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현용수 조글로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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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    새해축복 댓글:  조회:292  추천:0  2022-03-21
달력은 벌써 두번째 장이네요. 립춘도 지났고 구정도 지났고 새해 원정 본격 시작되였습니다. ​ 우리는 저마다 설을 쇠면서 가장 아름다운 축복 주고 받았죠. 새해에 진짜로 대박이 터질라나? 은근히 바라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 하지만 너무 많이 바라진 마십시요. 공연히 힘들어 집니다. 적당하게 계획 세우시고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순리에 따라 행하심이 정답입니다. ​ 일당 벌이가 십만 넘지 못해도 일자리만 계속 있으면 됩니다. 동포그룹에서 기회 제공합니다. ​ 웨신 카톡에 친구들 많지 않아도 딱친구 한사람 있으면 됩니다. ​ 계자에 억대넘게 모으지 못했어도 일할수 있어 계속 벌면 됩니다. ​ 주위 사람들의 호평이 없어도 한사람이 나를 알아주면 됩니다. ​ 집이 여기저기에 많지는 않아도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면 됩니다. ​ 집에 자가용이 없다 하더라도 가고 싶은데 갈수 있으면 됩니다. ​ 재간이 많아 출중하지는 않아도 사상 개방되고 마음 너르면 됩니다. ​ 인생을 휘황하게 살지는 못해도 일생에 큰 후회가 없으면 됩니다.   명이 길어 백살까지 살지는 못해도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살면 됩니다. ​ 매일매일 정채롭게 살지는 못해도 하루하루가 즐거우면 됩니다. ​ 많은 사람들과 사귀지는 못해도 사랑하는 당신만 있으면 됩니다. ​ 남은 인생 그리 길지 않습니다 너무 많이 너무 높이 바라지 말고 간단하게 실속있게 사는것이 좋지요. ​ 오늘은 참신한 하루입니다. 남은 생애 가장 젊은 날이죠. 인생에는 늦었다가 없습니다. 매일매일 새삶이 시작되지요. 인생 시계바늘 0시에 돌려놓고 오로지 내일만 생각하면서 즐겁게 충실하게 살아 갑시다. 현용수 2019-2
256    억지로 하지마 댓글:  조회:304  추천:0  2022-03-21
비움이 없으면 채움이 없고 후퇴가 없으면 비약이 없으며 금지가 없으면 발양이 없습니다. ​ 새해에 우리는 무엇을 할것인가? 먼저 우리 이런것을 하지 맙시다. ​ 억지로 하지맙시다.. 가능한 정도에서 합시다. 생활중의 허다한 일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될때가 있죠. 한사람의 능력에는 제한이 있고, 여러방면 제약을 받기 때문입니다. 오직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였다면, 그것으로 당신의 인생 합격입니다.   후회하지 맙시다, 누구나 잘못할때가 있습니다. 영원히 정확한 사람은 없습니다. 인생에서 어찌하여 착오 범했다면 후회에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요. 지난 착오로 내구심에 빠진다면 그건 착오보다도 더 큰 착오입니다. 매번 착오는 모두 일종 성숙입니다. ​ 상심하지 맙시다. 비통은 잠시적인 것입니다. 길지않은 인생길에서 누구나 생사리별의 비통을 겪게 됩니다. 너무 상심스럽고 억울할때는 시원히 소리내여 우십시요, 적당히 울고는 인차 눈물을 닦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비통후 더 좋은 날 올수도 있습니다. ​ 실망하지 맙시다, 기회는 또 있을수 있습니다. 한사람의 최대 재산은 회망이고, 한사람의 최대 파산은 절망입니다. 용감한 사람은 기회 창조하고 비겁한 사람은 기회 기다립니다. 하늘에서 금덩이 떨어진다 하여도 대기하고 있던 사람에게 차려지죠. 인생엔 탐색 착오 충만돼 있습니다. 한번 실패는 성공의 전주곡입니다. ​ 포기하지 맙시다, 견지하면 회망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유감스러운 것은 버리지 말아야 할것을 버린 것이며, 버리지 말아야 할때 버린 것입니다. 한가지 길만은 절때 선택 마십시요. 그것은 노력 포기하는 길입니다. 한가지 길만은 절때 거절 마십시요, 그것은 노력해 볼만한 길입니다. 위인이 위대한 것은 그들이 일반인들과 꼭 같은 역경에서 일반인들은 신심을 포기하였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희망은 언제나 가장 절망적일때 장난치듯 문뜻 나타납니다. ​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늘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용기내도 두려울때는 꼭 해야 할일에만 집중하십시요. 마음이 혼란하여 두려운 것입니다. 사노라면 많은 장애에 부딛칩니다. 한번 부딛치면 그만큼 총명해 지죠. 진정 결심 내리고 가려는 길이라면 정말 못 넘을 장애물이란 없습니다. ​ 성내지 맙시다, 너른 마음을 가지십시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보면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 있게됩니다. 그럴 때에라도 절때 성내지 맙시다. 성 내면 자기만 손해보게 됩니다. 좋은 마음은 아름다운 명함장이죠. 너른 마음가짐은 호상 신임의 교량, 자신감은 너른 마음가짐에서 옵니다. ​ 근심하지 맙시다, 모두 지나갈 것입니다. 모두 좋아질 것입니다. 하늘은 매사람에 모두 공평합니다. 한쪽문이 닫겼다면 다른 한쪽문을 열어줍니다. 불행은 당신만 차려진것 아닙니다. 대천세계에 꼭 당신 위치 있습니다. 당신이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죠. 낙관은 곤난 전승 제일보입니다. ​ 조급해하지 맙시다, 꿈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합시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의 경우 자기 건강에 신심을 가지고 한 백살까지 길게 잡아 보십시요. 그러면 지금이 한창나이 될 것입니다. 한번에 크게 성공하려 하지말고, 장원 타산하고 주밀 계획하십시요. 어렸을때 공부 잘 하지 못했다고 지금 헛되히 후회만 하지말고 더 늦기전에 많이 배우고 겪으시라. 먼저 핸드폰 글자치기부터 배우시라. 그다음 여건 보아 컴퓨터도 배우고 어느 후날 90축수 파티 열면서 젊었을때 고생 참말 고마울 것입니다. ......... ​ 오늘담당 현용수20190201아침 ​
255    건강문제3 댓글:  조회:295  추천:0  2022-03-21
노년에 건강한 신체 갖고 계신다면 그건 인생 제일 대단한 성적입니다. ​ 당신은 많은 돈이 필요하십니까? 우선 건강한 신체 확보하십시요. 아침이면 일어나고 저녁이면 자고 때가 되면 먹고 힘드면 쉬고 하면서 순리에 따라 열심히 벌이 하신다면 어느날에 꼭 웃을날이 올 것입니다. ​ 당신 계자에 적힌 수자 1이 당신의 건강한 신체라고 할때 열심히 돈벌어 정기로 저금하여 그뒤에 많은 0 첨가할수 있습니다. 0이 하나씩 첨가 될 때마다 재부는 열배씩 증가됩니다. 0이 아홉개면 억대부자 되는거죠. ​ 하지만 건강한 신체 없어진다면 앞의 수자 1도 없어지고 말것이니 그뒤에 0을 아무리 많이 첨가해도 결과는 여전히 0이 되고 말지요. ​ 인생가치에 대해 너무 집념마세요. 인생을 가치로 론하던 시대는 이미 멀리 가 버렸습니다. 지금은 건강이 바로 가치이고 살아 있는 것이 바로 왕도입니다. ​ 노자 도덕경 가라사대 군자는 无为로 일 처리하고 无言으로 사람 가르치니라. ​ 无为란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는 뜻으로서 노자 처세철학의 핵심입니다. ​ 인생에 억지로 가치를 부여한다면 인생은 도리여 짝퉁이 돼 버리고, 无为의 태도로 자유롭게 산다면 인생은 도리여 가치가 있게 됩니다. ​ 노후 비자금 마련하고 계시는 분들 자금만 충족하면 만사대길이라 이런 생각은 크게 틀리는 생각입니다. ​ 신체에 뜻밖에 이상이 생기면 일년 번돈 하루아침에 탕진하고도 결국 화장터에 실려가는 수 있습니다. ​ 누구나 한번은 이 길 가야 하지만 될수록 많이 미루어 가고 고통이 없이 가려는 것이 매 사람들의 념원일 것입니다. ​ 그러니 노후를 위하여 돈도 보험도 있어야 하겠지만 더우기 건강저축이 있어야 합니다. ​ 건강저축이란 평소 단련 보양해 낸 튼튼한 신체소질을 말하는 거지요. ​ 건강저축이 많아야 수명 늘릴수 있고 아플때 고통 줄일수 있고 빨리 회복되게 할수 있으며 의료비도 절감할수 있습니다. ............ ​ 오늘까지 세번에 나누어 건강에 관해 좀 아는 척 해 봤습니다. 하여튼 참고로 하여 주십시요. ​ 여러분!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부디 아프지 마세요. 물론 그후에도 쭈욱ㅡ 건강하시구요! ​ 2019-02-08
254    건강문제2 댓글:  조회:303  추천:0  2022-03-21
건강과제는 인류가 영원히 완성못할 숙제입니다. ​ 의학으로 질병 소멸할수 없습니다. 医道가 가까스로 한차원 오르면 병마는 단번에 열차원씩 오릅니다. ​ 사회가 발전할수록 병원 많아지고 병원 많을수록 병자들 차 넘칩니다. ​ 의학이 발전하여 수명 길어졌지만 병자는 도리여 점점 많아집니다. ​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장수이지 병원에서 오래살아 장수 아니죠. ​ 의학으로 질병 소멸할수 있다면 언젠가는 장생불로 가능하게 되여 인류는 행복한 멸망 맞이하게 되죠. ​ 사회적 건강관 분명 문제 생겼는데 그것이 딱히 뭔지 말할수 없습니다. ​ 단지 본원에서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이렇게 막연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 본원이란 사람에게 고유한 공능 바로 면역력과 자아치유력이죠. ​ 면역력과 자아치유력이야말로 질병의 가장 오랜 천적입니다. ​ 본래 의미의 질병과의 싸움에서 면역력과 자아치유력이 주체이고 의학치료는 보조여야 하는건데 현재 그 위치 완전 바뀌였습니다. ​ 하여 병은 치료할수록 어려워 지고 환자는 치료할수록 많아집니다. ​ 사회가 과학위주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몸에 질병이 생기면 주로 외부수단으로 치료합니다. 즉 약 먹고 주사 맞고 수술하는 등 ​ 이 과정에 면역력과 자아치유력은 실업을 당하고 점차 퇴화되여 버리죠. ​ 기실 면역력은 신체내 국방군이요. 자아치유력은 신체내 경찰입니다. ​ 나라를 지키고 다스림에 있어서 자기 국방군과 경찰에 의거해야지 외국군 지원에만 의거한다면 조만간 페단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 사람들의 면역력과 자아치유력은 주로 음식과 생활습관에서 옵니다. 그러니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거죠. ​ 어떻게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가? 여기엔 통일된 표준이 없습니다 공중에 떠도는 과학상식 미신 말고 남의것을 그대로 본 받지도 말고 주로 자기로 탐색 터득해야 합니다. ........... ​ 오늘담당 현용수20190201저녁
253    건강문제1 댓글:  조회:265  추천:0  2022-03-21
늙음과 죽음은 반갑지 않지만 그래도 하늘이 내리시는 복입니다. 늙음과 죽음이 있으므로 하여 인류는 번영창성할수 있는거죠. ​ 하지만 어느때 부터던가? 사람들은 늙음을 싫어합니다. 죽음은 더욱 싫어합니다. 건강장수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천성이죠. ​ 일생동안 명리에 들볶이여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오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늙어버리죠. ​ 아차! 하고 느낄때는 이미 늦었죠. 전화번호 기억이 잘 안되고 허리 다리도 질끔질끔 아파납니다. 거울엔 웬 낯설은 늙은이 비낍니다. ​ 그래서 건강비결 관심하게 되죠. 다행히 텔레비 신문 인테넷에 건강비결이 폭팔적으로 많습니다. ​ 의학가 양생가 어디어느 스님... 운동해야 한다느니 소식해야 한다느니 싱겁게 먹으라느니 담배 피우지 말라느니 ......... ​ 그리고 이런 건강비결 모두가 과학적 연구결과라고 합니다. 감히 믿지 않을수가 없죠. ​ 오늘까지 별탈없이 살아왔건만 결국 살줄 모르고 살아온 셈이죠. ​ 그런데 풍자적인 것은 이런 건강대가들도 병들땐 병들고 죽을땐 죽고 하면서 진짜 장수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 진짜 백세 사람들 자료를 살펴보면 오히려 상식을 깨는 사례 많습니다. 그들은 운동을 할줄 모르고 고기를 이인분 삼인분씩 먹고 술도 때마다 적지않게 마이고 심지어 담배도 피운답니다. ​ 그러니 과학적인 소위 건강비결도 절대적 옳은건 아닌것 같습니다. 참고는 하되 미신은 아니다 이거죠. ​ 건강비결도 행복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감수에 따라 다를수 있으니 자기나름 표준이 다른것 같습니다. .......... ​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오늘 이만합시다. 다음 기회에 계속하죠. ​ 2019.1.3 동포그룹 인사말에서
252    두텁고 검은 철학 댓글:  조회:279  추천:0  2022-03-21
세상에서 두 부류의 사람들이 성공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 첫째 부류는 낯이 뻔뻔스런 사람 둘째 부류는 맘속이 엉큼한 사람. ​ 첫째 부류 사람들의 특징은 낯거죽이 소가죽처럼 두꺼워 그들은 렴치도 수치도 모릅니다. ​ 이 부류의 대표적 인물로는 삼국시기 류비를 들수 있습니다. ​ 그는 원래 삿자리 결어 팔던 너무나 평범한 소인물이였는데 그에게 하도 뻔뻔스런 특기 있어 영웅 되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 그는 실력이 모자라니 남 밑에 얹혀살기 서슴치 않았으며 자기 잘못으로 싸움에 지게되면 울음 터뜨리여 동정을 얻어냅니다. ​ 그는 후에 제갈량의 도움을 얻어 기틀을 잡고 크게 성공하여 삼국의 하나인 촉나라를 세움니다. ​ 둘째 부류 사람들의 특징은 맘속이 솥밑굽처럼 검은데 목적위해 비렬함도 서슴치않지요. ​ 이 부류의 대표적 인물로는 삼국시기 조조를 들수 있습니다. ​ 그는 원래 지방의 작은 관리였는데 나라 찬탈한 역적을 암살하려다가 실패로 하여 이름 날렸습니다. ​ 조조의 인생철학은 내가 세상사람 버릴지 언정 세상사람 나를 버리게 할수없다. ​ 그는 의심이 특히 많아 많은사람을 잘못 죽였으며 음모궤계 잘 꾸미고 간사하며 패왕의 꿈 시종 잊지 않았습니다. ​ 후에 그도 크게 성공하여 삼국최강인 위나라를 세웁니다. ​ 중국력사는 기실 황제 교체사인데 매 조대마다 두루 살펴보면 낯거죽이 가장 두꺼운자 황제질 하고 맘속이 가장 검은자 강산 차지했습니다. ​ 자고로 동고동락은 합작 미덕인데 실제로는 함께 고생은 쉬웠지만 성공한후 함께 향락 드믈었습니다. 하루아침 강산이 내것이 되고보면 그젯날 공신부터 목을 쳐 버리지요. ​ 우리는 모두 정치인이 아니니깐 맘속까지 검을 필요는 없겠지만 돈 벌이 더 잘되게 하기 위해서 낯거죽 두껍게 할 필요는 있을것 같습니다. 2019.1.3 카카오 동포그룹 인사말에서
251    우주여행 댓글:  조회:285  추천:0  2022-03-20
새해는 마치 뭐가 부끄러운듯 우물쭈물하면서 들어 오는데 내일은 일단 오늘이 되는 순간 화살처럼 휙ㅡ 날아가 버립니다. 그리고는 영영 돌아올줄 모르죠. ​ 하루 한주는 금방금방 지나지고 한달 한해는 간곳없이 사라지고 순간순간만 부단히 교체됩니다. ​ 며칠전 익숙한 친구 우연히 만나 반갑다 악수하며 인사하고 보니 못 본지 20년 소스라쳐 놀랐죠. 우리 어느새 이리 멀리 와 있지? ​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지구라는 작은 우주선에 앉아 하루 4만키로의 초고속으로 망망 우주여행 하고 있습니다. ​ 정신 바짝 가다듬고 안전띠 단단히 매세요. 자칫 소홀 했다간 뿌리워 나가 하늘에 버려지는수 있습니다. ​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 잃지않고 항상 낙관하며 웃으며 사는것 바로 정신 바짝 가다듬는 것이요 ​ 열심히 돈벌어 노후준비 잘 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건강관리 잘 하는것 바로 안전띠 단단히 매는 것입니다. ​ ................... ​ 2018.12.28 카카오 동포그룹 인사말에서
250    지구에 왜 왔나? 댓글:  조회:241  추천:0  2022-03-20
사랑스런 지구는 돌고돌고 무정한 시간은 흐르고 흐르고 사람들은 사노라 서둘고 서둘고. ​ 사람이 왜 지구에 왔는지 아세요? 녜! 원래는 우주 한가닥 정기였는데 생명 고급존재 연수하러 왔지요. 단순과제 사람은 며칠 살고 가지만 과제가 많고 복잡한 사람은 정도에 따라 오래오래 살면서 파란만장 겪어보고 돌아 갑니다. 사람 생명연수를 인생이라 하지요. ​ 부모에게서 생명 전수 받습니다. 동시에 욕망도 생깁니다. 욕망은 생명발전 원동력이요 또한 무한 팽창될수 있는 괴물 하여 지구는 사람들과 엄격한 수명계약 체결합니다. 첫째; 한번만 와서 살아야 한다. 둘째; 기한 되면 반드시 가야 한다. 셋째; 빈 손으로 가야 한다. ​ 사람들은 인생연수 진행하면서, 재능도 지식도 배웁니다, 우정도 사랑도 배웁니다, 성격도 사상도 형성됩니다, 돈도 벌고, 재부도 모읍니다. 가정 이루고, 자식들 낳아 키웁니다, …………… ​ 사람들은 또 인생연수 과정에서 탐욕도 생깁니다, 질투도 생깁니다, 두려움도 생깁니다, 증오도 생깁니다. ........ ​ 사람 욕망이 제한 받게 되면서 행복이란 도취제 만들어 지여 사람들의 불만 위안하여 줍니다. 행복 주성분은 만족입니다. 한그릇 우동 세사람 나눠 먹어도 거기 만족하면 행복하다 하지만 금산은산 천하일부 되였어도 만족 못하면 행복하지 못합니다. 인생은 대체로 이렇게 연수되죠. ​ 인생연수 끝나면 계약에 따라 지구에서 얻은 모든 걸 바칩니다. 재능도 재부도 바칩니다, 우정도 사랑도 바칩니다, 신체도 생명까지도 모두 바칩니다. 부자든 궁자든 한줌의 재가 되여, 다시 지구의 흙으로 돌아 갑니다. ​ 오로지 한가닥 정기만은 여전하니, 인생연수 원만하게 마치고, 령혼으로 승화하여 지구 떠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천체에 가서 다른 존재형식을 계속 연수합니다. 이렇게 무한히 연수 다닙니다. 밤 하늘 반짝이는 저 별들과 함께 .......... ​ 지금까지 안목을 바꾸어 사람들의 삶 내려다 봤습니다. 너무 잘난 인간들 때문에 스트레스랑 받질 마시고 종종 자기 벗어나 높은곳에서 이 세상 내려다 보십시요. 세상이 그래도 살만해 보일겁니다. ​ 2018.12.28 카카오 동포그룹 인사말에서
249    자기 신체 돌보며 돈 벌어라! 댓글:  조회:297  추천:0  2022-03-20
자기 신체 돌보며 돈 벌어라!   사람의 신체는 온몸이 보물 투성인데, 어느 부위가 고장 나서 바꿔 넣으려면 당신은 엄청난 대가를 치려야 한다.   이식이 가능한 몇개 부분만 말해보자.   현재 합법적 인체 장기 시세에 따르면; 눈각막 이식 한쪽에 약 3만 딸라, 심장 이식에 약 100만 딸라, 간장 이식에 약 60만 딸라, 신장 이식에 중국에서 약 7만 딸라, 미국에서는 약 30만 딸라 내야 한다.   만약 당신의 장기가 모두 건전하다면, 당신은 이미 천만 부자인 셈이다.   보지 못하는 사람은 이렇게 기도한다; 저를 눈만 보이게 해 주소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심장 나쁜 사람은 이렇게 기도한다; 저를 심장만 좋게 해 주소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간장이 나쁜 사람은 이렇게 기도한다; 저를 간장만 좋게 해 주소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신장이 나쁜 사람은 이렇게 기도한다; 저를 신장만 좋게 해 주소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 모든것들이 다 있다. 얼마나 행복하고 사치한 부자인가?   그런데 지금 우리 주위 많은 사람들은 백만원 자가용은 목숨처럼 보양하면서도 천만원 자기 신체에 대해서는 등한하더라.   인생이란 빈손에 왔다가 빈손에 가거늘 백살 살았댔자 3만6천날 좀 넘는 한생 그래도 살면서 사람구실이나 하고 살려면 돈도 얼마쯤 벌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제명에 있는 만큼이나 벌면 되는 것이요. 목숨까지 걸고 돈 벌어서는 무엇 할려고?   모년 모월 모일에 끝내는 쓰러지여 두 다리가 뻗어지고 눈알이 뒤집히면 숨이 끊어지고 저 세상에 가게된다. 빈의관에 실려가서 화장로에 던져지여 몸은 타서 재가되고, 혼은 타서 연기되고, 당신은 그렇게 쓸쓸히 버리여 진다   평소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한 탓에 너무 일찍 저 세상에 쫓겨가게 되니 당신의 재부도 지위도, 그리고 미녀도 모두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여 버린다. 아무리 억울하고 원통한들 어쩔수 없다.   즐겁게 논다 하여 피곤하게 하지마라. 날 새며 마장놀고, 노래방 가고, 술 먹고… 그 어느날 신체에 고장이 생기는 날엔, 일생동안 고생스럽게 벌어놓은 재산을 고스란히 병원에 가져다 바쳐야 한다. 심지어 가산을 탕진하고 가정이 깨지여 부모와 자식들에게마저 누 끼치게 된다.   당신은 아직 할수있는 일들이 아주 많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시작하라 매일매일 즐겁게 살면서 심신을 보양하라. 너무 다욕하지 말고, 남과 비기지도 말며, 자기로 자기를 기 상하게 하지 마라.   저녁에 제때 자고, 아침에 제때 일어나며, 생활을 규칙있게 하고, 신체단련 견지하라.   이 세상에 진짜 당신의 것은 하나도 없다, 당신의 신체도 당신만의 것은 아니다. 유독 당신의 생명만이 당신의 것이다.   현용수 적음 2016-11-10
248    인생중에 만난 모든 사람 존중하여라. 댓글:  조회:276  추천:0  2022-03-20
인생중에 만난 모든 사람 존중하여라.   남들이 너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건 너 도덕이 부족하기 때문이요 네가 남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건 너 수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니라.   남들이 너를 용납하지 못한다면 그건 너 성질이 괴벽하기 때문이요 네가 남을 용납하지 못한다면 그건 너 마음이 옹졸하기 때문이니라.   남들이 너를 돕지 않는다면 그건 너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요 네가 남을 돕지 않는다면 그건 너 선량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남의 마음으로 남을 생각하지 말고 자기로서의 선의로 남을 생각하여라. 남의 태도대로 남을 대하지 말고 도량이 있는 태도로 남을 대하여라.   남의 잘못으로 남을 미워하지 말고 용서해야 할때에 용서하여 주어라. 특히 너에게 피해를 준 사람에게 원한을 품지말고 덕으로 갚아주어라   사람과의 교제는 연분에 따르고 인생중에 만난 모든 사람 존중하여라. 온 천하 사람들이 너를 버리더라도 너는 천하 사람들을 버리지 말어라. 바다같은 흉금으로 천하를 포용하면 천하는 결국 너의것이 될 것이니라.   현용수 적음 2016-11-17
247    가장 우수한 사람 물과 같다 댓글:  조회:252  추천:0  2022-03-20
가장 우수한 사람 물과 같다 (上善若水) 2500여년전 중국에는 노자라는 성인이 있었다 그는 중국 도가의 시조이고, 동방 철학의 시조이며, 변증법의 창시인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가장 우수한 사람은 물과 같다 하였다. 물에는 아주 우수한 품성들이 많으니 사람들이 그 품성을 배우라는 것이다.  물에는 어떤 우수한 품성들이 있는가? 아래의 열가지로 정리하여 보았다:   1, 대공무사하다. 물은 만물을 성장시켜 주면서도 그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으며, 그 무엇과 다투지도 않는다.   2, 겸손하다. 물은 항상 자기를 가장 낮은 곳에 둔다. 그리하여 천하의 강물이 그곳에 모인다. 결국 망망한 대해가 이루어 졌다.   3, 자애롭다. 물은 세상의 만물을 쓰다듬어 준다. 가장 날카로운 것도 포용할수 있고, 가장 어지러운 것도 씻어 준다. 4, 응변력이 강하다.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근 모양이 되고 네모 그릇에 담으면 네모 모양이 된다. 그 어떤 모양에도 응변할수 있지만 물의 본질만은 시종 변하지 않는다.   5, 령활하다. 온도를 높이면 증기로 될수있고, 온도를 낮추면 얼음으로 될수있다, 이렇게 방식 바꾸면서 많은 일을 한다.   6, 완강하다. 그 어떤 압력에도 위축되지 않고, 시종 자기의 체적을 보존하면서, 그 압력을 추진력으로 전가시킨다.   7, 환경에 순응 잘한다. 산을 만나면 에돌아 흘러가고, 웅덩이를 만나면 채우며 흘러가고, 골짜기를 만나면 따라서 흘러간다. 8, 충격력이 강하다. 높은곳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바위도 부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강을 막아 땜을 쌓고 물의 힘을 리용하여 발전소를 세웠다.   9, 끈질긴 의력이 있다.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는 물방울에 바위에도 구멍 뚫린다고 하였다.   10, 강한것을 이긴다. 세상에 물보다 유약한 것이 없지만 견강한것을 공략하는 데는 물 이상이 없다. 현용수 적음 2016-11-04
246    모소참대의 성장철학 댓글:  조회:268  추천:0  2022-03-20
모소참대의 성장철학 * 중국 남방지역에는 모소(毛素竹,孟宗竹)란 참대가 있는데 가장 높이 자라는 참대이다. ​* 그 참대는 어떻게 그리 높이 자라는가? 첫4년에는 3㎝밖에 자라지 못한다. 거의 자라지 않은 거나 다름이 없다. ​* 그런데 다섯번째 해에 기적이 일어난다. 하루에 30㎝씩 파격적으로 자란다, 그리하여 한달이 좀 넘게 자라면 15m 높이의 늠늠한 거물이 된다. ​* 참대는 첫4년동안 잠만 잔것 아니다. 그기간 결사적으로 뿌리를 확장하였다. 그 덕분에 다섯번째 해에 가서 그렇게 파격적으로 자랄수 있었다. ​* 이것이 바로 이 참대의 성장철학이다. 역시 인생의 성공철학으로도 된다. ​* 다년간 간단없이 노력을 해온 분들 성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낙심마라. 당신 뿌리가 점점 억세여 지고 있으니 이를 악물고 조금만 더 견지한다면 이제 때가 되여 놀라운 기쁨 있으리라. * 현용수 적음 2017년01월16일
245    자신을 명품으로 만들어라. 댓글:  조회:256  추천:0  2022-03-20
자신을 명품으로 만들어라.   스타를 숭배만 하지말고, 자신도 스타감이라고 생각해 보라. 스타는 아무나 하는 건 아니지만 스타들도 처음부터 스타인건 아니다. 비상하게 사노라니 스타가 되였다.   스타 비결은 비상하게 사는 것이다. 남들보다 비상한 목표를 세우고, 남들보다 비상한 길을 선택하고, 남들보다 비상한 행동을 취하며 남들보다 비상한 노력을 투입하면 당신도 언젠가 스타로 될수있다. 사람이 세상에 태여나는 것은 나이 먹고 죽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창조를 좀 하여 우점을 하나 증가하라는 것이다.   모양이 아무리 못생겨도 그것이 특색이 될수 있고 이름이 아무리 촌스러워도 바로 명품 브랜드로 될수 있다.   보다 더 당당하게 살고 보다 더 우수하게 살며, 보다 더 가치있게 살면서, 이 세상에 명품을 하나 남겨라.   명품을 부러워만 하지말고 바로 자신을 명품으로 만들어라.   현용수 적음 2016-12-12    
244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함양(涵养) 댓글:  조회:260  추천:0  2022-03-20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함양(涵养) *   1, 자고자대 하지 마라; 하늘밖에 또 하늘이 있고, 뛰는놈 위에 또 나는놈 있다. 겸손은 일종의 태도이면서도, 더욱히는 일종의 품격이다. 자기 위치를 낮은곳에 정하라. 권리와 직위는 한때의 것이고, 금전은 몸 바깥의 물건이고, 신체만이 당신의 것이며, 사람 도리는 장구적인 것이다 *   2, 남에게 경솔히 큰소리 마라 말에는 신용이 있어야 하고 행동에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 실속없는 큰소리 경솔히 했다간 결국 당신만 경박한 놈 되고만다.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얻고, 습관을 심으면 성격을 얻으며, 성격을 심으면 운명을 얻는다. 결국 습관이 운명을 결정한다. *   3, 남에게 경솔히 청구하지 마라 자기로 해결할수 있는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의거하지 마라. 자기의 독립성을 가강하고 타인을 침해하지 않으며, 자기로 자기를 아낄줄 알며 매일매일 쾌락하게 생활한다. 남을 정확히 아는 것은 총명이고 남에게 알려지는 것은 행복이며, 자기로 자기를 아는 것은 지혜이다. *   4,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 사람은 원래부터 사람이므로 특별하게 사람질 할 필요가 없다. 세상은 원래부터 세상이므로 특별하게 처세 할 필요가 없다. 인생에는 세가지 경계가 있는데; 초년에는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이다. 중년에는 산이 산 아니고 물이 물 아니다. 말년에는 산 역시 산이고 물 역시 물이다. 이것을 자연회귀 법칙이라고 한다. *   5, 남을 비웃지 마라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으로 일시 쾌락을 얻을지 모르겠지만 남의 일생에 평생의 상처를 줄수 있다. 생명 정체는 상호 의존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물도 상호 의존하는 것이다. 은덕에 감사할줄 알아야 한다. 대자연의 은덕에 감사하고, 부모의 은덕에 감사하며, 배부르게 먹을수 있음에 감사하고, 춥지않게 입을 옷이 있음에 감사하라. *   6, 함부로 성을 내지 마라 성을 낸다하여 강해지는 것 아니며 오히려 미련한 착오를 범할수 있다. 성을 내면 자기 신체 상하게 되고, 또 서로간의 감정도 상하게 된다. 한발 양보하면 너른 바다 높은 하늘이요 잠깐 참는다면 바람 멎고 파도 잦는다. 자주 성내면 자기만 난폭하게 된다. 풍물이 장원하니 멀리 내다 보아라. *   7, 남의 말을 중단시키지 마라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게 되고 자고로 침묵이 금이라고 했다. 유심히 듣는 것은 일종의 지혜이고 일종의 수양이며, 일종의 존중이며, 또 일종의 심령의 소통이다. 평온은 일종의 심태이면서도 또 일종의 성숙된 품격이다. *   8, 자기 의표에 소홀히 하지 마라 아름다움을 뿌리면 행복을 얻는다. 자기의 의표는 일종의 태도이며 또 일종의 자신감이다. 자기를 아름답게 꾸미고 나선다면 남들에게도 상쾌감을 줄수 있다 이것은 심령의 수련으로서 조절 수련 초월 등 단계가 있다. *   9, 자기를 가두지 마라 사람들과 많이 교류하는 것은 능력이다. 남을 방조하는 것은 숭고한 행위이고 남을 리해하는 것은 일종의 활달이며 남을 용서하는 것은 일종의 미덕이고 남을 칭찬하는 것은 일종의 쾌락이며 남의 리해 받는 것은 일종의 행복이다. 달이 둥글면 자연의 시를 읊고 달이 찌들면 인생의 시를 읊고 머리 쳐들고 봄노래를 부르고 머리 숙이고 가을노래 부르라. *   10, 노실한 사람을 깔보지 마라 약자를 동정하는 것은 일종의 품덕이고 일종의 경계이며, 일종의 수양이다. 심리가 건강해야 신체가 건강할수 있다. 사람이 기량이 있어야 하겠지만 더욱히는 좋은 기질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좋은 기질이 있어야 하겠지만 더욱히는 좋은 연분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좋은 연분이 있어야 하겠지만 더욱히는 좋은 사업이 있어야 한다 선을 많이 쌓으면 덕이 이루어 지고 심신을 수련하면 생명이 양생된다. *     현용수 적음 2016-11-30
243    살아 있을때를 아껴라! 댓글:  조회:294  추천:0  2022-03-20
살아 있을때를 아껴라! * *살아 있는 것이 곧 성공이요, 건강한 것이 곧 재부이다. 분투하는 것은 인생 유희일 뿐. 우리 모두 백년이 된 후에는 너는 너대로 저기서 자고, 나는 나대로 여기서 자고, 아무리 재미있는 말로도,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깊이깊이 자야 하고 오래오래 자야 하기 때문에. 그러니 살아 있을때를 아껴라! 함께 할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언제 가선 서로 갈라져야 하니깐. 다투지도 말고 시기하지도 말며, 좋은말을 하고 서로 리해하며, 서로서로 축하하며 화목하게 살자. 생명은 누구나 한번뿐이다, 길고 짜른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생활은 누구나 하루하루 지낸다, 힘들고 쉬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인생은 누구나 길 가는 과정이다, 빠르고 늦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세계는 크고, 인심은 복잡하다. 어찌 항상 좋은 사람만 만나겠느냐? 세상은 어지럽고, 인간들은 간사하다, 어찌 항상 좋은 일만 생기겠느냐? 이런건 그저 연분에 맡겨 버리고, 좋은건 가까히 하고 나쁜건 피해라. 누구나 모두 죽는것을 싫어한다. 아무리 불치병이라 하여도 그렇다. 특히는 온갖 수단으로 살려하다가, 결국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할때. 어쩌는 수 없다 해도 좋고, 담담한 심태라 해도 좋으니, 너무 많은것을 생각하지 말고, 너무 멀리 생각하지도 말며, 매일매일 열심히 지금만을 살어라. 결국 생각밖에 오래 살게 될것이다. 한평생을 두루 살아 가노라면 누구는 나를 부러워하고, 누구는 나를 미워하고, 누구는 나를 질투하고, 누구는 나를 업신보고, 하지만 그까짓것 상관하지 말어라, 그들은 결국 모두 남들이니깐. 생활이란 원래 그런거란다. 자기방식대로 살아가는 나를 누구나 모두 좋아할수는 없단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 마라 자기 본성을 잃어 버리게 된다. 같은 물건도 사람따라 보는 게 다르고 같은 말도 사람따라 듣는 게 다르며, 같은 글도 사람따라 읽는 게 다르고, 같은 사연도 사람따라 말하는 게 다르며, 같은 현상도 사람따라 생각는 게 다르다. 네가 아무리 우수하다 하여도 보아주는 사람 만나야 중용되고, 네가 아무리 남을 많이 도와주어도 감사해 하는 사람 만나야 덕이 되며, 네가 아무리 진심이라 하여도 마음맞는 사람 만나야 친구할수 있고, 네가 아무리 크게 양보하여도 그걸 아끼는 사람 만나야 가치가 있다. 자기가 아는것을 경솔히 말하지 마라 자기가 들은것을 전부 믿지를 마라 이 세계는 눈으로만 볼것이 아니라, 많이는 마음으로 읽어야 하더라. 자고로 인생이 과욕하면 탈이더라, 어지간한 정도에 만족해야 하리라. 절반 빈궁하고 절반 부유하면 대체로 안락하게 살수 있겠더라. 절반 노력하고 절반 놀게되면 대체로 괜찮은 기회를 잡겠더라. 절반 가지고 절반 남에게 주면 대체로 덕을 쌓을수 있겠더라. 절반 귀머거리 절반 벙어리면 대체로 번뇌없이 살수 있겠더라. 절반 지혜롭고 절반 우매하면 대체로 현명하다 할수 있겠더라. 절반 사랑하고 절반 미워하면 대체로 인생 같이할수 있겠더라 절반 맑은상태 절반 취한상태면 대체로 살줄 안다 할수 있겠더라 나의 인생중의 절반만이 나의 것, 다른 절반은 하늘의 것이여라. 절반만이라도 열심히 살어야지, 하루하루 아끼며 허송하지 말고 죽을때 웃으며 갈수 있으리라. * 현용수 적음 2016.10.15 https://blog.naver.com/sy100088/220836969964
242    어찌하면 잘 늙는 것이냐? 댓글:  조회:263  추천:0  2022-03-20
어찌하면 잘 늙는 것이냐?   잘 물든 단풍은 꽃보다 예쁘다고 했다. 잘 늙으면 청춘보다 더 낫다는 뜻이다 꽃은 예쁘지만 떨어지면 지저분하다. 그래서 주어 가는 사람이 없다. 청결공들이 빗자루로 쓸어 버린다. 잘 물든 단풍은 혹시 줏는 사람이 있다. 책갈피에 끼워 오래 간직하기도 한다. 그러면 어찌하면 잘 늙는 것이냐?.    첫째, 욕심을 좀 줄여라. 돈욕심, 권위욕심, 여자욕심… 늙어서도 계속 욕심을 부리면 늙은게 체신이 없다고 욕을 먹는다. 인생을 잘 갈무리해야 할 때이다. 죽은듯이 가만 있으라는 말 아니다, 좀 줄이라는 말이다.  둘째, 과로하지 마라. 젊어서 과로하면 닭이나 고아 먹고 며칠 푹 쉬면 회복될수 있지만 늙어서 과로하면 회복이 쉽지않다 그냥 팍팍 늙어 버린다. 늦가을 한번 비에 확 추워지듯이. 셋째, 과음 과식 하지마라. 늙으면 술 마일 기회 많아지고, 또 먹고 싶은 것두 많아진다. 물론 늙어서 잘 먹어야 하겠지만, 과음 과식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 넷째, 말을 적게 하라. 특히 잔소리는 절대 금기이다. 그런데 사람이 나이가 들게 되면 자연히 잔소리 재간이 부쩍 늘어난다. 머리에  아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심하고 입을 꾹 다물어라. 자꾸 말하고 싶으면 노래나 부르든지. 다섯째, 자식한테 재산을 다 물려주지 마라. 자기 살림집은 남겨두어야 한다.  돈도 자기 쓸만큼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돈 모자라 자식들 신세지면 비참해 진다. 여섯째, 자기몸을 더 열심히 가꾸라. 늙으면 몸에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 그런 냄새 젊은이들이 딱 질색이다. 목욕 자주하고, 옷도 자주 빨아 입어라. 큰맘 먹고 고급 화장품, 고급 향수도 써라. 젊은이들 옆에 갈때는 조심해야 한다. 특히 젊은 여자들 옆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람들이 늙게 되면 자연히 죽는 문제에 걱정이 많게 된다. 자다가 훌꺽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어디 내맘대로 되는건가? 며칠씩 앓는것은 보통이고, 몇달, 심지어 몇년씩 앓다가 죽는다. 기실 이건 친인들과 정을 끊는 과정이다. 펀펀하던 사람이 불시에 훌꺽 죽어보라. 친인들이 울며불며 야단이 날것 아닌가? 그러면 죽인이 혼이 차마 떠나질 못한다. 몸은 화장해서 재가 되여 버렸는데, 혼이 떠나지 못하면 무주고혼이 되고만다. 그러면 산사람, 죽은 사람 모두 괴롭다.  한 삼년 똥오줌 받아낼 정도로 앓아보라. 아무리 효자라도 지치게 된다. 아무리 천상배필도 정이 멀어진다. 자식들이 지치면 간병원을 고용한다. 이쯤하고 빨리 죽었으면 한다. 바로 그때에 죽어야 한다. 그러면 친인들이 그리 괴롭지 않게 된다. 울어도 가짜로 우는척 하면 된다. 죽은사람도 시름놓고 갈수있다. 암으로 진단 받았다 해도 무서워 마라. 그것이 의학상에서 불치병이지 진짜 불치병 아닐수도 있다. 부질없이 의학치료 받을 필요는 없다. 고통만 더해지고 돈만 낭비한다. 조물주가 사람 만들때 면역력과 자아치유 능력을 주었다. 환경, 음식, 심정을 잘 조절하면서 자연의 처분에 맡겨 버려라. 그러면 자기 천명만큼은 살수 있으리라.    현용수 작성 2016.10.12 https://blog.naver.com/sy100088/220834540363  
241    너는 자기가 대단할줄 알았지? 댓글:  조회:265  추천:0  2022-03-20
너는 자기가 대단할줄 알았지?   이런 우화가 있었다; 락타가 천신만고 겪으며 사막 건너왔다. 한마리 파리가 락타 등에 앉아 아무런 힘 들이지 않고 사막 건네 왔다. 파리는 락타 비웃으며 하는 말; “감사해요! 락타님! 저를 예까지 모셔오느라 수고 했어요, 후일 다시 만나요!” 락타 파리 보면서 하는 말; “네가 내몸에 얹혀 있었구나, 나는 근본 몰랐어! 너는 가면서 알은체 할 필요 없거든. 너는 아무런 무게도 없으니깐. 자기를 너무 대단하게 여기지 말어, 너는 기실 아무것두 아니여!” 한 저명한 예술가가 이런 이야기 했다: 그는 괜찮은 가문에서 자랐고, 끼니마나 많은 사람들 함께 식사하였다. 한번은 그가 재미있게 놀아 보려고 밥먹기 전에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 모두들 자기를 찾지 못하면 조급하여 쩔쩔 맬줄 알았다. 그런데 식사가 다 끝날때까지 그 누구도 그를 찾는 사람 없었다. 그는 너무도 실망하였다. 모두들 다 떠나 간 다음에야 그는 슬그머니 저절로 나와서 사람들 먹고 간 나머지 밥과 채로 겨우 배를 채울수밖에 없었다. 그후 그는 항상 자기한테 귀뜸 하기를; 자기를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 말어라. 네가 없이도 이 세상 여전히 돌아 가니라! 자기를 대단하게 여기지 말어라. 너는 기실 분주한 인생길에서 하나의 길손에 불과 하니깐. 인류력사의 긴 긴 강에서 너는 기실 한알 모래에 불과하거든! 자기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한 사람 수양이고 풍도이며, 일종 사상의 고상한 경계이며 일종 처세의 고급 자태이며, 일종 의지의 고상한 표현이며 담박한 심태의 고도의 성숙이다. 이런심태로 사람질 하노라면 자기를 더욱 건강하고, 더욱 대범하게 할수 있다. 이런 심태로 일처리 하노라면 자기 생활을 더욱 순조롭고, 더욱 착실하게 할수 있다. 이런 심태로 세상 사노라면 신변 많은 부류의 사람들과 모두 조화롭게 지낼수 있다. 어느 한 성인이 말했더라; 천만갈래 강물에 천만개의 비낀 달, 만리 구름 없이도 하늘은 여전하여라. 자기 내려 놓고, 남에게 관대하여라! 현용수 적음 2016-10-05 https://blog.naver.com/sy100088/220828794106      
240    지혜와 총명 댓글:  조회:256  추천:0  2022-03-20
지혜와 총명 2016-08-16 진짜 지혜롭게 자기인생 살려거든 지혜와 총명의 구별점 명심하여라!   총명은 인생 능력의 체현이요, 지혜는 인생 경계의 체현이다. ​ 지혜에는 총명도 포함될수 있지만, 총명에는 지혜가 포함되지 않는다.   세상에는 총명한 사람 많지 못하다, 열에서 하나쯤 되겠는지?   지혜로운 사람은 더욱 희소하다, 백에서 하나나 될가말가? 리득 볼줄 아는 사람 총명한 사람이요, 손해도 볼줄 아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다.   자기 노릇 잘 하는 사람 총명한 사람이요, 남도 잘 도와주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다.   자기 우점 잘 아는 사람 총명한 사람이요, 자기 결점도 잘 아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다.   자아 긍정 잘 하는 사람 총명한 사람이요, 자아 검토도 잘 하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다.   관찰에 능한 사람 총명한 사람이요, 분석에도 능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다. 일찍 성공하는 사람 총명한 사람이요, 늦게 성공하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다.   지식 많은 사람 총명한 사람이요, 교양도 많은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다.   기술이 높은 사람 총명한 사람이요, 발명창조도 하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다.   연기 잘 하는 사람 총명한 사람이요, 창작도 잘 하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다.   선동 잘 하는 사람 총명한 사람이요, 조직도 잘 하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다.   ………………………………………… 총명은 어찌보면 타고난 재질이지만, 지혜는 많은 실천에서 생긴 예지이다.   총명으로 재부와 권력 얻을수 있겠지만, 지혜로는 행복과 쾌락 얻을수 있다.   총명한 사람 왕왕 총명으로 실패하지만, 지혜로운 사람 언제나 멍청으로 성공한다.   총명으로 살면 일생 긴장하고 단명하지만, 지혜로 살면 일생 행복하고 장수한다. 그리하여 옛날에 정판교가 말했더라; 총명만 어려운 것 아니라, 멍청하기도 어려운데, 총명하다가 멍청하자니 더욱 어렵다.   멍청이란 곧바로 지혜 말하는 것이니, 멍청할수 있다는 점 참으로 보귀하다. *   현용수 작성 2016-08-16 https://blog.naver.com/sy100088/220823112550 https://blog.naver.com/sy100088/220823112550 https://blog.naver.com/sy100088/220823112550
239    인생은 자기를 찾아 가는 길 댓글:  조회:287  추천:0  2022-03-19
인생은 자기를 찾아 가는 길 *   인생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바쁨니다. ​ 걱정이 없는날 없고 부족하지 않는날 없습니다. ​ 무얼 하나 결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래일을 알수없어 흔들리기 때문이죠. ​ 말로는 너무 쉽게 행복하다! 기쁘다! 하지만도, ​ 누구에게나 모두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하고, 어느정도 기쁜지 알수는 없지만, ​ 그저 모두들 영문 모르고 바쁘기만 합니다. ​ 나이들고 기력이 모자라 “아!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왜 그리 바쁘게 어디로 가는건지 모릅니다. ​ 결국 인생은 자기를 찾아 가는 길인데 말입니다. ​ 고통, 갈등, 불안 등등은 자기를 찾기전의 일들입니다. ​ 자기를 만나기 위하여 이렇게 힘든 것입니다. ​ 자기를 찾은 그날부터 인생은, ​ 고통에서 기쁨으로, 좌절에서 열정으로,   복잡에서 단순으로, 불안에서 평안으로 바뀝니다. ​ 이것이야 말로 각자의 인생에서 만나는, ​ 가장 극적인 순간이요, 가장 큰 기쁨입니다. ​ 아무리 화려해도 맞지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하듯이, ​ 아무리 멋진 풍경도 마음에 없으면 보기 싫듯이, ​ 자기 아닌 남의 인생 살고 있으면 항상 불안합니다. ​ 잠깐 쉬면서 먼저 자기를 돌아 보십시요. ​ 자기가 보일때 행복도 기쁨도 찾을수 있습니다. ​ 오늘도 자기를 잠깐 돌아 보시고 출근 하시길…. ​​ 현용수 2010/03/12 https://blog.naver.com/sy100088/220823088283
238    너는 지금도 올리막 오르고 있다! 댓글:  조회:257  추천:0  2022-03-19
너는 지금도 올리막 오르고 있다!   승냥이 천리 가서 고기를 먹고, 말은 천리 가서 풀을 먹더라.   물고기 살어 물 거슬러 올라 가고, 물고기 죽어 물 따라 내려 가더라.   사는것이 정말 그렇게 힘드더냐? 힘들다니 그것 참 잘 되였구나, 편안한것 그거야 죽은사람 몫이지.   고생이 바로 인생이요, 힘든것이 바로 사업이며,   변하는것이 바로 운명이요, 참는것이 바로 수련이며, 일할수 있는것이 바로 행복이니라.   만약 매일 사는것이 정말 힘들다면, 자기한테 큰소리로 알려주라;   쉬운 길은 모두 내리막 길이니, 그런 길엔 아직 들어설수 없다고. 힘드니 더욱 견지해야 하는거라고. 너는 지금도 올리막 오르고 있으니깐!   현용수 2016.9.22  https://blog.naver.com/sy100088/220819087205
237    나무통 세개 댓글:  조회:259  추천:0  2022-03-19
한 목수가 똑같은 나무통 세개 만들었다; 첫번째 통에는 똥을 담아 똥통이 되였고, 두번째 통에는 물을 담아 물통이 되였으며, 세번째 통에는 꿀을 담아 꿀통이 되였다. 똑같은 통이였지만 속에 담은 물건에 따라 통의 운명 달라지더라.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드냐? 속에 욕심 가득 담아 빈궁한 사람, 속에 근심 가득 담아 불행한 사람, 속에 만족 가득 담아 부유한 사람 되느니라. 매일매일 사는것이 그렇게 힘드더냐? 그건 네가 아직도 올리막 오르기 때문이지! 내일부터라도 편안하게 살고 싶거든, 내리막 내려가면 되는것 아니겠느냐?   힘들더라도 낑낑 올리막 올라가노라면 언젠간 눈앞에 탄탄대로 펼쳐질거지만, 에그! 내몰라라, 내리막 내려가며는  거기선 저승사자 기다리니라. 현용수 2016. 6. 22. https://blog.naver.com/sy100088/220743184411  
236    自律이 인생을 우수하게 한다. 댓글:  조회:618  추천:0  2022-03-19
自律이 인생을 우수하게 한다. *   가슴에 큰 뜻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엄격히 자율 하는 사람들이다. 자율이란 자아단속을 말한다. 자율 하는 사람들은 무섭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만약 친구라면 당신은 그들에게서 자율을 배우고, 만약 적수라면 당신은 그들을 충분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무서운 힘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은 짧으니, 반드시 좋은 때를 놓치지 말고, 향락을 누려야 하며, 오늘 술 있으면 오늘 취하고, 젊어서 풍류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자율하지 않는 사람들의 행위는 결국 그들에게 더욱 큰 고통을 가져 다 줄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를 우수하게 만들 기회를 잃기 때문이다.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마라. 자율은 우리들의 삶을 더욱 고급적인 삶으로 만들어 준다. 자유의 본질은 자기를 풀어놓고 아무런 짓이나 하는 것 아니라, 자율을 한 후의 가뿐함이며, 우수하게 된 후의 편리함이다. *   사람이 어째서 자율 해야 하는가?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남의 우수함을 볼 줄만 알았지, 그들이 그렇게 우수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잘 모른다. 자율이 습관으로 굳어진 사람들은 보건대 사는 것이 별로 재미가 없다. 남들이 바깥에 나가 즐기며 놀 때에도, 그들은 집에 박혀서 책을 보고 있으며, 남들이 거리에 나가 미식을 즐길 때에도, 그들은 헬스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살을 까고 있으며, 주말이 되면 보통 아침도 먹지 않고 점심때까지 자지만, 그들은 여전히 제시간에 일어나고, 아침운동 하고, 책을 보고, 유익한 일을 한다. 이런 사람들은 보건대 사는 것이 아무 재미도 없는 것 같고, 심지어 자아학대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며, 전혀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   하지만 실제로는 자율 하는 사람들이 자율하지 않는 사람보다 결국 더 많은 자유가 있게 된다. 당신이 언제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즐기기만 하며, 노력할 줄 모르고, 자기를 방종하며 살아 왔다면, 보건대 아주 자유스러운 것 같지만, 기실 당신은 그렇게 살수록 자유가 점점 없어지며, 선택할 자본이 적어진다. 소위 자유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로 자기를 주재하는 것이다. *   사람이 자율 할수록 자유가 있게 되고, 발언권이 있게 된다. 하루 이틀에는 보아낼 수 없지만, 몇 년, 몇 십 년 지나면, 자율 하는 사람과 자율하지 않는 사람은 현저한 차이가 있게 되며,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인생을 살게 된다. 일반적으로 노력의 부출과 성과의 보답은 정비례를 이루며, 량적 변화가 충족히 쌓여야만 질적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자율 해야 하는 원인으로서, 이후에 사는 것이 많이 가뿐해지고, 자유롭게 되기 때문이다. 신체나 인생이나 마찬가지 도리이다. *   자율 하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진정 무엇이 수요 되는가를 잘 알게 되며, 그로하여 시간과 정력을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자기를 보다 우수하게 성숙시킨다. *   모든 우수함 뒤에는 모두 고행승과도 같은 자율이 있었다. 자율 하겠다는 사람은 많으나, 자율을 견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치도 험준한 높은 산에 오르듯이,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포기하는 사람이 많고, 견지하는 사람이 적게 되며, 종당에 정상에 오르는 사람은 몇이 안 된다. 좋은 습관의 견지는 그 본신이 바로 자율이다. 많은 경우에 우수했기 때문에 자율 할 수 있은 것이 아니라, 자율 했기 때문에 우수하게 되는 것이다. *   사람은 자율 할수록 우수하게 된다. 게으름, 방종, 자제력부족, 등의 근원은 인지능력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율 할수록 인지능력이 강하게 되며, 다른 사람보다 점점 우수하게 된다. 한사람의 자율 중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하여 있다. 당신 자율의 정도는 당신 인생의 높이를 결정한다. *   사람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선택할 권리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은 짧으니 많이 즐겨야 한다고 하는데, 틀리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자율 하는 인생은 기실 더욱 멋지고, 더욱 의의가 있다. 왜냐하면 가고 싶은 곳으로 달려 나갈 제, 온 천하가 길을 비켜주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높이 올라 멀리 볼 수 있는 사람은, 영원히 잡념이 없이 꾼준히 자기 목표를 향해 나가는 사람이다. *   우리는 진정으로 자율 하는 능수로 되면, 자기가 되고 싶었던 사람으로 될 수 있고, 자기가 살고 싶었던 삶을 살 수 있다. *   인생에는 지름길이 없다. 하지만 당신인생이 얼마나 많은 길을 에돌아 왔든, 당신의 매 한 걸음마다 모두 효과가 있는 보귀한 경력으로 된다. 그러므로 인생에는 효과가 없는 공연한 경력이란 없다. 성공한 경력이든, 실패한 경력이든, 한 일이 없이 지내온 경력이든, 모두가 보귀한 인생 자본이 된다. 자기 매 한번의 걸음을 중시하시라! *   현용수 서울왕십리무학로 2021-02-06
235    지난인생 저렇게, 남은인생 이렇게 댓글:  조회:482  추천:1  2022-03-16
지난인생 저렇게, 남은인생 이렇게 *     세상에는 돈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두 가지 건강장수약이 있습니다. 하나는 “知足”라는 약인데, 아침에 한 알 먹고, 또 하나는 “感恩”이란 약인데, 저녁에 한 알 먹습니다. 매일 이 두 알의 약을 먹으면 마음속에 항상 찬란한 해 빛이 비쳐들어, 그 어떤 번뇌도 즉시 사라지며, 그 어떤 병마도 나의 몸에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고, 언제나 활기찬 젊은이의 기분으로 살게 됩니다. * **     기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필연코 죽는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 죽기 직전까지도 기를 쓰고 살려고 합니다. 산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 *****     끝없이 분주한 사회, 너무 간사한 사람들, 내려놓을 수 없는 근심걱정, 다 겪어낼 수 없는 풍상고초, 다 넘어갈 수 없는 험한 언덕, 어쩔 수 없는 무가내, 잊을 수 없는 어제, 끝없이 바쁜 오늘, 알 수 없는 내일 ... ... 이렇게 허둥지둥 살다가 어느 날엔가는 불연 듯 이 세상을 떠나라는 통지를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산다는 것이며, 바로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바쁘고 힘들더라도, 자기를 아껴야 하며, 자기를 잘 보살펴야 합니다. * **     인생은 마치도 날씨와도 같습니다. 예측할 수는 있는데, 그 예측이 왕왕 틀립니다. 해 빛 밝은 맑은 날씨는 물론, 비가 오는 흐린 날씨에도 언제나 즐거운 마음만 확보할 수 있다면, 이것은 그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나의만의 정신재부입니다. *     매일매일의 생활을 잘 틀어쥐고, 보석 같은 자기 신체를 잘 돌보아야 합니다. 얻었다면 담담한 마음으로, 잃었다면 태연한 마음으로,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며, 모든 것은 연분에 따라 움직이는 것, 이것이야 말로 가장 활달하고 명지한 인생태도입니다. * **     우리는 모두 결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포용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우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치하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개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양보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상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안위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기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나눌 줄 알면 좋습니다. *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주는 가장 값진 예물은 자기의 심신건강을 잘 보양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두 가지 일을 잘 처리해야 합니다. 하나는 아이들을 잘 교육하여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신체를 잘 보양하여 아이들에게 부담을 끼치지 않은 것입니다. *     이제 우리가 자기수명을 다 살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철저히 허무한 존재로 남게 됩니다. 우리는 한평생 분투하였어도 동전 한 푼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한평생 집착하였던 사랑도 허영심도 모두 남겨놓고 가야 합니다. 부귀비천을 막론하고 누구든 결국에는 이 길을 가게 됩니다. 저승길에 망향 대에 들려 자기일생 돌이켜 본다할 때, 그저 마지막 날밤의 긴 꿈에 불과할 것입니다. *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남은 인생 잘 살아야 합니다. 매일매일 마음이 즐겁고 만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눈앞의 번화한 세상도 손가락 튕기는 사이입니다. 제명이 다하고 나면 한줌의 재밖에 남지 않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     사람의 한평생은 너무나 무상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평생 잘 지내자고 약속했건만, 결국은 지키지 못하고 갈라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친구하자고 약속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저 면목이나 아는 남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일 다시 만나자고 분명히 약속했건만, 아침에 깨여나 보니 서로 다른 세계에 갈라져 있습니다. *     그러니 우리가 지금 살아서 숨 쉬고 있을 때를 놓치지 말고, 만나고 싶은 사람 어서 만나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 열렬히 사랑하며, 포옹하고 싶은 사람 힘껏 포옹하고, 잡고 싶은 사람의 손을 꽉 잡고서 놓지를 말아야 합니다. 놀 수 있을 때에 놀고, 먹을 수 있을 때에 먹고, 걸을 수 있을 때에 가보는 것입니다. *     호상 이해하여야만 진정한 감정입니다. 자기의 인생에 너무 많은 유감을 남기지 마세요. 아무리 좋은 연분도 가꾸지 않는다면 멀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깊은 감정도 아끼지 않는다면 상처 받게 됩니다. 사랑에는 진짜 바보가 없습니다. 사랑을 위하여 바보짓 하려는 사람 있을 뿐이죠. 당신을 모두 양해하여 주는 사람은 당신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짜 성의가 있어야 서로 오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진짜 아낄 줄 알아야만 무엇을 소유할 자격이 있습니다. *     이익이 있을 때 양보할 줄 알고, 도리가 있을 때 용서할 줄 알며, 능력이 있을 때 겸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너무 노련하면 남들의 질투를 받게 되고, 너무 각박하면 남들의 미움을 받게 되며, 너무 우쭐대면 남들의 버림을 받게 됩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원래부터 빈 것을 가지고 노는 유희입니다. 빈 것으로 시작하여, 빈 것으로 끝나지요.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이 많으면 사람을 상하게 되고, 미움이 많으면 영혼을 상하게 됩니다. *     한평생 바라는 것은 마음에 부끄럽지 않고 자유자재로 사는 것입니다. 진짜 세상에 부끄러움 없을 때, 비로서 산다는 것의 본뜻을 터득한 것입니다. 세상의 도리를 다투자면 끝이 없고, 다투어 이겼다면 미움을 사게 됩니다. 세상의 이익을 가지자면 끝이 없으니 비슷하게 가졌으면 만족해야 합니다. 재산이 모이면 사람이 흩어지고, 재산이 흩어지면 사람이 모입니다. 마음이 행복하면 하루하루 살기가 힘들지 않고, 사람이 자유롭게 살아야 일생이 가치가 있습니다. 생각이 많으면 번뇌하기 쉽고, 근심거리가 많으면 곤경에 처하기 쉬우며, 추구가 많으면 지쳐 쓰러질 수 있습니다. *     내가 아는 사람들과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아끼시라. 모두 연분으로 이어진 사이니까. 생활의 쾌락을 충분히 감수하시라. 한순간에 훅 사라질 수 있으니까. 생명의 하루하루를 열심히 체험하시라. 이 생애 끝나면 다음 생애는 없으니까. *     너무 멀리 내다보지 마시라. 부질없습니다. 남은 꿈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방향을 잘 조정하고는, 수걱수걱 걸어 나가시라. 이 길이 끝나는 그곳까지. *     현용수 작성 2020-11 서울왕십리
234    逍遥인생 사는법 댓글:  조회:740  추천:0  2022-03-10
逍遥인생 사는법 《庄子》 학습심득 ♣♣♣♣♣♣ 장자는 “忘”을 인생번뇌를 없애는 비결로 삼았다. “忘物、忘情、忘我”, 이 세 가지를 할 수 있으면, 진정으로 “逍遥”의 인생경계에 도달할 수 있다. 01, 忘物 《智慧书》에서 말했다; 욕망이란 神이며, 욕망의 에네지와 神의 에네지는 비슷하다. 물질에 대한 욕망은 인생의 본능이다. 衣食住行 모두가 욕망이며, 욕망이 없으면 인생이 없다. 그러나 밑굽빠진 욕망은 메울 수가 없다. 과도한 욕망은 인생비극의 시작이다. 한 지주가 왕을 만났다. 왕이 말했다; 당신이 여기서부터 갈만큼 가서 표기를 하고 돌아오라. 그러면 여기서부터 그 표기한 곳까지 모두 당신의 땅이다. 해가 서산에 졌지만 그 지주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너무 급한 속도로 너무 멀리 가버린 탓에 길에서 지쳐 죽고 말았다. 장자가 말했다; “物物而不物于物” 우리말로 하면, 물질을 소비하고 욕심내면서도, 물욕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마음은 제한적이지만, 욕망은 무궁하다. 물욕과 명리에 빠져있는 사람은, 한 발작 한 발작 점점 깊은 심연에 빠져 들어가, 결국 나올 수 없게 된다. 장자가 말했다; 뱁새가 수림에 둥지를 튼다 해도,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고, 두더지가 황하물을 마신다 해도, 그 쪼끄만 배를 채우는데 불과하다. 하긴 그렇다. 아무리 부자라고 하루 밥 열 끼씩 먹는 것이 아니고, 매일 금 그릇에 산해진미 담아 먹는다고 장생불로하는 것도 아니다. 禍는 만족할 줄 모르는 데서 오고, 근심거리는 가지려는 욕심에서 온다. 그러므로 만족의 도리를 조금이라도 알면, 한평생 큰 탈이 없이 살 수 있다. 물질이 눈부시게 풍부한 오늘의 시대에서, 탐욕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에서 만족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명지한 處世之道라고 하겠다. 02, 忘情 하등인은 정이 薄하고, 중등인은 정이 厚하고, 상등인은 정을 잊는다. 정을 잊는다는 것은 무정하다는 뜻이 아니다, 정이 깊으면서도 속박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통사람들은 혹은 박정하고 무정하여 세상의 따사로움을 받을 수 없는가 하면, 혹은 정에 너무 깊이 빠져, 나올 수 없어, 자기로 슬퍼하면서 상처 입는다. 장자가 말했다; 샘물이 마르면서 두 마리 고기가 땅위에 놓이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자기 배속의 거품을 토해 내여 대방의 몸을 적셔주며 목숨을 유지한다(相濡以沫). 차라리 서로 잊고 제각기 강이나 호수를 찾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사람들은 위기에서 서로 의지하여 힘겹게 사는 행위에 상당히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서로 놓아주고 각기 돌파하는 것이 더 좋은 삶의 길일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그들은 결코 무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정이란 대방에 유익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집착을 버리고 놓아주는 것이다. 너무나도 고상한 정의 잊음이다. 장자는 안해가 죽자, 대야를 북처럼 치며 노래 불렀다. 안해의 죽음은 자기를 동반하는 형식을 바꾸는 것에 불과하므로, 슬퍼하는 것은 안해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세상에서 진정을 하나 얻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행운이다. 그런데 또 영구하기까지 바란다면 그것은 순전히 망념이다. 사람은 살아 갈라지지 않으면, 죽어 갈라진다. 어쨌든 종당에는 갈라진다. 이것은 사람의 숙명이다. 이 점을 진정으로 알았다면 사람은 더욱 활달하여 지고, 사는 것이 더욱 쉬워진다. 장자가 말했다; 어쩔 수 없음을 알면서도 평소처럼 태연할 수 있는 것은, 덕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갈라질 때 울고불고 하지말고, 함께 있을 때 좀 잘해 주라! 03, 忘我 《庄子·山木》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사람이 배타고 강을 건너는데, 앞에서 어떤 배가 자기 배에 부딪친다. 그는 곧 욕설을 퍼붓는다. 눈깔이 없냐고. 그런데 그 배에는 사람이 없다. 빈 배다. 금방까지의 분노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만일 그 배에 사람이 있었다면 자기를 건드린 것으로 여기고, 크게 성을 내는 것으로 자기존엄을 지켰을 것이다. 한사람의 자존심이 너무 강하고, 자아의식이 너무 강하면, 남들이 조금만 눈에 거슬려도 즉시 반격에 들어가고, 정서가 폭팔한다. 이것은 기실 전형적인 약자의 자아보호의식이다. 사람과 사람지간의 많은 모순들은 모두 “나”로부터 시작된다. 자기 감수를 일방적으로 너무 강조하는 것이 사람지간 모순의 근원이다. 장자가 말했다; 사람이 자기를 비우고 세계를 노닌다면, 누가 당신을 해칠 수 있겠는가? 한사람이 자기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그렇게 많은 번뇌도 없을 것이다. 두 배가 서로 부딪쳤을 때, 만일 당신의 첫마디가 욕설이 아니고, 대방을 관심하여 “별일 없었소?”하고 묻는다면, 당신이 대방에게 주는 감각이 바로 빈 배와 같겠으니, 어찌 다툼이 생길 수 있겠는가? 인생을 살 제,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잊고, 많이는 남을 생각한다면, 결국 남에게 상해주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서 상해 받지도 않을 수 있다. “추호도 이기적이 아니고, 오로지 남만 위하라”는 말 아니다. 많이는 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 집착을 내려놓는다면, 자연히 옴니암니 따지지 않게 되며, 인생이 悠然自在할 수 있다. ​ 현용수 작성 서울왕십리무학로 2021-02-23
233    大道는 간단해 지는 것 댓글:  조회:386  추천:0  2022-03-08
大道는 간단해 지는 것 이 글을 노년벗들에게 삼가 드립니다! ​ 글을 쓰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고 수련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요즘 내 마음 살펴보니 스팸들이 많이 끼였다. 하여 마음 깨끗이 하고 가볍게 하려는 목적으로 이글을 쓴다. 내 나이 어느새 칠순에 가까워 온다. 지금은 칠순 고래희가 아니라지만 적은 나이는 아니다. 신체가 망가지는 것을 어쩔 수 없구나. 금년에는 암 진단이 나와서 수술까지 받았다. 이제 얼마를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라지는 않을 것이다. 상관하지 않는다. 나머지 시간에는 될수록 간단하게 생각하고, 간단하게 생활하다가 간단하게 가련다. ​   大道가 바로 간단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우주만물의 발전 법칙으로서, 중국 도가 철학의 기본이며, 중화문화의 정수이다. 자고로 “진짜 전수는 한마디 말로 하고, 가짜 전수를 만권의 책으로 한다.”고 하였다. 간단해 지는 것, 이것은 단지 공능의 정밀화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하게는 본질의 승화를 뜻하는 것으로서 사람 인생의 높은 경계를 의미한다. ​   大道는 간단해지는 것, 大道는 모양이 없는 것, 大道는 법칙이 없는 것, 이런 상태는 大道가 자연으로 돌아가고, 본원으로 돌아가는 고급공능상태이며, 이 출발점에서 마음을 다스리어 진정 청정무위(清净无为), 망아무사(忘我无私), 천인합일(天人合一)등 높은 경계에 도달할 수 있다. 심각한 진리는 기실 간단하고 소박하다.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만드는 것, 이것은 고명한 능력이다. 위대한 사람은 바로 간단하여짐으로서 위대하여 지는 것이다. ​   인생도 결국은 간단하여지는 것이다. 깨달음이 심오할수록 간단해 지고, 또 간단해 질수록 심오하여 진다. 간단하던 것이 복잡하여 졌다가 다시 간단하여 진다. 산을 보아 산이던 것이, 산을 보아 산이 아니다가, 다시 산을 보아 산이 된다. 이것이 바로 본질의 승화이다. ​   마음은 바르고 넓어야 하고, 사유는 간단해야 한다. 간단함은 일종 미적 향수일 뿐만 아니라 일종 능력이며, 일종 경계이다. 확실하게 알면서도 아는 척 하지 않는 것, 이것은 경계가 높은 표징이다. 눈으로는 몽롱하게 보고 마음으로 투철하게 인지하며, 보는 듯 마는 듯, 아는 듯 마는 듯, 이렇게 처세한다. 세상물정은 투철하게 보지 않는 것이 바로 투철하게 아는 것이며, 투철함 뒤의 불 투철, 명백함 뒤의 불 명백, 이런 것이 바로 얻기 어려운 호도의 높은 경계이다. ​   간단해지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이다. 원래 복잡하던 것을 간단하게 하려면 지혜가 필요하고, 능력이 필요하며, 담략도 필요하다. 지혜 있는 사람은 간단하기를 선호하므로 공명과 재부에 집착하지 않는다. 물욕이 없으니 뜻이 밝아지고 그윽하니 멀리까지 보인다. 간단하게 사람이 되고, 착실하게 사무를 처리하며, 지혜를 발휘하여 어려움을 간단하게 만들어 처리한다. ​   어린애처럼 천진난만하고, 비옥한 토지처럼 순박하며, 고요한 호수처럼 안정하다. 이런 사람만이 “석양 비낀 언덕에서 소와 양이 돌아오는” 유유함을 볼 수 있고 , “연꽃에서 풍기는 가을기운” 느낄 수 있으며, “죽엽에서 떨어지는 이슬소리” 들을 수 있고, “빈산에서 사람 보이지 않고 말소리만 들리는” 낭만의 정취 맡을 수 있다. ​   간단하다는 것은 결코 결핍이 아니라 자유이며, 공허가 아니라 단순이다. 최고의 도리는 왕왕 가장 간단한 것이므로 간단하게 사람이 되고, 소박하게 생활하며, 간결하게 처사한다. 자기사심잡념을 내려놓고, 자아욕망을 초월하면, 진정 망아망물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만이 진정 大道에 진입할 수 있다. ​   인생의 혼잡함은 유혹에서 오는 것이므로, “仁”으로 유혹을 물리치고, “智”로 곤혹을 해제한다. 유혹되지 않는다는 것은 혼잡에서 간단에로 승화하는 표지이다. 옹달샘 넘쳐나 흘러도 나는 지금 한 컵이면 족하고, 인생백태 복잡하지만 기실 모두가 하나부터 시작된다. 즐거움으로 번뇌를 바꾸고, 간단함으로 진짜를 얻는 것, 이것이 바로 인생의 大道이다. ​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행자가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께서 도를 얻기 전에 무얼 하셨나요?” 스님 대답하기를 “땔나무 하고 물 긷고 밥을 지었지요.” 행자 묻기를 “도를 얻은 후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스님 대답하기를 “역시 땔나무 하고 물 긷고 밥을 지었지요.” 행자 다시 묻기를 “그렇다면 도를 얻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스님 대답하기를 “도를 얻기 전에는 땔나무 하면서도 물 긷기 근심을 하였고, 물 길으면서도 밥을 지을 근심을 하였죠. 그런데 도를 얻은 후에는 땔나무 할 때는 땔나무만 생각하고, 물을 길을 때는 물만 생각하고, 밥을 지을 때는 밥만 생각하죠.” 숭고하고 심오한 도리는 왕왕 극히 간단한 사상에 함축되어 있다. ​   사람마다 모두 자기의 생존방식과 생활경로가 있다. 세월 속에서, 생활 속에서 많은 번뇌가 생기는데 이런 것들을 모두 내려놓으면 일체가 자유로워진다. 생활에서 많은 문제는 마음에 둘 필요가 없고, 인생에서 많은 부담은 짊어질 필요가 없다. 일념으로 내려놓으면 간단생활의 낙취를 감수할 수 있고, 심령비약의 쾌감을 감수할 수 있다. 어떤 일을 개변하려면 먼저 진짜 자기를 찾고, 자기부터 개변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많은 잠재능력이 있는데 습관에 의하여 가리여 지고, 시간에 의하여 무디어 지고, 게으름에 의하여 허실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만 기억하고, 잊어야 할 것은 잊으며, 개변할 수 있는 것만 개변하고, 개변할 수 없는 것은 접수한다. 우리는 가장 적은 후회로 과거를 대하고, 가장 적은 낭비로 현실을 대하며, 가장 많은 꿈으로 미래를 대한다. ​   천지의 도는 간단하다. 인생은 결코 쉽지 않고 그리 길지도 않다. 그리하여 생활을 너무 복잡하게 하지 않고 간단하게 한다. 인생이란 드라마가 일단 시작 되었다면, 당신이 좋아하던 싫어하던 상관없이 종막까지 연기된다. 그중 인생의 큰 도전이 집중된 단계에서도 오직 조용히 살아가고, 즐겁게 공작하고, 간단하게 생활한다면 이런 도전을 이겨낼 수 있다. 사람이 만족할 줄 알고, 즐거워할 줄 안다면 모든 슬픔, 모든 아픔, 모든 버릴 수 없는 것들은 생명활동중의 잠깐의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당신이 이 과정을 뛰어 넘을 수 있다면 당신의 삶에는 비약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   행복한 생활은 간단한 생활이다. 한 잔의 차, 한 장의 탁상, 그윽한 분위기, 마음에 잡념이 없이 매일매일 평범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것. 이런 것이 바로 간단한 생활이다. 하지만 간단한 생활도 많은 노력을 수요 한다. 그래야만 간단함을 보장할 수 있다. 생활은 총체적으로 완미한 것이다. 완미하지 못한 것은 사람의 심태일 뿐이다. 흠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것저것 흠집만 잡으면서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든다. 간단하게 사람이 되고, 솔직하게 자기를 대하며, 분촌을 장악하고, 환경에 잘 적응하여 그에 만족하며, 기꺼이 현실을 접수한다. 간단하게 처사하고, 사달을 일으키지 않고, 시비를 만들지 않고, 사변을 두려워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   인생은 자기 운명과의 장기적인 겨룸이다. 어떤 사람들은 초년에 웃고, 어떤 사람들은 만년에 웃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일생동안 웃지 못한다. 항상 낙관하면서 긴장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성급해하지 않는다. 간단하게 생활하면서 마음이 가는 대로, 성격이 하는 대로, 연분이 부르는 대로, 가장 솔직한 자기로 되고, 만족할 줄 알고, 미소할 줄 알며, 담담하고 태연할 줄 안다. 아무리 고생스럽고 어렵다 해도 견정하게 앞만 보고 나간다면 자기가 바라던 아름다운 풍경은 조만간에 나타난다. ​   사는 것이 쉬운가? 어려운가? 관건은 어떻게 사는가를 본다. 생활처지는 마음가짐에 따른다. 마음가짐을 고치면 생활처지도 달라진다. 당신이 생활에 요구하는 것이 많을수록 당신은 더욱 긴장해지고, 더욱 복잡해지고, 더욱 힘들어 진다. 반대로 당신이 생활에 요구하는 것이 적을수록 당신은 더욱 쉽게 만족할 수 있고, 더욱 쉽게 즐거울 수 있다. 강산명월은 원래 고정한 주인이 없다. 마음에 여유로움 얻은 자가 바로 주인이 된다. ​   깨달음 안고서 그윽하니 마음의 달 유독 밝구나. 마음 바르게 잡고, 고요한 물인 듯 하니 인생을 웃으며 살게 되더라! 인생을 살면서 평범하고 담담함이 가장 진짜이고, 조용하고 들볶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생명에서 가장 지구적인 것은 번화하고 화려함이 아니라 평범하고 담담함이다. 하나의 동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심정이 좋지 않을 때는 번뇌 털어 버릴 줄 알고, 심정이 좋을 때는 아무 거리낌 없이 크게 웃을 줄 안다. 어린아이처럼 간단하게 생각하고, 간단하게 생활하면서, 즐거움을 잃지 않고 마음의 본원을 확보한다면 일체는 자연히 자유롭게 될 것이다. ​   생활에서 어떤 이야기는 말하고 싶은데 입을 뗄 수 없다. 차라리 단념하고 잊어버려라. 사람들은 보통 남의 것을 많이 부러워하고, 자기 것은 잃게 되거나 잃은 후에야 아까워한다. 소위의 득과 실, 정분과 연분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점점 희미하여 진다. 어떤 욕망은 내려놓기가 어렵겠지만 자기 것이 아닌 것은 조만간에 떠나간다. ​   사람은 일생에 필연코 많은 일들을 겪게 된다. 그 길에는 유쾌한 웃음소리가 있고, 억울한 눈물이 있으며, 끈질긴 견지가 있고, 성공의 기쁨이 있으며, 또 실패의 깨달음도 있는데, 매 단계의 경력은 모두가 보귀하다. 생명의 풍요로움은 마음의 간단함에서 오고, 생활의 아름다움은 평상심에서 온다. 생활이 간단하면 힘들지 않고 즐겁기만 하고, 생각이 간단하면 평화롭고 그윽하다. 간단함으로서 생명의 진가를 깨닫게 되고, 심령의 조용함 지킬 수 있다. ​   끝으로 노래 “깨여나다”의 가사로 이 글을 맺는다. ​ 사는 것과 죽는 것이 얼마나 멀더냐? 숨 들이 쉬였다가 내쉬는 사이니라! 미혹에서 깨닫기까지 얼마나 멀더냐? 일념 한번 바꾸는 사이니라! 사랑에서 미움까지 얼마나 멀더냐? 무상한 사이니라! 옛날에서 오늘까지 얼마나 멀더냐? 한담하는 사이니라! 너와 나는 얼마나 멀더냐? 소통하는 사이니라! 네 마음과 내 마음 얼마나 멀더냐? 하늘 땅 사이니라! ​   현용수 작성 2020-08-08
232    러-우 전쟁이 주는 사고와 계시 댓글:  조회:531  추천:0  2022-03-03
러-우 전쟁이 주는 사고와 계시   국가 간의 전쟁과 사람들 간의 게임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지 멀리서 들리는 총성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사람들 간의 게임에서 지켜야 할 기본도리를 제시하여 줍니다.   01 인간의 존엄은 왕왕 날카로운 칼날위에 있고, 진리는 왕왕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있습니다.   전쟁이 막 시작된 ​​2월 24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늠름한 자태로 텔레비전앞에서 전국을 향해 전쟁동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몇 시간 만에 우크라이나의 주요 군사시설, 군용공항 및 탄약고가 러시아 군대의 맹렬한 포격에 의해 즉시 파괴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방공 및 항공 부대는 기본적으로 전투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2월 25일, 젤렌스키가 다시 텔레비전 화면으로 공중 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양복과 넥타이를 착용하지 않은, 속벌차림의 초라한 상태로, 우울하고 근심에 싸인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버림받았습니다. 우리는 홀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 투쟁, 특히 현대 전쟁에서는 공격을 받는 약소나라의 존엄은 지켜질 수 없으며, 그 나라 인민들의 생명안전도 보장받기 어렵습니다. 강대한 진공국에서는 약소나라의 존엄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이며, 약소나라의 인민들을 향하여 서슴없이 발포할 것입니다.   국가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회에 향하여, 혹은 자기가 거주하는 나라에 향하여 존엄을 외치고, 인권을 외치고, 정당권익을 외칠 때, 강대한 자기나라의 배경도 이용해야 하지만, 자기 혹은 자기 소집단의 실력과 단결력, 그리고 성취를 가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02 능력자에게 의지하고 친구에게 의지하는 것이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못합니다.   전쟁 전, 이미 서방세계에 눈을 돌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일단 공격을 받으면 유럽과 미국의 친구들이 반드시 도와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켜 준다고 약속했으니까요.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정말로 전쟁의 불바다에 떨어지자, 그 많은 잘난 친구 중에 누구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전쟁에서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데, 하늘처럼 믿었던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만 떠들어 대면서, 우크라이나에 지원군은 한명도 파견 못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강대함은 기실 모두 전설에 불과하고, 다른 사람의 힘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달콤한 말들로 이뤄진 신뢰는 결국 유사시 자기를 해치는 만성독약이 됩니다.   국제사무이든 개인발전이든, 사람이 포만한 자부심, 안정적인 지위 및 무적의 영향력을 가지려면, 반드시 자기 힘으로 싸워서 세계를 정복하고 쟁취하여야 합니다.   자기 힘으로 싸워서 세계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쟁취하는 것은 물론 매우 어렵고, 진행이 느립니다. 몇 십 년 눈물겹도록 어렵게 분투하였어도 성과는 여전히 그다지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그 업적이야말로 확실한 내 것이며, 내 손안에 장악되어 있는 것이며, 견고한 것입니다.   03 남의 인내와 양보를 나약함으로 보지 말고, 모든 일에서 여지를 둘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권익을 보호해야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남의 권익을 침해해선 안 됩니다.   소련이 붕괴된 지 30여 년 동안, 미국을 위수로 하는 서방은 거듭 거듭 러시아와의 약속을 어기고, 나토를 한걸음 한걸음씩 동쪽으로 확장해 나가면서, 러시아의 핵심 이익을 엄중히 위협하였습니다. 푸틴은 오래 참았고, 오래 기다렸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나토를 견제하는 마지막 방선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점령되면 러시아는 다시 소련처럼 해체되어야 할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허벅지를 끌어안고, 그들의 강대한 군사력을 빌어서 자신을 보호하려고 환상하였습니다. 그들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세계전략에 한 마리의 미친개로 이용되기를 달갑게 원했습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들은 러시아가 받게 될 치명적 위협을 아랑곳 하지 않고, 나토를 집안에 끌어들이려 하였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의 이익을 해치는 전형적인 국제 이기주의 행위였습니다.   쏘련시대 KGB의 출신인 푸틴은 싸우기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특히 잘 싸우는 북극곰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30여년의 인내와 양보를 나약으로 보고 괴롭혀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푸틴은 더는 퇴로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우크라이나를 징벌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순식간에 머리가 깨지고 피가 터지게 되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두뇌 없는 치매전략을 통해 약소국가는 대국 간에 중립을 지키거나, 모순해결의 다리가 되어야 하지, 함부로 대국의 분쟁에 끼어들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04 무릇 국제사무에서 힘이 세면 틀린 것도 옳게 되고, 힘이 약하면 옳은 것도 틀리게 되며 심지어 두들겨 맞게 됩니다. 너무도 불공정하고 격분할 일이지만 엄연한 현실입니다. 중국이 세계 최강으로 되려는 목적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불공정한 세계의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기실은 초기에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많은 정력을 들여 직접 책동하여 성공하였습니다. 미국은 국내에 위기가 발생하면 왕왕 전쟁을 일으키거나 사촉하는 방법으로 해결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위기에서도 한번 전쟁을 하고나면 그럭저럭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미국의 건국 200여년의 역사에서 20여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쟁을 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만큼 미국은 전쟁이 없이는 살아 갈 수가 없는 나라입니다. 인류의 재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언제나 전쟁 도발자였지만, 번마다 자기의 여론패권을 이용하여 도덕 심판원으로 자칭하고, 정의의 대표권을 행사합니다. 이것은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부상하고 러시아가 온정 되면서, 여러 가지 위기에 시달리는 미국의 국력은 엄중히 쇠약해 졌습니다. 지금 미국은 중국 하나를 대상하기에도 힘에 부치는데, 러시아까지 간섭합니다. 중국의 전통 군사지혜의 표준으로 보면 천치의 수준에 가깝습니다.   미국은 그동안 수차례 중-러 관계를 이간질 하려 했으나, 이번에야말로 또 핑게를 찾았습니다.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중국은 언제나 자주주권과 영토보전을 강조하는데, 우크라이나가 침공 받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러시아가 공격을 중단하도록 설득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중국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세계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러시아를 이용하고 있는건가?”하고 도발적으로 질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습니다: “미국은 주권 문제에 있어서 중국의 결정에 이러쿵저러쿵 간섭할 자격이 없으며, 권리도 없다. 중국은 이에 대해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깊은 감정을 갖고 있다. 20년 전, 유고슬라비아 주재 중국 대사관이 미국 항공기의 폭격으로 3명의 언론인이 사망했고, 지금까지 나토는 중국에 피의 빚을 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세계에서 갱단을 묶고, 세력범위를 확장하는 행위에 관심이 없으며, 이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 미국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너무 좋아서 미국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은 하지 않고,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중국은 미국과 달라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이 고조된 이후로 미국은 추잡한 행동을 줄곧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러-우사태의 발전을 주시하여 볼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하루속히 갈등이 해소되고 정전이 되기를 빕니다.   현용수 서울왕십리 2022-03-03  
231    한국은 우리민족의 대표로 될 수 있을까? 댓글:  조회:616  추천:1  2022-02-13
한국은 우리민족의 대표로 될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韓國은 자기를 우리민족의 당연한 대표로 자처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민족 문화의 모든 것에 韓이라는 모자를 씌운다. 이를테면 韓민족, 韓글, 韓복, 韓식... 등. 심지어 우리민족 몇 천 년의 역사도 모두 한국사로 되어있고, 우리민족의 전통문화도 인입한 것이든, 자생한 것이든 일률로 한국고유문화로 점찍고, 고수하고 있다. 그럼 韓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먼저 韓國國名의 유래부터 살펴보자.   중국 《後漢書》에는, 기원전 194년에 고조선의 준왕은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남쪽으로 도망하여 韓王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이전에 반도 중남부에는 각기 馬韓, 辰韓, 弁韓이라는 세 개의 부락연합체가 있었으니, 이를 “三韓”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韓”이란 결코 우리민족의 발원지가 아니며, 우리민족 대표성 역사사건의 발생지도 아니며, 단지 고대 모 역사시기의 모 지역에 불과하다.   누가 조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마한의 伯濟國이 백제로, 변한의 狗邪國이 고구려로, 진한의 斯盧國이 신라로 이어진다는 설도 있기는 한데, 하여튼 이 三韓설이 바로 大韓民國 국호의 최초의 어원인 것만은 확실하다.   다른 역사사건들은 잠시 제쳐놓고, 韓의 유래에 상관되는 근대 역사사건들만 살펴보자.   1894년 2월 10일날, 조선에서 동학농민폭동이 일어난다. 따라나선 사람들이 20여만이나 된다. 그런데 당시 조선의 임금인 고종은 동학농민폭동군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종주국인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한다. 그리하여 청나라에서는 호위군사 2800명 보내 준다. 그런데 이때 일본에서도 청나라와의 해상전쟁을 구실로 8000명의 군사가 조선에 들어온다. 그때 벌어진 전쟁이 바로 청일갑오전쟁이다. 결국 부패하고 쇄약해진 청나라가 해전에서 패배하고 조선 땅에서도 패배하여 쫓겨 가면서, 일본과 “시모노세끼협약”을 맺는다. 이 협약에서 청나라는 처음으로 조선을 독립국으로 승인한다고 써 넣었다. 이제 조선은 더는 청나라의 종속국이 아니므로 일본이 점령하든 말든 청나라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때 명성황후가 나선다. 명성황후는 로씨야에 구원을 요청한다. 로씨야는 “조선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일본에 경고한다. 분통이 터진 일본점령군은 1895년 10월 8일에, “여우사냥”이란 명목으로 명성황후를 경북궁 건청궁에 끌고 가서 집단모욕하고 불에 태워 살해한다. 고종임금은 너무도 놀랍고 무서워서 로씨야 공관으로 도망가서, 거기서 로씨야 보호를 받으며 조마조마하게 지냈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임금은 로씨야 공관의 사촉을 받고, 朝鮮의 국호를 “大韓帝國”으로 바꾸는 사건이 있었다. 청나라가 이미 조선을 버린 형편에서 중국 년호를 폐지하고, 자기 년호를 “光武”로 정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조선도 인젠 떳떳한 독립국가로 되는 시작이 아니라, 새 상전인 로씨야의 뜻에 따른 해프닝이었다. 이것이 후기에 韓國국명의 계기가 되였다.   1904년, 함흥 앞바다에서 러-일전쟁이 일어난다. 역시 서로 조선을 차지하기 위하여 싸운 것이다. 결국 일본이 이기고, 러씨야가 패배한다. 그리하여 1905년 11월 17일에 일본은 “乙巳勒約”을 체결하여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아 간다. 그 후 5년간 조선에서는 별로 큰 반항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1910년 8월 29일 “日朝倂合條約”이 강제 체결되고, 공포됨으로써 조선은 국권까지 완전히 빼앗겼다. 이로써 조선은 35년간의 치욕적인 일본식민지시대가 시작된다.   새 시대가 열릴 때마다, 나라의 興亡盛衰는 주로 통치자에게 달린다. 조선이 망국한 것은 그 주요책임이 고종의 무능함에 있었지만, 조선의 백성들에게도 자기 책임을 다 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있었다. “乙巳勒約”이 체결되고 조선이 외교권을 빼앗기자, 경기도 용인에서 이익삼이라는 의병장이 나서서 “나라를 건지자! 따라나서라!”하고 외쳤는데, 겨우 15명이 따라나셨다. 너무도 무능한 조정을 보면서, 백성들은 이 땅에서는 더 이상 나라를 건질 생각을 감히 할 수가 없었다.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 싸움에서 800명 일본군이 4만명 농민군을 살해하였는데, 일본군은 한명의 죽음도 없었다. 농민군의 무기는 창과 칼, 기껏해야 화승총이었지만, 일본군의 무기는 기관총과 대포였다. 그것이 그 당시 조선과 일본의 현실적 차이었다.   당시 반도에서 망국노를 원치 않는 민족의 많은 유지지사들은 중국으로 건너가서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항일투쟁에 참여하였다. 중국조선족 선인들은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항일대오에 가담하여 중국인들과 어깨 겯고 전 중국을 누비며 일본군과 싸웠고, 김일성을 대표로 하는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중국에 건너가, 처음에는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동북항일련군에 가담하여 일본군과 싸우다가, 후에는 자체로 빨지산 항일 무장대오를 조직하고 일본군과 싸웠다. 그리고 홍범도, 김좌진 등 기개가 있는 조선의 민족주의자들도 중국에 건너가 독립군을 조직하고, 중국의 봉오동, 청산리 등지에서 일본군을 습격하여 침중한 타격을 주었다.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이후, 그해 9월 15일에 김 구를 대표로 하는 조선의 민족독립 운동가들은 중국上海에 가서 “大韓民國”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당시 중국국민당정부의 지지를 받으며 독립운동을 견지하였다. “大韓民國”국명이 이때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다.   이와 반면에 박정희(대한민국 제5-9대 대통령)를 대표로 하는, 일본에 굴복한 많은 조선의 젊은이들은 징병되어 일본군에 편입되었으며, 일본군을 따라 대동아전쟁과 중국침략전쟁에 직접 참여하였다. 그리고 많은 조선의 유부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모집되어 갔고, 많은 조선의 청장년들이 노동자로 모집되어, 일본을 위하여 고된 노동을 해야만 하였다.   1945년 8월 10일 중국군과 쏘련군 미군에 의해 일본이 항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종식되고, 8월 15일 반도 땅은 일제 치하에서 해방되었다. 이것을 반도에서는 광복이라고 한다. 당시 반도의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이북 지역은 쏘련군, 이남 지역은 미군이 진주한 것을 계기로, 1948년, 북남에 각각 쏘, 미 군정에 의한 분단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렇게 이북에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 수립되고, 이남에 大韓民國이 수립되면서, 광복 이후 자주독립 통일국가를 지향한 민족의 염원은 좌절되었고, 분단은 고착 상태에 빠져버렸다.   그런데 이북과 이남의 두 정권의 성분를 각기 분석해 보면, 이북정권은 철저한 항일세력들로 무어진 정권으로서 독립의 의의가 아주 크고 민족색채가 돌출하지만, 이남정권은 일본에 굴복했거나, 일본에 충실했던 친일세력들이 대거 등용된 혼잡한 정권으로서 그들에게 있어서 독립의 의의는 그리 크지 않으며, 상전 국이 일본으로부터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바, 한국은 우리민족의 정통을 계승하고 발양한 나라가 아니고, 우리민족의 국제적 대표가 될 수 없으며, 중국조선족에 대하여 더구나 대표자격이 없다. 우리민족은 근대에 와서 대국들의 분쟁에 의하여 분열된 민족으로서 아직까지도 국제적으로 통일된 호칭이 없다.   한국에서는 “한민족”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에서는 “조선민족”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인다. 이는 습관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고, 현대에도 한국과 조선으로 분단되어 서로 국명을 달리 하고 있기 때문에, 분단되기 이전 명칭인 “조선”이라는 말이 그나마 객관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조선을 “북한”이라고 하고, 조선에서는 한국을 “남조선”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남의 정권이나 북의 정권에서, 모두 자기의 헌법에 반도는 하나의 나라라고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조선”이란 말은 반도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고, 이북의 조선만 가리킬 땐 “북조선”이라 부르며, 이남을 가리킬 땐 “남조선”, 혹은 “한국”이라고 부른다. 민족을 호칭할 경우 아예 영어로 “코리안(Kore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외에도 "백의민족", "배달민족" 등 호칭이 있지만 공식호칭은 아니다.   세계에서 우리민족의 인구는 2019년 기준으로 총 8,000여만 명으로 추정하는데, 세계인구의 약 1%를 차지한다. 대한민국에 5,000여만 명, 조선에 2,500여만 명 있으며, 이외에도 미국에 약 250여만 명, 중국에 약 180여만 명, 일본에 약 80여만 명, 원 쏘련지역에 약 50여만 명... 등, 한국과 조선 이외에도 근 500만 명좌우의 계례들이 산재하여 있다.   중국조선족은 조선왕조말기부터 일본식민지시기를 거쳐 중국에 건너온 조선인들의 후손들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중국민족법전에 “조선족”으로 명명되어 등록 되었다. 그들의 중국 국적은 당국에 입적신청을 올려 비준 받은 것이 아니다. 그들이 중국의 漢族들과 어깨겯고 항일전쟁과 해방전쟁에 참가하여 크나큰 희생을 냈고, 혁혁한 공훈을 세웠으며, 공화국 창건활동에 직접 참여한 결과이다. 중국의 조선족 집거구에는 마을마다 진달래 피는 곳에 렬사비가 있고, 렬사비마다 적어서 몇 십 명 렬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국가 급 노래인 “中國人民解放軍軍歌”도 조선족 음악가 정율성선생이 지운 것이다. 중국에서 조선족은 부끄럼 없이 당당한 開國民族이다. 中華人民共和國은 중국조선족이 중국의 漢族, 그리고 다른 소수민족들과 공동히 손잡고 건립한 완전 자기나라이다. 중국에서는 헌법상 모든 민족이 공동한 주인이고, 공동한 권리가 있다. 민족이 크고 작고 상관없이 일률로 평등하다. 그리하여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자기언어를 쓸 권리가 있고, 자기문자를 쓸 권리가 있으며, 자기민족복장을 입을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전통문화를 계승 발양할 권리도 있다.   소위 “한복”이라는 것은 우리민족 전통복장에 대한 한국식 명칭이다. 이 복장은 결코 한국의 독점衣裳文化가 아니라 우리민족의 공동한 전통衣裳文化이다. 전 세계의 우리계례들은 모두 이 복장을 입을 권리가 있다. 이것은 우리민족의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이건만, 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 복장은 한국에서만 입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누가 그런 권리를 주었는가? 중국조선족이 자기의 민족복장을 입고 베이징동계올림픽개막식에 출현하였는데, 이것은 원래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한 현상이건만, 한국은 마치 대단한 것을 도둑이나 마친 듯이 온 나라가 떠들 썩 한다. 그런데 한국은 기실 크게 잘못알고 있다. 중국조선족이 입은 옷은 결코 “한복”이 아니라 전통 “조선족 복”이다. 한국은 과대망상에 빠져 상식을 혼돈 하고 있다. 이렇게 이웃나라의 트집만 호시탐탐 노리며 사는 것이 피곤도 하련만, 한국에서는 이것이 도리어 기본정치인 것 같다. 그리하여 하찮은 기자의 황당한 기사 하나로 온 나라를 들쑤셔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상전국의 뜻을 따라야 하는 한국의 정치가 얼마나 취약하고 기형적인가를 보여주는 실례이다.   중국의 道德經에는 “海納百川”이란 말이 있는데, 바다가 천하의 하천을 용납하듯이, 너른 흉금으로 천하의 인심을 포용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개인 GDP가 비교적 높은 한국은 중국조선족을 포함하여 세계에 흩어진 우리 계례들에게 얼마간 흡인력은 가지고 있지만, 우리 계례들을 마음으로 포용할 만큼 그렇게 너른 흉금이 없다. 중국동포들은 무한한 동경을 안고 한국에 왔다가, 한국이 많은 방면에서 확실히 선진국가임을 실감하면서도, 중국동포들에 대한 너무 편파적인 사회민심과 너무 인색한 국가정책 때문에 크게 실망하게 된다. 물론 한국도 체제적 당파 간 싸움으로 자기의 어려운 사정이 있겠지만, 현재의 한국은 자기를 대표할 뿐이지, 우리민족을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자연히 그 답안이 나오는데, 너무 높은 기대는 접어야 한다.   중국조선족들에게 있어서 韓國은 한때 민족의 성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현재 중국의 GDP가 미국을 바싹 따라가면서 G2로 부상하여 한국보다 훨씬 높아졌지만, 개인 GDP는 한국이 많이 더 높으므로, 많은 중국조선족들이 한국에 와서 노무하고 있다. 한국노무는 여전히 중국조선족들이 치부하는 중요한 선택의 하나이다. 이제 멀지않은 내일에, 중국이 G1이 되어 세계최대 부강국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역사의 추세이다. 그때에도 중국조선족은 한국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분쟁은 분쟁이고 계례는 계례이다. 한 계례간의 분쟁은 상호 욕설로 해결할 수 없다. 역사가 해결해 줄 것이다. 조급해 마라. 현재 한국이 중국과 중국조선족에 대한 혐오는 중국이 쾌속 부상하는 과정의 작은 에피소드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많은 일들은 우리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곳까지 노력을 하여 역사에 유감을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용수 서울왕십리 2022-2-12 초고 현용수 서울중랑천 2023-9-20 수개
230    우리민족 족보, 친척, 호칭, 성씨 댓글:  조회:4142  추천:0  2016-10-04
  우리민족 족보, 친척, 호칭, 성씨   1, 족보란 무엇인가?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가문에서 문재가 비교적 좋은 사람들이 나서서,혈연관계로 맺어져 내려가는 자기 가문의 계보를 도표식으로 작성하여기를 나누어 기록하여 두었다. 이것이 바로 족보이다. 지금말로 하면 한 가문의 기본적인 력사당안자료인 셈이다.  우리는 족보에서 자기 가문의 시조를 알수있고, 자기 가문의 전통을 알수 있으며, 그 시조로부터 어떻게 발전하여 오늘까지 오게 되였는가? 하는 전반과정을 알수 있으며, 자기 친척의 범위와 갈래, 그리고 그 관계를 쉽게 알아볼수 있다. 중국조선족은 력사적 원인으로 하여 족보에 대한 개념이나 관심이 조선반도에 있는 우리 민족보다는 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족보를 중시하는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가문 구성원들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적어둔 대종보가 아니더라도, 자기친척 구성원들의 정황과 변화발전 과정을 기록해 두고, 그 관계를 명시하여 후대들에게 물려주는것, 또한 선대로서 마땅한 의무와 책임이 아닐가 생각한다.  특히 오래전부터 시작된 핵가족 시대에서, 자기 친척 구성원들의 정황마저 후대들에게 남겨주지 못한다면,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우리 후대들은 자기 혈친도 못 알아보고, 고립무원의 환경에서 살게 되며, 그때 가선 우리민족의 응집력도 크게 영향받을수 있다.  이것은 선대로서 후대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 아닌가?   2, 족보의 기원 일찍 삼국시기 신라에 벌써 족보 비슷한것이 생겨나 왕공귀족들이 리용하였다고 하였다. 족보란 계급사회의 등급제도의 산물로서 그 의의는 주요하게 자기가문의 정통성과 고귀함을 증명하기 위한것이였다. 그후 고려에서는 양반제도를 실시하였는데, 양반이란 주로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있는 문무관원들을 일컬으는 말이다. 지금말로 하면 국가공무원인 셈이다.  고려에서는 文宗(기원1047년)때부터 과거제도를 개혁하면서 상놈도 제한적으로 자기성을 가질수 있었다고 하는데, 상놈가문에서 그누가 과거에 합격되여 조정에서 벼슬을 하게되면 그 가문은 곧 출세하여 량반가문이 되므로, 왕으로부터 성을 하사받거나 또는 선조명이나 출신지역의 지명으로부터 성을 결정한후, 그사람을 시조로 하고, 그사람에게 봉해진 식지 혹은 출신지역을 본관으로 하여 계보를 작성하여 기록하여 내려 오는데, 그것이 후에 와서 족보가 되는 것이다. 식지란 봉지라고도 하는데, 봉건사회에서 벼슬을 하게되면 벼슬의 급별에 따라 봉해주는 토지와 그 관리구역으로서, 양반가문 경제수입의 주요 래원이였으며 세습할수 있었다.    3, 족보의 가치 과거에는 족보가 지배층, 즉 귀족이나 왕실에서 신분을 가려보고, 피줄의 갈래를 잊지 않으려고 기록한 비망록의 기능을 하였다. 하지만 인권평등을 강조하는 오늘날에 와서 족보의 가치는 신분증명보다는 가족의 뿌리를 알고, 가족의 우량한 전통을 계승하고, 가족과 친척의 관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가족관념을 가강하고, 가문의 뉴대를 형성시키며, 가문의 매개 성원들의 사명을 강조하기 위한것이라고 본다.  연변 조선족 가정의 대부분의 족보는 문화혁명때에 훼멸성적인 재난을 당하여 이미 기본상 근절되였다. 개혁개방을 하고, 한국과의 국교가 맺어지고, 한국의 종친회와의 련계를 다시 회복하게 되면서 적지않은 가문에서는 다시 자기의 족보를 가지게 되였으며, 선조와의 련계점을성공적으로 찾고, 자기가정 성원들을 족보에 보충 기입해 넣은 가정도 적지 않다.     4, 족보의 형식 족보의 형식은 가문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인 형식은 비슷하다. 맨 앞에 가문을 자랑하는 서문이 있고, 시조를 포함해 주요한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을 밝혔으며, 시조와 조상들 가운데서 력사에 이름난 인물들의 사적을 적어 놓았다.  그다음부터는 시조 아무개로 시작하여 가문성원들의 이름을 세대를 나누어 항렬의 순서에 따라 적고, 매 사람의 이름에 곁붙여 자, 호, 생졸년월일, 그리고 생전에 지낸 대표적인 벼슬, 간단한 략력, 안해의 본과 성씨, 무덤의 위치등을 적어 넣었다.  딸은 출가외인이라 하여 보통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어떤 가문에서는 사위의 성과 이름을 밝히기도 한다. 남자들은 성이 모두 같으므로 이름만 적었으며, 그것도 적서의 구별을 두어 본처의 자식은 《적》으로, 첩의 자식은 《서》로 갈라 적었으며, 외손자인 경우 보통 밝히지 않지만, 또 일부 밝힌 가문도 있다.  보통 족보는 해당 문중에서 스스로 자기 문중의것을 작성하였고, 이밖에족보와 성질은 같지만 형식과 내용이 약간씩 다른 가첩과 가승이란것도 있었다. 가첩이란 직계친족만 적어둔 것이며, 가승은 가문의 직계친족과 그 가문의 사적을 적어놓은 것이다. 족보를 중요시함에 따라 해당 가문의 종친을 체계적으로 종합한 종보와 그중 어느 한갈래의 종친만을 밝힌 지보란것도 생겨났다.    5, 친척이란 무엇인가? 친척이란 피줄과 결혼관계로 련결된 사람들을 말한다. 친척은 크게 친족, 인척 두가지 부류로 나눈다. 친족은 피줄관계로 련결된 것인데, 흔히 집안이라고 한다. 인척은 결혼관계로 련결된 것을 말한다.  친족안에는 직계와 방계로 구분되는데, 직계는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아들(딸)-손자(손녀)-증손자(증손녀) 등과 같이 피줄이 직접 잇달아 물린 사람들이다. 이것을 가족이라고 부르며, 이것을 방계와 구별하기 위하여 《친할아버지》, 《친손자》 등 《친》자를 붙여 부르기도 한다.  방계는 큰(작은)할아버지-큰(작은)아버지-조카 등과 같이 몇 대우에서갈라져 나간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인척가운데서 어머니켠을 외켠(외척), 안해켠을 처켠(처척)이라고 하며, 시집간 딸은 친족성원에서 빼버렸으나, 사실상 고모, 고모부, 고모사촌 등은 실제생활에서 아주 가까운 친척으로 되여 있다.    6, 친척의 촌수를 어떻게 밝히는가? 우리 민족은 친척관계의 멀고 가까움을 촌수로 밝힌다. 우리 민족이 촌수를 밝히기 시작한것은 대체로 고려시기부터였다고 한다. 14세기 문인 리색이 《4촌회》라는 말을 쓴것도 있고, 또 《고려사》에 외사촌이란 말이 나온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쯤으로 추증하는것이 옳을것 같다.  촌수는 부부관계에서부터 시작하여 한세대를 한촌으로 센다. 때문에 부부사이는 촌수가 없이 동체로 치고, 대수가 점차 벌어짐에 따라 촌수는 많아진다. 따라서 촌수가 적을수록 가까운 친척이고, 촌수가 많을수록 먼 친척으로 된다. 직계에 속하는 친척은 대수가 곧 촌수인데, 부모와 자녀사이는 1촌이고,할아버지와 손자사이는 2촌이다. 그러나 부를 때에는 절대로 촌수로 부르지 않으며, 증조할아버지와 증손, 고조할아버지와 현손사이도 촌수는 각각 3촌, 4촌이지만 부를때에는 절대로 촌수로 부르지 않는다.  방계(곁갈림)에 속하는 친척의 촌수는 먼저 어느 조상에서 갈라졌는가를 따져보고, 그 조상과 자신과의 촌수에다 알려고 하는 대상과 그 조상과의 촌수를 합하면 된다. 례를 들면 조카와 자기와의 촌수는 자기와 아버지의 촌수에다 조카와 아버지와의 촌수를 합하면 된다. 즉 자기와 아버지와는 1촌이고, 조카와 자기 아버지(조카에게는 할아버지)는 2촌이므로 자신과 조카는 3촌이 된다.    7, 인척의 촌수는 어떻게 밝히는가? 외켠의 친척은 어머니와 그 친척과의 촌수에다 자기와 어머니와의 촌수(1촌)를 합한 수와 같은 촌수이다. 례를 들면 어머니의 남동생은 어머니와 2촌이므로 자기와는 3촌, 즉 외삼촌이 된다.  처켠에 대해서는 알아보려는 사람과 자기 안해와의 촌수를 그대로 따르면 된다. 례를 들어 안해의 작은 아버지는 안해의 3촌이므로 처삼촌이라고 부른다.  촌수로 친척의 멀고 가까운것을 나타내는데, 형제벌의 친척은 4촌, 6촌, 8촌과 같이 짝수(우수)로 나가고, 큰(작은)아버지, 조카 등 아잡조카벌의 모든 친척은 3촌, 5촌, 7촌과 같이 홑수(기수)로 나간다. 이것은 촌수의 련결마디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세대와 세대사이에는 그를 낳은 부모가 끼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5촌형, 칠촌아우, 6촌조카, 8촌조카라는 것은 있을수 없다.    8, 몇촌까지 친척으로 보는가? 고려와 리조에서는 서로 범위에서 얼마간 차이가 있었으나, 대체로 친족은 7~10촌까지, 인척은 5~6촌까지를 친척으로 보았으며, 리조시기 법에는 친족이 10촌까지로 되어 있으나, 실제생활에서는 대체로 8촌까지 친척으로 보았다.    9, 사돈도 친척의 범주에 속하는가? 우리말에 사돈이 한호적이란 말도 있다. 《아언각비》란 책에 《친척》이란 《척》에는 외척, 처척, 인척을 들고 있는데, 여기의 이 인척이 곧 당시 사돈집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였다. 그런데 사돈은 친척가운데서 제일 먼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사돈의 팔촌》이라 하게되면 친척이라고 할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먼것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생활에서 사돈과 가깝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매부와 처남 사이는 일반적으로 매우 가깝다.    10, 직계친족을 부르는 호칭에는 어떤것이 있는가? 3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증조》를 붙여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라고 부르며, 3대의 손자와 손녀는 《증손》을 붙여 증손자, 증손녀라고 부른다. 4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고조》를 붙여 고조할아버지, 고조할머니로 부르고, 4대의 손자와 손녀는 《현손》을 붙여 현손자, 현손녀로 부른다. 5대이상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자, 손녀는 대수를 그대로 붙여 5대할아버지, 6대손자 등으로 부른다. 직계친족가운데서 형의 안해를 흔히 형수, 아우의 안해를 제수라고 부르며, 누이의 남편을 매형, 혹은 매부라고 부른다.    11, 방계친족은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방계친족을 부를때에는 같은 항렬에 속하는 4촌, 6촌, 8촌형제를 친형제와 구별하기 위하여 각각 《종》, 《재종》, 《삼종》을 붙여, 종형제, 재종형제, 삼종형제 등으로 부른다.  아버지항렬에 속하는 큰아버지를 백부, 작은아버지를 숙부라고 부르며, 흔히 숙부를 삼촌이라고도 하는데, 직접 촌수로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런 친삼촌과 구별하기 위하여 오촌, 칠촌, 구촌백부와 숙부는 각각 《종》, 《재종》, 《삼종》을 붙여 부른다.  할아버지 항렬을 부를때에도 친할아버지와 구분하여 할아버지의 형제를 종조부로 부르며, 따라서 증조할아버지 형제를 재종증조부, 고조할아버지의 형제를 삼종고조부로 부른다.  아들, 손자항렬에서도 친조카와 오촌, 칠촌, 구촌조카, 그리고 친손자와형제의 손자를 구별하기 위하여, 《당》, 또는 《종》, 《재종》, 《삼종》등을 붙였다. 이를테면 사촌의 아들은 5촌으로서 당질(오촌조카)이며, 륙촌동생의 아들은 7촌으로서 재종질(칠촌조카)이며, 팔촌의 아들은 9촌으로서 삼종질(구촌조카)이라고 부른다.   이런 추리로써 형제의 손자는 6촌으로서 재종손, 륙촌의 손자는 8촌으로서 삼종손이라고 부른다. 누이의 딸은 생질, 고모사촌은 고종형제라고한다.  이밖에도 친족을 부르는 말에는 넛할아버지(아버지의 외삼촌), 넛손자(누이의 손자), 올케(오빠와 남동생의 안해) 등이 있다.    12, 인척을 부를때에는 어떻게 부르는가? 인척을 부를때에도 촌수를 캐는 법은 같으나, 부를때 외켠에는 《외》, 어머니의 자매는 《이모》, 처켠에는 《처》를 붙여 부르며, 안해의 부모를 장인, 장모로 혹은 가시아버지, 가시어머니로 부른다. 이모의 아들딸은 이모사촌이 되고, 처남과 처형제의 아들딸들은 처조카로 되며, 안해의 삼촌은 처삼촌으로 부른다.  우리 민족은 친척교제에 있어서 비록 구분은 우에서 말한것처럼 촌수가밝혀져 있으나, 직접 상대하여 말할때에는 될수록 가깝게 부르는 풍속이있다. 즉 례를 들면 구촌조카를 당면해서 부를때《구촌조카 왔는가?》하지 않고 《조카 왔나?》라고 하는 식이다. 웃사람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연변 등지에서는 《아바이》, 《클아배》, 《아매》, 《맏아매》등 함경도 방언이 많이 쓰이고 있는데, 친척, 가족내에서 친근감을 줄수 있으나, 많은 장소에서는 소개가 잘못될 수도 있다. 그러니 좋기는 소개는 구체적으로 촌수에 따라 하고, 부를때는 장소를 고려하여 해당된 표준어를 쓰는것이 좋겠다.    13, 아주머니, 아재, 아저씨는 누구? 우리 연변에서는 형의 안해 즉 《형수》를 직접 대면하여 부를때  보통《아주머니》라고 불렀고, 고모, 이모 등과 같이 자기 어머니와 나이 비슷한 녀인들을 부를때에는 보통 《아재》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 《아주머니》란 말은 주로 형수, 자기와 나이가 비슷한 여자, 또는 젊은 남의안해를 부를때 자주 쓰이고, 《아재》라는 말은 보통 자기보다 젊은 녀인을 대칭하여 많이 쓰인다. 그러니 자기 형의 안해를 공식적인 장소에서는 타인의 안해와 구분하기 위해서라도 《형수》라고 부르는것이 바람직 하고, 고모, 이모도 그대로 《고모》, 《이모》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 하다.  그리고 《아저씨》라는 말도 그전에는 외삼촌과 고모부, 이모부 등과 같이 자기 아버지와 나이가 비슷한 남자들을 부를때 쓰였으나, 지금은 주로 여자들이 언니의 남편, 혹은 친척관계가 없는 젊은 남자들을 부를때 쓴다. 때문에 자기 언니의 남편을 공식적인 장소에서는 타인의 남편들과 구분하기 위해서라도 《형부》라고 부르는것이 바람직 하다.  동서끼리 혹은 시누이와 올케가 서로 부를때 《형님》, 《언니》, 《동생》등으로 부르며, 특히는 여자들이 시형과 시아우를 자기 자식들이 부르는 대로 《큰아버지》, 《삼촌》 등으로 부르는데, 친근감을 돋구는 친척호칭이기는 하지만 일련의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제대로 촌수에 따라서 정확히 부르는것이 바람직 하다.    14, 항렬이란 무엇인가? 항렬이란 친족가운데서 세대수 관계를 나타내는 말인데, 어떤 사람의 자손가운데서 세대수가 같아서 형제벌 되는 사람들을 같은 항렬이라고 하며, 그들의 아버지벌 되는 사람들을 아버지항렬, 아들벌 되는 사람들을 아들항렬이라고 한다. 우리 민족은 재래로 이름을 지을때 《항렬자》, 즉 《돌림자》를 썼다. 이 《항렬자》에 근거하여 성과 본이 같은 사람끼리 이름만 보고도 대체로 항렬을 가릴수가 있었다. 지금은 이름 짛을때 《항렬자》, 즉 《돌림자》를 쓰지 않고 각각 제맘대로 짓는다. 하지만 년세 많은 분이 집안에 계시는 경우, 아직도 항렬자를 따져서 이름을 짓기도 한다.    15, 성씨란 무엇인가? 옛날에는 평민들을 가리켜 한자말로 《백성》이라고 하였는데, 그뜻인즉《백가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나오기썩 오래전인 원시사회나 노예사회, 봉건사회 초기때만 해도 성씨가 많지 않았고, 그 성씨는 왕족이나 귀족과 같은 지배계급에서만 사용되였었다. 그리하여 성이 없는 평민들은 《천민》 혹은 《상놈》이라고 불리였으며, 이름은 《돌쇠》나 《똥애》처럼 아무렇게나 지어 부르는 것이 고작이였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인권평등의식이 강조되고, 인격존중이 하나의 사회적 원칙으로 됨에 따라 호적등록을 하면서 점차 누구나 성씨를 갖게 되었다. 우리 민족의 경우, 이름앞에 붙이는 성씨는 일반적으로 같은 족속을 나타내는 칭호인데, 한문투를 따서 보통 무슨 《씨》, 무슨 《가》라고 한다. 이를테면 《허》란 성을 부를때면 《허씨》, 혹은 《허가》라고 한다.    16, 우리민족 성씨는 몇가지 되는가? 《백성》이라고 하지만 실지 우리민족의 성씨는 100가지를 훨씬 초과해 수백가지에 달한다. 옛날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265성이 기록되여 있고, 그후에 나온 《증보문헌비고》에는 496성으로 근 5백가지를 헤아리고 있다.  1975년 한국 국세조사에서는 249가지 성으로 되어 있으며, 김씨가 전체 인구의 21.9%, 리씨가 14.9%, 박씨가 8.5%, 최씨가 4.8%로 한국 총인구의 근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한자가 들어오기 이전에 고대사회에서 조선 고유말로 된 성이 있었을수도 있지만 아직 고증할 문헌기록이 없다.  우리민족 력사문헌으로서 가치가 가장 큰 문헌중의 하나인 《삼국사기》에서는 사람 이름 앞에 출신지방의 이름을 붙여서 혈연관계 혹은 지방소속관계를 밝혔다. 이를테면 옛날 백제왕실의 성인 《부여》같은것이다. 백제왕실은 고구려왕실에서 갈라져 나왔는데, 자연 이 두 왕실의 출신지방이 같은 《부여》였기 때문이다. 백제왕실에는 《부여》란 성외에도 사, 연개, 협, 해, 진, 국, 목, 백 등 큰 성이 있었다고 한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성은 《고》씨인데, 고구려에는 이밖에도 장, 양,리, 오, 두, 왕, 등 큰 성이 있었으며, 이런 큰 성을 가리켜 우성이라고 불렀다.  신라왕실의 성은 박, 석, 김이 위주였고, 그외에 최, 안, 설, 남, 손, 정, 배,리, 등성이 있었다.    17, 우리민족 성씨는 어째서 한자성씨인가? 력사문헌에 나오는 성씨들은 대부분이 왕실귀족의 성씨였지 백성들의 성씨는 아니였다. 《삼국사기》에 고위계층 즉 왕실이나 귀족들 가운데서는 성씨가 점차로 보급되여 가고 있었으나, 평민들은 성이 없었다. 때문에 《삼국사기》에 나오는 숱한 평민들은 이름만 나오고, 성이 적혀 있지 않다. 고구려의 온달, 신라의 계백과 관창, 고구려의 창조리, 백제의 도미, 신라의 솔거, 지은 등 평민들에게는 그것이 성씨인지 이름만인지 알기 어렵다. 특히 고구려의 성씨에 대해서 살펴보면 우에서 례를 든 왕실의 성씨들을 내놓고도, 을지문덕, 연개소문, 명림담부 등의 을지, 연개, 명림 등 성씨가 나오는데, 그 뜻이 아마 당시 고구려의 고유어로 되어 있는것 같고, 한자를 그대로 쓴 성이 아닌듯 싶다.  조선에서 한자성을 널리 쓰기 시작한것은 아마도 후신라때부터라고 보는것이 타당할것 같다. 왜냐하면 그때가 바로 중국과의 군사, 정치, 외교래왕이 전의 다른 어느 시기보다 잦았을 뿐만 아니라, 후기신라 귀족들의 한자말이 열도가 올랐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은 당시 신라의 지명을 모두한자식 이름으로 고치였으며, 이와 때를 같이하여 신라의 귀족들은 모두한자성을 붙였다. 이로부터 고려, 리조에 이르기까지 한자성이 위주로널리 퍼졌고, 왕실이나 귀족들내에서 한자성씨를 숭상하고, 그 유래를신비화 했거나, 또는 한자성씨를 국가의 공로자에게 상으로 주는 이른바《사성》이라는 제도가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18, 평민들은 언제부터 성을 가지게 되였나? 일반 평민들이 성씨가 없이 이름만 붙여 불리운것이 조선력사 반만년에 깔리운 하나의 상황이였다. 고려文宗(기원1047년)때부터 비양반가정에서도 자기성을 가질수 있었다고 하지만 극히 제한적이였으며, 지어 리조말기에 이르러서도 성이 없는 평민들이 상당수준으로 존재하였다. 근대에 들어와서 전국적 범위내에서 통일적으로 호적등기를 하게 되자, 성이 없던 평민들은 여러가지 경로를 통하여 성씨를 가지게 되였으며, 조선반도 전 국민이 비로서 성씨를 다 쓰게 되었다.    19, 본이란 무엇인가?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성씨를 귀중하게 여긴것은 성씨가 봉건사회에서혈연관계 즉 피줄을 상징하는 외에도 계급적 차원에서 신분의 귀천을 상징하는 표징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리조시기에 들어와서 유교가 국교로 됨에 따라, 남존녀비와 《3강5륜》사상이 풍조로 되었다. 따라서 혈통관념이 보다 강하게 성씨에 깃들게 되었으며, 정통이냐? 아니면 갈래이냐? 하는것을 무섭게 따지게 되였다. 그에 앞서 한 성씨안에서도 시조가 누구냐? 그리고 그 시조가 발상한 고을이름이 어떠냐에 따라 《본》이란 개념이 생기게 되였고, 엄격이 그것을 준수하여 벌써 리조초기에 귀족들은 한자성 앞에다가 발상지명을 덧붙여 《전주리씨》,《밀양박씨》하고 불렀다.  시조의 발상지는  출신지역이 될수도 있고, 또 벼슬하여 받은 봉지일수도있다. 사실 고대에 있어서는 성씨 자체가 발상지 이름으로 된것이 적지 않다. 그리하여 이름앞에 선조의 발상지(원래의 성)을 붙이는것이 거의 통례로 되었는데, 한자성씨가 보급됨에 따라 발상지 이름이 따로 《본》이란 명칭으로 성씨앞에 붙게 되였다.  그후 한 종족에서도 그누가 벼슬하게 되면 따로 가보를 창설하고, 성은 원래의 성을 그대로 쓰고, 본은 자기의 봉지명으로 고쳐서 따로 기록하기 시작하였는데, 주요하게 자기의 공덕, 혹은 근친의 공덕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되여 같은 성씨에 여러가지 본이 생겨나게 된것이다.  그때로 부터 본이란 기실 한 가족의 발상지만 대표하게 되였으며, 지금은 같은 성씨의 다른 종친을 구분하는 의거로 많이 리용된다. 이것을 《본관》, 혹은 《관향》, 《향관》이라고도 한다.  사회, 력사적 변천으로 하여 본관의 이름이 지금은 없어졌거나, 또는 다른 이름으로 바뀌여 진것도 허다하다. 이를테면 연주 현씨, 문화 류씨, 가주 한씨, 반남 박씨, 무송 윤씨 등이다. 《연주》는 평안북도 녕변의 옛지명이였고, 《문화》는 신천군안의 옛고을이였으며, 《가주》는 정주군 가산고을의 별칭이고, 《무송》은 고창군 무장고을의 별칭이며, 《반남》은 라주군 소속에 있던 별칭이다. 하지만 이런 변천은 성씨의 본관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상기 본관의 개념이 바로 혈연갈래를 가르는데 두고 있기 때문에, 그냥 옛날지명을 그대로 부르면서 련속되여 왔던것이다.     20, 본 안에 또 파가 있다던데. 기록에 의하면 리조시기에 본이 가장 많은것은 김씨였는데, 499본에 달하였고, 리씨는 451본에 달하였으며, 최씨는 326본에 달하였고, 박씨는 309본에 달하였다. 장씨는 245본, 림씨 216본, 조씨 200본 등의 차례로 선보인다. 본이 많다는것은 그만큼 력사적으로 벼슬을 한사람이 많다는 방증이 된다. 리조후기부터 시작하여 같은 본끼리도 서로 멀고 가까운 현상이 많아졌는데, 족보를 캐여 같은 본안에서 그 문벌이 누구의 자손인가? 그리고 자기 혹은 타인과 어떤 관계인가를 밝혔다. 하여 본안에 또 파가 생겼다.    21, 성씨유래를 캐여보는 의의 우리 민족이 성씨를 쓴지도 이미 천년도 넘는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고있다. 민속학적인 의미에서 볼때, 대대로 성을 물려 주면서 피줄의 흐름을 이어온 그 자체가 하나의 력사이며, 조상들의 지혜로운 유산이다. 때문에 일제가 《동조동근》을 강요하면서 창씨개명까지 협박했던 그 살벌한 민족수난의 시기에도 우리 민족은 자기의 성씨를 잊지 않고, 따라서 자기가 조선민족임을 잊지 않고 줄기차게 살아왔던 것이다. 글로벌화된 오늘날에 와서 종친이요, 한 성씨요 하는 혈연개념이 희박해질수도 있고, 또 그 어떤 다른 목적에 리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민속학적인 각도에서, 성씨의 유래를 캐여보는것은 력사지식방면에서 도움이 될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 우량한 전통을 계승하고, 민족의 응집력을 가강하는 방면에서도 도움이 될수있다. 세계가 날로 좁아져서 마침내 지구촌이라는 개념으로 이 세계를 평가하는 오늘날, 우리가 자기의 민족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자기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새겨보며, 자기의 사명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방면에서도, 모두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연변인민방송국  김동선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현용수 공동작성 2016-10-04
229    상례문화, 얼마나 알고있는가? 댓글:  조회:3060  추천:0  2016-10-01
상례문화, 얼마나 알고있는가?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현용수회장이 얘기하는 조선족 상례문화의 현주소 날짜  2016-9-29 16:40:40   조회  146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현용수회장 예로부터 관혼상제는 인생대사의 기본으로 우리 조상들은 이에 대해 더없이 중요하게 여겼다. 유교를 바탕으로 나라가 다스려지던 과거에는 관혼상제가 단순한 의례 이상이였으며 지금에 와서도 관혼상제는 우리의 생활에서 자못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회구조와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라 오늘날 관혼상제중 많은 의례들은 간소화되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 역시 전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 가운데서도 상례와 제례는 그 문화적전승이 제대로 돼있지 못한 상황, 현대사회의 뒤안길에서 거의 잊혀져갈법한 위기를 맞았다. 이를테면 도대체 어느 민족의 상례인지 알아볼수 없을 정도의 정체불명한 의식들, 지나치게 간소화되고 형식적이여 초라하기까지 한 장례방식, 단순한 영리목적으로 운영되고있는 상조업체의 비정규적인 장례서비스가 란무하는것 등이 우리 지역 상례문화의 현주소다. 이와 같은 현상을 개변하고 상례문화가 맞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어진 단체가 있으니 바로 조선족상례풍속 보호책임단체인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회장 현용수씨는 길림성비물질문화유산-조선족상례풍속의 대표전승인으로 잊혀져가는 우리 민족 상례풍속을 전승, 보급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있다. 현용수회장에 의하면 중국에서 장례개혁이 실행되기 시작한것은 지난 세기 80년대, 그러나 조선족의 상례풍속은 문화적차원에서 정부의 인정을 받지 못한 상황이였고 그때문에 연변 지역내 병원이나 장의관에는 조선족의 장례시설들이 따로 설치되지 않았다. 장기간 조선족 상례문화가 중시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조선족 상례문화는 철저히 소실될 위기를 맞게 됐으며 그 존재의식도 엄중히 약화됐다. 2009년, 조선족 상례풍속이 길림성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조선족의 상례문화는 비로소 정부의 인정을 받게 됐고 민속문화로서의 자기의 자격과 체계를 초보적으로 갖게 됐다. “상례문화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기피하고싶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문화의 보호에 집착하는것은 이 문화에 우리의 뿌리가 묻혀있고 우리의 넋이 슴배여있기때문입니다.” 현용수회장은 이처럼 상례문화를 보호하고 널리 보급시키기 위한 조치로 “상례문화의 상업화”를 꼽았다. 특히 시장경제시대에 와서 산업화되지 못한 문화는 그 생명력을 유지할수 없다고 지적, “이대로 상례문화를 민간의 자연존재법칙에 맡겨놓는다면 이 문화는 곧 철저히 소실될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또 “상례문화를 상업화한다는것은 단지 영리를 목적으로 상조업체의 건설에 국한되지 말고 정규적인 상례복무업체를 설립하여 국가의 유관정책과 시장기률을 준수하면서 인성화된 합리한 유상복무를 제공하는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업체의 체제를 건전히 하고 경영관리를 가강하며 장기적으로 견지해나간다면 우리의 상례문화는 살아남게 될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망자를 위한 장례는 단지 고인의 유체를 처리하는 실무수단뿐만아니라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고 은덕에 감사를 표시하며 민족(가문)의 전통을 이어받는 문화수단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한 민족의 고유한 넋이 고스란히 체현되며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바른 인식과 살아있는자들에게 삶에 대한 긍정적인 에네지도 함께 불어넣어주는 정중한 의례이기도 하다. 박진화 기자   QR코드를 스캔하여 위챗 모멘트에 공유하여주십시오. 저작권성명: 본 사이트 기사를 전재하실 경우에는 연변일보 사명과  기사 작성자명(기자명)을 반드시 표기하여주십시오.
228    중양절과 우리민족 상례문화 댓글:  조회:2887  추천:0  2016-09-27
중양절과 우리민족 상례문화   중양의 어원 중국의 전통 음양학설에서는 우수[隅數]를 음(陰)의 수라고 하고, 기수[奇數]를 양(陽)의 수라고 하며, 보통 양의 수를 길수(吉數)로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양의 수가 두개 겹치는 날은 대길한 날로 여기고 명절로 삼았습니다. 례컨대 음력으로 1월1일은 설날(태아의 날), 3월3일은 삼진날(어린이 날), 5월5일은 단오날(처녀총각의 날), 7월7일은 칠석날(련인의 날), 9월9일은 중구날 혹은 중양절(노인의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중구날은 가장 큰 양의 수가 두개 겹쳤으니 대길중의 대길한 날이인 셈이죠. 2.   중양절의 유래 구구중양에 대하여 일찍 중국 춘추전국시기에 기록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아직 명절은 아니였습니다. 삼국시기 위문제 조비가 쓴 《九日与钟繇书》라는 문헌에서 처음으로 중구가 명절로 표시되여 있습니다.  당조에 와서 중구는 중양절이라고 칭하고 정식 민간명절로 정해졌고, 명조에 와서는 황궁에서까지도 중양절을 굉장히 쇠였으며, 그 풍속이 청조에까지 전해져 내려 왔습니다. 전통적으로 중양절에는 상국(賞菊), 등고(登高), 시주(詩酒) 등의 풍속이있었고, 당송(唐宋)때에는 관리들의 휴가일로서 추석보다도 더 큰 명절이였습니다. 반도에서 이 풍속은 신라시대에 당조로부터 들어 온것으로 추정됩니다.신라시대에 안압지의 임해전(臨海殿)이나 월상루(月上樓)에서 군신이중구에 연례적으로 모여서 술을 마이며 시가를 즐긴 기록이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중구의 향연이 나라적으로 정례화 되였습니다. 조선 세종 때에는 삼짇날과 중구를 명절로 공인하였으며, 성종 때에는추석에 행하던 기로연을 중구로 옮기고 유생들에게 과거를 실시했습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9월 조에 의하면"서울의 풍속을 보면 중구날 남산과 북악산에 올라가 먹고 마시며 단풍놀이를 한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3.   구구 중양절의 전설 중국 남북조때 량(梁)나라의 吴均이란 사람이 쓴 《续齐谐记》란 책의 기재에 근거하면; 중국 동한시기에 汝河지역에서 해마다 9월9일이면 온역이라는 마귀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사처에 전염병을 퍼뜨려, 집집마다 사람이 병들어 눕고, 마을마다 사람이 매일 죽어 나갔다고 합니다.  恒景이란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마귀를 소멸하여 마을사람들을 구할 뜻을 품고, 신선을 찾아 마귀 잡을 도술을 꾸준히 익혔습니다. 9월9일, 그는 마을에 내려와 먼저 마을사람들에게 수유(茱萸)잎 하나와 국화꽃술(菊花酒) 한종씩 나누어 주면서 높은산에 올라가 피신하게 하였습니다.  오시에 마귀가 나타나 산밑을 지나가면서 수유와 국화꽃술의 특이한 냄새를 맡더니 몹시 당황해 하였습니다. 이때 그 청년이 나타나 보검을 휘둘러 그 마귀를 죽여 버렸습니다. 지금도 중국 중원 지역에서 중양절에 옷이나 머리에 수유열매를 꽂고 높은산에 오르며, 국화꽃을 감상하고, 국화꽃술을 마이는 등 풍속이 있는데, 모두 온역을 피한다는 위의 전설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우리 민족 가운데서 전해져 내려 온 유설에 의하면; 중구날에는 양기가 너무 강하여, 음계(저승)에서는 사무를 볼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날에 전반 음계에서는 염라왕을 포함하여 모든 신령과 귀신들이 휴가를 보낸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날이 탈이 없는 날이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날에 면례 하거나 묘소를 수리하기도 하였고, 비석을 세우기도 하였으며, 객사하여 시신을 찾지 못하였거나, 구체적인 기일(忌日)을 알수 없는 조상이나 부모의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연변에서는 이날에 이장하고, 합장하는 행사가 많습니다. 4, 우리민족 상례문화에 대하여 중양절은 일년중에 양기가 가장 강하고, 또 탈이 없는 날이라고 하니깐,구태여 기피할 필요가 없는 이 기회에 무형문화재로 된 우리민족의 상례문화에 대하여 몇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민족 상례문화가 왜 필요한가? 현재 우리 연변의 조선족 장례방식은 극히 간단하고 초라합니다. 아마 세상에서도 제일 초라한 장례방식인것 같습니다. 지금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이미 습관되여 있으며, 시대의 현상이라고만 생각하고 이것이 우리민족의 수치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고로 우리민족은 찬란한 장례문화가 있었습니다. 부모의 장례를 단지 부모의 유체를 처리하는 실무수단뿐만이 아니라, 부모의 죽음을 추모하고, 부모의 은덕에 감사를 표시하며,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는 문화수단으로 삼고 정중하게 실행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부모장례를 살펴보면, 환경위생부문에서 쓰레기 처리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절차가 너무 간단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손들의 성의가 부족하고, 사람으로서의 인정을 느껴볼수 없습니다.  한 민족이 흥성발전하려면 선진적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자기민족의 전통문화의 기초상에서 받아들여야만 적극적인 효과를 낼수있습니다. 자기조상을 숭배하고 근본을 이어가는 민족은 선진적인 문화를 받아들여 흥성발전할수 있지만, 조상을 배반하고 근본을 잊어버린 민족은 선진적인 문화에 의하여 결국 쇄망하게 됩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은덕에 보답할줄 알아야 하고, 감사할줄 알아야합니다. 이것은 사람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인성입니다. 그래야만 사람들과 어울려 살수있고, 사회에서 발전할수 있으며, 위기에서도 운명의구원을 받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은 작은 은덕에는 감사할줄 알지만, 큰 은덕에감사할줄 모릅니다. 그 큰 은덕이란 바로 조상들이 근본을 내려 주신 은덕이요, 부모가 생명을 주시고 키워 주신 은덕입니다.  우리의 부모들은 우리들에게 하늘과 같이 큰 은덕를 주시고도, 얼마 보답도 받지 못한채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인젠 그분들에게 보답의 기회조차 없어진 형편에서 감사이 마음이라도 있어야 할것 아닙니까? 장사제사를 크게 버젓하게 지내라는 것이 아니라, 간소하면서도 성의를 다하여 지내라는 것입니다. 그 성의 가운데 바로 자기민족의 기본례의를 지키라는 뜻도 포함되여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결혼이나 아이 돐잔치 같은 행사에서는 천문수자의 돈도 아끼지 않고 푹푹 쓰다가도, 부모의 장례나 제사라고 하면 린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결혼이나 아이 돐잔치에 쓰는 돈은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에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장례에 쓰는 돈도 기실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쓰는 돈은 절때 아닙니다. 그 돈도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쓰는 돈이며, 량심에 대한 투자, 도덕에 대한 투자,운명에 대한 투자로 됩니다.  우리의 상례문화는 바로 사망한 부모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과정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인간도리인 효도를 깨우쳐 주는 문명하고 엄숙한 문화수단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상례문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우리 상례문화를 왜 산업화 해야 하는가? 상례문화라고 하면, 가정에서 누군가 사망하였거나, 혹은 청명이나 추석이 띄였을 때는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되지만, 평소에는 누구나 될수록 기피하는 것이 이 문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문화의 보호에 집착하는 것은, 이 문화가 특별히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문화에 우리의 뿌리가 묻혀있고, 우리의 넋이 슴배여 있으며,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도록 깨우쳐 줄수있는 특수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 문화를 효과적으로 보호할수 있겠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산업화 하여야 합니다. 시장경제시대에 와서 산업화 하지 못한 문화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만일 이 문화를 계속 민간의 자연존재 차원에 맡겨 놓는다면 다음 세대에 가서 이 문화는 철저히 소실 될 것임은 의심할바 없습니다. 일단 이 문화가 없어지면 우리민족의 일생생활에는 엄중한 결점이 생기게 될것이고, 우리민족 소질도 엄중히 떨어지게 될것이며, 우리민족의 존재의식도 엄중히 약화될 것입니다. 상례문화를 산업화 한다는 것은 상례복무업체를 건립하고 국가의 유관정책과 시장규률은 준수하면서 합리한 유상복무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이 업체의 체제를 건전히 하고, 경영관리를 가강하며, 장기적으로 견지해 나간다면, 우리의 상례문화는 살아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우리는, 상관정책에 의하여 이미 전문 조선족 상례복무업체를 건립하였습니다. 상례는 조선족 천가만호와 상관되는 대사이며, 조선족 매 사람들과 상관되는 대사입니다. 조선족 상례문화 보호는 전체 조선족들의 공동의 책임입니다.  어떻게 책임 질것인가? 바로 가문에 상사가 나면 우리를 찾으면 됩니다.이것은 우리의 상례문화 보호사업에 직접적인 참여로 됩니다. 우리 모두 공동 단결하여 우리민족의 보귀한 무형문화재를 보호합시다.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현용수 작성  201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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