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가 막 끝난 전야의 질서는 축제가 끝난 마당처럼 어딘가 어수선하지만 저기 들녘에는 가을의 끝자락을 잡고 오롯이 피여나는 이 가을의 마지막 꽃---들국화가 있다.싱싱하고 예쁜것들이, 향기롭고 알찬것들이 서둘러 떠나간 길섶에서 가없이 높푸른 하늘의 숨결을 하얀 꽃수건에 담아들고 살며시 펼쳐보이는 들국화의 미소는 소슬바람에도 주눅들지 않는 오돌참으로 화안하다.그 누구의 살틀한 보살핌도 없이 서리발 날리는 겨울의 문앞에서 최선을 다해 터뜨린 순백의 꽃망울, 그것은 마치 이 땅에 내려온 저 하늘의 별꽃같기도 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힘겹게 뽑아올린 눈물겨운 아홉마디, 그리하여 일명 구절초라 부르는 들국화. 들국화는 말 그대로 요란한 화장과 화려한 차림을 모르는 너무나 검소하고 순박한 꽃이다. 그래서 그 미소가 더구나 청순하고 결백한게 아닐가싶다.들국화의 미소는 시골의 미소이다.들국화의 미소는 추야(秋野)의 미소이다.계절의 막끝에 홀로 피였어도 공허와 고독의 서글픈 마음 한점 없이 천성의 향기를 말없이 날리며 미소하는 들국화앞에서 나는 오늘도 시골에서 들국화처럼 살고있는 누이동생의 얼굴을 그려본다.◎ 가을바람노을빛 산발과 황금의 전야를 거느리고 신나게 달려온 가을은 현란한 색조와 더불어 특이한 내음으로 하여 더구나 개방적이다.한여름의 열기를 말끔히 가셔주는 시원한 가을바람속에는 만산이 불타는 단풍내음과 산에 들에 주렁진 오곡백과의 싱그러움이 출렁이고있다. 가을남자와 가을녀자의 가슴을 한껏 부풀게 하는 건들바람! 이런 건들바람이야말로 가을만이 지닐수 있는 대범하고 호방한 매력이 아닌가싶다.수확의 무게를 가늠하는 풍차를 돌려 알맹이와 쭉정이를 가려내기에 분망한 가을바람앞에서 자연은 허영과 사치를 꾀하던 온갖 허울을 벗어던지지 않을수 없다. 말하자면 쭉정이를 날려보내고 알맹이를 남기는 작업을 착실하게 하는것이다.이러한 가을바람앞에서 인간도 자신의 허울에 대하여 한번쯤 곰곰히 생각해봄이 좋지 않을가? 육신에 붙어있는, 속세에 찌든 도덕과 품성의 쭉정이와 껍데기를 이 가을 저 바람에 아까울것 없이 날려보낸다면 나 또한 나름대로의 성숙된 자아를 보게 될것이다.가을바람은 성숙을 다그치고 허와 실을 갈무리하는 바람이다.나는 이 가을 저 바람앞에서 내 삶의 진실을 깨우칠수 있기를 원한다. 그것은 령혼을 정화한 거뜬하고 건강한 심신으로 이제 다가올 한겨울 눈보라를 헤치면서 또 하나의 눈부신 생명부활의 푸른 계절을 만나기 위함이다.2008.9 (연변일보 2008-10-23 19:0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