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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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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570 ]

1570    사투리는 향토인의 살과 피이자 호흡이다... 댓글:  조회:1452  추천:0  2022-06-08
예술 속 사투리-1.박목월과 사투리詩 이채근 기자  매일신문  2021-01-29        가 가 사투리는 향토인의 살과 피이자 호흡이다   경주에 있는 목월문학관의 박목월 생가 그림. 그의 생가는 건천읍 모량리에 있다. 시인 박목월       1.박목월과 사투리詩 일반적으로 언어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은 매우 낮다. 언어예술의 전문가들이나 이러한 언어의 미묘하고 섬세한 측면에 눈을 돌릴 뿐이다. 사투리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사투리를 단순히 중심과 주변의 차이로 인식하거나 한낱 흥미 차원에서 희화화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언어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려 없이 나온 얕은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어를 단지 기능적 차원에서만 다룰 수 없다. 정보와 의사 전달 도구로서 뿐만 아니라 정서적 울림을 전하는 주요한 수단이 언어다. 지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표준어는 기능적 측면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대로 살아온 향토민의 삶과 그 내면의 기질과 성정을 전달하려면 반드시 사투리를 통해야만 가능하다. 기실 사투리는 정신적 판단 이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겨울밤 '할무이'가 내오시던 배추적과 저녁상의 들깨 듬뿍 뿌린 뭇국의 맛을 어찌 사투리와 따로 떼어낼 수 있으랴. 그러므로 사투리는 향토민의 피와 살이요 호흡이라 할만하다. 일찍이 이러한 사실에 착안한 박목월 시인은 1960년대 후반 시집 '경상도 가랑잎'을 중심으로 경상도 사투리 시의 미학에 천착했다. 박목월 시인은 「사투리」라는 시에서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라고 노래했다. 나긋나긋하고 애교 넘치는 말씨로 부르는 오빠라는 말 대신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섹트로' 부르는 오라베라는 말! 이 막막하고 아득한 정서적 울림을 어찌 표준말이 감당할 수 있으랴.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박목월 시인은 초기에 민요적 리듬과 감각적 이미지로 환상적인 자연의 세계를 탐구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소소한 일상의 삶을 녹여낸 일상시 계열의 시를 거쳐 196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경상도 사투리와 경상도 식 삶의 이면을 더듬는 일에 몰두했다. 많은 시인들에게 고향의 정서와 미학이 시적 소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투리를 외면하고 고향의 정서와 미학을 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해 경상도 사투리는 경상도 미학을 시에 담는 데 필요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래서 박목월 시인은 '사투리'란 작품을 통해 경상도 사투리의 맛을 시로 형상화했던 것이다. 이 작품 이후 그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자신의 시 속에 적극 활용했다. 특히 고향의 삶을 노래할 때는 경상도 사투리의 어감과 분위기에 크게 의존했다. 그에게 고향 사투리의 예찬은 곧 고향에 대한 예찬과 그리움이 된다. 경상도 사투리는 거칠고 시끄럽다. 시인은 이를 '왁살스럽다'란 말로 표현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 왁살스러움 뒤에 숨겨진 혹은 그 왁살스러움 속에 들어 있는 순박하고 포근한 정서를 기린다. 굳세고 의연하나 질박하고 담박한 기질이 경상도 사람 본연의 성정이다. 겉으로는 무뚝뚝하나 그 안에는 따스한 인정을 품고 있는 사람들. 박목월 시인은 이러한 경상도 정서를 사투리로 절묘하게 구현해냈다. 박목월의 시 중에서 사투리가 많이 활용된 작품은 '눌담', '적막한 식욕', '치모', '만술아비의 축문' 등이다. 하지만 박목월 시인의 경상도 시편의 정수는 '이별가'가 아닌가 한다. 청천벼락 같은 아우의 죽음을 맞이한 지극한 슬픔과 그 극복과정을 노래한 시다. 이 시를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는 이유는 경상도 사투리의 특징인 성조(聲調)를 활용해 동일한 시어에서 여러 감정을 전달했다는 점이다.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이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을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이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박목월, 「이별가」 전문 이 시의 특징은 언술방식이 대화체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청자가 없는 독백체이지만 단순한 독백이 아니다. 상대가 바로 눈앞에 있듯이 말을 붙여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뭐락카노'와 '오냐'의 대화 반복을 통해 죽음을 수용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태도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 시에서 '뭐락카노'는 8차례에 걸쳐 나타난다. 1연과 3연, 5연, 8연에 사용된 '뭐락카노'는 경상도 성조를 사용해 같은 단어이지만 충격적 죽음에 대한 부정, 죽음에 대한 푸념, 죽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체념,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얻은 후 죽음을 납득하고자 하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표현해낸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단순히 사투리의 어휘나 종결형 어미를 활용해 시를 짓는데 반해 박목월 시인은 경상도 사투리의 특징인 성조를 통해 시적 주체의 감정을 표현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좋은 문학은 내용과 형식이 완전히 밀착된 상태를 꿈꾼다. 향토성을 담은 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투리만 쓴다고 향토시가 되는 일이 아니고, 향토의 풍물이나 인물을 찾아 그려낸다고 좋은 향토시가 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질과 성정을 제대로 품어야 경상도 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문학의 재료인 언어와 사투리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글 장옥관 시인  
1569    나는 어떻게 조선족이 되었나 / 남영전 댓글:  조회:1085  추천:0  2021-12-20
나는 어떻게 조선족이 되었나             남영전 심금을 울리는 제목이다 나의 친혈육의 한많은 생명으로 엮은 이야기다 그러나 갖은 풍상고초를 다 겪은 할머니는 담담한 어조로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할머니 생전에 준확한 이주시간을 확인했어야 하는데 할머니의 그 아픈 상처를 더 다치는 것이 두려워 더 캐어묻지 않았다 지난 20세기 40년대 직전인 것은 틀림없다   원적이 경북선산 도개면 궁기동 일제의 만행을 피해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버지, 삼촌, 두 고모를 데리고 만주땅에 들어와 정착한 곳은  길림성 휘남현 대의산향 소의산촌    다행인 것은 산골사람들 마음이 후하여 이국사람이라고 진심으로 도와주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언어도 소통되어 마음 놓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제의 그림자는 언제나 그들의 뒤를 따랐다 광복직전 일제의 731세균전 실험으로 털없는 쥐가 마을에 나타나더니 심한 쥐병이 돌아 3일안에 할아버지와 두 고모가 어쩔새없이 목숨을 잃었다   광복후의 중국해방전쟁 삼촌이 먼저 참군하여 사평전쟁에서 전사하였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5개월 되던 때에 아버지가 또 참군하였다 아들의 얼굴이 궁굼하다고 편지왔기에 할머니가 나를 안고 어머니가 옆에 선 나의 백일사진을 아버지의 부대로 부쳤고 아버지는 전우들과 찍은 사진을 집으로 보내왔었다 어버지의 붓글씨가 참으로 멋지다는 것이 어릴 때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유일한 인상이다   두살때 나는 병으로 할머니와 어머니의 속을 태웠다 여러 의사를 찾아보았고 온갖 약도 효험이 없어 하루하루 위중한 상태였다 누군가 알려주었다 20리 떨어진 어느 곳에 점 잘 치고 병 잘 보는 한 노파가 있다고 하였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나를 번갈아 업고 그 험한 20리 산고개를 넘어 그 노파의 댁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기중인데 노파는 포대기에 쌓인 나를 보지도 않고 금방 들어선 아이가 위중하니 이 아이부터 봐주자고 하면서 마을서북쪽 산모퉁이에 조그마한 산신당이 있지 않는가고 물어 그렇다고 하니 방법을 알려주었다 만약 이 방법이 효험이 없으면 이 아이는 희망이 없다고 하였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급히 집에 돌아와 준비를 하였다 할머니는 그 산신당 앞에 제물을 차려놓고 노파가 시키는 말을 외웠다 두 발과 두 날개가 묶였지만 살아 생생하던 장닭은 빨간 벼슬이 점점 흑색으로 변하더니 골골골, 골골골, 골골골 세마디 소리를 내더니 그만 숨을 거두었다 할머니가 집에 돌아와 보니 나는 눈을 떴고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렸다 한참후에는 미음을 받았다   내가 5살때 아버지가 전사했다는 비보가 날아왔다 할머니는 이제 하늘이 무너졌다 몇년사이에 친인 다섯을 앞세워 이제는 자신도 그들 뒤를 따르기로 비장한 결단을 내렸다 그 추운 겨울밤에 바줄을 쥐고 눈덮힌 뒷산에 올랐다 마지막 담배 한대를 태우는데 사람없는 산속에서 큰 고함소리가 울렸다 “손자가 지금 울고 있는데 여기서 무슨 짓이냐고!” 분명 할아버지의 노여움이었다 할머니는 너무도 놀라 바줄을 버리고 급히 집에 들어서니 나는 이불을 차던지고 울고 있었다고 하였다 할머니는 나를 안고 울면서 내가 20살때까지 홀로 밥을 찾아먹을 때까지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였다고 한다 내가 철이 든 다음 할머니는 나의 어릴 적의 일을 들려주면서 “세상사란 참으로 신기하다 사람이 착하게 살면 하늘이 돕는다”고 말하였다   어릴적 나의 흥취는 할머니의 옛말을 듣는 일이였다 전기 없는 산골마을 밤마다 희미한 석유등잔 밑에서 할머니의 옛말에 나는 밤가는 줄을 몰랐다 할머니의 할머니의 별명이 동네 옛말할매라고 하였다 할머니는 그 많은 옛말을 머릿속 보따리에 다 거두어 넣었기에 할머니의 옛말은 끝이 없었다   내가 8세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할 나이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100여리 먼 현성에 들어와 남의 집 뒷방살이를 하였다 나는 할머니가 나를 위해 새로운 고생이야기를 엮는 것을 보면서 어린 나이지만 늘상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1971년,  23세때 나는 할머니의 옛말덕분에 시를 엮어 중국문단에 데뷔하였다 하지만 그 특수시기 문학의 의미에서 나의 시는 시가 아니었다 1979년 새시대가 열리면서 나의 시는 시의 본연으로 돌아왔다 1983년, 장춘의 나의 문학은사는 나의 진보를 기뻐하여 현성에 있는 나의 집을 방문하였다 3일후, 은사가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자네 할머니는 참 대단한 분이야, 자네가 할머니를 쓰지 않으면 시인자격이 없네” 은사의 지적과 기대는 나를 크게 깨우쳤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할머니, 아버지, 삼촌을 기리는 서사시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연이어 두차례 전국적인 대상 길림성정부의 최고문학상을 받아 조선족시인의 신분으로 중국주류문단에 서게 되었다   시인은 항상 자신을 초월해야 한다 시의 활력은 새로운 창조에 있다 1985년, 그때 나의 시는 나 개인의 고봉이었다 이다음 나의 창신이란? 이다음 나의 돌파란? 환희와 박수가 끝난 다음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때 사르트르가 나타났다 프랑스 존재주의 철학대가 그는 생명의 마지막순간 일생의 철학추구를 회고하여 이란 절절한 유서를 남겼다 “오늘날 우리는 반드시 토템식 형제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신화이지만 하나의 진리이다” 그러지 않아도 나는 토템미학책을 읽고 자연과 인간 혈연관계의 예술표현인  토템미학에 흥취를 가졌는데 사르트르의 말에 나는 눈이 번쩍 띄었다 토템을 시적대상으로 새로운 장르 토템시를 창조해야 한다는 방향을 잡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민족씨족들의 토템을 찾는 길에 나서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신화의 고향이라 불리우는 《삼국유사》를 파고 들었다 할머니의 서민신화가 일연의 왕실신화와 한줄에 이어지는 것을 보면 민족문화뿌리를 캐는 것이 어쩌면 나의 숙명이었다 일연의 왕실신화를 하나하나 캐어보니 이전에 그냥 보통신화라고 한 것이 확실한 토템신화였다 토템정의가 이것을 말해준다 토템정의 4요소는  토템탄생, 토템표지, 토템수호, 토템전환 그 어떤 자연물체 덕분에 세상에 나오게 된 시조는 그 고마운 물체의 상징을 자신의 성씨와 이름으로 하였다 그 고마운 물체는 또 조상과 후대를 끝까지 보호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 물체로 돌아가고 생전에 필요하면 잠시 그 물체로 변했다가 돌아온다 이 신비한 물체가 곧 조상신, 토템이었다 일연의 왕실신화는 토템정의 이4요소가 완벽하고 생동하므로 진귀한 토템신화였다 일연의 토템신화에서 토템이 하나하나 나타났다 나는 그 토템을 하나하나 깨닫는 작업에 들어갔다 보통 4, 5개월 하나의 토템을 지속적으로 깨닫다보면 한수의 토템시가 나온다 제목을 보면 영물시와 토템시는 구별이 안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영물시는 그 물체에 그 어떤 정서를 표현하고 그 어떤 뜻을 기탁하지만 토템시의 이 물체는 승화된 조상신이기에 그 물체의 형태와 특징을 빌어 조상들의 정신경지와 추구를 상징수법으로 표현하기에 과거, 현재, 미래가 이어진다 시의 표현방식은 고전과 현대의 결합이었다 1986년부터 집필에 들어가 1987년 9, 10월호 《시인》전문지에 제목으로 토템조시 달, 곰, 학, 사슴 4수가 톱자리에 크게 나갔다 주류문단의 비평가들은 박수를 쳤다 새로운 형식 새로운 내용 새로운 시탐구라고 신문지면에서 열을 올렸다   2003년 6월 중남민족대학 추건군교수가 사천대학 등 4개 대학 련합으로 나의 토템시 세미나를 가졌다 그해 8월 42수의 토템시집 《원융》 출판 2004년 7월, 율원소적 저서 《남영전 토템시 감상》 출판 2005년 10월, 율원소적 편찬 시서화집 《시서화의 시대 공진》 출판 2006년 3월 북경 수도사범대학에서 “남영전 토템시 연구”세미나 진행 논문집 《남영전 토템시 연구》(1월) 전각집 《남영전 토템시 지구인》(8월) 2007년 또 3권의 관련도서 출판 논문집 《남영전 토템시 탐론》(4월) 논문어록집 《남영전 토템시 정수》(6월) 마명규 저서 《남영전 토템시학》(12월)   주류문단의 토템시열과 달리 조선족문단은 시야비야의 쟁론이 인터넷공간을 채웠다 일찍 한국도서상 저서 《중국 조선족문학의 어제와 오늘》의 저자 한림대학 정덕준교수는 남영전토템시를 어떻게 보는가의 주제로 2008년 6월 장춘에서  장춘사범대학과 공동으로 한중세미나를 가져 한국측에서는 서지월시인, 김영미교수가 논문 발표 2009년 12월, 한국에서 3차례 세미나 진행 부산 부경대학 세미나 울산 울산문화원 세미나 진주 한국국제대학 세미나   근간에는 조선족문단에 토템시비평가 한분이 나타났다 그는 작가 현춘산선생(1950--) 교원출신으로 장편소설 1부와 수필집 2권을 출판한 그는 중국고전문학을 즐겨읽기에 또 수편의 중국역사소설을 발표 시야비야하는 토템시 정체가 궁금하여  2018년에 하성량의 토템저서 《토템과 중국문화》(666페지)를 세번이나 정독하고 일연의 《삼국유사》 이어령의 《한국문화상징사전》 등 관련자료를 파고들어 끝내 토템학설을 깨달았다 현춘산선생의 해설문은 김창영시인의 공감으로 2020년 6월부터 《료녕신문》 화요일 문화판에 매기 한편씩 2021년 6월까지(평론 포함) 일년동안 연재되었다 이 기간의 해설문은 주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토템을 근거로 남영전 토템시이에 등장한  토템은 우리 민족 여러 씨족들의 토템이란 것을 증명하여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소하였다 지금은 또 영물시와 토템시의 구별점의 궁금증을 풀기 위하여 남영전 토템시 상징이미지 해설문을 위챗에 올려 독자들의 환영을 받는다   2020년 4월《길림신문》이 펼친 ‘문화를 말하다’ 시리즈에서 나는 을 말하면서 우리 민족의 시조는 호가 단군(坛君)이고 이름이 왕검(王俭)이라 하였더니 한 독자가 펄쩍 뛰었다 “단군은 이름이고 왕검은 왕의 호칭인데 무슨 동화같은 얘기냐고?” 생각밖의 반문에 나도 놀랐다 단군의 호와 이름이 나의 머릿속에 뚜렷하게 새겨진 것은 35년전인 1985년이었다 토템시를 목적으로 단군신화를 파고들 때 ‘단군왕검(坛君王俭)’ 네글자에 호와 이름을 고증하였다 ①일연의 《삼국유사》에 古朝鲜(王俭朝鲜)표제 ②사마천 《사기》의 조선전에 옛 평양성을 王俭城이라고 칭한 말 ③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옛 평양은 王俭의 자택지란 말 이 세학자의 기록에 王俭이 단군의 이름이란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그런데 이 독자는 왜 이름 왕검을 임금호칭이라 하고 호를 또 이름이라고 하는가? 나는 단군신화를 알만한 두 문인친구에게 문의하였다 생각밖에 그들 모두 이 독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국 내가 1대3 소수였다 문제의 장본인은 이승휴의《제왕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원문을 찾았다 답안이 나왔다 이승휴가 《단군신화》를 고쳤다 신화원형을 다치는 것은 금물이란 것을 중국신화통인 이승휴가 모를 리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이승휴(1234—1300)는 일연보다 28년 후생이지만 같은 동시대사람이고 둘 다 중국신화통인 학자  또 다 조정과 관련이 있기에 그들은 그 무엇이 통하는 것 같았다 1280년 이승휴는 충렬왕께 간언한 탓으로 46세의 젊은 나이에 면직당하고 집에서 우울한 은거생활을 하였다 1282년전후 일연은 김부식의 과오를 바로잡으려고 평생의 노력으로 《삼국유사》를 엮었지만 비난을 받아 간행되지 못하였다 국존으로 책봉되었던 일연은 노모를 모셔야 한다는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가 병으로 누웠다   신화통이고 시인인 이승휴가 《삼국유사》의 가치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이승휴는 또 새로운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이대로 가면 민족의 시조는 이름조차 없어진다는 고민에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죽기 전에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법 아닌 방법은 그 문제의 곰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생각끝에 천신의 손녀가 약을 먹고 사람이 되어 단군을 낳는다 그래서 그는 눈가림으로 《제왕운기》를 엮었다 《제왕운기》는 7언, 5언 식의 사시(史诗) 상권(上卷)은 중국반고시대로부터 원나라의 흥성시기까지 하권(下卷)은 단군조선으로부터 충렬왕시대까지의 역사를 화룡점정(画龙点睛)식으로 엮었다 모두 700여행, 4350자 원문에 단군관련 기록은 딱 2행 14자 “初谁开国启风云? 释帝之孙名檀君。” 그 누가 개국의 풍운을 열었는가? 천제의 자손 이름은 단군이다 고친 단군신화는 주해를 다는 식으로 뒷방에 슬쩍 넣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왕운기》는 충렬왕이 싫어할 이유가 없고 유교학자들이 반대할 근거가 없어 1287년에 쉽게 간행되었다 하지만 시인 이승휴는 자신의 죄를 알기에 더 고통에 빠져 1300년 4년만에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1360년 이승휴의 60주년 기일에 《제왕운기》는 재차 간행되었고 조선조로 바뀐 1413년에 제3차 간행이 되어 가짜 단군신화가 판을 쳤다 이리하여 제사장인 坛君이 단수신 아들 檀君이 되었고 본이름 왕검(王俭)은 아예 잃어버렸다   반문한 독자가 고맙다 그 반문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坛君과 檀君을 구별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모신 檀君이 가짜란 것을 몰랐을 것이다   요지음 중국판본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权锡焕,중국 陈蒲清 역해 湖南长沙岳麓书社 2009년 2월 제1판 인쇄) 이 악록사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가치있는 고적을 발굴하는 출판사 중국의 역해자 陈蒲清이 토템학설, 토템숭배관념으로 《삼국유사》를 조명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주는 계시가 크다   陈蒲清의 해설을 들어보자 “단군신화는 고조선개국시조 坛君의 신화이다 신화는 왕왕 역사의 투영(投影)이다 환웅이 태백산정에 내렸다는 것은 옛날 묘향산일대는 고조선 원시씨족들의 발원지 고고학도 증명하는 바 이 지역은 신석기시대 전형적인 문화유적지대다 곰과 범이 한 동굴에 살았다는 것은 곰토템씨족과 범토템씨족이 사이좋게 지냈다는 것을 말한다 곰이 사람으로 변했지만 범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곰토템씨족이 범토템씨족보다 더 흥성했고 더 발전했기에 곰토템씨족이 주도권을 가져 수령이 되었다는 말이다” 진포청의 해설은 참으로 확실하다 이렇게 토템학설로 신화분석을 하면 역사진상이 밝혀진다   ‘坛君王俭’ 네 글자를 토템학설로 어떻게 해석하는가? 토템탄생인 박혁거세, 석탈해, 김수로가 어떻게 성씨와 이름을 얻었는가를 보면 인차 답이 나온다 박혁거세는 깨고나온 알이 박처럼 둥글다고 하여 박씨성을 가졌고 동천에서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났다고 하여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하였다 석탈해는 알을 깨고 나왔다 하여 이름을 탈해(脱解) 까치토템의 작(鹊)자 왼쪽면을 떼어 昔씨성으로 하였다 김수로는 6개 알중 먼저 나왔다고 이름을 수로(首露) 그 함과 알이 금빛이라고 김씨성으로 하였다 이 세시조 모두 완벽한 토템표지다 坛君王俭은 더욱 전형적이다 곰씨족이 범씨족보다 우월하기에 곰씨족이 진정한 왕이다 그래서 왕씨성을 가졌고 나라를 다스리는 인물은 겸손하고 검소한 품행 겸검덕(谦俭德)을 갖추어야 하므로 이름을 검소할 검(俭)으로 지었다 그 시기 나라를 다스리는 수령은 제사장(祭祀长)이었기에 제단(祭坛) 坛자로 호를 坛君이라 하였다 호와 이름 모두 완벽한 토템표지다 이렇게 토템학설로 토템신화를 검토하면 그 시대 역사사실이 밝혀진다   《삼국유사》를 연구하는 한 학자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삼국유사》를 연구하는 전문저서가 250종 논문은 5000편이 넘는다고 하였다 이렇게 많은 연구저서  토템학설로 조명한 것은 한편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 안타까와 나는 글 두편을 쓰려 하였다 앞의 글은 이미 초고가 나왔고 뒤 글을 쓰고 있는중 이 급한 원고청탁으로 급히 여기까지 달려왔다 이제 이 글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우리 민족신화사의 엄청난 비극 이 비극의 장본인은 누구인가? 그 쟁론이 분분했던 춘추전국시대에 들여보자 그 많은 날카로운 입들 신화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장 근원적인 진실을 말하는 것이 신화라는 걸 현명한 학자는 알았다 노자는 신화를 깨닫고 천인합일천지인사상으로 그 유명한 《도덕경》을 펴냈다 하지만 공자는 신화를 부정하여 괴력란신설을 퍼뜨려 노자가 좋아하지 않았다 공자는 또 《상서(尚书)》를 엮으면서 ‘成王败寇’(성왕패구) 성공, 승리하면 왕이고 패하면 구 이 엉터리말을 만들어 탁록전쟁에서 패배한 치우를 역적, 마귀로 비난하였다 사마천은 《사기》를 엮을 때 공자의 말을 오히려 괴담으로 여겼지만 김부식때부터 우리는 공자의 말을 성지(圣旨)로 모셨기에 우리의 시조는 참으로 불행해졌다   1992년 중국역사학자 임창화(任昌华)는 치우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였다 그의 근거는 한 철학대가의 말을 인용 고대의 부락전쟁은 정의, 비정의, 옳고 그름이 없다. 그때의 부락충돌은 융합을 촉진하고 생산발전을 촉진하는 진보적인 역할을 하였다 중앙에서는 임창화의 제안을 받아들여 2008년 북경 올림픽직전에 탁록에 염제, 황제, 치우 삼조상의 웅위로운 조각상을 세웠다   이번에 한국문화번역원과 중국악록사가 손잡은 중국판본 《삼국유사》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계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공자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여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는 토템학설을 받아들여 《삼국유사》를 조명한다면 우리 앞에는 세계에서 자랑할만한 문화유적 보석이 나타날것이고  잃어버린 시조의 이름도 되찾을 것이며 일연은 민족 문화사에서 높이 모셔야 할  세계적인 문화인물이란 것을 알게 되어 자호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2021.12. 14 장춘에
1568    [문단소식]- 훈춘 김동진시인 "풍경소리" 울리다... 댓글:  조회:1050  추천:0  2021-09-07
2021-08-19    김동진의 시집 《길과 꿈과 록색 그리고 풍경소리》가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됐다. 시집은 김동진의 20번째 단행본으로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에 즈음해 펴낸 헌례시집이다. 제1부는 빈곤해탈, 난관공략, 민생개선에 나선 제1서기의 고상한 정신풍모를 노래한 중편서정서사시 이고 제2부는 서정장시 3수, 제3부는 서정단시 19수로 묶었다. 김동진은 1944년 흑룡강성 녕안시 동경성진에서 태여났고 연변대학 통신학부 조선언어문학학과 본과를 졸업했다. 중국민족예술가협회 회원이며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회원이다. 시집 《두만강 새벽안개》를 비롯하여 시조집, 수필집, 실화집, 가사집, 동요동시집, 문집 등 19권을 출간했으며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 《연변문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문예상, 시조문학상 등 수상경력이 있다.   리련화 기자
1567    [시공부사전] - 담시(譚詩)? 댓글:  조회:1367  추천:0  2021-05-29
드라마사전 담시   [ ballade음성듣기 ] 분류 용어 담시(譚詩)는 어원적으로 무가(舞歌)에서 출발한 장르로서 서정적, 서사적, 드라마적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특수한 형식이다. 대화형식으로 신화, 전설, 역사 혹은 대자연의 우울하고 신비한 비극적 사건을 서술한다. 주어진 테마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통적 발라드는 13세기에 유래한 것이고, 16세기 이후의 작품들도 많다. 18세기 영국에서 많이 발전되었으며, 독일에서는 영국 출신의 토마스 퍼시(Thomes Percy, 1729-1811) 주교의 발라드 모음집 『고대 영시 유물(Reliques of Ancient English Poetry, 1765)』의 영향으로 빠르게 유행되었다. 퍼시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헤르더는 민요를 높이 평가하였고, 이에따라 민요는 1770년대부터 독일에서 사랑받는 장르 중 하나가 되었다. 질풍노도시대 이후 담시는 지속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담시 [ballade] (드라마사전) =========================================/// - 글꼴 작게가+ 글꼴 크게 문학비평용어사전 이야기 시   [ 譚詩 , Narrative Poem ] 어떤 이야기를 리듬에 맞추어 읊는 시를 뜻한다. 서구의 장르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구분한 서정, 서사, 극이라는 삼분법에 기준을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서사시는 타인에 대한 보고적인 모방이며, 서정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모방을 끌어내는 것, 극은 행위로써 드러내는 모방이다. '서정시'가 주로 개인의 감정을 노래하는 데 비해 '이야기 시'는 서사적인 설화를 비롯하여 민요적인 발라드를 노래했다. 이야기 시 또는 담시를 서구의 장르이론에 입각해 살펴보면 좀 더 복잡해 진다. 이야기시를 어느 범주에 분류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넓은 의미로 이야기 시는 서사시(epic)를 비롯해 서술시의 일종인 발라드(ballad)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 시의 전형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비롯하여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를 비롯해 서양문학사에서 이야기 시는 매우 긴 뿌리를 갖고 있다. 서사시가 역사적인 사건이나 영웅, 신화를 서사적 형태로 쓴 시를 의미한다면, 발라드(ballad)는 설화적인 내용이나 민요, 민담적인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문학사에서 서구의 삼분법에 의한 장르 구분은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논자에 따라서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를 이야기 시의 기원으로 보는가 하면 단편 서사시로 보기도 한다. 팔봉은 단편 서사시를 소설과 시의 혼합 양식으로 보았고, 소설과 서정시를 연결하는 과도기적인 양식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야기 시를 담시로 보는 시각의 출발점은 김지하의 「오적」에서부터다. '담시'라는 용어는 기존에 통용되던 문학적 장르의 명칭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미학적 의미를 부여한 명칭이기 때문에 보통명사가 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이야기 시, 담시, 서사시, 단편 서사시라는 용어는 정확하게 개념 규정이 되지 않고 논자들에 따라 조금씩 상이한 의미를 띠고 있다. 이 용어들을 포괄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리듬에 맞춰 낭송할 수 있다는 정도이다.(박죽심) [네이버 지식백과] 이야기 시 [譚詩, Narrative Poem] (문학비평용어사전, 한국문학평론가협회)   두산백과 발라드   [ ballade음성듣기 ] 요약 자유스러운 형식의 소서사시, 또는 담시(譚詩). 춤춘다는 뜻의 라틴어 ballare에서 유래하여, 민요·가요로 번역되기도 한다. 교회나 궁정 중심의 문학에 대하여 민중 속에서 생긴 영웅전설·연애비화(戀愛悲話) 등의 담시로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된 것이다. 12세기에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음유시인이 생겨, 이것은 얼마 뒤 영국으로 번졌고 15·16세기에는 크게 유행하였다. 처음에는 춤에 맞추어 노래하던 것으로, 시 형식은 보통 3절로 이루어졌는데, 각 절은 7∼8행이며, 그 중 끝 1∼2행은 되풀이로 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14세기경에 이르러서는 단순히 정형(定型)의 소서사시라는 뜻으로 굳어졌다. 이탈리아에서는 단테와 페트라르카, 프랑스에서는 비용, 마로 등이 이 형식으로 작품을 썼으며, 영국에서는 역사 및 전설을 소재로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고, 독일에서는 헤르더에 의해 소개되었다. 18세기 말의 낭만파 문학시대에는 각국의 작가들이 민요에 흥미를 갖게 되어 독일에서는 괴테, 하이네 등이, 프랑스에서는 위고 등이, 영국에서는 스콧 등이 많은 발라드를 썼다. 음악에서는 담시곡 ·이야기곡 등으로 번역되는 통속적 가곡을 뜻한다. 원래는 무도가(舞蹈歌)였는데, 14세기에 들어와서 무도가의 성격이 거의 상실되어 무도에서 독립하여 주로 역사적 ·전설적 ·종교적 소재가 담긴 가벼운 독창곡이 되었다. 16세기에는 주로 이야기식 성격의 성악곡으로 발전하여 영국의 헨리 8세로부터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많은 발라드가 작곡되었다. 19세기에는 보통 3부 형식으로 이루어진 성격적인 피아노 소품(小品)을 발레데 또는 발라드라 하였는데, 쇼팽의 《발라드》 4곡과 브람스, 포레 등의 발라드가 유명하다. 오늘날에는 포퓰러송 가운데서 센티멘틀한 러브송 종류를 발라드라 하고, 재즈 연주에서는 포퓰러송 등의 원곡(原曲) 멜로디를 살리면서 애드 리브(즉흥연주)하는 것을 발라드 연주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발라드 [ballade] (두산백과) =============================///   Basic 중학생을 위한 국어 용어사전 이야기시     이야기와 같은 줄거리와 짜임이 있는 시. 이야기시는 객관적 사실을 진술한다는 점에서 서사시와 공통점이 있으나 시적인 표현, 시적인 비유 등이 없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이야기시는 단지 시의 형태를 이용하여 표현되는 이야기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야기시 (Basic 중학생을 위한 국어 용어사전)  
1566    하이퍼시 명언 21 / 최흔 댓글:  조회:1362  추천:0  2021-05-25
21.추상적인 기계들(도표와 문)971   기계란 탈영토화 과정에 있는 배치물에 삽입되여 배치의 변화와 변이를 그려내는 첨점들의 집합이다.(동상 633)   기계들은 언제나 하나의 배치물이거나 영토를 열거나 닫았다 하는 특이한 열쇠인것이다. … 기계는 표현의 질료가 출현할 때, 즉 배치가 성립할 때 이미 개입하고 있는 것이며, 배치물이 성립되는 시점부터 재빨리 배치에 작용하 는  탈영토화의 백터에도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상635)   추상적인 기계는 배치물들의 모든 탈령토화의 첨점들을 구성하고 결합한다.(동상270)   추상적인 기계 자체는 물리학적이거나 물체적이지도 않고 기호적 이지도 않다. 그것은 도표적이다(그것은 인공 과 자연의 구분을 알지 못한다). 추상적인 기계는 실체 가 아니라 질료에 의해 작동하며, 형식이 아니라 기 능에 의해 작동한다. 실체들과 형식들은 표현 “또 는” 내용과 관련된다. 하지만 기능들은 아직 “기호계 적으로” 형식화되여 있지 않으며, 질료들은 아직 “물 리학적으로” 형식화되여 있지 않다. 추상적인 기계는 순수한 ㅡ, 즉 도표이며, 이 도표가 분배 할 형식들과 실체들, 표현들과 내용들과 독립해 있다 … 결과적으로 도표는 실체도 아니고 형식도 아니며, 내용도 아니고 표현도 아니다. (질 들뢰즈/필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271)   우선 플라톤의 이데아같은 초월적이며 보편적이고 영원한 추상적인 기계 또는 추상적인 기계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추상적인 기계들은 구체적 배치물들 속에서 작동 한다. 추상적인 기계들은 배치물들의 네번째 측면, 즉 탈코드화와 탈영토화의 첨점들에 의해 정의된 다.추상적인 기계들은 이 첨점들을 그린다. 또한 추상적인 기계들은 영토적 배치물을 다른 사물 위 에, 다른 유형의 배치물들 위에, 분자적인 것 위 에, 우주적인 것 위에 열어놓으며, 생성들을 구성 한다. 따라서 추상적인 기계들은 항상 독자적이며 내재적이다. 지층들에서, 그리고 다른 측면하에서 고 려된 배치물들에서 일어나는 것과는 반대로 추상적인 기계들은  형식과 실체들을 알지 못한다.  바로 이 점에서 추상적인 기계들은 추상적인데, 또한 이것이 바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기계 개념이기도 하다. 추상 적인 기계들은 모든 기계론적 기계 장치를 초과한 다. 추상적인 기계들은  통상적인 의미의 추상적인 것 과도 대립한다. 추상적인 기계들은 형식화되지 않은 질료들과 형식적이지 않은 기능들로 이루어져있다.    각각의 추상적인 기계는 질료ㅡ기능들의 다져진 집합(계통과 문)이다. 기술의 “판”에서 이것을  잘 볼  수 있다. 기술의 판은 형식화된 실체들(가령 알루미 늄, 플라스틱, 전선 등)이나 조직하는 형식들(가령 프로 그램, 모델 등)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강열함의 정도들(저항, 전도성, 가열,  연장, 가속 또는 지연, 유 도, 형질도입…)만을 나타낼 뿐인 형식화되지 않은 질료들과 비분 방정식 또는 더 일반적으로 “텐서”만을 나타낼 뿐인 도표적 함수들의 집합으로 만들어진다. 분명 배치물의 여러차원 안에서 추상적인 기계 또는 추상적인 기계들은 다양한 자유상태를 갖는 여러 형식들과 실체들 속에서 실현된다.    그러나 동시에 추상적인 기계는 자신을 조성하고 고른판을 조성해야만 했다. 추상적이며, 독자적이고 창조적 임, 지금 여기에 있음,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실재 적임,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현실적임, 추상적인 기계 들에 날자와 이름이 붙어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인슈타인ㅡ추상적인 기계, 베베른ㅡ추상적인 기계, 나아가 갈릴레오, 바흐. 베토벤 등ㅡ추상적인 기계, 이는 추상적인 기계가 인물이나 실현하는 순간을 가리키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이름과 날자야말로 기계의 독자성과 그것의 실현됨을 가리키기 때문이다.(천개의 고원972)   그러나 추상적인 기계들이 형식과 실체를 알지 못한다면 지층도 또는 나아가 배치물들의 또 다른 규정인 내용과 표현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떤 의미에서는 이 구분 역시도 추상적인 기계와의 관계에 의해 적실성을 잃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다름 아니라 추상적인 기계는 이러한 구분의 조건이 되는 형식과 실체를 더 이상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른판은 하나의 연속적 범주의 판이며, 각각의 추상적인 기계는 내 용과 표현의 변수들을 연속시켜주는 변주 의 “고원”으로 간주될 수 있다. 따라서 내용과 표현 은 거기에서 각각 가장 높은 상대성에 이르게 되 며, “하나의 동일한 함수의 기능소”나 하나의  동일 한  질료의 재료가 된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의미에 서  이 구분은 특질이라는 상태에서 존속하고, 심지어 재창조된다고 말할 수 있다. 내용의 특질들 (형식화 되지 않은 질료들 또는 강렬함들)과 표현의 특질 들 (비형식적 기능들 또는 텐서들)이 있다. 여기서 이 구분은 완전히 대체되거나 새롭게 된다.    이제 그러한 구분은 탈영토화의 첨점들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탈영토화는 “탈영토화 하는 것” 과 ” 탈영토화 되는 것”을 동시에 내포한다. 그리고 각 경우마다 하나는 표현에, 다른 하나는 내용에 분배되거나 아니면 반대로  행해지지만 언제나 이 둘 사이에는 상대적 구분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연속적 변주는 필연적으로 내용과 표현을 모두 변용 시키지만, 그에 못지 않게 여전히 하나의 동일한 생성의 요소들로서 또는 하나의 동일한 흐름의 양들로서 두가지 비대칭적 역할을 분배한다. 따라서 내용과 표현을 식별불가능하게 하기 위해 이들 둘을 동시에 취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식별불가능하게 되는 것의 상대적이고 유동적인  두 극을 결정하기 위해 이들 둘가운데 어느 한쪽을 통해 진행할 수도 없는 연속적 변주는 정의할 수가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내용의 특질들이나 강렬함들, 표현의 특질들이나 텐서들을 동시에 정의해야만 한다.(부정관사, 고 유명, 부정사, 날짜) 이것들은 고른판 위에서 서로 끌 고 가면서 교대된다. 요컨대 형식화되지 않는 질료, 즉 문은 결코 죽은, 천연 그대로의, 등질적인 질료가 아니라 독자성들 또는 들, 질들, 그리고 심지 어 조작들까지도 포함하는 운동ㅡ질료인 것이다. (순회하는 기술의 계통), 또한 비형식적 기능, 즉 도표는 비표현적이고 통사법을 결여한 메타ㅡ언어가 아니라 언제나 자국어 내의 외국어, 언어 속의 비언적 범주들을 포함하고 있는 운동ㅡ표현성이다(유목적인 시적 계통). 이리하여 형식화되지 않는 질료라는 실재의 차원에서 글을 쓰면, 이와 동시에 이 질료는 비형식적인 언어 전체를 가로 지르고 긴장시킨 다. 카프카의 생쥐, 포프만슈탈의 쥐, 모리츠의 송아지 에서와 같은 동물ㅡ되기, 혁명적인 기계는 실재적인 만큼 더욱더 추상적이다. 그것은 기표에 의해 진행 되는 것도 아니고 주체적인 것에 의해 진행되는 것도 아닌 하나의 체계이다(천개의 고원 974)   내재적이며 독자적인 추상적인 기계는 이와 같다. 하지만 특정한 추상적인 기계가 매우 특수한 조건에서 초월적인 모델로 기능할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 구체적 배치물들은 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과  관련되며, 그것들이 기계를 실현하는 방식에 따라 그것들의 잠재성과 창조성을 고려하는 계수들에 의해 변용된다. 배치물들을 ”양 화하는” 계수들은 배치물의 가변적 성분들(영토, 탈영토화, 재영토화, 대지, )과 관련되여 있으며, 또한 배치물의 “지도”를 구성하는 다양하게 얽힌 선들(그램분자적 선, 분자적 선, 도주 선) 과도 관련되여 있고, 나 아가 각각의 배치물과 고른판의 상이한 관계들(계 통과 문)과 관련되여 있다. 예컨대 “풀한포기” 라 는 성분은 아주 근방에 있는 종들의 동물적 배치물들을 가로 질러 계수를 바꿀 수도 있다. 일반적인 규칙에 의하 면, 하나의 배치 물은 사물들 사이를 지나가는 윤곽 없는 선들을 더 많이 제시하면 할수록, 또한 기 능ㅡ질료에 대응하는 변신(변형과 실체변화)의 역량을 더 많이 발휘하면 할수록 추상적인 기계와 더 친 화적이게 된다. 예컨대  기계가 있다.(동상 974)   우리는 특히 이형 조성적이고 인간 형태의 두 가지 거대한 배치물인 전쟁 기계와 국가 장치를 살펴보았다. 본성상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특정한” 추상적인 기계 와 관련해서도 서로 다르게 양화된다는 점에서 이 둘 배치물은 문제적이다. 이 둘은 문 및 도표와도 동일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며, 또한 동일한 선들, 동일한 성분들을 갖고 있지도 않다. 이 두 배치물과 그것들의 계수들을 분석해보면 전쟁 기계 자체는 전쟁을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국가 장치에  의해 전유될 때는 필연적으로 전쟁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 드러난 다. 또한 바로 정확히 이 지점에서 도주선 그리고 이 선이 실현시키는 추상적인 생명선은 죽음과 파괴의 선으로 전환한다. 따라서 전쟁 ”기계”는 그것의 변 신 역량을 잃게 만드는 국가 장치보다는 추상적인 기계에 더 가까이 있다. (여기에서 전쟁 “기계”라는 이름 이 나왔다). 글과 음악은 전쟁 기계일 수 있다. 배 치물들은 연결접속들을 더 많이 열어놓고 배가시 킬수록, 또 강렬함들과 다짐을 양화하는 장치들을 가지고 고른판을 더 많이 그릴수록 그만큼 더 살아 있는 추상적인 기계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배치물이 창조적인 연결접속들을, 블록화를 만들어내는 접합 접속들(공리계들),  지층을 만들어내는 조직들(지층 측정기들), 검은 구멍을 만들어내는 재영토화들 (절편 측정기들), 죽음의 선들로의 전환들(파괴측정기들)로 대신할수록 그것은 추상적인 기계에서 멀어진 다. 이처럼 연결접속을 증대시키도록 고른판을 그리는 능력에 따라 배치물들의  선별이 실행된다. 분열 분석은 배치물과 관련한 추상적인 기계들에 대한 질적 분석임 뿐만 아니라 순수하다고 상정되는 추상적인 기계와 관련한 배치물들에 대한 양적 분석이기도 하다.(천개의 고원973)   아직 마지막 관점, 즉 유형하적 분석이 남아있다. 왜 냐하면 추상적인 기계들의 일반적인 유형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른판의 특정한 추상적인 기계들은 지층 들, 나아가 배치물들을 구성하는 조작들 전체를 소진시키거나 지배하지 못한다. 층들은 고른판 그 자체에 “달라붙어서”, 거기에서 다른 판의 축들 (형 식ㅡ실체, 표현ㅡ내용)에 따라 조직되고 전개될 조밀 화, 응결, 대(带)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런 의미에서 각각의 지층은 고름의 통일성 또는 조성의 통일성을 갖고 있는데, 이 통일성은 우선 실제적 요소들 및 형식적 특질들과 관련되며, 이 다른 판을 주재하는 전적으로 지층적인 추상적인 기계를 증언한다. 그리고 세번째 유형이 있다.  즉 탈영토화를 재영토화 로, 그리고 특히 탈코드화를 덧코드화의 등가물로 상쇄해주는 추상적인 기계들의 배치물 특유의 이형 조성적 지층들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추상적인 기계들은 배치물들을 닫아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보았다. 명령어 기계는 언어를 덧코드화하고, 얼굴성 기계는 몸체와 심지어 머리를 덧코드 화하며, 노예화 기계는 대지를 덧코드화 하거나 공리 화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코 환상이 아니라 실재적인 기계적 효과 들이다. 이때 우리는, 배치물들이 고른판의 추상적인 기계와 얼마나 가까이 또는 멀리 있는 지를 양적인 눈금에 따라 측정할 수는 없다. 서로 끊임없이 작용하고 또 배치물들에 질을 부여하는 추상적인 기계들의 여러 유형이 있다. 가령 독자적이고 변이를 만들어내며, 다양한 연결접속들을 가진 고름의 추상적인 기계들, 고른판을 다른 판으로 둘러싸는 성층작용의 추상적인 기계들, 총체화, 등질화, 페쇄적 접합적 속에 의해 진행하는 공리계 또는 덧코드화의 추상적인 기계들과 연관되어있다. 추상적인 기계들이 정치적, 경제적, 과학적, 예술적, 물리적, 기호적이기 때 문만이 아니라 서로 경합을 벌이면서 자신들의 상이한 유형들을 교차시키기 때문이다. (질 들뢰즈 /필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976)                          [끝]           [영어단어해석]   노드; 사이트를 구성하는 기본단위. 책에선 페지 도그마;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 데크닉; 데크니크, 수법, 기술 아우라; 예술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 다른 것과 구별되는 개성적 분위기. 파롤(빠롤); 소쉬르의 언어, 말, 가변적 개인적. 문학작품 언어. 랑그; 체계속 언어, 구조적 사회적. 모든 언어. 메커니즘; 어떤 대상의 작동원리나 구조 그래픽; 그림이나 사진을 위주로 편집한 지면이나 인쇄물 시퀀즈; 시간, 장소, 사건으로 한개의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단위. 삽입. 디페랑스; 차연. 차이와 지연.              이것임-주체 없는 객체화 무의식- 무의식은 상징을 생산하는 빈장소. 공장처럼 기능하는 빈장소 (따라서 표현이 아니라 생산이 문제이다) 리좀ㅡ 계층도 중심도 없고, 초월적인 통일도 또 이항대립이 대칭적인 규칙도 없으며, 단지 끝없이 련결되고 도약하여 일탈하는 요소의 련쇄이다.981 카오스ㅡ 무질서982 고원- 표면적 땅밑줄기를 통해 서로 연결 접속되여 리좀을 형성하고 확장해 가는 모든 다양체를 우리는 고원이라 부른다. 여러 가지 상징이 모여 있는 곳. 집단적행위-다양체 고른판=리좀증식. 이미지모음. 기관 없는 몸체 ㅡ 리좀499 입자-기호들-미립자들 지층ㅡ 사슬이며 집게이다305 CsO는 이행의 성분인 것이다. 밀도. 303 타자ㅡ 차이   [텐서(Tensor)] 변환 형식과 관련된 것으로 행렬로 표현하기도 한다. 물리적으로 텐서의 정의는 '좌표변환 하에서 특정한 변환법칙을 따르는 양'이다. 물론 수학적으로 들어가면 쌍대공간. 텐서의 뜻: 삼차원 공간에 있어서 9개의 성분을 가지며, 좌표 변환에 의해 좌표 성분의 곱과 같은 형의 변환을 받는 양.   [마이다스] 뜻  미다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아의 왕) 뜻  ① 손에 닿는 것을 금으로 바꾸는 그리스신화의 왕                   [참고서] ‘하이퍼 텍스트 3.9’조지p 란도 작 커뮤니케션북스 ‘구조주의와 기호학’  테렌스 호옥스 작  서울 신아사 ‘글쓰기 0도’ 롤랑 바르트 작  동문선 ‘해체’  자크 데리다 작 김보현 편역  문예출판사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  니콜러스 로일 작  앨피 ‘천개의 고원’  질 들뢰즈/필릭스 가타리 작  새물결 ‘물과 꿈’  가스통 바슐라르 작  문예출판사 ‘구조주의 역사’   푸랑수아 도스 작  동문선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우치다 타츠루  작  갈라파고스 ‘욕망 이론’  자크 라캉 작 문예출판사  
1565    하이퍼시 명언 20 / 최흔 댓글:  조회:1332  추천:0  2021-05-25
20. 여러 가지 개념     주체화는 도주선에 긍정적 기호를 강요하며, 탈영토화를 절대에까지 가져가며, 강렬함을 가장 높은 정도까지 가져가고, 잉여를 재귀적 형식으로까지 가져간다. (질 들뢰즈/ 필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 257-258)   코키토(인간중심의 주제 편자)는 항상 다시 시작하 며, 정념 또는 불평은 항상 되풀이 된다. 모든 의식은 제나름의 죽음을 추구 하고, 모든 열정-사랑은 제 나름의 끝을 추구 한다. 이것들은 검은 구멍에 끌려가며, 모든 검은 구멍들은 함께 공명한다. 이를 통해 주체화는 도주선에 끊임없이 그 선을 부인하는 절편성을 강요하며, 절대적 탈영토화에 끊임없이 그것을 가로 막고 우회시키는 소멸의 점을 강요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표현의 형식들 또는 기호체제들은 여전히 지층이기 때문인 것이다. (천개의 고원258)    자신을 정점을 향해 가게 하지도 않고 외적인 종결에 의해 중단되게 하지도 않는 그런 방식으로 구성되는 연속적인 강렬함의 지역들을 베이트슨은 고원이라고 부른다. …CsO는 이행의 성분인 것이다.(동상 303)   CsO의 적은 기관들이 아니다. 바로 유기체가 적인 것이다. CsO는 기관들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라고 불리는 기관들의 이 같은 조직화와 대립 한다. … 몸체는 몸체이다. 몸체는 혼자이다. 또한 기관들 을 필요로  하지만 않는다. 몸체는 결코 유기체가 아니다. 유기체는 몸체의 적이다.(천개의 고원304-305)    CsO를 너무 결렬한 동작으로 해방하거나 신중하지 못하게 지층들을 건너뛰면 판을 그려내기는 커녕  당 신  자신을 죽이게 되고 검은 구멍에 빠지고 심지어 파국 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동상 308)   련결접속하고 집합접속하고 연속시켜라… Cs0는 바로 이런식으로만 욕망들의 연결접속,  흐름들의  집합접속, 강렬함들의 연속체로서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천개의 고원309)   얼굴성(이미지)은 구체적인 얼굴들은 얼굴성이라는 추상적인 기계로부터 태여난다. 이 기계는 기표에 흰 벽을 주고 주체화에 검은 구멍을 주는 것과 동시에 얼굴들을 생산한다. 검은 구멍ㅡ흰 벽의 체계는 따라서 이미 얼굴이 아니라 톱니바퀴의 변형 가능한 조합들에 따라 얼굴을 생산하는 추상적인 기계이 다. 추상적인 기계가 그것이 생산하는 것, 그것이 생산할 것과 닮았으리라고 기대하지 말자. (동상323)   얼굴의 문헌에서 시선에 대한 싸르트의 텍스트와 거울에 대한 라캉의 텍스트는 현상학의 장에서 반성되거나 구조주의의 장에서균열된 주체성 인간성의 형식을 지시한다는 오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시선은 시선 없는 눈, 얼 굴성의 검은 구멍에 비하면 이차적인 것에 불과 하다. 거울은 얼굴성의 흰 벽에 비하면 이차적인  것 에 불과하다.(천개의 고원328)   검은 구멍-흰벽으로 구성되여 있는 얼굴성이라는 추상적 기계가 기능하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당위나 요소들과 관계되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의 선택과 관계 된다.(천개의 고원338)   얼굴, 얼마나 소름끼치는가. 자연스럽게도 얼굴은 모공 들, 평평한 부분들, 뿌연 부분들, 빛나는 부분들, 하얀 부분들, 구멍들을 가진 달의 풍경이다…얼굴을 비인 간화하기 위해 그것을 클로즈업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커다란 판이며 , 자연스럽게 비인간적이며, 괴물적인 복면이다.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얼굴은 기계에 의해 생산되며 그리고 기계를 작동시키고, 탈령토화를 부정적인 것 안에 두면서도 절대에까지 밀어붙이는 특수한 권력장치의 요구들을 위해 생산되기 때문 이다(동상 362)   모든 번역가능성의 조건으로서  단 하나의 표현의 실체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오직 기호론적 스크린과 그 요 소들을 보호하는 벽을 이용한다는 조건 아래에서만 이산적이고 디지털화 되고 탈영토화된 요소들을 통해 진행되는 기표작용적 사슬들을 구성하고있다. 우리는 오직 외 부의 그어떤 폭풍도 사슬들과 주체들을 끊어가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에만 두개의 사슬들 사이에서 또는  한 사슬의 각점에서 주체적 선택들을 이루고 있다. 우리 는 오직 중심의 눈을, 다시 말해 지배적인 기표 작용 들 못지 않게 지정된 변용태들을 초과하고 변형시키는  모든 것을 포획하는 검은 구멍을 소유하는 한에서만 주체성들의 씨실을 형성할 수 있다. 게다가 어떤 언어가 언 어로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부조리하 다. 특정 언어는 언제나 자신의 언표들을 고지하며 유통 중인 기표들이 해당 주체들과 관련해서 언표들을 가득 채우는 얼굴들 안에 사로잡혀있다. 선택들이 인도되고 요 소들이 조직되는 것은 바로 얼굴들 위에서이다. (천개의 고원342)     우리는 모든 곳에서 모든 방향으로 절편화된다. 인간은 절편적 동물이다. 절편성은 우리를 구성하는 모든 지층들에 속해 있다. 거주하고, 왕래하기, 노동하기, 놀이하기 등 체험은 공간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절편화된 다. 집은 방의 용도에 따라 절편화  된다. 거리는 마을의 질서에 따라 절편화 된다. 공장은 노동의 작업의 본성에 따라 절편화 된다. 우리는 사회와 계급,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등 거대한 이원적 대 립에 따라 이항적으로 절편화된다.(천개의 고원397)   이질적인 사회적 절편들사이에는 커다란 소통 가능성이 있어서, 한 절편과 다른 절편이 이어짐이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질 수 있을 것이다.(동상398)   중앙의 뇌 그자체는 뇌의 모든 대체 기능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러한 대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것들보다 더 절편화된 하나의 벌레이다.(천개의 고원399)   절편성과 중앙집중을 대립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절편성의 두 류형을 구분해야만 할 것이다. 하나는 원시적이고 유연한 절편성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적이고 견고한 절편성이 다.(천개의 고원400)   절편들 각각은 나름의 측정 당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절편들 사이에는 단위들이 등가성과 번역 가능성이 있다. 중앙의 눈은 그것이 자리바꿈을 하는 공간을 상관물로 갖고 있으며, 이 자리바꿈과 관련해서는 그자체로 불변항으로 남아있다.(천개의 고원403)   견고한 양태 아래에서 이항적 절편성은 그자체로 유효하며,접적 이항화의 거대 기계들에 의존하는 반면, 유연한 양태 아래에서 이항성들은 “n차원을 가진 다양체 들”의 결과로부터 생긴다.(동상404)   그램분자적인 것과 분자적인 것은 크기, 단계, 자원 뿐만 아니라 고려되는 좌표계의 본성에 의해서도 구분되느 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과 절편이라는 말은 그램분자적 조직을 위해 놔두고 분자적 조성에 대해서는 적합한  다른 말을 따로 찾아야만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잘 규정된 절편들로 이루어진 선을 정할 수  있을  때 면 항상 우리는그 선이 다른 형식하에서 량자들로 이루어진 흐름으로 연장된다는 것을 보아왔다.(동상413)   항상 무엇인가가 도주하고 있다.(천개의 고원414)   운동들은 모순들이 아니라 도주들이다.(동상418)   모방이란 흐름의 파급이다. 대립이란 흐름의 이항화, 이항 구조이다. 발명이란 다양한 흐름의 결합 또는 연결접속이다.(동상414)   상징에서의 지성은 비률에 기반한 류비를 비율 관계에 기반한 유비로, 한 유사성들의 계렬화를 차이들의 구 조화로, 항들의 동일화를  관계들의  동등성으로,  상대 적 변신을 개념 내부에서의 은유로, 자연문화의 거대한 연속성을 자연과 문화간에 유사성 없는  대응관계 를  배분하는 깊은 단층으로, 나아가 기원적 모델의 모방 을 모델 없는 최초의 미메시스(재현) 그자체로 대신한다.  … 구조주의는 커다란 혁명이였다.(천개의 고원450)   지각은 사물들 사이에, 자신의 고유한 근방의 집합 안에, 어떤  안에 있는 다른 어떤  의 현존으로서, 어떤  에 의한 다른 어떤 의 포착으로서, 어떤  에서 다른 어떤 으로의 이행으로서 있게 될 것이다 그러 니 운동들만 주시할 것.(천개의 고원534)   는 기초적인 표현의 사슬을 구성하며, 가장 덜 형식화된 내용들과 상 관 관계를 맺는다… (동상499)   점 체계의 주요 특성을 요약하자. 1) 점 체계는 두가지 기본선, 즉 수평선과 수직선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선 은 점들을 지정하는데 쓰이는 좌표로서 기능한다. 2)수평선은 수직으로 중첩 될 수 있고 수직선은 수평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그런식으로 수평의 주파수와 수직의 공명이라는 조건 아래서 새로운 점들이 생산되거나 재생산된다. 3)어떤 점에서 다른 점으로 선이 그어질 수(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려지는 경우 그것은 위치를 정할 수 있는 연결선의 형태를 취한다. 이경우 사선은 층위와 시기가 서로 다른 점들을 위한 연결선의 역할을 하며, 서로 인접하거나 떨어진 다양한 수평과 수직의 점들과 함께 빈도의 공명을 만들어낸다.(동상558)   목소리와 악기는 동일한 판 위에서  어떤 때는 대결 관게로, 어떤 때는 대행 관계로, 또 어떤 때는 교환이나 보충 관계로 옮겨진다. (질 들뢰즈 필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 581)   새는 성악이지만 곤충은 기악이다.(동상582)   분자(이미지)적인 것은 원소적인 것과 우주적인 것을 소통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바로 분자 적인것이 형식을 해체시키기  때문이다… “테마”는 이미 변주였다.(동상583)   원소적인 것과 우주적인 것이 블록, 우주의 섬유, 사선 또는 복합공간을 만든다.(동상584)   환경은 카오스에 열려있으며, 이 카오스는 환경을 소진 시키거나 침입하려고 위협한다. 그러나 환경은 카오 스에 맞서 반격에 나선다. 이것이 바로 리듬 이다.(동상594)   리듬은 동질적인 시간ㅡ공간속에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블록들과 겹쳐가면서 작용한다. 방향을 바 꾸어나가는 것이다. (질 들뢰즈/가타리 ‘천개의 고원’595)     리듬을 갖는 것은 차이이다.(동상 596)   질이 바로 서명이다. 그러나 서명이나 고유명은 환전히 형성된 주체의 부호가 아니라 스스로의 영역이나 영토 를 형성해 나가는 주체의 부호이다. 서명은 한 개인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영토를 형성하는 불확실한 행위 이다. (천개의 고원600)   표현적인 질이나 표현의 질료는 상호 유동적인 관계를 맺는데, 그러한 관계는 표현적 질이 제공하는 영토와 관련해 충동이 만들어내는 내부 환경과의 관계를, 또 상황을 만들어나가는 외부 환경과의 관계를 “표현 해 나간다.”(천개의 고원602)   표현적 질들은 또한 다른 내적 관계를 맺으며, 이러한 관계가 영토적 대위법이 되는 경우도 된다.(동상 603)   고름문제는 분명 하나의 영토적 배치의 성분들을 동시에 성립시키는 방식과 관계되여있다 (질 들뢰즈/필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621)…   고름은 필연적으로 다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생겨난다. (동상628)   고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표현의 질료는 모티프와 대위법을 형성하는 소질 뿐만 아니라 표현의 질료에 작용 하는 억제 인자와 시동 인자와 관련하여 검토되어야 하며 또 표현의 질료를 변화시키는 생득성 또는 학습, 유전 혹은 획득 메커니즘과 관련해서도 함께  검토되여 야  한다 .(천개의 고원630 )   타고난 것은 생득 그자체라 하여도 탈코드화 생득이며, 또 획득  바로  그자체라해도 영토화된 획득인 것이 다.  타고난 것이란 영토적 배치물 속에서 생득과 획득 이 취하게 되는 새로운 양상을 가리킨다.(동상631)   고름집합은 매우 이질적인 성분들이 모여 다져지고, 형상ㅡ질의 규칙적인 연대신 계층의 단락 또는 역전된 인과 관계를 가진 차원들이 나타나 이질적인 재료와 힘 사이에 포획관계가 성립하는 경우에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 마치 기계적 문 또는 탈지층화하는 횡단적 성의 요소, 차 원,  형상과 질료, 그램분자 상태와 분자 상태를 가로 질러 질료를 풀어놓고  힘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동상 637)   생명의 장은… 한편으로는 매우 복잡한 성층작용 체계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순위와 형식, 실체를 전복시키 는 고름의 집합을 말이다. (동상638)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분열은… 중요한 분렬이란  우리가 어떤 곳을 볼 때 접하게 되는 한계성을 의미한다. 응시는 시야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을 상징하 며, 신비로운 우연의 형태로, 갑작스럽게 접하게 되는 경험, 즉 거세 공포를 형성하는 결여로 우리에게 제시된다.(자크 라캉 ‘욕망 이론’205)   연구 노트는 바로 장갑의 손가락에서 안과 밖이 서로 바뀐 구조에 관한 것이다. 털이 가죽을 덮고 있는 원래 상태와 달리 겨울털장갑 속에서는 가죽이 털을 감싸고 있다. 의식의 ‘나는 나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바 라본다’는 환상은 , 안과 밖이 바뀐 응시의 구조에 기초해 있다.(자크 라캉 ‘욕망 이론’217)   하나가 둘로 만들어지면 원래로 돌아가는 법은 없다. 결코 하나로 되돌아가지도 않고 새로운 하나로 되지도 않는다. 합(合)이란, 철학이 꾸는 달콤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자크 라캉 ‘욕망 이론’316)   분석담론에 따르면 자신이 말하고 있음을 아는 동물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기표속에 살아 그가 그것의 주체가 된다. 그때부터 모든 게 환상의 차원에서 그를 위해 놀이를 한다. 그러나 환상은 아주 완벽하게 분해되여 그가 행동할 때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우리가 우주학의 윤곽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무의식’이라는 용어 가  지닌 영원한 모호성이다. (자크라캉 ‘욕망 이론’320)     주체와 존재의 관계는 환상에 의해 결정되고 지속된다… 도착증의 환상은 명확히 표현될 수 있다. 도착증의 환상에서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정지되여 고정된다. 그러므로 도착증의 환상은 비시간적이라기보다 시간을 벗어 나 있다는 의미에서 공간속에 존재한다 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신경증의 환상에서는 주체와 대상 의 관계가 주체와 시간의 관계에 기초한다. 대상은 진실 이 나타나는 시간에 의해 그 중요성을 띠게 된다. 즉 이 진실이 나타나는 시간속에서 대상은 항상 빠르 거나 느리거나 혹은 이르거나 늦는다… 항상 미리 서 두른다는 점이 신경증 행동의 가장 일반적인 특성이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150-151)
1564    하이퍼시 명언 19 / 최흔 댓글:  조회:1341  추천:0  2021-05-25
19. 다양체에 대하여     우리가 말하는 건 다름 아니라 다양체, 선, 지층과 절편 성, 도주선과 강렬함, 기계적 배치물과 그 상이한 류형들, 기관없는 몸체 그것의 구성 및 선별, 고른판 그 각 경우에 있어서의 측정단위들이다. 지층 측정기 들, 파괴 측정기들, 밀도의 CsO단위들, 수렴의 CsO단위 들ㅡ 이것들은 글을 량화할 뿐만 아니라 글을 언제나 어떤 다른 것의 척도로 정의한다.(천개의 고원14)   다양체는 현실이며, 어떠한 통일도 전제하지 않으 며, 결코 총체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며 절대 주체로 돌아 가지도 않는다. 총체화, 전체화, 통일화는 다양체 속에 서 생산되고 출현하는 과정들일 뿐이다. 다양체들의 주요 특징은 독자성이라는 다양체의 요소들, 되기의 방식인 다양체의 관계들, (즉 주체 없는 개 체화)이라는 다양체의 사건들, 매끈한 공간과 시간 이라는 다양체의 시ㅡ공간, 다양체의 현실화 모델인 (나무형 모델과 반대되는) 리좀, 고원들을 형성하는 다 양체의 조성판 (연속적인 강렬함의 지대들), 그리고 고원을 가로 지르고 영토들과 탈영토화의 단계들 을 형성하는 벡터(방향량)들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질 들뢰즈/ 필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 5. )   버로스의 잘라붙이기 기법을 보자. …다양체를 구조 안에서 파악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다양체의 증대를 조합의 법칙으로 환원시켜 상쇄相杀시키고  만다.(천개의 고원 17)   다양체는 주체도 객체도 없다. 다양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규정, 크기, 차원들 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다양 체의 본성이 변할 때 증가할 수 있다.(천개의 고원21)   도주선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다양체가 실 제로  채우고 있는 유한한 차원들의 수가 실재한다. 둘째 다양체가 이선에 따라 변형되지 않는다면 그어떤 보완 적인 차원도 존재불가능하다. 세째, 이 차원들이 어떤 차 원이건 간에 이 모든 다양체들은 단일한 고른판 또 는 외부서의 판위에서 판판하게 만들 수 있고 또 만들어 야  한다… n차원에 있는 판판한 다양체들은 탈 기표 작용적이며 탈주체적이다(천개의 고원.22-23)   짧은 기억은,,, 항상 불연속성, 단절, 다양체를 전제한다. (천개의고원36)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건립되고 파산하는 모델. 끈임없이 확장되고 파괴되고 재건되는 과정이다. (천개의 고원46)   기관 없는 몸체는 기관들이 제거된 텅빈 몸체가 아니다. 기관없는 몸체 위에서 기관들 노릇을 하는 것들 (늑대, 늑대눈. 늑대턱?)은 무리 현상에 따라 브라운 운동을 하면서 분자적 다양체의 형태로 분배 된다. 사막은 무언가 우글거리고 있다. 따라서 기관 없는 몸체는 기관들에 대립한다기 보다 유기체를 이루는 기관들의 조직하에 대립한다. 기관 없는 몸 체는 죽은 몸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몸체이 며, 유기체와 조직화를 제거했다는 점에서 더욱더 생동하고 북적댄다. 이(虱)들은 바닷가 모래사장위로  뛰여든다.(천개의 고원67)   다양체들과 그 요소들의 본성이 나온다. 즉 리좀. 다양체 의 꿈이 갖는 그 본질적 특성중의 하나는 그 각각의 요소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다른 요소들과의 거리를 변경시킨다는 것이다. … 그 요소들은  본성이 바뀌게 된 다. 벌떼는 줄무늬셔츠를 입은 축구선수의  난투 또는 투아래그리족 무리로 변한다(천개의 고원 68)   .   늑대들 그것은 강렬함이요 속도이며 온도이고 분해될 수 없으나 끊임없이 변하는 거리이다. 그것은 득실거림이 요 북적거림이다. (천개의 고원 70 )   다양체는 나누어질 때마다 본성이 바뀌는 립자들로 이루어져있고, 또 변할 때마다 다른 다양체 속으로 쇄도해 들어가는 거리들로 이루어져있다. 문턱에서 또는 문턱 저편에서 또는 문턱 이편에서 소통하고 넘나들며 끊임없이 구성되고 해체되는 거리들로 이 후자의 다양체의 요소들은 입자이며 그것의 관계는 거리이고, 그것의 운동은 브라운 운동이며 그것의 량은 강렬함들, 강렬함의 차이들이다. (천개의 고원72)   정신 분석은 모든 것을, 즉 군중과 무리를, 그램분자적 기계와 분자적 기계를, 모든 종류의 다양체를 으깨여 납작하게 만든다.(천개의 고원75)   모든 언표는 기계적 배치물, 다시 말해 언표 행위를 하 는 집단적 행위자의 산물이다(집단적 행위자란 말은 사람들이나 사회가 아니라 다양체를 이미한다.) 고유명은 개인을 지칭하지 않는다… 고유명은 다 양체에 대한 순간의 파악이다.(천개의 고원80)   다양체는 그것이 차원수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다양체는 본성이 변하지 않고서는 나누어지지도 않고, 자 원을 잃거나 얻지도 않는다, 그리고 다양체의 차원 들의 변화는 다양체에 내재하기 때문에, 이것은 결국 각각의 다양체는 이미 공생하고 있는 다질적인 항 들로 조성되여 있으며, 또는 각각의 다양체는 그것의 문턱들과 문들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다른 다양 체들로 끊임없이 변형된다는 이야기와 마찬가 지이다.(천개의 고원473-474)   그 선이 고름을 갖는지, 다시 말해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생의 다양체속에서 실제로 기능하는지, 또 다양체들 이 실제로 이행의 생성으로 변형되는 지는 각각의 구체 적인 경우에 따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동상 476)   음악가는 특히 이렇게 말할수 있다. “나는 기억을 증오한다. 회상을 증오한다.”음악가는 생성의 역량을 긍정하기 때문이다.(천개의 고원561)   점의 체계에 대립하는 것이 바로 선의 체계, 아니 차라리 다선적 체계이다. 선을 해방시키고 사선을 행방시켜 라. 이런 의도를 갖고 있지 않은 음악가와 화가는 없다 . (동상 559)   다선적 체계에서 모든 선은 동시에 시행된다.(동상563)   리토르넬로는 고유한 음악적 내용. 음악에 고유한 내 용의 블록이라고 우리는 말할 것이다…음악은 리토르넬로를 탈영토화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조작이다. 리토르넬로는 본질적으로 영토적인 것이 며 영토화나 재영토화를 행한다. (천개의 고원568)   시각적 상관물(눈)을 가진 얼굴은 회화와 관련되 며, 청각적 상관물(귀)을 가진 목소리는 음악과 관련되 는 것이다.(귀는 그자체로 리토르넬로이다. 귀는 리토 르넬로의 형태를 갖고 있다). 회화가 얼굴의 탈영 토화이 듯이 음악은 특히 목소리의 탈영토화로, 이때 목소리는 점점 더 언어와 멀어진다.(동상571)   다양체는 현실이며, 어떠한 통일도 전제하지 않으 며, 결코 총체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며 절대 주체로 돌아 가지도 않는다. 총체화, 전체화, 통일화는 다양체 속에 서 생산되고 출현하는 과정들일 뿐이다. 다양체들의 주요 특징은 독자성이라는 다양체의 요소들, 되기의 방식인 다양체의 관계들, (즉 주체 없는 개체화)이라는 다양체의 사건들, 매끈한 공간과 시간 이라는 다양체의 시ㅡ공간, 다양체의 현실화 모델인 (나무형 모델과 반대 되는) 리좀, 고원들을 형성하는 다 양체의 조성판 (연속적인 강렬함의 지대들), 그리고 고 원을 가로 지르고 영토들과 탈영토화의 단계들 을 형성하는 벡터(방향량)들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들뢰즈 가타리 ‘천개의 고원’5)   다양한 이미지를 동일한 주제 아래  모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물과 꿈’ 169)   이들 꼬드는 --우리가 인정하든 말든—의미를 변경시키 기도 하며, 더욱 중요하게는 생성하는 작용을 하는 데, 그 방법은 무구하다거나 자유롭다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바깥 어디엔가에 있는 객관적인 것으로 우리가 생각하기 좋아하는 그것에, 언어자체가 제자 신의 중개적이며 형성적인 패턴(모형, 원형, 도안)을 부 과할 때의 복잡한 방법에 많이 닮아있다. 그 결 과, 적절히 분석되였을 경우의 텍스트가 드러내게 되는 것은 현실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토도로브가 말하는 뚜렷한 일종의 다양성이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153)   작품의 불연속성과 무질서가 낳는 열매자체는 각각의 잠언이 이를테면 모든 잠언들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유일하면서도 변주되는 하나의 구조가 있다… 성찰들은 담론의 단상들이고, 구조와 광경이 없는 텍스트들이다. (롤랑 바르트 ‘글쓰기의  0도’ 84)   잠언은 개별적인 덩어리들로 구성된 전체적인 불덩어리이다. 뼈대는 뚜렷한 모습이 상으로 광경적이며ㅡ    그리고 뼈들은 단단한것들이다. 잠언의 모든 구조는 그것이 고정되여있지 않다는 바로 그점에서 가시적 이다.(동상 85)    틀림없이 우리는 모든 경우에 영토성, 탈영토화, 재영토화의 요인들을 동시에 작동시켜야만 한다. (천개의 고원573)   다양체간의 온갖 종류의 차이ㅡ계량적 다양체와 비계량적 다양체, 외연적 다양체와 질적 다양체. 중앙집중적 다양체와 탈중심적 다양체, 나무형 다양체와 리좀형 다양체, 셀수 있는 다양체와 판판한 다양체, 차원의 다 양체와 방향의 다양체,군중의 다양체와 무리의 다 양체, 크기의 다양체와 거리의 다양체, 절단의 다양체 와 빈도의 다양체, 홈이 패인 다양체와 매끈한 다양체 등.(들뢰즈 가타리 ‘천개의 고원’924)   하나의 근방에서 다음 근방으로의 련결은 규정되지 않으며, 무한한 방식으로 행해질 수 있다.이리하여 가장 일반적인 리만 공간은 서로 나란히 놓여있기는 하지만 서로 관계는 맺지 않는 조각들의 무정형의 모임으로 나타나게 된다.이러한 다양체는 어떤 계량적 체계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빈도 또는 오히려 근방의 집합에 적용되는  축적의 조건에 의해 규정 된다. (천개의 고원 926) [계속]  
1563    하이퍼시 명언 18 / 최흔 댓글:  조회:1340  추천:0  2021-05-25
18. 리좀에 대하여     리좀ㅡ 땅밑줄기인 다른 말인 리좀은 뿌리나 수염 뿌리와 완전히 다르다. 구근(球根)이나 덩이줄기는 리좀이다. (질들뢰즈/필릭스 가타리’천개의 고원’18)   하나의 리좀은 어떤 곳에서는 끊어지거나 깨질 수 있으며, 자신의 특정한 선들을 따라 혹은 다른 새로운 선들을 따라 복구된다. 개미떼를 죽여도 계속 나오는 이유는 그놈들이 가장 큰 부분이 파괴되더라도 끊임없이 복구될 수 있는 동물리좀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모든 리좀은 분할 선들을 포함하는데, 이 선들에 따라 리좀은 지층화 되 고 영토화 되고 조직되고 의미화 되고 귀속된다. 하지만 모든 리좀은 또한 탈영토화의 선들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 선들을 따라 리좀은 끊임없이 도주한다. (천개의 고원24)   리좀은 하나의 반계보이다…항상 단절을 통해 리좀을 따라가라, 도주선을 늘이고 연장시키고 연계하라. 그것을 변주시켜라. n(하나가 아니라 여러개)차원에서 방향이 꺾인, 아마도 가장 추상적이면서 가장 꼬여있는 선을 생 산 할 때까지. 탈영토화 된 흐름들을 결합시켜라… 글 을 써라 리좀을 형성하라, 탈영토화를 통해 너의 영토 를  넓혀라. 도주선이 하나의 추상적인 기계가 되여 고른판 전체를 덮을 때까지 늘려라.(천개의 고원27-28)   리좀은 … 사본이 아니라 지도이다. …지도는 무의식을  구성해낸다. 지도는 장场들의 련결접속에 공헌하고, 기 관없는 몸체들의 봉쇄ㅡ해제에 공헌하며, 그것들을 고 른판 위로 최대한 열어놓는데 공헌한다. 지도는 그자 체로 리좀에 속한다. 지도는 열려있다. 지도는 모든 차원들 안에서 연결접속될 수 있다. 지도는 분해 될 수 있고, 뒤집을 수 있으며, 끝없이 변형될 수 있 다. 지도는 찢을 수 있고, 뒤집을 수 있고, 온갖 몽타주를 허용하며,개인이나 집단이나 사회 구성체에 의해 작성 될 수 있다. 지도는 벽에 그릴 수도 있고, 예술 작품처럼 착 상 해낼 수도 있으며,정치 행위나 명상처럼 구성해 낼 수도 있다. 언제나 많은 입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 은  아마도 리좀의 가장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일 것이다. (천개의 고원30)   문제는 무의식을 생산하는 일이며, 그와 더불어 새로운 언표, 다른 욕망을 생산하는 일이다. 리좀은 이러한 무 의식의 생산 그자체이다(천개의 고원41)   리좀의 주요한 특성: 리좀의 특질들 각각이 반드시 자신과 동일한 본성을 가진 특질들과 연결접속되는 것 은 아니다. 리좀은 아주 상이한 기호 체제들  심지어는 비-기호들의 상태들을 작동시킨다. 리좀은    여럿으로도 환원될 수 없다. 리좀은 둘이 되 는  도 아니며 심지어는 곧바로 세, 넷, 다섯등이 되는  도 아니다. 리좀은  로부터 파생되여 나오는 여럿도 아니고 가 더해지는 여럿(n+1)도 아니다. 리좀은 단위들로  이 루어지지 않고, 차원들 또는 차라리 움직이는 방향 들로  이루어져있다. 리좀은 시작도 끝도 갖지 않고 언제나 중간을 가지며, 중간을 통해 자라고 넘쳐 난다. 리좀은 n차원에서 주체도  대상도  없이 고른 판 위에서 펼쳐질 수 있는 선형线型적 다양체들을 구성하는데, 그 다양체들로부터는 언제나 하나가 빼내 진다(n-1) 그러한 다양체는 자신의 차원들을 바꿀 때마다 본성이 변하고 변신한다. 리좀은 선들로만 이루어 져있다. 반대로 구조나 점들과 위치들의 집합, 그리고 이 점들 사이의 이항관계들과의  위치들 사이의 일대 일 대응관계들의 집합에 의해 정의된다. 분할 선들, 심층작용의 선들이 여러차원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 라 최고 차원인 도주선 또는 탈영토화 선도 있다. 다양체는 이선을 따라, 이선을 따라가며 본성이 변하면서 변신한다.(천개의고원47)   기억이 아니라 망각, 발전을 향한 진보가 아니라 저개 발, 정주성이 아니라 유목, 사본이 아니라 지도로, 즉 리 좀학ㅡ대중분석이다. … 기표 작용을 하는 절단이 아니라, 지각할 수 없는 단절을 행하라.(천개의 고원 53)   n에서, n-1에서 써라. 슬로건을 통해 써라. 뿌리 말 고 리좀을 만들어라. 절대로 심지 말아라! 씨뿌리지 말 고 꺾어꽂아라! 하나도 여럿도 되지 말아라, 다양체가 되여라! 선을 만들되, 절대로 점을 만들지 말아라! 속도 가 점을 선으로 변형시킬 것이다!빨리 빨리, 비록 제자 리에서라도! 행운선, 허리선, 도주선, 당신들 안에 있는 을 깨우지 마라! 올바른 관념들이 아니라,단지 하 나의 관념을 가져라! 사진이나 그림이 아니라 지도를 만들어라.(천개의 고원53-54)   강물은 감자를 심지 않네/목화도 심지 않네/심는 사람 은 잊혀지지만/ 유장한 강물은 유유히 흘러갈 뿐. 리 좀은 시작하지도 않고 끝나지도 않는다. 리좀은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있고 사이 존재이고 간주곡이다.(천개의 고원54)    리좀962   지층 뿐 아니라 배치물들도 선들의 복합체이다. 선의 첫 번째 사태, 첫번째 종류는 다음과 같이 정해질 수 있다. 선은 점에, 사선은 수평성과 수직선에 종속되여 있 다. 선을 구체적이건 아니건 윤곽을 만든다. 선이 그리는 공간은 홈이 패인 공간이다. 선이 구성하는 수 많은 다양체는 언제나 우월하거나 보충적인 차원에서 에 종속되여있다. 이런 유형의 선들은 그램분자 적이며, 나무형태의, 이항적, 원형적, 절편적 체계를 형 성한다.   선의 두번째 종류는 이와 전혀 다른 것으로, 분자적이며 “리좀”류형을 하고 있다. 사선은 해방되거나 끊어지 거나 비틀린다. 이 선은 이제 윤곽을 만들지 않으며, 대신 사물들 사이를, 점들 사이를 지나간다. 이 선은 매끈한 공간에 속해 있다. 이 선은 자신이 주파하는 차원만을 갖는 하나의 판(=면)을 그린다. 따라서 이 선이 구성 하는 다양체도 이제  에 종속되지 않으며, 그 자체로 고름을 획득한다. 이것은 계급들의 다양체가 아니라 군중이나 무리의  다양체이다. 그것은 유목 적이고 특이한 다양체이지 정상적이거나 합법적인 다양체가 아니다. 그것은 생성의 다양체 또는 변형 되는 다양체이지 요소들을 셀 수 있고 관계들이 질서 잡힌 다양체가 아니며, 퍼지집합이지 정확한 집합이 아니다… 파토스의 관점에서 이 다양체들은 정신병, 특히 분열증에 의해 표현된다. 실천의 관점에서 이 다양체 들은 마법에서 이용된다. 이론의 관점에서 다양체들의 지위는 공간의 지위와 상호 관련되여 있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사막이나 초원이나 바다 유형을 한 매끈한 공간에는 서식자가 없거나 근절되지 않으 며,  오히러 두번째 종류의 다양체가 서식한다(수학과 음악은 이러한 다양체 리론을 정교하게 만드는 일에서 아주 멀리 나아갔다).   그렇다고 해도 와 여럿의 대립을 다양체의 여러 유형간의 구분으로 대치시키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두유형을 구분한다고 해도 이 둘은 서로 내재적이며, 각각 나름의 방식으로 상대방으로부 터 “나오기” 때문이다. 나무형태의 다양체와 그렇지 않은 다양체가 있다기 보다는 다양체의 나무화가 있다. 하나의 리좀안에 분배되여 있는 검은 구멍들이 함께 공명하기 시작할 때 또는 줄기들이 공간을 사방으로 홈을 파서 이 공간을 비교 가능하고 분할 가능하며 동질적인 것으로 만들 때 바로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특히 의 경우에서 이를 잘 볼 수 있다). 또 “군중”의 운동들, 분자적 흐름들이 축적점 이나 응고점에서 집합접속되여 이 점들을 절편화하고 정정할 때도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그리고 비대칭적으로 리좀의 줄기들은 나 무에서 멈추지 않고 빠져나오며, 군중과 흐름은 끊임없이 벗어나고, 나무에서 나무로 도약하며 뿌리 에서 벗어난 연결접속들을 끊임없이 발명해낸 다. 공간은 온통 매끈해져서 이번엔 홈이 패인 공간에 다시 작용하는 것이다. 심지어 영토조차, 아니 특히 영토야말로 이 깊은 운동들의 작용을 받는다. 또는 언어에 관해 말하면, 언어의 나무들은 발아와 리좀에 의해 동요된다. 이런 식으로 리좀의 선들은 사실상 이 선들을 절편화하고 심지어 지층화하는 나무의 선들과 이 선들을 탈취하는 도주선이나 단절선 사이에서 오간다.   따라서 우리는 세가지 선으로 만들어지지만 각각의 선은 나름의위험을 갖고 있다. 우리를 절단하고, 우리에게 동 질적인 공간의 홈파기를 강요하는 절편적인 성이 있으며, 또 이미 자신의 미세한 검은 구멍들을 운반 하는 분자적인 선들이 있고, 끝으로 자신의 창조적인 잠재력을 포기함으로써 죽음의 선으로 돌변해 순수하고 단순한 파괴의 선(파시즘)으로 돌아설 위 험을 항상 간직하고 있는 도주선들 그자체가 있다.   은 시작도 끝도 기원도, 목적도 없다. 그것은 언제나 중간에 있다. 그것들은 점들이 아니라 선들로 이어져있다. 그것은 리좀인 것이다(천개의 고원499) [계속]       
1562    하이퍼시 명언 17 / 최흔 댓글:  조회:1254  추천:0  2021-05-25
17. 지층에 대하여     중심 고리는 주변과 따로 떨어져있지 않다. 주변은 새로 운 중심을 형성하고, 원래의 중심은 위에서 반응하 다가는 불연속적 겉지층으로 옮겨간다. (천개의 고원105)   지층의 중심 띠와 관련해서 매개 환경들이나 매개 상태들은 서로 “겉지층”을 이루고, 새로운 주변들에 대해 새로운 중심들을 형성한다. 이 또 다른 방식, 즉 중심 띠가 파편화 되는 방식, 이쪽저쪽 지엽말단까지 환원불가능한 형식들 및 그 형식들에 연합된 환경 으로 부서져나가는 이 방식을 “겉지층”이라고 부 르도록 하자.(천개의 고원107)    성층 작용의 표면은 두 층사이에 있는 보다 밀집 된 고 른판이다. 층들이 바로 그 지층 그 자체이다….. 사실상 기관 없는 몸체 자체가 고른판을 형성하며, 고른판은 지층들이 형성되는 층위에서 밀집되거나 조밀해진 다.(천개의 고원 86)   정확히 말해서, 우리는 지층들과 지층에서 리탈한 고른판 사이에 이원론이나 피상적 대립을 설정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지층들 자체가 상대적 탈령토화의 속도에 의하여 활성화되고 정의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절대적 탈령토화는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으며, 지층들은 어디에나 현존하고 가장  일차적이고 언제나 내재하는 고른판 위에서 이루어진 부산물이자 집약이다. 또한 고른판은 에 의해 점령되고 그려진다. 추상적 기계는 자신이 그리는 탈지층화 된 판 위에 펼쳐져있다. 또는 그와 동시에 조성의 동일성을 정의하면서 각 지층 안에 감싸인채로도 있고, 또 심지어는 포착의 형식을 정의하면서  어떤 지층들 안에 반쯤 선채로 존재하 기도 한다. 따라서 고른판 위에서 풀려가거나 춤추는 것은 제 지층의 분위기, 파동, 회상, 또는 긴장을 담고 있다. 고른판은 지층들을 알맞게 보유하고 있어서, 고 른판 안에서 자기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지층들 로부터 변수들을 추출해낼 수 있다. …지층들은 형식 들과 실체들 안에서 취한 불연속적인 강렬함들 만을 인 식한다. 또한 지층들은 내용의 립자들과 표현의 항목들 안에 있는 나누어진 미립자만을 인식한 다. 또한 지층들은 탈령토화된 흐름 가운데서도 분리 접속되고 재영토화된 흐름들만을 인식한다. 반면 강렬함의 련속체,  미립자들 또는 기호립자들로 조합 된 방출, 탈영토화 된 흐름들의 집합접속같은 것들은 고른판에 고유한 세 요소이며, 추상적인 기계에 의해 작동하고 탈지층화를 구성한다. 이 모든 것중 어떤 것도 카오스적인 하얀 밤이 아니고 무차별적인  검은 밤도 아니다. 규칙들, 즉 판짜기 규칙들, 도표를 만드는 규칙들이 있다. (천개의 고원139)   지층들의 체계는…강열한 련속체 안에서 지층들은 형식을 재단하고 질료를 실체로 형성한다. 조합된 방출작용 안에서 지층들은 표현과 내용을, 표현의 통일성과 내용의 통일성을, 예컨대 기호들과 립자들을 구분 한다. 접합접속 안에서 지층들은 흐름들을 분리해내고 그 흐름들에 상대적 운동과 다양한 영토성, 상대적 탈영토화와 보충적 재영토화를 할당한다. 이렇게 지층들은 운동에 의해 활성화된 이중 분절을 도처에 설치한다. 즉, 내용의 형식과 내용의 실체, 표현의 형식에서 절편적 다양체를 구성한다. 이것들은 지 층들이였다. 각각의 지층들은 내용과 표현의 이중 분절이었다. 내용과 표현은 실재적으로 구분되고 상호 전제 상태에 있으며 서로 뒤섞인다. 내용과 표현과 함께 가는 머리 둘 달린 기계적 배치물들은 자신의 절편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한지층에서 다른 지 층으로 가면서 변이 되는 것은 내용과 표현 사이의 실재적 구분이 지닌 본성이며, 형식을 부여받은 질 료인 실체의 본성이며, 상대적 운동의 본성이다.   우리는 실재적 구분의 세가지 커다란 유형을 요약하여 구분할 수  있었다. 첫째, 형식적ㅡ실재적 구분. 이것은 표현의 공명이 설립되는 크기의 질서들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유도) 둘째. 실제적ㅡ실재적 구분. 이것은 표현의 선형성이 설립되는 상이한 주체들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변환) 세째. 본질적ㅡ실재적 구분. 이것은 표현의 초선형성이 설립되는 상이한 속성들 또는 범주들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천개의 고원142)   지층들이 경화되고 조직되는 것은 고른판 위에서이며,  이 판이 작동하고 구축되는 장은 지층들 속에 있다는 것 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양쪽 운동 모두 부품을 하나씩 하나씩, 착실히 반복하여 조작하면서 실현된다 는 것도.(동상640)   하나의 지층에는 도처에  이중 구조, 이중 구속, 가재가 있으며 도처에 모든 방향에 때로는 표현을 가로 지르고 때로는 내용을 가로 지르는 다양한 이중 분절이 있다. … 한 지층  안에서 분자들은  동일하지 않 더라도 밑 지층에서 차용한 분자적 재료는 동일할 수있다모든 지층에 걸쳐 실체는 동일하지 않더라도 실체의 요소들은 동일할 수 있다. 형식들은 동일하지 않으면 서도 형식적 관계들 또는 연결들은 동일할 수 있다(천개의 고원 95)    지층, 성층 작용957   지층은 대지라는 몸체 위에서 빽빽해지는 현상으로, 분자적인 동시에 그램분자적이다. 가령 축적, 응결, 침 전, 습곡같은 것이 그것이다. 지층은 ,  또 는  이다. 전통적으로 대략 세가지 지층이 구분 된다.   지층, 유기체적지층, 인간형태(또는 “이형조성적 [异性造成 的]“) 의 지층이 그것이다. 각각의 지층 또는 분 절은 코드화된 환경, 형식화된 실체로 구성된 다. 형식과 실체 코드화 환경은 실재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모든 분절의 추상적 성분들 이다.   하나의 지층은 확실히 아주 다양한 형식과 실체, 다양한 코드와 환경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지층은 다 양한 형식의 조직화    과 다양한 실체의 전개  를 갖고 있으며 그 결과 지층은 곁지층과 겉지 층으로 나뉜다. 가령 유기체지층이 그렇게 나뉜다. 지 층의 세부 구분인 겉지층과 곁지층 역시도 지층으 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목록은 결코 완결될 수 없다)  아무리 다양한 조직과 전개를 갖고 있다고 하더 라도 모든 지층은 조성의 통일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조 성의 통일성은 하나의 지층이 모든 형식이나 코드 에  공통된 형식적 특질과 관련되여 있으며, 지층의 모든 실체나 환경에 있는 실체적 요소 또는 공통된 재료와도 관련되여 있다.   지층들에는 커다란 운동성이 있다. 하나의 지층은 항상 다른 지층의 밑지층 역할을 하거나 다른 층과 충돌할 수 있으며. 진화적 질서와는 무관하다. 또한 특히 두 지층 사이에 또는 지층들이 둘로 나뉠 때 사이 지층 현상들 이, 즉 코드변환, 환경의 변화혼합 등이 나타난다. 리듬 은 이 사이 지층 운동과 관계가 있는데, 이 운동은 성층작용의 활동이기도 하다. 성층 작용은 카오스 로부터 세계를 창조하는 곳과 같으며, 이 창조는 연속적 으로 갱신되는 창조이다. 그리고 지층들은  을 구성한다.   고전적 예술가는 신과 같아 형식들과 실체들, 코드들과 환경들, 그리고 리듬들을 조직해 세계를 만든다.   하나의 층을 구성하는 분절은 항상  이중  분절이다. (이 중-집게) 실로 그것은 하나의 내용과 하나의 표현을 분절한다. 그리고 형식과 실체는 실재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반면, 내용과 표현은 실재적으로 구분된다. 그래서 지 층들은 옐름슬로우의 격자판에 부합된다. 내용의 분절 과 표현의 분절, 내용과 표현은 각각 나름의 형식 과 실체를 갖고 있다. 이 둘사이 내용과 표현 사이에는 일치관계도, 원인ㅡ결과 관계도, 기표ㅡ기의 관계도 없다. 실재적인 구분, 상호전제, 동형성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각각의 지층에서 내용과 표현이 구분되더라 도  똑 같은 방식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인 세가지 커다란 지층에서 내용과 표현은 동일한  방 식으로 배분되는 것이 아니다(가령 유기체 지층에서는 표현의 선형화가 있지만, 인간형태의 지층에서는 초선 형성이 있다). 이런 리유로 인해 그램분자적인 것과 분자적인 것은 해당지층에 따라 아주 상이한 조합을 갖 게 된다. 그렇다면 어떠한 운동, 어떠한 도약이 층들밖 으로 (웃지층) 우리를 끌어내는가? 분명 물리ㅡ화학적 지층이 물질을 전부 망라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 다. 형식화되지 않는, 분자보다 작은  도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기체 지층이  을 전부 망 라하는 것도 아니다. 유기체는 오히려 생명이 스스 로를 제한하기 위해 자기와 대립시키는 존재이 며, 생명은 비유기를 재한하기 위해 자기와 대립 시키는 존재이며, 생명은 유기적일 때 더욱 강력하 고  더 강력한 법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인간형태의 지층을 사방으로 넘쳐나는 인간의 비인간적   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러한 판도에 도달할 수 있을까? 또는 어떻게 하면 판을 구성할 수 있을까? 또는 우리를 그리로 이끄는 “선” 을  어 떻게 하면 그릴 수 있을까? 왜냐하면 지층들 바깥에서는 또는 지층들이 없이는 우리는 더이상 형식과 실체 도, 조직과 발전도, 내용과 표현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탈구되며, 심지어 더이상 리듬에 의해 유지될 수도 없는 것같다. 어떻게 하면 형식 화되지 않은 질료, 비유기체적 생명, 비인간적 생성이 그저 순수하고 단순한 카오스와는 다른 것이 될 수 있을까? 따라서 모든 탈지층화의 시도(가령 유기체를 넘어서기, 생성에 몸을 던지기)는 우선 아주 신중한 구체적 규칙들을 따라야만 한다.    너무 갑작스런 탈지층화는 자살적인 것이나 암적인 것이 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즉 카오스, 공허 파괴에 빠지든지 아니면 점점 더 강하게 경화되 여가는 지층에 다시 갇혀 일정한 다양성, 분 화,  유동성마저 잃어버리고 마는것이다. (천개의 고원957ㅡ960)   탈지층화해라, 새로운 기능 위에, 도표적인 기능 위에 자신을 개방시켜라.(천개의 고원258) [계속]    
1561    하이퍼시 명언 16 / 최흔 댓글:  조회:1232  추천:0  2021-05-25
16. 탈령토화에 대하여     대리보충은 디페랑스(차연)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174)   데페랑스는 지연운동이면서, 결코 스르로 현재하지 않는 어긋남의 운동인 까닭이다. 이때 연대는 하나 이상의 선에서 발생한다… ‘선 하나로는 아무런 의미 도 없으며, 의미를 표현하려면 반드시 두번째선이 필요하다. 이것은 중대한 법칙이다’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230)   탈령토화된 기호의 자기 잉여로서의 기표여, 장례식장같은 공포 가득한 세계여.(천개의 고원 220)    제1정리: 혼자서는 결코 탈영토화 될 수 없다. 적어도 두개의 항, 손-사용대상, 입-가슴, 얼굴-풍경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두개의 항들 각각은 다른 항 위에 서 재영토화 된다. 따라서 재영토화와 초기의 더욱 이전의 영토성으로의 회귀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제2정리: 탈영토화의 두 요소나 운동에서 가장 빠른 것이 반드시 가장 강렬하거나 가장 탈영토화 되여있는 것은 아니다. 탈영토화의 강렬함은 운동이나 전개 속도와 혼동되여서는 안된다. 따라서 가장 빠른 것은 자신 의 강렬함을 가장 느린것의 강렬함과 연결접속시키고, 강렬함으로서의 이 가장 느린것은 가장 빠른 것을 뒤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층이나 다른 판 위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입-가슴의 관계는 이미 얼굴성의 판위로 인도된다.   제3정리: 가장 탈영토화 되지 않은 것은 가장 탈영토화 된것 위에서 재영토화 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여기에서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수직적인 재영토화의 두번째 체가 나타난다. 입 뿐 아니라 가슴, 손, 온몸, 도구 자체도 “얼굴화”된것은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제4정리: 추상적인 기계는 그것이 생산하는 얼굴 뿐만 아니라 몸체의 부분들, 그것이 (유사성이 조직화가 아니 라)리성의 질서에 따라 얼굴화하는 대상들 안에서 다양한 정도로 실행된다.(천개의 고원334-335)   력사가의 의무는 이 두가지 운동 (한편으로는 탈코드화 ㅡ탈영토화와 다른 한편으로는 덧코드화ㅡ재령토화)이 공존하거나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기간”을 정하는  일이다.(동상420)   국가장치란 특정한 한계와 특정한 조건속에서 덧코드화의 기계를 실행하는 재영토화의 배치물이다.(동상424)   국가는 다른 점들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점이 아니라 모든 점들의 공명상자이다.(천개의 고원426)   되기(=생성)는 결코 상호간의 대응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사성도 모방도 더욱이 동일화도 아니다.  (동상452)   결국 되기는 진화, 적어도 혈통이나 계통에 의한 진화 는 아니다… 되기는 역행적이며 이 역행은 창조적이다. (동상453)   운동은 오직 또는 주로 계통적 생산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질적인 개체군들 사이를 가로 지르는 소통을 통해 일어난다. 되기는 리좀이지 결코 분류용 수형도나 계통수가 아니다. 되기는 결코 모방하기도 동일화 하기도 아니다. (동상454)   작가가 마법사라면, 그것은 글쓰기가 하나의 되기이 기 때문이며 글쓰기가 작가-되기가 아닌 쥐-되기, 곤 충-되기, 늑대-되기등 이상한 되기에 의해 횡단되기 때 문이다.(동상456)   인간 패거리이 건 동물 패거리이 건 하여간 패거리들은  모두 전염, 전염병, 전쟁터, 파국과 더불어 증식한다. (동상459)   모든 생성은 이미 분자적이다.(천개의 고원513)   의문의 여지없이 지각할 수 없는것ㅡ되기이다. 지각할 수 없는 것은 생성의 내재적 끝이며 생성의 우주적 정식 이다.(동상529)   문인화가는 자연의 본질을 이루는 선과 운동만을 지니고 있다가 뽑아낸다. 이어지거나 겹쳐진 ‘선’만 을  가 지고 진행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세상 모든 사람되기, 세계를 생성으로 만들기란 곧 세계만 들 기, 하나의 세계 또는 여러 세계를 만들기이며, 다시 말해 자신의 근방역과 식별 불가능성의 지대를 찾 기이다. 추상적인 기계의  , 그리고 이를 실행하 는 구체적인 배치물인 각각의 세계. 다른 선들과 연속되고 결합되는 하나나 여러개의 추상적인 선으로 환원되고, 그리하여 마침내 무매개적으로, 직접 하나의 세계를 생산하기. 이 세계에서는 세계 그자체가 생성 되고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이 된다(동상531)   이 판에서는 여성ㅡ되기, 동물ㅡ되기, 지각할 수 없는것 되기 등 다양한 되기가 서로 결합될 뿐만 아니라, 지각할 수 없는 것조차  이 되 고,  동시에 지각은  이 된 다.  즉 여러 물질, 색, 음 사이에 위치하는 구멍 들, 미세한 틈들에 이르는 것인데, 거기에 도주 선들, 세계의 선들, 투명하고 절단된 선들이 몰려 든다. 지각을 바꿔라. (질 들뢰즈/필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 535)   비밀은 결코 정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관념이 아니다. 단지 비밀스러운 것의 생성이 있을 뿐이며, 비밀은 하 나의 생성을 갖는다. 비밀의 기원은 전쟁기계에 있  다. 여성ㅡ되기, 아이ㅡ되기, 동물ㅡ되기 등과 더불어 비밀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전쟁기계이다. (천개의 고원544)   생성들은 소수적이며 모든 생성은 소수자ㅡ되기이다. (동상550)   소수자 되기는 자신의 요소들인 탈영토화 된 매체와 주체를 통해서만 존재한다. 생성의 주체는 다수성의 탈영 토화 된 변수로서만 존재하며, 생성의 매체는 소 수성의 탈영토화하는 변수로서만 존재한다. 우리를 하나의 생성으로 몰아가는 것은 그 어떤 것일 수도 있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것일 수도 있고,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점점 커져서 당신을을 사로잡아 버리는 작은 디테일 없이는 당신들은 다수성에서 이탈하지 못한다. (동상552),   하나의 점은 언제나 기원적이다. 하지만 생성의 선은 시작도 끝도 없으며, 출발점도 도착점도 없고 기원도 목적지도 없다. 따라서 기원의 부재에 대해 말하는 것,  기원의 부재를 기원으로 만드는 것은 형편 없는 말장 난에 불과하다. 생성의 선은 중간만을 갖는다. 중간은 평균치가 아니다. 그것은 가속운동이며 운동의 절대 속도이다. 생성은 언제나 중간에 있다. 우리는 중간 에서만 생성을 얻을 수 있다. 생성은 하나도 둘도, 또 둘사이의 관게도 아니다. 생성은 둘ㅡ사이이며, 경계선 또는 도주선, 추락선, 이 둘의 수직선이다.(동상555)   생성은 반(反)ㅡ 기억이다. 물론 분자적인 기억도 있지 만, 그것은 다수의 세계 또는 그램분자적 세계로 통합되는 요인으로서 그러할 뿐이다. 회상은 얹제나 재영토화 기능을 갖는다. 이와 반대로 탈영토화의 백터는 결코 규 정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자적 층위들에 직결되여 있다. 그리고 탈영토화의 정도가 높을 수록 그러한 연결도  더  강해진다. 분자적 성분들을 한데 “모아주 는”것이 바로 탈영토화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년기의 블록 또는 아이ㅡ되기는 유년기 회상과 대립한다.(천개의 고원556)   모방하는 자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생성에 들어가며, 이 생성은 자신이 모방하는 것의 부지불식간의 생성과 결 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패 없이는 모방은 없으며, 실패할 때에만 모방이 있다. 화가나 음악가는 동물을 모방하 지 않는다. 화가나 음악가는 동물이 되지만, 이와 동 시에 동물도 화가나 음악가가 바랬던 것이 되 며, 화가나 음악가는 가장 깊은 곳에서 과 공 모하는 것이다…생성은 모방이 아니다. … 우리는 모방하 지 않는다. 생성의 블록을 구성하는 것이다. (천개의 고원577)   제5정리: 탈영토화는 동시에 생성하는 대 변수와 소 변수의 공존을 함축하기 때문에 탈영토화는 언제나 이 중적이다. (생성에서 두항은 자리를 바꾸지도 동화되지 도 않고 오히려 비대칭적인 블록으로 끌려들어가며, 거기에서 한항은 다른 항 못지 않게 변화하며 또한 그것 은 이 두항의 근방역을 구성한다...   제6정리: 비대칭적인 이중적 탈영토화는 탈영토화하는 힘과 탈영토화 된 힘을 부과할  수  있다. 통일한 힘이 해당”계기”나 양상에 따라 한값에서 다른 값으로 옮겨가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가장 덜 탈영토화된 것은 언 제나 가장 탈영토화하는 것의 탈영토화를 재촉하며, 그러면 가장 탈영토화하는 것은 가장 덜 탈영토화된 것 에  한층 더 반작용한다...   제7정리: 탈영토화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표현 역할을 하고, 탈영토화 된 것은 상대적으로 내용역할을 한 다…   제8정리: 탈영토화의 힘과 속도는 각 배치마다 다르다. (질 들뢰즈/필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580)   엄밀하게 말해 환경의 성분이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차원을 가리키게 되였을 때, 또 기능적인 것이 아니 라 표현적인 것이 될 때 비로소 영토가 생기는 것이다. (동상597)   영토가 질의 지표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지표가 영토를 만든다. 하나의 영토 내의 모든 기능 또한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기능들은 영토를 형성하는 표현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토 그리고 이 영토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여러  다 양한 기능은 확실히 영토화의 산물이다. 영토화란 표현 성을 가진 리듬의 행위 또는 질을 획득해나가는 환경 성분들의 행위이기도 하다.(동상599)   영토란 우선 같은 종류에 속하는 두 개체간의 임게적(临界) 거리를 말하며, 이 거리를 표시하는 것이다. 내것 이란 우선 내가 가진 거리를 말한다. 나에게는 거리밖 에 없는 것이다.(천개의 고원 607)   영토는 같은 종의 구성원의 공존을 보증하고 조절하기 위해 구성원들 간에 거리를 둘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종이 가능한 한 많이 공존할 수 있도록 서로 다른 종을 분화시 키는 것이다. 풍경은 인물로 충족되고 인물은 풍경에 소속된다.(동상 608)   영토화는 다름 아니라 동일한 종의 코드의 여백 위에서 비로소 성립하는 요인으로서, 이 종에 속한 각각의 개 체들에게 분화의 가능성을 마련해준다.(동상 612)   표현의 질료가 모여 영토를 성립시키고 영토적 모티프나 영토적 풍경으로 발전해 갈 때 이것을 리토르넬로라고  일컫는다(동상613).   영토화하는 가운데 변형을 초래한다. (동상617)   따라가는 것은 결코 재생산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재생산하기 위해 따라갈 필요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714   도주는 또한 정복적이고 창조이다. 따라서 도주선들은 영토성안에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운동들이 현존 함을 증언해주면서 영토성을 완전히 가로 질러 간다.(천개의 고원113)    탈영토화의 기능D(D탈령토화 표기)는 “누군가” 영 토를 떠나는 운동이다. 그것은 도주선의 작동이다. 그러 나 실로 다양한 경우가 제시된다. D는 그것을 상쇄하는 재영토화를 통해 회수되여, 도주선이 차단될 수도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D는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것이라도 재영토화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즉 잃어버린 영토를 “대신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의 존재, 하나의 대상, 한권의 책, 하나의 장치나 체계… 위에서 재영토화 될 수 있다. 예컨대 국 가 장치가 영토적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국가 장치 도  D를 행하지만 이것은 즉각 소유, 로동, 화페 위에서 재영토화를 통해 회수된다.(공적 소유건 사적 소유건 토지 소유가 영토적인 것이 아니라 재영 토화하는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기호 체제들 중 에서도 기표 작용적 체제가 분명 높은 층위의 D에 이른 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기의 위에서, 기표 그자체 위에서 재영토화의 체계 전체를 작동시키기 때문에 도주선을 봉쇄하며 부정적D만을 존속시키는 것이다. 한편 D가 긍정적이 되고 다시 말해 그저 이차적 역할을 할 뿐인 재영토화를 가로 질러 자신을 긍정하고, 그러면서도 상대적인 것으로 머물 때 사정은 달라진다. 왜냐하면 그러한 D가 그리는 도주선은 절편화되고, 잇단 “과정들”로 나뉘며, 검은 구멍들 속으로 빠지거나 심지어 일반화된 검은 구멍(파국)으로 종결되기 때문이다. 정념적이고 의 식적인 D를 동반하는 주체적 기호의 경우가 그러한데, 그것은 긍정적이지만 오직 상대적인 의 미에서만 그러하다. 여기서 이러한 D의 두가지 주요 형태는 단순히 진화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두번째 형태가 첫번째 형태에서 나올 수도 있고, 첫번째 형태로 갈수도 있는 것 이다.(특히 경합을 벌이는 도주선들의 절편화가 전체의 재영토화를 야기할 때 또는 절편들 중 하나에 유리하도록 도주선의 운동이 저지되는 경우에 그 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D의 아주 다양한 형태에서 빌려온 온갖 종류의 혼합된 모습들이 있는 것이다. (질 들뢰즈 /필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968)   절대적D가 있을까? 그리고 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 먼저 D, 영토, 재영토화, 대지 사이의 관 계를 더 잘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선 영토 자체는 내부에서 탈영토화를 작동시키는 탈영토화의 백들과 분리될 수 없다. 이는 영토성이 유연하고 “여분 적”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순회적이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영토적 배치물 자체가 자신을 둘러싼 다른 유형의 배치물들 위로 열려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D는 자신과 상관 관계에 있는 재영토화들과 분리될 수 없다. D는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오히려 항상 다양하며 합성되여 있다. D가 다양한 형태들에 동시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특정한 순간에 “탈영토화 된 것” “탈영토화하는 것”을 지 정해주는 상이한 속도들과 운동들을 D가 한데 교차 하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원적 작용의 재영토화는 영토로의 회귀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에 내재하는 이러한 미분적 관계들, 도주선에 내재하는 이러한 다양체를 표현한다(D의 정리들을 참조하라) 끝으로 대지는 결코 D의 반대가 아니 다. “타고난 것”의 신비와 관련해 이미 이 점을 보았다. 거기서 중심을 벗어난 것이건 강렬한 것이건 타 오르는 화로인 대지는 영토 바깥에 있으며, 오직 D의 운동 안에만 존재한다. 게다가 대지야 말로,  빙 원이야말로 우주에 속해 있으며, 인간이 우주의 힘들을 포획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재료로 제시 된다. 탈영토화된 것으로서의  대지는 그 자체로 D의 엄밀한 상관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D는 대지의 창조자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단지 재영토 화가 아니라 새로운 대지, 하나의 우주의 창조자라고.   따라서 “절대”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절대란 결코 초월적인 것이나 미분화된 것을 표현하지 않는다. 또 절대는 주어진 (상대적인) 모든 양을 넘어선 하나의 양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절대는 오직 상대적 운동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운동 유형을 표현할 뿐이다. 어떤 운동이 절대적인 때는 운동의 양과 속도가 어떻든 다양하다고 여져 진 “하나의” 몸체를 매끈한 공간에 관련시킬 때인데, 이때 이 몸체는 이 공간을 소용돌이치는 방식으로 차지한다. 어떤 운동이 절대적인 때는 운동의 양과 속도가 어떻든  로 여겨진 몸체를 홈이 패인 공간에 관련시킬 때인데, 이때 이 몸체는 이 공간 안에서 자리를 바꾸고, 또 적어도 잠재적인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직선에 따라 이 공간을 측정한다. D가 이 두번째 경우처럼 작동할 때마다, 즉 도주선들을 차단하는 일차적인 재영토화를 통해 작동하거나 아니면 도주선들을 절편화하고 좌절시키려하는 이 차적 재영토화와 함께 작동할 때마다  D는 부정 적이거나 상대적(이미 효과를 발휘하고 있더라 도)이다. 첫번째 경우에  따라  D가 새로운 대지를 창조할 때마다, 즉 도주선들을 연결접속하고, 도 주선들을 추상적인 생명선의 역량으로 데려가거나 아니면 고른판을 그릴 때마다  D는 절대적 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이 절대적D가  반드시 상대적  D를 통과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절대적D는 초월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역으로 상대적 또는 부정적  D 는 자신도 작동하려면 절대적D를 필요로 한다. 상대적 또는 부정적  D절대적  D를 “총괄적인”  D,  총체화 하는 D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대지를 덧코드화하며, 그리하여 도주선들을 연결접속시켜 뭔가를 창조해내는 대신 도주선들을 결합시켜 이것 들을 정지시키고 파괴한다(이제까지 우리는 결합과 연결접속을 종종 아주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동의어로 취급했지만,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것들을 대립시킨다). 따라서 본래적으로 부정적인 또는 심 지어 상대적인  D들 안에 이미 끼여들어있는 제한적인 절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절대의 바로  이 전환점에서 도주선들은 차단되거나 절편화 될 뿐만 아니라 파괴선이나 죽음의 선으로 전환 된다. 이리하여 절대안에서는 부정과 긍정의 한판 승부가 벌어진다. 사방에서 대지를 에워싸는 장례와 자살적 조직의 대상처럼 띠를 두르고, 총괄되고, 덧코 드화 되고, 결합된 대지냐 아니면 수많은 생성으로서 대지를 가로 지르는 창조의 선들을 따라 공고화되고, 에 연결접속되고, 안에 놓이게 되는 대지냐 (니체의 말대로 “대지는 다시 가볍게 되 였다…”).따라서 적어도  D의 네가지 형태가 서로 대적하고 조합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구체적 규칙들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천개의 고원970)   [계속]
1560    하이퍼시 명언 15 / 최흔 댓글:  조회:1290  추천:0  2021-05-25
15. 배치물에 대하여     문학은 하나의 배치물이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와는 아 무런 상관도 없다. 이데올로기는 있지도 않고 있어본 적도 없다.(‘천개의고원’14)   자신의 표현된 형식으로서 의미 생성과 주체화를 강요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권력배치물들이다. 독재적 배치물 이 없는 의미 생성은 없고, 권위적 배치물이 없는 주체화도 없으며, 정확히 기표들에  의해  작용하며  영혼들  또는 주체들에게 행사되는 권력배치물들이 없는 의미생성과 주체화의 혼합도 없다.( ‘천개의 고원’345)   배치물의 본성은… 첫번째 축인 수평축에 따르면 배치물은 두개의 절편을 포함하는데, 그 하나는 내용의 절편 이고 다른 하나는 표현의 절편이다. 배치물은 능동 작용이자 수동작용인 몸체들이라는 기계적 배치물 이며, 서로 반응하는 몸체들의 혼합물이다. 다른 한 편으로 배치물은 행위들이자 언표들인 언표 행위라는 집단적 배치물이며, 몸체들이 귀속되는  비물체적 변형 들이다. 하지만 수직 방향의 축에 따르면, 배치물은 한편으로는 자신을 안정화시키는 영토화의 측면들 또는 재영토화된 측면들을 갖고 있고, 다른 한편 으로는 자신을 실어나르는 탈영토화의 첨점들을 갖고 있다.(천개의 고원172)   배치물들은 결코 같은 류형의 기관없는 몸체를 갖고 있지 않다.내재성의 장 또는 고른판은 한조각한조각 구성되며, 다양한 장소, 조건, 기술등은 서로에게 환원되지 않는 다. 오히려 문제는 그 조각들이 서로 이어질 수 있는 가,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다. 어쩔수 없이 괴물같은 잡종들 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고른판은 모든 CsO들의 집합, 내재성의 순수한 다양체로서… 고른판은 일반 화된 탈영토화의 운동속에 있다. (천개의 고원302)   지각은 온통 리좀작용을 한다. 이 특수한 인과성의 문 제는 중요하다. 어떤 배치물을 설명하기 위해 심리 학적, 사회학적인 인과성 같은 너무 일반적이거나  외 재적인 인과성을 거론하는 것은 마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확실히 어떤 배치물이 인과적 하부구조 를 포함하는 일은 결코 없다. 하지만 배치물은 창조 적인 과정 또는 특수한 인과성의 추상적인 선을, 자신의 도주선 또는  탈영화의 선을, 그것도 가장 높은 지점 에서 포함하고 있다.(천개의 고원537)   순수한 질은 우리가 보기에는 여전히 점 체계이다. 떠다니는 회상이건 초월적인 회상이건 환상의 씨앗이건 순 수한 질은 상기일 뿐이다. 이와 반대로 기능주의의 입 장은 질을 고려할 때 그것이 정확히 어떤 배치물에 서 수행하는, 또는 어떤 배치물에서 다른  배치물로 이 행하는 데서수행하는 기능만을 고려한다. 질은 그것을 파악하는 생성안에서 고려되여야만 하며, 생성이 원형 이나 계통발생적 회상의 가치를 지닌 내재적 질 안에서 고려되여서는 안된다.(천개의 고원 578)   기능적 블록은 상기와 환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배치에서 다른 배치로 이행하는 아이ㅡ되기와 여성ㅡ되기로, 탈영토화의 성분으로 작용한다.(동상579)   내부 배치물에는 온갓 종류의 이질적인 성분이 개입되여 있다. 재료, 색채, 냄새, 소리, 자세 등을 결합하는 배치 물의 지표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방식으로 배치되여 하 나의 모티프로 편입되는 다양한 행동의 요소까지… 이질적 요소들의 “동시적 성립.” 이러한 요소들은 처음에는 퍼지집합이나 이산집합을 이루고 말지만 마침내 고름을 획득하게 된다.(천개의고원614)      배치물들은 이미 지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물론 배치물들은 지층들 속에서 만들어지지만, 배치물들은 환경이라는 탈코드화 지대에서 작동한다. 배치물은 우선 환경에서 하나의 영토를  솎아낸다. 모든 배치 물은 일단 영토적이다. 배치물의 첫번째 구체적 규칙은 배치물들이 감싸고 있는 영토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항상 그런 영토성이 하나 있기 때문이 다. 예컨대 베케트의 등장 인물들은 쓰레기 통이나 벤치에서 하나의 영토를 만들어낸다. 인간이든 동물 이든,  누군가의 영토적 배치물을, 즉 “안식처” 를 찾아내라. 영토는 온갖 종류의 탈코드화된 단편들로 만들어진다. 이 단편들은 환경에서 차용한 것들이 지만, 또한 “고유성( =재산)”의 가치를 갖는다. 여기서는 리듬들 조차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리토르넬 로)  영토는 배치물을 만든다. 영토는 유기체와 환경을 한꺼번에 초과하며, 이 둘간의 관계를 초과한다. 그 렇기 때문에 배치물은 단순한 “행동양식”도  넘 어선다. (따라서 영토적 동물과 환경적 동물 간의 상대적 구별이 중요해진다.(천개의 고원960)   영토적인 것의 한 배치물은 아직 지층에 속해 있다. 적어도 배치물의 한 측면은 지층에 면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측면에서 볼 때 모든 배치물에서 내용과 표현이 구분된다. 각각의 배치물에서 내용과 표현을 찾아내고, 그것들 간의 실제적 구분, 상호 전제, 약간의 상호 개입을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배치물이 지층들로 환원되지 않는 것은, 거기에서 표현은 기호 체제, 기호 체제가 되고, 내용은 실천 체제, 능동작용과 수동작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얼굴ㅡ손, 몸 체ㅡ말이라는 이중 분절이며, 이 둘간의 상호 전제이 다. 바로 이것이 모든 배치물의 일차적 분할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즉 모든 배치물은 한편으로는 기계적 배치물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언표 행위하는 배치물로서, 서로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매 경우마다 무엇을 행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말하는지 둘 다 찾아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둘사이, 내용과 표현사이에는 아직 지층들에는 속하지 않는 새로운 관계가 설립된다. 즉 언표나 표현은 몸체나 내용에 그런 것(성질)으로서 귀속되는 비물체적 변형을 표현해준다. 지층에서 표현은 아직 기호를 형성하지 않았으며, 내용도 아직 실천을 형성하지 않았 다.  그래서 표현에 의해 표현되고 내용에 구속되는 비물체적 변형이 이런 자율적인 지대는 아직 실천을 형성하지 않았다. 그래서 표현에 의해 표현되고 내용에 귀속되는 비물체적 변형의 이런 자율적인 지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기호 체제는 이형조성적 지층이나 인간 형태의 지층(여기엔 영 토화 된 동물도 포함 된다)에 전개된다. 하지만 기호 체제는 모든 지층을 가로 지르고 또 넘어간다. 내용과 표현의 구분에 종속되여 있는 한 배치물은 여전히 지층에 속한다. 그리고 기호 체제와 실천 체제는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넓은 의미에서 나름대로 지층을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용ㅡ표현의 구분은 새로운 모습을 띠기 때문에, 우리는 좁은 의미에서 지층의 요소와는 다른 요소에 직면하게 된다.( 천개의 고원961)   그러나 배치물은 또 다른 축에 의해서도 나뉜다. 배치물의 영토성(내용과 표현을 포함하는)은 첫번째 측면에 지나지 않으며, 또 다른 측면은 바로 이 배치물을 가로  지르고 탈취하는 탈영토화의 선들로 구성된다. 이선들은 실로 다양하며, 일부 선들은 영토적 배치물을 다른 배치물들을 향해 개방하거나 그리고 이행시킨다(가령 동물의 령토적 리토르넬로는 궁정이나 집단의 리 토르넬로가 된다), 또 다른 선들은 직접 배치물의 영토성에 작용해, 중심을 벗어난 태고적 또는 미래의 땅위로 배치물을 개방한다.(가령 가곡에서 또는 더 일반적으로 낭만주의 예술가에서의 영토와 땅의 놀이). 또 다른 선들은 배치물들이 작동시키는 우주 적이고 추상적인 기계 위로 이 배치물들을 개방 한다. 그리고 배치물의 영토성은 환경에 대한 특정한 탈코드화에서 기원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필연적으로 이 탈영토화와 선들로 연장된다. 코드가 탈코드화와 분리될 수 없듯이 영토는 탈영화와 분리될 수 없 다. 나아가 바로 이 선들을 따라 배치물은 이제 서로 구분되는 내용과 표현이 아니라 형식화되지 않은 질료들, 탈지층화 된 힘들과 기능들을 보여준 다. 따라서 배치물의 구체적 규칙들은 다음 두 축에 따라 작동한다. 한편으로 어떤 것이 배치물의 영토성 이며, 어떤것이 기호 체제와 실천체계인가? 다른 한편 어떤 것이 탈영토화의 첨점들이며, 어떤 것이 이것 들이 작동시키는 추상적인 기계인가? 배치물에는 네개의 값이 있다. 1)내용과 표현 2)영토성과 탈영토 화. 가령 카프카의 배치물과 같은 특권적인 례에서는 이 네가지 측면이 드러난다. (질 들뢰즈 /필릭스 가타리’천개의 고원’ 962)   [계속]
1559    하이퍼시 명언 14 / 최흔 댓글:  조회:1201  추천:0  2021-05-25
14. 고른판(기관없는 몸체)에 대하여     고른판 또는 평면에는 형식을 부여받지 않은 질료들의 무차별적 집합이 아니라 이런저런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들의 카오스도 아니다. 정말이지 고른판 위에서는 더 이 상 형식도 실체도 없으며, 내용도 표현도 없고 상대적 탈령토화도 각각의 탈영토화도 없다. 하지만 지층들의 형식과 실체 아래에서 고른판(또는 추상적인 기계)은 강렬함의 연속체들을 구성한다. 고른판은 서로 다른 형식들과 실체들로부터 추출해낸 강렬함들을 위해서 연속성을 창조한다. 내용과 표현 아래에서 고른판 (또는 추상적인 기계)은 기표 작용과 아무런 관계 없는 기호들을 가장 탈영토화된 입자들 안에서 기능하게 하는 입자ㅡ기호들(미립자들)을 방출하고 조합한다. 고른판 (또는 추상적인 기계)은 상대적 운동 들 아래에서 각각의 지표들을 절대적 가치로 변 형시키는 탈영토화의 흐름들을 집합접속시킨다.  (질 들뢰즈 /필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139)   고른판은 모든 은유를 페기한다. 고르게 함께 있는 모 든 것은  (질재란 자크 라캉이 말하는 부 재)이다. 그것들은 몸소 나타난 전자들이고, 진짜 검은 구멍들과 실제 세포소 기관들이고, 진정한 기호 들의 시퀀스(하나의 에피소드단위)들이다. 그것들은 다만 자신의 지층에서 뽑혀나와 있고 탈지층화, 탈코 드화, 탈영토화 되여있는 것일 뿐이다. 고른판 위에서 자신들을 인접화시키고 상호 침투를 허용하는 것 이다. 말없는 춤, 고른판은 층위의 차이, 크기의 차 원, 거리를 모른다. 고른판은 형식과 형식을 부여받은 실체의 구분도 모르고 내용과 표현의 구분도 모 른다. 이것들은 지층들을 통해서만, 지층들과 관련해 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천개의 고원138)   고른판은 다양체의 차원수를 둘로(=이차원으로) 축소시키기는 커녕 판판한 다양체들- 이들이 몇차원을 지녔건 -  을 공존시키기 위해 그것들 모두를 재단하고 교차시 킨다. 고른판은 모든 구체적 행태들의 교차이다. 따라 서 모든 생성은 마법사의 그림처럼 이  고른판 위에 기록된다.이 고른판은 모든 생성이 자신의 출구를 찾게  되는 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모 든 생성이 난관에 봉착하고 무로 빠져드는 것을 막아주 는 유일한 기준인 것이다.(동상477)   고른판에서는 모든 것이 지각불가능하게 되고, 모든 것은 지각불가능하게 되기이다.(동상478)   사실 하나의 아포리즘(론리나 사유가 막힘)이 주어지면 그것의 배치를 진정으로 바꾸고, 하나의 배치에서 다른 배치로 도약하게 하는 빠름과 느림의 새로운 관계들을  그것의 요소들 사이에 도입하는  것이 가능하며, 심지어 필수적이다.(천개의고원510)   사람들은 하나의 판위에 다른 판을 끊임없이 재구축하거나 하나의 판에서 다른 판을 끊임없이 추출해낸다. 례컨대 떠다니는 내재성의 판을 표면에서 자유롭게  노닐게 내버려주는 대신  의 깊숙한 곳에 처박아넣고 묻어버린다면 그것만으로도 판은 다른 쪽으로 옮겨 가, 조직의 관점에서 보면 유비의 원리일 수밖에 없으 며 전개의 관점에서 보면 연속의 법칙일 수 밖에 없는 토대의 역할을 한다.(동상511)     고른판은 기관 없는 몸체이다. … 항상 도주선들을 봉쇄 하려고, 탈영토화의 운동들을 저지하고 차단하려 하며,  그 운동들을 무겁게, 재지층화하고, 깊이에서 형식들 과 주체들을 재건하려한다.그리고 역으로, 고른판은 끊 임 없이 조직의 판을 빠져나가고, 입자들을  지층밖 으로  풀려나가게 하고, 빠름과 느림을 이용해 형식 들을 교란시키고, 배치물들, 미시-배치물들의 힘을 이용해 기능들을 부순다.(천개의 고원512)   조직의 판은 그자체로는 파악될 수 없으며 항상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도출되거나 추론되고, 지각체계를 벗어 나있다. 이 판은 정확히 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동상537)   고른판은 특정한 배치물에 개입하는 다른 인과성들의 영향을 받아 배반당하거나 왜곡 될 수 있는 위험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성되면서 해체 될지도 모를 제나름 의 고유한 위험들을 스스로 낳는다.(천개의 고원539)   매끈한 공간은 끊임없이 홈이 패인 공간속으로 번역되고 이 공간을 가로 지르는 한편 홈이 패인 공간은 부단히 매끈한 공간으로 반전되고 되돌려보내진다. 홈이 패인 공 간에서는 사막조차 조직화되며 매끈한 공간에서는 사 막이 퍼지고 확장되여 나간다. 그리고 이 두가지가 동 시 에 진행될 수도 있다. (들뢰즈 가타리 ‘천개의 고원’907)   아마 모든 진전은 홈이 패인 공간에 의해 그리고 이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모든 생성은 매끈한 공간속에서 일어난다.(들뢰즈 가타리 ‘천개의 고원’928)   판은 숨겨진 원리일 수 있다….판은 본성상 숨겨져있다. (천개의 고원503)   형식에는 숨겨진 구조가 필수적이며, 주체에는 비밀스 런 기표가 필수적인 것이다…판은 목적론적 판이자 하 나의 구상정신적 원리이다. 그것은 초월성의 판이 다.  그것은 유비의 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때로는 전개에 있어 탁월한 향을 지정하며, 때로는 구조라는 비율적 관계들을 설립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의 정 신 속에 있을 수도 있으며, 생명,영혼, 언어 등의 무의 식 속에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은 항상 자신의 고유한 결과들로부터만 귀결된다. 그것은 항상 추론에 의해 이끌어내진다. 설사 내재적이라고 얘기된다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부재에 의해서만, 유비적으로 (은유 적으로, 환유적으로 )만 내재적일 뿐이다. (천개의 구원504)      고른판 또는 조성의 판(평면대)은 조직의 판 또는 전개 의 판과 대립된다. 조직과 전개는 형식 및 실체와 연관되여 있다. 즉 그것은 형식의 전개와 동시에 실체 또는 주체의 형성과 관련되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른판은 실체나 형식을 알지 못한다. 이 판위에 새겨지는  들은 정확히 말해 형식이나 주체에 의해 진행되지 않는 개체화의 양태들이다. 이 판은 형식화하지 않는 요소들 간의 빠름과 느림의 관 계속에,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강렬한 변용태들의 조성속에 추상적이지만 실재적으로 존재한다 (이판의 경도와 위도). 둘째로, 고름은 이질적인 것들, 이산적인 것들을 구체적으로 고르게 재결합한다. 그것은 퍼지 집합들, 다시 말해 리좀유형의 다양체들의 다짐을 확보해 준다. 결국 이러한 다짐에 따라 이루어진 고름은 필연적으로  중간에서, 중간을 통해 작용하 며, 모든 원리의 판이나 합목적성의 판과 대립된 다. 스피노자, 훨덜린, 클라이스트, 니체는 그러한 고른 판의 측량사이다. 결코 통일화, 총체화가 아니라 고 름이나 다짐을 측량하는. 고른판에 새겨지는 것에 는  , 사건, 그자체로 파악되는 비물체적 변형 등이 있다. 또한 모호하지만 엄밀한 유목적 본 질이, 그리고 강렬함의 연속체 또는 상수와 변수들 모두 넘어선 연속적 변주도 거기에 새겨진다. 또 항도 주체도 없지만 서로를 근방역이나 비결정성의 지대로 끌고 들어가는 생성들이 거기에 새겨진다. 그리고 홈이 패인 공간을 가로 질러 구성되는 매끈한 공간이 거기에 새겨진다. 매번 우리는 기관 없는 몸체가, 기관 없는 몸체들(고원들)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에 이한 개체화, 영도(零度)에서 출 발하는 강렬함이 생산 변주의 질료, 생성이나 변형의 매체, 공간의 매끈하게 되기 등을 위해서 말이 다. 지층들을 벗어나는 강력한 비유기적 생명은 배치물들을 가로 지르고, 윤곽 없는 추상적인 선, 유목민 예술의 선, 이동하는 야금술의 선을 그린다.(천개의 고원 966)   고른판이 기관없는 몸체들을 구성하는 것일까. 아니면 기관없는 몸체들이 이 판을 조성하는 것일까? 와  은 동일한 것일까? 어쨌든 조 성하는 것과 조성된  것은 같은 역량을 갖고 있 다. 선은 점보다 높은 차원을 갖고 있지 않으며, 면은 선보다 높은 차원을 갖고 있지 않으며, 입체는 표면보다 높은 차원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항상 분수차원의 수는 비정확하며, 부분들과 함께 끊임없이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판은 가변적인 차원을 가진 다양체들을 선별해낸다. 따라서 문체는 판의 다양한 부분이 연결접속되는 양태 이다. 기관 없는 몸체들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함께 조성되는 것일까?   강렬함의 연속체들은 어떻게 연장되는 것일까? 변형들의 계열은 어떤 질서에 따라 만들어지는가? 항상 중간 에서 만들어지며,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분수차원에 따라 조각조각 판을 구성하게 하는 이 비논리적 연쇄들은 무엇인가?  이 판은 일렬로 늘어서 있는 문들과 같다.  그리고 이 판을 구성하는 구체적 규 칙들은 선별적 역할을  수행할 때만 유효하다. 실제로 바로 이 판이, 즉 연결접속 양태가 기관 없는 몸체에 필적하는 텅 비고 암적인 몸체를 제거할 수단을 제 공해준다. 또 그것은 매끈한 공간을 뒤덮고 있는 등질적인 표면을 처치할 수단을 도주선의 길을 바꾸는 죽음과 파괴의 선을 중성화할 수단을 제공한다. 나눔이나 조성의 각 층위에서, 따라서 증가 하거나 감소하는 질서 차원속에서 연결접속의 수를 증대시주는 것(나뉠 때마다 본성을 바꾸는 것,  조성될 때마다 비교기준을 바꾸는것…)만이 유지되고 보존되고 따라서 창조되고 존속되는 것이다. (천개의 고원 967) [계속]
1558    하이퍼시 명언 13 / 최흔 댓글:  조회:1284  추천:0  2021-05-25
13. 문학에 대하여     고전주의 작가들 역시 형태의 문제를 알고 있었겠지만, 론쟁은 글쓰기들의 다양성 및 의미와 전혀 관련이 없었으며, 언어의 구조와는 더욱 관련이 없었다. 다시 말해 어떤 설득 목적에 따라 생각된 담화의 질서만이 문제가 되였다. 따라서 부르죠아적 글쓰기의 특이성이 대응하는 것은 수사학의 다양성이였다. (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 54)   모파상, 졸라, 도데의 그 글쓰기는 문학의 형식적 기호 들 (단순 과거, 간접화법, 씌여지는 리듬)과 사실주의의 역시 형식적인 기호들(민중언어의 덧붙혀진 조각들 거친 말, 방언 등)의 결합체이다. (롤랑 바릍트 ‘글쓰기 0도’62)   공산주의 작가들은 부르주아 작가들이 오래전부터 단죄했던 부르주아적 글쓰기를 요지부동으로 지지하는 유일한 자들이 된다.(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67)   프랑스 소설은 선들, 능동적 도주선이나 긍정적 탈영토화의 선을 그리기보다는 점을 찍느라 시간을 보낸다. 영미 소설은 전혀 다르다, 떠나라, 떠나라, 나가라!...... 지 평선을 가로 질러라…분리선을 찾고 그것을 따라가거 나  창조하라, 그것을 배반하는 지점까지. (질 들뢰즈/필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355)    어떠한 변동이 있다할 지라도 실재계 자체는 다른 것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고 늘 그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실재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것들이 다른 곳으로 망명해갔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121)   주체가 서로 자리를 바꾼다.(동상128)   모방에 대해 많은 론의가 이루어졌지만 그중 상당수는 엉터리다. 모방 현상을 적응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바로 그 한 례다. 나는 모방이 결코 적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동상206)   장자의 꿈 전문; 언젠가 장자는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다. 펄펄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여 유쾌하 게  즐기면서도 자기가 장자임은 알지 못했다. 갑자기 꿈에서 깨여나보니 엄연히 자신은 장자였다. 그러니 꿈에서 장자가 나비가 되였던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되여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자와 나비는 반드시 구별이 있을 것이다. 이것을 물화라 부른다. 이때 물화란 사물의 변화, 만물의 끝없 는  유전(流转)을 의미한다.(동상209)   주체로부터 생겨나고 주체에게 애도를 요청하는 틈새, 혹은 구멍은 어디에 생기는가? 그것은 바로 실재계에 생긴다. 그리고 이 구멍에 의해 주체는 내가 앞 세미 나에서 배제라는 이름으로 제시했던 것과 상반되는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상징계에서 거부된 것이 실재계에 다시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에 의해 생겨난 실재계 속의 구멍 역시 기표를 작동시킨다. 이 구멍은 없어진 기표가 투사될 수 있는 자리로서 작용하고 이것이 타자의 구조 속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이 기표가 없어지면 타자가 우리의 질문에 반응할 수 없게 된다. 이 기표는 우리 자신의 살과 피를 지불했을 경우에만 살 수 있는 것이다. 즉, 그것은 본질적으로 가면을 쓰고 있는 남근이라는 기표다.   바로 그 구멍에 남근의 기표가 자리 잡는다. 그러나 동 시에 그곳에 자리 잡지 못한다. 왜냐하면 남근의 기표는 오로지 타자의 차원에서만 표출되기 때문 이다. 그 구멍으로 정신병에서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이미지들이 남근의 자리를 차지하러 몰려든다 …. 수많은 이미지들이 남근의 자리를 차지한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178)   글쓰기는 말하기가 갖는 효과 즉 단순히 기교적인 차원을 넘어 새로운 것을 형성하는 효과를 가져야 한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 53)   사회주의적 현실에 완전하게 상응하는 공용어가 가능하다면 어떤 문학적 형식주의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56)    자신(을 쓴 샤토브리앙)의 마지막 그림속에 그 최상의 신비한 불완전성을 담아놓은 푸생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 불완전성은 완성된 예술보다 더 아름다운데, 시간의 떨림이다. 추억은 글쓰기의 시작이고 차례로 글쓰기는 죽음의 시작인 것이다.(그것이 아무리 젊은 때 시작된다 하더라도 말이다)(동상128)   문학은 분리시키고 일탈시킨다(동상 134)   대립들이 엄격하도록 하기 위해 그것들을 두개이상의 상이한 풍경이 아래로 쫙 펼쳐지는 산정상의 능선처럼 얇고 날카로우며 결정적인 일회식 사건을 통해 분리시켜야  한다….문학은 우연적인 진실을 영원한 개연성 (필연 성)으로 대체 한다(동상135)   백과전서적인 시적 세계는 언제나 어떤 비현실주의로 규정된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121)   문학은 정치적으로는 모든 독단론을 불신하고, 모든 전 제를 심지어 책임의 윤리나 책임의 정치에 깔려있는 전제조차 분석하여 어떠한 문제라도 제기할 수 있는 무제한의 권리를 부여받는다. 문학은 말의 자유 및 생각의 자유와 불가분하게 련결되여있다. … 문학 은 어떤 사회에서든지 내 머릿속의 비밀장소안에서 있을수 있는 모든 가능한 방식으로 무엇이든지 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115)   문학에는 한정된 의미나 정착 지점이 없다. 특별히 비평 적 방식이나 생산적 방식에 한해서 한정된 의미와 정착 지점의 탐색을 허용하긴 하지만 말이다. 문 학작품에는 결코 휴식이 없다. 그것은 소속도 없 다.  문학에는 돌아갈 집이 없다. 그것은 이상한 방랑자, 이상한 자유인이다.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116)   텍스트는 ‘현재하지 않는 잉여’ 론리의 지배를 받는 ‘흔적들의 직조물’이다.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 155)   철학에서든 문학에서든 아니면 다른 무엇에서 든지 간에, 위대한 작품들의 등장은 변함없이 어느 정도의 몰이해와 당황, 망설임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위대한 작품에 대한 수용의 맥락이 바뀌는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동상163)     해체는 문학에 어울린다… 해체는 모든 문학작품의 내부에서 특히 문학작품  내부에서, 언제나 이미 작동하고 있다.(니콜러스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185)   문학 없는 민주주의는 없으며 민주주의 없는 문학도 없다.(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186)   그(데리다)의 관심을 끄는 문학작품은 더욱 보편적인 변형에 참여한 작품들, 즉 우리끼리는 그것을 해체 라고 말했던것인데 서구적 사유를 뒤흔들고  전복 시키는 작품들이다.(동상 187)    궁극적인 아포리아는 아포리아 그자체의 불가능성이다. (아포리아란 해결할 방법이 없음을 뜻한다)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198)    쉐익스피어의 업적처럼 데리다의 업적 또한 비범하고, 경이로우며, 거창하고, 괴상하고, 비정상인 것처럼 보인 다.(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 220 )   ‘나는 글이라고는 한번도 써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쓰는 방법조차 모르는 사람처럼 글을 쓴다… 새로운 글 을 시작할 때마다, 그것이 아무리 평범한 글일지라 도, 나는 마치 미지의 것 혹은 범접할수 없는 것을 대면할 때처럼 당황스어울 뿐 아니라, 어색하 고, 서툴고, 무기력한 느낌에 시달린다.’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221)   ‘내가 한 말이 나를 놀라게 하고 나에게 내 생각을 가르쳐주 기도 한다’… ‘글쓰기가 위험하고도 괴로운 일인 까닭은 순수한 의미에서 그것이 창립적이기 때문이다. 도무지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223)   어째서 ‘문학이… 언제나, 말하자면,다른 어떤 것을 행 하고, 제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존재하 는지, 다시 말해서 어째서 문학자체는 제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일 뿐인지, 그 일관된 불일치성의 비밀 혹은 신비한 이질성과 관련되는 것이다.’ 데 리다가 보기에, 덱스트를 ‘위대하게’만드는것은 ‘의미로 탕진되지 않으면서도 의미를 유발하는’능력에 있다. 그것은 또한 특히 메시지라는 보편적 자원을, 서 명이라는 궁극적 독서불가능성, 특히 문학작품이거 나 철학작품 개념에 관심을 보인다.(동상267)    나의 글씨를 먹고, 마시고, 삼켜서, 그것을 네속으로 져 날라라. 나로 하여금 너의 감로가 되게 하라.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276)   책의 첫번째 유형은 뿌리ㅡ 책이다... 예술이 자연을 모 방하듯 책은 세계를 모방한다. 책만이 가진 기법들을 통해서. 이 기법들은 자연이 할 수 없거나 더 이상할 수  없게 된 것들을 훌륭히 해낸다. 책의 법칙은 반사의 법칙이다.(천개의 고원14-15)   고전주의 예술가의 사명은 신의 사명과 똑같이 카오스에 질서를 부여하는데 있다. 그는 그저 “창조해라! 천지 창조다! ”라고 외칠 뿐이 다. 랑만주의는… 새로운 외침이 울린다” 다. 영토와  다!” 낭만주의의 도래와 함께 예술가들은 권리상의 보편성에 대한 야심과 함께 조물주의 지위도 포기한다. 그는 스스로를 영토화하고 영토적 배치물에 포함된다. 그리고 이제는 계절들도 영토화된다. (천개의 고원642-643)   낭만주의에 의한 근본적인 혁신은,,, 형식에 대응하는 실체적 부분이 없고, 코드에 대응하는 환경도 없으 며, 형식의 범위 내에서 코드에 의해 질서를 부여받 는 카오스 상태의 질료도 없는 것이다. 대신 부분들은 표 층에서 성립과 해체를 반복하는 배치물에 가깝 게  되였다. 형식자체도 연속적 전개 상태에 놓인 대 규모 형식이 되며 모든 부분을 하나로 묶고 있는 대지의 힘들을 받아들이게  되였다. 질료 자체도 종속시키고 조직해야 할 카오스가 아니라 연속적 변주중에 있는 운 동상태의 질료가 되였다. 관계나 변화가 보편적인 것이 되였다. 질료의 연속적인 변주와 형식의  련속적인 전개, 이처럼 배치물들을 통과하면서 질료와 형식 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질료는 내용의 질료가 되 기를 그치고 대신 표현의 질료가 되며, 형식도 카오스 의 힘들을 억제하는 코드가 되기를 그치고 스스로 힘 이 되고 대지의 힘들의 집합이 되려고 한다. (천개의 고원 645)   고전주의적 연속체는 밀도가 동등한 요소들의 연속인데, 이 요소들은 차안된 것같은 개인적 의미작용에 대한 모든 성향을 제거하고 동일한 감각적 압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시적어휘 자체는 창안이 아니라 관 례의 어휘이다. 그속에서 이미지들은 창조를 통해서가 아니라 관습을 통해 고립되지 않고 함께 있음으로써 특수하다. …고전주의적 기교적 수식은 낱말들이 아니라  관계들의 기교적 수식이다. 그것은 창작의 기교가 아 니라 표현의 기교이다. (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44) [계속]    
1557    하이퍼시 명언 12 / 최흔 댓글:  조회:1372  추천:0  2021-05-25
12.무의식에 대하여     보아스가  레비스트로스에게 끼친 가장 큰 영향은 문화 적 형상의 무의식적 특성에 대하여 강조하였다는 점과 이 무의식적 구조를 푸는 열쇠로 언어의 법칙을 들었다는 점이다 (프랑수아 도스 ‘구조주의력사’ 42)   인간이 기표와 관련을 가진다는 말이 뜻하는 것은 프로이트가 꿈에 관한 분석에서 무의식이라 부른 타자의 무대를 지배하는 법칙의 재발견이다. 무의식이란 언어를 형성 하는 매우 불안정한 요소들의 연쇄 속에서 발견되는 효과다. 그것은 결합과 대체라는 기표의 이중 운동을 통해 규정되며 환유와 은유에 의해 기의를 생성한 다. 무의식은 주체를 형성하는 결정적 효과인 것이 다. 이런 시도로부터 수학적 의미에서 하나의 위상 이라 불릴만한 것이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위상이 없다면 우리는 정신적 분석학적 의미에서 징후의 구조를 인식할 수 없다.   무의식은 타자속에서 말한다. 그것은 발화에 의존하여 야만 환기되는 바로 그 장소를 지시한다. 중요한 것은 지시가 타자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발화도 타자가 개입해서 그것과 관련을 맺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 이다. 주체가 들을 수 있는가의 여부와 관계없이  무 의식이 타자 속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주체가 바로 그타자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실행하기 때문이 다. 주체의 의미화 작용은 기의를 만들어내려는 어떤 시도 보다도 앞서있는 것이다. 주체가 바로 그 장소 무의식속에서 형성된다는 말은 주체는 형성되기 위해 서 분열을 그 대가로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자크 라캉 ‘욕망이론’278)   남근이 자신의 기능을 드러내는 곳이 바로 여기다. 프로이트적 의미에서 남근은 허구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현상이 아니다. 또한 남근은 그자체로 현실과의 연관 성을 강조하는 대상(부분 대상,내적 대상, 좋은 대 상, 나쁜 대상) 등도 아니다. 남근이 남성 성기나 음핵 같은 신체의 기관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더욱 진실이 아니다. 프로이트가 고대사람들의 형상속에 나타난 남근을 이야기한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닌 것이다.   남근은 기표다. 이때의 기표란 분석이 갖는 상호 주관적인 경제속에서 남근이 신비 속에서 수행해왔던 기능들의 베일을 벗기는 역할을 한다. 남근은 기의가 갖는 효과 들을 온전히 명명할 수 있는 기표이다. 왜냐하면 기의가 갖는 효과들이 이미 기표에 의해 규제되기 때문이다.(자크 라캉 ‘욕망 이론’279)   남근은 특권을 가진 기표이며 의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횡선을 표시한다. 횡선 속에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기 호와 욕망이 결합된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282)   남근은 의미작용의 련쇄속으로 편입되기 위해서 스스로를 감추어야 하고 스스로를 감출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기표의 기능을 가질 수 있다.(동상283)   남근을 가진 여성이 있다(동상296)   무의식은 , 실재계에 결여되여 있어서 성적인 목표에 서나 획득될 수 있는 남근과의 관계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다…이때 남근이라는 주체가 거세 콤플렉스를 통해 자신이 남근으로 부적합하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결정된다.(자크 라캉 ‘욕망 이론’245)   남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느 때 처럼 프로이트는 미리 생각해보지도 않고 즉흥적으로 그것이 주체의 자기애적 요구라고 대답한다 … ‘자 기애적’인 것은 상상계와 련관된다(동상189-190)      힘과 권능의 기표인 남근 (동상192)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라는 무의식으로 성의 욕망에 대한 공식을 변형하면, 그것은 보여주기로 끝 나는, 일종의 타자측의 욕망에 대한 문제이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263)    정신을 개입하지 않고서도 문자가 인간에게 가능한 진리효과들을 모두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정신이 내건 주장들은 난공불락의 것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다름 아닌 프로이트가 이런 사실을 발견해냈으며 그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무의식이라 불렀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73)   프로이트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기표로서의 각 이미지가 갖는 (개별) 가치들이 의미화 작용과는 아무 관계 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했다. …언어학적 훈련이 결여 된 정신분석 학자들은 문자를 자연적인 유사성에 기초 한 상징으로 혼동하고 있다. 물론 문자를 본능적인 이미지로 간주하는 것도 그들의 편견일 뿐이다 …무 의식이 문자라는 사실을 념두에 두지 않고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들이다.(자크라캉 ‘욕망 이론’74ㅡ75)   무의식이란 기표의 활동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동상75)   무의식은 존재의 근원이다.(동상96)   무의식은 인간이 기표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동상135)   무의식은 기원이나 본능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표로  이루어져있다…연결과 대체는 전이 작용에서 기표에 주어지는 공식들이다.(동상90)   타자는 단순히 나와 다른 또 하나의 주체가 아니다. 타자의 존재는 타자성의 두번째 단계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타자는 또 다른 주체가 아닌 주체가 환원시킬 수 없는 이질성으로 이해될 때에야 비로소 나와 다른 주체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무의식이 타자(대문자로 표시되는)의 담론이라고 말 하는 이유는 그것이 개별 주체들을 넘어선 어떤 차 원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거기서, 욕망은 타자에게 인 정 받기를 원하는 욕망이 된다. 달리 말하면 타자 란 그것이 없으면 거짓말도 가능하지 않을 내속에 있는 진리의 보증자이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언어의 등장 과 함께 진리의 차원이 열린다는 것이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93-94)   타자가 갖는 이질성을 다른 주체들에 대한 인식 정도로 환원시켜버리는 것은 큰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에 있어 타자의 존재는 마이다스왕의 귀와 같다 . (동상95)    무질서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동상98)   몸의 핵심에는 무의식이 있다. …무의식으로의 접근은 언어를 매개로 한다. (프랑수아도스’구조주의력사’ 61)    백조는 문학에서 벌거벗은 여성의 대용물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73)   무의식에서 움직이는 모든 이미지와 같이, 백조의 이미 지는 남녀양성인 것이다. 백조는 빛나는 물의 응시에 있어서는 여성이며, 행동에 있어서는 남성이다. 무의 식에 있어서 활동은 행위이다. 무의식에 있어서 는 ‘어떤 현실적 행위’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 어떤 행위를 암시하는 이미지는, 무의식계에 있어 여성에서 남성에로 발전하는 것이다.(가스통바슐라르’물과 꿈’ 76   무의식은 언어의 산물, 언어 법칙들의 산물, 언어 코드 의 산물이 된다…나는 내가 있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 한다. 탈 중심적이고 분리된 주체라는 새로운 관점은 당시 인문 사회과학의 다른 분야들에서도 통용되는 일반적 개념이였다. (푸랑수아도스 ‘구조주의력사’ 173   레비스트로스는: 무의식은 상징적 기능에 귀속된 다...  잠재의식이란 개별적 기억들의 저장소인 반면 에 무의식은 언제나 비여있는 것이다… 특수한  기 능을 지닌 기관의 무의식은 구조적 법칙들을 부과하는 역할만을 한다. 이렇듯 레비스트로스가 정의하는 무의식 이란 개인의 정감이나 내용, 혹은 력사성과는 무관한 것이다. 무의식은 그저 상징적 기능이 수행되는 빈 장소인 것이다. 우리는 이 정의를 통해 가변요인에 대한 불변요인(빈장소)의 우위, 내용에 대한 형식의 우위, 기의에 대한 기표의 우위 등 구조주의 패러 다임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상징은 상징자체 가 상징하고 있는 바보다 더욱 현실적인 것이다. 기표는 기의에 선행하며, 또한 기의를 규정한다. (동상183)   무의식이란 상징적 기능의 위치, 그리고 이 상징적 기 능을 인간정신의 테두리와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도록 하는 보편성을 동시에 가지는 개념이다. 무의식의 개 념은 또한 이 상징적 기능을 시간적, 공간적 제한으 로부터 탈피해 철저히 독립적이고 추상적, 형식적 존재로서 리해가능토록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레비 스트로스는 어째서 무의식 개념을 응용하면서도 욕망의 차원을 배제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욕망이 과연 무의식을 이루는 근원적 차원이란 말인가? 나로서는 근본적으로 찬성할 수 없는 견해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185)   인간을 초월하는 상징적 차원의 외재성이야말로 무의식을 규정하는 개념이다… 상징적 차원은 사회적인 것에 속하지도 그렇다고 인간의 개인에게 속하지도 않는 것이 다.  (동상 188)   라캉의 무의식 주제는 영구히 분리되여있는 것, 어떠한 접근의 기도도 용납되지 않는 것, 존재할수도 없는 것, 언제든 다른 곳에 있는 것 등을 의미한다.  … 언 어학적 모든 기호가 모든 지시대상으로부터 단절되여  있듯이 모든 생리학적 현실로부터 분리되여있는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196)   무의식은 언어의 조건이다… 인간은 언어 그자체이다…라캉에 잇어서 무의식은 상징계에 준거한다. …무의식에 대한 탐구는 단연코 언어학의 탐구령역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 200-203)   무의식은 이제 초월적인 조직의 판의 숨은 원리가 아니라 구성되면서 자신 스스로 나타나는 내재적인 고른판의 과정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재발견해야 할 것 이 아니라 만들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천개의 고원538)  [계속]
1556    하이퍼시 명언 11 / 최흔 댓글:  조회:1264  추천:0  2021-05-25
 11 .형식과 내용에 대하여     형식 자체에는 비밀스런 지각과 행동양태, 즉 비밀스런 영향이라는 비밀의 두 병존물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병존물은 형식을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재형성하 고 새롭게 방출하는 형식의 특질들이 되였다. (질 들뢰즈 가타리‘천개의 고원’546)   형식이 곧 내용이다 라는 것을 자명한  것으로 보고 있 기 때문에, 형식과 내용을 같다고 보는 낭만파 후기의 생각을 시인하는것이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141)    ‘불안정한 입자ㅡ흐름’은 딱히 입자나 파동이라고 할 수 없는, 세계를 이루는 기초인데 그것의 다른 이름이 질료 또는 물질이다. 실체는 질료로 형성(=형식화) 된, 다시 말해 질료와 형상이 결합되여 이루어진 거의 안정적인 단위들이다. 형상 또는 형식은 실체에 부 과되어있는 질서이다. 안티ㅡ오이디푸스에서 기계를 설명하는 대목이 여기서 대응한다. “기계는 절단 의 체계로 정의된다… 모든 기계는 무엇 보다도 연속된 물질적 흐름(질료)과 관계된다… 연합된 각각의 흐름은 관 념적인 (형상적인)것으로 여겨져야 한다….사실상 질료 는 물질이 관념안에 소유하고 있는 순수 연속성을 가리킨다… 절단은 연속성에 대립되기는커녕 연속성의 조건이 되며, 그것이 절단하는 것을 관념적 연속성 으로서 내포하거나 규정하고 있다 ”(천개의 고원87)   실체는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형식은 코드 및 코드화 양식과 탈코드화 양식을 내포한다.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인 실체는 영토성 및 영토화의 정도와 탈영토화의 정도에 관련된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해서 각각의 분절마다 코드와 영토성이 둘 다 있으며 그 각각의 분절 나름대로  형식과 실체 를 갖고 있다. 지금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각각의 분절에 상이한 유형의 절편성이나 다양체가 대응한 다는 점 뿐이다.(천개의 고원88)   질료라고  불리는 것은 고른판 또는 이다. 즉 형식을 부여받지 않았고 [유기적으로] 조직화되지 않았으며 지층화되지 않은 또는 탈 지층화된 몸체이다. 또한 그런 몸체위를 흘러가는 모든 것, 다시 말해서 분자나 원자 아래의 입자들, 순수한 강렬 함들, 물리학과 생물학의 대상이 되기 이전의 자유 로운 독자성들이다. 내용이라고 불리는 것은 형식을 부 여받은 질료이다. (천개의 고원92)   실체는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이기 때문에 형식 없이는 실체를 지각할 수 없다. 비록 어떤 경우에는 실체없이 형 식을 지각하는 것은 가능할지라도 말이다.   …사실상 모든 분절은 이중적이기 때문에 내용의 분절과 표현의 분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내용의 분절은 내용안에서 그것의 상관물인 표현을 구성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이중적이며, 표현의 분절은 표현 안에서 그것의 상관물인 내용을  구성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이중적이다. 이런 리유로 내용과 표현사이, 표현과 내용 사이에는 매개 상태들, 층위들, 평행 상태들, 교 환들이 존재하며 지층화된 체계는 이것들을 통과해 간다.(천개의 고원94)   충전과정을 통해 비슷한 입자들이 모여 원자나 분자가 되고 비슷한 분자들이 모여 더 큰 분자가 되며 가장 큰 분자들이 모여 그램분자적 집합체가 된다. 이는 이중 집게 또는 이중 분절로서의 “유유상종의 인력”이다. (천개의 고원96)   챌린저가 말했다. 이제 우리는 각각 나름의 형식과 실체를 갖고 있는 내용과 표현의 새로운 조직화를 갖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기술이라는 내용과 기호 또는 상징이라는 표현이다. 내용은 손과 도구일 뿐만 아니라 이것들에 앞서서 존재하며 힘의 상태들이나 권력구성체를 이루는 기술적ㅡ사회적 기계이기도 하다 .(천개의 고원126)    표현과 내용 각각이 자신의 형식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개 상태들이 고유한 표현의 형식들을 내용에 도입하고 고유한 내용의 형식들을 표현에 도입하기 때문이다. (천개의 고원118)   표현은 그 자체로 독립적, 다시 말해 자율적인 것이 된 다.(동상119)     표현은 안면과 언어, 그리고 언어들일 뿐만 아니라 이것들에 앞서서 존재하며 기호체제를 이루는 기 호적ㅡ집단적 기계이기도 하다. 권력구성에는 도구 이상의 그 무엇이며, 기호체제는 언어이상의 그 무 엇이다. 오히려 권력구성체와 기호체제는 도구와 언어를 사용하도록, 그것들 상호간 또는 각각을 소통시키고 확산시키도록,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구성하도록 결정하고 선별하는 자로서 작용한다. 이 세번째 지층과 함께, 이 지층에 완전히 속해 있으 면서도 동시에 몸을 세워올려 자신의 집게발을 다른 모든 지층들을 향해 모든 방향으로 뻗는  이  출현하게 된다. 그것은 추상적인 기계의 두 상태 사이에 있는 매개 상태와 같은 것이 아닐까? (천개의 고원127)   표현의 형식이 기표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내용의 형식은 기의가 아니다. 이 점은 언어가 개입하는 지층들을 포함한 모든 지층들에서 진실이다. (천개의 고원131=132)   그어떤 경우에도 내용과 표현은 결코 기의ㅡ기표로 환원될 수 없다. (여기에 두번째 문제가 있는데) 내용과 표현은 하부구조ㅡ상부구조로 환원될 수 없다. 더이상 우리는 표현이 기표 작용적이기 때문에 우위에 있다고 주장할 수도 없고, 내용이 결정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더 우위에 있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표현에는 어느 정도 독립성과 어느 정도 반작용 가능성을 허용해 준다고 할지라도 표현이 내용을 반영하는 형식이 될 수는 없다.(동상133)    형식을 부여받은 내용이라면 모두가 몸체이다… 표현의 형식은 표현된 것이라는 날실을 통해 구성되며 내용의 형식은 물체들이라는 씨실을 통해 구성된다. 칼이 살에 박힐 때, 양분이나 독이 몸에 퍼져갈 때, 포도주 방울이 물에 떨어질 때에는 몸체들의 혼합이 있다. 하지만 칼이 살을 벤다, 나는 먹는다, 물이 붉어진다라는 언표는 이와는 본성상 아주 다른 비물체적 변형(사건) 을 표현한다…순간적 변형이라는 날실은 늘 연속적 변양 이라는 씨실속으로 끼워넣어진다 (스토아학파)(천개의 고원169)   내용과 표현은 서로 결합되고 연계되고 서로 촉진되기도 하고 반대로 재영토화하며 안정화 되기도 한다. (천개의 고원171)   내용이 인과작용에 의해 표현을 결정한다고 믿는 것은 오류이다. 한걸음 물러서서 표현이 내용을 반영하는 힘 뿐만 아니라 내용에 능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해도 말이다.(천개의 고원173)   형식-질료라는 쌍은 힘들 –재료라는 짝짓기로 대체된다. (동상185)   우리는 비정형적인 표현이 옳바른 형식들을 거쳐서 생산된다고 믿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비정형적인 표현 자 체가 옳바른 형식들의 변주를 생산하고 형식들이 상수가 되지 못하게 한다. 비정형적 표현은 랑그가 탈령토화되는 정점을 이루며, 텐서의 역할을 한다. 다 시 말해 랑그를 랑그의 요소들, 형식들, 개념들의 극 한으로 향하게 하며 랑그의 이편 또는 저편을 향하 게 한다. 텐서는 말하자면 문장을 타동사 구문으로 만들 며, 뒤의 항이 앞의 향에 거꾸로 힘을 미치게 하 며, 사슬 전체를 거슬러올라간다. 텐서는 언어를 강렬 하게 그리고 반음계적으로 취급할 수 있게 해준다. 라는 단순한 표현도 언어 전체를 가로 지르는 텐서의 역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고는 하나의 접속사라기 보다는 자신의 연속적으로 변주 시키는 모든 가능한 접속사들의 비정형적 표현이 다. 또한 텐서는 상수로도 변수로도 환원되지 않으며 오히려 매번 상수의 값을 뺌으로써 (n-1)변수의 변주 를 보장해준다. 텐서는 그어떤 언어학적 범주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텐서는 간접 화법에 대해 서든 언표 행위라는 배치물에 대해서든 본질적으로 화행론적인 값이다.(천개의 고원192-193)    글쓰기에 의한 참여를 글의 내용에서가 아니라 형식 속에서 설정함으로써 그 주제를 혁신한다. 그에(롤랑바르트) 의해 언어 활동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푸랑수아 도스 ‘구조주의 력사’124)   수직성을 통해서만 질서가 잡히는 하나의 세계가 드러난셈이다. 미덕들, 다시말해 외관들의 유일한 수준에서는 그 어떠한 구조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구조는 바로 명백한 것과 감추어진 것 사이의 진실관계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97) [계속]    
1555    하이퍼시 명언 10 / 최흔 댓글:  조회:1328  추천:0  2021-05-25
10. 예술에 대하여     이 군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말라르메이 고,  문학이 민중과 련관되여 있다고 말한 것은 카프카 였고, 또 민중이 가장 중요하지만 또한 가장 결여되여 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클레였다.따라서 예술가의 문제는 근대에 들어와 민중의 인구감소가 열대지로 이어지고 이것이 예술을 수단으로 하거나  예술이제공하는 것을 수단으로 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중과 대지는 이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코스모 스의 사방팔방에서  폭격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끌 고 나가는 코스모스의 백터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코스모스 자체가 예술이 될 것이다. 인구의 절  멸을 코스모스 규모의 민중으로 바꾸고 탈영토화를 코 스모스 규모의 대지로 바꾸고,바로 이것이 여기저기에서 어디까지나 국지적으로 존재하는 예술가ㅡ장인들의 바람인 것이다.(천개의 고원 658)   Shkrovsky는 ‘예술은 언재나 인생으로부터는 자유이고, 그것의 색갈은 도시의 성책위에 펄럭이는 깃발의 색갈을 결코 반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만 일  예술이, 특히 문학이, 그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면, 문학의 학술적 연구나 비평은 마땅히 애  매함이 없이 분명하게 확정된 고유의 자동영력을 가지고 있는 통일된 지적 활동이라야 할것이 다. ‘예술형식은, 예술 고유의 법칙에 의해서 설명이 가능하다. ’라고 주장한 skrovsky의 분명히 구조주의 적인 일반 원칙에 따른다면, 위에 말한 그 령역은, 문 학이란 무엇인가가 아니고, 어떻게 문학인가라는 것에, 즉 언어예술 전반에서의 특유한 성질에 밀접하게 연관되여 있다. 스크로브스키의 다음과 같은 주장, 즉 “좁은 의미에서의 예술작품이란, 작품을 될 수 있는대로 예술적인 것이 되게 하려는 의도에 따라 특수한 기법으로 창작되여진 작품을 말한다”를 용인하는 것은 야콥슨의 결론인” 문학 연구의 대상은, 문학의 총체가 아니고, 문학성, 즉 작품을  문학작품이 되게 하는 그것이다” 를 역시 용인하는 것이 된다 …. 작가의 내부에서가 아니고 작품자체의 내부에 서, 즉 시인에서가 아니고  시의 내부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궁극적으로 거기에 사용된 언어 의 독특한 용법에 깃들어있어야 한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83)   예술작품은 모방(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상식적 견해를 제쳐놓고, 그 자리에 형식의 완전한 우월이라는 관념을 대치시키는 일이기 때문이 다. 이렇게 생각되여지는 문학이야말로 본질적으로 문학다운 것이다. 즉 다른 실체를 지각해볼 수 있는 창문이 아니라, 자기 충족적인 실체인 것이다. 내용이 란 문학형식의 한 기능에 불과하며, 형식을 넘어서서 혹은 형식을 통해서 감지될 수 있거나, 형식과 분리될 수 있는 그무엇은 아니다. 실은 작품이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인 것이다. 사실인즉 작품은 스스로의 발생, 스스로의 구성에 대해서  말하 고 있을 따름이다.(동상 91)   예술이라는 과정의 생명력은, 행동안에서 볼 수 있는 그것의 수법에 의존한다는 것이 포르마리즘의 중심 명제이다. 그리고 장치를 노출시킴으로써, 자신이 집필 할 때 의지하고 있는 비친숙화의 기법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문학예술가는 모든 장치들 중에서 더 할나위없이 중요한 장치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예술을 작동케 하는 과정에 은밀히 통해 있는 일탈감각인 것이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 95)   문학은 자신을 갱신시키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자기의 경계선을 다시 긋곤한다…. 모든 예술은 연속성안에  있다 는 것, 고등예술은 자신을 갱신키 위하여 그 연속성의 범위내에서 경계선을 정기적으로 옮기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 유일하게 불변인 것은 문학 항시 나타내여야 하는 문학다움의 감각 이라는 것들이다. 바꾸어 말하면, 어떠한 시대에 있어 서든 문학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그것의 구조적 역활 즉 그 시대의 비문학과의 대립인 것이다. (동상99)   양식은 자기 지시적이며, 그 양식이 바로 주제인 것이 다. … 문학예술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형식과 내용을 재통합하는데 소용되며, 또 본성을 유효토록 하기위해서 작품을 메시지의 용기가 아니라, 그 본성을 유효 하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의 령역을 넘어서는 지 시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기 생성적이고, 자기 조절적이고, 결국에는 자기 존중적인 본질적 통일체로 제시하는데 소용되는 것이다. 결국 작품은 Piaget의  말 을 빌면, 하나의 구조인것이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119)   특수화된 콤플렉스는 원초적 콤플렉스의 산물이기는 하나, 회화적 특징으로 스스로를 덮고, 객관적 아름다움 속에서 스스로를 나타내면서 우주적 경험 속에서 스스로를 특징화할 때에만 미적기능을 갖기에 이르는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315)   독자는 자신이 새로 발견한 글쓰기나 사람으로서의 능력을 가지고 다르게 세계를 보게 되고 또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어떻게 창조하는가를 배우게 된다… 예술도 현실의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그것을 알고 그것에 대 처하며 그것을 바꾸어나가는 방법인것이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202)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는 두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예술 작품이란 세계를 내다보는 창문이란 견해다. 이러한 예술가는, 말과 이미지를 통해서 말과 이미지의 건너편에 있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다. 이런 류형의 예술가는 번역가라고 불리워질만 하다.   또 하나의 태도는, 예술이란 독립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들로 성립되는 세계이다 하는 견해다. 말, 그리고 말들과의 관계, 사고, 그리고  사고들의 비꼬임, 그것 들의 분산, 이러한 것들이 예술의 내용인 것이 다. 예술이란 것은, 창문에 비해질 수 있다 손치더 라도. 대강 그려진 창문에 불과 하다. (동상204)   중국전통을 보면 예술은 현실의 모방에 있는 완벽에 다름 아니다… 례컨대 나무로 만든 이 호두는 그것을 탄생시킨 예술을 나에게 환기시키겠다는 의도를 어떤 호두의 이미지와 함께 전달해서는 안된다. 소설적 글쓰기가 수행하 는 것은 그 반대이다.(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 35)   예술은 목적이 아니다. 예술은 삶의 선들을 그리기 위 한 도구일 뿐이다.(천개의 고원357)   예술 작품은 몇초, 십분의 일초, 백분의 일초를 표시해 야만 한다.(천개의 고원506) [계속]
1554    하이퍼시 명언 9 / 최흔 댓글:  조회:1409  추천:0  2021-05-25
9. 구조주의에 대하여     구조주의 전성기는 1960-1970년대이다. 구조주의는 싸르트의 실존주의를 밀어내였다. 구조주의에는 5인 방이 있다. 장  클로드,레비 스트로스. 알튀세, 미셀 푸코, 자크  라캉이였다.  뒤르켐(1895년의 )에서 구조주의라는 말이 나오는데, 앙드레 랄랑드의 에서는 1900-1926년 사이에 나 온 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편자 주)   밖으로 드러난 현실은 결코 중요한 현실이 아니며, 따라서 감각에 의해 지각되는 이러한 외양을 꿰뚫고 현실의 근원에 도달하려면 추상적 모델을 구성해야 한다.(프랑수아도스 ‘구조주의력사’37)   소쉬르가 시니피앙을 소리로, 시니피에를 개념으로 본 데 반해 레비스트로스는 시니피앙을 구조로, 시 니피에를 의미로 보았다.  (프랑수아도스 ‘구조주의력사’ 50)   약호의 기본 특성은 그것이 다른 약호로 번역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약호를 약호이게 하는 이 속성이 바로 구조라고 불린다. (레비스트로스/프랑수아 도스 ‘구조주의력사’62)   나에게 구조주의는  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상징적인 것에 관한  리론이다. 언 어와 친족 규범들의 독립성은 바로 상징적인 것의 자률화, 기표의 자률화를 의미한다. (동상 63-64)   구조주의란 결국 언어학과 인류학의 만남이다. (레비스트로스/동상58)   사회현상은 사물도 사고도 아니다. 그것은 구조이다   (동상76)   구조주의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야콥슨에 의해서 사용된 것도 바로  이 회의에서였다.(1928년 헤이그에서 열린 제1차 국제언어학대회)  (푸랑수아 도스 ‘구조주의 력사’85)   미셀푸고, 장 클로드 밀레르는 보프에게서 고전 시대의 세계 즉 재현의 세계에서 벗어난 문법형성의 효시를 찾는다.(동상 88)   구조주의의 신화적 인물인 롤랑 바르트는 엄밀함보다는 기질로 만들어진 변화무쌍함과 섬세함의 화신이였다. (동상 123)   프라하학파는 소쉬르와 거리를 두고 있다. 우선 프라하 학파는 언어를 기능적인 체계로 정의한다… 게다가 프라하학파는 통시성/공시성이라는 소쉬르의 구분에 동조하지 않고, 이러한 구분을 넘을 수 없는 경계로 보지 않는다. 야콥슨은 수차에 걸쳐서 이러한 경계 선을 거부하고, 역동적 공시성의 개념을 선호한다. 공 시적이라는 개념은 정태적이라는 개념과 다르다. 그 러므로 언어학의 모델을 넘어서 구조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모델중의 모델은 구조음운론이라고 할 수 있다…야콥슨은 음운론이 실현하고자 하는 음의 기술을 12쌍의 이 원적 대립에 의한 관여적 자질로 작성된 표로 나타 내는데 이 12쌍의 대립은 모든 언어의 대립을 파 악하게 하고, 구조주의 경향을 고무시키는 보편성의 꿈을 실험시키고자 한다. 이원론은 음운론 체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 점에서 소쉬르의 이분법 적 사고가 엿보인다. 기의와 기표, 또는 감각계와 관념 계로 양분 되는 기호의 이원론에 움운 체계의 이원성 이 부합된다(푸랑수아 도스 ‘구조주의 력사’103-104)   바르트의 중요한 관심은 문학적 표현의 형식 아래에서 이데올로기가 쓰는 가면들을 공격하는 것이였다. 그것은 자유와 동일시되였다.  그런데 문학은 거기에서 두가 지 형태의 타락을 극복하고 영도를 회복하여야 한다. … 하나는 습관과 명령으로 만들어진  일상적 언어 속으로서의 함몰이였으며, 다른 하나는 자급자족에 입 각한 양식을 지칭하며, 또한 작가를 사회로부터 차 단하고 고립적으로 축소된 사람으로 묘사하는 이데 올로기를 가리키는 문체론이였다… 그당시 바르트 의 중요한 관심은 문학적 표현의 형식  아래에서 이데올로기가 쓰는 가면들을 공격하는 것이였다.  (푸랑수아 도스 ‘구조주의 력사’124-125)    바르트는… 정치적 담론은   지식인적 글 쓰기는 유사문학(같은 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것이다. 이러한 탐구는 하나의 새로운 문학을 탄생시키며, 또한 바르트로 하여금 작가로서의 글 쓰기 불가능성을 자각하게 하고  현대성 작가로서 의 집필자의 리론을 초안하게 하였다.(동상 126-127)   바르트는 (동상127)     1956년 세미나에서 에드가 포의 라는 단편소설을 분석하면서 기표의 우위성, 을 지적하는 동시에 을 밝힌다. (푸랑수아 도스 ‘구조주의 력사’175)   라캉은  (동상190)   유명한 라캉의 삼위체, 즉 실재계, 상징계, 영상계…상징 계가 가장 중요한 자리를 점하고 있다. (동상192)   실재계는 현실과 반대로 바로 이 현실의 리면을 이루며,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차원이다. 라캉의 실재계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이며 불가능을 뜻한다…실재 계는 현실로서 존재할 수 없는 부재를 일컫는다. (동상 193)   푸코는  … 기성복처럼 이미 만들어 져있는 사상들을 제거하는 미셀푸코는 진리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지식을 팔아먹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까지도  아주 겸손한 하나의 사고를 제시한다.(동상 229)   비꼬(vico)는 이탈리아의 법률가인데   (1725년) 그 당시에는 관심을 끌지 못했던 기념비적 작품. 비꼬의 연구는 … 영원히 계속되는 구 조화의 과정이 인간 정신에 대해서 지니는 마취적인 속박을  풀어버리는 최초의 근대적 시도의 하나로 손꼽힌다. (테렌스 오혹스 ‘구조주의와 기호학’ 17)    삐아제(piaget)는 구조를 전체성의 개념, 변환의 개 념, 자기 조직의 개념 등 세가지 개념으로 생각했다. 전체적이라는 것은 내적인 결합체를 의미한다.   변환적이라는 것은 정적이 아니다. … 구조는 변환의 절차를 행할 수 있어야  한다. … 언어는 인간이 지니는 기본적인 구조로서, 갖가지의 기본 문장을 광범위하게 다양한  새로운 발화로  변환시킬 수 있는 터이나, 한편으로는 그 변환을 언어자신의 고유한 구조안에 머물러있게 한 다. …자기 조절적이란 변환수단을 유효한 것이 되게 하 기 위하여 제자신을 넘어서는 것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변환은 그 변환을 수행하는 고유의 법칙을 유지하고 보장하도록 작용하며, 다른 체계가 련관되지 않게 그 체계 를 봉인하도록 작동한다… 개라는 낱말은 …  언어구조  안에 존재하여 기능하고 있으며, 네개의 발을 가진 짖는 피조물이 실재한다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18 ㅡ19)   사물의 참된 본성은 사물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성하고 그리고 지각하는 사물들 간에서의 관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동상 20)   구조주의자의 생각의 궁극적인 원천은, 항구적인 구조 즉 개개인의 행위, 지각, 자세가 그 안에서 조화되고 그것들의 최종적인 성질이 그로부터 이끌어내지는 구조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본성의 그 측면에, 즉 언어에 가장 긴밀하게 연관되여 있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21)    소쉬르가 언어연구에서의 혁명적인 공헌은 언어를 실질로 보는 견해를 배척하고 관계적이라는 견해를 취하게 된 일이다. (동상22)   두개의 기본적 차원에서… 즉 랑그라는 측면과 빠롤이라는 측면에 대해서이다. (동상24)   어떠한 경우에서든, 어떤 현상을 결정하는 것은 그 현 상자체의 어떠한 본래적인 양상도 아니고, 현 상들간에서의 관계이다 라는 것이, 구조주의 (그리고 음운론)의 기본적인 원리이다. (레비스트로스 /테렌스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 44   러시아 포르마리즘.(formalism,1920-1930) ...언어학자나 문학사가들. 모스크바언어학회와 뻬드로그라드 시적 언어연구회.(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80)   초기의 포르마리즘(1920-30년대 쏘련형식주의)은 상 징주의 및 실용될 수 있는 코무니케이션의 도구로서의 형식에 대한 상징주의자적 관심을 기본원리로 해서 구축되였었다. 즉 자립적이고 자기 표현적이며, 언어 외적 리듬, 연상, 암시를 리용해서 언어를 보통의 일상적인 의미 영력을 넘어서까지, 늘려나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이다.(동상 81)   포르마리스트들은 전의적, 언어, 은유, 상징. 시각의 영 상 등은 시의 필요 조건인 것이 아니라 일상언어의 특징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문학 분석에서의 그들의 흥미는 이미지의 존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지가 적용되는 용법에 있는 것이리라. (구조주의와 기호학 84)   일탈은 포르마리즘의 중심적 관심사…일상의 언어와 비교해 볼 때, 문학 언어는 일탈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 라, 그자체가 일탈이기 때문이다… 장치, 기법은 문학 예술의 근간이 되며, 문학의 모든 요소가 그 곳으로 향해서 조직되고 있는 기본적 요소가 된다. 그리고 그 요소들을 심판하는 기준이기도 하다.(동상 85)   구조주의는 그자체가 언어학적 모델에서 발전했었는데 언어로 이루어진 작품인 문학에서 그 모델과의 유사성이상의 것을 가진 대상을 발견하고 있다. 양자는 동질이다 라는것이다.(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 120) [계속]  
1553    하이퍼시 명언 8 / 최흔 댓글:  조회:1297  추천:0  2021-05-25
8. 변형에 대하여     실체들은 변형되고 형체들은 와해된다. (천개의 고원210)   뒤메질은 또한 언어과학의 탄생의 기초적 개념이 되는 변형의 개념을 이 력사 문헌학의 동향에서 이끌어낸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평한다) (푸랑수아 도스 ‘구조주의 역사’69)   변형은 사회변화에 대한 반응이기거나 혹은 그 부산물로서가 아니고, 내적 요구에 의하여 재촉되고 추진되여 서, 자기 개성적이고 자기 페쇄적인 문체나 장르의 연속을 펼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참신 한 형식이나 문체는 낡은 것에 반역하는데서 출현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것들의 반대  명제로가 아니고, 영속성이 있는 요소들을 재조직하고 재편성하는 한에서 이 다. 이것 역시 일탈과정의 일부분이다. 기의한 것이 일상적인 것이 되면 다른 것으로 바뀌여질 필요가 생긴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98)   패로디는 중요한 역활을 한다. 왜냐하면 패로디는 언제 나 다른 문학작품을 배경으로 삼고, 그것의 수법을 폭로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떠나기 때문이다….페물이 되여버린 수법은, 내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어울리지 아니 하는 새로운 문맥에서 반복되여… 재차 지각 이  가능해진다. (동상98)    인간은 자신이 살고있는 세계를 상상의 힘으로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우리는 주어져있는 것을 변경하고 재구 축하는 것이다. (/바르트/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 력사’ 148 )   책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묘사하고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현실의 물리적 세계가 아니고, 다른 차원으 로 환원된 세계이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205)   사유는 어떤 무속에서 말을 배경으로 행복하게 솟아오르는 것 같았는데, 이런 무로부터 출발한 글쓰기는 점진적인 응결의 모든 상태들을 통과했다. 그 다음 으로 그 만듦의 대상, 끝으로 파괴의 대상이였던 글쓰기는 오늘날 마지막 변신인 부재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10)   기계의 도판, 곧 이미지는 우선 대상 혹은 작업의 분산된 요소들을 분석하고 열거하며, 그것들을 독자의 눈앞에 테이블위에 던지듯 던지고, 이어서 마무 리하기 위해 생활장면, 다시 말해 삶의 두께를 덧붙이면서 그것들을 재구성한다.(동상 116)   서술하며 변형한다… 우리가 근원적 개념이라고 생각해온 것들을 토론에 부쳐서 그것들을 근본적으로 변형시키거나 기형을 만들어냄으로써 정상으로 보이는 것을 낯설게 만든다.  니콜로스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122)   대리보충은 출몰한다. 그것은 유령적이다. 그 자체로 는 현전도 부재도 아니며 흔적으로 남는 효과를 묘사 한다는 것, 그것이 지형을 변형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해체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동상123)     대리보충은 바이러스와 같다. 그것은 모든 것을 전염시 킨다. 데리다에 따르면 ‘이 개념은 사로잡을 수도, 길 들일 수도, 교화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그 독성이 매우 강하다’…’바이러스가 내 연구의 대상이 되여있을 것이다.’(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124)   ‘사람들은 대리보충에서 다시 근원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근원자리에 대리보충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데리다의 저작전체는 대리보충의 가르 침, 즉 임시 가르침 또는 대체 가르침이 관념에 싸여있다.(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125)   변형과 재창조는 … 실재와 허구, 역사와 상상이라는 전 통적 구별법을 초월하는 텍스트의 과정 탐색이라는 영역을 개척했다. (동상218)   ‘변용’은 변용된 몸체의 상태를 가리키며 변용시키는 몸체의 존재도 함축하는 반면, ‘변용태’는 변용을 주고 받는 몸체들의 상호 변이를 고려하기 때문에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에로의 몸체의 이행을 기리킨다. (천개의 고원 23. .)   한 추상적인 기호계가 다른 기호계로 변형된다는 점이다. (비록 이 변형이 그자체로는 추상적이지 않다하더라  도, 다시 말해 변형이 실체로 일어나며 순수한 학자로 서의 “번역자”에 의해 수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전ㅡ기표작용적 체제안에서 어떤 기호계를 생겨 나게 하는 모든 변형을 유비적 변형이라고 부를 수 있다. 기표작용적 체제 안에서는 상징적 변형, 반ㅡ 기표작용적 체제 안에서는 논쟁적 변형 또는 전략적 변형, 후ㅡ기표작용적 체제 안에서는 의식적 변형 또 는 모방적 변형이라고 각각 부를 수 있다. 끝으로 도표적 변형이 있는데 그것은 기호계들이나 기호 체제들을 절대적이고 긍정적인 탈영토화의 고른판 위에서 산산 조각내는 변형이다. 변형은 순수 기호 계의 언표와 혼동되지 않는다. 또 한 변형은 자신이 어떤 기호계에 속하는지 알기 위해 화행론적 분석을 해야만 하는 애매한 언표와도 혼동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혼합된 기호계에 속하는 언표와도 혼동되지 않는다(설사 변형이 그런 결과를 초래한다할지라도 말이다). 변형적 언표는 하나의 기호계가 다른데서 온 언표들을 자기 자신을 위해 번역하는 방식을 표시해 준다. 또한 그럼으로써 변형적 언표는 언표들의 방향을 바꾸고 언표들의 변형불가능한 잔여 물들은 남겨두며,  역변형에 능동적으로 저항한다. 더구나 변형들의 목 록은 앞서 열거한 것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새로운 기 호계가 창조 되는 것은 항상 변형을 통해서이다. 번 역은 창조적일 수 있다. 새로운 순수기호 체제들은 변형과 번역을 통해 만들어진다. 거기서도 일반 기호 론은 없다. 오히려 기호계 변환이 있을 따름이다.  (천개의 고원262-263)   주체성의 씨앗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의미 생성은 없다. 기표의 잔재들을 끌고 다니지 않는 주체화는 없 다. 기표가 먼저 벽위에 튀여오른다 할지라도, 주체성이 먼저 구멍쪽으로 뻗어나간다 할지라도 기표의 벽은 이미 검은 구멍들을 포함하고 있고 주체성의 검은 구멍은 여전히 벽의 잔해들을 가지고 간다고 말해야 한다. 따라서 혼합체는 검은 구멍-흰 벽이라는 분리불 가능한 기계에 기반하고 있고, 이 두 기호 계들은  마 치 ‘히브리인과 파라오’사이에서처럼 교차, 재절단, 가지치기 등을 통해 끊임없이 서로 뒤섞인다. (동상347)   폭풍 속에 둘러싸인 보행자는 얼마나 쉽게 사모트라케의 승리를 상징하고 있는가! 그는 곧 작은 깃발이고, 국기 이며, 군기인 것이다. 그는 용기의 표시이고, 힘의 증거 이며, 토지의 점령인 것이다. 폭풍에 펄럭이는 외투는 그러므로 바람의 영웅에 내재하는 일종의 깃발, 빼 앗을 수 없는 깃발인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304)   눈을 깜박거리는 것의 행위는 현실적인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지만 그와 비슷한 종류의 다른 행위는 그것이 수반하는 소리에 의해서 그 말의 뿌리역할을 하는 음향을 아주 잘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듣기 위 해서  ‘생산하며’ ‘투영’하지 않으면안 되는 일종의  대표적 의성어, 즉 떨어지는 눈꺼플에 소리를 주는 일종의 추상적 의성어가 존재하는 것이다. 폭풍이 지 나간 위에 나뭇잎에서 떨어지면서 이상에서 말한바와 같이 눈을 깜박거리며 빛과 물의 거울을 떨게 하는 물방울이있다. 그것을 ‘바라볼’ 때, 떠는것이 ‘들리는’ 것이다.(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 353)    
1552    하이퍼시 명언 7 / 최흔 댓글:  조회:1189  추천:0  2021-05-25
7. 기표와 기의에 대하여     소쉬르식으로 말하면 담론 속에서 항상 작용하고 있는 기표 아래로 기의가 미끄러져내려가는 것이 꿈이다. 무의식이란 기표의 활동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 75)   기표의 총체성에 의해서만 실재계에 난 구멍이 메워질 수 있다.(자크 라캉 ‘욕망 이론’179)   소쉬르는 언어는 사물을 지칭하는 기표와 지칭당하는 대상인 기의로 이루어져있다고 했다. 그리고 언어는 차이 (혹은 관계)에 의해 변별의 기능을 갖는 자의적 체계 라고 했다.17… 그렇다면 기 표는 단 하나의 기의에 고정 되지 않고 관계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낳는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18)   기표는 기의에 선행하고 기의를 결정한다. /라캉/ (프랑수아도스 ‘구조주의력사’ 61)   기의는 부재에 의하여 특정지어지는 반면, 기표는 감각적인 실재에 의해서 정의된다(동상91)   문학은 우리가 세계를 가공하고 창조하기 위해서 고안해 낸 여러 꼬드들에 의존하고 있다. 문학이란, 어느 의미에 서는, 꼬드를 창출하는 중요한 동인이 되는 꼬드의 중류장치일런지도 모른다. 문학은 독자에게 꼬드를 상기시키고, 그 꼬드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그에게 보여준다. 문학의 언어비평성은 이러한 점에 있다 ….  우리는 글쓰기를 무슨 도구인양으로, 드러나지 않는 의도를 전달해주는 차량, 행동의 수단, 언어의 의복인양으로 그릇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바르 트는 말한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156)     능기를 분석하는 꼬드   1. 해석학적 꼬드; 설화적인 꼬드, 수수께끼를 구성해 풀어가는 꼬드. 2. 의미소 또는 능기의 꼬드; 의미의 깜박임 반시적 꼬 드-伴示 3. 상징적 꼬드; 群化나 윤곽구축, 대조(2,3은 분별이 불투명) 4. 행동꼬드(프로아이젝트); 연속적사실. 5. 문화적 꼬드(대상지시적 꼬드); 격언적, 집합적.   대시작용이라는 것은 보통으로는 언어사용에 있어서 말해지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고, 반시(伴示)작용은 말해지고 있는 것 외의 다른 무엇을 의미하는 일이다. 선행되고  있는  능기— 소기의 관계에서 생기는 기호가, 더 높은 단계의 기호의 능기로 되는 경우에, 반시작 용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첫째 세계는 대시작용의 차원이고 둘째는 … 반시작용의 차원이 되 는것이다. (테렌스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 187-188)   청각적 기호는… 시간을 리용하고 …공간적 기호는 공간을 점하고... 청각적이고 시간적인 기호는 그 성격상 상징적인 것이 되려는 경향이 있는데 … 시각적이 고  공간적인 기호는 그 성격에 있어서 도상(图象)적인 것이 되려는 경향이 있다.   능기는 고도의 다양성을, 말하자면 애매성을 나타내고 있다. … 기호론적으로 말하면 애매성은 꼬드의 규칙을  어기는 양식이라고 규정되여야 한다… 시는 일상적인 말씨에 대한 조직적인 파괴다 라는 야콤슨말에…(동상200)     (a) 상이한 레벨의 많은 메시들은 애매성을 지니고 조직화 된다 (b) 애매성은 정확한 설계에 따른다 (c) 어떠한 메시지에 있어서도, 거기에 들어있는 정상 적인 수법과 애매한 수법은 다같이, 다른 모든 메시지에서의 정상적인 수법과 애매한 수법에 대하여 맥락상의 압력을 느낀다 (d) 한체계의 규칙이 한 메시지에 의해서 깨뜨려지고 있는 방식은 다른 체계의 규칙이 자신의 메시지에 의하여 깨뜨려지는 방식과 동일하다   그 결과로 생겨나온 것은 미적 개인어 예술작품에 독특한 특수 언어인데, 이것은 독자들에게 그 대시를 새로운 반시로 부단히 전화시키고 있는 우주적 질서— 즉 확립되는 순간에 자기 확립된 의미의 레벨을 넘어서 끝없이 움직인다—라는 느낌을 자아낸다.   미적 메시지가 의미작용을 부단히 행하는 다차원의 체 계이기에, 의미작용이 한레벨에서 다른 레벨로 이행 하고 있어서 그것의 대시가 일종의 무한 급수적인 양상에서 반시로 된다는 것인 듯하다. 그 결과로 서, 미적 메시지에 대한 최종적인 꼬드풀이나 글읽기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터이다. 왜냐하면 애매성의 하나하나가, 다른 레벨들에서  더욱 많은 같은 계통의 규칙위반을 생성시키고, 또 예술작품이 어떤 점에서든 말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벗겨 버리거나 다시 조립하거나 하도록 노상 우리를 재촉하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도스 ‘구조주의와 기호학’ 200-201)   기호 체제는 정확히 말해 권력 조직들 또는 배치 물들을 표현하는 것이지, 내용의 표현이라고 가정되는 이데 올로기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이데올로기는 효과적 으로 작동하는 모든 사회적 기계들을 감추는 가장 고약한 개념이다.)(천개의 고원136)`   기호의 기표작용적 체제(기표작용적기호)의 공식은 아 주 일반적인 것이다. 즉 기호는 다른 기호를 지시하고 또한 다른 기호만을 지시하며 이런 식으로 무한히 나아간다… 중요한 것은 무정형의 대기(大氣) 연속체에 자신의 그림자를 투영하는 시작도 끝도 없는 그 물망을 형성하기 위해서 기호가 어떤 다른 기호들을 참조하는지, 어떤 다른 기호들이 그 기호에 덧붙여 지는지를 아는 일이다. 바로 이 무정형의 연속체가 일 단은 ‘기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무정형의 연속체는 기표 아래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기표의 매체 또 는 벽노릇을 할 뿐이다. 모든 내용은 자신의 고유한 형식을 기의 속에 용해시키게 된다. 내용의 대기화 또는 세속화. 그리하여 사람들은 내용을 추상화 한다.(천개의 고원218-219)   정확히 말해서 기표의 이런 순수 형식적 잉여는 특별한 표현의 실체 없이는 생각될 수조차 없다.(기표가 기표를 참조한다)우리는 이 표현의 실체에 얼굴성이라는 이 름을 붙였다. … 얼굴은 기표작용적 체제에 고유한 이며,체계 내부에서 일어나는 재영토화이다. 기표는 얼굴 위에서 재영토화 된다. 기표에 실체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얼굴이다. 해석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얼굴이다. … 기표는 항상 얼굴화 된다 .(천개의 고원213-214 )   기호의 기표작용적 체제는 8개의 양상 또는 원리로  정 의된다. 1,기호는 다른 기호를 제시한다. 그것도 무한히(기호를 탈영토화하는 의미생성의 무제한 성) 2. 기호는 다른 기호에 의해 돌려보내지며 끊임없이 회귀한다(탈영토화된 기호의 순환성) 3. 기호는 한 원에서 다른 원으로 건너뛰며, 끊임없이 중심에 의존하는 동시에 중심을 바꾸어놓는다 (기호들의 은유 또는 기호들의 히스테리) 4. 원들의 확장은 기의를 주고는 다시 기표를 주는 해석들에 의해 항상 보충된다(시제의 해석 병) 5.  기호들의 무한한 집합은 하나의 주요 기표를 가리키고 있는데, 이 기표는 과잉인 동시에  결핍으로 나타난다.(전제군주적 기표, 체계의 탈영토화의 극한) 6. 기표의 형식은 실체를 갖는다. 또는 기표는 얼굴 이라는 몸체를 갖는다(재령토화를 구성하는 얼굴성의 특질들이라는 원리) 7. 체계의 도주선은 부정적 가치를 부여받으며, 기 표작용적 체제의 탈영토화 역량을 넘어선다고 비난 받는다 (희생양의 원리) 8. 그것은 보편적 기만의 체제이다. 이 체제는 도약들 속에, 규제된 원들 속에, 점쟁이의 해석에 대한 규제들 속에, 얼굴화된 중심의 광고 속에, 도주선을 다루는 태도 속에 동시에 들어있다.(동상227)   전-기표작용적 요소(원시적 기호계, 절편성은 계통들의 법칙)들은 항상 기표작용적 체제 안에서 작용하 며,  반-기표 작용적 요소 (유목민들 기호계, 절편성이 아니라 산수와 숫자 읽기) 들은 항상 기표작용적  체제 안에서 작동하고 또 현존하며, 후-기표작용적 요소 (의미생산에 대립되고 주체화라는 특별한 기법을 통해 정의된다)들은 이미 기표작용적 체제 안에서 존재한다.(동상 231)   전기표적 기호계. 여기서는 언어의 특권을 나타내 는 “덧코드화”가 널리 진행된다. 여기서 언표행위는 집단적이고, 언표들 자체는 다의적이며, 표현의 실체는 다양하다.  또한 여기서 상대적 탈영토화는 국가장치 를 막아내는 절편적 계통들과 영토성들이 대면함으 로써 결정된다. 기표작용적 기호계. 여기서 덧코드화는 기표와 기표를 방출하는 국가장치에 의해 완벽하게 수행된다. 순환성의 체제안에서 언표행위는 획일화되 고, 표현의 실체는 통일화되고, 언표들은 통제된다. 여  기서 상대적 탈영토화는 기호들 간의 영속적이고 잉여적인 지시에 의해 최고 지점에 이르게 된다. 반 -기표작용적 기호계. 여기서 덧코드화는 표현의 형식 또는 언표행위의 형식으로서 에 의해 확보되고 또 그것이 의존하는 에 의해 확보된다. 또 한 탈영토화는 능동적인 파괴선 또는 소멸의 선을 따른다.  후 기표작용적 기호계. 여기서 덧코드화는 의식의 잉여에 의해 확보된다. 비록 여전히 부정적인 방식 으로이기는 하지만, 권력을 내재적으로 조직화하고 탈영토화를 절대적인 것으로 끌어올리는 정념적 선 위에서 언표행위의 주체화가 산출된다.(동상260)   우리는 의미생성의 리상적 체제. 즉 해석적-편집증적 체 제와 의미생성의 주체적 체제, 즉 후ㅡ기표작용적 정념적 체제를 대립시킬 것이다. 첫번째 체제는 기만적인 시작에 의해, 하나의  관념주위에서 조직 되는 내생적인 힘들을 증언하는 숨은 중심에 의해 규정된다. 또한 그것은 무형의 련속체에 의해, 가장 작은 사건일지라도 포착되는 미끄러지는 대기 위에서 그물망 모양의 전개에 의해 규정된다. 또 그것은 원형으로 반사되는 조직화에 의해, 원형 방사를 통한 모든 방향으로의 팽창에 의해 규정된다. 여기에서 개인은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한 원에서 다른 원으로 건너뛰고, 중심에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며, 예 견하고 회고하는 것이다.(천개의 고원232)   원형으로 퍼져나가는 그물망으로부터 하나의 기호나 기호 다발이 떨어져나온다. 이 기호는 스스로 작동하 며,  마치 좁게 트인 길을 따라가듯 직선으로 펼쳐지 기 시작한다. 이미 기표작용적 체계에는 도주선 또는 탈영토화의 선이 그어져있고 이 선은 탈영토화된 기호들의 고유한 지표를 넘어서있다. (천개의 고원235)   언표 행위의 주체는 언표의 주체로 밀려난다. 언표의주체가 자기 차례가 오면 다른 과정을 위해 언표 행위의 주체 를 공급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언표의 주체는 언표 행 위의 주체의 응답자가 되였다.(천개의 고원251)   화행론은 이미 두개의 성분을 제시한다. 첫번째 것을 발생적 성분이라고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러 추상적 체제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혼합된 기호계들을 형성하는지, 어떤 변이를 갖는지, 그 체제들이 어떻게 조합되는지, 그리고 어떤 체제가 지배적인지를 보여주 기 때문이다, 두번째 것은 변형적 성분이다. 그것은 이 기호 체제들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는지, 그리고 특히 그것들이 새롭게 창조되는지를 보여준다. 발생적 화행 론은 혼합된 기호를 본뜨는 반면, 변형적 화행론 은  변형의 지도를 만든다… 두번째 성분은 가장 심오 하며. 첫번째 성분의 요소들을 측정하는 유일한 수단 이다. (천개의 고원267)   화행론은 언어의 정치학이다.(천개의 고원161)    기표가 기의를 지배한다… 기표와 기의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질서를 가지고 있다. 단어와 사물들간의 완전한 일치를 주장하는 모든 토론들이 부딪힐 수 밖에 없 었던 난국들을 넘어선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57 )      기표들은 의미생성을 위하여 다른 기표 속으로 침투하고 또 다른 기표를 포섭하기도 하며 상대방에게 서로 의존한다. 궁극적으로 기표들은 창의를 만들어내는 요소로 환원되고 동시에 완결된 체계를 이루려는 목적으로 서로 결합하기도 하는 이중 운동을 수행한다… 문 자란 통합된 의미를 불가능하게 하고 총체적인 의미를 분산시켜버리는 기표들의 구조이다 … 기표들은 목걸이의 고리들처럼 연결되여 있지만 그 목걸이 자체도 이미 고리들로 또 다른 목걸이 속의 고리일 뿐이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63)   이제 우리는 기의가 끊임없이 기표 아래로 미끄러져 갈 뿐만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소쉬르는 이것을 마치 창세기의 축소판인 것처럼 높고 낮은 물들이 굽이치는 모양으로 례증한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65)   기표가 사물의 죽음을 구현하는 한, 한편으론 죽음이, 다 른 한편으론 소생이 교차하게 된다. … 기표의 분할 가 능성은 전체를 만들어내는 통합적인 활력으로 설명될 수 없다. (동상119)   기표는 어느 것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특이한 것이며 근본적으로 결핍만을 드러내는 상징이다.(동상 120)   기호와 존재는 놀라울 정도로 산산이 흩어져 서로 충돌할 때 승리를 거둔다.(자크 라캉 ‘욕망 이론’129)   기표는 실제적인 사물들의 언어의 법칙에 종속되여 기이가 되도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물들은 횡선 아래로 내려가 기의가 된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277)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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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시에 대하여    시적 언어의 파렬은 절대적 대상을 성립시킨다. 대자연은 수직선들의 련속이 되고, 대상은 그것의 모든 가능성들로 채워진재 갑자기 일어선다. 그것은 메워지지 않는, 따라서 끔찍한 하나의 세계를 구획할 뿐이다.낱말들 ㅡ대상들은 관계가 없으며,그것들이 파열하는 모든 폭력으로 치장되고, 이 폭력의 순전히 기계적인 떨림은 다음 낱말에 기이하게 충격을 주지 만 곧바로 소멸된다. 이런 시적 낱말들은 인간들을 배제시킨다. 결국 근대적인 시적 자본주의는 없다. 이처럼 수직적으로 서있는 담화는 공포로 가득한 담화이다. 다시 말하면 인갖들을 다른 인간들과 련관시키는게 아니라 하늘, 지옥, 불가침한 것,어린 시절, 순수한 질료 등 대자연이 더없이 비인간적인 이미지들과 연관시킨다. 이 점에서 시쓰기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다.왜냐하면 모든 윤리적 중요성을 파괴해 버리는 자률의 폭력을 지닌 언어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어적 몸짓은 대자연을 수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것은 하나의 조물주와 같다. 그것은 의식의 태도가 아니라 강제의 행위이다.이것이 바로 최소한 근대적 시인들, 자신들의 의도를 끝까지 밀고 가는 그 시인들의 언어이다. 그들은 시를 정신적인 실천, 영혼의 상태, 혹은 입장의 게시로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 꿈꾸어진 언어의 찬란함과 신선함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시인들에게는 시적 감정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역시 쓸데 없다. 례컨대 샤르같은 사람의 경우, 절대로 간주된 근대적 시는, 분명 하나의 글쓰기임과 동시에 통상 시적 감정이라 불리는 그 확산된 어조와  그 값진 아우라를 넘어서 있다.(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48)     ‘시는 천상 간결하고 생략적이여야 한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혹은 명백하게 확장될 수  있다고 할지 라도 말이다.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 들’274)     인접성위에 유사성이 들게 놓이므로서, 시는 완전히 상징적이고 다양하고 다의적인 본질을 부여받게 된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108)   시는 보통 언어를 그냥 장식하는 것이 아니고, 별개 종 류의 언어를 구축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시적이라는 것은 수사상의 장식으로 술화를 보완하는 것이 아니고, 술화와 그 구성요소 모두를 전면적으로 재평 가하는 일이다…. 시적이라는 것이 경합해서 존재하는 다른 어떠한 기능들 보다도 더 높은 차원으로 높아졌을 때, 시가 생기게 되는 것뿐이다… 그래 서 시적 기능은  언어예술의 유일한 기능은 아니고 다만 그중에서 지배적이고 결정적인 기능인 것뿐이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112)   의미는 그 특징상 전의할 뿐만 아니라, 전의될 수가 있고 또 전의되여야 한다.(동상116)   밖으로 드러난 현실은 결코 중요한 현실이 아니며, 따라서 감각에 의해 지각되는 이러한 외양을 꿰뚫고 현 실의 근원에 도달하려면 추상적 모델을 구성해야 한다.( 프랑수아 도스 ‘구조주의력사’37)   만일 코뮤니케이션이 메시지 그자체에게로 지향하고 있다면, 이 때는 시적 혹은 미적 기능이 우세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언어의 시적기능은 … 기호를 명확히 인 식하도록 촉진시킨다. 그 결과 능기와 소기, 기호와 대상간에서의 어떠한 관계라도 자연스럽다거나 분명 하다고 보는 생각을 체계적으로 부숴뜨리리게 된다 . (동상118)   참다운 포에지(시, 시작법, 시학…)라고 하는  것은 눈 을 뜨게 하는 기능을 말한다. (바슐라르 ‘물과 꿈’37)   저작자의 작품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능기에 주목해야 하는 일이 중요하게 된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능기를 넘 어서서 능기가 암시하는 소기에게로 옮겨가려는 우 리의 자연스러운 충동에 굴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158)   작가스러운 텍스트는 우리로 하여금 텍스트를 통해서 예정된 현실세계를 바라보게 하는것이 아니라, 언어자체의 본성을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이 작가스러운 텍스트 는, 독자가 읽어나가면서 저작자와 더불어 자신의 현재의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위험은 있으나 상쾌한 작업에 독자를 끌어넣는다… 독자스러운 텍스트에서 는 능기가 행진하는데 작가스러운 텍스트에서는 능기가 춤을 춘다. 역설적이지마는 (실체의 글 읽기를 요구 하지 아니하는 ) 독자스러운 텍스트는 흔히 말하 는 “독해가능한” 것인데, (고된 글읽기를 요구하 는)  작가스러운 텍스트는 흔히 “독해불능”이라 고 말해진다. (테렌스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160)   쾌락의 텍스트(독자스러운 텍스트)란 것은 행복환상을 충족시키며 용인하는 것인데, 문화로부터 태여나서 문화와 절연되지 않고, 글읽기의 편안한 실천에 련 계된다. 향락의 텍스트(작가스러운 텍스트)는 결락감 (缺落感) 을 안겨주는 것인데, 독자의 역사적이고 문 화적인 심리적 가정과 그의 취미, 가치관, 기억 등의 일관성을 (어쩌면 따분하리만큼) 불쾌하게 하고 불안하 게 하여, 독자와 언어와의 곤계에 위기를 가져온다.   이러한 향락의 텍스트나 향락의 순간에 대해서 우리가 보이는 창조적 반응은, 읽어감에 따라서 우리를 무아경 에 빠져드는 저작자로  변모시키는 그것이다.(동상162)   글쓰기는 결코 코뮤니케이션의 도구도 아니고, 말할 의 도만이 통해가는 열려있는 통로도 아니다. 정밀이니 명료니 하는 것과 같은 초역사적인 보편적 문체의 양식이나 조건도, 이데올로기적으로 무구명료함이이란 순수하게 수사학상의 속성이지, 일반적으로 어떠한 시 대 어떠한 장소에서도 가능한 언어 특성은 아니다. … 부르조아지는 자신이 분류해내지 못하는 것은 인정하지  아니 하려고 하며, 일체의 인간경험을 자신의 고유한 세계관과 합치되도록 고쳐서 그것을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으로 승격시켜나간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151)   모든 시는 자신을 표현하는 그 방식이 어떠하든지 본질의 상태로, 힘의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잠재적 산문 의  장식적, 암시적, 혹은 과장된 방정식에 불과하다. (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42)   죽은 의미반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생생한 반복이 데리다의 새로운 ‘정체성’인데 데리다는 그것을 ‘유일성(단독성)’이라고 명명하였다.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12)   의미의 반복이 가능하겠지만, 데리다의 텍스트는 동일 한 의미를 반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이 있다면 다른 의미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11)   존재는 주체 앞으로 스스로를 제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곳에 주체가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존재는 주체를 대신한다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이 그의 영혼을 가지고 사고하는 것과 같다.(자크 라캉 ‘욕망 이론’88   1990년 엘리자베스 웨버와 한 인터뷰에서, 데리다는 이렇게 말한다. ‘미래는 필히 괴물이다. 오로지 놀라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맞을 준비조차 할 수 없는, 미래의 모습 은… 괴물의 형식으로 고지된다. 괴물이 아닌 미래는 미래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예측 가능하고, 계산가능 하며, 설계가능한 래일에 지나지 않는다 ’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226)   괴물성이란 오로지 ‘몰인정’의 대상이므로, 승인도 리해도 받지 못하는 것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다만 사후에, 즉 그것이 정상이나 규준이 되였을 때, 인정 받을 수 있게 된다.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228)   절대적으로 순수한 단독성은 … 독해가 불가능할 것이다.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 244)   글쓰기를 향한 꿈의 순수성은 ‘접근불가능’하다… ‘한편의 시, 나는 결코 서명하지 않는다’ 광기의 짧 은 순간에만 나타나는 서명(판독)불가능한 욕망, 즉 이 러한 불가능성에 가장 날카롭고도 가장 불쾌하게 참여시키는, 모종의 텍스트 혹은 경험이 아마도 한편의 시일 것이다. (동상  252)      ‘오로지 타자에게만 나타나며, 그것은 생과 사를 동 시에 가져다주는 광기의 짧은 순간을 제외하고는 결코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불가피하다게 나만의 언어와 나만의 노래의 창안을 꿈꾼다. 다시 말해서 자아의 속성이 아니라 차라리 강조된 나만의 글자 삐침, 즉 나의 가장 독해불가능한 력사를 나타내 줄 음악적 서명을 말이다.(동상253)     걸작은 부식되지 않으려 저항한다. 는 구절이 있다.  다시 말해서 걸작은 읽어달라고 요청하는 동시에 읽히지 않으려 저항한다는 뜻이다. 걸작은 어쩔수 없이 독서불가능하다. 그 독서불가능성으로 인해 걸작이 매혹적인 것이다.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 264 )   문제는 “시인으로서 살것인가 아니면 살인자로서 살것인가”다.살인자는 분자적 집단을 조직해 현재의 민중들을 폭격하는 자로서, 이 집단은 끊임없이 모든 배치물 을 페쇄해 계속 크기와 깊이를 늘려가는 검은 구멍으로 이 배치물을 밀어넣는다. (질 들뢰즈 필릭스 가타리 ‘천개의고원’657)   질료는 충분히 탈영토화되였을 때에야 비로소 분자적인 양상을 띠며, 오직   이외에는 돌아갈 곳이 없는 순수한 힘들을 출현시키는 것이다. (천개의 고원659)   코스모스적 힘은 이미 재료속에, 거대한 리토르넬로는 소박한 리토르넬로속에, 대규모 조작은 소규모 조작 속에 들어있다. 그저 우리자신이 그만큼 강한 힘이 있는지 확신이 없을 뿐이다. 우리는 체계를 갖고 있지 않으며 오직 선과 운동들을 갖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슈만)(천개의 고원 667)   압축은 기표들의 포개짐이다. 은유가 중요한 수법으로 등장하고 Dchtung이란 말에 드러나는 것처럼 압축은 선천적이고도 고유한 시의 기능으로 간주된다…방 향 전환은 환유속에서 검열을 피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기도 하다.(자크 라캉 ‘욕망 이론’75-76)   괴이함이란 온갖 종류의 무의식의 분출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경계가 무너짐으로써 환상이 해체되고 환상이 다른 주체의 이미지와 새로이 결합할 때 환상 속에서 발생하는 불균형과 연관된다(동상158)   진정 변별적이고 영원한 인간 특성은, 라는 능력안에서 식별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신화를 창조 하며 또 언어를 은유적으로 사용하는 능력과 필요성 인 것으로 나타난다… 시적 예지라는 재능은 그러니 까  구조주의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생활방식에 성격을 부여하는 원리이기에, 인간이다라는 것은 구조주의 자이다  라 는 것과 같다는 주장이다. (테렌스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17) [계속]
1550    하이퍼시 명언 5 / 최흔 댓글:  조회:1314  추천:0  2021-05-25
5. 물질에 대하여     우선 파괴적인 철학자들만이 미에서 모든 접미사를 떼여내고, 나타나있는 이미지 뒤에 숨어있는 이미지를 찾아내기 위해 전력을 다하며, 상상하는 기능의 뿌리 자체에 이르는 이 막중한 일에 손을 댈 수 있는 것이다. 물질의 근원에는 어두운 하나의 식물이 자 라고 있어, 물질의 밤에는 검은 꽃들이 피여있다. 꽃들은 이미 벨벳(털이 보시시한 천)의 꽃잎과 향기의 방식을 갖고 있다. (가스통 바슐라 르 ‘물과 꿈’10)      꿈의 우주론에서 물질적원소는 근본적 원소 그대로이다. (가스통바슐라르 ‘물과꿈’14)   몽환적인 풍격은 여러 인상으로 가득 차 있는 하나의 액자가 아니고, 부풀어오르는 하나의 물질인 것이다 . (물과 꿈 15)    존재란 무엇보다 먼저 각성이며, 더욱이 이상한 인상의 의식속에서 눈을 뜨기 때문이다.   (‘물과 꿈’ 20)   고향이라는 것은 공간의 넓이라기보다는 물질이다. 즉 화강암이나 흙, 바람이나 건조함, 물이나 빛인 것이다. (물과 꿈 21)   심리적 대립감정의 기회를 갖지 못한 물질은 끊임없이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시적 분신을 찾을 수 없다. (물과 꿈 28)   실체가 없는 작품은 생명력이 없다. (동상35)   물질화하는 몽상ㅡ 물질을 꿈꾸는 저 몽상ㅡ 은 형식의 저쪽에 있는 것이다. 보다 단순하게 말하면 물질은 형식의 무의식이라는 것이 이해될 것이다. 그것은 덩 어리속의 물 그자체이다. … 다만 물질만이 복잡한 인 상과 감정의 무게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물질은 감정의 재산이다. (동상 101)   물은 일종의 우주적 고향이 되여, 하늘에 고기를 번식시 키는 것이다. 고생하는 이미지가 깊은 물에 새를, 그리 고 하늘에 물고기를 주는 것이다. 별ㅡ 섬이라는 무력하고 양의적인 개념으로 나타낸 도치가 여기서는 새ㅡ물고기라는 살아있는 양의적 개념으로 표현되 여있다. 이러한 양의적 개념을 상상력 속에서 구 성하도록 노력해주기 바란다. 이렇게 하면 아주 보잘 것 없는 이미지가 갑자기 얻게 되는 매혹적인 애매성을 맛보게 될 것이다.   ( 가스통  바 슐라르 ‘물과 꿈’103)   물질적 몽상은 조각하는 것이다. 조각하는 것은 언제나 몽상이다.(동상 213)   몽상가는 이제 더 이상 이미지를 꿈꾸지 않고, 물질을 꿈꾼다. (동상124)   형식은 완성된다. 그러나 물질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 다. 물질이란 끝없는 몽상의 도식인 것이다. (‘물과  꿈’ 213)   물질적 상상력만이 끊임없이 전통적 이미지를 활기차게 하며, 몇몇 오래된 신화적 형식을 부단히 소생시키는 것이다. 물질적 상상력은 형식을 변형시킴으로써 형식을 소생시키는 것이다. 하나의 형식이 변형하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양식에 반대되는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 25)   물질적 상상력은 근원적 법칙의 한 례가 있다. 즉 물질적 상상력에 있어서 가치부여 된 실체는, 미소한 량이 라도, 다른 실체를 매우 큰 덩어리에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힘의 몽상의 법칙 그자체. 즉 손바닥 속의 작은 량으로 우주적 지배의 수단을 지니는 것이다. 또한 구체적인 형태로서는 열쇠가 되는 말이나 조그만  말이 아주 깊숙이 숨겨진 비밀도 드러나게  할 수 있다는 리상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물질적 상상력으로 선택된 행동의 윤리적 의미에 달린 것으로서, 만약 그것이 악을 꿈꾼다면, 불순성을 전파하여 악마적 싹을 개화시킬 것이고, 만약 선을 꿈꾼다면 순수한 실체의 한방울을 신뢰하여 자비로운 순수성을 빛나게 할 것이다. 실체의 행동은 스스로의 내면성에서  원했던 실체적 생성으로서 꿈꾸어진 다. 요컨대 그것은 어떤 인격의 생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러한 행동은 모든 상황을 뒤엎고 모든 장해를 뛰여넘으며, 모든 경계를 부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사악한 물은 음흉하나, 순수한 물은 예 민하다. 두가지 의미에서 물은 의지가 된다. 모든 일상적 성질이나 표면적 가치는 부차적 특성의 한 단계로 옮겨진다. 명령하는 것이 바로 내면인 것이 다. 실체적 행동이 빛을 발하는 것은, 중심적인 점이나 응집된 의지로부터인 것이다.(물과 꿈 269)   물질적 상상력에 전적으로 복종하게 됐을 때, 스스로의 원소적 힘속에서 꿈꾸어진 물질은 정신이나 의지가 되기까지 앙양되는 것이다.(바슐라 르 ‘물과 꿈’ 272)   고유한 의미와 비유적 의미 사이에 ‘교감’이 있다고 할 때, 그러한 비유의 심리학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 고ㅡ 속임수로 감추어진 것이다.그때의 교감은 련상일 뿐이리라. 사실 교감은 감성적인 여러 인상의 살아있 는 통합인 것이다. 참으로 물질적인 상상력의 진전을 사는(生) 자에게 비유적 의미는 존재하고 있지 않으며,모 든 비유적 의미는 감성의 일정한 무게, 즉 일정한 감성적 물질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이러 한  영속적인 감성적 물질을 분명히 하는데 있다. (동상273)     물질적 상상력은 세계를 깊이에서 연극화한다. 물질적 상상력은 인간의 내면적 삶의 모든 상징을 여러 실체들의 깊이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다.(동상280)   라캉은; 사물들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바로 단어들의 세계이다. (푸랑수아 도스 ‘구조주의력사’168)   [계속]
1549    하이퍼시 명언 4 / 최흔 댓글:  조회:1273  추천:0  2021-05-25
4. 언어에 대하여     우리가 언어속에서 구성된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할지라도 언어속에 구성된 대상은 단순히 지정된 대상이 아닌 개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물이란 기표 자체 도 명사로 사용될 때는 이중적이고도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자크 라캉 ‘욕망 이론’58)   대체물을 선택하는 기준은 지칭된 대상들 사이의 유사성이 아니라 언어표현의 동일성이다. 이처럼 사물속에는 동일성이 없지만 적어도 단어 속에는 통일성과 동일성이 존재한다….프로이드에게는 사물이 폭발하여 동일성을 잃어버려도 단어는 여전히 사물의 동일성을 복원해 주거나 새로운 동일성을 만들어준다. (천개의 고원62)   인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언어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며, 언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사회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 42)     모든 언어는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것들이 섞여있는 실재이다. (촘쓰키)(천개의 고원180)   사실 고유명사는 촉매작용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채울 수 있고, 확장할 수 있으며, 그것의 의소적 골격 이 지닌 사이들을 무한한 추가물들로 메울 수 있 다. 고유명사의 이와같은 의소적 확장은 다음과 같이 다른 방식으로 규정될 수 있다. 각각의 이름은 우선 불연속적이고 고정되지 않은 방식으로 출현하는 여러장면들을 포함하지만, 이것들은 련합하여 하나의 작은 이야기로 되기만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이야기 하는 것은 일정수의 충만한 단위들을 환유적 방식을 통해 련결시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 ‘글쓰기의 0도’148)   고유명사는 흉내이고, 아니면 플라톤이 말했듯이 환 영이다. (이것은 의구심이 들지만 맞다) (롤랑 바르트 ‘구조주의 력사’150)   언어는 다질적인 가변적 실재… 한 랑그의 통일성은 무엇보다도 정치적이다. 모국어란 없다. 단지 권력을 장악 한 지배적인 언어가 있을 뿐이다.(동상195)   각자는 소수어, 방언, 또는 나만의 말을 발견해야만 하며, 거기에서 출발해야 자기자신의 다수어를 소수 어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소수파라 불리는 작가들의 힘이며 이들이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유일하게 위대한 작가들이다.(동상203)   작품의 언어의 다양성과 변화하는 빛의 생명을 지니기 위해서는 감상적 요인이나 심정적 요인이 형식적 요인으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 물질의 이미지가 형식, 즉 소멸하 기 쉬운 형식, 공허한 이미지, 변화하는 표면에서 멀어 짐에 따라, 사람들은 본질과 내면의 깊은 곳에서 꿈을 꾼다. 그것은 무게를 가지며 핵심을 갖게 되는 것이 다.(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 9   에드거포의 말 ‘만일 가능한 론리와 과학을 비주체화해야  한다면,  반대로 어휘와 통사론을 비객체화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불가결한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대상의 이 러한 비 객체화가 없다면, 또 대상 밑에 우리가 물 질을 볼 수 있게 하는 형식의 변형이 없다면, 잡다한 사물들로 움직이지 않고 생기없는 고체나 우리들 자신들과 무관한 것으로, 세계는 흩어져버릴 것이다. (동상 29)   소쉬르는 … 라고 말한다. (푸랑수아도스 ‘구조주의력사’ 90)   언어학은 구조주의적 기획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되며, 가시적인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 효률적인 방법 론을 갖춘 선도학문이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모든 인문 사회 과학의 도가니, 멜팅팟의 역할을 하게 된다. (동상 92)   언어는 기의에 치중하는 의사 소통의 기능이나, 또는기호 그자체를 중시하는 시적기능을 가진다. (동상 100)   기표는 한정된 어떤 개념에 련결되여있지 않다 (동상177)   빠롤은 물우에 나타나 있는 빙산의 일각이다. 랑그는그것을 받쳐주는 그리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에 다 같이 느껴지면서도 결코 그자체는 모순을 나타내지 아니하는 더 큰 빙산덩어리인 것이다.(동상 25)   나무라는 청각이미지 즉 능기와 그것에 수반되는 개념 즉 소기, 그리고 지상에 실제로 자라고 있는 물리적인 나무 사이의 연결에는 아무런 필연적인 적합성도 존재하지 아니한다. 나무라는 낱말에는 요컨대 자연 그대로인 혹은 나무다운 성질이 없다. 그러니 언어의 구조를 떠나서 현실에의 보증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나무라는 낱말이 땅 우에서 자라고  있는 잎이  있는 물리적 물체를 의미하는 것은, 그 언어의 구조가 그 낱말에 그 물체를 이미지시키고 있기 때문이 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비로소 그 낱말은 그 효력을 인정받게 된다.(테렌스호옥스‘구조주의와 기호학’ 31)   시적 언어는 용이주도하리 만큼 자기식적이며 자기 각성적이다. 그것은 자체내에 포함되여 있는 메시지이기를 떠나서, 두드러지게 매체가 되려고 한다. 그것은 자신 에게로 끌어들이는 특색을 지니고 있으며, 또 제자신의 언어적 특질을 체계적으로  강화시키고 있다. 그 결과 시에 사용되는 낱말들은, 단순히 사상 전달의 신분을 지니고있을 뿐만 아니라, 그자체가 목적이 되는 자율적인 구체적 실체인 것이다.(동상 86)   시는 낱말과 의미를 분리시키기보다는, 오히러ㅡ 놀라운 일이겠으나ㅡ  낱말이 취하게 되는 의미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이런 점에서 시는 또 다시 보통의 언어 활동의 정도를 한층 더 높인다… 낱말의 시적 용법 에 의하여 애매성은 낱말의 운용에 있어서의 두드러진 특징이 된다. 이렇게 됨으로서 시니피앙이 시니피에로 옮겨가는 낱말이 낱말의 구조사의 역활이 전환되여 진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87)   언어가 정보전달에 사용될 경우에는 인식적 혹은 지시적 기능에서 작동하고, 말하는 자나 글 쓴 자의 기분이나 태도를 나타내기에 사용될 때는 표현적 혹은 정감적 기능을 볼 수 있고…언어가 …   보통의 사용법에서 최대 로 일탈될 때, 그 언어는 시적으로 혹은 미적으로 사용되여진다   …체코의 언어학자 얀 무카로브스끼가 말하는 것처럼, 이러한 전경화 현실화라는 행위는 중요 하다. 시적 언어는 코뮤니게이션(소통)을 위해서 사 용하는 것이 아니고, 표현행위 즉 언어행위 그자체를 전면에 내놓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동상103)   구조주의의 최대의 특색은, 바로 형식을 내용이 되게 하는 일종의 변환작업에 있는 것 같다… 즉 문학작 품은 언어에 관한 것이며, 언어사용 그자체의 과정을 가장 본질적인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137)   문학은 언어의 내부에서 모든 언어에 생래적으로 깃들여있는 형이상학을 파괴하는 그것이다. 문학의 술화의 본 질은 언어를 넘어서가는 일이다. (만일 그렇지가 않다면 문학의 존재 이유는 없을 것이다.) 문 학이란, 언어가 자살을 기도할 때 사용하는 흉기와 같 은 것이다.(테렌스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147)   언어체는 한 시대의 모든 작가들에게 공통적인 규정들 및 습관들의 조직체이다... 언어체가 작가의 파롤에 어떤 형태를 주는 것은 결코 아니며 자양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진실들의 추상적인 원과 같은 것이 며, 이 원을 벗어 날 때 비로소 밀도 있는 고독한 언어가 쌓여지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15)   글쓰기는 언어를 넘어선 지점에서 언제나 뿌리 내리고 있으며, 하나의 선이 아니라 싹처럼 전개되고, 어떤 본질을 나타낸다. 어떤 비밀의 위협인 그것은 반소통 이며 위압갑을 준다.(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 23)   언어는 당연히 그자체의 파괴를 향하고 있다. (동상38)   시적 언어와 산문적 언어는 그것들의 타자성을 나타내는 기호들 자체가 필요없을 만큼 충분히 분리되여있다… 고전주의 사유는 지속이 없으며 고전주의적 시는 자신의 기교적 배치에 필요한 사유 만을 지닌다.그 반대로 근대적 시학에서…  낱말들은 일종의 형식적 연속체를 생산 하며 이 연속체로부터 낱말들 없이는 불가능한 지적 혹은 감정적 밀도가 조금씩 비롯된다. 따라서 말은 보다 정신적인 배태의 빽빽한 시간이며, 이 배태속 에서 ‘사유’가 준비되고 낱말들의 우연을 통해서 조금씩 자리 잡힌다. 따라서 의미작용의 무르익은 열매를 떨어뜨리게 되는 이와같은 언어적 기회는 시적 시간 을 상정하는데, 이 시간은 더 이상 제작의 시간이 아니라 어떤 기호와 어떤 의도의 만남이라는 가능한 모험의 시간이다. 근대적 시는 언어의 모든 구조를 포착하는 차이를 통해서 고전주의적 예술과 대립되 며, 이 두 사이에는 동일한 사회학적 의도 이외에 는 다른 공통점을 남기지 않는다. (롤랑 바르트 ‘글쓰기0도’ 43)   낱말은 무한한 자유로 빛을 발하며 불확실하고 가능한 수많은 관계를 향하여 빛날 준비를 하고 있다. 고정된 관계 가 무너짐으로써 낱말은 어떤 수직적인 기회만을 지닌다. 그것은 의미들, 반사들, 잔상들로 이루어진 어 떤 총체속에 잠기는 덩어리이고 기둥이다. 요컨대 그것은 서있는 기로이다. 여기서 시적인 낱말은 직 접적인 과거가 없는 행위이고, 그것에 결부된 모든 기원들의 반사들이 드리우는 두터운 그림자 만을 제안하는 주변 없는 행위이다… 각각의 시적인 낱 말들은 예기치 않은 대상이고, 언어의 모든 잠재적 가 능성들이  날아오르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것이 다.따라서 그것은 특별한 호기심, 일종의 신성한 식도락을 가지고 생산되고 소비된다. 대문자 낱말의 이와같은 절대적 갈망은 모든 근대적 시에 공통 적인데, 시적인 말을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말로 만든다. 그것은구멍들과 빛들이 가득하고, 지나치게 풍 부함을 주는 기호들과 부재들로 가득한 담화를 확립하지만. 이 담화는 의도의 예상도 연속성도 없으 며 따라서 언어의 사회적 기능에 매우 대립되기 때문에 어떤 불연속적인 말에 단순히 의존하기만 해도 모든 고유한 초자연들의 길이 열리게 된다. (동상46-47)    언어의 어떤 질서에의 모든 예속에서 해방된 백색의 글쓰기를 창도하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70)   의식적인 작가는 이제 조상 전래의 전능한 기호들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 78)   근대적 예술전체가 그렇듯이, 문학적 글쓰기는 역사의 소외와 역사의 꿈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필연성 으로서 그것은 언어들의 찢김, 계급들의 찢김과 분리할 수 없는 찢김을 증언한다, 자유로서 그것은 이런 찢김의 의식이고 그것을 뛰여넘고자하는 노력 자체이다. 그것은 그것자체의 고독에 대해 끊임없이 죄의식을 느끼고 있음에도, 여전히 낱말들의 행복에 탐식하는 상상력이며, 어떤 꿈꾸어진 언어를 향해 달려간다.언어가 더 이상 소외되지 않는 새로운 아 담적인 세계의 완벽함을 일종의 리상적인 예견을 통해서 나타내는 신선함을 지닌 그런 언어를 향 해.  글쓰기들의 다양화는 새로운 문학을 확립한 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문학은 오로지 하나의 기획이 되기 위해서만 자신의 언어를 창안한다는 점 때문이 다. 이 기획은 문학이 언어의 유토피아가 되는것이 다.  (동상79)    해체는 비중심의 힘을 사유하게 한다… 언어는 재미있는 놀이감처럼 보일 수 있다. 어떤 이질 적인것( 언어)이 지금  우리들의 일상 언어에서 작동한 다.  (니콜러 스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84)   재창조의 유희ㅡ ‘멋대로 해라.’  이 구절에서 우리는이른바 ‘자유로운 유희’개념을 환기하게 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환기되는 언어 타자 즉 ’언어를 넘어서있으면서 언어를 소환해내는 것으로서의 타자라는 관념이다.(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 91)   언어를 믿지 않고는, 그것을 믿게 만들지 않고는 거짓 말도 불가능하다. (니콜러스 로일 ‘자크 데 리다의 유 령 들’97)   연속적 변주는 만인의 소수파되기를 구성하며, 의 다수적 과 대립된다. 의식의 보편적 형상으로서의 소수파되기는 자율이라고 불린다.확실 히 방언같은 소수어를 사용하거나 게토나 지역주의를 만든다고 해서 우리가 혁명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 다. 오히려 수많은 소수적 요소들을 이용하고 연결접 속시키고 결합함으로써 우리는 자율적이고 돌발적인 특수한 생성을 발명하게 된다. 다수파양식(长调)과 소수파양식短调은 언어를 다루는 두 가지 양식인데, 전자는 언어에서 상수들을 뽑아내는 방식이고 후자는 언어를 련속적 변주로 만드는 방식이다.   (천개의 고원205-206)   고유명사는… 보통명사의 모든 특징들을 부여받고 있지만 모든 투사적 법칙을 넘어서 존재하고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고유명사를 근거지로 하는 하 이퍼 의미성 현상의 대가 ㅡ혹은 날쁜점ㅡ이다.이 현 상이 고유명사를 시적인 낱말과 매우 유사하게 만들 고 있음은 물론이다.(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146) 고유명사가 하나의 주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하나의 명사(=이름)가 고유명사의 가치를 띠게 되는 것은 형식이나 종과 관계관련해서가 아니다.. 고유명사는 우선 사건, 생성 또는 의 질서에 속하는 무엇인가를 지칭한다, 그리고 고유명사의 비밀을 쥐고  있는 것은 바로 군인과 기상학자로, 이들은 전략작전이 나 태풍에 고유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고유명사는 시 간의 주체가 아니라 부정법의 인자이다. 고유명사는 경도와 위도를 명시한다. ,, 등의 진정한 고유명을 갖는 것은 이들의 성격을 특징 짓는 유과속의 명명 때문이 아니라 이들을 조성하는 속도들과 이들을 채우는 변용태들 때문이다. 즉 그것은 꼬마한스 의 말ㅡ되기, 늑대인간의 늑대-되기, 스토아주의자의 진드기ㅡ되기(이것들 또한 고유명사이다) 등 스스로 그리고 여러 배치물들 안에 존재하는 사건 때문인 것 이다.(들뢰즈 가타리 ‘천개의 고원’500)      피상적인 포에지와 같은 포에지를 구별하는 이러한 밀도를 사람들은 ‘감성적 가치’ 에서 ‘감각적 가치’ 로 이행시킴으로써 맛보게 될  것이다. ‘감각적 가치’  와의 관계에서 바르게 분류할 수 있을 때에만 상상력의 교의가 밝혀지리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단지 감각적 가 치만이 ‘만물조응’ 을 부여하는 것이다. 감성적 가치 는 번역밖에는 주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감성적이란 의미는 감각과 지각의 수용가능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고, 감각적이라 함은 지각하고 감각하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수있다.  ( 바슐라르 ‘물과 꿈’46 주해에서) [계속]
1548    하이퍼시 명언 3 / 최흔 댓글:  조회:1351  추천:0  2021-05-25
3. 이미지에 대하여     시적 이미지는 하나의 물질을 갖는 것이다.  (바스통 바슐라르’물과 꿈’12)   콤플렉스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마음의 에너지를 변형시키는 것이다. 문화의 콤플렉스는 이러한 변형을 계속 한다…만약 승화작용이 개념에 관한 단순한 일이라면, 이미지가 개념론적 도식속에 갇히게 되자마자 곧 그 작 용을 멈추게 된다. 그러나 색갈은 넘쳐흐르고, 물질은 부풀어오르고, 이미지는 스스로를 교화한다. (동상40)   한편의 시를 낳는 꿈의 이러한 항구성을 갖기 위해서는 현실적 이미지 이상의 것을 눈앞에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자신속에서 태어나 우리의 꿈속에서 사는 이 이미지, 물질적 상상력을 위해 무궁무진한 양식인 풍부하고 농밀한 꿈의 물질로 가득찬 이 이미지를 추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꿈’42 )   만약 독자가 시인의 모든 이미지를 현실로 인정하고 자신의 리얼리즘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그는 여행에 의 유혹을 겪게 될 것이며, 이윽고 그자신도 ‘이 상함의 미묘한 감정에 감싸일’ 것이다. “자연의 관념은 아직 존재하고 있으나 이미 변질되여, 그 성격에 있어 흥미 깊은 수정을 받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에 있어서의 신비하고 장엄한 균형이며, 감동적인 균일 성, 마법적인 정정인 것이다. ” …환영이 현실을 정정하 는 것이다. 환영은 현실로부터 이음매나 비참함을 떨 쳐버리는 것이다.(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 98-99)   죽어가는 어머니의 추억은 에드거포의 작품에서는 독창적으로 두드러진 것이다. 그는 동화의 힘과 괴상한 표 현의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토록 다양한 이 미지가 어떤 무의식의 추억에 강하게 덧붙혀있는 것은 이미 그 이미지들이 미래의 긴밀함을 서로들 사이에 지니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아무튼 바로 이것 이 우리의 주체이다. 물론 이러한 긴밀성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또 직접적으로 현실적이지도 않다. 현실 속에서 나무 그늘이 물결에 빨아들여지는 것을 보 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질적 상상력은 이미지와 몽상의 이러한 긴밀성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  이미지의 측면 그자체, 표현수단의 단계 그자체에 따라 발전시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거듭 되풀이 되여 말하지만, 우리의 현재의 연구가 바쳐  지는 것은, 이미지에 대한 보다 표면적인 심리학에 대해서인 것이다. (동상112)   새로운 분석방법에 따라서 책을 읽게 되자마자 멀리 떨어져있는 이미지를 받아들여, 다양한 길로 상상력을 자 유로이 비약시키는, 매우 변화 많은 승화작용에 참가하게 되는  것이다. 고전적인 문학비평은 이러한 다양한 비약을 구속한다. ( 동상114)   이미지의 자연스런 싹, 물질적 원소의 힘에 의해서 길 러진 싹에 의해서만 이미지는 번식되고 모아지는 것이다.  (동상161)   모든 이미지는 부재이며, 하늘은 텅 비여있으나, 운동은 생생하고 원만하게, 또 리듬을 지닌채 거기에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247)   이미지가 갖는 특징이 전혀 현실주의적인 기원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을가? 그것들의 특징 은 꿈꾸는 존재의 투영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다. 물에 비친 달속에서 다시 오필리아의 이미지를 발견하 기에는 강한 시적 교양이 필요한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167)   지극히 뛰여난 명철성에 지극히 대단한 비현실성이 흔히 대응한다. (동상100)   이미지들은 텍스트와 분리시킴으로써 는 대상의 하나의 자율적인 도상학에 진입하고 있었 다. … 의 도판들은 대상을 제시하고 이 제 시는 예시의 교육적 목표에 보다 무상한 미학적 혹은 모상적 정당화를 덧붙이고 있다.(동상 105)   일반적으로 대상의 생산은 이미지를 거의 신성하다할 단순성으로 이끈다… 창조의 간결한 엄격성, 거래의 화려 함  이것이 백과전서적 대상의 이중적 체제이다 (동상 109)   이미지는 대부분의 경우 그것으로 하여금 본질적으로 터무니없는 대상을 재구성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첫번째 자연이 일단 분해되고 나면 첫번째것처럼 형성된 또 다른 자연이 출현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세계를 부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계가 영원히 차 있기 위해서는 하나의 시선- 우리 시선- 이면 족하다.   (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123)   일직선적인 글쓰기와 이 점에서 반대되는 이미지의 특권은 그 어떠한 독서의 미로도 강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지는 론리적인 백커가 언제나 결핍되 여있기 때문이다.(동상117) [계속]    
1547    하이퍼시 명언 2 / 최흔 댓글:  조회:1412  추천:0  2021-05-25
2. 은유, 환유에 대하여     욕망은 환유이다. 대상은 신기루처럼 잡는 순간 저만 큼 물러난다. 대상은 욕망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에 인간은 대상을 향해 가고 또 간다. 죽음만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상이다. 욕망은 기표이 다. 그것은 완벽한 기의를 갖지 못하고 끝없이 의미를 지연시키는 텅 빈 연쇄고리이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19.)    주체는 결핍이요 욕망은 환유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15)   돌발적인 은유, 놀라운 대담성, 전격적인 아름다움이 독창적인 이미지의 힘을 증명할 수 있다…. ‘물은 불타는 물체이다’‘물은 젖은 불꽃이다’ 라고 말하는 노발리스의 수수께끼같은 완벽한 말도 똑같은 말이다. (가스통바슐라르 ‘물과 꿈’ 183-184)   본질적인 몽상은, 그야말로 반대물들의 결혼인 것이 다.   (동상185)   사랑과 공감의 감정이 은유로 나타나면 나타날 수록, 근원적 감정속에서 힘을 길어올리러갈 필요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동상218)   현실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심리학적으로 광기어린 은유는, 그러나 시적 진실인 것이다. 그것은 은유가 시 적인 혼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자연의 현상이며, 우주적 자연 위에 던져진 인간적 자연의 투영 이기도 한 것이다.(동상 343)   무의식이 활용하는 다른 수사학적 방식은 환유이다. 거기서는 명칭의 전의가 중시되는데,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나는 한잔 마신다처럼 어떤 용기로 대체한다든가 일부분으로 전체를 지칭한다든가, 원 인을 결과로 혹은 추상적인 것을 구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 등이다. 다시 한번 조엘도르가 제시하는 예를 살펴보자. 는 것을 흔히 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푸랑수 아 도스 ‘구조주의력사’175)   은유와 환유라는 두개념은 라캉의 관점에서는 무의식의 과정이라는 개념의 주된 두 부분을 형성한다. (동상176)   은유와 환유는 의 비유인 것이다. ‘그 차는 딱 정벌레처럼 전진해 갔다’와 같은 은유에서는, 딱정벌레의 움직임이 자동차의 그것에 등가인 것으로서 제시 되여있고, ‘백악관이 새로운 정책을 검토한다’ 라는 환유에서는, 어떤 특정의 건물이 합중국의 대통령에게 등가인 것으로 제시되여있다.(/야콥슨/동상105)   소쉬르의 개념을 적용하면 은유에서는 일반적으로 성질상 상합적이여서 언어의 수직관계가 리용되는데, 환유에서는 일반적으로 그 성질상 연합적이여서 언어의 수평의 관계가 리용된다.(/야콥슨/ 동상 106)   특이한 떨림은 무엇보다도 놀라움이다. (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118)    객관적으로 이야기 된 단순한 대상의 은유 자체는 무한히 떨리는 대상이 된다.(롤랑 바르트 ‘글쓰기 0도’ 122)          사실 파격구문은 거리의 시학으로 이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문학적 노력이 친화성들, 상응들, 유사성들을 추구하는데 있으며, 작가의 기능이 자연과 인간을 단 하나의 세계로 통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가 공감각적인 기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다.) 그러나 문학의 근본적인 문채인 은유 역시 분리의 강력한 도구로서 리해될 수 있다. 특히 은유는 샤토브리앙의 경우 풍부한데, 두 성분 뿐 아니라 비소통을 우리에게 표상한다. 마치 하나는 다른 하나에 대한 향수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다. 이야기는 문자적 요소들, 다시 말해 은유적인 방법을 통해 갑자기 덥석 물리고, 쳐들려지며, 떼어내지고, 분리된 뒤후 일화의 자연스러움에 내맡겨지는 문자적 요소 들을 제공한다. (그것은 심지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듯이, 준비도 없이 폭력적인 파격구문에 따라 억지로 도입된 새로운 말은 환원 불가능한 어떤 다른 곳과 갑작스럽게 이 요소들을 대면시킨다. 샤토부리앙은 죽어가는 어떤 젊은 수도사의 미소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캐시미 르계곡에서 여행자를 위로하는 그 이름 모를 새소리를 듣고있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대목도 있다.“이곳에서 누가 태여났고, 누가 죽었으며, 누가 울었는가?   저 하늘 높이 있는 새들은 다른 고장들을 향해서 날아간다” 샤토브리앙의 작품에서 은유는 사물들을 접근시키는 게 전혀 아니다. 그것은 세계들을 분리시킨 다. 기교적으로 말하며 (왜냐하면 기교나 형의상학을 말하는 것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은유 는  (시적 자유에서와는 달리) 단 하나의 기표에만 관 련되는 게 아니라, 담화의 커다란 단위들에 확장되여 연사莲词 생명력자체에 참여하는 것같다. 언어학자들은 연사가 언제나 말과 가깝다고 말한다. 샤토브리앙의 커다란 은유는 사물들을 분활하는 여신인데, 언제나 향수적이다. 그것은 반향을 증식시키는 것처럼 나타 나면서도 인간을 자연속에 불투명한 것처럼 남겨두고 있고 그에게 결국 직접적인 진정성의 기만을 면제해 준다.문학은 분리시키고 일탈시킨다.(동상 133-134)   은유와 환유는 단지 결과일 뿐이며, 이미 간접화법을 가 정하고 있는 경우에만 언어에 속한다. (천개의 고원 150 )   환유는 단어와 단어간의 련결에 의존한다… 은유는 시적인 섬광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비유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자크 라캉 ‘욕망 이론’69)   은유가 가진 창조적 섬광은 단순히 두 이미지의 제시 즉 두 기표가 동시에 구현되여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창조적 섬광이 두 기표사이에서 번뜩일 때 한 기표는 의미연쇄 속에서 다른 기표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된다. 자리를 빼앗긴 기표는 억압되여 눈에 보이지 않게 되지만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미연쇄 속에 있는 다른 기표들과의 (환유적) 관계를 통해 여전히 남아있게 된다.   또 다른 단어가 어떤 단어를 대체하는 것은 은유의 공식이다.(자크 라캉 ‘욕망 이론’70) [계속]
1546    하이퍼시 명언 1 / 최흔 댓글:  조회:1384  추천:0  2021-05-25
하이퍼시 명언   ■최 흔 편저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             차 례   서 언 ...................................................................................1 1. 상상에 대하여............................................................... 7 2. 은유 환유에 대하여....................................................14 3. 이미지에 대하여..........................................................19 4. 언어에 대하여..............................................................22 5. 물질에 대하여..............................................................32 6. 시에 대하여..................................................................35 7. 기표와 기의에 대하여................................................43 8. 변형에 대하여..............................................................53 9. 구조주의에 대하여......................................................58 10. 예술에 대하여............................................................65 11. 형식과 내용에 대하여..............................................70 12. 무의식에 대하여........................................................76 13. 문학에 대하여............................................................83 14. 고른판에 대하여........................................................92 15. 배치물에 대하여........................................................98 16. 탈령토화에 대하여..................................................104 17. 지층에 대하여..........................................................116 18. 리좀에 대하여..........................................................123 19. 다양체에 대하여......................................................129 20. 여러 가지 개념에 대하여......................................135 21. 추상적인 기계에 대하여........................................147        서 언   우리는 구조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좋아도 싫어도 이 시대속에서 생활하고 사유하며 문학의 발전을 도모 하여야 한다. 구조주의시대의 문학인 시는 하이퍼 시라고 할 수 있다. 하이퍼 시에 대한 명언을 고 른다는 것도 편자로  말하면 아름찬 일이거니와 서언을 쓴다는 것은 더욱 어불성설인 같아서 조 지 p 란도가 쓴 “하이퍼 텍스트 3.0”에서 뽑은  어록 들을 아래에 서언으로 대체한다.   하이퍼텍스트와 문학론에 관한 글을 쓴 [자크데리다. 롤랑 바르트, 데오도오 넬슨 안드리에스 반담을 가리킴.] 많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들 네명은 중심, 주변, 위계구조와 선형성에 대한 생각에 바탕을 둔 개념체계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 들은 다중선형성, 노드, 링크, 네트워크 중의 하나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사고에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이런 패러다임이다. (조지p란도 ‘하이퍼텍스트(이하 하이퍼텍스트로 략칭) 3.0.’ 2)   바르트는 이렇게 주장한다. 이 리상적인 텍스트에서는 많은 네트워크가 상호작용하며 그중 하나가 다른 것보다 우위에 서지 못한다. 이 텍스트는 기계의 축조물이 아니라 기표의 은하계이다. 이것은 시작이 없으며 되돌아갈 수도 있다. 그리고 여러 출입구를 통해 이 텍스트에 접근할 수 있으며, 그 경로중 어떤것도 주된 출입구라고 강변할 수 없다. [하이퍼텍스트 3.0]3   하이퍼텍스트[넬슨이 1960년도에 만들어낸 말]라고 할 때 나는 비연속적인 쓰기를 의미한다. 즉 분기점이 있어서 독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며 일반적으로 알려져있듯이 하이퍼텍스트는 독자에게 다른 경로를 제공하는 링크들로 련결된 일군의 텍스트덩어리이다. [하이퍼텍스트3.0.]4   하이퍼텍스트는 비선형적, 아니 좀더 적절하게는, 다중 선형적 혹은 다중 순차적으로 경험되는 텍스트를 만들어내게 된다. [동상4]   하이퍼텍스트는 현대문학과 기호학 리론의 일부 주요 론점과 상당히 유사한 점을 갖고 있다. 특히 탈중심성에 대 한 데리다의 강조, 읽기 텍스트와 쓰기 텍스트라는 바르트의 개념이 특히 그렇다. 실제로 하이퍼텍스트는 바르트와 데리다의 두 개념과 당혹스러울 정도로 유사한 문학적 형상들을 창조해냈다. 그리곤 하이퍼 텍스트가 만들어낸 문학적 형상물은 그 개념들, 통찰과 력사적 관련[혹은 새겨넣기]의 흥미로운 결합 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동상80]   하이퍼텍스트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용과 분리 가능성에 대한 암시는 데리다가 다음과 같이 추가할 때 잘 드러난다 “이렇게 해서 모든 주어진 문맥과의 관계를 끊을 수 있으며, 전적으로 제한이 없는 방식으로 새로운 문맥 을 무한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동상82]   하이퍼텍스트는 무제한으로 재중심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한다. 이 시스템에서 일시적인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는 것은 독자에게 달려있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의미에서 진정으로 능동적인 독자가 된다. 하이퍼텍스트의 기본적인 특징의 하나는 조직의 중 심축이 따로 없이 링크로 련결된 텍스트 몸체들로 구성되여있다는 점이다. [동상87]   하이퍼텍스트의 읽기와 쓰기의 하나는 –인쇄본이 보관된 도서관을 탐구하는 것처럼ㅡ 아무 곳에서나 시작해 서로 련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혹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주 장처럼 “각 고원은 어느 지점에서부터 읽어도 상관 없으며, 이들은 다른 고원들과 서로 련결되여 있다.”   이런 특징적인 조직 [혹은 그것의 결여]은 리좀이 기본 적으로 위계질서와 반대되는 특징, 즉 들뢰즈와 가타 리가 나무에서 발견했던 구조적 형태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나무나 나무 뿌리와 달리 리좀은 자신의 어떤 지점에서든 다른 지점과 련계된다. 하지만 리좀의 특질 각각이 반드시 자신과 동일한 본성을 지닌 특질들과 련계되는 것은 아니다. 리좀은 아주 다른 기호 체계들, 심지어는 비ㅡ기호상태를 작동시킨다.” [동상92]   하이퍼텍스트는 위계(位界)보다는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어떤 것을 구현한다. 그리고 하이퍼텍스트는 가끔 근 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정보를 결합하며, 또 가끔은 우리가 독립된 인쇄텍스트와 장르, 형태라고 리해하고 있는 것을 위반하면서 “어떤 지점을 다른 지점과 련 결한다”   … “다의성은 리좀적이며, 그들이 무엇인지에 관해 수 목적인 사이비 다의성을 드러낸다. 객체에서 주측 역할을 하거나, 주체를 나눌 수 있는 독립성은 없 다” 하는 들뢰즈, 가타리의 론점에서 하이퍼텍스트와 유사한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가장 일반 적인 의미에서 고려되는 하이퍼텍스트와 마찬가지 로 “리좀은 어떤 구조적 혹은 발생적 모델에 순종적이지 않다. 계보학 축이나 심층구조라는 생각에는 낯선 존재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설명하듯이 리좀은 “지도(地图)적이지 사본이 아니다” [동상94]   전자컴퓨팅, 특히 하이퍼텍스트와 과거 30,40년의 문학 리론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 힐리스 밀러는 다 음과 같이 제안한다. “그 관계는… 다중적이며, 비선형 적, 비인과적, 비변증법적이고 몹시 과잉결정적이다. 그것은 관계를 결정하는 대부분의 전통적인 패러다 임에는 맞지 않는다”[동상101]   하이퍼텍스트는 두가지 방식으로 텍스트를 조각내고, 흩어놓고 원자화한다. 첫째, 인쇄물의 선형성을 제거함 으로써 개별 구절을 단일한 순서로 배치해야 한다는 원칙ㅡ즉 련속성ㅡ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 그 렇게 해서 텍스트를 혼란상태로 바꿔놓는 것이다. 둘 째, 하이퍼텍스트는 고정된 단일한 텍스트라는 개념을 파괴한다. [동상152]   텍스트를 설정하는 방식을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 이 같 은 텍스트 다형태성은 텍스트가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있으며, 변화하고, 역동적이며, 열린 형태를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상167]    시작과 끝이라는 개념[그리고 경험]은 선형성을 암시 한다. 선형성의 주된 지배를 받지 않는 텍스트 성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이퍼텍스트성에는 선형성과 련속성이란 것이 완벽하게 존재하지 않는 다기보다는 다중 련속성을 갖는다고 가정해보 자.  이럴 경우엔 여러 개의 시작과 끝을 갖고 있다는 것이 앞의 질문에 대한 한가지 대답이 될 것이 다.[동상169]   간단하게 말해서 시작은 일반적으로 결과로 나타나는 의도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동상171]   마지막 단어라는 것은 없다. 마지막 판본, 마지막 생각 도 없다. 항상 새로운 관념과 아이디어, 재해석이 있 다. …바흐친에게 전체는 종결된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항상 관계이다.  따라서 전체는 종결지을 수도 무시할 수도 없다. 전체가 실현될 때 개념상으로는 벌써 변화를 면할 수 없다…. 하이퍼텍스트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이전의 용어들로 규정하고 묘사하기 어렵다. [동상172-173]   글쓰기는 결코 존재하기를 멈춰서서는 안되는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즉 하나의 부속물, 사건, 그리고 잉여로 말이다. …. 우리는 플라톤적인 텍스트, 즉 그자체로 닫 혀있으며 내부와 외부를 갖고 있는 완성된 텍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텍스트라고  불리 곤 했던것, 한때 이 단어가 동일시한다고 생각했던 것ㅡ즉 작품의 시작과 끝, 한가지 총체의 통일 성, 제목, 여백, 쪽지 표시, 기본 구성의 바깥에 있는 참고문헌령역 등ㅡ 의 지속적인 경계를 형성하는 모든 한계를 무력화한다.[동상174-175]   중심성이란 것은 오로지 순간적으로 존재한다. [동상189]   하이퍼텍스트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저자를 재구성ㅡ재작성ㅡ한다 [동상190]   상징으로서의 유추는 그것이 뛰여넘는 경계로부터 힘을 얻는다. 경계가 없다면 링크에 의해 만들어진 링크들 은 혁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할것이다. … 내가 빈약 하거나 비효률적이라고 한것은 그것들이 명백하게 선형적인 텍스트에 멋대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동상308]   하이퍼텍스트 시를 써왔던 월리엄 디키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하이퍼텍스트시의 훌륭한, 혹은 유용한 특징이라 는 점을 발견했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그것의 부분 연, 이미지 중 어떤 것으로부터 시작한 뒤 시의 다른 부분이 그것을 이어갈수 있을 것이다. 이런 조직 체계는 어떤 한 카드에 기술되는 시의 부분은 그 시에 포함된 다른 어떤 진술의 뒤나 앞에 나올 때도 시적 의미를 생성할 수 있도록 충분히 독립적인 진술이 되여야 한다 ” [동상340]   시의 목적은 텍스트의 조건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는 자 신에게 주의를 기울이며 자신의 텍스트적 활동을 자신의 기본 주제로 삼는 것이다. …시는 또한 하이퍼 텍스트 웹내에서 가장 예기치 않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 내기도 한다. [동상399-400]         1. 상상에 대하여     우리의 정신이 갖는 상상적 힘은 매우 다른 두개의 축위에서 전개된다.그 하나는 새로움앞에서 비약을 찾는, 즉 회화적인 것이나 다양함, 예기치 않은 사건을 즐기는 것이다. … 또 하나의 상상적 힘은 존재의 근원에 파고 들어가 원초적인 것과 영원적인 것을 동시에 존재속에서 찾아내려고 한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8)   우리는 상상력의 령역에 있어서 불, 공기, 물, 흙의 어느 것에 결부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물질적 상상력을 분류하는, 4원소의 법칙을 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동상12)   상상력은 그 어원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현실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능력이 아니고, 현실을 넘어서 현실을 노래 하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초인간성 능력이다…. 상상력은 사물과 드라마이상으로 창조 하는 것이며, 새로운 생명과 정신을 창조하고, 여러 가지 새로운 타입을 지니는 비전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동상 36)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지도(그림)는 꿈속에서 밖에는 그릴 수 없다. 감각할 수 있는 세계는 무한히 적 다!  몽상과 꿈은 어떤 혼(사람)에게는 미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동상38)   신神이 나서 그린 환상은 행동하기를 멈추는 환상이다. 여러가지 물질 원소에는 힘을 지니고 있는 환상이 호응하는데, 그것은 그들의 물질에 충실한 한도 내에 서이며, 또한 거의 같은 것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 것은 원초적 꿈에 충실한 한도에서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39)   몽상은 때때로 무한한 반영과 수정을 닮은 음악으로 소리를 내는 맑은 물앞에서 시작된다.(동상 95)   물의 요정, 즉 환영의 수호자는, 하늘의 모든 새들을 자기 손으로 붙잡고 있는 것이다. 물웅덩이는 우주를 내포하고 있다. 꿈의 한 순간은 홈 전체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동상101)   끊임없이 다시 상상하고 있을 때만이 시적 기능이 시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에, 새로운 형식을 부여하는 것임을 비평은 쉽사리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114)   우리는 상상력이 그 창조적 형식에 있어서, 창조하는 모 두에 생성을 강요하고 있음을 믿고 있다.  (동상130)   참으로 강력한 리익이란 공상적인 것이다. 즉 그것은 꿈 꾸는 리익이지 계산하는 리익이 아니다. 가공적 리익 인 것이다. 바다의 영웅은 죽음의 영웅이다. 최초의 수부는 사자(死者)와 마찬가지로 용감했던 최초의 생자를 말하는 것이다.  ( 동상141)   형식이란 상상력에는 ‘구성’이라는 개념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물질적 상상력은 ‘결합’의 개념을 필요 로 한다.  (동상176)   몽상의 이미지는 일원적이거나 아니면 이원적이다. 그런 이미지들은 실체의 단조로움 속에서 꿈 꿀 수 있 다. 만약 그런 이미지들이 결합을 원한다면, 그것은 두 원소의 결합인 것이다… 물질적 상상력의 지배속에서 모든 결합은 결혼이며, 삼자 사이의 결혼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181)   상상력은 작은 것을 커다란 것에, 그리고 커다란 것을 작은 것에 번갈아 투영하는 것이다. 만약 태양이 바다의 영광스러운 남편이라면, 리바송의 차원에서 물은 불에 몸을 바치는 것이 필요하며, 불은 물을 지니는 것이 필요하리라. 불은 자신의 어머니를 낳는 것이지만, 이것이 바로 연금술사들이 리그베다를 모 르는 채 싫증날 만큼 사용하는 공식인 것이다. 이것은 물질적 몽상의 근원적인 이미지이다.(동상 187)   ‘구리빛’의 독특한 똑같은 구름이 나타난다.(동상 192)   상상할수 있는 것을 뛰여넘어보라. 그러면 당신들은 마 음과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기에 족할 만큼 강력한  현 실을 갖게 되리라. (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193)   밤의 꿀은 천천히 소모된다. 태양의 냄새는 너무나 강해서 햇볕을 쬔 물은 자신의 향기를 우리에게 줄 수가 없다. 밤이 너무나 고요하여 내 게는 그것이 짜디짜게  생각 될 정도이다. 밤은 때때로 가까이에서부터 우리를 감싸며 입술을 차갑게 하려고 다가오는 아주 가벼운 물과 같다. 우리는 자신속에 있는 수분에 의해서 밤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196)   인생은 자라나고, 존재를 변형시키고 순결함을 취하여 꽃을 피게 하며 상상력은 가장 먼 은유로 열려 갖가 지 꽃의 삶에 참가하는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51)    반죽의 꿈(흙과 물의 어울림)에 속하는 이와 같은 꿈은, 창조하고, 형성하고, 변형하고, 반죽하기 위한 투 쟁 또는 패배의 교차인 것이다.(동상 200)   상상력의 령역에서 사람들이 흰색에 대해 기분을 맞추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달의 금빛 어린 빛이 내물위에 덧붙혀질 때…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227)   순수성을 몽상할 수 없이는 순수성을 알 수 없는 것이다.(동상 255)   사라져버린 문명의 텍스트를 해석할 때 특별히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이러한 ‘몽상’인 것이다. 단지 사실의 무게를 잴뿐만 아니라 꿈의 무게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의 세계에서는 아주 단순한 묘사라 할지라도 모든 것은 보여지기 전에 꿈꾸어져야 하기 때문이다.(동상 256)   상상력의… 직접적인 행동이 명백하게 되는 것은, 문체의 신선함이 가장 어려운 성질에 속하는 문학적 상상 력을 물로 할 때이다. 그것은 작가에 달린 것이지 취급된 주제에 달린 것은 아니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 183)   선천적으로 위대한 시인은, 깊은 삶속에 자신의 자연 스런 자리를 갖고 있는 여러가치를 상상하는 것이다. (동상 281)   상상된 사실은 ‘현실적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동상330)   상상계적 특질들이 상징적 연쇄와 관련되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상계적 특질들은 경 험의 본질을 구현하기는 커녕 그것들을 결합하고 방향 지어주는 상징적 차원에 의존할 뿐이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103)    담즙질 인간의 몽상은 불과 화재와 전쟁과 교살이며, 우울질 인간의 몽상은 매장과 분묘와 유령과 도망과 무덤, 즉 음산한 모든 것들이며, 점액질 인간의 몽상은 호수와 강물의 범람과 난파이며, 다혈질 인간의 몽상은 새의 비상과 경쟁과 향연과 음악회, 그리고 사람이 차마 이름 붙이기를 꺼리는 것과 같은 사물들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13-14)
1545    토템시에 대한 탐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 김룡운 댓글:  조회:1216  추천:0  2021-05-24
토템시에 대한 탐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 현춘산 작가의 《토템문화와 토템시》를 두고                                                             김룡운                                                            수원이 없는 강이 없고 뿌리가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듯이 어떤 문화현상이나 근원을 가지고 있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도 례외일 수 없다. 남영전토템시에 대한 리해는 우리 겨레의 토템문화를 떠나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토템문화는 민족문화의 시원이라는 점을 밝혀준 거사가 료녕신문사와 현춘산 작가에 의해 완성되였다. 《토템문화와 토템시》는 현춘산 작가가 남영전 시인의 토템시집 《원융(圆融)》에 수록된 42수 토템시의 상징이미지를 해설한 글로서 료녕신문사에서 매주 1편씩 무려 11개월을 두고 펴낸 시리즈이다. 42수 토템시의 상징이미지해설을 거의 1년 동안 펴낸 일은 우리 조선족문단은 물론 중국문단에도 전무후무한 일로서 심히 경하할 만한 일이다. 이 거창한 작업을 료녕신문사와 현춘산 작가가 해냈다는 것이 사뭇 경이로운 일이며 자랑스러운 일이다.  필자는 《토템문화와 토템시》를 읽으면서 부끄러움을 금치 못했다. 이란 표제로 남영전론도 썼고 남영전의 토템시에 대해서도 몇번 손을 댄 적이 있는데 그런 글들은 현춘산선생이 쓴 《토템문화와 토템시》와 천양지차라 토템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적음에 스스로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민족에게 여러개의 토템이 있을 수 있다는 다토템설(多图腾설)과 여러개의 민족이 하나의 토템을 공유할 수 있다는 토템공유설(图腾共有说), 민족은 혈통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의해 구분된다는 민족문화론을 어렴풋이 알았을 뿐 깊이있게 리해하지 못하였다. 토템지식이 옅으니 남영전의 토템시를 평할 때 시쪽으로만 치중하고 토템 쪽은 적게 말하거나 아예 언급하지 못하였다. 나뿐 아니라 우리 문단의 많은 사람들이 토템을 잘 알지 못하였다. 하기에 한때 중국주류문단에서 남영전붐이 일어날 때 우리 조선족문단은 상대적으로 잠잠하였다. 우리 민족의 토템을 쓴 시가 우리의 몰리해를 자아내고 랭대와 외면을 당한 웃음거리가 빚어진 것이다. 비록 우리 조선족문단에도 주류문단의 영향하에서 남영전의 토템시를 평의한 분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현춘산선생처럼 치밀하고 정확하고 론리 정연하게 해설한 사람은 아직 없다. 그 원인은 우리 모두가 원시문화인 토템을 너무나 몰랐기 때문이다. 중국주류문단에서 남영전토템시가 한창 찬양을 받을 때 오히려 우리 문단에서는 의문과 오해가 많았다. 의문과 오해의 핵심은 어떻게 우리 민족에게 42개의 토템이 있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였다. 남영전토템시를 가장 잘 포착한 고 한춘선생마저 와 가 어떻게 우리 민족의 토템으로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현춘산 작가 본인의 말에 의하면 그 역시 3년 전만 해도 토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남영전의 토템시가 중국주류문단에서 일으킨 강렬한 반향에 호기심을 품고 토템문화와 토템시를 공부하게 되였다고 한다. 그 와중에 남영전선생을 직접 만나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42수의 토템시를 해석하는 중에 수시로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거기다 중국 당대의 토템학자 하성량(何星亮)의 (图腾与中国文化)를 깊이 연구하면서 토템과 토템시에 대해 연박한 지식을 갖게 되였다. 현춘산작가는 중국 각 민족의 토템연구를 이어 결연히 계획 밖인 서울행을 택했다.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신화문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현춘산작가는 천신만고 끝에 절판이 되여 중고서점에서 먼지를 들쓰고 있는 우리 겨레의 신화문헌들과 성씨보감 등 자료들을 무겁게 지니고 귀국했다. 심장질환으로 고생하면서 고희의 나이가 된 그에게 있어서 쉽지 않은 일이였다. 그 때부터 그의 간소한 서재는 자료가 더미를 이루었고 불면의 밤낮이 이어졌다. 토템문화의 초입자요 시인이 아닌 소설가인 그에게 있어서 준엄한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해내였다! 료녕신문에 투고하기까지 무려 여섯차례나 한글자 한글자 수개하면서 토템시의 상징이미지에 혼신을 몰부었다. 그는 필경 피타는 모색으로 몸부림치며 력사와 현실의 고험에 일신을 맡긴 문인으로서 우리 겨레의 원시문화를 발굴하고 수호하는 민족적 사명감을 수행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현춘산 선생은 우리 민족의 토템문헌을 깊이있게 연구하였다. 그는 토템문헌의 27건의 신화는 토템신화의 요소를 갖추었고 토템신화의 고향이라고 한 남영전 시인의 주장을 실천으로 증명해내였다. 작자는 또 우리 민족에게 많은 종류의 토템이 있는 것은 성씨가 248개나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성씨는 토템으로 탄생한 선조들의 표지(标志)였던 만큼 하나의 씨족이 여러개의 토템을 가졌을 수 있다. 결국 민족의 토템이란 고대 우리 민족 내부 각 씨족의 토템이다. 그러니깐 토템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한편 작자는 또 과 의 차이점도 명확히 지적한다. 그는 은 민족 내부의 각 씨족의 토템을 가리키는 말이고 은 전 민족이 공동으로 승인하는 토템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우리 민족에게도 민족토템이 있다면 해와 달일 것이라고 피력한다. 현춘산 선생은 남영전토템정의의 3요소에 비추어 혁거세신화에 대한 해설을 례로 들고 있다. 혁거세신화에 의하면 혁거세는 하늘이 내린 알에서 나왔다. 그 시대 선인들은 해를 날개 달린 태양새로 보았다. 자주색알은 바로 하늘이 내린 태양새의 알이다. 때문에 혁거세는 태양의 아들, 태양은 그의 친족토템이다. 무릎 끓고 절하는 백마는 하늘에서 알을 실어왔고 사람들에게 성인의 탄생을 고한 혁거세탄생의 수호신토템이다. 그리고 땅에 닿는 번개기운은 역시 혁거세의 탄생을 알리는 수호신토템이다. 알에서 나온 동자를 동천에서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일어났다. 빛이 인간세상에 왔다고 하여 혁거세라 하였고 박처럼 생긴 알에서 태여났다고 하여 박씨성을 붙혔다. 박혁거세의 성과 이름은 모두 토템표지이다. 현춘산 작가의 해설을 읽고 보면 42수의 토템시가 우리 민족의 토템신화를 의거로 한 것임이 명백해진다. 우리 겨레의 토템신화를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절대로 남영전 시인의 토템시와 현춘산 작가의 토템시해설이 산생하지 못할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인 토템신화에 대해 홀시해온 필자에게 훌륭한 귀감으로 된다. 편폭상 제한으로 42수의 토템시를 두루 다 언급할 수는 없으나 여러 사람들이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와 만 간추려 살피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우리 민족의 토템으로 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고대 중국이나 우리의 고국에는 사자가 없었다. 사자숭배는 박래품이다. 사자가 없는 고국에 사자사(狮子寺)가 세워진 원인을 사자를 토템으로 하는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를 안해로 삼은 김수로왕의 소지로 보는 것이 지당하다는 현춘산 작가의 견해다. 흥미있는 일은 김수로와 허황옥 사이에 아들이 열이나 생긴 것이다. 맏이 김거등만 부친을 이어 김씨성으로 하고 둘째와 셋째는 모친의 허씨성을 따르고 나머지 일곱은 불문에 귀의하였는데, 모친의 성을 따른 아들 둘에 의해 고국에서 사자를 토템으로 하는 허씨족이 산생한 것 역시 사자가 우리 민족의 토템으로 자리매김된 원인의 하나였으리라 여겨진다. 토템시 에서 사자는 광명과 정의를 대표하는 태양의 상징으로 구가되고 있다. 를 알아보자. 울산에 가면 고래를 새긴 암벽화가 있다. 암벽화가 있는 곳이면 바로 토템제의가 진행되던 곳이다. 울산에 있는 암벽화에는 고래와 범이 있다. 이는 고래가 우리 선조들의 중요한 토템임을 알려주고 있다. 고래는 거대한 물고기로서 문자이름은 경어(鲸鱼), 고래는 어류중의 왕이다. 주몽신화에 물고기가 우리의 선조를 구해준 고사가 나온다. 금와왕의 일곱아들에게 쫓겨 엄수가에 이른 주몽이 위기에 처했을 때 물고기와 자라들이 총동원하여 다리를 놓아 주몽을 구해준다. 하백은 바로 수신(水神)이다. 수중동물들의 거동은 후손을 보호하려는 수신의 뜻이다. 이 신화에서 어류의 왕 경어신(鲸鱼神)은 고주몽이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 수호신 토템으로 작용한다. 토템시 에서 고래는 광명의 도래를 위해 고민하는 선각자의 상징이요 력사적 사명을 떠멘 민족의 령혼을 상징하고 있다.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되였다. 작자 현춘산선생은 해박한 력사지식과 풍부한 토템문화지식을 결부시켜 42수의 토템시를 훌륭하게 해설하였다. 매편마다 치밀하면서도 경쾌하고 론리가 정연하면서도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구수한 감을 주며 신빙성이 크다. 작자의 가장 큰 공로는 남영전 시인의 42수의 토템시가 모두 우리 민족의 토템을 의거로 썼다는 것을 명징하게 증명해준 데 있다. 장편시리즈 는 금후 우리 조선족문학사에 찬란한 한페이지를 남길 것이다. 민족문화의 발굴과 창달을 위해 엄청난 거사를 마친 료녕신문사와 작자 현춘산선생께 경의를 드린다. 그리고 불편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이 거창한 작업을 조력해주신 토템시인 남영전선생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2021년 4월 23일 연길에서   /辽宁朝文报
1544    토템과 민족문화 / 현춘산 댓글:  조회:1199  추천:0  2021-05-24
토템과 민족문화     -"토템문화와 토템시"련재를 마치면서                                                   현춘산     료녕신문사 덕택으로 해빛을 본 "토템문화와 토템시"가 약 11개월의 련재를 거쳐 성공적으로 끝나게 되였습니다. 이 시리즈는 도합 42편으로서 남영전시인의 토템시집 "원융"(圆融)에 수록된 42수의 토템시를 해설한 글입니다.료녕신문에 련재하기까지 6차례의 수개를 거치는 도중 토템시 저자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그러나 필자의 수준미달로 하여 아직도 부족점이 많으리라 여기면서 금후에도 부단히 수개하고 보충하여 더욱 완선화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35년동안 토템문화를 연구하고 토템시를 창작한 남영전시인의 토템시집 "원융"이 2003년에 간행되자 중국주류문단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전국범위에서 토템시에 관한 세미나만 해도 열두차례나 진행되였고 토템시유관 전문 학술저서도 열세권이나 출판되여 주류문단은 활기를 띄였고 남영전시인은 중국문단에서 전례없던 토템시라는 새로운 시가령역을 개척한 공로로 "중국당대 걸출한 민족시인 10인"에 선정되였고 "중국 100년100인시인"에 선정되였습니다.그리고 남영전토템시는 여러 대학의 교재와 박사론문쩨마로도 선정되였습니다.   조선족시인이 중문(中文)으로 창작한 토템시가 전국주류문단에 이처럼 커다란 영향을 일으킨 일은 중국당대문학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였습니다.토템시는 조선민족의 토템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중국주류문단으로 하여금 조선민족을 료해하게 하는데 중대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아이러니한것은 중국주류문단을 들썽하게 한 남영전토템시가 우리 민족의 토템을 쓴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기 민족의 토템문화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필자 역시 토템문화와 토템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였습니다. 필자가 토템문화와 토템시를 주목하게 된 계기는 중국주류문단이 무엇때문에토템시를 그토록 중시하며 우리 민족의 토템이 왜 42종(그보다 더 많을수도 있음)이나 될수 있을가하는 호기심에서 나온 것입니다.이 의문을 풀기 위하여 필자는 고희(古稀)의 나이가 되여서야 토템시의 저자와 단독으로 만날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였습니다.   남영전시인과의 만남은 적어도 무엇이 토템문화이고 무엇이 토템시라는 것을 깨칠수 있게 하였습니다.그러나 진정으로 다 깨친  것은 아니였고 남영전토템시에 수록된 그 42종의 자연물이 어째서 우리 민족의 토템일가하는 의문을 완전히 해결하게 된것도 아니였습니다.필자는 토템문화를 장악하기 위하여 중국당대의 토템학자 하성량(何星亮)의 "토템과 중국문화(图腾与中国文化)"를 반복적으로 읽고 요점을 필기하면서  점차 중국 여러민족의 토템에 관한 지식을 얻었고 서울에 가서 우리 민족 신화문헌을 구입하여 반복적으로 연구하므로써 우리 민족의 토템문화를 장악할수 있었으며 저자의 도움을 받으며 "원융"에 수록된 그 42종의 자연물(토템)의 상징이미지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이것이 토템문화를 접촉하고 토템시를 풀이하게 된 최초의 계기였습니다.   남영전선생은 국내외의 토템학설과 우리 민족의 고대신화를  참답게 연구하고 자신의 토템시창작실천 에 결부하여 토템의 정의와 토템의 세가지 요소를 명백히 밝히였습니다.이는 우리가 민족의 원시문화를 료해하는데 지도적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남영전선생이 밝히고 있는 토템의 정의와 토템의 세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토템이란 북아메리카인디언 방언인데 그 뜻은 "친족","친척"이다.토템은 조상의 토템탄생(图腾诞生),조상의 토템표지(图腾标志),조상의 토템수호신(图腾守护神)이 세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1,조상의 토템탄생 토템탄생은  그 어떤 물체에 의한 조상의 기이한 탄생을 말하는 신화인데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으로부터 주몽,혁거세 등 11명의 조상들이 신기한 토템탄생이였다.   2.조상들의 토템표지 우리 민족의 토템신화에서 토템탄생인 단군,해금와,고주몽,박혁거세,알영,석탈해,김수로,김알지 등 8명조상들의 성씨,이름(호)이 토템과 관련이 되여 그들의 부호로 되였다.   3.조상들의 토템수호신 조상을 탄생시킨 토템은 조상을 수호할뿐만 아니라 그들의 후대들까지 수호한다.우리 민족의 토템신화에서 개구리,까마귀,돼지,개,뱀,거부기,수신,산신,지신 등 토템들이 자기의 지혜와 사명감으로 조상과 후대를 수호하는 감동적인 이야기가나온다.   그리고 토템설에 사람이 살아서 자신의 토템으로 변할수 있고 죽어서 자기의 토템으로 회귀한다고 했는데 우리 민족 토템신화에 그 일례들이 있다.   이상 부분에서 남영전선생은  토템정의와 토템의 삼요소를 밝혔습니다.필자가 국내외의 인류학자와 토템전문가들의 저서를 두루 연구하고 있지만 남영전선생처럼 토템의 정의와 요소를 명확히 밝힌 례를 찾지 못했습니다.남영전선생이 토템연구에서 남다른 성취를 가지게 된것은 토템시창작이라는 실천적인 측면도 역할을 했겠지만 주요하게는 토템을 민족의 뿌리인 조상과 밀착시켜 자연과 인간의 생명일체화라는 민족문화의 근원을 캐내고 있다는데 있으며 이는  바로  민족적사명감의 발로라고 필자는 여깁니다.   남영전시인이 "단군신화"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고대신화들에서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하늘의 천신(天神)으로서 해,달,별,바람,비,구름,우뢰가 있으며 땅의 지신(地神)으로서 흙,돌,산,물,불,식물,동물,등이 있어서 본래 이 신비스러운 천지신들의 조화가 조상들을 탄생시켰고 자연은 조상을 보호해 왔습니다.그 때로부터 성도 이름도 없던 조상들은 탄생토템으로 성과 이름을 얻으니 조상의 성씨는 대대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이는 조상들의 세계관에 의해 산생된 것이지만 인간이 자연에서 왔고 인간도 자연의 한 성원이였다는,자연과 인간의 생명일체화관념은 어디까지나 옳은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극단적배금주의와 과학적합리주의가 판치는 공업화의 시대를 살아갑니다.그리하여 자연이 엄중히 파괴되고 인류의 생존환경이 위협에 직면하고 있습니다.홍수가 범람하고 황사가 울부짖고 대기와 하천이 오염되고 전염병이 만연되고 있습니다.이 모든 천재지변은 인간이 자연을 존중하지 않고 자연의 섭리를 위반하고 자연을 파괴한 결과입니다. 이런 현실앞에서 인간과 자연간의 친족과 친척같은 혈연관계를 회복하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공생공존을 도모하며 인간의 생존공간과 생존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하는 것은 무엇보다 긴박한 일이겠습니다.남영전시인의 토템시는 바로 여기에 목적을 두고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로 가고 있는가하는 근원적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이것이 바로 남영전토템시의 인류학적경계입니다.   필자가 근간의 토템설공부와 토템시인과의 교류에  의하여 깊이 느낀바는 바로 토템과 민족문화와의 관계입니다.이 문제를 세가지 측면으로 설명할수 있습니다.   첫째,씨족氏族토템은 민족문화의 기반입니다.왜냐하면 말하자면 민족은 부동한 토템씨족(图腾氏族)들이 한개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생활하면서 형성한 의,식,주,행,어(衣食住行语)의 공동부호(共同符号)이기 때문입니다.이 공동부호가 바로 문화입니다.때문에 민족은 문화의 개념이고 혈통(血统)의 개념이 아닙니다.그러기에 남영전시인은 민족은 혈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화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둘째,토템은 민족풍속의 래원입니다. 돌과 흙에서 탄생한 금와왕(金蛙王)의 신화에서 보면 돌과 흙은 직접 금와를 낳은 모친토템입니다.그가 개구리모양이였으니 개구리가 그의 부친토템일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장례풍속에 주로 두가지가 있었는데 고려장(高丽葬)과 토장(土葬)이였습니다.부모가 늙어서 거의 죽게 되면 돌무덤에  넣어두는 장례법이 고려장이였고 부모가 죽으면 흙에 묻는 장례법이 토장이였습니다.사람이 돌과 흙에서 왔으니 죽으면 돌과 흙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였습니다.이것이 바로 돌토템과 흙토템이 민족풍속의 래원으로 된 사례입니다. 우리 민족의 혼례에도 민족풍속이 뚜렷합니다.잔치상에 붉은 고추를 물린 삶은 수탉을 버젓이 올려놓습니다.수탉은 어둠을 쫓고 광명을 불러오는 태양의 상징입니다.이런 수탉에게 고추를 물린 것은 생남(生男)을 하고 가운이 번창하라는 축복일 것입니다.   셋째,토템은 민족문화상징의 래원입니다. 상징이란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개념따위를 구체적인 것에 의해 나타냄을 가리킵니다.상징이미지는 영상(影象)이미지와 심상(心象)이미지로 나뉩니다.례하면 남영전토템시중 백조의 흰 빛갈은 백의민족의 옷 빛갈과 같다는 것은 눈으로 느낄수 있는 영상이미지이고 "자꾸만 떠나"는 백조는 평화로운 삶과 영원한 보금자리의 추구자라는 것은 심리적측면에서 느끼게 되는 심상이미지라고 생각됩니다. "나비"는 워낙 고대동이족의 중요한 토템이였습니다.토템시 "나비"에서 하늘의 아롱진 노을과 땅의 아롱진 산꽃이라는 말은 눈으로 느끼는 나비의 고운 자태를 상징하는 영상이미지이고 나비가 부활의 상징이라는 표현은 마음으로 느끼는 심상이미지가 아닐가요. 우리 민족의"십장생"(十长生)에 속하는 해,산,물,돌,구름,학,거부기 일곱은 남영전토템시에 등장하고 있습니다.우리 민족에게 웃어른의 생일에 "구령학수(龟岭鹤寿)"라고 쓴 족자를 보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거부기처럼 학처럼 장수하라는 뜻입니다.이처럼 토템은 민족상징문화의 래원이 되고 있습니다.   끝으로 남영전시인의 42수의 토템시집 이름을 "원융"이라고 단 리유에 대한 남영전시인의 해석을 인용하겠습니다.   "42수의 토템시의 42종의 토템물들은 조선민족성원중의 부동한 토템씨족(부동한 성씨)들의 갖가지 토템이야기입니다.민족은 부동한 토템씨족의 융합체 (融合体)이고,민족문화는 이 융합체의 의식주행어(衣食住行语)의 공동부호입니다.그러므로 '원융'(圆融)이라는 이 말에는 토템,민족,문화 이 세방면의 내용이 포함되여 있는 것입니다."   남영전시인의 이 해석은 우리에게 토템과 민족문화의 관계를 료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계시로 됩니다.     약 2년동안 여섯차례나 되는 수개를 거치면서 필자는 토템시 저자의 무수한 도움을 받았고 많은 자료를 지원 받았습니다.필자가 이 시리즈를 완성할수 있었던 것도 직접 저자의 가르침을 받아서였습니다.이에 저자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이 글을 련재해주신 료녕신문사에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아울러 료녕신문사와 함께 이 글을 광범한 독자들에게 소개한 조글로에 감사를 드리며 그동안 이 글을 읽어주시고 보귀한 조언을 주신 독자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辽宁朝文报
1543    남영전 토템시의 상징이미지/ 현춘산 댓글:  조회:1496  추천:0  2021-05-24
     남영전 토템시의 상징이미지                                             현춘산 1.달 -모성(母性)의 상징       연오랑과 세오녀(延乌郎细乌女)신화는 우리 민족의 중요한 조상토템신화로서 우리 민족이 일월의 후예임을 알려주고 있다.     동해가에서 매일 남먼저 해와 달을 품던 연오랑과 세오녀는 각기 해와 달의 정기로 되였다.그들의 이름자에 태양의 본질을 상징하는 "오"(乌)자가 들어있는 것도 그들이 곧 일월의 정령(精灵)으로서 우리의 시조부(始祖父)와 시조모(始祖母)라는 것을 알수 있다.그들은  일월신(日月神)으로서 우리의 조상신인바 그래서  민족의 토템으로 되고있다.       달은 남성적인 해와 짝지어진 녀성적인 존재로 나타난다.달은 음(阴)이요 해는 양(阳)이라 달은 녀성을 대표하고 해는 남성을 대표한다.     달은 이지렀다가 둥그러지고 둥그러졌다가 이지러 든다.달의 이 차고 기울어지는 원리가 바로 녀성의 원리다.달이 차면 바다에 밀물이 생기고 달이 기울면 썰물이 인다.이에 따라 녀성은 몸의 변화를 체험한다.녀성의 경혈(经血)을 바다와 같이 원수(原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포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녀성은 임신을 하게 되고 몸이 점차 부풀어지면서 만삭이 된다.이런 현상을 만월(满月)이라고도 한다.저 밤하늘의 달처럼 점차 둥그러져 만월로 된다.달은 차면 기울어지고 녀성은 만삭이 되면 몸을 부리운다.차고 기우는 달과 바다의 밀물과 썰물,그리고 녀성의 원리는 신비하게도 이처럼 같다.    그래서 달의 원리가 신비한 모성의 원리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물에 비낀 달그림자가 룡의 알이라 하여 그것을 바가지로 떠 마시면 생남(生男)을 할수 있다고 해서 "룡알뜨기"라는 우리 민족의 오랜 풍속이 생겼던 것이다. 달과 물 그리고 녀성의 일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다.     그래서 둥그러졌다가 기울어지는 달의 원리를 나타내는 우리 민족 녀성들의 원무 "강강수월래"가 생겨났던 것이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달"에서의 달의 상징이미지도 바로 달의 원리에서 비롯된다.       "달은 이지러졌다 둥글어지고/둥그러짐은 이지러지기 위함이요/이지러짐은 둥그러지기 위함이다/둥그러지고 이지러짐은 영생으로 통하는 산길"      시인은 차고 기우는 달의 자연적 현상에다 생식과 생명의 반복과 영생이라는철리성을 부여하여 달토템의 항구적존재를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교교한 달밤-/생남바라는 아낙네들 수줍게 우물가에 나와/달빛 어린 맑은 물 한바가지 퍼마신다/그래서 야드러운 풀밭에선-/흰옷 입은 숙녀들 나리꽃으로 만발해 원무 춘다/"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돌아가는 원은 하늘에서 내린 달이요/팔랑이는 아가씬 천상 선경의 선녀들이라/풍요의 원리는 이에 따라 밀물이 되고/모성의 원리는 이에 따라 회전이 되고/생명의 원리는 이에 따라 연장이 된다"      시인은 역시 생식과 생명의 반복과 연장이라는 달과 물,녀성의 일치한 원리로 달의 신비한 모성을 상징하고 있다.   2.곰    -민족의 시조모(始祖母)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의 중요한 시조토템신화로서  4300여년전 천신(天神)환웅의 하강과 더불어 사람되기를 소원한 곰이 녀성으로 변신해 천신과 함께 단군왕검을 탄생시킨 이야기를 담고있다. 천신과 지신(地神)의 결합에 의한 단군의 탄생은 토템탄생인바,단군의 탄생에서 모친역할을 했던 웅녀(곰)는 단군의 모친토템이다.       곰의 서식처는 눈내리는 북반구의 광활한 지역이고 곰은 동면동물이다.고대인들은 곰의 동면을 죽음으로 여겼고 봄에 동면에서 깨여난 곰을 재생의 존재로 여겼던 것이다.이렇게 곰은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고대인류의 동경을 자아낸 초자연적인 능력과 영생의 상징이였다.     그래서 곰은 고대인류의 보편적인 숭배와 경의의 대상으로  되였던 것이다.      그래서 시베리아원시민족의 가장 큰 제의(祭仪)가 곰제였고 아이누족도 곰제를 장엄한 축제로 삼았다.      중국고대에 황제(黄帝)의 모친이 "거인"(곰)의 발자국을 밟고 임신하여 황제를 낳았다고 해서 황제의 토템은 곰이였고,오르죤족도 곰을 토템으로 삼는다.      우리 민족도 예로부터 곰과 정신적으로 밀접한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많은데 웅진(態津),웅강(熊江)),웅산(熊山),웅천(熊川,웅촌(熊村) 등 지명이 그러하다.여기서 한가지 례만 든다면 웅진에 대한 전설이다.나무군을 쫓아오던 녀자로 변한 곰이 빠져죽은 곳이여서 웅진(곰나루)으로 되였다는 것이였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곰을 경칭으로 부르지 않고 "곰할매"로 불렀던 것도 경외심에 의해서였다.      곰의 이름으로 명명된 지명들과 곰에 대한 전설이나 지칭역시 우리 민족의 곰 숭배가 유구하고 보편적이였음을 설명하고 있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더운 피와 열물 젖삼아 마셨기에/어진 성미에 너그러운 풍채 갖추고/억센 의지와 의력은 근골이 되고/ 발톱은 쟁쟁 소리나는 도끼와 활촉이 되여/애탄이 무어랴/구걸이 무어랴/길 아닌 길을 거쳐/죽음길도 뚫고 나갔더라"   여기서 시인은 "열반"을 거친 곰의 건장한 모습과 견강한 의지를 격조높이 읊조리고 있다.   "태고의 전설속에 엉기적/백의의 넋속에 엉기적/요원한 미래속에 엉기적"   시인은  백의민족의 력사를 개척하고 영원한 미래를 개척하는  우리 조상 령 혼의  상징인 곰토템을 거듭 찬미하고 있다.   3.신단수   -조선민족의 세계수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을 탄생시킨 천신(天神) 신단수(神檀树)와 지신(地神 )웅녀(熊女)를 세상에 알린 시조신화로서 한폭의 장려한 민족"서사시"다.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서사시"의 주인공이 신단수다.4300여년전에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 환웅이 깃든 박달나무,하늘에 닿아 천신의 사다리가 된 그 박달나무가 바로 신단수다.아기소원을 가진 웅녀와 결혼하여 민족의 시조 단군을 탄생시킨 신단수는 천신 환웅의 화신(化身)으로 단군의 부친토템이다.      고대인들은 우주의 질서가 천계(天界)와 지계 (地界)그리고 지하계(地下界)로 이루어졌다고 여겼고,이러한 우주구조의 수직관(垂直观)에 따라 하늘과 대지와 지하세계를 하나로 얽매여 련결시킬수 있는 매개물이  즉 우주의 축(轴)이 수요되였다.그런 축으로 나무이상이 없다고 여긴 선조들은 어떤 한그루의 나무를 선택하여 그것을 우주의 나무 즉 세계수로 삼았던 것이다.      이처럼 세계수는 인간의 의지가 심고 가꾼 나무다.그런 나무들은 뿌리로 지하의 샘을 빨아올리고 초리로는 하늘의 샘을 자아내리기에 영원한 생명의 원천과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로 되여있었다.      시베리아 각 민족의 그런 세계수가 한그루의 봇나무나 락엽송이였다면 우리 민족의 세계수는 박달나무였다.높은 태백산마루에서 하늘을 떠받들고 솟아오른 신단수는 천신의 사다리고 천신의 상징이며 부성(父性)의 상징이였다.      그리 멀지 않는 옛날까지 우리 겨레가 모여 사는 촌락에 흔히 한그루의 높은 나무가 있어서 그것을 신이 오르내리는 나무라는 뜻으로 신나무(神树 )또는 당나무(堂树)라 일컬었고 그 나무아래에서 제사나 굿판이 벌어지군 했다.그 신나무나 당나무들이 신단수의 파생물이 아니였던가 싶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신단수"에서 웅위롭고 장엄한 신단수의 형상을 다음과 같은 시구로 묘사하고 있다.        "창천을 쪼각쪼각 떠받들고/대지를 뙈기뙈기 거머쥐고/(중략)하늘의 구름 몰아오고/땅의 물 빨아올리며/(중략)소탈하고 영특한 웅신(雄神)으로 변신하여/웅녀와 천지개벽의 연분 맺었네/(중략)막강한 기백으로 빙산의 두개골 열어젖히고/화애로운 락원 일떠세웠네"       시인은 신단수의 형상묘사를 통하여 영구불멸의 생명력과 하늘에 닿는 기개,굽힘없는 굳센 의지와  천지개벽의 기백과 슬기를 지닌 민족령혼의 상징인 신단수를 격조높이 찬미하고 있다.   4.백학 -백의민족의 혼           옛날 금돼지에게 잡혀갔던 부인이 낳은 애가  꺼림칙해서 길에 내버린 원이 있었다.그런데 그 버려진 아기를 학이 날개로 덮어주었다고 한다.그 아기가 한 로파의 부양을 받아 자라서 큰 인물이 되였으니 그가 바로 고국의 전기문학과 전기소설의 개척자와 시조로 된 최치원이라 한다.    이 전설에서 학은 길에 버려진 갓난아기였던 최치원의  수호신토템으로 나타난다.        우리 조상들이 바라보는 백학은 워낙 청초하고 고귀한 새로서 신선이 부리는 령조(灵鸟)였다."군계일학"(群鸡一鹤)이란 닭무리속의 학이란 뜻으로 평범한 사람들 중의 뛰여난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다.그래서 옛날 우리의 선비들은 백학을 즐겨길렀고 백학을 가까이 함으로서 자기의 품위를 나타내군 했다.       백학은 예로부터 소나무,사슴,불로초 등과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 십장생(十长生)의 하나로 간주되였다.그래서 선비들은 웃어른의 생일에  "구령학수"(龟龄鹤寿)라는 족자를  보냈다.거부기와 학처럼 장수하라는 축복으로 말이다.백학은 천지간에 아름다운 것만 취하여 그 몸을 보양하고 사기(死气)가 없는 가운데 살므로 장수한다고 한다.     백학은 다른 조류에 비하여 높이 나는 새로서 비상과 높이를 자랑하는 조류이다.     눈부시게 흰 몸뚱이와 억센 날개로 하늘높이 나는 새,풍운(风云)을 헤가르며 풍랑을 맞받아 하늘높이 날아오르는 새,그는 피와 불의 세례속에서 간난신고로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던 백의민족 령혼의 상징이였다.        이제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백학"을 보자.   "백의혼이여/천만년 깊이 묻힌 피비린 내음에 절고 /천만년 검붉은 질식속에 몸부림치고/천만년 무거운 층암속을 뚫고 나오며 /검은 삿갓 검은 두루마기 검은 적삼 불살라버리고 /천지간에 하얗게 다듬어진 넋"       백의혼은 바로 이렇게 유구한 세월 험악한 환경과 엄혹한 시련속에서 련마된,자유와 광명을 위해 굴함없이 억세게 싸우는 민족의 령혼이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백학"은  태양을 숭배하는 백의민족의 상징인 백학을 소리 높이 찬미하고 있다.   5.흙 -인간과 만물의 모신(母神)과 수호신       우리 선조들의 흙신앙을보여준 신화들이 있다.     늙도록 후사가 없었던 해부루가 산천에 제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서 타고 가던 말이 큰  돌을 마주하여 눈물을 흘리자 사람들을 시켜 돌을 치우고 보니 그 자리에 금빛개구리모양의 사내아이가 있었다는 것이다.왕이 크게 기뻐 그애를 길러서 태자를 삼으니 그가 바로 금와왕(金蛙王)이였다.그가 돌밑의 흙에서 나왔은즉 흙은 돌과 함께 해금와를 탄생시킨 모친토템이였다.     흙토템은 인간을 탄생시키고 인간의 후예들을 보호하기도 했다.     자못 흥미있는 고사는 헌강왕대의 토지신의 이야기다.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 시절은 태평성대였다.그 풍요한 세월을 즐기느라 왕과 신하들이 여념이 없을 때 한번은 왕이 동례전에서 연석을 베풀자  토지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다.나라의 위기를 지신(地神)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춤으로 예고하였으나 사람들이 태평세월에 마비되여 그것을 깨닫지 못했기에 결국 나라가 망했다.               흙은 헌강왕에게 나라의 위기를 알려준 수호신토템이였다.      해금와신화가 인간에 대한 흙의 모신(母神)적이미지를 표현하였다면 헌강왕신화는 인간에 대한 흙의 수호신(守护神)적성격을 보여준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흙숭배는 력래의 장례문화에서 돌출하게 표현되였다.주검을 흙속에 묻는 토장(土葬)은 우리 선조들의 주요한 장례방식이였다.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기에 흙에 묻어야 다시 태여나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관념에 의해서였다.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가는것이 인생이라는 말은 인간이 자연에서 왔고 자연으로 귀숙한다는 말이며 그래서 인간은 결국 자연의 한부분임을 설명한다.      우리 선조들의 관념에대지는 남성적인 하늘에까 짝지어진 녀성적인 존재로 인간과 만물의 지모신과 수호신이였다.흙은 그처럼 소중하고 그처럼 신성하다.흙은 삼림을 키우고 곡물을 키워서 인간에게 이바지한다.인간과 만물의 생명을  위한 흙의 말없는 기여,그것이야말로 어머니대지의 사랑과 보호가 아니고 무엇일가.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흙"은 국내외에서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다.      1998년 8월에 제18차 세계시인대회가 슬로바크에서 열렸을 때,주최측인 슬로바크의 텔레비죤방송국에서 특히 "중국시인의 밤"행사를 마련하여 남시인더러 "흙"을 랑송하게 하고 전국적으로 방송하여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농업국인 슬로바크인민들의 흙숭배를 알수 있다.        "흙은 자신의 무변한 체구로/돌을 뻐로 삼고/물을 피줄로 삼아/우중충한 하늘아래/언덕과 산줄기 쌓고/늪과 바다를 만들어/생령을 배태하고/만물을 낳아키운다"        시인은 이와 같은 시구들로 대지를 이루는 흙의 신비한 조화를 묘사하면서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모신적,수호신적 상징인 흙을 열정적으로 구가하고 있다.       6.물 - 생명의 근원       혁거세신화(赫居世神话)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물 신앙을 알려주고 있다.     하늘에서 내린 자주빛알에서 태여난 혁거세를  동천(东泉)에서 목욕을 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났고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여난 알영(阏英)의 닭부리입은 북천(北川)의 물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이 신화에서 물은 혁거세와 알영을 재생시킨 모친토템이다.       조상들의 관념세계에서 물은 흙과 마찬가지로 남성적인 하늘과 짝지어진 녀성적 존재였다.물이 신화에서 녀성적 의미를 가질수 있은 것은 달과 물과 녀성의 밀접한 관계에서 비롯되였다. 달이 둥글어지고 이지러짐에 따라 물의 집인 바다에 밀물과 썰물이 생기고,녀인들은 생리적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또한  우물에 비낀 달그림자를 룡의 알로 여기고 그것을 떠마시면 생남을 한다고 믿어 밤중에 살그머니 우물가에 나왔던 녀성들이 얼마였던지 모른다.이렇게 달과 물과 녀성은 다 같이 생명력과 생산력,그리고 풍요의 상징이다.때문에 바다물과 녀성의 생리수를 원수(原水)라고 불렀다.원수는 인류의 시원(始源)을 내포하고 있다.      물은 또한 경세지언(警世之言)을 상징하기도 한다.의자왕시절 우물의 물빛이 피빛으로 변했고 보장왕때 강물이 거꾸로 흐르는 사건이 생겼다.       물은 피빛을 띠거나 역류(逆流)하는 방식으로 나라의  위기를 경고한 수호신토템으로 나타났으나 왕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기에 나라를 망쳤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물"에서 물과 인간 및 모든 생명의 밀접한 관계를 묘사하면서 물의 신비함과 신성함을 찬미하고 있다.       "사람은 물우를 오가고/고기는 물속을 헤염치거니/물우도 물속도 모두 생명의 락원이라"(중략)"물의 신화는 인간과 함께 숨쉬고/물의 위엄은 하늘과 함께 살아간다/물,물,물/모든 생명과 령혼의 대문 여닫는 신령이여"       물은 인간과 만물을 잉태하고 낳아기르고 있다.그래서 우리는 흔히 "생명수"라는 이름으로 물을 찬미하는 것이다.     시인은 물과  모든 생명의 밀접한 관계를  천명하면서  인류와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의 상징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7.사슴 -천지간의 신비한 사자(使者)      천신(天神) 해모수가 수신 (水神)하백(河伯)과 술법을 겨룰 때 하백이 사슴으로 변한적이 있다. 수신 하백인즉  주몽의 모친 류화의 부친으로서 주몽의 외조부이다.하백이 사슴으로 변할수 있었다는 것은 사슴이 하백의 토템이였음을 보여준다.     훗날 주몽이 비류국을 합병할 때 사슴을 거꾸로 매달아 그 울음소리로 큰비를 불러다가 비류국을 홍수에 잠기게 했다고 한다.     이처럼 사슴은 호풍환우(呼风唤雨)의 신비한 능력을 소유한 천지간의 사자였고 주몽의 령토확장을 도와준 수호신토템이였다.조상의 토템이 후대를 수호한것이다.         우리 민족의 사슴신앙은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 있다.경북 고령지방에서 발굴된 고분에서 나온 록각이 이 점을 증명한다.록각(鹿角)은 우리 선조들의 호신부(护身符)와 부장품(陪葬品)이였다.록각은 남권(男权)의 상징이자 수장(首长)의 상징이였다.우리의 고대왕관(王冠)이  록각모양을 이루고 관리들이 각간(角干)으로 불리운것도 사슴숭배에서 기인된 것이다.       록각숭배자 사슴숭배였다.선조들의 관념세계에서 사슴은 머리에다 나무를 키우는 동물이였다.그래서 사슴은 대지의 원리를 지닌 신령이였다.봄에 돋아나서 한해동안 무성하게 자라며 딱딱한 각질로 굳어졌다가 이듬해 봄이면 떨어지고 또 새 뿔이 돋아나는 록각의 순환기능을 생명의 반복과 연장이라는 달의 원리처럼 여긴 우리의 선조들이였다.       그래서 사슴은 우리 민족의 "십장생(十长生)"의 하나로 되였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사슴"을 보기로 하자.       "그래서 사슴발굽 장엄한 신당에서 춤추고/사슴뿔은 호신부로 자랑 떨치고/울음소린 축전의 장구소리로 울린다/붕새의 날개와 더불어/신단수의 가지와 더불어/어엿한 왕관에 우거지고/성결한 전당에 나풀거린다"        시인은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호방한 필치와 조상들의 원시적사유를 결합하여 사슴의 장엄한 토템형상을 부각하고 있다.시에서 표현된 사슴의 상징이미지는  신비한 천국의 사자이다.           8.범 -징악(惩恶)과 영웅의 상징           옛날 왕건(王建)의 선조 호경(虎景)이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여럿과 함께 동굴에서 쉬는데 굴이 무너지는 순간 범이 호경의 관을 무는 방식으로  화를 면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견훤이 아기적에 그 모친이 남편에게 밥을 날라가느라 나무밑에 눕혀놓았더니 범이 와서 젖을 먹여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신화들에서 왕씨와 리씨의 토템인 범이 왕씨의 후손 호경과 리씨의 후손 견훤의 수호신토템으로 되고 있다.       우리 민족의 범 숭배는 산악(山岳)숭배와 밀접하게 련관되여 있다. "산해경"(山海经)에 묘사되여 있다시피 고대 동이족(东夷族)의 생존환경은 흔히 산악지대와 산림이였다. 그처럼 첩첩 뭇산과 울창한 원시림은 고대인류의 생존환경이였을 뿐 아니라 동물의 왕국이였다.그 동물의 왕국에서 범은 뭇짐승들의 왕이였다.범처럼 사납고 완강한 짐승이 아니고서는 험악한 생존환경에서 끄떡없이 살아나갈수 없었을 것이다.     자연계에서 벗어나기 전의 고대인류와 우리 조상들의 시각에 범은 상설같은 위엄과 굴함없는 투지와 완강한 생명력의 산신령으로 우러러 보였고 또한 병귀(病鬼)나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인정되였다.우리 겨레의 옛날 범그림이나 단오에 궁중에서 나누어주었다는 쑥으로 만든 범에서도 이같은 의미를 알수 있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범"에서 범의 선명한 형상과 고귀한 품질을  표현하고 있다.      "불의가 얄미워/불선이 얄미워/혼탁과 우매 꼴 사나와/따웅 포효하며/그것들을 뒤쫓아 나꿔채고 물어뜯는다"      시인의 붓끝에서  범은 의협심과 정의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설사 폭풍우에 뼈와 살 썩는다 하더라도/뼈는 굽히지 않고/위풍은 삭지 않고/예기는 죽지 않는다"       시인은 범의 불요불굴의 의력과 불의와 사악에 맞서 싸우는 당당한 모습을 통하여 력사적풍운을 헤쳐온 정의롭고 용감한 민족의 형상을 표현하였다.     산을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중왕으로서의 범은 불굴의 투지와 완강한 의력으로 삶의 터전을 지켜온 우리 겨레 영웅들의 상징이기도 하다.   9.백마 -천사(天使)와 용사(勇士)의 상징           혁거세신화에 의하면 나라도 임금도 없던 전한 지질 원년에 있은 일이였다.그때 여섯 부락의 촌장들이 임금을 세우려는데 먼 발치에서 번개불기운아래 백마 한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모습이 안겨왔다.다가가서 보니 백마의 앞에 자주색 알이 놓여있었고,백마는 사람들을 보자 길게 울고 하늘로 올라갔다.     혁거세신화에서 백마는 성인의 탄생에 없어서는 안될 조산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하늘로부터 그 신비한 알을 날라왔을 백마,혁거세의 탄생을 사람들에게 알려준 그 백마는 분명 천신으로서 혁거세의  수호신토템이였다.      우리 겨레의 옛날 혼인풍속에서도 백마숭배를 알수 있다. 사모관대차림의 새 신랑이 신부를 맞으러 갈 때,신랑이 탄 말이 흔히 백마였다.그것은 흰색이  광명을 나타내고 흰색과 광명은 바로 태양을 상징하기 때문이다.즉 백마는 하늘의 태양을 상징하고 태양은 남성을 표시한다.그래서 혼인날 신랑이 타는 말은 백마가 가장 적합했다. 그리고 그 말이 신부의 집 앞에서 크게 울면 첫아들을 보게 된다고 했다.    우리의 류행가에도 백마가 나온다."백마는 가자 울고 날은 저문데"가 그러하다.식민지시대 망국민의 한을 표현한 노래에도 백마가 백의겨레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백마"를 보자.       "자욱한 물안개 헤치고/타래치는 먹장구름 꿰뚫고/ 아득한 창천너머에서 지동치듯 달려온다"       이 표현들은 토템인 백마는 하늘의 천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우람차고 맹렬한 백마(천마)의 모습은 그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갈망과 숙원을 싣고/지성과 신념을 싣고/자유의 령지를 향해/수려한 경지에로/리상의 언덕에로 지동치듯 달려간다"        이 시에서 시인은 두려움과 지칠줄을 모르는 진격자,자유와 리상의 왕국을 향해 나래치는 천마의 심상(心像)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10.사자 -대지의 태양       우리가 잘아는 서동이와 선화공주의 이야기에 사자사(狮子寺)라는 이름이 나온다.              선화공주가 서동이의 감자밭에서 숱한 금덩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왕궁에 보내려고 찾아간 곳이 사자사였다.     옛 우릉도사람들이 조정에 공물을 바치지 않아 왕이 사람을 시켜 나무로 만든 사자를 싣고 가서 위협하니 그제야 겁을 먹고 복종했다고 한다.     사자가 없는 고국에 사자숭배를 보여주는 사자사가 세워지고,사자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사자의 위력을 아는 원인은 무엇일가?      고국의 사자숭배는 수로왕(首露王)이 배필로 맞아들인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과 관계된다.인도의 귀족들은 일반적으로 호랑이와 사자를 토템으로 했는데 사자를 토템으로 하는 사람들이 범을 토템으로 하는 사람들보다 우월했다고 한다.아유타국의 왕실에서 태여나서 자란 공주 허황옥의 토템도 사자였다.     이 허황옥이 아들 열을 두었는데 첫째가 부친의 김씨성을 물려받아 태자로 되고 둘째와 세째가 모친의 허씨성을 물려받았는데 그 가족이 번성해서 사자를 토템으로 하는 우리 민족의 허씨족이 산생했던 것이다.     이는 고국에 사자사가 세워진 원인이고 사자숭배가 산생된 원인이다.       금황색갈기를 날리며 초원을 질주하는 용맹한 사자,그 눈부신 모습을 대지에서 굴러가는 태양으로 련상하는 것은 절대 무리가 아니다.      7500년의 눈부신 고대문명을 자랑하는 애급의 금자탑과 금자탑주위에 세운 인면사신상(人面狮身像)들이  태양숭배를 설명하고 있다.광명과 정의를 불좇고 암흑과 사악을 몰아내는 사자신(狮子神)은 바로 태양의 상징이였다.     7,200년의 고대문명을 지닌 바빌론에는 초원이 많고 인도에도 무연한 초원들이 펼쳐져 있다.그 광활한 초원들이 사자의 서식처다.그래서 고대바빌론과 고대인도에서 일찍 사자숭배가 산생된 것이다.         인도의  사자숭배는 중국과 조선반도에 영향을 주었다.중국의 명절행사나 경축행사들에서 행해지는 사자춤과 조선반도 봉산,황주,강령,통영,북청지방의 사자탈춤이 그것을 보여준다.사자의 힘을 빌어 사귀(邪鬼)를 몰아내고 경사로움을 이루고 마을의 평안을 유지하려는 의지의 소산이였다.     지금도 중국의 건물들의 대문 량켠에 흔히 사자조각상이 세워져 수호신으로 상징되고 있고,고국의 옛집들에서 사자머리모양의 문손잡이가 발견되고 있는데 역시 가족의 평안을 보위하는 수호신(문지기)으로 사자를 숭배한 흔적이라 할수 있다.그리고 반도에 사자산(狮子山)도 있다고 한다.이런 사실들은 사자가 일찍 우리 민족의 토템이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사자"를 보자.      "초원을 질주하는 태양이여"        시인은 이렇게 첫련을 이룬 한구절의 형상화한 시구로 사자의 상징이미지를  표현하였다.황금색갈기를 날리며 대지를 질주하는 사자의 모습을 보는듯하다.이는 우리의 눈으로 감지되는 사자의 영상(影象)이미지다.       "사자의 포효소리/팔방 산천에 울려퍼졌고/사자의 갈기/눈부신 금빛 갈기 휘저으면/터지는 천둥/무너지는 눈사태/돌아치는  태양/쏜살같은 별찌라/  깊디 깊은 어둠 멀리 물리치고/악마를 바다 끝에 내쫓고/요귀를 갈팡질팡 헤매게 했다"         이것은 사자에 대한 심층(深层)묘사로서 우람하고 용맹하며 암흑과 불의와 사악을 물리치는 태양의 상징인 사자신의 위력을 찬미하였다.       11.황소 -희생자와 봉사자의 상징      주몽신화에 의하면 하백(河伯)의 딸 류화가 해빛감응으로 낳은 닷되만한 알을  불길하게 여긴 왕이사람들에게 소우리에 던지라고 분부했는데  소들이 비단 그 알을 해치지 않을뿐더러 조심스레 보호해주는 것이였다.왕은 다시 길에 내다 버리라고 명령한다.그러나 지나가는 마소가 알을 조심스레 피해다녔다.     소나 말이 밟고 다니라고 길에 버려진 그 알이 무사하게 된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라고 할가.인성과 통한 령물(灵物)들의 보호가 있었기에,다시 말해서 령성(灵性)을 지닌 소들의  보호가 있었기에 우리의 시조가 무난히 탄생했던 것이다.    길에 버려진 알을 밟지 않은 소는 주몽의 탄생을 지켜준 수호신토템이다.      고대동이족(古代东夷族)의 유구한 농경사회에서 황소는 중요한 생산력이였다.소는 인간의 한계를 훨씬 초월하여 인류의 막중한 부담을 덜어주었다.인간을 위한 봉사에서 표현된 소의 근면성과 인내성은 사람들의 경의를 자아냈다.하기에 동이족시기 사람들의 소 숭배는 아주 보편적이였다.동이족수령 치우(蚩尤)의 화상(画像)에 의하면 머리에  뿔이 돋아 소를 토템으로 했다는  전설과 동이족시기 소가 6축의 하나로 관직명이 되였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우리 민족도 동이족의 갈래였다.선조의 토템이였던 소가 후대인  주몽의 탄생을 보호한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소는 또 가죽과 고기를 인간에게 제공해 준다.     "나는 풀을 먹는다.그러나 짜내는 것은 피와 우유이다."     중국현대문학가 로신의 이 말은 바로 사심없는 희생자와 봉사자인 소의 본질을 대변하고 있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황소"를 보자.      "하늘은 푸르고/물길은 가없는데/황소는 죄꼬만 빙산 받들어/우리네 토지를 넓혀준 시조"       이 시구들에서는 농우(农牛)로서의 황소의 형상이 표현되고 있다.우리 조선민족은 부림소를 조상처럼 소중히 여긴다는 말이 있었다.이 시구들은 우리 민족의 소숭배를 표현하고 있다.      "물길은 아득하고/땅은 가없는데/황소는 삭막한 황야의 희망/희망이 무르익을 징조여라"      이 시구들은 황소의 심상(心象)이미지를 발굴하여 이 땅을 지키고 가꿔갈 우리 민족의 희망을 대변하고 있다.    이 시에서 황소는 희생자과 봉사자의 상징이다.        12.양 -평화와 희생의 상징      옛날  리성계가 양을 잡으려고 하는데 양의 뿔 두개가 스스로 빠져나가더니 뒤이어 꼬리도 불쑥 빠져나가는 것이였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은 꿈이였다.      리성계는 그 꿈이 하도 이상해서 무학대사에게 해몽을 청했다.무학은 양(羊)자에서 량뿔(丷)과 꼬리(丨)가 없어지면 왕(王)자만 남으니 경하할 일이라고 대답했다.     훗날 과연 무학의 해몽이 맞아떨어졌다.     양이 리성계의 토템이였기에 그의 꿈에 나타나 령험을 보일수 있었던 것이다.       양은 닭,소,말,돼지,개와 더불어 고대 동이족 사양권의 6축(六畜)에 속하는 동물이였고 양을 포함한 그 6축이 동이족의 관직명으로도 되였었다.양은 또한 동서양을 막론하고 재물과 재운(财运)의 상징, 효도와 선량함의 상징으로 되고 있다.      "반포지효"(反哺之孝)하면 사람들은 대뜸 까마귀를 련상할 것이다.새끼까마귀가 자라서 늙은 어미를 먹여살리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지만,양도 까마귀와 같은 효성을 지닌 동물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미양의 젖을 먹고 자라난 새끼양이 늙은 어미에게 젖을 빨리는 것이다.말하자면 새끼양이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제젖을 먹여주며 봉양하는 것이다.까마귀의 "반포지효"와 얼마나 흡사한가!      옛날 제주도의 민속에는,새해 첫 양의 날인 상미일(上未日)에는 어떤 일을 해도 탈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양의 온순한 천성에 근거한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양은 인간에게 복을 가져다 주는 천사(天使)거나 인간을 대신한 제단의 희생품으로 상징되여 왔다.기독교에서 예수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대죄양" (替罪羊)으로 불리운다.      중국 광주(广州)가 "오양성"(五羊城)으로 불리우는 리유가 바로 태고시절 하늘에서 다섯 마리의 양이 신기한 곡식이삭을 물고 그 땅에 내려와 사람들에게 복을 안겨주었다는 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인 남영전은 토템시 "양"에서 양의 성격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양과 인간의 관계,양과 우리 민족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몰몰 피여나는 향불연기와/말끔히 떠가는 흰구름이/경건한 기도와 서로 엉키여/하얀 옷차림에 하얀 마음 갖췄다/       시인은  "흰구름","하얀 옷차림","하얀 마음"이라는 표현에 치중하여 양이 우리 백의민족의 토템임을 암시하고 있다.       "저 아득한 하늘너머 저켠에서/잡초 붐비는 이 황야에/돌부리 웅크린 이 황산에/방치같은 이삭 하나 물어왔더라/이에 메마른 땅에 신록 우거지고/굶주린 자들 밥사발 들게 되였지만"      시인은 신화를 인용하여 양이 인간에 복음을 가져다 준 천신임을 밝히고 있다.이러한 양의 형상은 아래와 같은 표현에서 더욱 승화되여 희생자로서의 양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너만은 낟알과 인연이 없어/저물면 풀밭에서 서식하면서/홀로 남아 바장이누나"      토템시 "양"은 평화의 상징이고 희생자의 상징으로서의 양의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이 또한 평화를 사랑하고 화목과 우애를 중히 여기는 백의민족의 상징이기도 하다.       13.백조 -생존과 안녕의 추구자      해모수신화에 의하면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임술년(bc59)4월 8일에 오룡거를 타고 홀승골성에 내려와 나라를 세웠는데 해모수의 가족이였던 백조들이  그를 수반한 신선들을  등에 태우고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신선들을 태우고 강림한 백조들은 역시 천신들로서 해모수의 수호신토템이였다.         고대 동이족(东夷族)은 류달리 조류를 숭배했다.이는 동이족의 거주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고대 동이족의 서식처는 지금의 산동반도와 하남의 동부,안휘 동북의 연해 지구였다.말하자면 사계절이 분명하여 철새들이 많이 오가는 지방들이다.고대에고국과 일본은   다 같이 동이문화권(东夷文化圈)에 속해 있었다.우리 민족의 조류숭배 역시 고대 동이족의 영향에서 산생되였다고 할수 있다.      동이족은 흰색을 선호했다.흰색에 대한 애착으로 동이족은 옷도 흰천으로 지어입었다.동이족의 흰색선호는 태양숭배에서 나왔다.동이족은 태양빛을 흰색으로 간주했으며 그래서 태양이 비추는 낮시간을 "백천"(白天)이라고 불렀다.그 고대 동이족의 관념세계에서 태양을 상징한 흰빛과 하얀 빛갈의 백조는  과연 어떤 관계였을가.      그들의 관념세계에서 백조는 그래서 하늘의 새였다.눈빛처럼 희고 커다란 몸집, 시원하게 기다란 목과 다리와 억센 두 날개,그 억세고 커다란 두 날개를 활짝 펼치고 천지간을 날아예는 그 모습만 보더라도 그는 하늘의 새, 역시 천신(天神)이였을 것이다.        이처럼 고귀한 신분이였건만 백조의 운명은 불우한 때가 있었다.    시인 남영전의 토템시 "백조"는 백조의 특성과 지난날 백의민족의 운명을 련계시켜 백조의 상징적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일가식솔 거느리고/한 부락 거느리고/평생 불우한 운명 거느리고/떠난다/떠난다/떠난다"      "떠난다"는 백조의 본질적 특성이다.백조가 자꾸 떠나가는 것은 평화롭고 안정된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서다.      "북국의 찬 바람/눈보라 후려쳐/너의 보금자리 묻어버리기에/너의 먹이까지 빼앗아가기에/너를 욕질하고 매질하고 내쫓기에/무가내로/단꿈꾸던 요람을 떠난다/떠나기 아쉬운 요람을 떠난다/고향 등지고 눈물 뿌리며/떠난다"       이처럼 악렬한 생존환경에서 백조는 열반과도 같은 시련을 이겨내고 있다.그래서 백조의 안정된 삶에 대한 의념은 더욱 견강해지고  추구는 더욱 견정해진다.       "한오리 목숨 붙어있는 한/두 날개 퍼덕일수 있는 한/영원한 보금자리 찾아/보금자리의 영원 지키려고/떠난다/떠난다/떠난다"       이 시에서 백조는 정녕 삶에 대한 신념과 평화와 안녕에 대한 견정한 추구자의 상징이다.     14.매 -풍운을 헤가르는 용사        우리 민족의 신화문헌에 해모수가 하백과 술법을 비길때 매로 변했고 석탈해가 김수로와 술법을 겨룰때 매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해모수와 석탈해가 적수와의 겨룸에서 매로 변한것을 토템변신이라 하는데,그들의 토템이 매였다는 것을 설명한다.        매는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지 않고 곡식을 먹지 않기에 고결한 새로 불리운다.    신문왕시절 재상 충원공이 장산국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사냥군 하나가 매를 놓아 꿩을 쫓게 하는걸 발견한다. 매에게 쫓기는 꿩이 금악을 지나 사라지고 매도 보이지 않았다. 매의 목에 달린 방울소리를 따라 말을 달려 간곳이 굴정현 관청 북쪽의 우물가였다.      매가 우물가의 나무우에 앉아 우물을 들여다보며 요지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충원공이 우물을 들여다보니 물이 마치 피빛같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꿩 한마리가 두 날개를 펼쳐 새끼 두 마리를 안고 있었다.매도 그것을 보고 차마 잡지 못하고 있는 중이였다.매가 신령스러운 새였기에 차마 새끼를 보호하는 꿩을 잡지 못한것이다.     충원공이 감동되여 그곳에 절을 세워 이름을 령취사(灵鹫寺)라고 했다.매의 인애를 기리고 매의 덕성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령취사는 전문 매의 신령을 숭배하고 신앙하는 절로서 황룡사(黄龙寺),사자사(狮子寺),오회사(乌会寺)와 더불어 고대의 4대동물신숭배사찰로 부상되였다.      우리 겨레에게 매는 예로부터 사냥도구로 리용되여 왔다.그래서 "꿩잡는 게 매"라는 말도 생겼다.날파람과 진격이 특성인 매는 사냥군들의 사양물로서 애대를 받았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매"는 우리 민족의 매 숭배를 바탕으로 하여 기발한 상상으로 매의 상징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창망한 하늘 어데나 날아예고/어두운 들판 낱낱이 노려보며/초매로운 담력과 흉금으로 /우주의 바람 일으킨다"       이 시구들은 매의 특성에 대한 개괄로서 매의 영용한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싸우지 못하면 망하고/강하지 못하면 망하거늘/진격하여 나래치는 길만이/세상을 살아가는 길이다"       이 시구들은 매의 심층이미지를 발굴하고 있다.이는 진격이 특성인 매의 형상을 더욱 승화시키고 있다.        이 시에서 매는 풍운을 헤가르는 용사의 상징이다.       15.뻐꾹새 -봄날의 신령       우리 겨레의 달미신화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옛날 달미라는 소녀가 늙고 병든 부모를 위하여 지주집에 부엌데기로 들어갔는데 부뚜막에 덮어놓은 떡국을 개가 먹은 탓으로 억울하게 루명을 쓰고 호되게 매를 맞아 집으로 기여가다가 죽었다.     이듬해 봄 달미의 조그마한 무덤속에서 새 한마리가 날아 올라 "뻐꾹(떡국)!뻐꾹(떡국)!가갸각(개가)!"하고 울었다.원통하게 죽은 달미가 뻐꾹새로 변하여 억울함을 하소한 것이다.    이 신화는 인간이 죽어서 자기의 토템으로 돌아간 사례를 이야기한다.달미의 토템이 뻐꾹새였던 것이다.       "장자는 나비되여/새벽 꿈속을 헤매고/망제는 두견 되여/춘삼월을 슬퍼하네"    당조(唐朝)시인 리상은의 "거문고"에 있는 시구다.     동이족시기,촉국의 망제(望帝)는 백성을 관심하고,그래서 백성의 애대를 받는 임금이였다.     그 망제에게서 황위를 양도받은 새 황제가 황음무도해서 국고가 비고 백성들이 재난을 입어 원성이 길에 깔릴때 산속에서 도를 닦던 망제는 한없는 후회와 걱정끝에 죽어서 뻐꾸기로 되였다고 한다.뻐꾸기는 망제의 토템으로서 인간이 죽은후 토템으로 돌아간 또 하나의 사례이다.     망제는 뻐꾸기로 되여 해마다 봄이면 하늘을 날며 피맺힌 울음으로 농사일을 재촉하고 있었고 백성들의 삶을 걱정하며 울음마다 피를 토하고 있었다.뻐꾹새의 울음은 그래서 농경사회의 권농(劝农)과 근면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뻐꾹새는 친절한 존재였다.수전농사가 위주였던 우리의 농민들에게 있어서 뻐꾹새의 울음소리는 모내기를 재촉하는 신호로 인정되여 왔다.       그래서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뻐꾹새"는  "피맺힌 울음"에 랑만적성격을 부여하여 뻐꾹새의 상징이미지를 새롭게 표현하고 있다.      "피맺힌 울음은/빠알간 피울음/들끓는 피울음/갈라터진 마음들을 적셔주고/말라죽은 생령들을 적셔주고/부드럽고 화창한 봄날을 불러오고/기쁨에 넘치는 색채를 입혀주고/인간의 희망을/금빛 눈부신 에덴에 올리 건다."       시인의 붓끝에서 뻐꾹새의 피맺힌 울음소리는 인간의 삶에 대한 축복으로 찬미되고 있다.     이 시에서 뻐꾹새는  인간의 봄날을 기도하고 축복하는 신령이다.       16.수탉 -태양의 상징       알영신화와 김알지신화에 수탉이 암시되여 있다.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여난 알영의 입이 닭부리같았다는 것은 수탉이 그의 부친토템이였음을 말해주며 김알지의 탄생을 밤에 흰닭이 알렸다는 것은 그 흰닭이 바로 수탉으로서 김알지의 수호신토템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고대동이족의 수령 소호씨(少昊氏)의 토템이 봉황이였다.고대에는 수탉이나 산닭이 봉황의 상징이였으므로 소호씨는 당시의 6축숭배에서 닭을 첫자리에 놓았다.수탉은 어둠을 물리치고 광명을 불러오는 신령으로 태양을 상징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겨레에게도 옛날부터 수탉의 울음소리가 귀신을 쫓고 닭의 피가 부정을 물리친다고 보는 습관이 있었다.그리고 혼인잔치상에 붉은 고추를 문 두마리의 삶은 수탉을 앉혀놓는 것으로 평안과 생남(生男)을 축복했다.이토록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수탉은 상서로운 동물이고 광명과  평화의 상징으로 숭배되여 왔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수탉"을 보자.        "어미날개의 소망으로/스스로의 삶의 갈망으로/꼭 싸인 포대기를 쫏는다/숨 막히는 질식을 쫏는다/딴딴한 우리를 쫏는다/자유로운 꿈나라를 쪼아댄다"   시인은 무엇이든 자꾸 쪼아대는 수탉의 특성에 삶의 소망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부여하고 있다.   "어둠이 사라지지 않는 한/혼돈이 가셔지지 않는 한/머리우에 지지 않는 태양을 이고/목을 빼들고 길게 길게 홰친다"        이는 수탉에 대한 심층묘사로서 수탉이  광명의 사자임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볼수 있는바,수탉은 불같은 열정으로 암흑을 물리치고 광명을 불러오는 태양의 상징이다.       17.까마귀 -재난과 봉변을 경보하는 신령      연오랑(延乌郎)과 세오녀(细乌女)신화는 까마귀숭배관이 짙은 토템신화이다.    동해가에 살면서 매일 남먼저  해와 달을 맞은 연오랑과 세오녀는 일월(日月)의 정기를 품었고,또한 그들의 이름에 다 까마귀를 뜻하는 "오"(乌)자가 들어있다.전설의 삼족오(三足乌)가 태양의 본질을 이루는 남성을 상징한다고 한다.이런 맥락으로 볼때 그들 부부는  일월의 정령(精灵)이였다.       우리 민족의 신화문헌에 인간에 대한 까마귀의 수호신역할을 보여준 이야기들이 있다.     쥐가 시킨 대로 까마귀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말을 타고 따라가다가 피촌길섶에서 싸우는 두 마리 돼지에게 발목이 잡혀 멈추어 서고 거기의 못에서 나온 로인이 전한 "사금갑"(射琴匣)내용의 편지를 받고 수도중과 왕비의 간통현장을 덮쳐 화를 모면한 내용의 비처왕신화에서 까마귀는 비처왕의 수호신토템이였을 알수 있다.그리고 그때부터 정월 16일을 오기일(乌忌日)로 정하고 출행을 삼가하고 약밥으로 까마귀를 제지냈다.    선덕왕 을해년에 령묘사 행랑에 40개의 까마귀둥지가 생겨나 사람들을 경악케 했는데 얼마 안되여 나라가 망했다.절에 둥지를 트는 비상방식으로 왕과 사람들에게 나라의 위기를 귀띔해주고 있었던 까마귀들은 선덕왕의 수호신토템이였다.     까마귀신을 숭배하고 제 지내던 오회사(鸟会寺)는 황룡사(黄龙寺),사자사(狮子寺),령취사(灵鹫寺)와 더불어 고대의 4대동물숭배사로 되여 우리 민족의 까마귀토템의 유구한 력사를 보여주고 있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까마귀"에서 세속적편견에 물든  까마귀의 부정적인 명예를 회복시켜 그의 긍정적성격을 표현하므로써 역설적으로 까마귀의 상징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이에 침침한 야밤/림해와 황야에서 날아올라/인가마을 변두리서 돌아치며/수상한 조짐 보고 까욱까욱/짐승의 주검 보고 까욱까욱/재화를 막아내라 까욱까욱/소식을 전하느라 까욱까욱"       이 시에서의 까마귀는 세속의 비난이나 멸시를 아랑곳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는 초탈한 군자의 상징이며 재난과 봉변을 귀띰하는 인류의 수호신이다.       18.까치 -행운과 평화의 상징        남해왕시절의 어느날 바다가운데 닿은 배 한척을 옹위한 까치들이 울어댔다.사람들이 배를 끌어당겨 보니 배에 큰 궤 하나가 실려있는데 길이가 20자에 너비가 13자나 되였다.궤를 열어보니 단정한 동자와 칠보와 노비들이 가득했다.     동자는 워낙 룡성국(龙城国)의 국왕과 적녀국(积女国)의 공주사이에서 신비한 알로 태여났던 것이다. 동자가 알을 깨고 나왔다고 이름을 "탈해"(脱解)라 짓고 그를 옹위해 왔고 울음소리로 그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려준 까치의 "작(鹊)"자에서 "석(昔)"자 변을 떼내여 성을 삼았다.      머나 먼 바다길,만경창파를 가르며 달리는 배를 옹위하여 함께 온 신령스런 까치들,그 까치들에게 령성이 없었더라면 그 신비스러운 알속에 들어있는 미래의 군주를 알아볼수 있었을가.이 신화에서 까치는 석탈해의 탄생을 알려주고 보호한 수호신토템이다.        까치는 보은(报恩)의 상징으로도 유명했다.지난 날 구렁이로부터 자기를 구해준 선비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선비가 위험에 처했을 때 머리로 종을 들이박아 경종을 울리고  죽은 까치의 "살신성인(杀身成仁)"도 자못 갸륵하다.       까치는 또 경세지언(警世之言)을  상징하기도 했다.효공왕 임신년,봉성사에 난데 없는 까치둥지가 하나 생겨났고 선덕왕 을해년에는 령묘사 행랑에 34개의 까치둥지가 생겨났으니 까치는 절에 둥지를 트는 비상방식으로 나라의 위기를 귀띔한 수호신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현대사회에도 까치는 길상물로 인정되여 "희작"(喜鹊)이란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까치는 흔히 맑은 날 아침에 우는데 그렇게 맑게 개인 날이면 일이 잘될수 있는 것이다.들에서 일하는 농부들은 일을 축냈을 것이고 바다에서 일하는 어부는 고기를 많이 잡았을 것이고 먼길을 떠난 길손은 무난했을 것이고...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까치"에서 세속적인 관념에 길조로 락인된 까치의 일반형상을 열반을 거친 신격화한 까치로서의 숭고한 경지에로 승화시켰다.인간에게 기쁨을 주고 축복을 주는 까치 역시 세상의 풍파와 세월의 역경을 겪고 있다.그렇기에 까치는 인류에게 단지 축복만이 아닌 충고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날에 연소한 몸/지독한 불길에 거멓게 그을은 몸은/영영 지울수 없는/흑백분명한 색갈로 변하고/그날에 쉬여버린 목청은/더는 나아질수 없어/더는 회복될수 없어/인간세상 마주서서 깍깍/거듭되는 절절한 충고뿐/근심 털고 기뻐하라는 기원뿐이다"       이렇게 시인은 열반을 거친 까치의 승화된 형상을 통해 사심없는 희생자의 고귀한 령혼과 행운과 평화의 상징인 까치를 찬미하고 있다.       19.거부기 -인내력과 희생자의 상징       주몽신화에서는 거부기는 금와왕의 왕자들에게 쫓기여 강가에 이른 주인공에게 물고기들과 더불어 다리를 놓아준다.이 신화에서 흥미로운 것은,강이 앞을 막자 주몽이 활등으로 물을 갈기며 웨친 말이다.     "나는 해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자다!"      해의 아들이란 그가 해빛감응으로  태여난 것을 두고 하는 말이고 하백의 외손자란 말은 저의 모친인 류화가 바로 수신 하백(水神河伯)의 딸임을 두고 한 말이였다.중국에서거부기는  황하의 수신인 하백의 사자(使者)로 되여있다.     그 아슬아슬한 관두에 하백의 사자인 거부기들을 비롯한 수중동물(水中动物)들이 하백의 외손에게 다리가 되여주었던 것이다.이 신화에서 거부기는 주몽의 수호신토템이다.      최근에 발행된 족보에 의하면 평강 채씨(平康蔡氏)의 시조 채원광(蔡元光)의 토템도 거부기였다.평강 허씨댁의 딸이 밤마다 찾아오는 푸른색옷차림의 남자와 상관이 되여 임신을 한후  명주실꾸러미의 한끝을 그 남자의 옷자락에 매놓고 실꾸러미가 풀려나가는 곳을 찾아가니 커다란 련못이였다. 실을 당기니 푸른 등의 거부기가 딸려나왔다.견훤신화와 비슷한 경우였다.일설 평강 채씨의 시조가 채송년(蔡松年)이라고도 한다.       옛날 선비들이 웃어른의 생일에 보내는 족자의 내용이 "귀령학수(龟龄鶴寿)"란 네글자였다.거부기와 학처럼 장수하라는 축복이였다.거부기와 학은 우리 민족의 "십장생(十长生)"에 들어있다. 고분벽화에서도 거부기가 무덤의 수호신으로 표시되여 있다.무거운 비석을 등에 지고있는 그 모습에서 눈물겨운 인내력과 희생정신을 보게 된다.    인내력과 희생정신은 거부기의 성격이다.       그러기에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거부기"에서 세월의 풍랑을 겪은 거부기의 굳센 의지를 표현하는데 필묵을 아끼지 않았다.        "수정같은 눈동자 가졌기로/쟁쟁한 철갑등 가졌기로/솔개의 발톱도 두렵지 않았다"        이처럼 대자연의 풍랑속에서 련마된 거부기의 굳센 의력은 력사적 풍운을 헤가르며 강포와 억압에 맞서 자기를 지켜왔던  민족의 운명이 아니였을가.       "구름 안개 걷히고/바람 멎고 물결이 잦아들면/ 바다밑에서 모래톱에서/홀로 묵묵히 흐느껴 운다."       "수정같은 눈동자"와 "쟁쟁한 철갑등"으로  두려움 없는 존재이면서도 남을 해치지 않는 거부기,평화로운 환경에서는 오로지 자기의 소리없는 삶을 영위하는 선량한 거부기의 삶이다.        이 시에서 표현하고 있는 거부기의 토템이미지는 력사의 비바람속에서 련마된 우리 민족의 인내와 선량한 성격이다.       20.고래 -선각자의 상징       고래는 물고기의 왕으로서 문자이름은 "경어(鲸鱼)"이다.주몽신화에 물고기와 자라들이 다리를 놓아준 이야기가 나오는데,이 수호신토템들속에 물고기의 왕인  경어신(鲸鱼神)의 역할이 없었을리가 없다.    울산에 고래박물관이 있다. 절벽으로 깎아지른듯 높이 솟은 바위에 크고 작은 고래의 도안들이 새겨져 있다.       이처럼 벽처럼 횡단된 바위에 새긴 그림을 암벽화(岩壁画) 또는 암각화(岩刻画)라고 하는데 그런 암벽화(암각화)가 있는 곳이 바로 토템제의(图腾祭仪)가 진행되던 곳이였다고 긍정할수 있다.그런데 중국에는 4700여년의 력사를 가진 이런 암벽화(암각화)가 여러 곳에 있고 그 내용도 다양한 반면에 고국에는 그런 암벽화가 있는 곳이 울산뿐이며 내용이 고래와 범 두가지토템뿐이라는 점이 사뭇 신비스럽다.이는 고래가 우리 선조들의 중요한 토템이였음을 알려준다.      고래의 도안이 새겨진 울산의 암벽화는 3000여년의 력사를 자랑하고 있다.고래도안이 새겨진 암벽화가 3000년전의 일이라니 놀라운 점은 우리의 선조들이 그 훨씬 이전부터 고래와 접촉하였고 고래를 숭배했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고래의 도안이 새겨진 암벽화가 있는 곳이면 우리의 선조들이 고래를 잡던 해안선이요 고래에 대한 제의가 치러지던 곳임을 의심할 나위 없다.      동물암벽화는 두가지 의미를 가졌을수 있다.하나는 동물이 쉽게 포획되기를 비는 사냥의 주술에 리용되였을 것이고 하나는 동물의 번식을 비는 제의에 리용되였을 것이다.       울산의 고래암벽화도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을듯 하다.      현대에도 우리 겨레들 속에 "고래등같은 기와집"이나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표현이 남아있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에서 묘사된 고래의 형상은 사람들의 깊은 사색을 자아낸다.      "바다를 짊어지고/무한대의 무게를 짊어지고/늘쩡늘쩡 헤염쳐 간다"      마치 거대한 고래의 모습을 보는듯 하다.그렇게 바다를 그대로 짊어진듯한 거대한 물체가  침착하게 움직인다."무한대의 무게"는 력사의 중임을 암시한다.      "대해속에 은거하면서/느릿느릿 쓰라림을 새김질하며/몽매를 증오하고/혼돈을 증오하며/차마 견딜래야 견딜수 없어/긴긴 울분 토한다"       고래는 흡사 인간의 운명과 세상의 부조리를 두고 묵묵히 사색하는 인물의 모습이기도 하고 풍운을 질타하는 영웅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고래는 광명의 도래를 위해 고민하고 울부짖는 선각자의 상징이다.       21.개구리 - 봄날의 신령       금와왕신화에 의하면 해부루가 늙도록 자식이 없어 산천에 기도를 올리군 했는데 하루는 기도를 올리고 돌아오던 중 곤연이란 못가에 이르러 그가 탄 말이 뚝 멈춰서더니 앞에 놓인 큰돌을 마주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였다.괴이하게 여긴 해부루가 수하들을 시켜 돌을 치우고 보니 그 자리의 흙속에 금빛개구리모양의 동자가 있었다.    돌과 흙은  금와를 탄생시킨 모친토템이였다.     훗날 금와왕에게 일곱아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 개구리의 다산적기능이 전수되였다고 볼수 있다.         개구리의 예언적 기능을 보여주는 신화도 있다.     신화문헌에 의하면 선덕녀왕시절의 어느 겨울날 령묘사 옥문지(玉门池)에 개구리들이 모여서 울어댔다.동면중의 개구리들이 나와서 울었다는건 비상경보가 아닐수 없었다.     선덕녀왕이 급히 두 각간(角干)에게 명하여 각기 정병 1000명을 이끌고 서쪽 교외의 녀근곡(女根谷)에 가서 적병을 포위하게 했다.      의자왕시절인 경신년 4월에는 수만마리의 청개구리가 나무우에서 긴급회의를 하는듯 의론이 분분했다.그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가 망했다.    이 두 신화에서 개구리는 나라의 위기를 사람들에게 알린 수호신토템으로 나타난다.        지금도 우리들속에는 "개구리가 울면 비가 온다"거나 "개구리가 처마밑에 모여들면 장마가 진다"는 등 개구리의 예언적기능을 보여주는 속담들이 남아있다.     북방 개구리는 동면동물로서 달이나 곰과 같이 죽음과 부활의 원리를 갖고있다고 선조들에게 인정되였고 이는 개구리를 신비한 존재로 부상시켜 숭배의 대상이 되였던 것이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개구리"는 "북풍,빙설,동토,잔혹한 무게,잔인한 질식"에 묻힌 북방개구리의 생존환경과 개구리의 생존방식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자유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      "외롭게 /외롭게 살다가 /일단 감옥에서 뛰쳐나오면/다시는 묻히지 않고저 /다시는 어둠에 갇히지 않고저/다시는 외롭지 않고 굶주리지 않고저/논밭에서/못가에서/나무가지에서/밤마다 지난날의 운명을 울면서/날마다 영구한 봄날을/영구한 화창을 기도한다"       토템시 "개구리"에서 묘사되고 있는 북방 개구리의 운명은 지난 날 불행한 운명의 노예로 살던 우리 민족의 처지와 흡사하다.압박이 있는 곳에는 반항이 있고 속박된 몸은 자유를 갈망하는 법이다.    이 시에서 개구리는 영원한 자유와 재생을 지향하는  봄날의 신령이다.         22.산 -위대한 모성 (母性)        우리의 신화문헌에 자못 흥미있는 산신의 이야가가 있다.     화랑도의 통수 김유신이 한창 적국을 멸망시킬 계획을 하는데 백석이란 랑도가 같이 적정을 살피러 가자고 하였다.그들이 길에서 세 녀자를 만났는데 세 녀자가 김유신에게 자기네는 내림(경주 남산),혈례(오산),골화(금강산)의 호국신들인데 백석이란 자가 실은 적국의 간첩이니 조심하라고 가만히 일러주었다.그들의 말을 들은 김유신이 마수에 걸리지 않았으니 그 세 녀자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산신들로서 김유신에게 간첩의 진상을 알려주어 화를 면하게 했기에 김유신의 수호신토템이였다.    헌강왕시절에 군신(君臣)이 태평세월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을 때 포석정에서 남산의 산신이 왕의 술상앞에 나타나 춤을 추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왕의 눈에만 보이였다.산신은 나라의 위기를 왕에게 가만히 귀띔했던 수호신토템이였다.       선조들의 세계관에 의하면 산은 흙토템,돌토템,물토템의 결합체로서 그 봉우리가 하늘의 해,달,별,바람,비,구름,우뢰 등 천신과 가장 가까이 있어서 산토템은 천신과 조화되여 인간을 비롯한 만물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것이다.     이같이 인간을 탄생시킨 산토템이 인간의 후대를 보호하는 것은 토템설에 부합된다. 김유신과 헌강왕의 신화가 이 점을 말해주고 있다.     산에 대한 우리 겨레의 애착은 장례문화에서도 충분히 표현되였다.주검을 묻은 무덤을 "산소"(山所)라고 한것이다.산에서 태여났으니 산으로 돌아가라고 묘를 산에다 썼던 것이다.그런데 산이 없는 곳들에서 들이나 강변에 묘를 써도 그것을 굳이 산소라고 일컫는 여기에 산 숭배의 흔적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산"을 보자.   "우매때문에/혼돈때문에/밀치우고 짓눌리워진/장대한 근골/장대한 육체/장대한 혈맥이여"        시인은 지각의 압력으로 "밀치우고 짓눌리워 진"산의 고통스러운 형성과정과 그 가운데서 련마된 "장대한 근골/장대한 육체/장대한 혈맥"을 격조높이 읊조리면서 위대한 산의 형상을 표현하고 있다.시인의 붓끝에서 산의 위대한 형상은 바다같은 흉금으로 초목과 금수,인간을 안아주고 키워주는 더욱 높은 경지를 이룬다.       "자신의 피로/자신의 살로자신의 정기로/자신의 팔로/모든 날고 기는 생명 안아주고/춤추고 노래하는 령혼 길러낸다"       이것이 바로 산의 품격이다.시인의 붓끝에서 표현된 산의 형상과 산의 품격은 력사의 질곡속에서 불요불굴의 의지를 갖추고 우뚝 일어선 우리 민족과 세상만물을 안아 키우는 위대한 모성(母性)의 상징이다.       23.불 -정열,광명과 신성(神圣)의 상징       혁거세신화에 따르면 옛날 여섯 부락의 수령들이 모여서 왕을 세우려고 할때 양산아래 라정곁에서 번개불빛이 일어나고, 그가운데 백마 한마리가 꿇어앉아 절을 하고있었다 한다.다가가 보니 그앞에 자주빛 큰 알이 놓여있었다.그 알에서 태여난 동자를 동천에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났다.그가 바로 훗날의 혁거세왕이다.     우뢰(번개)는  해와 더불어 하늘의 불이다.혁거세신화에서 번개불빛은 혁거세의 탄생을 사람들에게 알려준 수호신토템이다.       희랍신화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인류를 위하여 불을 훔쳐온 이야기가 있고 중국신화에는 수인씨가 나무와 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발명한 이야기가 있다.우리 겨레에게는 단군의 셋째아들 부소가 부싯돌로 불을 일으켰다는 전설도 있다.      이로 보면 하늘의 불은 해와 우뢰고 땅의 불은  돌과 나무라는걸 알수 있다.돌과 돌이 부딪쳐 불꽃이 생기고 나무와 나무가 마찰되여 불이 산생되는만큼지상의 불은 돌과 나무에 깃들어있는 신령인 셈이다.    불이 성과 관련되는 원인은 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일으키는 기술에 있다.대목과 발화봉이 마찰하여 생성된 불은 곧 성을 상징한다.때문에 "정염(情焰)에 불탄다"는 말로 이성의 열렬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불은 인간들에게 보편적으로 숭배되는 광명,열정,생명,정화,위력의 신령으로서 올림픽성화에서,성탄절밤의 초불에서,혼사날의 화촉동방에서,서민들의 우등불에서 그 상징이미지를 빛내고 있다.불은 인간의 개화와 진보와 문명을 촉진하였고 인류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옛날 우리 민족에게는 부엌의 불씨를 보존하고 못하는 것을 며느리의 우렬로 여기는 관습이 있었고,조왕신을 모시는 풍속이 있었다.조왕신이란 부엌의 불을 관장하는 신인데 해마다 년말이면 그집 식구들의 행실을 하늘에 고하기 때문에 멀리 나갔다가 돌아오거나 초상집에 갔다가 돌아온 식구들은 먼저 부엌에 들려 몸에 묻어왔을수 있는 오예(污秽)를 불의 령능(灵能)으로 정화시켜야 했다. 이는 우리 겨레의 화신(火神)숭배에서 나온 풍속들이였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불"에서 불과 인류의 밀접한 관계를 제시하면서 불의 상징이미지를 완벽하게 표현하였다.      "불의 위력/불의 신성/숲속에서, 진펄에서/산기슭에서,동굴에서/아름다운 생령 수없이 키우고/따사로운 복음 수없이 전했다 /하여 화로엔 대대로 불씨 묻히고/하여 불을 섬겨 경건한 제사 지낸다/생존도 불에 빌며/풍작도 불에 빌며/정결도 불에 빌며/강녕도 불에 빌며"       이 시에서 표현된 불은 광명과 신성과 정열의 상징이다.       24.해 -생명의 시원,부성(父性)의 원리       옛날 해와 달이 솟는 동해가에 살던 연오랑과 세오녀(延乌郎细乌女)는  매일 남먼저 해와 달의 정기를 받아 일월의 정령(精灵)이 되였던 우리의 시조부(始祖父)와 시조모(始祖母)였다.     선조들의 관념에서 해는 양(阳)이고 양은 강직하여 남성을 대표하고 달은 음(阴)이고 음은 부드러워 녀성을 대표하며 양광(阳光)이 음(물)을 비추어 생명을 배태시킨다.     그래서 해는 부성(父性)의 원리이고 달은 모성(母性)의 원리이며,그렇기에 일월(曰月)의 원리는 생명의 원리라고 하는 것이다.       고대동이족은 각별히 해를 숭상하였다."현조생상"(玄鸟生商)이란 동이족의 수령 제곡의 부인 간적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제비알을 무심히 받아 삼키고 나서 상조의 시조 설을 낳았다고 해서 생긴 전고이다. 조류숭배는  태양숭배에서 파생된 것이였다.고대동이족관념에  태양도 날아다니는 새였다.동이족수령 소호의 토템은 봉황이였는데 봉황은 조류의 왕이였다.     하여 동이족에게서 처음으로 란생신화(卵生神话)가 생겼다.고대선민들은 조류의 알을 해와 달로 여긴 것이다.이 제비알은 바로 일월의 상징이였다.그런 신성한 알이기에 성인을 낳았다고 여긴것이였다.    그 란생설의 영향으로 동이족문화권이였던 우리민족의 조상들에게도 자기 시조의 높은 출자(出自)를 자랑하는 란생신화들이 생겨났다.이를테면 주몽,탈해,혁거세,수로 네시조가 알에서 탄생한다.    그 알들이 바로 우에서 든 해와 달,즉 일월의 상징이다.무릇 생명은 음양의 결합으로 탄생한다.해빛이 류화의 몸을 비추어 임신이 된 일도 해빛이 물을 비추어 생명을 배태시키는 것과 같은 도리이다.      이미 생명이 배태된 그 알들이 해와 달이란 음양의 결합물이다.말하자면 해빛이 비친 양수(阳水)가 들어찬 자궁(子宫)과 같다.그러므로 해는 네 시조의 부친토템이고 달은 모친토템이다.    미추왕의 선조 김알지는 하늘에서 내려온 금합에서 태여났다.이 금빛 함도 기실 일월의 변형된 상징이라 볼수 있다.    선조들의 관념에 이 다섯 조상들은 다 하늘의 뜻에 의해 인간에 내려온 천손(天孙)들이고 태양의 후예들이다.태양은 그들의 공동한 부친토템이다.       그럼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해"를 고찰해 보기로 하자.       "조상의/하얀 령기/하얀 온정/하얀 자애/살속에,피속에 스며들었다/뼈속에,얼속에 스며들었다/가장 아름다운 흰옷차림은/조상에의 거장 경건한 숭배였거니"      시인은 해와 백의민족의 밀착된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해의 정기와 조상의 령혼을 하나로 통합시켜 해의 형상은 바로 백의민족 조상의 형상임을 제시하고 있다.     "아득한 태양성에 조상의 하얀 대문 박혀있다./저 영원히 닫기지 않는 조상의 문/자손만대 복받는 원천이여라"        해의 정기와 하나를 이룬 조상의 령혼은 해의 정기와 더불어 영구불멸함을 제시하고 있다.이런 민족이야말로 자손만대를 이어가며 번영륭성할 것이다.       이 시에서 표현되고 있는 해의 토템이미지는 항구한 생명의 시원이며 부성의 원리이다.       25.별 -신비한 인생계시        우리의 신화문헌에 의하면 김유신은 등에 북두칠성을 새기고 태여났다고 한다.대덕 자장률사와 원효법사는 그들의 모친들이 별이 품안에 날아드는 꿈으로 잉태되여 낳은 성인들이다.     별은 등에 북두칠성을 새기고 탄생한 김유신과 별의 감응으로 탄생한  자장률사와 원효법사의 부친토템이였다.       유구한 농경시대였던 옛날 우리 민족에게는 별의 움직임을 보고 농사의 풍흉(丰凶)을 판단하는 농점(农占)이란 것이 있었다.음력 2월 6일날 묘성(昂星)에 해당되는 작은 별무리가 달보다 앞서 있으면 풍년,달과 평형이면 평년,달보다 처져있으면 흉년이라고 판단이 나왔다.      별을 보고 점을 치는 것은 천상(天象)을 점치는 것이다.인간이 하늘과 자연과의 일체화를 이루고 하늘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반응한다고  믿기때문이였다.      그래서 고대에 궁마다 점성가(占星家)가 있었다.별을 보며 점을 치는 리유는 별을 인생계시로 여겼기 때문이다.      선덕녀왕시절에는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고 한다.첨성대는 별을 관찰하는 높은 탑으로서 일명 점성대(占星台)라고도 했다.     인간과 별의 운명이 상응된다고 여긴 조상들은 지상에 사는 인간의 수효와 하늘에 있는 별의 수효가 같으며 인간의 생사가 별이 뜨고 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별에 관한 우리의 신화에 따르면 이 세상의 맨 처음은 암흑과 혼돈이였다.혼돈에서 차차 새벽기운이 감돌아 하늘에서 청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물이슬이 솟아올라 세상에 만물이 생겨났는데 동쪽에는 직녀성 서쪽에는 견우성 남쪽에는 로인성 북쪽에는 북극성 가운데는 삼태성이 자리잡고  그런후 옥황상제가 해와 달을 보내주었다고 한다.이 신화에 따르면 우리 선조들의 관념중에서 별이 일월보다 먼저 생긴 것이다.이는 우리 조상들의 별숭배가 유구한 세월을 이어왔음을 말해준다.      현대사회에도 인류의 별숭배가 보편화되여 많은 나라의 국기들에 별이 수놓였고 많은 군인들의 모휘와 견장에 별이 박혀 빛뿌린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별"에서 별과 인간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별의 상징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창망한 밤하늘 저 별은 뉘의 눈동자인가"       시인은 시의 첫 련에서 조상들의 사유를 빌어 직접 별과 인간의 상응관계를 표현하고 있다.하지만 시인의 목적은 단지 별과 인간의 상응관계만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짙어가는 혼돈에 맞서/번져가는 몽매에 맞서/어둠속에서 넌/운명의 들창 열고/반짝이는 등불 켜들고/깜빡깜빡/갔다가도 다시 오며"         시인은 이처럼 인간과 별의 상응관계보다도 인간과 별의 감응관계를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갔다가도 다시 오며/깜빡깜빡 반짝임은/신기한 암시/야릇한 계발/이에 사람은 별의 눈속에 반짝이고/ 별은 사람의 맘속에 반짝인다"        이같이 시인의 붓끝에서 묘사된 별과 인간의 정감교류는 우주와 자연에 대한 인류의 탐색과 필연의 왕국으로부터 자유의 왕국으로 나아가려는 인류의 리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표현된 "별"의 토템이미지는 신비한 인생계시다.   26.구름 -화합과 생성의 상징        단군신화에는 천신 환웅이 인간세상에 내려올 때 바람의 주술신 풍백(风伯),비의 주술신 우사(雨师)와 함께 구름의 주술신인 운사(云师)를 거느리고 와 인간의 360가지 일을 주관하고 농사를 주관했다고 했다.여기의 운사는 구름신으로서 풍백,우사와 함께 의인화되여 있다.단군신화에서 구름은 바람,비와 함께 천하대지본인 농사를 관장하는 신령들로서 인간을 교화하는 천신 환웅의 수호신토템으로 나타난다.      천제 해모수가 천지간을 오갈 때 항상 채색구름이 동반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구름은 해모수의 수호신토템이다. 더욱 흥미로운 일은 사륜왕이 죽은뒤 구름토템으로 돌아가 생전에 사모하던 도화녀의 방에 현신했을 때 오색구름이 동반했고 구름의 감응으로 신기한 재주를 가진 비형랑을 낳았다는 "도화녀와 비형랑"신화다.이 신화에서 구름은 비형랑의 탄생토템이다.       우리 선조의 구름숭배는 고분벽화와 칠기(添器)에 새겨진 구름무늬에서도 보여진다.     지난날 우리 겨레의 부락입구량켠에 각기 하나의 장승(长拯)을 세워놓았는데 하나는 처용랑이고 하나는 비형랑이였다.처용은 룡토템이고 비형은 구름토템인데 그들의 얼굴이 사귀(邪鬼)를 물리친다하여 나무말뚝에 새겨서 세운것이 장승이다.북경천안문 동서 량켠에 룡과 구름의 형상을 새긴 기둥이 서있는데 그것이 기실 토템주(图腾柱)인 화표(华表)이다.역시 사귀를 누르는 룡과 구름의 수호신성격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구름은 바람,비와 맺어져 서로 불가결의 관계로 되고있다."풍운"(风云)이란 바람과 구름을 짝지은 말이고 "운우"(云雨)란 구름과 비를 짝지은 말이다.이는 구름과 바람,구름과 비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이외에도 구름과 안개를 짝지운 "운무"(云雾)라는 말이 있고 구름과 물을 짝지운 "운수"(云水)와 높은 벼슬을  상징한 "청운"(青云)이란 말과 학덕이 겸비한 선비를 가리키는 "청운지사(青云之士)"란 말도 있다.      구름은 또한 룡과 맺어져 풍요와 조화를 나타내기도 한다."수호전"에서 호풍환우하는  량산박의 군사 공손승의 별호가 "입운룡(入云龙)",구름속에 들어있는 룡이란 뜻이다."삼국연의"에서 조조가 류비와 청매(青梅)를 두고 술마실 때 시중군이 타래구름을  가리키며 룡이 올라간다고 했다.구름은 흔히 그렇게 룡의 형상으로 나타나 인간의 숭경을 자아낸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구름"은 구름의 형상에 신성하고 랑만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형체없는 바람의 날개/어여쁜 나비의 날개/가벼운 날새의 날개/모이고 모였네/높은 하늘에 모였네/높았다가도 낮아지며/가다가도 멈춰서며"       이처럼 천태만상의 구름이 높은 하늘에 모이여 다양한 변화를 이루고 있다.이러한 구름은 높은 하늘에 모여 비가 되여 쏟아진다.       "이에/바람의 날개없는 곳에도/바람의 날개 퍼덕이고/나비의 날개없는 곳에도/나비의 날개 퍼덕이고/날새의 날개없는 곳에도/날새의 날개 퍼덕이네"        구름들이 높은 하늘에 모여 비로 쏟아져 "바람의 날개,나비의 날개,날새의 날개"가 없는 곳에도 이 모든 생명력을 생성시키는 그 조화에 대한 랑만적인 묘사,실로 가관이다.여기에서 시인은 구름과 비를 련관시켜 구름이 산생시키는 지상 모든 생명의 원천인 물로 구름의  역할을 전개시키고 있다.       이 시의 중점은 구름의 모임이다.천태만상의 구름의 모임은 우주와 자연의 조화일뿐만이 아니라 인간세상의  화합을 의미한다. 시인이 이 시에서 표현한 구름은  화합과 생성력의 상징이다.       27.바람 -우주의 숨결과 거대한 생성력       단군신화에 바람의 신 풍백(风伯)이 구름의 신 운사(云师),비의 신 우사(雨师)와 함께 인격화되여 환웅을 배동하여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주곡(主谷),주명(主命),주병(主病),주형(主刑),주선악(主善恶) 360가지 일로 홍익인간(弘益人间)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했다. 이 신화에서 바람은 구름,비와 더불어 천신 환웅의 가족으로서 수호신토템으로 나타난다.       바람은 구름과 비를 좌우지한다. 유구한 농경시대와 어렵시대 바람이 인간의 생산과 삶에 주는 혜택과 피해가 아주 컸다.바람의 이중성격은 선조들의 경외심을 자아냈다.그래서 바람신을 숭상하게 되였다.    "심청전"에 나오는 림당수는 수심이 깊은 해면인데 거기에서는 세찬 풍랑이 늘 일어 어선이 봉변을 당하기 일수였다.그 풍랑을 잠재우기 위해 선주는 쌀 삼백석으로 열다섯살 나는 처녀 심청이를 사서 림당수에 넣는다.이는 기실 바람신에 대한 제의(祭仪)였다.    바람은 인류의 생산로동뿐아니라 전쟁에도 곧잘 리용되였다.황제(黄帝)가 치우(蚩尤)와 싸울때 치우는 바람의 신 풍백을 데려다가 세찬 바람을 일으키게 했고,제갈량은 동남풍을 빌어 조조의 전선(战船)을 불살랐다 한다.    세종대왕시절에 풍기대(风旗台)를 세워 풍향(风向)과 풍속(风速)을 관측했는데,지금의 천기예보에서도 풍향과 풍속은 불가결의 요소이다.      바람의 상징성은 아주 풍부하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서러워했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윤동주의 시구에서는 자아성찰이나 신의 계시같은 것을 상징했다면 "바람을 피우다"라는 말에서는 에로시티즘(性爱)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바람"에서 바람의 이중성격을 틀어쥐고 인간에 대한 바람의 혜택과 피해를 묘사함으로써 인간의 생존환경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고 있다.       "바람의 집은 삼림/바람의 집은 초원/바람의 집은 크고 작은 푸른 잎과 꽃망울"       시인은 바람이 생성하고 바람이 잠들수 있는 삼림과 초원 그리고 푸른 잎과 꽃망울을 렬거하면서 실은 인간의 생존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할것을 촉구하고 있다.       "바람이 집을 잃으면/아우성치고 울부짖고 야단친다/바람이 격노하면/모래자갈 휘몰고 하해를 뒤엎고/하늘땅을 만신창으로 들볶는다/그러다가 노그라지면/페허에 웅크리고 한잠 잔다"       시인은 "바람의 집"인 삼림과 초원을 파괴한 것은 인간들이고 "바람의 집"을 지어주지 않는 것도 인간들임을 암시하고 있다.바람의 집인 삼림과 초원이 없으면 생태위기를 초래하여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는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하여 바람은 황사를 일으키고 민둥산을 핥고 광야에서 울부짖으며 "잠들곳이 없어 "헤매인다.      인간과 만물이  호흡을 할수 있는 것은 바람의 덕택이다.이 시에서 시인은 사람들에게 자연과의  공존공생과 생명일체화를 호소하고 있다.     이 시에서 바람은 우주의 숨결이고 천신의 호흡으로서 거대한 생성력을 상징한다.       28.우뢰 -하늘의 화신(火神)       혁거세신화에 우뢰가 등장한다.여섯 부락의 수령들이 왕을 세우려고 할때 언덕아래에서 번개불빛이 비치는 가운데 백마가 꿇어앉아 절을 하고 있었다.그래서 발견된 것이 혁거세가 들어있던 알이였으니 우뢰(번개)는 백마와 더불어 사람들에게 광명의 도래와 혁거세왕의 탄생을 알려준 수호신토템이였다.           혁거세신화에서 하늘의 불인 우뢰는 광명의 사자로 나타나지만 다른 설화들에서 흔히 부정과 사악에 대한 천신의 징벌을 상징한다.    문무왕(文武王) 2년에 여동(如冬)이란 사내가 어미를 때렸는데 하늘에서 우뢰가 울리며 벼락에 맞아 죽은 일이 있었다.이렇게 민속에서는 우뢰를 인간의 그릇된 행위에 대한 천신의 노여움으로 믿고있었다.그래서 사람들은 근신하면서 하늘의 노염을 사지 않으려고 애썼다.     우리 민족에게 있는 "벼락을 맞을 짓"같은  표현이나 "천벌을 받을 일"이라는 표현도 부정과 사악을 징벌하는 우뢰의 성격에서 파생된 말이 아닌가 싶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우뢰"를 보자.      "컴컴한 광야/흐려진 하늘에/아름찬 새는 날개를 퍼덕퍼덕/무쇠발톱 번쩍인다/아름찬 룡은 믈을 차고 하늘에 치솟아/귀청 째며 포효한다"      시인은  대붕(大鹏)과  거룡(巨龙)이란 신화적동물을 합성시켜 우뢰의 거대한 위력을  표현하고 있다.대붕은 하늘의 새고 룡은 물속의 동물이라 이 두 거대한 동물의 합일(合一)로 천지를 진감하는 우뢰의 형상을 완성시킨다.우뢰는 바람,구름과 함께 대지의 생명수인 비를 생성하는 천신이다.       "우뢰의 화살/우뢰의 도끼/우뢰의 돌멩이/창망한 천지를 짓쫏는다"       "우뢰의 눈 제일 밝고/우뢰의 소리 제일 우렁차고/우뢰의 몸짓 제일 날쌔다/우뢰소리 지나가면/아늑한 봄비 내린다"       시인은 우뢰의 위력을 표현함과 아울러 암흑을 몰아내고 사악을 징벌하는 우뢰의 심상이미지를 발굴해내고 있다.     이 시에서 표현된 우뢰의 토템이미지는 부정과 사악을 징벌하고 암흑을 내쫓는 하늘의 화신(火神)이다.       29.비 -생존과 풍요의 상징       비는 단군신화에서 우사 ( 雨师)라는 이름으로  같은 천신인 풍백(风伯),운사(云师)와 함께 천신 환웅을 동반하여 인간세상을 교화하러 내려온다.우사는 인류의 유구한 농경사회에서 생명수의 원천인 비를 주관하는 천신으로서 홍익인간세상을 가꾸려는 환웅의 수호신토템이였다.        고대농경사회에서 비는 나라의 운명과 직결되는 생존의 근원이였다.가뭄이 들면 왕은 식음을 전페하고 거처를 초가로 옮기고 죄인을 석방했다.하늘이 비를 내려주지 않는 것이 왕과 대신이 부덕하여 천벌을 받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그래서 비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기우제가 성행했다.      우리 민족 기우제의 한 장면을 보면,남자들이 물을 질그릇에 담아 삿갓을 쓴 녀인들의 머리에 들씌운다.이때의 남성은 하늘이요 녀성은 대지이다.남성인 하늘의 정액을 상징하는 비를 녀성인 대지에 불러와 생성과 풍요를 가꾸려는 소원에서였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비"는 독특하게 씌여졌다.시인은 비를 인격화하여 공업화시대에 비가 당한 피해를 묘사하므로써 비의 상징이미지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루 밤새에 비는 손가락 잘리웠다/하루 밤새에 비는 두 다릴 잘리웠다/하루 밤새에 비는 옷을 홀딱 벗기웠다/하루 밤새에 비는 머리 하나만 달랑 남았다"        비는 이렇게 처참히 유린을 당하고 있다.이토록 비의 운명을 잔혹하게 유린한 장본인은 누구일가.       "손가락을 벤건 남이 아니라/자기가 물 대준 풀숲이다/두 다릴 끊은건 남이 아니라/자기가 키워준 삼림이다/옷을 벗긴건 남이 아니라/자기가 적셔준 초원이다"       비는 대지의 만물을 소생시키고 키워준 신령이다.비의 형상과 비의 이미지는 푸른 초원과 무성한 삼림과 혼연일체를 이루어야 한다.그것이 비의 가치이다.그러나 대지의 환경피해는 비의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    20세기이래 공업화의 발전도상에 있는 나라들의 자연환경은 엄중하게 파괴되였다.삼림을 마구 찍어내고 땅을 마구 파헤치는 바람에 "비의 손가락",비의 두 다리","비의 옷"인 삼림과 초원이 사라지고 대지가 황페해진다.하여 홍수가 범람하고 황사가 울부짖고 태양빛이 직사하는 자연재해들이 인류의 생존환경을 파괴하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 시에서 표현되고 있는 비의 토템이미지는 만물의 생존과 풍요의 원리이다.       30.바다 -생명의 고향       탈해왕신화는 까치들에게 옹위된 배에 실려 먼먼 바다를 표류하던 알에서 태여난 석탈해의 고사를 담고 있다. 이 신화에서 바다는 까치와 더불어 탈해왕의 탄생을 지켜준 수호신토템으로 나타난다.        우리 민족의 바다숭배는 삼면이 해면인 지리적환경에서 산생되였다.      선조들의 관념세계에서 바다는 하늘과 짝지어진 또 다른 피안 신들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탈해왕이나 가락국의 허황후나 다 바다 저 너머에서 바다의 도움으로 온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친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석에 제 몸을 팔아 바다에 뛰여들었던 심청이는 바다에서 예쁜 련꽃으로 환생했고 그 련꽃으로부터 다시 부활한다.바다는 이렇게 재생적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바다는 또한 룡과 맺어져 풍요를 이루고 있다.문무왕이 사후에 동해의 룡으로 되였고 처용은 동해룡왕의 아들이였다.거타지는 활재주로 서해룡왕의 사위가 되였다.      고국 남해안에는 몇가지 금기의 풍속이 있었다.바다에 어로작업을 나갈 경우 녀색을 가까이 해서는 안되며 개고기를 먹어선 안되며 식구나 벗들이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해서도 안된다.바다를 신성한 곳으로 여기기에 불결한 몸으로 나갈수 없고,경외의 대상인 바다에 나갈 때 경망스러운 말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였다.      "살어리 살어리랏다/바라래 살어리랏다/나마자기 구조개랑 먹고/바라래 살어리랏다"     이 민요는 바다와 우리 겨레의 밀접한 관계와 우리 민족의 바다숭배를 보여주고 있다.     바다는 달의 운행과 밀접히 련관되여 있다.달이 차면 조수가 밀려오고 달이 기우면 조수가 물러간다.바다와 달의 자연적관계는 녀인과 달의 자연적관계와 일맥상통한다.그러기에 바다는 생명의 고향이며 만물을 낳아준 어머니이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바다"는 생명의 어머니로서의 바다,인류와 만물의 고향으로서의 바다에 대한 숭엄한 감정을 토로하고 있다.       "생명을 낳아 키우고/중생을 품에 안고/천지간의 변천 마음에 묻어놓고/인간의 창상 맘속에 묻어놓고/골육상잔의 피비린 칼과/세인이 알수 없는 비밀마저/깊숙이 마음에 묻어두고/천만년 흘러도/입을 철문처럼 다물고 있다"       이 시구들은 만물을 안아키우는 바다의 넓은 흉금과 위대한 모성을 표현하였다.     이 시에서  표현된 바다는 지구상의 조물주이고 생명의 고향이다.       31.산호 -군체(群体)생명의 상징       탈해왕신화는 룡성국의 국왕과 적녀국의 공주사이에서 신기한 알로 태여나 노비와 칠보(七宝)와 배에 실려 바다를 표류하던차 아전포에서 알을 깨고 나온 석탈해의 이야기다.      이야기에 나오는 칠보란 금(金),은(银),유리(琉璃),마노(玛垴),호박(琥珀),산호(珊瑚),차거(砗碟)로서 부모가 탈해에게 준 물건이였다.      우리 민족에게 "십장생"(十长生)이란 것이 있다.장생불사를 상징하는 열가지 물체로서 거기에는 태양,산,물,돌,구름,소나무,불로초,거북,학,사슴이 포함된다.     산호도 돌이다.그런데 산호는 바다밑의 무수한 산호충(珊瑚蟲)들이,말하자면 미생물들이 한데 융합하여 이루어진 화석(化石)이다.돌이 "십장생"에 들수 있는 리유는 그 견고성과 영구성이다.     돌의 화제는 다양하다.산호도 옥(玉)도 청금석(青金石)도 철광석(铁矿石)도 돌의 족속들이다.산호는 돌중의 꽃이다.산호는 그 아름다움과 견고성으로 하여 인간의 장식품이나 호신부(护身符)로 씌인다.     탈해왕신화에서 산호는 주인공을 보호하여 무사히 바다를 건너게 한 호신부로서 탈해왕의 수호신토템으로 되고있는 것이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산호"를 보자.       "갇히운 신념/저주받고 매몰당한 욕망/세월의 물결에 짓눌리고/밀썰물에 얻어맞아/한결 튼실히 응고되고/눈부시게 맑아졌네"          시인은 주로 산호의 고통스러운 형성과정을 묘사하고 있다.산호의 형상은 력사의 풍운속에서 련마된 민족의 의지를 상징하고  있다.       "출렁이는 파도밑에/화려한 해저화원 꽃피고/잎새없는 삼림 우거지고/아롱진 초석들 솟아나고/오색찬연한 섬나라 우뚝 섰네"         시인은 미소하고 취약한 개체생명이 모여 견강하고 장대한 군체생명으로 이룩되는 장엄한 려정을 노래하고 있다.이러한 군체생명이야말로 "흩어지지 않는 합력"이고 "불패의 군체"이다.      토템시 "산호"에서 표현된 산호는  우리 민족 응집력의 상징이고 찬란하고 유구한 군체생명의 상징이다.   32.돌 -.영구한 생명과 불멸의 상징        금와왕(金蛙王)신화에 따르면 늙도록 자식이 없었던  해부루가 산천에 자식소원을 빌고 돌아오다가 말이 큰돌을 마주하고 서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괴이하게 여겨 돌을 치우고 보니 그 자리에 금빛개구리모양의 동자(童子)가 있었다 한다.그 동자가 훗날의 금와왕이다.     남평문씨(南平文氏)의 시조 문다성(文多省 )이나 봉우(奉佑)의 출생도 돌과 관련된다고 한다.그 둘은  다 못중의 석갑(石匣)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돌은 금와와 문다성,봉우를 탄생시킨 모친토템이였다.         산이 많은 고국반도는 돌의 고장이였다.금강산을 비롯하여  산마다 기암괴석들이 솟아있고,신석기시대의 유물로 보이는 선돌(立石)을 비롯하여 자연석(自然石)을 리용하여 국경,분묘 등을 표시한 돌 문화의 흔적이 많다.      하여 우리 민족은 돌과 밀접한 관계였고 우리의 돌문화는 유구하고도 다양하다.주추돌이며 돌담이며 방치돌이며 맷돌이며 돌절구며 돌이 쓰이지 않는 곳이 거의 없었다.돌의 견고성을 리용한 것이다.     돌은 옥 (玉)과 금강석이나 청금석(青金石),철광석(铁矿石)을 포함하여 견고하고   불멸의 상징으 로 우리 민족 "십장생"(十长生)의 하나로 되였다.그래서 자식들의 이름에 돌 또는 돌 석(石)자를 많이 넣은 것도 돌처럼 튼튼하고 오래 살라는 념원의 표시로 되였거니 가히 우리 민족의 유구하고 보편적인 돌숭배력사를 알수 있겠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돌"을 감상해 보자.       "돌은 쇠할줄 모르는 기억으로/세상만물의 명멸을/세기풍운의 궤적으로 새기고/썩지 않는 영구로 새긴다"       시인은 돌의 견고한 생명력을 인류와 민족력사의 견증자로서의 돌의 령혼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돌의 동반자 되자/돌의 뼈를 갖자/진심으로 돌과 운명 같이 하면/죽지 않는 인생이니라"        시인은 돌과 인간이 동화되여 이루어진 강의한 령혼을 제시하므로써 인간과 자연의 조화,그리고 민족과 인류의 영구한 생명력을 촉구하고 있다.     토템시 "돌"에서 표현되고있는 돌은 영구한 생명과 불멸의 상징이다.       33.개 -충성과 의리의 상징       우리 민족의 신화문헌에 개가 자주 등장한다.      주몽은 그 어머니 류화의 몸에 해빛이 따라다녀서 잉태된 닷되만한 알에서 태여난다.사람이 알을 낳은 것이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긴 금와왕은 알을  개에게 던져주었으나 개는 먹지 않고 오히려 보호해 준다.     지철로왕은 음경의 길이가 한자여섯치나 되여 배필을 얻지 못했다.그러다가 개 두마리가 다투어 먹는 인분의 임자를 왕후로 맞을수 있었다.개가 배필을 알려준 것이다.      의자왕은 후기에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아 나라가 위태롭게 되였다.경신년(660)6월에 사슴만한 개가 서쪽으로부터 사비수해안에 이르러 왕궁을 향하여 컹컹 짖어대다가 사라졌고,이어서 성안의 개 여러 마리가 길가에 모여 더러는 짖고 더러는 곡을 하다가 시간이 흐르자 흩어져 사라졌다.그일이 있은뒤 얼마 안되여 나라가 멸망되였다.     경명왕시절인 정명  5년 무인년(918)에 사천왕사 벽화속의 개가 갑자기 컹컹 짖어 사흘동안 독경 (读经)을 멈추게 했으되 반나절이 지나자 또 짖었고 ,7년 경진년(920)10월에 벽화(壁画)속의 개가 급히 뛰여나와 뜰을 마구 달리다가 쑥 들어갔다.그후 얼마 안되여 나라가 망했다.           이렇게 개는 신화에서 주몽의 탄생을 보호했고 지철로왕의 혼인을 맺어주었으며 의자왕과 경명왕에게 나라의 위기를 알려준 수호신토템이였다.         우리 민족의 개토템숭배는 고대동이족의 영향에서 비롯되였을 것이다.고대동이족의 사양권에서 개는 소,말,돼지,양,닭과 더불어 6축(六畜)에 속하여 관직명으로 되였었다.      개는 충성과 의리의 대명사로 되여 충견(忠犬)이나 의견(义犬)으로 불리운다.우리 민족의 신화에 개가 수호신토템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개가 사양권에 속하는 동물들중에서도 인간과 가장 가깝고 친밀하기 때문일것이다.      어렵시대나 농경시대에 사람들은 사냥용이나 가택보호용동물로 개를 많이 길렀고 주인이 출행할때 개가 따라다니며 보호했다.옛날 전북 임실군 오수리 김개인(金盖仁)이란 사람이 개 한마리를 기르고 있었다.하루는 이웃마을 잔치집에서 술에 취해 둑에서 잠들었는데 입에 물었던 담배불이 떨어져 잔디에 불이 붙었다.이때 개가 물에 뛰여들어 온몸에 물을 적셔와 주인의 주변에 뿌리고 그렇게 거듭 해서 주인을 구해내고 저는 타죽었다 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절목의 보도에 의하면 몇년전 한 로인이 버림받은 개를 거둬주었는데 로인사후(死后)에 그 개가 3년동안이나 무덤을 지켜주었다는 것이였다. 개와 인간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며 개의 수호신역할을 보여주는 새로운 전설이다.의협심이나 효성이 없는 인간을 개보다 못하다고 하는 말이 이래서 생긴것이겠다.     개와 인간의 밀접한 관계는  아득히 멀고 먼 태고적부터 시작된다.개는 아세아주에서 그들의 선조인 승냥이와 함께 살고있었다.어느날인가 춥고 배고픈 개가 우연히 털이 없는 한무리의 원숭이를 만나 구원을 받는다.그 원숭이들이 최초의 인류였다.그때부터 개는 사람들을 도와 집을 지키고 사냥도 도왔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개"는 바로 인간과 개의 이런 밀접한 관계로부터 개의 성격을 부각하고 있다.       "종시 지나친 욕구는 없고/주인을 못산다 꺼리지도 않는다/령민한 코/밝은 귀/날랜 네다리/미더웁게 고향을 지켜주고/주인을 지켜 먼길도 같이 간다/설사 주인의 버림 당한다 해도/종시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다/설사 죽는다 해도/누울 자리조차 탐내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개의 충성이고 개의 의리다.개는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다.개는 가난한 주인의 멀건 죽물을 먹으면서도 이웃 부자집의 고기굽는 냄새에 혹하여 주인을 배반하는 일이 없다.      개는 한평생 주인에게 충성하면서도 안일과 탐락을 모르고 사리를 도모할줄 모른다.       이 시에서 개는  충성과 의리의 상징이다.   34.돼지 -풍수(风水)와 재부의 상징            옛날 금돼지에게 잡혀갔던 부인이 낳은 태아를 꺼려서 길에 내버린 원이 있었는데 웬 로파가 그 태아를 거두어 알뜰히 키워주었다 한다.그애가 자라서 성인이 되니 그가 바로 최치원이였다는 것이다.      해빛감응에 의해 태여난 주몽이 들어있는 알을 사람들이 돼지우리에 던졌으나 돼지는 해치지 않고 조심히 피해다녔다.     비처왕(毗处王)시절인 488년에  왕이 천천정으로 행차할때 돼지 두마리가 싸우는데 정신이 팔려 피촌길섶에 멈추었다가 그곳 못에서 나온 로인에게서 "거문고갑을 쏘라"는 편지를 받고 화를 면했다고 한다.     돼지는 또한 국도(国度)의 풍수(风水)를 보는 혜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류리왕 21년에 하늘에 제물로 바치려던 돼지가 도망을 해서 따라가 국내성 위내암(尉那岩)에 이르러 보니 그곳은 산수가 깊고 험요하며 오곡이 풍등하고 미륵과 어별(魚鳖)이 많아 살기 좋은 곳이였다.왕은 직접 그곳을 살펴보고 국도를 그곳에 옮기였다.      왕건(王建)의 조부 작제건(作帝建)은 서해룡왕을 도와준 덕으로 돼지를 얻었는데 돼지를 우리에 가두던차 놓쳐버렸다.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송악(松岳)의 남쪽기슭에 드러누운 돼지를 발견했다.그곳이 뒤날 국도로 되였다.      이 신화들에서 돼지는 직접 최치원의 친족토템으로 나타나기도 하고,주몽과 비처왕의 수호신토템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국도의 풍수신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돼지가 우리 조상들의 토템으로 된것은 고대동이족의 돼지토템숭배로 인해서라고 할수 있다.돼지도 동이족의 사양권에서 6축에 들어 관직명으로 되였었다.     조상들의 만물유령관에 따르면 동물들에게도 령혼이 있으며 령적인 동물들은 바로 대지의 신령들이였다.돼지도 례외일수 없었다.고대인의 관점으로 보면 돼지는 워낙 부지런하고 풍수도 볼줄 알고 재부도 축적할줄 아는 신령이였다.하기에 농가에서 기르는 돼지는 재부축적의 상징이였다.지금도 식당의 카운더에 흔히 금돼지모양의 저축함이 놓여있어서 절약과 축적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는 현상을 보게 된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돼지"를 보자.       "한쌍의 혜안으로/풍수를 잘 보아/도회에 좋은 터자리 잡아주고/그 발길 머무는 곳 복지였네"       이는 풍수신으로서의 돼지에 대한 찬미다.        "옛적엔 벼슬자리도 얻어 /그 명성 널리 떨쳤건만"        동이족시절에 돼지가 6축의 하나로서 관직명으로 된 사실을 반영하였다.그러나 훗날 돼지의 운명은 달라진다.       "지혜도 갇히우고/근면도 갇히워 /지혜롭고 근면한 정령에게/추한 별명까지 덮씌웠네"       이 시구들은 인간의 토템이였던 돼지가 당하고 있는  봉변을 통하여 자연을 정복하는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 대한 파괴로 이어지는 현실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그래도 돼지의 고풍스런 풍채/뛰여난 축적능력/풍운속에도 바래지 않았네/오늘 류행되는 저축함은/그의 뚱뚱한 배라 할가/끊지 못하는 그 태줄에는/까마득한 태고의 피 흐르고있네"       이 시구들은 자연의 법칙은 인위적으로 개변할수 없다는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       이 시에서 표현되고 있는 돼지의 토템이미지는 풍수와 재부이다.       35.두꺼비 -달의 정령           동이족신화에 의하면 두꺼비의 전신은 상아(嫦娥)였다.     아득히 멀고 먼 옛날,하늘에는 동시에  열개의 해가 떠서 너무 뜨거워 살수 없었다.그 열개의 해들은 천제(天帝)의 아들들이였다.인간세상의 고초를 헤아린 천제는 천신(天神)예에게 해들을 다스리게 했다.예는 활로 아홉개의 해들을 쏴 떨구고 하나만 남겨두었다.인간세상은 살기 좋아졌으나 예는 천제의 노염을 샀다.워낙 천제는 예가 자기의 아들들을 쏘아죽일줄을 몰랐던 것이다.천제는 워낙 천신이였던 예와 그의 안해 상아를 인간세상에 추방하여 서민으로 만들어버렸다.     예는 봉래산에 있는 서왕모(西王母)를 찾아가 선단(仙丹)두알을 구해왔다.그것을 먹으면 다시 하늘로 올라갈수 있는 것이였다.예는 상아에게 선단을 단단히 맡기면서 날을 택해서 함께 먹기로 했다.     그런데 예가 없는 사이 강도를 만난 상아는 그만 두알의 선단을 입에 털어넣었다.     그랬더니 별안간 몸이 둥둥 떠서 삽시간에 태공으로 날아올랐다.천제는 그가 남편 몰래 선단을 훔쳐먹었다고 오해해서 그의 죄를 다스리기 위해 달에 가두어버리고 추한 모습의 두꺼비로 변신시켰다.    그때로부터 두꺼비는 사람들의 멸시와 학대를 받는 존재로 되였다.그러나 죄책감으로 그는 말없이 고통을 참고 영구한 세월  달의 정령(精灵)으로 되여 비가 내리고 날씨가 궂히는 등  천기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예언적기능을 소유하게 되였다.그래서 민간에는 "두꺼비 눈물 흘리면 날씨가 궂히고 두꺼비가 처마밑으로 들어가면 비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이같은 동이족의 신화가 고국에 흘러들어가 두꺼비가 달을 숭배하는 우리 민족의 토템으로 된것이였다.평남 강서 고분천장의 일월화(日月画)나 고시대의 와당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불화(佛画)등에서 두꺼비가 들어있는 월상(月像)을 볼수 있다.조선민족의 유구한 두꺼비토템숭배를 증명하는 그림들이다.       시인 남영전의 토템시 "두꺼비"는 동이족신화와 조선민족의 두꺼비숭배에 바탕을 깔고 두꺼비의 인내와 희생에 대한 찬미를 통하여 두꺼비의 상징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남의 멸시 눈망울에 담고/ 남의 학대 살갗에 배였는가"        두꺼비는 자유를 지향하다가 억눌린 상아의 변신이다.       "천만년 오랜 세월/오해받고도 원망없이/줄욕먹고도 노염없이/강기슭 고요한 물처럼 담담하게/창상지변 겪어냈다"       이 시구들은 인고의 상징인 두꺼비에 대한 찬미이다.       "대대손손 억눌렸어도 /대대손손 이악스레 뻗쳤기로/끝내 생명의 막바지엔/명월을 끌어왔구나        상아는 비록 억울하게 천벌을 맞아  미운 두꺼비로 되였으나 놀라운 인내와 희생정신으로 천년만년 변함없이 달의 정령이 되여 달을 빛내고 있다.     이 시에서 표현된 두꺼비의 토템이미지는 인고를 겪어낸 희생자와 달의 정령이다.       36.흰토끼 -백의민족의 상징과 달의 정령(精灵)             고대에 인류는 토끼가 달을 보고 배태한다고 여겼다.이렇게 토끼는 달과 련관된 동물이였다.     고대동이족의 사양권에 속한 소,말,양,개,돼지,닭 6축(六畜)에 이어 후에 사슴과 토끼가 보태져서 8축(八畜)이 되였는데 선조들의 관념에 닭은 해의 정령이였고 토끼는 달의 정령이였다.달의 이칭(异称)인 토월(免月)은 달속에 토끼가 살고있다는 전래의 민간의식에서 유래했다.     상아가 선단(仙丹)을 혼자 먹은 죄로 달에 갇히워 두꺼비로 되였다면 옥토끼는 계수나무아래에서 절구로 장생불사약(长生不死药)을 찧는다고 한다.선단과 장생불사약의 동일한 의미로 하여 선단을 먹은 죄로 두꺼비가 된 상아와 장생불사약을 찧는 옥토끼는 몇천만년을 두고 저렇게 길이길이 달에서 같이 살고있는 것이다.음양의 리치에 따라 달속의 두꺼비를 남성으로 옥토끼를 녀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옥토끼(玉兔)와 흰토끼(白兔)는 의미가 같다.     선조들의 관념에 의하면 토끼는 뒷다리가 튼튼해 잘 뛰므로 사기(邪气)로부터 달아날수 있고 귀가 크므로 장수(长寿)할 상이며 웃입술이 갈라져 녀음(女阴)을 나타내니 다산(多产)을 의미하고 털빛이 희니 백옥같은 선녀의 아름다움을 나타낸다.달의 전설은 이러한 토끼의 특징에 두꺼비의 특징이 보태져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흰토끼는  백의민족의 상징이기도 하다.우리 민족의 유명한 전설"토끼전"은 미련한 자라를 이겨낸 토끼의 지혜를 보여주고 있다.      달과 관련되는 토끼의 신화나  강자를 지혜로 이긴 토끼의 전설은 우리 민족의 유구한 토끼숭배력사를 증명하고 있다.        남영전시인은 토템시 "흰토끼"에서 흰토끼의 선량하고 소심스러운 성격특징을 틀어쥐고 약세군체의 운명을 보여주고 있다.        "어질고 온순한 생령/아늑한 굴 하나 갖고 싶었건만/ 언제나 악마가 덮쳐왔기에/쫓기워 도주도주/도주할수밖에 없었다"        시인은 흰토끼의 운명으로 나라와 고향을 잃고 정처없이 헤매던 우리 민족의 비참했던 운명을 상징하고 있다.        "도주하고 도주하다/나중에 월궁에 뛰여들었다/외로운 넋은 갈팡질팡/평생의 숙원을/귀향의 소망을/돌절구에 부어넣고/빻고 찧는다/고향생각 절절하게 찧는다/달빛도 흐려지게 찧는다"        이 시구들은 기실 강세의 위협에 처한 민족과 나라들의 운명에 대한 동정을 나타내고 있다.시인은 흰토끼의 형상을 통하여 영구한 평화와 행복을 지향하는 선량한 인민들의 숙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표현된  흰토끼의 형상은 백의민족의 상징이고 달의 정령이다.       37.제비 -천조(天鸟)의 상징             동이족수령 제곡의 부인 간적이 어느 여름날 강에서 자매들과 미역을 감다가 우연히 제비가 떨어뜨린 알을 삼키고 임신을 해서 아들 설을 낳으니 그가 자라서 상나라의 시조가 되였다 한다. "현조생상"이란 "까만 새(제비)가 상나라의 시조를 낳았다"는 말이다.제비의 알로 하여 태여난 설의 토템은 제비였다.    동이족은 일월(日月)의 후예로 자처했다.그들의 관념세계에서 조류는 곧 태양의 상징이였는바 봉황,닭,까마귀,제비가  대표적이였다.      경북 안동에 연비사(燕飞寺)라는 절이 있었다.그 연비사라는 이름이 와공하나와 련관되여 있었다. 워낙 그곳의 석불(石佛)을 중심으로 큰 법당(法堂)을 짓게 되였는데  그 법당을 완공하던날 지붕을 덮던 와공(瓦工)하나가 실족을 하여 높은 지붕에서 추락되였다.땅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 와공의 몸에서 홀제 제비 한마리가 나오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그래서 그 법당의 이름을 "연비사"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와공의 토템이 제비였던 것이다.와공이 죽어서 자기의 토템으로 돌아간 것이다.       연비사의 전설도 우리 조상들의 제비숭배를 말해주고 있다.이 연비사가 세워진 년대는 력사상에서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고국에 세워졌던 황룡사(黄龙寺), 오회사(乌会寺),사자사(狮子寺), 령취사(灵鷲寺)와 더불어 고대의 5대동물토템신앙사찰로 되였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제비와 한집에서 살아왔다.아마 조류중 유일하게 제비만이  사람과 한집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제비가 대들보에 둥지를 틀게 놔두었고 제비를 식구처럼 대했다.그 실례로 제비를 해치는 뱀을 낫으로 찍어죽이고 제비의 상한 다리를 고쳐준 덕으로 이듬해 봄 제비가 물고온 세알의 박씨를 심어 부자로 된 흥부의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다.흥부전의 이야기도 제비숭배의 반영이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제비"는 해마다 남북으로 자리를 옮기는 제비의 특성에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므로써 선량한 제비의 시각을 빌어 세상의 추악한 현상들을 고발하고 있다.         "깜짝 놀랐네/산들바람 불어오는 화창한 봄날/탐욕스런 검정구렁이 슬금슬금/잠자는 새끼토낄 기습하기에"       시인은 이렇게 "깜짝 놀랐네"를 세번 반복하면서 순진하고 선량한 제비가 목격한 약자를 위협하는 "검정구렁이","쌍둥이 이리"와 초원과 삼림을 마구 삼켜버리는 "무서운 온역"을 묘사하고 있다.       "너무 놀라고 질겁하여/나무초리에,집 용마루에 깃을 앉히고/ 독균을 멀리한 하늘에 깃을 앉히고/지지배배 날마다 우짖네"       동류간의 략탈과 동족상잔으로 얼룩진 인류의 력사와 인간의 무지와 과욕으로 조성된 대자연의 참혹한 피해를 미물의 시각을 통해 표현한 토템시 "제비"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인간의 평화를 이룩하며 인류의 생존환경을 개선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토템시 "제비"에서 제비는 영구한 평화를 촉구하는 천조의 상징이다.   38.나비 -부활의 상징         고대동이족의 한사람이였던 장자(庄子)는 도가(道家)학파의 대표인물이였다.그가 죽어서 나비로 되였다는 전설이 있다.그의 토템이 나비였던 것이다.      눈물없이는 읽을수 없는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의 주인공들인 량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台)도 동이족이였다.그들도 역시 죽어서 나비토템으로 돌아가 자유로운 공간에서 훨훨 날아예며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      동이족의 중요한 토템인 나비는 우리 민족에게 영향을 주었다.아랑신화가 그러하다.      악한 관리의 피해를 입어 원통하게 죽은 아랑이라는 처녀가 새로 부임한 원님과 약조를 하고 나비가 되여 자기를 죽인 그 관속의 모자우에 앉음으로서 범죄자를 짚어낸 이야기다.    이 신화들에서 보면 장자와 량산백,축영대와 아랑의 토템이 나비였다. 이 세 신화는 주인공들이 죽어서 자기의 토템으로 돌아간 공통성을 보이고 있다.        우리 민족의 고시조 "청구영언"(青丘永言)에서 나비는 사랑하는 남녀의 상징으로 되고 있다.      "나비야 청산 가자/범나비 너도 가자/가다가 저물거든/꽃에 들어 자고 가자"       여기에서 물론 나비는 남성을 상징하고 꽃은 녀성을 상징한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나비는 또한 금슬이  좋은 부부의 상징으로 혼수에 많이 쓰이였다.함을 비롯해서 병풍,침구,의류,베개,문보에 쌍나비를 그리거나 수놓았다.        시인 남영전의 토템시 "나비"는 랑만주의수법으로 나비의 형상을 부각하고 있다.         "애오라지 얼과 얼의 만남이여서/하늘에서 춤추면 아롱진 노을로/땅에 내리면 아롱진 산꽃으로/봄날의 대문 활짝 열어제치고/빙설을 어서 녹으라 재촉하고/세상의 평화와 안녕 불러오네"         이 시구들은 우리의 시각으로 볼수 있는 나비의 형상을 표현하고 있다.시인은 나비를 하늘의 아롱진 노을과 대지의 아롱진 산꽃으로 묘사하고 있다.그러나 이 묘사는 단지 나비의 아름다움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나비가 천지간의 신령임을 암시하고 있다.         "나비와 함께 날자/나비와 함께 춤추자/나비의 길은 아름다운 삶의 길/나비의 길은 죽은후 부활의 길/나비의 길/나비의 길/나비의 길"       저자가 필묵을 들이고 있는 "나비의 길"은 기실 평화와  행복에 대한 인간의 추구이며 지향이다.     이 시에서 나비는  천지를 수놓는 봄날의 신령으로 부활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39.대 -수련의 상징          미추왕의 아들 류리가 왕으로 된후의 일이였다.어느날 이서국의 군사가 갑자기 금성을 공격해 왔다.나라에서 비록 방어에 힘썼으나 적군의 기세를 당하지 못해 당황해 할때 홀연 귀에 대잎을 꽂은 무수한 군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적군을 물리치고 사라졌다.다음날 사람들은 미추왕의 릉묘앞에 수북히 쌓인 대잎을 발견하였다.그제야 사람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대잎군이 하늘에서 내려와 적군을 물리친것이 선왕의 음덕임을 깨닫고 깊이 감동되였으며 그때부터 미추왕릉을 "죽현릉"(竹现陵)이라고 부르게 되였다.     "미추왕과 대잎군"신화가 죽은 미추왕이 대토템으로 돌아가 후대를 보호해준 이야기라면  "문무왕과 만파식적(万波息笛)"신화는 신비한  참대로 만든 피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문대왕이 부친인 문무대왕을 기리여 동해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었는데 동해 가운데 있는 섬 하나가 감은사쪽으로 떠왔다. 산의 형세는 거부기머리 모양인데 그 우에 낮이면 둘이 되고 밤이면 하나로 합쳐지는 신비한 대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이 신비한 대나무는 죽어서 바다의 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마음을 합쳐  나라에 값을 매길수 없는 보물을 내린 것이였다.왕이 그 대로 피리를 만들었는데 그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병이 낫고,가뭄에는 비가 내리고,장마에는 비가 그치며 바다의 풍랑도 잠재울수 있었다. 그리하여 만파식적이라고 불렀다.만파식적은 재난을 물리치는 신기한 피리였다.                                대는  문무왕과 김유신의 토템이였던 것이다.그들도 죽어서 대토템으로 돌아가 후대를 보호한 것이다.       "나무도 아닌 것이/풀도 아닌 것이/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였는다/저리도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참대를 읊은 윤선도의  "오우가"다.      중국고대의 시가총집 "시경"의  "위풍"(伟风)에도 대를 찬미한 시구가 있다.      "훌륭한 저 군자여,잘라내고 다듬고 쪼고 갈아 자신을 닦는도다"      대는 일찍부터 이렇게 곧고 바른 군자(君子)라는 인격체를 상징해 왔다.충신 정몽주가 피살된 다리 이름을 "선죽교(善竹桥)"라고 부른 것도 대쪽같은 충절을 표방한 것이다.     그외에 속을 비우는 참대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청정히 하는 수련자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참대는 민간의 수호신으로도 거듭났다.예로부터 정월 초에 참대를 터치워 잡귀를 쫓고 부정을 물리치는 풍속이 있었다.그것이 바로 폭죽(爆竹)이였다.        시인 남영전은 토템시 "대"에서 참대의 간고한 수련과 건실한 성장을 묘사하고 있다.        "땅을 터치고 나오자/자신과 맞서서/유혹하는 산꽃들과 맞서서/몰아치는 바람과 맞서서/자신을 갈고벼리네"        이것이 참대의 수련이다.참대의 수련은 간고하다.참대는 바로 간고한 수련을 통하여 자신을 갈고 벼린다.         "한마디 퍼내면 그만큼 키가 커지고/한마디 퍼내면 그만큼 허리가 실해 진다/퍼낼수록 한결 성결해지고 /퍼낼수록 한결 충실해진다."        인간의 수련도 마찬가지다.인간이 수련을 통하여 참된 인간으로 거듭나려면 우선 자신을 무자비하게 해부하고 마음을 비워야 할것이다.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속에 있는 온갖 깨끗하지 못한 것을 버리라는 것이다.시인은 이렇게 참대의 형상을 통하여 인간의 수련을 강조하면서 민족의 정신적가치를 발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묘사된 참대는 간고한 수련을 통한 참된 인격을 상징하고 있다.   40.룡 -비약의 상징       우리 민족의 신화문헌에  룡토템에 관한 여러 편의 신화가 수록되여 있다.      석탈해는 룡성국(龙城国) 국왕의 아들로서 배에 실려 붉은 룡의 호위를 받아 가락국으로 왔으니 룡은 그의 수호신토템이였다.       헌강왕시절 동해 룡의 아들인 처용이 인간세상에 나와 사귀를 물리치는  인간의 수호신토템으로 되였다.       진성왕 시절에 거타지라는 명궁이 기이한 활재주로 서해룡왕을 구원해주고 룡녀와 배필을 무은 이야기를 담은 "거타지와 룡녀"는 인간과 룡의 밀접한 사이를 표현하였다.       무왕 장은 그 모친이 남지(南池)변에 홀로 살면서 우연히 못의 룡과 상관하여 낳은 아들이였다.      견훤은 그 모친이 큰 지렁이와 상관하여 낳은 아들인데 지렁이는 지룡(地龙)이라 불리웠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창녕 조씨(昌宁曹氏)의 시조 조계룡(曹鸡龙)은 그의 모친이 안질을 고치기 위해 룡소에 가서 기도하다가 룡의 감응으로 잉태되였다 한다. 그의 이름이 혁거세의 왕후 알영을 낳은 "계룡"을 답습한것도 사뭇 흥취롭다.      이 신화들에서 룡은 무왕장과 견훤,조계룡을 탄생시킨 부친토템이였다.         우리 민족의 룡토템숭배는 삼면이 해협으로 덮힌 자연지리적특점에서 유래되였다고 볼수 있다.룡과 물은 불가분리의 관계다.사람들은 무릇 물이 있는 곳이면 룡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100여년 전에 지금의 중국 길림성 룡정시의 우물에서 룡이 날아올랐다는 전설이 있다.그 우물이름을 "룡정"(龙井)이라고 하고 그 우물이름이 지명으로 되였다.고국에도 "룡정"이라는 지명이 있으며 그 외에 "룡호"(龙湖),"룡지"(龙池),"룡소"(龙诏),"룡강",(龙江)"룡담"(龙潭)등 지명들이 있다.또 룡토템을 위한 제의장소도 물가라는 점에서 룡의 수신(水神)적 성격을 알수 있다.룡은 지상계의 비를 관장하는 신령이고 농경사회에서 농사와 룡토템 신앙은 필연적인 관계였다.      우리 민족이 생남을 하면 망자성룡(望子成龙)의 의미로 자식의 이름에 "룡"자를 많이 쓴것도 룡토템숭배의 흔적이였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룡"을 보자.   "창공을 날고뛰는 룡이여/천국을 드나드는 사슴의 뿔을/왕가물에도 죽지 않는 약대의 머리를/활촉도 뚫지 못하는 물고기의 비늘을 /번개같이 날랜 매의 발톱을/산악을 진감하는 범의 발바닥을/모두 모두 한몸에 지녔는가/이 모든 날짐들의 령기를 모아/이 모든 길짐승들의 혼백을 모아/변통많은 자유신 되였다"       룡은 이렇게 여러 토템의 특점들을 한데 모아 창조해낸 토템이였다.시인은  이 여러 토템의 특점들로 합성된 룡토템의 형상을 표현하고 있다.       "한번 물차고 솟구치면/구만리 돌개바람 몰아오고/구만리 먹구름 불어다가/천둥 울려 마귀를 쫓아내고/구슬같은 단비 뿌리여/대지에 생기 넘치게 한다"       이는 룡에 대한 심층묘사이다.시인은 이처럼 날고 기는 모든 동물의 령성을 한몸에 지닌 룡의 위력과 조화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천지개벽의 비약과 인간의 희망을  그리고 있다.    토템시 "룡"에서 묘사된 룡은 비약의 상징이다.   41.봉황 -천도(天道)의 상징        전하는 바에 의하면 혁거세왕의 왕후인 알영은 알영정(阏英井)이라는 우물가에 나타난 계룡(鸡龙)의 옆구리에서 탄생했다.선조들의 관념에 봉황은 닭의 머리에 룡의 꼬리를 가졌고 그래서 계룡은 봉황의 별칭이였다.사람들은 계룡이 나온 그 우물이름을 따서 녀자애의 이름을 "알영"이라 짓고 고이 길러서 혁거세와 배필을 무어주었는데,그 알영왕후가 혁거세왕의 훌륭한 내조로 되였다고 한다.알영을 낳은 계룡이 바로 봉황이였으니 봉황은 알영의 모친토템이였다.       알영이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여난 이래 봉황이 조정에 날아드는 일들이 생겼다고 한다.동명왕 10년에 푸른색 봉황이 왕궁에 날아들었고 류리왕 2년에도 봉황이 날아들었다고 한다.      대무신왕 3년에는 외국에서 보내온 붉은 봉황을 받은 일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길상스러운 봉황은 성천자(圣天子)의 탄생과 덕치(德治)세월에만 나타난다고 한다.봉황의 몸은 다섯 가지 특징을 가지고있다고 한다.즉 머리는 "덕"(德)을, 날개는"의"(义)를,등은"례"(礼)를,가슴은 "인"(仁)을,배는 "신"(信)을 각기 상징한다는 것이다.그래서 봉황은 기린,거북,학과 더불어 "사령"(四灵)에 속한다.     고대 동이족의 각별한 조류숭배가 조류의 왕인 봉황을 부각해 냈다.동이족수령이였던 소호(少昊)의 토템이 봉황이였다.소호가 태여나던 날 하늘에서 다섯 마리의 봉황이 날아내렸고 그가 보좌에 오르는 날 또 봉황이 궁에 날아들었다 하니 봉황은 소호씨의 수호신토템이였다.     우리 민족이 생남(生男)을 하면  "망자성룡"(望子成龙),출중한 재목으로 자라도록 기원하여 이름자에 "룡"자를 흔히 썼고,생녀(生女)를 하면 "망녀성봉"(望女成凤),아름답고 현숙하게 자랄것을 소원하는 마음으로 이름자에 "봉"자를 흔히 썼다.민간에서는 지금도 남녀쌍둥이를 일컬어 "룡봉태(龙凤胎)"라고 한다.       그럼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봉황"을 보자.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자신의 어여쁜 채색으로/높은 하늘 꽃구름을 물들이고/그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자신의 유연한 음색으로/대지의 뭇새들을 우짖게 이끈다"       여기에서 시인은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쳐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봉황의 모습과 소리를 묘사하고 있다.기실 봉황은 룡과 마찬가지로 상상의 동물이다. 인간의 아름다운 상상에 의해 그려지는 봉황은 하늘을 수놓는 신령이요 뭇새들을 이끄는 조류의 왕이다.       "봉황새야 봉황새/세인이 우러르는 봉황새/죽실아니면 먹지 않는/샘물아니면 마시지 않는/태평성세아니면 나타나지 않는/오동나무아니면 깃들지 않는/봉황새야 봉황새"       이 시구들이 묘사하는 봉황은  성결한 새이고 태평성세에만 나타나는 신령이다.      봉황은 대나무열매인 죽실(竹实)만 먹고 오동나무에만 깃든다고 한다.오동나무는 진귀한 나무다. 높이 십미터까지 자라는 나무,봄에 보라색꽃을 피우며 그 목재가 가볍고 휘거나 트지 않아 거문고나 장롱의 재료로 쓰인다.그렇게 진귀한 나무에만 깃드는 봉황은 과연 하늘의 도를 깨친 성결한 신령이다.       이 시에서 묘사된 봉황은 천도의 상징이다.   42.비둘기 -평화의 상징          주몽이  동부여왕자들의 박해를 피해 도주할 때 모친 류화는 보리씨를 목구멍에 감춘 비둘기를 아들에게 날려 보낸다.주몽은 그 비둘기를 활로 쏘아 떨구고 목을 갈라 보리씨를 꺼낸후 상처에 물을 뿜어 되살려내여 돌려보냈다.       이 신화에서 비둘기는 곡모신(谷母神)의 사자(使者)로서 주몽의 건국을 도운 수호신토템이 되고 있다.             비둘기는 인류에게 평화의 사신(使臣)으로 인정되여 왔다.비둘기는 무속(巫俗)을 비롯해 여러 종교에서 신의 사자와 평화의 사신으로 인정되는데,그래서 구약성경의 창세기에도 비둘기가 감람가지를 물고 와 홍수를 만났던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안겨준 이야기가 있다.      비둘기는 날개가 아주 억세고 발달해 시속 60킬로미터의 속도로 단번에 1000킬로미터의 거리를 나는데,밤에도 거침없이 날며 절대 길을 오끼지 않는다.고대로부터 사람들은 비둘기의 이런 특성을 리용하여 편지나 소식을 전했다.     비둘기는 원앙새처럼 금슬이 좋은 부부의 상징이기도 하다.비둘기는 암수 한쌍이 한 둥지에 사는데 알을 품는 것도 암수가 번갈아 품는다고 한다.우리 민족에게서 나온 "비둘기장같이 오붓한 살림"이란 말은 바로 그래서 나왔고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의 형용어로 되여있다.        남영전시인의 토템시 "비둘기"를 보기로 하자.       "부름의 넋은/까마득한 그날부터 다신 보금자릴 짓지 않고/까마득한 그날부터 다신 편한 잠 못자봤다/아직도 큰물이 노리기때문에/아직도 큰불이 치솟기때문에/아직도 세상에 피비린 흙비 퍼붓기때문에"        시인은 비둘기를 "부름의 넋"으로 표현하므로써 인간이 당하고 있는 재난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부름의 넋은 목청높이 부른다/날마다/달마다/해마다/그냥 쉼없이 부른다/부르고 부르고 또 부른다/천지간 사람들 화목하라고/세계가 둥글게 어우러지라고"         시인은  "부름의 넋"의 절절한 울음을 통하여 민족의 단합과 세계의 평화와 자연과 인류의 원융(圆融)을 촉구하고 있다.        이 시에서 묘사된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다. /료녕조선문보
154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시인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댓글:  조회:1477  추천:0  2021-05-10
...미얀마 시인... 남지현 기자 입력 2021.05.10      미얀마 군부 정권에 비판적인 시를 써왔던 저항 시인이 경찰에 끌려갔다가 장기가 제거된 채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미얀마 저항 시인 켓 띠(45)가 지난 9일 장기가 도려내진 채 싸늘한 시신이 돼 돌아왔다./이라와디뉴스 로이터통신은 미얀마 시인 켓 띠(45)가 지난 9일(현지 시각) 군경에 끌려가 심문당한 지 하루 만에 장기가 제거된 시신으로 돌아왔다고 10일 보도했다. 켓 띠와 그의 아내는 지난 8일 미얀마 중부 사가잉 지역 쉐보에서 무장 군인과 경찰에 붙잡혔다. 부부는 나란히 끌려가 심문을 당했다. 켓 띠의 부인은 BBC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며 “나도 심문을 당했고, 남편도 마찬가지였다”며 “그들은 남편이 심문 센터에 있다고 했지만 결국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시신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켓 띠의 아내는 9일 오전 군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사가잉으로부터 100㎞ 떨어진 몽유와 지역의 한 병원으로 와 남편을 데려가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남편이 팔이 부러졌거나 다친 정도라고 생각했다”며 “도착해보니 남편은 영안실에 누워 있었고 장기가 모두 제거된 상태였다”고 했다. 병원 측은 “남편의 심장에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지만, 아내는 이 말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망 증명서에 있는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아내는 당초 미얀마 군은 남편의 시신을 매장하려했지만 그녀가 시신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미얀마 인권단체 미얀마정치범지원협회(AAPP)는 “켓 띠가 심문 센터에서 고문을 당하고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 단체는 군부 쿠데타 이후 780명이 군부 무력 진압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켓 띠는 군부 쿠데타 이후 사망한 세 번째 저항 시인이다. 그는 “그들은 머리를 겨누지만, 혁명은 심장에 있단 걸 모른다”라는 문장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켓 띠는 2012년 전업 시인이 되기 위해 엔지니어 일을 그만두고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를 팔아 생계를 이어왔다. 쿠데타가 벌어지고 2주가 지났을 땐 “나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순교자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약골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바보가 되고 싶진 않다. 불의를 지지하고 싶진 않다. 단 1분만 살 수 있다면, 그 1분간 깨끗한 양심으로 살고 싶다”는 시를 썼다. 최근엔 “사람들이 총에 맞고 쓰러지지만 나는 오로지 시로 저항할 수 있을 뿐”이라며 “그러나 나의 목소리가 충분하지 않을 땐 신중히 총을 집어 들어야 한다. 나는 총을 쏠 것이다”라는 시를 통해 심경의 변화를 드러내기도 했다. 앞서 지난 3월엔 켓 띠의 친구였던 시인 크 자윈(39)이 몽유와 지역에서 일어난 시위에 참여했다가 총에 맞아 숨졌다.
1541    시인 최기자/ 소설가 허련순 댓글:  조회:1382  추천:0  2021-05-03
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살아낸 시인 (ZOGLO) 2021년4월16일    - 시인 최기자선생님을 만나다   허련순   그때는 그랬다. 기회만 있으면 최기자선생님을 졸졸 따라 다녔다. 문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작가가 되고 싶었던 철없던 시절이였다. 고중을 졸업하고 귀향하여 신풍촌에 내려왔던 1972년 그해,  나는 대대 문예선전대에서 문자창작을 전담하시는 최기자선생님을 알게 되였다. 당시 그가 창작한 노래“공사벌에 풍년이 왔네”,“풍년 모를 어서 내세”가 연변인민방송국 매주일가로 불리워지면서 전 주 농민들의 애창가곡으로 되였다. 그 이후로 선생님은 신풍대대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였다.     시인 최기자 작가지망생이였던 내가 글쓰는 사람을 마주한 것은 최기자선생님이 처음이였으니 그가 최초의 나의 문학선생이였던 셈이다. 그리고 최기자선생님과 합작으로  재담 와 를  연변문예에 발표하게 되였는데  이는  거의 기적이였다.  당시 나의 상황으로 볼 때 혼자의 힘으로 작품을 내기에는 너무 미숙했기 때문이다. 두 작품 모두  선생님께서 혼자 쓰다싶이 하고 나는 고작 아이디어 몇개 보탠것 뿐인데 선생님은 워낙 스케일이 크고 통이 크신 분이라 아낌없이 옆자리를  내여준 것이다.   신풍이란 곳은 선생님과 나에게 최초로 문학의 열정을 발원하고 유지시켜준 문학의 메카였다.  우리는 사제관계로 몇년을  신풍에 있다가 1976년  대학을 가면서 헤여졌고  그후 선생님은 시와 수필을 쓰시고 나는 소설을 쓰면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였고 다른 공간에서 자신의 문학창작에  열중하면서 같은 시간을 많이 공유하지  못했다. 많은 세월을 한번도 잊은 적은 없지만  잊은 듯이  살아왔다.  늦었지만 이렇게나마 선생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여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누구인가.   선생님은 1947년에 연길에서 태여나 1966년 연변제1고중을 졸업하고 지식청년으로 연집공사에 하향하여 이삼년간 농사일을 하다가 24세에 신풍촌 박씨 총각과 결혼하였다. 이미 칠십이 넘었지만 여전히 소녀처럼 순수하고 흥이 많고  뜨거우신 분이다. 시도 잘 쓰지만 수필이나 소품 등 연극쪽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런데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추고  북이나 새장구도 잘 친다. 그리고 주패나 화투 마작도 잘 놀고 지어 낚시도 잘한다. 낚시시합에서 남자들을 젖히고 일등을 하여  상을  받은 적도 있다. 술도 잘 마시고 돈도 잘써 한량 같지만 비리를 보면 참지 못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베풀 줄 아는 문단의 의리파 왕 언니다.     갓 태여난 아기를 업고 문학쎄미나에 다녔던 열혈 문학녀성이였고 아이 둘을 낳은 후에  대학공부를 한 배짱있는 에너지 메이커였다. 나는 가끔씩 선생님께서 조선시대에 태여났더라면 황진이 못지 않은 절세가인이 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군 했다. 물론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늘 밝고 유쾌하셔서 가슴이 파랗게 멍들고 구들장처럼 새까맣게 타들어갔던 힘든 시간이 있었으리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드물다. 마흔다섯의 젊은 나이에 선생님은 너무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었다. 아프다며 걸어서 병원에 들어갔던 남편이 이틀만에 죽음으로 돌아왔다. 미처 손써볼 새도 없이 무방비상태에서 너무  맥없이 무력하게 죽음을 떠안게 된 것이다. 영원처럼 살것 같았는데 죽음이 이렇게 시시하게 도래할 줄을 미처 몰랐다. 그야말로 에 참담할 뿐이였다.    남편과 함께 남편이 그에게 남겨준 유산은 스물여섯에 청상과부가 된 시어머니와 아직 어섯눈도 뜨지 못한 어린 두 자식이였다. 거짓말 같은 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그는 감히 믿을 수 없었고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여  남편이 입었던 를 지금도 옷장의 깊은 곳에 보관함으로서 그의 존재를 잊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코트 한자락으로 남편의 췌취를 느끼고저 한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해서라도 남편의 죽음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를 일이다.    죽음의 미학에 대한 역설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근원적 공포는 바로 죽음이다. 죽음의 부정을 쓴 아니스트 베커의 주장에 따르면 ‘인생의 의미’라는 가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이 만들어낸 자의식에 불과하다. 그것은 혼신을 다해 다른 사람이 되려는 욕망을 가지게 한다. 이는 살아남기 위한 뇌의 꼼수가 아니면 자아기만일지 모른다.         선생님이 그랬다. 불행하고 슬펐던 자신의 삶을 시에 의존한 채 자신은 완벽한 타인이 되여 자신을 닮은 슬픈 시들을 태연하게 바라보군 하였다. 시가 오히려 그의 진실이였고 그는 그저 시의 피조물일 뿐이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간신히 길게 휘여진 자신의 시간들을 빠져나올 수 있었고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자기 자신을 리해하기 위해 다른 타자를 지어낸다는 행위가 전혀 이상하거나 모순되여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은 가을에 마른 꽃에서 씨를 받듯 슬픔을 시로 담아내면서 빛을  얻어냈다고 말한다. 그에게 시가 있은 것은 다행이였다. 그의 시는  죽음 역시 하나의 생명현상이고 생명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삶의 과정일 뿐이라는 어떤 역설로 읽힌다. 그리하여 죽음은 한낮의 그림자처럼 늘 그의 삶과 동행하고 그의  삶과  밀착되여 함께 자고 함께 깨여나군 하였다. 죽음과 삶이 한 공간에서 함께 공존한 셈이다.    바로 시 는 죽음이란 삶의 한가운데 있다는 역설로서 인간의 실존을 증명해낸 철두철미한 죽음의 미학이다.      차마 티없이 말끔히 버릴수 없어/ 남몰래 살려둔 주인 잃은 코트/ 님의 코트/옷궤 깊은 곳에서/ 이십여년을 자고 있습니다./ 너무 쉽게 췌취가 날아 날것 같아 /무시로 깨워보고 싶지만/ 함부로 건드릴수 없는 코트/ 잠자는 코트는 나를 깨여나라 하고/ 깨여있는 나는 이십여년을 자고있습니다./    잠자는 코트가 살아있는 자를 깨여나라 하고 깨여있는 자가 오히려 자고 있었으니 코트가 산자인지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것인지, 산자와 죽은자의 구별이 없다.  인간의 존재조건인 고독과 죽음의 문제, 삶의 본질에 대한 신랄한 풍자이며 소스라치는 역설이다. 이 시는 시인이 자신의 삶으로 시란 무엇인지를 보여준 대표적 작품이다.     시어머니(왼쪽)와 친정엄마를 모시고~ 선생님은 남편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항상 밝고 씩씩하던 분의 이런 모습에 저으기 놀랬다. 울컥하면서도 한편 낯설고 당황했다. 잊을 만큼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무엇이 여전히 선생님을 이리 서럽게 하는 것일가. 당해보지 못한 사람이  그 마음을 어찌 알랴만  짐작으로 류추해 보았다. 남편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서가 아니라 세월이 지날수록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남편의 그 뜨겁던  온기를 다시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허무했을 것이고  남편의 죽음으로 바뀌여버린  자신의  외롭고 괴로웠던  그 지난 삶이 너무 억울하고 한스러웠을 것이다.  이 먹먹하고 아릿한 낯선 감정에 망설이다가 나도 그예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훔쳤다. 너무 고생하셨구나, 그런 말이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올라왔지만 토설하지 않고 꾹꾹 내리 눌렀다. 오래될수록 잊을 수 없는 이런 슬픔이야말로 문학을 하고 있는 우리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슬픔일 것 같았다.       언젠가는 자식들을 불러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의 를 태우겠다고 선생님은 선언처럼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이제 남편을 옷장에서 영영 떠나보내려고 준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이미 떠나가신 남편의 존재를 자식들에게 더욱 각인시켜 영영 붙잡고 있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죽음이란 결국 쉽게 놓을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우리의 영원한 아쉬움인 것을 선생님을 통하여 나는 더 깊이 절감하였다.     기다림의 미학에 대한 역설    그의 시는 늘 무언가 기다리고 있는듯 아련하다. 그리고 목마름의 갈증과 겨불내나는 안타까움이 있다. 대체 그의 시는 무엇을 기다리며 무엇을 기다려내려고 하는 것일가? 일찍 잃어버린 사랑과 그로하여 채워지지 않는 영원한 결핍이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것일가? 아니면 또다른 사랑이 환수 되기를 기다리는 것일가? 기다림이란 인간 삶의 영원한 본질이다. 세상의 인연을 다 놓으면 기다리는 일도 하지 않게 된다. 삶이란 그렇게 무엇인가 기다리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픔도 잊혀지겠지, 그리고 래일이면 오늘보다 형편이 더 나아지고 행복해지겠지, 그런 기다림으로  우리는 힘들어도 래일을 기다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미래라고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그것들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우리는 결국 매일매일 지나가는 시간속에서 삶과 멀어진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살만하니 죽는다고 애달파한다. 삶 자체가 이처럼 기만적이다. 이 대체 불가능한 기다림이야말로 세월을 거슬릴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역설이다. 이런 역설 때문에 선생님의 은 보는 사람들을 숙연해지게 한다. 그의 이야말로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깊은 성찰 이며  사랑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고 녀성이고 싶은 선생님의 강렬한 의지와 소원이 아닐가 싶다.   2019년  '시향만리'문학상 본상 수상 그의 시에는 남편을 잃은 젊은 녀인의 외로운 기다림이 있는가 하면 손녀를 업고 가마솥뚜껑을 안고 졸면서 며느리를 기다리는 시어머니의 기다림이 있고 기저귀를 바꿔주기를 기다리는 친정어머니의 기다림이 있다. 그리고 죽은자의 코트가 기다리고 있다. 기막힌 일이다. 도대체 죽어서도 기다려야 하는 이들의 기다림은 무엇일가? 영원한 결핍이라고 하면 어떨가? 결핍이란 죽을 때까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은 역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의 문학은 반복되고 그속에서  인간의 력사는  살아남는 것이다.    그래서 우직하게 다시 기다림이란 무엇인지 묻고 싶어진다. 니체의 말을 빈다면 가만히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열매를 기다리는 사람은 씨앗을 심는 것이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즉 기다림이란 다가오지 않는 것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다. 선생님께서 강가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것은 고기를 낚기 위해서만이 아니였다. 확실하다고 믿어오던 것들이 확실치 않는 불안한 존재였음을 알고나서  선생님은 내적인 문을 열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서서히 자신으로 다가가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기다린다는 것은  자아에 의해 왜곡되고 굴절된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는 시간이며 자신의 상처를 다독이는 시간이고  새로운 자신을  찾아떠나는  시간임을 선생님은 시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자유로움의 미학과 역설   플라톤이 지향했던 자유는 각자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이다. 즉 타인의 가치에 휘말리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를 말할 수 있을 때 인간은  능동적일 수 있고 자유롭다.  선생님은 그렇게 사신다. 그래서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의 주장은 기존의 세계에 존재하는 제도나 틀에 묶여있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의 시적 경향은 순수한 전통시도 아니요 절대적인 현대시도 아니다. 그는 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한곳에 머물고자 하지 않는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냥 지나가고 싶어한다. 그런 자유로움이 그의 시와 수필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다른 사람들의 시와 다르다. 운명을 다 삭여낸, 먹걸리나 잘 삭은 감주처럼 달콤새콤하고 소름끼치는 소스라침이 있다. 그리고  바람의 냄새가 난다. 그는 새처럼 멀리 날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는 가벼워지고 싶어한다. 거치장스러운 포장이나 장식따위에 관심이 없다. 그의 시는 녀성의 삶 자체다.     등 시들이 대표적이다. 이것이 그가 추구하는 자유로움의 미학이다.   세상이 아무리 심란하더라도 부평초처럼 떠도는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보다 더 심란한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천기를 루설하듯 시로 수필로 끊임없이 발설해왔다. 거치장스러운 외피는 스스로 실격되고  들리지 않는 침묵의  단단한 설득력이  삶의 처소를 뚫고 불쑥 튀여나오듯 독자들을 강하게 휘여잡는다. 그는 죽음과 존재 사이의 무한한 심연의 바닥을 박박  긁어내여  자신의 삶을 증명해왔다.     모든 삶엔 상처가 있고 아쉬움이 있고 한계가 있고,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도 있다. 완전하지 않은 자기 삶을 드러내는 순간, 남들로부터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최악의 경우 가십거리가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그래서 선생님은 슬픈 내색 없이 그렇게 유쾌하게 사시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슬픔 뒤에 숨지 않았다.  시인은  자신의 삶과 오롯이 대면하는 순간을 겪고 난 이후, 작품의 여기저기서  자신의 아픔을 감추지 않고 보여주었다. 어두웠던 삶의 기억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대면한 그의 글쓰기에는 삶의 무게와 깊이를 담은 진심이 있다.  그리고 살갗을 후벼파는 예리함과  떨림이 있고 소름이 돋는 감동이 있다. 그동안 선생님은 시집 , , 수필집 < 기다림의 아름다움> 등 작품집을 출간하였으며 연변일보해란강문학상, 연변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회 우수상 4차, 연변 “시향만리”문학상, 전국가요콩쿠르상, 한국 대성약품주식회사 “대성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중국조선어문잡지사에서 “공로패”, 연변단풍수필회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선생님께서는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연길시5중에서 근무하다가 중국조선어문잡지사에 전근한 뒤 부주필, 편십으로 일하셨으며 퇴직후 연변대학 조선어한국학 학원에서 10년간 초빙교수로 한국어 강의를 하였다.   혼자의 힘으로 아들딸을 대학생으로 반듯하게 키웠고 남편 없이 시어머니를 9년이나 모셨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자기손으로 시어머니의 염을 다 하였고  손수 명정의 글을 써 올렸다. 무슨 힘으로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었을가? 듣는 사람이 가슴이 떨렸다. 아들 하나만 믿고 청춘과부로 의절하고 외롭게 사시다 그 아들마저 앞세우고  살아있는 것을 죄스럽게 생각하며 고독하게 사시다가 이제 사랑하는 아들을 만나려 가는 시어머니를 곱게 보내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녀인으로서 같은 삶을 살아온 시어머니의 삶을 리해하고 싶었고 그래서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직접 해드리고 싶었다.  그저 그뿐이라고 하였다.    무슨 말을 더 하랴. 선생님은 젊어서도 그랬지만 나이를 드셔도 여전히 사랑이 넘치는 향기로운 녀인이였다. 잡생각으로 마음이 흔들릴 때면 시를 쓰는 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일이라며 다잡군 한다고 하였다. 그 말이 유효하는 시간 동안 선생님은 시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 온 날들로  살아갈 날들에게 꾸준히 새로운 질문을 해갈 것이며 선생님의 무늬를 닮은 시를 한수 한수 적어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선생님에게 봄날 같은 따뜻한 사랑이 찾아오기를 빌면서 이 글을 맺는다.                                  2021. 2. 3  (연길에서) 글 2021년 2호/사진 제공 
1540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6 댓글:  조회:1376  추천:0  2021-03-02
현대와 전통의 결합에서 길 찾다/김학송편6 편집/기자: [ 김청수 ]  [ 길림신문 ] [ 2021-02-24 ]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109](김학송편6) 아래에 저의 창작경위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도문시 곡수라는 곳에서 태여났습니다. 아버지는 소학교 교원이였고 어머니는 농민이였습니다. 어린 시절 쭉 시골에서 살아왔고 1968년도에 중학을 졸업하고 고향마을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7년간 농사일에 종사하면서 당시의 사회환경, 주변환경의 영향으로 문학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사실 처녀작을 발표하기 전까지도 문학경력은 물론이고 문학을 하기 위한 준비조차 제로상태였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1975년도에 빈하중농의 추천을 받아서 장춘야금학교에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질학과에 흥미가 없었어요. 그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앞으로 무얼 해야 하는가? 청춘기에 많이 곤혹스러웠습니다.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훈춘광산에 배치 받아 약 일년간 근무하다가 도문시 상업계통에도 몸을 담갔지만 차례지는 일마다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여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럭저럭 세월만 축내고 있었지만 심적고충과 갈등이 대단했지요. 제가 도문 석유공사에 있을 때 일입니다. 하루는 친구와 같이 업무를 보러 도문시 신농공사에 갔습니다. 시골에 가서 조사를 하고 돌아와서 함께 간 친구와 단둘이 술을 몇잔 나누게 되였어요. 그 때는 술을 마실 줄을 몰랐는데 배갈을 둬잔 마시고나니 알딸딸해났어요. 붕- 뜬 것 같은 기분 속에서 평소에 늘 생각하던 삶에 대한 곤혹, 내가 이렇게 살아도 좋은가 하는 의문이 극대화되더라구요. 그러면서 그 순간에 나도 살아 있다고 소리치고 싶더라구요. 그리하여 노트에다 라고 제목을 쓰고 시골에 갔다 온 경험을, 그 때의 생각을 그대로 쫙 썼습니다.   청년시절의 김학송. 이튿날 친구한테 보여 주니까 문화대혁명 전에 고중을 졸업한 그 친구가 “당신이 이걸 참 잘 썼소. 어디에다 투고를 하오.”라고 말하는 것이였어요. “투고?” 투고라는 개념도 모르는 나는 어디에다 어떻게 투고를 하느냐고 물었어요. 길 건너 진정부 당직실에 가면 《연변문예》라는 잡지가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그래서 가보니 정말《연변문예》가 있었어요. 당직실 경비를 서는 분이 성격이 자상하여 저를 도와 봉투에 주소를 적어 주고 8전짜리 우표까지 붙여주었어요. 그리하여 어설픈 ‘시’를 들고 석현우체국의 길옆에 있는 파란 우체통앞에 마주섰어요. 정작 우체통안에 넣으려고 하니 손이 떨렸어요. 넣을가 말가 하고 한창 고민하다가 “어차피 편집들은 나를 모른다.”고 생각하고 툭 떨궈 넣고 돌아왔어요. 그런데 누가 도왔는지 모르겠지만 《연변문예》(《연변문학》의 전신)에 제가 쓴 글이 실려 저는 몹시 흥분했고 너무 기뻐서 문학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멋대로 시를 막 썼습니다. 운 좋게 저의 시들이 륙속 《연변문예》에 실렸습니다. 1984년도에 추천받아 연변대학 작가반에 가게 되고 4년 본과공부를 마치고 졸업 후 도문시창작실에 몇해 있으면서 시를 부지런히 썼고 가사도 많이 썼습니다. 저의 문학생애에서 전환점이 왔습니다. 어느날 연변작가협회에 배치받은 동창생 한분이 도문에 놀러왔어요. 그분은 저더러 연길에 오면 한국책을 갖다 보라는 것이였어요. 나는 그 때까지 한국책 한권조차 만져 본 적 없었어요. 그래서 하루는 연길에 갔던 걸음에 그 동창분 숙소에서 구석에 차고 넘치는 한국책 가운데서 딱 한권만 뽑아 갖고 돌아왔어요. 집에 가 딱 펼쳐보는 찰나에 책이 너무 좋더라구요. 열심히 두세번 읽어보고 뒤면에 있는 주소로 독후감을 써서 서울에 보냈어요. 그것이 인연이 되여 한국 작가와의 편지래왕이 시작되였지요. 그분이 바로 한국에서 너무나 유명한 리해인시인이였어요. 리해인시인과 함께. 그분은 이름없는 저한테 회답도 보내주고 시집도 보내주고 했어요. 반년 동안 편지거래를 하면서 그분한테서 받기만 하는 것이 미안하여 저의 창작노트에 썼던 시를 모아 육필시집을 만들어 보냈어요. 《김학송시집》이라 해놓고 미래의 언제가는 출판할 것이라는 뜻에서 그랬는지는 모르나 ‘미래출판사’라고 쓰고 제목은 《님을 찾는 비소리》라고 했어요. 지금 봐도 제목 하나는 괜찮은 것 같아요. 리해인시인은 내가 보낸 창작노트를 숙소에 가지고 가 있다가 부산대학에 특강을 온 한국의 근대시단을 대표하는 구상시인에게 보였다고 했어요. 구상시인은 큰 어르신인데 그 어설픈 시를 바쁜 와중에 다 보고 “허허 내용이 참 좋은데…”라고 하더라는 것이였어요. 그리고 서울에 갖고 가서 미래출판사에서 출판하도록 소개를 해줬어요. 그분은 한국시인협회를 대표하는 분이라 이듬해 한국세계시인대회에 저를 초청했어요. 그러면서 극적인 변화가 막 오더라구요. 그 때 리상각선생님이랑 김철시인이랑 모시고 서울로 간 다음 한국의 많은 우수한 시인들을 만났어요. 구상시인을 모시고. 저는 1년 8개월 그 곳에 머물며 전문 시창작만 하였어요. 적당히 현대수법도 배웠지요. 하지만 저는 애초부터 현대수법 쪽으로 넘어가지 않고 전통시에다 현대수법을 접목하는 데로 나아갔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 시의 전통에다 현대수법을, 우리에게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여 나다운 시를 만들 것인가를 많이 고민했지요. 운 좋게 1년 8개월 사이에 10여권의 시집을 련속 출판하고 귀국하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드팀없이 사실주의수법에 바탕을 두고 적당한 상징, 은유, 이미지화를 접목하여 우리 연변식의 전통시, 례컨대 김철, 리상각, 김성휘, 조룡남, 설인선생님들이 개척한 연변식의 시풍을 보완해가지고 저의 체질에 맞게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답게 가꾸겠는가를 많이 연구합니다. 저의 시학관은 “우선 진실해야 한다. 다음 표현이 재미있고 여운이 있어야 한다. 시행은 될수록 짧으면 좋다. 시는 한마디로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같은 관념을 가지고 꾸준히 시를 썼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가꾸는 일이라는 것, 시인은 마음의 순수를 지켜야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저는 실천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거의 30권의 시집을 출판했고 ‘전국소수민족준마상’과 ‘단군문학상’이라는 영예도 저한테 차례졌습니다. 서울 아시아 시인대회에 참가한 김학송(오른쪽 첫사람). 최근에는 연변사랑의 주제로 된 시를 많이 씁니다. 2017년에는 《내사랑 연변》이라는 시화집을 냈습니다. 저의 시 180수에다 (연변)촬영가협회 주석이 사진을 배합하여 번역까지 하여 자치주의 이름으로 출판하였습니다. 주제가 몽땅 민족사랑, 연변사랑입니다. 거기에는 우리 민족의 력사, 문화, 향토, 관광지, 민속이 다 들어갔어요. 그리하여 어느 평론가는 “민족얼의 교향곡”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저는 이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저도 우리 민족을 위하여, 우리 서정시를 위하여 일 같은 일을 좀 했구나 하고 위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여 저는 지금도 이런 시를 쓰고 있습니다. 오라지 않아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70돐이 됩니다. 이번에는 ‘사랑스런 연변’이라는 한가지 주제로 자치주의 70년의 력사, 우리 문화의 우월성, 우리 민족의 정체성, 우리 민족 풍속을 포함하여 150여 수의 시를 썼는데 이미 번역에 교부하였습니다. 저는 마침 연변조선족자치주와 동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상 연변의 력사이자 내가 살아온 력사였고 연변의 아픔이자 나의 아픔이였고 연변의 수난사이자 나의 수난사였고 연변의 미래이자 나의 미래이기에 연변과 나는 한몸이 되고 우리 조선족과 나는 한몸이라는 시각에서 시창작에 임하고 있습니다.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리하여 어느 독자는 “선생님의 시는 조선족들 가운데 랑송이 제일 많이 됩니다. 이는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토록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에 대한 시를 가슴으로, 피로 쓰기 때문에 조선족독자들이 제일 좋아하고 랑송가들이 제일 애송합니다. 때문에 제1차, 2차, 3차 조선족랑송대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랑송했고 우수상, 대상이 모두 김학송의 시에서 나왔지 않습니까.” 이런 내용이 담긴 팬레터를 보내왔어요. 그러나 저의 시는 아직 시작이고 모자라는 것이 많습니다. 다만 소실되여 가고 있는 우리 문화, 우리 서정의 뜰을 우리가 가꾸지 않고 누가 가꾸겠는가 하는 생각이 저를 떠밀어 줄 뿐입니다. 우리 서정시에는 우리만의 얼이 담겨있습니다. 그냥 시가 아닙니다. 우리 서정시는 사실 문학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닙니다. 그냥 문학이라고 보면 안돼요. 그건 나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나를 지키고 우리 글을 지키고 내 령혼을 지키는 작업이예요. 이런 아름다운 본보기를 후손만대에 넘겨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정서적인 기록자입니다. 그 시대 발자취를 시인들은 기록합니다. 제가 가장 경계하고 싫어하는 것은 무병신음하고 난해하게 쓰고 독자들이 리해할 수 없게 쓴 시들입니다. 이 시대에 왜 시가 필요합니까?! 공감대가 극대화되여야 합니다. 누군가 많이 호응해 주고 많은 사람을 위해 시가 리용되여야 합니다. 시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되여야 하고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독자를 위해 복무해야 됩니다. 이런 공능도 같이 지녀야 합니다. 물론 예술성도 있어야 되겠지요. 산악회 멤버들과 함께. 저의 시가운데서 독자들이 비교적 좋아하는 짧은 시 한수로는 1993년도에 쓴 〈사람이 그립다〉는 시인데 이 시는 대학입시에도 출제되였다고 하더군요. 사람의 숲에서 사람이 그립다 도시가 무너지게 밀려드는 사람… 사람… 사람의 숲에서 사람이 그립다 아주 짧은 시입니다. 시장경제의 도래와 함께 인간성이 점점 상실되여 가고 도시가 팽창하는 가운데 문화가 약화되고 우리 언어가 소실되고 우리 가장 귀중한 부분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소박하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정은 사라져가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도시라는 사람의 숲에서 외로움을 느낍니다. 존재의 고독을 느끼고 고립감을 느낍니다. 하기에 〈사람이 그립다〉는 이 시는 한 시대의 생활상에 대한 역설적인 풍속도입니다. 그래서 짧은 몇줄의 시행에다 개혁개방 후 특히 시장경제가 대두한 후에 도시화되면서 나타난 인정의 빈곤, 문화의 빈곤에서 느끼는 단절감, 소외감, 현대인의 곤혹과 정신적 빈곤을 다룬 것입니다. 그밖에도 저는 〈나는 조선민족이다〉는 시를 썼습니다. 이 시는 제가 1983년도에 썼습니다. 그 해에 《도라지》잡지에 실렸고 문창남시인이 내줬는데 ‘도라지문학상’까지 탔어요. 발표된 후 영향력이 컸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에도 소개되였고 1990년도 세계제1회한민족대회에서 랑송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알려지면서 독일, 일본, 카나다, 미국, 한국, 조선 등 여러 나라에 소개되였지요. 저는 그런 줄도 몰랐어요. 그 시가 그렇게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진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러다가 한 때는 잠잠하던 이 시가 몇해전부터 다시 부활하였습니다. 어떻게 부활했는가 하면 길림시에 있는 권영철이라는 조선족랑송가가 이 시를 어떻게 찾아가지고 랑송계정에 올렸습니다. 불과 1년이 안 되여 1만 7000차 방문수가 오르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이였어요. 댓글이 비발치고 하면서 란리가 난 것이였어요. 조선족모임에서 이 시가 랑송되였을 때 서로 부둥켜 안고 울기까지 했대요. 그러니 이 시가 30여년 만에 어느 랑송가가 랑송하면서 부활한 것이였어요. 사랑하는 안해와 딸과 함께 새봄을 맞으며. 권영철씨가 랑송한 다음 연변랑송가협회에서 너도나도 랑송하였어요. 송미자 회장이 랑송한 뒤로 또 방문자수가 1만 2000차 오르면서 방문자가 3만차를 훨씬 넘겼고 계속 인기가 올라가고 있어요. 올해는 랑송가 박인석이 조선족시랑송대회에서 이 시를 랑송하여 대상을 거머쥐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도 때가 되면 부활한다는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였어요. 시도 생명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제가 그 시를 다시 살펴 보니 직설적인 수법으로 썼고 사실 예술수준이 높은 것은 아닙니다. 이미지화도 잘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시의 우점은 진실성입니다. 솔직담백하게 조선민족의 자부심을 아주 솔직하게 썼어요. 진실이 묻어나는 겁니다. 중국의 유명한 시평가 리경택은 어느 평론에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문학의 중심가치는 진실이다.”고 하였습니다. 이건 큰 종소리처럼 우리한테 계발을 줍니다. 〈나는 조선민족이다〉에서 내 마음을 진실하게 표출하였습니다. 그러니까 4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 그 어디를 가나오나 나는 정녕 자랑하고 싶노라 내가 배운 가장 무거운 말로 나는 조선민족이다 … … 조선민족 마음과 마음을 혈맥처럼 이어주는 그 친절한 부름 속에서 넘어지면 달려가 부축하고 싶고 앓으면 약이 되고 싶고 슬프면 꽃다발로 안기고픈 그 마음 그 정성 샘물처럼 말갛고 박꽃처럼 깨끗하고 진달래처럼 붉어라 이런 식으로 풀어나갑니다. 그리고 아래에 가서는 중화의 대가정 속에 살아가는 조선민족만의 긍지, 조선민족만의 특수성, 우리 민족이 버리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 그 모든 것을 담았기에 한국의 연세대 도서관 큰 잡지표지에도 실렸더군요. 마지막 부분을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 가령 내가 이 세상 막끝 이름없는 계곡에서 한오리 연기로 사라진다 하더라도 나는 정녕 잊지를 않으리라 내가 이 세상에서 조선민족으로 살았다는 것을 지금도 광주나 북경에서 큰 대회가 있을 때면 조선족들이 이 시를 랑송한대요. 그런 소문을 제가 많이 듣고 있어요. 시 한수의 선동력, 호소력이 저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어요. 그밖에도 2010년에 쓴 〈혼의 노래〉라는 시가 있습니다. ‘해란강문학상’을 수상한 시인데 그 시가 발표되면서 계정에 올랐고 연변랑송가협회 제1차, 제2차 랑송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랑송가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로 되였어요. 이 시는 고급중학교 열독참고서에도 등재되였습니다. 〈혼의 노래〉의 주제는 우리 조선족의 발자취를 쓴 것입니다. 연변의 과거, 현재, 미래를 쓴 장시로서 호흡이 꽤나 긴 시입니다. 새 천년에 들어서면서 조선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의 하나로 되였고 지금도 랑송가들이 애송하고 적지 않은 시평가들이 조선족 서정시에서의 대표적 시라고 저를 치켜세웁니다. 이럴 때 제가 시를 쓰는 가치를 느끼고 의미를 느낍니다. 앞으로도 독자들의 수요에 부응하여 독자들이 좋아하는 시 또 저의 마음이 닿는 시들을 계속 꾸준히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글 구성/ 김청수 기자 영상 사진/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1539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5 댓글:  조회:1503  추천:0  2021-03-02
감각적 언어파 계렬의 시인들/김학송편5 (ZOGLO) 2021년2월24일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108](김학송편5) 한춘시인은 본명이 림국웅입니다. 그는 흑룡강성 연수현에서 태여났습니다. 흑룡강신문사에서 오래동안 편집사업을 하였고 문예부 주임, 《진달래》부간 책임을 맡고 흑룡강에서 문학신인을 양성하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또 그는 시평가로서 자기 시만 많이 쓴 것이 아니고 시평을 통해서 우리 시단을 (많이 익혔습니다). 시집으로는 《무지개는 뿌리내릴 곳을 찾는다》 등이 있고 시론집도 냈습니다. 시인 한춘. 한춘시인은 1963년도에 벌써 처녀작을 발표하였고 후에 현대시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현대시 곤혼과 선택》이라는 시론집도 내고 특히 20세기 80년대에 불어친 주류문단의 몽롱시를 번역하여 조선족 시단에 소개하였습니다. 또한 자기의 재래식의 시를 검토하고 거기서 차이점을 찾고 새로운 시풍을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하였습니다. 한춘시인의 시가운데 〈겨울살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잠간 살펴보도록 합시다. 밤새도록 클라이네트 독주소리가 귀를 저몄다 갓 퍼진 소문을 쓰러뜨린 도회지 뒤골목의 한 세상 바람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감탕나무의 형상을 썼지만 실지는 인간을 쓴 것입니다. 인간의 실존적인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어요. 비교적 구성도 짜이고 현대시로서는 성공한 시라고 봐야지요. 직설적이지 않고 감탕나무의 겨울살이를 시적 대상물로 삼아 묘하게 인간의 모습으로 상징해 버렸어요. 여기서는 어떤 숨은 뜻을 넌지시 비켜서 내비치는 기교를 발휘했습니다. 한춘시인의 작품집. 이 시뿐만 아니고 이와 류사한 시들을 많이 썼고 특히는 (지난 세기) 70년대 말, 80년대 초 그 무렵에 〈그때 우리는 어찌하여〉라는 시를 썼습니다. 이 시는 상처문학의 계렬에 속해요. 문화대혁명을 반성하고 내가 젊어서 어찌하여 토마토만 붉은 줄을 알고 세상을 온통 붉은 바다로 만들려고 그렇게 날뛰였는가? 이런 개인적인 참회, 시대에 대한 반성을 다루었습니다. 시대감이 있게 아주 설득력 있게 표현을 잘했기 때문에 그 시가 나오면서부터 사람들은 “어머, 한춘이라는 시인이 괜찮네.”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한춘선생님의〈그때 우리는 어찌하여〉라는 시가 너무 생동하여 저의 가슴을 울려주던 인상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세기) 80년대 중기에 들어서면서 이런 직설적인 시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대시에 대한 개척에 몸부림칩니다. 서구적인 시풍을 받아들이고 자기 시를 이미지화시키고 립체적으로 다양성을 기하면서 시의 여운을 남기려고 현대적 수법에 관심을 가집니다. 이분의 주요 공로는 물론 창작에도 있겠지만 《흑룡강신문》을 무대로 하여 많은 신인들을 양성하고 또 주류문단의 앞선 시의 바람을 조선족 문단에 전파시키고 우리 조선족 문단, 특히 시단에서 관념갱신을 하고 새로운 시풍을 개척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제3회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한 김파시인. 다음은 김파시인을 소개하고저 합니다. 김파시인은 흑룡강성 해림현에서 태여났습니다. 이분은 장기간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도문시 문화국 창작실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시집으로는 《흰돛》, 시론집《립체시론》등 많은 책을 냈고 장편서사시도 썼습니다. 김파시인은 (지난 세기) 70년대 초반부터 시를 썼는데 초기에는 아주 향토색이 짙은 사실주의시풍으로 재미있게 시를 썼습니다. 언어감각도 재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세기) 80년대 중반 시각관념에 대한 갱신의 바람이 불자 1986년도부터는 립체시론에 관심을 갖고 립체시론이라는 실험을 시작하였습니다. 립체시론의 주요관점은 한수의 시에서 주제가 다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후 립체시론을 체계화한 론문집까지 냈습니다. 그렇지만 이같은 시론은 이미 프랑스에서도 미래주의 립체파들이 시도한 바가 있었기에 이분이 개척했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고전시가에서도 시의 다의성은 다 있는 것입니다. 시의 암시성, 모호성, 다의성은 시가자체의 생리적인 특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김파선생님이 특별하게 주제의 다의성을 들고 나왔지만 설득력을 얻기에는 역부족이였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립체시보다는 오히려 생활에 발을 붙이고 소박하게 쓴 시 가운데서 좋은 시가 나왔습니다. 례컨대〈욕망〉이라는 시인데 사상성, 예술성이 아주 높아요. 그러니 립체시에 대한 시도는 많이 했어도 좋은 시를 많이 못 쓰고 오히려 전통에 발을 붙이고 감각적으로 재미있게 쓴 시가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욕망〉을 잠간 살펴봅시다. 도심의 어물전에 놓인 숱한 어물들 조기 칼치 붕어 잉어 번쩍이는 갑옷에 죽어서도 뻣뻣한 자존심 헌데 눈 감는 놈은 한놈도 없다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영원히 한끝을 보겠다는 고집스러운 욕망때문이리라 참 재미있게 썼습니다.〈욕망〉의 시적 대상은 어물전에 놓인 고기들입니다. 고기들은 죽어도 눈을 번쩍번쩍 뜨고 죽어요. 그런 현상을 묘하게 집어내가지고 시장경제가 대두하면서 사람들의 욕망이 팽배해지는 그런 인간상이나 사회상을 어물전에 놓인 조기, 칼치, 잉어, 붕어의 죽은 눈에 빗대여 아주 아이러니하게, 유머적으로 시적 암시를 잘한 것입니다. 시인 김파선생의 시집들. “오, 이 시야말로 참된 서정시구나.” 풍격 여하를 떠나 정말 설득력이 있고 여운이 있는 시의 진면모를 잘 보여주었어요. 이 시는 시의 이미지화도 잘 되였고 사상예술성이 아주 높아요. 그리하여 ‘김파’하면 시론은 둘째치고 〈욕망〉부터 떠오릅니다. “아,〈욕망〉을 쓴 시인, 이런 성숙된 시를 쓴 분이구나!” 한마디로 이분은 평생 시의 개혁에 몸부림치고 서양의 상징주의, 초현실주의를 받아들이며 자기 시풍을 개척하느라고 노력했지만 그런 실험시들로는 성공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전통시로 소박하게 썼을 때 좋은 시를 뽑아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김파선생님은 우리 시단에서 시의 관념갱신을 위해 몸부림쳤고 또 좋은 시를 뽑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 또 좋은 시도 남긴 우수한 서정시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 박화선생님을 소개하겠습니다. 박화시인은 1938년도에 출생했고 료녕출판사에서 장기간 문예편집으로 지냈으며 간행물 부주필로도 지낸 분입니다. 박화선생님은 문예편집을 지내면서 많은 시를 창작하였습니다. 1958년도에 벌써 처녀작을 발표하였습니다. 대학시절부터 시를 썼다고 합니다. 시집으로는《푸른 종소리》등 많은 시집을 출판하였습니다. 박화시인. 이분의 가장 큰 특점이 (지난 세기) 80년대 중반으로부터 주지시 실험을 한 것입니다. 초기에는 사실주의기법으로 랑만주의 시를 많이 썼습니다. 박화선생님은 시론도 많이 쓰고 시에 대해 자기 주관과 시관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장백산 폭포 분신쇄골 어떠랴 하얗게 소리치며 하나로 향한 마음 절벽처럼 꿋꿋하게 천지간에 우뚝 섰다 아주 감각적으로 주지적으로 사물을 형상화하였습니다. 표현방법상 폭포가 흐르는듯한 형태로 시의 행을 라렬했습니다. 이분만의 소위의 주지시 실험인 것이지요. 사실 이 시는 프랑스의 미래주의 립체파의 선구자 아폴르네르의 도상시를 모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폴르네르는 도상시로 시의 형태미, 조형미를 구축한 시인입니다. 그는 비가 내린다 하면 언어라렬을 비가 떨어지듯이, 산을 쓸 땐 시어를 산처럼, 강은 강처럼 길게 시어를 배치합니다. 이런 도상시 실험은 아폴르네르가 이미 시도한 것으로서 박화시인의 실험은 어찌하면 일종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초기시에는 좋은 시가 많습니다. 그중 사실주의수법으로 어떤 대상물을 빌어 청춘남녀의 애정심리를 아주 재미있게 표현한 시가 있습니다.〈빨간 들창〉이란 시인데 이 시를 잠간 살펴봅시다. 활짝 열린 창가에 나란히 서서 해빛밝은 세상에 웃음을 날릴 아 그날의 푸른 꿈이 날개 돋히여 나는 야 오늘도 휘바람 분다   노래 좀 멈추고 들어보렴아 들창 열고 방긋 웃어주렴아 절절한 내 마음 불새가 되여 빨간 들창 두드린다 휘파람소리 7.5조의 리듬을 타고 울리는 아름다운 절창입니다. 빨간 들창에 녀자의 그림자가 언뜰언뜰 할 때마다 남자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쿵쾅쿵쾅 뛰놉니다. 총각의 그 마음, 애꿎은 휘파람만 불며 지나가면서 녀자의 그림자가 나타나면 멍하니 보다가고 그림자가 사라지면 휘파람 불며 애간장을 태웁니다. 이런 어떤 특정시대, 순박한 년대의 총각의 마음을 빨간 들창이라는 시적 대상물을 빌어, 그리고 우리 시의 전통가락을 묘하게 리용하여 아주 생동하게 그려냅니다. 박화시인의 시집 《봇나무》. "박화라는 시인은 대단한데. 박화야 말로 시인이구나!”“정말로 생동하고 박진감이 있는 시, 조선족만의 삶의 정취가 묻어나는, 우리에게만 속하는 우리 서정을 뽑아냈구나!” 그래서 저는 한국과 다르고 조선과도 다르고 구라파와도 다른 연변식의 〈빨간 들창〉, 이렇게 칭하고 싶습니다. 이런 시들은 우리가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할 조선족식, 연변식의 시풍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화선생님의 시가운데 또 한줄짜리 시가 있습니다. 이건 주지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시인데 제목이 〈행복〉입니다. 아차 하면 깨여지는 비여있는 유리잔! 아주 쌈박합니다. 감각적인 언어로, 단 한마디의 말로 행복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녹여냈습니다. 피끗 보면 간단한 것 같지만 말속에 말이 있고 철리가 있고 재미있지 않습니까? 박화는 〈빨간 들창〉같은 아름다운 민요풍의 시도 잘 썼지만 이렇게 주지시, 감각시도 삼빡하게 너무 잘 풀어냈구나. 역시 이분은 우수한 시인이야! 이렇게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박화시인은 료녕은 물론 조선족시단에서도 한자리 차지하는, 뚜렷한 족적을 남긴 우수한 서정시인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시인 최룡관선생님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최룡관시인은 1944년도에 태여났습니다. 연변일보사 기자, 문예부 주임, 연변작가협회 부주석을 력임하면서 지금까지 쭉 창작활동을 해온 분입니다. 《반쪽은 다른 얼굴이다》,《금단의 열매》, 《이미지 시론》등 많은 시집과 시론집을 펼쳐냈습니다. 최룡관시인. 최룡관선생님은 (지난 세기) 60년대 초반부터 시를 썼습니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후 자신의 20여년의 시창작을 총화, 반성하면서 우리 시는 때벗이를 해야 하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몸부림치면서 한국이나 구라파의 현대시류파 포스터모더니즘, 초현실주의, 상징주의 기법을 수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쓴 시집 《금단의 열매》 등이 있는데 이런 시들은 실험정신이 넘칩니다. 이분은 서양의 어떤 립체파, 초현실주의에 관심을 갖고 실험시를 많이 쓰는데 정작 가장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시는 오히려 파편문체에서 리탈했을 때, 폭력적인 이미지조합에서 벗어났을 때 완성되군 합니다. 최룡관선생님이 쓴 〈새벽은 살인자〉라는 시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찬란한 별들이 죽어가는 소리를 향기로운 달빛이 죽어가는 소리를 죽어가는 것들이 뿌린 피는 동천을 붉게 물들입니다 워낙 ‘새벽’ 하면 희망적인 이미지이고 황혼하면 쓸쓸한 이미지 아닙니까? 그런데 이분은 교묘하게 전도법을 사용하여 새벽을 아주 피가 물든 살인자라 하고 오히려 황혼을 희망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이미지화를 잘하였습니다. 아주 역설적 기법으로 수준 높게 새벽이라는 이미지, 황혼이라는 이미지를 대조적으로 쓰면서 하나의 특이한 시적 풍경을 그려냈습니다. 이런 시는 상징시이고 수준 높고 성공적인 시라고 저는 봅니다. 시인 최룡관선생의 시집들. 최룡관선생님은 2000년대에 이르러 아폴르네르처럼 형태미 실험도 하고 산처럼 시행을 배치하거나 비줄기처럼 뚝뚝 떨어지게 하는 도상시 실험도 하였습니다. 후에는 하이퍼시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만 그러나 이런 실험시는 사실 공감대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기성시론에 대한 오독이 있고 편면성이 있고 모방성이 있기에 이런 시론은 실천을 통해서도 아직까지는 보편적가치로 검증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한 실험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단에 좋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따분한 시풍에서 해탈하려는 몸부림, 새로운 시를 창출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시단에 대한 기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시단에서는 이러한 그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마디로 〈새벽은 살인자〉와 같은 탁월한 시를 쓴 최룡관시인도 우리 조선족시의 발전사에 있어서 영향력이 있고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우수한 시인 중의 한분이라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세기 50년대부터 개혁개방 전까지는 민요풍에 바탕을 둔 생활을 직설적 화법으로 묘사한 사실주의, 랑만주의 시들이 많았다면 개혁개방 이후 특히 새 천년에 들어선 후에는 주로 인간의 생명체험과 감수를 쓰면서 예술화수준이 높아진 시들이 나타났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탈현실, 탈정치, 탈이데올로기, 비공리의 탐미주의적 시관이 대두하면서 현학적이고 난해한 시들이 많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선배들이 조선민족의 오랜 시가전통에 새로운 예술수법을 적당하게 접목하여 개척한 조선족 서정시의 계보를 이어가며 우리 민족의 정서와 심미관에 맞는 신선하고 아름다운 연변식 시풍을 일궈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최룡관시비 제막식. 문학에서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고 언어기교보다 독자와의 소통과 공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재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문학을 위한 문학보다는 대중을 위한 문학, 사회적 가치가 있는 문학이 되여 우리의 시문학이 민족의 정신적 현주소를 대변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력사 속에 흔적을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고 민족의 정서적 등불이 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면에서 시인들의 사명감과 각성이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다고 생각됩니다. 총적으로 건국초기부터 개혁개방전까지는 시인수자는 적었지만 진정으로 피로 쓴 감동적인 시작들이 많았고 독자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걸작들이 적잖게 출현했습니다. 리욱의〈할아버지 마음〉, 김철의〈지경돌〉,〈꽃방석〉, 임효원의〈길장구〉, 리상각의〈수박밭에서〉, 송정환의〈풀피리〉, 황옥금의 〈고향의 봄〉, 강호혁의 〈나의 노래〉, 황상박의 〈꽃피는 공소부〉등 시들은 해당 시대가 낳은, 브랜드적 가치가 높은 명시들입니다. 이 시기의 시들은 지극히 진실하고 생활적이고 독자친화적이지만 사유의 깊이가 약하고 표현이 단조로운 약점이 있습니다. 개혁개방 후에는 시인수자는 크게 증가되고 작품수량도 많아졌지만 지나치게 기교주의에 편승한 원인인지는 몰라도 진정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시들, 독자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수작이 별로 많지 못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언어의 성숙도나 표현기교는 높아졌지만 난삽하고 난해하고 자연스럽지 못하고 공감대가 약한 것이 단점입니다. 20세기 90년대 두만강반에서 열린 ‘두만강여울소리’ 시가탐구회 기념. 김성휘의 〈흰옷입은 사람아〉,〈시내물〉, 조룡남의 〈옥을 파간 자리〉, 리삼월의 〈꽃병〉,〈해몽〉, 남영전의〈곰〉, 김파의 〈욕망〉, 김동진의 〈온성다리〉, 석화의〈연변1-천지꽃과 장백산〉, 김학송의 〈혼의 노래〉등이 개혁개방 후에 나타난 걸작들입니다. 시간이 시를 선택합니다. 시대의 락인이 찍히지 않은 시는 언어의 거품이 되여 금세 사라지고 맙니다. 현실을 리탈한 시어들은 불통의 함정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20세기 90년대 이후부터 시가 점차 독자와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우리의 시는 시의 가장 큰 본질인 서정성을 잃고 감동성을 잃고 결국 독자마저 잃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시인들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임이 분명합니다. 조선족의 특수한 삶의 환경과 삶의 정서에 바탕을 둔, 시대감이 풍기고 리듬감이 있고 향토색이 짙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서정시를 일컬어 연변식 서정시라고 칭해봅니다. 우리만의 특유의 서정이 후손만대에 전해지고 더 아름답게 꽃펴나기를 두손 모아 기원합니다. 길림신문 글 구성/ 김청수 기자 영상 사진/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1538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4 댓글:  조회:1328  추천:0  2021-03-02
전통적 사실주의 계렬의 시인들/김학송편4 (ZOGLO) 2021년2월22일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107](김학송편4) 강효삼시인은 흑룡강성 출생입니다. 지금도 흑룡강성에 살고 계십니다. 평생 교사로 지냈고 향문화소에서 사업하였고 지금은 은퇴를 하여 자기 창작을 하고 계십니다. 시집 《먼 후날 저 하늘너머》 그리고 동시집도 출간했습니다. 강효삼시인의 시적 개성은 뚜렷합니다. 평생 사실주의기법을 고수했습니다. 지금도 사실주의기법을 기본상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향토냄새가 풍기고 생활에 발을 붙이고 백성들, 서민들의 정감을 리얼하게 드러낸, 설득력이 있는 아름다운 시풍을 개척했습니다. 시인 강효삼. 강효삼시인의 대표적 시 〈오솔길〉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아침에 떠나간 이들이 저녁이면 꼭꼭 돌아왔다 하지만 한번 가곤 다시 돌아오지 않은 사람도 있거니 한번 가곤 안 오시는 누군가를 찾아서 기를 쓰고 령을 넘는 오솔길 가다가 지쳐서 할머니 꼬부랑 허리처럼 꼬여버린 오솔길 이 시를 보게 되면 시골의 오솔길이라는 시적 대상물을 빌어 인생을 쓰고, 사회상을 그려냈습니다. 사람들은 출세하여 대학 가고 군대 가고 하며 고향을 떠나갑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여기서 오솔길은 고향의 상징이자 고향을 지키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상징입니다. ‘오솔길’이라는 이 대상물은 떠난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사람을 찾아서 령을 넘어갑니다. 떠나간 아들 딸들이 돌아오지 않으니까 안타까와서 똑 마치 머리 흰 할머니처럼, 허리 굽은 어머니처럼 령을 넘어가요. 정말 재미있지 않아요? 강효삼 시인은 이런 재미있는 시적형상을 통하여 서정시가 지니는 본질을 가장 아름답게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2000년대에 들어 와 쓴 〈자물통〉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료녕조선문보(료녕신문)》에서 금상까지 탔습니다. 우리 조선족사회가 어느 날부터 한국 가고 연해지구로 뻗어나가면서 리산으로 인해 고향마을은 텅 비고 자물쇠가 빈집을 지킵니다. 자물통이라는 시적 대상물을 빌어 강효삼시인은 시를 재미있게 썼습니다. 자물통이자 고향의 상징이고 고향을 건사하고픈 마음의 은유지요. 그리하여 도적이 와서 막 두드려도 입을 열지 않지요. 기어이 고향을 지킵니다. 그러다가도 바람이 스윽 불면 과거가 그리워 작은 구멍을 통하여 쒹 하고 고향에 대한 사랑노래를 부르지요. 자물쇠를 아주 형상화 잘했습니다. 그래서 자물쇠거나 오솔길을 통하여, 사실주의기법으로 공감대가 있고 설득력이 있는 시들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대표작이 있기 때문에 강효삼은 역시 북방시단의 유명한 시인이 맞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강효삼시인은 물론 이런 저런 조건의 제한으로 많은 시를 쓴 시인은 아니지만 뚜렷한 자기만의 풍격을 갖고 고향에 발을 붙이고 고향에 사시며 고향을 지킵니다. 시인은 몸소 언행일치로 고향사람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고향을 사랑하는 고향의 슬픈 노래를 빚어내고 있어요. 이런 시인들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고향시인이고 우리 조선족 서정시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시인이고 우리가 따라배워야 할 시인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인 김동진. 다음은 김동진시인을 소개하여 드리겠습니다. 김동진시인은 1944년 흑룡강성 녕안시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이분은 흑룡강에서 살다가 연변에 나오시여 훈춘문화국 창작실에서 근무하다가 은퇴를 하였습니다. 김동진시인은 평생 시를 사랑하였고 지금도 계속 쓰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시인입니다. 많은 시집을 남긴 다산 시인입니다. 시집도 수십권 냈고 가사도 많이 쓰셨습니다. 윤행성가수가 부른 노래 〈눈이 내리네〉라는 유명한 가요가 있지요. 이분이 작사했습니다. 요즘도 미니수필도 많이 쓰고 계십니다. 아주 재간있는 시인입니다. 김동진시인의 시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이 무엇인가 하면 민족사랑입니다. 주제도 대개 민족애, 고향애를 씁니다.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 이분도 지금까지도 고향을 지키며 사시는 분 아닙니까. 언행일치입니다. 그러면서 연변에 대한 사랑, 조선족에 대한 사랑을 자기 시를 통해 쏟아내고 있습니다. 2003년에 쓴 시 〈영원, 조상의 산〉을 살펴봅시다. 인간이 만든 그 많은 영원이 비일비재로 무너져 내릴 때 누구냐고 물어볼 것도 없이 누구라고 소개할 것도 없이 나는 당신의 성스러운 령혼에서 영원이라는 존재를 보았습니다 하늘 숨결의 영원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귀중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때 시인은 뭘 보았는가. 모든 것의 가치가 무너지고 우리가 존중하던 모든것, 귀중한 사랑도 무너지고 고향도 무너지고 막 흩어져가고 민족이 흔들릴 때 동진시인은 성스러운 장백산에 가서 민족의 얼을 본 것이예요. 우리의 영원을 본거예요. 우리 공동체가 흔들리는 모습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는거예요. 그래도 나는 나의 령혼을 지키고 우리 존엄을 지키겠다는 이런 의지를 은근히 내비칩니다. 지금까지도 계속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시를 통해 표출하고 있습니다.     시인 김동진선생의 시집들. 또 김동진시인이 2003년도에 쓴 〈온성다리〉라는 시를 보겠습니다. 디아스포라로서의 조선족의 실존을, 그 아픔을 잘 드러냅니다. 온성다리는 끊어진 다리 끊어진 다리 아래로 끓어지지 않은 두만강이 흐르고 있다 온성다리는 끊어진 다리 성한 다리로는 찾아볼 수 없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풍경이 좋다 온성다리를 보면서 우리 민족의 력사를 보고 미래를 보고 현실적인 아픔을 봤어요. 역설적인 기법이지요. 끊어진 다리를 통하여 아주 간접적으로 시인의 감정을, 끊어진 다리밑으로 끊어지지 않은 두만강이 흐르는 것으로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존, 영원, 그 다음 우리 민족의 막을 수 없는 미래, 이것을 환기시키면서 시상을 점진적으로 승화시켜 나아가고 있는거예요. 김동진시인의 시에서 가장 귀중한 부분이 바로 민족을 사랑하는 확고한 시정신입니다. 시에서는 어떻게 말했는가 보다는 무엇을 말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이분은 확고부동하게 흔들림이 없이 민족주제의 시, 민족애, 고향애를 쓰고 있습니다. 계속 지금까지도 하나의 시맥으로 흐릅니다. “김동진시인은 정말로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서정을 풀어내는구나. 그렇기 때문에 역시 김동진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한마디로 김동진시인은 우리 민족과 우리 민족의 시를 생명처럼 사랑하는, 조선족서정시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빼여난 서정시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습니다. 시인 석화. 계속하여 석화시인을 소개하겠습니다. 석화시인은 비교적 나이가 젊은 편입니다. 1958년도에 출생하였고 연변대학을 졸업한 후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연변문학》잡지사에서, 연변인민출판사에서 근무하였고 지금도 계속 시를 쓰고 있습니다. 석화시인은 가사도 많이 쓰셨는데 이분의 시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31수로 되는 〈연변〉이라는 련작시가 있습니다. 짧막짧막한 시를 련속 쓴 장편련작입니다. 이걸 통하여 조선족의 정체성을 표현했고 현실적인 우환의식도 드러냈고 다양한 각도로 조선족의 실존에 대해 투시합니다. 그래서 비교적 (강한)설득력을 얻고 많은 사람들이 공인합니다. 여기서 잠간 〈연변〉이라는 련작시의 머리시 〈천지꽃과 장백산〉을 살펴봅시다. 이른 봄이면 진달래가 천지꽃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피여나는 곳이다 사래긴 밭을 갈면 가끔씩 오랜 옛말이 기와쪼각에 묻어나오고 룡두레우물가에 키 높은 버드나무가 늘 푸르다 (중략) 장백산 이마가 높고 두만강 천리를 흘러 내가 지금 자랑스러운 여기가 연변이다 1련에서는 과거를 말하고 2련에서는 현재를 말했고 3련에서는 로인과 아이를 등장시키면서 미래를 말합니다. 짧은 한수의 시에다 연변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응축시켜 놓았습니다. 그래서 난해하지도 않고 비교적 설득력이 있게 디아스포라로서의 조선족의, 연변의 현존을 한수의 시에 함축해 놓았습니다. 보다 싶이 비교적 이미지화가 잘된 재미있는 서정시입니다. 시인 석화선생의 작품집. 그리고 또 〈기적소리와 바람〉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연변 련작시의 두번째입니다. 아주 유머감각을 갖고 시를 재미있게 쓰고 있습니다. 기차도 여기 와서는 조선말로 붕 한족말로 우 기적 울고 지나가는 바람도 한족바람은 펑 불고 조선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바람 분다 …… 아주 유머스럽게 재미있게 쓰지 않았습니까. 바람이거나 기적소리를 통하여 한족과 조선족이 오손도손 살아가는 특이한 풍속도를 그려냈습니다. 조선족의 실존에 대해 바람과 기적소리, 장백산을 빌어 아주 유머러스하게 재미있게 그렸습니다. 이런 시는 공감대가 큽니다. 이런 시가 석화를 석화답게 만들고 석화시의 문학적 품위를 높혔을 뿐만 아니라 우리 조선족 전체 문학의 내용을 보충하고 풍부히 하는데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변련작 31수, 석화는 역시 내용면에서 뚜렷하게 자기 주관이 있고 또 대표작도 있기 때문에 조선족시문학의 력사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는 우수한 서정시인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시인 김응준. 다음은 김응준시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분은 1934년 훈춘시 밀강향에서 출생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교사로 근무하다가 훈춘시외사사무실에 계셨고 후에는 연변인민출판사에 전근하여 장기간 문예부 편집을 하면서 연변시인협회도 창설하고 후배양성에 진력하는 한편 많은 시를 창작하였습니다. 김응준시인은 특히 다산시인으로서 생전에 시집 20여부를 남겼습니다. 그의 시집으로 보면 《김응준시선집》도 있고 그 밖에 근자에는 자서전적 장편서사시도 한권 출판하였습니다. 김응준 시인의 시에서 사랑시가 주종을 이룹니다. 어쩌면 사랑시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랑 시집을 냈습니다. “사랑은 이승의 천국, 죽음의 바다도 건네주는 천국이다” 이렇게 사랑을 극찬했습니다. 이는 이분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1984년도에 〈원앙침〉이라는 시를 씁니다. 이것이 《연변문학》에 발표됩니다. 여러 수로 구성된 시초인데 〈원앙침〉은 그중의 하나입니다. 아주 잉꼬부부인데 돌연히 조강지처를 잃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습니까. 님을 그리는 마음을 〈원앙침〉이라는 시에 담아 아주 절실하고 진실하게 잘 썼습니다. 시인 김응준선생의 시집들. 김응준시인은 80년대 중반에〈중년의 노래〉라는 장시를 썼습니다. 자기의 경력을 썼어요. 50세, 60세 중년의 솔직한 감회를 직설적으로 쓴 시입니다. 그렇지만 내용이 진실하고 폭이 넓고 그 때 시점에서 보면 시가 무게가 있고 아주 장엄합니다. 과거의 어려운 정치질곡의 시대를 살아온 그 년대 사람들의 공동한 마음을 〈중년의 노래〉라는 시에 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대가 크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였습니다. 그것은 개인경력을 벗어난 그 시대를 살아온 모든 사람들의 공동의 정감이였습니다. 개인의 감수를 공동의 정감으로 승화시켜 공명을 얻는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김응준시인의 시에서는 〈령을 넘으며〉,〈중년의 노래〉,〈사랑의 애가〉등을 통해 가장 김응준다운 면모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후기에는 장편서사시 〈희비의 쌍곡선〉이라는 대작도 쓰셨습니다. 그러나 이분의 시인적 능력을 가장 잘 보여준 시로는 초기에 발표한 〈령을 넘으며〉, 중기에 발표한 〈중년의 노래〉입니다. 연변시인협회를 창립한 김응준선생(왼쪽 두번째). 시 〈령을 넘으며〉는 50년대 초반에 쓴 시인데요. 시에서는 참군하는 젊은 병사가 마을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고향의 령을 넘는 장면을 그려냈습니다. 초기시인데, 그 장면을 아주 리얼하게 재미있게 그렸습니다. 한폭의 그림 같아요. 이 시는 청년 김응준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그만큼 시가 공감대가 있고 아름답고 서정미가 있습니다. 조금도 거짓이 없어요.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냅니다. 이듬해 작가협회 상까지 받았습니다. 이 때로부터 청년 김응준이가 시단에 알려지고 이분을 시인답게 한 서정시가 탄생합니다. 지금 봐도 가장 시인다운 면모를 읽을 수가 있는 시가 오히려 초기시입니다. 김응준선생님은 시창작은 물론 시인협회를 꾸리며 시인 발굴에 힘썼고 연변서정시를 발전시켜 나아가는데 뚜렷한 공헌을 하였고 큰 발자국을 남긴 우수한 서정시인 중의 한분이였습니다. 길림신문 글 구성/ 김청수 기자 영상 사진/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1537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3 댓글:  조회:1554  추천:0  2021-03-02
순수시와 랑만시 계렬의 시인들/김학송편3 (ZOGLO) 2021년2월22일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106](김학송편3) 송정환시인은 1937년에 연변의 개산툰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957년에 벌써 처녀작을 냈습니다. 그는 료녕대학 력사학부를 졸업하고 길림성사회과학원에서 근무하셨고 《풀피리》등 많은 시집을 남겼는가 하면 력사연구에 대한 책도 10권 냈습니다. 이분한테는 1978년에 쓴〈원혼이 된 시인에게〉라는 시가 있습니다. 1976년, ‘4인방’이 거꾸러진 후에 쓴 시입니다. 문화대혁명시기에 억울하게 죽은 시인도 있지 않습니까. 이걸 통해서 ‘4인방’의 죄악을 성토했습니다. 중국에서 말하는 상처문학에 속하는 시입니다. 그러니 (이 작품은) 우리 연변에서 상처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입니다. 시인 송정환. 그리고 1962년에 쓴 〈밤차〉라는 시가 있습니다. 지금 봐도 이 시는 아주 잘 쓴 시입니다. 밤차를 빌어서 시인이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달한 시입니다. 이〈밤차〉의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 오 밤차여 밤차 너는 이 밤도 천리길 단숨에 뛰여 가려니 고향에 부치노라 이 아들의 심정을 내 이렇게 멀리 와 있음도 다름 아닌 고향을 위해서라고 이렇게 고향을 사랑하는 아들의 심정을 정말 잘 드러냈습니다. 아주 절박하며 진실감이 넘칩니다. 인간의 내심을 아름답게 그려냈습니다. 문화대혁명전인 1962년에 이렇게 진솔하게 내심을 표출한 시는 많지 않아요. 그런데 〈밤차〉를 보게 되면 밤차라는 시적 상관물에 직접 시인의 개인감수를 솔직하게 얹었습니다. 진정성과 아름다움을 얻고 시적 률동감이 넘쳐흘러 마치 한폭의 그림과도 같습니다. 이분이 1979년에 지은 〈풀피리〉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를 저는 아주 대단히 높이 평가합니다. 어찌 보면 연변식 서정시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의 일부만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밭머리에 누워서 잔디밭에 누워서 잘도 부는구나 저총각 풀피리 잘 분다고 손벽치는 총각들 더 불라고 소리치는 처녀들   오늘 따라 피리 피리 풀피리 부는 사람 듣는 사람 풀피리 총각은 부나니 풀피리 노래 한곡 시인은 쓰나니 풀피리 시 한수   아 노래 한곡 시 한수 추억의 흰돛배 가슴에 떠있네 송정환시인의 작품집. 송정환시인은 풀피리를 부는 총각을 보고 자기의 잃어버린 사랑을 추억하며 애잔하게 내심을 토로합니다. 여기엔 가장 민족적이고 가장 향토적이고 가장 우리만의 서정이 담겨있습니다. “풀밭에 누워서 잔디밭에 누워서 /잘도 부는구나 저총각 풀피리” 민요풍을 타고 벽계수 흐르듯이 아름답게 흘러갑니다. 그 시절에는 처녀총각들이 향촌에 운집하고 문화가 꽃펴나고 우리 민족 공동체가 번영할 때입니다. 정말 아름답게도 시골에 우리의 모든 것이 다 있었습니다. 우리의 풍속, 민속, 전설, 사랑 모두가 오롯하게 다 남아있었어요. 그때야말로 우리 조선족의 삶의 가장 눈부신 전성기입니다. 지금도 그립지요? 이럴 때 이분이 생활의 어떤 한 단면을,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감회를 풀피리 부는 총각한테 기탁해 자기의 정서를 너무 솔직하게, 너무 아름답게 드러냈습니다. 저는 이 시가 사실은 연변식 서정시에서 최고 걸작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높게 봐도 결코 과분하지 않지요. 한마디로 송정환시인은 〈밤차〉거나〈풀피리〉를 통해서 뛰여난 서정시인임을 보여주었고 우리 문학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다음은 리상각시인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이분은 1936년에 한국 강원도에서 출생했습니다. 1938년,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중국의 동북으로 이주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 《연변문학》 총편집을 지냈고 연변작가협회 부주석을 지내면서 연변의 시문학 발전을 위해 큰 공헌을 합니다. 시인 리상각. 1956년에 쓴 〈수박밭에서〉라는 시는 발표되자마자 인기를 얻었고 번역되여 《인민문학》에 실렸습니다. 이 시는 수박밭에서 펼쳐지는 정겨운 스토리를 통해서 인간의 사랑심리를 아름답게 표출한 시입니다. 이 시를 조금만 살펴봅시다. 밭머리 오솔길을 천천히 에돌면서 내 조용히 나직이 사랑의 노래 불렀네 그러나 처녀는 보고도 못 본척 가볍게 돌아앉아 수박만 튕기네 저의 아름다움을 뽑내는 셈이지 시원 슬슬 달콤한 수박이 무척 좋은지 속으로 붉게 익은 수박은 잘도 고른다만 붉게 붉게 타번지는 내 마음은 몰라주네 수박밭에서 수박을 고르는 처녀의 뒤모습을 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 처녀는 수박의 향기는 좋아하는데 남자의 향기는 느끼지 못하는거예요. 그래서 그 안타까움, 청춘남녀의 야릇한 사랑의 마음을 수박밭과 수박이라는 대상물을 빌어서 아주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그 때 그 시절의 시대상을 보는듯 하지 않습니까. 그 시대는 아주 순박하고 희망적인 시대입니다. 아주 정직한 시대입니다. 어디 가나 웃음이 넘치고 어디 가나 서로 도와주는 모습이였습니다. 전야에는 오곡백과 무르익고, 마을에는 문화가 꽃펴나는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아름다운 사회환경에서 수박밭은 그중에서도 더 아름다운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처녀가 등장할 뿐만 아니라 먹기 좋은 수박이 또 등장합니다. 색갈도 곱고 모양도 고운 수박입니다. 청춘남녀의 사랑심리를 수박밭이라는 특정한 대상물에 이입시켜 그 정서를 간접적으로 묘하게, 아름답게 표출합니다. 민요풍의 아름다운 정서를 타고 시심이 나래를 펼칩니다. 그때 처녀작이나 다름없는 이 시는 시인의 천재성을 드러냈습니다. 지금 봐도 이 시는 우리 조선족의 전체 시중에서 가장 생명력이 있고 가장 아름다운 연변시의 하나입니다. 누가 뭐래도 저는 그렇게 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생활화폭이 진실하고 그림 같고 공감대가 극대화되였습니다. 공감대를 어느만큼 극대화시켰는가에 따라, 시대상을 어느만큼 담았는가에 따라 시의 가치성, 예술적 함금량이 결정됩니다. 기법이 새롭다고 하여 시의 질감이 높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시인 리상각선생의 시전집. 〈수박밭에서〉 이 시는 리상각시인의 시재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연변시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습니다. 후기에 와서 〈파도〉라는 시를 씁니다. 이 시는 더 원숙한 경지를 보여줍니다. 물론 초기 시가 장점이 있는 반면에 표현수법이 단순하여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약점과 우점이 때론 공존해요. 그런 풍격이 약점이자 우점인 경우가 많아요. 대립통일물로서의 어떤 풍격을 좋게 보면 좋고 또 약점도 나름대로 있는거예요. 〈수박밭에서〉는 장면묘사를 통하여 자기의 정서를 직설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파도〉라는 시에서는 파도라는 대상물을 빌어가지고 거기에다 자기 정서를 기탁합니다. 예술수법에서 진화해 좀 다양해졌습니다. 마지막 부분을 봅시다. …… 소리 소리 웨친 뒤 남는 게 뭐던가 내 삶의 파도여 가련한 발자취여 오늘도 만들고 마스고 솟구치다 무너진다 “파도가 와와 하고 벼랑을 치고 무너졌다가 일어서고”, 이를 통해 인생의 역경, 큰 수난을 암시한 겁니다. 그걸 자기 인생에 비유한 겁니다.“내 인생의 파도여/가련한 발자취여/오늘도 만들고 마스고/솟구치다 무너진다”하지 않아요! 정말 재미있게 파도라는 대상물에 기대여 시인의 깊이 있는 생각, 느낌과 감수를 아주 형상적으로 표출한 수작입니다. 이렇게 절묘할 수가 없습니다. 이분은 여기서 〈수박밭에서〉보다도 기량이 성숙된 것이 알립니다. (20세기) 80년대 초까지는 단순한 시들, 아름다운 민요풍의 시를 많이 썼습니다. (20세기) 90년대 초부터는 시조도 많이 쓰고 예술적으로 이미지화한 시를 많이 썼습니다. 리상각시인은 〈수박밭에서〉,〈파도〉,〈봄비〉,〈두루미〉이런 시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연변시를 가장 많이 쓴 시인중의 한분입니다. 우선 향토적이고 소박하고 음악적 리듬감이 있고 그러면서 여운이 있고 해독하기 쉽고 생활냄새가 물씬 풍기기 때문에 독자들이 좋아합니다. 한폭의 그림 같이 아름다워요. 이것이 연변을 대표하는 연변식 서정시의 모델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계승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한마디로 리상각시인은 우리 중국조선족의 대표적 서정시인의 한분이였고 많은 우수한 작품을 창작해 우리 연변의 서정시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고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뛰여난 시인이였습니다. 시인 조룡남선생. 다음 조룡남시인을 소개해 올립니다. 조룡남시인은 1935년에 훈춘에서 출생했습니다. 1951년에 일찌기 처녀작을 발표합니다. 이분은 아주 신동에 가까와요. 연변사범학교에 서 있는 시비에 새겨진〈반디불〉, 이 동시는 17세에 사범학교를 다닐 때 썼다고 합니다. 이분은 시집 《그 언덕에 묻고 온 이름》, 《그리며 사는 마음》 이런 시집들을 여러부 남겼습니다. 1957년에 젊은 나이에 우파로 지목되여 가지고 20여년간 추방생활을 합니다. 인간의 권리, 창작의 권리를 다 박탈당하고 20여년 옥살이, 정배살이를 하다가 1979년에 뒤늦게야 풀려나옵니다. 후에 모든 루명을 벗고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장기간 문예편집으로 근무하면서 창작의 붓대를 다시 들고 좋은 시를 많이 씁니다. 조룡남시인은 생활토대가 있습니다. 20여년간 압제를 받고 청춘을 잃었기 때문에 그동안 억눌렸던 령감이 일시에 폭발합니다. 자기의 아픔, 청춘을 잃은 부분이 너무 아쉬워서 시로 그 에너지를 강렬하게 뿜어냅니다. 조룡남시인의 시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시의 하나가 〈해빙기의 강변에서〉입니다. 이 시는 시대적인 주소가 뚜렷합니다. 금방 ‘4인방’이 분쇄되고 시인이 1979년에 풀려나온 그 때에 썼기에 제목을〈해빙기의 강변에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시대적인 주소와 락인이 뚜렷합니다. 아주 격정이 넘치고 서정이 넘칩니다. 진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가 나온 다음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억울한 루명을 쓰고 20여년간 수난을 겪다가 풀려난 시각의 시인의 독득한 감수를 ‘해빙기의 강’이라는 시적 상관물에 기대여 거침없이 토로하고 있습니다.이 시의 마무리 부분만 잠깐 살펴봅시다. 나는 안다 풀려내리는 해빙기의 강아 너는 정녕 반짝이는 무수한 눈물방울! 지금 내 가슴속에 흘러들어 가슴벽 세차게 때리며 너는 우는구나 강아 너는 웃는구나 강아! 이 시는 감정이 진실하고 자연스럽고 격정이 파도칩니다. 펜이 아닌 쓰디쓴 눈물과 생명의 뜨거운 피로 쓴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옥을 파간 자리〉도 대표작의 하나입니다. 내 가슴에는 웅뎅이 하나 그것은 오래전에 옥을 파간 자리 오랜 세월이 흘러갔건만 오늘도 웅뎅이엔 허연 소금 돋치여 마를 줄 모르는 비물이 눈물이 고여있다 1986년에 지은 이 시는 흘러간 수난의 력사를 읊조린 상처문학에 속하는 시입니다. 시인은 상징과 이미지 수법으로 자기의 잃어버린 청춘을 옥을 파간 자리로 비유하고 아물 수 없는 상처의 아픔을 깊이있게 파헤쳤습니다. 감정이 진실하고 비유가 생동하고 여운도 있고 이미지화가 잘된 우수한 시편입니다. 시인 조룡남선생의 작품집. 〈옥을 파간 자리〉,〈꿀벌이의 죽음〉,〈황소〉등 상처문학 계렬의 시들이 조룡남시인을 저명한 시인의 반렬에 올려 놓았습니다. 역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문학의 중심가치는 진실이다”라고 한 중국당대 시평가 리경택의 말이 아주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조룡남시인에게는〈눈물의 시인〉이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자기가 당한 상처, 아픔을 시로 토해냅니다. 정말로 피로 시를 쓰고 눈물로 시를 적었습니다. 그러기에 눈물의 시고 그 눈물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주었어요. 그래서 이분이 쓴〈꿀벌의 죽음〉,〈황소〉,〈해빙기의 강변〉, 〈두만강〉이런 시들은 참으로 격정이 넘치고 진실감이 넘치고 아주 격동적입니다. 청춘을 잃은 끊없는 아픔에 대한 그걸 시로 토해냅니다. 그리하여 우리 시단에서 상처문학의 또 다른 면모를 남겼습니다. 대개는 아픔을 썼기에 상처문학의 계렬에 속합니다. 그리고 서정시로서도 랑만주의 계렬, 사실주의 수법에 속합니다. 그렇게 진실하고 아름답고 조룡남다운, 피와 눈물로 쓴 시로 우리 시를 풍부하게 했고 우리 시단의 황금기를 아름답게 장식한 분입니다. 그래서 조룡남시인도 우리 시문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중요한 시인중의 한분입니다. 이번에는 리삼월선생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리삼월선생은 1933년에 장춘시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이분은 항미원조전쟁에도 참가한 분입니다. 시집 《황금가을》,《두사람의 풍경》,《리삼월 작품집》등 많은 시집을 남겼습니다. 현실생활에서 받아안은 주관적 감수를 아주 솔직하게 재미있게 쓴 사실주의계렬의 시를 초기에는 많이 창작하셨습니다.  시인 리삼월. 그런데 중기와 후기에는 시의 패턴이 확 바뀝니다. 이분은 또 할빈에서 《송화강》잡지사 주필을 지내면서 많은 후학들을 양성했습니다. 후기 시들은 아주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어떤 쪽으로 가닥을 잡는가 하면 아주 리삼월식으로 단순하면서도 이미지화시켜 사물을 오묘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개척합니다. 그 시풍은 오직 리삼월에게만 있는 그런 시풍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잠간 〈꽃병〉이라는 시를 살펴봅시다. 꽃병으로 생겨서 지금까지 명색이 꽃병일 뿐 그 꽃병에는 아름다운 꽃이라곤 꽂혀 본 적이 별로 없다 아무리 고운 꽃을 꽂는다 해도 꽃병은 크게 손색이 간다 여기서는 아주 묘하게 꽃병이라는 대상물을 빌어서 모종 사회현상을 암시, 풍자한 것입니다. 사회에는 명분과 실리가 모순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 사람은 말은 화려한데, 우뢰처럼 소문은 큰데 하는 일은 별로 없어요. 빈 통이 꽝꽝 울리지 않습니까. 꽃병이라는 대상물을 빌어 개혁개방 후에 나타난 실질보다 명분을 중요시하는 이런 현상을 꼬집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꽃병〉은 대단한 사회 암시적 기능을 지닙니다. 꽃병을 빌어서 어떤 허위를, 인간적인 위선, 실속없는 명분 이런 것들을 폭로한 시입니다. 이 시는 단순한 영물시를 뛰여넘어 아주 잘된 이미지시입니다. 이런 시는 사실 우리 시에서 나타난 이미지화 수준이 가장 높은 시중의 하나입니다. 담백하면서도 아주 예술화가 고도로 잘된 시입니다. 시인 리삼월선생의 시집들. 또 2000년대에 쓴 〈해몽〉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해몽〉을 잠간 살펴봅시다. 세상밖으로 새여나온 꿈은 나비가 되여 훨훨 나는데 나비의 날개에 적힌 꿈을 어떻게 해독할지 몰라 따라갈가 말가 바장이는 사이에 나비는 날아가고 나비 없는 벌에 나 홀로 남는다 사실 나비를 쓴 것이 아니라 어떤 허상을 쫓아가다가, 어떤 사랑을 쫓아가다가 헛탕을 치고마는 인간의 실존적인 고독, 이걸 표출한 거예요. 이 시에서는 나비의 어여쁜 형상을 빌어서 사랑의 본질에 다가선 생동한 풍경을 엮어냈습니다. 사랑의 대상은 서정적 주인공이 망설이는 사이에 훨훨 도망칩니다. 나 홀로 남아 빈 하늘만 멍하니 바라봅니다. 인간은 실존에서 만만치 않은 현실의 벽에 부딪쳐 한숨만 폴폴 쉬군 하지요. 그래서 이 사람은 외로움에 빠지고 고뇌에 빠집니다. 존재의 어떤 상처나 곤혹을 아주 이미지적으로 잘 다룬 우수한 시입니다. 이 〈해몽〉같은 시는 짧고도 여운이 깊고 시화가 잘 되였기 때문에 우리 조선족 서정시(수준)를 한단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시입니다. 리삼월시인은 선비처럼 살았고 명예도 화려하지 못했습니다. 시집도 많이 출간하지 못했고 큰상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번에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대단히 시다운 시를 남기셨구나!”하는 것입니다. 우리 후배들이 깊이 연구해야 하고 따라배울 것이 너무 많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길림신문 글 구성/ 김청수 기자 영상 사진/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1536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2 댓글:  조회:1648  추천:0  2021-03-02
서정시 탐구의 선구자들/김학송편2 (ZOGLO) 2021년2월20일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105](김학송편 2) 임효원선생님은 조선 함경북도 출생입니다. 여러 신문사에 계시다가 《연변문학》 주필도 지냈고 연변작가협회 주석도 력임한 분입니다. 그는 1945년도에 처녀작을 발표합니다. 시인 임효원선생. 시집 《진달래》, 《어머니 품이여》 등을 펴냅니다. 이 분의 초기 시 〈이 총에 총을 주소〉는 조선전쟁시기 작품입니다. 그리고 1956년도에 쓴 시〈길장구〉가 아주 유명합니다. 지금 봐도 대단한 시입니다. 한평생 이름없이 살아도 좋다 넓은 땅 지심 깊이 내 뜨거운 량심 묻었노라 돌이 타면 삼복이지 풍설인들 두려울가 고난을 겪은 대지여, 내 넋이여 생활은 언제나 무성하여 가리 〈길장구〉를 쓰면서 인간을 그려낸 것입니다. 고난을 겪으며 대지에 충성하는 인간상을 그렸습니다. 임효원시인의 시는 비교적 간결하면서 선이 굵고 사물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많이 끌어냅니다. “한평생 이름없이 살아도 좋다” 길장구는 항상 길에서 남에게 짓밟힙니다. 자연의 작은 미물인 길장구는 여기서 인간의 어떤 대명사입니다. ‘길장구’라는 대상물을 통해 인간의 어떤 굳은 신념, 역경에 굴하지 않는 꿋꿋한 정신, 거기서 생활의 희망감을 도출해낸 것입니다. 이런 시는 객관적 상관물을 빌어서 시인의 내면정서를 토로한, 지금의 시단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해방 후 중국조선족이 빚어낸 가장 우수한 서정시의 하나입니다. 임효원선생님은 후기에 와서 〈아, 오월은 노랑저고리〉라는 시를 썼습니다. 남국에서 태여난 노랑저고리 만리길 눈석이에 울면서 오던 너    검은 땅 넓은 품이 하도나 좋아서 머리 얹고 살련다던 노랑 저고리   마음씨 부드러운  노랑저고리 산과 들에 수림에 초록을 심던 너   즐거운 세계를 인간에 안겨주곤 어디론가 사라졌네 노랑저고리   아, 오월은 오월은 노랑 저고리 조선족녀성들이 노랑저고리를 즐겨 입었습니다. 〈노랑저고리〉는 사실 민족혼의 상징입니다. 〈노랑저고리〉가 중간부분에 울면서 가버립니다. 임효원선생님은 우리의 민족 얼이 쇠퇴해가고 점점 지쳐가는 그 모습을 슬퍼한 것입니다. 그래도 슬퍼만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아,오월은 노랑저고리" 로 끝을 맺습니다. 오월은 희망차고 밝은 이미지 아닙니까? 오월이라는 계절감각에다 조선족녀성의 상징인 노랑저고리를 등장시켜 우리 민족 력사를 말하고 우리 민족이 나아갈 미래까지 말해봅니다. 임효원 시인의 작품들. 〈아, 오월은 노랑저고리〉라는 이 시는 1985년에 지은 시인데 새로운 시적 성숙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시가 이룩한 하나의 성과작으로 평가됩니다. 그 밖에도 이분은 또 〈거칠은 수림에〉라는 시를 썼습니다. ‘4인방’이 분쇄된 직후에 썼습니다. 수림이 불에 타고 나무가 쓰러져 거칠어졌지만 봄이 오고, 장마가 끝나니 쓰러진 나무에서 새싹이 돋습니다. 그걸 통해〈거치른 수림〉이라는 시적대상물을 빌어 십년동란시기에 인민이 받은 커다란 고통, 그렇지만 날이 개이고 정치동란이 풀리니까 쓰러진 나무에 새싹이 돋듯이 인민은 희망을 가지고 새롭게 일어선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렇게 〈거칠은 수림에〉라는 시는 임효원다운 거창한 서정을 토해냅니다. 한마디로 임효원선생님은 남성적인 굵직한 서정으로 한 시대 시단을 장식한 그분만의 개성미를 갖춘 우수한 서정시인이였습니다. 다음은 김철선생님을 소개하겠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분인데 1932년에 일본에서 출생했습니다. 항미원조전쟁에도 참가했습니다. 1953년도에 벌써 시〈지경돌〉을 들고 문단에 등단합니다. 처음부터 천재성을 띠였습니다. 시 〈지경돌〉은 발표되자마자 시단의 큰 주목을 받았고 그 때의 시단을 놀래웁니다.   시인 김철선생. 너무도 시가 함축되고 예술화가 잘 되였습니다. 짧은 몇행에다 그 시대의 사회변혁을 담아냈습니다. 한 시대를 개괄한 것입니다. 한부의 장편소설에도 다 담아낼 수 없는 내용이였습니다. 그래서 기성시단이 놀란 것입니다. 그때 김철선생이 20세도 되나마나 약관의 나이입니다.〈지경돌〉이라는 놀라운 시를 들고 나옵니다.〈지경돌〉을 잠간 살펴봅시다. 해토무렵 두 령감 지경돌을 뽑는다 물싸움에 삽자루 동강나던 지난 일 생각하며 얼굴이 붉었는가 지경없는 넓은 이 밭을 임경소의 뜨락또르 척 척 갈아 엎으리니 오늘부턴 한집 식구 두령감 오, 행복의 노을이 비꼈노라! 단 몇줄짜리 시로 그 시대의 농민들이 농업합작화를 맞이하는 커다란 희열을 표현합니다. 농민들이 자기 이름자를 새긴 지경돌을 뽑습니다. 그러니까 한시대의 변혁을 가장 함축된 언어로 표현하고 그 시대의 대표적 풍경을 그려냈습니다. 지금 와서 살펴봐도 김철시인의 전부의 시에서 가장 대표적인 시의 하나라고 저는 봅니다. 왜 그런가 하면 공감대가 크고 시대의 모습을 잘 담아냈고 아름답게 함축됐고 정말로 서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분은 벌써 1957년도에 첫 시집을 냅니다. 그 때 시집의 제목이 《변강의 마음》입니다. 이듬해에 《동풍만리》를 련이어 냅니다. 그 때 시점에서 시집을 출판한다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그런 와중에 젊은 시인이 련속 시집 두권을 출간하여 시단을 깜짝 놀래웁니다. 천재성에 놀라지요. 지금 봐도 생기발랄합니다. 생명력이 넘쳐요. 청춘의 생기가 막 넘칩니다. 지금의 예술자대로 뭐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따릅니다. 그 때 그런 시점에서 그런 생기발랄한 시집을 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문화혁명이 터져 김철선생님은 억울한 루명을 쓰고 5년 감옥살이를 합니다. 1975년도에 풀려나옵니다. 원직인  《연변문학 》 편집으로 다시 복직합니다. 이분은 시인이기 때문에 감옥에서도 시를 계속 썼다고 합니다. 《동틀무렵 》이라는 장편서사시는 옥중에서 구상하고 신문쪼각에 적어가면서 초고를 썼다고 합니다. 1978년도에 장편서사시 《동틀무렵》이 고고성을 울립니다. 그 다음해인 1980년도에 련달아 장편서사시 《새별전》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러면서 시인 김철열풍이 불기 시작합니다. 김철 시인의 부분적 시집들. 김철선생님의 시는 전체적으로 개혁개방전의 시가운데서는 〈꽃방석〉이나 〈지경돌〉이 대표작이겠지요. 개혁개방 후에도 계속 시를 씁니다. 80년대 90년대초까지 전성기를 이룹니다. 그런데 시의 모습은 많이 변합니다. 초기에는 직설적이고 격정적인 랑만주의 시들을 많이 썼다면 중기, 후기에 와서는 이미지시를 많이 씁니다. 자신의 내면감수를 에둘러서 은유적으로 씁니다. 후기 시 가운데서 비교적 잘된 것이〈대장간 모루우에서〉인데 교과서에 들어갔습니다. 그럼 〈지경돌〉과 〈대장간 모루우에서〉 두수의 시를 잠간 대조해봅시다. 대장간 모루우에서 나는 늘 매를 맞아 사람이 된다 벌겋게 달아오른 나의 정열 뜨거울 때 나는 매를 청한다 맞을 때는 미처 몰라도 맞고나면 나 매값을 안다 그래서 나 내 몸이 식을 때 노상 주르르 눈물을 흘린다 보십시오. 잘 썼지요? 대장간 모루우에 벌겋게 달아오른 쇠덩이를 올려놓고 야장들이 메로 칩니다. 그러면 칼도 되고 호미도 됩니다. 그러나 강철이 되게 하자면 뜨거울 때 물에 넣어야 단단한 강철로 칼날이 서지요. 이런 현상을 통해 인간도 역경을 겪어야, 매를 맞아봐야 참된 인간이 된다는 철리를 끄집어낸 것입니다.   1993년 서울 아시아시인대회에 참석한 김철시인(오른쪽 두번째). 김철선생님의 족적은 우리 조선족시단이 걸어온 력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초기에 대표적 시를 내놓았고 우리 시단에 좋은 영향을 남겼고 문화대혁명 후에도 꾸준하게 시창작을 하여 두부의 장편대작도 내놓았고 서정시집 수십권을 상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조선족만이 가지는 연변식 시풍을 개척하는데, 조선족의 서정시의 밭을 일구는데 무수한 땀을 흘렸고 후손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였습니다. 후배시인들은 김철선생님을 가장 따라배우고 싶은 분으로 꼽고 있습니다. 이런 분이 롤모델이 되였기에 우리 시단은 전망이 밝으며 이런 분들의 영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음 김성휘선생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이분은 해방 후 중국에서 대학교육을 받고 시인으로 성장한 시인입니다. 1933년 룡정시 백금향에서 출생했습니다. 1954년 심양외국어학원을 졸업한 후 로어교원, 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 작가협회 상무부주석 등을 지냈습니다. 1955년 처녀작〈첫 괭이〉를 발표한 후 륙속〈고동하시초〉등 수많은 시를 발표합니다. 문화대혁명시기 간첩으로 몰려 곡경을 치르기도 했고 나중에는 시골에 추방되기도 했습니다. ‘4인방’이 꺼꾸러지고 문화대혁명이 결속되자 루명을 벗고 다시 연변인민출판사로 돌아와 편집사업에 종사하면서 창작의 붓대를 들고 시창작에 몰입합니다. 1978년 시집 《나리꽃 피였네》를 출판한 뒤를 이어 1980년엔 장편서사시 《장백산아 이야기하라》를 출판하고 잇달아 《들국화》,《금잔디》등 서정시집을 륙속 출판합니다. 1958년도에〈고동하시초〉를 발표하면서 시인적 재질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명성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건 첫 시집 《나리꽃 피였네》를 발표하면서부터입니다.《나리꽃 피였네》는 1955년부터 1979년 사이에 창작한 작품 중 52수를 골라 묶은 서정시집입니다. 이 시집은 여러 가지 사회력사적 원인과 자신의 문학관념의 제약성으로 하여 좌적사조의 영향에서 해탈되지 못했습니다. 시인 김성휘선생. 객관진실반영이 지나치에 강조되고 반대로 내심진실반영이 극단적으로 홀시되였다고 시인 자신도 어느 글에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반성에 기초하여 그는 새로운 력사시기에 진입한 다음 솔직, 성실, 진실을 자기 시학관의 가장 주되는 원칙으로 내세웠습니다. 개성 있는 나를 강조하면서 진실한 내심체험을 표현하고 현실생활과 인간의 미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그 후의 시창작에서 이런 인식의 전환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김성휘선생님의 시집 《들국화》와 《금잔디》에서는 개혁개방 이후 그의 새로운 미학원칙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 시집의 주제는 주로 흘러간 력사에 대한 반성을 다룬 작품입니다. 그의 력사에 대한 반성은 미래에 대한 드팀없는 신념과 련결되여 있습니다. 그의 시에는 고향과 조국에 바치는 송가들이 주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조국 나의 영원한 보모〉,〈고향의 언덕 마음의 탑〉등이 있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창작의 성숙기에 이른 그는 독창적인 예술풍격으로 조선족시단을 장식했습니다. 그의 서정시는 우선 정감표현의 진실성과 진지함으로 독자들을 감동시킵니다. 시인은 뜨거운 마음으로 생활을 포옹했습니다. 그의 서정시에 흐르는 진실한 시적 정서는 생활과 인간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자연감각을 순수하게 노래한 시들도 적지 않습니다. 시내물의 흐름을 찬히 보아라 천리만리 먼먼 길도 자신만만타 흐르고 흐르고 내처 흐르며 한평생 말쑥하게 가는 나그네 -〈시내물〉 전문 룡정고중의 시비에 새겨진 〈시내물〉은 김성휘선생님의 대표적 서정시의 하나입니다. 1980년에 지은 이 시는 시내물이라는 시적 상관물을 빌어 시내물처럼 맑고 깨끗하게 살려는 시인 자신의 내면의 결의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내물은 시인의 정신적 추구의 거울이며 자화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3.4조로 된 이 시는 깊은 뜻을 전통적 운률에 맞춰 깔끔하고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연변식 서정시의 하나의 표본, 생활적이고 한마디 군더더기 없이 인간의 정서를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이런 시는 수준이 있고 영원히 력사에 남을 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인 김성휘선생의 시집들 1979년에 김성휘선생님이 창작한 장편서사시 《장백산아 이야기하라》는 머리시와 맺음시 그리고 13장으로 구성되였는데 무려 7000행에 달합니다. 이 서사시는 민족적특색이 짙은 대작인데 조선족 인민들이 겪은 고난의 생활과 피어린 투쟁사를 진실하게 그려냈습니다. 이 작품은 내용뿐만 아니고 시의 언어와 운률, 예술수법 등 형식 면에서도 농후한 민족특색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비유, 과장, 반복과 대조, 수사학적 질문과 호소, 동의어 반복, 의인법 등 수사법의 능수능란한 사용으로 시어의 표현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 서사시는 김철의 《새별전》과 더불어 중국조선족 시문학사에 길이 남을 영웅서사시입니다. 김성휘선생님의 시는 강렬한 서정과 랑만으로 조선족 시단의 독특한 풍경으로 떠오릅니다. 김성휘시인은 연변식 서정시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랑만주의색채가 아주 짙은 뛰여난 서정시인입니다. 길림신문 글 구성/ 김청수 기자 영상 사진/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1535    조선족 시단과 시인들...1 댓글:  조회:1625  추천:0  2021-02-19
조선족 시단의 형성과 정초자들/(김학송편1) (ZOGLO) 2021년2월19일        시인 김학송   김학송 프로필: 1952년 길림성 도문시 곡수촌에서 출생 장춘야금지질학교,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 시집 《고향에는 고향이 없다》를 비롯하여 문학저서 30여부 출판 일부 시는 영어로 번역되여 《세계시인선집》에 수록 수필〈태산에 오르며〉가 중학교 교과서에 등재 1993년 서울 아시아시인대회 중국측 대표로 참석 2008년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을 수상 2020년 단군문학상 수상    조선족들의 초기 시를 보면 대개 조선 시인 조기천, 김소월의 영향, 로씨야의 뿌쉬낀의 영향, 쉬빠쵸프의 영향, 마야꼽쓰기의 영향 등 이런 분들의 시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여 해방초기의 시들을 보면 전통적인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조기천, 뿌쉬낀 식의 랑만주의 시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사회정치환경의 영향으로 송가풍의 시들도 적지 않았는데 대체로 이런 시풍이 문화대혁명시기까지 지속됩니다. 그리고 개혁개방이 시작되고 바깥세상의 문이 열리면서 한국의 시도 들어오고 서구의 시도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우리 연변도 봉페된 환경이 무너지면서 시인들이 새롭게 공부하며 관념갱신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기 기존의 시에 대해 의문을 품고 새로운 어떤 시적 개혁을 위해 몸부림칩니다. ‘두만강 여울소리’ 시가창작연구회 참가자 일동. 옛날 50년대, 60년대에는 사물을 직설적으로 썼습니다. 그러나 개혁개방 후부터는 서구의 새로운 풍격 특히 모더니즘, 초현실주의 이런 상징주의 시들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사물을 은유적으로, 비유적으로, 굴곡적으로 묘사하는 기교들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언어도 50년대, 60년대에는 비교적 단순하고 따분하던 데로부터 사상해방이 되여 자기 내심의 정서를 마음껏 표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갑니다. 그러나 우리 시들이 개혁개방 후부터 새로운 몸부림을 통해 변모하고 혁신한 건 사실이지만 또 다른 그림자도 드리웁니다. 난삽해지고 난해해지고 점점 기교적이 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독자와 멀어집니다. 즉 독자를 리탈하기 시작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50년대, 60년대의 초기 시들은 생활에 밀착하여 인민대중의 생활정서를 담고 그 시대의 정감을 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 속에서 신임도, 호응도가 높았습니다. 례를 들면 김철시인의〈지경돌〉,〈꽃방석〉그리고 송정환시인의〈풀피리〉, 강호혁 시인의 〈나의 노래〉등이 자못 인상적입니다. 특히 황옥금 녀류시인의 〈고향의 봄〉은 아주 잘 썼어요. 50년대 조선족의 삶의 정서, 사는 모습을 아주 그림처럼 생동하게 그렸습니다만 그는 시단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여튼 그녀의 일부 시는 지금 봐도 가슴이 뛰고 그 시대를 보는것 같아요. 그 시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갖고 있습니다. 공감대를 극대화시켰습니다. 그러니까 대체로 옛날시가 좋았느냐 아니면 오늘의 시가 좋으냐 하고 묻는다면 저는 한마디로 뭐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옛날 시도 장점이 있고 오늘 시도 장점이 있습니다. 옛날 시의 단점은 사색이 비교적 얕고 표현수법이 단순한 것입니다. 이것이 약점이겠지요? 그러나 공감대가 컸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고 정말로 피로, 가슴으로 시를 썼습니다. 그 시대의 독자들과 밀착하여 그 시대와 숨결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의 심장과 시대의 심장이 함께 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명한 조선족시인 리욱선생의 시선집. 때문에 대중들이 시를 믿고 시를 숭배하고 시를 대단하게 생각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시인들의 시에는 그 시대의 모습이 담기고 그 시대의 정서가 담기고 시인의 마음 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산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시대의 시를 한마디로 뭐라고 낮게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봅니다. 오히려 심장으로 쓰고 절실하게 쓰고 사람의 가슴에 흘러들게 쓴데는 개혁개방후기의 시보다 품격이 한수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개혁개방이후의 시들은 서구의 영향을 받아서 기교적인 면에서, 언어구사나 표현기법에서 새로운 방법을 인용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호성, 난해성을 잘 소화하면 좋은데 소화를 못한 채 쓰다 보니 난삽해집니다. 시가 난삽해지니 자연스럽게 대중들이 싫어합니다. 연변 뿐만이 아니고 중국내지의 시들도 전체적으로 90년대 초반부터 대중들과 멀어지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총적으로 보면 개혁개방전에는 시인들의 수자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심장으로 쓴 시, 대중들의 기억에 오래오래 남는 시들이 꽤나 많습니다. 개혁개방 후에는 시인수자가 많아지고 시도 많아지고 여러가지 상도 많아집니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대중들의 마음에 충격을 주고 령혼을 진감하는 시들이 적습니다. 이건 우리 차세대 시인들이 (금후) 풀어야 할 하나의 과제이겠지요? 우리 조선족 시인들은 근 100년래, 특히 공화국 창립 후 시인의 사명에 충성하면서 그 시대가 수요하는 정신적 식량, 서정적 식량을 많이 창출해 가지고 력사 속에서 우리 시인들의 위상을 높이고 우리 문학을 가꾸고 꽃피우는 데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한마디로 시는 그 시대의 노래이고 대중들과 언제나 같이 걷게 되여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오랜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 새로운 수법을 적당히 수용해가지고 정말로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미도 있고 난삽하지 않는 연변만의 독특한 시풍을 꽃피우는 데 우리 시가 나아갈 길이 있지 않겠는가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우리 시단의 정초자들 해방 후 우리 조선족 시단의 정초자의 한 분으로 리욱선생을 꼽을 수 있습니다. 리욱선생님은 로씨야에서 태여났습니다. 조선족 시단의 정초자의 한 분인 리욱선생. 그는 1924년도에〈생명의 례물〉이라는 시를 들고 문단에 데뷔합니다. 전체적으로 이분의 시는 대단합니다. 우리 시단의 정초자이고 선구자입니다. 이 분의 시중 광복전의 시가 오히려 예술수준이 더 높은 편입니다. 해방 후에도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셨습니다. 연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고 한 때는 신문사에서 기자로 계시기도 한 분입니다. 학문이 박식하여 문화대혁명전에 벌써 중문으로 시집을 냈습니다. 해방전의 시에서 대표적인 시는〈북두성〉이라는 시가 있고 〈금붕어〉라는 시가 있습니다. 어째서 리욱선생님의 전체 시중에서 광복전의 시가 예술성이 더 높다고 보는가? 그 때의 시들은 이미지화를 잘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상물을 빌어가지고 시인의 내면적 감수를 토로하다 보니 예술화가 잘되여 있습니다. 여기에〈금붕어〉라는 시가 있는데 이 시는 초기의 시입니다.  백공작이 날개 펴는 바다가 그립고 그리워 항시 칠색무지개 그리며 련꽃 항아리에서 까무러친 상념에 툭툭 꼬리를 친다 안타까운 운명에 애가 타고 타서 까만 안공에 불을 켜고 자주 황금갑옷을 떨치나니 붉은 산호림속에서 맘대로 진주를 굴리고 싶어 줄곧 창 너머로 푸른 남청에 희망의 기폭을 날린다 〈금붕어〉라는 대상물을 빌어 시적화자의 내면감수를 토로한 시입니다. 금붕어는 항아리속에서 사니까 자유가 없습니다. 1936년도에 이 시를 썼습니다. 일제치하의 암담한 사회현실 속에서 시인을 포함한 인민들의 상황을 어항속에 갇힌 금붕어에 은유한 것입니다. 상징적으로 어떤 정서를 표달하였는가 하면 그 사회의 정말로 갑갑하고 암담한 현실을 고발했고 나아가서는 돌아 올 광명에 대해서 찬미합니다. … 줄곧 창 너머로/ 푸른 남천에/ 희망의 기폭을 날린다 금붕어가 꼬리를 탁 치며 유리항아리를 뚫고 광명을 찾자는, 금붕어를 빌어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정서, 참담한 마음을 토로한 것입니다. 예술화가 잘되였지요. 그러고 보면 아주 세련미도 있고 함축되고 여운도 있습니다. 예술적 향기도 물씬 풍깁니다. 이 시는 1936년도에 쓴 시인데 지금 시점으로 봐도 시가 아주 흠뻑 익었습니다. 익은 참외가 어떻습니까. 향기가 풍기지요. 달콤하지요. 예술적으로 흠뻑 익고 향기가 풍기는 시를 벌써 초년에 썼습니다. 리욱시인의 천재성, 시인으로서의 어떤 능력을 여기서 읽어냅니다. 리욱시인은 해방 후에도 활발하게 시창작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시의 패턴이 많이 바뀝니다. 사회정치환경의 영향으로 선동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바뀝니다. 이분의 시는 대개 굵은 톤으로, 남성적인 기백을 토로하는데 아주 웅숭깊습니다. 선이 굵습니다. 주요한 시들로는 〈어머니와 아기〉, 〈할아버지의 마음〉등 이런 시들이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는 이분의 고향에 세워진 시비에 새겨져 있습니다.   화룡시 로과에 세워진 리욱시비. 〈할아버지의 마음〉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칠순할아버지 나무를 심으며 어린 손자를 보고 싱그레 웃는 그 마음 그 마음… 몇 줄이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를 보면 아주 담담하고 간결하게 할아버지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할아버지의 마음이자 시인의 마음이겠지요. 정말로 미래를, 그리고 리타적인 삶을 사는 그 시대의 인간상을 그려냈습니다. 그때 분들은 리기적이기보다는 우선 리타적입니다. 할아버지도 자기를 위해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어린 손자를 위해 땀을 흘리며 힘들게 나무를 심습니다. 그냥 어린 손자를 바라보며 싱그레 웃는 그 마음 그 마음 하니까 말 속에 말이 있지요. 그게 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단에서 화룡 로과에 시비를 세울 때 이 시를 올린 것입니다. 이 시는 예술화도 잘 되였지만 그 시대의 시대상이 담겨 있습니다. 좋은 시란 무엇입니까. 언어기교가 높아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한 시대의 체취나 흔적이 담기면 더 좋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문학은 시대의 혼불이고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에 왜 시가 필요한가 하는 리유를 그분들은 알았습니다. 요즘 (부분적) 시인들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이 시대에 왜 시가 필요한가를, 이것은 심사숙고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리욱선생님은 이렇게〈금붕어〉,〈할아버지의 마음〉과 같은 명작을 남기셨습니다. 정말로 웅훈하고 격정적인 시풍으로 시를 다루었습니다. 또 어쩌면 이는 그분만의 시풍입니다. 아주 기백이 높습니다. 이런 시풍으로 우리 조선족 시단의 초년기를 장식했고 우리 시단에 큰 족적을 남긴 우리 조선족 시문학의 정초자이시며 선구자입니다. 다음으로 조선족 시문학의 정초자의 한분이신 설인(원명 리성휘)선생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설인선생은 연길에서 출생하였고 잡지사 편집, 연변대학 교사로 오래 지내셨습니다.   조선족 시문학의 정초자의 한분인 설인선생. 시집으로 《봄은 어디에》, 《설인소시집》, 《설인시선집》등 여러권 남겼습니다. 이분은 광복전에도〈설야〉,〈소식〉,〈5월에〉등 시들을 창작했고 해방 후에도 줄곧 활발한 시활동을 하였습니다. 설인선생의 시는 아주 섬세하고 개성미가 강합니다. 누구보다 다른 부드럽고 결이 고운 향토적인 언어, 그러면서도 그 시대 상황을 핍진하고 재미있게 그려내는 분입니다. 그분의 시가운데서 〈콩〉,〈아침〉이런 시들은 참 생활맛이 나고 삼빡합니다. 여기서 〈아침〉이라는 시의 뒤부분만 보기로 합시다. … 시원 상쾌 생생 록음방송 싱그럽다 힘이 분수처럼 솟구치는 찬란한 아침은 여울목 뛰여넘는 반짝 금붕어 아침을 여울목 뛰여 넘는 반짝 금붕어로 형상화하였습니다. 시인은 아침을 빌어 평화롭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희망이 솟구치는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것입니다. 얼마나 생동합니까?! 자기만의 언어입니다. 정말로 묘하게 쓰고 있습니다. 설인시집. 〈콩〉이라는 시에서도 이런 특징이 계속 드러납니다. 입은 종내 안 연다노 그래도 봉긋봉긋 배만 부르다고 노랗게 달이든 잎 아름답기만 하다고… 게다가 때가 되면 아이, 튀여나오기 전에 어서 걷어줘요! 잘랑잘랑 꼬마 종까지 울리는 거룩한 습성 지니였다노! 여기서 콩을 의인화하여 말도 하고 꼬마종까지 잘랑잘랑 울립니다. 실지는 콩에 기대여 소박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내심을 그려낸 것입니다. 설인선생은 이렇게 시어의 사용에서 치밀하면서도 자기만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리하여 조선족 서정시의 기틀을 잡고 개척하는데 선구자의 역할을 하였고 우리 조선족 시단에서 자기만의 뚜렷한 족적을 남긴 분입니다. 길림신문 글 구성/ 김청수 기자 사진 영상/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1534    [시공부] - 투르게네프 산문시 댓글:  조회:1780  추천:0  2021-01-18
  투르게네프 = 산문시=         참새 ​ 나는 사냥에서 돌아와 정원의 가로수 길을 걷고 있 었다. 개가 내 앞을 달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개는 걸음을 늦추더니 살금살금 다가가기 시작 했다. 마치 눈앞에 날짐승의 냄새를 맡기라도 한 듯이. 가로수를 따라 눈을 돌리니 조그만 참새 새끼 한 마 리가 눈에 띄었다. 부리 언저리가 아직도 노랗고 머리 에는 솜털이 자라 있었다. 둥지에서 떨어진 참새 새끼 는(자작나무 가로수는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갓 나기 시작한 날개를 힘없이 벌린 채 꼼짝달싹 않고 앉아 있었다. 개는 서서히 다가갔다. 그러자 별안간 가까운 나무 에서 가슴 털이 검은 참새 한 마리가 개의 바로 콧등 앞에 돌멩이처럼 날아내렸다. 그러고는 온몸의 털을 험 악하게 곤두세우고 필사적이고 애처러운 목소리로 울 어대면서, 허옇게 이빨을 드러내고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개의 입을 향해 두어 번 가량 깡충깡충 뛰어갔다. 어미새는 새끼를 구하기 위해 돌진한 거다. 자기 몸 을 희생하며 새끼를 구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조그만 몸뚱이는 온통 공포에 떨고 있었고, 그 가냘픈 목소리는 거칠다 못해 쉬어버렸다. 드디어 어미새는 실 신하고 말았다. 자기 몸을 희생한 것이다! 참새에겐 개가 얼마나 거대한 괴물로 보였을까! 그 런데도 그는 그 높은 안전한 나뭇가지 위에 그대로 앉 아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의지보다도 강한 어떤 힘이 그를 아래로 내몬 것이다. 나의 트레조르는 걸음을 멈추더니 비실비실 뒷걸음 질을 쳤다······. 개도 그 힘을 인정한 모양이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개를 황급히 불렀다-그리고 존경 어린 경건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렇다,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나는 이 조그만 영 웅적인 새 앞에 그 사랑의 충동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였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사랑은 죽음보다도, 죽음의 공포 보다도 더 강하다고, 바로 그 사랑에 의해서만 삶은 유 지되고 영위되어 나가는 것이다. 투르게네프,『투르게네프 산문시』,「참새」 작은 어미 새는 둥지에서 떨어진 자신의 새끼를 구하기 위해 자신보다도 몇 십 배는 더 크고 거대한 개를 향해 돌진한다. 두려운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그래 이것이 사랑이다.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무모한 줄 알면서도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 이것이 사랑이고 사랑의 힘이다. 우리도 사랑을 한다. 사랑하는 연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밤을 새우기도 하고, 자유를 사랑하기 때문에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운다. 우리는 사랑을 함으로써 자신이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고 그 누구보다 용감한 내가 되게 한다. 이렇게 사랑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자! 용기 있게 사랑하자! 사랑으로 인한 상처를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사랑할 수 없다. 그건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대상이 연인이든, 운동이든, 영화든, 음식이든 다른 무엇이든지 간에 일단 사랑하자! =========================/// 신문기자 ​ 두 친구가 식탁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한길에서 시끄러운 소동이 일어났다. 애처로운 신음소리, 난폭한 욕설, 구경꾼의 웃음소리 가 터져 나왔다. ​ 「누가 매를 맞고 있군」 친구 중의 한 사람이 창문을 내다보고 이렇게 말했다. 「죄인인가 아니면 살인잔가?」 또 한 친구가 물었다. 「아니, 매 맞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무법적인 사형을 허용해선 안 돼. 자, 도와주러 나가세」 「그러나 살인자를 때리고 있는 건 아니야」 「살인자가 아니라고? 그럼 도둑인가? 어쨌든 마찬가지야, 가서 말리도록 해야지」 「아니, 도둑도 아냐」 「도둑도 아니라고? 그럼 회계산가? 철도 종업원? 군납업자? 러시아의 문예 보호자? 변호사? 온건주의 편집자? 사회봉사가 나으리? ······ 어쨌든 가서 도와주도록 하세! 」 「아니 그렇잖아······ 신문기자가 맞고 있군그래」 「신문기자? 그럼 우선 차나 마시고 보지」 투르게네프,『투르게네프 산문시』,「신문기자」 누군가 맞고 있다. 두 사내는 살인자, 도둑 같은 악덕한 사람에게도 폭력이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싸움을 말리려 한다. 하지만 맞고 있는 사람이 신문기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차 한 잔이 식어가는 데에 눈길을 돌린다. 그렇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죄인, 살인자, 도둑 악덕한 자들보다 더 '악독한' 무리였던 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이러한 무리가 단지 신문기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신문기자를 넘어서 그냥 기자로 범위가 확장된다. 그들이 책임 없이 뱉어내는 기사들은 사실관계와는 상관없이 무궁무진하게 생산되고 있고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전달된다. 하지만 그들의 책임 없는 권리 때문에 그들의 세치 혀에 핥음을 당한 당사자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되고 사회는 거짓을 판치게 된다. 기자, 그들은 언론의 자유라는 깨지지 않는 방패로 그들의 책임을 회피한다. 그들의 책임 없는 권리 덕분에 그들은 '기레기'라는 새로운 작위를 받게 됐고 민중들은 더 이상 그들을 믿지 않는다. 시에서 나타난 두 사내처럼.     ============================/// 검은 인부와 흰 손의 사나이 ​ 대화 ​ 검은인부: 왜 우리한테로 기어드는 거지? 무슨 볼 일이 있어? 자넨 우리 편이 아니야……. 저리 나가줘! 흰 손의 사나이:나도 자네 편일세, 형제들! 검은인부: 아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 편이라고! 웃기지 마! 내 손을 좀 보게. 자, 얼마나 더러우냐 말야. 게다가 거름과 타르 냄새까지 풍기는데─ 자네 손은 새하얗지 뭔가. 그래, 그 손에서는 무슨 냄새가 나지? 흰 손의 사나이(두 손을 내밀며) 자, 냄새를 맡아보게. 검은 인부(냄새를 맡는다) 그거 참 묘하군. 쇠붙이 냄새가 나는 것 같군 그래. 흰 손의 사나이:쇠붙이 냄새가 틀림없어. 만 6년 간 쇠고랑을 차고 있었으니 말야. 검은 인부"그건 또 무엇 때문이었지? 흰 손의 사나이:자네들의 복지를 위해 애썼기 때문이지. 자네들같이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 자네들의 압제자를 반대하여 일어선 거야, 폭동을 일으켰단 말일세……. 그래서 감옥에 갇히게 된 거지. 검은인부:감옥에 갇혔다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폭동 같은 걸 일으킨담!. ​ 2년 후 ​ 동일한 검은 인부(다른 인부에게) 이봐, 표트르! 2년 전 여름, 손이 새하얀 녀석이 찾아와서 우리하고 이야기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나? 제2의 인부: 기억하다마다…… 그게 어쨌다는 거야? 제1의 인부:그 녀석이 드디어 오늘 교수형을 받는다는 거야. 포고문이 내렸어 제2의 인부:역시 폭동을 일으킨 게로군? 제1의 인부:역시 그런가 봐. 제2의 인부: 흐음…… 그건 그렇고, 이봐, 미트랴이, 그 녀석의 목을 맬 밧줄 조각을 어떻게 손에 넣을 수가 없을까…… 그게 있으면 굉장한 행운이 굴러 들어온다는 거야! 제1의 인부: 그것 참 옳은 말이야. 표토르, 어떻게 손을 써보도록 하세. ​ 투르게네프,『투르게네프 산문시』,「검은 인부와 흰 손의 사나이」 지식인의 책임과 의무 그리고 고뇌. 지식인은 떨리는 지남철과 같이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어느 한 곳에 고정시켜서는 안되고 쉴 새 없이 떨어야 한다. 그래야 지식이 아직이 되지 않는다.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되고 불합리한 현실을 마주하여 머리가 아닌 발로 써 움직여 현실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앎이 단순한 지식이 머무르지 않고 진짜 지식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책임과 의무를 다 한다 하더라도 민중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 흰 손의 사나이가 검은 인부의 편에 들어가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민중들을 위해 혁명을 하고 목숨을 바쳐도 민중들은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을 수 얻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은 민중으로부터 멀어져서도 안되고 그들에게 인정받으려 해서도 안된다. 민중들에게 대가와 인정을 받으려는 순간 그의 행위는 무지한 대중을 일깨우는 엘리트의 한낱 계몽주의에 불과하며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민중들에 대한 알량한 호혜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민중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아도 민중은 그의 노력을 외면하지 않는다. 흰 손의 사나이를 살리기 위해 그의 목을 매달 줄을 없애려는 검은 인부들의 모습처럼.     ===============================///                                            Иван Тургенев — Когда меня не будет                             언젠가 내가 없을 때,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한줌의 재로 변해 부서져 내릴 적에, 나의 당신이여, 나의 유일한 친구여, 내가 그렇게 깊게 그렇게 곱게 사랑하였던 당신이여 당신은 아마도 나보다 더 오래 살겠죠. 그렇지만 내 무덤에 오진 마시오. 당신한테는 거기서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어요.   나를 잊지는 마오...그렇지만 일상의 일, 만족, 걱정 속에서 나를 떠올리지도 마오. 나는 당신의 삶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요. 편안한 삶의 흐름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소. 하지만, 외로운 순간이 혹여 찾아오거든, 부끄럽고 이유 없는 슬픔이 당신을 찾아오거든,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흔히 그럴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사랑했던 책을 한 권 빼들고서, 그 페이지들을 찾아요. 그 구절, 그 단어들, 기억나나요? 우리 둘이 약속이나 한 듯 달고 말없는 눈물을 흘리던 그 구절들...   그 대목을 읽어요, 눈을 감고서... 그리고 내게 손을 뻗어요. 그 자리에 없는 친구에게 당신의 손을 뻗어요.   나는 내 손으로 당신을 쥘 수는 없을 겁니다. 내 손은 땅 밑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놓여 있겠지요. 그러나 당신이 혹시 당신의 손에 가벼운 건드림을 느낄지 모른다는 생각만 해도, 나는 기쁩니다.   그리고, 내 모습이 당신 앞에 서겠지요. 그러면, 당신의 감은 쌍꺼풀 밑으로 눈물이 흐르겠죠. 아름다움에 취한 우리들이 언젠가 둘이서 흘렸던 그 눈물이... ​ 오, 당신, 나의 유일한 친구여!  내가 그렇게 깊게 그렇게 곱게 사랑하였던 당신!       Когда меня не будет, когда всё, что было мною, рассыплется прахом, — о ты, мой единственный друг, о ты, которую я любил так глубоко и так нежно, ты, которая наверно переживешь меня, — не ходи на мою могилу… Тебе там делать нечего.   Не забывай меня… но и не вспоминай обо мне среди ежедневных забот, удовольствий и нужд… Я не хочу мешать твоей жизни, не хочу затруднять ее спокойное течение.   Но в часы уединения, когда найдет на тебя та застенчивая и беспричинная грусть, столь знакомая добрым сердцам, возьми одну из наших любимых книг и отыщи в ней те страницы, те строки, те слова, от которых, бывало, — помнишь? — у нас обоих разом выступали сладкие и безмолвные слезы.   Прочти, закрой глаза и протяни мне руку… Отсутствующему другу протяни руку твою.   Я не буду в состоянии пожать ее моей рукой — она будет лежать неподвижно под землею… но мне теперь отрадно думать, что, быть может, ты на твоей руке почувствуешь легкое прикосновение.   И образ мой предстанет тебе — и из-под закрытых век твоих глаз польются слезы, подобные тем слезам, которые мы, умиленные Красотою, проливали некогда с тобою вдвоем, о ты, мой единственный друг, о ты, которую я любил так глубоко и так нежно! ​ ​ ​ ​ 이반 투르게네프는 1874년 파리 근교의 부지발에 러시아식의 작은 저택을 하나 샀다. 평생의 유일한 연인 빨리나 비아르도가 사는 빌라 맞은 편이었다. 임종의 고통 속에서 투르게네프는 발코니가 딸린 이 집의 이층 방에서 1883년 9월 3일 숨을 거두었다. 이 작은 집은 그의 유명한 여러 산문시를 탄생시킨 장소이다. ​ ============================================///     이반 투르게네프 산문시 83편 국내 최초 완역 2018.11.08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러시아 대문호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1818-1883)의 산문시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민음사)가 번역, 출간됐다. 투르게네프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투르게네프 산문시 83편 전편을 원어에서 완역했다.   자연과 여성심리 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러시아 제일의 문장가’라는 평을 받고 있는 투르게네프는 언어의 장벽을 깨고 러시아 문학을 서구에 처음으로 소개한 작가.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등 19세기 러시아의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소설들로 국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문학적 경력을 시로 시작한 시인이기도 하다. 이번 산문시집은 그의 말년에 창작된 것으로, 거장이 남긴 마지막 작품들이다. 투르게네프 특유의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시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 그리고 환상적 이미지, 이 모든 것들이 길게 말하지 않고도 본질을 꿰뚫는 대가의 솜씨로 이 한 권의 시집에 완성돼 있다. “어미 새가 새끼를 구하기 위해 돌진했고,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새끼를 구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작은 몸뚱이는 공포로 벌벌 떨었고, 어미 새의 가냘픈 목소리는 거칠게 쉬어 버렸다. 어미 새는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 자기 몸을 희생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 사랑은 죽음보다, 죽음의 공포보다 더 강하다. 삶은 사랑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움직인다.”― 투르게네프 ‘참새’에서 20세기 초 식민지 조선에서 러시아 문학은 다른 어떤 외국문학보다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중 투르게네프는 이광수, 톨스토이와 함께 당시 조선에서 가장 많이 읽혔던 3대 작가 중 하나였다. 투르게네프 산문시의 쉽게 읽히는 시어와 거기에 담긴 삶의 지혜와 통찰은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투르게네프는 프랑스의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프랑시스 잠 등의 산문시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의 산문시는 다시 한국 근대문학 형성기에 전통의 정형시를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근대적인 시를 모색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중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바로 ‘거지’였는데, 1910년~1930년 사이 최소 12회 반복해 번역됐다. 가난이라는 시대의 현실 앞에서 민중에게 손 내밀고자 하는 공감과 연민의 휴머니즘이라는 주제는 당시 지식인들의 영혼에서부터 공명을 이뤄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공명은 투르게네프의 시를 번역하고 탐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창작으로 이어졌다. “가지고 나온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거지는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 내민 손이 힘없이 떨린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한 나는 떨리는 그의 더러운 손을 꼭 잡았다….   “형제님, 미안하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소.” 거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입술에 엷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는 그가 차디찬 내 손가락을 꼭 잡아 주며 속삭였다. “형제님, 저는 괜찮아요. 이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형제님, 그 역시 적선이지요.” 그때 나는 이 형제한테 내가 적선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투르게네프 ‘거지’에서 투르게네프 특유의 “꿀과 기름처럼 완벽하게 유연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러시아의 풍경,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하는 예술적 특징은 그의 시적 내면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그의 소설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그의 산문시집에서도 역시 19세기 러시아의 가혹한 농노제 아래 일어났던 어두운 이야기들을 고발했던 리얼리즘 소설 대가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산문시집의 투르게네프의 목소리는 대체로 슬프고 다정다감하지만 때때로 냉정하고 신랄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산문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삶의 불가해함에 대한 체념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한편으로는 바로 그것이 선물처럼 가져다 줄 화해와 용서에 대한 기대다. /윤희정기자  ==================================/// 러시아 대문호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1818~1883) 탄생 200주년을 맞아 투르게네프 산문시 83편이 국내 최초로 완역, 출간됐다.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83편 전편을 원어에서 완역한 이번 시집은 투르게네프의 탄생일인 11월 9일에 맞춰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투르게네프는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 등 소설로 국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문학적 경력을 시로 시작한 시인이기도 하다. 이번에 발간된 산문시집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거장이 말년에 남긴 작품들이다. 20세기 초 식민지 조선에서 투르게네프는 이광수, 톨스토이와 함께 당시 조선에서 가장 많이 읽혔던 작가 중 하나일 정도로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윤동주 역시 투르게네프의 산문시를 탐독하고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동주가 남긴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당시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중 가장 인기를 끈 '거지'를 오마주한 것이다. 가지고 나온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거지는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  내민 손이 힘없이 떨린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한 나는 떨리는 그의 더러운 손을 꼭 잡았다…….  "형제님, 미안하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소."  거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입술에 엷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거지 중에서) 그의 산문시에서는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삶의 불가해함에 대한 체념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한편으로는 바로 그것이 선물처럼 가져다 줄 화해와 용서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 또한 19세기 러시아의 가혹한 농노제 아래 일어났던 어두운 현실을 고발했던 리얼리즘 소설 대가로서의 면모를 산문시집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여태경 기자 ======================/// 사랑에의 길                                                /이반 투르게네프 모든 감정은 사랑으로, 정열로, 이끌어질 수 있다. 증오로, 연민도, 냉담도, 존경도, 우정도, 공포도… 그리고 멸시까지도 그렇다. 감정이란 감정은 모두… 단 하나 감사만을 빼놓고. 감사는---부채, 사람은 누구나 부채를 갚는다… 그러나 사랑은---돈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회의적인 자문을 할 때는, 대개는 지난한 사랑이 끝난 후이다. 투르게네프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사랑의 요소로 대답하고 있다. 너와 나는 모든 감정을 ‘증오도, 연민도, 냉담도, 존경도, 우정도, 공포도…/그리고 멸시까지도 차용할 것이다. 감정이란 감정은 모두…’ 동원될 것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안온하고 평화로운 요소보다 불행한 요소를 더 추가하며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고 ‘감사’를 제외하며, 사랑은 교환의 가치가 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더욱이 ‘사랑은-돈이 아니’라며, 사랑이 ‘자본화’ 되어가는 점을 경계한다. 만약에 어느 순간부터 사랑이 시작된다면, 사랑이 도착하고 사랑이 발전하고 사랑이 사라지는 동안, 낯선 자기를 대면하게 되고 당황하게 될 것이다. 내가 몰랐던 나와 네가 몰랐던 너와의 마주침. 하지만 ‘몰랐던 존재’는 없었던 존재가 아니라, 자기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자기들이다. 몰락과 부활의 반동사이, 침잠했던 그들은 불쑥 출몰할 것이다. 불시에 마주칠 증오와 연민과 공포의 음표들, 그리고 존경과 연민과 우정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랑이 끝날 수도 있다. 문득 사랑이 지나간 뒤, 사랑의 진정성에 대해 당신도 묻고 싶을 것이다. /박소원시인 [출처] 경기신문    ============================///   휴머니즘과 섣부른 휴머니즘 [중앙선데이] 인쇄기사 보관함(스크랩)글자 작게글자 크게 SNS 공유 및 댓글 SNS 클릭 수 투르게네프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알려졌지만, 그의 문학적 경력은 서정시로 시작해서 산문시로 마무리된다. 『루진』(1856)을 필두로 하여 마지막 장편 『처녀지』(1877)까지 여섯 편의 ‘사회 소설’을 쓴 투르게네프는 이후 생의 말년에는 80여 편의 산문시를 썼다. 산문시는 러시아 문학의 고유한 장르가 아니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 체류 중이던 투르게네프가 보들레르의 산문시에 영향을 받아 시도한 것이 그의 산문시다.  투르게네프는 한국과 일본의 근대문학 형성기에 가장 많이 읽히고 번역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일본에서 그의 산문시는 문학청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처럼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범상치 않은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어서였다. 일본을 통해 투르게네프를 수용한 우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많이 번역돼 읽혔던 산문시 ‘거지’를 읽어 보자.  시적 화자인 ‘나’는 거리를 걷다가 늙은 거지를 만난다. “눈물어린 붉은 눈, 파리한 입술, 다 해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오오, 가난은 어쩌면 이다지도 처참히 이 불행한 인간을 갉아먹는 것일까!” 화자는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늙은 거지는 손을 내밀어 나에게 적선을 청하는데, 호주머니를 뒤져 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빈손으로 산책을 나온 것이다. 동냥을 청하는 거지의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고 있었다.”  당혹한 나는 하는 수 없이 “힘없이 떨고 있는 거지의 손을 덥석 움켜쥐고는”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랬더니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쳐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늙은 거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괜찮습니다, 형제여,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그때 문득 ‘나’는 깨닫는다. “거꾸로 이 형제에게서 내가 적선을 받았다는 사실을….”  식민지 조선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만한 주제인데, 특히 윤동주도 이 ‘거지’에 반응한 독자였다. 그런데 윤동주의 반응은 공감과 함께 위화감도 포함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거지’를 명백히 패러디해서 쓴 ‘투르게네프의 언덕’(1939)에서 시인은 ‘거지’의 기본 골격을 반복하지만 몇 가지 설정을 비튼다. 시적 화자가 걷는 길은 ‘고갯길’로 바뀌고 ‘늙은 거지’는 ‘세 소년 거지’로 대체된다.  나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고갯길을 넘어가고 있는 넝마주이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 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이들의 행색은 투르게네프의 늙은 거지와 마찬가지로 비참하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름한 입술, 너덜너덜한 남루, 찢겨진 맨발.” 나는 탄식한다.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는 건 인지상정이다. 투르게네프의 화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호주머니를 뒤져 본다. 한데 투르게네프의 화자가 빈손이었던 것과는 달리 윤동주의 화자에게는 두툼한 지갑과 시계·손수건 등 모든 것이 다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이것이 윤동주 식 반전이다. 거지 아이들에게 동정심은 일지만 선뜻 자기 물건을 적선할 만한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게 더 바람직하련만, 나는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아이들을 부른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 역시 투르게네프의 늙은 거지와는 다르다. 세 아이가 모두 피곤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그렇게 아이들은 사라지고 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거지’의 반복이지만 ‘차이 나는 반복’이고 변주다. 시의 의미는 이 차이에 의해 생산된다. 투르게네프의 시 ‘거지’의 주제는 한마디로 휴머니즘이다. 길에서 만난 늙은 거지에게 적선을 하고 싶었지만 가지고 있는 물건이 없었던 나는 되레 늙은 거지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투르게네프는 적선의 의미를 뒤집고 있는 것인데, 시에서 나보다 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은 오히려 더럽고 남루한 행색의 거지였다는 사실에 시적 화자는 물론 독자도 감동을 받는다.    반면 ‘투르게네프의 언덕’에서는 적선은커녕 교감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세 소년 거지’에게 잠시 동정의 마음이 일지만, 그것은 고작 일시적인 기분에서 머문다. 나의 동정심은 이기심을 넘어서지 못한다. 자기 것을 내줄 만한 ‘용기’가 없는 나는 아이들과의 거리를 한 치도 좁히지 못한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는 섣부른 휴머니즘, 말뿐인 동정심에 대한 신랄한 고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시의 ‘나’가 시인 자신이라면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가혹한 자기 비판의 시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자주 부끄러워했던 윤동주의 초상을 우리는 기억한다. 당신의 휴머니즘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두 편의 시를 거울로 삼아 비춰 봐도 좋겠다.  /이현우 ==========///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 김규종 메리 셸리(1797∼1851)가 ‘프랑켄슈타인’을 출간한 1818년 러시아에는 잊히지 않을 인물이 태어난다. 산문시와 소설, 희곡 모두에서 천품을 발휘한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가 주인공이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와 더불어 19세기 러시아 황금시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심훈의 ‘상록수’를 읽다 보면 기시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투르게네프의 ‘처녀지’ 때문이다. 일본의 근대를 이식받은 식민지 조선 문인들이 열광했던 작가 가운데 하나가 투르게네프라는 사실은 주지하는 바다. 일본 지식인과 문인들 역시 투르게네프의 문학적 성과에 매료되었다고 전한다. 그런 배경에는 ‘뜬구름’의 작가이자 러시아문학 번역가였던 후타바테이 시메이(1864∼1909) 같은 인물의 열성적인 노력이 자리한다. 뛰어난 원작과 성실한 번역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문학의 융성과 발전을 추동하는 원동력이다. 젊은 날 윤동주의 ‘툴계녭의 언덕’을 읽고 망연해진 적 있었다. 제목에 들어있는 어휘 ‘툴계녭’이 너무 친숙했던 때문이다. ‘저건 분명 투르게네프지!’ 그런 확신에 전신이 짜릿해지는 것이었다. 헌책방에서 구한 시집에 있던 ‘툴계녭의 언덕’. 우리는 오늘날 그것을 ‘투르게네프의 언덕’으로 읽는다. 당대의 사회적인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 듯하여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러시아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투르게네프의 산문시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만년의 투르게네프가 인생의 깨달음과 소회를 질박하고 깊이 있게 드러낸 걸작이기 때문이다. ‘거지’(1878)는 그 가운데 하나다. 길 가던 시인이 거지를 만난다. 새빨간 가난에 무너져버린 거지가 그에게 적선의 손을 내민다. 주머니란 주머니는 모조리 뒤져 보지만 시인에게는 돈과 시계는커녕 손수건도 없다. 거지의 손을 황망하게 잡아주는 시인. 거지는 몹시 미안해하는 시인에게 ‘그것도 적선’이라며 고마움을 전한다. 동주의 ‘툴계녭의 언덕’은 전혀 다르다. 연희전문 2학년 시절에 쓴 시에서 시인은 인도적이며 낭만적인 투르게네프와 사뭇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갯길을 넘다가 거지 소년 셋과 마주치는 시인. 무서운 가난에 삼켜진 아이들의 묘사가 우리를 전율케 한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럼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찢겨진 맨발이었다.” 시인도 이 장면에서 러시아 시인처럼 주머니를 뒤진다.   식민지 조선 시인에게는 모든 것이 있었다. 두툼한 지갑도, 시계도, 손수건도. 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만지작거릴 뿐 내주지 않는다. 그에게는 ‘용기’가 없다. 이야기나 해볼 요량으로 “얘들아!” 하고 부르지만 아이들은 흘끔 돌아볼 뿐 제 갈 길을 간다. 아무도 없는 언덕에는 짙은 황혼만이 밀려올 뿐이다. 왜 동주는 적선하지 않았을까?! 돈이나 시계는 몰라도 손수건은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투르게네프처럼 아이들 손이라도 잡아줄 수 있지는 않았을까?! 용정의 부모가 보내주는 월사금으로 공부하는 유학생이라 해도 그의 시에 내재한 영혼과 정신은 분명 적선을 요구했을 터. 일회적인 적선이 소년들을 가난에서 해방하지는 못한다 해도 인간적인 동정과 연대감 표시 정도는 해야 하지 않았을까?! ‘프랑켄슈타인’에서 셸리는 창조주의 위치로 올라서려는 인간의 욕망과 비겁함과 무대책을 그려낸다. 투르게네프는 ‘거지’에서 공감과 연대를 보여준다. 반면에 동주는 대학생의 화사하고 소심한 자아에 멈춰있다. 연민과 동정과 연대가 사라진 문학에는 예술혼과 미래가 없다.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손을 내밀어야 한다. 장자의 ‘학철지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갈급한 지경의 사람들과 공감하고 연대해야 한다. 그것이 도리이기 때문이다. 잠시 옛시인들을 돌이키는 가을날이다.        
1533    [시공부] - 김기림 시인 댓글:  조회:2036  추천:0  2021-01-18
                    문학 교과서에서 만날 수 있는 월북 문인-시인 김기림 편     URL 복사  이웃추가              시인 김기림(출처: 위키백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이 시는 문학교과서에서 주지주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소개되는 김기림의 입니다.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은 이 작품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좌절감을 청색과 흰색의 색채 대비를 통해 시각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인 '바다'와 '나비'가 등장합니다. 바다는 섬뜩하고 냉혹한 현실을 식민지 말의 현실로 혹은 신문명을 나타내며, 나비는 연약한 지식인의 존재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시에서 드러나듯 김기림은 한국 문학계에서 회화적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1920년대의 계급 문학과 감상적 낭만주의 시를 비판하고 새로운 시 정신을 추구했습니다. 김기림의 시가 지닌 압축성을 통해 차가운 이성을 강조하는 주지주의와 회화성을 강조한 모더니즘 추구를 잘 보여주었는데요. 그래서 김기림의 시는 어려운 시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는 작가로도 활발히 활동했지만 동시에 비평가로도 유명했습니다. 비평가로 활동하며 많은 문인들을 문단에 데뷔 시킬 정도로 안목을 가졌던 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현대 문학사에서 그의 부재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88년 월북 문인 해금 조치가 이루어지면서 김기림 시인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상태입니다. 또한 납북된 이후 그에 대한 어떤 소식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러한 김기림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김기림의 삶   시인 김기림의 모습 (출처: 위키백과) 김기림의 호는 편석촌으로 1908년 5월 11일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났습니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머니와 손윗누이의 잇따른 죽음으로 계모 밑에서 자라며 우울한 소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는 1915년 임명보통학교에 입학했고, 1921년 상경하여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중퇴를 선택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1930년 니혼대학 문화예술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을 졸업 후 고국으로 돌아온 김기림은 조선일보에서 주로 종로경찰서를 외근 구역으로 맡으며 사회부, 학예부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축구감독과도 같은 풍모를 지녔던 그는 신문사 내에서 ‘김모범 청년’으로 불릴 정도로 바른 생활을 하는 긍정적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단 한 번의 지각이나 조퇴를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했으며, 능력이 탁월해 김기림에 대한 회사 간부들의 신임도 두터웠습니다.  김기림은 기자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고대’(1931), ‘날개만 도치면’(1931)등의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1931년 신문사를 그만 둔 그는 낙향하여 ‘무곡원’이라는 과수원을 경영하며 창작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김기림은 이양하, 최재서 등과 함께 주지주의 문학을 소개하는 데 앞장섰으며, 특히 I.A. 리차즈의 이론을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문학이론을 정립했습니다. 1933년에는 김유정, 이태준 등과 구인회 결성에 참가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이상과 함께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활약했습니다. 두 문인은 특별한 인연을 유지했던 사이로 유명했습니다.    김기림과 이상의 인연    시인 이상의 모습(출처: 동아닷컴) 1930년대 조선일보에는 김기림 이외에도 염상섭, 현진건, 김동인, 채만식 등의 문인들이 기자로 있었으며, 동아일보에는 이익상, 주요섭, 주요한, 심훈 등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시 문인 기자들은 지면을 확보할 수 있었고, 문단의 헤게모니를 쥘 수 있었습니다. 김기림은 바로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임과 동시에 평론가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주지주의 문학을 알리는데 앞장섰습니다. 또한 평론을 통해 당대의 걸출한 문인들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이들로는 이상, 백석, 정지용 등을 뽑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상 시인은 김기림과 각별한 친분을 유지했던 사이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김기림과 이상이 주고받았던 많은 편지들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이상보다 두 살 위였던 김기림은 그에게 멘토이자 지지자였습니다. 이상의 천재성을 보고 유학을 권유했던 이도 김기림이었으며, 새로운 작품을 쓸 때마다 이상이 작품에 대해 의논하던 이도 김기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홍과의 이별, 질병, 연이은 카페 경영의 실패 등으로 셋방에 틀어박혀 지내던 이상을 설득해 화가 구본웅 부친의 인쇄소에서 교정부 직원으로 나가게 한 것도 김기림이었습니다.  1936년 7월 발간된 김기림의 첫 시집 의 본문 편집과 표지 장정을 맡았던 이가 이상이었을 정도로, 두 사람은 동료 문인으로 서로의 작품 활동을 도왔습니다.      김기림의 시집들 초판본(출처: 클래식정원) 구인회 활동을 하며 편석촌은 정지용과 함께 ‘출발’, ‘날개’, ‘가을의 과수원’ 등 수많은 시들을 발표했습니다. 1936년에는 그는 조선일보를 휴직하고 도호쿠대학 영문과와 와세다대학 영문학부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두 곳 모두 합격한 그는 도호쿠대학을 선택했습니다. 유학을 위해 사표를 냈지만 당시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은 그를 휴직 처리하고 장학회에서 학비를 보조해주도록 했습니다.  그는 유학 당시 영미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며 흄, 엘리엇, 리처즈 등의 이론을 연구하고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함으로써 한국 문학계에 주지주의적 문학이 자리 잡는데 앞장섰습니다. 연구 도중에도 그는 창작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1939년 졸업을 한 그는 조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보성전문과 연희전문에서 교수로 초빙받았지만, 조선일보와 의리를 지키기 위해 기자로 복직하면서 학예부장으로 지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1940년 조선일보가 강제 폐간되면서 실직한 그는 1942년 낙향하여 고향 근처의 경성중학교에 영어 교사로 부임했습니다. 영어 과목이 폐지되고는 수학을 가르쳤는데 당시 그의 제자로는 시인 김규동*과 영화감독 신상옥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의 스승을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항상 단정하게 정장을 입고) 영국 신사처럼 걷던 훤칠한 키의 스승'으로 기억했습니다.     *김규동(1925~2011): 함경북도 경성 출생의 시인으로 경성고보를 거쳐 연변의대를 수료하고 평양종합대학을 중퇴했다. 경성고보 시절 스승이었던 김기림의 영향을 받아 전쟁, 도시문명 등을 소재로 한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많이 발표했다.   해방 이후 김기림의 삶   김기림의 가족사진(출처: 클래식정원) 김기림은 1946년 1월 공산화된 북한에서 월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서적과 가산을 탈취당해 궁핍한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1947년 6월에 그는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 다시 38선을 넘습니다. 평양을 거쳐 무사히 고향에 도착한 그는 먼저 가족 중 3남매와 함께 월남에 성공했지만, 부인과 막내아들은 잠시 고향 집에 머물러 있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한 아내는 1948년 봄 막내아들을 데리고 월남합니다. 당시 김기림은 서울대, 중앙대, 연세대 등에서 전임 교수를 지냈으며, 이후 서울대학교에서 조교수로 활동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설립한 신문화연구소의 소장도 역임했습니다.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김기림은 미처 피난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북의 정치보위부에 의해 납북되었고, 북한에서 삶을 마감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의 정확한 사망 시기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이상으로 제10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유니콘 김양지였습니다. [출처] 문학 교과서에서 만날 수 있는 월북 문인-시인 김기림 편|  
1532    [타산지석] - 늘 "이기리"... 꼭 "이기리"... 댓글:  조회:2057  추천:0  2020-12-28
문화·라이프 “등단하진 못했지만, 나는 이기리라” 김수영문학상 非등단으로 첫 수상… 시집 ‘그 웃음…’ 펴낸 시인 이기리 이기문 기자  2020.12.28    시인이 되고 싶었다.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시를 배우고 또 썼다. 시인이 되려면 자격이 필요해 보였다. 계속 ‘등단’을 시도했다. 신문사나 문예지가 주관하는 신춘문예 혹은 신인상 수상의 훈장. 번번이 미끄러졌다. 대학 졸업 후에는 시 쓰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오전에만 아르바이트를 했다. 신문사 편집국의 우편물 수발. 하지만 그렇게 2년을 준비한 시편들이 다시 과녁을 잃었다. 준비하던 한 신인문학상이 재정 부담을 이유로 폐지된다고 했다. 책상 위로 쌓인 시 원고 뭉치는 30㎝ 넘게 자라 있었다. 독자와 만나지 못한 원고 뭉치를 보다 화가 치밀었다.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원고를 묶어 김수영문학상에 도전했다. 기성 등단 작가의 작품을 심사하는 여타 권위 있는 문학상과 달리 ‘응모 자격 : 신인 및 등단 10년 이내 시인’이란 문구에 용기를 냈다. 스물여섯 이기리는 그렇게 시인이 됐다. 지난 1981년 이 상이 제정된 이후 첫 비(非)등단 수상자. 그의 첫 시집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민음사)가 이달 출간됐다. ‘이기리’는 필명이 아닌 본명. ‘이기리라’는 뜻에서 지었다.   27일 만난 이 시인은 “작가가 되려 끈질기게 이리저리 뛰었더니 이런 결과도 있구나 싶다”고 말했다. 민음사가 주관하는 김수영문학상은 2006년부터 기성 시인뿐 아니라 등단하지 않은 예비 시인들에게 문호를 열었지만, 수상의 영광은 줄곧 등단 시인 몫이었다. 지면을 가져본 적 없는 작가 지망생은 서울 구로구의 방에서 시의 탑을 쌓았다. “2018년은 160편, 작년엔 70편 정도 썼어요. 글쓰기에 최대치를 부여한 시간이지만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취업한 친구들은 미래를 확장해나가고 있었으니까.”     그럴 때면 ‘등단’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시작한 서호준⋅김누누 시인을 보고 힘을 냈다. 온라인과 독립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던 두 시인은 올해 각자 첫 시집을 냈다. 온라인 지면을 비롯한 소규모 출판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작가의 자격처럼 여겨졌던 등단 제도도 균열이 발생했다. 제도 바깥에서도 시인은 활동하고, 정세랑·임경선·손아람처럼 등단을 거치지 않고 활발히 독자와 만나는 작가도 많아졌다. “이번도 등단 못 하면 작품 먼저 선보이겠다”며 다른 독립출판사에도 다른 원고 묶음을 보냈다. 작품만 좋으면 시집을 내주는 곳이었다. 그는 작가를 꿈꾸는 예비 문인들에게 말했다. “쓰고 싶은 글을 어디에든 마음껏 써보세요. 실패와 성공을 떠나 글 쓰는 것 자체가 작가로서의 시작이고 첫걸음이니까요.” ‘마침내 친구 뒤통수를 샤프로 찍었다’란 시구로 표제작은 시작한다. 친구의 커터칼로 ‘검지에는 칼을 댄 자국이 붉게 남았’지만, 화자는 자신을 끌어안은 ‘선생님에게 장래 희망을 말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정호승 시인의 시 ‘너에게’를 접하고 시인을 꿈꿨다. “유년 시절 경험한 폭력과,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사랑이나 이별에 대한 보편적인 감정을 시집에 담았습니다.”   “평생 글 쓰는 삶을 살아갈 것이기에 이번 수상은 그저 다른 시작인 거죠. 독자로부터 영원히 달아나지 않는 문장들을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시집 마지막에 이런 제목의 시를 배치했다.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나겠습니다.’
1531    토템시/ 범= 남영전, 해설= 현춘산(8) 댓글:  조회:1959  추천:0  2020-10-10
8. 범, 불선과 사악을 증오하는 산신령 2020년 09월 15일 /현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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