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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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수필] 가슴을 파고드는 가을의 소리 (김동진) 댓글:  조회:151  추천:0  2017-09-21
수필 가슴을 파고드는 가을의 소리 김동진 가을이다. 옛사람들이 옛날에 벌써 형상사유를 통하여 문학적으로 ‘천고마비’라는 멋진 규정어를 달아놓은 가을이다. 가없이 높이 들린 청자빛 하늘! 머리 우에 저처럼 높고 푸른 하늘이 있다는 것이 한가슴 뿌듯하게 크나큰 고마움으로 안겨온다. 그래서인지 이런 가을에 들려오는 각양각색의 소리는 마냥 정답기 만하다. 담장 굽에서, 마루 밑에서, 장독대에서 약속이나 한듯이 울리는 귀뚜라미소리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가을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신호이다. 숲속에서 매미들의 합창이 열을 올리던 여름의 불고개를 넘어 소리없이 다가온 가을이 마침내 자신을 확인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하지만 귀뚜라미소리가 아무리 요란스럽다 해도 풍요하고 아름다운 가을의 무궁한 소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귀뚜라미소리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오로지 귀뚜라미소리일 뿐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벌판에 나서보라. 노을빛 산발과 황금의 전야를 한품에 거느리고 온 가을이 희열과 랑만의 바다처럼 출렁이고 있다. 그리고 가까이 동구밖 시내물은 조석을 다투는 서늘한 바람을 앞세우고 시린 소리를 내면서 말쑥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 드놀지 않는 몸가짐은 초심을 잃지 않고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쉬임없이 달려가는 마라톤선수를 방불케 한다. 시린 물소리와 더불어 잠자리축제가 시작된 사래 늘찬 강냉이밭에는 성숙을 다그치면서 한해의 허와 실을 갈무리하는 세월의 바람소리가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귀를 조금만 강구면 동서남북 사면팔방에서 귀맛 좋게 들려오는 것은 온통 오곡백과의 탐스러운 알맹이가 알알이 익어가는 소리이다. 지난여름의 혹서와 폭우의 시련을 이겨낸 전야의 가슴에는 이렇듯 눈부시게 아름다운 생명의 소리가 있다. 견인불발의 가을은 시련의 고개를 넘어 바야흐로 산이 익고 들이 익고 달도 익고 별도 익는 대형음악을 펼치고 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이 손잡고 만들어내는 황금빛의 향기로운 음악이다.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살짝 다쳐도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높고 푸른 하늘은 줄지어 떠나가는 철새들의 힘찬 날개에 가볍게 흔들리는데 고요하고 평화로운 들녘에는 울긋불긋한 계절의 색채에 서정을 가미하는 풀꽃들의 순직한 미소가 피여있다. 은빛갈기를 날리는 억새의 설레임, 자름한 꽃쟁반을 들고나온 구절초의 수집음, 가늘고 기인 허리를 펴고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의 화사함, 모두가 하나같이 이 가을의 높아진 하늘처럼 해맑은 모습으로 정겨운 미소를 날리고 있다. 그것은 소리없는 미소, 아니 소리를 감춘 소담하면서 감미로운 미소이다. 저기 단풍으로 불타는 숲속에는 우수수 떨어지는 락엽의 소리가 있다. 그것은 흘러가고 있는 가을의 소리이다. 그것은 때가 되면 스스로 떠나야 하는 섭리의 노래이다. 흙을 찾아가는 귀향의 노래, 뿌리를 찾아가는 귀근의 노래― 진지하면서 비장한 락엽의 노래를 듣노라면 흩날리는 가벼움 속에 깃들어있는 바위처럼 무거운 추락의 의미를 감득하게 된다. 가을이 가는 길에 들려오는 온갖 소리는 소리마다 가을을 장식하는 불가결의 화음이다. 알곡을 거두는 수확기의 동음, 황금트럭이 달려가는 소리,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 도리깨를 휘두르는 소리, 알곡마대를 쌓아올리는 소리가 있어 가을은 흥겨운 노래와 춤의 가을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이제 이 가을도 이런 온갖 소리와 색상의 조화 속에서 잎새로부터 열매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남겨놓고 백지처럼 홀가분한 몸과 마음으로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다. 봄과 여름의 사랑으로 키우고 익힌 더없이 소중한 것들을 한점의 미련도 없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빈털터리가 되여 서리발이 하얀 겨울의 턴넬 속으로 걸어갈 것이다. 그러고 보면 더 많이 끌어안고 더 많이 가지지 못해 안달아하는 인간이야말로 참으로 가소롭다. 얼마나 더 잘살고 또 얼마나 더 오래 살겠다고 그리도 아등바등 욕심을 부리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리 잘살고 오래 살아도 손가락 한번 튕기는 순간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나는 지금 단풍빛이 고옵게 물들고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있고 풀꽃들의 미소가 있는 가을들녘 한 모퉁이에서 마음그릇을 비울 줄 알고 사랑을 나누어줄 줄 아는 가을의 아름다운 소행을 본다. 동시에 인간의 끝없는 허위허욕에 끌끌 혀를 차는 자연의 소리를 새겨듣는다. 그 소리가 있어 가을의 미학은 인간의 상상보다 훨씬 심오하고 심각한 것이다. 가을의 온갖 소리 앞에서 마음의 대문을 활짝 열면 들려오는 소리의 당부가 있다. 그것은 나더러 살아오면서 껴입은 수많은 가식의 허울을 부끄러운 대로 하나하나 벗어던지고 진실한 자기를 만나보라는 가을의 정중한 타이름이다. 알맹이는 얼마이고 쭉정이는 얼마이며 허욕은 얼마였는가를 참답게 따져보라는 이 타이름이야말로 가을의 하많은 소리중에서 무엇보다 값진 천금의 소리가 아닌가 싶다. 이 소리는 가을심중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깨우침의 소리로서 인생사유를 할 줄 아는 모든 사람의 가슴을 파고든다. 바로 이런 소리를 할 줄 아는 가을이기에 한결 멋지게 의젓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가을의 타이름을 가슴깊이 새긴다. 그리고 진실한 자아를 찾는 작업을 시도한다. 마음그릇에 담겨있는 사욕으로 엉킨 욕심의 덩어리를 쓰레기통에 내버리고 인간사랑을 위하여 내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가슴을 파고드는 가을의 소리를 다시금 새롭게 음미하면서 시리도록 파아란 가을의 ‘하늘 못’에 마음의 옷을 헹구고 가을풀꽃의 맑은 미소로 심령의 창을 밝힐 수 있다면 누구나 이 가을 앞에 부끄럽지 않는 하나의 ‘생명개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17-09-20                         
10    [미니수필] 마음밭 다루기(외 2편) 댓글:  조회:444  추천:0  2015-10-29
밭이란 씨앗을 심어 낟알을 수확하는 땅, 다른 말로는 농사를 지을수 있는 흙이다. 이런 흙밭이 있기에 인류는 생존필수조건의 하나인 량식을 해결할수 있다. 하지만 밭이 있다고 농사가 절로 되는건 아니다. 밭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근면으로 아롱진 땀방울을 요구한다. 계절을 맞춰 갈고 씨뿌리고 기음을 매고 비료를 주고 이렇게 손발이 쉴 사이 없이 부지런해야 풍성한 결실을 얻을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는 흙밭외에도 특별히 잘 가꾸어야 하는 밭이 있으니 그것인즉 누구에게나 다 있는 마음이라는 밭이다. 흙밭은 봄부터 가을까지 시간을 맞춰 가꾸면 겨울 한철은 쉴수도 있지만 마음밭은 계절이 따로 없이 일년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가꿔야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흙밭 다루기는 육체적인 피로를 느끼지만 마음밭을 갈아번질 때는 정신적인 아픔을 겪어야 한다. 게다가 잡초가 자라나지 못하게, 병충해를 막기 위해 밤낮으로 신경을 써야 하니 마음밭 다루기란 결코 식은 죽 먹기가 아니다. 깨끗한 령혼의 씨앗을 심어 건실한 령혼의 나무를 키우고 풍성한 령혼의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우리 모두 모름지기 마음밭을 걸구는 심혼정화작업에 각별히 심혈을 몰부어야 하겠다.     침묵속에 피여나는 시간의 꽃   10월에 접어들더니 동트는 새벽마다 풀잎에서 반짝이던 이슬이 어느새 감쪽같이 이름을 바꿔 반짝이는 서리가 되였습니다. 바뀌는 계절은 위대한 자연이 가리키는 말없는 실천의 길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변신을 시작하는것입니다. 이슬이 서리의 전신이라면 서리는 이슬의 변신이겠지요. 침묵의 시간은 빙점을 사이두고 이슬이 되기도 하고 서리가 되기도 합니다. 빙점우에서 이슬꽃으로 피고 빙점아래에선 서리꽃으로 피여나는 시간의 작은 물방울을 눈여겨보노라면 자연이 침묵속에서 고독의 시간을 씹어 천만가지 무성의 꽃을 빚고있는줄 알겠습니다. 서리꽃이 피였으니 이제 어느날인가는 하얀 눈꽃도 피여나겠지요. 그리고 그사이로 계절을 따르는 바람꽃이며 안개꽃이며 그리고 노을꽃과 구름꽃이 피고지고 하겠지요. 침묵으로 피여나는 시간의 꽃속에는 나를 기다리지 않는 나의 시간이 멈출줄 모르는 강물이 되여 달려가고있습니다. 만년의 침묵속에서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드는 자연앞에서 건방지게 말이 많은 나의 시간은 부끄럽게도 허공에서 부서진 꿈이였습니다. 그러니 이 가을엔 나 또한 침묵속에서 침묵보다 무거운 나의 시간의 꽃을 빚기 위하여 스스로 가슴을 끓이는 생명의 모닥불을 지펴야 하겠습니다.     살아있음이 곧 기적인것을   사전에서는 기적에 대하여 상식으로는 생각할수 없는 기이한 일, 불가사의한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례컨대 어느날 갑자기 소경이 눈을 떴다든가, 앉은뱅이가 일어섰다와 같은 기문이 바로 기적이라는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반드시 그런것만은 아니다. 시인 강은교(한국)씨는 자기의 시에서 《중병으로 나의 피는 결코 마르지 않았으며/ 해빛은 나의 창을 끝내 떠나지 않았다는것》을 기적이라고 노래했다. 사람에게는 살아있는 생명자체가 곧 기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심근경색으로 구급실에서 한주일간 헤매다가 살아난것도 그리고 지금 컴퓨터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쓰고있는것도 기적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이렇듯 기적이란 아득히 높고 먼 상상밖에 있는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의 일상적인 부단한 운동속에 있는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기적이란 물우를 걷는게 아니라 땅우를 걷는것》이라고 한 16세기 조선의 문학가인 림제선사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동감을 표시한다. 삶이 곧 기적이다. 살아있음 자체가 곧 기적인것을! 그러니 나도 삶이라는 기적속에서 오늘 아침에도 내 눈으로 동녘을 물들이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는 기적을 낳았고 그 기적을 행복처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생명인줄 알겠다. 길림신문 2015-10-28  
9    일력이 주는 느낌 댓글:  조회:353  추천:0  2014-12-12
일력이 주는 느낌  □ 김동진               해마다 12월이 되면 지나간 한해에 있었던 좋은 일과 궂은일을 갈무리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맞이준비를 하는데 그 준비물중에 내가 빼놓지 않는것이 새해의 일력을 사는것이다. 벽에 거는 멋있는 달력(掛历)과 책상에 세워놓는 깜찍한 달력(台历)까지 여러가지가 다 있는데도 기어코 한장씩 뜯어내는 일력을 사는데는 나로서의 리유가 있다. 달력은 걸어놓거나 올려놓고 한달에 한번씩 번지며 보는 멋이 있다면 일력은 걸어놓고 하루에 한장씩 뜯어내는 멋이 있어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는것이 나의 소견이다. 어찌 보면 일력은 한그루의 엄숙하며서 엄격한 나무이다. 365개의 잎을 달고 하루에 하나씩 떨구는 시간의 나무이다. 유구한 세월이 증명하듯이 이 시간의 나무앞에서 허풍을 치거나 궤변을 부리거나 건달을 친다면 나중에 차려지는것은 쭉정이밖에 없다. 그러니 일력앞에 취할바는 오로지 성실과 겸손 그리고 분투하는 정신이다. 왜냐하면 일력이란 얇은 종이장이 아니라 시계와 마찬가지로 흐르는 시간을 알려주는 대용물이기때문이다. 일력이 쌓이여 력사가 된다. 일력에 표시된 수자는 단순한 아라비아수자가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의 이름이다. 그 이름속에서 우리는 눈물과 웃음으로 반죽된 고달프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삶의 노래를 부르고있는것이다. 일력은 계절을 낳고 세월을 낳는다. 일력은 암탉이 병아리를 까듯이 날마다 새날을 낳는다. 일력속을 걸어가노라면 우리는 춘하추동 사계절과 립춘부터 대한까지의 변화무쌍한 24절기를 만나게 된다. 일력은 에누리가 없다. 시장바닥의 물건값처럼 흥정할수 있는것이 아니다. 아침은 저녁이 아니며 오늘은 오늘일뿐 래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어제”라는 단어로 추억을 만들고 “새날”이라는 단어와 “래일”이라는 단어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새 힘을 안겨주니 일력은 모름지기 마술의 힘을 지니고있는것 같기도 하다. 일력을 매일 한장씩 뜯어버릴 때면 흐르는 세월속에 살아있는 자신을 보게 되며 낡은 일력의 마지막장을 뜯어내고 새 일력을 걸 때면 내 몸에 감기는 또 하나의 나이테를 보는것 같다. 이처럼 일력이 주는 느낌은 달력이 주는 느낌보다 몇갑절 풍부하고 다양하다. 이것이 내가 일력을 갖추는것을 명심하는 리유라고 할수 있다. 오늘도 나는 한해가 막잎에 오르는 12월의 끝자락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한장의 일력을 뜯어내면서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묵은해의 해거름을 딛고 바로 그 소리를 들으려고 낡은 일력이 물러난 자리에 새로 사온 새해의 일력을 거는것이다. 연변일보    
8    다시 부르는 고상한 령혼의 노래 댓글:  조회:430  추천:2  2014-04-24
꽃샘바람속에 녹으며 얼며 하는 가탈스러운 3월의 등성이를 타고 인간동네를 찾아온 고상한 령혼의 봄을 보았다. 그것은 가슴속에 백성 ”민”자를 품고 다니는 국가지도자의 발자국을 따라온 감동의 봄이였다. 한 순수한 인간의 고상한 령혼을 보듬는 손길은 봄날의 해빛처럼 따스하였고 백성을 위하여 일체를 바친 훌륭한 간부의 흉금을 읊은 시사(詩詞) 는 차분히 내리는 봄비마냥 중화의 대지를 적시였다. “어느 백성인들 훌륭한 관원 좋아하지 않을가? 눈물이 초유록의 오동나무 적시네. 살아도 모래언덕, 죽어도 모래언덕, 백성들의 생사가 걸려있네. 조석으로 내리는 눈서리 영웅의 뜻 꺾지 못하리…” 란고현의 초유록기념관을 찾아간 습근평 총서기의 이야기와 이 시사를 보는 순간 나의 눈앞에는 하나의 숭고하게 빛나는 이름이 밤하늘의 별처럼 떠올랐다. 현위서기의 본보기--- 초유록! 참으로 얼마나 오래만에 다시 불러보는 비장한 이름인가! 1962년 12월부터 470여일을 란고라는 재해지구에서 군중울 이끌어 풍사와 알칼리성토양과 침수와 싸우다가 1964년 5월 14일,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사람, 그렇게 50년전에 란고의 모래톱에 묻히여 살아있는 당원간부들에게 계속 써야 할 삶의 영원한 주제를 남겨준 사람! 내가 이 봄에 초유록의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감동에 젖는것은 그가 나를 포함한 수많은 중국사람들을 울린 년대가 있기때문이다. 나는 지금 그 눈물에 젖은 날을 회억하면서 1991년 4월에 영화 《초유록》을 보고 쓴 글을 꺼내놓고 고상한 령혼의 노래를 다시 불러본다. 장사진을 이룬 장례대오가 모래등성이를 넘어오고 고동을 멈춘 하나의 순결한 심장이 모래톱에 묻히는 순간, 영사막에서 울음소리가 터지고 관중석에서 흐느낌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두 볼에서도 뜨거운것이 흘러내리고있었다. 그것은 한 순수한 사람에 대한 추모의 눈물이였고 한 숭고한 정신에 대한 애도의 눈물이였다. 용용히 흐르는 황하수와 회오리치는 란고의 모래바람은 기억하고 있으리라! 언젠가 이 땅우에 별처럼 나타났다가 별처럼 사라진 하나의 빛나는 형상과 붉은 심장을… 그가 바로 초유록---란고현의 현위서기 초유록이였음을. 가슴속에 인민만을 간직하고 머리속에 사업만을 생각한 그의 장려한 인생에서 우리는 심각하고 완벽하며 생동한 인간의 참된 령혼을 우러러본다. 자아를 망각하는 정신으로 자기의 뼈를 굳히고 피를 끓인 사람, 그에게는 풍사를 헤쳐 나갈 담량이 있었고 난관을 돌파할 신념이 있었다. 바로 그러했기에 망망한 물바다에서 한포기 한포기의 곡식을 일으켜 세웠고 사나운 모래바람속에서 한장 한장의 설계도를 그려낼수 있었던것이다. 그대 파도에 삼켜진 농가들과 모래사태에 짓눌린 전야를 바라보며, 난민을 싣고 가는 화물차와 풍설에 떨고있는 부모형제를 바라보며 얼마나 얼마나 가슴 쓰려했던가?! 속에서 내려가지 않는 분노와 아픔을 안고 그대 나선 조사연구의 길, 그 길에서 그대는 뢰성벽력에 끄덕없는 산악이였고 광풍폭우를 막아 나선 준봉이였다. 하얗게 소금 돋친 염알카리땅우에서 한알의 락화생을 위하여, 한포기의 옥수수를 위하여 한그루의 나무가 되기를 소원했고 한줌의 흙이 되기를 갈망했던 사람! 바람소리에, 비 내리는 소리에 잠들지 못한 밤과 밤, 그대 찾아간 사양실과 토벽집들을 우리 어찌 잊을수 있으랴! 피로와 허약 게다가 덮쳐드는 병마의 시달림, 그래도 사업만은 버릴줄 몰라 매 하나의 우물과 매 한채의 초가집을 근심하던 초유록. 그대는 심장이 멎는 순간까지도 36만 란고 인민의 어려운 살림을 걱정했나니 초유록이여, 그대는 진정 우리 중화의 참된 아들이었고 인민의 훌륭한 아들이였다. 란고의 변천을 바라볼수 있게 자기를 모래톱에 묻어달라는 그 마지막 유언앞에서 황하수가 어찌 흐느끼지 않을수 있으며 모래톱이 어찌 울지 않을수 있으며 란고와 더불어 이 나라의 천산만봉이 어찌 눈물을 뿌리지 않을수 있으랴! 죽어도 인민을 떠나지 못하고 인민의 땅을 떠날수 없다는 한 순수한 공직자의 마지막 소원이여! 색 낡은 모자, 기워 입은 외투, 감탕물에 젖은 걷어올린 바지가랑이… 망망 수로와 천리 풍정을 탐측하던 그대의 모습이 억만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경모와 추억으로 살아있다는것은 그대의 사심없는 무한한 봉사정신이 남겨놓은 숭고한 사상의 눈부신 빛발을 의미하는것이리라. 그대 찍은 발자국엔 리상의 씨앗이 움트고 그대 남긴 손사래엔 분투의 열매 반짝이나니 인민대중을 이끌어 대자연과 박투한 한 현위서기를 저 하늘의 해와 달이 기억하리라. 짧디짧은 42년을 가슴을 내밀고 고개를 들고 어엿하게 살아온 사람, 그의 이름은 공산당원이였다. 중화의 아들이였다. 그의 평범하지 않은 삶의 행정과 고상한 인격앞에서 우리 무거운 사색에 잠겨 보아야 하지 않을가? 나는 인민의 아들답게 살고있는가? 나는 국가간부답게 살고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있는가? 우리의 조국과 민족과 인민이 수요하는 간부는 바로 초유록동지와 같은 공무원이라는것을 모두가 깨닫는다면 인민대중속에서의 우리 당의 형상은 영원히 지지 않는 저 하늘의 태양처럼 눈부실것이고 무너뜨릴수 없는 만리장성으로 높이높이 솟아오를것이다. 그러면 초유록이여, 그대도 저 구천에서 기쁨에 젖은 안식의 눈물을 흘릴수 있으리라. 이것이 고상한 령혼의 봄에 내가 다시 부르는 고상한 령혼의 노래이다.
7    [미니수필] 365회 드라마(외 1편) 댓글:  조회:346  추천:0  2014-01-13
흐르는 세월은 해마다 회수가 똑같은 드라마를 줄기차게 생산하고있다. 더하지도 덜지도 않는 365회 장편드라마, 이 드라마는 섣달그믐날 제야의 종소리로 낡은 해의 막을 내림과 동시에 하늘땅을 진감하는 폭죽소리로 새해의 막을 올린다. 우주공간의 천지만물이 모두 등장하여 흥망성쇠의 이야기를 엮어가는 이 드라마속에 우리들의 인생이야기도 있다. 우리는 이 인생드라마속에서 저마다 배우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인기의 유무는 세간의 평가를 들어보아야 할 일이지만 혹자는 주역으로 혹자는 보조역으로 되기도 한다. 극본이 따로 없고 연출이 따로 없고 련습이 따로 없는 이 드라마속에서 각자는 스스로 자기의 위치를 찾아야 하고 자신의 삶의 높은 질을 위해 아글타글 최선을 다해야 하는것이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우리 모두가 웃음과 눈물을 반죽하여 함께 만드는것인만큼 365회의 갈피마다에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새기지 않을수 없다. 나는 올해라는 이 365회 드라마가 평화가 전쟁을 이기고 부유가 가난을 이기고 정의가 사악을 이기고 렴정이 부패를 이겨 근로용감하고 정직선량한 백성들의 얼굴에 행복의 웃음꽃이 활짝 피여나는 그런 드라마로 펼쳐지기를 소망한다.   눈치기   아빠트에 살면서부터 겨울이면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 은근히 근심스러웠다. 백설로 단장한 은빛설경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문앞에 가득 쌓인 눈을 빨리 쳐야 하는 일거리때문이다. 만약 눈을 치기전에 사람과 차들이 드나들면서 다져놓거나 밑으로 눈이 녹으며 얼어붙으면 다니기가 여간 힘든것이 아니다. 그리고 혹시나 얼음판에 미끌어 넘어지면 병원신세를 져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눈이 오는 날이면 나는 눈을 치는 일을 각별히 명심한다. 누구를 기다릴것 없이 남들이 손을 쓰기전에 내가 먼저 나가 길을 내야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폭설이 많은 금년겨울의 나의 눈치기는 생각과는 달리 《행차뒤 나발》이 될 때가 많다. 그날도 간밤에 큰눈이 내렸기에 이른새벽에 일어나 눈가래를 들고 나갔는데 그만 허탕을 치고말았다. 누군가 나보다 먼저 나와서 출입문앞을 깨끗하게 쓸고 대문앞까지 다니는 길을 훤하게 열어놓은것이다. 바로 눈치기가 끝난 이 마당에서 나는 가슴으로 느꼈다. 나의 곁에 나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또 남을 위해 말없이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그날 새벽날씨는 살을 에이는듯 맵짰으나 나의 온몸은 따스한 봄날처럼 훈훈해났다.   /김동진
6    흥부를 닮은 사람들(외1편) 댓글:  조회:977  추천:0  2013-07-11
.미니수필. 흥부를 닮은 사람들(외1편) (훈춘)  김동진 지난 봄, 춘화진의 한 농가부녀가 자기 집 울바자에 걸린 새끼노루 한마리를 “생포”하였다. 먹이를 찾아 뜨락에 들어왔다가 나간다는것이 울바자 틈새에 끼여 오도가도 못한것이다. 그 녀인은 어린 노루를 바자틈에서 구한 다음 긁힌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먹이를 먹여 산으로 돌려보내였다. 여름에는 경신진 이도포촌 촌민이 날개를 상한 가마우지 한마리와 왜가리 한마리를 조류전문가에게 맡겨 치료를 한 다음 날려보내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행실이 아닐수 없다. 나는 그들의 미담에서 현대판 흥부를 보았다. 흥부의 가난에 대해 공론하는것을 떠나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하여 살려준 선량한 마음씨만은 어느 시대의 사람이건 따라배울바가 아닌가싶다. 동물사랑, 철새사랑이 산내들사랑과 함께 화초목사랑과 함께 생태평형을 추구하는 인간생활의 한개 내용으로 자리매김을 할 때만이 인간이 더욱 인간다워질수 있으니 말이다. 흥부를 닮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인간과 자연은 더욱 화목할것이다. 흥부를 닮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자연도 인간을 더욱 사랑할것이다.   뛰는 가슴 복잡한 일로 마음이 무거울 때면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해보라는 말이 있다. 가슴이 뛰는 소리를 느끼면서 생각하라는 말이다. 가슴이 뛴다는것은 심장이 뛴다는것이요, 심장이 뛴다는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근으로 표현한것이 “두근두근”과 “두근닷근”이다. 겁나거나 놀랐거나 긴장할 때의 정도에 따라 때로는 너근이 되고 때로는 일곱근이 된다는 형상적인 표현이다. 각설하고 가슴이 뛴다는것은 살아있는 자만이 소유할수 있는 특혜이기에 뜨거운 피가 끓고있는 심장 하나를 가슴에 품고있다는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뛸 일이다. 생명의학의 관찰기록에 의하면 정상적인 사람의 심장은 하루에 10만번을 뛴다고 한다. 대단한 수자이다. 그렇다면 70년쯤 산 사람의 한생에 뛴 심장의 박동수는 천문수자로 될것이다. 심장이 뛴다는것은 생명이 뛴다는것이고 희망이 뛴다는것이다. 나에게 이런 심장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뛰는 심장을 무엇인가 유용한 일을 하는데 써야 하겠다. 뛰는 가슴이여! 나의 생명이여! 료녕신문
5    찰떡꽃이 피였습니다 (외1편) 댓글:  조회:548  추천:0  2013-05-31
찰떡꽃이 피였습니다 (외1편) 찰떡꽃이 피였습니다. 해마다 대학교입시때면 어김없이 피여나는 연변특유의 찰떡꽃입니다. 시험장앞에 피여난 찰떡꽃은 우리의 응시생들이 시험을 잘 치기를 바라는 학부모들의 간절한 마음의 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전통음식인 찰떡이 이처럼 음식의 의미를 초월하여 자식들의 공부길이 더욱 넓게 트이기를 바라는 행위의 의미로 새로운 찰떡이미지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른새벽부터 시험장 정문앞에 마련된 소원빌기판에 하얗게 피여나는 찰떡꽃! 그 꽃을 보노라면 “철썩! 붙어라! 대학에!”라는 찰떡꽃의 꽃말이 들려옵니다. 그 모진 가난과 굶주림속에서도 자식만은 까막눈을 만들지 않으려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온 우리 민족이 그리고 소를 팔아서 자식의 공부뒤바라지를 해온 우리 조상님들의 자식사랑이 오늘의 찰떡꽃으로 피여난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찰떡꽃은 우리의 응시생들을 위해 찰떡으로 빚은, “찰떡처럼 철썩! 대학에 붙어라!”는 간절한 소망의 꽃이요, 기원의 꽃이랍니다. 찰떡꽃은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해마다 약속처럼 피여나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응시생들의 가슴에 무한한 용기와 신심을 안겨줄것입니다. 쑥쑥 잘도 크는 쑥   안해가 장바구니를 들고 나갔다오더니 밥상에 쑥국이 올랐다. 아무데서나 쑥쑥 잘 자란다는 쑥을 만나니 쑥 한뭉치와 마늘 스무개를 먹고 동굴안에서 백날을 견디여 웅녀로 된 곰이 환웅의 씨를 받아 우리 민족의 시조-단군왕검을 낳았다는 신화가 떠오른다. 신화라고 하지만 어쩌면 실말처럼 안겨오는 고전이다. 누가 어떻게 리해하든간에 쑥은 반만년의 력사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삶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온 풀인것만은 틀림이 없다. 쑥은 식용으로, 약용으로 그리고 생필품으로 그 기여가 대단하다. 가난을 감내해온 수많은 세월속에 쑥은 우리를 한번도 떠난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민초의 삶에는 쑥떡, 쑥국, 쑥밥이 있었고 의원의 방에는 뜸쑥, 찜쑥, 약쑥이 있었으며 시골에는 모기쑥, 쑥나무가 있었다. 보다싶이 쑥은 신령을 접한 풀로서 “모든 풀의 왕초”가 되기에 부끄럽지 않다 일본의 원폭지인 히로시마의 재더미속에서 제일 먼저 살아난 풀이 쑥이 아니였던가! 그러니 우리 민족의 유전자속에 이처럼 생명력이 놀라운 쑥향이 들어있다는것도 하늘이 주신 복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쑥쑥 잘도 크는 쑥, 나는 항상 우리 민족도 쑥처럼 아무데서나 허리를 곧게 펴고 쑥쑥 자라나기를 바란다.
4    흥부를 닮은 사람들(외1편) 댓글:  조회:477  추천:0  2013-05-28
.미니수필. 흥부를 닮은 사람들(외1편) (훈춘) 김동진 지난 봄, 춘화진의 한 농가부녀가 자기 집 울바자에 걸린 새끼노루 한마리를 “생포”하였다. 먹이를 찾아 뜨락에 들어왔다가 나간다는것이 울바자 틈새에 끼여 오도가도 못한것이다. 그 녀인은 어린 노루를 바자틈에서 구한 다음 긁힌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먹이를 먹여 산으로 돌려보내였다. 여름에는 경신진 이도포촌 촌민이 날개를 상한 가마우지 한마리와 왜가리 한마리를 조류전문가에게 맡겨 치료를 한 다음 날려보내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행실이 아닐수 없다. 나는 그들의 미담에서 현대판 흥부를 보았다. 흥부의 가난에 대해 공론하는것을 떠나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하여 살려준 선량한 마음씨만은 어느 시대의 사람이건 따라배울바가 아닌가싶다. 동물사랑, 철새사랑이 산내들사랑과 함께 화초목사랑과 함께 생태평형을 추구하는 인간생활의 한개 내용으로 자리매김을 할 때만이 인간이 더욱 인간다워질수 있으니 말이다. 흥부를 닮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인간과 자연은 더욱 화목할것이다. 흥부를 닮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자연도 인간을 더욱 사랑할것이다.   뛰는 가슴 복잡한 일로 마음이 무거울 때면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해보라는 말이 있다. 가슴이 뛰는 소리를 느끼면서 생각하라는 말이다. 가슴이 뛴다는것은 심장이 뛴다는것이요, 심장이 뛴다는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근으로 표현한것이 “두근두근”과 “두근닷근”이다. 겁나거나 놀랐거나 긴장할 때의 정도에 따라 때로는 너근이 되고 때로는 일곱근이 된다는 형상적인 표현이다. 각설하고 가슴이 뛴다는것은 살아있는 자만이 소유할수 있는 특혜이기에 뜨거운 피가 끓고있는 심장 하나를 가슴에 품고있다는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뛸 일이다. 생명의학의 관찰기록에 의하면 정상적인 사람의 심장은 하루에 10만번을 뛴다고 한다. 대단한 수자이다. 그렇다면 70년쯤 산 사람의 한생에 뛴 심장의 박동수는 천문수자로 될것이다. 심장이 뛴다는것은 생명이 뛴다는것이고 희망이 뛴다는것이다. 나에게 이런 심장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뛰는 심장을 무엇인가 유용한 일을 하는데 써야 하겠다. 뛰는 가슴이여! 나의 생명이여!
3    탈피하는 뱀처럼(외1편) 댓글:  조회:697  추천:0  2013-04-02
탈피하는 뱀처럼(외1편) (훈춘) 김동진 2012 임진년 흑룡의 해가 지나가고 2013 계사년 뱀의 해가 밝아옵니다. 뱀띠해라고 하니 뱀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군요. 성경속의 뱀은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도록 꾀하여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고구려벽화무덤인 천왕지신총에는 뱀의 몸체에 남녀의 사람머리가 달린 그림이 있는데 지신(地神)이라고 씌여있고 중국신화속의 복희씨와 녀와씨도 인두사신(人+⒭淀?으로 되여있으며 그리고 고대의 일본인들은 뱀을 저들의 조상으로 모시였다고 합니다. 뱀은 상징성이 강한 파충류입니다. 뱀은 성장기에 허물벗기 즉 탈피를 하기에 영원한 재생의 상징이 되는데 그리스신화속의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뱀이 이상한 풀을 물고와 병든 동료뱀을 살려내는것을 보고 약초를 연구하였다고 하니 뱀은 또 지혜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알을 많이 낳는 다산과 풍요가 있어 끈질긴 생명의 화신으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뱀은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징글스러운 흉물이지만 민속신앙의 세상에서는 이처럼 신적인 존재로 부각되여 인류의 정신력사속에 또아리를 틀고있습니다. 그러므로 뱀의 해에는 우리 모두가 이런 뱀을 생각하면서 괴롭고 아프고 힘들고 슬펐던 지난 일들을 모조리 낡은 해의 언덕에 묻어버리고 탈피하는 뱀처럼 새롭게 태여나기를 희망합니다. 맹령의 “돈나무” 기쁜 소식 알립니다. 여기는 “연변의 소강남”인 훈춘시 반석진 맹령촌입니다. 60년의 재배력사를 가지고있는 맹령사과가 산업발전대상으로 지목되고 품종개량과 과학재배를 거쳐 마침내 항암원소를 많이 함유한 셀렌사과로 검증되였습니다. 하여 이태전까지만 해도 킬로그람당 겨우 3원 하던 맹령사과가 지난해엔 일약 12원으로 껑충 뛰여오른것입니다. 실로 일할수록 성수나는 세월이 온겁니다. 한국에 나가 품팔이를 하던 남해란씨, 채영범씨를 비롯하여 돈을 벌겠다고 외지와 외국으로 나간 사람들중 이미 20여명이 다시 마을로 돌아와 자기 집 사과밭에서 “돈나무”를 가꾸고있답니다. 그들은 셀렌사과덕분에 지난해에 호당 평균수입 8만원을 돌파하였는데 년수입이 20만원이 넘는 집이 15호, 10만원이상이 되는 집이 20호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맹령촌의 노래는 이제부터 “모두다 갔다”가 아니라 “모두다 돌아온다”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마을에 이처럼 좋은 “돈나무”가 있는데 누가 외국에 나가 고생을 사서 하겠습니까? 산과 들, 언덕과 뜨락에 봄이면 하얀 사과꽃이 구름처럼 피여나고 가을이면 빠알간 사과가 노을처럼 타오르는 맹령촌. 만무과원을 꿈꾸는 맹령촌에 “돈나무”가 살아있는한 맹령촌 촌민들의 치부몽도 주렁지는 사과처럼 둥글어질것입니다.
2    눈물겨운 모성애(외1편) 댓글:  조회:747  추천:0  2013-03-27
눈물겨운 모성애(외1편) (훈춘) 김동진 “알몸어머니의 모성애”라는 작가미상의 글을 읽으면서 모성애란 천하 최악의 경우에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천직처럼 한몸을 희생할 각오가 되여있는 엄마의 비장하게 위대한 사랑임을 눈시울이 뜨겁게 느끼였다. 이야기는 조선전쟁시기, 눈이 덮인 강원도의 깊은 산골짜기에서 들려온 아이의 울음소리로 시작되고 후퇴하던 군인이 그 울음소리를 따라가 눈구덩이속에서 아이를 꺼내려고 눈을 치우면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다.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녀인의 알몸이 나온것이다. 피난을 가던 엄마가 눈이 내리는 골짜기를 벗어날수 없게 되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입고있던 옷을 팬티까지 모조리 벗어 아이를 감싼 다음 끌어안은채 얼어죽은것이였다. 자식에 대한 엄마의 선천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이 알몸이여도 부끄러울것 한점 없는 죽음을 만든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이 아이를 살게 한것이다. 약한 녀자를 강한 엄마로 만든 모성애! 이 이야기는 내가 상식적으로 알고있던 이왕의 모성애를 훨씬 초월하여 자식을 위해서라면 알몸으로 죽어도 부끄럽지 않다는 눈물겨운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이 얼마나 비장한 모성애인가! 이 얼마나 위대한 모성애인가! 메주꽃 피는 마을에 경사가 났네 메주꽃이란 간장과 된장이 분리되는 순간에 피여나는 하얀 곰팡이털을 이르는 말입니다. 거미줄 같기도 하고 이슬 같기도 한 이 신비한 꽃이 무더기로 피여나는 마을에 경사가 났습니다. 의란진의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민들레마을에서 우리 민족의 전통된장으로 생태산업화의 길을 모색하는 리동춘회장의 끈질긴 탐구와 실험이 마침내 “오덕장로주” 라는 술을 개발하여 보란듯이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단심, 화심, 항심, 선심, 불심을 구비하였다는 우리 민족의 전통된장이 영양과 건강을 선물하는 새로운 술문화를 창조한것입니다. 하여 심산속의 민들레마을이 생태적문화사회를 구축하는 창업의 길에서 획기적인 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이는 전통된장으로 인간의 생태혼을 불러일으킨 뛰여난 장거입니다. 전통된장과 술의 만남으로 제조된 오덕장로주! 오덕장로주는 길림성신제품감정을 무난히 통과한 기쁨과 함께 CCTV “매력 중국.향촌행”프로에 올랐으니 이 어찌 희사에 경사가 겹친것이 아니겠습니까? 연변민들레마을에는 생태문명의 향기로 피여나는 메주꽃이 있습니다. 연변민들레마을에는 오덕문화의 향기로 익어가는 장로주가 있습니다.
1    립춘가절(외1편) 댓글:  조회:651  추천:0  2013-02-05
.미니수필. 립춘가절(외1편) (훈춘) 김동진 언젠가 설을 앞두고 시골집대문에 붙여놓은, 먹내음이 흐르는 춘첩자를 보면서 농가의 마음을 읽은적이 있다. 고풍스럽긴 해도 우리 민족이 아껴온 글귀 “립춘대길(立春大吉), 건양대경”이였다. 그것은 새해의 새봄에 대한 집안 어른들의 대를 이어 변함없는 하나의 간절한 소망이였다. 해마다 설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다가오는 새해의 첫절기가 립춘이다. 그래서 춘절을 쇤다는 말은 립춘을 쇤다는 말과 별로 다를게 없다. 립춘이다! 우리 모두 얼마나 기다려온 푸르른 이름인가! 립춘이란 겨울을 이겨낸 봄이 일어섰다는 뜻인바 누워있거나 앉아있다는 말이 아니다. 일어섰으니 가기마련인데 립춘이 가는 길도 순탄하지는 않다. 이제 어느날 심술쟁이 꽃샘추위가 막아설것이고 때아닌 폭설의 세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모래바람이 몰고온 누우런 먼지속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넘어지거나 쓰러질 립춘이 아니다. 그 모진 시련앞에서 휘청거릴수도 있고 흔들릴수도 있겠지만 한번 일어선 봄은 결코 넘어지는 법이 없으니 어김없는 약속대로 얼음은 풀리고 진달래는 피여나고 종달새는 하늘로 날아오를것이다. 일어선 봄, 불가항력의 봄앞에서 건방을 떨지 말자. 겸허한 마음으로 이 몸을 봄이라는 글자곁에 세우면 그게 바로 립춘가절에 고목봉춘이 아니고 무엇이랴.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해도 우리네 세시풍속에는 명절도 많습니다. 음력설과 정월대보름, 청명과 단오, 류두날과 칠석날, 추석과 동지… 모두가 하나같이 소중한 날들입니다. 그것은 명절마다 건강과 풍요,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우리 민족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기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한민족의 삶의 근본적인 추구와 지향은 변함이 없으며 그런 지향과 추구가 세시명절속에 녹아들어 한민족 풍속문화의 검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게 아닐가요? 하기야 오랜세월의 부대낌에 많이 변형되고 퇴색한 농경사회의 세시풍속이지만 그속에 우리가 대를 이어 유산처럼 지켜야 할 조상들의 뜨거운 숨결이 있음을 망각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해도 변할수 없는 삶의 지혜와 슬기, 즉 자연을 떠날수 없는 인간의 기본적인 정신과 태도가 아닌가싶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해도 우리가 지켜가는 민속명절은 찰떡과 오곡밥, 수리떡과 인절미, 송편과 오그랑팥죽으로 우리만의 색과 맛과 향을 풍길것입니다. 그것은 자연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살가운 마음가짐입니다. 그것은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저 하는 진지한 민속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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