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국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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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편] 광복의 후예들 광복 4 댓글:  조회:1127  추천:40  2008-05-21
장편소설 <<간도전설>> 제 2부광복의 후예들최국철광복4어룽거리는 석유등불이 천정에 귀신같은 그림자를 무수히 만들면서 집안을 희끄무레 밝히고 있었다.정지구들에서 인수가 엎드린채 천자문을 읽고 있었고 추녀밑에 달아놓은 풍경이 미풍에 흐느적거리면서 잘랑-잘랑 간지러운 음향소리를 흘렸다. 남대천에서 장삼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남포등이 밝은 집이고 처마밑에 유일하게 풍경이 매달려서 바람따라 구름따라 세월을 민요의 칠채가락으로 읊조리는 집이다.놋쇠 특유한 잘랑- 소리는 청각을 평화롭게 간질거리고 청평세계를 구가하는 종소리와도 같았지만 남대천의 밤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앵-앵” 집안에서 모기떼들이 날치면서 영수네 형제들에게 렴치없이 달려들었다.“ 이거 귀찮군. 인수는 이제 공불 그만하구 자거라. 모기가 너무 달려들어서 안되겠어.”영수는 동생의 의사도 묻지 않고 불시에 석유등을 훅 꺼버렸다. 집안은 당장에서 캄캄한 어둠이 닥쳤다.“일찍 자.”인수에게는 영수가 살가운 형이 아니라 툭-툭 질그릇 깨지는 소리만 하는 아주 엄한 형이다. “양”인수는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꾸하고는 어둠속에서 손더듬으로 구들에 널렸던 책들을 주섬주섬 거두었다. 너무 어려서 량부모를 여이고 부모얼굴모습도 기억하지 못하고 불쌍하게 자란 인수는 영수가 부모같은 존재였다.뚝뚝한 남자형제사이가 그러하듯 영수와 인수는 진종일 가도 도타운 말이 별반 없다. 영수는 마른나무가지를 분지르는 군인같은 꺽꺽한 명령만 내렸고 인수는 그때마다 두말없이 순종만했다. 볼에 보조개가 패이고 녀상을 찜쪄먹에 곱살하게 생긴 인수가 어머니쪽으로 닮았다면 영수는 과격하고 고집스럽기만했던 아버지쪽을 많이 닮았다. 성격도 대개 그랬다. 영수는 무서운 번대머리인 아버지 편을 닮아 어린 나인데도 정수리가 까지면서 번대머리 후보로 되어 갔고 눈도 근시안이다.어둠속에서 동생이 자리에 드는 기척을 느낀 영수는 자리에 들념을 안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8월의 밤은 집안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온화한 밤이 아니다. 까닭 모르는 번뇌가 찾아들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낮에 온성다리로 내려 갔다가 본 다리가 자꾸 눈에 밝혀 왔다.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온성다리는 온성으로 건너가는 조선사람들의 발길을 막았고 두만강의 원혼을 부르던 하얀옷들도 신음을 멈추었다.낮에도 하얀 귀신들이 춤춘다고 무시무시한 소문이 났던 온성다리는 둔중한 폭음속에서 허리를 뭉청 잘렸고 억울하게 죽어갔던 원혼을 그리고 위안하던 그 하얀귀신들을 좇아 버렸다. 잔인하게 찢어졌던 세멘트몰탈틈에서 실실 솟구치던 연기가 지금도 눈앞에서 피여오르는것 같았고 엿가락같이 휘여져 두만강가녁에 처박힌 강철공형보가 어린날 어느 새벽에 보았던 아버지 초상같아서 슬펐다.10년전 아버지와 어머니도 두만강가에서 이렇게 처참하게 쓰러졌다.낮에 허위허위 달려간 일이 후회스럽다. 밖에서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했다.집안에 있을 때는 피부가 찐득거리게 무더웠는데 정작 밖으로 나오자 얼굴에 시원한 밤바람이 스쳐지나가면서 온 몸에 잔뜩 매달린 더위를 후르르 털어냈다. 밤하늘에는 뭇별만이 총총하다. 남대천강변버들숲속에서 물촉새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영수는 마루에 앉아 매캐한 연기를 피워 올리는 쑥타래를 물끄럼히 내려다 보았다.아! 이제 이 세월이 어떻게 변할가… 그믐밤같이 앞이 캄캄하다.많은 땅을 가진 영수에게는 땅 한푼없는 소작인들과 다른 고민이 수 없이 많았다. 무청엮듯 오지랖이 넓은 신세라 젊은이 답지 않게 이것저것 재고 계산해야 할 일이 첩첩산처럼 많았다. 이런 걱정중에는 가업의 보전이 첫째로가는 중대사였다. 웅-웅 거리는 제트기의 엔징소리를 들으면서 영수가 제일 먼저 생각한것이 자기의 땅이였다. 풍진세월에 가업을 탄탄하게 다져가고 땅을 고스란히 지키는 일이 최우선이다. 장삼이는 벌써부터 무장대를 키우면서 가업을 다지는데 자기는…무장대는 차치하고 돌아가는 세월이라도 잘 알아야 할게 아닌가. 로인들은 세월이 들컹거리면 마적이 흥하고 도적떼가 욱씰거린다고 했는데…이 세월이 과연 그렇다.… 낮에 량수천자에서 얻어 온 권총과 탄약이 생각났다. 농짝안에 깊숙하게 감추어 두었지만 이 시각 그 쇠붙이가 다시 생각나는것이 이상했다. 용범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얻은 그 쇠붙이들이 이시각 그에게 힘을 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너무도 이르게 시름과 걱정을 배워간다.은하수가 궁륭산말기에 걸터앉는 8월밤은 걱정으로 보내기엔 너무도 아까운 밤이지만 남대천은 지금 모진 걱정으로 밤을 흘려보내고 있었다.동네 개들이 자지러지게 짖어대고 있었다.불확실한 미래와 앞날을 걱정하는건 인간들이 몫이다. 아직도 멀리에서 이따금씩 쿵- 쿵 대포소리가 들려오면서 서쪽 밤하늘 변두리를 약한 번개처럼 벌겋게 달구었다. 밤유령같은 그 화광은 절주가 없이 번쩍거렸다.어디쯤일가?... 회막동 같은데…대충 방향을 짐작해봐도 감이 오지 않는 대포소리는 심란만 더해준다. 마루에서 내려 한동안 마당에서 서성거리다가 되돌아서서 집으로 향하던 영수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어둠속에서도 일숙이네가 거처하고 있는 별채의 문이 활짝 열려져 있는것이 보였다. 별채안은 불빛 한점 없이 괴기스러운것만치 조용하다. 섬돌밑에는 용범이가 초저녁에 태운 모기쫓는 쑥타래가 매캐한 연기를 피워 올린다.얼마전까지 모기를 쫓는 쑥타래가 매캐한 연기를 피워 올리는 초저녁이면 여기로 마실 온 소작인들이 별채의 처마밑이거나 본채의 마루와 섬돌밑에서 두런두런 한담을 나누면서 여름밤을 보냈지만 요사이에는 그림자도 얼씬 하지 않는다. 자기가 그렇게 반기지도 않았지만 소작인들은 밤마다 모여들어서는 잡담을 했는데…설창비탈에서 이따금씩 딩-딩—장씨네 머슴들과 자기네 땅을 소작짓는 마을사람들이 질서없이 치는 징소리가 들리고 후여- 후여 밭으로 뛰여든 메돼지떼를 쫓는 소리가 아전의 벽제소리처럼 청승맞게 간간하게 들여온다.씨를 묻는 봄부터 밭으로 덮쳐드는 멧돼지떼 성화로 남대천은 밤에도 잠들 줄 모른다. 욱-욱 저돌적이고 추하게 생겼지만 멧돼지의 아이큐는 대단하게 높아서 함정에도 빠지지 않고 옹노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이제 면년쯤에는 불놓이를 (사냥) 잘하는 가근방의 농군들을 청해서 잡아치워야지 다른 방법이 더 없다.별채에 있는 복희네 식구들은 다 자는지 인기척이 없다. 일숙이도 자나?다시 들어가려던 영수는 대문빗장이 생각났다. 빗장을 잘 질렀는지…늙은이 같은 걱정이 들었다.복희가 저녁마다 꼼꼼하게 빗장지른다는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드문히 다시 빗장을 근심한다.남대천 사람들은 요지음 밤마다 수캐도 말리지 못할 허술한 삽짝문도 꽁꽁 걸어잠군단다. 쿵-쿵 울리는 대포소리는 의지할 든든한 벽을 만들고 안전성을 최대치로 담보하려는 인간의 자아 보호의식을 발동시키는 법이다.그것은 추울때 허허벌판보다 하등의 도움도 안되는 나무를 찾고 그 나무에 기대고 싶은 막연한 심리와 비슷하다.스적스적 별채를 지나 솟을대문앞으로 와서 대문 빗장을 만지던 영수는 대문 옆에서 불현듯 인기척을 느꼈다.잘못들었나… 자세히 눈여겨 보니 토담에 붙은 검은 그림자가 어슴푸레 비껴온다.“뉘기우?”영수는 놀라지 않았다.목소리를 깔고 조용히 물으면서 토담에 붙은 검은 그림자를 향해 다가갔다. 안경으로 투과되여 들어오는 밤그림자가 누군지 알 것만 같았다“ 뉘기?... 아니.. 밤에 여기서...”영수가 다가가자 토담에 의지하여 섰던 검은 그림자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다. 일숙이 맞지?영수의 짐작대로 일숙이가 옳았다. 대문빗장과 별채에 기거하는 일숙이는 아무런 련관성이 없었지만 예감속에 숨은 무의식은 이렇게 놀라운 일치를 보인다. 검은 그림자가 일숙이라는것을 알았지만 영수는 아무 말도 못했다. 한밤중에 토담에 의지해서 청승맞게 선 그림자의 한숨소리를 들으면서 잠시 어찌 대해야 할지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영수는 꼼짝않고 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그리고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으며 괜히 안경만 벗어들고 안경알만 닦아댔다. 광복의 밤에 남대천의 갑돌이와 갑순이가 솟을 대문옆에서 청승맞게 만난것이다.둘은 잠시 아무 말도 못했다.“ 여기서 이러지말구 밖으로 나가기우.”영수는 용기를 내고 검은 그림자한테 다가갔다.그리고 얼결에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그림자가 뒤로 피하지 않았다. 영수의 손안으로 8월의 흥그러운밤 치고는 너무도 차고 섬뜩한 자그만한 손이 들어 왔다.처음으로 잡아보는 일숙이 손이다.처녀의 손은 너무 거칠기만 했다.짧은 시간이였지만 어머니 손이 생각났다.영수는 어려서 쥐여 본 어머니의 손도 이렇게 거칠었다고 생각했다.“숙모가(일숙의어머니) 깰지도 모르니 어서 나가기우.”일숙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주춤거리다가 영수가 대문을 열고 나가자 조용히 뒤따라 나섰다.돌문쩌귀에서 끄- 윽 처승맞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컹-컹 장씨네집에서 황소같은 검둥개가 짓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따금 암캐들이 자지러지게 짖는 소리와 어린애가 악패듯 우는 소리 어느집 털털한 아낙네가 우는 아기의 볼기짝을 치는 소리가 들릴뿐 길가는 인기척 없이 괴괴했다. 이 밤 남대천의 사람들도 영수처럼 번뇌와 시름으로 뒤척거릴것이다.오불꼬불 양밸같은 마을길은 괴괴했다.시골의 청춘남녀가 밤에 찾는 곳은 당연 보리밭이나 옥수수밭 같은 풀색적인 전야뿐이다. 남대문을 나서도 이들은 아무말도 없었다. 일숙이는 다소곳이 영수뒤를 따라왔다. 자기가 밤에 따라가면 안되는줄 알면서도 일숙이는 타성같은 힘에 끌려가고 있었다.발이 가는대로 걷고 보니 어느새 석골물이 지절대는 칠성밭머리 까지 왔다. 깊숙한 골짜기도 아니고 막치기가 한눈에 보이는 석골은 보잘것 없어보여도 젖이 풍부한 아낙네의 젖줄기처럼 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지줄거린다.석골물이 밭머리를 에돌아 흐르는 이 밭자리는 영수의 땅인데 최칠성이네가 다룬다고 해서 마을에서는 칠성밭이라 두루뭉실하게 부른다. 남대천에는 몽구네밭, 득삼이네 밭, 방원이네 밭…같은 밭 이름들이 수두룩하다.낮에 보면 이미 가을한 보리밭에는 다시 심은 일본무우가 파랗게 잎을 펼치고 있겠지만 우둠이 내린 칠성밭은 코앞도 분간할수없다.밤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공평하게 감싸준다.영수가 쑥가지들이 줄느런히 선 밭머리쯤에서 걸음을 멈추고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녀자에게 앉으라는 말도 없다. 일숙이는 주저하다가 영수의 그림자와 약간 떨어진 자리에 쪼크리고 옹색하게 앉았다. “저녁은 먹었수?”말해놓고 보니 홍동지같이 싱겁다.자기네 형제저녁밥상 시중을 들면서 가마목 켠에서 일숙이네 식구들이 저녁을 먹는 일은 매일 세끼로 나누어서 되풀이되는 일과다.하루 세끼 자기네 집에서 함께 식사하는 처지에서 저녁을 먹어냐는 물음은 배불리 먹었냐 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된다. 풀벌레들만이 요란하게 우는 밭머리에 앉아 무슨 말부터 해야 할가.이들은 어느 때부터 서로의 마음을 더듬고 확인했는지 잘 몰랐다. 하지만 그 확인은 둘만히 확인이였다. 이 확인은 세속의 확인과 승인을 받아야만 맺을수 있는 인연이다. 남대천사람들에게는 이들이 청춘남녀가 아니라 땅을 가진 젊은 주인과 그 주인의 별채에 기거하는 부억녀뿐이였다.혼인식에는 꼭 치러야하는 례와 절차가 있다면 그 혼인으로 오는 과정도 례와 절차가 작용한다고 봐야 한다.여기에서 어느 절차에서 막히면 그 당사자들은 고통이란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게 돼 있다. 이들은 지금 돌파하기 어려운 한 절차에 막혀서 이렇게 청승을 떨고 있는것이다.젊은 땅주인과 부억녀는 세간의 눈보다 그들 자신에게 복잡하게 얽힌 삼건불과 같은 사연을 풀기 어려워서 스스로 연분을 파기하기에 이르렇고 작은 주인은 다른 혼처를 정하는 일에 망설이지 않았다. 그것이 너무도 아파서 처녀는 청승맞게 어두운 밤에 혼자서 대문가에서 바장거렸고 젊은 주인을 따라 칠성밭머리에 오기에 이르렀다. 연분이란, 인연이란 원래부터 아픔과 리별을 동반하게되는 법이고 슬픈 곡을 하게 되지만 이들에게는 아픔과 슬픈 곡이라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된다. “이렇게 밤에 단둘이 만나보기는 처음이구마.”영수가 먼저 어눌한 소리를 던졌다. 이들에게는 세간이 눈을 피해 밤에 단둘이 만나서 재확인 해야하는 필요한 절차는 이미 끝났다.사랑은 입으로 하는것이 아니다. 눈으로 하고 가슴으로 하는 법이다.이들은 2년동안 집울안에서 매일과 같이 눈으로 했고 가슴으로 사랑을 나누었다. 그저 하늘이 그대로 무녀져 내렸으면 좋게다는 우둔한 생각뿐이다. 자기도 견디기 힘든 현실인데 모든것을 잃은 일숙이야 오죽하랴“ 맘 같아서는 이 밤으로 일숙이를 끌고 도망이라두 가고싶구마.”영수에게는 이런 충동적인 성격도 있다.영수는 얼마든지 이런 일을 저지를 청년이다.“ 작은쥔은 그런 무세븐 말 마우. 다 팔째니 어쩌우. 내절로두 내가 왜 야밤에 따라 나왔는지 몰겠수.”한마디씩 주고받은 젊은 남녀는 다시 말없이 묵묵히 앉았다. 세속적으로 청춘남녀가 밤에 가만히 이런 만남을 가지는 일은 관습적인 금기사항으로 명시되고 그 계률이 억척같아 깨지 못 할 세월이다. 하지만 정감이 강물같이 흐르는 청춘남녀가 풀벌레들의 요란하게 우는 호젓한 밤에 기왕 밀회가 약속되였다면 치희적인 정담이 흘러야 정상이고 주체할수 없는 충동에 몸이 달아야 정상이련만 이들은 그저 엉성한 보리자루 배역이 고작이다. 작은 주인은 말수가 적고 고집쟁이지만 그래도 충동적인 청년이고 일숙이도 새침떼기만은 아니다. 어머니인 복희를 닮아 자색이 있고 제법 활발하다. 길에 나서면 총각들이 한번쯤 싱겁게 뒤돌아 볼 정도로 처녀가 갖추어야 할 구색을 넘쳐날 정도로 가지고 있다.“ 그 일이 정말일가? 어떻게 그런 일이…”일숙이는 이제 이 물음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솟을 대문집 작은 주인과 정분이 들면서 수없이 묻고 작은 주인 입에서 맞는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그냥 크게 상심하고 … 그래도 이렇게 만나면 어쩔수 없이 또다시 묻고 그리고 또다시 상심한다.“ 엄마는 왜 그랬을가?”“…”영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묻지 마라.아버지와 일숙이 어머니가 정분이 든 당시 너무도 어렸던 영수지만 아버지가 일숙이 엄마를 이뻐해주었다는것 만은 기억하고 있었고 자기의 어머니가 일숙의 어머니를 왜 미워했는지 이제는 알것만 같았다.어머니는 시앗싸움을 한것이다.“ 다 운명적이지 엄마는 살아서 그냥 팔재팔재 하던데 지금보니 그 말두 맞구만.”영수는 룡정대성중학교를 다닌 청년다운 소리를 흘렸다. “ 운명인지 팔재인지 … 내두 몰겟수.”“ 땅만 아니라문 이밤에라두 어딜 도망치련만.”영수는 이 말을 하면서 아버지도 자기나이 때 조선에서 어머니와 함께 이 간도땅으로 도망쳐왔다는 사실을 상기해 냈다. 내가 네 아버지보담 두살이나 많았는데두 네 아버지랑 도망친다는게 무섭지 않드라. 그리고 간도라는 곳도 무섭지가 않구…영수의 어머니는 생전에 영수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면서 무척 행복한 모습을 보였다.어렸던 영수는 어머니의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조선땅이 아닌 아득히 먼 삭막한 하늘나라에서 도망쳐 왔다는 상상을 했는데… 자신이 이런 말을 하고 보니 아득히 먼 하늘 나라가 아니다.그러면서 밤중에 도주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너그럽게 리해하기 시작했다.하지만 부자간이 똑 같은 일을 겪어야 한다는 우연성에는 약간은 무서웠다. 어머니가 무서워하면서도 아버지를 따라 간도로 도망쳐 왔다면 난 일숙이를 끌고 어디로 도망쳐야 하나… 강동으로?(로씨야)...불쑥 말해 놓고 보니 자기도 무섭다.“ 그런 무세븐 소릴 하지 말라는데뚜 왜 자꾸 기래우. 흑...” 일숙이는 끝내 참지 못하고 호드득 몸을 떨면서 오열한다. 엄마와 큰주인(영수의 아버지)은 왜 그랬을가. 이 물음을 하고는 언제나 마지막엔 흐느낀다.인간의 만든 계률에 의해 선을 넘지 못한 청춘남녀는 아름다운 은하수가 걸터앉은 하늘아래에서 정담을 속삭이고 싶고 옥수수와 콩이 롤롤히 익어가는 8월밤의 소리를 가슴으로 들으면서 전야에서 말을 달리고 싶지만 이제는 남은것이 한숨과 오열뿐이다.이들은 지금 하늘이 내린 사랑이란 몫을 가지냐 못가지냐를 애달퍼하기전에 부모들간에 얽힌 복잡한 인연에 슬퍼하고 있었다. 이들앞에 놓인 금기는 자기들의 정분이란 명분으로 질타하고 깨뜨리기엔 너무도 잔인했다.젊은 남녀는 밤장막속에서 오래도록 그 자리에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소쩍- 소쩍…오늘 밤도 궁륜산돈들락 소나무밭에서 소쩍새가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조류에서 유일하게 인간세상의 슬픔표상과 피눈물의 전래동화를 그 울음소리에 담고 있는 소쩍새, 인간들은 일찍 그 울음소리에 홀려서 슬픔과 그 혼을 작그마한 몸뚱이를 가진 새에게 무겁게 실어주어 구슬프게 울게 만들었다.그리고는 자꾸 구슬프다고 했다.“ 어쩜 … 어쩜 …새소리도 구슬퍼라”일숙이가 호드득 몸을 떨면서 가만히 중얼거렸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듣기만 좋더니 오늘같이 싫을 때가 있다니 후- ”영수는 얼결에 팔을 뻗치면서 용기있게 일숙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일숙이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사랑과 정열과는 무관하다 싶을 그 팔에 처음으로 몸을 맡기면서 또다시 몸을 떨었다.소쩍- 소쩍“ 어쩌면 저리두 구슬프지.”8월의 밤 바람 한자락이 빈 가슴에 담기면서 그 뒤로 처량한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살같이 달려들었다.소쩍-꿍 …소쩍-꿍이번에는 감치기 말기에서 다른 소쩍새가 화답이라도 하는듯 울어 댔다. 일숙이는 영수의 품에서 빠져나왔다.그리고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었다.한동안 정막이 흘렀다.둘 사의에는 이제 아무런 말도 할 필요가 없어졌다.“참 작은쥔은 오늘 저녁나절에두 짱싼하구 하마트면 메각질을(드잡이) 할번 했다문서?”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일숙이는 그제야 침묵을 깼다.일숙이에게는 이제 이런 화제밖에 남지 않았고 겁 많은 아녀자의 걱정밖에 남지않았다.“ 소식도 빠르구만. 뒤마을 아주머니덜이 그럽데?…아니여 뒤마디하구 그만뒀는데.”“저녁먹구 뒤마을에 다듬이 돌 빌리러 갔다가 들었수. 거기서두 걱정하더구만… 호 아무래두 큰 걱정이우. 이제 그 밭으루 해서 다시 큰 쌈이 나구 피를 볼게우. 작은쥔은 너무 발끈하는게 흠인데…이제 그리많은 땅이 있는데 더 욕심내지말구 그만두우 그게 편하지않수?”“그게 밭이 많구 적은것하구는 관계없지. 원래 아버지밭이였는데 왜 내가 그저 빼앗끼지? 어려을쩍엔 몰라서 가만있었다만 이제 알고서야 눅쩍하게 넘어가지 못하지 끝가지 해볼거요.”아주 강잉한 어조다.“ 이제 보우 살변까정 날게우.”“살변나던 피터지던 가는데까지 가볼라우 그넘한테 지면 안되지.”“ 기차라 …땅이 뭔지…”일숙이는 작은주인이 투지에 불타는 도전장을 읽으면서 가느다란 비명같은 한숨을 날렸다. 이제 이러다가 큰 살변이라도 터지면 어쩌지…광복의 밤은 이렇게 두루뭉실하게 그리고 슬프게 흘러갔다.화외음1945년 8월 15일 - 후세사람들은 이 날을 광복날이라 한다. 이 시기 연변지구는 간도, 혹은 동만지구라고도 불리웠다.1945년 8월8일 로씨야(구쏘련)는 대일 선전포고를 한 후 원동지구에 군 병력 150만명을 집결, 중-쏘, 중-몽, 중-조 변경 3500킬로메터의 전선에서 3갈래로 진격했는데 동만에는 두갈래로 진격해들어왔다. 훈춘진출 쏘련 극동군은 제25집단군으로 훈춘의 춘화, 장령자, 경신으로부터 일본군의 방어선을 돌파한후 10일에 훈춘현소재지를 점령하고 11일에 대팔령에 다달았다. 일본관동군 112사단는 대팔령의 험요한 지세를 리용하여 완강하게 저항해나섰다. 쏘련홍군은 이틀동안에 100여대의 땅크를 손실보면서 격전을 벌렸지만 대팔령을 돌파하지 못했다. 8월 12일, 쏘련홍군은 60대의 비행기를 동원하여 일본군진지를 향해 훼멸적인 폭격을 들이댔다. 일본군의 저항이 무너졌고 방어선이 뚫렸다.. 훈춘- 도문 구간의 대팔령에서 일본군의 저격을 물리친 구 쏘련 지상군 부대는 13일 량수천자와 남대천을 지나 도문(당시 회막동)까지 진격했다. 이날 이른새벽 전세가 역전되여 황망히 패퇴하던 일본군은 로씨야군 기병과 뒤따르는 땅크부대의 진격로를 차단할 목적으로 “온성대교” 5번째 교각에 폭약을 묻고 거대한 공형보를 교각에서 분리시켜 다리를 끊어버렸다. 이리하여 “온성대교”는 9년이라는 교령을 마치고 사명을 다했다. 세계교량사화에서 그 류례를 찾아볼 수 없는 단명교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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