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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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사람 됨됨이의 순서 댓글:  조회:171  추천:0  2018-05-29
 어느 사회에서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사람이 있기가 마련이다. 그래서 아무개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무슨 일을 하자면 사람이 제일 문제라면서 일을 맡길 사람을 찾을 때 먼저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고 한다. 그런데 오늘에는 인품에 앞서 그 사람의 능력을 먼저 따지려는 풍조가 앞서는듯 하다. 이런 풍조에 너무 매달리다 보면 뒤끝이 별로 신통찮게 끝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능력은 재주에서 비롯되고 인품은 덕에서 비롯되는 까닭으로 사람의 인품과 능력은 서로 다르다. 덕은 베푸는 마음을 앞세우고 능력은 요구하는 마음을 앞세운다. 옛날에는 스포츠를 놀이로 했지만 지금은 커다란 기업이 되고 있다. 그래서 엄청난 거금을 팔면서 선수들을 사들인다. 년봉을 얼마나 받느냐를 놓고 그 사람의 몸값을 따지게 된다. 스포츠만이 아닌 전문경영인의 경우도 그러하다. 사업수완의 능력에 따라 고임금을 받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 또한 월신을 얼마나 받느냐를 두고 그 사람의 몸값을 따지는 경우다. 이런 때의 사람값은 능력을 기준으로 삼지 그 사람을 인품으로 따지지 않는다. 흔히 재주가 앞서면 덕이 모자란다고 한다. 재주만 믿고 저만 잘났다는 착각에 사로잡힌 사람은 남을 얕보고 존중할 줄을 잘 모른다. 모든 것을 지식의 량으로 따지려고 하고 사람들과의 사이에 있어야 할 도리를 저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모든것을 리용의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덕한 사람은 주변을 살펴서 무엇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가에 신경을 쓴다. 덕은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며 덮어 주고 약한 사람을 감싸 주면서 힘을 붇돋아 서로 함께 살맛을 나누게 한다. 덕이란 사람을 리용하지 않고 돕는다. 선을 위하여 리롭게 하는것이 덕이므로 덕은 사람을 외롭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왕왕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재주만 앞세워 세상을 얕잡아 보려고 한다. 이런 성품 탓으로 사람들은 서로 팽팽히 삶의 줄을 당기면서 제 몫만 챙기려고 한다. 공자는 덕행을 삶의 근본으로 삼아햐 한다며 나라를 잘되게 하려고 했지만 군왕아 공자의 뜻을 들어주지 않으니 56세에 자기의 로나 라를 떠나 진나라, 제나라 등 나라를 돌아다니며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왕도를 설파했다. 그러나 힘으로 세상을 얻은 군왕들이 공자의 말에 아무도 귀를 기울여 주지 않기에 수많은 고생만 하고 69세에 다시 로나라에 돌아왔다. 공자는 그간 고생만 시키고 아무런 권세도 얻지못한 제자들에게 미안을 표하며 제자들의 됨됨이를 이런 순서로 밝혔다. 덕행으로는 안연(顔淵)이 뛰여 났고 언변은 자공(子貢)이 뛰여났다. 큰일을 처리하는 데는 염유(苒有)였고 박학하기로는 자유(子游)가 였다. 공자는 이렇게 서로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간들에게 덕을 근본으로 삼았다. 바로 습근평주석이 당 19차당대표대회에서 제출한 당이 간부를 관리하는 6개 원칙에서 덕재를 겸비하되 덕행을 우선하는 원칙을 첫째라고 하듯이. 오기활
258    야합, 담합, 그리고 총명이란? 댓글:  조회:222  추천:0  2018-05-18
 옳은 것이면 감출것이 없고 선한 것이면 숨길것이 없다.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범하고 악한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면 죄는 이미 씨앗되여 뿌리내려 터를 잡는다.  법을 어기는 것만이 죄가 아니다. 도둑질, 강간, 살인이 큰 죄지만 부정부패를 일삼는 탐관오리도 죄를 범하는 원흉이다. 특히 높은 위치나 큰 자리에 있는 특권자들이 죄를 범하면 다른 죄보다도 온 나라가 큰 화를 당한다 . 특권자는 특자만큼 눈귀가 밝아야 한다 . 높은 위치에 있는 자가 곁눈질을 하면 간사한 무리들이 그의 눈길을 맞추게 되고 큰 자리에 있는 자가 귀가 얇으면 그 귀에다 소곤거리며 리득을 챙기려는 무리들이 모이게 된다. "력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는 력사적으로 부덕한 다스리는 자들이 숨길것이 많아서 밤이 돼야 서로 귀를 맞대고 눈길을 훔치면서 서로간 수를 부려서 리권(利權)을 챙기려고 끼리들이 은밀히 야합(夜合)하여 입을 마추는 담합(談合)을 비꼬는 말이라 하겠다.   어느 친구의 말이다. " X X 텔레비를 보면 국회위원들이 손찌검을 하면서 의(義)는 양보 할지언정 이(利)는 절대로 양보를 안(못)하는 것 같다." 당순(黨順), 당리(黨利)를 살펴봐도 먼저 내당을, 다음에 네당을, 그 다음에야 “우리 당을 챙기는것 같았다. 공동한 리익을 위하여 큰면에서 공동한것을 찾고 작은 일은 보류(救大同存小異)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영예와 치욕을 함께 해야 하는데 ...   실상의 여하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저 듣고 지날 얘기는 아닌것 같다.  공자는 "총명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는 제자(자장)의 물음에 " 물처럼 스며드는 말을 멀리하고 피부에 느껴질 만큼 솔깃한 말을 멀리하면 총명해진다"고 했다. 공자의 이 말은 총명한 인간이 되려면 야합하거나 담합을 하지 말고 측근의 말을 조심하라는 경고며 충고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 나름의 측근이 있게 마련이다. 은근한 측근의 말을 믿고 놀면 멀리 보는 눈이 멀어지고 듣는 귀가 막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을 포함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어리석음을 범하고 그 뒤탈은 다른 사람들이 앓게 된다.   한국의 모 대학교 윤교수의 말이다 . "력대의 대통령들을 보면 번번히 뒤끝이 좋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되는가? 총명하지 못한 탓으로 그렇게 되였다. 야합이나 담합을 무서워했더라면 높은 자리에서 내려온 다음에 원성을 사지 않았을 터이다." 그렇다면 총명이란 무엇인가? 총명은 죄라는 병을 앓기 전에 미루 예방을 할줄 아는 밝은 귀와 맑은 눈이라 하겠다.. 오기활
257    어머니의 마음 댓글:  조회:220  추천:0  2018-05-13
“어머니절”에 “어머니의 마음”을 읽어본다.   어느 동네에 방랑벽(放浪癖)이 심해서 몇 해를 걸러서 잠간씩 집에 들리는 아들을 둔 로모가 있었다. 방랑벽아들이 오랫만에 돌아 오면 다른 식솔들은 모두 방랑벽을 나무리면서 좀씩이라도 효도를 하는 형국이라도 해보라며 성화를 부렸다. 그러나 로모는 오랜만에 얼굴을 보게 된 아들을 속상하게 하지 말라며 손발을 만져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밥은 제때에 먹을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방랑벽이 병이였던 아들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로모는 옷깃으로 아들의 눈물을 거두어 주면서 사내가 이런 일로 울것까지 있느냐며 따스한 사랑의 두손으로 아들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 로모는 네가 없는 동안에 보고 싶었다는 말을 하지 않고 다만 네가 객사만 하지 않고 건강히 살아 있기만 빌었다는 말만 하였다. 로모의 말을 듣고 방랑벽 자식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이에 로모는 풀기 없이 축 처진 자식을 어느 에미가 좋아할 것이냐면서 고개를 들라고 헸다. 그리고는 수척해진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 그간에 제때에 밥을 먹을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대답을 못했다. 로모는 다시 어디 아픈데는 없느냐고 물었다. 아들이 없다고 말하자 로모는 긴 한숨을 내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ㅡ 네가 나가 있어도 너는 항상 내 옆에 있었다. 다만 내 눈 앞에 없는 네 몸만 성하기만을 바랬다. 오랫만에 만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로모의 마음은 아들 생각이 간절했음을 일러준다. 생각이 진정해 진실하다면 어찌 멀고 가까움이 따로 있겠는가. 아들만을 생각하는 어머님의 간절한 마음속에는 항상 멀고 가까움이 따로 없었다. 오기활/ 2018년 5월 13일
256    인재양성에 도움이 될 인터뷰 둘 댓글:  조회:209  추천:0  2018-05-10
"유태인이 없었다면 현대 문명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어느 학자의 말이다. 이 말속에 세계를 만든 것은 유태인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히 담겼다. 세계인구의 0,25%에 불과한 유태인이 력대 노벨상 개인수상자의 22%를 점했고 미국 억만장자의 40%가 유태인이 점한다니 유민족이 정말 대단하다. 미국 최대의 시사주간지 “US뉴스엔드 월드리포트”는 천재들의 비밀 ㅡ “20세기를 조각한 3명의 위인”이라는 특별호 표지를 유태인인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맑스로 장식했다. 최근 필자는 “아이들을 ‘한국식 모범생’으로 키우고 싶지 않다”는 한국일보 론설원 고재학씨가 “탈무드”의 저자 마빈 토케이어, 주한 이스라엘 대사 투비아 이스라엘리과의 서면 인터뷰를 읽고 나 혼자만이 아닌, 더 많은 독자들과 공감을 하고저 두편인터뷰를 두번 나누어 올린다. 1, 질문과 토론이 핵심이다 마빈 토키이어(Marvin Tokayer.74세)는 일본과 미국 뉴욕의 유태인 회당에서 랍비로 활동했고 2년간 한국에서 미공군부대 장교로 지냈다. 그는 일반인들로 하여금 “탈무드”를 쉽고 재밋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탈무드의 지혜”. “탈무드의 처세술”, “탈무드의 웃음”등 20여편의 “탈무드”자매편을 출간하였다. 문: 세계인구의 0.25%밖에 안되는 유태인이 노벨상 수상자의 3분의 1을 차지할만큼 뛰여난 인물을 배출한 원인은? 답: “토라”와 “탈무드”에 바탕을 둔 신앙교육덕분이다. 유태인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문화가 있는데 이것이 훌륭한 인재를 배출한 비결이다. 부모의 역할은 바로 이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데 있다 . 문: “탈무드를 더 자세히 소개 한다면? 답: 누구나 인류의 가장 현명한 지혜를 얻고 싶을 때 현인들의 말씀을 찾게 된다. 현인들의 말씀에는 가족, 평화, 전쟁, 죽음, 친구, 종교, 행복, 유머 등 인생과 관련된 폭넓은 지혜가 담겨 있다. “탈무드”는 5천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정리된 현인들의 대화가 담겨 있는 정보와 지혜의 보고이다…. 유태인의 부모들은 아이가 세 살 때부터 “탈무드”를 가르친다. 한마디로 ”탈무드”는 대표자녀교육서로 유태인의 삶 자체다. 문: 5천년 전의 규범과 지혜가 어떻게 현재까지 관통할까요? 답: “탈무드”는 완결된 책이 아닌 계속 현재진행형의 책이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첫 장과 마지막 쪽이 공란으로 비워져 있다. 첫 장이 공란인 리유는 “우리는 항상 중간(과정)에 있으며 탈무드공부는 따로 시작이 없다”는 의미로 누구나 자신의 현재 삶이 놓여 있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하여 “탈무드”를 리해하고 배울수 있다는 것이고 마지막 쪽이 비워진 것은 “당신의 삶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으로 계속 “탈무드”를 채워나가라”는 의미다. 아무리 뛰여난 지혜라 해도 매일 새롭게 살아가는 삶으로 새롭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문: “탈무드”를 활용한 교육방법은? 답: “탈무드식 토론”이다. 아버지는 아직 학교에 다니기 전의 자녀와 “탈무드”를 펴놓고 서로간 번갈아 가며 관련 내용을 읽고 론리적 공격과 방어를 반복한다. 지고 이기는 건 없다. 상대방의 론리를 반박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치밀하고 빈틈없는 방어 론리를 개발하는 동안 지혜와 사고력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문: 부모가 자녀교육에서 제일 강조하는 덕목은? 답: 질문이다. 자녀한테서 답을 얻으려면 아버지가 자녀 스스로 생각해야만 하는 질문으로 자녀들의 지능을 계발시킨다. 또 아이들도 질문을 자주 하도록 격려한다.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니?”라고 묻지 않고 “오늘 선생님께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질문하는것을 두려워 하지 않기 때문에 지식을 얻는 과정을 재미로 느낀다. 수업을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금한 걸 묻고 토론하는게 더 중요하다. 유태인 학교에서 좋은 질문을 하는 학생이 그 학급의 리더로 된다. 평생동안 이런 질문교육이 이뤄지면 유태인의 탁월한 교육이 완성됐다고 본다. 한국의 부모들도 자녀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라”고 독려하였으면 좋겠다. 문: 유태인의 학교 교육방식은? 답: “탈무드식 토론”이다. 열여덟살인 나의 손자의 례로 손자는 매일 “탈무드”를 공부한다. 일반적으로 오전에 “탈무드”를 공부하고 오후에 일반 교과 과목을 배운다. 이때 교사가 일방적으로 강의하지 않고 협력수업 방식을 활용한다. 교사가 주제를 주면 두세 명의 학생들이 토론을 한다. 강의가 끝나면 아이들은 복습을 하면서 자신들의 생각한것과 선생님의 가르침에 어떤 차아가 있는가에 대해 또 다시 토론한다 . 문: 유태인들은 맞벌이 부부가 많은데 육아 분담은? 답: 육아는 부모 공동의 책임이다. 유태인 부모는 자녀와의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 안식일인 토요일은 완전히 자녀교육에 투자한다. 특히 유태인 아버지는 자녀들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선생이다. 아이에게 숙제를 하라고 시켜놓고는 텔레비를 보는 유태인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자신도 함께 공부를 한다 . 문: 한국의 자녀교육을 말한다면? 답: 한국과 이스라엘은 공통점이 많다. 둘 다 단일 민족으로 고유문화를 지녔고 오랜 세원 침략에 시달렸다…. 그래서 그런 악조건을 인적자원으로 극복하기 위해 높은 교육열을 보인다. 그 결과 두 나라가 모두 당당히 강대국의 반렬에 올랐다. 그런데 내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한국이 선조들의 지혜를 점점 잊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lT강국으로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물질이 풍요로워진 대신 령혼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한국사람들은 조상이 물려준 훌륭한 정신적 유산을 잃고 있지 않는가를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된다. 오기활
255    인재양성에 도움이 될 인터뷰 둘 댓글:  조회:173  추천:0  2018-05-10
2, 책이 물고기라면 토론은 낚시법 2008년 8월에 한국에 온 이스라엘 대사 투비아 이스라엘리(Tuvialsraeli.55세) 는 히브리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직업외교관이다. 그는 유태인의 특성을 한마디로 “교육에 대한 열정”이라고 설명했다 . 문: 이스라엘은 적국(敵國)에 둘러싸인 협소한 공간에서 생존하면서 정치적인 민주와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는데 그 비결은? 답: 한국과 이스라엘의 현대사가 매우 류사하다. 두 나라가 우여곡절 끝에 1948년에 건국을 했지만 곧바로 전쟁이 일어나면서 많은 희생을 치렀다. 이후 한국은 “새마을 운동”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일궜고 이스라엘은 키부츠(집단생활공동체)를 통해 경제성장의 토대를 닦았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특징이라면 대학설립을 국가 설립만큼 중요하게 추진한 점이다. 건국되기 30년 전에 이미 세계적인 대학부터 설립했다. 1918년 인구가 10만 명도 안 되고 도로 등 기본적 인프라도 없던 예루살렘에 히브리 대학을 설립했다. 인재를 키우는 교육기관을 먼저 만들어야 산업을 발전시키고 국가도 세울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였다. 이 대학 상임리사회에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바이츠만(초대 대통령)등이 참여했다. 뒤이어… 당시 인구 200만 명의 작은 나라에(현재는 710만 명)세계적인 대학을 4개나 갖게 되였다. 이러한 교육열정이 소국을 세계적인 하이테크(최첨단의 앞선 기술)국가로 성장시킨 비결이다. 문: 거의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류랑한 유태민족이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지킬수 있은것은 “탈무드”의 힘이라는데 지금의 유태인 사회에서 “탈무드”를 교육에 활용하는지? 답: 유태이라면 누구나 “토라”와 “탈무드”를 공부한다… 토론을 통해 특정한 현상에 계속적인 의문과 질문을 제기하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더 좋은 해결책을 끊임없이 찾고 탐구하는 유태식교육을 “탈무드식 토론교육”이라고 한다. “탈무드”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비중이 크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졸업 후 랍비의 자격을 얻게 되는 예사바와 같은 종교학교에서는 핵심과목으로 가르치고 종교적 색채가 없는 일반 학교에서는 일반 과목 중의 하나로 다룬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탈무드”는 유태인들의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가려주는 설명서다 . 문: 유태인 가정은 맞벌이 부부가 많은데 육아에서 엄마와 아빠의 역할 비중은? 답: 육아는 부모가 공동책임을 진다. 맞벌이가 대부분인 젊은 부부들을 위해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뒷받침한다. 남편이 출산한 아내를 보조하기 위해 3개월간의 휴가를 낼수 있고 영, 육아보육시설을 수준 높게 유지하고 있으며 엄마들이 양육과 직장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탄력시간근무제도를 운영한다. 아빠들도 엄마만큼 교육에 관한 중요한 결정과 상담 과정에 빠짐없이 참여 하며 아이들과 재밋고 유익한 시간을 보낸다 . 문: 요즘 많은 전문가들이 조기교육을 강조하고 있는데 유태인의 조기교육은? 답: 조기교육은 지구촌의 공동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유태교육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토라”와 “탈무드”를 읽게 하고 읽은 내용에 대해 토론하고 그 과정에서 정리된 생각을 글로 표현하니까 오래전부터 조기교육을 실시해 온 셈이다 . 문: 유태인의 교육에서 제일 강조하는 덕목의 세가지는? 답: 첫째는 독서다.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둘째는 모든 것에 의심을 품고 기존 권위에 도전하며 끊임없이 질문하는 자세다. 질문은 창의적인 혁신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셋째는 독립심과 자기희생,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다. 문: 한국인들의 자녀교육에 조언을 한다면? 답: 한국의 경제적 성공에 교육제도가 핵심역할을 했다는 것은 의심할바 없다. 다만 한가지 개선을 바란다면 유태인의 전통 교육법이 강조하는 “질문교육”이 강화되였으면 한다.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항상 더 좋은 답변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은교육의 핵심요소다. 책이 물고기라면 질문과 토론은 낚시법이다 다음으로 지적할 점은 독서이다. 요즘 한국인의 독서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위험한 일이다. 최근 20년간 우리가 새로운 형태의 문맹(文盲)에 놓여 있음을 발견할수 있다. 젊은 세대가 력사와 문학, 예술, 등을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시크템이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 우리가 3D, 4D 등 우수한 하이네크 기숙ㄹ을 갖춘다고 한들 그 안에 담을 콘텐츠가 훌륭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기활
254    인재를 구하는 지혜 댓글:  조회:281  추천:0  2018-04-28
연변주인재봉사중심과 연길시인재중심의 공동 주최로 “2018년 연변주 및 연길시 겨울방학 귀향 고등학교 졸업생 전문공익초빙회”가 거행되였다는 기사를 읽고 글을 올린다. 중국 전국시대의 일이다. 연나라가 제나라에 패하여 제나라의 지배를 받던 중 연나라 소왕(昭王)이 즉위하자 실지회복(失地回復)과 국위 선양을 위해서 수선 인재를 구하기에 주력하였다. 어느 날 소왕이 재상 곽외(郭隗)에게 어떻게 하면 국권회복에 능한 인재를 구할수 있는가고 물었다. 이에 곽외가 “신은 일찍이 이런 얘기를 들은바 있습니다만…”며 주저하니 소왕이 “그게 무슨 말인데?”하며 문촉하자 곽위가 답했다. 옛날 어느 군왕이 천금을 내놓으면서 천리마를 구하려고 하였는데 3년이 되여도 구하지 못했다. 그런데 하루는 궁중에서 허드렛 일을 하는 궁졸이 자기가 천리마를 구하겠노라고 자진해 나섰다. 궁졸이 천리마를 구하려고 떠나 3개월 쯤 되여서 천리마가 있다는 어느 곳을 갔더니 안타깝게도 일전에 천리마가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궁졸은 무슨 생각으로 5백금을 주고 천리마의 뼈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이에 소왕이 노하면서 “내가 살아있는 천리마를 사오라고 했지 5백금이나 주고 죽은 말의 뼈따귀를 사오라고 했느냐?” 며 야단을 쳤다. 소왕의 진노에 궁졸이 태연하게 말하였다. “잠시 소신의 말씀을 들어 주옵소서. 천리마라면 죽은 뼈도 5백금이나 주고 사는데 산 천리마라면 얼마나 많은 돈을 줄것이냐는 소문만 퍼지면 됩니다. 그러면 멀지 않은 날에 반드시 원하는 천리마를 구할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말이 옳았다. 그일이 있은지 1년도 못되여 천리마를 가진 사람이 셋이나 나타났다. “따라서 대왕님께서 지금보다 더 훌륭한 인재를 구하시려면 우선 저를 스승(師)으로 세워 보심이 좋을 듯 합니다. 그러면 저같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그토록 대우를 하니 더 훌륭한 사람은 더욱 후한 대우를 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입니다.” 소왕은 그의 말이 그럴만하다고 생각하고 곽외에게 황금대(黃金臺)라는 궁전을 세워주고 사부(師父)의 대우를 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정말로 천하의 인재들이 모여 들었다. 하여 소왕은 바라고 바라던 국토를 회복하게 되였다. 물론 물질자극이 인재문제를 해결한다는 정답은 아니지만 우리들 스스로가 지난날 인재를 구하는 방법이 과연 어떠했는가를 비춰볼 거울이라 하겠다. “먹은 소가 똥을 눈다”는 속담이 생각힌다 . 오기활
253    가슴 아픈 추억 댓글:  조회:397  추천:0  2018-04-18
                                          “하늘나라 백모님께 지금까지도 후회됩니다!” 요즘 “길림신문”서 펼지는 응모 작품 “아름다운 추억”이 독자들의 눈맛을 챙긴다. 그런데 필자는 “아름다운 추억”을 읽고 나면 번마다 타들과는 달리 “가슴 아픈 추억”이 떠 오르며 종종 밤잠을 설치군 한다. “저 도깝들을 맡깁니다! ” 필자는 1947년 음력 5월 9일 왕청현 석현진 달라자(현 도문시)에서 태여났다. 당년에 아버지가 병으로 하여 농사일을 못하다 보니 30대의  ㅇㅓㅁㅓ니가 혼자몸으로 네자식을 살피며 농사일을 전담하다보니 집생활이 궁핍하기로 말이 아니였단다. 오죽하면 누님들이 여름에 어머니가 신을 신고 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지금까지 외우겠는가.. 그렇게 세대주로 지내던 어머니가 1948년에 동네분들의 도움으로 마을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가을 탈곡을 끝내고 급병(촉한?)에 걸려 일주일을 지탱하다가 12살짜리 이하 3녀 1남을 남겨 놓고32살 나이에 하늘나라에 갔다. 림종전에 어머니는 혀가 움직이지 않아서 겨우 이 세 마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으셨단다. ㅡ 물남(곡수)서 시아버지가 이 둘째 며느리를 빨리 오라고 부른다(그때 시아버지는 언녕 사망 했다) ㅡ 형님(필자의 백모)에게 저 도깝들을 마끼꾸마, 얼마나 고생 하겠습두… ㅡ 기활이를 한번 더 보고 가겠습꾸마!(그날 동네 청년의 참군 환송으로 큰 누님이 필자를 데리고 갔음) 세상에 둘도 없는 백모님 그런데 업친데 덮친격으로 어머니가 사망한후 8년 만에 아버지까지 사고로 세상을 떠날 줄이야! 둘째누이까지 결혼하자 우리 3남매는(동부이모인 남동생까지)이 큰집에 얹혀살았는데 그때 큰집식구는 우리까지12명이 였다. 우리 나라가 제일 곤난한 시기였던1960년에 나는 수남소학교를 졸업하고 석현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때는 돈 때문에 학교 숙사에 들어가지 못 하고 매일 왕복 50리를 걸어서 통학하였다. 그때 몇 원짜리 사발시계마저 없다 보니 매일 백모님(최어복, 1911 ㅡ 1987)이 이른 새벽에 뜨는 샛별과 수탉울음의 홰수를 시계와 자명종으로 삼고 새벽조반을 해놓고 필자를 깨웠다. 게다가60년대 초 나라가 3년 재난으로 량식이 없어 백모님은 매일 삶은 호박과 풀뿌리 등 대식품(代食品)으로 점심밥을 마련할려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1969년 봄 백모님은 생산대의 양돈장에서 몇년간 돼지사양원으로 설명절도 없이 고생는 필자한테 몸 보신을 해 주느라 40근짜리 황둥개를 잡아 개엿을 만들어 일곱식구중 필자만을 따로 대접하였의니 말이다. 이 밖에도 백보님은 필자 부모들의 제사도 잊지 않고 30년을 명심하여 지내다가 1975년에 필자가 결혼하여 분가하게 되자 “너의 아버지의 환갑제사부터 너에게 시름을 놓고 맡긴다”고 하였다. 1980년대 말부터 백모님은 치매로 집식구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형편에도 필자만은 잊지 않고 기억하였다 1987년 9월 어느 날, 필자는 백모님을 찾아 뵙고 나서 떠나려는데 백모님이 겨우겨우 몸을 지탱하며 일어서더니 밖에까지 따라 나와 채석돌에 돼지사료로 쌓여 있는 늙은 오이무지에서 좋아 보이는 오이를 골라 손으로 싹싹 비비더니 “기활아 오이를 더 먹고 가라”는 마감인사로 근로하고 자상한 인생을 마감하였다. 백모님의 정치흉금 백모님은 낫을 앞에 놓고 “ㄱ” 자도 모르는 일자무식이다. 무식하기로 지난 60년대에 처음 전등불을 불어서 죽이느라 애썼다니 말이다. 그런데 한번도 생산대 회의에 참가하지도 않는 백모님의 정치적 흉금이 집식구들을 놀라게 하였다. 문화혁명 때(1968년 8월) 백부님이 “조선특무”라는 억울한 루명을 쓰고 하루저녁 투쟁대회에서 타살되였다. 망나니 살인배들은 흉악하기로 이미 입관한 백부님의 시체를 “조선특무에게 관에 관채를 못쓴다”며 시체를 꺼내 가마니에 싸서 묻도록 강행했다. 그때 백모님은 억울해도 소리내여 목놓아 울수도 없었고 마음속에 한만을 깊이 품었다. 그런데 백부님이 타살된 후 얼마 안 되여 중국에서 “윁남전선지원”활동을 벌렸는데 어느 날 저녁에 백모님이 집식구들을 모아 놓고 윁남전선에 지원하라며 량표를 30근이나 내놓았다. 그때는 전 국민들이 나라에서 정한 ”3정량(3定量)” 표준으로 량식을 공급받는 때라 량표는 곧 쌀이였다. 지금까지 생각해도 글쎄 집에 신문방송도 없었고 생산대 회의에 한번 참가하지 않는 문맹인 백모님이 어떻게 알고 집식구들도 모르게 한량 두량 모았던 그 많은 량표를 윁남전선을 지원하라며 주동적으로 내놓았다니 실로 모를 일이다 이 밖에도 1975년에 필자가 연변농학원을 졸업하고 돌아와 백모님께 농학원에서 입당을 했다니 “네 입당이 대학졸업장보다 더 반갑다”며 그렇게도 기뻐할 줄이야! 실로 억울하게 남편을 읽은 백모님의 정치흉금이 바다보다 넒었다. 하늘나라 백모님게 지금까지도 후회 됩니다! 1976년 봄이다. 도문시에서 시민들의 음료수문제를 해결하고저 봉오동저수지를 건설을 결정짓고 봉오동대대(촌)를 파가이주를 하게 되였다. 그때 필자는 홍광향 축목수의소 소장직에 있으며 홍광향정부의 파견으로 봉오동 파가이주민 배치사업을 책임지게 되였다. 그때 이주민배치사업을 마무리를 하고 나니 대대부(촌부)에 걸려있던 벽시계가 임자가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 시계를 단위에 걸려고 갖고 오다가 아무튼 무슨 일로 하여 달라자 큰집에 맡겨놓고 이 후에 가져간다고 하였다. 그래서 큰집에서 처음 “땡 땡” 울리며 시간을 알리는 벽시계를 걸게 되였다. 그후 몇 달이 지난 후에 필자는 그 벽시계가 생각되여 가져 왔는데 그날 백모님이 너무나도 아쉬워서였던지 “그걸 가져가니?”고 물었는데 필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예”하고 대답만을 남겼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백모님이 그 벽시계를 큰 재산으로 그렇게 아끼였겠는데 가져간다고 하니 얼마나 아쉬웠으면 “그걸 가져 가는가?”고 물었겠는가!. 필자는 그 벽시계만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하늘나라에 계시는 백모님이 떠오르며 못할 짓을 했다는 죄책감으로 후회되고 죄송하기로 형언할수가 없다. 속담에 “사랑은 내리 사랑이지 올리 사랑은 없다”고 했는데 이는 정녕 필자를 두고 하는 말인 듯 하다. 오늘 필자가 남들의 “아름다운 추억” 의 상대로 “가슴아픈 추억”을 함은 늦게나마 하늘나라에 계시는 백모님게 죄송한 마음을 표함과 함께 후세들에게 문자로 전하기 위함이다. 후세들에[게 당부한다. “너희들이 남한테 준 것은 다 잊고 남에게서 가진 것만을 기억하라” 백모님의 조카사랑은 천, 만, 억…. 이라고 수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백모님의 명목을 빌고 또 빕니다! 조카 오기활 올림. 2017년 12월 26일 , 일본에서
252    기자 그리고 꽃 댓글:  조회:278  추천:0  2018-04-18
지난 8일은 기자절이다. 아침에 출근하니 연길시당위에서 보내온 생화묶음이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기분이 좋았다. 16년전 도문시 김종수시장이 년말총화대회에서 “오기활기자를 표창할데 대한 도문시정부 문건”을 읽고나서 기공(記功)표창을 하던 날만큼 기쁘고 감사했다. 나는 언저부턴가 기자와 꽃을 대비하며 련상한다. 지난 60년대이다. 그때 우리 마을에 서명준(연변인민방송국)이라는 기자가 사회주의공작대로 왔는데 그는 우리에게 많은 세상사를 흥미진진하게 얘기해 준데서 너무나 인상이 깊었다. 나는 정말 기자기 부러웠다. 그런데 좋은 꿈을 꾼 덕분이라 할가? 서기자를 만나서 꼭 20년 만에 나는 승진의 기회를 포기하고 “연변일보”기자로 입선되였다. 기자는 무엇인가? 기자는 사회의 제1목격자, 공익과 민의를 뒤받침한 “백성의 고발자”, 미움을 사랑으로 이끄는 조애사, “신”의 뜻과 인간 “기원”을 서로 전달해주는 “천사”이다. 바로 내가 기자였기때문에 지난 80년대에 도문양로단 고만길의 영응사적을 써내 전 성적으로 “뢰봉학습 우수로동자 ㅡ 고만길”을 따라배우는 열조를 일으킬수 있었고 내가 기자였기때문에 거금을 주고 살수 없다는 미국고추종자(황관)를 산동성에서 기증받아 도문시 향양촌 남새기술원(리명달)한테 보내줘 그의 원을 풀어주었다. 또 내가 기자였기때문에 여라가지 비리를 다스릴수 있었고 기자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기를 당한 룡정 녀성을 다시 출국시킬수 있었다. 또 기자였기 때문에 연변의 “이웃절”을 발기하였다. 기자사업은 나로 하여금 사업 먼저 인간이 되도록 하였다. “참다운 언론인이 되자, 금전과 권력의 꼭두각시가 되지 말자. 독자들의 가슴속에 메아리를 치는 글을 쓰며 꿈틀거리는 사건현장에서 십자가의 참된 “천사”로 되겠다. 나는 바다물에서도 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기자사업에서 줄곧 지켜온 맹세였다. 나는 기자를 꽃과 비긴다. 옛날에 하늘의 “신”이 천사를 불러 “지상에서 3가지 아름다음을 보고 돌아오라:고 명했다. 천사는 천상과 손색 없는 아름다운 꽃, 어린아아의 웃음, 어머니의 사랑을 지상의 3가지 아름다움으로 선택하였다. 꽃은 지상과 천상의 “미의 상징”이다. 꽃은 웃어도 소리가 없다. 곷은 묵묵히 향기를 뿜는다. 꽃은 철을 어길줄 모르며 음지와 양지를 탓할줄 모른다. 눈속에서도 탈없이 약속대로 핀다. 아름다운 련꽃은 흙탕에서 피지만 오염을 모른다. 사람들이 고통스럽고 삭막하고 어두울 때 곷을 보면 저도 몰래 부드러운 위로를 받는다. 사색, 사랑, 희망, 용기를 주는 꽃은 영원한 인생의 오아시스이다. 필자는 꽃을 가꾸는 아름다운 마음과 흙을 만지는 소박하고 부지런한 손이 되여 언제 어디서나 오염을 모르는 “련꽃기자”가 되려는 다짐으로 오늘도 이 밤을 설친다. ( “길림신문” 2006.11.21.)
251    [오기활] “이는 제 탓입니다” 댓글:  조회:307  추천:0  2018-04-13
우리말에 ‘잘되면 내 탓이요, 못되면 조상 탓이다’는 말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잘되고 좋은 일은 자기가 챙기려 하고 못되고 귀찮은 일은 남에게 미는 것이 상례인상 싶다. 모 우정국 J국장의 이야기다. J는 26살에 우정국에 취직하여 정년퇴직을 하기까지 근무년한이 30년이 넘는다. 엄격한 집안에서 자란 J는 어릴 때부터 자기가 한 일을 끝까지 책임지는 강직한 성품을 지니였다. J가 중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이 공놀이를 하다가 그중 한 친구가 그만 교실 유리창을 깼다. 그런데 그 친구네 집생활이 가난하고 부모들도 ‘제노릇’을 못하다 보니 남들의 축에서 빠지는 처지였다. 친구의 이런 가정형편을 잘 아는 J는 그 친구가 유리값을 물 형편이 못될 것 같아서 주동적으로 선생님을 찾아가 자기가 유리를 깼노라며 그 친구를 대신해 유리값을 내기도 하였다. 그가 우정국에 취직하여 국장으로 있을 때 한 부하직원이 도박에 빠져 가산을 축내자 가정불화가 잦아졌다. 개별적으로 여러번이나 그한테 충고주고 타일렀으나 그는 국장의 교육과 권고를 마이동풍으로 흘려듣다가 결국 도박으로 진 빚을 갚으려고 공금을 빼돌린 착오를 저지르고 해당 처분을 받게 되였다. 이에 J국장은 부하가 착오를 진 것은 자기가 국장책임을 바로하지 못했다며 사직서를 쓰고 스스로 국장직에서 물러났다. 주변을 보면 사업단위나 회사의 임직원들이 자기가 맡은 일을 하다가 알게 모르게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가 원망이 없이 그 잘못이 자기 때문임을 인정하는지, 그리고 그 당사자의 상관이 부하의 잘못을 자기의 직책범위내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잘못을 감히 자기의 책임이라고 인정하느냐 안하느냐에 있다. 이런 실례가 있다. 지난 세기 80년대 모 향의 ‘5.7’(하향지식청년) 책임간부 S가 농전비(農傳非) 문제로 상급 부문으로부터 행정처분을 받게 되였다. 그런데 실제 조작과정을 조사하니 농촌호구를 도시호구로 천이시킨 사람들의 대부분이 C향장의 지시로 한 것이다. 그래서 S가 C를 찾아가서 과정을 말하며 상급 부문에 설명해달라며 ‘도움’을 청했더니 C어른이 푸르뎅뎅해서 “그 때 내가 당신이 할만하면 하라고 했지 정책을 위반하면서 억지로 하라고 했소?”라며 성을 내는 통에 별수없이 S가 고스란히 처분을 받고 직무에서 물러나야 했다. 상관이라면 자기의 부하가 알게 모르게 일단 잘못을 저질렀다면 상관으로서 그 부하를 믿고 “이는 내 탓입니다”며 그 잘못의 책임을 자기의 탓으로 분담하는 상관이 부하를 아낄 줄 아는 존경받고 믿을 만한 상관이라 하겠다. “이는 내 탓입니다”는 처세술을 갖춘 상관은 직업도덕을 갖춘 준비된 상관이며 명지한 상관이라 하겠다. / 길림신문 기고인 오기활
250    리상은 전진의 교량 인생의 희망 댓글:  조회:241  추천:0  2018-04-10
 삶은 하루하루가 창조의 련속으로 오늘이 결코 어제의 재연일 수 없다. 창조엔 새로운 삶을 향해 전진할수 있는 튼튼한 교량이 준비되여야 한다. 리상은 새로운 삶을 향해 전진하는 교량이고 창조의 주제며 인생의 희망이다. 리상은 높을수록 좋다. 그러나 리상은 손이 닿을수 있는 한계가 되여야지 하늘 높이 떠오르는 고무풍선과 같아서는 안된다. 리상이 현실을 도외시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리상은 현실을 원점으로 한 하나의 가능성으로 땅 속에 뿌리를 박고 하늘 높이 뻗어가며 지구의 인사를 받으면서 분사한 인공위성에 담긴 인류의 꿈이다. 리상의 실현은 그 리상을 쫓아 끊임없이 달리는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현실을 긍정하되 거기에 머물지 말고 현실의 토대 위에서 래일을 내다보며 달려야 한다. 물은 만인의 생명수이다. 허나 목이 타는 갈증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물의 시원한 참맛을 알지 못한다. 인생을 진지하게 회의하며 인생의 길을 목마르게 탐구하지 않는 자에게는 인생의 진리란 무미건조할 뿐이다. 빛은 있는데 보지 못하고 길이 있는데 찾지 못하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면 그 인생은 영원히 허무한 가시밭길일 수밖에 없다. 제 19차 전국당대표대회에서 습근평동지는 “리상이 있고 재능이 있으며 책임을 떠메는 청년들이 있어야 나라에 앞날이 있고 민족에 희망이 있다.” “청년이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청년이 강하면 나라도 강해진다. 광범한 청년들은 리상과 신념을 확고히 다지고 원대한 뜻을 품고 성실하게 일하며 과감히 시대의 선행자로 되여 중국꿈을 실현하기 위한 생동한 실천속에서 청춘의 나래를 펼치고 인생의 아름다운 장을 엮어나가야 한다.” 고 명시 하였다 이는 새시대 청년들에게 대한 당과 인민의 기탁이고 믿음이다. 이 기탁과 믿음이 모든 청년들에게 분투의 동력이 된다. 중국의 세계적 대문호인 림어당(林語堂)이 꼭 40년 전 6월 19일에 한국 서울 시민회관에서 행한 강연때 한국 청년들에게 부탁한 말이다. “여러분은 지금 비틀즈(영국가수)의 흉내를 내고 로큰롤(50년대 미국서 세계로 퍼진 대중음악)이나 고고춤을 추며 방종한 생활을 할 여유가 없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부지런히 뛰고 노력한 덕분으로 일국의 재상으로 된 것처럼 (례로 말함) 여러분은 커다란 꿈을 가지고 눈앞에 가로 놓인 많은 일들을 극복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눈도 팔지 말고 오직 전진, 전진 또 전진해야 합니다!” 오기활
249    뢰봉은 선생이다 댓글:  조회:239  추천:0  2018-04-10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 둘에서 하나를 빼면 하나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고 “하나를 알면 둘을 알라”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 중 누구가 선생인가? 공자는 “선악으로 분별되는 인생과 삶의 길을 인도하는 사람을 선생이다”며 “새 사람이 함께 간다면 그중에는 반드시 내 선생이 될만한 분이 있게 마련이다”고 하였다. 선생은 무엇이 맞고 무엇은 틀린다를 가르치는 일보다 무엇은 옳고 무엇은 그르다를 가르쳐야 한다. 선생은 사람이 되는 길로 인도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그 길로 안내하고 그 길을 걷도록 바란다. 선생은 아는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것을 꼭 실천하기를 바란다. 지난세기 60년대에 모택동주석은 전국인민들에게 “뢰봉을 따라 배우라”고 호소하였다. 뢰봉은 립장이 견정하고 애증이 분명하고 그에게는 혁명과 당에 충성하며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바보정신”, 사업에 충성하는 “라사못 정신”, 곤난을 극복하고 뚫고 들어가는 “못정신”이 있었다. 하여 전국인민들은 모주석의 호소를 받들고 뢰봉을 좋은 본보기로 따라 배웠으니 필경 뢰봉은 선생이였다. “현대에 학교는 지식을 전댤하고 쌓게 하는 교사(敎師)나 교수만 있을 뿐 사람을 가르치는 진정한 스승이 없다”는 말이 있다. 새롭다는 지식은 낡게 마련이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바른 길은 낡을수 없다. 지식을 가르치는 분은 제자에게 압도당할 여지가 있지만 인생을 가르치는 선생은 압도당할 수 없다. 삶의 모범이 되지 못하는 선생은 이미 선생이 아니다. “선생의 그림자를 밟으면 않된다”는 경언이 있을 정도로 선생은 모두의 존경을 받는다. 오기활
248    기자생애서 제일 뿌듯했떤 16일 댓글:  조회:670  추천:0  2017-12-31
27년 전인 1990년은30여 년 기자인생에서 정녕 제일 자랑스럽고 제일 뿌듯했고 제일 바삐 돌아친 나날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중국 첫 대형국제운동회 특파기자로 제 11차 북경아세아운동대회는 로 불리던 우리 나라가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41년 만에11억 중국인민이 자기의 땅에서 33억 인구의 아세아주의 를 취지로 처음으로 주최한 대형국제 종합운동경기였다. 제 11차 북경아세아운동대회는 아세아운동회40년 력사에서 규모가 제일 상당한 대회로 37개 국가와 지구의 대표, 운동원이 6578명(운동원 6122명)참가하여 27개 정식경기를 진행한 대형국제운동대회였다. 이 중국의 첫 대형국제운동회에 필자는 특파기자로 물불을 모르고 밤낮이 따로 없이16일간(9. 22ㅡ10.7)이나 죽자살자 뛰여 다녔다. 이 대회에 중국이 636명의 선수를 참가시켜183금, 107은, 51동상을 따내 본 운동대회 제1위를 차지했다. 중국 조선족의 위상을 온 세상에 알리는 사명을 갖고 는 11차 아세아운동대회에 파견된 유일무이한 소수민족지역신문이였다. 이런 신분에 비춰 필자는 운동대회소식기사보다도 중국의 첫 대형국제운동마당에서 우리 조선민족과 중국 조선족의 위상을 온 세상에 알리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조선민족이 숨쉬는 기사를 발굴하면서44세 나이에 운동화바닥이 닳아서 구멍이 날 정도로 뛰여 다니며 매번 200부나 되는 를 선수촌과 대회장에 발부하면서 세계속의 조선민족을 만나보았다. 그속에는 중국의 조선족은 물론 조선, 남조선(한국), 재일 조선인, 재미조선인과 본 운동회의 최고 거인선수 리명훈(조선 남자롱구선수 ,23세, 키 2.32)을 만났었다. 그때 선수촌에 입주한 1만 명 촌민의5분의 1이 조선민족이였고 가 선수촌에 배달되는 유일한 조선문신문으로 가장 인기가 높아 번마다 삽시간에 거덜이 났다. 한 남조선(한국)의 동업자는 며 비록 신문을 꾸리는 방침과 방법은 다르겠지만 참고를 하라며 기사 배치며 신문인쇄에 관한 건의까지 제기하였다. 그때 담은 기사의 단락들이다. ㅡ 9월 24일, 11차 북경아세아운동회 조직위원회와 기금회가 인민대회당에서 조직한 11차 북경아세아운동회 자금모임에 기여가 큰 개인, 단위를 표창하는 대회에 해내외의 인사 1000명이 참가하였는데 그 중에 유일한 중국 조선족으로 리송관이 참가 하였다. ㅡ 왕청현 하마탕뱀술공장에서 생산한 표 뱀술이 선수촌 부근에 자리잡은 북경장백산특산부종합경영부의 인기상품으로 되였다. 선수들은 선수촌에 술을 가지고 들어갈수 없는 규정 때문에 먼저 선불금을 내고 술병에 자기의 이름을 써 놓는 방법으로 뱀술을 차지하고 돌아갈 때 갖는다는 계약까지 맺었다. ㅡ 연변을 벗어나니깐 조선족녀성들의 치마저고리가 얼마나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가를 처음 느꼈다. 개막하는 날인9월 22일 오후 천안문광장에 아름다운 조선족치마저고리를 입은 녀성8명이 나타나자 많은 해외의 관광객들이 둘러섰는데 그들 속에는 눈물을 짓는 할머니, 함께 아리랑을 부르자는 조선인, 사진을 함께 찍자고 기다리는 향향처녀들과 일본사람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ㅡ길림성매화구시 조선족처녀 김향란이61키로그람급 유도결승전에서 일본선수를 재끼고 1등보좌에 올랐다. ㅡ 남북조선녀자축구경기에서 대방선수가 넘어지면 대방선수를 일어나도록 쫓고 뺏던 뽈까지 포기하고 부추키거나 심지어 안마까지 해주었다. 경기가 끝나니 량측선수들이 손에 손을 잡고 경기장을 돌면서 관중들게 인사를 하자 경기장은 큰 박수소리와 함께 이란 노래소리가 울러 퍼졌다 . 고맙고 기쁘던 날 10월 2일은11억 중국 인민의 자기땅에서 제 11차 아세가경기대회를 맞은 11번째 날로 나의 일생에서 잊을수 없이 고맙고 기쁜날이였다. 오후 2시 40분경, 우리 일행은 분주히 돌아치다 보니 제때에 점심식사를 못하고 려관에서 지친 몸을 달래였다. 문뜩 노크소리가 나더니 들어오라는 소리와 함께 며 한족손님이 50원짜리 현금을 들고 들어왔다. 알고보니 이 분이 우리를 태웠던 택시기사인데 우리가 택시를 탈 때 낸 선불금을 그만 잊고 결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응당 받아야 할 돈이라고 해도 손님이 려관까지 찾아서 를 결산하는 깨끗한 그의 마음에 감복되여 문밖까지 멀리 나와 전송하였다. 오후 3시가 퍽 넘어서야 우리는 천안문광장 전문(前门)부근에 자리한 을 찾았다. 반갑게 인사하던 출납윈이 우리가 자리에 앉자 맥주 두병을 들고 와서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뜻밖의 대접에 우리는 오늘은 전부 만 생긴다며 기뻐하였다(후에 보니 이 집주인은 당년에 연변서 명망이 높았던 “마씨네 씨름형제”의 셋째였다). 저녁 6시 20분경, 우리는 남자배구경기를 보려고 조양체육관으로 갔다. 입장권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꼬리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정상적 경로로는 표를 살수 없다고 판단한 필자는 를 찾아가 기자증을 보이며 입장권을 4장을 사겠다고 하였다. 매표원은 신분을 확인하고 나서 원래는 인당에 한장만 파는데 특수대우로 4장을 드리겠으니 7시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다. 오후 한시 반부터 줄을 섰다는 료녕, 산동에서 온 손님들이 우리가 조선과 마중한 연변서 왔다니 묘 자리를 양보했다. 이날은 운수가 좋았던지 아니면 우리에게 특별좌석표를 배치했는지 우리는 뜻밖에도 국제재판석의 바로 뒤자리에 앉았는데 우리들의 오른쪽 두 남녀는 재미조선인, 왼쪽은 북경시 조선족리직간부, 뒤쪽은 재일조선족로인들이였다. 북경아세아경기가 세계각지의 우리 민족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였던 것이다. 이날 경기에서 진다고 말에 올랐던 중국이 아짜한 격전끝에 3:2로 일본을 재꼈다. 우리는 너무도 흥분된 나머지 경기결속후 한참을 기다려서 중국선수들의 싸인을 받고서야 자리를 떴다. 이날은 여느 때는 손을 들어도 세우지 않던 택시들도 손을 들자 잘 멈춰섰다. 우리는 너무도 고맙고 기뻐서 며 귀로에 올랐다. 여운 1 2 3 그때 통신수단은 전화, 우편, 팩스엿다. 16일간 필자는8편외 문자기사외10여 폭의 사진 기사를 발표하였다. 한번은 경험이 없는 필자가 본사 원고지에 띄여쓰기까지 한 원고를 한 건을(기억에 16페지)팩스로 급히 보냈는데 그때는 팩스비가 비싸다보니 개인돈 140원을 썼다니 편집반공실의 홍춘식부주임이 원고를 띄여쓰지 말고 한 장에 촘촘히 쓰라고 당부하였다. 그때 선수촌에 설치한 컴퓨터를 많은 중국 기자들은 컴푸터를 다를 줄 몰라서 쓰지 않았고 외국 기자들은 자기들이 갖고온 컴퓨터를 쓰기에 는 우수개 말까지 있었다. 10월 21일 지경화(독자)의 글이다. 그때 필자는 선농단운동장에서 처음 만난 왕청하마탕뱀술공장 최석준공장장의 청탁으로 하마탙뱀술공장과 북경모회사와 합작의향 토론에 참석하면서 며칠간 최석준의 책사로 활약 하였다. 그때 필자는 11차 북경아세아경기대회 기금회로부터 라는 영예를 받았고 김성계사장(겸 주필)의 주필상과 영예증서를 수여 받았다. 이 밖에 부언으로 개막식에서 중국방송원들이 을 이라고 부른다고 하는 한국측에 며 답변하던 중국 대변인의 재치있는 답변도 잊혀지지 않는다 오기활 길림신문 2017,12,29.
247    내가 만들어 가는 운명 댓글:  조회:574  추천:0  2017-12-17
11월 16일 “길림신문”은 톱기사로 한국 고려대학교 비교문학과 박사과정인 조선족녀성(필명: 小葵-작은 해바라기)의 글 “내 인생의 선택 ‘나 자신이 되고 싶다’ “를 실었다. 글의 주인공은 이국 땅에서 갖은 간난곡절을 겪어내며 결코 포기하지 않은 삶을 곁들며 “나는 나 자신이 되련다. 왜냐면 내가 다른 사람으로 되려 했으나 나중에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너는 바로 너 자신이며 다른 사람에게 운명을 맡기지 말라.’ ”는 삶의 경종으로 글을 마감하였다.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다. 이 할머니는 길을 가다가 갈림길을 만나면 지팡이를 공중에 던져 땅에 떨어지면 지팡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군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갈림길에서 지팡이를 한번 아닌 계속 반복하여 공중에 던졌다. 이에 지나던 사람이 “왜 그럽니까?” 고 물으니 “이 막대기가 계속 오른쪽만 가리키니깐요, 나는 왼쪽으로 가고픈데”고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게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하는 일마다 쉽게 풀리는 사람이 있는가면 반대로 일이 꼬이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운명 때문일가? 물론 사람에 따라 얼마는 행운일지는 몰라도 그 이상은 자신의 노력에 달린 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을 노력으로 메우고 다가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기 위해 항상 미리 준비해야 한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차례진다. “사람은 있는데 할 일이 없고 할 일은 있는데 사람이 없는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삶의 시련을 “작은 해바라기”마냥 굴함 없는 인내와 지혜로 극복할 때 그 운명이 기필코 불행이 아닌 희망(행운)으로 이어진다. “인생의 시작은 태여남이 아닌 만남이고 매사의 헤여짐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 하겠다. 자기에게 차려진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작은 해바라기”의 삶이 돋보인다. 오기활
246    얼굴이 뜨거워 졌다 댓글:  조회:918  추천:1  2017-12-03
11월 30일 오기활선배와 함께  “중국 길림성 식물도감” 출판을 위하여 조양천진 세집에서 밤낮으로 고군분전하는 연변대학 농학원 김수철교수님(94)을 방문하였다. 첫 눈에 안긴 저택대문 어구에 자리한 큰 종이함 “보간상(報刊箱)”, “오늘 새벽 4시까지 글을 쓰다 보니 방금 잠에서 깨여났습니다”며 손님 맞이에 등한했다는 사과말씀, 지금까지 해마다 연변일보, 길림신문 등 신문잡지를 주문한다는 소개, 며칠 전에 900원을 팔아 “연변문학사전집”을 샀다는 자랑…에 실로 젊은이로 얼굴이 뜨거워 났다. 배움의 길은 끌이 없다. 94세 고령에 초심을 잊지 않고 뭉치 돈900 원을 팔아 문화사료전집(全集)을 사놓고 열심이 구독한다는 김교수님의 구지욕에 감동되고 머리가 숙여지며 어쩌면 내고향 산천의 한 줄기 시내물이 계곡을 혜치며 쉼없이 용용히 대해로 내달리는 경관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필자가 얼굴이 뜨거워 진 데는 이런 원인도 있다. 지금은 년말이라 새해의 당보, 당간행물을 주문하라는 상급문건정신에 따라 큰 단위는 만 여원, 작은 단위는 몇 천원씩 당보, 당간행물을 주문한다. 그런데 문제는 참답게 구독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다. 필자가 알아 본데 따르면 령도분들은 시간이 없다는데서, 또 재직 공무원들은 별로 볼 내용이 없다는 데서이다. 그래서 많은 당간행물들이 봉투도 뜯지 않은 채 년말이면 쓰레기 신세로 년 초의 몇 만원어치의 돈이 년 말에 몇 백원의 페물로 외면되여 팔린다. 이런 현상과 현실은 단 마디로 재정랑비이고 지식재충전이 랑비다. 글쎄 공작시간에도 핸드폰에 눈을 떼지 안으면서 신문잡지는 시간이 없고 내용이 없어 안 본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94세 김옹이 2600종에 달하는 “중국 길림성 식물도감” 출판을 위해 지난 2년간 거의 혼자 몸으로 길림성과 길림성과 접근한 몽골지구산천을 다니며 사진을 찍으면서도 신문사와 잡지사를 찾아 다니며 신문잡지를 주문하는데 그에게 시간이 남아 돌아설가? 아니면 “볼 것이 없는” 신문잡지에서 남없는 “보물”을 찾으려고? 김옹의 말씀이다.  “나는 신문잡지에서 칼럼과 수필을 빠짐없이 다 봅니다. 거기에는 인생을 깨우치는 철리가 있으니까요?” 이에 비춰 도문시 법원 최은호법관의 자랑이 생각된다.  “몇 십년간 신문에서 수집한 ‘법률해석’ ‘법률문답’ 자료책이 나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되였습니다” 90고령에도 인생의 철리를 찾아 방황하는 김수철교수님을 새 시대 새 삶의 모델로 모시며 뜨거운 얼굴을 식혀본다. 성송권  (필자는 도문시공회주석조리임)
245    “로인교육법” 출두를 고령화사회 급선무로 댓글:  조회:623  추천:0  2017-11-27
19차 전국당대회보고에서 습근평동지는 “교육사업을 인민들에게 만족을 주는 사업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평생교육을 잘 운영해나가고 학습형사회를 조속히 건설하며 국민자질을 크게 향상시켜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60세 이상이 총인구의 14.9%에 달해 고령화시대에 진입했다고 한다..  전통적인 단명시대에서 로인들이 경험과 년륜으로 사회적으로 젊은들의 존경과 우대를 받았다면 고령화시대는 로인들의 지위와 세대적 차이로 100세 이상 로인들이 인터뷰 대상이나 사회의 혜택을 받는 시대로 되였다.   이에 비춰 현대과학문화의 발전속도가 빛마냥 빨라 지난 1년속도가 과거 10년 속도와 맞먹기에 그에 따른 로인들의 “비참상”이 문제로 되고 있다..   그래서 어느 사회학교수는 “60까지 일해온 사람이 할 일이 없는 사람으로 제외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보면 잘못된 일이며 경제학으로 보면 랑비다.”고 하였다. 어느 95세 로인의 일기이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 덕에 65세에 당당히 은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95번째 생일에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전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였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이 없이 죽기만을 기다 렸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다. 30년은 지금 내 나이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한 긴 시간이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다. 나는 지금 95세지만 정신이 또렷하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른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한다. 그 리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 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세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실로 100세시대 로인들을 대표한 감동적인 일기라 하겠다. “어려서부터 책 공부를 하면 젊어서 유익하고 젊어서 공부하면 늙어도 쇠하지 않고 늙어서 배우면 죽어서 썩지 않는다.”는 명언이 있다.   미국은 동네마다 로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많은 로인들이 배움의 기회를 갖는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는 배우고 싶어도 배울수 없던 과거와 달리 누구나 마음만 가지면 마음대로 배우수 있고 욕심대로 교육을 받을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고령화 새시대에 “로인교육법” 출두는 로인들의 과학문화의 제고와 함께 로인사회  “비참상”을 해소하는 급선무라고 한다.  연변이  전국의 처음으로 “로인절”을 법(조례)으로 제정했다면 문화민족자치주인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다시 한번 남 먼저 “로인교육법”(조 례)을 출두하자. 필자는 새로운 시대에 정부, 기업, 사회의 후원으로 중소학생과 로인들이 함께 등교하고 함께 공부하는 신형의 학교가 기대된다. 오기활
244    라철룡 19차 전국당대표와 수남촌 댓글:  조회:492  추천:0  2017-11-26
11월 13일 필자는 중국공산당 제 19차 당대표정신 전달로 팽이 매일 돌아치는 도문시 석현진 수남촌당지부서기(촌주임 겸)라철룡을 만나 대담하였다. “기층대표로 행운스럽게19차 전국당대표대회에 참가하여 자신감을 높히고 사업방향을 뚜렷히 하였습니다. 영광스러운 사명감과으로 초심을 명기하고 수남촌 건설을 위해 힘을 다 할 것입니다!” 아직도 흥분된 마음을 걷잡을수 없다며 “무엇부터 말하면 좋을 가요?”며 자신 있게 반문하는 라대표다. “순서가 따로 없이 경청하겠습니다.” 필자는 라철룡의 언보(言步)에 따라 려과 없이 그대로 채록을 올린다. 라대표의  “3가지 제일” ㅡ 가슴이 제일 벅차던 시각은 기층당원으로 전 세계 세인들의 주목속에서 전 국민의 심근을 울리는 자신감에 넘친 습근평총서기의 획기적인 보고를 한자리에서 청취 할 때, 변강 소수민족의 농촌당원을 대표로 새로운 당중앙위원들을 선거(투표) 할 때(라철룡은 대회에서 발급한 전문투표용 만년필을 보이며 흥분조로 투표시각을 회포), 대회가 끝난 후 습근평총서기가 강택민, 호금도 전임 당중앙 총서기와 당과 국가의 원로지도자들을 모시고 우리를 따뜻이 접견할 때였습니다. ㅡ 농민당원대표로 제일 큰 “흥분제”와 “안심환”이 당중앙에서 “향촌진흥전략”을 제기와 함께 “3농”문제의 해결을 당의 전반 사업의 으뜸위치로 하는 것, 제2회 토지도급기한이  차면 동 기한을 또 30년을 연장한다는 것입니다. ㅡ 제일 확고히 신심을 얻은 것이 “문화는 한 나라, 한 민족의 령혼이다. 문화가 륭성해야 국운이 흥하고 문화가 강해져야 민족이 강성해 진다.” “ 문화에 대한 드높은 지신심, 문화의 번영과 흥성을 떠나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룰수 없다”는 습근평총서기의 론설에 비춰 우리 촌 당지부에서 “촌이 문화를 만들고 문화가 촌을 살찌운다.” “문화가 없는 촌은 미래가 없다”고 제정한 발전사로가 정화감을 증명한 것입니다. 새 세대에 더 높이 서서 더 멀리 내다 보면서 습근평 중국특색사회주의 새 사상에 따라 수남촌 건설의 새로울 려정을 열것입니다. “부모 없는 대표단”에 부모사랑을 ㅡ 대회기간에 성당위 책임동지들이 연변대표단에 특별한 관심을 돌렸습니다. 장엄서기의 사업터 변동으로 하여 연변대표단(3명)이 순 조선족기층대표단으로 되였기에 우리가 더욱 스스로 모든 언행을 당과 조직에 책임져야 했습니다. 소수민족의 대표로서 우리는 옷차림을 결코 개인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한복 세벌을 가졌는데 개막식과 페막식 때 어느 옷을 입으면 좋겠는가를 파음초로서기와  장안순비서장한테 물어보고 그분들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내가 유모아로 파음초로단장에게 “연변대표단이 장엄서기의 사업변동으로 ‘엄마 없는 대표단’이 되였습니다. 우리가 어떤 면에서 더 주의해야 할 것임을 제때에ㅓ 지적해 주십시요”라고 하니 “라대표가 형식을 버리고 구속이 없이 기층에 존재한 문제를 실제적으로잘 반영했다” “라대표의 발언이 향후의 사업에 참조가치가 크다”며 긍정하였습니다(자기의 발언이 대표들의 박수도 받았다면서). 류국중성장도 “연변대표단을 눈여겨 살폈는데 모두 습근평동지의 보고를 열심히 학습하며 적극적 발언 했다”고 표양 하였습니다.. 한번은 내가 혼자서 식사를 하는데 파음초로단장이 나의 어깨를 도닥이며 생활에 불편이 없는가며 물었습니다. 또 한번은 “지난 번에는 정장복장을 하지 않아 사진을 못 찍었는데 오늘 우리 함께 사진을 찍읍시다”묘 기념사진을 찍었답니다. 정신빈곤 탈출이 우선 ㅡ 습근평동지는 “빈곤퇴치난관돌파전의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빈곤구제와 함께 빈곤자에게 투지와 지혜를 부여해주는 데 모를 박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빈곤탈출은 “정신빈곤탈출”이 수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찍 부모들이 “가난 구제는 나라(나라님/임금)도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며 남의 가난을 돕기란 끝이 없는 일이니 가난을 벗어나려면 스스로 정신을 차리라고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빈곤서 탈출하려면 앉아서 누가 도와줄 것만을 바라지 말고 정신을 가다듬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 분투해야 합니다. ㅡ19차 당대회 보고는“부강, 민주, 문명, 조화로운 사회주의현대화강국”의 앞에 특히 “아름다움”을 규정어로 하였습니다. 이는 생태문명건설에 대한 당의 중시를 충분하게 증명합니다. 아름다운 중국, 아름다운 가원건설은 인민들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수남촌은 물자원과 림자원이 풍부한 촌입니다. "청산록수가 바로 금산은산이다"는 리념을 확고하게 수립, 실천하여 보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수남촌을 자손후대들에게 유산으로 남겨 줄 것입니다. ㅡ 수남촌 입구에 "문화가 있는 마을에 미래가 있다"는 유표한 표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수남촌에 살아있는 봉오동홍색전적지문화기지를 홍색관광기로로 잘 건설하여 홍색관광기지로 하여금 기층 당지부의 당원학습기지와 청소년들의 애국교양기지로 할 것입니다. ㅡ 모두어 말하면 나는 변강, 소수민족, 기층 당조직의 대표로서 책임이 중하고 사명 또한 간고합니다. 수남촌의 향후 발전변화의 여하는 19차 당대표정신체현의 실질적인 표상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매체를 통하여 사회 각 계층, 각 분야의 적극적인 지지와 꾸준한 협력을 간절히 부탁합니다. 제목식으로 읽어 보는 라철룡대표 수남촌은 ,  “전국선진기층당조직”, 중국전통매력촌, 등 영예로 최근에 년 방문관광객이 5천명을 웃돈다. 수남촌의 초속적인 릉곡지변(陵谷之变)은 라철룡(49세)이2010년에 촌세대주를 떠멘 후부터다 라철룡은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동네방네 로인들을 찾아 다니며 툰사, 촌사와  함께  독립군의 발자취를 따라  많은 항일전적지를 탐방하였다. 라철룡은 수남촌 공청단지부서기, 민병련장직을 지냈고 기업을 운영하고 외국을 나들면서 식견을 넓히며 돈을 벌었다.  라철룡은 촌민위원회주임으로 선거 되자 첫 행사로 렬사비 앞에서 “선렬들이 흘린 피는 헛되지 않게 선렬들의 뒤를 이어 기필코 수남촌을 잘살게 건설 할 것입니다”고 맹세, 그 뒤를 이어 민족의 혼과 혁명선구자들을 기리기 위해 마을의 한복판에 이라는 큰 글을 새겨 넋비를 세웠다.. 라철룡은 촌주임을 맡자 외지사람들에게 양도했던 80헥타르의 밭을 몽땅 회수했고 남방서 해보식용균생산 항목을 유치해 전 성에서 규모가 제일 큰 식용균재배기지를 건설하여 수남촌의 효자기업으 로 부상시켰다. 라철룡은 하루에 낡은 집을28채씩 밀어버리는 기백으로 새농촌건설을 다그쳤기에 2011년에 도문시51개 촌에서 새농촌건설속도가 제일 빠른 촌으로 경험을 소개했다.   2014년에 “봉오동반일전투86주년기념하여 수남촌에서 ‘중국 조선족장기 수남초청’ 문화행사를 조직했고 2015년에 한국 ”여천 홍범도장군순국 71주기 추모식 및 학술회의”에 “봉오동전투전승현장대표”로 초청되여 홍범도장군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하였다. 오기활  
243    “대머리비참병”을 떼기까지는 … 댓글:  조회:555  추천:0  2017-11-23
잠깐 동안 “대머리”를 필제(笔題)로 함은 독자들과 함께 소탈하게 웃어 보고 싶은 외 “대머리” 와 “대머리자식”을 둔 부모들게  “치료비방”을 제공 하려는데 있다.  지금 일본 케이오대학庆应义塾大学) 교수직에 있는 나의 아들은 2000년에 일본류학을 갈 때 머리가 더부룩한 건장한 사나이였다. 그런데 몇 년간 일본서 알바로 박사공부까지 끝내려니 고된로동, 여러가지 압력과 스트레스, 흘여 내리는 동이 땀..에 휴식이 따로 없이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며 밤잠까지 설치다보니 몇 년 사이에 제 자식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대머리”로 변모하였다. 몇 년만에 “대머리아들”을 처음 만난 부모들의 마음이 얼마나 비참하던지…  그래서 멀쩡했던 아들을 대머리로 만든 부모의 죄책감으로 아무튼 대머리 치료에 좋다는 약처방을 만나면 그대로, 제때에 아들한테 보내 주었다. 그런데 생각밖에 아들은 보기좋은 웃음을 지으며 “대머리”로 인하여 기분이 상했거나 기를 죽여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여하튼 결혼 후 장모가 사위에게 머리를 심는 미용을 해 주겠다고 나서도 못 들은 척 외면하는 고집통이라며 배풍까지 하더라니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재밌죠?!”표 “대머리 례찬약”을 보내 올 줄이야! 대머리 예찬 1. 존경스런 분들 : 이번 미국 여행 중에 많은 존경스런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갈보리 채플의 목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공통점은 척 스미스, 그렉 로리, 라울 리즈 목사님 등 모두가 대머리라는 점이다. 그네들은 그냥 재미있게도 헤어 스타일이 같아서 좋았다. 2. 샌디에이고의 탐한 기자 : 샌디에이고에서 자전거를 같이 탄 탐한(Tom Han) 기자도 대머리였다. 같은 두 빛나리가 자전거를 타니 호흡이 잘 맞았다. 인간적으로도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스프를 먹는 중에 탐한 기자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드려 주었다.  "너는 대머리이니 거지는 되지 않겠다. 거지 중에 대머리 봤니..." 둘 서로가 대머리 례찬을 시작했다. 3. 대머리 례찬 : 머리는 카락의 수에 관심을 갖지 말라. 더 중요한 것은 그 속에 든 것이다. 시저(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도 정복하지 못한 것이 머리카락이다. 시저도 대머리이다. 개를 키운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 가장 똑똑한 개는 귀와 배 부위에 절대 털이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털과 지성은 결코 량립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대머리가 가장 존귀하다. 대개 아직까지 분별력이 약한 청년들은 머리카락이 무성하다. 그러나 늙은 지혜자는 머리카락이 없다. 스파르타가 망한 리유는 중간 이후 사치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이 머리카락을 손질 하다가 국력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하긴 모국의 녀대통령도 머리치장에 몇 시간씩 허비했다는 탄핵건도 있다 ㅡ 필자) 그리고 전사들의 투구를 보라. 다 대머리 형상이다. 왜? 대머리는 위엄과 권위, 두려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압살롬은 자기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자랑하다가 상수리 나무에 매달려서 죽었다. 대머리는 능력이다. 대머리는 겸손이다. 대머리는 지혜와 지성이다.. 멋진 남자는 빛난다. 남성은 광택이 필요하다.   아들의 끝 말이다. “지금까지 대머리의 자기 위로의 말이었습니다. 재밋쬬?” 아들이 보내온 “재밋죠?”자가 료법이 필자의 “대머리비참병”까지 뚝 뗄 줄이야!   오기활
242    초심을 기억함은 의무이다 댓글:  조회:449  추천:0  2017-11-23
중국공산당19차 전국당대표대회에서 습근평동지는 전당에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명기하자는 주제교양활동을 전개하여 자각적으로 새시대 당의 력사적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꾸준히 분투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호소, 계속하여 대회 페막후 7일만에 새 중앙지도자들과 함께 제1차 당대회현장 당기 앞에서 입당선서를 재현하며 동 주제교양활동에 앞장을 섰다. “잊지 말자”는 “꼭 기억하자”이다.  “초심을 잊지 말자”는 “하는 일을 처음 먹은 마음으로 끝까지 하자”로 “룡두사미”(龙头蛇尾)가 아닌 “수미일관”(首尾一貫)을 말한다.   초심은 인생의 방부제며 삶을 식별하는 시금석(試金石)이다. “일인지상, 만인지하(一人之上, 万人之下)”를 지낸 조선왕조의 문신인 한명회가 73세에 인생을 마감하면서 “마지막 소망이 무엇인가?”는 성종의 물음에 자기의 후사나 자식들의 일에 대한 부탁이 아닌 “처음에는 부지런하고 나중에는 게으른것이 사람의 상정(常情)이오니 원컨대 전하께서 끝까지 처음의 시작대로 하소서!” 라는 소망만 남기고 운명을 하였다.   초심은 자신의 위치를 바르게 가르키는 라침판이며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원동력이다.  “초심”을 화제에 올리면 스스로가 학교 입학의 첫 날의 꿈, 첫사랑의 첫 고백, 입당 첫 날의 첫 선서, 취직, 승진 첫 날의 첫 맹세…를 점검하며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인생은 초심, 열심, 뒷심으로 가꾼다.  초심은 모든 일을 시작할 때의 목표와 다짐이고 열심은 일하는 자세이며 뒷심은 포기함이 없이 끝까지 해내는 힘이다. 초심에서 열심이 생기고 열심에서 뒷심이 생긴다. 초심을 기억함은 사업과 인생의 의무이다. 의무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책임에는 수평적 책임과 수직적 책임이 있다. 수평적 책임이란 우리세대가 져야 할 모든 의무를 말하고 수직 적 책임 이란 후세들이 선배들을 계승해야 할 력사적인 의무와 사명을 말 한다. 력사란 사람들이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기억하는 학문이며 기억을 기 초로 시간에 의해 쓰고 이어지는 전설이다. 력사를 잊는(은) 인간과 민족은 미래가 없다.   오기활
241    초심을 기억함은 의무이다 댓글:  조회:429  추천:0  2017-11-23
중국공산당19차 전국당대표대회에서 습근평동지는 전당에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명기하자는 주제교양활동을 전개하여 자각적으로 새시대 당의 력사적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꾸준히 분투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호소, 계속하여 대회 페막후 7일만에 새 중앙지도자들과 함께 제1차 당대회현장 당기 앞에서 입당선서를 재현하며 동 주제교양활동에 앞장을 섰다. “잊지 말자”는 “꼭 기억하자”이다.  “초심을 잊지 말자”는 “하는 일을 처음 먹은 마음으로 끝까지 하자”로 “룡두사미”(龙头蛇尾)가 아닌 “수미일관”(首尾一貫)을 말한다.   초심은 인생의 방부제며 삶을 식별하는 시금석(試金石)이다. “일인지상, 만인지하(一人之上, 万人之下)”를 지낸 조선왕조의 문신인 한명회가 73세에 인생을 마감하면서 “마지막 소망이 무엇인가?”는 성종의 물음에 자기의 후사나 자식들의 일에 대한 부탁이 아닌 “처음에는 부지런하고 나중에는 게으른것이 사람의 상정(常情)이오니 원컨대 전하께서 끝까지 처음의 시작대로 하소서!” 라는 소망만 남기고 운명을 하였다.   초심은 자신의 위치를 바르게 가르키는 라침판이며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원동력이다.  “초심”을 화제에 올리면 스스로가 학교 입학의 첫 날의 꿈, 첫사랑의 첫 고백, 입당 첫 날의 첫 선서, 취직, 승진 첫 날의 첫 맹세…를 점검하며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인생은 초심, 열심, 뒷심으로 가꾼다.  초심은 모든 일을 시작할 때의 목표와 다짐이고 열심은 일하는 자세이며 뒷심은 포기함이 없이 끝까지 해내는 힘이다. 초심에서 열심이 생기고 열심에서 뒷심이 생긴다. 초심을 기억함은 사업과 인생의 의무이다. 의무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책임에는 수평적 책임과 수직적 책임이 있다. 수평적 책임이란 우리세대가 져야 할 모든 의무를 말하고 수직 적 책임 이란 후세들이 선배들을 계승해야 할 력사적인 의무와 사명을 말 한다. 력사란 사람들이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기억하는 학문이며 기억을 기 초로 시간에 의해 쓰고 이어지는 전설이다. 력사를 잊는(은) 인간과 민족은 미래가 없다.   오기활
240    벗이란? 댓글:  조회:510  추천:0  2017-11-22
백 사람을 두루 아는 것보다 속을 다 털어 보일수 있는 한 사람을 아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는데 그 한 사람을 바로 벗이라고 한다.  벗이란 마음이 서로 통해 두 사람이 한 사람으로 되는 경우를 말한다. 벗 “朋”자가 이를 알려준다.  달면 오고 쓰면 가는 것은 리득을 따져 만나고 헤여지는 것이다. 이련 교유는 겉으로만 친하고 속으로는 경쟁을 하거나 시샘을 하는 경우가 거의 태반이다. 일하는 곳이 같아서 서로 만나고 헤여지는 것은 공통의 일로 서로 만나는 경우이다. 이런 만남은 동료의 선을 넘지 못한다. 벗은 서로간에 허물이 없다. 벗은 상대를 사랑하므로 무엇이든 잘되기를 바란다. 만일 벗이 어떤 결함이나 실수를 할 가능성이 있으면 서슴이 없이 솔직하게 충고하고 곁들어 준다. 벗이 아니면 충고를 해주기가 어렵다. 다들 제가 잘났다는 생각으로 사는 세상에서 충고를 하려고 들면 고깝게 듣기가 일쑤이다. 좋은 말을 하고도 감정을 사는 경우를 얼마든지 볼수 있다. 남의 일에 관심을 쓸 것이 무어 있느냐며 자기나 잘하라고 핀찬을 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벗끼리는 쓴 말을 달갑게 받고 고마워 한다. 서로의 믿음에서 말이다. 그러나 이한 믿음을 함부로 다루어선 안된다. 서로 믿음을 소중히 갈무리하면서 붇돋아 주어야 벗은 란초의 향기마냥 오래 은근해 진다. 현대는 벗이 없는 세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리로우면 서로 벗이 되고 해가 되면 서로 원쑤가 된다면서 말이다.  리익 때문에 벗이 되는 경우는 없다. 서로 마음이 통해야 벗이 된다. 현대인은 고독한 성주(城主)가 되여 성문을 걸어 잠그고 서로의 내통을 거부하는 단독자처럼 살아 간다. 그처럼 누구나 벗을 소망하면서도 벗을 사귀지 못하는 것이 무슨 때문일가? 아마도 그것은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 버린 탓이 아닐가. 공자는 벗을 사귀는 길을 “충고를 하여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충고를 해도 말을 듣지 않으면 그만 둬라. 지나친 충고를 하다가 도리여 욕을 당하는 경우가 없게 하라.”고 하였고 증자는 “군자는 글로써 벗을 사귀고 벗이 됨으로써 서로의 인덕을 돕고 높인다”고 하였다. 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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