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룡호
http://www.zoglo.net/blog/sunlonghu 블로그홈 | 로그인
<< 4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    

방문자

홈 > 수필

전체 [ 3 ]

3    [수필] 열심히 살아 온 한 해였다고...(손룡호) 댓글:  조회:513  추천:0  2018-02-20
 [수필 ] 열심히 살아 온 한 해였다고... 손룡호        2018년 렬차는 꼭꼭 해가 뜨고 지고 하루를 반복하면서 우리를 상관하지 않고 달리고 있습니다.        춘절의 만남과 회포도 하나 둘 력사가 되여가고 있습니다.        새 력사는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시작됩니다.        오늘은 무엇을 할 가요? 계획대로 하십쇼. 모두다 나름대로 자기가 할 일이 있습니다.            하십쇼. 가십쇼. 약속한 사람을 만나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십쇼.      오늘 만나야 할 사람을 래일로 미루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래일로 미루면 미루는 것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당신의 인생을 좀 먹습니다.   일은 잘 해야 하고 당연히 좋은 일을 해야지요.     하고 싶은 일이 곧 당신의 삶을 만듭니다.          올해가 저물 때 당신은 할 말이 있어야 합니다. 헛되지 않게 열심히 살아온 한 해였다고 말입니다.         또 나가 보아야 겠습니다.그 분은 어제 밤에도 잘 자지 못하고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2018.2.20 
2    [수필] 로인들은 살아 계실 때 자주 가 봐야 한다 댓글:  조회:625  추천:0  2017-08-17
수필                 로인들은 살아 계실 때 자주 가 봐야 한다                                                                손룡호          오늘 로인절 날 아침, 우리민족의 저명한 작곡가 박학림은 한영금 할머니집으로 문안가고 싶었다. 80 년대 연변신화인쇄공장에 있을 때 알게 된 분이시였고 후날 연길시 신흥가판사처 문화소에 전근되여 일 할 때 여러가지로 많은 협조와 도움을 준 분이시니 말이다.          특히 1991년부터1993년까지  상해음악학원작곡지휘학부에서 공부할 때 돈이 모자라 때시걱을 챙기지 못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박학림은 고향의 누룽지가 무척이나 생각났다. 그래서 신흥가판사처 로인협회주임으로 일하시는 한영금주임에게 편지를 썼다. 한영금주임은 편지를 받고 가슴아파 신흥가 22개 거 유관 책임자들을 불러놓고 박학림이 써보낸 편지를 읽었다. 모두가 눈물을 흘렀다.        "우리 문화소 소장이 배를 곯아서야 되겠소. 영양있는 누룽지를 구워보내기요."     그렇게 누룽지가 해마다 상해로 부쳐졌다. 박학림은 한영금주임이 알심들여 조직하여 마련한 누룽지를 먹으면서 음악공부를 훌륭히 완수하였다.         그 누룽지가 박학림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어디 그 뿐인가? 한영금주임은 가도 문예보급활동을 할 때마다 언제나 앞서서 학림이를 자기 아들처럼 생각하여 궂은 일 마른 일 가리지 않고 도맡아 해주던 살뜰하고 후더운 분이시였다.        박학림은 자기에게 도움 준 분들을 잊지 않는다. 그 후 연변가무단창작실에 전근하여서도 설명절이면 잊지 않고 찾아 뵙군 하였었다.          그런데 3년전 엄마가 돌아간 다음부터 찾아 뵙지 못하였다.        오늘 로인절 날 아침엔 사무치게 꼭 찾아 뵙고 싶어졌다.          슈퍼에 들려 고급음료두상자를 사서 차에 싣고 할머니한테 소비돈도 넣어주고 할 생각에 차를 몰고  철남에 있는 할머니네 집으로 출발하였다. 명대 아빠트 선로 뻐스역에 도착하였는데 뻐스를 기다리는 친구 손룡호를 발견하고 멈춰섰다.         "어딜 가려구?"       "아, 학림이구만. 어딜 가는 데?"       이때 학림이는 손룡호도 연변신화인쇄공장에서 십년간 일했으니 한영금 할머니를 기억하고 있기에 말을 뗐다.      "이봐, 나같이 한영금 할머니네 집으로 가보지 않겠나?"        워낙 둘 사이가 허물없고 상대가 일이 있다면 자기일을 스스럼없이 포기하고 친구의 일에 먼저 동참하는 사이여서 손룡호는 고려도 않고 대답하였다.         "가기요. 가만 이재 누구랬소?"       "한영금, 그 할머니 아들이 텔레비방송국에서 일했는데 이름이 리...영...호.?"          "맞아. 리처장, 나와 함께 한 단위에서 여러해를 일했는데? 영호 어머니보러 가겠다는 말이지?"        "그렇소. 삼년이나 못 뵜소. 집이 철남에 있소."          순간 손룡호는 혀가 굳어졌다. 얼른 말이 나가지 않았다. 한영금 할머니는 올 해 봄엔가 사망하였었다.          주신문출판국과 주텔레비방송국이  합쳐 한 국이 되면서 퇴직한 리영호처장과 손룡호는 퇴직제3당지부의 골간들이였다. 올해 봄에 당지부활동이 있어 손룡호가 리영호를 부르니 연변병원에서 엄마를 호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영금 할머니는 몇달 앓다가 돌아갔던 것이다.          "한영금 할머니 돌아갔소."         학림이는 데꾼해서 손룡호를 쳐다 보았다.        "거 무슨 소리요?..."           손룡호는 자초지종을 얘기해 주었다. 말을 다 듣고 난 학림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떨어졌다.     엄마가 돌아가고 삼년간 다니지 않은 사이에 그 잊을수 없이 고마운 한영금주임도 영영 돌아갔던 것이다.         로인들은 살아 있을 때 자주 가 봐야 한다. 박학림은 3년간 찾아뵙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되여 가슴이 저며왔다.         2017.8.15
1    [수필] 90주년 8.1건군절 전우모임 댓글:  조회:469  추천:0  2017-08-01
[수필] 90주년  8.1건군절 전우모임  손룡호           모부대 복원군인들이 8.1건군절 90주년을 맞으면서 전국각지에 널린 전우들에게 통지하여 연길에서 모임을 가지였다.        만나자마자 손잡고 포옹하고 다시 쳐다보고 다시 손잡고 놓치 않는다. 부대란 특수한 집단이다. 전우란 전우들만이 알고 소중히 여기는 귀중한 인맥이다.        모두다 함께 술잔을 들고 당년의 우렁찬 목소리로 군가를 부른다. 20년이 지났어도 목소리는 여전히 우렁차고 색바래지 않았다. 모두다 월남자위반격전에 참전했던 용사들이였다.        한 상에 앉았던 한 녀성이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남편을 잊지 못해 재가하지 않고 홀로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온 로산전투에서 전사한 련장의 안해였다. 그녀의 눈물은 전체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그렇다. 바로 이  영웅적전사들이 조국보위자위반격전에서 남편과 함께 비발치는 총탄속에서 터지는 폭탄속에서 상하고 쓰러지고 전사하면서 적을 무찌르던 열혈의 영웅적 전사들이였기 때문이다. 비록 남편은 그 전투에서 전사하였지만 예정한 승리를 거두었고 돌아온 전우들은 각기 다른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 감격적인 모든 장면들이 한 끌끌한 20대청년의 핸드폰에 촬영되고있었다. 엄마와 같이 달려온 련장의 아들이였다.         항일, 해방전쟁, 조국자위반격전...총을 들고 싸우는 전투마당에서 헤아릴수 없는 혁명렬사들이 나왔다.          오늘 우리는 그들이 바친 소중한 생명과 선혈이 이뤄낸 평화의 옥토에서 맘껏 자라고 숨쉬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있다.         때론 그들을 잊고 경거망동하면서...          2017.8.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