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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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윤동주 시와 서예 100인 휘호대회-명동서법예술대전 댓글:  조회:851  추천:0  2017-04-07
윤동주 시가 서예와 만나다.연길 100인 휘호대회 편집/기자: [ 강동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4-04 00:16:11 ] 클릭: [1004] 우리 민족의 저명한 시인 윤동주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4월 3일 ,조선민족의 우수한 전통문화예술을 보급,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차원으로 연길시문화국에서 주최하고 연길시문화관과 명동문화예술원,연변문자예술협회 등 단위에서 공동으로 주관한 제1회 명동서법예술대전 《윤동주 시와 서예의 만남 100인 휘호대회 》가 연변국제회의전시중심 3층홀에서 축제의 한마당으로 성황리에 펼쳐졌다. 본기 서예대회는 연변각지에서 모여온 100명의 소학교 학생들과 학부모,그리고 성인서예애호가들이 참가했다. 연변텔레비죤대학 김진홍의 윤동주 서시 랑송으로 시작한 이번 대회는 각 조에 명제를 발표하면서 때를 같이해 오색령롱한 전통한복을 화려하게 곱게 차려입은 참가자들이 하얀 종이에 먹을 발라 휘호하는 모습에 그야말로 꽃물결을 방불케하면서 화창한 봄날을 맞이해 갖가지 꽃들이 다투어 피여나는 듯한 눈부신 광경이였다. 이번 대회는 소학교 1학년조부터 6학년조까지 6개 조와 엄마와 함께 하는 가족조,성인조까지 8개 소조로 나누어 진행되였다. 휘호대회가 거의 끝날 무렵에는 하이라이트로 이번 대회 운영위원장이며 서예박사인 명동문화예술원 서영근원장이 몸소 퍼포먼스를 진행하면서 관중들의 눈길을 끌었다. 앞가슴에 친필로 조선족을 대표하는  《아리랑》을 자수한 하얀색 한복을 차려입고, 7메터의 대형천에 라는 글귀를 퍼포먼스한 멋진 모습에 관중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한시간의 휘호대회를 마친후 어린이들이 예술공연으로 행사를 더욱 눈부시게 하였다. 이어 지승원(원로서화가),김정송(연변대학 사범분원교수),장지향(박사,연변대학교수) 등 심사위원들의 평의를 거쳐 수상자명단이 발표되였다. 신흥소학교 5학년 문희영학생과 최려(연길북대)가 각각 소학조와 성인조의 대상을 수상하였다. 기타 항목의 수상자 명단은 아래와 같다. 소학교 1학년조 금상은 조민일(공원),은상 박건우(신흥),동상  김민청(중앙),동현경(연북),조민지(연북).우수상 리지윤,김천기,김가영,림희관이고  2학년조의 금상은 림윤정(중앙),은상 리진연(중앙)과 김가린(신흥),동상 강지호(중앙),김은영(공원),김은설(공원),우수상 고정정,리가은,방위동,장지운,신지은.3학년조 금상 강지연(신흥),은상 정수하(신흥),김지연(중앙),남윤주(연북),동상 량성진(건공),정아련(중앙),차용림(중앙),김지언(중앙),안혜리(중앙),우수상 리지연,리수진,배수연,차효주,최지연,리림정,박정연.4학년조 금상 박연정(중앙),은상 배재성(연신),석지윤(중앙),황윤정(중앙),동상 허예령(신흥),박지은 (신흥),김현주(중안),손예진(중앙),우수상 유금주,김유진,김현여,허은진,김지수. 5학년조 금상 박용혜(중앙),은상 전은혜(공원),장원영(중앙),동상 김경문(신흥),김기영(연신),김채희(중앙),박연정(중앙),우수상 석예림,박해경,한림희,송의경.6학년조 금상 김혜진(중앙),은상 리아름(중앙),최건우(공원),김기영(신흥),동상 김현흔(중앙),김미령(신흥).가족조 금상 문옥순(모친),강문(연북소학 4),은상 정금란(모친),김현서(룡정북안소1),리매(모친),림우림(중앙3),동상 윤화(모친),김지연(룡정실험유치원),박춘희(모친),신은영(조양천소학2),현금순(모친),김준섭(조양소학2).성인조 금상 조정(연변대학 연구생), 은상 지은영(도문2중 교사),라소화(디자이너),전순희(70세),동상 김현설(상업),문소홍(상업),주은진(상업). 이번 대회에 37명 학생이 참가해 4개의 금상과 6개의 은상,10개의 동상을 획득한 연길시중앙소학교는 우수집체로 선정되였다. 미술교연조 김화교원은 “윤동주탄신100주년을 기념해 서예와 윤동주의 만남으로 이번 대회가 성공적인 휘호대회로 남을수 있었다” 면서 “등수를 떠나 이번 대회를 통해 학생들에게 깊은 문화의식과 민족의식을 심어줄수 있음으로 향후 학생들의 성장에 기필코 도움이 될것이다”고 말했다. 심사위원 지승원선생은 이번 대회는 아름다운 우리 글자와 지혜,재간을 자랑했다면서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글자는 우리의 자랑이고 재부라면서 별의 시인 윤동주 탄신 100주년을 맞이해 휘호대회를 원만하게 개최하게 된 것은 우리 모두에게 민족의 자부심을 갖고 민족의 서예를 보급,계승,발전해나가는데 도움이 될것이다고 했다. 이번 대회 운영단체인 연변문자예술협회는 2008년에 설립된 연변문체국산하 사단법인으로,중한우리글서예교류전,국제우리글서예한마당,붓길로 여는 상생의문전,먹빛으로 밝히는 새아침전 등 각종 국제우리글서예전을 개최하였으며 연변청소년서예대전,중국조선문자서예대전,세종대왕한글서예대전 등 각종 휘호대회를 개최하여 연변 나아가서 세계 우리글서예보급과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본대회 운영위원장인 명동문화예술원 서영근원장은 1990년부터 20여년간 서예교육사업과 서예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으며 2008년에는 한국 원광대학교에서 서예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특히 2016년 6월에는 명동서예사랑모임을 설립하고 성인들에게 서예를 무료로 가르쳐 현재 4기에 걸쳐 40여명의 수료생을 양성하였다. 명동문화예술원 서영근원장은 이번 명동서법예술대전의 은 시인 윤동주가 소년시대에 다니던 학교인 명동학교에서 따온 명칭으로서  100년전의 우리 민족의 교육터전의 맥과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민족 문화예술의 발전에 공헌하기 위한데 취지를 두었다며  "앞으로 명동서법예술대전의 주제를 해마다 변경하면서 계속 서예발전을 위하여 대회를 개최해나갈것이다"고 약속하였다. 이번 대회는 명성궁(광주),모닝글로리와 길림한정인삼유한회사(은진원)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3    서영근의 우리글 서예사랑 댓글:  조회:881  추천:2  2015-11-01
2015년 10월 23일 연변TV1 'TV 문화를 품다'-우리글 서예사랑-서영근박사 기획: 강정애, 진행: 최향미 리포터, 촬영: 최광일  
2    서예는 성실과 근면의 결정체 댓글:  조회:1921  추천:0  2015-06-28
서예는 성실과 근면의 결정체 서예학박사 서영근씨   연변일보 2015.6.25    한국의 대표적인 한 공영방송사의 시사교양프로에서 중국조선족의 서예학박사 서영근씨가 2002년에 창작하여 재외동포재단 초청서예전에 출품하였던 판본체 작품 “세종어제훈민정음”에서 “훈민정음” 네 개의 요소를 떼여내여 5년간 도용한 사실(이미 원만하게 합의를 본 상태)이 지난해 10월 중국과 한국에서 일제히 보도되면서 서예가 서영근씨가 다시한번 세간의 물망에 오르게 되었다. 1972년 3월 길림성 도문시 월청진 백룡촌에서 출생한 서영근씨는 소설가인 아버지(서광억)와 서예가인 형님(서권, 서예가, 교수)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문학과 서예를 접하게 되었다. 1989년, 연변제1사범학교에 입학한 그는 본격적으로 서예를 배우게 되였다. 그는 타고난 예술적감각과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와 인내심으로 기예가 일취했는데 졸업을 앞두고 개인서예전을 개최하고 한국에서 개최하는 서예전에서 입상하는 등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서예가로 주목받게 되였다. 서영근씨는 졸업 후에는 선후로 공예상표디자이너, 소학교미술교원으로 4년간 근무하면서 서예기예를 한층 더 다져나갔다. 1994년, 연길에서 개최된 “아름다운 한글서예 중한련합전”은 그의 인생을 확 바꿔놓는 계기가 되였다. 여태까지 웅성다운 기백이 흘러넘치는 조선의 청봉체나 청봉체와 일맥상통한 연변체만 알고 있었던 그는 한국 서예가들의 서예작품을 곱씹어 감상하면서 점과 선, 획의 태세(太細), 장단, 필압(笔压)의 강약, 경중, 운필의 지속(迟速)과 먹의 농담(浓淡), 문자 상호간의 비례 균형이 혼연일체가 된 판본체, 민체, 궁체 등 조선민족 전통서예의 유원한 뜻에 흠뻑 매료되였다.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한국의 조용선, 정문장, 현병찬 등 저명한 서예가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장장 2년간 서신방식으로 우리글 전통서예를 하나하나 깨쳐나가기 시작했다. 1997년 서영근씨는 한국의 문학과 서예를 근거리에서 접촉하기 위해 한국 류학길에 올랐다. 그는 각고의 노력을 거쳐 2001년 2월에 국립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과정을 졸업하고 2003년에는 같은 대학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그의 배움의 질주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2005년 8월에는 국립 경상대학교 국어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9월부터 원광대학교 여태명교수의 지도를 받으면서 한글민체와 서예학에 대해 깊이 탐구하였다. 2008년 2월에는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제1호 서예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영근씨는 서예 외에도 상상력과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 문학창작에도 알심을 들였다. 일찍 1992년에 가사 “두 사람의 세계”로 연변문단에 데뷔한 그는 2007년, 월간 《한비문학》에 시 “잔디”와 “신오우가”를 발표하여 한국문단에 데뷔한 뒤 중국과 한국에서 수십 편의 시와 가사를 발표하고 수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문학창작에 경주해온 까닭을 “옛날 서예가들은 자기가 직접 쓴 시를 서예작품 소재로 사용하였는데 자기가 쓴 시를 서예로 표현하면 작가의 감정이 작품에 깊이 배여 있어 더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소견을 밝힌다. 서영근씨는 중국조선족의 민간서예단체의 건립과 운영에서도 열과 성을 다함으로써 중국조선족서예의 신장에 한몫하였다. 1996년 4월, 그는 뜻이 맞는 청년서예가들과 손을 잡고 연길시조선글서예가협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담임하였다. 또한 2008년 8월에는 연변문자예술협회를 창립하고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2012년 12월에는 한중동포서예협회를 창립하고 오늘까지 회장직을 충실히 리행하고 있다. 이러한 민간서예단체들은 서예교류전 개최, 무료서예교실 운영, 서예강좌 개최, 서예작품집 출판 등 다양한 형식의 행사를 20여년간 수십차 펼침으로써 중국조선족서예의 보급과 계승, 발전에 마멸할 수 없는 기여를 하였다. 한국에서 서예활동을 하는 한편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서영근씨는 2014년 1월, 한국 서정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접고 귀국, 지금 학생들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서예원을 운영는 한편 지승원, 림창춘, 전청송 등 중국조선글 선배서예가들의 뒤를 이어 연변서체의 보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존의 연변서체는 청봉체의 영향을 받아 강한 웅성미가 넘쳐 우아한 여성미가 슴배여 있는 궁체의 우수성을 접목시켜 중국조선족 특색이 있는 새로운 연변체를 탄생시켰는데, 이는 중국조선어정보학회의 지지와 추천을 받아 중국조선어글꼴 소프트웨어 개발작업을 마무리하고 국가언어정보국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국가언어정보국에 등록되면 중국조선족은 당당히 자기만의 서체로 외국과의 언어문자정보교류를 원활하게 진행할수 있으며 신문, 출판, 방송에서 널리 사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서영근씨는 지금까지 《중국조선민족서예사》(2008년), 《설문해자 부수 형의 고찰》(2009년), 《중국조선민족 서예와 예술환경》 등 많은 저서와 론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동양미술대전》등 중국, 한국, 일본에서 개최된 여러 국제서예전에서 대상, 금상, 은상 등 수십 차 수상하는 실적을 쌓았다. 그가 양성한 제자들도 각종 대회에서 입상하고 서예전람에 출전하는 등 활발히 서예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오늘도 묵향이 그윽한 서실-서영근서법연구소에서 서예 후대양성과 저변확대를 위해 학원을 경영하면서 서예 창작과 연구를 병행하는 서영근씨의 남다른 집념이 더욱더 훌륭한 결실을 맺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변일보 김인덕 기자
1    [인물]손글씨에 영혼을 담다 댓글:  조회:1932  추천:0  2014-09-26
[인물]손글씨에 영혼을 담다-서영근 인물탐방 2014.6.20 손글씨에 영혼을 담다 -서예학박사 서영근의 성공스토리 이화진(동북아신문 편집국장)   1. 젊은 도전, 실패는 두렵지 않다 ) 이것이 서영근의 첫 번째 좌우명이다. 사범대학 재학시절부터 이런 좌우명을 갖고 열심히 달린 서영근은 끊임없이 남들이 상상도 못하는 불가능에 도전하였다. 1996년 4월 14일, 연변대학 예술학원 미술관 앞에는 100여명의 서예가와 취재진, 관계자들이 모여 창립을 축하해 주고 있었다. 이날의 주인공은 25세의 젊은 나이의 서영근회장이다. 소학교 서예교원으로 재직 중이던 서영근은 뜻이 같은 서예가들을 모아 중국에서는 최초로 되는 한글서예가협회를 창립한 것이다. 협회창립과 더불어 제1회 회원서예전을 개최하였다. 개성 있는 젊은 서예가들의 서예작품은 많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후로 을 개최하여 큰 호응을 얻었으며, , 등 각종 서예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특히 1998년부터 한국 광주시의 무등한글서예연구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해마다 서예교류전을 개최하여 올해로 제16회를 맞이하였다. 제11회부터는 주제를 갖고 전시회를 준비하였는데, 전, 전, , 전 등 참신한 서예전을 개최하였다. 특히 올해는 중한수교 22주년과 제1회 중국조선어문자의 날을 기념하여 8월 28일에 전을 청년광장에서 개최할 예정으로, 흑백예술인 서예를 디자인과 결부하여 새로운 칼라예술로 승화시키고, 밀폐된 전람관에서만 전시하던 서예작품을 밖으로 끌어 내와서 많은 시민들과 가까이하여 우리글의 우수성과 예술성을 알리고, 민족정신을 계승하고 중한문화교류를 촉진하며, 한글서예를 발전시키는데 공헌하고자 노력하였다. 2008년 8월 1일, 서영근은 또 하나의 사단법인체인 를 창립한다. 한국민족서예인협회, 재일 고려서예연구회 등과 자매 결연을 맺고 중국은 물론 일본, 한국에서 등 굵직한 서예전시회를 해마다 개최하였다. 올해 9월 초에 한국에서 중조한일 4개국 서예전람을 개최할 계획이다. 그는 또, 2012년 3월 30일에는 한국에 체류 중인 동포들과 한국인들을 결집하여 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 등 한국에서의 각종 서예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2014년 6월에는 다시 을 창설하여 후진양성과 우리글서예의 보급, 발전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글 서예의 저변확대와 회원 양성을 위해 그는 지금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2. 배움에는 끝이 없다   이것이 서영근의 두 번째 좌우명이다. 1989년 9월, 서영근은 중등전문학교인 연변대학 사범분원에 입학한다. 중학시절 반장을 지내면서 학습성적이 최상위권이였지만 가정형편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사범학교에 입학 한 것이다. 그러나 서예가로서의 그의 인생은 바로 사범학교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사범학교에는 과목이 개설되어 있었다. 평소 경필글씨를 잘 썼던 그는 서예에 남다른 애호를 갖고 열심히 배웠다. 1991년부터 각종 서예대회에서 수상하였으며, 1993년 3월에는 졸업을 앞두고 개인서예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졸업 후 연길시공예상표공장 디자이너를 거쳐 중앙소학교 서예교원으로 재직 중이던 서영근은 서예가협회를 창립하고 각종 서예활동을 개최하다가 한국으로 초청되었다. 그 기회에 그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루어 못 다한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다. 1997년 3월에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에 입학하여 4년간 공부한 후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2년간 수학하여 2002년 12월에 문학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졸업과 동시에 경남 마산의 한 대학교 교수로 초빙 되어 한국에서의 교수 생활을 시작하였지만 그의 배움의 열망은 계속 되었다. 2003년 9월 국립 경상대학교 국어학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2년간 열심히 공부하여 수료 하였다. 수료와 동시에 원광대학교에 서예학 박사과정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박사과정에 등록하였다. 직장과 대학의 거리가 멀어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왕복 6시간의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2년 반 동안 열심히 공부하였다. 2008년 2월 그는 드디어 원광대학교 제1호 서예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는 조선족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 그 어디에도 없는 최초의 서예학 박사학위인 것이다. 물론 서예가가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는 경우는 많지만 대부분 문학박사나 철학박사, 미술학박사 등 다른 분야의 학위이다.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고 하여 공부가 끝난 것은 아니다. 그는 , , 등 저서와 , 등 교본을 출판하고 논문을 발표하면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3. 재능기부, 무료서예교실 운영 이것이 그의 세 번째 좌우명이다. 20여 년간 시간과 정력과 자금을 투자하여 서예를 연마하여 끊임없는 노력으로 정상에 오른 서영근은 결코 자만하지 않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남을 비웃지도 않았다. 그는 늘 후학을 고무격려하고 챙겨주었다. 그의 교학 방식은 이다. 는 속담이 있다. 같은 말이라도 순서에 따라 듣는 사람의 기분이 다르게 된다. 먼저 칭찬을 하면 는 자신감을 키워주는 반면, 먼저 잘못을 지적하면 생각하면서 포기할 수도 있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 할 수 있다. 서영근은 이런 교육철학을 갖고 1993년부터 후학을 지도하였다. 특히 시장경제가 도입됨에 따라 많은 서예가들이 중도에서 서예를 포기하고 돈벌이에 나섬에 따라 조선족 서예계는 급격히 저조기에 접어들었다. 이를 직시한 서영근은 2004년부터 10년간 이른바 재능기부를 하였다.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고 가족이 중국에 체류하고 있었기에 그는 방학기간은 중국에 체류하였다. 소년궁 서예교원으로 재직 중인 선배의 협조를 받아 매년 방학마다 을 운영하였다. 그렇게 양성한 회원이 100여명에 이른다. 2008년 경기도 의정부로 상경한 그는 재한동포들 중에서도 서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겠다는 생각으로 한마음협회, 다문화협회 등 여러 단체들과 접촉하여 서예반을 개설할 의향을 내비쳤다. 2010년 4월 한마음협회의 협조 하에 한국에서의 첫 서예교실을 오픈하였다. 처음이라 협회 임원들 외에는 다소 호응도가 낮았다. 2012년에는 를 창립하고 각 언론사의 도움을 받아 공식적으로 회원 모집에 나섰다. 처음에는 영등포의 한 서예학원에서, 다음에는 마포의 한 단체의 사무실에서, 지금은 대림동주민자치위원회의 협조 하에 에서 무료서예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20여명이 수강 중이다. 회원들은 사정이 있으면 지각하거나 결석하기가 보편적이다. 그러나 지도교수인 서영근은 매주 일요일 두 시간 거리를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도 결석 한번, 지각 한번 하지 않고 무보수로 강의하였다. 무료로 가르친다는 말에 모두들 이해 못하는 눈치다. “왜 돈을 벌 수 있는데 무료로 가르치냐?”는 것이다. 그런 말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혼자 놀면 재미없기에 같이 놀려고 그럽니다.” 서로 같은 취미를 즐기면서 더불어 사는 재미를 알기에 무료 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4. 민체의 매력이 빠지다 이것이 서영근의 네 번째 좌우명이다. 서영근은 서예에 미쳤고, 민체에 미쳐있다. 한글 서체에는 궁체, 판본체, 민체, 청봉체, 간도체가 있다. 이 중에서 제일 매력적인 것은 바로 민체이다. 민체는 궁체나 판본체와는 달리 어떠한 규칙이나 틀이 없이 자유로운 서체이다. 즉 작가의 감성과 개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서체이기에 쓰는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된다. 1994년에 연변에서는 처음으로 개최된 에서 생전 처음으로 궁체와 판본체 등 전통서체를 접한 서영근은 고민에 빠졌다. 중국에는 궁체나 판본체를 가르쳐줄 선생님도 없고 교재도 없는데 어떻게 배울수 있을가? 고민끝에 그는 작품집에 수록된 한국서예가들 중 저명한 한글서예가 30명을 엄선하여 편지를 보냈다. 어떻게하면 궁체와 판본체를 배울 수 있고, 교재를 구할수 있냐는 내용이였다. 달포쯤지나 편지와 소포들이 육속 도착하였는데 대부분이 좋은 교재와 자료들을 보내왔다. 그중에는 직접 서신으로 궁체와 판본체를 배워주겠다는 분도 계셨다. 그리하여 서영근은 산돌 조용선, 장성연, 현병찬 등 유명한 스승들을 모시고 2년간 전통서예를 공부하게 된다. 그 후, 1997년 제주대학교 재학시절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서영근은 책을 정리하다가 한글고문서적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춘향전, 심청전, 구운몽 등 한글 고문소설 필사본이 수 백 권이 꽂혀있었는데 모두가 이른바 보기 드문 민체였다. 그는 특이한 서체들을 일일이 복사하고 틈이 나면 임서를 하면서 연구하였다. 그러다가 2003년 여름, 전국에서 100여명의 저명한 서예가, 화가들의 모임에 초대되었다가 “민체의 아버지” 여태명 교수를 상봉하게 되었다. 그 인연으로 여교수의 문하에서 서예학 박사공부를 하게 되었으며 종국에는 제1호 박사학위를 수여받기에 이르렀다. 여태명교수는 그 유명한 글씨의 주인이며, 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오래전 한 영화제작사에서 도용한 에 대해 저작권 소송을 제기해 한 글자에 1천만원의 손해배상을 받아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으며 동시에 도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민체의 매력에 빠진 서영근은 민체의 대가 여태명교수한테서 서예를 배웠지만 그의 서체를 그대로 따라 쓰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살려 썼다. 많은 제자들이 스승의 글씨를 그대로 쓰는 것이 당연한 줄 알고, 또 스승들도 당연히 본인의 글씨를 가르치지만, 여태명교수는 그렇지 않았다. 스승의 사상은 물려받되 글씨는 자기 나름대로 써야 가보치가 있다는 주장을 한다. 민체는 이른바 손글씨의 기본서체이다. 각종 간판, 제목, 표지, 상표 등에 민체가 사용되면서 서영근도 할 일이 많아 졌다. 여러 기업이나 출판사, 개인 등에서 부탁을 받고 많은 손글씨를 써주어,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 조선족서단의 주류는 청봉체라고 불리는 조선의 서체와 그 변형인 간도체(연변서체)이다. 전통서체인 궁체는 1990년대부터 보급되기 시작하여 쓰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판본체의 첫 보급자는 당연 서영근박사이다. 그는 일찍 한국의 서예가를 통하여 전통 궁체와 판본체를 배운 서영근은 1994년부터 3년간 흑룡강신문에 란을 개설하고 매달 1회씩 논문과 궁체, 판본체 등 서예실기를 가르쳤다. 그는 이미 궁체와 판본체로 교재를 편찬하기까지 하였다. 장장 17년 고향을 떠나 먼 한국 땅에서 공부 또 공부 그리고 교육과 봉사로 쉴 새 없이 뛰어온 서영근박사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 교수 직업도 내려놓고, 지난 1월 귀국하자마자 을 설립하고 쉴 틈도 없이 또 서예의 보급과 발전에 정열을 쏟아 붓고 있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을 하는 직업이야 말로 최고의 직업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서 하기에 힘들어도 행복하다. 그래서 서영근은 행복한 사람이다.   못 할 것이 없다. 하면 된다. 서예에 미쳐서, 손글씨에 영혼을 담고 사는 서영근이 또 한 번 큰 사고를 치기를 기대해보며, 그의 도전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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