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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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문화칼럼) 문학혼 댓글:  조회:28  추천:0  2018-09-20
(문화칼럼)                         문학혼                                              최 균 선                 문학의 령혼이란 무엇인가? 공인하는바 문학의 령혼은 작품의 내용 및 그로부터 체현되는 사상이다. 이런 론단은 문학에서의 불문률로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되는것이 아니다. 그런데 현대서방문학리론과 그 경전작품들의 미혹된 이 시대의 선구자들의 눈에는 이 불문률이 가히 던져버릴수 있는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국의 한 작가는 “어떠한 경전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문학작품에서 령혼은 풍격과 결구에 있다”고 하면서 작품의 도덕적 의의는 왕왕 무료한 설교의 대명사이고 위대한 사상은 한무더기 정확한 쓸데없는 말”로 전락된다고 했다. 그런가? 답은 부정적이다. 왜냐? 일종의 문학으로 소유의 “도덕”, “의미”를 부정하고 “사상”의 가치의의를 부정할 때 그게 무슨 문학이 될것인가?     로신선생은 일찍 “일체문예는 결국 선전이지만 일체 선전이 모두 문예인것은 아니라”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기실 문학은 반드시 두개의 기본공능을 구비해야 한다는것을 뜻하는바 첫째는 선전교화의 공능이고 둘째는 그의 예술특징이다. 지금 적지 않은 작가들이 자기의 작품은 정치, 사상류의 선전, 교육작용과 무관하다고 말하기 좋아하는데 자가당착이다.     무릇 어떤 작가이든 자기의 작품이 독자대중에게 접수되고 즐겨 읽는 문학예술작품이 되기를 바란다. 아닌체 할 작가도 없으려니와 이런 사실을 부인할 방법도 없을 것이다. 뚜렷한바 “사상”  정확한 쓸모없는 말이고 “선전”이 무료한 설교의 대명사라고 말하는 저의를 캔다면 곧 세계의 대문호들의 문학활동은 아무런 의의도 가지지 못하고 아울러 허위적이고 심지어는 반인성적이라는것이다. 참으로 경세지언이라 할것이로되 사람을 놀래우지는 못하는 유감을 안고있다.     “선전”은 문학예술이 떨쳐버릴수 없는 숙명이다. 이러한 “숙명”을 거부한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문학이란 무슨 소용이 있는 물건짝인가? 그래 이 세상에 정녕 “도덕함 의”가 전혀 없고 어떠한 정확한 “사상”을 배제한 “순수”예술을 위한 예술인 문학예술작품들이 있단말인가? 아무런 사상도 없는 작가는 작가도 아니거니와 대중에게 쓸모 있고 유익한 작품을 만들어낼수도 없다.     여기서 단언할수 있는바 ”문학혼”이란 바로 작가의 정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에서 “시는 가장 위대한 인간의 영혼에 불을 지피는 영원한 생명의 빛”이라고 하였다. 또 시는 인생의 행복을 최고 목적으로 추구함으로써 가장 조화적이며 자연스러운 즐거움의 예술이라고 했다.” 프로이드는 시인을 가리켜 “고달픈 아름다움을 먹으면서 찬란한 은실을 뽑아내기 위해 뼈를 깎는 아픔을 참아내는 려정의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영국의 드킨스는 문학은 가르치는것과 감동시키는 일을 한다고 했다. 이 말은 문학이야우리를 감동시키는 최상의 예술이라는 뜻이다.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페루출신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문학이란 처음부터 우리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는 이 세상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불행을 읽어가면서 그것을 향유하고있다. 그런것으로 인간이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기 위한 문학적 활동은 필요하다. 작품을 읽은 이들이 선과 악을 분별하는 법을 배우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점은 증명할수 있다”고 말했다. 뮐러는 “문학은 불행을 말할수밖에 없고 그 안에 불행이 반드시 있다. 문학은 위로를 준다. 고통을 말하지만 위로도 덤으로 준다. 문학은 가벼운 주머니로도 만날 수 있는 심리치료사”라고 정의했다. 문학대가들의 론술이 그래 정확한 “사상”,“선전”이 아니며 “무료하게” 설교가 아닌가?     사실 모든 문학은 저자가 의도했든 아니했든간에 교훈적으로 해석할 개연성을 가지고있다. 훌륭한 문학은 인간적호소력 즉 보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결국은 사 람의 정신개조작업이 아닐수 없다. 이런 정신적작품은 작가와 독자의 묵결속에 재창조된다. 문학은 보여주는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감동을 수반한 비판적기능을 가지고 래일을 이야기하는데까지 나가야 한다. 괴테는 위대한 작품은 우리를 가르치지 않고 변화시킬뿐이라고 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이 바로 문학의 혼에서 나오는것이다.     이처럼 많은 경우에 문학은 작가의 명백한 교훈적목적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인간성에 호소하는 자유로운 상상의 질을 구현하고 있는 까닭에 그런 작품들은 당시에만 효과가 있는것이 아니라 ‘고전(古典)’이라는 이름으로 시간공을 초월하여 독자들을 확보한다. 이로써 교훈문학은 하나의 전문적 구분일뿐 그 작품의 가치를 폄하 하는 배타적용어가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다.       인간의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그 모든 사건, 사실들의 변증법적관계를 가장  형상적이고 생동하게 보여줄수 있는 예술로는 문학밖에 없다. 그래서 문학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하는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글의 예술이 된다. 참다운 문학은 옛말과 경험을 따르는데 있지 않고 자신의 시대와 경험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 문학정신이다. 작가가 모순된 사회를 고발, 비판하는 자기반성과 함께 비정한 사회를 해학적으로 풍자, 비판하는 글은 음풍영월보다 독자들을 못견디게 감동시킨다. 민초들의 모순된 삶의 현장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조명하는 작업은 그래서 필요하다.     글을 쓴다는것은 세계를 조명함과 더불어 그것을 독자의 정감세계에 투사하는 작업이다. 작가와 독자의 묵결이 있기에 문학, 작가가 존재리유를 확보한다. 사회인으로서 독자와 함께 숨쉬는 작가는 사람 사는 세상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함으로써 자아를 실현하고 독자는 자아완성 진일보 다가서게 된다. 그래서 문학이 인간의 생명의 빛이 되고 가장 깊은 마음에서 피여나는 생명의 꽃이 되는게다.     물론 문학이 인류구원의 유력한 수단, 도구일수는 없다. 그러나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안내할수는 있다. 문학의 화원에서 독자들이 말로 형언할길 없는 위로와 힘을 얻는것은 부인할수 없다. 전통적 관념에서는 문학의 제일 기능을 쾌락보다 교훈에 두고 문학의 가치를 사회적효용성(현실적효용성)에서 찾는다. 교훈주의적 문학관이라고 힐난받을수 있는 현시대이지만 문학의 교훈성을 영원히 배제할수도 없는 일이다.      회고해보면 지난세기 80년대,90년대의 서구문학사조의 격류에 어덩덩해서 휘감겨들 때 의식, 무의식간에 문학이 가벼워지고 창작이 문자유희로 되여지면서 독자대 중들에게 소외당하게 된 인과관계를 우리는 자성해야 마땅하다. 본격적문학은 문학성, 예술성이 도외시하고 상업성을 내세운 책들에 의해 뒤로 밀리게 되였다. 시대를, 누 구를 원망할것도 없다. 자승자박에서 이미 예견된 자업자득이다.     루마니아태생의 작가 게오르규는 “문인이란 시대를 증언하고 어둠속에서 횃불을 밝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만큼 문학의 길은 어렵고 위험천만한 길이다. 그러나 문인은 이 길을 가야 할 사명을 버리려하지 않는다. 배는 바다위에 떠야 제구실하듯 작가는 오직 문학의 길에서만 자기의 존재리유를 확보할수 있다.     아무런 사상도 없이 무엇을 쓰고 싶으면 무엇을 쓰면서 인류가 몇천년의 문명건설에서 쌓아온 인류의 도덕, 륜리, 습속, 인성, 론리 등을  “무료한 설교”혹은 “정확한 쓸데없는 말” 로 치부하고 내버리는 이른바 현대파작가들의 작품은 무엇을 전달하고 있는가? 두서없이 횡설수설 내키는대로 엮어놓은 “령혼”이 부재한 작품들의 범람은 실로 문학의 비애일뿐이다.                                                                           2018년 2월 13일
899    (잡문) 작가의 량지 댓글:  조회:24  추천:0  2018-09-20
                                           작가의 량지                                              최 균 선       량지란 사람들에게 내재한 도덕판단과 도덕평가 체계로서 환경과 교육에 의거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구비되는 도덕의식과 도덕정감이다. 작가의 량지는 사회의 일원인 사람이면 공동히 가지고 있는 량지이면서도 이외에 예술량지와 사회량지가 구비 되여야 하는바 이것이 일반 사람과 한차원 높은 량지이다,     인간의 생존과 발전에 발을 붙이는것은 문학예술발전의 영원한 규률이고 동요될수 없는 준칙이다. 그러므로 문학으로서 인류생존의 침체, 타락, 부패, 퇴화, 기형적인 이화 등에 대하여 편달하고 질타해야 한다. 그러자면 순수한 마음과 성실한 태도로 문학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예술이 작가에게 부여한 량지이다. 사회량지는 예술량지의 외재저표현이라면 예술량지는 작가의 몸에서의 인격화이다.     작가의 사회적량지는 신분증처럼 작가 자신의 확인이다. 작가의 량지는 문학정신의 근원이며 문학정신은 되돌아와 작가의 량지를 체현힌다. 심오하게 생각할것도 없이 “량지(良知)” 란 바로 어떻게 해야 좋은것이고 어떻게 하면 나쁜것인가를 잘 아는것이다. 착함과 성실과 자률 등은 좋은것이고 가치로운것임을 아는것이 량지로서 량지가 있은 연후에 비로소 량호한 창작행위가 있게 된다.     문학창작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명활동이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작가의 방종에 대한 변명으로 되였다. 창작을 일종 정신사업이라 할진대 작품은 사회에 향한 공공연한 납함이다. 아무도 알아들을수 없는 뇌까림으로는 독자들을 김화시킬수 없다. 작가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글을 짓는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의 심목속에 작가로 존재할수밖에 없다.     작가가 자기의 자유의지에 따라 글을 쓴다는것은 개인의 창조성으로서 작가적 존재의 리유이고 기초이다. 그가 명작가이든 무명작가이든 다른 사람들의 심목속에 작가라는 사실을 부인하려 하지 않을것이다. 달리 말하면 작가는 반드시 사회, 독자들의 어떤 질문에 대답할 사명을 지니고있다. 즉 원하든 원치않든 부여받은 사회적 작용이다. 세상을 향해 발언한다는것이 바로 작가의 존재리유이다. 자고로 인간사회에 고난과 눈물이 보편적이고 악세력은 아직도 그처럼 악랄하게 횡행하는데 작가로서 이런 현실에 눈을 감고 싱이탑속에서 간지러운 피리만 불어댄다면 이것은 문학의 비애가 아닐수 없다. 문학은 지혜로 모종의 조우와 생활경험을 증명하는데 그칠것이 아니라 작가내심에 있던 용기로써 존재의 불행과 사회의 비리와 모순을 파헤쳐야 량지가 있는 작가로 자리매김 할것이다.     당전 우리 문학은 현실을 회피하는 자기 기편적인 모순을 안고 용속한 소비문화의 포로가 되였다. 20세기 80년대까지만도 작가들은 보편적으로 시대의 앞장에 섰고 문학은 사상의 선소리로 메아리쳤다. 그런데 90년대후 작가들은 주류무대에서 자진 퇴장하면서 오늘에 이르러서는 글쟁이군체로 되여버렸다. 작가가 사회상에서 중요한 각색을 맡던 시대는 이미 과거의 언덕에 묻혔지만 스스로를 추락시킨다는것은 자업자득으로서 작가 자신만이 아니라 사회, 독자들도 속상한 일이다.    오늘날 작가들은 민중이 관심하는것을 작가들이 관심하지 않으며 민중이 기뻐하는 일을 작가들이 기뻐하지 않는다. 민중은 다 꿰뚫어보고 있는데 작가들은 잘 모르고있다. 아닌게 아니라 갈수록 더 많은 작가들이 서재에 숨어들어 소용돌이치는 현실생활을 외면하고 민중의 고난을 도외시 하면서 가렵지도 않은 문제를 가지고 대서특필하면서 문자유희에 열중하다보니 작가가 반드시 납함해야 할 때는 결석한다.     따라서 작품들은 련속부절히 쏟아져 나오지만 보편적으로 정신취약성이 낳은 굴욕감으로 점철되여 있다. 많은 작가들의 량지가 혼탁해졌고 정신이 연약해졌기에 문학이 격정과 리상적경지를 상실하게 된것이다. 창백무력한 창작시대가 도래한것이다. 현실은 엄혹하건만 문단이라는 울타리안에서 스스로 즐기고 자족하고 끼리끼리 자축하는 이런 현상은 작가들의 비애만이 아니라 독자들의 비애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기 심령의 화원에 원예사이다. 맞다. 누구나 간섭할수 없는 정신왕국이다. 그러나 온 사회가 공유하게 되여먹은 문학의 존재리유는 오직 인간사회의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새로운것을 발굴해내는데 있다. 그러나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괴테의 말처럼 용속해지지 말아야 한다.     작가가 일반 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가? 자신의 골수에 슴배여 있는 작가적 사명감이 곧 그것이다. 그런 사명감을 지니고 붓대를 꼬나들고 생활의 소용돌 이속에 들어가 민중의 대변인 나아가서 나팔수가 되느냐 하는데 근본적 구별이 있는것이다. 자기가 가려고 작정한 길로 견정불이하게 나아가는것이 작가의 옳바른 자세이다.     작가의 량지에는 작가적 분노의 감정의 분출도 포함되여 있다. 작가의 격분이란 바로 현재 존재상황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고 일종의 거부와 현실의 모순을 조화시키려는 작업이다. 작가의 분노는 결코 감정적 충동이 아니라 리성사유를 거친 호소이다. 문학작품에 비판성과 리상적품격이 결여하면 그에서 파생된 문학은 기필고 연약한 문학, 용기를 상실한 문학이 될수밖에 없다.     리상적인 자유창작을 할수 없는 원인을 시대의 제약성에서 찾는것은 교묘한 핑게만은 아니다. 자유로운 창작의 “황금시대”는 그 어느때에도 없었다. 따라서 창작의 황금시대는 먼곳에 있는것도 아니며 미래에 있는것도 아니다. 진정한 문인으로 되지 못하는것은 개체의 비애이고 참된 문인을 용납하지 않는것은 시대의 비애이고 우리 문학인들의 가장 처절한 비극이다.     작가에게 가장 리상적인 정신가원이고 생존방식의 일종이던 문학이 곤궁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였다. 문학의 성당은 이미 “실락원” 이 되였다는것을 부인할수 없다. 작품과 생활과 독자 사이에 벽은 날로 높아지고 두터워지고 있기때문이다.     작가를 존중하라고 요청할수 없지만 문화발전에 헌신하려는 지성인들이 소박받게 된 금전만능의 현실이 개탄스럽지 않으랴, 작가군체에 절대 대부분 작가들은 업여작가들로서 문학을 경영하여 부자가 된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작가들은 문학창작에 혼신을 불태운다. 왜? 문학은 일종 고상한 정취이고 일종의 책임이여 나아가서는 일종의 사명이기때문이다.     작가가 현실을 직시하고 발언할수 없다면 굴욕적인 현실의 노예로 될수밖에 없다. 작가들이 자신들이 처경에 분노할줄 모르고 항쟁의 립장을 상실하였디면 초롱속에서 노래하는 꾀꼬리로 될뿐이다. 허용범위내에서 동네가 부산하도록 왝왝 거리는 게사 니가 될수도 있고 숲속에서 전문 해충을 쫏아먹는 딱따구리도 될수 있다. 많은 작가들이 현실은 현실이고 문학은 그저 문학일뿐이라고 하는데 문학정신을 외면하거나 포기한 글짓기는 모두 문학량지의 상실이다.     누가 뭐라든 정의는 영원히 사람들로 하여금 밝은 앞날을 향해 매진하도록 격려하며 정의의 힘은 인민대중의 량지와 각성속에 존재하면서 사악과 투쟁하는 길에 횃불로 타오를것임은 의심할바 없다. 물론 작가도 우선은 인간인만큼 비속한 생존자가 될수 있지만 비속한 작가로 되는것은 독자가 용납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작가로 말할 때 량지는 창작의 기준이자 출발점이라고 하는것이다.                                    2018년 3월 20일
898    ( 잡문) 작가정신을 기리다 댓글:  조회:34  추천:0  2018-09-20
                                            작가정신을 기리다                                                      최 균 선       작가정신이란 총체적으로 말하면 자기 작품에서 체현된 사상이고 개체적으로 말하면 한 작가의 특유한 주의, 주장이다. 한 사람의 도덕관, 가치관, 사회관, 세계관 등 한순간에 이루어지는것이 아니고 개개인의 삶과 생애 전체와 련결되어 형성되듯 작가의식ㅡ정신도 그 형성과정이 있다. 작가의식은 작가의 생애 전체에 걸쳐서 그가 인식하고 느끼고, 깨닫고, 사색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것들이 모여 형성되는것이므로 그 자신의 우주적 총체라고 해야 할것이다.      공익을 위한 정의를 신장시킴에서 작가는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기 위해 사회에 참여함으로써 현실감이 있고 생명력이 있는 글을 지어내고 생동한 인물형상을 부각해 낼수 있다. 사람은 각자 리해득실로 하여 색안경을 쓸수 있지만 작가의 시각은 편협하지도 않고 편향되지 않은 광명정대한 시각이여야 한다. 우리 조선문학에서 이런 작가를 꼽으라면 우선 최서해를 추천하고싶다.     최서해는 일본의 식민지 수탈이 극대화해 가는 시기의 작가로서 비교적 성실하게 시대의 의미를 모색하였다. 그의 삶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행하였으며 그의 작가적 책임은 식민지적 현실―즉 궁핍한 현실에 대한 문제로 집약된다. 그가 다룬 이야기의 대부분이 가난, 기아였던것처럼 그의 소설세계는 모두 하층민, 소작민, 류랑 민, 로동자의것이였다. 그의 작품은 모두가 절대 대부분의 조선사람들의 삶의 참상과 체험을 토대로 재현된것이여서 그 간결하고 직선적인 문체에 힘입어 한층 더 호소 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예술적인 형상화가 미흡하다는 탓으로 초기의 인기를 지속하지 못하고 불우한 작가의 길을 헤쳐가다가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가 신경향파의 대표적 작가이면서도 25년의 카프발족에 가담하지 않은것은 그의 “빈궁문학”이 어디까지나 목적의식적인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과 생리에서 우러나온 자연발생적인것이였음을 말해준다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각편차이다. 괴테는 “눈물과 더불어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는 인생의 참다운 맛을 모른다”고 했다, 배부른 자가 어찌 배고픈자의 고통을 알며 납함하는 리유를 설명할수 있으랴,     작가 서해는 웨치고있다. “나는 이 세상 사람과 같이 그렇게 미적지근한 자극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 쓰라리면 오장이 찢기도록 기꺼우면 3백 64절골이 막 녹 듯이 강렬한 자극속에서 살고 싶다. 시퍼런 칼을 이 심장에 콱 박고 시뻘건 피를 확확 뿜으면서 종로 네거리를 이이저리 뛰고 뛰여서 온 거리를 이 피로 물들였으면 나는 퍽 통쾌하겠다. 나는 미친 듯이 통쾌하겠다. ” 이런 처절한 고백은 그의 인간적인 개성, 심리적특질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되고저하는 작가적 정신의 납합이라 하겠다.     눈물에 젖지 않은 눈으로는 인간삶의 밑바닥을 들여다 볼수 없으며 아픔을 겪어 보지 못한 가슴으로는 정으로 보듬어주어야 할 사람들의 고충을 알수도 없다. 작가 최서해의 정신세계에 일관하고 있는것은 빈궁과 박해속에서 무한한 고통을 겪는 근로인민들에 대한 동정과 지지,불합리한 사회제도에서의 분노와 규탄, 계급적원쑤 들에 대한 증오와 투쟁정신, 인간에 대한 사랑과 빼앗긴 생활의 권리를 찾아내려는 높은 인도주의정신이다. 이로써 최서해의 작가적 정신의 핵은 저항적, 민족주의적, 사실적, 현실고발이다.     문학은 시대가 나아가는 앞길을 비춰주는 홰불이고 그 시대 삶의 현장과 인간상, 정서의 뉴앙스를 비추는 거울로서 인간의 정신세계의 구축을 도모한다. 저 낮고 낮아 보이는 일상의 삶을 문학사랑을 지닌 가슴으로 체험하고 그래서 세상에 알리고 사람들에게 나갈 길을 잡아주는게 문학이다. 문학사랑이 아니고는 폭넓은 삶의 현장 을 체험할 길이 없다. 우리는 찰스 디킨스의《올리버 트위스트》를 읽고 19세기 영국의 빈민가의 그 험악한 삶의 양상을 알수 있었고 현진건의 “빈처”를 읽고 지금은 흘러가버린 시대의 지식인의 삶이며 그리고 지금도 도처에서 재연되는 부부생활의 한 바람직한 단면을 련상할수 있다.     중외고금의 대문호들은 시대의 선지선각자들이였으며 그들이 쓴 글은 나라의 운명까지 바꾸어 놓았다. 괴테는 유럽변방의 언어였던 독일어를 세계어로 진입시켰으며 볼테르나 루소는 프랑스에 민주화를 이루었다. 레브 똘스또이와 뚜르게네브는 로씨아의 농노들이 자유를 찾게 했다. 그리고 미국의 스토우 부인은 엉클 톰스 캐빈을 통해 노예해방의 위업을 이루어냈으며 존스타인백은 분노의 포도를 통해 19세기초 미국에서 불황을 벗어날수 있게 했다.     작가의 눈길은 그냥 서리발치는 칼날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심하게 스쳐 지난 꽃을 보고 감동는것, 그 자체가 작가적인 가슴에 새겨진 작가정신이다. 눈을 들어 광막하고 고요하고 신비한 우주를 보고 허리굽혀 땅위에 무성한 수림과 풀숲을 본다. 그렇게 아름답고 온전한것을, 언젠가 거미줄에 얽힐 나비한마리에도 정을 가지고 보고 곧 시들어갈 꽃잎에도 무심하지 않다. 이처럼 아주 미미한것에까지 감동어린 눈길로 보는것이 작가의 시각이자 마음이다. 이렇게 작은것에서도 감동되는 마음이란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문학정신이다.     작가의 마음은 고요한 련못이거나 목가적인 초원에 호수만은 아니다. 때로는 그 속에 살고있는 무서운 괴물도 보아내고 비리한 바람에 엄청난 격랑을 일굴수도 있다. 당대 시대의 다종다양한 삶의 양태를 문학이라는 화폭에 담으려면 객관현실을   있어야 시공을 넘어서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는  예술품을 흔상하는 이에게 새로운 진리를 알려주고 감동을 줄수 있다     식물학자는 가시밭 엉겅퀴이거나 이름모를 들풀이거나를 막론하고 장미꽃처럼 소중하게 다룬다. 그 가시나무에 찔려서 피가 나도 나무라지 않는다. 오직 그 식물을 깊이 있고 분명하게 분석하고 관찰하는 철저한 파악이 앞설뿐이다. 그렇기에 문학에서도 삼라만상의 모든 줄기와 뿌리를 인간과 아름답게 련관시켜야 철학과 력사가 깃든 깊이 있고 차원 높고 생명력이 있는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해낼수 있다. 그것이 곧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까지 충실히 감당해 가는것이다. 거기에 저자의 인품과 인격과 능력이 반영되여 작품으로서 생명의 빛을 발산한다.     병든 꿀벌은 좋은 꿀을 만들수 없다. 문학도 작가의 인격이 훌륭할수록 진실한 예술경지를 펼쳐보일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글을 쓰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서 “나라를 걱정하지 않은 글은 글이 아니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지 않는 글은 글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하며, 선을 권장 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담겨 있지 않는 시는 시라고 할 수 없고 말했다. (不愛君憂國非詩也,不傷時憤俗非詩也,非有美刺勤徵之羲非詩也). 낡은 레코드에서 나오는 소 리로 여기고 우습게 흘려버릴수 있을것인가? 아니라면 설득력있는 답을 내놓으라.     좋은 작품은 시공을 뛰여넘어 인간의 본질적인 터전이 얼마나 소중하고 영원한가를 보여준다. 천년이 지나도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사랑문학으로 기록될 리도령과 춘향의 사랑이야기는 쉐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쥴리에트”이나 “햄리트”, “오셀로” 등 처럼 영원히 살아남을것이다. 한때 잘 팔리다가 시간과 함께 잊혀진 작품들은 문학사랑, 인간사랑으로가 아니라 자기 감각의 충족을 앞세우고 쓴 오락품들이다. 영원히 살아남을수 있는 예술성이 깃든 본격 문학만이 진정 세월과 더불어 사람들의 사랑속에서 영생할것이다.                                                                         2018.2.18
897    ( 칼럼) 왜 기어이 “북한”이고 “주민”이 되냐? 댓글:  조회:25  추천:0  2018-09-20
      왜 기어이 “북한”이고 “주민”이 되냐?                                          진 언       한국에서 애용되고 있는 어떤 개념들은 얼토당토 않다. “얼토당토”란 “얼하지도 당(当)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쉬운 실례로 “북한과 북한주민”이라는 개념이 얼토당토 않다. 일컬어 “북한”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를 사람은 없으되 묻거니와 “한국”이 언제 분단되여 “북한” “남한”이 되였는가? 누가 똑 부러지게 날자, 원인을 말할수 있을가? 하긴 일제에 통채로 먹혀버린 소위 “대한제국”을 기점으로, 혹은 “상해망 명정부”를 근거로 조선반도가 한반도로 지칭되면서 북한으로 칭하는것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극구 부정해도 조선은 엄연히 주권국가로 존재해 있지 않는가?     생떼질은 존재가 리유라는 진리를 마멸할수 없다. 이미 확고하게 존재하는 조선을 시종 “반국가단체”로 치부하고 싶던들 뜻대로 되였던가? 그게 옳다면 국가도 아닌것을 성원국으로 받아들인 유엔은 뭐가 되는가? 그렇게 앙앙불 락이시면 왜 “반국가단체”를 유엔에 받아들였는가고 발을 구르고 침을 튕기며 고래고래 호통쳐야 명정언순(名正言順)이 되지 않겠냐?     일언이페지하고, 조선인민도 왜 한사코 “북한주민”으로 호칭돼야 하냐? 주민이란 뭐냐? “일정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다. 《현대조선말사전》의 해석과 똑같다. 하건만 조선이 한국의 일부인 “북한”이여야 하고 그 나라의 인민은 기어코 “주민”으로 지칭되여야 한다는데 그저 엉터리도 못된다.     “북한주민”이라는 부르는 그 저의는? 물으나마나 우문인데 그 호칭이 론리적으로 맞기나 한가? 어떤 고명한 이가 가라사대 “억압과 통제속에서 살고있는 북녘 동포를 '북한 주민' 또는 '북한 거주민' 으로 칭합니다.”라고 하는데 론점도 못된다. 론점이 론점이 아니면 설득력있는 론거를 들이댈수 없다     조선이라는 국명을 가지고 제 나라 땅에서 사는 사람들인데 한국 국민인양 지칭하는것은 너무 맹랑하다. 36년간 일제치하에 있다가 겨우 광복을 맞은 조선반도가 뒤미처 렬강들에 의해 분단된후 제 나름대로 세운 나라가 대한민국, 조선이 아닌가? “대한민국”이 갈라져 “북한”이란 생긴게 아님을 잘 알면서도 눈감고 야옹 하긴가?      욕심은 정서의 일종이지 객관적 판단이 아니다. 물론 광의적의미에서의 주민이란 호칭도 전혀 의미불통인것은 아니지만 이 지구촌에 억압과 통제속에 살고있는 수많은 나라 사람들은 그나라 국민 혹은 인민이 아니고 주민이 되는가? 역지사지로 조선에서 대한민국 국민을 남조선주민이라 지칭한다면 곧 엎음갚음이 되는건가?     아주 고명한 어떤 제씨가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인민'이라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사전적 정의상 인민은 '법률을 구성하고 있는 자연인' 또는 '국가 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로 정의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인민이란 그 사전적 정의를 살리지 못한, 단순 포괄 개념으로 통하는 '호칭 수준'에 머무 르는게 현실입니다.”라고 하는데 묻거니와 그래 조선사람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률적 제약속에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근거를 댈수 있는가? 분명 딱 부러지게 근거를 대지 못하고 심증만 횡설수설할것이다.         “그들은 철학적 의미의 '자연인' 즉, 태어날 때부터 사회를 구성할 권리를 가진 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어불성설이다. “단순한 구성원 개념이지요. 일당 독재체제 아래서 인민이란 개념은 부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이 인민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렇게 통용 될수 없다는 뜻입니다.” 넋나간 년이 횡설수설하다가 제 혀를 씹고만다더니 닮은 꼴이라 할가부다.     “본래 인민이란 단어는 국민과 시민을 포괄하는 민주적이면서도 원초적인 단어입니다. 권리의식을 가진 인간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이지요. 때문에 더 좋은 단어를 북한에게 뺏겼다는 소리도 나오는 것이지요. 가령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북한에서 널리 통용되기에 우린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을 잘 쓰지 않는 면도 있습니다.”     자아팽창에 량지도 말아먹는데 유치해도 한참 유치하다. 옆구리터진 도토리의 키재기인가? 심통이 어떻게 뒤탈려 있든간에 정상적인 사유인이라면 모든 문제는 상대적으로 분석하고 존재하는 실체를 객관적으로 직시해야 한다.     “북한 사회는 우리나라가 명백히 규정하고 있는 헌법 조항처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개념에 상당히 벗어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그대로 어불성설이요 언어도단이다. 그래, 조선이란 나라의 사회를 한국헌법을 기준으로 판정해야 한다는 권리를 누가 주었는가? 제 생각이면 다 진리인가?     인민은 계급적 정의로서 적과 상대되는 개념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인민, 국민은 부동한 개념이다. 비록 그것들이 일정한 사회관계 와 한 국가에서 사람들의 지위를 반영하고 있지만 말이다. 또한 인민은 정치개념으로서 일정한 계급내용과 력사내용을 함유하고있다. 인민은 집합개념이나 아무나 인민이라고 칭할수 없다. 이처럼 “인민” 은 “국민”과 동등한것이 아니다.     “인민”과 “국민”은 한글자 차이지만 단어의 의미, 정치리념, 국가의의상에서 완전히 달리 표현된다. 인민은 중성(中性)이지만 국민은 성격성이 내포된다. 즉 백성 민(民)에 “국가성”을 부여한것이다. 허다한 정황하에서 “국민”과 “신민(臣民)”은 같거 나 비슷한 함의를 가졌였는바 이런 의미상 “국민”이란 개념은 “군신(君臣)” 관계를 반영하기도 하였다. “대한제국”시절에도 인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었고 당시 아나운서가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중국의 중화민국 시절이라던가 공산주의를 혐오했던 장개석이나 김구같은 사람도 인민이라는 단어는 잘 썼다고 한다. 적어도 그들이 활동하던 시대에서는 리념색채가 없는 표현이였던것이다. 이런 고증으로 봐도 절대 인민이라는 용어가 흔히 말하고 있는 조선및 공산권 사회주의국가들에서만 쓰이던 개념이 아니란것이 실증된것이다. 그런데도 웬 감정 앞세우기의 오판 혹은 무지를 고집할가?     한걸음 물러서서“인민”은 그 어떠한 정치리념상, 국적상의 구분없이 상호간에 위계가 없는 자연인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단어라고 인식할 때 우리 조선말과 글에서 “인민”이란 단어를 아예 삭제해버릴수 있을건가? 오히려 인문학, 사회과학, 무엇보다 특히 정치학처럼 단어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구별하는 경우, 자연인의 뉘앙스를 강조 할 때는 국민이나 시민보다는 인민이라는 개념이 더 잘 사용된다. 정확히 말하면 인민이 더 포괄적인 개념이고 국민은 특수성을 가미한 개념이다.     문제는 조선이라는 국호에 반감을 가지고 “인민”마저 거부하는데 세계에서 쓰는 보편적인 개념을 단지 적대편이라는 리유로 부정하는것은 곧 취약성의 표백이다. 인민이란 단어가 정치적으로 더 많이 사용되는데도 그냥 “나몰라!”이면 “곤란”하다. 랭전시대, 독일도 서독국민, 동독인민 등으로 표기하였는데 그로써 통일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국민” 이라는 개념에는 력사적인 그림자가 비껴있다. 그쯤해서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랭정하게 생각해 보는개 현명하지 않을가? 세계에 “북한”이라는 국명은 없으니 말이다. 언어의 한계는 인식의 한계이다.  대결보다 민족융합의 아량을 좀 가져보삼.                                             2017년 12월 20일
896    (잡감) 숙명인가? 비애로다 댓글:  조회:73  추천:0  2018-09-14
                                      숙명인가? 비애로다                                                    진 언     대저 어용문인이라면 제왕들이 거두어주면서 오로지 송가를 부를줄밖에 모르는 무료한 문인을 가리켰는데 현재에는 세력이 있는 집단이나 권력자에게 붙어서 감언리설을 늘여놓으며 당나발을 부는 문인을 비유하고있다. 자고로 어용문인이라면 초부도 질시하였는바 중국어에는 이에 관한 헐후어(歇后语)가 많다.     례하면 언덕에서 사람이 물에 빠지는것을 구경하다(岸上看人溺水), 여든살 늙은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다 (八十岁老人进幼儿园), 백골정이 사람의 말을 하다 (白骨精 说人话), 백리가 되는 공로에 굽이돌이가 필요없다(百里长的公路不用拐弯), 백세로 인이 생일을 쇠다 (百岁老人过生日), 백살로옹이 무도를 배우다 (百岁老人学跳舞), 죽은사람을 업고 강을 건너다(背死人过河), 사람을 핍박하여 바다에 뛰여들게 하다 (逼人跳海), 멜대를 땔나무로 한다(扁担做桨用)등등.     문인이 사람구실을 하는데 최저선은 독립인격과 독립적사고를 하는것으로서 그리되지 못하면 사람으로 되는 조건마저 잃는다. 기실 어용문인노릇을 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도 지엄한 페하가 어느 때 무엇에 입맛이 있어하는지, 어떻게 그의 구미를 맞출지, 바로 그런 어려움때문에 어용문인들속에 평생 제왕의 총애를 받은자가 극히 희소한것이다. 토사구팽이여서인가? 한가지 실례를 들어보자.     황당하던 그 년대, “삼가촌”이요 “연산야화”요 하면서 “잡귀신”들을 성토할 때 그럴쯤으로 믿으면서도 몰래 어떤 경의감도 가지였던 문인 오함(吴晗)도 좋은 끝장을 보지 못하고 후날 일대의 “어용문인”으로 락인찍힐줄이야 촌구석농부가 어찌 생각이나 해봤겠는가? 오함은 개괄해서 말하면 이름짜한 사학가였는데 오늘날 알고보니 그는 일생동안 네개의 큰과오를 범한 사람이였다.     우선 1953년, 북경에서 패루(牌楼)를 허물어버리려고 의론이 무르익고 있을 때 고전건축물들을 마구 헐어버리는 악풍이 온 시내에 불어쳤는데 오함이 앞장섰던것이다. 두번째 과오는 정풍, 반우파운동에서 급선봉으로 나선 영웅이 된것이다. 세번째는 그가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명나라 13릉의 정릉(定陵)을 발굴한것이다. 네번째는 그의 유명한“해서파직(海瑞罢官)”이였다. 대단한 학자로서 중용을 지켰더라면 그렇게 처참하게 되지 않았을것을, 누가든 다 그랬을수 있지만 결국 줄을 잘못선것이다.     1969년 10월 10일, 먹물을 풀어놓은듯 캄캄한 밤, 살을 에일듯한 음산한 바람이 불어치는 경성의 모감옥에서 저승길에 오른 오함은 생사의 계선에서 모대기다가 향년 75세에 불명예스럽게 인간세상을 떠났다. 그는 청화대학 력사계 졸업생으로서 명조력사의 전문가였다. 그는《주원장전》,《등하집,》《오함문집입》,《오함잡 문집》,《해서파직》등 100여종의 저작을 펴냈다. 그런 혁혁한 문인이 어용문인으로 인생패필을 쓴것은 문인의 비애가 아닐수 없다.     묵존(墨存)선생은 몇십년후에 비효통(费孝通)선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반우파시기 다른 사람과 유별나게 인정사정 없었다는것을 기억하고 있소?” 아닌게 아니라 오함은 1957년 7월 7일, 전국제1기인대 4차회의에서 “나는 분노한다. 나는 공소한 다”는 장편보고를 하였는데 “라장련맹(라륭기(罗隆基) 장백균(章伯钧)”을 엄정하기 그지없이 토벌하였다. 그는 마지막에 “그들 무리는 인민의 흉악한 적들이다!”라고 성토하여 오래동안의 박수갈채를 받았단다. 아마 몹시 득의양양했을것이다. 저명한 학자 라륭기는 1965년에 원혼이 되였고 애국민주인사 장백균은 1969년도 우파모자를 쓰고 불귀객이 되였다. 절마다 억울하게 죽은 원귀들이 있다더니…     오함이《해서를 론함(论海瑞)》발표한후 경극배우 마련량(马连良)이 희곡으로 개편할것을 요청했다. 오함은 일년동안 일심불란으로 극본을 완성하였는데 유명하게 된 “해서파직” 이였다. 연극을 본 최고권위자는 마련량을 집에 청하여 밥을 먹으면서 극이 잘되였다고 극구칭찬하였다. 권위자의 칭찬속에 더없이 도취된 오함은 그의 불운이 이 극본으로부터 시작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성세호대한 문혁의 서막이 열리자 오함은 곧 계하수가 되였다. 마연량도 투쟁받으며 시달리다 집까지 발칵 뒤집히고나서 자살하였다. 오함은 필생을 걸고 령수에 충성하였지만 나중에 옥중원혼이 되고말았다. 그가 정치상에서는 미로에 들어섰어도 량심 하나만은 지켰다고 평가하지만 “어용문인”의 감투는 벗지 못하고있다.     어용문인들이 어찌어찌하여 권력의 그늘속에 들어섰지만 부림당하고 대변자가 되여지고 야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인격도 걸레로 만들어버리고 생각과 사상이 빈혈증에 걸리여 제도권에 기생충이 될수밖에 없었다. 책은 책자체의 용도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도권은 언론인들의 언론의 의미와 가치, 용도를 가르쳐주지 않고 오직 무책임하게 리용하였을뿐이다. 이류의 언론보다 오히려 술판에서 민초들이 담론하는 천하만사속에 사회현실이 시사되고있다.     5천년 도도히 흐른 중국력사의 장하에서 조대가 바뀌려는 때에는 필경 부패무능한 군주가 충신들을 피눈물을 흘리게 한 대신 태감들이 권력봉을 휘둘러 백성들을 도탄속에 몰아넣고 나중에 자멸한 사실을 력사가 증명하고있다.례하면 진나라 2세때에 조고가 지록위마라는 지경에 이르도록 권력을 희롱하다가 마침내 진2세를 죽임으로써 천하대란을 자초한 사실, 동한말년“십상시(十常侍)”가 권력을 잡으면서 동탁이 입경하여 횡포무도를 일삼다가 려포에게 죽임당한 사실, 당조말년 태감들의 전횡으로 백여년의 재난이 있었던 사실 등등이다.     몇천년의 봉건사회에서 무치한 어용문인들은 일컬어 천명(天命)과 하늘의 뜻 (天意) 왕도락토라는 황당한 궤론을 만들어냈다. 가장 무치하게 흑백을 뒤섞은것은 백성을 마치 “국가”가 기르는 동물로 만들어버린것으로서 력래로 어느 봉건통치자도 백성들이 자기를 양육한다고 말한적이 없다. 언제부터인가 청조의 력사를 다시 쓰면서 원래의 사료와 어긋나는 일들이 세상에 알려졌다. 력사는 고칠수 없는 줄을 알면서도 어찌하여 그 많은 사람들이 피곤한줄 모르고 열정을 불태웠을가? 한마디로 권력과 리익, 일세영달이 그들로 하여금 일사불란하게 만든것이다.     만약 한 개인이 어떻게 후안무치하고 어떻게 량심을 팔아먹든지 그 개인의 일로서 사회적 위해는 별로 없다. 그러나 높은 로임과 우혜대우를 받으면서 모집단을 위해 거짓말을 꾸며내고 흑백을 뒤섞고 시비를 전도하면서 가상을 꾸며서 민중을 기편하여 리익집단만 위하는 일은 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례컨대 한국내에서 보수어용언론의 특징을“거두절미”,“침소봉대”, “아전인수”, “룡두사미”, “부화뢰동”이라고 개괄하고있다. 이것은 어용언론들의 위기감을 폭로한것이다. 그리하여 “그럴듯한 기사”와 “있을것같은 기사”, 그리고 아예 “거짓말 기사”들만 약장사들의 헛소리처럼 판을치고 민중들도 점차 그 “보도행태”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지성인들은 대성질호하고있다.     “국내적으로라도 공정해야 할 매체들이 기득권자들의 리해득실때문에 편파적인 보도만 하고 있고 이와같은 상황에서 신문, 방송, 등 전파매체 (저널리즘)의 생존자체가 위협을 받고있다”는 지적이 날카로운데 그새장새이다. 자원했든 핍박에 의해서였든 어용문인이 되여야 할 숙명이라면 참으로 애재(哀哉)가 아닐수 없다.                                                        2013년 8월 10일
895    (잡문) 엉터리들을 엉터리로 론함 댓글:  조회:130  추천:0  2018-09-03
  (잡문)                         엉터리들을 엉터리로 론함                                                       진 언       “엉터리”란 리치에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말이나 행동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거나 겉으로 보기보다 내용이 빈약해 실속이 없는것을 이르는 말이다. 대명천지 밝은 세상을 통털어 엉터리라고 말할수는 없으되 인간세상에 엉터리가 비일비재하는것은 사실이렸다,      가까운 실례로 세인들이 절치부심하는 가짜, 저질상품이 바로 엉터리의 걸작들이고 전 지구적으로 골머리를 앓게 된 가짜뉴스, 언론조작도 엉터리수작이며 엉터리를 용납할수 없는 학술연구에서도 표절론문 등도 역시 빈충맞은 엉터리들이다. 이처럼 천차만별의 인간들속에도 엉터리쓰는 인간들이 많고 그런 엉터리능수들은 무슨 일에서나 솜씨를 펼수 있다. 항간에서 일컬어 “쫜쟈(砖家)” 라고 호칭하는 어떤 정영들의 천하기담들을 흔상해 보면 론거들이 나올것이다.     례1. “8억농민과 정리실업자들은 중국의 거대한 재부이다. 그들의 수고로움이 없다면 소수의 향락이 있을수 있겠는가? 그들의 존재와 현재상태를 유지하는것은 매우 필요하다. 중국의 빈부의 격차는 아직 크지 않다. 중국에는 가난뱅이들이 없다. 응당 대기부자라고 칭할수 있다. 중국에 가난한 사람들이 왜 가난한가? 그들 모두가 잘 사는 사람을 미워하는 심리가 있기때문이다. ㅡ경제학가 려이녕(厉以宁)     례2.“중국에 목전 가난한 사람들이 왜 대학에 갈수 없는가? 그것은  학잡비가 너무 적기때문이다.” ㅡ경제학자 장유영(张维迎)     례3. “시민들에게서 마땅히 20원의 호흡비를 받아내야 한다.”ㅡ중국과학원원사 장유서(蒋有绪)     례4. “거리에 자동차들이 막혀 지체되는것은 바로 성시의 번영을 표지한다. 수재는 수요를 자극하여 증장을 이끈다. 단지 물로만으로도 몇백만채의 집을 휩쓸어 버릴수 있는바 수재는 중국을 이끄는것이다.” ㅡ북경대학부교장 류위(刘伟)     례5. “쩍하면 신소하려 다니는 전업호들은 내가 책임지고 말하는바 100%는 아니여도 99%이상이 정신상 문제가 있다. 즉 편집형정신장애자들이다.” 북경대학사법 감정실주임 손동동(孙东东)     례6. “높은 집값은 가히 중국인구증장과 인구소질을 공제할수 있다. 중국에는 방노(房奴)가 없다.”ㅡ임지강(任志强)     례7. “렴가주택에는 마땅히 위생실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돈이 있는 사람들이 사지 않는다.” ㅡ저명한 경제학가 모우식(茅于轼)     례8. “부동산거품이란 없다. 왜냐하면 리혼한자, 첩을 둔자 모두가 집을 수요하며 미혼동거도 집구매수요를 자극한다.”ㅡ북경사범대학의 부동산연구중심주임  례9. “가서 현장조사를 하지 않아도 나는 그곳의 정황을 잘 안다. 왜냐하면 나는 전문가이기때문이다.” 문천지진 때 타지방에 재건에 관하여 한 말: 중국사회과학원 수리부성도산지재해와 환경연구소연구원 장신보(张信宝)     례10. “중국에 탄광에서 죽는 사람이 생기는것을 피면할수 없는 근본원인은 중국사람들이 너무 빈궁하기때문이다. 누가 너더러 불행하게 중국에서 태여나라 하던가?” ㅡ중국과학원원사 하작휴(何祚庥)의 말:     례11. “중국과학원조사보고서에서 지적한바와같이 농민들의 행복지수는 성시거민들보다 높다(비록 고향을 등지고 떠나고 가족과 아이를 버렸지만 말이다.”ㅡ중국 사회과학원 사회학소사회발전실주임 리위(李炜)  례12. “나는 나의 언론이 능히 국가의 개혁방향을 개변시키기를 희망하다. 만약 내가 실패한다면 비단 나 개인의 실패일뿐만아니라 우리 나라의 실패이다. 나는 위대한 사상가이다. 이번에 꼭 성공할것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중국사회에 크나큰 위해 를 가져다줄것이다.  ” 국무원발전연구중심연구원 오경련(吴敬琏)     상술한바와 같이 천하기담들이 잡다하니 이만 접어두고, 끝으로 문천지진후에 있은 산동성작가협회 부주석 왕조산(王兆山)의 기담을 보자.“지진이 꼭 나쁜일만은 아 니다. 비유하건대 작년 민현지진후 지은 집들이 얼마나 멋진가”라고 하였고 (天灾难 避死何诉,主席唤,总理呼,党疼国爱,声声入废墟。十三亿人共一哭,纵做鬼,也幸福)라는 시를 지어 전국 네티즌들의 지대한 분노를 샀다. 작가를 일러 인류령혼의 기사 라고 한다. 그런데 왕주석씨는 노복의 가련상을 짓고 칭송시랍시고 지었지만 작가의 량심을 제쳐놓고 최저의 인성마저 말아먹은 대문호라 해야 할가,     중국에는 확실히 명실상부한 전문가들도 많고 많은 그만큼 위전문가, 심하게 말하면 엉터리 “전문가”들도 많고 많다. 이 몇년래 각종 매체상에 등장하여 기담괴론을 설파하는데 입만 벌리면 자신이 무슨 교수요, 고문이요 심지어 대가라고 자칭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것은 이런 경세지언에 상식마저 결핍하다는것이다. 이는 전문가들의 비애이고 중국의 비애가 아닐수 없다.     그 근원을 캐보면 역시 문화풍토에 뿌리를 박고있다는것을 발견할수 있다. 한마디로 개괄한다면 “관본위(官本位文化)”풍토이다. 중국에서는 상급이 말하면 반드시 명언이 되고 의심할바없는 진리로 되고있다. 이 한 문제에 아무리 한다하는 전문가들이라도 반박할 여지가 없을것이다. 무슨 회의에서나 개회사에서 언필칭 “各位领导!” 이고 그만큼 맨 앞줄에는 정말 령도분들이 턱하니 앉아계신다.     필수적인 문화지식이 없어도 모두 풍부한체 하는데 중국의 관본위아래 “…체하는 문화”가 당연시되고있는것이다. 광대한 인민군중을 바보로, 순복공구로 치부하던 시대는 영원히 력사의 락엽속에 묻혀버렸다. 청컨대 위대한 “전문가”들은 지금은 인터넷시대이므로 “일언중천금”이 일단 발설되면 뉘집 안방에나 다 전달된다는것을 명심하시고 발언에 근신해야 할것이다. 무어나 다 아는체 하다가 빈구석이 드러나면 여러사람들을 웃길것이니 말이다.     하기사 혼돈의 인간세상에는 자고로 절대적인것이 없고 사이비하다. 가령 강자가 약자심리를 악용하여 억지로 내리먹인다면 사각형이 사실은 원이라는것을 증명하는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결국 사각형과 원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들은 단지 개념에 지나지 않으며 개념이라는것은 외곡되고 매몰된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계속 찍어낼수 있는것이다. 약자들의 리성적판단은 그 판단이 용허하는 범위내의 진실을 추구하지만 결과는 늘 참담하다. 비상식이 상식으로 공유되기때문이다.     기원전에도 세상은 바르게 운행되지 않고 한쪽으로 비뚤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2천여년 세월이 흘러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하였으니 고대인들보다 더 잘 알것은 자명하다. 인간사회의 가장 큰문제는 진짜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위선과 허위에 있다. 자기 눈으로 보고 두손으로 확인해보았다 하더라도 착각이 아니라는것을 담보할 사람이 몇이나 될가?     그런데도 세상이 사이비하지 않기를 바란다는것은 승냥이가 양으로 진화되기를 바라는 격이다. 아니면 어찌할것인가? 약세군체가 한사코 부정하고 타매하던들 물도 길어올리지 못하는 무모한 헛드레질이 될 뿐이다. 약자들이 사이비하다고, 너무 불공평하다고 소리소리 고함치던들 흑백이 전도되는 괴리가 변할가? 알수 없도다.                                           2016년 1월 23일
894    자기 부정이 기꺼운 일인가? 댓글:  조회:145  추천:0  2018-08-24
                                                  자기 부정이 기꺼운 일인가?                                                               최 균 선       지난해 또 조선말띄여쓰기 새 규범이 발간되였다. 2007년 12월에 출판발행된《조선말띄여쓰기》해설이 10년만에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그래서 또 혼란이 조성되였다. 묻거니와 새 규범의 제정은 시대발전의 소산인가? 필자의 고집으로는 아니다. “남”을 따라하기는 학술적연구라 할것도 없이 그냥 급공근리적인, 실용주의적인 추구일뿐이다. 답습도 현재형이 아니라 과거형으로서 전혀 새로울것도 없이 반세기도 훨씬 지난것에 매료되였다면 비생산적이요 되돌아 걷기가 아닐수 없다.     우리가 쓰고있는 중국조선어는 조선민족의 언어임과 동시에 중국의 소수민족 조선족의 언어이다. 조선어는 조선민족의 언어를 모체로 하고 있기에 공통성이 있음과 동시에 중국조선족의 언어로서의 특수성도 체현하고있다. 만약 자체의 특수성을 외면하거나 스스로 버린다면 언어사용의 실체를 탈리하게 되고 답습으로 자기를 부정한것이다. 자기부정은 주체성의 상실, 내지는 포기이다. 물론 나름대로 근거를 내세우지만 설득력이 없다. 과거에로의 회귀에 무슨 창신성이 존재할가. 언어가 발전하니까 띄여쓰기랑 가변적일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겠지만 그저 맞춤법에 속하는 변화가 아니라 곧 민족문화발전의 자주성에 소급되는 중대차한 문제로 승화된다.     하긴 십여년전부터 조선문 간행물에서나 문필사업자, 초고중학생들속에서 한국의 맞춤범을 선호하여 성문화된 중국조선어규범을 무시해버렸다. 무슨 마력에 끌려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구촌 전체 조선민족의 통일된 맞춤법이 나오지 않은 이상 정부차원에서, 학술차원에서 규정하고 사용해 온 자신의 언어규범을 무시하였으니 제혀를 씹는격이 아닌가? 더 심하게 말하면 누워서 침뱉기가 아닌가?     문장들에서 나타나는 저마끔의 표기방식을 볼 때 어느것을 기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제 기분으로 쓰는 글이지만 맞춤법만큼은 나름대로 가동할수 없다.  당초, 경제,문화가 발전했기에《한국서사어규범》에 기준하는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고 질서재조직의 격변기에 기준문제를 거론하는것은 고루한 관념이라 반기를 들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튼 자기부정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며 더우기 광채로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이지 그 누구들이 아니다. 즉 중국조선민족이지 한국인이 아니기에 민족언어정책의 혜택아래 규정,완선화하여 가는 우리 서사규범을 무시하는것은 제좋아서 한 자기부정이라도 지극히 불명예스러운 작동이다.     젖이 나오는 모든 녀자가 다 엄마일수 없고 젖이라해서 다 참젖은 아니듯이 잘사는 나라의것은 다 정확하고 무조건 따라야 할 리유가 없다. 세인이 다 알다싶이 한국어와 조선어는 동질언어인데 리념의 분기로 제각기 사용해오면서 대동소이한 차이를 낳게 되였고 갈수록 그 차이가 커지고 있지만도 우리 말, 우리 글이 본질적으로 달라진것은 없으며 또 달라지자고 해도 달라질수도 없는것이다.     한국에서 여자라고 하는것이 좋다해도 우리식으로 녀자라 써도 소통이 막힐 일이 없고 띄여쓰기도 량자의 규칙을 아는 이상 어느것이 선진적이고 어느것이 락후한것이라고 판정할수 없다. 지난세기 50년대 우리도 지금의 한국어처럼 단어를 규준으로 띄여 썼더랬다. 그후 왜 그때의것을 버리고 새롭게 규범화하려고 로심초사했는가? 원래의것에 어떤 결함이 있거나 실용적이 못되여서 그런게 아니였던가?     한국어 띄여쓰기를 따른다면 조선민족 언어문자사업위원회라든가 조선어사정위원회에서 해놓은 사업은 도루묵이 된 셈이다. 문제는 이런 기구들의 사업실적이 아니라 한국식표기를 본딴다해서 조선어가 획기적이고 세기적인 혁신이라도 되는가이다. 물론 동족, 동질의 언어문자이기에《초ㅡ한계선》을 그을수 없는 상황이나 모든것은 변화한다. 그러나 장차 어떻게 변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전민족이 수용하고 수용해야 할 통일조선어(한국어?)가 어느것으로 결판날지 누가 알고 있는가? 그것이 필연적으로 한국어가 되여야 한다는 법이 없고 또 꼭 그렇게 된다고 장담할수 없다. 바람직한 변화발전과정이라도 우리식으로 살면서 글도 우리식으로 쓰고 말도 우리식으로 하면서 살아야 명실공히 중국조선족답다고 할것이다. 우리가 백프로 한국화 한다해도 필경 한국민이 되는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기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렇게 될수 없는 일이다.     우리 중국조선족 언어학자들이 알심들여 자기 언어규범을 만들고 수정, 보완해 왔는데 왜 가급적으로 한국어규범을 기준삼아야 하는가? 기어코 기준이 되여야 한다면 그게 생산적인가? 미래지향적인가? 한국에서 문필활동을 하는 사람들로 말할 때 산에 가면 그 산에 맞는 노래를 부르라는 말처럼 한국식 서사규범을 따라야 하겠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문필사업의 대상은 중국조선족이다.     바람따라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이라면 별 볼일 없다. 학생들이 중국조선족 언어규범화에 근거하여 편집출판한 교과서를 배우면서도 서사에서는 멋대로라면 그게 바람직한것일가? 어떤 학생들의 작문을 보면 완전 한국식 맞춤법, 띄여쓰기도 아니고 혼탕이였다. 한국식 띄여쓰기가 못배워낼만큼 신비로운것은 아니다, 몇가지 간단한 규정만 외우면 곧 구사할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긁어부스럼이다.     자기의 언어규범을 지키는 문제는 결코 제쓰던 몽당비자루가 좋다는 그런 고루한 가치취향이 아니다. 민족군체의 문화적주체성문제이다. 그런데 한국식표기법, 띄여쓰기가 우리 민족의 서사생활에 기준으로 삼는다면 중국조선어가 볼장을 다 보았다는건가? 우리식도 아니고 한국식도 아닌 접목식의 띄여쓰기 규범이 장구할것인가?     한국과 조선의 맞춤법 차이는 말과 글에서의 다른 모든 차이와 같이 비단 한국과 조선 자체내에서만 문제거리로 되는것이 아니라 그것을 옮겨쓰는 다른 모든 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거리로 되는것이므로 그의 전일적인 규범화는 국제적의의를 가질수밖에 없다. 본래 허리가 동강난 국토에서 리념과 국격을 내세우는 바람에 동질어마저 만신창이 되여진것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의 비애가 아닐수 없다.     조선과 한국의 현행규정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으면서도 다른 점도 있다. 이것은 중국조선어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한때 조선식으로 써오다가 후에 주체성을 살리려 애써왔다. 한국에서처럼 띄여쓰기를 하고 문장부호도 한국에서처럼 쓴다면 좋은점도 있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새 규범이 나오기 썩 이전의 서적들을 읽을 때 그전에 규범화가 락후하였다고 생각하게 될가?     맞춤법의 규정이란 무슨 진리성적인 근거로부터 세워지는게 아니라 차일시 피일시이고 인공적이여서 그 어떤 규정도 절대적으로 옳고 절대적으로 그른것이란 있을수 없거니와 우렬같은것은 더구나 운운할수 없다. 문제해결의 고리는 남북학자들이 통일대사전을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조선족인이상 서사어마저 한국화하려 모지름을 쓰고 서둘러댈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싶다. 혼자 하는 말이라 서지 않더라도,     허리가 동강난 땅이 언제 하나의 혈맥으로 이어질지 묘연하듯이 말과 글의 규범화통일이 예측불가인데 중국조선족이라는 제 삼각지대까지 생겨나서 더구나 조선어가 사분오렬되여 안타까운데 설상가상이 아닌가? 한국식을 기준해야 한다는 주장이 먹혀들었지만 결국은 자기 부정이 되고말았다. 좋아서 하는 자기부정이라도 자아를 상실한다는것은 비애이다. 다 된 밥이 이제 죽이 되랴만 언젠가 또 재차 자기를 부정하게 될 때는 또 무슨 리유가 나설지 궁금하다.                                                                  2017년 10 월 4 일
893    딱해진 우리네 문학 댓글:  조회:152  추천:0  2018-08-18
                                                                  딱해진 우리네 문학                                                                               최 균 선       오늘 세상은 세월을 앞질러 가며 빠르게 변하고있다. 작가들도 그 급류에 실려 삶을 재조하기에 혼란을 겪을수밖에 없다. 기존의 가치체계가 마구 흔들리는 현시대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잘 가늠하며 시종 앞서가야 할 사명을 지닌 작가들이다. 전성기의 문학은 대의를 앞세우고 사회에 응전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지금은  문학을 한다고 똑똑한 사람, 선택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문학의 지위가 날로 변연에로 밀리면서 전지구적으로 엄중한 쇠퇴기에 들어섰다. 이 시점에서 혹자는 문학은 이미 현실을 반영하는 사명을 감당할 힘이 없다고도 말한다. 신매체시대, 인성도 전대미문의 각종 고험기를 맞았다. 문학도 새로운 문제를 잉태하게 되였는바 작가들이 어떻게 문학이 나아갈 길을 모색할것인가? 하는 문제는 인젠 문제중에 문제가 아니다.     과학기술의 고도의 발전은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감정모식을 개변시켜 경전문학의 적극적 영향력을 희석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은 고독감을 해소하고 핸드폰은 거리감을 축소하였으며 량자우주리론은 시공관념을 새롭게 세우게 하고 인공지능은 인류의 본질과 자아의식에 대해 사고하게 한다. 인성도 마찬가지로 다종다양한  고험에 직면하였다. 한마디로 신매체시대 문학에 대한 타격은 치명적인것이다.     다매체시대, 매체가 의식의 절대적인 주체로 군림하여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시대에 문학은 더 이상 문화의 주체가 될수 있을지 불투명해진다. 불길하다. 불안해진다. 불과 20여년이 안되는 동안 인테넷과 전자매체의 폭발적인 발전은 문학의 생존공간을 대대적으로 축소시켰으며 문학이 더는 “금나와라, 뚝딱!”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낯선 기괴함이 환상의 코드와 결합해 새로운 문화를 이룩해가지만 이는 늘 이미지의 향유로 결판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이미지의 시대에 문자는 사유를 압박하는 절대적인 주체가 아님은 물론 변두리문화작업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 스마폰세대들은 물을것이다. 도대체 문학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고     텔레비죤이나 스마트폰에 스쳐가는 장면과 장면 사이는 불련속성이 지배하건만 이런 문화현상은 21세기 지구촌 촌민들을 지배하는 대전제로 되였을뿐만아니라 너 또는 나를 의식의 신기원으로 인도한다. 모든것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사람들이 속도와 편리함에 도취되여있을 때 실재가 사라진 자리에 이미지가 환상과 결합해 새로운 리념을 건설하는 중이다.     문학이 찾아야 할 실용적인 미적부호는 과연 무엇인가? 환상세계속에 도취인가? 아니 환상 이외에는 더는 문학의 소재로 차용될수 없는 실물이 존재하지 않을듯도 하다. 실물에 대한 서사와 환상의 서사가 극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이 21세기를 표현하는 의미의 진실이기는 되여지는것일가?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지 않을가? 아무튼 문학의 미래는 밝지 않다.     문학이 인공지능과 스마트폰 사이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엄혹한 이 시대다. 작가가 사회량심으로, 지성의 대표자로 받들리던 때와는 다른 이 시대, 작가들의 고민이 깊어질수밖에 없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다시 길이 나타나고 바다가 펼쳐지고 사랑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자기 위로가 될것인가?     문학이 근대산업과 소비행태에 의한 불가항력의 파괴를 력사적모순, 시대발전의 필연이라  인정하더라도 사람들이 읽고 싶어하고 읽어서 오래 가슴에 남는 그런 글을 쓰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소일거리로 쓴다거니 하는 상업적 회색문학이 공공연히 만연되고 있어 문학의 비애란 화제가 나오는 것이다.     1967년 미국의 작가 존 바스가 발표한 “문학의 고갈”이 문학의 속근심을 드러냈다면 신매체시대에 들어와서 문학의 지위가 변연화되여진것은 문학의 “외환(外患)” 이라 할것이다. 무릇 고전주의든, 랑만주의든, 사실주의든, 현대주의 내지는 후현대주의든 휘황찬란하던 전성기도 기억의 언덕너머로 물러가다보니 문학은 전 지구적으로 엄중한 쇠퇴를 보여주고있다. 물론 문학이 변연에로 밀리였을뿐 문학이 존재리유와 의의를 상실했다고 말할수는 있다.     문학을 인간이 자기 자신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인간학이라 했다. 우리 인간의 가능성 뿐만아니라 그 한계성조차 진지하게 모색하는것이 문학이였다. 현대문명인들에게 금전이 수요되듯 문학도 필수적이다. 이러한 문학이 무시되면 인간의 정체성과 진정성이 모호해지기 마련이므로 인간의 본질과 진정성을 확충시키려는 진지한 노력이 바로 문학이 해야 할 급선무였다. 문학은 상상력의 공간속에서 사물들을 재배열함으로써 이것을 성취하고자 하였다. 문학은 언어문자로 인류의 생존상태를 표현하므로 인성을 들여다 보고 인심을 뒤흔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건만 독서위기가 도래하면서 존재의 리유와 근거가 미약해졌다.     문학은 리념이나 체제선전을 위해 존재한것이 아니였다, 본질적으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데 선도자가 되고 보탬이 되는것이 문학의 사명이였으나 독자라는 가죽이 엷어지고 작아지고 있으니 무성한 털인들 있을손가, 물질적재부를 창조하지 못했지만 물질재부를 창조하는 지혜롭고 재능있는 사람을 만든다던 문학이 마침내 상상 이외로 시대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였다. 그래서 우리의 인쇄문학은 어디로 갈것인가? 하는 우문이 나오게 된다.     종이문화의 친인간적 효용은 날로 줄어들고있다. 고상한 정서생활, 정감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결집시키던 문학의 렬차는 이미 산굽이를 돌아갔다. 구체적인 인간 개체등를 기쁘게, 슬프게, 분노하게 하고 종국적으로 행복감을 안겨주던 문학의 진정한 가치, 효용성을 싣고…     그래서 억지로 자아위안을 불러본다. 아무리 전자통신망이 세계를 휩쓸고 인간을 지배하더라도 인간의 령혼마저 그것에 빨려 들어갈수는 없다고, 인터넷과 소셜네트 워크서비스(SNS)상에 숱한 말,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시간의 흐름에 씻기면 되찾기가 어려운 치명적약점도 잉태하고 있으므로 일시적으로 사회를 흔드는 진동파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은 그래도 문학이 가질수밖에 없다고, 문학이 수백년 간을 두고 쌓아온 무게와 질감때문이라고 강변해도 설득력을 잃고만다.     지금 젊은세대, 어린이세대들은 보편적으로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세기를 거듭하며 습관되였듯이 그냥 책을 읽으면서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한 세상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앞으로 살아갈 일들에 매료되여 정감세계의 생화를 가꾸어가지 않을수 없다고 절규하면 독서취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새 세대들은 코방귀도 뀌지 않을것이다.      누구나 돈만 내면 책을 출간할수 있는데 문학의 새로운 발전기회라고 말할수 있을가. 책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읽을뿐이다. 언어의 예술로서의 문학은 언어가 철저히 소실되고  사람들이 서로 심령의 감응으로 교류하지 못하는 한 소실되지 않는다고 장담하지만 문학의 외재형태, 전파방식과 접수방식상 미증유의 극단적 변화들이 발생한 상황에서 딱해진 우리네 문학임은 틀림없다.                                                                       2018년 2월 17일
892    (단편소설) 선녀바위의 전설 댓글:  조회:139  추천:0  2018-08-17
                                                        선년바위의 전설                                                                최 균 선                                                                                    1       속절없는 세월은 어느덧 18년을 넘겼다.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의 은혜받은 꽃이라는 의미에서 혜화라고 이름지은 딸애는 어머니의 소원대로 서화라는 사람이 다녔다는 지구의 미술학원에 입학하였다. 혜화는 어머니가 왜 한사코 미술학원에 지망하라는지 그 내막은 알지 못했지만 자기를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한 어머니의 소원대 장차 화가가 되리라 작심하고 있었다.     어느날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 인물화에 조예가 깊다는 서화라는 교수가 한 농촌처녀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본따서 그리게 하였다. 혜화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초상화의 얼굴이 자기 어머니와 신통히 닮아있는데가 어머니가 밤낮으로 쳐다보며 눈물짓던 그 초상화와 너무 비슷하였던것이다. 크면서 매일 보아왔던것인데다가 어머니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니 여느때보다 그림이 잘 되였다. 서화교수도 잘 그렸다고 칭찬했다.       친구들도 어쩌면 그렇게 쉽게 잘 그려낼수 있느냐고 부러워하자 혜화는 얼결에 자기 어머니의 침대가에도 이와 똑같은 초상화가 있어 너무 익숙하였기때문이라고 자랑삼아 해석했다. 친구들은 반신반의하면서 방학에 집에 가면 꼭 가지고 와서 확인시켜 달라고 다짐땃다. 방학이 되여 초상화를 학교에 가지고 가서 친구들에게 보이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펄쩍 뛰였다. 그래서 집을 나설 때 몰래 그림을 꿍져넣고 학교로 달려왔다. 동학들은 그림을 보며 감탄성을 지르다가 서화교수에게 가져다보였다.     서화도 혜화가 처음 놀란것처럼 웬간히 놀라지 않았다. 서화는 혜화를 가만히 불러내여 그림의 출처를 캐여물었다. 사연을 알게 된 서화는 돌아서서 눈물을 삼켰다. 학생들에게 그리게 한 초상화는 비록 당년에 그린것이 아니였지만 너무도 잊을수 없는 인물이였기에 그때의 직감을 애써 살리며 다시 그린것인데 성미술전람에서 특등상 을 받았다. 너무도 가슴아파서 학생들앞에 내놓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자 기 학생에게서 꿈에도 잊어본적이 없는 자기의 그림을 보게되다니…                                                                                                             2   …무슨 혁명이 일어난다고 두메마을마저 술렁술렁하던 어느 봄날, ㅂ대학미술 학원을 다닐 때, 졸업을 얼마 앞두지 않고 언제부터 지청구질하던 미화를 데리고  하 늘아래 첫동네라는 백두산기슭의 선녀동에 사생하러 내려갔다. 풍경화도 그릴겸 예로부터 미인이 많이 낳았다는 선녀동에서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산꽃처럼 싱싱하고 고전적인 미를 가진 시골처녀를 찾을수 있다면 인물화를 그릴 타산이였다.    하루 한번 통하는 뻐스를 용케 잡아타고 선녀동에 내리여 취한듯 산천경개를 살펴보니 과연 명불허전이 아니였다. 련산련봉이 평풍처럼 둘러있고 앞에는 골골에 벽 계수가 합수하여 마을앞에 맑은내를 이루었고 뒤산 층층바위에 살구꽃이 흐드러져있고 집집에 오얏나무에 하얀꽃이 봄뜻을 자랑하고있다.     “천산과 만산에 홍장 찬란하고 앞시내와 뒤시내에 흰깁을 펴인듯, 푸른 대나무와 소나무는 천고의 절개요, 복숭아꽃 살구꽃은 순식간 봄이라. 기괴한 바윗돌은 좌우에 층층한데 절벽사이 폭포수는 이 골물 저 골물 합수하여 와당탕퉁텅 흘러가는 저 경개 무진 좋을시고…”라고 묘사한 “토끼전”에 한 절구가 절로 떠올랐다.     현대문명의 해살이 이 골령에도 비추고있으나 아직 인간의 손길에 파괴되지 않은채 고색창연하여 별유선경이 이렇든가, 특히나 소문을 많이 들어왔던 선녀봉꼭대기에 선녀암이 지켜보는 마을도 초가집일색이지만 아늑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이렇게 산수좋은 곳에는 시골가녀들도 많으리라는 제좋은 생각에 서화가 빙그레 웃자 미화가 무슨 제좋은 궁리를 했기에 바보처럼 웃음을 흘리고 섰느냐고 퉁을 놓는바람에 자아도취에서 깨여나 마을로 들어가는 수레길로 발길을 옮기였다.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져있는 허술한 농가가 첫눈에 들어서 잡담제하고 찾아들어갔다. 여름해살이 살처럼 내리꽂힌다면 봄날의 해살은 나비의 날개처럼 내려앉는다던가. 5월도 저무는 때라 한낮의 해살이 자그만한 뜨락에 가득차서 열기를 뿜고있다. 뜨락에 가득한 온기가 노란병아리의 털처럼 보드랍고 아늑하다. 주인을 찾으니 뒤울안에서 병색이 짙어있으나 한창때는 산골에 미인이였을 녀인이 주춤거리며 나왔다.     그녀는 경계하는듯한 눈길로 느닷없이 찾아든 웬 신사숙녀를 가늠하며 어정쩡해 하였다. 미화가 자기들은 미술학원에 대학생들이라는것, 여기에 그림을 그리려왔다 고 전후 사연을 곧이곧대로 말하고 소개신을 내놓으며 돈도 섭섭하지 않게 드릴터이니 한 이틀만 숙식을 제공해 달라고 사정하였다.     “글쎄유, 루추한 우리 집으로 말하문 귀한 손님들인데 여느집과 달라서 제마음대로 손님이랑 척척 받아들일만한 처지가 못돼유, 그러다가 무슨 말썽이라도 생길가봐 그래유, 마을에 들어가서 빈하중농들의 집을 찾아보세유, 이 마을에 사람들은 집집이 모두 인심이 후해서 받아줄겐데유, 그리고 우리 딸애가 어찌생각할지…”    서화는 말끝을 흐리는 주인의 표정을 보며 무엇인가 짚이는것이 없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더 눌러앉고싶어져서“그럼 받아주시는것으로 알겠으니 첫눈에 든 이 집에서 신세를 좀 집시다”하고는 가방이랑 퇴마루에 벗어놓으며 설레발쳐댔다. 점심때가 되였는지 한 숙성한 처녀가 마당에 들어섰다. 묻지 않아도 이 집에 딸이 분명했다.    미화가 눈이 휘둥그래 서있는 처녀의 두손을 와락 잡고 아까하던 말을 곱씹어 하며 역시 좋은 인연이라며 수선을 떨었다. 수집을 타는지 녀자는 서화쪽은 눈길 한번 돌리지 않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 력연했다. 시골처녀가 낯선 청년앞에서 머금을 법한 원시적수태가 예민한 통찰력은 가진 서화의 눈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비록 봄볕에 그을리기는 했어도 수련꽃같이 흰 살결밑으로 푸른 피줄이 어슴프레 보일만큼 살결이 맑은 처녀였다. 두볼은 한창 붉게 익어가는 복숭아처럼 홍조가 물들어 있었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건만 진붉은 입술은 석류화를 련상시켰다. 그것은 전류였다. 아직 이성에 대하여 그렇게 골몰해 보지 않았던 자신의 몸과 의식에 팽팽한 긴장과 충전을 일으키게 하는 매혹 그 자체였다.     저녁을 먹으며 미화가 비난수해서야 겨우 모델로 되겠다는 답복을 받아냈다. 해가 뜨면 일밭으로 나가야 하는 사람을 붙잡고 있을수는 없어서25촉이 될가말가한 전등불아래에서 먼저 초상화부터 그리고 밝는날 점심짬을 타서 자연을 배경으로 수채화를 그리기로 약조했다. 서화는 미술가로서가 아니라 한 남자의 정열로 이름이 선 아인것처럼 이 시골의 가인을 가진 재간을 통털어내여 그려갔다.     …맵시있게 빚어서 붙여놓은 당실한 코, 산양의 눈을 방불케하는 커다란 눈, 가늘지만 선명한 반달눈섭, 우정 길게 잡아당겨놓은듯한 속눈섭이 검은 눈동자를 순간 순간 감추었다 드러냈다 하는것이 너무 매력적이였다. 그것은 흡사 어느 화첩에서나 볼수 있는 정교롭게 새겨진 불면 종이장에서 날듯이 깐지게 생긴 그녀를 보고 젊은 사나이가 느끼는 그러한 자연발생적인 감정에 사로잡혔다. 활짝 피여난 한떨기 아름다운 꽃처럼 맑은 얼굴에 잔잔한 홍조가 비낄때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갈아앉혀 주었고 그 얼굴에 비낀 고운 심성이 더구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서화는 감각으로가 아니라 심장으로 그린 초상화를 선아에게 선물로 주고떠났다. 대학생남자가 그려준 초상화를 받은 선아는 그 청년이 헤여지며 가슴속에 새겨준 그 눈길을 잊지 못하고 공연히 가슴을 설레였다. 시골내기로, 더구나 여의치못한 집에서 태여난 그로서는 언감생심이였지만 속일길없는 녀자의 본능으로 서화가 기다려졌다. 서화는 같이 온 처녀가 없는 틈에 다시 오겠다고 가만히 약속했던것이다.     며칠후 서화는 약속대로 찾아왔고 선아의 어머니앞에서 사위로 삼아달라고 엎드려 빌었다. 그렇게 가연을 맺은 둘이는 대번에 련정의 늪에 빠져버렸다. 그와 그녀는 애욕의 피리를 마음껏 불어댈수 있는 그런 상태에 있었다. 충분히 성숙한 그들의 정 열은 흔히 정열을 식혀주기 마련인 정욕의 향락으로 하여 꺼지기커녕 오히려 더욱 세 차게 불타올랐다. 아마도 사랑이란 향락에 대한 감사의 정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모양 이다. 선아로서는 장차 어찌될지 생각하고싶지도 않아서 그저 감각에 자기를 맡겼다.     원래 함께 왔던 미화도 서화를 사랑했다. 그런데 서화가 늘 혼자 선녀동에 간다 는 사실을 안 그녀는 서화에게 천둥같이 화를 내며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표시해 왔던 자기의 감점을 털어놓고말았다. 그러나 그녀가 어찌 알았으랴, 서화가 선녀동에 한번 가면 며칠씩 묵새기며 선아의 배속에 불행한 사랑의 씨를 심어놓았다는것을, 그 런줄 모르고 한사코 서화를 남편으로 삼는다고 윽윽 별렀던것이다…                                                                             3                       그무렵, 선아는 곧 다시 오마하고 약속하던 서화가 오지 않자 속이 바질바질 탔다. 배가 자꾸 불러갔기때문이다. 그녀는 서화에 직접편지는 못하고 봉투안에 봉투를 넣어 미선이앞으로 편지를 보내고 또 보냈지만 종시 회답이 없었다. 순진해빠진 그 녀가 자기편지를 한번도 서화에게 전해지지 않고 불살라진다는것을 어찌 알수 있었으랴, 그저 자기 혼자만이 무리에서 버림받은 외기러기라고 슬퍼했다.     그녀는 지금 천길나락끝에 서있는것같이 꿈속에서마저 전률하였다. 그녀는 이제 밑창없는 동굴속으로 굴러떨어지는 무고한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세상은 그의 곪아터지는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말썽부리가 좋아하는 아낙네들이 속심을 눈치챌가봐 겉으로는 평온한제 하지만 속은 그대로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무엇을 끓이는지 이젠 알수도 없었다. 증오인가? 미련인가?    고운 봄 맑은날 층층이 흘러가는 꽃구름이라도 저도 모르게 한쪼각 음영을 던진다는것을, 그리고 폭우도 실어올수 있다는것을 왜 자초에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던가… 리별이 리별로만 완성된다면 사람에겐 애초부터 비애라는게 없을것이다. 가령 생각도 생명없는 바위처럼 굳어진다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괴로움을 겪을 일도 없을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은 사랑이 소멸하는것까지를 포함하는것. 꽃핀 이후의 꽃다발 혹은 열매 이후의 열매처럼 쇠잔하게 말라가는것까지를 포함시키고 있었다. 만남의 성찬을 위해서는 아무리 큰 허기와 감동이라도 참아야 하는가? 그것은 실로 무섭고 비장한 일이였다. 보다는 원한과 집념을 버리지 못하는 엄청난 일이였다. 리별뒤에 오는 잊을수 없는것이 훨씬 고통스럽다.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그녀로서는 그저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 축음기처럼 생생하게 리별이전의 일까지를 재생시키는 모든 과정을 몇십번이고 몇백번이고 곱씹는 일밖에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그녀의 가슴은 그처럼 엉망인채로 고르롭지 않게 뛰고있었다.     순진해 빠진 농촌처녀들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볼수 있는 두가지 사랑의 방법을 가지고있다. 말하자면 마음에서 우러난 사랑과 관능적인 사랑이다. 관능적욕구를 채 워보고싶은 생각에서 남자를 가졌던 녀자는 거개 정신적사랑이란것을 믿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결혼을 통해 남녀간의 순결한 육체적결합에서만 사랑을 추구하는 처녀가 돌연 정신적사랑에 눈이 떠서 육체적관계만이 능사가 아니였다는것을 깨닫고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그녀 겨우 초중을 나온 시골처녀이지만 잘 알고있었다.     서화는 선아가 눈을 뜨자마자 생각하는 존재였고 잠들기전까지는 한시각도 떠나지 않은 존재였다. 사랑에는 중간계단이 없다. 사랑은 요람으로 되지 되지 않을 경우엔 관으로 되고만다. 그는 지금 사람들 무리속에서 여느 녀인들과 다를게 없이 살고 숨쉬고 일하고 밥을 먹고 웅성에 시달린다. 그는 남자란 무슨 의미인지 알수 없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오로지 서화라는 멋지게 생긴 화가만 있었다.     선녀바위밑 소나무아래에서 그들은 더없이 친근한 마음으로 가슴속깊이 숨겨졌던 비밀들을 무랍없이 이야기했다. 그러는 동안에 두심장이 하나로 융화되여 한시간후 에는 벌써 서화의 넋이 은혜의 넋으로 되였고 은혜의 넋이 서화의 넋으로 되여버렸다. 그들의 물음과 대답은 그냥 사랑이란 이 보금자리에서 합치되여 있었다. 마치도 오또기가 아무리 번져놓아도 제자리에서 일어나듯이 말이다.     자기를 포근히 껴안으며 타는듯 입술을 자기 입술에 포개던 서화의 눈에서 애원하는 절절한 마음을 본능으로 다 읽어버렸다. 그녀는 이 남자앞에서는 도저히 저항 할수 없음을 가슴으로 느끼였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무조건 순응하는듯한, 그를 향한 뜨거운 사모의 정이 고패지고있음을 느낄 때 이 남자에게 자기를 다 내주지 않으면 안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죽어도 후회되지 않을것 같았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는 가시나무우에도 누울수 있다고 생각했다.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다만 거기에는 소나무에서 흘려내리는 송진내와 어데선가 숨어서 뿜어내는 버섯의 향기와 나무가지새로 엿보는과 햇빛과 무한의 우주와 그리고 작열하는 정열의 속삭임이 있을뿐이다.     남자가 한낮의 양광아래 그대로 드러난 젖무덤과 사이에 얼굴을 묻고 오래오래 미동도 하지 않을 때 선아는 이젠 자신의 일체를 내주었으니 이 남자의 안해가 되고 도시생활을 할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미처 할 사이가 없었다. 스스로 몸속 어딘가 열기에 휩싸이는듯 싶어지며 입에서 단내가 확확 뿜겨나갔다…여느 녀자와 다르련만 성숙속에 미숙이 있었다, 초경험과 욕구, 숫처녀의 아리숭함과 20대중반의 성숙한 웅성의 몸부림이 육신을 깡그리 불태우고 있다는 감각뿐이였다.     남자가 몸을 뚫고들어왔다. 처음이면서도 신비하고 절박한 마음들이였기에 서로 상대방을 집요하게 흡인할뿐이였다. 시간도 굳어지고 태양도 빛을 잃었다. 진할줄 모르는듯 격렬한 몸짓이 그녀를 끝없는 꿈길로 이끌어갔다. 마침내 작열도 끝나고 정적 이, 슴슴한 침묵이 깃들었다. 기이한 정적속에서 그녀는 자기의 몸에서 불덩이가 서 서히 빠져나갔는듯 느껴졌다. 선아는 흐느끼듯 남자를 죽어라 끌어안았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순정을 바친 녀자의 얼굴, 그 몸가짐은 여느때보다 수집은 법이다. 그저 살아있고 살아가야 하는 인생으로 여기던 선아에게 있어서 서화를 사 랑하고 몸을 바친 그후부터 인생이 이처럼 아름다울수 있다는것을 알게 된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몸을 바침으로써 자기 인생도 행복해질수 있다는것이 얼마나 가슴이 뛰는 일인가? 이 세상에서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부터 자신이 어느 처녀들보다 행 복하다고 생각할수 있는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녀자는 한번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잘못 사랑했는지도 반성해보지도 않는법인가? 그는 매정하게 소식도 주지않는 서화였지만 그냥 아름다운 추억만 안고 혼자 웃고 울었다. 리별의 괴로움이 눈물로만 씻겨진다면 사람에겐 애초부터 리별의 아픔이라는게 없었을것이다. 오랜 리별기간 눈물젖은 그리움을 달래는것이 선아에게는 참을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하루같이 시간을 거꾸로 돌리며 축음기처럼 생생하게 리별이전 의 일까지를 재생시키는 모든 과정이 하루의 내용이였다.     시골에서는 패풍의 흙탕물에 사람이 빠져죽는 경우가 있다. 살벌하던 비상시대, 마을아낙네들의 눈총질에 온몸이 숭숭 구멍이 날지경이였다. 궁리궁리하다가 마을에 는 남자네집에 갔다고 소문을 내고는 몇십리 떨어진 외할머니네 집에가서 해산했다. 딸이였다. 서운하긴 했지만 남자의 성씨를 따서 서혜화라고 이름지었다. 다행히 인정 사정에 밝은 촌에 주임이 얼렁뚱땅해서 혜화의 이름을 호적에 올리였다. 한시름 놓은 선아는 남부끄러운 처녀과부로 되였지만 평생 “남편”을 기다리기로 마음굳혔다.     세월은 락엽처럼 쌓여갔고 묵어가는 세월의 락엽속에 그리움으로 타버린 애간 장이 묻혀있다. 밤이면 밤마다 추억의 잎새가 어둠속에서 애달프게 울고있다. 세월의 맷돌은 괴로움도, 아픔도, 기쁨도, 미움도 다 갈아버리여 나중에 망각이라는 앙금을 갈아낸다더니만 그녀에게는 그런 망각의 매돌이 없었다. 마음이 마르면 눈물도 마르는 법이다. 선아에겐 이젠 눈물이 없다. 그 긴 세월을 살면서도 밤마다 꿈을 꿨다. 그러나 슈제트도 없고 주제도 없는 난삽하고 지루한 꿈이였다.     …혁명의 불길이 고조에 이르러 각파벌의 쟁투가 무단투쟁으로 번지였던 어느 날, 서화가 느닷없이 잡혀갔다. 평시에 그렇게 이를 갈던 미화였고 이른바 반혁명으로 몰린 빌미가 된 일기장을 자신이 제공했지만 가슴이 섬찍하면서도 그보다 더 극렬한 질투심때문에 량심의 가책도 눌러버렸다.     마음씨 착하고 순진한 시골처녀의 인생을 망가뜨린것은 서화탓이라면 서화의 소식을 선아에게 한번도 알리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첫번째 선택도, 두번째로 서화의 인생을 철저히 짓밟은것도 혁명각오였다고 자신을 변명했다. 그러나 10 년도형을 받았다던 서화가 시대적광란이 끝나고나서 곧 억울한 안건을 시정할 때 무죄로 풀려 나왔다. 그 소식을 듣고 미화의 량심의 마지막 방선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돌이켜 생각하면 스스로 면괴해져서 죽을 맛이였다.     더구나 혁명적인 사랑을 한다고 죽자살자하던 남자가 혁명기간 도를 넘은 비행을 너무 많이 한탓으로 잡혀들어가고 나서 역시나 처녀과부로 늙어가는 처지가 되였으니 인과보응이란 결코 빗겨가지 않는다는것을 절감하며 후회를 짓씹고있다. 서화가 그려 준 자기의 초상화를 매일 쳐다보며 남자를 기다릴 시골녀자를 생각해 보았다. 그녀에 게는 그저 초상화가 아니라 사랑의 초상화, 사랑하는 남자 그 자체일것이다.     평생 한남자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다가 마침내 허망한 사랑에 지쳐버렸을 녀자, 이런 불행한 녀자가 그의 정신기둥이였던 남자가 살아서 돌아왔다는것을 알면 어떻게 될것인가? 역시 죄책감앞서 질투심이 꼼지락거리는것을 말릴수 없었다. 아아, 다같은 녀자의 마음이건만 자신은 왜 이리도 못돼먹었을가? 그녀는 가슴을 탕탕 두드려댔다.          시골녀자의 후반생이 궁금해서 정한과 그리움이 얽혀있는 선녀동으로 가보고싶었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만약 서화가 풀려나오는 길로 그리로 가지 않았다면 순박해빠진 녀자는 서화가 자기를 그냥 내버린것으로 알고있을것이다. 미화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서화가 원래 자기와 언약이 있은 남자였기에 다 용서하고 혁명적동지로 결합했으니 다시는 서화를 찾지 말고 새로운 선택을 하라고 편지했던것이다.     그리고 서화에게는 그 녀자가 흑룡강성 어느곳에 한족사람한테 시집을 갔노라고 소식을 들여보냈다. 서화가 그 소식을 믿고있었다면 선녀동으로 가지 않았을것이라고 자신을 위안해 보기도했다. 이제와서 자기가 저지른 용서못받을 죄를 달리 어찌할수 없다고 생각하며 선택을 잘못하고 잘못 살아온 자신을 감출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4       서화는 5년남아 인간이하의 고역에 시달리면서 한시도 선아를 잊은적이 없었다. 누가 보낸편지인지 잘 모르지만 선아가 먼곳으로 시집을 갔다는 소식을 듣고나서도 그냥 잊을수 없었다. 채석장에 끌려나가 일에 지쳐 돌아오면서도 선아가 낳았을수도 있는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죽지말고 버티리라 강심을 먹은 그였다.     입이 열개라도 말할수 없고 말했다해도 믿어주지 않고 강다짐으로 죄장을 만들어 옥살이를 시키는 자들이 이갈리게 증오스러웠지만 벙어리 랭가슴을 앓듯 할수밖에 없 어 자기 인생에 언녕 체념하고있었다. 실낱같은 전깃줄은 타고 서로가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한치의 흔들림이 없는 동물들의 공동체. 하나가 아닌 여럿이서 군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집단형성, 참새떼가 무리를 이룬 모습이 참으로 부럽게 느껴졌다.     참새떼를 받치고 있는것은 보기만 해도 위태위태한 전선줄이다. 전선줄은 참새들에게 쉼터이다. 사람에게도 자신을 지탱해 주는 쉼터가 있었으면 작히나 좋으랴, 하늘마저 활짝 열리는 가을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삼키기가 몇번째인가, 그녀는 한창 득세하여 우쭐거리던 ××가 자기를 따르는 미화를 떼여내기 위하여 작간을 꾸민것으로 짐작하며 절치부심하면서 나가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는다고 벼르기만했다. 그러면서도 미화가 그런 악독한 짓거리를 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구멍이 펑 뚫린것같은 허탈감이 자신의 리성을 멍하게 만들었다. 자기의 마음은 유리로 만들어진것인가? 비록 수정처럼 고귀하지 않지먼 그렇듯 투명하고 쉬이 깨지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의 심신은 강압과 고역속에 저도모르게 한마리 목조당나귀가 되여버렸다. 비가 내리기를 기다릴 때 준비한 우산은 상식이라면 청천하늘에서 벼락맞은것은 자기였으니 이 무슨 저주맞은 운명이란 말인가!     아무리 자신을 반성해보아도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였는지 종잡을수 없었다. 뒤숭숭하던 소문이 마침내 현실로 되여 리상이고 사랑이고 우정이고 구중천에 날려 보내고 오로지“혁명”이라는 두글자를 가슴에 새겨야 하는 질풍노도의 시대가 도래했다. 숭고한 예술의 전당이 하루밤새에 아수라장이 되여버렸다. 교정내에서도 여러 파벌의 반란파조직이 묶어졌다. 그러나 부농집에 딸이라는것을 알고나서도 선아에 대한 사랑이 자기 리상과 목숨보다 더 중하다고 생각하였다. 황차 이미 도덕과 량심 상에서라도 책임져야 할 일을 저질렀음에랴,     그래서 선아를 생각해서라도 살벌한 소용돌이속에서“소요파”가 되기로 작정했다. 남들이 투쟁대상을 찾기에 혈안이 되여있는 동안 그는 선녀동으로 갈수 있는 기회를 찾느라 천방백계를 다하였다. 물론 그판에 화판을 들고 어정거리는것은 정신나간 짓이여서 그림그리기도 집어치우고 무위도식하는 판이였다.     한편 서화에게서 배신당했다고 절치부심한 미화의 사랑은 증오의 불길로 타번졌다. 그녀는 일컬어“정강산반란파”에 참가하여 미술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혁명 의 렬화속에서 청춘을 불태우려 한다고 선언했다. 혁명적련계를 지으려고 “대장정”을 하느라 남자들과 함께 렬차에서 딩굴며 전국각지를 다녔고 천안문광장에서 불멸의 태양을 우러러 눈이 다 붓고 목이 쉬여도 다함없는 충성심을 불사르며 들떠있었다.     이렇게 이판사판 하는때에 서화도 그냥 무풍지대를 찾을수 없었다. 그리하여 “정강산파”와 수화상극인“장정파반란단”에 일시 투신하기로 하였다. 그는 밤낮으로 대자보를 쓰고 선전화를 그리느라 분주히 돌아치다보니 가슴은 불붙듯 하였지만 당중앙을 보위하고 위대한 령수를 보위하는것이 천하대사인지라 사심을 잠시 죽이지 않을수 없었다. 미화네파와 서화네파는 설전으로부터 드디어 무단투쟁의 준엄한 대치상태에 이르게 되였다. 녀자가 한을 먹으면 오뉴월에도 서리차다고 했던가, 서화와 미화는 개인적으로도 불구대천의 원쑤로 되였다.     미화가 그러거나 말거나 껍데기혁명을 하는 서화로서는 이게나 그게나 피장파장으로 생각되여 그저 남의 눈에 나지않도록 행동하기에 신경을 썼다. 그런 살판치는 나날에도 젊은남녀들은 본성으로 이성을 찾고 즐기였다. 미화가 ××와 붙어다닐 때 서화는 선녀바위밑에서 선아가 들려주던 전설을 되새겨보는것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옛날 이 깊은 골짜에 한 총각이 어머니가 살았다. 하루는 총각이 다병한 어머니에게 달여서 대접하려고 약촐를 캐가지고 돌아는데 느닷없이 해가 가리워지면서 비구름같은것이 몰려오는듯싶었다. 그래서 비가오려나보다 하고 큰 바위밑에 들어섰 는데 그것은 비가 아니라 옷자라같은것이 훨훨 내려오는것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지상에는 있음직하지 않은 선녀같은 녀자였다. 녀자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였다.     녀자는 웬총각을 먼저 서있는것을 보고는 수집은듯 얼굴을 가리였다. 이름이 바위라는 총각이 큰 맘먹고 이제 곧 해가 지겠는데 이런 심산속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녀자는 천궁에서 내려왔다고 하였다. 들어본즉 원래 옥황상제의 시녀로 있었는데 그만 잘못을 저질러서 인간세상에 내침을 당했다고 했다. 들어보니 사정이 딱했다.     총각은 이 산에는 인가라고는 자기집뿐이라며 꺼리지 않으면 함께 내려가자고 하였더니 말없이 따라나섰다. 총각의 집에서 며칠 묵으며 인간상정을 알게 되여 차라리 잘되였다 생각하는데 바위어머니가 우리 바위의 색씨가 되여줄수 없겠는가고 청들었 다. 그런데 선녀는 아무대답도 아니하고 고개만 파묻었다. 그때 총각은 다 삼아놓은 짚신을 선녀에게 내주며 맞는지 신어보라고 하였다.     선녀는 말없이 받아서 신어보더니 딱맞다고 하며 매우 좋아했다. 바위어머니가 천상배필이여서 하느님이 점지해주신 색씨이니 바위와 정혼하고 셋이 오손도손 사는 게 어떠냐과 다시 간청했다. 선녀는 "저는 1년이 되면 하늘나라로 다시 돌아가야 하기에 허혼할수 없나이다”하고 눈굽을 찍는것이였다. 총각도 슬피 울었다. 그러건말건 바위어머니는 정한수 한사발 떠놓고 달빛아래에서 혼인을 맺아주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절절한 사랑을 받으며 알콩달콩 살게 되였는데 어느새 일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다. 어느날,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천둥이 울렸다. 선녀는 무서워서 남 자의 품에 안기며 바들바들 떨었다. “웨 천둥소리에 이리 놀라는거요?”하고 바위가 물으니 "저 천둥소리는 옥황이 저를 부르는 소리에요"라고 말하는 선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총각은 "걱정마오. 하늘이 저리도 머나먼데 여기까지 붙잡 으러 올라구, 나만 믿고 안심하시오”     그동안 인간세상에 정이 들대로 든데다 마음씨고 고운 남편을 떠나기 싫은지라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작심했다. 천둥이 련속 세번이나 울렸다. 그래도 하늘 로 올라가지 않았다. 대노한 옥황이 냉큼 잡아오라고 내려보낸 천신이 선녀를 잡아끌 고 산우로 올라가자 총각도 한사코 따라올라갔다. 선녀와 총각은 살아도 같이살고 죽어도 같이죽자고 서로 부등켜안았다. 천신이 그 정상이 갸륵하여 혼자 천궁에 돌아가 선녀가 이미 속세의 인정에 깊이 물들어 바위라는 총각과 부부인연을 맺었으니 이미 몸을 더럽힌바라고 아뢰였다.     천둥같이 노한 옥황상제가 우뢰신을 시켜 당장 큰 벼락을 내리라고 명했다. 이윽고 “꽈르릉, 번쩍!”하며 련신 번개가 내리쳤다. “옥황님이 우리를 갈라놓으려고 번개를 내려보내니 이미 인연을 맺은이상 당신을 버릴수 없어요. 차라리 두몸이 하나가 되여 이대로 바위라도 되여버립시다.”하며 남자의 품에 스며들기라도 하듯이 더 꼭 껴안았다. 벼락은 그쳐지만 선녀와 바위총각은 머리 둘에 몸이 하나인 커다란 바 위로 굳어져버렸다. 산아래서 맺지 말아야 할 짝을 맺어주었다고 땅을 치는 바위어머 니의 대성통곡이 구곡구천에까지 울려퍼지였다…     그때로부터 사람들이 이 바위를 선녀바위라고 이름지었는데 선녀바위에 치성을 드린 부부는 금슬이 좋아진다고 원근에 소문이 나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단다. 서화 는 출신을 잘못타고 난 하늘선녀라면 자기는 벼락을 맞으면서도 녀자를 지켜준 바위총각이 되여야 하겠다고 마음을 다지군했다. 그리고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한 순결 한 처녀에게서 사랑을 받는 몸이 되여 그녀에게 남녀의 신비한 애정의 장막을 걷어주는 첫남자가 된다는것은 행복과 더불어 신성한 책임감도 느끼게 하였다.     남녀가 격정에 휘말려 금구를 깨뜨리는것은 너무나 례사로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 사랑의 시련을 받아본 일이 없는 순진한 마음을 빼앗는것은 아무 방비도 없고 수비군도 없는 도시를 점령하는것처럼 싱거운 일이다. 농촌처녀, 특히 마음이 어지면 어질수록 더 쉽게 몸을 내맡기는 법이다. 이런 녀자들은 자기의 몸을 받침으로써 그 남자를 영원히 자기것으로 만들었는가고 착각하기 일쑤이다.     선아와 함께 뜨겁게 달구던 숲속에서 그 몸짓, 파르르 떨던 입술, 애처로운감도 주었다. 서화는 선아가 열어주는  미궁속으로 잠입하고나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깨 달았다. 처음 체험해보는 전률속에서 녀자의 의미를 체험했다. 그는 순정을 바치는 녀인의 철옹성을 정복했다는 희열과 더불어 일종 자책감감이 갈마들기도 했었다.     이름도 정나미돌고 이름처럼 한없이 탐스러운 시골처녀가 생각밖에 서화의 생활 에, 내심세계에 뛰여들었고 서화는 그저 받아들인 피동적인 위치가 아니라 극력 끌어 당긴 셈이다. 시골의 처녀 선아는 하나의 크고 무거운 행성처럼 서화의 감정의 자기 마당을 소란시키였고 그의 생활궤도를 휘딱 개변시켜버렸던것이다…                                                                                       5    단단히 기억했다는것은 결코 영구함을 의미하지 않으며 잊었다고해서 이미 발생하지 않은것은 아니다. 서화는 그동안 자기를 기만해왔다. 악마가 순결했던 자기를 비틀어 놓았다고 저주하고 참회하면서도 사랑의 사신이 천사에게 웃음을 던지고있는 환상으로 그 모진 세월을 겪어냈다. 만구할수 없는 비극으로 막을 내리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허무, 삶의 커다란 허무로 비애의 구덩이를 팠다. 거기에 들어섰다는것은 삶에 종지부를 찍는것과 같다. 허무의 종합체를 이루고 또 이루는 그 모든 부산하고 황당했던 수많은 자질구레한 일들이 얽혀서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산다는것은 세월과 함께 사랑과 희망을 곱게 땋아내려가는것이라면 이게 무슨 날 벼락을 맞은 도깨비란 말인가? 여기서는 희망도 없고 인권도 없다. 오로지 억눌리는 인간존엄과 기시와 학대뿐이다. 고달픈 꿈속에서 기갈이 든 한마리 양이되여 녀자의 초원에서 풀을 뜯는다. 그는 지금 막 발정난 황소가 두발을 번쩍들고 암소 등에 업히듯 녀자를 두팔로 덮쳐본다. 눈부신 양광아래 아무 꺼리낌없이 드러나있던 그 호함지던 젖무덤에 묻혀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남녀의 만남은 우연적이지만 갈라져야 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착오적인 시간에 잘못된 만남이였고 잘못된 대상이라면 말이다. 선아의 선택이 잘못되였는가? 나의 선택이 잘못되였는가? 그러나 서화는 가슴깊은 곳에 새기고 또 새기였다. (그대여 당신이 너울쓰는 날 내가 절에서 중의 가사를 입는 날이 될것이다. 당신이 살다살다가 불행하다면 서슴치말고 나를 찾아오시라. 설사 내가 너무 늙어서 걸을수 없는 지경이라도 당신을 데리고 야반도주하리라. 이것이 내가 기다리는 결과이다.)     머리속으로는 얼마든지 좋은 말을 만들어낼수 있다. 역경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지는 않으나 지혜롭게 한다고, 고통은 인간의 위대한 교사, 고통의 숨결속에서 령혼은 발육된다고, 고통을 주지 않는것은 쾌락도 주지 않는다고, 곤난이란 위대한 마음을 키워주는 유모…등등, 그러나 억울한 수난자에게 그런 말이 먹혀들것인가? 누가 세상엔 절망하는 약자는 있어도 절망할 처경은 없다고 하는가? 절망은 청춘과 희망을 좀먹는다. 절망은 아무리 강한자의 의지라도 꺾어버린다. 절망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보다 더 무서운 심리병인것이다.     그가 절망속에서 오락가락할 때 하늘이 무심하지 않았던가, 아니면 진실이 그를 잊지 않았던가, 그는 풀려났다. 그것도 무죄로 풀려났다. 나오고나서야 알았지만 학 교때 그를 무척 아끼던 ㄷ교수가 밖에서 정책락실을 위해 뛰여다니면서 각고의 노력을 해준 덕분이였다. 변화란 무서운것이다. 변화란 절대 진리였다. 하건만 그 자신은 무슨 변화를 꿈도 꾸지 못하고 그저 세월이 흐르기만 기다렸을뿐이였다. 참혹한 옥생활은 그에게 인내를 배워주었고 시련은 그를 철학가로 만들었다…     그는 ㅂ미술학원에 당당한 조교로 남게 되였다. 자기를 지옥에 밀어넣은 장본인이 미화라는것도 알아냈다. 그러나 복수를 할수는 없는 일이다. 죽여치워도 성차지 않을 일이였지만 악몽은 이미 꿀대로 꾸었고 마침내 악몽에서 깨여났는데 그런 악착 한 녀자로 하여 또 다시 불구덩이에 뛰여들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무엇보다 급한것은 선아의 행방이였다. 선녀동에 다녀왔다.     선아는 거기에 없었다. 원래 허술하던 선아네 초가집도 무너져있었다. 그는 실망을 안고 돌아섰지만 사랑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았다. 비록 맹세하지 않았지만 선아가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믿고싶었다. 맹세는 말에 지나지 않고 말은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선아는 속깊은 정으로 맹세한 녀자가 아니였던가?     사실이 어떻게 해명되였든 꼬리표에 달린 선입견은 검질기였고 서른살이 넘은 로총각인지라 대상자가 얼른 나타나지 않았다. 그 자신도 애써 가정을 이루려고 생각 하지 않았다. 어덩덩 세월의 화살은 어느새 사십세고개에 꽂혔다. 사십세가 지나면 인간은 자신의 습관과 결혼해 버린다고 누가 말했던지 그는 결혼을 포기해버렸다.     그런데 또 한차례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서화에게 일격을 가한것이다. 혜화에게 출생지를 물어보니 선녀동이라 하였다. 어머니의 이름을 물었더니 선아란다. 아버지 가 누구인가 물었더니 모른다고 한다. 미화의 말이 딱 맞는것은 아니였지만 어렸을적에 흑룡강에 이사가서 자라다가 중학교를 다닐때 연변에 다시 나왔고 어머니는 선녀 동에서 홀로 살고있다고 했다. 혜화가 자기의 딸이였다. 이 무슨 천방야담인가!     혜화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학교뒤 산에 올랐다. 저물어가는 하늘은 미치광이 화가가 잡다한 색갈을 제멋대로 칠해놓은것만 같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 궁리도 떠오르지 않아 멍청이처럼 그냥 앉아있었다. 첩첩한 산릉선이 검은 빛갈로 그어진 하늘위에 초생달이 신비로운 쪽배처럼 걸려있다. 어떤 감탄도, 표현도 부족할 령롱한 달빛, 그 달빛으로 청산은 문자표현을 비웃는것만 같았다.     구멍이 펑 뚫린것같은 허탈감에 리성마저 멍해졌는데 기상천외로 찾아든 행운은  꽃구름을 타고 공주를 찾아가는 왕자처럼 들뜨게 하였다. 그러면서도 선아가 겪었을 인생고를 상상하니 가슴속에 안개비같은것이 서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치밀어 오르던 일희일비가 구름처럼 낮게 드리우며 눈에서 시큼하고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랐다. 마침내 그는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선녀동으로 달리는 장도뻐스, 차장으로 들리나니 꽃피는 소리 가득하다. 등성이는 등성이대로 기슭은 기슭대로 봄꽃들이 넘쳐난다. 사람 환장하게 하는 산복사꽃, 개살구꽃, 제비꽃, 메꽃…이 꽃들의 소요! 사람 홀린다는 꽃바람 불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저 꽃들의 매력!서화는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선아만은 늙지 않고 전설 속에 선녀처럼 아름다운 그대로 있었으면 하고 빌고빌며 가슴을 어루쓸었다…                                                                                           2014년  에
891    (진언수상록 100) 현대의 풍경 댓글:  조회:143  추천:0  2018-08-10
                                             현대의 풍경                                                      진 언       사람은 물질을 창조하지 못하지만 물질가치는 창조할수 있다. 이런 가치창조는 지극히 인간적인것이다. 그런데 돈이 말하는 시대, 가공할만한 가지가지 풍경들이 사 람들을 곤혹에 빠지게 한다. 물은 고기를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고기도 물을 위해 사는것은 아니듯 돈은 사람들의 경제활동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건데 종당에 사람이 돈의 노예로 되고 말았으니 자업자득치고 너무 비참한 결과라 할것이다.     인도의 야무나공원에 마하트마 간디의 추모공원에 간디가 말한 일곱가지 악덕 (철학이 없는 정치, 도덕이 없는 경제, 로동이 없는 재부, 인격이 없는 교육, 인간성 이 없는 과학, 륜리가 없는 쾌락, 헌신성이 없는 종교.)이 적혀있는데 무릇 고관이든, 억만갑부이든, 밀차를 밀며 폐품을 줏는 사람이든, 농사짓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심사숙고를 자아내는 경세지언이라 할것이다.        그러나 돈이 “만능”인 시대에 다른 말은 다 허드레 잡소리로 되여있다. 돈만 많으면 잘사는 집, 돈이 없으면 못사는 집으로 판정된다. “잘 산다”는 말을 엄격한 의미에서 따지면 부유한집,부자집, 돈많은 사람 등으로 표현해야 맞지만 누가 그런걸 일일이 캘것인가? 오로지 돈만 많으면 되는 판인데,     일찍 주작인은 한남자의 합격, 불합격을 판정하려면 녀자와 불교에 대한 태도에서 보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 기준은 당시 중국남자들의 실정에서 판정한것이지만 현대시점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진정한 인격력량은 돈과 권력, 감각적행동에서 가늠되여야 한다고 말할수 있겠다.     남자의 능력과 인격력량은 지갑에서 나오고 과시욕도 돈다발에서 체현되는바 명함장은 자가용의 열쇠로 설명이 된다나, 젊은남자들의 인생자세가 그러니 젊은녀자 들도 현숙함대신 돈에 대한 추구가 공중전을 하며 자신들의 실제보다 턱없이 높고 류행보다도 더 빨리 회전하고 있는 기관을 창출하고있다.     남녀간의 사랑도 원초적인것과는 일만팔천리로 동떨어지게 된 오늘, 고급식당에 가서 와인을 따르고 하루 몇번씩 옷을 갈아입고 외제차를 굴리여 호화별장에 가서 침대유희로 절정을 이루고 그것을 선망하여 앞뒤를 가리지 않게 된 현대인부자들이다.  돈지갑이 엷은 남자는 3등공민, 무능력자로 점찍히는것은 이 시대의 아이디어인가?     돈이 말하는 시대, 의리도, 도덕도, 량심도, 우정도, 사랑도, 혈육의 정도 일종 부호로 되였다. 눈에 보이는것은 돈으로 포장된 자기 리익뿐이다. 공공의 리익은 공익이라 하고 국가리익을 국익이라 말하면 어페가 없는데 개인의 리익은 “개익”이라 하면 되우 웃기는 표현일게다. 그런들 어떠랴, 리익만 챙길수 있다면 만사대길이다.     맞다. 그래서 중국에는 가난은 비웃을수 있어도 매음하는것을 비웃을수 없다는 관념까지 굳어진것이다. 인간의 관념이 이렇다보니 돈과 권력이 야합하기에 이르렀다. 오사모는 누구의 머리에나 쉽게 씌워지는것이 아니다. 두 눈을 한껏 부릅뜬 권력의 눈은 밑창을 알수 없는 블랙홀같이 사람들을 빨아들인다. 그도 그럴것이, 권력한자락 쥐고있으면 호풍환우할수 있고 주지육림에서 자맥질할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인문환경에서 돈을 물처럼 퍼쓰며 산해진미를 먹겠지만 결국 분변으로 배출되고 하루 몇번씩 옷을 갈아입어봐야 외형의 변화일뿐이지 환골탈태는 못된다고, 쉽고 빠르게 얻은 성취는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자신의 행동이 만들어 낸 가치로 자신을 판정해야 마음이 튼실하다고 설교한다면 전혀 웃기지도 않는 머저리같은 롱담이 되여진 이 시대이다.     남보다 옷이 값싼것이라 느껴지면 창피하고 남들이 자가용을 굴릴 때 나만 없으면 창피하고 남들이 돈쓰는만큼 못쓸 때 창피하다 생각하는 리유는 사람들 서로에게 가하는 가진자와 없는자의 심리적차별이 있기때문이다. 서로 극심하게 경쟁하면서 뭐 하나라도 뒤지면 차별시하기때문에 마음들에 안정이 깃들수 없게 된것이다.     천박한자는 돈지갑이 불룩하면 오히려 경박해진다. 마치 가득 불궈놓은 고무풍선처럼 둥둥 정처없이 날아간다. 풍선이 잘 뜨는것은 속에 아무것도 없기때문이다. 외국에 가서 명품, 사치품을 싹쓸이 하며 호기를 피워봤대야 자기 감각의 우물안에 팽창일뿐이다. 우물은 넘쳐나는 법이 없고 강물을 범하는 법이 없을터,     모든 판단착오, 시행착오는 궁극적으로 착각에서 일어난다. 인생의 초행길에서 대번에 꿀떡을 얻은것은 행운이라할세 처음부터 달디단것만 맛보며 살다가 난데없이 들이닥치는 인생고를 맛볼때 그 쓴맛을 감당해낼수 있을것인가? 과거와 현재는 미래를 위해서 존재한다. 성공은 마침표를 한송이 꽃으로 변화시키고 실패는 쓰디쓴 약 으로 변화시킨다. 고진감래라 할가, 흥진비래라 할가?     허세는 더 요란한 허세를 낳을뿐이다. 허세에서 진정이 나오기를 바라는것은 너구리가 사향노루가 되기를 바라는것과 같다. 허세가 인격력량이 아니지만 많은 사 람들이 그렇게 착각하고있다. 당신은 못보는가? 공방형의 금사슬에 목을 매달았던 탐욕자들이 일조일석에 원점으로 돌아온것이 아니라 일패도지하는것을, 만악의 근원이라는 돈이 내린 결론이 자기를 너무 따르면 그렇고 그렇다는것인가?     그러나 세상에 절대경은 없다. 인촌에서 화복이 뒤바뀌기는 한순간이다. 예수가 칼을 쓰는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듯이 돈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은 끝끝내 그 돈으로 하여 잘나가던 신세를 망치고만다. 작금에 추풍락엽처럼 락마한 크고작은 락마관들이 돈베개를 베고 돈타령을 흥얼거리다가 미끼통에 지렁이 신세가 되지 않는가?     물론 돈만 바라본다는 관념의 본의는 절대적으로 나쁜것이 아니다. 국가경제가 증장하여 백성들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것은 인지상정이니 사람마다 돈을 바라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일체는 돈을 향하여”가 되다보니 보이는것, 들리는것이 돈, 돈이 될수밖에 없고 돈이 제일 발언권이 있는 시대가 된것은 당연지사인것이다.    그러나 제중태를 채우기 위하여, 소수인의 리익을 위해서 눈이 뒤집혀 국계민생도 거꾸로 보인다면 결국 비극은 엮어질것이다. 아니, 비극은 이제 고조에 달했다. 환언한다면 돈을 바라본다는 관념이 리기의 대명사가 되였기에 결국 사단이 일어날수 밖에 없다. 문명개화한 인간이 마침내 돈-공방형의 노예가 된것이다. 이는 희사인가? 비극인가? 돈많은 자들에겐 너털웃음이 나오는 희극일것이요 돈을 갖지 못한  한한 사람들에겐 통곡해도 시원치 않은 사회비극이 되였다.     가난하여 무시당하는 리유는 “못배우고 못났기…”때문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강자, 부자들이 돈나오는 구멍은 다 차지하다보니 아무리 등골이 휘게 일해도 가난은 가난대로 세습되는 현실, 열심히 농사지어도 가난모자를 벗어던지지 못했던 농민들에게 가난이 운명으로 고착되였다. 아무리 아글타글 일해도 부자가 되기는커녕 가난을 면치못하는 사람들의 한숨소리가 높아지고 “못나고” 못배웠기때문에 기시당하고 천대받으며 살아야 한다며 체념하고 사는 운명론자들의 절망으로 넘치는 현실…     “누구나 열심히 분투하면 부자도 될수 있고 출세할수 있다”는 말은 실증된 진리가 못된다. 가진자와 없는자의 량극분화가 극에 이른 세상에 기회균등이니 평등한 사회건설이니 하는 말이 가당하기나 한가? “족쇄”가 풀린 금전만능주의는 “탐욕” 이 좋다는 슬로건아래 사회불평등과 빈부격차를 가속화하는 악과를 무르익히고있다. 이것이 괄목할만한 현대의 진풍경이다.                                                                    2015년 7월 18일
890    ((진언수상록 98) 약자영탄곡 댓글:  조회:87  추천:0  2018-08-10
                                                                  약자 영탄곡                                                                       진 언       강약은 절대개념이 아니다. 종래로 약자에 대한 정의가 없는바 “약” 은 근근히 일종 비교급일뿐, 나보다 사회지위가 낮고 나보다 못사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약자” 이다. 쉽게 말하면 나의 눈에 강대하게 보이는 요소의 반면이 곧 “약”이다. 조물주가 억조창생을 내실 때 강약의 본성까지 금그어 주었다고 할지라도 “약자”에게 잘못이 없고 사회가 불공평한 탓이라는 말은 약자들을 각성시키는 의의를 띠고있다.     지금은 온갖 매체에서 보이고 들리느니 잔인한 가해와 피터지는 피학대에 대한 뉴스인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강자와 약자로 나뉘여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비극이 비일비재인게다. 가정폭력, 교내폭력, 군내폭력, 국제적 비피린 폭력과 죽음…더구나 약육강식의 인생현장에서 약자였던 자가 제보다 더 약한 사람을 찾아 공격하는것으로 “봉창”을 하는 악순환이 빚어진 참담한 인간세상이다.        일컬어 잘난자, 똑똑한자, 부자, 지자, 권세자를 강자라 하고 못난이, 빈자, 우자, 무식자, 권세없는자, 그리고 게으른자, 의지가 박약한자를 약자라 할것이로되 그게 운명적이라면 누가 시비할수 있으랴? 약자는 선량하다는 전통관념이 약자들의 자아위 안이 되였던가? 약자가 선량하지 않으면 어쩔테란 말인가?     자고로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고 했다. 힘센놈이 왕질하던 아이적에는 단주먹에 상대를 코피나게 한 놈이 완력이 센 놈이었다. 주먹심아래에서는 아무리 머리좋고 공부를 잘해도 가나오나 뛸데없이 침먹은 지네가 되였다. 사실 어른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일단 믿는것이 주먹이다.주먹이 약하면 제집에 들어온 강도에게 두눈을 펀히 뜨고도 란타질을 당하며 굴욕을 삼켜야 한다.     가령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시되는 인간사회라면 강자와 약자로 극명하게 갈리지 않을것이고 강자는 강자대로 으시대고 약자는 약자대로 기시, 릉멸, 불안이라는 구름아래서 살지 않아도 되였으련만 정글법칙아래 운행되는 인간사회도 약육강식이 상식이 되고 강자독식이 합리화되였다. 약자의 눈물을 씻어줄 사람이 이 세상에 없고 약자의 심병을 치유할 약이 이 세상에 없다.     약육강식은 야만시대의 잔습으로서 동물에게 한한것이라고 할수 있으나 우승렬패는 분명히 합리화되고있는 현실이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나 또는 인생의 원리냐? 아니냐? 하는것은 별개로 하되 이는 력사가 증명하는바이다. 약자가 원한다고 세상이 원하는 데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런 력사란 기록된적이 없다. 강자가 힘으로 지배할 때 약자는 강자에게 무조건 굴종해야만 생존이 가능하였다.“인류에게 하나밖에 없는 진정한 원칙은 정의이며 약자에 대한 정의는 보호와 친절이다.”라는 명언이 있더라만 자유와 평등은 공백수표처럼 공리공담이다.     진정한 강자는 약자의 아픔을 리해하고 어루만져주는 사람이여야 하는데 우수한 자는 렬등한자를 무시하고 박대하며 부자는 빈자를 향하여 “왜 그리 가난하냐 ?”고, 강자는 약자에게“그렇게 약해 빠질것이 무엇이냐 ?”라고, 학자는 무식한 자를 대놓 고 “너무 무식하지 않냐 ?”하고, 건강한 자는 병자를 대하여“어찌 그리 약골로 태여났냐?”라고 빈정거려도 재하자는 유구무언(在下者有口無言)이라, 강자들의 시각에서 약자의 천성이란 무엇일가? 역경속에서 인생고를 읽고 새로운 삶의 계기를 발견하려는 자는 생활의 강자로 보고 불행과 고통속에서 마냥 위축되여 보이는것도 안보려고 눈을 감는 자를 현실도피자라 한다. 약자가 역경에 위축되고 강자앞에서 기가죽고 무력해지는것이 천성이라면 불행한 운명이다. 그래서 약자는 자기보다 강한 자들의 생각을 빌려 생각하고 그들의 입을 빌려 말할수밖에 없다.     선량함은 약자의 덕성이 될수는 있어도 이 험난한 인생길에 통행증일수는 없다. 약자라해서 무조건 동정심을 쏟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슬픈 조우이다. 약자들이 자신이 대면하고 있는 세상이나 상대방을 아주 작은 크기로 축소시켜놓고 그 앞에서 제 크기의“충분함”에 자족한다면 그것은 확실히 그들의 저렬한 근성이다.     많은 “약자”들은 종종 자신을 긍정하는 강자들과 혼동하며 그런 자신을 스스로 강자라고 착각한다면 구제불능이다. 이들이 알고 있다고 믿으며 보는 세계란 자기가 사는 작은 동네에 지나지 않는다. 능력 있는 난쟁이란 알수 없는 어떤것을 아주 익숙한 자기 동네의 별것 아닌 소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운명이 걸린 대결조차 전쟁놀이로 만드는 골목대장같은 자들이다. 이들과 만날 때 세상은 불행해진다. 저도 모르게 그들의 크기만큼이나 작아지기때문이다. 난쟁이의 어이없는 자신감과 갖잖은 교만은 꼴불견이다. 실속없이 환상적인 “강자” 는 상대방의 강점과 대결하려하면 유부가 되기십상이다. 약자들은 거개 자기의 유약함을 증오심으로 전환시켜 다른 약자에게 성풀이 한다. 이것은 약자들의 렬질품성이다.     약자들은 위축된 마음으로 세상이나 상대자의 크기를 과대평가하여 그와 마주선 자신의 크기를 지나치게 축소시키는 내면적소인이라면 난쟁이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세상이나 상대방의 크기를 축소시켜 그와 비교되는 자신의 크기의 충분함을 긍정하는 내면적“거인”이다. 전자가 세상을 착각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보지 못한다면 후자 는 자신의 무능력을 잊기 위해 세상을 전도시킨다.     약자에게는 강자들 속에서 살아남는 수단인 유연성이 다행일지 모른다. 강자가 약자들앞에서 개잡은 포수처럼 으시대는 심리가 생기는것은 이때문일것이다. 누구를 압제하지도 누구에게 굴욕당하지도 않을 때 사회에 조화가 영주한다는것을 진실로 아는자는 오직 약자들속에 있지만 그런 속절없는 하소연에 누가 귀를 기울일가?     선천적으로 구제불능의 약자는 자기보다 강한 자들에게서도 약점이나 단점을 찾아 자위한다. 강자는 어디서나 공격성을 앞세우지만 약자는 어디서나 비난거리를 찾는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자가 진정한 강자이건만 그런 강자는 가물에 콩싹처럼 희소하다. 이는 약자가 강자와 공생해야 하는 불편한 진실로 되였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통탄스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약세군체의 숙명이요 인생에서 가장 큰 비애가 뭐냐고 자문하면 약자의 비애이라고 대답할것이다. 아마도 태생적으로 육체적강자가 못되고 후천적으로 지적인 강자로도 못된 자신이기에 처처에서 새여나 오는 약자의 “영탄곡”에 비애를 느끼며 공감하게 되고 동조하게 되는지 모른다. 그리고 묻지 않더라도 내가 절치부심 미워하는 무리들은 약자들을 기탄없이 짓밟으며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유린해 온 “강자”들이라고 말할것이다.     약자가 자기를 위안할수 있는 유일한 론거는 “세상에 상승장군이 없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나뽈레옹도 워털루에서 패전하지 않았나?”하는것이다. 사실이라도 약자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는 “용서, 관용” 이다. 용서와 관용은 강자들의 특허이다. 약자에게는 용서받을 자격은 있되 누구를 용서하고 말고 할 권리란 없다. 힘이 약하면 인애로 감화시키라고 하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자고로 약자의 평화적“공생”의 구호가 그들 자신의 권익을 보장해 준적이 없다. 힘의 론리가 종횡무진하는 세상에서 무조건 강해지고 볼일이다. 강력하다는것과 선량함은 상충되지 않는다. 선량함과 나약함이 결코 등호로 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자강의 길밖에 없다. 정글법칙이외엔 모두 공리공담이다.      “약자여,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이 호소가 약자영탄곡의 미성이다.                                  2015. 10. 1일
889    (진언수상록 97) 언간생심 권위를 긁어보다 댓글:  조회:73  추천:0  2018-08-08
                                                     언간생심 권위를 긁어보다                                                                진 언       권위자란 어떻게 정의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언구정(一言九鼎)으로 사람들을 탄복시켜 한결같이 받들어 모시는 사람이라 할것이다. 권위에는 인간의 권위, 직위의 권위, 법과 규정의 권위, 국가와 공동체의 권위 등등이 있다고 한다. 무릇 권위는 인간의 불평등과 부자유의 근원으로서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는 권위가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복종의 소산이며 권위와 리성이 대립하는것이라고 인정하였다.     권위에는 실질적권위가 있고 형식적권위, 또한 신뢰적권위와 공포적권위가 있다. 사회질서와 통합에 도움이 되는것은 실질적권위, 신뢰적권위이다. 형식적권위를 례를 들어 설명한다면 마음으로는 상급에 맹종하려 하지 않지만 자기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지엄한 지시에 우선 응하는체 하는것이다. 공포적권위는 공포의 대상이 힘을 잃으면 붕괴하므로 안정된 권위가 아니다. 억압을 통해서는 공포적권위밖에 안되며 선전이나 세뇌교육을 통해서는 형식적권위밖에 형성되지 않는다.     진정 권위자란? 실적과 언행일치에 있지 허명을 쓰고 말만 번지르한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실적으로 말하고 실천해야 명실상부 권위자이다. 학자의 권위는 지식의 확실성의 권위이고 기술자의 권위는 기술의 효능의 권위이며 법의 권위는 누구나 꼭 지켜야 한다는 약속의 권위라고 보면 비교적 잘 리해될것이다. 권위의 근거는 사람들의 신뢰, 인정(认定)에 있다. 학교로 말하면 교원은 학생들에게서 인정받아야 하고 위정자로 말하면 백성들에게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전문지식을 갖추어야 할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저의 도덕성도 지녀야 한다.      학술권위ㅡ하면 우선 과학원원사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원사의 칭호는 근근히  해당된 학술성과에 대한 인정일뿐이다. 과학탐색과 창조가 무지경이라할 때 절대적인 학술권위란 없다. 그만큼 최고학술칭호와 최고학술수준 사이에 등호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미 작고한 중국과학원원사 왕선(王选)선생의 말이 론거로 될수 있다.     “원사를 당전 령역에 학술권위라고 보는것은 착오적이다. 나는 늘 시태(时态)를 혼동하였는데 과거식, 현재식, 장래식을 똑똑히 분별하지 못하였다.” 라고 하면서 자 기의 경력으로 설파하였다. “나는 38세에 연구령역의 최전선에 나섰지만 무명소졸이였고 58 세에 량원원사(两院院士)로 되였지만 2년전에 설계방면의 제일선에서 물러났다. 지금 68세로서 또 국가의 최고과학기술상을 받았지만 이미 학술연구의 전초에서 멀리 물러나와 허명으로 살아가고있다…”     과학에는 “최고”가 없고 오직 “더욱 높은것”이 있을뿐이라는 말이 있다. 창신은 권위를 미신하지 않는다. 부단히 권위를 타파하는것은 권위자들이 좋아하지 않는 불문률이다. 권위가 좋아하건말건 익숙한것으로부터 진정 아는데로 나가려면 의문을 가지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즉 “권위성” 에 도전해야 한다. 권위에 대한 맹종은 노예적이며 허영이며 리기적이며 체념이며 음울한 광기이며 사상을 버리는 자아상실이다.     인류는 마치 영원히 암흑속을 걸어가는 나그네와 같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무궁무진한 미지의 세계이다. “모든것을 의심하라!”는 탐구의 횃불을 추겨들고 자신의 길을 밝혀야 거듭날수 있다. 학술권위속에 “물없는 저수지”, 명리에만 목을 맨 학술부패분자들은 허울좋은 허상들이라 할것이다.     데카르트는 “모든것을 의심하라!”고 납함하였다. 이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론거는 아마도 세상에 절대적인것은 없다는 명제일것이다. 정확성의 대명사인 수학도, 창조상상의 걸작인 과학도. 조리정연하다는 론리학의 기본원리조차 의심할 여지가 있다. 례하여 고대중국의 조충지는 선인들의 과학연구방면의 결론들에 의심을 가지고 고심참담한 관찰과 연구를 거쳐 수정보충하였고 가치있는 수많은 과학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가 제정한《대명력(大明历)》은 당시 가장 정밀한 력법이였다. 그의 일곱자리소수점까지의 원주률은 당시 세계상에서 가장 우수한 과학성과였다.       오직 권위에 과감히 질의를 들이댈줄 아는 사람이 많아야 문명세계건설이 비약 할수 있다. 이를테면 뉴톤의 의혹과 연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없다면 사람들은 지금까지 우매무지속에서 자족할지도 모른다. 과학발전사가 증명하다싶이 질의는 진 리를 감싸고있는 층층의 안개를 헤치고 본질을 투시하게 하는 선도자이다. 우리는 습 관적으로 자명하다고 생각하는것, 자고로 진리라고 여겨온것, 언론이나 학술권위자의 주장, 정의들…이런것들을 의심할 여지없는 진리라고 확신해왔다. 기실 따지고 보면 자기 확신에서의 공조가 아니라 상대의 확고한 의식에 대한 맹신이였을뿐이다.      례하여 한때 달에서 중국만리장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는 말이 나돌면서 중국사람들을 무한히 고무추동하였다. 이 말은 미국의 “아폴론12호”의 우주비행원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마치 50메터밖에서 머리카락을 보아낼수 있다는 말과 같다. 더 비유해 말한다면 384킬로메터 밖에서 한대의 얼음과자를 볼수 있다는 말과 같다. 이런 거짓말이 발붙일수 있은것은 달에 착륙한 “권위자”였기때문이다. 그러나 달과 지구사이의 거리는38만공리이다. 그는 이것을 거짓말의 전제로 삼을수 있었던것이다.     미국의 인문주의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자기의 저서《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권위주의 권력의 힘에 눌려) 자신의 개별적 자아를 포기하고 자동인형이 되는 사람은 주위에 있는 수백만명의 다른 자동인형과 같기때문에 더 이상 고독과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가 치르는 대가는 비싸다. 그것은 자아의 상실이다.”라고 권위 주의의 피해를 지적한다. 인간의 평등을 전제로 하지않고 근거가 없는 불합리한 권위 는 비민주적인 사회를 만든다는것이다.     만약 스스로 시비를 바르게 가렸다고 확신한다면 무릇 대방이 누구이든 그의 말에 마음의 꼬리를 흔들어댈 필요가 없다. 반대로 모모가 권위라해서 내 개성을 죽일 수는 없다는 정서로 7×3=21일도 반대하는식의 정서는 좋지않다. 반대하기 위해 반대한다면 우를 범하고 그속에 자기를 파묻고만다. 마치 내가 그것에 대하여 확실히 알고있기때문에 흠집을 찾아내는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무조건 확신하는것도 일이 아니지 않는가?”하는 식의 거부는 무모하다.     살아가면서 자기와 다른 사이에 권위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담벽을 쌓을 필요는 없다. 권위를 타파하자고 웨친다면 듣는 사람은 강렬한 피해의식의 발로라고 생각 할것이다. 권위를 타파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한다면 먼저 자기 마음속에 하나 의 관념모식이 잡혀있고 땀으로 이룩한 성과로써 권위를 타파하려고 행동해야 한다 자아가 부재하면 권위로 못된 약자의 경이원지에 불과할것이다.     권력의 권위주의를 아예 접어버리고 인간본연의 모습으로 현연되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 권위주의에 도전하는 평민백성도 드물거니와 권위라는 보검을 손에 쥐고도 함부로 내두리지 않는 고매한 인격을 소유한 권위자는 더구나 희소하다. 권위자는 반드시 있어야 하고 더 빛나야 하지만 권위주의는 타파되여야 한다.     이른바의 권위주의인격은 환영받지 못할 대상이다. 왜냐하면 권위주의 인격이란 복잡하고 완고하고 각박하며 상대적으로 사람을 들볶는 인격체계이기때문이다. 이에 는 종족편견, 보수성, 맹종, 개인숭배의 전통관념 등 서로 얽힌 반민주주의 정감과 의지가 포괄된다. 권위주의는 일반적인 사실이나 상대의 의견은 무시한채 기존의 권위 에 내흔드는 사고모식으로서 전혀 도움이 안되는 재세만 부리기에 웃기고있다.                                                      20013년 5월 15일
888    진언수상록 (96) 과잉시대 경탄조 댓글:  조회:111  추천:0  2018-08-01
                                                 과잉시대 경탄조                                                         진 언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를 보고 듣고 느낀대로 말하면 한마디로 “과잉시대”라 해도 어페는 아닐것이다. 우선 물질적인 공급의 과잉, 막아낼길 없는 유혹의 과잉, 욕 망의 과잉, 대홍수로 비유되고 있는 정보의 과잉,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추구로부터 빚어진 영양과잉…아무튼 물질적, 지적, 심리적인 모든것의 앞에 관형사처럼 “과잉” 두 글자를 붙일수 있는 이 시대이다. 례컨대 과잉생산, 과잉정보, 과잉영양 등등…     무어나 넘쳐나는 과잉시대에 살고있는 젊은이들에게는 천방야담같은 얘기가 되겠 지만 개혁개방 이전까지 몇십년은 참으로 무어나 결핍하던 시대였다. 그리고 모든게 결여하니 누가 권장하지 않아도 가슴에 새겨진것이 절약정신이였다. 깁고 또 기워입으면서도 오로지 넘치는것은 혁명사상과 혁멸열의, 혁명기개였는데 돌이켜보면 그것은 일상이 정치생활로 이화되였기때문이다.     사람은 오래살고 볼일이라더니 참으로 상전벽해라 할가, 무어나 수요대로 가질수 있다는 공산주의사회에 대한 막연한 꿈이 시들해지던차에 물질풍요시대, 무엇이나 넘쳐나는 과잉시대가 올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상품들이 과잉이다보니 돈만 있으면 무엇을 못살가봐 걱정할 일도 없고 상점이 지천이라 줄을 서서 조바심칠 일도 없다.     많을수록 좋다는 인간욕심의 계률로 말하면 많아도 근심, 걱정이라는 론제가 모순되기도 하겠으나 지나침을 뜻하는 “너무”라는 단어가 있다싶이 무엇이건 너무 많아도 일종 부담이 되지 않는것은 아니다. 무어나 결핍하던 시대에 가장 매력적인 단어가 다다익선이였다면 지금은 너무 많은것도 아름다운 걱정거리가 된것이다.     이를테면 과잉생산으로 인한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현상도 떠올려볼수 있다. 무엇이나 표제를 하던 그런 “계획경제시대”를 좋다고 말할수는 없지만 생산과 소비, 공급 과 수요가 맞아떨어지지 못하는 극한적 상품경제 그 자체에 제약성도 고유된것이다. 보편적으로 그리고 정체적으로 본다면 없는것보다 있는것이 장땅이고 부족한것보다 충족한게 좋다는것은 상식이로되 과유불급은 또 어찌 해석해야 하는가?      나로 말하면 지금 세월에 잘산다고 말할 처지가 못되지만 옷장엔 남을 주기도 별로이고 버릴수도 없어 그냥 걸어둔 옷으로 넘쳐나고 신발장에는 어둠속에 갇혀 지내는 묵은 신들이 삭고있다. 서재에는 읽은 책보다 읽지 못한 책들이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있다. “부족함의 시대”를 용케도 넘어 “과잉시대”에 살게 되였으니 군소리를  한다면 배부르니 흥타령 한다고 흘겨볼 사람도 있을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나로서는 정치경제리론을 들먹이는것이 주제넘지만 싱념은 굴레벗은 말처럼 사유의 광야를 마구 내달리는것을 말릴수 없어 횡설수설하는바이다.     이를테면 지금 부르는게 값이 된 가치실현에서 가치실체가 어떠하며 가격이 가치량에 비례되는가? 치솟는 물가는 수염같고 로임증장은 눈섭같은 현실상황에서 로동량으로 형성되는 가치실체가 가치량을 결정하는 가치법칙이 합리적으로 운행되고 있는 가? 교환관계가 화해로운가? 상품이 가치와 호상 대등한가? 등등,     2001년이후 중국경제가 세번째 계단에 진입하였는데 바로 기본과잉시대라 한다. 우선 옷과 신류에서 과잉생산징조가 나타나더니 강철, 세멘트, 유색금속도 과잉상태 에 빠져 이 류의 기업들에서 우는 소리가 터지게 되였다. 마침내 전국적으로 소비시장이 너무 배불러 소화불량에 걸리고만것이다. 상품경제시대는 호황기를 넘어 양한 마리에 몰이군이 아홉이 된 격이다. 그리하여 광고업이 극성을 부리게 된것이다.     한 극단에서 다른 한 극단에로의 전이인가? 제조업이 과잉상태이고 에너지산업도 과잉상태이며 석탄산업도 과잉상태이고 부동산, 전력생산도 과잉상태이다. 연길시의 제1 백화상점을 비롯해서 지하상점, 강북강남의 국제무역청사, 서시장, 수상시장, 농부산품시장, 도매시장외에도 큰거리, 작은 골목들에 촘촘 들어선 각종 상점들…     지금 전지구적으로 과잉산품이 어디 한두가지랴, 례를 든다면 컴퓨터나 핸드폰류, 자동차도 그렇다. 오래전 몇천원씩이나 주고 사놓은 컴퓨터가 후회될만큼 전자제품 값이 폭락했다. 자가용으로 엄청 비싼것도 있지만 웬간한 로임족이라도 작심하면 꽤 쓸만한것으로 갖출수 있는 정도로 차값이 미끄럼질한다. 너도나도 자가용을 굴릴수 있게 되여 삶의 질은 높아졌다고 볼수 있으나 불원간 작은 연길거리에 자동차 “과잉대란”이 생기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게다.     상품주택건설도 그렇다. 무작정 리윤추구를 내세우다보니 주택공급과잉이라는 일희일비의 괴리가 생긴게 아닌가? 아닌게 아니라 지난 12월 18일~21일에 열린 중앙경제공 작회의에서 앞으로 부동산 공급과잉문제 등 구조적 생산능력과잉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국은 아주 많은 곤난과 도전에 직면해 있고 특히 구조적생산능력 과잉은 비교적 엄중하다”며 과잉생산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일언이페지하고, 그냥 부족감에 시달리던 그 시절에 비하여 좋구좋은 세상이 되였지만 한편 구매함과 동시에 신상품광고가 요란을 떨어서 사자마자 낡은것이 되지 않나 하는 불안감에 자족이 구겨질뿐, 선택할 시간과 낡은것을 버릴 시간이 부족할 뿐, 시간을 챙길수 있는 돈이 필요할뿐인 이 시대. 삶의 목적의 당위성을 다양화시킨 결과를 환호해야 하겠지만 마침내 정보의 과잉으로 정신적 비만의 시대에 진입한것은 또 다른 사색을 불러오고 있음도 사실이렸다.     계획경제시대에 시행착오로 인하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였다면 상품경제(자본주의경제)의 가장 큰 약점은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것이다. 례하면 약이란 원래 병치료를 목적으로 만드는것인데 리윤만 앞세우다보니 눈에 보이나니 “대약방”이요 약방마다 약을 얼마만큼 사면 무엇을 준다는 “활동”이 통용되고있다. 길상스러운 일인가? 거품경제의 불길한 징표는 아닌가?     역설적으로 과잉은 일종의 결핍이다.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된 공급으로 충족되여 넘어선 그 자리는 과잉으로, 과잉은 이미 그 자리에 다른 결핍을 생산한것이다. 넘어선 그 자리는 다시 채울필요도 채울수도 없으며 넘어선 그곳에 새롭게 채울 결핍만이 있을뿐이다. 우리 사회는 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으로 결핍을 극복했으나 이젠 과잉으로 다시 결핍의 국면에 들어서있다.     자발적인 과잉이든 피동적 과잉이든 과잉의 악순환은 이미 끊어버릴수 없는 사회문제로 되였다. 모든것이 넘치는 과잉시대지만 그만큼 불행해지기도 한 현대인들에게 행복해지는 하나의 방법은 둔감하게 사는것이라고 권고한다면 되우 마뜩치않게 볼것이나 어떤 깨달음을 주는것도 사실이다.     동물들에게는 먹거리의 풍요로움이 시작이자 끝이지만 인간이 추구는 동물들의 그것과 다를수밖에 없다. 행복의 과잉으로 행복을 잃는다면 그게 맞아떨어지는 계산식일수 없다. 과잉시대에서 인간은 존재의 본연을 잊고있다. 모든것을 가지려 한다면 아무것도 가질수 없건만은 그냥 무한정 가지려고만 든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것도 낳을수 없거니와 깊이를 더하지 못하는 분주함 즉 심사숙고와 성찰이 없는 단순함의 반복은 인간자체를 파괴하고 있는것이다.     일개 미미한 민초로서 시대조류로 되여버린 과잉생산→과잉구매→과소비를 두고 시야비야 하는것은 오지랖 넓지만 무어나 결핍하던 시대를 살다가 무어나 과잉된 시대에 살게 되니 그냥 꿈같아서 “과잉시대 경탄조” 가 절로 흘러나오는바이다.                                                                    2015년 5월 25일
887    (진언수상록 94) 인종차별의 비극사 댓글:  조회:121  추천:0  2018-07-24
                                   인종차별의 비극사                                                             진  언       인간 개체로서의 강자와 약자사이에 빚어지는 비극은 인류의 진화와 동보하였는바 부족간의 침탈과 학살로부터 강약의 대결이 시작되여 현재에 이르러서도 민족, 국가들간에서 진행형이다. 미사일, 폭탄으로 실현되는 강자의 위세는 강도적론리에 실질적 힘을 실어준다. 이 점은 세계헌병으로 자처하는 미국이 잘 보여준다.     약소민족, 약소국가는 도처에서 기시당하고 릉욕당하기 마련이다. 례를 들기에는 비애가 앞서지만 그냥 인용해 본다. 2015년 7월 4일부터 16일까지 타이의 치앙 마이에서 열린 제56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조선이 총점 156점으로 미국(185점), 중국(181점), 한국(161점)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참가선수6명에 3명이 금메달을 받고 3명이 은메달을 받았다. 조선으로서는 력대 최고의 성적을 거둔셈이다.    조선은 1990년에 처음 참가하였는데 1993년부터 2006년까지는 참가하지 않다 가 2007년부터 다시 참가하고있다. 조선은 12번의 대회기간 꾸준히 20위 안에 드는 비교적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전에 가장 좋은 성적은 2009년의 5위였다. 약자의 비애는 여기서도 재연된다. 지난 2010년 51회 대회에서 실격을 당한적이 있는데 당시 비공식적 기록에는 중국에 이어 2위의 성적을 거두었다고 한다.     2010년 7월 13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조선은 첫날 시험중 가장 어려웠던 증명문제에서 문제를 풀기전에 내용을 증명하는것이 모범답안인데 조선 참가학생중 4명의 학생이 모범답안과 같이 풀었다고 했다. 그런데 모범답안처럼 풀기가 쉽지 않아 부정행위를 한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고 결국 단장회의를 통해서 실격처리를 당했다. 이와 관련해 성급한 결정이였디는 의견이 있었고 나중에는 조선의 부정행위를 인정하는 국가가 절반이 채 안되였지만 흐지부지 그렇게 결정났다.     다른 나라들에서 조선이 너무 잘하는것을 의심한것이다. 2014년 대회에도 이런 의심을 받았다. (국제대회에) 나온지 얼마 안되였는데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그룹에 들어갔으니까, 대회에 참가한 한국의 모교수의 증언에 의하면 나중에 답안지를 보니까 류사문제를 풀어보며 많이 준비해서 파악하고 있었을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단다.     약소국이라고 이런 지력경쟁에서마저 편견을 앞세우는 서양놈들의 독선과 행패에 당해야만 하는가? 하는 분노에 역시 “약자의 비애”라는 답이 나온다. 그러니 자연히 개체도, 민족도, 국가도 잡담제하고 강해져야만 한다는 결론이 굳어진다. 그에 앞서 이런 계제가 어찌 자초되였든간에 단군족이 수모받는것은 격분 그자체이다.     력사적으로 인종차별주의만큼 인류에게 큰 해악을 끼친 이데올로기는 없을것이다. 인종차별은 모든 차별의 원흉으로서 인권문제의 핵심이기도 한것이다. 인종차별은 인종의 우렬을 가정함으로써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를 합리화하고 렬등인종이라고 생각한 인종, 민족을 자기들의 생산도구로 만들려고 했기때문이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다른 인종, 타민족에 대한 혐오하고 기시하며 릉멸한다. 인종차별은 고대에도 있었지만 주로 20세기에 극에 이르렀다. 인류력사를 돌이켜보면 백인들이 저지른 비인간적 만행은 그 어느 인종도 따르지 못할만큼 극악무도하였다.     1440년에서 1879년까지 유럽인들이1100만명 가량의 아프리카흑인들을 붙잡아 남북아메리카에 실어갔다. 그중 100만명 이상이 대서양 횡단중 비명횡사하여 바다에 던져졌다고 력사가 기록하고있다. 백인들은 노예제도를 페지한다고 선포한 이후에도 의연히 흑인들을 차별시 해왔기때문에 장난감처럼 괴롭히다 죽이여 그 시대의 모든 흑인들이 저항조차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인종차별은 계속된다. 20세기에 들어서자마자 최초의 전면전인 1914~1918년의 제1차 세계대전중 100만명 이상의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집단학살을 감행했음에도 서방렬강들은 아무 량심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악명높은 유태인 대학살을 비롯해서 캄보챠, 동티모르, 구유고슬라비아, 르완다 등지에서의 대량학살등…     그당시 유태인들이 너무 비도덕적인데다 지배계층을 확보해서 유럽인들이 큰 분 노를 가지고 있었고 특히 독일인들은 가난때문에 유태인들에게 더욱 더 큰 분노를 가 지게 되여 유태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획책한것이라 한다. 그러한 수많은 대학살중에 현대까지 나치의 유태인학살이 주로 부각되는 리유는 유태인들이 과거부터 현대까지 세계의 돈을 휘여잡는 지배계층 집단이기때문에 유태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몰이 가 되는건 당연하고 패자로 락인찍힌 나치스 히틀러만이 천하 몹쓸놈이 되였다.     인간은 고기를 안먹고 고기대신 채식으로도 살수 있다. 하지만 고기를 먹는건 맛있고 영양가가 높기때문이다. 인간이 재미나 돈때문에 가축을 잡아먹듯이 전쟁, 민간인 학살도 거의 똑같은 리유이다. 달리 생각하여 자기네 리익이나 만족감을 위해서 학살했다면 찢어진 인권주의 기발을 펄럭이는 아이러니를 엮어온것이 아닌가?     나치의 무분별한 인종차별과 악행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해왔던 악행으로 현대에 들어서 나치스의 악행을 주로 부각시키지만 일본같은 다른 강대국들도 나치스와같은 악행을 수없이 자행해왔다. 2차세계대전시기의 수상이었던 처칠이 인도인들을 엄청나 게 학살하고 굶어죽게 만들었는데 유태인들보다 더 많이 죽였을텐데도 이 부분에 대 해 거의 거론이 안되고 있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강자에겐 영원히 착오란 없는게다.     기실 힘있는 국가들은 모두 자신들의 극단적인 리기로부터 출발하여 단순한 리익을 위해 무고한 백성들을 대량 학살했다. 매차 전쟁후에 승자인 영국,미국의 장군들이 만약 자신들이 패자였다면 전범재판에 회부되여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물었을것이라면서 자신들이 민간인 학살을 명령한것에 대해 고백하였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은 승자들이 보고싶은 시각대로 보았지만 기실 서방국가는 싸탄국이였다.     20세기 중반이나 후반까지만 해도 대도시에 떨어진 지역에서 kkk단에 가입한 수 많은 미국인들이 흑인들을 아무나 골라잡아서는 길가에서 산체로 불태우던 일들이  심심찮게 발생했다. 그때까지 미국의 백인들에게 짓밟히다가 케네디대통령 시절에 흑인인권시위가 치렬하게 일어나면서 어느정도 회복되였다. 대저 식민지 백성들에게 스스로 죄인이라는 의식을 갖게 하고 회개하며 원쑤를 사랑하고 원쑤를 위해 기도하 라는 기독교리보다 더 좋은 설교가 어디에 있으랴만 실제는 당나발이 되고있다.     미국인들의 인종차별의식이 얼마나 골수에 박혔는가를 보라!1940~1950년대에 유명한 소프라노 마리안 앤더슨은 흑인이라는 리유로 카네기 홀에 서지 못했다고 하 며 “투영”이라는 노래로 세상에 잘 알려진 넷킹 콜같은 가수는 라스베가스 공연이 끝나면 흑인이라는 리유때문에 자기가 공연한 호텔에 투숙할수 없어서 도시변두리에 있는 허름한 려인숙같은 곳에서 지내기도 했단다.     2차 대전때 많은 공을 세운 한 흑인해병은 뻐스가 남부의 “매이슨 딕슨라인” 을 지나갈 때면 앞자리를 백인한테 넘겨주고 자신은 흑인이라고 뒷자리로 옮겨갔다고 한다. 부시의 첫임기에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은 그의 자서전“아메리칸드림” 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베트남전 임무를 마치고 다음 부임지로 가기전에 고향인 뉴욕에서 휴가를 보내고 남부에 같는데 백인전용화장실은 륙군장교 정복을 한 파월 대위한테 허용되지 않아서 자유로운 아메리카대지에서 용무를 보았다고 한다. 파월은 씁쓸하게 웃었을가? 통곡했어야 했다. 백색인권주의란 워낙 그런것이지만도,                                    2015년 7월 18일
886    (진언수상록 92) 총명의 도(度) 댓글:  조회:98  추천:0  2018-07-22
                                                         총명의 도(度)                                                                 진 언                                       똑똑하다, 머리가 좋다를 총명하다고 하는데 총명(聪明)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총은 청각이 령민한것이고 명은 밝고 선명하여 밖으로 잘 드러나는것을 의미한다. 총명은 유전적인것으로서 소리를 듣고 사물을 보며 진가,선악, 정의,사악, 시비를 가려낸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어에 “이총목명 (耳聪目明)”라 한다.     총명의 정의, 기준, 측정에 론란이 많지만 한 사람이 얼마나 똑똑한지는 아직 백프로 과학적으로 증명해내지 못했다고 한다. 지혜가 생존의 경지 혹은 경계 (境界) 라 한다면 총명은 생존능력이다. 흔히 누구는 총명하고 누구는 우둔하다고 평판하는데 총명에도 소총명과 대총명이 있으니 어느것을 기준으로 하는것일가?     어떤 사람이 소총명한 사람일가? 여러가지 여건이 있겠지만 우선 눈앞에 리익, 다다익선의 감각에 리성을 잃은자는 결과적으로 소총명한 자이다. 소총명한자는 기능과 기량을 갖추었기에 인맥을 찾는데 달인으로서 재부와 권력을 잘 낚는다.       하다면 대관절 가장 실제적인 총명의 기준은 무엇이며 총명의 한도는 무엇으로 가늠되는가? 저사람은 손해보지 않고 우둔한 짓을 하지 않는다고 평판할 잣대는 무엇인가? 바로 권력과 금전과 미색앞에 세워보는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본성인 욕망이 무지경일지라도 자기를 제어할줄 아는데서 그 사람의 총명의 도(度)가 금그어지기때문이다.     총명이 극치에 이르렀을 때 더는 총명이라고 하지 않고 지혜라 이름한다. 총명은 대개 선천적이고 지혜는 후천적인것으로서 닦는다고 한다. 지혜는 마음에서 비롯되는것이기에 “혜출심생(慧出心生)” 이라 한다. 총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잘 보아내지 못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절대적으로 총명하지만 총명한사람이라 해서 다가 지혜로운 사람인것이 아니다. 총명이 곧 지혜로 되지는 않기때문이다.     세상에 총명한 사람은 많지만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드물다. 지혜에는 한계가 없으나 총명의 도(度)에도 한계가 있다. 말하자면 태산에서 재채기를 한번 하면 희말라야산에 12급태풍이 불어친다는 권세가들은 한자리 했으니 총명하다 할것이요 검은 돈이라도 억만금을 챙겨두었으니 과시 “지혜롭다”고 할수도 있겠다. 그러나 소총명이 도를 넘으면 우직함에 이른다. 례컨대 자동차로 실어낼만큼 돈을 끌어모아 쌓아두어 콤태기가 끼고있는데도 그냥 냠냠하는 지경이면 과연 총명한 자일가?     지혜는 분석, 판단능력, 발명창조능력이라고 한다. 지(智)는 날마다 지식이 넓어지고 증장한다는 의미이고 혜(慧)는 하나의 마음에 땅바닥을 절반 쓴다는 형상으로서 그 위에 풍성할 풍자가 두개나 놓여있는 형상이다. 지혜가 없다면 총명은 령혼이 없게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에 대해 깨득한것이 많고 깊으므로 심성이 바르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 조금 바보처럼 보인다.     장자는 “聪明过头,使人忘记大宁)”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대녕”인즉 자연을 가리킨다. 자연은 곧 섭리로서 총명이 도를 넘으면 오히려 심령을 상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한도가 없으므로 스스로 재화를 자초하게 되여졌다.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탐욕은 본성이 아니라 모종 환경에서 사욕이 팽창되면서 생성된 일종의 불건전한 심리일뿐이다. 무릇 욕망은 개체 나아가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될수 있지만 탐욕은 만악의 근원으로 사람들을 아주 쉽게 죄악의 심연에로 밀어넣거나 다시 불귀의 저승길로 떠민다.     옛글에 이르기를 “탐욕은 불과 같아서 제때에 끄지 않으면 자신을 태우게 되고 욕망은 물과 같아서 제때에 막지 않으면 자신이 익사하게 된다.”고 하였다. 수단을 가리지 않고 불의지재를 모은끝에 자족하다가 마침내 불귀객이 되여질것은 필연적이다. 눈감고 “야옹”하든 귀막고 방울훔치든, 종이로 불을 싸든 일시 소총명한자의 기량일뿐이다. 아니그런가?     일세영달할듯 떵떵거리다가 결국 처자식, 손군들마저 휘말아감고 철창행을 한 수많은 락마관들의 끝장에서 총명이나 지혜로움을 론할 건덕지가 있을것인가? 비참 그 자체일뿐이다. 결국 패가망신하고 죽게 되여서야 후회막급해서 눈물코물 쥐여짜고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 떠오르는것인즉 “早知今日,何必当初啊!”이다.     소총명에 양양자득다보니 지극히 지혜롭지 못한 탐관오리들이 지천이 된것은 주요하게 제도에서 비롯된것이라고 지자들이 입을 모으고있다. 탐관들은 제도의 리익을 본 총명자들면서도 결국 좋은 끝장이 없는 “근시안”들이다. 부정축재할 기회가 도처에서 기다리고 있는데다가 들통나는것은 소수이니 용왕매진하는 전투정신을 계승하지 않을수 있으랴. 락마관들의 립장에서는 비리성적인 제도하에서 리성적행위라고 인식하기에 부정축재하지 않는자야말로 바보이고 렴결이야말로 비리성적이라 한다.     기실 락마관들이야말로 소총명자도 아니다. 파하지 않은 연회란 없고 깨지 않는 미몽이란 없다는것은 이미 깨뜨릴수 없는 계률임을 알면서도 이판사판했다면 더 이를데없는 바보들이다. 잡히면 그렇게 목숨걸고 끌어모은 루만금이 국고에 들어가니 산다해도 가슴앓이로 괴로울것이요 만약 황천길에 오른다면 통탄에 목이 멜것이다. 사람을 수자 1일에 비길진대 권력, 금전, 미색, 명예는 0이다. 1자가 무지러졌다면 그뒤에 0이 아무리 많던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진짜 총명한 사람은 인생마당에 일체 사물은 각자 자기의 자리가 있다는것을 알고있다. 총명한 사람은 금전과 재부는 단지 수단일뿐 목적이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기에 그것에 목숨까지 걸지 않는다. 총명한자는 일시적인 쾌감이 장구하게 만족시킬수 없다는 도리를 잘 알고있으며 인생에서 사악의 유혹을 피할수 없고 언젠가는 잃게 되고 생로병사의 섭리를 어길수 없음을 알기에 얻기만 하려고 악바리질 하지 않는다.     그런데 락마관들이 탐욕의 포로가 되여 철창속에 들어앉게 되였으니 소총명이 오히려 그 자신을 잡은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호박을 쓰고 돼지굴에 들어가는 수준의 총명, 지혜라고 한다면 아마 노발대발할것이다. 길길이 뛰든말든 각설하고, 부정축재 하노매라 스스로 총명의 과인함에 만복의 배를 어루쓸겠지만 역시나 “두고 봐야지!” 의 섭리를 벗어나지 못하니 유감천만이 아닌가?     사람이 량심과 도덕의 계선을 넘으면 더는 리지가 도망치며 지혜마저 상실하게 된다. 지혜에서 혜가 뜻하는 의미는 깊고 오묘한바 지식은 오가 잡탕에 형형색색이여서 우리의 마음을 혼탁하게 하는바 쓸데없는것을 쓸어내여 마음의 골방을 깨끗히 하라는 의미이다. 정판교의“聪明难,糊涂更难”이라는 말에서 “糊涂” 는 지헤로운 어리숙함 을 이르는것으로서 아무나 터득하는것이 아니나 경세제언임에는 틀림없다.     조금 탈절된 비유를 해보자. 콩나물은 저저 건실하게 자라려고 애쓸것이다. 그런데 굵기와 가늘음, 길고 짧음은 그 자신으로서는 어찌할수 없다. 인생마당도 콩나물시루와 같고 인간은 각개의 콩나물처럼 저저 빼여나려 하고 월등하게 살려고 한다. 그것은 인지상정으로서 나무랄바가 아니나 재주를 쓰다가 메주를 쓴다는 속어처럼 남들보다 총명한체 하다가는 랑패보기가 일쑤이다. 세상만물에 한계가 있듯이 인간의 총명에도 극한이 있기때문이다. 그래서 총명의 도(度)란 금그어진것이 없다고 하리로다.                                                                                      2015년 6월 30일
885    진언수상록 88) 작가를 말하다 댓글:  조회:117  추천:1  2018-07-21
                                                        작가를 말하다                                                                                                     진 언       작가란 무어냐? 문헌재료에 의하면 오늘날 영광스러운 호칭으로 되여있는 작가란 자초에는 가무를 관리하는 치가(治家)의 의미였다. 이 말이 서책에 수록된 첫사례는 《삼국지,양희전(三国志·杨戏传)》인데“请为明公作家譬之”《晋书·食货志,“(汉)桓帝不能作家,曾无私蓄。”이였다. 여기서 3국시기로부터 진(晋) 때까지는 “작가”란 “치가”를 가리키였다는것을 설명하고있다. 한조의 항제는 등극하기 이전까지 청빈한 생활을 하였기에 치가에 재산을 모을줄 잘 모르다보니 축재하지 못했다고 한다.    “작가”란 개념이 지금의 뜻으로 쓰인것은 당조때부터였다. 북송의 리방찬 (李防 撰)의《태평광기(太平广记)》에“唐宰相王好与人作碑志,有送润毫(酬金)者,误叩左丞王维门,维曰:‘大作家在那边。’”라고 기재되여있다. 바로 당송시기에 문학예술상 에서 성과가 탁월한 자를“작가”라고 호칭한 유래이다. 이는 성당 (盛唐时) 시기에 선 출해 낸 “작가”들로는 섬서(秦) 산서(晋)인들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작가라는 이 단어가 연변된 과정을 본다면 작가와“작자(作者)”의 구별점은 이 룩한 성취와 가지고 있는 자력(资历)에서 비롯된것이다. 무릇 저작이 있으면 모두 “작자”라고 칭할수 있으나 꼭 작가인것은 아니다. 작가는 이미 일정하게 명망을 가진 작자로서 문학계에서 확실히 공인해야 한다.      창작하는 전문 분야에 따라 구분하는 소설가, 산문가, 시인, 극작가, 문학리론가, 문학평론가 등을 통털어 작가라고 부른다. 보다 높은 차원에서 문학가라는 호칭도 있는데 상술한 쟝르의 작품들을 발표하고 일정한 수량과 가치있는 작품집을 발표하고 일정하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개념의 뜻풀이는 이만 접고, 문학적으로, 상징적으로 말할 때 작가란 과연 무슨 사람일가? 응당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작가는 현실을 꿈처럼 묘사하여 사람들더러 읽게 하는 사람이다. 여기서“현실”이란 곧 작가가 작품에서 반영하려는 취지이다. 여기서“꿈”이란 작가의 문필의 결과 즉 작품이 가지는 미학가치이다.      작가는 무엇때문에 한사코 창작에 열중하는가? 두말할것없이 사람들, 특히 지성적인 독자들에게 읽혀지게 하기 위해서다. 진정한 작가는 늘 독자의 마음을 앞세우고 창작의 길을 떠나야 한다. 물론 작자의 마음은 하나로 융합되여야 할 전제를 가진다. 비유하건대 찢어진 두 마음이 부딪쳤을 때 량자가 하나로 엉켜서 완미한 마음으로 될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명백한것은 작가의 마음은 진지해야 한다는것이다.      흔히 어떤 종류의 글이든 글을 써내면 문인이라고 할수는 있되 엄밀하게 말해 그 모두를 작가라고 부를수는 없다. 써낸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다행이지만 죽고나서야 명성을 떨치는 작가도 있다. 례하여 카프카는 죽을때까지 보험국에서 일 했지만 작가소리는 재대로 듣지 못했다. 죽고나서 20년이 지난 후에야 그의 글의 발견되여 대문호소리를 듣게 되였다.     에밀리 디킨슨은 또 어떤가? 그녀가 죽은후 서랍장에 차곡차곡 챙겨져있던 약 2천여수의 시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녀를 시인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요한것은 남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자아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작가라는것이다. 마치 로동벌이 꿀을 빚는 일과 같다고할가,     운이 좋아 당대에 작가로서 대접을 받을수도 있다. 반대로 죽을때까지 아무도 자신의 글을 읽지 않을지 모른다. 만약 그런것에 신경을 앞세우며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작가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엄밀하게 말해 그런 사람은 작가가 아니라 타산에 밝은 글쟁이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것이다.      오늘날 문학이 열광적이던 독자들에게서 소외당하여 침체상태에 빠진것은 치렬한 작가정신의 부재에서 기인된것이다. 난해할수록 좋은 시라고 주장하며 자기네끼리 북 치고 장구치니 독자들에게서 소외당하지 않을리 없다. 그리하여 문학의 호황기는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거니와 이제 회생하기도 망연하게 되였다.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 많은 작품을 써내다니 참 글재간이 좋으시네요”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피상적으로 알고 하는 말이다. 창조적인 글을 단순히 문장을 잘 엮는 재간으로 쓸수 있을가? 하긴 기준도 명백하지 않은 글재간도 있어야 하지만 단순히 “글재간”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그것이 시이든 소설이든 수필이든 문학작품은 철두철 미 인간사상의 예술화활동, 생명연소의 산물이기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초행길이다. 갈래갈래 인생길에 어떤이는 작가의 길을 선택한 다. 인생길도 기구하지만 작가의 길은 더구나 파란만장할수밖에 없다. 작가의 인생길은 남다른 바탕색을 가지게 된다. 그 바탕색의 기본색은 창작이다. 인생고에서 얻은 풍부한 체험이 창작의 밑거름이 된다.     작가의 인생려정과 수련은 짓밟힐수 없다. 불행이 작가를 낳고 분노가 시인은 낳는다는 말이 널리 인용되고 있듯이 처음부터 복속에서 작가로 성장한 사람보다 고난 의 려정을 걸으며 작가로 성장한 사람들이 더 많다. 례하면 쎄르반떼스나 스탕달, 고리끼같은 대문호들의 작가의 길은 숙명인듯 다 인생의 저곡에서 시작되였다.     진정한 작가는 아는것이 많아야 할뿐더러 보통사람들보다 독특한 작가적정신이 수립되여 있어야 한다. 작가정신이란 단순개념이 아니라 범주이다. 말하자면 작가정신에 포괄된 내함이 다종다양하고 다층차적이라는것이다. 작가정신은 작가의 본령이면서도 작가적자질의 핵심이다. 조금 추상적인 표현일지 모르나 문학을 목숨처럼 여기는 치렬한 작가적태도와 작가의식, 그리고 사명감과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작가, 시인이 왜 그런것들에 신경을 써야 하느냐는것이 이들의 공통된 가치판이 다. 그런 세속적인 사상에서 가슴을 울리고 납함이 나올수 없다. 한부의 소설에서 주요한것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속에 스며있는 작가의 사상이다. 여기서 “사상”이란 철학서에 론술하는 사상이 아니라 생활에 대한 작가의 남다른 감수와 사고와 견해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이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준다. 그러면서 문학은 생명의 직각이며 생명과 생활이 마주쳤을 때 터져나오는 개탄이라고 자답하기도 한다. 보통사람의 탄식은 한숨을 토하는것에 그치지만 작가의 탄식은 사상을 연소키는 생명의 소모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아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창작에 몰입하지만 까다로운 독자들과의 대화를 준비해야 하기에 창작에 열중할 때 고독을 모른다.     만약 매 한편의 작품이 급공근리에 매달린것이면 일컬어 글재주로 만든것이여서 너무 심심해 책장을 뒤적이는 사람들의 소일거리가 되여질뿐이다. 만약 조류와 경향에 영합하여 작가정신이 굴절될 때 순수 문학을 위한 문학인이 된다. 작가의 심령은 시종일관 거짓되지 않아야 한다.     작가가 창작 이외의 일에 너무 관심을 쏟으면 기본품성을 잃고만다. 서구의 묵은 문학사조들을 새조류마냥 받들어 모시고 가급적으로 완벽하게 닮아보려 하거나 문인상경의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패거리를 뭇고 명리(名利)를 앞세우는 작가들, 현실과 독자들의 취향에 관심이 없는 작가들은 필경 랭담한 독자들만 만나게 될것이다.                                                                                 2015년 7월 30일    
884    진언수상록 85)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 ? 댓글:  조회:114  추천:0  2018-07-19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 ?                                                                       진 언       굴러온 돌이 박힌돌을 뺀다는 말은 타곳으로부터 들어온 사람이 본래부터 있던 사람을 내쫓는 일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속담이다. 속담은 속담이고, 아닌게 아니라 시끌벅적 붐비며 사는 지구촌, 날로 치렬해지는 경쟁시대에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경우가 더구나 비일비재이다.     새학기 한국어글쓰기 훈련문제집을 만들다가 한편의 글이 눈에 띄였는데 저도 모르게 생각의 이랑들이 물결친다. 원 문장의 골자는 이러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도입종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예전엔 청개구리가 울던 연못에 요즘은 미국에서 건너온 황소개구리가 들어앉아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삼키고 있다. 어찌나 먹성이 좋은지 심지어는 우리 토종 개구리들을 먹고 살던 뱀까지 잡아 먹는다. 토종 물고기 역시 미국에서 들여온 블루길에게 빼앗기고 있다. 한마디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 셈이다. 이들이 어떻게 자기 나라보다 남의 나라에서 더 잘 살게 된 것일까?》     훈련문제를 만들기 위해 거두절미한 토막글이지만 가히 앞뒤를 가늠하고 나름대로 내용을 류추해 낼수 있다. 한국에서 누가 무슨 생각을 하고 뱀까지 잡아먹는다 는 독종황소개구리를 수입하여 본토배기를 못살게굴고 불루길인지 하는것마저 들여 와서 토종물고기마저 침탈당하게 만들었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배없지만 결코 생태 평형을 잡느라고 한 선구자적인 짓거리는 아닌것으로 생각된다.     그것도 다른 지역의것이 아니라 하필이면 미국종이란데서 련상이 왜지밭으로 갈수밖에 없다. 미국이란 나라가 바로 력사상 굴러온돌이 박힌돌을 빼던진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 나라가 아닌가. 서구의 오가잡탕 백인들이 아메리카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산토끼나 노루를 잡듯이 토착민 인디안인을 쫓아다니며 비피린 학살을 감행하고 1억의 인디안인의 선혈로 걸구어진 땅에 흑인노예들의 피땀으로 부를 쌓고 그우에 세운 나라이요 이웃나라의 령토를 마구잡이로 강점하여 배를 키워온 나라이다. 물론 이것은 결코 굴러온돌이 박힌돌을 뺀다는 속담정도기 아닌 강탈의 기록이다.     현시대에 들어와서 더구나 세계 (헌병)이 되여진 그들은 지구촌 곳곳을 포탄으로 쑥밭을 만들고 총칼로 들쑤시고 다니며 굴러온돌이 박힌돌을 빼는 속담에 담긴 철학을 멋지게 체현시키고있다. 아닌가? 그건 그들의 힘을 론리로 보여주는 장거라고 할세 거기에 북치고 장구치는 추종국들은 참으로 개탄스럽지 않은가?     이런 한단락의 글도 발취하였다.《영어만 잘하면 성공한다는 믿음에 온 나라가 야단법석이다. 배워서 나쁠 것 없고, 영어는 국제 경쟁력을 키우는 차원을 떠나 반드시 배워야 한다. 하지만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한글이다. 한술 더 떠 일본을 따라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말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영어를 들여오는 일은 우리 개구리를 돌보지 않은 채 황소 개구리를 들여온 우를 또다시 범하는 것이다.》           참으로 지성인다운 명지한 론단이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의《한국어》는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정도가 아니고 바로 왕모래를 뿌린것처럼 껄끄럽기가 말이 아니게 영어를 섞어쓰는데 사대주의인지 맹종인지 알수 없다. 국어가 살아야 산국민이 있다 는 말은 결코 새롭거나 놀라운 발견이 아니다. 영어에 대한 굴종의식이 국가적인것이라면 멀지않아 한국어가 오히려 영어단어체계에서 기장밥에 열콩만치나 되지 않을가 우려된다. 결코 기나라사람의 하늘걱정이 아닐듯싶다.     천리방뚝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는 속담이 있던가, 한국어에 외래어가 하나둘 잠식하면서부터 멋삼아 쓰더니 지금은 외래어로 표현하지 않으면 무슨 말이 아니되는 듯이 완전히 시대풍조로 되였으니 잘되여가는 모양인가? 아니면…세종대왕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글이 그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자랑스러운 글과 말이 되였다.     세계의 모든 문자를 과학성, 합리성, 독창성 등 여러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 순위를 정하였는데 1위를 차지한 언어가 우리 글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우수한 글을 가진 민족으로서 자기 민족의 말과 글을 더사랑하고 자랑하며 옳바르게 사용해야 함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간판들은 외래어로 홍수를 이루고 입고쓰는 물건들의 상표역시 외래어들뿐이란다.     지자체의 구호도, 관공서이름도, 위정자들의 이름까지도 영어로 표기하여 부른다니 참으로 사이비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언어에서 주체적립장을 살리는 길만이 민족적특성을 살리는 길이다. 언어의 민족적특성을 살리는것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키워주고 민족문화건설의 무기로서의 언어의 기능과 역할을 높이기 위해 나서는 기징 절실한 요구이기도 하다.     새로운 문물과 문명의 류입과 함께 외래어가 애용되는것은 시대의 조류인가? 미국제면 무엇이나 좋다는 그런 선입감이 한국인의 잠재의식속에 굳어져서 무분별하게 외래어를 사용하는것인가? 물론, 국제화시대에 순수한 우리 말 우리것만을 고집 하는것도 아니다. 아름다운 우리 말로 표현할수 있는것들은 우리 말로 구사하면 더욱 좋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세계화의 사조라해서 영어일체화에 매달린다면 민족자멸을 자청하는것같다. 과거 일제놈들이 왜 조선어말살정책을 선행시켰는가에 대해 얼핏 돌이켜보면 언어문제의 엄중성이 확실해진다.     외래어를 우리 말로 순화해서 사용하는것은 언어를 가꾸고 발전시키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 외래어람용을 자제하고 우리 말과 글을 애용하는 바른 자세를 다시 가다듬으라고 호소하는바이다. 그대로 쓸수 밖에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외래어의 범람은 자칫 미국의 황소개구리나 불루기처럼 우리 말을 하나하나 삼키여 민족언어의 고유성까지 삼키울지 누가 장담할수 있는가?     언어뿐인가? 한국에서는 이제 미국을 빼놓고 이야기하거나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들게 되여있다고 한다. 도서관을 채워놓은 책들이나 생활비품들도 미국입김을 벗어날수 없게 되였다니 영어교육 붐이 일고있는 나라들중에서도 거의 병적이라고 할만큼 영어에 우려되는 리유는 충분하다. 한류는 밖으로 불어나가고 미국바람이 반도남부를 휩쓸고있다. 한국의 채널대부분을 차지하고있는 미국드라마들과 영어일색인 상표와 상품명들이 한국인의 뼈속깊이 미국문화가 침투해있음을 말해준다.     영어열기, 다문화가정, 서구형미인에 대한 열망이 현실로 되여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모습은 굴러온 돌을 환영하는 자세인듯싶고 한국사람들은 거개 “미국병”이 골수에 사무친것같다. 단순히 미국문화에 대한 분노와 혐오를 나타내는듯한 단어이지만 단군민족의 나라를 지키려면 당장 치유해야 할 병임에는 틀림없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미국문화를 한 두사람의 힘으로 막을수 있겠는가? 물론 절대적인 배척은 불가하지만 비판적인 수용을 한다면 분명 발전적인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것이다.     미국의 목적의도적인 문화상품임은 이미 눈에 뻔히 보인다. 미국의 정신을 대변하는 실용주의가 오늘날 한국사회를 주도하기에 교육도 미국의 실용주의교육을 답습하고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서도, 언젠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비극이 오지않도록 미리 대책을 마련하는 각도에서 실용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어떤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가 파악하는것은 민족문화발전에 해롭지는 않을것이다.                           2011년 2월 20일 (황도에서)
883    동시의 생명선ㅡ진실성 댓글:  조회:119  추천:0  2018-07-09
                                                    동시의 생명선ㅡ진실성                                           김견작가의 동시집《기러기가족》을 두고       동시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는것은 동심세계를 한마디로 정의하려는것만큼이나 무모한 짓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정의되고 있는바 보통 동시란 어린이들의 생활에서 포착한 어린이다운 심리와 감정을 제재로 하여 어른이 어린이를 위하여 쓴 시를 이른다. 어린이가 쓴 동시와 성인이 목적, 의도적으로 지은 동시를 다 동시의 개념에 포함시킬 수 있으나 여기서는 어른이 쓴 어린이들을 위해 쓴 동시에 초점을 맞춘다.     동심세계란 무엇인가? 때 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인간 원형질적인 어린이들 특유의 세계이다. 이런 연유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동심세계를 제대로 투시해야 동시다운 동시를 지을수 있음이 자명해진다. 물론 생동한 동심적 예술경지에 이르려면 상상의 날개를 펼쳐야 함은 두말할것 없다. 시인은 리성적론리를 초월하는 상상력으로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내고 정서를 발현시킨다. 여기서 새로운 현상을 만든다는것은 대상에 생명을 부여하여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 낸다는 뜻이다.     그 경우, 시인은 흔히 련상의 힘을 입어 재생적 상상력이나 어떤 련상의 질서에도 기대지 않는 생산적 상상력을 토대로 경이로운 새로움을 창조한다. 동시가 참신하고 기특한 상상력에 의존하지 않고, 서술과 입말체 대화조의 서술에 의하여 아이들의 심리세계를 표방할 때, 시적 긴장이나 함축미를 상실하고 시적진실마저 외면하게 된다. 결국 동시의 성인화는 동시의 속성마저 색바래게 하고 동시의 리념화는 동시의 본체마저 잃게 만든다.     아무리 어린이를 위한 시이고 어린이가 쉽게 리해할수 있는 글이라고 다 동시가 되는것은 아니다. 그리고 동시가 비록 소재나 제재, 배경, 언어 등이 단순하고 쉬운 용어를 사용했다 할지라도 시속에 어린이만의 정서와 사상이 비틀어져 있다면 동시가 못된다. 동시창작에서 어린이를 생각하며 어린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만이 느낄수 있는 상상세계를 동심적인 언어를 구사하는것은 기본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무릇 동시의 1차적인 생명은 어린이들이 알고있고 사용하고 있는 핍진한 아동언어의 구사에 있다. 시의 언어는 고도로 함축되고 절제된 언어만을 사용한다. 동시도 사물, 현상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가능한 정도로 합목적인 상징과 은유 등의 기법을 총동원하여 이미지를 창조할뿐이다. 그런만큼 동시의 언어는 마음속에 심상 즉 그림을 만들어낸다. 동시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그림은 어린이의 감각에 호소하여 직접적인 이미지와 간접적인 이미지를 창조한다.     시인이 어떠한 사물을 여러 감각기관을 통해 리해하도록 묘사할 때 이러한 이미지를 직접적이라고 한다. 모든 문학장치를 뛰여넘어 시는 어떤것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가지게 하는바 "맞아, 바로 그거야!' 라고 찬탄하게 하면서 경이로운 감동을 안겨준다. 하다면 좋은 동시란 어떤 동시를 기준할가?     필자는 동시의 여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를 시에서 시사되고 있는 진실성에 둔다. 동시는 언어로 그린 그림이다. 이 때 그림의 소재가 되는것은 사실적인 풍경일수도 있고 생활의 양상일 수도 있으며 마음에 떠오른 심상일수도 있겠다. 눈과 마음을 통해 다가온 감흥을 시인은 '언어'를 통해 독자에게 그려낸다. 이 때 그 그림을 은유적이면서도 진실하게 잘 그려낸 동시를 나는 좋은 동시라 단정한다.     기성된 문학리론에서 시란 고도로 함축되고 선택된 언어로 소리와 이미지의 감동을 노래하는 경이로운 문학의 장르라고 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동시를 정의하면 ‘동시란 고도의 함축되고 선택된 언어로, 소리와 이미지의 감동을 노래하는 어린이를 위한 문학의 독특한 장르이다.     그러한 정의 속에 보편적으로 강조되고 있는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동시의 진실성이다. 동시란 원초적으로 철저히 동심에 바탕을 둔 시이다. 발상의 동심성과 표현의 단순성, 간명성은 동시의 요체라고 한다면 진실성은 동시의 생명선이라 할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적 발상이나 관념적 진술에서 해탈되지 못하면 동시다운 동시로 되지 못할것은 물론이다. 시대가 달라지고 생활양상이 달라지는만큼 아이들의 정신세계, 동심세계도 확연히 달라지기에 그런 문화현상을 진실하게 파악하고 동시로 형상화 하는 일은 현시대 동시 시인들의 새로운 과제로 되여졌다. 아래에 김 견작가의 동시 “암 걸린 아빠, 엄마”를 읽어보자.                           암 걸린 아빠, 엄마                           몇해 전만 해도                        우리 집 왕이였는데…                                              엄마 아빠 모두                        나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놈이 나타난 뒤로                        보릿자루신세 돼버린 나                           내가 뭐라 하면 건성건성                        들었는지 말았는지 하다가도                          그놈 보채는 소리만 들리면                        허겁겁, 키득키득, 하하호호…                          휴~대책없는 아빠 엄마!                        폰암 걸린 아빠 엄마!!       전통적인 동시들에 서정은 농경문화시대의 서정이 중심이였다면 오늘 이 시대에 들어서서 어린이들은 새로운,것 변화된것에 대한 서정이 중심이 되여있으므로  어른들이 쓰는 시와 어린이들의 생활감정이 많이 근접되고있다. 현대에 와서 어린이를 위한 시에도 현대문명현상에서 발생된 소재를 다루는 시인들이 더러 있지만 김견 작가의 동시 “암 걸린아빠, 엄마”는 부모자식간은 물론 부부사이에 교감마저 뒤로 밀어버리고만 스마폰시대의 병페를 꼬집고 있는 것은 대단히 소중한 발견이라 아니할수 없다. 로봇트,컴퓨터 스마폰 등 다양한 오락을 비롯해서 어린이들이 새 감각, 새 이미지의 충격을 찾아 날로 그 유혹에 코를 꿰여 자기를 잃는 현실임에랴     좋은 동시들은 대개 단순성에서 오는 힘을 가지고있다. 그것들은 몇개의 언어들을 가지고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힘을 보여준다. 이처럼 좋게 느껴지는 동시들의 시어는 대부분 아주 단순하다. 그러나 직관의 힘이 강하게 느껴지기때문에 그 이미지가 그리는 형상은 아주 선명하다. 요란한 언어를 동원했는데 그림이 안 그려진다면 그건 언어를 랑비한것과 같다. 김견작가의 “얄미운 거미”를 음미해 보자.                                   “얄미운 거미”                               엄마 아빠 얼굴엔                             거미 한 마리                             숨어있대요                               내가 애먹일 때마다                             거미줄 가득 쳐놓고                             살금 사라지기에                               고분고분 말 잘 듣고                             예쁜 짓만 했더니                               아이고,                             이를 어떡해?!                               활짝 웃으시는                             엄마 아빠 얼굴에                               더 많은 거미줄 쳐놓고                             살금 사라지는                             얄미운 거미!!       이 동시를 보면서 느끼게 된것은 시가 생동한 그림을 대신할만큼 회화적이라는것이다. 삽화에서 쉽게 련상되지만 또 다른 의미의 그림이 선명하게 떠오르는것은 이 시에 쓰인 시어가 놀랄만큼 회화적이기때문이다. 여기서 시인은 아주 단순한 몇마디 시어로 부모가 늙어가는 정경을 걱정하고 있다. 소박한 시어는 아이가 재치있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을 온전히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련에서 엄마, 아빠가 활짝 웃어도 거미줄같은 주름살이 얼기설기 얽힌다는 진술은 어린이답지만 탁월한 발견이다. 그것을 독자들이 모르는것은 아 니다. 그저 례사롭게 넘기고 눈여겨보지 않았던것일뿐이다. 시인이 그걸 발견한것인데 그걸 진술하는 시어는 아주 단순한 말로 되여있다. 이 동시에는 화려한 수사가 없지만 서정적주인공의 아름다운 심경이 진실하게 펼쳐진다.                                   달                             내 동생은                           못 말리는 먹보                             조각달 보면                           바나나 먹겠다                             반달이 뜨면                           멜론 내놓으라                           생떼질                             보름달 보면                           피자 먹겠다                           성화래요.        김견작가의 동시 “달”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아이들의 본성에 맞게 씌여진 시다. 이 시는 억지스러운 착상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으며 시어도 진실하게 구사되고있다. 이 시는 아이들 생활에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시라기보다 아이들 마음속에 떠오를수 있는 심상을 그린 시라고 할수 있는데 시인은 지어낸 관념에 의탁하고 있다는 의혹을 주지 않고 구체적인 일상에서 가히 그려질수 있는 그림으로 다가온다. 동시 “감기”도 동심에서만 생길수 있는 심리현상을 잘 포착하였다고 할수 있다.     그림이 구체적이라는것은 시인이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는것이고 그것은 또한 독자들의 눈길을 붙잡아 둘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도 같은 의미가 된다. 겸하여 말하건대 이 시에는 자연스러운 률동감이 느껴지는바 긴장 (들숨)과 이완(날숨)이 적절히 반복되고 있다. 구체적인 그림과 자연스러운 리듬의 어울림은 이 시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시인은 이 시에서 한 식구로 어울려 사는 목숨들간의 조화를 노래하고 있는데, 그것이 또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은 동생과 누나(형님)사이에 진행되는 아름다운 교감을 노래하고 있다.     어른이 동시를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른이 도로 아이가 될수 없고 어른이 인지한 동심세계가 곧 아이들의 동심과 등호로 될수 없기때문이다. 그 어려움은 아 이들의 마음, 생각, 꿈이 곧 나의 꿈이 될 때에만 잘 풀린다     주제적인 면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인간과 자연속에 숨어있는 새로운 현상과 진리를 발견하게 하고 유익한 계발을 받게 하며 독자 수용적인 면으로는 아이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며 인간적 정서를 풍부하게 길러주는 것이 동시의 속성이다. 더 부연한다면 동시다운 동시는 아이들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감동을 받게 되며 인간적인 정서를 함양하고 흥미있는 경험을 쌓게 하는데 시의 목적이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자면 아이들의 상상력이 미치는 진실한 동심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흥미진진하게 시속에 담겨진 의미를 발굴하고 사색하게 한다.     동시짓기의 전제는 어디까지나 동시인만큼 단순성과 명쾌성이다. 동시에는 어린이들에게 있을수 있는 사실적인 생활내용이나 경험이 들어있어야 한다. 동심적인 상상력이 나래치는 무한한 세계를 펼쳐보이려 해도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드러나야 하는바 그것은 동심적인 표현으로서만 구현될수 있다.     김견의 동시들중에서 “기러기 가족”을 우선 례로 들고싶다.                             기럭기럭 저기러기야                         왜 그렇게 슬피 우니                           기약없는 기다림에                         목만 점점 길어졌네                           외기러기 아빠 엄마                         우린 언제 같이 사니                           하염없이 기다리다                         기러기잠 들고 마네                “기러기 가족”전문        이 시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처하고 있는 가정현실에서 종자를 잡았는데 사실 출국붐이 일면서 우리 조선족 가정들에 거의 보편적이다싶이 된 출국붐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조부모 혹은 친척들의 집에 얹혀 살고 있는가? 부모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심리세계에 주제는 “그리움”,“기다림”,“눈물”이라 해도 틀린말은 아닐것이다. 기러기아빠, 기러기엄마, 그리고 부당하게 설음을 짓씹으며 커야 하는 새끼기러기들의 공통된 심리가 아닌가!     시인은 시상전개에서 많은 아이들에게 존재하는 리별의 아픔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그러면서 수수께끼같이 까다롭지 않게 인간정서의 보편적인 뉴앙스를 시사한다. 이 동시는 현실생활에 존재하는 사실과 진리를 담고있으며 다시 한번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형상적으로 보여주기에 동시의 생명선ㅡ진실성으로 하여 매력적이 된것이다. 동시는 이처럼 자연과 인간생활속에 숨겨진 진실을 말하면서도 교육성을 넘어 인간생활의 밝고 어두운 면을 직시하면서 자시의 인생자세를 가다듬게 한다.     졸문의 주제와 조금 탈절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것이 있다. 말하자면 동시에서의 음악성이다. 다 알다싶이 시는 음악성을 추구하는 문학이다. 시에서는 노래를 부르거나 들을 때처럼 규칙적인 말의 가락이 느껴진다. 시를 읽을 때 느껴지는 말의 가락을 운률이라고 하는데, 이런 음악적인 요소는 시의 의미와 련결되어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김견작가의 동시는 비록 정형률을 추구하지 않고 있지만 시의 리듬, 음악성에 많이 류의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시냇물                        시냇물은 왜                      돌~돌~돌~                      흐르는 걸까?                        돌~돌~                      돌밭 위를                      걷기 때문이지                        돌밭 위를                      걷다보면                      발이 아플텐데…                        피해 갈 수                      없을 바에야                        돌~돌~                      노래하며                      흐르는게 낫지                          보다싶이 언어의 규칙적인 배렬이 아닌 시적정서의 내적흐름에 의해 형성된 운률미를 다분히 느끼게 된다. 동시는 어떤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것이 아니라 생명현상 그대로 보여주어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노래가 있는 그림이다. 그래서 동시는 노래하는 아이들의 그림이요 그림을 그리는 동심의 음악인것이다. 시는 물론 특히 동시는 시어에 선명한 선이 있고 색채가 있는 언어야 하며 리듬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긴 분석을 접고 화제를 돌리려 한다. 문학평론을 문학비평이라고도 한다. 문학비병이라면 호평으로 그칠것이 아니라 작품의 부족점도 지적하여 작가의 금후 창작에 유조케 하는것도 마땅하리라 사료된다. 50수의 동시들을 읽고 좋은 감수를 받았지만 허심탄회하게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고 까밝히고 싶다.     이를테면 많은 동시작가들이 시종 피할 길 없는 난제인데 즉 동심세계에 대한 주관적인 성인화이다. 김견작가의 수작들속에서도 성인화경향이 잘 극복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례하면 “고국지도”,“죽겠다”, “1등미인”등 몇수의 시들에서 시인의 리념화, 성인화경향이 엿보인다. 그리고 시어의 선택에서 좀더 류의해야 할 몇가지도 짚고 넘어가려 한다.  “기러기 가족”에서 “기약없는”, “백두의 겨울”에서 “일진한풍”, “봄그림”에서 “뜸들이다”, “겨울나무”에서 “오캐스트라 연주”, “검정나비”에서 “까만 연미복”등 시어들은 아이들에게 생경하게 느껴질 것이다.     일언이페지하고, 작자가 서문에서 토로했듯이 소설가, 번역가로 활약하던 그가 불혹의 나이에 생뚱같이 “동심에로의 회귀”를 표방하여 첫동시집을 내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다. 갓마흔에 첫보선이랄가, 마흔에 만득자라고 할가, 작자의 말처럼 동심으로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쉽게 살고 싶은 마음이라도 동시습작품 치고는 결코 기름떡을 구워내듯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니래도 이미 동심에 깊숙히 빠져든 이상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어린이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어린이들의 언어로 보다 진실하게 동심세계를 재현시키리라 믿어마지 않는다. 그래서 충심으로부터 응원을 보내는 바이다.                               2018년 7월 7일                                    
882    (진언수상록 85) 불편한 계승 댓글:  조회:185  추천:0  2018-06-30
                                                    불편한 계승                                                         진 언        희랍신화에 아버지를 따라 하려다가 제우스의 벼락을 맞은 이야기가 있다. 태양 마차를 몰던 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은 아버지에게 그 마차에 오를수 있게 해달라고 조른다. 헬리오스는 매일 아침 태양마차를 몰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하늘을 가로 질주했다. 고대희랍인들은 해가 뜨고 지는것을 태양신 헬리오스가 태양마차를 몰고 동에서 서로 횡단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헬리오스를 설득하는데 성공한 파에톤은 “아버지의 마차”에 올랐다. 자신도 태양마차를 몰아아버지 못지않은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마차를 끄는 네마리 말은 파에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말이 롤러코스트처럼 요동치는 바람에 고삐를 놓치게 된다. 결국 말은 궤도를 벗어나고 말았다.     말이 낮은 궤도를 달리면 산에 불이났다. 들판은 뜨거운 열기로 인해 순식간에 메말랐다. 강에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나일강은 도망쳐 사막에 머리를 처박았다. 바다 가 마르기 시작해 포세이돈도 머리를 내밀수 없었다. 이 때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피부가 검게 변했으며 이 열기로 땅이 말라 리비아사막이 생겼다는 전설도 있다.     온통 불바다로 변해가자 대지의 녀신이 신들의 제왕 제우스에게 호소한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파괴되면 옛날 “카오스”상태로 되돌아가고말테니 제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사정했다. 제우스에게 충성한 이 땅과 이 바다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며 구원을 청했다.     파에톤이 아버지의 마차를 몰아 생긴 변고라는걸 알게 된 제우스는 우뢰를 일으켜 오른손에 벼락을 거머쥐고 태양마차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파에톤을 향해 힘껏 던졌다. 벼락을 맞은 파에톤은 거꾸로 떨어졌다. 그 모습은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는 류성과 같았다…파에톤은 제애비처럼 해보려다가 시행착오를 범했을뿐 사악한 계승관념이 있은것은 아니다. 당전 중국대지에서 내노라 활개치면서 사단을 일으켜 국인들의 눈총을 받는 일컬어 재벌2세대 (富二代)들의 행각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슈퍼카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고의로 충돌사고를 내거나 거액이 든 은행잔고를 보란듯이 온라인에 올린다거나 쇼핑한 명품을 자랑스레 펼쳐놓고 셀카를 찍고 생일에는 유명한 걸그룹을 통째로 초청하거나… 돈자랑도 모자라 마약과 섹스파티를 하는 등등은 재벌2세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급속한 산업화에 운이 틔여 부를 쌓은 갑부네 자녀들의 무분별한 소비습관과 비상식적인 행동들이 빈축을 사고있다. 하여 도를 넘은 이들의 몰지각한 행태에 정부도 칼을 빼들었다.     눈살 찌푸리게 하는 부호2세대들의 망동은 어제 그제의 일이 아니다. 2012년 북경에서 일어난 한 차사고는 중국 신흥귀족 자녀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예고편격이다. 사건은 해외반체제 온라인들을 통해 소문이 파다하게 번졌다. 사고차량이 그 동안 중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페라리 458 스파이더 슈퍼카인데다 반라체의 젊은녀성들이 합승했다는 사실이 화제를 모았다.       현장에서 즉사한 차주인의 신원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으나 소문을 통해 23세의 링귀라는 사실이 점차 밝혀졌다. 링귀는 당시 중앙통일전선공작부 부장 링지화의 아들이다. 2013년에는 푸얼다이들의 충격적인 마약, 섹스스캔들이 터지기도 했다. 당시 현지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휴양지 해남도의 산야해변에 정박한 요트선상에서 재 벌2세들이 생일파티를 겸한 환각파티를 벌였다. 이 자리에 불려온 모델들은 60만 원씩 받고 색을 판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최고갑부 1, 2위를 다투는 대련 만달그룹의 동사장 완건린(王健林)의 아들 왕사총도 도마에 올랐다. 그는 '왕커커'라는 이름의 애완견을 위해 개설한 웨이보에서 자신의 애견이 1400만원을 호가하는 애플 와치를 두발에 찬 사진을 올리고는 "하하, 나 새로운 시계가 생겼다. 나는 다리가 4개니까 시계도 4개를 차야하는데 4개는 너무 많은것 같아서 2개만 찼어"라며 "너희들중 누구라도 애플워치 갖고있는 사람 있니?" 라는 글을 달아 전세계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기사 그들이 부뚜막에서 말을 달리든 변소에서 치솔질하든 곁에서 무슨 상관이랴만 그들의 불가사이한 망언들과 행실이 말밥에 오르며 사회적 질타의 과녁이 된것은 사실이다. 개혁개방 30여년이 지난 작금에 “재벌2세대현상”은 중국의 시장문화의 결함을 드러내면서 당전의 사회발전과 청소년성장문제에 숨겨진 우환으로 되여 사회적인 중시와 사고를 불러일으킨것이다.     물론 재벌2세대란 결코 고금중외에 신선한 계층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재벌2세대현상은 역시 “중국특색”을 가짐으로써 문제가 달리 제기된것이다. 이들은 자기 부모들이 물려준 “금자탑”의 꼭대기에 턱하니 올라앉아 움안에서 떡함지를 받은 격으로 아무런 경쟁력도, 경쟁경험도 없는 “사회정영” ,“사회강자군체” 를 형성하였 다. 그렇듯 복받은 세대들이지만 거개 진취심이란 없이 사치한 생활의 늪에서 허우적 거릴줄밖에 모르면서도 교오하고 과대망상증을 과시함으로써 중국사회, 특히는 청년들에게 지극히 나쁜 영향을 끼치고있다.     그네들이 그렇게 성장할수밖에 없는 어떤 사정들이 있지만 돈으로 포장할수 없는 도덕교양의 부재, 인격교육의 결실 등에서 서방의 발달국가들에 재벌가자제들과 질적으로 구별되는 점이다. 이는 돈, 재부가 곧 귀족을 만드는것이 아님을 설명해준다. 벼락부호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물려준것은 흔히 “성공학”이거나 후흑학(厚黑学)이였다. 여기서 후(厚) 낯가죽이 두꺼워야 함을 가리키고 흑(黑) 속창이 검어야 한다는것이다.     옛글에 “마음이 어질다면 벼슬할수 없고 의를 내세우면 장사를 할수 없다 (慈不 做官,义不经商)”하였듯이 재벌2세들이 그렇게 교육받았기에 당연히 책임감, 동정심, 공공정신 같은 덕목들이 결여될수밖에 없는것이다. 문제는 “재벌2세”란 한개 사회계층의 대명사가 되여진는데 있는게 아니라 일종 비정한 사회현상으로 되여 중국 사회모순을 격화시키고 있다는데 있다는것이다.     말하자면 “재벌2세현상”은 재부가 오만방자하고 제멋대로 할수 있는 언덕으로 되고 사회불공평현상의 래원이 되고 분화, 심지어는 대립을 조성하면서 날이 갈수록 극렬해졌으며 그로하여 국인들이 재부의 선의적의의를 보려하지 않게 하였다. 오로지 재부만 눈에 보이고 례의렴치가 헌발싸개가 되여짐으로써 중국전통문화속에 이른바 도의, 가정, 인륜 등 인문정신이 도전과 충격속에 뿌리채 흔들리게 된것이다.        기형적인 소비주의가 신주대지에 비정상적 소비돌풍을 일으키고있다. 재부를 중시하는것과 유일재부론은 벌써 다른 개념이다. 문질문화생활을 제고와 삶의 질을 개변하는것과 향락지상주의도 본질적으로 다르다. 돈을 분토같이 여기며 돈내를 풍기는 안하무인의 재벌2세들의 작태에 세인들이 곱게 보아줄리 없다.    재벌2세대들이 유의무의하게 끼치는 위해성은 날이 갈수록 지성인들의 우려를 가심화하고있다. 인간사회인만큼 빈부격차는 당연하다. 그러나 억만장자의 자식이라도 재부에 일종 사회적책임성이 깃들어있다는 도리를 모른다면 아무리 많은 재부를 물려받았더라도 3대까지 내려가지 못한다 (富不过三代)는것은 력대갑부들의 모종의 저질성을 시사하는게 아닐가? 불편한 계승자 파에톤을 잊지 말기를…                                                                           2015년 7월 12일
881    (진언수상록 81) 과시욕의 저 끝에는 댓글:  조회:148  추천:0  2018-06-22
                                                        과시욕의 저 끝에는                                                                     진 언        다종다양하고 형형색색의 잡다한 인간의 욕망중에서 소유욕이 우선이라면  버금으로는 표현욕이라 할것이다. 표현욕은 식욕처럼 본능으로서 자신의 생각과 감동을 표현하지 않고는 못견디는 생물로 진화된것이다. 표현욕이 없는 인간은 거의 식물인과 다를배 없다. 표현욕은 고차원적 심미감정의 표현욕을 비롯해서 다종다양하다.       그러나 표현욕과 자신을 자랑하거나 뽐내여 보이고 싶은 과시욕은 별개의 문제이 다. 과시욕의 기본바탕은 허영심이다. 허영심은 대체상 류행어로 되여있는 세가지 척 (체)으로 표현되고있다. 즉 없어도 있는척(체), 모르면서도 아는척(체), 못나도 잘난척 (체)으로서 과시욕은 그냥 체체체 세가지 법보로 대활보한다.     비틀어지고 저질적인 표현욕이 밖으로 삐져나올 될 때 과시욕이 된다. 인간은 욕망없이 발전할수 없다지만 과시욕은 자신이 현재 살고있는 양상을 자랑하고 뽐내지 못한다면 비단옷 입고 밤길 가는것과 같다고 생각하기에 자기과시야말로 개체생명의 동력이요 인생의 보람이라 여긴다. 요는 본분에 맞지 않는 과시욕으로서 남들과 달리, 혹은 남보다 더 멋진 인생을 산다는것을 드러내려는 비정상심리이다.     마침내 과시욕이 서렬화되면서 수자에 매달리게 된다. 학생은 시험점수, 어른들은 로임액수, 아빠트도 면적의 다소, 재산의 규모, 사업실적 등 모든 평가기준이 수치로 환산되고 어릴때부터 수치에 의한 서렬이 사람들이 의식화되였다. 서렬의식은 자연히 비교의식을 유발하고 마냥 앞자리를 향해 경쟁하는 에누리없는 사회구조를 형성했다.     없으면 없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못나면 못난대로 소신껏 사는게 오히려  마음이 편치않게 되다보니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진체 해야 하고 남들보다 더 유식한체 하여야 하고 출중하게 더 잘난체 하려는 비교우위의식이 과시욕의 리유일진대 그렇다 고 환골탈태나 하는것이며 본래보다 인격력량이 급증이라도 되는것인가? 열백번도 아니다. 아닐뿐만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을 원래보다 형편없은 인간으로 만든다.     남의 평판을 매달려 살아가는 리유는 내심 무엇인가 부족하게 느껴져서 그 모자 람을 채우기 위해 별작(농촌사투리)을 쓰는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펄쩍 뛸것이다. 몸에 걸치는것으로부터 마냥 뽐내고 싶어서 한결같이 명품을 따지고 남보다 더 비싼 옷을 입고 고급신을 신어야만 고귀한 티가 나고 유달리 돋보일것이니 과시욕의 체현 이야말로 자아가치실현이라고 생각하는것은 참으로 못난 궁리이다.    주위의 이목에 매달리다보니 허장성세 해야하고 자신을 나타내기 위하여 천방백계를 다하는 인간의 심성이고 보면 리해될듯도 한데 과시욕은 백해무익할뿐이다. 례하여 관내의 어떤 관리가 교통사고가 난 현장에서 눈예 띄는 고급시계를 차고 팔뚝을 내흔들다가 예민한 네티즌의 눈에 걸려 그만 호박씨를 까고있던 밑구녕이 드러나서 철창행을 한 과시욕의 주인공도 있고 사무실에 최고급담배를 쌓아놀고 피우며 재세를 부리다가 일패도지한자도 있으니 과시욕은 인간심령의 쓰레기가 아닌가?     누군들 과시욕과 등을 지고 살랴만 과시욕에 미쳐 돌아가는 자들은 참으로 허무맹랑한 동물이라 아니 할수 없다. 스스로 더 내세울게 없다는것에 안달복달하게 되면 멈추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광기를 부리는 인간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광대춤을 추고 있는것같아 민망스러운데도 그 자신은 모르니 구제불능이다. 죽기전까지도 과시욕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은 제멋에 놀아대지만 기실 고달프고 불쌍한 인생이다.    요즘 인터넷마당이 시끌벅적하게 된 과시욕의 기관이 나타났다. 9월 11일 하북성《과학기술학원》의 동사장 주호진(周虎振) 씨가 군사훈련을 하는 신입생 수천명 을 운동장에 줄세워놓고 열병식 흉내를 내여 네티즌들의 빈축을 사고있다. 주씨는 흰색차에 올라서서 “학생들 안녕하십니까?”,“학생들 수고가 많습니다”라고 웨치 는 거동은 그야말로 기관이라 아니할수 없다. 난쟁이의 키자랑인가?     하긴 인구가 많은 국토라서 이런 과시욕의 절경은 문제의 학원만은 아니다. 일찍 안휘신화학원의 석수라는 원장이 “열병차” 에 올라 위엄을 떨치자 2007년에 산동성 과학기술대학교장이, 2008년에 화남농업대학교장이, 2010년에 남경의 3강학원교장 등 대단한 위인들이 자신의 존안과 위엄을 과시하였더랬다. 도토리 키재기인가, 고등 학교판 “산채열병(山寨阅兵)”이라는 장거는 경악케 하고있다.     권력이란 천성적으로 과시욕을 배태하고있는지라 대학교들에서만이 아니라 어떤 국유기업, 사영기업의 로반들도 “열병인이”박혀있는데 신입사원영접, 기업창건기념일 등에서 그들이 위풍당당함을 과시하는 좋은 기회로 활용하였다. 기업같은데 그러는것은 다 제멋에 겨운 작태라고 치부할지라도 대학들에서 그러는것은 제멋도 아니다.     고등교육이 행정화된 성과인가? “산채열병”이 풍조가 되였는데 그런 대학교 어른들은 자신이 설자리 앉을자리를 모르고 있거니와 학생이 주체라는 의식이 없기에 권세를 떨치려고 권력봉을 휘두르며 만인지상의 진미에 도취되지만 기실 다리부러진 장수가 성안에서 호통치는게 아니라면 이불안에서 활개짓하는 셈이다. 법도에도 부합되지 않는다.《중국인민해방군대렬조례》에 열병식에 대해 명확하게 해석하고 권한을 규정해 놓고있다. 무릇 어떤 대학교에서든 “열병”할 권리가 없는것이다.     이런 기관을 보고 어떤 감수가 있었다고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하나? 황소앞에서 배 크기를 자랑했다는 개구리가 련상되고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 가랭이가 찢어졌다는 속담이 떠올려진다. 빗나간 과시욕은 범국민적인 웃음거리만 남겼을뿐이다. 이렇듯 인간의 과시욕은 불필요한 가동작을 낳기도 한다. 권본위주의란 허풍을 떠는 비속함도 고유하고 있었던가? 원숭이가 아무리 사람흉내를 잘 내여도 사람으로 진화 하지 못하듯 흉내를 내봐야 허세이다.     순진한 학생들앞에서 여느 대학총장보다 잘나고 더 위세당당함을 뽐내고 싶던들 비길바가 따로 있고 흉내낼게 따로 있는법이다. 황차 고등학교에 령도신분이라면 특히 나의 행위가 “우러러” 받드는 학생들에게 행위의 규범이 되게 처사하는것이 기본자세인데 영광의 위인사표(为人师表)에 별스러운 선두주자로 되려는것인가?    위인사표가 무어냐? 교원이 심령으로부터 작풍에 이르기까지, 언행으로부터 거동에 이르기까지 모두 학생의 모범이 되여야 한다는것이 위인사표이다. 그런데 언감생심 흉내면서도 “나는 이런 사람이란 말이야!”, “나는 이렇게 산다니까!”라고 하는듯 어깨를 잔뜩 높이는데 다른 사람의 감수를 알은체 하지 않는것은 자사자리고 반대로 다른 사람의 감수에 너무 올인하면 자기 학대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 스스로 생각하는것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한 스피노자의 말을 명기할 필요가 있다. 과시욕의 만족이란 입으로 불구어놓은 고무풍선과 같다. 아롱다롱한 꽃풍선을 둥둥 띄워놓고 우주비행선이나 날린듯이 짝짝꿍치는것은 개구쟁이들의 희열이다.     도둑놈  범죄자들도 고급아파트에 살고 명품을 걸치고 비싼 차를 굴리면 품위와 격이 높아지는 지금의 인정세태라지만 본분에 맞게 처신하면 그로서의 인격가치가 매겨지는데 왜 부득부득 자신을 분장하려들가? 금은 그 자체로 빛나고 옥돌은 자랑하지 않아도 제값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야명주는 어둠속에서만 빛뿌린다. 과욕도 인간심리이지만 백해무익하다. 백해무익한 일을 사서 하는것은 멍청이들뿐이다.                                                        2015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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