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극민
http://www.zoglo.net/blog/jinkeming 블로그홈 | 로그인

※ 댓글

  • 등록된 코멘트가 없습니다
<< 4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    

방문자

홈 > 전체

전체 [ 17 ]

17    판타지 장편소설 《진허》(11) 댓글:  조회:1879  추천:1  2013-12-04
11   “눈을 떠보아라.” 허공에서 귀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이는 눈을 떴다. 다락기둥에서 날개를 펼치던 메뚜기가 바닥에 뛰여내리고 흰구름은 느릿느릿 흘러갔으며 산과 숲은 본래의 모습이였다. 준이는 아까부터 자기를 주시해온 눈길이 진허법사의 눈길이였음을 짐작할수 있었다. 준이는 부르튼 소리를 했다. “법사님, 너무하십니다. 왜 저의 불행한 과거를 억지로 회상시키고 또 그것을 재미있는 구경거리인양 들여다보구계셨습니까? 남의 사생활을 이렇게 함부로 침해해두 되는겁니까?” “젊은 시절에 넌 천리(天理)에 어긋나는 죄도 짓지 않았는데 뭘 부끄리는거야?” “법사님두 참, 다 들여다보시구두, 저는 방목장에서 저지른 음행때문에 지금두 후회하고있습니다. 그때 조금만 참았더라두 인생을 다르게 살수 있었겠는데…” “그것을 왜 음행이라고 하느냐? 소들이 교배하는것처럼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였더냐?” “하긴 글쎄 참새를 얼려잡듯 감언리설루 꼬인것두 아니구 순간적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저지른 일이기는 합니다만… 그짓 한번 하구 평생 책임을 져야 했으니 그게 억울하지요.” “구차스러운 변명 늘어놓지 말어라. 인생을 다시한번 살아보니 느낌이 어떠냐?” “뭘 다시 살았다구 그럽니까? 과거에 대한 회상에 불과한데…” “넌 진짜 과거로 돌아갔다 왔느니라.” “무슨 요술 같은 말씀을… 저의 전반생이 그래 메뚜기가 천장에서 뛰여내리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단 말씀입니까?” “찰나가 곧 무량겁이요, 무량겁이 곧 찰나이니라. 고차원에서의 시공의 무궁한 조화를 네가 어찌 알겠느냐?” 준이는 아인슈타인이나 호킹의 책을 읽었기에 시공의 상대성이며 시간역전 따위 문제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있었다. 하지만 자기가 금방 소년시절, 청년시절로 돌아갔다 왔다는것을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법사님, 저는 스무이틀동안이나 모진 고역에 시달리다가 오늘 자유를 얻었습니다. 여유나 즐겨보려고 이 야산에 들어온겁니다. 저는 천성적으로 혼자 있기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고독을 무서워한다지만 저는 고독을 즐깁니다. 왜 청하지도 않은분이 나타나셔서 저를 이렇게 혼란에 빠뜨리는겁니까? 뭘 깨우쳐줄듯하면서도 깨우쳐주지 않으시고…” 깨달음이란 스스로 깨달아야지 누가 깨우쳐주는것이 아니다.” “스스로 깨달을수 있다면 목사며 법사며 경전 같은것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것은 그것으로서의 존재리유가 있고 너는 너로서의 존재리유가 있다.” “그러게 저의 실존문제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사 하는게 아닙니까?” “……” “언젠가 저는 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깜짝 놀란적이 있습니다. 저란 인간은 그저 세상에, 인생에 응부하기 위해서 존재하는것이고 진정한 자기는 어딘가 따로 있는듯한 느낌이였습니다. 그 기괴한 느낌은 그저 그때뿐이 아니였습니다. 내심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기회만 있으면 튀여나왔습니다. 진정한 자기가 따로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만 하면 저한테는 현실적인 모든것이 하등의 가치도 없어보였습니다. 제가 그 어떤 종교도 사회적리념도 믿지 못하고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관인 지위, 명예, 금전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것도 그 원인인것 같습니다. 글쎄 사장노릇을 하든 막벌이를 하든 매 한가지라고 생각할 정도니까요. 제가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실패와 좌절만 겪어온것이 그따위 진정한 자기에 대한 궁금증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저는 자기를 들여다보는것을 무서워하는겁니다.” 진허법사님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알고있느니라.” “저는 이렇듯 흐리멍텅한 상태로 인생을 거의다 살았습니다. 이제 와서 자기를 깨달은들 뭘 어쩌겠습니까?” “한세상 어리둥절하게 왔다가 어리둥절하게 가는게 소원이냐?” “그건 아닙니다. 인생의 진짜의미를 깨닫고싶지만 깨달아지지 않는걸 어떡합니까? 젊었을 때는 그나마 공산주의리상이라는것이 있어서 자기의 삶이 의미가 있다구 생각했지요. 아니, 압박과 착취가 없고 평등하구 자유롭구 아름답구 행복한 사회, 그런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삶입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러다가 문화대혁명을 경과하면서 볼라니까 어이쿠, 개판이라두 그런 개판이라구야…” “이놈, 또 그따위 말투를 쓰느냐?” “죄송합니다. 한 시대를 속혀서 살아온게 너무 밸이 나서…” “……” “법사님, 저는 평생 예술과 문학을 숭상해왔습니다. 10년동란때두 글쎄 남모르게 책을 읽었다니까요. 책을 모두 불태워버렸겠는데 어디서 구할수 있었는가구요? 페품수구소 같은데 무더기로 쌓여있었지요. 고철이나 유리쪼박, 넝마들과 같이 비를 맞아 곰팡이냄새가 코를 찌르는 책들, 불쏘시개를 하겠다고 돈을 몇푼 주면 한자루씩 사내올수 있었습니다. 무슨 역반심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먹지 말라는 열매가 더 맛있어보인다구 저는 ‘독초’로 몰리는 책에 더욱 흥미를 느꼈습니다. 독서에 무슨 뚜렷한 목적이 있은건 아닙니다. 그런 시국에 입시공부나 하구 무슨 ‘출세’를 하려구 책을 읽었다면 진짜 미친놈이였겠지요. 그저 재미로, 심심풀이로 읽었다니까요. 아무튼 책을 좀 읽었으면 뭘 깨닫는게 있어야 하겠는데 이눔은 깨닫기는 고사하고 갈수록 어리뻥뻥해졌습니다. 예술과 문학이 표방하는것이 무엇입니까? 진선미(真善美)가 아닙니까? 하지만 세상에서 진리라 하는것은 항상 상대적인것이였구 지어 사이비한것이였습니다. 선이란것두 위선과 사악함과 뒤섞여 어느게 어느겐지 분별할수 없었구 미란것두 글쎄 자연, 사회, 예술 광범위한 령역에 걸쳐 자기를 나타내지 않는 곳이 없었지만 그건 미의 겉모습이였지 본질은 아니였습니다. 아마 제가 미술교육에 종사하면서부터일겁니다. 저는 미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문제를 파악해야만 저의 인생의 의미나 가치를 깨달을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저는… 허 참, 법사님한테 무슨 이런 심각한 얘기를… 법사님, 그냥 듣고계십니까?” “……” “법사님, 그나저나 이거 담배생각이 나서 못 견디겠는데 담배 한대 피워두 괜찮겠습니까?” “……” 준이는 담배를 피워물었다. 주위의 경치를 둘러보노라니 자기가 여태까지 혼자서 중얼거리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법사님이 과연 있기나 한가? 그는 시탐조로 물었다. “진허법사님, 정말로 허공에 계십니까?” “……” “또 잠적하셨나?” “……” “법사님, 그렇게 계시듯 안 계시듯 하시지 말고 대범하게 형체를 드러내시구 저하구 마주앉으시지요. 어서 내려오십시오. 에헴, 아취! 칵… 아이쿠, 이놈의 담배…” 법사님의 호통소리가 울렸다. “이런 한심한 놈 봐라. 너 나를 한담이나 들어주는 동네늙은이로 아느냐?” “아차, 그냥 계셨구만요. 죄송합니다.” “너 심심해두 한참 심심한 모양인데 너처럼 책두 많이 읽구 환상두 좋아하는 친구를 불러주마, 그 친구하구 심심풀이나 해라.” “허허허, 저한테는 친구가 없습니다.” “있느니라.” “없습니다. 술친구는 있지만 간담상조(肝胆相照)하구 의기투합(意气投合)하는 친구는 없습니다.” “있느니라.” 허 참, 없다는데도 한사코… 도대체 누구를 그러시는가? 술친구 백선생을 그러시는가? 장기친구 서동무를 그러시는가? 법사님께서 신통력이 있으니까 려권이니 항공편이니 상관없이 대바람에 여기를 데려오기는 하겠지만… 그 친구들은 정신분야의 심각한 문제를 토론할만한 수준이 아닌데… 이윽하여 어디선가 말발굽소리며 당나귀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야산에 웬 마바리행차야. 미처 의문을 풀기도전에 다락앞에 괴이한 행색을 한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한 사람은 키가 큰 말라꽹이로서 갑옷차림에 창과 방패를 들고 여위디여윈 말을 타고있었고 한 사람은 배가 불쑥 나온 땅딸보로서 채양이 넓은 모자를 쓰고 당나귀를 타고있었다. 이런 이런, 돈 끼호떼와 그의 시종 싼쵸 빤싸가 아닌가. 준이는 억이 막혀 입을 딱 벌렸다. 싼쵸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나서 입을 열었다. “동방사람들은 왜 이렇게 우습게 생겼어? 눈알은 새까맣구 코는 납작하구… 어이, 자네 주인은 어디 갔어?” 싼쵸는 준이를 자기와 같은 시종으로 여기는것 같았다. 돈 끼호떼는 마분지로 만든 투구가리개를 올리며 엄숙하게 말했다. “싼쵸, 무례하게 나서지 말아. 이분이 바로 동방성자께서 만나보라고 하신 ‘고독한 학사’님이시다.” “동방성자”라고 하면 필경 진허법사님이시겠지. 어느새 이런 어리광대 같은 인물들을 불러오셨는가. 돈 끼호떼가 둘시네아공주를 사모하여 스스로 자기한테 “우울한 얼굴의 기사”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거기에 대응하여 나한테 “고독한 학사”란 우습강스러운 별명을 붙인 모양이다. 아무튼 법사님께서 신통력을 부려 연극을 꾸미시는것 같은데 내가 그만한 배역이야 못 놀겠는가. 준이는 소설의 말투를 본따서 돈 끼호떼에게 말을 걸었다. “라만차의 저명한 편력기사 돈 끼호떼선생께서 이런 오지를 광림해주신데 대하여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돈 끼호떼가 약간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 “실례지만 학사님께서는 저의 신분을 잘못 알고계십니다. 저는 1605년 에스빠냐의 위대한 작가 쎄르반떼스에 의하여 세상에 알려진후 오늘에 와서는 세계적인 편력기사로 명성을 떨치고있습니다. 라만차란 시골이름을 저의 명성과 결부시키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실례를 용서하십시오. 그런데 동방성자께서는 무슨 연유로 기사님을 이리로 보내신겁니까?” “‘고독한 학사’님께서 지금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심각한 미혹상태에 빠져있다고 하셨습니다. 저와 간담상조하고 의기투합하는 친구로 될수 있다면서 면담을 부탁하신겁니다.” 이런, 사람을 웃겨도 유분수지. 아니,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누군데? 당신이야말로 기사소설에 환장하여 총포로 싸우는 세월에 창과 방패를 들고 기사행각을 벌이지 않았던가. 주막을 성곽으로 여기고 양떼를 적군으로 여겨 미친듯이 뛰여들어가 좌충우돌하고… 정신이 완전히 돌아버린 사람과 내가 어떻게 같을수 있단 말인가… 법사님, 법사님께선 아마 독으로 독을 치는 비방을 쓰는지는 몰라도 이건 너무하십니다. 돈 끼호떼가 물었다. “학사님께서는 기사소설을 읽으셨는지요?” “왜 안 읽었겠습니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로부터 월터 스코트의 ‘아이반호’까지… 그래도 수많은 기사소설중에서 쎄르반떼스의 ‘돈 끼호떼’가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약 40년전, 제가 스무살전에 그 책을 읽었는데요. 기사님을 따라 17세기 에스빠냐의 광야며 수풀을 꿰지르고 다녔고 귀족들과 평민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기사님의 덕택에 저는 그 당시 에스빠냐의 풍토인정을 직접 살아본것처럼 실감했습니다.” “학사님의 감수성에 탄복합니다. 동방에도 기사소설이 있는가요?” “동방에서는 기사가 대개 영웅호걸로 통합니다. 서방의 기사들은 개인영웅주의적인데 반하여 동방의 기사들은 끈질긴 인간관계속에서 활동하지요. 중국의 《삼국연의》라든가 《수호전》 같은 책들이 기사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한국이란 나라에는 기사소설이 딱 한책밖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홍길동》이라고…” “동방에서 왜 저와 같은 탁월한 편력기사가 출현하지 못했는지 이제야 알게 되였습니다. 학사님께서 저처럼 기사소설을 많이 읽었더라면 꼭 저에 버금가는 편력기사로 출세했을겁니다.” 흥, 오만하기 짝이 없군. 자기와 동등한 자격도 아니고 버금이라니. 그나저나 내가 자네보다 기사소설을 곱절 읽었더라두 자네처럼 미치광이짓은 안할거라구… 준이는 점잖게 물었다. “기사님께서는 이 세상에 기사소설뿐만아니라 예술, 문학, 철학에 관한 책들이 수없이 많다는것을 알고계시겠지요?” “그런 책이야말로 인간의 정신을 불구로 만드는 장본인입니다. 학사님께서 본성을 잃은것은 바로 그런 책들을 닥치는대로 읽은탓입니다.” 준이는 부아가 치밀어 지금 환상상태라는것을 잊어버리고 큰소리를 냅다 질렀다. “내가 본성을 잃었는가, 자네가 본성을 잃었는가? 기사는 무슨 떡대가리 같은 기사야. 자네는 워낙 시골뜨기신사지? 본명은 퀘사다인지 뭔지… 그따위 기사소설에 미쳐가지구 자기를 마치 불세출의 걸출한 기사인양 착각하지 않았는가? 별의별 해괴한 짓거리를 다해서 온 세상 사람들을 웃기구. 자네 진짜 필마단창으로 세상을 구할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자기 주제는 모르고 내가 본성을 잃었다고? 허 참, 기막혀서 원…” 돈 끼호떼가 창과 방패를 추스르면서 눈을 부릅떴다. “말투를 들어보니 당신은 학사가 아니라 교양 없는 하층빈민이구만? 당신은 나를 심하게 모욕했소. 명예로운 기사로서 하층빈민에게 결투를 신청하는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너무 괘씸하면 무작정 무력을 쓸수 있다는것을 명심하시오.” 문득 허공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돈 끼호떼가 허공을 쳐다보더니 벽력같은 소리를 질렀다. “요 애숭이야, 게 섰거라! 내 오늘 네놈한테 버릇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돈 끼호떼가 아니다.” 돈끼호떼가 창을 비껴들고 말에 박차를 가하더니 허공에 솟구쳤다. 준이가 멍해있는데 옆구리가 근질거렸다. 돌아보니 싼쵸가 다락에 올라와서 채찍자루로 자기를 건드리는것이였다. 준이가 호통을 쳤다. “싼쵸! 이게 무슨 무례한짓이야?” 싼쵸가 히죽히죽 웃었다. “이봐, 자네두 나 같은 평민이지? 돌아다니면서 막벌이하는 인부가 아니야?” “이런, 사람을 몰라봐두 분수가 있지. 겉모습이 허술하다구 다 자네와 같은 사람인줄 아는가?” “뻔한데 뭘, 허허허…” “뭐가 뻔하다는거야? 자네는 일자무식이지만 나는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야.”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람이 벼슬은 반쪽두 못한것 같구먼?” “난 벼슬하자구 책을 읽은게 아니야. 인생의 재미나 느끼려구 읽었을뿐이야.” “아니, 벼슬도 못한다면서 책은 읽어 뭘 하우? 먹은 소 똥 눈다는데…” “허 참, 에스빠냐에두 우리와 똑같은 속담이 있는 모양이군?” “사실이 그렇지 않수? 책 많이 읽었으문 바보가 아닌 이상 신부(神父)가 되든지 아니면 바보보다 더한 바보가 되여 우리 주인처럼 편력기사노릇을 하든지…” “싼쵸, 주인이 없는데서 주인을 바보라고 비방하다니? 자넨 충성스러운 시종이 아니군그래.” “충성은 무슨 개뿔 같은 충성이요? 먹을알이 있을가 해서 따라다니는거지.” “주인이 약속한 섬나라 총독자리를 바라는가?” “아니우. 사람들이 웃음가마리를 만드느라구 나를 총독자리에 한번 앉힌적이 있지만 다시는 그런 장난에 속히우지 않을테요. 문제는 돈이요. 우리 주인이 4백년 동안 모험을 계속하면서 얼마나 많은 책과 영화를 만들어냈소? 하지만 그 돈이 다 출판상이나 영화거간들의 수중에 들어가구 주인이나 나한테는 한푼도 차례지지 않았단 말이요. 주인은 바보여서 돈을 거들떠보지 않지만 난 꼭 그놈들한테서 출연료를 받아낼거요.” “그나저나 자네 주인은 어디로 갔어?” “영국의 조무래기녀석을 쫓아다니우. 너무 까불어서…” “어떤 앤데 자네 주인을 시끄럽게 굴어?” “해리 포터라구 새로 나온 녀석인데 마술학교를 나와 그런지 별의별 모험을 다한다니까. 고 녀석때문에 우리 주인이 세상에서 잊혀지게 생겼는데 화나지 않게 됐수?” “자네 주인은 지금두 둘시네아공주를 사랑하는가?” “말두 마오, 아마 바다가 마르구 돌이 썩는다 해두 그 미친 사랑은 변하지 않을거요. 그 시골구석의 못난 계집애가 인젠 늙어죽은지도 언제인데 그냥 절세의 미인으로 상상하면서…” “그건 플라톤식의 정신적사랑이라는건데 자네따위가 어찌 알겠는가?” 싼쵸가 비죽거렸다. “당신두 우리 주인처럼 머리가 좀 돈것 같구만.” 말울음소리가 나더니 돈 끼호떼가 돌아왔다. 명마 로시난테가 숨을 헐떡거리며 주둥이에서 게거품을 흘리는것을 보아 큰 격전을 치른듯했다. 돈 끼호떼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개인명예와 관계되는 사무때문에 학사님과의 면담을 잠시 중단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돈 끼호떼는 떠나기전에 있었던 불유쾌한 언쟁을 잊어버린듯했다. 과연 미치기는 했어도 풍도만은 고상한 귀족 못지 않게 의젓했다. 준이가 말했다. “아까 기사님의 명예를 손상한데 대하여 사과드립니다.” “저의 명예를 훼손하는것은 저 해리 포터란 녀석입니다. 그 애는 나오자마자 전세계 어린이들을 사로잡았지요. 물론 매스컴의 일방적인 부추김탓도 있지만…” “기사님께서는 그 애를 질투하시는겁니까?” “아닙니다. 문제는 그 애의 모험담이 어린이들의 렵기적인 취미만 만족시키는데 있습니다. 저의 모험담처럼 교훈적이 못되고 정신적함양에도 도움을 주지 못하지요.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그 애를 세상에 내보낸 저자가 영국의 평범한 과부이기에 결투를 요청할수도 없고… 그래서 그 애만 쫓아다니면서 혼내주고있는 판입니다.” “기사님, 지금세상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세계는 황페해지고있습니다. 세계적인 편력기사로서 기울어지는 세상을 바로잡을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이지요. 저는 정의를 위해 세상에 태여난 몸입니다. 불행한 고아, 과부, 약자들 켠에 서서 그들을 보호하는것이 저의 천직이지요. 세상에 불의가 존재하는 한 저는 손에서 창과 방패를 놓지 않을것입니다.” 싼쵸가 주인의 말을 중단시키고 허공을 가리켰다. 돈 끼호떼가 허공을 쳐다보더니 창을 올렸다내렸다하면서 무슨 중세기적인 례의를 표시하는것 같았다. 그리고는 준이한테 얼굴을 돌려 하직을 고했다. “학사님과 면담을 해보니 동질성이 있어보입니다. 앞으로 무력을 쓸 일이 생기면 저를 불러주십시오. 그럼 안녕히… 자, 싼쵸, 가자!” 두 사람은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허공에서 법사님이 껄껄 웃고있었다. 준이는 비꼬아 말했다. “법사님께서 허공에 홀로 계시자니 심심하신 모양입니다. 저한테 인생역전도 시키시구 어리광대 같은 인물을 친구라고 불러주시구… 신통력이 비범한줄은 잘 알겠습니다만 이거 장난이 너무 지나치신거 아닙니까?” “허허허… 어찌 실없는 장난으로 여기느냐? 너의 심성에 따라 자기를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였거늘…” “돈 끼호떼는 현실적으로 분별력을 완전히 상실한 미치광이입니다. 법사님께서 저를 돈 끼호떼에 비기는 저의는 무엇입니까?” “그 친구 혐오스러우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별별 우스운 짓거리를 다해두 밉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저속하지는 않으니까요.” “그한테는 실제상 닭의 모가지를 비틀만한 힘도 없다. 하지만 그의 정의감, 선량함, 숭고한 사랑은 력사상 그 어느 진짜기사도 따르지 못할것이니라.” “말씀을 들어보면 법사님께서 오히려 돈 끼호떼 같은 리상주의자이십니다그려?” “현실주의자니 리상주의자니 하는건 너와 같은 범인(凡人)들의 말공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과 저것의 대립관계에서 어느 한켠에만 집착한다면 미혹에서 영원히 해탈하지 못한다. 현실에선 순수한 진선미가 존재할수 없는데도 한사코 그것만 추구한다면 너의 서양친구처럼 될수 밖에 없느니라.” “그렇다면 저는 평생을 허무하게 보낸거 아닙니까? 정신적가치에 대한 저의 추구는 부질없는것이였습니까?” “누가 너의 추구가 잘못되였다더냐? 고만큼한 정신적추구조차 없다면 버러지와 뭐가 다르겠느냐? 너의 천기로 보아서는 반드시 큰 깨달음을 얻을수 있건만 세속의 기운에 너무 짓눌려 자기를 모르고있을뿐이다. 오늘 너한데 심안(心眼)을 틔워주었으니 머리우에서 령광(灵光)이 감돌것이니라. 그 빛을 보고 령계의 인물들이 혹간 너를 찾아갈것이니 그들과 교류하면서 큰 깨달음에 정진하라.” “법사님, 법사님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 “신령적인 존재로 보자니 인간성이 너무 많고 인간적인 존재로 보자니 너무 신령스럽고… 신적인 존재도 인간적인 존재도 아니니까 더구나 신임이 갑니다만…” “말이 그렇지 이제 산에서 내려가면 또다시 나의 존재를 의심하구 이 모든것을 환상에 밀어붙일것이니라.” “그럴리가 있습니까?” “자, 어서 산에서 내려가거라.” “아니, 잠간만, 저는 아직두 할 말이 많은데요?” “……” “법사님!” “……” 법사님은 다시 응답이 없었다.
16    판타지 장편소설 《진허》(10) 댓글:  조회:1499  추천:0  2013-11-13
10   오늘따라 소들이 풀을 뜯지 않고 류달리 설치였다. 알고보니 “부녀주임”이란 별명을 가지 암소가 발정이 난것이였다. 둥글이는 물론 갓난 송아지들마저 애를 태우며 “부녀주임”의 꽁무니를 쫓아다니였다. 평소에 순하기만 하던 “숙메”, “들메”, “꼬리몽둥이”, “물레뿔” 따위의 수소들도 오늘만은 정신이 번쩍 나는지 비탈이며 골짜기를 헤아리지 않고 “부녀주임”을 따라다니는것이였다. 그는 녀석들을 음지쪽비탈에 붙여놓으려고 채찍을 짱짱 울리며 올리뛰고 내리뛰며 갖은 애를 다 썼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칠팔월에는 죽은 소 가죽도 펄떡거린다는 늙은이들의 말이 실감이 났다. 펑퍼짐한 공지에서 “곤두뿔”과 “흰점박이”가 마주섰다. 왕자리다툼인지 “부녀주임”쟁탈전인지 녀석들의 속내는 알수 없어도 피차의 살기등등한 모습은 례사롭지 않았다. 두놈은 머리를 낮게 수그리고 눈깔을 지릅뜬채 “웅―웅―” 소리를 내면서 발통으로 땅을 파헤쳤다. 흙덩이들이 먼지와 함께 공중에 솟아올랐다. 한동안 기회를 엿보던 녀석들이 드디여 번개같이 달려들며 이마빼기를 툭탁 마주치는데 티각태각 뿔이 부딪치는 소리가 무시무시했다. 붙었다가는 떨어지고 떨어졌다가는 다시 붙으며 녀석들은 아예 생사결단이라도 낼듯 치렬하게 싸워댔다. 얼마후 “곤두뿔”이 밀리는척하다가 홱 돌아서면서 날카로운 뿔로 “흰점박이”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거의 치명적인 일격이였다. “흰점박이”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참나무숲으로 도망치고말았다. “곤두뿔”은 “쉭―” 하고 숨을 길게 내쉬며 머리를 번쩍 추켜들었다. 과연 그럴듯한 영웅의 기상이였다. 승전한 녀석은 수레길에 내려서서 슬렁슬렁 아래로 내려갔다. 마침 “부녀주임”이 뭇소들한테 쫓겨 마주 오고있었다. “곤두뿔”이 나타나자 다른 녀석들은 슬금슬금 물러났다. “곤두뿔”은 “부녀주임”을 잔디밭으로 서서히 에워갔다. 냄새도 맡고 핥기도 하면서 잠간 애무를 하는듯하더니 번쩍 몸을 일으켜 “부녀주임”의 잔등에 매달리는것이였다. “부녀주임”은 워낙 맨드리가 꽤 있는 암소였다. 허리도 휘우듬히 곱게 휘여지고 털도 담황색으로 윤기가 반지르르한것이 사람으로 치면 가히 미인의 자색이라고 할수 있었다. 육중한 곤두뿔이 매달려 거센 정사를 벌리는데 암소는 다리를 휘청거리면서도 달아나지 않았다. “부녀주임” 역시 “곤두뿔”을 사모하여 볼품 없는 수소들을 피해다녔는지 모른다. 산에서 보는 소들은 마을우사에서 보던 소들과 판판 다른 모습이였다. 저마다 개성도 있고 야성도 있는 놈들이였다. 산중턱 참나무숲속에 커다란 청석판이 있었다. 소를 쫓아다니느라고 다리가 노곤해진 그는 채찍을 내던지고 청석판우에 올라가 앉았다. 음달이고 숲이 무성하여 삼복지간인데도 서늘하기 짝이 없었다. 로농 두 사람과 함께 소를 몰고 동산너머 방목장으로 들어온지 벌써 한달이 넘는다. 한 늙은이는 밥을 짓고 울타리안의 소똥을 쳐내고 다른 한 늙은이 돌이 애비는 그와 함께 소를 방목했다. 새벽에 울타리의 소를 풀어놓으면 산비탈을 따라 내려가며 풀을 뜯는데 한낮에 골어귀를 지키고있다가 녀석들을 돌려세우면 저녁편에 저절로 막바지에 있는 울타리로 올라간다. 그가 혼자서 얼마든지 감당할수 있는 일이였으므로 돌이 애비는 차라리 괭이를 메고 황기 캐러 다니였다. 황기를 말렸다가 공소부에 가져가서 술로 바꿔오는데 저녁마다 초막에서 산나물안주에 술을 마시는것도 별다른 재미였다. 그는 팔베개를 하고 청석판에 드러누웠다. 나무잎사이로 파아란 하늘이 내다보이였다. 맴―맴―맴― 울창한 숲속에서 매미가 지루하게 울어대고있었지만 이제야 귀를 기울이게 된다. 멀리서 황소의 영각소리도 들려왔다. 자연의 소리… 자연의 색채… 자연의 아름다움… 요즘 새벽에 깨여나 초막을 나서면 계곡에서 안개가 뭉게뭉게 피여오른다. 안개는 산비탈을 타고 유유히 봉우리로 기여오르는데 안개의 유연함과 산봉우리의 강건한 기상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한폭의 아름다운 수묵화를 그려내는것이였다. 이전 같으면 그토록 멋진 정경에 환호성도 지르고 노래가락도 토해냈으련만 지금은 감흥이란것이 도무지 솟구치지 않고 가슴은 마냥 불 꺼진 화로와 같다. 아니, 내가 벌써 스물네살이라니? 이러다가 평생 아무것도 이룩하지 못하고 농촌에서 썩어버리지 않겠는가…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겨울, 모택동주석께서는 “지식청년들이 농촌에 내려가서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최고지시”를 내렸다. 전국 대중소도시들에서 수천수만의 지식청년들이 농촌으로 내려가는 열조를 일으켰다. 연변의 두메산골에 북경, 상해 지식청년들이 내려와서 집체호를 꾸렸고 그의 마을에도 룡정, 도문에서 조선족지식청년들이 내려와 집체호식구가 대번에 30여명으로 불어났다. 후배지식청년들은 모두 초중이나 고중을 다닐 때 문화혁명을 만난 이른바 “홍위병꼬마맹장”들로서 그간 때리고 마스고 빼앗는 혁명투쟁에서 풍부한 경력을 쌓은 애들이였다. 그들한테는 몇해 동안 농촌에 박혀 일만 해온 선배지식청년들이 늙어빠진 페우처럼 보일것은 당연했다. 선배들중 악착스레 대학꿈을 꾸고있는 녀자 한둘을 내놓고는 거진 시집을 갔다. 영희는 유리공장 로동자한테 시집가서 아들까지 낳았고 복순이는 금년초에 시집을 갔다. 복순이의 신랑은 강건너 마을의 영예군인총각이였다. 부대에서 산불을 끄다가 심한 화상을 입었는데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진데다가 한쪽눈은 거의 실명상태였다. 젊은이의 영웅적행위가 복순이를 감동시킨 모양이였다. 그녀는 집체호 동창들에게 자랑차게 말했다. “용모가 쓸데 있는가. 사상이 좋으면 되지.” 추호의 리기심도 없이 오로지 모택동사상에 충실한 복순이의 선택은 사람들의 존경을 불러일으켰다. 생산대에서는 정치사상각오가 한없이 높은 두 청년남녀의 결혼을 축하하여 회의실에서 성대한 결혼의식을 치렀다. 그날 복순이는 머리를 얹지 않고 그냥 단발머리에 군모를 쓰고 신랑은 군복차림에 검은 안경을 썼다. 결혼선물로 《모택동선집》을 교환하고 노래를 부르라는 요청에는 두 사람이 다 《모주석어록》을 랑송했다. 결혼식이라기보다는 완연히 한차례의 정치행사였다. 회의실곁에 있는 김대장네 집에 연길에서 온 복순이네 친척과 동네장년들, 선배지식청년들이 초대되였다. 아마 영희와 갈라진후부터리라. 그는 술상에 마주앉으면 꼭 취할 때까지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그날에는 복순이의 면목을 봐서라도 술에 취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술맹세 개맹세라는 말과 같이 어느덧 또 기탄없이 마셔댔고 횡설수설 아무 소리나 줴치기 시작했다. 복순이와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도 나이 지숙한 번대머리손님이 그를 한동안 노려보더니 참지 못하고 불쑥 내쏘았다. “동무, 사회불만이 있구만?” 그 한마디에 란리가 났다. 그는 천방지축 부엌으로 내려가 장작을 집어들었다. “이 비루먹은 당나귀새끼야, 나 혁명적지식청년이야. ‘사회불만’이라니? 너 오늘 죽어봐라.” 연길손님은 겁에 질려 바깥으로 내뺐다. 그가 쫓아가려는데 동네장정들이 그를 붙잡았다. 장정 서넛이 달려들어서야 겨우 그를 제압했다. 그날 해질무렵에야 술을 깨고보니 자기는 돼지굴란간에 묶여있는것이였다. 발바닥이 근질거렸다. 몸을 일으키니 갓난 송아지 한마리가 그의 발곁에서 혀를 날름거리고있었다. 무엇이 이상한지 항상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니는 녀석이다. 방목장에 돌아온 이튿날 그는 녀석이 태여나는 정경을 목격했다. 어미 뒤꽁무니에서 불쑥 빠져나와 꼼지락거리던 녀석, 어미가 열심히 핥아서 태막을 벗겨주니 일어서려고 가둥거리고… 겨우 일어서서는 어미젖부터 찾아 무는 녀석을 보면서 그는 생명의 신비한 힘에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슬그머니 귀여운데가 있어서 가까이 오면 안아주군 했는데 그래서인지 곧잘 그의 곁에 와서 부닐군 했다. 녀석이 괜히 측은해보였다. 너도 몇해 지나면 코를 꿰우고 멍에를 메겠지. 그리고 죽을 때까지 고역을 치를것이고… 문득 자기의 운명이 소보다 별로 나은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연 인간적인 삶을 살고있는것일가. 전도도, 리상도, 사랑도 다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술로 화풀이나 하고… 워낙 인민의 리익이 최고리익이고 집체리익이 우선인 현실에서 개인적인 추구는 있을수 없다. 있어도 공개적으로 추구할수 없다. 반드시 세계혁명을 위해서라든지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기 위해서라는 전제를 내세워야 한다. 납득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도 감히 말할수 없는 현실, 허위적인 인격으로만 생존이 가능한 사회… 모든것을 다 잃고도 나는 마치 얼빠진 사람처럼 산속에 멍하니 앉아있지 않는가. 아니, 지금의 내가 진짜 나란 말인가… 그런것 같지 않은데… “곤두뿔”의 용맹무쌍한 결투장면이며 이성을 차지하던 장면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아니, 지금의 내가 진짜야. 나는 “곤두뿔”보다도 못한 용렬한 인간이야… 그는 채찍을 들고 소무리를 찾아나섰다. 좀더 있다가는 걷잡을수 없는 렬등감을 못이겨 불현듯 목을 맬지도 모를 일이였다. 방목장에 들어온지 거의 두달이 지나가고있었다. 이제는 도시의 혁명형세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집체호나 동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흥미가 없었다. 매일 소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기도 어느덧 소처럼 되여가는것 같았다. 날씨가 쾌청했다. 맞은켠 산너머에서 돌이 애비가 뽑는 민요가락이 산울림으로 들려왔다.   신고산이 우르릉 화물차 떠나는 소리에 고무공장 큰애기 벤또밥만 싸누나 어랑어랑 어허이야 어럼마 띄여라 몽땅 내 사랑이로구나   허 참, 저것두 노래라고 목청을 뽑는가. 돌이 애비는 저녁에 초막에서 술을 마시고는 꼭 “신고산타령”을 뽑군 했다. 그 특이한 악청에 밥짓는 늙은이가 견디다 못해 욕사발을 퍼부었다. “이거 이거… 돌밭에서 개가죽 끄스는 소리 좀 그만하라구. 근처에 늑대가 왔다가 제 패거리 갇혀있는가 해서 뛰여들어올라.” 견딜수 없는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돌이 애비가 소리를 뽑기 시작하면 그는 초막에서 나왔다. 팔다리를 모기한테 뜯기면서 하늘의 별을 쳐다보군 했다. 오늘은 멀리서 들어 그런지 그닥 싫지는 않다. “동방홍”, “국제가”,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라는 노래밖에 들을수 없는 세월에 “개가죽 그스는” 악청으로나마 옛 민요를 들으니 신기한 정취마저 느껴진다. 돌이 애비의 노래가락이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근처에는 황기가 없다더니 산을 하나 더 넘어간 모양이다. 그는 소들을 지키려고 골어귀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얼마쯤 걷다가 무심중 뒤를 돌아보니 송아지 두마리가 뒤따라오고있었다. 그는 채찍을 짱짱 울리면서 녀석들을 숲속에 몰아넣었다. 다시 내려오던중 수레바퀴자국에 발을 빗디디여 엉덩방아를 찧고말았다. 숲속에서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틀림없이 아래마을 양몰이계집애였다. 그는 숲속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뭐가 우습다고 깔깔대는거야? 어른이 한번 실수한걸 가지고.” 웃음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야! 너 왜 여기 와서 방목하니? 동네뒤산에서 하지 않구.” “무슨 상관이요? 이거 오빠 혼자 산이요?” “그래, 내 산이다.” “별 싱거운 사람 다 보겠네.” “뭐라구? 요놈 계집애, 가라면 ‘예―잇’ 하구 갈거지 대답질은 무슨 대답질이야?” “오빠, 또 한번 넘어져보오. 잘코사니야. 호호호호…” “너 그냥 까불겠니? 올라가면 혼날줄 알아라.” “평평한데서 넘어지는 사람이 여길 어떻게 올라온다구. 호호호호…” “너 죽어봐라.” 그는 산비탈을 오르기 시작했다. 진짜 성이 나서가 아니라 심심하던차에 말장난이라도 하고싶었던것이다. 계집애는 청석판우에 앉아있었다. 색 낡은 작업복을 입고 초모자를 잔등에 걸치고있는데 까무잡잡한 얼굴에서 장난기어린 두눈이 판들거리였다. 청석판주위에서 양들이 한창 풀을 뜯고있었다. “너 어른이 한번 말하문 공손히 시키는대루 하지 않구 웬 잡말이 그리 많아. 엉?” “어른이라구? 흥, 쇠 웃다 꾸레미 터지겠네.” “요것 봐라, 말이면 다하는줄 아니? 어서 이 누린내나는 양들을 몰고 썩 사라져라.” “싫소, 우리 생산대 대장이 여기 와서 방목하라구 했소. 왜? 왜? 왜?” “너 지난겨울에 아버지 찾으러 채석장에 왔지? 너 애비 ‘짱털보’ 맞지?” “그런데는…” “내가 ‘짱털보’부터 혼내야 되겠다. 왜 딸을 이렇게 버르장머리없이 키웠는가구.” “자꾸 ‘털보’, ‘털보’ 하겠소? ‘19세기’ 같은게…” “허허 참, 너네 동네서두 나를 그렇게 부르니?” “집체호언니들한테서 들었소.” “너 ‘19세기’가 무슨 뜻인지 아니?” “나 같은 소학교졸업생이 어찌 고중생들과 비기겠소? 난 모르오.” “에익! 시끄럽다. 내려와!” “싫소. 내가 왜 내려가겠소?” “이건 내 자리야. 매일 여기서 낮잠을 잔단 말이야.” “어이쿠, 기가 막혀. 산두 자기꺼, 돌두 자기꺼, 무시게나 다 자기꺼겠구만.” “못 내려오겠니? 혼나기전에…” “싫소, 산의 돌이 무슨 임자가 있소?” “요것 봐라. 입만 까가지구.” 그는 청석판우에 올라앉아 엉뎅이로 계집애를 밀치기 시작했다. 계집애는 희희덕거리면서 밀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한창 밀고 버티고 싱갱이질을 하던중 계집애의 몽골몽골한 젖가슴이 그의 팔을 스쳤다. 그는 가슴이 뭉클해났다. “얘, 장난은 그만하구, 너 금년에 몇살이니?” “열여덟, 왜?” “시집갈 때가 다됐구나. 너 나한테 시집오겠니?” “오빠, 그따위 치사한 소릴 하문 난 가겠소.” 계집애가 진짜 가려는듯 몸을 일으켰다. 그는 엉겁결에 계집애를 뒤로 껴안았다. “오빠, 왜 이러오? 난 소리치겠소.” “너 목이 터지게 소리쳐봐, 누가 듣는가구.” 무엇을 예감했는지 계집애가 몸을 오돌오돌 떨었다. 그도 가슴이 쿵덕쿵덕 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일이였다. 우발적으로 저도 모르게 부둥켜안았던것이다. 똑 마치 고슴도치를 안은듯 껄껄한 기분이였다. 계집애는 헤여나오려고 갖은 발악을 다했다. 그럴수록 그는 팔에 힘을 주었다. 놓아주면 안된다는 생각뿐이였다. 계집애한테서는 풀냄새, 땀냄새와 함께 녀자의 야릇한 체취도 풍기였다. 어느덧 그의 하신에서는 그것이 제구실을 해보려고 무작정 굳어지고있었다. 사태는 이제 더는 걷잡을수 없게 되였다. 그는 계집애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계집애는 여전히 허우적거리며 반항했지만 처음처럼 격렬하지는 못했다. 두눈에서 장난기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공포감만 맴돌았다. 반듯이 눕혀놓고 바지를 벗기려는데 계집애가 그의 손목을 틀어잡았다. “오빠는 가정출신에 문제가 있다던데 정말이요?” “어머니가 종교를 믿을뿐이다. 성분은 진짜 빈농이니 걱정말아.” 말을 주고받으니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다. 계집애는 손목을 놓고 벗어놓은 웃도리를 당겨다가 얼굴을 덮었다. 아, 녀자의 아래몸은 본래 이런것이구나. 난생처음 보는 실물이였다. 무슨 볼록볼록한것이 이리도 많아. 젖가슴도 볼록하고 아래배도 볼록하고 그아래 또 조그마한 둔덕이 볼록 나와있었는데 둔덕아래로 가무스름한 털들이 곰상스레 누워있었다. 똑 마치 장독을 옮기면서 그밑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자란 잔디풀을 보는듯한 느낌이였다. 둔덕아래 신비스러운 부위를 들여다보는 순간 가슴이 들뜨기 시작했다. 그는 계집애의 얼굴을 가린 옷가지를 와락 벗겨버렸다. 계집애의 얼굴이 생판 달라져있었다. 신비한 경험을 앞두고 두려움과 수집음이 엇갈리는 얼굴모습은 너무나 매혹적이였다. “곤두뿔”의 정사장면이 피끗 머리를 스쳤다. 그는 자신을 “곤두뿔”로 상상하면서 처녀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비록 서툴고 어색하기는 했지만 본능의 힘은 강한것이였다. 쾌락의 절정을 넘어서는 순간 그는 누군가 오래동안 자기를 주시하고있다는것을 의식하면서 정신을 잃었다.
15    판타지 장편소설《진허》(9) 댓글:  조회:1461  추천:1  2013-11-01
9   그는 마을 뒤산에 올라섰다. 사방 70리 논벌이 한눈에 안겨온다. 가을걷이를 끝낸 논판은 휑뎅그렁하기 짝이 없고 봄부터 논판을 적셔온 해란강은 제 할 일 다했다는듯이 한가롭게 벌판에 늘어져있었다. 재교육을 받으러 농촌에 내려온지 어언간 2년이 넘었다. 대학꿈은 나무아미타불이 되였고 이제는 시내로 돌아갈 희망마저 묘연해졌다. 도시에서는 로동자들이 생산마저 탈리하고 혁명한다는데 농민들은 그렇게 할수 없었다. 농사가 밥줄이니까 혁명한답시고 농사를 망칠수는 없었던것이다. 이제 겨울이 돌아와야 지난해처럼 시름놓고 계급의 적이나 주자파를 다시한번 삶아버릴것이다. 모내기가 끝나자 그는 민공으로 뽑혀 먼 산골 저수지공사장에 가서 일했다. 벼가을철에 돌아와서 벼가을도 하고 묶걱질도 했다. 어제까지 탈곡을 하다가 인편에 영희의 쪽지를 받고 오늘 연길로 떠난 길이다. 산잔등을 타고 언덕 몇개를 넘으면 남쪽교외에 떨어지게 된다. 언틀먼틀한 수레길에 락엽이 뒹굴고 재빛하늘에서는 금시 진눈까비라도 쏟아질듯 날씨가 을씨년스러웠다. 여름 내내 공사장에서 목도를 메면서 그는 자기의 장래나 운명을 두고 한없이 고민했다. 미술가의 꿈, 그것은 이미 락태된것이나 다름없었다. 시대는 예술가를 요구하는것이 아니라 무산계급혁명의 후계자를 요구한다. 시대의 요구를 따르지 못하면 도태되는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 도리를 뻔히 알면서도 차마 미술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 꿈은 그의 인생의 전부라 할만큼 소중했기때문이다. 미술가가 아닌 인생은 그한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심지어 미술가가 되지 못하면 영희와의 사랑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간 영희한테 무관심해진것도 그때문이였다. 무슨 중요한 일이기에 나를 만나자고 했을가… 어느덧 시가지에 들어섰다. 하남다리를 건너서니 숱한 반란파들이 《연변일보》사를 둘러싸고있었다. 지난해에는 학생홍위병들이 거리를 횡행했는데 지금은 자작투구를 쓰고 몽둥이를 든 로동자반란파, 기관직원반란파들이 주류를 이루고있었다. 확성기 여라문대를 설치한 선전차가 《연변일보》사를 향해 설전을 벌리고있었고 분노에 찬 반란파들이 일보사 건물에 돌멩이와 벽돌장을 뿌리고있었다. 일보사 맞은켠 시2중 담벽에는 주자파들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나붙고 이름자마다에는 극형에 처한다는 의미로 붉은 가위표가 란폭하게 질려있었다. 가는 곳마다 “타도하자!”, “박살내자!”, “개대가리를 까부시자!”라는 어구들이 눈에 띄웠다. 연길시제2중학교는 그의 초중때 모교였다. 그가 이 학교를 다닐 때에는 전국적으로 3년재해시기여서 누구라 없이 배를 곯았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체력을 소모하면 더욱 시장기를 느낀다고 중간체조까지 취소했다. 담임선생한테 혼나던 일이 생각났다. 강의를 듣지 않고 필기장뒤에 온통 그림만 그렸다고 호통을 쳤지… 아이들앞에서 필기장을 펼쳐놓고 “전람”까지 시키면서… 학교에서 좀더 걸어서 백화상점곁의 문화관에 이르렀다. 문화관벽에는 대자보들이 나붙어있었고 출입문에는 널판자가 가로질려있었다. 문화관이 오래전에 페쇄되여버린듯했다. 그는 마음이 허전해났다. 연길에 온김에 정선생을 만나보려 했는데 이렇게 허탕을 치고만것이다. 그는 문화관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초중때 하학하여 집으로 가는 길에 쩍하면 이곳에 들리던 일이 떠올랐다. 지금 보면 그때가 그래도 행복한 시절이였다. 그가 미술실에 들어서면 정선생은 그저 “라일러? (왔니?)” 한마디 하고는 자기 일에 몰두했다. 정선생은 항상 업무에 바삐 돌아쳤다. 백화상점앞 대형전시판의 선전화를 정기적으로 바꾸고 각종 전람회의 글자도 새기고 프랑카드에 표어를 쓰기도 했다. 방학에는 그한테 석고상을 내주어 소묘기량을 닦게 했다. 한번은 선생이 그가 소크라테스의 석고두상을 그리는것을 보더니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넌 참 그림을 그리려구 세상에 태여난 놈이구나. 비례감각도 뛰여나구.”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너 앞으로 미술대학은 문제없어. 미술을 제대로 배워가지구 훌륭한 미술가로 되여야 한다. 나처럼 고역을 치르는 잡부가 되지 말구…” 미술실의 단골손님은 그를 내놓고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문화관과 큰길 하나 사이 둔 시도서관의 방동무였다. 방동무는 위장병에 부종까지 앓고있어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는데 오기만 하면 먹을거리에 대한 말만 했고 말을 시작하기전에는 의례 침부터 꿀꺽 삼키군 했다. 한번은 방동무가 그에게 말했다. “얘야, 백화식당마당에 감자가 한 차 들어왔더구나. 너 대문밑으로 기여들어가서 서너알 가져오려무나. 난로에 구워먹게스리.” “나보구 도둑질하라구? 싫수꾸마.” “임마, 내 언제 도둑질하라 했니? 그저 슬그머니 가져오라는데…” “그게 그게지 뭘…” 방동무가 엉큼한 수를 썼다. 짐짓 정선생과 이야기하는척하면서 그한테 미끼를 던졌다. “정동무, 요즘 도서관에 쏘련에서 출판한 미술명작책이 수태 들어왔는데 인쇄를 얼마나 잘했는지 그림에 붓털이 말라붙은것까지 선명하게 보인다니까.” 그는 그 그림을 보고싶은 욕심이 굴뚝같이 일어났다. “거 좀 보겝소.” “안돼. 미성년자한테 열람증을 내주지 않아.” “그러지 말구 좀 보겝소.” 방동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럼 감자부터 먼저 가져와. 굵구 토실토실한걸루…” 그는 그림을 보려고 난생처음 도적질까지 했다. 감자도적질로 그는 방동무와 친해졌고 도서관에서 마음대로 세계명화집과 같은 미술서적을 뒤져볼수 있었다. 고중때부터는 미술서적보다 문학서적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당시 도서관에는 평양에서 출판한 세계문학선집, 조선문학선집이 들어와있었다. 그는 학교공부에는 겨우 락제나 면할 정도로 응부하고 문학책만 읽었다. 아, 그것이 행운이였는가. 불행이였는가… 지금 와서 보면 불행이 아닐수 없다. “봉자수”의 해독을 가장 깊이 받은 셈이니까. 학창시절의 회포를 떨쳐버리고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도서관 뒤골목을 지나 례배당앞에 이르니 십자가의 첨탑은 무너진대로 있었고 안에서는 전기톱소리가 요란했다. 마당에 쌓인 통나무들을 보아 례배당을 목재공장에서 차지한 모양이였다. 례배당을 지나 실골목에 들어서니 동네아낙네들 몇몇이 길을 막고 서서 수군덕거리고있었다. 팔에 붉은 완장을 두른것을 보아 분명 가두 “코신부대” 반란단원들이였다. 가두주임아주머니가 그를 보더니 희떠운 소리를 했다. “이 총각 농촌에 가있더니 끌끌하게두 번졌네.” 말없이 그저 지나칠수는 없었다. “동네 그간 무사함두?” “아, 다 무사하오.” 그가 지나치려는데 한 아낙네가 팔소매를 붙잡고 쑹얼거렸다. “엄마 아직두 예수를 믿는 모양인데 교육 좀 하오. 옆집에서 가두반란단에 고발하는 바람에 하마트면 투쟁당할번했다이.” 다른 아낙네가 께끼였다. “엄마고집이 이만저만 아닙데.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한마디만 말하면 용서해주겠다는데두 끝내 그 말만은 번지지 않더라니까.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두… 말이 그렇지 우리가 뭐 불쌍한 로친네를 투쟁까지 하겠소?” 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악에 받친 소리가 튀여나갔다. “변소청소나 하는 로친네를 투쟁해버리구 똥은 어디다 싸겠는가? 어느 개쌍년이 우리 엄마 까닥 건드리기만 해봐라. 개대가리를 까부시구 집에다 불을 콱 지르겠어.” 아낙네들이 겁이 나는지 모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는 풀풀거리면서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어두컴컴한 집안에 홀로 누워있었다. 아들이 들어서자 엉거주춤 일어나서 손을 잡았다. “어제밤 꿈에 보이더구마는… 어찌 이렇게 오느냐?” “……” “네가 농촌에 내려가있는 일이 항상 마음에 걸리더구마는 지금 보문 하나님의 뜻인것 같다. 너두 알지? 길건너 량식국 다니는 집… 그 집 아들이 지난 주일에 총에 맞아죽었단다. 에그 참, 세월은 무슨 세월인지…” “……” 어머니 베개밑에 성경책 모서리가 삐죽이 나와있었다. 문소리에 깜짝 놀라 기껏 감춘다는것이 저 모양인것 같았다. 어머니의 성경책은 보풀이 일대로 일고 책뚜껑은 헝겊에 풀을 먹여 몇번이나 덮씌웠는지 모른다. 책이라기보다 무슨 헝겊뭉테기 같았다. 글자 역시 옛날글자로서 “따”자를 “ㄷㅅ”라고 표기하여 고중졸업생인 그로서도 알아볼수 없었다. 분명 저 책은 내가 세상에 태여나기전부터 어머니와 함께 있었으리라. 고향 함흥에서 보통학교를 다닐 때부터 예수를 믿었다니 아주 소녀시절부터 애지중지해왔을것이다. 애초에 그는 당의 호소를 적극 받들고 농촌에 내려가면 정치사상표현이 우수함을 긍정받고 공산주의청년단에도 문제없이 가입할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문화대혁명으로 공청단조직이 마비되기전에 동네에서 몇몇 적극분자를 조직에 가입시켰는데 그만은 심사에서 미끄러졌다. 맑스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고 공산주의에 대한 상식조차 모르는 토배기계집애를 받아들이면서도 그를 문밖에 밀어낸것은 오로지 어머니가 예수를 믿는 문제거리가정이라는 원인밖에 있을수 없었다. 자기의 모든 불행, 불운이 어머니의 신앙에서 비롯되였다는 생각이 들자 속에서 또 불같은것이 울컥 치밀었다. 어머니는 녀동생을 낳고 산후병으로 귀가 멀었는데 웬간한 대화를 하려면 소리부터 질러야 했다. “어머니, 그 성경책 이리 내놓으시우.” “왜 그러니?” “아궁이에 집어넣자구… 왜 그따위 책을 지금까지 집에 두고있습니까? 거리로 끌려다니며 투쟁을 당하자구 그럽니까? 예수가 중합니까? 아들이 중합니까? 엄마는 왜 아들생각을 꼬물만치도 하지 않습니까?” 그는 어머니한테 다가가서 성경책을 집어들었다. 그대로 부엌에 내려가려는데 어머니가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그의 다리에 매달리는것이였다. “얘, 성경은 놔두구 대신 나를 죽여. 네가 어미를 잘못 만나 고생하는걸 다 안다. 당장이라두 죽었으문 좋으련만 하루삼시 너를 위해 기도하느라구 죽지 못해 살아간다. 얘야, 죄를 짓지 말아… 제발… 흑… 흑…” 그는 맥없이 가마목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성경책을 아궁이에 집어넣는다는것은 어머니를 화형시키는것이나 다름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어머니가 아무리 맞갖지 않더라도 차마 그런짓을 할수는 없었다. 그는 어머니한테 성경을 내밀며 말했다. “농짝밑에 깊이 감춰두구 다시는 꺼내지 마시우. 아낙네들이 시시로 뛰여드는데 이제 발각되문 시내로 끌려다니면서 투쟁할겁니다.” 어머니는 딸꾹질하듯 어깨를 솟구치며 오열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웃목에 올라가서 어머니를 등지고 누워버렸다. 비가 새여 얼룩덜룩 지도가 그려진 천장, 군데군데 흙이 떨어져 벽돌이 드러난 바람벽… 좁고 허술한 집안이 오늘따라 그를 더욱 숨막히게 했다. 이런 집에서 어떻게 동년을 보냈던가. 배급세월에는 끼마다 수수밥만 먹었고 3년재해때에는 가랑잎으로 만든 대식품도 먹었다. 아비 없는 설음을 겪고 녀동생을 잃는 고통도 겪었으며 예수쟁이집안이라고 천대도 받았다. 그렇다고 항상 기가 죽어 지내지는 않았다. 자신의 미래가 꼭 밝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 어떤 고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그 미래가 보이지 않는것이다. 마음속에 시꺼먼것이 들어앉아 꾸물거리는것도 그때문이 아니겠는가. 아니, 개인리상이 파멸된탓만은 아니다. 투쟁, 비판, 개혁이라는 열화같은 시대정신에 자기가 왜 어울리지 못하는지 그것이 더욱 곤혹스러울뿐이다. 지난겨울 강아바이를 투쟁하던 정경이 떠올랐다. 황소눈을 부릅뜨고 목에 피대를 세우면서 계급의 적을 성토하던 빈하중농들, 계급의 적에게 귀쌈을 올리붙이고 사정없이 발길질하던 젊은이들… 나는 왜 그들처럼 행동하지 못했는가. 혹시 나의 정치사상립장에 문제가 있단 말인가. 그럴수 없다. 나는 어려서부터 공산주의교육을 받았다.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만악의 자본주의사회는 멸망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전세계에서 승리하리라는것을 믿고있다. 나는 중국공산당을 옹호하며 모주석을 옹호한다. 비록 복순이와 같은 적극분자는 아니더라도 공산주의신념만은 변함이 없다. 혹시 너는 비겁한자가 아니야? 아니다. 내가 만약 비겁한 놈이라면 오히려 다른 젊은이들처럼 투쟁대상을 치고박고했을것이다. 무리와 함께 행동하는것이 가장 안전하니까. 황차 싸움군은 아니지만 일대일의 싸움판에서는 비겁하게 도망친적은 없다. 소학교때부터 그러했다. 바로 이 집 문앞에서 녀동생을 울렸다고 동네계집애를 패주었더니 계집애의 오빠가 달려왔다. 녀석은 중학생으로서 키도 크도 힘도 셌다. 녀석은 나를 굴뚝곁으로 끌고 가서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렀지. 대뜸 입술이 터지고 코피가 터지고 눈통이 부어올랐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녀석의 다리에 매달려 개처럼 허벅지를 꽉 물었지. 잔등이며 정수리를 사정없이 얻어맞으면서도 나는 꽉 문 이발을 놓지 않았다. 드디여 녀석이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던가. 지금도 그렇다. 자존심에 관한 일이라면 그 어떤 상대와도 싸움을 피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치사상립장에도 문제가 없고 비겁한것도 아니라면 왜 강아바이투쟁대회에서는 표현이 그 모양이였는가. 혹시 “19세기”여서 그런것이 아닌가? 어느 정도 그런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적이라도 반항능력이 전혀 없는 약자를 구타하는것은 비인간적인 행위라는것을 책에서 배운듯하니까. 혹시 어머니의 영향이 아닐가? 그는 문득 소름이 끼쳤다. 이러쿵저러쿵해도 자기의 심성에 분명 어머니의 그림자가 비껴있음을 발견했던것이다. 그는 대체적으로 자기가 어머니의 사상영향에서 벗어나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도 아들이 예수를 믿도록 강요한적은 없었다. 기껏해서 어린 시절에 착한 사람이 되여야 한다느니 원쑤를 사랑해야 된다느니 바늘 하나라도 남의것을 도적질하면 안된다느니 그러루한 소리만 들었을뿐이였다. 무심하게 들었던 그 잔소리가 자기의 심성에 저도 모르게 작용하고있지 않는가? 그가 어머니의 착한 심성에 가장 증오를 느낀것은 대식품을 먹던 시절이였다. 그가 점심 먹으러 학교에서 돌아오니 문앞에 거지 같은 로인이 주저앉아 정신없이 수수밥을 퍼먹고있었다. 어머니가 곁에서 김치쪼각을 입에 넣어주고있었다. 집안에 들어가 가마목을 살펴보니 자기 밥그릇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어머니가 로인한테 내준것이였다. 그는 천둥같이 화가 나서 바깥에 뛰여나가 로인을 발로 차고 밥그릇을 빼앗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엄마한테 울분을 토했다. “나두 배고파죽겠는데 왜 거지한테 밥을 줍니까?” 엄마가 말했다. “너는 점심 한끼 굶지만 이 할아버지는 이틀이나 굶었단다…” 그는 소리를 질렀다. “듣기 싫어요. 세상에 제 새끼 모르는 엄마 어디 있어요…” 그는 울음을 터뜨리며 학교로 되돌아갔던것이다. 엄마는 착한 사람이 되면 복을 받는다고 했지요? 젠장! 엄마는 착한 사람이 아니여서 이렇게 구질구질 살아갑니까? “원쑤를 사랑하라” 했지요? 젠장! 원쑤를 어떻게 사랑한단 말입니까? 그게 바로 계급모순을 덮어감추는 전형적인 “자산계급인성론”입니다. 나한테 강아바이일가를 동정하는 마음이 생기게 한것도 엄마탓이예요… 책에 미쳤던 과거가 미웠고 하느님을 믿는 어머니가 미웠다. 폭풍취우의 시대에 견정한 혁명청년으로 되지 못하는 자신이 더욱 혐오스러웠다.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깨고보니 날이 어두워진것 같았다. 그는 문밖에 나섰다. 어머니가 급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얘, 너 어딜 가려구 그러니? 집에 들어가 시루떡을 먹어. 금방 찐거야.” “싫어요.” 그는 매몰차게 한마디 하고는 돌아섰다. “얘, 밤에 나댕기지 말어. 총싸움이 벌어지는데…” “……” 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큰길에 나섰다. 얼마간 걷다가 뒤돌아보니 어머니는 떡을 손에 받쳐든채 그냥 그 자리에 서있었다. 측은한 생각이 들었지만 인차 뭉때려버리고 제 갈길을 걸었다. 얼마간 시가지를 돌아다니다가 강뚝에 올라섰다. 약속한 자리에 영희가 와있었다. 솜옷을 대수간 걸치고 머리수건도 쓰지 않은걸 보아 잠간 소풍한다는 핑게를 대고 집에서 빠져나온듯했다. 그들은 강뚝에 나란히 앉았다. 영희가 물었다. “엄마 무사하던?” “젠장, 로친이 밤중에 찬송가를 가만히 불렀다구 옆집 ‘사팔뜨기’녀편네가 고자질한 모양이야. 참, 나두 엄마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지각이 없어두 너무 없단 말이야.” “동원이가 자살했다면서?” “응― 죽었다.” “왜 죽었다니?” “살기 싫어 죽었겠지.” “어금마, 너 무슨 말 그렇게 하니? 한집체호에서 이태 넘게 생활했는데 너한텐 아무런 감정두 없니?” “흥, 지금이 어느땐데 감정타령 다하구있어.” “너 한방에서 자면서 그 애가 죽으러 가는것두 몰랐니?” “죽는 놈이 잘 있으라구 인사를 하구 가겠니? 녀석이 죽겠으면 강에나 빠져 죽을거지 우리 나무에 목을 맬건 뭐야.” “우리 나무라니?” “아따, 지난해 우리가 과수원에 올라가 이야기하던 그 돌배나무 말이다. 난 그 나무만 보면 항상 너를 생각했는데 인젠 보기두 싫어. 찜찜하단 말이야.” “……” “내가 그 녀석의 목을 맨 바줄을 풀어놓았어. 혀를 길게 빼물었더군. 딴세상에 가서두 공부만 할 작정이였는지 안경을 낀채로…” “성격이 꼬장꼬장해 그렇지 마음은 좋은 애였는데… 아버지까지 투쟁을 당하니 정신타격을 이겨내지 못한거야.” “건 모르는 소리다. 그 녀석은 문화혁명이 터지자마자 죽을 결심을 했을거다. 대학꿈이 수포로 돌아갔으니까.” “넌 절대 실망하지 말어. 꼭 희망을 가져라.” “희망? 흥! 집에 혼자 있는 로친네가 아니라면 내가 동원이보다 먼저 목을 달아맸을거다.” “얘, 너 왜 그러니? 그간 왕청 딴 사람이 된것 같구나. 너를 만나자구 집체호를 둬번 갔다왔어. 저수지공사장으로 갔다더구나. 그사이 넌 내가 보고싶지 않더니?” “왜 보구싶지 않았겠니? 그런데 네가 중요한 말을 할게 있다는건 뭐야?” “나 약혼하게 돼.” “약혼? 오, 그래서 병치료합네 하구 시내에 올라와있었구나.” “병두 있었어.” “남자는 어떤 사람인데?” “몰라.” “모르는 사람과 약혼해?” “유리공장 로동자라는것밖에 몰라.” “령도계급이군. 잘됐구나.” “너 그게 진심이야?” “으흠…” “말해! 진심이냐구.” “아니다. 원통하다.” “우린 어떻게 하면 좋아?” “……” 그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눈앞이 캄캄할뿐이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자기한테 “로동계급”을 물리치고 영희를 차지할만한 힘이 없었다. 영희가 말했다. “넌 미술재간이 있어서 앞으로 꼭 출로가 있을거야. 대학은 아니더라도 공장 같은데 추천받을수 있을거야.” “내 보기엔 이 혁명이 인차 끝날것 같지 않다. 넌 나를 5년이구 10년이구 기다릴만하니?” “집에선 시집보내지 못해 안달이야… 난 모르는 사람한테 시집가기 싫어.” 젠장, 오늘밤 영희를 내것으로 만들구 농촌에서 아무렇게나 결혼해버릴가? 이놈, 무슨 미친 생각이야. 그건 자살과 다름없어. 네가 죽는건 괜찮지만 어찌 영희까지 죽이려 하느냐… 연변병원쪽에서 콩튀듯하는 총소리가 들려왔다. 배속에서 시꺼먼것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거치른 소리가 터져나갔다. “시집갈수 있으면 가버려! 난 암만 해두 너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단 말이야…” 영희가 발딱 일어섰다. 눈물 고인 눈이 차겁게 번뜩이였다. “네가 이럴줄 몰랐다. 네가 불구뎅이로 끌어두 끌려가려던 참이였어… 이 ‘19세기’야, 난 너를 한평생 원망할거야.” 영희는 눈물을 쏟으며 그한테서 도망치듯 달아나버렸다.
14    판타지 장편소설《진허》(8) 댓글:  조회:1418  추천:0  2013-10-24
  8   쾅! 쾅- 칭- 쾅칭 쾅칭 쾅칭 쾅칭… 쾅쾅칭칭 칭칭쾅쾅… 따르륵 딱! 쾅- 칭- 쾅! 악사석에서 터지는 징소리였다. 쾅쾅할 때마다 그는 혼이 날아나고 몸이 부서지는듯했다. 무대우에 경극배우가 나타났다. 야단스러운 무늬가 돋친 의상을 입고 등에 령기(令旗)를 줄느런히 꽂고 상투적인 동작으로 창을 휘두르다가 문득 멈추고는 “이이아아―” 하며 곡조를 뽑는다. 악사석의 깽깽이잡이가 골을 내저으며 신나게 깽깽이를 켜대고 징잡이는 또 징을 치려는듯 팔을 추켜들었다. 다시한번 “쾅!” 소리를 들었다가는 아예 정신을 잃고 뻐드러질것 같았다. 그는 대뜸 귀를 막고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함께 들어왔던 동네애들이 보이지 않았다. 관중석에는 늙수그레한 한족 할아버지, 할머니들뿐이였다. 그는 부리나케 출입구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밖에 나서니 밤이였다. 웬 일이야? 금방 들어왔을 때까지만 해도 대낮이였는데… 동네애들과 함께 소극장 문앞에서 놀다가 문표를 받는 사람이 없으니 들어오지 않았던가. 여기는 진학가두로서 한족들의 집거구역이였다. 서쪽으로 한동안 올라가면 백화상점이 있고 그가 사는 광명가두도 있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 방향을 알수 없었다. 어찌할바를 모르고 그냥 서있는데 징소리가 또 터졌다. 쾅칭 쾅칭 쾅칭 쾅! 가슴이 떨렸다. 어디선가 경극배우들이 몰려와 그를 빙 둘러싸기 시작했다. 시꺼먼 얼굴, 진붉은 얼굴, 코대에 흰 칠을 한 얼굴… 눈섭이 우로 치솟고 눈시울이 새빨간 녀배우가 길다란 소매를 너울거리며 “이이아아~” 하고 목청을 뽑았다. 그는 너무도 무서워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웬 처녀가 마치 자기 동생이나 다루듯 그를 마구 다잡아세웠다. “울긴 왜 울어? 나이 열살이나 처먹구…” 무슨 소리야? 내가 열살이라니? 그는 처녀를 올려다보았다. 뜻밖에도 영희였다. 영희는 그보다 키가 곱절이나 더 큰것 같았다. “이게 어떻게 된 판이야? 내가 왜 요렇게 작아졌어?” “시끄러워. 너 집으로 가. 나두 집으루 가겠다. 문화대혁명이 터졌어.” 영희가 사라졌다. 주위가 다시 캄캄해졌다. 여기가 어딘지 알수 없었고 자기가 누군지도 알수 없었다. 그저 마음이 한없이 불안할뿐이였다. 아우성소리가 들렸다.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면서 주위가 환해졌다. 금방 자기를 에워싸고 있던 경극배우들이 불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비명을 지르고있었다. 다시금 여겨보니 사람이 아니라 경극용 복장이며 나무칼, 창, 검 따위 무대도구들이였다. 층집에서는 홍위병들이 원고뭉치, 잡지뭉치, 각종 문건들을 창밖으로 내던진다. 그것들은 불속에 들어가 경극용 복장, 도구들과 함께 불에 타버린다. “북경시문련”, “북경시문화국”이란 나무간판도 불속에 들어간다. 불길은 맹렬히 타오르고 검은 연기가 하늘로 타래쳐오른다. 군복을 입고 허리띠를 졸라맨 녀고생홍위병들이 층집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을 끌고 나온다. “문련”, “문화국”의 책임자와 임직원들이다. 홍위병들은 그들을 불더미주위에 빙 둘러세우고 허리를 굽히게 한다. 그리고 저마다 허리띠를 풀어쥐고 잔등이며 머리를 사정없이 후려갈기기 시작한다… 모택동의 말씀이 떠오른다. 해방후 지금까지 문학예술계… 제왕장상, 재자가인, 죽은 사람들이 통치… 경극부문의 문제가 더욱 엄중… “문련”, “문화국”이야말로 봉건주의, 자본주의, 수정주의 독소를 산포하는 책원지이고 그안에 들어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잡귀신”들이다… 홍위병들이 어찌 선참으로 때려부시지 않겠는가. 하늘땅을 뒤번지는듯한 함성이 들려온다. “위대한 무산계급문화대혁명 만세!” “위대한 수령 모주석 만세! 만세! 만만세!” 천안문광장이다. 모택동이 성루에 나타난다. 초록색군복을 입고 “홍위병”완장을 두른 모택동. 모택동이 군모를 벗어 흔들며 망망대해를 이룬 홍위병들에게 회답한다. “인민 만세!” 광장이 삽시에 격정으로 끓어넘친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목이 터지도록 만세를 부르는 홍위병들, 광기, 열기, 함성에 태양도 빛을 잃고 구름도 경악하여 멈춰버린듯… 전국의 대학교는 초생을 중지했다. 고중, 초중, 소학교까지 수업을 중지했다. 동방의 거인, 위대한 사회주의중국에서 인류력사상 전례 없는 대사변이 벌어지고있는데… 너는 누구냐? 지금 어디에 있느냐? 여전히 자기가 누군지 알수 없었다. 사위는 캄캄했고 어디선가 “우―” 하는 아츠러운 소리만 들려올뿐이다… 이윽고 또다시 환영 같은 정경이 나타난다. 상복을 뒤집어쓴듯 대자보와 표어들이 새하얗게 나붙은 거리, 선전삐라가 눈송이처럼 흩날리고… 고향도시 연길이 아닌가. 홍위병들이 교회당의 십자가첨탑을 허물어버린다. 거리에서는 상여, 제사용기물, 병풍, 고서, 고화 그리고 조선문으로 된 수없이 많은 문예서적들을 불에 태워버린다. 착취계급의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습관 이른바 짓부셔야 할 “네가지 낡은것”이 조선족에게 각별히 많은것 같다. 효자효부(孝子孝妇), 존상애유(尊上爱幼)의 전통관념이나 관혼상제 의례의식… 어느것이 “네가지 낡은것”에 속하지 않겠는가. 연설, 변론, 돌총질에 여념이 없는 홍위병들… 거리는 홍위병들만의 세상이 아니다. 치마저고리에 붉은 완장을 두른 녀인들이 거리에 쏟아져나온다. 일명 “코신부대”라고 불리우는 광명가두 주부반란단이다. 그녀들은 만세를 웨치고 구호를 부르고 변론에도 끼여든다. 무단적투쟁에 대처하려는듯 손에 빨래방망이를 든 아낙네도 있다. 전에 없던 일이라 동네늙은이들은 괜히 겁이 나는듯 비실비실 골목길에 숨어들고… 자치주 제1임주장 주덕해동지가 타도된다. 한때 이름을 떨치던 작가, 예술인들이 개패를 목에 걸고 고깔모자 머리에 쓰고 투쟁대에 올라 홍위병들의 성토를 받는다. 반혁명분자, 우파분자, 지주, 부농 따위 계급의 적들과 점쟁이, 뚜쟁이, 좀도적, 바람둥이들도 “잡귀신”모자를 쓰고 조리돌림을 당한다. 과감한 반란정신, 무자비한 투쟁… 혁명의 불길은 갈수록 거세게 타오르는데… 너는 누구야? 어디에 있느냐? 어두운 허공에서 거뭇한 줄 몇가닥이 어슴푸레 나타났다. 천장의 서까래였다. 그는 자기가 지저분한 꿈과 잡념에 엇갈아 빠지면서 집체호 뒤방에 누워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우―” 하는 소리는 뒤산에서 눈보라를 일구며 내려오는 바람소리였다. 자정이 지났을가? 아직 닭울음소리는 나 않은것 같은데… 그는 비몽사몽속에서 완전히 깨여났다. 저쯤 누워있는 동원이한테서는 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녀석이 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있는 모양이였다. 문화대혁명이 터져서부터 녀석은 공부도 하지 않고 누구와 말도 하지 않는다. 미닫이문을 사이 두고 앞방녀석들의 코고는 소리가 문풍지 우는 소리와 이상한 조합을 이루면서 요란하게 들려온다… 지난 8월, 느닷없이 터진 문화대혁명은 집체호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제 1년만 견지하면 어엿한 대학생이 된다는 희망이 산산이 깨여져버린것이다. 불과 한두해 사이에 혁명이 승리적으로 끝나고 대학교학생모집이 회복되리라고 믿는 애들은 없었다. 앞방의 녀석들은 재수없이 후배들보다 한해 먼저 졸업한탓으로 홍위병도 되지 못했다고 울분을 터치였다. 그리고 집체호를 당장 마사버리고 연길로 돌아가 혁명하자고 떠들었다. 하지만 재학생도 아닌데 어느 홍위병조직에서 받아주며 호적까지 농촌에 떼왔는데 무슨 명분으로 시내 혁명에 참가하겠는가. 그저 드문드문 연길에 가서 혁명형세나 관망하고 돌아올수 밖에 없었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농촌에서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였다. 지식청년들은 동네청년들과 련합하여 즉시 반란단을 조직했다. 지식청년으로서 혁명에서의 표현이 우수해야 앞으로 공장 같은데라도 추천을 받아 농촌에서 빠져나갈수 있다는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였다. 반란단 단원으로서 그는 농촌의 “네가지 낡은것”을 짓부시는 활동에서 남들보다 못지 않게 혁명성을 발휘했다. 동구밖에 나가 상여막을 허물고 상여를 불사르고 마을에서 돌려가며 쓰던 유일한 병풍을 찾아내여 불사르고 옛날 어느 산골에서 훈장질했다는 늙은이네 집에 쳐들어가 족보와 낡은 책 몇권을 뒤져내여 마당에서 불살라버리고… 유감스럽게도 농촌에는 반란단원들이 통쾌하게 때려부실만한 “네가지 낡은것”이 얼마 없었다. 함지박이나 절구통 같은것들도 “낡은 풍속”과 관계가 있는듯하지만 차마 그런것까지 박살낼수는 없고… 자신의 혁명성을 더욱 충분히 표현하려고 그는 뼁끼통을 들고 다니면서 집집의 바람벽에 표어와 모주석어록을 쓰기 시작했다. 불과 며칠 안되여 그는 선연하고 힘있는 필치로 마을의 외경분위기를 확 바꾸어놓았다. 이만하면 혁명에서의 공로를 충분히 인정받을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밤송이 같은 머리, 주름이 깊게 패인 얼굴, 마디가 툭툭 불거진 갈퀴 같은 손… 엊그제 소학교강단에서 투쟁받던 김시룡동지의 모습이였다. 전 대대적으로 으뜸가는 “주자파”이기에 각 마을 반란단에서 련합하여 투쟁대회를 열었던것이다. 군중들은 무시로 주먹을 추켜들며 우렁찬 구호를 웨쳤다. 하지만 그는 군중속에 끼여있으면서 도저히 구호를 웨칠수가 없었다. 적개심이 꼬물만치도 솟구치지 않았던것이다. 김시룡동지는 인민공사 사장이며 대대당지부 서기였다. 전국에서 제일 먼저 호조조를 조직하고 그후 집단화운동에서도 공을 세웠기에 일찍부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전국로동모범”의 영예를 받아안았고 북경에 가서 모택동의 접견도 10여차례나 받은분이였다. 중국조선족농민의 대표적인물로서 높은 성망을 지니고있었지만 아래마을에서 제일 헐망한 초가에서 살고있었다. 인민공사 전체 사원들이 벽돌집에서 살기전에 자기는 절대 그 집을 떠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과연 로동인민의 본색을 잃지 않은 훌륭한 간부요 진짜공산당원이였던것이다. 이런분이 글쎄 어떻게 자본주의길로 나아간다고 볼수 있겠는가. 그는 도저히 납득할수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자기의 관점을 공개적으로 표명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주자파”와 한바지를 입은 놈으로 락인찍히고 여태까지 쌓은 업적이 물거품이 될가봐 겁이 났던것이다. 젠장, 국가주석 류소기, 당중앙의 등소평도 타도되는 마당에 김시룡이 다 뭐야.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하자… 하지만 투쟁대회에 참가해서도 “타도하자!”는 소리는 입에서 나가지 않았다. 납득이 되지 않는데도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하는것,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괴로운 일이였다… 오늘, 아니 이젠 자정도 넘었겠는데 어제 일이겠지. 낮에 생산대회의실에서 강아바이를 투쟁하던 정경이 떠올랐다. 강아바이는 도람통으로 만든 난로우에 올라서있었다. 벽돌장을 딛고 섰지만 발밑이 뜨거운지 연신 발을 옮겨디디고있었다. 벽돌 서너장을 얽어서 목에 걸어놓고 허리를 굽힌채 팔을 뒤로 쳐들게 했으니 그 자세가 무척 괴로운 모양이였다. 이른바 전국적으로 류행하고있는 “분기식”투쟁방식이였다. 강아바이는 시종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희슥희슥한 머리칼사이로 비지땀을 줄줄 흘리고있었다. “부농분자 강봉운을 타도하자!” “부농분자 강봉운을 타도하자!” “모든 잡귀신을 타도하자!” “모든 잡귀신을 타도하자!” …… 복순이가 구호를 웨치면 군중들이 따라불렀다. 돌이 에미는 구호를 웨칠 때 주먹을 가장 힘있게 쳐들었고 목소리도 중뿔나게 높았다. 아마 너덧명 아낙네들의 목소리를 다 합쳐도 돌이 에미의 목소리를 당할것 같지 않았다. 얼마전 아래마을 “반란단”에서는 논물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여러 마을 녀자들과 놀아났다고 대대 수리위원을 투쟁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심사과정에서 수리위원은 다른 녀자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가 돌이 에미에 한해서는 자기가 피해자라고 진술했다는것이다. 그저 아무 생각도 없이 삽을 메고 논뚝을 걸어가다가 그 녀편네한테 랍치당해 옥수수밭으로 끌려들어갔다고… 반란단에서 웃마을로 진상조사를 왔다. 하지만 말도 꺼내기전에 돌이 에미한테서 상욕을 얻어먹었다. “이 새끼들아! 내 몸에 붙은걸 가지구 내 맘대로 했는데 너희들 무슨 상관이야? 문화대혁명이 농촌안깐들의 보지를 들춰내는 혁명이야?” 돌이 에미가 암펌처럼 길길이 뛰는 바람에 반란단 젊은이들은 찍소리 못하고 달아나버렸던것이다… “천도깨비”란 별명을 가진 동네청년이 몽둥이로 난로가장자리를 탕 내리치며 엄포를 놓았다. “그냥 뻗댈 예산이야? 탄백해라. 네가 빈하중농을 착취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부농이 될수 있었겠어?” 강아바이가 와들와들 떨면서 겨우 대답했다. “저는 누구를 착취하지 않았습니다. 토지개혁때 이미…” 반란단원들이 으르댔다. “이놈! 된맛을 봐야 제대루 불겠니?” “네놈의 집에서 고농살이를 한 사람이 있었다는데 그래두 속이려구?” “우리 선친께서…” “선친이란 무슨 소리야?” “우리 아버지 생전에… 마가라는 사람이… 그 사람은 머슴이 아니고…” “이놈! 끝까지 항거할테냐?” 복순이가 기세를 올리려고 또 구호를 웨쳤다. “탄빠이 충콴! 캉쥐 충얜!(탄백하면 관대하고 항거하면 엄벌한다.)” 군중들이 따라웨쳤다. “탄빠이 충콴! 캉쥐 충얜!” 오전부터 시작된 투쟁대회가 오후까지 계속되고있었다. 문득 회의실에 목수건을 감싼 아낙네가 허둥지둥 뛰여들어왔다. 강아바이네 이웃인 “얼빠이”아주머니였다. 그녀는 지금 한창 엄숙한 계급투쟁이라는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군중들앞에 와서 손발을 내저으며 종잡을수 없는 소리를 줴쳤다. “얼빠이”는 사람이 좀 얼빤하다고 중국말, 조선말 중간으로 붙인 별명인데 이 시각에는 진짜 얼빤해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것조차 잊고있는듯했다. 김대장이 소리를 질렀다. “수건이나 벗구 똑똑히 말하우. 무슨 일이우?” 그제야 그녀는 수건을 풀면서 입을 열었다. “주… 죽었수… 죽었다니까…” 아낙네들이 욕설을 퍼부었다. “돼지새끼가 죽었어? 뭐가 죽었어?” “천둥에 개 뛰여들듯 들어와서 무슨 생뚱같은 소리야?” 그녀는 급한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지 어눌하게 사태를 설명했다. “령감이 투쟁당하는걸 창문으로 들여다보구 내려가던데… 글쎄 그새루 죽었더라니까… 내가 미심해서 들어가 봤더니… 양재물 먹었소…” “얼빠이”아주머니는 손으로 제 목을 한번 긋고 말을 이었다. “숨이 없수. 주… 죽었수.” 강아바이 마누라가 자살했다는 소식이였다. 돌이 에미가 김대장한테 다가가 수군거리더니 몇몇 아낙네들을 불러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행여 구출할 희망이 있을지 알아보려고 했을것이다. 그들이 나가자 회의실의 아낙네들이 몽땅 따라나갔다. 투쟁대회분위기가 즉시 한산해졌다. 강아바이는 그 와중에도 귀동냥으로 마누라가 잘못된 사실을 알아들은 모양이였다. 강아바이는 실신한 사람처럼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문득 통곡도 아니고 비명도 아닌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난로우에서 굴러떨어졌다. 반란단원들이 강아바이한테 욱 달려들어 귀쌈을 치고 발길질하며 사정없이 짓뭉개기 시작했다. 집체호에서 저녁식사가 끝나자 복순이가 돌연히 그한테 질문했다. “넌 왜 투쟁대회에서 구호를 부르지 않니?” 그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불렀다. 내가 회의실 안팎에 써붙인것은 구호가 아니냐?” 복순이가 픽 랭소하더니 모주석어록을 외웠다. “위대한 수령 모주석께서는 이렇게 교시하셨다. ‘혁명은 손님을 대접하는 일도 아니며 그림을 그리거나 수놓이를 하는 일도 아니므로 그렇게 우아하게 점잖게 할수 없다. 혁명은 폭동이며 이 계급이 저 계급을 뒤집어엎는 맹렬한 행동이다.’” 복순이의 딱친구 정옥이가 맞장구쳤다. “너한테 딱 들어맞는 어록이야. 넌 왜 남자라는게 그렇게 과감성이 없니? 계급의 적에게 발길질두 못하구…” 남자의 자존심까지 건드리자 그는 밸이 울컥 치밀었다 “너 참 유치하다. 다 죽은 령감태기한테 발길질하는게 남자들이 할짓이야?” 그의 말대꾸가 웃방남자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뭐라구? 야, 이재 니 뭐라구 했니? 우리가 강아바이를 투쟁하는게 유치하단 말이야?” “임마! 너 그림만 잘 그리면 다야?” “야, 임마, 너 문화대혁명을 뭘루 보구있니? 납득되지 않는 문제가 있으문 내놓구 변론하자.” 정면충돌이 불가피하게 되였다. 그는 웃방으로 들어가 세 녀석들과 마주앉았다. “그래, 납득되지 않는 문제를 말하마. 투쟁대상을 치구박구하는게 납득되지 않는다. 왜?” “야, 이 새끼 봐라. 너 제정신이 아니구나? 계급투쟁이다. 계급의 적을 호되게 족치는것이 뭐가 납득되지 않니?” “모주석께서 그런 식으로 계급의 적을 타격하라구 했어?” “임마, 너 혼자 옳구 혁명적군중은 다 틀렸겠구나? 너 참, 계급립장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야?” “난 모주석의 혁명립장이다. 왜?” “이 새끼야, 너 좀 주의해라. 너처럼 봉자수(封资修―봉건주의, 자본주의, 수정주의)의 책을 많이 읽은 놈이 우리 집체호에는 없다. 동창이라구 감싸주는것두 모르구…” “이 새끼들이… 혁명도사들치구 그런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니?” 상대방들의 어조는 점점 격화되고 그도 화가 꼭뒤까지 치밀었다. 그는 본래 변론에 약했다. 늘쌍 감정충동부터 앞서다보니 조리있게 자기 관점을 표달할수 없었던것이다. 복순이와 몇몇 녀자애들이 들어와서 그들을 갈라놓았다. “그만해, 우린 모두 혁명적지식청년들이야. 집체호내부에 근본적인 리해충돌이 있을수 없어. 립장문제가 아니구 인식문제야.” …… 웃방녀석들의 코고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너희들한테는 고민이라는것이 별로 있는것 같지 않구나. 사람이란 워낙 너희들처럼 단순하게 사는게 옳지 않을가? 일하라면 일하고 놀라면 놀고 혁명하라면 혁명하고… 정지간에서는 아직도 녀자들의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희는 며칠전에 병치료를 한다면서 연길로 돌아갔다. 녀자애들의 말로는 병치료보다는 딸을 류별나게 아끼는 엄마가 어수선한 세월에 딸한테 무슨 일이 생길가봐 불러간것이라 했다. 아! 영희, 지난여름 함께 과수원으로 올라갔던 그날 밤까지만 해도 너나 나나 불과 며칠후에 문화대혁명이 폭발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 그는 문득 자신의 첫사랑이 꽃만 피고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는 예감이 들면서 가슴이 산산해났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울부짖었다. 문풍지 우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난로에서 굴러떨어지던 강아바이모습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엊그제까지 그는 강아바이와 함께 우사마당에서 두엄 끄는 일을 했다. 그날 담배쉼 할 때 침울한 얼굴을 해가지고 홀로 두엄더미곁에 앉아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을가? 자기가 투쟁당할것을 미리 짐작했을가? 아니면 외동딸을 생각하고있었을가… 강아바이 딸은 본래 위생학교를 졸업하고 대대위생소에서 간호부로 있었는데 사청운동때 성분문제로 밀려나왔다고 한다. 서른이 넘도록 시집을 못 간것도 성분때문이지 다른 원인은 없을것이다. 눈에는 항상 고적한 빛이 어려있었고 때로는 사람들을 보고 얼굴에 웃음을 띠울 때도 있었지만 너무 처량한 웃음이여서 안 보기만 못했다. 지난가을부터 그녀가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는 소문이 돌더니 며칠전에 행방불명이 되였다. 아버지가 투쟁 맞고 어미가 자살한줄 알게 되면 얼마나 기막혀하겠는가. 미리 그런 불상사를 예감하고 어느 깊은 산골에 들어가 자결해 까마귀밥이나 되고있지 않는지… 눈보라… 눈보라… 거적에 싸인 시체를 싣고 삐그덕거리면서 눈보라를 헤치는 소수레를 방불히 보는것 같다. 래일 강아바이 마누라는 저렇게 울어주는 사람 하나 없이 뒤산기슭에 묻힐것이다. 아, 계급투쟁… 계급투쟁은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하는가…  
13    판타지 장편소설 《진허》(7) 댓글:  조회:1193  추천:1  2013-10-12
7   철벅, 철벅, 철벅… 이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나는 왜 네발걸음을 치고있는가. 내가 짐승으로 되였단 말인가. 앞에서 동그스름한것들이 느릿느릿 움직이는것 같았고 주위에서는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뒤쪽에서 웬 아낙네의 거치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체호총각! 논김을 매오? 나그네 말죽 먹이오? 돌피는 그냥 세워두구 물장구만 치구 나가문 어떡하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정신을 차렸다. 둥그스름한것들은 녀자들의 궁둥이였고 그도 엉뎅이를 쳐들고 논김을 매고있는중이였다. 돌이 에미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옆줄을 타고 나오면서 그가 남긴 돌피까지 뽑아주다가 참다 못해 소리를 지른 모양이였다. “아직두 돌피를 분간 못하겠소? 돌피는 잎이 노르스름하고 줄기두 약하다니까… 이것 봐, 또 남겼네.” 돌이 에미는 그의 발치에 손을 집어넣어 벼포기사이를 박박 훑었다. 돌피며 가래풀을 한웅큼 걷어내서는 돌돌 뭉쳐서 논이랑에 묻고 발로 꿍꿍 밟으며 시범을 보여주었다. “사내는 아무리 약해두 여자보다 한근 두냥 더 무거운데… 포기사이를 좀 와락와락 뚜지오. 그 힘 뒀다가 어디다 쓰려구…” 돌이 에미는 한바탕 푸념을 늘어놓고는 철벅거리면서 앞으로 나갔다. 개구리들이 그녀의 기세에 놀라 벼포기사이로 황급히 도망친다. 돌피를 분간 못해서가 아니였다. 정신이 왕청같은데로 가있은것 같았다. 그것도 잠간사이가 아니고 오래도록 허공에서 떠돌다가 문득 논판에 내리꽂힌것 같았다. 내가 꿈을 꾸었을가. 꿈이라니, 해볕이 지금 목덜미와 잔등을 지독하게 내리지지고있는데… 논판에는 두엄냄새와 함께 금방 돌이 에미가 남기고 간 비릿한 체취마저 감돌고있지 않는가. 그와 서너줄 간격을 두고 한 젊은이가 안경을 번뜩이며 철벅거리고있었다. 집체호의 동원이였다. 녀석이 낄낄거리기는… 내가 돌이 에미한테 꾸중당하는것이 그렇게도 깨고소하더냐? 정신이 완전히 돌아왔다. 지금은 1966년 7월이야. 지난해 연변1중을 졸업하고 대학시험에서 락방한 14명의 동창생들과 함께 농촌으로 내려왔지. 녀자 아홉은 정지간에 들고 남자 셋은 옆방에 들고 나와 저 자식이 뒤방에 들었지… 그는 동원이를 집체호에 내려와서부터 알게 되였다. 학교때 면목은 있었지만 한학급이 아니여서 서로 말을 건넨적은 없었던것이다. 한방에 자면서도 그는 동원이와 친해질수가 없었다. 녀석은 리과지망생, 그는 미술지망생, 취향이 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녀석은 자기의 우월한 가정조건을 턱대고 그를 은근히 천시하는것 같았다. 녀석의 아버지는 주정부의 국장급 간부였고 어머니는 어느 소학교의 부교장이였다. 지난해 년말, 동원의 부모를 비롯하여 지식청년 학부모들이 집체호로 위문을 왔는데 유독 그의 어머니만 오지 않았다. 여러 학부모들이 함께 가자고 설복했으나 귀가 먹어 아들한테 망신만 줄거라면서 한사코 거절했다는것이다. 동원의 부모는 지식청년들앞에서 좋은 말씀도 많이 하셨다. 농촌에 내려와 로동인민의 감정을 수립하는것은 지식청년의 대방향이고 시대의 요구라는둥 동무들에게는 무한한 전도가 펼쳐져있다는둥… 금년초에 동원이와 처음 싸웠다. 녀석은 대학에 가려고 교과서까지 가지고 내려왔는데 항상 밤늦게까지 수학문제를 푸느라고 전등을 끄지 않고있었다. 그날 밤에는 너무도 잠이 오지 않아 전등을 좀 끄라고 했더니 녀석이 들은척만척 응대도 하지 않는것이였다. 그래서 말다툼이 시작되고 드디여 이불을 벗어내치고 서로 두들겨패기 시작했다. 팬티바람으로 알몸을 짝짝 두드리는 소리에 옆방의 남자들도, 정주간의 녀자들도 모두 잠을 깼다. 사이문이 활짝 열렸다. 집체호 호장 복순이가 모두 옷들을 입고 정주간에 모이라고 했다. 한밤중에 생활회의가 열렸다. 두 싸움군은 동창생들의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동원이한테는 개인명리주의사상이 농후하다고 했고 그는 자유산만하고 감정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결함이 있다고 지적받았다. 아무튼 비판과 자기비판을 통하여 그 자리에서 화해를 하긴 했지만… 그는 철벅거리면서 동원이를 건너다보았다. 녀석의 볼따귀에서 가무스름한 털이 자라고있음을 알아볼수 있었다. 아직 보슴털수준이지만 장차 왕성하게 자라날것 같았다. 자기의 턱이나 코밑에서는 본격적으로 수염이 자라고있지만 구레나룻만은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슬그머니 질투심이 생겼다. 구레나룻은 나한테서 나야 하는데 왜 네놈의 볼따귀에서 자라는거야. 예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녀석, 아무튼 너한테서 부러운것은 딱 한가지, 구레나룻뿐이야.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김대장! 담배쉼이나 하기요.” 그는 허리를 폈다. 앞논배미에서 김대장이 네발걸음을 치고 그뒤로 아낙네들이 줄줄이 따르고있었다. 똑 마치 덩치 큰 장닭이 암탉무리를 거느리고 모이를 헤집는 장면을 방불케 했다. 오늘은 초벌김을 매는 날, 우사마당에서 퇴비를 만드는 장년들을 내놓고는 생산대로동력이 총동원되였다. 집체호에서도 취사원과 유치원 교원 영희를 내놓고 모두 논판에 나왔다. 저마다 자기앞의 김을 마저 매고는 논뚝에 올라서서 버드나무숲으로 향했다. 아낙네들이 모인 곳은 언제나 장마당이다. 김대장이 또 무슨 우스운 소리를 줴쳤는지 아낙네들이 와그르르 웃음보를 터뜨렸다. 놀란 물새 한쌍이 버드나무숲에서 솟아오른다. 복순이가 한손에 《모주석어록》을 들고 다른 한손에 만년필을 들고 청년들앞에 나섰다. 휴식시간을 리용하여 정치학습을 진행하려는것이다. 복순이는 고중때 그와 한학급동창이였다. 복순이는 부학급장, 공청단지부 선전위원, 학생회 간부였지만 그는 아무것도 아니였다. 그의 학급에서는 정치사상품질이 좋고 공부 잘하는 애들이 대개 앞줄에 앉았고 어수선한 애들이 뒤켠에 앉았다. 가정출신에 문제가 있거나 2년 련속 락제를 한 녀석, 시인이 되겠다고 맑스머리를 하고 다니는 녀석… 그도 이러루한 괴짜들이 몰켜있는 뒤켠에 속했다. 그나마 복순이한테 요긴하게 보일수 있었던것은 미술재능때문이였다. 뢰봉동지를 따라배우는 열조가 일어났을 때 그는 복순이의 지시에 따라 벽보란에 뢰봉동지의 초상화를 그리고 모범사적을 적었는데 벽보를 잘 꾸렸다고 복순이는 학교지도부로부터 뢰봉동지를 따라배우는 선진인물로 표창까지 받았다. 그야말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호인(胡人)이 받는 격이였다. 아무튼 복순이는 령도간부의 소질을 갖춘 애였다. 농촌에 내려온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인민공사모택동사상학습열성분자”로 당선되였고 예비공산당원으로 되였다. 그는 복순이를 존중했지만 복순이처럼 되고싶은 욕망은 추호도 없었다. 그의 인생목표는 오로지 예술에 있었던것이다… 복순이의 강연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몸은 청년들과 함께 있었으나 정신은 어느덧 몸을 떠나고있었다. 오, 저 김대장을 보라. 진흙이 게발린 다리가 마치 무쇠기둥 같구나. 온몸에 울뚝불뚝 삐여진 근육덩어리들은 미껠란젤로의 조각상을 련상시키지 않는가. 시내에서 살면서 언제 저렇듯 발달한 육체를 본적이 있었던가. 내가 본 중년사나이들은 대부분 왜소하고 허약한 사람들이였지… 아낙네들의 모습도 이채롭게 느껴졌다. 저마다 흰 저고리 검정치마 차림이였다. 허리끈을 동여 거치장스러운 옷고름을 끼워넣었는데 논판에서 작업하려면 그렇게밖에 할수 없을것 같았다. 하얀 머리수건밑의 얼굴들은 까무잡잡해도 저마다 웃음꽃이 만발했다. 떠들썩하는 아낙네들중에서도 돌이 에미의 목소리가 유난히 높다. 돌이 에미는 젖가슴이 높고 엉뎅이도 굉장히 큰 체격이다. 애도 많이 낳았는데 그가운데 한 녀석은 신통히도 아래마을 수리위원을 닮아 코가 우뚝해서 동네남정들은 그 애만 보면 빙글거리군 했다. 돌이 에미의 사생활에 비록 애매한 사연이 있는듯했으나 성미가 걸걸하고 집체일에 몸을 아끼지 않아 오히려 “녀장부”로 존대를 받고있었다. 어느덧 정치학습이 끝났다. 해란강이 내다보이는 버드나무 숲가에서 동네처녀들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해란강 푸른 물이 논판을 적시고 모아산기슭에 사과배 열리는 에헤야 흥흥흥흥 데헤야 흥흥흥흥 내 고향 좋구좋네   처녀애들이 제멋대로 부르는 노래소리가 동뜨게도 그의 서정을 격발시켰다. 아, 근로하고 소박한 우리 민족… 아, 아름다운 내 고향 연변이여… 지나친 격동으로 하여 그는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어둠속에서 난데없는 경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밤안개에 휩싸인 과수원, 달빛이 차분히 내려앉은 초가이영들, 우중충한 담배건조실 그리고 저 멀리 개구리 울음소리 요란하게 들려오는 무연한 논벌… 곁에서 처녀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고있었다. 그녀가 누구라는것을 알아보는 순간 그는 머리칼이 쭈뼛이 일어섰다. “앗! 영희…” “어머나 깜짝이야. 너 왜 이렇게 놀라니? 밤에 과수원에 올라오니 좀 으스스하긴 하다. 안 그래?” “아니, 넌 할머니가 다됐구 몇해전에 심장병으루 죽지 않았니? 난 동창생들과 같이 너의 장례식에두 갔다왔는데…” “어마나! 무서운 소릴…” 처녀가 와뜰 놀라면서 그의 곁에 바싹 다가앉았다. “이 ‘19세기’야, 무슨 끔찍한 소리야? 내가 왜 죽었어? 그리구 징그럽게 할머니는 또 무슨 소리야?” 처녀가 그의 손등을 힘껏 꼬집었다. “아가갸!” 손등이 아파났다. 그제야 제정신이 좀 드는듯했다. “이상하다. 너는 할머니가 다됐구 나두 오륙십 되는 늙은이가 되였는데 좀전에 어느 머나먼 나라 산중오두막에서 신선인지 귀신인지를 만나가지구…” “얘, 끔찍한 소릴 해서 사람 좀 놀래우지 말아라. 심장이 막 뛴다.” “젠장, 모르겠다. 어느게 현실이구 어느게 환상인지.” “네가 학교때부터 예술에 미쳐있었으니까 어처구니없는 환상이 생기는거야… 집체호애들이 별명 한가지는 잘 지었어. ‘19세기’라구, 호호호…” “간나새끼들이 내앞에서만 별명을 불러봐. 아가리를 찢어놓지 않는가구.” “어금마, 입두 지저분하네.” “지저분하다니? 너 지금 빈하중농을 모욕하는거니?” “네가 무슨 빈하중농이야? 재교육대상이지.” “난 빈하중농한테서 재교육을 충분히 받았어. 술담배두 배우구 사투리두 배우구…” “빈하중농한테서 좋은 품성을 따라배우라 했지 나쁜 점을 따라배우라 했니?” “술담배두 모르구 사투리두 모르구 어떻게 빈하중농의 감정을 수립하며 어떻게 빈하중농과 한덩어리로 될수 있니?” 그는 자기가 그 누구보다 빈하중농과 한덩어리로 되는데 앞장에 섰다고 자부하고있었다. 집체호에 갓 내려왔을 때에는 거무틱틱하고 한결같이 상말을 쓰는 로동인민에게 습관이 되지 않아 소자산계급지식분자의 틀거지를 쉽게 벗어버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번은 야간탈곡을 하면서 우사숙직실에서 담배쉼을 하게 되였는데 녀자들이 끼우지 않아 그런지 장년들의 입에서 걸직한 육담들이 거침없이 쏟아져나왔다. 그가 구석쪽에 잠자코 앉아있는데 김대장이 문득 그한테 말을 걸었다. “너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왜 그렇게 점잖은체하고있어? 네놈의 그것두 진작 소매를 걷었겠구나…” 그가 “일도 안하는데 소매는 왜 걷겠습니까”라고 했더니 장년들이 와그르르 폭소를 터뜨리는것이였다. 누군가 소리질렀다. 바지를 벗겨! 고중생의 소매 걷은 꼴 좀 보자구. 장년들이 히히닥거리며 그한테 달려들었다. 죽을힘을 다해 발악했지만 끝내 바지를 벗기우고말았다. 분하고 억울했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장년들이 이번에는 김대장을 복판에 몰아넣었다. 김대장이 제아무리 힘장사라도 여러 사람의 힘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그는 보복적인 심리로 김대장의 바지 벗기는 행동에 동참했고 김대장의 그것이 흉물스럽게 소매를 걷은 꼴까지 들여다보았다. 아무튼 그는 바지를 한번 벗기우면서 자신한테서 가면 비슷한것까지 벗겨지는듯했으며 그후부터는 거리낌없이 무지스러운 장난에 끼여들고 막말을 내뱉기도 했던것이다. “동네청년들이 너를 ‘김삿갓’이라구 한다더구나. 무슨 소릴 했길래 그런 별명을 얻었니? 아무튼 별명이 많아 좋겠다. 집체호에서는 ‘19세기’, 동네에서는 ‘김삿갓’…” “담배쉼 할 때 자꾸 옛말을 해달라구 해서 김삿갓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 “너 말 좀 주의해라. 아무 말이나 하지 말구… 동원이를 봐. 쓸데없는 말 한마디 하는가구…” “얘, 동네에선 그 녀석을 ‘영화배우’라구 하더라. 너무 표준어를 써서… 그나저나 너 동원이를 사랑하는게 아니야?” “‘사랑’이라니? 왜 용속하게 ‘사랑’이란 말을 쓰니? 징그러워.” “잘못했다. 다시 말하마. 너 동원이를 좋아하니? 안하니? 너희들이 한학급때부터 감정이 있었다던데?” “누가 그따위 소릴 하던? 그 애는 인생목표가 ‘청화대학’, ‘북경대학’이야. 지난해 대학시험에 합격하구두 일반대학이라구 안 갔지 뭐야. 흥, 누가 그렇게 꼬장꼬장한 애를 좋아한다구…” 녀자의 마음이 동원이보다 자기한테 쏠리고있음을 확인하자 그는 가슴이 달짝지근해났다. 그래 나한테 전혀 호감이 없다면 여기까지 올라오지 않았을거야… 하지만 성급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수는 없었다. 괜히 “용속”하게 보였다간 끝장이니까. “너하구 전도문제를 토론하려구 여기로 오자구 한거야. 우리가 농촌에 내려온지 거의 1년이 되지 않니? 교장선생님은 2년간만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으면 대학에 추천받을거라구 했으니까 명년 이때엔 우리도 대학생이 될거란 말이야. 넌 어느 대학을 지망하니?”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내 리상은 아나운서야.” “난 미술대학이다. ‘중앙미술학원’ 아니면 ‘로신미술학원’…” “너 지난해 신체검사에서 미끄러지지 않았어?” “오른쪽눈이 시력이 좀 약해. 어두운 집안에서 책을 너무 봐서 그렇게 된거야. 2년간 로동단련을 하면 그만한것쯤이야 봐주겠지. 미술실력은 얼마든지 자신있어.” “네 실력이사 누구나 인정하지. 고중때는 미술과목두 없었는데 넌 어디서 미술을 배웠니?” “문화관 정선생한테서… 그분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분이야.” “그런데 너 지망을 바꾸는게 어때? 예술이 무슨 전도가 있다구.” “왜 전도가 없다구 그러니? 예술만큼 신성한 작업이 어디 있다구.” “이것 봐, 그러니까 너를 ‘19세기’라구 하는거야. 지금은 누가 예술을 한다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보인단 말이야. 락후하고 정파답지 못하구…” “쳇, 그건 무지막지한 사람들의 편견이야. 레닌동지께서는 ‘예술이 없는 사회는 도적의 사회’라구 말씀하셨어… 아무튼 누가 뭐라든 난 기어코 미술가로 되겠어… 그건 내 어렸을 때부터 품은 꿈이야. 그런 꿈이 없었더라면… 젠장! 너두 내 가정처지를 알겠지? 아버지는 일찍 세상 뜨구 어머니는 예수쟁이, 귀머거리에 변소청소부……” “알구있어…” “생활곤난은 둘째였어. 그때나 이때나 배급세월인데 남들이 잘살면 우리보다 얼마나 더 잘살았겠니? 견딜수 없는게 동네사람들의 천대와 멸시였어… 어느땐가 새벽녘에 우리 집 출입문에 구정물을 퍼붓고 달아나는 아낙네도 있었단다… 그 일은 죽을 때까지 잊을것 같지 않아… 어머니도 나도 그 누구한테 털끝만치도 잘못한 일이 없건마는…” 그는 새삼스레 솟구치는 비분을 이기지 못해 이를 악물었다. 녀자가 그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대였다. 그는 겨우 자신을 억제하고 입을 열었다. “아마 그래서 내가 고중때 각별히 문학에 미쳐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두 학교때 문학을 좋아했어.” “짐작은 했다.” “어떻게 알아?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어딘가 마음이 통하는데가 있으니까…” “글쎄, 나두 그래.” “나보다 네가 지망을 바꿨으면 좋겠다. 예술학교를 가든지.” “왜?” “넌 춤두 잘 추구 노래두 잘 부르구… 그래서 유치원선생질 하는게 아니야? 얼굴두 집체호에서 제일 예쁘겠다…” “망측한 소릴…” 녀자가 살짝 그의 손등을 꼬집었다. 방글방글 웃는것을 보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였다. “영희, 너 나를 좋아하니?” “응.” “‘19세기’인데두?” “응.” “정말?” “정말이야. 넌 나를 좋아하니?” “응, 아니… 사랑한다.” 녀자가 다시는 “사랑”이란 말을 징그러워하지 않았다. 불현듯 야릇한 충동이 치밀었다. 꼭 껴안고 입이나 맞출가… 키스란 얼마나 짜릿한것일가… 서로 사랑한다는것, 아니, 좋아한다는것을 확인했는데 좀 안아보면 어떻단 말인가… 아니다. 참아야 한다. 둘이 련애를 한다는 사실이 탄로나면 집체호애들은 눈이 뒤집혀질것이다. 아니, 저것들이 제정신이야? 전도문제를 내젖히구 용속하게 련애부터 하다니. 섶을 지고 불구뎅이에 뛰여드는 저따위 멍청이들이 어디 있어… 조소… 멸시… 그리고 “병을 고쳐 사람을 구하는” 정치사상교육이 잇달을것이다. 그는 머리를 쳐들었다. 나무가지사이에 쪼각달이 걸려있었다. 시가 저절로 입밖으로 흘러나왔다.   한백옥 다듬어서 직녀빗 뉘 만든고 견우가 없을진대 단장은 해 무엇하리 허공에 던졌더니 반달인가 하노라.   녀자가 경이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의 시야?” “황진이…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하니?” “네가 더 대단해. 그림두 잘 그리구 시두 잘 읊구… 네가 금방 시를 읊을 때 보니까 두눈에서 광채가 막… 뭐라 할가. 나두 가슴이 찌르르하면서 감동된단 말이야… 아차, 이러다가 나까지 ‘19세기’가 되문 어떡해? 둘중의 하나는 정신을 차려야지. 얘, 애들이 의심하겠다. 어서 내려가자.” “뭐가 무서워. 우리가 뭐 나쁜짓이라두 했니?” “나쁜짓은 하지 않았더라두 애들의 눈치가 얼마나 빠르다구… 네가 정치사상발전에 뒤전이라구 말하는 애들이 있어.” “젠장, 어느 간나새끼 그렇게 말하더니? 자원해서 농촌에 내려왔으문 그게 정치사상각오가 높은 표현이지 뭐야? 선전화두 그리구 표어두 쓰구 환등선전두 하구… 농촌의 문화사업에 나만큼 공로를 세운게 누구야? 간나새끼들이 아가리만 찢어놔선 안되겠어. 가랭이까지… 아가갸!” 녀자가 또 그의 손등을 꼬집었다.
12    판타지 장편소설 《진허》(6) 댓글:  조회:1167  추천:2  2013-09-26
6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알수 없었다. 그저 한 육신에서 빠져나왔다는 기억만 어슴푸레 남아있을뿐이였다. 그것은 아득한 옛날에 있었던 일 같기도 하고 아직 진행되지 않은 미래의 사건 같기도 했다. 아무튼 현재의 자기는 육체와 상관 없는 독립적인 존재로서 시공의 제한에서 벗어나있다는것만은 분명했다. 무척 오래동안 허공에서 배회하는듯했다. 홀로 유유히 떠돌아다닌다는것이 그닥 싫지는 않았다. 허공은 평소에 보았던것처럼 구름도 있고 달도 있고 밤이면 무수한 별들이 빛을 뿌리는 그런 장엄한 하늘이 아니였다. 그저 티끌 하나 없는 무(无)의 세계였다. 눈과 귀, 코 따위 감각기관이 사라졌기때문인가, 아니면 여기가 내가 알고있던 하늘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이란 말인가… 청정하기 이를데 없는 곳이지만 마음은 오히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렇듯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영생불멸한들 무슨 재미가 있어? 어지럽긴 하지만 그래도 시끌법석이는 세상이 더 좋았지… 누가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는듯 갑자기 주위가 시끌법석이기 시작했다. 확성기에서 귀청을 째는듯한 노래소리까지 들려왔다.   사회주의 좋네 사회주의 좋아 사회주의국가 인민지위 높고 ……   잠도 자지 않았는데 잠에서 깨여나는듯했고 높은데서 아래로 가라앉는듯한 기분이였다. 확성기는 나무전선대꼭대기에 매달려있었고 전선대아래켠에는 고삐가 매여져있있다. 암소가 달구지를 멘채 새김질을 하고있었는데 금방 싸놓은 소똥주위에서 등에와 파리들이 윙윙거렸다. 수레곁으로 손풍구, 키, 물감 따위를 파는 난전들이 늘어서고 난전사이에 올망졸망한 쌀자루를 앞에 놓고 싸구려를 부르는 농촌아낙네들이 끼여있었다. 소똥과 진창을 피해 오가는 사람들은 대개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코신을 신은 아낙네들, 바지저고리에 조끼를 입고 중절모를 쓴 늙은이들, 광주리를 옆에 끼고 뒤뚱걸음을 치는 쫑발(전족)의 한족할머니들이였다. 몸집이 엄청나게 큰 검둥개 한마리가 혀를 길게 빼물고 행인들사이를 돌아다닌다. “위위…쩌쩌…” 마차가 들어섰다. 웃통을 벗어내친 마차부가 채찍을 빙빙 돌리면서 목청껏 싸구려를 부른다. “탠과, 탠과, 참외 사시오. 참외 … 호탠디 탠과요…” 확성기의 노래소리와 싸구려소리로 혼잡을 이루는 시장문어귀. 담배가게에서 열서너살쯤 되여보이는 사내아이가 뛰여나왔다. 짧은 바지에 때투성이 반팔적삼을 입고 붉은넥타이를 느슨히 목에 맨 녀석이였다. 녀석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지 행인들을 꿰지르며 달리다가 마차곁에서 넘어지기까지 했다. 아, 50년대 연길시 시장골목이 아닌가? 내가 어떻게 되여 이곳에 와있는가? 시장거리에서 다음거리로 빠지는 골목어귀에 꽤 널직한 공지가 있었다. 한 중년사나이가 회칠한 담벽에 그림을 그리고있었다. 담벽 웃켠에 “많이, 빨리, 좋게, 절약하면서 사회주의를 건설하자!”라는 표어가 씌여있었고 그아래에 로농병의 형상을 그리고있는중이였다. 소년이 헐레벌떡거리면서 뛰여왔다. “선생님, 담배 사왔습니다.” 사나이는 걸상에서 내리더니 갤판과 붓을 놓고 담배를 받았다. “수고했다. 천천히 갔다올거지, 이 숨이 차하는 꼴을 봐라.” “빨리 그림을 그리고싶어서…” “녀석이, 그림그리기가 그렇게 좋으냐?” “네.” “내가 담배쉼을 할 때 저 붉은기에 색이나 올려라. 갤판에 붉은색을 담뿍 짜놓고…” “네.” 소년은 너무도 좋아서 입이 함박만해졌다. 그는 선생의 갤판을 들고 걸상에 올라섰다. 난생처음 이렇게 큰 그림을 그려본다. 가슴이 콩당콩당 뛰였다. 그림은 마치를 높이 추켜든 로동자가 중심에 우뚝 서있고 총가목을 틀어잡은 병사와 벼단을 안고있는 농민녀성이 로동자의 량켠에 가지런히 서있는 장면이였다. 세 사람의 뒤에 붉은기가 휘날리고있는데 지금 거기에 색을 올리는것이다. 소년의 머리속에는 소학교에 갓 입학하여 처음 붉은기를 그리던 일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선생님께서 견본으로 칠판에 붙여놓은 그림은 학교정문우의 붉은기였다. 정문꼭대기는 삼각형, 붉은기는 장방형으로 그리면 되였다. 다른 애들은 자까지 들고 장방형을 열심히 그렸지만 그만은 붉은기를 바람에 나붓기는 모양으로 그렸다. 선생님이 다가와서 물었다. “넌 왜 기를 이렇게 그렸니?” “저는 붉은기가 네모꼴로 되여있는걸 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이렇게 바람에 나붓깁데다.” 선생님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견본 대신 그의 그림을 칠판에 걸어놓고 애들더러 따라 그리게 했다. 그때 얼마나 어깨가 으쓱했던지… 사나이는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런 본새로 언제 다 칠하겠니? 큰 붓을 바꿔쥐고 대담하게 그려라.” “네.” 소년은 시키는대로 했다. 이윽고 선생은 인물의 얼굴과 옷에 색을 올리기 시작했다. 때로는 느릿느릿 때로는 질풍같이 움직이는 붓놀림이 어찌도 멋져보이는지 소년의 입에서는 감탄의 부르짖음이 절로 나왔다. 선생의 변화무쌍한 눈빛도 놀라왔다. 갤판에서 색을 조합할 때는 한없이 부드러운데 일단 그림으로 시선이 옮겨지면 칼끝처럼 예리해지는것이였다. 그림을 손으로 그리는것이 아니라 눈으로 그리는것 같았다. 선생의 일거일동, 외모특징 모든것이 소년의 흠모를 자아냈다. 베레모밑으로 죽 내리 자란 구레나룻도 오로지 선생처럼 훌륭한 화가들에게만 있을수 있는 어떤 신성한 징표처럼 느껴졌다. 오늘아침까지만 해도 소년은 자기한테 이렇듯 큰 행운이 떨어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의 집은 이곳에서 멀지 않았다. 례배당 근처 골목길어귀에 있었는데 창문이 행길쪽으로 나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집안을 휑하니 들여다볼수 있었다. 그의 집에 어려운 식솔이 없다고 동네아낙네들이 날마다 창문가에 모여 오구작작 떠들어댔다. 오늘은 우연하게도 선생이 행길을 지나가다가 그의 집안을 들여다보고 창문가에 다가온것이다. 선생은 벽에 잔뜩 그려붙인 소년의 그림을 한동안 들여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너 소질이 있구나. 어느 학교에 다니니?” “공원소학교 5학년입니다.” “지금 여름방학이겠구나. 난 시문화관의 정동무란 사람이다. 너 나한테서 그림을 배우겠니?” “네, 배우겠습니다.” “나 지금 가두를 돌아다니며 선전화를 그리는중이다. 그림을 배우겠으면 나를 따라다녀.” “네.” 소년은 얼씨구나 하고 정선생을 따라나섰던것이다. 선생이 갤판을 넘겨주면서 말했다. “벼단에 색을 칠해라. 노란색만 칠하지 말고 웃부분에 흰색을 좀 섞고 아래부분에는 갈색을 섞어야 한다. 그래야 벼단이 둥그스름하게 돼보이는거야.” “알았습니다.” 소년은 벼단에 열심히 색을 올리기 시작했다. 정선생이 뒤에 서서 그림을 가르치다가 무심코 물었다. “너 아버지는 뭘 하는 사람이니?” “……” “못 들었니? 너 아버지 뭘 하는 사람이냐구?” 소년은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죽었습니다.” 정선생이 흠칫 놀라는듯했다. “오, 그래? 안됐구나, 언제?” “제가 일곱살이구 녀동생이 두어살…” 정선생은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물었다. “엄마는? 엄마는 무슨 일 하니?” “동네에서 그럭저럭… 아무 일이나 합니다.” 선생은 다시 말을 걸지 않았다. 소년은 잠시 가슴이 어두워졌다. 아버지가 어떻게 생겼던가. 걸음마 탈 때 아버지한테 몇번 안긴 기억은 나는데 그마저 이제는 희미해지고있었다. 아버지는 미장공이고 온돌쟁이였다. 항상 외지에 나가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땐가 목단강시에서 기별이 왔는데 페염에 걸려 려관방에서 돌아가셨다고… 엄마가 녀동생을 업고 목단강에 가서 후사처리를 했다. 돌아와서는 밤낮 울음으로 세월을 보내시고… 오가던 행인 몇몇이 그들의 뒤에 서서 그림을 구경했다. 공을 차고있던 애들도 모여왔다. 애들은 자기또래의 녀석이 큰 그림을 그리는것이 무척 신기해보이는 모양이였다. 구경군들의 칭찬을 받으면서 소년의 가슴은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갤판의 색갈들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흰색과 검은색마저 아름다와보인다. 이 시각, 소년은 자기의 앞날 역시 이토록 아름답고 찬연하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났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바로 이 소년이였단 말인가? 그런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바깥에서는 싸락눈이 흩날리고 집안에서는 랭기가 감돌고있었다. 좁다란 단간방, 희미한 전등불빛에 너덜너덜 떨어진 천장이며 바줄에 주렁주렁 걸린 넝마들이 한결 스산해보인다. 연기에 그슬려 거무칙칙해진 찬장뒤에서 새끼쥐 한마리가 불쑥 나왔다. 새끼쥐는 앞발을 쳐들고 귀를 쫑긋 세우더니 가마목으로 쪼르르 달려와서 수수쌀을 주어먹기 시작했다. 밥상머리에 소년이 앉아있었다. 무슨 환상에 사로잡혔는지 코물 한줄기가 흘러내려 거의 떨어지는것도 모르고있었다. 가마목의 누데기담요가 꿈틀거리였다. 수수쌀을 주어먹던 새끼쥐가 부리나게 찬장뒤로 달아나버렸다. 조그마한 계집애가 담요를 제치고 머리를 내밀었다. 계집애는 머리가 헝클어지고 얼굴이 해쓱했다. “오빠, 나… 물…” 소년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옷소매로 코를 쓱 문지르고는 계집애를 안아일으켰다. 그리고 가마목에 있는 법랑컵을 입에 갖다대였다. 계집애는 두어모금 마시고 머리를 돌려버렸다. “어때, 그냥 아프니?” 계집애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는 소년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힘없는 눈길로 소년을 쳐다보았다. “사탕 먹어.” 녀자애는 침을 꼴깍 삼켰다. “싫어, 래일 먹을래.” 그는 동생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초저녁보다 열이 좀 내린것 같았다. 아이참, 엄마는 왜 아직도 안 오는거야. “그림 많이 그렸어?” “응, 많이 그렸다.” “설명해줘.” 소년은 밥상우의 그림 한장을 쳐들었다. “이건 우리 집이야. 공산주의에 가면 우린 이런 집에서 살게 되지, 매일 이밥에 소고기국을 먹으면서 말이야.” “이층집이구나.” “그래, 넌 이층에 있겠니? 아래층에 있겠니?” “이층.” “내 그럴줄 알았어. 이것 봐.” 소년은 다른 그림 한장을 쳐들었다. 마당에 울긋불긋 꽃들이 만발하고 이층창문으로 녀동생이 환한 웃음을 짓고 밖을 내다보는 그림이였다. 녀동생이 캐드득거리며 즐거워했다. “엄마는 어느 층이야?” “엄마는 아래층에 있자구 할거야.” “공산주의라는 곳에 가두 엄마가 청소부질하는거야?” “그때면 내가 엄마 일을 안 시켜. 나는 화가로 될테니까.” 아, 세상에 이토록 순진하고 아름다운 눈이 또 어디 있을가, 그림을 들여다보는 녀동생의 눈만큼 예쁜것이 없다. 동생은 여덟살, 금년에 본래 소학교에 들어갈 나이였지만 몸이 약하고 키가 작다고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동생은 대여섯살 때부터 크는것을 잊어버린듯했다. 지금 입고있는 솜저고리도 재작년에 엄마가 해입힌것인데 아직도 품이 헐렁해보인다. 키는 크지 않아도 철은 오히려 일찍 드는듯, 집안형편을 잘 알아서 밥투정, 옷투정하는 일이 없었고 때로는 엄마를 돕는답시고 조그마한 손을 놀리며 설겆이를 하기도 했다. 동네에 같은또래 계집 애들이 몇이 있기는 했으나 엄마가 변소청소를 하고 넝마주이를 한다고 동생과 놀아주지 않았다. 동생은 어두컴컴한 집안에서 혼자 놀고있다가 점심때가 되면 문밖에 쪼그리고 앉아 오빠를 기다렸다. 먼발치에서 소년을 발견하면 종주먹을 쥐고 달려와 덥석 안겨서 목을 그러안군 했다. 연길에 일가친척 하나 없는데다가 아버지마저 일찍 세상뜨다보니 녀동생에게는 오빠가 유일한 기둥이였던것이다. 요즘 와서 열이 나고 기침을 깇으니 감기에 걸렸는가 하여 엄마가 알약을 사다먹였다. 하지만 병이 낫지 않고 더욱 심해가니 엊그제부터 엄마가 연변병원으로 업고 가서 주사를 맞혔다. 병원에서 무슨 병이라고 진단을 내렸다는데 엄마는 귀가 먹어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도대체 무슨 병인지… 녀동생이 가느다란 팔을 내밀어 그의 귀를 잡아당겼다. 피기 없는 입술이 파르르 떨리면서 실낱같은 웃음이 피여올랐다. 장난을 치고싶은 모양이구나. 소년은 동생을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동생의 눈이 또 정기를 잃었다. 입으로 숨가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그래? 또 아프니?” 동생은 말이 없었다. 가느다란 목에서 피줄이 팔딱거리고 몸에서는 경련이 일고있었다. 소년은 동생을 품에 꼭 껴안고 어쩔줄을 몰라했다. 엄마가 례배당에서 돌아왔다. 허겁지겁 구들에 올라와 소년한테서 동생을 받아안고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아이고 어쩌면 좋아. 주사두 말 안 듣구 열만 오르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아버지시여! 불쌍한 저의 아기 살려주시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 엄마의 얼굴이 눈물, 코물로 범벅이 되였다. 밖에서는 찬바람이 불어치고있었다. 이웃집 양철지붕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소년은 이불을 뒤집어썼다. 벌써 겨울이 왔구나. 이번 겨울은 얼마나 추울것인가.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지난여름은 참 좋았지. 정선생님한테서 그림 많이 배웠거든. 다음 여름에는 중학교로 올라가겠지.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나만큼 그림을 잘 그리는 애는 없을거야. 앞으로 나는 꼭 미술가로 될것이다. 정선생처럼 구레나룻도 기르고 베레모를 쓰고 색갈이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고 그리고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리라… 내가 화가로 되면 어머니도 다시는 동네아낙네들의 천대를 받지 않을것이다. 동생한테는 예쁜 옷을 사입히고 맛 좋은 사탕과자도 듬뿍 사줄거야… 아, 빨리 컸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득 이번 겨울이 지나가지 않고 영원히 계속될것 같은 예감이 들면서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쳇, 터무니없는 생각… 그럴리 없어… 그럴리 없어… 그는 엄마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소년은 엄마의 통곡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여났다. 녀동생이 죽었다. 사탕 한알을 손에 꼭 쥔채… 소년은 울부짖으며 동생의 몸을 그러안았다. 울며불며 동생을 마구 흔들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사이로 반쯤 감긴 두눈… 그것은 초저녁까지만 해도 그토록 정답고 애틋했던 동생의 눈이 아니였다. 가느다란 목을 감싼 저고리동정, 살쩍의 머리가 내려앉은, 때가 조롱조롱 맺힌 저고리동정이 한없는 애처로움을 자아내면서 소년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소년은 구들에서 발버둥질하면서 목이 쉴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11    판타지 장편소설 《진허》(5) 댓글:  조회:1250  추천:1  2013-09-17
5 고개에 올라서니 읍내의 정경이 한눈에 안겨왔다. 고층빌딩도 공장단지도 보이지 않는 자그마한 시가지였다. 남쪽으로 잔잔한 구릉들이 줄쳐오다가 시가지 북쪽켠에 이르러서는 제법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있었다. 여기는 강원도 경내라고 하니까 저 중중첩첩한 산마루를 넘고넘으면 드디여 천하명산 금강산이 나타나리라. 아무때든 금강산이야 한번 가보아야지. 중국의 옛 문인도 “고려국에 태여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것이 소원이다.(愿生高丽国, 一見金刚山.)”라고 했다는데 백의민족으로 태여나 금강산구경도 못하고 죽는다면 그보다 더 큰 유감이 어디 있으랴. 다행히 연변에서 살아온 덕분에 유람차로 장백산구경은 해보았다. 비록 한번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정상에서 느꼈던 그 신비함과 성스러움은 죽어서도 잊혀질것 같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금강산, 그림과 사진으로만 보았던 금강산, 내 눈으로 직접 본다면 그 감동은 더구나 어떠할것인가. 구름속에 잠긴 만이천봉, 옥가루 흩날리듯 층암절벽에서 내리꽂히는 무수한 폭포… 준이는 진짜로 금강산절경에 몸을 담고있는듯 가슴이 뿌듯해지면서 신명까지 났다. 녀석이 판넬의 고역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듯 뛰쳐나온 주제에 흥타령은 무슨 흥타령이야. 금강산구경은 남북이 통일된후에나 고려할 일이고 여기 반쪽 강산이라도 구경하러 다니려면 먼저 착실하게 용돈이나 벌어두어라. 아무때든 돈이 있어야 금수강산이지 돈이 없으면 적막강산이다. 지갑에 들어있는 현금 50여만원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아침에 깨여나 오늘도 장장 열두시간 고역을 치를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아뜩했다. 곽씨마저 가버렸으므로 더구나 있고싶지 않았다. 박사장이 출근하자 그는 몸이 아파서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박사장은 차라리 잘됐다는듯이 부인한테 로임을 결산해주라고 분부했다. 부인은 결산을 마치고 그에게 돈을 넘겨주면서 언짢게 말했다. “아저씨가 한달을 채우지 못하면 우리가 소개소에 돈을 지불해야 해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준이는 돈을 받아넣고 그 자리로 판넬을 떠났던것이다. 읍으로 내려가야 할 발걸음이 저도 모르게 산으로 들어가는 오솔길로 빠져들었다. 서두를 필요야 있는가? 한번 가면 다시 올 일도 없는 고장인데 두루 산천경개나 구경하고 내려가도 늦지 않다. 나중에 재래시장에 가서 두부찌개나 순대안주 일인분 청해놓고 유유히 술잔을 기울이다가 오후 네시쯤 되면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의정부까지 가서 다시 지하철 갈아타고 인천으로 죽― 길섶에 노랗게 핀 맨드라미꽃들이 미풍에 하느적거리며 고적함을 하소연하는듯했다. 준이는 손 가는대로 한송이 두송이 꺾어들었다. 작은 꽃, 수수한 꽃, 보는이 하나 없어도 철따라 어김없이 피고지는, 그래서 더욱 처연해보이는 들꽃이다. 아무리 하찮은 들꽃이라도 다시금 여겨보면 나름대로의 운치가 깃들어있는데 세상인심은 오로지 이름 높은것만 붙좇고있으니… 소나무숲을 지나 고개 하나를 넘으니 자그마한 공지가 나타났다. 이랑을 지은 흔적으로 보아 작년까지 참외농사나 짓다가 페농한것 같았다. 공지 한켠에 거의 씰그러지는 다락 한채가 서있었다. 준이는 풀숲을 헤치며 그곳으로 다가갔다. 가름대 두어개밖에 남아있지 않는 사다리를 타고 다락우에 올라가니 구멍 뚫린 함석지붕이 네 기둥에 받쳐있고 뒤면에만 판자벽이 남아있을뿐이였다. 준이는 풀 한웅큼을 뜯어다가 먼지를 대수간 털어내고는 바닥에 털썩 앉았다. 산속이여서 시야를 멀리 펼칠수는 없었지만 주위의 산과 나무 그리고 두둥실 떠가는 흰구름만 보아도 마음이 상쾌했다. 저 구름들은 어디서 오는것일가? 서북방향에서 몰려오니 분명 바다건너 중국에서 오겠지. 땅덩어리를 비기면 한국은 중국보다 턱없이 작은 나라. 그래도 국호만은 클 대(大)자를 붙여 대한이라 자칭하니 소국이라 하여 력대로부터 받아온 온갖 릉멸을 떨쳐버리려는 뜻이였을가? 아무튼 땅은 네것내것이 있어도 구름만은 임자가 없어 허공에서 자유로이 떠다니는구나… 부지중 중국의 옛 시 한수가 머리에 떠올랐다.   고인은 황학을 타고 날아갔으니 이곳엔 텅 빈 황학루만 남았구나 황학은 한번 가고 다시 올줄 모르니 흰구름만 천년토록 헛되이 흐르도다   어느때 누가 지은 시였던가. 리백? 두보? 백거이? 맹호연? 아니, 그렇게 이름난 시인은 아닌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지은이가 떠오르지 않았다. 바보가 되였나? 치매가 왔나? 머리가 이렇게 무디여지다니… 제길, 판넬탓이야. 스무이틀이나 역축처럼 일만 했지 머리를 쓸 여가가 있었던가. 그곳에 필요한건 뚝심이였지 예술적감성따위가 아니였다. 감성이 눌려있다보니 오늘 대수롭지 않은 경물에도 이렇듯 감동을 느끼는것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편안한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건마는… 문득 시꺼먼것이 배속에서 치밀었다. 이놈아, 나이가 얼마인데 아직도 그따위 랑만에 빠져드는거야. 이 허술한 다락이 황학루란 말이냐? 구름이야 천년 흐르든 만년 흐르든 너하구 무슨 상관이야. 딸이 한국에 시집와서 그닥 행복하게 사는것두 아니구 안해도 이태째 한국에 와서 갖은 고생 다하는데 무슨 신바람이 나서 시를 다 읊조리는거야. 그토록 현실감각도 무디고 분별력도 없으니까 불법체류자란 모자를 쓰고 막로동판으로 굴러다니지… 한바탕 자신을 꾸짖고나니 속이 어느 정도 후련해졌다. 들뜬 감정이 가라앉자 랭정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예술적감수력이란 과연 한푼의 가치도 없는것일가? 아니, 예술 자체가 저 뜬 구름처럼 허망한것이 아닐가? 한평생 예술을 숭상해왔다. 비록 예술가로 출세하지는 못했지만 평범한 예술교육자로서 나름대로 사명감을 안고 살아왔다. 90년대 중반, 장춘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중학교 미술교육의 질을 제고할데 관한 론문을 한편 썼는데 자치주교육학회에서 그 론문이 방향성문제를 제출했다면서 성에 추천하였다. 덕분에 성교육학원에 가서 론문을 발표할 기회를 가지게 되였던것이다. 회의에 참가한 이튿날 저녁, 웬 한족젊은이가 그의 숙소로 찾아왔다. 연변에서 온 김준선생을 찾는다는것이였다. 준이가 나서서 무슨 일인가고 물었더니 그저 자기를 따라오라는것이였다. 밖에 나서니 호화승용차 한대가 대기하고있었다. 젊은이는 그를 뒤좌석에 안내하고 차를 몰았다. 차는 남호기슭을 에돌아 시내중심에 들어섰다. 누가 자기를 찾는가고 물었더니 “쓰이거료부치더따콴”이라는것이였다. 대단한 부자라구? 부자들과는 추호의 인연도 없는데 누가 나를 찾아? 젊은이는 한바탕 시국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뿌싼뿌쓰(어중이떠중이)”들이 돈을 벌었지만 지금은 권력층과 그들의 자녀들이 떼돈을 번다. 로백성들이 가장 증오하는것이 그따위 부패분자들이다. “개잡종” 같은 새끼들! 좋은 끝장이 있는가 봐라… 준이는 자기를 찾는 “따콴”도 “개잡종”인가고 물었다. 젊은이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그분은 부패분자가 아니라 순전히 자기 능력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라는것, 학교때 자기한테 영어를 가르쳐준 영어교원이기도 하고… 지금은 외자유치사업을 하는데 자기는 그분의 개인운전사라는것이였다. 차는 으리으리한 고층호텔앞에 멈춰섰다. 밖에 고급승용차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젊은이를 따라 들어서니 아가씨들이 량켠에 마주서서 인사를 올렸다. 젊은이는 한 아가씨에게 준이를 안내하라고 부탁하고는 되돌아나갔다. 아가씨가 그를 엘레베터로 안내했다. 그는 슬그머니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거 생각이 있는 사람이야 없는 사람이야? 나를 찾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불려오다니… 부자가 나 같은 가난뱅이교원을 찾을 리유가 뭐란 말인가? 혹시 론문때문에 교육국 지도간부가 나를 만나보려는것일가. 쳇, 무슨 대단한 론문이라구 상급에서 개별접견을 다하겠어… 아무튼 무슨 곡절인지 두고보자. 엘레베터를 나와 복도를 따라 걸었다. 마지막 객실에 이르자 아가씨가 노크를 하고 그를 들여보냈다. 객실 역시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신사차림을 한 사나이가 쏘파에서 일어서더니 그한테로 다가왔다. “니 넝 런스워마?(너 나를 알만하니?)” 뚫어지게 바라봐도 누군지 알수 없었다. 사나이가 갑자기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모들눈을 만들었다. 준이는 그제야 놀란 소리를 쳤다. “아차! 너 ‘뚜이얜’이 아니야? 야―, 이거 어떻게 된 판이야?” “뚜이얜”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너 내 별명을 잊지 않았구나.” “따콴이 찾는다구 해서 누군지두 모르구 왔는데… 혹시 네가 ‘따콴’이란 말이냐?” “꼬맹이가 아무 소리나 줴친 모양이구나. ‘따콴’은 무슨 놈의 ‘따콴’이야. 교육국의 보잘것 없는 직원인데…” “넌 내가 장춘에 온걸 어떻게 알았니?” “일이 있어 교육학원에 갔다가 너희들이 회의실에서 나오는걸 봤다. 네가 암만 늙어두 내 눈이야 못 속이지.” “옛날에는 네 눈이 ‘뚜이얜’이였는데 지금은 정상이구나, 교정수술을 했니?” “하하하, 녀석이 내가 그 당시 바보처럼 보이지 않았더라면 진작 잘못됐을거다.” 아무튼 반가왔다. 거의 20년전, 농촌에 있을 때 무랍없이 사귄 한족친구였던것이다. “뚜이얜”이 물었다. “너 지금 뭘 하니?” “미술교원이다.” “그 나이에 지금두 미술교원이야? 왜 연변에서 살면서 하다못해 교장자리 하나 못 건졌니?” “교장자리와 술 한잔, 어느걸 가지겠는가구 물으면 난 술 한잔 선택하겠다.” “녀석이 농촌에 있을 때와 똑같구나.” “벼슬할 생각이 없을뿐이다.” 이윽고 요염하게 치장한 아가씨 둘이 술과 료리를 들고 들어왔다. 그들은 차탁우에 모태주 한병과 료리 여섯가지를 올려놓았다. “뚜이얜”이 말했다. “연회청이 따로 있지만 안목이 시끄러워서… 괜찮지? 여기서 한잔 하는것도…” “아무렴, 나두 번거로운걸 싫어하니까.” 아가씨들이 두 사람 곁에 앉아서 술을 부었다. “뚜이얜”의 곁에 앉은 아가씨가 눈웃음을 살살 치며 어찌도 살갑게 구는지 보기에 민망했다. 준이가 말했다. “너 이거 너무 하는게 아니야? 지금 모태주 한병에 얼마라구… 나 이런 술은 중앙령도동지들이나 마시는줄 아는데…” 아가씨들이 굉장한 시골뜨기나 만난듯이 웃음보를 터뜨렸다. 준이가 불편해하는것을 보고 “뚜이얜”이 아가씨들에게 눈짓을 했다. 아가씨들은 객방에서 나가버렸다. “뚜이얜”이 저가락으로 료리접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상에서 제일 눅거리가 모태주야. 이 료리 한 접시 얼만지 아니? 천이백원이야.” 준이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료리 한 접시가 내 두달치 월급과 맞먹는다니… 녀석이 껄껄 웃었다. “걱정말아. 내 돈은 한푼도 안 쓰니까.” 자기 말 한마디에 외상들이 어느 호텔을 선정하는가 하는 문제가 달려있으므로 호텔에서 이만큼한 대접을 받는것은 당연하다는것이였다. 중국의 최고명주(名酒)인데도 그 맛이 특별한줄을 모르겠고 사슴의 주둥이니 상어지느러미니 하는 료리 역시 먹어보기는커녕 구경조차 한 일이 없었다. 슬그머니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네놈이 농촌에 있을 때는 몸이 원숭이처럼 여윈데다가 눈마저 모들뜨기여서 한족동네에서도 조선족동네에서도 병신, 바보 취급을 받았지… 너도 나도 그때는 똑같은 빈털터리신세였지만 오늘에 와서 네놈은 뜨고 나는 가라앉았구나… 명예, 지위, 금전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정신생활에만 몰두해온 내가 옳았는가? “뚜이얜”의 술버릇은 옛날과 마찬가지였다. 떠들썩하며 준이한테만 술을 권하고 자기는 그저 마시는 흉내만 냈다. “니디노우퍼(너의 안해)는 뭘 하니?” “하긴 뭘 하겠어, 장마당에서 채소장수질이나 하구있지.” “니디로우퍼 쟝무리탕 잘 끓였지, 두부 넣고… 지금두 그때 쟝무리탕생각이 날 때가 있어.” “쟝무리탕이구 떡대가리구 걷어치우구 좀 들어보자. 네놈이 어떻게 ‘따콴’이 됐니?” 자기에 대해서는 좀체로 말하지 않는 녀석이지만 그날은 자기 경력을 대수간 털어놓기 시작했다. 장춘 모 중학교 영어교사로 들어가서 불과 이삼년만에 교원연수학교로 전근했고 거기서 입당하고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성교육국의 재직간부이지만 실제상 해외와의 “경제교류”사업에 참여하고있다는것이였다. 대만, 싱가포르, 미국 등지에 친척방문도 자주 간다고 했다. 준이는 외자유치에 성공하면 거간군이 기업으로부터 막대한 수익을 챙긴다는 사실을 어슴푸레 알고있었으나 “뚜이얜”은 거기까지는 밝히지 않았다. “뚜이얜”이 말했다. “너두 그렇지만 나두 벼슬을 탐내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성급이구 중앙급이구 내가 앉을 자리 하나 못 구할것 같으냐? 하지만 관리질하면서 돈까지 많으면 부정부패혐의에 걸리기 쉬워, 낮은 급이라두 실속만 챙기면 돼, 내가 교육국의 하찮은 자리를 뜨지 않는것두 그때문이야.” 녀석은 금융사회에서 돈의 위력을 무시한다면 설자리가 없다면서 준이더러 론문따위나 써가지고 다니지 말고 그림을 그려 돈을 벌라고 충고까지 했다. 그날 준이는 또 술에 취했다. 되지도 않는 한어로 녀석과 무슨 쟁론까지 벌인듯하지만 그후의 일은 생각나지 않는다. 한국에 오기전까지 “뚜이얜”을 잊고있었다. 한국에 와서 막벌이까지 하고나니 “뚜이얜”의 충고가 다시 생각난다. 그 녀석은 확실히 머리가 총명하다. 합리적이고 실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너는? 눅거리감정과 부질없는 환상밖에 없어가지고 뭘 어쩌겠다는거야? 그가 한창 실의에 빠져있는데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었는가 하여 도로 누우려는데 허공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너를 불렀느니라.” 아하, 진허법사님이 아니신가. 우울한 생각들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법사님, 법사님은 꿈에만 나타나시는줄 알았더니 생시에두 나타나십니다그려?” “넌 지금을 생시로 알고있느냐? 넌 지금도 꿈을 꾸고있다.” 준이는 혹시나 하여 머리도 좌우로 흔들고 눈도 슴벅거려보았으나 애당초 꿈은 아닌것 같았다. “법사님, 인젠 저를 그만 괴롭히는게 어떻습니까? 꿈에 법사님을 만난후부터 저의 정신상태가 통 말이 아닙니다. 현실이 꿈같고 꿈이 현실 같고…” “본연으로 돌아가는것이 뭐가 나쁘냐?” “본연이라구요? 이렇게 흐리마리한 상태가 본연이란 말씀입니까?” “네가 깨여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깨지 못한 상태이니라.” “쳇, 당치않은 말씀을. 그나저나 법사님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그렇게 숨어계시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는것이 어떻습니까?” “……” “불법에 정통하여 해탈을 구하신분이 아닐가 짐작은 합니다만…” “나는 불법을 모르느니라.” “너무 겸손하십니다. 아까 우곡스님한테 들려서 법사님의 정체를 물었더니 웬 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데다. 법사님은 혹시 그 기인이 아니신지요?” 법사님께서는 어지간히 성가신 모양이였다. “나를 알기전에 너 자신을 알으렷다.” “저 자신을 알라구요? 허 참, 자기를 모를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일본이 투항하던 해,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수부 연길시에서 태여났고 성별은 남자, 민족은 조선족, 직업은…”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놈! 내가 지금 너하구 롱담하구있느냐?” 준이는 움찔했다. “아따, 소리를 지르지 마십시오. 간담이 서늘해납니다.” “령계에 올라왔을 때 어딘가 오성이 있음직하여 도로 내려보냈더니… 내가 잘못 보았구나, 일개 하잘것없는 필부에 지나지 않는것을…” 준이는 그제야 자기가 너무 경박했음을 깨달았다. “법사님!” “……” “진허법사님!” “……” “허 참, 고만한 일에 뭘 어린애처럼 토라져가지구. 법사님!” 여전히 묵묵부답이였다. 다락앞 풀밭에서는 나비 한마리가 한가롭게 날아다니고 주위의 울창한 나무숲은 명상에라도 잠긴듯 숙연한 모습이였다. 인적도, 차소리도 없는 야산의 정적이 싫어졌다. 문득 진허법사님이야말로 자기의 여생에 삶의 의미를 부여해줄수 있는 존재가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법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돌아와주십시오. 법사님께서는 실존인물이 아니실테고 그렇다고 저의 환상이 빚어낸 인물이라고 단정하기두 싫구, 하여튼 법사님의 정체를 모르니까 언사가 공손치 못했습니다.” “……”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준이는 저으기 실망했다. 허 참, 진허는 무슨 진허야? 분명 내 머리속에서 꾸며진 가상적인 존재일거야. 하긴 잘한다. 저절로 꾸미고 저절로 속고… 에라, 망탕 소리나 줴쳐보자. “법사님, 자기가 누구인지 굳이 알 필요가 뭡니까? 알면 어떻고 모르면 또 어떻습니까? 아무것두 모르구 두루두루 살아가면 안됩니까?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물이 흐르면 흐르는대로 제멋에 흥청거리며 살다가 어느날 죽게 되면 오, 이것이 인생이구나 하구 개탄하면서 눈을 감으면 되는거지 뭘 길지도 않은 인생에 풀지도 못할 숙제를 가지구 고민할게 있습니까? 가만히 보면 두루두루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행복해보입데다…” “두루두루 살바엔 낯설은 야산에는 왜 왔으며 스스로 번뇌에 시달리고있음은 웬 까닭이냐?” 앗, 깜짝이야! 법사님께서 그냥 계셨구나.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다시는 실없는 소리를 줴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법사님, 저는 금방까지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후회하던 참이였습니다. 아무리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라지만 늘그막에 정작 빈털터리가 되고보니…” “너는 령계에 올라왔을 때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의미가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어떤 삶이 사람다운 삶이냐?” “글쎄요. 그것이 지금 저의 고민거립니다. 저는 여태까지 육체적인 삶보다 정신적인 삶이 더 의의가 있구 가치가 있다구 생각해왔습니다. 물질적향락만 추구하는 사람을 가장 천하게 보았지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겪어보니 세상이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더라구요.” “네가 만약 육체적인 삶에만 탐닉했더라면 나를 만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법사님때문에 더욱 허망한 환상세계에 빠져들지나 않는지… 마음이 불안합니다.” “……” “법사님, 무엄함을 무릅쓰고 한마디 여쭤보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법사님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혹시 저의 환상이 빚어낸 가상적인 존재가 아니십니까?” “꼭 나의 존재를 증험해보여야 믿겠느냐? 그렇다면 좋다. 내가 시간을 역전시켜 너를 과거로 돌려보낼테다. 인생을 다시한번 살아오면서 자기 실존을 깨닫도록 하라.” “네? 과거로 돌아가다니요? 이거 뭐 동화세계에나 있을법한 얘기를…” “어서 눈을 감으라!” 준이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 짐짓 눈을 감는척했다. 문득 우뢰와 같은 굉음이 터졌다. 그 소리는 바깥에서 터진것인지 자기 몸속에서 터진것인지 분간할수 없었다. 사지가 물러나고 오장륙부가 되번져지고 피가 꺼꾸로 흐르는듯했다. 법사님을 부르려 했으나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가까스로 눈을 떠보니 바깥에서도 천지개벽이 일어나고있었다. 산들이 우줄우줄 춤을 추고 나무잎도 푸르렀다 누르렀다 부산을 피웠으며 구름장들은 뒤쪽으로 쏜살같이 흘러갔다. 다락기둥에서 메뚜기 한마리가 뛰여내리려고 날개를 펼치는 순간 준이는 자기 몸에서 무엇인가 회오리바람처럼 빠져나간다는것을 느끼며 의식을 잃었다.  
10    판타지 장편소설 《진허》(4) 댓글:  조회:1114  추천:0  2013-09-13
4   불당은 자그마한 방 한칸이였지만 제법 화려하고 정갈했다. 서쪽벽은 울긋불긋한 불화(佛画)로 가리워지고 그앞 불전에는 금박을 올린 부처의 좌상과 여러 존자들의 형상이 모셔져있었다. 우곡스님은 예순이 훌쩍 넘어보이였다. 머리는 삭발할 필요도 없는 천연적인 대머리로서 귀밑에 흰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있을뿐이였다. 은회색한복차림에 눈빛이 온화하여 시골로인다운 순박함이 느껴졌다. “그 먼 인천에서 일부러 저를 찾아오셨단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지나가던 걸음에 스님을 만나보고싶었습니다.” “용건이 무엇인가요?” “며칠전에 하도 이상한 꿈을 꾸어가지고…” “으흠, 꿈해몽을 하시려구요… 꿈해몽을 하시려면 5만원을 시주하십시오.” “네?” 준이는 제 귀를 의심했다. 해몽 한번에 5만원을 내라니, 진짜 날강도행실이 아닌가. 꿈보다 해몽이란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따위 맞을지도 안 맞을지도 모를 해몽소리를 듣자고 5만원을 내던질 놈이 어디 있어. “아니, 저는 해몽을 하… 하려는것이 아니고…” 준이는 말까지 더듬었다. 우곡이 빙그레 웃었다. “념려마십시오. 해몽에 들어가선 제가 장담할수 있습니다. 알아주는분들도 많구요. 이름을 밝힐수는 없지만 유명회사 사장부인들가운데서 저의 해몽에 덕을 입은분들이 적지 않아요. 어느 도의 도지사 부인도 저의 해몽덕에 남편을 선거경쟁에서 이기게 했다구 지금도 잊지 않고 종종 문안을 보내옵니다.” 준이는 생각없이 문득 뛰여들어온것이 후회되였다. 그저 지나가던 걸음에 술 취해 란동 부린 일을 사과도 할겸 한담이나 나누자고 들어온것이다. 한국의 사람관계가 철두철미한 경제관계인것을 몰라서 기신기신 들어왔는가? 전화벨이 울리였다. 우곡이 그를 등지고 탁상우의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우곡입니다.… 아, 조보살님이시군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따님이 차도가 좀 있으신가요?” “……” “그럼요. 부적은 자정에 태우시고… 그럼요… 그렇지요.” “……”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고 공덕을 쌓으면 불원간에 소원성취를 하게 될겁니다… 그럼요.” “……” 맞은켠 벽에 한문족자 몇폭이 걸려있었다. 불경귀절을 옮긴듯했는데 글씨에 정성은 엿보여도 품격은 높지 못했다. 우곡이 통화를 끝내고 준이한테 돌아앉았다. “스님께선 고상한 취미를 갖고계십니다. 저 족자의 글들이 모두 스님의 자필인가요?” 우곡은 뒤를 돌아보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글씨를 좋아한다구 시주님들이 보내주신거지요.” “필체가 대개 활달합니다만 저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이란 족자만은 좀 서운하게 되였구만요. 한문글씨는 해서, 행서, 초서의 구별이 엄연하기에 한 글자라도 서체를 달리하면 전체 글씨가 조화를 잃게 됩니다.” 우곡이 머리를 홱 돌려 그 족자를 바라보더니 다시 천천히 준이한테 얼굴을 돌렸다. “시주님께서는 한문소양이 높으신가본데요?” “아직 천박함을 면치 못했습니다.” “저 글씨는 철원 사는 외조카가 보내온겁니다. 한문공부를 하면서 서예경연에서도 일등까지 따먹었다는 녀석이 저렇게 실수를 하고서야…” “지금 같은 컴퓨터시대에 한문공부를 하는 젊은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한문이란 워낙 평생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할 학문인데 거기에 뜻을 두었다면 갸륵하다고 보아야지요.” 우곡의 얼굴에서 도고한체하던 표정이 사그라지고 겸손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시주님은 한국분이 아니시지요?” “네, 중국에서 왔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보면 알지요. 하지만 례사로운분 같지는 않아요. 예능분야의 교수나 전문가로 계실것 같은데…” “허허허… 어쩌면 그렇게 척척 알아맞추십니까? 스님께선 관상에두 조예가 깊으십니다그려.” 준이는 전문가나 교수가 아니라 일개 중학교의 미술교원에 불과했지만 굳이 겸손을 부리려고 하지 않았다. “뭐 역술인만 관상을 보란 법은 없지요. 사람의 천성적인 기질이나 직업적인 소질은 대개 얼굴에 나타나있습니다.” 우곡은 물끄러미 준이를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제가 소시적에 글씨에 흥취를 가지고 붓장난을 좀 해보았습니다만 하도 정진이 없어서 포기해버렸습니다. 중국은 서예의 대국이라 자고로 명필들이 소털같이 많은줄 압니다만 구체적으로 붓글씨에서 ‘당송8가’에 속하는분들은 어떤분들인가요?” 허, 이 늙은이가 실력을 떠보지 않는가. 중국서예사에 “송4가(宋4家)”가 있는줄은 알지만 당조까지 합쳐 “당송8가”라고 하니 잠시 얼떨떨해졌다. 하지만 늙은이가 시인과 서예를 혼동해서 내던진 말임을 짐작하고는 서예시간에 아이들에게 가르치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입을 열었다. “왕희지가 중국의 서성(书圣)인줄은 잘 아시겠지요. 그분은 동진때 사람입니다. 당나라때에 와서는 유명서예가들이 수없이 배출되였는데요, 그건 국가차원에서 서예를 고도로 중시했기때문입니다. 인재를 선발하고 관리를 등용할 때 글씨를 잘 쓰고 못 쓰는것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거든요. 당조때의 유명한 서예가로 말하면 오세남, 구양수, 장욱, 안진경, 류공권 등을 들수 있겠고 송조때에 와서는 소동파와 채양, 황정견… 또 한 사람 누구더라… 중국말로는 미푸라는 사람인데요, 이 네 사람이 이른바 서예에서 ‘송4가’로 불리우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글씨뿐만아니라 시와 문장에도 이름이 높아서 시인의 명단에도 오르고 서예가의 명단에도 오르지요. 소동파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는 시인이면서도 서예가로 이름을 날린 사람입니다.” 우곡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스님께서도 경력이 있어서 잘 아시겠지만 붓글씨라는것이 좀 인정을 받을만한 수준에 이르자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들인 노력에 비해서 성과가 미미한게 바로 붓글씨지요. 한국에서는 서예라 하고 일본에서는 서도라 하고 중국에서는 서법이라고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중국과 일본에서 쓰는 명칭이 옳다고봅니다. 붓글씨를 예술로 본다면 그처럼 따분한 예술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술이라고 하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창조성이나 상상력에서 희열을 느끼는 멋이 있는데 이놈의 붓글씨라구야 옛사람의 그늘에서 벗어날래야 벗어날수 있는가… 틀에 꼭 얽매워야 하구 옛 글씨를 모방해야 하구… 그러기에 붓글씨는 예술보다 차라리 법이나 도(道)의 경지에 밀어붙이는게 낫지요.”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삼매의 경지에서 바른 마음 행하듯 글씨도 그렇게 써야 하겠지요.” 우곡은 손으로 턱을 만지면서 슬그머니 한술 더 떴다. “선생님, 이거 외람된 요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까 부적이나 그려보려구 지필묵을 갖춰놓았는데 글씨를 좀 부탁해도 될가요?” 비록 붓을 잡아본지 오래되였지만 족자의 글자수준을 훨씬 릉가할 자신이 있었다. “허물치 않는다면 졸렬함을 무릅쓰고 몇 글자 남기고싶습니다.” 우곡은 입이 함박만해가지고 서둘러 한지며 연적을 준이앞에 날라왔다. 붓이 너무 작고 초라했다. “제가 불당에 와서 붓글씨를 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제가 소지품으로 붓을 항상 배낭에 넣고 다니는데 마침 오늘 써보게 되였구만요. 제가 가져올테니 스님께선 먹이나 듬뿍 갈아주십시오.” 준이는 문밖에 나가 봉당에 내려놓은 배낭을 끌었다. 붓과 인장은 중국에서부터 가져온것이고 화구들은 남대문시장에서 산것이다. 딴에는 쉬는 날에 풍경화나 몇장 그려볼 예산이였으나 판넬에 있는 동안 흥치가 전혀 생겨나지 않았다. 오늘 일필휘지하여 솜씨를 보여줘야지. 한국인들이 문화수준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예술을 존중한다고 느낀것은 남동공단에서 일할 때였다. 화가로 꿈을 키우고있는 젊은이가 휴식시간에 포장박스를 뒤집어가지고 만화캐릭터를 열심히 그리고있었다. “젊은이, 만화만 그리지 말고 실제 인물이나 사물을 많이 그려보라구, 앞으로 그림을 그리려면 기초부터 확실하게 닦아야지. 자, 내가 그리는걸 봐.” 준이는 젊은이한테서 펜을 받아쥐고 앞에 앉아있는 녀공아가씨를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오관이 단정하고 눈매가 이쁜 아가씨였다. 펜을 놀린지 얼마 안되여 아가씨의 용모가 생동하게 나타나는것을 보고 젊은이가 “우와!” 하고 경탄했다. “아저씨는 보통사람이 아니지요? 화가가 틀림없지요?” 준이는 중국에서 미술교원으로 근무했다고 솔직히 말해주었다. 아가씨는 자기의 초상화를 들여다보더니 어린애처럼 손벽을 치면서 퐁퐁 뛰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그림을 쳐들고 아줌마들한테로 돌아다니면서 자랑하는것이였다. 그 일로 준이는 짧은 시간이나마 공장에서 “명인”취급을 받게 되였던것이다. 준이는 새하얀 한지를 내려다보며 글씨를 구상했다. 오래간만에 붓을 잡고 정자체로 쓰다가는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획은 몰라도 내리획은 자신이 없었다. 설사 곧게 내리 그었더라도 지나치게 조심하면 기운과 생동성을 잃게 되는데 그때면 벌써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것이다. 반흘림체로 써야지. 무슨 글을 쓸가? 불교에 관한 글귀를 생각해내려가다가 괜히 늙은이한테 아첨하는것 같아 그만두고 다른 유명한 격언이나 전고 따위를 찾으려 했으나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얼마간 고심하다가 출처도 모를 글귀를 기억해내고는 숨을 죽이고 붓을 놀리기 시작했다.   有德不在有位, 能行不在能言.   한지에 선연히 나타나는 글귀를 보면서 우곡은 입을 하 벌리더니 떠듬떠듬 해석하기 시작했다. “‘유덕이 부재유위요,’ 덕이 지위에 있는것이 아니고… ‘능행이 부재능언이라.’ 말에 능하다고 행…행…행…” “네, 사람의 품덕이나 능력을 그 사람의 지위나 말재주를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글뜻도 좋지만 야, 이거 설마했더니 진짜 명필이십니다그려 허허허…” 준이는 손수 새긴 전자체인장까지 찍어주었다. 딴에는 제법 성공한 작품이였다. “래일 당장 읍에 가서 표구를 해다가 걸어야지… 여보, 여기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차를 들여보내게나.” 늙수그레한 녀인이 차 두잔을 들여왔다. 우곡은 만면에 희색이 넘쳤다. “아까 선생께선 무슨 괴이한 꿈을 꾸셨다고 하셨지요?” “네.” “어떤 꿈이였는가요?” “스님께선 혹시 진허법사님이라구 알구계십니까?” “진허법사라? 진허라… 내가 해마다 법회에 참가하여 여러 사찰의 고승들을 만나뵙니다만 진허라는 법명은 처음 듣습니다.” “이상합니다. 왜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분이 꿈에 나타났을가요?” “꿈이란 반드시 허망한것이 아닙니다. 3세의 인연과 관계가 있지요. 그분은 어떻게 생겼던가요?” “용모는 전혀 알수 없습니다. 시종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으니까요. 단지 목소리만은 귀에 쟁쟁한데요.” 꿈에 당신과도 만나서 다투었다고 말할수는 없었다. 우곡은 눈을 쪼프리고 생각에 잠기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그분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근간에 또 그분을 만나보았다는 사람들이 나오고있어요.” “그분이라니요?” “거의 15년전의 일입니다만 거 알지요? ‘88서울올림픽’ 말입니다.” “네.” “그때 외국인들이 수많이 왔는데 그중에는 올림픽경기보다 한국의 민속이나 종교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이란 나라는 세상에 크게 알려지지 않고있었거든요. 일본은 알아도 코리아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요. 그 당시에 미국의 한 자연과학자가 관광차로 어느 명산대찰에 들어갔다가 산중에서 웬 로승을 만나게 되였는데…” 우곡은 차를 한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 산중에 절이 많지만 평소에 주지를 비롯하여 많은 승려들가운데서 그 로승을 똑바로 아는이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 종단에도 가입하지 않으시고 공양이나 참선에는 아예 마음이 없으시고 승속을 막론하고 원체 사람 대하기를 꺼리니까 누구도 로승을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던겁니다. 그런데 생면부지의 미국학자와는 의기가 상투하였던지 외딴 암자에서 옹근 하루밤을 지새우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학자가 호텔에 돌아왔을 때는 완전히 미친 상태였다고 합니다. 동료들에게 그저 ‘한국에 기인(奇人)이 있다.’는 말만을 되풀이하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지요.” “미국인이 한국말을 알리 없고… 로승이 영어를 알고있지 않았을가요?” “글쎄 그것이 의문입니다. 이심전심이라고 말은 하지 않고 마음을 주고받을수는 있지만 그것은 수도승들에게 있을법한 얘기고… 하여튼 그 학자가 미국에 돌아가서 정신과치료를 받으면서 동료들에게 간간이 기막힌 소리를 늘어놓더랍니다. 로승과 함께 만년전으로 돌아가서 지구의 면모를 관찰했다느니 이 세상을 내놓고 또 다른 세상이 수없이 많다느니… 본래는 인간의 초능력이나 령매현상 따위를 믿지 않던 사람이 립장을 완전히 바꿔버린거지요. 그래서 이듬해 동료들이 로승을 탐방하려고 한국을 다시 찾아왔지요. 그때 한국교수 두어분도 동참했던 모양입니다.” “로승을 만났는가요?” “못 만났지요. 그들이 오기 얼마전에 열반에 들었거든요. 늙은 소나무곁의 바위우에서 좌화… 아시지요? 좌화라고…” “네, 앉은채로 돌아가셨단 말씀이지요.” “맞습니다. 절에서 간단한 의식을 올리고 화장을 했는데 이상하게 사리도 안 나오고 골회조차 얼마 남지 않더랍니다. 그저 육신이 연기처럼 사라진거지요. 학자들이 탐방하러 오니까 그제야 절에서도 로승이 범상치 않은분임을 알게 되였지요. 로승의 생전행적에 대해서 학자들에게 만족스러운 대답은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미국인들은 허탕을 치고 돌아갔지만 한국교수중의 한 사람은 로승의 미스터리를 풀려고 마음 먹었지요. 단서라는게 뭐가 있겠어요? 그저 나이가 많다는것, 바리대도 없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아무도 그분이 입에 무엇을 넣는것을 보지 못했다는것 그리고 볼에 붉은 기미가 있었다는것외에 아무것도 없었지요. 하지만 그 교수는 성질이 아주 벼룩의 간이라도 빼먹을만큼 꼼꼼해서 그 실오리같은 단서를 가지고 로승을 아는 사람을 찾으려고 전국의 사찰을 참빗질하듯 훑었답니다. 그러다가 사찰은 아니고 생뚱같이 어느 재일교포친구로부터 자료를 입수했는데 아이쿠, 그게 몇년이던지 아무튼 대한제국시절 일본의 한 일간지에 실린 신문기사였다고 합니다. 조선류학생의 실종사건을 다룬 사건이였는데 그 학생은 머리가 얼마나 비상했던지 당시 일본의 석학들도 그 학생을 보기 드문 천재라고 긍정했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대학졸업을 앞두고 실종되였다니 신문에 날만도 하지요.” “그 학생을 로승과 련계시키기에는 나이가 너무 틀리지 않습니까? 만약 같은 사람이라면 로승이 입적할 때 년세가 백세하구두…” “허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그 학생의 증명사진에서 얼굴의 기미를 발견했다구 무조건 한 사람으로 보는건 너무 무리이지요. 신빙성도 없구, 아무튼 로승이 누구인가 하는게 중요한것이 아니고 그분이 입적한후의 행적이 좀 수상하거든요.” “아니, 입적한후에 되살아나기라도 했단 말씀입니까?” “아니, 딱 그렇다는게 아니고… 떠도는 소문에는 로승을 만나본 사람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예요. 어떤이들은 큰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불교가 허무하다고 환속해버리기도 하고… 로승이 생전에 불가에 의지하기는 했지만 어딘가 미신적이구 이단적인데가 있어서 그분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말하기 꺼려합니다. 제가 왜 오늘 이렇게 긴 이야기를 늘어놓는가 하면 바로 며칠전에 읍내의 한 법우가 꿈에 그분을 만났다고 전화를 해왔기때문입니다.” “허허, 참 흥미있는 얘긴데요.” “어쨌든 그분이 아니더라도 꿈에 법사를 만났다면 상서로운 일이 있을겁니다.” 우곡은 준이가 생각했던것처럼 그저 순박한 촌로가 아니였다. 속심은 여하튼간에 언사가 속되지 않고 조리가 있었고 함양까지 풍기였다. “스님께서 해몽하실 때 건당 5만원은 고정가격입니까?” 우곡이 빙그레 웃었다. “선생님이 처음 들어오셨을 때 부처님께 합장도 하지 않으시구 시주도 하지 않으시니까 제가 좀 불쾌했지요. 선생님을 몰라봐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앞으로 사찰에 가시거든 혹은 저 같은 사람을 찾으실 때 먼저 부처님께 합장을 하신후에 주인과 통성을 해주세요. 부처를 믿든 안 믿든 이건 기본례의니까요.” “불당이 처음이여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스님의 가르침 대단히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 오늘 선생님한테서 좋은 글까지 받았는데 제가 감사를 드려야지요.”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준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밖에 나와 배낭을 걸머지니 우곡이 대문까지 따라나왔다. “매일 아침 스님께서 목탁을 치십니까?” “네, 아침례불은 하루도 거르지 않습니다.” “공기가 깨끗한 새벽에 나오면 목탁소리가 참 듣기 좋던데요?” “아니, 선생께선 이 근처에 계십니까?” “네, 저아래 판넬에서 일했습니다. 어제까지 일하고 오늘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우곡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니 그럴리가… 선생님 같은분이 어찌 저토록 험한 일을 하신단 말입니까?” “두루 살다보면 막일할 때도 있겠지요. 스님, 며칠전에 어떤 취객이 밤중에 문을 두드린적이 있었지요?” “네, 중국동포라고 하던데… 함께 있는분이였어요?” “아닙니다.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그 일을 사죄하려고 찾아왔지요. 좌우간 밤중에 놀라게 해서 너무 죄송합니다.” 우곡은 입을 하 벌리고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준이는 벙거지모자를 벗어들고 꾸벅 인사를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9    판타지 장편소설 《진허》(3) 댓글:  조회:1053  추천:0  2013-09-11
  축구장 절반만한 공지에 판넬, 오비끼, 삿보드, 철아시바 따위들이 저마끔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모두 건축공사장에 임대하여주는 기재들이였다. 연변에서도 이전에 집을 지을 때 “아시바”라는 말을 쓰기는 했지만 지금은 “쟈즈”란 한어로 통하는것 같고 “각목”을 일본말로 “오비끼”라고 부르는 늙은이들이 있기는 했지만 오래전에 모두 저세상으로 가버렸을것이다. “삿보드”란 세멘트바닥을 만들 때 밑에 받치는 쇠기둥일것이고 판넬이란 세멘트벽이나 기둥을 조성할 때 형틀로 쓰일것이다. 판넬은 철판으로 된것도 있고 나무합판으로 된것도 있었다. 규격도 크고작은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판 넬무지만 해도 공지의 절반을 차지하고있었다. 판넬이란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일가? 영어인가? 일어인가? 아니면 판대기나 널이라 하여 한국말로 “판넬”이라고 부르는것일가… 젠장, 한국말이든 외국말이든 나하구 무슨 상관이람? 내가 여기서 얼마나 일하겠다고… 건축공사장에서 실려오는 판넬은 성한것이라고는 별로 없었다. 철판판넬에는 세멘트가 덕지덕지 달라붙었고 나무판넬은 구멍이 뚫리지 않으면 가름대가 부러져 너덜거리였다. 일용직들은 거진 판넬수선에 달라붙었다. 망치로 철판판넬의 세멘트를 까고 기름칠을 해서 규격에 따라 쌓아놓고 나무판넬은 합판을 갈아대거나 가름대를 바꾸었다. “아우”가 전문 나무판넬을 수선했다. 준이는 곽씨와 함께 각목을 정리했다. 아무렇게나 부려놓은 각목들에는 대못들이 줄줄이 박혀있어 먼저 못을 뽑은 다음 한곳에 정연히 세워놓아야 했다. 곽씨는 못을 뽑는데 들어가선 그야말로 달인이 다된 사람이였다. 6메터짜리 각목을 번쩍 들어 받침대에 올려놓고는 길다란 못뽑이 두자루를 량손에 갈라쥐고 팔을 이리저리 몇번 움직이면 못들이 번쩍거리며 공중에 튕겨오르는데 그 잽싼 솜씨가 마치 옛 장수 쌍칼 쓰는 모습을 방불케 했다. 준이는 못뽑이 두자루는커녕 한자루 쓰기에도 힘에 부쳤다. 혹간 옹이에 박힌 대못을 만나면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야 했다. 누가 목을 조이기라도 하듯 “끼익―” 소리가 절로 나오고 항문이 조여들대로 조여드는것이였다. 그가 이런 본새로 각목 한대를 가지고 씨름하는 동안 곽씨는 벌써 너덧대를 수월히 해제끼는것이였다. 20일전, 준이가 처음 판넬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박사장은 그의 월급을 80만원으로 정했다. “아니, 직업소개소에서 90만원이라고 해서 왔는데요?” “80만원이우. 일하는걸 보면서 10만원 더 올리든지… 교원이라더구만?” “누가 그럽데까?” “소개소에서…” “젊었을 때 노가다판을 돌아다니며 못해본 일이 없는데…” 박사장이 코웃음쳤다. “손을 보면 일할 사람, 못할 사람 다 아우. 교원인데는 뭐라우? 몽골대사관 사람두 여기 와서 일했구 산동대학의 교수도 여기 와서 일했다니까… 아따, 싫으문 다른데루 가시든지…” 소개소에서 월수입의 10퍼센트를 먼저 납부하라고 하여 9만원을 이미 떼운 판이다. 그대로 눌러있을수 밖에 없었다. 곽씨는 사흘전에 여기로 왔다. 그는 20년 동안 전국의 판넬이란 판넬은 거진 돌아다녔다면서 흥정할 여지조차 없다는듯이 일당 7만원을 요구했다. 박사장은 두말없이 동의했다. 곽씨가 걸싸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준이는 자기가 “80만원짜리”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박사장의 계산은 괜한 주먹구구가 아니였던것이다. 에누리없는 하루 12시간 작업이였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약 10분간의 새참시간과 점심시간 한시간을 내놓고는 줄창 손발을 놀려야 했다. 6월 초순인데도 태양은 삼복철의 열기를 내뿜어서 가만히 서있는 사람이라도 숨을 헐떡거릴 지경이다. 적삼은 땀에 흠뻑 젖어 잔등에 달라붙고 초모자밑으로는 콩알 같은 땀방울이 줄쳐 떨어진다. 한국에 와서 처음 남동공단으로 출근했던 일이 떠올랐다. 전문 고급주전자를 생산하여 외국에 수출하는 업체였다. 1층에서 반제품이 흐름선을 타고 올라오면 2층에서 연마, 열처리 등 몇가지 공정을 거쳐 완성된 제품을 포장까지 했다. 10여명의 녀공들이 포장작업을 했는데 그녀들은 길다란 탁자에 마주앉아 주전자에 손잡이를 달고 뚜껑을 맞추고 몸체를 닦고 상표를 붙이고 비닐봉투를 씌워 작은 박스에 담았다. 준이는 작은 박스를 큰 박스에 포장하는 일을 맡았다. 먼저 차곡차곡 접혀진 큰 박스를 손으로 벌림과 동시에 발로 툭 차서 함을 만들고 작은 박스를 한번에 세개씩 모두 열두개를 집어넣는다. 뚜껑을 닫고 테프로 봉해서 곁에 있는 벨트에 올려놓으면 그것이 3층으로 올라가는데 일거수일투족이 신속하고 민첩해야 했다. 조금만 주춤거려도 작은 박스가 무더기로 쌓이면서 앞에 앉은 녀공들이 빨리 치워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들의 작업도 덩달아 지체되기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잔업까지 하고나면 하루 열두시간 일하는 셈이다. 20일간 일하면서 공장로동이 무척 가혹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와보니 어이쿠! 자기가 사람이 아니라 역축처럼 느껴진다. 그는 원래 돈이나 벌려고 한국에 들어온것이 아니였다. 이태전부터 안해가 한국에 와서 가정부로 일하고있었고 그는 집에서 놀고있었다. 퇴직을 했으니까 노는것처럼 보였겠지만 기실 무의미하게 허송세월을 한것은 아니였다. 책도 읽고 그림도 구상했다. 무슨 공리적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그한테는 취미이고 향락이기때문이였다. 년초에 딸의 성화에 못이기여 친척방문비자를 내여 한국에 왔다. 한달이란 체류기간이 눈깜짝할새에 지나갔다. 그대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딸이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좀더 눌러있기로 하고 정직하게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3개월 연장수속을 했다. 연장기한이 끝나면 월드컵이 오라지 않았다. 젠장! 한국에 왔다가 월드컵도 구경하지 않고 돌아갈수 있는가? 그는 불법체류를 강행하기로 마음 먹고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던것이다. “아저씨, 아저씨는 못을 뽑지 말구 합판이나 정리하시우. 지게차가 드나들수 있게 이쯤에다…” 박사장이 어느새 그의 뒤에 와있었다. “그렇게 하지요.” 준이는 못뽑이를 내던졌다. 여기저기 널려있거나 각목밑에 끼워있는 합판을 빼내여 질질 끌고 다니면서 한곳에 쌓아놓는 일은 별로 힘들것도 없었다. 박사장이 인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는 의도였는지 아니면 늙은 교사가 땀벌창이 되여 일하는것이 보기에 안스러웠는지 몰라도 아무튼 쉬운 작업을 하라니까 고마왔다.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아우”의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새참이다. 새참!” 준이는 사무실쪽을 바라보았다. 사장부인의 은회색승용차가 마당에 들어서고있었다. 날마다 이때쯤이면 사장부인은 읍에 가서 새참거리를 사오군 했다. 철판 두드리는 소리가 더욱 자지러지고 여기저기서 인부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똑 마치 양계장의 닭들이 모이 주러 나오는 주인을 보고 활개치는 모습을 방불케 했다. 새참은 빵 하나에 우유 한통씩이였다. 각목을 세워놓은 곳에 그늘이 져서 준이와 곽씨는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저쪽에서 일하던 리씨가 핸드폰을 귀에 대고 걸어왔다. 커피를 주문하는 모양이였다. 곽씨가 얼굴의 땀을 씻으며 말했다. “아저씨, 얼굴색이 말이 아니구먼, 엊저녁에 술을 그렇게 마셨으니 탈이 아니 날리 없지. 쯔쯔…” “자넨 노가다판에서 엉망으로 취해본적이 없는가?” “나라구 왜 취한적이 없겠수, 한 10년전인가, 광주 판넬에서 사장님하구 술 마시구 트레일러에 올라앉았다가 산굽이에서 나떨어졌는데… 뒤에 따라오는 차가 없은게 다행이지… 그후부터 어떤 경우든지 석잔 이상 초과해본적이 없다니까…” “믿을수 없어. 막일하는 사람이 술 모르구 어떻게 사나?”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수? 생각 좀 해보시우, 마누라두 딸년들두 나 하나만 믿구 사는데 내가 덜컹 잘못되문…” 리씨가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은 때를 잘못 만나 림시로 여기 와있지만 형은 평생 이런노릇을 한다는게 지겹지도 않아? 왜 젊었을 때 일찌감치 아무 기술이나 배워두지 그랬어?” “난 원래 머리 쓰는 일엔 질색이야. 이 일이 뭐가 어째서? 그래두 20년 동안에 마누라한테 가게 두개를 마련해줬구 딸 둘은 서울에서 공부시킨단 말이야.” 한국에도 이렇듯 순진한 사람이 있단 말인가? 준이는 마치 연변의 두메산골에서 소꼴이나 베는 젊은이를 보는듯 친근한감을 느꼈다. “아침에 여기를 때려치우구 가겠다더니 정말 갈 셈인가?” “가지 않구, 여기서처럼 먹구는 배기지 못한다니께… 괜히 몸을 망가뜨리면 어떡할라구…” 그들이 새참을 다 먹자 “아우”가 다가왔다. “형, 나 담배 한대 주우.” 준이가 담배갑을 열어보니 두가치밖에 없었다. “자네 줄거 없어, 한대뿐이야.” “두대구먼, 형제간에 사이 좋게 나눠피우기우.” 녀석은 거의 빼앗다싶이 담배 한대를 꺼내가졌다. 준이는 눈결에 길건너마을 “우곡정사”앞에 승용차 한대가 멈춰서는것을 보았다. 비록 가까운 거리는 아니였지만 부인 한 사람이 차에서 내리고 주인인듯한 사람이 대문안으로 모셔들이는것을 알아볼수 있었다. 준이는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아우”에게 물었다. “저 ‘우곡정사’의 스님은 어떤 사람인가?” “늙은 사기군이지 뭘 그래?” “이 사람, 아무리 막일하는 사람이라구 말조차 막말하문 안돼.” “형 뭘 안다구 그래? 저앞 논답이 절반은 우곡이네 소유라구. 땅투기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야.” “중이라면 념불이나 해야지 그런짓을 해도 되나?” “아따, 그보다 더한짓도 할라니.” 택시 한대가 공사장에 들어서더니 한 아가씨가 보따리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리씨가 손짓을 하자 아가씨가 종종걸음을 쳐왔다. 엊저녁에 술심부름을 왔던 배달아가씨였다. 아가씨는 보자기를 펴놓고 일회용커피잔 네개를 내놓았다. 그녀가 엉덩이를 들고 커피를 붓는 사이에 “아우”의 손이 마치 처마밑의 새둥지나 들추듯 그녀의 치마속으로 불쑥 들어갔다. 아가씨가 징그러운듯 그 손을 뿌리쳤다. “이러지 말아요.” “아우”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커피잔을 손에 들었다. 곽씨와 리씨는 그런 일은 자기네와 상관 없다는듯이 잠자코 커피만 마셨다. 아가씨는 리씨한테서 돈 3천원을 받아가지고 택시 있는 곳으로 종종걸음을 쳐갔다. 새참이 끝나서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일을 시작하는데 갑자기 사무실쪽에서 박사장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다 바라가! 가란 말이야! 일당을 그대로 계산해주겠으니 냉큼 꺼져버리라구!” 일용직들이 그늘밑에서 꾸물거리며 새참시간을 초과했던것이다. 철판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이쪽에서 목공작업을 하던 “아우”는 연신 사무실쪽을 바라보며 못을 박지 않으면서 헛망치질만 탕탕 해댔다.
8    판타지 장편소설 《진허》(2) 댓글:  조회:1147  추천:0  2013-09-05
  누군가 세차게 몸을 흔들어대는 바람에 준이는 눈을 떴다. 거무틱틱한 얼굴이 내려다보고있었다. “아저씨, 무슨 잠을 그렇게 자시우? 온밤 헛소리를 치면서… 아저씨땜에 나 잠을 설치였수다.” 멀리서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똑, 또그르르… 준이는 그제야 여기가 판넬사무실이고 자기를 깨운 사람이 곽씨라는것을 어슴푸레 깨달았다. “아저씨, 그 년세에 술 엄청 하시는군. 그러다가 몸을 망가뜨리면 어떡할라구? 우리처럼 막로동으로 벌어먹는 사람에겐 몸이 밑천이라니께…” “……” 준이는 머리맡에서 담배부터 찾았다. 서너가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엎드린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또 실수를 했구나. 젊은이들앞에서 추태를 부리다니… 후회도 후회지만 야릇한 통쾌감이 몸에 퍼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무엇인가 가증스러운것을 치고 박고 때려부신듯 결국 쳐부신것이 남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건만 그래도 가슴이 후련했다. 엊저녁에 그는 곽씨, 리씨과 함께 대청에서 월드컵경기를 시청했다. 한국선수가 미국팀의 꼴문을 터뜨리자 붉은악마들의 함성이 천지를 진감했다. 준이도 열광의 기분에 감염되여 저도 모르게 머리를 내저으며 응원가를 따라불렀다. “어―코리아, 어―코리아… 짠짠 짠짠 짜아―” 하지만 곽씨는 조는듯마는듯 덤덤한 표정이였고 리씨도 강건너 불구경하는 식이였다. 준이는 혼자서 주책머리없이 떠들어댄것이 민망스러웠다. “자네들은 기쁘지 않은가? 저 꼴이 어떤 꼴인데…” 리씨가 비양거리듯 말했다. “이 아저씨 보기와 달리 무척 감정적이네… 그런데 아저씨, 이번 월드컵에 어렵사리 본선에 진출해가지구 소조경기에선 너무 맥이 없이 무너지더구만? 중국팀이 탈락하니 아저씨 심정은 어떠하시우?” 준이는 슬그머니 약이 올랐다. “그런데… 자네는 왜 그걸 물어보는가?” “궁금하니까… 하하하.” 준이는 대뜸 언성을 높였다. “임마, 너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거야?” “아따, 이 아저씨가… 우연히 한마디 물었는데 소리는 왜 질러요 소리는?” “네가 넘어졌을 때 누가 히죽거리면서 심정이 어떤가고 물으면 너 기분이 좋겠느냐?” “이 아저씨가… 너무 열정적으로 한국팀을 응원하니까 한국편인줄 알았더니 속은 완전히 중국편이네?” “임마, 나한테는 한국이 할아버지 같은 존재구 중국은 내가 나서 자란 모국이다. 내앞에서 중국을 비웃지 말아, 기분이 나쁘니까…” 리씨가 발끈했다. “이 아저씨가 너무 심각한거 아니야 이거? 내 말뜻은 그게 아니였다구…” 리씨는 얼굴을 잔뜩 찌프리고 텔레비에 눈길을 돌렸다. 준이도 다시 텔레비를 바라보았으나 한번 망가진 기분은 여전히 찜찜하기만 했다. 축구경기를 시청하면서 다른 사람과 다툰 일이 이번만은 아니였다. 80년대 초반, 그가 농촌중학교로부터 연길시 모 중학교로 갓 전근해왔을 때였다. 월드컵예선이였던지 아시아컵이였던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교원들이 회의실에서 남북축구팀의 축구경기를 시청하고있었다. 한국선수가 선꼴을 넣고 운동장을 달아다니며 세레모니를 펼치는데 앞에 앉았던 녀교원이 발딱 일어나면서 욕설을 퍼붓는것이였다. “저 남조선새끼, 수세미머리를 해가지구 무슨 지랄이야? 콱 뒤여나져라!” 준이는 저도 모르게 발칵 내쏘았다. “선생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지랄’이라니요?” 녀선생이 머리를 홱 돌리며 준이를 노려보았다. “미술선생님은 어느 편입니까? 예? 어느 편입니까?” “내사 어느 편이든 그쪽에서 말씀 좀 문명하게 하십시오.” 녀선생은 몸을 부르르 떨었고 눈에서는 불이 이글거렸다. “누구를 교육하자구 듭니까? 예? 누구를 교육하자구 드는가?” 녀선생이 분통을 터뜨릴만도 했다. 본과대학출신이며 공산당원이며 중점과목인 수학을 가르치는 교원으로서 통신대학출신이며 비당원이며 비인기과목인 미술을 가르치는 보잘것없는 교원한테 꼬집혔으니 어찌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겠는가. 다른 교원들이 그만 떠들라고 항의하자 녀교원은 자리를 박차고 회의실에서 나가버렸다. 어쨌든 그후부터 준이는 녀교원과 앙숙이 되였고 처처에서 불리익을 감수해야 했다… 곽씨는 끄덕끄덕 졸고있었고 리씨는 여전히 찌뿌둥한 얼굴이였다. 리씨는 서른아홉이라 했다. 본래 서울 어느 회사의 사무직이였는데 금융위기때 밀려나와 지금까지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있었다. 작년부터 여기에서 일하고있다는데 체력이 약해서 월급도 70만원 정도밖에 받지 못하고있었다. 가정을 서울에 두고있어 저녁마다 전화로 안부를 묻군 했다. 리씨는 여태까지 준이가 중국동포라고 로골적으로 야비한 태도를 취한적이 없었다. 오늘일도 따지고보면 얼마든지 롱담으로 얼버무릴수 있는 일이 아니였던가… 준이는 자기가 한국에 와서부터 마음이 비좁아지고 신경도 엄청 예민해지고있음을 느꼈다. 이래서는 안돼. 사람이 대범해야지. 준이는 자기의 실수를 술로 미봉하려고 들었다. “리씨, 한국팀승리를 축하해서 오늘저녁 내가 한턱 내지. 배달아가씨한테 핸드폰을 치게. 소주 세병, 돼지머리안주에 ‘말보루’ 한갑…” 얼마 되지 않아 배달아가씨가 주문한 술과 안주를 가져왔다. 곽씨는 몸을 아끼느라고 술을 얼마 하지 않았고 리씨는 술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주량이 변변치 못했다. 그러다보니 거의 준이 혼자서 취토록 마신것이다. 주절주절 쓸데없는 말을 많이 늘어놓은것 같았다. 누워서도 잠이 오지 않아 바깥으로 나간듯했다. 목적없이 헤매다가 길건너 마을에 올라가 뉘 집 대문을 두드리면서 악담패설을 늘어놓고… 돌아와서 그 자리에 꼬꾸라지고… 새벽녘인가 괴상한 꿈을 꾼것 같은데 무슨 꿈이였던지…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켜 대청으로 나왔다. 리씨가 후라이팬에 계란을 지지고있었다. “아저씨, 어제밤 어디 갔다 왔어? 배달아가씨 젖가슴을 보더니만 혹시 읍내 유흥업소로 간게 아니여?” “녀석이 아무 소리나…” 괄시를 당해도 할 말이 없지. 누가 그렇게 체신머리없이 술주정을 하라 했어… 리씨는 저쪽 방에서 혼자 자는데 불면증이 있어서 준이가 밤중에 바깥에 나갔다 온 사실을 모를리 없다. 준이는 뒤가 급하여 화장실로 들어갔다. 변기에 앉으니 지난밤 꿈의 정경이 어슴푸레 떠오르기 시작했다. 죽어서 하늘로 올라갔고… 웬 스님과 말다툼을 했고… 진허법사라는이와 많은 말을 주고받았는데 깨달음을 얻으라는 말외에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는다. 왜 생뚱같이 그런 꿈을 꾸었을가? 나의 일상은 불법이나 스님들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아마 새벽마다 들려오는 저 목탁소리때문에 그런 꿈을 꾼 모양이다. 대청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먹구 어떻게 일해? 젠장!” “아따, 식성에 맞지 않으문 저절로 해 자실거지… 여긴 주방장이 따로 없다니까.” “씨팔, 이따위 판넬은 처음 본다. 일찌감치 때려치워야지.” 준이는 대청으로 나왔다. 식탁에는 어제점심에 먹다 남은 밥과 김치, 장아찌 그리고 리씨가 금방 지져놓은 계란볶음 한접시가 달랑 놓여있었다. 여기서는 사장부인이 일군들의 식사를 점심 한끼만 책임졌다. 일용직들은 저녁에 돌아가면 그만이였지만 사무실에서 주숙하는 고정인부 세 사람은 아침과 저녁 식사를 저절로 해결해야 했다. 리씨는 아침식사를 보통 우유 한컵에 계란볶음으로 에웠고 준이도 묵은밥에 김치쪼각으로 대수 요기를 해왔다. 억대우같은 곽씨가 그들처럼 먹다가는 “밑천”으로 여기는 몸이 삐쳐내지 못할것은 뻔한 일이였다. 곽씨는 싱크대밑에 있는 박스를 와락와락 헤치고 라면 두봉지를 꺼내여 큰 그릇에 담고는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리고 계란 두개를 터쳐놓고 저가락으로 휘휘 젓고는 걸신 들린 사람마냥 후룩후룩 먹어대기 시작하였다. 식사를 금방 끝내자 박사장이 사무실에 들어섰다. 몸집이 야무지게 생긴 사십대 중반의 사나이였다. 얼굴은 함부로 생긴축이 아니였으나 그 얼굴에서 지성의 빛이라고는 찾아볼수 없었다. 아침에 인부들을 처음 보면서도 인사를 건네는 법이 없었다. 박사장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식탁을 한번 흘겨보고는 쏘파에 털썩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그쪽 벽은 통유리로 되여있어 공사장 저 먼곳까지 샅샅이 살펴볼수 있었다. 준이는 장갑을 주어 끼고 밖에 나섰다. 차소리가 나더니 승합차가 마당에 들어섰다. 일용직 인부 일여덟명이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작달막한 키에 낡은 군복을 입은 “아우”가 차에서 뛰여내리자마자 준이한테 “충성!” 하고 군례를 붙이였다. “형, 왜 두눈이 퉁퉁 부었어? 옳아, 엊저녁에 형수님생각이 나서 눈을 못 붙였다 이거지? 하하하…” 녀석은 웃을 때마다 성성이처럼 아래우 이몸이 벌겋게 드러난다. 이제 갓마흔이라는데 준이를 “형”이라고 부르는데는 그로서의 얄팍한 속셈이 있었다. 준이가 중국에서 왔다고 얼렁뚱땅 신부감이나 소개받을가 해서 치근거리는것이다. 제일 마지막에 파키스탄에서 온듯한 왜소한 젊은이가 차에서 내렸다. 사무실에서 나와 인부를 점검하던 박사장이 꽥 소리를 질렀다. “어이, 너 왜 또 바라왔어? 일솜씨가 통 숙맥이던데… 야! 너 바라가라. 내가 외국놈 돈벌이 시키는 사람이야?” 젊은이는 본래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서양사람들 본새로 어깨를 으쓱하며 팔을 벌려보았다. 박사장은 식지로 젊은이를 겨누었다가 손가락을 쫙 펴서 좌우로 흔들고는 이어 국사발의 파리를 날리듯 손을 훌훌 내저었다. 젊은이는 머리를 기우뚱하고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승합차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7    판타지 장편소설《진허》 (1) 댓글:  조회:1228  추천:0  2013-08-31
장편소설 진허 김극민 연변인민출판사 작가략력 1945년 연길시 출생 1983년 연변대학 통신학부 조선어문전업 졸업 1983년 단편소설 “박씨부인”으로 문단 데뷔 1984년 연변작가협회에 가입  2000년 연길시제10중학교에서 퇴직 발표작품으로는 단편소설, 수필 10여편 1 하늘이였다. 평생을 땅에 붙어 살면서 별로 쳐다보지도 않았던 하늘이였다. 그 하늘로 그는 둥둥 떠오르고있었다. 어느때부터 무슨 연고로 하늘로 올라가는지는 알수 없었지만 짜장 기분만은 좋았다. 내가 언제 이렇듯 가벼워진적이 있었던가. 홍모라도, 아니 티끌이라도 이토록 가벼울수는 없으리라. 하늘은 그저 높기만 했다. 이렇게 올라가다간 줄 끊긴 연처럼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할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니, 꿈이겠지. 아이적에도 지붕우나 나무꼭대기에 올라갔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꿈을 얼마나 꾸었다고… 오라지 않아 급작스레 추락하면서 꿈에서 깨여날것이다. 텅 빈줄로만 알았던 허공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법사님, 저자를 좀 보십시오. 자기가 죽은줄은 모르고 안방에서 꿈이나 꾸고있는것처럼 착각을 하고있습니다.” “생사의 법리를 모르고 죽는 인생이 얼마인데 새삼스레 가소롭다 하는거야?” 뭐라구? 누가 죽었다구? 설마 나를 두고 하는 소리야 아니겠지. 내가 왜 벌써 죽는단 말인가? 그럭저럭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 환갑을 넘기지 못했다. 비록 당뇨병을 앓고있지만 눈이 멀거나 발이 썩는 합병증까지는 오지 않았다. 술도 거침없이 마시고 담배도 걸싸게 피우지만 그렇다고 급살할수야 없지 않은가. 그는 말소리가 들려오는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누군가 다가오는듯했다. “부르셨습니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소승은 우곡이라 하옵는데…” “우곡이라? 어디서 듣던 이름 같은데…” “또 잠꼬대를 하시는군.” “스님은 읍내와 고개 하나 사이 둔 자그마한 산골마을에 계시지요. 돌담을 두른 전통가옥인데 솟을대문에 ‘우곡정사’란 현판이 걸려있고…” “네, 맞습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저는 그 마을앞에 있는 판넬에서 품팔이를 하고있습니다.” “오―라, 이제 보니 지난밤 우리 집에 와서 야료를 부리던 중국동포로구나.” “야료라니? 여보시오 스님, 말씀 좀 삼가하시오.” “야료가 아니면 무엇인가? 밤중에 술에 취해서 남의 집 대문을 쾅쾅 두드리고…” “불문은 중생을 구제하는 곳이라 믿고 고민거리나 좀 풀어보려고 찾아갔는데 왜 그렇게 문전박대를 하셨소?” “허허, 적반하장이라더니…” “내가 도둑놈이란 말이요?” “맑은 정신에 찾아오라구 몇번이나 말했나? 내 권고를 듣기는 고사하고 ‘온 세상이 다 취하고 나만 취하지 않았다’라구 허튼소리를 줴쳤지.” “허튼소리라니? 타마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중국말로 제밀할 놈이란 뜻이다.” “예끼 이놈, 여기 진허법사님이 계신다. 어느 존전이라구 감히 불공설화를 늘어놓는거야?” “진허가 다 뭐냐? 부처님앞이라두 나는 할 말은 다한다.” “녀석이 분명 술 처먹구 죽었구나.” 그가 뭐라고 응변하려는데 주위가 훤해지면서 누군가 다가오는듯했다. 형체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어딘가 거룩한 기품이 서려있어 그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황송해졌다. “혹시 부처님이 아니십니까?” “나는 진허다. 부처는 아니로되 일찌기 우주적인 섭리를 깨우친바가 있어 령계를 임의로 드나들고있노라.” 법사의 목소리는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마냥 은은했다. “법사님, 제가 죽었다는게 사실입니까?” “죽은것이 서러우냐?” “아닙니다. 서럽다기보다 왜 죽었는지 알고싶습니다.” “왜 살았던지는 알고있느냐?” “그건…” “넌 도대체 누구냐?” “김준이라고 합니다.” “네가 그 이름이냐? 아니면 그 이름이 너냐?” “네? 묻는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어디서 왔느냐?” “중국동폽니다. 불법체류중인데…” “허,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삶에 대한 집착은 여간 아니구나.” “아닙니다, 법사님. 저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곡이 참견했다. “보아하니 나살이나 먹은 사람 같은데 주책머리없이 술주정을 부리다니… 그게 사람답게 사는건가?” 준이는 발끈했다. “예끼 이놈, 넌 목탁을 쳐 번뇌를 쫓는다지만 난 술로써 번뇌를 푼다. 너 같은 중놈한테서까지 중국동포라고 무시당할줄은 몰랐다. 중국동포인데 어쨌단 말이냐? 고국이라고 찾아와서 뭘 공짜로 얻어가지려고 보채기나 한단 말이냐? 너희들이 죽어도 못 간다는 3D업종에서 더우기 각박하기 짝이 없는 로임을 받으면서 역축처럼 부림을 당하고있지 않느냐? 자기 동포를 차별시하는것도 부처님의 가르침이더냐?” 법사가 언성을 높였다. “이놈, 분주하다. 묻는 말에나 대답하거라. 너 중국에서 무슨노릇을 했더냐?” “청년시절에는 집체호에 내려갔고 그후엔 줄곧 중학교에서 선생노릇을 했습니다.” “‘집체호’라는건 무슨 늪의 이름이냐?” “아니, 저… 그런게 있었습니다. 모택동시대에 지식청년들이 로동인민의 재교육을 받으러 농촌에 내려가서 한가마밥을 먹었는데…” “불법은 언제 접했더냐?” “저는 불교를 믿지 않습니다. 유물주의도 믿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믿지 않습니다. 늘그막에 그저 개처럼 되였습니다.” “이놈, 너 참 말투가 상스럽구나. 그런 말투로 어떻게 학생을 가르쳤느냐?”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젠장! 법사님은 도대체 년세가 얼마길래 나보구 이놈저놈 합니까?” 법사가 허허허 크게 웃었다. “너 내 나이를 물었더냐? 거치장스러운 육신을 벗어버린후부터 내 나이는 우주의 생멸과 함께 한다… 우스운 놈 같으니라구.” 우곡이 측은하다는듯이 말했다. “자네 그렇게 격한 소리만 하는걸 보니 필경 로임을 제대로 받지 못한 모양이군. 판넬사장 박씨는 나와 한고향이네. 자네 일찌감치 나를 찾아왔더라면 로임을 제대로 받을수 있었겠는데…” “뭐라구? 이놈아, 내가 그까짓 돈 몇푼때문에 속에서 울화가 터번지는줄 아느냐? 이놈을 그저 단매에…” 그는 불문곡직 우곡이한테 달려들려고 했으나 어쩔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몸뚱이가 없었고 우곡이한테는 형체가 없었던것이다. “이놈들아, 령계에 와서까지 티각태각 싸움질이냐?” “저는 본래 례의를 지키려구 했는데 저 우곡인지 쇠귀신인지 하는자가 먼저 걸구들었습니다.” “야! 이 되놈 같은 녀석아. 네놈이 먼저 나한테 ‘타마디’라구 욕설을 퍼붓지 않았나?” “되놈이라니? 예끼 이놈, 누가 뭐라 하든 나 어엿한 배달민족의 후손이다.” 법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만하지 못할가? 너 중국에서 왔단 놈은 무슨 원한이 그리 많아 죽을둥살둥 모르고 발광하는거냐?” “아니, 발광이라니요? 가재는 게편이라더니 법사님두 저 녀석과 한통속입니다그려.” 우곡이 낮은 목소리로 쏙닥거렸다. “그저 우연히 술에 취한 놈이 아니고 진짜… 진짜로 미친 놈입니다. 법사님, 더 큰 욕을 보기전에 자리를 피함이 어떠하신지요? 천자도 술 취한자를 피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다. 저자가 비록 행실이 어수선하고 말투가 거칠지만 선근(善根)은 있어보인다. 내 저자하구 할 말이 있으니 너는 세상으로 내려가거라.” “네.” 우곡이 자취없이 사라지는듯했다. 법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죽었다는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구나. 술 먹고 그리 되였으니 자업자득이니라.” 그는 화가 치밀었다. “여보시오, 펀들펀들 살아있는 사람을 왜 자꾸만 죽었다고 밀어붙이는겁니까? 내가 진짜로 죽었다면 어떻게 사유를 하고 말을 할수 있겠습니까?” “삶의 관성이니라. 좀 지나면 무주고혼이 되여 망망한 령계를 속절없이 떠돌다가 그대로 사라질것이니라.” 내가 정말 죽었단 말인가. 자기도 언젠가 죽을 때가 있다는것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이렇듯 갑작스레, 예고도 없이 죽어버릴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저승길이란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수 없는 길. 속담에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했고 산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고 했다. 삶을 바라고 죽음을 싫어하는것은 인간뿐만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본성이 아닌가. 너는 어찌하여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귀중하게 건사하지 못하고 이렇듯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는가… 생전에 그는 죽은후의 거취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천당이나 지옥이 있다는것도 믿지 않았다. 설사 그런것이 있다고 해도 평소에 적선한 일도 없었으니 천당은 자격미달일것이고 막로동판에서 술 처먹고 덜컹 죽어버렸으니 영낙없이 지옥에나 끌려갈것이다. 18층지옥 어딘가에 전문 술주정뱅이를 취체하는 부서가 있다던데… 젠장, 죽은 놈이 톱에 잘리우면 어떻고 매돌에 갈리우면 어떻고 불에 그슬리면 또 어떻단 말인가… 악형은 두렵지 않았다. 그저 한번밖에 없는 인생을 살면서 자기의 가치를 발휘하지 못했다는것이 한없이 아쉬울뿐이였다. “너 무엇이 억울해 그러느냐?” “그저 억울한것이 아니라 원통하기 그지없습니다.” “세상에 뭐 두고 가기 아까운것이라도 있느냐?” “그런건 없습니다. 워낙 쌓아놓은 재물도 없고 명예도 지위도 없는 놈이니까요.” 법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수천수만의 령들이 허공에 떠오르고있다. 죽음의 리유도 천차만별이겠지만 모두 나하고는 인연이 없는 령들이니라. 유독 너의 령만이 범상치 않는 빛갈을 내비치므로 래력을 소상히 묻게 되였노라. 천기(天机)는 예리한데 어이하여 인생이 다하도록 무명(无明)에서 헤매고있느냐? 아직 천수(天寿)를 다하지 못했음을 가엾이 여겨 내 너를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고저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에 번거로운 일상에 집착하지 말고 큰 깨달음을 얻도록 하라.” 이어 법사님은 무엇이라고 중언부언했지만 한마디도 알아들을수 없었다. 갑자기 주위가 칠흑처럼 어두워지면서 그는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어찌도 빨리 떨어지는지 어지럼증이 나고 숨이 콱콱 막히였다. “악!” 하는 비명소리가 저절로 터져나왔다.  
6    판타지 장편소설 “진허” 련재를 시작하며 댓글:  조회:1181  추천:0  2013-08-29
판타지 장편소설 “진허” 련재를 시작하며 리얼리즘 문학의 독주와 그 위세에 눌렸던 문학의 판도가 여러 쟝르소설의 성장과 각광으로 달라지는 오늘날의 문학시장이다. 시대가 바뀌고 독자층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중국문단 내지 세계문단에서 쟝르문학이 블루오션(잠재력을 가진 시장)으로 주목받고있다. 김극민의 장편소설 “진허”는 그러한 조류에 편승하여 판타지수법을 차용(借用)한 장편소설이라는데서 문단의 주목을 받고있다. 30여만자 편폭의 소설에서 작자는 자신의 몸속의 또 다른 나- "진허"라는 인물을 끄집어내여 그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을 소급(溯及)해 본다. 본연의 아름다움을 숭상해왔던 질박한 꿈과 위선으로 가득찬 현실의 대결구도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새로운 각도로 보여준 판타지수법이 적절하면서 매력적이다. 김극민 소설가는 1945년 연길시에서 출생, 1983년 연변대학 통신학부를 나온 뒤 붙박이로 교육사업에 종사해왔다. 1983년 처녀작 단편소설 "박씨부인"을 출간하면서 문단데뷔, 그 처녀작으로 "연변문예” 문학상을 수상했다. 량보다는 질에 집착하고 겸허로 자신을 낮추면서 여태까지 함부로 남들 앞에 나서지 않았고 문단구석에서 묵묵히 본분을 지켜온 김극민 소설가는 퇴직한후 장편소설 "진허"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만년에 장편하나 쓰기 위하여 25년간 문단에 이름을 걸어놓고 와신상담을 해왔는지도 모르겠다.”고 작자는 피력한다.  너무 파격적인 작품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한때 창작을 포기하기도 했지만 낡지않은 감각으로 “문학의 기본이 되는 주제나 서사방식의 독특성, 창조적상상력”이 짙은 남다른 작품을 만들겠다는 아집으로 “진허”를 출간해 내기에 이르렀다. 요즘의 문학시장과 문학풍토에서 사재를 털어 자비출판을 하고 그 작품을 서점가에서 조선문 소설은 팔리지  않는다면서 받아주지 않는 실정에서도 작가는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계속 책을 쓸것이며 쓸뿐만 아니라 서점을 대신하여 책을 등짐에 지고 행상노릇을 할 생각까지 난다”는 그다. 궁벽한 문단이지만 아직도 "배부른 돼지보다 굶주린 소크라테스가 되려는 사람이 그래도 얼마간 남아있을것을 믿는다”고 작자는 말한다. 판타지와 일상이 뒤섞인 몽환적인 스타일이 인상적인 작품, 아직 “진허”의 성공여부에 대한 진단에 앞서 용이한 창작에 안주하지 않고 문학의 외길을 고집하는 작가의 참된 창작자세의 진가를 높이 사고싶다.  
5    추 천 사 (5.17~ 5.24) 댓글:  조회:837  추천:25  2010-05-17
추 천 사일전, 김극민 장편소설《진허》출간기념회가 열렸다.장편소설《진허》는 판타지라는 새로운 문체수법을 차용한 한편의 수작(秀作)이다.  김극민 소설가는 1945년 연길시에서 출생, 1983년 연변대학 통신학부를 나온뒤 붙박이로 교육사업에 종사해 왔다. 1983년 처녀작 단편소설 \"박씨부인\"을 출간하면서 문단데뷔, 그 처녀작으로 \"연변문예” 문학상을 수상했다. 량보다는 질에 집착하고 겸허로 자신을 낮추면서 여태까지 함부로 남들앞에 나서지 않았고 문단구석에서 묵묵히 본분을 지켜온 김극민 소설가는 퇴직한 후 장편소설 \"진허\"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만년에 장편하나 쓰기 위하여 25년간  문단에 이름을 걸어놓고 와신상담을 해왔는지도 모르겠다.”고 작자는 피력한다.    궁벽한 문단이지만 아직도 \"배부른 돼지보다 굶주린 소크라테스가 되려는 사람이 그래도 얼마간 남아있을것을 믿는다”고 작자는 언젠가 자신의 소신을 밝힌적 있다. 아직도 마를줄 모르는 감성으로 스타일이 인상적인 작품창작에 주력하고있는 작가,  용이한 창작에 안주하지않고 문학의 외길을 고집하는 참된 창작자세를 이순의 작가는 오늘도 보여주고있다. 문학닷컴 편집국  
4    김극민 장편소설 《진허》출간기념식 열려 댓글:  조회:782  추천:14  2010-05-17
김극민 장편소설 《진허》출간기념회 열려     출간기념회 전경   김극민 장편소설《진허》출간기념회가 5월 15일, 연길시명원다방에서 열렸다. 연변작가협회 소설창작위원회의 주최로 열린 출간기념회에는 소설가, 매스컴 기자들과 김극민작가의 친우,친지 30여명이 참석했다. 장편소설《진허》는 판타지수법을 차용한 새로운 문체수법으로 자신의 몸속의 또 다른 나- \"진허\"라는 인물을 끄집어내여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을 되짚어본 수작(秀作)이다.  김극민 소설가는 1945년 연길시에서 출생, 1983년 연변대학 통신학부를 나온뒤 붙박이로 교육사업에 종사해 왔다. 1983년 처녀작 단편소설 \"박씨부인\"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그 처녀작으로 \"연변문예” 문학상을 수상했다. 량보다는 질에 집착하고 겸허로 자신을 낮추면서 묵묵히 본분을 지켜온 김극민 소설가는 퇴직한후 장편소설 \"진허\"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만년에 장편하나 쓰기 위하여 25년간  문단에 이름을 걸어놓고 와신상담을 해왔는지도 모르겠다.”고 작자는 피력한다. 한편 이번의 출간기념회는 이례적으로 다방에서 열려 이슈를 빚었다.연변작가협회 소설창작위원회 주임 김혁 소설가는 “작가들이 작품을 자비로 출판해야하는 요즘의 출판 풍토에서 출간기념식까지 열려면 그에 끼치는 부담이 아주 큰데 극히 적은 저가로 문학의 높은 진가를 사려는 취지에서 다방문화와 문단행사의 접목을 시도, 금후 이러한 시효성있는 활동을 기동성있게 자주 조직하겠다”고 이번 행사의 의취를 밝혔다.   김미란기자 \"종합신문\" 2010년 5월 17일       사회를 보는 연변작가협회 소설창작위원회 주임 김혁 소설가   작품을 연변작가협회에 증정     소감을 발표하는 김극민 소설가     소설가들의 합영  
3    몽환적 판타지의 적절한 차용 댓글:  조회:821  추천:22  2010-05-17
 . 서평 .  몽환적 판타지의 적절한 차용 - 김극민 장편소설 “진허”  김 혁   리얼리즘 문학의 독주와 그 위세에 눌렸던 문학의 판도가 여러 쟝르소설의 성장과 각광으로 달라지는 오늘날의 문학시장이다. 시대가 바뀌고 독자층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중국문단 내지 세계문단에서 쟝르문학이 블루오션(잠재력을 가진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전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된 김극민의 장편소설 《진허》는 그러한 조류에 편승하여 판타지수법을 차용(借用)한 장편소설이라는데서 출간되자 문단의 주목을 받고있다. 30여만자 편폭의 소설에서 작자는 자신의 몸속의 또 다른 나- \"진허\"라는 인물을 끄집어내여 그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을 소급(溯及)해 본다. 본연의 아름다움을 숭상해왔던 질박한 꿈과 위선으로 가득찬 현실의 대결구도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새로운 각도로 보여준 판타지수법이 적절하면서 매력적이다.김극민 소설가는 1945년 연길시에서 출생, 1983년 연변대학 통신학부를 나온뒤 붙박이로 교육사업에 종사해 왔다. 1983년 처녀작 단편소설 \"박씨부인\"을 출간하면서 문단데뷔, 그 처녀작으로 \"연변문예” 문학상을 수상했다. 량보다는 질에 집착하고 겸허로 자신을 낮추면서 여태까지 함부로 남들앞에 나서지 않았고 문단구석에서 묵묵히 본분을 지켜온 김극민 소설가는 퇴직한 후 장편소설 \"진허\"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만년에 장편하나 쓰기 위하여 25년간  문단에 이름을 걸어놓고 와신상담을 해왔는지도 모르겠다.”고 작자는 피력한다.  너무 파격적인 작품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한때 창작을 포기하기도 했지만 낡지않은 감각으로 “문학의 기본이 되는 주제나 서사방식의 독특성, 창조적상상력”이 짙은 남다른 작품을 만들겠다는 아집으로 “진허”를 출간해 내기에 이르렀다. 요즘의 문학시장과 문학풍토에서 사재를 털어 자비출판을 하고 그 작품을 서점가에서 조선문 소설은 팔리지  않는다면서 받아주지 않는 실정에서도 작가는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계속 책을 쓸것이며 쓸뿐만 아니라 서점을 대신하여 책을 등짐에 지고 행상노릇을 할 생각까지 난다”는 그다. 궁벽한 문단이지만 아직도 \"배부른 돼지보다 굶주린 소크라테스가 되려는 사람이 그래도 얼마간 남아있을것을 믿는다”고 작자는 말한다. 판타지와 일상이 뒤섞인 몽환적인 스타일이 인상적인 작품, 아직 “진허”의 성공여부에 대한 진단에 앞서 용이한 창작에 안주하지않고 문학의 외길을 고집하는 작가의 참된 창작자세의 진가를 높이 사고싶다. 문학 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연변일보\" 週刊 \"종합신문\" 2009 11- 2
2    김극민장편소설 《진허》출간 댓글:  조회:751  추천:23  2010-05-17
김극민장편소설 《진허》출간김극민의 장편소설 《진허》가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였다. 32만자에 달하는 이 소설은 환타지수법을 사용하고있다. 작자는 자신의 몸속의 또 다른 나-\"진허\"라는 인물을 끄집어내 그에게 신통력을 부여하며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을 되짚어본다. 또한  \"진허\"와의 대화를 통해 진리와 사이비, 선과 악 그리고 본연의 미를 숭상해왔던 자신의 꿈과 거짓으로 가득찬 현실... 이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며 과연 어떤것이 옳은것이고 어떤것이 그른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연변일보 / 2009년 09월 11일
1    25년 문단경력을 자축하면서 댓글:  조회:812  추천:19  2010-05-17
 25년 문단경력을 자축하면서 김극민 1983년 처녀작인 단편소설 \"박씨부인\"이 \"연변문예문학상\"을 수상한 덕분으로 나는 그 이듬해 연변작가협회에 가입하게 되였다. 돌이켜 보면 장장 25년동안 문단행사에 참가한 차수가 고작 서너차례밖에 되지않는다. 지난 세기 80년대 \"연변일보\"에 발표한 단편소설이 3등상에 뽑혀 시상식에 한번 참가했고 90년대 초, 밀산 필회에 한번  참가한 적이 있고 지난해 \"지용제문학상\"시상식에 ,금년초 \"석화컵문학상\" 시상식에 참가했을 뿐이다. 물론 작가협회로부터 거의 해마다 통지는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 회비를 납부하라는 통지였지  회의통지는 아니였다.회비통지를 받기만 하면 나는 만사를 젖혀놓고 작가협회로 달려가  회비를 납부하군 했다,금년에는 명년회비까지 앞당겨 바쳤으니 회비를 납부하는데 들어가선 그야말로 나만큼 열성적인  회원도 드물것이다. 어느핸가 요행 연말총결대회에 참석하라는 통지를 받았다.하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오래동안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는데 무슨 면목으로 작가님들을 대하겠는가 하는 생각때문이였다.예나 지금이나 나는 작가로서 글을 쓰지 않고 지꿎게 문단일에 삐치거나 오래전에 중편이나  단편소설 얼마간 썼다고 마치 대문호나 된것처럼 허장성세하는 사랑을 곱지 않게 본다. 작가협회에 가입해서부터 지금까지 신문, 잡지에 발표한 단편소설, 수필을 박박 긁어모아도 10편 되나마나하다. 그나마 스스로 만족할만한 작품을 꼽으라면 \"88서울 올림픽\" 개막식 감상  \"손에 손잡고\"와 \"선우태성\"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단편소설 \"미의 고뇌\"뿐이다. 이렇듯 저조한 실적으로 어찌 문단의 중시를 받겠는가. 자신의 문학적기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것을 잘 알기에 여태까지 함부로 남들앞에 나서지 않았고 문단구석에서 묵묵히 본분을 지켜왔다. 퇴직한 후 약 5년이 지나서부터 나는 장편소설 \"진허\"를 구상하기 시작했다.어찌보면 만년에 장편하나 쓰기 위하여 25년간  문단에 이름을 걸어놓고 와신상담을 해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파격적인 작품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한때 창작을 포기하기도 했다.평범한 퇴직로인답게 마작도 놀고 무도청도 다니면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야지 고생을 사서 할건 뭔가.그래서 제멋대로 놀아나기도 했는데 놀아날수록 마음은 허전해지고 불안하기만 했다.괴롭기는 하지만 자기 인생가치를 실현함에 있어서 문학창작을 내놓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것을 깨달았다.하여 다시 창작에 몰두했던것이다. 다 알다시피 주제나 서사방식의 독특성, 창조적상상력 등은 문학의 기본이다. 출판사 편집부에서\"진허\"의 작품성을 충분히 인정하기에 나도 자비출판을 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돈이 만만치 않게 들었지만  자기의 인생가치를 실현했다는 성취감으로 가슴이 뿌듯했다.하지만 책이 나와서부터 성취감은 눈녹듯 사라지고 전례없는 고뇌를 맛보게 되였다.단 500부를 출판하면서 응당  기증해야 할 분들께 절반가량 기증했는데 나머지는 처리할 방도가 없었다.서점에서 조선문 소설은 팔리지  않는다면서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렇게 혼나고도 또 책을 쓰겠는가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대답하겠다.계속 책을 쓰겠다고. 책을 계속 쓸뿐만 아니라 서점을 대신하여 책을 등짐에 지고 행상노릇을 할 생각까지 난다.우리 연변의 각 현,시와 궁벽한 시골 어딘가에 아직도 \"배부른 돼지보다 굶주린 소크라테스\"가 되려는 사람이 그래도 얼마간 남아있을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연변문단을 일컬어 \"명인은 많되 명작은 없는 \" 문단이라고 비꼬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더우기 요즘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전례없는 논쟁을 두고 문단을 지독한 말로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문단의 실태야 여하하든 나는 연변문단을 떠날수 없다. 나는 연변사람이기 때문이다.중견작가, 저명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소박받고 외면당하더라도 연변문단은  내가 의지할수 밖에 없는 유일한 문단이다. 계속 성실하게 회비를 낼것이며 작가의 본직업무인 창작에 정진할것이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