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dolaji 블로그홈 | 로그인
《도라지》문학지
<< 4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    

방문자

홈 > 2017년도

전체 [ 22 ]

22    [시] 꽃의 숙명(외9수)-변창렬 댓글:  조회:594  추천:0  2019-09-17
변창렬 꽃의 숙명(외9수)     눈섭에 꼬리표 달고 살짝 웃을 때 지려는 기미가 보여진다   오무렸다 펼치는 것이 웃는 것도 아니다 이슬 한모금에 울컥하는 서러움도 섞여있었다   열매들이 오돌차게 앉아있을 때 흐드러진 꽃의 그림자가 뭉쳐진 설레임으로 탱탱 감기고 있었겠지   떨어진 잎에서 맺혀진 열매까지 애처로운 피줄이 말라 시들도록 흐느낄 것이다 말라서 날아가더라도 고개만은 자꾸 돌리며 곁눈질하는 꽃잎들 엄마가 흐느낄 때가 보여진다   대추   먼길 걸어오신 할아버지 얼굴이다 배속에 품은 통 큰 웅심 알알이 영글어 배짱이 굳다 작은 몸집이여도 옹골찬 겉모습 할아버지는 벌겋게 지쳐계셨다 차례상에 모셔놓고 절 올릴 때 주름진 얼굴은 여전히 달다   벼꽃   손가락 하나씩 꼼지락거리는 몸짓 바람결에 흔들리며 속살 숨기는 애교   싸래기로 설익어도 꽉 움켜잡고 싶은 애처로운 미소   석류    배속에 숱한 아이를 품고 모대기는 산모   애들마다 단물만 챙기시는 엄마 참지 못해 배를 가르시는 모험   세상을 잡으려고 내민 한쪽팔이 보인다 전세에 나의 팔 같은 것   시    떨어질 때 썩을 줄 알가 새겨진 무늬로 흐느끼는 그때가 나무잎이 아닐 수 있다   내릴 때 녹을 줄 안다 허나 물이 아니라고 몸부림치는 그 순간이 따가운 입술에 떨어지는 순간이 애처로울 것이다   꽃향기가 소 코끝에서 사라지듯이 갈길 잘못 간 어린애처럼 엉뚱한 느낌으로 코 흘리는 코물로 순식간에 커질 수 있는 그때가 우렁찬 숨소리가 될 것이리라   시는 없는 것이다 있어야 하는 숨결일가   노을   환한 인연이 펼쳐진다 속 따로 숨기는 그림자는 색다른 얼굴로 다가오네   나도 저렇게 미치고 싶다 엉뚱한 환상일지라도 펼치는 순간이 즐겁다   순간에 순간도   원시림은 사라지고 말았다 고목들이 죽을 때 뿌리도 고갈든다 변두리 잡풀들도 기다리기 지겨운지 죽었다 살았다 순환의 치매를 보여준다만 고목은 흔적도 없이 흙이 되였는지 물이 되였는지 깊은 잠들고 말았다   할배 할매도 엄마 아버지도 흙이 되였는지 물이 되였는지 원시림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감자눈   멀다고 지쳤다고 생긴 게 뿔만 아니다   살다 보면 스스로 뜨고 싶은 눈   달팽이는 뿔이 없어도 먼길 가고 있다   잠자리   여섯 발가락으로 손가락 세여보며 수수께끼를 풀고 있다   바로서는 자세로 평형을 찾는 그 꾀 손가락끝에서 몸가짐 다잡아본다   손가락 손금을 물고 뜯고 간지럽히며 그 속을 헤여보는 속셈 평형론을 풀고 있구나   히말라야의 꼭대기로 착각할 줄 몰라도 멀리 날고 싶은 그 힘을 키우는 것 같기도 하다   손가락이 여섯개였다면 잠자리 발가락 하나 잡고 매달려 애걸복걸할텐데 누가 누구를 풀이하는지 애매한 꼭두각시   가을    시계바늘이 산언덕에서 바람소리 엿듣는다 슬쩍 스치는 바람에 꽃 하나 휘청이는 몸짓을 빛 한뽐의 그림자로 착각할 순간일 것이다   들국화 핀 저 길가에 해 저무는 그림자가 넌지시 늑장 부릴 때 휘청한 꽃향기가 어슴푸레 노을빛으로 숨는 꼬리였다   저 멀리 밤톨 터지는 소리가 고개 숙인 벼이삭과 들국화가 속삭이는 소리로 시계는 알고 있을 거다   출처: 2017년 제4기 목록
21    [시] 고독 (심명주) 댓글:  조회:828  추천:0  2019-07-18
고독 심명주   사랑하고프면 글을 읽으라 그리울 때면 독서하라 보고 싶을 때에는 책을 펼치고 운명을 탓하면서 책자한테만 기대여라   사랑을 전하고 싶을 때면 책을 읽고 있다 그러고 그리움이 수면우 해초인양 물결칠 때에도 글을 읽고 있다고 고백하라 보고 싶어 밤하늘을 눈에 담을 때도 인생을 탓하면서 글밭을 묻히거라   그리고 떠나라 멀리 한번 아주 멀리 저 먼곳까지 사막끝 오지까지   그래도 그립고  보고 싶고 사랑한다면   아서라 나 건반우 손끝에서 튕겨오르는 당신의 노고지리 천마리로 환생하리니 출처:2017년 제4기 목록  
20    <<도라지>>2017년 제6기 목록 댓글:  조회:1198  추천:0  2019-07-18
특별초대인 - 강효근 흙냄새(단편소설) 무엇을 깔아야 할가?(창작후기)   삼인 초대석 금  희 붉은 닻(단편소설) 남영도 장춘의 여백의 미(외1편)(수필) 변창렬 무지개(외6수)(시)  남영도 고부간의 일상 그리고 소소한 행복(수필) 수필 마당 - 리화편 가을을 만나다 맥맥데이트 그 작은 그림과 큰 여백 지진소동,그 하루의 반추   시조명 - 박춘월편 박춘월 고향(외8수) 함  소 시어들의 현란한 춤사위 그리고 그 상상의 변두리를 더듬어(비평)   하이프시 특집 방순애 성밖에서 (외1수) 한설매 비(외2수) 정두민 7월의 호수(외1수) 김향옥 상처 (외2수) 황희숙 책(외2수) 강시나 천년나무(외2수) 박문희 폭풍취우(외1수) 방산옥 빨래 (외2수) 최룡관 돌들 이야기 윤옥자 믿음(외2수) 신금화 여우 (외3수) 성  윤 무인도(외1수)   창작 무대 구용기 여기 저기 거기 (단편소설) 김경화 손가락 감싸면 주먹인 것을(단편소설) 류서연 삭발(수필) 김  단 '사이'의 온도(수필) 박금아 조률사(수필) 유자효 죽음(외5수)(시) 진명화 깨여진 거울(외3수)(시)   계렬칼럼 리여천 살며 생각하며   길림지구작가특집 김충국 동창생(벽소설) 김설연 마음의 풍경(수필) 김해숙 민들레(수필) 김향화 오늘밤 눈은 내리고 (수필) 리미란 빨간 자전거(수필) 리정철 누나,나 그리고 조카(수필) 김형권 란초(외1수)(시) 지미란 개나리(외1수)(시) 리영남 리별(외2수)(시)   장편소설 량춘식  한몽가(련재4)   시인과 시 최화길 바다를 마주하고 문학사 회원 3행시 모음  
19    [수필] 가을을 만나다-리화 댓글:  조회:772  추천:0  2019-07-18
리화  가을을 만나다   가을이면 의례 맑아지는 것이 있고 물드는 것이 있다. 하늘이 그렇고 땅이 그렇고 그사이에 나마저도 어디 숨을 곳이 없다. 아직 촐랑거리는 정도의 내 감성과 엷은 내공으로는 이 계절을 읊고 노래하기가 부끄럽다. 다만 그 속에서 한껏 맑아지고 깊게 물들기만 해야 한다. 야트막한 산에 올라 누렇게 물든 풀밭에 앉아서 멍을 때리던 어느 가을날이 있었다. 굳이 가을정취를 느끼려 산에 오른 것은 아니였지만 하늘은 그렇게 높게, 그렇게 푸르게 걸려있었다. 마치도 대지의 아픔을 거둬가기라도 하듯이. 그 맑고 푸른 빛은 구천에서 주렴처럼 드리워 산과 나무와 풀밭과 그 우에 앉아있는 나를 관통해 땅속 깊이 스며들었다. 눈 맞추는 잎새마다 얼굴 살짝 붉히고 풀잎들은 바스락거린다. 나무와 풀들은 저마다 예쁘게 물들면서 한여름의 탁하고 무겁고 치열했던 삶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어떤 것은 그 삶의 정화만 동그랗게 남겨두고 또 어떤 것은 굳이 열매 맺을 필요가 없다는듯 소탈하게 겨울차비를 서두르며. 매년 립추가 시작되면 나는 늘 가을을 찾아 서성거렸고 그러는 나에게 가을은 늘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으며 고스란히 내 안에 와주기만 했다.   익어라 가을   가을이 왔다. 위챗에도 가을이 왔다. 곱게 물든 단풍사진이 똘깍 소리와 함께 핸드폰을 물들이고 있다. 가을날의 안부는 이처럼 단풍사진 한장 만으로도 충분하다. 촬영관련 위챗계정들은 가을 려행지와 가을촬영에 대한 글들을 도배하고 있다. 한편한편 열어보면 어느새 그곳의 가을 속에 빠져버린다. 가까운 곳에 있는, 그 전해에 다녀왔던 은행나무숲으로 향한다. 가슴 설레이며 도착한 은행나무숲,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숲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벌거벗고 신음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는 나무가지들이 떨어져있었고 숲 전체가 강탈을 당한 느낌이다. 땅에는 계절을 앞당겨 떨어진 푸른 잎새들이 죽어가고 가지에는 몇몇 남지 않은 아픈 잎새들만 겨우 물들고 있었다. 그 전해의 황금빛 가을숲은 어디로 간 걸가. 그때 이 숲으로 왔을 때는 오후 늦은 시간이였고 저녁해살에 숲 전체가 노란 물결로 반짝이고 있었다. 황금을 모아놓으면 이처럼 노랗게 반짝일가. 엄마는 그속에서 아이처럼 신나하시고 은행나무 잎들을 두 손으로 받쳐 우로 날리신다. 한잎한잎 내리는 노오란 잎새들 사이로 엄마의 웃음이 더 환하시다. 수북한 락엽 우에 앉아서 잎새들을 다리 우에 올려놓으며 ‘소꿉놀이’도 하신다. 엄마, 엄마의 가을이 너무 이쁘닷… 우리 딸 가을도 이처럼 아름답게 물들 거야… 그럴가? 노랗게 물들고 싶어… 이 잎새들처럼… 그럴 거야. 너 노란 조각달 좋아하잖아. 너의 가을은 분명 노랗게 물들 거야. 그해 가을 속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 잎새를 단 은행나무가 가지를 뻗어있었고 숲의 노란 물결사이로 보라색 외투를 걸친 엄마가 천진란만하게 웃고 계셨다. 그러나! 지금은?! 살펴보니 은행 열매를 털어간 흔적이 력력했다. 은행 열매를 얼마나 털었으면 온 은행나무숲이 다 멍들고 벌거벗었을가…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는 열매를 미리 떨어뜨린 사람들, 사람들의 사심으로 생긴 악과였다. 분노가 일었다. 언젠가 집앞 거리에 심어진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랗게 익자 긴 막대기를 들고 가지를 툭툭 치던 사람모습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그럼 이 은행나무숲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막대기를 휘두르며 혹은 사다리로 올라가 은행 열매를 털었던 것일가. 짐작할 수가 없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털어서 팔면 수입이 많아질 것이니 모조리 깡그리 털어간 것 같았다. 돈이라면 환장을 하는 사람들이지. 모든 것은 돈과 초점을 맞춰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해보며 씁쓸해졌다. 손으로 이 숲들의 나무를 다 만져주면 이 숲의 아픔은 조금이라도 사라지는 것일가. 이 숲을 바라보며 아파했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서 미안하다고 얘기해주면 조금이나마 위안이라도 될가. 숲은 여전히 말이 없다. 잎새도 다 요절되여 서걱이며 대답해줄 수가 없다. 모처럼 아픈 가을을 만났고 숲은 나보다도 더 아프면서 침묵을 하고 있었다. 인간의 탐욕은 락엽의 계절도 앞당겨 온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사심으로 잎새는 고운 바람 한번 제대로 들지 못하고 요절하고 만다. 온 세상이 물들어 황홀해야 할 이 가을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익어가야 할 이 가을을, 부디 다치지 말자. 가을바람이 불어도 물들 잎새가 없는 가을은 삭막하다. 잎새야, 바람 들어라.   빛나라 가을   익어서 다가오는 가을은 풍요로움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헛헛하고 아픈 마음을 얹어주기도 한다. 십자거리에 서서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문득 싸늘한 이 공기와 십자로 놓여진 길이 겹치면서 추억의 정경 같은 막연한 그리움이 몰려든다. 담배진처럼 지독한 이 그리움의 정체는 무엇일가… 이 정체 모를 무엇인가를 찾아서 길에 오르고 싶어진다. 새벽부터 길에 올라 떠돌이를 하고 싶어진다. 길에 오르면 내가 원하는 뭔가를 만나거나 느낄지도 몰라. 새벽 장거리 뻐스에 오르자 세상은 그제서야 고요히 열리기 시작했다. 재빛, 푸름푸름, 연홍빛, 엷은 젖빛 물안개… 이런 것들이 내가 찾는 막연한 정체인 걸가. 세상이 고즈넉하고 평화롭게 밝아온다. 새벽길에 오르면 새들의 지저귐도, 이른아침 어느 산사의 고요한 정적도, 아침해살에 하얗게 빛나는 자작나무숲도, 레루 우에서 빛나는 가을 해살도 만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솔잎, 그 파아란 바늘 끝 마다에 령롱한 이슬이 맺힌 천년로송도 만날 수 있다. 발뒤축을 들고 입술을 가져다댈 수 있는 행운이 이어지고 솔향이 스며든 이슬이 입술을 달게 적셔준다. 행인에게 내려주는 하늘의 은혜 같은 것일가. 이 감로수를 받아서 차 한잔 달여내면 또 얼마나 향기로울가. 가을의 투명한 빛 아래 세상도 빛나고 있었다. 헛헛하고 아픈 것들이 조금 눅잦혀질 것만 같다. 이런 헛헛함과 아픈 것들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것이 아니여서, 마치도 매년마다 가을이 오듯이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것이기에, 이 투명한 가을 해빛 아래 자주 바래주어야 한다. 물든 가을잎새마냥 스스로 그 투명한 해빛 아래서 더 짙게 물들고 더 순하게 반짝일 수 있어야 한다. 그해도 나는 가을 속의 물든 잎새 한장인듯 그렇게 가을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제법 잘 익은 어느 가을 잎새를 닮은 그런 색 코트 목깃을 세우고, 짙은 회색 스키니 바지를 입고, 두 어깨에는 해골도안이 찍힌 큼직한 배낭을 멨다. 목에는 회색 목수건을 두르고. 하늘은 파랗게 빛나고 다리 밑으로는 가을 해볕만 흐르고 있었다. 다리 량켠으로는 나무들이 빨갛게 노랗게 물들어있었다. 나는 그 속에 있었다. 그 속에서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숨차게 걷고 있었다. 사람들의 물결 속을 비집고 씨엉씨엉 걸어가는 그대의 걸음이 버겁게 빠르다. 부지런히 뒤따르지만 그대의 발꿈치를 따르지 못한다. 올리막길을 한참 걸어서 도착한 곳은 가을 단풍산의 산자락이였다. 울긋불긋 커다란 가을산이 빛나고 있었다. 잠간 현기증이 들었다. 노랗게 빛나는 잎새가 춤추듯이 떨어진다. 그 나무 아래로 다가서니 노란 잎새들이 머리에도 어깨에도 살풋이 내려 내 머리며 내 어깨에 빛을 더해준다. 한켠에서는 단풍나무가 빨갛게 빛나고 있다. 그대는 그 빨간 빛 속에 흠뻑 빠져있는 것 같다. 산이 빛나고 사람이 빛나고 세상이 빛나고 있었다. 삶에는 늘 빛이 고여있는듯 싶었다. 가을산에 오르면 이런 가을에 빠져서 돌아오고 싶지가 않다. 조금만 머물러있어도 잘 익은 저 나무잎들마냥 열매들마냥 성숙한 녀인으로 무르익고 빛날듯 싶다. 무성하고 치열하게 살았던 그 삶의 방증과 훌훌 털어버리고 소탈하게 내려놓는 모습을 보고 느끼면서 저도 몰래 가을의 성품도 닮아가고 싶어진다. 절정에 오른 가을 단풍산. 그 속에는 나도 있고 그대도 있었다. 잠간이였지만 우리는 벌써 물들어있었다. 우리는 벌써 빛나고 있었다. 그대는 빨갛게 나는 노랗게. 서산 우로 노을이 타오르고 우리는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다그쳤다. 그것은 수년전 어느 늦가을이였다. 출처:2017년 제 6기 목록  
18    [수필]‘사이’의 온도-김단 댓글:  조회:760  추천:0  2019-07-18
김단  ‘사이’의 온도   1. 말주머니 여는 온도   창 밖은 노랗게 달아오른 해살에 아스팔트가 끈적해지고 내 마음에서는 심열이 솟구쳐 안팎으로 열기가 후끈후끈 해난다. 무더위 속 도심에는 행인의 그림자를 보기 드물다. 모두들 에어컨 바람이 제대로 나오는 상가를 찾아 맛있는 점심을 즐기고 있지 않으면 도시를 벗어나 어느 시원한 계곡에 맥주와 수박을 담궈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이참에 도시도 내면의 무게를 비우고 나른한 휴식을 즐길 모양이다. 날씨도 덥고 입맛도 없으니 외출하지도 말고 오늘은 집에서 시원한 오이랭국이나 해먹을려고 오랜만에 랭장고 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랭장고 신선실에 챙겨놓은 야채가 보였다. 게다가 크고 작은 반찬통들이 살을 맞대고 빼곡이 들어앉아있다. ‘오이랭국이고 뭐고 랭장고 청소부터 해야겠구나…’ 손이 가는 대로 제일 앞에 있는 반찬통을 열어보았다. 시큼한 냄새와 함께 소고기고추졸임 사이사이에 파랗고 하얀 솜 같은 곰팡이들이 듬성듬성 들어앉았다. “랭장고에 보관했다가 며칠 지나서도 다 못 먹으면 한번 데웠다가 식혀서 다시 랭장고에 넣어둬라.” 엄마가 당부했던 것처럼 소고기고추졸임의 온도를 조금만 조절해주었더라면 ‘수명’을 조금이나마 더 늘일 수 있었던건데… 그 외에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음식들이 가득했다. 언제 료리 의욕이 충만했던 날에 사두었던 기본재료들인지 아니면 지나가던 길에 그냥 행사가격이여서 통 크게 샀던 음식들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이어트를 결심했던 날에 샀던 바나나 한뭉치도 그 고운 살결에 주근깨가 다닥다닥 돋아나있었고 더위에 물컹물컹해져 냄새가 나기 전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될듯 싶다.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건 류통기한이 지난 음식뿐만 아니였다. 자연과 인간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동물 사이, 사람과 물건 사이 등 세상 모든 것이 온도에 의해 가늠이 되였다.   온도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 변질돼가는 사이사이가 점점 위태롭다. 사람사이에 류통기한이 박혀있는 것도 아니고 킁킁 냄새를 맡아본 뒤 변했다고 쓰레기통으로 버릴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둘의 온도   “나는 아이가 생기면 이렇게 피곤하게 살지 않을 거예요.” “직접 나서 키워보면 알게 될게요.” 결혼생활 1년차, 동료들의 얘기가 새삼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아이까지 생기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더더욱 줄어들 것이다.       리허설 없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인생무대에서 난생처음 엄마라는 역할을 맡게 되는 우리는 때로는 서툴게, 때로는 설레이게 아이와의 온도를 맞춰간다. “어제 밤에 아이가 여러번 잠에서 깨는 바람에 난 선잠을 잤어. 아휴 피곤해.” 아이는 엄마에게 쾌적한 거리감각 따위는 요구하지 않는다. 숨막히고 뜨겁도록 가까운 사이를 원한다. 엄마는 그 뜨거운 사이에서 자신을 소진시키기도 한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어쩌다 니가 올린 글을 읽어볼 여유가 생겼어. 나이가 들면서 자꾸 늘어가는 배역에 가끔 힘이 부친다. 엄마배역만 하다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10분, 이런 마음이 뻥 뚫리게 좋은 글 더 부탁해.” 대학동창생이 밤 11시에 위챗 모멘트에 올린 나의 글을 읽고 나서 올린 대글이였다. 요즘 위챗 모멘트에 아이 엄마들은 자신의 일상보다는 아이와 함께 보낸 일상을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아이가 있는 동료 언니들은 출근하여도 얼굴에는 항상 피곤한 기색이 력력하다. 낮에는 열심히 근무하고 퇴근후면 집으로 돌아가 아이와 놀아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는 나는 가끔 리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고 나는 절대 피곤하게 아이를 키우지 않을 거라는 다짐도 미리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엄마는 위대하고 엄마가 되기 위한 온도는 원초적 본능이였다. “집에 먹을 반찬은 있니? 된장하고 고추가루 더 가져다줄까? 새로 해둔 게 있는데…” “집 아래에 왔다, 내려오라.” “올라오세요, 쉬다가요.” “할 일이 많아서 먹을거리만 주고 가야 한다. 얼른 내려오라.”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생활했던 기억은 거의 없었다. 소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엄마는 늘 외국에서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엄마 냄새가 배인 옷을 꺼내 눈을 감고 킁킁 맡았다. 향긋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면 엄마가 바로 내 곁으로 소환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을 한 뒤 엄마는 며칠에 한번씩 여러가지 반찬거리를 날라주셨다. 다리가 아프니 무거운 걸 들고 오지 말고 내가 가지러 가겠다고 해도 고집스럽게 꼭 들고 오셨다. “끼니를 해먹을 시간이 없으면 반찬 꺼내먹으면 편하다.” 일주일에 며칠씩 꼬박꼬박 날라다 주는 그 보자기 속 반찬들은 내가 지치지 않고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힘이 되여주었다. 나는 이제 더이상 옷장 습기가 큼큼하게 배여있는 엄마 옷에 코를 갖다대면서 증발된 엄마의 흔적을 애타게 더듬어낼 필요가 없었고 휴일날 외국에서 걸려올 엄마의 전화를 손꼽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외국으로 돈 벌러 갔을 때 엄마 나이는 기껏해야 서른다섯, 지금의 나보다 고작 세살 더 많은 녀자였다. 서로 떨어져있어도 아이인 나는 엄마의 온도가 항상 부드럽고 따뜻했다. 꼭마치 내가 엄마의 자궁 속에서 하나의 우주로 자라날 때의 그 부드러웠던 물마냥… 그리고 나도 서서히 그 온도를 지니게 된다. 내 몸속의 새로운 우주의 기원을 위하여.   너와 나의 온도   “오늘 저녁엔 뭘 먹으러 갈까?” “아무거나 니들 먹고 싶은 거로.” “양고기뀀 먹으러 갈래?” “어제 뀀 먹었어.” “그럼 어디 갈건데?” “아무래나, 니들 가고 싶은 대로.” “아, 몰라 너희 둘이 결정해라, 밥한끼 먹기 힘들구나.” “그래 먹지 마, 먹지 마.” 머리를 맞대고 뭘 먹을가 서로 열을 올리다가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셋 다 동시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다 그중 한 친구가 갑자기 음악을 틀고 살풀이 무용을 추기 시작한다. 하나 둘 입으로 구호를 중얼거리며 추는 걸 보아서는 공연안무를 익숙히 하고 있는 모양이였다. 또 한명은 아예 커피숍 쏘파에 드러누워서 식지로 핸드폰 화면을 부단히 밀어올린다. 저 추임새는 인터넷 쇼핑을 하기 위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는 것임이 틀림없다. 나는 한쪽으로 이들을 보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갓 구워 올린 피자를 입으로 밀어넣으면서 허기진 배를 달래기에 바쁘다. 얼굴은 편안하고 표정은 소박하며 몸은 자유로워지는 그들 사이에서 나는 제일 행복한 온도를 느끼고 있다. 목에 피대를 세우고 얼굴이 벌개지도록 열 띤 토론을 하다가 갑자기 대화가 뚝 끊겨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간간히 일 얘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 어떤 획기적인 결론이거나 큰 성과를 내야 하는 회의와는 다르다. 가끔 인과관계가 없는 이야기들이 질서 없이 마구 툭툭 튀여나와도 우리는 매끈하게 얘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누구의 말을 자르고 앞다투어 대답을 하든 누구의 말에 집중을 하지 않고 또다른 엉뚱한 말을 내뱉든 이런 것들은 우리 사이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질풍노도의 감정 얘기도 빠질 수가 없다. 말하는 사람이 온도를 높여가면 듣는 사람은 비난과 질책이 아닌 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을 가지면서 상대방의 온도를 조절해준다. 말하는 사람도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뻔히 알고 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으니 듣는 사람이 공감해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사회에 나가면 친구를 사귀기 힘들다”라는 말에 반박이라도 하는듯 나는 현재 제일 친한 친구들을 학교에서가 아닌 사회에서 만나 지금까지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 우정의 기원에 대해 우리 서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 누구도 서로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얘들아, 한시간째 못 결정하고 있다. 저녁을 어디 가 먹니?” “그냥 전번에 갔던 데로 가자.” “그래, 그러자.” 매번 치열한 토론을 해도 결국은 문턱이 닳토록 다니던 단골 맛집을 가군 했다. 우리 사이 마음 온도는 늘 36.5도로 순환되면서 처음이나 지금이나 우리 사이를 맴도는 공기는 부드럽고, 기쁨과 슬픔, 한숨과 침묵이 과장되는 법이 없이 단순하게 넘나든다.   마무리 온도   “만나면 같이 밥 먹자.” “응, 알았어.” 사이의 온도를 알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해석하기 시작한다. 반가우면 다음에로 미루지 말고 마주친 순간에 마음의 주파수를 맞춰 바로 식사를 하면서 술이라도 한잔 기울였으련만…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인사에 “응, 알았어.”라고 미리 정해둔 건설적인 답도 있다는 점이다. 짧은 인사뒤 이내 어색한 기운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간다. 만약 엘레베터와 같이 사방이 막힌 좁은 공간에서라면 온몸이 간지러워나 견디기 힘든 증상은 더 빨리 나타난다. 마침 그날 입은 옷에 호주머니도 없다면 갈 곳을 잃은 두 손은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찾아갔을 것이다. “전화번호나 위챗 알려줘 후에 전화할께.” 위챗을 추가하고 전화번호를 저장했지만 우리 서로는 일년이 지나도 이년이 지나도 말 그대로 전화번호와 위챗아이디만 저장된 ‘아는 사이’로 존재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과의 접촉이 더 빈번해진다. 정이 많아 따뜻한 사람, 마음이 닫혀있어서 미지근한 사람, 때론 상대방의 온도가 높아서 당황할 때도 있고 너무 차가워서 오싹해날 때도 있다. 시시각각 변화되는 사람들 사이의 온도 때문에 나는 명치끝에 바위가 걸린 듯한 체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차가웠다 더웠다를 반복하는 세상의 중심에서 현기증을 느끼기도 한다. “넌 정말 최고야”로 나의 열정에 불쏘시개를 넣어주다가도 “이것밖에 안되니”로 찬물을 확 끼얹는다. 두뇌를 가동하고 몰두하여 일을 하고 있는데 “쟤네들은 정말 쉽게 일한다.”는 공기의 궤도에 따라 우리의 고막을 간지럽힌다. 이렇듯 사이의 온도는 언어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는 관계에서 생겨나는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친절한 인사에도 사이 좋은 대화에도 진심어린 부탁에도 나는 스스로 온도를 부단히 내려 조절한다. 표정은 무뚝뚝하게 언어는 차갑게 행동은 무관심하게 늘 그런 온도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또한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내가 변함없이 0도를 유지해도 상대방은 더웠다 차가웠다를 반복하면서 나를 녹였다 끓였다 한다. 롱락당한 느낌만 들 뿐이다. 무기력한 관계 속에서 때로는 쓰레기가 아닌 진심도 관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 마음속으로 얼려둔 ‘감정 쓰레기’들은 하나둘 늘어난다. 자신의 온도를 무조건 낮춘다 해서 혼탁하던 ‘사이’의 공기가 순식간에 맑아질 수는 없을 터이니 다른 사람들과도 36.5도의 쾌적한 마음의 온도를 가져보는 건 어떨가?  공동체적 삶을 살았던 예전 사람들은 무리를 떠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관계에 금이 가면 직접적으로 생존에 협박이 가기 때문이다. 째지게 가난했던 시절도 그들 사이는 쾌적한 36.5도를 유지하면서 살아갔다. 음식에 대한 불안이 크지 않은 현대인들 ‘사이’는 오히려 조화롭지 못하다. 환경과 사람 사이의 온도 때문에 지구는 매일 민감해지고 있다. 몇도의 차이로 우리는 삶의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한 채 살고 있지만 정작 북극곰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될 위험에 빠진다. 지구의 온난화로 북극곰은 ‘온도의 피해자’로 되고 사람들은 온도의 과잉 혹은 온도의 부족으로 점차 ‘감정의 난민’으로 된다. 탈출이 불가한 우리들 ‘사이’에는 파괴성적인 재앙을 막아낼 수 있는 적절한 ‘온도’가 필요하다. 출처: 2017년 제6기 목록  
17    [시] 무지개1(외6수)-변창렬 댓글:  조회:558  추천:0  2019-07-18
 변창렬  무지개1(외6수)   애꿎은 길손으로 지나가는 소나기의 얄궂은 눈웃음이다 찌프린 하늘에 대충 갚으려는 버거운 품삯이였지   너무 희게 보이면 수건 하나의 값 뿐이고 너무 붉게 나타나면 꽃 하나의 값 뿐이라 무작정 비싼 값으로 황홀하게 바치는 품값 꿈틀거리는 씨앗들도 가는 손가락 올리밀어 탐내는 품삯이다   부아통 터진 햇쌀은 심술이 나서 눈 깜짝할 새에 허공은행에 저축하고 만다   텅 빈 들판은 멍청스레 하늘만 더듬고 잃어버린 눈섭 찾고 있다 찾는다고 칠색마저 찾아올 것이가   무지개2   비로 씻은 거울에 서 있는 나 두 다리 곧게 하고 두 팔 뻗친 체조시간이다   늘어나는 다리와 길어지는 팔 누군가 입혀준 색동저고리   거울이 너무 작아 땅속으로 뿌리내린 두 팔과 다리 솟는 것이 힘이다 칠색조가 난다 신나게 부푸는 하늘 내가 펼친 하늘이다   잠자리   울타리에서 졸다가 신이 내렸는지 나의 손가락에 옮겨앉아 점을 치고 있다   여섯 발가락으로 수십년 찌든 때가 끼인 나의 손가락 하나 붙잡고 동양철학을 풀고 있나 부다   애매한 잔금에는 흙과 돌 그리고 물등으로 기구하게 헷갈린 문드러진 흔적 뿐인데   땅에서 걷는 놈과 허공에서 나는 놈을 마구잡이 뜯어 고칠려나 무치하게 간지러워진다   요리조리 굴러대는 눈망울에는 나의 눈빛이 스며있어 들숨날숨까지도 한박자 되는 순간이다   뭔가 알아차렸는지 훌쩍 날아가버려 다시 들여다봤더니 손금이 몽땅 없어진 것이다 훔쳐갔을 거다   꿈은 아니여도 생시는 아닌 철학풀이가 풀어졌단 말인가?!   입   골짜기는 거멓게 그슬어있다 그 속에 묻힌 그늘은 발버둥쳐도 나올 수 없어 몸부림 끝에 바람으로 쓰러진다   쓰러진 귀신딱지는 잡풀을 뒤집어쓰고 애매한 넉두리로 헐떡이다가 토해낸 것이 계곡의 물이였다   숱한 아가리가 게워낸 타액은 지독스레 맑아서 차가워진다 속일 수 없는 설음이 썩을 수 없어 뒹굴며 떨어지는 목덜미에서 또다른 숨소리로 울먹이고 있다   크게 벌린 아가리에는 점 하나로 찍힌 입 달린 두 발 짐승들이 걸어서 들어온다   죽어서 가야 할 성산이라고 찾아가서 낱낱이 뒤지는 곳 아가리는 아가리 속에 살고 싶어 또다른 아가리 만들고 있다   껍질이 얼굴로   장고는  얼굴이 두개나 있다   늦고 빠른 흐느낌은 소의 소리와 개의 소리로 말라든 껍질 속에 젖어든다   밭 가는 소의 소리는 지는 해를 새김질하여 밥그릇에 담긴 신음소리 되고 뼈 핥는 개의 이갈이는 뜨는 달을 삼킨 채 목에 걸린 탁한 게 석쉼한 부르짖음이다   소의 머리에는 뿔이 있어도 찌를 줄 모르는 쑥스런 해돋이의 그늘이 있고 개의 얼굴에는 뿔은 없어도 이빨이 있어 지는 해를 물어뜯는 찢어진 그늘이 있다   장고의 두쪽에 씌워진 껍질 우는 소 웃는 개의 빳빳한 가죽으로 낯설어 남의 껍데기가 나의 얼굴로 맞고 사는 쓰라린 통곡은 참고 있다   거리   동전 하나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높이 던졌다   떨어지는 그 사이에 초로 계산되는 거리가 있다 바람도 지나가고 구름도 지나가고 해빛도 비집고 지나갔다 아직도 채 떨어지지 않은 그 찰나에 잠자리 하나도 에돌아갔다 이때 지나가던 지렁이가 멈춰섰다 온몸을 배배 꼬면서 뒹군다   동전도 멈추었다 떨어지면 박살나는 게 지렁이가 아니란 걸 안다 천천히 떨어졌다 내 손바닥이다 손바닥에는 바람과 구름 해빛들의 마구잡이 냄새가 구수하다   동전은 가치가 있다 땀이란 액체가 동전이란 고체로 반전할 때 그 거리에서 꽤나 버거울거라   던지는 속도보다 더 빠른 떨어지는 거리여   구멍은 점이 아니다   새들은 눈부시여 하늘에서는  눈을 감고 난다고 한다 나는 속도가 너무 빨라 구름이 들어갈가 봐 눈을 감는지 누구도 모른다   새는 날면서 길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하늘에 터널을 만드는 것이다 그 터널에서 혼자만이 지나가면 없어지고 마는 터널이라 왜서인지 그림자도 없었다   넓은 하늘에는 티도 없는데 새는 점이 되여 작은 구멍으로 뚫려있는지 스스로가 알 수 없었지   땅 우에 사는 우리의 눈으로 하늘에서 나는 새가 점 하나로 보일 뿐 구멍으로 보일 수 없다만 구름의 눈에는 하늘의 구멍은 새 뿐인가 할거다 출처:2017년 제6기 목록  
16    [수필] 동주를 위한 3개의 공책-김혁 댓글:  조회:497  추천:0  2019-07-18
 김혁     동주를 위한 3개의 공책(空册)   공책 하나―소울메이트 친구가 차를 뽑았다. 차 이름은 ‘소울’이였다. 가격이 너무 착해서, 차를 너무 갖고 싶던 차 이곳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는 형의 차를 샀다고 했다. 그리고 중고차라 혀아래소리로 굳이 밝히며 어딘가 자존심의 어깨가 처져있는 친구를 위로할 겸 나는 우스개로 한마디 했다. “중고가 좋아, 친숙해, 우리 사이도 이젠 중고가 됐잖아.” 즐겁게 웃고 나서 나는 차 이름 ‘소울’ 대신 다른 ‘소울’을 생각하고 있었다. 소울메이트는 령혼(Soul)과 동료(Mate)의 합성어로 서로 뜻이 잘 맞는 사이를 지칭한다. 문학, 예술, 스포츠, 비즈니스 등 분야에서 큰 성공을 한 사람에게는 흔히 도타운 소울메이트의 존재가 있다. 그 일례로,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대가 괴테와 실러를 들 수 있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깊은 리해를 바탕으로 한 자극과 격려를 통해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완성해나갔다. 두 예술가의 우정은 베토벤과도 이어졌다. 두 문호를 존경했고, 이들의 작품에 큰 령감을 받은 베토벤은 두 사람의 작품에 곡을 붙였다. 소울메이트들끼리 단순한 우정을 넘어 예술사에 한획을 긋는 일을 유발시킨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와 동생 테오는 또 한쌍의 유명한 소울메이트이다. 동생 테오는 괴퍅한 성격을 가진 형의 재능을 알았고 힘 들게 번 돈으로 형을 위해 생계비를 대며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고흐가 자살한 뒤, 애달픈 나머지 테오는 여섯달 만에 형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지금 형제의 묘는 함께 나란히 놓여있다. 겨레가 애대하는 민족시인 윤동주에게도 생사를 함께 한 소울메이트가 있었다. 바로 송몽규이다. 둘이는 1917년 파평 윤씨네 가문에서 석달을 차이 두고 태여났다. 송몽규는 윤동주의 동갑내기 고종사촌형이 된다. 명동학교도, 룡정의 은진중학교에 함께 다녔다. 송몽규가 열여덟 어린 나이에 서울의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꽁트 〈숟가락〉이 당선되자 이는 윤동주에게 큰 자극이 되여 자신의 작품에 날자를 표기하기 시작했다. 둘은 또 경성의 연희전문에 나란히 합격했고 학교에서 함께 문학동아리들의 잡지  《문우》를 펴냈다. 당시 《문우》에 실었던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이 그의 룡정 자택 장례식에서 랑송되였다. 두 사람은 또 일본류학을 함께 떠났다가 반일운동의 죄목으로 일제경찰의 마수에 떨어져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였다. 일제의 잔인한 생체실험으로 의문의 주사를 맞고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절명했고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송몽규는 그 며칠 뒤인 3월 7일 윤동주를 따라갔다. 후쿠오카 화장장에서 재로 변한 윤동주의 시신은 고향 룡정으로 돌아와 룡정 동산의 교회묘지에 묻혔다. 가족에서는 “‘시인 윤동주’지묘”라 비석을 새겼다. 송몽규의 시신도 명동의 장재촌 뒤산에 묻혔고 “‘청년문사(文士) 송몽규’지묘”라는 비석을 세웠다. 1990년 4월 그들을 기리는 이들에 의해 송몽규의 묘는 룡정 동산 윤동주의 묘소 곁으로 이전했다. 불과 몇메터 가까이 손잡힐 듯한 곳에 둘이는 묻혔다. 두 사람은 그야말로 삶과 죽음을 온전히 함께 한 벗이였다. 오늘날 윤동주는 겨레 시인으로 높이 추앙되였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오래전에 등단한 문사이자, 철저한 반일지사인 송몽규에 대해 아는 이는 적다. 그러나 차라리 숙명의 동반자였던 윤동주가 옆에 있어 그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삶과 죽음을 온전하게 나눈 진정한 소울메이트였으니깐. 공책 둘―간(肝)의 노래 남자들끼리 앉으면 간에 대한 화제가 많이 떠오른다. 세계적으로 남성들이 녀성들보다 간암발병 위험이 7배나 높다고 하니 잦은 음주로 인한 간질병에 대한 걱정으로 남성들 화제의 일순위에 오르는 때가 많은 것이다. 인체에서 가장 큰 장기인 간은 복부의 오른쪽 웃쪽에 위치하는 내장기관으로 입을 통해 섭취돼 위장관에서 소화, 흡수되는 대부분의 물질들을 걸러낸다. 갑옷 떨쳐입고 칼과 창을 비껴들고 성문이나 궁문을 지키던 옛날의 무관들처럼 우리 몸의 ‘수문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영양분의 대사와 저장, 단백질과 지질의 합성, 면역 조절 등 정상적인 신체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생화학적 대사 기능을 대부분 담당하고 있다. 우리 몸에 필요한 물질을 만들고 저장하며 인체의 해로운 물질을 해독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고마운 장기이다. 여기 간에 대해 읊은 시인이 있다. 윤동주, 그의 대표작의 하나로 되는 시가 바로 〈간〉이다. 바다가 해빛 바른 바위 우에 /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 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온 토끼처럼 /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 와서 뜯어먹어라, 시름없이 / 너는 살찌고 / 나는 여위여야지 / 그러나 거북이야 / 다시는 룡궁(龙宮)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매돌을 달고 / 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프로메테우스… 경성의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시기에 쓴 작품으로 알려진 이 시는 두개의 이질적인 설화를 결합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시는 거북이의 꾀임에 빠져 간(肝)을 잃을 번했던 토끼가 기지를 발휘하여 목숨을 건졌다는 우리 민족의 ‘구토지설(龟兔之说)’과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어 신의 저주를 받고 매일 재생되는 간을 독수리로부터 쪼아먹히는 형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의 희랍신화를 적절히 변용하면서 작품 속에 투영시키고 있다. 윤동주는 궁지에 몰려서도 슬기롭게 자기의 ‘간’을 지킨 토끼와 죄 아닌 죄를 짓고서 속죄양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프로메테우스의 처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우의적(寓意的)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 연세대학교 설성경교수가 윤동주의 시 〈간〉에 대해 저항시라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구운몽》을 새롭게 해석하는 등 한국 고전소설의 난제를 해결해온 전문가인 설교수는 《윤동주의 〈간(肝)〉에 형상화된 ‘프로메테우스 연구’》를 출간하면서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는 “윤동주의 〈간〉이 저항시임을 외면한 채 그간의 연구자들은 시인이 희생적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오판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시 〈간〉은 윤동주시인이 프로메테우스에 자신을 빗대여 식민지 시절 손상을 입은 량심의 회복 의지를 노래한 것으로 해석돼왔다. 하지만 설교수는 “오히려 〈간〉은 일제시대의 가장 저항적인 시이자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심판시”라는 새로운 해석을 가한다. 설교수에 따르면 그동안 학계는 〈간〉의 핵심 시어인 ‘프로메테우스’를 희랍신화의 영웅의 오기로 간주해왔고 이를 토대로 마광수 등 기존 학자들은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를 시적 자아인 윤동주의 상징으로 봤다. 순수성(불)을 상실(도적)한 시인 자신에 대한 비탄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설교수는 “프로메테우스의 의도적 변형을 통해 윤동주가 ‘가짜 영웅’일제의 패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인은 나라(불)를 빼앗고 착취(도적)한 일제에게 “목에 매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설교수는 “이 표현은 기독교에서 지옥과 사탄을 이야기할 때 사용했다”며 “시의 바탕에 기독교주의적인 민족주의가 깔려있다”고 설명했다. 설교수는 특히 윤동주의 시가 다른 저항시보다 한수 우의 경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리륙사, 한용운 등의 시에 등장한 저항은 아래에서 우로의 저항이고 세계문학의 모든 저항시들이 택하는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며 “하지만 이 시는 력사의 이름을 빌려 가짜 영웅을 내치는 심판시이자 동서양 신화의 접목이라는 측면에서도 탁월한 시”라고 평가했다. 윤동주의 시가 추구한 핵심적 문제는 현실적 존재의 슬픔이 어디로부터 나온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자문의 련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우리의 말과 글과 얼이 사라져가는데 대해 내장이 상할 만큼 맹독(猛毒)의 아픔을 느끼며 몸부림을 거듭했다. 그의 시편들은 비록 조용하고 어딘가 소극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부끄러운 자아의 응시로부터 력사와 민족의 현실에 대한 고뇌와 성찰을 그 기저에 깊이 깔고 있다. 때문에 그에 대해 ‘저항시인’이라는 평가를 가능하게 해준다. 시 〈간〉에 대한 새로운 해제 또한 이를 뒤받침해주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속출하고 있는 민족 공동체의 아픔과 그 위기에도 무관심으로 일관한 채 신상의 작은 질병에 대한 걱정에나 전전긍긍하며 무사안일의 나날에 버릇된 현대인들에게 윤동주의 시 〈간〉을 한번 읊어보라 권장하고 싶다. 공책 셋―‘별’을 쏘다 모 잡지에 〈소설가 김혁의 인물시리즈〉라는 인물칼럼을 련작한 적 있다. 2년 반 되게 련재한 칼럼은 조선족 수십명 인걸들의 생애를 사전형식으로 가나다라 순으로 짧고 명료하게 다루고 있는 소전기물이다. 민족을 위해 커다란 족적을 남긴 기라성 같은 별들을 헤아리는 작업에 기꺼이 투신하면서 아낌없이 산화해간 별들을 두고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한면 그 가운데 이름은 화려해도 아무런 빛도 내지 않은 암흑성(暗黑星)도 끼여있어 선정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룡정의 명인들을 정리하면서 그러한 어려움은 곱배로 밀려왔다. 룡정에서 윤동주의 시대에 함께 족적을 남긴 저 유명한 동요〈반달〉의 작곡자 윤극영, 녀류시인 모윤숙 모두가 친일의 혐의에서 여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였다. 윤극영은 1926년경 피아니스트 오인경과의 애정행각으로 서울에서 룡정으로 도피를 했다. 윤동주와 문익환이 다녔던 광명중학교 등 학교들에서 음악교원으로 교편생활을 했다. 이후 1940년에는 할빈에서 예술단을 창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룡정에서 간도성 협화회(间岛省协和会)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일본이 투항하자 1946년 체포되여 3년형 선고를 받고 복역중 보석으로 겨우 풀려났다. 1950년대초 북경에서 조선족 음악인 김정평과 김철남이 윤극영의 〈반달〉을 중국어로 번역 편곡, 레코드로 취입했다. 노래는 근 30년간 애송되였으며 1979년 전국 통용 음악교과서에 수록되였다. 하지만 윤극영이 가담했다. 이른바 협화회는 일본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한낱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협화회에는 조선인과 한족, 만주족 등 대표적인 친일 인사들이 가담했는데, 이들의 역할은 일제의 충실한 주구로서 만중을 선동하고 감시하는데 있었다. 고 박창욱 연변대학 교수는 일찍 “협화회(协和会)는 소위 민중조직이라고 하나, 사실은 비밀공작을 위한 특무조직이다. 협화회는 일반적인 민중조직인 동시에 내부에는 특무가 있는 것이다. 협화회의 선무반, 특별공작반 등은 완전히 일본군 토벌대와 같이 독립운동 세력을 토벌하는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윤극영이 협화회 책임자로서 적극적 친일을 한 것은 90년대 소설가 고 류연산씨의 추적을 통해 속속 드러났다. 모윤숙 1931년 리화녀전 영문과를 졸업했고 그해 친지의 주선으로 룡정에 있는 명신(明信)녀학교 교사로 취직하였다. 바로 윤동주가 다녔던 은진중학과 나란히 이웃한 학교였다. 명신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피로 새긴 당신의 얼굴을〉《동광》에 발표하면서 등단한 뒤 교사, 기자이자 시인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중 각종 친일단체에 가입하여 강연 및 저술활동으로 전쟁에 협력했다. 친일강연을 했고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등에 친일론설을 기고했다. 특히 일본제국주의의 대동아공영권 론리를 형상화한 〈동방의 녀인들〉(1942)을 친일 잡지 《신시대》에 기고하고 지원병 참전을 독려하는 시 〈어린 날개--히로오카(廣岡)소년 학도병에게〉, 〈아가야 너는--해군 기념일을 맞아〉 등을 련달아 발표하는 등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친일활동을 했다. 이 시기 비슷한 주제의 시들을 창작한 로천명과 함께 문인 중 가장 로골적인 친일파로 전락했다. 몇해전 한국에서 펴낸 《친일파인물사전》사전편찬위원회에서는 친일파의 정의를 “을사조약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 식민통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민족에게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끼친 자”로 규정했다. 편찬자들은 친일파선정 원칙에서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은 그 사회적 도덕적 책무와 영향력을 감안해 보다 엄중하게 책임을 물었다”고 밝혔다. 이어 “생계형 부일협력자는 뚜렷한 친일행적이 없으면 제외하되 권력과 부, 명예를 쫓는 출세형 협력자는 엄중하게 취급했다”고 밝혔다. 높은 위치의 정계인사들뿐 아니라 문화예술계의 이름이 쟁쟁한 인사들도 대량 포함되여 세간을 경악케 하고 있다. 한국 각계의 논란이 가열화 되는 등 역풍이 거세지만 력사적 진실 규명을 위한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세기 30, 40년대는 일제의 악랄한 식민지 정책에 우리 민족의 정기가 말살되고 민족문학사가 실종된 칠흑처럼 어두운 시대였다.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어 물자를 수탈하고, 징용령을 만들어 조선인을 군인, 보국대, 로무자, 위안부로 징발했다. 1938년에는 조선어교육을 페지하고 아침마다 일장기를 향해 황국신민 서사를 암송하게 했다. 1940년에는 창씨개명을 단행해 조상이 준 이름을 일본식 대로 뜯어고치게 했다. 그 마수는 문화예술계에도 미쳤다. 조선말로 된 유명 일간지며 문학지들을 페간시켰고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 어용 문학단체를 만들어 침략전쟁과 징병제를 선전하게 했다. 그러나 더욱 슬픈 것은 민족의 수난기에 안일과 부귀를 위해 일제에 무릎 꿇은 문인들의 친일행위였다. 그동안 민족주의 작가로 주목받던 문단의 대표적 인사들이 대거 친일문학의 대렬에 끼여든 것이다. 지울 수 없는 오명을 진 문학인들로는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민족시의 전환점을 지었던 시인 최남선, 《화사집》, 《귀촉도》 등 탐미적인 시편들로 민족어의 가능성을 한껏 키운 것으로 평가되였던 시인 서정주, 본격적인 근대문학의 확립에 크게 이바지했던 《감자》, 《운현궁의 봄》의 저자 소설가 김동인… 등이다. 그 전형으로 개화계몽기부터 1920년대까지 언제나 민족주의적인 립장에서 앞장섰던 《무정》, 《흙》의 작가 리광수를 들 수 있다. 리광수는 온갖 친일 단체에 참여하여 그 뛰여난 문필가의 기량을 황국 신민화, 징병징용학병정신대 권고문 따위의 글을 써내는데 허비했다. 남보다 앞서 꼭두새벽부터 줄을 서가며 창씨개명을 했고 “조선인으로서의 본질과 껍데기까지 모조리 던져버리고 일본인으로 변종할”것을 공공연히 웨쳤다. 일본에까지 건너가 류학생들을 선하며 일본군에 입대하여 천황페하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지자고 선동했다. 근시안적이고 삐뚤어진 그들의 행태는 우리의 민족문학사에 치명적인 얼룩을 남기고 말았다. 문단을 대표하고 민족의 지성을 상징한다는 이들이 하나같이 ‘텐노헤이카(天皇陛下)’를 칭송하고 ‘황군(皇军)’을 위해 비루한 붓을 들고 있을 때, 숭앙했던 문인들과 자기 학교의 교장마저 친일에 앞장설 때 중국 동북변강의 오지인 룡정에서도 수십리 떨어진 작은 촌부락에서 태여난 한 문학청년이 괴로움에 찬 시편 〈참회록(忏悔录)〉을 내놓았다. 윤동주, 식민지시기 스물네살의 문학청년이 령혼의 잉크를 재워 각혈처럼 지었던 그 시작(诗作)은 오늘도 우리들의 마음을 전률하게 만든다. 〈참회록〉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윤동주가 1942년 일본류학을 준비할 무렵에 쓴 시이다. 시인은 부끄러움을 담은 자기 고백을 또박또박 원고지에 각인해 내려갔다. 지금까지 보존되여있는 원고의 하단 여백에는 도일(渡日), 시란? 문학, 생존, 생과 같은 시인의 고뇌를 짐작케 하는 절절한 락서들이 남아있다. “… 래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굴욕, 치욕, 릉멸, 방황, 그 어떤 말을 가져다 붙인다 해도 그때 그 시가 담고 있는 고뇌와 슬픔과 반성을 감당하기에는 모자란다. 그리고 2년 후 일본 도지샤대에 수학하던 윤동주는 ‘불령선인’으로 체포되여 후쿠오카의 감옥에서 이슬로 사라진다. 그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일제가 전시에 수요되는 혈장을 얻기 위해 생리식염수를 투여하는 생체실험을 한데서 기인된 것이라고 한다. 윤동주는 식민지체재에 동화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던 여리고 섬세한 20대의 문학청년이였다. 당시 그에게서 생의 출구는 막혀있고 현실은 랭혹하고 폭력적이며 미래는 어둡고 삶의 리정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내면은 분렬을 거듭했다. 윤동주는 ‘나약’했고 ‘감성적’이였지만 감정적이지는 않다. 그는 주변부 식민지의 생활과 속악한 삶의 행태에 수치심을 느꼈다. 의지할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해 떠돌던 그의 마음은 종국에는 때묻지 않은 령혼의 시줄에 깃들었다. 윤동주의 시를 떠받치고 있는 정신적 바탕은 시대적 현실에 대해 방관자적 립장에 처해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기반성과 고뇌라 할 수 있다. 그의 시의 중심적인 심상을 이루고 있는 ‘부끄러움’은 이 같은 자기반성과 고뇌의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물론 당시는 극한의 식민지 현실에서 그 누구도 정상적인 문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였다. 그러나 민족의 위기에 가장 먼저 민족문학의 전통과 자존을 지켜야 할 문인들이 저항은커녕 오히려 굴종과 어용과 변절로 민족문학사를 훼손한 친일행위에 민족사의 심각한 비극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의 지성인들이 사회의 압력과 역풍에도 친일인명사전을 굳이 간행한 것도 바로 이러한 력사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여 민족 정통성의 확립과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을 위한 취지여서였다. 력사의 갈피에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은 이러한 문인들의 행태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보잘것없는 눈 높음과 영욕에 매달려 권력과 리념과 공리의 뒤꽁무니를 따라서 철새처럼 이동하는 문인들을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윤동주를 다시금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윤동주,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우리는 먹먹한 시대를 돌아보게 되고 그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부끄러워진다. 민족과 언어를 빼앗겼던 정말 암울하고 힘들었던 식민지 시대에 자아와 민족이 부재한 력사적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초극하고자 윤동주는 참회와 헌신의 신앙적 결의로 마침내 도래할 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확신하면서 ‘주어진 길을 걸어갔’다. 시인의 고향의 하늘에 별은 오늘도 또렷하다. 그 밤하늘을 쳐다보노라니 윤동주의 〈달을 쏘다〉라는 산문의 한 구절이 뚜렷이 떠오른다. 그 찰나 가을이 원망스럽고 달이 미워진다. 더듬어 돌을 찾아 달을 향하여 죽어라고 팔매질을 하였다. 통쾌! 달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러나 놀랐던 물결이 잦아들 때 오래잖아 달은 도로 살아난 것이 아니냐, 문득 하늘을 쳐다보니 얄미운 달은 머리우에서 빈정대는 것을… 나는 꼿꼿한 나무가지를 고나 띠를 째서 줄을 매여 훌륭한 활을 만들었다. 그리고 좀 탄탄한 갈대로 화살을 삼아 무사의 마음을 먹고 달을 쏘다. 오늘날 우리는 “보람처럼 풀이 무성한” 고향의 언덕배기에 잠든 시인을 더더욱 기리고 있으며 시인이 읊었던 별의 밝음과 어둠을 낱낱이 헤아리고 있다. 찬란한 별무리 속에 은닉(隐匿)해있는 별조차 낱낱이 헤여보다 ‘좀 탄탄한’ 오안(五眼)의 빛을 ‘화살로 삼아’ ‘무사의 마음을 먹고’‘별’을 쏜다. 출처: 2017년 제5기 목록  
15    [수필] 도야지야 도야지야-신분희 댓글:  조회:543  추천:0  2019-07-18
신분희 도야지야 도야지야 바야흐로 뻐스를 추월하는 트럭 짐받이에서는 돼지 서너마리가 말려올라간 꼬리를 엉뎅이에 갖다 붙인 채 털썩거리는 조잡한 울림을 휘뚱거리며 온몸으로 받는다. 짐받이 란간이 간신히 만들어놓은 저가락세트 같은 그늘로 숨어들어 오물 속에 맥없이 철버덕 엎어져있는 ‘동무’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안스럽다. 조수석에 앉은 ‘빨간 런닝’은 담배 한모금을 맛나게 빨아들이고 고개를 돌려 운전수를 보다가는 또 백미러를 넌떡 들여다본다. 돼지가 란간을 물어제치고 뛰여내리긴 만무하겠지만 백미러를 들여다보는 품이 꼭 그렇다. 슈퍼돼지도 아닌 일반돼지가 발쪽을 곧추 세우고 3단 점프라도 할가 봐. 다저녁의 뜨거운 해살에 한껏 달궈진, 군데군데에 누런 녹이 쓴 차량번호판 우로 더께가 몹시 앉은 돼지의 두 귀가 너풀댄다. 시야에서 시나브로 사라져가는 저 트럭은 돼지들을 싣고 어디로 가는 걸음인 걸가. 이십년전에 우리 집 어미돼지도 이런 트럭에 실려갔던 걸가… 돼지 세마리가 우리 안에서 노상 꿀꿀거리던 내 어린 시절, 돼지는 왜 밥이 아닌 죽을 먹나 하고 자주 심통을 부렸다. 죽이라 하면 점성이 좋고 차분한 죽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시골서 커오며 돼지죽냄새를 꽤 맡아본 내 또래들은 안다. 죽 세 바께쯔를 퍼나르고 나면 바지가랭이가 죽갈기에 맞아 흠씬 젖을 정도로 죽의 묽기가 물 같다. 돼지가 죽을 먹는 모습을 보면 왜 죽이 그 정도로 묽어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아작거리며 물어서 입에 밀어넣는 게 아니라 코를 죽물 속에 박고 뿌글뿌글 날숨기포를 내보내며 핥아삼킬듯 ‘텁텁텁’ 먹어야 하는 돼지의 생체특성상 별수없이 멀겋게 쑤어야 먹기 편하다. 죽을 가득 담은 바께쯔는 어린 언니와 나로서는 드다루기가 힘들었다. 조심하지 않아 쏟뜨리고 나면 세마리가 먹을 정량은 턱없이 부족해진다. 그러면 엄마는 귀가 닳은 밥주걱을 가져다 흙 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죽물을 날래게 긁어서 바께쯔에 담았다. “야네 그걸 먹고 맹장(염)에 걸리무 어찜까?” 어렸을 적 맹장염에 걸려 수술을 받은 적 있는 언니가 울상을 짓고 거뭇거뭇한 흙이 발린 바께쯔를 들여다보았다. “유리를 먹구두 소화시키는 눔들이다. 별 걸 다 걱정하네.” 벌름거리는 코끝에다 흙모래를 도돌도돌 붙이고 다니는 건 흔하게 봤지만 유리를 아작아작 씹어먹는 건 못 봤던 고로 언니와 나는 엄마의 말을 믿지 않았다. “유리도 삼킬 정도로 월등한 소화력을 자랑한다던” 돼지는 구유 밑바닥에 흙덩이를 수태 남겨놓고 죽찌꺼기만 골라먹었다. 툭 내던지는 듯한 엄마의 그럴듯한 론리가 순식간에 그릇된 것으로 시원하게 판명난 바람에 언니와 나는 배꼽을 잡았다. 분명한 건 돼지는 유리나 흙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굳이 더러운 점을 들어보라면 닭똥을 땅콩처럼 잘 주어먹는다는 사실 외에. 세마리 중 검정바탕에 배가 얼룩덜룩한 어미돼지가 출산하는 날이 다가오면 엄마는 벼짚을 보드랍게 잘 추려서 잠자리에 두툼히 깔아준다. 산통이 야금야금 파고들 때면 어미돼지는 땅에 끌릴 듯한 배를 가누며 쉴새없이 우리 안을 돌았다. 한바퀴, 두바퀴… 몇십바퀴를 돌고 나서 ‘베테랑엄마’답게 산좌에 턱 드러누우면 ‘새끼낳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징조라고 여겨도 좋다. 나랑 동생은 어미돼지가 놀랄가 마음을 졸이며 우리에 댄 널판자에 뚫린 구멍으로 갓 태여나 눈도 못 뜬 꼬물꼬물한 아기돼지들이 스스로 ‘엄마’ 젖을 찾아먹는 광경부터 묽은 죽만 먹고사는 줄 알았던 어미돼지가 홀쭉해진 몸을 일으켜세우고 움푹한 검은 눈을 번득이며 태반을 우걱우걱 씹어먹는 모습까지 지켜보고서야 “다 낳았슴다!”를 겨끔내기로 웨치며 밀치락닥치락 집으로 뛰여들어간다. 작고 힘없이 태여나 젖을 제대로 찾아먹지 못하는 새끼돼지한테 우유병을 물려주는 일도 다반사였으니 곧 앙증맞고 말랑말랑한 새끼돼지를 안아볼 수 있다는 들뜬 기대도 없지 않았다. 새끼돼지들이 포동포동 여물어갈 때가 되면 굳이 사구려를 부르지 않아도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토실토실 살이 오른 귀여운 엉뎅이를 쌜룩거리며 마당을 헤집고 다니던 아기돼지들이 사람들이 다녀갈 적마다 서너마리씩 없어질 때 어미돼지 마음은 어땠을가? 새끼가 팔려가도 애처롭게 울 줄 모르는 짐승이려니 여겼기 때문에 ‘미련퉁이’라는 말도 안되는 특징이 더 명확해졌는지도 모른다. 콩가루를 넣어 죽을 맛있게 끓여줘도 통 먹질 않는다고 혼자말을 하던 엄마도 마음이 언짢고 어수선한지 우리 안에 드러누워 꼼짝도 안하는 어미돼지를 들여다보며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였다. “꽤액 꽥―” 요란스레 울며 새끼돼지들이 한마리 또 한마리 삼륜차에 실릴 때면 “꿀꿀―” 하는 어미돼지의 낮고 굵직한 소리가 방불히도 “괜찮아, 괜찮아”로 들렸을 정도로, ‘돼지가족’의 원치 않았던 강제적이고 희생적인 ‘리산’으로 맞바꿔온 빨락지페는 근심걱정으로 찌프려졌던 엄마의 량미간을 펴이기에 늘 충분했고 어미돼지가 장장 8년 동안 ‘새끼낳이’를 해온 로고는 매번 언니와 나, 동생의 학비, 교과서비용에 모조리 충당되였다. 결코 저속하지 않는 속된 느낌을 주는 ‘로무주’(老母猪)는 암퇘지를 두루 일컫는 말이지만 8년을 새끼낳이로 보낸 ‘퇴역산모’ 어미돼지는 늙을 ‘로’자를 하나 더 선사받아 ‘로로무주’(老老母猪)로 불렸다. 어미돼지가 나이를 먹어 더이상 ‘새끼낳이’를 못할 즈음, 어미돼지의 육덕진 덩치를 탐내는 장사군들의 발길이 잦아졌고 엄마는 번번이 덩치가 크다는 핑게를 대며 값을 높이 쳤다. 머리를 홰홰 저으며 ‘형편없이 늙은 로무주라 고기가 질겨서 잘 팔리지도 않을거다’라는 잔인하지만 현실적인 장사군의 ‘설득’에 마음이 불편해지면 엄마는 두마디 안짝에 팔지 않겠으니 가라고 가차없이 문 밖으로 떠밀었다. 죽을 줄 때마다 ‘우리 집 복돼지’라고 등을 긁어주던 엄마 마음을 어린 나는 알 것 같기도 했지만 얼마전 더 불어난 ‘새 돼지식구들’의 먹이까지 매일 적잖은 량을 장만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조금이라도 덜면 좋을 텐데 하는, 몰리해식의 눈길로 엄마를 바라봤다. 그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어미돼지가 보이지 않았다. 구유에는 평소 그토록 맛나게 ‘텁텁텁’ 물어먹던 삶은 늙은 호박이 몇점 뒹굴고 있었다. 덩치가 하도 크고 몸부림도 심해서 트럭에 싣기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나중에는 눈에 불을 일구며 드잡이하듯 장사군한테 달려들길래 도끼등으로 머리를 갈겨 잠시 혼절시켜서야 트럭에 실을 수 있었다는, 두고두고 지독히도 아릿하고 끔찍했던 세부는 누가 나한테 얘기해줬던가… 그 뒤로는 차차 살림도 펴이고 부모님도 로문해지면서 돼지치기를 그만두게 됐지만 8년을 키워왔던 어미돼지를 생각할 적이면 언제나 축 늘어진 만삭배가 눈앞에 얼른거려서 마음이 착잡하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대학교 선배가 언젠가, 구정물 바께쯔에 쏟는 음식물 속에 이쑤시개라도 섞여들어갈가 봐 습관처럼 항상 조심하게 된다고, 돼지가 먹다가 혹여 목구멍에라도 걸리면 어쩌나 마음이 쓰이더라고 말하던 게 기억난다. 내남없이 궁핍했던 그제 날에 엄마의 한숨을 지워주고 그늘을 거둬준 돼지의 희생에 대한 묵직한 고마움은 세월이 흘러도 쉬이 잊혀지는 게 아닌가 보다… 검정바탕에 배가 얼룩덜룩했던 어미돼지, 맥없이 트럭에 실려간 뒤로 어디서 어떻게 마지막숨을 몰아쉬였는지 모르겠지만 궁금하지도 않고 더욱이는 구태여 떠올리고 싶은 장면이 아니다. ‘8년 동안 낳아놓은 귀여운 아가들과 함께 부디 희생과 아픔이 없는 좋은 곳으로 갔기를.’ 아득하게 멀어지는 트럭 꽁무니를 점도록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축복이 고작 이런 말이라는 사실 때문에 좀 많이 괴롭다… 출처:2017년 제5기 목록  
14    [시]윤동주를 위한 랩소디-심명주 댓글:  조회:575  추천:0  2019-07-18
심명주       윤동주를 위한 랩소디 ―시인 탄생 백주년을 기리여   프롤로그 바람과 추위가 이어지는 푸른빛 기운의 파평교 소아래 차디찬 얼음 솟아 은빛 비늘의 잉어 한마리 지상으로 솟아오르니… 해를 따르는 아이 ―명동 1917―1931 월강곡 흐르던 북간도 솔거족. 삼형제 선바위가 완강한 그늘자락 드리우고 보지 않아도 보이는 추위와 어둠에 암묵의 륙도하가 예감의 바늘을 날카롭게 감춘 동네. 막새 기와 높이 얹고 목조의 우물 깊어 옛생각이 내밀한 집, 귀하고 서글픈 윤씨가문 장남 어엿하게 태여나니 이름하여 해환이라. 대굳은 조상, 지조 푸른 규암 숙과 그들이 세운 새 세상 명동 락원, 고샅길 짙은 마을 흰두루마기 청명하고 밤이면 자두와 뽕나무 사이로 별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곳. 한범아 익환아 무르익는 목소리로 〈새명동〉의 꿈에 젖어 해별을 사모해온 아이들, 재불에 감자 굽던 꽃다운 아이들, 담장 아래 바람 피해 자유로이 피여난. 소년으로 거듭나다 ―은진중학 1932.4―1935 유서 깊은 룡두레우물 가까운 곳에 이제 한 소년이 서 있습니다 이름 새로 세워 해환에서 동주로 몽규와 익환이와 어깨 결어 서로 동무 더기 우에 우뚝 솟은 은진의 기를 받아 깨끗한 소년 마음에 도도한 흰 릉선 여럿 키워 글과 운동으로 게으름이 없는 아스라한 경보소리 하늘 뚫어 슬픈 날들 우물 한모금에 지조 한웅큼 슬픔 한모금에 지혜 한자락 부끄러움을 따르던 바른 신앙 세상 불의에 무겁던 마음 담아 우물에 참회의 그림자 띄우군 합니다 뼈 굳힌 지조 푸르러 거듭나는 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짧은 날 깊은 추억 ―숭실전문학교 1935.9―1936.3 시가 외면된 나날, 문학을 찾아 숭실전문에 온 어깨동무 동주야. 숭실황천지에 게재된 첫 시〈공상〉, 어느덧 너는 십여수의 시와 동시 5수를 배출한 어엿한 18세, 나와 함께 아름다운 나이. 신사참배, 세상은 오물로 어지럽혀있고 하늘은 뒤담벽같이 음산해오는데 만주의 한여름같이 짧은 학업의 날, 가혹한 시련의 타향의 달밤들. 부푼 마음에 탑 하나 후둑 높이 쌓았는데 찰나에 반동강이 나버렸으니. 동주야, 거추장스러운 마음의 실루엣 우리 벗어버리고 맑은 령혼 의지해 고향으로 되돌아가자. 슬픔으로 쌓여질 지혜를 밟으러.                   ―늦봄(익환)이가 시로 꽃을 피우다 ―연희전문학교 1938.4―1941.12 풍요로운 달맞이 계절 꽃처럼 삐여난 기라성의 학우들 굴지의 엘리트 운집의 요람 장미의 향기가 포연에 흩어지고 아비규환 세상 값싼 가격에 생명이 거래되는 그나마 외딴섬 여기엔 지란지교 우정이 숲마냥 깊어가고 우리 글 민족사랑 영시(英诗)와의 아우름 사색이 영글고 눈빛이 밝아오니 〈새로운 길〉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만끽하는 문학의 향연 꽃다운 랑만들 흐린 세상을 시로 꽃 피워 꽃 피워 피여날 일만 남은듯 여름날 꽃 피듯 피여났어라 꽃다운 사나이가 시와 함께 오롯하게 륙첩방은 남의 나라 ―릿꾜, 도지샤대학 1942.1―1943.7 끝내는 잃어버렸습니다 이름 석자 욕되게 불리울 히라누마 도오쥬, 소우무라 무게이 〈참회록〉 써놓고 현해탄 관부련락선 고향은 끝없이 멀어집니다 아스라이 별처럼 향수와 자유와 평등이 〈흰 그림자〉, 〈순이〉와 〈희망의 봄〉이 오물처리 되는 이곳 륙첩방 남의 나라 〈쉽게 씌여진 시〉에 부끄러워 비 소리 후둑진 창가에 기차소리 흘러보내니 딛은 땅 수십번 마음으로 처형하나 차마 세상을 미워할 수 없는 외로움과 괴로움과 쓸쓸함들… 형장의 이슬이 되여 ―후꾸오까 감옥 1943.7―1945.2.16 운무가 흩날린다 형틀을 기대고 육신을 제물로 삼아 죄받이인양 비틀리며 죽음이 죄여온다 우지강 다리 우 마지막 그림자 〈나 고향으로 보내주〉 되뇌여 불렀던 마지막 아리랑노래소리 그 소리 식기전에 감히 누구에게 유린당하고 이토록 비참히 고개 떨구어야 하는가 참을 수 없는 고문과 배고픔 차디찬 바닥 에이는 동상의 아픔들 그리고 더더욱 아픈 마음의 고뇌 부끄러워 아름다운 혼 파릿하게 말라가고 새벽 성당의 종소리 아련히 부를 제 이슬도 움츠린 새벽 아― 커다란 웨침 한마디 마침내 깃처럼 허공으로 가나니 쇠창살 헤치고 훨훨 날리였나니… 에필로그 드디여 갔어라 지상에 잠간 머물다 하늘 날아오른 얼음 차가운 곳 한마리 잉어 마모된 육신을 흙 우에 벗어놓고 반성과 회한과 한숨의 끝없는 날개짓 적료한 고해에 굵다란 획 하나 그으며 스스로 별이 되여 우주에 닿은 소울아, 얼이여 푸르른 넋이여…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동산 그곳에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 출처:2017년 제5기 목록  
13    <<도라지>> 2017년 제5기 목록 댓글:  조회:848  추천:0  2019-07-18
특별초대인 - 류재순 하얀 무지개 (단편소설) 깨여진 유리조각의 한줄기 빛 (창작후기)   삼인 초대석 금  회  바람구멍 (단편소설) 남영도  로씨야 음악의 날개에 실려(외1편)(수필) 변창렬 꽃(외6수)(시) 남영도 '청담동사모님' (수필) 수필 마당 - 채복숙편 색즉시공 복장 세상의 밖   시조명 - 김남희편 은장도 (외8수) 김  몽  시작품에서의 은과 수 (비평)   수필 허무궁  오늘엔 말을 말해본다 김향란  "33세의 팡세' 신분희  도야지야 도야지야   중편소설 구용기 무는 유다(련재2)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김  혁 동주를 위한 3개의 공책 (수필) 심명주 윤동주를 위한 랩소디(시) 박문파 아가의 아침 노을아(시) 박은화 별(시)   칼럼 리여천 마작과 낚시 그리고 독서... 신봉철 신앙과 충성(외2편)   신인코너 김성금 그리움(시) 김홍은 길 (시)   장편소설 량춘식 한몽가(련재3) 막  언 개구리 (련재19)   시인과 시 김창희 갈대와 코스모스 문학사 회원 3행시 모음
12    [시] 꽃(외6수)-변창렬 댓글:  조회:471  추천:0  2019-07-18
 변창렬 꽃(외6수)   보조개 뿐인가 그 속에 환장하도록 부드러운 속살 야릇한 눈길 갉아먹는다   팬티도 브래지어도 달거리도 싫어할 수 있다   홀린 게 나 뿐만 아니다 너의 그림자조차도 미쳐 헤벌린 입 다물지 못하구나   넌 꼭 얌전하게 지지 않을 거다 제발 더는 미치지 말자   로숙자    새는 그림자도 없는 하늘에 날고 있다   빌어먹기는 싫고 애걸할 데도 없는 허공에 맥 잃은 날개만 힘겹다   둥지를 지어도 허름한 지푸래기로 만든다 그 속에 빈 털만 남길 뿐 아무 것도 모아두지 않는다   바람 한모금을 이빨 사이에 물고 꽁지에 힘 추스릴 적에 부리는 입맛 다시지 않는다   구름 한조각이 그림자로 다가오면 너무 낯설어 한바퀴 빙 둘러보고는 울음소리도 남기지 않고 텅 빈 둥지로 돌아온다   둥지에는 그림자라곤 없다 바람구멍만 숭숭하다   새는 낮잠을 자고 싶어한다 배불리는 꿈만은 꾸지 않겠다고 부리를 날개죽지 속에 묻는다   얼굴이 시로 휘여질 때   주름 한오리 휘여서 갈고리 만들어 이마에 얹어놓았다 걸린 게 해빛이다   몸부림치던 해빛이 냅다 갈긴 오줌발 땀이였다   그 땀을 훔쳐 멀리 뿌렸더니 갈고리가 떴다 시였다 족보도 없는 무지개   지친 눈동자는 희미한 민낯에 걸려 그 시를 베끼고 있다   시    가마니 짜는 틀에 바디와 코로 엉키여 시가 짜여진다   바디가 한번 다지고 코가 한번 드나들면 수없이 매듭짓는 가마니가 한편의 시였다   가마니에  모래를 담으면 시어도 알갱이가 된다 한 가마니 두 가마니 재여두면 시집 한권이 되는 것이다 쌀도 왕겨도 자갈도 흙도 담았다   바디와 코는 아직도 짜고 있다 가마니 짜는 틀은 피를 짠다   오빠   애교가 무딘 마누라는 오빠란 말 죽어도 싫다고 한다  밖에서는 남자마다 오빠라고 아양떨어도 집에 있는 이 남자는 오빠가 아니라고 딱 잡아뗀다   오빠가 되면 남자가 아니고 남자가 되면 오빠일 수 없단다   오빠는 언제나 오빠일 뿐 남자는  언제나 내 것 하나란 고집불통   오빠랑 애기 낳으면 몇촌이 되냐며 빤히 쳐다보는 그 눈빛이 더 이뻤다   그물   거미가 만든 철학이다   헤치지 말자고 굳게 닫은 팔괘도 아니요 동그라미로 겹쌓은 손자병법도 아니다  지는 해와 뜨는 해를 죽은 할아버지와 산 손자로 기하학적 사고방식으로 얼버무린 울타리 같은 원심력으로 빨려드는 소용돌이의 짝사랑식 인터넷일가   동그라미 밖으로 외톨로 걷는 골목길에 코대 세운 지평선의 그림자에 갇힌 나   공자가 누구인 줄 모르는 뒤걸음질에 빠진 웅뎅이 속에 옹크린 거미 산지사방 넓히는 자기마당이여   그늘    넓히는 터전은 얌전하다 그 속의 펑퍼짐한 자리는 외롭다   어디까지 뻗을가 헤매는데 발이 열개라도 걸음걸이는 한발작이다   거짓말로 지어놓은 둥지는 바람이 먼저 와서 쉬고 가는 남의 집이다 출처:2017년 제5기 목록  
11    [수필] 어느 자전거와의 인연-리화 댓글:  조회:577  추천:0  2019-07-17
리화   어느 자전거와의 인연       날이 좋아서 자전거를 타려고 벼른지도 며칠이 지난 주말 아침이였다. 그전날만 해도 봄우뢰소리가 우렁찼고 번개가 재빛구름을 번쩍번쩍 가르며 강한 바람에 비줄기도 세찬 하루였는데 언제 그랬냐는듯 맑은 아침이 열렸다. 저으기 흐뭇해지는 마음으로 오늘은 자전거를 빌려서 래일 쯤 자전거 려행을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식후, 아침시장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나는 벌써 이곳저곳에 전화를 넣기 시작했다. 나의 들뜬 마음을 골려주기라도 하는듯 전화속으로 되돌아오는 답은 전부 실망으로 이어졌다. 어디서 빌리면 될가? 아니면 집에 있는 자전거라도 타야 하나? 사실 집에 자전거가 없는 것은 아니였다. 칠년전에 산 자전거이고 ‘영예훈장’을 달아줄 만도 한 자전거이기도 하다. 사자마자 이십여키로메터를 달려서 새 자전거를 길들였고 수년후에는 또 연태--청도, 이백여키로메터에 성공적으로 도전했으며 또 어느 날 ‘나 홀로 자전거 려행’이라는 테마를 걸고 굽이굽이 산길을 오십여키로메터 달렸었다. 그 사이사이에 아빠가 낚시하러도 다녔고, 여느 자전거나 다름없이 편하고 유용하게 사용되였던 자전거였다.   이런 자전거가 지난해 봄부터는 아빠트 1층 현관에 세워두지 못한다는 규정하에 다른 집들의 자전거, 오토바이와 함께 밖에 세워지게 되였다. 정차구역시설도 없고 게다가 큰길곁이라 먼지는 물론이고 비바람과 눈세례를 맞으면서 1년이 지나다 보니 겉면에 씌워둔 비닐도 찢어졌으며 자전거는 녹이 많이 쓸어있었다. 어차피 자전거를 빌리지 못할 바에는 ‘영예훈장’ 자전거를 닦고 손봐서 타야겠지라고 생각을 하는 사이에 아침시장 남문에 도착했다. 새벽부터 늘 붐비고 있는 이 도매시장은 자칫하면 주차할 자리도 찾지 못한다. 운이 좋아서인지 그날 우리 차는 도착하자마자 남문 맞은켠에 주차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별일이라면서 나와 남편은 서로 바라보며 웃기만 했다. 남편이 먼저 차에서 내리고 나는 뒤좌석에 있는 가방을 챙기고 조수석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남편쪽을 바라보는데 웬 청년이 남편 앞에 다가왔다. 몇발자국 걸어서 다가가 보니 새 자전거를 사겠냐며 말을 걸어왔다. 그 순간 우리는 또 서로 마주보며 웃음을 지었다. 서로 눈이 반짝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그 청년이 이끄는 대로 길건너 남문앞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또 한 청년이 서있었고 아직 조립하지 않은, 포장을 뜯지도 않은 자전거도 있었다. 말도 없이 그냥 서로 웃기만 하고 있는 우리한테 두 청년이 자전거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자전거판매가게에서 자전거를 백대 들여올 때 증정용으로 주는 자전거란다. 브랜드에는 꽝인 나에게 자전거업계에서 유명한 ××브랜드이며 가격표까지 보여주었다. 정가 2798원이였다. 남편이 얼마에 팔겠냐며 묻자 두 청년은 머뭇머뭇거리더니 800원이라고 했다. 남편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나는 500원이면 이 자전거를 가지겠다고 말했다. 가격이 너무 낮다고 좀더 보태달라는 청년들에게 나는 그냥 이 가격으로 결정하자고 했다. 그중 한 청년이 뜸을 들이더니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자전거 포장을 뜯어보지도 않은 채로 차에 실어버렸다. 담배값이라도 좀 얹어달라며 말하는 두 청년을 뒤로 하고. 새 자전거를 실고도 우리는 그냥 웃기만 했다. 사실 그 청년이 우리한테 다가와서 자전거가 있다며 얘기하는 순간부터 길건너 남문앞에 놓여진 자전거는 벌써 내 자전거가 되여있었다. 이미 나와 인연이 닿아있었던 것이다. 남편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였음을 나는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다. 새 자전거를 조립하는 과정에 부품이 모자라거나 나사못 하나라도 부족하지 않을가 하는 걱정이 없진 않았지만 부품이 모자라면 이 자전거에 맞는 부품을 사면 되고 나사못이 부족하면 조립하는 아저씨한테 부탁하면 된다고 우리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 자전거를 실어놓고 아침시장에서 일을 보는 와중에도 우리는 서로 내면으로 자전거와의 인연을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 자전거와의 인연으로 또 어떤 인연이 이어질가?”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이런 물음을 해왔다. 인연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인연이라… 인연도 막연한데 인연으로 이어지는 인연은 나한테 어떻게 다가올 것인지를 떠올려보았다. 어쩌면 집에 있는 자전거를 닦고 손보기 귀찮아서라도 자전거 려행을 하지 않을 수가 있었지만 새 자전거가 인연으로 다가오니 나의 자전거 려행은 무조건 이루어질 것이 아닌가. 새 자전거의 조립과 려행중에 스치고 만나는 사람들과 바람 한점, 꽃 한송이, 잎새 한장, 해살 한톨, 혹은 비방울마저도 다 새로운 인연이 아닐가. 이런 인연들은 또 어떻게 나의 삶에 스며들 것이고 나에게 재미있고 유쾌한 이야기며 혹은 슬프고 아픈 스토리를 들려줄 것인가. 나 또한 이 인연들과 하나가 되면서 깊이 느껴지는 것들을 어떻게 글로 적어내려 갈 것인가. 나는 지금까지 스치고 만나는 인연들을 소중히 여겨왔던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자신을 반성해보았다. 고운 인연, 미운 인연 앞에서 제대로 숨 고르지도 못하던 내가 떠올랐다. 아직도 버벅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얼기설기 짜놓은 인연의 그물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듯했다. 남편이 툭 치면서 새 자전거를 조립하러 가자고 해서야 나는 인연에 대한 막연한 생각의 골짜기에서 헤여나올 수가 있었다. 우리는 ‘영예훈장’ 자전거를 늘 손봐주던 자전거수리부로 찾아갔다. 오랜만에 만난 자전거수리부 아저씨는 머리도 많이 빠져있었고 흰머리도 많이 나있었다. 그 아저씨는 익숙한 솜씨로 새 자전거를 척척 조립해주었고 불편한 곳이 없는지 한번 타보라고 했다. 다행히도 부품들은 모자라지가 않았고 나는 새 자전거로 집까지 안전운행을 할 수 있었다. 새 자전거라는 희열과 새로운 인연이라는 내면의 행복감에 사로잡혀 나는 올케와 함께 바로 이튿날 아침 일찍 바다가 려행을 하게 되였다. 파아란 아기 부채잎을 내민 은행나무 아래에서 신나게 달렸다. 도로 군데군데 화단에는 다양한 봄꽃들이 활짝 피여있었고 봄바람은 싱그러웠으며 바다는 황홀하기만 했다. 날이 좋아서 오늘은 좋은 봄날이네! 그리고 어느 드라마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그랬다. 새 자전거와의 인연이 좋았고 함께 달려주는 올케가 있어서 좋았고 달리면서 스치고 만나는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의 파장과 어쩌다 부딪쳐서, 혹은 겹치고 맞물려서, 혹은 나란히 함께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연들이 있어서 좋았다. 출처: 2017년 제4기 목록  
10    [시] 주전자 소리(외7수) 우도 댓글:  조회:558  추천:0  2019-07-17
 우도 주전자 소리(외7수)     오늘처럼 새벽부터 펑펑 눈이 오는 날에는 늙은 화로에 장작을 넣고 가장자리에 주전자 올려   찌르르 찌르르, 게으른 달구지처럼 느릿느릿 쉬여가는 주전자 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달걀 둬알을 가볍게 삶아 내 휘파람소리에 달려오는 동네강아지, 피피에게 줘야 한다 인간불신을 앓고 있는 초점 슬픈 녀석…   저녁 귀가시간에 길들여진 리별인데 네거티브 굿윌에도 한사코 따라오면 피피야 나와 놀자 이제는 돌아오라 개장집 앞마당서 눈장난하는 개구쟁이   척력(斥力)의 법칙   일찌기 나를 졸졸 따르는 계집애가 있어 떠밀어내려고 자석의 동극, 척력의 법칙으로 스위치 체인지하며 강력응수 했다   코너까지 몰아붙였을 때 계집애는 벽의 반작용력에 호소해 불가항력의 스피드로 180°회전했고 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났다!   따귀를 맞고 입술을 빼앗긴 다음에야 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나섰고 그 옛날에 삼킨 고초 오늘도 반추한다   빙등제   빙등이 아름다운 것은 삐까번쩍 점멸하는 화려한 LED 때문이 아니라 산전수전을 겪고 춘하추파(波)를 반려(返还)한 물이 얼음녀인으로 거기 섰기 때문이다   빙등이 아름다운 것은 웅장한 빙설조각과 대형 미끄럼틀 때문이 아니라 물은 바위로 거기 머물렀고 사람은 물이 되여 유희하며 기꺼이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빙등이 아름다운 것은 썰매를 끄는 순록(驯鹿)이나 가이드의 열정 때문이 아니라 초라한 사랑에 두 손을 싹싹 비비는 련인의 념원과 겨울랑만이 거기 머물렀기 때문이다   리발사   그때는 옳았으나 지금은 아닌 것들 내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면 아닌 것들   락엽처럼 떨어지는 모발의 수자만큼 아집도 옳았으나 지금은 아닌 것들…   잎새가 왔다 갈 뿐 고엽향 은은한데 리발기 내려놓고 스스로를 쓸어담는 나 또한 손님 아닌 리발사였구려   륜차아저씨   자전거는 자전차라 불러야 한다 나를 위하여   키보드는 활판차라 불러야 한다 나를 위하여   리어카는 잘 구르기만 하면 된다 반렬에 올랐으니   관절의 녹을 털고 온새미로 땅에 내려 흙의 심기를 노크하지 않으련가   당신과 나의 건강 청춘처럼 푸르렀던 하늘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하여   삼시세끼   어떤 세끼는 외로움을 마시고 어떤 세끼는 깡술만을 들이켰지요   그래도 내가 풍요로운 건 뚱뚱한 술살속에 야금야금 뜯을 수 있는 뼈 몇토막이 살아 춤추는 까닭이요   래일 해를 기다려 시린 하늘의 별들을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 남아있기 때문이지요   뼈는 내 인생 설계도요 관절보다 아름다운 메커니즘의 향연인데 사람들은 항상 도리질을 하지요   시인이기를 포기한 사업가는 좋은 발명가가 아니라 키득이니 예. 그런가요 라고만 할 수 없어 삼시세끼 뼈다귀만 뜯고 있지요.   코인묵시록   길가의 동전잎 발끝에 걸리더니 몸을 세우고는 저만치 굴러간다 아하, 그렇구나… 동전은 알고 있다 멀리 가려거든 일단은 일어서라!   겸손에 관하여   독설은 무릇 지덕을 갖추지 못한 자의 얄팍함을 드러내는 나의 또 다른 겸손이요   금이 간 내 마음의 그릇이 충만한 리유는 당신의 늪이 깊어 항상 나를 품어주고 있는 까닭이지요 출처: 2017년 제4기 목록  
9    <<도라지>>2017년 제4기 목록 댓글:  조회:884  추천:0  2019-07-16
특별초대인 - 김옥희 최고의 선물(단편소설) 소통,우리가 함께 넘어야 할 산 (창작후기) 삼인 초대석 금  희  불타는 수용소(단편소설) 남영도 사할린의 망향가(외1편)(수필) 변창렬 꽃의 숙명(외9수)(시) 수필 마당 - 우상렬편 촌놈콤플렉스 우리 아버지 장수비결 정절콤플렉스 시조명 - 우도편 주전자 소리(외7수) 김춘택 인생철학에서 뽑아보는 인생섭리(비평) 수필 리  화  어느 자전거와의 인연  류재순 겨울 녀인 김명숙 엄마의 거울 중편소설 구용기 무는 유다(련재1) 계렬칼럼 리여천 내 고향 내 곁에 실화 최선자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닌 것 신인코너 흥명희 청명 손순덕 진주가리비 임연옥 실아 장편소설 량춘식 한몽가 (련재2) 막   언  개구리(련재18) 시인과 시 심명주 고독 문학사 회원 3행시 모음 
8    [수필]루드베키아, 루드베키아-정희정 댓글:  조회:607  추천:0  2019-07-16
정희정     루드베키아, 루드베키아     책에 잠긴 시선을 창 밖으로 옮긴 것은 사람들의 소란스러움 때문이였다. 첫눈이 내리고 있다는 소리에 나는 내게 가장 첫눈다웠던 설레임을 떠올려 보려고 했다. 아득하게 먼 기억 뒤편에서 그에 대한 부스레기라도 떠올려 보려고 했으나 수많은 의미에서 시작된 그럴 법한 눈더미 속에 뒤덮인 기억들은 고요히 잠든 채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 설레임의 기억을 깨우지 못하고 나는 창 밖을 향해 멍만 때릴 뿐이다. 사람들의 머리우로 분분히 떨어진 눈들은 어디서 온 누구의 기억일가? 아마도 루드베키아를 처음으로 받아본 한 녀인의 사랑이야기는 아닐가, 이런 생각과 함께 나는 그만 시선을 거두고 책장을 번진다. 루드베키아, 나는 그 꽃을 그림으로 받아본 적이 있다. 한 사람을 떠올렸을 때 아직도 여린 마음 한구석에 아픈 게 남아있다면 그것은 사랑을 다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깡그리 사라진 줄로 알았던 그에 대한 마음이 아무 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날, 한점 두점 소리없이 내게 내려앉아 뜨겁게 녹아번지는 눈꽃 때문에 아직도 그때 만큼이나 뜨겁다는 걸 깨닫는다. 이 아픈 깨달음 속에서 나는 기형도 시 속의 장님처럼 불빛 한점 없는 빈 집을 더듬듯 지난날을 애써 더듬어본다. 27센치메터의 키차이만큼, 나와 그의 거리는 처음엔 더 가까워지지도 더 멀어지지도 않는 딱 그만큼이였다. 그런 거리 속에서 우리는 자주 만났다. 낯설음을 깨려고 처음으로 그와 함께 떠난 등산길은 높고도 힘겨웠다. 산 중턱 쉼터 걸상에 앉은 나에게 그는 이렇게 물어왔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중에서 하나만 선택할 수만 있다면 어느 것을 선택하겠냐고, 나는 현재라고 대답했다. 나의 대답을 듣고 고민에 심히 빠져버린 그는 한참 후에야 “나는 미래.”라고 답했다. 그의 답이 조금 리해하기 어려웠지만 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언젠가는 리해될 거라는 생각에. 전혀 다른 세상을 살다가 만난 그와 나였다. 그래서 늘 언젠가는 리해될 거라고 생각에 숨죽여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미지근한 사이에서 나는 듣는 자의 역할을 했고 그는 나에게 들려주는 자의 역할을 했다. 정치, 력사, 문학 등 상관없이 그는 나에게 많은 것을 들려주었다. 그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늘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는데 실은 내가 바라본 것은 20대답지않게 부드러면서도 진지함, 그 진지함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흘러나왔는지 그게 늘 궁금하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많다는 걸 느꼈을 때는 바로 그때였다. 내 나이또래하고는 한번도 나눠본 적이 없는 나카무라하루키 이야기, 헤르만헤세 이야기, 안란드 이야기, 위대한 빌게츠 이야기, 그리고 여러가지 력사이야기, 철학 이야기 등을 자주 나누었다. 그러다가 각자의 생각을 넘어 더 깊게 자기 자신의 얘기까지 나누게 되였다. 자신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면서 취기에 절여진 그의 눈에서 의도가 없는 눈물을 본 적이 몇번 있었다.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바람에 바들거리는 나무잎처럼 흐느끼면서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그를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다. 그에게 어떤 아픔이 있었길래 시간을 되돌려 돌아가고 싶었는지 묻고 싶었으나 처음처럼 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다치면 터져버려 다시 상처로 되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나는 그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위로의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우리의 27센치메터의 거리는 그때부터 조금씩 좁혀져 갔다. 눈물이 많고 유리처럼 맑고 여린 마음을 가진 그와 함께 사소한 것까지 나누게 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서로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날이면 그는 늘 나의 다리를 베고 누워 내가 읊어주는 바이런의 시를 즐겨 들었다. 질리지도 않게 자꾸 들려달라고 졸라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고마움에 못이기는 척 들려주곤 했다. 유심히 귀를 기울이면서 시어와 시어 사이를 음미하는 그의 모습은 전보다 더 깊은 진지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의 말들이 더는 그의 립장에 서지 않고 비수로 되여 그의 마음에 꽂히기에 이르기까지 내 주위에서는 그에 대한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내가 한번도 다녀간 적이 없는 그의 과거 얘기에 나는 쉼없이 내 안에서 나 자신과 갈등한 끝에 서서히 마음을 닫아버렸고 결국은 그게 사랑이 아닌 깊은 의미에서의 우정이 더 맞을 것 같다는 리유로 리별을 선포했다. 리별 후에도 가끔씩 친한 친구인 척 만나긴 했지만 아직도 내 안의 그의 과거에 대한 갈등으로 그를 떠올리거나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마지막 노을을 타고 흘러내린 비방울에 바닥으로 몸져누운 여린 가지처럼 외롭고 아팠다. 그래서 그와 함께 시간을 나누면서도 이름 모를 화가 자주 치밀어 올라오곤 했다. 나의 상태를 파악한 그는 몇번이나 리유를 물어왔지만 마음닫기로 결정 내린 나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진정으로 리별을 맞이한 그날 역시 우리는 등산길에 있었다. 그날따라 떼를 써가면서까지 상행선이 아닌 하행선으로 산을 역주행해서 타고 싶었다. 헐떡이는 나를 더는 기다려주지 않고 제 먼저 올라가는 그의 뒤모습을 보면서 나는 미래를 선택하겠다는 그의 모습과 어린아이처럼 과거를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이 한데 겹쳐지는 가운데 이젠 정말로 끝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있는 현재가 아닌, 내가 한번도 걸어보지 못했던 과거, 그리고 내가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선택한 그에게 더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은 절차도 없이 여름에서 한겨울로 랭담해 갔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비방울과 함께 가로등빛이 내린 어느 여름날 밤, 찬바람에 하얗게 질린 나의 손을 보고는 주춤거리다 결국 결심한 듯 어둠 속에서 가만히 나의 손을 잡아주던 그의 모습을. 왜 항상 버림받는 쪽이 나의 쪽인지 모르겠다며 울먹이는 목소리와 함께 뒤모습을 보인 기억도, 너를 만나서 참 다행이라는 고백 섞인 진지함을 보인 모습도, 한순간, 때를 놓친 눈꽃처럼 제 안의 뜨거움을 만나 비로 내려 나의 온몸을 타고 발밑에서 산산이 으깨져 내렸다. 잠에서 풀린 추억처럼 그때 왜 그에게 들려주었던 “사랑이란 어둠 속에서 말없이 손을 꼭 잡아주는 것”이라는, 내가 그에게 했던 말을 섬세하게 기억해준 그의 모습은 기억하지 못했던 걸가? 한참을 걸어가다 저 멀리서 헐떡이면서 나를 기다려주고 있는 그의 마지막 앞모습은 왜 기억하지 못했던 걸가? 누구보다 여린 사람이란 걸 잘 알면서 왜 나는 그에게 묻지도 않고 묵은 지처럼 스스로 침묵 속에서 리별하기로 마음먹었던 걸가? 왜 그래야만 했을가? 리별을 선포한 건 나의 쪽인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채한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낀 쪽도, 새벽하늘처럼 깊고 푸르게 멍든 쪽도 나의 맘이였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데 며칠전, 우연히 한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간통을 저지른 한 녀자를 심판하는 하느님의 이야기였다. 그때를 놓고 말하면 간통은 죽을 죄다. 모두들 그 녀자를 돌로 쳐죽일 준비를 하고 있는 가운데 하느님께서는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자, 저 녀자에게 돌을 던져라고 하셨다. 그러자 모두들 말없이 돌을 내려놓았다. 모두에게 죄가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서 하나는, 남의 죄로 자신의 죄를 덮으려는 죄,(녀자가 간통하는 것을 지켜보고 그것을 고발하는 것으로 자신이 엿본 죄를 덮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직접 보지도 못하고 그녀가 죄 있다는 것을 귀로 듣고 판단한 죄, 내가 바로 그 후자인 귀로만 듣고 돌을 쥔 수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였다. 내가 없었던 과거 때문에, 그 사람의 아픔으로 그 사람을 다시한번 죽였으니, 나 역시 그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 어쩌면 내가 더 나쁜 사람이였을지도 모른다. 그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왜 한번 더 묻지도 않고 땅바닥으로 놓아버렸던 걸가? 왜 힘들어하는 그의 곁에서 함께 해주지 못하고 가시 같은 나의 아픔을 감당해내지 못할 정도로 부풀려 가면서 그로부터 떠나버리려는 결심을 내렸을가? 그날, 그 이야기를 듣고 목구멍으로 자꾸 세여나오는 울음을 겨우겨우 참아내고 어둑컴컴한 밤의 등줄기에 기대여 평생의 울음을 다 울어버릴듯 동굴 같은 이불 속에서 울음소리를 내였다. 많이 미안했다. 그를 미워한 만큼, 나 자신에 대한 미움이 배로 느껴졌다. 벌레자국 가득한 나무잎이 바람에 바들거리면서도 가지가 있다는 생각에 가지를 꼬옥 붙들고 그 세찬 바람도 이겨낼 수 있다고 희망한 그를 나는 랭정하게 털어버렸으니, 벌레자국 가득한 그의 과거 때문에, 그게 그의 상처인 줄도 모르고, 내 마음이 힘들고 버겁다는 리유로… 창 밖을 보지도 않았는데도 자꾸 귀속으로 눈꽃들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멀었던 동상 걸린 기억들도 함께 나른하게 풀려나왔다. 귀에서 자꾸 나 자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 사랑하게 되였느냐고 물으시기에.” 나의 다리를 베여눕고 그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 수많은 눈길을 읽으시고도…” 눈을 감은 그의 눈초리가 조금씩 흔들렸다. “그대를 보는 순간 인생이 시작된 것을…” 나는 책장 틈새로 몰래 그를 훔쳐보았다. 언제 눈을 떴는지 그가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미래가 두려워 마음은 늘 제자리이지만” 그가 다시 눈을 감았다. “사랑은 말없이 끝없는 슬픔 끝을 헤매이며”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숨지는 그날까지 살아있는 것을…” 그가 말없이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무거운 추억 한걸음에 나는 그만 읽고 있던 책을 덮어버렸다. 그와의 추억을 나에게서 잠시라도 퇴조시키고 싶었다. 꾹꾹 눌러 담은 찬밥 같은 내 안의 눈물들이 차갑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에게서 한번도 받아본 적 없다고 생각했던 꽃, 그 꽃이 142페이지에서 작은 숨소리를 내며 고이 잠들어있었다. 내가 덮어버린 건 추억 뿐만이 아니였다. 그것은 눈물만큼 진지한 그의 사랑이기도 했다.                 씨앗은 으깨진 꽃잎의 사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씨앗이 다시 싹으로 되기 전에는 자신의 내면깊이에서 먼저 썩어버려야 한다고, 모든 생명의 파괴는 자신의 곪음에서 시작된다고, 무딘 마음이 뒤늦게야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였다. 곁에서 아까운 후회들이 숨을 들이키고 있다. 처음 그 27센치메터보다 메아리가 들리는 거리에 우리는 지금 마주보고 있는 걸가.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니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핸드폰을 쥔 손은 더는 차갑지 않았다. 련결음이 울렸다. 한번, 두번. 건너편에서 잔잔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금방 시작된 겨울은 아직은 많이 부드러운 것처럼, 하고 싶은 말들도 이 눈꽃송이처럼 마냥 부드럽기만 하다. 이 눈꽃들로 살 같은 무거움을 이겨낼 수 있을가? 하지만 루드베키아, 고마운 나의 루드베키아, 네가 있음으로 나는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꽃이 되여보는 걸,   이번엔 추억이 아닌 나는 눈길을 달렸다.   출처:2017년 제3기 목록  
7    [시 ]바위(외3수)-변창렬 댓글:  조회:500  추천:0  2019-07-16
변창렬    바위(외3수)   바람도 싫고 해빛도 싫다고 물속에서 산다   조용한 곳에 소문 없이 잔파도에 등을 대고 뼈를 굳히는 것일가 마디마디 관절이 없어도 끊임없이 참고 견딘다 아무리 흔들려도 지켜가는 그 자리 웅뎅이 하나로 뿌리 박았다 더 크고 싶지도 않고 더 작아지고 싶지도 않은지 이끼가 끼여도 꾹 다문 입 세상이 뭐라 해도 그대로 살고 싶나봐     바람은 지게에서 잔다   산 넘어 가는 바람 한아름 이고 넘었으리 바삐 넘더라도 지팡이 하나 짚지 않고 나무가지에 기대고 싶었으리   아버지께서 지게 지고 넘는 고개마루 바람도 쉬여 가자고 속삭였을 것이다   가는 길 멀다고 힘겹게 넘으시는 아버지 바람을 지고 가신다 지는 해도 짊어지셨다 해와 바람은 코골며 자는지 아버지는 모르고 가신다     사과배   피를 바꾼 배와 맛이 다른 사과 족보에는 깊은 사연 꿈틀거린다만 또 하나의 줄기로 뿌리에서 돋은 것이다   해빛도 공기도 생뚱한 땅이라 몸부림치며 휘여질 때 달린 것은 익숙한 그대로였다   둥글게 열린다고 모두 둥근 게 아니다 까만 점들이 주근깨로 돋은 그 속에 숨긴 단맛은 장백폭포와 어울리는 화끈한 속도였을 것이다   작은 언덕배기라도 뿌리깊이 자리매김하면서 휘여지게 어울리는 낯설은 얼굴들 이 땅에 엉키고 싶은 씨앗에는 단맛 하나로 뭉친 그것 뿐이다     바람   저녁노을이 씻어지네요 산등성이에 걸린 달이 반쯤 날려가버리니 반달만 남았어요 날려간 반달은 날아가다가 부서져 별이 됐을 거예요 별이 된 달은 바람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겠죠 남은 반달은 잃어버린 반달 찾느라 밤이 깊어진 줄 모를겁니다 남은 달이나 부서진 달이나 부는 바람에 흔들리고 싶어 빛 하나로 휘청이네요   그림자 지운 나도 잃어버린 반달과 남은 반달 찾고 싶어 해와 달 사이를 낱낱이 뒤지고 싶다 출처: 2017년 제3기 목록  
6    [시]봄(외9수)-변창렬 댓글:  조회:500  추천:0  2019-07-15
변창렬 봄(외9수)     풀냄새 밟고 싶지 않다   곧 태여날 야릇한 착각이 꽃봉오리로 숨어있을 것 같다   우아한 풀잎으로 여미고 있는 속살 코끝에서 끓고 있는 그런 맛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숨결     밤상   오른손에는 고추 왼손에는 가지 오른발에는 상추 왼발에는 오이   터밭의 고랑마다 차곡차곡 채우신 밥상   무드른 호미는 숟가락이요 반들한 곡괭이는 저가락이라   삼시세끼 때마다 휘여진 엄마 등허리에 차려놓은 밥상 눈물어린 국물이여       말뚝   매여진 고삐 풀도 같이 뜯고 밭도 같이 갈고 새끼도 같이 키우는   새김질도 함께 해야 정든다고 한 고삐에 묶어놓았다   옷고름과 신발끈으로 세상만사 한 매듭으로 조여진 말뚝 한생을 코꿰여도 즐거운 소     립동   첫눈은 왔어도 살얼음만은 허리가 약해 설익은 겨울이 다가온다   들에는 발가벗은 허수아비만 먼발치의 과부를 찾고 있다 이 날이 되면 팔짱 끼고 논두렁 둘러보며 속구구 해보는 재미에 허리가 펴지는 순간이다   따뜻한 온돌방에서 꼬부라진 마누라 안고 실컷 뒹굴고 싶은 꿈도 차분히 꾸고 싶겠지   아무튼 해방된 노예니까 꽁꽁 얼어도 좋을시구     비   오는 소리에 한생을 걸었다   참고 참던 설음을 터치는 순간 번개로 후려치고 싶지만 포근한 가랑비로 촉촉히 적셔주는 그 맘씨   부뚜막 구석에 숨겨 둔 누룽지 맛으로 살풋이 녹아내리는 기분 부드러운 숨결로 거친 숨결 보듬을 적에 나의 피는 소나기로 쏟아진다   비가 오면 엄마 생각 난다고 하신 어머님 말씀 차분한 가랑비로 다가온다         말복   고린내가 짜증 쓰는 순간이다 짜증이 땀나서 허덕이는 순간이다   풀들도 나른해져 멋대로 주저앉는 대낮 병아리 강아지들 눈치 무디게 낮잠 잔다만   보신탕 후후 불며 흘리는 땀에도 고린내 난다   저 멀리 산아래 나무잎들이 드문드문 누렇게 짜증스런 고린내 말리고 있다     추분   백로의 등과 한로의 가슴 사이에서 오르가즘 하는 일교차 새벽마다 헤죽 웃던 나팔꽃 한낮이면 눈 감고 한쉼 돌리는 짓뭉게 지도록 차가운 일교차를 끄당긴다   저 멀리 풀기 죽은 나무들 푸른 저고리 슬슬 벗고 누르스름한 속곳이 보여주니 빨간 몸살이 눈에 띄인다   산도 들의 허기증에 취해 스스로 말라드는 먼 길 찬서리는 오늘인가 래일인가 한다   나도 더위의 어지름증 털어버리고 설익은 열매로 꿈틀거리고 싶은 설레임 이슬방울에 어리광치고 싶다     잎   나무잎 돋을 때가 내가 젖을 빨 때일 것이다 잎은 가지에 매달려 재롱 부리고 내가 엄마 젖꼭지 빨며 고집부릴 때는 같은 시간이였다   잎들은 모여서 함께 흔들어도 나는 혼자 엄마 젖꼭지 독차지 한 놈이라   잎은 밝은 빛으로 웃어주지만 개구쟁이 난 젖맛이 쓰겁다고 때질 쓴 자식 잎은 떨어져도 뿌리 찾건만 난 혼자 달아나 구석에 숨었다   잎은 해빛을 빌어 뿌리에 갚음의 옷 입혀주지만 난 불쌍한 엄마 등어리에 잔주름만 새겨 둔 놈   때가 되여 소리 없이 사라질 때 바람은 피줄을 알고 아끼지 않는다 타고난 흔적은 빛을 돋는다 엄마 등어리에는 잎과 같은 주름살이 가냘프게 숨쉬고 있었다 출처: 2017년 제2기 목록  
5    [시] 부처님 오신 날-변창렬 댓글:  조회:514  추천:0  2019-07-15
시/ 변창렬  부처님 오신 날(외7수)     부처님 오신 날 엄마는 울었다  나의 첫 울음 만들어놓고   목탁소리도  풍경소리도  엄마 신음소리도  나는 못 들었다    허나 엄마는 알고있다 나의 울음소리는 부처님 념불 외우는 소리인줄   새들의 노래소리로 꽃들의 웃음소리로 곱게 울어달라고 빌고 빌었다는데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부처님빛으로 방안이 환해졌다고 기뻐하시면서 미역국을 부처님께 드린 엄마   오늘도 부처님 오신 날     무제   돌이 부처가 된 절에 부처 되려는 내가 돌이 되고말았다   돌이 웃으면 산이 흔들린다고 부처님 침묵 지킬 때 나는 걷기만 했다 돌고돌아 산을 돌았지만 돌만 돌고말았다 돌이 무거워 말이 없나 바람도 옆에 기대여 점잖게 묵도하고있나니 나를 닮은 부처는 돌로 태여날 태몽 꿀수 없다고 빌고있다     절에서   돌을 세워놓고 비는 할아버지   평생 석장쟁이 하셨어도 부처가 누군지 모른다   젊은 각시가 찾아와서 두손 싹싹 빌면서 부자꿈 부탁할제   장알 진 손바닥에 돌가루 흩날려도 깎아세운 부처가 부자인줄 꿈에도 몰랐다   망치로 두드린 돌조각이 부처가 되여도 술한잔 사기 어려운  부처인줄 깜짝 놀랐고 모듬회   가다가 길을 잃고 여기에 모였다   바람대신 에어콘이 돌아가고 파도대신 술잔이 일렁이는 곳   실수인지 착각인지 어느 순간에  탈을 벗고 속살로 왔다   뼈는 부뚜막언저리에  내노라 차지하고 머리통은 어느 구석에 틀어박고있는지?!   산산이 부서진 조각들 아니 칼날이 스친대로 자리바꿈했겠지   어디로 갈가 약속은 없었을거다 모였으니  종친회라도 해볼가   소주잔에  바다물 출렁이는 순간 가야 할 길 목구멍에서 찾았다   한잔에  한 저가락 싫든말든 이렇게 사는것도  그런 락이겠지   회는 회여도 모듬회는 첨이라 다시는 없는거로 할거다     망종   기지개 켜는 보물속에 나른한 생기가 보인다   버들개지들이  놀다버린 그늘아래 올챙이떼들이 조잘대면 어미 개구리는 먹이 찾기 바쁘다   벼모 내는 들판에는 싱싱한 눈치가 뾰족뾰족 키돋움하는가 하면 독을 쓰는 능구랭이도 허리 풀며 구불구불 따발 틀고 늑장 부릴 때 햇미나리도 새물새물 웃는 계절   들은 들마다 싱그러운 냄새를 만들고저 허리 죽죽 펴고있다   봄은 봄이 되 여름은 여름이라고 아지랑이 쟁탈전 한창일세     련꽃   바람에 흔들리며  요리조리 굴리는 물방울 하나 잎속 오목한 구뎅이에 빛 하나 숨긴다   낮에는 해빛으로 밤에는 달빛으로 켜둔 초롱불 분홍꽃잎에 눈물 어리고   흔들리고 흔들리여도 소중한 그 눈물 버리지 못해 똑또르르 뒹구는  당신의 향기     시    천여년전 시체 두개 수집해서 해부했다 하나는 먹물과 술의 세포가 나타났고 하나는 한글을 배우는 흔적이 보였다   먹물과 술에 절은 둥근 달이 고향의 퇴마루우에 소나무 무늬로 빛을 내는 신기루가 떠올랐으니 썩은줄 알았던 혼이 여직껏 읊조리고 다녀 다른 하나의 시체에 맴돌고있었다   다른 한 시체는 곯아빠진 옛틀에 얽매인  현대시를 주무른다고 설치고있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술에 빠진 달이 천여년동안 빛을 잃지 않았지만 주무르는 현대시는 아직도 서툰 빛이 력력하다 다른 하나는 재생한 나였다 피도 살도  썩을수 없는 혼은 아니였다   고린내   신을 벗고 주앞에 꿇고 13번 기도해도 고린내는  여전하다   십자가의 예수는 이천여년 박혀있어도 깨끗한 발이지만 나의 지친 하루는 목메여 기도해도 고린내만은 싫어진다   천당으로 갈 때 양발 벗고 가야겠다 출처:2017년제1기 목록  
4    <<도라지>>2017년 제3기 목록 댓글:  조회:789  추천:0  2019-07-15
특별초대인-박초란 박초란  숨 (단편소설) 숨을 쉬고 있다는 것(창작후기)  삼인 초대석 금  희 신사 Z의 별장 (단편소설) 남영도 아직도 꿈꾸는 녀자 (수필) 변창렬 꽃나비(외7수)(시) 변창렬 바위(외3수) (시) 수필 마당 -정희정편 루드베키아,루드베키아 나래는 빛을 먹고 자란다 빅토리아호수의 눈물 시조명 - 지영호편 나의 애인(외7수) 우상렬 지영호의 '애인'과 만나보자(비평) 계렬칼럼 리여천 사랑이 뭐길래 단편소설 도  영  원초적인 본능 김향자 새끼줄 잘 꼬시나요 신사명 수막새 그림자찾기 수필 오경희 삐딱함의 멋 안수복 분길이 남태일 국경을 넘어온 헌 가방 재한동포문인협회 성좌문학사 시특집 배국화 편지(외1수) 김재연 아침(외1수) 송연옥 연(외1수) 황해암 참조(외1수) 박춘월 봄의 자취 (외1수) 허순금 섬 김현순 남편(외1수) 신명금 소나무(외1수) 김다정 여백(외1수) 장편소설  량춘식 한몽가(련재1) 막   언  개구리(련재(17) 시인과 시 향기 리호원 (시) 안동인 북방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 문학사 회원 3행시 모음
3    <<도라지>>2017년 제2기 목록 댓글:  조회:760  추천:0  2019-07-15
특별초대인 -홍예화 홍예화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중편소설) 상처의 터전에 희망을 심어(창작후기)  삼인초대석  금 희 이원혼 (단편소설) 남영도 책의 향기에 취했더이다(수필) 변창렬 봄(외9수)(시)   수필마당 - 김경희편  김경희 내두산의 단풍 (수필) 외로움의 빛 니가 날 부르는 소리   시조명 - 윤청남편 윤청남 현재 아리랑(외5수) (시) 김해응 현실인식과과 삶에 대한 성찰(비평) 단편소설  조원  잃어버린 순간들의 모자이크 (단편소설) 현춘산 당첨 계렬칼럼 리여천  욕 속에서 자라다 길림지구 특집 김향화 귀소(수필) 리정철 꿀에서 얻은 사색(수필) 김해숙 매미(수필) 김숙자 사랑으로 가는 길에 나도 한몫 하고 싶다(수필) 김설연 깨달음의 길목에서(수필) 김경애 로천 무도장(수필) 김형권 어린애 웃음(외2수)(시) 리영남 아침 다섯시(외1수)(시) 지미란 암매미(외1수)(시) 리   흠  어둠 속의 빛 (외1수)(시) >출판기념식 특집 전경업 리호원 김응룡 허두남 축사  최룡관 시 지평을 새롭게 연 새 사유의 결정 (비평) 장편소설 막  언   개구리(련재16) 시인과 시 엉겅퀴꽃   김동진 
‹처음  이전 1 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