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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이 지난 5일(현지시각) 공개한 스티브 잡스 10주기 추모 영상에 나온 생전 잡스의 모습. /애플 스티브 잡스(Steve Jobs). 애플의 창업자이자 ‘혁신’의 대명사가 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5일(현지시각)은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딱 10년이 된 날이다. 이날을 맞아 스티브 잡스의 가족, 팀 쿡 애플 CEO, 전 애플 디자인 최고책임자 조너선 아이브 등이 그를 기리는 추모사를 발표하고, 잡스가 남긴 발자국을 되돌아봤다. 스티브 잡스를 대표하는 말은 ‘원 모어 씽(하나 더)’이다. 잡스는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에서 항상 이 말을 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 제품과 기술을 공개했다. 그가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실리콘밸리는 그를 잊지 못한다. 그의 기업가 정신과 창의성, 사생활 등은 수많은 회고록이나 증언을 통해 대중에 공개됐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잡스 사후 10년을 맞아 그와의 일화를 떠올린 증언들을 통해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비결을 살펴봤다.   애플이 지난 5일(현지시각) 공개한 스티브 잡스 10주기 추모 영상에 나온 생전 잡스의 모습. /애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라 스티브 잡스는 평범한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지난 5일 애플이 홈페이지 화면에 올린 ‘스티브를 기리며’라는 2분48초짜리 추모 영상에 이런 잡스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 영상엔 잡스가 맥북과 아이팟, 아이폰 등을 공개하는 모습과 그가 직원들에게 남겼던 메시지가 담겼다. 잡스는 “당신이 삶(Life)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은 당신보다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며 “당신도 이것을 바꿀 수 있고,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정신은 잡스와 함께 일했던 팀 쿡 애플 CEO와 조너선 아이브 전 애플 디자인 최고책임자의 회상에도 드러난다. 팀 쿡 애플 CEO는 5일 직원들에게 메모를 보내 잡스의 정신을 되새기면서, “스티브는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 세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며 “그는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의 관점으로 보도록 자극했다”고 했다. 조너선 아이브 전 애플 디자인 최고책임자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를 통해 잡스를 기렸다. 그는 “스티브는 돈이나 권력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았고, 아름답고 유용하며 힘을 실어주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인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길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또 “나는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사랑했다”며 “그가 생각하는 방식은 매우 아름다웠다”고 했다.   애플이 지난 5일(현지시각) 공개한 스티브 잡스 10주기 추모 영상에 나온 생전 잡스의 모습. /애플 ◇의도가 있는 호기심을 가져라 스티브 잡스는 무한한 호기심을 가지고 이에 못지않게 실행력도 대단한 인물이었다. 조너선 아이브는 이를 “의도가 있는 호기심”이라고 했다. 그는 “스티브는 자기가 아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많은 분야에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을 가졌다”며 “그의 호기심은 날카롭고 활력이 넘쳤다”고 했다. 또 “그는 아늑하거나 가만히 있는 것을 거부했다”고 회상했다. 많은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작은 가능성이라도 집중하고, 이를 토대로 생산적인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탐구했다는 것이다. 잡스의 이런 모습은 잡스 가족의 추모사에도 드러난다. 잡스 가족은 “그는 우리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고, 주변의 새로운 생각들에 호기심을 갖고 눈앞에 보이는 것 너머를 주목하며, 초심자의 마음으로 항상 겸손할 것을 가르쳐줬다”고 했다.   애플이 지난 5일(현지시각) 공개한 스티브 잡스 10주기 추모 영상에 나온 생전 잡스의 모습. /애플 ◇자신만의 독창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라 잡스는 문제 해결에 기존의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과 통찰력을 활용했다. 아이브는 “스티브는 아이디어와 비전을 넘어 혼란 속에서 통찰력을 찾아냈다”고 했고, 잡스 가족들은 “그는 우리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라고 가르쳤다”고 했다. 델 테크놀로지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이클 델은 최근 자신의 회고록인 ‘플레이 나이스, 벗 윈’을 통해 스티브 잡스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잡스는 적자 누적 상황에서 경영진과 갈등을 겪다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났고,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체인 ‘NeXT’를 차렸다. 그는 NeXT에서 만든 컴퓨터 운영체계를 델이 사용해달라고 마이클 델을 찾아갔다. 당시 델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잡스는 1997년 재정위기에 빠진 애플로 복귀한 후, NeXT의 소프트웨어에 애플 맥 소프트웨어를 이식한 운영체계를 만들어 다시 델을 찾아갔다. 잡스는 이 자리에서 “델 컴퓨터에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와 맥 OS를 동시에 탑재해 고객이 결정하게 하자”고 제안했고, 판매되는 모든 델 컴퓨터에 대한 로열티를 요구했다. 협상은 결렬됐지만, 델은 “이 협상이 타결됐다면 IT 역사가 바뀌었을 수 있다”고 했다. 델은 “대단한 일을 하려는 사람은 뭔가가 다르고, 독창적인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한다”며 “정해진 규칙을 따르면서 놀라운 일을 이룩할 수는 없다. 잡스는 그런 면에서 탁월했다”고 했다. 스티브 잡스. /조선DB ◇고객이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파악하라 잡스는 누구보다 고객 중심의 기업가였다. 포브스는 지난 5일(현지시각) ‘잡스가 남긴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법’이라는 기사를 통해 잡스의 고객 중심 사고방식을 소개했다. 포브스는 “잡스는 제품이 마케팅이나 기술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고객의 요구와 그 요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봤다”고 분석했다. 고객을 어떻게 돕고 어떻게 기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잡스가 제품을 만든 기준이라는 것이다. 포브스는 잡스가 생전 한 말도 소개했다. “시장 조사에 절대 의존하지 마세요. 우리의 일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말하기 전에 그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고객들은 실제 제품을 보여주기 전까지 자신들이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자신과 제품에 대한 기준은 엄격하라 잡스는 이상주의자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의 생각과 비전에 몰두했고, 자기 자신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다. 아이브는 “그의 엄격함과 집요함은 기준이 높았다”며 “보기 드문 활력을 바탕으로 열심히 일했다”고 했다. 팀 쿡도 “스티브는 매일 누구도 내다보지 못한 미래를 상상했고 자신의 비전을 실현코자 쉼 없이 일했다”고 했다. 이런 잡스의 성격은 일부 주변인을 지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포브스는 “잡스는 완벽하지 않은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후회스러울 수 있지만, 시시한 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봤다”며 “그는 최소의 멋진 제품이 아닌 정말 대단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잡스가 원한 것은 조금 저렴해지거나 성능이 개선된 제품이 아닌, 고객이 구매하면서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김성민의 실밸 레이더]
3    창조성을 일깨우는 천재들의 명언록 댓글:  조회:1748  추천:0  2017-10-05
5일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지 6년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오늘날 혁신과 창조성을 이야기할 때 잡스는 여전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다.    잡스의 창조성은 20세기에 존재했던 아날로그 제품을 21세기형 첨단 디지털 제품으로 전환시켰다. 통화기능을 가진 ‘휴대전화’를 카메라와 녹음기, MP3, TV 시청, 결제 등 모든 것이 가능한 ‘만능기기’로 바꿔놓은 것이다. 창조성과 상상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잡스의 강한 신념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들의 명언은 종종 우리가 지치거나 좌절했을 때,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자극이 되고 새로운 영감을 제시하곤 한다. 여기 잡스를 비롯한 천재들이 인간의 창조성에 관해 남긴 15개의 명언들을 정리해 소개한다.       스티브 잡스 (1955~2011) 애플 창업자 창조성은 여러 가지 것들을 연결하는 것일 뿐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약간의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뭔가를 보았을 뿐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것은 그들에게 명백해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연결해 새로운 것을 합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 (1881~1973) 화가 아이들은 누구나 예술가다. 문제는 어른이 되어서도 예술가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 화가 “더는 못그리겠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도 무조건 계속 그려보라. 그러면 이내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된다.      살바도르 달리 (1904~1989) 화가 완벽을 두려워하지 마라. 어차피 완벽할 수는 없을 테니까.    레오 버넷 (1891~1971) 광고계의 거장 모든 인생에 대한 호기심이 위대한 창조자들의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레오 버넷은 월드와이드의 설립자이자 말보로 광고를 만든 인물로, 시사주간지 타임이 정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100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밖에도 이런 말을 남겼다. “별을 잡으려 까치발을 하고 손을 뻗어도 그걸 손에 넣을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손을 내리지 않는 한 손이 흙으로 더러워질 일은 없을 것이다.”     잭 런던 (1876~1916) 작가   아이디어가 번뜩일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순 없다. 곤봉을 들고 (아이디어를) 쫓아가는 수 밖에.      조지 버나드 쇼 (1856~1950) 극작가   상상은 창조의 시작이다. 간절한 바람을 상상하고, 그 다음 상상한 것을 바라고, 그리고 결국엔 바라던 것을 창조한다.      닥터 수스 (1904~1991) 작가 ·만화가 오른쪽을 생각하고, 왼쪽을 생각하고, 아래도 위도 생각하라. 의지만 있다면 얼마나 많은 생각을 발견할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찰스 밍거스 (1922~1979) 재즈연주자 창조성이란 단순히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독특한 일을 할 수 있다. 그건 쉬운 인이다. 어려운 것은 바흐처럼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 극도로 단순화시키는 것. 그것이 창조성이다.      볼테르 (1694~1778) 철학자·작가 독창성이란 사려깊은 모방에 불과하다.    도나텔라 베르사체 (1955~ ) 패션디자이너 창조성은 아이디어가 충돌하면서 태어난다.      레이 브래드베리 (1920~2012) 소설가   머리로 생각하지 마라. 사고는 창조의 적이다. 이는 단순한 자의식이고, 자의식은 형편없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해야 하는 일을 할 뿐이다.      세실 B. 드밀 (1881~1959) 미국 영화감독 창조성은 마약과도 같다. 나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      조지 버나드 쇼 (1856~1950) 극작가 사람들은 존재하는 것만을 보고 “왜 그럴까” 생각하지만,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꿈꾸고 “왜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1879~1955) 물리학자 창조성은 전염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전파하자.   중앙일보
2012년 2월 22일 미국 피닉스 소재 신경외과 병원에서 포즈를 취한 알리의 모습(AP=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강영두 기자 = 2016년 6월 3일(현지시간) 별세한 복싱의 전설 무하마드 알리는 독설가였다. 복싱부터 흑인 인권 등 사회 문제까지 이르기까지, 그는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소나기처럼 퍼붓는 그의 독변은 상대 선수를 자극했고 대중을 선동했다. 그러나 알리의 거친 입에서 험구만 쏟아진 것은 아니었다. '위대한 인간정신'에 걸맞은 삶의 지혜와 영감을 주는 경구가 많았다. 그는 또한 시인이었다. 기자회견이나 공개 훈련에서 알리가 읊조리는 시에 사람들은 웃기도 불편하기도 했다. 미국 ABC방송은 "알리는 복싱 가운을 입은 로버트 프로스트, 챔피언 벨트를 맨 마야 앙겔루"라며 "복싱계의 계관시인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해외 언론들은 생전 알리가 남긴 주요 발언들을 '어록 30선(選)' 등 형식으로 소개했다. 다음은 그중의 일부다. - 불가능, 그것은 나약한 사람들의 핑계에 불과하다.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불가능, 그것은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 좋은 답이 생각나지 않으면 침묵이 금이다. - 나이 오십에 스무 때와 똑같이 세상을 본다면 30년의 삶을 허비한 것이다. - 상상력이 없는 사람은 날개가 없는 새와 같다. -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다면 허풍이 아니다. -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 나는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나는 내가 위대함을 알기 전부터 이 말을 했다. -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서비스는 지구에서 방을 빌릴 때 내는 월세이다. - 내가 인식할 수 있고 내 마음이 믿는다면 나는 그걸 달성할 수 있다. - 나는 권투의 우주비행사다. 조 루이스와 잭 뎀프시는 제트기 조종사다. 나는 나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 당신이 나만큼 위대해진다면 겸손하기가 어렵다. - 나는 가장 위대한 사람이 아니다. 2배로(double) 위대한 사람이다. - 만약 나를 때리는 걸 꿈꿔 봤다면 각성하고 사과하는 게 낫다. - 당신을 지치게 하는 것은 올라가야 할 눈앞의 산이 아니라 구두 속의 자갈이다. -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싸우는 것을 포기할 때 당신은 패배한 것이다.
1    넷슨 만델라의 업적과 명언 댓글:  조회:2229  추천:0  2013-12-07
  넬슨 만델라 타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넬슨 만델라의 타계 소식이 들리네요. 그는 현지 시각으로 2013년 12월 5일 9시경에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1988년부터 폐결핵으로 쓰러진 이후 오랫동안 폐 질환에 시달려왔습니다. 병원에 여러 차례 입원했던 그는 지난 6월에 병원에 입원했다가 9월 퇴원해 자택에서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병세 악화로 결국 95세의 나이로 타계했습니다. 나이로 보면 오래 사셨지만, 지병으로 고생하며 돌아가신 것이 안타깝네요. 그보다는 세계에서 훌륭하신 분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더 아쉬움을 더합니다.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죽어도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 분이 돌아가시니까 가슴 한켠이 짠하네요. 비단 저뿐만이 아닐 거라 생각해요. 벌써 애도의 물결이 전해오네요. 국내 트윗을 비롯해 빌 게이츠, 호날두, 오바마 미국 대통령, 캐머런 영국 총리 등 세계 유명인들이 만델라의 타계를 애도하고 있습니다.   넬슨 만델라 업적  또한 남아공을 넘어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이기도합니다. 191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동남부 트란스케이 음베조에서 마을 족장의 아들로 태어나 비교적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난 만델라는 1940년 포트헤어대학의 법학도로 입학해 학생 자치활동으로 정학을 당했습니다. 이후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흑인집단거주 구역에서 살아온 그는 이후 변호사 학위를 취득하고 1944년에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에 가입해 흑백 인종차별 철폐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청년동맹을 창설해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이었고 첫 흑인 대통령이었습니다. 1948년에 백인정당인 국민당이 집권하면서 아파르트헤이트라는 흑백차별법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으로 인해 거주지와 공공시설에 등의 모든 일상에서 흑인과 백인이 분리되며 차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전체인구의 70%를 차지하던 흑인은 남아공 면적의 13% 안에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만델라는 이 법에 맞서며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벌이다 1952년에 체포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ANC 단체의 회원이 7천 명에서 10만 명으로 늘어났고 해외에도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남아공 정부는 이에 국가 비상사태로 선포하고 탄압과 검거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만델라는 '민족의 창'이라는 단체를 조직해 비폭력운동에서 무장 투쟁으로 전환해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1962년에 경찰에 체포되었고 1964년에 리보니아 재판에서 내란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케이에프타운 로벤섬의 악명높은 교도소에서 감옥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감옥에서도 채소밭을 가꾸는 등 주변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나갔습니다. 그리고 옥중에서 1979년에 자와할랄네루상, 1981년에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1983년에 유네스코의 시몬 볼리바 국제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환갑을 맞이했고 70세 생일이 되던 1988년에는 영국 런던 웸블리 운동장에서 8만 명이 모인 가운데 음악회가 열이게 되었습니다. 이 음악회는 전 세계 64개국에 중계되며 감동을 전했습니다.  1989년 자국 내의 저항과 세계 여론, 그리고 서구 열강들의 제재로 백인 정부는 흑백차별을 중단하게 되고 1990년 만델라는 27년간의 감옥생활에서 석방되었습니다. 그리고 현 남아공 집권당인 ANC도 이때부터 합법조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1993년에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마지막 백인 대통령인 F. W 데 클레르크 대통령과 공동 수상하며 감동을 전했습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다음 해 1994년에는 민주선거를 통해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5년간 임기를 수행했습니다. 대통령 임기기간 중에 '진실화해위원회'를 출범시켜 청문회에서 잘못을 고백한 백인을 사면하는 등 흑인과 백인의 평화로운 공존과 화합을 이끌어 내며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대회에 공식 석상에 마지막 모습을 드러낸 만델라는 2011년 이후 몸이 쇠약해져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지켜보는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재 남아공 대통령인 지이콥 주마는 그의 타계 소식을 알리며 '남아공의 위대한 아들을 잃었다.'는 말로 애도했습니다. 화해와 공존의 리더십으로 무지개 국가를 건설한 지도자, 민주화와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이었던 그를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넬슨 만델라 명언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가장 위대한 무기는 평화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데 있다. 나는 대단한 인간이 아니다. 단지 노력하는 노인일 뿐이다. 용기있는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하고 압도하여 뛰어넘는 사람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옥같은 말들이 모두 이분의 말이었습니다. 넬슨 만델라의 명언은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왔습니다. 그분의 삶과 업적, 그리고 명언과 자서전은 앞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인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것 같네요. 지난주에는 그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가 남아공에서 영화로도 개봉되었다고 합니다. 고인이 된 그를 이제 영화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었네요.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면 보러 가고 싶네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자유. 그러한 자유를 향한 외침으로 전 생애를 걸었고 적대자들까지 품에 안고 함께 걸어간 넬슨 만델라를 존경하고 애도합니다. 출처:모션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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