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탱이의 歸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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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텃밭 정원 디자인하기 댓글:  조회:7070  추천:1  2013-12-11
  ‘텃밭’과 ‘텃밭 정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텃밭’과 ‘텃밭 정원’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특별히 차이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원을 디자인하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텃밭은 ‘먹을 것을 기르는 공간’, 텃밭 정원은 ‘먹을 수 있는 식물로 만드는 정원’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즉, 텃밭 정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텃밭과 달리 다양한 정원의 형태 가운데 하나의 유형으로 봐야 한다. 텃밭이 채소와 과일을 수확하는 공간이라면, 텃밭 정원(키친 가든)은 먹을거리가 되는 식물과 꽃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정원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먹을 것을 키운다, 키친 가든   우리 말로 하자면 텃밭 정원이 되겠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로는 ‘Kitchen Garden’, ‘Vegetable Garden’, ‘Productive Garden’ 등이 쓰인다. 키친 가든이라는 말은 정원에서 수확한 채소와 과일을 직접 부엌에서 요리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무엇인가 수확이 생긴다는 의미에서 ‘프로덕티브 가든’이라고도 한다. 유럽식 전통 키친 가든, 담장의 정원(Walled garden)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키친 가든은 영국에서는 종종 ‘Walled garden’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때 담장은 과실수의 지지대가 돼주기도 하고, 바람을 막아주며,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는 등 다목적 효과를 지니고 있다. 담장의 높이는 상당히 높아서 2미터에서 3미터 정도에 이른다. 영국의 경우 키친 가든을 칭할 때 흔히 ‘월드가든(Walled garde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키친 가든에 사면으로 높은 담장(2미터에서 3미터 정도의 높이)을 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키친 가든에 이런 높은 담장을 쳤을까? 거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1 채소와 과일을 기르기 위해서는 바람의 영향을 가능한 많이 받지 않는 것이 좋다. 높은 담장은 바람을 막는 효과가 뛰어나다. 2 지지대가 필요한 일부 과실수(자두, 배, 사과 등)의 경우 담장에 철망으로 줄을 연결해 과실수의 열매를 잡아 벽에 붙여 키울 수 있다. 3 기타 도난이나 침입에 대한 예방 차원에서도 벽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채소와 과일의 경우 야생동물이 즐겨먹는 먹잇감이 되기 때문에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4 키친 가든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거름을 많이 쓴다. 이때 동물의 분(糞)을 이용할 경우 냄새가 나는데, 높은 담장은 건물과 가까이 있는 키친 가든의 냄새가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21세기의 키친 가든 복고 열풍   유럽 전통 방식의 키친 가든은 대저택을 중심으로 거대한 저택의 식구가 모두 먹을 수 있는 대규모의 농장 형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키친 가든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정원사를 잃게 되면서 점점 쇠퇴했다. 더욱이 대량 생산의 농업방식이 값싼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되면서 키친 가든은 더욱 그 자리를 잃게 된다. 하지만 최근 정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키친 가든은 새로운 형태의 정원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환경 오염으로 인해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 내 손으로 직접 안전하고 신선한 농작물을 길러 먹을 수 있는 이중의 기쁨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담장형 키친 가든이 아니라, 좀 더 화려한 꽃과 채소, 과실수를 함께 키우는 관상으로서의 키친 가든이 더욱 발전하게 된다. 최근 미국 백안관의 정원 역시도 키친 가든으로 재조성이 되는 등, 채소와 과일을 키울 수 있는 키친 가든(텃밭 정원)의 열풍은 전 세계적으로 대단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히 정원이 만들어진 역사보다도 텃밭의 조성이 더 뿌리 깊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식의 텃밭 정원 디자인이 아직은 뚜렷이 제 자리를 잡고 있지 않아, 오늘날의 환경 속에서 적용 가능한 우리식의 새로운 텃밭 정원을 시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텃밭 정원 구성하기   만약 정원 전체를 텃밭 정원으로 만들고 싶다면, 우선 고려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정원을 만들기 전에 아래의 사항들을 먼저 점검해 보자. 1 채소와 과실수를 결정하자. 어떤 식물을 수확하고 키우고 싶은지가 가장 중요하다. 2 땅에 바로 정원을 꾸밀 것인지, 화단 형식으로 땅 위에 구역을 만들어 조성할지를 결정하자. 맨 땅을 이용할 경우에는 땅을 갈아주고 거름을 보강해주는 일이 필수적이다. 화단 형식으로 구성을 할 때는 땅 위에 올라서기 때문에 땅을 갈아주지 않고 직접 만든 거름이나 다목적 거름으로 채워서 사용할 수 있다. 3 최근에는 담장을 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형태의 텃밭 정원이 만들어지는 추세다. 그러나 담장의 기능성이 탁월한 만큼 별도 영역으로 담장을 친 정원으로 구성할지, 자유로운 디자인으로 구성할지에 대한 선택이 필요하다. 텃밭 정원의 가장 큰 매력은 채소의 아름다운 잎과 관상용 꽃의 어우러짐이다. 양배추 잎사귀의 은초록빛과 카네이션의 진홍빛 색감이 보색 대비를 이뤄 아름답다.   Tip point 유럽 전통 키친 가든에서 배우는 노하우 1. 그룹별로 돌려심기 채소의 경우 크게 네 가지로 구별이 가능하다. - 잎채소 (상추, 치커리, 쑥갓) - 뿌리채소 (당근, 양파, 무) - 배추류 (양배추, 배추) - 콩과 식물 (강낭콩, 완두콩) 각각의 도랑에 네 종류의 채소류를 구별해 모아 심고, 다음 해에는 한 칸씩 자리를 바꿔 다시 심어준다. 모든 작물들이 같은 영양소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돌려심기를 해주면 거름의 양을 줄이면서 특정 병충해의 공격도 피할 수 있다. 특히 콩과의 식물은 성장에 필요한 질소 영양분을 땅에 남겨놓기 때문에, 다음 해에 그 자리에 거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채소를 심어주면 효과적이다. 2. 잎채소는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 심어라 채소를 심을 자리를 선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채소가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물을 좋아하는 잎채소를 남향에 심었을 때에는 잎이 타들어가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잎채소는 과실수 밑이나 콩과 식물 등 높이 자라는 식물의 옆에 심어주면 반그늘을 만들어 좀 더 부드럽고 물기가 많은 수확물을 얻을 수 있다. 3. 호박과의 식물은 영양분을 듬뿍 주어야 한다 호박과 같이 영양분을 매우 많이 필요로 하는 식물은 다른 채소와 경쟁하지 않도록 별도의 공간에 따로 심어주는 것이 좋다. 잎채소와 뿌리 채소는 많은 영양분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다목적 거름만으로도 충분하지만 호박, 오이 등의 식물군은 열매를 맺는 데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다. 때문에 동물의 분을 이용하거나 혹은 푹 썩혀 영양분이 많은 거름을 별도로 써주어야 양질의 수확물을 얻을 수 있다. 위에서처럼 돌려심기를 이용해 콩과의 식물을 심었던 자리에 이런 배가 고픈 호박, 오이군의 채소를 심어주는 것 또한 안성맞춤이다. 화단 형식으로 만드는 채소밭       텃밭 정원을 화단의 형식으로 땅 위에 설치하는 방식은 땅을 갈아주지 않고 식물의 특징에 맞게 거름을 선별해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화단으로 만들 때 높이는 20~30센티미터 정도가 적당하고, 가로의 길이는 양쪽에서 모두 손을 뻗었을 때 닿을 수 있을 정도가 좋기 때문에 1.2미터 이상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적당한 간격을 두고 채소를 크게 키우는 것도 좋지만, 특히 잎채소나 허브의 경우는 사진에서처럼 촘촘히 심는 방식도 좋다. 이들 식물을 촘촘히 심으면 성장이 둔해지기 때문에 서둘러 수확해야하는 조급함을 피할 수 있고, 서로가 물기를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물을 주는 양도 줄어들 수 있으며, 또 잡초가 파고들 틈을 줄일 수도 있다. 친환경 텃밭 정원   텃밭 정원의 가장 큰 매력은 건강한 채소와 과일을 수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마트나 시장에서 사는 채소와 과일에 비해 내 집에서 직접 수확한 열매가 맛있는 이유는 농약의 사용 여부에도 있겠지만, 시간의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무슨 이야기일까? 모든 채소와 과일에는 천연의 설탕이 함유돼 있는데, 이 천연의 설탕 성분은 따내는 순간부터 변화하기 시작해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녹말 성분으로 바뀐다. 그런데 농장에서 전문적으로 길러내는 채소의 경우 유통 과정에서 적어도 이틀 내지 삼 일의 시간이 지나야 소비자의 손에 이르기 때문에 그 사이 천연의 단맛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천연의 단맛을 직접 맛볼 수 있는 것은 채소와 과일을 내 손으로 직접 기르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좀 더 안전하고 맛있는 채소와 과일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대한 해답으로 많은 정원사와 농부들은 화학적 농약 사용을 가능한 줄이고 자연 친화적인 방식으로 재배할 것을 권한다. 우선 전문가들이 권하는 몇가지 방법을 귀뜸해 본다. 1. 영양분을 식물에게 직접 주는 것이 아니라 흙에 주자 전문가들은 영양분을 식물에게 직접 주는 것은 위험 요소가 많기 때문에, 흙에 영양분을 주어 흙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이로서 흙이 식물을 키우도록 하는 방법을 많이 권한다.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흙을 갈아엎어 딱딱해진 흙에 공기와 물이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여기에 나뭇잎이나 음식물로 만든 천연의 거름을 다시 넣어주는 흙갈이 방법을 많이 권한다. 2. 우리 집 거름은 우리 집에서 만들자 사다 쓰는 거름에 비해 내 집에서 직접 만드는 거름이 훨씬 더 영양분이 탁월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장소가 허락한다면, 직접 거름을 만들어 텃밭 정원에 이용해 볼 것을 권한다. 3. 식물이 스스로 병충해를 이기도록 기다려주자 병들어가는 식물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식물 입장에서 보면 병충해를 이겨내는 일은 거의 사투에 가깝다. 식물로서도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인 만큼, 이 과정을 조금은 지켜봐줄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식물 스스로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주변에 병균이 찾아올 수 있는 썩은 식물의 잔해를 깨끗이 치워주고, 흙에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등의 조치는 큰 도움이 된다. 4.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꽃을 심어주자 꽃을 보기 위해 심는 관상 식물을 채소밭에 함께 심어주면 여러 면에서 채소의 성장을 도와준다. 예를 들면 카렌듈라(금잔화)와 같은 꽃은 특별한 향기를 지니고 있는데, 이 향기가 흰파리를 쫓아 채소의 줄기 끝에 파리 알을 낳게 하는 현상을 어느 정도 막아준다. 더불어 꽃이 피게 되면 나비와 벌이 날아들고, 이 나비와 벌을 보고 새가 찾아온다. 이 과정에서 서로 먹고 먹히는 천적의 생태 사이클이 생겨나 자연스럽게 병충해 관리가 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컨테이너 키친 가든을 소개합니다   도시의 작은 공간에서도 컨테이너(화분)를 이용하면 텃밭 정원을 만드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주방에서 다 쓰고 버릴 냄비를 활용할 수도 있고, 디자인적으로 세련되게 만들어진 별도의 용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 특히 흙이 귀한 도심에서는 옥상이나 베란다에서도 이 컨테이너를 이용해 작은 텃밭정원을 만들 수 있다. 최근 들어 텃밭 정원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땅이 반드시 필요한 정원이 아니라 작은 화분에서도 얼마든지 재배가 가능해 도시에 매우 적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상추 등의 잎채소와 토마토, 가지 등은 도시인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품목이다. 이런 잎채소와 열매 채소들을 화분에 키우는 것을 컨테이너 키친 가든이라고 한다. 일단 컨테이너 키친 가든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알맞은 크기와 모양의 화분을 고르는 것인데, 이 부분은 선택이 폭이 아주 넓다. 주방에서 쓰다 버린 냄비 등의 용기를 포함해서 스티로폼 박스, 나무 상자, 진흙 화분, 플라스틱 화분 등 무엇이라도 가능하다. 다만 디자인적 관점에서 봤을 때, 다양한 재료의 화분을 너무 많이 섞어놓으면 자칫 지저분해질 수 있으니 한 종류로 통일을 해서 다양한 채소를 심어주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잎채소의 경우는 깊이가 깊지 않아도 되지만, 뿌리 채소(무, 알타리, 당근 등)는 깊이가 적어도 300 밀리미터 정도 되는 깊은 용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텃밭 정원, 아름답게 디자인 하는 법   텃밭 정원의 디자인은 가능한 한 채소와 과실수가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능성을 살리면서 깔끔하게 마무리해주는 요소가 관건이다. 텃밭 정원을 디자인하는 요령에 대해 알아보자. 1. 지지대의 디자인을 차별화 시켜보자 특히 완두콩 등 덩굴이 지는 식물은 지지대가 필수적인데, 이 지지대의 디자인이 텃밭 정원을 완성하는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2. 채소와 꽃식물의 식물 디자인의 차별화 채소에서 피는 꽃도 매우 아름답다. 그러나 그 피어나는 시기가 매우 짧아 관상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때문에 채소의 잎을 배경으로 그 옆에 아름다운 일년생 꽃식물을 관상용으로 함께 배치하면 아름다운 텃밭 정원을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 이때 채소 잎의 색상과 꽃의 색감을 통일하거나 대비시키는 등의 디자인적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 3. 아치나 벤치 등의 구조물을 살려보자 텃밭 정원은 잔손길이 많이 가는 정원이다. 때문에 기능적인 이유에서도 일하는 중간에 잠시 쉴 수 있는 쉼터와 같은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디자인적 차원에서는 텃밭 정원과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소박한 디자인이 편안함을 돋보이게 한다. 4. 아웃도어 리빙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텃밭 정원 최근 들어 텃밭 정원은 아웃도어 리빙에 적합한 형태로 각광받고 있다. 정원에서 직접 수확한 채소를 정원의 식탁에서 바로 먹을 수 있으며 손님 접대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유럽의 경우, 텃밭 정원을 아예 바깥 공간에 설치된 거실의 개념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이 열풍이다. 특히 벽난로 겸 피자를 구울 수 있는 화덕, 싱크대를 곁들여 손님 접대를 위한 바깥 공간으로 활용한다. 정원이 점점 없어지는 도시의 공간에서는 주로 지붕 위에 이런 형태의 정원이 많이 만들어져 새로운 쉼터이자 생활공간으로 조성된다. 텃밭 정원의 매력 속으로   보는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 거기에 건강한 원예활동까지 누릴 수 있는 텃밭 정원은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시골집을 떠올려 보자. 주거공간이 되는 건물의 앞 뒤로 자그마한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수확하고 먹거리로 삼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이다. 이처럼 텃밭 정원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한 정원이지만, 현재로서는 유럽에서처럼 다양하게 발전돼 있지 못해 안타까움이 많다. 보는 즐거움에 먹는 즐거움을 더하고, 더불어 건강한 원예활동까지 함께 할 수 있는 1석 3조의 정원으로 텃밭 정원이 더 많은 도입되어 우리식의 발전이 이뤄지기를 바래본다.
9    물주기는 식물을 키우는 기본 댓글:  조회:4053  추천:1  2013-12-11
식물 관리의 시작, 물주기 요령에 관한 모든 것  정원 디자인은 지속가능하게!   정원을 돌보고 있는 정원사들. 가든 디자이너라면 디자인적 요소뿐 아니라 유지 및 관리가 지속가능한 정원을 구상해야 한다. 정원 디자인은 정원을 관리하게 될 주인의 유지관리 능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노동력을 너무 많이 필요로 하는 디자인의 경우 1, 2년 후에는 원래의 모습을 찾을 길이 없어지고 잡초만 우거진 골칫덩어리가 되기 십상이다. 때문에 일주일에 몇 시간 정도 정원 관리에 시간 할애가 가능한지, 원예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해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원을 디자인 하기 위해서는 식물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다. 나무의 형태, 색상, 질감 등을 고려해 어울리는 식물을 모아 심어주고 때로는 홀로 서게 하는 등의 디자인적 요소를 잘 살려야 정원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디자인적 요소만 생각하다보면 자칫 사후 관리에 대해 미처 고려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 역시도 정원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이런 실수를 종종 범하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아무리 아름다운 디자인일지라도 유지하는 것이 힘겨워 몇 년 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남겨질 정원이라면 그 디자인을 좋은 디자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가든 디자이너로서 참 어려운 숙제는 보기에도 좋아야 하지만 그 유지 또한 효과적인 정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관리라는 측면에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정원을 이용하고 관리하게 될 주인의 성향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다소 난이도 높은 관리를 필요로 하는 정원이라 할지라도 정원 일을 매일 즐길 수 있는 주인이라면 소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아무리 관리가 수월한 디자인이라고 해도 정원을 들여다볼 시간조차 낼 수 없거나, 혹은 원예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면 그 정원은 유지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가든 디자이너는 어떤 성향의 주인이 정원을 이용하고 가꾸게 될지, 즉 디자인을 하기 전에 그 정원을 관리할 주인이 일주일에 몇 시간이나 정원 일이 가능한지, 어떤 원예 기술을 지니고 있는지, 또 어떤 미적인 취향을 지니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 원리는 가든 디자이너뿐 아니라 내 집 정원을 구상할 때도 반드시 체크가 필요하다. 특별한 원예의 기술?   원예는 오랜 시간 동안의 과학적인 공부를 필요로 한다. 원예와 식물 재배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유럽의 경우, 유명 식물원에서 전액 장학금 제도를 실시해 이론과 실기를 완벽하게 갖춘 유능한 정원사를 배출해 내고, 이런 정원사들이 각 정원으로 파견되어 그들의 정원 문화를 이끌어가는 핵심이 된다. “저는 식물을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매번 죽이기만 하거든요?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평소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원예의 기술이라는 게 있는지, 어떻게 해야 식물을 죽이지 않고 키울 수 있는지의 노하우를 묻는 질문이다. 사실 저마다 특별한 재능을 한 두 가지는 지니고 있듯 식물을 유난히 잘 키우는 분들이 있다. 영어권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초록 손(Green fingers)’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다 죽어가는 식물을 가져다 주어도 살려 놓고, 꽃을 피워내는 일도 종종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이 기적같은 일은 과연 특별한 재능에 의해서일까, 아니면 학습 효과일까? 그간 이런 분들을 종종 목격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후자다. 특별한 어떤 재능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경험에 의해서든, 혹은 학습에 의해서든 꾸준한 노력이 분명 그 안에 숨어 있다. 늘 식물을 들여다보고 관심을 갖다보면 공부를 하게 되고, 또 실패를 여러 번 거듭하면서 나만의 노하우가 생긴다. 그리고 이런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초록손’들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만약 내 손을 거치는 식물들이 계속 죽어나가고 있다면 아마도 식물에게 관심을 주다, 말다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식물을 사랑했거나, 아니면 그릇된 정보를 적용했거나, 혹은 식물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로 저절로 자라 줄거라고 터무니없이 믿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하다. 식물 관리의 핵심 요소   그렇다면 식물을 잘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수백 가지가 넘고, 각 식물의 특성에 따라 또 다르기 때문에 간단한 답을 내놓기 힘들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봤을 때, 식물의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적절한 물주기와 영양공급, 잡초의 관리, 그리고 병충해 예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가운데 이번 장에서는 우선 식물의 생존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물주기에 대해 먼저 다뤄 보려고 한다. 물주기에 관한 오해와 진실   모든 식물은 물이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물주기가 다른 무엇보다 식물에게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물주기 상식이 가끔씩 너무 지나치거나 혹은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이미 수년간 자리를 잡은 나무나 식물(잔디를 포함)이라면 가뭄이 온다고 해도 특별한 물주기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잔디의 경우도 오랜 가뭄에 누렇게 타들어 가기는 하지만, 비가 다시 내리면 이내 초록의 잎을 틔운다. 1. 정원의 식물은 매일 물을 주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정원 안의 모든 식물에게 매일 물을 줄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자연 상태의 강수만으로도 충분한데, 다만 봄과 여름에 가뭄이 너무 지독하게 찾아오게 되면 인공적으로라도 물주기를 해주는 것이 좋다. 2. 가뭄 때 식물은 말라 죽는다? 가뭄이 찾아왔을 때 식물에 무조건 물을 주는 것이 좋을까? 이미 몇 년째 자리를 잡은 나무, 관목, 장미, 덩굴식물들은 대부분 그 뿌리가 땅 속으로 매우 깊이 파고 들어 있어 설령 가뭄이 지속된다고 해도 땅 속 깊은 곳의 습기를 빨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물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들 식물의 경우에도 식물을 새롭게 심었거나 옮겨 심었을 때에는 심고 난 직후 충분한 물주기가 필요하다. 3. 잔디는 매일 물을 주어야 한다? 잔디는 물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식물 중 하나다. 특히 가뭄이 들 경우에는 잔디가 누렇게 말라 죽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스프링쿨러 등을 이용해 물주기를 지속하는데, 가뭄이 지나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잔디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초록의 잎을 피워 낸다. 결론적으로 가뭄에 물소비가 심한 스프링쿨러 등을 이용해 잔디에 매일 물을 주는 것은 물 낭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누렇게 타들어 가는 잔디를 지켜봐야 하는 정신적 고통이 따르기는 하지만, 조금만 참아준다면 잔디 스스로 강수량에 맞춰 대부분 다시 잘 살아난다는 것을 알아두자. 4. 정원 안의 모든 식물에게 똑같은 물을 주어도 될까? 정원에는 매우 다양한 식물군이 함께 살고 있다. 그 중에 어떤 식물은 물을 좋아해서 매일 비가 내리는 것을 좋아하지만(열대우림 식물군), 어떤 식물은 몇 달씩 비가 내리지 않아도 거뜬하게 잘 자란다(다육 식물군). 그런데 이렇게 서로 다른 특성의 식물이 함께 살고 있는 정원에 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양의 물주기를 한다면 결국 어떤 식물인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정원 전체에 스프링쿨러식의 흝뿌리기 물주기는 효과적이지 않다. 식물 특성에 맞게 부분적으로 알맞은 물주기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다. 가뭄에 강한 식물은 심는 방법은 물을 절약할 수 있는 정원으로 최근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가장 좋지 않은 물주기는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닌 식물들을 모아놓고 같은 시간, 같은 양의 물을 매일 주는 방식이다. 식물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따른 물주기의 시기, 양, 방식 또한 모두 달라야 한다. 효과적인 물주기 요령   그렇다면 효과적으로 식물에게 물을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앞서 말한 대로 식물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우선 식물의 특성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물주기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물주기 요령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스프링쿨러식의 흝뿌리는 물주기는 지난친 물 낭비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물을 싫어하는 식물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위로 주변을 적시기 때문에 효과적이지 않다. 사진에서처럼 물뿌리개를 이용해 필요한 식물에게 정확히 물을 전달해 주는 방식이 가장 좋다. 1. 물주기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이 적당하다 식물에게 물을 주는 시기는 일반적으로 선선한 기온이 남아 있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이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간은 뜨거운 낮보다 땅이 습기를 좀 더 오랫동안 머금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뿌리가 물을 빨아들일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뜨거운 한낮에 물을 주면 물방울이 잎에 남겨지곤 하는데 이 물방울들이 햇볕을 만나면 일종의 돋보기 효과가 일어나 잎에 화상을 입히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 유난히 달팽이의 공격을 많이 받는 식물은 아침에 물을 주자 배추와 같이 잎이 유난히 부드러워 달팽이와 민달팽이의 공격을 많이 받는 식물은 가급적 저녁이 아니라 아침에 물을 주는 것이 좋다. 저녁에 물을 주면 땅이 밤새도록 물기를 머금게 되는데, 이는 햇볕을 좋아하지 않고 습기를 좋아하는 달팽이들의 활동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물 낭비를 가장 줄일 수 있는 물주기 방법은? 물이 필요한 부분은 잎이나 꽃이 아니라 뿌리다(물론 일부 열대식물은 잎에 물을 주는 것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때문에 물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식물 전체에 흝뿌리듯 물을 주는 것보다는 물이 뿌리 밑으로 곧바로 내려갈 수 있도록 뿌리 크기 정도로 원을 만들어 그 주변에 둔덕을 쌓은 다음, 원 안으로만 물을 주는 방법이 좋다. 이렇게 되면 물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 낭비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혹은 식물을 화분 채 심은 다음, 그 화분 속으로만 호스를 연결해 물을 흠뻑 주는 방법도 많이 사용된다. 4. 매일 물을 주는 것보다 주 단위로 흠뻑 주자 매일 흝뿌리기식으로 물을 주는 것보다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뿌리에까지 깊게 물이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충분히 물주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다. 충분하지 않은 물을 매일 주게 되면 뿌리는 물을 찾아 땅속으로 좀 더 깊게 파고드는 것을 포기하고 표면에 있는 물을 흡수하기 위해 뿌리의 깊이를 얕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식물은 더욱 가뭄에 약해지고, 인공적인 물주기 없이는 생존이 힘들어지게 된다. 인공적인 물주기가 꼭 필요한 상황   앞서 대부분의 식물은 인공적인 물주기 대신 자연 상태의 강수량만으로도 생존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특별한 경우 반드시 인공적인 물주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1. 새롭게 심은 식물 이제 막 심은 식물은 그 뿌리가 땅 속 깊이 파고들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스스로 물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더불어 물을 주어야만 건조한 흙이 수분과 함께 뿌리 사이에 파고들면서 좀 더 빨리 뿌리가 정착할 수 있도록 돕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식물을 새롭게 심었거나 옮겨 심었을 때에는 충분한 물을 주어야 한다. 2. 과일채소와 잎채소는 가장 물을 좋아하는 식물 딸기와 같은 과일채소나 상추와 같은 잎채소는 물을 가장 좋아하는 식물군이다. 이런 식물들의 경우 특히 꽃이 피는 시기와 열매를 맺어야 할 시기, 혹은 잎을 성장시킬 때에 물이 부족해지면 열매의 상태가 매우 나빠지거나 잎채소의 경우에는 물기가 많은 초록의 잎을 만드는 대신 딱딱하게 잎을 굳게 만든 다음, 아예 씨앗을 맺는 일에 힘을 쓰게 된다. 때문에 이런 수확이 가능한 식물을 심었다면 별도의 충분한 물주기가 꼭 필요하다. 3. 건물 벽에 붙여 심은 덩굴식물 담장에 붙어 꽃을 피우는 장미덩굴이나 클레마티스(으아리) 등은 정원을 매우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요소가 된다. 하지만 이런 덩굴식물을 담장이나 건물의 벽에 붙여 키울 때에는 반드시 그 뿌리가 건물로부터 45센티미터 이상 떨어져야 한다. 처마선 안 쪽으로는 빗물이 잘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뿌리내린 곳은 다른 땅보다 매우 건조하므로, 덩굴식물을 이렇게 심을 수밖에 없었다면 규칙적인 물주기를 통해 물을 보강해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이제 막 싹을 틔운 식물 이제 막을 싹을 틔웠거나 혹은 온실에서 자라다가 바로 옮겨진 연약한 식물들은 조금 더 기술적인 물주기가 필요하다. 어린 식물들은 잎에 물기가 남아있게 되면 습기를 좋아하는 균들에게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잎에는 물을 주지 않고, 흙에만 물을 주는 방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샤워꼭지와 물뿌리개보다는 호스 파이프의 물을 이용해 식물이 있는 주변의 땅을 적셔주는 방법이 더 적절하다. 5. 상록침엽수에는 더 많은 물이 필요하다 잎이 좁은 상록침엽수 중 일부는 건조함을 잘 견디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물기를 매우 좋아한다. 때문에 오히려 낙엽수에 비해 상록침엽수의 경우는 물주기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6. 새롭게 깐 잔디 앞서 밝혔듯이, 잔디는 가뭄에 누렇게 타들어 가는 듯해도 비가 오면 다시 회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자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2,3년의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새롭게 잔디를 깔았다면 첫해에는 가뭄에 타들어 가지 않도록 물주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 7. 컨테이너에 심은 식물 흙에서 자라는 식물보다 컨테이너라는 제한된 공간에 뿌리를 두고 자라는 식물은 좀 더 많은 물주기가 필요하다. 건물 벽에 걸어두는 행인 바스켓은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작은 화분 안에 식물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만큼 물의 증발이 극심하다. 봄과 가을에는 하루에 한번씩, 여름철에는 하루 두 번 이상의 물주기가 필요하다. 물주기를 줄이기 위해 인공적인 젤을 투입해 수분을 머금고 있을 수 있게 하거나 혹은 오목한 접시를 화분 아래에 묻어 물이 조금 더 오랜 시간 담겨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물주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   같은 식물이라고 해도 환경에 따라 더 많이 물을 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그렇다면 물주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1. 정기적으로 흙을 관리해라 건강한 흙은 공기층이 충분하고 양질의 영양분이 풍부하다. 딱딱하게 굳어진 땅은 물을 주어도 그대로 쓸려 내려가 버리고 만다. 공기층이 충분히 확보된 폭신하고 건강한 흙은 습기를 머금고 있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지기 때문에 식물의 뿌리가 습기를 빨아올릴 시간 여유도 충분해진다. 2. 가뭄에 강한 식물을 심어주자 식물은 저마다 타고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는 물주기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자생력이 강한 식물군(다육과, 지중해 지역을 자생지로 둔 관목과 초본식물 일부)이 있다. 이런 식물을 잘 이용하면 지나친 물 소비를 줄일 수 있고, 물주기에 들어가는 노동력도 줄일 수 있다. 최근에는 아예 가뭄에 강한 식물군만을 모아 자갈 위에 키우는 ‘자갈정원(Gravel garden)’이 큰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자갈 화단 디자인하기 참조). 3. 두터운 멀칭으로 수분을 감싸주자 흙 위를 두텁게 덮어주는(7~15cm) 멀칭은 뜨거운 날씨에 흙 표면의 수분이 빠르게 증발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준다. 특히 깊은 뿌리까지 물이 내려갈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기 때문에 두터운 멀칭만으로도 물주기의 양을 충분히 줄일 수 있다. 4. 잎이 넓은 식물을 심어 자연스러운 그늘을 만든다 큰 잎을 지닌 초본식물들은 식물 스스로 땅을 덮어 자연스럽게 멀칭의 효과를 가져온다. 또 잎이 넓은 식물은 꽃과 다른 관상의 효과를 줄 수도 있기 때문에 관상과 기능을 위해 건조한 식물 주변을 잎이 넓은 식물로 감싸주는 디자인도 물 절약을 노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된다. 5. 인공적인 젤을 이용해 수분을 오래도록 머금게 한다 흙을 향상시킬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찾을 수 없을 때, 혹은 컨테이너나 행인 바스켓과 같이 한정된 공간에서 식물을 키워야 할 때에는 인공적인 젤을 이용해 수분을 조금 더 머금을 수 있도록 조치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인공 젤은 가까운 꽃가게나 식물 시장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걸어두는 화분, 행인 바스켓의 경우 공중에서 수분이 더 빠르게 증발되기 때문에 뿌리 밑 부분에 아예 오목한 작은 접시를 넣어두면 물을 주었을 때 곧바로 빠져나가지 않고 접시 안에 고여서 다시 식물의 뿌리에 물을 공급해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물주기는 식물을 키우는 기본이다   식물을 고를 때는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어느 곳에 둘 것인지, 얼마만큼 관리를 할 수 있을 것인지, 또 집안 분위기와 어울리는지 등의 다양한 고려가 있어야 실패할 확률이 적어진다. 식물의 물주기는 식물을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면서 가장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또 가장 쉽기도 하지만 식물을 죽이는 가장 큰 원인이 되기도 때문에 반드시 기초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위에서 밝힌 방법은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식물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특별한 수종의 나무나 식물군을 선택했다면 거기에 맞는 특별한 물주기가 필요하다.그런데 이런 공부에 앞서 식물의 형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 식물의 특성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잎에 보송보송한 솜털이 많은 식물은 잎에 물이 닿는 것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뿌리에만 물을 주는 것이 좋다. 또 딸기와 같은 식물은 물을 매우 좋아하지만 잎이나 열매에 흙탕물이 닿게 되면 물러져 썩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물을 주되, 물이 튕겨서 잎이나 열매에 닿지 않도록 지푸라기(Straw)를 깔아준다. 바로 여기에서 나온 이름이 스트로베리(Strawberry)이다. 더불어 잎이 두터우면서 광택이 나는 경우 대부분은 강렬한 햇살을 반사시키기 위한 작용이므로 이런 식물이라면 자쟁지가 뜨거운 사막형이거나 바닷가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의 경우는 동백나무의 잎을 상상해보면 쉬울 것이다. 이런 식물이라면 역시 가뭄에도 비교적 잘 견디는 특징이 있으므로 매일 지나치게 물을 주는 것은 오히려 해롭다. 물을 좋아하는 식물들의 특징은 일단 잎이 매우 넓고 무르다. 잎 자체가 물기를 머금고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있는데, 이런 식물을 들여놓았다면 좀 더 많은 물주기가 필요한 셈이다. 어떤 일에서든 편하고 쉽고, 그러면서 아름답기까지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식물의 관리에 있어서도 특별한 왕도는 없다. 자주 식물을 들여다보고, 그 식물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노하우의 키워드가 된다.   글/사진 오경아   글쓴이 오경아는 16년 간의 방송작가 활동을 접고 2005년 영국으로 가든 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고, The University of Essex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친뒤, 지금은 같은 대학에서 조경학 박사과정 중에 있다. 2012년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는 <오가든스>라는 정원관련 종합회사를 설립, 가든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소박한 정원], [영국정원산책],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가 있다.
8    식인조개로 알려진 대왕조개 댓글:  조회:4358  추천:1  2013-12-10
  사람을 잡아먹는 조개가 있다고 한다면 대개의 사람들은 주먹 크기만한 조개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어울려 살고 있어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가끔 있다. 인도네시아 마나도에서 관찰한 대왕조개이다. 패각을 최대한 벌리고 있다가(왼쪽사진) 다이버가 다가가자 패각을 순간적으로 다물고 있다. 이때 패각 사이에 몸의 일부가 끼이게 되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식인조개로 알려진 대왕조개 일본과 대만의 중간 수역, 수면에서 200m에 이르는 광범위한 수심에 성체의 길이가 1.5m 무게가 200kg에 이르는 대왕조개(학명 / Tridacna gigas)가 살고 있다. 이들은 다른 조개와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입을 벌리고 먹잇감을 찾다가 위기를 느끼면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어 버린다. 만약 별다른 장비 없이 자맥질을 하는 사람이 부주의로 조개 입에 신체 일부가 물리게 되면 그 사람은 수면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물속에서 최후를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에게 식인조개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이 붙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마나도와 필리핀 아닐라오 해역 등에서 대왕조개를 관찰한 바에 의하면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할 정도의 힘은 아니었지만 사전 지식 없이 건드렸다가 물속에서 신체의 일부가 물리면 굉장히 당황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생하는 조류가 만든 대왕조개의 화려한 색 대왕조개의 외투막은 껍질을 다 닫지 못할 정도로 두껍게 발달되어 있는데 패각 밖으로 늘어지는 외투막에는 주산텔래(Zooxanthellae)라고 부르는 공생 조류가 살고 있다. 외투막의 색이 녹색, 파란색, 갈색 등을 띠는 것은 공생조류로 인해 나타나는 색이다. 대왕조개들은 공생조류들이 광합성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낮 시간동안에는 패각을 최대한 열고 있다. 공생조류들은 광합성을 통해 대왕조개에게 탄수화물 등의 영양분을 공급한다. 대왕조개 외투막의 색이 녹색, 파란색, 갈색 등을 띠는 것은 공생조류로 인해 나타나는 색이다. 용도도 다양해 대왕조개는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 된다. 원주민들은 한 번의 자맥질로 대왕조개를 뒤에서 안고 통째로 건져 올린 다음 뒷부분의 딱딱한 껍데기 사이를 칼로 찌르면 조개 몸속에 있는 물이 빠지면서 조개 입이 벌어진다. 이때 칼을 가지고 하얀 조갯살을 발라내는데 회를 좋아하지 않는 원주민들도 대왕조개 살은 즐겨 먹는다. 살을 다 발라내고 남은 껍데기는 세면대와 같은 다양한 생활용품이 된다. 이들 껍데기는 수집을 좋아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약간의 가공을 거쳐 장식품으로 판매된다. 대왕조개 원형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지만 우리는 대왕조개의 부산물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바로 1990년대 중반부터 진주의 대중화에 이바지한 핵진주의 핵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 바로 대왕조개의 핵과 껍데기 가루이다. 부산해양자연사 박물관에 전시중인 대왕조개의 패각이다. 살을 발라낸 대왕조개 패각은 장식물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국제 협약에 따라 보호받는 대왕조개 식용, 장식용, 공업용으로 수요가 증가하면서 현재 대왕조개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부속서Ⅱ에 등재되어 있다. CITES(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ed Species of Wild Fauna and Flora)는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상업적인 국제거래를 규제하고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채택된 협약이다. 1973년 3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채택되었기에 워싱턴 협약이라고도 한다. 1996년을 기준으로 134개국이 가입해 있으며 우리나라는 1993년 7월 가입했다. CITES 에 의해 규제되고 있는 동식물은 약 3만 7,000종이며, 이들은 보존의 시급성과 중요도에 따라 부속서 Ⅰ, Ⅱ, Ⅲ으로 분류되고 있다. 부속서 Ⅰ은 멸종 위험의 정도가 가장 높은 종을, Ⅱ는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지만 그 거래를 엄격하게 규제하지 않으면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 종을, Ⅲ는 거래의 통제를 위하여 다른 회원국의 협력이 필요한 종을 열거해 두고 있다. 패각을 벌리고 있는 대왕조개(왼쪽사진)와 패각을 다물고 있는 대왕조개의 모습을 비교해봤다. 방휼지세(蚌鷸之勢)? 방휼지세(蚌鷸之勢)는 중국 고사에 나오는 말로 도요새가 조갯살을 파먹기 위해 긴 부리를 조개 입 사이에 넣었다가 조개가 입을 다물어 버리는 바람에 도요새와 조개 모두 꼼짝 못하고 있는 형세를 말한다. 이때 지나가는 어부가 버둥거리는 조개와 도요새를 별다른 노력 없이 잡았다는데서 어부지리(漁父之利)라는 고사가 생겨났다. 대왕조개를 이야기 하며 방휼지세의 고사를 끄집어 낸 것은 조개가 도요새의 부리를 물어 버리듯 대왕조개의 입에 사람의 신체 일부가 끼이게 되면 사람이 조개 입에 물린 도요새 신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쿠버 장비 없이 손목에 작살을 단단히 묶은 채 물고기 사냥을 하다가 물고기를 겨냥하고 쏘았던 작살이 바위틈에 꽉 끼이는 바람에 작살을 빼내지도 손목에 묶은 결속을 풀지도 못한 채 물속에서 혼쭐이 난 적이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 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에서 몸이 물속 어딘가에 끼여 있다면 그 만큼 공포스러운 일도 드물 것이다. 이전 이미지 화려한 색의 대왕조개  
7    수요공급으로 본 중국의 식문화 형성 댓글:  조회:4302  추천:0  2013-12-09
  특정 문화권에 다양한 식문화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다양한 음식을 공급할 수도, 수요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가장 발달된 식문화를 갖게 된 배경 또한 여기에 있다. 중국이 가장 발달된 식문화를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출처: gettyimages> 먼저 수요 측면을 살펴보자. 중국은 19세기 초까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였다. 산업혁명이 일어나 서양이 부강해진 최근의 200여 년을 제외하고는 중국은 줄곧 세계경제의 중심 국가였다. 영국의 경제학자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에 따르면, 1820년대에도 중국의 GDP 규모는 전 세계 GDP 총액의 28.7%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4대 문명이 태동한 이래 중국이 줄곧 가장 부강한 나라들 중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수요와 공급이 음식문화를 부흥시키다 중국인은 막강한 경제력으로 왕족이나 귀족 이외의 다양한 부유층과 중산계급을 형성했다. 이로 인해 음식문화에 대한 다양한 수요를 이끌어냈다. 일례로 중국 코스 요리에 최고봉으로 평가 받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은 중국의 궁정요리가 아니었다. 만민족과 한민족의 요리 중 최고의 요리를 결합해 만든 이 코스 요리는, 중국 지방의 부호가 중앙에서 온 관리를 접대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연회요리이자 접대요리였다. 즉, 상인들의 음식이었던 것이다. 중국은 일찍이 외식문화도 발달했다. 소위 음식점이라 부르는 밖에서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은 한나라 때부터 번성했다. 물론 음식점의 태동은 그 이전부터였는데, 문헌에 따르면 기원전 춘추전국시대의 인물인 공자 또한 외식을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러한 사실은 유럽의 경우 근대에 와서야 외식 문화가 발달했다는 점과 비교할 때, 중국 서민들의 음식문화가 얼마나 일찍부터 발달했는지 확인시켜준다. 어느 나라든 궁이나 귀족들을 위한 요리는 다양한 형태로 발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서민의 식문화를 형성한 나라는 일찍이 중국밖에 없었다. 이처럼 중국의 식문화가 왕가와 귀족층에 국한된 문화가 아니라 중국의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중국의 막강한 경제력에 근거하여 음식에 대한 다양한 계층의 수요가 형성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양한 식문화에 대한 수요가 형성되어 있다고 해서 훌륭한 식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부합하는 공급이 있어야만 한다. 중국은 다양한 식문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공급이 가능했던 대제국이었기에 우수한 식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기후 조건이 전혀 다른 중국 각지에서 다채로운 식자재가 공급되었기에 가능했다. 기후 조건이 전혀 다른 중국 각지에서는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했는데, 쌀농사에 적합한 양자강 지역에서는 쌀을 주식으로 한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출처: Wikipedia> 황하 강 이북 지역에는 쌀농사가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육류를 중심으로 한 요리문화와 피, 조, 콩을 주로 활용한 음식문화가 형성되었다. 한편 쌀농사에 적합한 양자강 지역에서는 쌀을 주식으로 한 음식문화가 발달하였으며, 해변에서 고기를 잡기 쉬운 환경에 놓인 중국 남부 지역에서는 생선을 활용한 요리가 발달하였다. 서역과 인접한 내륙 지역은 밀을 활용한 다양한 요리법이 일찍부터 형성되어 있었다. 이렇듯 중국은 남과 북, 내륙지방과 해안지방에 걸쳐 해당 지역에서 쉽게 조달할 수 있는 식자재를 활용해 다양한 요리문화가 형성하고 있었으며, 이렇게 다양한 식자재를 활용한 요리들이 중국의 우수한 식문화 형성에 중요한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중국문화의 높은 개방성이 발달된 식문화를 만들다 하지만 지금까지 설명한 경제력은 식문화를 발달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아무리 풍부한 경제력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다양한 음식문화에 대한 수요가 형성되고 각 지역으로부터 다양한 식자재가 공급되었다 하더라도, 먹거리를 대하는 개방적인 태도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결코 우수한 식문화를 형성할 수 없다. 이슬람 문화에는 어떤 것들은 결코 먹어서는 안된다는 문화적 규율이 있다. 이러한 요인은 식문화 발달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출처: Wikipedia> 중국만큼 막강한 경제력을 갖고 있던 인도와 이슬람문화권에서 다채로운 식문화가 형성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도나 이슬람은 ‘이러 이러한 것들을 결코 먹어선 안 된다’는 엄격한 문화적 규율이 있다. 불교문화권 역시 육식을 금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음식의 낭비를 지양하는 문화이다. 이러한 문화적, 종교적 규율은 분명 해당 지역의 여러 사회문화적 요인에 의해 형성된 불가피한 부분도 있지만, 식문화 발달이라는 측면에서는 결코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먹거리에 대한 금기 사항은 다양한 식자재가 도처에 널려 있다 하더라도 이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문화가 형성되지 못하기 만드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인도나 이슬람 문화권과는 달랐다. 중국의 유교나 도교는 여타 종교인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와는 달리 먹는 것에 대한 특별한 금기 사항이 없다. 이러한 유교와 도교 문화 속에서 살아온 중국인들은 먹거리 문화에 있어 그 어떤 지역보다 높은 개방성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중국 식문화의 높은 개방성은 중국요리를 가장 세계화된 요리로 거듭나게 했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중국음식점은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유, 세계 여러 민족이 중국음식을 즐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인은 어느 지역을 가던 해당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자재를 활용해 멋진 요리로 탄생시킬 수 있는 경험과 식문화에 대한 높은 개방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불균형은 왜 생기나 탕수육은 어떻게 탄생한 음식일까? <출처: Lusheeta at en.wikipedia.org> 그런데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중국음식인 탕수육은 의외로 경제적 요인으로 탄생했다. 19세기 중엽 청나라 때 전개된 글로벌 불균형이 탕수육 탄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이란 세계적인 경상수지 불균형 상태로 정의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다시 주목 받은 바 있다. 글로벌 불균형은 국가 간의 상품이나 용역의 거래 결과를 기록한 경상수지를 통해 가늠할 수 있는데, 모든 경상수지 흑자국의 흑자액과 모든 경상수지 적자국의 적자액의 합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글로벌 불균형의 예를 들어 보자. A라는 나라와 B라는 나라만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만약 두 나라가 서로 비슷한 수준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교역하여 A는 B에 100을 수출하고 90을 수입해왔다면, 이 경우 A국가의 경상수지 흑자는 10을 나타낼 것이고, B국가의 경상수지 적자는 10이 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경상수지 흑자국의 흑자액과 모든 경상수지 적자국의 적자액의 합을 통해 파악하는 글로벌 불균형은 20 수준이다. 반면, 두 나라의 교역방향이 편향적으로 전개되어 A가 B에 100을 수출하고 10만큼만 수입했다면, A는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90일 것이고, B는 적자 규모가 90일 것이다. 이렇게 편향된 교역이 전개되었을 경우 글로벌 불균형은 180(A국의 흑자액 90+B국의 적자액 90)이 된다. 국가 간 교역의 결과가 한 쪽은 수출 위주로 다른 한 쪽은 수입 위주로 전개될 경우 글로벌 불균형은 증가한다. 실제로 2008년, 전 세계 경상수지 적자국가의 총 적자액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43%에 달했으며, 전 세계 경상수지 흑자국가의 총 흑자액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4%에 달했던 적이 있다. 이러한 수치는 당시 글로벌 불균형이 왜 전 세계적인 문제로 인식되었는지 확인시켜준다. 영국과 중국 간의 글로벌 불균형, 아편전쟁 영국인들은 17세기에 막강한 부를 축적하면서 차 문화를 즐기기 시작했다. <출처: wikipedia> 19세기 중반에 있었던 글로벌 불균형은 영국과 중국 간에 유발되었다. 영국인들은 1689년 동인도회사 설립 이후 막강한 부를 축적하면서 차 문화를 즐기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 차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막대한 양의 은을 주고 중국으로부터 차를 수입해 가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액을 막기 위해 처음에는 관세를 부과해 차 수입을 줄이려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영국은 자신들이 인도에서 생산한 모직물을 중국에 수출하여 이러한 경상수지 적자폭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인들은 주로 비단이나 명주로 된 옷을 즐겨 입었으며, 동물의 털로 만든 모직물은 오랑캐들이나 입는 저급한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의 모직물 수출은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다. 결국 엄청난 무역 적자에 시달린 영국 정부와 영국 상인들은 중국에 아편을 팔기로 결정했다. 당시 영국은 이미 인도의 대부분의 땅을 식민지로 점령한 상태라서 이 광활한 대륙에 아편을 심어 중국에 판매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청나라 옹정제는 전국에 아편을 금한다는 명령을 내렸지만, 중국인들 사이에서 아편은 이미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해 군인, 상인은 물론이고 청나라의 고관대작들도 아편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황제인 도광제마저 아편을 하였다. 영국은 이러한 아편무역을 통해 18세기의 막대한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19세기에 드디어 무역흑자를 기록하게 된다. 즉 무역 불균형을 극복한 것이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해지자, 중국 정부는 아편을 근절하기 위해 임칙서를 등용하기에 이르렀다. 임칙서는 외국 상인들의 아편 장사를 막기 위해 영국 상인이 주둔하던 지역을 포위하고 음식 공급을 막았다. 결국 영국 상인들은 임칙서에게 자신들이 보유한 아편을 모두 내놓게 되었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아편을 내놓긴 했지만 앞으로 아편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는 작성하지 않고 마카오로 갔다. 즉, 아편 수출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역 불균형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돈벌이의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편전쟁 당시 광저우에서 싸우고 있는 영국군과 중국군의 모습 <출처: Wikipedia> 청나라와 영국 상인 간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결국 1816년 12월 영국함대와 청나라 함대 사이에 사소한 전투가 전개되었고, 이 과정에서 임칙서는 영국과의 모든 무역을 차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소식이 영국 본토에 전해지자 영국 정부 역시 중국과의 전쟁을 감행해야 할지를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1840년 영국 의회는 찬성 271표, 반대 262표의 근소한 차이로 군비지출안이 승인되고 같은 해 5월 전쟁을 공식 선포했다. 1840년 4월 25일 더 타임스(The Times)는 영국 의회가 결정한 이 전쟁을 ‘아편전쟁(Opium War)’이라고 명명했다. 영국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인도에 주둔한 병력 4천여 명과 함대 18척을 중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중국 정부는 처음엔 비웃었다고 한다. 19세기 이전까지 세계 최강의 기술력과 경제력을 갖고 있던 중국이었기에 영국의 도발을 쉽게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청나라 군대의 참패였다. 영국 함대는 중국 연해 지방의 주요 도시인 광저우, 창하이호, 닝보, 상하이 등지를 차례차례 점령해갔으며, 급기야 청의 수도인 베이징 바로 밑에 있는 텐진까지 장악했다. 뒤늦게야 청나라는 영국정부와 정식으로 강화조약을 추진하여 1842년 8월 양국 간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당시 강화조약의 주요 내용은 홍콩을 150년 간 영국에 넘겨주고, 광저우를 비롯한 5개 항구를 개항하여 자유로운 무역을 보장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조약으로 인해 중국에서 자유롭게 상행위를 수행할 수 있게 된 수많은 영국인들이 중국 본토에 상주하게 되었다. 글로벌 불균형이 만들어낸 음식, 탕수육 영국인들이 사용하기에 어렵고 불편한 젓가락 문화는 탕수육이 탄생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출처: Wikipedia> 이렇게 해서 중국에 상주하게 된 영국인들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바로 음식 문제였다. 이전에는 중국 본토가 아니라 중국 인근의 선상이나 영국인 상관에 잠시 거주하며 영국에서 미리 가져온 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하지만 중국 본토에서 장기간 거주하기 위해서는 중국인들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어야 했고, 포크와 숟가락을 포기하고 중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도구인 젓가락을 써야 하는 상황이 늘어났다. 영국인들에게는 음식 못지않게 이 불편하기 그지없는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영국 상인들은 중국 정부에 젓가락의 불편함을 공식적으로 제기하기도 하였다. 자신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일부러 불편한 도구를 제공했느냐는 것이다. 결국 중국은 영국인들의 입맛에 부합하는 음식을 만들어보자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이와 함께 젓가락 사용에 서툰 영국인들이 쉽게 집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개발하려고 노력했다. 중국인들은 영국인들이 육식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주목해 가장 주된 식재료로 육류를 택했다. 여러 육류 중 돼지고기가 최종 낙점되었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 영국인들이 장기간 거주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가장 쉽게 공급할 수 있는 육류인 돼지고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 고기를 간장, 후추 등으로 간을 해 가루를 입혀 기름에 넣어 튀겨내었다. 그리고 그 위에 설탕과 간장, 소금 등으로 간을 내고 각종 야채를 볶아 함께 제공하였다. 이렇게 탄생한 음식이 ‘달고 신맛의 고기’라는 뜻의 탕수육이다. 탕수육을 맛본 당시 영국인들은 극찬을 보냈다고 한다. 다른 중국음식처럼 불편하고 어렵게 젓가락질을 할 필요가 없이 포크로 찍어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인들이 즐겨 먹는 육류를 주된 식재료로 사용하였고, 입안에서 감도는 달콤하고 시큼한 맛을 느낄 수 있으니 계속해서 탕수육을 즐길 수 있었다. 탕수육은 삽시간에 중국에 머무르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처럼 탕수육의 탄생은 글로벌 불균형으로 인해 유발된 청나라와 영국 간의 전쟁의 결과, 영국 상인들이 중국본토에 상주하게 되면서 탄생한 음식이다. 결국 탕수육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지게 된다. 19세기 인천을 통해 조선과 교역을 하던 중국인들을 통해 전해진 이후로 한국에서도 탕수육은 가장 사랑받는, 가장 친근한 중국요리가 되었다. 국가 간의 무역 불균등 정도를 나타내는 글로벌 불균형은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 어떤 형태로든 심각한 경제문제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19세기 영국과 중국 간의 글로벌 불균형이 결국 전쟁으로까지 치달은 것은 이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국제사회에 커다란 문제를 안겨주는 글로벌 불균형이 오늘날 전 세계인이 즐겨 먹는 대표적인 중국음식 중 하나인 탕수육을 고안하게 만든 가장 큰 배경이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한 것 같다.
6    죄수의 딜레마 댓글:  조회:3007  추천:0  2013-12-06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 국방성은 미합중국의 공적 전투와 안보를 위한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하여 법인 ‘랜드(RAND Corporation)’를 설립했다. 랜드에서 수행한 대부분의 연구는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랜드는 OR(Operations Research)과 응용수학 연구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랜드는 또한 게임이론의 산실이기도 했다. 랜드에 소속되어 있으며 게임이론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학자로 폰 노이만(Johann Ludwig von Neumann)과 모르겐슈테른(Oskar Morgenstern), 내쉬(John Nash), 플러드(Merrill Flood), 드레셔(Melvin Dresher) 등을 들 수 있다. 랜드의 고문이자 프린스턴대학교의 수학교수인 터커(Albert Tucker)는 1950년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자들로부터 게임이론에 대한 강연을 요청받았다. 터커 교수는 게임이론에 생소한 심리학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플러드와 드레셔가 공동으로 행한 실험 게임에 바탕을 두고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는 사례를 만들었다.   실험으로 행한 게임에 붙인 이름 ‘죄수의 딜레마’   두 명의 혐의자(A와 B)가 폭행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경찰은 이들이 저지른 폭행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으므로 이들에게 1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은 이들이 폭행과정에서 조직폭력배를 동원하고, 흉기를 사용한 범죄에 대해서는 혐의를 두고 있으나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혐의를 자백받기 위하여 경찰은 이들 두 명의 혐의자들을 서로 분리해 각각 다른 방에서 심문하기로 했다. 혐의자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으므로 의견을 나누거나 서로의 진술을 맞출 수 없다.    경찰은 혐의자들에게 자백을 종용하며 다음과 같은 유인책을 제시한다. 만약 한 사람이 조직폭력배 동원 및 흉기 사용 등의 혐의에 대해서 자백하고 다른 사람이 부인하면 자백한 사람은 폭행에 대해서도 불기소하고 즉시 석방하는 반면에 혐의를 부인한 사람에게는 9년형이 부과된다. 만약 두 사람 모두 자백하면  두 사람은 각각 5년형이다. 물론 두 혐의자 모두가 조직폭력배 동원과 흉기사용을 부인하면 이들은 각각 1년형에 처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혐의자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여기서 게임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위의 상황을 게임이론으로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게임의 경기자는 두 명의 혐의자 A와 B이다. 취할 수 있는 경기자들의 전략은 혐의를 부인(상호 협조)하거나 자백(상호 배신)하는 것이다. 보수행렬은 아래 [표 1]과 같다.   혐의가 있는 두 죄수에게 서로 논의할 수 없는 상황을 주고 혐의 부인과 자백이라는 두 선택을 준다면 두 죄수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보수행렬 괄호의 앞 숫자는 A가 받는 보수(징역형)이고, 뒤의 숫자는 B가 받는 보수이다. 각 보수를 (-)로 표시한 것은 징역형(비효용 또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범인 A가 자백하고 B는 부인하면 A는 석방되고 B는 9년(-9)이 부과된다.   [표 1] 죄수의 딜레마 보수행렬.     이러한 상황에서 각 혐의자들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각 혐의자들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은 무엇일까? 혐의자 A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만약 혐의자 B가 혐의를 부인하는 경우에 A가 부인하면 1년형이고 자백하면 석방된다. 즉 B가 부인하는 경우에 A에게 유리한 전략은 자백이다. 이제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혐의자 B가 혐의를 자백하는 경우에 A는 부인하면 9년형이고 자백하면 5년형이다. 즉 B가 자백하는 경우에 A에게 유리한 전략은 자백이다. 따라서 A의 입장에서 보면 B가 부인하던 자백하던 간에 자신에게 유리한 전략은 자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상대방의 선택이 무엇이든 간에 본인에게 유리하도록 선택하는 전략을 게임이론에서는 우월한 전략(dominant strategy)이라고 한다. 이제 혐의자 B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B 역시 어떠한 선택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할지를 궁리할 것이다. B가 선택할 수 있는 우월한 전략은 A와 마찬가지로 자백이다.   내쉬균형은 최선의 결과일까?   내쉬의 균형이론은 게임에 참가하는 경기자들은 상대방이 선택할 전략을 예측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이 주어진 상황 하에서 경기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최선의 대응전략을 선택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내쉬는 어떻게 자신의 선택이 상대방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동시에 자신도 상대방의 전략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감안해 게임 경기자가 내리는 최종 결정 과정을 이론적으로 설명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게임 경기자들 모두가 상대방이 내린 선택 하에서 자신의 선택이 최선의 결과라는 결론에 이르면 이를 내쉬균형에 도달했다고 한다.   앞의 예에서 A와 B 모두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선택한 자백의 결과는 각자 5년형으로 내쉬균형에 해당된다. 문제는 이들 혐의자들이 모두 혐의를 끝까지 부인했다면 두 사람 모두 1년형으로 형량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다 보니 각자 5년형의 최악의 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 때 두 사람이 받은 형의 합으로 살펴보면 내쉬균형의 결과는 10년 수감이다. 둘이 모두 부인했으면 형의 합은 2년이고 설령 한 사람은 부인하고 한 사람은 자백한 경우에도 형의 합은 9년이다. 내쉬균형의 결과는 최악의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이 상황은 딜레마이다. 게임상황에서의 내쉬균형 결과 게임참가자 모두에게 최선이 아닌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딜레마가 발생할 수 있다.   내쉬 균형의 결과가 최악의 상태로 귀결된 것은 혐의자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기 때문이다. 즉 개인의 이익추구가 혐의자 전체의 이익으로 귀결되지 못한 것이다. 내쉬는 각자가 자신에게 최대의 이익을 주는 선택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결국 집단 전체로는 최선의 선택에 이룰 수 없음을 설명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경제체제가 경제의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이론은 내쉬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즉 애덤 스미스는 각 개인이 최선을 다하면 궁극적으로 구성원 모두가 좋아진다고 했으나 내쉬는 이를 부정한 것이다. 약관 21살의 대학원생 내쉬가 발표한 균형이론은 후에 경제학자들에 의해 게임이론으로 발전하여 경제학 자체를 탈바꿈 시켰다. 그는 기존의 연구를 전혀 참고하지 않고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방법을 이용해 독창적으로 새로운 결론을 도출했다.   그러나 때로는 이해 당사자의 담합이 끝까지 유지되는 것이 당사자 전체로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남한과 북한 사이의 군사비 경쟁의 경우를 상상해 보자. 남·북한 가운데 한 나라만이 군사비를 증강하고 다른 한 나라를 증강하지 않으면 군사비를 증강한 나라는 전략적으로 유리해진 반면에 증강하지 않은 나라는 불리해진다. 이에 따라 남·북한  모두 군사비를 증강할 것이고, 그 결과 남·북한 모두 군사비에 돈만 낭비하고 전략적으로 어느 나라도 유리해진 것이 없다. 오히려 남·북한이 군사비를 증강하지 않고 종전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도록 담합을 계속하는 것이 남·북한 전체적으로 유리한 결과가 된다. 참고문헌 : 김철환, [즐거운 경제학], (글을읽다, 2008); 최정규, [이타적 인간의 출현] (뿌리와 이파리, 2009); John Cassidy, [How Markets Fail], (FSG, 2009); Mankiew, N. G., [Principles of Economics], 5th ed., (South-Western, 2009).
5    단추 대신 지퍼를 사용하는데 오래 걸린 이유? 댓글:  조회:3561  추천:0  2013-12-06
 너무나 친숙하기에 명확하게 개념을 확인하지 않고 즐겨 사용하는 단어들이 종종 있다. 경제학 분야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여기에 해당한다. ‘수요’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수요(demand)란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는 가정 아래 일정기간 동안 주어진 가격으로 수요자들이 구입하고자 계획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을 의미한다. 즉, 수요는 가격과 수요량 간의 관계를 의미하는데, 수요의 개념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는 가정과 ‘일정기간 동안’을 기준으로 측정된다는 점 그리고 ‘구매계획’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수요에 대한 오해 원래 저량이라는 말은 저수지에 고여 있는 물의 양을 가리킨다. 즉, 시간 개념 없이 일정시점에서 측정되는 변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출처: vegafish, vegafish in zh-wikipedia>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수요를 정의할 때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는 전제조건이 붙는 이유가 뭘까? 소비자가 구매하려는 양은 가격 외에도 자신의 소득, 연관재의 가격 등 많은 요인들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수요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격을 제외한 다른 모든 요인들이 일정하게 유지되어야만 가격과 수요량 간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기에 수요를 정의할 때 이 같은 전제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음으로 수요는 ‘일정기간’ 동안 측정되는 유량이다. 경제 변수는 유량과 저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원래 저량이라는 말은 저수지에 고여 있는 물의 양을 가리킨다. 즉, 시간 개념 없이 일정시점에서 측정되는 변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컨대, “너의 집 재산이 얼마니?”라는 질문은 특정 시점에 해당 가구의 부의 수준을 물어보는 말이므로 저량에 해당한다. 반면 유량은 일정시간에 걸쳐 측정되는 변수이다. 원래 유량은 저수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양은 시간을 얼마나 오래 잡아 측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넌 연봉이 얼마니?” 또는 “넌 월급이 얼마니?” 등의 질문은 연간과 월간이라는 특정 기간 동안의 소득을 물어보는 말이므로 유량에 해당한다. 자본량, 통화량 등은 작년 말 현재 혹은 지금 이 시각 현재 등의 시점과 함께 언급해야 하는 저량에 해당한다면, 소득, 생산, 소비, 투자, 저축 등은 언제부터 언제까지라는 기간과 함께 언급해야 하는 유량에 해당한다. 수요 역시 기간과 함께 언급해야 하는 유량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수요의 개념 중에서 수요가 앞으로의 ‘계획’을 의미한다는 점을 가장 많이 혼동한다. 수요는 실제 구입한 양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요는 소비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구입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사전적(ex ante) 계획의 개념이지 실제 구매한 사후적(ex post)개념이 아닌 것이다. 케인즈, 수요에 주목하다 이러한 수요의 개념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에 주목한 학자가 바로 케인즈이다. 케인즈가 수요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대공황(Great Depression) 때문이다. 경제학은 대공황 이전에는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고 믿었다. 이를 세이의 법칙(Say's law)이라고 한다. 세이의 법칙은 모든 사람은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라는 점에 주목한다. 즉, 물건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누군가는 자본을 제공하고 누군가는 토지를 제공하는데, 이들은 각각 자신들이 제공한 생산요소의 대가로 임금과 이자와 지대라는 수익을 거둔다. 이러한 소득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것이기 때문에 공급만 원활히 이루어지면 수요는 저절로 창출된다는 것이 세이의 법칙의 주요 내용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공급이 원활할 경우 만성적인 수요 부족 내지 실업의 발생은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 된다. 하지만 1930년대에는 세이의 법칙에서 말하는 상황과는 전혀 다른 경제 상황이 전개되었다. 공급 측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몇 십 퍼센트나 유발되었으며, 만성적인 수요 부족의 상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고전학파 경제학자들 중 그 누구도 설득력 있는 대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경제학자 케인즈 <출처: Wikipedia> 이러한 상황에서 케인즈는 유효수요이론(effective demand theory)을 통해 문제의 핵심은 바로 수요에 있다고 제시했다. 케인즈는 구매력을 수반하지 않는 수요는 단지 잠재적 수요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 물건을 살 수 있는 돈을 갖고 물건을 구매하려는 유효수요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인구 증가와 같은 공급 측면이 경제 활동의 수준을 결정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유효수요의 크기에 따라 사회의 경제활동의 수준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케인즈는 만성적인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출을 늘리거나 조세 감면을 통해 구매력을 갖춘 수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유효수요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다. 지퍼의 수요를 만들어내다 케인즈가 유효수요의 개념을 제기한 때로부터 10여 년 전 실질적인 구매력이 뒷받침된 수요의 중요성을 실감케 해주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퍼(Zipper)의 도입 과정에서 목격되었다. 지퍼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패스너(Fastener)가 처음 발명된 것은 1891년이다. 패스너의 발명가인 윗콤 저슨(Whitcomb Judson)은 불편하기 그지없는 단추를 대신할 제품을 발명하고 나서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쥘 것을 확신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바지 앞섶이나 치마의 트임 부분을 단추로 잠가야 했기 때문에 옷을 입고 벗을 때마다 여러 개의 단추를 풀었다 끼워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윗콤 저슨의 패스너 patent <출처: Wikipedia> 하지만 패스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했다. 당시 사람들은 옷에 쉽게 부착할 수 있는 단추를 두고 옷에 부착하기 어려운 뻣뻣한 금속 기계를 선택하기를 주저했다. 또한 초창기의 지퍼인 패스너는 쇠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세탁이 불가능했다. 쇠가 물에 조금만 닿아도 녹이 슬었기 때문에 세탁할 때마다 패스너를 떼었다 달아야 하는 불편함이 더욱 컸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패스너는 고장이 잘 나는 조악한 제품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으면 패스너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윗콤 저슨과 당시 기술 담당자였던 피터 애런슨(Peter Aronson)은 유능한 기술전문가를 영입하기로 했다. 이때 그들이 영입한 인물이 기드온 선백(Gideon Sundback)이다. 기드온 선백은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Westinghouse Electric)이라는 회사에 다니는 인재로 이 회사는 당시 에디슨이 설립한 제네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과 함께 미국 전기산업을 이끌고 있던 회사였다. 피터 애런슨은 기드온 선백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고, 기드온 선백은 패스너의 개선 작업에 몰입했다. 결국 1917년,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형태의 지퍼가 탄생했다. 기드온은 쇠로 만들었던 패스너를 구리로 만들어서 보다 가벼울 뿐만 아니라 녹이 슬지 않는 것으로 개선했다. 또한 이전의 패스너에 비해 유연성을 높여 옷에 쉽게 부착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패스너는 기술적인 부분을 완벽히 보완해냈지만, 패스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그것은 바로 유효수요의 부족 때문이었다. 당시 단추 가격은 5센트에 불과했지만, 패스너는 그에 비해 다섯 배에 달하는 가격이었다. 일반적인 치마 내지 바지가 1달러 수준이던 당시, 바지에 부착하는 것에 30센트를 지불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패스너의 장점은 충분히 인정받으면서도 실질적으로 돈을 주고 이를 구매할 구매력은 뒷받침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윗콤 저슨의 개선된 패스너 <출처: Wikipedia> 패스너의 생산 단가를 떨어뜨릴 방법은 없었다. 기드온은 고가의 패스너를 구매하도록 만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때 해답이 되어준 회사가 오늘날 세계적인 타이어 회사로 거듭난 굿리치(Goodrich)이다. 당시 굿리치는 고무로 만든 일상용품을 제조하는 회사였다. 주력 제품 중 하나가 고무로 된 덧인인 갈로슈즈였다. 당시에는 포장된 도로가 많지 않아 시내 곳곳이 진흙탕인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신발이 엉망이 되기 일쑤였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신발 위에 덧신인 갈로슈즈를 신고 다녔다. 한 번 입으면 자기 전이나 화장실에 가기 전까지 좀처럼 벗을 필요가 없는 바지나 치마를 벗기 편하도록 패스너를 부착하라고 설득하기는 어려웠지만, 갈로슈즈는 달랐다.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갈로슈즈를 벗기 위해 단추나 끈을 풀어야 하는 불편함은 적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에게 패스너가 부착되어 쉽게 벗을 수 있는 갈로슈즈는 설득력 있는 제품이었다. 패스너가 지퍼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굿리치사가 판매한 패스너가 부착된 갈로슈즈의 이름이 바로 지퍼(Zipper)였다. 패스너가 부착되어 한층 편리해진 갈로슈즈를 접한 사람들은 갈로슈즈의 상품명인 지퍼를 갈로슈즈에 부착된 편리한 장치를 지칭하는 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패스너는 지퍼라고 불려졌다. 수요는 단지 소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의류에 부착되었을 때는 크게 각광받지 못한 지퍼가 갈로슈즈에서는 커다란 성과를 가져다 준 장면에서 우리는 유효수요의 중요한 개념을 하나 유추할 수 있다. <출처: corbis> 의류에 부착되었을 때는 크게 각광받지 못한 지퍼가 갈로슈즈에서는 커다란 성과를 가져다 준 장면에서 우리는 유효수요의 중요한 개념을 하나 유추할 수 있다. 구매력이 뒷받침된 수요인 유효수요의 개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득보다 제품 가격이 높은지의 여부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특정 제품에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할 것인지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자신의 소득도 물론 중요한 고려 요인이지만, 이뿐만 아니라 해당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편익 등 여러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지출 수준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껌 한 통이 만 원이라고 하면 아마 이를 선뜻 구매할 소비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소득이 만 원 미만이라서가 아니라 껌 한 통을 통해 누릴 수 있는 만족에 비해 만 원이라는 비용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지퍼의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지퍼 자체의 가격이 비싼 것도 유효수요를 유발하지 못한 요인이기도 하지만, 치마에 부착된 지퍼는 하루에 몇 차례 이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할 소비자는 많지 않다. 하지만 갈로슈즈는 다르다. 갈로슈즈에 부착된 지퍼의 가격이나 의류에 부착된 지퍼의 가격은 동일한 수준이지만, 갈로슈즈의 지퍼는 외부에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사용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편리성이 훨씬 크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갈로슈즈에 부착된 지퍼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것이다. 지퍼의 사용으로 편의성이 한층 높아지는 제품의 경우, 소비자들은 지퍼가 부착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제조사는 지퍼의 실용성을 보여줄 또 다른 제품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담배쌈지였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낱개로 포장된 담배가 없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는 파이프에 담뱃가루를 넣어 피워야만 했고, 그래서 파이프와 담뱃가루를 넣고 다니는 담배쌈지를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단추나 끈의 경우는 군데군데 틈이 벌어졌기 때문에 담뱃가루가 밖으로 새어 나오는 불편함이 있었다. 담뱃가루가 바지 주머니에 쏟아지기 일쑤였다. 이러한 불편함은 지퍼가 부착된 담배쌈지를 이용할 경우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결국 지퍼가 달린 담배쌈지는 큰 호응을 얻었다. 사람들은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담뱃가루가 쏟아지는 불편함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지퍼 달린 담배쌈지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지퍼를 발명한 유니버셜 패스너 컴퍼니도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유니버셜 패스너 컴퍼니는 갈로슈즈와 담배쌈지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지퍼를 부착하기 시작했다. 군인들의 침낭과 우편배달부의 가방 등 여러 물품에 지퍼를 부착하여 큰 수익을 거두어들였다. 유니버셜 패스너 컴퍼니는 결국 1930년대 후반, 5천여 명의 직원을 둔 대기업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YKK의 청바지 지퍼 <출처: Chris 73 / Wikimedia Commons> 각고의 노력 끝에 거둔 유니버셜 패스너 컴퍼니의 성공은 의외로 짧은 기간 만에 끝나고 말았다. 일본에서 값싼 지퍼가 수입되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타다오 요시다가 설립한 지퍼회사인 YKK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생산해낸 저가의 지퍼를 전 세계에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유니버셜 패스너 컴퍼니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결국 YKK는 1970년대 유니버셜 패스너 컴퍼니의 후신인 타롱을 누르고 세계 1위의 지퍼 생산회사가 되었다. 초창기 고가의 지퍼 생산비용으로 인해 유효수요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던 회사가 지퍼 가격이 크게 떨어져 결국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다.
4    웨딩드레스는 왜 흰색일까? 댓글:  조회:4793  추천:0  2013-12-05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의 선물을 사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세뱃돈을 주는 풍습은 누가 생각해낸 것일까? 돌잔치 때 금반지를 선물하게 된 배경이나 결혼식 예물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상에서 언급한 많은 것들을 우리는 ‘관습’ 또는 ‘풍습’이라 부르며 대개의 경우 아무 비판 없이 그대로 따른다. 그런데 이러한 풍습은 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웨딩드레스는 흰색이어야 한다’는 관습 또한 경제원리를 통해서 의미 있게 설명할 수 있다. <출처: gettyimages> 지금 우리가 관습이나 풍습이라고 부르며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따르는 일련의 행위들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의외로 경제원리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물론 인류의 문화 행태라 할 수 있는 관습이 경제적인 요인만으로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관습이나 풍습이 형성되고 지속되는 데 있어 경제원리가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웨딩드레스는 흰색이어야 한다’는 관습 또한 경제원리를 통해서 의미 있게 설명할 수 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빅토리아 여왕의 웨딩드레스 <출처: Wikipedia> 원래 웨딩드레스가 반드시 흰색인 것은 아니었다. 20세기 이전까지 결혼식을 묘사한 여러 그림이나 문학 작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노란색, 파란색, 심지어 검은 색의 웨딩드레스도 입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순백색의 웨딩드레스를 대중에게 처음 알리고 이를 추종하도록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그 주인공은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영국 여왕으로 등극한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사실 빅토리아가 영국의 여왕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녀가 왕위 승계 서열에서 한참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왕이었던 조지 3세에게는 네 명의 왕자가 있었고, 이들 왕자들에게도 각각 자식들이 있었다. 즉 빅토리아는 사촌들도 많았다. 빅토리아의 아버지는 조지 3세의 아들 중 막내였기 때문에 빅토리아가 여왕이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빅토리아의 할아버지 조지 3세와 그녀의 아버지 에드워드를 시작으로, 둘째아버지 프레더릭 왕자와 첫째아버지 조지 4세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더군다나 그녀의 사촌 언니들도 모두 예기치 않게 사망하면서 그녀는 어느 순간 대영제국의 왕위를 물려받을 순위권에 올랐다. 빅토리아는 결국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영국 여왕이 되었다. 누군가 어린 나이에 여왕에 등극했다고 하면 그 자체로도 커다란 뉴스거리가 된다. 더군다나 당시 세계의 중심국가인 영국의 여왕자리를 놓고 일어난 일이니 이는 세기의 뉴스거리가 되고도 남았다. 그 당시 영국은 자국의 시간이 밤이더라도 세계 어딘가 영국의 식민지 중 어느 나라는 낮인 곳이 있기 때문에 ‘해가 지지 않은 나라’로 불릴 만큼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 <출처: Wikipedia> 이러한 영국의 어린 여왕 빅토리아의 행적은 이후 전 세계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궁금해 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히 과연 누가 그녀의 남편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많은 유럽의 국가들과 왕실들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영국과의 관계를 원만히 하기 위해 영국 여왕의 남편으로 자신들의 귀족 또는 왕족과 혼인을 올리기를 원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국 왕실은 빅토리아에게 여러 국가의 왕자들을 소개했다. 빅토리아는 그중에서 그녀의 외삼촌 격인 벨기에의 왕 레오파드가 소개한 독일의 삭스 코버그 공국의 앨버트 왕자를 선택했다. 그녀는 앨버트 왕자를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이러한 사실은 그녀가 앨버트 왕자를 단 두 번 만난 후에 바로 청혼했다는 사실이나 얼마 전 공개된 빅토리아 여왕의 일기를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이제 영국 여왕의 남편이 결정된 마당에 전 세계인이 다시 궁금해 하기 시작한 것은 어린 영국 여왕의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을 앞둔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지의 많은 나라의 귀족들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성이 선택한 결혼식은 어떠한 방식이며 드레스는 무슨 색일지 등에 대해 뜨거운 호기심을 보였다. 이에 대한 빅토리아 여왕의 대답은 바로 흰색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지만 빅토리아는 심각한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한다. 콤플렉스 때문인지, 아니면 18살 신부의 풍부한 감수성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앨버트 왕자 앞에서 최고의 신부가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그 어떤 여왕보다도 결혼식에 심혈을 기울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웨딩슈즈 <출처: Northampton Museum at en.wikipedia.org>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빅토리아는 자신이 입을 드레스를 스케치하며 직접 디자인하는 의욕을 보였다. 그때 그녀가 일찍부터 낙점했던 것이 바로 드레스는 무조건 흰색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드레스뿐만이 아니었다. 결혼식장 자체도 흰색을 위주로 꾸미도록 지시하였으며, 각국에서 신부의 들러리로 초청된 12명의 공주들에게도 하얀색 드레스를 입히도록 하였다. 당시 여왕의 결혼식을 묘사한 기록들을 보면, 여왕의 결혼식에서 흰색이 아닌 것은 여왕의 가슴에 달린 파란색 브로치뿐이었다고 한다. 이 브로치는 신랑 앨버트 왕자가 준 선물이었다. 신랑이 준 선물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 밖의 모든 것들은 흰색을 사용해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어찌 보면 오늘날 우리가 결혼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식장 장면을 그녀가 처음 구성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영국 <더 타임즈>의 보도 내용 중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적은 영국 역사상 없었을 것이다.”라고 표현한 구절이 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이 얼마나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 장면은 그림, 사진, 언론기사를 통해 전 세계 여성들에게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이를 통해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여성들은 세계 최고의 권력을 가진 여성이 선택한 웨딩드레스는 바로 흰색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뒤로 많은 여성들이 자신도 순백의 결혼식을 올리길 꿈꾸었다. 밴드왜건 효과는 어떻게 확산되는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선망하는 사람이 입은 옷이나, 먹는 음식, 사는 거주지를 추종하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구매 행태에 영향을 받아 유발되는 소비 현상을 설명해주는 이론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밴드왜건(bandwagon) 효과이다. 우리는 물건을 구매할 때 가격, 디자인, 성능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매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고려하는 사항들은 이러한 제품 내부 요인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해당 재화를 얼마나 많이 구매하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경제학에서는 기본적으로 개별 소비자들은 다른 사람의 소비 행태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구매 행태를 결정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말하자면, 개별 수요는 서로 상호 독립적으로 작용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목격되는 소비 행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특정 브랜드의 청바지가 유행이라 나도 덩달아 샀던 경험이 있다거나 정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너도 나도 구입해 너무 흔해 보여서 정작 사고 싶었던 옷이어도 구매를 포기했던 경험을 떠올려본다면 이러한 사실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인의 소비 행위는 다른 사람의 소비 행위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소비 행태는 또 다른 사람의 소비에 영향을 주는데, 이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가 밴드왜건 효과이다. 밴드왜건 효과는 사람들이 많이 소비하는 재화를 나도 덩달아 소비하는 것을 말하며 이 때문에 ‘편승 효과’라고도 불린다. 원래 밴드왜건이란 서부 개척시대의 마차를 가리킨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서부로 떠날 때 덩달아 서부로 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빗대어 이러한 소비 행태를 표현하게 되었다. 앞에서 제시한 사례처럼 특정 청바지가 유행한다고 해서 나도 하나 구입해본 경험이 있다면 이것은 밴드왜건 효과를 몸소 실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빅토리아 여왕의 웨딩드레스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동일한 선택을 유발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즉, 다른 사람들의 편승 효과를 유발할 원인임은 분명하다. 특히 그녀는 많은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여왕이었기에 그녀의 모든 행동은 추종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영국인들이 빅토리아 여왕을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설문조사 결과가 하나 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위 60주년을 기념하여 영국의 가장 위대한 군주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설문조사 결과 빅토리아 여왕이 현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35%)에 이어 2위(24%)를 기록하였다. 당시 설문조사가 현 여왕의 60주년을 기념하는 과정에서 실시된 조사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실질적인 1위는 빅토리아 여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무리 존경하고 사랑하는 여왕이 선택한 웨딩드레스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곧바로 이를 추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편승 효과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흰색의 웨딩드레스가 전 세계, 전 계층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가격 수준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흰색의 웨딩드레스는 상류층의 전유물로 동경의 대상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19세기 이전의 웨딩드레스는 흰색이 오히려 적었고 여러 색의 웨딩드레스가 더 많이 선택되었다. 아내의 웨딩드레스를 그린 폴 루벤스의 1630년 작품 <출처: Wikipedia> 실제로 당시 서민들은 자신의 웨딩드레스를 고를 때 단순히 결혼식 예복으로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이후의 집안 행사뿐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도 즐겨 입을 수 있는 것으로 골라야 했다. 이 때문에 쉽게 때가 타거나 변색될 우려가 있는 흰색으로 웨딩드레스를 맞춘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래서 19세기 이전의 웨딩드레스는 흰색이 오히려 적었고 여러 색의 웨딩드레스가 더 많이 선택되었다. 이러한 실용적인 목적 때문만이 아니라 당시에는 흰색 옷감이 다른 색의 옷감보다 훨씬 비쌌다. 옷을 진한 색으로 염색하는 것보다 흰색으로 표백하는 것이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여왕이라면 흰색 옷을 입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일반인들에게 흰색 옷, 그것도 흰색 웨딩드레스는 동경의 대상일 뿐 결코 그에 편승한 소비 행태를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표백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흰색 옷감의 가격이 다른 색 옷감의 가격과 비슷한 수준으로 내려온 것이다.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쉽게 흰색의 옷들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도래하였다. 이와 함께 웨딩드레스하면 흰색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들어준 또 한 번의 사건이 등장했다. 1920년에 세계적인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하얀 웨딩드레스를 선보인 것이다. 이 때문에 순백의 웨딩드레스가 다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흰색의 웨딩드레스가 보편화되기까지는 세계적인 여왕과 디자이너의 선택, 그리고 소비자들도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가격 수준이 뒷받침되었다. 무엇이 타인을 추종하게 하는가 빅토리아 여왕의 가족. 1846년. <출처: Wikipedia> 마지막으로 흰색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했던 빅토리아 여왕의 순탄하고 아름다운 결혼생활도 편승 효과를 유발하는 데 한 몫 했을 것이다. 21년 동안의 결혼 생활 동안 9명의 자녀를 낳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던 여왕은 남편이 갑자기 병에 걸려 사망하자 이후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무려 40여 년의 세월 중 많은 시간 동안 상복을 입으며 생활했다는 미담이 전해질 정도였다. 그녀의 자식 9명 모두 유럽의 주요 왕족들과 결혼하며 비교적 순탄한 결혼 생활을 했고, 이로 인해 빅토리아 여왕은 말년에 “유럽의 할머니”라는 별칭도 얻게 되었다.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한 여왕의 결혼 생활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미담들은 많은 신부들로 하여금 흰색의 웨딩드레스에 긍정적인 선입견을 갖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흰색 웨딩드레스 이외에도 여러 가지의 편승효과를 유발한 여왕이었다. 아동복의 대명사인 세일러 복장을 아이들에게 처음 입힌 사람도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1845년 영국 왕립 해군이 빅토리아 여왕의 아들인 에드워드 왕자에게 해군복을 선물했는데, 여왕은 왕자에게 이 옷을 입혀 공식 행사에 참석시켰다. 이러한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당시 해군복을 납품하던 회사가 해군복을 어린이용으로 변형하여 만들어 공급하기 시작하였고,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아이들 복장으로 세일러복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그 전통이 남아 있어 빈 소년합창단 등이 세일러복을 유니폼으로 채택하고 있다. 스카치위스키가 고급 술의 대명사가 된 데에도 빅토리아 여왕의 기여가 컸다. <출처: Guinnog at en.wikipedia.org> 스카치위스키가 고급 술의 대명사가 된 데에도 빅토리아 여왕의 기여가 컸다. 로크나가(Lochnagar) 위스키 증류소의 존 베그는 자신의 위스키 증류 과정을 여왕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영국 왕실에 보냈다. 실제로 왕실 가족은 다음 날 증류소를 방문해 스카치위스키를 시음했다고 한다. 이 후 빅토리아 여왕은 로크나가 증류소에 왕실이 인증한 위스키라는 칭호를 하사하였고, 여왕 스스로 보르도산 포도주에 이 위스키를 섞어 마시는 것을 즐겼다. 이러한 음용 방법이 ‘빅토리아 여왕의 술’로 알려지면서 그동안 영국 사회에서 저평가되었던 스카치위스키는 영국 상류사회의 대표적인 음료로 그 위상이 높아졌다. 이 밖에도 여왕이 즐겨 사용하며 기사작위를 부여한 도자기인 로열덜튼은 세계적인 명품 도자기가 되었고, 여왕이 아침에 즐겨 먹던 케이크는 빅토리아 스펀지케이크로 불리며 오늘날까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보면, 전 인류가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며 따르는 관습도 처음에는 사소한 일화에서 시작된 것들이 참 많은 듯하다.   박정호/KDI 전문연구원 평소 “배워서 남 주자!”라는 신조를 갖고 있어 EBS, KBS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금융소외계층 등을 위한 강의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한국경제신문 등 여러 매체에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경제학자의 인문학서재]1,2권과 [공기업 취업전략](공저) 등이 있다.
3    똥배 줄이는 간단한 체조 댓글:  조회:2515  추천:0  2013-12-04
똥배 때문에 고민인 분들이 많습니다. 복부비만이나 내장비만의 상징어인 똥배는 건강의 적신호입니다. 복부 비만이 있는 사람이 고혈압, 당뇨, 심장병 등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는 이제 상식처럼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복부 비만은 고혈압, 당뇨, 심장병과도 높은 연관 똥배는 심지어 사람에 대한 평가의 척도로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배가 나온 사람 대해 자기 관리가 철저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갖는다고 합니다. 같은 조건이라면 ‘똥배’가 나온 사람에 비해 ‘식스 팩’이나 ‘초콜릿 복근’을 가진 이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물론 똥배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운동할 시간조차 없이 하루 종일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일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생활 조건과 기름진 음식, 과음, 간식 등이 아랫배만 볼록 나온 ‘ET족’을 낳는 주요 원인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환경만을 탓하고 있을 수는 없지요. 자기 관리도 필요합니다. 다음은 복부비만 해소에 도움이 되는 체조입니다.         준비자세 바닥에 누워 무릎을 세운 후 양손은 머리 뒤에서 깍지를 낍니다.   좌우 비틀어 윗몸일으키기 상체를 일으켜 오른쪽 팔꿈치와 왼쪽 무릎이 맞닿도록 상체를 천천히 틉니다. 반대쪽으로도 합니다. 숨이 가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몸이 조금 힘들다고 느낄 정도로 반복합니다.   윗몸일으키기 자세에서 상체 유지 윗몸일으키기 자세로 상체를 일으킨 채로 10초 가량 유지합니다. 두 다리와 두 팔 들어올리기 두 다리를 45도 각도로 뻗고 두 팔을 다리와 평행하게 뻗어서 10초 가량 버틴 뒤 천천히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 10여 차례 반복합니다.
2    내장비만, 중심성 비만 댓글:  조회:2864  추천:0  2013-12-04
  정의 복부비만은 배에 과도한 지방이 축적된 상태로, 한국인 허리둘레 기준으로 남자 90cm(35.4인치), 여자 85cm(33.5인치) 이상인 경우에 해당된다. 체내의 지방은 그 분포에 따라 피하지방과 내장지방으로 나눌 수 있는데, 특히 내장지방(체내 장기를 둘러싸고 있는 체강 내에 축적되는 지방)의 축적이 심할 경우 건강 위험률이 높아져 내장비만을 복부비만과 같은 용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피하지방과 내장지방 맨위로 원인   내장지방이 축적되는 이유는 나이의 증가, 과식, 운동 부족, 흡연, 유전적 영향 등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자의 경우 군대에서 제대한 후 또는 결혼 직후이며, 여자가 복부 비만이 되는 시기는 폐경기 이후이다. 연령별, 성별 복부비만율(2007) 맨위로 증상   뚜렷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으로 체중이 증가하면서 허리둘레가 늘어나 자각하게 되지만 체중이 정상인 경우에도 복부비만인 경우가 있다. 내장지방 축적으로 인해 횡격막이 과다 신장되어 호흡운동 시 폐의 움직임을 방해하면, 수면 중 코를 골다가 호흡을 멈추는 수면 무호흡증을 유발할 수 있다.   맨위로 진단   허리둘레 측정이 간편하고 해석이 쉬워 복부비만 진단에 널리 사용된다. 한국인의 경우 남자 90cm(35.4인치), 여자 85cm(33.5인치) 이상을 복부비만으로 진단한다. 보통 늑골(갈비뼈) 하단부(가장 아래부분)와 장골능(골반뼈의 엉덩이 위쪽 끝) 상부의 중간점에서 측정하는 방법이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 부위는 대개 배꼽 부위를 지나게 된다. 허리둘레는 내장지방량과 높은 관련이 있으며 체질량지수보다 심혈관질환을 더 잘 예측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점으로는 전체 지방량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비만이 심할수록 내장지방량과 관련성이 감소할 수 있다. 허리둘레 측정 위치 맨위로 검사   컴퓨터 단층활영(CT)을 이용하면 복부의 총 지방과 내장지방을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복강 내 지방축적의 지표로는 내장지방면적과 내장지방면적/피하지방면적의 비가 사용되며 내장지방면적이 더 좋은 지표로 알려져 있다. 비만 관련 질환의 위험에 대한 내장지방면적의 기준점은 현재 통일된 것은 없지만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내장지방이 100cm2 이상일 때 심혈관 질환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보고하였다. 내장지방면적/피하지방면적의 비를 측정하여 0.4 이상을 내장비만으로 진단한 연구도 있다. 컴퓨터 단층촬영의 단점은 방사선 노출, 고비용과 접근성이 좋지 않은 점이다. 이외에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초음파검사, 이중에너지방사선측정법 등이 있으나 실제로 내장지방을 측정하는 데 활용도가 높지는 않다. 컴퓨터 단층촬영을 이용한 내장지방 평가 맨위로 치료   복부비만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식사요법, 운동, 약물요법 등 다양한 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   맨위로 경과/합병증   내장지방이 많으면 우리 몸의 인슐린 작용을 방해하고 염증 물질이 늘어나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당뇨, 관상동맥질환, 이상지질혈증(콜레스테롤 이상) 등이 잘 알려져 있으며, 내장지방은 지방간과 비알콜성 지방간염(음주와 관련 없이 지방간에 동반하여 간기능 수치의 이상을 보이는 경우)의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다. 복부비만은 수면무호흡증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복부비만에서 지방의 축적으로 인해 생기는 체내 공간의 감소와 내장지방의 축적으로 인해 횡격막이 과다 신장되어 호흡운동 시 폐의 탄성에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또한 내장지방은 대장암, 유방암, 전립선암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맨위로 예방방법   과일, 채소, 통곡류, 살코기 등의 섭취를 권장하며 포화지방산(주로 동물성 기름)이 많은 고지방 식품, 정제된 곡류의 섭취를 제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적절한 음주는 내장비만 환자에서 콜레스테롤 상태를 개선할 수 있다. 일반인은 자신의 최대운동능력의 50~80% 범위 내의 강도로, 하루 30~60분을 일주일에 3~5회 시행하는 것이 좋지만, 비만한 사람에서는 운동의 강도를 50~60%로 낮게 하고, 운동시간을 60분 이상으로 늘리며, 일주일에 6~7회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맨위로 생활 가이드   복부비만은 운동량은 줄어들고 식사량은 많아지기 때문에 남는 에너지가 지방으로 복부에 축적되는 것이다. 따라서 필요 이상의 칼로리 섭취를 줄이고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맨위로 식이요법   다음과 같은 사항에 유의한다. - 너무 단기간에 체중을 줄여야 한다는 조급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 절식을 하되 식사량을 너무 심하게 줄이면 안 된다. 하루 세끼를 기본으로 하되 저녁식사의 양을 3분의 2 정도 줄이는 것이 적당하다. - 저녁은 7시 전에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외식을 해도 담백한 음식, 두부찌개, 어묵탕백반, 생선정식, 청국장, 칼국수 등으로 선택한다. 탕 종류를 먹더라도 밥을 한꺼번에 말아 먹기보다는 항상 전보다 적은 양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도록 한다. - 술은 완전히 끊지 않아도 되지만, 취하지 않을 정도로 과일이나 야채 안주와 함께 먹어야 한다. 음주 후에 해장국이나 해장라면 등을 먹고 곧장 자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위에 부담을 주고, 비만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해장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1    중국진출 한국기업 노무환경 실태조사 결과 발표 댓글:  조회:2373  추천:0  2013-12-02
중국한국상회(회장 장원기)는 중국에 진출한 국내기업 201개사를 대상으로 지난 9월 9일부터 10월 18일까지 전화 및 팩스, E-Mail을 통해 ‘중국진출 한국기업 노무환경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상회는 이번 조사를 통해 올해 중국내 임금•사회보험•복리후생비를 포함한 노무비를 지난해와 비교한 질문에 ‘10%이상 늘었다’는 기업이 72.6%에 달했다고 18일 밝혔다. 이 가운데 ‘20%이상 상승했다’는 기업도 14.4%나 됐다. 최근 중국 내 노무비가 크게 오르고 있다. 소득분배제도 개혁을 내세운 중국정부는 12차 5개년 규획기간인 2011~2015년 동안 도시•농촌주민 1인당 평균임금을 2배 인상한다는 목표로 최저임금을 지난해 평균 20.2% 인상한데 이어 올해도 9월기준 평균 18.0%까지 올리며 2년새 41%이상 끌어올렸다. 여기에 매년 기업 근로자의 평균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노무비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실제 중국 청도시는 지난 2년간 15%라는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청도시 기업 근로자 월 평균임금은 2010년 2,379위안에서 2011년 2,730위안으로, 2012년에는 3,117위안으로 상승하며 2년사이 31%이상 폭등했다. 청도 소재 A사도 노무비 상승 압박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사의 노무비는 지난 2년간 매년 15%이상 올랐다. A사 관계자는 “올해에도 청도시가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14%로 발표했는데 중국내 경쟁업체 증가, 세계경기 침체 등 경영사정이 가뜩이나 어려운 마당에 노무비까지 계속 올라 이만저만 힘든게 아니다”고 토로했다. 중국에서 심천시, 상해시에 이어 3번째로 근로자 평균임금이 높은 북경시의 2012년 기업 근로자 월평균임금도 5,223위안으로 2011년 대비 11.8%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북경시가 발표했던 임금인상 가이드라인 11.5%에 상응하는 수치다. 북경시는 올해도 12%의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노무비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북경 소재 B사는 이러한 임금인상 추세에 따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평균임금을 10%이상 인상했다. 그러나 최근 1년간 이직률이 15%이상에 달하는 등 인력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B사는 “최근 급격한 임금인상 추세가 지속되다 보니 경영실적과 무관하게 직원들이 무리한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원하는 만큼의 임금을 올려주지 않으면 금세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아 노무관리에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처럼 치솟는 중국의 노무비 상승에 중국에 진출한 국내기업 상당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재중기업 노무비 변화 (전년대비, 단위:%)   2012 2013 30%이상 상승 5.5 3.5 20 ~ 30% 상승 11.9 10.9 15 ~ 20% 상승 20.4 18.9 10 ~15% 상승 37.8 39.3 5 ~ 10% 상승 16.4 16.9 5%미만 상승 4.5 7.0 변화없음 1.5 2.0 감소 0.0 0.5 무응답 2.0 1.0 합계 100.0 100.0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도 전년대비 노무비가 ‘10%이상 상승했다’는 기업이 75.6%에 달해 중국시장에서 상당수 국내기업들이 가파른 노무비 상승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한국상회는 중국내 노무비 상승에 대한 3대 요인으로 “소득분배제도 개혁을 내세운 중국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정책, 중서부지역 등 지역균형 개발정책에 따른 동부연안지역의 저임금노동력 유출, 어려운 일을 기피하는 ‘빠링허우’와 ‘지우링허우’세대 근로자 등장”을 꼽으며 “주거비 등 생활물가의 지속적인 상승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중국내 급격한 노무비 상승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급격한 노무비 상승은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었다. 노무비 상승이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기업의 61.2%가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답했고, 5.5%는 ‘경쟁력을 거의 상실했다’고 답했다. 중국현지 노무관리 애로사항을 묻는 질문에도 기업들은 ‘급격한 임금상승’(50.5%)과 ‘사회보험 및 복리후생비 증가’(46.2%) 등 노무비 상승을 먼저 지적했다. 이어 ‘필요인력 구인난’(44.6%), ‘높은 이직률’(44.1%), ‘핵심 전문인력 구인난’(32.3%) 등 인력수급 애로를 꼽은 기업도 상당수에 달했다.       실제, 최근 1년간 이직률을 조사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47.8%가 ‘10% 이상’이라고 답했고 이중 21.9%는 ‘이직률이 20%이상, 즉 지난한해 동안 직원 5명중 1명이 이직했다’고 답했다. 상회는 “최근 중국내 임금인상 추세로 이직협상이 용이해지다보니 이직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무비 상승에 따른 대응방안으로 기업들은 ‘품질개선 등 내수확대’(53.2%)를 가장 많이 꼽았고, ‘자동화 등 생산시스템 개선’(42.2%), ‘현지인 고용확대 등 인력구조 조정’(26.6%), ‘제품단가 인상으로 수익성 개선’(22.5%) 등을 모색하고 있었으나, ‘중국이외 저임금 국가로 사업이전’이나 ‘중국내 저임금 지역으로 사업이전’을 계획하는 기업은 각각 7.5%, 5.2%에 불과했다. 중국한국상회 관계자는 “중국내 노무비 상승이 지속되고 인력관리에도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임금인상이 가져다주는 중국 구매력 상승기회를 포착하여 중국 소비자의 특성과 구매심리 변화에 부응하는 마케팅 전략을 바탕으로 노무비 부담을 상쇄할 수 있는 기술혁신과 판매확대 노력을 기울여 나가는 가운데 변화하는 중국 근로자 의식에 대응하고 전문인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인사관리 시스템 개선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재외동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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