달콤했다. 작은 방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해살과 함께 이른 아침의 열정이 함께 밀려들었다. 준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화장실이 비워지기만을 기다렸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드디여 화장실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자박자박하는 발걸음소리와 함께 그녀들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준이는 앞방 남자에 앞서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아직 그녀들의 체취가 짙게 묻어있는 화장실에서 이를 닦고 세안하고 머리를 감았다. 여기저기 흥건히 젖어있는 물기와 그녀들이 떨어뜨린 머리카락 사이로 자신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준이에게 묘한 흥분으로 다가왔다. 화장실 바닥에 빈틈없이 배여있는 물기로 넘어질 번한 순간까지 말이다.   화장실 문을 나선 준이는 앞방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등뒤로 그녀들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준이는 처음으로 앞방 남자한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그 남자의 인사를 받지도 않은 채 몸을 돌려 막 집문을 나서는 그녀들의 뒤모습을 맞이했다. 뒤모습까지 아름답다는 생각에 준이는 씁쓸함을 느꼈지만 준이의 생각은 거기에서 멈췄다.   “저기요. 두분, 저 잠간 보실가요?”   느닷없는 준이의 부름에 막 집문을 나서려던 두 녀자는 몸을 돌려 준이이게 눈길을 주었다. 대답 하나 없이 오로지 혐오로 가득한 그녀들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며 준이는 당당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여기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입니다. 아침에 샤워를 하더라도 최소한 물기 정도는 제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금만 지나면 청소하는 아줌마가 올 건데요.”   “네. 그렇겠죠. 어지러이 널려있는 머리카락은 치워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쪽 분들 뒤에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물기 정도는 치워주는 것이 례의가 아닐가 생각합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준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감추지조차 않는 그녀들에게 향했던 눈길을 돌려 앞방 남자한테 보냈다.   “감사합니다. 그럼…”   신기한듯한 눈빛을 보내는 앞방 남자와 그녀들을 뒤로 하고 준이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막 닫히려는 문틈 사이로 의외라는듯한 앞방 남자의 눈빛과 재수없다는 말을 꺼리낌없이 하는 그녀들의 소리가 함께 새여들어왔다. 그래도 준이는 기분이 좋기만 했다. 준이가 들어선 방은 더 이상 그 어두컴컴한 작은 방이 아니였다. 그 방은 따스한 아침해살이 가득찬 밝고 활기찬 방이였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준이는 하루라도 빨리 이 좁아터진 방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준이는 오랜만에 몸에 착 달라붙는 셔츠의 그 부드러운 감촉이 좋았다. 그리고  숨통을 조여오는 넥타이의 꽈악 조여오는 압박감도 좋았다. 작은 방을 빈틈없이 메워오는 샴푸의 그 익숙한 향도 달라보였다. 구석에서 먼지만 먹어가다 오랜만에 준이와 함께 뾰샤시한 모습으로 나타난 구두도 반가웠다.    준이는 가방을 둘러메고 방을 나섰다. 닫히는 방문 뒤로 앞으로도 한동안은 준이와 함께해야 할 오래된 노트북과 간이옷장이 준이를 배웅하며 작은 방을 꽈악 채운 해빛 속에서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출처:2019 제1호  
7    리명희: 산에 살고 싶소(시, 외1수) 댓글:  조회:377  추천:0  2019-07-08
산에 살고 싶소(외1수)   리명희       외로움을 함초롬히   머금고 피여       고독이 아닌   기다림을 즐기고 있다       어둠 속이라 외로운   슬픔이 아니라       홀로 즐기는    외로움을 쌓고 있다.       별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풀벌레 울음소리   가슴에 담은    고독을 쌓으며       하얗게 미소 짓는   너의 향긋한 숨결       그리움   보글보글 프림들이   나무잎을 그린다   하트를 그린다   그리고 그리운 너의   웃는 얼굴도 그린다       너무너무 예뻐서   퐁당 뛰여들려다가   너의 얼굴 사라질가봐   한모금 마셨다   그리움을 마셨다   내 마음에도 반짝   별이 뜹니다   내 앞길 밝혀주는    밝은 새별이 출처:2019 제1호
6    전한나: 목소리의 색상(수필) 댓글:  조회:474  추천:0  2019-07-08
목소리의 색상   전한나     우연하게 휴대폰 파일을 정리하다가 저장된 음성 파일들을 발견했다. 통화할 때 어찌하다 자동저장이 된듯한데 찍힌 날자를 보니 최초에 록음된 파일은 2014년 1월18일로서 4년 전이다. 버튼을 눌러서 확인해보니 딸애와의 통화 시 저장된 파일이다. 색이 바랜듯 약간 갈리고 울림도 없는 그레이 컬러灰色 목소리, 귀에 너무 설었다.   딸애와의 통화에 무슨 상사의 업무지시 같이 목소리를 깔고 대화한 목소리 파일도 있고 질풍노도처럼 격하게 소리치는 그레이에서 블랙 컬러로 치닫는 목소리 파일도 있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음성 파일이 나에겐 일종 충격으로 안겨왔고 그게 왜 그렇게 이상하게 들리는지 뒤늦게나마 그 소이를 대강 짐작할 만도 했다. 늘 완벽을 추구하고 승승장구하는 모습만 보고 싶어했던 나는 딸애에게 닫는 말에 채찍질하면서 늘 높은 목표를 제시하군 했었다. 단지 엄마라는 자격으로, 다 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딸애한테 훈계도 하고 가끔은 다급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참 못됐다. 곁에서 조용히 지켜봐주는 여유가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마음이 여린 딸애가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 같아서 가슴이 아릿해나면서 울컥했다.    다른 사람이랑 대화할 때, 즉 육성이 입으로부터 발성돼서 다시 귀에 전달될 때의 목소리와 휴대폰에 록음된 나의 목소리는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과 더불어 록음된 목소리가 제 목소리임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그저 싫은 정도가 아니라 경악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어렸을 때는 음악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노래공부를 좀 해서 지인들로부터 은방울 같은 목소리라는 칭찬을 꽤 들어왔다. 늘 목소리 하나 만큼은 자부심을 지녔던 나인데 지금 내가 듣고 있는 휴대폰 속의 이 목소리 임자는 은방울하고는 쌀의 뉘 만큼의 련관성도 없어보이는데 나의 거라고? 허나 기기는 기기다. 기기는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광주에 있을 때도 가끔씩 엄마께 전화를 드렸다. 이상하게도 나는 신날 때보다 심한 생리통으로 침대에서 베개를 안고 뱅뱅 돌 때거나 힘들 때면 숨 넘어가는 소리나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항상 엄마를 찾아서는 통화한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엄마가 걱정하지 않게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말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울 뿐이다.    요즘에도 나는 가끔 멀리 떨어져있는 딸애랑 통화하면서 딸의 잠에 취한 목소리나 기분 좋아서 해빛 찬란한 활기찬 화이트 컬러의 목소리를 금방 가려들으면서 그 분위기에 일희일비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나는 갈수록 목소리에도 색상이 있다고 믿는다. 얼굴 본 적 없는 사람과 통화를 할 때 상대방의 목소리 톤과 억양과 리듬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보고 상상을 하게 된다. 우아한 리듬을 타고 오는 목소리, 자성磁性이 묻어나고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목소리는 경쾌한 블루 컬러이다. 이와는 반대로 하이톤 목소리는 빨강색 신호등을 련상케 하기에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여지도 다분하다.   목소리는 또한 장소와 상대에 따라서 다르게 작용을 한다. 한국의 스타 강연자, 리창욱씨와 김미경씨처럼 정감이 두둑한 오렌지 컬러 목소리는 감동과 유머와 위트风趣가 넘쳐 청중들로 하여금 빨려들게 하는 마력魔力이 있다. 사랑에 빠진 커플 사이 달콤하고 깨를 볶는 핑크 컬러의 러블리한 목소리는 사랑에 자석 역할을 한다. 엄마가 부르는 연록색 자장가 소리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멜로디이다. 아직도 공공장소에서 손사래까지 치면서 대화하고 통화하는 블랙 컬러의 목소리를 가끔 만나게 되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민페인 줄도 전혀 모르는 그런 목소리는 소음이다.   리듬이 적절하고 톤이 알맞춤한 말소리는 듣는 이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나는 간절해지는 생각이 하나 있다. 나는 나의 목소리가 여유로우면서도 차분하고 따뜻한 옐로우 컬러 목소리였음 좋겠다. 그래서 대화할 때마다 전화할 때마다 상대로 하여금 나의 목소리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했으면 좋겠고 나의 목소리 때문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음 좋겠다.    따스한 온도도 담고 다정한 정감과 기운찬 기분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목소리, 신났을 때 너무 시끄럽게 업调高되지 않고 기분이 다운下调됐을 때 너무 우울하지 않고 항상 여유를 잃지 않는 예쁘고 부드러운 그런 목소리를 갖고 싶다. 출처:2019 제1호  
5    나경: 그녀와 ‘일기일회一期一会’(수필) 댓글:  조회:374  추천:0  2019-07-08
그녀와 ‘일기일회一期一会’   나경       2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날 나는 나보다 열살 이상인 그녀와 남한산성에서 ‘데이트’했다.    데이트의 사전의미는 ‘이성과의 만남 또는 그 약속’이라고 한다. 그것이 남녀간의 사랑이나 교제를 위한 수단의 일종인데 두 녀자가 만난 것을 데이트라고 하는 데는 그럴 만한 리유가 있는 것이다.    나와 그녀의 만남은 마치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진 남녀 같았다. 아침나절에 정자 휴식터에서 초면으로 만나서 건강과 요가에 대해 이야기했고 점심에는 남한산성에 있는 ‘산성민속집’에서 함께 묵밥과 청국장을 나눠먹고 오후에는 산성 북문에서 남문까지 재밌게 소담하면서 걸었다.    그 때 심선암 환자인 그녀는 암수술 한 지 1년 8개월,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건강식과 명상, 적당한 건강단련으로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기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시부모와 어른들을 모시고 40여년간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그녀는 자신의 혀 밑에 암이 자라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가족을 속이고 2년을 버텨냈다고 한다.    마지막에 자식들이 알고 병원에 강제 입원시켰을 때는 이미 암 3기였다. 뼈를 깎는듯한 아픔과 죽음의 고비를 넘어온 그녀는 지나온 이야기를 남의 일을 말하듯이 담담히 이야기하였는데 그 자신이 그걸 밝히지 않으면 누구도 그가 암환자인지 알아챌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우아한 옷차림에 조금은 가날퍼보였으나 너무도 락관적이고 밝은 얼굴로 사람을 대하고 인생에 대해 달관적이였기 때문이였으리라. 그녀는 자기가 하도 건강하고 병에 걸려본 적 없이 일 밖에 모르고 있으니까 하느님이 쉬라고 병에 걸리게 한 것 같다고 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부터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인생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주위에서 암환자들이 항암치료를 받고 머리가 싹 빠지고 몇년 고생하다가 저세상으로 가버리는 것을 너무 많이 봐왔던 탓인지 몰라도 암환자인 그녀의 인생 태도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주 절망적인 암병에 걸렸어도 이렇게 사는 법도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감동도 줄 수 있구나. 나는 그녀가 참으로 우아해보이고 위대해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 날 점심을 각자 돈 내고 먹으면 편하다고 그렇게 하자고 했지만 그녀는 오늘은 처음이니까 반드시 자기가 사야 한다고 우기는 바람에 한끼 잘 얻어먹고 말았다.    그 후 얼마간 지나서 나는 그녀를 따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길상사’에 갔다. 나는 이번에는 내가 밥을 사야지 하고 따라갔는데 웬걸 점심 때가 되니 절에서 무료로 점심을 주는 게 아닌가. 그 덕에 나는 난생처음 절의 음식을 먹어보게 되였고 길상사가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길상사가 지어진 후에도 나는 여러번 서울에 다녀왔건만 그런 곳이 있는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를 통해서 길상사를 알게 되고 길상사에 법정스님의 유골이 묻힌 곳을 찾아보았고 길상사에서 법정스님의 화상과 생전의 유물을 전시한 곳을 돌아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내가 라는 글이 우리 학생들의 교재에 본문으로 수록되여있어서 특히 인상이 깊다고 했더니 그녀는 자기도 법정스님의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나에게 책 한권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길상사에 갔다 온 그 날 나는 그녀한테서 《일기일회一期一会》라는 법정스님의 법문집을 선물로 받고는 귀국 날자가 박두해서 그녀와 더 만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일기일회는 ‘지금 이 순간은 생애 단 한번의 시간이며 지금 이 만남은 생애 단 한번의 인연’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녀는 나에게 선물한 책 뒤페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좋은 인연이 되여 감사해요. 하고 싶은 일 맘껏 하면서 현재 지금 행복하세요. 건강이 최고랍니다.”   나는 귀국한 후 383페지 되는 《일기일회》를 거의 단숨에 읽다 싶이 다 읽었다. 마음에 와닿는 글들이라서 읽을수록 좋아졌다. 그 책에 대해 젊은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기회가 생겨 법정스님의 《무소유》 수필집을 빌려볼 수 있게 되였다. 다 읽고 심금을 울리는 글귀들이라 책을 복사해두고 보기로 한 건 그 뒤일이다.    그 후 그녀는 성남시 분당의 번화한 도회지를 떠나 아늑한 숲이 가깝고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갔다. 그 곳에서도 그는 매일 피아노를 치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붓글씨를 쓰기도 하고 단련을 적당히 하면서 건강을 회복한다고 했다.    전화를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전화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 때마다 직접 달려가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매번 여건이 안돼서 만날 수 없었다.    법정스님은 “모든 것이 일기일회입니다.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번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생애 단 한번의 인연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무수한 ‘단 한번의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인생에 한평생 잊을 수 없는 인연, 더우기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데이트’처럼 느껴지게 하는 ‘인연’이 몇번이나 있을 수 있을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세계가 지구촌이 된 오늘날 ‘일기일회’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의 생애에 한번 밖에 없는 매 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으며 위챗을 통해 매일 이루어지는 만남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녀와의 우연한 것 같았지만 운명적이였다고 할 수 있는 ‘데이트’ 덕분에 나는 건강하게 살아있는 하루하루를 더욱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였고 이런 저런 불평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지를 돌이켜보게 되였고 새삼스레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게 되였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내 머리 속에는 70을 넘은 리경자 녀사가 암병을 이겨내고 씩씩하게 삶을 즐기고 있는 환한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다.   그 때 우리의 황홀했던 ‘데이트’의 불꽃이 계속 타올라 한번, 두번, 수많은 ‘일기일회’의 만남의 궤적을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출처:2019 제1호
4    연서: 와인 마시는 녀자(단편소설) 댓글:  조회:343  추천:0  2019-07-08
와인 마시는 녀자   연서       1   녀자는 느긋하게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와인을 마실 때면 녀자는 항상 미끈한 다리를 테이블 우에 제멋대로 올려놓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곤 했다. 그게 가장 부드럽고 편하게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자세다. 하지만 지금 와인바에서 우아하게 와인잔을 들고 있는 녀자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다소 진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천천히 음미하면서 한잔 한잔 천천히 넘기고 있는 모습이 기품 있으면서도 근사했다.   사실 녀자는 와인을 마시는 것보다는 향과 여운을 맡는 데 큰 의미를 두곤 했는데 마치 새로운 자신의 령역을 만나보는 필사적인 탐구 같아보였다. 그러니까 사실 녀자는 와인을 마신다기보다는 향기에 흠뻑 취해 또 다른 경지로 향하고 싶었던 것이다. 넉넉한 외인잔 어구에 코끝을 대고 빙글빙글 잔을 움직이면서 와인의 고유한 향기가 녀자 후각을 파고드는 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유독 맛과 향이 깊은 레드와인을 고집했다. 퐁 하는 소리와 함께 코르크마개를 따면 어김없이 뿜어져나오는 와인의 향기, 후각 만큼이나 원초적 욕구를 자극하는 그 특유의 마성적 향기가 참 좋았나 보다. 마치 아구리에서 뿜어져나오는 향긋한 향기가 요정들로 둔갑하여 너울너울 춤추면서 절도 있게 그녀의 후각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와인에 푹 빠진 녀자는 마트에서 새로운 레드와인을 발견하기만 하면 신대륙을 발견한듯 경이로운 눈빛으로, 타인의 손이 닿지 못하도록 비밀스레, 다치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꽃망울을 대하듯 정성스레 맞이했다.    그녀를 사모하는 한 남자가 미리 그녀가 술을 즐긴다는 정보를 얻어내고 일부러 데이트 장소를 고급진 일식집으로 잡았다. 주된 술이 청주였으니 당연히 녀자는 구미가 동하지 않았다. 청주 같은 흰술에 매력을 느낄 리 없었다. 녀자는 오로지 붉은색 와인을 좋아했고 이제 막 숙성되여 화려하게 퍼져나가는 향을 좋아했으니 말이다. 가능한 평화롭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사색하며 온전히 감미로운 조화를 즐기고 싶었던 게다.  흰술은 어딘가 신명나는 맛이 없었다. 독하고 탁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 뜨겁기만 하고 위를 자극하여 속이 쓰리기만 했다. 가끔 어쩔 수 없이 선물로 받아온 그런 주류의 술은 구석에서 방치되여 꿔다 놓은 보리자루 신세를 면치 못했다. 실제로 녀자는 한가롭기만 하면 가지런히 진렬된 와인수납장 앞에 서서는 사랑하는 련인을 바라보듯 그윽한 눈빛으로 “자, 오늘은 누구를 마음껏 마셔볼가?” 하면서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한껏 설레임으로 가득차올라 불그레 볼까지 빨개졌다. 와인은 녀자를 파라다이스에 실어다주고 오아시스를 만나게 하는 신비로운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날씨가 꾸질꾸질한 날이면 잠시 모든 일상을 접고 녀자는 빨간색 실크잠옷을 걸치고 쏘파에 기대여 와인을 벌컥벌컥 마셔댔는데 녀자의 주관에 의하면 이것은 일종 ‘와인세례’를 향수하는 특별한 수행이라는 것이였다. 그동안 사놓고 바쁘다는 핑게로, 피곤하다는 리유로 채 마시지 못했던 와인들을 이런 기회에 한잔이라도 더 맛볼 수 있다는 희열과 특수성 뿐만 아니라 꼭 축제날이나 기념일에 정식으로 일정한 격식을 갖추고 추하지 않게 마셔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나 강박증에서도 벗어나 자유로와지면서 하루하루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에서 조금이나마 즉흥적인 경험을 하는 게 무엇보다 좋았다. 숨겨둔 애인도 아닌, 쿵짝이 잘 맞는 친구도 아닌 한낱 와인 따위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녀자 주변을 뱅뱅 도는 남자들은 그래서 하나같이 남존녀비의 사상을 들먹이며 보잘 것 없어보였던 취미를 질책하며 헤여지는 기회로 간주하고 하나 둘씩 그녀 곁을 떠났다.    처음 녀자는 화이트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였다. 슴슴하고도 가벼운 맛이 마치 무뚝뚝하고 깊이 없는 남자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체적으로 레드와인은 포도의 껍질과 함께 발효시키는 반면 화이트와인은 쥬스만 발효를 시켜 마치 어린애들 동화책 서두처럼 간결하고 얕아 녀자로 하여금 편견일 수 있겠지만 깊은 마력으로 각인을 받지 못하고 쉽게 잊혀지고 말았다. 그래서 딱 한번인가 호기심으로 구입한 화이트와인은 한잔도 채 마시지 못한 채 수납장 구석에 박혀버렸다. 그런데 지금 녀자가 와인바에서 여유롭게 마시고 있는 와인이 바로 화이트와인이였다. 왠지 훨씬 산뜻하게 화려하게 그녀의 혀를 감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녀자는 감미로운 맛에 취해 화이트와인을 끈질기게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    테이블에 마주앉은 남자는 현재 리혼소송 중이라고 했다. 그 사연을 녀자는 친구의 남자를 통해 알게 되였다. 전국 여러군데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는 이 남자는 막대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주변에 녀자도 많다는 소문이였다. 그녀도 만나고 있는 녀자들 중 한 사람일 것이였다. 능청스럽게도 남자는 마치 그녀한테만 빠져버린 척 상황을 연출해나가고 있었는데 바로 그런 진지해보이는 모습이 녀자는 일단 싫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녀 뿐만 아니라 해도 그런 자상한 진심이 녀자 역시 마주한 남자 외에도 여러 남자가 있었는데 그것은 지나치게 파격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의지로 기인된 것이였다. 스릴 넘치게 모든 만남이 따로따로 이어지든, 한마디로 스토리 전개가 없는 게임이였든, 그러니까 녀자는 남자들을 순번으로 만나오면서 몇번이나 원점으로 돌아가 결론적으로 지나가는 바람이라는 존재를 확인했다. 녀자가 볼 때 그 만남들은 장편소설이 아닌 결말을 빠른 속도로 예측할 수 있는 단편소설과 진배없었다. 모든 만남은 식상했고 아무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매력이 아직까지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론거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중간중간 혼선이 겹치면서 얼마 안 지나 수면으로 떠오를 비밀들이 밝혀질 것 같아 순간순간 불안했던 것이다. 녀자 자신도 왜 이 남자를 만나고 있는지 잘 알 순 없지만 굳이 리유를 따져본다면 아직까지 남자는 그녀가 가장 소중한 존재라며, 그래서 녀자가 만취한 날, 온전히 그녀를 챙겨줄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남자였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녀자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더라도 지금 눈앞의 보이는 것들을 진실이라고 믿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허구 같은 건 어디까지나 소설에서나 볼 법한 것들이니까. 그런데 어긋나는 부분들을 일일이 상기시켜보면 가끔 거짓말의 냄새가 묘하게 풍겨나오고 있었다. 더군다나 남자가 처음에는 뜨겁게 구애하다가 뜸해지면서 사라지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즘 녀자는 작가의 글 속에서 존재하는 거짓말쟁이들의 세계를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선의적인 거짓말은 나쁘지 않았다. 녀자는 그들의 거짓말 같은 고백을 받으면서 자신 또한 기막히게 완벽한 존재로 멈춰있거나 아니면 거짓말 같은 환상에 빠져보고 싶었던 것이였다. 하지만 녀자 본연의 모습은 무기력하고 피동적인 편이였다. 그래서 거짓말이든 거짓말 같은 일이든 행동에 옮길 용기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쩐지 녀자는 자꾸 그런 거짓말을 너무 사랑한 그 결말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살짝 미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듯 치렬하게 거짓말 속으로 녹아들어도 좋을 사람처럼 말이다.    주변에서는 주로 녀자를 사근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는 투로 인식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 녀자가 아는 자신은 자존감이 낮고 억눌려있으며 될 수 있는 한 지금보다 더욱더 무언가로부터 부지런히 탈피하고 싶은 인간이였다. 어쩌면 지금껏 남자들이 녀자를 떠난 리유도 술은 핑게일 뿐 녀자의 대책없는 기피증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녀자 자신은 심각한 문제를 떠안고 있는 모양이다. 원래 소극적인 녀자가 갑자기 진취적이고 심지어 지구력 있어보인다는 건 녀자가 언제부터인가 남들 앞에서 자기의 그런 모습을 은연중 어필하려 한다는 증거였다. 지금껏 살아온 삶이 너무 바보 같이 느껴져 견딜 수 없었고 앞으로는 지금과 판이한 삶을 시작하려고 다짐했지만 정작 한편으로는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착잡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일상들이 대부분 최대한 생산성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그렇다고 잊어버리려 해도 아직까진 그것이 극심한 고통으로 자극해왔고 그래서 새로운 삶으로 갈아엎어야 할 필요성을 극심하게 느꼈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녀자와 자신이 아는 녀자는 줄곧 겹치는 교차점 없이 평행을 이루었다. 실제에 더 가까운 녀자의 배역에서 진행되는 각본이 지루하고 뻔하게 느껴질 때면 녀자는 쏘파 맞은켠 벽에 걸린 그림 속 집시녀인처럼 긴 손톱을 기르고서는 와인을 들이켰다.   벽 그림 속 집시녀인은 잠들어있다. 동굴도 아니고 그냥 거친 들판에 담요 한장만 깔아놓고 자고 있다. 그 뒤로 강인지 호수인지 모를 큰 물이 흐르고 꽤 높아보이는 산들이 이어져있으며 검푸른 하늘에는 창백할 정도로 차거운 달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 녀인의 손에는 지팽이가 하나 쥐어져있다. 긴 려행길 지친 몸을 가누는 도구로 보여졌다. 머리맡에는 물병이 덩그러니 놓여있고 옆에는 만돌린처럼 생긴 악기 하나가 려행자의 분신인듯 같이 잠들어있다. 빨강, 파랑, 노랑, 록색, 주황 등 화려한 색 줄무늬가 있는 그녀의 옷이 달빛을 받아 무지개처럼 밝게 빛나면서 녀자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어쩌다 취기가 잔뜩 오른 날 녀자는 그 화려한 옷을 입고 만돌린의 경쾌한 선률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나도 저리 곤히 잠들 수만 있다면… 하면서 되뇌이곤 했다. 사실 녀자는 눈을 뜨고 있는 순간에도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은 딱히 없었다.    여기까지는 별로 의문스러운 점이 없었다.  집시녀인이 려행중 들판에서 잠을 자는 모습일 뿐이였고 사자 한마리가 그림을 더욱 생경하게 만들고 있었다. 사자는 꼬리를 세운 채 녀인의 냄새를 맡고 있다. 그런데 그림의 제목이 이다. 녀자는 그림의 설정으로 봐서는 ‘사자의 공격을 받고 있는 집시’ 정도로 제목을 붙여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사자의 아가리 밑에 위태롭게 누워있는 녀인을 그려놓고 라니…   그녀가 훌쩍 떠난 국내려행에는 위태로운 장면이거나 기억에 오래 남는 추억이 별로 없이 무난했다. 우연히 와인바 옆에 미술관이 눈에 띄여 자연스럽게 그 곳에 들어가서 달라지는 화면들에 시선을 준 것 뿐이였다. 왜 매번 녀자가 가는 곳마다 미술관이 존재하고 있는지 몰랐으나 어쨌든 녀자는 그 때마다 규격화된 삶을 거부하는 집시 그 그림보다 더욱 인상 깊은 그림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언제나 새로운 그림들을 스쳐지나기만 했다.   보석 같은 별이 쏟아지는 밤, 녀자는 〈잠자는 집시〉에 대한 루소의 해설을 떠올렸다.    -만돌린을 연주하며 방랑하는 흑인녀인이 곁에 물항아리를 놓고 피로에 지쳐 잠들었다. 때마침 지나가던 사자가 그녀를 발견하고 그녀의 냄새를 맡아보지만 잡아먹지 않았다. 집시녀인은 동양적 의상을 입었으며 삭막한 사막에는 달빛이 시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그리 대단한 그림도 아니였고 대단한 해설도 아니였다.   녀자는 매번 려행지에 막 다달아 와인바로 발길을 옮길 때마다 마치 애초부터 목적지는 와인바였을 거라는 현념 속에 잠겨버렸다. 녀자가 가고 싶은 곳은 어쩌면 세상 곳곳에 널려있는 와인바 천국이였을 것이다. 그러니 갑작스레 시작된 와인바 려정은 녀자가 새로운 자신을 만나보려는 필사의 노력이기도 했다. 더 완미해질 것도, 더 다른 무언가를 갈구할 것도 없이 녀자는 지금보다 더더욱 녀자 자신과 거리를 줄이고 싶었는데 와인바를 돌아다니는 행위는 무엇보다도 녀자 본능에 가까웠다. 녀자는 틈만 나면 휴대폰으로 일일이 검색하면서 그 곳들을 사뿐히 들려서 레드와인을 맛보았다.   와인바는 저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떤 와인바는 은은한 조명 아래 감미로운 재즈음악이 깔려있었고 투명한 잔들이 가지런히 진렬되여있었으며 어떤 와인바는 복층 형태로 꾸며졌는데 전체적으로 인테리어 하나하나 무심한듯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느낌을 살렸고 칠레산 하우스와인이 가장 인상 깊을 정도로 맛이 산뜻하고 음식들과도 찰떡궁합이여서 좋았다. 그러면 녀자는 한동안 칠레산 와인만 유독 마셨고 어차피 그건 녀자의 신앙과도 같은 일이니 일말의 시간랑비 따위 없이 새로운 와인들을 들이켜고 싶다는 생각에만 젖어들었다. 어떤 와인바는 규모가 작고 메뉴도 적지만 무슨 리유에서인지 그 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어떤 와인바는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마음이 닿지 않아 곧바로 나와버리고 싶었다. 대체적으로 거기 손님들의 인수와 무관했는데 그녀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아도 왠지 거기 있는 게 불편했고 마음이 안착되지 않는 곳이 있었다. 녀자는 입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나고 불안정한 호흡으로 하여 공연히 우왕좌왕 망설일 것 없이 그 바를 바로 뜨는 게 상책이라고 여겨졌다. 그런 곳에는 대개 손님들의 성별을 막론하고 콕 집어낼 순 없어도 개인적 취향이 돋보이는 와인바라기보다는 일종의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곳이였다. 어쨌든 묘하게 기분이 나빠서 바로 뒤돌아서 문을 박차고 나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였다. 반면, 들어서는 순간부터 로비가 탁 트이고 독특하고 새로운 와인들이 정연하게 진렬된 곳이라면 아주 자연스럽게 곧추 들어가 달빛이 잘 드는 창가로 착석했다. 녀자는 주변 련인들이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와인잔을 쨍그랑 하며 사랑을 숙성시키고 있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하지만 녀자에게 오히려 그런 주변은 문제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그들 곁에 있으면 온몸에 엔돌핀이 감돌았다. 어쨌든 성소수자를 상대로 혼이 나간듯 굳어진 표정으로 마지못해 구석진 곳에 앉아있기보다는 유리로 되여있는 창가자리, 조금 낮은 테이블, 와인을 좋아하는 련인들을 이웃하여 자리하는 게 훨씬 더 편했다. 대체적으로 그런 와인바들은 둘이서 오붓하게 앉아서 마시기에 최적화된 와인바들이였고 당연히 새로운 레드와인들이 륙속 등장하는 곳이기도 했다.   녀자의 구미 대로라면 녀자가 즐겨찾을 곳은 몇군데 정해져있었는데 오늘 녀자가 와인을 마시고 있는 곳은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였다. 그렇다면 굳이 남은 와인바들을 계속 더 탐색할 필요가 있는지 녀자는 이 려정을 이쯤에서 그만둘가도 진중하게 고민해봤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얼굴을 만나보는 게 더 바람직해보였다. 그것은 와인바의 인테리어나 그 안에 있는 손님들과 상관없이 와인바 스스로 떠안고 있는 탄탄한 내용물들이 존재해있었고 내포하고 있는 내용들을 한번씩 샅샅이 훑어볼 가치는 충분했다. 외딴 곳에 덩그러니 위치한 바를 어렵사리 찾아갔는데 막상 문을 떼고 들어가보니 녀자가 즐기는 레드와인도 몇 없고 까탈스런 그녀 입맛을 충족시켜주지 못할 것 같은, 딱 봐도 허름한 곳일지라도 와인바의 특유의 단단한 얼굴이 있다면 높은 천정과 카운터의 특유의 풍경에 넋을 잃고 오랜 시간 서있어도 좋다. 그럴 때마다 녀자는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 포토샵 모드로 설정하고 가급적 예술적인 각도로 그 아련한 공간들을 빈틈없이 기념으로 남기곤 하였다. 그런 곳은 비록 완벽한 구조를 구비하지 않아도 종종 들려서 멍하니 앉아 몽상에 빠져도 좋을 법한 공간이였다. 아마도 이런 곳에 앉아있으면 그동안 차겁게 식어있던 령감의 원천이 물고를 트면서 쏟아지는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쓰지 않으면 안될듯했다. 녀자는 와인 한잔의 여유가 넘치는 공간 만큼이나 그동안 업악되였던 감정의 선들을 한올한올 풀어헤치며 그 속에서 어떤 진솔한 언어들이 자연스레 흘러나오게끔, 차마 그것들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공간을 이제까지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2   바람결 한가운데서 적요의 염기서렬은 재배치된다        어떤 뼈가 박혀있길래   저리 미친 피리인가          들꽃의 음은 천갈래로 비산한다   돌의 비명은 꼬리뼈 쯤에서 새여나온다   현수막을 찢으면서는 처음 듣는 母語를 내뱉는다          생사를 넘나드는 음역은 그러니까 눈에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후에는 공중에 뼈를 묻을지라도   후미진 골목에 입을 댄 채 쓰러지더라도          저 각골의 력사에 인간의 사랑이 속해있다   그러니까 모든 뼈마디가 부서지더라도 가닿아야 한다는 것이다   파렬은 생각처럼 슬픈 일은 아니다          하루종일 풍경은 바람의 뼈를 분다   來世에는 언젠가 잠잠해지겠지만   한없이 스산하여 망연하여 그리움이라든지 애달픔이라든지   그런 음계에 이르면 오히려 내 뼈가 깎이고 말겠지만         한 사람의 귀불을 스쳐오는 소리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음성을 전해주는 바람소리   그대와 나 사이에 인간의 말을 웅얼거리며 가로놓인 뼈의 소리       저것은 가장 아픈 악기다   온몸에 구멍 아닌 구멍이 뚫린 채   떠나가거나 속이 텅 비여야 가득해지는                                         - 중에서        녀자는 와인 한잔을 굽내면서 지난날에 대한 유서 같은 회억록을 쓰고 싶어졌다. 사람들이 그걸 읽다가 식상한 스토리 때문에 이 작가는 어쩌다 운 좋게 이런 걸 책이라고 뻔뻔스럽게 출판할 수 있었나 싶어 팽개쳐버리려다 그래도 일말의 호기심을 갖고 결말까지 읽어내려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고 보니 녀자는 사랑받는 기술보다는 서로의 교감과 호흡에 더욱 의미를 두고 있었다. 밀고 당기기에 능숙하지도 못했고 늘 밀고 당기기에 귀차니즘을 느꼈다. 모든 만남은 끝이 있다면 만남 자체는 스쳐지나가는 바람일 테고 이리저리 불어치다 사라지면 그만이다.    와인을 거하게 마신 뒤 녀자는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 ‘바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니까 다가올듯 말듯하면서 결국에는 엉뚱한 방향으로 슬슬 새여가다 가뭇없이 사라지는 존재들, 무형의 공간을 거슬러 부풀었던 욕망의 포획망 속으로 표연히 종적을 감추었다. 바람은 기록이 없는 계절에 그리움으로 자꾸만 부풀리다 지는 향기이기도 했다. 어디든 어디든 무엇이든 무엇이든 향기는 온통 바람이라고 스스로 단정했다.    처음에 녀자는 적절한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추억의 편린들이 목구멍 깊이까지 파고들 만큼의 공간이 필요했다. 미로의 길을 헤매는 열망처럼 나아갔다 되돌아오더라도, 뭔가 꼭 이루어지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간절하게 사는 것이 꽤나 바람직한 일이라고 간주했다. 하지만 예상컨대 사람들은 무언가에 진지하고 나면 금세 허무맹랑해져서 이내 체념을 해버린다. 끝내는 모든 게 슴슴하고 무의미해져 결국 단념하고는 드라마거나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하면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뭔가에 집착하기보다는 기대를 버리고 닥치는 대로 사는 게 가장 최선일지도 모른다.        녀자는 자신조차 실체도 형체도 없는 바람으로 시작해서 언젠가 삶의 려정을 마치게 될 거라는 사실이 문득 느껴져 슬퍼졌다. 죽어서 한줌의 재가 되면 지금 쯤 땅 어딘가에 묻혀져있거나 우주 가운데 하나의 점으로 사라질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와인을 찾는 사람들 중 한사람이 이 세상에서 줄어든다는 건 어쩐지 쓸쓸한 일인 것 같다. 녀자는 튤립형 와인잔을 마치 하나의 얼굴이기라도 한듯 볼에 대고 애틋하게 비벼보았다. 비비다가 한잔 마시고 그러다가 또다시 상념에 빠졌고… 녀자는 잔과 이미 한몸이 되여 와인 속으로 녹아들고 있는 중일 것이다.   녀자는 애초부터 인위적인 발란스보다는 긴장을 풀어주는 술이 더 좋았다. 녀자와 사귄 남자들은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는데 그중에는 의아한듯 빤히 쳐다보는 남자도 있었다. 또 어떤 남자는 새삼 경이로운 눈빛으로 녀자를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녀자는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런 반응에 무심한듯 지나쳤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녀자를 눈꼴 사납게 보기도 했는데 그런 때도 녀자는 극히 자연스레 무시했다. 녀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은 아무나가 너무 많았고 아무나가 아닌 사람은 너무 적었다. 이 녀자가 죽기 전에 이 세상 좋은 와인을 다 맛볼 수 없을 정도로 와인은 날마다 새롭게 생산되고 있다. 게다가 가소로운 사람들 틈에 치여 소중한 순간들을 빼앗기는 바람에 정작 녀자가 좋은 와인들을 즐기지 못한다는 건 너무나 비참한 일이였다. 녀자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와인들을 즐기는 데 대부분 시간을 할애하기로 계획했다.    녀자는 와인을 마시면서 오르가슴 비슷한 황홀경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잔뜩 마시고 나면 배만 더부룩이 나오는 맥주보다는 차라리 지금처럼 살짝 미친듯 와인의 포로가 되여주는 게 훨씬 생산적인 일이였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두운 청사를 지나치게 되였다. 달빛 속에 우두커니 서있는 청사는 마치 누군가 고의적으로 루락한 물건 같았다. 녀자에게 실망감만 안겨주던 이곳은 며칠 전 서류를 출시하면서 새로운 ‘자유’를 획득하였던 곳이기도 했다.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이어지는 휴게실에는 남녀들이 인감도장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녀자가 그 곳에서 증명사진을 찍을 동안 일하는 직원 한명이 위자료며 양육비며 재산분할에 관한 사항들을 아주 사무적인 어투로 설명했다. 무엇보다 2층에 있는 합의실까지 올라갔을 때에는 밖을 향해 탁 트인 전망 좋은 창가도 회색빛으로 감돌고 있었다. 녀자는 그 암울한 회색빛 창가에 앉아 저 멀리 멀어져가는 것들을 막연하게 바라보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녀자는 와인이 필요했다. 한잔, 두잔으로부터 시작하여 뼈속까지 젖어든 취기가 서서히 그녀를 천국으로 이끌어주었다. 표연히 가정주부의 배역에서 벗어나 하늘하늘 치뜨는 느낌이 좋았다. 짙은 어둠의 한순간 꿈을 맘껏 부풀리고 싶었다. 녀자는 마침내 와인을 떠날 수 없는 존재로 되고 말았다.   녀자에게는 유일하게 와인바 그리고 와인바 주변마저도 더욱 친절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녀자의 걸음은 홀린듯이 와인바가 자리하고 있는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와인바 주변에는 하얀 이팝나무가 눈이 내린듯 둘러져있었고 그 너머로 음산한 기운을 뿜고 있는 호수가 보였다. 호수 가운데로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고 그 속에 몸을 박고 있는 나무들이 많았다. 뿌리는 산에 박혀있는데 가지는 물에 드리워있어 얼핏 환상 속의 나무처럼 느껴졌다.    밤하늘 아래 호수로 향하는 녀자의 발걸음은 서서히 느려지고 머리 속은 점점 가벼워졌으며 자연의 은총을 받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한결 맑아졌다. 두손에 사탕 한가득 쥐고 마냥 즐거워하는 아이처럼 녀자는 훔쳐온 것 같은 이 순간을 홀로 만끽하며 걸었다.    호수는 무척이나 음산했다. 녀자는 이름 모를 마력에 이끌려 호수의 깊은 곳으로 걸어들어갔다. 모든 게 다 어둠 속으로 차츰차츰 묻혀지고 있었다. 녀자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가냘픈 몸으로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었다. 바야흐로 결핍의 계절이 흐르고 있는 이 호수에서, 이 어둠 속에서 녀자는 려정을 끝내야 할 것 같았다.        결혼하고 나서 남편은 왜 그랬는지 늘 녀자를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밖으로만 나돌았다. 남편을 보면 마치 같은 지붕 아래 다른 꿈을 꾸는 이방인 같았다. 남편으로 인해 녀자 존재 자체가 어쩌면 허상일지도 몰랐다. 녀자에게 남편은 겉도는 행성이였다. 그런가 하면 세살배기 딸애는 녀자 혼자 키우다 싶이 했는데 부시시한 산발로 늘 분주히 움직여야 했다. 누구나 그러하듯 녀자 역시 누군가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었기에 그런 자기 인생이 얼마나 정처 없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길 없었다. 다만 무슨 리유에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린 시절에도 녀자는 부성애를 거의 느끼지 못했고 부친은 그녀가 의지할 대상이 되여주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태여난 순간부터 남자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 녀자에게 그야말로 충격적이였다. 유독 또래에 비해 일찍 셈이 든 녀자는 늘 취한 아버지의 신발을 챙겨드리고 밥가마에 밥을 안치고 바닥을 쓸고 사발을 씻는 등 눈에 보이는 가사일이라면 두팔을 걷어붙이고 했다.  모친은 어쩐지 칭찬에 린색하였다. 그러니 고작 열살짜리 꼬마가 집안청소를 척척 하는 게 칭찬받는 일로 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일찌기 학교를 그만두고 여러군데 취직을 했다. 녀자는 평범한 련애를 했고 따뜻한 자궁에 한점의 생명이 생기자 서둘러 민정국으로 찾아가 등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남아돌지 않았는지 나중에 결혼식조차 치르지 못한 채 곧 육아에 전념하게 되였다. 그리고 전업주부로 눌러앉은 녀자는 짙은 향수를 뿌리며 한껏 치장에 신경쓰고 외출하는 남편을 창백한 얼굴로 바라보면서도 저지시키지 못했다. 남편은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망각한 채 이미 녀자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은 지도 한참 되였다. 녀자는 한치의 어긋남이 없는 불길한 예감으로 남편의 외도를 알아챘다. 거울 속으로 녀자는 군데군데 살찐 영낙없는 아줌마의 모습을 보았다.        이제 한발 걸음만 앞으로 내디디면 생명의 위협을 받을 것 같은 령역이였다. 스스로도 자신이 어딘가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녀자는 지금보다 더욱더 치렬하게 미쳐보고 싶었다. 자신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지 그 한계를 체험해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차겁게 서있는 운명의 벽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훨훨 높이 날아보고 싶었다.   녀자는 검푸른 어둠 속에서 손을 내밀어 더듬어보았다. 순간 이곳은 어둠의 퍼즐들로 맞추어놓은 세계에 들어선 것 같았다.   이윽고 녀자는 한발 더 내디뎌보았다. 그리고 웃옷을 한겹한겹 벗어버렸다. 정지된 어둠 속으로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울려퍼졌다. 녀자는 오래동안 묶어둔 무거운 세상을 훌훌 털어내듯 억눌렀던 가슴을 활짝 폈다. 그리고 비장한 가슴으로 호수의 시린 감촉을 맞받으며 신성하게 눈앞의 세상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호수에서 파도 같은 물결이 세차게 일렁이고 있었다. 쏴-쏴- 가슴을 향해 솟구치는 물결은 쉬임없이 녀자를 관통하였고 마침내 공허감을 뚫고 시원하게 통과하였으며 녀자의 귀속으로 더 이상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출처:2019 제1호  
3    리해연: 꿈꿀 권리(시평) 댓글:  조회:333  추천:0  2019-07-08
꿈꿀 권리   리해연       도시도 농촌도 피기를 잃은 사람처럼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채 희부옇게 변해버린 계절, 무질서하게 피여오르는 매연 때문에 숨쉬기조차 어려운 난방의 계절이다. 뜨거운 커피의 온기마저 순식간에 빼앗아버리는 이 랭혹한 계절, 동면에 가까운 일과를 보내던 어느 날 나는 김동진 시인의 시를 읽고난 뒤 내 육신에 다시 활기가 차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굳어버렸던 뇌가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고 주체할 수 없는 힘에 끌려 저도 모르게 컴퓨터를 마주앉아 자판을 두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세영 시인에게 락엽은 생의 끝자락이였고 리오덕 시인에게 락엽은 죽음이였다면 김동진 시인에게 락엽은 재생 그 자체였다. 2인칭 시점의 이야기 형식으로 된 는 독자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화자는 독자에게 독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화자는 독자로서의 ‘너’-‘락엽’이 가는 ‘길’을 ‘묻지 않으련다’라고 반복하면서 그 ‘길’이 도대체 어떤 ‘길’이기에 이토록 완강히 거부하는지 의문을 자아냈다. 그리고는 바로 ‘길’이라는 명사의 반복으로 ‘길’의 정체를 밝혔다. 그 ‘길’은 “우수수 떨어지며 날”렸다가 바람에 치여 “마구 뒹굴며 밟”혔다가 “후미진 곳에 두툼히 쌓”였다가 “천천히 부서지고 썩”어가는 말 그대로 ‘락엽’의 ‘일생’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면 화자는 왜 이토록 ‘락엽’이 가는 ‘길’을 ‘묻지 않’겠다고 했는가? 그것은 “락엽의 길”은 “억겁의 흙에로 다가서고 / 만년의 뿌리를 찾아가는” 로정이였고 이는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재생으로 향해 가는, ‘꿈’이 있는 ‘길’이였기 때문이다. ‘락엽’은 그토록 힘든 세월의 모대김 속에서도 ‘꿈’을 잃고 “슬퍼한 적 없”이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하여 화자는 “순리를 따르”려는 ‘락엽’의 삶에 대한 강직한 태도를 긍정하고 그 뜻 역시 바람직하다고 여기기에 아무 것도 “묻지 않으련다”고 반복하면서 자신도 “락엽의 길”을 따라 걸어가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로써 독자와 화자는 완전한 하나가 되고 시인은 독자로서, 또 화자로서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와 자신이 지향하는 인생의 로정을 시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삶에 대한 태도는 에서도 살펴볼 수 있었다. ‘억새’는 돈과 명예를 쫓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좀비같은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속세를 벗어나 “청빈으로 살아온 올곧은 마음자락 / 저 푸른 하늘벽에 기대고 싶어 / 스스로 아픈 뼈마디 뽑아올리고 / 가까스로 기인 목 추켜”들며 “고요가 락엽처럼 깔린 골안”-“후미진 곳”에 터를 잡고 “누렇게 퇴색한 잡초와 이웃하여”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억새’는 절대로 현실을 도피하거나 자아를 버린 적이 없다. 오히려 “해달을 그리는 붓이 되”고 “흰갈기 날리는 백마가 되”며 “생명을 노래하는 기발이 되”리라는 “찬란한 꿈”을 갖고 있다. 부귀공명을 탐하는 현실의 속인들과 달리 처사处士의 풍모를 억새라는 이미지를 빌어 표현한 이 시는 부동한 침묵의 미학에 람루와 기아를 초탈하는 안빈락도安贫乐道의 청빈사상으로 도고한 삶을 살면서 동시에 자아완성을 실현하려는 시인의 삶의 태도가 보여지는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시인이란 무엇이고 시인은 왜 시를 쓰는가 하는 물음에 던지는 대답이기도 하다. 시인이란 시를 쓰는 사람이고 시인마다 시를 쓰는 리유가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시인은 현실이 싫어서, 못마땅해서, 욕망이 충족되지 않아서 시를 쓰고 이 결핍이, 이 고독이, 이 욕망이 시 쓰기의 동기로 된다. 물론 현실을 수용하면서 돌아가는 세상에 비위를 맞춰가며 살아가는 시인들도 많다. 그러나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훌륭한 시인들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살하거나 현실에서 도망가는 길을 택했고 이 도망의 리면에는 현실에 대한 부정과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꿈이 있었다.    역시 꿈을 꾸는 어떠한 대상을 그린 작품이다. 시의 시작부분에서 시인은 중국의 광활한 령토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이 살고 있는 ‘서장사람들’을 통해 ‘겨울나무’를 련상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겨울나무’는 절대로 서장사람들의 상징이 아니다. “살을 에이는 칼바람의 숲을 헤치고” 꼿꼿이 서서 “멋스러운 동작”으로 “땅보다 먼저” 하늘에서 날아내리는 “하얀 천사”를  맞이할 준비를 마친 ‘겨울나무’, 그것은 바로 ‘백모시’를 입은 우리 민족의 상징이였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멋스럽다’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것이기도 하고 우리 민족의 리념과 정서가 배양한 그 어떤 미적 요소가 아닌가. 시인이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우리 민족의 숨결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작품임이 확실하다. “얼어붙은 겨울하늘과 / 무성의 대화를 나누면서 /  정감소통의 꿈길을 걸어가는” ‘겨울나무’-우리 민족은 “밤이나 낮이나 오직 한 생각”- “이 겨울을 함께 지낼 / 하얀 천사를 기다리는 것”만 할 뿐이다. 여기서 “얼어붙은 겨울하늘”, “무성의 대화”,“정감소통의 꿈길”, 이것들의 내면에 숨겨진 의미는 무엇일가? 수많은 상상을 던져주고 있다. “백명의 독자에게는 백명의 햄리트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머지는 독자들의 해석에 맡기도록 하겠다.    우의 시가 우리 민족의 삶의 태도와 미래에 대한 지향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작품이였다면 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우리 민족의 전통무용인 칼춤을 눈앞에서 보는듯 생동하게 묘사하면서 그 속에 민족적 절개를 담아내고 있다. 과거의 정형시나 현대의 자유시에서 행과 련은 기본적인 리듬을 표출하는 방식이다. 과거의 정형시는 외형적으로 행과 련을 통해 리듬감을 조성하였다면 현대의 자유시는 비록 과거의 행과 련의 정형적인 외형적 형식을 타파하였지만 그 대신 내적 형식 즉 내재률로 리듬감을 조성하고 있다. 음악성을 추구하는 시는 소설이나 산문처럼 서두와 결말이 하나로 이어진 완결된 형태의 이야기 문장이 아니라 마디마디로 느낌을 토해내는 감정적인 문장이기 때문에 행과 련마다 독립적인 형태를 취하며 그 속에는 리듬이 있고 호흡이 있다. 이 시는 정형시의 요구에 따라 행과 련을 나누고 있고  3.4 , 4.4조의 음수률을 기본형식으로 하고 있다. 즉 형식상으로 볼 때 정형시의 형식과 조선민족의 전통시가의 기본 형식을 따르고 있고 내용상으로 볼 때 민족적 정서가 다분한 작품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 시는 현대시의 향보다는 민족전통시가의 향이 짙은 작품으로 시인이 짙은 민족적 정서를 기본 바탕으로 하여 음악성, 표현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노력이 충분히 엿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돌아와 시인은 를 통해 또다시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연에서 태여나 자연을 모방하면서 진화하고 발전한 인간이지만 자연을 정복하려는 욕망으로 오래동안 자연을 파괴하여왔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이 정복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고 이로써 자연과 인간의 화합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인은 “겨울의 대문이 열렸으니 / 이제부터 낮이 짧아지고 / 밤이 길어지”는 것은 자연법칙이니 당연한 일이고 “한동안 밤이 길다고 하여 / 괜히 슬퍼할 것도 없고 / 절망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따라서 “이 밤도 꿈길 가듯이 / 희망의 푸른 손가락은 / 달빛 드리운 창가에서 / 밤하늘에 초롱초롱한 / 별을 헤”다 보면 긴 밤이 지나고 낮이 길어지는 때가 오니 “결코 절망은 없다”고 하였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화가 있으면 복이 따르는 법이고 복이 오면 화도 따라오는 게 아니겠는가. 겨울의 긴 밤이 지나면 새벽이 찾아오고 낮이 길어지는 여름도 오기 마련이니 꿈을 가진 자라면 그 꿈을 위해서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시인의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다.     이상으로 김동진 시인의 시들을 두루 살펴보았다. 그의 시들은 어느 하나도 복잡한 창작기법이나 화려한 어휘로 독자들을 현혹시키려 하지 않았고 소박한 언어로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표현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동시에 시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민족에게 꿈을 가질 것을, 그 꿈을 위해서 강인하게 살아갈 것을 호소하고 있다. 바슐라르가 “물질적 상상력을 통한 언어의 마술이 그림과 조각과 판화에 또 다른 창조의 빛갈을 입히고 시와 소설의 새로운 초월적 깊이로 독자들을 초대하여 몽상 속에 존재의 모순과 통일성을 변증법적으로 드러내며 미술, 문학, 몽상에 대해 펼쳐내는 단상들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저 했”듯이 시인은 시를 통해 꿈꿀 권리가 있고 독자 역시 시인을 통해, 그의 시를 통해 꿈꿀 권리를 갖는 것이다.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시인도, 따라서 독자도 자아를 위한, 나아가 타자를 위한 오색찬란한 꿈을 꿀 권리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출처:2019 제1호  
2    살춘각:춘천 나들이(기행수필) 댓글:  조회:344  추천:0  2019-07-08
춘천 나들이   살춘각           3박4일로 그녀가 나를 보러 왔다. 중국에서 비행기 타고 한국에 있는 나를 말이다. 주말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하루 정도는 청가를 맡아야 할 터이니 그녀로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였을 것이다.    “어디로 갈가?”    한국이 처음인 나는 울산에 가본 게 다였고 서울에서는 길상사를 돌아본 게 전부였다. 반대로 그녀는 해마다 한번씩은 한국을 드나들었으니 거의 못 가본 데가 없었다.    “춘천 못 가봤는데요.”    “좋았어!”    그렇게 려행지는 춘천으로 결정이 났고 이튿날, 백반집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친 다음 우리는 고속터미널에서 춘천으로 가는 일반뻐스에 올랐다.    료금은 한화로 8,000원, 소요시간은 대략 세시간이다.        소양강처녀   부산에 ‘부산갈매기’가 있다면 춘천에는 ‘소양강처녀’가 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1호 려행지는 소양호일 수 밖에 없었다.    남춘천역에서 대충 짜장면으로 떼우고 나오니 시간은 오후 한시가 훨 넘어있었다.    남춘천역에서 소양강댐까지는 12번 뻐스가 배정돼있었다. ‘소양강처녀’를 보러 가는 사람이 많은 모양, 뻐스는 순식간에 다 차버렸다. 빠르면 40분, 늦어도 한시간이라 했으니 시간에 쫓길 것 같지는 않았다.    한 20분 달렸을가. 왼쪽 옆구리 쪽으로 커다란 동상 하나가 파고들고 있었다. 얼핏 봐도 큰 강인데 강 우에 세워진 모습을 보니 쩍 말 없는 소녀상이였다. 하다면 이 강이 소양강이고 소녀상은 ‘소양강처녀’상이란 말인가?    종착역에 이리 빨리 다달을 수는 없을 텐데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뻐스는 소녀상을 뒤로 내던지고 소양2교를 건너 강변도로를 내달리고 있었다.    뻐스 안이지만 소녀상을 찬히 보지 못한 게 아쉬웠고 돌아올 땐 잊지 말고 여기 꼭 들려야지 생각했다.    노래 는 원 제목이 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감이 둔탁스럽다고 하여 어감이 괜찮은 로 고쳤다는 것이다. 반야월이 작사하고 리호가 작곡한 이 노래는 1970년, 가수 김태희가 부르면서 전국을 휩쓸었고 앨범은 10만장 넘게 팔리는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가히 한국인의 국민 대표곡 1호라 할 수 있었다.    반야월은 본명이 박창오朴昌吾였는데 진방남秦芳男이란 이름으로 가수 데뷔를 했고 , , 등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반야월半夜月은 작사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진 이름인데 군국가요 관련 활동도 해서 공식사과를 한 적도 있었다. 1990년대 이후 그는 한국 가요계의 대표적인 원로로 부각되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인기가요들을 많이 발표했고 대중가요의 정체성 확립과 권익 다지기에 기여를 했다. 조선전쟁 이후 월북 작사가들의 작품이 금지대상으로 지목되자 그는 또 개사작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때 쓴 필명들이 추미림秋美林, 박남포朴南浦이다.    노래 는 실제 모델이 있었다. 1953년생 가수지망생 윤기순尹基顺이 그녀다.    1995년 춘천시에서는 소양강과 소양강댐에 더 많은 유람객을 유치하기 위해 노래비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이 자리에 작사가 반야월을 모셨고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의 모델이 있으면 공개해줄 것을 간절히 요청했다. 그렇게 되여 수면 우로 떠오른 윤기순은 파출소의 인터넷망을 통해 찾아냈는데 찾았을 당시 아직도 가수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윤미라라는 무명가수로 광주의 어느 한 야간업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1968년, 가수라는 화려한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한 윤기순은 가요작가 김종한의 무료 레슨을 받으며 명보극장과 가까운 ‘한국가요 반세기 가요작가 동지회’ 사무실에서 일했다. 6월에 윤기순은 사무실의 선생들을 소양강변의 갈대숲으로 초청했다. 아버지가 그 곳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동행했던 선생들로는 회장 반야월을 비롯해서 김종한, 월견초, 류농완, 고명기 등이였다.    천렵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차례 소나기가 쏟아졌고 저녁 무렵 옅은 물안개가 피여올랐다고 한다. 그 때 그 풍경이 절경이여서 반선생이 가사를 쓴 것 같다고 후날 윤씨는 회억했다.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처녀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 가슴에   떠나고 안 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처녀       달 뜨는 소양강에 조각배 띄워   사랑의 소야곡을 불러주던 님이시여   풋가슴 언저리에 아롱진 눈물   얼룩져 번져나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처녀       그런데 뜻밖의 사람이 나타났다.     “내가 바로 노래 의 주인공이다.” 라고 밝히면서 2007년 국민일보에 반야월과의 사진 등을 증거자료로 내놓은 사람은 현재 충남 계룡시에 살고 있는 박경희라는 녀인이였다.    박경희의 회억에 따르면 당시는 윤기순보다도 일년 먼저인 67년도였고 반야월은 작사체험을 한답시고 그녀 아버지가 운영하던 소양1교 부근 ‘호수려관’에 한달간 체류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려관 외에도 선박업을 하고 있었는데 소양강댐 건설로 지금은 없어진 강 상류에 있는 고산이라는 작은 섬에로 반야월을 나루배로 데려다주라고 박경희에게 몇차례 일렀다는 것이다.    춘천녀고 3학년에 재학중이던 박경희는 소양강에 산다는 리유로 사생들 사이에서 그 때 벌써 별명이 ‘소양강처녀’였다고 한다. 이른 련애를 했던 박경희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거제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반야월을 모시고 고산으로 관광을 가던 중 박경희는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동백꽃은 어떤 꽃이죠?”    거제도로 일하러 간 남자친구의 편지내용 중에 “여긴 지금 동백꽃이 한창이다” 라는 구절이 있었던 것이다.    “동백나무에 피는 빨간 꽃이고 꽃은 가지 끝에 하나씩 피지.”    반야월은 아는 만큼 동백꽃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주었다면서 박경희는 춘천에서는 볼 수 없는 동백꽃이 노래 2절에 나오는 리유가 그것이라고 했다.    한달간의 작사체험을 마치고 떠나면서 반야월은 “너의 사연을 노래말로 썼으니 나중에 레코드가 만들어지면 너한테 전해주마. 음반이 성공을 하면 꼭 찾으마.” 하고 약속을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뿐더러 박경희가 나타나자 오히려 는 주인공이 없다, 어쩌면 모든 녀성이 주인공일 수도 있다면서 강한 부정을 보였다.    하지만 춘천시에서는 두 사람을 다 의 모델로 인정을 하였고 2005년도에는 소양2교 옆에 노래비를 건립하였으며 2015년에는 최문순 춘천 시장의 주선으로 박경희, 윤기순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만남을 가졌다.    여기서 나는 잠간 웃었다. 청마 유치환의 ‘련애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랬다.    통영녀중 국어교사였던 38살 유부남 청마는 같은 학교 가사교사인 시조시인 정운丁芸, 리영도李永道를 만났던 것이다. 21살에 남편과 사별하고 딸 하나 키우면서 우체국 근처에서 수예점을 운영하고 있었던 정운은 청마보다 9살 아래였다. 청마는 수예점이 내려다보이는 우체국 창가에 기대서서 정운에게 20여년을 매일같이 편지를 썼다고 한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님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하지만 이렇게 절절한 청마의 ‘그리움’ 앞에서도 정운은 어쩔 수 없었으니-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울여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窓만 바라보다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정운 역시 청마를 사랑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청마의 편지는 편편마다 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렇게 청마는 20여년에 걸쳐 정운에게 5,000여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마는 교통사고로 련애편지를 쓰던 펜을 영원히 놓게 된다.    “근배, 니 부산 좀 내려오거래이.”    뜻밖에도 정운이한테서 리근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단다. 문패의 먹도 채 안 마른 새로 생긴 중앙출판사 편집장으로 취직했던 리근배는 그 소리에 잡담 제하고 달려갔다.    ‘애일당爱日堂’이라 이름지은 리영도의 집은 동래 금정산 기슭 양지바른 터에 꾸며져있었는데 규방에는 청마가 준 사랑의 시를 손수 수놓은 열폭 병풍이 둘러져있었다고 리근배는 회억했다.    그 날은 부산 문인들이 청마 추모 문학제를 지내는 날이였는데 정운 말고도 소복 입은 녀인들이 다섯이나 앞줄에 앉아있었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정운은 련서 보따리를 선뜻 내주었고 아동문학가 최계락과 리근배는 그 편지들을 대충 추려갖고는 서울에 와서 서한집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묶어냈다고 한다. 5,000통에서 200통을 골라냈다고 하니 상상도 아니 갈 노릇이였다. 덕분에 주문이 밀어닥치는 베스트 셀러가 됐고 중앙출판사는 일약 명성을 떨치게 되였다고 한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서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중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참으로 명편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어떻게 저런 편지 속에 들어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정운이가 자다가도 놀라 벌떡 일어날 일이 생겼다.    이 사랑의 서한집이 출판되자 청마의 편지를 갖고 있다는 녀인들이 여기저기서 자고 일어나면 한명씩 나타났던 것이다. 20여년간 자기 한사람만 꼬박 사랑해왔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게 아니였던 것이다. 뒤통수라도 이런 뒤통수가 없었다.    “그게 정말이세요?”    “아이러니지.”    종착역에 내리니 꽤나 찬바람이 불어왔다. 여기서부터 댐까지는 반시간 푼히 올리걸어야 한다. 내려올 때는 십오분이면 족할 것이다.    나와 그녀는 천천히 걸었다. 락엽들이 어지러이 나뒹굴었다. 시월도 막 가는 때라 하늘은 건뜻 높이 들려있었다.    “내 주변에도 그런 녀석이 있어.”    “어떤 녀석요?”    “사랑시 한수를 써서는 이 녀자 저 녀자한테 위챗으로 날리는.”    “이 시 너를 위해 쓴 거다, 그래요?”    “빙고~”    “녀자들 그대로 믿겠네요.”    “완전 감동이겠지? 이 세상에서 저 혼자만 녀자인듯. 저 혼자만 특별한듯.”    “나쁘네요!”    소양강댐은 높이가 123메터, 제방 길이는 530메터, 총 저수량은 29억톤으로 진흙과 돌로써 만들어진 사력 다목적 댐이다. 한국에서는 제일 큰 것이라지, 아마.    양구군과 인제군의 3개 시, 군, 6개 면, 38개 리의 4,600세대가 이주하였으며 수몰된 논밭만 해도 약 2,700헥타르라고 한다.    해발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풀이 잘 자라지 못하고 나무도 비뚜름히 성장한 것으로 보아 기온이 차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봄에 피여야 할 개나리가 철없이 몇송이 핀 걸 보고 그녀가 웃었다. 그녀의 손엔 올라올 때 내가 꺾어준 들꽃 한묶음이 그대로 들려져있었다.    “이제 슬슬 내려갈가?”    “그래요. 추워서 어디 유람선이나 타겠나요.”    우리는 ‘소양강처녀’ 동상을 보는 것이 더 급했던 것이랄가.    동상을 보려면 소양2교에 닿기 전인 근화동에서 내려야 했다.    동상은 다리 중심가에 세워져있었는데 다리에서 내려 강쪽으로 백여보 걸어야 했다. 소양강이 조선의 강으로 합류하는 바로 그 합수목이다.    한화로 5억 5,000만원을 들였다는 그 동상은 높이가 7메터로서 오고가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묶어두기에 손색이 없었다. 다리 중앙 동상 소개비 옆에는 스피카가 있었는데 노래가 쉬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동상을 올려다보며 나는 연신 찬탄을 금치 못했다. 동상이 웅장하기도 하려니와 그 때 마침 검은 구름이 몰려와 강물을 덮고 있어서 비바람 속에 서있는 처녀상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춘천까지 갔으면서 정작 윤기순씨를 못 만나고 왔다는 것이다. 광주의 밤무대 생활을 접고 일본에 갔던 윤기순은 2006년도에 춘천으로 돌아와 부모님의 가업을 이어받았다. 사북면 자암리 잡다리골의 ‘풍전가든’이라는 민박집이 그것이다. 봄엔 개나리 벚꽃이 있고 여름에는 느티나무 록음이 있으며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그 곳은 겨울에는 상고대가 있어 외롭지 않단다. 젊었을 때도 결혼 안한 내가 지금이라고 하겠는가고 말하는 윤기순이야말로 진정 ‘소양강처녀’가 아닐가 싶다. 다음에 춘천에 오면 내 꼭 ‘풍전가든’에 가보리라.    “만약에, 내가 만약에 쌤하고 결혼을 하자고 한다면…”    처녀상을 다 보고 소양2교를 벗어나 얼마간 걸었을 때 그녀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쌤은 할 생각이 있으세요?”    그녀는 나를 쌤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바람에 나도 걸음을 뚝 멈추었다.    그녀는 나의 두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다면 그녀는 비행기를 타고 예까지 온 것이 결국 이걸 확인하기 위해서인가.    사실 이미 결혼에 실패했던 나는 다시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결혼이라는 두 글자조차도 입에 올리기 싫었다. 그만큼 나는 혼인에 대해 철저히 실망하고 있었고 녀자에 대해 믿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가고 있었다. 정반대의 말을 내뱉고 있었던 것이다.    “너라면!”    “알았어요.”    그녀가 다가와 나의 팔을 잡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가. 단풍 든 락엽이 한벌 깔린 숲공원에 왔을 때였다. 갑자기 그녀가 또 물어왔다.    “쌤은 지금까지 사귄 녀자가 몇명이나 되죠?”    “한 삼십명 되나 모르겠어, 세여보지 않아서.”    탁, 그녀가 잡았던 나의 팔을 탁 놓았다.    어, 이건 뭥미? 하는 사이에 그녀는 어느새 공원 안으로 저만치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녀는 내가 꺾어준 꽃묶음을 숲 밖의 락엽더미에 활 내던지고 있었다.    나는 숲 밖에 나가 떨어진 꽃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서있었다.            굿바이, 유정!   춘천에 왔다가 ‘소양강처녀’만 보고 갈 순 없었다. 이왕에 왔으니 더 돌아볼 판이다. 춘천에 어디 명물이 ‘소양강처녀’ 뿐이겠는가.    남춘천역 뻐스정류소에서 이 역 저 역 둘러보는데 ‘김유정문학촌’이라는 역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金裕貞.    김유정이라면 , 을 쓴 유명한 작가가 아닌가. 29살에 돌아간 비운의 천재. 2년 동안에 30여편의 소설을 답새겨낸 ‘구인회’ 멤버.    그 곳이라면 안 갈 수가 없지. 흥분된 나는 동의를 구하는 눈치로 내 옆의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내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겠다는 제스처를 해왔다.    김유정은 1908년 2월에 강원도 춘천 실례마을에서 2남 6녀 중 일곱째로 허약하게 태여났다. 유아기에 서울로 이사했는데 7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9살에 아버지를 잃는 등 부성 모성 결핍으로 말더듬이로 되였다고 한다. 크면서 점차 나아졌는데 휘성고보를 졸업할 당시에는 덩치도 좋아졌고 말더듬증도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 때문에 후날 몹시 과묵했다고 한다.    193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3년에는 잡지 《제일선》에 와 《신녀성》에 를 발표한 뒤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로 1등상을, 가 《조선중앙일보》에 가작으로 입선함으로써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지하철을 리용하면 두정거장이면 된다는데 뻐스로 가려니까 여러 역을 거친다. 그리고 이리저리 에돌아가다 보니 25분이나 걸리는 것이였다. 문학촌에 도착했을 때는 열시가 넘어있었다. 구경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면 딱 안성맞춤이리라.    문학촌 어구에 이르니 커다란 안내표시판이 나온다. 찬찬히 훑어보다가 우선 전시장부터 들려보기로 했다. 전시장과 생가만은 입장료를 받는다고 했다. 2, 000원.    헌데 웬걸. 기념관 문이 꽁꽁 닫겨있는 게 아닌가. 옆에 있는 별채들도 닫겨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생가도 닫았을가. 멀리 생가 있는 쪽을 건너다 보니 미상불 거기도 닫혀있는 상 싶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그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별채와 별채 사이에는 너른 공터가 많았는데 운동장 서너개를 합친 것보다 더 커보였다. 공터에는 여러가지 조형물이 많았다. 아기 업은 아낙네에 지게를 멘 남정들, 할아버지와 손주… 그리고 특히 소흑판 같은 조형물이 많았는데 가서 들여다보면 김유정 작품 속 이야기 몇단락씩 씌여져있었다. 이라거나 , 이나 등등.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등뒤에서 닭의 홰소리가 야단이다. 점순네 수탉이 우리 닭을 쪼아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나흘 전에 점순이는 울타리 엮는 내 등뒤로 와서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감자를 내밀었다.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루 어깨 너머로 쑥 밀어버렸다. 쌔근쌔근 독이 오른 점순이가 나중에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 다음날 점순이는 자기 집 봉당에 걸터앉아 우리 집 씨암탉을 붙들어놓고 때리고 있었다.    하루는 나도 우리 집 수탉에게 고추장을 먹이고 점순네 닭과 싸움을 시켜놓고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었다. 지게 막대기로 점순네 수탉을 때려죽이고 멍하니 섰다가 점순이가 매섭게 눈을 흡뜨고 닥치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가만히 생각을 하니 점순네는 마름집이라 이제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해야 될는지 모른다. 얼김에 엉, 하고 울음을 놓았다. 이담부터 안 그럴 테냐는 점순에게 그래, 하고 대답을 했는데 점순이는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듯이 고만 아찔하였다.        “여기서 말한 동백꽃이 저 꽃이야.”    나는 조형물 속의 문장을 읽고 있는 그녀에게 노란 잎이 반짝거리고 있는 생강나무를 가리켰다.    “여기 패말에 생강나무라고 써있는데요?”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이라고 불러. 저기 문장에도 노란 동백꽃 속이라고 표현을 했잖아. 봐, 생강나무가 노랗잖아.”    “아, 네.”    우리는 김유정 생가 쪽으로 스적스적 걸음을 옮겼다. 가면서 나는 장인어른이 점순이가 키가 작아서 시집을 안 보낸다 해서 점순이가 키가 크기를 4년이나 기다렸다는 얘기랑 해주었다. 그녀는 옛날 사람들 글을 써도 참 능청스럽게 쓴다면서 깔깔거렸다.    “뽀뽀라는 낱말 있잖아.”    “네.”    “뽀뽀가 처음으로 등장한 문학작품이 김유정의 작품이야.”    “네에?”    “란 작품에 ‘입이나 좀 맞추고 뽀! 뽀! 뽀!’ 하는 장면이 있고 라는 작품에 ‘오, 우지 마, 우리 아가야, 하고 그를 얼싸안으며 뺨도 문대고 뽀뽀도 하고 할 수 있는, 그런 큰 행복과 아울러 우리는 흠씬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라는 구절이 있어.”    “그럴 수가요?”    “1961년에 편찬된 리희승의 《국어대사전》에 ‘뽀뽀’가 처음으로 올랐으니 그렇게 말할 수 밖에. 그 전의 사전들엔 다 없었으니까.”    유정생가는 아니나 다를가 대문을 꾹 닫고 있었다.    “이런, 장사나 해먹겠다.”    내가 투덜거리는데 그녀가 담장 옆의 바위돌을 가리켰다.    “저거라도 딛고 들여다보세요.”    생가는 안방과 대청마루, 사랑방, 봉당, 부엌, 고간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자 형태였다. 조카 김영수와 한때 유정이 가르쳤던 금병의숙 제자들의 고증에 의해 복원된 것이란다.    독특하게 ‘□’자 구조의 집을 짓고 기와집 골격에 초가를 얹었던 것은 당시 헐벗고 굶주렸던 사람들로부터 내부를 감추고 또 외부에서 오는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유정이네는 경성에도 백여칸 되는 집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천석지기 지주였다. 후날 집안을 도맡아 관리하던 유정의 형이 주색잡기로 다 말아먹기는 했지만.    마당에는 《동백꽃》의 주인공들인 점순이와 내가 닭싸움을 시키는 조형물이 비치되여있었다. 남자는 청석돌 우에 앉아서 지켜만 보는 반면 녀자 점순이는 자기네 닭을 부둥켜안고 기어이 상대 닭을 이기려는 악착같은 모습을 보인다. 실소가 저절로 터지게 하는 조형물이였다.    “김유정은 어떤 사람이였나요?”    내가 담에서 내려오자 그녀가 물었다.    “오면서 내내 궁금했어요. 장가는 갔는지… 자식은 있는지…”    “작가로 말하면 천재, 사람으로 치면 스토커.”    “스토커요?”    “왜, 작가도 작가이기 앞서 사람이야. 동물적 본능을 가진 사람이라구. 작가로 성공해서 가려져서 그렇지 유정은 스토커라도 아주 악랄한 악질 스토커라 할 수 있지.”    “헐~”    유정이 21살 나던 무렵, 그러니까 1928년이 되겠다.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던 그가 어느 날 종로 어느 목욕탕 앞에서 목욕을 금방 마치고 문앞에 서있는 어머니를 닮은 어떤 녀자를 만났다. 유정보다 세살 더 많은 기생 박녹주였다.    박녹주 하면 판소리계의 명창으로 김소희, 박송희, 조순애, 장영찬, 박초선, 성창순, 성우향, 한농선, 일일주, 조상헌, 일옥천 등 굵직굵직한 예능보유자 제자들을 길러낸 명창 중의 명창임은 다 알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큰 획을 그은, 그것도 당대 슈퍼스타인 박녹주를 김유정이 감히 첫눈에 반해버린 것이였다. 열혈 21살이라는 나이에.    그 해 봄, 조선극장에서 8도 모창대회에 박녹주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은 유정은 수소문 끝에 그녀의 대기실에 찾아갔다. 거기서 대화를 나눠본 유정은 더욱 깊이 빠지게 되고 이튿날부터 하루가 멀다 하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레코드판에서 박녹주의 사진을 뜯어내서는 그 밑에다 “당신을 련모합니다. 저의 사랑을 받아주십시오.” 라는 편지까지 도착하자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 박녹주는 드디여 행랑어멈을 시켜 유정을 데려오게 하였다. 앞에 앉혀놓고 “학생은 오로지 공부에 전념해야지 다른 생각을 하면 아니된다.” 하고 자신은 기생신분임을 내세워 타일러보았지만 이미 사랑에 눈이 먼 유정은 그냥 편지를 가져다 넣었다. 했으나 아무리 편지를 넣어도 답이 없자 유정은 박녹주의 집을 찾아가 대성통곡을 하기에 이른다. 이를 보다 못한 박녹주의 동생 박태술이 유정을 자기 방으로 데려갔고 둘은 그걸 계기로 친구로 되였다. 유정으로서는 태술을 핑게로 박녹주의 집에 드나들 수도 있고 편지도 전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당신이 무슨 상감이나 된듯이 그렇게 고고한 척하는 거요. 보료 우에 앉아서 나를 마치 어린애 취급하듯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것이오. 당신이 사랑을 버린다면 내 손에 죽을 줄 아시오.”    김유정이 박녹주를 죽이겠다고 협박편지를 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였다. 박녹주를 부르는 칭호도 급속히 달라져갔다. 처음에는 ‘선생’이라 하더니 ‘당신’이라 변했고 나중에는 ‘너’라고 자기 부인을 칭하듯 불렀다.    1929년 5월 2일자 《매일신보》에 박녹주가 아버지의 학대와 조선극장 지배인이였던 신모씨와의 애정문제로 자살소동을 벌였다는 소식이 대서특필되였다. 신문을 읽은 김유정은 연희전문학교부터 자퇴하고 다짜고짜 박녹주가 입원중인 병실을 찾아가서 자신과 결혼하자고 프로포즈를 하였다. 그러나 박녹주의 대답은 의외로 단단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남자를 믿을 수 없다. 그러니 기대 말고 돌아가라.” 다음날 박녹주의 집앞에서 방성통곡하는 김유정의 모습이 목격되였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에 대해 믿을 수가 없다던 박녹주가 원산의 부호 남백우와 살림을 차렸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유정은 아,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였구나 하고 개탄하더니 본격적인 스토킹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너의 운수가 좋았노라. 그 길목에서 너를 기다리기 3시간, 만일 나를 만났으면 너는 죽었으리라.”    “엊저녁에는 네가 천향원으로 간 것을 보고 문앞에서 기다렸으나 나오지를 않았다. 만일 그 때 너를 만났다면 나는 너를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지 마라. 단 며칠 목숨이 연장될 따름이니까.”    섬뜩했다. 그 편지는 잉크가 아닌 피로 쓴 것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끝내 유정이가 박녹주가 타고 있던 인력거에 접근해 몽둥이로 기절시켜 랍치하려 한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이에 식겁한 녹주가 다음날 직접 유정을 불러 “나는 나이도 돈도 따지지 않습니다. 단지 당신에게 마음이 가지 않는 것도 내 잘못이란 말입니까?” 라고 한소리 하여 돌려보냈다. 그게 박녹주가 유정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라고 한다.    유정이는 그 때부터 술을 마셨다고 문우들이 회억했다. 그리고 터질듯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박녹주가 김유정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박녹주가 유정을 걷어차지만 않았어도 오늘날 작가 김유정이 있었을 건가.    그런데 유정은 또 한사람의 녀자를 만난다. 박봉자라는 유정이보다 한살 어린 녀자다.    1936년 봄, 유정은 《녀성》이라는 잡지사로부터 라는 원고청탁을 받는다.        “…나는 숙명적으로 사람을 싫어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그 버릇이 결국에 말 없는 우울을 낳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페결핵입니다. 매일같이 피를 토합니다. 나와 똑같이 우울한 그리고 나와 똑같이 피를 토하는 그런 녀성이 있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초가삼간 집을 짓고 한번 살아보고 싶습니다. 단 사흘만 깨끗이 살아보고 싶습니다.”        라고 썼다. 그런데 그 옆에 나란히 실린 문장이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란 박봉자의 글이였다.        “…장래의 내 남편을 리해 많은 문학가라고 생각을 고쳤습니다. 문학가는 세상을 잘 알고 사람을 잘 압니다.”        몸과 마음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유정은 그 글을 보자 대뜸 매료되였다. 낯도 코도 모르는 박봉자에게 유정은 우발적으로 련모한다는 편지를 쓰게 되였고 답장이 없자 박녹주에게 썼던 편지보다 더 절절한 고백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답장이 없자 유정은 서른통도 넘는 혈서까지 써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다음 달 6월 1일, 유정은 신문소식란에서 이화녀전을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가 된 박봉자가 유정과도 친한 친구 문학평론가 김환태와 결혼했다는 기사를 읽고 큰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박봉자는 또한 시인 박용철의 녀동생이기도 했다.    결국 유정은 가족들의 권유로 고향 춘천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야학을 꾸리면서 들병이들과 어울리며 집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아니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에 의해 야학도 얼마 못 가 강제 해체되고 유정이는 륵막염에 페결핵, 치질까지 더 심해져 움직이기도 어렵게 된다.    “그렇게 죽었나요? 김유정은?”    “아니. 고향으로 돌아와서 미친듯이 창작하였는데 죽기 전까지 10개월 사이 무려 8편의 소설을 써내게 돼. 정말로 놀라운 열정이지.”    “몸이 배겨내나요? 강철이라 해도 안되겠어요.”    1937년 다섯째누이 김유흥의 과수원집 토방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유정은 휘문고보 동창이자 소설가인 절친 안회남에게 쓴 편지를 끝으로 3월 29일 새벽 달빛 속에 하얗게 핀 배꽃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한다.        “필승아, 나는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있다. 그리고 맹열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되겠다. 달리 도리를 차리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는 일으키기 어렵겠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필승아, 내가 돈 백원을 만들어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하여 주기를 바란다. 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해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두어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역译하여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주마. 하거든 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필승아,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의 몸이다. 돈이 생기면 우선 닭 30마리를 고아먹겠다. 그리고 땅군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쏘구리 돈을 잡아먹는다. 돈, 돈, 슬픈 일이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삶을 다할 때까지 박녹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는지 김유정의 방안에는 “녹주, 너를 련모한다”는 혈서가 붙어있었다.    김유정의 장례식을 치른 날, 술에 만취한 안회남이 박녹주의 집에 쳐들어가서는 “당신이 박녹주요? 내 친구는 당신이 죽인 거요. 죽을 때까지 당신을 잊지 못하고 갔단 말이오!” 원망했고 박녹주 또한 김유정에게 신물이 날 대로 났음에도 불구하고 “김유정에게 너무 박절하게 대하여 내가 슬하에 자식 없이 살았나 보다. 손이라도 한번 잡게 해줄 것을…” 라는 회고록을 남겼다.    “충격이예요.”    “뭐가?”    “김유정의 사랑이 너무 기구해서요.”    “운명인 거지.”    “임자를 만나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가요?”    “만나봤자 또 차이겠지.”    “그러면 또 스토킹을 해야겠네요. 이번엔 손목을 그을가요?”    “손목 가지고 되겠나. 목 정도는 내놓아야지.”    “하필이면 무정한 두 박씨를 만나가지고. 쌤은 이후에라도 박씨들과 놀지 마요.”    “하하하하.”    그 바람에 나는 귀가 너덜너덜해지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김유정, 박무정.”    “덕분에 한국은 천재소설가 한명을 얻었잖아.”    “사랑이란 게 뭘가요? 뭔데 이렇게 고통스러울가요?”    “사랑은, 음~ 사랑한다는 것은 다시 태여난다는 것이지. 김유정이처럼!”            강덕수라는 사람   점심 먹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였다. 그렇다고 문이 땅땅 잠겨있는 문학촌을 더 둘러볼 멋도 없는 일. 내다보니 뉘엿하게 휘여진 앞산 등허리로 구불떡하니 길이 나있다.    “올라가볼가?”    우리는 천천히 이 말 저 말 하면서 올라갔다.    바람이 고왔다. 앞산에서 내려온 바람이 잦나무에 걸터앉았다가는 살사리꽃을 흔들어놓고 우리의 발치 앞에서 살포시 잠들어버린다. 여기는 강원도라 내가 살던 연변과 기온이 거의 비슷하다.    한참 올라가니 왼손편으로 무우밭이 나왔다. 무우 옆엔 배추도 심었는데 그 옆엔 연변에서는 못 보던 농작물도 있었다.    스쳐지나려는데 그녀가 채소밭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들어가는 것이였다.    뭐가 있길래?    나는 들어가지 않고 채소밭 어구에서 기다렸다.    담배 한대 태우고 있자니까 그녀가 나를 보고 오라고 손짓한다. 그녀의 손에는 방울도마도 몇알 쥐여져있었다. 빨갛게 잘 익어있었다. 시월도 다 가는데 방울도마도라니. 그래서 보니 그녀의 뒤에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그녀는 하우스 안에 들어갔다 나왔던 것이다.    “이거 드셔보세요. 맛 괜찮아요.”    나는 잽싸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사람이 없어요.”    없기는.    사람이 올라오고 있었다. 없다던 사람이 발에 군용 가죽구두를 신고 밭 아래쪽에서부터 우리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밭주인인 것 같았다. 나이는 어림잡아 고래희.    “저게 어째 내 눈에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옷도 입고 구두도 신고.”    “안경도 걸었는데요.”    “모자도 비싼 거 썼구만, 전모자.”    “아까는 없었어요.”    “귀신은 아니겠지?”    “귀신이 왜 낮에 나와요.”   “그럼 천사겠군.”    “저렇게 못난 천사도 있어요?”    “그렇다면 사람이 맞네.”    “어디서 나타났을가요?”    “뒤간에 숨어있었겠지.”    “있네요, 사람이…”    그 사람이 앞에 와 서자 나는 얼른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입안에 방울도마도가 굴러다니고 있었으므로 인사말은 생략했다.    “어디서 온 손님들이오? 난 이 밭 주인인데 강덕수라 한다오.”    갱핏한 체구를 가진 그 사람은 선명한 얼굴에 꽤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다. 넉넉한 웃음을 짓는 표정이 인상에 좋았다.    “서울에서 왔는데요, 지나가던 걸음에 무우밭을 보고 들어왔습니다. 주인장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아니요. 저기 도마도도 있고 머루도 있으니 맘껏 드시오. 뭐 필요한 것 있으시면 말만 하시오. 얼마든지 드리리다.”    “네. 말만 들어도 고맙습니다.”    “점심식사들은 하셨소?”   “아직요. 방금 문학촌을 돌아보고 시간이 남았길래 여기로 올라왔습니다. 좀 이따 내려가서 점심 겸 저녁을 먹어야죠.”    “그랬구만. 그래 무슨 좋은 구경들은 하셨소?"    “어제는 ‘소양강처녀’를 보았구요, 오늘은 ‘김유정’을 만났었습니다. 그런데 김유정문학촌은 왜 개방을 안하는 겁니까?”    “수지가 안 맞으니까. 찾아오는 손님도 없는데 인건비를 감당해낼 수 있겠소? 허허허.”    “책이라도 한권 사들고 가려 했더니… 아쉽네요.”    “오늘만 봐도 그렇잖은가. 손님이 달랑 두명.”    그러더니 나한테 채소밭 가운데 있는 정자처럼 생긴 오두막을 가리킨다.    “그런데 술은 좀 마실 줄 알란가? 저기 내가 담궈놓은 과실주랑 많은데이?”    “많이는 못 마시는데 조금은 마실 줄 알아요.”    내가 말하려는데 그녀가 앞질러 말해버렸다.    “그럼 됐네. 젊은 처자는 거기서 안주감이나 좀 갖춰오게나.”    그의 안내 대로 오두막정자로 들어가보니 취사하는 곳까지 다 마련돼있고 제법이다. 상도 장방형 탁자에 긴 의자 두개, 둘러앉으면 손님 열명이라도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른 안주 둬가지에 도마도, 오이. 술상은 간소하게 차려졌다. 오두막 옆으로는 채소를 심지 않은 빈 공터도 있었는데 달래도 보이고 냉이도 보였다. 벌통도 몇개 있었다.    “저기 저 잦나무가 있는 곳까지 나의 밭인데 한헥타르는 족히 되지.”    “많네요. 채소는 심어서 파는가요?”    “더러는 재미로 심고 대부분은 다 나눠준다오. 친구들이 잘 놀러 오거든.”    그의 집은 할아버지 적부터 이곳에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곳에 땅도 많고 정도 붙어 아버지가 돌아가자 고향으로 돌아와 신선처럼 살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인가 저 길 건너편에 서울사람이 내려와서 10억 주고 땅을 사더니 철조망만 턱 쳐놓고 풀만 잔뜩 웃자래워놓았지 뭐요. 뭐 거기다 무슨 펜션을 짓는다나 뭐라나.”    말할 때 그의 톤은 매우 낮았는데 귀를 거의 갖다대야 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오면서 볼라니까 배추밭 옆에 포도넝쿨이 있던데요?”   “아, 그거, 그게 포도가 아니라 머루라오. 머루농사를 지어서는 다 와인을 담궈버리지. 내가 담근 와인을 한번 마셔볼라나?”    그는 과실주도 내놓고 머루와인도 꺼내놓았다. 과실주는 35도짜리 담금주로 했고 와인은 순수한 머루로써 알콜을 한방울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과실주보다 머루와인이 더 맛있었다. 농도가 짙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신 뒤끝이 산뜻하니 가벼웠다. 생각 같아서는 실 것 같았는데 단맛이 훨씬 강했다.    “오늘 그걸 다 마시고 가게.”    그는 술을 못 마신다고 했다. 대신 담배는 즐겼다. 내가 피우는 담배를 건네주자 그는 신기한듯이 이리저리 비춰보는 것이였다.    “중국담배인데 ‘로빠둬’라고 한답니다. 한국담배보다 좀 독할 겁니다.”    “어? 그러면 교포인가?!”    “네. 중국 연변에서 왔어요.”    “아, 그러길래. 말투가 우리 강원도랑 많이 닮았소. 여기 춘천도 남춘천은 말투가 좀 달라. 북춘천이 이북과 비슷하지. 그런데 참으로 용하이. 연변사람이 김유정은 어찌 알고 찾아왔을가?”    “제가 문학에 좀 관심이 있어서요. 이런 데를 잘 찾아다닙니다.”    “오~”    그제서야 그는 뭐가 리해가 되는지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로빠둬’를 피우면서 그는 연신 담배맛이 좋다고 극찬했다. 담배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향이 입안 전체에 퍼지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런 담배 참으로 오랜만이라고 했다.    술 마시는 사이 그녀는 방울도마도를 한번 더 뜯어왔다. 술이 한 반병 쯤 내려갔을가. 내가 물었다.   “혹시 김유정을 만나보신 적 있으신가요?”    “내가 태여났을 땐 김유정이 이미 돌아간 뒤이니까 나야 못 보지. 우리 큰형은 봤다고 그러더군.”   “그렇겠군요. 김유정이 37년도에 돌아가셨으니…”    “우리 큰형 말로는 김유정이 체대도 좋고 날파람도 있었다오. 우리 큰형보다 썩 웃또래였는데 웬만한 사람하고는 말도 하지 않았다 하더군.”    “36년도였겠군요. 박봉자와 헤여지고 나서요.”    “박봉자인지 박녹주인지는 모르겠고 36년도는 맞는 것 같소. 서울에서 내려온 김유정이 금광사업에 손을 댔나 봐요. 김유정의 형은 부화방탕한 생활로 가산을 거의 탕진한 상태였다지. 그 때가.”    “금광도 했었나요? 야학을 한 건 아는데…?”    “한번은 김유정이 저 아래 주막에서 들병이와 술을 마시는데 이웃마을 쏠쏠이패들이 내려왔나 봐요. 그 주막을 접수하러. 그 주막 원래 다른 마을 건달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김유정이 오면서 자리를 내줬나 보더라구. 그래서 김유정이를 내쫓고 자기네가 차지하려는 거였지.”    “싸움이 일어났습니까?”    “일어나다마다. 김유정이가 2층에서 술을 마시는데 아래층에서 몹시 부산하게 왁자지껄 떠들더라요. 그래 도저히 술을 못 마시겠어서 좀 조용히 하라고 여기 니들만 있는 게 아니라고 달랬다는가. 그런데 이놈들이 와르르 마당에 몰려나가더니 김유정 보고 내려오라고 고래고래 소리질러댔다겠지. 원래 사람 싫어하고 말하기 싫어하는 김유정은 싸우기 싫었지만 하도 고아대니 안 나올 수 없었다고. 보니까 이쪽은 김유정 혼잔데 저쪽은 저그만치 아홉명이였다나.”    “1대 9요?”    “김유정은 싸우기 싫었으니까 돌아가라고 달랬다오. 그런데 저쪽에선 수자를 믿고 그냥 막 밀고 들어왔다지 뭐요. 순간 화가 난 김유정이 펄쩍 뛰여올랐는데, 순식간에 여섯명을 밟으면서 걷어찼다는게 아니겠는가. 함께 온 동료 여섯명이 쓰러지는 것을 본 나머지 세명이 뒤돌아서 내빼려는 걸 김유정이 불러세웠다오. 너부러진 놈들을 데리고 빨리 꺼지라고. 다시는 남이 술 마시는데 와서 행패 부리지 말라고 점잖게 타일렀다지.”    “김유정이 그렇게 잘 싸웠나요?”    “나는 못 봐서 모르지만 우리 큰형이 본 바로는 그렇다고 했소. 그만큼 동네에선 김유정한테 대들 자가 없었다고 했소.”    그럴 수도 있으리라. 박녹주한테 했던 행태만 보더라도 짐작은 가는 일이였다. 물론 과장된 전설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김유정은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였다.    “만석부자집 아들이라 받들려 자란 것도 있겠지. 누가 감히 쳐다나 봤겠소.”    “안하무인 격으로 자랐겠네요. 제 하고 싶은 걸 다하면서.”    “옛날 잘사는 집 자제들은 버릇 없는 건 있었지. 지금도 그렇지만.”    말하다 보니 머루와인 한통이 거의 굽나고 있었다. 그녀도 그의 이야기에 심취되여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다.    “술은 걱정 마시게. 여기 가득하니까. 갈 때 갖고 가도 돼요.”    그러면서 또 한통 꺼내놓는다. 이러다가 오늘 서울로 돌아 못 갈지도 모르겠다. 취기가 서서히 피여오른다.    “적게 마셔요.”    그녀가 내게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요, 춘천 하면 작가가 또 한사람 있지 않습니까. ‘춘천의 들개’요. 혹시 만나신 적은 있으십니까?”    내가 술잔을 들다 말고 물었고 강덕수씨는 담배 피우던 손을 놓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리외수도 아는가? 암, 만나보다마다. 외수하고는 너나들이 하는 친구지. 허허.”    “그래요?!”    나는 바짝 귀맛이 당겨 몸을 당겨 다가앉았다.    “그러엄! 외수가 화천으로 간 다음부터 못 만났으니 못 본 지 꽤 됐구만. 그 녀석도 참 재미있는 친구지.”    “부인 전영자씨도 글을 잘 쓰던데요?”    “부인은 만나 못 봤고 그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였나 하는 경위는 알고 있지.”    “얘기해주세요.”    그녀가 흥미가 당겨했다. 녀자들이 남의 련애사에 관심이 많은 건 알아줘야 한다.    “외수 원래 들개였어요. 너무 가난해서 들개처럼 쏘다녔다고 붙여진 별명이야. 외가에서 자랐다고 외수고. 들개는 아무거나 주어먹지. 언 똥도 가리지 않고 말이야. 진짜 외수는 밥을 얼려서 덩이로 만들어서 목숨을 연명했던 적도 있었다오.”    “들었습니다.”    “외수가 소설가로 뜨고 나서 잔뜩 기고만장해졌을 때였지. 어느 날 음악다방에서 잔뜩 폼을 잡고 앉아있는데 어떤 아가씨가 들어왔다는 거요.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더라나 뭐라나. 외수는 아무 고려도 안하고 그 아가씨한테 다가갔다오. 가서는 ‘너 어차피 나를 좋아할 것 같은데 지금부터 좋아해주라’ 했다는 거지 뭐요. 아가씨가 놀라 자빠지지 않은 게 다행이지. 거지라도 어디서 저런 상거지가… 목욕도 잘 안하지. 머리라는 게 텁숙하지. 그 아가씨가 전영자여.”    “듣자니 집장촌에서 기생들과 살았다면서요. 거기서 터득한 기술이 거시기를 서라면 서고 가만히 얌전하게 있으라 하면 얌전하게 있는 거라면서요?”    “그건 외수의 희떠운 소리고. 대마초도 피웠구 기생들한테 얹혀살았던 것도 사실인 건 맞는 것 같소.”    “그래서 혼외자 풍파도 생긴 거군요.”    “내가 외수를 만난 건 서울의 한 식당에서였지…”    강덕수씨가 그들의 첫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히죽이 웃고 있는 모습이 사뭇 즐거운 표정이였다.    하루는 강덕수씨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바로 옆좌석에서 어떤 꾀죄죄한 놈이 친구 한놈 앞에 앉혀놓고 하늘이 낮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마치 온 세상을 다 가진듯, 래일이면 대통령이라도 될듯 그렇게 큰소리를 쳐대더라는 것이다. 그 소리가 어찌나 높은지 강덕수씨는 귀가 다 아플 정도였다고 했다.    참다 못해 강덕수씨가 “야, 좀 살랑살랑 말하면 안되겠냐?” 했더니 그 꾀죄죄한 놈이 “이게 어디서 굴러온 개뼉다구가 남이 술 마시는데 이래라 저래라야!” 하면서 손에 들었던 숟가락을 탕 내던지더란 것이였다. 그 때까지만도 강덕수씨는 리외수가 술만 마시면 뭔가 내던지는 버릇이 있다는 걸 몰랐단다.    “이 새끼가?!”    강덕수의 주먹이 리외수의 얼굴 정면으로 날아갔다.    리외수가 벌떡 일어섰다. 강덕수도 일어섰다. 다음 둘은 밖으로 나갔다.    말도 없이 둘은 원투와 훅을 몇주먹씩 나눠가졌고 깨진 쪽은 리외수였다.    얼굴의 피를 닦고 나서 리외수가 겸상을 요청했다.    “너 주먹이 세다. 내 인정한다. 그런데 넌 누구냐? 난 리외수라고 한다. 우리 친구로 사귀자.”    “수구동 강덕수다. 너 빼빼 마른 놈이 깡다구는 좀 있더구나.”    “앞으로 대한민국 소설계를 평정할 대소설가님을 친구로 사귀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 함부로 주먹질할 생각은 하지 말고. 내가 지금 굶어서 몸이 안돼 그렇지…”    “한주먹도 안되는 게 입은 살아가지고…”    “너 우리 집 가서 살자. 우리 집에 쌀 많다!”    알고 보니 리외수는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이 당선되였던 것이다. 그 상금으로 쌀 몇가마니 사놓고 너무 격동되여 친구와 축하파티를 즐기던 중이였던 것이다. 쌀가마니를 앞에 놓고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몰라하는 리외수의 모습을 눈앞에 보는 것만 같았다.    “이 기쁜 날에 너한테 얻어터진 건 억울하다만 그래도 쓸 만한 친구를 만난 것 같아서 마음은 즐겁다. 너 앞으로 이 리외수가 있는 한 배를 곯을 걱정은 안해도 될 것이다. 나만 굳게 믿어라.”    그 때가 지지리도 배고팠던 1972년 겨울이였단다.    “재밌네요. 호호호.”    그녀가 손벽을 짝 쳤다.    나도 웃으며 마지막 잔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행주처럼 말라비틀어진 놈이 맥아리 하나도 없더군. 허깨비 같았소. 내가 사정을 많이 봐줬지라.”    얘기하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세시를 넘어있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이젠 일어나 가봐야겠는데요.”    “좋은 얘기도 듣고 맛있는 와인도 먹고 잘 놀았습니다.”    강덕수씨가 따라나왔다.    “무랑 배추랑 뽑아줄가? 들고 갈 텐가?”    “못 들고 가요. 대접받은 것만도 황송한데. 래년에 다시 와서 그 때 많이 가져갈게요.”    그녀가 손사래를 쳤고 나는 넌지시 강덕수씨를 향해 물었다.    “혹시 여기 일군이 필요하진 않으십니까? 제가 농사일은 잘합니다.”    “일군은 필요없고 나눠주는 재미로 사는 것이라오. 허허허.”    강덕수씨와 나는 만난 기념으로 사진 한장을 남겼다.     “들어가십시오.”    “그래, 래년에 또 봄세.”    가다가 돌아보니 강덕수씨는 인상 좋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싣고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춘천닭갈비   춘천 하면 대표음식이 막국수와 닭갈비다. 연변랭면을 먹다가 한국에 오니 한국국수는 당최 밍밍해서 못 먹겠다. 그래서 대표음식이고 뭐고 막국수는 빼버렸다.    닭갈비는 볶음료리로, 토막낸 닭을 포를 뜨듯이 도톰하게 펴서는 고추장, 간장, 마늘, 생강 등으로 양념을 재웠다가 고구마, 당근, 양파, 파, 떡, 양배추 등의 재료와 함께 철판에 볶아먹는 료리이다.   지금의 중앙로 2가 18번지에 판자로 지은 자그마한 장소에서 돼지고기로 영업을 하던 김영석씨가 1960년의 어느 날 돼지고기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대신 닭을 사용한 것이 원조였단다. 닭을 발려서 양념하여 12시간 재워 숙성시킨 다음 닭갈비라는 이름으로 판매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춘천에는 양계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서 닭고기 만큼 싼 것도 드물었다고. 1970년대 들어 번화가 명동의 뒤골목을 중심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하여 휴가 나온 군인들과 대학생들로부터 값 싸고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각광을 받았다고. ‘군인갈비’, ‘대학생갈비’, ‘서민갈비’ 등 여러가지로 불리웠다고.    춘천닭갈비는 과연 그 곳의 대표음식이라 불리울 만했다. 먹어보니 양배추와 배합이 그렇게 잘 맞을가 싶었다. 춘천에 왔다가 닭갈비를 안 먹고 가면 춘천에 안 와본 거나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에 이 글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됐다. 약속한 분량을 벌써 많이 넘어섰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이 부분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다.    춘천에 와서 비록 살아있는 ‘소양강처녀’ 윤기순씨는 만나보지 못했지만 김유정과의 대화가 즐거웠고 강덕수씨를 알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거기다 ‘춘천닭갈비’를 ‘참이슬’에 적셔 배부르게 먹었으니 이보다 더한 행복이 없다.  출처:2019 제1호  
1    조정철: 아버지의 고향은 감옥이였다(단편소설) 댓글:  조회:360  추천:0  2019-07-08
아버지의 고향은 감옥이였다   조정철           아버지한테는 고향이란 건 도주하기 위하여 생긴 감옥 같은 것이였슴다.   자아감각이 마구 팽배해서 정치착오를 범하고 장사하신다고 마구 쌀개다가 인명사고가 나서 저레 갚을 저에조차 안 나는 막대한 빚을 지시고 아버지는 태여난 지 한달도 안되는 나를 안고 폴싹 맥을 놓아버린 어머니를 데리고 한보따리 밖에 안되는 이사짐을 소수레에 싣고 그 해살 찬연한 태양촌으로 이사를 갑니다. 가져갈 건 빚군들이 다 가져가서 정말 말 그대로 숟가락 두개, 저가락 두개, 사발 두개, 세수소래 하나, 너덜옷 몇견지 가지고 이사를 했담다.   태양촌에 가서는 술은 날마다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메 질탕 마시고 사흘이 멀다 하게 동네 나그네들과 뚜들래기를 하고 밭 매기가 싫다고 대대에서 발급한 호미를 홱홱 돌구어서 멀리 내팽개쳐서 도랑에 처넣고… 남들이 일하는데 혼자 밭두렁에 척 누워서 남이 일하는 거 지휘만 함다.   입에 달고 다니는 소리가 “못 배우고 덜 깬 애들과 같이 놀 사람이야?”임다.   12년이란 장장 긴 시간 어머니가 아득바득해서 빚을 다 물고 또 농촌 치구는 출세를 해서 둘 다 학교 선생님이 되고 아버지는 교장이 됨다. 뭐 선생님이 딱 세분임다.    어느 날, 아버지는 술 마시고 또 동네 나그네와 뚜들래기를 해서 어머니가 “이래자무 뭘 하러 날 찾아와 못살게 굴메 결혼을 했슴까… 우리 애들은 그래 이렇게 평생 촌놈으로 살고 촌놈으로 죽슴까?” 했더니…   문 박차고 나가더니 며칠 동안 집에 안 들어옴다. 불쑥 들어와서 하는 말이 “우리 향진마을 복흥으로 이사가자. 내 거기 중학교 교도주임으로 가기로 했다.” 정말 사흘 후에 짐을 싸서 아버지가 외상으로 사놓은 복흥 집에 이사를 갔슴다.   그럼 고향 복흥은 정다운 고향일가요? 아임다. 거기도 아버지한테는 감옥임다. 가자마자 거기 한족 교장을 뚜들겨패고 이젠 주임이란 명의로 공공연하게 식당에 다니메 술을 마셔댐다. 보는 사람마다 다 무식하다고 삐뚤써 보구 술상에서 남은 말 못하게 하고 자기만 장편대론을 하면서 남을 훈계함다. 또 관리범위가 엄마 출근하고 내 다니는 복흥소학교까지 되여서 소학교 교장도 뚜들겨팸다. 은화 아버지도 뚜들겨패서 은화 하마트면 나하고 절교할 번도 했슴다.   력사를 가르친다고 뭐 또 막 쇼를 하시다가 내 니 같은 이런 것들 놓구 무슨 력사를 가르친다구 난시를 하니 하면서 책도 막 찢었슴다. 확실히 또 그 반 애가 무식하기도 함다.   복흥에서 날마다 술 마시고는 이튿날에 하시는 말이 “너무 갑갑해서 술 마신다… 이 감옥 같은 데서 요까짓 노릇 하는 게 정말 사람 말려죽인다…” 그러더니 또 술 마시고 출근 안하더니 하루는 저레 가서 학교선생 노릇을 사직해버렸슴다. 그것도 회의실에 온 학교 선생 다 모아놓구 내 이제 정치하러 갈 테니깐 니네나 이런 짓거리 하고 있어라 했담다. 엄마가 지내 와늘 막 펄펄 뛰고 집에서 밥사발 물고뿌 다 깨버리고 야단을 하셨는데 태연하게 담배 피우시더니… “내 흑룡강 갔다 올게. 그리고 이사하자.” 이러곤 또 행방이 묘연해졌슴다. 며칠 후에 나타나서 “우리 조양천 이사가자. 집 다 봐뒀다. 거기 선전부장으로 가기로 했다.” 내 심장이 덜컹했슴다. 은화와 생리사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깐 까무러칠 번했슴다.   끝내는 숫말이 새끼 낳는 맨 매짠 녀자들 설화랑 김연이랑 세화랑 치마자락 휘날리는 조양천에 입성했슴다. 촌놈이 이쯤이면 출세를 했지요. 엄마가 막 친척 다 모아놓고 그 사이 눈물 겨운 분투사를 이야기하고 술도 제일 비싼 생맥주를 열개 단위로 막 정시나게 올리며 칭커를 했지요.   그런데 조양천은 좀 큰 감옥일 뿐이지 그래도 감옥이였슴다…   이사 가서는 진장을 이층 식당에서 발로 차서 떨어뜨리고 또 막 그 집에 가서 발로 목대티를 밟고 서서 집을 내놓으라고 야단쳤슴다. 그래서 집을 가지고 남자는 정치를 해야 해 하며 또 매짠 공무원 녀자들과 같이 틀거지를 내면서 며칠 출근하더니만… “내 이 더러운 촌구석 간부 노릇 못해먹겠다. 무식한 것들과 말이 안 통한다.” 이러더니 또 어머니가 말릴 새도 없이 정부에서 내부퇴직内退해버렸슴다.   정말 이번 감옥탈출 시도 때문에 어머니 저레 앓아누웠슴다. 아버지가 난데없이 창업을 한다고 승용차를 판다고 집에 돈 다 끌어가서는 어느새 또 새파란 비서까지 데리고 장춘에 가버렸슴다. “이사할 준비 하고 기다리오… 어지간히 일이 되면 장춘에서 살아야지…” 질겁한 나와 동생이 다 장춘 안 간다고 막 발버둥질 치고 어머니는 거의 실성상태에 빠졌슴다.       장춘에서는 일이 어지간하게만 됐겠슴까. 뭐 석달도 못 뻐치고 가져간 돈 몽땅 사기당해서 떼우고 어벌때기 크게 꾼 돈을 착 빚으로 만들어서 수염이 텁수룩해서 돌아왔슴다. 어머니가 살살 얼리메 빚은 같이 갚으면 되고 제발 정부 돌아가서 일 다시 해라 하니까 아버지가 비장한 표정을 하더니만 “내 생각해봤는데 요번은 운이 나빴소. 집 이미 저당잡혀서 돈 꺼냈으니 생활비로 좀 남길게…” 요러곤 잔돈 당그라니 남겨놓고 또 목재장사를 한다고 떠나버렸슴다. 새로운 감옥탈출 작전이였죠.   목재장사를 한다고 항주, 녕파 막 돌아다니던 게 전화 와서 하는 말이 “좀만 기다리오. 내 와보니 항주 정말 살기 좋은 곳이요. 어지간히 되면 항주 이사오기오…” 항주 이사가자던 어지간히가 또 은을 내서 이번에는 가져간 돈 몽땅 날리고 집까지 날려버리고 또 척 배짱 좋게 돌아왔슴다. 뭐 말이 청산류수인 그 입으로 어머니를 마구 위로하고 그러는데 주제가 촌놈들과 오래 놀았던 게 좀 둔해져서 남방애들한테 얼리웠다 이것임다. 엄마가 막 죽는다 산다 하면서 야단치고 그러니깐 이젠 밖에 안 돌아다니시고 집에서 애들 모아놓구 올림픽수학 강의를 시작했슴다.   엄마가 처음에는 신경질 쓰시다가 좀 지나 발견한 게 올림픽수학 강의해서 버는 돈이 학교 출근하는 돈의 세배가 되니깐 잔소리 안하게 되였지요. 그러고 다니며 말하시는 게 “그 나그네 밖에만 안 돌아댕기면 사고를 안 쳐서 내 영 속이 든든하다.” 하셨슴다…   그런데 하루는 집에 돌아오니깐 아버지가 무려 학생이 스무명이나 되던 보도반을 해산해버렸슴다. 대사가 또 “내 촌놈 촌구석 애들과 같이 놀 사람이야?”   그러고 수학보도책 딱 두권과 갈아입을 옷 한벌 가지구는 혼자 연길 갔슴다. 어떻게 찾으셨는지 윤련순 아나운서네 아들 올림픽수학 가정교사 노릇을 하게 되였슴다. 그 집 아들이 그 해 희망컵 수학경기希望杯数学竞赛에서 전국 일등을 한 게 아버지가 저레 또 어머니 보구 “연길 이사오라. 집 이미 맡아놓았다.” 라는 것임다.   드디여 조양천 감옥탈출 성공.   연길에 와서 애들 대여섯 올림픽수학奥数 가르치면서 막 어머니와 말씀하시는 게 “내 개인 학교 세울 타산이다. 애들 한 몇백명 모아서 수준 따라 반을 나누고 과기대 선생 초빙해서 영어 가르치게 하고 연대 애들 데려다가 선생질 시키겠다.” 엄마가 또 쓰겁드레해서 “제발 일 크게 만들지 마쇼. 지금 애들 대학 붙었는데 이제 사고 치면 정말 못삼다…”   그래서 뭐 학교 세우는 거창한 일은 안 실행했는데 일년이 지나니깐 학생 륙십명으로 늘었슴다. 집 세개 세맡아서 애들 교실로 사용하고 과기대에서 영어선생 모셔다가 애들 영어도 가르치고 아버지가 수학 물리를, 그 영어선생과 시간 딱딱 맞추메 강의를 반을 나누어서 했슴다.   입말이 또 “내 이런 촌구석에서 촌놈들과 같이 놀며 썪는다는 게 답답하다.” 이러셨지만… 나와 동생 본과 졸업할 때까지는 오솝스레 과외보도를 하시면서 그 돈으로 년년생 두 대학생 공부시켰슴다. 동생이 북경에 과학원 석사 추천받았다니깐 아버지 막 저레 “북경 이사가자. 북경에는 무슨 애들 공부를 안 시킨다니.” 이러면서 또 연길 감옥탈출 작전을 개시할 작정이였는데…   동생이 “내 과학원에서 일하는 게 아니고 공부를 함다. 여기서 공부하고 일본 가겠슴다. 그 때 일본에 따라와도 늦지 않슴다.” 그래서 예상 밖에 순순히 탈출 작전 시도를 포기했슴다. 동생이 석사 졸업하기 전 집에 전화 와서 “아버지, 내 동경 감다. 이미 추천서 확보했고 거기 교수님까지 학생으로 받을 걸 허락했슴다.” 하셨더니 막 뛸 것처럼 기뻐하실 거로 예상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응… 가서 잘 공부해라. 오늘은 좀 복잡하니 래일 길게 말하자…” 이러는  것임다.   어머니가 저레 집에다 한상 푸짐히 차리고 아버지와 거의 막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내 딸 출세하는 것 보니깐 왜 그렇게 돌아보기도 싫던 태양촌이 막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이랬더니 아버지가 술 쭉 완샷하시고는 “내 이젠 정실이 따라 동경 못 갈 것 같다. 가고 싶어도 맘대로 갈 수 없는 곳도 있구나.” 하셨슴다.   술 좀 과해서 물 마시러 새벽에 일어나니깐 아버지가 술 꺼내서 혼자 마시는데 울고 있습디다… 울고 있는 아버지를 처음 보아서 내가 또 효녀 심청처럼 술 부어주니깐… “니는 외국 안 나가겠니? 내 태양촌 살 때 한번은 북경대학 붙은 정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 걔가 막 자부심에 들떠서 나 보고 ‘삼추이는 뭐 자기 앞 이름자나 쓰오… 이런 구석에 박혀살며 뭐 할 말이 그리 많소…’ 하더라. 내 그래서 속으로 결심했다. 우리 자식은 꼭 공부 제대로 시켜 정희보다는 더욱 출세하게 하겠다. 정희가 미국 갔으면 정실이도 미국 갈 거다…”   정말 그 말이 적중해서 지금 동생이 그 사촌누나 정희와 같은 뉴욕에 살고 한 아빠트에 살고 있슴다. 동생이 가니 막 안고 울더람다. “니네 아빠 엄마 그렇게 딸 공부시킨다고 노력하더니…  니가 뉴욕까지 오게 될 줄은 생각 못했다…”   작년에 동생이 전화 와서 “아버지 뉴욕 와보겠슴까? 여기도 감옥임다. 그런데 여기서 또 탈출하면 정말 달나라 가게 됨다.”라고 했슴다. 뉴욕 간다고 아버지 두날에 한번씩 모아산 등산해서 체력 올리고 미국 소개하는 비디오를 엄청 많이 사들이고 또 그 나이에 중풍 맞은 몸으로 당최 배워본 적이 없는 영어를 가정교사 모셔서 막 배우고 했슴다.   수속도 별 애로 없이 진행되였는데 예전 주치의사가 “조형, 미쳤소? 그 몸으로 어찌 10시간 비행기 타오?” 해서 미국행 포기했슴다. 전화 와서 태연한네 하시면서 “내 거기 뭐 별로 가보기도 싶지 않았다. 내 북경이나 가야겠다. 뭐 양키놈들이 사는 동네 거기가 거기지무…” 집에 가보니깐 그 많던 비디오 몽땅 불태워버려서 하나도 안 남았습디다.    초췌해진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있으며 고향 감옥탈출 시도를 포기한 아버지를 보는 게 가슴이 찢어졌슴다… 출처:2019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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