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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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천리변강 푸른 동맥 - 김동진 댓글:  조회:78  추천:0  2019-07-16
시 천리변강 푸른 동맥           -김동진- 천리를 줄달음쳐 동해를 찾아가는 물에 바람과 구름과 더불어 하많은 사연이 일렁인다   기아년의 캄캄칠야에 소구유를 타고 고향을 떠난 헐벗은 족속의 눈물과 장백의 눈보라를 헤쳐온 피어린 항쟁의 노래를 물이랑마다 아로새겨온 력사의 강임에랴   벼짚이영 아래 모여앉아 가나다라를 읽던 마을과 진달래 피여나는 산발을 푸른 가슴에 새겼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더러 있기는 하겠지만   이골 저골 들려오던 물함박 바가지장단과 혼령의 메아리 같은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은 한가슴 울먹이기에 족하였다   장백설원의 하얀 전설 속에 천년을 푸르게 살아감뛰는 이 땅의 성스러운 젖줄기여!   숭선의 나무숲을 헤치고 회막동 동구밖을 굽이쳐 훈춘벌을 감돌아 흘러흐르는 천리변강의 푸른 동맥--- 아, 연변의 두만강이여!  
74    님을 사랑하기에 댓글:  조회:69  추천:0  2019-07-16
시 님을 사랑하기에         -김동진-   이 땅에 맨 처음으로 괭이를 박은 사람이여 허리띠 졸라매고 화전을 일군 사람이여 님을 사랑하기에 산은 바람막이로 솟아있고 강은 생명수로 흘러갑니다   이 땅에 맨 처음으로 항일의 기발 추켜든 사람이여 왜놈들과의 혈전에서 청춘과 생명을 바친 사람이여 님을 사랑하기에 진달래는 노을처럼 타오르고 렬사탑은 하얗게 솟았습니다   이 땅에 맨 처음으로 학교를 세운 사람이여 계몽의 교실에서 우리 글을 가르친 사람이여 님을 사랑하기에 우리 말이 뿌리내리고 우리 글이 살아남았습니다   정녕 잊을 수 없는 님이여 잊어서는 아니될 님이여 별처럼 반짝이는 님이여 꿈속에도 그리운 님이여 사책에 살아있는 님이여 가슴 속에 새겨진 님이여 대를 이어 전해갈 님이여.
73    [시] 엉겅퀴꽃 (김동진) 댓글:  조회:151  추천:0  2019-07-15
김동진 엉겅퀴꽃   조금은 엉성한 그 이름 엉겅퀴꽃   초야를 품에 안고 민들레와 이웃하고 사는 꽃 가시꽃 이고 지고 장미꽃과 노래하며 사는 꽃   보라빛 사랑 하나 위해 펼쳐든 사랑의 뾰족한 자존 이 땅에 살아남기 위하여 내뿜는 생명의 간절한 웨침   허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지도록 밟히면서 살아도 씨앗 속의 기발만은 지켜 봄이 뒹구는 초야에 펄럭임 없는 기발 세운다 가시꽃 피운다
72    [시]락엽의 길에는 부서진 꿈이 없더라 댓글:  조회:92  추천:0  2019-07-08
락엽의 길에는 부서진 꿈이 없더라(외4수) 김동진     묻지 않으련다  락엽이여 너의 가는 길  묻지 않으련다   우수수 떨어지며 날리는 길 마구 뒹굴며 아프게 밟히는 길 후미진 곳에 두툼히 쌓이는 길 그리고 천천히 부서지고 썩는 길   그 가냘픈 어깨 우로 무정한 세월의 바람이 불고 바뀌는 계절의 눈비가 내리더라   그렇다고 락엽이여 그건 푸르름을 떠난  애석하게 부서진 꿈이 아니기에 너는 한번도 슬퍼한 적 없더라   억겁의 흙에로 다가서고 만년의 뿌리를 찾아가는 락엽이여  뜻이 고운 락엽이여 순리를 따르는 너의 길에는 부서진 꿈이란 있을 수 없더라   억새도 찬란한 꿈이 있다   청빈으로 살아온 올곧은 마음자락 저 푸른 하늘벽에 기대고 싶어 스스로 아픈 뼈마디 뽑아올리고 가까스로 기인 목 추켜들었다   계절의 축복이 고옵게 물들어 단풍이 노을처럼 불타는 산기슭 고요가 락엽처럼 깔린 골안에서 찬바람에 나붓기는 은빛 꽃머리   누렇게 퇴색한 잡초와 이웃하여 후미진 곳에서 살아도 좋다 비록 고귀한 몸은 아니지만 또한 시체멋을 부릴 줄 모르지만 그렇다고 자존을 버린 적은 없다   대천세계와 동떨어져 산다고 좋은 생각 하나 쯤 없겠는가 억새도 찬란한 꿈이 있다 해달을 그리는 붓이 되리라 흰갈기 날리는 백마가 되리라 생명을 노래하는 기발이 되리라     하얀 천사를 기다리는 겨울나무 히말라야의 그늘 밑에서  대를 이어오는 서장사람들은 온몸을 땅에 던지는 오체투지로 부처님께 큰절을 올린다는데   여기 내가 살고 있는 북녘의 벌거벗은 겨울나무는 요지부동의 자세로 가늘고 기인 팔을 들어 무거운 하늘을 받들어올린다   살을 에이는 칼바람의 숲을 헤치고 창공을 향한 자비의 손은 구만리 아득한 천궁의 층계에서 축복처럼 날아내릴 하얀 천사를 땅보다 먼저 반겨맞을 준비로 말초신경이 팽팽하다   그건 참으로 멋스러운 동작이다 얼어붙은 겨울하늘과  무성의 대화를 나누면서 정감소통의 꿈길을 걸어가는 내 고향의 겨울나무   겨울나무의 생각은 밤이나 낮이나 오직 한 생각 백모시 날개를 저으며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이 겨울을 함께 지낼 하얀 천사를 기다리는 것이다     춤추는 칼의 노래 -우리 민족의 을 보고   단검을 휘두르며  하늘로 솟구칠 제 서슬 푸른 칼날에서  불꽃이 튕기더라   다가섰다 물러섰다 땅을 차고 솟구치고 엎드렸다 일어섰다 무릎으로 고패치고 용맹과 슬기가 쌍벽을 이루니 뜨거운 함성은  광야를 주름잡고 부딪치는 쇠소리  적막을 깨뜨리네 반만년의 해와 달이 다듬은 혼이런가 세월강 갈피 속에 새겨진 넋이런가   장백의 천년바위로  시퍼렇게 날을 세운 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창공을 휘저어 일구는 날파람 일월성신과 더불어 빛을 뿜는 배달의 칼이여 없어라 세상에 두려울 것 하나 없어라     결코 절망은 없다 확실하게 말하건대  겨울의 대문이 열렸으니 이제부터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 마련이다    이제 장바처럼 기인 밤이 시커먼 구렁이처럼 동지날의 차거운 담장을 넘어가야   낮이 길어지는 아침이 올 것이다   길고 짜른 것의 순환 법칙도  천지신명이 만든 것이니  한동안 밤이 길다고 하여  괜히 슬퍼할 것도 없고 절망할 일은 더욱 아니다   이 밤도 꿈길 가듯이  희망의 푸른 손가락은 달빛 드리운 창가에서 밤하늘에 초롱초롱한 별을 헤여본다 하나, 둘, 셋, 넷… 결코 절망은 없다  
71    [수필] 가슴을 파고드는 가을의 소리 (김동진) 댓글:  조회:156  추천:0  2017-09-21
수필 가슴을 파고드는 가을의 소리 김동진 가을이다. 옛사람들이 옛날에 벌써 형상사유를 통하여 문학적으로 ‘천고마비’라는 멋진 규정어를 달아놓은 가을이다. 가없이 높이 들린 청자빛 하늘! 머리 우에 저처럼 높고 푸른 하늘이 있다는 것이 한가슴 뿌듯하게 크나큰 고마움으로 안겨온다. 그래서인지 이런 가을에 들려오는 각양각색의 소리는 마냥 정답기 만하다. 담장 굽에서, 마루 밑에서, 장독대에서 약속이나 한듯이 울리는 귀뚜라미소리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가을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신호이다. 숲속에서 매미들의 합창이 열을 올리던 여름의 불고개를 넘어 소리없이 다가온 가을이 마침내 자신을 확인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하지만 귀뚜라미소리가 아무리 요란스럽다 해도 풍요하고 아름다운 가을의 무궁한 소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귀뚜라미소리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오로지 귀뚜라미소리일 뿐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벌판에 나서보라. 노을빛 산발과 황금의 전야를 한품에 거느리고 온 가을이 희열과 랑만의 바다처럼 출렁이고 있다. 그리고 가까이 동구밖 시내물은 조석을 다투는 서늘한 바람을 앞세우고 시린 소리를 내면서 말쑥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 드놀지 않는 몸가짐은 초심을 잃지 않고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쉬임없이 달려가는 마라톤선수를 방불케 한다. 시린 물소리와 더불어 잠자리축제가 시작된 사래 늘찬 강냉이밭에는 성숙을 다그치면서 한해의 허와 실을 갈무리하는 세월의 바람소리가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귀를 조금만 강구면 동서남북 사면팔방에서 귀맛 좋게 들려오는 것은 온통 오곡백과의 탐스러운 알맹이가 알알이 익어가는 소리이다. 지난여름의 혹서와 폭우의 시련을 이겨낸 전야의 가슴에는 이렇듯 눈부시게 아름다운 생명의 소리가 있다. 견인불발의 가을은 시련의 고개를 넘어 바야흐로 산이 익고 들이 익고 달도 익고 별도 익는 대형음악을 펼치고 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이 손잡고 만들어내는 황금빛의 향기로운 음악이다.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살짝 다쳐도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높고 푸른 하늘은 줄지어 떠나가는 철새들의 힘찬 날개에 가볍게 흔들리는데 고요하고 평화로운 들녘에는 울긋불긋한 계절의 색채에 서정을 가미하는 풀꽃들의 순직한 미소가 피여있다. 은빛갈기를 날리는 억새의 설레임, 자름한 꽃쟁반을 들고나온 구절초의 수집음, 가늘고 기인 허리를 펴고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의 화사함, 모두가 하나같이 이 가을의 높아진 하늘처럼 해맑은 모습으로 정겨운 미소를 날리고 있다. 그것은 소리없는 미소, 아니 소리를 감춘 소담하면서 감미로운 미소이다. 저기 단풍으로 불타는 숲속에는 우수수 떨어지는 락엽의 소리가 있다. 그것은 흘러가고 있는 가을의 소리이다. 그것은 때가 되면 스스로 떠나야 하는 섭리의 노래이다. 흙을 찾아가는 귀향의 노래, 뿌리를 찾아가는 귀근의 노래― 진지하면서 비장한 락엽의 노래를 듣노라면 흩날리는 가벼움 속에 깃들어있는 바위처럼 무거운 추락의 의미를 감득하게 된다. 가을이 가는 길에 들려오는 온갖 소리는 소리마다 가을을 장식하는 불가결의 화음이다. 알곡을 거두는 수확기의 동음, 황금트럭이 달려가는 소리,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 도리깨를 휘두르는 소리, 알곡마대를 쌓아올리는 소리가 있어 가을은 흥겨운 노래와 춤의 가을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이제 이 가을도 이런 온갖 소리와 색상의 조화 속에서 잎새로부터 열매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남겨놓고 백지처럼 홀가분한 몸과 마음으로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다. 봄과 여름의 사랑으로 키우고 익힌 더없이 소중한 것들을 한점의 미련도 없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빈털터리가 되여 서리발이 하얀 겨울의 턴넬 속으로 걸어갈 것이다. 그러고 보면 더 많이 끌어안고 더 많이 가지지 못해 안달아하는 인간이야말로 참으로 가소롭다. 얼마나 더 잘살고 또 얼마나 더 오래 살겠다고 그리도 아등바등 욕심을 부리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리 잘살고 오래 살아도 손가락 한번 튕기는 순간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나는 지금 단풍빛이 고옵게 물들고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있고 풀꽃들의 미소가 있는 가을들녘 한 모퉁이에서 마음그릇을 비울 줄 알고 사랑을 나누어줄 줄 아는 가을의 아름다운 소행을 본다. 동시에 인간의 끝없는 허위허욕에 끌끌 혀를 차는 자연의 소리를 새겨듣는다. 그 소리가 있어 가을의 미학은 인간의 상상보다 훨씬 심오하고 심각한 것이다. 가을의 온갖 소리 앞에서 마음의 대문을 활짝 열면 들려오는 소리의 당부가 있다. 그것은 나더러 살아오면서 껴입은 수많은 가식의 허울을 부끄러운 대로 하나하나 벗어던지고 진실한 자기를 만나보라는 가을의 정중한 타이름이다. 알맹이는 얼마이고 쭉정이는 얼마이며 허욕은 얼마였는가를 참답게 따져보라는 이 타이름이야말로 가을의 하많은 소리중에서 무엇보다 값진 천금의 소리가 아닌가 싶다. 이 소리는 가을심중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깨우침의 소리로서 인생사유를 할 줄 아는 모든 사람의 가슴을 파고든다. 바로 이런 소리를 할 줄 아는 가을이기에 한결 멋지게 의젓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가을의 타이름을 가슴깊이 새긴다. 그리고 진실한 자아를 찾는 작업을 시도한다. 마음그릇에 담겨있는 사욕으로 엉킨 욕심의 덩어리를 쓰레기통에 내버리고 인간사랑을 위하여 내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가슴을 파고드는 가을의 소리를 다시금 새롭게 음미하면서 시리도록 파아란 가을의 ‘하늘 못’에 마음의 옷을 헹구고 가을풀꽃의 맑은 미소로 심령의 창을 밝힐 수 있다면 누구나 이 가을 앞에 부끄럽지 않는 하나의 ‘생명개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17-09-20                         
70    [시] 숲 속 찬가 (외 2편) (김동진) 댓글:  조회:196  추천:0  2017-08-22
시 숲 속 찬가 (외 2편) 김동진 한여름의 불더위를 식히려고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들고 산장과 가까운 숲을 찾아간 적이 있다. 강변이 아니고 숲을 선택한 것은 숲 속에 강물보다 시원한 그늘이 있기 때문이였다. 숲 속에는 나무잎으로 려과시킨 맑은 해살과 나무잎으로 정화시킨 맑은 공기가 있었다. 그리고 숲 속에는 인간동네에서는 맡을 수 없는 싱그러운 향기가 있었다. 나의 답답하던 가슴을 활 열어주는 숲의 특이한 향기, 그 것은 다름아닌 이슬에 젖은 생명의 향기, 록색의 향기, 젊음의 향기였다. 그날 나는 숲 속에서 서로 이마를 맞대고 어깨를 겯고 손을 잡고 사이좋게 살아가는 풀과 꽃과 나무를 보았다. 시기와 질투를 모르는 자연의 숲. 그 것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의 조화로움을 보여주는 자연의 아름다운 생존모식이였다. 이렇 듯 자연의 령혼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순수하고 고상한 것이였다. 그날 나는 숲 속의 깊은 그늘에 한몸을 맡기고 이름모를 풀과 꽃과 나무가 만들어준 신비로운 향기를 마시면서 속세에 찌든 삶이 받드시 숲이 우거진 곳을 찾아가야 하는 리유를 깨달았다. 숲 속에는 고루한 일상을 해탈하는 길이 있거늘. 숲 속에는 때묻은 심혼을 정화하는 향이 있거늘. 버린 쏘파 살리기 우리 아파트정원의 한복판에 세멘트로 갓을 씌운 4각형 정자가 있는데 걸상이 마련되지 않아 한동안 무용지물의 공간으로 방치되여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뚝딱거리는 소리가 나길래 나가보니 앞동에 사는 송씨라는 중년사나이가 남들이 쓰다가 버린 파손된 쏘파를 가져다 수리하고 있는 것이였다. 목공재간이 있는 그가 자를 건 잘라내고 못질을 하고 쇠줄로 동이고 하면서 반나절 땀을 흘리더니 정자안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쏘파가 빙 둘려 놓여있었다. 그때로부터 이 정자는 우리 아파트단지에서 로인들의 즐거운 휴식터로 되였다. 땡볕이 내리쬐는 삼복지간에 백발의 로인들이 그늘 깊은 정자에 편안히 앉아 살아온 인생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는 것을 볼 때면 송동무가 참으로 좋을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송동무의 버린 쏘파 살리기! 한 사람이 흘린 땀이 여러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송동무의 손에서 버린 쏘파가 살아나고 살아난 쏘파가 정자에 놓이자 정자가 살아난 것이다. 송동무의 손에서 살아난 쏘파는 나에게 물건이나 사람이나 쓸모가 있을 때 빛이 난다는 아주 심오한 도리를 알려주었다. 애심의 기발을 추켜든 사람들 누구나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라고 말은 하지만 의무적으로 일심전력으로 불행한 이웃을 도와주며 산다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쉽지 않은 일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애심의 기발을 추켜들고 인간사랑의 서사시를 엮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달래애심협회, 두만강 애심협회, 봄비 애심협회, 해빛 애심협회와 같은 민간자선단체의 주인으로서 애심의 기발 아래에 자각적이고 자발적으로 뭉친 사람들이다. 애심의 핵심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며 밑바닥인생에 대한 사랑이며 약소군체에 대한 사랑이다. 그 것은 이웃사랑, 동네사랑으로써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과 빈곤한 사람과 외로운 사람들을 보살펴주고 보듬어주고 부축해주는 뜨거운 사랑이다. 그들은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는 사업을 자신의 삶의 형식과 내용으로 고정시켰는바 여름이면 ‘가물의 단비’가 되고 겨울이면 ‘설중송탄’을 하면서 나눔의 문화로 행복의 플라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처럼 애심의 기발을 추켜든 사람들이 있음으로 하여 오늘도 봄날처럼 따스한 한 갈래의 난류가 이 땅을 감돌고 있는 것이다. 애심의 길은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그 길에 사랑의 노래와 사랑의 향기가 있다. 사랑으로 가는 길에는 애심의 기발이 나붓기고 타인을 위한 나눔의 문화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연변일보 2017-8-17
69    [미니수필] 마음밭 다루기(외 2편) 댓글:  조회:453  추천:0  2015-10-29
밭이란 씨앗을 심어 낟알을 수확하는 땅, 다른 말로는 농사를 지을수 있는 흙이다. 이런 흙밭이 있기에 인류는 생존필수조건의 하나인 량식을 해결할수 있다. 하지만 밭이 있다고 농사가 절로 되는건 아니다. 밭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근면으로 아롱진 땀방울을 요구한다. 계절을 맞춰 갈고 씨뿌리고 기음을 매고 비료를 주고 이렇게 손발이 쉴 사이 없이 부지런해야 풍성한 결실을 얻을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는 흙밭외에도 특별히 잘 가꾸어야 하는 밭이 있으니 그것인즉 누구에게나 다 있는 마음이라는 밭이다. 흙밭은 봄부터 가을까지 시간을 맞춰 가꾸면 겨울 한철은 쉴수도 있지만 마음밭은 계절이 따로 없이 일년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가꿔야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흙밭 다루기는 육체적인 피로를 느끼지만 마음밭을 갈아번질 때는 정신적인 아픔을 겪어야 한다. 게다가 잡초가 자라나지 못하게, 병충해를 막기 위해 밤낮으로 신경을 써야 하니 마음밭 다루기란 결코 식은 죽 먹기가 아니다. 깨끗한 령혼의 씨앗을 심어 건실한 령혼의 나무를 키우고 풍성한 령혼의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우리 모두 모름지기 마음밭을 걸구는 심혼정화작업에 각별히 심혈을 몰부어야 하겠다.     침묵속에 피여나는 시간의 꽃   10월에 접어들더니 동트는 새벽마다 풀잎에서 반짝이던 이슬이 어느새 감쪽같이 이름을 바꿔 반짝이는 서리가 되였습니다. 바뀌는 계절은 위대한 자연이 가리키는 말없는 실천의 길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변신을 시작하는것입니다. 이슬이 서리의 전신이라면 서리는 이슬의 변신이겠지요. 침묵의 시간은 빙점을 사이두고 이슬이 되기도 하고 서리가 되기도 합니다. 빙점우에서 이슬꽃으로 피고 빙점아래에선 서리꽃으로 피여나는 시간의 작은 물방울을 눈여겨보노라면 자연이 침묵속에서 고독의 시간을 씹어 천만가지 무성의 꽃을 빚고있는줄 알겠습니다. 서리꽃이 피였으니 이제 어느날인가는 하얀 눈꽃도 피여나겠지요. 그리고 그사이로 계절을 따르는 바람꽃이며 안개꽃이며 그리고 노을꽃과 구름꽃이 피고지고 하겠지요. 침묵으로 피여나는 시간의 꽃속에는 나를 기다리지 않는 나의 시간이 멈출줄 모르는 강물이 되여 달려가고있습니다. 만년의 침묵속에서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드는 자연앞에서 건방지게 말이 많은 나의 시간은 부끄럽게도 허공에서 부서진 꿈이였습니다. 그러니 이 가을엔 나 또한 침묵속에서 침묵보다 무거운 나의 시간의 꽃을 빚기 위하여 스스로 가슴을 끓이는 생명의 모닥불을 지펴야 하겠습니다.     살아있음이 곧 기적인것을   사전에서는 기적에 대하여 상식으로는 생각할수 없는 기이한 일, 불가사의한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례컨대 어느날 갑자기 소경이 눈을 떴다든가, 앉은뱅이가 일어섰다와 같은 기문이 바로 기적이라는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반드시 그런것만은 아니다. 시인 강은교(한국)씨는 자기의 시에서 《중병으로 나의 피는 결코 마르지 않았으며/ 해빛은 나의 창을 끝내 떠나지 않았다는것》을 기적이라고 노래했다. 사람에게는 살아있는 생명자체가 곧 기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심근경색으로 구급실에서 한주일간 헤매다가 살아난것도 그리고 지금 컴퓨터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쓰고있는것도 기적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이렇듯 기적이란 아득히 높고 먼 상상밖에 있는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의 일상적인 부단한 운동속에 있는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기적이란 물우를 걷는게 아니라 땅우를 걷는것》이라고 한 16세기 조선의 문학가인 림제선사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동감을 표시한다. 삶이 곧 기적이다. 살아있음 자체가 곧 기적인것을! 그러니 나도 삶이라는 기적속에서 오늘 아침에도 내 눈으로 동녘을 물들이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는 기적을 낳았고 그 기적을 행복처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생명인줄 알겠다. 길림신문 2015-10-28  
68    조물주는 알것이다 (외3수) 댓글:  조회:491  추천:0  2015-01-16
바람벽에 가슴을 딱 붙이고 맨손으로 파랗게 올라가는 삶이 얼마나 힘겹고 고달픈것인지 나는 딱히 알지를 못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여린 몸이 가냘프게 흔들리지만 헝클어짐이 없는 록색아집으로 시련의 고개를 넘어가는 담쟁이풀 벽틈 먼지속에 뿌리를 박고 벽을 톺아 꿈을 키우는 풀이 마침내 지붕에 올라앉아 산전수전 다 겪은 영광의 손으로 파아란 하늘을 만져본다 포기를 모르는 이악스러운 삶으로 깎아지른 절벽을 수놓으며 한목숨 다바치는 푸른 갈구가 얼마나 뜨겁고 피타는것인지 하늘에 계시는 조물주는 알것이다   목마른 기다림 천국의 처마밑에서 배회하던 보이지 않는 유령의 편린들이 흰나비의 춤사위로 되기까지 동토의 목마른 기다림이 얼마나 무거운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구름너머로 떠나간 무릎아래것들이 행여나 문득 돌아올것만 같아 매일같이 동구밖길 바라보시는 꼬부랑할머니의 축 처진 앞섶도 무겁기는 마찬가지 풀꽃향기가 그리운것만큼 사람내음이 무척 그리운 여기 시골집 뜨락에서 이 겨울을 함께 살 눈사람도 하얀 그리움으로 배가 부르다.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가지에 돋아나는 파아란 생명으로 이 세상 태여날적엔 천년이고 만년이고 늘 푸를것만 같았습니다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는 진록의 사랑을 안고 불타는 여름강을 건넜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싱싱한 젊은 날도 서늘한 가을바람앞에서는 무게를 잃는다는걸 몰랐습니다 쑥부쟁이 마중나온 구시월에 단풍옷 고옵게 입어야 하는건 이제 곧 떠나야 하는 길목에서 꽃처럼 아름다운 리별을 위한 마지막 차림인줄 알겠습니다. 왔다가 가야 하는 한 세상에 꽃도 한철 잎도 한철 모두가 한철인줄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고기배 바다에 섬들이 떠다닌다 마도로스가 있고 프로펠라가 있는 크고 작은 섬들 그 섬이 농사를 짓는다 그물을 뿌려 물밑농사를 거둔다 강쇠로 만들었건 합금으로 만들었건 그것은 모두가 섬이다 난바다를 떠다니다가 귀항의 물보라를 날리는 국적 있는 땅이요 집이다 암초를 에돌아 풍랑을 헤가르며 지친 몸 끌고 돌아오는 엄마가 기다리는 아들이요 안해가 기다리는 남편이다   연변일보
67    일력이 주는 느낌 댓글:  조회:357  추천:0  2014-12-12
일력이 주는 느낌  □ 김동진               해마다 12월이 되면 지나간 한해에 있었던 좋은 일과 궂은일을 갈무리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맞이준비를 하는데 그 준비물중에 내가 빼놓지 않는것이 새해의 일력을 사는것이다. 벽에 거는 멋있는 달력(掛历)과 책상에 세워놓는 깜찍한 달력(台历)까지 여러가지가 다 있는데도 기어코 한장씩 뜯어내는 일력을 사는데는 나로서의 리유가 있다. 달력은 걸어놓거나 올려놓고 한달에 한번씩 번지며 보는 멋이 있다면 일력은 걸어놓고 하루에 한장씩 뜯어내는 멋이 있어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는것이 나의 소견이다. 어찌 보면 일력은 한그루의 엄숙하며서 엄격한 나무이다. 365개의 잎을 달고 하루에 하나씩 떨구는 시간의 나무이다. 유구한 세월이 증명하듯이 이 시간의 나무앞에서 허풍을 치거나 궤변을 부리거나 건달을 친다면 나중에 차려지는것은 쭉정이밖에 없다. 그러니 일력앞에 취할바는 오로지 성실과 겸손 그리고 분투하는 정신이다. 왜냐하면 일력이란 얇은 종이장이 아니라 시계와 마찬가지로 흐르는 시간을 알려주는 대용물이기때문이다. 일력이 쌓이여 력사가 된다. 일력에 표시된 수자는 단순한 아라비아수자가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의 이름이다. 그 이름속에서 우리는 눈물과 웃음으로 반죽된 고달프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삶의 노래를 부르고있는것이다. 일력은 계절을 낳고 세월을 낳는다. 일력은 암탉이 병아리를 까듯이 날마다 새날을 낳는다. 일력속을 걸어가노라면 우리는 춘하추동 사계절과 립춘부터 대한까지의 변화무쌍한 24절기를 만나게 된다. 일력은 에누리가 없다. 시장바닥의 물건값처럼 흥정할수 있는것이 아니다. 아침은 저녁이 아니며 오늘은 오늘일뿐 래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어제”라는 단어로 추억을 만들고 “새날”이라는 단어와 “래일”이라는 단어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새 힘을 안겨주니 일력은 모름지기 마술의 힘을 지니고있는것 같기도 하다. 일력을 매일 한장씩 뜯어버릴 때면 흐르는 세월속에 살아있는 자신을 보게 되며 낡은 일력의 마지막장을 뜯어내고 새 일력을 걸 때면 내 몸에 감기는 또 하나의 나이테를 보는것 같다. 이처럼 일력이 주는 느낌은 달력이 주는 느낌보다 몇갑절 풍부하고 다양하다. 이것이 내가 일력을 갖추는것을 명심하는 리유라고 할수 있다. 오늘도 나는 한해가 막잎에 오르는 12월의 끝자락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한장의 일력을 뜯어내면서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묵은해의 해거름을 딛고 바로 그 소리를 들으려고 낡은 일력이 물러난 자리에 새로 사온 새해의 일력을 거는것이다. 연변일보    
66    뿌리쪽으로 돌려본 생각 (외2편) 댓글:  조회:433  추천:0  2014-07-04
한여름, 록음짙은 가로수의 그늘에 앉아 삼복철 찜통더위를 식히면서 그늘을 만들어준 나무에 감사를 드리다가 생각을 뿌리쪽으로 돌려보았다. 뿌리란 땅속에서 수분과 양분을 공급하여 식물의 몸을 일으켜세우고 자라나게 하는 식물구성요소중의 말단존재이다. 그러한 특정적인 밑바닥 삶으로 하여 안타깝 게도 인간들의 기억속에서 망각될 때가 많다. 허구한 날, 해빛 한점 없는 땅속을 안간힘으로 파고들어 줄기와 가지가 크고 잎이 무성하게 푸르도록, 그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주렁지도록 물과 양분을 쉬임없이 공급하는 뿌리는 생명이 맡겨준 직책 하나를 평생의 사명으로 받들어가고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잊고 살 때가 많으니 실로 뿌리앞에 미안하다는 생각이다.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불평 한마디 없는 뿌리! 자신을 희생하여 묵묵히 큰일을 할뿐 종래로 자기자랑을 해본적이 없는 뿌리! 더구나 한번도 그 누구의  찬사를 바란적이 없는 뿌리! 이 어찌 뿌리의 미덕이 아닐것인가! 흙묻은 구불구불한 힘줄로 지하에서 얼키고 설키면서 천지간에 푸른 생명의 사시를 엮어가는 뿌리야말로 “이름없는 영웅”이요, “숨어사는 영웅”이 되기에 손색이 없으리라. 잡초에 대한 신개념 “엄밀한 의미에서의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것이죠.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겁니다.” 이는 17년간 혼자서 산야를 돌며 4439종의 야생들풀씨앗을 채집했다는 고려대강병화교수님의 말씀이다. 의미심장한 이 말씀이 산에 들에 여기저기 절로 나서 자라는 풀이면 다 잡초라고 생각해온 나의 사전식 개념을 여지없이 뒤집어놓았다. 다 같은 풀이라 해도 제자리를 차지한 풀은 잡초가 아니요, 제자리가 아닌 곳에 부끄러운줄 모르고 앉아있는 풀이 잡초라는 신개념을 안겨준것이다. 사람이라고 어찌 다를수 있을것인가. 대중이 수요하는 곳,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이 아닌데 기어코 눌러앉아있다면 잡초취급을 받아 미움을 당하고 잡초처럼 잘리거나 뿌리를 뽑히게 될것이다. 그러니 잡초가 되지 않으려면 언제 어디서나 앉을자리, 설자리, 누울자리를 잘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 잡초에 대한 신개념으로 지금의 내 자리가 과연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아무리 성을 쌓고 남은 돌이라 해도 그리고 다 우려먹은 김치독이라 해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면 “잡초”로는 되지 않을것이다. 빨래터 현지창작팀을 따라 조양이라는 시골에 갔을 때였다 산책삼아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는데 어디선가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따라가보니 마을서쪽을 감돌아흐르는 자그마한 개울가에서 중년아줌마가 한창 빨래를 하고있었다. “토닥토닥”, “찰싹찰싹”, 가락맞게 울리는 방치질소리! 그 소리를 듣노라니 오래전에 기억의 저켠으로 밀려난 빨래터가 보이였다. 동구밖 시내가의 빨래터, 너부죽하고 반반하게 생긴 큰 돌 몇개를 빨래판으로 고정시킨 자리,  바로 그곳에서 수도가 없고 세탁기가 없는 세월에 우리네 녀인들이 물을 긷는 역사를 덜면서 끝이 없는 빨래를 하지 않았던가. 빨래터는 시골녀인들이 세간살이의 고달픔과 지긋지긋한 가난의 때를 두드리는 자리였고 한담과 수다에 동네방네의 크고 작은 뉴스를 곁들이며 정보를 교류하고 정감을 소통하는 간이무대이기도 하였다. 그곳에는 흐르는 맑은 물과 반듯한 빨래돌과 빨래감과 빨래방치가 어울려 만들어낸 조화로운 음악절주가 있었다 “토닥토닥”, 그 소리는 우리의 가슴을 파고드는 정겨운 울림이였다. “찰싹찰싹”, 그 소리는 우리의 살림을 정화하는 알뜰한 삽곡이였다.   연변일보
65    다시 부르는 고상한 령혼의 노래 댓글:  조회:434  추천:2  2014-04-24
꽃샘바람속에 녹으며 얼며 하는 가탈스러운 3월의 등성이를 타고 인간동네를 찾아온 고상한 령혼의 봄을 보았다. 그것은 가슴속에 백성 ”민”자를 품고 다니는 국가지도자의 발자국을 따라온 감동의 봄이였다. 한 순수한 인간의 고상한 령혼을 보듬는 손길은 봄날의 해빛처럼 따스하였고 백성을 위하여 일체를 바친 훌륭한 간부의 흉금을 읊은 시사(詩詞) 는 차분히 내리는 봄비마냥 중화의 대지를 적시였다. “어느 백성인들 훌륭한 관원 좋아하지 않을가? 눈물이 초유록의 오동나무 적시네. 살아도 모래언덕, 죽어도 모래언덕, 백성들의 생사가 걸려있네. 조석으로 내리는 눈서리 영웅의 뜻 꺾지 못하리…” 란고현의 초유록기념관을 찾아간 습근평 총서기의 이야기와 이 시사를 보는 순간 나의 눈앞에는 하나의 숭고하게 빛나는 이름이 밤하늘의 별처럼 떠올랐다. 현위서기의 본보기--- 초유록! 참으로 얼마나 오래만에 다시 불러보는 비장한 이름인가! 1962년 12월부터 470여일을 란고라는 재해지구에서 군중울 이끌어 풍사와 알칼리성토양과 침수와 싸우다가 1964년 5월 14일,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사람, 그렇게 50년전에 란고의 모래톱에 묻히여 살아있는 당원간부들에게 계속 써야 할 삶의 영원한 주제를 남겨준 사람! 내가 이 봄에 초유록의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감동에 젖는것은 그가 나를 포함한 수많은 중국사람들을 울린 년대가 있기때문이다. 나는 지금 그 눈물에 젖은 날을 회억하면서 1991년 4월에 영화 《초유록》을 보고 쓴 글을 꺼내놓고 고상한 령혼의 노래를 다시 불러본다. 장사진을 이룬 장례대오가 모래등성이를 넘어오고 고동을 멈춘 하나의 순결한 심장이 모래톱에 묻히는 순간, 영사막에서 울음소리가 터지고 관중석에서 흐느낌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두 볼에서도 뜨거운것이 흘러내리고있었다. 그것은 한 순수한 사람에 대한 추모의 눈물이였고 한 숭고한 정신에 대한 애도의 눈물이였다. 용용히 흐르는 황하수와 회오리치는 란고의 모래바람은 기억하고 있으리라! 언젠가 이 땅우에 별처럼 나타났다가 별처럼 사라진 하나의 빛나는 형상과 붉은 심장을… 그가 바로 초유록---란고현의 현위서기 초유록이였음을. 가슴속에 인민만을 간직하고 머리속에 사업만을 생각한 그의 장려한 인생에서 우리는 심각하고 완벽하며 생동한 인간의 참된 령혼을 우러러본다. 자아를 망각하는 정신으로 자기의 뼈를 굳히고 피를 끓인 사람, 그에게는 풍사를 헤쳐 나갈 담량이 있었고 난관을 돌파할 신념이 있었다. 바로 그러했기에 망망한 물바다에서 한포기 한포기의 곡식을 일으켜 세웠고 사나운 모래바람속에서 한장 한장의 설계도를 그려낼수 있었던것이다. 그대 파도에 삼켜진 농가들과 모래사태에 짓눌린 전야를 바라보며, 난민을 싣고 가는 화물차와 풍설에 떨고있는 부모형제를 바라보며 얼마나 얼마나 가슴 쓰려했던가?! 속에서 내려가지 않는 분노와 아픔을 안고 그대 나선 조사연구의 길, 그 길에서 그대는 뢰성벽력에 끄덕없는 산악이였고 광풍폭우를 막아 나선 준봉이였다. 하얗게 소금 돋친 염알카리땅우에서 한알의 락화생을 위하여, 한포기의 옥수수를 위하여 한그루의 나무가 되기를 소원했고 한줌의 흙이 되기를 갈망했던 사람! 바람소리에, 비 내리는 소리에 잠들지 못한 밤과 밤, 그대 찾아간 사양실과 토벽집들을 우리 어찌 잊을수 있으랴! 피로와 허약 게다가 덮쳐드는 병마의 시달림, 그래도 사업만은 버릴줄 몰라 매 하나의 우물과 매 한채의 초가집을 근심하던 초유록. 그대는 심장이 멎는 순간까지도 36만 란고 인민의 어려운 살림을 걱정했나니 초유록이여, 그대는 진정 우리 중화의 참된 아들이었고 인민의 훌륭한 아들이였다. 란고의 변천을 바라볼수 있게 자기를 모래톱에 묻어달라는 그 마지막 유언앞에서 황하수가 어찌 흐느끼지 않을수 있으며 모래톱이 어찌 울지 않을수 있으며 란고와 더불어 이 나라의 천산만봉이 어찌 눈물을 뿌리지 않을수 있으랴! 죽어도 인민을 떠나지 못하고 인민의 땅을 떠날수 없다는 한 순수한 공직자의 마지막 소원이여! 색 낡은 모자, 기워 입은 외투, 감탕물에 젖은 걷어올린 바지가랑이… 망망 수로와 천리 풍정을 탐측하던 그대의 모습이 억만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경모와 추억으로 살아있다는것은 그대의 사심없는 무한한 봉사정신이 남겨놓은 숭고한 사상의 눈부신 빛발을 의미하는것이리라. 그대 찍은 발자국엔 리상의 씨앗이 움트고 그대 남긴 손사래엔 분투의 열매 반짝이나니 인민대중을 이끌어 대자연과 박투한 한 현위서기를 저 하늘의 해와 달이 기억하리라. 짧디짧은 42년을 가슴을 내밀고 고개를 들고 어엿하게 살아온 사람, 그의 이름은 공산당원이였다. 중화의 아들이였다. 그의 평범하지 않은 삶의 행정과 고상한 인격앞에서 우리 무거운 사색에 잠겨 보아야 하지 않을가? 나는 인민의 아들답게 살고있는가? 나는 국가간부답게 살고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있는가? 우리의 조국과 민족과 인민이 수요하는 간부는 바로 초유록동지와 같은 공무원이라는것을 모두가 깨닫는다면 인민대중속에서의 우리 당의 형상은 영원히 지지 않는 저 하늘의 태양처럼 눈부실것이고 무너뜨릴수 없는 만리장성으로 높이높이 솟아오를것이다. 그러면 초유록이여, 그대도 저 구천에서 기쁨에 젖은 안식의 눈물을 흘릴수 있으리라. 이것이 고상한 령혼의 봄에 내가 다시 부르는 고상한 령혼의 노래이다.
64    노래와 유골과 그리고 엄마 댓글:  조회:375  추천:0  2014-03-31
-조선전쟁에서 전사한 중국인민지원군유해송환에 부치는 시 /김동진 1 두 나라의 가슴에 옹이로 박힌 한을 달래며 두 나라의 가수가 손잡고 함께 부른 눈물젖은 《귀향》의 노래속에 왔구나, 유골이 엄마의 품으로! 2 나이를 속인 열일곱살 꼬마 헐렁한 누비군복 앞가슴에 대접사발만한 붉은 종이꽃을 달고 이웃나라 싸움판으로 달려가더니 싸우고 살아서 돌아온다 하더니 예순다섯개의 주름을 새기고 나이 여든을 넘어서야 돌아왔구나 3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동족상잔의 불타는 고지에서 돌아올수 없는 원혼이 되여 남녘땅 어느 산골짝에 외로이 누워있었다는 아들이 뜨거운 살과 피는 다 버리고 싸늘한 한줌 뼈만 돌아왔구나 4 너를 기다려 눈이 멀고 기다림에 지치여 쓰러지신 엄마의 한많은 가슴속에 쌓이고 쌓인 재의 두께와 고이고 고인 눈물의 깊이를 네가 어찌 알수 있으랴만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였다 지랄 같은 전쟁의 잘못이였다 5 적아의 계선을 초월한 인간사랑의 노래에 받들려 천길 벼랑처럼 아득히 높은 리념의 장벽을 넘어왔구나 21세기의 천방야담처럼 답곡리*의 군인묘지에서 일어나 엄마품에로 달려온 아들아 이승 아닌 하늘나라 상봉이지만 길을 열어준 사람들이 고맙구나! 6 세월은 많이도 흘러갔건만 엄마기억속의 너는 영원한 젖먹이 상기 이마의 피가 마르지 아니하고 입에서 젖내가 나는 열일곱살 이젠 평화의 집으로 돌아왔으니 엄마품에 안기여 고이 잠이 들거라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속에 고요한 천국의 꿈길을 걸어가거라 백골로 돌아온 나의 슬픈 아들아!   *한국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63    (시) 시골나들이 댓글:  조회:754  추천:0  2014-01-21
시골나들이 김동진 그해 여름 흙내음 풀내음이 그리운 시들이 시골 가는 뻐스에 몸을 실었다 아득히 먼 산간마을이 비에 젖은 2백리를 달려와 반갑다고 손을 잡을 때 뭉클하던 시의 가슴- 친누이 같은 녀인의 손에서 이밥에 토장국 받아먹을 때 목구벙으로 넘어가는 뜨거운것은 다름아닌 배달족속의 정이였다 초모산 샘물로 갈한 목 추기고 망원초우에서 머리든 시들이 우러러본 시골의 하늘에는 꿈같은 목화구름 피여오르고 흙내음 풀내은 가득 안고 뒤돌아 다시 보는 시의 가슴에는 식지 않는 곱돌장이 끓고있었다 시향만리 제4호 2009
62    [미니수필] 365회 드라마(외 1편) 댓글:  조회:349  추천:0  2014-01-13
흐르는 세월은 해마다 회수가 똑같은 드라마를 줄기차게 생산하고있다. 더하지도 덜지도 않는 365회 장편드라마, 이 드라마는 섣달그믐날 제야의 종소리로 낡은 해의 막을 내림과 동시에 하늘땅을 진감하는 폭죽소리로 새해의 막을 올린다. 우주공간의 천지만물이 모두 등장하여 흥망성쇠의 이야기를 엮어가는 이 드라마속에 우리들의 인생이야기도 있다. 우리는 이 인생드라마속에서 저마다 배우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인기의 유무는 세간의 평가를 들어보아야 할 일이지만 혹자는 주역으로 혹자는 보조역으로 되기도 한다. 극본이 따로 없고 연출이 따로 없고 련습이 따로 없는 이 드라마속에서 각자는 스스로 자기의 위치를 찾아야 하고 자신의 삶의 높은 질을 위해 아글타글 최선을 다해야 하는것이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우리 모두가 웃음과 눈물을 반죽하여 함께 만드는것인만큼 365회의 갈피마다에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새기지 않을수 없다. 나는 올해라는 이 365회 드라마가 평화가 전쟁을 이기고 부유가 가난을 이기고 정의가 사악을 이기고 렴정이 부패를 이겨 근로용감하고 정직선량한 백성들의 얼굴에 행복의 웃음꽃이 활짝 피여나는 그런 드라마로 펼쳐지기를 소망한다.   눈치기   아빠트에 살면서부터 겨울이면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 은근히 근심스러웠다. 백설로 단장한 은빛설경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문앞에 가득 쌓인 눈을 빨리 쳐야 하는 일거리때문이다. 만약 눈을 치기전에 사람과 차들이 드나들면서 다져놓거나 밑으로 눈이 녹으며 얼어붙으면 다니기가 여간 힘든것이 아니다. 그리고 혹시나 얼음판에 미끌어 넘어지면 병원신세를 져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눈이 오는 날이면 나는 눈을 치는 일을 각별히 명심한다. 누구를 기다릴것 없이 남들이 손을 쓰기전에 내가 먼저 나가 길을 내야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폭설이 많은 금년겨울의 나의 눈치기는 생각과는 달리 《행차뒤 나발》이 될 때가 많다. 그날도 간밤에 큰눈이 내렸기에 이른새벽에 일어나 눈가래를 들고 나갔는데 그만 허탕을 치고말았다. 누군가 나보다 먼저 나와서 출입문앞을 깨끗하게 쓸고 대문앞까지 다니는 길을 훤하게 열어놓은것이다. 바로 눈치기가 끝난 이 마당에서 나는 가슴으로 느꼈다. 나의 곁에 나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또 남을 위해 말없이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그날 새벽날씨는 살을 에이는듯 맵짰으나 나의 온몸은 따스한 봄날처럼 훈훈해났다.   /김동진
61    그리워서, 보고파서 (외1편) 댓글:  조회:454  추천:0  2013-11-01
  그리워서, 보고파서 (외1편) □ 김동진 가을의 동구길에 나서면 선들바람에 한들거리며 오덕(五德)의 향기를 풍기는 코스모스를 만난다. 코스모스는 거친 땅을 탓하지 않는 검소함, 그리움에 목이 길어진 절절함, 화사하지만 요염을 모르는 청초함, 찬서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함, 밝은 미소와 맑은 향기를 풍기는 순결함을 고스란히 한몸에 지닌 사랑스러운 오덕의 꽃이다. 허리가 가늘고 키가 큰 코스모스! 이 꽃을 마주하면 저도 모르게 “향방 없는 그리움으로 발돋움하고 / 다시 학처럼 슬픈 모가지를 빼고있다” 라고 한 조지훈의 시구가 떠오른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얼마나 그립고 보고프면 저렇게 발돋움하고 슬픈 모가지를 빼들고서 먼 하늘을 바라보며 기다리는걸가? 메히꼬가 원산지인 코스모스는 100여년전 타국땅에 운명을 맡긴 이민들처럼 바다를 건너 이 땅에 정착한 꽃이라고 하니 그리하여 두고온 산천과 두고온 족속에 대한 그리움의 꽃이 되고 기다림의 꽃이 되였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리워서, 보고파서 기다림으로 목이 길어진 꽃이라 해도 언제나 변함없이 밝은 모습이다. 결코 비애와 절망의 눈물에 젖어 살지는 않는다. 가을의 가슴에는 가을의 길목을 화안하게 밝히며 오덕의 향기를 풍기는 코스모스가 있다
60    [시]나무잎사랑(외 2수) 댓글:  조회:542  추천:0  2013-10-24
작고 여린 연록으로 태여나 사랑의 기발이 된다는건 다시 보아도 대견한 일이다   일렁이는 푸르름으로 생명을 노래하고 젊음을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하는 나무잎축제의 향연속에 땀을 식히는 여름이 있었다   푸르게 푸르게 사랑하다가 숙명의 떠나기를 앞두고 빨갛고 노오란 빛으로 덧칠한 나무잎사랑   목숨보다 뜨겁게 달아올라 만산에 활활 불타오르는 나무잎사랑이 있어 이 가을이 슬프지 않다는걸 마침내 알게 되였다   나무를 닮는다는건   나무를 닮는다는건 아무래도 힘에 버거운 일이다 산이나 물을 닮는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듯이   새들이 찾아오고 바람이 찾아오고 눈비가 찾아오는 저 품이 너른 나무앞에서 나는 자존심을 세울수 없다   선채로 밤을 새우며 선채로 그리운것을 그리워하고 선채로 동트는 새벽을 맞이하는 저 나무의 변함없는 삶을 나는 흉내라도 낼수 있는가   오늘도 푸른 빛 하나를 평생의 신앙으로 받들고 세상을 향해 미소하는 나무앞에서 나무를 닮을수 없는 나를 본다   푸른 노래를 부른다   왔다가 가는 길지 않은 한생을 작은 가슴 하나로 해와 달과 별을 그리며 푸른 노래를 부른다   꽃으로 되지 못한 타고난 명을 탓함이 없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는 푸른 노래를 부른다   말없이 꽃을 받들어 푸른 노래를 부르다가 미련 없이 흙에로 가는 일이 부질없는 짓거리가 아닌것을 작은 가슴으로 깨우치며 푸른 노래를 부른다
59    아름다운 풍경 댓글:  조회:560  추천:0  2013-08-30
아름다운 풍경 김동진   푸른 산 맑은 호수 노을 비낀 하늘처럼 사람도 하나의 풍경이다   당신이 나의 풍경이 될수도 있고 내가 당신의 풍경이 될수도 있고 우리 모두 대자연의 품속에서 풍경이 될 자격이 있는거다   그것이 구린내 나는 풍경 눈꼴 사나운 풍경이 아니라면 풍경이 되여도 부끄럽지 않을거다   사람이 풍경속의 풍경이 되여 향기로운 미소를 머금고 부드러운 눈빛을 마주친다면 풍경은 더욱 아름답다.
58    흥부를 닮은 사람들(외1편) 댓글:  조회:984  추천:0  2013-07-11
.미니수필. 흥부를 닮은 사람들(외1편) (훈춘)  김동진 지난 봄, 춘화진의 한 농가부녀가 자기 집 울바자에 걸린 새끼노루 한마리를 “생포”하였다. 먹이를 찾아 뜨락에 들어왔다가 나간다는것이 울바자 틈새에 끼여 오도가도 못한것이다. 그 녀인은 어린 노루를 바자틈에서 구한 다음 긁힌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먹이를 먹여 산으로 돌려보내였다. 여름에는 경신진 이도포촌 촌민이 날개를 상한 가마우지 한마리와 왜가리 한마리를 조류전문가에게 맡겨 치료를 한 다음 날려보내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행실이 아닐수 없다. 나는 그들의 미담에서 현대판 흥부를 보았다. 흥부의 가난에 대해 공론하는것을 떠나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하여 살려준 선량한 마음씨만은 어느 시대의 사람이건 따라배울바가 아닌가싶다. 동물사랑, 철새사랑이 산내들사랑과 함께 화초목사랑과 함께 생태평형을 추구하는 인간생활의 한개 내용으로 자리매김을 할 때만이 인간이 더욱 인간다워질수 있으니 말이다. 흥부를 닮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인간과 자연은 더욱 화목할것이다. 흥부를 닮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자연도 인간을 더욱 사랑할것이다.   뛰는 가슴 복잡한 일로 마음이 무거울 때면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해보라는 말이 있다. 가슴이 뛰는 소리를 느끼면서 생각하라는 말이다. 가슴이 뛴다는것은 심장이 뛴다는것이요, 심장이 뛴다는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근으로 표현한것이 “두근두근”과 “두근닷근”이다. 겁나거나 놀랐거나 긴장할 때의 정도에 따라 때로는 너근이 되고 때로는 일곱근이 된다는 형상적인 표현이다. 각설하고 가슴이 뛴다는것은 살아있는 자만이 소유할수 있는 특혜이기에 뜨거운 피가 끓고있는 심장 하나를 가슴에 품고있다는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뛸 일이다. 생명의학의 관찰기록에 의하면 정상적인 사람의 심장은 하루에 10만번을 뛴다고 한다. 대단한 수자이다. 그렇다면 70년쯤 산 사람의 한생에 뛴 심장의 박동수는 천문수자로 될것이다. 심장이 뛴다는것은 생명이 뛴다는것이고 희망이 뛴다는것이다. 나에게 이런 심장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뛰는 심장을 무엇인가 유용한 일을 하는데 써야 하겠다. 뛰는 가슴이여! 나의 생명이여! 료녕신문
57    찰떡꽃이 피였습니다 (외1편) 댓글:  조회:557  추천:0  2013-05-31
찰떡꽃이 피였습니다 (외1편) 찰떡꽃이 피였습니다. 해마다 대학교입시때면 어김없이 피여나는 연변특유의 찰떡꽃입니다. 시험장앞에 피여난 찰떡꽃은 우리의 응시생들이 시험을 잘 치기를 바라는 학부모들의 간절한 마음의 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전통음식인 찰떡이 이처럼 음식의 의미를 초월하여 자식들의 공부길이 더욱 넓게 트이기를 바라는 행위의 의미로 새로운 찰떡이미지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른새벽부터 시험장 정문앞에 마련된 소원빌기판에 하얗게 피여나는 찰떡꽃! 그 꽃을 보노라면 “철썩! 붙어라! 대학에!”라는 찰떡꽃의 꽃말이 들려옵니다. 그 모진 가난과 굶주림속에서도 자식만은 까막눈을 만들지 않으려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온 우리 민족이 그리고 소를 팔아서 자식의 공부뒤바라지를 해온 우리 조상님들의 자식사랑이 오늘의 찰떡꽃으로 피여난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찰떡꽃은 우리의 응시생들을 위해 찰떡으로 빚은, “찰떡처럼 철썩! 대학에 붙어라!”는 간절한 소망의 꽃이요, 기원의 꽃이랍니다. 찰떡꽃은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해마다 약속처럼 피여나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응시생들의 가슴에 무한한 용기와 신심을 안겨줄것입니다. 쑥쑥 잘도 크는 쑥   안해가 장바구니를 들고 나갔다오더니 밥상에 쑥국이 올랐다. 아무데서나 쑥쑥 잘 자란다는 쑥을 만나니 쑥 한뭉치와 마늘 스무개를 먹고 동굴안에서 백날을 견디여 웅녀로 된 곰이 환웅의 씨를 받아 우리 민족의 시조-단군왕검을 낳았다는 신화가 떠오른다. 신화라고 하지만 어쩌면 실말처럼 안겨오는 고전이다. 누가 어떻게 리해하든간에 쑥은 반만년의 력사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삶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온 풀인것만은 틀림이 없다. 쑥은 식용으로, 약용으로 그리고 생필품으로 그 기여가 대단하다. 가난을 감내해온 수많은 세월속에 쑥은 우리를 한번도 떠난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민초의 삶에는 쑥떡, 쑥국, 쑥밥이 있었고 의원의 방에는 뜸쑥, 찜쑥, 약쑥이 있었으며 시골에는 모기쑥, 쑥나무가 있었다. 보다싶이 쑥은 신령을 접한 풀로서 “모든 풀의 왕초”가 되기에 부끄럽지 않다 일본의 원폭지인 히로시마의 재더미속에서 제일 먼저 살아난 풀이 쑥이 아니였던가! 그러니 우리 민족의 유전자속에 이처럼 생명력이 놀라운 쑥향이 들어있다는것도 하늘이 주신 복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쑥쑥 잘도 크는 쑥, 나는 항상 우리 민족도 쑥처럼 아무데서나 허리를 곧게 펴고 쑥쑥 자라나기를 바란다.
56    흥부를 닮은 사람들(외1편) 댓글:  조회:485  추천:0  2013-05-28
.미니수필. 흥부를 닮은 사람들(외1편) (훈춘) 김동진 지난 봄, 춘화진의 한 농가부녀가 자기 집 울바자에 걸린 새끼노루 한마리를 “생포”하였다. 먹이를 찾아 뜨락에 들어왔다가 나간다는것이 울바자 틈새에 끼여 오도가도 못한것이다. 그 녀인은 어린 노루를 바자틈에서 구한 다음 긁힌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먹이를 먹여 산으로 돌려보내였다. 여름에는 경신진 이도포촌 촌민이 날개를 상한 가마우지 한마리와 왜가리 한마리를 조류전문가에게 맡겨 치료를 한 다음 날려보내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행실이 아닐수 없다. 나는 그들의 미담에서 현대판 흥부를 보았다. 흥부의 가난에 대해 공론하는것을 떠나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하여 살려준 선량한 마음씨만은 어느 시대의 사람이건 따라배울바가 아닌가싶다. 동물사랑, 철새사랑이 산내들사랑과 함께 화초목사랑과 함께 생태평형을 추구하는 인간생활의 한개 내용으로 자리매김을 할 때만이 인간이 더욱 인간다워질수 있으니 말이다. 흥부를 닮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인간과 자연은 더욱 화목할것이다. 흥부를 닮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자연도 인간을 더욱 사랑할것이다.   뛰는 가슴 복잡한 일로 마음이 무거울 때면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해보라는 말이 있다. 가슴이 뛰는 소리를 느끼면서 생각하라는 말이다. 가슴이 뛴다는것은 심장이 뛴다는것이요, 심장이 뛴다는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근으로 표현한것이 “두근두근”과 “두근닷근”이다. 겁나거나 놀랐거나 긴장할 때의 정도에 따라 때로는 너근이 되고 때로는 일곱근이 된다는 형상적인 표현이다. 각설하고 가슴이 뛴다는것은 살아있는 자만이 소유할수 있는 특혜이기에 뜨거운 피가 끓고있는 심장 하나를 가슴에 품고있다는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뛸 일이다. 생명의학의 관찰기록에 의하면 정상적인 사람의 심장은 하루에 10만번을 뛴다고 한다. 대단한 수자이다. 그렇다면 70년쯤 산 사람의 한생에 뛴 심장의 박동수는 천문수자로 될것이다. 심장이 뛴다는것은 생명이 뛴다는것이고 희망이 뛴다는것이다. 나에게 이런 심장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뛰는 심장을 무엇인가 유용한 일을 하는데 써야 하겠다. 뛰는 가슴이여! 나의 생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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