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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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장 문학예술흔상미학                                             제1절 문학예술흔상의 특성 1, 문학수용리론의 연혁 대략 1960년대 이후 문예학에서 문학의 수용과 영향의 문제와 관련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였다. 이런 리론적사고의 중심은 문학작품의 내용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작품의 수용문제와 수용조건에 대한 문제로 이동하였다. 력사적인 문학관찰방법의 측면에서 볼 때 독자에 대한 관심은 문예학의 사회적기능 자체를 비판적으로 점검해 보는 동기가 된것이다. 작가, 작품 그리고 독자들간의 관계를 대화관계 그 자체로 파악하려는 문학수용리론은 문학은 독자를 위하여 존재하며 독자를 통해서 생명력을 얻고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긍정한것이다. 만델라코프는 문학을 통한 삶의 변형가능성에 대한 믿음속에서 “행동하는 사상가를, 혁명적비평가를 기대할수 있으며 리론에서 실제로 나아가는 랑만주의자들의 행진을 확인할수 있다.”고 하였다. 문학적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자면 작가, 작품, 독자 이 세가지 계기가 갖추어져야 한다. 문학접수란 전적으로 심미범위내의 열독, 흔상활동을 가리킨다. 문학접수는 문학소비의 현실의 련속이자 고급상태로서 문학소비의 최종적완성이고 가치실현의 확증이다. 문학흔상이란 바로 흔상주체가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체험하고 재창조하는 정신활동이다. 심미교류활동은 독자와 작자의 교류, 독자와 작중인물의 교류, 독자와 다른 기타 독자들사이에서의 교류, 독자와 작품속에 펼쳐진 자연이나 사회, 전인류적교류 등이다. 2. 문학흔상의 기대시야 문학적대화가 시작되기전 독자는 자각적이거나 비자각적인 어떤 심리상태에 처하게 되는데 접수심경이라 한다. 이런 접수심경속에 기대시야라 부르는 열독심리지향이 산생된다. 기대시야는 접수자가 접수과정에 들어가기전에 이미 가지고있던 접수객체에 대한 기대, 혹은 리해전의 심리상태라고 할수 있다. 독자들의 선험, 경험의식, 습관, 취향, 기호, 상식, 교육, 심미규범 등은 모두 기대지평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문학접수는 기계적반응이 아니다. 흔상과정에 독자의 기대시야와 텍스트사이에 흔히 순향적상응과 역향적좌절 이 두가지 정황이 수시로 나타난다. 시대의 발전과 문학환경의 변화에 따라 텍스트는 각양각색으로 등장하며 그때마다 독자들은 “새로운 지평”에 부딪치게 된다. 기대시야에는 작품의 예술형식과 심미특질 등에 기대를 가지는 문학적기대와 작품의 생활내함과 사상의의 등에 기대를 가지는 생활기대가 있다. 그리고 자기에게 어떤 유익점을 줄수 있겠는가 하고 미리 예산하고 흔상에 림하는 가치기대도 있다. 독자가 작품의 보다 심층적인 의미, 정감의 경계, 인생태도, 사상경향 등에 대해 기대하는 의미기대가 있고 열독경험 기대시야도 있다. 열독경험 기대시야는 개체성기대시야와 집체성기대시야로 나누어 본다. 전자는 일반독자의 기대시야이고 후자는 전문비평에 종사는 특수독자들의 기대시야이다. 문학흔상의 고조에는 공명감, 관념의 일치성, 정감경험의 동조, 의지와 념원의 접근과 친밀성 등이 있다. 이 친밀성은 작가의 텍스트의 요람을 마련해 준다. 3. 문학흔상의 규정성 작품구성원소를 분석할 때 흔히 세가지 규정성에 부닥치게 된다. 첫째, 작품의 허구성이고 둘째, 작품의 심미적정감선이며 셋째 독자의 접수실현성이다. 이상의 세가지 규정성으로부터 작품구성의 기본흐름선이 풀려나온다. 이 흐름선상에 여섯개 원소가 있는데 현실생활→심미대상→창작과정→문학문본→독자접수→사회실천이다. 전반 문학접수의 특징은 간단히 말해서 개체성, 감성특질, 자유성, 언어의 매개성이다. 아래에 흔상활동의 특점을 알아보자. 1) 문학흔상에서의 심미희열 예술향수는 반드시 객체예술작품에 대한 관조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예술향수를 느낄 때 흔히 객체 자신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객체의 자극에서 산생된 감정, 정서로써 향수를 느끼게 된다. 이것을 “내부집중”이라고 한다. 문학적대화후에 재음미하는 정서적반성과 사고이다. 심미재창조과정에 감상주체는 한방면으로는 자기의 본질적력량(리상, 의지, 정감, 능력)을 실현하고 자아존재의 가치확인에 만족을 느끼며 다른 방면으로감상주체 자신이 새로운 예술경지에 빨려들어가서 인물형상과 운명을 같이하면서 도취되여버린다. 얻은것은 돈으로 살수 없는 예술희열이다. 2) 문학감상주체의 차이성 문학감상ㅡ예술접수활동은 어디까지나 시대에 따라, 지방에 따라, 독자의 차이에 따라 차이가 있게 되고 사람의 선천자질, 생활경력, 사회분공, 주관노력 등 개체의 심미수양으로 하여 차별이 있게 한다. 한부의 작품을 감상할 때 평론가가 얻는 미감체험은 보통독자와 현저히 다르다. 심미취미는 다음과 같은 특점이 있다. 첫째, 심미취미는 주관애호의 형식으로 표현되므로 애호, 정취의 풍부함과 결핍함 등 차이성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주관선택과 편애를 배제하지 않는다. 둘째, 취미판단은 추상적리론인식이 아니며 또한 적라라한 도덕개념도 아니다. 심미취미는 심미실천속에서 형성되는바 력사발전의 산물로서 시대와 민족, 사회제도와 계급 등의 제약을 받는다. 또한 심미주체인 그의 개인생활능력, 문화소양, 흥취, 애호, 심리 특점 및 사유방식의 영향을 받는다. 체르늬쉡쓰끼의 정채로운 론단이 있다. “상류사회의 귀부인들은 편두통을 즐겨하지만 농민들은 건강미를 좋아한다.” 심미취미의 계급경향성을 말하고있다. 심미취미는 심미감수와 심미리상과 융합된 일종 심미심리의 표현형식이다. 류협은 ≪문심조룡. 지음≫에서 “강개한자는 거슬리는 소리에 찬탄하고 속에 감추는자는 세밀한것에 펄쩍뛰고 지혜가 옅은자는 아름다운것을 보면 마음이 비약하며 기이한것을 사랑하는 자는 기괴한것을 놀랍게 듣는다.”라고 쓰고있다. 주체는 성격, 기질에 따라 각자 심미취미와 애호가 표현된다는것을 알수 있다. 문학흔상은 흔상주체를 창조한다. 작품의 기대시야와 작품의 력사시야가 일치하지 않을 때 독자는 자기를 반성하게 되고 독자의 사상관념, 정감태도 및 심미취미 등에 조정, 개변을 가져오게 되여 새로운 기대시야를 가지게 된다. 피아제의 “동화설”이 성립되는 동시에 그에 순응 혹은 거부감이 생성됨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현대독자들의 흔상취미는 각양각색이여서 더 곤혹스럽다. 4. 문학흔상의 의의 일체 우수한 작가들은 모두 독자들의 감상요구와 취미를 존중하였다. 고골리도 자기의 작품을 발표하기전에 명시인 루꼬브쓰끼를 청하여다 새로 쓴 극본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루꼬브쓰끼에게는 원래 오침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듣고듣다가 그만 코를 골며 굳잠에 빠져버렸다. 그가 잠에서 깨여났을 때 그를 책망할대신 “당신의 깊은 잠이 곧 이것에 대한 가장 훌륭한 비평이였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극본을 뻬치까속에 처넣었다고 전해지고있다. 문학작품의 모종 류형 혹은 형식특징에서 인기되는 기대지향인 문체기대도 있는데 이런 지향은 특정된 문체가 자신이 바라는 모종의 예술운치와 매력을 가지고있으리라는 희망을 의미한다. 작품속에 특정된 형상에서 인기되는 기대지향도 있다. 이 기대는 독자가 처음 접촉하는 형상과 정경을 희망하는것을 의미한다. 독자의 흔상과정은 열독주체의 능동적해석과 재창조과정이다. 대사막에 외로운 연기 곧추 피여오르고 강하에 지는 해 쟁반같고나.  왕유의 이 시구에서 새외풍경의 웅대함과 장려함을 읽게 된다. 독자의 각이한 해석은 심미적창조의 작용에서 온것이다. 동화(同化), 감정이입은 문학흔상 과정에서도 진행된다. 이런 경지에 들어서면 작가나 독자는 구별이 안되고 서로 공감하는 가운데 작가보다 독자가 더 상위에서 작품을 제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이렇듯 흔상판단은 론리적판단이 아니라 심미적이므로 이런 심미감각은 정신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정신세계로 나오는 고상한 생명활동이 된다.
31    제 3절 현대주의서사극 댓글:  조회:4880  추천:21  2007-09-15
제3절 현대주의서사극 1. 현대주의서사극의 개념 현대서사극이란 이 곁가지는 1920년대 독일의 시인이고 극작가이며 연극개혁가인 브레히트(Brecht) 로부터 세상에 나왔고 리론적연극적개화도 그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서사극은 관객이 극중사건이나 인물속에 몰입되는것을 반대하면서 극과의 거리, 불연소상태를 주장하였다. 서사극은 관객이 극중사건이나 인물속에 적극적으로 몰입되는것을 반대하면서 극과의 거리, 불연상태를 주장하였다. 관객은 무대에서의 사건이나 등장인물과는 밀착해서는 안되며 랭정하게 객관적으로 무대를 대하여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대처할수 있는 판단력을 길러내는것이라 하였다. 관객은 그가 무대우에 보고있는것은 단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것임을 깨닫고 비판적으로 거리를 두고 구경하게 될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서사적,비연극적 연극은 관객이 지금 보고있는것이 현실의 환상이 아니라 인간행동을 과학적정신으로 제시해주는것이고 연극은 연극일뿐 실제현실이 아님을 관객들에게 상기시키는 여러가지 고안장치를 통하여 얻어지는 거리감과 소외효과에 바탕을 둔다. 서사극은 전통극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간주하던 감정교류, 감화작용, 카타르시스와 사건의 시작과 그 해결보다 리성적으로 관람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를 주장하였다. 2. 서사극의 발생 독일의 표현주의연극은 그 주제의식이나 형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지만 단명했다. 표현주의희곡에 대한 공통한 인식은 그것이 매우 엄격한 반리얼리즘 연극이라는것이다. 사회정치문제에 초점을 두었던 이 표현주의연극이 쇠퇴하자 대신 등장한것이 서사극이였다. 연극적환상을 일으키는 전통에서 벗어난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드라마를 좌익운동을 위한 사회적,이데올로기적인 토론장으로 발전시켰다. 그의 가장 중요한 리론서는 ≪연극을 위한 작은 지침서≫였다. 그의 극리론의 본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극리론이 관객들이 보고있는것을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로 믿게해야 한다는것을 전제로 하는 반면 진정한 맑스주의드라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제를 피해야만 한다는것이다. 서사극은 표현주의연극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시작되였고 각별히 브레히트의 경우는 자신의 서사극과 표현주의연극과의 차별성을 리얼리즘의 성취정도에 두었다고 할수 있다. 결국 브레히트에게 있어서 문제는 리얼리즘이였던것이다. 서사극이란 용어는 그것을 쓰는 연출가에 따라 뜻을 달리해왔는데 시간과 장소의 일치를 지키지 않고 이야기되는 설화로 생각하고 있었다. 서사극은 감정이입적이라기보다는 리성적이며 사회적, 정치적주제에 대한 보고서여야 하며 리얼리즘으로부터 자유롭고 그 내용은 완전히 공개되여 관객의 검토를 가능케하는것이였다. 이렇게 서사극의 양식과 개념을 구축해가면서 새 양식에 걸맞는 새로운 기법들을 실험하였다. 그 기법들은 후에 서사극을 완성시킨 브레히트에게 거의 수용된것들이였다. 그 기법들은 다음과 같다. …독립된 설명적장치로서 영화가 리용되였으며…여러가지 영상 이미지…환등기와 프랑카드 그리고 게시판 등이 극의 분위기를 위해 혹은 배경으로 사용도고… 회전무대, 트레드밀, 엘리베이터, 전동화된 다리, 상하이동식무대 등을…증폭된 음향과 음악…확성기와 탐조등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3. 서사극의 목적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중심으로 하여 서사극은 사회비판과 사회개혁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비판과 개혁을 이룰수 있는 하나의 예술적인 대안으로서 서사극이 존재하는것이다. 즉 비판적인 태도가 예술적인 태도일수 있다는것이 서사극 리론의 요점이며 비판적인 태도는 궁극적으로는 사회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집행성을 띤 비판을 의미한다. 서사극은 복잡한 내용과 사회적인 목표를 가진 지극히 예술적인 연극인것이다. “인간은 돌을 내던질 때 왜 그것이 달리 안떨어지고 그렇게 떨어지는가를 알고있지만 그 돌을 던지는 인간이 달리 안던지고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네.” 브레히트는 인간의 사회적행동의 동기에 대한 인식을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었고 또한 일어난 사회적사건에 대한것만을 보여주는것이 목적이 아니었기때문에 “우리가 예감한것도 보여주어야지요.”라고 형상적으로 천명하였다.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연극은 줄거리에서 보여주고있는 인간관계의 력사적현장이 허용하고있는 감정이나 통찰, 충동을 가능케 하는 연극이 아니라 사고와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력사의 현장을 변경시키는데 기여하고있는 연극이다. 이것이 브레히트가 만들어낸 서사극의 목적이였다. 이것을 떼놓은 서사극은 이미 서사극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비판의식을 상실한채 형식과 기법만이 남은 서사극, 그리고 정치의식만이 란무하여 예술성을 상실한 내용만이 껍데기로 남은 서사극은 이미 서사극이 아닌것이다. 결론적으로 서사극은 브레히트가 추구하는바 사회비판과 실천에 대한 지향과 예술에 대한 지향이 통일된 결과물로서 남는다. 따라서 서사극은 당연히 자체의 예술적인 완결을 위해 그리고 예술적실천을 위해서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세계의 변화 가능성을 부각시키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우리가 드러내 보여주려고 하는 인간들사이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비춰 줄 불빛을 향하여 계속 전진하고있다.” 고 브레히트는 단호하게 선언하였다. 4. 서사극의 주요임무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상술한바와 같이 관객에게 연극에서 묘사되는 세계를 변화가능한것으로 보여주는것이였다. 이것을 서사극에서 나타내기 위하여 그는 서사극에만 고유한 범주를 만들어내였다. 여기서는 비극의 목적으로 설정한 카타르시스가 비극이 공포와 련민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을 모방함으로써 관객을 그것으로부터 정화시킨다는 점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관심거리가 된다. 이 카타르시스는 특수한 심리적작용을 통하여, 즉 관객이 배우가 모방하고 있는 인물들속으로 감정이입되여 그들처럼 느낌으로써 이루어진다. 따라서 브레히트의 희곡은 감정이입을 통한 극적환상을 관객에게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에 대한 관객의 작용을 무관계화시키는 연극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다. 그리하여 일반 희곡적연극과 서사적연극이 자체의 특징으로 구분되고있다. 1) 희곡적연극, 서사적연극 무대는 하나의 사건을 구현하며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한다. 관객을 사건속에 몰아넣고 관찰자로 만든다. 관객의 능동성을 소모시킨다. 관객의 능동성을 일깨우고 감정을 일으키며 관객에게 결단을 강요한다. 관객에게 체험을 전달한다. 관객에게 지식을 전달한다. 관객은 줄거리속에 감정이입된다. 극적환상이 주요도구로 되고, 론증이 주요도구로 되며 감정을 축적시키면서 인식의 단계까지 몰고간다. 이 연극속에서는 관객이 단지 자기 자신을 연극속에 내여맡긴채 같이 경험하고 자연의 일부분이 되여버리는것이다. 이런 희곡적연극은 연극의 상연에 있어서 “제4의 벽”이라는 개념을 상정한다. 이 “벽”안에서 연극은 극적환상을 만들어내는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연극을 할 때 무대에 벽이 세개만 있는것이 아니라 4개있는것처럼 즉 관객이 앉아있는 곳에 제4의 벽이 있는것처럼 연기를 한다. 어떤 사건이 무대위에서 일어나고 우리 인생에서 정말 일어나는 일이며, 저쪽에 관중이 앉아있는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게 하고 또 그 느낌을 고수해 나아간다. 제4의 벽을 두고 연기를 한다함은 관객이 없는양 연기하는것을 말한다.” 이렇게 연기를 하는 경우, 관객은 극적환상을 갖게 된다. 즉 능동적으로 연극에 참여하는 존재가 아니라 “관객은 아무도 자기를 알아본체 안하니까 무언중에 자신이 극장에 와앉아있는것이 아니라고 가정한다.” 즉 “관객은 열쇠구멍앞에 앉아있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 이렇게 하여 관객은 극적환상을 지닌 연극에 피동적존재가 된다. 그러나 “배우가 직접 관객과 접하게 되면 그는 이미 살아있는 인물로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단순한 보고자로 변하게 된다는것이다. 즉 서사적연기의 목적은 배우의 연기가(사회적상황에 대해) 자기가 이야기를 던지고있는 관객들과 더불어 토론을 벌리는 토론장을 열게 하는것이다. 그것은 결국관객이 극적환상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주는것이다. 2) 배우의 자세 서사적연기의 목적은 배우의 연기(사회적상황에 대해)가 자신의 이야기를 체험하고있는 관중들과 더불어 토론을 벌리는 토론장소로 되게 하는것이다. 그것으로 관중들이 극적환상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사회에 대해 의식하도록 일깨워주는것이다. 배우는 자신의 자세 즉 자신의 사회적태도 혹은 기본적인 성향을 관중들에게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이 “자세”라는 말은 브레히트의 중요한 미학개념중의 하나이다. 브레히트는 “자세란 몸짓, 손짓으로 리해되여서는 안된다. 이것은 강조하거나 설명하기 위해 취하는 동작이 아니라 총체적태도와 관계된다. ”고 해석하 였는데 그 자신의 자세는 또 인간상호간에 이루어지는 사회적인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세를 제시함으로써 그 사회의 특성을 표현할수 있다고 해석 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세적언어”는 언어의 자기표현이 아니라 사회적인 행위를 강조하는 현실의 실제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한다는것이다. 서사극에서는 서사극의 목적과 범주의 연극적실현을 위해 몇가지의 기법을 사용한다. 1) 낯설게 하기 서사극은 낯설게 하기 수법으로 엮어지는데 낯설게 한다는것은 브레히트의 문학리론의 중추적범주로서 서사극의 기본구조를 이루는 개념이다. 서사극에서 낯설게 한다는것은 우선 당연하고 잘 알려져있는 자명한 사실에 대해 놀라움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것을 의미한다. 즉 생소화효과는 묘사하려는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눈에 띄게 하고 설명이 필요한 것으로, 당연하지 않으며 자연스럽지 않은 것으로 보이게 하려는 기법이다. 생소화효과는 모든 일에 수긍하는 관중의 몰입하는 대토를 비판적인 대토로 바꾸어놓는다. 생소화효과상요의 전제조건은 무대와 관객석에서 모든 “마슬작”요소를 말끔히 거두어내고 “최면술”에 걸릴수 있는 여건을 없애는것이다. 이런 생소화효과로써 브레히트가 이루려는 목적은 일컬어 “력사화”이다. 그는 낯설게 하기를 력사화라는 개념과 련계시켜 설명한다. 브레히트의 연극리론에서의 력사화란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과거의 력사로 옮겨놓는것이 아니라 바로 특수하기 때문에 무상한 어떤 사건의 성격을 의식화하는것을 의미한다. 생소화와 력사화는 상관되는 개념으로 된다. 2) 해설자, 설화자 해설자, 설화자는 원래 서사시나 소설에 등장하여 서사적작품을 독자에게 중계해주는 허구적인물로서 해석적서술의 구성요소로 된다. 브레히트의 극에서 해설자가 서사극적인 기법으로 사용되는것은 “코카시아의 백묵원”이다. 이 극에서는 해설자가 독립성을 갖고 나타난다. 다른 연극작품에서도 해설자가 있지만 이 극의 경우처럼 그렇게 독립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해설자는 관객에 비해 우월한 위치에 서서 사건전반에 대한 개관을 하고 이에 대해서 침착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음유시인과 같다.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리워지는 해설자는 무대와 관객석사이의 중개자이며 무대의 사건진행을 “우에서” 관찰하고 해설한다. 그는 그의 성찰을 직접 관객에에 호소하며 관객을 그의 관찰에 끌어들인다. 즉 해설자는 생소화효과를 유발한다. 3) 노래 희곡에 있어서 독특한 요소는 노래이다. 그는 노래에 대하여 설명하는 곳에서 대화로 이루어지는 희곡의 내면적인 차원과 해설하는 노래의 차원이 분리되여야 한다는것을 역설하고 무대상의 배렬, 조명의 교체, 제목 등을 통하여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이 기타의 다른 희곡진행과 시각적으로 구별되도록 류념해야 한다면서 노래가 “제시의 자세”로 불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희곡에 불리우는 노래는 극에서 행하는 역할에 따라서 몇가지로 분류된다. 례하여《사천의 선언》에서 관중들을 향한 노래들은 해설적기능과 비유적인 성격의 형태로 나타난다.《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에서는 노래자체가 희곡과 내재적으로 련관되고 일반화되여 해설역할을 한다. 브레히트희곡에 노래는 그 기원을 고대희랍극의 함창, 함창곡(코러스)에서 찾을수 있다고 하였다. 브레히트의 희곡에 쓰이는 노래는 관중들을 일깨워 관중들로 하여금 연극적사건에 몰입하는것을 방지하면서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볼것을 요구한다. 4) 서언과 발문 서언은 고대희랍극에서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수많은 희곡에 여러 가지 변형으로 적용되고있는 기법중의 하나로서 브레히트의 서사극에 쓰이는 서언도 이런 전통을 계승한것이다. 그 이런 발문은 서언과 연관되는 형식적인 부분이외에도, 관객에게 무대상의 예술세계에서 찾을수 없는 해결책을 현실에서 찾을것을 요구한다. 5) 관중을 향한 대사 연극에서 제4의 벽의 제거는 배우가 관객의 존재를 인정하고 관객에게 말을 걸수 있다는 전제조건이 된다. 관객을 향한 대사는 희곡에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앞에서 말한 노래가 그 하나이다. 관중을 향한 대사는 방백이나 독백과 비슷하나 브레히트는 “관객을 향한 대사”가 방백이나 독백처럼 애매하지 않고 뚜렷하도록 요구했다. 6) 극중에 극과 재판장면: 극중극이라는 희곡형식은 브레히트의 전 희곡작품에서 쓰이는 기법중의 하나이다. 극중극은 사건진행을 중첩시켜주기때문에 관객은 연극적사건을 이중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렇게 극중극은 생소화효과를 내는 중요한 서사적기법으로 하나이다. 대표적으로 쓰인것은《코카시아의 백묵원》과《사천의 선언》이다. 7) 장면과 내용의 설명 대부분의 브레히트의 희곡은 각 장면마다 간단한 제목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세한 내용설명이 붙어있다. 이러한 제목이나 내용설명은 막에 투사되거나 현수막을 이용하여 연극적으로 실현된다. 하여 이끌어내고 내용을 요약하며 바깥세계의 사건을 사적인 령역으로 이끌어들인다. 연극적으로 제시될 내용을 미리 이야기해주는 설명이라는 서사적기법은 사건에 대한 긴장을 해소시킨다. 관객은 “무엇?”보다는 “어떻게?”라는 진행에 관심이 쏠리게 된다. 8) 관객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주기 서사극에서는 공개적으로 보여주기가 있다. “비유극의 서술자는 자기의 비유극에 필요한 모든것, 사건경위를 합법적으로 진행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모든것을 공개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주는것이 좋다. 즉 비유극의 무대장치자는 비유극을 만드는 도구가 되는 조명등, 악기, 가면, 벽, 문, 계단, 의자, 식탁 등을 공개적으로 보여준다. 브레히트의 창작과정에서 작용한 근원적인 요인으로서의 현실을 파악하는 방법과 현실묘사의 방법이 주목받았다. 보다싶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극에 대한 몰입, 즉 감정이입을 정신적 정화와 동등한것으로 보고 극적긴장이 관중들로 하여금 극에 몰입하게 하였지만 브레히트의 서사극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극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감정의 교류, 동화작용, 카타르시스, 사건의 시작과 그 결말과는 달리 극에서의 리성, 판단, 객관성을 주장했다. 브레히트는 자신의 극작품과 공연물에 다른 서사적 기법들도 많이 사용했다. 관객들이 극행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을 막기위한 또 다른 방편으로 이따금 극중 장면들이 막이 오를때 앞으로 전개될 사건을 나타내는 제목을 제시하기도 했다. 노래는 대개 플롯이나 등장인물에 대한 내용을 전달하기보다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것이었다.   그가 살던 시기의 정치적 불안으로부터 그의 서사극은 출발하고있다. 그는 그의 극작품을 보는 관객들이 연극을 통해 어떤 정치적메시지를 수혈받고 이후 행동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후기의 비평가들은 사실 브레히트의 서사리론에 대해 비판적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연극을 보면서 관객의 감정이입을 어떻게 연극 자체가 통제할수 있겠는지에 의문을 갖게 되였고 브레히트 자신도 그러한 감정이입을 완벽하게 통제했다고 정확하게 밝힐수는 없었기때문이다. 어쨌든 연극의 주체자는 연출가도 배우도 대본도 아닌 바로 관람객들이다. 브레히트는 자기의 리론에서 이렇게 서술하고있다.“리얼리즘적인것은 사회적인 인과관계의 체계를 밝히면서 지배자들의 관점이 지배자들의 관점이라는 점을 폭로하며 인류사회가 처해 있는 가장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포괄적인 방안들을 마련하는 계급의 관점에서 글을 쓰며 발전의 계기를 강조하며 구체적이면서도 보편화를 가능하게 하는것이다.”  
30    제 2 절 현대주의소설론 댓글:  조회:4385  추천:22  2007-09-14
                                             제2절 현대주의소설론 1.현대주의소설의 산생 현대소설의 산생은 력사적근원과 사상의식방면에 근거를 두고있다. 특히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친 특정된 시대에 자산계급전통 리성에 회의를 가지게 되면서 방황하고 고민하고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 반역적인 현대주의사조가 점차 만연되기 시작하였다. 20세기의 소설의 주요한 특성과 경향은 실존의 문제들에 대한 반성적질문으로부터 출발하고있다는 점에서 19세기의 소설들과 결정적으로 구분되며 반소설, 분노하는 젊은이들, 비트 제네레이션, 또한 최근의 메타소설, 포스트모더니즘소설, 해체소설이라는 소설의 경향까지를 아울러 포괄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작가들은 생활의 표면에 만족하지 않고 생활의 리면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려 하였다. 제임스 죠이스의 “의식의 흐름”과 프로이드의 “심리분석”학설은 이런 새로운 문학추세에 사상리론적인 기초가 되였고 추동력으로 되였다. 하여 현대주의 문학이 사실주의문학을 대체하고 20세기 문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만큼 서방현대파소설의 출현은 전례없이 많은 류파들의 분쟁으로 하여 눈부신 국면이 나타났다. 그중 대표적인것으로 쇼펜하우에르와 니체의 유일의지론과 권력의지론, 베르그송의 생명직각주의,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및 싸르트르와 까뮤의 존재주의 등이다. 그후 후기상징주의, 표현주의, 미래주의와 초현실주의 등이다. 그래도 가장 주된것은 영국을 중심으로 전구라파에 퍼진 “의식의 흐름소설”이다. 소설의 의의와 결구는 더욱 다원화되고 개방되였다. 그리고 사상과 심미의의상에서 본다면 후현대파소설에는 전통소설속에 있는 그런 웅대함과 숭고함이 적어졌으며 현대파소설속에 그런 허무와 추상과 황당성이 적어졌다. 대신 현대파철학적탐색과 사실주의의 풍부한 내용과 결합되여 일정한 발전을 가져왔는바 특히 후현대파소설은 진일보로 소설예술의 현실생활공간을 넓혀갔다. 하여 현대소설창작연구에서도 착안점이 달라질수밖에 없었다. 2. 현대주의소설의 특징 1) 상징수법 현대의식에서 상징은 일종 예술이고 창조이며 새 관념의 추구이고 탄생이였다. 상징의 예술매력의 표현은 왕왕 독특하고 완정한 형상체계를 기초로 하고있는바 뜻이 풍부하고 깊어서 한눈으로 간판해낼수 없다. 현대의식중에 상징은 곧 예술형상과 주체관념, 리상의 결합, 대천세계로부터 주체의 시적정서와 몽상의 명확한 대응물을 찾는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예술상징이 매진한 출발점이였다. 현대의식속에 상징은 대체상 다음같은 몇가지 풍격을 내포하고있다. 우선 상징관념은 일정한 철리성을 가지고있다. 다음 시적정서와 철리는 유기적으로 융합되였고 예술적추상이 상징수법속에 침투되여있다. 상징은 일종 표현수법만이 아니라 더욱 예술적인 사유로, 세계를 파악하는 방식으로서 시적정서와 철리성 인소를 내포하고있다. 상징자체는 단순한 관념 혹은 철리사상의 예술부호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독립된 예술경지이며 시적정서와 철리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예술생명이다. 때문에 소설에서 상징은 흔히 발전변화의 과정속에 있으며 바로 그로해서 일종의 류동미, 동태미를 과시한다. 현대파의 상징수법은 주관적인 수의성이 큰바 왕왕 개인의 직각과 특수한 감수에 의거한다. 례하면 마취시켜 수술대에 뉘인 병자로 황혼을 상징하는데 독자들이 터득하기 어렵다. 이들은 직각으로 사상을 표현하여 사상을 직각으로 환원시킬것을 주장한다. 그들은 사실주의의 전형화를 반대하고 직접 감정을 표달하는 랑만주의도 반대하면서 구체형상으로 내심심처의 사상감정을 표달할것을 주장한다. 하여 이미져리, 은유, 몬따쥬 등 수법으로 사상을 직각으로 환원시켜 추상으로 하여금 사상의 외화가 되게 하려한다. 2) 황당수법 황당수법이란 그 의미가 넓은 미학개념인바 표현수법의 한가지로 간주되고있다. 황당의 심미의미는 흔히 예술적과장, 변형, 환상과 풍자와 긴밀히 련계되여있다. 황당수법은 사물을 극단적이고 엉뚱하고 괴이한 지경에까지 확대하는 수법이다. 고명한 소설가는 이런 황당수법으로 사물의 본질을 밝힌다. 황당수법은 서술자와 독자의 한계를 타파하고 그들간의 구별을 뒤섞어놓는다. 그들은 처음으로 기교에 대해 중시하면서 실험성문본을 요구하였바 전통적인 이야기에 비해 더욱 생동해졌다. 각도와 시야가 열리였으며 전통적인 이야기성을 타파하고 전통시각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황당수법이 예술미의 일종 표현형태이긴 하지만 오직 황당수법만이 미적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기실 황당수법으로 창작한것은 현대파작가의 발명이 아닌바 사실주의와 랑만주의 작가들의 거작에서 일찍 널리 운용되였다. 례하면 고골리의 ≪죽은 넋≫, ≪코≫, 검찰관≫ 등에서 주요한 정절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마크트웬의 ≪주장선거≫라든가 ≪왕자와 거지≫에도 황당성분이 아주 농후하다. 황당의 표현형태는 크게 세절의 황당성과 정절의 황당성, 성격의 황당성이다. 예술품격은 대체상 네개방면에서 체현된다. 황당성과 진실의 통일, 론리와 비론리의 통일, 추상과 구제성의 통일, 리성과 비리성의 통일이 그것이다. 황당파소설의 심미특징을 비유한다면 웃음거울속에 세계를 보는것과 같다. 독자는 그속에서 놀래고 신기해하고 흥분되여지면서 또 다른 일종의 맛을 느끼게 된다. 이는 기괴하고 희귀한 정신적웃음거울로서 물체적웃음거울과도 달리 곡절적이고 다변하는 형태속에서 생활의 어떤 본질적특징을 반사하는바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키고있다. 황당함과 진실의 통일에서 과장과 변형은 불가결의 예술수단이 되여진다. 그것은 엉터리가 아니며 임의대로의 장난이 아닌것으로서 그것의 생명력의 기초는 의연히 예술의 진실성이다. 황당파수법의 소설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특징을 가지고있다. 우선 론리와 비론리의 통일로서 비론리적묘사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소위 비론리성이란 곧 질서의 전도 즉 사물의 무질서상태를 가리킨다. 비론리성에는 시간의 전도, 인과관계의 전도, 현실과 비현실의 전도, 비애와 환희의 전도 등등이 포괄된다. 황당파소설의 정절은 보통 비론리성의 기초우에서 건립되는게 관례이다. 황당파소설에서 예술적추상의 성분은 기타 류형의 작품에 비해 더 많다. 한것은 황당파소설에서 묘사대상의 대다수가 객관세계속의 불합리한 현상, 사회생활속의 각종 페단이기때문이다. 작자는 황당한 형상과 언어로 그것들을 풍자, 질타하고있으며 모종 인생견해와 철리적사고를 전달한다. 황당소설에서 예술추상은 물론 철리적의미에서의 순수 추상화가 아니라 작가가 생활속에서 발견해내고 얻은 모종 심미적의미로서 창작과정에 예술형상부각속에 침투된다. 세번째로 리성과 비리성의 통일이다. 황당소설에서의 상당히 많은 비리성인소는 제재의 내용에서 결정된다. 작가가 비리성적장면을 쓸 때 리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생활속의 비리성의 표현을 모방성적으로 묘사하지만 작가의 두뇌는 맑아있고 황당사유를 하지 않는다. 3. “의식의 흐름소설” “의식의 흐름소설”이란 20세기초 영국에서 산생하여 구미각국에 류행된 “의식의 흐름”이라는 창작수법으로 전통적인 소설창작방법에 도전해 나선 이른바 “반소설”이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명칭은 미국의 심리학가 제임스. 죠이스의 인간의 의식활동도 흐르는 물과 같다는 주장에서 기원된다. 그는 의식이란 흩어져있는 쪼각들이나 굳어진 사슬이 아니라 “사상의 흐름”, “의식의 흐름”, “주관생활의 흐름”으로서 한갈래 긴 강물처럼 부단히 흐른다고 인정하였다. 인간심리의 심층속에 흐르는 의식의 흐름에 좇아 기술해나가는 독백과 고백체가 곧 현대성을 의미한다. 그후 카프카, 포크너 등 영미작가들은 “의식의 중심”이라는 수법을 “의식의 흐름” 이라는 기법으로 발전시켰다. 이 비론적인 내심독백에 복무하는 표현기교는 전통모식을 타파해버렸는데 그로해서 반플롯, 반캐릭터라고 한다. 이런 관점으로 인물의 심리활동을 묘사하기에 인물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인물을 부각한다. 이 방법의 출현은 서방현대문학의 일대 변화로서 창작수법상의 변화뿐만아니라 현실에 대한 표현이며 인물에 대한 새로운 리해방식으로 되여졌다. 사람들은 인간의 심리가 그들이 바라던것처럼 그렇게 순결하고 광휘롭고 위대한것이 아님을 발견하게 되였다. 그것은 왕왕 루추하고 기형적이며 심지어 변태적이였다. 그리하여 인간의 내심세계는 또 다른 끝없는 탐구대상이 되였다. 이 류의 소설의 특징의 하나는 독자를 등장인물의 의식속에 인입시키는 정서적소설의 기법이다. 이런 특징을 발전시킨 기교가 바로 인물들의 내면세계의 탐험려행ㅡ이른바 의식의 흐름수법이다. 기실 의식의 흐름기법은 인상주의수법이라 할수 있다. 이런 기법이 의식적으로 소설의 기교로 등장한것은 리쳐드손의 ≪뾰족한 지붕≫에서 시작된다. “의식의 흐름” 이라는 명칭은 미극의 심리학자인 제임스 죠이스가 제출한것이다. 그가 말하는 의식이란 흩어져있는 쪼각들이나 굳어진 사슬이 아니라 “사상의 흐름”,“의식의 흐름”, “주관생활의 흐름”으로서 한갈래 강물처럼 부단히 흐른다고 인정하였던것이다. 모종 의미에서 문학이 내재세계에로의 전환운동은 소설에서 서사기교의 심상치 않은 혁명의 표지였다. 전통소설에서 서술시각은 전지전능인데 반하여 근현대소설에서는 심리를 위도로 하고 언어를 경도로 그물을 엮으면서 독자들이 능히 인물의 의식속에 들어갈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의 서술은 더는 외부로부터 묘사하고 서술하는 서술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이야기하고있다. 그리하여 독자가 보는것은 인물의 행동만이 아니라 그의 의식의 흐름과정을 보게 된다. 서술의 과정도 인물의 심리시간으로서 기계적시간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 이런 서술시간의 계선도 파괴되고 소설은 원래의 조리성과 질서를 상실하였다. 사람들의 의식은 리성적자각의식과 비자각의식으로 조성되였다는것을 소설에서 보여주었다. 현대파작가들은 재래식의 단선발전의 서술결구로는 현대생활과 현대인의 내심세계의 복잡성을 제대로 표현할수 없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인물의 내면세계에로의 탐험려행과 발굴이 전례가 없었던것은 아니다. 례컨대 또스또옙쓰기나 레브 똘쓰또이의 소설들에서 내면세계에로의 접근이 시도되였는바 가장 현대적이라 할수 있다. “의식의 흐름소설”은 프로이드의 꿈, 수면, 정신분석 등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의식되지 않는 잠재의식이 마음과 정신의 심층에 있으면서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일으킨다는 관점과 “예술은 곧 꿈과 같다.”는 리론 및 베르그송의 “직관설”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의식의 흐름파”의 가장 유명한 작가들로는 제임스 죠이스와 버지니어 올프, 미국의 헨리 제임스, 윌리암 포크너 등이다. 죠이스는 대표작 ≪율리시즈≫에서 이야기줄거리나 사건의 묘사보다도 인간심리의 세세한 움직임을 치밀하게 묘사하였는바 이 류파의 고전적명작으로 추대되였다. “의식의 흐름파”는 인간의 내면세계의 해부로부터 인간을 파악하려 하면서 인물의 복잡한 정신활동상태와 심리활동을 파헤치여 거기서 생긴 심상(心象)과 표상을 그대로 그려내면서 외부환경과 인물의 언행을 착중해서 표현한다. 그들은 인간의 내심세계를 보여줌에서 작가가 전지전능의 시점에서 직접 서술하고 묘사하고 소개하는것을 반대하면서 인물의 의식활동이 인물자신의 내심독백이나 자유련상을 통하여 분식이 없이 그대로 표현할것을 요구한다. 작자는 인물들의 천만갈래의 복잡다단한 심리활동상태를 치중해 묘사하면서 그들의 몇십년간의 생활경력을 제시하였는데 인물형상 부각, 슈제트구성, 모순갈등의 해결 등 전통수법을 철저히 타파하였다. 버지니어 올프는 의식이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을 묘사하려면 슈제트설정이나 성격부각으로써는 불충분하다고 인정하면서 그 모범을 대표작 ≪댈러웨이부인≫에서 잘 보여주고있다. 소설은 주인공 댈러웨이부인이 남편과 함께 꽃을 사려고 도심까지 걸어가는 동안에 보고들은것에서 인기된 사고와 추억의 내용을 치밀하게 묘사하여 하루동안의 행동과 심리를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다보니 소설은 인물의 내재의식의 부단한 흐름으로 구성되였다. 미국의 포크너의 대표작인 ≪음향과 분노≫는 “의식의 흐름”을 묘사한 또 하나의 걸작이다. 소설은 미국남북전쟁후 몰락해버린 콤프슨일가의 조명을 통하여 남방노예제의 붕괴의 력사를 보여주려고 하였다. 그는 회억, 련상, 순간적인 잡념, 몽환경, 환각, 환상 등 순수 내재의식을 시간적질서도 없이 표현하고있다. 창작수법상 “의식의 흐름소설”의 다음과 같은 특점을 도출해 낼수 있다. 첫째, 황홀하고 알쏭달쏭한 심령세계를 전시하는것을 위주로 그려내는 소설이다. 문학은 응당 인간의 잠의식의 활동을 써야 하는바 작자가 소설에서 완전히 퇴출하여 인물의 잠의식활동을 표현할것을 주장한다. 그들은 소설은 외부적인물과 이야기를 서술하고 묘사할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자아의 주관감수를 전시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내심세계를 드러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기에 소설에서 일체가 인물의 의식을 묘사하는데 복종되는바 인간의 하의식이 적라라하게 표현되기도 하며 가장 저급적이고 가장 고급적이기도 한 부동한 의식활동을 시사하는것을 창작취지로 한다. 하여 아무 련관성이 없는 다른 사건이 시공간상,감정론리의 련계여부에 구애되지 않고 뒤섞여 나온다. 발자끄시대에는 시간속에서 인간이 완성되여가고 운명이 결정되였지만 여기서는 시공간관념이 무시되고 인간과 사회, 인간과 인간관계 등에 고유한 물리적인 련관성도 제거된다. 사실주의적 심리묘사는 의식의 흐름수법의 합리한 부분을 포섭할수 있지만 후자는 사실주의적심리묘사를 대체할수 없다. 둘째, 이 류파의 소설들에서는 전형인물의 성격부각을 외면하고 순수의식으로 인물형상을 그려내려 한다. 인물의 성장의 력사인 슈제트구성같은것은 뒤로 밀리고 이야기줄거리가 아닌 묘사자체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야기가 엮어지는것이 아니라 현재 시사되고있는 조건과 결과만으로 엮어진다. 작가는 소설에서 간섭을 적게 하기에 지위가 내려가고 독자의 참여성이 가강된다. 묘사대상에서도 군체적이거나 객관존재물의 배경속에서가 아니라 축소판에 지나지 않으며 묘사의 렌즈를 인간의 령혼속에로 돌린다. 하지만 그 인물의 성명, 성별마저 교대하지 않기가 일쑤이며 인물의 의식을 파내는것으로서 그 인물의 경력, 조우, 인간관계를 표현한다. 셋째, 주관성, 수의성이 강하다. 수시로 시공간의 제한을 타파하고 자유련상을 하는것이 특징이다. 창작수법상 내심독백을 채용함으로써 서술, 묘사, 평가의 수법을 포기해버린다. 소설은 흔히 주인공의 머리속에 각종 회억, 환각, 반성, 상상, 리상 등 의식들이 무질서하게 떠오르게 하기에 조약성이 아주 크다. 이런 의식의 흐름과정은 전통적인 심리묘사와 달리 의식과 잠재의식의 무론리적인 자유련속이다. 한편 자유련상도 련계성이 모호하거나 탈절된것으로서 은페적이기도 하다. 한갈래의 의식의 흐름이 설정될수도 있고 여러갈래의 동시적인 흐름도 설정될수도 있어 독자들에게 상상공간을 더 넓게 할애하고 형상의 립체감도 안겨주고있다. 넷째, 인간의 심리흐름은 물리시간에 따라 흐르는것이 아니라 심리시간에 따라 흐른다. 시간, 공간의 질서를 무시해버리기에 완정한 이야기정절도 없거니와 과거, 현재, 미래가 상호교차고 침투하기도 하면서 다층차적결구를 형성한다. 하나 혹은 몇개의 이야기를 토막 쳐서 주인공의 돌변하는 정서, 량극의 교합과 대비적감정에 따라 다시 조합한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현대파를 선호하는 작가의 눈에는 그런 소설적인물과 이야기의 현실적존재를 의심한다. 리유라면 종래의 소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인간의 의식을 투영시키고있기때문이다. 철학적추구, 심리적분석 등 수법은 현실 그대로의 현실을 침묵하게 하고 순수한 추상으로 변형시키고있다. 의식의 흐름소설에서도 상징, 암시, 내심독백, 자유련상 등 창작방법을 주요특징으로 한다. 의식의 흐름수법을 쓰는 작가는 착중점이 다르지만 소설에서 작가의 퇴출, 정절의 부재, 시공간교차와 심리시간 그 특징은 공통하다. 이런 기법의 소설에서는 작품속의 모든 내용이 한인물의 의식에 스칠 때에만, 그의 사상과 감정과 기억과 감각에 부딪칠 때에만 독자들에게 제시된다. “의식의 흐름수법”은 단순한 기법이라기보다 인간에 대한 리해방식이나 세계관 같은 문학의 본질적문제와도 깊이 관련된다. 하여 인간심리를 묘사함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으며 인간의 모습을 새로운 시각으로 투시하고 력사적인것, 전통적인것을 전부 부정함으로써 다른 한 극단에로 나갔지만 많은 유익한 점도 보여주었다. 4. 현대주의소설의 창작원리 1) 예술감각 흔히 소설창작은 예술감각에 의거한다고 말한다. 이른바 예술감각이란 심미화된 상상감각으로서 일반감각경험에서 오지만 그것을 초월한다. 철학상에서 감각이란 객관사물에 대한 인간의 두뇌의 개별적속성의 반영이다. 이런 감각은 “순화”를 거친 추상적의미상에서의 감각으로서 실제적감각경험과 거리가 있다. 작가의 두뇌를 아주 기민하고 령활한 사진기에 비유한다. 작가의 예술감각은 고립적이 아니라 늘 실제감수에서 출발하여 두뇌속에 대량의 정서기억을 인기시킨다. 따라서 이런 예술감각활동은 어디까지나 체험, 정감, 상상, 인식, 의념, 리지, 의지 등 정신활동과 융화되여 예술감각활동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발생적인식론의 관점에서 볼 때 매 작가는 자기의 독특한 심리결구를 가지고있다. 이런 심리결구는 생활, 사상, 학식, 문화예술소양, 창작재질이 오래동안 축적된 결과이다. 예술감각은 예술내용과 작가의 개성특점을 포괄하는바 감각대상에 대한 주체의 정감개입과 정서 체험에서 표현된다. 그것은 또 일종 지(知), 정(情), 리(理), 의(意)의 유기적결합인 “심리흐름”, “정서흐름”으로서 일반감각경험을 초월하여 감각, 직각, 련각, 통각에로 나가므로 예술지각이라 한다. 예술감각은 예술체험을 떠날수 없는바 감각속에 체험이 있고 체험속에 감각이 있다. 감각이 없는 체험은 헛된 체험이고 체험이 없는 감각은 기계적감각이다. 광의적의미에서 예술감각은 정감색체가 포함되지 않을 때가 없다. 즉 “내”가 사물을 볼 때 사물에 “나”의 정감이 응결되여있는데 모종 개성적성분까지 포괄되는바 미학상에서 정감이입작용이라 한다. 2) 현대주의소설의 기법 (1) 상상: 상상성은 작가의 예술감각의 심미활동에서 표현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예술품격이다. 감각은 상상의 기초이고 상상은 감각의 승화이다. 유고는 “상상은 곧 심도이다. 상상보다 자아심화를 하고 대상속에 더 깊이 들어가게 하는 정신기능은 없을것이다. 이는 위대한 잠수원”이라고 형상적으로 피력했다. 예술감각속에 상상인소는 감각경험중의 상상인소보다 의심할바없이 몇배나 더 많다. 추측과 상상의 본령은 풍부한 생활경험과 예술감각을 기초로 한다. 현대주의문학에서 자유련상은 일종 사유방식이 되며 다양한 표현방법을 융합시킨다. 제임스 죠이스의 ≪율리시즈≫는 련상방식으로 세시민의 몇십년간의 생활을 약 19시간내에 압축시켰는데 내심독백, 순간적감수를 유기적으로 융합시켜 대폭도의 비약을 완성한 현대주의 소설의 귀감으로 되고있다. (2) 자유련상: “자유련상”이라는 이 개념은 서방현대파 “의식의 흐름파”소설에서 빌어온것이다. 현대파의식의흐름소설에서는 인물의 잠재적이고 심층차적인 의식활동을 그리는것을 목표로 삼고 인물의 의식의 흐름을 순 내향적인 비리성묘사로 할것을 주장하면서 자유련상, 시간순서의 전도, 시공간교차와 몬따쥬수법을 대량적으로 쓰는것이다. “자유련상”은 소설창작에서 인물의 심리상태를 그리는데 늘 쓰는 방법의 하나이며 인물의 주관정서를 효현하는 예술방법으로서 직접 동태심리를 묘사하는 범주에 속한다. 이런 예술방법의 특점은 흔히 빈번한 내심영상의 채용, 지공정경의 교차와 인물의 심리속에 직접 들어가 현실과 회억, 내심세계의 부각과 생활정경의 유기적결합으로 시대절주감, 생활의 밀도와 용량을 가강하는것이다. (3) 변형: “변형”을 근근이 서방현대파문학예술의 독특한 창조와 발명으로 보는것은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기실 “변형”은 미학범주에 속하는 상당히 넓은 의미의 개념이다. 그는 특정된 내함을 가지고있다. “변형”이란 상대적으로 하는 말로서 생활의 원형을 떠난 비교는 변형이라고 말할수도 없다. “변형”이란 작품에 나오는 예술형상을 자연형태로 개변시킨것을 말한다. “변형”을 거친 예술형상은 생활의 본래의 면모대로 재현하는 재래식자대로는 그 가치를 평가할길 없다. 예술적변형은 상규적예술방법에 대한 돌파였다. 그것은 작가가 일정한 심미사상, 심미정취의 관조하에 작품내용의 특점과 창작주체의 내재적정서의 수요에 의하여 사람, 사건, 환경에 대한 파격적묘사일뿐이다. 작가는 주관감정의 표현수요에 의해 인물, 사건, 환경, 경물에 대해 비정상적인 상태로 묘사한다. 그는 객관물상의 자연형태를 개변시켜 표면상에서는 모순되는듯 하나 심층에서는 정과 의미가 통한다. 고대에도 신선과 마귀소설에서 흔히 변형묘사를 했지만 현대주의소설은 그것과는 다른 성질과 특점이 있다. 그는 외재변형으로부터 내재변형에 이르러 인물의 내심의 초창적체험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된다. 그들이 변형수법을 채용하는것은 주요하게 현실생활의 황당성이 사람들의 심령상에 조성해준 변태와 비틀림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변형수법으로 창조한 예술형상은 은유적상징의의와 비교적 큰 예술적내함을 가지고있다. ≪변형기≫는 자본주의사회는 인간의 개성을 억압하고 인간의 심령을 비틀어 놓는다는것을 폭로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진감시켰고 작가가 채용한 변형수법이 사람들에게 상당한 정도에서 경이로움을 주었고 그만큼 심미감화력이 례외적으로 대폭 강화되였다. “변형”이 상규적초자연형태의 돌파이지만 작품속에 예술변형을 인기시킨 결정적인소는 생활자체가 아니라 생활에 대한 작가의 부동한 사상정서와 기질이다. 작가가 예술대상에 대한 예술적변형은 대상의 본질적규정을 장악하는 전제하에서 진행하는것이지 임의대로 하는것이 아니다. 례하면 신화, 동화속에 미인어, 못생긴 새끼오리와 승냥이로파, 흰뱀 등도 예술적변형묘사이다. 카프카의 ≪변신≫이 세상에 나온것은 예술적변형묘사에서 새로운 개척인것은 사실이다. 이왕의 신화, 동화, 귀신소설에서 동물, 요귀, 마귀 등은 정상적사람들의 사상감정, 생활형태의 변형된 재체(载体)거나 모종 관념의 외각으로서 그속에 뚜렷한 비유성이 있었다. 그러나 ≪변신≫에 주인공은 한마리 딱정벌레로 변함으로써 작가는 그것의 비유성을 거세해버리고 사람이 정말 딱정벌레로 변한것을 묘사했다. 따라서 사람이 딱정벌레로 되고 딱정벌레가 사람으로 변한 혼합체였다. 이런 “변형”의 묘사법은 과거에는 없었다. 카프카가 상징수법으로 인간의 동화현상의 엄중성을 제시한것은 심각한 의의가 있다. 이는 해당사회가 낳은 정신적기형아였다. 현대주의문학 특히는 “의식의 흐름” 소설에서 흔히 쓰는 자유련상수법은 전통적문학창작에서 련상이 상사률과 접근률, 대비률을 좇아야 했던 리성적론리규범을 벗어났다. 그것은 작가의 비리성적심리활동을 빌어 어휘 혹은 이미지가 직각 혹은 환상을 경유해서 자발적으로 산생되게 하였으며 작가의 생각이 자유자재로 질주하게 한다. (4) 시공간, 인물: 시간과 공간에 대한 예술적처리는 작가와 평론가들이 보편적으로 중시하는 문제이다. 시공간묘사에서 빈번한 시공간교차의 채용은 인물의 심리에 직접 파고들면서 교대성문자를 적지 않게 절약해주었다. 하여 현실과 회억, 내심세계의 부각과 생활정경묘사의 유기적결합은 생활의 밀도와 용량, 시대절주감을 가강하여주었다. 그러나 창작실천가운데서 인물의 주관정서와 의념을 너무 강조한다면 비리성, 비론리적인 시공간교차와 주관임의성이 큰 의식의 흐름은 자연주의에로 나아가 인물의 전형형상과 전형성격부각을 도외시하는 극단에로 나갈수 있다는것도 보아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소설은 “시간예술”이고 소설창작에서 정절을 취소할수 없다고 할 때 시공간규률이 소설창작에 일으키는 작용을 무시해 버린다면 유해무익하다. 시간은 객관적인것으로서 길고 짧음, 빠르고 늦음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전의되지 않는다. 예술상상의 시공간정경은 어떻게 펼쳐져여야 하는가? 예술상상은 작가의 생활경험과 무관하며 시공간규률의 제약을 받지 않는것이 아니다. 예술상상은 그 자체가 규률적이므로 예술상상중에 나타나는 각종 시공간정경의 교차와 고치거나 잃는 현상은 상상 자체의 변환성과 조약성의 특점에서 결정된다. 이른바 “심리시간”이라는 설법은 비리성주의직각주의 철학가인 베르그송이 제기한것인데 가장 일찌기 “공간시간”과 “심리시간”이라는 개념으로 구분한 사람이다. 소설에서 이야기정절을 취소하고 가히 인물의 의식의 흐름을 소설결구의 주선으로 할수 있다고 하였다. 즉 “심리결구”를 소설의 정체결구로 삼는것으로서 이런 예술방법은 사실주의소설에서의 정절결구의 전통을 타파하였다. 그렇지만 예술방법은 만능이 아니다. 각종 예술방법은 자기의 특수한 표현력이 있고 자체의 부족점이 있기때문이다. 예술방법은 예술형식 범주에 속하는바 예술방법의 운용은 예술내용의 제약을 받기마련이다. 자유련상은 인물성격과 심리론리와 등질수 없는바 반드시 인물개성을 표현하는데 복무해야 한다. 현대파소설에서는 환각과 환각묘사수법을 잘 쓰는데 환각은 일종 특수한 심리상태로서 환상과는 다르다. 로씨야의 작가 피싸레브는 “유익한 사업의 추동력”이라고 하였다. 환상은 미래지향의 창조성적상상이다. 환각은 심란한 심리상태에서 나타나는 시각상의 환상이다. 환각의 내함은 협소하지만 일종 독특한 심리상태로서 고금중외의 각류파의 작가들은 “환각”묘사를 매우 중시해 왔다. “환각”묘사방법은 두가지이다. 한가지는 인간의 환각을 순주관적이고 순내향적인 고립적심리활동으로 간주하면서 이런 “환각묘사”묘사에의 예술촉각으로 인물의 내심세계에로부터 현실의 심처에로 뻗혀 생활의 본질을 제시하는것인데 이런 환각묘사는 그 내함이 풍부하고 심미가치도 제고된다. 례하면 안데르쎈의 동화 ≪성냥파는 처녀애≫에는 대량적인 환각묘사가 있다. 물론 현대파작가들의 인물에 대한 환각묘사와 사실주의작가들의 환각묘사는 사상내용상에서나 표현수법상에서나 뚜렷한 구별점이 있다. 사실주의작가들은 생활의 재현, 세절의 진실, 정절전개의 합리성을 중시하지만 현대파작가들은 감정표현, 주관의식의 과장을 중시하며 소설에 흔히 황당한 장면이 잘 나타난다. 현대주의소설의 창작기법상 다음과 같은 특점들을 참조할수 있다. 첫째. 창작주체의 시각문제에서 “애상세계”속에서 자기를 긍정하면서도 서술주체의 개성적대화는 은연중에 현시하고 인물의 내시각으로 작자의 주관정서의 감각과 기질을 표현하는데 착상은 기발하다. 둘째. 시공간처리에서 시공간의 순서 즉 서두와 결말이 맞아떨어지는 평탄한 서술, 묘사방법을 포기하고 빈번한 시공간의 교차, 인물의 심리에 직접 뚫고 들어가거나 현실과 회억, 내심세계해부와 생활정경 묘사의 유기적결합을 제창하고 있는데 좋은 수법이다. 셋째, 전달방식의 흐름에서 출발한 생활의 밀도, 용량에 대한 압축, 시대적절주감을 강하게 하기 위한 의도적작업 및 대담한 비약에서 오는 문자의 대량적인 절약 등 기법들을 잘 리용하여 자체에 고유한 허점들을 미봉하고 사람을 묘사하는 수단의 폭을 넓혀주면서 예술표현의 천지를 풍부히 하고있다. 현대에 류행된 기법인 “낯설게 하기”는 원래 로씨야형식주의자들에 의해 처음 사용된 용어로서 예술은 바로 자동화된 일상적인식의 틀을 깨고 낯설게 하여 사물들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주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낯설게 하기란 그런 점에서 오히려 형식을 난해하게 하고 지각에 소요되는 시간을 연장시킴으로써 한 대상이 예술적임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양식인 셈이다. 하지만 마음대로 언어조합하기, 유희화, 이미지 혹은 사항배렬의 무질서한 혼합, 의미적정체의 절단과 탈절, 비중심화 등 결합이 전면에 드러날수 있다. 어떠한 예술형식이든 반드시 발전, 변화하는바 “매개 시대에 모두 일종의 소설형식이 성행되기 마련으로서 이런 소설들은 실제상 일종의 질서를 설명한다.” 그런데 비합리적으로 인물의 주관정서와 의념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비리성적 무리론적인 시공간교차와 주관적임의성이 주체가 된다면 자연주의기법이 가지는 약점을 고스란히 안고 전형형상의 부각을 홀시하고 말것이다. 3) 거짓된 구조 소설이라는 존재방식의 특수성에서 주목되는 말의 하나가 허구이다. 소설에서 “거짓말”은 생명의 본질이기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소설은 거짓말에 의존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쎄르반떼스나 허균의 시대에서나 소설의 거짓된 구조에는 하나도 변함이 없다. 카프카의 ≪변신≫이 어느 정도로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지는 모를 사람이 없다. 그러나 소설이 ≪거짓된 구조≫라는 사실에 편견을 가지면 현대주의소설을 리해할 리유와 근거를 잃게 된다. 바로 우리들의 삶의 비의(非义)스러운 생활의 진면모를 까밝히고 몽롱하고 불투명한 세계경험의 선명한 륜곽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꼭 “거짓말”에 의거하지 않을수 없다. 그런 점에서 소설에서 “거짓”은 생활, 인생에 대한 탐구의 도구이고 발견의 수단이 된다. 진실로 믿어지게 하는 “거짓말”이야말로 현대소설의 생명이고 본질이다. 그리하여 아름답고 거짓없는 진실이 되는것이다. 이렇듯 허구의 진실성이란 상상속에 정감체험속의 진실, 고도로 추상화된 일반성을 가진 진실성이다. 때문에 소설의 진실성은 세절적사실의 정확성으로 판단할것이 아니라 “전체 허구로 된 소설의 세계와 우리 자신이 경험한 상상의 세계와의 비교속에서 판단되여야 한다.” 그런데 슈제트의 강화로만 독자들을 흡인하려 기도한다면 가능하게 슈제트가 성격론리와 심리론리에 부합되는 인물의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지에 의해 엮어져 슈제트와 인물사이에 탈절현상과 반론리적현상이 산생될수 있다. 첫째, 착중하여 인물의 주관정서, 개성기질을 부각하며 소설에 거의다 서정화, 시화를 체현한 공통한 특점이 있다. 둘째, 정서의 토로는 다른 한 측면으로 성격력도를 가강하는것으로서 력도가 없으면 정서를 토로할길이 없다. 셋째. 민속풍습, 지방특색에 대한 묘사로써 시대의 풍운변화를 보여준다. 넷째, 이런 소설들은 취재각도가 참신하고 독특하며 결구가 깐진바 평범한 일상생활속에서 깊이 있는 발굴을 기도하면서 독자들에게 인물의 심령의 창문을 은근히 열어보인다. 어떠한 예술형식이든지 필연코 자체의 갱신을 전제로 발전을 도모한다. 소설은 시대의 산물이다. “매개 시대에 모두 일종의 소설형식이 성행되기 마련으로서 이런 소설들은 실제상 일종의 질서를 설명한다.” 당전 리론상에서 표현은 예술적이지만 재현은 비예술적이라고 론의되는데 기실 명작들에는 생활의 재현과 감정의 표현이 시종 혼연일체로 되여있어 그 계선을 가르기 어렵다.
29    제 3장 현대주의문학의 실제, 제1절 현대시론 댓글:  조회:3633  추천:23  2007-09-14
                                   제1절 현대시론 1. 현대시의 의미 현대시란 20세기라는 세계적상황에 수반하여 타나난 시를 통털어 이르는 말이다. 세계적정신적상황이란 니체의 사상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등에 지배된 철학사유정황을 말한다. 20세기 이전까지 인간의 정신상황을 투시하며 흐르던 합리적사고방식의 심연에서 마침내 허위를 독파하게 되였을 때 시인들은 현대성이라는 말과 만나게 되였다. 현대파시의 경우, 넓은 의미에서는 제1차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나타난 상징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등 여러 리즘을 포함하는 시들을 현대시라 부른다. 이런 시들은 세기말의 대표적시의 양식이였던 상징주의의 변용이거나 거부를 그 특성으로 한다. 이런 점에서 반랑만주의가 곧 주지주의라고 하였다. 광의적주지주의는 서구문명의 경우, 르네쌍스시대를 기점으로 종교개혁후 랭보의 의식 및 20년대 시운동의 공통한 특질을 지향해 왔다. 그것은 결국 죽은 인습의 손아귀에서 해방되였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전통, 신념, 의미의 상실을 의식화하는 개념이였다. 협의적의미의 주지주의는 시적인습에 대한 저항에 더 큰 비중을 두었는데 감정보다 지성을, 청각보다 시각을, 불명료보다 명료와 정확성을 강조한, 이름 그대로의 주지주의인 상징주의 및 이 주의에 영합하는 시들을 의미하였다. 19세기말 시학의 개념은 차차 달라지기 시작하였는데 쉘리나 말라르메나 발레리에게 있어서는 “시인이 꿈꾸는 시의 리상”을 의미하였다. 상징주의시인 들이 그러했는바 20세기에는 엘리어트와 파운드같은 시인들에게서는 상상력과 감정의 시학으로부터 구성의 법칙과 기술적책략의 시학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나타났다. 1950년대말기 현대시의 흐름에 파국적인 돌변이 일어났는데 바로 후 기주지주의, 일명 반주지주의라는 신주지주의 현대파시가 나타났다. 그러나 미국의 당대 문학비평가 M. H.에이브럼즈(M. H. Abrams)에 의하여 문학에 대한 모든 론의가 모방론, 실용론, 표현론, 형식론으로 규획되면서 작품과 대상, 작품과 독자, 작품과 작가, 작품자체의 내적관계에 따라 시를 론의할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제시되였다. 모방관점이란 원래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나타난것으로서 후에 복합개념으로 쓰인 문학관념이였다.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 세계에 사물들은 실상이 아니라 허상으로 나타난다. 수면이나 거울에 비치는 영상 혹은 훌륭한 예술작품의 세계가 이 범주에 든다. 결국 예술세계는 본질의 세계도 현상의 세계도 아닌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모방적관점에서 시는 자연을 반영하는 거울에 비유된다. 표현적관점에서는 시가 시인에 의해 새롭게 조합되는 하나의 대상이며 반드시 독자에게 어떤 실제적효과를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시를 자연이나 시인의 기술적측면 혹은 지식적측면에서 론의되지 않고 시인의 창조적정신능력이 직접적으로 표출된 시인의 내면세계가 주요한 론의대상이였다. 한편 당시의 문단을 지배하던 신고전주의시론에 불만하여 제기되고 후에 랑문주의문학의 골격이 된 영국의 랑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즈의 견해는 근현대적이였다. 그는 자기의 ≪서정민요집≫서문에서 시를 고요속에서 회상되는 강력한 감정의 자발적류출이라고 정의했다. 이것을 자발성시론이라 하였다. 류출이란 흘러넘치는다는 말그대로 당시의 직접적진술이라는 용어와 함께 모방적 관점과는 상반되는 관점이였다. 그는 시인은 시인들만을 위해 시를 쓰지 않고 인류를 위해서 쓴다고 했다. 시인은 우주속에 나타나는 현상으로서의 의지와 격정을 관조하기때문에 우주적인 격정을 창조한다고 했다. 시의 근원은 이제 더는 외부세계에 있는것이 아니라 시인 자신속에 있다는 표명이다. 이는 보다 현실적이고 진보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하여 시가 정서의 자발적류출이라는 워즈워즈의 정의에서 시인의 내면성이 더욱 중시되였고 후에는 영국의 철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의 독백시론으로 정립되였다. 그러나 영국의 비평가 코울릿지(Samuel Taylor Coleridge)에게서 시는 감정이나 보편적욕망의 표현이 아니라 시인의 종합적이고 마술적인 능력 즉 상상력의 산물로 요약되였다. 쉘리에게서는 시인은 비록 비리성적인 상상력에 의거한다해도 그 상상력을 통해 일상 세계의 뒤면에 도사리고있는 절대관념의 세계와 직접 접촉할수 있기에 실제에도 도달할수 있다고 하면서 시인은 은유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며 존재, 자각, 표현관계에서 나타나는 진선미를 리해하는 자로서 이 진선미는 어떤 경우에도 “파괴할수 없는 질서의 세계”이기에 이를 표현하는 시인은 새로운 세계의 립법자요 문명사회의 건설자이며 미래에 대한 예언자라고 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시란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이미지이다. 쉘리는 독자를 보이지 않는 음악멜로디에 매혹된 사람들로 규정했으며 시인은 하나의 나이팅게일(새이름)과 같은 존재로 보았다. 그는 어둠속에 앉아 향기로운 목소리로 자신의 고독을 즐기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시의 근원은 이제 더는 외부세계에 있는것이 아니라 시인속에 있음을 표명하고있다. 그리고 시로써 구체화되는 요소들인 시의 제재는 시인의 감정이고 시는 시인으 감정을 표현하는것이였다. 20세기 30년대 중국에서 산생된 현대파시는 보편적으로 프랑스의 상징주의시의 계발과 영향을 받은것이였고 동시에 리금발(李金发)을 대표로한 20년대 중국 상징파 의 모종 예술추구를 계승한것이였다. 30년대의 중국현대파시가 특별히 추구한것은 시창작에서 총체적으로 산생된 몽롱미였고 기특한 관념과 번다한 이미지결구시의 내함이였다. 현대파시인들은 특유한 청춘의 병태적심리로 혼탁한 세상에 대한 애탄과 불만, 항쟁심리를 표현하였으며 인생의 허무와 적막감 망연자실을 토로했다.《현대》,《신시(新诗)》《소아(小雅)》등 잡지들이 당시 현대파시인들의 주요한 진지였다. 대망서(戴望舒)가 30년대 중국의 “현대파시의 대표”였다. 그는 당시 서구의 문단을 한창 휩쓸던 상징주의와 모더니즘 등의 영향아래 나타난 현대파시를 이끌었다. 대망서는 서구의 각종 문학조류와 전통문학을 가장 지혜롭게 조화시킨 시인이라 칭송한다. 2. 현대시의 양상 모노 스피어즈는 자기의 주지주의문학론 ≪디오니소스와 도시≫에서 현대사회의 특성을 “단절”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사회의 관계, 나아가 인간과 신의 관계마저 그렇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소외”라고 불렀다. 현대인들이 보여주는 삶의 단절현상 혹은 소외현상이 현대시에서 어떻게 표출되는가? 현대인이 서있는 자리가 단절의 공간이라면 그 공간을 시인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형상화해야 하는가? 현대시속에서 단절의식은 스피어즈는 대체상 여섯가지 류형으로 제시한다. 첫째로 인간과 자연사이에는 어떠한 련속성도 없다는 인식을 주제로 한 형이상학적단절이다. “특히 예술의 경우 유기체와 무기체의 단절, 곧 인간과 우주의 단절은 자연 공포라는 심리적공포를 빚고 이러한 심리적공간을 견디기 위한 예술양식으로서 소위 추상예술을 낳는다.” (김재근 역 “휴머니즘과 종교적태도”≫에서 재인용함) 두번째 단절은 심미적단절이다. 심미적단절이란 예술과 인생사이에 어떤 련속성도 없음을 의미한다. 19세기만 하더라도 시인과 시의 화자 즉 현실적자아와 허구적자아사이에는 다른 단절이 없었다. 한수의 시에서 노래하는 자아, 시의 화자는 그대로 현실적자아는 곧바로 시인이였다. 그러나 19세기말 시인인 보들레르에 이르러서 현실적자아와 허구적자아의 분렬이 나타났다. 시인과 시적자아의 단절이 나타난것은 많은 시인들이 예술과 인생, 시와 현실사이에 극복하기 어려운 심연이 가로 놓여있음을 이 시대에 와서 똑똑히 깨달았기때문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인생을 모방한다고 말했지만 보들레르에 와서는 이미 예술과 인생사이에는 어떤 관계도 없게 된다. 예술과 인생이 단절된것이다. 때문에 그가 모방하려 한것은 인생이나 현실이 아니라 어떤 인공락원, 그야말로 도취와 꿈과 상상의 공간이였다. 나아가서 이러한 단절의식은 시인자신의 경우 자아가 두개로 분렬된다는 아픈 인식을 동반한다. 현대인의 자아분렬은 심미적단절의 측면에서는 현실적자아로서의 시인과 시적자아로서의 화자가 서로 무관하다는 인식을 토대로 하고있다. 리상의 ≪거울≫에서 보여주는 세계가 어떻게 시화되고있는가를 보기로 하자.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라오 내握手도받을줄모르는—握手를모르는 왼손잡이라오   이 시에서는 거울은 현실적자아가 분렬됨을 나타내고자 하였으며 거울밖에 자아와 거울속의 자아를 그리고자 한다. 그러나 단절을 꾀한 인위적인 리해의 장벽만이 독자를 마주한다. 네번째 류형은 시간적단절이다. 시간적단절이란 전통적시간관념에 대한 파괴를 의미한다. 20세기에 와서 많은 시인들이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계기성으로서의 시간이 아니라 동시성으로서의 시간, 시간의 공간화가 아니라 시간ㅡ공간의 상호확신이라는 개념으로 드러난다. 동시성 시간이란 과거ㅡ현재ㅡ미래의 계기적질서의 파괴를 의미한다. 리상의 ≪선에 관한 각서5≫가 이런 시간관념을 보여주고있다.   未来로달아나서过去를본다, 过去로달아나서未来를보는가, 未来로달아나는것은过去로달아나는것과同一한것도아니고 未来로달아나는것이过去로달아나는것이다. 扩大하는宇宙를 우려하는者여, 过去에살으라. 光缐보다도빠르게未来로달아나라.   다섯번째 류형으로 심리학적단절이다. 심리학적단절이란 소위 심리세계가 분렬됨을 의미한다. 심리세계가 분렬된다는것은 한 인격체로서의 자아가 스스로의 심리적동일성을 상실함을 의미한다. 시의 경우 감수성의 통합은 하나의 훌륭한 시적이미지가 보여준다. 여섯번째 단절의 류형으로 력사적단절이 있다. 력사적단절이란 반역주의적세계관을 뜻한다. 반역주의란 세계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을 등진 새로운 인식태도라 할수 있다. 지금이 바로 최후라고 인식하는 반역주의적태도는 흔히 종말론적사상 혹은 신화주의적구조속에서 파악하며 따라서 영원한 삶의 원형을 현재속에서 해독하고 그럼으로써 삶의 고통을 포용한다.   벌판한복판에꽃나무하나가서있소. 近处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热心으로생각하는것처럼热心으로 꽃을 피워가고있소.   이 시는 영원한 귀양살이 땅에 한그루 나무가 있고 그 나무의 한가지에 달이 걸려있다고 노래한다. 그러나 이런 감상력은 아무나 가지는게 아니고 전문 현대시를 연구하는 전문가나 가능하다. 해석은 과학적인식에 대한 도전으로 수용된다지만 수수께끼를 푸는것같다. 현대시의 이미지가 지성과 감성을 융화시킨다는것은 곧 꽃나무가 시의 흐름속에서 하나의 비유, 이미지가 될 때, 이미 거기에는 지적의미와 정서적의미 혹은 지적의미와 감성적의미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여 공존하고있음을 의미하며 바로 여기에 전통시가 미칠수 없는 시적매력이 있다는것이다. 그러나 공상가적인 시인의 일종 비현실적인 “문화적리념”일뿐이다. 3. 현대시의 구조 상상력을, 심미적능력을 지적륜리적능력보다 우위에 놓고있는 디드로에게 있어서 시란 애초부터 대상에 대한 진술이 아니며 자유자재한 은유와 아울러 음향을 사용하여 자신을 극단속으로 내던질수도 있도록 허용받을 감정의 운동이다. 이런 견해는 보들레르의 시에 의해 실현되며 “추상시”라고 부르는 시의 현대성의 근거로 된다. 랑만주의시에 대한 해석을 목표로 미래의 시문학이라는 개념을 구상한 노발리스에게 있어서 시는 일상의 삶에 대항하는 방벽이며 예감과 마술을 그 본질로 하는 시적인간들이 관습의 세계에 맞서서 노래하는 저항이다. 그러므로 시어는 전달이라는 목표가 없는 자족적인 언어가 되며 수학공식과 같이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고 그 자신으로서만 작용한다. 여기에서 현대시의 주요특징인 공작성의 개념이 생긴다. 정감이 아니라 중성적인 내면성, 현실이 아닌 상상력, 세계의 통일성이 아닌 파편성, 이질적인것들의 혼합, 혼돈, 모호함과 언어마술에 의한 매혹, 익숙한것을 낯설게 만드는 수학에 비유할만한 랭철한 작업방식, 이러한것들이 보들레르의 시론, 랭보, 말라르메와 현대시인들의 작품의 토대를 이루는 그 구조이다. 시인 보들레르의 특성은 무엇보다 시와 개인의 심정을 철저히 분리시켰다는데 있다. 이른바 “탈개성화”라는 미래의 발전방향은 보들레르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였다. 하여 ≪악의 꽃≫에 수록된 대부분 시들의 주제는 보들레르 자신의 경험적자아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성을 대표하는 중성적인 자아가 시창작의 주체가 되였다. ≪악의 꽃≫은 이러한 방식에 따라 건축공학적으로 구축되였으며 현대시에서의 형식의 힘을 극도로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말라르메는 예술적상상력의 본질은 현실의 탈형상화에 있다는 보들레르이후 정립된 견해를 총화지으면서 예술적상상력에 존재론적토대를 해명한다. 개념적인 설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절대적존재 혹은 무를 가장 단순한 사물들에 각인시켜 수수께끼를 만들어 버림으로써 낯선 령역으로 빠져든다 할지라도 령혼이 그앞에서 전률하게 되는 말과 형상에 의한 노래인 시가 탄생한다. 이들 시인들의 창작행위는 근대화과정에 대항하는 개인적인 생산양식 즉 물량화(物量化)가 되여가는 세계속에서의 질의 회복이고 합리화된 시장체계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수 있는 감정의 피난처를 마련함이며 삶의 파편화와 개인의 단자화에 대한 지향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과정의 내면화이기도 하다고 피력한다. (장희창역 후고 프리드리히 ≪현대시의 구조≫서론에서) 구조주의 독창성을 몇개 면에서 고찰할수 있다. 첫째로 언어라는 기호를 형성하는 두요소인 개념과 음성상징가운데서 음성상징만을 분리시키는데 이는 소쉬르에 의하면 언어적기호는 개념과 음성상징이 결합됨으로 성립되지만 이 두요소는 자의적으로 결합된다는것이다. 이것이 소쉬르의 언어적제1원리이며 음성상징은 오직 시간적으로만 전달되는데 선험적이라고 한다. 둘째로 음성상징 상호간의 조직원리를 규명하면서 비언어적기호체계를 탐구대상으로 하지만 이러한 비언어적모델이 우선이다. 셋째로 기호체계 즉 문학과 신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언어분석이 음운론과 통사론적류형이다. 구조주의에는 동일성구조, 상대성구조, 비동일성구조, 초현실주의적구조가 있는데 동일성구조에도 은유와 환유, 두류형이 있다. 은유와 환유에서 전자는 비교성을 내포하지만 후자는 접촉성을 내포한다. 은유가 나타내는 비교성에서 류사성이 본질이다. 동일성구조란 시적구조의 기본원리인 은유적구조가 나타내는 첫번째 국면을 말한다. 동일성의 구조를 기호로 나타내면 곧 A=B이다. A는 은유를 구성하는 원관념 혹은 취의에 해당하며 B는 보조관념 혹은 매체에 해당한다. 상대성구조란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변증법적구조를 뜻하며 은유적구조가 나타내는 두번째 국면을 지시한다.   례: 꿈에서 본 몇집밖에 안되는 화사한 소읍을 지나면서 아름드리 나무보다도 큰 독수리가 날아가는것을 보면서 래日에 나를 만날수 없는 未来를 갔다. 소리없이 출렁이는 물결을 보면서 돌뿌리가 많은 广野를 갔다.   동일성구조란 은유적구조가 나타내는 세번째 국면을 지시한다. 낱말이 어떻게 선택되여 결합되는가를 리해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서 이때 낱말은 비류사성 혹은 상반성의 원리를 기본으로 하여 선택되며 발산이라는 원리를 기본으로 결합된다. A≠B이다. 초현실주의적구조란 비동일성구조를 나타내는 가장 전형적인 시의 류형을 찾아내는것이다. 초현실주의시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명제는 고도의 전압을 나타내는 낱말의 발견이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것은 낱말들을 설명적인 련상이 아니라 계발적인 련상을 떠올리게 하는것인데 이것이 초현실주의시인들에게 있어서 시적이미지를 빚는 기본구조가 된다는것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선조인 르베디에 의하면 “서로 어떤 론리적관계도 없는 둘 혹은 그 이상의 요소들을 결합시킴으로써” 더욱 괴상한 이미지를 창조하며 오직 내면으로만 파악되는 두개의 조화될수 없는 사물들이 자발적으로 만남으로써 이루어지는 이미지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초현실주의적이미지의 가치는 류사성이나 등가성이 아니라 한 사물이 환기시킬수 있는 일련의 련상을 시인이 탈취함으로써 구성된다고 한다. 최초에는 황당한것같지만 시인은 궁극적으로 시로서의 진실을 드러나게 한다는것이다. 현대시의 류형과 이미지화를 살펴보자. 시의 속성은 곧 시적대상과 시인이 혼연일체가 되게 하는 근본요소이다. 시의 속성속에 지적이고 정감적이며 의미로움으로 현연되는 그 주체적견해와 색채의 강도와 객체성향에 따라 주지시(主知诗)와 주정시(主情诗)와 주의시(主意诗)로 분류되고있다. 시적대상에서 느끼고 전률하게 된 시핵의 폭발이 시의 생명이다. 그러나 주지시에도 정서가 포함되고 의지가 포함된다. 그것은 다시 등가성과 상이성으로 나뉘여진다. 결국 시적구조는 언어행위의 류사성, 상이성, 동의성, 반의성이며 결합기준은 린접성이다. 4. 현대시의 류형 1) 순수시 시에서 비시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시적인 차원을 개척하고자 한 시 즉 가고자 하는바가 절대적인 차원에 도달하고자 하는데 있다고 하여 절대시라고 한다. 발레리는 모든 예술이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는 전제아래 시로 완전히 음악화함으로써 순수시, 절대시 리념을 세우고자 했다. 좁은 뜻으로는 프랑스의 상징주의자들이 말하는 “의미가 완전히 배제된채 순수한 소리의 음악적 암시적 효과만이 있는 시”를 가리킨다. 넓은 의미의 순수시란, “일체의 사회적, 도덕적, 종교적 목적의식을 배제하고 오직 아름다운 서정의 세계만을 추구하는 시”이다. 2) 이미지즘(写象主义) 기실 이미지즘도 순수시의 한 례로 말할수 있다. 즉 상징주의자들이 순수시에 도움이 된다고 여겼던 모호성과 시사성을 이미지스트들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재현하는데 있어서 최고의 정확성에 대한 요구에 반하는것으로 보고 시의 본질을 구체적이미지에 두고 다른 특성들은 불필요하다고 본 점이 그것이다. 이미지파시는 간결, 집중을 중시하며 이미지로 감정을 약속시키면서 이미지로 사고하고 감각한다. 그가 추구하는것은 시인의 주객관을 시속에 긴밀히 결합시키는것 즉 응결로 시이미지를 창조하는것이다. 전통시론의 관점에서 시의 직접적인 목적은 진리의 전달 혹은 쾌락의 전달이다. 시가 지향하는 진리는 쾌락과 결부되며 과학, 력사같은 산문세계에서 획득할수 없는 그런것이다. 보들레르는 시의 목적은 진리나 도덕을 노래하는것은 아니라고 선언하였다. 이런 시에서 이미지는 곧 시의 령혼과 육체의 결합이지 “복장”이 아니다. 이미지는 시에서 문장속의 수사의 작용처럼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그런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완정한 유기체로서 곧 신경이고 대뇌이며 사지이고 혈육이면서도 령혼이기도 하다. 코울릿지는 “이미지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자체로는 시인의 특징이 되는것이 아니다. 이미지가 독자적인 본능의 증거로 되는것은 훌륭한 정열 또는 그 정열로 잠깨어진 일련의 사상 혹은 이미지 여하에 따라 시, 그 자체가 변할만큼 그 중요성을 가지고있을때뿐이다.”라고 주장하고있다. 이미지시가 이미지로 사고하고 감각하기에 “호흡하는것은 사상이고 사상인즉 신체”라고 한다. 감성과 사상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여 감성적매력과 리성의 빛발로 차넘친다. 이미지형성은 리성으로 실현하는것이 아니라 주요하게 직각으로 실현한다. 환언하면 론리사유와 개념으로 시를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미지는 생활로부터 출발하여 특징적인 형상을 찾고 작자의 주관적사상감정을 주입시켜서 시적이미지를 형성한다. 시인은 직각으로 미를 포착한다. 이미지파시는 상징시의 초기단계이지만 그것의 출현은 특수한 공적이 있는바 일부 정교하고 이미지가 새롭고 기이한 단시들을 써낸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설치한 계률에 오히려 속박당하여 주관감수를 토로하지 않고 현실을 건드리지 않을것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왕왕 어떤 의미적인 무게가 없고 짙은 생활내함이 부족하게 된다. 이미지는 어떠한 정형하에서든 하나의 사상이 아니라 융화된 사상으로서 활력을 갖고있다. 이런 복잡한 이미지의 류동과 침투, 융합에서 감각, 정서, 잠재적의식, 몽환경같은 이미지의 포착을 너무 강구하기에 상규적으로 시를 리해하던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난해시로 만든다. 이미지파시인들에게는 “공간, 시간”이 일종 장애이고 이미지형성이 오히려 “공간, 시간”의 해방이라고 간주하는데 독특한 창조적일면이 있거니와 자체의 국한성도 가지고있다. 3) 주지시(主知诗) 주지시란 시인의 창조본연의 미적가치생산의 원천과 기준이 지성(知性=理性=合理性)에 의하여 생성된다고 보면서 그 미적가치 추구욕의 목적성취나 목표달성이 지성에 의하여 가능하며 정서적인것이나 의지적인것은 부수적인것으로 보고 그 사물속에 잠재해 있는 새로운 가치(진리)를 생산하거나 발견하여 그 개체 사물의 이미지를 새롭게 가미하여 감명과 감동을 주는 시를 말한다. 주지시는 감각과 정서보다 지성을 강조한다. 시는 감정만으로는 되지 않고 소재와 언어를 처리하는 지적능력이 함께 작용해야 하므로 모든 시는 어느 정도 지적인 요소가 들어있다고 할수 있으나 그중에서도 특히 지적요소가 강한 작품이 있을수 있는데 이는 주정시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4) 주정시(主情诗) 개인의 주관적립장에서 감정이나 정서를 노래한것을 주정시라 한다. 주정시는 인간의 지성이나 리성보다도 감정 또는 감성을 움직이게 하는 시로서 서사시도 이에 속한다. 서정을 지고무상의 시라고 보는 시인이 많다. 김소월, 서정주, 박목월 등이 대표적서정시인이다. 창조본연의 리상세계는 어떠한 존재이든 생명체존재로서 상호간 심정으로 얽혀져있으며 이 얽혀진 심정의 인연의 끈으로 주체와 대상이 상호간의 사랑과 아름다움을 주고받으며 만물만상이 혼연일체화되여 나름대로의 감성의 증폭에 따라 기쁨을 나타내고있는 세계를 말한다. 때로는 바위도 웃고 나무도 웃으며 독자도 웃고 개구리도 기뻐서 뛰는 그런 마음속에 이루어진 자연세계를 말한다. 정(情)으로 인해 모든 존재가 생성, 발전, 변화하게 된다는것이다. 5) 주의시(主意诗) 주의시란 피조세계의 삼라만상의 개체속에 존재하는 지, 정, 의의 실체적속성중에 감정이나 지성이 아닌 의지를 존재작용의 주체가 되는 근본원리로 느끼고 창작된 시를 말한다. 지(知)란 사물의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여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고 정(情) 이란 그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여 소유하고싶은 사랑의 마음이 일어남이요. 의(意)란 그 소유욕을 도의대로 시적자기화의 완성이다 20세기 유럽의 현대시는 한마디로 수수께끼와 모호함으로 특징지어진다. 시의 모호함이 독자를 혼란시키는것만큼이나 매혹하며 갈피를 못잡게 하지만 그 말의 마법과 신비스러움에 강제적으로 끌려간다. 엘리어트는 시는 리해되지 않고서도 전달될수 있다고 하였다. 이런 불가함과 매혹의 만남을 불협화라 부르는바 불협화적인 긴장은 현대예술 일반의 목표가 되였다. 현대시에서 모호함은 고의적인것이다. 보들레르는 “리해되지 않는것에는 그 어떤 명예가 있다.”고 말한다. 몽타넬리는 더욱 랭정하게 말한다. “시의 본질이 리해시키는데 있다면 그 누구도 시를 쓸수 없으리라.” 이처럼 현대시를 리해하려는 자에게는 무엇보다 시의 모호함에 자신의 눈을 익숙하게 하라는 충고외에 달리 해줄 말이 없다고 한다. 현대시들에서 우리는 구체내용의 전달로부터 가능한 먼거리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목격하게 된다. 이렇듯 현대시는 사물 및 인간이라는 현실과의 접촉에 있어서 그것들을 묘사한다든지 또는 익숙한 시각과 느낌의 따스함으로써 다루던 방식을 포기해버렸다. 현대시는 그것들을 낯설게 만들며 변형시켜 버린다. 하여 시에 의해서 현실적, 공간적, 시간적, 객관적, 그리고 정신적인 질서로부터 해방되려 한다. 현대시는 종래의 의미와 인간성, 체험, 감상, 심지어는 시인 자신마저도 도외시한다. 시는 심정과는 다른 무엇이며 개별적인 감각들로 더 이상 분해할수 없는 순수한 주관성이 발하는 여러겹의 목소이자 무제약성이라 한다. 시창작에서 오랜 기법인 비유와 은유는 새로운 방식으로 다루어진다. 이를테면 자연적인 비유의 고리를 우회하고 객관적, 론리적으로 결합할수 없는것들사이의 비실제적인 결합들이 아무 주저심이 없이 나름대로 시도된다. 그런 시는 구체적인 전달내용은 없지만 어쨌든 언어이기에 그것을 대하는 사람을 매혹시키면서도 혼란스럽게 만드는 불협화음적인 결과를 안겨준다. 시의 완벽성은 명랑한 령혼에, 그 아름다운 형식은 련관의 영속성에 토대를 둔다. 그런데 이제 다른 류형의 시들이 나타남에 따라 다른 범주들이 제시되였다.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부정적인 범주들이였으며 게다가 내용적인 차원이 아니라 형식적인 차원의 범주들이 점점 우세한 지위를 점하게 되였다. 례하면 불안, 혼돈, 품격절하, 얼굴찌푸림, 진기함의 지배, 모호함, 격렬한 상상력, 음울과 흐릿함, 극단적대립으로부터의 분렬, 무에 대한 집착…그것에 뒤이여 방향성상실, 익숙함의 해체, 상실된 질서, 불일치, 파편적인 전도의 가능성, 라렬문체, 탈시화(脱诗化)된 시, 파괴된 섬광, 단절적인 형상, 야수적인 돌발성, 탈구, 난시적관점, 낯설게 하기, 그리고 스페인 시인 다마소 알롱소의 “지금 우리의 예술을 부정적인 개념들로써 명명하는것외에는 달리 다른 보조적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 등등이다. 시인은 말을 마치 건반처럼 사용한다. 창작은 테마상으로 우연에 의존하며 방법상으로는 대수학적추상성에 의존한다. 하여 정감이 아니라 중성적인 내면성, 현실이 아닌 상상력, 통일성이 아닌 세계의 파편, 이질적인것들의 혼합, 혼돈, 모호함과 언어마술에 의한 매혹, 익숙한것을 낯설게 만드는, 수학과 어깨를 견줄만한 랭철한 공작, 이런것들이 현대파시의 토대를 이루는 구조이다. 18세기에 리론의 서곡을 울린 디드로는 시에서의 음향역할이 회화에서의 색채의 그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둘사이의 공통점을 “리듬의 마술”이라고 칭했다. 이것은 객관적엄밀성보다 시각, 청각, 상상력에 더 깊이 호소한것이다. 명료함이란 오히려 해로운것이기때문이란다. 그러면서 “시인들이여, 모호해지라”고 웨치는데 그 의도는 시로 하여금 어둡고 요원하며 경악스럽고 비밀을 자아내는 대상들로 향하게 하는데 있다. 말라르메의 시의 본성을 감정 및 령감의 배제, 지적으로 통제되는 상상력, 현실성의 멸절 및 론리와 열정의 규범적질서파괴, 언어의 충동력조절, 리해가능성 대신에 암시, 문화의 종말기에 속한다는 의식, 인문주의 및 전통과의 단절, 탁월성의 표지로서 고독, 시의 창작과 시에 대한 성찰을 표현하려 하였다. 그의 시는 꽃병, 까치발, 테이블, 부채, 거울 같은 단순한 사물들을 소재로 한다. 이들은 탈사물화되고 부채속으로 말려들어가 불가시적인 긴장의 흐름을 담는 그릇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표상에 의해서 사물들의 의미는 예기치 않게 증대된다. 왜냐하면 저 불가시적인 긴장의 흐름이 그들속으로 파고들기때문이다. 세계의 단순한 사물들은 온통 비밀로 채워진다. 노발리스는 “모든 시작품속에는 혼돈의 미광이 가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창작은 테마상으로 우연에 의존하며 방법상으로는 과도한 명료성의 병을 앓고있는 일상세계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동화의 추상화작용과 일맥상통하는 대수학적추상성에 의존한다. 례를 들면 “록두색의 코고는 소리”라는 표현에서 “록두색”은 청춘의 색채이다. 원래 색채감이 나는 소리는 움직이고있는 생동한 감각을 주기마련이다. 그리고 색채에는 따스한 느낌을 주는것과 차디찬 느낌을 주는것이 있다. 그러나 디드로에게 있어서 시는 애초에 대상에 대한 진술이 아니였다. 노발리스의 리론에 따르면 시는 우선적으로 “소리”에 따르면서 부차적으로 내용을 싣고가는 길을 지시하는 언어자극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내용은 더 이상 시의 본래의 실체가 아니며 음향의 힘 그리고 의미를 넘어서 존재하는 떨림을 담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시는 자유자재한 은유의 창작과 아울러 극단적음향을 사용하여 자신을 극단속으로 내던질수 있도록 허용된 감정의 운동으로 되였다. 시에 대한 리해란 리상적인 경우에 있어서조차 오직 리해로서만 존재할뿐이다. 이에 반해 시와 독자사이의 접촉은 리해의 차원이 아니라 미적인 암시의 차원에서 성립된다. 보들레르의 등장으로 프랑스의 시는 전 유럽의 관심사가 되였다. 다른 랑만주의 주자들과는 다른 류의, 더욱 전위적인 사조들이 보들레르로부터 시작되여 랭보, 베를린, 말라르메를 관통하고있음이 곧 확인되였다. 보들레르와 함께ㅡ시적언어는 이제는 더 이상 시와 구체적인물사이의 통일에서 생겨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의미에서ㅡ 현대시의 탈개성화가 시작된다. 그는 “나의 시의 고의적비인간성”이란 말을 하였는데 그 의도는 시란 인간의 모든 가능한 의식상태, 그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것들을 우선적으로 진술할수 있다는것이다. 유명한 ≪악의 꽃≫의 대부분 시들에서는 자아가 진술의 주체이다. 현대성은 마치 금령과도 같이 그를 지배한다. 보들레르는 자신의 고통이 단순히 자기만의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내용상으로 볼때 ≪악의 꽃≫은 절망, 마비, 비실재로의 열광적인 비약, 죽음에로의 욕구, 병적자극이 유희로 이루어졌다. 보들레르는 형식을 통한 구제라는 말을 자주 한다. 례를 들면 “경악스러움조차 정교하게 표현하여 아름다움이 되게 하고 고통 또한 거기에 리듬과 질서를 부여하여 정신으로 하여금 평온한 기쁨으로 채워지게 하는것은 예술이 가진 놀라운 특권이다”라고 선언하고있다. 보들레르 자신의 본성이 불협화적이여서 부정적인것으로부터 또한 매혹의 대상을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가련함, 타락, 악, 어둠, 인공성 등의 매력적인 소재들을 서로 포착하는것이다. 이것들은 시를 새로운 방향에로 인도하는 비밀을 내포하고있다. 그것을 밝혀내는것이 현대파시의 미적희열이 된다고하는것이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을 저항에의 열정적인 욕구, 그리고 증오의 산물로 칭하면서 시가 신경쇼크를 유발하도록 권장하고 독자를 자극시켜 더 이상 리해하지 못하도록 한것을 자랑한다. “한때 기쁨의 무한한 샘이였던 시적의식은 이제 무진장한 고문도구들의 병기창이 되였다.” 시내부의 불협화는 또한 작품과 독자사이의 불협화가 되지만 독자의 심금속에서는 그처럼 감동적이다. 례하면 “더러운 위대성”, “붕괴된 그리고 매력적인”, “유혹적인 공포”, “검고 환한”같은 어휘상의 불협화들이다. 하여 공허한 리상성, 불확정적인 타자, 랭보와 더불어 더욱 불확실하게 되고 말라르메에게서는 무가 되며 그 자체내에서 선회하는 현대시의 비밀성, 이러한것들이 그에 상응하고있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결코 모호한 시가 아니다. 그리고 그의 시론은 매우 명료하다. 그리고 후에 곧 대두하게 되는 모호한 시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예전의 시들은 음향을 중시하는 경우에도 결코 내용을 희생시키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음향의 지배가운데서도 그 의미를 증대시키려고 했다. 언어의 음향요소는 암시적인 힘을 보유하고있다. 련상적울림에 동원된 언어요소와 함께 음향은 꿈과 같은 무한성을 열어준다. “잠에 취한 직공이 꿈을 꾼다.”라는 시구는 리해시키려는것 아니라 울려퍼지는 암시이고자 한다. 언어의 내재적인 자극들에 대한 집중이 시의 창작과정 자체를 규정하는것이다. 주제설정이 아니라 이러한 음향요소들로부터 불확정적인 의미가 생겨나는데 그 신비스러움은 말들의 핵심적의미보다는 음향의 힘과 부수적인 의미령역들에 의해 구체화된다. 이러한 가능성이 현대시의 지배적창작원리로 되였다. 시인은 이제 음향의 마술사가 되는것이다. 그것은 비전문적인 독자들에게는 분명 극복할수 없는 일종의 재난이 되였다. 현대시 자체의 반란은 과거에로 향하므로 전통을 파괴한다. 랭보는 “나의 우월성은 어떠한 감정도 가지고있지 않다는데 있다.”고 하였다. 그의 시에서 탈형상화된 현실소재의 모든 구성부분은 보통 감각적특성을 가지는 단어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런 단어군들은 객관적으로 결합이 불가능한것을 비정상적으로 결합시키기때문에 감각적인 특성들로부터 비실재적형상체로 나타난다. 랭보는 “나의 우월성은 어떠한 감정도 가지고있지 않다는것이다.”라고 말한다. 탈형상화된 현실소재의 모든 구성성분은 보통 감각특성을 가진 단어들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러한 단어군들은 객관적으로는 결합불가능한것을 비정상적으로 결합시키기때문에 감각적인 특성들로부터 비실재적인 형상체가 생겨난다. 그러므로 직관적으로 가능했던 형상들이 현대시에서는 문제로 된다. “거리의 두번 구운과자”, “자신의 배우에 서있는 왕”, “하늘의 코물” 등 이러한 형상들은 현실자체에 존재하는 특성들을 때로는 더욱 예리하게 드러나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그 기본방향은 현실을 향하는것이 아니라 파괴의 역동성에 있다. 즉 불가시적인 “미지”를 대변한다고 할수 있는 파괴의 력동성은 형상경계들을 혼란시키고 극단적인것들을 강제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현실성자체를 감각적으로 자극 받고 자극하는 미지의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례하면 하나의 붉은 기발이 “피 흘리는 고기의 깃발”로 지칭되기도 한다. 이런 이미지를 실제로 알기는 어렵다. 또 “별들의 숲에 떠오른 육고기꽃들”이라든가 “목재의 신발을 신은 목동의 시들이 정원에서 으르렁거린다.”든가 “옆방에서 램프가 선회할 때 마치 거울처럼 붉고 검은 도시들의 불결한 진창”이 모두는 감각적현실의 요소들이지만 수축, 생략, 새로운 결합에 의해 초현실성을 획득한다. 하지만 시는 그로써 몽롱시도 아닌 난해시로 되고말았다. 현대시에서 전제적상상력은 공간의 질서를 전도시킨다. 례를 들면 “마차들은 하늘우에서 달린다.”, “호수바닥에 살롱이 있고 드높은 산정에서 태양이 출렁인다.”, “철도레일이 호텔을 통해서 호텔우로 달린다.” 등이다. 그러나 상상력은 또한 인간과 사물사이의 정상적관계도 전도시킨다. “법무관이 그의 시계줄에 걸려있다.”에서처럼 상상력은 이렇게 련관성이 가장 먼것, 구체적인것과 상상적인것을 강제적으로 결합시킨다. 더 례를 든다면 “아침우유처럼 중얼거림, 지난 세기 밤의 중얼거림때문에 죽도록 슬픔에 잠기다.” 등이다. 이런 상상력은 실제 사실들에 부합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더욱 낯설게 만드는 비실재적인 색채들을 창안하는데 이는 독자의 의도와는 별개이다. “푸른 화란냉이, 푸른 암말, 록색옷의 피아니스트들의 록색웃음, 록색의 하늘빛, 검은 달들” 등, 이런 막연한 령역에로 돌진하는 상상력은 오직 단수의 존재물들을 복수로 만들어버렸지만 상상의 결과물이라기보다 조작된 느낌만 준다. 그리고 종종 어휘상의 날카로움, 불협화 즉 이질적인 사실들이나 가치들을 극도로 좁은 언어공간에 몰아넣는 단어군들로 나타나기도 한다. “타르를 마신 태양”, “겨울의 재맛이 나는 7월의 아침”, “구리 종려들”, “비둘기 똥과 같은 꿈들” 등에서 아늑하고 평온한 느낌들은 대개 시어의 종결부에서 갑작스러운 비천한 말들의 조합에 의해 예술미가 차단되고 만다. 시는 시 자체로 보아야 한다는 엘리어트의 선언이 나오자마자 현시대의 문학적리념이 되여 국제적전파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선언자가 죽기도전부터 퇴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점을 앞장서서 표방했던 르네 웰렉까지도 종종 깊은 반성을 하였다는 사실은 문학의 전위파들의 인식령역이 얼마나 제한적이였는가를 반증하기도 한다. 무릇 어떠한 시이든지 고안되여 나온 의견이 아니라 하나의 상처에서나 혹은 웃음구멍에서 솟아나온 한수의 노래가 되여야 시로의 존재가치를 가진다. 령감은 언제나 노래하지만 또 어디까지나 해석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시는 요란하게 인입되였지만 시간의 고험을 겪어내지 못한채 스스로 고독하고 사이비한 이화세계가 되고 말았다. 비록 현대시 선구자들인 랭보와 말라르메에 대한 해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불구하고는 광범위한 독자층에 수용되지 않고있다. 비수용성이 결국 가장 현대적인 자들의 만성적인 징표가 되여버린것이다. 그것은 현대에 지속되고있는 일종 문학현상으로서 시간의 고험을 겪어야 한다는것을 제시하고있다. 말하자면 현대시의 지향성에만 매료되여서 아니라 력사적측면으로부터 보기보다는 시에서의 접근양식으로 받아들여야 바람직할것이다. 시인이 가장 아담하고 운치있는 존재의 집을 짓는 창조자라고 할 때 역시 언어의 기능을 념두에 두고하는 말이다. 현대시라도 괴이함, 애매모호함에 심취하기보다 시인나름의 관찰과 사색을 시에서 형상화하려 애쓰면서 자연과 고향과 주변의 인물들과의 정서합일을 이루어야 진정 서정시가 독자를 불러들이는 길이고 흉벽을 울리며 공명의 대문을 활짝 열어가는 길이며 시가 살아갈수 있는 확실한 길이다.
28    제 3절 현대주의문학에 대한 종합적고찰 댓글:  조회:3429  추천:15  2007-09-14
                                제3절 현대주의문학에 대한 종합적고찰 1. 고찰의 출발점 현대주의문학조류의 성분이 복잡하고 표현이 각이하며 근 백년동안의 발전가운데서 부동한 력사조건, 문화배경과 심미관념의 제약하에 출현된 제류파들에 소급되는데 각방면의 정황을 종합하여 객관적이고 합리한 평가를 내려야 바람직하다. 현대주의문학은 현대자본주의사회의 하나의 거울이다. 현대주의가 어떻게 황당하고 어떻게 기특하든 그리고 어떻게 초탈했던간에 서방사회의 시대적산물로서 필연적으로 서방사회의 종종의 세태인정을 반영한다. 하여 현대주의문학은 “서방현실사회를 비추는 하나의 마귀거울이다. 그것은 현대서방사회의 위기와 정신위기의 산물로서 적지 않은 작품들은 현대서방사회의 기형적현실을 반영하였으며 사회와 인류의 이화를 묘사하여 서방사회의 페단을 건드리면서 작자와 중하층자산계급, 특히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지식분자들의 실망과 불만정서를 표현했다.” 2. 현대주의문학의 공통점 현대주의문학은 내부에 다른것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충만된 문학대사조이나 정체적으로 보면 어떤 공통한 특점을 보이고있다. 현대주의문학은 전통과 맞선 얼굴로 서방문단에 등장하였는데 전통적심미가치관념에 대한 부정이 주요경향이다. 우선 반전통경향이다. 현대주의문학은 전통과 맞선 얼굴로 서방문단에 등장하였는데 전통적심미가치관념에 대한 부정이 주요경향이다. 가장 일찌기 굴기한 상징주의에 뒤이어 일어선 매개 파벌들은 새롭고 기이한것을 내놓아 일반과 다름을 표시하려했다. 표현주의자들은 이렇게 성명하였다. “우리는 광맥을 찾는 신선막대기를 받들고 과거와 현재의 예술을 순시한다. 우리는 다만 전통에 물들지 않고 전통에 속박되지 않은 예술만을 변호한다. 소유의 예술표현은 자체로 생장하여 나오고 자기의 시비표준이 있어야 하며 길을 떠나서 습관의 지팽이를 수요하지 않는 그것에 대해 열애를 표시할뿐이다. 우리는 이미 전통의 딴딴한 껍데기에서 틈을 발견해냈으며 즉각 주의를 모으고 력량을 집중하여 돌파구를 냄으로써 광명을 찾기를 갈망한다.”고. 현대주의문학리론가들은 전통적고전형식은 문학과 예술가의 개성을 속박하는 바줄이라고 보고있다. 사실주의는 근근히 생활의 뒤꽁무니를 따르면서 생활의 겉면에서 기여다니며 랑만주의도 인류심령의 심각한 내용을 유효하게 표현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면서 때지난 바줄을 차버리고 “진부한 틀”을 마사버리고 그들의 리상에 부합되는 심미표준을 재건하려 하였다. 그러나 실천상에서 전통과의 철저한 단절은 필경 불가능한 일이라는것이 실증되였다. 현대주의자들은 단지 격진적리론과 창작태도로 세계에 향하여 표명하려 기도할뿐이다. 때문에 서방사회의 모순과 일부분 사람들을 인식하는데 매우 큰 인식가치가 있다. 이런 각도에서 서방현대파가 사실주의를 반대한다고 선포했지만 사실주의와 갈라놓을수 없다.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대다수 현대주의작가들의 비판은 전통문학에 결코 뒤지지 않으며 더 격렬해지기까지 하였다. 례하면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있거라.≫에서 주인공 헨리가 제1차세계대전가운데서 보고들은 사실과 불행한 조우를 통하여 인민들에게 고통과 재난을 들씌운 전쟁을 질타하였고 주인공을 통해 인생과 현실에 대한 그의 비관주의와 숙명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는 곧 전쟁후 “타락한 세대”의 사상정서였다. 이외 “검은 유모아”작품 ≪군인조례 제22조≫나 ≪변신≫에서도 자본주의사회에서 억압당하는 인간의 개성, 비틀어진 인간의 심령, 인간의 동화를 까밝히고 인간과 인간사이의 극도로 랭담한 현실관계도 드러내 보이였다. 이처럼 현대주의문학가운데 적지 않은 작품들이 적극적이고 건강한 내용을 담고있다. 미래주의파였던 마야꼽쓰끼의 ≪바지속의 구름≫, 인간의 위대한 정신력량을 구가한 헤밍웨이의 ≪바다와 로인≫등 작품들은 비록 현대주의수법으로 썼지만 세계적인 공명을 일으킨 명작들이다. 현대주의작가들의 필봉아래에서는 사회와 인생은 일반적으로 전도가 암담하고 랭담과 실망으로 충만되여있는것으로 묘사되고있다. 종교적인 신비한 색조, 비슷한 환멸정서는 싫증을 자아낸다. 3. 현대주의문학의 성과 한편 현대주의문학이 전반 문학발전에 기여한 공헌도 말살해서는 안된다. 우선 전통을 돌파하여 일정한 정도에서 예술수법을 풍부히 해주었다. 현대주의문학이 근 백년동안 그렇듯 세계문단을 휩쓸수 있은것은 사회현실을 독특하게 반영했다는 일면보다도 사람들의 공명을 불러일으킬수 있는 그 새롭고 기특한 예술수법들때문이다. 왕몽은 현대주의의 표현수법에 대해 자기의 견해를 이렇게 밝히고있다. “…나는 지난 한시기 외국의 의식의 흐름소설들을 두루 읽었다. 물론 그런 병태적이고 변태적이며 신비하거나 혹은 고독한 리상상태를 그대로 접수하거나 옮겨놓을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을 묘사함에서 계발을 받았고 감각을 얻었다.” “상징주의”로부터 “의식의 흐름”, “표현주의”로부터 “검은 유모아”, “신소설파”로부터 “황당파희곡”에 이르기까지 각류파는 일부 중요한 개척이 있었다. 이를테면 “상징주의”에서의 상징수법, 사상의 지각화, “의식의 흐름”소설에서의 의식의 흐름수법, “신소설파”에서의 회화법, 대칭, 립체결구, “마환현실주의”에서의 현실과 환상의 결합 등 모두가 일정하게 우리의 참조계로 된다. 프랑스의 과학이며 철학자인 바슐라르에 의하면 상상력의 최초의 기능은 짐승의 모습을 띠는것이다. 그의 이런 론단은 인간의 심성에 내재해있는 근원적인 변신욕망을 적절하게 지적한것이다. 인간의 변신욕망은 문학의 중요한 모티브로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변주되고있다. 변형수법은 작가가 주관감정의 표현수요에 의해 인물, 사건, 환경, 경물을 비정상적인 상태로 묘사하는 수법이다. 그것은 객관사물의 자연형태를 개변시켜 표면상에서는 호상 모순되는듯 하지만 심층에서는 정과 의미가 통한다. 그것은 외재변형으로부터 내재변형에 이르러 인물의 내심의 초창적인 체허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된다. 초현실주의자들이 변형수법을 쓰는것은 주요하게 현실생활의 황당성이 사람들의 심령에 조성해준 변태와 비틀림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설교하고있다. 변형의 수법으로 창조한 예술형상은 은유적상징의의와 비교적 심오한 예술적내함을 가지고있음도 사실이나 전방위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현대주의문학에서 자유련상은 일종 창조성적인 사유방식이 되며 여러가지 표현방법을 융합시킴으로써 인간의 본연에 보다 깊이 파고들수 있게 한다. 내심독백, 방백, 순간감각, 환상, 잠재의식활동을 자유롭게 련접시켜 기괴하고 애매한 예술경지를 조성하는데 유효하였다. 그리고 형식방면에서의 끈질긴 탐색은 보귀한 성과로서 일정한 정도에서 예술표현수법을 풍부히 해주었다. 변증법적관점에서 볼 때 이 점은 확실히 긍정적이다. 4. 현대주의문학의 수용자세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현대주의문학을 무조건 개인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이며 형이상학적이고 형식주의적이며 색정적이고 퇴페적이며 반사회적인 문학이라고 질타하지만 한편 현대주의는 인류문화의 발전방향을 대표하기에 중국문학은 수요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야말로 질타 절반, 칭찬 절반으로서 각자 의견이 종시 일치하지 않았다. 실제상 량자의 설법은 편면적이다. 현대주의문학에 대해서 의연히 명지한 “가져오기주의” 태도가 수요된다. 왜냐하면 어쨋든 선봉문학이고 인도주의적이며 혁신적인것으로서 그것이 표현하는 현대인의 정신과 감정은 지대한 진실성을 가지고있다고 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머리를 쓰고 안광을 넓혀서 자기절로 가져와야 할것이다. 현대주의문학에서 부패하고 반동적인것은 잘라버리고 수용하지 말아야 한 다. 이런것들 자체가 력사의 찌꺼기로 되여 문학발전중에서 점차 가라앉고 눈 을 감고 고기를 잡는격이 아닐수 없다. 우리는 현대주의문학의 여러 류파가 거창하게 흥기하였던 영광의 력사도 보아야 하거니와 고봉기가 지나면 자연도태 된 력사도 명기해야 한다. 무엇도 흥망성쇠의 섭리를 벗어날수 없다. 황당파희곡의 창시자인 유네쓰꼬는 담화를 발표하여 현대문학은 내용이 빈약하며 자기는 “무슨 정신가치가 있는 작품을 쓰지 못했다… 우리의 길은 이미 끝에 이르렀다.”고 자기의 문학활동을 총화하면서 자기는 이미 방법을 바꾸었다고 말했고 현대파작가들도 일부 전통적방법에로 전향하였다고 했다.
27    제2절 현대주의문학류파 댓글:  조회:3807  추천:22  2007-09-14
                                       제 2 절 현대주의문학류파 1. 상징주의 상징주의는 주요하게 서정시창작에서 표현된 문학류파이다. 그는 사실(写实)주의와 자연주의에 대한 반동이며 동시에 유미주의의 일부 방면에서의 계승과 심화이기도 하다. 상징주의에서는 독자들을 현대의 문제들로부터 딴데로 끌고간 개인주의와 신비의 설교. 문학의 사회적사명의 부정, 죽음과 염세의 찬양, 내용이 빈약한 세련된 형식에 대한 탐미가 특징적이다. 상징주의는 19세기 70년대 프랑스에서 랑만파와 고답파를 반대하여 출현되였다. 그후 20세기 20년대에 서방 여러나라들에서 다시 부흥되였는데 문학사상 그것을 후기상징주의라 부른다. 상징은 “함께 내던진다”는 뜻인 희랍어에서 유래했다. 이 말의 어원에는 “하나로 맞추어보다, 비교해 보다”란 뜻이 들어있었고 나중에 “표시, 표지, 표징, 기호”등의 의미를 가졌다. 동양어로 상징은 류형의 사물을 리용하여 무형의 주관적인것을 표현한것을 가리킨다. 상(象)은 실재의 세계에 대한 표징을 가리키고, 징(征)은 “괘상(卦象)을 통해서 표현된 하늘의 징조”라는 뜻을 갖는다. 즉 인간의 지각을 초월한 만유(万有)의 근원인 형이상학적실재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표징이다. 상징주의는 19세기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상징파의 예술운동과 그 경향 즉 사실주의, 자연주의, 고답파 등의 외면적, 객관적경향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것으로 상징적방법에 의하여 형이상학적 또는 신비적내용을 암시적으로 표현하였다. 보들레르, 랭보, 말라르메 등의 예술지상주의적경향을 가리킨다. 사회전반에 팽배한 위기감과 불안의식은 리상주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경향들을 부활시키고 한편으로 사회의 비관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 강력한 신앙운동을 불러일으킨다. 상징주의가 기대고있었던 사상은 이러한 사회적분위기에서 나타난 스웨덴 보리의 신비주의사상, 쇼펜하우에르의 의지의 철학에서 표현된 상징이 의미의 제시와 은폐를 동시에 행한다는 관점 등이다. 상징주의의 문학리론은 체계적으로 제시된적이 없다. 따라서 작품속에 자신들의 문학관을 피력한 시인들의 관점이 상징주의의 요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수 있다. 상징주의성립에는 랑만주의와 프랑스의 고답파의 리론이 큰 작용을 하였다. 랑만주의에서는 상징과 알레고리를 구분하여 알레고리는 구체적이미지의 형태로 추상적관념을 표현하지만 상징에서는 이미지와 관념이 완전히 통일되여 불가분리적이므로 해석의 다양성을 허용한다는 리론이 성립되였다. 보들레르는 이러한 경향들을 창조적으로 종합하여 시적완결성을 기하면서도 도덕적규범에 매이지 않고 기괴한것이나 퇴폐적인 감정을 문학에 도입하였다. 언어의 련금술사가 되고자했던 말라르메나 발레리가 아폴로적인 경향이라면, 시인은 견자(见者)가 되여야 한다고 본 랭보는 열광적인 경향으로서 초현실주의의 선구자가 되였다. 다른 문예사조와는 달리 상징주의는 류파활동보다 선구자와 창시자들의 활동이 중심이 되였다. 사실주의에 반발하고 랑만주의를 계승하였지만 랑만주의가 감각적대상에서 쾌감을 느끼는데 그쳤다면 상징주의는 감각대상이 암시하는 또 다른 세계를 찾아내고자 했다. 문학류파로서의 상징주의는 전기상징주의와 후기상징주의로 나누어진다. 20세기 20년대에 서방의 여러 나라들에서 상징주의가 다시 부흥되였는데 문학사상 후기상징주의라고 부른다. 프랑스의 보들레르가 상징파의 시조이다. 그는 1857년에 시집 ≪악의 꽃≫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상징주의 첫시집이였다. 시집은 “우울과 리상”, “빠리풍경”, “술”, “악의 꽃”, “반역” 등 여섯개 부분으로 엮어졌다. 이 시집은 상징주의의 길을 개척하였는바 염오와 공포를 불러일으킬수 있는 사회악과 인성의 악을 예술미를 창조하는 시적대상으로 간주하고 묘사하였으며 객관세계와 인간의 내심세계와의 교감을 쓰면서 인간의 미묘한 내심세계를 시사했다. 그뒤 랭보와 베르네느 등 시인들이 보들레르의 상징주의를 계승하여 환상과 직관, 시의 조형미와 음악미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상징주의가 자각적문학운동으로 형성되고 “상징주의”라는 명칭을 가지게 된것은 1886년 쟌. 모레아스의 명명으로부터였다. 19세기 80년대 중기에 스테판, 말라르메를 중심으로 한 상징주의류파가 정식으로 형성되였다. 그는 상징주의리론체계를 내놓고 한걸음 발전시켰다. 그의 장시 ≪백조≫는 상징파의 대표적작품이다. 상징주의는 자체의 발전과정을 거쳐 영국, 미국, 독일 등 구미 각국에 전파되였으며 20세기 20년대에 이르러 세계성문학운동으로 되였다. 후기상징파시인들은 현대인들의 정신적허탈과 고민을 암시, 상징수법으로 제시하였다. 미국의 토마스, 스템스, 엘리어트는 현대상징파의 대표시인이며 거장이다. 그는 시는 시인의 직접적서정토로를 기피하고 상징과 암시로 표현할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종교만이 자본주의세계를 구할수 있다는 자기 사상을 상징수법으로 제시하였다. 프랑스의 폴 발레리, 독일의 마리아. 릴케 등도 상징파시단에 주요한 대표들이다. 상징주의문학은 자체의 특색을 여러방면에서 과시하였다. 첫째, 필봉을 외부로부터 내재적정신세계에로 돌려서 지성화된 감수성으로 내심세계와 외부적호응의 시점에서 독특한 현실을 발견하는것이다. 둘째, 랑만주의와는 완전히 별개로 직접적서정토로를 배격하고 “객관적대응물”의 방법으로 정감을 표달한다. 표현방법상에서도 시가의 음악성을 강조하고 형식의 공정성, 운률의 화해성을 강구하기에 언어의 뜻련관성에 근거하여 성음형상 자체의 운률과 상상심리의 감정효과에 대해 추구한다. 상징파시인들은 실증주의와 자연주의도 반대하면서 감각적요소와 초감각적인것의 교감을 시도한다. 냄새, 빛, 소리 등이 조화를 이루어 감각적심상으로 사상을 직접 감지할수 있도록 표현할것을 제창하여 신비주의 색채가 짙다. 상징주의가 묘망한 환상적의경을 지향하면서 창조해낸 형상은 비슷비슷하여 분별하기 어려운바 이 류파의 싱징의 주요한 분위기특징이기도 하다. 2. 표현주의 표현주의는 1차세계대전전후인 20세기초로부터 30년대에 이르기까지 류행된 구미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현대주의류파의 하나로서 원래 독일에서 그림으로부터 시작하여 문학에까지 파급된것이다. 사물의 외재적표상을 돌파하고 내재세계의 표현을 강조하면서 “표현”으로 “재현”을 대체해버렸다. “표현주의”라는 개념은 포비즘(야수파)화가 앙리마티스에 의하여 처음 제기되였다. 표현주의는 1차대전 전야에 형성되고 독일에서 문학운동으로 발전되였다. 전쟁으로 하여 생활절주와 사회절주가 개변되였고 기괴한 현상들이 숱해 나타났다. 이런 변이된 현상들은 전쟁의 결속과 더불어 더욱 기형적인 사회에 병태적현상이 정상상태의 형식으로 존재하여 사회관념의 변화를 야기시켰다. 새로운 관념은 낡은 관념을 충격하여 정신세계에서 새로운 박투가 시작되였다. 표현주의문학운동은 이에 호응하여 산생되였던것이다. 일부 작가들은 개인과 사회, 평화와 폭력, 현실과 미래 등 모순이 착잡하게 얽힌 고민속에서 모대기다가 문학상에서 새것을 수립하는것으로써 해탈을 기도하면서 예술창작에서 다음같이 주장했다. 첫째, 예술은 마땅히 생활을 간섭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전변, 갱신, 제고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그들은 시인은 마땅히 “본질적인것”을 파악해야 할뿐만아니라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 “자아”는 우주중심이고 진실의 원천이라고 하면서 진실을 자아의식의 표현으로 간주했다. 하여 “현실성은 반드시 우리가 창조해야 한다. 진실은 현실인것이 아니라 정신이다.”라고 표백하였다. 셋째, 영원한 품질(원형)과 정신상의 강렬한 추구를 묘사할것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인간중심”, “세계지우(之友)”를 보편적인 주제로 삼고 선량한 념원을 가지고 인류애를 선전했다. “오직 인간이 훌륭하게 변해야만 세계가 나쁘게 변하지 않는다.”는것이 표현주의 문학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독일의 영향있는 작가로는 온스턴 톨러와 게오르고 카이제르를 들수 있다. 톨러의 주요극작품으로 ≪전변≫, ≪군중인간≫, ≪기계파괴자≫, ≪인생은 즐겁다.≫ 등이다. 카이제르의 주요한 극작품으로는 ≪칼레이의 시민≫, ≪아침에서 밤중까지≫, ≪산호≫,≪팔음함≫ 등이 있다. 표현주의는 그후 오지리, 체스꼬슬로벤스꼬, 스위스 등 나라에 파급되였다. 소설방면에서 표현주의의 대표작가로서 오지리에 카프카가가 나타났는데 그의 저명한 소설로 단편 ≪판결≫, ≪변신≫, 장편 ≪미국≫ ≪심판≫등이 있다. 20세기 20년대에 표현주의가 미국에 파급되였는데 오닐과 라이스 등 작가들이 륙속 출현되였다. 주요한 희곡작품으로는 ≪지평선너머≫와 ≪느티나무그늘의 욕망≫ ≪이상한 막간극≫등이 있다. 표현주의는 원래 19세기 후반기 회화령역에서 성행되던 인상주의에 대한 반동이였다. 감정을 표출한다는 의미에서 말하면 표현을 예술창작의 기본수단으로 한다. 표상을 투시하여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여 표현해야지 사물의 외재적형태를 정확하게 묘사하는것은 아무런 의의도 없다고 선언했다. 표현주의 기본특징은 추상화하고 변형시키며 가면구를 운용하고 시공간의 교착이 착잡한것이다. 소리와 빛의 효과를 중시하였고 상징과 황당수법을 운용하였다. 그들의 리론강령은 예술은 표현이지 재현이 아니기에 문학은 응당 객관현실을 인간의 주관정신과 육체의 격정을 표현해야 한다것이다. 표현주의의문학은 우선 추상적이고 철리성을 띤 문제를 파내려 하면서 현실생활에서 구체적이고 생동활발한 인간과 사건에는 흥미 없고 추상적인 철리성문제, 인간성과 폭력의 모순, 개인과 군중간의 모순, 인간의 동화문제 등에 중시를 돌린것이 특징적이다. 다음 인간의 주관능동성을 무시해버리고 객관적감수의 인상만을 접수하며 문학은 자아감정의 표출로서 마땅히 정신적인격성 및 가치를 자각적으로 충분히 표현해야 한다고 인정하였다. 이렇듯 사회의 정체적문제에 대한 사고에 몰두하여 인물성격부각은 홀시하고있다. 인물형상은 상징성을 띠고있지만 비구체적이고 비례가 맞지 않는 즉 피와 살이 없이 모종의 공성(정신적품질 혹은 사상관념)만 남은 추상적인물들로서 심지어 인칭마저 없이 단지 남자, 녀자, 부친, 아들, 군중, 개인 등 류형뿐이다. 구체적개성이 배제되여 버렸기에 필경 두리뭉실하고 행동에 풍자성이 결여된 인물들이 남는다. 그리고 기괴하고 황당한 정절이다. 예술수법상에서 작품일반을 보면 조화되지 못하고 통일되여있지 않으며 정절변화가 갑작스러워 전후 련계성이 결핍하다. 그리고 생각과 죽음, 인간과 짐승사이에 명확한 계선이 없다. 례하면 톨러의 희곡 ≪전변≫은 썪은 한무리 송장들이 황당하고 기괴하게 군사연습을 진행하는것을 보여주고있다. 한무리 전쟁공포심리분자들이 화토불을 둘러싸고 멋없이 고아대기만 하는데 그들을 향하여 저마다 자기가 사람이라는것을 생각해 보라고 일장연설을 한다. 이에 한무리 송장들은 “혁명구호”를 높이 부른다. 전쟁으로부터 혁명의 폭발로 전변하는것으로 극은 끝난다. 그러나 표현주의파도 자기의 독특한 특색을 과시했다, 첫째, 강렬한 색채감이다. 인물의 내심의 격정을 표현할 때 예술가들은 일제 중화(中和)적인 색채와 음조를 배척하고 강렬한 대비수법으로 무대배경, 조명 등을 설치하여 몸서리칠 분위기조성으로 배우들의 정서를 안받침해준다. 둘째, 기특한 언어구사이다. 표현주의문학작품에 언어들은 전혀 련관성이 없는 간단한 전보문형식의 언어들이다. 셋째, 결구상에서 내심활동, 직관, 몽환경을 표현할것을 제창하고 강조하면서 독백, 방백, 망령, 가면구 등 수법을 대량 리용하면서 인간의 복잡한 주관적내심 세계를 표현하려 한다. 그들의 작품들에는 인간들의 공포심, 재난감, 고독감, 박해감, 병태심리, 성변태심리 등 주관적감수를 표현하는것이 보통이다. 넷째, 현실에 대한 진실한 재현을 거부하기에 그들의 작품속에는 기형적인간, 정신적불구자들이 많이 형상화되고있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나 라이스의 ≪계산기≫는 현대인의 심각한 이화문제를 다루었는데 때로는 작자가 직접 작중인물들속에 개입하여 소견을 토로하고 조건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접속어를 생략하거나 시구에서 운률의 자유화 등 면에서 대담하고 신기한 표현수법을 쓰는 장점도 발휘하였다. 이런 특징들이 있는 반면에 반전통적표현형식을 추구하면서 문장구성을 내키는대로 짜며 언어구사에서 군더더기, 미사려구의 퇴적을 채용하는 등 단점도 가지고있다. 이러한 양식은 서정시에서 가장 유효하게 체현되며 희곡에서 일대혁명을 일으켰으며 소설창작에서도 일정한 영향을 주고있다. 그리고 희곡에서는 상징적수법이 특별한 의의를 가지는데 인물들이 추상적관념의 상상으로 되거나 환경도 사회의 어느 한 측면을 시사하는 상징으로 되고있다. 그들은 문학이 사회와 인생을 비쳐보이는 거울이 되게 하였는데 더는 평면거울이 아니라 볼록거울이 아니면 웃음거울로 되게 하였다. 이런 거울속에 비친 사람들은 키가 크나 작으나 뚱뚱보이나 말라꽹이나 모두 고유한 개성특징이 소실되고 이목구비가 온전치 못한 사람으로 변형된다. 유일하게 진실로 존재하고 영원히 소실되지 않으며 변형되지 않는것은 인간정신뿐이다. 이런것이 표현주의자들이 표방하는 “가장 절실한 핵심속에서 세계를 모색한다”는것이다. 3. 실존주의 실존주의문학은 20세기 30년대말에 프랑스에서 가장 일찌기 산생되고 발전하여 구미각국에 파급되였는데 철학상에서의 실존주의와 동시에 문학사조로 발전한것은 싸르트르를 수반으로 한 한패의 작가들이 추동한 결과이다. 실존주의문학은 무신론적인 실존주의와 기독교실존주의 두개파벌로 나뉘여진다. 무신론실존주의문학은 보통 싸르트르실존주의라 부른다. 프랑스의 싸르트르가 “존재는 본질에 선행한다. 혹은 주관성을 출발점으로 해야 한다.”는 명제를 내놓았는데 그것은 실존주의자들의 공동한 기본명제로 되였다. 싸르트르가 말하는 “실존”이란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자신으로서 본질에 선행한다는것이다. 기실 싸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주관주의적이고 비리성주의적이며 비관주의로서 결국 허무주의에 빠져버린 리념이다. 20세기 30년대말 싸르트르가 ≪구역질≫, ≪벽≫등 소설을 발표하였는데 소설에서 인생과 존재에 관한 문제를 다루면서 현실에 대한 불만과 자기의 비관정서를 반영하였다. 소설 ≪구역질≫은 생존환경에 대한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와 염오의 정서를 표현하였다. 제2차세계대전은 서방자본주의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주었는바 정신공황이 만연되였다. 하여 사회적출로를 찾지 못하고 비관실망하여 방황하는 수많은 청년들이 싸르트르의 실존주의문학에 열중하여 마침내 실존주의문학이 구미의 각국에 광범위하게 파급되였다. 이런 사회상황에서 20세기 40년대 프랑스의 실존주의문학의 대표자의 한 사람인 알베르 까뮈의 장편소설 ≪이방인≫이 발표되였는데 실존주의문학의 영향은 재빨리 세계 여러나라에 전파되여 세계적문학조류로 되였다. “부조리”란 용어를 최초로, 본격적으로 문학에 도입하고 유행시킨것은 알베르 까뮈이다. 까뮈가 “황당철학”을 내놓으면서 이 세계는 황당한것으로서 인간의 생존환경, 인간과 사회, 인간과 인간관계는 황당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인간은 이런 황당한 세계와의 관계에서 심각한 부조리를 느끼지 않을수 없으며 이 세계에서 인간은 무의미하게 던져진 이방인이며 쓸데없는 여분의 존재에 불과하다고 인정했다. 그의 주요한 소설로는 ≪이방인≫, ≪페스트≫등이 있다. ≪이방인≫은 까뮈의 대표작으로서 그의 실존주의사상이 집중적으로 반영되였다. 실존주의파는 소설창작에 다음같은 원칙이 있다. 작품에는 진실감이 있어야 한다. 창작은 “허구”가 아니라 “표달”이므로 표달로써 독자들에게 생동한 진실감을 주면 된다. 그러므로 인물형상의 전형화가 수요되지 않으며 소설의 결구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이야기정절의 곡절성, 기이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소설속의 시간은 현실생활의 시간보다 더 큰 자유가 있으므로 인물을 묘사할 때 전반 면모를 파악해야지 시간제약으로 하여 인물을 토막내서는 안되며 작가는 스스로 독자들보다 더 총명하다고 자처하지 말아야 한다고 요구하고있다. 실존주의문학류파가 처한 시대는 바로 사실주의가 현대파로 전화하는 과도시기였기에 예술표현방법상 뚜렷한 새로운 창조가 없었다. 하여 대다수 실존주의작품들에는 전통적인 이야기 결구방법과 인물묘사 방법이 보류되여있었고 “의식의 흐름” 등 현대수법을 사용했다. 실존주의문학의 예술특징을 귀납하면 다음같다. 문학을 철학적탐색과 결합시켰다. 실존주의작가들은 철학자가 아닌 사람이 없었는바 모두 문학형식으로 자기의 철학관점을 설명하였으며 파우스트식의 정신적추구를 하였으며 상징적수법으로 중대한 철리, 도덕과 정치 제재를 처리하였다. 환경지배론으로 인물의 전형화를 대체시켰다. 그리하여 실존주의 문학작품에는 특수하고 다양한 환경이 제공되고 그속에서 활동하는 인물은 전형화의 구속을 받지 않고 완전히 주관의도대로 행동한다. 싸르트르의 일부 극작품들은 “환경희곡”으로 불리우고있다. 진실감을 구비하고있다. 실존주의작가들은 “진실”을 중시하면서 부각한 인물이 모두 진실할것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이왕의 작가들이 부각한 각종 류형의 전형인물들은 가공을 거친 “진실을 잃은” 인물들이라고 인정하였으며 선입견을 위주로 한 리성적관념을 배제해버리고 충실하게 개인의 내심생활을 재현하고 진실한 정신면모를 회복할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소설속에서 시간과 작가생활의 시간개념은 부동한 함의를 가지고있기에 인물이 시간의 노예가 되여 시간순서의 제약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존주의문학의 철리는 형상속에 담는다. 어느 표현수법이든 구애되지 않고 운용하며 전통적인것과 현대적인것을 병용하는 특징도 가지고있다. 4. 기타 제류파 1) 초현실주의문학 초현실주의는 제1차세계대전후 프랑스에서 흥기하고 서구라파 여러 나라에 파급되였다.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극단적반리성주의, 다다란 원래 아무 뜻이 없다는 뜻임)의 토대우에서 형성되였다. 초현실주의라는 명칭은 상징주의시인 아폴리네가 처음으로 내놓았다. 그는 초현실주의는 현실을 기계적으로 모방하는것이 아니라 현실에 의하여 계발된것을 표현하는것이라고 하였다. 브르통은 아폴리네를 기념하기 위하여 명칭을 따다가 저들의 문학단체를 명명한것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베르그송의 “생명충동”설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철학적기초로 삼고있다. 그들은 잠재의식, 몽경, 환각, 본능 등 초현실주의자들은 순수무의식상태에서 창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는 일체 리성적인 요소들을 버려야만 “초현실” 즉 “절대적인 진실”에 도달할수 있다고 인정하였다. 그들은 예술적인 사색이거나 격식에 대한 사유도 부정하였다. 오직 자기 두뇌에 얼핏 떠오르는 그 무엇을 인차 적기만하면 된다는것이다. 하여 “초현실적”인 생활만이 창작의 원천이라고 인정하였다. 이로부터 비리성주의와 정신적자유를 주장해나섰다. 그들은 자유, 사랑, 시가에 특별한 의의를 부여하면서 리성의 속박에서 벗 어나 마음대로 상상할것을 주장하면서 시는 이런 자유와 사랑의 경지에 도달하는 가장 훌륭한 형식이라고 선언했다. 초현실주의운동의 주동자이자 창시자의 한 사람이였던 프랑스의 작가 브르통은 초현실주의의 수령으로 되였다. 1924년에 브르통은《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초현실주의를 '마음의 순수한 자동현상'으로 정의하고, "초현실주의는 이 자동현상을 통해 사고의 참된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한다. 초현실주의는 리성에 의한 어떤 감독도 받지 않고 심미적이거나 윤리적인 편견이 전혀없는 자유로운 생각을 받아쓰는 것이다"라고 했다. 초현실주의는 꿈과 현실, 이성과 광기, 객관성과 주관성 등의 구별을 없애는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의 소설《나자 (Nadja)》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신적도착과 혼합한 작품이다. 이외《용해되는 고기》등이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순수 무의식상태에서 창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일체 리성적인 요소들을 버려야만《초현실》즉《절대적인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면서 예술적인 사색이거나 격식에 대한 사유도 부정하였다. 오직 두뇌에 얼핏 떠오르는 그 무엇을 인차 적기만하면 시가 된다는것이다. 하여 단어와 단어, 구절과 구절사이에의 련계는 우연적이며 심지어는 자모문자를 대입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그들의 시는 론리가 혼란하기 그지없고 인간관계가 극히 모호하며 리해하기 어렵다. 그들은 환각이나 몽경을 쓸것을 강조한다. 그들은 현실에 대한 재현을 반대하고 비리성을 주장하면서 환각이나 몽경가운데서 체험한 모든것을 그대로 쓸것을 요구했다. 언어도 규범을 타파하고 자기식의 독특한 언어로써 암시할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파괴자”의 범위에 국한되여있는데다가 내부분기로 2차대전 전야에 점차 자취를 감추고말았다. 2) 후현대주의 후현대주의 산생의 력사적, 문화적배경 역시 제2차세계대전 및 전후의 서방의 혼란하고 불안한 사회생활이였다. 대전기간 파시스트들의 전대미문의 폭행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였고 사회도덕표준과 가치관념에 회의를 가지게 하였다. 미국의 경우 흑인들의 투쟁, 부녀해방운동, 반윁남전쟁의 학생운동, 케네디의 피살…등 제인소로 하여 사회는 갈수록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되었다. 이런 “비인간화”사회의 출현은 서방사회의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도 밀접히 련관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회로 하여금 정보화, 정식화, 컴퓨터화로 전변시켜 날이 갈수록 하나의 정밀한 기계같이 되었고 매개인은 고정된 위치의 작은 치륜이나 나사못이 되어졌다. 과거의 과도하게 격화되였던 로자간의 모순은 기술과 관리의 모순으로 전화되였다.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이 되어졌다. 대규모적인 국제간의 문화전파시대가 시작된것이다. 이런 시대에 지식이 더는 힘이 될수 없었다. 정보가 효익이고 곧 목적이다. 고기술의 발전은 기계복제와 수자화복제에 이르렀다. 하여 더는 진실한 원작이 없게 되였고 일체가 가짜이다. 문화마저 기계복제산품이 되게 하였고 상품으로 류통령역에 들어갔다. 인간은 개성과 풍격, 지어는 사인생활마저 상실하였다. 원고와 원시문건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온세계가 표면에 둥둥 떠있어서 진실한 감정도 없게 되였다. 후현대주의문학의 흥기와 더불어 후구조주의는 전통적형이상학의 편견과 자아모순을 폭로했으며 문학의 표준을 타파하고 의의와 가치를 언어, 계통과 관계 등 더 큰 문제에 귀결시켰다. 후구조주의에서는 문본이 작자와 독자가 만나는 고정된 지점이 아니라 표의관계가 있는 곳이다. 3) “검은 유모아”문학 “검은 유모아”는 20세기 60년대에 미국에서 출현되여 70년대까지 성행하였으며 지금도 일정한 영향을 일으켰다. “검은 유모아”문학이라는 명칭은 미국작가 프리드만이 처음으로 제출하였다. 그는 1965년 3월, 일부 작가들의 창작경향과 수법상의 공통성을 개괄하여 작품집을 ≪검은 유모아≫라고 명명했다. “검다”는 영어로 음침하다. 암담하다이다. 본넥트가 “검은 유모아”라는것은 “재난이 림박했을 때의 유모아”라고 하였는데 당시 미국사회에 상황을 그 토대로 하고있음을 짐작할수 있다. 검은 유모아는 희극형식으로 비극적내용을 표현하는 문학방법이다. 검다는 무서우면서도 매끄러운 객관현실을 가리키고 유모아는 목적의지적인 개성으로 이런 현실에서 취하게 된 풍자적태도이다. 유모아에 검은색을 가첨함으로써 일종 절망적인 유모아를 전시한다. 한 서방리론가는 그것을 “교수대 아래의 유모아”라고 지칭했다. “검은 유모아”는 1950년 이후의 기형적이며 병태적인 미국사회의 산물이다. 조선전쟁과 월남침략전쟁을 거쳐 미국사회는 “천당” 이라는 환상이 철저히 깨여졌다. 이런 력사조건하에서 많은 지식분자들이 정신적위기를 겪게 되였다. 그들은 미국의 현실에 불만을 품고 인간과 미래에 대해 회의하면서 공포심을 가지였다. “검은 유모아”가 바로 이런 정신상태와 심리정서를 반영하였다. “검은 유모아”의 작가들은 황당한 환상, 만화적과장, 현실을 조롱하는 풍자, 기괴한 슈제트를 통하여 전쟁, 죽음, 질병, 세계의 종말 등 공포적인 주제를 표현하였다. “검은 유모아”는 비록 황당하고 병태적인 유모아였지만 당시 미국의 현실에 대한 절망적인 분노와 막무가내한 호소이기도 한것이다. 그들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아 세계를 황당한것으로 보았고 폭압, 탐욕, 랭혹을 인간의 변태적인 심리로 보았지만 현실을 개변하고 그러한 사회현상을 소멸하려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검은 유모아”는 미국의 기형적이고 병태적사회의 반사였던만큼 이런 문학현상을 통하여 미국의 사회현상을 여실히 엿볼수 있다. “검은 유모아”의 경향을 가진 중요한 작가들로는 요세프 헬러, 쿠트 본넥트, 토마스 핀천, 쟝 파스 등이다. 요세프 헬러의 장편소설 ≪군인조례 22조≫는 그의 대표작이다. 본넥트의 ≪활계극, 일명 다시는 고독하지 않다≫, 파스의 ≪류동가극≫ 등은 “검은 유모아”문학류파의 주요한 작품들이다. “검은 유모아”는 세계의 황당성, 추악성, 암흑상을 돌출하게 표현하면서 그 원인을 인간의 어떤 부정적인 본성에 귀착시킨다. “검은 유모아”는 전통적인 유모아를 계승하면서 자기특색을 가진다. “검은 유모아”는 다양한 뉴안스를 가지고있다. 가) 음침하고 고통스러운, 참으로 웃음이 나오지 않는 유모아: 이 류파의 작가들은 비극적내용을 희극적으로 처리하며 고통과 불행을 “웃음”의 대상으로 한다. 유모아는 랭담하고 재난이 림박했을 때의 느낌을 줄때의 그런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웃음이며 마치 “죽은 신의 웃음”과 방불한 웃음이였다. 병태적이고 기형적인물형상이다. 소설의 반영웅식인물들은 자신이 긍정하다가도 부정도 하고 조소하는 인물들이다. “검은 유모아”소설을 반소설이라고도 한다. 나) 황당하고 몽환적이며 산란한 정절: 작가는 소설에서 정절의 통일성을 무시해 버린다.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법을 타파하고 극적방법을 채용하며 슈제트의 완정성과 일관성이 무시되고있다. 전통적인 시공간관념이 “심리적시간”과 공간관념으로 대체해 버린다. 그리하여 과거, 현재, 미래가 괴이하게 뒤얽히고 장면도 영화의 몽타쥬수법을 방불케 하는데 자주 바뀐다. 슈제트발전의 완만성과 별로 사고하지 않아도 결말을 알수 있는 그런 약점들을 회피하고있다. 다) 첨예하고 적라라한 풍자: 언어형식상에서 황당파, “의식의 흐름” 등과 긴밀히 련계되는바 비유, 과장수법을 쓰고 론리에 어긋나는 말을 골라씀으로써 황당성을 도모한다. 표현한 세계는 황당하고 인간에 대한 사회의 이화, 리성원칙이 파멸된후의 당혹, 속절없는 자아모대김 등이 중심내용이 된다. “검은 유모아”는 반사실주의적인 일면도 있지만 소설의 표현수법들에 참조계가 된다. 그 러나 이런 참조계수는 어디까지나 작가가 처한 현실에 립각해야 할것이다. 4) “신소설”파 “신소설파”를 일명 “반소설”파라고도 한다. “신소설”파는 제2차세계대전후 50년대초에 프랑스에서 산생하여 영국, 미국, 독일에 파급되여 성행하였다. 이 류파를 “신소설파”, “반소설파”라 하는것은 사실주의소설의 전통을 반대하고 소설분야에서 새로운 형식을 개척하려고 시도한데서 기인된 명칭이였다. “신소설” 역시 심각한 사회력사적근원을 가지고있다. “신소설”파는 실존주의철학을 받아들여 자체의 리론의거로 삼았다. “신소설”파의 대표적작가로서는 프랑스의 아랑로브그리레, 나타리싸로트, 밀쎌부톨 등이 있다. 아랑로브그리레는 “신소설”파의 창시자의 한사람이다. 그의 소설 ≪고무지우개≫는 우연의 집대성화된 작품이다. 소설 ≪질투≫는 “신소설”가운데서도 영향력이 있는 소설이다. “신소설”파들의 공통한 주장이라면 사실주의소설의 전통을 반대한다는 이 점이다. 그들은 전통소설의 창작방법을 배척하고 모든것을 우연의 집대성으로 대체하는것이다. 그들은 인물형상과 인간의 변화다단한 잠재의식을 그대로 파헤칠것을 주장하기에 인물형상이 극히 모호하고 무개성적이며 이름도 없이 그저 “나” 혹은 “당신”으로 대체한다. 그들은 전형적환경묘사도 반대하고 객관적으로 인물을 보이는대로 묘사하므로 작품은 사물에 대한 시각형상으로 되여있다. 그들은 인간은 객관세계의 외표만 볼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인물은 인물이고 환경은 환경이기에 전형환경을 묘사할 필요성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엄밀한 슈제트구성을 부정하기에 그들의 소설은 결구가 산만하고 슈제트가 임의로 뒤바뀌며 과거, 현재, 미래는 혼연일체가 되여 시공간의 련속성, 실재성이 거의 부정되여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의 작품을 통하여 자본주의사회의 물질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질식당하고있는가를 보여주려 하였다. 그러나 문예과업을 생활의 반영으로 보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표현으로 규정하므로 결국 형식주의에 빠져들고 말았다. 상술한 서술에서 보다싶이 현대파문학의 사회기초는 독점자본주의로서 기형적사회가 낳은 기형문학일수밖에 없다. 그것은 곡절적으로 불합리한 사회속의 인간의 이화현상을 반영하려는 적극적인 지향에도 불구하고 형식주의에 빠져버린 경우는 참조계로 된다. 5) 마환현실주의 마환현실주의는 20세기중기 라틴미주의 소설창작중의 한 류파이다. 20세기 30—40년대, 60년대후에 이르러 구미소설창작에서 주류로 되였다. 그 흥기를 일컬어 “라틴미주문학의 폭발”이라 하였다. 대표적인물로는 과테말라의 아리스토리아스와 콜롬비아의 마르쿠스이다. 마환(魔幻)주의는 “마법”에서 산생된 환경(幻景)으로 생활현실을 표현하는 일종 창작법이다. 마환은 도경이고 생활현실을 표달하는것이 근본적인 목적이다. 마환적인것은 현실속에 숨어있고 독자들에게 전시되는것은 하나의 순환반복이다. 주관시간과 객관시간은 서로 혼합되고 주객관사물공간은 계선을 상실한 세계이다. 예술상에서 현실을 묘사함에서 대량적인 초자연적인소, 기적환각, 몽환경을 인입하며 심지어 마귀형상도 소설속에 나타나며 시간순서는 늘 혼란되여있다. 서술에도 조약성이 풍부하여 어떤 땐 상징색채를 띠며 선명한 지옥과 민족특점을 현시한다. 그것은 “이식”과 “뿌리찾기”가 결합된 성공적범례이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심각한 발굴이며 또한 력사에 대한 엄숙한 반성이기도 하다. 그것은 본 대륙전통문화에 대한 근원적인 탐색이고 구미현대주의에 대한 광범한 흡수이기도 하였다. 라틴미주에서 “마환주의”라는 이 술어를 사용한 사람은 베네수엘라의 작가 삐터리였다. 20세기 60년대에 라틴미주소설창작에서 마환주의 열조가 일어났는데 마루쿠스의 장편소설 ≪백년 고독≫이 그 표지로 된다. 문화전통, 현실생활, 예술규률에 대한 반역적태도는 제1차세계대전기간 유럽청년일대들속의 일부사람들의 고뇌심리와 출로를 찾으려는 정신상태였다. 6) 미래주의 미래주의류파는 20세기초에 이딸리아에서 형성되고 후에 로씨야에 파급되였고 프랑스, 영국, 독일 등 나라들에도 영향주었다. 특히 로씨야에서는 립체미래주의파, 자아미래주의파 등 잡다한 미래주의파들이 출현했다. 마야꼽쓰끼도 초기미래주의에 열중했으나 후에 미래주의를 버리고 무산계급시인이 되였다. 미래주의의 리론주장은 일체 문화전통을 포기하는것이다. 인류의 전통문화와 문학예술은 모두 때지난것으로서 부패하고 쓸모없게 되였기에 반드시 철저히 결렬해야 한다면서 완전히 배척해버렸다. 아울러 일체 박물관, 도서관을 마사버려야 한다면서 인류의 일체 도덕적인것과 투쟁하였다. 그리하여 반역정신을 찬미하면서 일월성진에 도전하여 사람들의 전투정신을 고무하기 위하여 “전투외에 다른 미란 있을수 없다. 과감히 해내는 정신이 없다면 걸작이 될수 없다. 시창작에서 중요한것은 용기와 대담한 반역”이라고 선동하였다. 미래주의는 파벌이 많고 리론주장도 각이하지만 공통한 특점도 고유하고있다. 우선 의도적으로 문학을 리용하여 현대생활을 운동학으로 변화시켰다. 제재, 주제방면에서 떠들썩한 도시의 동태적생활을 착중해 쓰면서 개인의 소견, 견문, 감수를 반영했다. 그들은 20세기 사회동력은 공업화라고 하면서 속도와 절주를 중시하여 비행기, 기차, 달리는 운동원, 조류, 뛰는 짐승 등의 동태묘사를 통하여 운동감, 력도, 립체성풍격을 찬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문학언어의 혁신으로 구문화전통을 배격하였다. 미래파는 전통적언어규범을 타파하고 언어사용의 절대적자유를 제창했으며 자연계의 소리를 모방하려면 수자부호, 화학공식, 악보 등으로 시를 쓸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누구도 알수 없는 새 단어를 만들어내고 아무 련관성이 없는 란잡한 명사, 동사를 마구 조합하여 표상을 라렬했으며 지어 접속사, 문장부호마저 제거해버렸다. 그들은 전통적작시법은 물론 언어규범까지 타파해 버리고 시어의 절대적인 자유를 고취하였다. 바로 때문에 미래주의는 형식주의, 추상주의에 빠졌다가 20세기 20년대중기에 마침내 스스로 분화되고 점차 소실되여버렸다. 7) “황당파”문학 황당파는 1962년 영국의 저명한 희곡리론가 마띤 아이스린의 “황당파희곡”에서 유래된 개념이다. 황당파문학을 일명 전위파문학이라고도 한다. 황당파문학은 제2차세계대전직후인 1945ㅡ1950년대에 프랑스에서 산생되여 발전하고 후에 서방 여러나라들에 류행되였다. 그러나 20세기 60년대중기후 쇠퇴하였다. 황당파문학사조에 큰 영향을 준것은 싸르트르의 실존주의철학과 까뮤의 황당철학으로서 그들은 세계도 황당하고 인간도 황당하며 세계와의 관계도 황당하다고 인정했다. 그들은 세계가 황당한만큼 전통적인 희곡으로서는 이런 세계를 반영할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희곡을 반대하고 소위 시대에 적응되는 새로운 희곡형식을 창조하자고 주장했다. 그들의 극에는 왕왕 막도 없고 배경도 별로 없으며 인물도 개성이 없었다. 사건도 간단하고 무대도구도 간단하나 상징적인 의의를 가진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황당한 예술형식으로 사회현실과 인류운명의 황당성과 불공정성을 나름대로 제시하고있다. 황당파희곡의 대표작가들로는 프랑스의 유네스꾸, 베케트, 아다모프, 영국의 하롤드 핀트, 미국의 에드왕드 알삐 등이다. 오웬 유네스꾸는 프랑스의 황당파희곡의 창시자의 한 사람이다. 그는 ≪대머리무녀≫와 ≪미래는 닭알속에 있다.≫, ≪의자≫, ≪무소≫등으로 세상이 들썽해놓았다. 베케트는 황당파희곡의 거장이다. 그는 전통희곡과 다른 새로운 형식으로 자본주의사회의 혼란, 실업자들의 비참한 생활처지, 인간들의 정신적고통, 공허, 불안, 실망 등 서방사회의 진실한 일면을 제시하였다. 그는 자기의 극들에 자본주의사회에서 흔히 볼수 있는 류랑자, 불구자, 정신병자들을 등장시켜 그들을 고독과 절망속에서 모대기다가 점차 죽어가는 인간들로 묘사하였다. 1953년 처음 상연된 극 ≪고도를 기다리며≫로 하여 세계적명성을 얻은 베케트는 일약 황당파의 거장으로 되였으며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여받았다. 그에게는 이밖에 ≪승부의 종말≫, ≪프라프의 마지막테프≫, ≪오, 아름다웠던 나날≫등이 있다. 베케트의 희곡은 전통희곡의 형식을 완전히 벗어나서 명확한 시간, 지점이 없고 완정한 슈제트도 없고 무료한 대화와 기계적인 동작뿐이다. 그러나 황당파희곡작가들의 예술수법은 다 같지 않지만 공통한 특점도 있다. 표현수법이 황당하고 과장되여있다. 극정의 조직, 인물부각, 배경설치, 언어운용, 조명, 무대도구 등 방면에서 황당성과 과장성을 특별히 강구하였다. 명확한 주제와 쪼각난 무대형상이다. 황당파희곡에 남아있는것은 기괴하고 제가끔 흩어진 무대형상, 무론리적이고 환각같기도 하고 꿈같기도 한 무대형상으로 내용과 형식의 통일을 이루고있다. 희곡언어가 자기의 의의를 상실하고있다. 인물의 언어는 뒤죽박죽이고 끝없이 중복되며 때로는 대부분 시간이 침묵속에서 흘러간다. 이것이 황당파희곡의 중요한 특색의 하나이다.
26    제2장 현대주의문학, 제1절 현대주의문학의 개황 댓글:  조회:2570  추천:16  2007-09-14
제2장 현대주의문학                                                제1절 현대주의문학의 개황    1. 현대주의문학의 산생배경     서방현대주의문학이란 예술관점과 방법상 그렇게 일치하지 않은 20세기 수많은 문학류파들의 통칭으로서 현대파문학이라고도 한다. 현대주의문학을 광의적의미와 협의적의미로 나누어 고찰할수 있다. 광의적개념은 주요하게 20세기에 출현된 반전통적이고 선봉정신을 추구하면서 리성문화에 반역경향을 가진 일체 문학류파를 가리킨다. 협의적인 개념은 20세기 2차대전이전에 출현한 문학과 구별하는 후현대주의적인 비리성적문학을 가리킨다.     20세기 인류사회는 대변혁의 시대에 들어섰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생산력도 획기적인 비약을 가져왔는바 인류의 창조력은 전례없이 높아졌다. 반면에 고도의 물질문명사회에서 삶의 질은 크게 개선되였으나 인성의 이화현상도 돌출해졌는바 불가항력의 물욕앞에서 인간은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였고 다시 돌이킬수 없이 비인간화되기 시작하였다.    현대파문학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시대에 진입하면서 출현되였다.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발전하면서 국내외적으로 각종 모순이 날따라 첨예져 자본주의국가간의 식민지쟁탈 등 문제도 모순이 첩첩해졌다. 정치형세도 불안해지면서 드디어 심각한 사상위기를 야기시켰다.     많은 지식분자들은 잡다한 문제가 무더기로 쌓인 현실앞에서 리상의 파멸과 공허감에 고민하면서 세기말적인 비애를 느꼈다. 그들은 유심주의 립장에서 현실은 리해할수 없는것이며 더없이 황당하다고 한탄하면서 내심세계에로 퇴각하여 “자아”라는 진지를 고수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일부 젊은지식분자들은 무정부주의와 허무주의의 영향을 받아 아직 성숙하지는 못했지만 끓어넘치는 열정으로 새롭고 기이한것을 표방해나섰다. 그들은 과거의 일체 문학유산을 부정해 나서면서 미래 혹은 초현실주의문학을 호소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현대파문학이 산생되였다.     니체는 백주에 “하느님은 죽었다.”고 부르짖었고 왈레리는 “만물은 붕괴되고 중심은 기울어졌다.”고 개탄하였다. 중력중심을 잃은(失重状态) 이런 상태는 생존방식과 행위방식, 사유방식에 심각한 변화를 일으켰다. 현대주의문학을 산생시킨 직접적 원인은 제1차대전이였다. 전쟁으로 하여 서방의 근대문명의 물질기초를 철저히 훼멸되였고 정신기둥마저 무너졌으며 서방현대문화와 전통에 대하여 회의를 가지고 심각하게 반성하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2. 현대주의문학의 철학기초     인류발전사로부터 본다면 20세기 철학사조와 문예리론은 비상히 활약적이였는바 19세기 이전의 리론의 핵심이 리성이였다면 20세기의 철학과 문예리론의 핵심은 곧 반리성이였다. 칸트의 철학사상은 비리성주의철학의 발원지였고 리론기초였다. 쇼페하우에르, 니체, 베르그송 등의 철학사상의 산생은 비리성주의가 점차 리성주의를 대체하면서 당대문학에 심각한 영향을 일으켰다.    쇼펜하우에르는 유일의지주의철학의 창시인이다. 주요저작으로 ≪의지 및 표상으로서의 세계≫, ≪자연의지를 론함≫ ≪륜리학의 두개 근본문제≫등이 있다. 주요한 사상은 주의설(主意说)로서 생활의지는 세계의 기초이고 만물의 동력이라는것이였다. 그는 의지를 강조하면서 리성을 반대하였다. 의지를 강조한것은 곧 우주의 의지를 강조한것이다. 그는 인간의 의지인즉 바로 “나의 의지”이고 심지어 “세계는 곧 나의 의지라”고 선언했다.     니체는 독일철학가로서 유일의지주의철학의 집대성자로서 그의 철학도 주의설이였다. 그는 자연 및 사회의 진보를 부인하였고 “만물의 영원한 회귀”라는 신화로 발전적, 과학적리론을 반대하면서 력사는 전진하는것이 아니라 이전에 지나온 단계에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주요저작으로 ≪비극의 기원≫, ≪도덕체계론≫, ≪권력의지≫등이 있다.     앙리 베르그송은 프랑스의 철학가, 신비주의자로서 반리성주의의 사상가의 한사람이다. 그의 주요사상은 직각주의, 심리시간론, 권력의지론, 초인철학이다. 그는 리성적, 론리적 인식에다 직접적, 직관적응시(凝视)의 신비적능력을 대치시키면서 생명을 리해함에 있어서 생물학에 반대되는 “활력론”을 고집하였다.     프로이드는 오지리의 심리학가였다. 주요저작으로 ≪꿈의 해석≫, ≪정신분석인론≫등이 있다. 그의 학설의 기본리념은 3중인격리론으로서 인간의 심리에는 세개부분 즉 본아, 자아, 초아(超我)를 포함하고 있다는것이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의식은 본능이나 혹은 “무의식”, “하의식” 혹은 “잠재의식”의 지배를 받는바 “하의식”이 가장 진실한 심리라고 역설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예술가는 마치 정신병을 앓고있는 환자와 같아서 그가 불만족하고있는 현실에서 위축되고 도피하여 자기 상상력이 창조하는 세계속으로 뚫고들어간다고 한다.” “의식의 흐름” 에 관한 이 학설의 영향하에서 인간의 의식 혹은 “하의식” 의 흐름상태를 치중하여 묘사하는 “의식의 흐름”파의 소설들이 출현하게 되었던것이다.     철학사조, 사회사조에서 볼 때 현대주의는 반리성주의, 비리성화의 특징을 가지고있다. 문예상의 표현에서 본다면 현대주의문학은 인간의 이화와 비인간화현상에 눈길을 박은것이다. 현실을 파악하는 각도에서 본다면 국외인의 신분으로 사회에 대해 막연하고 추상적이며 비틀어지게 표현하면서 비판의식도 명확하지 못하고 구체적이 되지 못하였다.     3. 현대주의문학의 제특징    사상내용방면에서 비리성주의를 극구 고취한것은 전통문학과 현저히 다른 특색이다. 그들은 전통사실주의를 반대하고 전형환경중의 전형인물을 반대하면서 형식상 대담하게 창신하였다. 다음 인간이 창조한것이 되돌아와 인간을 압박하는 력량으로 된것도 역시 이화(异化)라고 한다. 이 개념을 가장 일찍 제출한 사람은 헤겔이였는데 그가 말한 이화는 주요하게 정신세계의 이화였다.     현대주의문학에서 표현한 이화는 사회의 전면적이화였다. 우선 인간과 사회의 이화이다. 그로부터 이화된 형상들이 부각되였다. 대표작품으로 까뮈의 ≪국외인≫, 보들레르의 시 ≪외래인≫과 오드 안드쎈의 ≪기형인≫등이다.     1) 인간의 이화     현대사회의 다변성과 인간들의 교제에서의 “일차성”과 “무배경성”은 서로심층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하지 못하게 한다. 현대사회는 인간을 도시에로 들이밀고 인간은 오직 과객이 된다. “명함장”으로 다른 사람과 교제하면서 “사람”과 자기는 분리될수밖에 없게 된다.     2) 인간자아의 이화 현대심리학에서 제시한 자아의 불온정성과 불확신성과 무의의성, 기계주의와 분공제하에 현대인은 자아를 상실하고 개성을 상실하였다. 현대사회는 인간으로 하여금 더 많은 각색으로 분장할것을 강요하기에 인간모양의 가면구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바 인간과 가면구의 충돌은 자아의 상실을 초래하였다.     3) 인간과 자연의 이화     문예부흥이 시작되였던 19세기 서방인들의 정력이 자연정복에 집중되였는데 마침내 세계가 변하고 자연생태계가 망가져버림으로써 인간의 생존조건 이 렬악해졌고 정복된 자연은 제2의 자연으로 되여 인간을 압박하는 무서운 력량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의 자연에 대한 략탈은 무지경이다.    4) 언어의 이화    언어는 "도구"라고 명명되였지만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창조하고 리용하는 "도구"에 스스로 지배받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정식화된 언어는 인간들을 “언어의 감방”속에 죄수로 되게 하였다. 인간은 확실히 언어의 죄수로 된셈이다.     5) 황당의식의 표현     철학상에서는 개인과 생존환경사이의 탈절을 가리켰는바 그는 외부세계를 리해할 방법이 없으며 어떠한 행위나 희노애락이 모두 외부세계에 아무런 작용도 놀지 못한다는것이다. 세계는 오직 랭혹하고 낯설게 다가설뿐이다. 우선 존재자체가 황당하다는것이다. 우주는 아무 목적도 가지지 못한 존재로서 오직 우연적인 존재일뿐이다. 인간도 생명은 다만 일종 우연한 현상이다.    4. 현대주의문학의 연혁    현대주의문학의 연변과 발전은 대체상 세개단계로 나뉘여진다. 제1단계는 19세기 70년대부터 20세기초까지는 현대주의의 배태기이다. 그것은 프랑스의 상징주의로부터 발단되였는바 선구자는 바로 프랑스의 보들레르였다. 19세기 80년대 프랑스는 정식으로 상징주의 기치를 내들고 작가대오를 결성하였다.     이 시기에 상징주의는 리론상에서 “내면에로의 침투”를 창도하였다. 그들은 현실적인생은 고통스럽고 허황하기에 오직 시인의 심령 세계의 “내적섬광”만이 진실과 미를 체현할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시의 목적인즉 “다른 한 세계를”암시한다고 했다. 상징주의의 대표적인 작품은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엘리어트의 ≪황무지≫이다.     제2단계는 20세기초부터 30년대까지 현대주의성숙기이다. 표현주의를 표지로 잇달아 미래주의, 초현실주의의 “의식의 흐름” 소설 등이 나왔다. 그들은 내용상 비리성적직각, 잠재의식 등 표현에 열중하면서 인간의 고민과 공포, 당혹한 심령세계를 발굴하려했으며 예술상에서 사상의 지각화, 내심독백, 자유련상, 변형, 표현형식에 대한 탐색과 혁신을 진행하였다. 표현주의의 대표적작품으로는 미국의 희곡 작가 오닐의 ≪지평선너머≫이다.     제3단계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로서 현대주의의 “전향”시기이다. 두번째 세계대전의 상처와 음영은 존재주의의 “세계는 황당하며 인생은 고통스럽다.”는 철학사상을 떠받들게 하였다. 뒤따라 존재주의문학이 류행되였고 그 철학사상에 영향받은 문학류파들이 륙속 출현되였다. 하여 한시기 저조기에 처했던 현대주의문학이 재기했다. 이것을 일명 후현대주의문학이라 부른다.     다원성은 후현대주의문학의 다른 하나의 특징이다. 후현대주의의 다원성특징은 주요하게 후현대주의와 현대주의, 사실주의, 랑만주의가 융합되고 관통된 그속에서 체현된다. 후현대주의정신이 비록 사실주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표현수법상 오히려 서로 통하는 점이 많다.  
25    제3절 문학의 스찔 댓글:  조회:3570  추천:23  2007-09-12
                                        제3절 문학의 스찔 1. 문학스찔의 함의 문학스찔이란 곧 작가의 창작풍격이다. 프랑스의 작가 뷔퐁은 “글은 곧 그 사람이다.”라고 하였는데 중국에서는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 하였다. 스찔은 작가의 기록으로서 소재선택, 구성, 얽음새, 묘사기법, 언어구사, 창작방법 등에서 나타나는 작가의 창작개성이다. 스찔은 미학적기호, 예술적기교 등이 서로 다른데서 나타난다. 스찔에는 시대스찔, 민족스찔, 작품의 스찔 등이 있다. 2. 스찔형성의 인소 문학스찔의 형성에는 크게 객관인소와 주관인소가 있다. 1) 객관인소 객관인소란 주요하게 작가가 처한 시대, 민족 등을 가리킨다. 시대적문화사상은 문풍의 산생에 거대한 영향을 일으킨다. 례하면 중국에서 20세기 50년대 “대약진”시기 허풍치기 사회풍조는 문학령역에도 불어쳤다. 당시 정치색채를 띤 민가짓기 운동이 벌어졌는데 하루 밤새에 “시가의 나라”로 되였다. 허풍치기가 너무 적라라하고 황당하게 반영된 이런 민가가 있었다. 콩알이라 쥐였더니 벼알이라 놀랐노라. 바위라고 앉았더니 호박이라 놀랐노라. 천년수라 쳐다보니 수수대라 놀랐노라. 이런세월 만나기는 세상에서 처음이라 이 한수의 민가에서 보다싶이 문학이 정치의 나발통이 되였고 당시 사회문화사상은 문학의 풍격을 압살하였다. 20세기 60년대 중기부터 시작된 10년 “문화대혁명”은 명칭과는 상반대로 한창 건전하게 발전하던 중국문학을 교살해버리고 말았다. 그후 전국적으로 구호식송가가 시단의 주요한 풍조로 되였다. 하여 문학은 가는곳마다 “꾀꼴새 노래하고 제비가 춤추는 아주 좋은 정세”에 발맞추어 개인숭배가 조성한 20세기 신화를 엮는데 이바지하였는데 문학이 정치권력의 하녀로 전락하고 말았던것이다. 2) 주관적인소 주관인소란 주요하게 작가의 개체심신인소(심리, 사상, 심미의식 등)를 가르킨다. 객관인소에는 우선 시대적인소가 중요하다. 주관인소에는 작가에게 소유된 주관방면의 조건 즉 생활경력이나 심리인소나 심미의식 등이 포괄된다. 창작원천으로서의 생활경력은 작가의 창작사상과 예술견해에 영향을 주며 작가의 작품스찔에 영향을 준다. 최서해는 남다른 역고의 생활경력으로 해서 반항적개성스찔이 형성되였으며 작품에 숨김없이 관통하였다. ≪탈출기≫, ≪기아와 살륙≫, ≪홍염≫등 작품에서 피가 끓어번지는 작가의 개성적인 열혈의 모습이 뚜렷이 떠오른다. 3) 생리기질인소 빠블로브는 인간의 기질을 담즙질, 다혈질, 점액질, 우울질 네가지로 나누었다. 로씨야의 뿌쉬낀은 담즙질의 대표였고 게르쩬은 다혈질의 대표였으며 끄릴로브는 점액질의 대표였고 고골리는 우울질의 대표였다. 뿌쉬낀은 랑만주의시인이였고 게르쩬은 열렬한 애국주의작가였는바 로씨아인민의 거대한 창조력을 믿었으며 로씨야의 미래는 필경 아름다울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끄릴로브의 우화는 의미가 광범하고 진실하며 심각하였다. 전제적농노제도하에서의 로씨야의 사회생활을 심각하게 묘사한 고골리는 생활감수가 강렬하고 체험이 심각하였으며 정서적내화도 상기한 세작가들과 뚜렷이 달랐다. 20세기 50년대 저명한 조선의 시인 조기천도 뜨거운 조국애를 지닌 정열의 시인, 불의에 한목숨 받친 열혈지사였다. 그는 정부의 피신권유도 마다하고 포연이 자욱한 전연진지에 달려가 총대신 붓대를 꼬나들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했다. 그런 시인이였기에《나의 고지》, 《 불타는거리에서》,《 조선은 싸운다》등 격동적인 시들을 써낼수 있었던것이다. 이렇듯 작가의 기질, 성격 등 심리인소에는 선명한 개성특색이 있는바 작가의 스찔을 구성하는 주요한 인소이다. 심리인소는 개인의 심리활동에 독특한 심리색채를 띠게 한다. 류협은 ≪문심조룡≫에서 “기는 뜻을 정하고 뜻은 언행을 정하나니 영화를 토하고 받아들임에 성정에 따르지 않는것이란 없다.”고 썼다. 최서해의 수필 ≪혈흔≫에서 이점을 충분히 느낄수 있다. …나는 글을 지으려고 애쓴다. 나는 다만 내 가슴에 서리서리 엉키고 뜨겁고 괴로운 정을 쓰면 족할뿐이다. …나는 의에 울지언정 아첨에 웃으려하지 않는다. 나는 내 일을 위해 가슴을 치고 통곡할지언정 남의 기분에 뛰고싶지 않다. 나는 압박에 대한 반역에 죽을지언정 순종에 살려하지 않는다. … 바로 이런 성정이였기에 “복마전같은 이 세상을 들부시자!”고 가슴이 터지도록 소리쳤던것이다. “천만사람이 서쪽달을 쫓을 때에 홀로 동쪽으로 향하는 사람!… 길은 험하다. 그러나 뜨거운 정과 굳센 의지와 튼튼한 믿음이 있다.” 이것이 바로 최서해의 개성이고 그의 인격적인 참모습이였다. 4) 작가의 세계관, 사상경향, 인격정신풍격 세계관은 작가가 우주와 인생, 일체사물에 대한 총적견해의 체계로서 근원적으로 작가의 개성발전을 지배하며 이 개성특징에서 체현된다. 로사는 풍격을 문학의 특이함이라고 말하기보다 사상력량의 특이함이라고 말하는것이 더 적절하다고 하였다. 사실 그는 비명에 죽었지만 작가적기개를 꺾지 않았다. 5) 심미의식인소 심미의식의 내함은 비교적 넓은바 그에는 심미감수, 심미체험, 심미정감이 포괄된다. 일체 외재적, 내재적인소는 모두 심미의식을 거쳐야 문학창작과정에 진입할수 있으며 예술형상으로 전화되고 따라서 예술적스찔이 형성될수 있다. 전세계인민들의 사랑을 받은 인도주의작가였던 유고는 ≪레미제라블≫의 창작리유를 밝히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노예제도를 비난한다. 빈궁을 거부한다. 무지를 계몽한다. 병집을 진찰한다. 암야를 밝혀준다. 증오심을 증오한다…” 이 말은 그의 심미의식내용 전부를 여실히 개괄하고있다. 이런 심미의식을 가지고있었기에 “법률과 인습의 힘”, “인공적으로 지옥을 만든 문명사회의 죄악으로 인한 사회죄악에 몸서리치면서”,“현대의 세가지 문제ㅡ즉 빈궁으로 인한 대장부의 타락, 기아로 인한 녀성의 타락, 암흑으로 인한 어린이의 위축”을 진실하게 묘사하여 그로부터 출로를 보여주려 했던것이다. 일정한 사회문화배경의 침투에 장기적인 자각적추구와 피나는 실천속에서 쌓은 생활경력, 심리인소, 심미의식 등은 점차 일종 독특한 개체성을 형성하게 한다. 그로부터 여느 사람들과 다른 기치를 내들게 된다. 이것이 곧 창작개성이다. 창작개성의 혈액은 작품속에 흘러들고 작가의 전반 작품들에 침투된다. 례를 들면 괴테는 세속에 깊이 침투하기 좋아한다. 그의 성격, 기질, 그의 력량, 옹근 정신적경향은 그를 현실생활속에로 떠밀었으며 자연히 사실주의자로 되였다. 동시대의 쉴러는 그와 반대로 칸트의 리상으로 루추한것을 피하고 평생 랑만주의자로 살았다. 그리고 ≪보바리부인≫, ≪죽은 넋≫에서도 감출수 없는 예술개성의 흔적들을 력력히 읽을수 있는것도 마찬가지 도리이다. 보다싶이 스찔의 형성에서 창작개성이 결정적작용을 논다. 작가는 성숙되여야 자기의 창작개성을 가지게 되며 누구도 대체할수 없는 락인을 찍어놓을수 있는바 그 작가의 성숙을 표징한다고 할수 있다. 그래서 작가라면 자기의 눈, 자기의 머리, 자기 심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것이다. 벨린쓰끼는 “시인의 개성은 무조건적이고 단독적이며 모든 외재영향을 초월하는것이 아니다. 시인은 우선 개인이고 그다음 조국의 공민으로서 시대의 산물이다.”라고 하였다. 6) 문학자체의 인소 문학전통이 작가의 스찔에 주는 영향은 더욱 뚜렷하다. 어떠한 작가이든 문학전통의 배경이 있으며 선인과 동시대인을 따라배우는 과정이 있게 된다. 례하면 조선의 현대시는 고대가요나 정형시처럼 음절단위와 시조직의 규격화는 요구 하지 않지만 조선어운률의 내재적규률을 지킬것을 요구한다. 이리하여 현대조선어의 적잖은 가사들이 조선어 재래의 운률적습관을 존중하여 일정한 음절을 규칙적으로 결합하는 “4. 4조”나 “7. 5조”같은 정형시의 전통적표현수법을 운용하고있음을 볼수 있다. 이와같이 한민족의 생활내용, 풍속습관, 문화전통, 심미심리는 필연적으로 작품에 반영됨으로써 민족스찔을 형성하는것이다. 3. 스찔의 체현 내용방면에서 스찔은 작품의 제재의 특점과 그에서 반영된 작가의 독특한 생활과 견해 등 객관특징의 통일에서 표현된다. 량자의 부동한 방식의 결합이 작품내용의 각종 풍모를 형성한다. 제재는 현실생활이 제공하지만 제재선택에서 작가의 창작개성이 반영되므로 제재는 작품의 기초가 될뿐만아니라 작품의 스찔을 이루는 기초로도 된다. 특히 서사문학작품에서 더 돌출이 표현된다. 만약 강남의 수향풍경이 로신소설의 스찔을 형성하였다면 북경의 시정풍 속이 로사의 소설스찔을 형성하였다고 할수 있다. 제재는 단지 작품의 스찔의 외부적이고 표층적인소일뿐이다. 오히려 작품에 체현된 생활에 대한 작가의 독특한 발견과 견해가 더 내부적이고 더 심각한 의미를 담고있다. 이렇듯 작가는 자기의 주관특징으로부터 출발하여 선재하고 처리하기에 무슨 제재로 쓰든 자기의 감수방식과 리해방식 등에 자기 특유의 락인을 찍어놓는다. 작가가 선택한 제재는 자신의 특정된 사색을 수반한다. 체호브는 유모아적스찔의 작가이다. 체호브의 작품에서의 유모아는 각종 의의를 가진다. 어떤 때는 그것이 서정적으로 정절의 비극성을 완화시키고있다. 례하면 단편소설 ≪고뇌≫가 그렇다. 어떤 때는 그와 정반대로 비극성을 가강한다. 유모아와 비극성을 결합시킨 단편소설 ≪고통≫이 그 례가 되는바 한바탕 홀가분하게 박장대소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체호브의 유모아적정신개성과 부동한 제재가 결합되여 형성된 유모아적풍격의 각종 변화형태이다. 형식방면에서의 스찔은 작품의 언어, 표현방식과 체재방면에서 표현된다. 우선 작품의 언어는 흔히 생활에 대한 작가의 감수방식과 리해방식을 반영한다. 작가가 각양각색의 묘사대상을 마주하는 구체적태도가 완전히 같을수는 없지만 하나의 감정기조가 작품에 관통된다. 형식방면에서서의 스찔은 작품의 언어, 표현방식과 제채방면에도 표현된다. 이것이 곧 각자의 언어풍격을 형성한다. 스찔은 기실 독특한 언어형식이다. 언어스찔이 매우 상사한 작가라도 미세한 차이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보아낼수 있다. 같은 유모아작가라 해도 체호브의 울지도 웃지도 못할 사색적인 유모아와 오헨리의 눈물어린 유모아가 서로 다른 스찔을 보이고있다. 중국작가 전종서의 유모아에는 서책냄새가, 조수리의 유모아에는 향토냄새가 다분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의 고명함이 곧 스찔이라고 하면서 “언어의 정확성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스찔이다.”라고 천명하였다. 스찔은 표현방식의 특점에서도 표현된다. 례하면 로신은 로동대중의 로력로동에 특별히 민감하였기에 로력로동자들을 “현대중국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령혼”이라고 일컬었다. 이는 작품내용상 시종 사상해부에 중시를 돌리는 창작태도의 특색에서만이 아니라 표현방식상에서 파생되여나온 그의 일계렬의 예술특성에서도 기인된다. 이를테면 성격부각을 중시하고 환경묘사를 중시하지 않은것, 환경묘사를 해도 사회환경을 중시하지 않고 물질공간환경에 치중하지 않은것 등이다. 스찔은 주체와 대상, 내용과 형식이 잘 결합될 때에 나타나는 특색이다. 이처럼 주체와 대상의 화해로운 통일은 스찔이 존재할수 있는 기본조건이다. 례하면 로신의 소설 ≪공을기≫에서의 함형술집에 대한 묘사, ≪축복≫에서의 세밑의 로진거리의 핍진한 풍경묘사 등이다. 스찔은 독자가 감별해내는 한가지 격조이기도 하다. “스찔이란 바로 작가가 자기와 독자사이에 놓인 일체 장벽을 제거하는 능력으로서 스찔의 최후승리는 곧 정신상의 접근을 확립하는것이다.” 한것은 스찔이란 찰나적인 정보의 비약방식이기때문이다. 모두어 말하면 스찔이란 일종 심미표지이고 시대정신과 예술취미의 다양성의 체현으로서 작가와 독자의 정신적인 소통과 심미상의 공명은 독자로 하여금 오래동안 심미적희열을 느끼게 한다. 창작개성은 독특한 개성기질, 인격정신, 예술정취, 심미추구와 문학재능 등으로 표현된다. 벨린쓰끼는 쓰고있다. “스찔ㅡ이것은 재능 그 자체이고 사상자체이다. 스찔은 사상의 부각성, 가감성(可感性)이며 스찔에서 그 사람의 정체가 표현된다. 쓰찔과 개성은 성격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독창적이다.” 문체의 특색과 언어조직은 스찔이 발현되는 외부특징으로서 작품속에서 빛발친다. 쓰찔은 결국 그 작가의 언어구사의 풍격에서 구현된다. 작가들이 표달효과의 최적화의 목적밑에 알심들여 선정하는 상응한 언어수단 즉 표달방식의 계통질을 문학언어의 공능풍격이라 하는데 곧 문체풍격을 의미한다. 중국에서는 굳세고 유연함(刚与柔),호방함과 완연함, 허와 실, 웅위로움과 통쾌함 등으로 스찔을 론한다. 스찔은 다양한 문화와의 제관계속에서 발현된다. 스찔과 시대문화, 스찔과 민족문화, 스찔과 지역문화, 스찔과 문학류파 등등. 4. 민족스찔 1) 다양한 스찔 괴테는 “철학사변은 독일사람들에게는 유해한바 그들의 풍격으로 하여금 까다로운데로 흘러가게 하였으며 리해하기 어렵고 깊이 파고들려면 싫증을 자아낸다. 그러나 실제생활에 종사하여 실천행동만을 고려한다고 할 때 독일사람들은 확실히 가장 훌륭하게 쓰고있다. 쉴러가 매번 철학적사변을 버렸을 때 그의 풍격은 웅장하고 유력하였던것이다. 영국인들은 늘 훌륭하게 잘 쓴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연설가로서 눈길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직시한다. 프랑스인들은 풍격상 그네들의 일반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그들의 성미는 사교를 좋아하기에 줄곧 청중을 마음속에 새겨두고있다. 그들은 가능한 조리가 있을것을 추구하기에 독자를 잘 설복시키고 풍취를 추구하기에 독자를 쉽게 기쁘게 할줄 안다.“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매개 민족에 특유한 사회생활내용, 문화전통과 심미리상 등은 작가의 정신개성에 침투되며 진일보 작품의 언어풍격과 형상창조 및 표현방법 등에 영향주어 짙은 민족색채를 띠게 한다. 이것이 곧 문학스찔에서의 민족인소이다. 한 민족의 언어가 타민족의 언어로 바뀌여도 의연히 원작품에 침투된 민족특성이 소 실되지 않으며 독자는 그것을 충분히 읽어낼수 있다. 벨린쓰끼는 쓰고있다. “대저 예술이라 할 때 그 내용은 민족의 력사생활의 표현으로서 이런 생활이 예술에 주는 영향은 거대할수밖에 없다. 그것은 예술을 석유등잔에 불심지와 같게 하며 더 나아가서 흙이 키워내는 식물과 같다고 할수 있다. 프랑스사람들의 민가는 언제나 방자하고 영원히 쾌락적이며 독일사람들의 민가는 침울하거나 종교냄새가 짙다. 로씨야의 민가는 우울하고 깊은 생각을 자아내게 하며 힘있다. “어떤 의미에서든 문학은 모두 민족의식, 민족정신생활의 꽃떨기이고 열매이다. 매개 민족의 민족성의 비밀은 그 민족의 복장이나 료리에 있지 않고 사물을 료해하는 방식에 있다. 위대한 시인일수록 더욱 민족적이다. 한것은 그가 민족정신속에서 더욱 많은것들을 발굴하고있기때문이다. 시인은 영원히 민족정신의 대표로서 자기 민족의 눈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자기의 락인을 찍는다.” 2) 민족인소의 영향 민족인소가 작가스찔에 주는 영향은 주요하게 네가지가 있다. 첫째, 특유의 자연환경, 사회환경, 풍속습관, 언어문화 등이다. 유고는 궁정의 로맨틱한 거지왕국의 신비한 질서, 프랑스대혁명의 불길의 묘사에서 프랑스민족의 독특한 풍토인정을 체현하였다. 로신의 소설에 강남의 풍토인정, 심종문의 소설에서 상서채룡단의 장면에서 한족들의 생활특색이 잘 체현되고있다. 둘째, 자연, 사회, 풍속, 문화속에 깊이 숨어있는 민족의식과 민족문화심리이다. 고골리는 “진정한 민족성은 농촌아낙네의 소매없는 긴 적삼을 묘사하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민족정신자체를 표현하는데 있다. 시인이 완전히 생소한 세계를 묘사할 때에도 그가 민족적안광으로 그것을 보고 그런 감수를 말한다면 그의 동포들은 마치 자기 자신들의 감수를 말하는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에만 민족스찔이 있다.”고 정채롭게 론단을 내리고있다. 중국의 고대잡극 “서상기”에서 최앵앵이가 마지막으로 장생의 품에 안기기까지의 일련의 행동들은 쉐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쥴리에트”에서의 두련인의 개방성, 대담성, 통쾌한 성격미들과 대비도 안된다. 이것은 “남녀7세 부동석”이나 “부부유별”과 같은 유가학설의 영향하에서 형성된 뿌리깊은 민족문화심리와 애정관념과 유관된다. 괴테는 한부의 중국전기를 읽은후 다음같이 소감을 쓰고있다. “중국사람들의 사상, 행위와 정감은 우리와 거의 어상사하여 우리는 재빨리 그들도 우리와 동류인이라는것을 느낄수 있다. 다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모든것이 명랑하고 순결하며 또한 도덕에 부합된다. 그들에게는 또 다른 특점이 있는데 인간과 자연이 함께 생활한다는것이다. 당신은 금붕어가 못에서 뛰는소리와 새들이 나무가지에서 지저귀는 소리를 늘 들을수 있을것이다. 오직 달이 변색하지 않는다면 태양처럼 밝을것이다.” 셋째, 민족의식의 기초상에서 표현되는 민족의식은 문학스찔에 가장 집중적으로 영향준다. 괴테는 “중국사람들의 사상, 행위, 감정 등 방면에서의 명랑성, 순결성은 도덕에 더욱 합치된다”고 하였다. 한족들의 특점은 외재적인것, 내재적인의 화해, 혈연에 대한 애착, 륜리성의 협조에서 잘 표현되며 심미의식 상에서 잘 체현된다. 이를테면 “중화의 미” ,“정경융합”, “형상과 정신의 겸비”등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문학의 민족스찔의 본질은 곧 민족성이다. 민족문화의 핵심이 민족혼이라면 문학은 음악, 회화, 철학, 과학과 더불어 민족의 혼을 내비치는 다섯개 창구의 하나로 된다. 문학의 특징은 민족의 정치, 경제생활의 특점을 포괄하고있고 지역특징, 생활방식, 언어, 풍속습관 등을 반영하지만 보다 중요한것은 민족성격ㅡ민족의 혼, 민족정신을 체현하는것이다. 문학스찔의 민족성은 한 민족의 정신면모가 해당민족작가의 작품속에서 구체적으로 체현되는것으로서 한 민족의 공통적인 특성들이 작가의 스찔에 표현되여 독특한 민족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한부의 소설에서 치마저고리를 입히는 등 복장의 민족화라거나 도라지춤을 추는 장면묘사가 있다해서 민족스찔이 표현된것이 아니다. 민족형식은 본민족의 특정된 생활내용을 표현하는 장기적인 력사과정에 형성된 본민족인민의 심미리상에 적응되고 알맞은 독특한 예술적구조와 방식과 표현수단을 써야 한다. 민족형식은 민족의 력사적경험에 대한 개괄로서 민족정신과 민족생활의 표지이며 민족예술이 성숙된 표지라는것이 현시되여야 한다. 한 작가가 민족적안광으로 생활을 투시하고 자발적인 민족예술창조심리에서 문학작품을 창조해냈다면 민족성을 구비했다고 말할수 있다. 스찔의 민족성은 문학작품의 내용과 형식의 제요소의 통일속에서 표현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민족언어문제가 아니다. 넷째, 민족스찔에서 우선 제기되는것은 민족언어의 요소이다. 문학의 제1요소로서의 언어는 민족문학형식의 첫째가는 표출이다. 조선어의 단어조합과 특점, 음향의 고유한 특색, 문법결구와 다양한 가변성은 우리의 조선족문학으로 하여금 남다른 민족특색을 고유하게 한다. 고대가요 ≪공후인≫을 보자. 님이여 가람 건느지 마소 님 그예 건느시네 물에 들어 싀오시니 어저 님을 어어하리 시에서는 강물에 몸을 던져 불행하게 죽어간 님을 부르며 비탄하는 한 민간부녀의 처절한 심정을 깊은 동정으로 노래하고 그 부부의 순정의 깨끗한 인민적인 절조와 감정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가요는 조선고대가요의 공통적인 간결한 4구체형식을 취하면서 거기에 기, 승, 전, 결의 요구를 기본상 구현하고있다. 고려가사《청산별곡》에서도 조선어의 고유한 특징이 잘 구사되고있다. 그라니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타민족과 구별되는 민족의 특유한 정서이다. 살어리 살어리 랏다 청산에 살어리 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 랏다. (하략) 보다싶이 이 가요는 세련된 시어로 반복법을 다양하게 리용하였을뿐만아니라 그 운률이 아름답고 류창하여 실로 그 시적표현이 우수하다. 이런 아름다운 언어와 운률미는 강한 예술미를 풍기는바 실로 우리 민족문학에만 있을수 있는 진품이라 할것이다. 이렇듯 민족언어의 특색을 살리는 문제만이 아니다. 리기영의 가장 대표적인 장편소설 ≪고향≫은 복잡하고 다양한 형상들을 하나의 정연한 체계속에 통일시킴으로써 1920년대 조선 농촌의 사회현실을 방대한 서사적화폭으로 재현하였다. 리기영의 묘사(자연, 환경, 인물초상, 심리, 행동, 풍속 세태, 습관 등)의 진한 회화성과 생동성, 속담, 성구, 격언 등의 능란한 사용, 풍자, 비유, 과장 등 수사적수법의 적절한 운용 등은 민족적언어의 풍부한 예술성을 보여주 고있는데 우리 민족작가들의 스찔은 될수 있지만 다른 어느 민족의 작가도 이룰수 없는 민족스찔의 체현이다. 3) 민족스찔의 특징 문학스찔의 민족성은 구성, 표현수법, 쟝르에서도 부동한 특점을 보인다. 환언한다면 각 민족의 심미취미와 예술애호가 다르기에 각 민족의 표현수법과 예술결구상 특점을 형성했다. 중국고전소설에는 표현수법상 단독적, 고립적인 환경묘사가 극히 적었다. 흔히 인물의 성격발전의 력사인 슈제트속에 융화시켜 정절발전속에서 인물성격을 안받침해주는 주위환경과 긴밀히 결합시켜 그린다. 례하여《홍루몽》에서 영국부와 녕국부, 대관원을 고립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없다. 그러나 슈체트의 발전에 따라 이러한 곳들들이 점점 독자들의 머릿속에 뚜렷하게 새겨진다. 이런 수법은 조설근의 스찔이면서도 한족문학의 스찔이다. 볼떼르는 쓰고있다. “창작스찔로부터 이딸리아인, 프랑스인, 영국인 혹은 서반아인을 가려낼수 있다. 마치 그의 얼굴륜곽, 그의 발음과 행동거지에 그의 국적을 쉽게 알아낼수 있는것처럼 말이다. 이딸리아어는 부드럽고 달콤하여 부지불식간에 이딸리아작가들의 자질속에 스며들었던것이다. 내가 보건대 화려한 문구, 은유의 운용, 장엄한 스찔은 서반아작가의 특점으로 표지되고있다. 영국사람은 말하면 작품의 력량, 활력과 웅위로움을 강구한다. 그들은 풍유와 드러낸 비유가 일체의 우위에 있다. 프랑스사람들은 명철하고 엄밀하며 우아한 스찔을 가지고있다. 그들은 영국인들의 힘과 이딸리아인의 부드러움을 가지지 못했지만 전자는 흉맹하고 조폭하고 후자는 기개가 결핍하다고 보았다. 영국인들은 작품의 박력, 활력과 웅위로움을 강구하기에 풍유와 드러난 비유가 일체를 압도하고있다. 프랑스인들은 명철하고 엄밀하며 우아한 풍격을 구비하고있다. 그들에게는 영국인처럼 력량이 없고 이딸리아인처럼 부드러움이 없다. 그들이 보건대는 전자는 흉맹하고 조폭하고 후자는 기개가 부족하다고 생각되고있다.” 외국소설과 중국의 고전소설을 비교하여 본다면 심리묘사의 방법상에서 구별된다. 중국고전소설은 정지된 상태에서 심리해부를 하지 않고 왕왕 인물의 표정, 행동을 통하여 움직임속에서 인물의 심리변화를 쓰며 문자역시 비교적 간결하다. 외국소설에서 심리묘사는 비교적 섬세한것이 특점인데 심리해부의 방법을 많이 쓴다. 문학발전은 필연적으로 기타 민족문학의 영향을 받게 된다. 부동한 민족문학의 영향은 주요하게 다음같은 세개면에서 표현된다. 첫째 사상내용면에서 상호영향준다. 례하면 중국의 당조시가, 원대의 희곡, 명청시기의 소설은 조선, 일본, 윁남, 중아세아 각국에서 새로운 사상, 새로운 예술방법을 가져갔으며 아세아 각국지간의 문화교류를 증강시켰다 18세기후 중국의 소설, 희곡작품들이 구라파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금고기관(今古奇观)≫, ≪삼국연의≫, ≪수호전≫, ≪홍루몽≫등은 각국 언어문자로 번역되였으며 볼테르, 괴테, 쉴러, 헤겔 등 허다한 작가들의 주목을 끌었다고 한다. 한편 19세기 로씨야문학에서의 민주주의사상 및 10월혁명후의 무산계급문학은 중국의 신문학탄생에 심원한 영향을 일으켰다. 로신은 일찍 1907년에 뿌쉬낀, 레르몬또브, 바이론, 쉘리, 뻬뙤피 등 잒가 들의 반항정신과 애국주의정신이 충만된 작품들을 중국독자들에게 소개하였고 모순도 발자끄, 졸라, 모파쌍, 프로벨 등 작가들의 명작을 소개하는데 심혈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들은 중국문학발전에 심원한 영향을 일으켰다. 둘째로 문학사조의 영향을 받는다. 일정한 력사시기내의 민족문학교류에서 발달한 민족, 진보적문예사조와 문학창작은 주도적이며 추동작용을 일으키며 다른 문학은 그 영향으로 수동적일수 있는데 이는 잠시적현상으로서 세계문학의 공통한 발전규률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관념속에서는 민족적인것과 전통적인것이 동등시되고 있는데 민족성이라면 본민족이 현재 소유하고있는 특성으로 리해하기 십상 이다. 실제상 전통은 민족적인것이라 해서 곧 완전히 전통과 등호가 성립되는것은 아니다. 전통적인것은 민족적인것과 대등하지만 민족적인것이라 해서 꼭 전통적인것이라고 말할수는 없다. 셋째: 세계화, 다문화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민족형식도 력사적계승성을 가지면서 사회생활과 문학의 발전에 따라 부단히 발전한다.
24    제 2 절 문예사조와 창작방법 댓글:  조회:3817  추천:19  2007-09-08
                                          제2절 문예사조와 창작방법     1. 문예사조     1) 문예사조의 함의     문예사조란 일정한 력사시기에 있어서 한나라, 또는 몇개의 나라들에서 일련의 작가, 예술가들이 창작에서 정치관점과 예술관점의 공통성으로 인해 표현되는 창작경향으로서 문학력사발전과정에 변동과 분화를 가져온 사상조류이다.     휘트맨은 “객관정신”을 구비한 존재형식이라고 하였다. 이런 문학상의 객관정신은 각개 작품속에 객관화된 정신과 다른바 그것은 류동하며 실재하는 신선한 사상으로서 매 작가와 독자의 주관정신과도 다른 초객체의 공동한 력사정신이다. 헤겔은 부동한 력사단계의 예술내용과 형식관계의 각도에서 상징형, 고전형, 랑만형으로 나누었다.    문예사조는 형식적특성에 따라 구분된것만도 아니며 일정한 시대나 집단과 관련해서 구분된것도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력사적조건에서 일어난 집단적문예활동의 양상으로서 사상견해가 일치되며 표현형식, 세계관, 가치관, 표현수법의 류사성을 종합적인 파악하에 구분되는바 이에는 다원적기준이 적용된다.     작가의 지각의 틀, 세계관, 가치관, 표현수법의 류사성 등이 모두 문예사조를 구분하는데 기준이 되는 요소들이다. 모든 개별 작품들은 일정한 류형적동일성을 가질수 있고 그것이 그 작가가 속한 집단이나 시대의 정신적지향과 유관될 때 문예사조를 구분해서 시대적, 집단적특징으로 설명되고있다.     문학사조의 시대변화와 민족지역분화는 근거와 조건이 있다. ①지리, 풍토환경 ②인종, 민족의 소질 ③사회, 경제, 정치형세 ④사상사, 문화사의 발전정황(특히는 종교와 철학과 같은 리념화의 문화적련계) 등외에 문학사조와 동시의 기타 제예술의 동향과도 기본상 일치한바 비록 그들 상호간에 영향주지만 자체내의 객관의식을 동인으로 하여 자률적으로 발전한다.     각 시대의 주도지위에 있는 작가들이 문학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일으켰는바 특히 시대의 요구와 민족의 기본특징이 문학사조와 문학형태의 발전에 영향주었다. 희곡에서의 고전주의, 소설에서의 사실주의(写实主义), 랑만주의 혹은 상징주의 등은 주도적지위를 차지한 동시에 그 자체도 절정에 이르렀다.     2) 문예사조와 양식     양식은 문학예술에서는 시대 또는 어떤 부류를 따라 각기 독특하게 지니는 형식을 의미한다. 문학예술에서 하나의 양식은 그 자체로서 변화하고 발전한다. 이 양식변화는 문학예술에 대한 취미의 변화와도 맞물리는 시대의 규범체계로서 문예사조의 개념과 밀접히 관련되지만 양식이 곧 문예사조는 아니다.    생활에 대한 리해 및 생활의 본질적현상들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서로 류사한 작가들의 창작상 통일성이 이루어졌는데 이런 통일성은 그들의 작품들에서 반복되는 사상예술적특수성들 즉 생활현상들의 선택 및 그에 대한 해명, 슈제트의 구성, 그들이 전형적인것이라고 생각하는 성격의 특징들, 그들이 항상 리용하는 예술적수단들, 언어의 특수성들을 규정한다.     3) 문예사조와 창작방법     문예사조는 창작방법과 련관이 있지만 좀 구별된다. 사조는 일련의 작가, 예술가들의 공통되는 창작경향을 의미하나 창작방법은 창작과정에서 작가가 의거하는 원칙과 방법이다. 창작방법은 작가가 일정한 세계관의 지도하에 예술적으로 생활을 인식하고 반영하며 형상을 창조하고 감정을 표현하는데 따르는 기본원칙으로서 작가의 현실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며 예술에 대해 예술적개괄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방법을 규정하였다    창작방법은 작가의 개성과 의지, 문학을 담당하는 사회계층의 변화, 전통과 외래요소의 관여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창작방법이 적용된 결과 일정한 시대와 집단에 공통된 양식이 나타나게 된다. 양식이 순수한 형식적기준에 따르는 개념이라면 창작방법은 우연적요소와 필연적인 요소의 상호관계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문예사조는 창작방법의 결과를 일정한 기준이나 분류의 방법에 의해 구획한 추상적개념이다. 따라서 창작방법에 대한 리해는 문예사조의 리해에 전제가 되지만 거기에 전적으로 의지하는것은 아니다. 문예사조는 나름대로 설정된 기준과 테두리에서 고유한 방향성을 가지고 나가기도 하는것으로 해석된다.     4) 주요한 문예사조     문학의 유구한 발전사상에 많은 문예사조가 있었지만 주요하게 몇가지만 서술한다.     (1)고전주의: 고전은 책상위에 놓인 옛책을 의미하는데 고대의 경전을 말하여 옛법식이나 모범이 되는것을 나타내는 말로 발전했다. 고전주의는 넓은 의미로는 희랍, 로마의 고전작가들의 작품을 모범으로 그것이 이룩한 완성도에까지 도달하려는 문학정신 또는 풍격을 의미한다.     좁은 의미로는 17세기 프랑스에서 발생하여 유럽전역으로 확산된 특정한 력사적현상으로서의 문학예술사조이다. 개성적이고 독창적인것보다는 사회적보편성을 지닌것이나 도덕적으로 전범이 될만한것을 중시하고 내용과 형식이 조화되는 질서와 균형미를 추구하며 완벽한 구성이 필요한 비극을 최상의 쟝르로 간주한것이 고전주의의 기본특징이다.     르네쌍스이래 서양사회는 사회 각 령역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정치적으로는 절대왕정의 시대로 접어들고 마루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의해 종래의 신념체계가 무너지고있었다. 종교전쟁, 흑사병의 창궐, 신흥부르죠아들에 의한 귀족세력의 약화 등의 사회적변동이 일어난다. 이러한 혼란속에서 질서와 규률을 바라는 욕구가 생겨나면서 고전주의적기풍이 살아났다.     고전주의를 뒷받침한 철학은 데카르트를 위시한 합리주의자들의 리성주의였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방법서설≫에서 사람들의 내부에는 똑같은 리성이 있지만 이것을 잘못 적용하는데서 오유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제안하는 보편적방법이 철학의 방법이 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고전주의 문학리론은 고대희랍, 로마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권위에 의해 여러 원칙을 제정했다.    ㄱ) 모방의 원칙: 문학예술은 자연에서 가장 아름다운것을 선택하여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기괴한것이나 이상한것을 배제하고 리성에 어긋나지 않는 진실한것을 표현해야 한다.    ㄴ) 명확한 언어의 원칙: 프랑스에서 고전주의를 주도한 시인 말레르브는 “순수한 언어를 만들어야 하고, 사투리, 고어, 전문어를 몰아내고 분명한 제약을 바탕으로 한 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했다.    ㄷ) 쟝르구분의 원칙: 세속적인 예술과 성스러운 예술이 구분되여야 하며 또 비극적인 쟝르와 희극적인 쟝르가 구분되여야 하며 또 비극적인 쟝르와 희극적인 쟝르가 구분되여야 한다. 한 작품안에 비극적인 요소와 희극적인 요소가 섞여서는 안된다. 이것은 비극에 서는 고상한 말이 쓰여야 하고 희극에서는 상스러운 말이 사용되여야 한다는 규칙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ㄹ) 개연성의 원칙: 고전주의 문학리론의 정수인것처럼 생각되는 삼일치(叁一致)의 법칙(그리스의 고전극이 요구했던 3가지 법칙: 시간, 장소, 행위의 일치를 뜻함), 극의 행위는 같은 장소에서 24시간안에 일어나는것이여야 한다는 법칙은 개연성의 법칙이였다.    ㅁ) 교훈성 원칙: 모든 작품은 교훈적인 의도를 가져야 하며 관객을 선도할 의무가 지워져있었다. 비극 ≪로시드≫의 작가 꼬르네유와 희극 ≪따르뜌프≫의 작가 몰리예르가 활동한 이 시대를 전기고전주의시대라 부른다. 꼬르네유는 그의 희곡에서 정열의 욕구와 의무의 명령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을 그렸으며 몰리에르는 당대 사회현실을 비판했다. 몰리에르의 주인공들은 고전주의적인 대표들이다.     고전주의와 계몽주의는 일정한 구별이 있다. 인간의 리성이 진리를 발견하는 유일한 원천이라는 믿음은 점차 고전주의문학에 대한 회의도 가져오는데 과학에 대한 열광과 새롭게 등장하는 인문주의에 힘입어 교회와 왕정, 전통이 유지시켜오던 편견들에 대한 싸움으로 발전한다. 고전주의후기에 해당하는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포프, 볼테르, 몽테스키외 등의 계몽주의는 고전주의에 나타난 리성주의의 한 양상일뿐만아니라 랑만주의의 전조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18세기말에 랑만주의에 의해 막을 내린 후, 20세기초 영국에서 흄과 엘리어트 등 주지파(主知派)에 의해 부분적으로 재현되였으며 이를 신고전주의라 부른다. 괴테의 ≪파우스트≫, 단테의 ≪신곡≫, 라신의 ≪소송광(诉讼狂)≫, 프랑스의 몰리에르의 ≪수전노≫ 쉐익스피어의 ≪햄리트≫ ≪오쎌로≫등이 있다.     (2) 랑만주의: 랑만주의란 넓은 의미로는 18세기후반부터 19세기 전체에 걸쳐 서구에 나타난 문예사조이며 좁은 의미로는 18세기말부터 19세기초사이에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서구의 주관적이고 개성적이며 공상적, 상징적, 신비적, 초자연적, 혁명적인 특성을 지닌 문학예술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랑만주의는 고대프랑스어에서 전화되였다. “랑만”이라는 단어는 원래 프랑 스어의 방언인 로망스어로 글을 짓는다는 뜻이였다고 해석하고있다. 주요하게 중세기 기사모험이야기에서 놀라우리만치 황당하고 경이로운 장면에 대한 묘사 로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은것이 아니였다.     랑만주의는 맨 먼저 독일에서 발생하여 영국으로 건너갔고 이어 프랑스에 전해진 문예사조였다. 이 사조의 성격은 주관적, 정열적, 개성적, 신비적, 초자연적, 혁명적인 성격 등이다. 대표적작가 및 작품으로는 듀마의 ≪몽떼그리도백작≫, 바리론의 ≪차일드 하롤드의 순례≫, 괴테의 ≪젊은 웨르스터의 번뇌≫, 유고의 ≪레미제라블≫, 미국 호손의 ≪주홍글씨≫, 하이네의 ≪독일의 겨울이야기≫, 발자끄의 장편소설 ≪농부≫등이 그 실례이다.     한편 랑만적성향이 태동한 곳은 산업혁명을 일찍 겪은 영국에서부터라고도 한다. 17세기후반 18세기에 걸쳐 문예부문에서 감수성이 강하게 나타나 우울감, 소박함, 동경, 자연생사관을 표현하였다. 이것이 새로운 시의 경향을 낳았다. 례를 든다면 R. 번스의 ≪변경농민의 노래≫, W. 블레이크의 ≪무심의 노래≫(1789)는 순진하고 신비한 세계를 노래했다는것이다.     영국랑만주의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대보다도 당시의 사회적변동에서 더 많은 자극을 받았다. 산업혁명이후 부르죠아적질서가 확립되던 현실이였던만큼 문학인들은 동시대 사회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냈으며 물질적인 소유에 대한 경멸감을 표시하고 합리적인 곳에 대해 자연적인것을 선호했으며 인간심정의 문제에 초점을 두었다. 대표적시인으로는 워즈워스, 키츠, 바리론, 쉘리 등이다.    독일의 질풍노도운동에서 시발점을 찾기도 한다. 고전주의에 대한 반대를 분명하게 표현한 질풍노도운동은 문학이 구속을 넘어서 인간의 마음에 깃든 정서, 감정이나 정열을 표현해야 하며 인생의 실재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기 랑만주의는 유럽대륙에 소개되여 공명을 불러일으켰으며 각국 랑만주의 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례하면 바이론의 우울과 자아의식, 쉘리의 지적미, 키쯔의 감각적관능과 그리스에 대한 동경의 노래로 영국의 랑만주의는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한편 스코트는 중세풍의 력사소설 ≪아이반호(1819)≫와 발라드풍풍의 ≪호수가의 미인≫(1810) 등을 썼다.    독일에서는 F. M. 클리거의 희곡 ≪질풍노도≫(1776)에 나타난 생기발랄한 정열, 자유롭고 대담한 표현과 형식이 청년들의 반계몽정신을 그대로 묘사하였으므로 이 희곡의 명칭이 괴테의 ≪젊은 웨르스터의 번민≫(1874), 쉴러의 ≪군도≫(1881)로 대표되는 새로운 문예사조를 가리키는 명칭이 되였다. 독일의 랑만주의는 정서, 직관, 자유분방, 생명력, 반도덕, 반합리성 등을 특징으로 한다.     프랑스에서는 19세기초 권력에서 밀려난 인사들을 중심으로 귀족적랑만주의가 발생하여 돈밖에 모르는 부르죠아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에 환멸을 표현하였다. 프랑스에서는 루쏘의 사상이 이미 18세기중엽부터 강한 감화를 주고있었으나 1789년 프랑스혁명과 국외 망명자의 귀국으로 민족성의 재인식과 반고전적경향이 강해졌다.     고전주의적규칙에서 해방된 문학, 령감의 자유, 언어와 형태의 자유, 진보문학을 주장했던 스탕달의 ≪라신과 쉐익스피어≫가 출간된 이후 랑만주의가 본격화된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뮈세, 네르발, 고티에, 유고 등이 있다. 발자끄, 스탕달 등의 소설도 혐오스런 현실 세계에 맞서는 인물을 그린 점에서 랑만주의의 경향을 드러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이 초래한 사회적변화는 문학가에게 랑만적경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였으며 사회적인 관심을 고조시켰다.     랑만주의는 그 발전행정에서 적극적랑만주의와 소극적랑만주의로 나뉘여져 대립되는 파벌을 이루었다. 뮈세, 스탕달 등은 사회, 정치소설로 전향하여 진실의 추구를 념원하여 사실주의로 전진하다가 19세기 후반기에 랑만주의로 쇠퇴하였다.     미국의 랑만주의는 그 발전이 뒤늦었다. 1776년 독립후 이민시대의 보수적전통은 무시되고 적극적이며 락천적인 인생관이 길러졌다. 여기에 유럽의 랑만주의에 감화되고 또한 식민지시대로의 회고, 원시자연과 밀림, 인디언인이 보여준 신비스러운 괴기, 이국취미, 자연의 경이로움이 미국적인 대지를 사회배경으로 랑만주의를 발전시켰다. W. 어빙으로부터 N. 호손이 등장하였으며 락천적으로 민주주의를 노래한 휘트맨, 초절대주의자 에머슨 등으로 이어졌다.     (3) 사실주의(写实主义): 사실주의는 고전주의와 랑만주의 이후에 나타난 사조로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묘사하는것을 기본 방침으로 하는 현실주의적인 문예사조이다. 프랑스의 발자끄, 스탕달, 로씨아의 고골리, 영국의 디킨즈 등에 의해 발전한 사조로서 일부러 미적이고 조화된것보다 추악하고 불쾌한 현실을 실제대로 제시하며 관념적인 류형보다 구체적인 개성을 중시하며, 리상주의와 같이 선택적, 수식적이 아니라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묘사를 추구한다.     사실주의는 랑만주의시대와 거의 중첩된다. 산업혁명이후 전개된 자본의 지배가 현저하게 된 현실이다. 사회지배세력이 완전하게 부르죠아계층으로 확정된 상황에서 경제론리가 인간의 개인특성과 자유를 침해하는 양상이 심화되였다. 사회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사회의 불합리와 모순에 대한 인식이 싹텄다.    사실주의가 고전주의와 랑만주의의 전통에서 싹튼것과 마찬가지로 그 사상적배경도 계몽주의에서부터 시작하여 근대의 합리주의, 실증주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사실주의의 철학적근거를 제공하였기때문이다. 특히 근대 이후의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 사회학, 심리학 등은 후날 사실주의의방법에 중요한 자료들을 마련해준다. 이와함께 헤겔의 철학이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이후 발전한 사회주의사상과도 일정하게 련계된다고 할수 있다.    고전주의가 극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랑만주의가 시에서 가장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있는데 비해 사실주의는 소설에서 꽃을 피웠다. 특히 영국의 력사소설가 월터 스코트의 방법을 현재의 력사에 적용한 발자끄의 방법은 인간의 심리에 대한 탐구와 함께 사회를 전체로서 파악하고 사실주의의 전형적수법을 보여주었다. 그는 ≪인간희극≫을 비롯한 여러 소설에서 프랑스의 풍속을 묘사했을뿐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내밀한 심리가 벌린 인간드라마를 재현하려 하였다.     발자끄와 함께 창작활동을 한 스탕달은 등장인물의 심리분석에 관심을 쏟고 그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섬세하게 통찰하였다. 이후 프랑스의 사실주의는 플로베르와 같은 작가에 의해 묘사의 문학으로 변해가면서 자연주의라는 서로 다른 문학세계를 열었다.    경험주의의 전통이 깊은 영국은 리차드슨, 필딩 등이 개척한 사실묘사의 전통과 력사를 총체적으로 바라볼수 있게 하는 월터 스코트의 전통을 지니고있었다. 이 전통을 이어19세기에 디켄즈, 쌔커리 등이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하여 근대사회의 면모를 갖춘 영국의 현실을 제재로 한 이야기를 펼쳐보이고있다.     독일에서는 1830년 무렵에야 시민계급 활동이 두드러지고 정치 참여를 위한 움직임도 구체화된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기계공업이 새로 부흥할 기운을 보이고있었다. 이런 가운데 쿠츠코의 경향소설, 헤벨의 사실주의희곡 등이 발표된다. 이밖에 켈러, 라베, 마이어 등이 사회적변동이 격심해지는 독일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프랑스의 사실주의를 계승한것은 영국이나 독일이 아니라 로씨야였다. 로씨야문학이라고 하면 사실주의를 련상하리만큼 1930년대부터 볼세위크혁명 이후에 이르기까지 사실주의가 주류를 이루어왔다. 유럽의 사실주의가 사회현실의 묘사에 치중한데 비해 로씨야의 사실주의는 명석한 투시력과 영원한 환상을 지니고있다.     사실주의의 대표적작가인 고골리는 ≪검찰관≫, ≪죽은 넋≫ 등에서 사실주의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또 ≪가난한 사람들≫, ≪까라마쪼브형제≫를 지은 또스또옙쓰끼 등도 대표적사실주의작가였다. 평론가 벨린스끼는 사실주의를 리론적으로 해명하여 문학창작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사실주의는 발자끄를 위수로 한 사회적사실주의, 플로베르를 위수로한 예술적사실주의, 졸라를 위수로한 과학적사실주의 등이 있는데 후에 자연주의로 분화되였다. 대표적작가 및 작품으로는 플로베르의 ≪보바리부인≫, 모파쌍의 ≪비계덩어리≫, 스탕달의 ≪붉은것과 검은것≫, 발자끄의 ≪인간희극≫, 또스또옙스끼의 ≪죄와 벌≫, ≪까라마쪼브형제≫,디켄즈의 ≪올리버 트위스트≫ 등을 손꼽을수 있다.    자연주의란 철학에서 자연과학적세계관에 립각하여 물질을 유일한 존재라고 보는 실재론이다. 문학에서의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에 이어 실증주의사상을 배경으로 예술행위의 기본이 되는 제1원리를 자연이라 보고 창작의 근거를 자연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50년대의 사실주의가 있는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고 제시하려 한것이라면 한걸음 더 나아가 대상을 자연과학자 또는 박물학자의 눈으로 분석, 관찰하고 검토하고자 한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와 함께 근대 산문문학의 발달의 촉진제 역할을 한 까닭에 근대소설의 발전에도 밀접한 련계를 가지고있다.    자연주의는 해부학, 생리학 등과도 련관된 실험적, 분석적수법을 쓰며 사회의 추악한 암흑면의 폭로, 우상의 타파 등을 주요한 소재로 하는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작품으로는 졸라의 ≪목로주점≫, ≪나나≫, 모파상의 ≪녀자의 일생≫과 ≪목걸이≫, 입센의 저명한 희곡≪인형의 집≫, 존 스타인백에게 세계적명성을 안겨준 ≪분노의 포도≫ 등등이 좋은 실례이다.     발자끄, 스탕달을 사실주의작가라고 하는데 비해 졸라, 모파쌍, 콩쿠르 형제를 자연주의작가라고 한다. 전자가 현실을 세부적인 국면에서뿐만이아니라 전체 사회와의 관련에서 파악하고자 한것에 비해 후자는 전자의 방법을 발전시키려는 의미에서 자연과학이나 싫증주의철학의 방법을 문학에 도입하였다. 플로베르의 문학은 사실주와 자연주의의 과도기적양상을 보여준다고 할수 있다.    사실주의는 “인간 및 사회의 여러 현상에 대한 정확하고 완전하고 진지한 재현”을 특징으로 하면서 현실의 전체적인 방향성에 대한 깊이 있는 파악을 중요한 요건으로 하고 자연주의는 사실주의를 론리적으로 발전시키려 하였다. (4) 비판적사실주의: 비판적사실주의는 흔히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이전의 사실주의창작방법을 일컫는다.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일군의 작가들은 력사적인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립장에서 현실을 비판하였다.     비판적사실주의는 19세기의 봉건제도와 자본주의사회의 부정적측면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적극적인 비판경향을 보여준 작품들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였다. 발자끄는 세계관은 왕당파였음에도 작품은 당대사회를 명백하게 발하면서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그외 대표적인 작가들로 바이론. 챨스 디켄즈, 레브 똘쓰또이, 아나또르 프랑스, 보들레르 등을 들수 있다.     (5) 모더니즘: 문예사조로서 모더니즘은 두개의 뜻을 가지는데 넓은 의미로는 상징주의 이후에 나타난 전위예술 즉 인상주의, 미래파, 야수파,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주지주의, 이미지즘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좁은 의미로는 주지주의인 특성을 띤 영국, 미국의 이미지즘과 모더니즘을 가리킨다.     비판적리얼리즘이나 사회주의리얼리즘과 달리 진행된 문학활동이 나타났는데 그것을 모더니즘이라 칭하였다. 모더니즘소설은 개인과 사회모순갈등을 담는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통일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개인의 내면세계로 눈을 돌리고 개인의 내면의 분렬, 갈등 및 통일에 초점을 맞추고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서구사회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문명에 대해 회의하면서 안정감을 잃었다. 사회모순이 갈수록 더 심각해지면서 국내외적으로 큰 변란을 겪는다. 1차세계대전이나 로씨야의 사회주의혁명은 서구가 직면한 위기를 단적으로 나타낸 징후들이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전화, 라디오, 비행기와 같은 새로운 기계의 출현에 따라 달라지기 시작한 사회현상들로 말미암아 사회가 바뀌여야 한다는 인식이 대두하였다.     모더니즘의 의미를 무엇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사상적배경은 달라질수 있다. 그러나 대륙의 전위주의나 영미의 주지주의나 다같이 일종의 지성주의, 신비적허무주의, 불련속적세계관, 개인주의사조 등에 의해서 영향받고있다. 모더니즘은 그것이 전위예술을 가리키느냐 주지주의적경향을 가리키느냐에 따라 다른 문학리론을 갖는다.     ㄱ) 전위리론: 서구대륙의 프랑스와 독일, 이딸리아 등에서 발생한 전위(아방 가르드)주의는 현실의 삶에서 유리된 심미주의적예술에 대해 반발하였다. 예술은 삶과 밀접하게 결부되여야 한다는것이다. 여기서 예술과 삶을 결합시키려는 예술운동이 일어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정신세계에 완전한 자유를 부여하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서 삶을 총체적으로 혁신하고자 하여 정치적혁명운동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표현주의자들은 내면의 깊은 령혼에서 새로운 기점을 얻기 위해 비교적 내면적인것을 추구한 파와 예리한 정신으로 현실개조를 지향하는 두개파가 있었다.    ㄴ) 주지주의리론: 영미의 주지주의는 랑만주의의 유기적세계관에 대한 반대로 볼수 있다. 인간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매우 한정되고 고정된 존재라는 인식하에 전통과 조직에 의존하는것이 문학가의 적절한 태도라는 관점이였다. 따라서 감정의 분출보다 지성의 작용에 의해 이미지를 창조하는것이 더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 과거문학사에 대해 력사의식을 가지고 창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엘리어트의 “전통과 개인의 재능”에서 전형적으로 표출된 리론으로서 랑만주의의 개성론에 대해서는 시인이 자신의 개성을 죽이고 전통과 권위에 의지해야 한다는 몰개성론을 주장하였고 시인의 인상을 낳은 원래의 사물에 등가물이 되는 시적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는 객관적인 상관물리론을 창작방법론으로 주장한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 전위예술을 선도한것은 피카소에 의해 주도된 립체파운동이였다. 사물을 원래의 형태와 닮게 그리지 않고 립방체로 표현하면서 예술은 재현이 아니라 표현이 되기 시작하였다. 그 최초의 형태는 이딸리아의 마리네티가 주도한 미래주의로서 세계의 본질이 운동과 생명력에 있다는 관점에서 기존의 고전주의적규범을 버리고 시에 현대적경험을 도입하려고 하였다.    자동차나 기관총소리, 기계의 소음을 시의 재료로 폭력, 모험 등의 원시적감정을 되살리려 하였다. 현대의 력동적인 삶을 표현하기 위해 기존예술의 완결된 구조를 버리고 통사법의 해체, 단어들의 변형, 인쇄활자의 혼용, 자유어의 창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영미의 주지주의문학을 선도한 흄은 자신의 불련속적세계관에 립각하여 문학의 창작에서 지성적태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사물의 개성적인 측면을 인지하고 표현하려고 할 때 시인이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여 “솔직한 말의 사용은 항상 개성적인것을 잃어버리게 하므로“”그 뜻이 없어지지 않고 명확히 독자의 관심을 끌도록 말하기 위해서 새로운 은유와 새로운 성질 형용사, 명사 등을 만들어내야 한다는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흄은 사물에 대한 인상의 신선함을 전달하는 이미지를 창조하는것이 시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다. 흄은 이러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이미지즘운동을 펼친다. 지성에 의해 파악된 사물에 대한 인식을 전달하기에 적합한 시각적이미지를 중시하는 이미지즘은 엘리어트에 이르러 모더니즘론으로 발전한다.     원래의 모더니즘의 목표는 인간과 사회관계를 보다 복합적이고 심층척으로 파헤치려는 소설기법에 있었던것이다. 이런 소설은 내부적시각이 필요하고 심리적문제가 결부되는만큼 화자의 시점과 서술을 중요시한다. 바로 이때문에 모더니즘은 자칫 인간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거나 진공상태속에 넣고 형상화하는 경향에 치우치기 쉽다.     (6) 포스트모더니즘: 1960년대에 들어서서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문학의 한 조류로서 다양한 변화와 실험을 특징으로 한다. 당초 리얼리즘에 대한 반동으로 제기되였던 모더니즘과 달리 모더니스트들도 나름의 정교한 형태를 구축하고 심오한 상징과 신화를 구사함으로써 자신들의 질서와 규범을 세웠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공통점은 전통과의 단절, 불확정성, 파편화, 반리얼리즘, 전위적실험성, 비력사성, 비정치성 등을 들수 있다. 한편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과 구분시켜주는 특징으로서는 자아와 주관성에 대한 새로운 립장, 패러디와 행위와 참여, 임의성과 우연성, 주변적인것의 부상, 탈쟝르화, 자기 반영성 등을 들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뿌리를 두고 발전한 문학조류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을 들자면 윌리엄 버로스의 ≪익스터미네이터≫(1960), 토머스 핀천의 ≪브이 V≫(1963),≪49호 경매품 부르기≫(1966),≪중력의 무지개≫, 존 바드의 ≪미로에서 길을 잃어≫(1958), 도널드 바설미의≪도시생활≫, ≪돌아와요, 캘리거리 박사≫ 등을 들수 있다.(출처: 브리태니커백과사전)     2. 문학류파 문학류파란 일정한 력사시기에 있어서 작가들의 사상경향, 예술관점, 창작경향과 스찔의 공통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작가들의 파별 혹은 집단을 가리킨다. 공통한 사상적통일성이 존재하는 조건하에서 개별작가들의 구체적인 창작원칙들에 류사성이 나타났는바 랑만주의 혹은 사실주의 등 방법의 테두리안에서 자기의 풍격을 형성하였다.     문학사상의 허다한 류파들을 본다면 형성된 근거가 완전히 같지 않다. 어떤것은 주요하게 제재로 갈라졌다. 중국의 경우, 당조시기의 산수전원파와 변새시파, 화간파이다. 산수전원파가 표현한것이 전원생활이고 풍격도 상사해서 생긴 명칭이다. 전원시파의 대표로 맹호연과 왕유 등이 있다.    산수전원시가 성행하게 된데는 사회력사적조건과 사상적근원이 있는바 지배계급내부에 알륵이 격화됨에 따라 은거하는것이 사회풍조로 되였다. 이리하여 도연명, 사령운의 산수전원시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시인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맹호연을 첫손에 꼽는다. 그의 대표작품은 산수전원시이다. 그의 ≪경덕강에 머물면서≫를 보자.           배를 몰아 저물녘에 섬에 머무르니           저문 해에 나그네의 수심 새롭구나.           하늘 낮은 광야에는 나무 한그루           맑은 강에 비낀 달은 손에 쥐일듯.           (移舟泊烟渚, 日幕客愁新,            夜旷天低树,江清月进人)          황혼이 깃든 강의 풍경을 핍진하게 묘사하였고 향수의 정도 절절하게 그리였다. 널리 전해지고있는 ≪봄밤이 새네≫를 보자.               봄잠에 날새는줄 몰랐는데            곳곳에 새우는 소리 들리네.            간밤에 비바람 휘몰아치더니            스러진 꽃잎이 그 얼마이랴.            (春眠不觉晓,处处闻啼鸟,              夜来风雨来, 花落知多少)       변새시파는 고적 등을 대표로 하였는데 변경보위의 전투생활을 반영하고 장사들의 영용성을 가송하였는바 풍격이 비슷해서 얻어진 명칭이다. 어떤것은 주요하게 풍격으로 갈라졌다. 례하면 송조시단에 진관을 대표로 한 완약파와 소동파를 대표로 한 호방파가 그렇게 생겨났다. 어떤것은 명확한 창작주장에 의해 나뉘어졌다. 례하면 송조시기의 황정경 등 강서파가 그렇게 형성되였다.     근대문학사상 문학류파와 창작방법의 관계는 비상히 밀접해졌다. 하여 어떤 문학류파의 작가들은 왕왕 한가지 창작방법을 공통한 기치로 삼았다. 하여 종래로 일종 련환식의 공정현상이 되였다.     3. 사실주의창작방법     문학력사의 흐름우에 “인간의 본래의 모습대로 묘사”하는 창작방법이 산생되였는데 후세사람들은 사실주의(리얼리즘)라고 칭하였다. 사실주의이란 그 본래의 모양대로 구체적이면서도 정확하게 묘사하여 전형환경속에서 전형성격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창작방법으로서 생활묘사의 객관성, 구체성, 진실성이 기본 특징으로 된다이는 또한 자연주의와의 질적구별이기도 하다. 구라파에서의 사실주의란 고대희랍시기에 산생되였는데 세칭 고대사실주의라 부른다.     사실주의는 문예부흥시기에 들어서면서 보다 완벽해졌고 19세기에 이르러 비판적사실주의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사실주의라는 이 명사는 18세기 70—80년대중기 독일의 이른바 “질풍과 노도”운동의 대표시인 쉴러가 론문 ≪소박한 시와 감상적인 시≫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동시대의 괴테가 사실주의의 내함과 방법, 특점에 대해 계통적으로 진술하였다.    사실주의는 랑만주의의 비현실적성격에 반발하여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할것을 주장하면서 상상력에 따른 리상화를 거부하고 드러난 겉모습을 자세히 관찰할것을 주장한것이 특징이다. 넓은 의미의 사실주의는 여러 문화의 예술경향으로 이루어졌다.     사실주의정신은 그것이 일종 예술전달의 심미방식이 되여질 때 예술경험, 방법, 기교의 장시기적인 축적을 의미하게 된다. 사실주의는 풍부하고 완정한 창작경험체계와 방법론의 총화로서 문학발전사상에서 적지 않은 작가들이 제재, 개성, 풍격이 비슷하게 접근되면서 자연스럽게 류파를 형성하게 한것이다.     사실주의는 생활묘사의 객관성, 구체성, 진실성이 기본특징으로 된다. 그러나 사실주의가 하나의 미학적계획으로서 의도적으로 쓰이게 된것은 19세기중엽 프랑스에서였다. 1850~80년에 나온 프랑스 소설과 그림에서는 사실주의가 주류를 형성했다고 말할수 있다. 사실주의는 문예부흥시기에 들어서면서 보다 완벽해졌고 19세기에 이르러 비판적사실주의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사실주의작가는 현실생활을 랭정하게 관찰하고 리지적으로 분석하는데 착중하면서 현실을 정시하고 인생에 직면하여 창작과 생활을 긴밀히 결합시켰다.     사실주의작가의 필봉아래에는 기괴하고 신비스러운 인물과 사건이 극히 적으며 “요괴”도 요구하지 않거니와 소위 “영웅”도 요구하지 않는다. 묘사해낸것은 거의다 현실사회속에 인정세태와 일상생활속에 보통인간의 성격과 운명이며 최하층인민들의 비참한 환경과 울부짖음을 창작대상 혹은 취지로 삼았다. 따라서 사실주의작가들은 “인생을 위한 예술”의 신봉자이며 수호자였다.     사실주의는 비록 객관진실을 중시하였지만 작가의 주관태도를 배척하지 않는다. 다만 작가가 작품속에 들어가 자기 태도를 표시하는것을 반대할뿐이며 그만큼 작가의 주관태도를 묘사대상에 침투시키고 슈제트와 장면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할것을 요구하고있다. 따라서 될수록 객관적이고 내색을 내지 않기 위해 힘쓴다. 사실주의에서 중요한것은 사실대로 반영하는것이다.     체호브는 “응당 생활의 면모대로 묘사해야 한다. 그의 임무는 무조건 솔직하고 진실하게 묘사하는것이다. 화학가로 말하면 세계상에는 깨끗한것이 하나도 없다. 문학가도 화학가처럼 마땅히 객관적이여야 한다. 그는 모름지기 일상생활속에서 주관태도를 똥무지가 풍경속에서 점하는 ‘존경스러운’지위를 알아야 하거니와 악한 정감도 착한 정감처럼 생활속에 본래부터 있었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태도가 랭정할수록 산생되는 인상은 더 흡인력이 있께 된다”는 정채 로운 론단을 내리고있다.     사실주의 표현수법에서 작가가 추구하는것은 세절의 진실성이다. 그러나 객관적화면에 대한 진실한 재현을 중시하기에 흔히 묘사가 길어지고 필촉이 세밀하며 형상이 핍진성을 가지고있어 독자들이 작품속에 잠겨버리게 한다. 이상은 전통적리론의 관점에서 설명한 사실주의의 내함과 기본특징이다. 사실주의를 근근히 일종 문학류파, 창작방법의 개념으로만 인식한것은 오해이다.     사실주의공능은 사실주의문학에서만 표현된것이 아니라 비사실주의문학에서도, 각종각양 창작방법으로 창작된 여러류파들이 문학작품에서도 현실생활의 투영을 찾아볼수 있으며 그속에 모두 인식속성을 구비하고 있음을 보아낼수 있 다. 환언하면 사실주의작품에서의 사실주의 공능은 창작방법으로 표현되고 비사실주의작품에서는 사실주의공능이 현실을 인식하는 공능으로 표현된다     근대소설이란 양식을 빌어 개인의 삶을 찾고 보다 더좋은 생활을 추구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와 개인의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그리하여 그 고통이 조성된 근원을 파내고 비판하는 개인적삶의 의미를 밝히는것이 중심과제가 된 문학을 비판적사실주의라 한다. 근대소설에 반영된 개인과 사회의 모순, 분렬은 그것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는 지향이 소설에 체현되게 되였는바 새 사회건설을 향한 소설양식은 개인문제를 초월하여 집단적신념을 추구하는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사회주의사실주의는 자발적인 문학사조가 아니라 국가적의지의 산물이였다. 1932년 쓰딸린이 작가들과 만나서 “사회주의사실주의”라는 개념을 내놓았 는데 응집된 집단, 공동체적신념과 투쟁에 초점을 두고 리상사회건설에로 매진하는 인물들을 형상화하려는 창착리념이다. 1934년 제1차 쏘련작가대표대회에서 정식으로 “사회주의사실주의”를 확립하고 통일적인 창작방법과 평론의 원칙으로 내세웠다. 이때로부터 사실주의창작방법이 외곡되기 시작했다.     당시 금방 외국에서 돌아온 고리끼도 그것의 창도자였는바 쏘련의 현실을 잘 모르는 정황하에서 공상적방법으로 일컫는바의 “사회주의사실주의”를 설계했던것이다. 고리끼를 선두로 알렉쎄이 똘쓰또이, 파제예브, 숄로호브, 씨모노브 등이 주요작가로 활약하였다.     비판적사실주의와 구별된 이 양식은 서사의 원리를 사회주의적전망에 기탁함으로써 새롭게 나타나게 된것으로서 일정한 지향성을 지니지만 현실을 기반으로 할것을 요구하였는바 인물과 전형환경의 선택 및 량자의 상호관계에서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었다.    사회주의사실주의리론은 “생활의 풍부성과 복잡성은 작가가 부정 혹은 긍정의 계기를 요구하는데 반드시 발전하는 사회주의의 원리와 결합하여 묘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사실주의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된 사회의 산물로서 오래동안 일종의 문학현상으로 되였지만 실천결과는 부정적이였는바 실질은 사실주의전통의 중단이였다.     사회주의사실주의소설은 사회주의 세계관을 전제조건으로 한 작가의 창작사상하에서만 가능한바 소설은 인물과 환경의 상호관계가 본질적인 대립관계를 반영함으로써 인물의 저항적행동의 반응은 자연히 플롯의 전개에서도 역시 비판적리얼리즘과 차이를 보였다.     플롯은 주인공의 저항적행동을 “집단적인물”의 움직임으로 전개하는 면에서 자체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한설야의 대표작 ≪황혼≫에서도 주요인물들의 저항은 모든 로동자들의 단합을 전제로 락관적전망을 보여주기에 사회, 력사적의미를 지닌다. 조명희의 ≪락동강≫도 좋은 일례로 될수 있다.    사회주의사실주의는 일찍 20세기 30년대에 중국에 들어왔는데 리론상에서 확인되기는 ≪연안문예좌담회석상에서의 강화≫이후였다. 접수과정에 중국고전주의가 수정되여 문예가 정치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리성화된 변종으로 변했으며 의식형태성질이 더욱 강조되였다. 1958년 대약진시기 “혁명적사실주의와 혁명적랑만주의 결합”에로 발전했으며 비사실주의성질이 더욱 뚜렷해졌다.     그러나 이한 실천결과도 부정적이였는바 그로부터 중국현대문학의 쇠락기가 형성되였다. 사회주의사실주의는 19세기의 사실주의와 계선을 나누고 비판적사실주의를 일컬어 “자산계급비판적사실주의”라고 칭함으로써 비판적사실주의에 당치않은 모자까지 씌워놓았다. 사실주의의 표징인 진실은 인간의 운명과 생존본질에 대한 최고의 파악이였다.     예술의 진실은 일체 문학의 공통한 속성이지만 사실주의는 자기의 특수한 방식으로 예술의 진실에 이르는바 이것이 바로 인도주의 립장에서의 심미적비판인것이다. 문학의 심미적본성은 세속적공리원칙을 초월한 더욱 높은 정신경계를 제공함으로써 리성층차상에서 인생의 진미와 세계를 깨닫게 하고 자신에 대한 완미를 추구하도록 격발하려는것이다.      4. 랑만주의창작방법      “인간에게 응당 있어야 할 모습대로 묘사”하는 창작방법이 산생되였는데 후에 그것을 랑만주창작방법의라 칭하였다. 창작방법에서 한 개념으로서 그 내함이 제시된것은 쉴러의 ≪소박한 시와 감상적인 시≫라는 론문에서였다. 여기서 감상적인 시가 바로 랑만주의를 가리킨다.     고전주의가 감정의 절제를 주장한데 비해 랑만주의는 감정표현의 의의를 적극주장하였다. 루쏘는 ≪참회록≫에서 “한 인간의 적라라한 본성의 진실을 꾸밈없이 보여주고자 한다.”며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표현하랴 했고 영국의 시인 위즈워즈는 “모든 좋은 시는 강한 감정의 자연발생적류출이다.”라고 했다.     랑만주의자들에게는 문학이 더 이상 현실의 재현이 아니였다. 감정표현만이 아니라 “생명력이 있고, 창조력이 있는 힘으로 심미균형과 통일을 나타내며 주관과 객관, 현실과 리상, 감각적인것과 초월적인것을 결합시키”는것이다. 영국의 블레이크는 상상력은 “궁극적실재를 창조하는 유일한 힘”이라고 하였다.     랑만주의는 표현수법에 있어서 상징과 암시를 중시하게 된다. 특히 랑만주의의 대표적쟝르인 서정시에서의 상징과 암시는 창조적변통력의 중심이였다. 랑만주의는 시어로는 일상생활에 쓰이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며 민족의 전설적인 과거를 되살려 주제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견해를 체현했다.     랑만주의문학운동은 시대정신에 극심한 변화를 일으킨 력사배경하에서 발전한것이기에 철학과 력사 등 학과와도 밀접한 련계를 가지고있었다. 하여 랑만주의는 문학사상 일종 시대양식만이 아니라 정신사상의 일종 사조이기도 하였고 문학혁명의도를 담은 운동으로서 개성, 주관, 상상력, 자연스러움, 감성, 환상, 초월성 등을 강조했다.    첫째, 엄격한 규칙과 질서의 속박을 받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을 경주하여 생동하고 변화다단하며 다채로운 풍격으로 자유분방한 감정을 마음껏 토로한다. 고전주의를 객관적이고 정태적으로 부각된 “존재양식”이라 한다면 랑만주의는 곧 일종 음악적이고 주관적이며 동태적인 “생성양식”이라 할수 있다.     둘째, 미적인 다양성을 승인하며 상대주의관점으로부터 출발하여 공간상(외국의 예술은 시간상) 지난 시대의 예술을 모두 본국의 당대예술과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있다고 인정한다. 바로 그로하여 이국색채, 나아가서 세계주의 경향성이 있는 작품들이 산생되였다.     셋째, 개성의 표현을 중시하고 내심호소의 표달방식은 비교적 일상적인것로 간주되였다. 서정시와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넷째, “무한한” 리념을 추구하면서 현실을 미화한다. 이런 의의에서 고전주의처럼 리상주의에 속하며 사실주의와는 구별된다.     랑만주의작가들은 자본주의현실에 불만을 품고 현실생활에서 볼수 없는 리상을 위해 투쟁하였으며 현실에 있는것이 아니라 거기서 보려고 원하는것, 자기가 념원하고 갈망하는 생활을 반영하려 하였으며 현실을 리상의 경계로 끌어올려 하였다. 한마디로 랑만주의의 진정한 의미는 자유주의 그 자체이다.     랑만주의자들은 개성과 독창성을 중시하였다. 하여 멀리있는것, 이국적인것, 신비로운것에 동경을 표시한것이고 천재적독창성을 문학창작의 주된 에너지로 여기고 반항정신 및 리상주의적경향이 짙은것이다. 대표적작가들로는 괴테와 쉴러, 유고, 바리론 등이다.     랑만주의창작방법은 리상주의이다. 고리끼는 “랑만주의란 곧 일종 정서”라고 하였다. 랑만주의창작도경은 생활에 응당 있어야 할것을 추구하면서 작가의 주관감정의 론리에 따라 예술형상을 창조하고 생활속에서 가능하거나 혹은 불가능하게 출현할수 있는 인간, 사물을 그럴듯이 묘사함으로써 아름다운 동경을 가지게 한다. 그만큼 랑만주의표현수법은 주요하게 변형과 과장이 된다.     례하면 손오공은 신통력이 무한하고 천변만화하며 한번 곤두박질하면 10만 8천리를 간다. 이것은 분명 랑만주의수법이다. 유고의 ≪비참한 세계≫에서 하루밤사이에 죄인이 되고 또 그 죄인의 그 성결한 초인간적인 성격을 부각하여 사람들을 하나의 리상화된 도덕가, 자선가의 정신세계에까지 끌고 들어간다.    사실주의가 오래동안 곡해되여 온것처럼 랑만주의도 인식상 혼란되여 있었다. 즉 랑만주의를 과대해석하고 신화화하였던것이다. 랑만주의는 특정된 력사양식을 초월한 개념으로서 그뒤의 시대에 동일한 경향을 가진 문학사조도 랑만주의라고 지칭하였다. 그리하여 랑만주의도 고전주의와 마찬가지로 초시대적인 일반문학의 기볼류형으로 간주되였다.     랑만주의운동은 고전주의적전통을 두고 말할 때 일대 예술혁명이였다. 당시 구라파 각국에서 영향력이 크낙했던 바이론, 쉘리, 스코트, 발자끄, 스탕달, 유고, 괴테, 쉴러, 하이네 등 시인,작가들이 모두 그 운동에 뛰여들었다. 그러나 작가 자신의 창작방법과 문학사조는 별개의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발자끄나 스탕달 등은 랑만주의운동에 투신하였지만 창작방법상꼭 랑만주의자였다고 말할수 없기때문이다. 랑만주의는 작가, 예술가들이 자기의 리상을 해석하는 세계적예술방법이기도 하였기때문이다. 랑만주의는 혁명에로 한걸음 접근하면서 사실주의에로 진일보의 접근이라고 보고있다. 즉 혁명적랑만주의 극치는 곧 사실주의에로의 약진이라는것이다.     초자연현상에 대한 묘사를 일률적으로 랑만주의수법을 썼다고 말할수 없다. 사람들은 흔히 신화, 신선과 귀신이야기, 여우이야기 등을 별로 생각하지 않고 관습처럼 랑만주의로 락인찍었는데 기실 초자연적인것에 대한 묘사라 해도 랑만주의적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는것이다. 이를테면 희랍신화는 고대희랍인들의 환상의 산물로서 그 시대의 소박한 사실주의예술이였다. 상상이 기발하고 이미지가 기이하면 랑만주의수법이라는것은 무리이다.        
23    제3편 창작론. 제 1장 문학창작실제 , 제 1절 전형화 리론 댓글:  조회:3319  추천:24  2007-09-08
                                                            제 3편   창작방법론                                                   제1장 문학창작실제                                                   제1절 전형화리론     1. 문학창작과정의 실제     작가가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목적은 생활에 대한 자기의 심미감수ㅡ직각사유를 예술언어로 표현해 내여 사회와 인간에게 영향주려는데 있다. 환언하면 문학창작은 작가의 생명력의 직접적호소이며 작가적인 자아의식의 실현이다. 작가, 예술가들은 창작의욕을 느낀다. 이 의욕은 갑자기 불시에, 그리고 작가의 의사와는 완전히 독립하여 발생한다. 왜냐하면 자기의 창작활동을 위한 날자와 시간과 분초를 정할수 없기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창작의 자유이며 창작하는 사람으로부터의 독립성이다.     작가는 작심해서가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취한다. 그것의 신비로운 의미를 떨리는 마음으로 예감한다. 작가, 예술가는 자기가 파악한 이데아가 있다는것을 스스로 느끼며 타인도 그것을 감촉할수 있게 하려고 갈망한다. 바로 이것이 창작의 첫행위이다.     이런 이데아는 점차 작가의 눈앞에 선명히 떠오르며 산형상을 이루며 리상으로 변한다. 그리하여 쉑익스피어에게는 마치 안개속처럼 깊이 주름살이 푹 패인 거무스레한 이마를 한 아프리카사람 오쎌로가 보이며 사랑과 증오와 절망과 복수심에서 울려오는 통곡소리가 들려오는것이다. 쉐익스피어의 창작충동에 원동력을 가져다준다.     이번에는 이 형상들 즉 이 리상들이 점점 자라 성숙하고 선명해지며 드디어 작가는 그들을 직접 보게 되며 그들과 말하며 그들의 말, 움직임, 거동, 걸음걸이, 용모를 알게 되며 그들의 전체 모습을 실지로 보듯 자기의 두눈으로 보게 된다. 예술가는 펜으로 그 형태를 묘사하기전에 그 형상들을 보는것이다.     작가는 모든 사람들이 볼수 있으며 파악할수 있는 형태를 자기 창작에 부여하는것이다. 이것이 즉 창작의 마지막 제3의 행위이다. 이 행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은 제1, 제2 행위의 결과이기때문이다. 이와같이 창작의 중요한 특징은 신비로운 천리안과 시적인것에 대한 열중에 있다.     창작과정에 감각은 작가와 세계를 이어주는 첫뉴대로서 그우에서 작가의 사고와 집필행위가 있게 된다. 철학적의미에서 말하면 감각은 인간이 세계존재에 대한 자아의식의 첫증명이며 작가의 감각세계는 인류심령의 “제2자연”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감각은 단순감각이 아니라 예술감각이다. 감각은 리성분석에 이르지 못한 심리관조활동으로서 한방면으로는 외재사물이 감각의 내화를 거쳐 감수로 되고 내재적감수는 감각의 외화를 거쳐 인조적인 제2 형상으로 된다.     단순한 감각자체는 서정이 아니지만 예술감각은 서정을 초월한다. 또 감각은 사상이 아니지만 사상보다 더 종잡을수 없기에 내재적인 주체와 주객체융합상태의 심리특징을 가진다. 즉 작가의 감각은 사물의 진상을 밝히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실용성도 추구한다.    예술감각은 생활세계에서 기원되지만 그것의 원시적풍부성에 대한 전부의 복제로써 자기의 사명을 완성하는것이 아니라 원유의 자극모식우에 새로운 자각모식을 건립한것이다. 말하자면 외계사물의 자극이 물리적인 심리반응을 인기시키고 그로부터 감각이 형성되는바 이런 견지에서 문학창작활동을 일종 생명현상이라고 하는것이다.     문학작품은 형상사유속에 정감, 상상, 취미, 령감 등 제인소가 포함된 작가의 내심감수의 결정체인것이다. 사유와 형상은 구별되지만 상호침투되고 상호전화된다. 감각은 소설예술이 세계를 파악하는 일종의 사유방식이다. 작가의 관찰은 심미적안광으로 창작대상을 관찰하고 심미적으로 판단하는것을 가리킨다.제재를 잡기 위한 인생연구에서 각종 생활에 침투하여 인생고를 체험해야 한다. 이 면에서 미국의 쟈크. 론돈, 프랑스의 졸라 등이 귀감으로 된다.     체호브가 각양각색의 인물형상을 그렇듯 핍진하게 창조한것은 그의 심미적안목속에 모든 인간상들이 찍혀있기때문이다. 그처럼 작가는 아주 미세한 동작까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인물의 언어행위에 각별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     아. 똘쓰또이는 말 한마디에서 전형인물이 만들어질수도 있다고 하였다. 인물의 정신상의 특점을 찾아내야 한다. 고골리가 인물묘사의 대가로 불리우게 된것은 인간을 관찰할 때 인물의 내심세계까지 파헤치는 투시력이 있었기때문이다. 발자끄는 언제나 뜨거운 인간애를 가지고 인간들속에 들어갔다. 그는 자기의 령혼을 그들의 령혼과 융합시켜 자기의 신분, 습관까지 잃는 때가 많았다. 로동자들의 한담속에서 생활형편을 알아보았고 그들의 쟁론에도 귀를 기울였다. 자기 자신도 관찰할줄 알아야 한다.     발자끄는 “진정 사상가다운 시인, 작가들의 몸에는 해석할길 없는 비상한, 지어는 과학으로도 해석할수 없는 정신현상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투시력으로서 그들에게는 가능하게 출현될수 있는 어떠한 정황속에서도 진상을 보아내게 하고 더욱 핍진하게 알아내도록 도와주며 그들이 마땅히 가야하고 가고싶어하는 곳으로 보내주는 힘을 가지고있다.”고 하였다.     바로 이런 신비한 투시력을 가진 심미시각이 있기에 세계는 작가의 안목속에 정체적으로 파악되는것이다. “나는 한 인물을 관찰할 때 가능한 그 사람의 생활을 체험해 본다. 그들의 욕망과 추구 등은 내 심령속에서 하나로 엉켜버리군 했다.” (발자끄)     1) 예술적구상     예술구상이란 관념속에서 예술형상을 구성하는 작업이다. 여기에는 소재제련, 제재확정, 주제탐색, 형상배육, 정감응결, 정절엮기, 결구안배, 적당한 표현방법의 선정 등이 포괄된다. 즉 잉태계단→ 배육계단→형성계단, 이런 절차로 구상이 진행된다.작가는 예술구상 과정에 늘 최적심리상태에 처해있는것이 아니라 지극히 고통스러운 심리상태에 처하기도 하며 한편의 때론 작품을 창작하느라 난산의 진통을 겪는다. 실로 “산첩첩 물이 깊어 길이 없는” 상태일수 있으며 그러다가 “버들숲 지나 한굽이 돌아드니 꽃피는 새 마을이 나타나는”것은 느닷없이 찾아 드는 령감의 은혜라 말할수도 있다.     벨린쓰끼는 “령감이란 피동적인것으로서 병적정신상태인데 령감은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의지로써가 아니라 인간에게는 종속되지 아니한 그 어떤 작용에 의하여 발생한 정신에네르기이다. 따라서 령감은 자유분방하다. 때로는 이 령감의 결과가 외관상으로는 휘황찬란하나 황금의 광휘인것이 아니라 금박의 광휘이며 점차로 흐려지는 광휘이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이 억지공사의 환희에나마 잠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약하기는 하나 실존하며 긍정적인것만을 억지로 짜낼수 있기때문이다. 감정과 환상, 요컨대 재능을 억지로 짜내고 긴장시킬수 있는 자는 어느 정도 이 가능하기는 하나 이 모든것들을 다 가지고있는 사람만이다.”라고 쓰고있다     이처럼 령감은 일종 잠재의식의 성공적폭발이다. 령감의 오고감은 자취없으나 주객체의 뜻깊은 회합이다. 령감을 녀인의 해산에 비유하기도 한다. 령감의 고향은 생활경험의 “보물고”이다. 심리기질로서의 직각도 중요하다. 직각이란 추리과정을 생략하고 직접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심리현상이다. 직각과 령감은 왕왕 얽혀있지만 직각이 곧 령감은 아니다. 직각은 초보적감지형태이고 령감은 무르익은 표상이다.     령감은 장구한 사색과 간거한 로동의 성과라면 직각은 정체상에서 사물에 대한 돌연적인 판단력이라 말할수 있다. 령감은 성숙한 답안을 얻을수 있지만 직각은 근근이 추측성의 통찰을 얻을뿐이다. 이런 시점에서 령감은 지구적인 사색이 튕긴 불꽃이고 직각은 일차성적인 사유의 섬광이라 말할수 있다.     발자끄는 “진정 사상이 있는 시인과 작가에게서는 일종 해석할수 없는 비상하고 과학으로도 천명할수도 없는 정신현상이 있다. 이것은 일종 투시력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가능하게 출현될 정황에서 진산을 예측하게 하거나 혹은 더욱 정확하게 말할수 있게 한다. 이는 그들을 그들이 마땅히 가야하고 가고싶어하는 곳으로 떠미는 일종 말로 해명하기는 어려운 력량이다.”라고 쓰고있다.     다음 작가의 정감과 리지적의식이다. 예술적구상중에서 정감은 동력인소이고 리지는 동력을 절제하는 규범이다. 만약 작가가 리지를 상실하고 오직 정감의 충동만 남았다면 작가를 알수 없는 경지에로 나아가게 할것이다. 그러므로 정감은 시종 리지의 보좌와 제약을 떠날수 없다. 이외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두가지 심리능력은 공존한다. 의식은 무의식에 방향을 제시해준다.     2) 창작과정에서의 형상사유     형상사유의 함의를 한마디로 개괄해야 한다면 형상성과 정감사유를 떠나지 않은 사유를 형상사유라 할수 있다. 형상사유는 직관성과 형상성이 가장 긴밀히 결합된 사유형식의 하나이다. 형상사유는 작가, 예술가들의 창작과정에서 사유활동의 주체이기에 예술사유라 한다.     벨린쓰끼는 형상사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론술하고있다. “누구나 형상사고로 판단하고 감각하지 못한다면 그가 어떠한 지혜, 정감과 신앙의 힘을 가지고있든간에, 생활속에 력사와 시대가 부여한 마음의 기능이 풍부하든간에 그가 시인이 되도록 도와주지 못한다.” 형상사유 역시 인식발전의 일반규률에 따라 진행되지만 론리적사유에 비해 독자적특징을 가지고있다.     우선 문학의 특수대상과 내용이 그의 사유방식을 결정한다. 살아움직이는 인간과 인간의 령혼세계를 중심으로 하는 옹근 인생의 흐름과 철리가 융합된 시적사상, 풍부한 인생철리와 심미적의미는 문학의 특수대상과 내용이 된다.     벨린쓰끼는 쓰고있다. 문학은 “오직 시적사상만을 용납한다. 이 시적사상은…교조가 아니라 펄펄 끓는 격정이고 열정이며…생생하게 산창조이다.” “누구나 형상사고로 판단하고 감각하지 못한다면 그가 어떠한 지혜, 정감과 신앙의 힘을 가지고 있든간에, 생활속에 력사와 시대가 부여한 마음의 기능이 풍부하든간에 그가 시인이 되도록 도와주지 못한다” 바로 이러한 사상은 형상속에서 흘러나오는것으로서 곧 형상자체이다.     중편소설 ≪여기 려명은 고요하여라≫에서 작자는 조국보위에 떨쳐나선 영웅적아들딸들에게 무한한 경의의 감정을 지니고있으나 그것을 준위가 쉴새없이 잔소리하면서도 한면으로 자기 녀전사들을 빈틈없이 관심해주는 그 년장자다운 사랑속에 침투시키고있으며 리따가 자기의 태양혈에 댄 총구에 침투시키고있다. 한편 노래하며 한편으로 사격하면서 적들을 유인해가는 렌까 꼬메린꼬와의 비장하고 아름다운 형상속에 침투시키고있다. 만약 하나하나가 선명한 개성특징을 가진 인물형상들의 사상감정을 개념으로 전달한다면 정감력량과 특수한 매력은 깡그리 상실될것이다.     문학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이끌어주고 무엇인가 대해 해석해주지만 자기의 특수한 도경과 방법으로 실현한다. 그것을 빛나게 실현하는것이 곧 정감과 형상이다. 한송이 생화는 꽃에 대한 추상적론술보다 더욱 많은 진리를 전달하는 특수방식인 형상속에 표현되는 관념을 보게 하는것이 아니라 시종 뚜렷한 형상을 보게 해야 함을 규명해준다.     사유활동은 시종 구체적이고 생동한 형상과 결합되는데 이는 형상사유의 기본특점이다. 상상은 작가로 말하면 심미의상을 창조하는 심리과정이다. 상상활동을 통하여 창조되여 나온 이런 표상은 원유의 기억표상에 의거한것이지만 그것은 사상, 의지, 념원을 체현하는바 “창조성적인지공능”의 표현이다.     형상사유가 상상을 떠날수 없는것은 창작자가 반드시 자기의 표현대상을 체험해야 하기때문이다. 고리끼는 문학가는 그 자신이 강개한 성품이라도 자기를 수전노로 상상해야 하며 자신이 사심이 없지만 자신을 탐욕스러운 수전노로 느껴야 한다고 가르치고있다. 배우가 영화속에 완전히 잠겨드는것과 같다.     자신만 알고있는 열정과 감정의 세계, 제자신의 고민과 환희를 진실하게 그리고 심각하게 재현한다고 하여도 작가는 자신이 련애를 한적이 있을때에만 사랑을 열렬하고 매력있게 묘사할수 있고 자신이 행복해야만 비로소 행복에 대하여 쓸수 있다고 말할수 없다. 진정한 작가의 특징은 그 자신의 사고방식과는 관계없이 항상 온갖 사람들의 생활상태를 리해하는 수동적이면서도 능동적인 능력에 있는바 그것을 작가적인 관조라고 칭한다.     소설인물과 같이 작가가 받는 감각은 상상으로 찾고 포착할수 있을뿐이다. 발자끄는 고리오령감의 림종장면을 쓸 때 병들어 눕기까지 했다. 플로베르도 보바리부인이 독약을 마실 때 “자신도 입안에 비상을 물고있는듯 하였고 중독된것처럼 착각되면서 두번이나 저녁을 먹은것을 토해버리고 말았다.”고 하였다.     형상사유의 두번째 특점은 사유활동에 충만되여있는 정감성이다. 형상사유는 구체형상과 정감을 탈리하지 않는다. 창작활동은 주객체의 특수한 영합이다. 정감활동은 형상사유의 전반과정에 수반되고 사종 얽혀서 돌아가는 문학창작의 원동력이며 윤활유이기도 하다.     형상사유의 진전과정은 인상으로부터 의상에 이르고 다시 형상에 이르러 점차 심화되는 과정이다. 만약 작가가 그것을 광활한 천제에로 이끌어가서 더욱 많은 유관사물과 련계를 맺어주고 비약시킨다면 일종의 새롭고 더욱 완성된 면모로 뛰여나올수 있을것이다.     이는 곧 예술전달방식에 소급되는 문제이다. 예술전달방식이란 이미 구상된 인물의 생활, 성격, 심리세계를 언어문자로 형상화하여 작품세계구축을 완성하는 작업을 말한다. 예술적구상단계에 이루어진 형상은 아직 개략적인것이여서 상세하지도 않고 엄밀하지도 않으며 명확하지도 않다. 레브 똘쓰또이는 ≪부활≫에서 마슬로바의 원래의 초상화는 이러했다.    “감방문으로 키가 크지 않은 회색외투를 걸친 젊은 녀자가 걸어나왔다. 그녀는 머리에 흰 삼각수건을 썼는데 검은 머리카락을 볼수 있었다. 그아래 그리 높지 않은 하얗고 아름다운 이마가 보였다. 이 녀자의 얼굴은 초췌하고 병색을 띠고있었고 조금 부석부석해 보이는 검은 눈길을 내리 깔고있었다. …”     그러나 구체적이고 선명하지 못하다고 생각되여 선후 20여차나 고려했다. 고치고 고쳐서 현재의 까쮸샤ㅡ마슬로바라는 박명한 미인상을 그려놓았다.    “그녀자는…흰 삼각수건을 썼는데 그 밑으로는 일부러 그렇게 한듯 곱슬곱슬한 까만머리카락이 동글동글하게 삐여져 나와있었다. 그의 얼굴은 오래동안 갇혀있어서 움속의 감자싹을 련상시켜주었다. ...그러나 그 윤기없는 새하얀 얼굴에서 특히 눈에 띄는것은 약간 눈시울이 부은듯하나 자못 정기있게 반짝이는 새까만 두눈이였는데 그 한쪽 눈은 조금 사팔눈에 가까웠다… ”     성숙한 작가들은 인물성격의 자유적인 발전행정에 순응한다. 뿌쉬낀은 인물성격을 창조하고나서 “따찌야냐가 나와 얼마나 엄청난 롱담을 하고있는가? 그가 시집을 가다니? 나로서는 정말 생각도 해보지 못한 일이다.”라고 개탄했다고 한다. 이런 실례는 많다. 한창 흥미진진한 때에 안나 까레니나가 철길에 뛰여들고 우론쓰끼가 총을 쏘고 네흘류도브가 결혼을 포기하는 등 경우이다.     레브 똘쓰또이도 쓰고있다. “그들(작중인물)리상적인 생활속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은 현실속에도 늘 있는 일이다. 결코 내가 원한것은 아니였다” 벨린쓰끼도 쓰고있다. “사실적문학에 있어서 허구와 단순성은 진정한 문학, 진정하고 성숙한 재능의 가장 믿음직한 표징중의 하나인것이다.”     문학창작은 우선 대상세계에 대해 리해하고 반영하고 천명하는 인식활동으로서 연후에 그것을 전달하게 된다. 인식활동중에 가치취향은 “력사리성”으로 “진실”을 추구한다. 그리고 예술전달에 앞서 정감평가를 선행시켜야 한다. 여기서 텍스트의 층차문제가 제기된다. 텍스트(문본)층차에는 문학언어층차, 문학형상층차, 문학의 내함층차가 들어있다.     2. 전형화리론의 연혁     1) 전형화의 함의     전형의 개념은 실제상에서 서방문론에서 창립된것이다. 전형이란 개념은 비록 미학범주에서는 늦게 제출되였지만 유관된 리론연구는 그 력사가 깊으며 시종 전형인물을 중심으로 내세웠다. 발자끄를 비롯한 19세기 사실주의문학대가들은 인물의 성격화를 최고봉에 끌어올렸다. 전형리론의 성숙은 19세기이래 괴테, 헤겔, 벨린쓰끼 등에 의해 추진되였다. 후에 맑스, 엥겔스가 전형리론을 참신한 단계에로 승화시켰다.    그들은 과학적으로 인간의 본질과 인류사회 발전의 객관규률을 론증해내고 아울러 전형이 개별과 일반적인것의 통일에 도달해야 한다는것을 설명하였으며 강렬한 심미성과 거대한 예술매력을 구비하고있다는것을 천명함으로써 예술전형과 철학적의미에서의 전형의 계선을 분명하게 갈라놓았다.     20세기에 진입한후 예술의 중심이 전이되여 전형에 대한 서방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침체되고 전형환경에서의 전형인물이라는 맑스주의 전형관점이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응용되고 발전을 가져오면서 중심의제의 하나로 되였다. 예술전형에는 공성과 개성, 보편성과 개별성, 계급성, 사회성 등 다층차적이고 다방면적인 함의가 내포되고있다.     “계급론전형설”과 “공성과 개성통일설”에 회의가 생기면서부터 어떤 사람이 “공명”설을 제출하였다. 전형은 책속에서만 사는것이 아니라 생활속에 류행되는것으로서 어떤 사람들이 부르는 칭호인 “공명”이라는것이였다. 이 관점은 연구방법상 “전형본신론”이다.    예술형상의 심미효과로 전형여부를 판정하려는 기도는 새로운 시각이지만 “공명”설을 이어 새로운 도경을 탐색하였는데 “필연과 우연의 련계설”이다. 정지상태에서가 아니라 운동상태에서 전형을 투시하고 전형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해석하려 한것은 “공성과 개성의 통일설”에 비하여 한걸음 더 나아간것이였다.     2) 전형의 특징     전형은 개별인소를 포함하고있지만 또한 개별은 아니다. 론리범주인 “특수”는 전형의 심층적본질을 제시하는바 전형인즉 “특수”이다. “특수”는 개별에 대하여 말하면 본질이며 본질을 두고 말하면 또한 현상이기도 하다. 이 관점의 출현은 전형연구로 하여금 기계유물론의 속박에서 벗어나 생기를 띠게 하였다.     소위 “특징”은 “본질적인것을 조성하는 그런 개별적표지”를 가리킨다. 외연으로부터 보면 “특징”은 한마디 말, 하나의 세절, 한개 장면, 하나의 사물, 하나의 인물, 인물관계이고 내함으로 말하면 두가지 속성이 있다. 하나는 그의 외재적형상 및 구체성, 생동성, 독특성이며 다음 하나는 외재형상을 통하여 표현된 내재적본질이다. 발자끄는 자기의 ≪예술론≫ 에서 가장 작은 면적으로 놀라 우리만치 가장 대량적인 사상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가들이 생활속에서 가장 풍부하고 특징적인것을 틀어쥐고 예술강화를 하는것을 “특징화”라고 한다. 전형창조는 특징화를 거쳐 실현되는바 특징화는 예술표현에서 거대한 에너지를 현시한다. 무릇 세계적으로 공인하는 전형은 모두 풍부하고 다채로운 성격의 조각으로서 “크나큰 사상심도와 의식된 력사내용”을 현시하고있다. 고골리는 ≪죽은 넋≫에서 형형색색의 지주의 전형형상을 창조하였다. 쏘바께위치, 쁠류슈낀 등 한무리의 추악한 형상들이 그것이다.     전형의 예술매력은 주요하게 전형의 독특한 심미효과에서 온다. 이런 심미효과는 다음과 같은 네개면에서 표현된다.     첫째, 문학전형은 인간의 생명형식으로 무궁한 매력을 보여준다.     둘째, 전형의 예술매력은 진실성에서 온다.     셋째, 전형의 매력은 그것이 리상에 부합되는데서 온다. 헤겔은 심지어 전형을 직접 “리상”이라고까지 칭하였다.     넷째, 전형의 매력은 그것의 생신성에서 온다.     대가들이 창조한 매개의 전형이 독자들에게 있어서는 안면있는 낯모를 사람이다. 례컨대 거대한 정신, 불타는 열정, 방대한 지혜를 가지고있으나 협애한 편견을 가지고있으며 미칠듯이 처를 사랑하는 나머지 불성실하다고 조금이라도 의심이 생기면 목을 눌러죽이려는 사람이라하면 독자는 곧 오쎌로를 떠올리게 되는것 등이다. 그러한 인물들은 수많은 독자들의 인생반려가 된다.     형상사유과정에 뇌리속에 출현되는 인물은 추상적이 아니라 수많은 사건들의 련계속에서 활동하는 상상적인간이다. 우리는 조조라는 이름만 떠올려도 극히 자사적이고 간교하며 음흉하고 지독한 그의 성격을 생각하게 된다. 이는 ≪삼국연의≫에서 전형적슈제트와 세부묘사에서 그의 령혼을 깊이 파헤쳐 제시하였기때문이다.     정절의 전형화는 생활속에 모순투쟁을 근거로 삼는다. 고리끼는 “정절이란 인물지간의 련계, 모순, 동정, 반감과 일반적인 상호관계 즉 모종성격, 전형적성장과 구성의 력사이다.”라고 하였는바 슈제트란 바로 성격의 력사인것이다.    이왕의 소설에서는 정절강화를 중시하였는데 슈제트발전가운데 모순충돌이 집중되여 긴장감과 극적인 느낌을 준다. 이류의 소설로는 ≪철도유격대≫나 ≪림해설원≫등을 례로 들수 있는데 기본상 전통적수법으로 쓴것으로서 물론 예술가치창조면에서 제약성이 있지만 전기적색채가 짙고 통속적이고 이야기발전이 곡절적이고 긴박감을 주기에 광대한 독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3. 전형환경과 전형인물 전형환경이란 전형인물이 생활하고 그의 성격이 형성되는 구체적인 생활환경으로서 전형인물이 처한 사회생활의 본질과 력사발전의 본질적추세를 보여준다. 전형환경은 객관적현실존재인 사회환경으로서 작품에 묘사되는 환경묘사와는 구별된다. 전형환경은 인물이 활동하고 생존하는 구체환경을 포괄할뿐만 아니라 인물이 처한 특정된 사회력사문화배경도 포괄한다.     전형인물이란 성격의 공시적인 보편성을 지닌 개성적인물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공통된, 다른 사람을 대변할수 있는 성격이다. 따라서 전형인물은 일반적인 인간체험의 결과로 나타난 보편적전형과 시대와 사회의 특수한 상황에서 나타난 개별적전형으로 구분할수 있다.     작가가 추구하는 미학목표도 전형형상창조이다. 인간과 인간의 생활은 문학에서 묘사의 기본사명이며 중심과제이기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어디까지나 일정한 환경에서 생존하고 생활하므로 전형인물을 부각하려면 자연적으로 전형환경을 묘사하게 된다. 여기서 전현환경과 전형인물은 상대적으로 하는 말이다.    전형성이란 특정된 력사적단계에 처해있는 어떤 특정된 사회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질들 혹은 그런 성질을 가지고있는 요소들이 소설속에 잘 반영된 경우를 이르는 개념이다. 전형화는 예술적일반화의 방식으로서 개인적인것에 사회적인것을, 특수속에 보편적인것을, 우연속에 합법칙적인것을, 여러 현상들속에서 본질적인것을 발견하여 표현하는 예술방식이다.     전형환경과 전형인물의 관계를 세개면에서 고찰할수 있다. 량자는 호상련계되고 의존한다. 전형환경이 없다면 인물은 생존조건과 의거를 잃게 되고 전형성격을 전시할 방법이 없게 되며 전형인물이 없다면 전형환경도 그 존재의의를 잃는다. 례하여 림충이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르게 된 리유가 관리가 핍박하여 반기를 들게 하였다는 전형환경이 없다면 성립되지 않는다. 량자는 호상영향주고 호상작용한다. 환경이 인간을 개조하고 인간도 환경을 개조한다. ≪아Q정전≫에서 묘사된 혁명전, 혁명시기, 혁명후의 세차례 사회환경의 개관 및 아Q의 부동한 환경속에서의 성격변화 등은 량자간의 상호작용관계를 잘 설명한다. 작품의 전형환경과 전형인물은 대방의 존재의 참조물이 되는바 상대적으로 전형이 된다. 례하면 가보옥과 림대옥 두인물을 상대하여 전시된 전형환경으로 말할 때는 전형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만약 반역성격이 짙은 한쌍의 청년남녀를 오늘의 환경속에 놓는다면 의연히 전형이 될것인가 하는것이다.     전형인물은 바로 모계급에 공통한 특징이 한전형인물의 몸에 집중된것이였다. 이런 “계급론전형”은 용속사회학과 기계유물론의 경향성이 짙다는것을 설명한다. 뒤이어 출현된것은 “공성과 개성의 통일설”이다. 이 관점은 개성인소를 중시하기 시작하였는데 상술한 용속사회학의 영향과 류형화, 개념화경향을 규정하는데 일정한 작용을 놀았지만 의연히 전형의 특징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전형인물이 사회역할을 분명하게 보여주면서 개인으로서의 특질을 갖추려면 플롯상에서도 뚜렷한 기능을 가진 인물로 부각되여야 한다. 대체상 사회주의리얼리즘 계렬의 소설들에서는 전형적인 긍정적인물을 부각하는데 리기영의 ≪고향≫에 주인공 김희준같은 인물은 당시 조선농촌사회를 이끌어가는 진보적인 지식청년의 전형이다.   “형상은 두개의 극단ㅡ보편과 특수가 유기적으로 융합되여 이루어진것이다.”(벨린쓰끼) 전형인물은 반드시 하나의 개별성과 보편성이 통일된 생동한 인간이여야 한다. 전형인물의 개성은 다른 인물과 구별되는 기본특징으로서 특정된 사회환경속에서 그에게서 표현되는 리상, 념원, 인생태도, 사유방식, 행위준칙, 심리결구 등 각종 소질의 종합이다. 즉 생동한 인간이 세상에 독립해 있는 특수한 존재방식으로서 소설의 전형화에 바탕이 된다.     김성탄은 사람들이 왜 ≪수호전≫을 그토록 싫증내지 않는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수호전≫은 108명의 사람을 묘사하고있는데 인물마다 자기 성정과 기질이 있으며 형상이 있고 자기 말투까지 있다. 또 동일류의 인물가운데서도 다른 특색이 있는데 작가의 서술에서가 아니라 언행에서 표출된다. 로달이 거친것은 성질이 급해서이고 시진이 거친것은 소년의 의기때문이며 리규가 거친것은 영웅은 구속받지 않는다는데서이고 원소이가 거친것은 어디서나 비분을 느끼기때문이며 초정이 거친것은 기질이 나쁘기때문이라 하였다.     소설에서 전형인물이 독자들에게 심각한 인상을 남기고있는것은 주요하게 성격때문이라기보다 더우기는 그들의 독특한 운명, 독특한 심리감수 혹은 정서때문이기도 하다. ≪축복≫에서의 상림아주머니의 비참한 운명과 조우, 조선의 영화 ≪꽃파는 처녀≫에서 꽃분이의 처참한 인생정경,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리고리의 변신후의 감수 등이다.     인간의 사명, 생활의 목적을 깊이 리해하고 좋은 일을 하고싶어 하지만 결단력이 없어서 시행하지 못하며 자기의 무력함을 의식함으로써 고민하는 청년을 말할 때 곧 햄리트를 짚게 된다. 똘쓰또이라면 안나 까레니나와 까츄샤를 떼놓고 생각할수 없듯이 유고라면 인차 쟝바르쟝과 판띠느를 떠올리게 된다.     이외에도 몰리에르가 그려낸 수전노 아르빠공, 레르몬또브가 생생하게 그려낸 “쓸모없는 사람”의 대명사인 뻬쵸린, 쉐익스피어가 부각해낸 고리대금업자의 대명사인 샤일록, 곤챠로브가 형상화한 라태자ㅡ오블로모브 등은 영원히 산 인물로 문학사에 존재할것이다. 이렇듯 대문호들의 이름과 그들이 창조해낸 전형인물은 언제나 련계되여있다. 뿌쉬낀과 오네긴, 오스뜨롭쓰끼와 꼴챠낀, 최서해와 박군 등 그 어느 전형이나 그 작가와 물과 젖처럼 융화되여있다.     전형인물의 보편성이란 곧 전형인물이 독자에게 주는 어떤 본질적의미를 가진 생활내용 즉 선명하고 독특한 개성에서 체현되는 심미가치있고 풍부하며 필연적인 현실과의 력사관계로서 인생태도, 사유방식과 심리상태를 표현한다. 로신이 창조해낸 아Q야 말로 개성이 선명한 인물로서 당시 중국농민계급 내지는 빈고농민의 전형인물이며 현대에도 그 그림자가 얼른거리고있다.     그러나 아Q의 모습은 그 자신에게만 있는것이 아니며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소실될 전형이 아니다. 현대에도 처처에서 아Q식의 정신승리법의 유전인소들을 보게 된다. 그의 성격의 보편성은 사회력사내용의 계급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고 시대를 초월한 인류의 모종 심리상태의 형상적체현이기때문이다.     벨린쓰끼가 말했듯이 한면으로는 한개 특수세계의 인간들의 대표로 되며 동시에 또한 하나의 완전하면서도 개별적인 인간으로 되는것이다. 전형형상에서의 보편성과 개별성사이는 내용과 형식, 목적과 수단의 관계가 아니며 상호격리되여 외재적으로 존재해 있는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서로 내함이 되고 인과관계가 되며 생활발전의 자연적흐름을 중개로 통일되고 융합된 생활력을 가진 진실하고 생동하는 형상들이다.     전형인물은 풍부성과 주도성이 통일된 완정한 인간이다. 정직하고 용감한 오셀로는 이아고의 간계에 걸려든줄 모르고 질투심때문에 무고한 데스데모나를 목죄여 죽인다. 이는 한방면으로는 인물성격의 풍부성의 표현인 동시에 악을 원쑤처럼 미워하는 그의 주도적성격의 특수한 환경속에서의 특수한 표현이다.     전형인물의 성격과 풍부성과 주도성은 대립통일되여 서로 의존하며 서로 도와준다. 풍부성은 주도성을 둘러싸고 전개되며 주도성은 풍부성에 의거하여 두드러진다. 바로 이렇듯한 예술형상이 우리의 심장을 틀어잡는것은 인물의 추상적사상, 본질, 공성이 아니라 미학향수를 실감나게 체현하기때문이다.     전형인물은 독창성과 심각성이 통일된 심미객체이다. 예술창작은 개성특색이 짙은 창조성적정신로동으로서 창조된 전형인물은 마땅히 신선하고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술에서 “반복은 죽음”이라고 말하는것이다. 전형의 독창성은 심각성과 밀접히 련계되여있는바 그것의 심도는 한 작가가 생활을 인식하고 생활을 발굴해내는 집요한 탐구정신에서 체현된다.     독창성은 또한 작가의 개성과 그가 세계를 보는 시각과 판단력의 부동함에서 유래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최서해의 작품들에는 불합리한 당시 사회제도에 대한 분노와 삶의 권리마저 빼앗긴 민초들에 대한 깊은 동정에서 오는 비애감이 지배적인것처럼 말이다. 고골리의 경우, 그의 독창성은 항상 깊은 비애감이 지배적인 희극적활기에 있다. 례하면 ≪검찰관≫이나 ≪죽은 넋≫처럼 눈물의 희극인것이다. 고골리의 유모어는 진실한 체험과 남다른 견해에서 오고있다.     대담하고 폭넓은 필치로 쓴 신기한 에뽀삐야이며 청소한 인민의 영웅적생활에 대한 오체르크이며 호마와 같은 거대한 화폭을 창조한 ≪따라스불리바≫에서 불리바는 영웅이며 무쇠같은 성격,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작가는 불리바의 피비린 복수의 전공을 묘사하면서 서정시의 경지에까지 고양되여있으면서도 곳에 따라서는 자기의 주인공으로써 독자들을 웃기고있다.     4. 전형창조의 수법     전형인물을 창조하는 수법은 다종다양하다. 그러나 전형인물은 작가가 만들어낸것이 아니라 인간생활속에 있는 이런저런 련계의 총화이다. 전형인물과 소재간의 관계로부터 착수하여 전형인물을 부각하는 몇가지 방법이 있다.     1) 종합법     고리끼는 “예술가가 예술의 진실을 창조하는것은 마치 꿀벌이 꿀을 채집하는것과 같다. 꿀은 온갖 꽃에서 조금씩 채집해다가 빚은것이다. 만약 한작가가 20명 혹은 50명, 많이는 몇백명의 상점주인, 관리, 로동자들의 몸에서 가장 대표성적인 계급특점, 습관, 기호, 자세, 신앙과 가래를 뱉는모양 등을 골라내고 한 사람의 상점주인, 관리, 로동자의 몸에 융화시키는 수법으로 전형을 창조한다면 진정 예술이다.”라고 하였다.     또 “언어예술가들은 마치 벽돌로 탑이나 종루를 만들듯이 이런저런 보잘것없는 인물로부터 일반화된 인간 즉 전형, 보편적인 전형을 “고안해내였던것”이다. 당신은 한 사람에게서 코를, 다른 한 사람에게서 귀를, 또 다른 사람에게서 기타 어떤것을 취하라.”라고 가르치고있다.     2) 두드러지게 하기와 간결화     두드러지게 하기란 작가가 번잡하고 두서없는 사색에서 형상 혹은 의념을 틀어쥐고 재료를 선택, 가공하는것이다. 례하면 체호브의 ≪관리의 죽음≫이 이런 구성법으로 창작된것이다. 다음은 간결화인데 작가가 유의적으로 자질구레한 세절을 간략하고 주류를 틀어쥐는 구성법이다.     3) 원형법     원형법을 모델법이라고도 하는데 전문 한사람을 리용하는데 이를 원형가공법이이라 한다. 이 방법은 생활속에서 발견한 어떤 모델을 기초로 하지만 그 모델의 엄격한 제한을 받지 않고 적당하게 기타 생활소재를 섭취하여 상상과 허구로써 원형에 부족한것을 보충해주어 성격이 더욱 풍부하고 더욱 전형성이 있게 하는것이다.     파금의 ≪집≫에서 각신은 큰형이 모델이였고 곡파의 ≪림해설원≫에서 양자영은 실재한 사람이였다. 스탕달의 ≪붉은것과 검은것≫에서 쥴리앙도 그 생활속의 모델은 출신이 비천하나 재능이 출중한 벨트라는 청년이였다고 한다. 이런 방법은 재료가 확실하여 형상의 진실성을 가강하는데 좋은 점이 있다.     단점이라면 자칫 시야가 제한받을수 있어 형상의 개괄성에 영향줄수 있다. 그러므로 모델법도 “두루 긁어모으는 방법”과 결부하고 상상, 허구하여 완정성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보충방법은 간단한 보충, 가감이 아니라 일종의 화합, 일종의 창조로 되여야 한다는 예술규률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4) 진실한 인물쓰기     현실생활속에는 확실히 선명한 개성특징이 있고 모종 사회력량의 본질을 체현하는 인물들이 있다. 그러나 비허구성문학인 실화문학이나 전기문학 같은데나 적당하다. 례하면 서지마의 실화문학 ≪골드바하의 추측≫에서의 진경윤,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녀인ㅡ하자진≫에서 하자진은 아주 전형의의가 있다.     6) 변형법     변형수법은 왕왕 독창성적인 인물을 부각해낸다. 쉘리는 “시는 그것이 소급되는 일체를 변형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방법은 비사실주의적인 서사작품들에서 많이 보게 되는데 부각된 전형형상들은 실제 존재할수 없는 인물들이다. ≪서유기≫에 손오공, ≪료재지이≫에서의 요귀형상 등이다.    이 방법의 특점은 생활속에 어떤 현상들을 과장하여 생활의 고유형태를 개변시킴으로서 작가의 감수를 더욱 강렬하게 하여 생활의 본질을 뚜렷이 시사한다. 변형수법에는 확대축소법, 만화법, 환상법 등이 있다. 로신의 ≪미친사람의 일기≫, 고골리의 ≪검찰관≫중에 관료들이 다 만화법으로 형상화된것이다.     사회적 력사적 혹은 개인적이거나 기타 원인으로 자기의 사상을 사실주의방법으로 표현하기 불편하거나 기어이 써내지 않을수 없을 때 형상을 과장하고 변형시키는 수법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형상속에 자기의 사상을 숨겨두고 현실과의 거리를 충분히 둠으로써 마음껏 과장하고 변형시킨 형상으로 자기 사상감정을 암시하고있다.     5) 전설이나 력사인물을 전형으로 내세우기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부각한 파우스트는 전설속의 인물이나 그를 자기의 철학사상을 체현하는 전형으로 창조해냈다. 쉐익스피어의 유명한 전형 햄리트도 13세기 단마르크사에 기재된 단마르크 왕자였으며 그 기본내용도 단마르크왕자의 복수기이다.     예술사유는 형상사유, 론리사유, 모호사유, 령감사유 등이 종합되고 묵결된 심미사유이고 다유성(多维性)사유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형형상을 창조할 때 무엇을 하는가? 어떻게 하는가를 써야 할뿐만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있는가도 써야 한다는것이다.     당전 새 문학사조들의 충격하에 전형리론발전에서 몇개 방면의 돌파, 심화가 요청된다. 전형리론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인간이지만 인간심령의 비밀을 탐색하고 발굴하는것이다. 전형은 인간의식에로 연장되여야 한다. 전통적리론에서는 인물의 외부적관계 동작은 중시했지만 직관적반영론의 단항사유모식에 국한되여있었다.     서구의 미학리론은 력사와 계급을 초월한 추상적공성을 강조하고있다. 이를테면 부동한 시대, 부동한 계급의 사람들에게 대체적으로 류사한 성격 혹은 성격, 심리속에 고유한 비슷한 인소들이 있다는것이다. 례하면 애정에는 “로미오와 쥴리에트”, 질투에는 “오쎌로”, 유예미결에는 햄리트가 있듯이 말이다.     우리는 흔히 쎄르반떼스의 전형인물인 돈 끼호떼를 주관주의자의 대명사로, 장비나 리규를 거칠고 대바른 사나이의 대명사로 떠올리고 울음의 전형으로 림대옥을 련상한다. 전형은 창조대상이 아니라 창작의 결과이다. 세계적인 전형인물에 시대가 없듯이 전형화 리론은 색바랠수 없는 문학의 법보이다.    
22    제 3 절 텔레비죤드라마 댓글:  조회:3750  추천:27  2007-08-31
                       제2절 씨나리오 1. 씨나리오의 연혁 영화촬영을 목적으로 한 글 즉 영화의 각본. 영화장면의 순서, 배우의 대사와 동작 등을 적은 대본으로서 영화제작상의 기교를 염두에 두고 플롯을 구체적이고 극적으로 구성하며 특수한 용어를 써서 배우의 회화나 동작을 규정한 글이다. 보통 100~200개 장면을 가지는데 영화각본이라고도 한다. 씨나리오는 이딸리아 르네쌍스시절 희가극의 연출책에서 비롯되여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연출, 촬영에 대한 노트로 발전했다. 영화는 자연계의 운동을 분석하고 재현시킨 근대과학기술연구의 성과이다. 영화학이라는 이 이름은 제2차세계대전이후의 일이다. 영화는 19세기말 프랑스의 뤼미아이형제와 에디슨에 의해 발명, 창조되였다. 최초의 영화는 겨우 몇분동안이였고 일상 현실편단의 완전한 복제로서 흔히 말하는 활동사진에 불과했다. 1895년 세계상의 첫 영화 ≪공장대문≫이 성공적으로 상영되였지만 씨나리오란것이 없었고 무성영화였다. 그때로부터 100여년 세월이 흘렀다. 현대과학기술의 신속한 발전과 더불어 1930년대 무성영화로부터 발성영화로, 1940년대 흑백영화로부터 채색영화에로 비약했으며 마침내 1950년대에는 광폭영화로 발전하였고 평면영화로부터 립체영화에 이르러 영화발전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1979년 중국영화절에는 “희곡의 지팽이를 던지고 희곡과 리혼”하고 영화언어의 현대화를 론하게 되였다. 영화의 본질은 촬영수단으로 운동하는 사물을 재현하는 예술이다. 영화예술의 요소에는 제작, 씨나리오, 연출, 촬영, 조명, 록음, 배경, 표현, 몬따쥬, 관중 등이 들어있는데 씨나리오는 영화의 설계도이다. 초기에는 연출겸 “각본창”이 그때 장면에 맞춰 마음속에 있던 말에 의거했는데 이런 표현은 시각효과가 리상적이지 못했다. 씨나리오의 산생은 영화가 자률적예술이 된 획기적인 중요한 단계였다. 씨나리오는 목적묘사방식에 의한 문학의 한 형태로서 상상한것을 문자로 기록하여 영화촬영의 기틀을 잡아주고 상상내용을 생활론리에 맞게 영상속에 체현시킨다. 하여 씨나리오속에 상상내용과 영상이 일치되게 하면서 시각의 직접성이 전부 외재화되게 한다. 씨나리오의 작용은 내심세계의 표백인물의 대사(독백도 포함)가 객관환경을 제약하면서 연출의 상상을 촉발시키는것이다. 다른 한방면으로는 영상의 시간이 현재이므로 씨나리오의 시간제한도 현재가 되여야 하고 사건이 삽입되는 과거장면, 미래장면도 “현재화”시킨다. 영상의 시각점, 류동성으로 하여 어떤 장면에서는 인물이 없을수도 있고 인물이 없는 대화도 능히 존재한다. 씨나리오에는 창작과정상에서 처음부터 영화제작을 위해 창작한 씨나리오(오리지널), 소설, 희곡 등을 기초로 영화촬영이 가능하게 고친 각색씨나리오, 읽히기를 목적으로 한 레제씨나리오 등 세가지가 있다. 영화는 내용상 “기록편”, “이야기편”, “동화편”, “추상편” 등으로 나눈다. 텔레비죤영화도 하나의 종류로 독립하며 존재하는바 영화씨나리오와 공통성도 있고 자체의 특성도 있다. 2. 씨나리오의 기본특징 1) 시각성(조형의 직관성) 씨나리오는 영화예술의 문학기초로서 우선 문학성이 있어야 하지만 영화촬영기가 찍어야 할 각본을 제공하므로 창작은 영화예술 규률의 제약을 받게 된다. 다시 말하면 화면에 의하여 표현되므로 촬영을 고려해야 한다. 직접적심리묘사가 불가능하고 장면과 대상에 의하여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영화예술은 부단히 운동하는 화면을 련속하여 관중들에게 시각형상을 제공한다. 촬영의 약속하에 있는 씨나리오는 묘사가 선명하고 구체적이여야 하며 시각형상의 촬영요구에 부합되여야 한다. 씨나리오의 시각성이란 인물의 외모, 사물의 외부형태만 가리킬뿐만아니라 환경, 장면에 대한 묘사에서의 시각성을 말하며 인물의 내심활동에 대한 묘사도 시각성이 강해야 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영화화면에서 나타날수 없는 추상적개념이나 추상적인 평면적서술은 씨나리오에서 무가치하며 따라서 금물이다. 소설처럼 “그는 초조해 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는 서술이 독자에게 상상의 공간을 주면서 저마끔의 표상화를 예상할수 있지만 씨나리오에서 이렇게 쓴다면 조형으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만약 “그는 신경질적으로 방안을 왔다갔다하다가 연신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가까이에 있는 탁상우에 재털이에 담배꽁초가 수북하였다.”라고 묘사한다면 조형형상을 얼마간 가능한것이다. 여타 문학작품에 가독성이 있어야 하듯이 씨나리오의 서술, 묘사에는 가시성(可视性)이 필수적이다. 조형은 미술각도에서는 일종 정지상태의 공간예술결구를 의미한다. 그러나 영화예술속에서의 조형은 활동하는 촬영기속에 부단히 운동하는 시각형상이 되여진다. 또 례를 든다면 “전야는 활기로 넘치고있다.”라고 서술한다면 시각성이 없다. 그러나 “전야ㅡ맑게 갠 날씨, 제비가 물을 차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농민들이 논판에서 제초기를 밀며나간다. 들판 길로 ××가 뜨락또르를 몰고간다. 상쾌한 얼굴이다.”라고 묘사해야 연출가가 장면을 재현할수 있다. 더 례를 든다면 조선의 영화《이름없는 영웅들》의《전투는 계속된다》는 정절에 이렇게 시각화한 서술이 있다. →클라우스에게 심문을 받는 유림 →고문당하는 처참한 숙영의 모습→피아노를 치는 순희→일본 북해도에 랍치되여있다가 탈출하는 순희→도꾜역에서 유림과 순희의 말없는 리별→사형장에 끌려나가는 옛고향친구들과 만나는 유림→상봉의 기쁨에 찬 숙영→ 이러한 단락식서술은 장중한 음악선률속에서 이름없는 영웅들인 주인공들 의 싸움의 나나에 있은 화면들을 집약적으로 펼쳐보이고있다. 이런 서술은 토막쳐져있지만 서사적묘사의 론리적융합률에 부합된다.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관 중의 심중에서 자연스럽게 의미적으로 련결된 결구적총체ㅡ현실생활과의 총체 적흐름을 조화적으로 옮긴것이다. (2) 행동성;영화예술은 동태적예술이다. 영화예술에서 행동은 인물성격을 부각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극적발전을 추진하고 주제를 심화하는 주요한 예술수단으로 된다. 행동의 특성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적게 받는다. 인물의 성격 발전과정은 바로 인물의 일련의 행동으로 구성되므로 인물의 전형적행동을 선택하여 묘사해야 한다. 례하여《이름없는 영웅》제2부 에 대한 묘사를 보자. “문을 열고 들어선 유림은 창문의 차광막을 내린다. 창가에 다가가서 굳어져있는 유림, 그는 떨리는 두손을 창가에서 떼고 가까스로 침대에 다가가 눕는다. 오열에 떨고있는 두어깨, 높뛰는 숨결이 방안에 가득차 있다.” 이 장면은 동지의 죽음을 앞두고 터뜨릴수 없는 울분을 참아야 하는 의지 력과 슬픔에 뒤이어 원쑤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유림의 격렬한 내심투쟁을 아주 직관성있게 그려내고있다. (3) 특수한 구성법;영화는 몇개장면이 모여 하나의 장면을 이루는 부분이나 화면과 장면을 단위로 한다. 그러므로 씨나리오는 몬따쥬(몽타주)라는 특수한 예술구성법이 있다. 씨나리오가 몬따쥬를 운용하는것이 다른 문학작품과 구성상 현저히 구별되는 특점이다. 영화제작은 씨나리오의 내용에 근거하여 우선 수다한 화면으로 나누어 하나하나 촬영한다. 화면은 영화의 가장 작은 단위이다. 이렇게 한장면, 한장면 촬영한 화면들을 원창작구성에 따라 각종 편집방법으로 련결시키며 영화예술의 특수한 예술구성법칙에 따라 플롯을 전개하고 인물형상을 부각한다. (4) 대화의 간결, 세련성; 주로 대사로 표현되므로 씨나리오에서 인물의 대화는 간결하고 의미심장하며 기지가 있어야 한다. 무미건조한 독백이나 긴 연설같은 대화는 영화예술의 흥취성, 절주성(리듬)에서 금물이다. 대화는 성격부각의 수요로부터 개성화해야 한다. 한국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극적갈등이 첨예하고 행동성이 강조된 영화는 아니지만 인물들의 대화가 한국말의 풍부성과 섬세한 표현성의 특성을 잘 살려서 생활감이 풍부하고 인물의 개성특징에 맞도록 간결하고 세련되게 구사하였기에 매개 인물들의 성격특징들이 선명해지고 극정을 짙게 해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관중을 사로잡고 정서체험을 하게 된다. 이 영화로 하여 씨나리오작가 김수현은 언어대사라는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5) 씨나리오의 용량문제;씨나리오는 시간적, 공간적배경의 제한을 적게 받으며 등장인물수도 제한받지 않는다. 그러나 한부의 영화(상하집으로 된것은 포괄하지 않음)는 보통 한시간ㅡ45분 방영하며 많아야 두시간(국제표준 방영시간은 100분)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 필림의 길이는 3천메터를 기준으로 한다. 용량이란 극본의 제재수량을 가리킨다. 한부의 씨나리오의 제재 수량은 한부의 중편소설과 맞먹는다고 주장하고있다. 글자수는 3만자 내지 4만자사이로서 완정하고 충족한 슈제트가 있어야 한다. 3. 씨나리오의 결구 영화의 결구형식의 다양화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객관생활이 영화예술에 대한 요구의 필연적결과이다. 씨나리오결구의 분류는 획일적이고 고정된 법칙이 없다. 착안점에 따라 분류법도 다를수 있다. 1) 희곡식결구 전통식결구라고도 하는데 대량의 희곡인소를 받아들여 융화시켰기에 특별히는 희곡충돌률과 결구법칙이 예술상에서 스스로 일격(一格)을 이루었다. 주요한 특점은 아래와 같다. 첫째, 모순충돌을 씨나리오의 기초로 하고 희곡충돌규률을 결구원칙으로 하기에 충돌을 전개하는 필연적동작려정 즉 발단, 발전, 고조와 결말의 진전은 순서적이다. 둘째, 인물관계와 사상감정의 묘사는 중심충돌의 동작선을 긴밀히 둘러싸고 돌것을 요구할뿐만아니라 긴장성을 조성하여 사건에 사건이 얽히고 장면이 장면을 밀고 나가면서 극정을 발전시키고 장면에 따라 모순충돌이 갈수록 치렬해지게 한다. 셋째, 장면과 단락획분상 정체적으로 조화되여야 하며 장면이 희곡에서보다 많게 한다. 그외 충돌의 부동한 내용과 성질이 결구형식의 다종다양한 류형을 이끌어내는바 대립되는 쌍방을 전반극에 관통시키면서 충돌을 전개한다. 하나의 주요사건 혹은 하나의 주요인물 혹은 주요동작으로 중심을 형성하고 충돌을 조직한다. 어떤것은 강렬한 희곡성현념으로 충돌을 조직하기도 한다. 이런 결구의방식은 시간과 공간의 순서식을 위주로 한다. 사람들의 심금을 사로잡았던 전통영화 ≪동존서≫가 이런 결구로 되였다. 2) 소설결구식 이 결구의 특징은 표현수법상 소설과 접근되며 소설의 서사인소를 운용하는것으로서 인물의 사상감정의 세밀한 변화를 묘사하는것이 특점이다. 정절의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지 않고 장면의 루적에 모를 박는다. 그러면서도 주요정경과 인물의 차요한 정경과 삽입을 요구한다. 3) 산문식결구 이런 결구는 산문처럼 슈제트의 완정성과 인과관계를 중요시하지 않는바 뚜렷한 발단, 고조, 결말 등 결구 요소도 없으며 확연히 드러난 모순갈등의 선색도 없다. 이런 결구는 조형수단으로 생활속에서 발생한 하나하나의 사건을 전시하는바 약간의 이어진 단락으로 구성되기에 단락지간의 이음새의 필연성 및 그들지간의 내재적련계성을 그리 강구하지 않는다. 이런 결구는 주로 순서적서술방법을 쓰며 기본상 플래시백(섬광)을 쓰지 않는다. 함의표달에 착중하거나 혹은 철리의 전달을 추구하는바 문체가 령활하고 다변하여 특수한 예술매력을 가지고있다. 특히 생활의 자연상태와 흡사하여 진실감이 짙고 기타 류형의 결구들에서 이룰수 없는 예술적설복력을 가진다. 4) 종합식결구 희곡원소외에 소설서사를 운용하여 희곡성과 서술성이 결합된 결구형식이다. 총체적구성은 희곡에 가까운바 일반적으로 완정한 갈등과정이 있고 인물성격부각, 사건묘사, 장면삽입 등 면에서 극히 세밀하여 희곡문학과 비슷하다. 하여 장면을 너무 집중시키고 인공적흔적이 다분한 약점을 회피할수 있다. 중국 의 전통적영화《청춘의 노래》가 그 례로 될수 있다. 5) 에피소드식 구성 지나치게 기승전결식의 정통에 얽매이지 않고 극적인 에피소드를 엮어서 구성하는 방식이 있다. 구성이란 도입,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식으로 배열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다. 중요한것은 얼마나 극적으로 짜임새 있게 해내느냐가 문제이다. 씨나리오 구성에는 (1)직선적인 구성 (2)복합적구성(회상방식) (3)에피소드식 구성 (4)수필식구성 (5)다큐멘터리적(기록영화)구성 등이 있다. 복합적구성은 스토리를 전개할 때 시간순서대로 풀어가는게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면서 병행서술방식으로 풀어나가는것을 말한다. 스토리 자체는 정통드라마일지라도 회상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경우 아무래도 영화는 진지해지는 반면, 관객의 집중력은 떨어질수 있다. 그리하여 상업지적인 감독들은 의도적으로 회상방식(플래시백)이나 복합적구성을 사용한다. 4. 씨나리오 창작원리 1) 씨나리오의 내용 진실을 재미있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한것은 진실이란 원래 재미가 없기때문이다. 재미있고 충격적인것은 언제나 허구이다. 그러면 “본질적으로 재미없는 진실”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수 있을가? 첫째, 새로운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 진실은 진실이되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 숨어있던 진실을 새로이 발견해 이야기하는것이다. 두번째 방법은 진실을 이야기하되 그 성격을 달리하는것이다. 누구나 A가 옳았다고 생각하도록 이끌고 가다가 갑자기 확 뒤집어 알고보니 B가 옳은것이었다고 말하는것이다. 다음 반전에 치밀한 구성이 주는 묘미를 십분 활용하는것인데 이러면 흥미도 짙게 하면서 진실의 내용도 더욱 부각시킬수 있다. 세번째는 일상적으로 자잘한 진실된 이야기를 하되 새롭고 재미있는 형식으로 하는것이다. 하나의 줄기로 된 단순구성과 다른 에피소드를 삽입하여 서로 조종하면서 하나의 주제로 이끌어가는 복합구성이 있다. 이러한 구성의 종류는 정통적인 드라마트루기 방식인 서사적구성, 회상방식을 일관되게 병행해서 묘사하는 복합적구성, 여러 에피소드를 모아서 보여주는듯한 구성, 수필식구성, 다멘터리적인 구성 등 다양하다. 씨나리오는 보통 100∼150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씨나리오 작가는 사전에 이야기에 근거하여 대략적인 정절을 엮어놓는데 먼저 소유의 장면들의 순서를 잡아놓고 매 장면을 분할시켜 묘사한다. 씨나리오에서 규정된 최소단위가 한개 장면이지만 그 장면의 세밀한 분할은 연출이 할 일에 속한다. 플롯의 기초는 인물의 행동이다. 플롯은 인물성격을 의거로 하는바 착중점은 마땅히 생활속의 갈등ㅡ인간과 인간, 인간과 환경 및 개체의 모순 등 복잡한 관계를 표현하는데 두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플롯(슈제트)를 운운할수 없다. 씨나리오에서 슈제트란 표현되는 생활속의 갈등이다. 모든 이야기처럼 그것은 발단, 상승, 절정, 하강, 결말의 5단계로 되여있고 각각의 단계들이 영화 특유의 기술적문제의 반영으로 전체적통일성에 기여하게 된다. 제1막 제2막 제3막 발단(beginning) 중단(middle) 결미(end) │ │ A——·———┼———·———————┼—————Z │ │ 건치(建置) (setup) 대항(对抗)(confrontation) 결국(结局)(resolution) 제1~30페지 제30~90페지 제90~120페지 정절점(情节点)Ⅰ(Plot Point) 정절점(情节点)Ⅱ 제25——27페지 제85——90페지 소유의 씨나리오는 모두 이런 기본적선성(线性)결구를 포괄한다. 이런 씨나리오 모식은 모델이고 양식이며 하나의 구사규획이다. 씨드 필드는 자기의 이 도표를 다음같이 해석하고있다. 제1막은 발단이다. 한부의 표준적씨나리오의 편폭은 대략 120페이지 혹은 두시간분량, 한단락은 일분에 따르는 한페이지로 계산한다. 때문에 씨나리오를 창작할 때 10페이지이내에 관중을 사로잡아야 한다. 환언하면 10페지안에 독자가 누가 주인공이고 무엇이 이야기의 전제인가를 똑똑히 알수 있게 해야 한다는것이다. 발단부분에서 이야기를 설정해야 하며 특히는 제1막의 결말부분에 하나의 특히는 제1막의 결말부분에 하나의 정절고조가 있어야 한다. 소위 정절점은 하나의 사변 혹은 사건이다. 그는 이야기를 긴밀히 둘러싸고 이야기를 다른 방향에로 이끌어간다. 제2막은 중단 혹은 대항이라고 하는데 씨나리오의 주체부분으로서 일반적으로 3ㅡ90쪽이다. 이 부분에서 모순갈등이 전개되여 발전하고 격화되여 제2막의 결말부분에 절정을 둔다. 일반 적으로 85—90쪽 사이에 결과에 들어간다. 세번째는 결구(결말)로서 일반적으로 90—120쪽사이로서 이야기의 해결부분이다. 도입단계 즉 프롤로그에선 작품의 주요배경이나 극중 인물이 소개되고 앞으로 대강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것인가가 보여져야 한다. 발단부분에서 시대, 지점, 사회배경, 인물과 그들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교대하면서 모순충돌의 원인을 밝히고 적시적으로 현념을 설치하여 관중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도모한다. 플롯은 풍부한 동작성충돌속에서 전개되여야 하며 간명하고 유력하고 선명하게 인물의 성격특징을 끌어내와야 한다. 고조에 이르기까지 모순갈등이 긴장되고 가장 치렬하며 첨예한 단계로서 인물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건전환과 발전의 관건적인 환절이다. 전개는 발단에서 드러난 극적갈등이 구체화되고 여러가지 극적인 과정을 겪다가 위기로 치닫는다. 하여 이 지점에선 위기를 진정 위기로 느낄만한 극적인 상황을 충분히 보여줄수 있어야 한다. 풍부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로 사건을 전개해 나가야 똑같은 상황을 전달할지라도 훨씬 극적일것이다. 나중에 절정에서 일어날 극적반전이나 인상적인 결말을 위한 복선을 깔아두기도 한다. 그동안 진행되여 오던 갈등이나 사건이 큰 변화를 겪는 단계가 바로 위기다. 대개 주인공(들)이 큰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 보여진다. 특히 이 지점에서 주인공이 위기를 겪을 때, 그동안 동일화되여 온 관객도 똑같은 심정으로 위기감을 느낄수 있어야 한다. 그런 극적상황을 위해선 반전이 자주 활용된다. 정통 드라마트루기의 절정에선 심리적으로 일종의 카타르시스(정화)효과를 노린다. 결말에서는 그동안 맺혔던 갈등을 풀어주고 서서히 마무리를 지어주어야 한다. 절정에서 바로 마무리를 해주는것보다 절정에서 일어난 극적사건을 그동안 쌓아온 복선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해결해주는게 좋다. 관객들 립장에서는 그동안 일어난 극적스토리속에서 빠져나갈 심리적여유를 주는게 좋다는것이다. 2) 모찌브, 상징 모찌브란 영화의 사실적인 조직속에 전적으로 포함되여있으므로 잠재적이거나 보이지 않는 상징이라고도 할수 있다. 이는 기법일수도, 특정 대상물일수도 있으며 모호할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의 상징적의의는 작품의 맥락에서부터 튀어나오거나 분리되여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것이 아니기때문이다. 그리고 모찌브는 음악적일수도, 동적일수도, 대사일수도, 청각적일수도 있다. 상징의 경우 구체적인 사물이 상징으로 쓰일수도 있지만 예민한 관찰자에게는 비교적 확실하게 느껴지는 부가적의미들을 품고있다. 은유(메타포)는 하나의 언어적비유이다. 편집은 영화에서 메타포의 원천으로 자주 쓰인다. 3) 씨나리오각색 씨나리오각색은 영화의 사유로 영화예술의 규률과 특점에 좇아 이런 문예형식의 작품을 재창작하여 씨나리오화 하는 현상인데 그 래원은 두가지다. 하 나는 영화의 편폭에 따라 창작하는것이며 다른 하나는 기타 문학형식의 작품을 각색하는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영화들이 문학작품을 각색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오히려 순수창작 씨나리오보다 더욱 기술과 독창성을 요구한다. 문학작품의 영화로의 각색은 재현의 문제가 아니라 접근의 문제이다. 각색은 대략적각색, 충실한 각색, 축자적각색으로 나눠볼수 있다. “대략적각색”은 대체로 하나의 아이디어, 상황, 인물을 선택하여 원작과는 무관하게 영화를 전개해 나가는 방법이다. “충실한 각색”은 말 그대로 가능한 원작의 정신에 접근하여 원천으로 삼은 문학작품을 영화의 립장에서 충실하게 재현하려고 시도한다. “축자적각색”은 희곡을 원작으로 삼는 경우에 한정된다. 희곡의 두가지 기본적양식인 행동과 대사는 영화에서도 발견된다. 그래서 희곡을 영화화하는데 주요문제는 언어보다 시공간을 다루는 면에 있다. 영화각색의 대상범위에는 희곡, 소설, 이야기, 전설, 신화 등이 망라된다. 당전세계 영화계에는 다양한 각색관점과 각색법칙이 있다. (1) 의식법;용량이 대체상 근사한 중편소설작품에서 주제, 인물, 슈제트를 옮겨오는 방식이다. 례하면 ≪이른 봄 2월≫ ≪천운산 전기≫등을 들수 있다. (2) 발취법;즉 장편거작에서 상대적으로 완정한 부분을 발취하여 다시 개편해서 독립적인 영화작품을 만드는것이다. 례하면 고전명작 ≪수호전≫의 7. 8, 9, 10, 11회를 집중하여 ≪표자두 림충≫을 쓴것이다. ≪림해설원≫도 실제상 동명소설에서 ≪위호산을 지혜롭게 탈취≫라는 장절을 개편한것이다. (3) 농축법;역시 장편거작에 대해 말하면 발취법과 비슷하다. 그러나 일반작법은 주제와 밀접하게 련계되여있는 인물과 사건을 틀어쥐고 주인공의 사상맥락을 선색으로 원작을 압축시켜 영화결구에 알맞게 단순하고 간결하며 명료하게 한다. 례하면 양말작 ≪청춘의 노래≫나 유고의 ≪비참한 세계≫등이다. 제3절 텔레비죤드라마 1. 텔레비죤드라마의 특징 텔레비죤극이란 영화와 희곡의 표현방식을 융합시키고 현대화 록제수단으로 제작하여 텔레비죤극을 제작하여 텔레비죤을 전파매체로 하는 새로운 시각예술의 한가지 양식이다. 표현상에서 텔레비죤극은 시공간상 더욱 자유롭기에 무대의 제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텔레비죤극에서 희곡성은 세가지 함의를 가지고있다. 첫째 함의는 무대성이고 둘째는 정절의 충돌성이며 셋째는 우연, 교묘한 일치 등 기교성이다. 무대는 가정기초에 건립된다. 무대극은 세면의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출연한다. 관중은 네번째의 투명한 “벽”을 사이두고 배우들과 함께 동일한 진실한 공간에서 흔상한다. 이리하여 무대환경설치의 가정성이 있게 된다. 즉 간단한 배경과 도구로 출연자와 관중쌍방간에 협의적이야기공간의 가정성협의가 이루어진다. 여기서 다른 하나의 특점이 생기는데 바로 극정성이다. 연원과 관중, 관중과 관중간에 호상감염되는 와중에 최대의 예술효과를 실현한다. 텔레비죤극은 비록 촬영기로 관중의 눈을 대체하지만 무대성에 의탁한 텔레비죤극의 실례가 적지 않다. 가장 전형적인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보는 “실내극”이다. 실내극의 가장 큰 특점은 실내에 배치한 가정성배경속에서 촬영하는것이다. 극작의 환경변화가 비교적 작고 등장하는 인물도 많지 않으며 무대화한 인공광원을 쓰고 현장록음을 한다. 중국에서 첫실내극은 ≪갈망≫이다. 후에 ≪편집부의 이야기≫ 등이 세상에 나오면 실내극이 보편화되였다. 이런 실내극은 텔레비죤극의 특점이라지만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관중이 텔레비죤극이 규정한 정경속으로 들어갈수 없다는것이다. 실내환경설치는 사람들에게 친절감을 안겨주지 못하기에 흔상흥취를 잃게 한다. 반대로 대형작품, 례하면 ≪삼국연의≫, ≪수호전≫, ≪옹정황제≫등에 반향이 강렬하게 되였다. 실내극에는 또 일종 특수한 류형이 있는데 이른바 정경희극이다. 이 류형의 텔레비죤극은 공간상에서 상대적으로 고정되여있고 등장인물도 제한되여있다. 화극처럼 주요하게 대사로 행위를 완성한다. 그러나 언어가 비교적 기지있고 유모아적이며 인물들의 대화에는 의도적인 “함정”으로 충만되여있다. 희곡성의 두번째 함의는 정절의 충돌성이다. 만약 한부의 극이 절반이나 지나갔는데도 무엇을 하려는지 관중들이 알수 없다면 아무 꺼리낌없이 퇴장해버린다. 텔레비죤극은 한집내에 극적충돌을 안배해야 할뿐만아니라 뒤에 올 다른 집을 보고싶어하는 기대감을 심어주어야 하며 텔레비죤극의 정체적서사에서 긴장감, 자극성 등 인소를 잘 활용해야 한다. 관중의 심리긴장을 부단히 조장해가다가 절정에 이르러 풀어지도록 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응유의 심미향수를 얻을수 없다. 여기서 알수 있듯이 텔레비죤극에서는 희곡성에 충돌성이 갈수록 심화될것을 요구한다. 이런 충돌속에서 주인공의 성격이 완성되여 간다. 희곡성의 세번째 함의는 우연성, 교묘한 결합 등 기교성인소를 가리킨다. 희곡과 생활이 다른 곳이라면 생활은 시간속에서 흐르면서 시작도 끝도 없으나 희곡의 시공간은 문본속에 갇힌 자족체로 된다. 희곡은 바로 평온하고 무의미한 생활의 그런 부분을 배제한다. 이런 의의에서 순전히 사실을 쓰는것은 희곡의 파산을 의미한다. 쉐익스피어의 희곡들이 그렇듯 매력적인것도 교묘한 우연의 일치로 충만되여있다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바로 우연과 교묘한 일치의 인소를 재치있게 잘 결합하였기에 세월이 많이 흘러가도 싫증나지 않는 명극으로 남아있게 되였다. 텔레비죤극도 극이므로 우연성과 교묘한 일치가 적을수 없다. 희곡이 비록 일종 문본속에 봉페된 서사유희이지만 유희가 재미있어야 하고 사람들이 믿을수 있어야 하며 문본외의 생활과 비슷해야 한다. 그런데 우연은 반드시 필연적우연이여야 하며 교묘한 일치도 생활론리와 부합되여야 한다. 뜻밖이면서도 그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텔레비죤극은 비상히 특수한 일종의 심미사회의식형태로서 전자기술화된 전자계통과 형광막을 빌어 사회인생의 이야기를 옮겨놓은것이며 텔레비죤예술 자의 령감과 지혜, 정서의 산물이다. 더욱이 관중들의 령감과 지혜, 정서의 참여와 창조의 산물이다. 하여 일계렬의 내부적련계성이 있게 되는것이다. 일계렬의 내부적련계성이 있으므로 하여 각종각양의 심리학적방법, 미학적방법, 각종각양의 언어학적방법, 나아가서 자연과학의 모종 방법 등이 동원된다. 텔레비죤극예술의 외부적련계속이든 내부적관계속이든 작가, 및 관중의 주체의식이 참여한다. 이런 주체의식속에는 철학의식과 문화의식이 포괄될것은 자명하다. 텔레비드라마형식에는 세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단막극으로서 한번에 방송하고 끝나는것이다. 둘째는 희곡집인데 형식은 주요하게 인물들사이에 일정한 련관성이 있으나 정절은 독립적인 일종 텔레비죤극이다. 세번째는 련속극 혹은 계렬극이다. 영화씨나리오와 텔레비죤 씨나리오의 부동한 특성을 알려면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비교속에서 량자의 공통성과 차이점을 읽을수 있다. 1) 텔레비죤영상의 특성 텔레비죤극은 시청각예술이다. 텔레비죤브라운막에 영상은 운동하는 빛과 영상으로 실재적대상을 재현, 복제한것으로서 그 자체는 비실재적영상이다. 거기서 표현되는 사람은 가상적생명이지만 일정한 정도로 현실성을 대용하고있다. 거실은 텔레비죤수상 장소로서 영화나 연극을 감상하는 영극원과 다르다. 텔레비죤수상기는 한가지 가구처럼 아무데나 놓을수 있기에 수시로 볼수 있고 관중은 기본상 가정성원, 친구들에 한한다. 텔레비죤감상은 텔레비죤브라운막을 통해 진행되므로 연극을 보는 때처럼 배우와의 직접적접촉이 단절되며 영화를 볼 때처럼 관중의 반응이 직접적으로 배우에게 영향주지 않는다. 천만인이 보는 영상은 어떠한 관중에게는 똑같이 변하지 않는다. 텔레비죤의 브라운막이 영화의 은막보다 작기때문에 이 부족점을 메우기 위해 근거리렌즈를 취하거나 특별촬영수법을 채취한다. 이것을 “접근경향”이라고 한다. 이런 접근은 물상을 협소한 공간속에 응축시키고 정체강화의 형식으로 강렬한 표현을 한다. 때문에 배우로 말하면 촬영기앞에서 연출해야 하며 될수록이면 작은 공간에서 세련된 동작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텔레비죤에 객관시간의 련속성이 구비되여있기에 화면에 시간경과와 촬영기앞에서의 연출시간은 일치하며 한개 장면은 촬영기 위치의 바꿈을 의미한다. 유관정절의 분단, 편단은 현실속에서 시간상의 련속성을 가지고있다. 하기에 영화시간처럼 비약과 연장, 압축을 허용하지 않으며 관중의 시간감수에 근거하여 주관시간을 결정한다. 상술한 특점에 근거하여 창작을 진행하여야 한다. 우선 편폭상에서 제한을 받을 필요가 없으므로 심각한 생활편단을 보여줄수도 있고 거대한 력사사변이나 인물의 일생이나 장구한 력사과정을 보여줄수도 있다. 여러집으로 된 텔레비죤영화는 매집의 수용시간은 50분이내로 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전제하에서 련속드라마 구성법을 취할수 있다. 텔레비형광막의 제한으로 제재는 일반적으로 간결하고 세련되여야 하며 인물이 너무 많아서도 안된다. 극정도 영화처럼 그렇게 곡절적이고 복잡해서는 안된다. 장면도 자주 바뀌지 않으며 중간거리, 근경촬영법, 클로즈업수법을 많이 쓴다. 텔레비드라마는 긴축되여야 하고 희곡적현념이 풍부해야 하며 언어가 생동하여 관중의 심금을 사로잡아야 한다. 형상성외에도 정감성도 중요하다. 텔레비죤영화의 감상대상의 제한성으로 씨나리오내용면에서도 약속력이 있어야 하며 슈제트선도 주차가 똑똑하고 련관성이 강해야 한다. 반면에 절주에서도 자유도가 있으므로 잘 운용해야 한다. 2) 텔레비죤드라마의 인물 인물이란 무엇인가? 인물은 관점이고 태도이고 동작이다. 인물의 실질은 동작으로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가이다. 인물의 행동이 인물의 성격을 극화하며 작가에게 많은것을 제시한다. 그리고 한개 장면도 인물의 많은것을 설명하는바 인물은 일종 계시이다. 작가는 인물의 부동한 방면을 독자와 관중들앞에 현연시킨다. 극정의 진행중에서 관중은 이야기속에서 인물의 곤경을 알게 된다. 이리하여 인물은 관중과 함께 극적동작을 이끌어가는 정절점을 찾게 한다. 동일성 역시 인물의 한개 방면인것이다. 동작인즉 인물이다. 한사람이 하고있는 일은 말이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표명한다. 상술한 소유의 성격특징들인 관점, 개성, 태도, 행위는 인물을 구성하는 과정에 서로 련계되고 서로 보충한다. 이 모든것은 기실 인물의 전기에서 온다. 인물의 과거에서 가히 관점, 개성, 태도, 행위와 수요와 추구와 목적을 추단할수 있다. 인물은 씨나리오의 근본적인 기초이고 이야기의 심장이며 령혼과 신경계통이다. 필을 들기전에 반드시 인물을 투철히 료해하여야 한다. 주요인물은 누구이며 누구의 이야기를 엮으려는가를 명확히 해야 하며 살아있는 립체적인물을 부각할수 있다. 모든 극작가들은 작품을 통하여 인생에 대한 리념을 표현한다. 드라마속에 매 한마디, 매 하나의 인물 모두가 이 계통속에 하나의 원소이다. 소유의 인물, 소유의 대화, 소유의 장면들이 융화되여야 하나의 리념정체를 이룰수 있다. 례하면 텔레비죤극《서유기》에서 작자가 이런 리념을 표현하기 위해 정의적력량과 사악한 력량의 박투중에서 파란곡절을 겪지만 최종적으로 사악을 전승하고 자아완선을 이루며 마감에 취경의 목적을 달성한다. 드라마속에 매개 인물은 표면상에서 작자와 아무 관계도 없는것 같지만 기실 작자의 인격과 정신상의 층차와 부분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자기가 부각하는 인물들에 대해 투철히 알아야 한다. 이는 배역을 맡은 연원도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맡은 인물의 령혼과 진정 소통이 이루어져야 해당 인물의 몸에서 자아의념을 표현해 낼수 있다. 인물성격부각의 방식은 여러가지인데 우선 주요인물을 확정해야 한다. 다음 그 혹은 그녀의 생활을 내재적생활과 외재적생활 두개 기본범주로 나누어야 한다. 인물의 내재적생활이란 그가 출생해서 영화가 시작되는 사이에 발생한다. 이것은 인물성격의 형성과정이다. 인물의 외재적생활이란 영화가 시작되여서부터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사이에 발생한다. 이것은 인물의 성격을 제시하는 과정이다. 영화는 시각매체이다. 작자는 자신도 모르는 그런 사연들을 밝힐수 없다. 어떻게 인물을 종이우에서 제시할것인가? 소유의 극정인물은 모두 세개 방면에서 상호작용한다. 첫째, 그들의 극적인 추구과정에서 겪은 충돌을 틀어쥐여야 한다. 례하면 그들이 돈이 박절하게 수요되여 은행을 털려한다면 몰래 스며든다든가 아니면 강도질하여 돈을 손에 넣는가 하는 등등의 수단과 행동들의 해명이다. 둘째, 그들과 기타 인물들사이의 상호작용을 해명함에서 적대적인가? 친선적인가? 랭담한가? 하는 인간관계 해명인데 잊지 말아야 할것은 희곡이란 곧 충돌이라는것이다. 셋째, 그들의 내재적인 상호작용이다. 주인공은 자기가 감옥에 들어갈수도 있다는 위험과 두려움을 극복한 심리기초상에서만 성공적으로 강탈을 진행할수 있다. 이때의 두려움은 일종 정서인소인바 반드시 명확하게 제출되여야 한다. 4) 인물의 대화 대화는 인물의 일종 기능이다. 대화인즉 작중인물의 추구와 수요이고 희망과 동경과 련계되여있다. 대화는 이야기속에 정보와 사실을 관중에게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반드시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며 인물을 제시해야 한다. 혹간 기발한 비유나 속담으로 취미를 돋구면서도 대화는 생활적이여야 한다. 3. 텔레비죤드라마의 창작원리 극본의 다섯가지 원소가 있는데 이야기, 결구, 인물, 장면, 대화가 그것이다. 씨나리오는 극본이 아니다. 씨나리오는 시각을 매개로 이야기의 기본선을 희곡화하는것이다. 그것이 사귀는것은 화면들이고 하나의 판단과 한단락의 장면을 찍은 필림이다. 즉 씨나리오는 화면으로 말하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기본원소를 대략적으로 서술한다면 아래와 같다. 원소 1) 길이: 작가는 결구, 절주, 인물수량, 방송,제제선택 등 기본문제에서 길이ㅡ분량의식이 명확해야 한다. 표준영화는 90min이고 텔레비죤극30,40min/hour로 규정되여 있다. 원소 2) 동기: 동기란 곧 인물의 내재적추구의 외화이다. 즉 인물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취하는 상응한 행동으로서 강렬한 동기가 이야기의 현념을 구성한다. 원소 3) 충돌: 충돌을 써낸다는것은 바로 이야기 진행과정에 “시끄러움”을 제조해낸다는것을 의미한다. 극을 만드는 사람은 비유해 말하면 바로 그 “시끄러움”을 부단히 제조해내는 사람인것이다. 주요인물은 어떤 동기의 추동하에 어떤 일을 해낼 때 필연적으로 상반되는 동기의 방애를 받게 되고 두가지 동기의 충돌이 이야기의 주선을 이룬디. 원소 4)인물: 인물이란 한마디로 이야기의 집행자로서 인물과 사건은 불가분리적이다. 원소 5) 전절점(정절점): 이야기가 흡인력이 있게 하려면 평탄한 서술을 피면하고 기복과 굴곡이 있게 정절발전을 밀고나가야 한다. “국왕이 죽었다. 왕후도 역시 죽었다.(시간순서에 따른 서술)”, “국왕이 죽자 왕후도 상심이 극에 달하여 죽었다(인과관계)”는 식으로 인과관계가 똑똑해야 한다. 원소 6) 론리성(인과련계): 이야기진행에 전절점을 설치한다 해서 마구 꾸며낼것이 아니라 생활론리, 감정론리에 맞아야 하고 예술상상과 모순되여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완정해야 한다. 완정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봉페적이고 시시한 이야기 편단으로 조합된 드라마는 환영받지 못한다. 텔레비죤극에서 희곡성결구란 일계렬의 련관된 사연 혹은 정절, 사건을 선색으로 안배하고 극적결말을 가져오는것으로 볼수 있다. 이러한 결구조직을 어떻게 안배하는가에 따라 씨나리오의 형식이 결정된다. 텔레비죤드라마는 스토리의 전개이전에 드라마가 어떤 성질의것인가를 시청자에게 암시해야 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잘 쓰려면 우선 자기 이야기의 전개방향을 확정한 다음 인물관계, 정절의 고조, 주제사상 등을 잘 구상해두어야 한다. 미국극의 구성규률은 일반적으로 발단, 모순설치, 모순해결, 모순재설치, 결말의 순서이다. 중국에서는 기, 승, 전, 결의 구성법을 쓴다. 씨나리오는 극본이 아니다. 씨나리오는 시각을 매개로 이야기의 기본선을 희곡화한것이다. 그것이 사귀는것은 화면이고 하나의 편단과 한단락의 장면을 찍은 필림이다. 인물구성과정에서 한 인물의 편단적행동과 질서없는 생각을 피와 살이 있고 생동한 한 인물의것으로 주입시키려면 인물의 상태, 경위, 전후관계를 잘 설정해야 한다. 하나의 빈고뿌가 있다고 하자. 이 고뿌에 커피나 우유 혹은 차물을 부어넣을수 있다. 이 고뿌에 담길수 있는 여러가지 액체가 곧 고뿌의 내용이라 할수 있다. 커피를 부어넣을수 있는 공간이 곧 맥락이다. 이런 맥락의 각도에서 인물의 구성과정을 살펴보자. 우선 인물의 수요 혹은 추구를 설정한다. 인간이 가질수 있는 욕망이면 죄다 가능하다. 이런 맥락이 드라마의 기점이 된다. 시대배경 즉 어느 시대인가? 시간은 언제인가? 어떤 류형의 인물인가? 전형적인 환경ㅡ어떠한 장소인가? 드라마가 시작되기전에 일어난 사건이나 인물들의 관계 즉 과거의 관계등이 해명되여야 한다. 1) 작가의 창작태도 이야기를 씀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이야기에 대한 태도이다. 례하면 청루에서 몸을 파는 한 녀자의 운명과 인생궤적을 쓰려고 할 때 만약 작가가 음란하고 색정적인 취미를 추구하여 극을 구성한다면 남녀의 침대유희장면에 초점을 맞출수 있다. 반대로 작가가 주인공에 대해 동정하고 그의 인격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가졌다면 그녀가 핍박에 의해 청루에 팔려온후의 온갖 조우와 불행한 환경을 쓰면서 사회에 대한 모종의 폭로와 편달에 초점을 맞추게 될것이다. 이렇듯 주제확정에서 기치선명해야 한다. 그러나 상품경제시대 영화가 상업적리유을 전제로 잡다한 관중의 취미만을 고려한다면 영화는 감각적일수 있지만 지적인 예술품은 못될것이다. 례한다면 력사극 ≪옹정황제≫는 밤을 새워가면서 상주한 문건들을 심열하거나 농민들의 생활정경을 시찰하고 부세를 감축하며 덕정을 베푸는 명군으로 부각되였지만 기실 동생과 제애비를 죽이고 왕권에 오르고 제수를 강간한 극악무도한 혼군이며 인간패류이다. 그러나 작가가 작정한 주제가 하나의 훌륭한 황제를 그려내는것이였기에 짐승보다 못한 옹정이 작자의 붓끝아래에서 천하명군의 형상으로 둔갑해버린것이다. 그러기에 동생을 죽이고 애비를 죽이며 제수를 강간하는 비정한 사실이 극본에 내비치지도 않는다. 물론 심층적으로 생각하여 아이러니로 리해하여 볼수도 있지만 일반 관객들의 심목속에 심어진 형상은 이미 뒤바뀐 작가의 주제의식과 도달목표대로 보이는것만큼으로 밖에 더 감지될수 없다. 2) 몬따쥬수법 몬따쥬(몽타주)란 말은 원래 “조립한다”는 뜻을 가진 프랑스말로서 이를 맨처음 영화에 도입한것은 프랑스인데 프랑스에서는 영화의 화면을 교묘하게 조립하여 련결함으로써 화면에 리듬을 주는 기술을 몬따쥬라고 생각하였다. 그후 이 말은 소련의 유명한 감독 아이젠시타인(1898—1948)과 뿌도쁘낀(1893—1953) 등이 몬따쥬작품을 발표하게 되였고 그에 따른 리론체계를 확림하여 세계영화계에 널리 영향을 미침으로써 일반화하게 되였다. 그들이 뜻하는 몬따쥬라는것은 마치 시인이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예술성을 가지지 않는 낱말을 배렬, 구성, 조립함으로써 시적경지를 창출해내는것과 같다. 이 수법으로 영화예술가가 단편적인 화면을 취사선택 혹은 재구성함으로써 예술적으로 영화를 만드는것이므로 영화란 결국 “촬영”되는것이 아니고 조립, 편집된다는것을 의미한다. 한부의 영화를 편집함에서 몬따쥬는 일련의 순간적동작, 짧은 장면들을 제약된 공간, 시간, 정보에 걸맞게 련속되도록 편집하는 수법, 기교(테크닉)이다. 사진을 서로 결합하여 조립하는 일을 “포토몽타주”라고 한다. 아방가르드(아방가르드: ① 20세기초 유럽에서 일어난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따위의 기성예술의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한 혁신적인 예술운동을 통칭하는 말 ② 예술운동에서 선구적이고 실험적인 창작을 시도하는 사람이나 단체,  사진기법중의 중요한 하나의 기법)는 사진기법중의 중요한 하나의 기법이다. 1915년 독일의 다다이스트 등은 콜라주(미술에서 화면에 인쇄물이나 천, 쇠붙이, 나뭇조각, 모래, 나뭇잎 등 여러가지 물건을 붙여서 구성하는 회화기법. 또는 그러한 기법에 의해 제작된 작품)에서 자극을 받아 관계없는 몇장의 사진을 동일 화면에 결합함으로써 환상적인 광경을 표현하였다. 이것은 사진을 합성하는것으로서 예술뿐만이 아니라 현실생활의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출처: 한국어 위키백과사전). 3) 각색충돌의 창조 각색충돌은 관중들을 흡인하는 둘도 없는 법문이다. 여기에는 이야기각색과 각색자들지간의 충돌, 각색과 그 자신의 가치관의 충돌 등이 포괄된다. 인물들에 갈등을 일으키는 내적요인은 인간의 욕망때문이다. 그만큼 등장인물들이 겪는 다양한 갈등은 현실속에 있을 법한 욕망의 갈등이다. 례하면 한 주인공이 고통스럽고 지루한 옥살이를 마치고 출옥한후 그렇게 그리던 안해를 다시 만나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고 결심한다. 그것은 그의 강렬한 추구이다. 그런데 안해는 그를 알은체도 하지 않고 오히려 갈라지려한다. 주위의 사람들도 그가 전과자라고 기시하는데 이는 주인공이 도달하려는 목적과 힘에 대한 저애이다. 다음 불가분리적인 관계설정이다. 각색과 각색지간의 충돌은 갈라놓을수 없는 관계로 얽혀서 돌아가고 심지어 악연으로 맺어지기도 하면서 이야기는 심각해진다. 이는 악과 선의 투쟁으로 될수도 있고 “악”으로 락인 찍힌 선과 인습과의 투쟁이 될수도 있다. 흔히 선이 악을 전승하는것이 관례이다. 어떻게 긴장한 국면을 조성할것가? 흔히 영화에서 보다싶이 관중은 알고있는데 이야기속의 인물은 그런줄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례하면 이야기속에 주인공이 적의 소굴에 들어갔는데 총구가 어둠속에서 슬며시 나오며 주인공을 묘준한다. 일촉즉발의 시각에 관중들은 주인공을 위해 손에 땀을 쥐게 된다. 다음 시간제한의 수법을 쓴다. 이야기속에 모종 사건을 이야기속에 묻어두고 잔뜩 곪기게 하거나 때아닌 때에 폭발하게 하면 관중을 긴장속에 잡아둘수 있다. 그러나 론리성에 맞게 끌고나가면서 긴장을 고조시켜야 한다. 그러면서 그냥 복선을 깔고나가면서 관중을 안타깝게 만드는데 이것은 상용수법이다. 텔레비죤드라마에 등장하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은 본질적으로 한가지인바 곧 관점이고 태도이며 동작이다. 인물의 실질인즉 동작으로서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가이다. 인물의 행동이 인물의 성격을 극화한다. 인물은 또한 일종 계시이기도 하다. 작가의 직책은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부동한 인물들의 부동한 품성과 성격특징들을 관중앞에 현연시켜 인생현장을 체험시키는 일이다. 인물은 관중과 함께 극적동작을 이끌어가는 정절점을 찾게 한다. 동일성도 역시 인물의 한 개 방면인것이다. 동작인즉 인물이다. 한사람이 하고있는 일은 말이 아니라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표명한다. 이처럼 인물은 씨나리오의 근본적 인 기초이고 이야기의 심장이며 령혼과 신경계통이다. 4. 텔레비죤드라마에서 성격창조 드라마나 영화 역시 매력있고 개성적인 성격의 창조가 작품성공의 관건이 된다고 할수 있다. “위대한 연극엔 위대한 성격이 있다.”는 말이 있다. 드라마는 위대한 성인이나 위대한 악인을 다루어야 한다는 관념이 한동안 우세하였다. 력사제재를 다룬 중국전통 드라마에서는 거개 력사인물을 다루었다. 그러나 오늘날 20세기의 주인공들은 놀라울만큼 다양한 특징들을 가지고있다. 새롭고 독특하고 개성적인 주인공들이 속속 들어나 드라마를 이끌어 가고있는것이다. TV시대 이후 드라마에서 보통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다루어지게 되였다. 일상성이 강조되고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물들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극작가 패티는 드라마의 생명은 일상성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드라마의 독자적인 성격묘사법으로 다음의 세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드라마의 주인공은 특수하고 보기드문 사람이 아니라 극히 흔하고 평범한 인물을 택해야 한다. 둘째—드라마의 주인공 성격은 일상생활의 나날에 일심전력하는 성실하고 아무나 친숙해지기 쉬운 성격이 적합하다. 셋째— 인물의 성격을 따라가며 드라마를 진행하는것보다 인물의 성격을 파고들어 보다 깊은 내면세계의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 패티는 드라마의 고전이 될만한 명작들을 남겼다. 한부의 씨나리오는 화면으로 펼쳐가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는 왕이 누구에게 암살되였느냐 하는것보다는 옆집 푸줏간 주인이 누구와 결혼하느냐가 더 드라마답다고 드라마제작에서 실제생활에의 근접성을 유모아적으로 제시했다.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했을 때 작가는 특히 성격의 섬세한 구석구석까지를 잘 포착하지 않으면 안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나와서 별것아닌 이야기가 펼쳐지는 드라마를 관객들이 잘 보는 리유는 명백하다. 그 평범한 주인공의 모습에서 결코 영웅이 될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가족과 이웃의 모습을 보기때문이다. 보통인물성격을 부각함에서 지배적특성을 살리는것이 관건이다. 천층만층의 인간세계에서 인간관계도 복잡다단하게 얽혀돌기도 하거니와 개체적인간의 성격도 참으로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한 인물안에도 여러가지 성격의 인소들이 잠재해있다. 그러나 한 인물의 성격을 깊이 파헤친다 하여 시시콜콜 성격의 면면을 다 펼쳐보일수는 없다. 작가가 주인공의 성격을 창조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은 주인공의 여러가지 성격적특질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지배적인 특성이 무엇인지를 포착하고 그것을 확실하게 부각시켜야 한다. 례하여 오쎌로는 용감하고 열성적이며 통솔력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의 성격의 지배적특징은 질투심이다. 그는 질투심때문에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아간다. 햄리트는 우유부단함이 특성이고 리어왕은 성급함이 화를 부른다. 지배적특성은 성격의 요지 또는 성격의 중심이라 불리는것으로서 그 인물을 특징지우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말한다. 그러한 성격특징을 리용하여 드라마의 갈등국면을 더욱 고조시킬수도 있고 주인공을 비극의 낭떠러지로 몰아갈수도 있다. 주인공을 비극으로 몰아넣는것은 주인공 자신의 성격에 포함된 어떤 결함때문이였음을 우리는 알고있다. ≪가을동화≫의 은서는 착하지만 우유부단한 성격때문에 두남자로부터 버림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주인공의 성격속에 포함된 지배적특성으로 인하여 주인공이 함정에 빠지는 실례들이다. 성격의 변화를 바싹 추적해야 한다. 인간의 성격은 가변성이다. 드라마를 통해 성격의 변화를 묘사하기 시작한것은 근대리얼리즘극의 등장에서부터 비롯되였고 입센은 “인형의 집”을 통하여 본격적인 성격극을 시도하였다. 그후 인간의 성격변화를 추적하고자 하는 극작가들의 노력이 큰 흐름을 형성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있다. 고끼리의 소설을 각색한 브레히트의 희곡 ≪어머니≫에는 일개 평범한 노동자의 어머니였던 녀인이 혁명가로 변화되는 과정이 밀도있게 묘사되여있다. 인간의 감정이나 심리는 수시로 변할수 있지만 성격은 좀체로 변할수 없다. 원래 천성적으로 소심하던 인물이 갑자기 과격한 혁명분자로 둔갑한다든가, 무신론자가 하루아침에 광신자가 되는 성격변화를 가져오는것은 무리이다. ≪가을동화≫의 태석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모토가 은서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기에 그의 성격변화는 개연성과 공감을 획득할수 있는것이다. 그의 변화의 모든 원인은 단 한가지였기때문에 관객들은 그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이렇게 사람의 성격변화에는 전제가 되는 동기가 중요하다. 그 동기는 어떤 사랑의 감정일수도 있고 돈과 명예때문일수도 있으며 때로는 절박한 삶의 의지가 될수도 있다. 이처럼 성격변화에는 그에 상응하는 필요충분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전쟁이나 급격한 환경변화는 개인이나 집단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또한 죽음에 직면했던 경험, 파산, 리혼, 배신, 질투, 배우자의 죽음 등 혹독한 시련을 통해 성격에 변화를 줄수도 있으며 반대로 사랑, 결혼, 출산 등의 경험도 성격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이밖에도 소외감, 콤플렉스 등 현대인의 성격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많다. 또 한가지는 180도의 성격전환은 피해야 한다. 원래 자신이 가지고있던 성격을 토대로 하여 어느 정도 변화가 일어나는것이지 환골탈태할수는 없다. 흔히 악역이 차차 선량해지는 것으로 부각하는것도 인간의 본성과 생활의 진실성과 위배된다. 인물간에 대조적성격을 부여해야 한다. 주인공과 대립자사이의 성격도 이와 같이 상반된 특성으로 뚜렷이 구별되게 쓰는게 보통이다. 가령 주인공이 선한 성격이라면 대립자는 악한 성격으로, 주인공이 우유부단하다면 대립인물은 랭철한 성격으로 부각하는 등이다. 작가는 자기가 창조한 악역에 특히 애착을 갖는다고 한다.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 ≪오쎌로≫의 이아고, ≪이브의 모든것≫의 김소연 …이런 악역들이 드라마를 흥미롭고 박진감있게 해주고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악역이란 갈등을 심화시키고 위기감을 고조시킴으로서 작품의 재미를 높여주는 동력들임을 알수 있다. 상대역의 성장은 곧 주인공의 성장이다. 중국텔레비죤극은 1985년에 발걸음을 떼여 대중문화의 대표로 되기까지 반세기가 넘었다. 처음 “붉은세월”을 추억하는 혁명력사극으로부터 시작해 기쁨과 우려가 병존한 고대력사극으로 민족의 력사자원과 민족전통문화의 뿌리를 지키려하였다. 이는 문화자각과 문화신심의 체현이였다. 그후 지방특색과 시대정신을 부각한 농촌제재극들이 사실주의창작방법으로 제작되였고 애정극들도 많이 나와 새 세대들이 인생관과 인생태도, 가치추구를 반영였는데 일정한 예술성과를 올리였다. 텔레비죤극에서 인간본위사상을 지렛대로 삼고 체현한 심미의식형태는 점차 군중문화열조로 타번지여 가가호호의 거실에 침투되였다. 그러나 한시기 력사를 인생의 정감과 생활을 배경으로 삼는 소위 희설(戏说)풍이 불어치면서 발연대노하는 황제와 왕비들이 텔레비죤드라마를 독점하였는데 력사사실을 외곡함으로써 력사관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심미가치척도와 사상내함이 결핍한 이러한 드라마들은 평론계와 관중의 강렬한 비핀을 받았다. 그와 반대로 ≪갈망≫, ≪중국식리혼≫과 같은 현실제재가 극히 드믈었다. 이리하여 중국의 텔레비죤극의 혼란된 상황이 불량한 순환단계에서 답보함으로써 문화품질과 품위를 크게 저하시켰다. 텔레비죤극의 생명력은 인문정신과 인성의 본질을 시사하는 영원한 주제발굴의 심도와 광도에서 고양된다. 이는 창작기교문제가 아니라 창작사상, 정신경지의 문제이다. 텔레비죤극은 응당 내재정신과 건전한 정감내함이 융화되여야 하는데 상품화된 텔레비죤극으로서는 표현하기 어렵다. 작가들은 창작에 림하여 숙명처럼 어깨위에 놓인 력사사명과 사회적책임을 팽개쳐버릴수 없다.현재 텔레비죤극에 세속화평민화색채가 짙어가면서 오락공능이 지나치게 내세워져 “상품화”경향이 극에 달하고있다. 력사감, 시대감, 예술성, 사상성, 종국적가치, 정신의 승화 등에 관심이 돌리지 않는다면 텔레비죤극의 래일은 명랑할수 없다.  
21    제 2 절 씨나리오 댓글:  조회:4169  추천:42  2007-08-31
제2절 씨나리오     1. 씨나리오의 연혁     영화촬영을 목적으로 한 글 즉 영화의 각본. 영화장면의 순서, 배우의 대사와 동작 등을 적은 대본으로서 영화제작상의 기교를 염두에 두고 플롯을 구체적이고 극적으로 구성하며 특수한 용어를 써서 배우의 회화나 동작을 규정한 글이다. 보통 100~200개 장면을 가지는데 영화각본이라고도 한다.    씨나리오는 이딸리아 르네쌍스시절 희가극의 연출책에서 비롯되여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연출, 촬영에 대한 노트로 발전했다. 영화는 자연계의 운동을 분석하고 재현시킨 근대과학기술연구의 성과이다. 영화학이라는 이 이름은 제2차세계대전이후의 일이다.     영화는 19세기말 프랑스의 뤼미아이형제와 에디슨에 의해 발명, 창조되였다. 최초의 영화는 겨우 몇분동안이였고 일상 현실편단의 완전한 복제로서 흔히 말하는 활동사진에 불과했다. 1895년 세계상의 첫 영화 ≪공장대문≫이 성공적으로 상영되였지만 씨나리오란것이 없었고 무성영화였다.    그때로부터 100여년 세월이 흘렀다. 현대과학기술의 신속한 발전과 더불어 1930년대 무성영화로부터 발성영화로, 1940년대 흑백영화로부터 채색영화에로 비약했으며 마침내 1950년대에는 광폭영화로 발전하였고 평면영화로부터 립체영화에 이르러 영화발전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1979년 중국영화절에는 “희곡의 지팽이를 던지고 희곡과 리혼”하고 영화언어의 현대화를 론하게 되였다.     영화의 본질은 촬영수단으로 운동하는 사물을 재현하는 예술이다. 영화예술의 요소에는 제작, 씨나리오, 연출, 촬영, 조명, 록음, 배경, 표현, 몬따쥬, 관중 등이 들어있는데 씨나리오는 영화의 설계도이다. 초기에는 연출겸 “각본창”이 그때 장면에 맞춰 마음속에 있던 말에 의거했는데 이런 표현은 시각효과가 리상적이지 못했다.     씨나리오의 산생은 영화가 자률적예술이 된 획기적인 중요한 단계였다. 씨나리오는 목적묘사방식에 의한 문학의 한 형태로서 상상한것을 문자로 기록하여 영화촬영의 기틀을 잡아주고 상상내용을 생활론리에 맞게 영상속에 체현시킨다. 하여 씨나리오속에 상상내용과 영상이 일치되게 하면서 시각의 직접성이 전부 외재화되게 한다.     씨나리오의 작용은 내심세계의 표백인물의 대사(독백도 포함)가 객관환경을 제약하면서 연출의 상상을 촉발시키는것이다. 다른 한방면으로는 영상의 시간이 현재이므로 씨나리오의 시간제한도 현재가 되여야 하고 사건이 삽입되는 과거장면, 미래장면도 “현재화”시킨다. 영상의 시각점, 류동성으로 하여 어떤 장면에서는 인물이 없을수도 있고 인물이 없는 대화도 능히 존재한다.     씨나리오에는 창작과정상에서 처음부터 영화제작을 위해 창작한 씨나리오(오리지널), 소설, 희곡 등을 기초로 영화촬영이 가능하게 고친 각색씨나리오, 읽히기를 목적으로 한 레제씨나리오 등 세가지가 있다. 영화는 내용상 “기록편”, “이야기편”, “동화편”, “추상편” 등으로 나눈다. 텔레비죤영화도 하나의 종류로 독립하며 존재하는바 영화씨나리오와 공통성도 있고 자체의 특성도 있다.     2. 씨나리오의 기본특징     1) 시각성(조형의 직관성)     씨나리오는 영화예술의 문학기초로서 우선 문학성이 있어야 하지만 영화촬영기가 찍어야 할 각본을 제공하므로 창작은 영화예술 규률의 제약을 받게 된다. 다시 말하면 화면에 의하여 표현되므로 촬영을 고려해야 한다. 직접적심리묘사가 불가능하고 장면과 대상에 의하여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영화예술은 부단히 운동하는 화면을 련속하여 관중들에게 시각형상을 제공한다. 촬영의 약속하에 있는 씨나리오는 묘사가 선명하고 구체적이여야 하며 시각형상의 촬영요구에 부합되여야 한다. 씨나리오의 시각성이란 인물의 외모, 사물의 외부형태만 가리킬뿐만아니라 환경, 장면에 대한 묘사에서의 시각성을 말하며 인물의 내심활동에 대한 묘사도 시각성이 강해야 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영화화면에서 나타날수 없는 추상적개념이나 추상적인 평면적서술은 씨나리오에서 무가치하며 따라서 금물이다. 소설처럼 “그는 초조해 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는 서술이 독자에게 상상의 공간을 주면서 저마끔의 표상화를 예상할수 있지만 씨나리오에서 이렇게 쓴다면 조형으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만약 “그는 신경질적으로 방안을 왔다갔다하다가 연신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가까이에 있는 탁상우에 재털이에 담배꽁초가 수북하였다.”라고 묘사한다면 조형형상을 얼마간 가능한것이다. 여타 문학작품에 가독성이 있어야 하듯이 씨나리오의 서술, 묘사에는 가시성(可视性)이 필수적이다. 조형은 미술각도에서는 일종 정지상태의 공간예술결구를 의미한다. 그러나 영화예술속에서의 조형은 활동하는 촬영기속에 부단히 운동하는 시각형상이 되여진다.     또 례를 든다면 “전야는 활기로 넘치고있다.”라고 서술한다면 시각성이 없다. 그러나 “전야ㅡ맑게 갠 날씨, 제비가 물을 차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농민들이 논판에서 제초기를 밀며나간다. 들판 길로 ××가 뜨락또르를 몰고간다. 상쾌한 얼굴이다.”라고 묘사해야 연출가가 장면을 재현할수 있다.     더 례를 든다면 조선의 영화《이름없는 영웅들》의《전투는 계속된다》는 정절에 이렇게 시각화한 서술이 있다. →클라우스에게 심문을 받는 유림 →고문당하는 처참한 숙영의 모습→피아노를 치는 순희→일본 북해도에 랍치되여있다가 탈출하는 순희→도꾜역에서 유림과 순희의 말없는 리별→사형장에 끌려나가는 옛고향친구들과 만나는 유림→상봉의 기쁨에 찬 숙영→ 이러한 단락식서술은 장중한 음악선률속에서 이름없는 영웅들인 주인공들 의 싸움의 나나에 있은 화면들을 집약적으로 펼쳐보이고있다. 이런 서술은 토막쳐져있지만 서사적묘사의 론리적융합률에 부합된다.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관 중의 심중에서 자연스럽게 의미적으로 련결된 결구적총체ㅡ현실생활과의 총체 적흐름을 조화적으로 옮긴것이다.     (2) 행동성;영화예술은 동태적예술이다. 영화예술에서 행동은 인물성격을 부각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극적발전을 추진하고 주제를 심화하는 주요한 예술수단으로 된다. 행동의 특성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적게 받는다. 인물의 성격 발전과정은 바로 인물의 일련의 행동으로 구성되므로 인물의 전형적행동을 선택하여 묘사해야 한다. 례하여《이름없는 영웅》제2부 에 대한 묘사를 보자. “문을 열고 들어선 유림은 창문의 차광막을 내린다. 창가에 다가가서 굳어져있는 유림, 그는 떨리는 두손을 창가에서 떼고 가까스로 침대에 다가가 눕는다. 오열에 떨고있는 두어깨, 높뛰는 숨결이 방안에 가득차 있다.” 이 장면은 동지의 죽음을 앞두고 터뜨릴수 없는 울분을 참아야 하는 의지 력과 슬픔에 뒤이어 원쑤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유림의 격렬한 내심투쟁을 아주 직관성있게 그려내고있다.     (3) 특수한 구성법;영화는 몇개장면이 모여 하나의 장면을 이루는 부분이나 화면과 장면을 단위로 한다. 그러므로 씨나리오는 몬따쥬(몽타주)라는 특수한 예술구성법이 있다. 씨나리오가 몬따쥬를 운용하는것이 다른 문학작품과 구성상 현저히 구별되는 특점이다.     영화제작은 씨나리오의 내용에 근거하여 우선 수다한 화면으로 나누어 하나하나 촬영한다. 화면은 영화의 가장 작은 단위이다. 이렇게 한장면, 한장면 촬영한 화면들을 원창작구성에 따라 각종 편집방법으로 련결시키며 영화예술의 특수한 예술구성법칙에 따라 플롯을 전개하고 인물형상을 부각한다.     (4) 대화의 간결, 세련성; 주로 대사로 표현되므로 씨나리오에서 인물의 대화는 간결하고 의미심장하며 기지가 있어야 한다. 무미건조한 독백이나 긴 연설같은 대화는 영화예술의 흥취성, 절주성(리듬)에서 금물이다. 대화는 성격부각의 수요로부터 개성화해야 한다.     한국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극적갈등이 첨예하고 행동성이 강조된 영화는 아니지만 인물들의 대화가 한국말의 풍부성과 섬세한 표현성의 특성을 잘 살려서 생활감이 풍부하고 인물의 개성특징에 맞도록 간결하고 세련되게 구사하였기에 매개 인물들의 성격특징들이 선명해지고 극정을 짙게 해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관중을 사로잡고 정서체험을 하게 된다.     (5) 씨나리오의 용량문제;씨나리오는 시간적, 공간적배경의 제한을 적게 받으며 등장인물수도 제한받지 않는다. 그러나 한부의 영화(상하집으로 된것은 포괄하지 않음)는 보통 한시간ㅡ45분 방영하며 많아야 두시간(국제표준 방영시간은 100분)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 필림의 길이는 3천메터를 기준으로 한다.     용량이란 극본의 제재수량을 가리킨다. 한부의 씨나리오의 제재 수량은 한부의 중편소설과 맞먹는다고 주장하고있다. 글자수는 3만자 내지 4만자사이로서 완정하고 충족한 슈제트가 있어야 한다.     3. 씨나리오의 결구    영화의 결구형식의 다양화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객관생활이 영화예술에 대한 요구의 필연적결과이다. 씨나리오결구의 분류는 획일적이고 고정된 법칙이 없다. 착안점에 따라 분류법도 다를수 있다.     1) 희곡식결구 전통식결구라고도 하는데 대량의 희곡인소를 받아들여 융화시켰기에 특별히는 희곡충돌률과 결구법칙이 예술상에서 스스로 일격(一格)을 이루었다. 주요한 특점은 아래와 같다.     첫째, 모순충돌을 씨나리오의 기초로 하고 희곡충돌규률을 결구원칙으로 하기에 충돌을 전개하는 필연적동작려정 즉 발단, 발전, 고조와 결말의 진전은 순서적이다. 그것의 론리적기초는 인과률이다.     둘째, 인물관계와 사상감정의 묘사는 중심충돌의 동작선을 긴밀히 둘러싸고 돌것을 요구할뿐만아니라 긴장성을 조성하여 사건에 사건이 얽히고 장면이 장면을 밀고 나가면서 극정을 발전시키고 장면에 따라 모순충돌이 갈수록 치렬해지게 한다. 그 치렬한 모순충돌속에서 인물성격이 두드러진다.     셋째, 장면과 단락획분상 정체적으로 조화되여야 하며 장면이 희곡에서보다 많게 한다. 그외 충돌의 부동한 내용과 성질이 결구형식의 다종다양한 류형을 이끌어내는바 대립되는 쌍방을 전반극에 관통시키면서 충돌을 전개한다. 하나의 주요사건 혹은 하나의 주요인물 혹은 주요동작으로 중심을 형성하고 충돌을 조직한다. 어떤것은 강렬한 희곡성현념으로 충돌을 조직하기도 한다. 이런 결구의방식은 시간과 공간의 순서식을 위주로 한다. 사람들의 심금을 사로잡았던 전통영화 ≪동존서≫가 이런 결구로 되였다.     2) 소설결구식     이 결구의 특징은 표현수법상 소설과 접근되며 소설의 서사인소를 운용하는것으로서 인물의 사상감정의 세밀한 변화를 묘사하는것이 특점이다. 정절의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지 않고 장면의 루적에 모를 박는다. 그러면서도 주요정경과 인물의 차요한 정경과 삽입을 요구한다.     3) 산문식결구    이런 결구는 산문처럼 슈제트의 완정성과 인과관계를 중요시하지 않는바 뚜렷한 발단, 고조, 결말 등 결구 요소도 없으며 확연히 드러난 모순갈등의 선색도 없다. 이런 결구는 조형수단으로 생활속에서 발생한 하나하나의 사건을 전시하는바 약간의 이어진 단락으로 구성되기에 단락지간의 이음새의 필연성 및 그들지간의 내재적련계성을 그리 강구하지 않는다.     이런 결구는 주로 순서적서술방법을 쓰며 기본상 플래시백(섬광)을 쓰지 않는다. 함의표달에 착중하거나 혹은 철리의 전달을 추구하는바 문체가 령활하고 다변하여 특수한 예술매력을 가지고있다. 특히 생활의 자연상태와 흡사하여 진실감이 짙고 기타 류형의 결구들에서 이룰수 없는 예술적설복력을 가진다.     4) 종합식결구     희곡원소외에 소설서사를 운용하여 희곡성과 서술성이 결합된 결구형식이다. 총체적구성은 희곡에 가까운바 일반적으로 완정한 갈등과정이 있고 인물성격부각, 사건묘사, 장면삽입 등 면에서 극히 세밀하여 희곡문학과 비슷하다. 하여 장면을 너무 집중시키고 인공적흔적이 다분한 약점을 회피할수 있다. 중국 의 전통적영화《청춘의 노래》가 그 례로 될수 있다.     5) 에피소드식 구성     지나치게 기승전결식의 정통에 얽매이지 않고 극적인 에피소드를 엮어서 구성하는 방식이 있다. 구성이란 도입,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식으로 배열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다. 중요한것은 얼마나 극적으로 짜임새있게 해내느냐가 문제이다. 씨나리오 구성에는 (1)직선적인 구성 (2)복합적구성(회상방식) (3)에피소드식 구성 (4)수필식구성 (5)다큐멘터리적(기록영화)구성 등이 있다.     복합적구성은 스토리를 전개할 때 시간순서대로 풀어가는게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면서 병행서술방식으로 풀어나가는것을 말한다. 스토리 자체는 정통드라마일지라도 회상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경우 아무래도 영화는 진지해지는 반면, 관객의 집중력은 떨어질수 있다. 그리하여 상업지적인 감독들은 의도적으로 회상방식(플래시백)이나 복합적구성을 사용한다.     4. 씨나리오 창작원리     1) 씨나리오의 내용     진실을 재미있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한것은 진실이란 원래 재미가 없기때문이다. 재미있고 충격적인것은 언제나 허구이다. 그러면 “본질적으로 재미없는 진실”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수 있을가?     첫째, 새로운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 진실은 진실이되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 숨어있던 진실을 새로이 발견해 이야기하는것이다. 두번째 방법은 진실을 이야기하되 그 성격을 달리하는것이다. 누구나 A가 옳았다고 생각하도록 이끌고 가다가 갑자기 확 뒤집어 알고보니 B가 옳은것이었다고 말하는것이다. 다음 반전에 치밀한 구성이 주는 묘미를 십분 활용하는것인데 이러면 흥미도 짙게 하면서 진실의 내용도 더욱 부각시킬수 있다. 세번째는 일상적으로 자잘한 진실된 이야기를 하되 새롭고 재미있는 형식으로 하는것이다.     하나의 줄기로 된 단순구성과 다른 에피소드를 삽입하여 서로 조종하면서 하나의 주제로 이끌어가는 복합구성이 있다. 이러한 구성의 종류는 정통적인 드라마트루기 방식인 서사적구성, 회상방식을 일관되게 병행해서 묘사하는 복합적구성, 여러 에피소드를 모아서 보여주는듯한 구성, 수필식구성, 다멘터리적인 구성 등 다양하다.     씨나리오는 보통 100∼150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씨나리오 작가는 사전에 이야기에 근거하여 대략적인 정절을 엮어놓는데 먼저 소유의 장면들의 순서를 잡아놓고 매 장면을 분할시켜 묘사한다. 씨나리오에서 규정된 최소단위가 한개 장면이지만 그 장면의 세밀한 분할은 연출이 할 일에 속한다.     플롯의 기초는 인물의 행동이다. 플롯은 인물성격을 의거로 하는바 착중점은 마땅히 생활속의 갈등ㅡ인간과 인간, 인간과 환경 및 개체의 모순 등 복잡한 관계를 표현하는데 두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플롯(슈제트)를 운운할수 없다. 씨나리오에서 슈제트란 표현되는 생활속의 갈등이다. 모든 이야기처럼 그것은 발단, 상승, 절정, 하강, 결말의 5단계로 되여있고 각각의 단계들이 영화 특유의 기술적문제의 반영으로 전체적통일성에 기여하게 된다. 제1막 제2막 제3막 발단(beginning) 중단(middle) 결미(end) │ │ A——·———┼———·———————┼—————Z │ │ 건치(建置) (setup) 대항(对抗)(confrontation) 결국(结局)(resolution) 제1~30페지 제30~90페지 제90~120페지 정절점(情节点)Ⅰ(Plot Point) 정절점(情节点)Ⅱ 제25——27페지 제85——90페지     소유의 씨나리오는 모두 이런 기본적선성(线性)결구를 포괄한다. 이런 씨나리오 모식은 모델이고 양식이며 하나의 구사규획이다. 씨드 필드는 자기의 이 도표를 다음같이 해석하고있다. 제1막은 발단이다. 한부의 표준적씨나리오의 편폭은 대략 120페이지 혹은 두시간분량, 한단락은 일분에 따르는 한페이지로 계산한다. 때문에 씨나리오를 창작할 때 10페이지이내에 관중을 사로잡아야 한다.     환언하면 10페지안에 독자가 누가 주인공이고 무엇이 이야기의 전제인가를 똑똑히 알수 있게 해야 한다는것이다. 발단부분에서 이야기를 설정해야 하며 특히는 제1막의 결말부분에 하나의 특히는 제1막의 결말부분에 하나의 정절고조가 있어야 한다. 소위 정절점은 하나의 사변 혹은 사건이다. 그는 이야기를 긴밀히 둘러싸고 이야기를 다른 방향에로 이끌어간다.     제2막은 중단 혹은 대항이라고 하는데 씨나리오의 주체부분으로서 일반적으로 3ㅡ90쪽이다. 이 부분에서 모순갈등이 전개되여 발전하고 격화되여 제2막의 결말부분에 절정을 둔다. 일반 적으로 85—90쪽 사이에 결과에 들어간다. 세번째는 결구(결말)로서 일반적으로 90—120쪽사이로서 이야기의 해결부분이다.     도입단계 즉 프롤로그에선 작품의 주요배경이나 극중 인물이 소개되고 앞으로 대강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것인가가 보여져야 한다. 발단부분에서 시대, 지점, 사회배경, 인물과 그들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교대하면서 모순충돌의 원인을 밝히고 적시적으로 현념을 설치하여 관중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도모한다.    플롯은 풍부한 동작성충돌속에서 전개되여야 하며 간명하고 유력하고 선명하게 인물의 성격특징을 끌어내와야 한다. 고조에 이르기까지 모순갈등이 긴장되고 가장 치렬하며 첨예한 단계로서 인물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건전환과 발전의 관건적인 환절이다.     전개는 발단에서 드러난 극적갈등이 구체화되고 여러가지 극적인 과정을 겪다가 위기로 치닫는다. 하여 이 지점에선 위기를 진정 위기로 느낄만한 극적인 상황을 충분히 보여줄수 있어야 한다. 풍부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로 사건을 전개해 나가야 똑같은 상황을 전달할지라도 훨씬 극적일것이다. 나중에 절정에서 일어날 극적반전이나 인상적인 결말을 위한 복선을 깔아두기도 한다.     그동안 진행되여 오던 갈등이나 사건이 큰 변화를 겪는 단계가 바로 위기다. 대개 주인공(들)이 큰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 보여진다. 특히 이 지점에서 주인공이 위기를 겪을 때, 그동안 동일화되여 온 관객도 똑같은 심정으로 위기감을 느낄수 있어야 한다. 그런 극적상황을 위해선 반전이 자주 활용된다. 정통 드라마트루기의 절정에선 심리적으로 일종의 카타르시스(정화)효과를 노린다.     결말에서는 그동안 맺혔던 갈등을 풀어주고 서서히 마무리를 지어주어야 한다. 절정에서 바로 마무리를 해주는것보다 절정에서 일어난 극적사건을 그동안 쌓아온 복선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해결해주는게 좋다. 관객들 립장에서는 그동안 일어난 극적스토리속에서 빠져나갈 심리적여유를 주는게 좋다는것이다.     2) 모찌브, 상징     모찌브란 영화의 사실적인 조직속에 전적으로 포함되여있으므로 잠재적이거나 보이지 않는 상징이라고도 할수 있다. 이는 기법일수도, 특정 대상물일수도 있으며 모호할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의 상징적의의는 작품의 맥락에서부터 튀어나오거나 분리되여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것이 아니기때문이다. 그리고 모찌브는 음악적일수도, 동적일수도, 대사일수도, 청각적일수도 있다.    상징의 경우 구체적인 사물이 상징으로 쓰일수도 있지만 예민한 관찰자에게는 비교적 확실하게 느껴지는 부가적의미들을 품고있다. 은유(메타포)는 하나의 언어적비유이다. 편집은 영화에서 메타포의 원천으로 자주 쓰인다.     3) 씨나리오각색     씨나리오각색은 영화의 사유로 영화예술의 규률과 특점에 좇아 이런 문예형식의 작품을 재창작하여 씨나리오화 하는 현상인데 그 래원은 두가지다. 하 나는 영화의 편폭에 따라 창작하는것이며 다른 하나는 기타 문학형식의 작품을 각색하는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영화들이 문학작품을 각색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오히려 순수창작 씨나리오보다 더욱 기술과 독창성을 요구한다. 문학작품의 영화로의 각색은 재현의 문제가 아니라 접근의 문제이다. 각색은 대략적각색, 충실한 각색, 축자적각색으로 나눠볼수 있다.     “대략적각색”은 대체로 하나의 아이디어, 상황, 인물을 선택하여 원작과는 무관하게 영화를 전개해 나가는 방법이다. “충실한 각색”은 말 그대로 가능한 원작의 정신에 접근하여 원천으로 삼은 문학작품을 영화의 립장에서 충실하게 재현하려고 시도한다.    “축자적각색”은 희곡을 원작으로 삼는 경우에 한정된다. 희곡의 두가지 기본적양식인 행동과 대사는 영화에서도 발견된다. 그래서 희곡을 영화화하는데 주요문제는 언어보다 시공간을 다루는 면에 있다. 영화각색의 대상범위에는 희곡, 소설, 이야기, 전설, 신화 등이 망라된다. 당전세계 영화계에는 다양한 각색관점과 각색법칙이 있다.    (1) 의식법;용량이 대체상 근사한 중편소설작품에서 주제, 인물, 슈제트를 옮겨오는 방식이다. 례하면 ≪이른 봄 2월≫ ≪천운산 전기≫등을 들수 있다.    (2) 발취법;즉 장편거작에서 상대적으로 완정한 부분을 발취하여 다시 개편해서 독립적인 영화작품을 만드는것이다. 례하면 고전명작 ≪수호전≫의 7. 8, 9, 10, 11회를 집중하여 ≪표자두 림충≫을 쓴것이다. ≪림해설원≫도 실제상 동명소설에서 ≪위호산을 지혜롭게 탈취≫라는 장절을 개편한것이다.    (3) 농축법;역시 장편거작에 대해 말하면 발취법과 비슷하다. 그러나 일반작법은 주제와 밀접하게 련계되여있는 인물과 사건을 틀어쥐고 주인공의 사상맥락을 선색으로 원작을 압축시켜 영화결구에 알맞게 단순하고 간결하며 명료하게 한다. 례하면 양말작 ≪청춘의 노래≫나 유고의 ≪비참한 세계≫등이다.    (취재법) ; 한부의 작품의 슈제트에서 모종 계발을 받고 다시 구상하거나 심지어 새로운 인물과 정경을 창조하기도 한다.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영화문 학은 차차 전성기를 넘기고 텔레비죤영화의 도전앞에서 자리를 내고있다.  
20    제 4 장 의뢰형문체, 제 1 절 희곡론 댓글:  조회:3315  추천:25  2007-08-31
                                                     제4장 의뢰형문체                                                      제1절 희곡론 “의뢰형”문학체재란 모종 종합예술에 속하는 문학양식을 가리킨다. 희곡(드라마), 씨나리오 등 종합예술은 여러가지 예술수단으로 형상을 창조하는데 희곡의 대본, 영화예술의 각본은 종합예술중의 문학부분이다. 이것이 의뢰형문학체재라고 부르는 리유이다. 1. 희곡의 기원 희곡이란 사전에서는 “운문이나 산문으로 되여있고 행위로 표현될수 있는 글로서 삶이나 인물을 묘사하고자 하는 의도로 쓰여진 글이며 행위와 대개 그 행위우에 근거를 두고 특정한 효과를 노리는 대사에 의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글”이라고 해석한다. 희곡은 어원적으로 말자체가 놀이라는 점에서 연극과 동일하며 행동하다는 뜻을 가진 말이며 “본다, 구경한다”는 뜻을 가지고있다. 연극과 희곡에 대한 연구는 희랍의 고전극을 대상으로 시작되였는데 이들 희랍의 고전극들은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제전에서 발생하였다. 환언하면 무대상연을 전제로 한 연극의 대사가 희곡이다. 희곡은 문자로 기록되면 문학이 되고 무대에서 상연되면 연극으로서 관중을 상대로 희곡이란 연극을 의미하며 이런 형식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복잡하고 특수한 표현방법이 강구되여야 하므로 연극을 최고의 종합예술이라고 하는것이다. 극문학은 성숙된 인민에게서 그 력사발전의 현란한 개화시기에 나타난다. 동서방의 희곡의 기원은 거의 종교와 밀접하게 련관되여있다. 희랍인들이 바로 그러했는바 주신(酒神)을 제사지내는 의식에서 비극과 희극이 산생되였다. 문예부흥시기에 근대극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하였는데 고대희랍, 로마희곡문학이 소개됨에 따라 여러 나라에서 고전주의극이 륙속 출현되였다. 19세기중엽 사회사상에 정체적인 변화와 더불어 사실주의문학사조가 전개되면서부터 근대극이 정식으로 형성되였다. 2. 희곡의 특징 희곡은 시간제한으로 결정적인 순간들과 계기들을 중심으로 행위와 이야기가 집약된다. 시종 팽팽한 긴장감, 위기감, 기대하지 못한 전개, 감정의 불꽃 등을 흔히 극적이라 하거니와 희곡은 그런 극적(드라마틱)인 상황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두개의 상반되는 리념, 의지의 투쟁을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내는것, 이런 극적상황에는 어떤 대립이 빚어내는 갈등과 충돌이 따르는데 흔히 진보세력과 락후세력, 긍정인물과 부정인물이 부딪치게 되고 그 충돌과 갈등의 중심을 극적상황 최후의 긴장점이라 한다. 사랑의 갈등, 야망, 반항, 복수 등이 모두 극적상황의 긴장점이 될수 있다. 그러기에 희곡은 한정된 시간안에서, 무대로 제한된 공간에서 절주가 빠르게 사건이 번져갈 때 긴장감이 더욱 팽팽해지며 극이 잘되였다고 평가하게 된다. 소설의 요소인 플롯의 전개, 성격묘사, 대화, 배경설정, 주제 등은 희곡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희곡은 인물의 성격충돌, 주위환경의 상황과 정절발전의 련계에서도 주요하게 대화형식을 취한다. 하기에 극적대화는 다른 형태의 대화보다 인물의 행동속에서 체현되는 “의지적정신활동”에 모를 박는다. 희곡에서는 사건을 마치 관중의 눈앞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보여준다. 희곡은 가장 본질적인 주요한 현상에 집중시킨다. 희곡의 이런 고도의 긴장성과 집중성의 특징으로 하여 희곡창작에서 인물의 의지와 극정발전가운데 모순대립을 확연하게 드러내야 하며 상호투쟁하는 장면만을 보여주어야 한다. 희곡은 완전한 행동의 모방으로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지속적으로 흥미를 주고 련관된 일련의 사건을 전개시키며 대사와 상징, 현실과 삶의 여건이란 수단을 통해 표현한다. 희곡은 주요하게 시청각적감수를 주는 표현의 3유공간과 련속적으로 발전하는 시공간예술이다. 희곡의 기본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언어적특성;희곡은 행동의 문학임과 동시에 대사의 문학이기도 하다.대사는 희곡의 예술성의 가장 중요한 인소로서 인물의 언어로 형상을 부각한다. 희곡문학에서 인물의 대화(독백, 방백)가 인물지간에 교류하고 극정을 밀고나가는 주요형식이다. 가극에서의 가사는 대사의 일종 특수형식이다. (2) 개성화;개성화란 곧 인물의 특정된 년령, 경력, 교양정도, 정취 등을 선명하고도 충분하게 표현하며 특정된 환경에서의 심리상태를 제시하는것이다. 희곡에서의 개성화 요구는 소설에서보다 더 높지만 언어예술 구사면에서 소설보다 자유롭지 않다. 그것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을수 없기때문이다. (3) 구두어화:희곡인물들의 대화는 사람들의 생활언어에 접근한 언어여야 하며 입에 잘 오르고 알아듣기 쉬워야 한다. 희곡도 모종 사상을 담는 예술형식이지만 무대에서는 단독적으로 사상을 표달할수 없다. 희곡에서 사상표현을 강조하면 인물들은 관념 메가폰이 되고만다. 대화로써 표현되는 사상은 이야기발전맥락에 따라 미리 규정해 놓은것이다. (4) 동작성: 희곡이 모방하는 행위란 무대우의 배우가 행하는 움직임, 대화 및 거동을 말하며 삶의 현장을 배우의 동작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사건의 양상을 의미한다. 행동성은 인물의 언어가 행동과 배합되고 암시하면서 배우의 동작에 반응을 일으킬수 있어야 하며 정절발전을 밀고나갈수 있어야 한다. (5) 문학성: 희곡인물의 대화는 일상용어로 이루어지지만 함축성이 있으면서도 음미할 맛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생활냄새가 다분히 풍기고 감화력이 있어야 하며 절주가 뚜렷하고 듣기 좋아야 하며 개성화, 동작성과 문학성 등 제 특징을 구비해야 한다. (6) 잠대사: 잠대사란 기실 대사의 내재적실질로서 말밖에 밀이 있고 말속에 말이 있는 대사로서 말은 끝났으나 그 뜻은 오히려 효과를 거두는 말이다. 잠대사는 인물의 언어의 표면상의 뜻외에 더욱 심층차적의의를 담고있어야 하지만 관중들이 당시 구체적환경과 기분속에서 터득할수 있어야 한다. (7) 인물, 사건, 장면의 고도의 집중성: 희곡의 표현은 시간, 공간의 제한을 받으므로 극중인물, 사건 및 시간, 장면은 고도로 집중된다. 아무리 긴 장막극이라도 세시간 좌우에 끝내고 장면을 너무 번다하게 변경하지 읺는다. 희곡의 구조도 소설처럼 플롯으로 구성된다. 희곡의 플롯에서 처음이 중간의 원인이고 중간이 처음의 결과인 동시에 끝의 원인이며 끝은 중간의 결과로 보고있다. 일반적으로 장막극에서 충돌은 첫두막에 오고 위기, 또는 크라이막스는 3막에 설정되며 해결은 제4막에서 주어지고 주요인물의 최종파국(비극의 경우)과 함축된 의미의 해결은 5막에 설정되고있다. 막과 장은 희곡의 독특한 구성형식이다. 막의 설정은 사건전개에서 시간적및 공간적으로 일정한 제약을 받는 희곡작품의 고유한 특수성과 련관되여있다. 막은 면막을 내리는것으로 표시하고 장은 중간막을 내리거나 암전으로 표시한다. 막과 장은 슈제트발전의 대소 단락을 획분하기 위한것으로서 소설에서 장절같은 작용을 한다. (8) 첨예하고 긴장한 모순충돌성: 희곡의 갈등에는 외재충돌과 내재적충돌이 있다. 외재적충돌이란 사람과 사람 혹은 사람과 모종 력량사이의 모순충돌을 말하며 내재충돌이란 인물의 심령심처의 충돌이다. 드라마의 대화는 관객을 위한것이 아니다. 관객은 단지 드라마의 언어표현을 청취한다. 그러면서도 스토리의 재미를 주면서 연극적인 감수성을 충촉시키고 인생체험과 공감을 주며 비극인물들의 비참한 운명을 보고 간접경험을 함으로써 두려움과 슬픔이 해소되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카타르시스에 이른다. 3. 희곡의 갈래 희곡의 모순충돌의 성질과 예술표현수법, 독자에 대한 감화작용에 근거하여 희곡은 비극, 희극, 정극 세가지로 나눈다. 그리고 비극과 희극사이에 자리잡고있는 극문학의 특수한 종류도 있다. 이것이 원래 드라마라고 불려지는것이다. 드라마는 멜로드라마에 그 단서를 가지고있다. 1) 비극 비극이란 한마디로 고양된 내용을 가지고 비참하게 끝나는 진지한 극이다. 비극은 절대적인 운명앞에서 인간이 막무가내하게 패배하는 인생문제를 다루고있다. 어쩔수 없는 운명때문에 갈등과 대립이 생기고 그속에서 비참하게 몰락해가는 과정을 표현한 희곡의 대표적형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길이를 가진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는것이요 경쾌한 장식을 한 언어를 사용하고 각종의 장식은 각각 작품의 상이한 부분에 삽입한다. 그리고 비극은 희곡적형성을 취하지 서술적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련민과 공포를 통하여 이러한 감정의 정화를 행한다.” 고 하였는데 그에게 있어서는 비극의 언어가 리듬과 선률을 의미하였다. 비극은 기원전 5세기에 고대희랍에서 출현하였다. 비극의 목적은 련민과 공포심로부터 내심의 정감을 불러일으키는것이다. 쉐익스피어의 ≪햄리트≫ ≪오쎌로≫ ≪맥베스≫ ≪리어왕≫은 세계적인 4대비극으로 인정되고있다. 엥겔스는 비극에 반영된것은 력사적으로 필연적인 요구와 그 실현의 실제적불가능성간의 비극적갈등이라고 하였다. 벨린쓰끼는 “비극의 본질은 갈등, 다시 말해서 심정의 자연스러운 애착과 도덕적의무 혹은 단순히 극복하지 못할 장애와의 충돌과 실책에 있다. 비극의 이데아와 결합하고있는것은 무시무시하고 처참한 사건, 숙명적인 종말의 이데아이다.”라고 규명하였다. 비극처럼 그렇게 강렬하게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며 거부하지 못할 매력으로 우리의 마음을 끌며 고상한 향수를 가지게 하는 문학종류는 없다고 한다. 관중들은 투쟁에서 쓰러졌거나 승리하고 죽어간 주인공들을 깊이 동정하며 함께 울고웃는다. 비극은 문학의 다른 종류보다 더 인공적인 작품이라고 말한다. 만약 ≪오쎌로≫에서 오쎌로가 일분간만 늦게 데스데모나에게 손을 대였더라도, 만약 에밀리야가 노크한 문을 인차 열었더라도 모든것은 해명되고 데스데모나는 구원되였을것이다. 그러나 그대신 비극은 파탄되였을것이다. 데스데모나의 죽음은 오쎌로의 질투의 결과이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 비극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맹목적인 질투의 무서운 후과를 경계하도록 하는것이 아니다. 관중들은 질투란 인간심령의 악성종류라는것을 절감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오쎌로의 질투는 불길같은 기질, 교양 및 그의 일체 생활상태에 존재하는 자체의 인과성, 자체의 필연성을 가지고있었다. 그는 그것에 죄가 있기도 하였고 없기도 하였다. 이 위대한 정신, 이 강한 성격이 혐오와 증오가 아니라 사랑과 놀라움과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연고이다. 로신은 비극은 인생에서 가치있는것의 훼멸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고 하였다. 하여 비극은 처음부터 비극적결말을 예감하게 하는 성격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며 사업의 실패, 불행, 실련의 고통, 슬픔,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난다. 례하면 ≪로미오와 쥴리에트≫에서 로미오와 쥴리에트가 정원에서의 밤 장면을 읽고 나서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벌써 슬픈 예감이 갈마드는것이다. 극문학은 문학발전의 최고단계이며 예술의 왕관이요 비극은 극문학의 최고단계이며 왕관이라 한다. 그렇기때문에 비극은 극문학의 모든 본질을 내포하고있으며 그것의 모든 요소들을 포괄하고있다. 따라서 그속에는 희극적인 요소도 들어간다. 시와 산문은 생활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있으나 비극의 대상은 모든 요소들이 뒤엉켜있다. 비극의 예술특점을 개괄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극인물은 따라배울만하거나 혹은 긍정받을수 있고 동정받을만한 정면인물이라는것이다. 그들은 거개 자진하여 위험에 뛰여들어 재난을 물리치고 고통을 참고견디며 끝까지 투쟁한다. 둘째, 비극의 충돌은 필연성을 가지고있고 결말도 비참하다. 여기서 필연성은 운명에 주어진것이 아니며 비극적결말도 숙명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셋째, 비극은 관중에게 두가지 정서를 안겨준다. 하나는 가치있는것의 훼멸로부터 비통을 느끼게 되며 다른 하나는 원통하게도 가치로운것을 훼멸시키는 사악한 세력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다. 바로 그속에 비극의 사상적의의가 포함되여있다. 비극이 주는것은 침울한 정감이나 숭고미에 대한 경향이 정의감을 격발시키고 인생에 대한 감수가 깊어지고 심령상에서 정화된다. 2) 희극 희극도 오랜 력사를 기록하고있는 극종으로서 고향은 역시 고대희랍이다. 기원전 4세기경에 아테네에는 “희극의 어버이”로 불리우는 아리스토파네스를 비롯한 세 희극작가가 있었다. 희극은 비극과는 정반대되는 극문학의 마지막 형태이다. 비극의 주인공은 정면인물이나 희극의 주인공은 흔히 조롱대상이다. 비극의 충돌은 론리성에 맞는 필연성이나 희극의 충돌은 왕왕 우연적인 요소이며 허구하는 수법으로 구성된다. 희극의 결말은 통쾌하다. 희극의 기본임무는 풍자로서 풍자가 없다면 희극도 없다. 비극의 내용이 위대한 도덕적현상들의 세계이고 주인공들이 정신적본성에서 근본적인 힘이 충만된 개성들이라면 희극의 내용은 리성적인 필연성을 상실한 우연적인 사건들이며 망상의 세계가 아닌듯하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현실세계이다. 희극의 주인공은 자기의 정신적본성의 극본적인 기초로부터 일탈된 인간들이다. 하기에 비극에 의하여 산생되는 작용이 마음을 격동시키는 숭고한 공포라면 희극에 의해 빚어지는 작용은 유쾌하기도 하고 랭소적이기도 한 웃음이다. 예술적인 희극의 가장 뛰여난 명작은 고골리의 ≪검찰관≫이라 할수 있다. 희극의 특징은 다음 몇가지로 귀납할수 있다. 첫째, 희극의 주인공은 거개 우둔하고 추악한 인물이 아니면 성격상 결함이 있는 인물로서 편달 혹은 조소, 비판의 대상이다. 례하면 17세기 프랑스의 희극작가 몰리에르는 ≪따르뜌프≫에서 종교적사기군인 따르뜌프라는 전형을 창조하여 기독교의 위선적이고 략탈적인 본질을 폭로하면서 풍자하였다. 둘째, 희극은 생활속에 무가치하고 추악한것의 현상과 본질, 표면과 내면의 불일치, 불협조적충돌로써 외곡되고 부정당한 생활을 드러내여 폭소속에서 가짜면모를 꿰뚫고 그것의 본질을 폭로한다. 셋째로 희극의 결말인바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가소로움을 만끽하게 한다. 희극의 심미효과는 웃음으로 인간의 악습을 고쳐주는것이다. 몰리에르가 말했듯이 악습을 사람마다의 웃음거리로 삼는다는것은 악습에 대한 치명적인 타격이 아닐수 없다. 3) 정극 정극은 비극과 희극과 구별되는 일반적인 희곡작품을 말한다. 흔히 비희극이라고도 한다. 19세기에 이르러 비극과 희극의 요소를 함께 담은 신형의 정극이 완정한 쟝르로 형성되였는바 근대에 이르러 희곡의 주요한 형태로 되였다. 희곡의 특수형태로 벙어리극, 인형극, 가면극, 독막극, 음악극 등이 있다. 4. 희곡창작의 원리 1) 창작원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비롯된 고전극의 법칙인 시간의 통일, 장소의 통일, 행동의 통일을 희곡의 삼일치(叁一致)의 법칙이라 한다. 그러나 쉐익스피어에 의해 시간과 장소의 일치는 깨뜨려졌고, 행동의 일치도 현대극에서는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희곡에 있어서는 정확하게 전달된 정서가 가장 중요한바 정서전달은 2시간 30분을 초과하지 말아야 하는 시간적제약과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진다. 2) 희곡의 구성요소 극의 필수요소로 구성, 사상, 인물, 어법, 음악 배경의 6가지를 들고있다. 어법이란 일반적인 모든 언어기능을 의미할것이며 경치란 오늘날의 무대장치, 배경, 의상, 소품 및 효과음까지를 망라한다. 모든 요소는 하나의 목표인 “극의 전체 행위”와 부합되여야 한다. (1) 제재선택: 희곡창작에서 급선무로 나서는것은 제재선택이다. 선재에서 작가는 자기가 가장 익숙히 알고 감수가 가장 심각하며 인식이 투철하고 중요한 사회적의의가 있는 제재를 선택해야 한다. (2) 희곡의 결구: 세절과 막 등 희곡요소의 구성은 희곡존재의 형태이다. 희곡의 세절의 구성에 주의를 돌려야 한다. 희곡의 세절이란 일반적으로 인물과 인물, 인물과 환경과의 각종 관계를 가리킨다. 희곡의 정절은 하나하나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장면은 정절발전의 기본단위로서 정절은 장면의 차례에 따라 전이되고 발전한다 (3) 희곡의 구성단계: ① 발단: 시간, 공간적배경과 인물이 나타나고 이야기 실마리가 드러난다. ② 전개: 주동인물과 반동인물사이의 갈등과 대결이 점차 로골화되고 격렬해지며 중심사건과 부수적사건이 교차되여 흥분과 긴장이 고조되는데 “상승”이라고도 한다. ③ 절정: 심리적갈등이나 주동세력과 반동세력간의 대결이 최고조에 이르러 극적장면이 나타나는 부분이다. 주제가 드러난다. ④ 반전: 서로 대결하던 두세력중 뜻하지 않은 쪽으로 대세가 기울어지는 단계로 결말을 향하여 급속히 치닫는 부분이다. “하강”이라고도 한다. ⑤ 대단원: 갈등이 해소되고 모든 사건이 종결에 이르는 부분으로 긴장과 흥분이 해결되는데 “파국”이라고도 한다. 정절결구안배의 기교에는 다음 몇가지가 있다. 우선 현념을 설치하는것이다. 현념을 따로 긴장성이라고도 한다. 희곡에서 현념의 구성은 다음 몇가지 조건에 의거하게 된다. 첫째, 인물의 운명중에 위기가 숨겨져있어야 한다. 둘째, 생사, 승패는 모두 가능하게 두가지 운명으로 나타날수 있다. 셋째, 세력균형의 충돌은 반드시 결과를 예상해야 한다. 넷째, 인물의 성격, 행동이 관중의 감정상에서 애증을 가질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관중이 장차 벌어질 사태발전의 추세가 론리에 맞는다고 느끼면서 인물에 애증을 가지게 하는것은 현념을 구성하는 두가지 중요한 원소이다. 현념에도 총현념과 소현념이 있는데 정체현념과 주요한 장면에서 작은 긴장국세라고도 한다. 총현념은 전반 극에서 주요충돌의 초점이 박힌 곳으로서 극본이 시작될 때 바로 제기될것을 요구한다. 다음 기대식현념과 돌발식현념이 있다. 기대식현념은 관중이 인물의 운명과 사태발전에 대한 일정한 예감을 가지고 조성되는 기대이다. 3) 발견과 돌변 극정이 상반대의 방향에로 돌연히 변화하는것을 가리키는데 역경으로부터 순경에로 전화하거나 순경이 역경에로 전화하는것을 말한다. 그것은 인물의 운명과 내심감정의 근본적전변을 통하여 희곡성을 가강하는 일종 기법이다. 극에 서 발견과 돌변을 가장 일찍 제기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4) 시공간의 교차 인물의 몽경, 환각, 가상, 회억 등 심리활동으로 무대의 시간과 공간을 조직하여 과거, 현재, 미래가 얽혀 돌아가게 해야 한다. 주관적진실을 추구하는 현대파희곡에서는 늘 이런 결구방식을 쓰고있다. 이 방법은 다층차적이고 다변하는 시공간조직으로 인물의 은밀하고 복잡한 내심을 진실하게 표현한다. 상술한것은 전통적리론이다. 시대는 발전하고 희곡의 양식, 구조, 내용들도 그에따라 변하다단하다. 이를테면 M.B베커만은 아리스토텔레스의《시학》에서 정의한 “극적구성”과 “서사적구성”이라는 이분법을 차용하여‘집약희곡’과 “확산희곡”이라는 명제를 내놓았다. 가) 집약희곡: 인간의 행동을 집약된 시,공간과 압축된 사건아래에 묘사하는것으로서 매끄러운 련속성을 위해 부분들을 론리적으로 결합시킨다. 연역적구성으로 시, 공간적인 련속성을 보장하고 다음 장면을 위해 한사람 이상의 인들물이 무대에 남는다. 인물관계 사슬식으로 얽혀있으며 초점적인 긴 장면을 리용하여 행동이 오래 진행되게 한다. 나) “확산희곡”: 인간의 행동을 광범위한 시,공간과 여러 사건아래에서 묘사하면서 부분과 부분사이의 론리적비약, 비연속성을 형성한다. 귀납적구성법으로. 시,공간적으로 비약성을 형성하기때문에 장면을 바꿀때 인물전원을 바꾼다. 몬따쥬수법으로 행동을 여러 단편으로 나누고 특정한 효과를 위해 재조립한다. M.s.배랭거의 점층적구조, 삽화적구조, 상황적구조도 있다. 가) 점층적구조: 인물이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처하게 하며 절정에 이를때까지 인물의 활동제한과 압력을 강화하는 구성법이다. 가능성감소의 법칙을 사용하여 행동의 가능성을 줄이고 개연성을 증가시키며 절정과 종결부로 끝맺는다. 극의 시작되기전에 많은 과거이야기를 담고있는것이 특징이다. 나) 삽화적구조: 인물이 려행과정을 거쳐 최종적인 행위에 도달하는 과정을 추적하는데 여행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구성법이라 지칭한다. 인물은 어쩔수 없는 처경에 놓이지 않고 행동의 가능성을 열어두고있다. 사건은 다양한 시간과 공간속에서 펼쳐지고 등장인물도 제한되지 않는다. 이야기의 초에 발단이 시작되며 상당수의 인물과 사건을 포함한다. 이중적구성법으로 된 극으로는 쉐익스피어의《햄리트》를 례로 들고있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코카서스의 백묵원》도 이구조로 되여진 희곡이다. 다) 상황적구조: 1950년데 이후에 발생한 “부조리극”과 관련된다고 보고있다. 플롯과 사건의 배렬에 중점을 두지 않으며 특정한 상황이 극을 결정 한다. “부조리극” 작가들은 더 이상 바람직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 황폐하고 무의미한 삶을 보여주기 위해 확실한 플롯을 선택하지 않고 기본적인 방식(패턴)을 지닌 상황을 연극화한다. 결말은 최종적인 끝맺음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며 순환은 반복된다는 리듬을 강조한다. 유명한것은 베케트의《고도를 기다리며》나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녀가수》등이 그렇다.
19    제 3 절 잡문론 댓글:  조회:3187  추천:27  2007-08-17
제3절 잡문론    1. 잡문의 기원    잡문은 그 력사가 유구한바 전국시기의 굴원으로부터 시작되여 줄곧 문단에서 질주해 왔다. 선진시기 제자백가의 산문을 잡문이라고 하는것이 더 적절하다는 주장들도 있다. 한것은 그것들에 사변성이 더 많고 서정성이 적고 표현에서도 잡문경향이 더 짙기때문이다. 례하면 한유의 ≪마설(马说)≫ ≪뱀잡이군의 이야기(捕蛇者 说)≫등이 중국 초대잡문으로 정평이 나있다.     잡문은 중국특색의 문학형식으로서 “문이재도(文以载道)”라는 중국의 전통적인 문학리념을 체현하는바 “지식인이 바람소리, 비소리, 글읽는 소리…소리마다 귀에 새기고 가정잡사, 국가대사, 천하만사, 사사건건을 관심하는” 중국식인문정회(情怀)의 문본반영이고 중국특색의 “대안(彼岸)식” 사회참여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제일 처음 “잡문”이란 개념을 제출하고 독립적문체로 자리매김한 사람은 남조(량)의 문예리론가 류협이였다. 그는 저명한 문학리론서인 ≪문심조룡≫에서 한장절을 할애하여 전문적으로 잡문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그는 선인들의 잡문창작정황을 총화하고 총괄적으로 잡문이란 명칭을 달았다.     다른 한편 진한시기에 잡문 3류를 진술하였는데 천옥(泉玉)의 ≪초왕의 물음에 답함(答楚王问)≫, 매승(枚乘)의 ≪칠발(七发)≫,양웅(杨雄)의 ≪련주(连珠)≫등이 가장 일찍한 잡문대표작들이다. 후에 잡문은 새로운 발전을 자져왔는바 당송 8대가의 한사람인 한유의 ≪잡설(杂说)≫, 류종원의 ≪동엽봉제변(桐叶封弟辩)≫, 당조말기의 피일휴, 라은의 잡문, 명조의 류기의 ≪매감자언(卖柑者言)≫등이 그 례이다.     현대잡문은 “5. 4”신문화운동이후 로신에 의해 풍부하게 발전되였고 최고봉에 이르렀다. 로신선생은 전통을 계승하고 집대성화한 잡문의 정초자이다. 그의 잡문은 생동하고 매섭고 유익하여 사람들을 감화시켰는바 그야말로 “독자들과 함께 한갈래 생존의 혈로를 헤쳐 온 ‘투창’이였고 ‘비수’였다.”     옛사람들이 말처럼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면 잡문이야말로 더욱 문장이자 그 사람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그만큼 로신문학에서 주요한 성과는 잡문창작에 있다. 이외 림어당, 구추백, 모군, 서추용, 하연 등척 등 문인들도 중국의 각 시기 대표성을 띤 잡문가들이다.     2. 잡문의 함의     잡문이란 무엇인가? 협의적의미에서의 잡문이란 현대산문에서 의론과 비판을 위주로하면서도 문학적의미가 갖추어진 일종 문체로서 수감록, 단평, 잡설, 만담, 한담설화, 풍자소품, 유모아소품, 지식소품, 문예정론 등 문체의 총칭으로 공인되고있다. 그러나 잡문의 개념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다.     가) 잡문은 문예성론문으로서 산문의 일종이다. 서정과 정론을 결합하며 어떤 틀에 매임이 없이 생활, 사변과 사람들의 사상감정을 신속히 반영하는 특점을 가지고있다. 론리적력량과 전투적격정을 하나로 융화시켜 정채로운 론술로 하여금 형상성을 가지게 한다. 편폭이 짧고 세련되고 명쾌하며 필봉이 예리한것이 특점이며 심각한 사상성과 첨예한 전투성과 설복력을 가지고있다.    나) 잡문은 의론과 비판을 위주로 하는 잡체문학산문이다. 잡문은 사회에 대한 비판과 문명비판을 주요내용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허위적이고 추악한것들을 폭로하고 비판하는것으로 진, 선, 미를 긍정하고 찬미한다. 잡문은 격식과 필법이 다양하며 짧고 령활하다. 예술상에서 의론과 비판에 도리성과 취미성이 있을것을 요구하며 서정과 형상성, 풍자, 유모아, 희극적색채를 요구한다.    다) 잡문은 산문의 일종으로서 의론을 위주로 하면서 서술속에 서정을 토로하는 문예성론문이다. 짧고 세련되였으며 명쾌하며 양식이 비교적 많다. 이를테면 잡감, 잡담, 필기 등이다.    라) 잡문은 산문의 일종으로서 수감식의 잡체문장이다. 일반적으로 짧고 활발하며 예리한것이 특점이다. 포섭하는 내용이 광범하며 격식이 다양한바 잡감, 잡담, 단평, 수필, 찰기(札记) 등이다.     마) 현대산문의 일종으로서 어느 한 형식에 구속되지 않으며 의론할수도 있고 서술할수도 있다. 그러나 잡문의 개념과 귀속문제에 대하여 다른 관점을 제기하는 학자도 있다. 2002년 ≪중국잡문사≫의 제 8페지에는 잡문은 소설, 희곡, 시가, 산문과 같이 문학의 전당에 오른 일종 문학양식으로서 변연문학이라고 하였다. 해석이 각이하지만 잡문이 산문류에 속한다는 관점은 공통하다.     잡문은 형식, 풍격, 문체 등에서 구속받지 않으며 령활성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편폭이 짧으며 분석, 사변, 론리 등 문제를 설명할수 있는 일체수단과 방법으로 사실을 폭로하면서 문제의 실질을 해명하며 작자의 사상관점을 천명한다. 여론감독과 사상적인도는 그것의 중요한 공능과 력사사명이다.    소설같은 장르는 허구와 상상의 활동으로서 선택된 생활경험을 일정한 언어결구속에서 체현하면서 인간 혹은 자기의 생존방식의 모종 발견과 체험을 표현하므로 예술창조이지만 잡문의 본질적특징은 주요하게 도리를 말하는것으로서 작자의 사상관점을 표현한다. 즉 도리를 말하면서 사회비판 인류문명에 대 한 비판, 인성에 대한 비판의 목적에 도달한다.     잡문작자는 어느 한가지 사물 혹은 사상관점, 의식형태 혹은 어떤 인물의 언행, 어떤 종류의 객관존재(사회제도, 정치질서 등)에 대해 해부하면서 자기의 애증, 찬미나 반대, 평가 등 관점과 견해를 천명하며 그런 관점과 견해를 가지게 된 원인과 후과를 해석한다.    잡문에서 추상적결과는 예술형상인것이 아니라 리론이다. 잡문에서 작자의 창작동기는 독자에게 직접 제시된다. 작자의 애증, 비판, 찬성, 반대, 지지 등 평판은 모두 명확하며 형상과 예술감염력으로 독자를 감동시키는것이 아니라 설득력이 있는 일반 도리와 사변철학으로써 자기의 관점, 견해, 주장을 체현함으로써 잡문의 가치를 실현한다.     그러면 잡문이란 도대체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하는가? 구추백은 ≪로신잡감선집 서언≫에서 잡문은 “문예성론문”이라고 천명하였다. 이 주장은 아직까지 잡문개념에 대한 가장 완벽하고 권위성적인 해석으로 되고있다. 잡문이 론문일 때 사변성과 론리성이 있어야 할것이고 문예작품이 될 때 상상력과 예술성의 발휘되여야 할것이다.    무엇으로 수필과 잡문을 구별할것인가. 혹자는 글이 담고있는 내용에서 수필은 인생과 자연을 주로 다루고있지만 잡문은 지식이나 도덕, 철학 같은 소재를 내용으로 하고있다고 한다. 그러나 각도와 사상초점에 따라 경향성이 금 그어지므로 솜씨에 따라 수필도 되고 잡문도 만들수 있다고 한다면 편견이다.     가장 분명한 구별은 주제에 있다. 수필의 주제는 인생과 자연, 문화의 진실을 지적하는데 목적을 두고 서정적으로 문학성을 확보하지만 잡문은 충격, 교훈, 설득, 비판, 사색에 기울어진다. 잡문이 수필보다 더 강렬한 호소력을 가지는것은 강렬하고 철리적인 내용을 전달하기때문이다. 수필은 작자의 정감이 독자의 가슴에 가닿게 한다면 잡문은 독자의 리성사유를 노크한다. 수필은 예술에서 오는 감동만을 주지만 잡문은 예술성을 바탕으로 교훈과 편달과 채찍을 준다. 수필이 정서의 발로라면 잡문은 리성사유의 분출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필이 잡문보다 독자에게 유익하다고 단언할수는 없다. 글의 목적이 제각기 다르기때문이다.     수필과 잡문은 구별하기 어렵지만 때로는 독자가 잡문을 더 읽고싶어 한다. 변화와 재미와 자극을 주기때문이다. 수필도 그 사상성으로 시공간(时空)을 초월한 문학이 될수 있지만 잡문은 인간의 보편적인 리성에 호소하므로 더욱 생명력이 왕성하다.     3. 잡문의 특징    1) 변론성     변론성은 잡문이 다른 문학쟝르와 구별되는 현저한 특점이다. 잡문의 임무는 철학적도리와 인생의 도리, 륜리학적인 도리로 진실하고 선량하며 아름다운것을 신장하고 허위성과 사회, 인성의 추악성을 편달하고 약자세력을 위해 정의를 발휘하고 사회상의 사악한 기풍을 제압하여 조화사회를 도모하는것이다.    작은것으로 큰것을 보여주기에 투철한 론리, 정확한 판단, 충족한 도리와 증거가 있다. 변론성은 형상성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여야 한다. 잡문작자의 최종목적은 시비를 가르고 잘못된것을 고치도록 진리를 제시하는것이다.     잡문은 사회비판, 문명비판을 그 기본내용으로 하며 강렬한 리성비판정신과 사상적계몽색채를 띠고있다. 예술상에서 보편적으로 설득적형상화와 서정화를 추구하며 일반적으로 선명한 풍자성과 유모아적인 희극색채와 기지, 변론성적인 철리적품격을 가지고있다.    2) 전투성    잡문의 발전각도에서 본다면 정론성과 문예성의 결합이 가장 돌출한 특점이다. 잡문의 정론성, 설리성, 전투성은 민감한 감응과 현실생활중의 비리와 인간의 속물적근성 등을 날카롭게 질타하는데서 표현된다. 잡문은 전투성과 잡문을 읽는 희열성은 조화되여 “감응의 신경, 공수의 수족”으로서 독자에게 일종 예술적향수를 느끼게 해야 하며 웃음속에서 미적정신향수를 느끼게 해야 한다.     3) 풍자, 유모아와 정취성     잡문에서 풍자수법은 살수간(杀手锏)이라 할수 있고 넋이라 할수 있다. 물론 풍자대상에 분별이 있어야 한다. 적아간의 비판과 반비판에서 풍자야말로 투장이고 비수이다.     유모아는 잡문에 정취성을 부여하는 유력한 수단이다. 유모아라 해서 꼭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는것은 아니다. 유모아에도 웃고나서 눈물을 머금게 되는 심층적인 유모아가 있다. 잡문에서 유모아는 심층의미에서의 유모아이다. 이런 유모아는 경우에 따라 즉흥적으로 튀여나오는 일반 유모아와는 달리 만들어내는것이 아니라 지혜의 잉여, 사상의 번뜩이는 섬광이다.    말하자면 모종의 사회페단이나 인간의 렬근성 등에서 기인된 비틀린 정서에서 한걸음 물러나 랭철한 안목으로 직시하기에 참지못한 쓴웃음의 소재가 착안되는것이다. 물론 이런 유모아는 남달리 강한 배짱과 대바른 성품을 가진 지성인들에게서만 가능하다. 이때의 유모아는 그 자체가 비판의 무기가 된다.    웃음이 때로 반항의 표시가 되듯이 유모아도 반항적인바 굴할줄 모르는 정신의 산아인 유모아는 사회성을 띠게 되고 력사적인것으로 된다. 이런 유모아는 모자를 기우뚱 제껴쓰고 한바탕 웃고나서 인차 잊어버리는 휘파람같은 유모아와는 달리 비극적이며 또 희극적으로 인간의 허위와 악덕을 조소하고 질타하며 인간의 모든 고난과 비애를 웃음의 연기로 타래쳐오르게 할수 있다.    ≪돈 끼호떼≫를 낳은 쎄르반떼스의 유모아, ≪죽은 넋을≫낳은 고골리의 유모아, ≪카멜레온≫을 낳은 체호브의 유모아, ≪아Q정전≫을 낳은 로신의 유모아, 오 헨리, 몰리에르, 챠플린 등 유모아대사들의 걸작들이 전범으로 된다. 그들은 유모아대사이기전에 눈물을 머금고 세상을 투시한 선각자들이였다.     문학의 존재가치와 가치실현에서 정취성은 큰 몫을 담당하고있다. 잡문의 정취성은 여러가지 문학인소에서 보장된다. 로신은 늘 핍진한 비유수법, 류비수법을 사용하고 이야기, 성구, 전고를 적절하게 인용함으로써 글에 생동성과 취미성이 짙게 하여 추상적도리를 형상화하였다. 잡문은 의론성질을 띠고있으나 운치와 정취가 다분히 담겨있어야 한다.     잡문의 정취성은 정채로운 의론에서 오며 심오한 도리를 깨우친 감지의 희열에서 확인된다. 잡문의 취미성은 잡문속에 담긴 풍부한 지식성과 그것을 터득한 자아긍정심에서도 올수 있다. 그리고 독자는 비정함과 불의, 악에 대한 작가의 비판에 대한 동인(同认)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아울러 사색적인 정취에 깊숙히 빠져든다. 이는 단순히 정감적인 도취가 아니라 사상상의 동조이다.     4) 현실성     잡문은 취재범위가 넓다. 잡문의 내용에 들어가지 않는것이란 없다. 국가대사로부터 시작해서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다 잡문의 내용이 될수 있다. 그만큼 잡문은 그 어느 조대에서든지 현실에 튼튼히 뿌리를 박았기에 현실성은 잡문이 산생되고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된 기본특징의 하나였다.    이런 특점에서 잡문을 문화전선의 경무기라 한다. 로신은 소품문이 생존하려면 반드시 “비수, 투창이 되여 독자와 함께 한갈래 생존의 혈로를 헤쳐나갈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잡문이란 이 경무기는 잡문 특유의 비판의 무기이다. 잡문도 시, 산문쟝르에서와 같은 그런 함축성, 생동성, 서정성에 형상까지 보이는것이 특점이다.     잡문은 개념, 범주를 사유재료로 하는것이 아니라 직접 인생과 상담하고 인정세계 구석구석을 파고드는바 인생체험으로부터 일촌 불란지설의 론전이 전개된다. 잡문창작의 사유규률로 말하면 잡문은 의론성이 강한 문체이지만 순수 리성사유의 론설문과도 또 다르다.    잡문은 개념, 범주를 사유의 재료로 하는것이 아니라 직접 인생, 인정세계에 마주하고 세태를 건져올린다. 즉 일체 문학창작과 마찬가지로 풍부한 인생경험이 작자의 강렬한 창작욕망을 격발시킨다. 잡문에서는 직관과 경험을 가공하여 개념, 범주로 만들지 않지만 예술상에서 추상의 특징이 표현된다.     잡문에서는 직관과 경험을 가공하여 개념, 범주로 만들지 않지만 예술상에서 추상의 특징이 표현된다. 이런 추상은 론리적의미에서의 추상이 아니라 일부 추상화된 현대예술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천태만상에서 철학적으로 깨닫고 감수하며 나아가서 이미지화하고 상징화, 부호화하여 추상과 구체형상이 유기적으로 통일되게 한다. 잡문이 문학이 되게 한 리론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5) 잡문의 문학성     잡문의 문학성이란 언어예술의 운용을 말하는바 주요하게 형상과 서정, 두개 방면에서 표현된다. 형상은 그 기지로움으로 독자에게 영향주는바 곧 풍자성과 유모아색채이다. 잡문의 형상은 흔히 류비하고 상징하는것으로 체현된다. 하기에 잡문가는 사상가, 학자가 되여야 하며 문학가가 되여야 한다.     표달방식상 잡문에서도 묘사를 많이 운용하며 서술수단으로 직각화하고 정서화하며 예술화한다. 의론된 사리는 직감적인 생활을 거쳤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 뜻을 알게 하고 음미하게 하며 깨닫게 하여 그속에서 다시 인생의 오묘한 도리와 정취를 발견하게 한다.     잡문에 형상성은 어떻게 부연되는가? 잡문은 일반 정론문과 다르다. 잡문은 론리적력량만 있는것이 아니라 진리성적인 력량도 구비하고있다. 잡문이 문학인만큼 두말할것없이 예술적언어로 구사하고 형상에 의거하며 기지로운 사색으로 독자에게 영향준다.     잡문에서도 극히 정서적이고 심지어 시화된 언어구사도 가능하며 형상성이 있는 묘사와 서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생신하고 재치있는 비유, 상징수법, 해학, 날카로운 풍자, 완곡법, 기지가 넘치는 유모아 등 모든 수법들을 나름대로 가능한 리용할수 있다. 잡문은 비판의 무기이기이지만 문학쟝르로서의 예술성특색을 상실해서도 아니되기때문이다.     잡문에 형상성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다른 문학작품속에 형상성과 동등하게 요구할수는 없다. 잡문에서의 형상은 비교적 개괄적이고 세밀하게 부각된 형상이 아니라 불완정한바 진술하려는 도리에 설복력이 강하게 하기 위해 형상성을 살리려는것이다. 례하면 잡문의 주제강화의 수요에 의해서 전고, 력사일화, 우화, 성구, 속담, 리언, 격언, 명언을 인용할수 있는데 내용과 그속에 담긴 도리는 사람들이 잘 알고있는것이여야 한다.    로신은 자기의 잡문에 일화, 전고, 성구, 사실 등을 재치있게 인용하고있다. 례하면 잡문 ≪잊어버리기 위한 기념≫에서 ≪설악전전≫에 고승의 이야기 를 인용하여 렬악한 환경속에서 전전하는 자기의 딱한 처지와 구원의 길이 없는 당시 백색공포의 사회상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로신의 매편의 잡문마다 취미성이 짙은것은 생활정취와 문학성이 짙기 때문이다. 량실추의 잡문도 심각 한 사상성에 문채도 뛰여나게 과시되고있다.     만약 인간의 탐욕성을 타매하는 한편의 잡문을 쓰려한다면 이소프의 ≪욕심많은 개≫라든가 ≪재록신령님과 나무군≫같은 우화를 안용할수 있는데 우화 자체에 해당 주제가 제시되여 있으므로 송어굽는데 된장칠을 하듯이 구태어 그속에 도리를 제시하느라 할 필요가 없다.     잡문은 시대적페단을 파헤치고 꼬집으며 사회비리를 편달하는 글이기에 유모아, 풍자수법을 능란하게 구사하여 문학예술가치를 실현한다. 때론 만화식소묘도 하며 반어를 사용하여 예술성을 한층 더 높이고 풍자와 편달을 교묘하게 결합되여야 한다. 잡문에서 예술형식은 해석법이다. 잡문에서 도리를 말하는 방법으로 흔히 연역법을 쓴다. 그리고 귀납법, 대비법과 층층히 밀고올라가고 심입하는 방법도 잘 쓴다. 현대잡문은 말 그대로 어떤 고정격식에 구애되지 않는바 개척공간은 넓고 그 형식도 각양각색일수 있다.     6) 잡문의 사상성     잡문은 소잡문, 대잡문으로 나누는데 대잡문은 문장에 착중하고 소잡문은 언론에 착중한다. 대잡문은 문장에 매력이 있고 소잡문은 사상토론에 매력이 있다. 대잡문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체적으로 불타오르게 하고 소잡문은 마음을 다리미질한다. 대잡문이 풍성한 식탁이라면 소잡문은 한잔의 독한술과 같다.     소잡문이든 대잡문이든 무릇 각도가 있어야 하고 소재의 래원이 있어야 하며 어떤 사상을 진술해야 하고 새로운 발견이 있어야 하며 모종 계발을 줄수 있어야 한다. 잡문내용의 사상성과 문학성은 수레축에 두바퀴와 같아 사상속에 문학성이 담겨있고 문학성속에 사상성이 침투되여 흔연일체를 이루어야 한다.     잡문창작의 싹, 령감의 촉발, 구상의 기점 등은 어떤 주의와 선전의 수요에서가 아니라 생활에 대한 직감에서 오고 작가의 인생체험에서 온다. 생활에 대한 직감은 곧 생활에 대한 직각이다. 직각사유는 바로 감성과 리성사이에 교량으로 된다. 생활각도에서 말한다면 “잡”은 생명의 우세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물종의 “잡교우세”, 민족의 융합이 사회발전을 추진하는것 등에 비유할수 있다. 문학적각도에서 볼 때 잡문은 교차형문체로서 소위 순문학형식보다 모종 면에서 우세를 발휘할수도 있다. 일괄해서 잡문은 인자견인(仁者见仁)의 일종 대화방식이다. 지금은 로신시대가 아니지만 로신의 식견과 담량과 량지와 대화방식이 수요되며 그의 문인정신과 어투가 수요된다.     수필과 잡문, 신변잡기는 문체상 뚜렷한 구별을 짓지 못하고있기에 흔히 혼동게 된다. 수필을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형식의 글이라고 해석한다해서 바로 잡문이나 다를배 없다는 사람들이 있고 잡문을 일정한 형식이 없이 되는대로 쓰는 글이라는 해석을 맹종하여 잘못된 글이면 그저 잡문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도 있다.     의론성 수필이라해서 잡문이 될수 없다. 취사선택에서 잡문은 비평의 예봉이 돌려질 대상이 명확하며 작은것에서 큰것을 보아내지만 수필은 잡문보다 유연하고 담박하며 보통 3류제재를 다루며 작은것에서 큰것을 발굴한다. 문체풍격상에서도 잡문의 필봉은 예리하고 풍자적이며 신랄하나 수필은 한적한 마음으로 자아정감을 다루기에 부드럽고 글쓰는 자세도 “신사적”이라고 할수 있다.     언어구사에서도 잡문은 풍자수법을 많이 쓰는데 반하여 수필은 유모아적이지만 포용범위는 협애하다. 잡문은 철학성이 짙고 랭정하나 수필은 서정적이고 열정적이며 자유색채가 짙다. 수필과 잡문은 자매간이지만 꼭 닮은 쌍둥이자매는 아니다. 잡문은 의론성이 중요시되고 개성과 공성의 융합, 취미성에서 수필과 차이성을 보인다.    잡문은 인생, 사회를 대하여 그것의 의미를 짓씹으며 철리적감오를 찾아 인성의 심층적발굴을 지향하고 지혜와 계발성을 구비하며 인간의 령혼을 정화시키는데 작용 한다. 수필은 정서적의미가 오묘하고 인성향기가 풍기기에 독자의 정서세계에 유익한 보탬을 준다. 이 시점에서 잡문은 딱딱한 글이고 수필은 유연한 글이라고 할수 있다.     사전에 의하면 신변잡기란 수필이고 수필이란 신변잡기라는것이다. 잡기는 글자 그대로 자질구레한 일을 질서없이 기록함. 또는 그런 기록. 잡록(杂录) 잡필(杂笔). (에센스국어사전)이라는 해석대로 수필, 잡기, 잡문의 뜻은 모두 같다는 사람도 있다.“생각나는 대로”와 “질서없이”와 “되는대로”라는 말로서 뜻이 상통한다고 오독하였기에 잡문에 대한 몰리해가 온것이다.     신변잡기가 수필에 들어있다 할진대 무엇이 문제인가? 생각나는대로, 질서없이 되는대로 쓰는 글이기때문인가? 단순한 창작리념문제가 아니다. 수필은 '붓가는대로 쓰는 글”이기에 신변잡기이고 잡기인즉 잡문과 같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신변잡기식 수필에 썩 공감되지 않는 리유를 사색해볼 필요가 있다. 문학화가 안된것도 있고 특히 “반짝!”하는 사상의 불티가 없기때문이다.     수필은 소재를 다룸에서 일반적인것을 보편적인것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점에서 수필다운 수필이 되지 못하고있다. 수필에서 “나”는 개체로서의 나에 그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주체를 “우리”라는 객체속에 융화시킬수 있는 보편성을 도모해야 하는바 문학에서의 의미화라 한다. “나”의 주관성은 자기 울타리안에서 자기도취에 빠져 감탄표를 찍을것이 아니라 공감성을 지향해야 한다. 여기서 신변잡기와 수필의 색채가 달라진다.     4. 잡문의 당대의식     20세기 80년대 이후 재미있는 비유가 류행되였는데 문학이라는 이 금마차에는 이미 너무 많은것을 실었기에 인젠 마땅히 문학에 속하지 않는것들을 부리워야 한다는것이다. 잡문을 문학의 일종이라고 공인하면서도 재래의 문학개 론에서는 배제되였다. 그러나 이른바 그 부리워야 할것들중에서 잡문은 례외로 되여야 할것이다. 잡문이라는 형식에 어떤 내용을 담는가에 따라 잡문의 발전공간은 무한할수 있기때문이다.     20세기 90년대 이후 잡문은 중국사회의식형태발전의 발걸음에 따라 새로운 창작관념을 가지게 되였다. 새 시기 잡문은 현실생활을 반영하고 표현하려는 층차에 머문것이 아니라 력사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면서 미래를 향하여 사상의 날개를 활짝 펼쳤으며 나아가서 다른 지역의 기타 민족들의 생활과 사상관념을 대변하는 일도 자기의 창작범주에 넣었다.     90년대이래 풍격의 다양화 등 이왕과 다른 특점을 과시했지만 잡문창작의 력사발전과정에서 고찰한다면 문화, 심미가치 등 면에서와 잡문의 당대의식에 세가지 주요결함도 존재한다고 론의되고있다. 말하자면 문화비판의식, 작자의 자성의식 그리고 시대적심미의식의 결핍이 그것이다.     비판의식은 의심할바없이 잡문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특징으로서 기타 문학쟝르가 가질수 없는 강렬한 심미적매력과 우월성을 부여한다. 잡문의 비판의식에는 주로 력사비판, 현실비판, 문화비판 세개 층차가 있다고 볼수 있다. 력사적비판은 철학방법으로 사회의 각종 허위적이고 루추하며 사악한것에 비판의 칼을 들이대는것인데 착안점은 현실이다. 따라서 이런 잡문이 독자에게 안겨주는것은 력사적이고 철학적이며 미학적인 심미의식과 사고방식이다.     그 목적은 사회와 사람들에게 파란만장한 력사와 인성의 참담한 체험, 그 속에서 얻게 된 여러가지 교훈으로 계발하려는데 있다. 그러므로 현시대 인류정신과 리상의 제고점에서 출발하여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황당성과 인성의 추태, 인간악, 전 사회적부패와 사악한 세력의 비리, 민족의 렬근성, 기형적이고 변태적이며 반인류적인 전지구촌의 문화현상 등이 모두 잡문이라는 이 문화비판의 무기앞에 나서야 할 대상들이다.     잡문의 문화비판은 문화적층차에서 사회력사현실, 민족과 세계, 인성과 사회 내지는 문화활동에서 자행되는 비뚤어진 심미의식에 대한 비판이다. 비판의 립각점은 문화자체이다. 문화가 인류자체에 끼치는 영향은 비록 내재적이고 은페적이지만 인성의 각종 추악한 현상은 모두 문화라는 토양속에서 움트고 악과를 빚는다. 잡문식의 문화비판은 바로 추악한것들의 근원을 파내고 예리하게 비판함으로써 인성개조하는데 일익을 담당할수 있다.     잡문은 의연히 국민의 렬근성을 치유하는 좋은 약이 되고 사회고질을 해부하는 수술칼이 되여야 한다. 한편의 잡문을 읽고 사상적으로 각성하게 되고 정서적으로 취하게 되는것은 바로 가슴이 짜릿해나는것은 그 매서움때문이다. 잡문도 일종 문학적대화방식이 되여진만큼 일침이 되는가? 수술칼이 되는가 하는것은 작가가 어떤 잡문을 쓰려는가 하는 창작경향과 담량에 달렸다.    문학이 비평이라면 잡문은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줄수 있는 문학의 특종 병이라 할수 있다. 잡문이 여론감독자로, 사상지향의 인도자로, 시대의 강음으로 되여질 때 비로소 명실상부한 잡문이라 말할수 있다. 사회문화를 리드해 나갈수 있는 잡문이라면 그 문화적매력은 세인들을 흡인할것이다.      그러나 20세기 90년대이후 잡문창작에서 문화비판의식이 정체적으로 담담 해지기 시작하였다. 문화비판의 상실은 비판정신의 내핵과 활력의 상실을 의미 한다. 잡문이라는 장르의 외투를 걸쳤지만 둥글둥글하고 매끄러운 사상, 아프지 도 가렵지도 않은 표현, 애매모호하게 에둘러 말하는 기법, 비판의 유희, 세상과 롱담하는듯한 가벼운 미학 등이 언제부터인가 잡문의 “룰” 이 되였고 일종 의 우아한 문풍이 되여짐으로써 자연히 작가의 자성의식과 소원해졌다.     잡문의 성격은 폭로와 비판, 풍자성이다. 풍자의 생명은 진실이다. 진실을 떠난 풍자는 원천이 없는 물과 같고 뿌리없는 나무와 같다. 잡문작가는 산범을 직접 찌르고 왜 사람을 잡아먹는가? 하고 질책하는 담량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가 상품경제시대에 진입하면서 국내적으로 잡문창작은 불경기상태가 지금까지 지속되고있다. 잡문의 저조는 우선 참된 문화의 흥망성쇠와 유관된다.     잡문의 성씨는 비판으로서 송가와 인연이 없었다. 그러나 잡문의 성격과 풍격이 달라진 현시대에 잡문의 효능을 과장하지 말아야 하며 기대치를 너무 높이지 말아야 한다. 로신은 “한수의 시가 손전방을 도망치게 하지 못하지만 한방의 대포는 손전방을 쫓아버릴수 있다.”고 하였다.     잡문은 대포가 아니며 대포를 대체할수 없지만 대포도 잡문을 대체할수 없다. 다만 긴창과 단검이 각기 장점과 단점이 있듯이 제각기 쓸모도 있다고 생각하면 잡문의 효용에 만족할수 있으며 얼마만한 빛이 있으면 얼마만한 빛을 발산해야 할것이다. 다변하는 시대, 온갖 비리가 만연되고 불의와 허위가 횡행 하는 이 격변의 시대에 잡문이란 수술도가 수요되는것은 사실이다.     잡문의 문화비판은 문화적층면에서 사회적력사현실, 민족과 세계, 인성과 사회 내지는 문화자체활동에서 진행되는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심미투시를 비판하는것이다. 비판의 립각점은 문화자체이다. 문화비판은 바로 추악한것의 근원을 파헤치고 철저히 비판함으로 인성개조의 일익을 담당하는바 가장 강유력한 비판이 된다.  
18    제 2 절 수필문학 댓글:  조회:4055  추천:15  2007-08-13
                                                     제2절 수필문학    1. 수필의 함의    수필은 서구의 에세이에 관한 지식과 개념들이 들어오면서 문학적의미를 갖게 되였기에 에세이와 수필을 명확하게 구분할수 없다. 에세이는 프랑스의 몽테뉴로부터 비롯된 시론(诗论), 시도(试图)라는 뜻이다. 이것이 영국으로 건너가서 발전했다. 에세이는 “시금” “시험하다”의 뜻을 가지고있으며 라틴어에서 그 어원을 두고있는바 “계량하다. 음미하다”의 뜻을 가지고있다.    서양에서 에세이라는 용어로 된 문집은 세계적인 사상가이며 산문시조인 프랑스의 몽테뉴의 ≪에세이≫가 있고 영국의 ≪수상록ㅡ생활과 도덕에 관한 충언≫이 있으며 영국의 챨스 램의 ≪엘리아≫가 있다. 프랑스의 R. M 알베레스는 “에세이는 그 자체가 원래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신비적이미지로 된 문학”이라고 정의했다. 몽테뉴는 수필집 ≪독자에게≫서 이렇게 쓰고있다.     …여기 이 책은 아주 성실, 정직한 책이다. 독자여, 책머리에서 당신에게 그 사실을 말해 두지만, 나는 이 책속에 내가족적인 사사로운 일밖에는 아무런 다른 목적을 두지 않았다. 나는 이 책에서 당신에게 대한 어떤 보탬이나 또는 나의 영광을 위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와같은 마련은 내힘에 넘치는 일이다. (중략)      …이 책에선 내결심이 생생하게 그대로 읽혀질것이고 또 나의 타고난 외모도 독자들에게 용서받을수 있는 례절의 한도안에서는 있는 그대로 보여질것이다. 만약 내가 아직껏 자유관대한 자연의 최초의 법칙밑에서 산다는 그런 민족들속에서 생활한다면 틀림없이 나는 당신들에게 모든것을 다 털어놓고 아주 기꺼이 완전하게 벗어붙인 나를 드러냈을것이다. 그러니까 독자여, 내자신이 바로 내책의 내용이다. 이렇게도 가볍고, 이렇게도 별 볼일없는 내용이니 당신의 한가한 시간을 사용할 만한 구실도 못된다. 그러면 안녕.                                                                       1580년 3월 1일. 드 몽테뉴.     몽테뉴에 의하면 수필은 가장 절실한 체험의 표현이다. 몽테뉴의 이 독백이 바로 수필의 시작이고 성격으로 형성되였다. 에세이는 포오멀 에세이와 인포멀 에세이로 나뉘어져있다. 전자는 객관적진리와 무게있는 지식을 정연한 론리적전개를 통해 나타낸 글을 말한다. 흔이 베이컨형 에세이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가 말하는 중수필개념과 통한다. 후자는 독자들의 마음을 자극하지 않고 정서와 기쁨을 주는것을 목적으로 하는바 몽테뉴형 에세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한국수필은 “미셀러니”에 속한다고 하면서 신변잡기, 감상문, 잡문 등을 가리켜 미셀러니라고 말한다. 사전적의미로 “미셀러니란 여러 필자가 여러가지 제재에 대하여 쓴 작품을 모은것, 또는 수필이나 시와 같은 여러가지 작품을 모은것”이 된다.    “인포멀” 이란 말은 정격(正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그 내용에 있어서 객관적진리와 무게있는 지식을 전달하는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다만 독자에게 기쁨을 주는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독자를 자극시키지 않고 마음을 늦추게 하는 글로서 한가한 시간에 쓰여지며 한가한 시간에 읽는 글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수필이 한낱 소일거리로 된다는것은 광채로운 일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수필이란 송조이래의 잡기견문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최초로 수필이라는 용어를 책이름으로 한 단문집으로는 12세기 남송때 홍매(洪迈)의 ≪용재수필≫이였다. 홍매는 “意之所之 随即记录 因其先后 无复诠次 故目曰随笔”라고 썼는데 “마음에 생각이나 느낌이 떠오를 때마다 바로 적고 앞뒤의 순서를 바로 잡지 않았으므로 이 책에 수필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하였다. 홍매가 개인적인 책목록으로 사용했을뿐 쟝르로서의 일반개념이 아니라 특수개념을 말하는 고유명사인것이다. 중국에서는 “5. 4”이래 수필이 십분 류행되였는데 경물을 빌어 서정을 토로하고 사물에 기탁하여 뜻을 펼치고 혹은 사물의 도리를 밝히거나 시비를 캐고 론단하기도 하였다. 그속에 풍유도 있었으며 내용이 풍부하고 형식이 다양한 일종의 문학적대화양식이 되였다.     흔히 수필을 서양어에 대한 번역으로만 생각할수 있는데 어원상 동서양의 수필개념은 거의 일치한다. 수필의 내함을 글자그대로 풀이하며 내용상 잘되지 못한 수필을 잡문이라 취급하는것은 우심한 오도이다. 더구나 여러가지 종류의 기록을 모은 책을 “잡문, 잡기, 잡록” 이라 부른다고 해석하거나 수필문학을 스스로 잡문, 잡기, 잡록으로 폄훼시키는것이라 하는데 중국에서의 잡문의 발전과 양태를 모르고 글자대로 곧 잡글이라고 단정하는것은 무지의 소행이다.     글자대로 풀이하여 수필은 “여가에 붓가는대로 쓰여지는 글”이라는 정의가 아닌 정의를 맹종하여 내키는대로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것으로 오도하며 신변잡기쯤으로 간주하는데 스스로 수필의 격을 낮추고있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수필은 산만성과 무질서, 무형식의 글, 락서가 아니다.     산문과 수필의 공통한 특징을 찾는다면 작자가 “나”라는 신분으로 쓰는 글이라는 점이다. 수필은 비전문적이고 격식에 매이지 않고 생활감수와 사색을 자유롭게 쓴 산문이고 넓은 의미에서 일기, 기행문, 편지 등도 포함시켜 자기성찰의 문학이라고 하는 말에는 산문과도 또 다른 깊은 함의가 있다. 수필은 말 그대로 떠오른 생각을 쓰는 느낌글이지만 자률성이 고유하고있다. 말하자면 자아의식에 주체성은 그가 원하든 않든간에 “보편적규정”속에 존재하고 작가의 의식자임을 자각할 때 자아와 객관사물, 의식과 의식된것과의 관계속에서만 대상의식을 형성한다.     수필에 대한 어떤 학술적정의보다도 중요한것은 어떻게 정서적감동을 독자에게 전달할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수필이 자신의 체험을 려과하고 자기나름의 느낌과 사색을 조리있게 기술하는 글일진대 그 감동의 전달이 인간과 인생에 대한 해석과 그것을 의미롭게 승화시킨 철학으로서 공감되여야 개성있고 생명력이 있는 수필다운 수필로 자리매김될것이다.     2. 수필의 의의     수필이 개체의 생명운동으로서 그 본질에 접근했을 때 허위와 가식없는 인성의 고백이 된다. 고백이란 말을 문학에 적용한 사람이 수필의 원조인 몽테뉴이며 고백을 문학으로 보여주고 그 고통을 체험시켜준 사람이 루쏘이다. 두사람의 ≪법의 정신≫과 ≪참회록≫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금까지 세계독자를 울리고있다. 고통스러운 고백에 생명체의 근원이 약동하기때문이다.    한국작가 윤오영선생은 “소설의 구체적인 서술성과 시의 다채로운 축약성이 무리없이 조정되면서 진과 미를 구심점으로 하는 비판정신이 살려져있는 독립된 문학쟝르라”고 그 방향을 제시했는데 아주 적중한 론단이라 할것이다. 이 시점에서 수필은 세속적인 사회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초연하게 인생을 바라보는 관조의 문학만은 아니다. 뼈저린 체험, 고통의 과정을 거치고 내면화하는 동안 걸러진 고백이고 지혜와 진리에 접근한것이여야 한다. 이런 수필은 우리의 인생현장을 비추어주고 심령을 밝혀주는 등불역할을 하게 된다.    수필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인간다운 삶인가? 등 의문을 던져보고 스스로 대답하는 문학으로서 생명의 원천에 대한 탐색이 되고 인생을 반추하는 자성일 때 소중한것이 된다. 수필이 자기고백의 글이라지만 아무도 사회의 국외인으로 살수 없거니와 아무도 상아탑속에서 간드러진 피리만 불수는 없다. 인생현장은 근원적으로 력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겪고 생각한것을 문학적으로 표술하는 글이기에 작가의 인간상, 또는 사상 등이 적라라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고백하기 위한 고백, 자랑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경건히 돌아보면서 참회하고 각성하는 글이므로 투철한 작가정신, 치렬한 창작열, 전문성이 수필의 특징이다. 이 특징이 체현되지 못하면 그저 생활수기로 남는다.    수필의 의의는 교훈성보다는 쾌락성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재미란 물론 미적충동이나 감동으로 인한 즐거움이지 이야기내용이 아니다. 허드슨은 그의 표현본능설에서 쾌락은 자기표현을 위한 욕망, 인간과 인간행위에 있어서의 흥미로운것,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와 우리의 존재를 떠올리는 상상세계에의 흥미로운것들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행위”이거나 “만족할만한 상태”라고 했다.     수필은 회의성의 문학이다. 회의적이고 지성적일수록 적극적인 의미를 지닐수 있고 창조적일수 있다. 회의를 앞세우고 다각적으로 생각하기때문에 다양한 체험과 사색은 수필의 개성이 된다. 적극적인 탐구로 창조를 이룩하고 다각적인 관찰로 특유의 개성을 살린 수필은 문학과 철학에 접근한다.    회의를 앞세우고 다각적으로 생각하기때문에 다양한 사색은 수필의 발견이 된다. 적극적인 탐구로 창조를 이룩하고 다각적인 관찰로 특유의 개성을 살린 수필은 인생철학에 접근한다. 그러나 담백하다는 리유때문에 단순해질수 있다. 생활기록과 수필의 분계선을 알고 생신한 느낌과 깨우침을 줄수 있는지 알고 붓을 들어야 수필다운 수필이 나올것이다.     수필은 작가의 정감세계의 로출이므로 진실성이 생명이다. 그러기에 오히려 명쾌하고 절서정연할것이 요청되여도 산만하고 무질서는 용납될수 없다. 수감, 일기, 서한, 기행문, 칼럼 등을 수필의 범주에 넣고있어서 일일이 형식을 정해 정의할수 없지만 수필만큼은 작가의 자재적인 창의성을 많이 요구하고있다.     비평가 R.M. 알베르는 “수필은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신비적이미지의 문학” 이라 했다. 허버드 리드는 자기의 ≪영국산문록≫에서 “마음속에 표현되지 않은채 잠재해 있는 관념이나 기분ㅡ정서 등과 상응하는 어떤 류형을 언언로써 창조하는 비형식의 시도이다. …한마디로 수필은 특정인에게 보낼 필요가 없는 하나의 공개장이다.”라고 쓰고있다.     수필은 삶의 문학이란다. 수필만이 삶의 문학인가? 모든 문학이 삶의 메아리이다. 수필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고도 하고 그냥 락서일수도 있다는데 수필이 자신의 삶에 대한 자각과 의미부여에서 그치면 일기차원이다. 남에게 전달되지 않은 정서는 다만 개체의 심리활동일뿐이다. 자기 인생을 의미화하는 궁극적목적은 독자와의 대화속에서 강렬한 정서성을 전달하려는데 있다.     수필은 글쓴이의 인생경험과 인격력량의 소산이다. 수필은 자기 삶의 향기를 피워올리거나 생명을 연소시키는것으로서 자기 자신만큼의 초상화일수밖에 없다. 자기를 닮지 않은것을 낳는 동물이 없듯이 수필에서는 자신의 모습이 수식없이 있는 그대로 그려질수 있을뿐이다. 그래서 진정한 수필에는 작자만의 캐릭터가 있게 되는것이다.    수필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은 현실생활일수도 있고 생활론리를 전제로 한 형상사유의 결정체일수 있다. 보통 신변잡기라는 말을 잘 쓰는데 광의적의미로 모든 문학적인 글은 신변잡기라 할수 있다. 하지만 수필은 자기 신변잡사를 횡설수설하는 잡글이 아니라 인생의 보편적인 경험을 다양한 예술방법으로 토로하는 문학예술이다. 그만큼 독자들과 공유되여야 가치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수필은 쓰는 사람이 쓰면서 즐기던 글로부터 읽는 사람이 읽으면서 즐기는 문학으로 되였다. 따라서 우리가 수필이라고 말할 때 느끼던 그 격조라는 감각은 어느덧 사라지고 가볍게 일컬어지는 신변잡기가 범람하게 되였다. 공공적인것보다는 사적인 가벼운 주제를 선택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철학적인것보다 감상적내용의 수필을 즐겨쓰는것이 현시대의 풍조로 되였다.    수필을 쓰는데 지식함량이나, 인격함량, 필력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것은 수필에 대한 오해이다. 수필은 누구나 쓸수 있지만 아무나 쓸수는 없다. 아무나 쓸수 없다는것은 수필이란 지어내는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수필의 의의는 모대상에 대한 정서, 정감표출에서 체현되는 인간미이다. 좋은 수필은 일상사를 사상으로 부연하여 독특한 사상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의의를 가진다.    수필은 완성된 인생의 표현이 아니라 그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호소하는 문학이다. 비유하건대 곡식이 술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수필이 완성되는 과정이다. 문학이 사람사는 이야기일진대 수필이 그 삶을 조명하려 했다면 자아세계의 새 경지를 찾는 자조의 글이나 결국 자기 구원의 글이기도 하다.     그만큼 자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인생철학이요, 살아왔고 살면서 느끼고 생각한 개성의 미학이다. 수필은 언어의 미학이라든지, 수사라든지, 이미지의 창조라든지, 언어예술의 조각이라 하는 리론을 넘어서 삶의 실감이며 생존의 증언이며 존재의 확인이며 삶의 지향의 토로이기에 청자연적일수만은 없다.     진정한 수필은 맹종하지 않으며 기죽지 않으며 공리에 구애되지 않고 류사성을 바라지 않는다. 청고한 심리상태에서 자연과 인생의 섭리를 터득하면서 인류사회의 도리와 심령을 파헤친다. 그러나 이런 창작심리상태는 결코 수필이 시대상에 눈감고 자기의 상아탑속에서 문은 닫아걸고 수레를 만드는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무병신음하거나 제멋에 겨워 뇌까리는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필은 인생일사나 자연의 천태만상, 력사사회현실에서 느끼고 사색한 자신의 삶과 체험을 나름대로 나타내기에 형식이 없다고 하고 형식이 없기에 수필이 된다. 수필은 지성적사고의 능력을 전제로 한 문학행위일수도 있고 도덕적인 의지행위일수도 있으며 미학적가치 판단에서 오는 사변성을 지닌 문학활동이기도 하기때문이다.     이 시대는 선악의 박투, 사랑과 한의 교차, 령혼과 육체의 충돌, 정과 리(理)의 부조화, 진실과 허위의 대결, 미와 추의 모호, 광분과 침체의 실조, 음모와 성실의 무승부, 얻은자와 잃은자의 희열과 울분, 경쟁시대 우승렬패의 희비극…등으로 인한 불안정서가 민중의 보편적심리로 꽉 차있다. 바람세찬데 고요히 서있을 나무가 없으며 “도화원에서 밭갈며” 음풍영월로 자족할수는 없다.     리론적인것, 비평적인것, 학문적인것, 설득적인것이 그 본질은 아니지만 단순한 신변적인 일상만을 뜻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의 발견이나 깊은 사고를 거친 깨달음이기에 수필처럼 인간성을 띤 문학형식은 없을것이다.     수필은 사람의 정감을 쓰고 사실을 쓰고 어떤 인생도리를 쓰는 등 삼라만상을 포섭하지만 천지간의 법칙을 벗어날수는 없다. 제약이 없는 수필의 자유창작은 필경 반면에로 나갈수밖에 없다. 이런 수필들에는 시대의 숨결을 들을수 없을뿐만아니라 인간생명의 약동감도 느낄수 없다. 물론 수필이 시대의 주선률이 될수는 없지만 “변연문체” 혹은 “업여문체”로 자족할 일도 아니다.     수필의 진수는 인성의 발굴에 있고 수필의 맛은 인성의 풍경선, 인간미 그 자체이다. 수필의 주제는 인생현장을 투시하고 삶에 대해 사색하며 희노애락을 반추하는데서 형성되기에 진실되고 랭철한 가슴으로 써야 한다. 수필은 심령의 메아리로서 모종의 정서적흥미로 독자의 심령속에서 미적향수로 메아리쳐야 하며 너 나의 인생에 대한 유익한 제시라야 문학으로서의 수필의 가치를 지닌다.    수필은 가슴에 새겨진 체험, 사색의 과정을 거치여 내면화되는 동안 려과된 정서로서 지혜와 진리에 접근하려는 정서이다. 이런 수필은 지혜의 내용으로써 우리의 인생현장을 비추어주는 등불 역할을 하게 될것이다. 수필은 회의성의 문학이다. 사회와 인생에 회의적이고 지성적일수록 한편의 수필이 나를 위안하려는 글만이 아닌 어떤 적극적인 의의를 담은 글이 될수 있다.     독일 현대파시인 노발리스는 “보이는것은 보이지 않는것에 접촉되여있다. /들리는것은 들리지 않는것에 접촉되여있다./생각되는것은 생각되지 않는것에 접촉되여있다.”고 했다. 문학창작은 세상을 보는법을 배우는것이다. 소설과 같은 다른 쟝르들이 예술경지에 이르게 한다면 수필은 인생경지에 이르게 한다.     본다는것은 단순한 목적일수 있지만 생각하는것은 무목적일수 없다. 본다는것은 관찰, 발견, 촉동, 사색에 이르고 수필은 그것을 드러내기이다. 현재 사인화경향으로 나가고있는 수필창작에서 우선 제기되는 문제는 “자유”와 “약속력”간의 모순이다. 혹자는 수필의 핵은 “수의성”이라고 하며 심지어 “무엇이 생각나면 무엇을 쓰고 어떻게 쓰고싶으면 어떻게 쓴다.”는 정도에 이르렀다.     정취가 있고 재치있는 수필은 직접 시대를 반영하지 않지만 시대의 밝고 어두운 면을 외면하지 않으며 시대의 맥박을 무시하지 않는다. 진정 훌륭한 수필은 시대를 포용하면서 시대를 초월한다. 또 시대를 초월하려면 심령의 빛으로 생활적인 시대를 조명해야 한다.    옛날 장자의 산문은 그 시대의 변연에 처해있었지만 그 시대를 무시하지 않고 아울러 “자아”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강렬한 심령의 빛을 반사하였다. 그의 이런 심령의 빛은 일체 어두운면을 투시하였으며 인생, 생명과 인성의 심처까지 조명해보였다. 수필창작에서의 변증원리는 찬연함과 담담함의 관계속에서도 체현된다. 한면으로는 변화무궁하여 마치 봄날처럼 꽃들이 아름다움을 다투고 다른 한면으로는 담담한 숲같고 무색무미의 맑은 물과 같다. 따라서 수필의 가장 큰 매력은 “비확정성”과 “창조성”이다.    자아표현으로 되는 수필창작이라도 작가는 주동적인식자로 될 때 인식주체가 되여지고 적극적심미자로 될 때 곧 심미주체로 되여지고 능동적창조자가 될 때 가치창조의 주체가 되여져야 하므로 정신주체의 부동한 층차에서 가장 높은 층차는 바로 자아실현이다.    인생을 해석하는 철학의 폭이 좁다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도 짧을것이다. 인간을 다루는 문학으로서의 수필은 인간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캐내고 고양하는 글이다. 수필가들이 자기에게만 흥미로운 지극히 사사로운 사연을 두고 내 사정이 곧 네 사정이라는 주관의지로 쓴것은 수필답지 않다.     3. 수필의 사상내용     1) 수필의 사상     영국에서는 수필을 “사상을 소유한 서정시”라고 한다. 그만큼 “모든 문학은 모두 선전”이라 한다. 한국작가 이현복은 그의 ≪수필의 문학성≫이라는 글에서 수필은 산문의 문학이며 과학정신과 합리주의정신에 바탕을 둔 문학정신이 바로 산문정신이라고 역설하고있다.    동일한 상태에 철학 또는 사상을 가진 사람과 사상이 없는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과 인생에 대한 사색에서 질적차이가 생긴다. 흔히 사상이라면 거창한것을 떠올리는데 사상과 감정을 문학언어로 표현했을 때의 그 체험과 소감이 바로 작자의 사상감정이다.    모종 의미에서 문학은 리상주의문학을 낳을수밖에 없다. 수필은 의도적으로 사회현실에 대해 비판적일 필요가 있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보다 랭철한 비판을 스스로 가할수 있어야 한다. 고요한 달밤의 피리소리만 있는 인간세상이 아니기에 우리에게 격동이 있게 되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분명한 비판정신과 선동성을 뼈대로 한 수필을 필요로 하게 된것이다. 축적된 서책지식이 생활철학을 낳는것이 아니다. 붓을 들기전에 사색하고 붓을 달리면서 사색하고 수필을 끝낸후에도 사색하는 작가라야 인생철리를 도출해낼수 있다. 용광로에 쇠덩이를 넣어서 강재를 제련해내듯 수필의 철학은 사색에서만 얻어진다. 그것은 원인에서 결과를 추출해낸 사상의 정화이다.     사회비리, 인간도덕, 변색한 사랑, 리페가 사이비한 문제, 인생고, 생로병사 등에 대한 지적인 사색에서 철학이 자란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생고란 무어냐 하는 사색의 저 끝에 철학이 묻어나온다. 철학사상의 뿌리는 생활의 옥토에만 뻗어있다. 수필이라는 글나무로 말할 때 꽃은 문학성이요 뿌리는 사상이다.     천차만별의 각자의 생활감수가 토로되는 수필이 일매지게 “녀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로 펼쳐질수도 없다. 깊은 수림속에 벼라별 새들이 다 한목소리, 한곡조로 노래할수 없다. 검지도 희지도 않고 온화하고 우아하기만 하고 인생고를 도외시하고 미소를 띠게 하는 글만일수도 없다.     체험은 각양각색이고 그 반응도 천층만층이다. 감각에는 간지러움만 있는것이 아니라 아픔도 있고 통증도 있다. 그것에 대한 사색이 심각한 사상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모든 감정에는 사상이란게 고유하기에 일단 자기를 고백하면 모종 견해와 주장을 피력하게 된다.    수필은 물과 같아서 고정된 모양이 없는바 어떤 그릇에 담기면 어떤 모양으로 존재한다. 수필은 단일한 정태적생명현상이 아니며 또한 단일한 동태적생명현상만이 아니라 상호간에 전화하고 상호간에 보충해주는 변증적통일, 화합의 관계에 놓여있다.    수필에서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것은 정감이다. 그러나 “예술정서는 본질상에서 지혜의 정서(디드로)”일 때 수필작가의 자연정감 내지는 사인정감이 심미적승화를 거쳐 일정한 예술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 수필이 아무리 진솔한 “자화상”이라도 개체관념의 “유령”으로 되기십상이다.     포에르바하는 인격층차설에서 “자아의 초월”은 외부환경의 약속밑에서 외부세계와의 융합하에서만 실현된다고 하였는데 수필에서 “개체”속으로만 파고든다면 개체정서가 아무리 아기자기하고 달착지근할지라도 독자일반의 심벽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면 그저 멋진 칼집속에 녹쓴 보검이나 다를바 없다.     수필은 재치있는 글솜씨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새로운 감각, 짙은 흥미성, 정서적감염. 평화로운 기분, 유익한 지식성, 느끼하지 않은 교훈성, 삶에 대한 재인식, 생활에 대한 애착감, 교묘하게 심어주는 지혜의 불씨…등 가치발견과 의미부여로부터 받아안은 인생공부가 되는데서 산생된다.    수필은 그만큼 생활 및 감수 자체인것이 아니며 그저 글을 짓는 재간만으로 쓰는것도 아니다. 진정한 수필작품은 작가의 지식, 인생경험, 미학적추구, 전부의 인격력량이 체현되여있는 지혜로운 사색의 결정이고 작가의 철학적사색과 예술정취가 현연되는 또 다른 심령세계의 축도인것이다.     2) 수필의 내용    수필을 쓰려면 풍부한 경험, 순수한 느낌, 진실한 생각, 자아의 정체성, 정교한 구성 그리고 선명한 주제, 명확하고 정확한 표현, 이런것들이 필요한것이지 자아표현의 도취나 발설이 아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이 시대를 초월할수 있는 영원성을 지닌 인간생존의 보편성을 내포한 작품, 개성적인 개인을 살면서 개성을 초월한 보편성을 지녀야 참다운 수필이 될수 있다. 따라서 한편의 수필에 무엇을 담을가? 하는 문제는 우선 나서는 난제이다. 수필작가가 리별의 고통, 고독의 애수, 생사의 허무, 성패의 고뇌, 환득환실의 무상함, 향수의 애절함, 영예와 치욕, 희비 등등에 대해 쓰고 사랑, 우정, 가정의 행불행을 찬미 혹은 개탄할 때 인간일반의 사상운동을 등지지 못한다.     자기 자신의 심령세계를 파헤칠 때 생명의 본질이 파악된다. 생명운동과 그 표현보다 더 심각한 주제는 없다. 사상은 생명력을 가지고있다. 동일한 사람의 수필이 동일한 문제로 엮어지는 리유는 사적인 울타리안에서 나오지 못하기때문이다. 정감의 우물안에서 보는 하늘이 넓으면 얼마나 넓겠는가?     보편성은 어떤 인간, 어떤 사건에도 공유한다. 하여 개체성은 그것이 어디에 있든 저변에 보편성이라는 분모로 련결된다. 가장 민족적인것은 세계적인것이라는 말도 이와 소통된다. 수필문학에서의 개별성과 보편성도 마찬가지이다.     “재능의 번뜩임, 매력적인 이미지의 정서, 그러한것이 반짝이는 빛을 발하면서 법망이 미치지 못하는 우리들 세계의 밤을 비추어주는 글ㅡ(이온 알베레스)”여야 정서적이미지가 현연되는 수필이 될것이다. 그러자면 사적인 소재를 자기화하면서도 일반화하고 다시 주제화하여야 할것이다.    수필은 정감을 리성화해야 한다. 수필은 자아표현이지만 결국 문학적대화이다. 명제는 작자의것이로되 흔상은 작자 혼자만의것일수 없다는 동화현상 즉 공감이나 감동의 동질화를 노린 정감발로이다. 자아표현이 독주하면 자아실현은 되고 주제의식은 분명해질지 모르되 독자와의 대화관계를 맺어주는 보편정서의 흐름은 막힐 위험이 있으며 접수미학의 효과는 령점이 되기십상이다.     수필에서 사상의 정서화는 원활하게 이루어야 한다. 사상의 정서화란 제재를 내면적요구에 의해 즉 작자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으로 합리화하는 개성적인 시각이자 마음이다. 이때의 개성은 어디까지나 보편성을 기조로 한 인간과 삶에 대한 자기분석이요 자기 평가이다. 때문에 지성의 정서화는 사상의 정서화가 되여야만 가능하다. 무릇 주제는 글의 핵이다. 수필은 나무를 쓰면서 가지나 뿌리, 잎이나 열매중 그 어느 하나를 통해 나무전체를 말하려 한다. 이런 창작시각에서 라도향의 ≪그믐달≫과 같은 작품이 좋은 사례이다.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너무 요염하여 감이 손을 댈수도 없고, 말을 부칠수도 없이 깜찍하게 어여쁜 계집애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우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버리는 초승달은 세상을 후려삼키려는 독부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만,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妇)와 같이 비정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에 둥근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 같은 달이지만,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公主)와 같은 달이다. 초승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만,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한등에 정든 님 그리워 잠 못들어 하는 이나 못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은, 무슨 한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은 보여주는 이가 별로이 없을것이다.     수필은 비유와 상징적문장으로 주제의 선명도를 높여주고있다 작가가 어떻게 살고있고 어떻게 생각하면 어떤 수필이 나온다. 살아가는것과 문학창작은 궁극적으로 세상보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작자는 체험의 내용과 느낌을 전달하지만 독자들은 사실보다 느낌, 사변적인 의미의 부여에 더 관심하게 된다.     수필의 매력은 그 소탈하고 진지한 정감교류에 있다. 수필에서 주제의 생신성이 곧 생명이므로 일상에서도 숨겨진 본질을 파낼수 있어야 한다. 우주만물의 천태만상, 인간의 상호관계, 인간내심의 오묘한 변화와 그것의 발로를 따뜻한 인간애를 지니고 투시하는 자세가 없으면 수필글감이 스쳐지나고 만다.      작가의 령혼이 가장 리상적인 예술미의 옷을 입고 참신한 사상의 발걸음으로 심령세계의 기묘한 풍경구를 답파도 하고 혹은 불붙는 정조의 산마루에 치달아 올라 쩌렁—메아리치도록 한소리 웨쳐도 봄직하고 혹은 마음의 깊은 호수에 심상의 쪽배 둥실 띄워놓고 외가닥 노를 열심히 저어갈 때 련꽃잎에 령롱한 이슬같은 오감이 뇌리속에 비쳐듬직도 한것이다.     때론 망각의 이끼 푸른 력사의 기구한 돌무더기사이로 회고의 수레를 몰아가며 자기성찰의 채찍도 쨩—울려보고 되돌아와 붐비는 인생현장에서 숙명 비슷한 비애를 느낄 때, 내자세부터 정리하면서 반성의 쓴 술잔도 기울여보고 때로는 먼지낀 관습의 구석구석을 비평의 비자루로 쓸어도 보며 생명의 꽃잎 지는 세월의 언덕에서 두다리 퍼더버리고 초로인생의 허무함에 꺼이꺼이 목놓아 울어도 보는 때, 자기 심령의 뒤뜨락에 파놓은 참회의 우물에 갈구의 드레박을 철렁!넣어보는 때가 곧 수필의 매력으로 현연되는것이다.     그러면서도 류의할바가 있다. “산문은 조금 전기식이 될수도 있는데 자질구레한 ‘제1전기식’같은 신변잡사를 쓰기보다 심령생활의 ‘제2전기식’을 써야 한다. 개인의 희노애락을 쓴 산문이라도 정신경계의 구별, 정조의 구별, 인격의 구별이 있다. (류재복)” 작가의식을 고통이 없는자, 가짜 고통이 있는자, 작은 고통이 있는자, 대고통자, 대각오자 네부류로 나누어 고찰할수 있다.     자고로 문학은 대고통자, 대각오자들의 납함과 혈로를 개척하는 고매한 정신에서 활력을 확보해왔다. 이런 대고통자, 대각오자들에게 미래문학이 기탁되여졌다. “문학의 공리성에서 ‘공’은 당대에 있고 ‘리’는 천추에 있다.”는 말은 다 진리이다. 수필은 “인간구원의 본령”만은 빛나게 지켜야 할것이다.      4. 수필의 창작원리     수필은 시작부터 친구와 무릎을 맞대고 속삭이는듯한 부드러운 어조를 잡을수도 있고 콕 찌르는듯한 맵짠 어조로 시작할수 있다. 수필은 묘사, 설명에 목적이 있는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생각, 느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데 있다. 수필전반에 걸쳐 느낌만 쓸게 아니라 자기의 태도, 평가가 주축이 되여야 한다.     수필은 어떤 면에서 흥미를 끌수 있도록 운치있게 소재를 다루어야 한다.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물어내고 그 생각이 다음 생각의 단서가 되도록 생각과 느낌의 이음새를 빈틈없이 짜나가면서 사색의 론리성, 정감파동의 론리성을 도모하는것이 이른바의 “붓가는대로” 쓴다는 수필의 운치이고 향기인것이다.     한국의 수필리론가 원형갑선생도 아주 유익한 교시를 하고있다. “수필은 지성으로서의 시력을 떠날수 없고 따라서 시대, 사회를 외면할수 없다. 문학이 세계에 대한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그려내고 제시하는 작업이라 할 때 그 세계와 인간관계를 지성적으로 전개하는것이 수필이라 할수 있다.”그러므로 가장 절실한 생활얘기로부터 내용을 펼쳐나가되 단순한 사실같으나 어떤 의의를 부여할 때 평가를 내리고 의로운 방향에로 슬며시 끌고나가야 한다.    수필을 씀에서 해학적인 자세로 우스꽝스러운 인생마당을 조명하는 적극적이고 당돌한 마음의 준비가 특별히 요청되는데 가능한 정서적이여야 한다. 정서는 수필글을 살찌게 하는 기름이요 서정성은 수필의 령혼이다. 철학적사색이 융화되여있으나 서정이 없는 수필은 돌배같이 틉틉하다. 그래서 어우러진 정과 철학이 절실한것이다.      1) 수필의 주제의식      수필의 주제란 작가가 나타내려고 한 인생에 대한 태도나 관점이며 수필에 용해되여 있는 사상으로서 수필의 의미내용에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이다.달리말하면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의미이고 해석이다. 수필은 자기만을 의식할게 아니라 희곡창작에서 무대를 의식하고 쓰듯이 우선 독자를 의식하고 화제를 선택해야 한다. 어떤 주제를 취급하느냐에 의해 그 작가의 사상이나 인생관이 엿보인다. 주제는 수필창작의 동기에서 비롯되지만 동기 그 자체는 아니다.     수필의 주제는 체험담이라든가 모종 사건속에서 구체화되여 나타나지만, 글감 그 자체는 아니다. 수필주제는 작가가 수필을 쓰려고 하는 의도나 목적과 관련은 있지만 목적 자체는 아니다. 주제는 작가의 인생관이나 사상에서 이루어지지만 작가의 인생관 그 자체가 주제는 아니다.    수필의 주제는 작가의 인생관이나 사상이 의미화, 형상화된 일종 정신경지이다. 수필의 주제와 작가의 체험담, 인생관이 별개의것이 될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보다 무거운 소재 즉 인생현장을 객관적인 시점에서 투시할수도 있다. 이렇게 볼때 개인의 체험, 사실 모두 수필거리가 될수 있다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은 글을 쓸수 없다. 작가가 작품속에서 표현하려는 주제의식 여하에 따라서 작품의 문학성을 가늠할수 있다. 똘스또이가 주로 인도주의를, 와일드가 탐미주의를 작품의 주제로 취급한것도 그의 인생관과 맥을 같이한다. 필요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질수도 있지만 자신의 인생문제와 결부할 때가 많다.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한 사람은 소재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은 소재가 대체로 자연물과 연관된다. 어떤 이는 철학적소재를 즐겨찾으며 또 어떤이는 주제와 소재를 제한없이 구사하기도 한다.    수필은 인류감정의 상태를 개선하는 문체이고 풍부하고 다채로운 인생이 피워올린 꽃, 독특한 향기가 있는 생명의 꽃송이다. 체험과 사색의 결정체인 수필에서는 담화내용을 야하지 않고 경박하지 않게 설정해야 하며 대화를 이끌어나가다가 매섭게 또는 힘차게 매듭을 짓되 사색의 여지를 두면 좋다.     이런 인생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확대, 발전되면 인간의 문제로 객관화되고 문제의식으로 살아움직이게 된다. 문제의식은 인간의 근원적인 과제와 련결되며 나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문제가 되고 인류공통의 문제로까지 확대될수 있다.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문자란 워낙 민감한것이므로 주제화전략차원을 부단히 높여야 한다. 작가는 생활에서 다른 사람과 공감을 나눌수 있는 가치있는 모멘트를 포착하고 문제의식이 예리한것일지라도 론증하지 않으면서도 자아의식의 정당성과 공익성을 예술적으로 감득시킬수 있어야 독자들이 귀를 기울여보는 심령의 “회음벽”이 될수 있다. 한국 수필평론가 장세진 선생의 일가견을 참조해 보자.     …흔히 수필과 에세이가 같은 의미로 통칭되고있지만 전자는 일상생활의 자질구레한 에피소드를 살아있음에 대한 가벼운 환기쯤으로 그친다면 후자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그려 존재하고있음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주는것이 아닐가 한다. 편견이라는 두려움이 없지는 않지만 이렇게 볼 때 수필은 신변잡기에 불과하고 에세이는 문학이 된다는 가설을 해봄직하다…    아주 명석한 론술이다. 수필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층차의 선택성과 가치함량에 대한 훌륭한 제시이다. 참으로 훌륭한 수필이라면 자아실현의 주체척도가 되고 개인의 심미표준이 되기도하면서 나아가서 력사의 범주속에 들어가서 시대성을 띠게 된다. 가) 주제의 의미화: 주제의 의미화란 주제의식을 구체화, 문학적인 자기화(自己化)의 수법으로서 일종의 기법이 아니라 작자의 독창적인 정감의 발현인이다. 부는 바람을 덧없는 인생에 비유하고 흐르는 물을 무정한 세월로 의미화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바람을 공수래공수거의 의미로, 물을 유연하게 사는 삶의 자세 등으로 해석할수 있다. 그것이 수필의 생리이자 호흡이다.     독일의 철학자이며 사회학자인 아도르노는 “예술의 인식공능은 그의 비판원칙을 체현하는것이고 진정한 미학적감수는 필경 객관에로의 지향이며 예술의 추향은 진리이다. 예술은 반드시 현실의 모순성을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예술은 그것의 진실한 내함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적반사(反思)의 변증법을 체현해야 한다.”고 력설하면서 “수필은 특별한 비판형식이다.”라는 명제까지 내놓았다. 아도르노의 미학사상은 구라파사회에서 행복한자들의 귀에 거슬리는 이단철학이였지만 수필창작에서 자아의식가치 취향에 대한 밝은 지시등이 아닐수 없다.    훌륭한 수필은 새로운 감각, 짙은 흥미성, 정서적감염, 평화로운 기분, 유익한 지식성, 느끼하지 않은 교훈성, 삶에 대한 재인식, 생활에 대한 애착감, 교묘하게 심어주는 지혜의 불씨…등 인생의 가치 발견과 의미부여로부터 받아안은 인생공부가 되는데서 산생된다.     수필은 파란만장한 인생의 고개길을 허위단심 넘으면서 생활의 모퉁이 모퉁이에 이런저런 풍경들에 감흥이 절실할 때 혹은 무시로 마주오는 상념과 마주하고 잠간 숨돌리며 여유있는 마음가짐으로 걸어온 길을 더듬어 보고 이제 또 걸어갈 길을 가늠할 때 문뜩 피여나는 정감의 꽃이라고 할수도 있다.     나) 주제의 상상화: 주제의 상상화 즉 중심사상의 상상처리는 바로 모종 주제전달을 도모하는것이다. 수필의 주제전달은 사실의 서술에서가 아닌 정서의 구체화나 의식의 형상화로써만 의미있기에 리성보다는 정감을, 직설보다 우회적수법을 써야 효과적이다.     그 내용이 설사 교훈적인것, 비평적인것이라 해도 그 전달에서 독자가 느끼게 하고 공감하게 하고 깨닫게 하는 동화효응을 도모해야 한다. 수필은 사실보다는 감수를, 머리보다는 심장을 통함으로써만 주제전달이 이룩되는 문학이기때문이다.    “자기를 너무 자신에게만 집중시키지 말고 사회를 자신에게 집중시켜야 한다.”(고리끼), “위대한 작가들은 사회를 묘사하는데 있어 단순히 묘사방식으로 출발하지 않는다. 작가는 좀 더 비판적인 과제를 가지고있다고 할수 있다.”(엘렌지우스) 개체정서가 아무리 아기자기하게 서술될지라도 독자의 심벽을 울리지 못한다면 칼집속에 보검이나 다를바 없다.     다) 주제발굴: 수필작가는 “내우주”의 대문을 활짝 열고 “나”의 감성, 정감, 사상으로 자연과 사회, 인생과 대화하는 과정에 “외우주”의 맥박에 감응되고 그로부터 방출된 사상의 불꽃은 자신의 심령세계의 조명만이 아니라 독자들의 심령세계에 향도의 빛이 될 때 작가의 자아의식의 가치실현이 이루어진다.     수필적소재는 많지만 그것을 독자를 취하게 만드는 미주로 만드는 일은 별개의것이 된다. 그만큼 감수의 라렬이 아니라 작자의 지식결구, 인생경험, 미학적추구 등 전부의 인격력량이 체현되는 지혜의 결정체이고 그만의 철학적사색과 정취가 현연되는 심령세계의 생생한 축도로 된다.     주제의식은 작가의 철학과 련관된다. 필자 자신의 내부에 어떤 심리준비가 되여있느냐에 따라서 대상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비극적철학을 가진 사람은 인간의 불행한 사실에 시선을 박고 종교적인 인생관을 지닌 사람은 련민과 사랑, 구제와 초월에의 사실에 눈길이 머물고 눈물을 머금고 동조하게 될것이다.     그리하여 타인에게는 평범한 사실이 자신에게는 충격적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때 평소에 지녔던 문제의식이 활발하게 움직여 이를 분석, 정리하여 주제를 파내는데 제재보다 주제가 선행될 때가 있고 반대로 제재가 주제보다 먼저 주어질 때가 있다. 수필을 무성한 백양나무에 비유할 때 푸른 잎속에는 끊임없이 수액(树液)이 흐르고있다. 그 잎이 소재라면 그 수액이 수필의 주제가 된다. 흐르고있는 수액이 끊어질 때 잎은 락엽이 된다. 락엽이 많이 생기면 조화와 균형과 완전성을 잃어버린 병든 나무이다.     라) 주제의 생명력: 수필의 생명력은 주제의식에서 결정된다. 수필은 감응정서를 본바탕으로 한 인간화, 지성화의 문학이다. 수필에서의 지성화란 자기 감정의 순화요 승화이다. 따라서 수필은 개인정서를 보편화해야 한다. 정서를 보편화함으로써 많은 청자를 얻을수 있고 자기를 독자에게 리해시킬수 있다.    무거운 제재라도 관념화되여 주제의식이 리해와 공감의 벽을 넘지 못하면 단명할것이다. 소재는 자기감동으로 선택하나 주제전달은 독자의 접수로 완성된다. 그것이 청자연(靑瓷硯滴 |)이든 란초이든 백학이든 그리고 청초한 녀인이든 내 울타리안에 풍경만이라면 뜨락풍경일뿐 대천세계는 못되는것이다.     수필작자는 어떤 류형의 정서이든 지성화해야 한다. 정서의 지성화란 정서를 객관화, 보편화함으로써 자기감정의 순화와 자기 리해에 이르는것이다. 그 지성화가 부재하면 자기중심에 몰입되거나 혼자 흥분하면서 감상일변도의 정서를 과장하여 글을 허공에 뜨게 한다.     반대로 지성을 정서화해야 한다. 지성의 정서화는 자기과시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것이다. 정서의 지성화는 사적감정의 과다한 로출을 제거하는 작업으로서 사실의 긴축, 대화의 함축, 의론의 간결화 등이 이에 속한다. 수필에서 의미화는 작가의 공감을 전제로 한 정감화이고 제시성적인 사상화이다.     흔히 자기안으로만 몰입하거나 흥분에 사로잡히면 지성화작업이 잘 안되고 자기감상에 매달린다. 아무리 론리적이고 사변적인 내용이라 해도 마주앉은 독자를 무시하는듯한 주장, 설교 일변도의 대도리로써는 공감을 얻을수 없다. 박종화의 수필 ≪淘河와 靑庄≫이 정감화, 사상화한 좋은 례이다.     세상에 가장 가련한것은 일하고도 먹지 못하는것이요, 그 대신 가장 가증한것은 놀고도 잘 먹는것이다. 인간의 온갖 불평과 눈물의 반 이상이 여기에 연유함이라 해도 틀림이 없을것이다.    “淘河勞而常飢 靑庄佚而常饱”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淘河는 애를 쓰고도 늘 주리는데, 靑庄은 놀면서도 늘 배불리 먹는다는 말이다. 여기에 淘河와 靑庄이라는것은 물새의 이름이다. 一名으로 淘河라고도 하는, 俗名으로는 “사다새”이니, 이 새는 하루종일 고기를 엿보며 강물의 벌흙속으로 다니면서 날개와 입부리를 더럽혀 가며, 고기를 찾느라 애를 쓴다. 그러나 꽤많은 고기들은 淘河의 그림자를 피해 물가로 숨어 나오는것이다.      그런데 靑庄은 항상 물가에 멀쑥하니 서서 밖으로는 한가한척 아무것도 구하는것이 없는 듯이 보이나, 淘河에게 쫓겨 물가로 숨어 나오는 고기들을 아무런 수고도 없이 날름날름 배부르게 잡아먹는것이니, 그러므로 옛사람들이 일찍이 淘河와 靑庄을 世间利慾人에게 비겨 말해 온것이다……     애를 쓰고도 항상 굶주리는 淘河와 놀면서도 항상 배불리 먹는 靑庄을비교하여 어렵잖게 “불평등”이란 주제의식을 침투시켰다. 시가 주관정감으로 감동을 주는 문학이라면 수필은 개체정감을 객관화 하여 독자의 감동을 시도한다. 수필작가들은 강렬한 정서성을 전달하려는 목적에서 보편적인 공감을 전제로 내세운다.     조설근선생이 “세상에 정통함은 학문의 힘이요 인정에 숙달함은 문장의 힘이니라”하였는데 수필작자로서는 참조계가 아닐수 없다. 같은 모래에서도 금싸라기를 찾아내는 사람이 따로 있다. 체험한대로, 느낀대로 토로해야지 무병신음하지 말아야 한다.     2) 수필의 진술방식    수필은 그 특징, 창작수법상 산문과 대동소이하다. 수필은 일정한 사건체계가 없이 필자가 생활에서 체험한 사실과 사건, 사물에서 받은 정감충동, 사색의 파동을 적는 글이므로 느낌이 주체이지만 감정을 서정화한 동시에 객관화한 글이다. 수필은 사실적인 경험문학이라 할 때 상상과 수필은 어울리지 않는것같지만 그 자체가 지성을 바탕으로 정서적이고 신비한 이미지로 부연하기에 상상력 련상능력이 수요된다. 수필에서의 상상은 작가의 경험적사실을 진실에 근접시키기 위한 미적창조과정다. 수필은 자기 체험에서 인기된 인생의 보편적의미를 비쳐주는 하나의 거울이다. 그것이 바로 수필이 노리는 형상화이다. 그리고 독자는 그 거울속에서 예술적향수를 느끼면서 자성하게 되고 계발을 받아 자기 인생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게 한다. 이렇듯 수필이란 인생미학을 창출하므로 생활수기와도 다르다.    수필작가의 창조적사고와 의식의 변화는 곧 작품의 창조성과 문학성으로 이어져 나타난다. 례문에서 작자의 개인적정서나 체험을 보편적인 공감대를 전제로 자기의 체험을 재치있게 공유화하였다. 쌀로 밥짓기는 지능인이면 다 배워낼수 있지만 쌀로 술을 빚어 쨍ㅡ 취하게 하는것은 확실히 복잡한 기술이다.     수필이 사실 그대로의 기술이라면 무의미한 기억의 재생일뿐이다. 사실을 완벽하게 반영하는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단순한 사실의 라렬로는 아무런 감동을 느낄수 없다. 즉 재생적상상과 생산적상상이 작가의 경험적사실과 한데 어울려 이루어진것이 바로 수필이다.     수필에서 체험은 바탕이고 감수가 생명이지만 독자의 공감대를 념두에 두고 선재해야 한다. 해저무는 창가에서 석양을 보며 생각을 불태운다거나 밤새워 풀벌레소리에 귀기울이며 어떤 사색에 잠기는 일은 붓쟁이가 아니라도 다 가능하다. 그만큼 작가는 선택한 제재의 자기동화(自己同化)보다 독자화해야 수필이 공적인것으로 살아난다.     제재에의 동화란 물아일체(物我一体)의 동질화(同质化) 현상이다. 이는 철저하게 나를 먼저 비움으로써만 가능하다. 비운자리에 다시 채우는 정감, 그게 곧 나의 내심세계의 진실이다. 그 주제의 함의가 인간성 즉 인간화된 작가의 개성적품질이고 인생자세이다.     3) 수필창작의 기법     (1) 수필의 발상: 발상은 창작동기 또는 실마리를 잡는 두뇌작용으로서 착상, 령감, 구상(아이디어)으로 표현된다. 수필에서의 발상은 일반적으로 경이와 충격에서 얻어진다. 세인들이 일상적으로 겪거나 볼수 있는 일반적현상에서 자기만의 받아안은 충격과 경이로움, 그것은 독창성을 띤 수필의 주제를 떠받치는 제재가 된다.     수필은 어떻게 쓰이는가?…비유해 말하면 한 사람이 늘 하던듯이 길을 가는것이 곧 산문과 같다고 할수 있다. 산문은 생활속에서 가치있는 그런것을 써낸다. 알심들이지 않고 지어내지 않으며 더구나 골머리를 앓지 않으며 뇌즙을 짜내지 않는다. 산문은 최종적으로 감각을 좀 쓰고 정감을 좀 쓰며 어떤 맛을 좀 쓰면 된다. 그런데 조금 쓴다는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잊을수 없게 한다.    시가 불쑥 튀여나온다면 소설은 대뇌의 긴장한 로동의 결과이다. 산문이 태여날 때는 특별하다. 산문을 하늘에 구름같다고나 할가. 어디서 오는줄 모르고 언제 생겨날지 모른다. 당신의 생활, 당신의 마음은 씻은듯 맑고 푸른 하늘이다. 당신이 머리들면 산문의 편단들이 방불히 흰구름처럼 이미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것은 깨달음에서 온것이다. ( ≪산문≫ 1997년 제2호)    한편 구름덮인 하늘아래서 번마다 꼭 비가 오는것은 아니다. 우뢰울고(정감의 격렬한 파동?) 번개가 번쩍거려도(사색의 순간적방전?) 한바탕 심령세계만 소동할뿐 비는 끝내 내리지(글이 잘 이루어지지?)않을 때가 흔히 있다. 생활체험(구름)속에 잠재한 모종 현상, 사물과 나의 정감, 사색이 충격적으로 “방전”되여 잠간 천둥(창작충동의 격발?)친 것뿐일수 있다. 때때로 떠오르는 쪼각구름 몇송이를 보고 애써 끌어모아서 비를 내리게 하려고 욕심부리지 말아야 한다. 쪼각구름은 하늘을 수놓는 한두점의 풍경일뿐 비구름이 아니다.    열개의 축적에서 하나를 골라쓰면 좋은 글이 될수 있고 세개를 루적하고 하나를 골라쓰면 꽤 읽을만한 글이 되며 둘을 저장하고 곧 하나를 골라쓰면 옷소매를 잡고 팔꿈치를 보는격이 되고 하나에서 하나를 쓰면 곧 번대머리가 중이 되는격이라 근근이 재료일뿐이다.     가) 발상의 전제: 수필을 위한 발상이 자연발생적일수도 있지만 발상에 선행하는것은 관찰과 사색이다. 수필의 시작은 모든것에 애정을 주느냐에 달려있다. 모든것에 관심을 기울이다보면 그 마음에 다가오는것이 있게 되는데 그것이 곧 글감이 될수 있다. 늘 보는것일지라도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보느냐 않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내가 관심과 사색을 달리기전에는 보이지 않던것들이 내가 관심을 주게 되면서부터 특색 있어 보인다. 그것들을 단순히 보이는것들로만 보지 말고 그것들의 독특한 소리, 빛깔, 모양을 작가적인 촉각으로 듣고 보고 느끼고 그것을 잡아내는것이 수필적핵의 발견이다.     나) 발상의 기법: 수필착상은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 착상은 모방, 선택, 분석, 종합, 리상화의 론리구조속에서 그 씨앗을 품는다. 꾸준한 독서와 사색과 체험의 축적에 의한 지적인 자산을 가지고있는 사람에게서만 일어난다.    ① 체험적발상: 수필의 발상은 체험의 충격과 파동에서 출발한다. 문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이지만 수필은 자기의 이야기이다. 수필은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인만큼 지성인은 직접적인 경험의 세계에서 무시로 불현간에 발상의 계기를 만날것이다.    ② 상상적발상: 문학은 상상의 소산이고 작가는 무한한 상상력의 존재이다. 상상의 세계는 있을법한 가능성의 세계로서 사물을 직시하는 눈이 표면적이라면 상상은 립체적공간을 의미한다. 자기가 가지고있는 지식이나 감상, 체험들을 새로운 정서로 용해시켜야 한다.    ③ 정서적발상: 많은 감정중에서 유독 강하게 지배하고있는 분위기가 정서이다. 개성적인 인간이므로 정서에 짝이 있을수 없다. 시인은 시적령감을 통해서 작품을 탄생시키지만 정서를 폭발시키여 암시와 상징, 정과 한, 삶의 진실과 고뇌를 사색하고 관조하면서 새로운 예술경지를 펼친다.    ④ 편중적발상: 느낌에는 짝이 없다. 같은 생활소재라도 기호에 따라 시각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자연에만 관심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인간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자기 관심분만을 애착함으로써 그 분야의 전문적인 식견을 수필로 나타낼수 있다.    ⑤ 직업적발상: 오래동안 한가지 일을 하다보면 모든 생각이 한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보고 리해하는 단계에서 직업적인 견해가 우선적으로 따르는수가 많다. 나무를 보았을 때도 교사는 교사로서의 직업의식이 발동하고 기술자는 기술자적인 직업의식이 발생하기마련이다.     (2) 주제설정: 주제는 동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동기자체가 바로 주제는 아니다. 주제는 작자가 수필을 쓰려고 하는 의도나 목적과 관련되지만 목적 자체도 아니며 주제가 작자의 인생관, 세계관 또는 사상에서 이루어지지만 인생관, 세계관 그 자체만도 아니다.    주제설정의 기준에 네가지가 있다. 우선 되도록 한정적인것이라야 한다. 주제한정은 사상의 약속이다. 나무를 그림에서 소설이라면 뿌리, 줄기, 가지를 있어야 할 제자리에 완벽하게 갖추어야 하겠지만 수필에서는 곁을 쳐서 복판을 울리는 수법을 잘 쓴다.     주제는 처리가능한것이라야 한다. 경험한 그 실체는 창조의 동기가 된다. 수필은 작가의 생활일상을 재음미, 재조명함으로써 의미화가 가능한 문학이기때문에 주제는 독자가 공감할수 있는것이여야 한다. 그리고 이런 바탕우에 상상력, 련상력, 직감력, 분석력, 추리력, 창조력, 유모아 등 일곱가지의 자질도 겸비해야 할것이다. 주제설정의 요령을 다음같이 귀납할수 있다.      ① 가설추리: 가령 세계적명화가 도미니크 앵그르의 비너스나, 샘, 목욕탕 등 명화에 녀인들은 어이하여 모두 풍만한가? 왜 정신적으로도 가냘픈 심성의 질이 아니고 근육질일가? 이런 가설에서 련상을 발휘해 고대미의 기준과 현대미의 기준에 대해 사색해 볼수 있다.     ② 류사현상; 자연을 사랑하다보면 어떤 느낌을 얼마든지 정리해볼수 있다. 그리고 습관이나 공통된 생활현상에서 류사성을 발견해 낼수도 있다. 이소프우화 ≪락타와 양≫의 이야기에서 사실을 통해 능력의 한계와 각자 장단점이 있다는 도리를 류추해 볼수도 있다.   ③ 대비현상: 가령 사람들의 공통점을 비교법을 통해 찾아보아도 흥미로운 수필적접근이 가능할수 있고 반대로 대조법을 통해서 얻을수도 있다. 례컨대 조선족은 톱을 당기면서 자르는데 중국식톱은 톱이가 반대방향으로 되여 밀면서 자른다든가, 스픈의 사용에서도 미국인은 밀어내면서 떠올리는데 우리는 앞으로 당기면서 떠먹는 사실 등 대조에서 사고방식의 차이점을 도출할수 있다.    ④ 의문현상: 모든것을 의심하라는 데카르트의 명언이 있다. 인간사회는 원래 곤혹스럽고 접수할수 없는 의문투성이로 굴러가는데 스스로의 자문이 없을수 없다. 인생현장을 조명하고 파헤치려는 마음만 가진다면 의문의 갈구리를 들고 인생의 미궁속에서 금싸라기같은 수필소재를 파낼수 있다.    ⑤ 역설적착상: 기존의 개념이나 가치를 정반대로 생각해보는 착상이다. 가령 갑부들이 재산을 끌어 모으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로심초사하는 현상과 비록 가난하나 평화가 깃든 집에서 살며 가난이 죄라지만 꼭 불행만은 아니라는 도리를 역설적으로 증명할수도 있다.    ⑥ 고정관념: 가령 가을에 관한 수필을 쓴다고 하자. 고정관념에 매달려 있다 보면 슬픈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결실의 계절, 독서의 계절중 어느 하나를 택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진부해지기 마련이다.    ⑦ 시점변화: 사물을 관찰하려면 전방위적으로 해야 하듯이 어떤 소재를 택하여 합당한 주제를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관점을 바꾸어 다각적이고 다양한 관찰이 필요하다.    ⑧ 풍속착상: 낡은 지식, 낡았다고 생각되는 사고, 사상, 낡았다싶은 인습이나 풍속에서 새로운 인성의 양상을 발견할수도 있다. 가령 첫눈길을 걸을 때 앞에서 걷는 사람의 발자국을 밟으려는 본능적행동에서 인습의 내막을 깊이 파헤칠수도 있을것이다.     ⑨ 결합착상: 이 사고법은 이것저것 이질적인것들을 서로 결합시켜보는 사고법을 말한다. 발상의 전환을 위해서 자기가 생각하고있는것에 관계없거나 혹은 인연이 먼것들을 끌어들여 둘러맞추다 보면 새로운 착상이 생길수 있다.     ⑩ 사회문제발굴법: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다 보면 새로운것을 창안해 낼수 없다. 사회페단을 전문 발굴하여 볼 필요도 있다. 수필은 작가의 인생모습을 투영시킨 글로서 주변인물이 아닌 작가의 심경, 리상과 철학, 인생관, 교양, 취미까지도 드러낼수 있다.     (3) 수필의 기법: 수필의 기법이라 하면 흔히 발상의 기법, 주제설정의 기법, 소재선정의 기법, 서두쓰기의 기법, 제목붙이기의 기법, 구성의 기법, 문장표현의 기법, 해학의 기법, 상상의 기법과 마무리기법 등을 포함시키고있다.    ① 류추의 기법: 서로 다른 사실들을 몇가지 렬거하고 공성을 류추해내는 기법이다. 이러한 기법은 수필에서만 가능한 수법이다.    ② 순서점진식기법: 시간순서에 따른 구성은 려행수필에 많이 쓰이고 공간순서는 소설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두가지 구성법을 혼합될 때 참신한 맛을 줄수 있다.       ③ 이야기식수법: 수필의 계기로 되는 사건을 긴박감나게 소묘하고 곧 해석에 들어가는것인데 친근한 글로 접수될수 있다.    ④ 교훈식기법: 주제를 끌어내기 위한 교훈적인 이야기를 쓰면서 생활적정서를 불러일으키고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법이다.    ⑤ 주정토로기법: 걷잡을수 없이 정서를 쏟아내는 기법이다. 긴박감과 충격속에 계속 정서를 쏟아내여 감동과 공명에로 이끌어간다.    ⑥ 묘사형기법: 정서가 풍기는 경물묘사로 주제사상에 배경을 설치하는 기법이다. 이것은 인간적공감성에 바탕을 둔 기법이다.    ⑦ 시적기법: 명시 한구절 인용하여 시작을 떼여 면면한 사색으로 정제되여 간결하면서도 철리시처럼 글을 짜나가는 기법이다. 례: 생명의 줄이 끊어질 때       너도 그 한가닥이라면       울리는 조종(弔鐘)은 너를 위해서도 울리나니       묻지를 마라.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⑧ 의론식기법: 주장이나 결론으로 시작한다.    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말은 정신적가치를 중요시할 때 흔히 인용되는 금언이다.        ⑨ 인용형기법: 유명한 말이나 명언 등을 인용하여 시작한다.     례: 죽은 녀인보다도 더 불행한 녀인은 잊혀진 녀인이라는 말을 누가 했던가? 살아있는 존재로서 곧 잊혀진다는것은 슬픈 조우이다.     ⑩ 해설형기법: 해석으로 시작한다. 제목의 뜻, 집필동기, 말풀이 등이다.     ⑪ 가정형기법: 가정적설문으로 시작한다.     례: 인간의 타락요인중에서 가장 본질적인것은 무엇일가? 이 현념적인 물음에 나는 얼마나 정확하게 대답할수 있을가?       ⑫ 고백형기법: 자기의 약점을 곧이곧대로 고백하는것으로 시작한다.      례: 나는 남이 다 가지는 장기중에서 하나도 가진것이 없다. 장기가 뭐냐고 물으면 어정쩡하게 독서라고 말한다. 독서가 장기일수는 없음을 알면서도 나로서 쉽게 나가는 말이다.         ⑬ 심경토로법: 본론에 앞선 작가의 느낌이나 현재의 절절한 심경을 토로하는것으로 시작한다.     례: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아프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고 한다.  첫사랑을 마지막 사랑으로 장식하겠다던 맹세들은 어찌하여 변질하는지 생각해본다.    ⑭ 전도적서술법: 결론적인 의의 또는 중심사상을 우선 문장 첫머리에 제시하고 거기에서 하고싶은 말을 풀어나가는 기법이다. 이 서술방법은 다음의 서술내용을 알고저 하는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의키고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⑮ 문제제기법: 사회적인 열점화제로 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글을 시작하는것이다. 독자는 저절로 그것의 해답을 사색하게 한다.     어떠한 기법으로 쓰든 한편의 수필은 작가의 마음을 진실하게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다. 수필은 정서적이미지와 지적이미지의 결합으로 되여있다. 그중에서 수필은 정서쪽에 무게를 실었다. 여기에 신변잡기라는 취약성이 끼여들어 수필의 질적저하를 불러온다. 한국의 한상렬선생의 수필을 례로 들어보자.     우리들은 두가지의 시계를 갖고있다. 하나는 문자판우에 바늘이 돌아가며 시각을 알리는 아날로그형이요, 또 하나는 직접 숫자가 나타나서 시각을 표시해주는 디지털형의 시계다. 아날로그형의 시계는 하루의 시간을 문자판에 공간화시켜놓고 그우를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이 돌아가도록 되여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총체적으로 파악할수 있을뿐더러 영속적인것으로 시간을 파악한다.     그런 시침이나 분침을 보고 시각을 알아낸다는것은 마치 하늘에 떠있는 해나 별의 위치로 시각을 어림짐작하던 우리 옛 선인들의 시간관념과 비슷하다고 할수 있다 이와는 달리 디지털시계는 보는 시각이 읽는 시간으로 바뀌여있다. 이는 시간을 한점으로만 알려 주어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략)     3) 수필의 문체     수필을 씀에서 함축성이 있는 간결체, 설명적요소가 있으나 군더더기가 없는 만연체, 호방, 침착, 진중, 강직 등 힘차고 굳센 성격을 띤 강건체, 혼자하는 말처럼 문장의 성격이 순하고 부드럽고 우아하며 지적이라 할수 있는 우유체, 실용적인 성격을 띠는 글로서 표현이나 묘사에 구애없이 뜻의 전달과 리해를 기하는 일에 충실한 건조체 등은 작자의 개성, 애호, 해당 수필의 내용에 따라 자연스럽게 선택되여야 할것이다.     얼핏 보면 문장이 화려하나 자칫하면 말장난이 되기 쉽고 대상의 본질을 흐리는수가 있고 말초신경에 머물뿐 중추신경까지 전달되지 않아 감동을 주지 않는다. 례문을 보자.           서른아홉의 노래/주부     강물은 나의 모든 것을 싣고 영원한 생명같이 흐른다. 돌아오지 않는 무지개되여 먹구름처럼 어두운 가슴속을 수놓으면서 아득한 사련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은빛, 금빛 찬란히 번득이며, 저녁노을에 황홀하게 빛나는 약동의 생명이던 나의 사랑의 고뇌, 삶의 진실과 환상으로 아롱지는 꿈의 현실이다.    례문은 갖은 형태의 부사어를 동원하여 미사려구를 꾸미고있다. 내용이 선명하게 드러나는것이 없고 알맹이 없는 말들이 말초신경만 건드린다. 구체적인 삶의 실체가 없는 말장난이다. 수필은 산문정신으로 쓰는 글이다. 산문정신이란 사실개념에 바탕을 두고 분식하거나 과장하지 않는것을 말한다. 수필은 론리로서가 아니라 정서로,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공감으로 자아를 실현하는 인생작업이기에 감지할수 있는 생생한 감동을 창출해내야 한다.    4) 수필의 형태    대체적으로 지성적사고의 능력을 전제로 한 철학적, 사변적수필을 중수필이라 하는데 이에 상대하여 일상생활을 바탕으로 쓴 경수필도 제맛과 멋이 있지만 수필로서의 품위와 문학적함량은 력대로 중수필에서 체현되였다.     중수필은 시작부터 리지적이고 론리적이며 지성적이고 표현이 직설적인것이 특징이다. 하여 신변잡사보다 공성을 가진 사회문제나 인성문제를 격조높이 토로한다. 그만큼 랭철한 판단력과 리성적인 태도를 음페하지 않고 론리정연하게 기술하여 충격적인 사색을 선물한다. 그러나 너무 학술적이면 생경하고 메마른 감을 줄수 있다.    창작태도에 따라 감성적이고 주관성격이 다분하며 사색이 위주인 수필은 서정적수필이고 지성적 객관적 성격을 지니되 통찰력에 근거한 비평적인 수필은 보다 론리적이고 지적이다. 내용상에서 자연, 인생에 대한 철학적사고를 쓴 사색적수필, 작가개인, 문단상황, 기타 문화예술 등에 대한 소감을 쓴 비평적수필, 주관적리념을 배제하고 사실만을 기술한 기서성수필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일상생활수필, 잡기수필, 경물수필, 서정수필, 사설수필, 기행수필 등 이름이 붙기도 하고 형식상에서 서술체, 일기체, 서한체, 기행체 수필 등으로 나뉘기도 하고 진술방식에서 크게 교양적수필, 극적수필, 서정적수필, 서사수필로 나누기도 한다.    (1) 교양적수필: 인성, 륜리, 도덕, 사회페단 등에 대한 작자의 사색과 비판을 통해 사람들의 심령을 다스리려는 수필이다. 그 내용, 어조에서 필자의 인생관이라고 할수 있는 신념과 삶의 태도 등이 드러난다. 독자에게 쾌락보다는 교훈을 주려는것으로서 공리적이다.    (2) 극적수필: 서술하려는 사실자체가 다분히 극적으로 서술되는 수필이다. 작자는 극적효과를 위해 어떤 수난을 겪었을 때나 슬픈 일을 겪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보여주면서 독자의 경이를 끌려한다. 계용묵의 수필 ≪구두≫가 좋은 례문으로 될수 있다.    (3) 서정적수필: 일상 생활현상에서나 자연에서 받은 감수를 서정적필치로 토로하는 수필이다.     은혜로운 가을해살의 축복속에 익은 가을의 들녘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황금빛 철철 넘치는 논벌이 그렇게 흐뭇하게 안겨올수 없다. 시원한 가을바람에 기폭처럼 옷자락을 날리며 추억을 지팽이로 삼고 옛고향의 논둑길을 재이듯 걸어본다. 노랗게 영근 벼이삭들이 가득히 황금빛 파도를 이루어 일렁이고있다. 잘 여문 벼들이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술렁대는 논벌끝엔 어느 자심한 농부가 만들어 세워놓은듯한 허수아비가 어서오라고 싱거운 두팔을 펄럭인다……(필자)     (4) 서사수필: 필자가 겪은 생활체험 혹은 예상외의 조우를 사실적으로 서술하면서 정감을 곁들이는 수필이다. 이런 수필의 원천은 다양한 생활이다.     작자의 마음의 파동을 어떻게 수필화 할것인가? ≪문심조룡≫에 문심(文心)이야말로 수필을 쓰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글쓰기의 바른 마음을 가질것인가에 유익한 계발을 주고있다. 문(文)은 예술적인 마음(心)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며 조룡(雕龙)은 곧 룡(龙)의 문양을 나무에 새기는(雕)것에 비유될만큼 수식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문학임을 말하고있다.     문심이란 바로 문학활동에 있어서 마음의 작용(为文之用心)을 의미하는것으로서 “마음으로부터 문학작품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문학창작이나 감상, 비평 등 활동이 작가가 언어를 매개로 하여 만들어내는 제반예술활동을 위한 마음의 전체적인 움직임, 인간의 정신과 감정 및 령감의 작용이다.     인간의 심미추구가 문학을 탄생시켰다. 수필은 무엇보다 마음이여야 한다. “마음에 느낌이 생기면 언어로 확립되고 언어가 확립되면 문장으로 표현되는것은 자연스러운 리치이다.” 만일 마음의 움직임이 전혀 없다면 바람 한점 없는데서 연을 날리려는것과 같다.     수필창작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생동한 계시를 주는 이런 글이 있다. “만물을 살펴보면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두 아름다운 무늬를 지니고있다. 룡과 봉황은 그림같은 아름다운 무늬로 상서로움을 나타내고 범이나 표범도 아름다운 문채로 자태를 이루고있다. 구름과 노을의 오묘한 빛깔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능란한 선과 색상을 릉가하고 꽃으로 장식된 풀과 나무는 비단짜는 사람의 솜씨를 기다릴것없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     류협이 말하고자 한것은 “문(文)”이 시청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자연만물의 형상인것처럼 사람은 마음을 움직여서 문화를 창조하는것으로 인류문화의 본체는 바로 사람의 마음(心)이라는것이다. 론어에 “심재불언 시이불현(心在不焉 视而不見)”이라 하였는데 마음에 있지 아니하면 보아도 보이지(나타나지) 않는다고 한것과 같이 좋은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의 움직임, 다시 말해서 쓰기전에도 감동, 쓴 후에도 감동을 갖도록 하는 일이다.     그 마음이 솔숲에 이는 바람같으면 그런 수필이 나올것이요, 뜨거운 해빛아래서 서늘한 매미소리를 들으면 그런 수필이 나올것이다. 한편의 수필은 작가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는 수필이 진솔한 인간체험의 언어적형상화로 그 자신을 진심으로 드러내기때문이다. 그래서 수필문학은 두말할것도 없이 정서적이미지와 지적이미지의 결합으로 되여야 하는데 지금은 수필은 정서쪽에 기울어지면서 신변잡기가 끼여들어 수필의 질적여하를 불러온다.     오늘 수필작가들이 나아갈 길은 어떤 길이여야 할가? 무엇보다 신변잡기의 차원을 뛰여넘어 현실생활의 맥락안에서 생의 의미를 추구하고 발견하여 의미로운 삶의 제공하는 장르로 거듭나야 한다. 수필도 진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그 진실성은 장르로써의 문학성을 지닌 미의식으로 발휘되여야 존재의 리유가 당당해진다. 그저 류행되는 장르로서가 아니라 독특한 작가사유, 인생을 말하면서 자기만의 감수를 문학성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수필은 개체의 체험과 감수, 정서를 문자화하지만 문자밖의 어떤 어떤 의미를 표술하기 위해 상징같은 문학적장치를 동원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의 어 떤 이야기, 감수를 쓰더라도 그 일상성을 탈출하지 못한다면 수필은 시대성을 띠지 못하게 될것은 자명하다. 문학은 사회와 함께 존재하고 시대와 함께 발전 하는데 그냥 마음의 골방에서만 맴돌지 말아야 한다.     분명한것은 시대적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길이요, 가면서 통찰하고 사색하고 해석하는 길이라는것이다. 수필이 재미와 감동을 주는 몫도 있지만 사회나 인생에 대한 성찰이나 사색, 명상의 글임임을 상기한다면 인간의 가치, 인간애, 인간의 본성, 인간의 능동성, 개성중시라는 인본주의적인 접근을 통한 인간성의 문화를 꽃피우며 새 인문환경속에서 륜리관 탐색도 진행되여야 한다.     수필의 뿌리에는 쓰는 이의 인간고, 자연에 대한 사랑과 관심, 사회발전사에 대한 믿음을 앞세운 선의적비판, 내향토, 내겨레에 대한 소망과 사랑이 슴배여있어 누구나 자기일, 자기 마음을 쓴듯이 따스한 정을 느낄수 있도록 해야 수필이 수필구실을 할수 있다.    흔히 칼럼과 수필을 거의 비슷하게 보는데 기실 대동소이한것이 아니다. 신문, 잡지의 특별 기고. 또는 그 기고란. 주로 시사, 사회, 풍속 등에 관하여 짧게 평론하는것으로서 신문과 잡지들의 정해진 지면에 련재되거나 기고된 기사해설 등을 통털어 칼럼이라 부르는데 기사와는 달리 필자의 견해를 제시하는만큼 수필성도 고유하고있는것은 사실이다.     수필은 유일하게 사실을 근간으로 하는 문학으로서 외연이 크기에 칼럼이 수필의 범주에 드나들 소지가 고유한다. 수필은 일상에서의 미적가치를 정감적으로 발굴하고 정서적으로 표현하므로 일상성이 원천이 되고 칼럼은 사회생활에서의 이런저런 현상에 대하여 리치를 따져가며 론평하는만큼 사회적편달이 취지로 된다. 여기서 칼럼과 수필의 완전히 동질의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칼럼은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숨긴채 다른 사람의 견해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수 있다. 칼럼은 어떤 제약도 없어보이지만 고도의 형식미가 있으며 철학적사색을 바탕으로 해야 제격이다. 칼럼 혹은 사회칼럼의 구별점을 더 구체적으로 대비해 보자.     첫째로, 수필은 출발점이 “나”이므로 개인적이고 개성적이며 정서적이다. 칼럼의 출발점은 “우리”이기에 대중적이고 사회적이며 론리성이 우선한다. 칼럼, 사회칼럼에는 수필글의 바탕인 진지하고 풍부한 정서가 개입되지 않는다. 주관적감수보다는 객관적인 론거에 치중하는것이 특징이기때문이다.     둘째로, 수필은 일상에서의 체험성이 주선이지만 사회칼럼은 학문적이고 사변성이 강하며 구체적이고 직설적으로 설파한다. 사회수필에서 상징은 구체적인것을 추상화함으로써 여운을 주며 문예적인 효과도 얻게 된다.     셋째로, 수필과 칼럼의 구별점은 문체와 표현에서도 나타난다. 사회칼럼의 문체는 강경하다. 독자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표현도 론리적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수필의 문체는 유연하다.     넷째로, 미적가치와 론거에서 구별된다. 수필이 일상에서의 미적가치를 추구하고 전달하려는데 반해 칼럼은 사회현상에 대해 론평하는 평론인만큼 사회성이 기조가 되고 론리적이라면 수필은 자아표현으로서 서정성이 생명이다.     칼럼은 론리적이고 수필은 형상적이다. 칼럼은 사실적이고 보고성적이나 수필은 예술상상력이 수요된다. 수필은 정감의 산물이기에 가슴으로 쓰는 글이라 하며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언어가 선호된다. 칼럼은 론리의 그물로 엮어지기에 머리로 쓰는 글이라고 한다. 정보전달, 사상의 교류가 칼럼의 임무라면 자기 정감의 표백과 감동의 부여가 수필의 취향이다.  
17    제 3 장 산문류형태. 제 1 절 산문 댓글:  조회:3688  추천:26  2007-08-13
                                              제3장 산문류형태                                             제1절 산문론 1. 산문의 함의 산문은 자유적인 붓으로 “나”가 체험한 감수, 견해를 쓰며 “나”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토로하고 “나”의 자재적정취를 표현하는 글이다. 환언하면 자유롭고 우미한 필치로 사람을 쓰고 사실을 서술하고 경물을 그리며 감정을 털어놓고 개성을 현시하는 짧은 글이다. 산문은 원래 박래품이다. 영어로 “수필” 혹은 소품이라고 번역하는 경향에 기울져있다. 이외 수필산문, 론문 등으로 번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산문ㅡ문학적의의에서의 산문이란 중국고대에는 없었다. “5. 4”시기 작가 욱달부는 서방문화가 들어오면서 생긴 산품이고 그나마 번역마저 신통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주작인은 1921년에 발표한 문장에서 “외국문학에 일종 이른바 론문이 있는데 그것을 가히 두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다. 첫째로 비평적인것은 학술성적이고 둘째 기술성적인것은 예술성적이다. 이것을 미문이라고 하는데 서사와 서정으로 나누어 볼수 있다.”라고 쓰고있다. 그가 서방수필에 의거하여 미문을 “기술적, 예술성”인것으로 정의한것은 중국현대산문에 초석으로 되었다. 사람들이 영국수필을 번역소개 할 때 먼저 수입된것은 리론이였는바 영향력이 가장 큰것은 주작인의 ≪미문≫과 로신이 번역한 ≪상아탑에서 나오다≫였다. 로신은 “만약 작가개인의 정신의 흐름이 없다면 무료할것이다.”라고 하였다. 그의 이 말은 현대산문의 계몽어로 되여 현대산문의 산생에 직접적영향을 일으켰다. 영국의 수필을 말한다면 몽테뉴와 베이컨을 꼽아야 할것이다. 산문의 진정한 번영은 19세기에 시작되였는바 영국랑만주의 운동의 산물이였다. 현대산문의 가장 큰 특징은 매 한편의 산문에서의 매 작가들의 표현이다. 지식인들이 눈길박은것이 바로 산문에서의 개성의 발로와 자아긍정이였다. 하여 사상상 리성주의의 질곡에서 벗어나 직감, 개성을 중시하였다. 현대산문의 모식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방면은 유모아이다. 중국의 산문에서 유모아는 로신, 림어당, 량실추, 로사 등에 의해 뿌리내렸다. 림어당은 유모아는 랭정하고 초탈한 방관자에게서만 나올수 있는데 흔히 웃음속에서 눈물을 머금고 눈물속에서 웃음을 머금는다고 하면서 문장은 자연스러워야 하고 꼬집지 않으면서도 교묘하게 사변성을 선물해야 한다고 했다. 산문은 중국신문학사상에서 ≪미문(美文)≫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몇년래 실화문학, 잡문, 수필 등이 독특한 특색을 갖춘 문체로 발전한 정황에서 문예성서사산문과 서정산문만을 산문으로 간주하는데 거기에 의론산문도 넣어 세가지 종류로 분류하는 학자도 있다. 산문은 시와 마찬가지로 주관감정과 사색을 가식없이 털어놓을수 있는 문체인 “자아문학”이며 “개성문학”이다. 주체로부터 굴절반사된 제2의 우주ㅡ“나”의 내심세계에 비쳐진 제1우주(실제, 사회생활)는 그 자신이 가지고있는 규률성이 하나의 특점이다. 무아(无我)는 곧 개성으로서 개성이 없다면 산문도 없다. 그만큼 산문은 “나”의 자유적인 붓으로 “나”가 체험한 감수, 견해를 쓰며 “나”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토로하고 “나”의 자재적정취를 표현하는 글이다. 2. 산문의 특징 전통적산문리론에서는 산문의 특징을 이렇게 규명하고있다. 첫째, 서정이 절실하고 솔직하다. 산문은 본질상 서정적인것으로 산문중의 인물, 사실, 경물은 모두 작자가 서정을 토로하게 된 의탁물이다. 산문은 독자 를 작자가 열어놓은 심령세계에 끌어들여서 자신의 솔직한 고백을 듣게 한다. 둘째, 선재범위가 넓고 자유롭다. 비록 작자의 생활권내에 일정한 력사적 국한성이 있지만 작가적인 안목으로 현실을 투시하고 심사숙고하며 모종 책임 감을 지니고 창작에 림한다면 곳곳에서 의미있는 글감을 찾아낼수 있다. 국가대사로부터 시정의 사사건건, 민중의 질고, 개인적희노애락, 이왕지사, 명상,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와 꽃과 고기…무릇 느끼는바가 있게 되면 그것에 기탁하여 인생마당의 이런저런 현상을 표현하고 해석할수 있는것이다. 셋째, 형식이 다양하고 령활하다. 산문작가는 인생에 대한 절실한 체험을 간결하고 세련된 미적형식속에 압축하고 응결시킬줄 안다. 하여 정감을 경물에 기탁하고 정감에 꿈과 환상을 얹어 생활의 일각으로 심원한 시대배경을 암시한다. 이른바 한알의 모래알에서 대천세계를 보고 시든 꽃다발에서 인정세태를 파내기도 한다. 산문창작에서 요긴한것은 곧 발산사유이다 수법상에서 때론 아기자기하게 이야기도 하고 때론 흉금을 헤치고 직설하기도 하며 혹은 상징하고 암시하며 혹은 재치있게 곁을 쳐서 복판을 울리고 서정도 토로하고 서술, 의론, 소묘를 능란하게 운용한다. 그리하여 산문을 일체 예술형식의 기초라고 하는것이다. 넷째, 진실하고 자연스럽다. 구체적산문작가에 대해 말하면 스찔이 특이하다. 혹자는 필봉이 날카롭고 혹자는 유연하며 혹자는 철학적사색이 이채롭고 혹자는 예술정감이 자기 울타리안에서 맴돈다. 혹자는 필법이 기특하며 고독한 감을 준다. 이는 작가의 심미취향과 가치판단에서 기인되는것이다. 3. 산문의 양식 산문은 표달방식의 부동함에 따라 크게 세가지로 나눈다. 1) 서사산문 이 류의 산문의 내용은 주요하게 인물, 사실, 경물이다. 산문에서 사람을 쓰거나 사실을 쓸 때 한개 편단을 취해 글을 펴나가며 경물을 쓸 때 어느 한곳, 한순간의 모종 각도의 경물을 틀어쥐고 감수를 펼쳐나간다. 기서성산문은 비록 서술, 묘사를 위주로 하지만 그가운데 작자의 감정이 흘러나오게 된다. 2) 서정산문 이 류의 산문에서 서술, 묘사방법외에도 대량적인 서정의 필법을 쓴다. 따라서 작자의 주관감수의 토로가 강조된다. 즉 흉금을 직접 터놓고 정을 토로하거나 경물을 빌어 서정을 쏟아내거나 경물에 기탁하여 뜻을 정감속에 함축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관정회를 토로하는것이 위주이지만 사람을 쓰고 사실을 쓰는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례하면 주자청의 ≪련못의 달빛≫, 준청의 ≪추색부≫등이 이러한 필법으로 창작되였다. 3) 의론성산문 이 류의 산문은 치중하여 도리를 말하면서 의론을 발표한다. 그러나 일반평론과도 다르다. 의론성산문은 형상으로 도리를 피력하면서 의론과 서정을 결합시키고 리론과 형상을 결합시키지만 구체형상을 리탈하지 않으며 의론도 문학필법으로 쓰기에 농후한 서정미를 가지고있다. 례하면 위외의 ≪도로표식≫등이 귀감으로 될수 있다. 4) 문예성산문 때론 잡문과 구별하기 어려운 산문이 있는데 이런 산문을 “문예성산문”이라고도 한다. 이상의 분류는 대체상의 분류일뿐 절대적계선은 없다. 20세기 90년대 이후 중국문단에 “문화산문”이 굴기하였는데 작자들은 주요하게 학자, 문학연구가나 전문가들이였다 례하면 “천일합일(天人合一)”이나 군자는 자강에 게으름 없다든가 하는 등등 문제를 새롭게 해석하였다. 이에 대해 혹자는 “희망으로 실황을 대신하는 꿈속의 말”에 불과하다고 혹평하기도 하였다. 고금중외의 문화산문을 고찰하면 기본주제와 사상경향은 거개 비판성으로서 독특한 리성분석을 진행하여 다분히 잡문성이 내비치고있다. 그런데 현대산문의 일종 병집은 가벼운 수레를 몰고 아는길로 가는식으로 자타의 정감을 희롱하는것이다. 4. 산문의 예술적구상 산문창작에서 주제의 제련은 중심고리이다. 주제의 제련을 옛사람들은 “립의(立意)”라고 하였다. 왕부지는 “뜻은 통수요 통수가 없는 병사는 오합지졸이니라.”하였다. 산문은 생활의 바다에서 건져낸 작은 물결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시대의 광채와 생활의 본질을 비춰보여 독자가 모종의 계시를 받고 정감상 미적향수를 느낄수 있어야 한다. 옛글에 “산은 그 높이에 있지 아니하고 신선이 있으매 명산이요 물은 그 깊이에 있지 아니하고 룡이 있으매 령험하니라.”했다. 바로 산문에서 뜻을 세우는(立意)것은 비유컨대 산속에 “신선”과 같고 물속에 “룡”과 같다. 우선 작은것에서 큰것을 보아내고 깊이 있게 발굴해야 하는것이다. 작은것이란 일상생활에서의 사소한 일을 말하고 큰것이란 력사사변, 사회문제를 말한다. 어떠한 사물이든지 자체의 특점이 있다. 개성이란 곧 특점이다. 산문작가는 바로 사물의 특점을 틀어쥐고 참신한 주제를 발굴해야 한다. 그러면서 사물의 공성도 틀어쥐여야 하지만 개성도 잘 틀어쥐여야 산문의 문학적가치가 있게 된다. 일상생활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미처 보아내지 못한것,느끼지 못한것을 찾아내여 자기만의 사색과 견해를 토로해야 산문에 신선한 맛이 깃들게 된다. 산문구상의 중심임무는 의경창조이다. “의경(意境)”이란 말은 불경에서 왔는데 모종 오도(悟道)의 경지를 가리켰다. 그래서 예술화면은 의경창조의 기초가 된다. “의경은 시인의 사상감정과 객관사물의 호상결합에서 나온 정신과 형상이 겸비된 예술경계 즉 ‘의(意)’와 ‘경(景)’의 화해로운 통일이다. ‘경’은 ‘형(形)’과 ‘신(神)’의 통일이며 ‘의’는 ‘정(情)’과 ‘리(理)’의 통일이다. ‘정’과 ‘리’와 ‘형’과 ‘신’이 호상침투하고 호상제약하는 관계속에서 ‘의경’이 형성되는 비밀을 엿볼수 있다.” 예술의 가장 기본적단위가 형상이다. “형ㅡ신”의 문제는 실질상에서 전형형상문제이다. “경”과 “의” 자체가 또한 두개범주의 통일이다. 개체로 말하면 늘 이런저런 생활경계에 이를수 있는데 어떤 측면을 잘 선택하고 집중하고 제련하면 미적향수를 줄수 있다. 이를테면 들뛰는 말발굽에 티끌을 일구며 창칼을 휘두르는 고대영웅의 피비린 생애에도. 옷고름으로 눈물을 씻는 소녀의 상봉과 리별도 일종의 정감의 경계이다. 사상감정이란 예술화면, 주체형상과 상상, 련상은 산문작품에서 의경을 구성하는 불가결의 기본요소이다. “의경”의 특징을 다음과 같은 몇가지로 고찰할수 있다. 첫째,감정과 경물의 융합이다. 감정은 뜻의 핵이고 경물은 시적정서의 대응물이 된다. 경물은 서정의 기초이다. 정경창조의 최종목적은 주체의 심미정감을 표현하는데 있다. 의경을 창조할 때 묘사된 시인의 정감에서 선택되며 따라서 정감을 담는 실체이다. 감정은 경물에서 유발되고 경물은 감정속에서 생명을 가진 예술형상으로 된다. 정경융합은 어디까지나 감정이 주도적이다. 둘째,허실의 결합이다. 산문은 어디까지나 일종의 전형정서속에 생활속의 “진, 선, 미”를 집중적으로 표현한다. 이런 정서가 바로 실(实)과 허(虚)의 결합이다. 의경은 내재감정과 외재사물의 융합이고 사상과 형상의 융합이며 시적정서와 철리의 결정체이고 주관객관의 통일이다. 그래서 “의경”은 “전형”과 같다고 한다. 량자는 예술형상보다 한층 높은 미학범주이고 가치의 품격규범이다.  의경은 중국과 고전시사의 창작실천중에서 나온것인데 선명한 민족색채를 띠고있는 중국고대문론의 전통적론제이다. 때문에 전형리론은 주로 서사문학작품에 적응되였고 문학창작의 핵으로 되였다. 의경과 전형은 주관과 객관의 관계상에서 창작중점이 다르며 의경과 전형이 산생시키는 심미효과도 다르다. 의경과 전형사이에 차별은 있지만 량자의 창조는 다같이 문학창작의 일반규률을 따르게 된다. 체호브의 ≪고민≫에서 하염없이 내리는 함박눈에 온 도시가 묻혀가는 황혼무렵의 음영, 굳어진듯 꼼짝하지 않는 마차부나, 그리고 작은 암말…은 일종 처연하고 사람의 마음을 얼궈붙일듯한 의경을 구성한다. 이것을 의경의 효용이라고 한다. “나는 나의 고민을 누구에게 털어놓아야 하는가?”하는 그 한마디가 독자의 마음을 움켜잡는다. 의경에는 객관적반영이라는 생활형상과 작가의 정감이라는 주관창조방면 두개 방면을 포괄하고있다. 예술화면은 의경창조의 기초이다. “풍경에 생기를 부여했을 때 그것은 아름다워 보인다.”(체르늬쉡쓰끼)의경의 산생기초는 작자가 착중해서 그려낸 예술화면으로서 독자의 눈앞에 재현되여 미감공명을 일으키는바 작자와 독자의 감정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무지개다리이다. 주체형상은 의경창조에서의 핵심이다. 사상감정은 의경창조에서 령혼이다. 정은 경물에 침투되여야 경물이 살아난다. 정이 깊으면 뜻도 심각해진다. 작자의 사상감정은 창작의 동력만이 아니라 산문의 의경을 형성하는 혈육이고 산문에 생명의 광채를 주는 령혼이며 문학언어는 산문의 의경의 비단옷이다. 상상과 련상은 의경창조의 중개자이다. “만약 본령을 론한다면 가장 걸출한 본령은 곧 상상이다.(헤겔) ”상상은 작가의 심령심처에 핀 격정의 꽃송이다. 생활에 대한 심각한 감수가 없다면 기발한 상상이 산생될수 없으며 눈부시게 아름다운 의경도 없다. 산문에서 선색을 찾는것은 선행되는 구성의 기교이다. 선색은 사물의 발전맥락을 가리킨다. 산문에는 흔히 다음같은 선색형태가 있다. 우선 정절선색으로서 서사산문에서 잘 쓴다. 사건성질을 선색으로 한것의 례로 위외의 ≪누가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인가?≫를 들수 있다. 다음은 감정선색이다. 산문에서는 “나”의 감정발전변화를 문장의 추진선으로 삼는다. “예술은 곧 감정이다.”(로단) 흔히 서정산문에서 이런 감정선색을 잘 쓴다. 그리고 의념선색이 있는데 서정산문에 흔히 관통되고있다. 이런 선색법은 서정과 통일시켜야 한다. 사물의 도리로 선색을 삼기도 한다. 그것은 문제분석, 문제해결을 표지로 하는 한갈래 사변선색이다. 이외에 시간선색, 공간선색, 사건성선색 등 다양한 선색이 있다. 명조의 왕문록이란 사람은 “글을 구름과 꽃과 룡과 봉황을 수놓은 비단을 짜는것과 비유할수 있는데 경도와 위도가 가로세로 얽혀 그 기복을 전혀 종잡을수 없다. 또 하류가 중국에 흘러드는것에 비유할수 있는데 혹 숨어흐르거나 혹 드러나 흐르고 혹 끊기는듯 하다가 다시 이어져 용용히 흘러 원천이 깊고 무한하다.”고 하였다. 그는 글과 뜻의 관계와 맥락의 표현형식의 다양성을 재치있게 비유하여 형상적으로 설명하였다. 새와 꽃과 시내물과 풀과 벌레를 쓰더라도 어떤 사회적의미를 캐거나 인생의 의미를 음미해보게 한다. 소식은 “산문의 뜻은 정을 도리로 전화시키고 도리속에 정이 스며들게 하는것”이라고 하였다. 어떤 서정산문은 뜻의 맥락을 전편 글에 관통시켜 소기의 목적에 도달한다. 주자청의 서정산문 ≪봄≫은 사람들이 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부터 붓을 들고 몇폭의 화면을 그려냈다. 그러나 작가의 뜻은 봄날의 정경 자체에 있는것이 아니다. 산과 물이 봄을 반기고 작은 풀들이 봄소식을 알리고 백화가 봄빛을 다투고 봄바람이 봄을 불러오고 실비가 봄을 목축여주고 사람들은 봄을 아끼고 봄을 사랑하는 정경을 그림처럼 펼쳐보이고있는데 봄을 찬미하는 정감이 샘물처럼 솟고있지만 뜻의 맥락은 직관적으로 이어지고있다. 또 어떤 산문에서는 상호련관성이 없는 화면 혹은 몇개 생활편단들로 조합되여있는데 혹 서술중에 부단히 다른 편단들을 삽입하여 맥락이 끊기는 감을 준다. 그때의 맥락은 한 편단으로부터 다른 편단으로 이어진다. 마치 다리를 건설할 때 다른 다리기둥을 거쳐 계속 연장되는것과 같다.
16    제 3 절 중.장편소설 창작기법 댓글:  조회:3490  추천:16  2007-08-13
                                      제3절 중, 장편소설창작기법    1. 중편소설의 내함    중편소설은 단편소설보다는 길지만 장편소설보다는 짧은 허구적산문이야기라는것이 일반화되고 관례화된 인식이다. 단편소설에 비교해서는 단일화와 긴박한 구성, 그리고 경이로운 결말처리방식에 덜 의존하며 사건과 인물의 양상이 상대적으로 압축되여있다.     중편소설은 내용과 형식으로 보아 장편소설의 우월성을 다 갖추고있는 중요한 소설양식이며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의 제한성까지도 반영하고있을뿐만아니라 독자적인 특성을 가지고있는 소설양식이다. 따라서 중편소설의 기교는 거기에 반영되는 시기와 문제성, 성격창조와 구성조직 등의 솜씨에서 나타난다.     세계소설사와 평론사를 보면 장편소설의 특성이나 단편소설의 원리에 대해서는 많이 론의되였지만 중편소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크게 론의되지 못했다. 벨린쓰끼가 중편소설의 함의, 그것의 의의 및 사회적역할에 대해 ≪로씨아의 중편소설 및 고골리씨의 중편소설에 대하여≫에서 대서특필하고있다.    “중편소설이란 어떠한것이며 무엇을 위한것인가? 무엇때문에 이 중편소설이 실리지 않은 잡지가 장화를 신지 않고 넥타이를 매지 않은 사회인과 같으며 모든 작가들이 이 중편소설을 쓰고 모든 독자들이 이것을 읽고있는가? 무엇 때문에 이 중편소설이 귀부인들의 규방에도 학자들의 책상우에도 있으며 무엇때문에 이것이 장편소설을 밀어내듯한 감을 주는가?     언젠가 어느 곳에서 ‘중편소설은 인간의 운명을 묘사한 종말없는 서사시 의 한 삽화이다.’라는 훌륭한 말이 나왔다. 이것은 아주 정당한 말이다. 그렇다. 중편소설은 여러부분으로, 수천부분으로 나누어진 장편소설이며 장편소설에서 갈라낸 장(章)이다. 우리는 바쁜 사람들이며 쉴새없이 아득바득 동분서주하는사람들이다. 우리는 시간을 귀중히 여기고 방대하고 장황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요컨대 우리에게는 중편소설이 필요하다.    우리의 생활 즉 현대생활은 너무도 다양하며 복잡다단하며 세분되여있다. 때문에 우리는 잘 련마된 네모반듯한 거울에 반영되며 있을수 있는 모든 형상 속에 수백만번이나 되풀이될것을 원하면서 중편소설을 요구한다. 소위 드라마에 담기에는 미흡하고 장편소설에 담기에는 부족하나 수세기에 걸치는 생활을 한순간에 집중시키는 심각한 사변들과 사건들이 있다. 중편소설은 이 사건들을 자기의 좁은 테두리안에 잡아넣는것이다.    중편소설이라는 형식은 임의의 모든것을 즉 경쾌한 풍속묘사도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신랄한 기소도 심정의 깊은 비밀도 열정의 잔인한 장난도 다같이 내포할수 있다. 짧고도 빠르며 경쾌하고도 심각하기도 한 중편소설은 한 대상으로부터 다른 대상으로 급속히 이행하며 생활을 세분화하며 이 생활이란 방대한 책으로부터 책장들을 찢어낸다. 이 책장들을 한데 제본해 보라. 그러면 얼마나 방대한 책이 될것인가? 장편소설, 중편소설은 모방정신에 의해서라기보다 오히려 필요성의 결과로 우리 문학에 나타난 유일한 문학쟝르이다.≫    소설문학형태가운데서도 생활을 어떤 각도에서 파고들며 어느 정도의 분량으로 반영하는가에 따라 주요하게 양식들이 구분되고 그로부터 양식의 특성과 미학적요구를 살리는 기교가 발휘된다. 어느 한시기를 반영한다는 중편소설의 특성은 그 시간적개념과 함께 생활묘사의 폭을 보여주는 공간적개념과의 결합속에서 고찰 되여야 한다.     로씨아문학에서 중편소설의 진정한 대표자는 고골리를 우선 꼽아야 할것이며 중편소설 ≪따라스불리바≫나 ≪고풍의 지주들≫, ≪이완 이와노위치와 이완 니끼포르위치가 싸운이야기≫등을 전범으로 꼽을 수 있다. 뿌쉬낀의 ≪대위의 딸≫은 예술적가치가 고골리의 작품들과 맞먹는다는 정평이 나있다.     중편소설은 보편화된 소설양식의 분류기준에 기초한것으로서 그의 특성과 기교는 문학사가 축적한 귀중한 창작경험의 총화이기도 하다.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생활의 절주가 빨라지고 독자들의 미학정서도 변화하면서 보다 짧은 중편소설을 바라게 되었다. 이역시 객관적이며 현실적인 시대요구이다.     2. 중편소설의 창작기교    중편소설은 장편소설처럼 한시대의 생활화폭을 전면적으로 다양하게 반영할 큰 목표는 내세우지 않지만 인물의 성격발전의 어느 한 단계를 골라잡고 비교적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제기된 문제를 깊이 있게 해명한다. 사회의 어느 한 구석을 비추는 거울로 되는 쟝르이다. 단편소설이 생활의 한 계기에서 문제를 날카롭게 밝혀낸다면 중편소설은 인물관계를 보다 폭넓게 맺어주고 여러가지 줄거리를 립체적으로 끌고나가면서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밝혀낸다.     묘사의 가능성은 장편소설과 별로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단편소설을 멋없이 늘궈붙인것이 아니며 장편소설을 단축시켜버린것도 아니다. 중편소설과 장편소설의 구별점은 담는 생활내용과 처리되는 사건, 전개되는 사회관계 등이 모두 장편보다 단순하다는데 있다. 다만 중편소설에서 설정하고 해명하는 문제 성은 단편소설의 우월성과 장편소설의 우월성을 겸비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중편소설이 현실성있는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도(感度)에 있어서 단편소설이 가지고있는 우월성과 경쟁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특성을 지니고있는것은 사실이다. 반면에 문제의 설정과 해명의 폭과 깊이에서는 단편소설보다 비할바없이 우월하며 힘이 있다.    중편소설에서 이야기는 단선으로 발전하며 비교적 적은수의 주인공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한편 단편소설과 다른 점이라면 중편이 담고있는 생활면이 단편보다 넓어 어느 한 시기의 비교적 완정한 사회생활을 개괄할수 있고 련속발전하는 보다 많이 변화하는 정절이라는것이다.     중편소설은 대략 3~10만자 사이로 정해진다. 중국고전문학에는 중편소설이 없었다. 로신의 ≪아Q정전≫은 중국신문학사상 첫 중편소설로서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며 또한 중국현대문학사에서 하나의 기념비적인 불후의 작품이다. 문제성의 심도에서 고찰할 때 단편소설은 경무기로서의 민감성과 예리성으로 특징지어지고 장편소설은 그 광범위성과 무게로 빛난다면 중무기로서의 중편소설은 작품에 설정된 문제성으로 한몫 본다.     중편소설의 특성을 살리는 기교는 중요하게 사회문제성, 인간문제성의 설정과 해명에서 표현된다. 성격과 폭의 길이에서 고찰할 때 중편소설의 인간관계조직은 단편소설보다 비교적 복잡하며 주인공을 둘러싼 일련의 인물형상을 보여준다. 벨린쓰끼가 말했듯이 중편소설은 인간의 운명을 묘사한 종말없는 서사시의 한 삽화이다     중편소설의 기교는 무엇보다 의의있는 시기의 선택과 그의 형상화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력사적, 생활적의미에서 규정하는 시기라는 길이는 결코 단편소설에서 반영하는 생활의 흐름의 단면이 아니며 또 장편소설에서처럼 긴 시대를 반영하는것도 아니다. 단편소설은 현실재현의 민감성에서 특징지어지고 장편소설은 그 생활반영의 광활성과 무게로 빛난다고 할 때 중편소설의 핵은 아마도 소설에 반영된 문제성의 심도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중편소설창작에서 문제점을 기교있게 제기하고 해명하기 위하여서는 그것이 작가의 주관적욕망과 묘사에 의하여 강조되는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갈등, 사건과 생활을 통하여 예리하게 형상화되여야 하며 상식적이고 범속한 문제를 피하고 의의있고 깊이있는 인간문제를 탐구하여야 하며 인간학다운 문제를 날카롭게 제기하고 생활형상으로 밝혀야 할것이다.     중편소설의 인간관계조직은 단순한 단편소설과는 달리 비교적 복잡하게 얽혀지기에 주인공을 둘러싼 일련의 인물형상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성격장성과정을 진하게 묘사해야 한다. 그러자면 소설로서의 전개적특성을 잘 살리여 사건선과 감정선의 일치를 도모해야 한다.    소설에서 흔히 그러하듯이 하나의 이야기에 아주 간결한 서두를 떼고 거기에 시간과 반드시 교대되여야 할 지점과 인물의 정황을 서술하는데 비교적 온당하게 발전하면서 보다 긴장하고 떠들썩한 서술과 희극적인 묘사에 이르는바 회고를 거슬러오르지 않는다. 이 방식은 이야기의 본래의 성질에 의해 평가되는 장점이 있다. 생동활발한 서술과 저으기 간략을 꾀한 대화들의 삽입은 더욱 정취있게 할수 있다. 이런 결구, 서술방식은 중편소설에 알맞는다. 물론 이런 미적표현을 일련의 단편소설들에서도 그 례를 찾아볼수 있다.     슈제트구성에서 통일된 문학작품은 그안에 어떤 조직 혹은 구성의 원리를 지니고 있고 내부의 모든 요소들은 그  원리아래에 긴밀하게 얽혀져야 한다. 로신의 ≪아Q정전≫은 광활한 사회배경우에서 주제를 다루고있지만 구성이 빈틈없다. 이때 작품은 유기적전체가 된다.  전통적으로 소설문학의 통일성을 형성하는 요소로서 일관된 행위, 긴밀한 플롯, 일관된  성격제시 등이 거론되여 왔으며 현대에는 형식과 작가의 의도, 테마와 상징에 의해서도 구현된다. 플롯을 전개할 때 다음같은 방법을 써보는것도 좋을것이다    1) 이야기속에 인물의 이름으로 매개 장절의 제목으로 삼으면 서술이 확실하고 명료해질수 있고 인물형상이 돌출해지게 된다. 독자들에게는 열동흥취가 이야기속에 인물에게 집중될수 있으며 이야기의 절주감을 느낄수 있다. 그러나 매 장절이 인물의 전기가 되는것은 아니다.       2) 인물의 거동, 자태에서 이야기 정절을 엮어나가는것인데 몇몇 주인공들이 대화를 나눌때, 밥을 먹거나 일할 때의 남다른 거동과 개성특색을 간결하게 서술하면서 인물의 신분, 성격을 그려보인다. 너무 늘어놓을 수도 있음을 류의해야 한다     3) 서사를 위주로 하여야 하지만 알맞는 곳에 알맞게 의론을 전개하거나 서정을 토로하면 이야기서술 층차에 머물지 않게 되고 소설의 정취를 짙게 할수 있으며 사상적무게를 누를수 있다.     4) 서술에 기복이 있게 하려면 평지풍파식의 구성을 짜야 한다. 중장편소설은 서술이 지루하고 평탄해질수 있는데 도랑에 물이 아래로 천천히 흐르는식으로 서술하다가도 어떤 사건을 삽입서술하여 굽이를 도는감을 주고 락차감을 주어야 좋다. 모순충돌을 완만하게 쌓아두었다가 맨 뒤에가서 터칠수도 있지만 중도에서 터지게 하여 독자들이 미묘하고 이상야릇한 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3. 장편소설창작기교     일종 체재로서의 장편소설연구는 특별히 곤난한 연구항목이다. 이는 대상자체의 독특성에 의해 결정된다. 장편소설은 유일하게 형성중인 미정형의 일종 체재이다. 12~ 13세기에 라틴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쓰인 문학을 말하던 “로망” 이라는 단어는 의미가 변하면서 장편소설을 명명하게 되였다.     바흐낀은 “장편소설창작에는 주어진 준칙이 없다.”고 하였다.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의 분수령은 무엇인가? 량자사이에 가장 주요하고 가장 근본적인 구별은 서술의 결구에 있다. 그리고 장편소설에 공통한 특징에서 중요한것은 그래도 사상의식의 존재이다. 소설가는 철학가가 아니라 견증자이다. 그러나 한부의 장편소설이 장편소설로 되게 하는 각종 여건들은 기실 사상의식에서 기원된다.     창작기교로 말할진대 사실상 작가의 령감의 형식이고 개성의 형식에 불과한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체호브와 모파쌍의 기교는 장편소설창작에 적합하지 않으며 두 작가가 표달하려는것을 오직 단편소설에서만 표달할수 있다고 천명한 문학리론가도 있다.     장편소설은 인간생활을 폭넓게 묘사할수 있는 가장 큰 형식의 소설이다. 벨린쓰끼는 “장편소설의 내용은 당대사회에 대한 예술적해부”라고 하면서 사회는 장편소설을 하나의 거울로 삼고 그로부터 자기를 인식하고 또 자아인식의 위대한 과정을 완성한다고 부언했고 로신은 장편소설을 “웅위롭고 찬란한 기념비”라고 하였다. 장편소설이 거대하다는것은 편폭, 용량을 두고 한말이며 기념비라는것은 그 내용의 시대적, 력사적가치를 의미하는 말이다.     장편소설의 첫째가는 특징은 그가 예술적으로 광범위한 사회생활을 개괄할수 있다는것이다. 일반적으로 한나라, 한민족, 한개 력사시기의 중대한 사회사건, 정치사건 등이 그의 묘사대상으로 된다. 례하면 ≪3국연의≫는 위, 촉, 오, 3국의 흥망사를 다루면서 그 시대의 첨예하고 복잡한 정치, 군사투쟁을 폭넓게 묘사하면서도 생동하고 핍진하게 그려보였다.     장편소설은 광범위한 생활내용, 천차만별의 인물, 복잡다단한 슈제트선을 포섭하므로 그것들을 엄밀하고 조화로운 정체로 조합하려면 일정한 법칙이 수요된다. 흔히 단선 혹은 쌍선교차수법과 여러갈래 슈제트선으로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단선슈제트란 온 책에 오직 하나의 중심선색이 있는것을 말한다.     례하면 라관중의 ≪3국연의≫는 조조와 류비간의 모순투쟁을 중심선색으로 이야기를 엮어나가면서 3국간의 첨예하고 복잡한 정치, 군사투쟁도 재현하는 기법을 썼다. 그러나 장편소설에서 생활묘사의 전개력은 주위세계의 어느 묘사대상이나 다 전개하여 묘사할수 있다는 공간적개념에서만 이야기되는것이 아니다. 장편소설에서의 기본과제인 인물의 성격형상을 전개하여 전 면모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데 있다.    전개된 생활묘사는 성격창조의 전형적인 큰 환경으로 되며 그의 생활바탕으로서 궁극적목적은 전형성격을 창조하는데 있다. 대상을 세부화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폭넓은 전개는 장편소설에서 감동을 주는 기법의 하나이다.     장편소설은 편폭이 아니라 내용이 장편다와야 한다. 그를 위해서 인간관계를 옳게 설정하고 심화시켜야 한다. 소설의 인간관계는 사회관계의 반영이므로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가 어떤 전형성을 띠고 반영되도록 구성을 짜나가야 한다. 장편소설에서 전개되는 사건요소들이 그 자체로는 보잘것없는것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작품의 전반 구성속에서 본다면 어떤 의미를 가지고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건들은 마치 하나의 핵폭탄에서 뭉게뭉게 버섯구름이 솟구치듯이 하나의 핵을 둘러싸고 전개되여야 한다. 그러나 그 경우,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불필요한 인물은 등장시키지 말아야 하며 상식적인 생활묘사를 극복하며 무미건조한 사건을 피면하고 절주 빠른 사건의 련속폭발이나 인간심리발전의 굴곡적발전을 그려나가야 하되 리유없이 길어지는것을 삼가해야 한다.     모든 사물현상의 진미가 언제나 내적미, 질적미에 있는것처럼 장편소설의 진미도 내적미라고 할수 있는 감정조직에 있다. 현대소설창작에서 구성의 솜씨는 사건조직에서보다 감정의 흐름선을 교차적으로 잘 짜나가는데 있다. 똘쓰또이는 ≪안나 까레니나≫의 서두단에서 하나의 사건을 터뜨리여 그후의 많은 사연을 암시하면서 독자들을 궁금하게 하고 주의를 끌고있다. 례를 들어보자     행복한 가정은 대체로 어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나름으로 불행한 법이다. 오볼론쓰끼네 집안은 온통 란가였다. 안해는 남편이 전에 그들의 집에 가정교사로 있던 프랑스녀자와 관계가 있은것을 알고 이 이상 한집에 동거할수 없노라고 남편에게 선언하였다.     프로벨은 ≪보바리부인≫에서 인물을 이렇게 재치있게 등장시키고있다. “마침 우리가 자습을 하고있을 때였다. 문뜩 교장선생님께서 평복차림을 한 ‘신입생’과 큰 책상을 든 사환군 한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꺼벅꺼벅 졸고있던 애들은 어마지두에 놀라깨여났다. 모두들 짐짓 공부하다가 놀란것처럼 화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오쓰뜨롭쓰끼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에서는 특수한 분위기속에서 인물을 등장시키고있다. “‘너희들가운데서 누가 명절전에 보충시험치러 우리 집에 왔다갔니? 왔다간 애들은 냉큼 일어서라!’(하략) 학생 여섯이 걸상에서 일어났다. 남학생 넷이고 녀학생 둘인데 신부는 그들을 집어삼킬듯이 악의에 찬 죄꼬만 눈을 번뜩이였다. 애들은 무서워서 그를 불안스레 쳐다본다.”     례문들에서 보다싶이 소설의 발단들은 참으로 소설의 길 떠나기부터 독자들을 꽉 묶어세운 매력적인 발단이다. 장편소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의 고리식연장과 감정선의 긴밀한 련계가 없이 사소한 이야기들을 집대성화한다면 용량이 큰 한부의 이야기집이 되고말것이다.     맨처음의 사건이 발생하기전에 여러가지 류형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런 상황설정은 마치 새가 둥지를 트는것과 같이 인물을 등장시키기전에 먼저 해야 할 필요한 작업이다. 이것은 단순히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한 말꼭지가 아니기에 잘 계산되고 다듬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긴긴 대화로서의 장편소설의 진정한 구성미가 있게 되고 가독성이 증가할수 있다. 장편소설의 기본감정선은 주인공이 끌고가는 정서선이다. 하기에 감정력은 극성이 강한 사건조직과 빈틈없이 일치된 인물과 성격론에 맞게 진실하게 째여져있어야 한다. 그것의 중요한 요소는 축적과 폭발, 긴장과 완화의 최적의 배합이다. 따라서 양상에 어울리게 감정의 색갈이 조화되고있어야 하기때문이다.     거대한 견인력과 정서적감화력은 주로 감정조직의 여하에 달렸다. 묘사된 사건이 별게 아니면서도 사람들이 흥미와 조급성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장편소설들이 많다. 괴테는 “장편소설은 서서히 전진하지 않으면 안된다…장편소설의 주인공은 소극적이여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류의 이러저러한 소설들을 내놓았다. 례하면 장편소설 ≪젊은 웨르스터의 번뇌≫가 이 본보기이다.     감정은 세부화하여 섬세하게 묘사하면서도 그 자체에 개체적인 자질구레한 감정선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인간에게 이런 감정도 있고 저런 감정도 있다는식으로 한 개인의 여러가지 파편을 라렬하고있는것이 현시대 개인창작의 경향이다. 장편소설은 전형적이고 표현성이 강한 감정의 갈래가 모이고 합쳐서 예술의 대하로 이루어진것이라 비유할수 있다.      4. 장편소설에서 형상창조수법     언어로써 생활의 화폭을 창조하려면 형상수법이 필요하며 매 형상수법의 본질과 기능, 그 요구를 잘 활용해야 한다. 예술적강조는 형상요소가운데서 어느 한 측면에 특별히 힘을 넣어 그것을 부각하는 수법이다. 소설형상창조에서 흔히 쓰는 다양한 수법들을 살펴보자.     1) 사슬식배렬      여러개의 이야기를 차례로 련속시키는  배렬방식을 가리키는 용어인데 즉 여러개의 고리를 이어서 작품을 꾸미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이 기법은 이야기자체가 련작소설과 류사한 형태의 중첩구조로 짜여져있다.     로씨야의 뚜르게네브의 ≪아버지와 아들≫을 분석해 보면 아르까다의 집, 오찐조바의 집, 바자로브의 집을 차례로 쓴후 다시 처음부터 쓰는 그 과정에서 여러면으로 주인공 바자로브의 형상을 부각하였다. 또 그만큼 플롯도 간결하고 세련되고 명랑하며 소박한 느낌을 준다. 인물은 집중되였지만 정절은 단순하고 문자도 간결한 수법은 호우돈의 장편 ≪주홍글씨≫에서도 따라 배울수 있다.     2) 점층법     점층법은 문체론적수법으로써만 아니라 성격창조나 사건조직의 수법으로도 많이 리용되고있다. 점층법은 사건을 층계를 밟아나가듯이 점점 긴장하고 간고하게 만들어나가는 수법이다. 점층법을 의도적으로 구사함으로써 흥미와 긴장감을 주어 성공한다. 다니엘 띠포의 ≪로빈손 크루소≫가 그 례로 될수 있다. 점층법의 기교로 하여 독자의 기대와 초조감,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3) 순차적구성법     순차란 구조시학에서 이야기를 구성하는 사건이 발생한 시간순서를 가리키는데 이야기와 담론이 동일한 순차를 가지고있는 표준적계기성과 그렇지 않은 시간변조적계기성이 있다. 전통적이며 보편적인 구성형식으로서 긍정인물과 부정적인물사이의 갈등에 기초해서 사건이 발생발전하고 이야기줄거리가 순차적으로 전개되도록 조직하는 수법이다.     지난시기 전공법이라고도 한 순차적구성법은 사건체계가 기승전결에 따라 차례로 조직되고 인간관계의 발전이 순차성을 가질것을 요구한다. 이 수법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조형적인 균형미를 보장한다. 대부분 장편소설들이 순차적구성법으로 구성조직을 하고있다.     우선 소설의 형태부터 잘 잡아나가야 한다. 독자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그런 부분을 먼저 보여주고 순차적으로 끌어가면 독자가 왜 그렇게 되였나? 관심을 갖고 계속하여 읽게 될것이다. 그래서 끊이지 않는 대화와 행동를 통해 장면을 보여주는것이 최선이다.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려주는것이 능사가 아니라 독자가 싫증을 느끼지 않을까 시종 독자를 배려하면서 써내려가야 한다.     4) 평행수법     평행수법이란 두갈래 정절선색을 안배한것이다. ≪홍루몽≫은 림대옥과 가보옥의 애정비극과 가부의 성쇠사를 두갈래 이야기선으로 관통시키고 이 두갈래선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수많은 사건을 끼워넣어 그믈형식의 결구를 이루면서 광범한 생활정경을 전시하였다. 그러나 구성상 통일시켜야 하는 미학적요구로 보아 많은 경우 작품이 끝까지 평행선을 그을수는 없다.     5) 회상식구성법     회상식구성법은 오늘의 시점에서 과거생활을 돌이켜보며 그리는 구성수법이다. 이 구성법은 다양하게 쓰이는바 작품전체가 회상으로 되는 경우도 있고 어느 한장면만 회상을 도입하는것도 있다. 처음에 회상계기를 주고 과거생활로 내용을 일관시켰다가 현재로 돌아오는데 결국 이야기가 한선에 꿰여져있다.     장편소설에서는 현재생활에서는 현재생활과 지난생활을 끊임없이 교체하고 얽히게 하면서 같이 전개해나가는 수법을 많이 쓰고있다. 그러나 생활묘사의 전개력은 주위세계의 어느 묘사대상도 다 전개하여 묘사할수 있다는 공간적개념에서만 이야기되는것이 아니다.     6) 중단법     중단법은 소설의 한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중간에서 그 이야기를 끊고 다른 새로운 이야기나 장면으로 전환하는 구성의 한 수법이다. 중단법은 흔히 소설의 장절을 바꾸는 방법으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장회체소설들이 이 수법을 많이 쓴다. 쎄르반떼스의 장편소설 ≪돈 끼호떼≫라든가 유고의 ≪레미제라블≫ 등이 이 수법으로 쓰인 장편소설들이다.    중단법은 긴장했던 독자들을 휴식시키며 새 이야기, 새 장면을 시작함으로써 긴장감을 조성하고 흐름에 속도를 내게 하며 지루한 감을 가셔주고 참신한 감정을 안겨준다. 뿐만아니라 의문과 불안, 아쉬움과 초조감, 기대와 념원 등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중단법은 이야기를 한창 신나게 엮어나가다가 고조점이나 폭발점에서 끊는다. ≪삼국연의≫나 ≪수호전≫같은 장회체소설에서도 관건적시각에 “하회를 보라” 하는식으로 기탁해놓고 화두를 홱 돌려버려 모종의 기대를 가득 안겨주고 지난날을 재음미하도록 한다.     7) 격세법    격세법은 세대를 넘어서 인물성격을 묘사하는 수법이다. 이 수법이 활용되면서 세대를 지나서뿐만아니라 어느 한 일이 있은 다음에 오랜 시일이 경과하였는데 거기서 다시 문제가 생긴것으로 사건을 조직하는것을 격세법이라 하고있다. 격세법은 생활과 인간의 내면세계의 이런 특성을 살려 성격을 대비적으로 부각하고 사건을 흥미있게 조직하는 수법이다.     격세법은 오랜 력사적시기를 보여주는 장편소설에서 세대와 시일을 비약시키면서 많이 사용하고있다. 한국의 작가 채만식의 장편소설 ≪태평천하≫는 5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로서 가족사소설이다.     8) 상징법    상징의 대상은 동식물이나 자연현상을 많이 선택하지만 사건이나 사회현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리기영의 ≪고향≫의 첫 머리에 그려진 개구리도 견디지 못하는 무더위는 당대 한국 농촌생활의 웅심깊은 상징이다. 조명희의 소설≪락동강≫에서도 상징수법을 쓰고있다.     9) 교감법     교감법은 한 인물의 감정이 다른 인물의 사상감정에 옮겨지도록 함으로써 감정의 파동이 증폭되도록 만드는 감정조직의 수법이다. 교감법의 기능은 한 인물에게서 일어난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몇배의 힘을 가지고 작용하도록 하며 성격의 본질을 정서적으로 드러내고 장면에 감정이 기름지게 하는데 있다.     거대한 견인력과 정서적감화력은 주로 감정조직의 여하에 달렸다. 묘사된 사건이 별게 아니면서도 사람들이 흥미와 조급성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장편소설들이 많다. 괴테는 “장편소설은 서서히 전진하지 않으면 안된다…장편소설의 주인공은 소극적이여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류의 이러저러한 소설들을 내놓았다. 례하면 장편소설 ≪젊은 웨르스터의 번뇌≫가 본보기를 보여주고있다.     섬세한 심리분석으로 인물의 심리활동을 다양하게 묘사하고 그가운데서도 “내심독”의 묘사, 선명한 대조수법, 신랄한 풍자수법으로 유명한 똘스또이의 ≪안나 까레니나≫의 예술특색도 작가들의 거울이 되기에 손색이 없을것이다.    10) 트릭수법     속임수, 책략 등의 사전적함의를 가지는 트릭은 작가들이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 즉 이야기를 의미있게 만들고 흥미 있게 독자에게 전달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얽어 짜기에서 구사하는 전략적개념의 일환으로 리해할수 있다.     로맹 롤랑도 장편소설 ≪쟝 크리스토브≫에서 기세가 벅차고 혼연일체를 이룬 결구와 더불어 심리묘사, 자연경물묘사, 철리성 의론들이 서로 안받침되면서 그 시대의 많은 중대한 문제들을 재치있게 제기하고있다. 그리고 보편적인생활을 고도의 긴장성과 극적인 예리성으로 보여준것으로는 도쓰또옙쓰끼의 유명한 장편소설 ≪죄와 벌≫을 례로 들수 있다.     마음대로 서술할수 있는 장편이라 해도 지루하게 하는 쇄말사는 피하고 장면마다 살아나도록 핍진하게 이야기를 엮어나가야 한다. 각 장의 처음부터 시한폭탄을 장착해두어 그것이 언제 어떤 방향으로 터질지 항상 독자에게 궁금증을 달아줘야 한다. 듀마는 ≪몽떼 크리스또백작≫에서 이런 특색을 잘 살리면서 사람들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선”에서 집중적으로 체현되였는바 력사리성과 더불어 공동하게 문학의 진, 선, 미의 가치체계를 구축하였다. 인문정신은 인간의 생명, 존엄, 가치, 정감, 자유정신을 숭상하였고 인생의 전면적인 개선과 어우르는 생존상태 및 운명, 행복과 련계시켜 인생을 탐구한 력사이다.     11) 여러갈래선의 설치법     여러갈래선이란 곧 한갈래 주선외에 두갈래 이상의 부차선으로 이야기를 얽어나가면서 병진시키는 수법을 말한다. 넓은 생활면을 포섭하고 표현하면서도 이야기의 줄거리가 똑똑하고 꾸밈새가 조리정연하며 주요인물들의 성격도 섬세하고 부각된 형상이 돌출하여 실감을 다분히 주는 소설로는 로씨야 숄로호브의 장편소설 ≪고요한 돈≫이 세인들에게 공인되고있다. ≪안나 까레니니≫에서도 작가는 두사건이 평행적으로 발전하는 예술적구성으로 거대한 력사적전변이 이루어지고있는 당시 로씨아 사회생활을 폭넓고 깊이 있게 반영하였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교차됨이 없이 심각한 내재적련계를 가지고 발전한다. 작가는 “나는 사건이나 인물관계(익숙한 정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재적인 련계에 의해 구성상의 관계를 처리했다.”고 쓰고있다.     단선이든 쌍선교차이든 여러갈래든 어디까지나 발단, 발전, 결말이 세부분을 포함시키고있다. 장편소설은 시대를 폭넓게 전개하여 보여주어야 한다는 미학적요구로 하여 흔히 귀납방법으로 이야기줄거리를 조직한다. 그로부터 인과관계로 생활묘사를 전개하여 나간다.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론리적고조점과 초점을 선택하고 거기에 많은 구성요소들을 완만하게 접근시킨다.     12) 파노라마적기법     대단히 넓은 물리적배경이나 시간적으로 장시간에 걸친 사건들을 단일한 구절로 선택하고 압축하여 요약하는 서술기법의 하나로서 극적기법이 단편소설이나 추리소설, 의식의 흐름수법을 보이는 소설들에서 나타나는것이라면 파노라마적기법은 장편소설, 력사소설들에서 주요하게 사용하는 기법이다.     력사성을 띤 장편소설이라면 진실한 력사사건과 력사인물을, 가상적인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뒤엉키게 하면서도 구성이 조화롭고 잘 째여지게 한다. 로씨야 뿌쉬낀의 ≪대위의 딸≫이 훌륭한 본보기이다.    소설문학형태의 중요한 특성은 생활묘사의 끝없는 전개에 있으며 장편소설의 기교는 장편다운 전개의 솜씨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생활묘사의 전개력은 주위세계의 어느 묘사대상도 다 전개하여 묘사 할수 있다는 공간적개념에서만 이야기되는것이 아니다.     끝없이 펼쳐진 화폭들이 다 종자에서 피여난것으로 되고 그 모든 부분들이 인물형상창조에 없어서는 안될 구성요소로 되게 하는데 장편소설의 전개된 묘사에 대한 근본요구가 있다. 말하자면 장편소설은 인정심리적양상으로서 그 흐름은 유유한것같지만 장강처럼 기본감정이 풍부해야 해야 한다.     장편소설인만큼 이야기성, 구성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피와 살이 될수 있는 표현기교에서도 소설이 살아난다. 특히 묘사의 짙은 회화성과 생동성, 속담, 성구, 격언 등의 능란한 사용, 수사법의 운용 등으로 가능한 예술성을 도모해야 한다. 리기영의 ≪고향≫, 홍명희의 ≪림꺽정≫을 모범으로 삼을수 있다.    소설의 민족적색채를 살리려면 민담의 활용, 향토색채가 짙은 풍경묘사, 민족어의 특색을 돋우는 언어구사 등 특징도 살려야 한다. ≪인간문제≫에서 이점이 잘 살려지고있다. 과장과 대비적수법과 웃음의 화폭으로 인물성격의 특징을 살리고 표현력이 강렬한 언어로 민족풍격이 짙게 한 소설로는 에스빠냐의 쎄르반떼스의 유명한 ≪돈 끼호떼≫만큼 성공한 작품도 드믈것이다. 삽입서술과 주요사건을 유기적으로 련관시켜야 하며 인물의 운명의 비밀같은것을 현념으로 설치하거나 해학적이고 과장적인 필치로 신랄하면서도 예리하게 하면서도 흥미를 관통시켜야 한다. 디켄즈의 ≪데이비드 커퍼필드≫, 쎄르반떼스의 ≪돈 끼호떼≫가 례로 될수 있다.    묘사수법과 서정토로의 긴밀한 결합으로 감화력을 증장시킬수 있으며 감정기조를 잘 잡아야 한다. 디켄즈의 ≪두 도시의 이야기≫가 조용한 풍격에 우울한 감정색채로 남다른 특색을 가지고있다. 대화, 서사(행동), 심리묘사나 장면묘사, 배경묘사 등을 적절히 구사하면서 장면을 극적으로 처리하되 작가는 될수록 나서서 말하지 말아야 한다.     인물의 심리묘사를 잘해야 한다. 영국작가 브론데의 ≪제인 에이어≫는 남녀주인공의 심리를 뛰여나게 묘사하여 예술매력을 증강하였다. 보이니치의 ≪등에≫도 이면에서 특색이 있다. 현대주의 “심리소설”에서도 현실생활과 탈리된 허황한 심리묘사를 하느라고 진실한 감정조직이 홀시되여서는 안될것이다.     감정조직의 기본요소들인 긴장과 완화, 축적과 폭발의 흐름을 여러갈래로 묘사할지라도 기본감정선이 주류를 이루게 하면서 성격론리에 맞게 사건조직과 그것을 일치시키는것이 장편소설의 구성기교의 비결이다. 과장과 만화적인 필치, 유모아로 풍자성을 살릴수 있으며 환경묘사와 세절의 진실성으로 인물성격을 부각하여야 하며 언어의 개성화를 극력 도모해야 한다. 발자끄의 ≪고리오령감≫, 레브 똘스또이의 ≪부활≫등이 귀감이다. 마크 트웬의 ≪하클베리 핀의 모험≫도 인물의 내심활동을 세심하게 부각하면서도 과장수법으로 유모아성을 잘 살리고있으며 만화식의 풍격을 잘 보여주고있다.     인물성격이 두드러지게 하는데는 대조수법만큼 효과적인것은 없을것이다. 이점은 발자끄의 ≪고리오령감≫, 유고의 ≪레미제라블≫, 독일의 하인리히 만의 ≪충복≫에서 명백하게 증명되고있다. 작가는 시종 생활의 진실한 객관성에 충실해야 생활환경과 인물의 동작으로 성격을 부각함으로써 살아움직이는 인물형상을 창조할수 있다.     인물의 고상한 외모와 비루한 내심지간의 첨예한 대립을 단단히 틀어쥐고 인물의 자백, 유모아적인 필치, 전형적인 세절묘사, 외모묘사 등 예술수법으로 인물의 특징을 선명하게 부각하는 방법도 좋다. 그것의 모범으로 모파쌍의 ≪미모의 벗≫이나 고골리의 ≪죽은 넋≫을 첫손에 꼽아야 할것이다.     사실주의적묘사와 현대파문학수법을 결합시켜 쓰려면 두가지 수법을 잘 결합시켜 아주 큰 예술매력을 가진 꼴롬비아의 마르코스의 ≪백년의 고독≫을 거울로 삼을 필요가 있다. 소설은 황당하면서도 괴이한 얽음새, 교묘한 상징수법, 극도로 과장된 수법을 쓰면서도 현실생활에 대한 진실한 묘사는 독특한 예술특점을 과시한다. 사실주의와 현대주의 결합의 걸작이라 할수 있다.     장편소설은 시대의 전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시대나 그를 대표하는 력사적사건에 대한 설화가 추상화되지 않고 진실한 형상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엘 보이니치는 소설 ≪등에≫에서 등에라는 애국지사의 형상을 부각하였다. 이 형상은 19세기 이딸리아 혁명자의 전형이며 등에의 의지와 리상은 당시 이딸리아인민들의 의지와 리상이였다.     장편소설이라 해서 꼭 력사적인 거대한 사변들을 다루어야 훌륭한 소설이 되는것이 아니다. 19세기 영국의 비판적사실주의 계렬의 녀류작가 살러트 브론티의 ≪제인 에이어≫는 밑바닥인생을 사는 가난한 가정교사의 삶의 궤적을 그리고있다. 소설에서 형상화된 인물들의 성격도 매우 개성적이며 그들이 속한 사회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있다. 작가의 말처럼 “공상을 억제하고 랑만을 제한하고 요란한 분식을 피하고 그저 진지하게, 진실하게 그릴것을 바랬다.”    장편소설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생활묘사에 대한 기복있는 전개에 있다. 대상을 세부화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생활을 진실하게 다각도에서 폭넓게 전개하는것은 독자들에게 시종 감동을 주면서 읽어나가게 하는 관건이고 되돌아와서 장편소설창작기법의 하나이다. 장편소설에서 대화가 길어지는것이 보편적이지만 인물성격의 전면모와 사건발전의 전개에 알맞아야 한다.     소설의 끝에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자기가 구축한 세계의 열쇠를 건네주거나 아니면 돌연한 급선회를 통해서 은폐하거나 혹은 플롯을 한걸음 진전시키면서 자신은 슬며시 물러나버리는 쪽을 선택하거나 한다. 서두와 결말은 상관관계를 지닌다. 한국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결말이 좋은 례로 된다. “그는 가슴을 펴고 숨을 들이켰다. 그와 함께 밤하늘이 그의 시야를 채웠다. 그는 문득 숨을 멈추었다. 그는 눈앞이 환하게 열리는것을 느꼈다. 그가 본것은 넓게 펼쳐진 광대한 어둠이 아니였다. 그가 본것은 어둠속에서 수없이 빛나고있는 별들이었다.    그는 멀리 깊은 어둠 저편에서 명멸하고있는 무수하게 많은 별들을 우러러 보았다. 가을별들이라서 그 초롱초롱함과 맑은 반짝거림이 유난스러웠다. 그 살아서 숨쉬고있는 별들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 별들이 모두 대원들의 얼굴로 보였던것이다. 먼저 떠나간 대원들은 죽은것이 아니였다. 그들은 모두 혁명의 별이 되여 어둠속에서 저리도 또렷또렷한 모습으로 빛나고있었던것이다.     그는 봉화가 타오르고, 함성이 울리고있는 가슴에다 그 별들을 옮겨심고있었다. 끝간데없이 펼쳐진 어둠속에서 적막은 깊고, 무수한 별들의 반짝거리는 소리인듯 바람소리가 멀리 스쳐흐르고있었다. 그림자들은 무덤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막한 어둠속으로 사라져가고있었다…”    이 결말은 소설에서 다루고있던 무겁고 장엄한 제재에 걸맞는 결말수법이다. 소설의 서두와 결말은 형식적의미를 릉가한다. 이렇듯 서두와 결말은 플롯이 일관성을 유지하고있다는 느낌을 부여하고 작가의 생각이나 세계관을 표현하는 장치역할뿐만아니라 소설의 주제를 재치있게 심화시키고있다.    장편소설은 형태부터 잘 잡아나가야 한다. 첫장부터 의외적이고 강렬하며 전체 주제를 암시하는것이 좋다. 한것은 가장 강렬한 부분을 앞에 던져놓 고 다음 장절을 설정해 읽을 맛을 돋군다. 우선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그런 부분을 먼저 보여주고 다음 순차적으로 끌고나가면서 독자가 왜 그렇게 되었나? 하는 관심이 결국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 호기심을 놓지 않게 해야 한다.     끊기지 않는 대화와 행동을 통해 장면을 보여주더라도 지루하게 쇄말사를 피루는것은 금물이다. 말하자면 서술이 느린 장편소설이라 해도 일방적인 서술로가 아니라 극화의 단계를 확보해 나가면서 각 장절의 처음부터 시한폭탄을 숨겨두고 그것이 언제, 어떤 방향으로 터질지 독자에게 궁금증을 달아주어야 한다. 장면을 극적으로 처리하면서 작가가 설화자가 되지 않는게 좋다.    이 대천세계에서 문학창조의 가치취향은 부동한 제재의 령역에서 각자 자기의 독특한 내용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문정신이야말로 고금중외의 일체 우수한 문학작품의 총적주제로 되였다. 그것은 “선”에서 집중적으로 체현되였는바 력사리성과 더불어 공동하게 문학의 진, 선, 미의 가치체계를 구축하 였다. 인문정신은 인간의 생명, 존어, 가치, 정감, 자유정신을 숭상하였고 인생의 전면적인 개선과 아루르는 생존상태 및 운명, 행복과 련계시켜 인생을 탐구 한 력사이다. 그 력사를 소설ㅡ중편, 장편소설이 고이 담고있는것이다.     장편소설이 꼭 생활의 교과서인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활의 다양한 변화와 절주는 장편소설 창작에 무궁무진한 소재를 제공해주고 있으며 장편소설발전에 충분한 전제와 동력을 제공하고있다. 평등과 정의, 진리, 행복, 리상 등에 대한 인류의 추구는 부단히 강렬해지고있다.     새 시대에 들어서서 우리는 체재들의 어떤 구성력량이 일으키고있는 작용을 보고있다. 장편소설체재의 탄생과 형성은 기나긴 력사의 랑하를 거쳐서 우리 앞에 새롭고 기이한 모습으로 현연되고있다. 그러나 장편소설이라는 이 쟝르의 골격은 아직도 굳혀지지 못했다고 의론하고있다. 하기에 그것의 전부의 층차를 지금은 아무도 예측할수 없다.    “육체는 가히 복제할수 있지만 정신은 복제할수 없다.” 장편소설이 천지개벽의 임무는 담당할수 없지만 사회를 인식시키고 사상적영양분을 공급하는 기능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뚜르게네브는 “ 문학예술로 말할진대 어떻게 쓰는가 하는 문제는 무엇을 쓸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장편소설가는 사회를 향해 납함하는 사명을 벗어던질수 없다. 문학의 공리성(公理性)으로 하여 사람들의 아름다운 동경을 그려내고 인간의 본질적력량과 인성의 빛발을 체현해야 할것이다. 장편소설이야말로 인류의 정신가치와 사상력량을 체현함에서 가장 적격의 쟝르이다. 장편소설의 사상적력량은 인문정신을 신장시키는데 이바지되여야 할것이다.  
15    제 2 절 단편소설창작기법 댓글:  조회:3809  추천:40  2007-08-13
                                                  제2절 단편소설창작기법 1. 단편소설창작기법의 함의 단편소설은 자기의 규률과 규칙을 구비하고있는 문학품종으로서 창작에서 가장 재치가 수요되는 문학형태이다. 단편소설은 작은 용적안에서 주제의 단일성, 구성의 엄밀성, 최대의 절약과 최상의 강조법의 리용, 단일한 효과성과 인상의 선명성 등 단편소설의 기본형상원리가 엄밀히 지켜져야 하는 기교의 문학이자 재치의 양식이다. 이야기는 짧지만 그 심오성은 무궁하다. 미국의 작가 E.A 포우는 단편소설은 “반시간에서 두시간사이에 단숨으로 읽혀질수 있어야 하고 유일하거나 단일한 효과에 제한되여야 하며 모든 세부들이 그 효과에 종속되지 않으면 안되는것”이라했다. 작가는 제한된 천지에서 그리 명확하지 않은 단편소설의 규칙에 좇아 자기를 표현한다. 례컨대 모파쌍의 세계는 동시대인인 플로베르보다 더 넓고 천태만상이며 체호브의 세계가 그보다 선배인 도스또옙쓰끼의 세계보다 더욱 넓고 다채롭다고 한다. 구라파에서 단편소설문학이 하나의 독립된 양식으로 공인되고 그 미학적요구를 명백하게 제기하기 시작한것은 19세기이다. 단편소설은 력사발전의 발걸음과 더불어 자기의 특징을 현시하면서 미학적요구를 형성하였다. 구라파문학에서 단편소설이라는 개념을 양식의 의미로 사용한 나라는 이딸리아였다. 하여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으로부터 단편소설양식이 개척되였다고 보고있다. 구라파문학에서는 이 작품이 널리 번역전파되면서 단편소설과 장르라는 용어가 널리 류행되였다. 단편소설의 미학요구에 대하여 처음 서술한것은 괴테였다. 그는 ≪독일려행자들의 이야기≫가운데서 인물의 입을 빌어 단편소설은 “일상적인것이 아닌것”이여야 하며 “하나의 이상한 사건”이여야 한다고 하였다. 독일의 진보적랑만주의자들은 “단편소설은 일화이다.”라고 하면서 여러가지 요구를 제기했고 독일의 소극적랑만주의자들은 단편소설의 특질을 “지각의 련속성과 통일을 예상하는 짧은 이야기”라면서 “주제가운데 단일한 사건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구라파에서 단편소설에 대한 론의가 활발하게 벌어진 시기에 비하여 아세아나라들에서는 뒤늦어서 론제에 올랐다. 로신은 일찍 “웅위롭고 찬란하며 거대한 기념비적문학옆에 단편소설은 의연히 충족한 권리를 가지고있다.”고 선언했다. 단편소설은 작은것에서 큰 문제를 노리고 강렬한 정서로 밝혀내야 하는만큼 감정조직이 깐지게 짜여져야 한다. 단편소설은 대개 두가지 표현방법이 있다. 한가지는 생활의 횡단면을 쓰는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주인공의 일생을 개괄적으로 묘사하거나 비교적 긴 시기내의 한단락의 생활을 개괄적으로 묘사하는것이다. 그러나 일생을 쓴다해도 일생중의 가장 중요한 편단을 취한다. 그 편단은 면바로 잘라내는것이 취사선택의 기교이다. 등장인물이 여러 사람일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한사람일수도 있는 하나의 의미있는 사건과 장면을 통해 전달되는 단일한 효과를 중요시한다. 단편소설형식은 배경의 경제성과 서술의 간결성을 요구하기에 줄거리나 극적인 만남을 통해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나 인물의 성격을 충분히 전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용은 비현실적이고 색다른 것이거나 지극히 사실적이고 때로는 이 두가지 성격이 같이 나올수도 있다. 단편소설은 생활세부를 선택하고 구체적생활묘사를 한다. 그속에 인물의 성격과 정황에 맞는 생활적이며 뜻 깊고 개성적인 대화, 전제와 복선의 설정, 생활론리의 진실성의 보장, 축적과 폭발, 긴장과 완화의 재치있는 결합, 감정조직이 흥미있고 뜻 깊은 이야기와 일화, 인간운명의 심오한 추구와 처리, 구성 등에 정력을 넣어야 한다. 단편소설에서는 생활의 한측면을 보여주어야 하는바 미학적요구로 하여 흔히 연역적방법으로 이야기줄거리를 조직한다. 즉 결과로부터 원인으로 역행하는 해부학적태도를 취하게 된다. 전통적관점에서 소설은 흥미있는 사건을 이야기하며 의의있는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형식이기에 해부는 종합보다 더 엄밀하며 집중적인 사고형식과 수법을 쓰게 된다. 단편소설창작기교는 곧 생활자료의 엄밀한 해부와 선택에서 많이 현연된다. 하여 작가는 생략하거나 함축하고 결과만을 파고들면서 그 전면모를 련상시키는데서 기교를 모색한다. 비유해 말한다면 단편소설이라면 틀어쥔 주먹처럼 압축되여야 그 특성이 살아날수 있다. 19세기 비판적사실주의소설가들은 세부묘사의 진실성을 강조하면서 진실한 생활화폭을 그려낼것을 주장했다. 그들이 서술, 의론, 묘사를 통하여 작가의 주관감정을 많이 로출시켰지만 헤밍웨이는 ≪살인자들≫에서 살인자들의 살인폭행에 대한 니크의 심리를 하나의 화폭으로 보여주었을뿐 그들의 살인동기와 방법도 밝히지 않았으며 그들의 살인폭행에 대한 작가의 어떠한 태도나 평가를 전혀 주지 않고있다. 이것은 헤밍웨이의 독특한 소설풍격이라 할수 있다. 그는 문학창작을 큰 바다에 흘러가는 빙산에 비유했다. 빙산은 바다표면에 나타난것은 8분의 1이지만 바다밑에 잠겨있는 부분은 8분의 7이나 된다는것이다. 이 작품의 표면에 나타난것은 한차례 살인미수사건이다. 이 표면에 나타난 사건을 통해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인간관계가 야수적인 관계, 인간들의 랭담성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는 대화의 간결성도 특이하다. 단편소설의 취재방면에서의 이런 특점이 흔히 하나의 주요한 생활사건을 작품의 줄거리로 삼고 정절이 비교적 단순하고 장면묘사가 간결, 집중되게 한다. 단편소설은 민첩하게 엮어지므로 문학의 돌격대, 경기병이라 한다. 단순한 형식실험에 그치지 않으려면 치렬한 문학정신으로 인간과 현실세계의 진실을 담아내야 하는바 복잡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포착하고 요해처를 찌르면서 해학과 반증의 수법으로 서사의 간결성을 도모해야 한다. 소설에서 양식의 조화미는 외부적미만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내용의 표현조직의 미인것이며 기교란 다름아닌 그 조화의 기술인것이다.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하여 문제성이 강하고 성격이 생동하면 된다는 론리를 내세우며 양식의 미학적요구를 배제해서는 안된다. 참새는 작아도 오장륙부를 가지고 있다는 속담처럼 단편소설은 비록 그릇은 작지만 소설로서의 생리적과정을 어느 하나라도 드틸수 없으며 무시될수도 없는바 작은 용적안에서 소설의 전면모를 갖추어야 한다. 이 근본적문제로부터 최대의 절약과 최상의 강조법이 리용되여야 하며 단일한 효과성과 인상의 선명성 등 기본형상원리를 체현시켜야 한다. 2. 구상의 실제 1) 제목설정 소설가를 모종 견지에서 이야기군이라고들 한다. 이야기를 엮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해답의 표준은 어디까지나 광대한 독자들의 흥취이다. 우선 소설을 지음에서 맨 처음으로 심사숙고하는것이 제목이다. 제목은 소설문본의 한부분으로서 해당작품의 간판이고 그 내면세계를 내비치는 눈동자이다. 제목은 소설의 주제를 표명할수도 있고 사람들로 하여금 알고싶어하는 신비한 이야기를 암시하는바 독자의 주의를 끌고 열독흥취를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있다. 더구나 소설이 상품과 예술이라는 두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상업상에서 글제 혹은 책이름은 중요하다. 독자들은 소설의 제목에서 필요불가결의 일부 정보를얻을수 있으므로 본문에 나타나지 않는 이야기의 요소를 제목에 삽입할수도 있다. 가끔은 소설을 거의 마치고 제목을 다시 달기도 한다. 다음 소설적대화의 허두떼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독자로 말하면 첫마디가 긴요하다. 서두는 어디쯤에서 그쳐야 하는가? 소설의 첫구절 혹은 한개 자연단 혹은 첫페지는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와 소설가가 엮어낸 세계사이에 문턱을 설정한다. 이런 의미에서 소설의 서두는 우리를 “문안으로 들어서게 하는 문턱”이다. 서두는 글 전체의 내용을 암시하고 주제의 방향을 암시한다. 작가는 서두를 통해 소설세계를 현실세계에서 분리하여 독립된 세계가 되도록 하고 독자에게는 소설전체를 읽는데 필요한 전제를 확인하는 단계이다. 엄밀하게 보자면 절대적시작이란 하나의 개념으로서만 성립할수 있을뿐이지만 절대적시작을 추구한다. 소설의 서두와 결말은 그 안에 플롯의 제반요소와 단계가 압축되는 구조라고 할수 있다. 소설의 구조는 서두와 결말이라는 두기둥사이에  론리적인 틀로 형성되는 구조물로서 궁궐에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으로 비유되고있다. 발자끄는 프랑스어의 정밀성과 근신성에 아랑곳없이 구두어를 충분히 리용하였다. 전혀 구속을 모르는 문체풍격을 가진 작가들로는 쉐익스피어, 스코트 등 세계적인 일류소설가들을 들수 있다. 특히 쉐익스피어의 비극 ≪햄리트≫에는 구두어들을 과감히 사용하여 살아숨쉬는 사람의 말을 직접 듣는것같이 질감 을 안겨주면서 소설속에서 또 다른 생활을 체험하게 한다. 2) 계기의 설정 서사의 계기성 혹은 서사요소들의 련쇄를 지칭하는 말로 시퀀스라는 외래어를 잘 쓴다. 시퀀스는 플롯을 진행시키는 필수적인 단위라고 규정하고있다. 서사란 사건을 제시하고 그것들을 련결시킴으로써 플롯을 완성시켜나가는 행위이므로 련속, 순서(시퀀스)는 이들 관계의 접점들에서 발생하는 계기인 셈이다. 독일의 소극적랑만주의자들은 단편소설의 근본적특질은 “지각의 련속성과 통일을 예상하는 짧은 이야기”라고 하면서 주제가운데 단일한 사건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단편소설의 재치는 물론, 그 의의와 생명력은 소재선택과 계기설정에 달린다. 단편소설의 계기는 예리한 사회적문제성이 배태되여야 하는바 인간의 운명과 조우는 인생현장에서 불가피면적인 절실한 문제이기때문이다 전통적단편소설에서는 양식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요란하게 큰 문제, 많은 문제를 내세우는것도 금물이지만 한개인의 어떤 조우나 심리활동을 지리멸렬하게 서술하는것을 삼가한다. 소설에 타당한 생활적계기도 주지 못하면서 그냥 일상의 장면을 전개하여 나가면 구성의 산만성을 피할수 없고 이야기의 취미성도 근원을 잃는다. 이러저러한 일상의 에피소드들이 이야기를 엮어나감에 필요할지라도 그 생활적 기초우에 설 장면을 의의롭게 묘사하지 못한다면 작가적 통찰력과 철학적 사회학적인 사색의 빈곤증을 의미한다. 성격문제소설의 핵이 들어있는 계기는 사건속에 활동하는 인물성격을 통해서만 밝혀질뿐 다른 도경은 없다. 소설에서 계기과정은 성격의 묘사과정으로 되며 제인간문제, 사회문제성, 극성, 심지어는 작품의 생명인 진실성도 성격묘사의 결과에서 형상되고 담보된다. 전통소설에서는 성격창조가 기본형상과제로서 그의 질적특성을 규정하는 사상예술의 구심점이며 모든 형상요소들이 성격창조에 복무한다. 성격묘사는 단발명중의 총알처럼 성격의 한 단면을 꿰뚫어야 한다. 작가는 창조하려는 인물성격의 단면을 구체적성격으로 잡고 깊이 파고들어가 그것을 선명하게 부각해야 하므로 일상의 대화를 주고받는것으로 소설을 엮으려하지 말아야 한다. 성격의 핵은 사상감정으로서 인격력량의 주축이 된다. 성격묘사가 바로 사상감정의 묘사이며 생활감정의 한단면의 묘사가 된다. 결국은 내면세계의 묘사이며 그가운데 중요한것이 심리묘사로서 의식의 흐름소설이 아니라도 심리활동을 쓰게 되는것이다. 이야기 줄거리는 단순하나 예리하게 조직하고 진실하고 흥미있게 만들며 서술식이 아니라 력학적으로 간결하게 재창조해야 한다. 무감동의 소설은 곧 무감동의 이야기이다. 문학적인 이야기는 재미있는 자료를 단순히 엮어놓는것이 아니라 전형화하고 재창조한 예술적이야기이다. 의의있는 종자가 박히고 인간관계가 심오하게 시대, 생활상이 투영되고 하나의 이야기로 삶의 현장을 시사할수 있는 이야기라야 감미로운 문학대화가 된다. 단편소설의 묘사는 주로 주인공에게 집중되고 단순하고 간결하며 필치가 힘있고 속도감이 있어야 한다. 이경우 묘사의 섬세성이 배제 되는것은 아니다. 묘사의 섬세성은 형상성과 예술성의 속성이며 인물을 살아움직이게 하고 독자를 공명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소설창작을 려행길에 비유한다. 소설은 독자와 함께 걷는 진지한 인생현장의 답파이다. 그러므로 소설작가는 우선 독자의식을 가지고 길을 떠나야 한다. 소설을 쓰는 작업은 장차 낯모를 수많은 독자들을 이끌고 걸어갈 인생의 어느 한갈래 길을 마련하는 신중을 요하는 길이다. 소설독자는 작가와 함께 가주기는해도 매우 랭정하고 각박하다. 재미없으면 작가와 함께 끝까지 걷지 않는다. 독자는 굉장히 리기적이고 정감적이여서 그들이 걷고싶어하는 길에는 언제나 새롭고 유익하고 심장을 움켜잡는 그런 즐겁거나 아짜아짜하거나 보람찬것들만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 리기적정감 추구를 만족시키는 작가가 처음부터 소설의 길을 잘 닦아나간 재치있는 작가이다. 독자들이 작가가 지정한 길을 즐겁게 걷게 하려면 시종 호기심을 불어넣어주는것이 관건이다. 그러나 시대의 발전과 문학환경의 변화에 따라 텍스트는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며 그때마다 독자들은 텍스트의 새로운 지평사이의 충돌로 인하여 지평의 전환이 생겨난다. 이 문제를 잘 해결하자면 동기부여의 기교가 수요된다. 한편의 이야기가 보다 흥미진진하게 하기 위해서 이야기의 요소들보다 주제를 결정하는 모티브들을 생활론리에 맞게 정당화해야 한다. 단편소설의 정서색채도 중요한바 하나의 색채로 일관될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단편소설양상의 기본특성이다. 오 헨리의 유명한 ≪매치의 선물≫의 감정색채는 시종 암울하다. 단편소설에서 대조의 수법으로 효과도 거두고있지만 그것이 법보인것은 아니다. 단편소설의 양상은 형상적색채의 류형에 따라 몇가지로 분류해 볼수 있다. 인간애의 뜨거운 정서적색채로 관통될수도 있고 사회비리에 대한 분노와 우울한 관조의 색채도 있을수 있다. 반영하려는 생활의 본색과 인물의 운명, 사상감정, 미학적요구에 따라서 다양하게 잡혀질수도 있다. 소설은 가능한 재주껏 호기심이 버쩍 나도록 해야 하는데 고아대기보다 은밀한 기대감을 주기 위해 목소리를 낮추어 무엇인가 잔뜩 감추고있는듯한 인상을 주어 목적지까지 빨리 가보려는 욕망을 잔뜩 부풀려 놓아야 한다. 호들갑을 떨든, 능청을 부리든, 긴장감을 주든 독자의 관심을 확 끌어야 한다. 소설로 엮어지자면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이 만났다가 헤여지고 다시 만나기를 되풀이해야 하고 사건이 터지고 그 사건이 다시 해결되기를 반복한다. 발단 즉 맨처음 사건은 문득 그리고 자연스럽게 터져야 한다. 처음에 너무 큰 사건을 내놓으면 그 이상 더 커지기 어렵기때문이다. 소설의 맨처음은 한마디가 중요하다. 짧더라도 표현이 정확해야 하고 리해가 빨라야 하며 궁금증을 가지게 하고 다음에 곧 뭔가가 일어날것 같은 예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소설에 핵심적사건이 필수적인바 서사물에서 이야기의  주요한 흐름을 이끌어가는 서사적계기들을 일컫는다. 흔히 분위기를 조성하여 전체를 예시하는 상황설정을 하는데 소설에서 상황이란 풍경화처럼 단순하게 어떤 장면을 묘사한뒤 덧그림이 아닌바 그 장면과 인물이 어울려 어떤 일을 예감하게 하는 특수공간이여야 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적당히 끊고 이어가는데 기교가 요청된다. 단편소설에서 핵심사건과 주변사건들은 서로 결합하여 련속을 이루고 작은 련속은 큰 련속을 이루며 최대련속은 다시 결합하여 완전한 스토리를 형성한다. 사건들이 결합하여 단위가 커지면서 스토리를 형성해가는 창작원리는 시간련속과 인과관계에 의해서 체현된다. 장면이 따로 인물이 따로 시작되는 첫장면은 산수화를 보는듯이 서사성이 결여되면 좋지 않다. 례하여 “달이 밝다. 구름이 흘러간다. 한 나그네가 걸어간다.”라고 서술하기보다 “한밤중이다. 구름속에 달이 가듯이 한 나그네가 허둥거린다.”라고 하는 묘사가 훨씬 더 나을것이다. 3) 갈등과 위기의 설정 사건은 구체적으로 소설속의 인물과 인물들이 만나고 부딪쳐야 이야기거리가 생긴다. 이것을 소설의 갈등이라 한다. 갈등은 의지적인 두성격의 대립관계를 뜻한다. 인물과 인물, 인물과 환경사이의 갈등은 외적갈등이라 하고 인물내부의 대립적욕구로 인한 심리적갈등을 내적갈등이라 한다. 갈등은 인물의 정신생활을 혼란하게 하고 내적조화를 파괴하기도 하면서 결국 주인공의 내적 외적관계를 규정해주며 전개되는 사건에 필연성, 객관성을 부여한다. 소설의 서사적성격을 분명하게 내면서 독자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갈등을 통해 소설의 진실성이 드러난다. 갈등은 개인의 어떤 정서가 타자와 대립되면서 생겨난다. (1) 내적갈등: 한 개인 내면에서의 갈등: 개인 내부의 심리적모순대립에 의한 내적갈등으로서 김만중의 ≪구운몽≫에서 수도승인 성진이가 팔선녀를 만난후 청춘의 본능적욕구로부터 속세의 부귀공명과 불도의 적막함사이에서 심리갈등을 겪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내적갈등이다. (2) 외적갈등: 주인공과 대립적인 인물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으로서 례컨대 김유정의 ≪동백꽃≫ “나”와 “점순이”는 소년, 소녀의 심리로 닭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는데 미쁜 사연을 맺게 되는 전제여서 의미롭다. ㄱ) 개인과 사회와의 갈등: 개인이 살아가면서 속해있는 사회적환경(윤리, 제도 등)과의 갈등으로서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 에 인테리인 등장인물과 인테리를 긍정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사회사이의 갈등이 야기되고있다. ㄴ) 개인과 운명과의 갈등: 한 개인의 삶이 어쩔수 없는 운명에 의해 좌우되는데에서 오는 갈등으로서 김동리의 ≪역마≫에서 주인공은 역마살이라는 운명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운명에 순종함으로써 인간의 고뇌를 극복하고 구원된다. 이 역시 인간의 본연이고 인생의 이률배반인것이다. ㄷ) 개인과 자연과의 갈등: 등장인물과 이들의 행동을 제한하는 자연현상과의 갈등으로서 김정한의 ≪사하촌≫에서 극심한 가뭄이라는 자연현상과 이에 시달리는 인간들과의 갈등이 치렬하게 나타나고있다. ㄹ) 갈등의 구조: 인간적인것과 비인간적인것(물질, 폭력)사이의 대립, 있는자와 없는자의 대립, 낡은것과 새것의 갈등(신구세대, 보수와 진보의 대립)전통적이고 토속적인것과 외래적인것사이의 대립 등이 이에 속한다. 갈등은 이야기의 무의미한 라렬과 습관적인 반복에서 벗어나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얼크러지게 하는 주요한 요인의 하나이다. 갈등은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 인물들사이의 대립, 자아와 세계와의 충돌, 인물내부의 감정모순이나 가치관의 충돌을 통하여 플롯에서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갈등의 기능을 플롯자체를 지배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너무 충격적인 사건만을 늘여놓는다거나 너무 렵기적인것으로 되게 하려고 억지를 쓸 필요는 없다. 현대소설에서 갈등은 자발적인것으로 되고있다. 상황설정도 역시 전체에 대한 예시로서 발전의 효과를 줄수 있는 장치여야 한다. 례를 들어보자.   충주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길이 떨리고 그 자리에서 소스라쳐 버린다. 충주집문을 들어서서 술좌석에서 짜장둥이를 만났을 때 어찌된 영문인지 발끈 화가 터져버렸다.   례문에서 주인공인 허생원이 짜장둥이를 만났을 때 서로 삼각관계를 이루고있다. 처음부터 갈등을 지고 등장하는 인물도 있다. 이런 소설들은 인물이 단계적으로 다른 인물을 만나면서 사건을 일으키는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문제가 발생하고나서 인물들이 만나게 된다. 사건은 문제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이야기하는 일이다. 사건의 진행과정이 곧 소설의 내용이 된다. 서사물이 환기하는 정서의 일종을 지칭하는  아짜아짜한 장면이(스릴) 있는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감, 다음 단계의 사건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 공포가 수반된 짜릿한 쾌감 등이 모두 스릴적요소들이다. 스릴은 이야기의 전개과정에서 불안, 긴장을 유발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현념(서스펜스)과 류사하지만 본질적으로 공포를 예견하는 감정효과라는 점에서 다르다. 플롯의 발전단계의 하나로 사건의 반전을 가져오거나 크라이막스를 유발시키는 전환의 계기이다 이 단계에서 사건은 결정적인 분기점에 맞거나 결정적인 의미를 드러냄으로써 독자의 불안과 긴장은 최고의 높이에 이르게 된다. 한 작품에 있어서 한번 혹은 여러번 나타날수 있으며 뒤따르는 해결의 열쇠인 모멘트를 제공한다. 서스펜스는 이야기의 전개와 발전과정에서 불안과 긴장을 유발시키는 플롯의 전략적국면 혹은 요소이다. 보통 현대서사물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아슬아슬한 위기와 위험을 뜻하는바 간담을 서늘하게 하거나 느낌(스릴)과 류사한 개념으로 쓰인다. 서스펜스와 함께 동일 서사물안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또한 상호보완기능을 가진다. 이런 글이 있다 하자. 례하여 “사내는 장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을 뒤척거렸다. 거울을 깼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라고 썼다면 이야기가 되지 못하는것은 인과관계로 되여지지 않았기때문이다. 다음과 같이 고치면 사정이 좀 달라질수 있다.   사내는 어제 실업당했다. 너무도 억울한 나머지 그는 두눈이 말똥말똥해서 자꾸 몸을 뒤척이였다. 다음날까지도 그는 화가 풀리지 않아 얼굴이 그냥 푸르딩딩해 있었다. 급급히 서두르며 면도질을 하다가 그만 손거울을 깨버렸다. 턱에 비누물을 대충 씻어버리고 위생실에서 나오는데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시들하니 수화기를 들었더니 뜻밖에도 사장이 사과의 전화를 걸어온것이 아닌가…   소설은 “그래서”하는식의 단순한 인과성의 련결어를 넣어서 되는게 아니다. “싸우고ㅡ화나고ㅡ면도하고ㅡ거울이 깨지고ㅡ사장이 전화를 걸어오고” 등의 또 다른 사건을 넣어서 얻은 효과이다. 이처럼 소설에서는 처음부터 인과성사건들로 맞물려져야 한다. 결정적계기를 모멘트라고도 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핵심사건이 일어나는 순간 플롯상으로는 보통 절정부분에서 나타난다. 이 순간에는 앞단계에서 제시되였던 모든 설명과 사건이 하나의 초점으로 모아지며 이야기의 의미가 해명되거나 혹은 그 의미가 함축되여 제시된다. 전통소설의 경우 시간적련계성도 자못 중요하다. 하나의 이야기 줄거리내용(스토리)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인과관계에 의한 사건의 련결과 시간적련속성이 필요하다. 인과관계는 인물의 등장관계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리유없이 인물을 등장시킬수 없거니와 까닭없이 함부로 퇴장시킬수도 없다. 만약 어떤 작가가 단편소설에 내키는대로 인물을 등장시켜놓고 나중에 불필요한 인물을 처리하겠는데 방법이 없어서 마침 전염병이 돌아서 처리하고 싶은 인물들이 모두 죽었다고 썼다면 이런 인물처리법은 졸렬하기 그지없다. 인물은 소설속에서 스스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주체적존재여야지 작가가 임의대로 넣었다 뺐다하는 피조물이 되여서는 안된다. 하나의 인물이 등장했으면 그안에서 맡아야 할 구실이 있어야 하고 그 구실을 다 마쳤을 때 소설이 끝나는것이지 문뜩 교통사고 같은 우연으로 인물이 죽고 소설이 끝날수는 없다 아크로니라는 말을 쓰는데 시간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다른 사건들과 동떨어진 사건을 지칭한다. 가장 핵심적인 속성은 이야기와 그것을 서술하는 방식사이의 어떠한 시간, 론리적관계도 허용되지 않는다는것이다. 알레고리는 그리스의 말에서 나온것으로서 이중적의미를 가진 이야기류형을 지칭한다. 말그대로의 표면인 의미와 리면적인 의미를 가지는 이야기류형이 그것이다. 인물과 행위와 배경 등 통합적인 이야기요소를 다 갖추고있는 이야기인 동시에 그 이야기 배후에 정신적, 도덕적 또는 력사적의미가 전개되는 뚜렷한 이중구조를 가진 작품을 말한다. 암시수법도 하나의 기교이다. 소설의 서술기법을 구성하는 한 방식으로서 대체로 플롯의 발단단계에 많이 나타나며 복선을 만들어 내는 핵심원리이다.  즉 직접적, 명시적진술방법이 아니라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거나 추측과 예견을 수요하는 재미를 부여하면서 독자가 앞으로 제시될 사건과 행동의 양상이 필연적이며 론리적인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서술의 전략의념이자 기법이다. 액자소설은 소설구성의 두드러진 방식의 하나인 이야기속에 하나 또는 여러개의 비교적 짧은 내부이야기를 안고있는것을 특징으로 한다. 마치 하나의 이야기속에 다른 이야기들이 액자속의 사진처럼 끼워져있는것이다. 이러한 소설형식은 이야기밖에 또 다른 서술자의 시점을 배치함으로써 전지적소설방식에서 탈피하여 다각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갈수 있다. 처음부터 소설의 어조를 어떻게 잡는가도 역시 기교문제이다. 어조는 서술의 모든 국면을 총괄하는 작가의 존재와 관련되여 있기때문에 일관된 하나의 태도나 립장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어조를 통제해야 한다. 인과성과 우연성은 전통적론리에 따르면 서사물내에서의 사건들의 계기성은  단순히 선조적인것이 아니라 인과적이다. 그러나 현대서사물에서는 이러한 인과성보다는 우발성이 더욱 빈번하게 사용된다. 그 리유는 현대의 삶이 인간의 삶을 이끌어가는 보편적이고 일관된 가치규범이 존재했다고 믿어지는 과거에 비해 매우 애매모호하고 파편화된 양상을 보인다는 인식과 관련된다. 4) 절정설치 절정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비롯된 전통적플롯개념으로서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지점을 의미한다. 고조된 장면의 감화력과 거대한 기능은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작가가 알심들여 선택한 소설종자의 내함과 의의가 밝혀지고 소기의 주제사상이 해명된다. 5) 결말기교 결말은 작품자체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결정적계기중의 하나이고 이것에 의해 독자들의 태도의 변화 즉 세계관적변화나 그 지평의 확대가 이루어진다. 결말에서는 앞부분에서 지속되여왔던 갈등이 해소되고 문제들이 더 제기되지 않는다. 경구나 구두어로 독자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을 지을수도 있다. 에두르지 않는 직설적인 어법은 절제된 표현에 도움이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유모아 효과도 지닌다. 서사문학에서 이야기가 우여곡절과 반전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행복하게 끝맺는것도 있다. 경요소설은 거의 모두 행복한 결말(해피 엔딩)수법을 쓰고있다. 소설의 결말은 문제의 해결을 통해 독자에게 사건의 열쇠를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사건의 급선회로 열쇠를 은폐하여 물음표로 끝나는 소설이 되기도 한다. 소설의 결말은 여러가지 상징적의미를 지닌다. 소설결말을 두가지 류형으로 나누어 볼수 있는데 하나는 메시지 전달을 겨낭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독자의 상상을 촉구하는 경우이다. 소설의 결말은 그 자체로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여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류형과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감추어둔채 끝내여 독자의 상상을 촉구하는 류형이 있다. 오헨리적수법이라는 ≪매치의 선물≫의 결말법은 유명하다. “경찰과 찬송가”는 “거기서 뭘하는거야?”, “아무것도 아니오.”, “그럼 가자구”라고 결말을 맺고있는데 전자에 해당한다. 쏘피가 아무죄도 범하지 않았는데 경찰은 다짜고짜 체포한다. 경찰서에 잡혀간 그는 이튿날 “3개월 동안 섬감옥에 감금할것” 이라는 판결을 받는다. 이런 결말은 객관상에서 주제를 심화시키는 작용을 하지만 기실 미국사회제도하에서는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이 무고하게 체포되고 반대로 죄를 범한 사람이 보호를 받는 불합리성을 폭로비판하는 무겁고 비장한 메시지를 독자에게 보내는것이다. 모파쌍의 ≪목걸이≫같은 소설이 후자에 해당한다. 어느 날 공원에서 목걸이를 빌려준 녀동무를 만난다. “가슴이 방망이질”했지만 “빚을 다 갚은 지금” 이기에 목걸이를 잃은후에 보낸 “고된 나날과 하많은 불행을 말해준다.” “의젓하고 소박한 기쁨에 겨워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녀동무가 “그 내 목걸이란 가짜였어, 기껏해서 5백프랑짜리밖엔 되지 않았댔는걸!”하고 말할줄이야 꿈에나 생각했겠는가?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이 결말에 있기도 하다. 이 결말은 독자들에게 많은것을 사색하게 한다. 로와젤부인이 그 순간에 울음을 터뜨렸겠는가? 아니면 웃음통을 터뜨렸겠는가? 그 순간에 그가 느낀것은 고통이겠는가? 아니면 황당함이겠는가? …기실 이 모든 문제는 다 한문제에 귀결되는것이다. 즉 인간의 허영심이 사람에게 끼친 해독이 얼마나 큰것인가 하는것이다. 그런데 허영심은 결코 자산계급고유의 본성만은 아니다. 한편의 소설의 끝에서 작가는 흔히 독자들에게 자기가 구축한 세계의 열쇠를 건네주거나 아니면 돌연한 급선회를 통해서 열쇠를 은폐하거나 혹은 플롯을 한걸음 진전시키면서 자신은 슬며시 물러나 버리는 쪽을 선택하거나 한다. 서두와 결말은 상관관계를 지닌다. 즉 이들 요소는 상호규제적으로 구성된다. 3. 소설의 인물 인물설정이란 직접적제시로서 작가가 소설속에서 인물을 제시하는 일체의 과정을 가리킨다. 소설의 인물성격을 근래에 캐릭터란 개념으로 애용하는데 어떤 성격, 집단, 계층을 대표하는 전형성으로서 바로 성격의 공시적인 보편성을 의미하며 보통인물과 성격의 두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전자는 작품에 등장하는 개인들을 지칭하는데 이는 소설, 희곡에서 제시되는 등장인물로서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속에 표현되는 도덕적, 기질적 특성을 부여받은 존재이다. 보통 작가가 설정하는 인물류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요인물과 대립되는 인물을 반면인물 혹은 부정인물이라 한다. 수행에 따라서 작가가 의도하는 주제의 방향에 따르는 인물, 작품의 주인공은 작가가 의도하는 주제의 방향에 역행하는 인물, 주인공에 대립하는 적대적인 인물 등등이다. 가) 소극적인물: 채만식의 ≪탁류≫에 주인공 초봉은 식민지시대의 비틀어지고 외곡된 질서아래에서 돈의 론리에 희생되는 여성으로 그려졌다. 이 소설은 모순된 사회체제속에서 희생된 한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기때문이다. 나) 적극적인물: 력사의 발전적전망과 계기를 파악할수 있는 시대적여건에서 창조되는 인물로서 혁명의 성취나 민중적힘의 결집이 가능한 력사적추동력을 얻는 인물로 설정된다. 그러한 환경과 대립되는 인물은 흔히 영웅주의화 되기 쉬우나 전형성의 원리를 옳게 운용한다면 이런 오유에 빠지지 않을수 있다. 소극적인물이 흔히 플롯에 매인 구조적인물이라면 적극적인물은 플롯을 이끌어가는 주제적인물이다. 사회주의리얼리즘 계렬의 소설들에서는 적극적, 긍정적인 주인공을 중시하였다. 일반적으로 비판적리얼리즘 소설에 나타나는 주인공은 엄밀한 의미에서 력사의 흐름속에서 주동적이지도 않고 반동적이지도 않은 방관자의 립장을 보이는 인물로서 중도적인물이라고 부른다. 작가는 비판의 기능에 중점을 두고 플롯상에서 환경과 인물이 긴밀히 련관되도록 질서화하였기에 소설의 주인공은 어떤 성취를 이루는 일이 거의 없고 오히려 존재의 리유가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불행을 당함으로써 사회환경의 부당함을 고발, 비판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인물로 형상화된다. 그러므로 대개 소시민계층이나 미각성상태의 로동자, 농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게 상례이다. 다) 부정적인물: 소설에 갈등이 없다면 소설이 아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주인공이나 중도적주인공이나 제구실을 하게 하려면 대개 그에 대립되는 적대적인물이 필요하다. 모순과 알륵으로 가득찬 인간세상에 절대적인 조화로움이 있을수 없기에 혁명과 반동, 진보와 락후, 진실과 거짓, 선함과 악함 등등의 대립속에서 인간생활이 영위되기에 그속에서 긍정인물들이 두드러지게 하려면 부정인물을 등장시키는것은 자연스러운 장치일수밖에 없다. 보통 인물설정에는 작가가 직접적설명을 통하여 인물의 성격을 알리는 설명적인물설정, 인물의 행동이나 대화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제시하는 극적인물설정, 성격과 행동의 인관관계에서 독자들이 스스로 인물의 내면적모습을 파악하게 되는 분석적인 성격설정 세가지 방법이 류행되고있다. 례를 들어보자   …익호라는 인물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XX촌에서 아무도 몰랐다. 사투리로 보아서 경기사투리인듯 하지만 빠른 말로 재재거리는 때에는 영남사투리가 보일 때도 있고 싸움이라도 할 때는 서북 사투리가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런지라 사투리로서 그의 고향을 짐작 할수가 없었다. 쉬운 일본말도 알고 한문글자도 좀 알고 중국 말은 물론 꽤 하기쉬운 러시아말도 할줄아는 점 등등 이곳저곳 숱하게 주워먹은것은 짐작이 가지만 그의 경력을 똑똑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 단락은 주인공의 인물묘사를 하고있는 대목인데 해설적방법으로 인물을 설명하고있다. 이러한 표현은 직접적으로 등장인물의 성격을 규정해버리기때문에 독자는 사상력에 제한을 받게 되고 그 인물에 관하여 자기 나름의 규정할 겨를이 없게 된다. 묘사는 설명적묘사와 암시적묘사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암시적묘사의 례를 하나 들어 보자.   그 집에는 삼룡(叁龙)이라는 벙어리 하인 하나가 있었으니 키가 본시 크지 못하여 땅땅보로 되였고 얼굴이 몹시 얽고 입이 몹시 크다. 머리에는 새꼬리같이 달린것을 주인의 명령으로 깎기는 깎았으나 불밤송이 모양으로 언제든지 푸하고 일어섰다. 그래서 걸어다니는것을 보면 마치 옴두꺼비가 서서다니는것 같이 숨차보이고 더디여 보인다. ―라도향, ≪벙어리 삼룡이≫   이런 인물설정에서 소설의 비극적인 감정기조가 무겁게 깔려있음을 엿볼수 있다. 간접적제시방법으로 인물들의 성격이 그 자신의 언어와 행동을 통해 스스로 독자에게 드러나도록 한다. 간접적제시방법 즉 극적방법은 인물을 생생하게 묘사할수 있다. 독자는 작가의 견해와 설명을 들을필요 없이 등장인물과 곧 접촉할수 있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한 단락을 례로 들어보자 례:     다음날은 좀 늦게 개울가로 나왔다. 이날은 소녀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세수를 하고있었다. 분홍스웨터 소매를 걷어올린 팔과 목덜미가 마냥 희었다. 한참 세수를 하고나더니, 이번에는 물속을 빤히 들여다본다. 얼굴이라도 비추어보는것이리라. 갑자기 물을 움켜 낸다. 고기새끼라도 지나가는 듯. (중략) 소년은 이 갈꽃이 아주 뵈지 않게 되기까지 그대로 서있었다. 문득 소녀가 던진 조약돌을 내려다보았다. 물기가 걷혀있었다. 소년은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     례를 든 작품에는 주인공의 행동을 통한 간접적심리묘사가 매우 잘 나타나있다. 즉 대화나 행동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가운데 성격과 심리가 간접적으로 제시되였다. 례2:   필주는 저도 모를 화가 상투밑까지 치밀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ㅡ이 량심없는 자식아, 살면서 그동안 사람을 몇번이나 속였니? 덕수라 불리우는 청년이 시큰둥해서 이쪽을 건너다보며 이죽거린다. ㅡ 이 새끼야, 사람을 얼마나 속여먹으며 살았는가 말이다! 필주를 힐낏 일별하는 덕수의 눈길은 빈정거리고 있었다. ㅡ 그래, 네놈은 량심을 속인적도 없고 사람을 기만한적이 없었니?   필주와 덕수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서 서로에 대한 적의를 간접적으로 제시하고있다. 작가들은 영원히 화해할것같지 않은 두 세계사이를 보다 조화로운 경지로 이끌어가려 함으로써 단절현상을 끌어내려 한다. 캐릭터는 소설에서 행위나 사건을 수행하는 주체 즉 인물과 그 인물이 지닌 기질과 속성 혹은 성격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니므로 작품의 정체성에서 불변적일수도 있고 점진적으로 또는 극적위기의 결과에 따라 근본적으로 돌변할수도 있다. 소설에서 설정한 허구적인물이 만약 실제생활속에 원형 즉 어떤 모델에 근거한것이라면 순수 허구한 인물보다 더욱 객관적근거가 있게 되여 진실성을 확보할수 있으며 인물의 생명에 근원이 있게 한다.  그러나 고리끼는 “예술가가 창조한 인간은 하느님(혹은 자연)이나 력사 그리고 인간 자신이 창조한 사람보다 훨씬 더 우수하고 몇배나 더 재미가 있다”고 하였다. 고리끼는 똘스또이의 인물은 손길을 뻗쳐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고 하였는데 그가 말하는 인간은 다름아닌 허구로 창조한 예술전형인것이다. 4. 서술의 기법 1) 가속과 감속 가속은 특정부분을 요약하거나 생략하는 경우이며 감속이란 세부묘사나 사건의 강조 등을 통해 서술속도를 줄이는 경우이다. 하여 어떤 곳에서는 간접제시의 방법을 쓴다. 간접제시란 서사정보들이 화자의 개입을 거치지 않고 독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객관적서술이라는 점에서 보여주기와 류사하다. 2) 생략수법 지속개념의 다섯가지 기능중의 하나로서 서사적담론상의 시간 0이거나 0에 가까운 서술기법을  말한다. 즉 이야기의 특정 부분을  시간적으로 최대한 가속화시켜 공백의 상태로 처리하는 생략의 기법으로써 이야기의 구조자체를 탄력있고 짜임새가 있게 해주는 기능을 담당한다. 례를 들어 “나는 락원을 꿈꾸는 아담, 하지만 항상 깨어나 보면 갈비뼈는 온전하지.” 에서 독자는 사전지식을 리용해야 하지만 그 의미는 한점의 의문도 남지 않는다. 가끔 생략은 여러갈래의 가능성을 열어놓기때문에 련관성을 찾아내려면 독자의 재치가 필요하다. 생략을 사용하면 이야기의 존재리유를 시적으로 추론할수 있으므로 굳이 그 리유를 표현할 필요가 없다. 루이스 브리토 가르시아의 미니서사의 귀감이 될수 있는 ≪노래≫를 읽어보자.   사막의 구릉끝자락, 모래밭에 창을 꽂아놓고 녀자우에 올라가 있는데 그 녀자가 내입속으로 노래를 넣어주어서 문득 그 노래는 시간이 얼굴을 드러내기 이전에 처음 부른 입으로부터 나까지 전해온것이며 나 또한 시간이 얼굴을 드러내기 이전의 노래를 마지막까지 전달하기 위해 다른 입에 넣어주어야 한다고 깨닫게 되였다.   참으로 은유적이고 상징적이며 철리적인 묘사이다. 이렇듯 다듬은 언어, 정갈한 언어, 가끔은 알맞힐수도 있으나 정확한 언어사용, 이는 간결성을 위한 가장 명확한 방법가운데 하나이자 가장 어려운 방법이다. 무망간에 입으로 전해지는 우스개소리중에도 고도로 절제된 생활의 철리를 전달하고 있는것이다. 낯익은 배경과 텍스트의 풍자, 익살, 대조를 통한 유모아를 만들거나 고리타분한 사고를 새롭게 할 때는 이런 방법으로 간결성을 확보할수 있다. 례컨대 력사나 속담, 격언, 널리 알려진 전설 등을 패러디하는것이다. 이를 위해서 작가는 패러디(어떤 명작을 풍자적으로 모방, 개작), 아이러니, 풍자를 사용한다. 3) 서술의 객관화 한 작품의 내부에서 작가가 모든 소설의 내적요소를 자신의 직접적인 개입없이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제시하려 하는 태도를 지칭하며 주관화는 그와 대응되는 의미로서 작가가 작품속에서 자기자신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거나 자기의 개인적 기질, 판단, 가치관 및 감정을 투사하는 태도를 지칭한다. 간접제시, 묘사,  대화 등은 객관화의 결과이며 예비서술, 주정토로 등은 주관화의 산물들이다. 서사소통에서의 거리를 유지시켜 독자들은 텍스트내의 허구적환상에 빠져들기가  좀더 용이해지므로 객관화의 방법을 선호하는것이다. 4) 에피소드 리용법 주요한 플롯(메인플롯)이나 중심적갈등 구조에서 벗어난 짧은 이야기 혹은 사건을 가리킨다. 한 작품의 미학적구조를 풍부하게 해줄수 있는 다양한 정보의 도입, 플롯이 가지는 긴장감의 완급조절, 분위기의 전환 등 면에서 중요한 문학적의미를 지니고있다. 례하여 쎄르반떼스의 ≪동키호떼≫의 의미로운 에피소드의 삽입이 많지만 매 에피소드들은 유기적으로 잘 결합되고있다. 5) 연장법 현대의 서사리론에서 다루고있는 시간개념중의 하나로서 특히 서술상의 시간과 이야기자체가 진행되는 시간과의 여러 관계를 뜻하는 지속개념가운데 하나이다. 연장은 서술의 속도를 늦추는것이다. 즉  담론시간이 이야기시간보다 긴 경우에 해당하며 영화기법의 느린동작이나, 어떤 화면에 다른 화면을 겹치면서 먼저 화면이 서서히 사라지게 하는 촬영법(반복편집) 등과 같은것이다. 6) 예비서술법 서사물에서 이야기의 고유한 행위가 시작되기전에 있었던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한 필수적정보를 제공해주는 서술부분, 복선을 말한다. 앞으로 다가올 상황에 대한 암시를 뜻하는것으로서 독자의 흥미를 강하게 유발시킴으로써 재미를 강화시키거나 미리 심리적준비단계를 거치게 함으로써 다가올 사건이 돌발적이거나 황당스러운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하려는데 있다. 7) 우연의 일치법 교묘하지 않으면 책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사건들사이의 인과적관계나 필연적인 상관성없이 사건의 양상과 인물들의 행위가 결정되고 변화되도록 하는 이야기전개방식이다. 련관성이 없는 사건들이 동시에 발생한다든가 단순히 흥미위주의 이야기진행의 편의를 도모하거나 이야기의 통속적인 얽어짜기를 위해 어떤 등장인물들이 어느 장소에서, 어느 특정된 시간에 사건적인 필연성이 없이 만나게 된다든가 하는것이 그 례이다. 8) 기지와 유모아 기지(위트)와 유모아는 우스운것 또는  희극적인것과 관련된다. 이들은 상호대비에 의하여 그 차이가 잘 드러난다. 기지는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취할수 있는 사물에 대한 모든 가능한 태도의 복수성을 인지하는 능력으로서 작가들이 취해야 할 기법이기전에 갖추어야 할 인생에 대한 태도라고 할수 있다. 우리 말로 해학, 익살 등으로 대응되는 말인 유모아는 일종의 우스꽝스러운 현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웃음은 이웃에 대한 동정과 관용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랭소, 조소 등 적의와 경멸의 감정이 담긴것과 구별된다. 작가의 수사적기능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예상하지 못했던 유쾌하고 무해한 웃음, 유모아를 발생한다. 체호브와 오 헨리의 소설들에서는 해학과 유모아적기지가 빛뿌리고있는바 그야말로 해학, 유모아대사들이다. 9) 의사소통과 의식의 중심 문학이 대화인만큼 단편소설적대화에서는 더욱 의사소통이 잘 되여야 한다. 의사소통이란 예술언어의 의미가 리해되고  전달되는 과정을 지칭한다. 이 개념은 미국의 어학자인 야꼽슨과 로씨야의 리론가 미하일 바흐찐 등에 의하여 서사적언어예술의 리론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였다. 바흐찐은 문화를 루카치처럼 “해방”과 “진보”의 위대한 리념이 전개되는 과정이 아니라 ‘대화’와 “웃음”을 통해 상상력이 종합되고 력사속에 풀려나오는 과정으로 묘사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의사소통이 성립되려면 몇가지의 기본적인 전제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안되는 한 작품의 서술을 인물의 의식의 지배하에 두는 서사기법 혹은 그 의식의 주체를 가리킨다. 이러한 기법이 적용되는 소설에서 서사의 모든 국면은 의식주체의 단일한 시각에 의해서만 관찰되고 보고된다. 그리고 말씨와 습관적어투 등 대화상의 모든 특성도 당연히 의식주체에 귀속된다. 그런 점에서 의식의 중심기법은 간접제시의 기법과 구별된다. 간접제시가 서술의 표면으로부터 화자나 작가의 함축된 흔적을 지워내는 기법이지만 시점의 변화까지 배제하는기법이 아니기때문이다. 10) 기능과 정보소 기능이란 이야기의 줄거리가 전개되면서 의미를 형성해가는 인물의 행위를 정식화한 설명의 틀이라 한다. 이것은 핵단위, 보조단위와 정보단위, 징조단위 등으로 구성되는것인데 이상 네개의 단위가 단일효과를 내여 하나의 장면을 이룬다고 할수 있다. 이것을 련쇄(시퀸스)라고 하는데 이 련쇄들은 플롯이라는 서술방법에 의해 전체 작품을 구성한다. 11) 말하기와 보여주기 말하기와 보여주기라는 서술의 류형은 직접서과간접서술, 평면적서술과 립체적서술, 개입적서술과 비개입적서술, 요약과 장면, 설명과 제시 등의 용어와 통한다. W. 부드가 “말하기는 소설가가 사용하는 가장 뚜렷한 인공적기법중의 하나로서 작중인물의 정신과 마음의 신빙성있는 개관을 얻어내기 위해 행동의 심층에까지 들어가는 술책”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보여주기는 가능한 한 서술의 표면에서 인위적인 가공의 흔적을 지우고 화자가 그림을 그리듯이 또는 배우가 연기를 보여주듯이 독자가 스스로 이야기의 추이를 뒤쫓을수 있도록 배려하고자 하는 서술의 전략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작가들이 보여주기의 서술방책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있다. 기교는 유용성을 창조하는 원천이며 기술이라고 불리운다. 소설양식은 창작기교의 존재방식의 하나이다. 창작기교는 작품의 내용을 파악하고 형상화하는 기술이며 내용을 원만하게 표현하기 위한 형식의 요소들을 구사하는 재치이다. 최서해는 자기의《영일고어》에서 “기교는 예술에 있어서 무시할수 없는것이다. 어떠한 사상감정을 표현하려면 반드시 거기에 적응된 기교를 요청하게 되는것이다.”라고 쓰고있다 창작기교의 습득과정에 과학성은 인체생리학적기초를 가지고있다. 여기서 생리학적기초란 작가로 성장하는데서의 선천적인 자질도 의미하는바 문학창조 의 씨앗을 품을수 있는 남달리 풍부한 정감의 밭ㅡ심령은 물론이거니와 언어 에 대한 특별히 민감한 감수력도 포괄한다. 이것을 어문학적으로 어감능력이라 하며 어문능력배양에서 중요한 한가지 배양항목으로 되여있다. 그리고 무릇 문장에 남다른 애착심을 가지는것인데 문장의 아름다움과 오묘한 의미를 지력으로 터득하기보다 가슴으로, 정서적으로 리해하는 직각과 지감 등 종합적인 자질이 구비되여야 한다. 이것을 문감능력이라 한다. 어감능력 과 문감능력이 구비되면 정감상수가 남달리 높아지게 된다. 소설가는 자기가 체험한 생활의 세계를 진실로 체험한 그대로 실감나게 묘사하여 그것을 미처 모르는 제3자들에게 절실하게 체험시키는것이 목적이다. 생활속에서 고통을 겪었거나 정신적으로 동조하는 작가만이 사람들에게 인간의 고통을 호소할수 있으며 격동되여 본 작가만이 다른 사람을 격동시킬수 있는 장면을 쓸수 있다. 그래서 분노가 시인을 낳고 고통이 작가를 낳는다고 한다. 이것은 소설작품에서 감정론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장편소설같은 쟝르에서는 극성이 강한 사건조직과 빈틈없이 일치되여야 하며 성격론리와 생활론리에 맞게 째여져야 한다. 소설에서 감정조직이 하나의 론리로 째여야 한다는것은 기본감정선과 부차적감정선이 유기적으로 통일되여 흐르고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인 추적과 폭발, 긴장과 완화가 교묘하게 배합되고 양상에 어울리는 감정색채가 조화되여야 한다는 말이다. 12) 묘사의 밀도 소설을 묘사의 문학이라고 한다. 무릇 어떤 소설이든 창작과정에 묘사의 밀도 문제가 제기된다. 즉 생략, 함축하면서 비약하거나 심오하게 분석하면서 얼마나 집중하고 얼마나 설피게 그렸는가 하는것이다. 소설이 경험의 언어적재현이라고 한다면 이 재현은 두가지 종류를 포함한다. 행동과 사건의 재현이 한가지이고 사물과 인물의 재현이 다른 한가지이다. 서술은 이 두가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며 전자와 후자는 서술이라는 언어경영의 상이한 두국면이다. 치밀한 묘사밀도는 그 대상에 대한 독자의 사색과 감정을 집중시키고 그에 대한 형상을 또렷하고 힘있고 획일적이 되게 한다. 묘사의 밀도가 지나치면 대상의 경중을 가릴수 없게 될것이며 농도가 구별되지 않는 그림처럼 된다. 묘사의 밀도를 설피게 하여 속도감을 주면서 쾌락한 정서를 줄수도 있는데 설명적서술이나 따분한 설화, 무근거한 의론같은것을 피면해야 한다. 거리조절도 하나의 기교이다. 거리란 서사소통의 여러단계에서 각 소통주체사이의 밀착된 정도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미학에서는 “미적거리”란 말을 썼는데 이것이 소설에 와서는 흔히 심리적거리로 사용되군 하였다. 소설에서 말하는 거리는 다시 지적, 미적, 도덕적, 시간적거리 등의 여러측면으로 세분된다. 1) 거리의 형태 1인칭 주인공시점은 서술자와 등장인물의 거리가 가까우며 서술자와 독자의 거리도 가깝게 된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은 서술자와 등장인물의 거리가 멀고 서술자와 독자의 거리도 멀다. 그리고 서술이 자재적이 된다. 2) 공간성 어떤 사건이 일어나거나 정황이 진술될 때에는 구체적인 시간과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한데 보통은 배경이라고 한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소설의 배경을 이루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현대소설의 공간은 심리적공간으로서의 기능이 강한데 이런 현상은 작가들이 더 이상 서사문학의 관습화된 시간구조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정지시키거나 아주 페지하고 시간대신에 공간을 지배적차원으로 삼는 공간형식을 선호하고있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14    제 2 장 소설창작의 원리 , 제1절 소설창작의 기법 댓글:  조회:4616  추천:25  2007-08-13
                                              제2장 소설창작의 원리                                               제1절 소설창작의 기법    1. 소설의 서사공능    소설은 묘사의 문학이자 서사의 문학으로서 서술방법이 그 소설의 성패를 가름한다. 소설이 되기 위한 진술의 언어를 “소설문장”'이라 한다. 서사.묘사의 기술양식에서 소설문장이 비롯된다. 서술에는 서술행위에 의해서 산생된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가 문자로 고정된 형태인 텍스트를 모두 포함된다.     소설에서의 묘사는 사물과 일정한 현상에 대해 지배적인 인상을 중심으로 그들의 특질과 양상을 그려내는것이다. 서술주체의 자태는 소설문체성립의 중요한 인소이자 소설의 가치취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인소이다. 프랑스의 문학비평가, 작가인 롤랑 바트는 서술은 인류의 계몽사에서 언어가 발명된 후에야 출현된 일종 력사초월이였고 오래된 문화현상에 대한 초월이라고 하였다.    소설의 서술공능에는 미시적서술과 거시적서술 두가지 기본공능이 있다. 미시적서술은 소설의 서술중에 내부적결구층차와 구체시간 안배의 관계이다. 만약 소설에서 시간순서에 따라 일련의 사건들을 조직하고 서술했다면 곧 “미시적서술”이 된다. 미시적서술은 소설에서 주요하게 심미적경향을 구체화한다.     1) 서사방법     소설의 서술방법에는 작가가 인물과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작가가 직접 나서서 설명하는 방법이 있다. 리론서들에서는 보통 전자를 보여주기라 하고 후자를 말하기라고 부른다. 전자의 개념들은 직접적 제시에 속하는 묘사에, 후자의 개념들은 간접적제시에 해당하는 서사에 근접하는것으로 리해할수 있다. 서술의 공능은 일종 시간을 다른 일종의 시간으로 바꾸는것이다. 서술자는 그가 흥취를 가진 시간을 선택한다.     시간한계를 전제로 할 때 다섯가지 서사방식이 있다. 즉 서술시간과 이야기시간이 대체로 맞아떨어지게 하는 등가적서술(等述), 서술시간이 이야기시간보다 짧게 하는 개략적서술(槪述), 서술시간이 이야기시간보다 길게 하는 확대서술, 서술을 잠간 중지함으로써 이야기시간이 조용히 흘러가게 되는 생략서술, 이야기시간을 잠간 중지하고 서술하지 않는 정태적서술(靜述) 등등이다.    서술방식의 다양성은 서사작품의 다양한 절주를 구성한다. 소설의 서술은 묘사와 서사를 두축으로 삼는다. 묘사는 감각적경험 내지 대상을 생생하고 박진감있게 체험케 하고자 의도한 표현수법이다. 서사는 어떤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기술방식이다. 작가는 기질, 예술적의도, 대상의 성격 등에 따라 묘사를 위주로 할수도 있고 서사를 위주로 할수도 있다.     어떤 형태의 서술이든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재생, 전달하기 위해서는 독자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진실한 서술태도가 관건이다. 서사는 움직이는 생명에 관련된 사건을 기술하므로 묘사와 서사는 주관적이며 내적인 예술의도에서 기인되며 감각적이고 예언적이며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며 암시적이다. 소설에서 서술은 간결성과 선택성, 정밀성과 상상적호소력 등을 생명선으로 삼는다.     가) 시각적묘사 : 감각중에서 가장 직관적이고 확실한 감각은 시각이므로 묘사에서 시각묘사는 흔히 쓰는 묘사수법이다. 무엇을 보는듯이 그리려면 시각 적인 단어들로 독자의 시야에 실물이 나타나도록 알심들여야 한다.    례: 들은 온통 초록전에 덮여 벌써 한 조각의 흙빛도 찾아볼수 없다. 초록의 바다, 초록은 흙빛보다 찬란하고 눈빛보다 복잡하다. 눈이 보얗게 깔렸을 때에는 흰빛과 능금나무의 자주빛과 그림자의 옥색빛밖에는 없어 단순하게 옷벗은 녀인의 나체같은 것이ㅡ봄은 옷입고 치장한 녀인이다.                                               ㅡ ≪들≫ 나) 청각적묘사: 묘사는 보여줌에 그칠일이 아니라 들려주기도 해야 한다. 문자로 된 묘사이지만 독자는 글줄속에서 련각적인 느낌을 절실히 바란다.     례: 얀들얀들 나부끼는 초록의 양자는 부드럽게 솟는 음악, 줄기는 굵고 잎은 연한 멜로디의 마디마디이다. 부피 있는 대궁은 나팔 소리요 가는 가지는 거문고의 음률이라고나 할까, 알레그로가 지나가고 안단테에 들 어갔을 때의 감동ㅡ그것이 봄의 걸음이다. 풀위에 누워있으면 은근한 음악의 율동에 끌려 마음이 너벗너벗 나부낀다.     다) 미각과 후각적묘사(통각): 소설적묘사는 멋과 소리를 전달해야 할뿐만아니라 글속에서 맛이 나고 냄새가 풍기는듯 묘사해야 제격이다.    례: 혀끝에 뱅뱅 돌면서도 쉽사리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수 없는 맛과도 흡사하다. 이윽고 석류였음을 깨달았을 때 재희의 마음은 무지개를 본듯이 뛰놀았다. 옛 병풍속의 석류의 그림이 기억속에 떠올랐다. 어디서 흘러오는지도 모르게 그윽하게 코끝을 채이는 그리운 옛 향기, 약그릇이 놓이고 어머니가 앉았고 머리맡에 병풍이 둘러 치워 있었다. 약향기가 어머니의 근심스런 얼굴에 서리었고 병풍속나무에 석류가 귀하였다.                                                                  ㅡ ≪석류≫    례를 든것처럼 시간적, 공간적인 배경을 보는듯, 듣는듯 실감나게 그리기 위해서 시각, 청각적인 느낌대로 묘사하거나 인물의 심리상태를 느끼는듯이 미각과 후각적으로 그리여 통감을 느끼게 하거나 사건을 묘사하는데도 후각적묘사를 하는것은 일종 재치이다.     우리는 특정된 각도에서 소설의 심미특징을 감수할수 있다. 서술자가 이야기를 짜나가는 방법의 하나는 각종 사건이 점하는 시간의 비례를 안배하는것이다. 중요한 사건은 실제과정보다 더 길게 쓸수 있으며 때론 기나긴 력사과정을 한두마디로 개괄해버릴수도 있는바 이것이 바로 “서술속도”이다.     소설의 서술속도는 수요에 의해 빨리고 늦추고 삭감하거나 증강하는것 등은 매 하나의 사건이 상대적중요성을 표명할뿐만아니라 서술공능의 “절주미”를 현시한다. 이렇게 하면 시간배치에서 이루어지는 정절의 반복, 변화와 간격은 악장의 선률처럼 되게 한다.     소설의 미시적서술은 서술과정의 각개 사건의 용접관계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복합관계가 바로 소설의 “서술도식”관계를 형성한다. 미시적서술의 시간배치가 다양하고 교묘하기에 소설의 서술도식의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이를테면 두갈래 사건이 갓시작될 때에는 각개 독립적으로 발전하다가 중간에서 합쳐지여 계속 발전하면서 정점에로 치닫는다.     어떤 소설은 일계렬의 사건을 시종 전후의 긴밀한 련계속에서 발전시는데 이런 서술도식을 일컬어 “고리형도식”이라고 한다. 이처럼 소설의 서술도식은 일종 구도미(构图美)를 형성한다. 사건의 교묘한 련접은 다종다양한 결구도식을 형성시킬수 있다. 그런데 서술 속도와 서술도식은 소설작자가 임의대로 하는것이 아니라 소설자체의 창작예술규률에 의해 결정된다는것이다.    소설의 주요한 심미경향은 거시적서술을 통하여 파악할수 있다. 거시적서술은 소설의 정체적규모, 내부결구와 서술의 색조를 결정하며 소설의 기본적미학색채를 현시한다. 소설미학에서의 거시적서술의 심미공능은 다음 몇가지 방면에서 표현된다.     가) 총체적의의상에서 선명한 력사감을 형성한다. 거시적서술의 구실은 개인생활정경을 서술하는데만 그치는것이 아니라 개인생활정경이 온사회의 력사적사건의 일부분으로 되여 소설로 하여금 시대적색채를 띠게 하는것이다. 이렇게 해야 소설속에 개인생활정경으로 하여금 비로소 력사적횡단면의 한개 유기적조성부분으로 되게 할수 있고 동태적인 사회바탕에서의 “산조직편단”이 되게 할수 있다. 소설의 계기의 해명과정은 성격의 묘사과정으로 되며 사회문제성이나 작품의 생명인 진실성도 성격묘사의 결과에서 형성된다.     나) 평탄한 서술로 하여금 립체적서술로 되게 한다. 작품의 력사감이 소설의 전반면모를 공제하게 되여있므로 소설속의 구체적인 개인생활정경에 대한 서술은 이미 력사발전의 단계에서 첫단계로 파악된다. 그리고 소설의 각부분에 대한 서술이 정절발전의 선색에서 횡적련계를 갖게 할뿐만아니라 종적인 력사발전과정에서의 구체적환절을 체현함으로써 전방위적인 의의를 가지게 한다.     다) 서술공능과 체계의 화해미를 현시한다. 소설에서 인물의 관념과 거동에 대한 서술어의 문장격식은 반드시 거시적서술의 얽음줄이 되여야 한다. 매 장면의 세절, 대화중의 매 편단과 서술풍격은 이야기가 발생한 시대배경과 맞물려야 한다. 특히 력사문제를 다루는 장편소설에서는 인물들이 해당시대의 인문환경과 어경(语境)에 걸맞게 구사해야 진실성을 잘 살릴수 있다. 서술각도가 곧 작가 본인의 각도는 아니다. 로씨야 형식주의리론가 빅또르 쉬끌로브스끼는 “ 그러므로, 생활감각을 다시 갖기 위하여, 대상들을 느끼기 위하여, 돌이 정말로 돌이라는것을 느끼기 위하여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것이 존재하는것이다. 예술의 목적은 대상의 감각을 인식으로서가 아니라 시각으로서 부여하는것이다.    예술의 기법이란 대상들의 낯설게 하기 기법이며 그 형식을 모호하게 하는 기법이고 지각의 어려움과 지속을 증가시키는 기법이다. 예술에 있어서 지각의 행위는 그 자체가 목적인것이며 오래 끌어야 한다. 예술이란 대상의 생성을 느끼는 하나의 방법이며 이미 생성된것은 예술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는것이다. ”라고 쓰고있다. (쉬끌로브스끼, )     2. 서술의 초점     서술의 초점화란 인식주체가 어떤 일정한 대상을 향하여 자신의 지각을 보내고 그것을 인식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전통적시학에서는 대상을 향한 인식의 지향뿐만아니라 관찰결과를 진술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여있기에 구조주의자들은 시점대신 초첨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초점은 등장인물, 작자의 관념, 사건의 일관된 제시 등의 요소우에 실현되지만 그외의 요소에 초점이 모아지는 경우도 있다. 초점화제는 스토리를 외부에서 초점화할수도 있고 내부에서 초점화 할수도 있다. 외적초점화는 이야기밖에서 초점화자와 겹치는 경우가 흔하다. 대략적으로 본다면 3인칭관찰자 시점의 소설들이 그러한 경우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초점화된 모든 소설이 3인칭소설인것은 아니다. 1인칭소설일지라도 화자로서의 나와 초점화자로서의 “나”사이에 최대한의 심리적거리가 있게 될 때 외적초점화와 다를바 없다. 인물, 행위, 배경, 사건 등을 독자에게 제시할수 있다. 즉 화자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리잡은 시선의 각도, 서술의 발화점, 관점을 뜻한다.    초점은 작가와 독자사이, 이야기하는자와 이야기를 듣는자 사이의 관계에 긴밀한 련관성을 갖고있다. 초점은 플롯의 기본이 되며 작품의 효과 및 독자에 대한 호소력에 영향을 미친다. 시점문제는 일찍이 소설가들의 관심사였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호메로스가 작품속에 개입하는 일이 없이 이야기를 진행한것이 값지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즉 하나는 화자가 속과 겉, 부재하는것과 존재하는것 모두를 알고있는 상태에서 설교하거나 판단하고 이야기의 한부분을 요약하여 설명하는 등 이야기속에 마음대로 끼여드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화자가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들려주는것이 허구라는 사실을 독자들이 전혀 느끼지 못하도록 백방으로 노력하는 경우이다.    소설에서 초점문제는 결국 서술의 시점과 같은 성질을 가진다. 1인칭 주인공의 시점은 주인공이 자기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점으로서 작품의 등장인물을 통하여 이야기하는 경우엔 인물의 초점과 서술의 초점이 일치한다. 작품에 다른 인물이나 사건밖에 있는 단순한 목격자나 관찰자가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말하는 경우에는 화자는 관찰자에 지나지 않는다.      1인칭시점은 인물의 내면상황 즉 심리묘사와 내부묘사에 알맞은 수법이다. 인물과 독자와의 심적거리가 가까우며 독자에게 신뢰감, 친근감을 주지만 인간의 외면세계를 객관적으로 그리는데는 3인칭 시점만 못하다고 볼수 있다. 서한체소설이라든지 수기체소설, 사소설, 심리소설 등에 주로 쓰인다. 최서해의 단편소설 ≪탈출기≫를 보자.      김군! 그러나 나의 리상은 물거품에 돌아갔다. 간도에 들어서서 한달이 못되여서부터 거친 물결은 우리 세 생령앞에 기탄없이 몰려왔다. 나는 농사를 지으려고 밭을 구하였다. 빈땅은 없었다.    1인칭 주인공의 시점을 가장 잘 보여주고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고국을 떠나 간도로 들어간 “나”가 어떻게 좌절당하고 절망하며 왜 사회주의단체에 가입하게 되였는가를 서한체형식으로 핍진하고 질감이 나게 표현하고있다. 이와 같이 1인칭 주인공시점은 인물의 내면세계를 절실하게 보여줄수 있다.     작자가 관찰자의 립장에서 이야기를 할 때 3인칭서술이 되는데 작가는 주관을 배제하고 인물이 말하고 행동하는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즉 관찰자는 작가 자신이다. 이런 서술방법은 생생한 묘사와 선명한 표현이 가능한 반면에 너무 단조롭고 평면적이여서 주제표현에서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단편소설에서는 좀 효과를 거둘수 있으나 장편소설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전지적작가의 서술은 작가가 전지자의 립장에서 인물의 심리상태에 행동의 동기, 감정 등을 해설하고 분석하여 서술하는 방법인데 심리묘사와 내부의식을 표출하는데 많이 리용된다. 소설기술의 다른 중요한 요소는 이른바 거리미감이다. 여기서 거리란 작가가 독자를 등장인물을, 그리고 작품인물이 독자를 얼마만큼 사건속에 끌어들이는가 하는 정도를 말한다. 거리에는 작가와 작중인물의 거리, 작중인물과 독자와의 거리, 작가와 독자와의 거리가 있다.     작가와 작중인물과의 거리는 결국 서술의 초점으로 리해할수 있는바 곧 시점의 문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설은 본질적으로 대리경험이 된다. “작중인물과 독자의 동일시는 작가와 작중인물 나아가서는 작가와 독자사이에 형성되는 신뢰감이다.” 하기에 작가ㅡ서술자ㅡ작중인물ㅡ독자사이의 거리를 조정함으로써 박진감, 핍진성 등이 조절되고 그로써 소설의 리얼리티에 기여하게 된다.     상술한바와 같이 여러가지 요소들에 선행되는것 즉 창작에 선행되는것은 소설의 시점이다. 한편의 소설이 심미적성과를 거두는데서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것은 서술의 어떤 국면인가 하는 문제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것은 말 그대로 결정적인 기여로서 서술의 혁신문제란 바로 화자시점의 문제라고 볼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 서술의 전략은 시점의 전략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되고있다.     작가관찰자시점도 잘 쓰는 방법이다. 서술자(작가)가 외부관찰자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서술하는 시점을 말한다. 서술자는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외부적사실만을 관찰하고 묘사가 극적이고 객관적인 특성을 지닌다. 현대사실주의소설에 주로 쓰인다. 전지적작가시점은 작가가 각 인물의 심리상태나 행동의 동기, 감정, 의욕 등을 분석하여 서술하는 방법이다.     작가 관찰자시점에서는 작가와 등장인물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데 반해 전지적작가시점에서는 작가와 등장인물의 거리가 좁혀지고 인물들의 생각과 느낌을 모두 말할수 있는 무한한 자유를 가진다. 그러나 이 자유가 람용될 때 독자는 등장인물들을 리해할수는 있으나 그 인물들의 체험을 실제로 공감할수는 없다. 왜냐하면 등장인물 자신의 체험이 아니라 작가가 선택하고 조절한 체험이기때문이다. 서술자가 작품에 광범위하게 관여하기때문에 독자의 상상적참여가 제한될 우려가 있다. 김만중의 ≪구운몽≫을 례로 들어보자     성진이 마음에 뉘우쳐 생각하되 부처 공부의 유(類)로 뜻을 바르게 함이 으뜸 행실이라. 내 출가한지 십년에 일찍 반점 어기고 구차한 마음을 먹지 아니했더니 이제 이렇듯이 념려를 그릇하면 어찌 나의 전정에 해롭지 아니하리오. 향로에 전단을 다시 피우고 의연히 포단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어 염주를 고르며 일천 부처를 염하더니….     서술자에 의해 성진의 심리가 서술되여있다. 고대소설은 대부분 전지적작가시점으로 쓰여진다. 화자와 위치도 중요하다. 화자에는 드러난 화자와 숨은 화자가 있다. 전자는 화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경우이고 후자는 그냥 보여주는 경우이다. 소설의 력사는 화자의 권한과 역할을 축소하는 쪽으로 시점의 기교를 발전시켜왔음을 보여주고있다. 전지전능적시점의 서술을 현대소설에서는 찾아보기가 점점 드믈어지고있다.     현대작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외부시점은 3인칭관찰자시점이다. 이 시점에 의해 서술되는 서술의 표면에는 화자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3인칭 제한적시점은 20세기 소설이 개발한것이다. 제한된 전지전능의 작자를 선택성 전지전능작자라고 하는데 작품중의 특정된 모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런 서사방식은 작중의 인물의 사상감정으로부터 출발하므로 전지전능의 시점보다 더욱 친절감이 나고 신빙성이 있게 된다. 그러나 서술자가 구체적인물의 시야에 국한되므로 서술의 령활성이 결핍한 약점도 있다.     3인칭 제한적시점이 객관적이고 동적인 서술을 하는데 필요한 기법이라면 3인칭 전지적시점은 반대로 주관적이며 정적인 표현을 하는 묘사의 기법이다. 3인칭 전지적시점은 여러 인물이 동시에 생각하고있는것을 독자에게 말해준다. 즉 서술자 혹은 화자(내래이터)가 작가로서 등장인물이나 사건의 외부적인 표현은 물론 그들의 감정, 의식, 동기, 심리적인 내부까지도 설명하고 해석해준다.     이 시점은 제한적시점과 혼합하여 사용하기도 하며 장편소설을 쓸 때 많이 쓴다. 이 시점에서는 작가의 력량과 기교, 수법이 마음껏 발휘될수 있다면 그 기교에 의해 다른 작가와 차별화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 시점은 인물이나 사건을 알 필요있는 모든것을 화자가 알고있는 전지적인 시점이다.    주관적인 이 시점은 등장인물의 사상이나 감정, 정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것까지 묘사한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자기 나름대로 자유롭게 이동할수 있으며 등장인물도 마음대로 바꿔가면서 그들의 말이나 행위들중 작가가 선택하는것만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런 다음에 등장인물을 퇴장시키기도 한다. 그것만이 아니라 현장에 머무는 인물이 없어도 사건들을 묘사할수 있는 기법이다. 아래에 례문은 3인칭 전지시점으로 된 서술이다. 례를 들어보자.      그는 깊은 절망감에 빠져 험악하고 절망에 찬 표정을 지은채 넓은 방안을 왔다갔다 하며 거닐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싸움을 걸듯이 동복을 향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니말대로 니 요구 다 들어줄테니 우리 이제 그 문제를 매듭짓자.”     그러나 동복은 현태의 말에 대꾸하지 않을 작정으로 또 TV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현태는 시종 짙은 어둠이 깔린 창밖을 내다보았다. 밖에서는 바람이 많은 눈보라을 몰고 와서 오두막 곁에 쌓여가고있었다. 그리고 이따금씩 국도로 달리는 자동차의 불빛이 어둠을 가르고 비치고있었다….     이렇듯 전지적시점에서는 화자는 등장인물들의 사고나 감정이나 내적인 동기뿐만아니라 은밀한 말이나 행동까지도 결정할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있다. 훌륭한 소설가들은 거의 이 시점을 즐겨 사용한다. 작가가 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외면과 내면을 전부 알고 관장함은 말할것도 없고 행동에 관한 설명 및 심리적변화의 의미까지도 해석하는것이다.     현대서방문학에서 제1인칭수법을 서술각도에서의 새 기법이라 칭하는데 우선 “의식의 흐름”소설의 특수한 서사법을 전형 실례로 들수 있다. 이 서사각도에서는 독자가 완전히 작중인물의 내심세계에 파고들수 있어 진실감을 증폭시켜 준다. 당대 서방문학작품들에서는 제2인칭 서사수법도 쓰이고있는데 서술자가 이야기속의 인물과 직접 대화하는 방식을 쓴다. 이 방식은 독자와 이야기속에 인물들과 더욱 밀접하게 관계를 맺게 한다.    중심의식을 통해서 펼쳐지고있는 이야기를 바라보고 전달하게 하는 이 시점의 기법은 아일랜드의 출신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인 제임스 죠이스, 영국의 소설가,비평가인 버지니아 올프, 미국의 저명한 작가이며 노벨수상자인 윌리엄 포크너 등에 의해 의식의 흐름이라는 수법으로 발전되였는데 서술에서 내용을 이루는것은 화자의 명멸하는 의식, 그 자체이다. 당연히 서술은 론리적일관성을 유지할수 없게 되고 인식된것과 기억된것, 류동하는 심리, 사건들과 뒤엉킨다.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에 이런 서술이 있다.     “이봐 벤지”하고 티피가 집안에서 불렀다.     “어디 숨었어? 살살 빠져다니구, 난 다 알고있다구.”      라스터가 들어왔다. 잠간만, 하고 그가 말했다. 여기 있어, 저쪽으로 가지마, 퀜텐아씨하구 그 놈팡이가 저기 저기서 그네줄침대에 타고있는거야, 이리와, 이리루 들어와바, 벤지. 나무밑은 컴컴했다. 댄은 오려하지 않았다. 그 개는 달빛속에 멈춰서있었다. 그다음 그네줄침대가 보여 나는 울기시작했다. 거기 가면 안돼, 벤지, 하고 라스터가 말했다. 퀜텐아씨가 펄쩍 뛰며 화를 낼거야. 알구있을텐두 그네줄침대엔 처음엔 둘이 있었는데 다음에 하나가 되였다. 캐디가 어둠속에서 빨리 오고있는것이 하얗게 보였다….     이 짧은 서술엔 현실의 목소리와 기억의 목소리,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이 아무런 원칙도 없이 뒤섞여있다. “이봐, 벤지”하고 부른건 티피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잠간만”하고 말하는건 리스터이다. “그 다음 그네줄침대가 보여 나는 울기시작했다.”는 현재 일어나고있는 일이고 그러나 “그네줄침대엔 처음엔 둘이 있었는데 다음에 하나가 되였다.”는 과거일것이다.     이것은 혼란된 서술이다. 이런 혼란은 벤지의 “제한적시점”에 의해 생긴다. 벤지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나이가 서른도 넘은 사내였지만 어린아이의 지능도 가지지 못한 백치이다. 이런 서술기법은 깊은 울림을 이끌어내기 적절하고 유효한 기법처럼 보인다. 20세기 소설의 주요한 성과라고 평가받는 많은 소설 들이 3인칭 제한적시점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바가 크다.     이러한 서술기법이 많은 작가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는데는 우리의 삶의 본질적인 부분들이 객관적이고 리성적일뿐만아니라 주관적이기도 하고 비리성적인 부분이 더 넓고 깊은 의식령역에까지 닿아있다는 철학적인식과 관련되여 있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적인식에는 프로이드나 융 등의 학설이 포함된다     3. 소설의 구조     1) 플롯(슈제트)     소설을 형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관계를 소설의 구조라고 본다면 소설속에서의 시간과 공간, 시점과 서술자, 작중인물의 특성과 서사구조의 문제 등이 소설구조의 요소로 된다. 이런 소설의 요소가운데서 소설의 이야기가 어떤 얽음새를 가지고 뼈대를 형성할것인가 하는 문제는 곧 플롯의 문제에 소급된다.     스토리가 그래서 그 다음에는?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라면 플롯은 그런 일이 어째서 그렇게 되였는가? 하는 인과성의 측면이 강조된다. 이러한 관점은 구조주의자들에게도 계승된다. 슈클로브스끼는 재료에 해당되는것을 파뷸라라 불렀고 그 재료를 예술적으로 구성한것을 슈제트라 지칭하였다.     플롯은 성격, 행동, 사상, 배경 등을 포함한 소설의 모든 설계를 의미하지만 인물성격부각을 위한 소설장치라고 할수 있다. 소설의 플롯은 작자의 창안물의 내용을 구성하는 행동, 작중인물 및 사상 등의 요소를 작자 자신의 손으로 특수하게 시간적으로 종합한것이다. 이들 세가지 요소중 어떤것이 종합의 원리로 사용되였는가에 따라 플롯의 구조가 달라지게 되여 행동의 플롯, 작중 인물의 플롯, 사상의 플롯이 있게 된다.    플롯은 텍스트를 구성하는 원리이나 한편으로 작가와 독자가 소설현상에 함께 참여하는 장치로서 소설의 가치실현에 참여하는 독자와의 필요한 묵결이다. 작가는 자기가 하고있는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는척하고 독자들도 모두 지어낸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이야기에 빠지기에 소설은 사실성을 띨수 있다.    소설의 기본단위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의미의 최소단위인 문장이다. 이런 의미의 보유체인 문장이 하나 또는 그 이상이 모여 하나의 작은 사건을 이루게 된다. 이 작은 사건을 단위사건이라고 볼수 있으며 이 단위사건들이 모여서 하나의 행동을 구성한다. 로씨야형식주의자들은 이것을 모찌브라고 불렀다.     행동이 하나만 있는 소설에서는 하나의 행동자체가 전체 소설이 되지만 행동이 여러개가 얽혀있는 소설에서는 이 다수의 행동들이 모여 하나의 소설을 이룬다. 그러므로 소설은 문장→단위사건→행동→전체 소설의 순으로 계층적조직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때로는 어떤 특정의 사물에 대한 생각, 대화, 독백, 느낌도 단위사건이 될수 있다.     최서해의 ≪탈출기≫에는 여러개의 단위사건들이 설정되여있다. 버려둔 처자식을 돌보라는 김군의 편지를 받는것, 주인공은 그 충고를 받아들일수 없다는것, 그 리유를 밝히는것 등이 하나의 단위사건을 이룬다. 그리고 충고를 받아들일수 없는 리유를 말하는 가운데 다른 단위사건이 개입된다.     잘살게 될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간도로 가는 일, 소작할 땅을 얻지 못하고 허드레일을 하는것 등이 단위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무서운 인간고를 느끼게 된것, 이것도 하나의 단위사건이다. 그리고 배고픈 아내가 귤껍질을 주워먹는 사건, 두부장사를 해보아도 신통하지 않은 사건, 나무를 하다가 중국경찰에 끌려가 곤욕을 당하는 사건이 모두 각각 하나의 단위사건이다.     그리고 사회제도의 모순을 깨닫고 로모와 처자식을 버리고 무장투쟁집단에 들어가는것이 또한 단위사건이다. 이와같이 여덟개 정도의 단위사건으로 하나의 행동이 이루어지고 이 행동이 바로 전체 소설을 이루고있다.     플롯이라는 큰 틀을 이루는 요소의 하나로 서사단위를 설정할수 있고 이 가운데 삽화 혹은 일화를 들수 있다. 중심적이야기와 직접 련결되여있지도 않고 다소 주변적이거나 엉뚱한것이기때문에 서사의 중심기능을 담당하는것은 아니다. 에피소드는 작중인물의 행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플롯에는 행동이라는 언어적행위까지를 포함한다.     운동과 변화라는 이 근본적개념이 플롯의 바탕이다. 플롯의 이러한 력동적요소가 플롯의 탄력이다. 플롯의 탄력은 이야기가 전개되도록 하는 동인으로서 인물의 욕망으로 구체화된다. 리광수의 ≪무정≫에서는 개화와 교육의 욕망이고 리기영의 ≪고향≫에서는 식민지상황에 대한 저항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힘들이 보다 잘 드러나는 경우는 그에 대립하는 다른 힘과 충돌할 때이다. 미국작가 호우돈의 소설 ≪주홍글씨≫에서는 사랑과 자유에 대한 녀주인공의 추구와 청교도통치의 잔혹성이 대립되고 모파쌍의 ≪목걸이≫에서는 자기의 아름다운 동경과 현실의 모순과 불합리에 고민하는 인간ㅡ특히 미모의 녀인으로서의 강한 자존심과 굽힐수 없는 의지가 대립을 이루고있다.     행동은 하나의 힘이라기보다는 여러가지 힘들사이의 관계이다. 그 힘들이 장애를 만나기도 하고 유리한 요소들을 만나기도 하며 또 서로 결합되기도 하고 반대방향으로 선회하기도 한다. 또 거기에 개입되는 인물이 하나일수도 여러 사람일수도 있다. 따라서 인물성격과 수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구현된다. 소설의 일화나 행동은 소설전체에 비추어 타당성을 지녀야 한다. 이 타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동기부여라 한다. 동기부여는 사건에 대한 론리성과 인과성의 부여라는 점에서 플롯의 개념과 련관된다. 동기부여는 때로 한작품에 적용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 작품안의 인물이나 사건들에 적용된다.     전통소설의 관점에서는 갈등이 없는 소설을 상상조차 할수 없다. 서사적 작품에서는 갈등은 슈제트구성의 기초로 되고 인물성격 부각의 수단으로 되기때문이다. 문학예술작품에서 갈등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 갈등은 크게 기본갈등, 부차적갈 등이 있는데 그 해결방법도 제각기 다르다.     소설작품에서 의지적인 두 성격의 대립현상, 인물과 인물, 인물과 환경사이의 갈등을 외적갈등이라 하고 한인물의 심리적갈등을 내적갈등이라고 한다. 갈등의 양상을 본다면 ①인간과 인간사이의 갈등, ②인간과 사회사이의 갈등, ③인간과 자연사이의 갈등, ④인간과 인간사이의 갈등, ⑤외적자아와 내적자아 사이의 갈등 등이 있다.     따라서 갈등의 성질에 따라 슈제트구성이 확정된다. 스토리가 피부라면 플롯은 내부에서 움직이는 뼈대와 같다고 할수 있다. 다른 해석도 있다. 플롯은 하나의 과정이지 대상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플롯은 “이야기의 뼈대”라고 가르쳐왔으나 이는 플롯에 대하여 잘못 된 이미지를 가지도록 할수 있다.    플롯은 이야기의 요소들을 섞어주는 힘이 있어 이야기의 모든 요소에 스며있다. 즉 플롯은 서로 독립되여 보이는 이야기속의 이미지, 사건 등장인물, 배경들을 련결시키는 점착제와 같다. 무엇에 관한것을 순차적으로 늘여 놓은것을 줄거리 혹은 이야기라 한다면 플롯은 거기에다가 왜?를 첨가시킨것이다.     플롯과 등장인물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물론이다. 3명정도의 등장인물이 개입될 때 좋은 플롯을 구성할수 있는데 그들간의 관계가 제대로 펼쳐져있어야 한다. 행동없이 인물이 없고 인물이 없다면 플롯도 없다. 플롯은 작품의 방향을 잡아주는 라침판과 같다.     플롯의 전개방식에는 직선적플롯, 단절적플롯, 삽화병렬적플롯, 산만한 플롯 등이 있는데 작가의 창작개성과 소설내용전개의 수요에 따라 다양한 수법으로 짜여진다. 직선적플롯이란 “왕이 죽었다. 그 슬픔때문에 왕비도 죽었다.”라는 형태로 첫번째 사건이 두번째 사건의 원인으로 되고 다시 두번째 사건이 세번째 사건의 원인으로 되는 단순한 륜리적전진의 형식이 이 형태의 특징이다.     단선적플롯이란 사건들이 순서점진으로 이어지지 않고 하나의 삽화의 진행도중에 또 다른 삽화가 끼여들어 앞의 삽화가 일단 거기서 끊어진듯 하다가 다시 본래의 삽화로 이어지고 이것이 되풀이되여 몇개의 삽화가 얽혀나가는데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면서 주제의 해명을 향해 진행되는 형태이다.     례하여 “왕비가 죽었다. 그러나 왕의 죽음때문이였다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까지는 아무도 그 원인을 모르고있었다.”는것이 기본형이다. 이 방법은 서술상에서 기복을 이루어 변화가 풍부할뿐더러 현실처럼 착잡한 양상을 암시하는데 효과적이다. 삽화병렬플롯의 양식은 사실주의적이고 구조에 있어서 삽화적으로 몇개의 저마끔 독립된 이야기내용 줄거리를 여러개의 스토리가 종합적으로 이어놓는 하나의 플롯위에 배렬된다. 다음 산만한 플롯이 있는데 플롯에 대한 명확한 설계가 없이 여러 사건을 엮어서 묶어놓은것 같은 형태이다.     스토리는 이야기줄거리 자체로서 사건의 전개만을 의미하지만 플롯은 사건이 전개되거나 반전되는 양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순한 줄거리는 아니며 오히려 인과관계의 완결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스토리선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사건이 일어나는 결정적계기로 되는 순간을 “키 모멘트”라고 한다.     플롯상으로는 일반적으로 절정부분에서 나타난다. 이 순간 앞단계에서 제시되였던 모든 설명과 사건이 하나의 초점으로 모아지며 이야기가 지니고있는 복잡하고 불투명했던 의미가 해명되거나 혹은 그 의미가 함축되여 제시된다. 이런 플롯은 ≪춘향전≫,≪구운몽≫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리기영의 ≪고향≫등도 이러한 플롯을 바탕에 깔고있다. 소설은 이와같이 원초적으로 평정을 깨뜨리고 고초와 모험의 풍파를 겪은후 다시 평정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로정을 보여주는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근원적인 의미구조를 비극적플롯이라고 한다.    ≪춘향전≫의 결말에 대하여 춘향과 리도령이 만나서 사랑하고 리별한 뒤 춘향이 시련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구조로 끝나야 하는것인가. 만일 ≪춘향전≫이 철저한 비극으로 끝났다면 당대 현실의 모순에 대한 비판의 의미는 강화될것이다. 그리고 민중의 저항이라는 주제 또한 강화될수 있었다.     그러나 수용자의 마음을 달래주는 위안의 기능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암행어사출도 모찌브는 소설구성적으로 보아서는 크라이막스에 해당하는것이지만 조선후기에 나타나는 민중층의 랑만적꿈을 반영하여 아직 민중층의 의식이 현실적모순의 총체를 인식하지 못한 단계임을 보여준다.     방황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정화된 자아이미지를 발견하게 되는 구조는 현대소설에서 많은 작가들이 택하고있는 주제이다. 비극적플롯으로 된 소설이 독자들을 사로잡는 리유는 일상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긴장과 인간의 운명적질곡을 경험함으로써 전화된 체험을 가질수 있기때문이다.     소설속의 서사구조가 곧 행위의 구조가 된다. 인물들의 행위, 곧 사건의 구조는 언제나 그 근저에 갈등구조를 깔고있을수밖에 없다. 플롯을 짤때 하나의 국면을 다른 국면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인물들이 갈등을 겪어야 한다.     2) 소설의 모찌브(모티브ㅡ프랑스어)     어원상으로는 “운동의 근본적인 원인”이라 한다.(이 용어는 현재는 드믈게 적용된다ㅡ엘 찌모페예브《문예소사전》조쏘출판사 1955년판, 50페지)예술에서는 창작이나 표현의 기본적인 동기를 의미하지만 문학에 국한하여 통용되는 일반적인 의미는 문학텍스트에 자주 반복되여 나타나는 특정한 요소, 가장 작은 서사적단위(낱말, 문구, 사건,기법)을 가리킨다. 주제는 모찌브와 달리 문학전체에 있어서 제시될수 있는 의미론적범주를 가리킨다. 모찌브는 주제를 형성하는데 참여할수도 있고 혹은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소재로부터 주제를 얻었을 때 작가의 내부에 창작의욕이 생긴다. 이와같은 내부충동이 모찌브로서 동기, 리유, 주제를 뜻하며 “이야기의 최소단위로서 이야기를 이루는 핵”이 되며 인상적내용으로 이루어져있어 쉽사리 파괴되지 않고, 쉽게 기억되며 독립적인 생명을 갖는것이다. 주제는 모찌브와 달리 문학전체에 있어서 제시 될수 있는 의미론적범주를 가리키고 모찌브는 주제를 형성하는데 직접 참여할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주제를 형성하는데 직접 참여하는 모찌브를 “중심모찌브”라 한다. 예술에서는 창작이나 표현의 기본적인 동기(중심사상)를 의미하지만 문학에 국한하여 통용되는 일반적인 의미는 문학텍스트(각본, 대본)에 자주 반복되여 나타나는 특정한 요소, 가장 작은 서사적단위다.     어느 모찌브는 생략해도 사건의 련관성이 파괴되거나 전체 이야기의 일관성이 손상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모찌브를 자유모찌브라 하고 주제형성에 꼭 필요한 모찌브를 한정모찌브라고 칭한다. 이야기의 줄거리만을 전달하려면 사건의 행위에 대한 서술 즉 한정 모티브만이 필요할것이다.    모티브들의 결합방법은 인과관계로서 시간적련속성을 구비한다. 레하면 김동인 ≪감자≫,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이 있다. 성장소설은 현실과의 투쟁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며 세계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의식하고 자아를 발견하면서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을 말한다. 오쓰뜨롭쓰끼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등이 그 좋은 실례로 되고있다.     모찌브의 결합양식은 사슬식으로서 하나의 계기의 결말이 다음 계기의 가능성의 단계에 다다른다. 그래서 새로운 계기가 련속적으로 이어진다. 삽입적서술도 있는바 사건과 인물에 대해서 자세하게 정보를 제공할 때 명세화하거나 상세하게 만드는 방안이며 련합방식도 있는데 련합되고 삽입된 여러개의 작은 이야기들이 소설플롯의 바탕이 되고 작가의 창작의도를 구체화시킨다.     고소설의 현실은 그 근저에 항상 환상성이 매개되여있다. 고소설을 구성하는것은 “모찌브”이다. 고전소설을 구성하는 모찌브의 가장 중요한 특질은 환상성이라고 할수 있는데 현실과 초현실의 부단한 교섭속에서 서사가 진행된다. 때로는 괴상할만큼의 초현실적인 환상적모찌브들이 고전소설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데 미학적원리이자 정신사적함의가 내포되여있다.     신화성이 짙은 고전소설은 거개 지상과 천상의 이원구도(二元构图)속에서 서사가 진행되는만큼 지상에서 벌어질 일들이 미리 예고되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의 운명이 도인이나 도승과 같은 이인(异人)에 의해 직접 예언되거나 신이한 모찌브를 통해 간접적으로 암시되기도 한다. 이런 장면에서 적강(谪降), 신물(信物), 꿈 등이 가장 대표적인 모찌브로되고있다.     3) 소설의 장면과 시간    소설은 공간구조로 이루어질수밖에 없다. 시간에 중점을 두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서술되는 극적소설과 공간속에서 제한되여있는 인물에 착안점을 두고있는 성격소설로 나뉘기도 한다. 소설에 장면은 시간과 등속으로 전개되는 경우로서 화자의 의견이나 평가같은것은 개입되지 않고 진행되고있는 일이 그대로 독자의 눈앞에 현시된다.     례하면 “도령은 방안으로 올라가 서가에 쌓인 책들가운데서 한책을 꺼내놓고 급히 책장을 넘기였다.(춘향전) ”보다싶이 이 서술에서는 특정된 행동을 보여주고있을뿐이다. 작가는 작품속에 우주를 창조한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그 우주공간의 지배를 받는다. 독자가 인물들의 행동을 리해하는데 시공간구조의 설치는 필수적이다. 여기서 문본시간과 이야기시간이라는 개념이 제기된다.     이야기하는 시간을 “문본시간”이라 하고 이야기내용의 발전과정을 “이야기시간”이라 한다. “이야기시간”은 이야기가 발생한 자연시간 상태이고 “문본시간” 혹은 “서사시간”은 이야기내용이 서사문본속에서 발현되는 시간상태이다. 전자는 이야기속에 허구적인 사건들사이의 전후관계이고 후자는 작자가 이야기내용을 창작가공한후에 독자에게 제공하는 문본의 질서이다.     그러나 문본시간과 이야기시간사이에는 가능하게 차이가 날수 있다. 이 량자의 시간관계를 처리하는것은 서사효과를 증대시키는 예술수법이다. 문본시간과 이야기시간과의 관계는 주요하게 시간순서, 시간거리, 빈률 이 세가지 방면에서 표현된다. 서사의 시간은 일종 선색시간이다. 작가는 스스로의 주관적경험에 의하여 작품속에 인물들이 활동할수 있는 의미공간을 창조한다.     복잡한 형상은 서사시간과 이야기시간에서 순서, 빈률, 과도의 폭등 방면에서 여러가지 혹은 변이와 비틀어짐을 발생한다. 소설의 존재방식은 이야기이며 따라서 불가피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요청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든 그것이 독자에 전달되자면 누구에겐가 의존하지 않으면 안된다. 례를 들어보자.       “창턱아래 작은 꽃병에는 장미꽃이 꽂혀있었다. 장미는 붉었고 모두 여덟송이였다. 그는 손을 뻗어 장미의 보드라운 꽃잎을 어루만졌다.”     보다싶이 서술의 표면에 화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있다. 글에서 드러난 유일한 존재는 “그”일뿐이다. 그는 장미꽃에 대한 사실을 감지하는 주체이고 장미꽃에 손을 뻗치는 당사자이기도 한것같다. 그러나 이러한 지각과 동작을 알려주는 사람은 그가 아니다. 그러나 독자에게 말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음이 틀림없다. 그게 바로 화자이다.     작가가 자신이 처한 공간을 작품속에 어떻게 재현시키느냐에 따라 “소설미학은 여러가지 다른 방향으로 분기된다”고 한다. 례하면 이태준의 소설속에 공간은 눈으로 파악된 공간이 아니라 감정으로 파악된, 전설과 신화로 암시된 공간, 상징으로 가득찬 공간이다.     시간에 중점을 두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서술되는 극적소설과 공간속에 제한되여있는 인물에 착안하는 성격소설로 나뉘기도 한다. 쌔커리의 ≪허영의 시장≫은 사건의 진행에 따라 새 환경이 부단히 나타나는데 환경이 공간적으로 확대되면서 새로운 사회모습을 드러내는 특색을 가진 성격소설이다.    영국의 문학평론가 포스터에 의하면 인간은 력사 혹은 년대기와 소설을 만들어내도록 강요당한다. 소설의 1장과 2장사이에 일어나는 그 과정을 보이는것이 소설의 본체이다. 시간은 인물의 내재적변화에 영향을 미칠수 없지만 소설에서는 본질적인것과 시간적인것이 분리된다. 원칙적으로 소설이란 인간의 운명을 자신의 내적줄거리로 삼는 형식이다.     그런데 누구도 시간의 무자비한 힘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소설은 동물적운명을 지닌 인간이 시간의 힘에 맞서 싸우는 기록이라 한다. 루카치의 말처럼 소설의 내적줄거리는 시간의 힘에 저항하는 싸움이다. 이 싸움의 기록을 통해 흘러가버린 삶, 사라져버린것들이 휘황한 빛을 발산하게 된다는 점에서 소설형식이야말로 시간을 문제로 삼는 장르라고 할수 있다.    소설의 기술방식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서술자가 인물과 사건을 직접 설명하는 방법으로 “요약(파노라마)”하는 직접제시ㅡ말하기로서 설명적, 해설적, 분석적, 론평적이다. 등장인물의 특색이나 특성을 요약하여 설명하는 방법으로 등장인물의 심리를 세밀히 분석하고 등장인물의 움직임을 독자에게 정확히 알릴수 있다. 이런 기술법은 시간과 공간을 압축시켜 사건진행의 속도를 긴축시키는 서술방법이다. 서술자의 론평도 서술자와 독자의 거리를 단축한다.      다음 서술자가 일정한 장면을 제시하여 보여주는 간접제시(극적제시)법이다. 간접제시법은 인물의 행동이나 대화를 통해 인물의 성격이나 사건을 묘사하여 보여주기때문에 인물을 생생하게 묘사할수 있고, 사건을 현장감있게 제시할수 있다. 독자는 서술자의 설명이 필요없이 곧 사건이나 인물을 접촉할수 있다. 작가는 인물의 성격이나 정황에 대하여 독자의 상상력에 맡겨버린다.    례1)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룩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조밥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약 한첩 써본 일이 없다. 구태여 쓰려면 쓸 바도 아니로되 그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에 어디까지나 충실하였다. 따라서 의사에게 보인적이 없었으니 무슨 병인지는 알수 없으되 반듯이 누워가지고 일어나기는 세로 모로도 못 눕는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듯. 병이 이다지 심해지기는 열흘전에 조밥을 먹고 체한 때문이다.    례2)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 년!”    “․․․․․․”    “으응, 이것봐, 아무 말이 없네.”    “․․․․․․”    “이년아, 죽었단 말이냐,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죽었나버이.”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창을 덮은 우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깔! 이눈깔! 왜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천정만 보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김첨지는 미칠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현진건의《운수좋은 날》에 발취문이다. 앞에 례문은 요약적서술이고 뒤의 례문은 장면에 대한 서술이다. 김첨지의 가난한 생활과 아내의 오래동안의 병고가 압축되고 요약되여있다. 앞에 인용문은 열흘동안의 상황이지만 뒤에 인용문은 불과 일이분 사이의 상황이다. 따라서 요약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라면 장면은 구체적이고 한정적이며 개성적이며 특수성을 띤다는것을 알수 있다. 특히 요약적처리에서 독자는 화자를 의식할수 있지만 장면적처리에서는 화자의 존재를 잊은채 작품의 현장속에 완전히 빠지게 된다. 헤밍웨이의 ≪살인자들≫은 요약이 전혀 배제된 소설이다.     4. 소설에서의 형상화    1 ) 형상화    형상화란 작가, 예술가들이 형상사유와 일정한 수단, 방법으로 형상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때로는 문예작품 등에 표현된 생동성, 구체성의 정도를 형상화라고 하며 혹은 문예성질이 없는 연설가운데서 모종 구체적이고 생동한 묘사를 가리키기도 한다. 형상화는 두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일정한 작가의 의도의 전달이나 문학목적의 수행을 위해 작가가 선택하는 스토리, 재료 및 그 재료에 예술적형태를 부여하는 모든 과정이다. 형상화에는 형상소재, 상상의 운용, 허구의 진행, 적당한 형식의 표현 등이 포괄된다. 형상화는 생활실제에서 출발하여 형상을 부각하고 성숙시키며 완미화하는 과정으로서 추상적개념으로부터 출발하여 개념에 형상의 옷을 입혀주는것이 아니며 글재간을 부린 기교문제가 아니다.     2) 대화     대화란 서사적작품 및 극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말이다. 대화를 언어묘사라고도 하는바 문학예술작품 특히는 극작품에서 형상화의 중요한 수단으로 된다. 대화는 사건의 진전과 내용표현에도 의의가 있지만 개성화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대화묘사의 방법에는 대화와 독백 두가지가 있다.     등장인물들의 말속에는 그들의 의식정도, 계급출신, 사회지위, 직업, 출신, 지망, 취미, 성격 등 개성적특질들이 표현된다. 개성화된 대화는 작가의 긴 서술을 피할수 있고 인물의 복잡한 심리세계, 정황묘사를 더해줄수도 있다. 즉 대화는 일반화의 기능도 수행한다.     전통리론은 대화를 인물의 행위라고 설명해 왔다. 작중인물은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말함으로써 이야기의 구축에 참여하는데 대화는 작중인물의 그러한 다양한 활동중의 한가지인 언어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나 대화는 화자에 의존하지 않고 인물들 사이에 발생하는 순수한 언행이다.     인물대화는 구두어야 하며 인물의 언어를 묘사할 때 지문(화자의 설명)을 잘 배합하여 현재 인물이 어떤 표정, 몸짓, 심리 등을 보이고있는지 독자에게 더 정확히 알려주는데 왼심을 써야 한다. 경우에 따라 지문이 없이 맨 대화로만 쭉 이어지기도 하지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집중력을 잃게 할수도 있다.    지문은 간접적이기에 객관적신빙성과 무게를 갖고있지만 대화는 직접적이므로 대화자체는 상대적으로 가볍다. 대화가 적당히 진행되는 과정에 대화아래에 지문을 넣어 대화의 가벼움을 미봉해주는것을 대화의 다지기기교라 한다. 서술의 속도감을 주기 위해 지문을 절약하고 계주봉을 넘겨받듯 련속대화로 지속시킬수도 있으나 장편에 적격이다. 절대적은 아니지만 지문과 대화의 비률은 단편일 경우에는 보통 7대3으로 설정하고있다.     대화는 항상 스토리의 방향에 맞게 흘러가야 하며 극에서처럼 명확하고 간결해야 한다. 대화에서는 서사어같은 감을 주는 화려한 말투를 쓰지 말아야 한다. 강조외에는 반복하지 말아야 하고 불필요한 독백은 삼가해야 한다. 생활적질감이 있는 대화묘사는 억지서술보다 전달효과가 훨씬 좋다.     3) 소설의 분위기창조     소설에서 물리적, 현실적속성인 환경이 심리적현상으로 상승할 때에 나타나는 독특한 색조가 소설의 분위기이다. 이야기정절을 묘술하고 인물형상을 부각할 때의 과장된 기분으로서 작가의 객관물상에 대한 정서적파악이기도 하고 감정과 경물의 결합되여 심미주객체가 융화되여 일종 예술경계를 형성한다.     독자들은 인물이나 사건을 둘러싼 배경속에서 그것을 감지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작가의 심미경향은 왕왕 작품의 분위기를 통하여 강렬하게 표현되기도 하고 어떤 작품에서는 우아한 미를 표현하기도 하고 고도로 함축된 은근한 미를 표현하기도 하고 침울하기도 한 여러가지 심미색채를 표현하기도 한다.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있거라≫에서 “비”는 작가가 목적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구실을 하고있다. 배경은 분위기를 도모하는 간접적인 역할을 벗어나서 좀더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목적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는바 소설전체가 비로소 심각한 의미를 갖게 한다.     분위기를 통하여 주제를 전달할수 있다. 분위기는 배경이나 인물, 정황 등에 의해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정조를 말하며 한편으로 심리적인 측면을 내포하고있다. 단순한 배경은 소설에서 물리적기능만으로 사명을 다하지만 분위기는 소설전체의 성격을 위한 기능적봉사를 하는바 소설의 정신적인 면과 관련된다.     최서해의 단편 ≪기아와 살륙≫, ≪박돌이의 죽음≫등 작품들은 분위기가 주제의 륜곽을 암시해 주는데 소설의 력사배경과 당시 사회배경을 모르는 독자는 소설에 조성된 분위기에 깊이 젖어들수 없다. 독자의 립장에서는 작가가 의도하는 심리적인 련상작용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리해하여야 한다.     배경도 궁극적으로 소설에 기여하려면 분위기 혹은 상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어떤 소설에서는 상징의미가 모호하지만 한국작가 김동인의 ≪까치우는 아침≫에서 까치소리는 작품전체에 분위기를 잡아주고 예시하는 상징적구실을 잘 하고있다. 분위기는 배경외에도 어조, 시점, 문체 등에 의해 구체화된다.     4) 인물성격 창조     성격이란 용어는 희랍어에서 온것으로서 원래 “새기다(刻印)” 등의 뜻을 가지고있다. 인물성격이란 작품속에 등장하는 사람 즉 행동하는 주체로서 성격이라는 내면적속성까지도 의미하는 개념이다. 성격창조(형상부각)란 인물을 설정하고 의미를 발견하거나 구축해 나가는 일체 예술화과정을 가리킨다.    소설은 인물성격발전의 화랑이다. 성격은 사건을 결정하는 주체이며 사건은 성격을 증명한다. 영국의 소설가 헨리 제임스는 개성의 창조가 곧 인물의 성격이라고 하였다. 소설에서 성격이 곧 인물로서 플롯, 캐릭터, 테마 등 소설의 구성요소중에서 인물설정이 가장 중요하다.     독일의 극작가 레씽은 성격과 무관한것들은 외면해도 무방한바 작가에게는 오직 성격만이 신성하기에 인물의 특징에 력점을 찍으라고 강조하였다. 허드슨도《문학연구서》에서 “기교면에서 작품의 성공여부는 오로지 성격묘사의 솜씨에 달려있다.  …소설은 오로지 상상력에 호소할수밖에 없으므로 묘사로써 인물의 모습과 행동을 여실히 나타내야 한다.”고 피력하였다. 인물성격에는 개성, 내재성, 정체성 이 세가지 특징이 있다. 인물성격의 개성이란 인간의 공성속에서 다른 인물과 구별되는 성격적인물을 의미한다. 성격은 생명, 령혼의 표현이라고 할 때 필경 내적인것으로서 생활속에서 형성된 사상, 감정의 총화이다. 다음 인물성격의 정체성이다. 헤겔은 “매 하나의 인물은 하나의 총체이며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다.”라고 했다. 벨린스끼도 “살아움직이는 인간은 역시 하나의 독특하며 스스로 일체를 이루는 세계”라고 하였다.     성격화의 방법은 다양하나 성격묘사방법에도 독자에게 인물의 성격을 해설하는 직접적방법, 인물의 성격을 간접묘사하여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는 간접적방법, 인물의 내적자아를 해부하는 분석적방법의 세가지가 있다. 명명(命名)이나 외모묘사로 그 인물의 특색을 보여주기도 한다.     (1) 직접적방법: 작가(서술자)가 직접적으로 인물의 특색, 특성을 요약해서 설명하는 방법, 말하기라고도 한다. 례하여 “리대춘은 대포를 잘 불기로 원근에 이름이 나있다.”와 같은 서술이다. 성격이나 심리상태를 직접 분석하고 설명하기때문에 성격의 구체성을 잃어버리기 쉽다. ≪흥부전≫, ≪장화홍련전≫과 같은 고전소설에서 흔히 쓰이고있다.    (2) 간접적방법: 인물의 대화나 행동이나 버릇, 대화, 갈등을 장면적으로 보여주는 성격묘사하는 한가지 방법으로 극적방법이라고도 한다. 행동이나 대화를 통해 전형적이고 변하지 않는 성격을 제시한다.    (3) 분석적방법: 작중 화자(서술자)가 인물의 성격을 직접 설명하는 방법으로서 해설적방법이라고도 한다. 인물의 심리, 잠재의식의 묘사로서 외모묘사에 비해 분석적이고 복잡다단한 인상을 준다. 특히 “의식의 흐름”의 작품들이 이 방법을 택한다. 한국작가 정한숙의 ≪거문고 산조≫를 보자. ...술을 권하면 안 받는것도 아니였다. 그렇다고 강월이 술을 받았다고 하여 취하는 모습도 아니였다. 혹시나 받은 잔은 눈을 속여 쏟아버리는가 하여 살펴보면 그런것도 아니였다. 딴 기생들은 술이 이쯤 되면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여 옆 손님의 품에 안기기가 일쑤지만 강월은 이슬을 담북 머금은 백합모양 더 꼿꼿하기만 했다. 강월은 창과 거문고로썬 손님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기생으로선 매운 계집이니 독종이니 욕먹기가 일쑤였다.       기생이면서도 기생이 아닌 주인공 “강월”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돈이 판치는 현대사회에서 전통적인 례도를 섬김으로써 인격을 지키고 존엄을 지키려는 인물의 사람됨을 미루어 보여준다. 례: 김동인 ≪감자≫ “뱃섬 좀 치워 달라우요”. “남 조름 오는데 님자 치우시관.” “내가 치우나요?” “20년이나 밥을 처먹고 그걸 못 치워!” “에이구 칵 죽구나 말디.” “이년 뭘!”     이러한 짧은 대화 몇마디에서 게으르기 짝이 없는 남편의 성격이 드러나는데 이것이 행동이나 대화를 통한 극적제시의 방법으로서 해학적방법에 의한 인물의 제시이다. 인물의 특징을 희극적으로 현저하게 과장하거나 조금 황당하게 묘사하여 성격을 제시하기도 하는 일종 기교이다. 주인공에게 영향을 미치는 환경의 변화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환경과 갈등을 겪게 만든다. 주인공을 낯선 환경과 갈등을 겪게 할수도 있고 타인의 환경과 갈등을 겪게 할수도 있다. 반복(패턴)의 수법으로 갈등을 심화시킬수 있다. 여기서 반복이란 동일한 사건이라기보다 련쇄적이며 상승적인 반복을 말한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의 련속반복적인 행운, 그 행운이 지속됨에 따라 고조되는 집에 두고온 병든 안해의 죽음에 대한 불안한 예감은 이 소설의 핵심적인 갈등의 양상이 되고있다. 안해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은 모든 이전의 사건의 초점이 된다.     상술한 바와 같이 한부의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성격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총체적이다. 헤겔은 “매 하나의 인물은 하나의 총체이며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다” 라고 단정하였고 벨린쓰끼도 “살아 움직이는 인간은 역시 하나의 독특하며 스스로 일체를 이루는 세계”라고 규명하고있다.  
13    제 3 절 소설문학 댓글:  조회:4029  추천:22  2007-08-13
                                             제3절 소설문학 1. 소설의 연혁 전통리론서에서는 소설이란 작가가 상상력으로 창조한 허구의 세계를 현실적인 인물이나 사건전개를 통하여 진실한 이야기처럼 그리는 산문문학의 한가지라고 정의하고있다. 그러나 시대의 발전에 따라 소설에 대한 정의는 나름대로 내려졌다. 혹자는 허구적인 이야기라 하고 혹자는 인생의 해석이라고 하며 혹자는 인생의 회화라고 하고 혹자는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꾸며낸 재미난 이야기라고도 한다. 상술한 관점들에서 출발한다면 소설은 인간들의 삶의 양상에 대해 알고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문화양식의 하나로서 작가는 인간이 세계와의 대면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여러 현상, 방식을 제공하게 된다. 소설은 인생의 비밀 혹은 삶의 근원을 파헤치기라고 할수 있다. 물론 작가는 사회, 시대에 대한 판사가 아니며 소설은 더구나 판결서가 아니다. 그러나 문학예술의 체현자로서의 소설가는 삶의 방식의 탐구와 계시라는 임무를 짊어지고있다. 소설이라는 언어예술은 서방에서 가장 일찍 산생되였는데 희랍의 희곡에서 파생되여 나온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의 ≪시학≫에서 인물, 주제, 정절, 대사, 장면과 음악을 희곡의 기본요소로 규정하였다. 이런 요소는 후날 소설의 요건으로 되여 자체의 특징을 훌륭하게 살리면서 성숙기를 마련하였다. 인생을 묘사하는 소설의 내용요소에 의해 서사성이 규정된다. 무릇 인간의 행위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면서 현실적규정과 질서에 의거하여 통일된 의미의 련결속에서 사건서술을 진행하는 문학의 종류를 통칭하여 소설이라 하였으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설은 문예발전사상 후기에 생겨난 서사문학의 한 장르이다. 소설의 원형은 어느 나라에서나 설화이다. 그 설화도 옛날에는 운문으로 쓰인것이 보통이였다. 고대부터 중세기에 걸쳐 문학의 중심적인 제재는 영웅, 성자, 귀족, 때로는 신들이나 악마였다. 그들의 초인적인 사업이나 정열, 그 결과로 일어나는 비극적상황 등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북돋아주었다. 중세기에 이르러 서사시의 시대가 영국, 프랑스 등의 문학에 기록되였는데 그중의 하나인 “로망”이 후세소설의 원형으로 되였다. 서양에서 소설의 발달과정은 서사시ㅡ신화ㅡ로망스ㅡ소설이다. 로망스란 애초에 라틴어의 방언이였던 로망스어로 쓰인 이야기를 일컫는 말로서 내용은 대체로 기사들의 황당무계한 무용담이나 련애담으로서 기이하고 가공적이면서 모험적인 성격을 지니였다. 이는 소설발전에서 획기적인 혁신이였다. 소설양식의 출현에 힘을 입어 사회의식과 력사의식의 발전이 촉진될수 있었다. 소설양식이 대두하면서 인간생활의 일체가 그속에 담겨질수 있었고 사회와 력사사이의 상호조응이나 교화작용이 활발하게 전개되였기때문이다. 한편 고대중국에서는 소설이란 하잘것없는 이야기, 민간의 사소한 사건, 류행, 풍속, 뜬소문을 의미하는것이였다. 춘추전국시기 장자의 외물(外物)편에서는 “하찮은 이야기”로, 순자의 정명(正名)편에서는 “소설진설(小家珍说:소설의 진기한 이야기)”로, 그리고 론어에서는 대도(大道)에 상대되는 별로 중요치 않은 “소도(小道)”로써 론하였다는 점에서 소설이란 하찮은 작은 이야기 정도로 보았음을 알수 있다. 고대중국의 소설가란 패관(稗官)에서 비롯되였다. 패관은 왕이 세간의 풍속,여론을 알아보기 위해 설치한 림시사관직이였다.《漢書藝文志》에서 제자백가를 유가(儒家), 도가(道家), 음양가(陰陽家), 법가(法家), 명가(名家), 묵가(墨家), 종횡가(縱橫家), 잡가(雜家), 농가(農家), 소설가(小說家) 등 10가지로 분류했는데 소설가의 전신이 패관이고 소설의 원형이 항간에 이야기를(街談巷語, 道聽塗說)를 말하는사람이다. 중국소설은 크게 사대부들이 이문잡사(异闻杂事)를 적어놓은 문언소설(文言小说)과 민중오락으로 발생하여 명청시대 장회소설로 발전한 백화소설로 나누어 보는데 전반적으로 소설에 대한 문학적인식은 박약했다. 중국에서 소설문체가 굳혀진것은 당조때로서 당조전기가 소설에로 한걸음 접근한 표지이다. 기실 서방에서도 15ㅡ16세기에 이르러서야 근대소설이 등장했다. 소설이 시학의 대상으로 부상하여 쟝르로 인정받으려 한 노력은 17세기에 시작되였지만 18세기까지 주류쟝르인 서사시에 비해 렬등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다가 18세기후반기 몽떼스큐, 루쏘, 볼떼르 등 계몽주의자들이 소설에서 참여의식을 다루면서 소설의 위상이 높아졌다. 인간의 가치나 삶에 대한 평가를 사회적, 력사적맥락에서 파악하려는 새로운 의미의 소설양식이 나타나기 시작한것이다. 근대소설로의 첫걸음을 내디딘것은 14세기 보다 부유하고 교양있는 상인계층의 대중작품이였다. 대표적인것이 보카치오의《데카메론》으로서 근대단편소설의 기초를 마련한 작품이다. 이러한 문학형태를 극복하고 근대적소설의 형태를 뚜렷이 보여준 작품은 쎄르반떼스의《돈끼호떼》이다. 근대소설이 일제히 개화, 결실을 보게 된것은 18세기이며 특히 영국이 그 중심지가 되였다. 영국이 다른 나라보다 먼저 근대적시민층, 즉 상인을 중심으로 한 중산계급이 사회적,경제적주도권을 장악하면서 규범에서 벗어나 자기 주변의 생활과 사회를 있는 그대로 그릴 자신감이 생겨났고 그러한 표현을 기쁘게 받아들는 새로운 독자층이 형성되였기때문이다. 그 첫번째 작품이 다니엘 띄포의 장편소설《로빈손 크루소》이다. 후세사람들이 “근대소설의 아버지”'라고 부른 새뮤얼의 뒤를 이어 영국의 소설가 헨리 필딩 등이 근대소설의 기초를 닦았다. 19세기에 들어서서 소설의 중심지가 영국에서 프랑스로 옮겨졌다. 소설의 규모가 방대하고 활력이 가득했던 발자크의 련작《인간희극》과 투철한 심리분석과 정열적인 행동을 잘 묘사한 스탕달의《붉은것과 검은것》,《빠리 노뜨르담사원》이 플로베르, 졸라와 나란히 근대적사실주의라는 새로운 창작국면을 마련하였다. 물론 이 시기에 디켄즈, 쌔커리, 엘리어트 등 영국소설가들도 많은 활동을 했고 19세기후반부터 고골리, 레브 똘스또이, 도쓰또예브스끼, 뚜르게네브 등에 의한 로씨야소설이 놀랍게 성장했으며 당시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호손, 멜빌 등의 미국소설가도 일제히 개화기를 맞이하였다. 이처럼 19세기는 철과 석탄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소설의 시대이기도 했다. 소설이 문학장르의 중심으로써 문학적재능을 다양하게 흡수했을 뿐만아니라 소설을 통해 심리분석, 정서의 표현,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다각적인 탐구 등이 이루어졌다. 소설문체의 성립원인은 주체의 자태에서 얻어진것이다. 소설은 운문이 지니고있던 수많은 규약에서 해방되여 일찍 볼수 없었던 자유로운 문학양식으로 자리잡았고 이같은 자유는 문체만이 아니라 구성에도 미치게 되였다. 시점의 선택과 다양한 형식 등장인물의 수자나 다루는 방법에서도 제약이 없게 되였던 것이다. 하여 소설이란 작가적인 상상력으로 인생을 조명는 사람들이 어떤 의도와 목적을 시사하는 작업으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사회적자각은 인류력사의 연신으로서 소설의 흥기는 이처럼 시대의 수요에서 시작되였다. 근대소설은 근대시민사회가 추구한 자유와 평등과 개인주의의 산물이며 각성한 시민계급의 성장이라는 력사적문맥과 더불어 성장했다. 근대소설은 인간경험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을 심미적으로 재현하며 인간의 참다운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려고 노력해왔다. 사회적자각은 인간이 인간본연에로 돌아와 개인을 중시한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인간이 개인을 중시하면서부터 개인의 흥취를 불러일으킨것은 생명내부의 활동으로서 이 내부생활에 대한 표현을 희곡은 해낼수 없었다. 시가 희곡보다 편리하지만 언어사용의 제한성으로 말미암아 소설처럼 마음대로 적절한 언어로 다종다양하고 각양 각색인 객관사물과 사회생활을 표현할수 없었다. 근대소설은 추상적사상을 생명이 있는 모형으로 변화시키고 사상을 부여하였으며 실생활에서의 도덕보다 더욱 고상한 도덕을 전파하면서 생활교과서로 부상되였는바 인성의 본질인 련민의 정과 흠모와 숭경, 공포, 분노, 증오 등 희노애락의 심리세계를 폭넓게 펼쳐보였다. 2. 소설의 특징 1) 소설의 본질 소설은 시와 력사의 결정체이다. 소설은 사람들에게 대화기교를 배워주고 경구와 사실과 이야기거리를 풍부히 해주며 사시마냥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서정시마냥 시적의미도 담고있고 희곡마냥 생활을 생동한장면으로 펼쳐보일수 있다. 소설가는 독자들에게 완전하고 의미깊은 이야기를 해주며 소설인물은 전형적이고 보편적이기 때문에 력사를 말하는것이 아니라 인생을 그려보인다. 소설은 인생현장에 대한 총체적고찰에서 경험을 쌓고 인간성의 탐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시사하고 인간의 은밀한 사연까지 비춰보이는 거울이다. 훌륭한 소설은 정서적인 즐거움으로 고독한 마음을 위로할수 있고 예술적쾌락속에서 사상과 욕망, 지식을 주며 어떤 원대한 지향도 심어준다. 소설에 형식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자유로운바 전기체, 일기체, 참회록, 려행기, 서한체 등 일체 예술형식을 자재적으로 리용할수도 있다. 소설이 형식상 일정한 격식이 없는것은 오히려 소설의 우점이다. 내용상에서는 물론 정감상태상에서도 랑만적일수 있고 사실대로 쓸수도 있고 신비로운 색채를 띠게 할수도 있으며 재료상에서는 일체 생명과 대자연속에 모든 사물을 서술할수 있다. 소설은 자질구레한 신변잡사를 쓸수도 있고 중대한 사건을 쓸수도 있으며 많은 사람들의 조우도 묘사할수도 있고 하나의 이미지와 정신경지를 쓸수도 있다. 소설은 일체형식을 채용할수도 있기에 일체형식을 과감히 타파하고있다. 소설의 발달은 사회자각인만큼 심오한 철리를 담고있었다. 철리성이 없는 이야기는 뼈없는 모델과 같다. 소설은 살아움직이는 인물형상으로 인생철학을 설명하고 해석한다. 내용상, 형식상, 언어예술상 그 어느 쟝르도 소설처럼 독자의 뼈속 깊이 새겨지게 인생과 인물형상을 묘사할수 없다. 희곡과 시가 사상을 담는 형식이라면 소설은 사상을 변화시키는 형식이라고 한다. 소설이란 이 명칭은 여러가지 문자로 기록되여 있지만 결국 이야기라는 의미로 통합된다. 넓은 의미에서 소설은 감동적이고 의미로운 이야기지만 흥미있는 사건을 이야기하며 의의있는 일들에 대하여 해석하는 문학적대화양식이다. 소설의 내용과 양식이 어떻게 변하든간에 소설이라는 명칭 그대로 흥미롭고 모종 가치가 있는 이야기가 되여야 명실상부한 소설이 된다. 발자끄는 소설은 한 민족의 심령의 비밀사라했다. 소설의 내용과 형식이 어떻게 변했든 흥미있고 모종의 가치있는 이야기가 되여야 한다. 마치 밤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폭군의 흥미를 끌지 못하면 죽임을 당하는 ≪아라비안나이트≫에서처럼 소설작가가 독자들의 심목속에 살아남으려면 세헤라쟈드같은 재치있는 이야기군이 되여 독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물론 일반 서사양식이 미적형상화에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말할수 없지만 그러나 문학적관습으로 보아 일정한 사건의 전개와 인물, 성격의 형상화, 그리고 그에 따른 갈등, 대립이 서사구조내에 존재함으로써 독자에게 주는 칠정륙욕과 긴장감과 그 긴장감이 절정에 달해 해결되는 애증, 안도감 등을 통해 주제의 형상화가 이루어지고 독자들에게 내면화시킬수 있는것이다. 2) 소설의 특징 소설의 특징을 허구성, 진실성, 예술성, 서사성 네가지로 개괄할수 있고 이외 현실성, 객관성, 구어체산문성, 모방성 등을 기타 특성으로 론할수 있다. 소설의 특징에는 우선 허구와 진실문제가 제기된다. 소설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요 그 시대의 그림자라고 하는데 현실 그대로의 복사가 아니고 작가의 주관을 통한 새로운 창조세계로서 허구적진실을 생명의 원천으로 한다. “문학은 장엄한 거짓말이다.” 거짓말인 소설을 진실되게 하는것, 참말처럼 읽히게 하는것을 리얼리티라고 한다. 따라서 리얼리티는 소설세계를 이루는 구조적인 원리로 된다. 리얼리티는 현실사회에 인간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실과 인간상이 갖게 되는 보편적인 인생함의와 은근한 호소력과 계시이다. 이처럼 현실에서 류추된 그럴듯한 개연성이야기ㅡ이것이 소설이다. 소설의 기본특징은 허구성이다. “관찰하고 연구하고 아는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나아가 ‘허구하며’ 창조하는것이 또한 필요하다. 창작이란 수많은 쇄말사들을 완성된 형식을 갖춘 하나의 일정한 전일체속에 결합시키는것이다.”허구란 어원적으로 “빚어냄” “꾸며냄”의 뜻이지만 근대자본주의사회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고 새로운 인생과 현실의 창조라고 인식하고있다. 례컨대“리얼리즘도 선택이다.”라는 말은 곧 문학의 세계란 현실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작가에 의하여 창조된 리상세계이고 사회해부와 조명을 가리키는것이다. 소설은 허구를 수단으로 인생의 참된 모습을 제시한다. 소설을 소설이 되게 하는것도 허구성에 있지만 소설속에 전개되는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볼수 있는 사건에서 추출된다. 그런 측면에서 소설은 현실생활에 대한 모방성을 가진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창조적이고 개성적인 상상력의 려과를 통해 소설의 사건이나 인물, 배경 등은 허구적인 속성을 띨수밖에 없다. 현실세계가 우연성과 개별성에 의해 지배되는 반면 허구세계는 그 현실속에서 필연성과 보편성을 찾고자 한다. 그것은 무질서의 세계가 아니라 새롭게 꾸며진 예술적질서의 세계이다. 이런 의미에서 허구를 곧 무질서의 질서화라고 한다. 소설의 세계가 바로 사실에 근거를 두고있지만 작가의 주관적상상에 의해 창조된 허구적인 세계이다. 인생의 이런저런 모습을 제시하기 위해 작가는 인간 또는 인생을 탐구한다. 소설은 현실과 전혀 다른 새로운 질서와 진실과 론리에 의해 운행되는 하나의 우주이다. 소설이 리얼리트적이여야 그 세계는 생동한 현실이 된다. 소설에서의 예술생명은 그것의 진실성에 있다는 말은 이에서 비롯된것이다. 소설세계는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의한 질서의 세계이다. 그것이 바로 리얼리트(사실주의)가 있는 질서로서 소설속의 필연적인과관계에의 새로운 질서의 형성을 말한다. 소설의 진실은 감동의 형식을 통해서 수용된다. 소설에서 보편적으로 지향하는 진실은 소설의 론리적구성과 삶과 세계에 대한 의미화의 작용 및 작가나 독자의 주관인식을 통해 형상화되여야 실현될수 있다. 소설적진술성도 소설의 기본특징의 하나이다. 진술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기능을 발휘하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행위 즉 서술에 통합되여있다. 서술자는 때로는 매우 근접해서 그 사건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거리를 유지하는데 정도에 따라 이야기가 사뭇 달라진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서술자의 소설적전달기능이 바로 서사성이다. 3) 소설의 문체와 어조 소설연구에서 문체와 어조도 중요하다. 가) 문체: 문체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작가의 특이성으로서의 문체와 표현기교로서의 문체, 보편적의미, 내용이 작가의 개성적인 표현을 통하여 구현된 경우의 문체, 작품의 가치를 결정할수 있는 소설의 문체가 있다. 문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될수 있으나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다. 첫째로 문학작품에서만 사용되는 특수한 문장표현방식으로서 문학적언어, 시적언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둘째로 어느 특정한 력사적시기에 문화권에서 독특하게 사용되는 언어체계나 표현방식을 뜻한다. 셋째로 작가가 언어를 선택하고 질서화하며 배렬하는 개성적인 방법을 가리킨다. 소설에서 언어는 정보전달 또는 진술된 의미를 가리키는 내용적측면과 미적자질 또는 독자의 감정적반응을 좌우하는 형식적측면의 두요소를 지니는데 문체는 후자에 속하는것이다. 소설에서의 문체는 작가정신과 기법에 의해 좌우된다. 리광수의 평이하나 설교자연하는 어투, 김동인의 단속적인 간결체, 염상섭의 지루할 정도의 만연체, 현진건의 아이러니한 문체 등 문체는 단순히 문장기교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그 작가의 기질과 인생관의 표징이기도 하다. (조현남 “소설원론”) 최서해는 ≪탈출기≫와 ≪전아사≫에서 극심한 상황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극단적 행위를 표현하기 위해서 서간체를 사용함으로써 소설을 분노에 찬 격한 감정과 어조로 채우고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간체가 적격일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서간체는 우회적이건 직설적이건 상대방(독자)에게 호소하거나 절규하데 유일하게 적합한 문체이기때문이다. 이와 달리 ≪홍염≫, ≪큰물진 뒤≫, ≪기와와 살육≫등에서는 분위기에 걸맞는 정경묘사를 기본으로 한다. 작가는 관념의 도입을 가능한한 억제하면서 극적인 정경을 생생하게 제시하여 독자의 감정적흥분을 기대한다. 이러한 문체는 작가가 지닌 시대적증오와 원한, 그리고 그것을 청산하는 기쁨을 독자와 공유하고자 하는 남다른 의도에서 비롯된것이다. 황순원은 함축성있는 서정적문체가 특징적이다. 그의 소설에는 짙은 감정이 슴배여있는 어휘가 많이 사용되며 그 감정은 부사의 적절한 사용과 정확한 쉼표에 의해서 절제된다. 행의 바꿈이 거의 없고 사건전개에 속도감이 없다. 이러한 문체는 심리묘사나 분위기조성에는 큰 역할을 한다. 반면에 인물의 성격에서 빚어지는 드라마를 다루기에는 알맞지 않은 문체이다. 그의 소설이 외부정경이나 내면심리에 의존하고있는것은 이와같은 문체의 특징과 관련되여있다. 포석 조명희는 함축성있는 서사와 서정의 긴밀한 결합적문체가 특징적이다. 그의 대표작인 ≪락동강≫에 짙은 랑만적색, 강렬한 감정을 바탕으로 토로된 풍부한 서정성, 전편에 흘러넘치는 기백이라든가 풍부하고 다채로운 언어표현은 예술적특징이 남다르게 과시되고있다. 그러나 관념과 론리를 벗어나고자 노력한다면 어휘들을 비틀고 외곡시킬것이고 그로해서 문체는 과격해지고 난해하게 될것이다. 그렇게 과격한 사변적인 문체는 조리성을 잃을수도 있다. 나) 어조: 소설문체에서 가장 전면에 나서는것은 작가의 어조이다. 어조를 통하여 주제가 전달될 수도 있다. 어조는 작품에 나타나는 작가의 태도이다. 작가는 한 인물에 대하여 동정적인 태도를 보일수도 있고 랭소적인 태도를 보일수도 있다. 어조는 소설에서 언어의 기교적인 배렬로 인해 전달되는 화자의 정서적태도와 느낌, 언어에 의해 나타나는 분위기, 기분을 의미한다. 어조는 문체와 긴밀히 련관되여 있다. 어조는 작품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 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분위기는 작품의 총체적의미나 주제의식을 간접적으로 밝혀주는 기능을 한다. 어조에는 해학적어조, 반어적어조, 풍자적어조, 객관적어조, 랭소적어조 등 여러가지가 있다 채만식은 풍자적어조를 즐겨쓰며 김유정의 소설에는 해학적인 어조가 많고 현진건은 반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가) 해학적어조 : 익살과 해학이 중심을 이루는 어조이다.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예쁜 계집애는 못된다. 그렇다고 개떡이냐 하면 그런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돼야 할만큼 그저 툽툽하게 생긴 얼굴이다. 나보다 십년이나 아래니까 올해 열여섯인데 몸은 남보다 두살이나 덜자랐다. 남은 잘도 훤칠히들 크건만 이건 우아래가 몽톡한것이 내 눈에는 하릴없이 감참외같다. 참외에는 감참외가 제일 맛좋고 예쁘니까 말이다. 동글고 커다란 눈은 서글서글하니 좋고 좀 지쳐 찢어졌지만 입은 밥술이나 톡톡히 먹음직하니 좋다. 아따 밥만 많이 먹게 되면 팔자는 고만아니냐.   김유정의 ≪봄봄≫이다. 점순이를 묘사한 부분이다. 어리숙하고 익살스러운 말투로 웃음을 자아낸다. 나) 반어적어조: 진술의 표리를 가지거나 상황이 대조에 의한 어조이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그 례로 된다.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듯하던 눈은 아니오고 얼다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였다. 이 날이야말로 동소문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좋은 날이였다. …그러 자 산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뺏뺏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였다. 문득 김첨지에게는 미칠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아침부터 벌이가 좋아 “운수 좋은 날”이라고 여긴날 저녁,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죽어있었다. 여기서 “운수좋은 날”이란 말은 가장 참혹하고 비통한 날의 반어로서 그 참모습이 잘 드러난다.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작품의 총체적의미나 주제의식을 간접적으로 밝혀주는 장치가 되여있다고 볼수 있다. 다) 풍자적어조: 한국 현대작가 채만식의 ≪태평천하≫같은 소설은 거의 어조에 의해서 풍자성을 표출하고있다.   허리를 안아본다면, 아마 모르면 몰라도 한아름하고도 반은 실히 될까봅니다. 그런데다가도 알맞게 다섯자 아홉치는 넉넉 합니다. 얼핏 알아듣기 쉽게 빗대면 지금 그가 타고 온 인력거가 장난감 같고 그 큰 대문간에 들어서기도전에 그들먹합니다. 얼굴도 좋습니다.   여기서 작가는 등장인물의 외형을 정확하게 묘사하기보다는 그 인물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암시하는데 력점을 두고있다. 허리둘레가 한 아름하고도 반이 된다든가, 키가 알맞게 다섯자 아홉치라든가 대문에 들어서기도전에 꽉 찬다든가 하는 표현은 그 의도가 묘사에 있는것이 아니라 윤직원령감을 소묘하면서 작품 전체를 풍자적으로 전개하려는데 있는것이다. 작가들마다 각이한 작품에 구사하는 문체가 있다. 헤밍웨이의 문체는 사건을 랭정하고 극적으로 부각시키는데 유효하다. 이런 문체에 의존하는 이야기에서 화자의 개입은 철저하게 배제되고 행동과 사건들을 주로 대화와 묘사에 의해서만 제시된다. 작가 자신의 역할을 대상을 포착하는 사진기렌즈로 제한시킨다는 원칙이 따른것이다. 오 헨리는 풍자적어조를 즐겨쓰며 체호브의 소설에는 해학적인 어조가 많이 나타난다. 반면에 로신은 반어적인 수법을 많이 쓰고있으며 또한 누구보다 능란하게 썼다. 특히 오 헨리는 소설 ≪경찰과 찬송가≫에서 눈물겨운 웃음으로 악렬한 사회환경속에서의 쏘피의 비참한 처지, 정신풍모와 지향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를 비극적처지에 밀어넣은 미국사회의 현실을 풍자하였다. 미국생활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리는 그의 소설에는 익살과 해학이 중심을 이루고있다. 례를 든다면 “치안판사가 나머지 일은 처리해줄테니까”, “먹히울번했던 오리의 운명은 무사하게 되였다.”, “쏘피는 말썽 많은 구두와 바지를 디밀었다.”, “그는 목수의 접는 자막대기처럼 관절 하나하나를 펴면서 오또기동작으로 일어났다.”, “그자들의 포승에 얽히기를 원했건만 자기를 마치 과오를 범할수 없는 임금이나 되는것처럼 그자들은 생각하고있는것이다.” 등이다. 3. 소설의 구성 1) 구성의 함의 구성(얽음새)은 작품의 얽음새로,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사건을 인과관계에 따라 유기적으로 질서있게 배치하는 작가의 계획적이고 개성적인 방법이다. 풀어서 말한다면 행동의 주체로 되여 개성이 있고 전형성과 보편성을 지닌 인물, 소설에서 복선이나 암시에 의해 인과성, 필연성이 수반되여 전개되는 사건, 소설의 시간적, 공간적환경으로 인물의 심리와 사건전개에 암시적역할을 하는 배경이 소설의 구성요소이다. 례하면 “령감이 그렇게 비명횡사 하고나서 얼마되지 않아 명동골댁도 그만 령감을 따라갔다.”라고 진술하는것은 스토리이며 “령감이 그렇게 비명횡사하고나서 가슴을 쥐여뜯더니 그만 령감을 뒤따라 갔다.”는 식으로 인과관계를 설정하여 진술하는을 플롯이라 한다. 플롯속에는 생활에서 특징적인 충돌과 모순, 인간들의 상호관계 및 그들에 대한 작가의 평가, 태도가 반영된다. 슈제트는 “사람들의 상호관계, 대립, 반감과 전적으로 그들의 상호관계ㅡ이러저러한 성격이 성장하며 조직되는 력사이다.” 전통리론에서는 소설의 내용요소를 보통 소설의 3요소라고 규정짓고있다.인물, 환경, 구성, 주제를 소설의 4대요소라고도 한다. 작품의 주제사상과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따라서 사건을 유기적으로 배렬하는것을 가리키는 구성 그리고 작가의 어조 등으로 나타나는 문체, 전형성, 보편성을 지닌 인물, 복선이나 암시에 의하여 인과성, 필연성이 수반되여 전개되는 사건, 시간적, 인물의 심리와 사건전개에 암시적역할을 담당하는 배경이 그것이다. 소설창작에서 구체적인 인물에 대한 환경묘사의 심각한 영향은 때론 유형(有形)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무형(无形)으로 나타난다. 자연환경묘사는 상징색채로써 작품내함의 미학적특색을 구체적으로 현시하는데 인물로 하여금 자신을 초월한 련상을 떠올리게 하며 그와 함께 총체상에서 인간에 속하는 감정색채를 현시한다. 이런 감정색채의 내함 및 구성요소는 작가의 심미경향을 표현한다. 사건은 소설의 가장 본질적요소이다. 대체로 사건은 스토리라인(선, 선색)상에서 다른 사건들과 결합하는 련속의 방식을 가지고 일어나며 인물들의 행동을 합목적으로 유발한다. 사건에는 선택적행동을 전진시키는 핵심사건과 그 행동을 확대, 확장, 지속, 또는 지연시키는 주변사건들이 있다. 사건의 의도적인 배렬, 구성형식으로서의 플롯은 이야기들이 최대의 효과와 주제적흥미를 가져올수 있도록 그것들을 조직하는 정교화작업이 된다. 이는 서사상에서 이미 제시된것과 이에 이어지는것들사이에 존재하는 개연성이나 상호작용을 념두에 둔것이다. 따라서 플롯을 구성하는것은 개연성을 필연성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구성은 복합적의미를 가지는데 여러가지 견해들이 있다. 가) 소설이나 희곡에 제시된 행동의 구조이다. 나) 플롯은 소설의 론리적이고 지적인 측면이다. 다) 플롯은 행동의 모방이며 행하여진것(사건)의 결합이다. 라) 넓은 의미의 이야기란 인물, 사건, 배경, 주제, 시점, 언어 등의 모든 요소를 포함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행동, 스토리라인(이야기선) 또는 플롯이다. 구성은 다음같이 나누어 볼수 있다. ㄱ) 인과관계에 의한 사건의 전개 및 배렬이다. ㄴ) 주제를 구현하는 기법이다. ㄷ) 소설의 예술미를 형성할수 있도록 론리적이고 인과적으로 배렬된 사건의 구조이다. ㄹ) 복선을 깔아 돌발적인 사건에 필연성을 부여하여 통일성을 살린다. ㅁ) 좁은 의미로는 스토리의 전개, 넓은 의미로는 성격의 제시, 배경의 변화를 포함한 소설의 모든 설계를 뜻한다. 행동의 주체로 개성, 전형성, 보편성 등을 지닌 인물, 소설작품에 전개되는 이야기로 복선이나 암시에 의해 인과성. 필연성이 따르는 사건, 소설의 시간적. 공간적환경으로, 인물의 심리와 사건전개에 대한 암시적역할을 담당하는 배경을 소설구성의 3요소라 한다. 넓은 의미에서의 이야기란 인물, 사건, 배경, 주제, 시점, 언어 등의 요소를 포함하지만 엄격히 말하자면 행동, 스토리라인 또는 플롯이다. 구성의 단계에는 3단계 구성: 발단→전개→결말, 4단계 구성: 발단→전개→절정→결말(대단원), 5단계구성: 발단→전개→위기→ 절정 → 결말(대단원)이 있다. 발단은 도입단계로 인물이 소개되고 배경이 제시되며 사건의 실마리가 나타나는 부분이다. 발단에서 기본문제가 제시되고 갈등의 성질, 슈제트발전의 추향이 규정된다. 전개는 사건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단계로서 발단에서 시작된 사건이 복잡하게 얽히고 갈등과 분규가 일어나며 갈등이 한가지 혹은 여러가지 사건과 그 사건에 참여한 인물들간의 관계를 통해 점점 심화, 발전되여 인물성격이 다각적으로, 전면적으로 제시된다. 이야기가 기복을 이루며 발전하는 그만큼 고조가 여러개 있을수 있으나 사건발전과 인물성격발전의 최고봉은 결국 마지막에 이루어진다. 갈등이 가장 격렬해지고 사건이 최고조에 이르는 절정을 고조, 크라이막스라 하는데 사건이 마무리되며 모든 갈등과 분규가 해결되고 주인공의 운명이 결정된다. 위기는 사건이 정점에 이르는 계기가 되는 단계로 사건의 극적반전을 가져오는 모멘트가 나타나는 부분이다. 절정은 갈등과 분규가 가장 격렬해지고 사건이 최고조에 이르는 단계이며 동시에 사건해결의 분기점이 되는 단계이다. 작품 전체의 의미가 제시되며 위기가 반전된다. 결말은 사건이 마무리되며 모든 갈등과 분규가 해결되고 주인공의 운명이 결정되는 단계이다. 구성은 이야기의 가지수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뉜다. (1) 단일구성(단순구성): 단일한 사건을 전개시켜 단일한 인상을 주고 단일한 효과를 노리는 구성방식이다. 모파쌍의 ≪목걸이≫등을 례로 들수 있다. 가) 복합구성: 두가지 이상의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얽혀서 전개되는 구성으로서 현대소설, 장편소설에서 흔히 쓰는 구성방식이다. 레브 똘쓰또이의 유명한 장편소설 ≪부활≫등을 좋은 실례로 들수 있다. ㄷ) 전기적구성: 독립적인 각각의 이야기가 동일한 주제로 엮어지거나 각각 다른 이야기에 동일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구성이다. 이딸리아의 시인이며 학자였던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 시내암의 ≪수호전≫, 홍명희의 ≪림꺽정≫등이 이런 구성법으로 씌여진 작품들이다. 나) 액자식구성: 액자소설에서 보이는 류형으로 한 작품이 “내부이야기”와 “외부이야기”로 이루어지는 구성방식이다. “내부이야기”는 이야기속의 핵심이며 “외부이야기”는 이를 둘러싼 이야기로서 후자의 액자가 된다. 액자식구성은 시점이 바뀌며 특히 내부이야기는 신빙성을 위해 서술자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건 자체를 자연스럽게 객관화한다. ◎ 순환적액자구성: 하나의 액자속에 여러 내부이야기가 있는것으로 ≪데카메론≫, ≪천하루밤의 이야기≫등이 이런 구성법에 속한다. ◎ 단일액자구성: 하나의 액자속에 하나의 내부이야기가 있는것으로서 김동인의 ≪배따라기≫등이 이런 구성법으로 되였다.   례1: “닞히디두 않는 십구 년 전 팔월 열하룻날 일인데요……” 하면서 그가 이야기한바는 대략 이와 같은 것이다. 말을 끝낸 그의 눈에는 저녁 해에 반사하여 몇 방울의 눈물이 반짝인다. 나는 한참있다가 겨우 물었다. “노형 계수는?” “모르디오. 이십 년을 영유는 안가 봤으니깐요.” “노형은 이제 어디루 갈 테요?” “것도 모르디요. 덩처가 있나요?” 바람 부는 대로 몰려 댕기디오.” 그는 다시 한번 나를 위하여 배따라기를 불렀다.   례1은 외화(도입액자)와 내화(액자)의 전이적련결점이다. 그리고 배사공의 경험담(내화)이 전개되고 다시 “나”의 종결액자 부분이 나타난다. 뒤에 부분은 이야기전개의 과도구설정으로 볼수 있다. (2) 사건의 진행방식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 가) 평면적구성: 사건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류형이다. 일대기적구성으로 된 조선 고대소설에서 흔히 쓰이는 류형으로서 근대소설에서도 잘 쓰는 전통적구성방법이다. 나) 립체적구성: 사건의 전개를 시간적순서에 따라 전개하지 않고 순서를 뒤바꾸어 진행하는 방식이다. “현재→과거→미래” 또는 “과거→미래→현재” 등으로 역행시켜 진행시키는 구성류형으로 현대소설, 특히 심리주의소설에서 잘 사용되는 방법이다. 다) 이원적구성: '이원적구성이란 원래 사물이 두개의 서로 다른 근본원리로 이루어져 있는 일 또는 그 근원을 이르는 말이다. 소설구성기교에서 이원적구성이란 하나의 이야기와 또다른 이야기를 서로 교차시키면서도 정체성을 도모하는 수법이다. 이원적구성 자체는 소설을 립체적인 두이야기가 분리되여 서술된다면 오히려 평면적인 두개의 다른 이야기라는 느낌을 주게 된다.《구운몽》이 이원적구성으로 되었다. (3) 통합성의 유무에 따라서 나누기도 한다. 가) 극적구성(유기적구성): 작품속의 여러가지 삽화나 사건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여 발단ㅡ전개ㅡ절정ㅡ결말의 순서에 따라 극적진행이 이루어져 완전한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되는 구성방식이다. 단일구성이나 평면적구성은 극적구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있다. 나) 삽화적구성: 작품의 중심사건과 밀접한 관련성이 없는듯이 보이는 삽화, 차요한 이야기선들이 산만하게 련결되였거나 불필요하거나 부수적인것으로 여겨지는 사건들이 섞여있는 구성방식이다. (4) 상승구성과 하강구성: R. C. 메레디드의 “소설의 구조”에서 제시된 구성류형이다. 주인공의 주된 행위동기를 독자가 접수하는 목표에 도달했으면 상승구성, 실패했으면 하강구성으로 분류한다. 전통리론에서 소설의 내용요소를 보통 소설의 3요소라고 규정한다. 작가의 인생관이 침투된 작품의 주제사상,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따라서 사건을 유기적으로 배렬하는 구성,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의 태도로서의 어조, 표현수법으로 나타나는 작가의 개성을 뜻하는 문체 등이 포괄된다. (5) 복선 사건이나 행동에 필연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어떤 소재나 동기적행동을 인물의 직접적행위나 대화 및 여러방법을 통해 미리 제시하는것으로서 사건의 전개, 사건과 사건에 진실성을 주기 위한 암시로서 작가가 뒤에 발생하는 사건의돌연성, 우연성을 배제하기 위한 의도적장치이고 기법이다. 어떤 작품에는 슈제트외 프롤로그나 에필로그가 있다. 소설에서는 프롤로그를 머리장이라 하고 희곡에서는 서막이라 하며 서사시에서는 서시, 머리시로 부르기도 한다. 쁘롤로그에서는 슈제트가 전개되기전에 이야기될 내용이 미리 암시되거나 인물들이 활동하는 사회, 시대적생활환경들이 주어진다. 에필로그에서는 사건이 해결된 뒤의 인물의 후일담으로서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시킨다. 2) 소설의 주제 주제의 의미에서 “이 소설은 무엇을 말하고있는가?”고 질문한다면 바로 소설의 주제를 말한다. 작가가 작품에서 나타내려고 한 인생에 대한 태도나 관점이며 작품속에 용해된 중심사상으로서 소설의 의미내용에 가장 핵심적요소이다. 주제는 프랑스어로 모찌브(모티프), 독일어로 쩨마(테마)라고 한다. 소설은 사실의 진술에 머물지 않고 그 사건의 리면에 숨은 의미를 나타내려고 한다. 이 의미가 바로 작가가 하고싶은 말이며 이 하고싶은 말이 곧 주제이다. 주제는 제재, 인물, 상황, 이야기의 뒤에 숨어서 그 모든것을 지배하는 작품의 통일원리이고 따라서 작품의 모든 요소는 주제의 구현에 유조하고있다. 소설에서 주제의식은 어떤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수 있는가를 모색한것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려는 모습을 제시하려 한것이다. 즉 소설의 주제는 휴머니즘(인문주의)으로 귀납된다. 현대소설의 주제를 귀납한다면 주요하게 합리적판단에 근거한 인간의 본성탐구와 환상적, 심리적기법에 의한 인간의 본성탐구, 인간의 사회관계 즉 넓은 의미의 풍속에 대한 해석과 비판이다. 쩨마는 스토리나 소설의 중심적인 의미이다. 소설은 사건의 진술에 목적이 있는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뒤에 숨겨진 의미를 밝히는데 있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소설의 의미가 곧 소설의 주제인바 작품속에 구현되여진 의미, 소재에 대한 형상적, 예술적해석이다. 작가가 소재에서 받은 첫충격, 감동이 곧 창작동기ㅡ모티브이고 그것을 구체화한것이 바로 소설의 주제의 체현이다. 주제의 특성으로 말하면 주제가 동기에서 비롯되지만 동기자체가 주제는 아니며 스토리라든지 제재속에 구체화되여 나타나지만 제재자체는 아니다. 주제는 작가가 작품을 쓰려고 하는 의도나 목적과 관련되지만 목적자체는 아니며 작가의 인생관, 세계관에서 이루어지지만 또는 작가의 사상 그 자체는 아니다. 작품의 주제는 결국 작품의 내용을 하나의 통일된 정체로 만드는 작품의 전반적인 조직과 배치로서의 구성에 의해서 드러난다. 구성은 작품의 내용을 표현하면서 주제를 나타내는 주요한 예술수단이다. 구성은 작품의 내용, 작가의 구상, 창작개성, 체재들의 다름에 따라 그 방식도 다르게 될수밖에 없다. 최서해의 ≪탈출기≫의 경우, 순행적으로 이루졌던 탈가의 감정구조에 역행적회상의 구조를 사용함으로써 주인공이 겪어온 심각한 극적체험과 심리적고통을 통하여 더는 타협할수 없는 현실을 반대하여 항거해나서지 않을수 없었던 생활의 론리, 성격발전의 론리를 자연스럽게 효과적으로 도출해내였다. 핍진한 서술에 의한 주제의 요약적제시, 묘사나 대화에 의한 주제의 극적제시 등 소설의 주제는 문체에 따라 효과를 극대화한다. 소설의 주제는 작가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뜻하는것이며 작가가 자신의 삶과 이 세계에 대해 지니고있는 문제의식을 구현한것이다. 주제는 추상화의 산물이지만 제재는 구체적인 생활과정이다. 소설은 주제를 교묘하게 숨기고 작품의 인물과 플롯, 분위기, 배경 등 요소를 통해 표출한다. 이때 중요한것은 동기로서 어떤 소재에서 처음 받은 감동인데 이 동기의 구체화가 주제설정이다. 례를들어 고골리의 ≪죽은 넋≫의 소재는 원래 뿌쉬낀이 준것이라고 한다. 고골리는 뿌쉬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소재를 구체화하여 무거운 주제를 담은 풍자기법의 명소설을 창작해냈다. 작가는 소설에서 치치꼬브가 죽은 넋을 사는 이야기를 통해 로씨야지주계급의 형상을 성공적으로 부각하였다. 소설에서 작가는 형형색색의 로씨야관료와 신흥자산계급에 대해 심각하게 폭로하고 신랄하게 풍자하였으며 실감있게 그들의 몰골을 그려내여 날따라 와해되는 농노제의 추세를 까밝혔다. 작가의 창작동기가 낳은 주제는 그처럼 무거운 사회문제를 제기하였던것이다. 주제는 쉽사리 명료하게 파악할수 있는 주제와 작품속에 잠입해 있는 함축적인 주제로 나누어진다. 리광수의 ≪흙≫, 리기영의 장편 ≪땅≫같은 소설들은 주제를 겉으로 드러내고있다. 허숭과 곽바위 등 주인공들이 지닌 의식과 발언내용은 작품전체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닿아있다. 말하자면 그들 주인공은 작가가 지닌 사상과 감정의 대리인에 불과하다. 주제를 의식한 나머지 그것을 외부로 드러나게 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작가의 결론은 응당 현실화면의 배후에 숨겨져있어 독자자신이 사색하고 찾아내게 해야 한다. 체호브는 태도가 “랭정할수록 산생되는 인상은 더 흡인력이 있게 된다.”고 가르치고있다. 프로벨은 “예술가는 자기 작품에 얼굴을 내밀지 말아야 한다. 마치 하느님이 생활속에 나타나지 않은것처럼 말이다.”라고 하였고 모파쌍도 “독자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쓰게한 ‘자아’를 감추는 각종 연구속에서 ‘자아’를 알아보게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체호브도 청년작가들을 지도하면서 “절대 작가가 나서서 설명하지 않도록 하라. 무릇 해야 할 말은 당시의 인물의 입에서 나오게 하라. 작가는 소설속에서도 정론가로 등장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프롤로그에서도 역설적인 상황설정으로 주제를 암시하는 소설도 있다. 주제의 표현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작가가 작품속에 개입하여 주제를 직접 제시하는 명시적방법이다. 작가의 의도를 독자에게 명백히 제시하여 일정한 도덕적교훈을 주겠다는 공리적자세에서 비롯된 방법으로서 고대소설, 계몽소설에서 흔히 나타내고있다. 다음 함축적으로 주제를 표현하는 방법인데 인물, 사건, 배경, 분위기, 플롯의 진행, 갈등 구조와 그 해소 등 전체의 구조를 통해 암시적으로 제시되고있다. 독자는 정확한 인식으로 작품을 읽어가며 주제를 파악한다. 현대소설, 특히 예술소설에서 쓰는 방법이다. 소설의 주제는 인물의 대립과 갈등에 의한 선악의 대립과 결과에 따라 형상화되나 작가의 개성과 기법에 따라 달라진다. 3) 소설의 배경 배경이란 원래 회화, 촬영작품에서 중심적인 묘사대상의 주제물을 안받침해주는 경물을 가리킨다. 소설에서 배경은 행위와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구체정황이다. 소설속에서 인물의 활동을 서술하고 이야기정절에 어울리는 환경과 분위기에 대한 묘술은 이야기의 성분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공 간적, 시간적자질의 총화를 가리킨다. 배경은 소설예술의 가변적인 구성요소의 하나이다. 만약 한편의 소설에서 정절이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 동일한 배경하에서 발생, 발전한다면 “봉페식배 경” 이라 하고 그와 반대일 경우에는 “개방식식배경”이라 한다. 배경은 작품의 이야기정절을 구성할뿐만아니라 인물의 성격을 암시하기도 하며 작품의 사상적 의의를 가강하기도 하는바 행동과 사건이 가능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다. 신비평가들은 인물과 행동의 신빙성을 높여준다는 점, 인물의 심리적동향과 이야기이 의미를 암시한다는 점, 분위의 조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는 점등을 례로 들고있다. 배경은 등장인물의 활동공간이라는 단순한 개념을 넘어서 주제를 향하여 통일서있게 배치됨으로써 소설적효과를 극대화한다. 전형환경에서의 전형인물이라는 원칙에서 본다면 환경묘사는 의연히 소설의 주요한 구성요소로 되고있다. 환경은 인물을 복사할수 있고 인물도 환경을 복사할수 있다. 만약 환경이 인물의 사상감정의 투영을 리탈한다면 무가치하며심미가치도 별로 없게 된다. 소설에서 배경은 작품의 무대로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회와 력사적환경이다. 환언하면 사건의 환경이며 사건이 일어나는 직접적세계 혹은 장소의 요소다. 배경은 사건에 사실성을 부여하며 인물의 심리상태나 사건의 전개를 암시하는 역할을 하는바 주로 묘사와 서술에 의해 제시된다. 배경은 소설의 주제 또는 작가의 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발전의 시발점으로도 되여 인물과 사건을 생생하게 해주며 주제를 구체화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배경을 세분하여 작품속의 사건을 시대에 한정하여 스토리의 구체성을 띠게 하는 시간적배경, 인물이 활동하게 되는 공간적무대로서 인물의 심리상태를 암시하기도 하는 공간적배경으로 나눈다. 소설속의 인간도 사회적총화이므로 통시적인 시대성과 공시적인 사회성이 나타나야 함은 자명해진다. 단순한 배경은 소설에서 물리적기능만으로 사명을 다하지만 분위기는 소설전체의 성격을 위한 기능적인 봉사를 하는바 소설의 정신면과 관련된다. 따라서 배경이 궁극적으로 분위기 혹은 상징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김동인의 ≪까치우는 아침≫에서 까치소리는 소설전체에 분위기를 잡아주고 예시하는 상징적구실을 충분히 하고있다. 배경은 인물과 행동의 신빙성을 높여주며 작품의 분위기나 정취를 만들어낸다. 주인공의 의식과 사상형성을 안받침해줄수 있는바 배경자체가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배경은 독자로 하여금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소설의 주제를 부각시키고 등장인물의 성격과 심리, 플롯의 전개, 소설적분위기 조성에 맞도록 꾸며나가자면 곧 사회적배경이 설정되여야 한다. 배경의 창설 즉 환경은 인물과 플롯에 리얼리티를 부여함으로써 작품에 기능적으로 복무하고있다. 리효석은 ≪메밀꽃 필무렵≫에서 사실적인 농촌풍경보다는 애수와 서정을 지닌 작중인물을 통해 투영된 아름답고 시적인 활동무대를 설정함으로써 인물의 말할수 없고 남모를 비참한 운명을 보여주고있다. 한편 배경은 작품의 이야기정절을 구성할뿐만아니라 인물성격을 암시하기도 하며 행동과 사건의 진실성을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다. 배경은 인물의 활동공간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주제를 둘러싸고 통일성있게 배치됨으로써 작품의 사상의의를 가강하여 소설의 미학적인 효과를 실질적으로 높여준다. 자연적배경은 자연상태 그대로의 환경과 인공적인 건조물의 환경을 모두 포함한다. 유고는 ≪빠리노뜨르담사원≫에는 첫머리부터 건축물에 대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하고있는데 소위 “신성한” 사원의 지붕밑에서 간악한 지배자들에 의하여 갖은 추악한 연극들과 재판놀음이 조작되고 있으며 종교의 허울로 가리워있는 통치배들의 죄악을 보여주는데 대조적인 역할를 놀고있다. 다른 자연적배경묘사의 례를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에서 찾아보자.   이지러는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있다. 대화까지는 칠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듯이 고요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지경이다.   우리가 흔히 볼수 있는 배경이다. 시골을 배경으로 삼는 소설들은 대부분 례와같은 자연적인 배경을 삽입하는데 이러한 배경을 통하여 사건을 암시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앞날을 암시하기도 한다. 자연적배경은 인물의 성격과 상황에 어울리게 장치해야 한다. 이때에는 배경이 인물의 성격과 상황에 대조되여 나타나기보다는 조화적인 양상으로 나타나는게 관례로 되여있다. 이와 대비하여 등장인물의 심리상태와는 관계없이 사실적으로 그리는 객관적자연환경을 사실적자연이라 한다. 이외 의식의 흐름, 내적독백 등을 도모하는 심리주의소설에 등장하는 심리적배경도 있다. 력사적배경은 인물이 처한 시대환경을 가리키는데 고전작품들에서는 작품리행의 관건이 된다. 소설작품에서 경물의 전환은 작품의 미학특징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작자는 편단적인 자연환경이나 사회환경묘사를 가담가담 삽입하는것으로 내재적절주감을 도모하기도 한다. 이런 일계렬의 동태적교체와 변환적인 편단묘사를 혹은 작품속에 녹아들어가게도 하고 혹은 용솟아 나오게도 하면서 마치 영화예술에서의 몬따쥬처럼 되게하여 작품결구상의 형태미도 형성시킨다. 형식상의 이런 다양한 변화는 독자들의 지각적흥분도를 더 자극함으로써 심미적희열도 안겨준다. 환경묘사에서의 자연경물과 사회풍습은 그 자체를 초월하는 의의를 부여하며 정체적서사체계와 융합시킴으로써 작품의 미학특색을 살리는바 이런 심미과정을 소설미학상에서 “환경화”라고 한다. 력사문화와 륜리도덕, 지역관념, 풍토인정…등은 일종 집체무의식을 형성하여 장기적으로 인간이 생활하는 사회환경속에 침적되여있기에 소설의 “환경화”가 수요되는것이다. 사회환경을 동태적개념, 자연환경을 정태적개념으로 나누고있다. 사회적배경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고있다는 점에서 정치, 경제, 종교, 문화는 물론 직업, 계층, 년령 등의 문제와 시대적상황까지도 포함된다. 사회적배경에서 중요한것은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동의 사회성을 부각시키는 일이다. 사회환경묘사는 주요하게 작품의 문화색채로 작품의 미학적경향을 체현한다. 바로 소설에서의 시대적풍모, 사회풍습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총체상에서 특정된 시대의 사회문화형태와 풍격의 반영이다. 구체적자연환경묘사는 주요하게 상징색채로써 작품내함의 미학특색을 구체적으로 시사하며 총체상에서 인간의 감정색채를 현시한다. 조선의 녀류작가 강경애의 장편소설 ≪인간문제≫는 지주 정덕호의 우뚝 솟은 양기와집이 위세있게 버티고앉은 용연동네의 환경묘사와 관련하여 마을에 있는 원소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이 전설의 도입으로써 작자는 은근하게 자기 쩨마의 특질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있다.   억센 풀이 길길이 자란 그 밑으로 봄을 만난 저 원소물이 도랑으로 새여 흐르고 또 흐른다. 그 주위로 죽 돌아선 버드나무는 겉보기엔 죽은듯 하건만 그 속에서 새움이 파랗게 돋아난다. 길지 않은 이 환경묘사에서 느낄수 있듯이 실로 이 작품은 그 흐르는 물줄기에 대한, 그 돋아나는 새싹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자는 이러한 흐르는 물줄기, 돋아나는 새싹을 첫째, 선비의 인물형상가운데 체현시키고있는바 이 작품에 있어서 사건의 실머리가 용연동네 뒤산에서의 첫째와 선비와의 첫사랑과 비슷한 장면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동시에 지주 정덕호의 강도적, 비인간적인 본성과 제반행동을 보여주며 농민들의 자연발생적반항투쟁을 보여준다. 작자는 사건을 더욱 발전시켜 무대를 서울, 인천으로 옮기면서 소시민들의 생활, 인테리의 군상, 로동계급의 투쟁을 립체감과 질감이 나게 보여준다. 심리적배경은 사건전개 보다는 인간의 내면심리분석을 위주로 하는 소설 즉 의식의 흐름, 내적독백 등을 꾀하는 심리주의소설에 주로 그리는 배경이다. 죠이스의 ≪율리시스≫, 이상의 ≪날개≫등이 하나의 좋은 실례로 될수 있다. 상황적배경은 실존주의소설에서 나타나는 배경으로서 실존적인 상황을 암시하고 상징하는 배경을 이르는 말이다. 까뮤의 ≪이방인≫에 나오는 부조리한 상 황은 권태로운 삶이라는 배경이 되여지고있으며 ≪페스트≫에 나오는 극도의 상황, 카프카의 ≪변신≫에서 벌 레로 변해 좁은 방속에 갇혀있는 그레고리를 통해서 제시되는 인간의 한계상황 이 소설적배경으로 되어있다. 또한 사르트르의 소설 ≪벽≫에서으 감옥은 인간 의 한계상황과 죽음이라는 벽의 세계를 암시하고있다. 한정된 목적으로서의 배경은 인물의 의식 및 태도나 사회비판적 측면을 보여주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인식되여질수 있고 동시에 생생하여 인상깊게 독자의 기억에 새겨지도록 묘사된 배경은 그만큼등장인물의 성격과 사건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는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배경에 대한 세부묘사는 작품의 실제감과 립체감을 더해주고 나아가 상징적기능도 수행하도록 한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에 나타난 배경의 기능, 인물의 이동에 초점을 맞춘 배경의 변이과정 정리가 그것이다. 봉평장ㅡ객주집ㅡ산길(개울, 메밀밭)ㅡ대화장에서 이 점을 잘 알수 있다. ≪개울≫이 담당하는 배경의 기능은 다음과 같다. 이 작품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볼수 있으나 “혈육찾기”라는 핵심적인 모찌브를 주축으로 살펴볼수 있다. 그때 배경은 단순한 사건이 일어나는 환경으로서가 아니라 잊혀졌던 과거를 회상시키며 더 적극적으로는 작품의 앞에서 동이와 허생원과의 다툼을 화해시키는 기능도 한다. 이런 배경은 작은 사건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플롯의 진행에 독자적으로 참여한다고 볼수 있다. 이 작품에서 인물들의 정신배경은 도시적이기보다는 향토적이고 서사적이기 보다는 서정적이다. 이러한 점은 등장인물의 신분, 성격, 행동 등을 통해서 드러난다. 그러나 인물들의 이러한 특징 말고도 이 작품의 정신적배경은 문화적이기보다는 원시적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또한 리성적이기보다는 육감적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 또한 향토적이고 서정적이며 육감적인 정신적배경은 동이와 허생원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점을 이루었던 몇몇 행동속에 철저히 투영되고있다. 허생원이 성서방네 처녀와 물레방앗간에서 인연을 맺을 때, 동이와 허생원사이의 관계가 암시될 때에 그 점은 너무나 잘 드러난다. 작품의 정감기조는 작품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본적인 정감색조이다. 어떤 작품이든 정감기조는 작자의 심미정취의 표현이다. 매 한부의 작품에는 자기의 주요한 정감기조가 밑바탕에 깊게 깔려있는바 혹은 랭혹무정하거나 혹은 불덩이처럼 열정적이거나 혹은 엄숙하거나 혹은 해학적일수 있다. 작품속의 정감기조는 작자가 인물을 부각하고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자연경물과 사회생활장면을 묘사하는 가운데서 간접적으로 흘러나오고 서술방식, 문체풍격, 언어색채속에서도 체현된다. 최서해의 ≪홍염≫의 서두에 북간도의 눈보라에 대한 묘사는 어떤 비정상적인 사건을 예시하는 구실을 한다.   문서방의 아내가 죽던 그 이튿날 밤이었다. 그날 밤에도 바람이 몹시 불었다. 그 바람은 강바람이어서 서북에 둘리인 산때문에 좀한 바람은 움쩍도 못하던 달리소(문서방의 사위 인가의 땅)까지 범하였다. 서북으로 산을 등지고 앞으로 강건너 높은 절벽을 대하여 강골밖에 터진데 없는 달리소는 강바람이 들이차면 빠질데는 없고 바람과 바람이 부닥쳐서 흔히 회오리바람이 일게 된다. 이날 밤에도 그 모양으로 달리소에는 회오리바람이 일어서 낱가리가 날리고 지붕이 날리고 산천이 울려서 혼돈이 대단할 때 빙세계나 트는듯한 밤이라 사람은커녕 개나 도야지도 굴속에서 꿈쩍 못하였다…   4) 소설의 인물 소설의 참다운 기능은 인간존재를 탐구하고 인생이 무엇인지를 밝히는것이다. 소설속의 인물들 특히 주인공은 작가의 사상과 감정의 대변자이다. 그러므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시대를 단순히 반영하는 인물이 아니라 시대를 적극적으로 창조하는 인물이다. 등장인물 및 그 인물의 개성, 캐릭터라고도 한다. 인물은 소설속의 모든 요소들의 의거로 되는 가장 핵심적인 주체이다. 인물은 작품속에 등장하는 사람 즉 행위하는 주체로서 사건의 담당자이며 또한 그 사람의 성격을 뜻하는 개성을 가진 인물이다. 인물은 기능적인 측면과 주제적측면의 기능을 담당한다. 인물의 기능적측면은 플롯의 구성에서 무엇을 보여주는가, 어떤 인물인가에 치중한것이고 주제적측면은 전형환경속에서 무엇을 시사하는 인물인가, 무엇을 의미하는 인물인가에 치중점을 두는것을 말한다. 소설속에서 인물들이 갈등을 일으키는 내재적요인은 인간에게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설속의 인물들이 겪는 다양한 갈등들은 현실속에서 산생될법도 한 욕망들의 갈등이다. 소설이 인간의 탐구가 된 근대소설이후 성격창조에서 심리묘사 등 인간의 내면성을 강조함으로써 인물이 소설의 중심요소가 되였다. 따라서 소설인물은 행동의 주체, 주제의 구현자로 될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인물설정에는 작가가 직접 인물의 성격을 제시하는 설명적인물설정, 인물의 행동이나 대화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제시하는 극적인물설정, 성격과 행동의 인과관계에서 독자들이 스스로 인물의 내면적모습을 파악하게 하는 분석적성격설정 이 세가지 방법이 류행되고있다. 분석적성격묘사의 수법은 현대소설에서 주류를 이루고있는 의식의 흐름수법에서 통용되고있다. 인물의 성격이란 그 인물의 내적속성 즉 흥미, 욕망, 정서, 도덕적원리 등의 혼합체인 인간상이다. 작가가 소설속에서 인물을 제시하는 방법을 성격화라고 한다. 성격화의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가장 초보적인것은 명명(命名)이나 외모묘사를 통해 그 인물의 특색을 보여주는것이다. 인물성격화로는 또 직접적방법(분석적, 해설적, 론평적제시), 작가(서술자)가 직접 인물의 특색, 특성을 요약해서 설명하는 말하기방법도 있다. 그리고 행동이나 버릇, 대화, 갈등을 장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간접적방법도 있다. 현대소설에서는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심리와 행동을 묘사함으로써 인물의 성격을 제시하는 방법이 많이 사용된다. 김동인의 소설 ≪감자≫의 주인공에 대한 묘사에서 가늠해보자. 싸움, 간통, 살인, 도둑,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근원지인 칠성문밖 빈민굴로 오기전까지는 복녀의 부처는(사농공상의 제2위에 드는) 농민이였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있게 자라난 처녀였었다. 그러한 복녀가 농민의 딸에서 도시빈민촌으로 이사오면서부터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나중에 비명횡사하게 된 녀자이다. 그의 타락과 죽음은 숙명이 아니라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버린것이다. 비극적인물이지만 그러한 사회환경과 타협함으로써 사회에 대립되는 개인의 불행한 삶이 개체의 운명으로 그치고마는 인물로 그려짐으로써 사회문제를 폭넓게 제시하지 못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의 사상과 감정의 보유자이다. 소설의 사명은 작가가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대신하는 주인공을 만들어내고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독자를 납득시키고 감동시키는 일이다. 소설속에서 인물의 기능은 플롯속의 인물의 기능을 말한다. 자기의 소설인물에 어떤 이름을 달아주는가 하는것도 인물성격창조에서 한가지 방법이다. 이름이 전통적이면 보수적인 성격을 암시하고 서양식으로 이름을 달면 작가의 취향이 서구적라는것이 알리는 등이다. 영국의 소설가 허드슨은《문학연구서》에서 “기교면에서 작품의 성공여부는 오로지 성격묘사의 솜씨에 달려있다. …소설은 오로지 상상력에 호소할수밖에 없으므로 묘사로써 인물의 모습과 행동을 여실히 나타내야 한다.》고 성격묘사의 중요성을 피력하였다. 그는 또 성격묘사의 요점은 소설가가 그 인물로 하여금 상상의 세계에 있어 실재 인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절실하게 묘사되였는가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인물의 화랑인 소설장치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은 여건들에서 잘 체현된다. 소설은 인물의 성격을 상세하고 다방면적으로 그린다. 인물의 운명의 수요에 근거하여 과거, 현재, 미래, 인물의 외모로부터 내심, 이승과 저승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발자끄의 그랑데령감, 유고의 쟝 바르쟝, 쟈벨 등 인물형상들은 거장들의 붓끝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인물로 살아남게 되였다. 소설은 생활의 본질을 반영하는 모든 제재를 충분히 담을수 있다. 최서해의 단편소설 ≪담요≫처럼 가정생활의 한 편단이나 모파쌍의 ≪목걸이≫에서처럼 한 녀자의 운명적인 조우를 조명할수도 있으며 ≪3국연의≫나 ≪전쟁과 평화≫에서처럼 인물이 수십백명이 등장할수도 있고 수십년간의 거창한 력사적화폭을 폭넓고 깊이 있게 그려낼수도 있다. 소설의 우렬과 승패는 곧 인물형상부각의 우렬에서 결정된다. 인물형상창조는 작가가 사회와 인생에 대한 파악의 심도와 표현력도의 반영이며 작가의 사상경계, 풍격, 정취, 가치취향, 생활에 대한 심미평가수준을 시사하기도 한다.소설인물에는 한두가지 성격특징이 있는 “류형화된 인물”이 있는데 소설미학각도에서 볼 때 그 심미특징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이다. 첫째는 선험성특질로서 그는 단일한 리념과 미학모식에 좇아 부각된 인물이다. 하기에 작가의 주관색채가 짙다. 그가 혹시 모종의 사회리상 내지는 부동한 륜리, 가치관념충돌의 진화를 체현한것일수도 있고 혹은 작가의 심미정취를 직접 표달한것일수 있는데 작자의 주관의도가 선명하게 들여다보인다. 둘째로 단순한 성격미를 나타낸것이다. 류형화된 인물의 성격특징은 단순하고 집중되여있는바 어떤 미학리상속의 전형을 내세운것으로서 그로부터 감수되는것은 순수한 미적쾌감일뿐이다. 셋째로 미학색채의 일치성이다. 류형화된 인물은 정태적인물형상으로서 기본성격이 작품에 시종 관통되여있지만 별다른 발전변화가 없다. 그러므로 그가 체현하는 심미경향은 선명하고 일치하면서도 자체의 장점을 배제하지 않는다. 류형화인물의 심미방식은 상상이라는 예술사유과정에 진행된것으로서 심미대상으로 하여금 특정된 예술공능을 완성시키기 위해 모종 리념과 미학적리상의 지도아래 파악하고 미학특질이 선명한 인물형상을 낳는다. 류형화된 인물들은 동서방의 문학사상, 고전시기에 주요하게 부각된 인물형상들의 규범이다. 베르그송이 “우미함은 외계운동속에서 감지된 모종의 평이성과 기교이다.”라고 했듯이 류형환된 인물이 바로 이런 평이성과 기교의 심미활동중에서 산생된 미감이다. 류형화된 인물형상은 일치하고 선명한 특징을 가지고있으므로 강렬한 정감반응을 일으켜 독자들의 심목속에 새겨지여 오랜 친구같은 존재로 되고 나아가서 류형화된 인물들은 소설발전에서 “영구한 매력”을 확보하고있다. 그런데 영국의 소설가, 문학평론가인 포스터는 “류형화 인물은 등장하기만 하면 독자들의 감정의 눈은 진면모를 제꺽 알아맞춘다. 감정의 눈과 일반적시각은 그렇게도 다른것이다. 작자는 단지 개념에 류의했을뿐 진실한 인물을 창조해내지 못햇기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인물의 류형화를 경계하고있다. 류형화인물은 단일한 생각이나 특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 개별성을 나타내는 세부사항이 제시되지 않는다. 이와반대로 성격의 여러가지 면이 다 주어진 립체적인물은 전개되는 여러상황에서 성격의 다측면이 드러나고 사건의 진전에 따라 발전한다는 의미에서 발전적인물 또는 동적인물이라고 부른다. 복잡하고 다측면적이고 개성이 있는 인물형상을 원형인물이라고 명명하고있는바 이는 류형화된 인물과 대응되는 인물형상이다. 창작과정에 창작주체와 심미대상이 서로 융합된 산물이다. 이것은 인물형상부각에서의 일대 진보였다. 포스터는 “그들이 진실한것은 그들이 우리와 같아서가 아니라(비록 그들이 우리와 가히 같을수는 있지만)그들이 믿음직하기때문이다.”라고 쓰고있다. 원형인물의 성격결구는 다층차적이고 다측면적이여서 그들의 내부구조 체계속에 외부특징의 옅은 층차는 물론 내재적인 심령세계의 심층구조도 잘 표현되여야 한다. 감각으로부터 인상, 련상(의식의 흐름을 포함), 판단 등 일반심리구조, 개성과 기질, 인격 등에 이르기까지, 정상심리활동으로부터 병태적인 심리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독자들의 심미활동의 대상이 된다. 원형인물의 미학색채는 풍부하고 다양하며 변화다단하다. 그는 사건발전과정에 부단히 발전변화하는 동태적인물형상이며 또한 일종 개방성적구조적인소를 가지고있기에 이야기의 환경속에 복잡한 정절결구와 어울려 하나로 융합되여있다. 포스터는 “한 원형인물을 사람들이 믿도록 하는데서만이 신기한 느낌을 줄수 있다.”고 가르치고있다. 원형인물은 독자들의 리지적인 인식활동과 정감활동을 적극활성화시킬수 있는바 상상공간이 충분히 남겨져있기에 독자자신이 문본(텍스트)내에서 자기의 생활경험, 심미체험과 결부하여 심미활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인물형상으로 하여금 재창조되고 그 내함이 부단히 새로운 발견을 가져오게 한다. 원형인물은 근대창작정신을 체현하고있으며 독자들로 하여금 인간의 내심세계의 오묘함을 감지하고 복잡하게 뒤엉킨 인생현장의 실태를 정서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하여 원형인물형상창조는 창작실천가운데서 갈수록 자기의 생명력을 과시하고있다. 그러나 현대소설은 전형인물부각을 거부하기도 한다. 원래 슈제트와 인물은 둘이 하나로 되여있으므로 갈라놓기 어렵다. 슈제트(플롯)의 주체는 인물로서 그것은 인물의 행동, 인물과 인물의 상호관계 및 모순갈등의 발전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슈제트가 생동해야 좋은가? 하는 문제는 의심할나위 없다. 재래소설들에서는 슈제트를 극히 중시하면서 슈제트속에 모순충돌이 고도로 집중되고 긴장감과 희극성이 아주 풍부하게 할것을 요구했다. ≪림꺽정≫, ≪림해설원≫, ≪몽떼그리스도백작≫ 등이 귀감이 된다. 4. 소설의 갈래 소설의 양태는 여러가지이다. 길이에 따라 단편소설, 중편소설, 장편소설, 벽소설 등으로 분류한다. 단편소설처럼 구성의 긴밀성을 유지하나, 인물성격, 주제, 사건의 발전 등은 장편소설과 비슷하다. 한 인물의 성장과정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포괄적으로 그리거나 한 가족이 세대를 이어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해 나가는 대하소설도 있다. 벽소설을 미니소설이라고도 하는데 아주 작은 이야기를 함축성있게 표현하는것이 특징이다. 보통 꽁트라고도 한다. 꽁트는 그 어원이 프랑스말인데 근래에 와서 꽁트란 용어대신에 “짧은소설” 이라고도 한다. 꽁트는 한 사건의 어느 한 순간적인 모멘트를 붙잡아 그것을 예리한 비판력과 압축된 구성법과 해학적인 필치로써 단적으로 그리고 반으로 표현하는것이다. 하마드 해리흐의 꽁트 ≪독일군이 남겨놓은것≫은 아주 깔끔하게 엮어진 핸드폰소설이라 할수 있다. 전문을 함께 읽어보자.   전쟁은 끝났다. 그는 독일군에게서 도로찾은 고향의 거리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거리로 분주히 걸어가고있었다. 어떤 매음녀가 그의 손을 잡으며 술취한 목소리로 유혹의 말을 걸었다. “어딜가세요? 나를 찾아오세요? 네/여보세요” 그는 웃었다. “천만에, 너한데 가는게 아니야, 나는 옛날 나의 애인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는 녀자를 돌아다보았다. 두사람은 가로 등밑으로 갔다. 그러자 녀자는 별안간 “앗”하고 부르짖었다. 남자도 무심중에 녀인을 가로등밑으로 끌고갔다. 다음순간, 남자는 녀인의 두팔을 꽉 부등켜쥐였다. 그의 눈은 빛났다. “요안!” 하고 그 녀인을 와락 끌어안았다.   창작의도에 따라 본격소설, 통속소설로 나누기도 한다. 본격소설은 쟝르의 개념이 아니고  통속소설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작품의 예술성을 추구하는 소설로서 리념적의도나 상업성이 개입되지 않은 소설을 순수소설이라 한다. 통속소설은 본격소설에 대립하는 소설의 존재방식으로 간주된다. 대중소설은 흥미본위의 소설로서 흔히 풍속소설이라고 한다. 예술성은 별로 고려되지 않으며상업성격이 짙다. 화자의 위치에 따라서 1인칭소설, 신변소설, 심경소설, 일본의 사소설 등과 3인칭소설로 분류하고있다. 인물의 성격묘사를 주로 한 성격소설, 인물의 내면의식의 흐름을 주로 묘사하는 심리소설이 있는데 “의식의 흐름” 소설로 치부된다. 소설제재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 1) 농민소설 농민소설은 농민들의 일상적인 희노애락을 내용으로 한다기보다 당대의 농촌의 사회구조적인 모순이나 농민의식의 성장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 특성이 두드러진다. 당전 우리 조선족농민들의 농경생활권에는 일대지진이 일어난 수 비화리합의 준엄하고 착잡한 생활처경에 놓여있지만 그것을 핍진하게 조명 한 소설이 날로 줄어들고있다. 농촌제재를 전문 쓰거나 농민의 신분으로 작가생활을하는 사람을 농민작가라고 칭하는데 농민소설은 소재가 농민의 현실적 삶에 국한되여 있더라도 농민들의 현실적삶에 대한 주제의식이 선명한 경우를 말한다. 리광수의 장편소설 “흙”과 그에 대립되여 쓴 리기영의 “땅”이 그 례이다. 2) 농촌소설 농촌소설이란 도시소설과 상대되는 개념이다. 농민소설은 전원적이고 향토적인 공간으로서의 농촌을 배경으로 농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지만 농촌이라는 배경을 중시한다. 한국의 김유정의 “봄봄”, “동백꽃”, “금따는 콩밭” 등은 소재와 배경은 농촌이지만 작품속에 농민들의 현실적이고 독특한 삶의 양상이 내재되여 있지 않으므로 농민소설이라고 하지 않는다. 현시점에서 농촌민들의 삶을 다루는 소설들은 농민소설이라 해야 합목적일것이다. 3) 도시소설 현대문명의 온갖 병폐와 생존의 갈등이 분출되는 인생현장이며 인간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복합적인 생활환경속에서의 도시인들의 양상을 그려내는 소설을 말한다. 농민들의 도시진출과 상업화가 새로운 특징으로 된 현시대 도시의 풍경은 희망과 환멸, 충족과 불만족 등 첩첩한 모순속에 인간들의 운명에 깊숙이 개입하여 충격적이고 불가사의한 인생현장을 그리는 소설이 되고있다. 4) 모험소설 위험과 난관을 무릅쓰로 어떤 일에 용기있게 도전하는 행위들이 이야기의 골격을 이루는 소설을 가리킨다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을 확대하면 거의 모든 소설문학을 포괄할수도 있다. 왜냐하면 순탄한 삶의 양상만을 보여줄 수 있는 소설이란 있을수 없기때문이다. 5) 메타소설 소설창작실제를 통하여 소설리론을 탐구하는 자의식적인 경향의 소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언어를 대상으로 하여 그 규칙과 체계를 기술하는 언어를 메타언어라고 부르는것과 동일한 근거에서 소설자체의 현실적조건과 관습을 반성하는 소설을 메타소설이라 부른다. 메타소설의 특성을 이룬 문학적자의식의 발단은 18세기 영국소설가 로렌스 스턴으로 거슬러올라간다. 6) 모델소설 현실에 실재하는 특정한 인물이나 사건들을 허구적기술속에서 재현, 구성해내는 소설의 종류를 가리킨다. 재현이라는 추상적론리가 실증가능한 사실에 류사하게 근접해가는 허구적산문양식을 지칭하기도 한다. 류사한 서사양식으로 기록소설과 사소설을 례로 들수 있다. 사소설에서는 대체로 작가 자신의 개인 적인 체험이 작가화자에 의해 진술된다. 7) 무협소설 대표적인 통속대중소설의 일종이다. 무예에 출중한 강호의 호걸들이 펼쳐보이는 상상을 초인간적능력, 의리와 사랑 등을 주로 다루며 사필귀정과 권선징악 등을 주제로 취급한다.  특징으로는 플롯의 류형성이다. 대만작가 김용의 수많은 소설들이 중국무협소설에서는 전범이 되고있다. 8) 문제소설 보편적사회문제가 소설인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소설작품을 지칭한다. 례컨대 성(性)의 혼란, 인종차별, 계급적편견 같은 문제들을 다룬 소설 들로서 개혁의 시대였던 19세기에 출현했다. 초창기 문제소설로는 잉그랜드의 소설가 엘리자베스 개스켈의《루스》와 해리엇 비처 스토의《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 유명하다. 문제소설은 보통 문제 자체를 폭로하는데 그친다. 대다수 문제소설은 그 자체의 참신성과 시의의 적절함에 중점을 둔다. 9) 목적소설 예술성보다도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지어진 소설을 가리킨다.예술성보다도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지어진 소설로서 교훈의 제시를 목적으로 쓰인 소설전반에 적용되는 개념으로서 작품은 교훈적관념과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면 충분히 예술적일수 있다. 10) 산문형식으로서의 소설 소설은 산문형식의 문학이다. 근대사회의 산문화 요구에 부응하여 탄생된 소설형식이다. 소설을 분류하는 기준은 소설분류의 기준은 각이한바 작품의도, 시점, 인물 묘사방식, 문예사조, 등을 기준으로 분류할수도 있으므로 상술한 분류가 총체적인것은 아니다. 작품의도에 따라 예술소설, 통속소설라고도 지칭하고 인물묘사방식에 따라 성격소설, 심리소설, 행동소설라 하기도 하며 문예사조에 따라 랑만주의소설, 사실주의소설, 자연수의소설, 심리주의소설, 실존주의소설로도 분류한다. 효용성에 따라 정치소설, 경제소설, 종교소설, 과학소설, 계몽소설, 이데올로기소설로 나누기도 하지만 절대적인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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